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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지역과 마을

주례3동 주민자서전 발간 발표회

by 이성근 2014. 11. 20.

 

 

주례동 주민자서전은 부산광역시와 사상구가 주최하고, 부산그린트러스트가 주관하여 발간했다. 이 책에는 평생 사회공헌활동을 하며 얻은 보람을 글로 담아낸 박일한씨, 생활정치를 염두에 두고 부녀회 활동을 하는 주부 이혜숙씨, 아들을 잃은 아픔을 글로 풀어 낸 최안자씨, 지나간 사람과 시절을 수필로 기억하려는 이헌순씨 등 다양한 주민 14명의 이야기를 실었다.

부산에서 처음 진행된 주민공동자서전 프로그램, 행복을 찾아 나를 만나다 사업은 지난 5월부터 11월까지 7개월간 수행되었으며, 자서전 발간위원회의 구성과 세세한 글쓰기 교육을 통해 수행되어 왔다. 41편의 글과 시 속에는 한국의 6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시대상이 담겨 있으며, 사상구의 지난 모습도 읽을 수 있다.

프로그램을 진행해 온 강사 신창선씨는 포도주가 잃어버린 인간의 오감을 되살려 주듯이, 글은 희미해 진 인간 내면의 자아와 감성을 일깨워 준다. 그 대표적인 것이 자서전이다.”라며 수필식 자서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행사를 주관했던 부산그린트러스트는 자서전 발간을 통해 주민의 이야기를 자원화하는 한편 개인의 삶 속에 들어있는 마을을 통해 시대와 생활상을 조명하고, 세대간 단절된 문화를 연결하고 삶의 지혜를 전달하면서 마을공동체의 활성화를 꽤하고자 했다.

사상구 주례동 주민자서전 모음집 행복을 찾아 나를 만나다 소개

 

목차

박일한 -나무와 인간/ 15년간 수용자께 보람된 강의

이혜숙 -내 고향은 부산 변두리/ 그 크고 깊이 모를 음메소리

최안자 -돌연변이 관객/ 노년과 상실에 관하여/ 무용한 인간은 없다

곽외조 -어머니/ 요양원과 나

이현순 -기다림의 연락선/ 나를 닦는 108

이명숙 -찔레꽃/ 기동대

신창선 -늙는다는 것/ 바다노을

이성근 -경주최씨 순분씨 이야기 / 냉전

정승창 -어머니의 빚/ 백수선언

김슬기 -무지개 다리 너머엔

김현지 -콜센터 알바를 끝내며 감정노동자들에게 올림

박은진 -꿈 속에서 찾은 행복

이현순 -허수아비 사랑 / 영원한 부모님의 사랑

최안자 -사람도 풍경이다 / 재능과 존재감/자서전 쓰기의 향수/ 오직 그대뿐

 

곽외조 -그리운 내 고향/ 백세시대

이혜숙 -새 고향 주례3/ 나를 설레이게 하던 빛

박일한 -점포찾아 오백리길/ 훌륭하신 우리 아버지/ 착한 둘째 며느리

신창선 -세월의 길, 그 아름다음/ 잃어버린 달/ 투명인간/놀빛 단상/

이성근 -본가에 와서/ 중독 / 부부

 

구술채록

-폭행하는 아들과 그 엄마

-주례동의 어제와 오늘

-현대무지개아파트 노인회 회장 노재복씨와의 인터뷰

어렸을 적 부끄러움을 많이 탔던 나, 지금은 그 부끄러움이 그립다. 계속 부

끄러워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부끄러운 사람은 부끄러움이 없고 부끄러움이 없는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이 있다는 말도 있잖은가. 부끄러워도 부끄럽고, 부끄럽지 않아도 부끄러운 사람은 부끄럽지 않다는 생각이 부끄러운 것임을 안다. 허세를 감춘 부끄러움은 허세일 뿐이다. 부끄러움 속에 사라지는 허세, 그것도 부끄러움임을 부끄러워한다. 부끄러움을 많이 탔던 아이가 늙어, 나이가 다할 때까지 부끄러움을 간직한 채 죽는다면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죽음도 없을 것이란 생각에 잠긴다. 부끄러움을 새기며 늙는다는 것은 신의 은총이며, 행복이다.

신창선-늙는다는 것

 

나에겐 아버지가 있었지만 아버지라고 불러 본게 몇번 되지 않았다. 같이 목욕탕에 가지도 못했고, 같이 찍은 사진도 몇개 뿐이고, 그렇게 아버지란 분은 홀연히 떠났다. 오래된 집을 판 돈을 가지고.

그래서인지 50대 이상 남자, 권위적인 사람, 수직적인 조직문화, 강압적인 사람 등만 보면 무의식적으로 분노가 일어난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그 사람의 이야기가 부정된다. 반항심이 일어나고 대화하기가 싫다. 의식적으로는 그 감정을 억누르려고 하고 나에겐 스트레스로 다시 돌아온다. 책임감 없던 아버지, 강압적인 모습, 가정폭력, 대화가 없던 생활 등 나의 어릴적 분노가 무의식속에 쌓였나 보다.

정승창-백수선언

 

주인집에 아무도 없을 때면 담벼락에 붙어 하염없이 기다려보기도 하고, 기다리다 저녁때가 되면 서툰 솜씨로 계란 두 개 부쳐놓고 잠들기도 했지만 그 모든 일이 소용없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않았다. 그리 오랜 시간을 함께 살지 못했기 때문에. 혼자 먹는 밥은 괜찮았다. 매일 같은 밥도 괜찮다. 엄마랑 함께 사니까. 그래도 엄마가 있으니까. 나는 예쁜 엄마가 좋았고, 엄마도 예쁜 당신을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예쁜 모습으로 오래오래 있을 줄 알았다. 하고 싶은 게 많았던 엄마는, 그 많은 일들을 다 하고 오래오래 살 줄 알았다.

김슬기-무지개 다리 너머엔

 

할머니의 사랑은 마냥 쏟아지는 폭포수 같다. 나 역시 그런 심정이니까. 손녀가 할머니.” 하고 부르면 이유 없이 즐겁고 사랑스럽고.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낀다. 그 누가 얘기 했을까. 손자 손녀들은 살아있는 인형이라고.

이현순-허수아비 사랑

 

고향 산천과 고향 친구에 대한 기억은 내가 중학생이 될 무렵에서 끝이 난다. 물론 학교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경제개발과 도시화의 밀물이 변두리의 우리 동네를 휩쓸었다. 인근에 공장이 생기면서, 집집이 헛간을 헐고 마당과 텃밭을 더해 세놓을 벌집을 지었다. 놀고 있는 옆방이나 뒷방도 부엌을 달아내어 세를 주기 시작했다. 경상북도, 전라도의 낯선 사투리들이 동네 이 곳 저 곳을 떠다녔고 한 가족만 살았던 우리 집도 6가구나 살게 되었다. 공장 다니는 언니들, 동사무소 서기 부부, 순경 부부도 있었던 것 같다.

우리에게 늘 웃어주던 인정많던 뒷방 언니들이 생각난다. 열 예닐곱으로 경북이 고향인 언니들은 야간작업을 하고 와서 얼마나 잠이 쏟아졌던지, 연탄 불문을 열어둔 방에서 살이 타는지도 모르고 자다가 화상을 입어 고생했었다. 개발과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져 갔다. 작은 공사들이 끊이질 않았다. 블록 담쌓기, 마루에 유리문 달기, 신식 변소 짓기, 골목길에 시멘트 포장하기 등으로 늘짓이겨 놓은 시멘트를 보았던 시절이었다.

이혜숙 내 고향은 부산 변두리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고 나의 날개도 충분히 여물어 있지 않았다. 헛발질하고 부딪치고 지치면 결국 어머니의 성으로 다시 날아들 수 밖에 없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말없이 안아 주고 보살폈다 . 부끄러움, 죄책감, 자괴감 등이 뒤엉켜 어머니를 바로 보고 부르는 것도 힘들었다.

언제부터 다시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을까? 아마 40이 넘어서 인 것 같다. 쪼글쪼글한 엄마의 무한한 사랑 앞에 나의 감정, 자존심을 모두 내려놓고 나서였다. - 나의 비빌 언덕! 엄마한테 짧은 편지도 한 통 썼다. 뼈에 사무치도록 고맙고 미안해서 감히 말을 못했다고 사랑한다고.

이혜숙 그 크고 깊이 모를 음메-‘소리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하셨던 어머니. 집에 먼지 하나 없게 깨끗하게 해놓

고 거짓말할 줄 모르고 약속 잘 지킨 어머니. 보고 싶네요, 어머니. 어머니가 보고싶어 눈물이 납니다. 이 불초 소생을 잘 보살펴 주십시오. 어머니, 용서해주세요. 어제는 꿈에 엄마 얼굴을 보았어요. 생시와 똑같이 젊을 때 모습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지요. 반갑게 엄마하고 부르며 달려가다 꿈에서 깨어났어요. 얼마나 보고 싶던지 한참이나 엄마 생각을 했답니다. 어머니.

곽외조 어머니

나는 아들에게 너를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라고 외치며 아들의 가슴위에 무너졌다. 아들은 부모에게는 죄송합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며느리에게는 미안하다!’라고 하더니 숨을 거두었다. 남편은 한 번만 울고 다시는 울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더니 거실에 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나는 결혼생활 51년 만에 근엄했던 한 남자의 처절한 울음을 처음 듣고 보았다.

최안자-노년의 상실에 관하여

 

노인분야의 일을 해오면서 노년기에 대한 객관적인 성찰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또한 자위의 견해가 있다면 아름다운 젊음은 우연한 자연의 현상이지만 아름다운 노년은 예술작품이다.”라는 나만의 북극성을 가슴에 품게 되었다. , 온갖 풍상을겪으며 살아온 경험이 누적된 총화로서의 나는 이제 비로소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뜻한 연민과 사랑이 실리고 있다.

최안자-무용한 인간은 없다

우리 어머니는 13세에 결혼하여 86세에 돌아 가셨다. 왜놈들의 처녀 공출(강제모집)로 인하여 일찍이 결혼하여 많은고생을 하셨는데 특히 마음고생이 심하셨던 것 같았다. 장남. 차남. 삼남이 2~4세 당시 홍역을 하다가 1~2년 사이 다 돌아 가셨다. 원래 경북 영주시 풍기읍 욱금동에 사셨는데 사남을 낳으시고 친정 동네인 경북 예천군 보문면 독양동으로 이사를 하여 거기서 딸을 낳아 또 여의시고 여섯째. 일곱째. 여덟째를 낳아 결국 31녀인 절반을 잃으시고 사형제를 성장시켰으니 한평생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셨겠는가? 지금 생각하니 어머니께 위로도 못해 드리고 그냥 잊고 살아왔는데 죄송한 마음이 그지없을 뿐이다

박일한 훌륭하신 우리 아버지

주례 여기서부터 엄궁, 그리고 저 삼락까지가 전부 늪지대였습니다. 엄청나게 넓었죠. 우리가 참 어려울 때 사상공단을 조성하여 산업 역군의 역할을 해냈지만, 그 늪을 그대로 뒀다면 아마 순천만보다 더 아름다운

늪지대로 남았을 겁니다. 그 늪지대가 펼쳐지는 게 저희들이 어렸을 때 주례 요 앞에서부터 현재 여기 둑까지에요. 겨울에는 거기가 다 얼거든요. 그러면 썰매를 타고 둑까지 갔다 오지요. 평소에는 늪이라서 못 가는 곳도 다 얼어버리면 썰매를 타고 가고 그랬어요. 갔다가 돌아오는데에 꼬박 반나절이 다 지나버릴 정도로 거기는 넓었어요.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면 지금 이렇게 다 사라져버린 것이 참 아쉽죠.

주례동의 어제와 오늘 양두영 인터뷰

 

 

편집후기

자서전 쓰기는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정체성 찾기이다. 나를 확인하고 존재감을 정립하는 작업이며, 더 이상의 오류를 막아 삶의 낭비를 막는 글쓰기이다. 자서전 쓰기에 참가한 주민들을 만나 유익한 배움과 즐거움이 있었다. 행운이었다.

-최안자-

 

5개월간의 긴 여정 끝에 드디어 작품이 마감 되었다.

그동안 함께한 선생님과 동료들께 감사와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

모두들 한 작품 한 작품, 만드느라 고생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 나만의 자서전을 쓸 기회가 온다면 지금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 삶의 전부를 보여 줄 수 있도록 더욱 다양하게 작품을 구성 하겠다.

-박일한-

 

자서전을 시작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난 삶을 회상해보기도 하고, 내일을 조용히 설계하는 시간도 가지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더욱 더 소중한 것은 자서전 프로그램에 참석함으로서 학창시절로 다시 돌아가는 기분으로 닫아 두었던 생각주머니를 열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러 주민들의 삶도 함께 공유하는 소중한 시간에서 많은 것을 배우면서 느꼈습니다. 이제 결실의 시점에서 아쉬움을 안고 우리의 만남이 특별한 인연이 되어 고이 간직하렵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이현순-

 

주례 자서전 발간 사업은 마을에 정자나무를 심듯 그늘 한 뼘 만드는 일입니다.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다른 사람의 아픔도 더불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평상 하나 준비할 일입니다.

-이성근 부산그린트러스트 사무처장 -

 

 

출처: 다음 블로그 홍이 아뜨리에

 

If Not For You - George Harri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