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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오래된 미래

충북 옥천 23m 상수리나무

by 이성근 2021. 10. 26.

"나무에서 냄새가..." 손님의 말이 '400살 어른' 살렸다

충북 옥천 23m 상수리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기까지

충북 옥천군 안내면 장계리 '뿌리깊은나무'에 있는 상수리나무. 월간 옥이네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한 그루 보물같은 나무를 지킨 사례를 소개한다.

 

충북 옥천 안내면 장계리 레스토랑 겸 카페 '뿌리깊은나무(대표 백운배)'에는 400'잡수신' 상수리나무가 한 그루 있다. 줄기 둘레는 3.7m로 성인 두 사람이 양팔을 뻗어도 다 안지 못할 정도이고 수고는 아파트 10층에 맞먹는 23m.

 

곧게 뻗은 줄기에는 가지가 아름답고 풍성하게 자라 건강한 듯 보이지만, 1년 전까지만 해도 상수리나무는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위험에 처해 있었다.

 

나무에서 냄새가 난다고?

 

뿌리깊은나무 백운배 대표가 나무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은 5-6년 전, 캐나다에서 온 지인을 통해서였다.

 

"손님이 나무 옆을 지나며 하시는 말씀이 '나무에서 냄새가 난다'는 거예요. '나무가 썩는 냄새인 것 같다. 캐나다에 있을 때도 이런 냄새를 맡은 적 있는데 그런 나무들이 보통 수년 안에 넘어가더라'는 거였죠."

 

뜻밖의 소식에 불안해진 그는 당장 전문가에게 나무 상태를 진단해 보기로 했다. 수소문해 충북대학교 식물의학과 교수이자 전 식물종합병원 원장인 차병진 교수를 찾았다.

 

초음파 진단을 한 차 교수는 "기둥 중심 부분이 점차 썩어들어가는 동공화 현상이 있지만, 지금껏 살아온 세월만큼 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운배 대표는 안심했다. 다만 나무가 꾸준히 관리를 받으려면 보호수로 지정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장계리 이장과 협의해 군에 보호수 지정 신청서를 냈다. 나무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본래 마을 둥구나무였던 상수리나무다. 1980년 대청댐 건설로 인한 수몰 전까지 이곳에는 마을이 있었다. 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각별한 관심을 받으며 수세를 유지해왔다.

 

안내면 장계리 이국무 이장은 "농사를 짓다가 땀을 식힐 수 있는 쉼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가지에는 그네가 매여 있었고 때로는 그 앞에서 소원을 비는 이들도 있었다. 어떤 이유인지 가지를 자르려 했던 사람이 다쳤다는 소문이 퍼진 이후로, 더욱 신성한 나무로 여겨졌다.

기둥 한 쪽에 썩은 부분을 치료한 흔적이 보인다. 월간 옥이네

 

백운배 대표에게도 상수리나무는 특별하다. 그가 처음 나무를 마주한 것은 1988, 노후에 전원생활을 할 목적으로 땅을 찾던 때였다. 금강이 펼쳐진 풍경도 훌륭했지만, 그보다 400년 된 상수리나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워낙 우람하고 수려한 데다, 어쩐지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나무였어요. 경외심이 생긴다고나 할까요."

 

환경 좋고 경치 좋은 곳은 많았지만, 이런 나무는 어느 곳에도 없다는 생각에 3천 평 땅을 매입했다. 넓은 땅을 가꾼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기에 고민 끝에 레스토랑 겸 카페를 열어 활용하기로 했다. '뿌리깊은나무'라는 상호가 생긴 것도 상수리나무 덕이다.

 

"1997년 이곳 문을 열 때 상호를 고민했어요. 푸른 언덕, 꿈의 궁전... 여러 후보가 있었는데 아내가 '이곳 주인은 400년 된 나무이니 상호도 그렇게 하자'고 말했죠."

 

상수리나무는 그렇게 백운배 대표 또 이곳을 찾는 손님들과 함께 세월을 보냈다. 그가 또 한 번의 운명적인 인연을 만난 것은 지난해 7월의 일이다.

 

나무가 정말 나를 부른 것일까

충북 옥천군 안내면 장계리 '뿌리깊은나무'에서 내려다보이는 대청호 풍경 월간 옥이네

 

20207, 조연환 전 산림청장은 우연히 뿌리깊은나무를 찾았다. 대청호 인근 한 카페에서 지인들과 다과를 할 계획이었다. 미리 봐두었던 카페로 향했지만 길을 헤맸다. 일행 한 사람이 뿌리깊은나무에 가볼 것을 제안했고 상수리나무를 만났다.

 

"와서 보니까 나무가 얼마나 잘 생겼어요. ', 이건 보통나무가 아니구나' 싶더라고. 상수리나무로서 이렇게 크고 오래된 나무는 내가 아직 본 일이 없어요. 감탄하면서 둘러보는데 자세히 보니 나무 안쪽이 썩어들어갔고 오른쪽 가지가 갈라져서 태풍이라도 불면 금방 넘어갈 것 같은 거야. , 이거 큰일 났다. 어떻게든 살려야겠다 싶었지요."

 

곧장 옥천군 산림녹지과장에게 연락해 상수리나무 치료를 부탁했다. '당장은 예산이 부족해서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체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본 조연환 전 청장은 SNS'이 나무를 살려 주세요'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고, 400명 가까운 사람이 이에 공감했다.

 

"돌아가는 길에 일행이 그러는 거야. '길을 잘못 든 게 아니고 저 나무가 나를 부른 것 같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나무를 살려야겠다는 책임감이 더 강하게 들었죠."

 

이후 나무를 살리려는 사람 28명이 모여 '상수리나무를 사랑하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권선복 도서출판행복에너지 대표는 사람을 모으고 이 상황을 언론에 알렸다. 옥천 기업인 교동식품 김병국 사장은 외과수술 비용을 부담하겠다며 나섰다. 옥천신문 오한흥 전 대표는 상수리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될 수 있도록 힘쓸 것을 이야기했다.

 

'상수리나무를 사랑하는 모임' 구성원은 81, 실제로 '뿌리깊은나무'에 모여 '보호수 지정이 되지 않는다면 기금을 모아 나무를 살리겠다'는 뜻을 모으기도 했다.

 

그 무렵, 차병진 교수가 나무 상태를 다시 한번 진단했다. 그는 당시 상태에 대해 "이전보다 급격히 나빠져 쓰러질 위험이 무척 컸다"고 회상했다.

 

20201019. 마침내 장계리 상수리나무는 옥천군 보호수 41호로 지정됐다. 옥천에서는 2012년 청산면 의지리 느티나무 이후 8년 만의 보호수 지정이었다.

충북 옥천군 안내면 장계리 '뿌리깊은나무'에 있는 상수리나무. 옥천군 보호수로 지정됐다. 월간 옥이네

 

보호수 지정 이후

썩어들어가던 줄기 안쪽을 깨끗이 닦아내고 상처를 싸맸다. 부러질 위험이 있던 가지 아래에는 지지대가 설치됐다. 상수리나무는 많은 이의 관심 속에 건강을 회복해가고 있다. 이번 달이면 어느덧 보호수 지정 1주년을 맞이한다.

 

"보호수가 되기까지, 한 그루 나무가 그냥 서 있는 게 아님을 깨달았죠. 여러 사람의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나무는 그 나무를 '사랑하는 만큼' 그 사람의 것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동안은 상수리나무를 뿌리깊은나무의 상징처럼 생각했지만, 나무의 주인이 내가 될 수는 없다는 거예요." (백운배 대표)

 

조연환 전 청장은 "이렇게 나무 한 그루에 애정을 갖고 살려내려 앞장선 것은 이 나무가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굴참나무'에 비유하며 이곳 상수리나무를 '할아버지 나무'라 부른다. 그는 상수리나무의 보호수 지정 이후로도 나무를 보러 종종 이곳을 찾는다. 백운배 대표와도 좋은 친구 사이가 됐다.

 

처음 나무를 살리고자 만들어진 '상수리나무를 사랑하는 모임', 상수리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면서 그 목적을 이뤘다. 당장은 쉬어가지만, 언젠가 또다시 나무 아래에 모일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상수리나무가 또 한번 이들을 부르는 날 말이다. 그때까지 상수리나무는 부지런히 가지를 뻗고 자라날 것이다. 더운 여름날에는 그늘을, 추운 겨울날에는 피난처가 되어주면서.

충북 옥천군 안내면 장계리 '뿌리깊은나무' 백운배 대표와 조연환 전 산림청장 월간 옥이네

 

"꿈이 있는 사람은 나무를 가꾼다" - 조연환 전 산림청장과 나무 이야기

 

"나는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는 못돼요. 낙엽수 중에 형제가 제일 많은 나무가 참나무인데 내가 형제가 9남매거든. 참나무 중에서는 상수리나무가 목재 질도 좋고 열매도 맛이 있고 하니 제일 맏이죠. 하지만 내 생각에 나는 그렇게 좋은 나무는 아닌 것 같아. 굴참나무는 겉보기는 아주 우람하고 단단해서 좀 좋아 보이지만 속은 상수리나무만 못해요."

 

조 전 청장이 스스로를 굴참나무에 비유하는 이유다.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는 형제 사이이니, 그가 이곳 상수리나무를 두고 '할아버지 나무'라 부르는 게 틀린 말은 아니다.

 

"농고를 졸업하고 19살에 산림청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해 산림청장이 되기까지 384개월을 나무와 보냈어요. 산과 나무는 내 어머니이자 은인같은 존재인 거죠. 평생 나무를 보면서 든 생각이 '한 그루 나무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예요.

 

나무는 처음 뿌리내린 자리에 평생 떠나지 않고 자라죠. 기름진 땅이든, 황폐한 땅이든 불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자라잖아요. 그러면서 인간과 자연에 온갖 이로운 것을 다 주고 가요. 산소는 내뿜고 환경에 나쁜 이산화탄소는 들이마시고, 그늘을 내어주고 홍수를 막고. 나무만큼 하느님의 창조 목적에 따라 사는 피조물이 없는 것 같아."

 

그는 나무를 '삶의 은인'이자 '닮고 싶은 대상'이라 칭하며 인간은 나무와 함께 살아야 편안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성경에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 살 때, 나무가 있고 숲이 있고 온갖 식물이 있었잖아. 인간은 그 속에 살아야 행복하도록 지어진 거예요.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는 국가도 대부분 나무와 숲을 잘 가꾸는 나라죠.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당장 결과가 나오는 일은 아니지만,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것은 분명해요. 꿈이 있는 민족만이 나무를 가꿔요."

월간 옥이네(monthlyoki)

 

보호수는 아니지만 보호해야 할 나무

누가,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보호수 제도 들여다 보기

충북 옥천군 청성면 조천리 도천마을 입구로 들어서는 길 한편에 서 있는 느티나무. 수령 600년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한때 높이 17m에 이르고, 1982년 옥천군 보호수 제3호로 지정되는 등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2009년 경부고속도로 확포장으로 지금의 자리에 옮겨 심는 과정에서 가지가 잘려 나가며 예전의 위용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이식으로 마을 입구에서 그만큼 멀어지면서 주민들의 관심도 점점 사라져가는 상태다. 이 나무의 현재는 보호수 지정뿐 아니라 사후관리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월간 옥이네

 

마을을 지키는 수호나무로, 역사의 일부로, 쉼터로 우리 곁에 있는 보호수. 2020년 말 기준으로 전국 13846, 올해 8월 기준으로 충청북도에는 1223, 옥천군에는 38본의 보호수가 있다.

 

한 가지 궁금증이 든다. 보호수는 도대체 누가, 어떤 기준으로 지정하고 또 어떻게 관리하는 것일까?

 

보호수는 역사적·학술적 가치 등이 있는 노목, 거목, 희귀목으로서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는 나무다. 산림보호법 13조에 따라 지방산림청장 및 시·도지사가 이를 지정·관리·해제할 수 있다.

 

보호수 제도가 처음 생긴 것은 1973. 당시 산림청은 '산림법'에 따라 보존할 가치가 있는 노목이나 거목을 노거수라 명명해 지정·관리했다. 이후 1980년 법령이 개정되면서 노거수는 '보호수'로 명칭이 바뀌어 산림청이 전국 노목, 거목, 희귀목을 보호수로 지정·관리하는 방식이 됐다.

 

효율적인 보호수 관련 행정을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는 편이 낫겠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2005년 보호수 관리업무는 지방자치사무로 이양됐고 충청북도는 2009년부터 '충북 사무 위임조례' 개정으로 보호수 지정·해제·관리업무를 각 시장·군수에게 위임한 상태다.

 

보호수 관리업무의 지방자치단체 위임은, 지자체가 주체가 된다는 장점은 있겠으나 지자체별 차이가 있고 체계를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 단점이다. 실제로 2017,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산림청 보호수 관리 실태를 점검했을 때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동안 전국 약 150여 그루의 보호수가 관리부실로 고사했음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후 2019년 산림보호법이 개정되면서 보호수 지정대상 확대 시도지사 또는 지방산림청장이 보호수 질병 및 훼손 여부 매년 정기적 점검 보호수 훼손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 이전 관리 보호수 지정·해제 및 이전을 위한 심의위원회 설치 등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보호수가 되기까지

보호수 지정은 대개 마을 이장 등 개인이 지방자치단체 산림과에 제보, 신청하는 데서 시작된다. 실제 사례를 통해 그 과정을 들여다보자.

 

청성면 장수리 상수리나무는 2009년 옥천 39호 보호수로 지정됐는데, 해당 보호수 역시 장수리 만명마을 당시 이장이던 박상민씨의 신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옛날에 대사가 지팡이를 꽂은 데에서 나무가 자라났다고 전해진다"는 전설을 전하며 "마을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내던 나무로, 역사와 의미가 있기에 마을에서 농촌전통테마마을 사업이 활발하던 때 신청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보호수 지정 신청이 접수되면 지자체 담당 부서에서 기본적인 수목 상태를 확인한다. 지정 대상 나무의 종류, 나이, 높이, 가슴높이지름, 수관폭 등을 고려해 보호수 지정 여부가 결정된다. 산림청이 관리소나 지자체에 배포하는 '보호수 지정 및 관리 지침'의 보호수의 선정기준(규격)'을 기준으로 한다. 산림보호법 13조가 개정된 이후로 나무와 관련된 역사적, 학술적 가치도 보호수 지정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호수 지정에 적합하다는 판단이 나오면 나무의 기본 정보와 함께 보호수 지정고시가 군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된다. 공고일로부터 한 달 이내에 이의신청이 없으면 보호수로 최종 지정된다.

 

절차를 거쳐 보호수로 지정이 되면, 각 지자체 혹은 지방산림청이 국가 예산을 부여받아 관리한다. 충청북도에서는 올해 8월 기준, 1223본의 보호수가 '보호수 정비사업' 예산 31200만 원(도비 30%, 시군비 70%)으로 관리되고 있다.

 

옥천군 산림녹지과 산림보호팀 김선병 주무관은 이는 "한 나무당 400만 원 지원받는 규모"라고 말한다. 토지소유권 문제에 따라 중부지방산림청이 관리하는 보호수 2본은 각각 보은·충주국유림관리소에서 상시관리하며 필요한 경우 예산을 요청하고 있다.

 

산림보호법에 따르면 지자체는 1년에 정기적으로 지정된 보호수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점검 상태에 따라 필요한 경우, 보호수 정비사업 예산으로 나무의사의 치료를 받는다. 해당 수목 앞에는 보호수임을 표시하는 안내판이 설치되고 주민의 생명, 신체를 위협하는 불가피한 상황 외에 보호수의 훼손 금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용·공공용 시설 외에 보호수의 수관폭에 해당하는 구역의 개발행위가 제한되는 것도 중요한 내용이다.

 

이를 위반하고 보호수에 불을 지른 자는 7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보호수를 절취할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보호수 일부 또는 전부에 손해를 입히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평생 보호수인 건 아니다?

충북 옥천군 청성면 조천리 도천마을 느티나무의 현재 모습 월간 옥이네

 

이는 어디까지나 보호수에 한정된 조치다. 보호수로 지정되지 못한 노거수는 이러한 보호에서 제외된다. 또한 한번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가 평생 보호수인 것은 아니다. 천재지변이나 화재 등으로 보호수가 소실되거나 손상되면, 보호수는 지정해제된다.

 

실제 옥천 30호 보호수였던 군서면 오동리 참나무는 2017년 수세 약화로 보호수 지정해제됐다. 마을 입구 정자 앞에 자라난 당산나무이자 정자목이었다. 오동1리 공영환 이장은 "나무가 점점 고사하면서 가지가 부러져 큰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땅에 물이 고인 것이 고사 이유가 아니었을까 추측한다"면서 "아깝지만 주민의 안전이 더 중요하기에 군청에 보호수 지정을 해제하고 베어낼 것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비극은 돌이킬 수 없기에 보호수에 대한 철저하고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지정해제 역시 일정 절차를 거쳐 지자체 홈페이지에 공시된다.

 

산림보호법 13조에 근거한 보호수 보존·관리 업무는 모든 지자체 공통이지만, 세밀히 살펴보면 다른 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충북 내에서도 시·군별 차이가 보였다.

 

충북 11개 시군 중 265본으로 가장 많은 보호수를 관리하는 충주시는 '보호수 관리원'을 따로 두었다. 푸른도시과 임순옥 팀장은 "보호수 숫자가 많아 부서 내 담당자가 나무를 일일이 돌아보기가 어렵다. 보호수 관리원 두 사람이 항시 순찰하며 병해충을 확인해 방제작업을 하고, 가지가 부러지며 생길 수 있는 안전문제를 점검, 주변 예초 작업을 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상반기, 하반기에 한 번씩 보호수 정비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괴산군은 전국 최초로 수목관리전문가(아보리스트) 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본 프로그램은 군에서 산림전문가를 양성하고자 시행, 지난해에 이어 올해로 두 번째 과정을 마쳤다. 첫 해에는 수강비를 전액 군에서 지원했으나 수강생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고자 올해부터는 일부 비용을 개인부담하도록 했다.

 

산림녹지과 산림정책팀 조성식 주무관은 "아보리스트 양성 과정을 거쳐 1급 자격증을 취득한 수강생은 노거수, 보호수를 관리할 자격을 갖게 된다. 지난해 31, 올해 25명이 수료했고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예정이다. 아직까지 수료생이 보호수 관리에 투입된 사례는 없으나 프로그램이 꾸준히 이어지고 시간이 쌓이면 가능성이 있으리라 본다"고 전했다.

 

보은군은 지난 2018년 군민 대상 보호수 전래·전설 수기를 공모하기도 했다. 보호수 및 노거수에 전해오는 이야기를 발굴해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산림녹지과 산림보호팀 김진성 주무관은 "보호수 안내판이 노후화되면서 다시 개정할 필요성을 느꼈다. 보호수 기본 정보 외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파악해 보여주려 했다. 공모전 결과를 활용해 책자도 만들 계획이 있지만, 코로나 상황으로 예산이 부족해지면서 현재는 보류한 상태"라고 말했다.

 

산림청은 이러한 지자체별 차이와 한계를 인지하고 지난해 10, 국민생각함에 '보호수의 체계적 합리적 관리 및 홍보'에 대한 국민의 생각을 묻는 설문 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설문 결과, 58명의 설문 참여자 중 28명이 '체계화된 관리매뉴얼 부재'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고 보호수 업무가 지방으로 이관돼 '보호수가 일관성없이 관리되는 것'이 문제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21).

 

보호수 업무 지방 이양에 대해서는 과반 이상(35)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관리상 문제해결방안으로는 '보호수 체계적 관리를 위한 통합관리 시스템 개발이 필요하다'는 답이 가장 많았다(30). 산림청 산림환경보호과 배현주 주무관은 "설문 조사 이후, 산림청의 역할이 더 있어야 함을 재확인했다. 내년부터 지자체에 추가예산을 주어 보호수 안전진단과 실태조사를 진행한 후에, 통합관리 시스템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거수를 지키기 위한 노력

청성면 조천리 도천마을에는 600살 된 느티나무가 있다. 1982년 보호수로 지정, 2009년 경부고속도로 확장공사 당시 기존 위치에서 마을 안쪽으로 옮겨 심으면서 보호수 지정이 해지된 노거수로, 건재했다면 최고령 보호수가 됐을 테다.

 

마을 주민의 당산목이자 쉼터였던 나무다. 1997년 고속도로 선형개량공사 때도 2009년 고속도로 확장공사 때도 베어질 위기를 넘기고 오뚝이처럼 살아난 나무이기도 하다. 송암조경 황인준 대표가 "나무를 살려보겠다"며 매입한 이후로 나무는 현재 위치에서 살고 있다. 이식 당시 굵은 가지가 잘려나가 이전의 위용은 아니지만, 마을 주민에게 의미 있는 나무이자 강한 생명력의 상징이다.

 

나무가 베일 위기에 처했을 당시, '이식이 어렵다면 지역 의미를 살릴 수 있는 조형물로 만들 것'을 이야기했던 에코존 윤병규 대표는 "당시 상황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나무도 생명이기에 살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한다. 그러한 생명체이자 600년된 마을의 역사인 나무를 어쩔 수 없이 베어야 한다면, 지역이 함께 관리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충북 옥천군 청성면 장수리 보호수 모습 월간 옥이네

보호수 지정 여부와 상관없이 이와 같은 마을의 오래된 나무를 보호하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일부 지자체의 경우 자체 조례를 제정해 노거수 전수조사 및 보호 정책 등을 마련하고 있는 것.

 

전라남도 영광군은 지난 2019'영광군 보호수 및 노거수 관리 규칙 조례'를 제정하고 전수조사를 통해 지난해 4본에 이어 올해 38본의 노거수를 추가로 지정했다. 이로써 영광군이 지정한 노거수는 총 42본이 됐다. 산림공원과 정혜진 주무관은 "현재 보호수 지정기준에는 도달하지 못하지만 향후 보호수 지정 가능성이 있는 노거수를 발굴하고자 전수조사를 진행했다.

 

부서 담당자가 직접 마을을 돌아보며 기준에 부합하는 노거수를 선정해 지정했다"면서 "기존 보호수 관련 조례는 있지만, 미래에 보호수로 지정될 수 있는 노거수를 관리할 수 있는 법이 없어 자체 조례를 제정한 것으로 안다. 돌아본 노거수는 대부분 마을 주민의 쉼터로 활용되고 있었기에 그 중요성이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옥천군 역시 관련 조례를 마련한 상태다. 올해 곽봉호, 이용수 의원 공동발의로 '옥천군 노거수 지정 및 보호 등에 관한 조례'가 제정되면서 보호수뿐만 아니라 노거수를 관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 이전부터 보호수가 아닌 노거수에 대한 관리·지원의 필요성이 주민 사이에 제기돼 왔던 터라 이같은 조례 제정에 기대가 모아진다.

 

산림녹지과 산림보호팀 김선병 주무관은 향후 계획에 대해 "노거수 전수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관리가 필요한 노거수가 있다면 예산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월간옥이네 통권 52(202110월호) ·사진 한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