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 중앙-한국
‘박정희도 노무현처럼 대접해야 민주주의’란 궤변
WHO, '게임중독 = 질병' 만장일치로 통과…업계는 '반대
"부산 경제를 어쩌나"... 고용률 7대 도시 중 `꼴찌`
체르노빌, 진실 은폐의 ‘참혹한 대가’ 고발한 미국 재난드라마
‘그것’이 없는 부부생활이라 해도...실화 바탕 일본 드라마
“사회적 갈등이 ‘혐오’ 통해 표출돼”
문 대통령, 독립운동가 유해 ‘전용기 좌석’에 “최고의 예우로 보답
1+1=1.3, 맞벌이면 손해보는 국민연금 이야기
게임중독이 질병? '숨은 문제'가 있다
부동자금 1천조 육박…저금리·금융시장 불안 영향
‘부울경’은 조선일보 천하, 부일·국제도 강세
월 300만원 넘는 사람…공무원연금 12만명 vs 국민연금 0명
'방탄' 한국당 "강효상 못 내준다"
“해군, 해녀들 동원해 투표함 탈취 경찰은 불법행위 보고도 눈 감아”
국회 장기파행, 의원은 지역구·해외로
무역전쟁 확대시 세계경제 711조원 손실”
자본과 권력의 이중주...김무성 케이스 1
미국이 눈감은 인도네시아 대학살의 역사는 진행형
전국 땅값 8.03% 올라 ‘11년 만에 최대폭’
5월29일 20년 전 ‘초호화 아파트’는 얼마였을까?
싱크대 속 '5억 현금다발'…고액 체납자 재산 은닉 백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김준태 시인 “80년 5월 쓰러진 임산부 그의 넋이 빙의돼 시가 되어 나왔다”
[대한민국 교육 제대로 가고 있나](6)욕망과 사회제도 앞에 무기력한 고3의 앞날
[대한민국 교육 제대로 가고 있나](4) 신규 교사들은 왜 교단을 떠날까
대한민국 교육 제대로 가고 있나](3) 대학 입시제도 이대로 좋을까?
대한민국 교육 제대로 가고 있나](2) 누구를 위한 NEIS인가?
“한 달 29만 원” 사교육비 통계, 그냥 받아써도 될까
"3700명 속인 인보사 사태 주범은 식약처, 다른 문제 또 있다"
남편이 남의 편인 이유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유족 억장 무너지는 언론보도
종편에선 여전히 ‘북한군 개입설’ 나온다
내 집 꼭 필요하지만…” 작년 주거실태조사 결과 보니
굶주리는 아이들, 정치하는 어른들
‘밥보다 비싼 커피’ 논란에서 ‘스세권’까지…스타벅스 20년
정치인이 한없이 약해지는 그 단어는…공천!
‘우리민족 최고’라는 국수주의는 식민사학의 쌍둥이⑮ 미래의 역사학
걷기만 하면 돈 준다? 이미 '실행중'입니다
'헝가리 유람선 침몰'에 보험금 운운한 언론사 명단공개
김영철 강제노역-김혁철 처형설, 사실일까?
현대중공업 ‘체육관 10분 주총’의 전말
30년전 ‘식칼 테러’ 재현하는 노동보도
5.24 내일-경인
인천-기호
경향-한국농정
한겨레-국민
경향-대구
국제-내일
528 기호-경인
한겨레-경향
한국-대구
중앙 -국제
529 한국-530국민
한국-대구
중앙-국제
기자협회-한겨레
5,27~31 경향 장도리
‘박정희도 노무현처럼 대접해야 민주주의’란 궤변
[비평] 박정희는 군사쿠데타 일으킨 범죄자, 신군부의 양민학살을 정당화할 수 없어
조선일보 최보식 선임기자는 24일자 칼럼에서 박정희를 노무현처럼 대접해주지 않고 5·18을 달리 볼 수 없게 하는 것은 독재적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최 선임기자는 이날 ‘최보식 칼럼’ ‘光州와 봉하마을, 누가 불편하게 만드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0주년 성대한 행사를 두고 “노무현은 이런 대접을 받을 만하다”며 “그가 던진 지역주의 타파는 여전히 이념과 진영의 논리를 떠나 함께 풀어야할 과제”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노무현 10주기나 각종 문화 축제에 대해 보수 쪽 사람들 마음속엔 어떤 불편”하다며 “현 정권 사람들이 ‘노무현은 보수·진보 진영을 떠나 소중한 가치’라며 이렇게 떠들썩한 행사를 벌이면서, 왜 보수의 상징적 인물에 대해서는 그렇게 야박했느냐”고 토로했다. 특히 최 선임기자는 2년 전 ‘박정희 탄생 100주년’을 맞았을 때 현 정부가 개입해 기념우표 발행과 동상 건립을 무산시킨 것에 “‘박정희’ 이름을 걸고는 기념 음악회 장소를 빌리기도 어려웠다”며 “현 정권에서 ‘박정희 가치’는 한낱 조롱거리”였다고 썼다. 그는 “자기들만 가치 있고 대접받을 수 있다는 도덕적 오만(傲慢)”이라고 힐난했다.
노무현과 박정희를 같은 선에 놓을 수 있을까. 노무현은 선거로 집권했지만 박정희는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했다. 전두환 노태우가 내란죄로 처벌받았듯이 박정희도 민주정부가 들어섰을 때까지 살아있었다면 내란죄 처벌을 받았을 것이다. 본인이 저지른 범죄에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대접받기를 원하면 역사 앞에 반성하고 뉘우치는 게 우선이다.
지난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0주기 추도식이 열린 봉하마을에서 참석자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최 선임기자는 문 대통령이 5·18 39주기에서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가 없다”고 한 발언에도 시비를 걸었다.
그는 천안함 피격은 북한과 무관하다든가, 세월호 침몰에는 정권이 개입됐다는 주장에 침묵하던 대통령이 왜 이 부분에만 민감하냐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광주 사태’를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공식화하고 특별법으로 보상해준 게 ‘독재자의 후예’인 보수정권(김영삼 정부)이었다면서 “그렇다 해도 개인은 다른 각도에서 광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게 민주화를 거쳐 획득한 사상과 표현의 자유”라며 “이를 ‘독재자의 후예’ 운운하는 게 바로 독재자적 발상”이라고 했다.
신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뒤 광주에 내려가 시민을 짓밟고 총칼로 목숨을 빼앗았다. 살인이었다. 이 사실은 북한군 개입 같은 허상을 아무리 뒤집어씌우려 해봐야 바뀔 수 없다. 양민학살을 폭도진압이라고 정당화하는 게 과연 ‘민주화를 거쳐 획득한 사상과 표현의 자유’일까. /조선일보 2019년 5월24일자 34면
WHO, '게임중독 = 질병' 만장일치로 통과…업계는 '반대
세계보건기구 WHO가 게임중독을 공식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했습니다. 보건복지부도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관리하기 위한 절차작업에 착수했는데, 게임업계는 게임을 죄악시하는 과도한 조치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기자>현지 시간으로 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 총회에서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습니다. 게임중독에 새로운 질병코드가 부여되면서 각국 보건당국은 질병관련 보건 통계를 작성해 발표하게 되며 질병 예방과 치료를 위한 예산을 배정할 수 있게 됩니다.
개정된 질병분류 기준은 2022년부터 적용됩니다. WHO는 게임중독 판정 기준을 지속성과 빈도, 통제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만들었습니다. 게임 통제 능력이 손상되고 다른 것보다 게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생활이 12개월 이상 지속되면 게임 중독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이번 결정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국내에서도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관리하기 위해 실태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의학 전문가 등이 참여해 게임중독 개념을 정립하고 구체적인 진단기준을 마련하겠다는 겁니다.
게임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준비위는 충분한 연구와 데이터 등 과학적 근거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한 판단을 내렸다며 강하게 규탄했습니다.
보건당국은 문체부 등 관련부처와 시민단체, 학부모 단체, 게임업계 등이 모두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를 다음 달 추진해 여러 논란을 조정하고 합의점을 찾겠다는 계획입니다.
"부산 경제를 어쩌나"... 고용률 7대 도시 중 `꼴찌`
부산복지개발원이 25일 발표한 부산 근로실태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으로 부산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8.1%로 전국 특·광역시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주력산업 부진 등으로 장기침체에 빠진 부산이 각종 경제지표에서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경제활동참가율전국 평균 63.1%와 비교해도 5.0%포인트 낮았다.
경제활동참가율은 만 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와 실업자를 합친 경제활동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지난해 부산의 고용률도 55.7%로 7대 도시 중 꼴찌였고, 전국 평균 60.7%보다 5.0%포인트 낮게 나왔다. 임금근로자 지위는 상용근로자가 68.4%로 가장 많았고, 임시근로자 23.7%, 일용근로자 7.9%의 순이다. 근로자 평균임금은 상용근로자의 경우 291만6천원으로 울산 355만5천원, 서울 335만7천원, 대전 312만3천원, 광주 299만6천원에 이은 5위를 기록했다.
일용근로자 평균임금은 부산이 142만5천원으로 전국 7대 도시의 일용근로자 중 가장 낮았다.
임시근로자는 136만3천원으로 뒤에서 두 번째 수준이다. 부산지역 근로자 주당 근로시간은 42.4시간이며 40∼50시간 비중이 72.1%로 제일 높았다.
디지털뉴스부기자 dtnews@dt.co.kr
체르노빌, 진실 은폐의 ‘참혹한 대가’ 고발한 미국 재난드라마
미국 드라마 ‘체르노빌’
“그때 체르노빌에서 정상적인 것은 없었다.” 1988년 4월26일 모스크바, 한 남자가 긴 이야기를 마친 뒤 녹음테이프를 신문지로 감싼다. 남자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척, 테이프를 숨겨 집 밖으로 나온다. 아직 어둠에 싸인 거리 한쪽에서 수상한 차가 그를 감시 중이다. 음식물 쓰레기통 옆의 폐건물 유리창 안으로 녹음테이프를 던진 남자는 집으로 돌아와 고양이에게 밥을 준 뒤 목을 맨다. 벽시계의 바늘이 1시24분을 가리키고 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를 극화한 <체르노빌>은 핵물리학자 발레리 레가소프(재러드 해리스)가 남긴 녹취기록으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당시 원인 조사를 맡았던 레가소프는 모든 진실을 파악했음에도 정부의 압력에 못 이겨 은폐에 일조한 뒤, 죄책감에 시달리다 사고 정황을 녹음한 테이프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드라마는 레가소프 자살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6년 4월26일 새벽 1시25분. 체르노빌에서는 부소장 아나톨리 댜틀로프(폴 리터)를 포함한 모든 직원이 넋 나간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안전성 실험 도중 폭발이 일어났지만, 누구도 정확한 상황을 알지 못했다. 유일한 고성능 방사능 계측기는 금고에 있었고 열쇠는 어딨는지도 몰랐다. 댜틀로프가 소장에게 사고를 왜곡 보고하고, 이 보고가 다시 부장·부의장·중앙위원회를 거쳐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전달되는 동안 국민을 위한 대책은 없었다.
그 새벽에, 잠에서 깬 주민들은 거리로 나와 발전소 주변의 특이한 색 불빛을 구경했다. 누출된 방사능이 공기를 이온화시키면서 발생한 현상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구경하는 이들 머리 위로 방사능 재가 눈처럼 내렸다. 단순 화재 사고로 알고 출동한 소방관들은 방사능 누출에 대비하지 못하고 발전소 안으로 들어갔다. 아침이 밝아오자 밤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 주민들도 모두 일어났고, 아이들의 등교가 시작됐다. 방사능 재는 그 위로 계속 떨어져 내렸다.
<체르노빌>에는 재난드라마의 스펙터클이나 감상적인 휴머니즘, 영웅주의 같은 요소는 없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 진실을 파악하려 애쓰는 과학자들 등의 노력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이 참혹한 비극에 대한 조금의 위안으로도 기능하지 않는다. 오히려 “향후 100년 동안 계속될 방사능 검출” 등과 같은 대사를 통해 참사가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사고의 심각성을 축소하는 관계자들의 책임 회피,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관료주의 등은 아직도 많은 재난에서 반복되고 있다. “거짓의 대가는, 거짓을 진실처럼 착각하는 게 아니다. 진짜 위험한 대가는 우리가 너무 많은 거짓에 속고 난 뒤, 더는 진실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체르노빌>의 첫 대사는 이 인류 최악의 참사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을 말해준다. / 한겨레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그것’이 없는 부부생활이라 해도...실화 바탕 일본 드라마
일본 드라마 ‘남편의 그것이 들어가지 않아’
대학 진학과 함께 고향을 떠난 구미코(이시바시 나쓰미)는 처음으로 자취생활을 시작한다. 낯선 아파트에서 교육학과 선배 겐이치(나카무라 아오이)를 만난 구미코는 허물없이 다가오는 그에게 금세 마음을 연다. 자연스럽게 연인이 된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힌다. 애정에는 전혀 이상이 없는데 육체적 관계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은 결혼에 이르지만,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문제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부부생활에 점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일본 드라마 <남편의 그것이 들어가지 않아>를 접하는 이들은 보통 세번 놀라게 된다. 그 파격적인 제목에 한번 놀라고, 다음으로 이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는 데 충격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도발적인 제목과 달리 인간 내면과 결혼의 근본적 의미를 진지하게 탐색하는 작품이라는 데 가장 놀란다. 원작자 고다마는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들었던 개인적인 체험을 문예동인지의 동명 기고글을 통해서야 토로할 수 있었고, 이 솔직하고 담담한 고백은 독자들의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2017년 동명의 단행본 에세이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넷플릭스에 의해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졌다.
드라마에서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주인공 구미코 역은 이시바시 나쓰미가 맡았다. 그는 올해 초 엔에이치케이(NHK) 드라마 <좀비가 왔으니까 인생을 되돌아보고>에 이어 또 한번 결혼생활의 파탄을 맞고 삶을 돌아보는 주인공을 연기하게 됐다. 어린 시절 불행한 결혼생활을 이어간 부모 아래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구미코는 겐이치를 만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하다니 내겐 처음 있는 일”이라며 감격한다. 고등학교 시절 경험한 첫 육체적 관계가 아무런 감정이 없는 상태에서 통과의례처럼 치러졌기에, 구미코는 겐이치와 육체적 관계가 어렵다는 사실보다 그러한 관계 없이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더 특별한 기적처럼 여긴다. “육체적으로 친밀해지는 대신, 우리는 정서적으로 한결 가깝다. 우리는 행복하다.”
그러나 두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단지 육체적인 문제만이 아니었다. 성애적 관계 중심의 세상, 양가 부모와 아이 중심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등 소위 ‘일반적’인 삶과의 괴리와 소외는 부부에게 계속해서 억압과 부담으로 다가온다. 구미코와 겐이치는 ‘그것 없는’ 부부생활이 비정상적이고 결핍된 삶이 아니라 그저 조금 다른 삶일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그들 자신도 많은 갈등과 시련의 시간을 보낸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탈’적 행위에 충격을 받으면서 계속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것’이 무엇이든, 모두가 ‘그것’ 하나쯤은 없는 삶을 살아간다. ‘정상’적인 삶은 어떤 삶인가
/ 한겨레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사회적 갈등이 ‘혐오’ 통해 표출돼”
혐오표현 진단 국가인권위 토론
온라인뿐만 아니라 정치권까지 난무하고 있는 혐오표현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우리 사회의 혐오.차별표현의 현황을 진단하고 대응하기 위한 토론회를 24일 오후 개최했다. 이날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국사회 혐오표현 진단과 대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이승현 연세대학교 법학연구소 전문연구원은 혐오표현이 미치는 해악성으로 혐오의 표적이 되는 집단 구성원의 존엄성이 침해되는 것은 물론 이들 집단이 자신들의 의견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면서 공론장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이 전문연구원은 “혐오표현의 대상은 주로 사회적 소수자로 인지되는 집단의 구성원들인데 이들 집단에게 공포감, 위축감, 좌절감, 내면의 자기부정을 야기한다”면서 “혐오표현이 특정 개인에게 이루어지는 경우뿐만 아니라 집단 전체를 칭하는 경우에도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공포와 위축으로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인권위가 발표한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2016)에 따르면 혐오표현의 표적이 된 집단 구성원들은 심리적 두려움이나 슬픔, 지속적인 긴장감 등으로 일이나 학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전문연구원은 “혐오표현의 해악성 측면에서 표적집단 구성원의 기본권 보호 측면에서 국가가 대응조치를 취할 정당성이 인정된다”면서도 법적 규제의 한계가 있음을 짚었다. 그는 “혐오표현에 대한 법적 규제가 일시적인 감소에 기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효과가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면서 “표적집단에 대한 제도적.구조적 차별을 철폐하고 사회에 만연한 차별의식을 개선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김보명 부산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혐오는 특권의 표출인 동시에 불안과 분노의 산물”이라면서 “혐오의 대상이 아닌 수행자로 스스로를 상상하고 위치지울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가 안전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 ‘안전’은 불안하고 유동적이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혐오표현의) 여러 배경들 중 문제는 차별에 대한 인식이 지극히 취약하다는 점”이라면서 “우리가 혐오에 맞서려고 한다면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차별이다. 차별을 인식하고 그것을 철폐하려는 의지를 가질 때에만 혐오도 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퀴어문화축제를 방해하거나 성소수자혐오를 선동하는 행위들을 표현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되고 규제가 필요하다”면서 “표현을 규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문 대통령, 독립운동가 유해 ‘전용기 좌석’에 “최고의 예우로 보답
독립운동가 유해가 대통령 전용기 좌석으로 수송됐다.
21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관으로 현지 안장돼 있던 계봉우·황운정 지사 내외의 봉환식이 거행됐다. 대통령이 독립 유공자 유해의 봉환식을 직접 주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태극기로 감싸진 계봉우·황운정 지사 부부의 유골함과 영정이 대통령 전용기 공군 2호기를 통해 고국의 땅을 밟았다. 해방 74년 만이다.
이날 문 대통령은 “네 분을 모시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임무이며 독립운동을 완성하는 일이다”라며 “머나먼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하신 독립유공자들의 정신과 뜻을 기리고 최고의 예우로 보답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계봉우 지사는 함경남도 영흥 출신으로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가 수립된 후 북간도 대표로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임시정부 간도 파견원으로 활동했다.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후에도 ‘조선문법’ ‘조선역사’ 등을 집필했다. 그의 공적을 인정해 정부는 1995년 계지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황운정 지사는 함경북도 온성 출신으로 3·1운동에 참여했다가 1920년 체포를 피해 중국 지린성으로 망명했다. 이후 1922년까지 러시아 연해주에서 무장부대 일원으로 활동했다. 정부는 황 지사에게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카자흐스탄에서 봉환되는 황운정 지사 부부. 뉴시스© Copyright@국민일보 카자흐스탄에서 봉환되는 황운정 지사 부부. 뉴시스
정부는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2호기를 누르술탄으로 급파해 두 지사와 배우자의 유해 4위를 유가족과 함께 고국으로 수송했다. 독립운동가들의 유해는 항공기 화물칸이 아닌 좌석에 모셔졌다. 정부가 독립 유공자에 대해 최고의 예우를 갖춘 것이다.
유가족 의사에 따라 계봉우지사 부부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황운정 지사 부부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각각 안장될 예정이다.
정부는 카자흐스탄에 남아 있는 홍범도 장군 유해 등에 대해서도 국내 봉환을 추진키로 했다.
국민 김다영 인턴기자 2019.04.24.
전교조 30주년 전국교사대회
25일 오후 서울 종각역 네거리에서 열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 30주년 전국교사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전교조 법외노조 즉각 취소, 해고자 원직복직' '노동기본권, 정치기본권 쟁취' '학교민주주의 교육자치 실현' 등을 촉구했다./오마이뉴스 ⓒ권우성2019.05.25.
1+1=1.3, 맞벌이면 손해보는 국민연금 이야기
1+1=1이라는 이상한 공식이 맞는 분야가 있다. 때로는 1+1=1.3이 되기도 한다. 국민연금 급여 조정 얘기다. 부부가 함께 국민연금에 가입해 노후에 노령연금을 타다가 한 명이 사망하면 이런 일이 생긴다.
국민연금제도는 1988년 도입돼 해를 거듭하면서 부부수급자도 매년 늘고 있다. 부부수급자는 2014년 15만 8천142쌍에서 2015년 18만 5293쌍, 2016년 22만 2천273쌍, 2017년 27만 2천656쌍, 2018년 29만 7천186쌍으로 30만 쌍에 육박했다.국민연금은 가입자 개인별로 노후 위험(장애, 노령, 사망)을 대비하도록 보장하는 사회보험으로 부부가 모두 가입하면 보험료를 낸 기간에 따라 남편과 부인 모두 노후에 각자 숨질 때까지 각자의 노령 연금을 받는다.
하지만 부부가 모두 연금을 받다가 한 사람이 먼저 생을 마감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른바 '중복급여 조정 규정'에 따라 남은 배우자는 자신의 노령연금과 유족연금 중에서 유리한 한 가지를 골라야 한다.
①사망한 배우자의 유족연금(사망한 배우자가 받던 노령연금의 40~60%)을 선택하면 유족연금만 받는다. 자신이 부은 노령연금은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1+1=1이 되는 것이다.
②만일 자신의 노령연금을 고르면, 노령연금에다 유족연금의 30%를 추가해 받을 수 있다. 2016년 12월 이전까지 이런 유족연금 중복지급률은 20%였다가 30%로 올랐다. 1+1=1.3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제도가 이렇게 설계됐을까.
정부 설명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자신이 낸 보험료만큼만 받는 민간연금상품과는 달리 사회보험으로 소득재분배 기능도 갖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사회 전체의 형평성 차원에서 한 사람의 과다 급여수급을 막고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장치를 뒀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가입자들의 불만은 적지 않다. 우리나라 국민연금과는 달리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 다른 선진국 연금이나 공무원연금 등 국내 다른 공적연금은 이런 중복급여 조정을 하지 않는다. 대신 최대로 받을 수 있는 급여 한계 금액을 설정해 놓고 있을 뿐이다.
공무원연금보다 불리한 국민연금
외국과 비교할 필요도 없이 국민연금은 이 중복지급률 면에서 공무원 연금에 비해서도 불리하다. 국민연금은 중복 지급률이 30%지만 공무원 연금은 50%다. 국민연금은 1+1=1.3인 반면, 공무원연금은 1+1=1.5란 얘기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유족연금 중복지급률을 현행 30%에서 40%로 상향 조정할 계획을 하고 있기는 하다.
일부 연금전문가는 지금처럼 자신의 노령연금을 고르면 유족연금의 30%를 더 주듯이, 유족연금을 택하더라도 유족연금만 줄 게 아니라 노령연금의 30%를 더 얹어주는 식으로 중복급여 조정제도를 고칠 것을 주장한다. 또 장기적으로 중복지급률을 50%까지 상향 조정할 것도 주장한다.
올 2월 과로로 순직해 국민적 안타까움을 산 윤한덕 전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 그는 2010년 의료원이 정부 기관에서 특수법인으로 전환될 때 공무원 신분을 포기했다고 한다. 당시 서기관(4급)이었던 그는 복지부로 자리를 옮길 경우 공무원 신분 유지가 가능했지만, 의료원에 남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응급 의료체계 구축에 전념하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의 높은 뜻을 많은 이들이 칭송하고 있지만, 연금만 보면 손해를 봤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은 공무원연금에 비해 소득대체율, 유족연금 지급률, 중복지급률에서 모두 불리하기 때문이다.
유족연금만 봐도 국민연금은 사망한 배우자가 받던 연금의 40~60%만 준다. (가입 기간이 10년 미만일 때 40%, 10~20년 일 때 50%, 20년 이상일 때는 60% 지급) 반면 공무원 연금은 60%를 보장한다.
맞벌이 부부, 배우자 죽으면 연금은?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부부가 모두 노후에 연금을 받는 경우가 많다. 부부가 모두 국민연금 가입자, 혹은 공무원 연금 가입자처럼 부부가 같은 연금에 가입했다면 비교적 간단한데 부부가 서로 다른 연금 가입자라면 좀 복잡해진다.
아래 표를 보면서 자신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된다.
예를 들어 남편은 국민연금(노령연금), 아내는 공무원연금(퇴직연금) 가입자라고 치자. 요건이 되면 부부는 각자의 연금을 모두 받을 수 있다. 그러다 남편이 먼저 사망하면 아내는 국민연금공단에서 나오는 남편의 유족연금(남편이 받던 노령연금의 40~60%)과 공무원연금공단에서 나오는 본인 퇴직연금을 받으면 된다. 반대로 아내가 먼저 사망하면 남편은 아내의 퇴직유족연금(아내가 받던 퇴직연금의 60%)과 자신의 노령연금을 함께 수령하면 된다.
즉 부부가 모두 국민연금 가입자면 1+1=1.3이 되지만 부부 중 한 명이 국민연금, 나머지 한 명이 다른 특수직역연금 가입자라면 1+1=2가 된다는 얘기다.
본인과 배우자가 모두 공무원연금이나 사학 연금 등 특수직역연금에 가입한 경우를 보자. 이때는 배우자가 먼저 사망하면, 본인의 연금은 그대로 수령하고 배우자의 퇴직유족연금은 절반만 받게 된다. 1+1=1.5인 셈이다. / 윤창희 기자theplay@kbs.co.kr
게임중독이 질병? '숨은 문제'가 있다
[주장] WHO의 정신질환 분류는 시기상조... 연구 더 진행해야
이전부터 게임중독이 질병인가 아닌가에 대해 논의는 계속되었지만 합의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에 6C51이라는 질병코드를 부여했습니다.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본 겁니다.
게임중독을 정신질환이라 주장하는 근거
정신질환 판단은 일반적으로 DSM-5(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5판)를 기반으로 합니다. DSM 기준을 만족하면 정신질환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지요. DSM은 미국정신의학협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가 발행한 분류 및 진단절차입니다.
DSM에서 판단하는 게임중독 아홉 가지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인터넷 게임에 대한 몰두(이전 게임 내용을 생각하거나 다음 게임 실행에 대해 예상함. 인터넷 게임이 일과 중 가장 지배적인 활동이 됨)
*주의점: 이 장애는 도박장애 범주에 포함되는 인터넷 도박과 구분된다.
2. 인터넷 게임이 제재될 경우 나타나는 금단 증상(이러한 증상은 전형적으로 과민성, 불안 또는 슬픔으로 나타나지만 약리학적 금단 증상의 신체적 징후는 없음)
3. 내성-더 오랜 시간 동안 인터넷 게임을 하려는 욕구
4. 인터넷 게임 참여를 통제하려는 시도에 실패함
5. 인터넷 게임을 제외하고 이전의 취미와 오락 활동에 대한 흥미가 감소함
6. 정신 사회적 문제에 대해 알고 있음에도 과도하게 인터넷 게임을 지속함
7. 가족, 치료자 또는 타인에게 인터넷 게임을 한 시간을 속임
8. 부정적인 기분에서 벗어나거나 이를 완화하기 위해 인터넷 게임을 함
9. 인터넷 게임 참여 때문에 중요한 대인관계, 직업, 학업 또는 진로 기회를 위태롭게 하거나 상실함
아홉 가지 중 다섯 가지에 해당할 시 게임중독으로 판정합니다.
WHO에서는 ICD라는 질병사전을 따로 편찬합니다. 현재 11차 개정판에 대해서 회의 중이며 결정된 내용은 2022년부터 적용됩니다. 이 결정된 내용을 바탕으로 모든 나라에 권고사항을 보냅니다. 그러면 각국들은 지침을 참고하여 예방책이나 치료책을 준비합니다. 이 ICD도 DSM을 참조하고 반대로도 참조합니다.
이번에 논란이 된 것은 ICD에 게임중독이 등록되기 때문입니다. 25일(현지 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 총회에서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습니다.
ICD는 ▲12개월 지속하는 게임이용 ▲DSM의 4번, 5번을 반드시 포함하고 그 외 3가지 DSM 조건 추가 ▲ (뇌의) 기능손상 등의 조건을 더 충족해야 해서 DSM보다 기준이 더 엄격합니다. 여기까지는 이상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숨은 문제가 있습니다.
WHO는 더 깊이 숙고해야
첫째, 질병으로 분류하기에 연구 내용이 부족합니다. 옛날에 동성애가 사회적 편견과 더불어 부족한 의학적 근거로 정신질환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정신질환으로 규정되고 다시 질병이 아니라고 인정받기까지 20년이나 걸렸습니다. 그동안 이들은 정신병자로 계속 편견 속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지금 게임중독에 대해서도 같은 상황입니다. 부족한 연구결과를 가지고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하면 동성애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므로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둘째,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하는 연구들 대부분이 정신의학과 교수들이 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게임을 정신질환으로 분류하면 정신의학과는 이익이 생기는 당사자가 됩니다. 게임회사들에는 담배나 술에 붙는 것처럼 소위 죄악세라는 세금이 붙게 됩니다. 거둔 세금은 게임을 하지 않도록 교정하는데 사용될 것입니다. 교정하는데 정신과 의사가 필요할 것이고 세금은 정신과 의사들의 월급이 될 것입니다. 이해관계에 놓인 당사자들의 연구이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 스티그마 효과 스티그마 효과 ⓒ pixabay
셋째, 스티그마 효과입니다. 부정적으로 낙인찍히면 실제로 그 대상이 점점 더 나쁜 행태를 보이고 또한 대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지속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스티그마 효과에 따르면 게임중독을 정신질환으로 규정하면 게임중독의 증상이 더 심각해집니다. 게이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계속됩니다.
이 시점에서 게이머들을 정신질환자로 규정하면 스티그마 효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게이머들에게 갑니다. 하워드 S. 베커의 낙인이론에 따르면 처음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으면 결국 스스로 범죄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재범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게임중독을 치료하겠다고 정신질환으로 규정하는 것이 과연 게이머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넷째, 게임 산업에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합니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게임과몰입 정책변화에 따른 게임산업의 경제적 효과 추정>에 따르면 우리나라 수출 중 게임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습니다. 부정적 인식이 퍼지면 국내는 물론 수출에도 제약을 받을 것입니다.
다섯째, 게임중독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구분 지침이 부족합니다. 9가지 기준만으로는 외적인 스트레스 요인 때문에 게임에 빠지게 되거나 게임으로 해결하려 하는 때도 게임중독으로 분류해 버립니다. 원인은 외부에 있는데 게임이 원인인 것으로 몰아가게 됩니다.
여섯째, 정신과의사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해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기준이 포괄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큽니다. 명확한 수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증상을 써놓았기 때문에 의사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DSM 5번(인터넷 게임을 제외하고 이전의 취미와 오락 활동에 대한 흥미가 감소함)과 같은 경우 흥미가 감소했다는 것을 어떻게 판단할지 그 근거를 확보하기가 어렵습니다. 대략 의사가 보기에 그렇다면 흥미가 감소했다고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적으로 사람은 확증편향의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확증편향은 한 가지에 대해서 옳다고 생각하면 옳다고 강화시키는 정보만 선별해서 받아들이는 경향입니다. 병원에 게임중독으로 진단을 받으러 간다면 이미 정신과의사는 게임중독이라는 생각을 하고 게임중독이 아닌 사람도 게임중독으로 진단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다면 과학적으로 객관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입증이 매우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마약중독과 게임중독이 뇌 활성화 부위가 같다는 근거로 게임중독을 마약과 유사한 중독 행위라고 합니다. 사랑도 똑같은 뇌 부분이 활성화 되지만 질병으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일곱째, DSM에서 게임중독을 질병을 분류한 것은 환자를 구분짓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게임중독에 대한 연구 촉진의 의도였습니다. 즉 정식 질병으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ICD는 연구촉진이 아니라 정식질병으로 올리고 치료까지 고려하고 있습니다. WHO의 질병 등재는 DSM의 질병 등록한 취지와 동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파급효과에 대한 고민이 덜 이루어졌습니다.
게임중독을 정신질환으로 분류하기는 시기상조입니다. 섣부른 판단으로 게이머들을 정신질환자로 대하는 것은 인권침해이자 마녀사냥입니다.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하기 전에 연구를 더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WHO는 더 깊이 숙고하기 바랍니다.
[참고자료]
- 스티그마 효과 https://c11.kr/7gqn
- 게임과몰입 정책변화에 따른 게임산업의 경제적 효과 추정 https://c11.kr/7gql
이석진(lori2mai11ya) / 오마이뉴스
부동자금 1천조 육박…저금리·금융시장 불안 영향
시중 부동자금이 최근 4개월 사이 40조원 이상 늘어나면서 1,000조원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현금통화, 요구불예금, 머니마켓펀드 등 부동자금의 규모가 지난 3월 현재 982조1,265억원에 달했습니다.
부동자금은 지난해 6월을 기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해 그해 11월 937조4,489억원까지 감소했다가 증가세로 돌아섰습니다.저금리 장기화로 유동성이 풍부해진 상황에서 미·중 무역 전쟁으로 국내외 경제 상황이 불안해지자 시중자금이 투자처를 찾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연합뉴스
‘부울경’은 조선일보 천하, 부일·국제도 강세
[창간 24주년 기획] 2009~2017년 전국 16개 시·도 발송 부수 ②부산·울산·경남
◆ 부산 = 이곳은 부산일보와 국제신문의 땅이다. 2009~2011년까지는 부산일보가 조선일보를 앞섰다. 박근혜정부 들어 조선일보에 1위 자리를 내줬으나 2017년 1위와 격차를 약 2500부로 줄였다. 9년 내내 꾸준한 증가세를 보인 국제신문은 경쟁자 없는 3위가 되었고, 과거 3위였던 중앙일보는 2013년을 기점으로 부수 하락을 나타내고 있다. 종합일간지와 묶음으로 팔리는 스포츠일간지들은 8~10위권을 형성했다. 부산에서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존재감은 미약했다. 신문열독률이 매년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산은 2009년과 2017년 대비 발송 부수 낙폭이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금 ABC 통계 자체를 의심케 한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출처=ABC협회.
◆ 울산 = 1위 조선일보는 9년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조선일보가 하락하면서 ‘한묶음’인 스포츠조선은 순위권을 벗어났다. 반면 경상일보, 울산매일, 울산신문 등 주요 지역일간지는 9년 내내 꾸준한 부수를 나타냈다. 이곳에선 상대적으로 문화일보가 강세였는데 대공장에서 의무적으로 석간신문을 구독하는 결과로 보인다. 중앙일보는 이곳에서도 2013년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한겨레는 국정농단이 있었던 2016년과 2017년 첫 10위권 내 진입에 성공했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출처=ABC협회.
◆ 경남 = 조선일보는 이곳에서 압도적인 1위다. 그러나 2015년부터 하락세다. 2012년을 기점으로 이후 중앙일보는 눈에 띄는 하락을 보인 반면 동아일보는 2013년보다 높은 2017년 발송 부수를 기록하는 ‘비현실적’ 장면으로 대조를 이뤘다. 지역일간지 가운데선 경남신문-경남일보-경남도민일보의 지면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월 300만원 넘는 사람…공무원연금 12만명 vs 국민연금 0명
연금 수급액 ‘양극화’ 심각 / 가입기간·보험료율 등 차이 커 / 받는 금액 단순비교 어렵지만 / 국민연금 턱없이 적은 건 사실 / 10명 중 8명 50만원도 못 받아 / 상대적 박탈감 크고 노후 불안 / 전문가 “격차 줄여갈 방안 필요”
국민연금 0명 vs 공무원연금 12만3583명’
이는 다름 아닌 월 300만원 이상 연금을 받는 사람의 수다. 공무원연금 외에도 사학·군인연금 수급자 중에서도 월 300만원 이상 받는 사람이 각각 3만명이 넘는다. 가입기간이 길고 보험료율이 높아 나타난 결과이긴 하지만, 국민연금 수급액이 지나치게 낮은 것 역시 사실이다. 국민연금 개편이 필요한 이유다.
2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정춘숙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은 국민연금공단, 공무원연금공단,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국방부에서 월 연금액별 수급자 현황자료를 제출받아 비교했다.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수급자는 국민연금이 458만9665명, 공무원연금 49만5052명, 군인연금 9만3765명, 사학연금 7만9868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이 받는 월수급액은 연금에 따라 큰 차이를 나타낸다. 국민연금의 경우 월 100만원 미만 받는 사람이 436만5608명으로 전체 수급자의 95.1%에 달한다. 더 세분화하면 50만원 미만을 받는 사람이 355만8765명(77.5%)으로 대부분이고, 50만원 이상∼100만원 미만이 80만6843명(17.6%)이다. 국민연금 중에서 그나마 고액인 100만원 이상∼200만원 미만 수급자는 22만4025명(4.9%)에 불과하다. 월 200만원 이상∼300만원 미만 받는 사람이 32명 있는데, 비율로 따지면 고작 0.001%에 그친다.
이와 비교해 공무원연금은 월 200만원 이상∼300만원 미만 수급자가 39%(19만3035명), 300만원 이상∼400만원 미만이 24.1%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400만원 이상 수급자는 4505명인데, 이 중 85명은 월 500만원이 넘는 연금을 받고 있다.
보험료나 가입기간 등이 달라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사학연금 등 다른 직역 연금 간 수급액 차이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전북 전주시에 위치한 국민
연금공단 본사 전경. 세계일보 자료사진
사학연금과 군인연금의 100만원 미만 수급자도 각각 2.3%, 3.3% 수준이다. 반면 사학연금은 300만원 이상∼400만원 미만 수급자가 41.2%, 200만원 이상∼300만원 미만 수급자가 31.2%로 고액연금 수령자가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군인연금은 62.8%가 100만원 이상∼300만원 미만을 받고 있다.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등 다른 직역연금은 보험료나 가입기간 등이 다르기 때문에 수급액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공무원연금 등이 더 많이 내고 오랜 기간 연금을 부었기 때문에 당연히 보험수급액이 많다.
공무원연금의 월 보험료율은 17%, 평균 가입기간은 27.1년이며 퇴직연금이 포함돼 있다. 군인연금 보험료율은 14%, 최소 가입기간은 19년6개월이다. 반면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은 소득의 9%, 평균 가입기간은 17.1년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격차가 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다른 연금에 비해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이는 자칫 국민연금이 ‘노후보장’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불평등한 연금구조 개편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문일 덕성여대 교수(사회복지)는 “공무원연금 등은 노후에 버팀목이 될 것이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잡혀 있다”며 “국민연금은 이런 공감대가 없어 보험료 인상 등에 저항이 크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적게 부담하고 제대로 보장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만큼 정부가 국민 설득에 나서야 한다”며 “단계적으로 연금 간 격차를 줄여 통합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방탄' 한국당 "강효상 못 내준다"
박수 받은 강효상…나경원 "기밀 도장 찍혔다고 다 기밀이냐"
고교 후배인 외교관으로부터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제공받아 공개한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이 한국당 의원총회장에서 박수를 받았다. 반기문·천영우·윤상현 등 중도·보수진영에서도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한국당만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과 외교부가 강 의원을 검찰에 고발 조치한 가운데, 한국당은 의원총회에서 "강 의원을 검찰에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을 정하기도 했다.
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한국당 의원총회에서, 강 의원은 나경원 원내대표, 황교안 대표에 이어 3번째로 발언대에 섰다. 그는 사실상 신상발언에 가까운 발언을 통해 "선배 동료 의원들의 많은 격려와 걱정에 고개숙여 감사드린다"며 "저는 정부·여당의 탄압에 앞으로도 당당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 공포정치와 압제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당정청이 십자포화를 하고 있고, 오늘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매우 유감"이라며 "정부·여당의 히스테리 반응은 (외교) 참상을 드러낸 것이 뼈아팠기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제가 정상 통화 내용을 공개한 이유는 '한국 패싱' 현상을 국민께 보여드리고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서였다"며 "국민들이 반드시 아셔야 할 대미 외교의 한 단면을 공개하고 평가를 구했을 뿐"이라고 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강 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박수를 보냈고, 사회자는 그가 자리로 돌아오는 동안 '다시 한 번 뜨거운 박수를 보내 달라'고 재차 박수를 유도하기도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의총 결과 브리핑에서 "강 의원 고발에 대해, 당으로서는 '야당에 재갈 물리기, 정치 탄압'이라는 것이 결론"이라며 "검찰이 강 의원을 부른다 해도 당으로서는 내줄 수 없다는 게 당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나 원내대표는 의총 모두발언에서도 "(정부가) 강 의원의 발언을 문제삼아 '국가 기밀' 운운하고 있다"며 "물론 외교부 분류상은 3급 기밀이라고 돼 있으나, 기밀 도장이 찍혔다고 모두 기밀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그를 옹호하기도 했다.
▲기밀 유출 논란을 빚고 있는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이 29일 한국당 의원총회에서 발언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며 같은 당 의원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한국당 의원들은 국회 정상화와 관련해서는 원내지도부에 협상 권한을 위임하며 재량권을 부여했다. 나 원내대표는 의총 결과 브리핑에서 "의원들이 '모두 지도부에 위임하겠다. 국회 정상화에 대해서는 지도부 뜻에 따르겠다. 단일 대오를 유지하자'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나 원내대표는 "국회가 이렇게 파행으로 가게 되는 데 청와대와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며 여권의 입장 변화를 요구했다.
다만 한국당 지도부는 패스트트랙 사과·철회가 국회 정상화의 선결 요건이라는 강경 입장을 유지했다. 나 원내대표는 "저희도 (국회를) 정상화할 준비가 돼 있으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패스트트랙에 대한 사과가 그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사과도 없이,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법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철회도 없이 무작정 야당을 압박하는 행태는 국회 정상화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한국당에 나쁜 프레임 씌우기에만 골몰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은 사과할 뜻이 없다고 한다. 한 마디로 백기투항하라는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황교안 대표도 "정권이, 청와대와 여당이 무모하게 통과시킨 패스트트랙을 철회하고, 사과하고, 우리 제1야당과 민생·경제 현안을 진지하게 협의해야 한다"며 "명확한 사과와 불법적 패스트트랙에 대한 철회가 있으면 저희는 곧바로 국회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서훈 국정원장과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회동 논란과 관련해서는, 나 원내대표에 이어 황 대표까지 서 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황 대표는 "서 원장은 이미 자격을 잃었다. 즉각 물러나야 한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대통령이 파면해야 한다"면서 나아가 "양 원장은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인물인데, 이 만남이 혼자 한 것이겠는가? 문 대통령의 의중에 따른 것 아니겠는가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문 대통령까지 겨냥했다.
황 대표는 "문 대통령은 이 만남을 알고 있었는지, 국정원의 총선 개입을 이대로 묵과할 것인지 분명히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국회 정보위 한국당 간사인 이은재 의원도 나서서 "많은 국민이 의구심을 갖는 것은 대통령의 최측근과 친여 성향 방송사 기자, 국정원장이 왜 만났는가 하는 것으로, 짐작건대 정보기관·여당·언론의 총선 협력 방안이 논의된 것을 많은 분이 의심하고 있다"고 의혹 부풀리기에 나섰다
프레시안 곽재훈 기자
“해군, 해녀들 동원해 투표함 탈취 경찰은 불법행위 보고도 눈 감아”
경찰청 진상조사위 ‘제주 해군기지’ 조사 발표
국정원·기무사까지 동원
반대 주민 강경 진압 계획
서귀포시 강정마을 포구. 연합뉴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유치·건설 과정에서 해군, 해경, 경찰, 국가정보원, 기무사 등 국가 기관들이 공권력을 남용하며 반대 주민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해군은 유치 찬성 측 주민들의 ‘투표함 탈취 사건’에 개입했고, 경찰은 반대 주민들을 과잉 진압했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29일 이 사건에 대한 7개월에 걸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6월 국방부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 지역으로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안을 선정하면서 10여년에 걸친 갈등이 촉발됐다. 같은 해 4월 강정마을 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했지만, 마을 향약에 따른 소집 공고를 하지 않는 등 절차적 문제가 불거졌고 당시 회의는 주민 1900여명 가운데 4.5%에 불과한 87명이 참여하는 등 공정성 논란이 빚어졌다. 그해 5월 제주도에서 발표한 해군기지 후보지 선정 여론조사도 강정마을 주민의 입장을 배제했다.
이후 주민들이 마을회장을 해임하고 6월 다시 연 임시총회 개최 시기부터 공권력이 본격적으로 개입했다. 임시총회 당시 찬성 측 주민들의 ‘투표함 탈취 사건’에는 해군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해군기지사업단장과 찬성 측 주민들로 구성된 해군기지사업추진위원회는 주민 투표를 무산시키려고 사전 모의를 했고, 투표 당일 추진위 지시를 받은 해녀들이 투표함을 탈취했다.
당시 경찰은 경력 340여명을 임시총회장과 마을 곳곳에 배치하고도 투표함 탈취 등 불법행위에 대응하지 않았다. 주민 신고에도 현장에 출동하지 않았다. 조사위 관계자는 “투표함 탈취 직후 현장에 있던 서귀포시청 직원들이 ‘성공했다’고 대화했다는 증언이 있었다”고 했다.
같은 해 8월 다시 열린 강정마을 임시총회 주민투표에서도 해군은 찬성 측 주민들에게 투표 불참을 독려하거나, 투표 당일 주민들을 버스에 태워 관광을 보낸 뒤 투표가 끝난 시간 귀가하게 하는 등 각종 수단을 동원해 투표를 저지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9월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해군기지 건설을 최종 결정했고, 청와대와 국정원, 국군 사이버사령부, 해군, 해경, 경찰 등이 총동원돼 주민 반대를 무력화하려는 계획을 실행했다. 같은 시기 국정원과 제주지방경찰청, 해군, 제주도 관계자 등이 모인 유관기관 회의에선 반대 주민들에 대한 인신 구속 등 사법처리 방안과 고소·고발 계획 등 강경 진압 대책을 논의했다.
조사위는 “경찰의 폭행과 욕설, 신고된 집회 방해, 무분별한 강제연행, 특정지역 봉쇄 등 이동권 제한,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시위대 해산, 종교행사 방해 등 과잉진압과 인권침해 행위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본격적인 공사를 진행한 2011년 8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투입된 육지 경찰은 1만9688명에 달한다. 대규모 육지경찰이 주민 진압을 위해 제주에 대거 투입된 것은 1948년 제주 4·3 이후 처음이었다.
해군은 보수단체의 집회를 지원하고, 해군기지 찬성 측 주민에게 향응을 제공했다. 해경은 해상에서 시위를 벌이는 이들의 카약을 고의로 전복시켰고, 해상 불법공사 신고를 외면하고 오히려 신고자를 체포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들이 조사 과정에서 경찰이 군과 국정원에 휘둘렸다고 했다. 청와대, 국군사이버사령부, 경찰청 등이 해군기지 반대 활동을 비방하는 인터넷 댓글 활동을 벌인 사실도 확인됐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는 “정부는 잘못된 제주해군기지 추진 과정에 대해 사과하고,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국회 장기파행, 의원은 지역구·해외로
총선·국감 앞두고 지역구 다질 시간 확보
'대폭 물갈이'설에 현역 긴장, 선거모드로
20대 국회 '마지막 해외출장'도 줄이어
올해들어 사실상 '식물국회'를 이어오면서 '세비가 아깝다'는 국민들의 지탄이 쏟아지고 있지만 의원 회관은 여유로운 모습이고 의원들은 '호기'를 지역구 관리와 해외출장에 활용하고 있다.
29일 모 여당 중진의원은 "국회가 멈춰있어 민원도 적고 정부쪽에서 찾아오는 사람도 없어 대부분의 시간을 지역구에 내려가 있는다"면서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다지는 데 시간이 필요했는데 국회파행이 되면서 불행중 다행"이라고 말했다. 총선을 준비하기 위한 지역구 활동에 '국회 파행'이 도움이 되고 있다는 '진담반 농담반' 얘기였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은 7월말까지 들어온 권리당원만 경선에 참여할 수 있어 당원늘리기에 한창이다. 민주당은 경선룰을 잠정적으로 확정, 21대 총선 경선에서 권리당원과 국민여론을 50%대 50%로 반영하기로 했다.
현역의원의 경우 7월말까지는 권리당원 확보에 매진하고 그 이후엔 국정감사와 2020년 예산안을 통해 대외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게 핵심전략이 됐다. 대규모 물갈이설까지 나돌면서 여당뿐 아니라 자유한국당 등 야당도 지역구 표심을 확보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갈이를 위해 공천룰을 변경하더라도 과거와 같이 '내려 꽂기' 전략공천보다는 경선을 원칙으로 하는 경향이 있어 지역표심을 다져놓아야 생존 가능성이 높다는 계산이다.
9월 정기국회로 들어서면 지역구 활동이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회 장기 파행'이 나쁘지 않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러한 주장은 거대 양당인 민주당과 한국당이 '국회정상화'에 소극적이라는 지적과도 맞닿아 있다. 원외인 황교안 한국당 당대표는 장외투쟁에 나섰고 선거법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근거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보이콧을 이어갔다. 그러고는 민주당이 받기 어려운 국회정상화 조건을 내세웠다. 패스트트랙에 대한 사과, 원천무효, 고발취소 등 한국당의 요구조건은 청와대와 여당이 수용할 수 없는 수준이다.
민주당에 대해서도 여당이면서도 '과감한 양보'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급하게 서두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실제 여당 내에서는 "어차피 국회정상화가 되어도 한국당이 정쟁을 유발시키면서 발목만 잡을 것이기 때문에 법안 통과도 어렵고 얻을 것도 없다"거나 "국회를 보이콧하는 야당이 민생을 외면하고 있다는 프레임으로 가는 게 더 낫다"는 얘기도 나온다.
국회 장기파행은 의원들의 해외출장 시간도 마련해줬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의원외교를 강조하면서 의원들의 해외출장을 독려하고 있는데다 실제로 국회가 열리면 해외로 나갈 시간이 없을 것으로 예상돼 '파행기간'을 '출장 적기'로 보고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요국 의원외교 뿐만 아니라 상임위별로 주제를 정해 장기 출장을 다녀오는 사례가 많아졌다. 야당 모 의원은 "정기국회가 시작하면 해외출장이 어렵다는 점에서 20대 국회 마지막 출장기회라고 할 수 있다"며 "출장기준이 강화돼 2가지 이상 주제를 가지고 국가를 방문하다보니 출장경로가 복잡하고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20대국회 임기가 1년 남았지만 내년 4월15일에 치러지는 21대 국회의원 선거의 공식일정은 올해 10월 18일부터 시작한다. 중앙선관위는 이때부터 재외선거관리위원회를 설치, 운영하고 11월 17일부터 국외부재자 신고를 접수한다. 예비후보자등록 신청 시작일은 12월 17일이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무역전쟁 확대시 세계경제 711조원 손실”
블룸버그 “한국·대만·말레이 가장 타격 클 듯”
노무라 “중국 관세 적용시 미국 성장률 타격”
자본시장연구원 “한국 경제성장률 2.0% 하락”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관세전에서 기술패권 경쟁의 양상을 띠면서 한치 양보 없는 대치상황을 지속하는 가운데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 세계경제가 711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볼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 중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곳은 한국과 대만, 말레이시아 등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세 나라로 평가됐다.
블룸버그는 28일(현지시간) 시나리오별 무역전쟁 분석을 통해 미국과 중국이 상대 수출품 전체에 25% 관세를 부과했을 때 2021년 세계총생산(GDP) 손실을 6000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711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관세장벽에 따른 교역 감소 뿐만 아니라 주식시장 침체, 소비와 투자 위축까지 반영해 악영향이 정점에 이를 시기에 글로벌 경제가 받을 타격을 추정한 금액이다. 먼저 미중 양국이 무역 전체에 25% 관세를 부과할 때 중국은 0.8%, 미국은 0.5%, 세계는 0.5% GDP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됐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중 ‘관세 전면전’ 충격의 여파로 주식시장이 10% 하락하는 경우다. 2021년 중국, 미국, 세계 GDP는 각각 0.9%, 0.7%, 0.6% 떨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금융시장의 불안은 소비, 투자 위축 등으로 이어지면서 충격을 더 키울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대미 수출이 감소하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제3국은 대만, 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순으로 나타났다.
아시아 수출공급 사슬에 깊숙히 자리를 잡은 이들 국가가 주로 컴퓨터 전기 전자 제품 부문에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 2015년 기준 전체 GDP 가운데 중국의 대미 GDP와 연관된 부문의 비율이 0.8%로 대만의 1.6%에 이어 두 번째를 기록했다. 또 아시아 국가나 미국의 대중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캐나다, 멕시코 경제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노무라증권의 루이스 알렉산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 전체에 25% 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 경제 성장률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미국의 대중 고율 관세가 향후 12개월간 미국의 근원 물가상승률을 0.5%p 높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
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경제는 내수와 수출이 모두 둔화되면서 금년 중 성장률이 2% 초반 수준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이라며 “무역분쟁이 격화될 경우 성장률이 2.0%로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미국이 눈감은 인도네시아 대학살의 역사는 진행형
[아시아생각] 군부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미완의 과제
2019년 5월 18일, 39주년을 맞는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리고 있는 망월동 국립묘지 추모식에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인도네시아의 인권활동가가 서있었다. 그의 이름은 베드조 운퉁(Bedjo Untung).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인도네시아 1965~66 대학살의 진상규명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현재 베드조 운퉁씨가 대표로 있는 YPKP65(Yayasan Penelitian Korban Pembunhan 1965-66의 약자로 '1965-66년 인도네시아 대학살 희생자 조사를 위한 재단’이라는 뜻)는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1965~66 대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 배·보상 및 국가폭력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며 활동하고 있다.
▲ 1965년 10월 인도네시아 보안군이 공산당원 혐의로 한 남성을 체포하고 있다. ⓒ미국 국가안보기록원
1965 대학살은 무엇인가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는 국부로 불리던 수카르노가 실각하고, 수하르토 대통령의 32년간의 장기집권이 시작될 시점에 전국적으로 소위 '빨갱이 사냥'이 진행되었다. 학살의 각본은 군부에 의해 사전에 준비되었다. 자바와 아체, 그리고 인도네시아 공산당 본부가 있던 발리에서의 대대적인 학살로 50만 명에서 300만 명에 이르는 무고한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고, 여성들은 성폭행을 당했다. 당시 열일곱 살이었던 베드조 운퉁씨는 학교에 다니다가 자카르타에 있는 군 정보부에 잡혀가 재판 없이 9년을 강제노동을 하며 감금생활을 하고서야 풀려나게 되었다.
1965년 10월 1일, 정보사령부의 한 대령은 "자바에서의 학살은 인도네시아 공산당이 저지른 짓이며 그들은 창고를 약탈하여 모든 무기를 준비했다. 인도네시아 공산당의 반란이다"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이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는 전적으로 군부의 계획이었다. 인도네시아 공산당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은 군부가 주도면밀하게 계획한 것으로 각 도시의 특공대에 인도네시아 공산당을 죽이라는 무선 전보가 내려졌다. 1965년 10월 첫째 주부터 인도네시아 공산당원에 대한 체포가 전국적 규모로 대대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러한 군사작전은 반공단체 및 군대 산하조직을 통해서도 이루어졌으며 이들은 공산당을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동원되었다. 여기에서 제주의 4·3사건과 서북청년단이 연상되는 것은 필자만이 아니리라.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소비에트연방의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의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당원은 300만 명이었으며 지지자는 거의 2600만 명에 달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학살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봉기를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1945년 헌법에 기반하여 사회적인 공동체를 이루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데에 주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은 거대한 국가 인도네시아 건국을 이루며 수많은 집단의 통합을 강조하고 이를 '판차실라(Pancasila)'라는 인도네시아의 건국 5원칙에 담았다. 산스크리트어 단어인 판차실라는 '판차' (Panca, 다섯이라는 뜻)와 '실라' (Sila, 원칙 이라는 뜻)의 합성어로 ①다양한 신앙에 대한 존중, ②정의와 문화적인 인본주의, ③인도네시아의 단결, ④ 합의제와 대의제를 통한 민주주의의 지혜로운 길잡이, ⑤사회정의 구현을 이른다.
1945년 6월 1일에 열린 독립준비위원회에서 수카르노는 "판차실라의 탄생"이라는 주제의 연설로 인도네시아 건국 정신인 이 원칙들을 무슬림과 민족주의자 그리고 기독교 신자들과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헌법에도 담겼던 인도네시아 통일과 단결원칙은 20년이 지난 후 수하르토와 군부에 의해 찢겨져 나간 것이었다.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와 평화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던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자신들이 무고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지역 당국에 협조했다. 그러나 그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구금되고 고문을 받았고, 납치되기도 했다. 군부의 묵인과 방조 아래 감옥에 갇혔던 사람들은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죽임을 당했다. 이러한 일은 1965년부터 1968년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었으니 전쟁도 아닌데 이 군사작전으로 최소 50만 명에서 300만 명의 무고한 사람이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많은 수용소에서 강제노동과 납치, 고문이 이루어졌고 많은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했다.
또 다른 광주
세월이 흘러 1965년의 비극에 대한 미국의 외교문서가 2017년 10월 공개되었다. 공개된 3만여 쪽에 달하는 19개 문서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1965년 공산당원에 대한 학살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카르타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은 살해당한 인도네시아 공산당 대표의 신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또한 미국의 정부 관료들이 적극적으로 인도네시아 군부가 인도네시아 내 진보적인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것을 지원했음이 보고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문서에는 반공산주의적 성향을 가진 이슬람 종교단체가 이 학살에 협력했음이 적시되어 있었다. 군부는 인도네시아 공산당과 그 산하조직을 박멸하는 작전을 수행했고 그 결과 50만 명의 공산당 지지자가 죽었으며 1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체포되었다. 공개된 CIA의 문서를 참조할 때 미국의 개입은 분명한 사실이며, 영국과 호주 역시 무기와 자금을 제공하여 수카르노의 제거를 지원했다는 것도 드러났다. 미국은 이렇게 1965년 인도네시아 대학살의 배후에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와 국제시민법정
사건 이후 오랫동안 금기시되던 1965 대학살은 2012년에 이르러서야 밝은 햇볕 아래 실체를 드러낼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국가인권위원회는 진상규명팀을 설치하여 1965년부터 1966년 사이에 벌어진 국가폭력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위원회는 2012년 7월 23일, 1965년의 비극이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이며 살인과 구금, 고문, 약탈, 성폭행, 강제노동, 차별과 추방이 있었다고 확인·발표했다. 또 위원회는 법무부 장관에게 인권법정을 설치하여 인권법에 따라 이러한 범죄를 처리할 것을 권고하였고, 학살을 자행한 군부 내 명령체계를 공개했다.
그 결과 인권침해를 심판하기 위한 국제시민법정(민간법정)이 2015년 11월 10일부터 13일까지 헤이그에서 열렸다. 여기서는 1965대학살에 대한 인도네시아 국가인권위원회의 보고가 단순히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일뿐 아니라 '학살'범죄라고 확인되었다. 1965년의 비극이 특정 집단의 사람들에 대한 박멸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는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박해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상규명의 그날까지
베드조 운퉁씨와 그가 대표로 있는 YPKP65는 현재 암매장된 유해의 발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당시 살해된 사람들이 집단으로 매장된 무덤을 찾아 발굴하고 당국에 신고하는 활동을 벌인 결과 현재 319개의 학살 공간을 찾았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발리를 조사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군부는 여전히 학살을 부인하고 있고, 군부에 대한 불처벌은 아직도 인도네시아에서 현재진행형이다. 정치적 해결의지가 없는 한 인도네시아 정부의 해결은 요원한 것이다. 80세가 넘은 노인임에도 그는 여전히 해결의 의지를 불태우며 포럼에서 만나는 참가자들에게 연대를 호소하며 당시 후방에서 지원했던 서방국가들의 사죄를 요구하고 있었다.
이는 같은 자리에서 독일의 나치범죄 중앙사무국장이 "세계 2차대전 패전 후 74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나치 범죄자들을 추적하는 것은 그런 범죄는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잡자는 목적도 있지만, 미래에 대대적인 국가폭력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라고 발언한 것과 좋은 대조가 되고 있다. 독일에서 나치 범죄의 공소시효는 1969년 의회 결의로 폐지됐다. 이로 인해서 1944년 17세의 나이에 폴란드 슈투트호프 수용소에서 감시원으로 일했던 함부르크 시민(92세)은 지난 4월 살인 방조 혐의로 기소될 수 있었다.
광주의 5‧18기념재단은 삼처럼 엉키어버린 5‧18왜곡과 폄훼에 맞서 국제사회에 과거청산의 정당성을 호소하고자 지난 5월 18일~19일 국제회의를 개최했다. 미완의 과거청산이라는 주제로 열린 아시아포럼에서는 국제적으로 이행기 정의를 비교적 잘 실천한다고 인정받고 있는 과거청산의 경험을 가진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사례와 다른 한편으로는 미완의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경험을 보여주었다. 과거청산이라는 표현은 마치 과거사를 지우개로 지우듯 불을 질러 그 흔적을 없애버린다는 의미로 우리나라에서 주로 쓰이지만, 국제적으로는 이행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 혹은 잘못된 과거 바로잡기(Dealing with the Past Injustice)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역사가 E.H. 카의 유명한 명제처럼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과거는 청산되어 사라지지 않고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잘못된 과거문제를 올바르게 정리하거나 해결하지 않고서는 현재나 미래의 민주주의는 담보되지 않는다. (이글에 나오는 1965대학살 내용은 베드조 운퉁씨의 광주아시아포럼 발표문과 YPKP65사이트(www.ypkp1965.org), 미국 국가안보기록원 사이트(https://nsarchive.gwu.edu/)를 참고했다. 필자) / 양영미 참여연대 실행위원 /프레시안
'절망 퇴직'은 계속되고 있다
[삶은경제] 공약은 어디 가고... '일자리 줄이기'만 급급한 정부
노동자가 희망하는 희망퇴직은 없다. 노동자가 명예로운 명예퇴직도 없다. 희망퇴직이라는 말은 회사 측이 개발한 악랄한 언어 수사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에 어떤 노동자가 퇴직을 희망할까? 퇴직 앞에 희망을 붙여 마치 노동자 본인이 원해서 퇴직하는 것처럼 만드는 언어 수사는 어처구니없을 정도이다.
돈 몇 푼으로 해고를 간소화하겠다는 발상, 여기에 개별 노동자들이 동의했으니까 노동자들이 퇴직을 원한 것이라는 논법이 '희망퇴직'이라는 레토릭에 깔려 있다. 그래서, 구조조정 당한 노동자들은 희망퇴직을 '절망퇴직'으로 바꿔 부른다.
흑자가 나는 사업장도, 노동조합과 고용안정협약을 맺은 사업장도 희망퇴직의 예외가 아니다. 정리해고 요건이 되지 않으니까 사업장에서 희망퇴직이 일상화된다. 사소한 위기는 과장된 위기로 부풀리고, 미래에 예상되는 위기를 현재로 끌어들여 노동자를 내치는 것이 바로 희망퇴직이다. 오직 자본만이 희망하고, 명예로운 해고만이 있을 뿐, 노동자에게는 어떠한 해고도 살인이다.
4년 전,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
2015년 3월 23일 새정치민주연합은 희망퇴직, 명예퇴직 제도가 사실상 정리해고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희망퇴직자 보호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사무금융노조와 을지로위원회가 주최한 사례발표회에서 인사말을 했다.
"정리해고에 대해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은 대부분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희망퇴직은 '노동자가 (동의한) 퇴직'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규제대상이라는 인식이 별로 없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자유의사에 따른 희망퇴직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 실정이다."
"사측의 다양한 수단에 의한 압박과 강요에 의해 (희망퇴직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정리해고의 규제를 피하기 위한 사실상의 탈법적 정리해고인 경우가 많다."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 제도가 아주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희망퇴직 규제는) 노동자들의 고용보호를 위해서도, 우리사회의 전체적인 고용안정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야당 시절 당 대표로 공언했기 때문에 집권하면 실천할 줄 알았다. 실제 지난 2017년 대선 당시 공약사항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2018년 초에는 고용노동부가 '희망퇴직 남용 방지법'을 만든다며 최근 기업들의 희망퇴직을 규제하는 내용의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고용노동부는 연구가 마무리되는 대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만들어 2018년 안에 국회에 제출하고, 개정안에는 △희망퇴직의 법적 개념 △희망퇴직의 요건과 절차 등이 담길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런데, 2018년 중반 이후 문재인 정부의 노동 정책 기조는 노동 존중에서 노동 배제로 180도 전환되었다. 물론, 희망퇴직을 규제하는 내용의 연구용역결과는 공개되지 않았고,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국회에 제출되지 않았다.
희망퇴직,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해법
노동 존중에서 노동 배제로 전환되었음을 확실하게 느낀 것은 2018년 5월,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중장년층 금융노동자들의 희망퇴직을 통해 청년층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자고 공개석상에서 발언한 순간이었다. 희망퇴직 방지법을 만들자더니 오히려 정부 부처에서 희망퇴직을 활성화하자고 제안하니 황당했다. 윗돌을 빼서 아랫돌을 괴자는 발상인데, 과연 희망퇴직이 활성화되면 신규 채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가?
금융산업에서 청년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는 데는 중장년의 금융노동자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현재의 시스템에서 일자리 창출이 불가능함을 뻔히 알고 있다. 그는 현실을 무시하고 대중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한 것이다.
박근혜 정권 시절 추진된 '금융업 경쟁력 강화방안'은 현 문재인 정부에서도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이 정책의 핵심은 금융기관의 대형화, 겸업화다. 인수, 합병을 통해 금융기관을 대형화하면 중소 금융기관의 경쟁력은 떨어지고 일자리가 축소된다. 은행 중심으로 겸업이 활성화되면 증권, 보험 등 다른 업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일자리가 줄어든다. 이러한 대형화, 겸업화의 조직적 발현이 바로 금융지주회사다. 한국의 금융 산업은 금융지주회사를 중심으로 재편되어 왔다.
게다가 금융업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 아래 출혈경쟁이 심화되어 왔다. 이러한 여파로 각 금융회사의 성과주의가 확산되어 저성과자 해고, 신규 취업자의 고용유지 기간 단축, 비정규직의 양산, 정규직의 임금 삭감 등 폐해가 확산되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금융 산업의 이익을 금융지주회사로 집중시켜 놓고, 이제 금융지주회사의 더 많은 이익을 위해 나이 든 금융노동자들은 나가라고 하는 것이다. 즉, 그의 발언은 금융지주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신규 채용을 위한 것이 절대 아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희망퇴직을 통한 신규 일자리 창출 대책은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가? 금융 산업이 재편되지 않고는 획기적인 일자리대책이 나올 수 없다. 문은 열려 있고, 청와대는 멀지 않은데, 왜 아직까지 고령인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청와대에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일자리를 나누려면, 일자리부터 지켜야 한다
제조업에서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창출하는 일자리가 훨씬 더 많다. 금융 산업도 마찬가지다. 고도로 사업과 인력이 집중된 현재의 금융지주회사를 규제하지 않고서는 일자리를 늘릴 방법이 없다. 금융 산업의 일자리 축소와 일자리 불안은 오로지 대형화, 겸업화, 성과주의 금융정책이 만든 결과이기 때문이다.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의 횡포를 규제하듯이 금융지주회사 규제를 강화하고, 중소형 금융회사들이 함께 살 길을 모색해야 한다.
금융지주회사의 이윤은 소수의 기관과 외국인 주주들이 독차지하고, 국민의 돈은 이들에게 묶여 있다. 금융지주회사 규제를 통해 소수의 금융자본에 수익을 집중시킬 것이 아니라 다양화, 분산화를 통해 수익을 다변화해야 한다. 국민의 돈이 한국 사회 곳곳에서 자금중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중소형 금융사 육성정책이 뒷받침해야 하고, 이곳에서 신규 일자리가 창출되어야 한다.
성과주의의 희생양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안정 노동이 해소되어야 한다. 일자리가 안정될 때 금융노동자와 창구를 찾는 금융소비자와의 관계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때문에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도록 정부는 금융 회사의 비정규직 채용을 제한하고, 회사는 기존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아울러 금융 산업 전반의 외주화 정책이 일자리를 축소했음을 확인해야 한다. 특히, IT분야의 외주화로 인해 금융사고가 빈발했었던 만큼 외주화된 업무를 다시 금융회사의 업무로 규정하고, 이 과정에서 신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4산업혁명과 고령화, 노동시간 단축만이 해법이다
로봇 어드바이저, 비대면 판매 등 기술 혁신으로 인해 점포가 사라지고 남는 인원들은 희망퇴직으로 정리되고 있다. 점차 모든 이윤은 자본이 모두 독식하고 노동자는 배제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금융 산업의 환경변화에 맞추어 과감하게 노동시간이 단축되어야 한다. 이로써 그간 장시간 노동으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한 노동자에게는 여유를, 미취업 노동자에게는 신규 취업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급격한 변화에 노동자에게만 희망퇴직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지키고, 일자리도 추가로 만들어야 한다.
중장년 노동자의 임금을 단계별로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는 또 다른 대안인 희망퇴직을 선택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국민연금 수령 기준은 65세인데, 임금피크제는 55세부터 시작된다. 즉, 희망퇴직이 일상화된 현재 노동자는 구조적 이유로 10년 동안 아무 일 없이 퇴직금에만 의존해야 한다. 임금피크제가 폐지된다면 희망퇴직 역시 선택될 이유가 없다. 100세 시대,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나이에 희망퇴직으로 노동자의 등을 떠미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 노령층의 빈곤문제를 따로 고민할 것이 아니라, 임금피크제를 폐지해 노동자에게 안정적인 노후자금을 제공하고, 국민연금 수급시기까지의 정년연장과 사회안전망이 함께 구축될 수 있도록 획기적인 고용유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 김경수 사무금융노조 정책기획국장 /프레시안
전국 땅값 8.03% 올라 ‘11년 만에 최대폭’
ㆍ서울시 땅값 상승률 12.35%로 가장 가파르게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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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도 전국 개별공시지가. 국토교통부 제공
올해 전국의 땅값이 전년보다 8.03% 오르면서 2008년 이후 11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지역별로는 서울시가 12.35% 오르면서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보였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1월1일 기준, 총 3353만 필지의 공시지가 평균 상승률이 8.03%로 집계됐다고 30일 밝혔다. 최근 땅값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 땅값 상승률은 2013년 3.41%에서 2014년 4.07%로 높아진 뒤 2017년 5.34%, 지난해에는 6.28%를 기록했다. 올해에는 땅값 상승률이 8%대에 달하면서 2008년 10.05% 오른 이후 가장 많이 상승했다.
개별 공시지가 평균 상승률은 국토부가 2월 발표한 표준 공시지가 상승률(9.42%)보다는 낮았다. 표준지(50만 필지)는 개별 땅들의 공시지가 산정 과정에서 기준으로 삼는 땅들을 말한다. 표준 공시지가에는 제곱미터(㎡)당 시세가 2000만원이 넘는 고가 토지비율이 개별 공시지가보다 높은데 따른 영향이라고 국토부는 설명했다. 앞서 국토부는 일반 토지에 비해 고가 토지의 현실화율(시세반영률)이 낮다는 지적에 따라 고가 토지 중심으로 표준 공시지가를 대폭 올렸다.
시·도별로 보면, 서울 개별 공시지가 상승률이 12.35%로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서울을 포함해 광주(10.98%), 제주(10.7%), 부산(9.75%), 대구(8.82%), 세종(8.42%) 등 6개 시·도는 전국 평균(8.03)보다 높게 상승했다. 서울은 국제교류복합지구와 영동대로 지하 통합개발계획, 광주는 에너지밸리산업단지 조성, 제주는 국제영어도시·제2공항개발, 부산은 주택 정비사업 등의 이유로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충남(3.68%), 인천(4.63%), 대전(4.99%), 충북(5.24%), 전북(5.34%) 등 11개 시·도 개별 공시지가 상승률은 전국 평균보다 낮았다. 충남은 세종시로의 인구 유출과 토지시장 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 등이 영향을 미쳤다.
시·군·구에서는 서울 중구 공시지가가 상승률이 20.49%나 뛰면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강남구(18.74%), 영등포구(18.2%), 서초구(16.49%), 성동구(15.36%) 등도 공시지가 상승률 최상위 지역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울산 동구는 조선·중공업 경기 불황의 여파로 공시지가가 1.11%나 떨어지며 가장 큰 폭의 하락률을 보였다. GM 군산공장 매각 등 자동차 산업 침체로 전북 군산(0.15%)의 상승률도 미미했다.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경남 창원 성산구(0.57%)와 경남 거제시(1.68%) 등도 낮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공시가격은 각종 조세와 부담금 부과, 건강보험료 산정 및 기초노령연금 수급대상자 결정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개별 공시지가는 부동산공시가격알리미 사이트(www.realtyprice.kr) 또는 시·군·구청 민원실에서 31일부터 7월 1일까지 열람할 수 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5월29일 20년 전 ‘초호화 아파트’는 얼마였을까?
도곡동의 타워팰리스와 주공1차 아파트 재건축 현장의 모습. 2003년 경향신문 자료사진
20년 전 경향신문에는 ‘초호화 아파트’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당시 분양가 10~20억원대의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붐이 일며 화제였습니다. 지금은 웬만한 서울지역 아파트 매매가격이 10억원을 넘나들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큰 돈입니다. 자세한 내용 살펴보시죠.
당시 대규모 건설사들이 강남지역에 분양한 고급아파트들이 분양에 들어가며 견본주택은 연일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현대건설이 역삼동에 지은 ‘까르띠에 710’, 현대산업개발이 방배동에 분양을 시작한 ‘멤피스’의 견본주택도 고급차와 인파로 꽉 들어찼습니다.삼성물산이 서울 서초동에 분양한 ‘가든스위츠’는 23층 높이로, 최고층의 107평짜리 아파트는 분양가가 21억원이 넘었습니다.
‘초고층·초호화 아파트’의 시초였던 ‘타워팰리스도 이 시기 분양을 시작했습니다. 삼성물산이 서울 도곡동 1만평 부지에 지은 주상복합 ‘타워팰리스’는 당시 대한민국 초고층 건물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화제를 모았는데요, 1329가구의 사전 예약율이 100%를 넘었습니다.
대우건설이 서울 여의도에 2개동으로 지은 ‘트럼프월드’는 얼마였을까요?
최고층인 40~41층의 91평형 ‘펜트하우스’의 분양가는 14~15억원선이었습니다. 38~91평형의 경우 예비 청약률이 150%에 달했습니다. 외환위기 직후 고용위축과 재정악화로 허리띠를 졸라매던 시기였지만 부동산 시장만큼은 달랐습니다.저금리 및 사회 전반적인 소비심리 회복의 여파로 부유층의 뭉칫돈이 부동산으로 대거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입주를 앞두고 있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 2002년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0년대는 곳곳에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며 아파트단지가 고밀화되던 시기였습니다. 공급과 함께 주택에서 아파트로 대규모 ‘주거지 이동’이 시작되었지요. 초기에는 부동산 안정대책 등이 적극 실시되면서 각종 기준이 강화되는 등의 조치가 이어졌지만, 중반 이후 재건축에 의한 아파트 건설이 대폭 증가하며 아파트 개발사업과 초고층화에 속도가 붙게 됩니다.
‘아파트붐’은 1997년 외환위기도 막지 못했습니다. 잠시 주택건설사업이 위기를 맞게 되지만 재건축과 재개발에 의한 고밀개발은 더욱 가속화됐습니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초고층·초호화 아파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초호화 아파트의 상징이었던 ‘타워팰리스’가 생겨난 것도 이 시기입니다. 삼성이 도곡동에 위치한 판자촌 일대를 매입해 최고 69층의 초고층 주상복합 단지로 개발한 ‘타워팰리스’는 초고층·초고급 주상복합 붐의 시초라 할 수 있는데요, 완공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 기록은 7년간 유지됩니다. 이후 다사다난한 20년의 세월을 거쳐오는 동안 ‘부동산 불패’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다양한 부동산 억제 정책을 내놓으며 ‘집값 잡기’에 나서고 있지만 은행예금이나 주식투자보다 훨씬 수익률이 높은 투자처에 자금이 몰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이지요.
임대와 매매가 용이한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현금만큼이나 확실한 자산으로 여겨집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간 아파트 수익률은 59.5%로 나타났습니다. 그 뒤를 주택(54.3%)과 주식(41.3%), 그리고 정기예금(41.0%)이 이었습니다.
아파트와 정기예금의 수익률 격차는 무려 20% 포인트에 가깝습니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싱크대 속 '5억 현금다발'…고액 체납자 재산 은닉 백태
국세청, 4월까지 고액 체납자에 1,535억 징수
돈 많은데도 세금 안 내려고 갖가지 방법 쓰는 고액 체납자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이번에 싱크대 안에서 현금 5억 원을 발견한 것을 비롯해 국세청 은닉재산 조사 전담반이 1,500억 원 넘는 세금을 징수했습니다.
<기자>양도소득세 수억 원을 체납 중인 A 씨. 국세청을 따돌리려 거주지 주소를 오빠 집으로 해놓고 실제로는 다른 곳에 살아왔습니다.국세청 징세팀이 오랜 잠복과 미행 끝에 실거주지를 찾아내고 수색에 나서자 거칠게 반항합니다.
[A 씨/고액 체납자 :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남의 집을 뒤지는 건 아니잖아요. (남의 집을 뒤지는 게 아니라 체납자 집을 뒤질 수 있도록 돼 있는 거예요.)]
국세청 압박에 A 씨는 결국 숨겨놓은 수표를 꺼내놓습니다.
[A 씨/고액 체납자 : 아이고 짜증나 진짜. (경찰 불러.) 찾았어요. 찾았다고요.]
고가 외제 차를 타고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는 B 씨, 차량 3대와 아파트를 며느리와 자녀 명의로 돌려놓고 자신은 재산이 없다며 세금 납부를 거부해왔습니다.거주지 수색에 나선 징세팀은 부엌 수납함에서 검은색 비닐로 감춘 5억 원의 현금다발을 찾아냈습니다.
체납액을 내지 않으려 위장 이혼한 뒤 배우자에게 7억 원을 현금으로 이체했다가 적발되고, 고령의 모친 명의로 은행 대여금고를 개설해 재산을 숨겼다가 발각된 경우도 있습니다.
국세청은 올 들어 4월까지 이처럼 재산을 은닉한 고액 체납자 325명을 집중 추적해 모두 1,535억 원을 징수했습니다.
[한재연/국세청 징세법무국장 : 재산을 은닉하고 호화롭게 생활하는 악의적 체납행위는 성실납세 문화를 훼손하고 대다수 성실납세자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국세청은 체납자 은닉 재산을 찾는 전담조직까지 운영 중인데 지난해에는 역대 최대인 1조 8,805억 원을 징수했습니다./김혜민기자Seoul khm@sbs.co.kr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김준태 시인 “80년 5월 쓰러진 임산부 그의 넋이 빙의돼 시가 되어 나왔다”
“80년 6월 2일이었어요. 당시 신문은 전부 석간이었지. 문순태 당시 편집부국장으로부터 ‘빨리 가져오라’는 전갈을 받고 가보니 기자들은 펜을 놓고 떠난 거예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는 기자 일동 사직서 아시죠? 어차피 사실은 못 쓰니 대신 실으려 했던 것인데….”
5월 22일, 서울 용산역의 한 찻집에서 만난 김준태 시인(71)의 얘기다.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라는 시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39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기억은 엊그제 일처럼 또렷했다. 45분 만에 시는 완성됐다. 토씨 하나도 고치지 않았다. 일필휘지다. 그는 모든 시인은 샤먼(무당) 기질이 있다고 했다. “나는 손만 빌려줬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누가 썼느냐, 내 몸 속에 5월에 죽은 사람들이 들어와 썼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해원(解寃)을 해줘야지. 39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다.”
45분 만에 완성된 ‘아아 광주여…’
당시 광주 전남도청에는 계엄군 검열관 5명이 파견 나와 있었다. 광주광역시 금남로 구 가톨릭센터 건물에 들어선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에는 이때 빨간펜으로 싹둑싹둑 검열 삭제 표시가 된 검열 전·후의 신문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검열 후 제목도 뒷부분은 잘려 나갔다. ‘아아, 光州여!’ 뒤에는 검은 공백만 남겨졌다. 105행, 두 단에 걸쳐 게재된 시는 33행짜리 한 단으로 축약됐다. “활판인쇄 시절 제일 처음 찍는 걸 ‘게라지’라고 해요. 당시 조판실 사람들이 영리했어요. 검열받은 것이 나오기 전에 그걸 올려놓고 철커덕철커덕 10만부를 찍어 전국에 암암리에 다 뿌려버린 거야. 어떤 루트로 서울까지 올라갔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게 AP, UPI, 로이터에 영문으로 번역돼 전세계에 타전된 겁니다. 그 중 하나가 하버드대 데이비드 맥캔 교수라고, 마침 한국에 체류 중인데 그 분이 번역한 거였어요. 한국말을 아주 잘하시는 분인데, 나중에 보니 시카고대 교수도 번역했더군요.”
-그 뒤 어떻게 되셨습니까.
“원래는 진실을 쓸 수 없으니 시로 메우려 했는데, 제 시가 그날 참상을 너무 리얼하게 그려버린 거지. 당시 전남매일신문사가 광주 미 문화원이 있던 동구 광산동에 있었는데 그날 신문사 근처에 숨어 있었어요. 오후 5시30분쯤 신문사 쪽에서 전하길 ‘시가 다 퍼졌다. 큰일났으니 피신하라’는 겁니다. 게오르규의 <25시>를 읽다보면 피신의 법칙이 나와요. 절대로 연고지는 가지 마라. 그래서 무연고지를 찾아다녀요. 한 달 가까이 집에 가지도 못해요. 모르는 사람들은 시 속에 나와 있는 집사람이 죽은 줄 알았대요. 그래서 김준태 부인이 사태 때 죽은 줄 알았다고….”
‘아아, 광주여!…’ 시 전문을 보면 화자에 빙의된 망자(亡者)의 회한이 괄호 안에 들어 있다. “(여보 당신을 기다리다가/ 문 밖에 나가 당신을 기다리다가/ 나는 죽었어요… 그들은/ 왜 나의 목숨을 빼앗아갔을까요/ 아니 당신의 전부를 빼앗아갔을까요/ 셋방살이 신세였지만/ 얼마나 우린 행복했어요/ 난 당신에게 잘해주고 싶었어요/ 아아, 여보!/ 그런데 나는 아이를 밴 몸으로/ 이렇게 죽은 거예요 여보!/ 미안해요, 여보!/ (…)”
이 사연은 그가 당시 재직했던 전남고 동료교사 김충희씨 부인 최미애씨 이야기다. 그는 최씨 이야기가 시에 들어간 까닭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동료교사 김씨가 살던 1층 단독셋방이 중흥동 과거 사레지오고등학교 뒤쪽, 지금 모아아파트 쪽에 있었거든. 옆집에는 장인·장모가 살고 있었고. 김 교사는 1학년 2반 담임이었고 나는 2학년 3반 담임이었어요. 그렇게 상을 당했는데 당시 학교 선생들은 나 빼고 한 명도 못왔어요. 총알이 날아다니니 겁을 먹은 거라. 김 교사가 나를 보더니 털썩 주저앉으며 통곡하는 거예요. 우리 처 모가지가 잘려 버렸다고.”
-최미애씨의 사인을 두고 학살을 은폐하려는 쪽에서는 ‘공수부대로 위장한 시민군의 짓이다’, ‘최씨와 장모 등이 시민군에게 밥을 차려준 폭동 부역자’라는 식으로 깎아내리려 합니다.
“나는 월남전에도 다녀온 사람입니다. 당시 북한 특수군이 어쩌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북한군이 사용하는 총기는 AK47이에요. 당시 계엄사 부검일지에도 저 총에서 발사된 총알이나 흔적에 대한 이야기는 없어요. 총 맞은 자리를 보면 어떤 총인지 알 수 있어요. 시민군이 예비군 무기고 등을 통해 확보했던 M1 소총은 4조 우선 강선이고, M16은 6조 우선입니다. 머리가 맞아 없어졌다는 건 M16이기 때문입니다.”
김 교사의 장모, 최씨의 친정어머니는 당시 임신 8개월이었던 뱃속 둘째아이의 안타까운 죽음도 목격해야 했다. “어머니가 그러시는 거야. 엄마가 그렇게 되니 뱃속의 아이가 천방지축으로 몸부림을 치더라는 거야. 어떻게든 아이라도 살려보려고 했는데 결국 살릴 수가 없었고.”
끔찍한 기억이다. 계엄군이 시 외곽을 봉쇄하고 있어서 장례를 치르러 나가기도 힘들었다. 집 화단에 가매장을 했다 한 달이 지난 후 5·18묘역으로 이장했다.
‘여보 당신은 천사였소,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는 묘비명으로 유명한 최씨 묘지의 비석은 1년 뒤 김 시인과 남편 김 교사가 가서 세운 것이다. 문구는 김 시인의 시에서 따서 쓴 것이다.
일본의 전문지도 그의 시 조명
김준태 시인을 만난 것은 일본 잡지 <시와 사상> 5월호에 실린 그의 시에 대한 서평이 계기였다. 지난해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의 번역으로 일본에서 출간된 그의 시집 <광주로 가는 길>에 대한 서평은 일본의 대표적인 사회파 여류시인인 사가와 아키(佐川亞紀)가 ‘고난에서 창조로-독립운동 기념의 해에 광주로 가는 길을 읽는다’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아키 시인도 시에서 최미애씨 원혼이 독백하는 부분을 주목하면서 ‘계엄군에 의해 죽었음에도 자신의 무력감을 원망하는 것이 투쟁의 주체가 자신이라는 자각 때문일 것’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모성은 대단합니다. 남자들은 총 맞으면 뒤로 발라당 넘어지는데 여자들은 앞으로 쓰러져요. 묘합니다. ‘내 새끼 젖 먹여야지’ 하는 마음이 마지막 순간까지 힘을 내게 하는 거예요. 엉겅퀴처럼 질긴 겁니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다 그랬어요. 4·3이 그랬죠. 81년 5월, 망월동에서 나는 이런 걸 봤어요. 엄마를 잃은 최씨의 아이가 우니까 할머니가 애를 달래려고 빈젖을 물리는데 그 쭈글쭈글한 젖을 빨고 있어요. 그걸 보니 눈물이 얼마나 나오던지.”
80년 6월, 김 시인은 아이들이 눈에 아른거려 신안동 셋방을 찾아갔다. 25일간의 도피는 5분도 안돼 잡히면서 끝났다. 505보안대에 끌려가 취조를 받으면서 강제로 사직서를 낸 그는 학원가 선생으로, 신문사 기자로, 구속자와 수배자, 유가족 등이 모인 ‘5항동(5월항쟁동지회)’ 활동을 하다 조선대 교수, 5·18기념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는 사단법인 광주평화포럼 이사장을 하며 강연과 저술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나이가 70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별 탈 없이 건강합니다. SNS 활동도 활발히 해요. 지난해는 <밭詩, 강낭콩>,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라는 제목의 시집 2권을 냈는데 세월호나 남북정상회담의 단상도 시에 담았습니다. 생명과 평화·통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제 시의 화두일 것입니다.” 글·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즈간경향 1329호
[대한민국 교육 제대로 가고 있나](6)욕망과 사회제도 앞에 무기력한 고3의 앞날
고3 담임을 연속으로 10년 정도 했다. 그 사이 아이 둘을 대학에 보냈다. 지난해부터는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산하 대학진학지원단에서 2년째 대입정보 제공 및 수시·정시 상담을 통해 일선학교를 지원하고 있다. 공교육에 들어오기 전에도 사교육 현장에서 10년 이상 대학입시와 씨름하며 지냈으니, 아마도 살아온 내 생의 절반이 대입과 밀착되어 있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입시 현장에서 긴 세월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오는 동안 가장 많이 든 생각이 바로 공교육이 ‘개인의 욕망’을 어디까지 반영하고 조절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교육은 도대체 무엇이고, 이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는 어떤 인재이며, 인재를 어떻게 선발하고 길러내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고민은 공교육 종사자라면 당연히 품고 있는 화두다. 이러한 고민들이 한 아이의 인생 방향을 설계하는 진학지도에서 당연히 반영되어야 할 테고 말이다.
일류대 진학이 최선이 아닌 현실
우리 사회에서 ‘교육현장’은 욕망으로 펄펄 끓어오르는 용광로다. 교육을 받는 목적이 부모세대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얻기 위해 벌이는 투쟁이라기보다 혹시나 중산층이라는 담장 밖으로 밀려나면 어쩌나 하는 절박한 공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녀세대가 부모세대가 누린 사회·경제적 지위만큼이라도 누리게 될 수 있는 확률은 상대적으로 희박하다. 나눠 가질 수 있는 파이의 크기는 더 이상 커지지 않을 것이고, 그나마 남은 파이를 한 조각이라도 선점하기 위해서는 일찍부터 눈물겨운 노력이 필요하다. 아직까지 교육이 사회적 지위 획득, 계층 이동, 그리고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다리’라고 믿기 때문에 교육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역할에 대한 담론은 쉽게 무력화된다. 교육을 욕망 실현의 도구로만 보는 관점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는 ‘현실’을 모르는 ‘고상한 헛소리’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욕망과 공포는 대입으로 귀결된다.
학교 현장의 대입지도 현실로 들어와보자. 우리 반에는 25명의 아이들이 있다. 학기 초 상담을 해보면 상위권 대학을 지망하는 아이도 있고, 대학 진학은 마음에서 지우고 취업을 생각하는 아이도 있다. 또 아무 대학이든 갈 수만 있으면 가겠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자신의 장래희망이 어느 정도 정해져 전공을 결정한 경우도 있지만, 전공은 상관없으니 무조건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고 밝히는 경우가 더 많다. 이렇듯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아이들이 대학 진학을 앞두고 처해 있는 상황이나 취하고 있는 입장의 스펙트럼은 매우 폭넓고 다양하다. 그러나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고민과 걱정이 있다. 첫 번째가 과연 대학을 나오고 나서 제대로 취업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래도 남들보다 혹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조건보다 상위 대학을 가고 싶다는 욕망이다. 성적이 좋은 아이는 아이대로, 성적이 중하위권에 속하는 아이는 그 아이대로 이 두 가지 욕망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어느 날 한 아이가 묻는다. 대학을 안 갈 건데 그럼 뭐하고 살아야 하느냐고. 그러나 막상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나니 앞으로 무엇을 할지 더 막막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시원한 답을 얻기가 어렵다. 가장 원론적인 대답만이 가능할 것이다. ‘세상에는 일등이거나 일류에 속하거나 뛰어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고 그들 역시 사회 구성원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망각한다. 그러니 지금 당장 어떤 직업을 정해야겠다는 초조함을 버리고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라.’ 그 아이가 듣고 싶어하는 대답은 아니었겠지만, 이렇게 말하는 게 최선의 대답이 될 수밖에 없다.
어느 날 또 다른 아이가 묻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건 미디어와 관련된 일인데 부모님은 취업 생각해서 자신의 적성과는 무관하게 무조건 간호학과에 들어가라고 한단다.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생각해보면 정말 간호학과에서 버텨낼 자신이 없는데 간호학과를 가지 않는다면 학비 지원은 없다고 하는 부모님 앞에서 선택을 어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부모님과 더 많은 대화를 해보라고 권하지만 난관이 쉽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취업을 걱정하는 부모님과 자신의 꿈을 생각하는 아이의 결정이 어디쯤에서 합의점을 찾을지 알 수 없다.
학력 인플레 시대로 접어든 사회
수시상담 중에 아이가 다니는 학교를 난생 처음 방문했다는 아버지가 있었다. 이 대학 정도는 갈 수 있느냐고 서울 소재 상위 10개 대학에 포함되는 어느 학교를 지목한다. 그 대학은 상위 4~5%의 학생들이 가는 곳이며, 정시에서는 전과목에서 틀리는 문제가 최소한 10개 이하여야만 갈 수 있다고 알려주고 있는데, 아이가 대뜸 큰소리로 “아빠, 난 한 과목에서만 10개 넘게 틀려요”라며 평소 해맑은 성격 그대로 대담하게 자기 고백을 한다. 얼굴이 붉어진 아버지는 “이제까지 공부를 어떻게 한 거냐”며 불같이 화를 내다 결국 이번 입시는 시험 삼아 치를 테니 무조건 그 대학 이상으로 잡고 합격선이 가장 낮은 전공을 찾아달라고 한다. 이런 경우 진학지도는 의미를 잃게 된다. 아이는 오로지 부모의 욕망에 맞춰 불합격이 예상되는 곳에 원서를 접수했다.
이미 우리 사회는 학력 인플레이션 시대로 접어들었다. 대학에 진학하려는 수요 자체가 적었고, 대학 숫자가 지금보다 적었기에 대학 졸업장이 좀 더 빛나던 부모세대와는 다르다. 일류대 졸업장이 취업을 담보해주지 못하며, 학벌의 힘이라는 것도 예전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부모세대의 사고 속에 학벌은 하나의 커다란 진실처럼 자리잡고 있다. 거기에 더해 대학은 취업을 준비하는 기관이라는 잘못된 전제까지 더해진다. 교육정책은 결국 각기 다른 이해와 욕구 충돌을 중재하는 기술쯤으로 여기며, 이해욕구의 당사자들은 자기 편에 유리한 정책이 공정하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니 대학 진학을 고려하면서 이전보다 더 복잡한 욕망의 메커니즘 속을 헤맨다. 결국 교육과정이 개편되어도, 입시제도가 개혁되어도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 이리저리 뒤틀려 종국에는 기이한 모양으로 변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그러했고, 수능 개편안이 방향을 잃고 헤매는 것이 그렇다.
문제는 학교 현장이다. 큰 방향을 잡고 가던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완전한 정착이 뒤로 밀리고, 수능 절대평가가 미적거리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혼란스럽고, 부모들은 자신들의 입시만 기억하며 여전히 학벌에 집착한다. 교사는 그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진학지도의 방향을 잃는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미래 사회에 필요한 인재 양성이라는 비전을 내걸고 학교 현장의 개혁과 혁신을 이끌어야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 없이 오히려 대입문제만 거론하다가 결과적으로 학교 현장에 다시금 무기력을 심어놓았다. 그러는 사이 교사들은 오늘도 그 결과를 담보할 수 없는, 형체와 목적이 불분명한 욕망과 씨름하고 있다. 그것도 결코 개개인의 책임으로만 묻기에는 어려운 욕망과 말이다.
<이의진 서울 누원고 교사(실천교사 미래교육팀장)>
[대한민국 교육 제대로 가고 있나](4) 신규 교사들은 왜 교단을 떠날까
ㆍ열정을 갖고 오지만 기피업무 대물림과 격무에 교사로서의 회의 늘어
교사는 그동안 아이들과 학부모가 선호하는 직업 1~2위를 유지해 왔다. 대학입시에서도 교대와 사범대는 여전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중등 임용시험의 경쟁률은 많은 과목에서 수십 대 1을 넘어온 지 오래다. 반면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다. 명예퇴직 교사도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그렇게 힘들게 임용시험을 통과하고도 우울감을 호소하다 교단을 떠나는 젊은 교사들도 있다.
왜 신규 교사들이 교단을 떠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임용시험제도와 교육현장 사이의 모순이 내포돼 있다.
현행 교사 임용시험의 출제 내용은 상당 비중이 전공분야의 교과 지식이다. 기본적으로 교육과정 해설서의 주요 부분을 통째로 암기해야 한다. 초등은 교과서의 지엽적인 암기형 지식을, 중등은 영재고 수업 수준 이상으로 대학생도 풀기 어려운 세부적인 전공지식을 제한시간 내에 정확히 써낼 수 있어야 1차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1차 시험 합격권 내에 드는 것부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임용시험 문제를 맞히기 위한 지식 암기와 문제 풀이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시험은 분명 필요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교육현장은 점차 암기를 통한 선다형 문제풀이의 지필시험 위주에서 벗어나 창의력, 비판적 사고, 소통, 협업능력 신장 위주로 변해가고 있다. 이것들은 인성과 생활지도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임용과정에서 이 부분에 탁월한 교사를 가려낼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 임용시험이 정말 훌륭한 교사를 가려내고 있는지 타당도를 높이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선진국의 교원 양성 및 선발 절차에 비하면 아쉬움이 많다.
임용시험 제도와 교육현장의 모순
이런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라도 교대와 사범대의 교육과정이 운영되면 그나마 수험생 입장에서는 다행이다. 그러나 학교현장뿐만 아니라 임용시험과 동떨어진 기초학문과 이론 위주 과목의 비율이 너무 많다고 느껴진다. 결국 많은 수험생들은 노량진 등의 고시촌과 인터넷 강의로 몰린다. 학생들을 사교육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공교육 교사가 되기 위해서 많은 예비교사들이 수년간 사교육을 받고 있는 셈이다.
흔히 ‘교생’이라고 불리는 교육실습생 제도도 아쉬움이 많다. 졸업 시까지 초등은 대략 4회에 걸쳐 9주 정도, 중등은 4학년 때 1회 4주가 전부이다. 교대나 사범대 부설학교로 배정받으면 비교적 체계적인 지도를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떤 지도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실습의 질은 천차만별이다.
이미 행정과 생활지도 등 격무에 시달리는 현직 교사들에게 교생이란 또 하나의 업무부담이 되기 십상이다. 중등은 더 심각한 상황이다. 교육실습생 지도를 위한 체계적인 매뉴얼이 잘 공유되지 않아, 학교 운영을 겉핥기로 구경하거나 지도교사 개인의 열정에 의존하는 도제식 교육이 되곤 한다. 이때 선배 교사들이 수업 공개를 꺼리거나, 선배 교사가 들어가기 싫은 반 수업을 다 맡겨버리기도 한다. 행정처리나 채점 등 잡무에 대한 지도를 넘어 떠넘기기로 변질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교생을 학생들 다루듯 통제하고 야단치는 선배 교사 등을 만날 경우 예비 교사는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다.
“제가 신규였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어요.”
필자가 진행했던 어느 지역 신규 1~3년차 교사 대상 연수에서 교사들의 하소연을 지켜보던 담당 장학사의 한탄이었다. 신규 교사들은 임용시험에 합격하면 일주일 정도 집체강의 위주의 신규연수만 받고 현장에 투입된다. 기간제 교사에게는 이런 최소한의 연수조차 없다. 운 좋게 주위에 좋은 선배 교사를 만나면 멘토링을 받을 수 있지만, 많은 교사들은 급변하는 교육환경에서 자신이 버티기에도 너무 바쁘고 힘들다.
교사 세대 간에도 소통이 쉽지 않은 구조다. 학교의 비교육적 관행에 의문을 제기하면 사정없이 동조압력이 들어온다. 선배 교사들은 “우리 땐 더 심했어”라며 자신도 힘든 격무를 몰아주고, 제대로 된 도움을 주지 않기도 한다. 무슨 업무인지도 모르는 신규 교사라도 일단 업무가 주어지면 대부분의 책임은 온전히 해당 교사의 몫이 되곤 한다. 그렇게 고생하면서 결국 신규 교사들도 자신이 실망했던 선배의 모습을 점차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사회 초년생이 통과의례처럼 어려움을 겪는 것은 여러 분야에서도 보편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구조적으로 방치한다면 문제다. 힘들고 오랜 수험기간을 거쳐 교사가 됐다는 합격의 기쁨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결국 지쳐버릴 수밖에 없다. 교사가 지치면 이는 개인 차원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결국 많은 학생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학생들과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어야
신규 교사들이 갖고 있는 열정은 누구보다 뜨겁더라도 이들은 교육현장의 베테랑이 아니다. 그럼에도 교육현장에서는 기존의 교사들이 기피하는 지역, 학년, 학교폭력 담당교사 같은 기피업무 자리를 비워뒀다가 2월에 발령받은 신규 교사를 그 자리에 앉힌다. 신규 교사가 아니면 전입·복직한 교사 또는 기간제 교사가 그 자리를 채운다.
필자가 임용된 2012년 당시 기피지역 위주로 혁신학교가 지정됐다. 그러자 해당 지역의 교사들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갔다. 그 자리에는 누가 들어왔을까. 신규 교사로 채워졌다. 젊은 교사들의 열정으로 혁신의 성과가 높아진 부분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요즘은 학부모 민원 급증으로 인해 기피지역이 된 강남·서초지역 초등학교의 1~4년차 교사 비율이 서울에서도 1위가 됐다. 현직 교사도 어려워하는 부분을 신규 교사로 채우면 악순환만 깊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는 각종 시도는 있다. 신규·전입·기간제 교사에게 기피업무를 최대한 맡기지 않는 방식의 인사규칙을 만드는 학교도 늘어나고 있다. 다만 신규 교사에게 돌아가지 않은 기피업무는 기존 교사들의 몫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결국 떠맡게 되는 학교업무에 대한 전체적인 틀은 보지 못하고, 자신이 맡은 업무만 과중하게 느끼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세대 간 갈등은 교육현장에서도 유효하다.
그래도 최소한 우리가 느꼈던 선배 교사들의 부조리한 모습을 후배 교사들에게 대물림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세대 교사들의 과업은 교사들이 교육에만 전념하며 학생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기피업무를 누구에게 어떻게 나눠줄지를 고민하기보다는 그런 잡무 자체를 없앨 지혜를 모아야 한다. 신규 교사 역시 최신 정보로는 대체할 수 없는 선배 교사들의 지혜와 경륜을 존중하며 소통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교육청 연수도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현실적인 도움이 되도록 변모하고 있다. 교대와 사범대 교육과정과 평가에도 좀 더 현실적인 교육현장을 배울 수 있도록 현직 교사의 참여를 늘릴 필요가 있다. 임용시험을 치른 후에도 일정 기간 수습과정을 거치고, 수석교사 등을 통한 체계적 지원을 받아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구조적 문제는 훌륭하고 열정적인 교사 개인 한 사람의 노력에 기대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교사가 지치기 전에 교사의 성장을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가야 한다. / <왕건환 경기고 교사(실천교사 정책위원)>
대한민국 교육 제대로 가고 있나](3) 대학 입시제도 이대로 좋을까?
ㆍ이리 고치고 저리 고쳐도 불만 해소 못해… 누구나 만족하는 제도는 한국에 없다
한국의 교육문제는 대학입시 문제로 귀결된다. 사람들은 대학입시에 대해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교육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파고들어가 보면 대학입시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일러스트 김상민
무지는 불안을 낳는다. 입시와 자녀교육에 불안한 사람들은 당연히 알고 싶어한다. 학원가의 광고전단을 보면 각종 설명회 개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정보에 목마른 학부모들을 타깃으로 한 것이다. 학원에서 설명회, 간담회를 개최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는 불문가지의 일이다. 학원의 목적과 학부모의 ‘니즈’는 설명회와 간담회를 통해 접점을 찾는다.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학원도 하는 것을 학교가 하지 않으면 곧바로 비난거리가 되고 만다. 학원 설명회는 학교로 전파됐다. 학교에서 하는 대학입시 설명회다. 필자도 학교 대입 설명회에서 마이크를 단골로 잡아왔다. 단골 마이크맨은 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프랜차이즈 학원에는 아예 전국을 다니는 설명회 전문강사가 따로 있다.
수많은 설명회와 간담회 찾는 부모들
수많은 설명회를 들어봤으니 사람들은 이제 입시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학부모들은 여전히 무엇을 알아야 할지, 대학입시가 무엇인지 몰라 어려워한다. 각종 설명회·간담회는 그냥 부흥회로서만 기능할 뿐, 핵심 정보 전달에는 실패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행사를 주최하는 사람의 목적이 입시정보의 확산에 있는 것이 아닌 것도 이유다.
도대체 학부모와 학원, 학교는 모두 무엇을 위해 설명회를 열고, 참석하는 것일까. 또 무엇을 설명하고 전달받고 있는 것일까.
어떤 분야를 잘 모르면 당연히 목소리가 작아지고, 주장의 세기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교육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교육은 무지의 정도와 주장의 강도가 비례하는 속성마저 엿보인다. 엄청난 이해관계가 걸려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계경제에 무리가 가더라도 자녀의 사교육비는 아낌없이 쓴다.
관심은 많은데 그만큼 알지는 못하는 이중성. 결국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과 무엇이든 막아내는 방패의 모순이 대한민국 교육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된다.
흔히 일반계 고등학교 교육이 부실해서 사교육이 많아지고, 고등학교 입시가 과열됐다고 비난한다. 특목고의 교육환경이 실제 일반고보다 좋은지 여부는 검증이 어려우니 넘어가더라도, 특목고 학생들의 사교육 실태는 증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경기도에 위치한 A외고는 주말이면 대치동행 관광버스가 운행을 한다. 학교는 공식적으로는 부인하지만 모두 알고 있다. 적어도 일반계 고등학교가 부실해서 사교육이 창궐한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지방의 자사고나 과학고도 사교육 열풍에서 예외가 아니다.
특목고든 일반고든 역시나 한국 공교육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일까. 국제고에서 이른바 ‘검은 머리 한국인’들이 사교육을 많이 받는다는 것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서 한국 공교육을 비난하는 논리의 균열이 드러난다. 그 좋다는 선진국 교육을 한국에서 받아도 여전히 사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말이다.
모순은 대학입시에 만연한 서열화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중위권은 어디일까? 산술적으로 대학입시에서 중위권은 전체 수능 9등급 중 5등급이 기준이 돼야 한다. 5등급보다 조금 높은 3~4등급의 성적표를 받았다고 생각해보자. 만족할 수 있을까. 그럴 리 없다. 중간보다 높은 성적을 받았다고 좋아하는 걸 보는 일은 극히 드물다.
상위권, 중위권, 하위권 대학이란 말을 쓴다. 하위권 대학은 정말로 하위권이 아니다. 우리의 눈이 실제의 상위권에 만족 못하는 것일 뿐이다. 적어도 서울의 경계선 안에 하위권 대학은 없다. 필자가 근무하는 지역에 서울의 경계선을 약간 벗어난 대학이 있다. 하위권 대학으로 분류되는 학교이지만, 수능 상위 10% 이내에 들어가야 합격권이다. 그 어떤 분야에서도 상위 10% 이내를 하위권이라고 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 유일하게 대학입시에서만 통용되는 분류법이다.
학벌 중요하지 않다면서 입시에 올인
해마다 수능이 끝나면 출제를 담당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언론과 학생, 학부모로부터 ‘동네북’이 된다. 어려우면 불수능, 쉬우면 물수능이라고 비판받는다. 무언가 통합할 수 없는 모순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수능 성적표가 배부되면 평가원이 있는 충북의 조그만 마을에는 학생과 학부모가 탄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선다. 컴퓨터로 스캔해 채점이 되어 나온 점수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서다. 아직까지 단 한 건의 채점 오류도 공식적으로 발표된 적은 없다.
선다형 한 줄 세우기 시험에 대한 비판은 학력고사 시절부터 나온 오래된 레퍼토리다. 누구나 인정할 것 같은 5지선다형 시험 체제의 혁파는 지난해 대입 공론화위원회의 결론으로 완전히 깨진 것 같았다. 수능시험으로만 가는 정시 대입 전형을 확대하라는 것이 국민의 뜻으로 공인됐다. 그러나 여전히 선다형 시험으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적절한 인재를 양성할 수 없다는 비판 역시 끊임없이 나온다. 학교 교육은 5지 선다형에 맞추어야 할까, 선다형 시험을 잘 보는 학생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애써야 할까. 지금 학교는 두 요구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현재 대학입시의 난맥, 갈팡질팡하는 교육정책은 바로 이런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교육과 입시제도가 변화하는 시대를 못따라가고 있다는 말은 절반은 틀렸다. 입시제도가 정확히 현실에 조응해 그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입시제도는 매번 바뀌어 왔다. 그것도 아주 많이 바뀌어 왔다.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아침에 바꾸고 저녁에 고친다는 비아냥을 들어왔을 정도다. 논술이 들어왔고, 미국식 입학사정관 전형이 도입됐고, 서술형 시험도 도입해봤고, 본고사도 부활시켜 봤다. 입시제도를 이리 바꾸고 저리 고쳐도 국민적 불만이 해소되지 않았다면, 이제는 입시 자체에 대한 불만에서 사고의 전환을 이룰 때가 됐다.
더 이상 학벌이 중요한 시대가 아니라는 것에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입시제도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에서 우리는 근본적 모순을 찾아야 한다. 설사 양극화가 심화되는 시대라 하더라도 더 이상 학벌이 상층 노동으로 진입하는 보증수표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대학입시에 올인하는 세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말로 학벌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오고 있는가? 여기에 동의한다면 이 시대를 설명하는 것만으로 입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학벌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를 만드는 것만이 문제 해결의 유일한 해답이 될 것이다.
입시문제 해결에 ‘도깨비방망이’는 없다. 이제는 시선을 돌려서 교육과 입시에 대한 모순적 사고 행태를 전환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누구나 만족하는 입시제도는 적어도 한국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다.
<전대원 위례한빛고 교사(실천교사 대변인)>
[대한민국 교육 제대로 가고 있나](2) 누구를 위한 NEIS인가?
ㆍ학생·교사·학부모 편의가 아닌 관료주의적 관리와 통제를 위해 쓰여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교육부에서는 독일어도 아닌 것을 엉뚱하게 ‘나이스’라고 읽는다. 사실 이렇게 부르는 데에는 사연이 있다. NEIS는 2003년 ‘학교와 교육청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교무·학사·인사·회계 등 교육행정을 전자적으로 처리하여 교육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목적으로 전면 도입·시행됐다.
그런데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개인정보의 과다 집적 등을 문제삼은 전교조 등의 강한 반발 때문에 참여정부 첫 교육장관인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낙마하는 우여곡절이 벌어졌다. 급속한 전면 시행에 따른 잦은 오류와 원시적인 인터페이스 등으로 현장 교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NEIS는 자주 ‘뻑’이 났고, 그때마다 학교는 올스톱 되거나 두세 번씩 다시 작업해야 했다.
시수와 편제와 발이 묶인 교사들
지금 학교 현장에서는 이 NEIS를 발음법에 따라 ‘네이즈’라고도 부른다. 국적 불명의 ‘나이스’라는 말은 현장 교사들의 불만을 경청해 해결하기보다는 ‘NEIS는 ‘나이스한(좋은) 것’이라는 다분히 주술적 취지가 담긴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종 행정력을 동원해(예컨대 공문서 및 연수에 NEIS 명칭 쓰기) 현장의 정서를 조작 또는 억압하고자 했다.
그 뒤로 16년이 지났다. 시스템은 조금씩 안정됐다. 나름 보완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보완의 기준이 2003년 당시의 기술력과 교육환경의 수준에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시스템의 철학 즉,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시스템인가에 대한 물음이 없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에 대한 개선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분명 NEIS 도입으로 학교에서는 이전보다 월등히 많은 정보량을 다룰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정보처리 능력이 학생과 교육활동을 위한 것이 아니라 관료주의적 관리와 통제를 위해 쓰이도록 설계됐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교육과정 시수’다.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학생이 진로교육을 내실 있게 받으면 되는 것이지 진로시간의 시수가 학기당 17시간인지 18시간인지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나아가 진로수업이 ‘창의적 체험활동(자율·동아리·봉사·진로 4개 영역)’의 진로수업인지 ‘자유학기제(진로·주제선택·예술체육·동아리 4개 영역)’의 진로수업인지까지 관심을 둘 이유가 없다.
그런데 NEIS라는 전산화된 문명의 이기는 그 불필요한 것을 구분할 수 있게 했고, 교사들이 시수와 편제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해마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2월 교사들은 새 학기 준비의 상당 부분을 교과연구 혹은 새로운 학생들을 맞을 준비가 아닌 서류작업을 하느라 시간을 쏟는다.
학기 중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가 기록’이라는 것을 만들어 NEIS 시스템 상에서 시수가 자동 계산되도록 한 뒤 (정확히는 수기로 입력하지 못하게 막아) 사소한 시수 오류라도 있으면 더 이상 일을 진행할 수가 없게 차단해놓고 있다. 한 학생이 독감에 걸려 조퇴를 했을 경우 자율활동을 8시간 한 것과 9시간 한 것의 차이가 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그만큼의 학교 행정력을 투입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상식선에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발생한다.
이렇듯 NEIS 시스템의 운영목적이 사실상 이용자(교사·학생·학부모)의 편의가 아니고 관리와 통제의 편의이다보니, 정작 전산화로 혁신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학교업무 프로세스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종이로 하던 작업을 이제 컴퓨터로 하게끔 만들었을 뿐이다. 예컨대 학교에 연간 1만건이 넘게 쏟아지는 공문 중 그 흔한 답글 기능조차 없어 새로 공문을 작성할 때면 일일이 근거 공문 번호를 찾고 수신처를 찾아 입력해야 하는 실정이다.
컴퓨터가 지배하는 교사의 일상
학생과 학부모들도 전산화의 혜택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학생의 출석을 인정해 주는 체험학습 보고서는 종이신고서로 처리해야 한다. 학부모는 PC방에 가서라도 사진을 출력해 붙여 문서를 만들어 보내야 하고, 아이가 깜빡해서 제출기한을 놓치기라도 하면 인정 여부를 학교와 다퉈야 한다.
교사는 교사대로 그 서류를 추려 결재를 받아 문서철을 만든 다음, NEIS 출결사항 메뉴에 입력해야 한다. 종이로 할 때보다 오히려 한 단계 더(?) 일을 하는 셈이다. 학부모가 업로드해 승인되면 시스템에 자동으로 반영되는 방식이 아니다. 방과 후 학교 신청이나 성적 확인, 고교 입시원서 제출, 건강검진 결과 수합 등 거의 모든 일들의 프로세스가 대동소이하다. 다만 상급기관에서 출석률이 몇 %인지, 비만학생 비율이 몇 %인지 한눈에 파악해 보고하기가 좋아졌을 뿐이다. 이에 대한 문제 제기와 개선 요구가 있어도 NEIS를 관장하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은 현장의 목소리보다는 늘 ‘갑’인 교육부의 의견을 우선한다.
NEIS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실질적 업무개선 효과는 미미하다. 오히려 교사들은 학생이 아닌 컴퓨터를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교사의 일상을 학생이나 책이 아닌 컴퓨터가 지배하게 된 셈이다. 학교업무의 효율화를 위해 도입된 NEIS가 도리어 학교의 교육력을 갉아먹는 비효율과 역설을 야기하게 됐다.
하지만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정보화 이전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NEIS 도입 당시의 취지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교육관료를 위한, 교육관료에 의한, 교육관료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그 도입 취지를 되살리고 4차 산업혁명이 운위되는 현재의 상황에 맞도록 개편하는 전면적인 재설계 및 혁신이 절실하다.
먼저 업무 프로세스를 현 실정에 맞게 재구축해 ‘관리의 편리’가 아닌 ‘업무의 편리’를 꾀해야 한다. 대신 교사들은 미래형 교육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보다 근본적인 관점 전환도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관’이 아니라 ‘학생’을 주인공으로 하는 시스템으로의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 학생부 기재내용은 아니지만 학생에게는 의미 있는 진로검사 결과나 도서대출 이력 같은 것도 연결하고, 초·중·고를 연계해 성장의 이력을 살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생 스스로가 다양한 정보를 집적·관리하며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LOD(링크오픈데이터 연결)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다면 정보보호나 보안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IT 강국이고, 교육열도 높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기득권 유지를 위한 관료들의 규제에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상에 맞게 새로운 백년지대계를 위한 변화를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신동하 교사(경기교육연구소 연구실장·실천교사 정책위원)>
“한 달 29만 원” 사교육비 통계, 그냥 받아써도 될까
교육부·통계청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두고 “신뢰성 회복해야” 한 목소리
올 초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주인공 예서의 연간 사교육비는 ‘억대 수준’으로 등장한다. 오늘날 사교육은 ‘계층’의 또 다른 이름인 캐슬을 공고히 만다는 장치다. 그러나 불평등한 교육 현실을 반영하는 사교육 관련 통계는 부실하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사교육비 조사결과부터 당장 ‘우리 집’ 사교육비와 동떨어져 있다.
교육부와 통계청은 매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를 시행한다. 교육부는 과거 부정기적인 정책연구 형식의 조사를 2007년 통계청과 공동실시하는 정기조사로 개편했다. 통계청이 전국 초·중·고 1486곳 학교의 학부모 4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가 지난 3월 발표됐다. 2018년 학생들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1인당 29만1000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교육을 받지 않는 학생까지 포함한 액수다. 사교육 참여 학생들의 사교육비는 평균 39만9000원으로 나타났다.
역대 최대 사교육비라는 보도가 쏟아졌지만 여전히 조사결과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언론은 “한 달 학원비 100만 원 넘는데…정부 통계 못 믿겠다”(중앙일보), “한 달 사교육비가 겨우 29만 원? 학부모들 ‘못 믿을 통계’”(머니투데이)와 같은 보도로 통계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은 통계청 결과를 그대로 인용보도하며 주석을 달아야 했다.
▲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한 장면.
29일 국회에서 열린 ‘월평균 29만원 사교육비 통계개편 토론회’에 참석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학부모들은 월급의 3분의1은 교육비에 들어간다며 통계수치가 실제와 거리가 멀다고 지적한다. 조사결과를 보면 사교육비에 영향을 미칠만한 요인에 대한 진단도 부재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원욱 의원은 “여전히 영유아 사교육비는 통계에 반영되지 않아 사교육비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방과 후 학교비용이 포함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라며 “사교육비 통계에 대한 불신 속에서 사교육 경감 대책을 세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교육비 조사에 포함되는 항목 수 총 131개 중 공개되는 항목이 60개(45.8%)에 불과하다”며 “15억 원 이상 국고가 투입되는 조사가 현실을 반영할 수 있게 조사항목을 개발하고 공개 범위 또한 확대해야 한다”며 조사 신뢰성 회복을 강조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서울시교육청 자료를 바탕으로 “자녀 1인을 수학과 영어 1과목씩 학원을 보낼 경우 월평균 교습비는 54만8000원”이라며 통계의 비현실성을 꼬집은 뒤 “스카이캐슬 방영 후에도 정부는 실효성 없는 사교육 대책만 발표했다”고 꼬집었다.
도승숙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성남지회장은 “사교육이란 학령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공교육 이외의 모든 교육이다. 주변 부모에게 물어보면 한 과목당 30~40만 원이 평균이고 사교육비용 지출은 유치원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통계에는 초중고 공교육을 받는 청소년으로만 한정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통계를 두고 “예체능 학생들의 의상비·운동장비·악기 비용, 체험학습이나 어학연수·농촌캠프 비용도 포함이 안 돼 있다”며 한계를 지적했다.
도승숙 지회장은 “충북의 경우 2017년보다 30% 정도 사교육비용 증가율이 나타났는데 이는 2017년엔 군단위 학교에서 조사했다가 2018년 도심학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라며 “교육열 높은 도심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 간의 사교육 열기 격차 등 세부적 변수들이 고려되지 않은 표본설계를 의심하게 된다”고 했다.
변종석 한신대 응용통계학과 교수는 “표본 학교 추출 과정에서 지역별 가구소득과 사교육 참여율, 학생 수, 사교육 기관 수 등 사교육 환경 변수를 군집화 변수로 추가하거나 층화 변수로 사용하는 방안과 가중치 및 상대표준 오차의 안정화를 위한 학급별 및 지역별 표본 크기 확대나 배분 방안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1인당 사교육비는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급별 혹은 지역별 결과의 공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통계청은 올해 조사에서 표본을 전보다 63개 학급 늘어난 1554개 학급으로 확대하고 지역 통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강신욱 통계청장은 “올해는 통계 신뢰도 강화를 위해 표본설계에 변화를 주고 조사 자체에도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다”고 밝혔다.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
"3700명 속인 인보사 사태 주범은 식약처, 다른 문제 또 있다"
'유전자치료제 허가' 신속 처리 담은 법안 대기 중... 윤소하 "퍼주기 지원 검증 필요"
▲ 인보사 코오롱 생명과학 홈페이지의 인보사 사진 ⓒ 코오롱 생명과학
"저희 어머니께서는 2017년 11월 경 인보사 주사를 맞았습니다. (중략) 80대 중후반의 어머니 모습을 보니 제가 고통을 드린 것 같아 너무 죄송합니다. 지난 9일 전수조사와 관련해 정보동의서를 받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모든 게 불확실 투성입니다." - 네이버 '인보사피해자들을 위한 모임' 카페 상담글 중
'만능 관절 주사'로 이름을 떨치던 국내 첫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의 추락.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2017년 7월 시판 허가를 내준 뒤, 약 3700명의 환자들이 이 주사를 맞았다. 2019년 3월 22일 개발사 코오롱생명과학이 식약처에 주사의 주요 성분인 유전자 세포가 신장세포로 바뀌었다는 보고를 하기까지, 이 주사의 인기는 의료 시장은 물론 주식 시장까지 영향을 미쳤다.
인보사 주사 맞은 피해자의 호소, 그러나...
"식약처는 이번 인보사 케이주 허가 취소 사건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 보다 안전하고 우수한 의약품이 개발·공급될 수 있도록 환자 중심의 안전관리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8일 식약처가 인보사 최종 허가 취소를 밝히며 낸 보도자료의 맺음말이다. 허가 과정에서 발생한 부처 차원의 책임에 대한 유감 표명은 따로 밝히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부터 유전자 세포 신약의 과도한 산업화를 지적해온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29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식약처의 태도를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식약처가 사실 이번 인보사 사태의 몸통"이라는 비판이었다. 윤 의원은 "허가를 신청한 코오롱, 허가를 해준 식약처 한 몸이다. 기업이 허위와 거짓으로 허가서류를 내더라도 이를 검증하고 구별해 내야 하는 것이 식약처의 임무다"라면서 "최종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도 사과 한마디 안했다는 것은 식약처가 국민을 대하는 모습이 어떤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질타했다.
식약처가 2017년 중앙약사심사위원회의 의견을 모아 시판을 허가한 과정을 봐도, 유전자 치료제에 대한 식약처의 당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더욱이 허가 결정을 내린 2017년 6월 회의 두 달 전인 4월 회의에서는 "증상 완화를 위해 유전자치료제를 사용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위원 7명 중 6명이 허가를 반대했다. 식약처 홈페이지에 공개된 4월 회의록과 6월 회의록에 나온 대목이다.
[2017년 4월 4일]
(익명 위원) : "TGF-β(인보사에서 신장세포로 변경된 것으로 알려진 유전자 세포)를 도입한 세포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으며, 이 정도 효능을 위해 사용하기엔 위험성이 크지 않나 생각됨."
식약처 : "유전자치료제는 15년 장기추적을 해 안정성을 관찰하도록 하고 있는데 본 제품의 경우 1상 시험 대상자는 이미 7년 이상 장기 추적 결과가 있으며, 아직까지는 종양 발생 보고는 없었음."
[2017년 6월 14일]
(익명 위원) : "임상 시험 결과 안전성에 관한 자료에 따르면 단기적 이상 반응만 있음. 이상 반응은 언제쯤 확인했으며, TGF-β는 어느 시기에 측정했는가?"
식약처 : "(중략) TGF-β는 3, 6, 9. 12개월에 측정하고 더 짧은 시간에는 본 적이 없음."
특히 식약처는 마지막 회의에서 인보사의 효능이 적용된 '골관절염' 대신 '연골결손 질환'에 대한 미국 허가 사례를 언급하며 "국제적으로도 구조 개선이 없는 경우에도 허가하는 사례가 있었다"면서 허가를 독려했다. 한 위원은 이에 "골관절염과 연골결손은 서로 다른 질환이다"라면서 "미국에서도 골관절염에 대해 세포 치료제는 허가를 내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우려에도 결국 700만 원 상당의 비급여 주사, 인보사의 시판은 허가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8월 건강보험보장 강화정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에서 발표한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기조에도 역행한 결론이었다.
윤 의원은 식약처의 유전자치료제 허가 과정에서 발생한 제도적 구멍은 결국 정부 차원에서 주도하고 있는 바이오 헬스 산업의 '발전 중심' 생태계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원을 하더라도 산업체를 위한 지원보다 기초연구, 연구자에 대한 지원이 우선 돼야 한다"면서 "바이오헬스 산업육성전략 발표를 봐도, 바이오 산업계의 전문성이나 연구 실적이 전제된 것이 아니라, 사업 분야의 발전 가능성이 우선됐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4차산업의 핵심 산업으로 꼽은 신약 개발 등 바이오 헬스산업의 진흥을 위해서라도, 특정 산업체에 대한 검증 없는 '퍼주기 지원' 보다, 개발 시작 단계인 기초 연구에 더 많은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인보사' 구멍, 국회가 메울까
▲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와 건강과대안,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획견을 열어 의약품 성분인 세포주가 뒤바뀐 채 약 3700명의 환자에게 시술된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이하 인보사)"에 대한 즉각적인 허가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결국 공은 국회로 다시 넘어왔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일부 시민단체는 국회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2015년 박인숙 자유한국당 의원 대표 발의)' 등 유전자 치료와 연구 범위를 확대한 법안이 처리되면서 이번 사태의 빗장이 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도 유전자치료제 허가와 관련된 내용이 담긴 '첨단재생바이오법안(이명수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대표 발의)'이 지난 3월 28일 보건복지위원회를 거쳐 국회 법사위에 올라온 상태다. 국회 상임위원회의에서 마지막으로 인보사 사태가 언급된 건 국회가 패스트트랙 정국으로 멈추기 전인 지난달 4일, 법제사법위원회의에서였다.
[4월 4일 법제사법위원회 속기록]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 : "미국 FDA 승인을 하는 과정 속에서 인보사의 성분 변형 세포가 달리 판단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식약처가 사실은 그 단계에서 이것을 검증해 내지 못했단 말이예요. (중략)"
이의경 식약처장 : "철저하게 검증하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저희를 믿고 좀 기다려 주십사 하고 부탁을 드립니다."
오 의원은 이 자리에서 해당 법안을 제2소위로 회부하며 "(신약이) 잘못 오남용되면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다. 법안 취지에는 동의하나 (유전자치료의) 시스템을 명확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의경 식약처장은 이에 "지금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산업을 발전시켜야 하는 측면도 있다. 안전성 우려는 있지만 보건복지부와 식약처가 철두철미하게 관리하면 많은 장점이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식약처는 해당 법안의 방점을 '경제발전'과 함께 '제2의 인보사 사태' 예방에 두기도 했다. 이 처장은 이날 회의에서 "이 법안은 세포처리시설이나 세포처리관리업에서 식약처가 관리를 철저히 하는 내용이다"면서 "(유전자치료제에 대한) 장기 추적도 담겠다고 했다. 인보사 사건을 계기로 이 법을 입법화하게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개정안 또한 발전 논리에 치중한 법안이라는 걱정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주요 내용 중 ▲별도 심의위원회 심의 ▲허가 신속처리 제도 등에 대한 우려다.
재활의학 전문의인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개정안에는 별도의 위원회를 두도록 돼 있지만, (유전자) 세포 치료제 전문가만 참여한다. 이해당사자들이 모여서 논의하면 어떻게 되겠나. 그 조항만으로도 매우 위험한 법안이다. 특별법으로 처리하기보다, 약제 관리를 위한 약사법에 넣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윤 의원 또한 유전자 치료제에 대한 점진적 규제 완화보다 인보사 사태로 드러난 구조적 모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바이오헬스산업 진흥을 위한 신약 개발 지원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이 산업이 차세대 미래 산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지만, 이를 선도할 생태계가 형성됐다는 데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회 정상화 이후 법사위 테이블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에 '인보사 사태'가 추가 된 이유다. 국회법에 따라 6월 1일 임시회가 열리는 만큼, '첨단재생바이오법안' 처리도 논의 목록에 오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법안이 제2의 인보사 예방책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허용 통로가 될 지는 회의장에 마주 앉을 의원들의 손에 달려 있다.
조혜지(hyezi1208) 오마이뉴스
남편이 남의 편인 이유
영화 ‘미성년’. 쇼박스 제공
“성욕이야, 사랑이야?”
지난달 개봉해 겨우 30만 관객이 보고 망한, 놀랍도록 잘 만든 영화 ‘미성년’엔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우등생인 고1 딸과 작은 회사 이사인 남편(김윤석)의 뒷바라지만 묵묵히 해온 전업주부(염정아)는 어느 날 남편이 오리고깃집 여사장과 바람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임신까지 한 여사장은 막 아이를 낳아 키울 참이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아내는 “한 번만 용서해 달라. 실수였다”는 남편에게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다.
자, 성욕일까, 사랑일까? 남편은 고민한다. 성욕은 분명한데 사랑인지 아닌지는 헷갈리기 때문일 수도 있고, 성욕이자 사랑인데 이걸 아내에게 실토했다간 아내가 돌아버릴 수 있어 두렵기 때문일 수도 있다. 도대체 남자한테 성욕과 사랑의 구분이 가능하겠는가. 자유와 평화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성욕과 사랑의 양 날개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영화 속 남편은 급기야 이런 궁핍한 답을 내놓는다. “미안하다.”
남자는 이래서 하등동물이다. 영화 속 아내의 ‘출제 의도’는 성욕과 사랑 중 하나를 고르란 말이 아니다.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난 안 믿는다. 넌 쓰레기다. 하지만 내 속이 이렇게 끓어오르니 뭐라도 터진 입으로 내뱉어 보라’는 뜻인 것이다.
영화는 놀랍도록 심오한 여성들의 마음세계를 비춘다. 김윤석의 딸과 오리고깃집 여사장의 딸은 같은 학교 동급생인데, 자신들의 아빠와 엄마가 불륜관계임을 알게 된 두 여고생은 처음엔 서로를 향해 적대감을 갖지만 이내 동질감으로 변해간다. 그러곤 조산이 되어 인큐베이터에 있는 손바닥만 한 남동생을 보면서 ‘이 소중한 생명을 팔푼이 같은 부모에게 맡기느니, 차라리 내가 키우겠다’고 선언한다. 결국 염정아는, 이미 오래전 노름에 미쳐 집을 뛰쳐나간 한 놈팡이에게 상처받고 살아온 오리고깃집 여사장과 그녀의 딸에게도 동병상련을 느낀다. 자신들은 적이 아니라, 수컷들에 의해 고통 받는 희생자들이니 말이다.
아, 움직이는 여성들의 깊은 내면을 마치 농담 한마디 툭 던지는 투로 단출하고도 완벽하게 전하는 이 탁월한 영화가, 수컷들의 약육강식을 그린 영화 ‘황해’에서 전대미문의 살인마로 나온 ‘마초’ 배우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이란 사실을 당신은 믿을 수 있겠는가. 제목인 미성년은 두 여고생이 아니라, 영원히 철들지 않는 영화 속 남자들이었던 것이다.
여성성은 위대하다. 내가 섹스할 수 있는 대상을 뺀 대부분의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남자와 달리 여성은 진짜 내 편과 진짜 남의 편(이걸 줄여서 ‘남편’이라 한다)을 구별할 줄 아는 본능적 능력을 가졌다. 적대감보단 동질감으로 세상을 보려 하는 여성이기에, 신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귀한 능력을 여성에게 선물한 것이 아니겠느냔 말이다. 열일곱 살 이탈리아 소년과 스물넷 미국 청년의 풋사랑을 그린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에 특히 여성 관객이 열광하고 공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건 단지 동성애가 아니다. 사랑하는 상대를 우리가 ‘자기야’라고 부르듯 자기 이름으로 상대를 부르는 관계야말로 여성들이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는 ‘넌 또 다른 나’의 경지, 즉 진짜 사랑이 아닐까 말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나는 ‘걸캅스’라는 한국 영화를 둘러싸고 최근 인터넷에서 벌어진 페미니즘 논쟁이야말로 ‘찌질이’ 같은 남자들의 민낯을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버닝썬’ 사건과 놀랍도록 유사한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에는 클럽에 놀러온 여대생들의 코에 ‘매직 퍼퓸’이란 신종 마약을 뿌려 마취시킨 뒤 강간하면서 이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인터넷 회원 모집을 하고 돈을 버는 쓰레기 같은 수컷들이 등장한다. 남자 형사들이 “이런 사건은 실적이 별로 되지 않는다”며 심드렁해하자 보다 못한 전현직 열혈 여형사 둘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영화에서 주인공(라미란)은 “우연히 나쁜 놈한테 당한 것뿐인데, 여자들은 왜 그걸 자기 탓이라며 자책하는 거야? 그게 왜 여자들 탓인데?”라며 격분하는데, 이 영화를 두고 일부 남자 누리꾼들은 “남자 경찰의 무능함만 부각시킨 ‘페미코인’(페미니즘을 상업적으로 이용함을 뜻하는 신조어) 영화”라며 ‘평점 테러’를 퍼부은 것이다.
아, 어쩌면 남자들은 여성들의 마음을 이토록 모른단 말인가. 여성들의 두려움이 얼마나 크기에 이런 영화까지 만들어졌겠느냔 말이다. 그런데 내가 더욱 놀란 것은, 서울 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주말 조조 상영으로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내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장면 때문이다. 연인으로 보이는 20대 초반 남녀가 이 영화를 본 뒤 나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갑자기 남자가 장난을 친다면서 “치익” 소리를 내며 손가락으로 여자 친구의 코끝에다 영화 속 신종 마약을 뿌리는 듯한 흉내를 내고는 낄낄 웃는 것이 아닌가. 영화 내용에 여자 친구의 기분이 얼마나 더러워진 상태인가를 티끌만큼도 헤아리지 못한 바보천치 같은 짓거리였다. 오만상이 찌그러진 여자 친구는 내가 옆에 서있는데도 순간적으로 이런 짧고도 강렬한 멘트를 남자 친구에게 날려 주었다. “에이, 씨×.” 여성이여, 영원하라!
이승재 영화 칼럼니스트·동아이지에듀 상무/동아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유족 억장 무너지는 언론보도
사망 보험금 얼마 지급 전하는 보도에 비난 여론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발생한 유람선 침몰 사고로 한국인 관광객 7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사망 보험금 지급 내용을 다룬 언론 보도가 나왔다. 사고를 수습하기도 전에 희생자를 두 번 울리는 언론보도에 비난 여론이 커지고 있다.
중앙일보는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망자 여행자보험 보험금 최대 1억원”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침몰한 유람선에 타고 있던 여행객이 가입한 여행자보험의 보험금 규모는 사망시 1억원, 상해치료시 5000만원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여행객들은 참좋은여행사가 제공한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다 사고를 당했다. 참좋은여행사는 DB손해보험과 삼성화재의 배상책임보험을 가입한 상태”라며 사고를 당한 여행객들은 DB손해보험 여행자보험에 가입돼 있고, 해당 상품은 사망에 1억원, 상해 치료비에 최대 500만원을 보장한다고 보도했다.
중앙은 “보험업계 관계자는 ‘배상책임보험 보험금은 통상 가입자의 귀책이 확인돼야 지급 가능하다’며 ‘지금은 사고 초기이기 때문에 보험금 지급 여부나 규모를 산출하기에 이르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 스스로도 정확한 보험금 지급 규모를 산출하기 어려운 단계라고 인정하는 셈이다.
▲ 5월29일 한국경제·중앙일보 보도 갈무리
한국경제도 “헝가리 유람선 침몰사고…관광객 가입 여행자보험금 최대 1억”이라는 기사에서 “한국 관광객들은 DB손해보험의 단체 여행자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DB손보 관계자는 ‘해당 단체 해외여행자보험은 사망 시 1억원, 상해치료비 500만원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한국경제는 이어 “해외여행자보험은 여행 중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해 보장한다. 기본계약으로 상해 사망을 보장하며 실손의료비·질병 사망·휴대폰 손해·배상책임손해·항공기 납치 보상 등을 선택계약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여행사 보험을 홍보하는 기사인지 헷갈릴 정도다.
여행사 측조차도 보상 문제는 언급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보고 있다. 참좋은여행 최고고객책임자도 이날 브리핑에서 “기자분들의 많은 질문이 있어 이 사항을 넣었습니다마는 저희 회사는 여행자 전 고객들이 여행자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저희 회사도 동부화재와 삼성화재 배상책임에 가입되었다”면서 “저희 회사는 비용 문제를 떠나서 우선 회사의 모든 총력을 기울여서 이번 사고가 원만하게 수습되어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도록 저희 대표이사 포함 전 임직원들이 최선을 다해 수습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관련 언론 보도에 한 누리꾼은 “돈 받는다고 이야기하기는 시기상조 아니냐. 유가족들 보면 억장이 무너질텐데”라고 했고, 다른 누리꾼들도 “사람이 죽었는데 돈 얘기가 나오냐”라고 비난했다.
한 기자는 “언론사의 구조적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면서 “대형 사고 나니까 데스크 회의에서 역할 분담하면서 경제부는 어떤 아이템 낼래 하고 지시하니 이런 내용을 발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진 기자 jinpress@mediatoday.co.kr
종편에선 여전히 ‘북한군 개입설’ 나온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518기념재단과 함께 꾸준하게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된 보도를 감시해왔습니다. 2013년 TV조선과 채널A가 5·18 북한군 침투설이라는 허위조작정보를 방송하는 것을 비롯해 그동안 보수언론이 5‧18 정신을 훼손하는 보도들이 끊임없이 반복 생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언련은 2018년에는 <5·18 가짜뉴스 신고센터>를 만들어 온라인상의 5·18 왜곡 가짜뉴스들을 수집해 모니터보고서를 발표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통신심의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민언련은 언론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올바르게 계승하고, 광주의 진실을 왜곡하지 않도록 2019년에도 꾸준히 모니터를 진행하겠습니다.
다시 5월이 찾아왔습니다. 1980년으로부터 39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진실을 밝히지 못했고,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은 올해에도 정치권의 망언에 상처받아야했습니다. 민언련은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이 조속히 이뤄질 것을 촉구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지난 13일부터 20일까지 종편 시사대담 프로그램의 ‘5‧18 민주화운동’ 관련 대담을 모니터했습니다.
‘진상규명’은 무시, 관심은 ‘황교안 기념식 참석’뿐
민언련은 <민언련 5․18 모니터/모독할 수 없으니 침묵하겠다? TV조선이 5·18을 보는 관점>(2018년 6월19일)에서 2018년 5월 한 달간의 5‧18 관련 대담 시간을 분석한 결과 TV조선은 단 한 번도 대담을 진행하지 않았고 채널A 역시 7분으로 매우 낮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또한 4사의 전체 대담 시간이 137분으로 한 달간의 기간에 비해 매우 낮았습니다.
반면 올해 5월 13~20일까지 일주일간의 대담 시간을 확인한 결과 699분으로 모니터 대상 프로그램이 줄어들었음에도 대담 시간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종편 4사가 작년 ‘5‧18 민주화운동’ 관련 대담에 관심을 보이지 않은 점과 올해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기념식 참석 등의 논란을 집중적으로 다룬 점이 맞물려 나타난 결과였습니다.
종편 4사의 13개 프로그램에서 다뤄진 주제들을 확인한 결과에서는 ‘5‧18 기념식’이 699분 중 527분으로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반면 ‘진상규명’은 58분으로 사실상 주요 주제로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유한국당의 ‘5‧18 망언’ 역시 9분간만 다뤄지면서 완전히 외면됐습니다.
5·18 관련 종합편성채널 보도‧시사프로그램의 주제별 방송 시간(단위:분)(5월13~20일).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39년 만에 나온 김용장‧허장환 씨 증언 묵살한 종편
전체 통계에서 ‘진상규명’이 58분간 다뤄진 점은 모니터 기간 동안 39년 만에 새로운 증언들이 나왔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큰 문제였습니다. 지난 14일 김용장 전 미 정보요원과 허장환 전 505보안부대 수사관은 5‧18 기념재단 등과 기자회견을 열고 “5·18은 정권 찬탈을 위한 신군부 시나리오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라는 증언을 했습니다. 지금껏 알려진 것과 달리 전두환 신군부가 집권을 위해 광주를 이용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당시 계엄군이 시민들의 시위를 격화시키기 위해 ‘편의대’로 명명된 일종의 특수 공작부대를 시민군으로 위장해 투입했다는 점도 증언을 통해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KBS <단독/“탄약 수백 발 소모”…5‧18 군인의 증언>(5월15일, 박지성 기자)는 당시 광주로 출격하는 헬기에 탄약을 지급한 탄약관리하사 최종호 씨의 증언을 통해 헬기사격의 정황증거를 공개했습니다. 최 씨는 “20mm 전투용 고폭탄 두 통 2천발이죠. 그 다음에 보통탄 한 통 천발. 그 다음에 7.62mm 기관총 한 통 천발”이 헬기에 실렸고 “고폭탄은 손 안 대고 그대로 뚜껑도 손 안 댔더라고요. 그대로 받고 20mm (발칸포) 보통탄은 한 2백 발 정도 줄었고 7.62mm 한 3백 발 정도 줄었”다며 구체적인 사격 탄종과 탄수를 증언했습니다. 특히 KBS는 “전쟁 시에만 쓰는 고폭탄까지 지급하라는 명령”이 있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신군부가 당시 광주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지적했습니다.
이처럼 그간 밝혀지지 않았던 진상규명의 새로운 실마리가 연이어 등장했지만 이 내용은 종편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특히 TV조선‧채널A는 각각 <신통방통>, <김진의 돌직구쇼>를 통해 해당 내용을 다룬 일간지 기사를 짧게 소개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종편 시사대담 프로그램들이 국가폭력의 진실을 밝혀줄 결정적 내용들은 외면한 채 정치적 논란거리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편 4사 중 ‘진상규명’에 관심을 보인 프로그램은 전체 57분의 5‧18 관련 대담 중 19분을 할애한 JTBC <세대공감>뿐이었습니다.
지만원의 ‘북한군 개입설’이 다시 등장한 MBN <뉴스와이드>
그나마 조금 있었던 ‘진상규명’ 관련 대담에서는 심각한 문제발언이 등장했습니다. MBN <뉴스와이드>(5/20)에 출연한 박종희 자유한국당 전 의원은 지만원 씨를 5‧18 진상규명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해야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동시에 민주화운동 자체를 부정하는 질문도 던졌습니다. 박종희 씨는 김형주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이 ‘지만원 자유한국당 진상규명위원 후보 추천’을 두고 벌어진 논란을 언급하자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박종희 자유한국당 전 의원 : 제가 딱 한 말씀만 드리면 5.18 진상규명위원회에 왜 민주당 입맛에 맞는 사람을 추천해야 합니까? 지금 예를 들어서 지만원 같은 사람이 진상조사위에 가서 본인이 주장하고 있는 북괴군 침투설이다 이런 것들을 거기서 증명해 보이란 말이죠. 훨씬 그게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이 되는 거 아닙니까? 왜 꼭 5.18은 민주화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진상조사위원회에 들어와야 합니까?
북한군 개입설을 진상규명 대상으로 치부한 MBN ‘뉴스와이드’(5월20일).
진행자 백운기 앵커는 박 씨의 발언을 끊으며 “지금 진상조사위원회가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이 민주화운동인가 아닌가를 진상규명하기 위한 것입니까? 발포책임자라든지 헬기사격이라든지 이런 거 찾고자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물었지만 박종희 씨의 주장이 틀렸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이어 발언권을 얻은 노영희 변호사는 “낫토 먹고 합시다”라며 최근 공개된 박근혜-최순실-정호성 녹취록의 일부를 농담으로 던졌고 MBN은 까마귀 소리를 효과음으로 사용하며 상황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박 씨가 민주화운동 자체를 부정하고 북한군 개입설이 실체가 있는 듯 주장했음에도 사실관계를 바로잡지는 못한 것입니다.
이어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장은 다시 비슷한 발언을 내놨습니다.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장 : (지만원 씨가 북한군 개입설을) 본인이 입증을 못하면 그때는 이렇게 아닌 걸로 정리가 될 거 아닙니까? 그래서 그런 부분은 탄압이나 징계를 통해서 정리하는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입증을 하라 해서 입증을 못했을 때 정리를 해야 그때부터는 이제 이 논란이 사라지는 겁니다.
황 씨를 통해서 북한군 개입설이 실체가 있는 듯한 발언이 한 차례 더 나왔음에도 백 앵커는 “이 정도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요”라며 사실관계를 바로잡지 않았습니다. 즉, MBN <뉴스와이드>에서는 북한군 개입설이 허위조작정보이기 때문에 진상규명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언급되지 않은 것입니다.
북한군 개입설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거짓말이다
지만원 씨가 주장한 북한군 개입설은 이미 수차례 거짓임이 밝혀진 내용입니다. 대표적으로 뉴스톱 <팩트체크/북한군과 '5.18 광수'는 다른 사람이다>(2월18일, 최민규 팩트체커)는 지 씨의 주장을 마이크로소프트의 빅데이터 안면 인식 프로그램으로 검증했습니다. 그 결과 “지만원씨가 ‘완전하고도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주장한 ‘제62 광수’와 리을설의 사진”은 신뢰도 0.2221이라는 낮은 수치를 보이며 다른 인물이라는 분석결과가 나왔고, 지 씨가 주장한 다른 인물들도 결과는 대체적으로 같았습니다.
지 씨의 주장은 사진 속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허위라는 점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미디어오늘 <‘74광수’ 지목 5·18시민군 “북한군 특수부대라니…”>(2월14일, 김도연 기자), 뉴시스 <③5·18 역사왜곡 북한군 '광수'…"가짜뉴스와 싸운다">(5월18일, 심동준 기자)를 통해 사진 속 인물들은 “내가 왜 북한군으로 지목됐는지 억울하고 화도 난다. 그때 ‘왜 우린 그렇게 당해야 하는가’란 생각으로 시민군에 참여했는데 내가 북한군 특수부대라니…”라며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애초에 ‘눈코입이 유사하다’, ‘두 사진의 색을 반전시키면 유사한 모습이 보인다’와 같이 지 씨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근거에서 시작했습니다. 이 내용은 법원이 지만원 씨의 판결에서 “건전한 상식을 갖춘 일반인이 보기에 신빙성이 상당히 부족해, 의도가 악의적으로 보인다”고 지적한 사항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박종희, 황장수 씨는 북한군 개입설을 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서 증명해야할 과제인 듯 주장했고, MBN은 해당 발언이 부당하다는 점을 전혀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MBN <뉴스와이드>가 문제발언을 일삼던 차명진 씨의 퇴출 이후 또 다른 막말 출연자를 섭외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5‧18 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하지 못한건 다 청와대 탓?
MBN <뉴스&이슈>(5/14)에서는 5.18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되지 못한 원인을 청와대로 돌리는 발언도 나왔습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5.18 기념식 참여 관련 대담 중 신정현 경기도 의회 의원이 “(자유한국당에서) 추천하는 (5.18 진상규명위원회) 인사가 현재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 않습니까? 국회로 돌아와서 5.18 위원회 위원을 제대로 추천하고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돌려주는 거, 이게 바로 광주 시민들을 위해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역할입니다”라고 말하자 장예찬 시사평론가는 격양된 어조로 자유한국당이 아닌 청와대가 문제의 원인이라며 반박에 나섰습니다.
장예찬 시사평론가 : 그 진상규명위원회가 왜 출발하지 못하고 있느냐, 한국당에서는 추천위원들을 추천했습니다. 그런데 다름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 거부했습니다. 결격사유가 있다고, 그에 대해서 한국당은 다시 한 번 이분들에 대한 결격사유가 없기 때문에 재추천을 한 상황이에요. 사실은 야당이 추천한 인물이 3명인데요. 그 사람들이 5.18 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머릿수의 비율로만 놓고 봐도 굉장히 소수입니다. 그런데 굳이 그 사람들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거부하고 진상규명의 출범이 늦어지는 탓을 야당에게 전가하는 것, 저는 여기서부터 문제가 있고요, 지금이라도 진상규명위원회를 가동시키고 싶으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철회하고 이 사람들 추천하는 거 받아들이면 됩니다. 매우 쉬운 문제인데 왜 거부한 사람이 본인이 이걸 거부해놓고 한국당에게 이 진상규명위원회가 안 돌아가고 있는 탓을 돌리는지 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장 씨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한국당은 후보를 추천했지만 대통령이 거부했고, 야당 추천 위원이 소수임에도 이를 거부하고 있는 청와대가 잘못한 것’이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후보들을 살펴보면 장 씨의 주장은 부당했습니다.
자유한국당 추천 후보는 ‘5‧18 망언’을 일삼고 ‘일간베스트 글’을 공유했다
자유한국당은 지만원 씨를 진상규명위원 후보로 검토했을 만큼 처음부터 협조적이지 않았습니다. 자유한국당은 법적 근거가 마련된 후 4개월 만인 지난 1월에서야 권태오 전 육군 중장,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 차기환 변호사를 추천했습니다.
하지만 세 인물 모두 부적격 인사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이동욱 전 기자의 경우 과거 “다수 선량한 시민들이 소수 선동가에 의해 선동당한 것으로 이것이 광주사태의 실제 본질”이라는 발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며 왜곡된 역사관이 지적됐습니다. 차기환 변호사는 과거 SNS를 이용해 극우언론 뉴스타운의 북한군 개입설 기사를 공유하고, 5‧18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를 왜곡한 극우사이트 일간베스트의 게시물을 공유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권태오 전 중장의 경우 군 복무 당시 주특기가 ‘작전’으로 진상규명과 관련된 전문성이 없는 인물이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5‧18 단체들은 자유한국당이 진상조사를 할 위원들이 아니라 진상규명을 훼방할 위원들을 추천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청와대에서는 지난 2월 자유한국당 추천 후보 중 차기환 전 변호사 한 명만 임명하면서 “왜곡되고 편향된 시각이라고 우려할 만한 언행이 확인 되었으나 법률적 자격요건을 충족하고 있어 재추천을 요청하지는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어 권태오, 이동욱 후보에 대해서는 5‧18 진상규명법에 명시된 “법조인, 대학 교수, 역사 연구 활동 등의 분야에서 5년 이상 경력”이 없기 때문에 재추천을 요청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장예찬 씨는 마치 청와대가 합당한 인사를 거부하는 듯 묘사했으나 실제로는 자유한국당이 역사관에 문제가 있는 인물과 법으로 명시된 자격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후보를 추천해 위원회 구성이 늦어진 것입니다. 장 씨가 이런 과정을 몰랐다면 평론가로서 방송에 출연할 자격이 없는 것이고, 만약 알았다면 진상규명위원회가 멈춰 서 있는 탓을 청와대로 돌리는 시청자에 대한 기만이었습니다.
유시민 이사장 발언에 집착한 TV조선‧채널A
주제별 통계에서 대부분을 차지한 ‘5‧18 기념식’ 관련 대담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기념식 참석위주로 진행됐습니다. 특히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12일 광주 토크콘서트에서 “(황 대표가) 39주기 기념식에 참석하려는 것은 지역감정을 조장하려는 의도”라는 비판과 함께 징계를 유야무야하고 있는 황 대표가 광주에 방문할 때 “첫째, 절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둘째, 절대 말을 붙이지 않는다. 셋째, 절대 악수를 하지 않는다”는 대응책을 언급한 점이 주요 비판 소재로 다뤄졌습니다.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은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지속적으로 유 이사장의 발언을 비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5/14)에 출연한 이도운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자유한국당의 시각으로 모든 문제가 유 이사장의 발언인 듯한 해석을 내놨습니다. 심지어 이 씨는 ‘황 대표를 용서하는 것만이 광주정신’이라는 자의적 해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도운 문화일보 논설위원 : 유시민의 발언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최근 얼마간 정치권에서 많은 막말이 오고 갔는데 제가 들은 말 중에서 최악입니다, 이 얘기가. 황교안이라는 사람의 인격을 말살하고 광주 시민을 이렇게 폄하할 수가 없어요. 광주분들은 유시민 이사장의 그런 편협한 생각보다는 훨씬 마음이 넓은 분들입니다. 광주 시민들이 피 흘려가면서 남 배척하고 등 돌리려고 싸웠겠습니까? 좀 더 큰 자유, 좀 더 큰 민주주의 좀 더 큰 사랑, 이런거를 위해 싸워서 우리가 지금 기리는 것 아닙니까?
제가 보니까 광주 시민은 황교안 대표 오면 물론 얼마나 불만이 많겠습니까? 폄훼 발언하고 조치도 안 하고, 그렇지만 눈 마주치고 악수하고 한 번 크게 안아주고 이래서 황교안 대표가 설사 5‧18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그 마음을 다시 바꾸고 광주를 위해서 진정으로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이렇게 만드는 게 진정한 광주 정신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황교안 감싸며 ‘광주정신’ 훼손한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5월14일).
같은 방식의 해석은 채널A <정치데스크>(5/13)에서도 등장했습니다. 출연자 김근식 경남대 교수와 조수진 동아일보 뉴스연구팀 부장은 유 이사장의 발언이 ‘정치혐오를 부추긴다’, ‘신종지역주의’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 : 거기에서 저렇게 등 돌리고 악수하지 말고 눈 마주치지 말고 이렇게 하라고 주문하면 말이 됩니까? 저는 저렇게 해서 정말 자기들 고정 지지층을 결속해서 속 시원한 말을 하는 것은 좋겠습니다마는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거고 정치적 극혐을 계속 확대하는 것 밖에는 안된다, 저는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김 씨와 함께 출연한 조수진 동아일보 뉴스연구팀 부장은 유 이사장의 발언이 “신종지역주의”라는 주장을 펼치며 “저거야말로 지역주의를 일깨우는 아주 잘못된 망령”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일방적으로 자유한국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출연자 두 명의 대담의 끝에는 진행자 이용환 씨의 논평이 추가됐습니다. 이 씨는 “‘황교안 대표 우리가 볼 때는 아쉬움이 있더라도 방문을 하게 되면 따뜻하게 맞아주면 어떨까요’라고 얘기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좀 남습니다”라며 대담을 마무리했습니다.
광주 시민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봤다면 같이 분노해야 정상이다
유 이사장의 발언이 나온 배경에는 광주 시민들의 분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노의 배경에는 지난 2월 “폭동이 10년, 20년 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에 의해 민주화 운동이 됐다”,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을 만들어내 우리의 세금을 축내고 있다”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망언이 있었습니다. 당의 책임자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망언을 한 의원들의 징계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결국 이종명 의원만 출당조치를 당한채 김순례, 김진태 의원은 각각 ‘당원권 정지 3개월’, ‘경고’라는 가벼운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광주 시민들이 황 대표의 39주기 기념식 참석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앞선 상황들이 있었기 때문에 유 이사장은 근본적 원인이었던 망언과 이를 소극적으로 대처한 황교안 대표를 비판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광주 시민들이 물병을 던지는 것처럼 과격한 행동 대신 침묵과 무시의 방법으로 분노를 표출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런 발언을 ‘최악의 막말’,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발언’, ‘지역주의를 일깨우는 망령’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세 명의 출연자들이 진정 지적했어야 하는 것은 정치혐오를 부추기고 지역주의를 일깨우는 최악의 막말을 내뱉은 자유한국당 의원들 아니었을까요?
세 출연자의 발언은 광주시민의 입장이 아닌 자유한국당의 시각이었습니다. 이도운 씨가 내놓은 ‘광주정신’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입니다. ‘광주정신’은 불의에 항거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것이지 역사를 왜곡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이들을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도운 씨가 정말 광주정신을 물어봐야 할 곳은 광주시민이 아닌 자유한국당과 황교안 대표입니다.
‘39주기 기념식’에서 ‘독재자의 후예’만 꺼낸 종편
5‧18 39주기 기념식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이념으로 나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5‧18의 진실을 왜곡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다룬 채널A <정치데스크>(5/20)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비교를 통해 문 대통령이 마치 야당을 지칭해 공격한 듯 설명했습니다.
조수진 동아일보 뉴스연구팀 부장 : 저는 문재인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 다르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2006년 5월 18일 다음 날 기사를 찾아봤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대통령이었는데 5‧18 기념식에 참석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반독재 투쟁 시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여야 모두가 지역주의 타파에 이거는 굉장히 노력해야 됩니다. 여야 모두에게 당부를 했어요. 여야 모두에게 대통령이라는 얘기죠.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어제 발언 독재자의 후예로 제1야당을 규정하는 것 이것은 지금 금방 말씀하신대로 협치에도 맞지 않지만 어떻게 보면 아직까지도 민주화항쟁 시대에 마음은 살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 다르다 이 생각을 했습니다.
조수진 씨의 발언은 ‘노무현 대통령은 5‧18 기념사를 통해 여야 협치를 강조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을 지칭해 비판하면서 협치를 방해하고 민주화항쟁 시대에 사고가 멈춰있다’는 취지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유한국당을 언급하지 않았다
조 씨의 발언이 황당한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일 기념사에서 단 한 번도 자유한국당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조씨는 “독재자의 후예로 제1야당을 규정하는 것”이라는 발언과 함께 문 대통령이 여야간의 협치를 방해하는 발언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넘어 왜곡한 것입니다.
여기에 조 씨는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까지 이용하며 문 대통령이 마치 대통령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말을 한 듯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두 대통령의 발언은 큰 틀에서 취지를 같이하는 부분이 다수였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지역주의의 타파를 이야기했듯이 문 대통령을 광주와 대구의 ‘달빛동맹’을 언급하며 5‧18은 지역과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문 대통령은 “우리의 오월은 희망의 시작, 통합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발언으로 노 전 대통령의 발언과 뜻을 같이했습니다. 이 정도면 조 씨가 찾아봤어야 할 기사는 2006년이 아니라 2019년이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이뿐만 아니라 조 씨가 “아직까지도 민주화항쟁 시대에 마음은 살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라는 발언은 5‧18 기념식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발언이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은 1980년 5월 광주가 남긴 정신을 기억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영령들을 기리기 위한 행사입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이 민주화항쟁 시대에 마음을 두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민주화항쟁 시대에 마음을 두고 사는 것은 지금 자유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황교안 수난사’ 강조 뒤 “저 정도로 저렇게 할만한 사정인가”라며 광주시민 비난한 TV조선
5‧18 39주기 기념식 이후에도 황교안 대표 관련 대담은 이어졌습니다. 주된 내용은 황 대표가 광주 방문을 통해 당한 수난사였는데요. 문제는 황 대표가 수난을 겪게 된 이유는 설명하지 않은채 어떻게 수난을 겪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방송은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5/20)입니다. <보도본부 핫라인>은 대담 시작 전 별도의 영상으로 황 대표가 광주에서 당한 수난사를 강조했습니다. 이어진 대담에서는 출연자들이 광주에서 있었던 일들을 경쟁하듯 설명했습니다.
최지원 기자는 “통합진보당 후신인 민중당 당원들과 진보 성향 대학생 단체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 등 수백 명의 격렬한 항의를 받았”다는 점과 “현장에서 촬영된 영상과 사진에는 황교안 대표가 당황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는 내용으로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이어 문승진 기자는 “행사 후에 황 대표는 정문인 민주의 문이 아닌 옆길로 빠져나가야 했”다면서 그 원인을 “정문 밖에서 시민단체들이 ‘황교안은 물러나라’ 이렇게 항의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날 방송에서 가장 심각한 발언을 한 출연자는 이동훈 조선일보 논설위원이었습니다. 이 씨는 “예전에 이회창 총재라든가 박근혜 대표, 찾았을 때는 저렇지 않았거든요”라며 황교안 대표의 방문에 대한 저항이 예전보다도 컸다는 것을 강조한 뒤 “5.18에 대한 발언 때문에 그게 징계 문제가 됐는데. 그게 깔끔하게 처리되지 못했다”며 광주 시민들이 분노하는 원인을 짚었습니다. 하지만 “그런데 과연 저 정도로 저렇게 할 만한 사정인가라는 생각이 들고요”라며 비난의 화살을 대뜸 광주시민들에게 돌렸습니다. 이어 이 씨는 계속해서 이번 상황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며 여권을 공격했습니다.
이동훈 조선일보 논설위원 : 사실 5.18이란 게 어떻게 보면 386 운동권들의, 어떻게 보면 자양분 노릇을 한 건 사실이에요. 그러니까 그 운동권들이 대학, 80년대 대학 운동을 하면서 명분으로 삼았던 것이 사실은 5.18이고 반미의 어떤 근거가 됐었고, 5.18을 가지고. 그래서 이제 그런 기반 위에서 운동권들이 성장을 했고 지금 어떻게 보면 정권의 주도 세력이 됐단 말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지금 39년 전 일인데. 지금쯤이면 그게 국가적인 조사도 다섯 차례나 이루어졌고. 이제는 뭔가 화합하는 분위기, 뭔가 실제로 이게 좀 되어야 하는데, 그래서 국가적인 추념식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어떻게 보면 다시금 이 5.18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좀 뭔가 활용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통령께서 무슨 그 이야기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겠지만.
엄성섭 앵커 : 독재자의 후예다.
이동훈 조선일보 논설위원 : 독재자의 후예라고 했는데, 야당 대표를 앞에 두고 그런 국가적인 추모 기념식 현장에서 그런 표현을 썼어야 했는가. 그런 생각이 들고. 그리고 뭐 지금 그 어떻게 보면 진상규명, 말씀 하셨는데. 아주 그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10년을 거쳐서 진상규명이 이루어졌는데 또다시 어떤 진상규명을 또 이야기한다는 것도 저는 사실은 좀 그렇습니다. 그리고 망언이라는 부분도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것이 이제 어느 일부 보수 진영에서 일부 극소수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인데, 그걸 가지고 모든 보수진영에 대해서 그런 규정을 하고서 이야기를 했다는 게 우리가 화합과 통합을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좀 부적절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씨의 발언은 결국 ‘광주시민들의 분노가 과하고, 이미 진상조사를 수차례 했기 때문에 더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씨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39년만에 당시 정보요원들을 통해서 새로운 주장이 나왔고, 헬기사격에 대한 결정적 증인의 인터뷰도 등장했습니다. 또한 여전히 자식과 가족의 죽음의 이유를 알려달라는 유가족이 남아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씨와 같은 사람이 ‘지난 정권을 통해 모든 것을 밝혔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황교안 대표 수난사’ 강조하더니 “강력한 대권주자라서 당했다”는 TV조선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뿐만 아니라 <이것이 정치다>(5/20)에서도 황 대표의 수난사에 대한 대담은 이어졌습니다. <이것이 정치다>(5/20)에 출연한 고성국 정치학 박사는 황 대표에게 쏟아진 비판이 ‘대권주자로 유력한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놨습니다.
고성국 정치학 박사 : 황교안 대표를 공격하는 것은 저는 황교안 대표에 대한 공포심의 다른 표현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여론 조사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있습니다. 그 황교안 대표가 굉장히 세 보이는 것 같아요. 그리고 당장 내년 총선에 한국당은 황교안 대표가 진두지휘를 할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잖아요. 당 대표이기도 하고. 또 차기 유력한 대권주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리고 이 3년 후 대선에도 황교안 대표가 유력한 대권 주자로 경쟁자로 나설 가능성이 높아 보이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이 집권당, 집권 세력. 범여권에서는 이러다가 정말 황교안 대표가 이끄는 이 한국당한테 총선 질지도 몰라. 그리고 3년 후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대선 패배를 당할지도 몰라. (중략)
지금 이제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이 범여권 인사들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몇 달 전에 나타난 황교안이라는 정치인 때문에 불과 석 달 전에 정치권에 들어온 거예요. 때문에 총선 승리도 쉽지 않아 보이고 대선 승리도 쉽지 않아 보이잖아요. 그런데 이 야권 입장, 그 이 보수 진영을 보면 황교안 대표 말고는 또 그 뒤를 잇는 뭐 이 그런 유력한 주자는 또 별로 눈에 안 보이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이 기득권 그 범여권 세력이 그 황교안만, 그 황교안 대표만 좀 하면 자기들이 총선 승리, 대선 승리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무슨 문제가 됐건간에 다 황교안 대표와 결부시켜서 이렇게 저렇게 공격하는 것이고 모욕주는 것이고. 그리고 아주 궁색한 모습을 자꾸 만들려고 그러는 것 같거든요.
고 씨는 이어 “이럴수록 황교안 대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높아”진다며 “이런 식으로 황교안 띄워주기를 범여권에서 열심히 한다는 것이 제가 참 이해가 안 될 정도”라는 지적을 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고성국 씨는 이 모든 상황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이 아닌 정치권 공방 정도로 해석한 것입니다. 이는 앞선 <보도본부 핫라인>의 사례와 함께 TV조선이 어떤 시각으로 5‧18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대목이었습니다
[민언련 종편 모니터 보고서] 미디어오늘
“내 집 꼭 필요하지만…” 작년 주거실태조사 결과 보니
우리나라 국민 82.5%는 ‘내 집 마련 필수’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 집 장만은 녹록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가구주 연령이 많을수록, 소득이 높을수록 내 집 마련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국토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2018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생애 첫 집을 마련하기까지는 7.1년이 걸려 전년(6.8년)에 비해 0.3년 늘었다. 지역별로는 도지역이 6.3년으로 가장 짧았고, 세종시를 포함한 지방광역시 등지는 7.3년, 수도권은 7.6년이나 소요됐다.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율(PIR) [자료 = 국토부]
또 수도권의 경우 연소득 대비 주택구입가격 배율인 PIR(중위수 기준)도 2017년 6.7배에서 작년 6.9배로 소폭 상승했다. 광역시 역시 2014년 이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주택가격이 연소득에 비해 크게 올라 내 집 마련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임차가구의 월소득 대비 월임대료 비율(RIR)은 수도권과 광역시 위주로 올랐다. 수도권 RIR은 1년 동안 18.4%에서 18.6%로, 광역시 등 RIR은 15.3%에서 16.3%로 각각 상승했다. 도 지역은 15.0%로 전년과 같은 수준을 보였다.
◆ 자가비율 수도권 낮고, 광역시·도지역 높고
지역별 주택 점유형태를 보면 수도권은 자가비율이 타지역에 비해 낮고 광역시 등 도지역은 자가비율이 높았다.
내 집에 거주하는 자가점유율을 살펴보면 수도권은 전체 절반 수준인 49.9%, 광역시와 도지역에서는 각각 60.2%, 68.3%로 집계됐다. 집을 보유한 가구도 61.1%로 전년과 동일한 수준이며, 수도권(54.2→54.2%), 광역시 63.1→63.0%, 도지역 70.3→70.3% 등 모든 지역에서 전년과 같은 수준을 보였다.
임차가구 중 전세 및 월세 비율(%) [자료 = 국토부]
전월세 임차가구 중 월세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6년까지 급증하다가 이후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월세가구는 금리가 낮아지고 부동산 시장이 위축된 2010년 이후 급증했지만, 최근 들어 치솟은 집값상승과 갭 투자자 증가 영향으로 증가세가 주춤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체가구의 평균 거주기간은 7.7년으로 조사됐다. 자가가구와 임차가구(무상제외) 거주기간은 각각 10.7년, 3.4년으로 2배 이상 차이를 보였다. 지역별 평균 거주기간은 도지역(10.2년), 광역시 등(7.4년), 수도권(6.3년) 순으로 지방보다는 수도권에서 이삿짐을 싸는 횟수가 많았다.
지역별 1인당 평균 주거면적(단위: ㎡) [자료 = 국토부]
주거이동률을 보면 현재주택 거주기간이 2년 이내인 가구는 전체가구 중 36.4%이며, 자가가구는 21.7%, 임차가구는 58.5%로 나타났다. 또 지역별로 수도권(40.6%)에서 광역시 등(35.5%), 도 지역(30.6%)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거 이동이 잦았다.
전체가구의 주택유형은 아파트 49.2%, 단독주택 33.3%, 다세대주택 9.3% 순으로 집계됐지만, 2006년 이후 아파트 거주는 증가하는 반면, 단독주택 거주 가구는 꾸준히 감소했다. 1인당 평균 주거면적은 수도권 28.5㎡, 광역시 32.5㎡, 도 지역 36.1㎡로 수도권 거주자들이 더 좁은 주택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매일경제
굶주리는 아이들, 정치하는 어른들
유엔 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계획 현장조사팀이 지난 4월 북한 황해남도 신천군의 식량배급소를 둘러보고 있다. FAO·WFP 2019년 북한 식량안보 평가 보고서에 실린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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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농업기구·세계식량계획은
올 북한 식량 159만톤 부족 진단
부풀려진 통계와 오류 감안하면
실제 부족량은 20만~30만톤일 듯
지난 2월 북한 식량부족분 공개에
정작 한국 정부는 별 관심 없다가
북·미 회담 결렬 뒤에야 지원 밝혀
‘상황돌파용’ 카드로 활용 의심돼
인도적 지원,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남과 북의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져
제재와 지원의 모순도 문제지만
북한은 취약계층을 최우선시해야
‘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A hungry child knows no politics).’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남긴 이 한마디는 인도적 지원, 특히 식량위기에 처한 나라에 지원을 해야 한다는 명제가 됐다. 또 하나의 황금률은 정치적 사안과 인도적 사안의 분리다. 레이건이 누구인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냉전의 정점에서 ‘악의 제국’이 후원하는 공산주의 독재자 멩기스투가 통치하던 에티오피아에 식량지원을 결정하면서 위와 같은 명언을 남겼다. 하지만 레이건의 한마디에는 생략된 뒷문장이 있을 법하다. ‘배부른 어른은 정치를 너무 잘 안다’가 아닐까 싶다. 지난 5월3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이 ‘북한의 식량안보 평가’ 보고서를 발표한 뒤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당위와 담론을 지켜보면서 뇌리를 떠나지 않는 단어가 ‘정치’다.
■ 어른들의 담론- ① 통계의 문제
그동안 한반도 남쪽에서 ‘배고프지 않은 어른들’이 나눈 논의 결과를 요약하면 이렇다. 우선 북한이 과연 식량이 부족하냐는 점이 가장 큰 관심이었다. 하지만 FAO·WFP 보고서의 정확성이 도마에 올랐다. 보고서는 북한의 지난해 곡물 생산량을 껍질 포함한 조곡 기준으로 490만t, 알곡 기준으로는 417만t으로 추정했다. 북한의 올해(2018년 11월~2019년 10월) 식량 수요량을 576만t으로 설정하고, 159만t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북한 당국의 수입량 20만t과 국제기구 지원 2만1200t을 포함해도 136만t이 부족하다. FAO·WFP는 북한 인구의 40%인 1010만명이 식량부족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국제기구 통계는 우선 15도 이상 경사지의 수확량(최소 20만t)과 개인 소토지(텃밭·7만t) 및 밀수 물량이 통계에서 빠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식량 수요 추정의 기준인 인구수가 실제보다 최소 70만명 정도 부풀려졌다고 본다(김병연 서울대 교수). 북한 중앙통계국의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한 국제기구 보고서가 왜곡됐을 가능성을 지적한 것이다. 북한의 중앙 및 지방당국은 물론 국제기구들도 식량 생산량을 가급적 낮게 보고해온 게 사실이다. 기구 존립의 목적을 강화하기 위한 국제기구의 정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지난 2월 유엔에서 국제사회의 긴급한 지원을 요구하며 밝힌 올해 식량부족분 50만3000t과도 편차가 크다. 통계는 들쭉날쭉일지언정 가뭄과 이상고온, 홍수 등의 영향으로 2년째 북한의 작황이 좋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적었다. 북측이 예년 수준(20만~30만t)으로 식량을 수입한다면 식량부족량은 20만~30만t으로 좁혀진다.
북한 장마당 쌀값을 보름 단위로 공개하는 데일리NK에 따르면 5월28일 현재 평양의 쌀값은 1㎏당 4300원(시장 환율 1달러당 8025원 기준)이다. 이는 지난해 12월의 5000원에 비해 외려 700원 내려갔다. 전문가들은 쌀값 내림세는 공급량이 늘었다기보다 구매력 저하로 수요가 줄은 탓이라고 해석한다. 북한 주민들은 가장 비싼 북한산 쌀 대신 중국산 쌀을 사거나, 쌀이 아닌 옥수수나 감자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식량을 해결하기 때문이다. 인도주의적 우려는 옥수수나 감자마저 넉넉히 장만할 수 없는 취약계층에 집중된다.
취약계층의 식량난은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평년 수준이었던 2016년 이후 작황이 나빠지고 있다. 식량이 부족하면 노동력이 떨어지고, 떨어진 노동력은 더욱 식량부족을 심화시켜 만성적인 영양결핍으로 귀결된다. 빈곤지수와 불평등지수가 합해지면 치명적인 칵테일이 된다. 특히 취약계층 아이와 산모에게 주는 타격은 심각하다. WFP가 139만t의 식량 긴급지원을 호소하면서도 곡물을 지원하지 않고 5세 미만 영유아와 산모들에게 영양강화 비스킷과 슈퍼 시리얼만 제공하는 까닭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지원 활동을 해온 국제 구호단체들은 일반적인 식량지원 대신 취약계층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컨선월드와이드는 취약계층 텃밭농사(house farming)에 종자·비료·물을 공급하는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강원도와 양강도, 황해북도는 구릉지에 밭이 많아 가뭄 피해가 큰 취약지역이다.
■ 어른들의 담론- ② 남과 북의 정치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지난 2월20일(현지시간) 유엔에 전달한 메모에서 “지난해 식량 생산이 2017년에 비해 50만3000t이 줄었다”면서 “노동자 가족 1인당 배급량을 550g에서 300g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보고했다. 300g이면 햇반 1개 분량이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다음날 공식 브리핑에서 이를 확인하면서 “지난해 작황에 따른 북한의 식량부족분이 140만t에 달한다”면서 시급하게 협의를 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과 북의 정치가 시작된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김 대사는 “유엔 제재 탓에 필요한 농자재 공급이 안된 것이 (생산량 감소의) 또 다른 주요 원인”이라면서 제재의 악영향을 강조했다. 일주일 뒤인 2월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민생에 관련된 제재’의 해제를 요구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민생 관련 제재 완화 요구의 명분 쌓기용이었다고 해석할 여지를 준다.
북한이 유엔에서 식량부족분을 공개한 뒤 정작 한국 정부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농촌진흥청이 북한의 곡물 생산 예상량을 공식 발표했을 때도 반응이 없었다. 농진청이 북한의 식량 생산량을 455만t으로 예상하면서 전년 대비 3.4%만 줄었다고 발표해서였을까. 그러던 정부가 석 달 뒤 갑자기 대북 식량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WFP와 유니세프에 800만달러를 지원할 방침을 밝혔다. 그나마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가 이어지던 2017년 9월21일에 발표했던 공여 규모였다. 정부는 “정치적 사안은 인도적 지원과 무관하다”면서 지원 방침을 밝혔다. 그렇다면 800만달러는 왜 지금까지 국제기구에 전달되지 않고 있다가 다시 거론됐을까. 작년엔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평화 분위기가 한층 고조됐었다. 북이 원하고, 남이 결정하면 지원하기 쉬웠다는 말이다. 북측 취약계층의 인도적 재앙은 그때도 진행되고 있었다.
이해는 한다. 작년엔 남이나 북이나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의 재개 등 민족경제의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큰 꿈을 꾸었다. 인도적 지원은 뒷전이었다. 웅지를 품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인도적 지원은 어떤 경우에도 지속돼야 효과도, 명분도 있다. 정치적 문제는 대북, 대미 담판으로 풀어야 한다. 남북관계가 막힐 때마다 지원 카드를 꺼내는 사고는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명분을 흐릴 빌미를 준다. 혹여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상황 돌파용으로 인도적 지원을 꺼냈다면, 외교적·전략적 상상력의 빈곤을 보여줄 뿐이다.
휴전선 북쪽 동포의 어려움을 도와준다는 정서만으로 접근해서도 곤란하다. 특히 고질적인 문제인 취약계층 지원에는 정치학이 아닌, 과학이 필요하다. 과학적 근거에서 과학적으로 접근해 그 성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남과 북의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북측의 공식 지원 요청-현장 실사-맞춤형 지원-모니터링-정밀한 평가의 과학적 레짐(regime) 구축을 지원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어느 과정 하나 빠지면 곤란하다. 당장 어렵다면 과감하게 국제기구에 위임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 관점에서 800만달러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WFP가 지난 2월 집행이사회에서 2019~2021년 3년간 북한 영유아·산모 영양강화 사업에 필요한 재원으로 설정한 금액은 1억6100만달러이다. 국제기구의 부풀리기 관행을 감안하더라도 그 상당 부분을 제공할 재원이 한국에는 넘쳐난다. 박근혜 정부도 WFP와 세계보건기구(WHO)에 1330만달러 지원책을 발표했었다. 유일하게 필요한 정치적 고려는 남측 정부가 요란하고 떠들썩한 지원 관행을 탈피하는 것일 게다. 그냥 조용히 건네면 될 일이다. 아직도 남측에선 인도적 지원의 ‘정치적 효과’를 입에 올리는 분들이 많다
■ 어른들의 담론- ③ 대북 제재의 정치학
정부가 할 일은 또 있다. 인도적 지원은 안보리 제재와 원칙적으로 무관하다. 미국도 거듭 이 부분을 확인한다. 실상은 다르다. 유엔 제재위는 손톱깎이 한 개라도 금속물질이 넘어가는 데 신경을 곤두세운다. 남측이 북측에 식량을 제공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데 차량(트럭)은 넘어갈 수가 없는, 기막힌 모순은 이래서 발생한다. 중국에선 열차편으로 운송이 가능하지만 여기에도 족쇄가 있다. 중국 측에 전달해야 할 식량 구입 및 운송비용 송금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5만달러 이상 송금액은 내역을 적어야 한다. 북한 관련 자금이라면, 중국 금융기관들이 혹여 미국이 제3국 금융기관에 가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에 저촉될지 모른다는 걱정에서 몸을 사린다. 남측 지원단체들도 께끄름하다.
물론 가장 아쉬운 것은 북한의 정치다. ‘최고 영도’가 최우선 순위를 놓은 분야는 예외없이 발전했다. ‘혁명의 수도’ 평양에는 매년 번화한 거리가 일떠섰고, 헐벗은 산에는 나무가 촘촘히 식수되고 있다. 고아원 환경 개선이 우선순위가 되면서 북한의 고아원도 획기적으로 개선됐다고 한다. 당장 서울 한복판에 옮겨놓아도 될 만한 시설을 갖춰놓고 있다는 전언이다. 오히려 제재 탓에 살림이 어려워진 탄광촌 유치원 아이들이 더 열악한 밥을 먹는다. ‘최우선 순위’가 취약계층 생활 개선에 놓인다면 가장 빨리 해결책을 찾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라도 빈틈을 메워주는 것이 남측이 국제사회와 함께해야 할 일이다.
북한 매체들은 남측이 논의하는 인도적 지원을 두고 “민심을 기만하는 행위”(조선의 오늘), “부차적이고 시시껄렁한 인도적 지원”(통일신보)이라고 헐뜯는다. 북에서 이렇게 주장하는 어른들은 쌀 구매력이 충분한 사람들일 게다. 남에서 대북 식량지원 자체를 비난하는 어른들도 배가 고프지 않은 사람들일 게다. 배고프지 않은 어른들이 정치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굶주린다./ 김진호 경향신문 국제전문기자
‘밥보다 비싼 커피’ 논란에서 ‘스세권’까지…스타벅스 20년
1999년 7월28일 이대 앞 1호점
지난해 매출 1조5천여억원
커피전문점 업계 압도적 1위
다방커피·커피믹스→아메리카노
한국 커피 문화 크게 바꿔놓아
초창기 ‘사치’ 논란은 고급 이미지로
무료 와이파이·콘센트 제공하며
‘카공족’ 적극 수용하는 전략 성공 한국인 입맛 맞춘 현지화도 주효
2016년 말 문을 연 스타벅스 1000번째 매장 청담스타R점. 스타벅스커피 코리아 제공
직장인 ㄱ씨는 출근길에 지하철역에서 내리자마자 스타벅스 앱에 들어가 ‘사이렌 오더’(모바일결제시스템)를 켰다. 매장에 도착하자마자 음료를 받고 싶어서다. 스타벅스에는 없는 메뉴지만 ‘쿠앤크 프라푸치노’를 마셔보고 싶었다. 일단 바닐라크림 프라푸치노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퍼스널 옵션’에 들어가 ’자바칩과 토핑’, ‘초콜릿 드리즐 많이’를 선택했다. 우유는 ‘무지방 우유’를 선택했다. 나만의 ‘쿠앤크 프라푸치노’가 만들어진 것이다. 지하철역에서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에 들어가 음료를 받았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급하게 처리해야할 일이 생겼다. 자리에 앉아 콘센트에 전원을 연결하고 노트북을 켰다. 스타벅스의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해 빨리 일을 처리했다.
고객이 원하는대로 만들어주는 ‘커스텀 서비스’, 매장에 가기 전 앱을 이용해 주문할 수 있는 ‘사이렌 오더’, 콘센트와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어 매장 안에서 공부나 일을 하는 ‘카공족’(카페+공부족)들. 다음달로 한국에 진출한 지 20년이 되는 스타벅스가 바꾼 풍경들이다.
한국의 스타벅스는 20년간 꾸준히 성장해 미국, 중국, 캐나다, 일본에 이어 전세계 매출 5위를 기록하고 있다. 스타벅스가 한국에서 성공한 이유로는 ‘고급화 전략’ ‘카공족 수용 전략’ ‘현지화 전략’ 등이 꼽힌다.
1999년 7월, 스타벅스 1호점 이대점 당시 모습. 스타벅스커피 코리아 제공
‘커피 둘, 설탕 둘, 프림 둘’에서 아메리카노로
1971년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한 스타벅스는 현재 78개국에 진출해 있다. 한국에서는 1999년 7월28일 서울 이화여대 근처에 1호점을 열었다. 이후 매장 수는 2010년 327개, 2013년 500개 2016년 1000개를 돌파했다. 지난해 매장 수는 1262개(지난 4월 말1280개)다. 매출액은 2016년 1조28억원으로 국내 커피전문점 가운데 처음으로 연매출 1조원을 돌파한 뒤 지난해 1조5224억원(영업이익 1428억원)을 기록했다. 업계 2위인 투썸플레이스의 지난해 매출이 2743억원, 업계 3위인 이디야가 2004억원인 것과 비교하면 ‘독주’라고 할 만하다. 투썸플레이스의 매장 수는 1067개로 매출 차이보다는 크지 않다. 스타벅스의 한 개 매장 당 매출이 높다는 의미다. 스타벅스는 한국의 전통적인 ‘다방 문화’에 특유의 ‘제3의 공간’이라는 콘셉트를 더해 한국에서 새로운 커피문화를 이끌어온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에서 커피문화는 1960∼70년대 다방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당시에는 문화 공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다방이 대중문화의 중심 역할을 했다. 다방에서 출판기념회, 시낭독회 등도 열렸다. ‘커피 둘, 설탕 둘, 프림 둘’이 다방 커피의 공식이었다. 1980년대부터 커피가 대중적인 기호식품이 됐다. 커피 믹스와 자판기의 등장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언제 어디서나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1990년대에는 ‘헤이즐넛 커피’ 등을 파는 커피숍이 잠깐 유행하기도 했다.
스타벅스의 등장은 한국의 커피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가 다방커피를 대체했고, 일회용 컵에 담아 길에서 들고 다니며 마시는 ‘테이크 아웃’ 문화가 생겼다. 이후 커피빈, 이디야커피, 탐앤탐스, 투썸플레이스 등 커피 전문점들이 줄줄이 생겨났다.
스타벅스가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다방 커피나 자판기 커피, 커피믹스에 길들여진 입맛에 아메리카노는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커피였다. 직원이 음료를 갖다주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 직접 음료를 가져다 마시는 ‘셀프 서비스’ 역시 적응하기 힘들었다. 뜻을 알기도 어려운 ‘카라멜 마끼아또’ 같은 메뉴 이름에 한 잔에 3000원이 넘는 높은 가격도 반감을 갖게 만들었다.
“밥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는 게 말이 되느냐” “주로 된장녀(과시성 소비를 하는 여성들을 비하하는 속어)들이 스타벅스에 간다” 등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점차 스타벅스 매장 고유의 분위기와 친절한 직원 응대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늘기 시작했다. ‘된장녀 논란’은 역으로 스타벅스의 고급 이미지를 공고하게 만들었다. 2016년에는 일반 매장보다 2000~3000원 정도 비싼 리저브 매장을 만들었다. 현재 리저브 매장은 50곳까지 늘어 고급화 전략이 통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빠른 회전율 포기하고 카공족 흡수
스타벅스의 또 하나의 전략은 매장에서 오래 자리를 지키는 손님을 수용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커피 전문점이나 식당은 회전율이 높아야 매출이 증가하기 때문에 몇 시간씩 앉아있는 고객은 기피 대상이다. 하지만 스타벅스는 손님이 오래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국내 커피 전문점 최초로 매장 내 무료 와이파이 서비스를 도입했고, 매장 곳곳에 콘센트를 만들어 누구나 불편 없이 공부하거나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카페에서 공부하는 것을 즐기는 ‘카공족’을 고객으로 흡수하며 커피 전문점 시장을 선점했다. 초기 라이벌이었던 커피빈은 스타벅스와 달리 와이파이도, 콘센트도 없는 전략을 고수하다 뒤쳐졌다. 스타벅스가 공부하거나 일하기 좋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무슨 일을 하든 스타벅스에서 하는 충성 고객들이 늘어났다. 이나현(29·직장인)씨는 “스타벅스는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를 주지 않는 데다 와이파이 속도도 빨라 일하기 좋기 때문이다. 음악 역시 일에 집중하기 좋은 곡들을 선정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콘센트가 없거나 이전보다 그 숫자를 줄인 매장이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이나 인천공항점, 경기도 하남 스타필드점 등에는 콘센트가 없다. 이에 대해 스타벅스 관계자는 “백화점처럼 유동 인구가 많고 쇼핑 후 잠깐 쉬려는 고객이 많은 매장에는 콘센트를 찾는 손님이 많지 않고 소파처럼 편한 좌석을 더 선호해서 바꾼 것 뿐”이라며 “대신 1인석에는 콘센트는 물론 유에스비(USB) 포트까지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의 입맛이나 성향에 맞는 서비스를 재빠르게 도입하는 현지화 전략도 주효했다. 사이렌 오더는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를 겨낭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는 2014년 전 세계 스타벅스 최초로 사이렌 오더를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손님이 몰리는 시간대에 매장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발길을 돌려 다른 커피숍으로 가는 고객을 줄이기 위한 해결책이다. 고객은 앱에서 메뉴와 주문할 매장을 고르고 결제를 한다. 스타벅스는 근거리 위치 기반 고주파장비를 이용해 주문 고객의 접근을 매장에 알려준다. 고객이 매장에 도착하면 바로 주문한 음료를 받아갈 수 있다. 스타벅스 본사는 한국의 사이렌 오더를 벤치마킹해 2015년 여름 미국에서 ‘모바일 오더 앤 페이’를 내놨다.
메뉴도 한국 사람 입맛에 맞게 개발했다. 한국 특산물을 활용해 2007년부터 ‘문경 오미자 피지오’, ‘광양 황매실 피지오’, ‘공주 보늬밤 라떼’ ‘이천 햅살 라떼’ 등 다양한 음료를 출시해왔다. 스타벅스는 한국에서 연 평균 35종의 새 음료를 출시하는데, 이 가운데 90%는 한국에서 자체 개발한 것이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미국 시애틀 본사 역시 음료를 개발해 전 세계로 전달하는데, 한국인의 입맛에는 너무 달아서 일부 메뉴를 수정해서 들여오거나 사내 음료개발팀에서 새로운 메뉴를 만든다”고 말했다.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건물주들의 구애 대상
스타벅스는 매년 100개 이상씩 매장이 늘어났다. 숫자가 늘면 가치가 떨어질 법도 하지만 스타벅스는 반대로 최근 몇년 사이 건물주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 매장으로 자리잡았다. 100% 직영으로 운영되는 스타벅스는 보통 5년 이상 장기계약을 해 공실 우려가 없는데다, 매장을 찾는 고객이 많아 건물에 젊고 활기 찬 이미지를 불어넣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스세권’(스타벅스+역세권)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전철역 주변의 상권이 살아나듯, 스타벅스가 건물에 들어서면 인근 점포 매출이 덩달아 증가하고 건물 시세까지 상승하는 효과를 낸다고 뜻이다.
‘스세권’ 효과를 노려 스타벅스를 건물에 입점시키고 싶다면서 먼저 문의를 하는 건물주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스타벅스의 모든 매장은 직영점이기 때문에 신규 출점을 전담하는 사내 점포개발팀이 마련한 기준에 따라 매장을 낸다. 점포개발팀은 수요가 있는 후보지역을 물색한 뒤 우선순위를 정하고, 선정된 지역의 매물과 신축 건물을 조사해 입점 후보지를 압축한다. 전국에 신규 매장을 들일 수 있는 모든 후보지를 기록한 ‘스타벅스 국토개발계획 지도’도 제작했다. 전국의 지하철역과 신설 예정 지역을 지도에 그려넣고, 역의 규모에 따라 오픈 가능한 매장 수를 계산했다. 서울 지하철역은 역당 4개의 가상 매장을, 부산은 역당 2개 매장을 배정했다. 같은 방법으로 버스 정류장의 수도 조사하고, 정류장별 승하차율도 고려한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중점적으로 공략하는 장소는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과 직장인이 몰려있는 도심 오피스상권이다. 그 다음으로는 다수의 인원이 모일 수 있는 빌딩, 공연장, 영화관, 스포츠 시설, 케이티엑스, 공항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스타벅스가 매장 수를 빠르게 늘릴 수 있었던 배경으로 ‘규제’가 꼽히기도 한다. 스타벅스는 다른 커피전문점 프랜차이즈와 달리 출점 규제를 받지 않는다. 전 지점이 직영체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가맹점이 있는 이디야와 투썸플레이스 등은 가맹사업법에 따라 신규 출점 시 기존 가맹점의 영업권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매장간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이를 두고 소상공인업계에서는 스타벅스가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고 있다는 비난도 나온다.
스타벅스의 한국에서의 성공 현상을 분석한 책인 <스타벅스화>를 쓴 유승호 강원대학교 영상문화학과 교수는 “스타벅스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확산되고 있는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분위기 덕에 잘나가고 있다”며 “나를 철저히 보호하고 존중하면서도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기를 바라는 심리에 잘 맞는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이탈리아처럼 일상의 문화 속에 카페가 생활의 양식으로 스며들어 있거나 바리스타들이 자신의 기술로 커피를 우려내는 ‘작은’ 경쟁력이 없다. 그래서 (맛과 퀄리티가 아주 높지는 않지만) 어느 매장에서나 일정한 수준을 기대할 수 있는 스타벅스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정치인이 한없이 약해지는 그 단어는…공천!
금태섭의 국회의원이 사는 법11. 공천
정치지망생들 “벽보 한번 붙여봤으면”
현역 의원들도 가장 중요한 건 ‘재선’
낙선하면 변명이라도 가능하지만
내부 공천 못 받으면 자존심 큰 상처
당 지도부 후보 결정 권한은 당연
지나친 개입, 선거 패배 이어질 수도
당내 경선 단점 있지만 축소는 안돼
‘스펙’보다 당 위한 노력·성실성 중요
선거에 나가는 것을 정치권에서는 ‘벽보를 붙인다’고 표현한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016년 3월31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4가 인도에서 중구청 직원들이 국회의원과 구의회의원 후보자들의 선거 벽보를 게시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선거에 나가는 것을 정치권에서는 ‘벽보를 붙인다’고 표현한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016년 3월31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4가 인도에서 중구청 직원들이 국회의원과 구의회의원 후보자들의 선거 벽보를 게시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선거에 나가는 것을 업계(?) 용어로는 ‘벽보를 붙인다’라고도 한다. 많은 정치지망생이 공천(정당에서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할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한다. 10년이 넘게 정치권 주변에 있으면서 벽보 한번 못 붙여봤다는 푸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이미 선거에 당선되어 의원이 된 사람들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국회의원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선이 되는 일. 지금처럼 선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시기가 되면 공천의 향방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대대적인 현역 교체’ ‘물갈이’ 같은 말만 들으면 한없이 약해진다.
일단 공천을 받아서 선거에 출마하면 설사 낙선하더라도 주변으로부터 위로는 받을 수 있다. “불리한 지역이었다”거나 “선거 때의 정세가 어려웠다”는 변명도 가능하다. 그러나 본선에 진출하는 데 실패하면 그런 변명도 어렵고 변변히 위로도 받지 못한다. 가족들이나 도와준 사람들에게 고개를 들기도 어렵다. 낙천은 일반 유권자가 아니라 자기가 소속된 정당의 당원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더욱 뼈아프다. 공천에 떨어졌을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막상 선거 때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자칫 불만에 가득 찬 못난 루저로 보일까봐 일부러 관심이 없는 척하게 된다. 자존심에 받는 상처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정치인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공천을 받으려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천이 이뤄지는 과정은
공천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지는가. 정당에 따라 구체적인 모습은 다르지만 대체로 세가지 정도의 요소가 작용한다. ①당 지도부의 방침(여당인 경우에는 청와대의 뜻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②지역 당원들의 의사 ③후보 개인의 능력이 그것이다.
정당의 공천에서는 당 지도부의 방침이 가장 중요한 작용을 한다. 과거 제왕적 총재 시절처럼 일방적으로 후보자를 결정하는 모습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당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공천 기준을 정하고 공천심사위원회의 위원을 임명함으로써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일정한 수의 지역구에 대해서는 출마 의사를 밝힌 사람들을 배제하고 지도부에서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인사를 영입해서 공천하는 이른바 ‘전략공천’도 여전히 존재한다. 정당의 당헌당규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전략공천을 할 수 있는 비율은 20% 정도다.
현역 의원 중에 의정활동 성과가 최하위에 속한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제도도 있다. 예전에는 아예 공천 경쟁에서 제외했는데 이번에는 어디에서 20%를 감점하는 것으로 조금 완화했다. 그래도 치열한 경선에서는 치명적인 타격이 된다. 특히 상대방이 정치신인이나 청년 등인 경우에는 10~25% 가산점을 받기 때문에 여기서 승부가 결정될 수도 있다.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는 당 지도부가 후보를 결정할 권한을 가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선거에서 패배하면 당장 “대표부터 물러나라”는 요구가 하늘을 찌른다. 20대 총선 당시 과반을 훨씬 넘는 의석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새누리당이 과반은커녕 더불어민주당에도 뒤진 2등을 하자 선거 바로 다음날 김무성 대표와 최고위원들은 줄사퇴를 해야 했다. 스스로의 자리를 걸고 선거를 치러야 하는 당대표에게 선거에 출마할 후보자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책임에 따른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참신하고 실력 있는 사람들을 전면에 등장시키는 ‘혁신 공천’이 반드시 필요한데 지도부에게 재량이 없으면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법원도 정당의 공천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자율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억울하게 공천에서 탈락했다고 주장해도 소송을 통해서 구제받기 어렵다. 선거 시기가 되면 국회의사당이나 당사에는 공천 탈락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지지자들을 이끌고 와서 실력행사를 벌이기도 하는데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공천에 관한 당 지도부의 권한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자칫 의원들이 소신을 지키지 못하고 눈치를 보게 되는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 당론으로 정해진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면 동료 의원들로부터 “공천 걱정이 안 되나 보네”라는 농담조의 걱정을 듣는 경우가 있는데, 설마 그런 일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과거에 있었던 소위 ‘공천학살’ 사례들을 생각해보면 전혀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정당의 기반 조직이 튼튼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런 위험성이 더욱 크다. 그러나 능력이나 실적이 아닌 충성심과 계파를 중시한 공천을 하다 보면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영입하지 못하고 순응형 정치인으로만 후보군을 채우게 된다. 결국 선거도 패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정당의 공천을 받는 것은 현실 정치에 진입하기 위한 첫 단계다. 2016년 3월6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표창원 당시 예비후보가 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의 면접을 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여기서 한가지 덧붙일 얘기는 청와대의 영향력 행사다. 과거 집권여당의 공천에는 대통령의 뜻이 크게 작용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무수석비서관 등을 동원해서 공천에 직접 관여한 것을 불법으로 선언하고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함으로써 이런 관행이 근절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현재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감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당원인 이상 후보자의 결정에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공천은 어디까지나 정당 내부의 절차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 총선의 공천과 관련해서 지금도 언론에서 ‘청와대의 뜻’을 언급하는 것은 이러한 점을 간과한 것이다.
공천에 있어서 당 지도부의 일방적인 결정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여겨지는 것이 지역구별로 치러지는 경선이다. 여기에서는 지역 당원들의 의사가 승패의 결정적 변수다. 공천을 신청하는 사람이 여럿이면 원칙적으로 경선을 치른다. 당비를 꾸준히 납부해온 권리당원(매달 1천~2천원의 당비를 6개월 이상 납부하면 권리당원이 된다)들의 투표와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서 가장 경쟁력 있고 적합한 인사를 후보로 뽑는다. 현역 의원이든 정치신인이든 당원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하는 시기가 경선 때다. 지지자들에게 권리당원이 되어달라고 부탁을 하고 기존 당원들에게도 어필하려고 노력한다. 예전에는 경선에 불복하고 무소속 출마를 감행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지만 거의 모든 경우에 유권자들은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정치인에게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지금은 제도적으로 경선 불복이 불가능하다. 선거법 개정으로 경선을 일단 치르고 나면 무소속 출마를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당원들이 직접 후보를 뽑는 경선은 가장 바람직하고 민주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여기에도 결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직이 허약하고 평소에 활발한 움직임이 없는 지역위원회가 상당수 있는데 이런 곳에서는 경선에서 다수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현역 의원이 차지하게 되는 지역위원장의 권한이 너무 커서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치신인이 공정한 기회를 갖기 어려운 것도 자주 지적되는 문제점이다.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인물에 비해 지역 연고가 강한 인사가 유리한 것도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 때문에 경선을 축소할 수는 없다. 당내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시스템을 개선해서 당원과 유권자가 후보 선정에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야 한다.
달라지는 비례대표 공천
최근 들어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은 비례대표의 공천이다. 버젓이 공천헌금이 오고 가던 시대에는 그야말로 당 지도부의 자의적인 결정에 따라서 명단이 정해졌다. 유권자들이 듣도 보도 못한 사람들이 비례대표 앞 번호를 차지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정치학자들을 비롯해서 전문가 다수가 비례대표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도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최근에는 비례대표 후보를 선정하는 모습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20대 총선 당시 비례대표 후보 선출 권한이 있는 민주당 중앙위원회는 대략 비례대표 후보 순서를 정해서 내려보낸 당 지도부의 지침을 거부하고 직접 순위를 결정하겠다고 나섰다. 비례대표 의원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정견을 발표했고 즉석 투표를 통해서 순위가 결정되었다. 지금도 기억에 나는 장면은 현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현권 의원의 경우다. 원래 후순위로 예정되어 있던 그는 대학 졸업 뒤 농촌으로 내려가서 수십년 동안 농업과 농민운동에 힘을 쏟았던 경험을 토로하면서 “농사꾼 중에서도 국민의 대표가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역설했다. 인상 깊은 연설을 들은 많은 수의 중앙위원들이 지지를 했고 김현권 후보는 당당히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할 수 있었다. 최근 논의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제대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이렇듯 많은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공천 과정이 확립되어야 한다.
공천에 목을 매야 하는 국회의원이, 자신도 후보자 선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지방선거 때다. 물론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 후보를 결정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권한인 것은 아니지만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는 지역구 의원들의 의견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존중받는다. 지방선거의 성적은 총선 결과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후보 선정 과정에 관여해보면 공천을 받기 위해서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하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기도 하다.
출마희망자가 넘쳤던 지난번 지방선거에서 우리 지역위원회가 가장 크게 고려했던 항목은 당 기여도였다. 특히 ‘탄핵 과정에서 추운 겨울날 빠지지 않고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분들을 우대하겠다’는 방침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노력하면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힘들 때 민주당을 위해서 노력했던 분들이 공천을 받았고 결국 본선거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국회의원 후보의 공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정치는 스펙이 좋고 우수한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려는 마음을 가진 성실한 사람들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선거가 실시된 지 70년이 지났지만 정당의 경선은 아직도 투명하지 못하고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 내년 총선에서는 우리 민주당이나 야당이나 가장 적합하고 훌륭한 후보들을 유권자들 앞에 내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한겨레
‘우리민족 최고’라는 국수주의는 식민사학의 쌍둥이⑮ 미래의 역사학
북한학계, ‘우리민족 제일주의’ 토대
“세계 4대문명보다 앞섰다”는
‘대동강문명론’ ‘평양성지론’ 주장
남한 한 교수도 ‘한강문명론’ 내놔
한민족 특별히 잘났다는 국수주의
특별히 못났다는 식민사학 판박이
이웃에 대한 차별과 증오 키울 뿐
진정한 강국은 다양한 집단 포용
역사학자가 외롭게 연구실에 틀어박혀 문헌과 씨름하던 시대도 지났다. 미래의 역사학자는 때로는 암석학자, 때로는 화학자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손을 잡고,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 나아가 유라시아 곳곳을 누비면서 종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깊은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지난해부터 투바공화국 아르잔에 있는 칭게테이 쿠르간을 공동 발굴하고 있는 한·러 조사팀. 오세윤 문화재전문 사진가 제공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던 필자가 한국사, 그중에서도 고대사를 평생의 업으로 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용광로를 바로 옆에 두고도 그들에게 동화되지 않고 7천만명이 넘는 민족 구성원을 이룬 “한민족의 위대함”을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흉노, 오환, 선비, 유연, 말갈, 거란 등 한때 동북아시아를 호령하던 수많은 종족이 결국은 중국에 흡수, 동화되어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지만, 한민족은 온갖 위기를 극복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으니 분명 경이로운 사건임에 틀림없다.
과거에 한국사 연구에서 민족주의는 지고지순의 선이었고, 우리 민족과 다른 민족의 항쟁의 역사가 대외관계사 연구의 기조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민족의 단혈성, 순수함’에 대한 의문은 기피되었다.
우리사회 관용 부족은 역사학에도 책임
이러한 인식은 남과 북이 마찬가지이다. 북한 학계는 한발 더 나아가 우리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우리민족 제일주의’를 토대로 세계 4대 문명보다 더 오래되고 우수한 ‘대동강 문명’이 평양 일대에서 발전하였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인류의 기원지는 아프리카가 아니라 대동강 유역이라는 주장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평양에 위치한 고구려의 한 굴식돌방무덤이 단군릉으로 탈바꿈하였고, 고조선의 중심지는 시종일관 ‘민족의 성지’인 평양 일대에 있었다고 하는 평양성지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북한 학계가 내세우는 단군릉에 단군이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은 단연코 0%이지만,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단군릉을 사실로 믿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한 원로 교수가 세계 4대 문명보다 더 우수하고 오래되었다는 한강문명론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 ‘우리민족 제일주의’에서 남과 북은 다를 바 없다.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우수하다는 주장은 달리 말하자면 다른 민족은 우리 민족보다 열등하다는 논리이고, 이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인종주의의 표출이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아, 과거의 역사가 강제로 심하게 왜곡되는 아픔을 겪은 우리 사회는 식민사학의 극복이란 커다란 과제를 안게 되었다. 해방 이후 많은 노력 끝에 식민사학의 폐해는 거의 극복되었고, 일제 관학자들에 의한 그릇된 주장도 점차 소멸되고 있다. 우리 민족이 태초부터 현재와 같은 모습, 즉 완성된 형태로 등장하였으며, 고대에 이미 톈산(천산)산맥과 바이칼 호수를 포함한 광대한 영토를 차지한 대제국이었다는 주장의 저류에는 한민족이 특별히 우수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한민족이 특별히 못났다는 식민사학의 주장이나 특별히 잘났다는 국수주의적 주장은 일란성 쌍생아이다.
이런 무리를 범하지 않더라도 이제는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 민족을 깔보는 일은 없다. 물론 미국에서 인종 차별을 당하는 일이 종종 보도되고, 지금도 일본의 시내 한복판에서는 극우세력들이 혐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집단은 소수에 불과하며 비판과 극복의 대상이 될 뿐이다. 오히려 더 좋은 일자리와 나은 삶을 찾아서 대한민국에 온 외국인들에 대한 우리의 차별이 더 심할지도 모른다. 민족의 순혈성을 강조하고 한국사의 전개를 순종 한민족이 주체가 된 민족사로 단순화하는 한 우리 옆의 외국인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편협함은 교정되기 어렵다.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 연구와 교육이 ‘위대한 한민족’의 이미지를 주입하고, 주변 이웃들에 대한 증오심을 심어주는 데에 일조한 것은 아닌지 뼈아픈 반성을 할 때이다. 낭만적 민족주의 정서를 기초로 역사 공부를 시작했던 필자도 이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위대한 대국이 되기를 희망한다면 이웃의 다양한 집단들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기원전 6세기,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키루스는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뒤 포로로 잡혀와 있던 유대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세울 것을 허락하고 지원하였으며, 종교와 언어의 차이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다는 인류 최초의 인권선언인 키루스 칙령을 발표하였다. 몽골화된 투르크인이었던 티무르의 후손인 악바르는 본인 스스로는 신실한 무슬림이었으나 힌두스탄에 진입하면서 힌두교도인 현지 여성과 혼인하였다. 키루스와 악바르의 공통점은 인종과 종교, 문화와 언어의 차이를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보고 관용을 베풀었다는 점이다. 광대한 영토와 다양한 인간집단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차이점보다는 공통성을 강조하는 통합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정말로 강해지고 싶다면 남을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몽골의 칭기즈칸 역시 이민족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갖고 있었다. 편 가르기는 쇠락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어머니의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짧은 인생을 마감한 어느 중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관용이 사라져가는 우리 사회에 좌절하였다. 과연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데에 전혀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피부색, 종교, 출신 지역의 차이로 우리와 남을 구분하고 차별하려는 편협함으로는 21세기 대한민국을 경영할 수 없다.
경남 사천의 늑도에서 나온 낙랑계 토기들도 한반도를 중심으로 중국과 동북아시아, 일본, 동남아시아가 서로 교류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권오영 교수 제공
백제 무덤 등 한반도의 고대 유적지에서 나온 유리구슬들은 베트남 옥애오에서 출토되는 것들과 성분이 같다. 고대부터 동남아시아와도 교류했다는 증거의 하나다. 사진은 옥애오에서 출토된 골호(뼈단지)의 모습. 대한문화재연구원 제공
땅에서 나온 자료가 말하는 역사
우리 역사는 동북아시아에 섬처럼 고립된 역사가 아니다. 우리의 이웃은 중국과 일본만이 아니었고 북아시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서아시아 등 유라시아에 넓게 퍼져 있었다. 교섭의 형태는 때로는 격렬한 항쟁, 때로는 평화로운 교류의 면모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교섭의 대상인 상대방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특히 우리와 유사한 조건에서 국가를 형성하고 발전시킨 지역에 대한 비교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남월과 베트남에 대한 비교 연구가 필요하다. 지난 1월에 한국 조사팀이 베트남 하노이 인근 루이라우(Luy Lau) 유적과 안장성의 옥애오(옥에오·Oc Eo) 유적 발굴조사를 실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팀 모두 중요한 성과를 올렸고, 이번 겨울에는 옥애오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한국으로 가져와서 전시하기 위한 야심찬 계획이 추진 중이다. 백제의 교역 상대였던 푸난(扶南)의 중요 항구이자 생산기지였던 옥애오 유물들이 국내에서 전시되면 양국 간의 비교연구는 물론이고 해상 실크로드를 통한 동남아시아와 고대 한국의 원거리 교역의 실상이 조금이나마 밝혀질 것이다. 아울러 우리 사회에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여름은 중앙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조사할 수 있는 유일한 계절이다. 이번 여름에도 우리 조사팀은 러시아 투바공화국의 칭게테이 쿠르간 조사에 착수한다. 작년보다 더 보강된 인력과 연장된 기간을 이용하여 러시아, 폴란드의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스키타이 연구에 뛰어들게 된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코카서스(캅카스)산맥의 아제르바이잔에서는 고대 왕국 코카시안 알바니아의 왕성 살비르 유적에 대한 한-아제르바이잔 공동 발굴조사가 11년째 계속된다.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도 소그드 왕성에 대한 발굴조사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유산협회의 주도로 개시된다. 바야흐로 유라시아 대륙 곳곳에서 한국의 젊은 연구자들이 현지 학자들과 호흡을 맞추며 활약하는 시즌이 온 것이다.
미래의 역사학자들은 문헌과 씨름하는 데만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접 학문과의 융합을 무기로 이웃나라 역사에 대한 비교 연구도 필수적이다. 사진은 신라의 왕릉과 닮은 카자흐스탄의 오르닉 쿠르간(거대한 흙이나 돌로 된 무덤) 모습. 대한문화재연구원 제공
2016년 이후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 이루어지는 발굴조사의 건수는 매년 1600건이 넘는다. 몇 년 전에는 1800건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으니 그때에 비하면 줄었지만 여전히 엄청나게 많은 수이다. 이 과정에서 출토되는 매장문화재의 종류와 수량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한국 고대사 연구를 이끌고 있는 하나의 축이 고고학적 발견이란 사실을 부인할 연구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특히 문헌자료가 부족하거나 그 사료적 가치에 의심을 받고 있는 고대 초기의 역사 연구는 고고학적 조사와 연구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만약 경주 조양동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신라 초기에 대한 우리의 이해 수준은 매우 낮았을 것이다. 김해 대성동 유적을 제외하고는 금관가야의 성장과 대외 교섭의 양상을 말할 재간이 없다. 황국사관에 의해 조작된 임나일본부설, 남선경영론(한반도 남부 경영론)을 격파한 것은 저명한 노학자가 아니라 발굴 현장에서 땀 흘린 젊은 고고학도들이다. 2015년에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던 힘도, 가야 고분군이 짧은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등재가 유력해진 배경도 젊은 연구자들이 한여름 더위와 싸우면서 이룬 성과 덕분이다. 고고학과 역사학을 구분하는 담장의 높이는 점차 낮아지고 있다. 고대 사회를 규명하는 데에 문헌과 물질자료는 양자택일의 관계가 아니라 반드시 함께 구사되어야 한다
역사학, 문헌만 파던 시대 지나
여러 나라 발굴 조사 병행하고
과학·공학 전문가와도 협업해야
땅에서 나온 자료는 역사 해석을 풍부하게 해준다.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나온 백제시대 여성용 변기. 권오영 교수 제공
경주 동궁 주변에서 발굴된 수세식 화장실 유적은 신라시대 귀족들의 화려한 생활의 모습을 보여준다. 권오영 교수 제공
고대사 연구에서 융복합은 필수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과학과 공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역사학 연구의 방법론이 100년 전과 마찬가지로 사료의 문구 해석에서 맴돈다면 시대착오적이다. 6세기 초에 두 번 있었던 일본 군마현 하루나산의 폭발은 한 가족의 비극적인 최후를 소름 끼칠 정도로 세세하게 보여주어 일본의 폼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익산의 한 무덤에서 작게 부서진 상태로 발견된 뼛조각들은 역사학만이 아니라 고고학, 법의학, 유전학, 생화학, 물리학, 임산공학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협동 연구 결과 백제 30대 무왕의 유체로 밝혀졌다.
고고학적 발견이 거의 없고, 역사학 연구에서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100년 전의 고대사 연구는 발음의 유사함이 중요 방법론 중 하나였다. 지금도 이러한 방법론을 구사하면서 사서에 나오는 지명의 위치를 중국이나 일본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있다. 심지어 백제와 신라가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 있었다는 주장도 접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주장의 밑바닥에는 한반도에서 전개된 역사는 부끄러운 역사, 대륙에서 전개된 역사는 자랑스러운 역사라는 도치된 역사인식이 도사리고 있다. 식민사학의 한 주장인 반도성론의 부활인 셈이다. 위대한 역사를 부르짖는 내면에는 어쩌면 처절한 열등감이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대사 연구의 목표와 주제, 방법론 모두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웃을 차별하는 논리에 정당성을 부여하던 역사학의 시대는 끝내야 한다. 역사학자가 외롭게 연구실에 틀어박혀 문헌과 씨름하던 시대도 지났다. 미래의 역사학자는 때로는 암석학자, 때로는 화학자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손잡고,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 나아가 유라시아 곳곳을 누비면서 종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깊은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젊은 역사학도들이 개척할 미래의 역사학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과는 달라져 있을 것이다.
▶ 권오영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직접 유적을 발굴하는 고대사 학자로, 역사학과 고고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자연과학과 공학적 연구를 역사 탐구에 활용하는 학제 간 융복합 연구에 관심이 많다
걷기만 하면 돈 준다? 이미 '실행중'입니다
녹색참여소득제안 ⑩ - 건강과 인센티브
불평등과 빈곤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실험되고 있는 '기본소득'이 주목할 만합니다. 한편에서 기후변화는 인류의 운명을 가를 절체절명의 문제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적극적인 '기후행동'이 필요합니다.
기본소득을 지급하면서 동시에 기후행동을 촉진하기 위한 방안으로 '녹색참여소득'을 제안합니다. 생태적 이동, 에너지 절약, 친환경 제품 사용 등을 조건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녹색참여소득의 개념, 기본소득과의 차이, 기대효과 등에 대해 연재합니다.
여쭤봅니다. 자동차 대신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 달에 수십 만 원의 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독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약 전기, 가스, 수도의 절약을 조건으로 한다면요? - 기자 말
▲ 걸으면 소득을 지급한다? 이게 허무맹랑하다고요? 전세계에서 그리고 한국에서도 새로운 실험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pexels
평소에 자가용 승용차만 타고 다니던 사람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후변화를 막고, 자동차가 아니라 인간 중심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의 삶의 양식 자체가 생태적 이동을 중심으로 분명히 바뀌어야 합니다.
'녹색참여소득'은 시민의 삶의 양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행동 변화에 따른 적절한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한다는 발상에서 시작됐습니다. 자칫 허무맹랑한 제안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서 충분히 나올만한 구상입니다. 이미 생태적 이동, 에너지 절약 등을 조건으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정책은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에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특히 생태적 이동을 조건으로 한 인센티브 지급 정책은 지방자치단체, 금융회사, 통신회사 등 곳곳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남아공 '디스커버리'사의 바이탈리티 프로그램
▲ 남아프리카공화국 보험사 "디스커버리"의 보험상품 "바이탈리티 프로그램"의 혜택들. 음식부터 영화관람, 비행기표 할인 등 혜택이 다양하다. ⓒ 디스커러리 갈무리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보험사인 '디스커버리'는 이 분야의 선두주자입니다. 디스커버리는 1997년부터 바이탈리티 프로그램, 우리말로 하면 '활력'쯤으로 번역할 만한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건강행동을 하면 그때마다 포인트가 쌓이고, 포인트가 쌓여 등급이 올라가면 보험료가 할인됩니다. 또 높은 등급일수록 무료 커피부터 비행기 할인까지 다양한 혜택이 뒤따릅니다.
관련 업계에서는 '웰니스' 프로그램이라고 부릅니다. 웰니스는 '웰빙'과 '피트니스'를 합한 용어입니다. '운동을 통해 웰빙을 추구하는 프로그램' 정도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보험료를 할인 해주면 보험회사 입장에서 손해 아닌가?'
이런 의문을 가지실 분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보험가입자들이 건강해지면,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지출이 적어지니 결과적으로 이익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프로그램은 오래 지속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남아공 국민의 평균 기대 수명은 63세인데, 바이털리티 가입자의 기대수명은 평균 81세이고 이중 골드멤버의 기대수명은 평균 87세라고 합니다. 미가입자와 비교했을 때 의료비는 17%가 줄었다고 합니다.
이런 주장들이 물론 디스커버리사 자체의 보고서가 출처라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벌써 30년째 바이털리티 프로그램이 판매되고 있고, 남아공 전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으며, 지금은 전 세계 10여 개 나라로 이 프로그램이 팔려나가 가입자가 800만 명이라는 점을 보면 건강행동을 조건으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이 여러 면에서 효과가 있다는 점만은 확실합니다.
각종 금융 상품들
▲ KEB하나은행이 내놓은 "도전365적금". 걸음수에 따른 금리우대 혜택 등을 제공한다. ⓒ KEB하나은행 갈무리
유사한 보험상품은 한국에도 있습니다. 한국 '메트라이프' 생명은 180일 이내에 180만 걸음 달성 시 40만 원 상당의 관광상품권 등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걷기 보상 상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ABL생명'은 걷기와 식사 기록을 기준으로 마일리지를 매월 15만 점 쌓으면 다음 달에 2000원을 지급하는 상품이 있습니다.
보험사 말고 건강행동을 금리와 연동한 상품을 판매하는 은행도 있습니다.
'나의 걸음수에 따른 우대금리 혜택! 걸음수 UP! 금리도 UP!'
KEB하나은행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렇게 홍보하고 있는 상품이 있습니다. 걸음수와 연계해 최대 연 3.75%까지 우대 금리를 주는 상품입니다. 이름도 '도전365적금'입니다. 이렇게 은행, 보험사 등은 건강행동 연동 인센티브를 가미한 각종 상품을 이미 판매 중입니다.
SK텔레콤에서는 'T건강걷기'라는 앱을 스마트폰에 다운받고, 1주일 단위로 걷기 목표를 채우면 매주 3000원 통신요금을 할인해주고 있습니다. 한 달로 따지면 최대 1만2000원입니다. 작지 않은 액수입니다. 최대 6개월까지 할인 혜택이 주어지는 게 아쉽긴 하지만, 걷기를 통신요금과 연동한 참신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통신요금 할인 대신 고객이 원하면 커피 1잔, 인터넷 쇼핑몰 할인 쿠폰 등을 제공 받을 수도 있습니다.
민간회사부터 지자체까지
▲ "빅워크" 앱 미리보기. 100m를 걸으면 1원이 쌓여 기부행위 등을 할 수 있게 해놨다. ⓒ Bigwalk Inc.
사실 걷기 보상 프로그램은 이미 각종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활성화돼 있기도 합니다.
'캐시워크'라는 앱은 깔면 100걸음 당 1원이 적립됩니다. 역시 적립한 돈으로 커피, 스무디 같은 음료를 비롯한 각종 제품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빅워크'라는 앱도 100미터 걸을 때마다 1원씩 쌓이는데, 쌓인 돈으로 각종 기부를 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마음이 착해지는 아이디어입니다.
여러 지방자치 단체에서는 '워크온'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목표 걸음 달성 시에는 무료 쿠폰 혹은 기부 혜택을 제공하고 인천 서구에서의 나의 걸음 수 순위, 우리 동네에서 나의 걸음 순위도 알 수 있어 나도 모르게 승부욕이 생겨 걷고 싶은 의욕이 생기게 됩니다.'
인천 서구 블로그에 실려 있는 워크온 사업 안내 문구 중 일부입니다.
걷기 보상 프로그램이 갖는 다양한 효과들
점차 많은 사람들이 점점 많은 곳에서 걷기 보상 프로그램을 접하고 있습니다. 인센티브가 어떤 수준에서 설계 되느냐에 따라 참여의 정도가 달라지겠지만, '건강행동을 조건으로 한 인센티브 지급'이라는 원리 자체는 이미 생활 속의 일부가 돼 우리의 생활을 바꾸고 있습니다.
앞서 예로 들었지만, 아프리카 공화국의 디스커버리사가 실제 국민들의 수명을 연장시켰다는 사례만 있는 건 아닙니다.
SK텔레콤의 'T건강걷기' 가입자는 지난해 8월 이 서비스가 시작된 이후 아직 1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100만 명이 넘었습니다. 최대 월 1만2000원, 그것도 6개월간만 지속되는 인센티브에 비교적 단시간에 100만 명의 시민이 반응한 것입니다.
SK텔레콤에 따르면 100만 명의 가입자가 그동안 걸어서 이동한 거리는 지구 둘레 620바퀴 정도라고 합니다. 이 설명이 사실이라면 이 서비스 가입자들은 자신의 건강을 챙겼고, 그 만큼 의료비를 절감했을 뿐만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도 줄였습니다.
'워크온' 앱을 이용한 건강 사업은 앞에서 사례로 든 인천 남구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서울을 비롯해 인천 남동구에서도, 경남 하동군, 김해시에서도, 부산 사상구에서도, 강원도 홍천군에서도 워크온 사업이 추진될 계획이거나 이미 추진되고 있습니다.
특히 김해시에서 진행하는 'ICT활용 걷기 활성화 사업'은 올 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진행하는 건강영향평가 시범적용 대상사업으로 선정됐습니다. 늦지 않은 시기에 지방자치 단체 차원의 걷기 보상 프로그램이 갖는 시민 건강 증진 효과에 대한 엄밀한 평가가 나올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인센티브 설계가 중요
결국 인센티브가 어느 정도 규모로 제공되는가, 어떤 방식으로 설계되는가가 중요합니다.
지금까지는 건강행동 중에서도 걷기와 연동한 프로그램들을 살펴보았지만, 인센티브 설계 역량에 따라 보상은 적정하게 하면서도 참여자들의 참여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은 여러 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디스커버리 프로그램은 영국에도 수출됐는데, 영국에서는 포인트 기준을 달성할 경우 음료를 제공하는 기준을 월 단위가 아니라 주 단위로 바꾼 후 활동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들이 대폭 늘었다고 합니다. 최소 운동 기준을 달성한 가입자가 50% 미만에서 80%로 증가했다고 하니 대단한 변화죠.
남아공에서는 걷기 이외의 건강 행동에도 보상을 합니다. 2009년부터 건강 식품을 구입할 경우 25%까지 현금으로 돌려주는 정책을 시행한 이후 가입자가 큰 폭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SK텔레콤의 'T건강걷기' 프로그램의 걷기 미션은 50대 가운데 36%가 달성한 반면, 20대는 그 절반인 18%정도에 그친다고 합니다. 똑같은 인센티브라도 세대별 반응이 다릅니다.
인센티브의 종류와 제공 방식이 참여자들의 참여 정도에 영향을 준다는 점 만은 확실하다.
▲ 인센티브의 종류와 제공 방식이 참여자들의 참여 정도에 영향을 준다는 점 만은 확실하다. ⓒ pexels
나라와 지역, 세대 혹은 성별에 따라 사회적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정책이 분명히 더 효과적이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다만, 인센티브의 종류와 제공 방식이 참여자들의 참여 정도에 영향을 준다는 점 만은 확실합니다.
또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인센티브가 커피 한 잔 정도에 그치더라도 참여율은 지급 시기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꽤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기업이나 지방자치 단체가 특정 정책 목표나 사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건강 행동을 참여의 조건으로 내거는 일은 전혀 이상할 게 없을 뿐만 아니라 점점 흔한 일이 돼 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건강행동에 대한 인센티브를 기본소득과 연결해보는 상상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국가가, 지구의 건강까지 챙기는 생태적 이동에 대해서 인센티브를 주는 일은 이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우 필요한 일입니다. 녹색참여소득은 이런 상황에서 제시된 아이디어입니다./강상구-오마이뉴스
'헝가리 유람선 침몰'에 보험금 운운한 언론사 명단공개
[민언련 모니터 보고서] 세월호 참사 당시 보도 논란, 잊었습니까?
대형 참사에 또다시 '보험금'을 운운하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헝가리 현지시각 지난달 29일 밤 9시경,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위를 운항하던 유람선 '허블레아니'가 침몰했습니다. 이 배에는 한국인 33명과 헝가리인 선장‧승무원 2명 등 모두 35명이 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현재(5월 31일 오후 5시)까지 확인된 바로는 관광객 30명, 여행사 직원 1명, 현지 가이드 2명 등 한국인 승객 33명 중 7명이 사망하고 7명이 구조됐으며 19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입니다. 현지 당국은 사고 후 14명을 물 밖으로 구조했으나 이 가운데 7명이 숨지고 7명이 생존했습니다. 나머지 한국인 19명과 헝가리인 2명은 아직 실종 상태입니다.
사고 당일 헝가리에 폭우가 쏟아져 불어난 강물로 구조 작업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헝가리 당국이 구조 및 수색 작업을 이어가고 있고, 한국 정부도 외교부 장관을 비롯한 신속대응팀을 급파해 상황 파악과 구조 지원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일부 한국 언론에서 '보험금 최대 금액'을 운운한 기사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보도는 구조작업이 완료되거나 실종자의 생환 여부가 확정되기도 전에, 사망을 전제로 한 보험금 액수를 논한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소중한 생명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는 희생자 가족에 큰 상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희생자들의 사망 보험금을 상세히 전한 MBC 보도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이러한 언론들의 행태를 기록하고자, 이번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건에서 보험금을 강조한 기사들, 그 기사를 낸 매체들을 정리했습니다.
구조작업 진행 중인데 '사망 보험금 1억'이라니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와 관련해 '보험' 또는 '보험금' 관련 내용이 들어간 기사는 포털 검색 결과 총 209건(5월 31일 오후 3시 기준)입니다. 그 중 제목에 보험금 액수를 명시했거나 내용에서 보험금 액수를 구체적으로 논한 기사가 총 25건(지면 기사 포함)으로 집계됐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의 비슷한 사례로 언론계 전반의 반성이 요구된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보도량입니다.
▲ △제목에 보험금 부각된 경우 및 내용에서 보험금 액수 정확히 언급한 경우의 기사 목록(5/30~31) ⓒ민주언론시민연합
대부분의 기사가 '보험', '배상', '보상'을 제목에 명시했고 일부는 금액까지 썼습니다. 제목에 보험금, 배상, 보상 관련 내용이 없는 사례는 매일경제 <들이받은 스위스 선박에 1차 책임>, 머니투데이 <헝가리 유람선사고…여행사 법적책임 어떻게 질까>, 아주경제 <헝가리 유람선 침몰 참사, 여행사 책임 범위는?> 등 3개뿐입니다. 이 기사들은 유람선 침몰 사건의 책임 주체와 이번 사고와 관련 있는 한국 여행사의 책임 범위를 짚으며 '보험금' 얘기를 꺼냈습니다.
매일경제의 경우 사고 책임과 배상의 주체를 묻는 기사 말미에 "여행객들은 DB손해보험 해외여행 여행자 보험에 일괄적으로 가입돼"있었다며 "여행자 보험 보상한도액에 따르면 상해사망과 관련해 1억원을 보상받을 수 있다"고 썼습니다. 이러한 보도들과 함께, 보험에 가입했다는 여행사 측 발표를 전한 보도나 사고의 법적 책임을 짚은 보도는 모두 중점적으로 보험금이나 배상액을 다룬 것은 아니지만 불필요하게 '금액'을 거론한 사례들입니다.
신문 지면에 등장한 '보험금' 부각 보도
먼저 신문을 보면, 국내 주요 일간지와 경제지 지면을 살펴본 결과 중앙일보와 매일경제가 각각 1건씩 보험금 관련 기사를 내놨습니다. 둘 다 보험금 액수만 중점적으로 다룬 기사는 아니지만, 중앙일보의 경우 지난달 31일자 주요 종합일간지 중 유일하게 보험금 액수를 제목에 명시했고 보도 도입부부터 "헝가리 여객회사가 만들어 놓은 약관에 배상 액수 등이 나와 있을 것", "해외에서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책임이 있는 헝가리 선박 회사의 탑승 약관과 가입한 보험에 따라 절차가 진행되고 배상액이 결정될 것"이라는 성우린 변호사의 설명으로 배상액을 거론했습니다.
보도 말미에는 "60억원 정도의 배상책임보험에 가입된 상태다"라는 여행사 측의 설명에 "피해자 가족들이 손해배상을 제기하면 회사가 가입한 보험 약관에 따라 배상금이 지급된다. 손해배상 소송에서 보험사가 과실 정도를 엄밀히 따져 배상액을 줄이고자 할 가능성도 있다. 탑승객들이 가입한 여행자보험에 따른 보험금은 이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개별적으로 지급된다"라며 보험금 액수와 배상금 지급 방식을 상세히 언급했습니다.
언론이 사고 선박의 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액수와 함께 보험가입 여부를 확인해준 여행사 측 발언을 전하는 것은 가능하나 굳이 '유가족들이 어떻게, 얼마나 배상금을 받을 수 있는가'까지 나아가는 것은 과도합니다. 매일경제의 경우 "참좋은여행사가 안내하는 여행자 보험 보상한도액에 따르면 상해사망과 관련해 1억원을 보상받을 수 있다"며 여행사 측의 발언을 전하는 것을 넘어 그 발언을 기준으로 구체적 보상금 액수를 예상하기도 했습니다.
중앙일보 인터넷판도 '보험금 최대 1억' 강조
지난달 30일 방송사들의 저녁종합뉴스에선 유람선 침몰 기사가 꽤 많이 보도됐으나, 보험 또는 보험금을 거론한 기사는 없었습니다. 종합편성채널의 시사‧대담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 △30일 나온 중앙일보?뉴스1 등의 ‘보험금 최대 1억원’ 기사, 포털 화면 갈무리. ⓒ 민주언론시민연합
문제는 인터넷에 올라오는 기사들이었습니다. 특히 중앙일보의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망자 여행자보험 보험금 최대 1억원>(5/30 권혜림 기자) 기사는 제목에 '보험금 최대 1억원'이라며 최대 보험금 액수 예상치를 강조해놓았고, 본문에서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침몰한 유람선에 타고 있던 여행객이 가입한 여행자보험의 보험금 규모는 사망시 1억원, 상해치료시 5000만원인 것으로 확인됐다"며 "30일 해외여행 패키지 상품을 판매한 참좋은여행사에 따르면 침몰한 유람선에 탑승한 한국 여행객은 모두 DB손해보험 여행자보험에 가입했다. 해당 상품은 사망에 1억원, 상해 치료비에 최대 500만원을 보장한다"면서 보험사와 보험금 액수를 상세히 소개했습니다.
중앙일보보다 민영 통신사 뉴스1이 먼저 이런 기사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뉴스1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망자 여행자보험 보험금 1억원>(5/30 민정혜 기자)은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침몰한 유람선에 타고 있던 여행객이 가입한 여행자보험의 보험금 규모는 사망시 1억원, 상해치료시 50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라며 중앙일보와 똑같은 내용을 썼습니다.
이들 외에도 한국경제‧아주경제‧머니투데이 등의 주요 경제지와 대구일보‧머니S‧금강일보 등의 기타 인터넷 매체에서도 같은 내용의 기사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보험금 지적 나오자 제목 바꾼 중앙일보‧뉴스1
중앙일보와 뉴스1에서 보험금 관련 기사가 나오자 시민들의 비판이 잇따랐습니다. 그러자 언론사들이 인터넷 기사의 제목을 수정하기도 했습니다.
▲ △제목만 바꾼 중앙일보의 보험금 기사(5/30) ⓒ 민주언론시민연합
중앙일보의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망자 여행자보험 보험금 최대 1억원>은 <'헝가리 유람선 침몰' 처발‧배상은 헝가리서 진행…여행사도 책임>으로 바뀌었습니다. 중앙일보는 자사 홈페이지의 기사 제목과 포털에 송고한 제목 모두 바꿨습니다. 뉴스1의 기사 또한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망자 여행자보험 보험금 1억원>에서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배상 어떻게 진행되나>로 바뀌었는데, 뉴스1은 자사 홈페이지 제목은 바꾸지 않고 그대로 뒀습니다. 포털 송고용 제목만 면피용으로 바꾼 것입니다.
구조 작업이 아직 한창 진행 중입니다. 시민들은 이들이 살아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받으면 그 액수가 얼마인지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습니다. 언론은 구조 상황과 현지 분위기를 계속 전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시민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시민들이 사망 보험금, 배상액을 궁금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목만 바꾼다고 해서 안타까운 죽음을 돈으로 환산한 기사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순 없습니다.
세월호 잊었나… 보험금 액수 보도 공익에 아무런 도움 안 돼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일부 언론에서 세월호와 단원고 학생들의 보험 가입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그때도 지금과 똑같이 '구조작업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미리 사망을 전제로 보험금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비난이 여기저기서 나왔습니다. 당시 MBC의 사례를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일 <특집 이브닝뉴스>에서 MBC는 '수학여행 단체여행자 보험'에서 정해놓은 보험금 액수를 화면에 띄워 놓고 "인명피해가 났을 경우 한 사람당 최고 3억5000만 원, 총 1억 달러 한도로 배상할 수 있도록 한국해운조합의 해운공제회에 가입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보도에서 불거졌던 문제들을 바탕으로 언론단체들이 모여 '재난보도준칙'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이를 만들었던 언론단체 대표들은 '준칙을 만드는 것보다 철저히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반복된 '보험금' 부각 보도는 이러한 준칙의 의미를 무색게 합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5월 30~31일 포털에 송고된 모든 기사(지면 기사 포함)
조선희(ccdm1984)/ 오마이뉴스
김영철 강제노역-김혁철 처형설, 사실일까?
<조선> <동아> 보도... 청와대 "섣부른 판단이나 언급 적절치 않아"
▲ 현지 환영단에 꽃다발 받는 김정은 위원장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월 2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과 접경지역인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 현지 환영단에게 꽃다발을 받고 있다. 김 위원장 뒤로 김영철이 보인다. ⓒ 연합뉴스
한반도 비핵화 대미협상을 맡았던 김영철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가 각각 강제노역형과 처형을 당했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청와대는 "섣부른 판단이나 언급은 적절치 않다"라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내놓았다.
김영철-강제노역, 김혁철-처형, 김성혜·신혜영-정치수용소?
<조선일보>는 31일자에서 한 북한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김영철 부위원장이 통일전선부장에서 해임된 뒤 자강도에서 '혁명화 조치(강제노역과 사상교육)' 중이고, 김혁철 특별대표는 지난 3월 외무성 간부 3명과 함께 조사받은 뒤 미림비행장에서 처형당했다고 보도했다.
▲ 5월 31일 자 <조선일보> 1면. 프레시안
이 북한 소식통은 김혁철 특별대표와 함께 대미 실무협상을 맡았던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책략실장과 하노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의 통역을 맡았던 신혜영 '1호 통역관'도 정치범수용소에 보내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동아일보>도 '김영철 사단의 몰락'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미협상에 깊숙이 개입했던 김성혜 실장이 하노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 참가했다가 귀국한 직후 억류돼 취조를 받았고, 얼마 전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고 전했다.
또한 지난 1월 18일(현지시각)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김영철 부위원장, 김성혜 실장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던 박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도 최근 가족과 함께 지방으로 추방됐다고 덧붙였다.
<동아일보>는 "대미·대남 외교를 총괄해온 김영철도 통전부장에서 해임돼 허울뿐인 노동당 부위원장으로 밀려나 미래를 알 수 없게 됐다"라며 "북-미 협상에 뛰어든 통전부 라인의 '김영철 사단'이 모두 전멸한 셈이다"라고 분석했다.
통일전선부와 외무성의 뒤바뀐 권력관계
최근 국가정보원도 북한의 대미·대남업무를 총괄하던 통일전선부장이 김영철 부위원장에서 장금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으로 교체됐다고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바 있다.
이는 대미협상의 중심축이 통일전선부에서 외무성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로 해석됐다.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주도권이 통일전선부에서 외무성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통일전선부의 업무는 대미관계에서 손을 떼고 대남관계에만 집중하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선희 외무성 부장이 최근 1부상으로 승진하고,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에 선임되는 등 북한 외교의 실세로 부상한 것이나, 리용호 외무상이 국무위원회 위원직을 유지하며 건재함을 과시한 것도 통일전선부와 외무성의 뒤바뀐 권력관계를 반영한 것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동아일보> 기사를 쓴 김일성종합대 출신 주성하 기자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선일보에도 제가 쓴 정보가 들어갔나 보군요, 저도 정보를 받고 한 20일 동안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는데 안썼음 물먹을 뻔했네요"라며 숙청설의 사실성에 무게를 뒀다.
한 페이스북 이용자가 주 기자의 페이스북에 "정확한 근거도 없이 이런 가짜뉴스를 보내는 거 책임질 수 있나?"라고 따지는 댓글을 올리자 주 기자는 "무슨 근거로 감히 '이런 가짜뉴스'라 단정하나? (숙청설이) 진짜면 어떻게 책임질 거냐?"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청와대 "어느만큼 확인된 사안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
하지만 이러한 보도에 청와대는 아주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저희도 관련된 모든 동향을 살펴보지만 그 기사가 어느만큼 확인된 사안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그 부분에 대해서 섣부른 판단이나 언급은 적절치 않다"라고 말했다.
구영식(ysku)
검찰 향한 '분노의 발차기'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최종 조사 결과 발표에 따른 여성·시민 사회단체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검찰 상징물을 부쉈다.ⓒ권우성2019.05.30
현대중공업 ‘체육관 10분 주총’의 전말
장소‧일시 기습변경, 사측 용역들 소액주주 노조원 물리력으로 막아
현대중공업 물적분할을 결정하는 주주총회 의안이 31일 오전 통과됐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물적분할과 주총 개최에 반대해 닷새 전부터 주주총회장으로 공지된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을 점거하고 파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주총 시간과 장소를 기습으로 바꾸고 용역을 동원해 새 주총장을 막아 10분 만에 의결을 끝냈다.
애초 주주총회는 이날 10시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조합원을 비롯한 3000여명이 새벽 5시께 기상 알림을 듣고 일어나 경찰과 사측 진입에 대비했다. 이들은 30일부터 한마음회관 앞에서 밤을 지샜다.
노동자들은 아침 7시께 한마음회관 정문과 후문을 꽉 채웠다. 울산지법이 결정한 주주총회 방해금지 가처분 효력은 8시부터 생겨, 이 때를 기점으로 충돌이 예상됐다. 노조는 정문에 선 조합원들에게 “비폭력 무저항으로 주주총회에 반대하려 한다. 주주총회를 노조와 동의 없이 여는 데에 안타까움을 표하자. 우린 노동자로 자신과 가족의 생존권을 지키키 위해 여기 있다”며 물리력을 먼저 쓰지 말라고 당부했다.
▲31일 오전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 정문 앞 도로를 채운 현대중공업이 동원한 용역직원과 경찰들. 사진=김예리 기자
오전 7시45분께 현대중공업 최헌 상무가 1000여명 직원을 데리고 한마음회관 정문 앞에 왔다. 사측 경비대와 용역은 정문 앞에 가로 놓인 도로에 빽빽이 늘어섰다. 최헌 상무는 주총을 열도록 길을 비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가 물적분할의 부당함을 강변하자 “회사가 필요해서 하는 거고 법적 무리는 없다. 노동자 미래를 생각해서도 회사도 발전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최 상무가 “다시 오겠다”며 돌아선 직후 금속노조 울산지부와 현대차지부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경찰과 사측이 농성장에 침탈하려 하면 전면 파업에 들어간다’고 선포했다.
8시20분께 사측은 ‘주총 검사인’을 데리고 다시 와 마주 섰다. 검사인은 주총 소집절차와 의결 과정을 조사하기 위해 법원이 선임하는 임시 감사기관을 말한다. 이들은 9시께 다시 찾아와 조경근 현대중공업지부 사무국장과 언쟁을 벌였다. 이들은 ‘노사가 알아서 하라, 진행이 어려우면 거칠 건 거쳐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윽고 주총이 예고된 10시를 10분 앞둔 시각, 경비대나 용역직원과 달리 양복이나 사복차림을 한 남성 5명이 지부 대오와 마주 섰다. 한 기자가 현대중공업 주주인지 묻자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조원들이 이들을 사측이나 주주로 여겨 ‘법인분할 척결하자’ 등 구호를 외치는 동안 이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이는 주총이 열리는 10시를 훌쩍 넘긴 10시35분까지 이어졌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후 이들 5명이 실제 주주인지를 놓고 “모른다”고 했다.
▲현대중공업 최헌 상무(맨 왼쪽) 등 임직원과 주주총회 검사인(맨 오른쪽) 등이 31일 오전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 앞에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와 대치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자신을 현대중공업 주주라고 밝힌 남성 6명이 31일 주총 시각을 넘긴 10시께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 정문 앞에서 사측 경비대에 둘러싸여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 때 한 용역직원이 ‘주총 장소가 변경됐다’고 소리 쳤다. 다른 용역들은 작은 종이뭉치를 노조를 향해 뿌렸다. 주총 장소 변경 안내문이었다. 이들은 주총을 여는 때와 장소를 11시10분 울산대학교 체육관으로 옮긴다고 밝혔다. 울산대학교는 한마음회관으로부터 18km, 차량으로 36분 걸리는 거리다. 노조는 울산대학교 앞에 만약에 대비해 집회신고해뒀지만 조합원은 배치하지 않았다.
노조원들은 이 소식을 접한 뒤 각자 오토바이를 타고 울산대학교 체육관을 향해 달렸다. 첫 타자가 도착한 건 주총이 막 시작한 11시12분께. 경찰은 조합원들이 체육관 방향으로 길을 들지못하도록 대학 정문 길목에 방패를 들고 빈틈없이 막아섰다. 용역이 주총장 문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조합원들을 몸으로 막았다. 닫힌 문은 열지 못하도록 안쪽에서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현대중공업이 고용한 일용직 용역직원들이 31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조합원들을 향해 ‘임시주총 장소 변경 안내’ 종이를 뿌리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노조원들도 상당수기 우리사주 형식으로 현대중공업 주식을 소유한 주주다. 자신이 주주라고 밝히는 노조원까지 막아섰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용역들이 주총장을 둘러싸고 입장하고자 하는 조합원들을 주주인지와 무관하게 막는 것은 맞다. 질서유지 차원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조에 따르면 한 조합원이 주총 출석통보서를 내밀며 들어가려 했지만 역시 들어가지 못했다. 상법과 현대중공업 정관 등은 회사가 소액주주를 포함한 주주들에게 2주 전 주총 소집을 통지하도록 정했다.
당시 주총장을 찾은 현대중공업지부 노조원은 “정문에 깔린 경찰과 용역이 노조 진입을 막자 유리를 깨고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후문으로 들어온 노조원들은 주총장에 들어서자마자 주주들이 이미 문을 나서 뒷꽁무니밖에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부는 “우리사주조합장과 주주들이 도착하기 전에 날치기로 법인분할 임시주총을 끝내고 뒷문으로 서둘러 도망갔다”고 했다.
▲31일 현대중공업이 장소를 변경해 주총 연 울산대학교 체육관 바닥에는 주총 관련 서류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31일 현대중공업이 때와 장소를 기습 변경해 주총을 열고 마친 뒤 울산대학교 체육관 모습. 용역이 뿌린 분말소화기 가루가 내려앉아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주총이 끝난 지 30분 정도 지난 뒤 체육관은 뿌려진 분말소화기 탓에 시야가 탁했다. 주총이 진행되는 동안 후문 통로에서 사태를 목격한 비즈한국 기자는 용역이 소화기를 쐈다고 전했다. 기자는 “노조원들이 후문으로 주총장에 들어서려 하자, 용역이 이들을 향해 먼저 분말 소화기를 쐈다. 노조원들이 쏘는 모습은 내가 있을 땐 못 봤다”고 했다. 실제로 후문 통로 바닥과 물건들엔 소화전 분말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를 부인했다. 기자들은 진위를 확인하고자 체육관 CCTV 관련 문의를 하려고 울산대 본관을 찾았지만 울산대 교직원과 보안요원은 본관 문 6개를 모두 잠그고 대화를 거부했다. 울산대학교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설립자다.
이같이 주총장을 주주가 도착하기 어려운 때와 장소에 기습 변경하는 행위가 절차상 위법이란 지적도 나온다. 법원은 장소 변경이 정당성을 지니려면 ‘당초 소집장소에 출석한 주주들로 하여금 바뀐 장소에 모이도록 상당한 방법으로 알리고 주주들의 이동에 필요한 조치를 다 해야 한다’고 밝힌다. 조치가 충분하지 않다면 주주의 권한을 박탈한 것으로 봐 주총 결의취소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우리사주조합을 통해 현대중공업 주식을 약 3% 지니고 있다.
▲31일 현대중공업의 주총이 끝난 뒤 기자들이 찾은 울산대 본관은 잠겨 있었다. 내부에 울산대 설립자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흉상이 세워져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민주노총·금속노조 법률원은 즉각 입장문을 내 “상법은 물론 현대중공업 정관 18조는 주주들에게 2주 전에 주총 소집을 통지하도록 했다. 노동자들은 이번 주주총회 안건이 통과하면 고용관계나 노조활동에 심각한 타격을 입음에도 의견 표명은 커녕 참석도 할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민중당 김종훈 의원(울산 동구)도 “현대중공업 사측은 오늘, 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이 반대해 온 법인분할 주주총회를 중대한 절차위법까지 해가며 강행했다”며 “원천 무효”라고 했다.
현대중공업은 이날 주총에서 통과한 분할계획서에 따라 1일 법인을 분할한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주주총회와 법인분할 결정에 무효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현대중공업지부는 오는 3일 전면파업에 다시 들어간다. 김예리 기자 ykim@mediatoday.co.kr
언론에 없는 ‘현대중공업 노동자 주주총회 점거’ 이유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31일 법인분할 주총 앞두고 총파업·점거농성… 노동자 희생·재벌세습·조선업 생태계 악화 우려
현대중공업 법인분할을 결정하는 31일 임시주주총회가 코앞에 왔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주주총회장인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을 27일부터 닷새째 점거 중이다. 28일부턴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 30일엔 2500명이 주총장 앞에 모여 법인분할 시도를 규탄했다. 지역사회의 반대 목소리도 높아진다. 송철호 울산시장과 황세영 울산시의회 의장은 29일 현대중공업 법인분할로 생기는 한국조선해양(존속회사) 본사를 울산에 존치하라며 삭발을 감행했다.
언론도 노조의 주총장 점거 소식을 대거 보도했다. 그러나 보수언론과 경제지를 중심으로 노조의 ‘폭력성’만을 부각하며 표면적 보도에 집중한 탓에 정작 노사가 무엇을 둘러싸고 갈등하는지 알기 어렵다. 현대중공업이 하려는 법인분할은 뭘 뜻하고, 노동자들이 이를 막으려 파업과 주총장 점거까지 나서는 이유는 뭘까.
▲지난 28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가 현대중공업 물적분할에 반대하며 28일 전면 파업에 돌입한 뒤 주주총회가 예정된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에서 점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분할 뒤 울산엔 ‘현대중공업’ 이름과 제조공장만… ‘큰그림’은 대우조선 인수
31일 주총에선 현대중공업의 물적분할을 승인할지를 의결한다. 물적 분할이란 회사가 어떤 사업부문을 나눠 자기 자회사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현대중공업이 존속회사와 신설회사로 나뉜다는 뜻이다. 존속회사는 인사와 노무, 투자와 연구개발 부문을 가져간다. 회사를 서울로 옮기고 이름은 현대중공업에서 ‘한국조선해양’으로 바꾼다. 한편 신설회사는 ‘현대중공업’이라고 이름 붙이고 나머지 생산 부문(조선·특수선·해양플랜트·엔진기계 등)을 맡겨 울산에 남긴다.
이렇게 한국조선해양은 본래 현대중공업이 지녔던 두 개의 자회사와 함께, 새로 생긴 신설회사를 거느리며 중간지주회사로 거듭난다. 반면 울산에는 한국조선해양이 경영을 좌우하는 사업회사가 남는다.
▲현대중공업 물적분할과 대우조선 인수 뒤 지배구조 변화. 그래픽=이우림 기자
눈여겨볼 대목은 분할 뒤 두 회사의 재무구조가 극명하게 갈리는 점이다. 한국조선해양은 부채비율(자산 대비 부채)가 62.1%에서 1.5%로 줄어들어 우량해진다. 반면 신설회사 현대중공업은 부채를 떠안아 부채비율이 115%로 늘어난다. 결국 재무구조가 아주 좋은 기업과 불량한 기업이 생기는 셈이다. 1만4000명 노동자 가운데 500명 가량은 한국조선해양에, 나머지 대다수는 불량 기업에 속하게 된다.
현대중공업은 이같은 물적분할이 또다른 조선업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사전작업이라고 설명한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3월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과 인수 본계약을 맺었다. 즉 물적분할한 뒤 한국조선해양이 산업은행과 주식을 맞바꾸는 방식으로 대우조선을 자회사로 들인단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맞교환 방식을 두고, 기존 현대중공업 혹은 현대중공업지주회사가 직접 신주를 발행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돈을 들여 인수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이같은 시나리오가 실현되면, 중간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은 기존 자회사인 현대삼호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과 함께 현대중공업(신설회사), 대우조선까지 4개 회사를 자회사로 관리하게 된다. 그리고 정씨 총수 일가(정몽준‧정기선)가 최대주주(30.9%)인 현대중공업 지주회사는 한국조선해양을 지배한다.
현대중공업은 이렇게 분할과 인수 목적을 두고 “현대중공업 중심으로 기업지배구조를 만들고, 한국조선해양에 조선 자회사들의 컨트롤타워로 내세워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통제권은 위로, 부채는 아래로… 구조조정‧노동조건 악화 우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이같은 개편이 노동자들의 고용과 노동조건을 대폭 악화할 것이라 내다본다. 대다수 노동자가 일하는 울산 현대중공업의 재무구조가 나빠지는 데다 통제권은 중간지주회사로 넘어가고, 현대중공업 총수 일가에 경영책임을 물을 경로는 더 복잡해진다.
▲한국조선해양 울산 존치 촉구하며 삭발하는 송철호 울산시장. 사진=민중의소리
▲30일 민중당 김종훈 의원(울산 동구)이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 앞에서 열린 ‘현중 법인분할 주주총회 중단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민중당
이들은 분할 뒤 울산 현대중공업이 “빈껍데기이자 하청공장”이라고 말한다. 우선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하는데, 사측이 이를 내세워 노동자들을 구조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같은 이유로 임금 인상을 비롯해 처우개선 가능성도 낮아진다. 안재원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장은 “현대중공업이 가장 잘 나가던 2003~2014년 사이에도 임금은 거의 동결이었다. 7년차 노동자 급여까지 최저임금에 걸려 있었다”고 돌이켰다. 회사는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자 지난 21일 뒤늦게 단체협약 승계를 공언했지만, 노조는 말뿐이라 뒤집힐 공산이 크다고도 본다.
중간지주회사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등 4개의 조선회사를 관리하게 되면 각 자회사 노조의 협상력도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중간지주회사가 물량 배분 권한을 쥐는 탓에 자회사들이 서로 물량 경쟁에 내몰리고, 노조의 영향력은 작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또 총수일가가 최대주주인 현대중공업지주회사와 현대중공업 사이에 중간지주회사가 들어오면서, 노조가 총수일가에 직접 경영책임을 묻기도 한층 복잡해진다.
재벌 경영세습과 사익편취 우려, 조선업 생태계도 악화
전문가들은 법인분할과 대우조선 인수가 현대그룹 총수일가의 경영세습에 기여한다고도 지적한다. 여기엔 중간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의 역할이 크다. 먼저 현대중공업지주의 최대주주인 정몽준 부자가 재무구조가 좋아진 중간지주회사로부터 고배당의 혜택을 얻는다. 반면 중간지주회사를 방패막이로 세우면 현대중공업이 맞는 리스크에 대한 총수 일가의 책임은 약해진다.
중간지주회사가 생기면 ‘재벌 3세’ 일감몰아주기 규제도 피해갈 수 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장남 정기선이 대표로 있는 선박 수리업체 현대글로벌서비스 얘기다. 현재 글로벌서비스는 현대중공업지주회사의 자회사다. 현재 국회에 상정돼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르면 재벌 오너 일가가 지분 20% 이상을 보유한 기업의 자회사(지분 50% 이상)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는다. 한국조선해양이 중간지주회사로 들어서면 글로벌서비스는 현대중공업 지주회사의 자회사가 아닌 손자회사가 돼 규제에서 벗어나게 되고, 경영승계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은 본계약을 맺으며 “우리나라 대표 수출산업인 조선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함”이라고 밝혔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두 업체의 인수가 오히려 한국의 업계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말한다. 지금껏 현대·대우·삼성은 조선업계 빅3로 경쟁하면서 기술을 발전시켜왔다. 이번 인수로 국내 조선업 1‧2위인 두 업체가 한몸이 되면서 사실상 독점시장이 형성되고, 이는 세계 조선시장에서 한국의 가격과 기술경쟁력을 깎아먹고 중국의 경쟁사에 자리를 내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왼쪽),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 사진=민중의소리
국민연금·산업은행 지지 힘입어 인수 시도… 노조가 나선 이유
문제는 정부가 현대중공업의 분할과 대우조선 인수를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은행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를 주도했다. 산업은행은 공개경쟁입찰을 거치지 않고 사실상 현대중공업과 협상해 인수 계약을 맺었다. 그 방식으로는 현대중공업의 자금 부담이 가장 적은 법인분할과 주식 맞교환에 합의했다. 인수에 반대하는 이들이 “산업은행이 수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자한 회사 경영권을 헐값에 넘겼다”고 지적하는 대목이다.
국민연금은 현대중공업의 2대 주주(9.35%)다. 공적연기금으로서 환경·사회적 책임과 지배구조 등을 고려해 책임투자한다는 원칙(스튜어드십 코드) 아래 분할계획에 제동을 걸 수 있지만, 지난 29일 법인분할에 찬성 방침을 정했다. 이에 민주노총과 더불어민주당 울산시당, 민중당 등과 노동계와 정당들은 국민연금과 산업은행에 ‘재벌 특혜를 강행하며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한다’며 반발에 나섰다.
▲지난 28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가 현대중공업 물적분할에 반대하며 28일 전면 파업에 돌입해 31일 주주총회가 예정된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에서 점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민주노총과 16개 민주노총 지역본부, 6개 산별노조는 연이어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의 주총 저지 총파업에 연대 뜻을 밝혔다. 민주노총은 29일 성명을 내어 “현대중공업 자본은 끊임없이 재벌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와 경영세습을 시도하고, 정부는 공권력을 동원해 이를 지켜주고, 법원은 자본을 방해하면 엄청난 벌금을 물겠다고 선언했으며 극우 언론은 흉기가 된 신문을 휘둘러 폭력을 가하지만 노동자는 물러섬 없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30일부터 1박2일 동안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본사 앞과 주총장 한마음회관에서 주총 저지 투쟁을 벌인다./미디어오늘
30년전 ‘식칼 테러’ 재현하는 노동보도
전두환은 ‘1도1사’란 언론정책 하나만으로도 만고의 독재자다. 1개 시·도에 1개 신문만 있어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다. 덕분에 6공화국 초기 1988년 11월 언론청문회가 열렸다. 당시 청문회 화두는 ‘5공 언론 적폐 척결’이었다. 국민적 요구도 높았다.
그러나 1989년 봄 문익환 목사 방북을 계기로 지리멸렬하던 적폐 세력이 반공에 기대어 기지개를 폈다. 적폐 언론은 1989년 현대중공업 사태를 계기로 과거의 위세를 회복했다. 당시 언론의 노동보도는 기업주 의견을 충실하게 전달하고 공안당국의 협조자로 기능했다. 데스크의 장난이 돋보였다. 연조가 짧아 현장 취재에 능하지 않은 기자를 골라 울산에 보냈다. 현지 송고기사는 ‘참고용’일 뿐, 데스크 책상 위엔 현대그룹이 전해준 자료가 수북이 쌓였다. 현지 취재진들은 현대그룹이 제공한 호텔에 묵으면서 술과 음식을 접대 받았다.
언론은 민주노조운동을 노조 싸움으로 몰아갔고 파업의 파괴성과 폭력성만 부각시켜 공권력 투입의 정당성만 키웠다.
동아일보 1987년 8월27일 1면.
노동은 취재하기 어렵다. 노동만의 문제도 아니고 해당 산업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기업 보도자료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1987년 대우조선만 해도 기업주가 협상보다 언론을 이용해 신규 노조집행부를 고립시키는데 주력했고 모든 언론은 이를 충실히 따라 김우중 회장은 손쉽게 이겼다. 김 회장은 옥포관광호텔을 기자들에게 무료로 내놓고 숙식을 제공했다.
대우조선은 경찰 개입과 최루탄 난사에 따른 이석규씨 죽음이란 악재에도 언론 덕에 승기를 잡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거제 현장에서 노사 중재에 나섰지만 기업주를 대변하는 언론 앞에 무력했다. 공안권력은 이 과정에서 성가시게 구는 노무현 변호사를 구속시키기까지 했다. 기자들 중 일부는 농성장에선 노조간부를 회유하고 밖에선 기관원과 만나는 낯뜨거운 장면도 연출했다. 협상타결 뒤 호텔을 떠나는 기자들에겐 대우의 ‘봉투’가 하나씩 건네졌다.
1988년 겨울 울산 현대중공업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중공업도 노조와 대화보다 언론플레이에 열중했다. 현대중공업은 기자들에게 다이아몬드호텔을 내주고 무료 숙식을 제공했다. 덕분에 신문 헤드라인엔 ‘장기 노사분규, 산업마비’ 같은 제목이 걸렸다. 1989년 1월8일 괴한이 석남사와 해고노동자 사무실을 습격해 식칼테러를 벌였는데도 보도한 곳은 한겨레신문 정도이거나 단신 처리했다. 현대중공업 서태수 노조위원장은 1988년 12월18일 조합원 의견도 묻지 않고 회사와 직권조인하고 잠적했다. 노조는 잠적한 위원장을 대신해 이원건 부위원장을 위원장 권한대행으로 뽑고 울산시에 노조 임원변경신고서를 제출했지만 시청은 이를 반려해 버렸다. 바로 옆 미포조선에선 노조설립신고서를 탈취하고, 경찰이 대낮에 현대중공업 직원 기숙사에 난입해 최루탄을 무차별 난사하면서 단순가담자까지 650명을 연행했지만 언론은 침묵했다.
1989년 2월21일. 현대중공업은 파업중이던 조합원들에게 총무부직원과 경비대를 동원해 식칼로 등과 옆구리를 마구 찔러 피바다로 만든 테러를 자행했다. 일명 ‘식칼테러’를 당한 진아무개씨는 중태에 빠졌고 박아무개씨 등 여러명도 중상을 입고 해성병원(현 울산대학교병원)으로 긴급호송돼 수개월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사진=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홈페이지
대신 기자들은 호텔 방에 앉아 직접 현장을 확인취재한 것처럼 회사가 불러 주는대로 출근율을 키웠다. 52%, 62%, 82%, 92% 마치 회사의 홍보실처럼 최선을 다했다.
정확히 30년이 지나 다시 현대중공업 노사갈등이 세간의 도마 위에 올랐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몇 년 동안 조선업 불황을 틈타 고졸 정규직 여직원과 간부들을 구조조정했다. 현장직원들은 순환 휴직시켰다. 급기야 노조의 반발에도 4개 회사로 분할하는데도 성공했다. 이번엔 대우조선을 인수하겠다고 나서면서 31일 주주총회에선 법인 분할도 추진한다. 직원들이 고용불안을 느끼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그 당연한 목소리가 우리 언론에겐 잘 들리지 않는다.
[미디어오늘 1202호 사설]
하얀민들레(진미령) 1980
'세상과 어울리기 > 시사만평-주간 쟁점'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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