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군 유곡면 신촌리 마을 동남쪽에 장군댕이, 장군당으로 부르는 곳이 있다.
거기 느릅나무 노거수 한그루와 수구대장군(水口大將軍)이란 돌비가 서 있다.
느릅나무는 근원부 직경 약 1.5m 정도이고 지상부 20cm 쯤에서 두 개의 줄기를 올리면서 2m 지점에서 10개 남짓한 수로 가지를 펼치고 있다. 수관폭은 동서 약 20m 남북 18m 정도
느릅나무 치고는 제법 수령이 될 듯한데 아무른 측정 도구가 없다 보니 눈 대중으로 짚어 보았다. 오촌 아재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40~50년 전에도 나무의 크기는 멀리서 보일 정도로 컸다고 한다. 추정컨데 수령은 최소 150년은 되어 보인다.
진입로 공사를 하면서도 근원부 주변은 맨흙으로 두어 다행이었고 줄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잎이 무성하여 생육상태도 양호했다. 예전에는 당산나무로 기능했다고 한다,
예전에 10여 가구로 마을이 있었던 곳인데 이제는 골짜기에 논밭만 남아 있다.
계류가 흘러내려가는 길을 따라 신촌마을회관까지는 1km 남직하다
그리고 나무로부터 10분 안짝 거리에 신촌 합천이씨 묘원이 있다. 진작 가 보지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한편 느릅나무 노고수에서 바라보이는 뒷재 아래에는 작은 보(930~40평) 가 있어 골짜기에서 형성된 물이 저수되고 있다.
장군당 뒷재를 넘으면 구오목마을이고 거기서 다시 큰외에 목재를 넘으면 용소마을로 이어지게 되는데 동네도 없어지고 잿길도 없어진 채 지명으로만 남아 있다. 문득 이곳에 들어와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음 지도 로드뷰를 통해 2015년 3월 일대의 모습을 살펴 보았다. 화면에서 오른쪽 첫 나무는 팽나무고 뒷쪽이 두 갈래로 줄기를 열어 사방으로 가지를 펼 친 나무가 느릅나무다. 그리고 왼쪽에 서 있는 비가 마을이름의 유래가 된 수구대장군 비다
수구대장군 비는 자연석으로 만들었다.
뒷면에 건륭46년(乾隆 46年) 안국서(安國瑞)라 새겨져 있는데 뚜렷하게 증빙해 줄 수 있는 문헌은 찾지 못했다. 건륭이란 연호는 청나라 6대조 고종(1711생~1799졸)이 60년간 재위(1735~1795) 하면서 쓴 것이다. 안국서를 웹서핑으로 뒤적이니 도시 알 수가 없다. 겨우 찾아낸 것이 안국서는 죽산안씨 안유충의 아들이고 안전의 손자 라는 것인데 안전은 고려말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안국서는 조선 초 인물이 되는데 .... 그가 어찌하여 경상도 의령땅과 인연을 맺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외조부 이범구(李範求)가 산학별제(算學別提)라는 관직을 지낸 합천(陜川) 이씨였다는 것이 다이다. 산학은 요즘 말로 산수라는 것이고 별제라는 직위는 정6품의 참상관급이다. 참고로 정삼품 하계에서 종4품 하계까지를 당하관이라 하였고 정1품에서 정3품 상계까지를 당상관이라 칭하였다. 그리고 정7품에서 종 9품까지를 참하관이라 하였다.
建陽 |
조선 |
고종 |
1896∼1897 |
光武 |
대한제국 |
고종 |
1897∼1907 |
隆熙 |
대한제국 |
순종 |
1945∼1948 |
어쨌든 안국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건륭46년이라면 액면 그대로 보더라도 비의 건립연대가 1749년이 된다. 영조25년 이다.
장군당 수구대장군(수구막이)는 읍락 또는 마을 비보의 기능으로 세운 것이다. "....읍락이나 부락이 자리한 위치를 볼 때 3방(方)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 쪽은 물이 흘러가는 수구(水口)로 되어 있는 것이 흔히 있는 지형의 형국이다. 그런데 마을에서 들판이나 큰 들길이 바로 터져 보이거나, 물이 곧게 흘러 수구를 통하여 마을이 보이는 경우는 지맥이 허하다고 하였다. 이런 경우 수구가 터져 보여 허한 곳은 나무를 많이 심어 수구를 막고, 밖에서 마을이 들여다 보이는 곳은 인위적으로 산을 만들어(造山) 마을을 보호하였다. 냇가를 따라 밖으로 통하는 길 양쪽에는 수구 막이로써 법수나 장승을 세웠다. 이런 것들이 바로 읍락 비보의 하나이다." (퍼온 글중에서 )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수구장문(水口藏門)은 즉 골짜기 물이 멀리 돌아서 흘러가 저 밑 하류가 보이지 않게된 땅의 형세를 가리키는 것으로 흔히 수구막이 또는 수구대장군이라는 글을 장승에 써서 세우거나 돌에 새겨 세우는 풍습에서 비롯되었는데 실제로 골짜기의 물이 흘러가는 하도에서 하구는 보이지 않는다. 저수지에서부터 거리를 재어보니 신촌마을앞을 흐르는 상곡천합류지점까지 약 1.6 km 상곡천에서 유곡천까지가 660m 그리고 유곡천이 낙동강과만나는 의령군 낙서면 장하리까지는 19.22km 낙동강에서 합류한 물이 낙동강 하구까지는 110km였다.
구 분 |
기 능 |
명 칭 |
부락수호 |
흉년, 재앙, 유행병 등을 가져오는 귀신 이나 역신을 겁을 주어 쫓아 보냄. |
법수,벅수,장신 外 |
방위수호 |
방위가 허한 곳에 각 방위에 해당하는 오방 신장을 배치하여 방위를 지킴. |
법수,벅수,장생(長牲), 장승 外 |
산천비보 |
풍수 도참설에 의하여 국기의 연장과 군왕의 장생을 기원하기 위하여 사찰 주위에 세움(얼굴없음) |
장생표(長生標) |
읍락비보 |
고을과 마을의 지맥이나 수구가 허한 곳을 다스리기 위하여 세움. |
법수,벅수,장생(長牲), 장승 수구막이 外 |
불법수호 |
사찰 입구에 세워 경내의 청정과 존엄을 지키게 함. |
장생(長牲),장승 外 |
경 계 표 |
농경과 수렵 및 땔감을 얻는 땅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세움. |
장생(長牲),장승 外 |
노 표 |
이정표 및 방두의 노신을 겸했던 제도적인 장생 |
장생(長牲),장승,후 |
성문수호 |
중국에서 오는 역병이나 재앙의 침입을 성문에서 제지함. |
벅수,장승,우석목 外 |
기 자 |
득남과 풍요를 기원함. |
벅수,남근석 外 |
아래 그림은 정곡면 두곡마을 수구대장군이다. 비슷한 내용으로 비석 대신 숲을 조성한 곳은 유곡면 송산3구에 있다. 뜻밖의 공부를 하게 됐다.
http://blog.daum.net/bgtkfem/113
아버지는 어데로 - 김씨스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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