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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오래된 미래

수원 탑동 향나무와 서울대 수원 캠퍼스 김상진 느티나무

by 이성근 2016. 10. 2.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실천을 위한 공원녹지분야 시민참여 활성화 방안 모색 2차 토론회에 참여하기 위해 수원을 찾았다.  토론 장소는 주최측인 수원그린트러스트가  둥지를 튼  수원녹지사업소가  있는  구 농진청 이었다.

철도파업과 주말이 겹쳐 기차는 편도만 끊었다.  수원역사 앞 개발로 인해 부산했고 하늘에는 비행기 소음이 지배했다. 

 

 

 

 

 

농진청이 화성으로 이전한 다음 부지 이용과 관리를 수원시에서 일부 관여함에 녹지사업소가 들어 와 있는 형태가 되었다.

3층 건물 끝 반지하에 수원그린트러스트가 자리잡고 있었다. 

조성된 화단이 눈길을 끌었다. 높이가 있는 억새와 남천을 벽면 가장자리에 식재하여 배경을 만들고 그 아래 국화와 맨드라미 등으로 배치했다. 

오후 2시 허기진 배를 김밥으로 채우고 토론에 들었다.   두개의 주제발표가 있었다. 수원 지역사회연구원의 김성균 박사가 공원녹지분야ㅐ 시민참여 활성화 방안에 대해 조례를 중심으로 시민단체의 공원 활동 현황에 따른 문제점과 보완을 이야기 했고 부산그린트러스트는 2016년 사업을 중심으로 활동의 목표와 시민참여 현황에 대해 사례중심으로 발표했다.  토론의 목적이 타 지자체 사례학습과 2017년 수원시 정책제안에 잡혀 있었다.  쉽게 말해 타 지역의 활동시례를 공유하면서 내년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와 현재 시민참여 공원 활성화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두시간 여 토론을 마치고 유뮨종이사장의 고향마을을 찾았다. 700살 향나무를 보여주겠다고 해서였다.

향나무가 서있던 곳은  유이사장의 어릴 적 놀이터 였고 주변에 태어난 집이 있었다고 했다.

향나무는 1982년 지정당시 700살이었으미 지금 시점으로보면 정확히 734살이다.

수고 10m에 나무둘레 2.5m 

향나무 노거수 중에 아마 가장 많은 나이를 간직한 나무가 아니가 싶다. 

줄기에 공동이 생겨 외과처리를 했지만 수형이 그런대로 보기가 좋았다. 

생육환경도 크게 나쁘지 않았다.  

수원 탑동에는 이 향나무 말고도 버금가는 향나무가 골말에  한 그루 더 있었다고 하는데 1982년 도벌당했다고 한다.

 

마을의 유래를 알려주는  좌대

나선 걸음에 서문동 서울대 농대 수원캠퍼스로 발길을 옮겼다.  이곳 역시 2003년 관악 캠퍼스로 이전하면서 방치되다 최근 경기도 상상캠퍼스로 바뀌어 변신을 도모하고 있는 중이다.  

이전 이후 13냔간 방치된 모습이 역력했다.

한편으론 부러웠다.  이런 공간을 수원시는 어찌되었든 내부 자원으로 활용할 기회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경기도가 여기에다 기숙사를 건립하겠다고 했고 진행중에 있다. 일명 따복기숙사로 경기도와  서울대가 협약을 함으로서 가시화 되고 있다.

발길을 멈춘곳은 100살 배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농대 개교 10년 1916년 심었다는 배나무 Pyrus pyrifolia

회양목 넘어가 농대 강당이다.

그리고 이 터에서 1970년대를 고발한 청년이 있었다.

1970년대 중반의 한국사회는 유신체제의 질곡으로 어둠에 묻혀 있었다. 소수의 민주인사들과 일부 학생들이 반유신 저항에 나섰지만 그때마다 박정권의 혹독한 탄압으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언론인이 언론자유를 수호하다 거리로 쫓겨나던 봄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동아일보 광고 탄압에 대해 민주광고가 게재되면서 온국민의 반독재 투쟁의 열기가 고조되던 때 였었다. 고려대학교에서 첫 시위가 시작되었다

 

48, 고려대학교만을 대상으로 한 긴급조치 7호가 발동되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49, 박정희 정권은 인혁당 관련자 8명에 대해 판결 하루만에 사형을 집행했다 

서울대생들도 시위에 나서기 시작했고 서울농대생들도 가두로 진출학 시작했다.

4111120, 서울대 농대 수원캠퍼스 잔디밭 백양나무 아래서 자유 시국성토대회 형식의 집회가 열렸다. 세번째 연사로 등장한 김상진은 죽음을 택하게 된 양심선언문을 읽고 활복 자결한다. 그의 나이 스물 여섯 짧은 생이 끝이 난 것이다. 시신은 반강제적으로 하루 만에 화장됐다. 유골은 한동안 절에 보관되다가 일 년이 지난 후에야 벽제 국제공원묘지에 안장됐다. 1988김상진기념사업회(기념사업회)’가 결성됐다

양 심 선 언 문

더 이상 우리는 어떻게 참을 수 있으며 더 이상 우리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어두움이 짙게 덮힌 저 사회의 음울한 공기를 헤치고 죽음의 전령사가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다.

 

무엇을 망설이고 무엇을 생각할 여유가 있단 말인가!

 

대학은 휴강의 노예가 되고, 교수들은 정부의 대변자가 되어가고 어미닭을 잃은 병아리마냥 우리들은 반응없는 울부짖음만 토하고 있다. 우리의 주장이 결코 그릇됨이 아닐진대 우리의 주장이 결코 비양심이 아닐진대, 우리는 어떻게 더 이상 자존을 짓밟혀 불명예스런 삶을 계속 할 것인가. 우리를 대변한 동지들은 차가운 세멘트 바닥 위에 신음하고 있고, 무고한 백성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가고 있다.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살아간다고 한다. 들으라! 동지여! 우리의 숭고한 피를 흩뿌려 이 땅에 영원한 민주주의의 푸른 잎사귀가 번성하도록 할 용기를 그대들은 주저하고 있는가! 들으라! 우리는 유신헌법의 잔인한 폭력성을, 합법을 가장한 유신헌법의 모든 부조리와 악을 고발한다. 우리는 유신헌법의 비민주적 허위성을 고발한다. 우리는 유신헌법의 자기중심적 이기성을 고발한다.

 

학우여!

아는가! 민주주의는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 투쟁의 결과라는 것을. 금일 우리는 어제를 통탄하기 전에, 내일을 체념하기 전에, 치밀한 이성과 굳은 신념으로 이 처참한 일당독재의 아성을 향해 불퇴진의 결의로 진격하자. 민족사의 새날은 밝아오고 있다. 그 누가 이 날의 공포와 혼란에 노략질 당하길 바라겠는가. 우리 대한 학도는 민족과 역사 앞에 분연히 선언한다. 이 정권, 끝날 때까지 회개치 못하고 이 민족을 끝까지 못살게 군다면 자유와 평등과 정의를 뜨겁게 외치는 이 땅의 모든 시민의 준열한 피의 심판을 면치 못하리라. 역사는 이러한 사태를 원치 않으나 우리는 하나가 무너지고 또 무너지더라도 무릎 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을 것임을 재천명한다.

 

탄압과 기만의 검은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라. 우리는 이제 자유와 평등의 민주사회를 향한 결단의 깃발을 내걸어 일체의 정치적 자유를 질식시키는 공포의 병영국가가 도래했음을 민족과 역사 앞에 고발코자 한다. 이것이 민족과 역사를 위하는 길이고 이것이 우리의 사랑스런 조국의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길이며 이것이 영원한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길이라면 이 보잘 것 없는 생명 바치기에 아까움이 없노라. 저 지하에선 내 영혼에 눈이 뜨여 만족스런 웃음 속에 여러분의 진격을 지켜보리라. 그 위대한 승리가 도래하는 날! ! 소리없는 뜨거운 갈채를 만천하에 울리게 보낼 것이다.

1975. 4. 11

서울농대 축산과 4

김 상 진

 

<김상진 할복자살사건>을 계기로 유신헌법 철폐와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민주화운동이 거세게 일어나자 이를 탄압하기 위해 1975513일 긴급조치緊急措置 9호가 선포되었다긴급조치 9호는 79127일 해제될 때까지 4년여 동안 지속된 긴급조치 9호 시대는 민주주의의 암흑기로서 8백여 명의 구속자를 낳아 <전국토의 감옥화> <전국민의 죄수화>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유고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장

 

대통령 각하

각하께서 보시기에는 너무도 지극히 미약한 인간이지만 진실로 국가를 사랑하고 민족의 나아갈 길을 걱정하는 한 국민의 충성된 마음에서 탄원하옵니다. 각하께서는 1971년도 신년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전쟁준비를 완료하고 초조하게 무력적화통일의 기회만 노리는 북괴가 이러한 정세를 오판한 나머지 또다시 6.25동란과 같은 참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2~3년간이 국가안보상 중요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 지난 5~6년간에 걸친 안보위기 속에서 우리 국민은 무척이나 허덕여왔고 매년 가중되는 강박관념은 오히려 불신을 초래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싸워나갈 수 있는 길은 올바른 민주주의 토대 위에서 이룩된 국론통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풍토 이것이 곧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강력한 세력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각하께서 5.16 직후에 발표하신 혁명공약에서 민정이양을 선포하셨을 때, 우리 국민은 정의로운 혁명가에게 갈채를 보냈고, 3선에 출마하셨을 때 우리 국민의 얼굴은 어두웠으며, 유신헌법이 공포되었을 때 우리 국민의 눈동자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 감히 입을 열고자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누구보다 민족을 사랑하고 국가를 아끼는 신념 속에서 살아가시는 줄 알고 있습니다만, 국민이 판단할 때 행하여가는 방법이 그릇되었다면 그것은 한 지도자의 아집과 독선으로 규정지을 수밖에 없고 그로써 빚어지는 갈등은 사회를 끝없는 소용돌이 속에서 헤매게 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요?

 

우리 민족이 걸어온 발자취를 더듬어보건대 지극히 제한된 자유 속에서 울분을 감추며 그것을 인내로 이겨나가는 습성을 익혀왔고 따라서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들의 마음속에는 이제 조그만 자유나마 감사하며 일제시대, 6.25 당시와 비교하여 획득해야 할 자유를 포기해버리는 피압박민족의 설움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 인내를, 그 무언의 호소를 각하께서는 소리 없는 지지로 착각하셨고 14년의 권위를 유지해온 힘이 되신 것입니다. 획득해야 할 자유에도 한계가 있지만 제한해야 할 자유에도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차 한 잔을 마시면서도 주위를 돌아보아야 하고, 보이지 않는 압력에 끌려 투표장으로 가는 국민의 발걸음에서 과연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요? 사회는 어둠의 짙은 그림자로 뒤덮이고 학원은 병들어 교수는 학생에게 양심과 정의가 무엇인지 가르치기를 꺼려하고 있습니다. 각하께서는 아직도 계속되는 학원사태가 일부 몰지각한 학생의 선동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각하께서는 아직도 현사회의 각 분야에서 어떤 희생도 불사하고 과감히 투쟁의 대열에 서서 소리높이 외쳐대는 절규가 일부 분수를 모르는 사회인사의 망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부패와 부조리가 난무하는 우리 사회이지만 그래도 순수한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양심적인 입장에서 반항이나마 할 수 있는 곳이 대학입니다. 대학은 사회와 국가가 해결해야 하는 근본문제를 알고 있으며, 그러기에 현실의 제 문제에 민감히 반응하여 자신의 양심에 의한 행동을 서슴없이 행해 나갑니다. 그것은 자신의 희생을 애국 애족적 견지에서 받아들여 만족해할 수 있는, 즉 대학인이 가지는 국가의 비전에 대한 사명의식에 기인하는 부담 없는 순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학생들의 진심에 귀를 기울이려 하시지 않고 왜 그들의 순수한 애국에 외면만 하는 겁니까? 이렇게 죽음을 불사하고 자신의 양심이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행동하는 저도 시국을 판단할 줄 모르는 몰지각한 학생일까요? 저는 저의 생명을 그렇게 값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몰지각한 행동으로 생명을 버릴 만큼 어리석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또 죽음 앞에 선 인간이 하고자 하는 말에는 고려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죽음 앞에선 보다 순수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대통령 각하

위대한 지도자는 또 민족의 영도자는 국민의 열망과 진심에서 우러나는 존경으로 비롯되는 것이지 결코 강요와 복종으로 점철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민심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 각하 혼자만이 이 시국과 이 나라를 이끌어갈 유일한 존재이며, 이 조국의 안녕과 민족번영을 위해 각하만이 중차대한 사명을,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오류를 버리시지 못하는 겁니까? 우리 국민은 누구나 밝고 밝은 내일의 비전을 갈망하고 우리 국민은 누구나 국가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 사회의 이유있는 저항을 각하의 독선 속에 파묻어버리시려는 것입니까?

헌법 전문에 나타나 있듯이 우리 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애국 애족 정신을 이어받아 용납할 수 없는 불의에 항거하며 어떤 희생도 불굴의 의지로 대항해 나갈 줄 아는 슬기와 용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느껴야 할 기본적 양심이 무엇이고,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정의가 무엇이며 민족이 획득해야 할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가를 우리 국민은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 각하

위대한 지도자의 진정한 용기는 영광의 퇴진을 위한 숭고한 결단에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진정한 안보는 국민총화에서 비롯되고 국민총화는 지도자와 국민 사이에 불신과 압박이 없을 때야 비로소 비롯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범람하는 불신이 뜻하는 것이 무엇이며 인간 개인에게 이유 없는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무엇을 뜻한단 말입니까?

각하의 숭고한 결단 하나로 사회의 안녕을 가져오고 학원의 평화가 유지되며 진실로 국가의 앞날을 걱정하는 우리 민족에게 국민총화의 계기가 마련되며 단결된 힘으로 뭉친 안보태세의 만전이 기해지리라 믿는 바입니다.

 

길이 민족의 가슴 속에서 각하가 이룩해놓은 업적과 더불어 참된 지도자로 새겨질 것이며 욕망을 초월한 초인간적인 슬기를 역사는 높이 평가할 것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역사의 방향을 잘못 인식한 위정자는 산 경험이 말해주듯이 언젠가는 역사의 한 페이지 위에 하나의 오점을 남긴 채 불명예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저 민족의 들리지 않는 피맺힌 절규가 무엇을 뜻하며 간절한 무언의 호소가 무엇을 바라는가를 왜 각하는 모르시는 것입니까?

죽음으로 바라옵나니, 이 조국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옵나니, 국민된 양심으로서 진실로 진실로 엎드려 바라옵나니, 더 이상의 혼란이 오지 않도록 숭고한 결단을 내려주시길 바라옵니다.

 

이 땅의 영원한 민주주의를 꽃피우길 갈망하는 우리 민족의 그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어떤 압력에도 끝없는 투쟁을 계속하여 싸워 이겨나갈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인 것입니다. 각하의 안녕과 건강을 축원합니다.

1975410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축산학과

김상진

 

자결후 공개하라고 한 유서.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Hm85tyhOGX4

 

김상진 열사 추모시

신경림

 

 

네 목소리는 바람이 되었다.

어둠으로 덮인 온 나라의

강과 산과 마을을 누비며

짐승처럼 서럽게 울부짖고 있다

 

네가 흘린 피는 꽃이 되었다

말라 죽은 나뭇가지 위에 골목 진흙탕에

숨죽인 우리들의 팔뚝 위에

불뚝 불뚝 일어나는 숨결이 되었다

 

친구여

이 어두운 땅에도 봄이 왔구나

네 시체를 밟고 사월이 왔구나

네가 뿌린 피를 밟고

다시 사월이 왔구나

 

민주주의여, 아아, 자유여 정의여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사월이 왔구나 친구여

너의 죽음으로

잘린 우리들의 혀가 되살아나리라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울리는

저 우렁찬 목소리로

막힌 우리들의 두 귀가 뚫리리라

눈 앞을 막은 안개가 걷히리라

 

이제 우리들의 목소리도 바람이 되었다

어둠을 뚫는 우렁찬 아우성이 되었다

아무 것도 두려울 게 없는 노랫소리가 되었다

 

친구여 잘 가거라

너는 외롭지 않다

네 뒤를 따르는 피의 노랫소리가 들리리라

 

전혀 생각지 못했던 만남이었다.  

독재자가 죽고  그 딸이 어찌어찌하여 시방 대통령으로 있는 이 나라는 여전히 시꾸럽다. 언론은 권력의 개가 된지 오래다.  곳곳에서 탄식과 울분이 거리로 분출되고 있다.   김상진 열사는 1949년 서울의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하: 1995년 김상진기념사업회 발간 [긴 겨울 얼음 뚫고](녹두) 참조 경향신문 신동호 글을 짜깁기 함 ) 그는 보성중-고를 거쳐 68년 서울농대 축산학과에 입학한다. 그의 대학생활을 평탄했다. 서울농대의 이념서클인 한얼에 가입해 회장까지 지내지만 그는 학생운동권의 주류는 아니었다.

 

그는 대학가에 교련반대데모가 한창이던 1971년 가을 군에 입대해 742학기에 복학한다. 그의 보성고 및 서울농대 축산학과 동기로서 가장 절친한 친구 가운데 한 명이었던 안종건(한국방송통신대 교수)에 따르면 김상진은 할복하기 직전까지 졸업 후 진로 문제를 고민하던 평범한 농학도일 뿐이었다물론 그가 서울대 농대의  이념 서클이라 할 수 있는 별도의 모임을 통해 시대상황을 직시하고 있기는 했으나  철저히 준비된 죽음을 선택했던 것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수원에서 부산간  고속버스 이동시간은 4시간 반

KTX가 주는 시간의 이득 보다 그 곱의 시간을 들여 왔던 귀가길

차내 승객들은  대부분 잠들고  홀로 눈 떠 있는 듯한 상태에서 차창 밖, 내리는 비와 그 빗물에 어리는  불빛들을 보며 생각이 늘었다. 

휴대폰 문자함에는  대학로에서 열릴 고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를 알리는 메시지가  담기고 있었다. 

 

 

Axel Rudi Pell-Don't SaDon`t Say Goodb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