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몸짓/ 칼 사피나 저·김병화 역·돌베개·3만5000원
저자 칼 사피나(1955~ )는 뉴욕주립대학교에서 환경연구를 공부했고 러트거스대학교 생태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부룩 캠퍼스에서 자연과 인문학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며, 과학에 대한 이해를 돕는 앨런 알다 센터ALAN ALDA CENTER의 운영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바다의 변화와 바다에서 살아가는 동물을 관찰하는 일에서 시작된 그의 연구는 어류 산업 문제, 동물 포획 반대, 환경보호 등으로 이어졌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20세기 주목할 만한 환경보호 활동가 100명에 선정(『오뒤봉』 주최)됐으며 뉴욕주립대학교와 롱아일랜드대학교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현재 사피나는 바다생물뿐 아니라 초원과 야생에서 살아가는 동물까지 폭넓게 연구하고 기록하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 저서로 『푸른 바다를 위한 노래』#SONG FOR THE BLUE OCEAN(『뉴욕타임스』의 주목할 만한 올해의 책,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논픽션 부문에 선정), 『알바트로스의 눈』EYE OF THE ALBATROSS(존 버로스 메달과 내셔널아카데미의 올해의 책 수상) 등이 있다. 또한 사피나는 이 외에도 PBS에서 제작한 <칼 사피나와 함께 바다 구하기>SAVING THE OCEAN WITH CARL SAFINA 10부작을 주관 · 진행하기도 했고, 『뉴욕타임스』, 『내셔널 지오그래픽』, 『오뒤봉』 등 다양한 매체에 동물에 대한 글을 연재하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1부 코끼리의 나팔소리
큰 질문 | 동물의 마음속으로 | 인간이라는 비교 대상 | 그들은 우리가 아니다 | 가족| 어미가 된다는 것| 코끼리의 사랑법| 공감에 대하여 | 죽음이 다가올 때 | 작별 인사 | 동물들의 소통 | 붙잡고 있기, 놓아주기| 마사이족과 코끼리| 상아를 둘러싼 전쟁| 아기 코끼리가 오는 곳
2부 늑대의 울음소리
홍적세 속으로 | 슈퍼 늑대, 21번 | 무리의 결성과 해체 | 06번 늑대| 약속의 와해 | 이제 신성한 것은 없는가 | 추방자들 | 동물들의 도구 사용법 | 늑대의 음악| 사냥꾼의 외로운 마음 | 살기 위한 의지| 늑대와 개| 같은 목줄의 양 끝
3부 우리의 오해와 편견
마음 이론 절대 반대 | 명백한 소통 | 자만과 기만 | 터무니없는 아이디어 | 거울, 거울 | 뉴런에 대해| 오래된 나라의 주민
4부 범고래의 호출소리
바다의 왕 | 다양하고 복잡한 | 서명 휘파람 소리 | 내면의 눈 | 다양한 마음 | 두뇌와 지능| 사회적 두뇌| 믿기 힘든 일들 | 도와주는 마음| 인간과 범고래| 포획| 성격에 대하여 | 진실하고 강력한 비전
에필로그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미주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혹시 당신에게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있는가? 그렇다면 한번쯤은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깊은 밤 홀로 깨어 창밖을 보고 있거나 삑삑 소리를 내며 온몸을 흔들고 자고 있을 때, 또 좋아하던 먹이를 먹지 않고 산책을 거부할 때, 예고 없이 하악 소리를 내거나 특정 사람만 보면 짖어댈 때 그들의 머릿속과 마음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완벽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강아지’와 ‘고양이’여서가 아니다. 사실 사람들끼리도 서로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 우리는 종종 부모나 친구, 연인의 속내가 보이지 않아 관계 맺기가 어렵다고 말하지 않는가. 게다가 아랍어나 아프리카어처럼 우리에게 생소한 언어를 쓰는 사람과는 단 5분도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그러니 ‘언어’조차 쓰지 않는 그들의 마음을 알기란 애당초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동물과 소통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꿈일까? 종종 느껴지는 동물과의 교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과 좀 더 건강하고 편안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이번에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칼 사피나의 『소리와 몸짓』은 우리의 이런 궁금증에 실마리를 제공한다. 사피나는 생태학자 특유의 예리한 통찰력과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을 동시에 인정받아 온 미국의 생태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이다. 바다 동물을 관찰하는 일에서 시작된 그의 연구는 어류 산업 문제, 동물 포획 반대, 환경보호 등으로 이어졌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20세기 주목할 만한 환경보호 활동가 100명에 선정(『오뒤봉』 주최)되기도 했다. 현재는 초원과 야생에서 살아가는 동물까지 폭넓게 연구하고 기록하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
『소리와 몸짓』은 사피나의 가장 최근 저서로, 그간 천착해온 동물들이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결과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그는 코끼리가 사는 케냐 암보셀리 공원의 열악한 자연 속으로(1부), 인간에 의한 비극을 경험한 채 살아가는 늑대들이 있는 옐로스톤 국립공원으로(2부), 범고래가 헤엄치는 북서부 태평양의 수정 같은 물속(4부)으로 독자들을 데리고 간다. 여기에 동물들 곁에서 그들의 작은 소리와 몸짓까지 놓치지 않고 관찰해온 연구자들이 겪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들까지 덤으로 들려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독자들은 동물에게 보내왔던 우리의 어리석은 사랑 방식과 오해를 깨달으며, 세계를 보는 또 하나의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우르릉, 우우워워푸흐, 끼익, 쉭쉭, 아아우우우르르, 으르렁, 칙칙, 피투우우……
언어 밖의 세계에서 들려오는 다른 목소리를 찾아서
이 책의 원제 ‘Beyond Words’를 직역하면 ‘(인간의) 언어 저편에’라고 할 수 있다. 왜 사피나는 ‘동물의 세계’라고 하지 않고 ‘언어 밖의 세계라고 했을까? 그렇다면 언어 밖의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피나는 자신이 동물 관찰을 시작할 때만 해도 동물이 인간과 얼마나 유사한 행동을 하는지 찾으려고 애썼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인간과 동물을 비교해서 동물에게 어떤 능력이 있고 없는지를 밝히는 일은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그래서 연구 방법과 시각을 바꿨다. 동물들의 소리와 몸짓을 좀 더 세밀하게 관찰했고, 이런 기록을 해온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동물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아 왔던 것이다. 실제로 동물들은 끊임없이 소리와 몸짓으로 자신의 감정과 인지한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같은 그룹 안에서 의견을 모아야 할 때나 위험 신호를 알려야 할 때, 새로운 변화를 준비해야 할 때 그들은 소리 내고 움직인다. 심지어 곁에서 자신들을 돌봐주거나 관찰하는 인간들에게도 여러 가지 신호를 보내며 감정을 표현하는데 우리가 그중 일부밖에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이 책의 1부, 2부, 4부는 각 제목이 암시하듯 코끼리, 늑대, 범고래의 행동에 대한 관찰 기록지라고 할 수 있다. 코끼리가 코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내는 소리와, 늑대의 울음소리(하울링), 각 범고래가 갖고 있는 자기만의 서명 휘파람 소리 등에 귀 기울이며 그것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피나가 동물을 만나고 기록하는 방식에 있어 무엇보다 뛰어난 점은, 동물들을 종 단위로 묶기보다 한 마리씩 바라보고 개별적으로 서술한다는 데 있다. 때로는 구분하기 위해 붙인 이름(에멧, 펠리시티, 체리, 에코, 이클립스 등)이나 번호(21번, 06번, 820번 등)로 동물들을 호명하며 그들의 행동을 묘사한다. 사피나의 관찰 방식으로 동물을 보다 보면 그들이 각 개체들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인간과 비교하거나 한 종으로 통칭할 수 없는 저마다의 개성과 특징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코끼리에게도 지능이 있을까? 늑대는 동료의 죽음에 슬퍼할까?
우리가 외면하고 오해했던 동물의 감각과 마음에 대하여
2017년 2월 9일, 일본 와카야마 다이지에서 야생 돌고래 두 마리가 국내로 수입됐다가 그중 한 마리가 울산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에 도착한 지 4일 만에 폐사했다. 사망 원인과 책임 주체를 두고 공방전이 벌어졌지만 아직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미 진실을 알고 있다. 자신의 터전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던 동물들이 세계 곳곳의 수족관이나 동물원으로 이동하고 그곳에 갇히는 순간 받게 되는 스트레스와 그로 인해 짧아지는 수명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는 인간에게 유리한 쪽으로 판단하거나 알면서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다. 동물에게도 마음이 있으며, 느끼고 생각할 수 있음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과학계 안에서도 동물의 행동 연구는 역사가 짧다. 사피나는 동물의 마음에 대해 묻고 연구하는 일 자체가 “금단의 열매”(10쪽)였다고 말한다. 종신 교수직에 있지 않으면 이 분야에 발을 딛지 말라고 흉악한 소문이 돈 적도 있다고 한다. 이 책의 3부에서 사피나는 이러한 시각을 강하게 비판하는 데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한다. 사피나가 동물의 행동을 분석할 때 인간을 기준점으로 삼는 방법론을 반대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는 인간과 동물이 동일한 뿌리에서 시작됐다는 믿는다. “고등학생 때는 알고 지냈지만 이후 멀어진 친구들과 비슷하다”(733쪽)고 비유하기도 한다. 인간과 동물은 모두 동일한 두뇌 구조를 갖고 있으며 동물들도 인간 세계가 분류해놓은 것과 같은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자기혐오’만은 예외로 본다)는 것이다. 코끼리 사회에서는 가모장들이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가족 분위기가 달라진다. 코끼리들이 늘 함께 있기를 좋아해 서로 만나면 몸을 맞댄 채 떨어지지 않으려는 반면 늑대들은 무리 안에서 지위를 얻으려고 싸우고 쫓겨나기를 반복한다.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사례들도 많다. 바다 안개 속에 갇혀 길을 잃었을 때 범고래 무리의 안내를 받고 빠져나온 경험이나 먹이 훈련을 받아온 범고래가 나중에는 조련사를 속이는 일도 있다. 『소리와 몸짓』에는 이 외에도 논리적이지 않고 믿을 수 없지만 사람들이 분명하게 경험한 사례들이 수없이 많이 등장한다. 이 모든 것들은 동물들에게도 ‘마음’이 작동하며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느끼고 아파하고 기뻐한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믿기 힘든 동물의 마음과 지능
과학엔 젬병임에도 인문서보다 자연과학 책들에 자꾸 손이 간다. 몇 해 전 TV에서 본 영상 때문이다. 밀렵꾼에게서 자신들을 구해준 은인이 죽자 20여 마리의 코끼리가 집 앞에 모여 애도하는 장면이었는데, 인본주의에 의구심이 생겼다. 내레이터는 그들이 수십㎞ 떨어진 먼 곳에서 찾아와 장례식 내내 그렇게 있었고, 이듬해 기일에도 다시 왔다고 했다. 죽은 건 어찌 알았으며 동물이 어떻게 문상을 할까? 묵념하듯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서 있는 코끼리들을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봤는데도 시간이 흐르자 내 기억이 의심스러웠다. 도무지 설명이 안 되는 일이니까.
다행히 생태학자 칼 사피나의 <소리와 몸짓> 덕분에 내가 헛것을 본 게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물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소통하는지 다룬 이 책의 첫 번째 주인공은 코끼리. 그들에 관한 긴 이야기 속에 내가 본 에피소드가 있었는데(171쪽), 그때쯤엔 이런 일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지능이 높고, 사회적이고, 조상을 존중하고, 자신을 인식하고, 공감할 줄 알고” 심지어 “슬퍼서 죽을 수도 있는” 코끼리에 관한 “있을 수 없는 이야기”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그 중에도 잊히지 않는 건 가족을 모두 잃은 육지의 코끼리를 바다의 흰긴수염고래가 위로하는 대목이었다. 믿을 수 있는가? 바다생물과 육지생물이 종(種)을 초월해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을. 하지만 가모장이 이끄는 복잡하고 끈끈한 공동체, 초음파를 이용한 놀라운 소통력, 큰 두뇌와 긴 수명 등 그들이 가진 여러 공통점을 생각하면 둘의 대화를 의심하는 것이 더 이상한지도 모른다.
정말 이상한 일은 동물도 생각하고 느끼고 함께 놀고 웃고 우는 존재란 것을 무수한 증거-이 책은 750쪽이 넘는다-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과학의 이름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왜 실험실 심리학자와 행동주의 과학자들은 동물에게 부자연스런 억지스러운 실험으로 동물의 마음과 지능을 의심하고 그들이 인간보다 못함을 증명하려는 걸까? 실험실 밖에는 물에 빠진 아기를 구하려다 익사한 수컷 보노보가 있고, 다른 종과 협력해 먹이를 잡는 그루퍼가 있고, 미끼낚시를 하는 왜가리를 비롯해 각종 도구를 사용하는 까마귀·고릴라·침팬지·해달·문어·곤충이 있고, 죽은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원숭이·코끼리· 돌고래 등이 있는데도 왜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지 않고 마음이론이니 거울테스트 같은 걸로 인간만이 타자의 마음을 읽고 자아를 인식한다고 주장하는 걸까?
혹시 그것은 먹이를 구하러 6400km를 날아갔다 와서 수천 마리 새끼들 중 제 새끼를 콕 집어 찾아내는 알바트로스처럼 비상한 능력이 없는 데 대한 열등감이나 불안의 표현은 아닐까?
솔직히 항복한 적을 관대히 포용하고 솔선수범으로 무리를 이끄는 늑대나, 곤경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고 생선 한 마리도 나눠먹는 고래를 보면 동물이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필자는 동물의 우월함을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모든 동물은 나름의 특별함을 갖고 있으며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삶은 무겁다. 내게도 네게도 그들에게도. 이 무거움이야말로 서로를 이해하고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다.<김이경 소설가·독서칼럼니스트>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우리는 동물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만큼 충분히 똑똑한가?
저자 프란스 드 발|세종서적 |2017.07.25
저자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은 네덜란드 출신의 동물행동학자이자 영장류학자이다. 1977년에 위트레흐트 대학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딴 뒤, 아른험의 뷔르허르스동물원에서 침팬지 무리를 대상으로 6년 동안 연구를 하고 나서 미국으로 건너갔다. 첫 번째 대중서인 『침팬지 폴리틱스』에서 저자는 권력투쟁에 휘말린 침팬지의 잡담과 권모술수를 인간 정치인과 비교했다. 그 후로 드 발은 영장류의 행동과 인간의 행동 사이에서 유사점을 찾기 시작했다. 그의 책들은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드 발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생물학자의 반열에 올라섰다.
드 발은 영장류 사이에서 일어나는 화해를 발견함으로써 동물의 갈등 해결 방법에 관한 연구를 이끌었다. 『영장류의 평화 만들기』로 1989년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도서상을 받았다. 그의 논문은 『사이언스』와 『네이처』, 『사이언티픽 아메리칸』뿐만 아니라 동물 행동과 인지를 전문으로 다루는 여러 학술지에 실렸다. 최근에 드 발은 동물의 협력, 감정, 공감, 그리고 인간의 도덕성 진화에 관한 문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드 발은 에모리 대학 심리학과 석좌교수, 애틀랜타에 있는 여키스국립영장류연구센터의 ‘살아 있는 고리 연구센터’ 책임자, 위트레흐트 대학의 석학교수를 맡고 있다. 그는 오래전부터 국립 침팬지 보호 시설인 침프 헤이븐에서 이사로 일해왔는데, 이 단체는 전에 실험실에 갇혀 있었던 침팬지들을 숲이 우거진 루이지애나주의 넓은 섬들에 풀어주는 일을 한다. 드 발은 미국국립과학원과 왕립네덜란드예술과학원에서 각각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2007년에는 『타임』이 선정한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100인에 포함되었으며, 2011년에는 『디스커버』가 선정한 (전 시대를 망라한) 위대한 과학자 47인 중 한 명으로 꼽혔다.
목차
프롤로그
제1장 마법의 우물
벌레가 된다면| 맹인이 코끼리 만지듯| 의인화에 반대한다
제2장 두 학파 이야기
개도 욕망할까? | 헝거 게임| 간단한 설명이 좋은 이유| 영리한 한스의 놀라운 사기극| 책상머리 앞의 영장류학| 해빙| 벌잡이벌
제3장 인지 물결
유레카!| 말벌의 얼굴| 사람의 정의를 다시 내리다| 까마귀도 도구를 사용한다!
제4장 말을 해봐
천재 앵무새 앨릭스| 헷갈리는 동물들의 언어| 개를 위하여
제5장 만물의 척도
인간의 머리에서 멈춘 진화| 다른 사람의 마음 짐작하기| 아이에게 나타나는 영리한 한스 효과| 습관의 전파| 일시 중지
제6장 사회성 기술
마키아벨리 지능| 삼각관계를 아는 동물들| 실제로 해봐야 알 수 있는 실험| 물고기들도 협력한다| 코끼리 정치학
제7장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고양이는 왜 우산을 준비하지 않을까?| 동물의 의지력| 네가 아는 것을 알라| 의식
제8장 거울과 병
소리에 민감한 코끼리| 거울 속의 까치| 연체동물의 마음| 로마에 가면 | 이름에는 무엇이 있을까?
제9장 진화인지
감사의 말
용어 설명
주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뉴욕타임스 · 아마존 베스트셀러
퍼블리셔스 위클리 2016 최고의 책
가디언 2016 최고의 책
라이브러리 저널 2016 최고의 책
굿리즈 2016 과학 분야 1위
동물의 지적 세계를 향한 흥미로운 발견 여행
최근 수십 년 동안 동물의 정교한 인지(cognition)에 관한 발견이 눈사태처럼 쏟아지고 있음에도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동물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 아리스토텔레스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한 이후 인간은 인간이 할 수 있으나 동물이 할 수 없는 온갖 일들을 열거하며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으나 동물 연구가 진척되며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인간과 유전자가 98.8% 일치하는 침팬지에게서 도구 사용 능력과 정치 행위를 발견함으로써 ‘도구적 인간(호모 파베르)’과 ‘정치적 인간(호모 폴리티쿠스)’이라는 용어가 무색해졌고, 고도의 지능 또한 돌고래가 인간과 동등한 수준의 지능을 갖고 있다는 과학자들의 발표로 더 이상 성역이 될 수 없었다. 이에 인간은 능력에 서열을 매기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동물과 인간의 지능에는 근원적으로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강조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침팬지, 코끼리, 까마귀같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영리하다고 생각하는 동물을 제외한 나머지 동물은 여전히 감정과 생각이 없는 하등생물인 셈이다.
세계적인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이러한 인간 중심의 패러다임에 전면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동물을 연구하면서 동물의 지능과 감정에 관해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된 동시에 인간의 특별성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는 동물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똑똑할뿐더러 심지어 인간이 동물보다 더 우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모든 동물의 마음과 생각은 각각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발달되었을 뿐이기 때문에 어떤 능력을 더 특별하다고 여길 만한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드 발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지를 연구하는 분야인 진화인지가 지난 20년 동안 얼마나 혁명적으로 성장했는지를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보여준다. 이 책은 동물의 지적 세계를 탐구하는 여정이자 인간의 아성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저자는 흥미진진한 연구와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협력, 유머, 정의, 이타심, 합리성, 의도, 감정 등 인간적이라고 여겼던 가치들을 동물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밝힌다. 자기 결정을 후회하는 쥐부터 인간의 얼굴을 알아보는 문어, 뛰어난 기억력으로 인간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침팬지에 이르기까지 더 이상 동물에게 접근 금지 구역은 없다. 그는 영장류뿐만 아니라 문어, 말벌, 돌고래, 까마귀, 돌고래 등 광범위한 종을 다루면서 동물들이 일상적으로 지능을 사용하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고 재기 넘치는 필치로 그려낸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동물이 다르게 보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오만과 겸손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합리적이고, 타인을 배려하고, 유머를 즐기고, 미래를 상상하는 종이 인간뿐일까?
침팬지도, 까마귀도, 문어도 그렇게 한다!
인간은 동물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것은 동물의 권리나 행복, 자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비롯해 동물을 관찰하는 여러 연구자들에게는 중대한 화두다. 프란스 드 발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우리는 동물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만큼 충분히 똑똑한가?” 동물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 중 하나가 인간 중심주의적인 사고라고 생각한 그는 이 책의 핵심 질문을 통해 동물에게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동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꼬집는다. 인간은 사자나 돌고래가 되어본 적도 없고, 의사소통을 해본 적이 없으므로 동물의 정신 수준을 입증하거나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의 세계를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동물은 자외선을 지각하는 반면 어떤 동물은 냄새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등 서로 다른 방법으로 세계를 지각한다. 또한 똑같은 떡갈나무에서 산다고 할지라도 어떤 동물은 가지에 내려앉는가 하면, 나무껍질 아래에서 살아가는 동물도 있고, 여우는 나무뿌리 사이에 굴을 파서 보금자리를 만드는 등 동물들은 저마다 같은 나무를 서로 다르게 지각한다.
이렇게 다른 세계에 사는 동물의 마음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그들의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적이다. 계산 능력이 필요 없는 다람쥐에게 열까지 숫자를 셀 수 있냐고 묻는 것은 불공정한 일이며,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는 어둠 속에서 방향을 알기 위해 초음파가 필요하지 않다. 인간의 기준이 아닌 동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볼수록 우리는 불가사의하고 경이로운 동물들의 능력과 마주하게 되는데, 드 발은 이 흥미로운 동물들의 세계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소개한다.
침팬지와 인간의 행동이 비슷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가족애나 권력 투쟁 등 사회생활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유사성이 놀라운 정도다. 야구 모자를 거꾸로 쓰는 것이 유행하는 것처럼 침팬지 집단 내에서도 풀줄기를 귀에다 꽂는 행위가 유행하기도 한다. 침팬지의 정치 행위는 인간사로 치환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1년 전에 권좌에서 밀려난 늙은 수컷 침팬지는 지배자 자리에 새롭게 도전하는 야심만만한 젊은 수컷을 지지함으로써 쿠데타 성공 후 한동안 막후 실세로 행세하고, 지위를 놓고 도전하는 싸움에서 경쟁자를 둔 수컷은 사전에 지원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친구들의 털을 골라주면서 비위를 맞춘다. 새끼들의 놀이가 싸움으로 변할 경우 서로 눈치를 보던 어미들은 가모장 침팬지에게 다가가 중재를 요청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침팬지가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이므로 예외적인 경우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드 발은 여러 동물의 똑똑한 행동을 증거로 내세우며 동물의 일반적인 지능을 뒷받침한다. 문어나 곰치, 말벌 등 인간이 생각하지 못했던 동물들마저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발을 디딘다. 그들은 자의식을 갖고 있거나, 문화를 형성하거나, 미래를 상상하거나, 얼굴을 인식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준다. 흔히 자기 인식 능력의 중요한 준거점으로 작용하는 거울 테스트는 아주 오랫동안 오직 인간과 대형 유인원만이 통과할 수 있었는데 최근 돌고래와 코끼리, 까치까지 합격함으로써 자의식을 가진 동물 대열에 들어섰다. 이 테스트가 주목받는 이유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인식한다는 것은 자신을 다른 이들과 분리된 개인이라는 걸 이해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흔히 앵무새를 단순한 모방꾼으로 치부하지만, 사물을 정확히 구별하고 덧셈을 할 줄 아는 천재 앵무새 앨릭스가 등장함으로써 ‘새대가리’라는 부당한 오명은 불식되었다. 인간만이 이름을 가진다는 생각은 돌고래로 인해 바뀌게 되었다. 돌고래는 각자 이름이라고 부를 만한 고유한 휘파람 소리를 내는데, 때로는 다른 돌고래의 휘파람 소리를 흉내 내 동료의 이름을 부른다. 클라크잣까마귀는 수백 군데에 2만 개 이상 숨겨 놓은 잣을 되찾는 데 선수이고, 침팬지는 눈 깜짝할 사이(0.2초)에 사이에 보았던 숫자를 5개 이상 기억할 수 있다. 인간은 훈련을 거쳐도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다. 공감은 사회를 결속시키는 데 아주 중요한 능력인데, 상대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어야 도움을 줄 수 있다. 바다에서 한 돌고래가 기절하자, 두 돌고래가 기절한 고래를 양쪽에서 떠받쳐 숨 쉴게 도와준 사례가 있다. 이렇게 도움을 줄 동안은 자신의 호흡공이 물속에 잠겨 숨을 쉴 수 없다. 어치도 남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른 새가 지켜보는 동안 먹이를 숨긴 어치는 그 새가 사라지자마자 숨겨둔 먹이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 재미있는 사실은 다른 새의 먹이를 훔친 적이 있는 새들만 자신의 먹이를 다시 숨긴다는 것이다. 자신의 범행을 바탕으로 남의 범행을 의심하는 것이다.
드 발은 많은 동물들이 인지 능력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데, 유인원은 높은 지능 때문에 부각된 것일 뿐 개, 조류, 파충류, 어류까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이라면 어떤 동물에게서도 해당 인지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과 동물이 똑같은 행동을 했다면 그 의도를 다르게 취급할 이유도 없다. 코끼리 무리에서 지도자 코끼리에게 서열이 낮은 코끼리들이 복종을 보이는 행동은 두목의 반지에 키스를 하는 부하의 행동과 다름이 없다. 한 보노보가 먼 거리를 걸어 무거운 돌을 운반하는 것은 확고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우리가 사닥다리를 들고 가는 남자를 보고 아무 이유 없이 운반할 리가 없다고 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두 발 보행이 인간에게 중요한 지표라면 닭이나 캥거루, 보노보의 두 발 보행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드 발은 우리의 색안경뿐 아니라 과학적 이론이나 실험의 객관성까지도 경계한다. 그에 따르면 자기 인식을 검증하는 거울 테스트도 자아를 연구하기 위한 많은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거울 테스트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어떤 동물은 시각적 조건이 아닌 감촉 테스트가 적합하고, 거울을 보고 머리를 긁거나 입안을 들여다보진 않지만 거울 속 모습을 다른 동물과 혼동하지 않는 원숭이도 있기 때문이다. 뇌 크기와 지능의 연관성도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사회적 지능과 기술적 지능은 구별하기 힘들뿐더러 코끼리나 고래는 인간보다 훨씬 큰 뇌를 가지고 있다. 신경세포로 지능을 가늠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코끼리 뇌에는 인간보다 세 배나 많은 신경세포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뇌에 관한 것만으로는 인간의 독특성을 주장하기 어렵다.
드 발은 책 전반에 걸쳐 개별적인 사례를 다루면서 동물에게서 인간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각각의 종은 제 나름의 생활 방식이 있으며 이것이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좌우한다. 환경에 맞게 전문화된 모든 인지 능력이 특별하다는 그의 통찰은 인간과 동물에 관한 모든 생각을 재고하도록 만든다.
책속으로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코끼리가 도구를 사용할 줄 모른다고 믿었다. 이 후피동물은 위와 동일한 바나나 테스트에서 막대를 사용하지 않아 과제 수행에 실패했다. 코끼리가 실패한 것은 반반한 표면에서 물체를 집어 올리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코끼리는 바닥에 붙어 살아가며 늘 물건을(때로는 아주 작은 것도) 집어 올리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코끼리가 그냥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자들이 코끼리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 1장 ‘마법의 우물’에서
나는 비인간이라는 용어가 몹시 거슬린다. 어떤 속성이 없다는 이유로 수백만이나 되는 종들을 하나로 뭉뚱그리기 때문인데, 그럼으로써 이들 모두를 마치 뭔가 부족한 존재인 것처럼 여긴다. 불쌍한 것들, 그들의 이름은 비인간이로다! 학생들이 글을 쓰면서 이 용어를 사용하면, 나는 빈정거리는 투의 평을 하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하고, 공평하게 하려면 해당 동물이 비인간일 뿐만 아니라 비펭귄, 비하이에나, 기타 등등이기도 하다고 덧붙여야 할 것이라고 여백에 적어 넣는다. ― 1장 ‘마법의 우물’에서
작은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쌍살벌은 계급이 분명히 정해져 있는데, 이 무리에서는 모든 개체를 일일이 알아보는 것이 유리하다. 얼굴의 검은색과 노란색 무늬는 서로를 구별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쌍살벌과 아주 가까운 관계에 있는 한 말벌 종은 사회적 생활이 덜 분화된 반면에 얼굴 인식 능력이 없다. 이것은 인지가 생태학적 조건에 얼마나 크게 좌우되는지 보여준다. ― 3장 ‘인지 물결’에서
뇌의 신경 연결을 강조하는 주장에 대해 나는 우리의 1.35kg 뇌보다 큰 뇌를 가진 동물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의문이 든다. 돌고래는 뇌가 1.5kg, 코끼리는 4kg, 향유고래는 8kg이나 되는데, 이 동물들의 의식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동물들은 아마도 우리보다 더 많은 의식을 갖고 있을까? 아니면, 의식은 신경세포의 수에 달려 있을까? 이 점에서 그림은 다소 불분명하다. 오랫동안 우리 뇌는 뇌의 크기와 상관없이 지구상의 어떤 동물보다 신경세포가 더 많다고 간주되어왔지만, 지금은 코끼리 뇌에는 우리 뇌보다 세 배나 많은 신경세포(정확하게는 2570억 개)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 제5장 ‘만물의 척도’에서
과학이 정말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쥐의 간이나 인간의 간이 아니라 간 자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모든 기관과 과정은 우리 종보다 훨씬 오래되었으며, 수백만 년 이상 진화해오는 동안 종마다 고유한 변경이 일부 일어났다. 진화는 항상 이런 식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인지는 달라야 할 이유가 있는가? 우리의 첫 번째 과제는 인지가 일반적으로 어떻게 작동하고, 인지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어떤 요소들이 필요하며, 이 요소들이 어떻게 그 종의 감각계와 생태와 조화를 이루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 제5장 ‘만물의 척도’에서
침팬지가 폭력적이고 호전적이라는(심지어는 ‘악마 같다는’) 최근의 평판은 거의 다 야생에서 이웃 집단 구성원들을 대하는 방식을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나온 것이다. 야생에서 침팬지는 가끔 세력권 때문에 잔인한 공격을 한다. 치명적인 싸움은 아주 드물게 일어나 과학자들이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데 합의하기까지 수십 년이나 걸렸지만, 이 사실 때문에 침팬지는 이미지를 단단히 구겼다. 어느 야외 현장에서 싸움으로 인해 사망자가 나오는 비율은 평균적으로 7년에 한 번 정도이다. 더구나 이 행동은 침팬지를 우리와 구분하는 특징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종의 집단 간 전쟁은 대규모 집단 노력으로 제대로 바라보는 반면, 왜 이 행동은 침팬지의 협력적 본성을 부정하는 근거로 내세운단 말인가? 침팬지에게도 우리와 똑같은 논리를 적용해야 마땅하다. ― 6장 ‘사회성 기술’에서
문어는 빨판이 약 2000개나 있는데, 각각의 빨판마다 약 50만 개의 신경세포를 포함한 신경절이 있다. 그러니 뇌에 있는 신경세포 6500만 개 말고도 여분의 신경세포가 아주 많이 있는 셈이다. 게다가 다리를 따라 신경절들이 사슬을 이루며 늘어서 있다. 뇌는 이 모든 ‘미니 뇌’들을 연결시키며 미니 뇌들끼리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처럼 하나의 중앙 지휘본부가 있는 대신에 두족류의 신경계는 인터넷과 비슷하다. 국지적 지휘소들이 광범위하게 뻗어 있는 것이다. 잘려나간 다리가 혼자서 꿈틀거리면서 심지어 먹이를 집기도 한다. 이와 비슷하게 새우나 작은 게를 마치 컨베이어벨트처럼 한 빨판에서 다음 빨판으로 건네면서 입 쪽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다소 믿기 어려운 이야기처럼 들린다. 앞을 보는 피부와 각자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여덟 개의 팔을 가진 동물이라니! ― 8장 ‘거울과 병’에서 --- 본문 중에서
동물의 사생활과 그 이웃들 저자 페터 볼레벤|이마 |2017.07.10
원제 Das Seelenleben der Tiere
저자 페터 볼레벤(PETER WOHLLEBEN)은 1964년 독일 본에서 태어났으며 로텐부르크 임업대학을 졸업하고 산림 기사가 되었다. 20년 넘게 라인란트팔츠주 산림 관리 공무원으로 일하다 2006년 친환경적 산림 경영의 이상을 실천하고자 독일 중서부 휨멜 조합의 산림경영지도원이 되었다.
이곳은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대규모 기계 대신 말이나 사람의 손을 이용하여 산림을 관리하는 독일 전역에서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다. 이러한 친환경 관리 방식 덕분에 독일 내 친환경 숲에 수여하는 상을 수차례 받았다. 자연장 장지를 조성하고 원시림 회복 운동의 일환으로 지역민의 참여를 유도하는 프로젝트와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독일 장기 베스트셀러『나무 수업DAS GEHEIME LEBEN DER BAUME』을 썼고 TV와 라디오 등 다양한 매체와 강연, 세미나, 저서를 통해 동식물의 신비롭고 놀라운 삶과 숲 생태계 회복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들어가는 글 6
쓰러질 때까지 모성애를 발휘하다 10
본능은 열등한 감정일까? 18
인간에 대한 사랑 26
머리에서 불이 반짝반짝 36
멍청한 돼지 48
감사의 마음 54
거짓과 속임수 59
도둑을 막아라! 65
용기를 내! 73
흑백 79
따뜻한 꿀벌, 차가운 사슴 87
집단 지성 98
속마음 104
구구단 109
그냥 재미있어서 114
욕망 118
죽음을 넘어서 122
이름 짓기 127
슬픔 135
부끄러움과 후회 140
공감 149
이타심 156
교육 160
자식을 독립시키는 법 165
야생은 야생이다 169
도요새 똥 178
특별한 향기 183
편리함 189
험한 날씨 195
통증 201
공포 205
상류층 226
착하고 못됐고 229
잠의 요정이 찾아오면 237
동물의 신탁 242
동물도 나이가 든다 251
낯선 세상 257
인공적 생활 공간 265
인간을 위하여 272
마음을 전하다 277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 285
나가는 글: 한 걸음 뒤로 289
감사의 글 295
출판사 서평
◈ 동물의 감정, 그 낯선 세계를 발견하다
동물에게도 인간과 같은 감정이 있을까? 인간의 감정과 그 메커니즘을 둘러싼 비밀조차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은 현 시점에서 동물의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기는 쉽지 않다. 최근 동물의 생존권이나 복지 등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동물권’ 논의가 정치적 의제로도 부상했지만, 동물을 학대하고 착취하는 현실이 여전히 압도적이며 동물 애호, 보호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도 동물은 인간에게 시혜적 대상에 머물러 있다. 동물이 인간처럼 고통과 슬픔, 통증을 느끼고 다른 생물 종과 교감을 나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어떻게 달라질까?『동물의 사생활과 그 이웃들』은 동물의 감정이 인간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열어 주는 책이다.
이 책은 전작『나무 수업』으로 책이 처음 출간된 독일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페터 볼레벤의 신작이다. 30년 넘게 친환경적인 삼림을 조성하고 관리해 온 저자는 숲에서 만난 동물과 집에서 함께 살아온 반려동물을 오랜 기간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깨달은 동물의 감정 세계를 감동적으로 서술한다. 저자는『나무 수업』과 마찬가지로 과감한 의인화와 최신 연구 결과를 쉽게 녹여 낸 서술 방식을 택해 동물의 감정을 우리에게 전하는 통역사이자 동물 세계의 자잘한 퍼즐을 맞추도록 해 주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그의 통역과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일상에서 마주치는 반려동물이나 숨어 있는 낯선 동물을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일원으로 대하고 그들의 행복과 복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왜 강아지는 고아 멧돼지들을 입양했을까
동물에게 감정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거나 인간의 감정에 비해 열등하다고 폄하하는 데는 본능과 무의식에 대한 인간의 뿌리 깊은 오해에서 비롯한다. 우리는 의식과 본능을 구분하고 본능을 동물의 속성으로 서둘러 연관 짓고 동물에게서 관찰되는 의식이나 감정의 존재를 입증해 주는 여러 양상은 쉽게 무시해 버린다. 페터 볼레벤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무의식과 본능에 의해 작동되며 그 점에 있어서는 동물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예를 들어 본능적 모성애를 뛰어넘는 입양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인간의 경우 동물과 달리 의식적으로 활성화되는 모성애에 의해 입양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빼면 동물에게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며 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동물의 감정이나 본능을 경시하는 태도는 인간의 특권적 지위 상실에 대한 불안과 관련되는 것이다.
동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각 동물에 대한 오래된 관념과 인간 중심적인 분류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동물의 존재 이유와 의의를 인간에게 이로운가 유해한가로 분류하고 이 분류법에 의거해 그들의 생사를 결정짓기까지 한다. 다람쥐는 유익하고 진드기는 유해한 동물일까? 이러한 분류는 모든 생물과 생태계가 마치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세계관이 아니라면 성립할 수 없다. 동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저 존재하고 생존을 위해 분투하며 인간의 의도에는 관심이 없다.
◈ 동물도 느끼고 사랑하고 아프다
동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통증과 고통, 공포를 느낄 수 있다. 동물의 고통과 통증은 단순한 생물학적 기제가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세대를 내려오며 이어지고 진화 과정에 반영된다. 인간이 사냥하는 방식과 기술의 발전에 맞춰 동물은 생존 방식을 바꾸고, 동료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본 무리들은 고통을 느끼며 그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기술을 학습한다. 인간이 시각이 아니라 후각으로 사냥한다면 동물이 진화를 거치며 냄새를 잃었을 것이라는 저자의 가정은 뼈아픈 대목이다.동물이 인간처럼 행복과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왜 인간은 저항감을 느끼는 것일까? 정치인이나 대형 축산업 등의 산업 관계자들, 때로는 과학자들조차 동물의 감정을 간과해 버린다. 저자는 독보적 서술 방식으로 택하고 있는 의인화에 대한 비판에도 이러한 이해관계가 개입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동물을 인간과 비교하는 것이 비과학적이고 몽상적이며 신비적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인간 역시 동물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진리를 상기한다면 동물과 인간의 비교는 전혀 억지가 아니며 이러한 의인화를 통해서 동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노루와 멧돼지, 까마귀가 나름의 완벽한 삶을 살면서 생을 즐긴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오래된 숲의 낙엽 더미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뒹구는 작은 곤충에게도 관심을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책속으로
다람쥐는 우리 인간이 동물 세계를 어떻게 나누고 구분하는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다람쥐는 까만 단추 같은 눈망울이 너무나 귀엽고 붉은 색이 도는(갈색-검정색 버전도 있다) 부드러운 털로 덮여 있으며 인간을 위협하지 않는다. 또 다람쥐가 모아 두고 까먹은 식량 창고에서 이듬해 봄에 어린 나무가 솟아나기 때문에 새로운 숲의 창시자라 불러도 무방하다. 한마디로 다람쥐는 진정으로 유익한 동물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우리가 놓친 것이 있다. 바로 다람쥐가 제일 좋아하는 먹이가 새의 새끼라는 사실이다. 우리 사택 서재 창으로는 그런 사냥 장면도 목격할 수 있다. 봄에 다람쥐가 나무줄기를 타고 기어오르면 현관 앞 늙은 소나무에 알을 낳은 회색머리지빠귀의 작은 둥지 밑에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그러니까 다람쥐는 좋은 동물이 아니라 나쁜 동물인 것일까?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자연의 변덕은 우리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여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좋거나 유익한 것과는 다른 문제다. 우리가 사랑하는 새를 죽이는 다람쥐의 이면 역시 나쁜 것이 아니다. 다람쥐도 배가 고프고 역시나 새끼에게 젖을 먹여 새끼를 키워야 한다.… 다람쥐는 우리의 분류법에는 추호의 관심도 없다. 그것들은 제 몸과 자기 종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살고자 하는 것이다. _13~15쪽「쓰러질 때까지 모성애를 발휘하다」
감정을 강렬하게, 또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길은 정말 인간의 길 한 가지밖에 없는 것일까? 진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혹은 바라는) 것처럼 그렇게 일방적이지 않다. 뇌가 정말로 조그만 새들이야말로 꼭 인간의 길이 아니어도 지능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공룡의 시대를 거친 후 공룡의 후손으로 인정받는 조류의 진화는 우리와는 다른 방향을 택했다. 뒤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조류는 신피질이 없어도 고도의 정신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DVR(등쪽뇌실능선, dorsal ventricular ridge)이라 부르는 부위가 있어 우리의 대뇌피질과 비슷한 임무와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사람들은 층층 구조인 인간의 신피질과 달리 새의 그것은 작은 덩어리이기 때문에 인간과 비슷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까마귀와 무리를 이루어 사는 다른 새들의 지적 능력이 영장류에 버금가거나 심지어 영장류를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 또한 동물의 감정과 관련해서는 학자들이 과도하게 조심스러운 논리를 펼치며, 명백한 정반대의 증거가 나올 때까지는 절대로 동물의 지적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증거다. 왜 그러는 것일까? 그냥 (그리고 올바르게) 잘 모른다고 말할 수는 없을까? _44~45쪽「머리에서 불이 반짝반짝」
박새는 애벌레를 잡아먹어 유익하다. 고슴도치는 달팽이를 잡아먹어 유익하다. 달팽이는 채소를 갉아먹어 해롭다. 진딧물은 식물의 즙을 빨아 먹어 해롭다. 그리고 놀랍게도 모든 해충에겐 그것의 갈 길을 가로막는 유익한 곤충이 있다. 하지만 자연을 그런 식으로 나누려면 자동적으로 두 가지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창조자의 설계도가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정교하게 짜 맞추어 균형 있게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설계도 말이다. 둘째 이 창조자는 세상을 완벽하게 인간의 욕구에 맞추어 만들었다. 이런 세계관에선 논리적으로 진드기가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물론 나는 그것도 비판하고 싶지 않다. 자연 보호 협회조차 인공 새둥지를 만들어 인간에게 유익한 새를 도와주겠다는 주장을 퍼트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자연을 정말로 그런 서랍에 억지로 끼워 넣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우리 자신은 어떤 서랍에 들어가야 할까?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생명력 넘치는 수백만 종의 생명체가 맞물리는 톱니바퀴처럼 딱딱 아귀가 맞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인정사정없이 모든 자원을 착취하는 너무나 이기적인 인간 종이 생태계를 파괴한 후 그 생태계와 그곳의 주민들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뒤바꾸어 버렸기 때문이다. _81~82쪽「흑백」
벌들은 벌집 안에서 춤을 춰서 꽃꿀이 있는 곳과 그곳까지의 거리 정보를 제공하고 타액선의 즙을 꽃꿀에 첨가한 다음 그 혼합물을 작은 혓바닥에서 건조시켜 벌꿀로 가공한다. 또 밀랍을 분비하여 그것으로 벌집을 만든다. 학자들은 벌의 능력을 일찍부터 높이 평가했지만, 그렇게 작은 두뇌가 그와 같은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그 모든 것을 일종의 초개체로 폄하했다. 그것들의 인지 능력도 집단 지성이라고 불렀다. 그런 초개체에선 모든 개체들이 열심히 협력하여 자신보다 훨씬 큰 신체의 능력을 발휘한다. 각 개체는 비교적 멍청하지만 다양한 과정의 협력과 환경 자극에 대한 반응 능력이 합쳐져서 이것들을 지성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식의 평가 방식은 개체의 개별성을 인정하지 않고 각 개체를 큰 건물의 석재, 퍼즐의 조각으로 축소시킨다.… 베를린 자유대학의 란돌프 멘첼Randolf Menzel 교수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벌집 밖으로 처음 나온 어린 벌들이 태양을 일종의 나침반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벌은 태양을 이용하여 머릿속으로 집 주변의 지도를 그리고 그 지도에서 자신의 비행 항로를 찾아낸다. 한마디로 자기 주변이 어떤 모습인지를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머릿속 지도 덕분에 우리와 유사한 방식으로 방향을 찾는다.… 그러니까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벌이 기억을 하고 고민을 해서 새 길을 개발했다고 말이다. 이런 경우 집단 지성은 별 도움이 될 수 없다. 이런 생각을 불러온 것은 그 벌의 작은 머리다. 그리고 그것은 전혀 다른 지성이다. 미래를 계획하고 아직 본 적 없는 것을 생각하며 이런 맥락에서 자신의 몸을 인식함으로써 벌은 자신을 의식한다. 란돌프 멘첼의 말대로 “벌은 자기가 누구인지 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집단이 필요치 않다. _100~103쪽「집단 지성」
나는 가치 있는 이타심은 진정한 선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인을 돕기 위해 의식적으로, 적극적으로 포기를 해야만 가치 있는 이타심이라고 생각한다. 동물이 언제 그런 식의 이타심을 발휘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능이 높은 동물들을 살펴보면 대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새들이 바로 이런 동물이며, 실제로 새들에게선 꾸준히 희생의 장면이 목격된다. 예를 들어 박새는 천적이 다가오면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놈이 비명을 질러 경보를 발령한다. 그럼 다른 박새들이 얼른 몸을 숨겨 안전을 도모한다. 하지만 정작 비명을 지른 박새는 적의 관심을 끌게 되므로 위험에 처한다. 물론 녀석도 얼른 안전한 곳으로 몸을 숨길 수 있겠지만 다른 박새들보다는 천적에게 붙들릴 위험이 매우 높다.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일까?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언뜻 무의미한 짓 같기도 하다. 비명을 지른 새가 잡아먹히나 다른 새가 잡아먹히나 그 종 전체에게는 전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볼 때 이타심은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받기도 하는 것이어서 희생정신이 크고 마음이 넓은 개체에게 다시 이익이 될 수 있다. _157~158쪽「이타심」
인간은 ‘시각의 동물’이다. 눈으로 보고 사냥을 한다. 따라서 사냥감이 될 수 있는 동물들은 어떻게 하든 인간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만약 우리가 냄새를 맡고 사냥을 한다면 동물들은 진화를 거치면서 아마도 냄새를 잃었을 것이고, 우리가 소리를 듣고 사냥을 한다면 극도로 소리를 죽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눈으로 사냥을 하기에 동물들은 우리 시야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무엇보다 낮에 조심을 한다. 어두워지면 인간은 거의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사냥감들이 활동을 밤으로 미루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우리도 노루와 사슴과 멧돼지가 밤에 활동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녀석들은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먹이를 먹어야 한다. 그래서 낮에는 으슥한 수풀이나 인적 드문 숲에서 먹이를 찾는다. 초지나 숲 가장자리에서 먹이를 찾는 것이 지극히 정상인데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인간들의 시야가 흐려지는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트인 곳으로 나온다.… 숲에서 일을 하거나 사냥을 하는 사람이라면 야생동물들이 경험을 수집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 사냥 시설은 맛난 먹이가 잔뜩 널려 있는 곳에 서 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사냥꾼들이 씨를 뿌려 사슴이나 노루가 좋아하는 풀을 키운다. 그런 ‘야생동물 풀밭’에서 키우는 풀을 두고 흔히 ‘야생동물 풀밭 찌개’라고 부른다.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돌지 않는가? 그래서 밤마다 룰렛 게임이 벌어진다. 주린 배가 이기면 노루와 사슴이 너무 이른 시각에 숲길로 나와 사냥꾼의 시야로 걸어간다. 공포가 이기면 녀석들이 주린 배를 안고 어둠이 내릴 때까지 참기 때문에 사냥꾼이 빈손으로 돌아간다. _210~212쪽「공포」
모든 동물 종이 세상을 다 다르게 보고 느낀다면 수십만 개의 다른 세상이 존재할 것이다.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이 중에서 많은 세상은 우리가 찾아 주기를 고대하며 우리 곁에 숨어 있다. 앞서 소개한 동물 종들 말고도 중부 유럽에는 너무 작고 매력이 없어서 아직 체계적인 연구가 되지 않은 동물이 수천 종이나 있다. 당연히 우리는 녀석들의 감정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 우리가 눈여겨볼 만큼 중요한 생물이 아니기 때문에 녀석들에게 투자할 연구비도 없는 것이다.
문어의 영혼 경이로운 의식의 세계로 떠나는 희한한 탐험,The Soul of an Octopus: A Surprising Exploration into the Wonder of Consciousness
저자 사이 몽고메리|역자 최로미|글항아리 |2017.06.16
원제 The Soul of an Octopus
저자 사이 몽고메리SY MONTGOMERY는 돌고래, 유인원, 돼지 등 동물과의 교감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논픽션 작가. 몽고메리의 책 『돼지의 추억』은 출간 즉시 전미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카카포 구출KAKAPO RESCUE』은 어린이 논픽션에 주어지는 최고의 상인 로버트 F. 시버트 상을 받았다. 그가 쓴 『호랑이의 주문SPELL OF THE TIGER』에 영감을 받아 같은 제목으로 내셔널지오그래픽 TV 다큐멘터리가 제작됐다. 아마존 탐험기 『아마존의 신비, 분홍돌고래를 만나다』는 『런던타임스』 여행서 부문 수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 밖에도 몽고메리는 휴메인소사이어티와 뉴잉글랜드 서적상 연합으로부터 공로상을 받고 명예 학위 세 개를 수여받는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몽고메리는 산란용 닭들을 방목하고 보더콜리 샐리를 키우며 남편인 작가 하워드 맨스필드와 뉴햄프셔에 살고 있다.
1장 아테나: 연체동물의 정신과 마주치다
2장 옥타비아: 어떻게 이런 일이, 고통을 맛보고, 꿈을 목격하다
3장 칼리: 물고기들의 우정
4장 알: 시작과 끝 그리고 변모
5장 변태: 바다에서의 호흡
6장 출구: 자유, 욕망, 탈출
7장 카르마: 선택, 운명, 사랑
8장 의식: 생각하고 느끼고 아는 것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머릿속에 위장이 있고 발에 생식기가 달렸으며 뼈 없이 흐물대고 빨판으로 끈적거리며 교감하는이 외계생물 같은 문어에게도 영혼이 있을까?”
커스터드보다 폭신폭신한 머리, 검붉은 와인색 바다에 비친 밤하늘 같은 피부, 진주 같은 눈알에 자리한 검은색 동공. 몽고메리는 뉴잉글랜드 아쿠아리움에서 만난 그의 ‘첫 문어’ 아테나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아테나의 빨판과의 접촉이 외계인의 입맞춤 같았다고 했다. 혈기왕성한 아테나는 첫 만남부터 그를 팔로 감싸 안고 수조로 끌어당겼다. 그는 그날 간신히 버텨 물에 빠지지 않았지만 이후 이 묘한 수수께끼의 생물에게 깊이 빠져든다. 푸른 피가 흐르고 세 개의 심장과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문어에게. 그가 이후 아쿠아리움의 정식 ‘문어 관찰자’가 되어 만난 문어들은 사람들을 호기심 넘치게 바라보고, 빨판이 달린 팔로 다정하게 감으며, 때로 장난스럽게 물벼락을 끼얹고, 무엇보다 사람과 교감할 줄 아는 영리한 생물들이었다. 이 책은 몽고메리가 수족관과 바다를 누비며 그들의 놀라운 영혼을 탐구한 기록으로, 그가 목격하고 함께한 문어의 삶, 고통, 사랑, 죽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혈기왕성하고 다정한 아테나, 문어의 삶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준 옥타비아, 호기심과 모험심이 넘치는 전사 칼리, 차분한 카르마 그리고 수족관의 다양한 생물들 및 수족관에서 이들과 동고동락하는 사육사, 자원봉사자들은 문어의 독특한 의식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괴물 문어가 아닌 ‘진짜’ 문어들과의 특별한 교감
‘문어’ 하면 보통 무엇이 떠오를까? 빨판? 8개의 다리? 아마 이 책의 저자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는 괴물, 외계인 등이 꽤 많은 표를 받을 것이다. 서구 사회에서 문어는 오랫동안 공포의 대상이자 ‘다름’의 대명사였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문어는 쥘 베른의 『해저 2만 리』나 할리우드 오락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괴물로 등장했고, 각종 소설과 오락물에서 외계생물의 원형이 되었다. 아마 작가들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이질적인 무언가가 문어였기 때문이리라.
문어가 인간과 다르다는 게 단순히 편견이랄 수는 없다. 몸에 다리가 달린 인간과 달리 문어는 ‘머리에 다리가 달린’ 두족류다. 인간이 머리-배-다리 순이라면, 문어는 배-머리-다리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흔히 문어 머리로 보는 부위는 인간으로 따지면 배에 해당되고 그곳에 각종 위장이 들어 있다. 심장은 세 개이고, 뇌는 목구멍을 감싸고 있으며 피는 푸른색인 데다 보송한 털이 아니라 끈적한 점액이 온몸을 감싸고 있다. 게다가 수컷은 발 중 하나가 생식기에 해당되는 ‘교접완’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을 따르면 “수컷은 촉수 가운데 하나에 일종의 음경이 있는데, 암컷의 콧구멍을 넘나들 수 있다”.
저자 몽고메리는 이런 간극을 훌쩍 뛰어넘어 문어를 알고자 했다. 방법은 단순하다. 거대한 괴물로 만들어진 미디어 속 문어가 아닌 ‘진짜’ 문어를 만나는 것. 몽고메리는 그래서 뉴잉글랜드 아쿠아리움으로 가 2년여의 시간 동안 수족관을 드나들며 문어인 아테네, 옥타비아, 칼리, 카르마를 만났다. 문어는 주로 촉각과 미각으로 세상을 파악하기에, 몽고메리는 가장 근원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살갗과 문어의 빨판을 접촉시키며 그들을 만났다.
몽고메리의 팔을 감싸고 빨판으로 뽀뽀 자국을 만드는 이 ‘살아 있는’ 문어들은 놀랍게도 사람과 교감할 줄 알았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며 친숙한 사람을 환영했고, 자신에게 잘 대해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기억해뒀다가 다르게 대했다. 먹이를 주지 않았다고 심통을 부리는가 하면 사람에게 물벼락을 안기며 장난을 쳤다. 뿐만 아니라 각자의 성격도 판이했다. 점잖은 문어가 있는가 하면 유달리 짓궂은 문어도 있고, 느긋한 성격인 문어도 있는 반면 예민한 문어도 있었다. 이 하나하나의 문어들의 이야기를 읽노라면 어느새 이 외계생물처럼 생긴 문어가 각각의 ‘의식’를 지닌 놀랍고 영리한 영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맛과 촉감을 토대로 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의식과 지능의 세계
문어가 각각의 의식을 가진 하나의 영혼이라면, 그 의식과 정신세계는 어떤 것일까? 이 책의 뼈대는 몽고메리와 아쿠아리움 문어의 교감을 통해 문어가 가진 의식과 정신을 독자가 간접적으로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몽고메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동시대의 연구 성과들을 제시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문어는 우리와 몹시 이질적인 생물인데, 그 사고는 우리와 어떻게 유사하며 어떻게 다른가?
문어가 영특한 생물이라는 것은 문어가 유희할 줄 아는 데서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지능을 가지고 있는 동물만이 ‘논다’. 한 연구에서 문어는 수조에 띄운 병에 물을 쏘며 이 병이 수조 주위를 돌도록 했다. 호흡이며 이동의 목적으로 발달한 수관이지만 유희의 목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또한 아쿠아리움에서 문어는 성격에 따라 각자 좋아하는 장난감이 있는가 하면, 사고 능력을 필요로 하는 장난감도 흔히 쓴다. 문어의 이런 높은 지능은 특유의 무방비하게 물렁거리는 몸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천적의 마음을 읽고 대응해야 할 필요가 컸던 까닭이다. 문어가 인간과 교감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문어의 높은 지능은 인간과 전혀 다른 지각과 신경 구조에 토대를 두고 있다. 문어의 시력은 2미터 정도를 보는 데 그치며 사실상 색맹이다. 대신 화학수용체가 아주 예민하게 발달해 있어서 30미터 떨어진 곳으로부터도 화학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인간의 혀보다 100배는 더 민감하게 물에 용해된 화학성분을 느낄 수 있다. 빨판에는 1만 개에 이르는 화학수용체가 있어서 주변 세계를 파악한다. 문어는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맛보고 느끼는 것이다. 단순히 주된 감각만 사람과 다르다고 할 수도 없다. 문어는 신경세포가 온몸에 퍼져 있는데, 두뇌에서 정보를 총괄 처리하는 인간과 달리 몸의 각 부분이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기도 한다. 극단적으로는 왼쪽 세 번째 팔은 게으르고 오른쪽 두 번째 팔은 부지런한 것도 가능하다.
높은 지능을 가진 것으로 보이나, 감각도 사고 구조도 우리와 전혀 닮지 않은 이 동물의 의식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이 책에도 인용된 비트겐슈타인의 말이 단서가 될 수 있다. “만약 사자가 말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사자로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문어로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영영 알 수 없을지 모른다. 헨리 벤스턴의 말처럼 그들이 “우리가 상실했거나 결코 획득한 적 없는 확장된 감각의 세계에서 우리가 끝내 듣지 못할 목소리를 따라 살아가는 존재들”이라면 말이다. 저자는 문어와의 교감을 시도하는데도 불구하고, 책 속에 인용된 연구와 논문들은 우리가 문어를 이해하게끔 하기보다는 그들이 얼마나 이해하기 힘든 존재인지 깨닫게 한다.
노화, 고통, 죽음……인간과 동물이 공유하는 삶의 역동성
해괴한 외양과 이질적 의식을 가진 문어, 이해하거나 상상하기도 힘든 문어. 하지만 높은 지능을 가졌으며 사람과 교감할 수 있는 문어. 이 책은 이런 수수께끼로 우리를 인도하는데, 궁극적으로 그것은 우리와 다른 모든 종種에 관한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우리는 개나 고양이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개의 후각을, 고양이의 수염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들의 의식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문어는 이 책에서 동물 전체 종에 대한 인간의 오해를 상징한다.
그런데 이 과학 에세이는 놀랍게도 우리가 문어에 이입하도록 하고 마지막에는 눈물을 글썽이게끔 한다. 이것은 그 모든 수수께끼에도 불구하고 문어와 인간이 같이하는 생의 굴곡 때문이다. 문어의 생은 보통 4년을 넘지 못하는데, 그 때문에 몽고메리는 2년여의 시간 동안 그 생의 많은 부분을 목격한다. 그가 뉴잉글랜드 아쿠아리움에서 만난 네 문어 중 셋이 죽음을 맞았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것은 옥타비아의 죽음이다. 문어 암컷은 보통 생의 마지막에 알을 낳고 그 알들의 부화를 돌본 후 죽는다. 옥타비아는 문어 암컷에게 주어진 숙명에 따라 수정됐을 가능성이 낮은 알을 아쿠아리움 수조 안에서 낳아 수개월을 살뜰히 보살폈다. 물론 알은 부화되지 못했고, 옥타비아는 몸이 극히 쇠약해지고 병을 얻었으며 노망이 들어 죽음에 이르렀다.
옥타비아의 삶과 그가 겪는 굴곡은 몽고메리가 문어와 교감하며 가까워진 아쿠아리움 사람들 삶의 모습과 일치한다. 아쿠아리움의 자원봉사자 크리스타는 발달장애를 앓는 동생 대니와의 미래를 걱정한다. 또 다른 자원봉사자 애나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으며 자살한 친구의 일로 고통스러워한다. 윌슨은 알 수 없는 난치병을 앓는 아내를 돌보고 있다. 이들은 각자의 고통을 아쿠아리움 동물을 보살피고 그들과 교감하는 것으로 극복해나간다.
이 책은 옥타비아와 아쿠아리움 사람들의 삶을 통해, 인간이 잘 알지 못하고 또 앞으로도 잘 알지 못할지 모르는 동물들과 공유하는 분명한 한 가지를 보인다. 이것은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고 유대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다. 헨리 벤스턴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들은 “우리와 더불어 생과 시간의 그물에 잡힌 다른 종족들, 곧 지구라는 장려한 고해에 갇힌 동료 죄수들”이라는 점이다.
곤충의 통찰력 해충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
저자 길버트 월드바우어|역자 김홍옥|에코리브르 |2017.07.20
원제 Insights from Insects
저자 길버트 월드바우어는 일리노이 대학교 곤충학과 명예교수이다. 생물학의 대중화에 힘써온 저자는 과학적으로 건전하면서도 유익한 책을 여러 권 펴냈는데, 전문 용어를 피하고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쓰기로 독자에 다가가고자 한다. 저서로 우리나라에도 번역 출판된 《욕망의 곤충학(FIREFLIES, HONEY, AND SILK)》을 비롯해서 《곤충 안내서(THE HANDY BUG ANSWER BOOK)》 《수백만 마리의 제주왕나비(MILLIONS OF MONARCHS)》 《곤충은 어디에 소용되는가(WHAT GOOD ARE BUGS?)》 등이 있다.
역자 김홍옥은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소비자아동학과와 같은 대학 교육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광양제철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우리교육ㆍ삼인 출판사 등에서 근무했다. 옮긴 책으로 《인류는 어떻게 기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가》 《화폐의 신: 누가, 어떻게, 세계를 움직이는가》 《아나키즘: 이론에서 실천까지》 《레이첼 카슨: 환경운동의 역사이자 현재》 《경제성장과 환경 보존, 둘 다 가능할 수는 없는가》 《우리의 지구,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가》 《파괴의 씨앗 GMO: 미국 식량제국주의의 역사와 실제》 《가르침의 도》 《가르침의 예술》 《제약회사는 어떻게 거대한 공룡이 되었는가》 《월트 디즈니 1, 2》 《레이첼 카슨 평전》 《교사 역할 훈련》 《신과의 만남, 인도로 가는 길》 《유인원과의 산책》 등이 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
감사의 글
서문
01 가장 위험한 곤충-모기
02 진행 중인 진화-집파리
03 다윈이 알고 싶어 했던 것-초파리
04 자연선택, 농부의 허를 찌르다-옥수수근충
05 한 종이 두 종으로 분화하는 법-과실파리
06 후손 보장하기: 숫자 게임-진딧물
07 후손 보장하기: 부모 돌봄의 역할-체체파리
08 휴면란으로서 겨울나기-도롱이벌레
09 속임수로 포식자 따돌리기-검은제비꼬리나비
10 왜 곤충은 그토록 식성이 까다로운가-배추흰나비
11 ‘영양과 관련한 지혜’-큰담배밤나방
12 외래 침입자-매미나방
13 어느 미국인이 프랑스 포도주 산업을 구하다-포도나무뿌리진디
14 살충제가 새로운 해충을 ‘창출’한다-코들링나방
15 저기술 방제에서 고기술 방제로-유럽조명나방
16 DDT의 종언-알풍뎅이
17 농촌 풍경에서 홀연히 사라지다-긴노린재
18 계절과의 동시 발생-밀혹파리
19 곤충으로 다른 곤충 방제하기-캘리포니아감귤깍지벌레
20 교미 파괴를 통한 근절-나선구더기파리
후기
옮긴이의 글: 곤충계의 지명 수배자 명단, ‘나쁜 곤충들’
출판사 서평
ㆍ어째서 제 먹잇감이 아닌 식물을 먹고 죽는 곤충보다 굶어 죽는 곤충이 더 많은가?
ㆍ헨리 포드는 집파리를 억제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
ㆍ왜 일부 파리에게는 젖샘과 자궁이 있을까?
ㆍ곤충은 보호 장치가 거의 혹은 전혀 없는데 어째서 온도가 빙점 한참 아래로 떨어져도 꽁꽁 얼지 않는가?
ㆍ미국의 한 곤충학자는 쑥대밭이 될 수밖엔 없던 프랑스 포도원을 어떻게 구제해주었는가?
이 책의 9장은 ‘속임수로 포식자 따돌리기’에 관해 설명한다. 그 대상이 되는 곤충이 ‘검은제비꼬리나비’다. 번데기 상태와 얼룩나방 상태 두 단계에서 관찰해 그 결과를 언급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얼룩나방 상태의 결과다. 물론 번데기 상태에서도 배경색이 같은 곳의 번데기들이 반대의 경우보다 포식자의 습격을 덜 받는 경향이 있음을 저자는 밝힌다. 그런데 얼룩나방이 살던 숲이 산업혁명이 전개되면서 서서히 변화를 겪는다. 19세기에 석탄을 때는 공장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공해로 인해 공장 부근에 자리한 숲의 나무 기둥이 검어졌고, 나무껍질에 붙어서 자라던 이끼도 사라졌다. 밝은색 얼룩나방은 검은 나무 기둥에 붙어 있을 경우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1848년 검은색 얼룩나방 한 마리가 산업도시 맨체스터 인근에서 과거에는 모두 밝은 색이었던 집단 가운데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1898년경에는 맨체스터에 서식하는 얼룩나방 개체 수의 약 95퍼센트가 검은 색이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음은 물론이다.
이런 내용을 서두에서 먼저 언급하는 것은 이 책이 철저하게 자연선택에 의거한 진화론에 근거해 곤충의 생활양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밝히기 위함이다.
이렇게 자연선택이 이끄는 진화는 30만 종이 넘는 식물과 120만 종이 넘은 동물을 만들어냈으며, 그 동물종 가운데 90만 종이 곤충이다. 이들 곤충 집단은 우리 인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만약 곤충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농업을 비롯한 생태계 전반이 무너질 테고,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이라는 존재도 더는 존속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중 2퍼센트 미만만이 제멋대로 굴면서 인간이 재배한 곡물을 먹어치우고 질병을 옮기는 등 갖은 만행을 저지르면서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오직 극소수 곤충만을 해충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왜 이 책에서는 해충만을 그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삶과 생활양식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을까?
한 가지 이유는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무해 곤충보다 극소수에 불과한 성가신 곤충종에 관한 지식이 한층 더 풍부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해충은 경제적으로 중요하므로 언제나 해충이 아닌 곤충보다 더 많은 연구 비용을 투자했으며, 더욱이 연구를 위해 쉽게 이용할 수 있고 과학적으로도 비교적 잘 알려져 있어 과학 기초 연구의 ‘실험동물’로 쓰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해충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가장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것은 “해충이란 인간 활동을 간섭하는 곤충종”을 말한다(90만 종 가운데 채 2퍼센트도 안 된다면 몇몇 곤충종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과 몇몇 곤충종은 항상 동시에 같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투쟁하며, 그 투쟁이 치열한 것은 그들이 얻고자 하는 바가 양쪽 모두에게 더없이 소중한 탓이다. 우리 인간은 흔히 스스로를 자연의 주인이자 정복자라고 여기지만, 곤충이야말로 인간이 그러한 시도에 나서기 훨씬 전부터 세상을 통제하고 완전히 장악해왔다. 그들은 인간이 그들 고유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으려 할 때마다 어찌나 집요하고 능란하게 저지해왔는지 인간은 그들을 상대로 그 어떤 중요한 우위를 점했다고도 우쭐대기 힘든 처지다.
인간도 마찬가지지만 생존을 위해 모든 동물의 삶은 세 가지 임무의 지배를 받는다. 먼저 우리가 늘 보아온 대로 자기가 속한 종(種)을 재생산해야 한다. 아울러 그렇게 하기 위해 잡아먹히는 것을 피해야 하고, 성적으로 성숙해질 때까지 끊임없이 먹고 성장해야 한다.
초식 곤충의 약 90퍼센트는 한 과, 혹은 그와 유연관계인 두어 과에 속한 몇몇 식물만을 먹잇감으로 삼는 데 적응했다. 여기에는 옥수수근충, 광대파리, 코들링나방, 밀혹파리 따위가 포함된다. 이들은 한결같이 자기 ‘먹잇감’이 아닌 식물을 먹느니 차라리 굶어 죽는 쪽을 택한다. 배추흰나비 유충, 배추좀나방 등을 비롯한 모든 ‘기주 특이적’ 곤충은 영양 성분이 아닌 ‘이차적’ 화학 물질의 맛이나 냄새로 어떤 것이 자신에게 적절한 기주 식물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식물의 세계에는 이들 화학 물질이 수천 가지나 널려 있는데, 그 대부분은 독성이 있으며 곤충에 맞서 식물을 보호하므로 자연선택의 검열을 무사히 통과했다. 어떤 곤충은 특정 식물 집단의 ‘화학 작용제’를 해독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그런 다음 식물의 이차적 화합물의 맛이 어떤지를 기준으로 먹어도 안전한지 여부를 판별한다. 기주 특이적 곤충은 여러 가지 적응을 통해 특정 먹이 식물만 고집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기주 식물의 방어 기제에 대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식물의 계절적 주기와 동기화한다. 즉 그들의 소화계는 그 먹이 식물을 먹고 사는 데, 그들의 위장술은 기주 식물의 외관에 맞춰져 있다.
물론 기주 특이적 곤충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우리 인간이나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곤충도 별개의 영양 물질 중에서 자신에게 적합한 균형 잡힌 식단을 짤 수 있다. 예를 들면 초식성 큰담배밤나방 애벌레, 씨앗을 먹는 곡류 해충, 그리고 잡식성 바퀴벌레가 이 같은 능력을 지녔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큰담배밤나방 애벌레는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제공한 먹잇감 가운데 설탕과 단백질을 자신에게 맞도록 조화롭게 선택했다. 자연에서는 이러한 능력이 곤충의 섭식 행동에서 매우 중요하다. 큰담배밤나방 애벌레와 곡류 해충은 비타민이 풍부한 배아, 그리고 전분 부분인 옥수수 알갱이와 밀알을 적절한 비율로 섭취했다. 메뚜기는 여러 가지 식물종을 섞어 제시했을 때 최적의 비율로 섞어 먹음으로써 한 가지만 먹을 때보다 더욱 잘 자랐다. 다른 곤충들도 이와 비슷하게 행동하리라 가정하는 것은 타당하다. 이를테면 암컷 모기는 피와 꿀을, 꿀벌은 꿀과 꽃가루를 최적의 비율로 섭취하며, 포식성 곤충은 다른 여러 종의 먹잇감을 골고루 섞어 먹음으로써 식단의 질을 높인다.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일단 두 가지를 극복해야 한다.
그 첫째는 겨울을 무사히 넘기는 것인데, 북극 지방과 온대 지방에 사는 곤충에게는 중차대한 문제다. 그들 곤충 대다수는 휴면이라 일컫는 동면 비슷한 상태로 살아남는다. 그들은 휴면하는 동안에는 발달을 멈추고, 지독한 추위를 잘 견디며, 몸에 비축해놓은 지방으로 겨우내 살아남기 위해 신진대사율을 낮춘다. 휴면은 어느 발달 단계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휴면과 관련해 살펴본 도롱이벌레는 진딧물이나 매미나방처럼 알 단계에서 휴면한다. 그런가 하면 코들링나방과 알풍뎅이는 유충 단계에서, 배추흰나비와 큰담배밤나방은 번데기 단계에서, 긴노린재와 몇몇 모기종은 성충 단계에서 휴면한다. 그들은 휴면을 종료하면 그때가 봄이든 여름이든 가리지 않고 발달을 재개한다. 그러나 어느 한 종의 구성원은 예외 없이 거의 동시에, 그들 자신에게 가장 우호적인 때에 맞춰 휴면을 끝낸다. 이를테면 교미하기에 가장 좋은 때, 온도가 알맞을 때, 자신들이 꿀을 빨아 먹는 식물의 꽃이 만발할 때, 혹은 기생 곤충이라면 자기 기주를 이용할 수 있을 때 그렇게 한다.
다른 하나는 다른 곤충이나 동물한테 잡아먹히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스스로를 보호하는 다양한 방도가 있다. 밤에 날아다니는 나방은 귀가 있어 박쥐가 반향 위치 측정을 하면서 내는 울음소리를 듣고 회피 작전을 쓴다. 꿀벌은 침입자를 쏘아 자기 군체를 보호한다. 검은제비꼬리나비는 여러 가지 방어 기제를 보유하고 있다. 그들의 작은 유충은 마치 새똥처럼 보이므로 새들이 무심하게 지나친다. 그들의 번데기 역시 여름에는 초록색으로, 겨울에는 갈색이나 회색으로 환경과 어우러지는 식의 위장술을 구사해 눈에 띄는 상황을 피한다. 그들의 성충은 얼마든지 먹어도 무방하지만 독성 나비를 의태함으로써 새들의 공격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어떤 방어 기제도 완벽하지는 않다. 따라서 포식자와 기생 곤충의 습격을 이기고 끝까지 살아남는 곤충은 거의 없다. 이는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만약 매미나방의 알 400개 가운데 2개, 집파리의 알 500개 가운데 2개, 큰담배밤나방의 알 1000개 가운데 2개가 살아남아 각각 생식력을 지닌 성충이 되었다고 치자. 그러면 이들은 고스란히 부모를 대체할 테고, 그 종의 개체 수는 해가 지나도 동일하게 유지될 것이다. 그런데 살아남는 알이 거기에 각각 2개씩 더해진다면, 그래서 총 4개가 된다면 개체 수는 한 세대마다 2배가 되고 결국에 가서는 폭발적으로 불어날 것이다. 집파리 개체 수는 한 해 동안 딱 10세대만 거쳐도 자그마치 500배나 늘어나 생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대재앙 수준에 이를 것이다. 개체 수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면 암수 한 쌍이 배출한 자녀 500마리 가운데 498마리는 생식력을 갖춘 성충이 되기 전에 죽어야 한다. 지구 생태계의 안녕이라는 관점에서는 다행스럽게도 개체 수 폭발은 극히 드문 일이다. 주로 포식자나 기생 곤충이 자기 본분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살충제를 뿌려서 사과나무 과수원에 서식하는 포식자나 기생 곤충마저 죽인 결과 빚어진 사태를 보면, 그들이 생태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다. 사과나무 식자 곤충은 그들을 억제해주는 포식자나 기생 곤충이 없어진 탓에 애초에는 경제적 해를 입히지 않는 작은 해충에 불과했으나, 살충제에 내성을 키우고 개체 수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 심각한 경제적 위협으로 떠오른 것이다. 물론 곤충들에게는 스스로를 보호하는 다양한 방도가 있다.
생식은 가장 궁극적인 진화의 명령이다. 생존의 내력을 보여주는 ‘청사진’으로서 자연선택의 검열을 통과한 유전자를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생식을 용이하게 하는 구조적·생리적·행동적 적응은 천태만상이다. 그 가운데 특히 수컷과 암컷의 교미 방식은 눈여겨볼 만하다. 예를 들어 도롱이벌레나 매미나방 등을 비롯한 수많은 종은 성페로몬으로 교미 상대를 꼬드긴다. 일부 종의 수컷은 광대파리의 경우 암컷이 산란하는 장소에, 체체파리의 경우 암컷이 먹잇감을 구하는 장소에 미리 숨어서 암컷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모기의 수컷과 암컷은 수많은 파리와 마찬가지로 교미철이 되면 공중에서 떼 지어 몰려 있다. 이들은 이처럼 확연하게 눈에 띄는 특성을 보이며 무리 속에서 짝을 만난다.
모든 동물은 진화를 거치면서 생식력을 지닌 성체가 될 때까지 살아남을 후손의 수를 극대화하도록 프로그램화되었다. 진딧물과 체체파리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서로 상반된 두 가지 전략을 택한다. 진딧물은 숫자 게임을 한다. 즉 수많은 자녀를 낳은 다음 그중 일부가 운좋게 살아남길 노린다. 반면 체체파리는 극소수의 자녀를 낳지만 애지중지 돌봄으로써 생존율을 높인다.
진딧물, 큰담배밤나방, 도롱이벌레, 밀혹파리 등 수많은 알을 낳는 곤충은 자녀들에게 상대적으로 거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한 하루살이종의 암컷은 물속에 낳은 알을 덩어리째 방치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하루살이종은 부모로서 그보다는 약간 더 신경을 쓴다. 기주 특이적 초식 곤충은 자기 자녀들이 살아가는 데 적합한 식물에 알 덩어리를 슬어놓고서야 곁을 떠난다. 암컷 콩잎벌레는 콩 식물의 기저 근처 땅에 알을 묻는다. 광대파리는 알을 한 번에 하나씩 사과 속에 집어넣는다. 검은제비꼬리나비는 파슬리나 그와 유관한 식물의 이파리에 알을 일일이 붙인다. 단생 벌은 부모로서 보살핌을 그보다 더 베풀므로 더 적은 수의 알을 낳아도 된다. 이들은 굴이나 둥지에 딱 한 개의 알을 낳은 다음, 나중에 부화한 유충이 번데기화할 때까지 충분히 먹을 만큼의 꽃가루 덩어리나 꿀 위에 그 알을 올려놓는다. 단생 말벌 역시 비슷한 행동을 하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둥지에 곤충이나 거미를 잔뜩 채워놓는 것이다.
부모로서 단연 최고의 보살핌을 제공하는 곤충은 체체파리, 양파리 그리고 박쥐의 털에 붙어살면서 피를 빨아 먹는 네댓 종의 작은 무시(날개 없는) 파리다. 이들의 ‘전략’은 알을 낳는 게 아니라 일평생 대여섯 마리에 불과한 소수의 유충을 낳는 것이다. 이들은 임신 기간 내내 유충을 몸에 지니고 다니며, 유충이 다 자라서 번데기 단계로 탈바꿈할 채비를 마치면 드디어 출산한다. 다른 몇몇 곤충은 알을 낳지만 유충으로서 자라는 동안 번데기화할 태세를 갖출 때까지 먹잇감과 돌봄을 제공한다. 송장벌레의 암수는 쥐 같은 작은 동물의 시체를 발견하면 그것을 묻고, 암컷이 그 부근 땅에 알을 몇 개 낳는다. 암수는 그런 다음 미리 소화시킨 시체를 게워 먹이면서 부화한 유충들이 번데기가 될 때까지 돌본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알려진 90만 가지 곤충종은 지상의 모든 육지·담수 생태계에 꼭 필요한 구성원이다. 그들이 없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상의 생명체는 물론 우리 인간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곤충 가운데 극히 일부인 2퍼센트만이 우리가 저장해놓은 곡물을 좀먹고, 재배하는 작물에 해를 끼치며, 질병을 퍼뜨린다는 사실과 마주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러한 것들을 극복할 수 있을까?
최선의 방법은 비(非)살충제적 방제법 하나만 선택할 수도 있고, 거기에 한 가지 살충제를 신중하게 덧붙이는 방안일 수도 있다. 살충제는 때로 최선의 곤충 방제법이다. 예를 들어 전 세계적 말라리아 근절 운동은 거의 성공을 거두는 듯했지만, 모기가 DDT에 내성을 키우자 실패로 돌아가 이내 대대적으로 재발했다. 그럼에도 DDT는 30년간 말라리아를 억제함으로써 수많은 사람을 고통과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러나 살충제는 약물과 마찬가지로 흔히 오용하거나 과용할 경우 달갑잖은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는 사과나무 과수원에 DDT를 비롯한 여러 살충제를 살포하자, 사과나무 식자 곤충을 제어하는 포식자와 기생 곤충마저 죽어버려 새로운 해충과 진드기를 ‘창출’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알풍뎅이가 인디애나 주에서 일리노이 주로 쳐들어오지 못하게 막기 위해 디엘드린을 사용한 시도는 결국 수포로 돌아갔으며, 환경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독하디독한 그 물질을 밭에, 농가에, 마을에 닥치는 대로 뿌려댄 결과, 애완동물과 가축이 숨졌고 다람쥐는 거의 종적을 감추다시피 했다. 그뿐만 아니라 무수한 명금(鳴禽)이 사라짐으로써 레이첼 카슨은 살충제 오용에 관해 폭로한 책의 제목을 《침묵의 봄》이라고 붙이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살충제 없이, 혹은 살충제를 분별력 있게 사용함으로써 해충을 억제·근절하는 수많은 방법 가운데 몇 가지를 살펴보았다. 체체파리의 피해에서 벗어난 것은 그들이 살충제를 흠뻑 뿌린 ‘가짜’ 소에 내려앉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통해서였다. 프랑스 포도주 산업을 구제한 것은 포도나무뿌리진디에 취약한 유럽의 양주용 포도나무를 그 곤충에 저항력 있는 미국의 포도나무종과 접붙이는 방식을 통해서였다. 알풍뎅이 유충은 알풍뎅이와 무관한 동물이나 인간에게 무해한 유화병 원인균의 포자를 그들이 들끓는 지역의 잔디밭에 뿌림으로써 방제할 수 있었다. 긴노린재는 중서부의 경작 시스템에서 밀을 대두로 대체하고부터 더 이상 문제 되지 않았다. 밀혹파리는 산란하는 암컷이 죽기를 기다렸다가 밀을 심는 식으로 제어했다. 마지막으로 나선구더기파리는 불임 수컷을 풀어서 생식력 있는 수컷과 맞붙인 결과 미국에서부터 남쪽으로 파나마까지 완전히 근절할 수 있었다.
앞에서 밝혔듯이 우리는 소수 해충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우리에게 경제적으로 피해를 안겨주므로 무해하다 싶은 곤충보다 그들에 대한 연구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비용을 투자한 결과다. 이는 적어도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당연한 일이다. 다행히 우리가 해충에 관해 알아낸 사실은 다른 모든 곤충에게도 적용될 뿐 아니라, 인간 역시 생존을 기대고 있는 전 지구적 생명체의 망(web)에서 곤충이 차지하는 역할에 대해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초유기체 곤충 사회의 힘과 아름다움, 정교한 질서에 대하여
저자- 베르트 횔도블러, 에드워드 윌슨|역자 임항교|사이언스북스 |2017.06.16
원제 The Superorganism
저자 베르트 횔도블러 BERT H?LLDOBLER는 1936년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에서 생물학과 화학을 공부하고 개미의 사회적 행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퓰리처 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 『개미(THE ANTS)』(공저), 파이베타카파(PHI BETA KAPPA) 상 수상작 『개미 세계로의 여행(JOURNEY TO THE ANTS)』(공저)은 에드워드 윌슨과 함께 쓴 것이다. 독일의 최상급 영예인 독일 과학 재단(DFG)이 수여하는 빌헬름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상, 쾨르버 유럽 과학상(K?RBER PRIZE FOR THE EUROPEAN SCIENCES), 알프리트 크룹 과학상(ALFRIED KRUPP SCIENCE PRIZE) 등을 수상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교 동물학과 교수, 하버드 대학교 알렉산더 아가시 동물학 석좌 교수,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교 행동 생리 및 사회 생물학과 학장, 코넬 대학교 앤드루 화이트 석좌 교수 등을 지냈고 현재 애리조나 대학교 겸임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에 사회 동학 및 복잡성 연구소(CENTER FOR SOCIAL DYNAMICS AND COMPLEXITY)와 사회성 곤충 연구 그룹(SOCIAL INSECT RESEARCH GROUP, SIRG)을 창립해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를 인간과 곤충을 포함한 사회성 동물 연구의 메카로 만드는 데 공헌했다. 현재 독일과 미국 애리조나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저자 에드워드 윌슨 EDWARD WILSON은 1929년 미국 앨라배마 주 버밍엄에서 태어났으며, 개미에 관한 연구로 앨라배마 대학교에서 생물학 학사 및 석사 학위를, 하버드 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퓰리처 상 2회 수상 저술가, 개미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 섬 생물 지리학 이론 및 사회 생물학의 창시자로 명성 높은 그는 1956년부터 하버드 대학교 교수로 재직해 왔고 미국 학술원 회원이기도 하다. 또한 20여 권의 과학 명저를 저술한 과학 저술가로서 『인간 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와 『개미(THE ANTS)』(공저)로 퓰리처 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그밖에도 미국 국가 과학 메달, 국제 생물학상,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 상이 수여되지 않는 분야를 위해 마련한 크러퍼드 상을 수상했으며, 비단 생물학뿐만 아니라 학문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준 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 지성으로 손꼽힌다. 그 외에도 과학과 자연 보존 분야에서 쌓은 업적으로 키슬러 상, TED 상 등 많은 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사회 생물학(SOCIOBIOLOGY)』, 『자연주의자(NATURALIST)』, 『통섭(CONSILIENCE)』, 『생명의 미래(THE FUTURE OF LIFE)』, 『바이오필리아(BIOPHILIA)』, 『생명의 편지(THE CREATION)』, 『개미언덕(ANTHILL)』, 『지구의 정복자(THE SOCIAL CONQUEST OF EARTH)』, 『인간 존재의 의미(THE MEANING OF HUMAN EXISTENCE)』, 『지구의 절반(HALF EARTH)』 등이 있다.
역자 임항교는 서울 대학교 생물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고 2006년 미국 캔자스 대학교에서 곤충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잉어과 외래위해어종 퇴치를 위해 성 페로몬과 연관된 생리, 행동, 생태 특성 및 그 응용 방법을 연구했으며 세인트 토머스 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를 지내고 현재 메릴랜드 노트르담 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로 있다.
목차
독자 여러분에게 9
1 초유기체의 건설 18
군락이 우월한 이유 22 | 초유기체 건설 23| 구성 단계 24 | 진사회성과 초유기체 25 | 곤충 사회 생물학의 간략한 역사 27
2 유전학적 사회성 진화 32
사회성 진화의 유전학적 이론 약사 34 | 다수준 자연 선택 43 | 진사회성의 진화 50 | 진사회성 문턱 넘어서기 52 | 선택의 상쇄적 힘 66 | 귀환 불능점을 지나서 66
3 사회 발생 74
군락의 한살이 77 | 사회성 알고리즘 77 | 자기 조직화와 진화적 창발 82 | 계통 분류학의 관성과 역동적 선택 85
4 결정 규칙의 유전적 진화 92
진사회성의 유전적 기원과 진화 94 | 사회 유전학과 사회 유전체학 96 | 꿀벌의 사회 유전체학 98 | 사회 유전체학적 보존 100 | 붉은불개미 사례 102 | 유전적 변이와 표현형적 유연성 104
5 노동 분담 108
유기체와 초유기체 사이 유사성 110 | 계급 체계의 생태학 111 | 계급의 진화: 원칙 117 | 계급 결정 과정의 위계질서 121 | 시간적 계급 125 | 시간적 계급의 생리학 131 | 계급 분화의 유전적 변이성 146 | 노동 분담에서 기억의 역할 147 | 작업 전환과 행동 가변성 151 | 미성숙 개체 노동 157 | 유전적 계급 결정 161 | 비유전적 계급 결정 168 | 일꾼 계급 속 버금 계급 172 | 형태적 계급의 생리학과 진화 180 | 적응적 개체군 통계학 185 | 협동 작업 192 | 큰 그림 197
6 의사소통 200
꿀벌의 춤 203 | 개미 사회 의사소통 213 | 안내 신호의 진화 218 | 페로몬 구조 설계와 기능적 효율 245 | 동원 행동 양식 254 | 베짜기개미의 다중적 동원 행동 258 | 복합 감각 신호, 신호 체계의 절약성, 신호의 의례화 259 | 내용과 함의 270 | 조절적 의사소통 272 | 동원 의사소통 중 운동 과시 행동 276 | 동원 체계와 관련된 환경적 요소 289 | 정보의 측량 293 | 촉각에 의한 의사소통과 구강 먹이 교환 행동 295 | 공동 물동이 302 | 시각 의사소통 311 | 화학 신호의 익명성과 특이성 312 | 사체 치우기 행동 317 | 군락 동료 식별 320 | 군락 내 식별 335 | 새끼 식별 348 | 군락 사이 자원 확보 잠재력에 대한 의사소통 351 | 결론 359
7 개미의 번성 362
개미의 기원 365 | 개미의 초기 방산 368 | 신생대 방산 371 | 침개미아과의 역설 374 | 열대 숲 위에 사는 개미들 380 | 왕조 계승 가설 383
8 침개미아과: 대방산 386
사회적 번식 규제 388 | 하르페그나토스속: 건축가 군락의 한 살이 390 | 디노포네라속: 거대한 ‘일개미 여왕’ 410 | 여왕, 일개미, 번식 일개미의 순위 바꾸기 420 | 디아캄마속: 생식기 절단을 통한 번식 규제 425 | 스트레블로그나투스속: 지위와 번식의 불일치 430 | 번식 일개미 대 일꾼형 여왕 434 | 파키콘딜라 포키: 흰개미 단체 습격자 436 | 일꾼형 여왕과 군대개미 438 | 파키콘딜라속: 사회 생물학적으로 가장 많이 분화된 개미 속 440 | 플라티티레아 풍크타타: 극단적으로 가변적인 번식 453 | 공격과 독점 지위: 기원과 소실 457 | 하르페그나토스속: 번식 행동 복원력 458 | 생태적 적응으로서 군락 크기 459 | 파키콘딜라속: 초다양성의 요약 465
9 아티니족 잎꾼개미: 궁극적 초유기체 466
사회성 진화의 돌파구 468 | 잎꾼개미의 부상 472 | 아타속의 한 살이 473 | 아타속 계급 체계 488 | 식물 수확 493 | 아타속 의사소통 502 | 개미와 버섯의 공생 509 | 공생의 위생 문제 514 | 쓰레기 관리 521 | 농장 약탈자와 농업 기생자 523 | 잎꾼개미 둥지 524 | 지하 통로와 지상 수송로 530
10 둥지 건축과 새 보금자리 찾기 536
둥지 건축의 분석 538 | 둥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541 | 스티그머지 과정 547 | 새 보금자리 찾기와 군락 이주 550
에필로그 571 | 감사의 글 573 | 옮긴이 후기 575 | 추천의 글 577 | 용어 해설 580 | 찾아보기 591
출판사 서평
지난 5000만 년간 군림해 온 진정한 지구의 정복자,
사회성 곤충의 세계를 해부한다!
초유기체란 무엇인가? 왜 우리가 초유기체를 알아야 하는가? 일개미와 일벌 같은 구성원들이 각자 일을 나누어 맡는 군락 전체를 일컫는 용어인 초유기체는 생물학적 조직 분류 체계에서 개체보다 한 단계 위의 대상을 가리킨다. 사회성 곤충 연구 분야의 두 거장, 베르트 횔도블러와 에드워드 윌슨은 『초유기체: 곤충 사회의 힘과 아름다움, 정교한 질서에 대하여(The Superorganism: The Beauty, Elegance, and Strangeness of Insect Societies)』에서 개미 군락을 집중 조명하며 초유기체의 본질과 의의를 펼쳐 보이고 있다. 초유기체를 구성하는 것은 세포나 조직이 아니라 밀접하게 협동을 하고 있는 동물 한 마리 한 마리이다. 그 초유기체를 들여다봄으로써 사회성 곤충의 생활사와 행동 양식을 통해 우리는 인간과는 다른 복잡한 사회가 진화한 방식, 그리고 사회 질서와 그것을 만들고 진화시킨 자연 선택 사이의 관계까지 엿볼 수 있다. 사회성 곤충과 그 초유기체의 의사소통 방식과 노동 분담에서 볼 수 있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현상들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지난 20세기 동안 엄청나게 성장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야 겨우 이 경이로운 세계의 탐험을 시작했다.
인간이 속한 호모속(Homo) 초기 종들은 사회성 곤충 조상 종들이 그러했듯이 진화 역사 속에 아주 드물게 출현했고, 예외적인 초기 적응 형질을 가지고 있었다. 놀랄 만큼 생태적으로 성공했고, 경쟁하는 비사회성 생물종들을 성공적으로 이겨 왔다. 두 종류의 사회적 생물이 거둔 성공은 무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협동과 노동 분업에 힘입은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성 곤충과 인간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가 존재한다. 사회성 곤충은 본능에 의해 철저히 지배당하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는 잠재력을 통해 우리의 자기 파괴적 갈등을 조절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성 곤충의 융통성 없는 본능은 그들이 자연계 속에 조화롭게 자리 잡도록 해 왔다. 인간의 지능은 지구 역사상 최초로 생명체가 단기적 이익을 위해 지구 전체 환경을 통제하고 파괴할 수 있게끔 했다. 인간이 점점 더 명료하게 우리 자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인간뿐 아니라 다른 생명체 전부와 조화롭게 살아가는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물고기는 알고 있다 물속에 사는 우리 사촌들의 사생활
저자 조너선 밸컴|역자 양병찬|에이도스 |2017.02.27
원제 What a fish knows
저자소개
조너선 밸컴은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 정착하기 전까지 뉴질랜드와 캐나다에서 지냈다. 토론토의 요크 대학교와 오타와의 칼레튼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공부했으며, 테네시 대학교 동물행동학과에서 박쥐의 의사소통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50여 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했으며, 동물행동, 동물보호, 동물해부, 의료시뮬레이션, 완전 채식주의 등 다양한 주제로 책과 논문을 썼다.
지은 책으로는 『즐거움, 진화가 준 최고의 선물』 『제2의 본성』 등이 있다. 물속에 사는 물고기의 내밀한 사생활을 과학적인 연구 결과와 함께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이 책으로 많은 호평을 받았다. 이 책은 물고기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하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인간과 닮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물고기에 대한 인간의 편견을 완전히 깨트린다.
프롤로그
1부. 물고기에 대한 오해
1장 물고기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2부. 물고기의 감각
2장 물고기의 시각
3장 청각, 후각, 미각
4장 그 밖의 감각들―내비게이션, 전기수용, EOD, 촉각
3부. 물고기의 느낌
5장 뇌, 의식, 인식
6장 공포, 스트레스, 쾌감, 놀이, 호기심
4부. 물고기의 생각
7장 지능과 학습
8장 도구 사용, 계획 수립
5부. 물고기의 사회생활
9장 뭉쳐야 산다
10장 사회계약
11장 협동, 민주주의, 평화 유지
6부. 물고기의 번식
12장 성생활
13장 양육 스타일
7부.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
14장 물 밖의 물고기
에필로그
미주
출판사 서평
3초에 불과한 기억력에 고통도 눈물도 없는 원시적인 동물인가?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의 종수를 합친 것보다 많은 종수를 자랑하고, 척추동물의 60퍼센트를 차지하는 동물이며, 인류보다 훨씬 전인 5억3,000만 년 전 지구에 등장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온 존재. 바로 지구상 최대의 서식지인 물속에 사는 물고기이다. 하지만 물고기는 ‘오해’의 동물이다. 물론 새도 ‘새대가리’라는 경멸적인 단어가 붙는 오해의 동물이기는 하지만, 물고기에 비하면 약과다. 왜일까? 유명한 작가 D. H. 로렌스는 〈물고기〉라는 시에서 이런 말을 했다. 물고기는 “소리도 없고, 서로 접촉하지도 않는다. 말도 없고, 몸을 떨지도 않고, 심지어 화내지도 않는다.” 이 시는 물고기에 대한 우리의 오해를 아주 잘 대변한다. 물고기는 멍청함이라는 지각력의 부재뿐만 아니라 고통도 눈물도 모르는 냉혈동물이라는 딱지까지 붙는다. 물고기는 인간에게 전혀 공감을 자아내지 않는 동물이었던 것이다.
지은이는 이런 인간의 편견을 산산이 깬다. 상상을 초월하는 물고기들의 시각, 후각, 촉각, 미각 등 감각세계와 여느 영장류를 능가하는 물고기들의 지각력, 인간사회를 방불케 하는 물고기 사회의 역학, 그리고 인간중심주의에 일격을 가하는 처절한 물고기들의 삶을 아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물고기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똑똑한 동물이고, 오래전에 진화를 멈춘 원시적 동물이 아니라 고도로 진화한 생물이며, 우리 인간과 너무도 닮은 우리의 ‘사촌’이라는 것이다.
물고기는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가?
물고기는 어떻게 세상을 바라볼까? 물고기는 생각이라는 것을 할까? 통증은 느낄까? 물고기들 간에도 사회라고 할 만한 것이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이런 질문들에 대해 이 책은 최신 과학 연구 결과들을 토대로 답하고 있다. 시각, 후각, 청각, 미각, 지자기감각 등의 감각세계를 알 수 있는 다양한 실험들은 물고기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물고기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약 100년 정도의 기간 동안 수많은 과학자들이 발견한 깜짝 놀랄 만한 물고기의 행동을 통해 물고기가 학습과 기억에서부터 개체 인식, 놀이, 도구 사용, 협동 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스트레스나 공포감, 통증, 쾌감, 놀이, 호기심, 재미, 성생활과 양육 등 물고기의 감정과 관련된 연구에서 보여주는 바는 물고기 또한 감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으며, 인간이 생각하듯 ‘감정’이라는 것이 진화의 역사에서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물론 책에는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다양한 사람들의 일화적 관찰도 과학적 사실들 사이사이에 곁들여져 있다. 이런 일화적 관찰은 학문적 신빙성은 없지만, 아직도 수많은 물고기들이 연구되지 않고 미지의 베일에 가려져 있는 상황에서 생물학자들의 연구에 동기부여를 할 수 있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물고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인간과 아주 많이 닮아 있다!
육상동물이 대기에 둘러싸여 있듯 물고기는 물에 둘러싸여 산다. 물의 밀도는 공기보다 800배나 높고 압축되지 않는 성질이 있다. 이런 환경 탓에 물고기들만의 고유한 진화 메커니즘이 가능했다. 물고기의 뇌가 작은 것도, 손이나 발 대신 납작한 지느러미를 갖게 된 것도, 유선형의 몸체를 갖게 된 것도 이들이 생활하는 환경이 물속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고기의 뇌가 상대적으로 작다거나 손이 없다거나 하는 것으로 물고기를 판단하면 안 된다. 지은이는 이런 뇌중심적 관점,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우리가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날 때 물고기는 전에 없이 새롭게 다가온다.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물고기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는 ‘노는 물’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낚싯바늘에 꿰여 물 밖으로 끌려나온 물고기가 울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물속에 빠졌을 때 울지 않는 이유와 마찬가지다.”
우리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온 시간을 1초라고 했을 때, 물고기는 4분이 넘게 지구에서 살아왔던 동물이다. 아울러 우리 인간에게 아직도 미지의 동물로 남아 있는 물고기가 살고 있는 전 세계 바다 중 현재까지 탐사된 부분은 겨우 5%에 불과하다. 따라서 아직도 미지의 생명체로 남아 있는 물고기에 대해 시선을 돌리고, 우리의 인식을 바꾸고, 물고기의 도덕적 권리에 대해 다시 주장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책속으로
“물고기에게 ‘원시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지독한 편견의 소산이다. 이러한 편견은 ‘물속에 살던 생물들은 그들 중 일부가 육지로 기어 올라간 이후 진화를 멈췄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가정은 ‘진화는 쉬지 않고 계속된다’는 개념과 완전히 모순된다. 자연 선택은 시간만 주어지면 작동을 계속한다. 지금으로부터 4억3,000만 년 전 물고기 중 일부가 육지로 올라와 네발동물로 진화한 후에도 자연선택은 남아 있는 물고기들을 대상으로 솎아내기를 계속 진행해 점진적으로 세련화시켰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현존하는 모든 척추동물들의 뇌와 신체는 ‘원시적인 형질’과 ‘진보된 형질’의 모자이크다.” --- p.31
“청소부 물고기와 고객 물고기 간의 공생관계는 자연계에서 가장 잘 연구된 복잡한 사회시스템 중 하나다. 물고기 공생 분야의 권위자인 레두안 비샤리에 따르면 한 마리의 청소놀래기가 100마리 이상의 다양한 고객들을 구별하며, 이들과 마지막으로 상호작용한 날짜도 기억한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청소부와 고객의 공생시스템은 신뢰에 기반한 장기적 관계, 범죄와 처벌, 까다로움, 관중 의식, 평판, 아첨을 포함하는 복잡한 시스템이다. 이러한 사회적 역동성은 물고기 사회가 우리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 의식 수준과 정교함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 --- p.220
“‘물고기는 … 조용하고 무표정하고 다리가 없으며, 그저 멀뚱멀뚱하게 바라보기만 한다.’ 낚싯바늘에 꿰여 물 밖으로 끌려나올 때 비명을 지르지도 않고 눈물도 흘리지 않는다. 항상 휘둥그렇게 뜨고 있는 눈은 물고기들이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 거라는 오해를 부풀린다. 하지만 물고기들은 물속에 잠겨 있기 때문에 눈꺼풀이 필요 없다는 점을 명심하라.
우리가 물고기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는 ‘노는 물’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낚싯바늘에 꿰여 물 밖으로 끌려나온 물고기가 울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물속에 빠졌을 때 울지 않는 이유와 마찬가지다.” --- p.316
Avex Toi - Soeur Sourire
'세상과 어울리기 >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비의 역사 外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 (0) | 2017.09.01 |
---|---|
권력과 언론 그리고 권력과 검찰 (0) | 2017.08.24 |
시민교육이 희망이다 (0) | 2017.08.05 |
가족의 파산 外 (0) | 2017.07.24 |
'젓가락- 동아시아 5,000년 음식문화를 집어 올린 도구 (0) | 2017.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