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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Less Is More

by 이성근 2022. 2. 9.

적을수록 풍요롭다제이슨 히켈 지음, 김현우·민정희 옮김, 창비 펴냄 2021.09.

원제Less Is More

경제는 영원히, 끊임없이 성장해야 할까?

 

저자 : 제이슨 히켈-런던정치경제대학교 국제불평등연구소 방문 선임연구원이자 바르셀로나자치대학교 환경과학기술연구소 교수. 글로벌 불평등, 정치경제학, 생태경제학 등에 관해 연구해온 경제인류학자로서 영국왕립예술학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에스와티니 출신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오랜 시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하며 인종차별정책 이후 착취와 정치적 저항에 대한 글을 썼다. 세계적 학술지인 세계 개발(WORLD DEVELOPMENT)의 부편집장을 맡고 있으며, UN 인간개발보고서 통계 자문위원회, 유럽그린뉴딜 자문위원회, 하버드랜싯 배상재분배정의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격차(THE DIVIDE) 죽음으로서의 민주주의(DEMOCRACY AS DEATH) 등이 있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문 우리 공동의 취약성, 그리고 우리의 연대에 근거한 비전

들어가며 인류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많을수록 빈곤하다

1장 자본주의: 탄생 이야기

2장 저거너트의 등장

3장 기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인가?

 

2적을수록 풍요롭다

4장 좋은 삶의 비밀

5장 포스트 자본주의 세계로 가는 길

6장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기후위기 너머의 미래를 상상하기

 

출판사 서평

탈성장은 선택이 아니다, 유일한 답이다

자연 상태에서 모든 유기체는 성장하지만, 성장에는 종착역이 존재한다. 성숙한 단계에 이르면 성장을 멈추고 상태를 유지한다. 만약 성장이 멈추지 않고 세포가 계속해서 증식한다면 이는 암세포나 일종의 코딩 오류로 표현된다. 그런데 경제성장에서만큼은 이러한 한계가 없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자본주의하에서 매년 세계 GDP는 적어도 2~3%는 성장해야 한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단 3%의 경제성장만 지속되어도 이는 23년마다 세계경제의 전체 규모를 두배로 늘리는 수준이다. GDP는 필연적으로 에너지와 자원 사용을 동반한다는 점과 인류가 이미 지구의 한계를 넘어선 수준으로 자원을 소모하고 쓰레기를 쏟아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류가 봉착한 위기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물론 지구온난화의 폭을 1.5이하로 유지하고 2050년에는 탄소배출량을 0까지 감축하자는 국제적 합의가 정립되었고 각종 그린뉴딜도 등장했다. 하지만 저자는 현재와 같은 경제성장과 물질생산을 지속한다면 어떠한 그린뉴딜도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힘주어 말한다. 더 많은 성장은 더 많은 에너지 수요를 의미하고, 에너지 수요가 많아진다면 대체에너지를 아무리 개발한다고 해도 충분한 생산량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가속화된 불평등, 대멸종과 기후 붕괴의 현실 속에서 경제가 계속해서 성장한다는 것은 동화 같은 이야기다. 성장 없는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는 관성에서 벗어나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저자는 탈성장이라는 발본적인 전환을 주장한다.

한계에 다다른 지구

생태경제학자로서 저자는 전세계적으로 보고되고 있는 다양하고도 연쇄적인 대멸종과 기후 붕괴의 민낯과 앞으로 지구에 닥칠 미래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전세계적으로 곤충 숫자가 감소하고 곤충을 먹이로 삼거나 수분 매개체로 곤충에 의존하는 생물종 역시 광범위하게 감소하고 있다. 지구 토양의 40%가 심각하게 침식되었고 전세계 농지의 5분의 1에서 작물 수확량이 줄어들고 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지구에서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는 기간이 60년밖에 안 될 수도 있다고 과학자들은 경고한다. 해양의 상황도 비슷하다. 공격적인 남획과 오염으로 세계 어족 자원의 85%가 고갈되었다. 바다는 지구온난화로 생성된 열의 90% 이상을 흡수하면서 뜨거워졌고 먹이사슬이 끊어지며 해양 서식지가 사라지고 있다. 탄소배출로 인해 바다가 산성화하는 문제도 눈여겨봐야 한다. 6600만년 전 마지막 멸종 당시 바다의 산성도 pH0.25 낮아졌고, 그 결과 해양 생물 종의 75%가 절멸했다. 지금의 흐름대로면 해양 산성도는 금세기 안에 0.4만큼 낮아질 것이다. 현재 멸종 속도는 산업혁명 이전보다 1000배 이상 빠르다. 기온 상승으로 매년 발생하는 초대형 태풍의 숫자는 1980년대 이후 두배가 되었고, 2003년 유럽을 강타한 폭염은 7만명을 사망케 했다. 저자는 이 모든 위기와 기후행동 실패의 배경에 우리의 경제체제, 즉 자본주의가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는 어떻게 세계를 파괴해왔는가

생태계 파괴는 수백년 전에 등장한 자본주의, 특히 1950년대부터 가속화된 산업화와 함께 시작되었고 이런 인간의 시대를 학계에서는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부른다. 그러나 저자는 지금의 위기가 인간보다는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의 압도적 지배력과 관련이 있으니 자본세(Capitalocene)로 규정하는 것이 맞는다고 주장한다. 책의 1장과 2장에서 저자는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어떤 과정을 통해 등장했고, 어떻게 성장이라는 핵심가치를 동력으로 삼아 부를 축적함과 동시에 지구를 파괴해왔는지, 무엇보다 그러한 착취의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공고화되었는지를 분석한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1300년대 유럽의 농민혁명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된 인클로저에서 태동했다고 설명한다. 목초지??강 등 풍요로운 자연에 대한 접근을 제한함으로써 인위적 희소성과 궁핍을 퍼뜨리는 방식, 즉 커먼즈의 약탈을 통해 초기 자본주의의 본원적 축적이 이루어졌고 사람들은 빈곤과 열악한 노동에 내몰렸다는 분석이다. 똑같은 과정은 유럽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한 다른 지역에서도 반복되었다. 산업혁명으로 향하는 1500년대부터 1800년대 사이에 이러한 격동이 세계를 휩쓸었고, 대다수 인간의 삶은 홉스의 말처럼 더럽고, 잔인하고, 아졌다. 자연과 상생하는 애니미즘의 전통이 자연을 약탈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기계론적?이분법적 철학으로 대체되었고 생태계는 무분별하게 파괴되었다.

성장주의라는 거대한 괴물

저자는 자본의 내재적 논리가 성장이라는 절대과제고 자본주의의 특징은 지속적인 성장 추구라고 정리한다. 교환가치를 통해 축적되는 이윤을 위해 자본이 증식하는 과정에서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윤은 자본이 되고, 다시 새로운 이윤창출, 즉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된다. 성장을 멈추는 순간 인플레이션과 감가상각으로 자본은 가치를 잃기 때문에, 자본이 축적되어도 성장에 대한 압박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이러한 시스템을 저자는 계속 성장하기 위해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돌아가는 수레바퀴, 저거너트’(Juggernaut)에 비유한다. 또한 경제성장의 핵심지표로 등장한 국내총생산(GDP)이라는 측정기준은 성장에 대한 공적 강박증을 강화했다. GDP를 만든 쿠즈네츠조차 사회적 비용을 계산하지 못하는 GDP의 한계를 지적하며 단순히 경제활동을 돈으로 환산한 총계보다, 인간의 좋은 삶을 고려하고 더 균형 잡힌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1960OECD 설립 이후 무제한적인 GDP 성장이 각국의 정책 목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면 기업과 정부가 파산하고 일자리가 사라지고 모두가 빈곤해진다는 성장주의의 신념이 전세계에 뿌리를 내렸다.

 

저자는 성장이 나쁘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성장주의(growthism)라고 분명히 말한다. 인간의 필요와 행복, 사회적 목적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장 그 자체 또는 이윤추구만을 위해 성장을 추구하는 행위가 문제라는 것이다. 성장주의는 인간의 노동력을 값싸게 착취하려 할 뿐 아니라 엄청난 양의 자원을 먹어치운다. 금속·광물·화석연료·건축자재를 비롯하여 매년 인간이 추출하고 소비한 모든 재료의 총량을 집계한 물질 발자국(material footprint) 통계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1945년 이후 경제성장이 가속화하면서 물질 사용량은 2017920억톤까지 치솟는다. 과학자들은 지구가 연간 500억톤까지 물질 발자국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 추산한다. 최대 안전 한계인 셈인데, 우리는 이미 이 한계를 두배 초과했다. 물질 사용의 폭발적 증가는 당연히 심각한 생태계의 파괴를 의미한다. 성장이라는 정언명령은 한계가 없지만, 지구의 생명력에는 분명히 한계가 존재한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기술은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성장주의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하면서 기술혁신을 통해 현재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을 조장한다. 정말 기술의 효율성만 개선하면 자본주의의 어떤 것도 바꾸지 않은 채 세계경제를 계속해서 성장하게 할 수 있을까? 3장에서 저자는 기후변화를 막을 것으로 기대되는 여러 첨단 기술과 공학의 문제점을 진단한다. 재생에너지와 혁신적인 재활용 기술, 대기 중의 탄소를 빼내는 배출 흡수 기술’(negative-emissions technologies), 심지어는 태양을 차단하거나 바다의 화학적 구성을 바꾸는 지구공학적 기술까지, 위기의 지구를 구하고 성장을 녹색으로 만들어 줄 기술로 각광받는 여러 대안들이 언급된다. 저자는 각 기술의 기본적인 내용과 현실적 한계들을 꼼꼼하게 분석하며 대다수 기술이 현시점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만큼 효과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밝힌다. 설혹 이런 해결책들이 기후변화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된다 해도 지금처럼 경제성장을 지속하면 물질 사용도 줄어들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생태계 붕괴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물론 기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생태계 붕괴에 대항하려면 절대적으로 기술과 효율성 개선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논지다. 실제로 생태경제학자들과 이 분야를 연구하고 메타 분석을 실행해 2019년 관련 논문을 발표하기도 한 저자의 결론은 간단하다. ‘녹색성장은 없다. 실증적 증거가 없다. 성장 지향의 경제하에서는, 생태적 영향을 줄이려는 기술조차 결국 성장 목표를 높이고 채굴과 생산의 순환에 점점 더 많은 자연을 착취하는 데 이용된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성장이다.

 

탈성장이 만드는 포스트 자본주의 사회의 미래

2부에서는 탈성장이라는 목표를 제시하며 생태계 붕괴를 되돌리고 대안 경제를 건설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조치들을 살펴본다. 탈성장은 에너지와 자원의 과도한 사용을 계획적으로 줄임으로써 경제가 안전하고 정의로우며 공정한 방식으로 생명세계와 균형을 이루게 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이때 저자는 탈성장이란 GDP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전적으로 다른 경제, 애초에 성장이 필요 없는 경제로의 전환이 핵심이다. 결론적으로 탈성장을 통해 끝없는 자본축적이 아니라 인간 번영을 중심으로 조직되는 포스트 자본주의 경제가 가능해진다는 주장이다. 경제의 모든 영역이 항상 성장해야 한다는 불합리한 신조에서 벗어나면, 우리의 필요를 위해 성장시켜야 할 분야(청정에너지, 필수 공공 서비스 등)와 탈성장해야 할 분야(화석연료, 무기 등)를 결정할 수 있다.

 

또한 더 많은 상품 판매를 위해 제품을 단기간에 고장나게 만드는 계획적 진부화, 무절제한 소비를 자극하는 광고 등 순전히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안한 경제 부문을 축소할 수 있다. 그러면 결국 사람들이 불필요한 노동의 고역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주당 노동시간을 줄여 완전고용을 유지할 수 있고 소득과 부를 보다 공정하게 분배할 수 있으며 보편적 의료보장, 교육, 저렴한 주거와 같은 공공재에 투자할 수 있다. 탈성장 경제의 모습을 생생히 묘사함으로써 저자는 탈성장=빈곤이라는 선입견을 격파한다. 나아가 경제적?사회적 대전환과 기후실천의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전하고 진정한 사회적 번영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이 길을 갈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대멸종과 기후 붕괴의 엄중한 현실 앞에서, 우리 모두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다.

 

책속으로

<적을수록 풍요롭다>는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한가지 해답의 가능성, 즉 우리가 질문하고 찾고, 사실상 그렇게 할 것을 결심한다면 해결책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전망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 레오P. 21

인류세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성장이 외적 한계에 부딪힐 때까지 앉아서 기다릴 수 만은 없다. 우리 스스로가 성장을 제한하기로 선택해야 한다. 경제가 지구의 위험 한계선 내에서 작동하도록 재조직하고, 우리가 생존을 위해 의존하는 지구의 생명 시스템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 레오P. 173

성장이 소득의 평등을 대체할 수 있다면, 소득의 평등이 성장을 대체 할 수도 있다. - 레오P. 261

변화해야 할 것은 우리의 경제만이 아니다.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고 그 세계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바라보는 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 greenseaP. 64

우리는 죽어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 파안P. 43

사회학자 제이슨 무어가 지적했듯이, 이것은 인류세가 아니다. 자본세Capitalocene. - 파안P. 70

자연이 외부적이라는 이유로 자연은 저렴한 것이 될 수 있었다. - 파안P. 115

성장이 멈추면 기업은 파산하고, 정부는 사회 서비스에 돈을 대기 위해 버둥거리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빈곤이 증가하며, 국가는 정치적으로 취약해진다. 자본주의하에서 성장은 인간 사회 조직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라 모두를 볼모로 잡는 정언명령이다.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진다. 우리는 구속복을 입고... 더보기 - 파안P. 145

우리 스스로가 성장을 제한하기로 선택해야 한다. 경제가 지구의 위험 한계선 내에서 작동하도록 재조직하고, 우리가 생존을 위해 의존하는 지구의 생명 시스템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 파안P. 173

성공하려면 정반대로 행동해야 한다.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 - 파안P. 191

더 짧은 노동시간으로의 전환은 인간적, 생태적 경제를 건설하는 데 핵심적이다. - 파안P. 297

질문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다. - 파안P. 385

 

이제는 자본주의에 질문을 던질 때

GDP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대다수 경제, 발전, 성장 등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우리는 GDP가 정확히 어떻게 측정되는지 모르더라도, 각 나라의 경제 상황을 나타내는 어떠한 지표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 ‘국가 경제=GDP’라는 인식 때문에 GDP는 매년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연초가 되면 각 국가는 목표 경제 성장률을 정책으로 내세울 정도다.

 

우리 경제는 왜 발전해야 할까? 왜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GDP 성장이 옳다고 생각할까? 환경 파괴를 비롯한 인간소외, 물질만능주의 등의 문제점은 끊임없이 지적되어왔지만,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한 재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두가 해결책을 모르기에 회피한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자본주의가 옳지 않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이걸 대체할 방법이 없잖아?’ 저자 제이슨 히켈은 이 물음에 답하고자 한다. 정치경제학, 생태경제학 등을 연구해온 경제인류학자인 그는 탈성장이라는 해법으로 인류를 포함한 전 지구를 되살릴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시한다. 그의 연구 분야에서 알 수 있듯, ‘환경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경제, 철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지식을 활용하였다. 환경 문제로 이 책을 선택했더라도, 자본주의가 인간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그동안 환경 문제는 왜 진전이 없는지,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등 그 이상의 것을 알아갈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다.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과거로 돌아가 자본주의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을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참혹한 현실을 낱낱이 밝힌다. 베이컨, 데카르트의 이원론사상 덕분에 우리는 자연, 동물, 나아가 인간의 노동을 착취하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 필요한 만큼만 일하는 자급자족의 생활방식과 그러한 의식을 바꾸기 위해 노동을 강제하는 법을 제정하고, 농토와 같은 공유지를 사유지화, 민영화한 역사(소위 인클로저’)를 자세히 알게 된다.

 

2부에서는 1부 내용을 바탕으로, 저자가 제시한 해법인 탈성장의 구체적인 방안들과 그 이후의 모습을 설명한다. (소위 포스트자본주의’) , 탈성장이 이루어지려면 국가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각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 1부에서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논의의 배경과 우리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한다면 2부에서는 좀 더 심층적으로, 우리 삶과 맞닿아 있는 실천적인 부분들을 자세하게 다룬다.

 

문제는 성장이 아니라 성장주의growthism. 인간의 구체적인 필요와 사회적 목적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장 자체 또는 자본축적을 위해 성장을 추구하는 것 말이다.’(p. 146) 저자는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가 성장에 기반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성장 그 자체를 위한 성장을 이루어내지 못하면 자본주의가 붕괴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 인간의 욕구와 상관없이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성장해야만 한다.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경제는 성장해야 할까? 왜 성장하는 게 좋을까? 결국 이 또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발명된것에 불과하다. 이 체제, 그 당시 자본주의를 원했던 소수에 의해 발명된 개념이다. 이 개념을 당연하게 만들고자 자행되었던 학살, 노동력 착취의 역사는 승자인 자본가들에 의해 잊혔다.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덕분에 삶의 질이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되었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변화해야 할 것은 우리의 경제만이 아니다.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고 그 세계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바라보는 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p. 64) 책을 읽어보면 깨닫겠지만, 기후 위기는 인간의 무한한 착취로만 초래되지는 않았다. 무한한 착취가 직접적인 이유라면, 좀 더 본질적인 원인은 우리의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몇 세기 만에 인간 외 존재를 물질화하고, 착취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역사적으로 인간이 아니었던 존재(흑인, 여성, 장애인 등)의 노동력조차 정당하게 착취당했다. , 이런 전체적인 과정을 모른 채 지금의 기후 위기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책은 지금의 기후 위기, 환경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뿐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모순에 고민이 많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 자본주의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설명하는 1부가 상대적으로 양이 많아, 오히려 후자의 사람들에게 더 흥미로울 것 같다.

 

'우리가 여기서 하고 있는 게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서인가? 인간의 존재 목적은 대체 무엇인가?'(p. 381) 저자가 강조한 것처럼,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체제와 현 기후 위기 사태에 질문을 던지고 심도 있는 논의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평] |작성자 beanything

 

 

평등이냐 생태 재난이냐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에서 시민회의 구성원을 대상으로 네 차례의 설문조사를 했다. 탄중위 시민회의에는 무작위 선발된 시민 500여 명이 참여한다. 공론화 기간에 공부를 하게 되고 이에 따라 설문 결과가 변화한다. 예를 들면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음식을 묻는 질문에 소고기 음식’(정답)이라고 답한 비율은 81차 설문 46.2%에서 94차 설문 89.8%로 크게 늘었다. 아는 만큼 절실하다. ‘육류 소비를 자발적으로 줄이도록 해야 한다는 답변은 36.7%에서 49.9%가 됐다. 아는 만큼 달라진다. 문제는 경제다.

 

핵심 쟁점 중 하나인 석탄발전소 폐쇄 시기를 묻는 문항. 결과가 역주행했다. 2차 설문에선 2030년까지 폐쇄해야 한다는 답이 35.2%1위였으나 4차 설문에선 2050(30.8%)으로 1순위 시기가 밀린다. 산업계의 현실을 공부하고 보니 시기상조라고 판단한 응답자가 늘어난 것이다. 우리가 2030년까지 석탄발전소를 내려놓지 못하면 탄소중립은 멀어진다. 그걸 아는 시민들이 현실론에 손을 든 셈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딜레마일까? 요즘 흔해진 논쟁거리다. ‘경제냐 환경이냐.’ 정말 그것이 문제일까?

 

적을수록 풍요롭다는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경제인류학자인 저자는 단호하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인류가 경제성장을 좇는 한 기후위기를 면할 방법은, 없다. 솔직해지자. 세계는 2000년 이후 연간 80억 메가와트시(h) 이상의 청정에너지를 생산했는데, 같은 기간 경제성장은 에너지 수요를 480h로 늘렸다. 지금까지 청정에너지는 낡은 에너지를 대체한 게 아니었다. 기하급수적인 수요 증가에 얹어졌을 뿐이다. 경유차를 전기차로 바꾸면 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 대기업 논리에 속아 넘어가지 말자는 얘기다. 이 모든 것의 전제가 경제성장이다.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한 경제냐 환경이냐의 덫에 발목 잡힐 수밖에 없다. 딜레마는 주입됐다.

 

적을수록 풍요롭다가 반가운 이유는 생태계 보전이라는 당위에만 매달리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경제성장이 가져온 불평등의 결과를 파고든다. 1980년 이래 40년간 세계 경제성장에서 나온 새로운 소득의 46% 이상이 가장 부유한 5%에게 돌아갔음을 밝히는 식이다. 한국도 지난 20년간 1인당 GDP3배 뛰는 동안 상위 10%의 소득 비중이 33%에서 50% 이상으로 늘었다. 저자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성장이, 낙수효과가 아닌 불평등과 기후위기를 가져온다는 점을 꼼꼼히 짚는다. 이제 질문이 바뀐다. 난감한 것에서 쉬운 것으로. ‘경제냐 환경이냐에서 좀 더 평등한 세상이냐 생태 재난이냐.

시사인/ 송형국 (KBS 기자·영화평론가

 

Less Is More', 적을수록 삶은 더 풍요롭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것 세 가지라면 옷과 음식, 衣食住일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인의 삶이 점차 풍족해지면서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고, 어떤 공간에서 생활하는가?’는 단순히 생존수단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옷은 어떨까요? ‘유행하면 패션이 가장 먼저 떠오를 만큼 옷은 생활필수품을 넘어 때와 장소, 상황Time, Place, Occasion·TPO에 맞게 갖춰야하는 문화상품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음식은요? 과거처럼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만이 아닌, 음식점의 독특한 분위기 등과 맞물려 삶에 보다 큰 즐거움을 주는 역할까지 담당합니다. 집 역시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쉼터shelter의 개념을 넘어 저 사람은 어떤 집에 사는가?’를 통해 그 사람의 취향이나 소득, 계층 등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Less is more’ 철학이 담긴 건축물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전 세계 건축물의 99퍼센트는 왜 콘크리트일까?

지금과 같은 생활양식이 정립되기까지 인류는 많은 변화과정을 거쳤습니다. 특히 19세기 말은 시대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전통적인 사고와, 산업혁명을 거치며 등장한 새로운 가치가 만나 갈등을 겪으면서 건축은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것과 같은 주택 형태는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요? 바로 20세기 이후입니다. 20세기 이후 세워진 전 세계 건축물의 99퍼센트는 철근 콘크리트 또는 철골 콘크리트 구조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고층 주상복합 건물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주택과 상가가 철근 콘트리트 구조로 지어졌습니다.

 

이처럼 20세기 들어 전 세계 도시건축물의 표준이 된 철근 콘크리트 양식을 완성한 건축가는 프랑스의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1887~1965와 독일의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1886~1969입니다. 이들 외에도 여러 독창적인 건축가들이 규격화된 철근 콘크리트와 유리를 주재료로 쓰는 건축양식을 만들었는데, 이를 국제주의 양식또는 모더니즘 건축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모더니즘 건축의 등장을 계기로 조화와 형식 위주의 전통적인 유럽 건축은 점점 쇠퇴하고, 기능 위주의 건축이 주류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습니다.

 

현재 모더니즘 건축은 세계 어딜 가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국제주의 양식의 건물은 쭉쭉 뻗은 직선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그 전까지 건물을 뒤덮었던 현란한 장식물은 사라지고, 날렵하고 매끄러운 실용적인 건물이 등장하게 됩니다.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 오늘날 전 세계 도시건축물의 표준이 된 철근 콘크리트 양식을 완성한 인물이다.

 

단순하다는 이유만으로 세계적 명소가 된 크라운홀

국제주의 양식이 20세기 들어 건축계에 급속도로 확산된 데에는 다음 세 가지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첫째, 공업기술의 발달로 철, 유리, 콘크리트 등의 재료가 대량생산되면서 기존 건축자재의 단점을 보완하는 새로운 건축기술이 등장했습니다. 그 결과,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건물들이 지어졌습니다. 둘째,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집안에서 주거와 생산 등 모든 것을 해결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사무실, 상업용, 공공기관 등 다양한 용도의 건물이 필요해졌습니다. 이에 따라 용도에 걸맞은 건물들이 생겨났는데, 그 건물을 짓는데 적합한 양식이 국제주의였습니다. 셋째, 그동안 건축가들은 실제 건물의 기능과는 상관없이 여러 시대의 건축양식들이 섞인 건물들이 계속 지어지는 데 대해 염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실용적인 국제주의 양식을 적극 도입했던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국제주의 양식을 확립한 독일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자신의 건축철학을 ‘Less is more적을수록 풍요롭다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이는 기능=디자인이라는, 모더니즘 건축의 철학과 특징을 한마디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1937년 미국으로 건너간 미스는 이듬해 아머공과대(현 일리노이공과대) 건축대학 학장을 맡습니다. 학장을 맡는 대신 캠퍼스에 새로 지어질 건물들의 설계를 맡는다는 조건이 붙었는데요. 이때 그가 설계한 건물이 현재 일리노이공과대의 크라운홀S. R. Crown Hall입니다. 가로 약 67미터, 세로 약 36미터, 높이 약 5.5미터의 이 홀을 지탱하는 기둥의 개수는 단 여덟 개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내부 공간에는 기둥이 하나도 없습니다. 강철·유리·벽돌 등 재료의 질감과 특성을 잘 살린 배치, 정확한 비례와 극도의 단순미가 돋보이는 크라운홀은 건축학도라면 꼭 한번쯤 가봐야 할 명소로 꼽히지요.

미국 일리노이 공대의 크라운홀. 단 여덟 개의 기둥이 730여 평이나 되는 건물을 떠받치고 있다.

 

애플도 한 수 배운 단순함의 철학

미스의 건축물을 몇 점 더 살펴봅시다. 스페인에 있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1929년 바르셀로나 엑스포 독일관으로 쓰려고 설계된 건축물입니다. 이 역시 직사각형의 단순한 외부형태에 벽을 최소화함으로써 내부공간을 최대한 살리고, 대리석·석회석·적마노

 

赤瑪瑙 등 값비싼 건축자재를 잘 활용한 수작秀作입니다. 엑스포가 끝나고 1930년 철거되었지만, 과거의 사진기록을 토대로 1986년 복원되었습니다. 흑백사진만이 남은 관계로 현재 파빌리온의 건물색은 처음 지어진 파빌리온의 색과 다르다고 합니다.

 

의사였던 에딧 판스워스의 의뢰를 받아 1951년 완성한 판스워스 하우스Farnsworth House’ 역시 미스의 작품입니다. 테라스와 바닥, 지붕이 평행선을 이루며, 집 전체를 여덟 개의 H빔이 떠받치는 단순한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집이 마치 잔디 위에 살짝 떠 있는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재미있는 건축물입니다.

 

미스는 한때 뉴욕의 명물이었던 시그램 빌딩도 설계했습니다. 높이 159.6미터, 38층 규모의 이 빌딩은 요즘 시각에서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어 보입니다. 유리와 철로 지어진, 전형적인 고층빌딩의 외형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스는 시민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광장을 만들기 위해 거리에서 27미터나 물러난 곳에 건물을 세우도록 했습니다. 덕분에 이곳에 조성된 광장은 빽빽한 고층건물로 가득한 도심 속의 오아시스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한국의 건축가 김중업 씨는 이 같은 미스의 건축철학에 영감을 얻어 청계천 변에 삼일빌딩(110미터)을 설계하기에 이릅니다. 1971년 완공된 이 건물은 1978년 롯데호텔 본관이 세워질 때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습니다.

 

이처럼 불필요한 구시대적 디자인을 들어내고 단순함을 추구한 ‘Less is more적을수록 풍요롭다라는 철학은 건축분야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적극적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 철학을 가장 잘 수용하고 실천한 기업으로는 애플이 있습니다. 애플은 불필요한 기능이나 디자인요소는 과감히 제거함으로써 사용자 편의를 극대화한 제품들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독일계 미국인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설계한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풍요로운 삶은 정리된 마음에서 비롯된다

여러분은 혹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미니멀 라이프란 우리 주변의 물건, 공간, 인간관계 등을 최소한으로 남기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자는 운동입니다. 마치 건물에서 불필요한 장식이나 겉치레를 제거하고, 입주자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본질적기능에 집중했던 모더니즘처럼 말입니다. 언젠가 쓸 것 같아서 사놓았지만 쓸 일이 별로 없는 물건들, 누가 누군지 모를 만큼 빽빽한 스마트폰 메신저 친구들. 이렇게 삶이 복잡하다 보니 우리 마음 역시 쉴 여유를 찾지 못하고 점점 더 복잡하게 흘러갑니다.

 

생활환경을 복잡하지 않게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우리 마음속 생각을 정리하는 일입니다. 온갖 장식물과 군더더기로 건축물을 어지럽게 꾸몄던 19세기 말의 건축가들처럼,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생각들을 버리거나 정리하지 않은 채 얼기설기 엮어놓고 삽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의 마음에는 한 시간에 약 2천 가지가 넘는 생각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하루가 24시간이니, 그야말로 5만 가지 잡생각이 우리의 마음속을 드나드는 셈입니다. 그 생각들은 대부분 쓸데없는 생각들입니다. 그런 생각들을 방치한 채 살다보면 우리 마음은 혼돈되고 분산되어 힘을 잃게 됩니다.

 

행복해지고 싶으십니까? 생각을 정리함으로써 마음을 단순하고 간결하게 하는 삶, 그것이 진정 행복한 삶입니다. ‘Less is more’라는 말처럼 풍요롭고 행복한 삶은 단순하고 정리된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데일리투머로우, 2018.04.12 / 김연아 실내디자인과 건축계획을 전공한 공학박사.대안학교 링컨하우스대구스쿨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