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면 ‘벼락거지’ 된다”…언론의 무심한 받아쓰기에 주거약자는 두 번 운다
ㆍ투자할 여력 있는 수도권 중산층 대변
ㆍ임대차 3법 보도, 갈등 부추기기 다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떠돌던 ‘벼락거지’라는 말은 지난해 11월부터 기사에 인용됐다. 짧은 시간에 파급효과는 컸다. 각종 기사와 다큐멘터리의 소재가 됐다. 벼락거지라는 표현은 자신이 갑작스레 ‘거지’가 됐다는 식으로 쓰인다. 그러나 이는 집값이나 보유주식의 액면 가치가 폭락했다거나 사기를 당해 자산을 잃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주식·부동산으로 돈을 많이 버는 동안 자신의 소득과 자산은 늘지 않아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꼈다는 뜻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수도권 중산층이 느낄 법한 이야기를 언론이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위원은 “한국 사회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계층은 수도권 혹은 대도시에 거주하는 고학력 자가소유자인데 정치권뿐 아니라 언론도 그들을 대변하고 가시화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언론이 ‘자가 소유’나 ‘개발 이득’ 욕망을 부추기고 주거 약자보다 주택 소유자 입장을 대변한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해 ‘6·17 부동산 대책’과 ‘7월30일 임대차 3법 국회 본회의 통과’와 관련된 7개 일간지의 보도 309건을 분석했다.
민언련은 “정부와 여당 의원이 무능한 가운데 독주하고 있다는 ‘당정 무능론’ 그리고 ‘시장경제 파괴론’과 ‘갈등 부추기기’ 프레이밍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시장경제 파괴론은 ‘6·17 대책과 임대차 3법이 시장경제를 파괴하고 기존 부동산시장 경제를 흔들었다’는 식 내용이고, ‘갈등 부추기기’는 부동산대책이 세입자에게 불리할 것이며 주거비·세금이 올라 서민들 부담이 커지고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돌리면서 전셋값이 올라가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은 지난해 말 민언련 기고문에 “전세 임대인들의 월세 전환은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리란 예측, 전세 매물이 줄어든 것은 다주택자들이 세금을 피해 자가를 가족에게 증여한 것과도 관련돼있다”며 “세입자들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이용해 거주 기간 2년을 늘려 전세 거래가 줄어든 측면도 있는데, 이런 요인은 다루지 않고 임대차 3법 탓만 하는 언론의 태도는 곡학아세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박동수 서울세입자협회 대표는 “법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세입자들의 권리가 침해받는 사각지대가 생겼는데 이 점은 잘 다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윤석열 "수사·기소 분리? 민주주의 허울 쓴 헌법 파괴"
"중수청, 검찰 폐지 시도…힘 있는 세력에게 치외법권 제공하는 것"
여권이 추진 중인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신설에 대해 윤석열 검찰총장이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법치를 말살하는 것이며, 헌법정신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공개 반발했다. "직을 걸어 막을 수 있는 일이라면 100번이라도 걸겠다"고도 했다.
윤 총장은 2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수청을 "검찰을 흔드는 정도가 아니라 폐지하려는 시도"로 규정하며 "힘 있는 세력들에게 치외법권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갖은 압력에도 검찰이 굽히지 않으니 칼을 빼앗고 쫓아내려 하고, 원칙대로 뚜벅뚜벅 길을 걸으니 아예 포크레인을 끌어와 길을 파내려 하는 격"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 (여권 내에서) 추진되는 입법은 검찰 해체"라며 "입법이 이뤄지면 치외법권의 영역은 확대될 것이며, 보통 시민들은 크게 위축되고 자유와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면 사회적 강자와 기득권의 반칙 행위에 단호히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윤 총장이 여권이 주장하는 검찰 개혁론에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나는 어떤 일을 맡든 늘 직을 걸고 해 왔지, 직을 위해 타협한 적은 없다"면서 "내가 검찰주의자라서, 검찰이 무언가를 독점해야 한다고 여겨서 수사·기소 분리와 직접수사권 폐지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중수청 신설은 검경 수사권조정 이후 검찰에 남겨진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산업·대형참사) 직접 수사권마저 중수청으로 넘겨 검찰을 영장청구와 기소권만 담당하는 기관으로 축소시키자는 게 핵심이다. 소위 '검찰 수사권의 완전한 박탈(검수완박)' 차원에서 황운하 의원 등 강경론자들이 발의를 준비 중이다.
윤 총장은 민주당의 이 같은 기류에 대해 "종전까지는 검찰에 박수를 쳐 왔는데, 근자의 일로 반감을 가졌다고 한다면야 내가 할 말이 없다"며 "법정에서 살아 있는 권력과 맞서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졸속 입법이 나라를 얼마나 혼란에 빠뜨리는지 모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법 선진국 어디에도 검찰을 해체해 수사를 못하게 하는 입법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또한 국정농단 사건과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 사건 등을 언급하며 "이 사건들은 수사 따로 기소 따로 재판 따로였다면 절대 성공하지 못했다"며 수사·기소 분리는 검찰 개혁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했다.
윤 총장은 이어 국회와의 접촉면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선 "검찰이 밉고 검찰총장이 미워서 추진되는 일을 무슨 재주로 대응하겠나"며 "검찰이 필요하다면 국회에 가서 설명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해서 될 일이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검찰에 대한 부정적 시선에 대해선 "검찰에게 그동안 과오도 있었지만 진보를 표방하는 정부나 보수를 표방하는 정부를 가리지 않고 '잘못을 저지르면 힘 있는 자도 처벌 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줬다"면서 "진보를 표방한 정권의 권력자나 부패범죄를 수사하면 따라서 그것이 보수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임경구 기자 프레시안
미국이 3·1 운동을 왜곡, 폄하한 이유는?
[기고] 1882년 서울 첫 공관 개설 이후 일제의 조선침략 직간접 방조
3·1절, 광복절을 맞으면 매년 새롭게 발굴하거나 결정한 독립운동 관련 사실 등이 공개되고 있는데 올해 3·1절 102주년에는 1919년 3월1일 일어난 독립만세 운동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미국 AP통신 임시특파원이 살았던 서울 집이 전시관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이 공개되었다.
서울시는 최근 미국 AP통신 임시특파원 앨버트 W. 테일러(1875∼1948)가 서울에 짓고 살았던 가옥 ‘딜쿠샤’(Dilkusha)의 원형을 복원해 3.1절에 개방한다고 밝히면서 사전 언론 공개 행사에는 테일러의 손녀 제니퍼 테일러가 참석했다고 밝혔다(연합뉴스 2021년 2월25일). 앨버트 테일러는 1896년 조선에 들어온 광산 사업가였는데 AP통신 특파원으로도 활동하면서 3·1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을 해외에 보도했다.
그러면 3·1 독립만세 운동에 대해 미국 정부는 어떤 입장을 취했을까. 이는 1919년 3월14일 미국무부 발표한 성명서에 나와 있는데 3·1운동을 왜곡 폄하하는 내용이었다. 미국무부는 3·1운동을 조선인들이 언론 자유와 기타 불만 사항을 시정해 달라며 소요를 일으켰다고 진실을 외면하고 조선인을 깎아내리는 공식 성명서를 발표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이다(뉴시스2014년 2월27일).
--3월12일 서울을 비롯한 지방에서 사실상 시위가 중단됐으며 공식적으로 시위 참여자의 15%만이 기독교 신자로 파악됐다. 시위 지도자들은 새로운 정치적 종교계의 사람들이며 외국 선교사들은 독립 운동에 관계되지 않았다는 전문을 국무부는 받았다. 시위의 목적은 언론의 자유와 청원권, 학교에서 한국어 학습, 기타 불만 사항을 시정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 국무부의 성명서는 불과 나흘 만에 심각하게 왜곡하고 진실을 외면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뉴욕 타임스는 1919년 3월18일 헤드라인을 ‘미선교단 한국의 평화적 독립 운동 설명’, 부제를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잔인성 고발’ ‘한국 전역에서 공포정치(Reign of Terror) 자행’이라고 단 기사를 올렸다.
미 국무부가 3·1 운동에 대해 조선민중이 독립을 원한다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넣지 않고 부수적이거나 부정적인 내용을 공식 발표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그 이유는 미국 정부의 비밀 자료로 분류되었다가 공개된 미 정부 극비서류에서 확인된다. 그것은 미국과 일본이 1905년 맺은 ‘미국이 일본의 한국 지배를 승인한다'는 내용의 ‘가쓰라·태프트 비밀협약’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는 3·1 운동이 일어나자 서울 주재 공관에 미국이 만세운동을 지지하는 인상을 일본에 주지 말도록 당부하는 전문을 보내기도 했다.
미국이 3·1 운동에 대해 취했던 태도는 그 뿌리가 ‘가쓰라·태프트 비밀협약’ 이전 미국이 서울에 공관을 최초로 설치한 1882 년 이후 20여 년간 조선과 일본 간에 발생한 주요 정치적 사건 사고에서 미국이 취했던 소극적이고 방관적인 태도에서 확인이 된다.
이런 사실은 미국의 역사학자 John Edward Wilz가 1992년 미 공군사관학교 HARMON MEMORIAL LECTURES 프로그램에서 ‘1850~1950년까지 미국의 한국에 대한 정책’이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미국 역대 정부 비밀문서를 공개하면서 밝혀졌다. 미국 콜로라도주 콜로라도스프링스에 소재하는 공군사관학교에서 운영하는 HARMON MEMORIAL LECTURES 프로그램은 매년 군사학에 저명한 학자나 전문가를 초빙해 강연을 하고 그 내용은 전 세계 도서관이나 관련 학자에게 배포된다.
이 글은 John Edward Wilz의 강연 내용과 위키피디아 등의 자료 등을 종합한 것으로 조미수교가 이뤄진 1882년부터 2차 대전 종전이후 1950년대 초년까지의 미국의 대조선 및 대한 정책을 정리했다.
미 정부, 서울주재 공사에게 민비 시해 사건 중립 지키라 지시
미국은 1882년 조미 수호통상조약에 따라 조선과의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당시 청나라는 일본의 영향력 확대를 막고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조선과 수교하도록 주선했다. 미 슈펠트 제독은 조선의 종주국인 청나라에 먼저 간 뒤 미군 전함 스와타라 호를 타고 중국 산둥성의 옌타이 항을 출발해 황해를 거쳐 1882년 5월 22일 제물포항에 도착했다. 그 날 제물포 바닷가의 임시장막에서 조선과 미국의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이 열려 조선의 전권대사 신헌과 미국전권대표인 로버트 슈펠트 해군제독이 마주 앉았다.
그러나 참으로 해괴한 광경이 벌어졌다. 조약 문서에 도장은 신헌이 찍었지만 조약의 교섭권을 행사한 쪽은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이었다. 교섭과정에서도 청나라 이홍장은 ‘조선은 청나라의 속방’이라는 조문을 조약문에 삽입하려 했고 조선조정은 이를 적극 찬동했다. 조선 조정은 일본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본 것인데 자주에 대한 기본 상식이 없는 한심한 모습이었다. 조선 조정은 미국과 통상조약 체결 이후 미국이 조선을 다른 강대국의 간섭과 압박으로부터 보호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는데 이 또한 어리석은 태도였다.
조선은 미국과 통상 조약을 체결한 뒤 영국, 독일, 러시아 등과 통상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조약의 내용은 불평등한 내용으로 이들 외국에게 치외 법권, 최혜국 대우를 제공했다. 이를 통해 조선에 대한 열강의 침입이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일본이 1894년 7월~1895년 4월 벌어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뒤 조선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한 뒤 미국은 엄격한 중립을 유지했다. 일본을 견제하거나 한반도 침략을 제어할 어떤 의지나 행동도 보여주지 않았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의 자객들이 명성황후의 침소인 경복궁 옥호루로 쳐들어가 황후를 시해하고 시신을 불태운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공관이 미국 공사에게 일본에게 고종황제를 보호하고 그 지위를 유지하도록 촉구하자고 제의했을 때 미국무부는 그에 반대하면서 중립을 지키라고 지시했다. 당시 리처드 올네이 국무장관은 서울 공관에 전문을 보내 엄하게 질책했다.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은 공사의 업무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고 미 국법에 따르면 불법이다. 공사는 자신의 업무가 미국 시민과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타국의 내정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민비가 시해된 수개월 뒤인 1896년 2월11일 새벽, 고종은 극비리에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 아관파천을 계기로 친러파가 정권을 장악했고 러시아는 조선에 대한 접근 책을 강하게 펴면서 고종과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고종은 러시아를 움직여 일본을 견제하고 싶어 했다. 고종이 1897년 황제에 즉위하자 미 국무장관 존 셔먼은 서울의 미국 공사에게 중립을 지키라는 전문을 다시 발송했다.
“공사는 러시아와 일본 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것에 유의해 처신에 신중을 기하라. 공사는 어떤 경우에도 충고나 제안 또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말고 최대한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
고종황제는 1899년 미국에게 서구 세력이 조선의 자주권을 보장하도록 주선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윌리엄 매킨리 미 대통령과 존 헤이 국무장관은 서울의 미국 공사 호레이스 알랜에게 고종의 요청을 거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1900년 일본주재 조선 공사가 동경의 미국 공사 알프레드 버크에게 미국이 서구 열강들이 조선의 독립과 중립을 보장하는데 앞장서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버크 공사의 답변은 냉담했고 종래의 내용을 반복했을 뿐이다.
“그런 요구는 워싱턴에 주재하는 조선 공사가 미국 정부에 직접 보내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존 헤이 국무장관의 승인을 받은 답변이다.”
영국이 1902년 1월 영일동맹을 통해 일본에게 조선에 대한 특권을 인정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 만주에서 러시아의 단독지배를 인정하지 않고, 제국주의 열강과의 협조 하에 조선 지배뿐 아니라 중국 분할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일본과 영국은 교섭을 거쳐 1902년 1월 30일 영일동맹을 체결했다. 이에 대항해 러시아는 3월에 러시아-프랑스 공동선언을 발표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조선이 일본의 침략으로 독립을 상실할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챙기는 조치를 취하는 약삭빠른 태도를 드러냈다. 국무부가 1902년 11월 서울 주재 미 공사에게 보낸 공문에 그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조선과 1882년 맺은 통상조약의 개정을 위한 회담을 개시해 미국에 대한 통상권을 확대하라.”
그러나 조선은 이를 거부했다.
미국은 1903년 조선에게 중국 동북부에 있는 단둥 항의 부근에 있는 압록강의 의주항을 미국에게 개항할 것을 제안했다. 영국과 일본, 러시아는 각각 다른 항구의 개항을 요구했다. 미국은 조선이 거부했지만 계속 요구를 굽히지 않다가 러일전쟁이 발생하면서 교섭은 더 진행되지 못했다.
1904년 `1905년 동안 만주와 한반도에서 이권을 둘러싸고 일어난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기 전 1905년 7월 일본의 총리 가쓰라 다로와 미국의 육군장관 태프트는 '미국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승인한다'는 내용의 ‘가쓰라·태프트 비밀협약’을 맺었다. 이어 그해 8월12일 일본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외교적으로 보장하는 제2차 영일동맹을 체결했다. 일본은 여러 제국주의 열강의 동의를 얻어 한국의 식민지화를 노골적으로 추진했다.
1905년 9월5일 러일전쟁이 끝나면서 러시아는 조선에서 일본이 최상의 이익을 보장받는데 동의했다. 1905년 11월17일 조선은 을사늑약을 강요받아 일본의 보호국이 되고 말았다. 미국무부는 그로부터 일주일 뒤 서울 주재 공사에게 서울의 미영사관을 폐쇄하고 한국에서 철수하라고 지시했다. 서울의 미영사관은 11월28일 폐쇄하고 모든 영사업무는 동경에서 대행하라고 지시했다. 워싱턴 주재 조선 공사관은 1905년 12월16일 폐쇄됐다.
일본은 을사늑약을 체결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 실질적으로 주권을 빼앗고 내정 장악을 위해 통감부를 설치해 식민지에 준하는 통치와 수탈을 자행했다. 미국 시어도어 루스벨트 26대 대통령은 이에 대해 전혀 반대하지 않았다.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는 노일전쟁이 나기 4년 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바 있었다.
“나는 일본이 조선을 정복하는 것을 보고 싶다. 그래야 일본이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보면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미 대통령, 을사늑약 4개 월 전 ‘가쓰라·태프트 밀약’ 체결 지시
미국은 당시 다른 열강에 비해 후발 제국주의 국가로 강대국과의 연대를 통해 이익을 챙기려는 외교 전략에 의존했으며, 일본이 동아시아 최강자로 떠오르자 일본을 주목했다. 미국은 일본과 손을 잡는 것이 동아시아에서 자국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방법으로 판단한 것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자신의 견해에 따라 을사늑약이 만들어지기 4개 월 전인 1905년 7월 일본과 필리핀, 조선을 각각 식민지로 삼는 조건에 합의하 비밀 각서를 만들도록 각료에게 지시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그것이다.
▲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러일 전쟁 직후 미국의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과 일본 제국의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상호 승인하는 문제를 놓고 1905년 7월29일 당시 미국 육군 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일본 제국 내각총리대신 가쓰라 다로가 도쿄에서 회담한 내용을 담고 있는 대화 기록이다. 사진=위키백과
이 밀약에 이뤄진 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을 구체적 조치인 을사늑약을 조선에 강요한 것이다. 일본의 조선 침략 과정에서 미국은 일본과 한통속이 된 제국주의적 야욕을 채우는 짓을 한 것이다. 미국은 가쓰라-태프트 밀약 이후 3·1운동에 한민족이 일본의 엄청난 탄압을 받는 것을 철저히 외면하면서 일본 편을 들었다. 미국은 1945년 해방 이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맺을 때 이 밀약을 감안해 한반도, 특히 독도 문제 등을 일본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만들어준 것으로 추정된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맺어진 뒤 일본은 같은 해 8월 제2차 영일동맹과 9월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한반도 지배권을 미국 등 세계열강들로부터 인정받게 되었다. 이 조약으로 미국·영국뿐만 아니라 패전국 러시아도 일본의 조선 지배를 승인함으로써 일제의 한국 지배가 국제적으로 확인되었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중재로 미국 뉴햄프셔 주의 군항도시 포츠머스에서 1905년 8월부터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강화회의가 열릴 즈음 고종황제가 워싱턴에 특사를 보내 루스벨트에게 아래와 같이 간청했다.
“조선과 미국이 1882년 5월 제물포에서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 제 1조가 ‘두 나라가 제 3국으로부터 불공경모(공정하지 못한 대우를 받거나 모욕을 받았을 때)한 일이 있을 때 필수상조(필히 서로를 돕는다)를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늘날 일본이 조선을 자국의 보호국으로 만들려 하니 조미수호통상조약 제 1조에 근거해 일본을 제어해 달라.”
루스벨트는 조선 황제의 요구를 접수하기를 거절했을 뿐 아니라 일본이 을사늑약을 체결한 이후 미국에게 서울에 주재하던 영사관을 철수를 요구하자 그에 응했다. 미국이 앞장서 공관을 철수하자 다른 열강들도 뒤따라 동일한 조치를 취했다.
당시 서울 주재 미국 영사관 부영사 윌리엄 스트레이트는 서울의 외국 공관 철수 모습을 신랄하게 묘사했다.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한 뒤 외국 공관의 외교관들이 서울을 빠져나가는 모습은 마치 침몰하는 배에서 쥐들이 도망가는 모습과 흡사했다.”
또한 미국의 유명한 논객이며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하던 조지 케난은 당시 조선에 대해 쓴 기행문에서 고종황제를 혹평했다.
“그는 어린애처럼 철이 없고 가부장적인 유목민 보어인처럼 완강하며, 무식하고 우쭐대기만 하는 인물이다.”
케난의 기행문을 읽고 난 루스벨트는 “당신의 그런 통찰력은 훌륭하다”라는 편지를 보냈다.
루스벨트와 미국 정부가 1901년부터 일본의 한반도 강점을 묵인했다는 것은 1900년대 초 한·중·일에서 근무했던 미국 공사가 루스벨트 대통령 및 국무장관과 한국 정책을 협의한 편지와 문서, 보도 문건 등에서 드러났다.
“일본이 1904년 러·일 전쟁을 앞두고 루스벨트 대통령 주선으로 미·영의 대기업들로부터 전비 차관을 받았다. 당시 루즈벨트는 앞장서서 앤드류 카네기의 철강회사, 제이피 모건 등 미 대기업을 통해 일본의 전쟁비용 약 7억 엔(현재 14조원 상당)을 조달했다. 미국은 1905년 러·일 전쟁 처리를 위한 포츠머스 회담에서 조선과 중국을 배제하는 전략을 썼다.”
미국과 일본은 1908년 조선에서의 상표와 저작권 보호 협정을 맺고 조선 거주 미국 시민은 일본 법원의 관할에 속한다는 것에 동의했다. 미국과 일본은 1908년 조선에서의 상표와 저작권 보호 협정을 맺고 조선 거주 미국 시민은 일본 법원의 관할에 속한다는 것에 동의했다.
미국의 일본 조선 강제 병합 승인과 3·1 만세 운동 발생
일본은 1910년 8월 조선을 강제 병합해 식민지로 만들었고 그 해 9월 미국은 이를 승인했다. 일제는 1910년 국권을 강탈한 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 근대적 기본권을 박탈하고 폭압적인 무단통치를 실시했다. 또한 조선민족 고유의 문화를 파괴하고 조선인들을 일본인들에게 복종하는 충실한 피지배자로 만들려 했다. 일제는 1910년부터 1918년 사이에 진행한 토지 조사 사업으로 농민들의 토지를 강탈하는 등 경제적 폭압을 일삼아, 한국 사회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불만과 저항이 거세졌다.
1918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밝힌 민족자결주의와 러시아 10월 혁명 성공 후 레닌이 발표한 ‘민족 자결 원칙’, 만주 지린에서 독립 운동가들이 발표한 대한독립선언서(무오독립 선언)에 이어 1919년 도쿄에서 일본 유학생들이 2·8 독립 선언서를 발표해 독립운동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그 결과 1919년 3월 1일 한일병합조약의 무효와 독립을 선언하는 비폭력 운동인 3·1 만세 운동 또는 3·1 혁명이 일어났다.
미 국무부는 3·1 운동이 발생하자 그 다음 달인 4월 일본주재 미 대사에게 "서울주재 미 영사에게 조선 독립 운동가들이 독립운동을 하는 것을 미국이 도우리라는 믿음을 주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할 것과 일본 정부당국이 조선의 독립운동에 미국이 동조한다고 의심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약 3개월가량 전국적으로 발생한 독립운동을 제압하기 위해 일제는 화성 제암리 사건과 같은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고 유관순 열사 등 숱한 이가 이 과정에서 순국했다.
조선총독부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집회인수가 106만여 명, 사망자가 7509명, 구속된 사람이 4만7000여 명이었다. 조선총독부는 3·1 운동을 계기로 군사, 경찰을 앞세운 강경탄압정책에서 민족분열책인 일명 문화통치로 정책 기조를 바꿔, 조선어로 된 일간신문 발생을 허가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또 다른 자료에 의하면 3.1운동은 집회회수 1,542회, 참가인원수 202만3,089명, 사망자수 7,509명, 부상자 1만5,961명, 검거자 5만2,770명, 불탄 교회 47개소, 학교 2개교, 민가 715채나 되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투쟁했던 거대한 독립운동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울려 퍼진 피맺힌 외침은 중국의 5·4 운동, 간디의 독립운동에도 자극을 주었다.
▲ 3·1 운동 당시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 시위. 사진=나무위키
조선의 독립은 외면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한편 윌슨 대통령은 조선의 독립만세 운동에 대해 지지하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이는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의해 일본의 조선 점령에 동의했던 것을 의식한 행위로 보인다. 당시 미국 국무부의 조치에서 일본의 조선인 만세운동에 대한 탄압에 눈을 감고 간접적으로 동조했던 점이 확인된다.
미 윌슨 대통령은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했지만 당시 국제적인 지배구조에 문제를 제기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특히 당시 일본이 전승국이었고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여서 조선 독립 문제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윌슨은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세계의 약소민족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자 그 적용 범위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및 터키에 속했던 주민과 영토, 그리고 독일제국의 지배 아래 있던 식민지로 국한한다고 수정했다.
윌슨은 최종적으로 강화회의에 제출할 국제연맹 규약에서 민족자결주의라는 용어를 아예 삭제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주장을 본 조선인들은 그 속셈을 모르고 큰 기대를 했고 오늘날에도 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한심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얼빠진 역사왜곡은 당시 상황을 정확히 살펴 시급해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3·1 운동은 비록 제국주의 세력이 외면하고 침묵했지만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승전국 식민지에서 일어난 최초의 반제국주의 운동이면서 민족적인 항일 운동으로 조선 민족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린 역사적 사건이었다. 3·1 운동을 계기로 다음 달인 1919년 4월11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미국 정부는 1920년 이후 1930년대 말까지 일본의 조선 식민지 지배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표한 적이 없다. 1941년 12월7일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하면서 미국과 태평양전쟁에 돌입했다. 이승만이 임시정부 수반을 하면서 미국 정부에 임시정부를 조선의 합법적 정부로 인정해 달라는 청원을 했지만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미국, 영국, 중국 지도자들이 만나 조선을 적절한 조치를 통해 독립하도록 할 것을 선언했고 소련의 스탈린 수상도 이에 동의했다. 당시 열강 지도자들의 마음속에서는 조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것은 조선인들이 희망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것은 역시 제국주의적 국가이지주의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전쟁이 끝나면 승전국들이 조선에 대해 조선인이 독립할 자질을 갖췄다고 판단될 때까지 수년 또는 더 긴 기간 동안 신탁통치를 한다.’로 요약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 독립 운동가들은 일본이 패퇴하면 즉시 독립정부가 수립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 소련 견제 전략 위해 친일파 집권세력으로 등용
1945년 8월15일 일본이 항복하면서 태평양 전쟁은 끝났다. 원자탄 두 발에 일본은 갑작스럽고 극적인 모습으로 무릎을 꿇었다. 소련은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기 일주일 전에 만주에서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면서 전쟁을 개시했다. 소련은 파죽지세로 일본군을 무찔렀으며 그 기세는 미국이 당도하기 전에 한반도 전역을 점령하고도 남았다. 미국은 오키나와에서 한반도로 군대를 이동하고 있어서 아무리 서둘러도 소련보다 앞설 수는 없었다. 그러나 미국은 원자탄이라는 신형 무기가 일본에서 가공할 파괴력을 보인 것을 소련에게 과시하면서 제안을 했다.
“한반도의 절반인 38도선을 경계로 소련과 미국이 분할 점령하자.”
소련은 미국의 원자탄에 기가 꺾여 미국의 제안을 수락했다.
미국은 1945년 일본 항복 이후 한반도 남쪽에 군대를 진주시키고 발표한 맥아더 포고문 제1호에서 미군은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 임을 분명히 밝히고 북위 38도선 이북에 들어온 소련군과 대치했다. 미군의 군사통치 체제인 미군정은 1919년 중국 상하이에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해방직후 독립정권을 수립하기 위해서 선포된 여운형 중심의 인민공화국 등 모든 정치단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미군정은 일제의 통치기구와 친일파 행정관리들을 접수해 군정을 선포한 뒤 일본총독부 소속 일본 간부들을 미군정의 고문으로 위촉하고 과장급 아래의 일본인 실무자들은 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 근무를 하게 했다. 미군정은 이어 한국인으로 일제 치하에서 공공기관에 근무한 사람들을 원래 자리로 복귀시켰다.
이는 맥아더가 일본에서 전범세력의 일부를 미군정체제에서 등용한 것과 동일한 조치였다. 맥아더는 일본과 남한을 소련의 동북아 진출을 저지할 교두보로 만들기 위한 미국 정부의 전략을 수행한 것이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친일파가 해방정국의 지배세력으로 등장하게 되고 결국 일제 잔재를 청산치 못하게 만든 가장 핵심적 요인의 하나로 지적된다.
미국은 일제가 항복한 이후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도 문제를 제외함으로써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근거를 제공했다. 종전 후 남한에서 취한 미국의 태도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는 미국이 점령군으로 진주하는 것과 같은 일련의 태도가 설명되지 않는다. 미국은 그러나 오늘날까지 이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다.
미국은 가쓰라-태프트 밀약 이후 한반도를 일제의 식민지로 여기면서 조선의 독립을 외면하는 태도를 취했는데, 그런 태도는 일본의 항복 이후 취해진 남한에 대한 미군정의 조치에서도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그런 태도는 이승만이 친일세력과 야합해 집권하는데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제 미 청산과 이승만 이후 독재의 뿌리가 가쓰라·테프트 밀약에서 비롯된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는 이유다.
미국은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한국군 군작전지휘권을 이양 받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조인된 1953년 이후 미군이 슈퍼 갑으로 공인되면서 남한의 군사적 주권을 장악했다. 남한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거의 절대적 수준이 되면서 미군정 기간에 발생한 제주 4.3, 한국전쟁 기간 동안 미군사령관의 지휘를 받은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등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치권이나 언론이 미국이나 미군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 해석하지 않고 친미 일색인 관행이 유지되는 것은 국가보안법의 뒷받침이 강하기 때문이다./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 / 미디어오늘
땅 산 직원 상당수 ‘보상업무’ 담당…퇴직자와 공동 매입 정황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가 2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정부의 광명·시흥 신도시 주택 공급 계획 발표를 앞두고 해당 지역의 수천평 규모 토지를 사전매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가족 동원 지분 나눠 사들여…신도시 발표 후 나무심기
대부분이 농지로 개발 땐 수용 보상금·대토보상 받아
“무작위로 조사한 게 이 정도…타 신도시 전수조사 필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가 2일 공개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토지 사전 매입 정황은 공사 직원들이 업무상 얻은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단체들이 2018~2020년 광명·시흥 지역에서 거래된 토지를 무작위로 선정해 ‘토지 명의자’와 ‘LH 직원 이름’을 대조한 결과 LH 직원 14명과 이들의 가족들이 100억원 상당을 투자해 2만3028㎡(약 7000평) 규모의 토지를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로 다른 시기 2개의 필지를 사들이거나 퇴직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과 공동으로 땅을 취득한 사례도 있었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서성민 변호사는 “무작위로 몇 필지를 선정해 토지대장과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은 명의자 이름과 LH 직원 조회를 매칭한 결과”라며 “만일 1명의 명의자가 일치했다면 단순한 동명이인으로 볼 가능성이 있으나 특정 지역본부 직원들이 특정 토지의 공동 소유자로 돼 있었다”고 말했다.
의혹이 제기된 직원들 상당수는 LH의 보상업무 담당자다. 이들이 매입한 토지는 대부분 농지로, 개발이 시작되면 수용 보상금이나 대토보상을 받을 수 있다. 대토보상은 소유자가 원하는 경우 사업시행자가 사업계획 등을 고려해 공익사업으로 조성한 토지로 보상하는 제도다. LH의 보상 규정을 보면 1000㎡를 가진 지분권자는 대토보상 기준에 들어간다. 일부 필지는 사자마자 ‘쪼개기’를 통해 지분권자들이 1000㎡ 이상씩 나눠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LH 직원들이 매입한 농지가 지난달 신도시 대상으로 발표되자 대대적인 나무심기가 벌어진 정황도 포착됐다. 민변의 김남근 변호사는 “농지를 매입하려면 영농계획서를 내야 하는데 LH 직원들이 농사를 병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LH 관계자는 “직원 14명에 대해 조사한 결과 실제 우리 직원은 12명으로 확인됐다”며 “사안이 중대해 이들에 대해 직무 배제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등이 밝힌 14명과 차이가 나는 이유에 대해 LH 측은 “2명은 동명이인”이라고 했다.
향후 광명·시흥뿐 아니라 3기 신도시 전체를 상대로 한 정부 차원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이미 파악된 것 외에 광명·시흥 신도시 내 다른 필지, 다른 3기 신도시 대상지, 본인 명의 외에 가족이나 지인의 명의를 동원한 경우 등으로 조사 범위를 확대하면 그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며 “해당 지구뿐만 아니라 3기 신도시 전체에서 LH 등 공공기관의 임직원과 국토교통부 공무원 등의 사전 투기 행위가 얼마나 발생했는지 공익감사를 통해 밝혀야 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고 주장했다.
투기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당사자인 LH 직원들은 공직자윤리법이나 부패방지법 위반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이강훈 변호사는 “LH 직원들의 행위는 부패방지법상 7년 이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업무상 비밀이용죄에 해당된다”며 “철저한 감사를 통해 사전 투기 경위를 조사하는 것은 물론 국토부와 LH 차원에서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원인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광명·시흥지구는 그간 유력한 신도시 후보지로 꼽혀온 만큼 토지 매입에 미공개 정보가 활용됐는지에 대해서는 조사가 필요하다./박채영·김희진 기자 c0c0@kyunghyang.com
형사사법기관 신뢰도 공수처 46%, 검찰은?
[미디어오늘·리서치뷰] 4대 형사사법기관 신뢰도, 공수처 46%, 법원 42%, 검찰 37%, 경찰 31%
4대 형사사법기관 중 이번 정권 들어 출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신뢰도가 높은 편으로 나타났다.
미디어오늘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가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1일 5일간 실시한 정기조사 결과 4대 형사사법기관 신뢰도는 ‘공수처(46%) vs 법원(42%) vs 검찰(37%) vs 경찰(31%)’ 순으로 공수처가 오차범위 내에서 1위에 올랐다. 이는 새로 출범한 공수처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 4대 형사사법기관 신뢰도. 자료=리서치뷰
기관별로 공수처(신뢰 46% vs 불신 46%)는 신뢰와 불신 응답률이 같았고, 법원(42% vs 54%), 검찰(37% vs 57%), 경찰(31% vs 65%)은 불신이 신뢰보다 각각 1.3배, 1.5배, 2.1배 높았다.
성향별로 보수층에서는 검찰(신뢰 64% vs 불신 32%), 법원(53% vs 47%), 경찰(32% vs 67%), 공수처(31% vs 63%) 순으로 검찰 신뢰도가 가장 높고 공수처가 최하위를 기록했다.
반면 진보층에서는 공수처(신뢰 64% vs 불신 28%), 법원(36% vs 59%), 경찰(34% vs 62%), 검찰(15% vs 81%) 순으로 공수처 신뢰도가 가장 높고 검찰이 가장 낮아 또렷한 차이를 보였다./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여성의 몸은 왜 항상 뒷전인가
ㆍ의학 연구에서도 부차적 취급… 여성용품은 안전관리 ‘소외’
어느 날 갑자기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이라는 책에서 이런 식의 ‘뒤집기’를 제안했다. “남자들은 자기가 얼마나 오래 월경을 하며, 생리량이 얼마나 많은지 자랑하며 떠들어댈 것이다. (중략) 의회는 국립월경불순연구소에 연구비를 지원한다. 의사들은 심장마비보다는 생리통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한다. 연방정부가 생리대를 무료로 배포한다.” 인류가 남성의 몸을 다루듯 여성의 몸을 대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를 보여주는 통쾌한 상상이다.
인류의 의학은 이제까지 ‘남성의 몸’을 표준으로 놓고 연구한 결과를 여성에 적용해왔다. 최근 미국 등이 여성건강연구국(OWH)과 같은 기관을 세워 여성 건강연구에 나서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출산 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 unsplash
“저의 그곳에서 꽃향기가 난대요.”
누구나 한 번쯤 보았을 법한 온라인 광고 문구다. 성관계를 암시하는 이 광고에서 ‘그곳’은 여성의 성기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식의 상상을 이어가 보자. 질은 스스로 pH(수소이온농도) 수치의 균형을 맞추며, 시큼한 냄새가 나야 정상이다. 만약 남자가 질을 가졌다면, 그 ‘시큼함’은 섹시하다는 증거가 될지 모른다. 혹시 악취가 나거나 가렵고 분비물이 많이 나온다면? 감기에 비견될 정도로 흔한 ‘질염’ 증상이다. 질이 남자의 것이었다면, 간단한 질염 치료제가 마치 소화제처럼 편의점에 진열돼 있을 수도 있다.
아직도 모르는 ‘여성의 몸’
인류의 절반이 여성이건만, 여성의 몸은 오랫동안 의학계에서조차 부차적인 취급을 받아왔다. 저널리스트 마야 뒤센베리는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에서 “수십년간 의학이 채택한 유일한 모델은 몸무게 70㎏의 백인 남성”이었다고 지적한다. 여성과 소수자를 임상연구에 반드시 포함시키도록 하는 법은 미국에서도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만들어졌다. 그는 “남성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그 결과를 추론해서 여성에게 적용한 세월의 잔재를 여전히 느낄 수 있다”면서 대표 사례로 심장병을 들었다. 미국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할 확률은 남성보다 여성이 높다. 그럼에도 심장마비가 온 젊은 여성이 응급실에 갔다가 집으로 돌려보내질 확률은 남성보다 7배 높다고 한다. 심장병은 ‘남성의 질병’으로 여겨지고, 전형적으로 여겨지는 증상 역시 남성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선진국은 최근 ‘여성의 몸’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여성건강연구국(The office of Women’s Health)을, 캐나다는 젠더와 건강연구소(Institute of Gender and Health)를 세웠다. 심혈관계 질환, 관절염 등 ‘여성만’ 앓는 질환이 아니지만, 여성에게서 남성과 다른 병증이 나타나는 사례들이 이곳에서 연구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여성건강을 다루는 부처는 보건복지부의 ‘출산정책과’ 정도다. 여성을 여전히 ‘출산하는 존재’로 취급하는 시선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박현영 국립보건연구원 미래의료연구부장은 “여성건강은 출산 전후뿐 아니라 연구해야 할 주제가 광범위하다”면서 “신체활동이 적은 한국의 여성 청소년들이나, 노년기 여성 연구 등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이를 위해선 선진국처럼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곳에서 꽃향기는… 나지 않는 게 정상이다
여성의 성기에서 시큼한 냄새가 나는 것은 정상이다. 안 좋은 냄새가 나거나 분비물이 지나치게 많다면 질염 치료를 하면 된다. 시판 중인 외음부 세정제로 닦아서 해결할 일이 아니다. 외음부 세정제의 광고문구들
‘여성건강’의 소외는 의학계만의 얘기가 아니다. 정부의 ‘안전관리’ 측면에서도 여성용품은 방치되기 일쑤다. 대표 사례가 ‘외음부 세정제’다. 성기에서 꽃향기가 나도록 해준다는 광고 문구를 내세운 세정제가 몸에 좋을까. 향을 첨가하게 되면 알레르기가 생기기 쉽다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게다가 ‘청결 강박’을 자극하는 광고가 넘쳐나는 탓에 외음부뿐 아니라 ‘질 내부’를 닦아내려는 여성들도 있다. 여성용품 브랜드를 출시한 한 스타트업 대표는 “소비자 인터뷰를 하다가 질 안을 닦아내는 제품을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많아 당황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윤정원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세계보건기구는 어떤 경우에도 처방 없이 질 내부 세정을 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외음부만 가볍게 씻어내야 한다”면서 “‘바디 이미지’에 민감한 청소년층을 표적으로 음부 세정과 향 뿌리기를 권하는 광고가 많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외음부 세정제가 화장품?
외음부 세정제는 질 점막에 영향을 끼치는 제품임에도 정부는 2008년부터 외음부 세정제(여성청결제)를 허가 심사를 거쳐야 하는 의약외품에서 제외하고, 화장품으로 분류했다. “화장품으로 분류해도 안전상 문제가 없다”는 업계 요청을 반영한 ‘규제완화’였다. ‘질 내부 세정금지’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 등의 주의사항 표기 또한 의무화돼 있지 않다. 외음부 세정제 시장은 점차 커지고 있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안전관리 차원의 주의 조치에 나선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질 면역력 강화’, ‘항염’ 같은 의학적 표현을 사용한 469건의 광고를 적발해 ‘사이트 접속 차단’을 한 정도였다.
한국은 외음부 세정제뿐 아니라 성 윤활제까지 화장품으로 분류하고 별도의 안전검사 절차도 두지 않고 있다. 윤활제는 성관계 때 여성 성기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기 때문에 외음부 세정제보다 더 꼼꼼한 관리가 필요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소비자가 안전한 제품을 고를 수 있도록 별도의 승인절차를 운영한다.
꼭 필요한 에스트로겐 연고는 ‘단종’
외음부 세정제나 성 윤활제가 안전관리 ‘사각지대’에 있는 반면, 여성의 질 관리에 유용한 약제는 단종되는 현상은 어떻게 봐야 할까.
질 입구가 막히는 소음순협착증이 발생한 어린아이나 완경(폐경) 이후 여성이 겪는 질 통증을 간단히 치료할 수 있는 ‘에스트로겐 연고’는 2015년 한국 시장에서 사라졌다. 건강보험 적용 단가(건강보험 재정으로 충당하는 비용)가 너무 싸게 책정돼 제약사가 생산·판매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김새롬 젠더와 건강연구센터 연구원은 “정부는 외음부 세정제, 성 윤활제 같은 것은 아무렇게나 팔도록 놔두면서 에스트로겐 연고같이 외국에서 널리 쓰이고 여성에게 꼭 필요한 의약품은 제대로 공급되도록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서 “의사결정자들이 여성의 건강에 제대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데다 여전히 성에 대해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는 사회억압이 이런 모순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코로나19가 바꾼 소비 패턴 변화, '온라인' 판매가 오프라인 대체
실내활동 관련 품목 온라인 판매액 증가, 실외활동 관련 품목은 감소
코로나19의 확산 속 비대면 소비가 대면 소비를 대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하 KISDI)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인 '코로나19로 인한 소비패턴 변화'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온라인 쇼핑 판매 성장률은 대체로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가 바꾼 소비 패턴 변화, '온라인' 판매가 오프라인 대체
코로나19 이전인 2017년 1월부터 작년 1월까지, 온라인 쇼핑 판매 월평균 실질 성장률은 1.51%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이후인 2020년 1월부터 11월까지의 온라인 쇼핑 판매 월평균 실질 성장률은 연간 1.54%로 조사됐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됐던 지난해 3월과 8월의 온라인 판매액은 2019년 최고치였던 11월 온라인 판매액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오프라인 판매액이 크게 감소해 전체 소매 판매액이 큰 감소세를 나타냈다. 코로나19로 인한 소득 감소, 거리두기 등으로 인해 2019년 2월부터 12월까지 27조 원이던 연평균 오프라인 판매액은 지난해 1월부터 11월 사이 3조 원이 줄었다.
전체 소매 판매액에서 온라인 판매액의 비중을 확인한 결과, 온라인 판매는 오프라인 판매를 대체한 것으로 분석됐다.
취급상품별로 보면, 대부분 온라인 판매액은 증가했으나 품목별로 비대칭적인 모습이 나타났다. 음·식료품, 가전·전자·통신기기, 생활용품 등 실내활동과 관련한 품목은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판매액이 크게 늘었다. 반면, 여행 및 교통 서비스, 문화 및 레저서비스, 의복, 신발 등 실외활동과 관련한 품목은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온라인 판매액이 감소했다.
KISDI 장재영 부연구위원은 '지난 한 해 동안 온라인 쇼핑은 소득효과를 제거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며 '비대면 소비가 대면 소비를 대체했기에 큰 폭의 소비 지출 감소와 경기 침체를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비대면 소비 시장의 성장이 지속될 지는 단정할 수 없으나, 여러 변수에 의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산업일보
"쓰레기같은 헤드라인들"...또 '백신 이상 의혹' 속보경쟁
백신 접종 후 사망 인과관계 확인 안됐는데 자극적 보도... 전문가들 "언론 너무하다“
▲ 백신 접종 후 사망자가 발생한 사례에 대해 속보경쟁을 펼치며 불안감을 조성하는 언론에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네이버뉴스 캡처
"쓰레기 같은 헤드라인들, 정말 미치지 않고서는, 정말 하나도 안 변하네요"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포털 사이트 캡처를 올리며, 각각 고양과 평택에서 백신 접종 후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내용을 다룬 기사 제목들을 비판했다. 캡처된 이미지에는 <중증 이상반응에 사망까지... '고령층 접종확대' 불안감 확산> (문화일보), <'AZ 접종' 요양환자 잇따라 숨져.. "백신연관성 조사중">(한국일보) 등의 제목이 있었다.
이 교수의 '하나도 안 변하네요'라는 말은 지난해 독감 백신 때의 언론 보도에 대해서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독감 백신 접종 당시 언론들은 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가 발생하면 실시간 속보로 보도했다. 하지만 정작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 110건 중에서 백신과의 인과관계가 확인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언론의 '사망자' 속보경쟁이 백신에 대한 불안감만 키운 셈이다.
실제로 노르웨이에서도 화이자 백신을 접종한 이후 33명이 사망했다고 알려졌지만, 이는 모두 백신과의 인과관계가 없는 사망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인과관계가 알려지기 전 '백신 맞고 사망했다'는 식으로 의혹을 제기하거나, 백신 접종 후 사망사례가 생길 때마다 속보 형식으로 보도하는 행태는 백신의 신뢰도를 낮춘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감염병 전문가들, 오죽하면 언론에 호소까지...
정재훈 교수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백신 접종 후에 사망은 백신으로 인한 사망과 다르다"라며 "벌써 코로나백신 접종 후에 우려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바로 백신 접종 후 사망에 대한 경쟁적 보도"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우선 접종이 이루어지는 요양병원과 요양원은 대부분의 입원자가 삶의 마지막을 보내는 장소"라며 "따라서 이별이 일상적인 곳이다. 우리가 요양병원의 어르신을 우선접종 해드리는 이유도 이분들의 남은 여생을 평화롭게 보내게 해드리기 위함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요양원과 요양병원에서 일어나는 접종 후의 사망은 백신으로 인한 부작용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라며 "이를 적절히 다루기 위해서는 언론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사망'은 '백신으로 인한 인과관계'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속보경쟁은 의미가 없다 ▲논란이 벌어지면 망자가 더 힘들어진다 ▲ 과학적인 검증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점을 강조하며, "언론인들에게 경쟁을 멈추어주시기를 부탁드린다"라고 밝혔다.
이재갑 교수 역시 3일 오전에 올린 페이스북 글을 통해 아래의 백신 관련 보도에서 네 가지 명제를 지켜달라고 언론에 호소했다.
1. 인과관계가 분명치 않은 백신 이상반응에 대한 보도는 선정적인 제목을 달면 안된다.
2. 인과관계가 확인될때까지 유보적 태도의 보도가 되어야 한다.
3. 백신전문가의 의견을 반드시 인용해야 한다.
4. 정치인의 비과학적 언급을 따옴표처리하여 언급하는 것은 절대해서는 안된다.
"기다렸다는듯이 속보경쟁... 아니나 다를까 또 시작됐다"
▲ 독감 백신에 대한 불안감을 부추겼던 2020년 10월 22일 <조선일보> 1면 기사.ⓒ 조선일보PDF
김동현 한림대 의대 사회의학교실 교수(한국역학회 회장)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언론이 백신 불신을 부추기는 보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여러번 강조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또 시작됐다"라며 "인과관계 규명을 위한 역학조사도 안 했는데 나타난 현상만 보고 '백신 맞고 사망'이라는 속보를 내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지금 막 백신 접종을 시작한 우리나라 상황에서 이러한 언론 보도는 백신 접종 참여율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될 수밖에 없다"라며 "기다렸다는듯이 속보를 내보내는 것은 참 반공익적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참 답답하다. 외국에서도 비슷한 의혹이 있었지만 조사해보니 인과적 관련성이 없었다. 그렇다면 '일단 지켜보자'는 쪽으로 판단해도 되는데..."라며 언론 보도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오마이뉴스/ 박정훈(twentyrock)
한국 코로나 대응 재정지출 비율, 주요국에 턱없이 못 미쳐”
GDP 대비 지출규모 3.4%…미국 16.7%, 일본 15.6%
나라별 코로나19 대응 추가 재정 투입 비교.<코로나 위기 1년, 평가와 과제> 토론회 자료집
국회가 19조5000억원 규모의 코로나19 피해지원을 위한 정부 제출 추가경정예산안(추경) 심의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고용유지 및 자영업자 지원규모가 다른 나라에 미치지 못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코로나19 경제위기 회복을 위해 추경에 경기 진작을 위한 목적예비비를 편성하는 등 강력한 재정지출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배규식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은 3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가 연 토론회에서 각 나라의 국내총생산(GDP·지디피) 대비 코로나19 대응 추가 재정 지출 규모를 비교한 결과, 한국은 3.4%로 중국(4.7%)·프랑스(7.7%)·독일(11.03%) 등에 미치지 못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영국, 일본은 이보다 훨씬 규모가 큰 16.7%와 16.3%, 15.6%를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상공인 버팀목자금 등과 같이 각 나라 정부가 자영업자와 일자리 등을 보호하기 위해 쓴 지출 등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 자료 등을 활용한 추정치다.
특히 정부의 올해 예산 규모가 코로나19 위기 대응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2021년 예산은 2020년 본예산에 비해서 증가했지만 2020년 4차 추경안(까지 합친) 554조7000억원과 비교하면 거의 변화가 없다. 2021년 예산에서 한국판 뉴딜로 20조원 정도가 사용될 것을 생각하면 코로나 직접 대응 예산은 지난해 보다 줄어든 것이라 볼 수 있다”고 했다.
나라빚 규모만 놓고봐도 나랏돈을 더 풀 여력이 충분하다는 분석도 있었다.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분석을 보면, 지난해 늘어난 국가채무 비율(지디피 대비) 6.68% 포인트 가운데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한 추가지출 증가분은 2.51%포인트에 불과했다. 반면 국가채무에 대한 이자비용(지디피 대비)은 2008년 이후 2.3%에서 1.1%로 감소해 부담이 줄어들고 있다. 김 원장은 “인적자본 투자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재정지출 확대가 필요하다”며 “추경 편성 과정에 자영업자에 대한 손실보상 외에 하반기 경기진작과 고용 창출을 위한 일정 규모의 목적예비비를 편성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해 나랏돈을 더 충분히 풀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사각지대를 없애는 등 지원 방법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김태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포용복지추진단장은 “자영업자나 실업 및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상당수가 구직급여와 공적연금 등 사회 수혜금을 지급받지 못했다”면서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이 양극화 해소과 전국민 소비 증진을 통한 국민소득 증가와 경제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현재 손실보상제를 입법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사실 정부가 충분히 지원할 의지만 확실하다면 새로운 법을 만들지 않아도 실행가능한 일”이라며 “굳이 법을 만들어야 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있다”고 꼬집었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경우 미국·일본·독일 등과 같은 대규모 현금 및 금융지원을 하지 않았다”면서 공적 사회서비스와 공공부문 고용의 역할을 강조한 뒤 “한국 사회는 어떤 사회 경제적 조건에서 코로나19 팬데믹에 직면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지금 우리나라 검찰이 정말로 ‘정의의 사도’일까요?
윤석열 “특권 없애는 데 의미있는 역할” 주장
문민정부 이후에도 정치검찰-부패검찰 흑역사
박근혜 정부 ‘최순실 국정농단’ 알면서 눈감아
이명박 정부 땐 법원의 조정을 배임으로 기소
중대범죄수사청에 수사 검사 배치 검토해볼만
윤석열 검찰총장. <한겨레> 자료 사진
3월2일 치 <국민일보> 1면부터 4면까지 실린 윤석열 검찰총장 인터뷰를 자세히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받은 인상은 “윤석열 검찰총장은 역시 검찰주의자”라는 것입니다.
윤석열 총장이 검찰의 잘못에 대해 한 말은 딱 한 마디였습니다.
“물론 검찰에게 그동안 과오도 있었다.”
그 이외의 인터뷰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검찰이 잘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문민정부 이후 검찰의 반부패 활동이 우리 사회 특권을 없애고, 국민들이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진보를 표방하는 정부나 보수를 표방하는 정부를 가리지 않고 ‘잘못을 저지르면 힘 있는 자도 처벌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생각한다.”
“범죄 방식이 전형적인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바뀔 때 입증이 어려워 무죄가 선고된 사례들이 있었다.”
그동안 검찰이 기득권 세력의 범죄나 부패한 검사들의 범죄를 눈감아준 것에 대한 반성은 없었습니다. 정치권력의 주문에 따른 무리한 ‘청부 수사’와 무리한 ‘청부 구속’과 무리한 ‘청부 기소’로 억울한 피해자들을 수도 없이 만들어낸 ‘전과’에 대한 반성도 없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자신과 검찰은 ‘정의의 사도’였다는 주장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사실과 다르기 때문에 반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윤석열 총장 스스로 ‘문민정부 이후’라는 시점을 제시했으니,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에서 검찰 수뇌부와 일부 정치 검사들이 ‘독재의 주구’로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따지지 않겠습니다. 아니, ‘검찰 공화국’으로 불렸던 노태우 정부에서 검찰 수뇌부와 일부 정치 검사들이 출세를 위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문민정부 이후 최근까지 검찰 수뇌부와 일부 정치 검사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2016~2017년 촛불 혁명에서 검찰이 왜 ‘적폐청산 1호’로 떠올랐는지 기억을 환기해드릴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검찰에게 그동안 과오도 있었다’는 한 마디로 퉁치고 넘어갈 수는 도저히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017년 9월에 펴낸 <문제는 검찰이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검찰개혁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2011년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후속편입니다. 박근혜·이명박 대통령 시절 검찰의 흑역사를 정리했습니다. 중요한 몇 대목만 인용하겠습니다.
“2016년 10월에 터진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국민들은 검찰의 실상을 다시 확인했다. 정치검찰과 부패검찰의 행태가 극단적으로 확대되어 정치검찰은 대한민국을 장악했고 부패검찰은 한국 부패의 상징이 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은 검찰을 장악함으로써 행정부 전부를 장악했다. 국정농단 세력은 정치검사 김기춘, 우병우와 함께 검찰을 장악했다. 검찰 장악을 바탕으로 정부를 사조직처럼 이용했다.”
“수많은 공무원의 불법행위, 범죄행위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게 된 메커니즘의 핵심에 정치검찰이 있었다. 정치검찰은 불법행위, 범죄행위를 묵인했고 불법행위를 직접 감행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범죄행위를 보호하고 또 조장했다.”
“검찰은 오래전부터 박근혜,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를 알고 있었다. 최순실 사건 이전에 정윤회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은 2015년 1월 5일, ‘정윤회 문건’은 증권사 정보지에 근거한 허위이며, 박관천과 조응천이 박지만을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 한 것으로 추측된다며 박관천은 구속 기소, 조응천과 문서 유출에 참여한 한모 경위는 불구속 기소한다고 발표했다. 검찰이 국정농단 사태의 전조를 힘으로 덮어버렸던 것이다.”
“본분에 충실했던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2016년 7월 22일 우병우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당시 우병우의 비리가 계속 터져 나오고 있었던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 8월 18일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우병우에 대한 검찰 수사를 의뢰한다.”
“검찰은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수사하면서 8월 29일 특별감찰관실을 압수수색한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사표를 제출하고 그 사표는 2016년 9월 23일 전격 수리된다.”
“홍만표는 2009년 이명박 정부 시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으로서 이인규 중수부장의 지휘를 받아 노무현 대통령을 수사했다. 그는 당시 피의사실 공표 등 무리한 수사를 벌여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수사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종결되었다.”
“홍만표는 2016년 6월 2일 변호사법 위반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되었다.”
“홍만표 변호사의 타락은 정치검찰의 윤리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진경준의 재산에는 늘 의혹의 눈길이 쏠렸다. 그럼에도 진경준은 검사장으로 승진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검증을 해야 하는 민정수석실을 우병우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검찰은 정치검찰과 부패검찰로 요약된다. 서로 달라 보이는 두 얼굴은 사실 한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뿌리는 초집중 되어 있는 막강한 권한이다. 검찰은 형사사법에 관한 한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고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제도적으로 보장된 수사권의 독점, 기소독점주의, 기소편의주의의 결과다.”
“이 권한 때문에 정치권력은 검찰을 이용했고, 검찰은 그 대가로 정치권력의 일부가 되었다. 정치권력과 결탁한 검찰은 정치검찰이 되어 나라를 통치했다.”
“정치검찰의 복원과 검찰권력의 남용은 노무현 대통령 수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정치적 반대자를 형사범 또는 정치범으로 몰아 처벌하는 것은 정치검찰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검찰은 2009년 박연차 비리 수사를 빌미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마치 중계방송을 하듯 혐의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다.”
“정치검찰이 노무현 대통령 수사에서 노린 것은 재판 이전의 재판, 여론재판이었다. 여론재판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과 민주세력을 파렴치범으로 몰아세웠고 재기 불능의 상태로 만들려고 했다.”
“검찰은 정연주 사장의 합의를 배임으로 기소했다. <케이비에스>에 국세청으로부터 환급받지 못한 1,892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범죄가 될 수 없는 사건이다. 법원의 조정 권유와 법률회사의 검토, 경영회의의 의결을 거친 결정이 어떻게 <케이비에스>를 배신한 행위가 될 수 있겠는가? 만일 정연주 사장이 배임을 했다면 조정을 권유한 항소심 재판부, 변호사는 배임의 교사범이 되는 것일까?”
“이명박 정부는 촛불시위로 위기에 몰렸고 이를 돌파하기 위해 <피디수첩> 제작진을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과 업무방해로 수사를 하고 기소했다. 정국의 변화를 <피디수첩> 수사와 재판으로 돌파하고자 한 것이었다. 검찰은 임수빈 검사가 밝힌 대로 명예훼손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면서도 무리하게 기소했다. 전형적인 수사권과 공소권의 정치적 행사 사례다.”
“검찰은 미네르바라는 인터넷 논객의 글이 정부를 비판한다고 해서 수사, 구속, 기소했다. 혐의는 전기통신기본법 위반이었다. 구체적으로는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 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 법률을 이용한 처벌은 1961년 법률 제정 이후 처음이었다.”
김인회 교수는 박근혜 정부와 이명박 정부 시절에 검찰이 저질렀던 ‘흑역사’를 주로 기록했습니다. 그렇다면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서 검찰은 어떠했을까요?
윤석열 총장의 말대로 ‘대한민국 사회의 특권을 없애고 국민의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의미 있는 역할’을 했을까요? ‘진보를 표방하는 정부나 보수를 표방하는 정부를 가리지 않고 잘못을 저지르면 힘 있는 자도 처벌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줬을까요?
“우리는 개다. 물라면 물고, 물지 말라면 안 문다.”
이런 말 들어보셨습니까? 김영삼 정부 시절 정치권력에 철저하게 예속된 검찰 수뇌부의 행태에 비판적인 검사들이 자조적으로 했던 말입니다.
김영삼 정부에서 검찰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쿠데타 사건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공소권 없음’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박계동 의원이 노태우 비자금 의혹을 폭로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5·18 특별법 제정을 지시하는 등 분위기가 바뀌자, 특별수사본부를 가동해 재빨리 재수사에 나섰습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했습니다. “우리는 개다”라는 한탄이 나온 배경입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김영삼 정부 출범 뒤인 1993년 당시 검찰은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박태준 포항제철 전 회장을 구속 기소했습니다. 포항제철 계열사와 협력업체에서 수십억 원을 받았다는 혐의였습니다.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박태준 전 회장은 1995년 풀려났습니다. 청와대는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사면’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특별사면은 법리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형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검찰이 박태준 전 회장에 대한 공소를 취소한 것입니다. 저는 검찰이 공소를 제기했다가 취소했다는 얘기를 그 전이나 뒤에 들어본 일이 거의 없습니다.
이처럼 검찰은 전두환·노태우 정부 시절 못지않게 김영삼 정부 시절에도 정치권력에 철저히 예속되어 있었습니다. 검찰이 정치권력에 달려든 것은 대통령 임기 말에 김영삼 대통령 아들 김현철씨 사건이 불거진 뒤의 일이었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호남 출신 검사들끼리 권력 암투가 벌어졌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정치권력과 검찰권력의 신경전이 5년 내내 이어졌습니다.
문민정부 이후 검찰이 ‘대한민국 사회의 특권을 없애고 국민의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거나, ‘진보를 표방하는 정부나 보수를 표방하는 정부를 가리지 않고 잘못을 저지르면 힘 있는 자도 처벌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줬다’는 윤석열 총장의 말에 제가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검찰의 권력이 너무 강하다’는 비판은 윤석열 총장도 수용하겠다고 밝힌 점입니다.
윤석열 총장은 2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법무부 장관 산하에 둬도 좋으니 수사·기소권을 가진 반부패수사청·금융수사청·안보수사청을 만들어 중대범죄 수사 역량을 유지·강화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두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첫째, 윤석열 총장의 ‘쪼개기’ 대안을 검찰 조직 전체와 검사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검찰 전체가 찬성한다면 윤석열 총장의 제안대로 검찰의 권한을 그렇게 영역별로 쪼개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합니다.
그동안 검찰의 ‘만행과 횡포’는 일부 검사들이 모든 분야에 대한 수사권을 한손에 쥐고 ‘표적 수사’와 ‘별건 수사’를 마음대로 휘둘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검찰 권력을 세로로 쪼개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면, 가로로 쪼개는 방법도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얘깁니다.
둘째, 검찰이 검찰총장 지휘권을 정말로 포기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반부패수사청을 법무부 장관 산하에 설치하면 앞으로 검찰의 특수수사는 검찰총장이 아니라 반부패수사청장이 지휘하게 됩니다. 검찰총장은 검찰 조직 전체에 대한 보호 본능이 있기 때문에 운명적으로 ‘검찰주의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의 반부패 수사 지휘에서 검찰총장을 배제할 수 있다면 이런 형식의 검찰 권력 분산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아예 더불어민주당이 검토 중인 중대범죄수사청에 검사를 두는 방안은 어떨까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사를 따로 뒀듯이, 중대범죄수사청 검사를 따로 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현재 검찰에서 직접 수사를 담당하는 검사와 수사관들을 모두 중대범죄수사청으로 보내면 됩니다. 201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낸 검찰개혁 공약에 그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수사청 설치로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여 수사는 제3의 기관인 수사청이 담당
-수사청은 검사(수사검사와 검찰 수사관)와 수사경찰로 구성
한 가지 쟁점은 중대범죄수사청 소속 검사에게 기소권을 줄 것인지 여부입니다. 유승민 후보의 공약은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따라서 수사청 검사는 기소권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윤석열 총장의 제안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부분은 입법부에서 형사 정책적 차원의 토론을 거친 뒤에 정치적으로 결단할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검찰총장이나 검사들의 반발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반부패 역량을 약화하지 않으면서도 무소불위 검찰의 권한을 분산시켜 민주주의 체제를 바로 세우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빼앗으면 문재인 정부나 민주당 사람들이 저지른 범죄를 수사할 수 없게 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수준을 너무 우습게 보는 주장입니다.
문재인 정부나 민주당 사람들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책임을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검찰이 직접 수사를 안 해도 공수처든 중대범죄수사청이든 경찰이든 더 철저히 수사할 것입니다.
문민정부 이후 검찰이 정치권력을 상대하는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정권 초기에는 지난 정권의 비리를 파헤쳐서 정권의 신임을 얻고, 정권 말기에는 현 정권의 비리를 파헤친다는 명분으로 검찰개혁의 칼날을 피하는 것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청와대에 몸담았던 인사들이나 국민의힘 전·현직 의원들도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검찰 권력이 정치권력의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정치권력은 유한하지만 검찰권력은 영원하다’는 말이 사실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좀 끔찍하지 않습니까?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경실련 기자회견…비강남 집값 계속 올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4년 동안 서울 아파트 가격이 한채당 5억원씩 올랐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2달에 한 번꼴로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지만, 솜방망이 규제로 집값 상승은 막지 못했다"며 이같은 내용의 분석결과를 내놓았다.
경실련은 2017년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서울 25개 자치구마다 3개 단지를 선정해 총 75개 단지 11만7천가구 아파트를 대상으로 시세 변화를 분석했다. 한국부동산원 주택가격 동향조사와 KB국민은행 시세 정보 등을 참고했다.
조사 결과 서울의 30평형 아파트의 평균 가격은 2017년 5월 6억4천만원에서 올해 1월 11억4천만원으로 무려 5억원이나 올랐다. 특히 규제가 강화되면서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비강남으로 수요가 집중되면서 꾸준히 상승했다.
무주택자와 유주택자의 격차는 점차 커지고 있다. 30평형 아파트값은 4년간 78%(5억원, 6억4천만원→11억4천만원) 올랐지만, 노동자 평균 임금은 9%(264만원, 3천96만원→3천360만원) 상승에 머물렀다. 자본소득이 임금소득보다 더 빠르게 상승했다는 의미다.
경실련은 "땜질 정책을 중단하고 후분양제 전면 실시 등 고장난 주택 공급체계를 전면 개혁해야 한다"며 "4·7 재·보궐 선거 후보들은 분양 원가 공개, 토지 임대 건물 분양 주택 도입 등을 공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이영웅 기자 hero@inews24.com
핵심은 국가의 땅장사... 그 땅을 팔지 마라
[주장] 부동산 양극화의 근원, 택지개발제도... 수용한 토지 되팔기는 헌법 가치 파괴다
우리나라의 급속한 도시화를 뒷받침한 것은 주택공급 행정이다. 반세기도 안되어 5000만명 중 4000만명이 몰려 사는 도시를 만든 과정은 세계적인 사례다. 특히 서울을 위시한 수도권의 주택공급 물량을 감당한 신속한 도시조성은 높이 평가받는 편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뜯어 보면 크게 고칠 점이 있다.
주거기능을 공급하기 위한 땅을 마련하다 보니, 토지가 갖고 있는 한정재와 공공재적 특성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바람에 '내 집 마련'은 도리어 어려워지고 부동산 양극화를 촉발시켜온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서 커졌을까. 걸어온 과정을 되짚어보자.
1980년대 등장한 국가의 땅장사
1980년대 이전까지는 소위 토지구획정리사업(환지방식 도시개발)에 의해 시가지가 개발되어 왔고 주택을 늘릴 수 있었다. 이때 지어진 집들은 대개 단독주택이거나 다가구형 주택이었다. 한 채당 많은 가구가 들어사는 집들이어서 보기보다 인구급증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현지에 살고있는 주민들의 토지소유권과 사회적 관계망을 존중해주면서, 개발비용은 체비지라는 자기부담을 통해 최소비용으로 도시를 정비할 수 있도록 해준 방식이다. 지구촌 보편적인 개발방식이었다.
다만 동네주민이 그대로 살면서 점진적인 개발을 진행하는 방식이었기에 주택보급에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걸렸다. 위치가 좋은 동네에는 지구지정을 기대하는 투기바람도 적지 않았다. 어쨌든 강남개발조차 토지구획정리방식으로 해냈다. 고도성장기에 매년 50만~100만명씩 서울로 몰려드는 인구를 감당해낸 것도 이 방식이었다.
그러다가 군사정부에 의해 신속한 주택공급을 목적으로 한 택지개발제도가 도입되었다. 논·밭·임야 상태의 사유토지를 국가가 반강제로 수용한 후, 세금과 행정력을 투입해서 주거용 시가지로 개발하고 이를 매입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매각하는 방식이다. 즉 '주택보급'을 명분으로 국가가 땅을 되파는 시스템을 40년 넘게 이어왔다.
이렇게 되면 분양받은 주택의 땅값은 계속 상승하게 되어 있다. 인구가 몰려 살게 되므로 세금이 투입된 인프라가 분양된 택지지역에 집중되고 각종 공공기능과 편익기능도 집중될 수밖에 없다.
아파트값이 오르는 것은 아파트가 깔고 있는 땅값이 오르는 것이고, 분양받은 사람의 자산가치는 상승한다. 가령 분당은 입주 시에 비해 10배나 올랐다. '판교 로또'라는 말처럼 전국민을 상대로 하는 로또판이 벌여져온 것이다. 서울대도시권은 그 정도가 심하다.
싱가폴의 경우 : 수용한 토지는 국유, 개인은 건물만 소유
하지만 우리 택지개발방식의 원조격인 싱가폴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싱가폴은 1960년대 초 독립 당시 국유지가 40%대에 불과했지만 토지수용을 통한 택지개발을 하면서 90%수준까지 국유지를 늘렸다. 수용에 의해 개발한 토지는 모두 국유로 돌리고 개인에게는 임대만 해줬다. 개인은 그 위에 지은 주거용 건물을 소유한다(HDB). 주택이라는 이름의 건물은 개인이 갖도록 하지만 토지는 국유상태 그대로이다. 여기에 포인트가 있다.
이런 방식으로 주택을 공급하니 땅값 상승에 의한 불로소득은 발생하지 않고, 80%가 넘는 국민은 저렴한 값으로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내 집을 마련했다. 물론 민간이 자유롭게 거래하는 토지사유 주택시장도 있다. 비율은 크지 않지만 그런 주택은 비싸게 거래된다고 한다. 자유시장경제도 존중되고 있다.
원래 우리 헌법도 개인 땅을 함부로 수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공공 필요'에 의해서만 사유재산을 수용할 수 있다. 헌법 제23조의 내용이다.
①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②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③ 공공 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공공 필요'가 등장한다. 그리고 헌법 제122조를 보면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분양가 낮추기만으로 본질적 문제 해결 안돼
▲ 환경운동연합,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 민달팽이유니온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그린벨트는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고 생태,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국토를 미래세대에 넘겨주기 위한 중요한 미래 자신이다”며 “정부는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주택 공급 확대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유성호
토지에 있어서 '공공 필요'란 무엇인가. 많은 이가 이용하는 도로·학교·공원 등 공적 시설에 필요한 땅이다. 이런 경우에만 헌법은 개인소유권을 침해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공공개발에 의한 이익은 공익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 헌법의 뜻이다.
지금까지 해온 택지개발은 이 헌법개념을 무시해왔다. 민간에게 되파는 것은 국가가 땅장사를 하는 것이다. 토지를 되파는 순간 '공공 필요'의 취지가 상실되고 헌법적 가치는 무너진다. 싱가폴과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동안 일부 시민단체에서 분양가 공개·분양가 거품빼기 운동을 벌여왔는데, 그러한 운동의 목적이 달성될 경우 혜택을 보는 자는 분양받은 자이다. 시장의 잠재가격은 이미 높은 가격에 형성되어 있으므로 분양가를 싸게 공급받으면 그 차액만큼 혜택이 더 돌아온다. 즉 분양가를 낮춘다고 본질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동안의 국가 주도의 주택공급은 '내 집 마련'이라는 슬로건 아래 국민들의 재산증식 욕망에 편승해 왔다. 과장되게 표현하면 국가가 앞장서서 국민들을 부동산 불로소득 쟁취의 공범으로 만들어 왔다고도 할 수 있다. 분양받은 능력자들을 국민 세금으로 배불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피해자는 누구인가. 분양받을 능력이 없는 계층과 상속받지 못할 미래세대다. 이들은 양극화의 희생자다.
돌이켜 보면 과거 10여년 전 수용한 토지를 팔지 않고 임대하는 정책이 정치권의 이해관계 때문에 문제가 생긴 사례(군포)가 있었다. 시행 과정에서 지구위치선정, 토지임대료 과다 책정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또 수년 전 강남지역 일부에서도 시장가격과 동떨어진 임대료와 분양가를 책정하는 바람에 블랙마켓을 형성시키는 부작용도 있었다.
최근에는 심지어 그린벨트를 해제하여 공급하는 주택조차 토지 매각을 앞세우고 있다. 또 공공임대주택이라고 이름 붙여놓고는 5년이나 10년이 지나면 거주민에게 매각(분양)을 한다. 수십년간 그린벨트라는 공익적 가치를 지켜온 우리의 선대들은 무엇인가. 허수아비인가? 부득이 '그린'이라는 가치를 훼손했다 하더라도 공공이 오랜 기간 지켜온 가치를 존중하는 해법으로 가야 하는데, 그런 곳마저도 정부가 앞장서서 땅장사를 하고 있다. 공공철학의 부재다.
국가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 국가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는 문제가 생긴다. 공자 말씀이 군사와 식량과 믿음 가운데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은 믿음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국민을 부동산 양극화의 공범으로 몰고 가는 정책을 계속 해서는 안된다.
이제 익숙함과 결별할 때가 됐다
이제 주거권은 '보편적 복지'의 대상을 넘어 '기본적 인권'의 하나로 간주될 때가 왔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했다. '잠자고 쉬는 것'은 '먹고 생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헌법 제35조를 보면,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주거권이라는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표현이다.
헌법에 어긋나는 토지 수용·개발 후 매각은 지금이라도 중단해야 한다. 국가가 공공보유의 원칙을 천명한 후, 다양한 방식의 임대로 가야 복지에도 부합되고 장기적으로 남는 장사를 할 수 있다. 헌법 제122조에 들어 있는 기본개념은 땅주인에게 제한과 의무를 부과하려면 '국민 모두의'라는 공익적 가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의 개발에 의한 이익은 반드시 공익화된다는 선명성을 보여주어야 땅주인에게 협조를 강제할 수 있다. 그게 헌법적 가치다.
공공이 개발하는 택지의 경우 토지임대 후 건물 분양을 하거나, 토지임대 후 건물 임대를 하게 되는 '기본주택'이야말로 헌법상의 기본권을 존중하는 정책이다. 그런데 후자의 건물까지 임대하는 보통의 장기임대주택은 건물수명이 짧은 편이다. '내 집'이 아니므로 관리가 소홀히 되기 쉽다. 반면 전자와 같이 건물을 개인소유로 해서 자유롭게 되팔거나 공공환매가 가능하도록 해주면 내 집처럼 아껴 쓴다. 바로 싱가폴 방식의 이런 절약은 기후위기 시대의 문법도 되는 것이다.
이젠 우리나라도 헌법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실현할 국가적 능력을 갖추었다. 노숙자일지라도 안전한 거주공간을 마련해줄 수 있다면 하는 것이 옳다. 게다가 이자율이 낮은 시대여서 자금회전에 목마를 이유도 없고 임대수익률이 개발사업에 더 지배적으로 작용하는 여건이다. '익숙'과의 결별만이 남았다.
'수용한 토지는 공공이 보유한 채, 주거시설만을 임대하거나 분양하는 기본주택'이야말로 헌법적 가치를 구현하는 방식이다. 늦었지만 이런 옳은 방향의 정책을 일부 광역단체장이 추진하고자 하고 있고, 국가적 정책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이 인구절벽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확실한 비전 하나를 줄 수 있다. 통일이 되더라도 한반도의 기본적 정책이 될 수 있다./ 이원영(leewysu)/ 오마이뉴스
언론은 '백신 신뢰' 어떻게 흔들었나... "속보 경쟁에 엉망진창"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자' 발생 때마다 경마식 보도... 코로나19 백신 신뢰에도 영향
독감백신 접종 당시 언론이 백신과의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은 '백신 접종 후 사망자'를 무분별하게 보도하면서,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신뢰도까지 낮췄다는 분석이 나왔다.
4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뉴스타파함께센터 리영희홀에서 열린 '코로나19 백신 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세미나에 참가한 김준일 뉴스톱 대표는 발제자료를 통해, 지난 2020년 10월보다 12월에 백신 접종 거부 의사가 증가한 것은 언론 보도의 영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가 15개국을 상대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10월 '백신 접종을 하겠다(동의율)'가 83%였으나, 12월에는 75%로 줄어들었다. 물론 다른 나라도 모두 백신 거부 의사가 높아졌지만, 한국은 15개국 중에 4번째로 낙폭이 컸다는 점을 주목할만하다. 심지어 '지금 당장 맞겠느냐'라는 질문에 국민의 12%만 '그렇다'라고 답할 정도로 백신에 대한 불신이 높았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해 "10월~11월 독감백신에 대한 (부정적) 보도가 쏟아졌고, 사람들의 불안감이 커졌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백신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커진 것으로 추론한다"라고 밝혔다.
당시 언론은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한 사례 전부를 마치 '백신에 의한 사망'처럼 묘사하고, '사망자 1명 더 늘었다'는 식으로 경마식 보도를 해 불안감을 키웠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지만 방역당국이 백신 접종 후 사망 신고된 110건을 조사한 결과, 백신에 의해 사망한 사례는 1건도 없었다.
▲ 10월에 비해 8%나 떨어진 12월 백신 접종 동의율ⓒ 유튜브 캡처
자유언론실천재단, 새언론포럼 주최로 '코로나19 백신도보도 무엇이 문제인가'가 4일 오후 서울 중구 뉴스타파함께센터 리영희홀에서 열렸다.
▲ "백신을 당장 접종하겠느냐"라는 질문에 한국 국민의 동의율은 12%에 불과했다. 이는 대표적으로 백신 불신이 높은 프랑스와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로 백신 신뢰도가 떨어진 상태라는 걸 보여준다.ⓒ 유튜브 캡처
사실 왜곡하는 한 줄 속보
이렇듯 '코로나19 극복을 방해하는' 언론의 보도 현상에 대해 김 대표는 ▲오락가락 잣대 ▲방역의 정치화 ▲사건기사 취재방식 ▲속보 중심 ▲기사 쪼개기 ▲정부 발표에 의존 등으로 구분해 설명했다.
'오락가락 잣대'는 특히 백신 도입 과정에서 불거졌다. 지난해 말 '백신이 늦었다'라며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언론은 필요에 따라 잣대를 바꾸며 논리를 취사선택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어떨 때는 굉장히 시급하게 백신 도입 못 했다고 비판하다가, 어떨 때는 안정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며 한 언론사에서도 기준이 왔다 갔다 해 독자들의 혼란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방역의 정치화'는 뉴스 변화량 데이터로도 설명된다. <뉴스톱> 백신 기사 분석조사 결과, '문재인'이라는 대통령 이름과 '백신'이라는 키워드는 유사한 패턴으로 움직인다. 한 마디로 백신에 대한 보도량이 늘어날 때 대통령에 대한 보도량도 늘어났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키워트 트렌드' 분석을 봐도 '문재인'과 '백신'은 상관계수가 0.3761이다. 0.376이면 뚜렷한 양적 선형관계로서, 두 키워드간 비례관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백신이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지지 등 정치 영역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육하원칙에 따른 '사건 기사'식 보도도 문제 삼았다. 김 대표는 "분석할 능력이 없거나 시간이 안 된다. 몇 명 죽었다. 계속 죽었다. 또 죽었다고 한다"라며 이러한 보도가 과학을 기반으로 분석을 해야 하는 백신 보도에는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사실상 한 줄 제목만 기사로 내보내서 맥락을 소거해 버리는 '속보식' 보도, 1개의 기사로 나올 것을 여러 개로 쪼개서 클릭 수를 확보하는 '쪼개기' 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 3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백신 이상반응 브리핑을 예로 들었다. 수많은 언론사가 '당국 "백신 접종 후 사망 현재까지 영국 402명 독일 113명"'이라는 제목으로 한 줄 보도를 했다. 그러나 실제로 브리핑에선 이들 모두가 백신과 인과관계가 없는 사망이라는 점이 훨씬 중요하게 언급됐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잠깐 기사를 본 사람들은 이런 보도를 통해 백신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들 수밖에 없다"라며 "이런 식으로 속보 경쟁하면서 백신 보도와 전체 코로나19 방역 보도가 엉망진창이 된다"라고 지적했다.
"이해를 못 하는 건지, 이해할 생각이 없는 건지..."
세미나에 참여한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재난보도와 백신보도의 톤은 달라야 한다"라며 언론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 교수는 "재난 보도는 신속해야 하고, 빨라야 하니까 속보 경쟁이 붙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백신은 과학과 연관되어 있고 백신 심리에도 영향을 준다"라며 "기획 기사 형태로 과학적 사실에 기반해 신중하게 나가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정치인들 백신을 악용하는 언급을 했을 때, 기자들이 팩트체크를 하고 정확하게 잘못된 점을 밝혀야 한다"라며 "정치인 간의 논쟁을 기사화하면서 전문가들까지 '정치 프레임'에 갇히게 하면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KDI의 비공개 자료에 따르면 정치 성향에 따라 백신 수용성이 다르고, 백신에 대한 팩트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르다고 한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다른 정보를 소비하는 상황이 안타깝다"라며 언론이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보도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교수는 "'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에 대해 외국에서는 이미 '백신 부작용'이 아니라는 사례가 전부 나왔는데 한국에서만 '백신 때문에 죽은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라며 "언론이 백신에 대해 이해를 못 하는 건지 이해할 생각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라고 비판했다./박정훈(twentyrock)/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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