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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공원녹지

제3회 부산조경포럼 성균관대 조성룡 석좌 교수 초청, 기억의 재생

by 이성근 2013. 6. 16.

 

조성룡 성균관대 건축학과 석좌교수 초청 부산조경포럼이 11월9일 부산시청 국제회의장에서 있었다.   이번 포럼은 부산의 공원·녹지·산림에 대한 환경정비와 함께 각종 문화행사를 진행하는 ‘부산그린 문화축제’의 학술대회로 진행됐다. 조교수는 '기억와 풍경'을 주제로 그가 유년과 청소년기를 보냈던 부산 거제동에서의 기억으로부터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부산의 지형과 산줄기 선이 만들어내는 도시를 언급하며 '집단기억'의 중요성과 장소성을 건축과 조경으로 해석했다. (블로그에 사용된 사진은 조교수가 이날 진행했던 PT에서 사용된 것임을 미리밝힌다. )

그는 “건축과 조경이 ‘공공성’이라는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고  “재료가 다르고, 방법이 다르고, 또 결과물의 모양과 기능이 다르지만 같은 곳을 보고 있는 ‘건축’과 ‘조경’의 결합과 공존”을 강조했다. 그리고 도입했던 몇 장면들,   건축의 대가 루이스칸이 설계했던  소크생물학연구소

 그리고 네들란드의 방파제 Oestcheldepleim west 8  -Adrain guese 

그의 대표작 선유도공원도 소개 되었다.

 

지금의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는 선유봉(仙遊峯)이 있었다. 조선시대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이 1742년 비단에 채색한 선유봉의 모습 그 때의 선유봉 일원에 대한 풍경을 짐작케 한다. 그림 속 봉우리와 능선의 소나무, 강변에 한가롭게 떠 있는 나룻배 등이 그렇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봉우리는 사라졌다.

일제가 을축년 대홍수로 일컬어지는 1925년 한강에 큰 홍수가 나면서 제방을 쌓기 위해, 또 1929년 개장된 서울 여의도 비행장을 건설하기 위해 선유봉의 암석을 채취한 탓이다. 1948년까지도 선유봉이 일정정도의 높이를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과 같이 평면화 된 것은 산업회의 결과물이라 밖에 볼 수 없다. 세월이 흘러 1978년 그 자리에 정수장이 세워졌다.

 

이 정수장은 수명을 다한 뒤 1999년부터 공원화 사업을 통해 2002년 선유도(仙遊島)공원으로 탈바꿈했다. 핵심은 과거의 정수장 시설을 일부 남겨둔 채 자연을 덧입히면서 건축과 조경의 조화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공간의 재생 측면에서 '집단기억'을 새기고자 했다. 근대산업시설을 기억하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부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활용할 수 있는 것을 재활용함으로써 조경과 건축이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2003년 김수근문화상 수상 당시 조성룡교수는 시간의 흔적과 건축, 자연이 함께 녹아있는 장소를 만들기 위해 건축과 조경작업의 경계가모호하도록 하도록 계획했다는 수상소감을 밝힌 바 있다.  현재 선유도 공원은 현대 한국의 대표적 공원으로 손꼽히며 분야의 사람들이 즐겨찾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선유도공원 일부 리모델링에 들었다고 했다.  이 외도 아시안게임 선수촌과 동대문야구장, 어린이대공원이야기가 있었다. 이들 장소와 건물 역시 '집단기억'의 재생이었다. 도시의 역사와 시간성, 집단기억과 관련 "존재는 장소에 거주하고 장소는 기억속에 거주한다"는 하이데거의 말 또한 인상적이었다.

이 밖에도 그는 많은 이야기들을 던졌다. 예컨데 공원을 누가 점유하는가?  시간대 별로 보자면 결국 근처의 주민들이다. 그들이 도시를 기억하고 장소를 기억한다고 했다.

영화 베를린천사의 시를 언급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1987년 작 ‘베를린 천사의 시’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관심을 끌었던 빔 벤더스의 대표작이다. 한 천사가  천상에서 인간 세계로의 여정을 담아낸 이 영화의 원제는 ‘베를린의 하늘(Der Himmel Ueber Berlin)’이며, 그 ‘하늘’은 구원에 대한 ‘희망’을 의미하는데 조교수가 말하고자 했던 대목은 베를린 장벽과 너머의 저 그림이었다. 독일이 분단되기 전만하더라도 명동거리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던 활기찬 거리였다고 한다.

그 시각 포럼에 동원된 많은 학생들은  꿈길을 헤메고 있었다.  문득 포럼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생각했다.  

부산에 대해서는 1946년 준공한 부산전신전화국과 산복도로 북항재개발을 언급했다. 북항재개발에 대해선 혀를 차며 개탄했다. 개항 이후 수많은 사건과 시간이 축적되어 있는 해안선을 그렇게 매립해버리다니...

그가 빚대어 표현했던 서울역사 이야기는 슬프다. 그는 서울역만 보면 화가 난다고 했든가? 꾸어다 논 보리자루같은 신세로 전락한 역사건물, 1925년 일본 동경역사를 본따 만든 건축물이다. 한마디로 누가 집단기억을 지우냐는 항변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동경역사는 지금도 신칸센역으로 사용한다. 

기억의 보존과 관련 벤야민 기념비라든지 베를린 유대인희생자 메모리얼, 2011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광주폴리7, 의제 허백련 기념관, 고암 이응노 기념관등이 소개되었다.

한편 공원의 재료가 녹색만 있는 것이 아니란 이야기 역시 와 닿는다.

이어진 토론에서 경성대 강동진교수

 

I Believed It All - Pozo Seco Singers(올드팝매니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