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로써 살다, 그 새빨간 ‘원초적 본능’
1)‘고기’는 외설적이다?
성에 관한 욕망과 표현을 억제했던 조선시대, 제아무리 지체 높은 양반이고 예술의 거장이라 한들 원초적 욕망을 비껴갈 수는 없었다. 다양한 고전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김홍도 ‘운우도첩’. /한국저작권위원회 제공
‘육담’ 하면 무엇을 떠올리게 되나. 고깃집 상호? 물론 그럴 수도 있겠다. 포털 사이트를 열고 이 단어를 입력하면 고깃집 상호가 상단에 주르륵 뜬다. 육담(肉談)의 사전적 의미는 음탕하고 품격이 낮은 말이나 이야기다. 한마디로 음담패설이다. 그래서 육담에 주로 호응하는 수식어는 ‘질펀한’ ‘노골적인’ ‘낯뜨거운’ ‘걸쭉한’ 따위다.
고기, 살을 의미하는 ‘육(肉)’과 음담패설이 무슨 상관이 있냐고. 거칠게 말하자면 인간의 몸은 고깃덩이다. 몸은 원초적이고 본능적 욕망이다. 성(性)을 이야기하는 음담패설이 ‘고기 이야기’인 이유다. 실제로 중국 옌볜 조선족들은 음담패설을 고기 이야기라 칭하고 있다 한다. 김선풍 중앙대 명예교수는 “고기라는 말에 담긴 욕정적인 속살의 부딪침, 에로틱한 섹스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그러고 보면 ‘육’이나 ‘살’이 들어가는 단어들은 꽤나 야릇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육감적, 육정, 육욕… ‘살’이라는 단어도 성적인 표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속살은 성기를, 살을 섞는다는 관용어는 성관계를 일컫는다.
토속적인 언어 발굴에 천착해온 소설가 김주영은 대표작 <객주> 등 주요 작품에서 질펀한 육담, 성과 관련한 질박한 표현을 많이 썼다. 조선시대의 육담과 야담 등을 모아 놓은 <고금소총>이나 <청구야담>을 비롯해, 고전소설과 판소리 가사 등에도 성행위나 성기를 ‘고기(肉)’에 비유한 표현들이 꽤 눈에 띈다. 고기방망이, 고기막대기, 살꽁지, 가죽침, 살보시, 가죽방아… 듣기만 해도 무언가가 상상되는, 낯뜨거운 표현들이다.
애첩이 장대하게 뻗은 종의 양물을 보고 희롱하여 말했다. “너의 두 다리 사이에 달려 있는 고기막대기(肉槌) 같은 것은 무슨 물건인가.”(<촌담해이>의 ‘치노호첩(痴奴護妾)’ 중에서)
고전소설 <심청전>에는 심 봉사가 방아 찧는 아낙들과 성적인 농담을 주고받는 대목이 나온다. 방아를 찧고 고기를 주고받겠다는 등 노골적인 수작에 사용된 말들은 조선조 서민들 사이에서 통용되던 성적 언어였다.
성에 관한 욕망과 표현을 억제했던 조선시대. 제아무리 지체 높은 양반이고 문학의 거장이라고 한들 원초적 욕망을 비켜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남긴 송강 정철이 유배지에서 만난 기생 진옥과 주고받은 시조를 보자.
인간의 몸, 거칠게 말하면 ‘고기’
식욕도 성욕도 근원적 욕망이니
‘고기’ 빗댄 성적 표현 많을 수밖에
붉은 고기는 오랫동안 성욕 상징
종교적 규율로 육식 금지하기도
‘콘플레이크’도 금욕 노력의 산물
“옥이 옥이라커늘 번옥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일시 분명하다/ 내게 살송곳이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 번옥은 돌가루를 구워 만든 인조 옥이다. 정철은 진옥을 향해 진짜 옥이라고 추어올리며 대놓고 작업을 건다. ‘살송곳’은 남성의 성기를 상징한다. 진옥 역시 지체하지 않고 응수한다. “철이 철이라커늘 섭철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일시 분명하다/ 내게 골풀무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 불순물 섞인 철인 줄 알았더니 제대로 된 철이라고 추어올리며 맞받는 진옥. ‘골풀무’는 쇠를 녹이는 것으로 여성의 성기를 지칭한다. 살송곳과 골풀무의 재기 넘치고 능청스러운 대화로 보건대, 이후의 장면이 어떻게 이어졌을지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1990년대를 풍미했던 <옥보단(玉蒲團)>이라는 홍콩 에로영화가 있다. 극장 개봉작치고는 수위가 상당했다. 원작은 17세기 중국 명나라 말기에 극작가 이어가 쓴 소설 <육포단(肉蒲團)>이다. ‘포단’은 방석을 뜻한다. 육포단은 고기방석이라는 뜻이니 수위의 정도가 대충 짐작되지 않는가. 왜소한 자신의 ‘물건’에 콤플렉스를 느낀 주인공이 말의 성기를 붙이는 수술을 감행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에는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싶은 곡예 같은 체위, 엽기적인 성적 묘사가 넘쳐났다.
고기와 성적인 의미가 연결되는 것은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다. 고기를 뜻하는 라틴어 ‘caro’에서 유래한 단어 ‘carnal’도 성적인, 육욕적인이라는 뜻이 있다. 프랑스의 향수 브랜드 프레데릭말의 ‘카넬 플라워’를 굳이 번역하자면 ‘육욕의 꽃’ ‘욕정의 꽃’ 정도가 되겠다. 미국 인문학자 로널드 르블랑은 저서 <음식과 성>에서 고기(肉, carnal)의 의미에 대해 “성교로 얻는 육체적 쾌락을 가리키는 동시에 음식으로 섭취하는 고기를 가리킬 수 있다”고 쓰고 있다.
피가 흐르는 붉은 고기는 오랫동안 신화나 전통을 통해 성욕, 정욕, 에너지, 힘 등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고기를 먹음으로써 그 힘과 에너지가 먹는 사람에게 전달된다는 믿음은 고대 원시 부족사회뿐 아니라 현대에 이르기까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러미 리프킨은 인류가 붉은 고기를 먹는 행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육식의 종말>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피가 흥건한 쇠고기를 먹는 것은 오랫동안 성적인 욕정을 불러일으킨다고 여겨졌다. 노예선 선장 존 뉴튼은 자신이 종교적 개심을 체험한 후 항해 도중 왜 육식을 삼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음식의 변화가 여자 노예들에 대한 자신의 욕정을 막아줄 것을 바랐다’라고 적었다.”
육신의 정욕을 일으키는 붉은 고기. 고대 로마에서 국교로 공인된 뒤 유럽 사회를 지배해온 기독교 문화는 자연히 이 같은 식생활 문화를 규제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성금요일, 부활절을 앞둔 40일간의 사순절 등을 속죄와 참회의 날로 정해 경건하게 지내도록 했다. 경건함을 실천하는 방법은 붉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었다. 육욕을 일으키고 흥분시키는 붉은 고기 섭취를 금지하는 대신 생선을 먹도록 했다. ‘금요일의 물고기’(Fish on Friday)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런 전통에서 유래한다. 천주교에선 지금도 금요일을 ‘금육일’로 지키도록 하고 있다.
개신교는 교리적으로 ‘금육’을 내세우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19세기 미국은 청교도적 개신교 문화가 주축이 된 금욕적 분위기가 강했다. 특히나 죄악시했던 것은 성욕으로, 이를 부추기는 것이 육식으로 대표되는 과도한 영양 섭취라고 여겼다. 육식은 질병을 유발할 뿐 아니라 성욕을 일으키고 자위행위를 하게 만드는 등 쾌락과 탐욕에 빠지게 하는 악의 근원이었던 셈이다. 장로교 목사였던 실베스터 그레이엄은 사춘기 소년들의 성욕을 진정시킨다는 목적으로 거친 보리를 섞어 ‘그레이엄 크래커’를 만들었다. 아침마다 이 크래커를 열심히 먹을 정도로 그의 신봉자였던 의학박사 존 켈로그는 건강요양원을 운영하며 환자들의 정욕을 억제하고 자위행위를 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될 음식 개발에 몰두한다. 우여곡절 끝에 이곳에서 개발된 음식이 바로 오늘날 세계인의 아침 식탁을 차지한 ‘콘플레이크’다. 한때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다’는 문구를 내세워 광고했던 것을 원개발자들이 저세상에서 봤다면 기함했을 노릇이다.
금욕적이고 보수적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때는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다. 남성들의 성욕을 자극할 수 있으니 피아노나 식탁의 다리까지도 덮개로 가리도록 할 정도였다. 육식이나 식탐을 억압하는 분위기 역시 만연했다. 소년들의 자위행위나 성욕을 억제하기 위해 고기를 줄이도록 했으며 소녀들이 육식 때문에 색정증에 걸린다(<고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에서 인용)고 믿었다. 원초적 욕망을 억압하는 사회 분위기 아래에서 섹스는 출산을 위한, 음식 섭취는 생명 유지를 위한 행위여야 했다. 혹자들은 영국 음식이 맛없기로 유명해진 것은 이 같은 금욕의 시대와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제아무리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여왕이더라도 집안 단속은 맘대로 되지 않았다. 빅토리아 여왕의 장남 에드워드 왕자(훗날 에드워드 7세)는 역대급 대식가에 호색한이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여성과 추문을 일으켰다. 파리로 원정 성매매를 나섰던 그는 소위 스리섬(세 명이 함께하는 성행위)을 위한 러브체어까지 고안해 사용했다. 에드워드 7세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더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만 추가한다. 많은 정부(情婦)를 두었던 에드워드 7세의 임종을 지킨 이는 당시 남편이 있던 앨리스 케펠이었다. 앨리스 케펠의 증손녀가 찰스 3세의 부인 커밀라 왕비다. 찰스 3세의 고조부가 에드워드 7세이니 역사도 치정도 반복되는 셈이다.
경향 박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