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미도에 들어와 제일 먼저 만났던 생물이 동양달팽이였다. 여기 이런 친구가 살고 있구나 정도였다. 동네 산책길에서도 몇 마리 보여 흔하게 보이는 종으로 여겼다.
막상 섬 일주에 들고 보니 길에 널린 것이 달팽이들이었다. 나서 이렇게 많은 달팽이를 본일은 없다. 민달팽이 라면 좀 끔찍했을 수도 있다. 장마라서 기어 나왔을 것으로 본다. 먼데 사진을 찍다가 본의아니게 그만 두어마리 등짝을 밟아 박살내기도 했다. 육중하고 인정사정 없는 등산화 아래 집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끔찍했다. 억수로 미안했다.
이후로 조심해서 걸었다. 어쩌면 같이 걸었을 수도 있다.
동양달팽이 Nesiohelix samarangae
달팽이과 연체동물로 낮은 원추형 패각이며 우리나라 육산패류 가운데 가장 큰 대형 종으로 대표종이다. 전국의 산에서 발견되며 산속의 그늘진 바위, 낙엽이 많은 곳 돌무덤 등지에서 생활한다. 성체 전에는 각구가 예리하고 젖혀지지도 않으며 황갈색을 띤다. 패각에 있는 띠가 2줄이라 한줄 나있는 충무띠 달팽이와는 구별이 된다.
걷다가 문득 이 친구들은 식용이 안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시중에서 사육해서 관찰용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한 쌍에 3~4만원 정도 ... 달팽이 詩 몇편 올려 본다.
달팽이 -정호승
내 마음은 연약하나 껍질은 단단하다
내 껍질은 연약하나 마음은 단단하다
사람들이 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듯이
달팽이도 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
이제 막 기울기 시작한 달은 차돌같이 차다
나의 길은 어느새 풀잎에 젖어있다
손에 주전자를 들고 아침이슬을 밟으며
내가 가야 할 길 앞에 누가 오고 있다
죄 없는 소년이다
소년이 무심코 나를 밟고 간다
아마 아침 이슬인 줄 알았나 보다
+ 달팽이 한 마리가-최춘희
겹벚꽃 그늘 아래서
달팽이 한 마리 더듬더듬
나무를 기어오른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등짐 진 그의 무게만큼
하늘은 자꾸만 기우뚱
내려앉는데
놀라워라......
보이지 않는 눈으로
지구를 끌고 가는 힘
+ 달팽이집이 있는 골목- 고영
내 귓속에는 막다른 골목이 있고,
사람 사는 세상에서 밀려난 작은 소리들이
따각따각 걸어 들어와
어둡고 찬 바닥에 몸을 누이는 슬픈 골목이 있고,
얼어터진 배추를 녹이기 위해
제 한 몸 기꺼이 태우는
새벽 농수산물시장의 장작불 소리가 있고,
리어카 바퀴를 붙들고 늘어지는
빌어먹을 첫눈의 신음소리가 있고,
좌판대 널빤지 위에서
푸른 수의를 껴입은 고등어가 토해놓은
비릿한 파도소리가 있고,
갈라진 손가락 끝에
잔멸치 떼를 키우는 어머니의
짜디짠 한숨소리가 있고,
한 땀 한 땀 나를 꿰어내던
겨울비의 따가운 박음질소리가 있고,
내 귓속 막다른 골목에는
소리들을 보호해주는 작고 아름다운
달팽이집이 있고,
아주 가끔
따뜻한 기도소리가 들어와 묵기도 하는
작지만 큰 세상이 있고,
+ 달팽이의 꿈-이윤학
집이 되지 않았다 도피처가 되지 않았다
보호색을 띠고 안주해 버림이 무서웠다
힘겨운 짐 하나 꾸리고
기우뚱기우뚱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얼굴을 내밀고 살고 싶었다 속살을
물 위에 싣고 춤추고 싶었다
꿈이 소박하면 현실은 속박쯤 되겠지
결국은 힘겨운 짐 하나 벗으러 가는 길
희망은 날개로 흩어진 미세한 먹이에 불과한 것이다
최초의 본능으로 미련을 버리자
또한 운명의 실패를 감아가며
덤프 트럭의 괴력을 흉내라도 내자
아니다 아니다 그렇게 쉬운 것은
물 속에 잠겨 있어도 늘 제자리는 안될걸
쉽게 살아가는 방법이 있을까?
입으로 깨물면 부서지고 마는
연체의 껍질을 쓰고도 살아갈 수 있다니
+ 달팽이는 시들지 않는다-이경임
껍질뿐인 나의 집이 이제는 편안하다
창문이 없는 지붕과
사다리가 없는 방이
이제는 친근하다
사방이 거울로 되어 있는 감옥 속에서
나는 무수한 나를 번갈아 입는다
나의 유일한 유희는 언제나 나 자신인 것이다
나의 더듬이는 망가진 안테나,
세상은 나에게 전송되지 못한다
나의 유일한 흡연은 카프카 읽기
나는 해마다 지붕 위에
늙어가는 카프카의 초상을 그린다
나는 비오는 날에만 외출한다
햇살, 하늘, 그리고 직립....
사람들은 끝이 없는 뾰족한 것들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래도
그렇기 때문에
달팽이는 시들지 않는다
+ 달팽이 3-권정생·아동문학가1937-2007
달팽이 마을에
전쟁이 났다.
아기 잃은 어머니가
보퉁이 등에 지고 허둥지둥 간다.
아기 찾아간다.
목이 메어 소리도 안 나오고
기운이 다해 뛰지도 못하고
아기 찾아간다.
달팽이가 지나간 뒤에
눈물 자국이
길게 길게 남았다.
+ 달팽이-이준관·
-엄마, 달팽이 봐
-나, 바빠
-엄마, 달팽이가 움직여
-나, 바쁘다니까
-엄마, 달팽이 뿔 좀봐
쪼그만 안테나 같애
-귀찮게 굴지마렴. 제발
아, 달팽이
아, 아깝다
엄마도 달팽이를 보면
좋아할 텐데...
어른들은 왜 항상 바쁠까?
+ 느린 달팽이의 사랑- 유하·
달팽이 기어간다
지나는 새가 전해준
저 숲 너머 그리움을 향해
어디쯤 왔을까, 달팽이 기어간다.
달팽이 몸 크기만한
달팽이의 집
달팽이가 자기만의 방 하나 갖고 있는 건
평생을 가도, 먼 곳의 사랑에 당도하지 못하리라는 걸
그가 잘 알기 때문
느린 열정
느린 사랑.
달팽이가 자기 몸 크기만한
방 하나 갖고 있는 건
평생을 가도, 멀고먼 사랑에 당도하지 못하는
달팽이의 고독을 그가 잘 알기 때문
달팽이의 사랑- 김광규
장독대 앞뜰
이끼 낀 시멘트 바닥에서
달팽이 두 마리
얼굴 비비고 있다.
요란한 천둥 번개
장대 같은 빗줄기 뚫고
여기까지 기어오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멀리서 그리움에 몸이 달아
그들은 아마 뛰어왔을 것이다
들리지 않는 이름 서로 부르며
움직이지 않는 속도로
숨가쁘게 달려와 그들은
이제 몸을 맞대고
기나긴 사랑 속삭인다.
짤막한 사랑 담아둘
집 한칸 마련하기 위하여
십 년을 바둥거린 나에게
날 때부터 집을 가진
달팽이의 사랑은
얼마나 멀고 긴 것일까
덮어준다는 것-복효근
달팽이 두 마리가 붙어 있다
빈집에서 길게 몸을 빼내어
한 놈이 한 놈을 덮으려 하고 있다
덮어주려 하고 있다
일생이 노숙이었으므로
온몸이 맨살 혹은 속살이었으므로
상처였으므로 부끄럼이었으므로
덮어준다는 것,
사람으로 말하면 무슨 체위로 말해질
저 흘레의 자세가 아름다운 것은
덮어준다는 그 동작 때문이겠다
맨살로 벽을 더듬는 움막 속의 나날
다시 돌아서면
벽뿐인 생애를 또 기어서 가야 하는 길이므로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덮어줄 수 있는
지금 여기가
지쪽의 이불을 끌어다가 자꾸
네 쪽옥이더라도 신혼방이겠다
내 의 드러난 어깨를 덮으려는 것 같은
저 몸짓
저 육두문자를
사람의 언어로 다 번역할 수는 없겠다
신혼서약을 하듯 유서를 쓰듯
최선을 다하여
아침 한나절을 몇백 년이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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