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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버려진 것들은 어디로 가는가- 모두가 쉬쉬하던 똥 이야기

by 이성근 2017. 12. 16.




버려진 것들은 어디로 가는가 모두가 쉬쉬하던 똥 이야기

저자 리처드 존스|역자 소슬기|MID |2017.11.

원제 Call of Nature

 

저자 RICHARD JONES곤충 사나이라는 별명의 남자. 리처드 존스는 영국의 저명한 곤충학자로, 왕립 곤충학 협회ROYAL ENTOMOLOGICAL SOCIETY 및 런던 린네 학회LINNEAN SOCIETY OF LONDON의 회원이며, 영국 곤충학 및 자연사 학회BRITISH ENTOMOLOGICAL AND NATURAL HISTORY SOCIETY의 전임 회장이다. 그가 집필한 곤충과 야생동물에 대한 몇 권의 책에서는 모기나 머릿니, 꿀벌뿐 아니라 세계의 온갖 기이한 곤충을 다룬 바 있다. 10살에 처음 똥딱정벌레를 만난 후로 지금까지 똥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고 있다. 현재는 BBC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곤충과 야생동물과 환경에 대한 글을 싣고 있으며,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주기적으로 출연하고 있다.

 

목차

역자 서문

들어가는 말

 

1장 똥이란 무엇인가?

2장 없애거나 혹은 남기거나

3장 남긴 것은 어디로 가는가

4장 똥을 향한 치열한 경쟁

5장 똥 장인의 생태사

6장 똥을 먹는 녀석들의 진화

7장 똥 생태계 밀착 취재

8장 밖에서부터 안까지 파헤쳐보기

9장 한 덩이가 사라지기까지

10장 세상에 그들이 없어진다면

 

부록1 똥은 어떻게 생겼을까

부록2 똥에 사는 동물과 똥을 먹는 동물

부록3 분변학 사전

 

출판사서평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사물에 얽힌 이야기를 다루는 사소한 이야기시리즈의 일곱 번째 책이 나왔다. 술의 과학(프루프), 냉장의 물리학(냉장고의 탄생), 재료의 신비함(사소한 것들의 과학), 바퀴의 역사(바퀴, 세계를 굴리다), 체모와 알의 생물학(헤어, 가장 완벽한 시작)을 지나 이번에는 과 그를 둘러싼 생태계에 얽힌 이야기를 담았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버려진그것, 똥이라는 찌꺼기가 갖는 의미

. 개발된 도시의 그 누구도 이 버려진것을 다시 들여다보지 않으며, 일반적으로는 그 근처에 다가가는 것조차도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것은 외진 길가나 공원의 풀밭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가끔 칠칠치 못한 인간의 발에 묻어 그에게 부끄러움을 선사하고는 한다. 그러나 지구의 누군가는 이것이 그 자체로 하나의 생태계를 만들어 내는 것을 경이에 가득 차 바라보며, 기회가 될 때마다 이것의 겉과 속을 파헤쳐 희귀한 동물들의 생태를 파악하고는 한다.

한 덩어리의 똥이 땅에 떨어진 후 분해되고 흩어져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기여한다는 것을 우리는 오랜 기간 똥으로 거름을 만들어 온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이 과정에서 어떤 동물들이 어떤 역할을 맡는지, 어떤 행동을 통해 생명의 순환에 기여하는지를 잘 알지는 못 하고 있다. 아마 더럽다는 이유로 무시되거나 너무 친숙해 오히려 신경을 쓰지 않게 되는 똥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생태계 밑바닥에서 이뤄지는 순환의 순간

버려진 영양분을 재활용하는 동물의 이야기

 

그러나 지구의 유장한 역사에서 땅에 떨어져 버려진 이 물체를 재활용하는 이들은 최소 수천만 년 전부터 이 덩어리진 물건을 말 그대로 굴려왔다. 우리에게 친숙한 쇠똥구리를 포함한 수많은 딱정벌레목의 동물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이 새끼들의 먹이로 삼기 위해 굴려 놓은 분비물의 화석은 지구 곳곳에서 발견되어 이름이 붙여질 정도다. 또 우리에게 꽤 친숙한 이름인 똥파리나 지렁이 등의 수많은 동물 역시 똥을 주식으로 삼거나, 똥을 둥지 삼아 알을 낳곤 한다. 이들이 똥의 생태계에서 맡은 역할은 주로 똥으로 버려진 영양분을 재활용하는 것이다.

이들의 경이로운 자원 재활용 능력은 오랜 기간 많은 사람을 매료시켰다. 쇠똥구리가 소똥을 굴리듯 해와 달을 굴렸을 것이라며 이를 경외하던 고대 이집트 문명을 비롯하여 지렁이에 지대한 관심을 갖던 다윈, 그리고 수많은 곤충 중에서도 딱정벌레 수집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파브르까지. 우리가 잘 들여다보지 않는 저 아래, 똥이 흩뿌려진 지면에서 이들이 수천만 년에 걸쳐 이뤄낸 성과를 감탄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던 것이다. 인간에게 더럽게만 느껴지는 똥을 소중한 자원으로 삼는 이 동물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저자인 리처드 존스는 영국의 유명한 곤충학자로, 왕립 곤충학 협회 등의 다양한 곤충 관련 학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BBC를 비롯한 수많은 매체에 곤충 이야기를 기고하고 있다. 식물학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집 주변을 열정적으로 탐험하던 어린 시절부터 딱정벌레에 매료되었던 그는, 이후 곤충과 사랑에 빠져 열일곱 살에 처음 곤충 관찰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전문적인 곤충학자가 된 지금까지 존스는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곤충과 그 생태계를 연구해 왔다.

오랜 연구 경력만큼이나 그가 쌓아온 현장에서의 경험담은 유쾌하기 그지없는데, 연인과 함께 여행을 갔다가 양의 똥에 매료되어 거기에 숨은 딱정벌레를 찾던 이야기부터 시작해 대학 시절 똥의 생태계를 공부하기 위해 소똥 앞에서 하염없이 곤충을 기다리던 이야기까지 그 일화도 다양하다. 동료 곤충학자들의 비슷하거나 더 생생한 경험담도 빠지지 않는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똥의 생태계의 중요성이다. 실제로 소 등의 가축을 이주시키며 그 똥을 분해할 분해자들을 함께 이주시키지 않은 호주의 경우, 똥에 거주하는 파리의 양만을 늘리게 되어 분해되지 않은 똥의 악취와 늘어난 파리의 습격으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생태의 근간이 되는 똥 생태계로의 여행을 떠나보자. 생명의 경이로운 적응력에 놀랄 준비를 하고서 말이다.

책속으로

 

토끼 역시 풀을 뜯어먹는 동물이고, 질긴 셀룰로오스 섬유에 붙어있는 영양소를 해방시키기 위한 세 번째 방법을 진화시켰다. 양과 마찬가지로 토끼도 소장과 대장 경계에 있는 맹장에서 박테리아가 발효작용을 일으키지만, 크기가 작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매번 영양분을 충분하게 추출하지는 못한다. 대신 음식을 재활용하는데, 자기 똥을 먹는 방법을 이용한다.-1장 똥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하수구가 막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그것을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의 대변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며,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 냄새는 좋아봐야 불쾌하고 최악은 그야말로 역겹다. 우리의 생물학적 생산물에 대한 우리의 본능적인 혐오감은 현대적인 위생 감각이나 빅토리아 시대의 내숭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오히려 훨씬 오래된 고대의 형질이다. 이 형질이 진화함으로써 우리는 질병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되었다.

-2장 없애거나 혹은 남기거나 중에서

 

중앙아시아의 전통에는 쿠말락Kumalak이라는 신비로운 예언 방법이 있는데, 예언을 하는 주술사는 정사각형 격자위에 양의 똥 41개가 배열된 형태를 보고 해석한다. 콩이나 돌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사실 쿠말락은 튀르크어족 언어로 양의 똥을 의미하기 때문에, 만약 내 미래를 읽어주는 주술사가 이런 현대적이고 위생적인 대체품을 사용한다면 나는 사기당한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3장 남긴 것은 어디로 가는가 중에서

 

자연에서는 버리는 것이 없다. 심지어 배설물조차도. 초식동물이 처리하는 원료는 놀라울 만큼 소화가 되지 않는다. 질긴 셀룰로오스와 복잡한 식물성 화학물질을 분해하기 위해서 다양하고 복잡한 소화효소, 산과 알칼리, 구불구불하고 거대한 내장기관이 존재하고 셀 수 없이 많은 미생물을 고용하는데도 말이다. 초식동물들이 먹는 섬유질은 그런 것이다. 보통 초식동물은 음식 속 영양분의 10~30% 정도를 흡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머지는 똥으로 나온다.

-4장 똥을 향한 치열한 경쟁 중에서

 

똥을 굴리는 똥딱정벌레는 곤충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환상적인 행동 중 일부를 보여준다. 여기에 영감을 받은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이 딱정벌레를 숭배했고, 기묘한 동물신이 지배하는 복잡한 사후세계의 체계 속에 이 곤충을 포함시켰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적어도 한 곤충학자가 제안했던 바에 따르면, 성경에 나오는 에스겔의 바퀴(에스겔 1:1-28)는 경단형 풍뎅이를 신비롭게 암시한 것이지, 차체가 빛나는 어떤 새로운 형태의 사륜전차나 외계의 우주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경단형 딱정벌레들은 영국이나 북유럽 지방에서는 나타나지 않지만, 최초로 신성하게 여겨졌던 풍뎅이인 진왕소똥구리(Scarabaeus sacer)는 프랑스 남부에서 볼 수 있으며, 여기에서 영감을 얻은 프랑스의 곤충학자 파브르는 이 신성한 딱정벌레에 대한 글을 썼다. 그 이후로 이 딱정벌레는 많은 딱정벌레 연구가들을 끌어들이고 있다.-5장 똥 장인의 생태사 중에서

 

둥지를 만드는 행동은 엄청나게 성공적인 형질이다. 그리고 똥딱정벌레들에게 상당한 보상을 가져다줬다. 똥딱정벌레들은 드넓은 풍경 속에서 금세 조각나 사라져버리는 먹잇감에 열중하지만, 거의 말 그대로 그 먹잇감을 서로 잘라서 나눔으로써 이득을 보았다. 땅굴형 딱정벌레들은 원시적인 전략으로 둥지를 짓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런 유형의 행동은 아주 먼 옛날, 선사시대에 맨 처음 등장하여 진화해왔다. 약간 다른 기술과, 깊이와, 길이와, 각도로 땅굴을 파면서, 똥딱정벌레는 자기 자신과 새끼들을 위해 엄청나게 전문적인 장소를 만들어냈고, 덕분에 놀랍도록 다양한 동물군이 그 터무니없는 일련의 뿔들과 함께 발달하게 되었다.-6장 똥을 먹는 녀석들의 진화 중에서

 

고대인들은 똥 속에 누가 사는지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리고 열성을 다해 우상화하여 숭배했다. 분명 대영박물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시물은 길이 1.5미터, 높이 1미터짜리 거대한 진왕소똥구리 석상이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것을 만든 때는 기원전 332~330년 무렵,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가 시절이었다. 소똥구리를 진정으로 신성하게 여기기 시작한 지 1,800~2,300년 가량 지난 이후였고, 좋았던 옛 시절에 대한 감상적인 향수가 만연하던 시기였다. 비록 어쩌면 모방작품일지도 모르나, 이 장엄한 예술품은 현실적이면서도 상징적이고, 일상적이면서도 전통적이다. 오늘날 도시에 사는 점잖고 세련된 독자라면 놀랄 수도 있겠으나, 이 석상은 대변의 자연계를 친숙하게 여기는 전통 속에서 등장했다. 기원전 2000년 무렵, 고대 이집트의 중기왕국시기는 소똥구리 애호가들의 전성기였는데, 소똥구리 부적과 목걸이와 브로치가 가정용 장신구로서 유례 없는 인기를 누렸다. 그 중 수천 점이 고고학적 발굴과정에서 출토되었으며, 당시 이 장신구를 제조하는 산업은 지중해 전역에 걸쳐있었다.-7장 똥 생태계 밀착 취재 중에서

 

진화론의 아버지인 찰스 다윈은 지렁이에 대해 권위 있는 논문을 남긴 바 있다. 그가 내린 결론에 의하면 지렁이들은 먹고 소화시키고 다시 위로 던지는 과정을 통해서 10~20년 내에 위에서부터 15센티미터의 흙을 갈아엎을 수 있다고 한다. 가축이 풀을 잘 뜯는 (따라서 거름도 잘 생기는) 들판에서는 똥에서 흙으로 변하는 정도를 감지하기 어렵다. 흙이 똥을 포함한다. 똥은 흙이다.-8장 밖에서부터 안까지 파헤쳐보기 중에서

 

과거에 똥이 존재했던 흔적들은 똥과 똥을 싸던 것들이 사라진 훨씬 이후에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있다. 남미에서는 2,000~5,000만 년 전에 만든 똥 경단의 거대한 화석이 발견되었다. 재료를 제공했던 거대 동물군 포유류들은 멸종된 지 오래이지만 말이다. 크기가 소형차만큼 거대하고 아르마딜로처럼 생긴 생명체와 북극곰보다 큰 나무늘보와 발굽이 코끼리 같은 기묘한 생명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발견된 딱정벌레의 화석은 없지만, 녀석들이 굴리고 가서 묻었던, 지금은 속이 빈 똥 경단은 코프리니스페라속(Coprinisphaera)에 해당하는 몇몇 종 고유의 특징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어서 과학문헌에서도 경단에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상태가 온전한 일부 똥 경단의 경우, 거주자가 우화한 적이 없다고 추측할 수 있다.-9장 한 덩이가 사라지기까지 중에서

 

똥딱정벌레와 똥파리는 (해충 수준으로 많아지지 않는 한) 환경의 숨은 영웅들이다. 녀석들이 없으면, 호주에서 봤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가축의 대변에서 뒹굴고 있었을 것이다. 불행히도 고대 이집트인들이 딱정벌레들을 숭배하고 찬양하던 때와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고, 오늘날 우리는 녀석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녀석들에게 너무 무관심하며 기꺼이 녀석들에게 살충제를 먹인다. 밀집사육을 거쳐 슈퍼마켓 진열대에 올라오는 값싼 고기를 원했기 때문에 생긴 불행한 부작용인 것이다.-10장 세상에 그들이 없어진다면 중에서

 

'토양을 치료하는 명약' 분약을 아시나요? [귀농통문]

동아시아 역사상 똥의 저장과 거래

우리는 매일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요즘 TV를 보면 그야말로 먹는 방송 천지라고 말할 정도로, 먹는 일의 소중함과 즐거움을 보여준다. 몸의 이치란 먹고 나면 반드시 내보내야 한다. 얼마나 잘 내보내느냐는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측정하는 잣대이기도 하다. 그런데 먹는 이야기와 달리 배설의 문제는 항상 숨기고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왔다. 뒤처리 과정은 음식 조리와는 달리 음성적으로 행해졌으며, 그 결과는 우리의 생명과 생태환경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매일 일정량의 똥오줌을 배설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것을 단순 폐기물로 인식하느냐, 자원으로 인식하느냐는 우리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20세기 초 미국의 토양학자 킹(F.H. King)이 동아시아를 여행하며 경이롭게 여긴 것이 바로 똥을 자원으로 활용하여 토양을 되살리는 것이었다. 그는 미래 인류농업의 대안을 동아시아에서 발견했다. 이 글은 과거 동아시아 조상들이 똥오줌을 어떻게 이용했는가를 살펴 그 지혜를 배워보고자 한다.1)

 

초기 측간 구조와 똥의 저장

똥을 이용하려면 우선 그것을 모으지 않으면 안 되며, 이를 위해서는 측간을 언급해야 할 것이다. 중국에서 측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국어(國語)> '진어(晉語)'에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가 측간(豕牢)에서 소변을 보다 문왕을 낳았다고 전하며, <좌전> '성공(成公) 10'에는 진후(晉侯)가 측간에 가다가 빠져 죽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 기록만으로 중국 고대 측간의 구조가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대(BC. 206~AD. 220)의 화상석과 명기(名器)에 등장하는 당시 측간을 보면 흥미롭게도 아래에 돼지우리가 결합된 모습이다. 제주도 민속마을에서 볼 수 있는 똥돼지 우리가 기원전부터 폭넓게 발견되는 것을 보면 당시 측간의 구조를 짐작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측간의 기록은 어떨까? 일찍이 <삼국지> '동이전 · 읍루전(挹婁傳)'에 의하면 "사람들은 집 한가운데 측간()을 두고 그 주위에 빙 둘러 모여 살았다"고 하며, <수서> '백제전'에는 "사내아이를 낳아 측간에 버렸는데 오랫동안 죽지 않았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 돼지우리와 관련이 있는 것을 보면 고대 중국과 유사한 형태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좀 더 구체적인 물질 자료는 7세기 백제 익산 왕궁리 유적의 측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측간은 돼지우리와 무관한 순수한 화장실로 한꺼번에 여러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며, 측간의 오수가 수로를 통해 성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일본의 고대 측간은 7~8세기의 고로칸(鴻臚館), 헤이조쿄(平城京)나 아키타성(秋田城)에서 그 유구가 발견된다. 일본에서는 측간을 '물 위의 집'이란 의미로 사용하는데, 대개 측간이 물 위에 설치되거나 도랑물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그 도랑 위에 널판자를 설치하여 화장실로 사용하고, 다시 그 물을 밖으로 보내거나 저류했다가 흘려보냈다. 이처럼 일본의 측간은 오늘날 동남아시아 일부지역과 같이 물을 이용하여 대소변을 처리했다는 사실이 한국, 중국과는 다른 특징이다. 이상과 같은 측간 구조와 분뇨처리 방식을 볼 때, 측간이 있고 똥오줌을 측간에 저장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8세기 이전 동아시아에는 사람 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분약(糞藥)으로서의 똥오줌

사람 똥이 농작물의 거름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기록은 당나라 말 <사시찬요(四時纂要)>에서 비로소 확인된다. 당시에 똥오줌을 채소나 과수재배에 이용하였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그 후 송대(960~1368)에 접어들면 교대작물의 재배가 확대되면서 지력의 소모가 늘어나 사람 똥이 새롭게 주목되어 수요가 급증하게 된다.

 

중국의 당송시대는 커다란 변혁기로, 고대적 질서체계가 무너지고 경제혁명이 일어난 시기로 불린다. 강남지역이 개발되고 화북의 인구가 남쪽으로 이동하고 농업과 양잠업이 발달하면서 상업과 도시가 부흥했다. 이때 다양한 상업작물이 재배되면서 작물의 복종지수를 높인 것이 바로 비료였다. 그 중심 역할을 하게 된 것이 사람의 똥오줌이었다.

 

이때부터 측간의 똥오줌을 수집하기 위해 저장 공간이 확대되고, 부숙(腐熟)한 똥오줌에 물을 타서 직접 작물에 시비하기도 하며, 퇴비에 끼얹어 거름을 부숙하는 데도 이용하는 등 다목적으로 사용하였다. 그 결과 땅의 지력이 지속적으로 왕성해져 휴한을 극복할 수 있었다. 생산이 증가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로 인해 상품, 유통경제가 발달하여 도시와 시장의 발달을 이끌었다. 민간에서는 똥거름을 '분약(糞藥)'이라고 표현하고, 이것이야말로 토양을 치료하는 명약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송대 '분약'이란 단어는 "농작물에 똥거름을 주는 것은 마치 허약한 사람에게 약을 쓰는 것과 같이"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체질에 따라 사용하는 약처럼 토지의 성질에 따라 똥거름을 시비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분약의 인식에서 거름이야말로 토지를 지속적으로 치유하여 지력을 보전하는 토대가 된다는 의식이 싹텄다.

 

그 결과 남방의 논농사 지역에서는 농가 근처나 논머리에 헛간(糞屋, 똥오줌 부숙 저장고)을 설치하여 비료에 대비하였다. 이 분옥의 구조를 보면, 거름기가 땅속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고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붕을 낮게 설치했으며, 주로 똥오줌을 저장하거나 거름을 부숙하는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남송 사대부의 권농문을 보면, 농가 소득의 증진을 위해 집을 지을 때 반드시 먼저 측간을 만들 것을 권유할 정도였다. 이것은 당시 똥오줌의 집적이 가정경제의 향상과 직결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송·원대의 민간에는 "땅을 많이 구입하려 애쓰는 것보다 적은 땅에 충분히 거름 주는 것이 훨씬 수입이 낫다"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 덕분에 송대에는 소모된 지력을 보충하여 벼농사에 이어 콩이나 보리를 윤작할 수 있었다.

 

아시아 각국의 똥 거래

똥오줌이 토지의 명약(名藥)으로 병든 토양을 치료하고 땅 기운을 높인다는 인식은 원대의 <왕정농서> '분양편(糞壤篇)'에도 그대로 이어져 분옥에서 부숙한 똥거름은 땅을 매우 기름지게 하여 남방의 농가에서는 똥을 이용한 토지경작법이 일반화되었다. 점차 북방의 농가에서도 이런 방식을 모방하여 10배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명청 시대에는 똥을 확보하기 위한 매매가 본격화되었다. 그야말로 똥을 황금과 같이 여기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2)

 

청대 중국 똥장수를 가장 잘 묘사한 것은 17세기 편찬된 <굴신갱간귀성재주(掘新坑慳鬼成財主)>란 소설이다. 주인공 목태공(穆太公)이 어느 날 도시로 나갔다가 도로 곁에서 공동화장실[糞坑]을 보고, 지금까지 소중한 똥오줌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에 자극받아 마을에 측간을 지어 똥을 팔아 큰 부를 축적했다는 내용이다.

 

그는 문 앞의 3칸 집()3개의 큰 구덩이를 파서 측간을 단장했다. 광고를 하려고 포스터를 사방에 붙였는데, 그 문구에 "향기 나는 새로운 측간을 만들었으니, 원근 군자들의 관심을 구한다. 본 측간에는 휴지(草紙)를 공짜로 제공한다"라고 적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사용에 소극적이었지만 점차 작은 이익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대변 후 뒤처리를 볏짚이나 기와 조각(瓦片)등을 사용했는데,3) 종이(草紙)를 제공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움직였던 것이다.

 

측간을 개소한 지 며칠 후 여성용 측간도 만들었는데, 흥미롭게도 여성의 이용률이 남성보다 더 많았다. 이렇게 수집한 똥을 개인이나 상인이 현금이나 쌀, 기름 및 나무 등으로 구입하여 주변 뽕밭, 채소밭과 논밭의 비료로 공급하였다. 당시 똥배[糞船]를 이용하여 분뇨를 구입한 사례는 명나라 말의 <심씨농서>에서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중국에서 똥오줌을 황금처럼 여겨 매매한 사례는 이미 남송의 도성 임안에서 똥을 처리하며 구역을 다투던 경각두(傾脚頭)에서부터 볼 수 있다.

 

18세기 조선의 <북학의>에서도 당시 똥오줌 수집을 잘 묘사했다. 조선의 박지원은 엄행수(嚴行首)라는 똥 장수를 등장시켜, 그가 사람 똥을 비롯한 각종 똥을 모아 서울 근교의 채소밭에 비료로 공급하여 한 해 6000전을 벌어들였다고 했다. 이러한 현상은 1910년대 경기도 수원에서 재에 똥오줌을 섞어 만든 똥재(糞灰)를 판매했다는 기록까지 이어진다. 그 밖에도 최근까지 영산강 하류의 가지(可之)마을은 여름철에는 영산강과 해남만을 오르내리며, 고기를 잡고 겨울철이 되면 배로 목포에서 똥을 운반했다고 한다.

 

근세 일본의 똥오줌과 그 시비에 대한 인식 역시 중국, 조선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일본도 13세기까지만 해도 남녀노소가 거리에서 옷을 벗고 배설할 정도로 똥오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국시대 말 근세초기의 대표적인 농서인 16세기 <청량기(淸良記)>에는 똥오줌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농민을 하농(下農)이라고 평가하고, 농민이 똥을 준비하는 것을 무사가 책략을 세우는 것과 동일하게 인식하였다는 점은 주목된다. 그 후 17세기가 되면 사람 똥을 구매하는 현상이 등장하며, 19세기에 이르면 사람의 똥오줌을 최고의 비료로 여기게 된다.

 

도시의 분뇨 급취는 처음에는 자유경쟁의 원칙을 따라 이루어져 고정된 권리는 아니었지만, 점차 급취권으로 발전하면서 똥오줌이 일종의 저당되고 매매되는 대상이 되었다. 집주인은 필요할 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소제인을 변경할 수도 있었다.

 

맺음말

이처럼 똥오줌은 오랜 시간에 걸쳐 아시아 농업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자원이었으며, 아시아인들의 소중한 지혜의 결정체로서 많은 인구를 부양하고 문명을 선도했다. 하지만 근대화과정에서 똥오줌은 야만적인 비근대성의 상징으로 변모되면서 화장실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다. 그로 인해 화장실은 단순한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공간이며, 똥오줌은 폐기물로 변해버렸다. 그 결과 농약과 화학약품이 유기비료를 대체하면서 토양과 수질은 오염되고, 인간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현대과학의 힘을 빌려 냄새를 제거하고 새로운 자원으로 재활용하게 된다면 토양과 수질 생태계의 복원뿐만 아니라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가 매일 배설하는 똥오줌을 어떻게 인식하고 처리하느냐는 인류 미래의 문제와 직결된다. 똥이 바로 우리 생명과 직결됨을 직시하여 똥오줌에 대한 인식부터 바꾸기를 바란다. / 최덕경 부산대 교수

 

각주

1) <동아시아 농업사상의 똥 생태학> (최덕경 지음, 세창출판사 펴냄) 참고.

2) <왕정농서(王禎農書)> '분양편(糞壤篇)' '惜糞如惜金'

3) 다만 고대의 지배층은 뒤처리 용구로서 나무를 죽간처럼 깎아서 만든 주목(籌木)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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