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2 한국 -대구
“권력 장악 ‘막강 386세대’ 양보해야 자녀 세대가 산다”
쉽게 풀어 쓴 지금의 반도체 업계 상황
아베 4인방 폭주...“지금의 일본? 오히려 한국이 더 건강하다”
유튜버의 윤리와 권리 그리고 독일의 ‘유튜버 노조’ [이유진의 베를린 노트]
역대 대통령 아들들의 경제생활 ① 박정희·전두환·노태우 편
역대 대통령 아들들의 경제생활 ②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편
직장인 평균 채무 4076만원…소득보다 빚 증가 속도 빨라
'일본의 근대'란 기형적 신화에 불과하다
美역사가 "일본의 과거사 속죄 실패가 세계 경제를 위협한다"
"조선인 많이 먹어 배고팠던 것"…비하·왜곡 '폭발'
쌀 수탈 중심지 전북…3만6487명 강제징용
아베의 '정신적 지주', 극우 '일본회의'의 놀랄 만한 실체
'역사왜곡' APA호텔 가보니…귀 닫고 '애국 숙박' 돈벌이
"개식용, 모든 동물을 먹거리로만 보는 처참한 단면"
`귀걸이에 거울까지`…폼페이서 2천년된 여성 장신구 대거 발굴
일본사회와 아베…‘왜놈’과 ‘친북’ 프레임
日기업 6곳, '朴 대선자금' 제공후 한일협정 체결돼
일본 제국주의와 조선의 도미
한일관계 ‘기로’…열강 틈새속 힘의 균형 재정립 기회
대통령 입에서 또 다시 등장한 “가짜뉴스”
러시아 '핵폭발' 후폭풍…美반발·방사능 16배↑
40만명이 가진 170만채, 집값 정책 비웃고 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을 위한 변명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일본인들의 8ㆍ15 조선 탈출
해방 후 도주하던 일본인이 남긴 글 보니...
총살 전 조선13도 생각하며 열세 걸음 걸었던 김알렉산드라
시도지사 지지도, 이용섭 2위·박원순 3위..1위는?
경향사설]납득하기 힘든 ‘세월호 보고 조작’ 판결
농촌의 ‘계절노동자들’
농촌에서 밭일 하는 내국인 노동자는 누구?
할리우드가 주목한 아시안 히어로
110년 전에도 똑같았던 그들의 주장
일본 DHC, 한국 내 불매운동 즐기는가?
일본 내 혐한 가짜뉴스 바로잡을 '미디어'가 필요하다
지난해 공무원 '1만2천여명' 수사받았다
누가 IMF위기를 말하는가?…1997년과 2019년을 비교해봤다
집을 부동산으로 보면 삶이 떠돌이가 된다
노인들은 우리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이것은 광고인가 뉴스인가, 노골적인 갤노트10 홍보
TV조선‧채널A의 노골적인 ‘한겨레 소외 작전’
일본 경제보복에 와중에 이재용 띄우기 집중한 TV조선
홍콩 시위와 중국을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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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16 경향 장도리
“권력 장악 ‘막강 386세대’ 양보해야 자녀 세대가 산다”
불평등 세대’ 출간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화제 논문 ‘세대, 계급…’ 확장판
권력 독점 부작용 데이터로 짚어내
연공임금제·정규직 노조 문제 지적
“계급과 세대가 일치하는 한국
강력한 임금피크제 도입 절실
노동시장 개혁은 진보가 할일
다른 세대와 연대해 풀어가야”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10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20년간 외국에서 살다 들어오니 한국의 독특한 구조를 더 두드러지게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사람들이 대놓고는 못하고 술자리에서만 하던 이야기를, 데이터를 근거로 보여주니 반응이 뜨거웠던 것 같다. 웬만한 386세대 리더들은 이 논문이나 논문을 다룬 기사를 읽은 것 같더라.
이철승(48) 서강대 교수(사회학과)가 최근 출간한 <불평등의 세대>는 지난해 화제가 된 논문 ‘세대, 계급, 위계―386세대의 집권과 불평등의 확대’를 확장해서 쓴 책으로 출간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이 교수는 20년 동안 미국에서 연구하며 시카고대학 사회학과에서 종신교수로 일했으나 모두 정리하고 2017년 한국에 돌아왔다.
이 교수는 386세대가 정치·경제·시민사회 권력을 장악했고, 세대 독점의 결과로 청년 세대의 일자리 부족과 여성의 노동시장 탈락 등의 문제가 발생한 현실을 다양한 데이터를 근거로 보여줬다. 논문을 낸 이후 여러 반론이 나왔는데, ‘세대 간 격차보다 세대 내 계급이 더 중요한 문제’라는 계급론 시각의 반론이 대표적이다. 지난 10일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만난 이 교수는 “계급론은 세대나 여성, 지역 등 다른 균열구조를 ‘핵심 모순’을 가리는 허위의식이라고 본다. 하지만 최근의 청년 실업은 계급만으론 잘 설명이 안 된다. 한국에선 독특한 위계 구조로 인해 계급과 세대가 거의 일치한 상황이다. 그래서 책은 386세대 비판이 목적이 아니라, 세대라는 관점으로 한국의 위계 구조를 비판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노동시장 불평등을 집중 거론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동아시아적 위계에 기반을 둔 강력한 연공임금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평균적으로 초봉이 100이라고 하면 30년 뒤엔 170까지 가는데, 일본은 240, 한국은 350까지 간다. 한국은 세계 최강의 연공급제 국가다.” 이로 인해 심각한 노동시장의 이중화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자본은 노동비용의 압박이 생기자 두 가지 방법으로 대처했다. 강력한 노조를 조직한 386세대 정규직들과는 싸워서 이길 수 없으니, 대신 신입사원 채용을 줄이고 사내 하청·파견직·비정규직을 확대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규직 노조와 자본이 연대해서 하청과 비정규직을 착취하는 구조다. 1% 대 99%가 아니라 20%가 80%를, 또는 50%가 50%를 착취하는 사회다.”
그는 다른 세대와 비정규직을 고려하지 않고 임금 인상과 정년 연장에 몰두하는 정규직 노조의 문제를 지적했다. “스웨덴이나 독일과 같은 서구 국가 노조는 자발적으로 임금 인상을 자제한다. 인플레이션이 생기면 비정규직, 파트타임 노동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규직 노조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최우선 목표가 65살 정년 연장이다. 역삼각형 인구 시대가 연공급 및 세대 네트워크와 결합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은 신분제처럼 될 거다. 나는 정규직의 특권을 축소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를 알 수 없다. 이 이야기를 한국의 진보 세력이 솔직하게 터놓고 해야 할 시점이 왔다.”
이 교수가 정규직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의 한계가 명확하다고 보는 이유다. “정규직을 건드리지 않는 소득주도성장은 의도하지 않게 외부자가 진입할 일자리를 줄이는 경향이 있다. 소득주도성장보다 고용주도성장을 하는 게 맞다. 사민주의 국가 노조들의 목표는 완전고용이다. 그래서 임금 인상을 자제한다. 완전고용 상태에서 노동을 가장 잘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386세대의 장기집권을 강화할 65살 정년 연장을 위해 군불을 지피고 있는 상황을 그는 우려한다.
그는 현재 위계 구조가 기업의 경쟁력에도 심각한 부담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불평등의 세대>에 처음 공개한 50, 60대가 과대 대표하는 기업일수록 자본수익률이 좋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그래프를 중요한 데이터로 꼽았다. “국내 100대 기업을 살펴보니 이사진 중 50~60대 고연령자 비율이 80~100%에 이르는 기업들이 실적이 좋지 않았다. 우리은행, 포스코, 대우조선해양처럼 정부가 최대 지분을 가진 기업들이다. 오너가 없는 기업들에서 한 세대가 연대해서 나눠 먹는 거다. 이런 노동자의 이익집단화와 비효율의 증대는 남미 또는 남유럽 방식인데, 나는 우리 사회 전체가 이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1970년대생이 20~40%까지 이사진에 포함된 회사들, 네이버·코웨이·아모레퍼시픽·엔씨소프트 등은 자본수익률이 10~30%로 선두그룹을 형성했다. 이 교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에너지로 충전된 젊은이와 여성들을 조직 최상층으로 끌어올려 ‘무지개 리더십’을 구성하면, 경직된 조직 문화와 장기집권으로 인한 생산력 저하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청년 세대 일자리 문제와 관련한 가장 직접적인 해결책으로 강력한 임금피크제 도입을 꼽았다. 대기업, 공공부문, 전문직 등에서 시행한 임금피크제로 절약한 인건비로 기업들이 청년들을 고용하도록 하는 고용협약을 맺자는 것이다. 동시에 급여를 직무에 따라 주는 직무급제와 성과에 따라 주는 연봉제를 약한 수준의 연공급제와 함께 시행하자는 것이 이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이와 함께 관대한 실업보조금 지급과 재훈련 시스템, 국가 관리 취업 알선기관 등 유럽보다 더 강력한 고용과 훈련 안전망 시스템을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선 386세대의 양보가 필요하다. “386세대는 다 물러나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자제하자는 거다. 어차피 386세대를 몰아낼 조직력 있는 다른 세대는 없다. 권력을 가진 386세대가 자식 세대를 생각해서 스스로 풀어야 한다는 거다. 노동시장 개혁은 우파가 하면 노조가 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진보가 해야 한다. 386세대 안에서도 세대 균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다른 세대랑 연대해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계속 취업률과 출산율이 낮아지면 나중엔 386세대 본인들의 자녀가 엄청나게 많은 노인 인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고통을 짊어지게 된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쉽게 풀어 쓴 지금의 반도체 업계 상황
어려운 업계 용어가 한 달간 언론을 장식했다. 생소한 일본식 표현도 많았다. 최대한 쉬운 말로 지금 반도체 업계 상황이 어떤지, 오해와 진실이 무엇인지 정리했다.
[질문] 앞으로 일본에서 소재나 부품, 장비를 들여올 때 건건이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던데?
[확인] 사실이 아니다. 일부가 '개별허가'로 바뀌었을 뿐이다. 개별허가는 '건별 허가'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길면 90일 걸리는 허가 과정을 거쳐 유효기간 6개월짜리 허가가 나온다. 이전에는 '포괄허가'로 허가기간은 1주일, 유효기간은 3년이었다. 허가에 필요한 시간이 길어졌고 유효기간이 짧아졌다는 점에서 불편이 큰 것은 맞다.
또, 모든 수출 물량이 개별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이 7월 4일 지정한 불화수소와 극자외선 감광액, 불화 폴리이미드 등 3개 소재는 개별허가가 의무화됐지만, 나머지 품목은 아니다. 28일 백색국가 제외가 실행되면 이후에는 전략물자 중 비민감 857개 품목에 대해서 '자율준수 인증'이 없는 기업만 개별허가를 받아야 한다. 일본 기업 1,300개가 '자율 인증'을 받았다.
[질문]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걸 중단했다던데?
[답변] 사실이 아니다. 일본은 예정대로 개정 수출무역관리령을 7일 관보에 게재했고 21일 지난 28일부터 우리나라는 화이트리스트에서 빠진다. 이에 따라 857개 '전략물자 중 비민감 품목'에 대해서는 '자율 인증'이 없으면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전략물자가 아니라도 일본 정부가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이용될 수 있다고 판단해, 수출을 통제하는 제도인 '캐치올 규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질문] 반도체 소재 3개 품목 이외에는 추가 규제가 없어서 안심하게 된 것 아닌가?
[답변] 사실이 아니다. 일본은 반드시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하는 품목은 3품목 외에 늘리지 않았다. 하지만 28일 백색국가 제외 시행 이후에는 857개 비민감 전략물자에 대해서 '자율 인증'이 없는 일본 내 수출 기업은 개별허가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일본에서 소재나 부품, 장비를 도입하는 국내 회사는 거래상대방에게 '자율 인증'이 있는지를 꼭 확인해야 한다.
특히 대기업에 납품하는 2차, 3차, 4차 하청업체의 경우에는 영세한 규모로 일본 쪽 거래상대방의 인증 상황에 대해서 정보가 없는 경우가 많다. 고동진 삼성 스마트폰 부문 사장이 "4차 하청업체까지 고려하면 서너 달 뒤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겠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와 업계의 지원이 하청업체의 수급 상황에 초점이 맞춰질 필요가 있다.
[질문] 일본이 허가를 내줬으니 삼성전자의 소재 수급이 원활해졌다던데?
[답변] 사실이 아니다. 일본은 규제했던 3개 품목 가운데 극자외선 감광액에 대해서만 1개 업체에 수출 허가를 발부했다. 삼성전자는 2~3개 업체에서 감광액을 조달해왔다. 1개 업체에게 받았다고 곧바로 원활해졌다고 볼 수 없다. 반도체 생산에 들어가는 불화수소 역시 아직 허가가 나지 않은 상황이다. 또, 6개월짜리 허가이기 때문에 6개월 뒤 다시 허가가 필요하다. 삼성전자 홍보 담당자도 "수급이 원활해졌다고 하기 어렵다"고 했다.
[질문] 규제 품목은 얼마 안 있어 국산으로 대체가 가능하다던데?
[답변] 일부는 맞고 일부는 사실이 아니다. 일부 소재는 국산 대체가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액체 불화수소만 생산했다. 하지만 산업부 당국자도 기체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이 크게 어렵지 않다고 보고 있다. 다만 국내업체가 기체 불화수소, 즉 에칭가스를 생산하더라도 생산라인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2~3달가량 확인과정이 필요하다. 국내에서 불화수소 가스를 위한 용기를 구하기 어려운 점도 해결해야 할 점이다.
특히 극자외선(EUV) 감광액(포토레지스트)의 경우에는 개발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전문가들 의견이 많다. 반도체 기업들은 수년간에 걸쳐 감광액 업체와 공동 연구를 통해서 새 공정에 맞는 감광액을 개발해왔는데, 연구 협력 대상을 갑자기 바꾸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있을 거라는 우려가 크다.
불화폴리아미드는 대체할 수 있는 소재가 많고 국내에서 생산이 가능한 경우도 이미 있다.
[질문] 감광액과 포토레지스트, 레지스트는 서로 다르다는데?
[답변] 사실이 아니다. 감광액 또는 감광재를 포토레지스트 또는 레지스트라고 부른다. 기체 불화수소는 에칭가스라고도 불린다. 불화수소 수용액은 불산이라고 부른다.
박대기 기자waiting@kbs.co.kr
아베 4인방 폭주...“지금의 일본? 오히려 한국이 더 건강하다”
세코 경제산업상, 이마이 정무비서관, 스가 관방장관, 하기우다 자민당 간사장 대행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왜 폭주하는 것일까. 속내를 알 수 없다. 설혹 안다고 하더라도 대응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로서는 관찰자 시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정교한 대응을 하기 위해서는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을 배제하려는 일본의 움직임은 이미 오래됐다고 지적한다. 정보당국 수준에서는 적어도 1년 전에는 흐름을 포착했어야 했다고 전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말한다. 아베의 경제전략을 움직이는 최측근, 그리고 배후에 이들을 추동하는 우파단체와의 역학관계나 논리에 대한 정보와 분석은 아직 충분치 못하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서 의제와 무관하게 무역 관리를 무리하게 화두로 삼은 한국과 마지못해 반론을 한 일본을 제외하고 본건을 화두로 삼은 나라는 전혀 없었다는 중요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반드시 바로잡기 바란다.”
8월 3일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교도통신 공식 트윗 계정에 멘션을 걸며 남긴 메시지다. 교도통신은 세코 경제산업상의 기자회견을 다룬 이 날짜 기사에서 중국의 후춘화(胡春華) 부총리가 “연내 타결을 위해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사실을 보도했다. 다른 언론 보도들을 체크해보면 후 부총리가 최근의 한·일 갈등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에둘러 언급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세코 경제산업상은 직접 언급이 없다는 점을 무기 삼아 자국 통신사 보도를 오보라며 정정보도를 요구했다.
제재 총대 멘 세코 경제산업상
1기 아베 내각에서 내각총리대신 보좌관을 시작으로 아베와 인연을 이어온 세코 경제산업상은 현재 일본의 경제보복을 총괄하고 있다. 7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며 “과거사 문제 등은 이번 수출 규제조치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8월 2일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각의 의결도 그가 발표했다. 세코는 이번 대한 경제제재 조치의 기획과 실행, 정당화 조치 등과 관련해 거론되는 핵심 인물 중 하나다. 함께 거론되는 인사는 이마이 다카야(今井尙哉) 정무비서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 등이다.
이번 경제보복의 기획과 관련, 거론되는 인사가 이마이 비서관과 스가 관방장관이다. 두 사람은 부장관 3인과 함께 매일 아침 관저에서 열리는 ‘6인회의’의 핵심 멤버다.
도쿄대 법대 출신의 이마이 비서관은 경제산업성 관료 출신으로, 1차 내각 때 부처 파견 총리비서관이었다. 정치인 출신인 세코는 이때 홍보담당 총리보좌관을 했다. 2차 내각 때 세코는 관방부장관으로 1317일 동안 아베 총리를 보좌하다 경제산업상이 됐다. 이마이와 바통 체인지를 한 셈이다. 역시 관방부장관으로 아베를 보좌했던 하기우다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일본의 수출규제 배경과 관련해 “화학물질의 행선지를 알 수 없는 사안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번 조치는 당연한 것”이라고 발언했다. 난데없이 북한을 끌어들인 것이다.
아베의 최측근 그룹 중 최연장자가 스가 관방장관이다. 1948년생으로 아베보다 6살 많다. 1975년 중의원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한 스가는 요코시마 시의원을 거쳐 1996년 중의원에 당선됐다. 그 후 1차 아베 내각에서 총무대신으로 입각한 뒤 줄곧 아베와 행보를 같이해 오고 있다.
“TV 시사프로그램을 보면 거의 80~90%가 한국을 비난하는 프로그램이다. 한·일관계를 다루는 패널들의 발언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8월 7일 기자와 통화한 이명찬 게이오대 방문연구원의 말이다. 그는 현재 일본에 체류하고 있다. 동북아재단 한·일관계연구소 연구위원을 맡고 있는 그는 <일본회의와 아베 정권의 우경화>라는 연구서를 펴내기도 했다. 그에게 이번 수출규제와 ‘일본회의’ 등 일본 우익세력의 관련 여부를 물었다.
“내각 구성원 대부분이 일본회의 관련 인사라고 보면 된다. 정확하게 통계를 내기는 어렵지만 80% 가까이가 일본회의 소속이라고 보면 되고, 내각 말고 옆에서 보좌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일본회의에 경도된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그에 따르면 현재 일본회의 멤버의 면면은 전통적으로 일본 정치를 좌지우지해왔던 보수세력과도 또 다르다. “2012년 자민당 총재에 도전했다가 아베에게 석패한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만 하더라도 다르다. 이런 사람들이 ‘보수 본류’다. 아시아와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아베와는 다르다. 당장 아베의 선친 아베 신타로만 하더라도 합리적 보수주의 전통을 따르는 사람이었다. 조부 아베 간은 일제 말 도조 히데키 내각에 저항했던 정치인이었다. 아베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의 뜻을 따라 개헌을 추진한다고 말하지만 그 역시 신중한 면은 있었다.”
‘보수 본류’와 다른 아베와 측근인사들
일본이 지금과 같은 정치체제로 변하게 된 중요한 전환점은 1996년의 소선구제 도입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일본 정치·경제 전문가인 이향철 광운대 동북아통상학부 교수는 “일본 정치의 특징은 오랫동안 자민당 독주체제였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당내 파벌이 있었고, 파벌의 보스를 중심으로 계파투쟁이 벌어지는 체제였다. 이것이 바뀌게 된 것은 1996년 소선구제 도입이다. 이전 중선거구제도 때는 한 선거구에서도 2~3명의 자민당 의원이 나올 수 있었고 그것이 파벌의 존립근거였다. 소선구제 실시로 그것이 불가능해지니 당 총재에게 권력이 집중된다. 그러면서 모든 압력단체들이 일렬종대로 줄을 서게 되는 것이다. 당 총재, 총리에게 잘못 보이면 모두가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난 7월 <아사히> <요미우리> 등 일본 주요 언론사 논설위원들과 만나 깊은 속내를 들었다는 이명찬 연구위원은 “대놓고 비난하지는 못해도 아베 개인에 대해 (논설위원들이) 못마땅해 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한국 수출규제는 대부분 일본 국민들이 지지하고 있고, 문재인 정부가 잘못된 대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일본 언론인들은 전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양국의 역사문제가 한국에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고 보는 데 비해 일본의 입장에서는 계속 우려먹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건 일본이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인식이 없어서다.” 여기에 결정적인 패착이 2015년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다. 그 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양국 간의 합의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 “한국은 나라 간 합의도 지키지 않는 나라”라는 인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지금의 수출규제는 오래갈 수 있을까. 일본 정치·경제 전문가들은 아베의 시도가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이향철 교수는 이렇게 덧붙였다.
“일본 국내에서는 통할지 모르지만 세계적 보편주의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행동이다. 제재가 계속되는 동안 한국은 고초를 겪을 것이다. 견제할 세력도 없기 때문에 아베의 독주도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아베가 제시하는 논리는 결국 일본을 망가뜨리는 논리다. 지금의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기 어렵다. 여론이라고 하는 것도 동원된 여론이고 조작하기도 쉽다. 오히려 한국이 더 건강하다.”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유튜버의 윤리와 권리 그리고 독일의 ‘유튜버 노조’ [이유진의 베를린 노트]
6살 아이에게 대왕문어를 쥐어주고, 자신이 기르던 개를 패대기친다. 아동학대에 동물학대, 욕설과 혐오발언 정도는 이제 그렇게 큰 사건도 아니다. 자유와 방종을 넘나드는 유튜브 세계에서는 가짜뉴스조차 콘텐츠가 된다. 모든 것이 가능한 유튜브에 없는 것이 하나 있다. 윤리. 파급력과 영향력, 경제적 이익까지 따라오는 유튜브에서 윤리 담론을 들어본 적이 없다. 윤리가 실종된 유튜브에서 규제와 통제 담론이 따라오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다.
독일은 유튜브 규제, 유튜버의 윤리와 권리 논쟁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먼저 유튜브 독일 지사는 한국 지사보다 해야 할 일이 훨씬 더 많다. 2017년부터 독일에서 시행 중인 ‘소셜네트워크에서의법집행개선을위한법률(NetzDG, 이하 네트워크집행법)’ 때문이다. 이 법은 혐오적이고 불법적인 콘텐츠·가짜뉴스 등에 대한 플랫폼의 책임을 강조한다.
유튜브를 포함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사업자들은 이용자들이 불법적인 콘텐츠를 신고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 신고가 들어오면 직접 심사해서 걸러내야 한다. 불법적인 콘텐츠로 판명 나면 빠르면 24시간 안에 게시물을 삭제한다. 1년에 두 차례, 이러한 활동 통계를 담은 보고서도 발행해야 한다. 반드시 독일어로, 보고서는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곳에 두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최대 500만 유로(약 70억)의 벌금이 부과된다. 그간 ‘개인’의 콘텐츠를 연결하며 뒷짐만 지고 있던 플랫폼 사업자에게 공간의 관리 책임을 맡겼다.
독일에서는 이 법을 두고 인터넷을 통제하려는 ‘검열제도’라는 비판이 일었다. 벌금을 피하기 위해 사업자들이 콘텐츠를 자의적으로, 손쉽게 삭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민혐오와 외국인 혐오,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소셜네트워크 플랫폼으로 콘텐츠가 순식간에 확장되는 사회에서 플랫폼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더 실렸다.
‘네트워크집행법’이 시행된 지 1년 반, 그동안 유튜브는 세 건의 보고서를 발행했다. 가장 최근 보고서를 보면 6개월간 총 30만4425건의 신고가 들어왔다. 이중 실제 부적절하다고 판단되어 삭제된 영상은 7만1168건, 대부분 신고가 들어온 지 24시간 이내에 처리됐다. 혐오 발언과 정치적 극단주의 관련 영상이 가장 많았고, 인격권 침해 및 모욕·포르노·사생활 침해·폭력적인 영상이 뒤를 이었다.
이 보고서로 유튜브의 실태를 조망할 수는 있지만 법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신고 건수에 비해 실제로 처리된 건수가 많지 않는다는 점, 독일법이 적용되지 않는 지역의 콘텐츠 처리 문제, 심사 기준 및 결정 과정에 관한 의문도 제기됐다. 독일 정부가 잘 모르고 ‘귀찮은’ 관리 책임을 그저 플랫폼 사업자에게 떠넘긴 것으로도 해석됐다
이 와중에 독일의 인기 유튜버인 미르코 드로치만(Mirko Drotschmann)은 최근 유튜버 윤리강령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주목을 끌었다. 그는 구독자 100만 명이 넘는 유튜브 시사상식 채널 ‘미스터비쎈투고(MrWissen2go)’의 운영자다. 드로치만은 독일언론과 인터뷰에서 “인터넷에도 품질표준이 필요하다. 전통적인 언론의 윤리강령과 같은 자율의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튜브 규제와 통제 담론 속에서 유튜버의 윤리와 자율규제에 대한 논의가 뒤늦게나마 시작된 것이다.
독일 유튜브 생태계에서는 유튜버들의 ‘직업적 연대’도 눈에 띈다. 지난해 봄 독일 유튜버들이 노조를 만들었다. 이들은 독일 최대 규모의 금속산별노조(IG Metall)와 연합해 힘을 키우고 있다. 유튜브와 유튜버를 사실상 고용 관계로 보고, 고용자에게 사회보장 비용을 요구한다. 유튜브의 각종 의사결정과정을 들여다보고, 참여하고자 한다. 독일에서는 규제와 통제에 맞서 유튜버의 윤리와 권리 담론을 그 누구도 아닌, 유튜버들 스스로 이끌어가고 있다.
한국은 어떤지 찾아봤다. 지난해 봄 방송통신위원회가 클린인터넷방송협의회를 개최했다. 인터넷 개인방송의 자율규제 가이드라인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협의회에 유튜버 한 명이 없다. 자율규제의 ‘자율’은 누구의 자율인가? 주요 기관 및 회사 대표들이 모여 찍은 ‘인증샷’은 10년 전 정부 행사의 단체 사진과 다를 게 없었다. 유튜브는커녕 윈도우XP의 향기가 났다.
한국에도 유튜버의 모임이 있긴 있다. 인터넷 카페에 모여 정보를 나누고 밋업(정모)도 한다. 대게 채널 운영 팁이나 영상 소스를 공유한다. 신나게 콘텐츠를 만들어 구독자 수를 높이고 큰돈을 버는 것, 좋다. 하지만 유튜버들 스스로 윤리와 권리를 찾지 않는다면, 유튜브에서 채널 하나 만들 줄 모르는 이들이 규제와 통제의 벽을 세울지도 모른다. /이유진 프리랜서 기자 heyday1127@gmail.com
역대 대통령 아들들의 경제생활 ① 박정희·전두환·노태우 편
박지만·전재국 삼형제는 재임 중 학생, 추후 사업체 운영…노재헌만 정치 입문 시도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라도 성인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을 하더라도 이권을 바라는 사람들과 그를 감시하는 눈으로 인해 많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역대 대통령의 아들들은 어떻게 경제생활을 했을까. ‘비즈한국’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EG 회장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 다스 전무까지, 역대 대통령 7명의 아들들의 행적을 되짚어본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세 군인 출신 대통령의 아들들이 그 첫 순서다.
# 박정희의 외아들: 박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후 찍은 가족사진. 사진=연합뉴스
박지만 EG그룹 회장은 1958년 12월,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부인 고 육영수 여사 사이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가 청와대에 입성한 건 출생 39개월째인 1962년 3월,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무대행을 맡으면서다.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3년 10월 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된 때부터 1979년 10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될 때까지 17년 넘게 머물렀다. 그동안 박지만 회장의 신분은 줄곧 학생이었다. 1971년 청운초등학교 졸업, 1974년 배문중학교 졸업, 1977년 서울중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후 큰누나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과 함께 청와대를 나와 서울 중구 동화동으로 이사한 1979년 11월에는 육군사관학교 제37기 학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1986년 육군 대위로 전역한 박지만 회장은 1989년부터 1994년까지 마약 복용 혐의로 다섯 차례 구속됐다. 방황하는 20대 청년 박 회장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민 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육사 시절 제자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었다. 처음 구속됐다가 석방된 1989년, 포항제철(현 포스코)과 삼화전자가 50%씩 지분을 투자한 삼양산업(현 EG그룹)의 부사장직을 그에게 맡겼던 것이다. 박 회장은 1991년 삼양산업을 인수했고, 1999년 사명을 ‘이지(EG)’로 변경해 28년째 이끌고 있다.
박지만 회장이 경영하는 EG그룹의 자산총액은 733억 2931만여 원, 매출액은 1125억 6329만여 원이다(2018년 기준).
# 전두환의 세 아들: 전재국·재용·재만
1969년 월남전 출정 직전에 찍은 전두환 씨의 가족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는 전효선 서경대학교 교수로, 전재만 씨는 태어나기 전이다. 사진=연합뉴스
전두환 씨와 부인 이순자 씨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다. 1959년 10월생인 전재국 전 시공사 회장, 1964년 10월생인 전재용 비엘에셋 대표이사, 1971년 4월생인 전재만 씨다. 전두환 씨 대통령 재임 기간(1980년 9월~1988년 2월) 장남 전재국 전 회장은 만 21~29세, 차남 전재용 대표는 만 16~24세, 막내 전재만 씨는 만 9~16세였다. 세 아들 모두 학생 신분이었다.
전재국 전 회장은 1983년 2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정책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전두환 씨가 대통령 임기를 마친 지 1년이 지나서야 귀국했고, 한동안 부모와 함께 백담사에 머물렀다. 그 해 12월 출판사 시공사를 인수해 30년간 경영하다 지난 5월 전 지분을 바이오스마트에 매각했다.
차남 전재용 대표는 학사장교로 임관해 1990년 육군 장교로 전역한 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으나 중퇴 후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타운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다. 2006년 9월 비엘에셋 대표이사, 2007년 3월 삼원코리아 대표이사에 취임했으나, 2014년 다운계약서 작성 및 세금 탈루 등의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 벌금 40억 원을 선고 받아 경영에서 물러났다.
막내 전재만 씨는 전두환 씨의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1989년부터 1991년까지 3년간 재수를 하다가 1992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해 4년만에 졸업했으며, 졸업과 동시에 이희상 운산그룹(현 동아원그룹) 회장의 맏딸 이윤혜 씨와 결혼했다. 현재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동아원 미국사무소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 노태우의 외아들: 노재헌
노태우 씨 가족이 1987년 연희동 자택에서 가족과 함께 담소나누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노태우 씨와 부인 김옥숙 씨 사이에는 1961년 3월생인 장녀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과 1965년 11월생인 차남 노재헌 변호사가 있다. 노태우 씨가 1988년 2월 제13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돼 청와대에 입성할 당시 노재헌 변호사는 만 22세로,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과를 막 졸업하던 때였다.
이듬해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건너가 명문사립대인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를 취득한 노재헌 변호사는 1991년 고 박준규 전 국회의장의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노태우 씨가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나온 직후에는 민자당 대구 동구을 지구당위원장을 지냈고, 1996년 4월 치러질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의사까지 밝혔다. 하지만 1995년 10월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터지자 위원장직을 사퇴하고, 국회의원 출마도 포기했다.
이후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 조지타운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세계 10대 로펌에 속하는 화이트앤케이스(White & Case)에 입사해 홍콩지사에서 근무하다가 2007년 5월 국내 로펌인 법무법인 바른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0년 고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의 장녀 신정화 씨와 결혼해 2남 1녀를 두었으나 2013년 이혼했다.
노태우 씨의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은 지 20주년을 맞아 노재헌 변호사는 2012년 한중문화센터를 설립하고 원장으로 취임했다. 2018년 2월에는 중국과의 교류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민간 주도의 ‘일대일로연구원’을 출범했다. 연구원은 최재천 법무법인헤리티지 대표변호사가 이사장을, 노재헌 원장과 취환 한중문화우호협회 회장이 공동원장을 맡았다.
역대 대통령 아들들의 경제생활 ②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편
김현철·김홍일 삼형제 부친 따라 정계 입문, 노건호 대기업 직원, 이시형 다스 초고속 승진
미디어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 씨(37)가 개인사업자로 ‘에프엑스FACTORY(팩토리)’를 설립한 후 ‘소프트웨어교육 선도학교’에 코딩교육 프로그램 융합 교재를 납품해온 사실을 ‘비즈한국’이 단독보도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관련기사 [단독] 문재인 대통령 아들 문준용, 초중고교 소프트웨어 교재 납품 사업).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라도 성인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을 하더라도 이권을 바라는 사람들과 그를 감시하는 눈으로 인해 많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역대 대통령의 아들들은 어떻게 경제생활을 했을까. ‘비즈한국’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EG 회장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 다스 전무까지, 역대 대통령 7명의 아들들의 행적을 되짚어본다(관련기사 역대 대통령 아들들의 경제생활 ①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그 두 번째로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들에 대해 알아봤다.
# 김영삼의 두 아들: 김은철·현철
김영삼 전 대통령이 동작구 상도동 자택에서 가족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사진=연합뉴스
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 부인 손명순 여사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다. 1956년 10월생인 김은철 씨와 1959년 3월생인 김현철 국민대 특임교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1993년, 김은철 씨는 만 36세, 김현철 교수는 만 34세였다. 당시 김은철 씨는 미국에서 사업을, 김현철 교수는 국내에서 정계에 입문했다.
오랜 기간 미국에서 사업을 운영하던 김은철 씨는 현재 국내 거주 중으로 알려진다. 2008년 9월 전남 여수에서 멸치어장을 운영하던 조부 김홍조 씨로부터 멸치어장을 상속받았고, 2015년 11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례 때 처음 공식석상에 나선 점 이외에 알려진 정보가 없다.
반면 김현철 교수는 ‘소통령’으로 불릴 만큼 활발한 정치활동을 펼쳤다. 제13대 대통령 선거운동 때(1989년) 부친을 도왔으며,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중앙여론조사연구소 소장, 1996년 유엔한국청년협회장을 지냈다. 김영삼 전 대통령 퇴임 후에는 제17·18대 총선에 출마하려다 포기했다. 이후 경남대 극동문화연구소 연구위원(2001~2006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2008~2012년), 고려대 지속발전연구소 연구교수(2008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2013~2014년)를 거쳐 현재 국민대 정치대학원에서 특임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 김대중의 세 아들: 김홍일·홍업·홍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7년 11월에 찍은 가족사진. 사진=비즈한국DB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다. 장남 고 김홍일 전 국회의원과 차남 김홍업 전 국회의원은 첫째부인 차용애 씨에게서, 삼남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은 둘째부인 고 이희호 여사에게서 태어났다. 이들은 모두 정치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48년 1월생인 장남 고 김홍일 전 국회의원은 김 전 대통령이 1991년에 창당한 신민당에서 당원으로 활동하다가 1996년부터 2006년까지 10년간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는 1980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는데, 그 후유증으로 지병을 앓아오다가 올해 4월 71세 나이로 별세했다.
1950년 7월생인 차남 김홍업 전 국회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1998년 아시아태평양재단에서 부이사장을 지냈으며, 2001년 이용호 G&C그룹 회장의 횡령·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돼 동생 김홍걸 상임의장과 함께 구속수감돼 전 국민에게 충격을 안겼다.
김홍업 전 의원은 2003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 추징금 2억 6000만 원, 벌금 4억 원을 확정 선고받고 1년 6개월을 복역했으나, 2005년 8월 사면복권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 퇴임 4년 만인 2007년 재·보궐 선거에 당선돼 정계에 다시 발을 들였으나, 이듬해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마했다. 올해 5월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삼남 김홍걸 상임의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시절 특별한 직업이 없었다. 고려대 불문학과를 11년 만에,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대학원 국제정치학 석사 과정을 7년 만에 수료한 것으로 알려진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8월 15일, 둘째형 김홍업 전 국회의원과 광복절특사로 석방된 그는 2012년 11월 민주통합당에 입당해 선거대책위원회 국민통합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를 지원했으며, 2016년 1월 다시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20대 총선에 출마할 의사를 밝혔다가 뒤늦게 불출마 선언했다.
# 노무현의 외아들: 노건호
고 노무현 대통령의 젊은 시절 가족사진. 사진=비즈한국DB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인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인 권양숙 여사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아들 노건호 씨는 1973년 5월생으로, 2002년 2월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그해 7월 LG전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노건호 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기간(2003년 2월~2008년 2월)에도 LG전자에서 계속 근무했다.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 별세로 휴직계를 내고 봉하마을에 머물렀으며, 5개월 만인 그해 10월 LG전자에 복직했다. 이후 미국법인, 중국법인 등에서 근무하다가 2013년 퇴사하고, 베이징대학교에서 국제경제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LG그룹에 따르면 노 씨는 현재 LG경제연구원 소속 중국 주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이명박의 외아들: 이시형
이명박 전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에게는 1남 3녀의 자녀가 있다. 그 중 외아들인 이시형 전 다스 중국법인 대표이사는 1978년 3월 막내로 태어났다. 1998년 2월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으나, 1년 만에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에 입학해 경영학을 전공했다. 졸업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2001년 5월, 육군 병장 만기 전역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7년에 가족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사진=비즈한국DB
이시형 대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지내던 2006년경 국제금융센터 인턴사원으로 입사했다가 이듬해 7월 퇴사한 것으로 알려진다. 인턴기간 중 이명박 전 대통령이 소유했던 서초동 영포빌딩의 관리업체 대명기업의 직원으로 등록돼 위장 취업 의혹을 받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2008년 셋째누나 이수연 씨의 남편 조현범 당시 한국타이어 부사장(현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이 근무하던 한국타이어의 수시 인턴사원으로 입사했다. 4개월 만인 그해 11월 정직원이 됐지만, 이듬해 11월 퇴사했다.
그는 2010년 8월 자동차부품회사 다스(DAS)의 해외영업팀 사원으로 입사했다. 6개월 만인 2011년 2월 경영기획팀장, 다시 1년 만에 경영기획실 부장, 또 다시 6개월 만에 해외영업담당 이사로 초고속 승진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한 2013년에는 다스 미국법인인 다스노스아메리카 이사, 2015년에는 다스 전무이사, 2017년에는 중국에 있는 네 개 법인의 대표이사로 올라섰다. 201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실소유주 의혹이 불거지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다스의 평사원이 됐다. /유시혁 기자 evernuri@bizhankook.com
직장인 평균 채무 4076만원…소득보다 빚 증가 속도 빨라
ㆍ통계청 ‘지난해 임금근로자 부채’
ㆍ전년보다 7.4% 늘어…2030세대 ‘전세자금’이 대출 증가의 가장 큰 원인
ㆍ연체율, 중기 직원이 대기업 직원의 3배…비은행권 대출로 이자부담 커
직장인 평균 채무 4076만원…소득보다 빚 증가 속도 빨라
지난해 말 기준 직장인들은 평균 4076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에 비해 빚이 늘어나는 속도가 약 2배에 달한다. 저축은행 등 비은행 금융기관에서 주로 돈을 빌리는 저소득층의 이자부담이 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연체율이 대기업 노동자들보다 3배가량 높았다.
12일 통계청이 공개한 ‘2018년 일자리 행정통계 임금근로자 부채’를 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임금노동자들이 개인 명의로 금융기관에 빌린 평균 금액은 4076만원으로 전년보다 7.4%(281만원) 증가했다. 노동자들이 진 빚을 규모 순으로 한 줄로 세웠을 때 한가운데 해당하는 값(중위대출액)은 3660만원으로 1년 새 10.3%(342만원) 높아졌다. 이는 전세대출·학자금대출·생활비 대출 등을 포함한 개인 명의의 대출만 따진 것이다. 사업자금 대출은 해당되지 않는다.
이 같은 부채증가율은 소득증가율의 약 2배에 달하는 것이다. 통계청과 한국은행이 발표한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가계소득 증가율은 4.1%에 불과하다.
직장인들의 대출이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전세자금’이 원인으로 꼽힌다. 연령대별로 보면 40대 직장인의 평균 대출액은 5958만원으로 가장 높았지만 증가율은 20대(38.5%)와 30대(14.6%)가 더 높았다. 우영제 통계청 빅데이터통계과장은 “20대의 경우 주택담보대출이 늘었는데 지난해 부동산 매매량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전세자금 대출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반면 60~70대의 대출액은 소폭 감소했다. 소득수준별로 보면 연소득 3000만원 이상 5000만원 미만(평균 4633만원)에서 전년 대비 512만원(12.4%), 5000만원 이상 7000만원 미만 구간(평균 7774만원)에서 전년 대비 660만원(9.3%) 등 큰 폭으로 증가했다.
연체율은 0.56%로 전년도(0.51%)보다 올랐다. 연체율은 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원금과 이자를 개인대출(잔액 기준)로 나눈 값이다. 특히 소득이 낮을수록 빌린 돈이 크지 않아도 제때 상환하지 못하는 비율이 높았다. 기업 규모별로 볼 때 중소기업 종사자의 연체율이 0.88%로 대기업 종사자(0.27%)보다 크게 높았다. 음식숙박업 종사자의 평균대출액은 1365만원으로 전 업종을 통틀어 가장 낮았지만, 연체율이 2017년 12월부터 6개월 단위로 1.06%→1.17%→1.30%로 계속 증가 추세다.
우 과장은 “소득보다 부채 증가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른 상황에서 대출문턱이 높은 은행 대신 비은행 금융기관을 이용하는 비율이 높은 것도 저소득층의 높은 연체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소득 3000만원 미만 직장인의 진 빚의 47.3%가 보험, 저축은행 등 비은행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이었다. 연소득 1000만원 이하 직장인들 대출의 비은행금융기관 비중은 69.7%에 달했다. 반면 연소득 1억원 이상 직장인의 빚 74.4%는 은행에서 빌려준 돈이었다. 여러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들도 연체율이 높았다. 3건 이상 보유한 다중채무자의 경우 평균 대출액은 1억1086만원이었으며 연체율은 0.71%였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일본의 근대'란 기형적 신화에 불과하다
[민교협의 시선] 일본의 근대, 한국의 근대
1910년 8월 22일, 조선의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의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이른바 '한일병합조약'에 서명하고 조인했다. 이로써 조선은 공식적으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다. 같은 해 8월 29일 소위 '대일본제국헌법'에 기초해 발동된 천황칙령 319조와 354조로 조선총독부 설치를 위한 제도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해 10월 1일 조선총독부가 설치되었다.
설립된 조선총독부는 남산의 통감부 건물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통감부와 총독부는 그 업무의 규모와 인력 면에서 비교가 될 수 없었다. 단적인 사실을 보자. 1905년 12월 현재 통감부는 3개 부서에 총 73명의 직원이 근무했던 반면, 1911년 3월 현재 총독부는 총독관방과 5부, 그리고 그 산하에 7국 25과로 조직되었고 약 840명이 일하고 있었다. 통감부 건물이 수용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은 광화문 육조대로의 대한제국 내각 청사를 이용하거나 총독부 외곽에 임시 가건물을 세웠다. 그렇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이었을 뿐만 아니라 부서의 공간적 분리로 효율성을 떨어뜨렸다. 새로운 총독부 청사를 세워야 했던 것이다.
초대 총독 데라우치는 경북궁을 새로운 청사 터로 결정했다. 그런데 그 건축 프로젝트는 비용과 기능적 차원에서 어떠한 타당성도 없었다. 흥선대원군이 중건한 경복궁의 전각은 대단히 조밀하게 배치되어 있어서 신청사를 세울 대규모의 공간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작업을 수행한다는 것은 곧 경복궁의 전과 각과 다리를 부수고 없애는 것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었다. 1912년에 청사 설계가, 4년 뒤인 1916년 7월에 기공식이, 그리고 1926년 1월에 준공식이 열렸다. 경복궁의 정전(正殿) 근정전 앞에는 거대한 석조건물이 들어섰다. 그리고 그 대가로 조선의 정궁은 처참하게 훼손되어야 했다.
이것이 1995년 8월 15일 김영삼 대통령이 해체를 시작한 '중앙청'(미군정청 청사, 대한민국 입법부, 행정부 청사, 국립박물관으로서의 이력을 지닌)으로 불린 건물이다. 지금은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돔의 첨탑 일부는 독립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다.) 조선총독부 청사의 외관은 그야말로 서구적이다. 네오 르네상스(neo-renaissance) 양식으로 알려져 있는 근대적 공공건축물이다. 일본은 이 청사의 기본 설계를 독일의 건축가 게오르그 데 라란데(Georg de Lalande)에게 맡겼다. 그리고 기사를 미국과 유럽으로 보내 서양의 관청건축을 연구해오게 했다. 총독부 신청사를 서구적 외관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관찰 위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일본은 조선을 통치하기 위한 제도적 거점으로서의 총독부 청사를 왜 자국의 고유한 전통양식이 아니라 서구적 양식으로 건립했을까? 일본의 전통 건축미학을 구현하고 있는 외관이 조선에 대한 일본의 국가적, 문명적 우월감을 드러내줄 감각적 연출이 아닐까?
팔레스타인 출신의 미국 사상가 사이드(Edward Said)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란 개념을 창안했다. 사이드는 그 개념을 통해 동양에 대한 근대 서구의 제국주의 지배가 단순히 경제적이고 군사적인 필요와 동기와 논리에 입각한 것이 아님을 밝히려 했다. 근대 서구의 식민지배는 동양에 대한 서구의 독특한 관점과 해석체계 위에서 성립하고 작동했다고 사이드는 주장했다. 그는 그것을 오리엔탈리즘으로 명명했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시각은 대단히 오랜 역사적 기원을 지니고 있고, 다양한 지식들의 결합과 협력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그 점에서 진리와 등치될 만한 것이었다.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은 모든 면에서 서양에 열등하다는 생각 위에 서 있었다. 오리엔탈리즘은 스스로 다스릴 능력이 없는 동양은 자치 능력을 지닌 서양의 정치적, 군사적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고를 유포해왔다.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은 퇴행적이고 미개한 야만의 장소이고 서양은 진보적이고 개화한 문명이라는 우열의 이분법이 진리라고 강조했다.
일본은 서구가 동양을 집어삼켜 착취하는 식민경영의 근원으로 숭배한 오리엔탈리즘을 깊이 받아들여 믿음으로 내면화했다. 일본 근대 지식인의 표상 후쿠자와 유키치가 주창한, 일본 제국주의의 명제인 '탈아입구'(脫亞入歐)론이 그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서구 근대문명을 받아들여 국가 근대화를 이룩했다, 빠른 속도로 서구화를 진행했고 결국 후발 제국주의로 성장해나갔다, 이제 일본 제국주의는 더 이상 아시아가 아니다, 서구 열강의 대열로 진입해야 한다는, 논리인 것이다.
아시아를 벗어나 근대 서구 제국의 일원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욕망, 이 욕망은 네오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웅대한 석조건물에 뚜렷이 기록되어 있었다고 우리는 해석한다. 서구 근대의 이념을 차용해 아시아의 '미개한 나라'를 통치하려는 의지와 열망, 우리는 이것을 '일본형 오리엔탈리즘'으로 부르고자 한다. 이 파생적 이념과 사고체계는 그러므로 대단히 기형적이다. 불행의식 자체라고 해야 한다. 근대 제국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자기 바깥의 정치적 주체들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서구의 문명적 권위에 편승해 아시아의 식민통치를 실천하는 타율적 이념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서구 근대의 물질문명과 제국주의를 모방했으면서도 그 제국의 양태에서는 전혀 스스로 독립하지 못한 상태였다. 근대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서구 근대는 19세기 후반 제국주의라는 악을 낳았다. 그렇지만 하버마스(J. Habermas)가 말하고 있듯이 서구의 근대는 악만을 잉태한 것은 아니다, 근대는 모름지기 보편적 해방과 진보의 시간이었다. 인권과 자유와 평등은 모두가 누려야 할 보편적 가치의 모태였다. 근대는 피치자가 정치적 주권자가 되는 혁명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가장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제도라고 선포한 무대였다.
일본은 근대의 이름으로 아시아에서 군사적 패권을 확보해나갔지만, 근대의 보편적 규범과 가치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게 행동해왔다. 식민지배가 저지른, 심각한 반인권과 반인륜의 역사를 철저히 부정하고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제국주의를 통해 반문명적 행위를 자행한 서구국가가 자기 내부의 근대성을 통해 스스로 사유하고 반성해온 역사의 경로를 일본을 따르지 않았다. 그것은 일본의 근대가 얼마나 미성숙한 상태와 왜곡된 수준에 머물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한국의 우익은 그러한 일본에 의해 한국의 근대화가 이룩될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행 수준으로 부유해 온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그러나 성숙하지 못한 근대, 불균형적인 근대, 모순적인 근대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일본이 어떻게 식민지 조선을 근대화시켰다고 할 수 있을까?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실천하고 싶었던 근대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근대를 단순히 물질성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진보를 향한 규범과 이념과 가치의 차원에서 이해한다면, 한국의 근대는 대단히 자생적으로 태동해왔고 발전해왔다. 한국의 근대는 인권과 인간존엄과 자유와 평등이라는 근대적 정신을 탄생시키고 성장시켜나가는 과정에서 개화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과정을 민주화라고 부른다.
그러한 관점에서 대통령이 최근 수석보좌관 회의를 통해 한 발언은 대단히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대통령은 “우리는 경제 강국으로 가기 위한 다짐을 새롭게 하면서도 민주인권의 가치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자유롭고 공정한 경제, 평화와 협력의 질서를 일관되게 추구할 것”,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인류보편의 가치와 국제규범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근대가 지향해야 할 가치의 양식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역설해주고 있다.
한국의 극우집단과 보수정당은 한국이 일본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한다. 식민지배 이래 지금까지 일본이 한국에 대해 보여 온 시각의 반영이다. 일본은 근대 서구에 기대어 아시아와 조선의 열등함을 정당화했고, 한국의 극우 보수는 일본에 기대어 한국의 열등함을 내면화하고 있다.
정치적 근대 탄생의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을 우리는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만난다. 권력자를 단두대에서 처형하는, 정신분석학의 용어를 사용하다면 '살부'(殺父)의 대사건이다. 프랑스는 이 사건으로 만인 평등과 수평적 형제애로 직조되는 사회를 상상했다. 한국 또한 수 차례에 걸쳐 아버지를 살해했고 그 위에서 더 나은 공화국을 디자인해왔다. 일본의 역사에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그와 같은 살부를 시도한 적이 있었는지 우리는 묻는다. 여전히 일본은 아버지를 찬미하고 숭배하는 나라로 머물고 있지 않은가./하상복 목포대학교 교수 /프레시안
美역사가 "일본의 과거사 속죄 실패가 세계 경제를 위협한다"
그레그 브래진스키 WP 기고 "한일 분쟁, 아베 잘못 커"
미국의 역사학자가 한국과 일본의 경제전쟁이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악재로 작용될 수 있으며, 한일 경제전쟁이 벌어진 주된 책임은 일본에게 있다는 비판을 제기해 화제가 되고 있다.
11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는 '일본의 과거사 속죄 실패가 세계 경제를 위협한다(How Japan’s failure to atone for past sins threatens the global economy)'라는 기고문(☞원문보기)이 게재됐다. 필자는 미국 조지워싱턴대 역사·국제문제 교수 그레그 브래진스키다.
브래진스키 교수는 기고문에서 우선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급등하고 글로벌 IT시장을 위축시키고 있다"면서 한일 경제전쟁이 초래하는 부작용을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일본 정부가 국가안보에 대한 우려를 수출규제 조치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한국인 강제노동에 대해 일본 기업들의 배상 책임이 있다는 한국 법원의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나아가 브래진스키 교수는 2차 대전 당시에 일본이 저지른 잔혹한 행위에 대해 일본이 충분한 사죄를 하지 못한 결과는 이제 동아시아를 너머 글로벌하게 경제적 타격을 주는 요인으로까지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브래진스키 교수는 최근 불거진 한일갈등의 배경으로 한국의 기회주의적인 정치인들이 일본의 불충분한 사죄를 이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꼬집으면서도, 일본의 제국주의적인 뻔뻔함에 더 큰 책임을 지웠다.
▲워싱턴포스트 화면 갈무리
일본 젊은 세대, 과거사 왜곡 교육받아
기고문에 따르면, 일본 지도자들은 1990년대 이후 여러 차례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고 유감을 표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야스쿠니 신사 참배처럼 이런 성명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행위를 반복해 왔다.
또한 일본은 독일처럼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잔혹행위들을 기억하고 교훈을 얻게 하는 공공기념시설이나 박물관을 세우지 않았다. 게다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전임자들보다 한술 더 떠 과거사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해, 자신이 총리로 있는 한 앞으로 사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일본의 젊은 세대들도 20세기 초 일본의 행위는 국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일 뿐이라고 교육을 받아, 과거사에 대해 사과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고 있다.
브래진스키 교수에 따르면, 이런 추세로 가면 국가적으로 왜곡된 기억이 강화되고 무역분쟁은 악화될 위험이 크다.
현재의 사태가 전세계 경제에 타격을 주기 전에 한일간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현재의 분쟁이 타결된다고 해도, 일본이 이웃 국가들과의 화해를 위해 보다 일관되고 전면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아시아 일대는 또다른 경제적 또는 군사적 위기에 직면할 수 있는 불안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브래진스키 교수는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면 공동 번영은 제한될 것이고, 결국 전세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프레시안
"조선인 많이 먹어 배고팠던 것"…비하·왜곡 '폭발'
◀ 앵커 ▶ "(조선인 징용자들이) '밥을 조금 줬다' 그러는데, 일본인 하고 똑같이 줬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많이 먹는다. 그러니까 배가 고팠다."
한마디로 한국인들은 밥을 많이 먹어서 징용 피해자들이, 차별 대우를 받았다고 느낀거라는 말이죠. 이런 식의 황당한 분석을 하는 학자들이 집필한 문제작, <반일 종족주의>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집필에 참여한 학자들은 연구 결과라고 강변 하면서, 마치 일본 극우 세력과 한통속 처럼 보이는, 망언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 리포트 ▶ <반일종족주의> 출간을 기념하는 북콘서트 현장입니다.
대표 저자인 이영훈 서울대 전 교수의 '은사'로 소개된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우리 정부를 비하하고, 일본의 경제 도발을 두둔합니다.
[안병직/서울대 명예교수]
"오직 문재인 정권에 대해서 어떻게 타격을 줄 것인가, 그것이 (일본의) 기본 목표입니다. 괜히 쓸데 없는 반일민족주의 그런 거 할 필요 없어요"
한 국립대 교수는 일본 상품 불매운동에 나선 우리 청소년들을 조롱합니다.
[김행범/부산대 행정학과 교수 (지난달 19일/부산)]
"광주에 있는 학교에서는 지금 볼펜 재료에 일본 제품이 들어 있다고 그래서 볼펜 깨뜨리기, 그런 쇼를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또 집에 가서는 닌텐도(게임)를 하는 거죠. 그럴 겁니다"
대구에서 열린 북콘서트엔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도 참석해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듯 모를 듯한 말로 박수를 이끌어냅니다.
[윤창중/전 청와대 대변인 (지난달 18일/대구)]
"'토착 대구' 여러분들한테 인사를 드리러 온 겁니다. 잘 봐달라고요. 와서 보니까 '토착 왜구'가 너무 많아요. 사실은 제가 '토착 왜구'입니다."
최근 UN 학술대회에서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았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킨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조선인 징용자들이 차별을 받지 않았다면서 희한한 논리를 전개합니다.
[이우연/'반일종족주의' 공동저자]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이) '밥을 조금 줬다' 그러는데 일본인 (노동자)하고 똑같이 주는데 한국인들은 많이 먹어요. 그러니까 배가 고팠어요"
<반일종족주의>를 주도적으로 집필한 이영훈 전 교수.
15년 전 TV토론에서 위안부 피해자를 성매매 여성으로 표현한 뒤 사과했던 건 진심이었는지 물었습니다.
[이영훈/전 서울대 교수('반일종족주의' 대표저자)]
"15년 만에 사람이 얼마나 바뀔 수 있어? 내 연구가 얼마나 진전될 수 있어, 어? 당신은 15년 전 사람하고 똑같은 사람이야?"
오늘밤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는 전쟁 가능국가를 향해 폭주하는 아베 정권의 야욕과 그들의 왜곡된 역사 의식에 보조를 맞추는 이른바 신친일파들의 실체를 조명합니다. 특히 이영훈 교수가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와 만난 지 2분여 만에 폭력을 행사하는 과정을 자세히 전해 드립니다. MBC뉴스 이용주입니다.
쌀 수탈 중심지 전북…3만6487명 강제징용
경술국치 이후 전국 최대 평야인 호남평야 미곡 수탈위해 군산항 발달
당시 강탈한 미곡 원활한 이동위해 철도와 도로 등 새로 개설하기도
강제징용으로 노동력도 함께 착취한 일본, 그들의 편에 서서 재력을 쌓은 친일파
일제가 수탈한 쌀을 쌓아둔 창고
일제 강점기 전북은 대한민국 그 어떤 지역보다도 큰 시대적 아픔과 절망을 겪었다. 일본은 경술국치 이후 대대적으로 미곡(米穀)을 수탈했으며, 그 수탈 중심지가 바로 전북이었다. 미곡을 옮기려 전국 곳곳에서 철도와 도로 등을 만들었고 미곡 수탈 외에도 수 많은 우리 국민들은 전쟁터와 군수공장 등 국내·외로 끌려갔다. 그런 와중에서도 누군가는 이런 일본에 빌붙어 같은 민족을 핍박했다. 잊지말고 후세에 꼭 알려야 할 아픈 우리의 역사다.
△수탈의 중심지, 군산
일제 강점기 군산은 국내 최대 평야인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수탈해 일본으로 옮기기 위한 요충지였다.
1933년 우리나라 총 쌀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이곳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학계는 군산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미곡의 양이 1925년 99만8769석에서 1934년 228만5114석으로 크게 증가했다고 보고 있다. 유출된 미곡은 선박을 통해 오사카와 고베, 도쿄, 중국 등지로 반출됐다.
특히 일제는 군산 주변 호남평야 미곡을 보다 빠르게 군산항으로 이송하기 위해 전주~익산~군산을 잇는 전군 가도(全群街道)를 건설했다. 또 호남선, 군산선, 경부선 등 철도노선을 만들었고, 미곡을 일본과 중국으로 이송하기 위해 항로도 개설했다.
쌀 수탈의 전진기지 역할을 한 군산세관
△강제징용과 위안부
일제에게 있어 우리나라는 군량보급소 뿐만 아니라 노동력 착취의 대상이었다. 공식자료인 국가기록원 자료에 집계된 전북지역내 강제징용 인원은 3만6487명이다. 전국으로는 48만여명이다. 그러나 기록원이 파악한 자료에 위안부 등으로 동원된 인원은 포함되지 않았고, 극히 일부일 뿐이다. 민족문제연구소나 각종 일본 문제를 다루는 단체들은 전국에서 630여만 명이 징집된 것으로 보고 있어 괴리가 있다.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도 2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이후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한 1945년까지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설치한 ‘위안소’에 조선의 여성들을 강제동원했다. 이러한 일본군의 행태는 위안부 피해자였던 고 김학순(1924~1997) 할머니가 1991년 위안부 피해를 공개적으로 증언하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본에 충성한 부역자들
일제의 수탈로 국민이 힘들 때 일본의 편에 서서 부귀를 누린 자들도 있다. 현재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된 인물은 총 4378명으로 이중 전북출신의 친일파는 약 120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표적인 친일파로는 삼양사와 경성방직 사장,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 등을 역임하며 재력을 쌓은 고창 출신 김연수, ‘매일신보’에 다츠시로 시즈오라는 창씨개명 이름으로 ‘시의 시야기, 주로 국민시가에 대하여’등 총 11편의 친일 작품을 발표한 서정주 등이 있다. 전북의 친일파들은 관료, 군·경, 예술인, 지역유지 등 가리지 않고 각 분야에서 활동했다./전북일보 최정규
아베의 '정신적 지주', 극우 '일본회의'의 놀랄 만한 실체
패망 이전의 일본 꿈꾸는 닛폰카이기, 강제징용·역사교과서 등 이슈 주도... 그들의 돈줄은?
일본 최대 극우단체인 일본회의(닛폰카이기)가 아베 신조 내각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3만 8천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회의는 자신들의 조국을 패망 이전으로 '리셋' 시키는 것을 꿈꾸고 있다. 강력한 군대를 갖고 대륙 진출을 도모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일본 핵무장론도 여기서 나온다.
일본을 리셋한다는 일본회의
이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전체 242명인 참의원과 전체 465명인 중의원 의원 중에서 일본회의 의원간담회 회원이 차지하는 비중에서도 확인된다. 교도통신사 사회부·외신부 기자 및 서울특파원 등을 지낸 아오키 오사무가 집필한 <일본회의의 정체>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2016년에 발행됐다.
"일본회의 사무총국 홍보 담당자 등의 말에 따르면, 2005년 9월에 시행된 제44회 중의원 선거에 출마한 이들 중 간담회에 속한 중의원 의원은 모두 158명이었다. 이후 계속 증가하여 2007년 9월에는 중의원 174명, 참의원 51명으로 모두 225명이 된다. 나아가 2008년 10월에는 중·참 양원에서 모두 250명으로 늘었고, 2012년과 2014년의 총선거를 거쳐 현재는 약 280명 내외다."
의회뿐 아니라 내각에도 그들이 포진해 있다. 2016년 현재 아베 내각의 각료 20명 중에서 13명이 일본회의 회원들이었다. 이 정도면, 일본회의가 일본열도를 운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칭 그대로, 일본에 관한 핵심 회의가 이루어지는 단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영향력을 발판으로 일본회의는 한·일 현안에서도 강경 여론을 주도한다. 위안부·강제징용·역사교과서·독도 등과 관련해 한국을 자극하는 발언들이 거기서 많이 나온다.
일례로,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도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발언들을 서슴지 않고 있다. 7월 25일 한국에서 개봉한 위안부 다큐영화 <주전장>에서 일본회의 대표위원이자 도쿄도 본부회장인 가세 히데야키(외교 평론가)는 대중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어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이렇게 과도한 관심을 가지는 거죠? 역시 포르노 같은 매력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요?"
현재 35명인 일본회의 대표위원은 고문·회장단·감사·이사장·사무총장과 함께 이 단체를 이끄는 임원이다. 그런 간부가 위안부 문제를 두고 '포르노 같은 매력' 운운했다. 그것도, 곧 공개될 다큐영화의 인터뷰를 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일본회의 내부의 분위기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청소년들과 대학생들이 참가한 시민촛불발언대에 참여해 일본 아배 정권을 규탄하고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위안부·강제징용·역사교과서·독도 이슈 주무르다
일본회의는 역사 교과서 문제와 관련해서도 극우의 입장을 대변해왔다. 일본회의는 1997년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와 '일본을 지키는 모임'의 통합으로 발족했다.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는 지난 수십 년간 있었던 역사교과서 파동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단체다. 이들은 그중 세 번째 파동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노다니엘 교토산업대 객원연구원의 <아베 신조와 일본>은 "세 번째 파동은 1986년에 전국적인 조직을 가지는 일본의 우파 단체인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지금의 일본회의)'가 편찬한 고교용 교과서 <신현일본사>를 둘러싸고 벌어졌다"고 설명한다. 1980년대부터 교과서 문제로 주목을 끌었던 극우 단체가 일본회의의 양대 모체 중 하나였던 것이다. 바로 이 일본회의가 지금의 한일관계 악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2020년까지 이루려 했던 자신들의 목표에 한반도가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회의는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헌법 제9조를 바꿔 '전쟁할 수 있는 일본'으로 만들고 이를 토대로 패망 이전의 일본을 복원시킨다는 야심찬 목표를 갖고 있다. 그런데 2018년 연초부터 전개된 한반도 평화 국면으로 인해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이를 타개할 목적으로도 한일관계를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7월 16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전화 인터뷰에서 이영채 게이센여학원대 교수는 일본회의에 관해 아래와 같이 말했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발언 일부를 한국어 어법에 맞게 수정했다.
"제9조 폐기를 위한 시나리오를 해왔는데, 2015년 중의원 선거에 이겨서 희망을 갖게 되고, 작년이 일본회의 창립 20주년이었습니다. 그래서 작년 20주년 기념 때 올해 선거를 이기고 처음으로 헌법 개정안을 집어넣어, 내년 2020년에는 올림픽과 함께 일본이 전전(戰前)의 헌법으로 돌아감으로써 자기들의 숙원 사업이 다 성취될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변수가 생겨버린 거예요. 2018년에 있었던 북미 정상회담과 문재인 정권의 등장에 의해서 박근혜 정권이 탄핵되고 남·북·미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올해 판문점 회동까지 이루어짐으로써 어떻게 보면 일본회의가 고려하지 못한 변수가 생긴 거고, 잘못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버린 거죠."
2018년 북미 정상회담을 2017년 박근혜 탄핵 및 문재인 정부 출범 앞에 둔 것은, 발언 중에 무심코 나온 실수로 보인다. 헌법 제9조 개정으로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려면 한반도 주변에 위기가 상존해야 하는데 최근의 평화 국면으로 인해 지장을 받게 됐다는 것이 이영채 교수의 말이다. 이로 인한 당혹감이 아베 내각의 무리수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강제징용 판결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 국면도 일본회의와 아베의 강공 드라이브를 부추기고 있다는 거다.
위 인터뷰에서 강조된 것처럼 아베 내각 배후에 일본회의가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지만, 그 일본회의의 배후에 있는 실체 역시 주목할 만하다. 그 배후에는, 1945년 당시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숨어 있다. 일본을 패망시켰을 당시의 미국이 당혹스러워 할 만한 일이 바로 거기에 있다.
▲ 야스쿠니신사. ⓒ 위키백과
맥아더도 놀랄 일본회의의 자금줄
일본열도를 점령했을 당시, 미군의 눈에 위험하게 비친 곳이 야스쿠니 신사다. 일본군국주의를 위해 전사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맥아더를 비롯한 미군 장교들한테는 그곳이 일본 군국주의의 핵심 상징으로 보였다.
야스쿠니신사와 일본 신도에 대한 미군의 경계심을 반영하는 것이 1945년 12월의 신도지령(神道指令)이다. 정식 명칭은 '국가신도와 신사신도에 대한 정부의 보증·지원·보전·감독·선전의 금지에 관한 건'이다.
신도지령의 핵심 내용은 국가신도를 폐지하고 정교분리를 실현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일본 신도가 더 이상 국가정책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이를 허용했다가는 일본이 또다시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하고 가미카제 특공대 같은 모험을 벌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그 같은 신도지령에 따라 신사신도에 대한 공적인 재정 지원, 국공립학교에서의 신도 교육 및 신사 참배, 공직자의 신사 참배, 국가신도에 관한 서적 배포 등이 금지됐다. 맥아더를 비롯한 미군은 그런 정교분리를 통해 신도와 일본군국주의의 연계를 차단하고자 했다. 그런데 맥아더가 금지한 그것이 지금 실현되고 있다. 바로 그 신도가 오늘날 일본회의를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 더글러스 맥아더. ⓒ 위키백과
기업도 아니고 정부기관도 아닌 민간단체가 장기간 활동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단체의 자금력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핵심적인 운영 자금이 회원들의 회비가 아닌 다른 데서 나오고 있다면, 단체가 배후의 무언가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고 추론할 수밖에 없다.
그 배후의 실체가 앞서 소개한 <일본회의의 정체>에 소개돼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일본회의 창설에 깊숙이 관여한 무라카미 마사쿠니 전 참의원 의원과 일본회의 도쿄도의회 회장대행을 역임한 고가 도시아키는 일본회의의 자금줄이 일본 신도라고 말했다. "일본회의의 자금에는 회원의 회비 외에 다른 것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고가 도시아키는 이렇게 답했다.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닙니다만, 회사를 경영하다가 일선에서 물러난 분들이 꽤 거액의 기부금을 낸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대료나 인건비를 충당하려면 가끔 들어오는 거액의 기부금으로는 부족하지요."
전직 기업 CEO들이 가끔씩 거액 기부금을 낸다고 답변했다. 평상시의 운영자금은 어디서 나오느냐는 추가 질문을 의도한 답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라는 추가 질문이 나오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뭐니 뭐니 해도 신사본청이지요. 메이지신궁 등이 낼 겁니다."
앞에서 1997년 창설 당시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와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 일본회의의 모체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 중에서 '일본을 지키는 모임'은 신도계 종교단체들이 만든 모임이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일본 신도가 일본회의의 자금줄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일본회의의 배후에 '일본의 영혼'이라 할 수 있는 신도가 있다는 사실은 일본제국주의 때문에 시련을 당한 민족들한테는 끔찍한 추억을 연상시킬 만하다. 일본 군대가 종교적 신념에 취해 아시아 각국을 맹렬히 침략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다. 맥아더는 신도와 일본 정치의 결합이 세계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정교분리를 강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신도가 일본회의라는 극우 단체를 앞세워 일본 정치에 또다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각과 의회에 그들의 사람들이 포진해 있다. 유대인이 미국 정치를 주무르는 것처럼, 신도 역시 일본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적 광분 속에 진행된 일본군국주의를 경험한 우리 한국인들로서는 경계심을 품지 않을 수 없는 현상이다./김종성(qqqkim2000) 오마이뉴스
'역사왜곡' APA호텔 가보니…귀 닫고 '애국 숙박' 돈벌이
이런 막말과 억지 주장을 늘어놓는 일본 회사가 또 있습니다. 일본 가봤던 분들은 한 번쯤 들어봤을 APA라는 호텔입니다. 일본에만 353개, 외국에도 38개 호텔 체인이 있는 큰 회사입니다. 그런데 이 호텔에서 역사를 왜곡한, 그러니까 억지 주장이 담긴 책을 방마다 놔둔 것이 몇 해 전에 문제가 됐었는데 저희 취재진이 다시 찾아가 봤더니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이 내용 취재한 유성재 특파원 리포트 보시고 바로 도쿄 연결해보겠습니다.
<기자> 일본의 APA 호텔은 교통이 편리한 곳에 주로 위치해 출장 나온 직장인들이나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호텔 체인입니다. 도쿄에도 67개가 영업 중인데 그중 한 곳을 찾아가 봤습니다. 방 한가운데 잘 보이는 곳에 비치된 책 두 권. 후지 세이지라는 일본인이 쓴 일종의 역사 평론이 담겨 있습니다.
1910년 한일 강제 병합은 한국 내에서도 찬성파가 다수였고 이후 일본이 거액의 인프라 투자를 해줬고 위안부는 자발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나선 것이지 강제로 끌려간 성노예가 아니라는 둥 얼토당토않은 주장들로 가득합니다.
난징 대학살과 관련해서는 당시 일본군이 민간인을 포함해 비전투원은 한 명도 죽이지 않았고 무장한 게릴라들을 어쩔 수 없이 처형한 것이 전부라는 망언을 실어 놓았습니다. 올해 들어 급격히 악화한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한국 내부의 정치적 목적으로 일본을 계속 비난하고 있다며 빨리 정신을 차리라고 훈계합니다.
책을 쓴 후지 세이지는 APA호텔 그룹의 대표, 모토야 도시오의 필명입니다.
[아파 호텔 직원 : 이 호텔의 대표 본인과 사장(부인)이 쓴 책을 방에 비치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찾는 거대 호텔 체인의 대표가 본인의 비뚤어진 역사관을 투숙객들에게 광고하고 있는 셈입니다.
<앵커>유성재 특파원, 이 호텔 2년 반 전에도 문제가 있다고 저희가 보도해드린 적이 있는데, 다시 가봤는데 변한 것이 전혀 없다는 거죠?
<기자>네, 조금 전에 보신 난징 대학살에 대한 기술이 중국에 알려지면서 비판이 상당히 거셌고요, 저희도 당시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한 엉터리 주장을 취재해서 전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12일) 가보니 그때 이후 한국과 중국인 관광객의 숙박은 좀 줄었지만, 극우 일본인들의 이른바 '애국 숙박'이 늘면서 사세가 확장됐다고 써 있었습니다.
비뚤어진 역사관을 반성하기는커녕 거센 항의와 비난에 귀를 닫고 오히려 극우 사관을 돈벌이에 이용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호텔 체인의 대표인 모토야는 쇼헤이주쿠라는 모임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강연단체인데, 매달 극우 정치인과 언론인들을 모아서 극우적 역사관을 퍼트리고 있습니다.이 모임의 홈페이지에도 이런 왜곡된 역사관이 그대로 반영돼 있습니다.
<앵커>APA 호텔 이름 잘 기억해야겠습니다. 한 가지 더 알아보죠, 우리 정부가 일본을 수출심사 우대국가 명단, 화이트리스트에서 뺐다고 앞서 전해드렸는데, 거기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반응 나온 것이 있습니까?
<기자>일본 정부의 공식 반응은 내일쯤 나올 것으로 보이는데요, 일단 사토 마사히사 외무성 부대신은 2시간 전쯤 트위터에 "이번 조치가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대항 조치라면 세계무역기구 규정 위반이라고도 할 수 있다며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일제히 속보를 내보내며 관련 소식을 전했는데요, 보수 성향의 언론들은 한국이 백색국가에서 제외된 것에 대한 대항 조치로 보인다는 분석을 전했고 한일 대립이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SBS 뉴스
"개식용, 모든 동물을 먹거리로만 보는 처참한 단면"
동물 임의도살 금지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집회 열려
전국 80여개의 동물보호단체가 모여 '개 식용 종식'을 선언했다.
동물유관단체협의회(협의회)는 말복인 11일 동물 임의도살 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대집회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개최했다.
현재 개는 축산법에서는 가축에 해당하지만 축산물위생관리법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농장에서 사육은 가능하지만 식용을 위한 '탄생-사육-도살' 등의 단계에서 관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디에서나, 아무렇게 키우고 도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협의회는 이날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올 여름에도 개를 잔혹하게 사육, 도살하는 농장과 도살장 관련, 민원과 제보가 빗발쳤다"며 "개농장과 도살장에서는 개를 먹기 위해 산채로 두드려 패거나 불태워 죽이고, 전기봉에 지지거나 목을 매 죽이는 일이 자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동물유관단체협의회가 11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동물 임의도살 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대집회를 개최했다. ⓒ프레시안(조성은)
▲동물 임의도살 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들 ⓒ프레시안(조성은)
협의회는 "서울 경동시장, 성남 모란시장 및 태평동 도살장, 부산 구포 개시장 등 전국적으로 유명한 개시장이 철폐되는 추세"라며 "2018년 한국리서치의 조사에서도 개식용에 찬성(18.5%)하는 여론보다 반대(46%)하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덧붙였다.
협의회는 또 "한쪽에서는 반려동물로 인간과 교감하고 또 한쪽에서는 식용으로 끔찍하게 도살당하는 상황은 모순적"이라며 "개식용은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을 먹거리로만 여기는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처참한 단면이자 동물학대적, 종차별적 악습"이라고 비판했다.
육견협회 등 개 식용 찬성론자들은 개 식용을 합법화해 식용견과 반려견을 철저히 구분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동물권 단체들은 식용견과 반려견의 구분은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최민경 카라 활동가는 2017년 부산에서 있었던 '오선이 사건'을 이야기하며 "식용견과 반려견은 구분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오선이 사건'은 홀로 산책에 나간 반려견 래브라도 리트리버 오선이를 인근 공장 사장이 억지로 차에 실어 구포 개 시장에 넘긴 사건이다. 오선이는 결국 탕제원으로 넘어갔다.
최 씨는 "어떤 사람들은 소·돼지·닭 등은 먹으면서 왜 개만 가지고 유난이냐며 개도 식용을 합법화하라고 이야기한다"며 "그러나 소·돼지·닭 등 가축의 공장식 축산도 심각한 문제다. 여기에 개도 추가하라 할 것이 아니라 인간과 가장 교감해온 개부터라도 생명과 권리를 보호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회에는 '개식용 종식 트로이카 법안'이라 불리는 동물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일명 동물임의도살금지법), 폐기물관리법 개정안, 축산법 개정안이 계류돼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20대 국회가 끝나기 전 이 법안들이 통과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날 집회에서는 개를 도살장으로 실어가는 '개트럭'을 재현한 '악당트럭'과, '살생 없는 복날'을 주제로 시원한 수박을 나눠주는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동물유관단체협의회는 집회를 마치고 청와대에 의견서를 전달하기 위한 거리 행진을 벌였다. 이번 대집회는 전국에서 500여 명의 시민들과 함께 80여 동물보호단체가 참여했다.
`귀걸이에 거울까지`…폼페이서 2천년된 여성 장신구 대거 발굴
사진설명폼페이의 한 귀족 저택에서 발굴된 여성 장신구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잿더미가 된 고대 로마 도시 폼페이에서 2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여성 장신구들이 대거 발굴됐다고 ANSA 통신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폼페이유적공원은 이날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인 `자르디노의 저택`(la casa del Giardino)에서 목걸이·귀걸이·거울 등 여성 장신구들이 가득 든 나무 및 금속 재질의 보관함이 나왔다고 밝혔다.
장신구는 대부분 자수정이나 동물 뼈 등으로 만들어졌으며, 금으로 된 것은 출토되지 않았다.
이들 장신구는 젊은 여성인 듯 보이는 부유한 저택 안주인의 소유로 추정됐다. 2천년 전 폼페이에서도 여성들이 귀중한 장신구를 이용해 자신의 신분과 미(美)를 드러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발굴팀은 설명했다.
폼페이의 한 귀족 저택에서 발굴된 여성 장신구들. 정교한 모양이 눈길을 끈다.
발굴된 장신구 중에는 종교의식 때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것도 포함돼 있어 기독교가 퍼지기 전 고대 로마에서 유행한 종교적 특징도 일부 엿볼 수 있다. 앞서 자르디노의 저택에선 베수비오 화산 폭발일이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두달가량 늦을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하는 글귀가 발견돼 주목을 받았다. 역사학계에선 폼페이를 삼킨 베수비오 화산이 79년 8월 24일 분출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하지만 작년 10월 자르디노의 저택 벽에서 발견된 목탄으로 휘갈겨 쓴 글을 분석한 학자들은 참사가 두 달 뒤인 그해 10월 24일 발생했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작년 발굴된 폼페이의 벽에 새겨진 글.
발굴팀은 또 해당 저택에서 거주한 가족 구성원을 정밀하게 파악하는데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고대 폼페이 사회의 성격을 파악할 실마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발굴팀은 최근 저택 안마당에서 10명의 유해를 발굴했으며, 현재 이들의 유전자를 복원해 가족 관계를 파악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나폴리 남동부에 위치한 폼페이는 로마 콜로세움에 이어 이탈리아에서 관광객들이 두 번째로 많이 찾는 관광 명소로 알려져있다. [연합뉴스]
일본사회와 아베…‘왜놈’과 ‘친북’ 프레임
[아침신문 솎아보기] 일본 수출규제 발단된 ‘강제동원’ 관련 일본 사회 목소리…일본 정부 입장 ‘여론전’ vs ‘치밀한 노력’
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 사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12일 전국단위 주요 일간지들은 수출규제 발단으로 지목되는 ‘강제동원’과 아베 정부 대응에 대한 일본 내부의 비판적 목소리들을 전했다. 일본 언론을 인용한 일본 정부 입장 보도와 한국 내 ‘일본 불매 운동’ 관련 보도는 신문사 시각이 두드러졌다.
한국일보는 1, 2면에 ‘지한파’로 꼽히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인터뷰를 통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든 절차가 끝났다는 일본 정부 주장을 반박했다. 와다 교수는 “1965년엔 한국이 힘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이 한국의 각종 요구를 거절하면서 불충분한 조약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며 “(불충분한 조약을 감안하면) 개인 청구권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베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억엔을 출연한 건 문제가 모두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위안부’ 문제에서 불완전한 청구권협정을 보완하기 위해 자금을 출연하면서 강제징용 문제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다만 한국 내 반일 움직임 등은 부적절하다고 봤다. “아베 총리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일본 제품이나 인적 교류, 여행 등을 보이콧하는 것은 가능하다면 멈췄으면 좋겠다”며 “역사 문제를 해결하려면 서로 이해하고 합의해야 길이 열리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한쪽을 굴복시키자는 논리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 수출규제 대응 방안으로 언급되고 있는 한국 정부 ‘화이트리스트’에서의 일본 배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등과 관련해선 “3.1 독립선언처럼 일본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설득해야지, 같은 방식으로 싸우는 것은 좋지 않다”고 했다.
▲ 12일자 한국일보 2면 기사.
한겨레는 ‘한-일 경제전쟁 전문가 진단’ 기획에서 일본 통상공격에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는 국내 전문가 진단을 전했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상공격에 단호하게 대처 △대법원 판결 사건은 판결 집행으로 해결 △한일 과거청산은 장기과제로서 대처 △긴 호흡으로 ‘식민지지배 책임’ 물을 것 등의 처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일본의 통상공격이 대법원 판결 때문이라면 국제법 위반”이라는 전제로 “일본은 즉각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는 조치를 취해야 하며, 그러지 않을 경우 한국은 국제재판이나 대항조치도 포함하여 강력한 대응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 상황에 대한 해법으로 국내에서 2+2, 2+1, 1+1, 1+1/α 등 온갖 ‘해법’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그 모두는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이 나서라는 것이라는 점에서 대법원 판결을 거스르는 잘못된 처방”이라며 “서로 다른 것을 어설프게 뒤섞어서는 안 된다. ‘위로금’ 10억엔을 받는 대신 반인도적 범죄행위의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에 동의해준 2015년 ‘위안부’ 합의의 잘못을 또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12일자 한겨레 1면 사진 기사.
▲ 12일자 한겨레 4면 기사.
이날 한겨레 ‘광복절 74돌 기획’은 과거 강제동원의 실상과 생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실었다. 1, 3, 4, 5면을 기획 지면으로 할애한 가운데, 1면 사진 기사와 5면(“뉴스에 아베만 나오면 분통이…죽기 전에 이겨야 않겠소”를 통해 강제동원 피해자 김정주·양금덕씨 이야기를 전했다.
국민일보는 과거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대해 알아가는 일본 교사와 학생들 이야기를 전했다. 20면 “강제징용, 일본선 잘 몰라…학생들에게 가르쳐야죠” 제목의 기사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와 교류를 이어오고 있는 일본 히로시마현 교직원조합 소속 교사와 학생 등 15명이 3박4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아 강제동원 관련 강연을 들은 사례를 보도했다. 일본 교사와 학생들은 10일 경북대에서 대법원 강제동원 개별 손해배상청구권 인정 판결 의미와 일제 강점기 일본이 자행한 사상통제, 황국신민화 과정에 대한 강연을 들은 뒤 대구 중구 2·28기념중앙공원의 ‘평화의 소녀상’과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둘러봤다.
▲ 12일자 국민일보 20면 기사.
강제동원과 관련한 일본 정부 입장은 일본 현지 언론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국민일보는 10면 기사(“미, 전쟁 청구권 포기 원칙 흔들릴까 징용배상 판결 문제 일본 주장지지”)에서 “일본 정부가 ‘미국은 일본편’이라며 여론전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11일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한국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이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에 배치된다고 주장하는 일본 입장을 미국이 지지하고 있다”고 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 장관은 일본 월간지 ‘문예춘추’ 9월호 특집 대담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과 한국 중 어느 쪽이 골포스트를 움직이고 있는지 ‘증인’인 미국은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일본이 대법원의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따른 경제 보복 조치를 취하기 전에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는 등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 신문 11일 보도를 인용해 “외무성은 미국에서 소송이 제기될 경우 미 국무부가 ‘소송은 무효’라는 의견을 미국 법원에 내 줄 것을 요청했다. 그 결과 미 국무부가 작년 말 일본 주장을 지지한다는 판단을 일본 측에 전달했다”며 “미국이 한·일 간의 징용 피해자 논쟁에서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흔들릴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 12일자 조선일보 5면 기사.
조선일보 12면 “親文단체는 빠지고…反日 촛불집회, 통진당계가 주도” 기사는 일본 아베 정부를 규탄하는 시민단체 움직임을 ‘친문’ 대 ‘친북’ 프레임으로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특이한 점은 그동안 함께 행사를 주최해왔던 ‘일본 경제 도발을 규탄하는 범국민시민연대’는 행사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시민연대는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21세기 조선의열단’ 등 ‘친문’ 성향으로 알려진 단체들이 주축이었다”며 “(아베 규탄) 시민행동에는 순수한 뜻으로 참여한 단체도 있지만 옛 통합진보당 출신이 주축인 민중당, 한국진보연대 같은 친북(親北) 성향 단체가 모임을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이날 중앙일보 이하경 주필은 “내 마음속의 ‘왜놈’이 문제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상처와 분노로 가득 찬 가슴이 일본을 ‘왜놈’이라는 허위의 프레임에 가둬버리는 순간 모든 것은 오리무중이 된다”며 “한국은 미·중 무역전쟁의 리스크에도 가장 크게 노출돼 있다. 지혜롭게 출구를 찾아야 한다. ‘왜놈’ ‘조센징’식의 반일, 혐한몰이는 두 나라의 공멸을 부를 뿐”이라고 주장했다.
▲ 12일자 중앙일보 31면 기사.
이 주필은 “문 대통령은 8·15 기념사에서 아베 총리에게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대화로 풀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10월 22일의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도 참석하면 좋을 것이다. 아베 총리도 식민지배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이어받겠다고 해야 할 것”이라며 “(일본을) ‘왜놈’이 아닌 2차대전 이후 크게 성장한 문명국이자 경제·안보의 파트너로 대우하면 문제가 풀린다. 문 대통령이 일본의 협량(狹量)을 용서하고 대승적인 결단을 내리기 바란다”고 했다. /노지민 기자 jmnoh@mediatoday.co.kr
日기업 6곳, '朴 대선자금' 제공후 한일협정 체결돼
미국 CIA 1급 비밀보고서 자세히 기록
김종필, 한일협정체결 직전 日에 SOS
"67년 대선자금으로 2600만$ 필요"
61~65년 日기업들 공화당에 6600만$ 지원
한일협상 증진용, 日기업들에대한 독점권 대가
1966년 3월 18일자 미 중앙정보국(CIA) 특별보고서 '한일관계의 미래' 중 일부. (그래픽=강보현PD)
한일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한일청구권협정 당시 일본 기업들이 박정희 정권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2004년 공개한 적이 있는 '한일관계의 미래'라는 제목의 1966년 3월 18일자 미 중앙정보국(CIA) 특별보고서를 다시 살펴보면, 일본 기업들은 1961~1965년 사이 민주공화당 총 예산의 2/3를 제공했으며 6개 기업이 지원한 금액은 6천6백만 달러에 달한 것으로 기술돼 있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일본이 독립축하금 명목으로 지급한 청구권 자금(3억 달러)의 1/5이 넘는 금액이 박정희 정권의 비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간 셈이다. 보고서에는 "김종필에 의하면 민주공화당은 1967년 대통령 선거운동 자금으로 2천6백만$이 필요하다고 한다", "(돈은) 한일협상을 증진시키기 위해 김종필에게 지불되고, 또한 여러 일본 기업들에게 한국 내에서의 독점권을 부여하는 대가로 지불된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민주공화당은 일본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 기업으로부터도 자금을 받았는데, 정부방출미 60,000톤을 일본에 수출하는 과정에 개입한 8개의 한국 회사가 민주공화당에 115,000$을 지불했다. 민주공화당은 1963년 2월 26일 5.16군사정변 주체 세력이 중심이 되어 발족했다가, 당의 상징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1980년 해산된 정당이다.
1966년 3월 18일자 미 중앙정보국(CIA) 특별보고서 '한일관계의 미래' 중 일부. (그래픽=강보현PD)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보고서의 내용대로라면 박정희 정권은 국교 수립 이전 적대적 관계에 놓여있던 일본의 기업자금을 토대로 수립되었으며, 매판 자금 수수에 대한 보상으로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체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구소는 또 "일본은 한국 시장을 헐값에 사들여 이후 40년 동안 한국 경제를 일본 경제에 종속시키고 중간재 수출시장으로 고정시켰다"며 "한일협정 이후 93년까지만 무려 1000억$이 넘는 무역역조를 통해 투자금액의 300배에 달하는 폭리를 취했다"고 밝혔다.
사무엘 버거 전 주한미국대사의 미 국무성 보고 전문에는 박정희 정권이 배상 요구보다는 원조를 포함한 일괄 처리에 관심이 있었다는 점도 드러난다. 증거 자료가 없는 일부 청구권의 포기를 먼저 일본 측에 제안하기도 했다.
사무엘 버거 전 주한미국대사의 미 국무성 보고 전문 중 일부. (그래픽=강보현PD)
문건에는 "박정희가 내게 말했는데 그가 일본에 제안하기를 증거 자료들이 훼손되어 어떤 청구권 부분에 대해서는 법적 증거를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총액 중 경제원조 부분은 패키지 방식과 연결되어야만 한다"는 내용과 함께 "액수가 합의되었을 때 한국인은 그것을 청구권에 대한 보상으로 부를 수 있고 일본인들은 그것을 증거자료가 없는 부분에 대한 무상공여라고 부를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CBS노컷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일갈등이 되풀이되는 근본 원인이 한일청구권협정에 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부정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치자금을 받는 대가로 한일협정을 졸속 타결한 사실이 드러난 이상 협정의 정통성은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노컷뉴스 박고은 기자
일본 제국주의와 조선의 도미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에 도미가 큰 영향을 끼쳤다. 19세기 후반 도미를 잡기 위해 조선으로 건너온 일본 어부 탓에 분쟁이 일었다. 이후 도미는 일본인에게 필수 불가결한 물고기가 되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도미다. 일본인이 일상적으로 먹는 물고기, 도미로 인해 이웃 국가를 지배하려는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이 시작되었다는 내용이다. 물고기가 세계사에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가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이는 세계사적 맥락에서 보편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구가 대표적이다. 어부 출신 작가인 미국의 마크 쿨란스키에 따르면, 콜럼버스가 향신료를 찾아 나서기 훨씬 전부터 스페인 북서부 바스크 지방의 어민들은 캐나다 서부에서 이미 대구 어업을 하고 있었다. 15세기 한자동맹(유럽 내 도시들의 자유무역 공동체)이 유럽 내 청어와 함께 대구 어장을 독점하자, 바스크 어민들은 비밀리에 캐나다 뉴펀들랜드를 왕복하며 대구를 유럽 시장에 공급했다. 18세기 영국이 미국의 대구 무역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자, 식민지 미국인들은 이에 저항해 독립혁명을 일으켰다. 20세기 영국과 아이슬란드와의 어장 분쟁도 대구 때문에 일어났다. 쿨란스키의 말대로 ‘세계를 바꾼 물고기’였다.
유럽과 세계의 역사를 바꾼 ‘대구’에 필적할 만한 해산물이 동아시아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중화요리점에 가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해삼’이다. 중국 요리의 역사만큼 해삼에 대한 중국인의 선호는 오래되었다. 남태평양의 수많은 섬, 오스트레일리아 서부 해안, 일본 혼슈 북부와 홋카이도, 북한의 함경도 연안까지 놀라운 생산·가공·유통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일본국립역사민속박물관
근대 전환기 제국으로 변모하던 일본에는 도미가 있었다. 에도 막부는 나가사키를 통해 유럽 기술과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조선처럼 강력한 쇄국주의를 유지하고 있었다. 1854년 미국에 의해 강제 개항된 이래 1867년 왕정복고가 이루어지고 1868년 근대 국가를 지향하는 메이지 유신이 추진되었다.
메이지 정부가 추진한 각종 근대적 개혁은 관습법에 따라 형성된 지역 공동체의 극렬한 저항에 직면했다. 이러한 상황은 어장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에도 시대의 어장제도는 지역별로 각기 상이한 관습법에 의해 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1875년 기존 관습법을 부정하고 어장을 국유화하는 ‘해면관유선언(海面官有宣言)’이 선포되자 일본 어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특히 섬이 많아 어장권이 복잡하게 얽혀 있던 서일본 세토 내해 어민들 사이에서 분쟁이 발생했다.
이러한 경제구조 변동은 어민들에게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회이기도 했다. 쇄국정책 아래에서는 중국 수출 물량을 막부가 제한하고 있었지만, 막부가 붕괴되면서 어민들이 자유롭게 해산물을 팔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수출입 자유화가 이루어지자 해삼·전복· 상어지느러미·다시마 등의 가공품이 자연스럽게 주요한 수출 상품이 되었다.
이러한 해산물을 구하기 위해 일본 어민들은 조선으로 위험한 여행을 감행하게 된다. 흔히 ‘통어(通漁)’라 불린 일본 어민의 조선 진출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은, 1883년 ‘조일통상장정’으로 전라·경상·강원·함경에서 일본 어민들의 어업 활동을 허용하면서다. 그러나 실제 월경 어업은 그보다 더 빨랐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1870년 오이타현의 어민들이 상어 어업을 위해 조선으로 넘어왔다. 당시 오이타현 어민들은 어획한 상어의 지느러미만 떼어 가공한 다음 중국에 수출하는 방법으로 큰 수입을 올렸다. 상어를 먹지 않기에 지느러미를 뗀 상어의 몸체는 바다에 버렸다.
당시 일본 어민들이 어획하고자 했던 해산물 가운데는 전복·해삼·상어지느러미 등 중국 수출용 이외에, 조선인과 비교해볼 때 일본인들이 특히 좋아하는 생선이 있었다. 가장 극단적인 예가 삼치다. 지난 호에서도 언급했지만, 삼치는 조선에서 ‘망어(䰶魚)’라고 불리는 불길한 생선이었다.
‘에비스 맥주’ 디자인에 등장하는 도미
물론 도미는 달랐다. 조선에서도 서울 근방에서 봄철 별미로 도미 맛을 즐기곤 했다. 도미는 남부 지방 장시에 자주 등장하는 상품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인의 경우와 달리 조선인에게는 삶의 주요한 시점에 없어서는 안 될 물고기가 아니었다.
일본에서 도미는 ‘백어(百魚)의 왕’으로 불리는, 가장 가치 있는 물고기로 여겨져왔다. 도미 양식 기술이 보편화되는 1960년대 전까지 일본에서 가장 비싼 생선이었다. 오래전부터 왕실 의례에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에도 시대엔 민간에서도 관혼상제에 빠질 수 없는 물고기였다. 도미는 특히 경사(慶事) 의식에 폭넓게 사용되었는데, 상류층 향연 요리를 기록한 <산내요리서> (1497)에도 사찰 요리로 문어·연어· 은어·농어와 함께 건도미 및 염장도미가 사용되고 있다.
도미가 일본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은 에도 시대 이후라는 설이 있는데, 이는 그 시대 들어서 도미 요리법이 다양해진 것과 관련된다. 에도 초기에 간행된 <요리물어>(1643)에는 도미가 가장 먼저 등장한다. 요리법도 가장 다양하다. 18세기 말 무렵 103가지 도미 요리를 소개하는 <조백진요리비밀상 (鯛百珍料理秘密箱)>이 간행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 일본에서는 ‘썩어도 도미’라는 말이 있었다.
ⓒ오창현 제공 일본 도야마현에서 세시 행사 때 사용한 도안. 에비스가 도미를 들어 올리고 있다.
20세기 이후 일본의 민속자료를 보면, 도미가 일본인의 세시 의례에 얼마나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는지 알 수 있다. 우선 매년 정월이 되면 새우·귤·다시마·굴거리나무 등과 함께 건도미 두 마리를 꿰어 만든 ‘가케타이(懸鯛)’를 문 앞에 거는 관습이 있었다. 동해에 접한 혼슈의 시마네현에서는 정월에 고등어·삼치· 도미·오징어·무·곤포·감 등을 신전에 걸어두었다. 또 에히메의 오오미지마에서는 신단에 염장한 도미를 매달고 모내기 시기까지 두었다가 구워 먹으면 1년 내 건강하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가고시마에서는 정월 부엌의 삼나무 장대에 방어·도미·다시마를 걸었는데, 굴거리나무·종이·귤로 장식하고 끝에 무를 내려 달았다.
도미는 세시 의례뿐 아니라 일생 의례에도 많이 사용되었다. 혼례만 살펴보면, 신랑 측이 ‘가케타이’를 만들어 신부 집에 가져가 선물로 주는 관습이 서일본을 중심으로 여러 지역에 널리 분포했다. 동북 지방인 이와테현에서는 혼인 잔치 때 신부 측의 손님 앞에 눈을 뺀 큰 도미 두 마리를 안주로 내주고 큰 잔으로 삼배주를 하는 관습이 있었다. 규슈의 구마모토현에서는 혼약이 성립되면 남자 쪽의 부모와 친족이 중매인에 이끌려 여자 쪽으로 인사를 가는데, 이때 술·떡과 함께 도미를 들고 갔다. 사가현에서는 혼례 등의 축하 잔치를 시작하면 먼저 사람들에게 도미를 보여주고 나중에 돌아갈 때 선물로 주는 관행이 있었다.
이뿐 아니라 도미는 복을 가져다주는 일곱 신 중 하나인 에비스(恵比寿) 신앙과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었다. 한국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에비스 맥주 디자인에 등장하는 신이다. 낚싯대를 든 에비스가 도미를 안고 싱글벙글 즐거워하는 모습은 성격 좋은 부잣집 아저씨를 연상시킨다. 에비스는 일본 전역에서 가신(家神), 마을신, 해신(海神) 등의 형태로 모셔진다. 동일본에서는 상업신·어업신·농업신으로 각 가정에서 매우 폭넓게 모셔졌고, 서일본에서는 농업신보다는 어업신과 상업신으로 모셔졌다. 무로마치 시대 중반부터 서일본의 상인들은 일종의 동업조합인 ‘에비스코(恵比寿講)’를 조직하고 에비스를 신으로 섬겼다. 이러한 현상은 도미가 과거 일본의 다양한 집단에서 필수 불가결한 사물로 간주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뿐 아니라 장난감, 음료 등 다양한 상품의 소재로도 사용되고 있다.
도미가 일본에서 이전보다 일상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물고기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 조선산 도미가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에 오면서부터다. 어획량이 늘어나면서 각종 의례에 도미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00년대 전후 조선에 넘어와 조업하던 일본 어부의 과반수가 도미 어업에 종사할 정도였다.
조선에 온 일본 어민은 ‘제국주의의 선구자’
도미를 필두로 일본인이 선호하거나 중국에 팔고자 했던 해산물을 찾아, 일본 어민은 신변 위협을 무릅쓰고 조선에서 조업했다. 바다에서 어업을 하다가도 필요할 때는 상륙해야 했는데, 총과 칼을 차고 조선 어민들을 해치기도 했고, 반대로 조선 어민들에게 상해를 입거나 살해당하기도 했다. 물론 양자가 부딪치면서 발생한 분쟁에 일본 정부나 일본 정부의 비호를 받는 일본 어민 단체가 개입했고, 분쟁 상황은 일본 어민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나아가 이러한 분쟁 자체가 일본이 제국주의 정책을 확장하는 데 주요한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도미가 일본 제국주의 팽창 정책의 불씨였던 셈이다.
당시 조선에 간 일본 어민을 두고 ‘자본제 경영의 시초’ 혹은 ‘제국주의의 선구자’였다고 평가하기도 하는데, 이는 결코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 어민은 한반도를 장악한 뒤, 타이완과 중국 다롄과 칭다오까지 도미 어장을 확대해나갔다. 물론 도미 어장의 확대는 어민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일본 제국의 팽창과 함께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결국 동아시아 각지에서 도미가 일본으로 유입되었고, 이로 인해 이전보다 더 많은 일본인이 과거보다 더 풍성하게 도미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도미 양식 기술이 보편화된 지금 일본에서는 도미의 가격이 높지 않다. 지금 과거 도미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물고기는 참치다. 아직 완전 양식이 이루어지지 않아 여전히 가격이 높은 참치가 세계적인 물류 네트워크를 만들어내고 있다. 미국 동북부, 유럽 지중해, 오스트레일리아 근해까지 일본인이 파견되어 방금 잡아 올린 참치의 상태를 관리하고 일본 도쿄의 쓰키지 시장으로 항공 직송한다. 쓰키지 시장에서 가격 등급이 매겨진 참치는 일본 전역의 어시장뿐 아니라 다시 전 세계 일식집에 판매된다.
이처럼 국경을 넘어 움직이는 사물의 이면에는 일상성이 내재해 있다. 일상성은 일상적인 욕망이기에 큰 힘을 발휘한다. 물고기를 어획하는 인간이 아니라 물고기가 인간사를 지배해온 것처럼, 내 일상 속에 깊이 들어와 있어 필수 불가결하다고 간주되는 사물의 일상성은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역사의 큰 흐름을 만들어낸다. 거대 글로벌 기업이 존속할 수 있는 것도 세상 사람들의 일상이, 즉 먹고사는 게 다 비슷해지고 비슷비슷한 일상을 꿈꾸고 있는 현실과 매우 밀접히 맞닿아 있다.
그렇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질적 일상성을 동질화하려는 거대한 힘 속에서도 약간씩 다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 이를 우리와 다른 세계를 살았던 이들의 ‘유산’ 혹은 ‘전통’이라고 부른다. 어제의 그들이 상상하며 만들어놓은 물질적 기반 위에서 우리는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해나가고 있을 뿐이다. 오창현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시사인
한일관계 ‘기로’…열강 틈새속 힘의 균형 재정립 기회
동북아 지각변동
미, 패권국가 의무 방기하고 편익만 추구
미-중 대결 격화로 ‘키신저 질서’ 붕괴
한-일 충돌도 동북아 세력재편 한 부분
한국, 아시아의 종속·독립 변수 갈림길
한국과 일본의 ‘대치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과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가 직접적인 발화선이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보면, 수십년 유지돼온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질서가 붕괴되고 재편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분출될 수밖에 없는 충돌이다.
1990년대 초 사회주의 블록 몰락 이후 아시아를 규정했던 미국 주도의 지정학적 질서는 무너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중국의 패권 도전을 용납하지 않으면서도 최소한의 ‘공공재 제공’이라는 패권국가의 의무는 저버린 채 편익만을 추구하고 있다.
현재 격변에 처한 아시아 지정학적 질서는 멀리는 미국과 중국이 화해한 1970년대 초, 가깝게는 두 나라가 본격적 협력에 들어간 1990년대 초에 형성됐다. 소련이 붕괴한 뒤 미·중은 경제협력을 바탕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분업체제라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확산의 버팀목이 됐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 5일 ‘아시아의 전략 질서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내 칼럼에서 이런 질서를 미-중 수교를 이끈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이름을 따서 ‘키신저 질서’라고 이름 붙였다. 신문은 최근 아시아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결국 ‘키신저 질서의 붕괴’라고 규정했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국의 상대적 약화로 이런 질서가 파탄 났다는 것이다.미국이 공황 상태에 빠졌던 2008년 금융위기는 변곡점이었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실존적으로 경계하기 시작했고, 중국은 자신의 부상을 미국이 싹부터 자르려 한다고 반발하면서 양쪽의 전략적 불신이 깊어졌다. ‘G2’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미·중의 공개적인 경쟁 구도가 시작된 것도 이즈음이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행정부는 ‘아시아 회귀’를 내걸고 중국 견제에 돌입했다. 하지만 ‘협력 속 경쟁’이나 ‘경쟁 속 협력’으로 양국 관계를 규정한 데서 알 수 있듯이 협력적 요소는 남아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에 이르면서 ‘협력’이란 단어는 사라지고 경쟁과 전쟁만 남았다. 미-중이 4차례의 무역협상을 벌였으나 ‘미래 경쟁’인 지식재산권이나 첨단기술을 둘러싼 양쪽의 첨예한 견해차로 근본적 합의에 대한 전망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패권은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패권유지 비용은 오롯이 동맹국과 우호국들에 전가하는 트럼프 행정부 외교정책의 최대 인화점은 중국이 위치한 동아시아다. 경제전쟁은 이미 군사 분야로까지 확대됐다. 미국은 7월 들어 중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대만해협에 미 항모를 항행시켰다. 중국도 베트남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 해역에 석유시추선을 보내 양국 전함의 대치를 불렀다. 중국의 첫 동남아 지역 군사기지 개발이 캄보디아에서 진행되고 있다.
특히 국제 군축체제의 한 축인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서 지난 2일 공식 탈퇴한 뒤 하루 만인 3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은 “중국 미사일 보유고의 80% 이상이 중거리핵전력 사거리 시스템”이라며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 중거리미사일 배치 의향을 밝혔다.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6일 한국과 일본이 중거리미사일 배치의 대상국임을 밝혔다.
중국과 러시아의 공개적이고 강도 높은 미국에 대한 공동대응은 동아시아 지정학 질서의 균열을 재촉한다. 중국은 한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를 적시하며 “이웃 나라가 미국의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하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협박했고, 러시아도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 7월 말 첫 연합초계비행을 동해에서 펼쳤으며, 이 과정에서 러시아 군용기의 한국 독도 영해 침범이 벌어졌다. 한반도 주변 해역이 미-중 대결의 전장이 될 수 있다는 신호다.
일본은 동아시아 재편 과정에서 미국과의 군사협력 강화 및 중·러와의 관계 개선이라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일본의 제안으로 시작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기존 동맹 체제에 대한 미국의 해태에 대응한 일본의 자구책이다. 일본은 이를 통해 미-일 동맹에서의 종속적 지위를 벗어나 대등하고 독립된 지위를 노린다. 다른 한편으로는 러-일 평화조약 교섭, 중국과의 관계 개선, 북-일 교섭을 추진하고 있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지난 6월30일 역사적인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이 있은 지 하루 만에 아베 정부는 대한 수출규제를 감행했다. 여권의 소식통들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 이후 한·일이 물밑 협상도 제대로 하지 못한 배경에는 북한 문제에 대한 일본의 집요한 훼방에 감정이 상한 한국 쪽의 불신이 있다고 전한다.
더 근본적으로 이는 기존 한-일 관계 틀의 시효 만료를 말한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기초한 기존 한-일 관계는 기본적으로 미국은 군사안보, 일본은 경제적 측면에서 한국을 후견하는 체제였다. 하지만 미국은 과거처럼 군사안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데다, 한국은 몸집이 커져 ‘65년 체제’에 대한 현상변경을 시도한다.
결국 과거사 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놓고 일본의 전략적 이해가 한국에 관철되지 않는 상황이 대한국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 관계 악화의 근본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인 경쟁자들인 중·러라는 북방 대륙세력을 견제하는 교두보인 한반도가 자신의 통제권에서 벗어나려는 것에 대한 일본 쪽 초조감의 발로다.
한국도 아시아의 격변하는 지정학적 질서 속에서 미증유의 위기와 기회에 처했다. 불확실성 시대는 주변 열강의 종속변수로선 생존할 수 없다. 위기다. 하지만 잘 대처하면 독립변수가 될 수 있다. 기회다. 재정립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한-일 관계가 바로 그 징표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대통령 입에서 또 다시 등장한 “가짜뉴스”
13일 국무회의서 “과장된 전망으로 시장 불안감 키우는 것 경계해야”…가짜뉴스, 허위정보 대응 공개 강조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경제보복까지 더해져 여러모로 우리 경제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정부는 비상한 각오로 엄중한 경제 상황에 냉정하게 대처하되, 근거 없는 가짜뉴스나 허위 정보, 그리고 과장된 전망으로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직접 ‘가짜뉴스’에 대한 대응을 언급한 것이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이날 청와대 관계자는 춘추관에서 대통령 발언의 배경을 묻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언론사의 어떤 뉴스라고 말씀드리기는 애매하고, 최근에 유튜브 영상으로 돌고 있는 내용들이 우리 기자들은 기자들이 쓴 것이 뉴스라고 생각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꼭 그렇게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유튜브 콘텐츠를 가짜뉴스나 허위 정보의 ‘진원지’로 판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13일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가운데)과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왼쪽), 이낙연 국무총리. ⓒ청와대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지적한 ‘근거 없는 가짜뉴스나 허위 정보’의 일례로 “불화수소가 북으로 가서 독가스의 원료가 된다라든지, 아니면 일본 여행을 가면 1000만 원의 벌금을 내야 된다라든지, (日화이트리스트 제외) 1194개의 품목이 모두 잠기는 것이다라든지, 이런 내용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국민들에게 전달되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뒤 “그런 것들이 결국에는 불확실성을 더욱 높이는 결과물을 낳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경계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날 대통령 발언으로 유튜브 콘텐츠에 대한 정부 차원의 규제정책이 등장할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앞서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4월 허위조작정보대응TF를 만들라고 지시한 바 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는 “건전한 인터넷 문화 조성을 저해하는 허위조작정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개선책을 고민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상황이어서 청와대와 발맞출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이 올해 ‘가짜뉴스’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모두 4차례로 알려졌다.
이날 발언이 자칫 언론 자유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비판을 우려해서인지 청와대 관계자는 “언론에서 오보를 내거나 그런 것들은 오보 대응을 계속하고 있으니까, 그것은 그렇게 참고하시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유튜브나 카카오톡 등을 통해 퍼져있는 허위정보에 적극 대응하는 기구는 조만간 신임 방통위원장 체제에서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정부의 정책적 효과로 일자리 지표가 개선되고 있고, 고용 안전망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는 고용보험 가입자 수가 크게 늘고 있으며, 실업급여 수혜자와 수혜금액이 늘어나는 등 고용 안전망이 훨씬 강화되고 있다”고 자평하면서도 “여전히 부족하다. 저소득층 생활 안정과 소득지원 정책에 한층 더 힘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공공임대주택 확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고교무상교육,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과 온종일 돌봄 정책 등 생계비 절감 대책도 차질 없이 추진해 주기 바란다”고 강조한 뒤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등 포용적 성장을 위해 재정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국무회의 참석자들을 향해 “예산을 통해 분명히 (성과가) 나타나도록 준비를 잘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러시아 '핵폭발' 후폭풍…美반발·방사능 16배↑
러 신형 핵추진 미사일 개발 관련 폭발 사고에 미·러 신경전 고조
美도 60년대 개발 시도했던 미사일…INF 폐기 맞물려 군비경쟁 우려
지난 8일 동시베리아 지역 아친스크 지역에서 발생한 핵미사일 엔진 실험 폭발사고를 한 가족이 목격하고 있다.(사진=LA타임즈)
러시아에서 지난 8일 발생한 폭발 사고가 신형 핵추진 미사일 개발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과 러시아 간 신경전이 달아오르는 분위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이 1960년대 개발을 중단한 미사일 확보를 추진하며 미국 미사일방어 무력화를 겨냥하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미·러 간 군비경쟁의 불씨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미 NBC방송은 "이 미사일은 대륙간탄도미사일보다 저고도로 비행하고 탄도 예측이 쉽지 않아서 이론상 미국의 미사일방어 회피가 가능해진다"면서 "미국이 너무 위험하다고 여겨서 개발을 시도하다 폐기한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은 1960년대 '플루토 프로젝트'로 명명해 핵추진 순항미사일 개발을 시도했다. 소련과의 냉전 속에 핵 경쟁이 심화하던 시기로, 이 프로젝트가 폐기된 주된 이유는 이 미사일이 비행 중 방사성 입자를 지상에 뿌릴 가능성 때문이라고 NBC는 설명했다.
미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프로그램의 제프리 루이스 소장은 이 방송에 "우리(미국)는 어느 정도 러시아와의 군비경쟁으로 표류하거나 발을 헛디디고 있다"면서 "군비경쟁에는 실제적인 인적 대가가 있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에는 모든 종류의 재앙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핵추진 미사일이) 위험하냐고? 그렇다!"라면서 "'날아다니는 원자로'라는 표현이 적합하다고 본다"고 우려했다.
비핀 나랑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미사일에 실린 '미니 체르노빌'을 생각해보라"면서 "우리(미국)는 이걸 1960년대에 시도했고 이유가 있어 포기했다. 매우 위험한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폭발 사고는 미국이 이달 초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서 탈퇴, 전세계 핵군축 질서를 유지하던 축 하나가 사라진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앞서 러시아 원자력 공사 '로스아톰'은 '전(全)러시아 실험물리 연구소' 소속 직원 5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로스아톰은 해상 플랫폼에서 발생한 시험이 처음엔 순조롭게 진행됐으나 이후 엔진이 불길에 휩싸였고 곧이어 폭발이 일어났다고 전했다. 엔진 폭발이후 하면서 사고 당일 사고 현장의 방사능 수준이 평소의 16배로 증가한 사실이 러시아 기상·환경 당국 자료로 확인됐다.
하지만 러시아 국방부는 사고 직후 "대기 중으로 유출된 유해 화학물질은 없으며, 방사능 수준은 정상"이라고 발표해 방사성 물질 유출을 은폐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노컷 김송이 기자
40만명이 가진 170만채, 집값 정책 비웃고 있다
서울 주택에 쏠리는 투기 자금 막는 두가지 길
주가가 무섭게 폭락했다. 주식투자자들은 경제위기라도 올 것 같은 공포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서울 집값은 폭락은커녕 상승세도 안 꺾였다.
혹자는 주가폭락을 야기한 대외요인들이 집값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틀린 생각이다. 주가폭락의 원인이 대외여건 악화인 것은 맞지만, 그로 인해 향후 국내경기가 심각한 침체를 맞게 될 거라고 예상했기에 주가가 폭락한 것이다.
경기침체가 오면 집값도 큰 영향을 받는다. 경기침체는 소득감소를 초래하고, 소득이 감소하면 주택의 실수요가 감소한다.
지난 5년간 경기가 좋은 적이 없었고, 향후 경기침체가 더 악화될 거라고 예상되는데도 서울 집값이 상승하는 것은 실수요 외에 다른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투기수요다. 투기수요가 서울 주택 시장으로 몰려들어 서울 집값을 폭등시킨 것이다.
주식시장은 투기수요가 몰려들기는커녕 기존 투자자들마저 빠져나가기 바쁘다. 주가와 서울집값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이유는 투기수요 유무인 것이다.
"공장 짓지 말고 그 돈으로 강남아파트 샀더라면..."
주가는 폭락하고 서울 집값은 상승하는 현상이 우리 경제에 어떤 효과를 낳을까? 주가상승은 기업의 자금조달을 원활하게 해준다. 기업투자가 증가함은 물론 신사업이나 벤처투자도 활발해지므로 경제가 활력을 얻는다. 그래서 증시활황은 대체로 경제에 청신호다.
이에 반해 집값상승은 다주택자와 강남주택 소유자에게는 엄청난 불로소득을, 집없는 서민과 청년들에게는 주거비용 상승을 안긴다.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부의 양극화'를 더 악화시킨다. 노동자는 일할 의욕을 상실하고 기업인은 사업의욕이 사라진다. "공장 짓지 말고 그 돈으로 강남아파트나 사둘 걸.." 하고 후회하는 기업인이 한둘이 아닌 현실에서 경제가 잘 돌아간다면 이상할 것이다. 그보다 더 나쁜 점도 있다. 압도적 다수 국민이 폭등한 집값 때문에 잠도 못 이룰 정도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표현하는 데 "망국의 길"이라는 말보다 더 적합한 말도 드물 것이다. 이 망국의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돈의 흐름을 바로잡아야 한다.
"수익 낼 곳은 서울 주택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돈의 흐름을 바로잡을 수 있나? 지난 7월 18일 한국은행이 전격적으로 금리인하를 한 직후 어느 유튜버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이번 금리인하는 부동산 부양이 목적이 아니라 실물경제 회복이 목적이다. 그래서 금리인하를 '그렇게' 설계했다." 금리인하를 설계한다는 말도 처음 듣거니와 도대체 돈이란 것이 정부가 지시하는 대로 갈 거라는 발상 자체가 어처구니없다. 금융에 대해 무지하지 않고는 이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돈은 수익을 좇아서 움직이다. 그것이 돈의 속성이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 돈을 가진 사람들은 "수익 낼 곳은 서울주택밖에 없다"고 믿고 있다.
이 믿음을 깨지 못하면 금리를 추가로 인하해서 돈을 한없이 더 풀어도 실물경제와 주식시장으로 돈이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금리인하로 증가한 시중자금은 오직 서울주택으로만 몰려가서 '망국의 길'을 더 가속화시킬 것이다.
서울 주택으로 가는 돈 흐름 막으면 주식시장으로 갈 것
투기란 불붙기도 어렵지만 한번 불이 붙으면 쉽게 꺼지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온갖 부양책을 써가며 집값 올리기에 사력을 다했지만 서울 집값은 하락을 지속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최경환이 등장하여 "빚내서 잡사라"는 상식을 벗어난 정책을 동원해서야 서울 집값은 상승추세로 접어들었다.
그러므로 투기 불씨를 끄려면 과감한 정책을 써야 한다. 문재인 정부 초기 금리인상을 단행하여 "빚내서 집사라" 정책을 중단시켰더라면 투기는 쉽게 꺼졌을 것이다. 투기를 종료시킬 적기를 놓치자 투기 불씨는 더 무섭게 타올랐다.
투기를 끝내는 길은 투기 비용을 높이는 것이다. 투기란 남의 돈에 의지하여 투자하는 것이므로 주택 보유 비용을 높이면 보유주택을 매물로 내놓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투기비용 중 가장 큰 것은 금융비용이다. 그러므로 금리인상이 서울집값 투기를 잡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혹시 금리인상이 주식시장에 타격을 줄 거라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주가가 하락하는 이유는 시중자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돈의 흐름 때문이다. 서울 주택으로 흘러가는 돈의 흐름을 차단하면 주식시장으로 돈이 흐를 가능성이 훨씬 커질 것이다.
다주택자 소유 177만 채 주택에 종부세와 양도세 전액 면제
투기비용을 높이는 또 다른 방법은 주택 투기자들에게 베푸는 세금혜택을 폐지하는 것이다. 금리인상과 달리 반대할 명분도 논리도 없다. 작년 말 현재 41만 명이 소유한 177만 채 주택에 대해 재산세, 종부세는 물론 양도소득세도 전액 면제해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다주택자의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생각만 바꾸면 당장이라도 그 혜택을 폐지할 수 있다. 그러면 다주택자 매물이 나와서 서울 집값은 장기하락추세로 돌아설 것이다. 서울 집값이 분명한 하락세에 접어들면 더 이상 돈이 그쪽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금리인상과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혜택을 폐지하는 것이 '망국의 길'을 멈추고 한국경제와 압도적 다수 국민의 살림이 좋아지는 길이다
송기균경제연구소장 프레시안
김현미 국토부 장관을 위한 변명
서울 아파트값 상승 책임은 어디에 있나
국토교통부가 12일 분양가상한제를 민간택지에까지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국토부의 이번 발표의 요지는 분양가상한제의 요건을 완화하고(기존 : 3개월간 주택가격 상승률이 물가상승률 2배 초과, 개선 : 투기과열지구),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상한제를 10월 초부터 시행하며(재건축단지도 소급 적용), 후분양제 요건을 크게 강화하고, 전매제한기간을 최대 10년까지로 하는 것이다.
국토부의 분양가상한제 민간택지 확대결정은 무주택 실수요자들을 청약시장에 대거 대기하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이렇게 되면 매매시장은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추격매수세가 현저히 감소해 안정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할 뿐 아니라 한국은행의 추세적 금리인하 효과도 일정 부분 흡수하는 기능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분양가상한제 적용지역이 제한적이라는 점, 분양가상한제 적용이 주거정책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는 점 등은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어쨌든 국토부는 제 역할을 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런 국토부의 수장은 김현미 장관이다. 김현미 장관은 3기 신도시 지정지역을 발표하면서 지역구인 일산시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3기 신도시 예정지 중에 창릉신도시가 있는데, 이 창릉신도시의 입지가 일산 보다 낫기 때문에 일산 집값 하락을 근심하는 일산시민들이 일산에 지역구를 둔 김현미 장관을 성토하는 것이다. 표가 생명인 정치인으로선 무척 괴로운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김 장관은 분양가상한제를 민간택지에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뚝심 있게 관철시켰다.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기실 김 장관은 억울하다. 집값 안정은 금리와 세금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거의 달성이 불가능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즉 한국은행과 기재부가 국토부와 긴밀히 협력하지 않으면 집값 안정은 달성이 요원한 것이다. 내가 보기에 문재인 정부 들어 국토부는 아쉬운대로 나름 열심히 했다. 하지만 금리를 책임진 한국은행과 세금을 담당하는 기재부는 부동산가격 안정에 소홀(?)했다. 비유하자면 고지 점령을 위해 진격하는 보병(국토부)에게 공중지원을 해야 할 공군(한국은행)과 포격지원을 해야 할 포병(기재부)이 맡은 임무를 이행하지 못하면서 보병(국토부)의 진격이 돈좌된 셈이다.
각설하고 문재인 정부 들어 기울기가 가팔라진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세의 주된 책임은 한국은행과 기재부에 있으며 종국적인 책임은 청와대에 있다. 그런데 비판받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죄다 무사하고 애먼 김현미 장관이 난타를 당하는 형국이다. 김현미 장관으로선 억울할 법도 하다.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대표 프레시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8월 14일, 오늘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고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생존자 중 최초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날입니다. 28년 전 할머니의 첫 증언 이후 위안부 문제가 국제사회에 알려졌고 정부는 지난해부터 이날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했습니다.
지금 서울 백범 김구 기념관에서는 2회째를 맞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생존해 계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도 직접 기념식에 참석하셨고요, 위안부 피해자였던 어머니에 대한 유족의 마음이 담긴 편지를 배우 한지민 씨가 대독합니다.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한지민 / 배우]
엄마 나이 열일곱, 전쟁 때 다친 사람들을 간호하러 가신 게 아니구나. 누군가에게 강제로 끌려가 모진 고생을 하신 거구나.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습니다.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다친 어깨와 허리 때문에 팔을 들어올리지도 못하시는 엄마를 보면서도 무엇을 하다 그렇게 심한 상처를 입으신 건지 엄마한테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이 무섭기만 했고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이면 우리 엄마가 겪은 일이라는 게 더 무섭고 싫기만 했습니다. 혹시라도 내 주변 친구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나 그저 두렵기만 했습니다.
엄마는 일본말도 잘하시고 가끔은 영어를 쓰시기도 하셨지만 밖에 나가서 이야기를 하실 때는 전혀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디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마 얘기를 절대 해서는 안 된다며 제게도 항상 신신당부 하시곤 했었죠.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아니, 어쩌면 저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애써 외면했습니다. 제가 알게 된 엄마의 이야기를 모른 체하고싶었습니다. 철없는 저는 엄마가 부끄러웠습니다.
가엾은 우리 엄마.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 깊은 슬픔과 고통을 안고 얼마나 힘드셨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옵니다. 엄마. 엄마가 처음으로 수요 집회에 나갔던 때가 떠오릅니다. 처음에는 어디 가시는지조차 몰랐던 제가 그 뒤 아픈 몸을 이끌고 미국과 일본까지 오가시는 것을 보면서 엄마가 겪은 참혹하고 처절했던 시간들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자세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생전에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끝까지 싸워다오. 사죄를 받아다오. 그래야 죽어서도 원한 없이 땅속에 묻혀 있을 것 같구나.이 세상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해. 다시는 나 같은 아픔이 없어야 해.
엄마는 강한 분이셨어요. 그러나 엄마는 그렇게 바라던 진정한 사죄도, 어린 시절도 보상받지 못하시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고통과의 싸움이었을 엄마를 생각하며 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엄마. 끝내 가슴에 커다란 응어리를 품고 가신 우리 엄마. 모진 시간 잘 버티셨습니다. 이런 아픔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저희가이어가겠습니다. 반드시 엄마의 못다 한 소망을 이루어내겠습니다. 이제 모든 거 내려놓으시고 편안해지시길 소망합니다.
나의 어머니. 우리 모두의 어머니. 사랑합니다
일본인들의 8ㆍ15 조선 탈출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 거주했던 일본인들이 1945년 10월 어선을 이용해 일본 규슈의 후쿠오카 항구로 귀환하는 모습. 미 국립문서기록청 제공
일본의 8ㆍ15 항복 발표 이튿날 조선총독부는 부산지방교통국에 중대 지침을 하달한다. 즉시 일본으로 출항할 선박을 마련하라는 것. 8월 17일 승선할 일행이 비밀리에 부산항에 도착했는데,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부인이었다. 하지만 일본으로 출항한 배는 얼마 못 가 멈춰 서더니 점점 기울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총독 부인이 조선에서 수집한 귀중품을 과적한 때문이었다. 일행은 짐을 절반 넘게 버리고 나서야 겨우 부산항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조선을 떠나며’, 이연식)
□ 당시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패전 소식을 듣자마자 앞다퉈 재산을 일본으로 반출하는데 광분했다. 돈 있는 사람들은 공식 송환선이 아닌 밀항선을 빌려 가산을 잔뜩 싣고 돌아갔다. 일본인 자본가들은 재고품과 원료를 일본으로 빼돌렸고, 심지어 자신의 공장 시설을 파괴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일본군은 미군이 도착하기 전에 무기와 탄약을 파괴했고 식량과 일용품까지 불사르거나 바다에 던졌다. 조선인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악랄한 수법이었다. 이로 인해 한반도는 극심한 인플레로 혼란을 겪었고 서민들은 물자 부족으로 내핍에 시달렸다.
□ 남한에 남아 있던 일본의 자산은 1952년 한일청구권 회담 때 역(逆)청구권 주장에 동원됐다. 일본은 한국의 대일 청구권 요구에 맞서 일본이 남겨 놓은 재산이 더 많다고 강변하면서 양측 모두 청구권을 포기하자고 회유했다. 이미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서 미 군정의 재한 일본인 재산 몰수가 결정됐는데도 딴소리를 했다. 결국 일본의 집요한 주장으로 한일협상에서 청구권 문제는 희석되고 경제논리에 기초한 정치 담판으로 변질됐다. 일본의 노림수에 말려든 것이다.
□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등은 저서 ‘반일 종족주의’에서 “애초 한국은 청구할 게 별로 없었고, 22억달러어치의 재한국 일본인 재산을 이미 취득한 점을 고려하면 최선의 합의였다”고 주장했다. 한일회담 당시 일본 측 수석대표가 “일본 측도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일본은 36년간 민둥산을 푸르게 만들었고, 철도를 깔았고, 수전(水田)을 늘리는 등 많은 은혜를 한국인에게 베풀었다”고 한 망언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이 발언을 문제 삼아 4년6개월간 회담을 중단시켰다. 뉴라이트 학자들이 ‘국부’라 칭송했던 이 전 대통령이 책을 보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해방 후 도주하던 일본인이 남긴 글 보니...
“전쟁에 승리하여 기쁨에 춤추는 자여
더불어 얻어먹는 자 그때뿐인 걸
단지 ‘일장춘몽’일세.
위대한 일본!
한때 모든 것을 잃고 이 땅을 떠난다 하더라도
보라! 다음 시대를.
‘권토중래’하여
너희들이 땅에 엎드려 우리들에게
애걸하게 될 것이니라.
역사를 보라!
동쪽으로 서쪽으로 좋다고 춤추는 독립이란
모두 다 이런 뜻이니라.
가련한 자여 너의 이름은 ‘여보’이니라”
1946년 8월께 경남신문의 전신인 남선신문에 보도됐던 기사 중 일부이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뒤 한 일본인이 본국으로 가기 전 전라도 목포의 한 여인숙 벽에 써 놓은 내용을 기사화한 것이다.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김연호(87·남해군 창선면)씨는 경남신문사에 전화를 했다. 그는 한동안 이 기사를 잊고 살았는데 최근 일본의 경제적 보복 뉴스를 접하다 보니 문득 이 기사가 생각나 신문사에 연락을 하게 됐다고 했다.
....경남신문 이민영 기자 mylee77@knnews.co.kr
▲ '결전'이라고 새겨진 사기그릇. /사진제공=인천시립박물관
총살 전 조선13도 생각하며 열세 걸음 걸었던 김알렉산드라
“강물이 검어서 아무르강이라고 하던데… 북한의 김정일(1942~2011)도 왔었다고 하고….” 8ㆍ15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오전(현지시간) 러시아 극동 최대 도시인 하바롭스크 아무르강 근처에서 만난 한 한국 관광객의 말이다. 아무르강(黑龍江)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관광지이지만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투혼이 깃든 곳이라는 점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바롭스크는 독립운동가들의 거점이었던 연해주 지역에 버금가는 주요 항일 투쟁 지역이었다.
러시아 극동 최대 도시인 하바롭스크의 무라비바 아무르스카바 거리 22번지에 있는 김알렉산드라의 집무실 건물 전경. 현재는 신발 매장으로 사용 중이다.
100여년 전 러시아 하바롭스크 사회주의 항일 독립운동을 했던 김알렉산드라의 집무실이 있던 건물 외벽에 ‘김알렉산드라가 이곳에서 일했고, 1918년 영웅적으로 죽었다’는 내용의 기념팻말이 걸려 있다.
◇한인 여성 최초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3ㆍ1운동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918년 3월. 이동휘(1873~1935)와 류동열(1879~1950), 김알렉산드라(1885~1918), 오하묵(1895~1936) 등이 하바롭스크에 모여 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을 창당했다.
창당 산파 역할은 김알렉산드라가 했다. 그는 연해주에서 태어난 한인 2세였다. 우랄 페름시에서 착취당하는 조선ㆍ중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대변하기 위해 우랄노동자동맹을 조직하며 본격적인 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1916년 러시아 사회민주당에 가입해 하바롭스크시(市) 당 비서가 됐고, 볼셰비키 혁명 세력으로 활동했다. 이동휘와 김알렉산드라는 조국 광복을 위해 러시아 혁명을 이끈 볼셰비키 세력과 손잡아 일제를 몰아내자는 데 의견을 함께 했다.
김알렉산드라.
한인사회당은 기관지 자유종을 발간해 일제의 만행을 알리고, 독립 정신을 일깨웠다. 출판사 보문사를 세워 한인 계몽과 교육에도 힘썼다. 하바롭스크 무라비바 아무르스카바 거리 22번지에는 당시 김알렉산드라가 일제 밀정의 눈을 피해 독립운동을 했던 사무실 건물이 있다. 양파 모양의 구리 강판 지붕이 얹어진 3층 붉은 벽돌 건물로 100년이 지났어도 형태가 그대로다. 하지만 김알렉산드라의 흔적은 거의 지워졌다. ‘김알렉산드라가 이곳에서 일했고, 1918년 영웅적으로 죽었다’는 짤막한 문구가 적힌 명패가 전부다. 원래는 그의 부조상도 있었지만 철거됐다. 건물은 현재 신발 등을 판매하는 상업 공간으로 쓰인다.
하바롭스크를 무대로 한 사회주의 독립운동은 오래 가지 못했다. 창당 후 불과 5개월 만에 러시아 반혁명세력인 백위군의 공격으로 한인사회당도 큰 타격을 받았다. 김알렉산드라 등 18명은 체포돼 아무르강으로 끌려가 총살됐다. 당시 “조선인인 그대가 왜 러시아 전쟁에 참가했나”라는 백위군의 질문에 그는 “나는 조선인민이 러시아 인민과 함께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하는 경우에 나라의 자유와 독립을 달성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고 답했다고 전해진다. 총살 전 김알렉산드라는 “조선 13도의 영원한 해방과 독립을 쟁취해 달라”는 말과 함께 13걸음을 걷고 최후를 맞았다. 1918년 9월 김알렉산드라가 죽음을 맞았던 강 유역에는 그의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문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한인 여성으로 첫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했던 김알렉산드라가 1918년 러시아 백위군에 잡혀 총살당한 러시아 하바롭스크 아무르강 유역.
◇광복 후 역사에서 지워진 연해주 독립운동가들
살아남은 이동휘는 이후 상해로 본부를 옮겨 한인사회당 활동을 이어 갔지만, 당 내부 노선이 갈리면서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로 양분됐다. 이동휘는 1921년 5월 한인사회당 간판을 내리고, 고려공산당을 새로 꾸렸다. 두 세력은 주도권 다툼을 벌이다 1921년 6월 러시아 스보보드니(자유시) 참변이 일어났다. 이르쿠츠크파를 지원하던 러시아군이 자유시에 집결하고 있던 독립군 부대에 대한 무장해제를 감행해 수백 여명이 사살됐다. 이 사건 이후 내분은 더욱 커졌고, 코민테른은 이후 한인들의 독자적인 조직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지휘 체계에 두었다. 국외에서 독립을 꿈꾸며 자생적으로 이뤄졌던 사회주의 독립운동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은 광복 이후 역사에서 빠르게 지워졌다. 친미 우파가 권력을 잡은 남한에서는 이념 문제로 배척당했고, 북한에서도 김일성의 빨치산 부대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사가 쓰여지면서 이들의 이름은 사라졌다.
민주화 이후 정부가 역사 복원에 나서면서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했다. 정부는 이동휘와 김알렉산드라의 공을 기려 이들에게 각각 1995년, 2009년 건국훈장을 추서했다. 하지만 오하묵과 김철훈 등은 아직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들의 활동 흔적이나 역사적 자료를 수집하는 일도 요원하다.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는 “연해주 독립운동가들은 러시아와 연대해서 일제에 맞서 투쟁을 했고, 성과도 컸다”면서도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의 대 한인 정책의 변화로 한인 독립운동이 시베리아 현장에서 그 길을 잃고 말았다”고 평가했다.
러시아 현지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 관계자는 “의병장 유인석과 한인사회당 위원장이자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 여성 최초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알렉산드라 등 역사에 묻힌 수많은 독립운동가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이끌기 위한 기념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하바롭스크=글ㆍ사진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시도지사 지지도, 이용섭 2위·박원순 3위..1위는?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전국 17개 시도지사 직무수행 평가 조사에서 3개월 연속 1위를 기록한 것으로 13일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1일까지 8일간 전국 유권자 1만7000명(광역 시도별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이날 발표한 전국 17개 시도지사에 대한 2019년 7월 직무수행 평가 조사 결과 김 지사는 0.1%포인트(p) 오른 63.2%를 기록했다.
김 지사는 전국 17개 시도지사 중 유일하게 60%대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0.4% 오른 55.0%로 한 순위 상승하며 한 달만에 2위를 회복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1.0%p 오른 53.7%로, 자신의 최고치를 경신하며 세 순위 상승해 톱3(상위 3위권)에 진입했다. 박 시장은 (2018년 7월 이후) 민선 7기 단체장에 대한 여론조사 이래 처음으로 '톱3'에 올랐다.
이시종 충북도지사(51.2%)가 두 순위 내린 4위, 이철우 경북도지사(51.1%)가 한 순위 내린 5위, 권영진 대구시장(49.5%)이 세 순위 오른 6위로 상위권을 기록했다.
다음으로 최문순 강원도지사(48.6%)가 7위, 송하진 전북도지사(48.1%)가 세 순위 내린 8위, 원희룡 제주도지사(47.1%)가 한 순위 내린 9위, 양승조 충남도지사(46.7%)가 10위, 이춘희 세종시장(42.1%)이 11위, 김경수 경남도지사(41.5%)가 두 순위 오른 12위로 중위권에 올랐다.
허태정 대전시장(40.8%)이 한 순위 내린 13위, 이재명 경기도 지사(40.4%)가 한 순위 내린 14위, 오거돈 부산시장(39.5%)이 15위, 박남춘 인천시장(38.4%)이 16위, 송철호 울산시장(31.4%)이 마지막 17위로 하위권에 자리했다.
경향사설]납득하기 힘든 ‘세월호 보고 조작’ 판결
법치국가에서 법원 판단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세월호 보고 조작’ 사건에 대한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 판결은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재판부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김장수·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에게는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국민 생명권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에서 출발한다. 박 전 대통령은 7시간 동안 ‘침실 집무’와 ‘머리 손질’ ‘최순실 회동’까지 차마 믿기 어려운 행태를 보였다. 김기춘 전 실장 등은 그런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기는커녕, 사후에 7시간 행적을 조작하는 데 급급했다. 박 전 대통령이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공문서를 조작해 국회에서 거짓답변하고, 국가재난 컨트롤타워를 청와대에서 안행부(현 행정안전부)로 무단 수정했다. 이들이 제대로 된 보고를 하고 적절한 조치를 했더라면 304명이 생목숨을 잃는 일은 최소화할 수 있었다.
재판부는 이런 혐의 대부분을 인정했다.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책임을 회피하고 국민을 기만하고자 했다”고까지 했다. 그런데 고령이나 증거부족 등 이유로 집유 또는 무죄를 선고했다. 공문서를 조작했고, 위법한 방법으로 수정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입증·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은 앞뒤가 맞는 판결인가. 이번 판결은 국민 생명권 보호 책임을 다하지 않은 국가와 고위공무원에 대해 ‘면죄부’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법관 상대 진정·청원 건수는 4600여건으로 역대 최대였다. 국민 10명 중 6명 이상은 법원 판결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도 사실로 드러난 마당이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민주주의의 근간도 흔들리게 된다. 아직 2심과 최종심이 남아 있다. 사법부는 법과 원칙, 상식에 맞는 판결로 깊어진 국민 불신에 답하길 바란다.
농촌의 ‘계절노동자들’
기초자치단체는 부족한 농촌 일손을 90일 단기 비자를 받은 외국인 ‘계절노동자’로 메우고 있다. 그러나 공급 부족, 불법 취업, 숙련도 미흡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5인승 1t 트럭 한 대가 이른 새벽 텅 빈 군청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트럭 뒷자리에서 내린 캄보디아인 둘이 20인치 캐리어 가방을 짐칸에서 꺼내들었다. 뒤이어 속속 모여든 다른 차량에서도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가 차례차례 얼굴을 드러냈다. 각자 다른 차량에서 내린 이들이 반가운 얼굴로 안부를 물으며 손을 부여잡았다.
7월31일 충북 음성군청 앞. 음성군 농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던 캄보디아 계절노동자 18명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음성군은 농번기 농촌 인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캄보디아 정부와 MOU를 체결했다. ‘계절노동자 제도’를 통해 약 석 달간 노동 기간이 끝난 이들은 이날 새벽 5시30분 군청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떠나는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다. 군청 담당자와도 기념사진을 찍으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이들의 손에는 캐리어 외에도 한국산 과자나 기념품 등이 들려 있었다.
농촌의 노동 불균형 현상이 해를 거듭할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대책이 계절노동자 제도다. 법무부는 2017년부터 계절노동자 제도를 확대 시행해(2015~2016년은 시범운영) 농번기 농가를 위한 90일짜리 단기 노동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각 기초자치단체가 필요한 인력을 법무부에 요청하면, 법무부가 검토 후 지자체별로 배정 인원을 정하는 식이다. 올 상반기에만 전국 41개 기초자치단체에 배정된 계절노동자는 모두 2597명이다.
ⓒ시사IN 이명익 3개월 동안 계절노동자로 일한 캄보디아인들이 귀국하기 위해 음성군청에 모였다
ⓒ시사IN 이명익 계절노동자로 일한 캄보디아인들이 군청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계절노동자로 일한 캄보디아인들은 인천공항행 버스에 올랐다.
“농촌 외국인 노동자 2만6000명 부족”
일할 사람을 섭외하고, 한국으로 안내하며, 각 농가에 배치한 뒤 관리·감독하는 일은 기초자치단체에 일임했다. 음성군청 관계자는 모여든 캄보디아인들을 일일이 점검하며 이탈자가 없나 확인했다. 군청이 인천공항까지 이들을 한꺼번에 수송하는 것도 혹시 모를 이탈자를 막기 위해서였다. 음성군의 경우 2019년 상반기에는 외국인 노동자 94명이 입국했다. 하반기에는 약 50명이 배정될 예정이다.
이처럼 외국인 노동자 없는 농촌은 이제 상상하기 어렵다. 그동안 농업 분야 외국인 노동자는 고용허가제에 의존해왔다. 농촌에 3년간 취업할 수 있고, 추가로 1년10개월까지 연장이 가능한 방식이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6월 기준 전국 농촌 지역에서 일하는 등록 외국인(E-9-3 비자)은 총 3만645명이다. 하지만 이 인력으로는 일손이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지난 3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만6000여 명이 추가로 더 필요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때문에 그동안 농가에서는 사설 용역업체를 통해 암암리에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불법체류자)를 알선받기도 했다. 농가에서 용역회사에 하루 일당으로 지급하는 돈은 약 7만~12만원 선이다. 합법 여부나 성별에 따라 일당이 다르다. 농촌 노동의 특성상 광역자치단체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며 멀리 사람을 실어 나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7월22일 오전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도 농번기 인력 부족 문제가 원인이었다. 이날 60~70대 한국인 7명, 30~40대 타이(태국)인 9명 등 총 16명을 태운 15인승 승합차가 가드레일을 들이받아 4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이들은 충남 홍성군에서 인력을 태운 뒤 경북 봉화군에 위치한 농가로 가던 길이었다.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고 추정되는 타이인 3명은 사고 뒤 종적을 감췄다. 이 차에 타고 농가로 향하던 타이인은 모두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고가 난 승합차도 등록된 영업용 차량이 아닌 일반 자가용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연합뉴스 7월22일 삼척시에서 발생한 사고(아래) 당시 차에 탔던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3명은 종적을 감추었다.
정숙정 박사(경북대)가 지난 4월 발표한 논문 <계절적 미등록 이주노동자 유입 현황과 사회적 묵인>에는 이처럼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를 조직적으로 이끌고 있는 조 아무개 대표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200명이 넘는 타이인 작업단을 운영하는 조 대표는 계절에 따라 전남·충북·경북 지역을 오가며 농번기 일손을 공급했다. 특산물마다 바쁜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전국을 돌며 단기 인력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정 박사는 이 논문에서 “합법적인 단기 계절노동자가 조직적 불법 인력 공급 업체를 대체하는 정책적 대안이 될 수는 있지만, 기초자치단체의 도입 의지와 역량에 의존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시행 주체를 광역자치단체나 공공기관으로 이전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계절노동자 제도는 음지에 있던 불법 단기 노동을 양지로 끌어올린다는 명분으로 도입되었지만, 농가의 불만은 여전하다. 충북 음성군 금왕읍에서 시설재배 농업을 운영하고 있는 박 아무개씨는 500㎡ 비닐하우스 40동에서 각종 쌈 채소를 재배한다.
상시 인력은 박씨를 포함해 총 7명이다. 내국인은 박씨뿐이다. 나머지는 캄보디아 출신 3명과 베트남 출신 3명이다. 7월31일 캄보디아로 돌아간 계절노동자 2명까지 합치면 지난 석 달간은 9명이 함께 일했다. 농사도 결국 숙련도가 중요하다. 똑같이 상추를 수확해도 능숙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존재한다. 계절노동자가 머무는 기간을 많은 농가가 아쉬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은 일이 손에 익을 즈음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상추·근대·청경채·적근대·고추 등 박씨가 기르는 작물 대부분은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자란다. 박씨는 그날그날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락시장)에 올라온 작물 가격을 확인하며 수확 물량을 정한다. 채소 경매 가격은 변동 폭이 워낙 커서 예측하기 어렵다. 박씨가 스마트폰 화면을 열어 상추 가격을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3~4일 전까지만 해도 상추 가격은 1박스(4㎏)당 3000원 선까지 떨어졌지만, 전날부터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었다.
박씨는 “가격이 올랐으니 (상추를) 더 따야 하는데, 이럴 때 계절노동자들이 집으로 돌아가 버렸네”라며 한숨을 쉬었다. 비쌀 때에는 품질에 따라 상추 1박스에 약 7만원까지 오르는 게 경매 시장이다. 농가 처지에서는 소득을 결정하는 매출 구조 자체가 불안정한 셈이다. 이에 따라 적정 수준의 고용 규모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도 스트레스다. 박씨는 “매출과 인건비 모두 변동이 클 수밖에 없다. 둘 중 하나라도 좀 안정적이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시사IN 김동인 현재 농촌은 고령의 내국인 여성 노동자와 상대적으로 젊은 외국인 노동자(위)가 두 축을 이뤄 간신히 지탱하고 있다.
농촌에 외국인 노동력이 본격적으로 확대된 시점은 2000년대 초·중반이다. 내국인 인력 부족 때문이다. 농촌 임노동은 전형적인 3D 업종이라 내국인이 기피했다. 같은 3D 업종이라도 농촌 임노동은 농촌 마을에서 고립된 채 살아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다.
노지 작물 재배와 자영농 중심이던 농업이 시설 작물 재배(하우스 농업 등)와 경영농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품앗이’ 같은 전통적인 인력 공급 방식으로는 인력 수요를 맞추기도 어려워졌다. 농업 규모화가 진행됐다지만 농번기와 농한기가 정해져 있고, 농번기라 해도 작물 가격 변동이 심하다. 농가 처지에서는 ‘바쁠 때’만 내국인 인력을 쓰고 싶지만 내국인 인력은 귀하다 보니 언감생심이다.
계절노동자, 산재·건강 보험 적용 안 돼
박씨 같은 대규모 시설 농가는 과거에 주로 중·노년 여성 노동력을 썼다. 남성에 비해 여성 임금이 더 저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농촌 지역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여성 노동력을 임시로 고용하는 것도 한계에 봉착했다(36~37쪽 딸린 기사 참조). 현재 농촌은 고령의 내국인 여성 노동자와 필리핀·베트남·캄보디아·우크라이나 등에서 온 상대적으로 젊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두 축을 이뤄 간신히 지탱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중에서도 고용허가제로 입국해 최장 4년10개월까지 일할 수 있는 이들보다는 계절노동자가 더 환영받기도 한다. 퇴직금 때문이다. 계절노동자는 단기 노동이라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반대로 이 지점이 일이 손에 익을 만하면 돌아가버리는 90일 단기 노동의 맹점으로 농가에 작용한다.
계절노동자에게는 건강보험, 산재보험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 계절노동자가 근무 중 다칠 경우,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 때문에 음성군에서는 예산을 통해 농가에 산재보험을 지원하고 있다. 제도 시행 초기에만 해도 기초자치단체는 계절노동자의 항공료(최대 40만원)를 지원했는데, 음성군처럼 이제는 제도의 맹점을 보완하는 식으로 지원하기도 한다.
기초자치단체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노동, 낮은 임금, 취약한 주거 환경 등에 노출되어 있는 계절노동자는 각종 노동 권리 구제망에서 비껴나 있다. 체류 기간이 짧다 보니 권리 주장을 하기도 어렵다. 농가와 계절노동자 사이 갈등 조정자 구실은 결국 기초자치단체가 해야 하는데, 지자체의 역량에 따라 이들의 처우는 지역별로 얼마든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음성·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농촌에서 밭일 하는 내국인 노동자는 누구?
대한민국 농촌에서 밭일을 하는 내국인 노동자는 대부분 70대 이상 여성이다. 마을을 지키는 사람도 사실상 할머니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자존감은 그리 높지 않다.
밭으로 들어가는 김정순씨(80)의 키는 6개월 동안 자란 고추 포기보다 작았다. 굽은 허리로 김씨가 밭고랑 사이에 쪼그려 앉았다. 맨손으로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 포대에 털어 넣은 김씨가 “여기가 다 내 친구들이야”라고 말했다. 7월31일 충남 태안군 이원면 관리3리 창촌마을의 한 고추밭에서 일하던 8명이 한꺼번에 웃었다. 모두 여성, 그리고 노인이었다. 이 중 절반인 4명이 김씨와 같은 80세였고, ‘언니뻘’ 되는 80대 여성도 둘이나 되었다. 나머지 ‘동생뻘’ 되는 두 명은 70대였다.
막내 격인 최복흥씨(72)가 “여기서는 내가 아가씨라니까”라며 웃었다. 2017년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낸 ‘저출산·고령화에 의한 소멸지역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태안군은 2040년 인구 소멸 위험이 높은 36개 군 중 하나다. 이 마을에서 그나마 젊은 편인 최씨는 창촌시니어자원봉사모임(시니어 모임)이라는 품앗이 모임을 이끌고 있다. 회원이 아니더라도 일손이 부족한 농가가 요청하면 함께 가서 밭일을 돕는다.
ⓒ시사IN 이명익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은 농촌 지역의 공통 현상이다. 위는 창촌시니어자원봉사모임 회원들이 고추를 따기 위해 밭으로 가는 모습.
시니어 모임이 전통적인 농업 방식인 품앗이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런 호혜만으로 농가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고추 농사는 고되다. 2월에는 모종을 심고, 5월부터는 모종을 밭에다 옮긴다. 8월 초 수확 철에는 특히 바쁘다. 사람 손으로 일일이 익은 고추를 골라내야 한다. 최복흥씨는 “논농사는 기술이 발전해 기계로 대체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밭일은 여전히 사람 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노동이 가능한 남성 노인은 논농사로 매우 바빴다. 3300~6600㎡ 규모 밭은 가족 또는 마을 품앗이로 일굴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벅차다.
특히 태안의 특산품 중 하나인 마늘은 ‘짧고 굵게’ 일해야 한다. 마늘은 5월 말부터 6월 중순 사이 집중적으로 수확한다. 보름 동안 끝내기 위해 단기간에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시니어 모임 같은 품앗이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일손이 부족한 마늘 농가는 태안읍의 용역업체에 전화해 젊은 일꾼을 데려온다. 용역업체가 모집해주는 ‘젊은 일꾼’은 대부분 중국·베트남·필리핀 등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다. 보통 새벽 6시30에 승합차를 타고 와 저녁 6시에 다시 승합차에 몸을 싣고 떠난다. 남성 외국인 노동자의 일당은 12만원, 여성 외국인 노동자는 9만원 수준이다. 사람을 모아온 작업반장에게는 한 명분에 해당하는 일당을 더 얹어준다.
ⓒ시사IN 이명익 창촌시니어자원봉사모임 회원들은 이 주름진 손으로 고추를 땄다.
50~60대 여성 품삯 노동자 구하기 힘들어
처음부터 외국인 노동력에 의존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 이 지역 밭농사는 인근 지역에 살고 있는 여성의 품삯 노동에 의존했다. 창촌마을 주민이자 한국여성농업인 태안군연합회 회장인 이재경씨(54)는 마늘밭 작업을 할 때마다 이웃 마을 지인에게 일할 사람을 모아달라고 부탁한다. 이웃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평생 농사를 지어 숙련도가 높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원북면 등 인접한 마을에서 10~20명 되는 인력을 일당 8만원에 ‘모셔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점점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보통 50~70대 여성이 품삯 노동을 하는데, 최근에는 이마저도 50~60대 여성은 꺼린다. 힘든 농사일 대신 인근 발전소 시설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웃 마을에서 온 이들은 요즘 70대 여성 노인이 대부분이다.
통계청이 지난 4월 발표한 ‘2018 농림어업조사 결과’를 보면 농가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44.7%다. 전체 인구 대비 고령인구의 비율이 14.3%인 데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1~2인 가구 비율도 높다. 1인 가구는 19.1%, 2인 가구는 54.8% 수준이다. 창촌마을에서도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사는 집은 61가구 중 세 가구에 불과했다.
이웃 마을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은 농촌 지역의 공통적인 현상이라 밭일을 할 사람들도, 마을을 지키는 이들도 대부분 70대 이상 여성 노인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농가 인구는 40대까지 남성이 더 많은 반면, 50대부터 성별 역전 현상을 보인다. 특히 60대 이상 인구를 따지면 여성은 약 71만명인데, 남성은 약 64만명에 그친다.
여성 노인들이 농촌을 지키는 셈이지만, 자존감이 그리 높지는 않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농업 부문에 속한 여성들은 응답자의 58.7%가 스스로를 ‘무급 또는 가족 종사자’라고 답했다. 일을 하더라도 그것을 ‘내가 운영하는 농업’이나 ‘임금을 받는 노동’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는 같은 조사에서 남성 농민의 84.8%가 스스로를 ‘고용원 없는 자영농’이라 답변한 것과 대조적이다.
충북 충주시에서 용역업체를 운영하는 이 아무개씨는 “그래도 그나마 농사일을 하려는 내국인은 할머니들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내국인 남성은 같은 일당이라면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걸 더 선호한다고 했다. 충북 음성군에서 만난 한 농민은 “아무리 할머니들이 밭농사에 능숙하더라도 젊은 사람들이 좀 더 힘이 좋다. 비슷한 가격이면 젊은 외국인 노동자를 구하는 편이 낫다”라고 말했다.
점심 무렵이 되자 밭에서 나온 사람들이 장화에 묻은 흙을 떨어냈다. 밭에서 쪼그려 앉아 있던 주민들은 소형 전동 휠체어를 타고 마을회관 앞 정자로 향했다. 4년 전 처음 창촌마을에 등장한 소형 전동 휠체어는 어느새 4대로 늘었다. 마을 정자에 도착한 사람들은 밥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전에는 그날 작업을 하는 밭주인이 집에서 새참이나 점심을 지어 직접 밭으로 실어 날랐지만, 이제는 대부분이 밥을 짓는 것조차 힘에 부친다. 새참이 사라지고, 품앗이가 한계에 달한 마을에서 나이 든 여성들이 겨우 농업에 기대 살아가고 있었다. 태안·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할리우드가 주목한 아시안 히어로
- 디즈니의 21세기 인어공주 역은 흑인이 맡았다. 아시아계 배우들이 영화와 드라마의 주요 배역을 꿰차고 있다. 유색인종 히어로의 등장은 시대 변화와 관객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1966년 12월 <뉴욕타임스>에 월트 디즈니의 부고 기사가 실렸다. “그는 (생전에) 7년 주기로 매 세대가 자신의 기존 작품들을 보러 극장으로 몰려들 거라고 주장했다. 실제로도 이를 통해 상당한 수익을 거두었다.” 그가 떠난 지 50여 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디즈니’를 보러 극장에 간다. 어릴 때 <알라딘>과 <라이온 킹> 애니메이션을 보러 갔던 30~40대가 실사 영화를 다시 찾고 있다. 디즈니의 ‘신규 고객’인 아이들을 동반하기도 한다. 1995년에 시리즈의 첫 편을 발표한 <토이 스토리 4>도 마찬가지였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디즈니)의 실사 영화는 원작의 설정을 살리되 캐릭터 변화를 통해 달라진 현재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1990년대의 원작과 완전히 같지 않다는 점이 신선함을 주지만 스스로 창조한 세계관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혹평을 받기도 한다. 최근에는 인어공주 캐스팅으로 논란이 일었다. 실사 영화 <인어공주>의 주인공 아리엘 역에 흑인 래퍼이자 배우인 핼리 베일리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 때문이다. SNS상에선 ‘#내 아리엘이 아니야(#NotMyAriel)’라는 해시태그가 돌기도 했다.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보던 흰 얼굴과 빨간 머리카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1세기 인어공주’의 탄생을 두고 참신하다는 평가와 원작의 설정을 무너뜨렸다는 반발이 이어졌다. 디즈니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디즈니의 방침은 확고했다. 디즈니 소유의 방송국 프리폼(Freeform)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불쌍하고 불행한 영혼들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덴마크인은 흑인일 수 없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일단 인어는 물속에 산다는 점을 환기하며 덴마크인이라고 가정하더라도 흑인에 빨간 머리카락일 수 있고 무엇보다 아리엘이 픽션 속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도 과거에 갇혀 애니메이션에 나온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놀랍고 뛰어난 재능을 갖춘, 아름다운 핼리 베일리를 캐스팅한 것이 탁월한 선택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오 저런….”
<인어공주> 아리엘 역의 핼리 베일리, <알라딘> 재스민 역의 나오미 스콧, <샹치 앤 더 레전드 오브 더 텐 링스> 샹치 역의 시무 리우, <이터널스> 길가메시 역의 마동석(위 왼쪽부터).
지금이야 ‘정치적 올바름’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디즈니는 오랫동안 정반대 이유로 비판을 받아왔다.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1994)에서 사자들이 미국식 억양을 쓰는 반면 악역인 하이에나는 흑인이나 히스패닉 억양을 썼다. 디즈니 최초로 ‘현실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 주인공이 등장한 <모아나>(2016)조차 남자 주인공에 대한 외양 묘사가 폴리네시아인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보여준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작품 속 공주들은 대체로 전통적인 성 역할을 답습했다. 배우 키라 나이틀리는 딸에게 디즈니의 일부 작품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밝혔다. 단적으로 인어공주는 남자 때문에 목소리를 포기한다. ‘예쁘고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못생기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신화를 반복해왔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상 첫 유색인종 공주는 1992년 개봉된 <알라딘>의 재스민이다. 이후 <포카혼타스>(1995), <뮬란>(1998)이 등장했고 <라푼젤>(2010)과 <겨울왕국>(2013) 등을 통해 여성 캐릭터의 성격에 변화를 주었다. 종전의 공주보다 주체적이고 강인한 이미지였다. 올해 개봉한 실사 영화 <알라딘>이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배경으로 아버지에 이어 술탄의 자리에 앉으려는 재스민 공주의 달라진 캐릭터가 한몫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토이 스토리 4>에 등장하는 여성 장난감 보핍 역시 지난 시리즈의 수동적인 성격과 달랐다.
주요 인물이 모두 아시아계 배우인 넷플릭스의 <우리 사이 어쩌면>(위)은 한 달 만에 3200만 뷰를 넘어섰다.
디즈니, ‘정치적 올바름’ 전략 선택
디즈니가 본격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전략으로 삼게 된 배경에는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차례로 인수한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마블 스튜디오, 루카스 필름이 있다. 인수 합병을 주도한 로버트 아이거 디즈니 최고경영자는 10년 전 <아이언맨>으로 주가를 올리던 마블 스튜디오 인수 당시 “5000개가 넘는 캐릭터를 보유한 보물상자”라며 전략적 관점에서 완벽하다고 말했다. 이후 회사 고유의 색깔을 살리면서도 다양한 캐릭터를 활용해 인종·민족·젠더의 편견에 맞서는 콘텐츠를 제작했고 이는 요즘 관객들의 요구와도 맞닿았다. 아이거는 “다양성은 중요할 뿐만 아니라 회사의 핵심 전략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디즈니의 이러한 세계관이 겉치레가 아닌지 의심하는 눈길도 있다. 다양성을 내세운 디즈니가 올해 영화 제작사 20세기폭스까지 인수하면서 영화산업 생태계 내 다양성을 해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건 아이러니다. 확실한 것은 그들의 전략이 주효했다는 점이다. 디즈니는 올해에만 최고 흥행작 6편 중 5편을 제작했다.
다양성을 기치로 내건 디즈니의 최근 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이번의 흑인 인어공주 캐스팅을 비롯한 유색인종 히어로의 등장이다. 지난해 개봉한 <블랙 팬서>는 북미 영화 흥행 순위에서 역대 세 번째 스코어를 기록했다. 마블 시리즈 최초의 흑인 히어로였다. 캐스팅의 90% 역시 흑인이다. 아시아계 히어로도 곧 등장을 앞두고 있다. 7월20일 마블 스튜디오는 앞으로 선보일 영화 10편의 라인업을 발표했다. 어벤저스의 여성 멤버였던 블랙 위도우를 비롯해 흑인(팔콘), 성소수자(발키리), 청각장애인(마카리)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히어로가 대기 중이다. 2021년 개봉 예정인 <샹치 앤 더 레전드 오브 더 텐 링스>의 주인공인 샹치 역은 중국계 캐나다인 시무 리우에게 돌아갔다. 세계 최고의 쿵후 실력을 지닌 히어로다.
시무 리우는 캐스팅 전부터 SNS를 통해 마블에 대시하기도 했다. “‘캡틴 아메리카’와 ‘토르’ 잘 봤다. 이제 아시아계 미국인 히어로 영화를 만드는 게 어떤가?” 2014년 그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5년 만에 현실이 되었다. 캐스팅 소감을 묻자 그는 “내가 (아시아계 배우들이 맡을 법한) 의사 역할이 아니라는 게 기쁘다”라고 말했다. 그는 SNS를 통해 “여기에 속할 권리를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말하기도 했다. 과거 <아이언맨 3>에 판빙빙이 출연했지만 중국 개봉 버전에만 모습을 드러냈고, 한국 배우 수현이 <어벤저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의사로 출연했으나 비중이 크지 않았다. 2024년 개봉할 <이터널스>에 캐스팅된 마동석 역시 눈길을 끌었다. 그는 초인적인 힘을 가진 길가메시 역을 맡았다.
실종된 딸을 찾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서치>(위)는 지난해 8월 개봉해 박스오피스 4위에 올랐다.
디즈니의 변화는 그들이 견인하는 할리우드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동안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배우들은 대체로 비중이 적은 조연이었다. 특히 ‘모범 소수민족 신화(Model Minority Myth)’ 이미지에 갇혀 역할이 한정되었다. ‘모범 소수민족 신화’란 사회학자 윌리엄 피터슨이 일본계 미국인의 사회경제적 성공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용어다. 아시아계 미국인이 ‘이상적인 소수자’라는 의미다. 미국 사회의 인종 문제를 다룬 책 <인종토크> (이제오마 올루오, 2019)에 따르면 이 신화의 고정관념에는 ‘높은 학력과 경제적 성공, 정치적 온건함, 근면 성실함, 수학과 과학 성적의 우수함, 엄한 양육방식’ 등이 포함된다. 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저자 이제오마 올루오는 이 용어가 ‘인종차별을 덮는 예쁜 담요가 되어 (아시아계 미국인을) 백인우월주의 사회구조에서 고통받는 다른 유색인종과 분리해낸다’고 지적한다.
아시아계 배우는 정확히 그런 이미지로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했다. 2000년 방영이 시작된 드라마 <길모어 걸스>에서 주인공 로리의 단짝 친구로 등장하는 레인 킴은 극중 한국인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의 한국인 엄마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그런 점에서 자유분방한 로리의 엄마 로렐라이와 대비된다. 2004년 방영된 미국 드라마 <로스트>에도 한국계 배우 대니얼 대 김과 김윤진이 부부로 나왔다. 어색한 한국어로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회자된 대사가 있다. “페이퍼 타월이 요기 잉네?” “요태까지 날 미앵한 고야?”
국내에서 성대모사가 될 정도로 어색한 한국어가 그대로 전파를 탈 수 있었던 건 한국어가 그만큼 소수자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극중 남편 진수(대니얼 대 김)는 영어를 못하고 가부장적이며 가정폭력을 일삼는다. 아내 선화(김윤진)는 시즌을 거듭하면서 강인한 캐릭터로 바뀌지만 처음에는 대단히 의존적인 인물이다. ‘전형성’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이런 작품들에는 어쨌든 아시아계 배우가 등장했다. 김지미 영화평론가는 “흑인들에게 스크린 위의 다양성이 균형 획득이라면 아시아인들에게 다양성은 존재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황해문화> 2018년 겨울호). 이후 스티븐 연이 <워킹 데드>에, 대니얼 헤니가 <크리미널 마인드>에 주요 캐릭터로도 등장했다.
2018년 8월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영화를 만든 존 추 감독은 “단순히 영화가 아니라 하나의 움직임이다”라고 말했다. 개봉 첫 주에 속편 제작이 확정되었고 3주 만에 누적 흥행수입 1억 달러를 넘어섰다. 뉴욕 대학 교수인 레이첼 추가 싱가포르의 엄청난 부자 남자친구 닉 영의 가족을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담은 작품이다. 아시아계 배우로만 캐스팅된 영화가 극장을 통해 개봉한 건 웨인 왕 감독의 <조이럭 클럽> 이후 25년 만이었다.
아시아인·흑인의 구매력 막강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이 영화로 자신들의 구매력을 증명했다. 개봉 첫 주, 관객의 44%가 아시아계였다. 아시안 커뮤니티에서 관람을 독려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미국 콘텐츠 산업동향’에서 이 현상을 두고 “그동안 할리우드가 백인 남성을 타깃으로 영화를 만들어온 전략의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과 무관심했던 아시아계 관객층이 티켓 구매력을 가졌다는 것을 시사한다”라고 분석했다. <블랙 팬서> 역시 첫 주 관객의 58%는 흑인이었다.
미국 영화계는 2018년 8월을 ‘아시안 오거스트(Asian August)’라 부르기도 했다. 실종된 딸을 찾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스릴러 영화 <서치>가 같은 달 개봉해 박스오피스 4위에 올랐다. 라나 콘도르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인도계 미국인인 아니시 차간티 <서치> 감독은 존 조를 캐스팅하기 위해 주인공을 한국계 미국인으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스타트렉:더 비기닝>에서 술루 역을 맡기도 한 존 조는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줄거리의 한 부분, 스토리텔링으로 소비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게 중요하다. 여타 미국 배우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시안 오거스트’를 환영하며 “더 많이 만들어져서 그 현상을 주목할 필요도 없을 만큼 충분한 성공을 거두기 바란다”라고도 했다.
최근 몇 년간 할리우드에는 인종과 젠더의 다양성을 요구하는 흐름이 있었다. 동양인 캐릭터에 백인 배우를 캐스팅하거나(White Washing) 아카데미상 수상자들이 대부분 백인(Oscar So White)인 걸 비판하는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진 게 대표적이다. 그들이 말하는 현실은 과장이 아니다. 서던캘리포니아 대학(USC) 스테이시 스미스 교수의 2016년 연구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5년까지 할리우드에서 개봉한 영화 800편의 캐릭터 중 73.7%가 백인, 12.2%가 흑인, 5.3%가 라틴계, 3.9%가 아시아인이다. 아시아계 이민자가 미국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8%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2월 한국계 미국인 샌드라 오가 <킬링 이브>로 골든글로브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아시아계 여배우로는 40여 년 만이다. 그는 시상식의 진행을 맡기도 했는데 시작에 앞서 “오늘 밤 무대에 오르는 것이 두려웠지만 여러분 앞에 서서 변화의 순간을 지켜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올해도 흐름은 이어졌다. 2019년 상반기 넷플릭스는 <우리 사이 어쩌면>을 선보였다. 어린 시절 단짝 친구이던 샤샤와 마커스가 15년 만에 재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로맨틱 코미디다. 주연배우 앨리 웡 부모의 출신지는 각각 중국과 베트남이고 남자 주연 랜들 박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주요 인물이 모두 아시아계 배우인 가운데 카메오로 등장하는 키아누 리브스의 아버지 역시 하와이 원주민과 중국인 혈통이고, 어머니는 영국인이다. 두 남녀의 인연을 너무 꼬아놓지 않은 이 유쾌한 영화는 한 달 만에 3200만 뷰 넘게 소비됐다.
미국에서 지난 7월12일 개봉한 아콰피나 주연의 <더 페어웰>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중국계 미국인 빌리가 폐암 선고를 받은 할머니를 찾아 중국에 가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가족 영화는 개봉 3주 만에 박스오피스 10위에 진입했다. 중국계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를 둔 배우 아콰피나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도 출연했고 올해 발표된 마블의 영화에도 캐스팅되었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속편은 내년 촬영을 앞두고 있다. 조연에서 주연으로 가는 길이 꽤 멀었다. ‘주인공의 친구’에서 주인공으로 옮겨가는 최근의 흐름은 고무적이지만 여전히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수가 적다.
키아누 리브스처럼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도 복잡할 혈통을 지니고 있다. 8분의 1은 백인, 8분의 1은 원주민, 4분의 1은 타이인, 4분의 1은 중국인이고, 4분의 1이 흑인으로 알려졌지만 그냥 흑인으로 불린다. 원 드롭 룰(One-drop rule) 때문이다. 어떤 인종이든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흑인이라는 의미로 백인의 우월적 지위를 긍정하는 용어다. 다시 인어공주로 돌아갈 차례다. 안데르센 원작의 <인어공주>에는 공주의 머리카락이 길다는 얘기만 나온다. 인종에 관한 언급은 없다. 덴마크 전문 미디어 <네이키드 덴마크>의 탄야 닐슨 에디터는 말한다. “순수 혈통(pure bloods)은 없다. 그러니 모든 인종이 인어공주가 될 기회를 공평하게 누려야 한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110년 전에도 똑같았던 그들의 주장
'아베 총리에게 사죄하겠다.'
최근 한 보수단체 대표가 외친 말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습니다.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보수단체뿐만 아니라 보수 유튜버들까지 '일본에 싹싹 빌어야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을 위한 길'이라며 정부에 대한 비난 강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대한민국이 발전한 것이 일본 덕분'이라는 건데요.
1909년, 사죄단
1909년 10월 26일, 조선총독부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와 만주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하얼빈에 도착합니다. 대한제국 의병 참모 중장이었던 안중근 장군은 한국을 합병하려는 초대 통감의 가슴에 총알을 날립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사망. 그리고 대한제국에 조직되는 단체 '사죄단', 당시 친일에 앞장선 일진회에서 주도한 단체로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에 대해 일본에 사죄하러 가겠다며 결성된 단체입니다.
그들이 내세운 '대한제국의 개명진보(開明進步 : 나라가 발전함)는 일본 덕'이란 구호가 오늘날 일본에 사과하라는 그들의 주장과 비슷합니다.
'일본에 사과하면, 일본이 대한민국을 발전시켜줄 것'이라고 말했던 사죄단. 그들이 이토 히로부미의 묘에 사죄한 그해, 대한제국은 한일합병조약에 따라 국권을 상실합니다.
일본 DHC, 한국 내 불매운동 즐기는가?
극우·혐한 논란 DHC TV, 비판 여론에 “언론 봉쇄” 주장
쿠팡·올리브영 DHC제품 판매 중단…사과 없는 이유는
“지소미아를 파기하면 문재인은 지워질 것이다.”(8일 DHC TV에서 한 패널의 발언)
한국 대통령의 신변을 겨냥한 막말을 비롯해 최근 일본 DHC TV의 극우·혐한·허위정보 콘텐츠가 국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DHC제품 불매 운동이 급속히 퍼졌다. 이런 가운데 DHC측이 공개적으로 “언론 봉쇄”를 주장하며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일본 DHC TV 야마다 아키라 대표이사는 14일 ‘한국언론에 의한 DHC 관련 보도에 대해’라는 제목의 공식 입장을 내고 “이번에 한국언론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내용에 대해 ‘혐한적’,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등의 비난을 하지만 우리는 프로그램 내 뉴스 해설의 한일 관계 담론은 사실에 근거했고 정당한 비평이며 언론자유의 범위 내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야마다는 자사에 비판적인 한국 언론에게 “프로그램 내용 어디가 어떻게 ‘혐한적’인지 어디가 어떻게 ‘역사를 왜곡’ 하는지 인상론이 아니라 구체적 지적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야마다는 “프로그램 내용과 무관하게 DHC제품에 서경덕 교수를 중심으로 ‘#잘가라DHC’ 불매 운동이 전개되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한국 DHC가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 현지 스탭과 DHC TV 프로그램 내용과 직접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며 “이런 상식을 넘은 불매 운동은 언론 봉쇄”라고 주장했다. 이어 “DHC TV는 온갖 압력에 굴하지 않고 자유로운 언론 공간을 만들고 지켜나가겠다”고 말했다.
DHC는 2000년대 초 한국에 진출해 화장품과 건강보조제 등을 팔고, 자회사로 DHC TV를 운영한다. 요시다 요시아키 DHC 회장은 과거 재일동포를 비하하거나 극우 정당을 지원했다는 논란으로 비판받았던 인물로 알려졌다. DHC TV는 지난해 9월 아베 총리를 2시간 인터뷰하고 매번 아베를 극찬하는 등 아베 내각과 친밀한 관계로, 극우 인사들도 자주 출연한다. 지난 12일 DHC TV에 출연한 자민당 의원이 “(한국이) 독도를 자기 멋대로 점유했다”며 막말을 늘어놨다.
일본 언론인들에게 DHC TV는 어떤 곳일까. 프리랜서 기자 오카모토 유카는 미디어오늘에 “아베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는 우익방송이다. 특히 오키나와 문제에 가짜뉴스를 계속 내보내고 혐오 발언이 심하다”고 설명했다. 마이니치신문 기자 요네무라 코이치는 미디어오늘에 “도라노몬 뉴스라는 프로그램이 비교적 유명하며 특히 온라인상에서 보수우익으로 인식되고 있다. 방송을 본 적이 없고 주변에서도 봤다는 사람이 없어 영향력은 제한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지난 13일 DHC TV 시사토크 프로그램 ‘도라노몬 뉴스’에 출연한 사쿠라이 요시코.
DHC TV는 현 상황을 즐기는 분위기다. DHC TV 시사토크 프로그램 ‘도라노몬 뉴스’에 출연한 언론인 사쿠라이 요시코는 논란이 불거진 지난 13일 “한국의 감정적 반응이 DHC 홍보도 된다”고 말했고, 불매운동에는 “어린애 같다”고 조롱했다. 사쿠라이는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라는 광고를 미국 신문에 홍보하는 일을 주도했던 인사로 알려졌다.
가미카제 특공대를 미화한 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아베 내각 추천으로 NHK 경영위원으로 활동했던 소설가 하쿠타 나오키는 같은 방송에서 “(한국사람들이) 아사히 맥주를 버린다. 실제로는 다 먹고 물을 넣은 거다. 보여주기 식으로 뿌린다”며 불매 운동을 폄훼했고 “한국의 현무2(미사일) 기술이 북한에 갔을 가능성이 있다”며 허위주장을 펼쳤다.
14일에도 산케이신문 논설위원 아비루 루이가 출연해 “(한국) 총리실 관계자가 ‘세계에서 한국이 없어서 곤란한 나라는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용케도 본심을 말하네 하는 느낌인데 한국은 정말로 바보인가”라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 내 비판여론에도 이들의 ‘혐한’ 콘텐츠는 줄어들 기미가 없다.
DHC TV의 적반하장식 태도로 국내 주요 화장품매장과 온라인쇼핑몰에선 DHC제품이 사라졌다. DHC 모델인 배우 정유미씨도 위약금을 무릅쓰고 광고 활동을 중단했다. 주요 창구였던 쿠팡과 올리브영도 DHC제품 판매를 중단하며 사실상 국내 유통망이 끊겼다. 13일 오후 DHC코리아는 “임직원이 모두 한국인”이라며 사과문을 올렸으나 본사와 조율 없는 내용이었고 대표이사를 뺀 등기임원이 모두 일본인이고 DHC코리아 지분 대부분을 일본DHC가 소유한 것으로 알려져 “진정성 없는 사과”라는 지적을 받는다.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일본 내 혐한 가짜뉴스 바로잡을 '미디어'가 필요하다
[기고] "한일간 풀뿌리 교류 중단은 평화연대의 중단"
한일관계가 악화된 지 1달 반이 지났다. 참 많은 일들이 많은 뉴스들이 쏟아졌다. 돌이켜보면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들도 많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한국 매스컴들이 일본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관련 뉴스를 생산해내는 것을 보며 때론 흐뭇하기까지 하다.
일본의 정치·종교 구조를 들여다보는가 하면, 야후재팬을 비롯한 일본 포털 사이트를 매일같이 들여다보고, 반평화적인 주장을 일삼는 일본잡지와 화장품회사 뉴스까지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렇게 많은 가짜뉴스가 일본에 떠돌아다녀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한국 매스컴의 자세 전환이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모르겠다.
사실 그동안 야후재팬을 들여다보기가 불쾌했고, 구글재팬을 켜면 보여주는 맞춤형 뉴스를 보기가 짜증났다. 작년 한해 한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으면서 제일 먼저 호소했던 것도 야후재팬에 뜨는 한국 관련 가짜뉴스 대책을 좀 세워달라는 것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가짜뉴스가 아닌 제대로 된 뉴스를 일본에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사실 일본 매스컴은 한국의 현 정권이 탄생할 때부터 우호적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한국의 현 정권에 친북-반일 프레임을 덧씌운 일본 매스컴의 한국 때리기는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았다. 진보적이라 불리는 일본 A티비 뉴스의 새로 등장한 젊은 앵커가 시종 비웃는 표정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비아냥대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 역시 한국발 가짜뉴스와 일본에서 확대 재생산된 한국비하 뉴스/정보들 때문이었다.
참다못해 야후재팬에 올라온 조선일보 기사들을 캡쳐해 SNS에 올렸는데, 정말 이 정도였냐는 듯, 한국발 가짜뉴스 관련 기사들이 몇 주 동안 봇물 터진 듯 쏟아졌다. 한편 반가웠지만 지금까지 대체 일본 주재 한국 공관들은 뭘 하고 있었던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짜뉴스 아닌 팩트 전달할 매체 절실
일본의 수출규제에 50-70%의 일본 사람들은 왜 찬성하는 걸까? 보통의 일본 사람들은 일본이 그토록 사과를 많이 했고, 돈도 많이 갔다 줬는데 한국은 왜 자꾸 돈을 더 달라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어떤 경제 전문가는 그 이유를 한국의 높은 취업난에서 찾기도 한다. 일본의 유효구인배율(구직자 1인당 일자리 수)이 1.61인 반면, 한국은 0.60에 그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의 상대적 고학력(대학진학률 일본50%, 한국70% 수준)에 따른 구인배율 저하, 전문기술직 산업예비군의 증가, 단순기능직 이주노동자의 증가 등을 설명했지만, 한국 경제가 곧 쓰러질 것이란 확고한 신념을 단념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한국발 가짜뉴스와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일본의 매스컴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이다.
한국의 현 정권은 손가락만 갔다대도 곧 쓰러질 것이고, 한국 경제는 간단한 수출 규제만으로도 제2의 IMF를 맞이할 것이라는 판단 역시 이들 가짜뉴스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 정권은 오히려 단단한 지지를 얻기 시작했고, 규제된 수출 품목은 우회통로를 개척해 가고 있으며, 규제된 일본 기업은 판로 개척에 애를 먹는 듯하다.
가짜뉴스를 생산하던 한국의 신문들은 일본을 향한 터무니없는 가짜뉴스 생산을 자제하기 시작했고, 대기업과 중소 소재 기업들은 상생관계 구축을 통한 양극화 해소(유효구인배율의 개선)로 나아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일본 포털사이트엔 왜곡과 헤이트, 마타도어가 넘쳐나고 있다. 한국발 가짜뉴스 생산은 줄어들었다지만, 한국의 제대로 된 정보가 일본에 제공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 매스컴이 제대로 된 한국 관련 정보/뉴스를 인용할 것인지도 문제(혐한팔이=애국마케팅과 시청률)지만, 일본어로 번역된 제대로 된 한국 관련 정보/뉴스가 제때 공급되고 있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자막을 단 한국의 뉴스방송(지난 촛불항쟁 당시라면 JTBC 뉴스룸)을 일본의 포털 혹은 유튜브 채널(알릴레오와 같은 형식의 일본채널)을 통해서 정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제공한다면(일부분이라도), 최소한 한국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정치·경제·사회·문화의 현주소가 어떠한지를 보통의 일본사람들에게 전달해 최소한의 균형잡힌 정보를 접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일 시민연대의 출발점은 올바른 정보-팩트의 공유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지자체 교류중단은 일본의 보통사람들을 평화연대의 길 아닌 반평화세력 아래로 떠미는 것
평화와 공생의 관점에선 다양한 정보/팩트도 아쉽다. 한국에 관심을 갖고 애정을 지닌 일본의 청소년들과 대학생들에게 동아시아 시민(한국 혹은 일본의 국가/국민이 아닌)의 평화와 공생의 관점에 선 다양한 정보/팩트(특히 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 또한 우리들의 당면과제라 할 수 있다.
영화 <동주>를 본 학생들이 하나같이 일본의 식민지 시기가 이 정도인줄 몰랐다며, 처음으로 상대방의 관점에서 식민지 시기의 역사를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고 한다. 특히 한국어(본인들이 그토록 열심히 배우고 있는)가 당시에는 금기시되었을 뿐 아니라, 창씨개명처럼 한국 이름을 버려야만 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 일본의 한류팬 학생들은 좋아하는 한국 뮤지션의 한글 명찰을 가방에 달고 다닌다.
우리 지역에서 개최되는 한국어·K-POP대회에 출전하는 백여 명의 중고생들이나, 도쿄 신오쿠보의 한국음식과 문화 쇼핑을 즐기기 위해 줄지어 늘어선 일본 청소년과 대학생들 역시 단지 모르고 있었을 뿐,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 <동주>는 차가운 당대 현실과 마음 따뜻한 일본인을 함께 그려 학생들의 공감능력을 배가시킬 수 있었는데, 이처럼 따뜻한 형식의 평화와 공생의 정보-팩트를 얼마만큼 잘 공급하느냐가 한일 평화시민연대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일들은 일본에 있는 연구자들의 몫이란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현지의 역량을 넘어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와 같은 한일간의 문제는 사실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촛불'을 경험한 한국의 시민들은 NO를 외치되 일본인 전체가 아닌 일본의 반평화세력에만 초점을 맞추기(NO재팬에서 NO아베로) 시작했는데, 이는 한일간의 평화와 공생을 향한 거대한 진보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의 시민을 평화연대와 공생의 파트너로 인정한 일대 사건이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생 공동체는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연대를 통해 이루어져 왔으며 또한 앞으로도 그래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한일-동아시아 환경 문제로, 이주노동자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선 다문화공생을 테마로, 생활협동조합이나 마을 만들기, 공정무역, 지속가능한 개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각각의 테마를 중심으로 교류하고 연대해 나갈 때 비로소 동아시아의 평화-생활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것은, 서울시를 비롯한 각 지자체가 풀뿌리 연대와 교류를 중단시키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풀뿌리 시민교류의 중단은 일본의 보통사람들을 평화의 길이 아닌 반평화세력의 발아래로 떠미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각 지자체와 시민단체들은 모처럼 형성된 한일 시민 평화 연대의 기운을 꺾지 말아주길 바란다
신명직 일본 구마모토 가쿠엔대학 동아시아학과 교수
지난해 공무원 '1만2천여명' 수사받았다
'힘 있는 부처' 범죄에 다수 연루
지난해 기소 5399명 … 41명 구속
지방공무원 비리 갈수록 심해
지난 한해에만 공무원 1만2000여명이 범죄에 연루돼 수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국토교통부와 검찰, 경찰, 국세청 등 소위 '힘과 돈'을 쥐고 있는 공무원들이 범죄에 다수 연루됐다. 정부와 청와대가 부패청산을 외치고 있지만, 이를 비웃듯 공무원 범죄가 좀처럼 줄지 않은 것이다.
경찰청이 12일 발표한 '경찰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8년 공무원 1만2167명이 범죄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이중 국가공무원이 3356명, 지방공무원이 5554명, 지방교육공무원이 2395명 등이다. 기관별로는 경찰이 1640명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법무부(304명), 교육부(280명), 과기부(263명), 국세청(179명) 순이다.
경찰 관계자는 "다른 부처나 기관에 비해 인원이 워낙 많아서 발생건수가 많다"며 "계속 자정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내려가는 추세"라고 해명했다.현원 대비 송치 비율은 국토부가 1.8%로 가장 높았다. 국토부는 지난해 현원 4187명 중 76명이 수사를 받았다. 그다음으로는 국회(1.6%)와 법무부(1.4%) 경찰(1.3%), 고용노동부(1.2%) 순이었다. 유형별로 보면, 전체 범죄 중 교통범죄가 4533명으로 가장 많았고, 횡령 및 배임을 포함한 지능범죄가 2630명, 폭력범죄가 1619명이다. 지능범죄는 2016년 2416명에서 2017년 2627명으로 계속 증가 추세다.
지방공무원이 연루된 범죄도 줄지 않고 있다.
지난해 수사를 받은 지방공무원은 5554명이며, 이중 특별시가 634명, 광역시 및 자치구가 1197명, 도와 시·군이 3695명이었다. 지방공무원은 2017년에도 5636명이, 2016년에는 5894명이 범죄에 연루돼 수사를 받았다.
지방 교육공무원의 범죄도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방교육공무원은 지난해 2395명, 2017년 2488명, 2016년 2713명 등이 수사를 받았다. 특히 현원 대비 송치 비율이 중앙과 지방을 통틀어 3.5%로 가장 높았다. 지방 교육공무원 지난해 정원은 6만7989명이다.
지난해 송치된 공무원 중 기소된 인원이 5399명이고, 이중 41명이 구속 기소됐다. 불기소는 모두 6418명으로 이중 2592명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았다. 따라서 공소시효 등을 고려하지 않으면 기소비율이 더 높아질 수 있다.
이처럼 현 정부 들어서도 공무원 범죄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청렴도를 조사하는 국민권익위원회에 공무원 범죄를 줄일 방안을 물었지만 "공무원 행동강령이나 부패방지법 위반 등 세밀한 부분에 주력하기 때문에 적절한 답변을 해 줄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20일 제4차 반부패정책협의회 모두발언에서 "정부 출범 2년이 되는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깨끗해지고 공정해졌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 할 때다"고 말했다. 방국진 기자 kjbang@naeil.com
문 대통령에 힘찬 박수를!” 정면만 응시한 황교안 대표
김원웅 광복회장의 박수 유도에
황교안 대표 박수 안 쳐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는 가운데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박수를 안치고 있다. 천안=청와대사진기자단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격려 박수에 응하지 않아 주목을 받고 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15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를 언급하며 “아베 정권은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를 과소평가했다. (일본의 조치에) 의연하게 잘 대처하고 있는 문 대통령에 격려의 힘찬 박수를 부탁드린다”고 박수를 유도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손학규, 바른미래당,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은 손뼉을 치며 호응했고, 문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객석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다만 황 대표는 손에 쥔 종이를 쥐고 정면을 응시했을 뿐 손뼉을 치지 않았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 "Kill Moon" 피켓 든 "엄마부대" 주옥순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가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기총 주최로 열린 "문재인 대통령 하야 국민대회"에서 "Kill Moon to save Korea(한국을 구하기 위해 Moon을 죽여라)"와 "MOON"을 칼로 찔러 피가 흐르는 그림이 그려진 피켓을 참가자들을 향해 들고 있다. ⓒ 권우성 오마이뉴스
누가 IMF위기를 말하는가?…1997년과 2019년을 비교해봤다
"~ 피해가 얼마나 크고 깊을지 가늠하기 힘들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악몽이 뚜렷하다. '경제위기 10년 주기설'도 되살아난다"
윗글은 한 경제지가 칼럼을 통해서 쓴 글이다. 미·중 무역갈등 속에 일본과의 갈등으로 우리 경제가 걱정된다며 IMF 외환위기까지 불러들였다.
"김영삼 정부시절 일본을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했다가 IMF 외환위기를 겪었는데, 이번에도 일본발 금융위기가 오지 않을까 두렵다
위 인터뷰는 한 경제지가 상장사 관계자가 한 말이라며 수많은 기업 중에 한 관계자, 그것도 이름도 밝히지 않은 한 관계자를 빌어서 한 인터뷰 내용이다. 그러면서 IMF 외환위기를 소환했다. 기사의 제목 역시 '일본발 제2의 IMF 사태 오나?'이다. 제목만 봐도 독자들은 불안하다. "정말 IMF 위기가 오나? 어떡하지?" 이렇게 말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IMF 위기론은 요즘 경제지를 중심으로 수많은 기사에서 등장하고 있다. 정말로 지금의 우리 경제 상황이 IMF 외환위기 때를 생각할 만큼 심각한 위기상황일까?
① 1997년, 단기외채 급증이 유동성 위기 불렀다…2019년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와 2019년 지금의 상황을 비교해보도록 하자. 사실 1997년 IMF 외환위기는 1년 전인 1996년에 있었던 전격적인 OECD 가입이 독이 됐다. 우리나라는 OECD 가입을 위해 자본시장 자유화를 하면서 제도적으로 단기자본을 쉽게 빌려올 수 있게 됐다. 은행들은 해외에서 단기자금을 빌려와 기업들이 투자하는데 빌려줬다. 그 돈을 빌려 쓴 기업들의 재무상태는 좋지 않았지만, 한국경제가 그 전에 계속 그래왔듯이 건전성보다는 기업 오너의 입김이 더 컸기 때문에 단기자금을 빌려와 쉽게 돈을 빌려줬다.
이렇게 해외 단기자본이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1991년 391억 달러에 불과했던 우리나라 외채는 1996년 1,047억 달러, 1997년 1,208억 달러로 3배 이상 증가했다. 해외에서 빌려온 돈의 58%는 단기 채무였다.
이때 단기자금을 빌려오는데 가장 앞장 섰던 곳이 바로 종금사이다. 재벌들도 종금사를 만들어 단기자금을 가져다 썼다. 종금사들은 3개월 단기로 자금을 빌려 빌려줄 때는 90% 이상을 1년 이상 장기 대출로 빌려줬다.
1997년 7월 말 기준 종금사가 빌려온 단기자금은 126억 달러, 장기자금은 75억 달러로 단기자금이 70%가량 더 많았다. 반면 이렇게 빌려온 돈으로 대출을 해준 것을 보면 단기 대출은 40억 달러, 장기대출은 160억 달러로, 단기로 빌려와서 장기로 대출해줘 대출 기간의 미스매치가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호황만 계속되면 문제가 없지만 위기가 와서 단기자금의 상환을 연장해주지 않고 외국계 자본이 갚으라고 하면 자금 만기구조가 일치하지 않아 돈을 갚을 수 없었던 상황이다. 바로 우리나라 종금사들이 그렇게 무너졌다.
1997년 태국 바트화 폭락을 시작으로 동남아 경제위기가 시작됐고, 위기감을 느낀 외국 자본들이 국내 종금사들에게 앞다퉈 단기자금 상환을 요구했다. 종금사들은 장기로 돈을 빌려줬기 때문에 당장 갚을 돈이 없었다. 종금사의 연쇄부도는 외화유동성 부족을 기하급수적으로 증폭시키고 은행들의 단기차입을 끊기게 했다.
그렇다면 2019년 현재는 어떨까? 지난 6월 말 기준 외채 규모는 4,198억 달러로 이 가운데 1년 안에 갚아야 할 단기외채는 1,757억 달러이다. 비중으로 보면 단기외채는 42%가량 된다. IMF 외환위기 직전인 58%와 비교하면 크게 낮고, 외환위기 한참 전인 1991년보다도 낮다. 특히 단기외채의 절반가량은 순수한 외채라기보다는 국내에 있는 외국은행의 지점이 본점에서 빌린 일종의 현금 흐름으로 볼 수 있다.
② 1997년 외환보유고 바닥…2019년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외환보유액이라도 많았으면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턱없이 적었다. 1997년 12월 18일 기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39.4억 달러까지 감소했다가 같은 해 연말 204억 달러로 조금 늘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외환보유액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2008년 2,012억 달러에서 올해 8월 말 기준 4,031억 1천만 달러까지 늘리며 창고에 달러를 많이 쌓아뒀다.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중도 1997년 말 286%였던 것이 2008년 74%, 2017년 27.7%로 줄었다. 올 3월 기준 31.6%다. 1997년처럼 갑작스러운 자금유출이나 외환위기에 대한 방어막이 그만큼 튼튼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대만 등 주변국과 비교하더라도 국제적으로 안정된 상황이라는 평가다.
③ 1997년 기업들의 무분별한 차입경영…2019년은?
1990년대 들어 진입이 허용되지 않았던 많은 업종에서 규제 완화와 함께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됐다. 자동차, 반도체, 철강 등에서 과잉투자가 이뤄졌고, 기업들은 너도나도 돈을 빌려 설비투자에 열을 올렸다. 빌린 돈을 갚아가면서 기업활동을 하면 문제없지만, 돈을 빌려준 곳에서 "당장 이달 안으로 돈을 갚아!"라고 할 경우 수익이 충분치 않고, 시장이 경색돼 자금줄이 막히면 부도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빌리더라도 적정한 규모로 부채비율을 조정해야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정부의 지원만 믿고, 마구잡이로 돈을 빌려서 과잉투자를 했다.
1997년 초 5조 7천억 원의 빚을 져 부도처리 된 한보철강을 보자. 정부의 비호 아래 대규모 대출을 끼고 제철소를 만들었지만, 한보는 사실 빚을 내서는 안 될 수준이었다. 1996년 6월 기준 한보의 자기자본 대비 부채비율은 1,893%나 됐다. 수많은 대기업이 자기자본으로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져 설비투자에 나섰다가 태국발 외환위기로 돈이 빠져나가자 연쇄 부도의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이다.
한보그룹은 특히나 심한 차입경영을 했지만 당시 우리나라 다른 기업들도 버는 돈에 비해 빌리는 돈이 너무 많았다. 1997년 우리나라 제조업 기업들의 평균 부채비율은 396.3%로 미국 153.5%(96년), 일본 193.2%(96년), 대만 85.7%(95년) 등과 비교해도 부채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2019년 우리나라 기업들은 외환위기 당시와 비교해서 얼마나 부채관리를 하고 있을까? 정말 IMF 위기를 떠올릴 만큼 부채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고 있는 걸까? 2018년 제조업 분야 부채비율은 63.9%, 전산업 부채비율은 91.5%로 안정적이다. 또, 올해 1분기 제조업 부채비율은 69%, 전산업 부채비율은 86.7%로 20여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채비율이 낮다.
결국, 지금의 우리 기업들은 외부 충격으로 자금시장이 경색돼 대출금 회수 압박이 오더라도 IMF 외환위기 때처럼 연쇄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얘기다. 물론 위기를 경고하는 것은 우리 경제에 미리 신호를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정확한 사실을 외면하고 잘못된 신호를 주게 되면 오히려 불안감만 일으켜 심리적 위축만 가져다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잘못된 신호는 어떤 의도가 있다고 의심을 사게 된다. /
집을 부동산으로 보면 삶이 떠돌이가 된다
국가건축정책위원장 승효상
‘빈자의 미학’ 화두 한국 대표 건축가
작년부터 국가건축정책위원장 맡아
3기 신도시 계획 등에 목소리 내
최근 수도원 순례 <묵상> 출간
“경제지수 12위, 행복지수는 54위
이 불균형에 건축 책임도 커
집을 공고히 유지할 생각 없으면
전부 유목민 떠돌이가 돼버려”
“자기가 살 집 알지도 못하고 사
아파트 후분양으로 바꾸는 게 맞아
랜드마크 말고 동사무소·파출소 등
일상에서 보는 건물에 공들여야”
승효상 건축가가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이로재건축사사무소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애석하게도 올여름 휴가 계획은 없다. 그러나 크게 억울한 마음을 먹고 있지는 않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일터로 향하는 잠깐의 시간 속에서, 땀을 한 바가지 흘린 뒤 먹는 빙수 한 숟갈 속에서, 서울에 올 때마다 만나는 환대의 얼굴들 속에서 짬짬이 틈을 노려 행복해할 줄 아는 기술이 생겼기 때문이다. 특히 얼마 전 읽은 승효상(67) 건축가의 <묵상>(돌베개, 6월 출간)이라는 책을 통해 나는 올해 여름의 확실한 휴가를 대체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로마에서 파리까지 14일간 2500여㎞에 이르는 수도원 순례 여정을 담은 500쪽이 넘는 두툼한 이 기록은 내가 함께 여행한다는 실감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색채에 현혹되는 일 없이 공간만을 분명하게 감각할 수 있도록 저자가 모두 흑백으로 찍었다는 유럽의 오래된 수도원들에서는 고집스러운 거룩이 진하게 묻어나왔다. 순례길의 시작부터 끝까지 저자를 따라다닌 불면처럼 나 역시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오래 붙잡고 있다 놓아버린 신앙의 손을 생각했다.
승효상 건축가의 고향은 부산 구덕산 아래 피난민촌. 해방 직후 월남했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부산으로 피난하게 된 부모님의 인생을 따라 그렇게 되었다. 그 뒤 부모님이 만들다시피 한 교회에서 먹고 자라면서 종교와 신앙심 역시 그에게는 그냥 주어진 자연스럽고 당연한 삶이었다. 그러나 점점 그 일이 당연하지 않게 여겨졌다. 신이 무엇인지, 내가 왜 신을 믿어야 하는지 끊임없는 질문과 의심에 시달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신학을 직접 공부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그는 결심했지만 정작 독실한 믿음을 가진 집에서 그의 결정을 반대했다.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너는 그림도 곧잘 그리니 건축을 공부해라, 꼭 서울대에 가라, 그래서 이 가세를 바로 세워달라, 눈물로 간곡하게 당부하는 누님의 부탁을 그는 거절하지 못했다.
오늘날 그는 마산 양덕성당, 경동교회, 하양교회 같은 종교를 위한 건축물, 신동엽문학관과 쇳대박물관 같은 예술을 위한 건축물,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 용산공원 같은 역사적 공간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약하는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가 되었다. 만약 두 갈래 선택의 길에서 원래대로 신학의 길을 밟았다면 오늘날 그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나는 승효상의 다른 얼굴이 계속 궁금했다.
잘못된 건축, 사람들 불행하게 만들어
지난 9일 저녁 승효상 건축가의 사무실이자 집이기도 한 ‘이로재’(이슬을 밟는 집이라는 뜻)를 찾았다. 지난달 팟캐스트 방송을 위해 처음 만난 뒤 두번째 만남이었다. 와인빛 녹의 옷을 입은 근사한 건물을 잠시 구경한 뒤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달 팟캐스트에서 ‘본인의 설계를 거쳐 지어진 건물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는 질문에 ‘아, 또 실패구나 하고 느낀다’고 대답하셨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지으면 분명 행복하실 겁니다’라고 확신하며 설계를 마치지만 막상 공사에 착수하게 되면 번번이 저의 무능력과 부족함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또 좌절하고. 이때까지 쭉 그랬습니다.”
―정작 선생님이 만드신 그 건물에서 사는 사람들은 충분히 만족해할 수도 있을 텐데요. ‘실패작이다’라는 말은 자칫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슬프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제나 제 건물에서 살아가는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렇지만 ‘실패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런 실패감이 ‘한번 더 도전하고 싶다’는 추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태 제가 이렇게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건축’이라는 말이 얼핏 이상주의적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냥 편리하게 지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지금 우리나라가 경제지수로 따지면 세계 12위입니다. 그런데 행복지수는 54위라고 합니다. 보통은 몇 나라를 빼면 경제지수가 높으면 행복지수도 같이 높아지거든요. 이런 불균형한 상태는 건축의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유엔에서 만든 행복지수를 따지는 기준을 보면 절반 이상이 집이나 도시환경에 있어요. 우리가 잘못 만든 건축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 겁니다. 우리가 사는 집은 집이 아니라 부동산이에요. 집이란 것을 공고히 유지할 생각이 없는 겁니다. 몇 년 후 집값 오르면 빨리 팔고 더 큰 집으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니 전부 유목민이고 떠돌이죠. 편리하다고 무조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건축은 오래 걸리고 더뎌서 그렇지 거기 사는 사람을 바꿉니다. 제가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만든 집에서 사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가능성은 있죠. 그들이 행복해지면 나는 정말 내 목적을 달성하는 게 됩니다.”
그는 행복을 위해 ‘편리’가 아니라 오히려 ‘불편’을 대놓고 시도한다. 대표적인 건축물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집, 수졸당일 것이다. 동선이 간단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그곳에 대해 승효상 건축가는 집 안에서 사람이 끊임없이 움직이기를 바라는 것이 건축 의도였다고 밝힌 바 있다.
“방과 방 사이가 길어지고 어떤 방은 외부를 통해서만 연결된다. 불편한 집이 되었다. 그러나 그 불편이 사유로 이어지고 가족의 단란을 만들며 결국 삶을 윤택하게 할 것이다.”(<승효상 도큐먼트>)
―건축가이니 모든 건축을 예사롭지 않게 보시겠지만 <묵상>이라는 책을 보니 평소에 여행 가실 때마다 그 일대의 수도원과 묘역을 찾아보는 것이 버릇이라 하셨어요. 특별히 끌리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는 묘역과 수도원을 통해 평화를 느낍니다. 묘역은 산 자를 위한 공간이에요. 죽은 자의 기억을 가지고 스스로 성찰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거죠. 거기에 죽은 자는 없습니다, 사실상 아무것도 없어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묘역은 삶의 마지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가장 본질적이고 절실한 감정을 느끼게 해요. 수도원 역시 죽음의 공간입니다. 살아 있지만 사회적으로 죽음을 선언한 자들, 자기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추방한 사람들의 공간. 묘역과 똑같아요. 묘역과 수도원의 공통점은 거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항복했다는 사실입니다. 묘역에 묻힌 사람들이 유한한 삶에 항복했다고 한다면, 수도원에 있는 사람들은 신에게, 진리에 항복한 사람들이죠. 거기엔 그래서 평화가 있어요. 결국 평화를 얻기 위해 가는 거예요.”
―묘역이나 수도원에서 느낄 수 있는 평화를 도시 안에서 느낄 방법은 없을까요?
“우리의 일상에서는 얻기 힘들지요. 우리 일상 속에는 탐욕, 분노, 거만 이런 것들이 항상 있잖아요. 이런 것을 다스릴 수 있는 영성의 공간이 옛 우리 건축들에는 있었습니다. 문방, 사랑방, 정자, 사당 같은 것들요. 오늘날 우리가 이런 공간들을 다 쫓아냈죠. 도시나 사회 속에서도 성스럽고 경건한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경건한 공간이라 함은 묘역이나 종교적 시설이나 그런 곳일 텐데, 교회들은 상업시설보다 더 못난 곳으로 변했고 묘역은 다 외곽으로 쫓겨났고. 저는 제가 만드는 건축에서는 항상 사유가 가능한 공간을 만들려고 합니다. 기능적이지는 않지만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건축에 대한 가치관은 언제나 한결같았나요?
“아닙니다. 저도 처음에는 건축에 대해서 몰랐습니다. 흔히 남들이 생각하는 대로 공부 잘하고 그림 잘 그리고 이래야 건축을 하는구나 그렇게만 알았는데, 그게 얼마나 허황된 생각이었는지 빈으로 유학을 갔을 때 알았습니다.”
가난할 줄 아는 건축을 찾아
그는 1971년 서울대 건축공학과에 입학했지만 반독재 학생운동에 따라다니느라 학교 수업에 소홀했다. 그럼에도 홀로 건축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졸업 뒤 바로 김수근 건축가의 제자로 들어간다. 하지만 1980년 일어난 광주민주화운동을 지켜보며 나라에 대한 깊은 환멸에 시달려 도피하듯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그곳에서 아돌프 로스라는 건축가를 통해 건축으로 혁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장식은 죄악이다”라는 말로 유명한 아돌프 로스는 관습과 전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던 19세기의 건축을 종결시키고 20세기 모더니즘을 연 건축가였다. 그의 대표적 건물인 ‘로스하우스’는 당대의 과시적 장식에 익숙한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파격적으로 덤덤한 건물이었고 그 때문에 경찰서까지 끌려갈 정도였다고 한다.
“아돌프 로스를 보며 건축을 통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구나, 확인했어요. 그러니까 내가 무엇 때문에 건축을 하게 된 건지 알게 된 거예요. 사람들과 사회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먹게 된 것이죠.”
그는 김수근 선생 문하에서 지낸 15년의 시간을 통과하고 독립하며 ‘빈자의 미학’이라는 화두를 세웠다. 금호동 달동네를 보고 영감을 받아 가난한 건축이 아니라 가난할 줄 아는 건축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는 그는 초대 서울시 총괄건축가(2014~2016)를 거쳐 지금은 국가건축정책위원장(2018.4~)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는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요?
“대한민국의 건축과 관련된 모든 정책을 심의하고 조정하고 자문에 응하는 일을 합니다. 둘러보면 건축이 아닌 일이 없습니다. 모든 정치나 경제활동의 결과는 건축으로 남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후손에게 전달되고요. 그게 우리의 삶을 바꿉니다. 이 위원회는 만들어진 지 꽤 됐는데 사실 그동안 제대로 활용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5기 위원장입니다. 원래는 이 자리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배들이 하도 해야 한다 강권을 해서 떠밀리듯 맡았습니다. 기왕 이렇게 맡았으니 작심을 하고 지금의 제도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끔 바꾸어보려고 집중하고 있습니다. 내년 4월이 임기 만료인데 온갖 일을 다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3기 신도시 아파트를 옛 방식이 아니라 새 시대에 맞게 짓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옛날 공급자 위주의 방식이 아니라 수요자 위주의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이지요. 아직도 기존의 시스템이 바뀐 시대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파트만 보더라도 정부가 얘기해서 건설회사가 지으면 선분양으로 판매합니다. 자기가 사는 집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산단 말입니다. 후분양으로 바꿔야지요. 내가 살 집이 어떻게 만들어진 집인지 알고 사야 하지 않겠어요?”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의 건축 시스템을 선진적으로, 혹은 그보다 더 좋게 바꾸려고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발주, 설계, 공사에 이르는 건축의 단계들이 모두 다 후진적이라고 그는 강하게 비판했다. “정부에서 설계를 맡기는 방법이 지금까지는 설계비를 무조건 싸게 써내는 사람한테 주는 식이었습니다. 그런 설계가 좋기 힘들죠. 그렇게 만들어진 게 우리나라의 동사무소, 파출소, 이런 건물들입니다. 국민들은 랜드마크 같은 걸 보고 살지 않아요. 동사무소나 파출소 같은 일상의 건축들을 보고 삽니다. 우리들이 항상 곁에 두고 마주하는 이런 건축들에 더 신경을 써야지요. 공정한 경쟁체계에서 좋은 건축가가 맡을 수 있게끔 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건축은 아무래도 재산에 관한 문제이다 보니 유착관계가 무척 많습니다. 비리 같은 것이 굉장해요. 아주 오래되고 광범위한 일이라 손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는 최근 새 광화문광장 조성사업과 관련해서 일부의 곱지 않은 목소리를 듣고 있다. 2021년 새롭게 바뀔 예정인 서울 광화문광장이 너무 ‘승효상 중심적’이라는 것이다. 광화문광장 재조성을 위해 꾸려진 광화문포럼이 제안한 안건이 있었지만 1년여의 검토 뒤 기본계획안으로 결국 채택된 것은 2005년 승효상 건축가와 당시 문화재청장이었던 유홍준이 공동으로 제시한 안이었다. 이 기본계획안을 바탕으로 국제설계공모를 해 지난 1월 당선작을 발표했는데, 이 공모의 심사위원장 역시 그였다.
“저는 더 좋은 안이 있으면 얼마든지 수긍할 마음으로 계속 임했습니다. 애초 광화문포럼에서 제안한 것은 차도를 지하에 만들고 지상을 다 도보로 하자는 것이었는데요. 이미 하부에는 지하철 노선 3개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상적이긴 하지만 공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하더라도 조 단위의 돈이 드는 일일 겁니다. 더군다나 차와 사람을 분리한다는 것은 옛날의 도시계획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공해만 더 유발하는 셈이 될 것이고 차량에 더 집중하는 꼴입니다. 분리하지 않되 통행이 우선인 도시를 만들어야지요.”
―서울시의 총괄 건축가였고 현재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인 선생님의 안이 이미 내정되어 있었던 게 아니겠느냐는 의심도 있었습니다.
“제가 제안을 했건 홍길동이 제안을 했건 그것은 저에게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일입니다. 저는 그것이 승효상의 위대한 작품으로 남길 바란다는 생각을 조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의 안은 그때보다도 훨씬 진전된 것이고요. 저는 앞으로 차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차의 불편함, 차가 유발하는 공해 때문에 다른 방법의 교통이 미래엔 등장할 것입니다. 저는 나중에는 사대문 안에는 대중교통을 제외한 모든 차량 통행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보행 위주의 길이 되어야 합니다. 그 첫 시작이 새 광화문광장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미래의 건축은 어떻게 돼야 할까요?
“인공지능(AI)은 건축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겁니다. 어떤 스타일이든 다 설계할 수 있는 세상이 될 거예요. 그러나 인공지능이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이 영성입니다. 건축이 살아남는 방법은 스타일이 아니라 본질을 계속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살아남는 것이 건축이 살아남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묵상>이라는 책도 썼습니다.”
마지막 책은 <빈자의 미학 해설판>
―<묵상> 이후의 책은 더 안 쓰실 건가요?
“제가 처음에 쓴 책이 <빈자의 미학>(1996년)이었습니다. 어떻게 살지 모르면서도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하는 선언과도 같은 것이었어요. 그동안 저는 그 선언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책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이야기할 수 있다면, 마지막으로 <빈자의 미학 해설판>을 쓰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성공한 건축물을 하나는 만들어야 할 텐데 큰일입니다.(웃음)”
―선생님은 어디에 기대며 사시나요?
“저는 제 불안에 기댑니다.”
―지독한 사람 같아요.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새롭게 운동하게 하고, 새롭게 시작하자 결심하게 합니다.”
―그 자양이 불안이군요.
“매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새 마음이 먹어집니다. 물론 이렇게 얘기하는 저도 잘 못해요. 그래도 노력하려고 합니다.”
―저는 감사가 참 힘들던데요.
“감사라는 건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입니다. 자신을 확신하지 못하면 감사할 수 없어요. 요조씨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별로 없다고 여겨지나요?”
―그런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최악의 경우엔 자신을 포기해버리게 돼요. 그건 정말 나쁜 겁니다.”
―그게 왜 나쁜가요. 타인한테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닌데요.
“한 세계를 포기하는 거예요.”
―어쨌든 자기 혼자 조용히 포기하는 거잖아요. “어떻게 혼자 있다고 생각하세요. 요조씨가 있기까지는 엄청나게 많은 역사가 있었어요. 그 역사가 사라지는 겁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통로라고 생각해야 해요. 모두가 받은 것을 이어주는 통로이지 자기 자신이 목적이 아니에요. 우리가 부여받은 의무입니다. 우리한테는 우리 자신을 격하시킬 권리가 없어요. 요조씨, 지금 이 얘기 한 걸 나중에 부끄럽게 생각할 겁니다.”
신을 향한 믿음 하나로 자신의 모든 것을 항복한 채 아무하고도 만나지 않고 깊이 숨어 살면서도, 은수자들은 외롭지도 두렵지도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끝없이 연결되고 이어져 내려온 자신의 역사를 감사로써 매일 체험하고 있기 때문일까. 나를 지긋하고 다정하게 나무라는 승효상 건축가의 얼굴은 어느새 오래전 꿈이었다는 신학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도 반박하지 못하고 순순히 밤길을 걸어 마로니에공원 앞 버스정류장에 앉아 나를 집으로 데려다줄 버스를 기다렸다. 오늘 내 경솔함을 부끄러워할 미래의 어느 날도 같이 기다려보기로 했다
노인들은 우리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노인의 디지털 소외, 생활에 불편 겪고 허위정보에도 취약
기술 및 허위정보 교육 이뤄지지만 일부만 수혜, 노인 내 수준차도 고려해야
“안 간다니까 왜 물어보냐.” 인기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 콘텐츠 가운데 ‘막례는 가고 싶어도 못가는 식당’편의 도입부다. 박막례 할머니는 키오스크(무인 판매기) 기계가 있는 햄버거 가게에 가자는 손녀의 말에 화를 낸다. “(그런 가게는) 바로 나와부러. 안 들어가. 너는 거기 가서 먹고 나는 (주문을 받는) 사람 있는 데 가서 먹으면 안 되냐. (기계 조작이) 그게 내 맘대로 안 된다고 자존심 상하잖어.”
가게에 입장한 박막례 할머니는 한참을 헤맨다. ‘불고기 버거’를 주문하고 싶었지만 수 많은 메뉴 가운데서 찾지 못한 채 시간이 초과해 여러번 다시 도전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메뉴를 선택했지만 카드 투입구를 찾지 못한다.
▲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 콘텐츠. 키오스크 기기를 다루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담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식당’편.
디지털 시대, 소외되는 노인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지난 2월 발표한 ‘2018 디지털 정보 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4대 정보 취약계층 가운데 장노년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63.1%로 취약계층 가운데서도 가장 낮았다. 세부 항목별로 보면 디지털정보화 접근 수준은 90.1%에 달했지만 디지털정보를 이용하는 역량 및 활용 수준은 각각 50.0%와 62.8%에 그쳤다. 접근은 하지만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는 삶의 질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원하는 메뉴를 주문하지 못해 키오스크 기기가 있는 식당을 피한다. 명절 때는 기차표를 예매하러 이른 새벽에 일어나 역에 달려가 줄을 선다. 인터넷으로 공문서를 다운로드하지 못해 일일이 공공기관을 찾아다녀야 하고, 간단한 은행 거래를 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은행을 방문해야 한다. 택시를 타려 해도 카카오택시 이용자와 달리 길가에 나와 지나가는 택시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야 한다.
지난해 시청자미디어재단이 주최한 미디어 교육 컨퍼런스에서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디지털 역량이 삶의 만족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그가 2017년 실시한 ‘노인집단 내 정보격차와 그에 따른 삶의 만족도 연구’에 따르면 독거노인, 부부노인 가구가 3세대가 함께 사는 노인들보다 디지털 접근성과 역량, 활용성은 물론 삶의 만족도까지 떨어졌다.
허위정보(가짜뉴스)와 노인 소외 현상이 관련 있다는 지적도 있다. ‘허위정보’의 생산과 유통을 추적한 기획기사를 선보인 김완 한겨레 기자는 시청자미디어재단 컨퍼런스에서 취재 과정에서 파악한 허위정보 유포 채팅방의 90% 이상이 중장년층이 소속된 방이라고 했다. 대부분 건강과 관련한 정보를 나누는 가운데 틈틈이 정치적 현안에 대한 글도 올라오는 식이다. 김완 기자는 “젊은 사람들이라면 한 눈에 봐도 진위를 의심할만한 수준인데, 진위 판단은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자신들의 경험에 따라 자신이 바라는 정보를 받아들인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이들은 전쟁을 겪었고 산업화에 기여했지만, 정치민주화는 자신들의 몫이 아니었고, 최선을 다해 살았으나 조명 받지 못했고, 1990년대 이후에는 디지털 문화에 적응 못하면서 소외를 경험했다. 사회적 소외를 받는 이들 입장에서 디지털은 위안을 주고, 자신과 같은 사람을 만나게 해줬다.”
허위정보 현상의 원인이 무조건 디지털 소외에서 비롯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태극기 집회 세력의 주장과 사회 보편적인 정서의 격차가 큰 것처럼 단절된 노인 집단이 특수성이 강해지는 건 분명하다. 그리고 이는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한 축이 됐다.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와 연계한 교육을 해온 정수진 부산 민주언론시민연합 마을미디어연구소장은 “미디어 활용도에 차이가 있고, 쓰는 미디어 플랫폼에 차이가 나고, 그 결과 문화가 달라지고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달라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키오스크에서 허위정보까지, 노인 디지털 교육 현황
노인의 디지털 격차 문제가 대두되면서 다양한 정책 대안이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는 의료기관 등에서 키오스크 기기를 만들 때 노인친화적으로 구성하도록 방안을 마련하거나 디지털 기기를 보급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못한다. 여러 부처에서 노인 디지털 소외를 해결할 주요 정책 과제로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다.
현재 국내 노인 대상 디지털·미디어 교육은 여러 기관에서 전국 단위로 시행되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올해 디지털격차해소팀을 디지털포용기획팀으로 개편하고 노인복지관 등과 연계하는 정보화 교육 및 노인 디지털 교육 전문 강사를 양성하고 있다. 또래 교육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결과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는 기관과 연계하거나 직접 교육을 한다. 서울시는 한국정보화진흥원과 협력해 교재를 만들고 ‘찾아가는 서울 문해교육강사’ 육성을 하는 식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각지의 도서관, 노인복지관 등과 연계해 미디어 강사를 파견해 교육하고 있다. 시청자미디어재단과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소속 미디어 센터들은 노인을 대상으로 한 영상제작 및 퍼블릭엑세스 교육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
▲ 실버넷TV에 올라온 한국정보화진흥원 키오스크 체험 교육 유튜브 영상 갈무리.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생활 ICT’ 교육을 특화했다. 키오스크 활용교육과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 사용법 교육, 인공지능 스피커 활용 교육 등이 대표적이다.
장년층 미디어인 실버넷TV 기자로 활동하며 정보화진흥원과 연계한 수업을 진행하는 정학규 강사(73)는 “올해는 주문결제 분야를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주문 결제 중에서도 음식점 키오스크 주문법, 구청 서류 발급, 인터넷 쇼핑몰 상품 주문, 교통 결제 등 4가지를 했다. 현장에서 직접 실습을 하면서 교육을 한다. 처음에는 키오스크 기기를 피하려고 하는데 교육을 하고 나면 자신감이 생긴다고 하시고 너무 좋아들 하셨다”고 했다.
미디어 교육 기관에서는 주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신문, 영상 등 활용·제작·리터러시 교육을 해오다 최근 들어 노인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 교육에 주목하고 있다. 올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실버세대를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실천 매뉴얼’을 개발해 도입했고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시청자미디어재단 역시 ‘생애주기별 미디어정보 리터러시’ 교재의 일환으로 시니어 파트를 만들어 노인 대상 미디어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두 기관의 교재는 공통적으로 미디어의 게이트키핑을 비롯해 뉴미디어 환경 속 허위정보와 확증편향 등의 문제를 다룬다.
정치적 사안 예민, 자신감 키우는 교육 필요
노인 대상 교육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뉴스 리터러시 교육의 경우 교재를 잘 만들어도 이미 자신의 가치관이 확고한 노년층이 교육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기에 ‘신중함’을 요구한다.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성향의 어르신이 계실 수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박점희 한국언론진흥재단 강사의 말이다. 그는 “수업 때 정치적인 이슈가 아닌 ‘건대입구 240번 버스 논란’을 두고 한 쪽의 입장에서 기록한 내용이 실체적 진실과 거리가 멀 수 있다는 점을 알게 했더니 다들 이해하셨다”고 설명했다.
김현경 한국언론진흥재단 강사는 “수업에 활용할 뉴스를 가져갈 때 신경써야 한다. 매체 성향에 따라 논조가 나뉘거나 사회적으로 예민한 이슈를 담은 뉴스는 가져가면 안 된다. 정치적인 논쟁이 시작되면 화제를 돌린다”고 했다. 그는 “팀을 짜서 의견을 나누게 하면 의견대립이 심하다. 싸움이 일어나면 분위기가 싸해진다. 그때 강사가 유머를 한다든지, 중재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고 했다.
정수진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 마을미디어연구소장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하거나 가짜뉴스나 나쁜 뉴스를 골라내는 수업이 아니라 뉴스에 대한 기준을 갖고 보는 방법을 연습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당장 바뀌지 않더라도 가급적이면 토론과 모둠 활동을 하도록 설계해 함께 이야기하고 토론하도록 유도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술 교육에서는 디지털 활용도가 떨어지는 노인 세대의 자신감이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정학규 강사(73)는 “햄버거, 국수집, 구청 등에서 실습을 했다. 함께 가서 교육하니 민망하게 느끼지 않아서 포기하지 않고 교육할 수 있었다. 이게 별거 아니라는 걸 알게 하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하늬 한컴캠퍼스 강사는 “(디지털 환경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게 원인이지 본인이 못하시는 게 아니라고 설명하면서 편안하게 접근 하실 수 있도록 하고, 재밌는 예를 통해 꼭 필요한 기능을 중점으로 설명을 해야 한다”며 “이분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기술적으로는 ‘반복’과 ‘눈높이’ 교육은 필수다. 김하늬 강사는 “교육 이후에는 집에 가서도 할 수 있도록 다시 접근하는 방법을 알려드려야 하고 한 번 배우고 돌아가시면 거의 대부분 잊어버리시기에 반복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미디어 관련 소프트웨어 교육을 주로 하는 광주지역 노인 미디어봉사단인 ‘미디어봉사단S’의 송현기 단장(72)은 “100번이라도 반복해서 얘기를 해야 한다. 화장실만 다녀오셔도 까먹으시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또 까먹었냐고 얘기하면 시니어들은 싫어한다”고 했다. 그는 ‘폴더’를 ‘석작(바구니)’이라고 하고 아트보드를 ‘도화지’라고 하는 등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바꿔 강의한다.
▲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미디어봉사단S의 봉사단 일러스트레이터 역량강화 교육. 사진=금준경 기자.
적극적인 일부 노인만 수혜, 노인 내 수준차도 고려해야
디지털이 단순히 기술 활용도를 높이는 것을 떠나 단절된 세대를 극복하게 하는 목표도 달성해야 한다. 김현경 강사가 미디어 교육 때 ‘소통’을 중심에 놓고 교육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는 “소통이라는 건 함께 의견을 내지만 한쪽 생각을 강조하지 않고 나란히 함께 가는 거라고 설명한다”며 “자식, 손주세대가 할아버지 할머니 의견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어르신들도 자녀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의 강의에는 ‘자녀에게 좋은 뉴스 선물하기’ 과제가 있다.
“변수가 너무 많은 현장이 바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현장이다. 교육 나가면 나갈수록 문제가 보인다.” 김현경 한국언론진흥재단 강사의 지적이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은 오랫동안 진행돼왔지만 변화한 매체 환경과 노인 세대의 특성을 반영한 교육은 아직 걸음마 단계로 개선해야 할 점도 적지 않다.
김현경 강사는 뉴스리터러시 교육을 하러 갔는데 글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읽더라도 유창하게 못 읽는 분들도 있어서 당황한 일화를 소개하며 “같은 노인이라도 해도 연령, 수준차 등이 크다”며 이를 고려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학규 강사는 “교육 시설을 찾는 이들이 정해져 있어 더 많은 노인에게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활성화가 돼야 한다”고 했다. 김하늬 강사는 “사용빈도가 적은 기능들이나 굳이 알 필요 없는 활용성 적은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이 커리큘럼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있다”며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교육내용을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준경 기자 teenkjk@mediatoday.co.kr
이것은 광고인가 뉴스인가, 노골적인 갤노트10 홍보
[민언련 방송 모니터보고서]
지난 7일(현지시각), 삼성전자는 미국 뉴욕에서 새로운 휴대폰인 갤럭시노트10(이하 갤노트10)을 공개했습니다. 민언련은 앞서 <삼성 갤럭시 8 공개, 저녁종합뉴스에서 홍보할 일인가?>(2017년 8월25일)와 <‘삼성 신제품’ 출시되면 똑같은 보도로 홍보하는 방송사들>(2018년 8월17일)에서 방송사가 삼성전자의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보도인지 광고인지 혼동될 수준의 보도를 저녁종합뉴스에 내보내는 문제를 지적해왔습니다. 이번에는 달라졌을까요?
지상파 3사․JTBC 보도 안 했지만, TV조선․채널A․MBN․YTN은 여전
우선 지상파 3사와 JTBC는 관련 보도를 내지 않았습니다. 지상파마저 모두 삼성 신제품 홍보성 보도에 집중하던 예전에 비하면 달라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TV조선․채널A․MBN․YTN은 저녁종합뉴스에서 갤노트10 출시 소식을 상세하게 전했습니다. TV조선․채널A․MBN․YTN의 보도는 올 하반기에 삼성전자 외에 다른 스마트폰 업체들도 신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덧붙이긴 했지만, 방점은 삼성전자 갤노트10의 외관과 기능을 소개하는 데 찍혀 있었습니다. 따라서 TV조선․채널A․MBN․YTN의 보도내용을 보면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지난 8월8일 삼성 갤노트10 공개 관련 방송사 보도 비교.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갤노트10의 외관과 기능 소개에 방점 찍은 보도
방송사들의 보도내용은 삼성 갤노트10의 외관과 기능을 보여주는 영상을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기자가 그 외관과 기능을 상세하게 소개했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했습니다. 특히 갤노트10에서 ‘S펜의 기능이 (이전에 비해) 강화됐다’는 내용을 보도에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 갤노트10의 S펜 기능 설명 담은 방송사별 기자멘트 비교.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채널A와 MBN은 기자 시연과 인터뷰 대상까지 동일해
특히 채널A와 MBN은 기자들이 S펜 기능을 시연하고 설명하는 것과 인터뷰 대상까지 동일했습니다. 먼저 기자들이 S펜을 시연하는 모습이 매우 흡사했는데요. 채널A <갤럭시 노트 10 공개… 최고 149만 원 ‘단점’>(8월8일, 김지환 기자)에서는 김지환 기자가 S펜을 시연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S펜에는 움직임을 인식하는 기능이 추가됐는데요. 스마트폰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이렇게 S펜만 돌리면, 직접 터치하지 않고도 화면을 확대하거나 축소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김지환 기자가 갤노트10 위에 S펜으로 “뉴스A 7시 20분”을 써 보이면서 “손 글씨를 곧바로 디지털 텍스트로 바꿀 수도 있고”라고 해당 기능을 설명했습니다.
MBN <‘S펜’이 마술봉으로>(8월8일, 윤지원 기자)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역시 윤지원 기자가 S펜을 시연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S펜’을 회전하거나 상하좌우로 움직이는 동작을 통해 화면을 터치하지 않고도 촬영모드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채널A처럼 자사 저녁종합뉴스 이름을 쓰면서 S펜의 기능을 보여주는 것도 같았습니다. 윤지원 기자도 갤노트10 위에 S펜으로 “MBN 뉴스8”을 써 보이면서 “손 글씨는 바로 텍스트 파일로 변환할 수 있게 됐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 8월8일 S펜 기능 시연과 설명 방식 동일한 채널A와 MBN.
채널A와 MBN의 동일한 리포트 구성방식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양사가 모두 대만 기자 ‘첸윤위’를 인터뷰했는데, 발언 내용도 갤노트10의 장점을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인터뷰 대상을 촬영하는 카메라 각도까지 동일했습니다.
▲ 지난 8월8일 갤노트10의 장점 설명하는 동일한 대상 인터뷰한 채널A와 MBN.
심의 결과, 이랬다가 저랬다가 해선 안 돼
민언련은 그동안 <삼성 갤럭시 8 공개, 저녁종합뉴스에서 홍보할 일인가?>(2017년 8월25일)와 <노골적으로 삼성 광고 영상 퍼 나르는 MBC·TV조선>(2017년 10월17일), <‘삼성 신제품’ 출시되면 똑같은 보도로 홍보하는 방송사들>(2018년 8월17일)을 통해 방송사들의 삼성전자 신제품 홍보 문제를 지적해왔습니다. 그리고 보고서를 발표한 이후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에 심의 민원을 신청해왔습니다. 그러나 방통심의위 심의 결과는 그때그때 달랐습니다.
먼저 2017년 8월, 갤럭시 노트 8(이하 갤노트8)이 출시되었을 때를 보겠습니다. <삼성 갤럭시 8 공개, 저녁종합뉴스에서 홍보할 일인가?>(2017년 8월25일)에서는 JTBC를 제외한 지상파 3사와 TV조선·채널A·MBN 종편 3사가 삼성전자 갤노트8를 노골적으로 홍보한 보도를 지적했고, 방심위에 민원도 신청했습니다. 이들 보도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46조(광고효과) “방송은 상품․서비스․기업․영업장소 등이나 이와 관련되는 명칭․상표․로고․슬로건․디자인 등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거나 의도적으로 부각시켜 광고효과를 주어서는 아니 된다”를 위반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심의 결과는 모두 기각이었습니다. 심의 테이블에 올라가지도 못했다는 뜻입니다. 당시, 방통심의위는 노골적인 홍보성 보도에 대한 민원을 기각하며 “정보를 제공하는 차원의 보도”, “우리 기업의 활발한 행보에 대해 각 기업의 제품 공개 일정에 따라 순차적으로 보도”, “일반적인 경제 보도와 비교하여서도 과도한 홍보성 내용이 방송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내용을 사유로 밝혔습니다.
2018년 8월 갤럭시 노트9(이하 갤노트9)가 출시되었을 때도 민언련은 보고서를 냈습니다. <‘삼성 신제품’ 출시되면 똑같은 보도로 홍보하는 방송사들>(2018년 8월17일)에서는 TV조선‧채널A‧MBN 종편 3사가 삼성전자 갤노트9의 출시 소식을 다루며 노골적으로 홍보성 보도를 내놓은 점을 지적했는데요. 이 역시 방통심의위에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방통심의위가 기각하지 않고 방송소위의 안건으로 올려 논의했습니다. 그리고 종편 3사의 해당 보도에 대해서 ‘의견 제시’를 결정했습니다. 방통심의위는 “국내 주요 기업의 신제품 출시 소식은 새로운 정보 전달의 차원에서 유의미한 보도라고 판단되지만, △소비자의 선택권을 존중해 경쟁사의 다양한 상품을 소개하고, △제품의 장단점을 고루 전달하여 시청자의 알권리를 위해 노력하는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해당 프로그램들은 정보전달의 범위를 넘어서, 특정 상품의 장점과 기능을 집중적으로 전달하고 있어 광고효과를 줄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결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 방심위 심의결과가 갈린 TV조선‧채널A‧MBN의 보도내용 비교.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TV조선‧채널A‧MBN 종편 3사의 갤노트9 홍보성 보도는, 불과 1년도 되지 않은 갤노트8에 대한 보도와 그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방통심의위의 심의결과만 ‘기각’과 ‘의견제시’로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 보도는 시청자를 위한 통상적 정보제공 차원의 보도가 아니라 홍보영상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송에 대해 계속 솜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이 적절한 것일까요? 방송사의 잘못된 보도에 대해서 방통심의위가 확고하고 명확한 기준으로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만 방송사들이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8월8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종합뉴스9>(평일), 채널A <뉴스A>, MBN <뉴스8>, YTN <뉴스나이트>
TV조선‧채널A의 노골적인 ‘한겨레 소외 작전’
[민언련 종편 모니터]
TV조선 <신통방통>,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 MBN <아침&매일경제>는 매일 오전 조간신문들을 중심으로 대담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세 프로그램은 방송을 시작할 때 진행자가 신문 기사를 보여주며 당일의 주요대담 주제를 전하는 공통된 포맷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이 코너는 각 방송이 어떤 이슈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어떤 신문사의 시각으로 사안을 전달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척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민언련은 7월15일부터 26일까지 방송한 TV조선 <신통방통>,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 MBN <아침&매일경제>중에서 신문별 주요이슈를 정리하는 코너를 분석했습니다.
가장 많이 인용된 신문은 조선일보… 정치‧북한 이슈 속 연예인 가십 놓치지 않은 종편
세 프로그램이 인용한 신문사를 분류해본 결과 가장 많이 등장한 신문은 조선일보였습니다. 총 141회의 인용 중 조선일보는 세 프로그램을 합쳐 27회(약 19.1%)를 차지했습니다. 이어 동아일보 22회, 경향신문 20회, 한국일보 19회 등 순이었습니다. 조중동의 경우 평균인용 횟수는 21회였던 반면, 한겨레‧경향의 평균인용 횟수는 17회에 그쳤습니다.
▲ 지난 7월15일부터 26일까지 종편 3사 신문프로그램 언론사별 인용횟수 (비율은 소수점 둘째자리에서 반올림).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주제별 분류에서는 정치 관련 보도가 전체 141회 중 54회, 약 38.3%를 차지했습니다. 이어 북한 19회, 사회 17회, 국방 14회 등 순이었습니다. 분석기간 동안 일본의 경제보복이 큰 이슈였던 점, 북한의 발사체 실험, 러시아 전투기 영공 침범 등 국방과 북한 관련 이슈가 많았던 점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주제별 통계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기타로 분류된 보도가 13회로 높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원인은 종편이 분석기간 동안 연예인 부부의 이혼 소식이 알려지자 이를 주요 사안으로 소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TV조선‧채널A의 노골적인 ‘한겨레 소외 작전’
프로그램별 분석결과에서는 일부 특징이 보였습니다.
먼저 TV조선 <신통방통>은 채널A‧MBN과 달리 중앙일보와 한겨레의 인용빈도가 크게 낮았다는 점이 특징이었습니다. 특히 TV조선은 한겨레의 기사를 분석기간 동안 딱 1번 인용했습니다. 전체 인용횟수에서 조선일보 다음으로 많았던 동아일보의 보도는 8회 중 3회가 기타로 분류됐습니다. 해당 보도들은 연예인 부부의 이혼 소식과 현대가의 자택 매매 등 사실상 시사대담 프로그램에서 다뤄야 할 가치가 떨어지는 가십성 내용들이었습니다.
▲ 지난 7월15일부터 26일까지 TV조선 ‘신통방통’ 언론사별 인용횟수 (비율은 소수점 둘째자리에서 반올림).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는 세 프로그램 중 유일하게 신문사별 인용비율이 비슷한 방송이었습니다. 하지만 신문사별 인용 방식에서는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조선일보의 경우 10회 인용 중 정치와 국방 주제가 8회였던 반면 한겨레의 경우 9회의 인용 중 기타가 4회였습니다. 특히 기타로 분류된 한겨레의 보도들은 <태풍 ‘다나스’ 북상 중…주말에 집중호우>(7월18일) 등 사실상 주요 현안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상 한겨레의 관점은 전달되지 않았다고 봐야했습니다.
▲ 지난 7월15일부터 26일까지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 언론사별 인용횟수 (비율은 소수점 둘째자리에서 반올림).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MBN <아침&매일경제>는 한국일보를 인용한 수치가 타사에 비해 높은 점이 특징이었습니다. MBN은 한국일보를 6회(약 15%) 인용했고, 주제 역시 정치, 사회 북한 등 다양했습니다. 또한 주제 선정에 있어 앞서 TV조선‧채널A에서 두드러졌던 사건사고, 기타 가십성 내용들은 MBN에서는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TV조선‧채널A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경제 관련 보도는 자매사 매일경제를 인용하며 전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 지난 7월15일부터 26일까지 MBN ‘아침&매일경제’ 언론사별 인용횟수 (비율은 소수점 둘째자리에서 반올림).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종편 3사 신문 프로그램 결국 자매사 확성기 역할에 그쳐
종편 3사의 각 프로그램별로 인용된 보도들을 분석한 결과에서는 한 가지 공통점이 보였습니다. 바로 자매사의 보도를 가장 우선시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 종편 3사의 프로그램들은 10일간의 분석기간 동안 자매사의 보도를 가장 많이 소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순서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채널A는 동아일보를, MBN은 매일경제를 10일 내내 가장 먼저 소개했고 TV조선도 조선일보를 가장 먼저 소개한 경우가 8회에 달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신문 기사가 아닌 자매사의 기사부터 소개하고 시작한 것입니다.
이후 두 번째로 전달한 보도에서는 TV조선은 경향신문(3회), 채널A는 조선일보(5회), MBN은 중앙일보(3회)를 가장 많이 다뤘습니다. 특히 채널A는 세 번째로 전달한 보도에서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4회로 가장 많았습니다. 즉, 채널A에서는 조중동 보도가 나온 뒤에야 경향신문 등 타 매체의 보도가 전달된 경우가 다수였던 것입니다. 이는 종편 출범 전부터 문제로 지적되어왔던 여론의 독과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통계였습니다. 결국 종편을 자매사로 둔 보수언론이 본인들의 담론을 방송을 통해 재생산 하고 있는 것입니다.
▲ 지난 7월15일부터 26일까지 종편 3사 신문프로그램 소개순서별 최다 인용 언론사 및 횟수.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조선‧중앙‧동아 18건 vs 한겨레‧경향 9건…일본 경제보복도 조중동 따라간 종편 3사
종편 3사에서 인용된 정치 관련 기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내용은 일본의 경제보복이었습니다. 총 37회 등장한 일본 경제보복 관련 기사들을 언론사와 프로그램 별로 분석한 결과에서는 TV조선과 채널A의 노골적인 진보매체 차별이 드러났습니다. 특히 TV조선 <신통방통>,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는 분석기간 동안 한겨레의 일본 경제보복 관련 보도를 단 1건도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TV조선과 채널A를 통해서는 한겨레의 관점을 전혀 확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반면 조선‧중앙‧동아의 보도는 TV조선이 5회, 채널A가 9회 인용하며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 지난 7월15일부터 26일까지 종편 3사 신문프로그램 ‘일본 경제보복’ 관련 보도 언론사별 인용횟수.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경향신문의 보도는 TV조선 3회, 채널A 2회, MBN 2회 인용되며 총 7회로 수치상 자주 인용되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향신문의 관점이 전달된 보도는 많지 않았습니다. 종편 3사는 경향신문 <문 대통령·5당 대표 '일 대응' 18일 만날 듯>(7월16일)과 같이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혹은 일정을 다룬 스트레이트 기사와 <정미경 “문 대통령, 이순신보다 낫다더라…세월호 한 척으로 승리”>(7월15일)와 같이 자유한국당 정치인의 발언을 다룬 기사들을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기간 경향신문에는 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해 <‘수출부진 늪’ 빠진 일본, 한국 규제 계속 땐 더 못 빠져나와>(7월16일)와 같이 분석을 기반으로 경향신문의 관점이 들어간 기사가 지면에 함께 실렸습니다. 그럼에도 종편은 이를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종편 3사가 유일하게 경향신문의 관점을 전달한 기사는 <조국의 ‘이분법적 여론전’>(7월21일)뿐이었습니다. 조국 전 민정수석의 SNS 활동에 대한 비판이 진보언론에서 나오자 그동안 외면했던 경향신문의 관점을 딱 1번 전달한 것입니다.
한겨레가 삼성의 불법승계 결정적 증거를 보도한 날, 채널A는 ‘호날두’를 선택했다
일본의 경제보복뿐만 아니라 종편 3사는 진보 성향 신문의 주요 기사들을 외면하는 모습을 반복했습니다. 지난 7월 26일 한겨레는 10면에 <단독-회계방식 바꾼 이유라던 복제약 승인…삼바 CFO ‘급조된 이벤트’ 실토>(7월26일, 임재우 기자)를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기업 가치를 부풀리는 과정에서 복제약 판매 승인을 이용했고, 이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최고재무책임자가 검찰에 증언했다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사기가 내부 관련자의 증언을 통해 입증됐다는 점을 한겨레가 단독 보도한 것입니다.
같은 날 한겨레는 <삼성 노조탄압 항의 54일째 단식 “고공농성 김용희를 살려야 한다”>(7월25일)를 통해 삼성 재직 시절 노조활동 탄압에 대한 사과와 명예회복을 요구하며 강남역에서 54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던 김용희씨의 사연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6일 유일하게 한겨레 보도를 소개한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7월26일)는 다양한 지면기사들 중 20면에 배치된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방한 소식을 다룬 <날두, 더운데…어서와!>(7월25일)를 소개했습니다. 국내 최고 재벌가의 불법 승계작업도,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기업에 사과를 요구하는 노동자의 단식투쟁도 아닌 해외 축구선수의 방한을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 지난 7월26일 한겨레의 다양한 기사 중 호날두 방문을 소개한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
이뿐 아니라 7월 22일 오후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의 자녀 부정채용 의혹에 대해 검찰이 불구속 기소를 결정하자 다음 날 한겨레 (7월22일), 경향신문 <검찰, ‘딸 KT 부정채용’ 김성태 의원 불구속 기소>(7월22일) 등이 이 소식을 지면을 통해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종편 3사는 23일 방송에서 한겨레‧경향신문의 지면에 실린 연예인 부부 이혼, 사건사고 소식을 전달했고, 결국 김 의원의 불구속 기소 사실은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 민언련 종편 모니터 보고서는 패널 호칭을 처음에만 직책으로, 이후에는 ○○○씨로 통일했습니다.
※ 모니터 대상 : 2019년 7월 15~26일 TV조선 <신통방통>,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 MBN <아침&매일경제>
일본 경제보복에 와중에 이재용 띄우기 집중한 TV조선
[민언련 종편 모니터]
지난 7월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에 대한 수출 규제를 공식화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제보복 속에서 유달리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에 주목한 방송이 있었습니다. 바로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입니다.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은 일본이 경제보복을 시작하자 이재용 부회장의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보며 삼성전자 걱정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경제에 대한 우려로 잠깐 삼성 이야기를 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이재용 부회장의 존재감을 키우는데 집중하려는 것으로 비칠 정도로 도를 넘어선 행태를 보였습니다.
외교 갈등의 중심에서 이재용을 외치다
TV조선이 어디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는 일본의 경제보복을 다룬 방송들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공식화 된 7월1일부터 갈등이 심화된 15일까지의 방송 중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은 6차례 일본의 경제보복 관련 대담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이중 무려 5번의 방송에서 삼성전자와 이재용 부회장이었습니다
▲ 지난 7월1일부터 15일까지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 일본 경제 보복 관련 내용 (색칠된 방송은 삼성전자 및 이재용 부회장을 언급한 대담).
TV조선에겐 일본 경제보복의 핵심이 삼성전자였던 것입니다. 물론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품목으로 지정한 불화수소 등은 반도체 제조 공정의 핵심요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반도체 관련 기업에 대한 대담이 등장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보복을 다룰 때마다 삼성전자와 이재용 부회장을 언급한 프로그램은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뿐이었습니다.
특히 7월8일부터는 이재용 부회장을 대담의 중심으로 놓는 모습이 노골적으로 반복됐습니다. TV조선은 대담을 시작하며 이 부회장과 함께 아베 신조 총리, 강경화 외교부 장관, 문재인 대통령을 나란히 내세웠습니다. 이번 사안의 핵심인물을 이재용 부회장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 지난 7월8일(위 사진)과 15일(아래 사진) 아베 총리,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을 나란히 배치한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
이재용 부회장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보여준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7월8일)은 이재용 부회장의 일정을 자세하게 소개했습니다. 진행자 엄성섭씨는 “일본이 보복성 수출 규제를 한 지 오늘로써 닷새째”라며 “예상보다 지금 훨씬 심각”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직접 일본 출장길까지 올랐”다며 이 부회장의 일본 방문을 강조했습니다. 출연자 문승진 기자 역시 정치권보다 경제계에서 훨씬 더 심각하게 이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며 “이걸 증명이라도 하듯 바로 이재용 부회장이 어제 오후 6시40분경에 수행원도 없이 혼자 바로 서둘러서 일본으로 향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동시에 등장한 자료화면에는 캐리어를 끌고 걷는 이재용 부회장의 모습이 나왔고 “일요일 밤 나홀로 일본 찾은 이재용 부회장”이라는 자막도 등장했습니다.
▲ 7월8일 이재용 부회장의 행적을 쫓아간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
문승진씨는 자료화면이 나가자 “보통 출장길에 오를 때는 임원이나 공식 수행원을 대동하는데 어제는 그냥 혼자 비행기에 오른 것”이라며 이 부회장이 홀로 출장길에 오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 설명했고, 진행자 엄성섭씨는 “어제는 주말 저녁이었잖아요, 또”라며 추임새를 넣듯 말했습니다.
이어 출연자 이루라 기자가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이씨는 “어젯밤 9시경에 이재용 부회장이 일본 하네다 공항에 도착을 하니까 현장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이 몰렸”다더니 이 부회장이 일본 입국 현장에서 보인 행동을 하나하나 설명하며 의미 부여를 했습니다.
이루라 기자 : 이재용 부회장 같은 경우에는 다소 굳은 표정으로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서 ‘일요일에 쉬지도 못하게 해서 죄송하다’ 이렇게 말을 남기기도 했거든요. 그러니까 본인 때문에 주말에 취재하게 해서 미안하다, 이런 뜻인 것 같은데. 어쨌거나 일본에서 누굴 만날 예정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극도로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습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사태가 외교적인 문제로 촉발이 되는 사안인 만큼 기업이 나서는 것으로 비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보면 좀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해석이 되고요.
TV조선의 대담은 다분히 초점이 이재용 부회장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이 부회장이 기자들에게 던진 말 한마디, 행동 하나까지 전달하는 것은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 아닙니다. 특히 당시 국민들의 일본에 대한 분노가 컸던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일거수 일투족을 중점으로 한 보도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더욱 의문입니다.
강경화 장관은 비판하고 이재용 부회장은 띄워주고
TV조선은 7월11일 방송에서도 일본의 경제보복을 다루며 이재용 부회장의 소식을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 부회장에 앞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행보를 먼저 비판했습니다.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7월11일) 진행자 엄성섭씨는 강 장관의 해외 출장 소식을 전하며 “일본을 갔나? 이런 생각이 당연히 들 수밖에 없는데, 그런데 강경화 장관이 간 게 일본이 아니라고 합니다”라며 출장지를 물었습니다. 여기에 윤태윤 기자는 강경화 장관의 아프리카 3국 순방을 마치 외교적 목적이 아니라 사심을 채우기 위한 결정인 듯 설명했습니다.
윤태윤 기자 : 한일 갈등이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 아프리카 순방길에 오른다고 하니까 아주 급박한, 뭐 급한 일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강경화 장관이 취임 초기부터 아프리카 중동에 관심이 굉장히 많았다고 하고 그래서 이번 순방도 해당 지역에 대한 강 장관의 각별한 관심이 반영된 그런 결과라고 합니다.
강경화 장관의 행보를 비판하는데 힘을 쏟은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은 ‘다른 한 사람’의 일본행에 집중했습니다. 진행자 엄성섭씨는 “그런가 하면 강경화 장관이 아프리카로 갔는데 일본에서 며칠째 또 돌아오지 않고 있는 분이 있어요”라며 언급했고 윤태윤씨는 “그렇습니다. 지난 7일 일본으로 출국한 후에 5일 동안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 화면으로 만나보겠습니다”라며 소개했습니다. TV조선이 중요한 손님을 소개하듯 설명한 인물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당부하신 대로 확실한 1등을 하겠다”고 연설하며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이재용 부회장이었습니다.
영상이 끝난 뒤 진행자 엄성섭씨는 “이재용 부회장, 그러니까 휴일에 수행원도 없이 급하게 일본으로 갔었는데 아직도 일본에 있는 거예요?”라며 앞선 방송에서 소개한 내용을 다시 설명했고, 윤태윤씨는 이재용 부회장의 길어진 일정의 원인을 분석하는 듯하더니 삼성이 위기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윤태윤 기자 : 알려진 바에 따르면 오늘 오후에 귀국을 한다고 전해졌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의 일본 출장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위기가 이만큼 힘든 게 아니냐, 위기가 더, 위기 수위가 점점 높아진 게 아니냐 이런 해석도 나오고 있는데. 실제로 삼성전자는 창립 50년 만에 초유의 위기를 맞았다는 말이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영업 이익 악화에다 한일 외교 갈등에 따른 또 공급망 붕괴 위기까지 겹친 그런 상황이거든요. 거기다가 또 검찰 수사로 리더십 마비까지 우려되는 그런 최악의 상황이라고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강경화 장관의 행보를 비판한 뒤 이재용 부회장의 행보를 보여준 TV조선의 구성은 다분히 의도적이었습니다. 예정된 순방을 그대로 이행했을 뿐인 강경화 장관은 마치 사심을 채우려는 듯 설명하고,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일주일간 일본에 머물렀다는 설명은 TV조선의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과 같았습니다. 특히 삼성의 위기를 자세히 분석하는 것은 TV조선이 아니라 삼성이 할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고군분투하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방해만 한다?
이렇게 이재용 부회장의 행보와 정부 인사의 행보를 비교하며 비판하는 행태는 15일에도 이어졌습니다.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7월15일) 진행자 엄성섭씨는 “급하게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가 엿새 만에 귀국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요. 비상 경영을 선포”했다더니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대일 발언은 갈수록 지금 강경해지고 있습니다”라며 이재용 부회장은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TV조선은 이 부회장의 귀국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자료화면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을 받으면서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자신이 실수로 부딪힌 기자에게 ‘미안해요’라고 말하는 모습이 나올 뿐 별다른 내용이 없었습니다.
▲ 지난 7월15일 이재용 부회장의 귀국 모습도 보여준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
이를 두고 문승진씨는 이 부회장이 “긴급 출국한지 엿새만에 돌아왔”다며 “엿새간이나 일본에 머무는 탓에 하고 싶은 말도 많았을 텐데도 다소 좀 피곤한 모습의 이재용 부회장은 이 출장 성과를 묻는 질문에 입을 굳게 닫은 모습”이라 설명했습니다. 진행자 엄성섭씨가 “이재용 부회장이 혹시라도 수출 규제의 해법을 갖고 오는 게 아닌가, 이런 관심이 있긴 있었”다고 언급하자 문씨는 “일본의 수출 규제는 국가 간 외교 문제로 지금 촉발한 사안”이라며 “적극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굉장히 또 조심스러웠던게 아니냐 이런 또 해석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에 진행자 엄성섭씨는 “이재용 부회장이 그러니까 공개적으로 뭐라 말도 못 하고 참 답답한 상황일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이 부회장의 상황을 공감했습니다.
이렇게 이재용 부회장의 입장을 공감한 뒤 TV조선은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지적했습니다. 진행자 엄성섭씨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일 발언은 지금 점점점점 고조되고 있”다고 설명했고, 윤태윤씨는 “경제인들은 피해를 최대한 막으려고 동분서주를 하는데 오히려 대통령이 이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며 문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했습니다.
이후 TV조선은 문 대통령이 전남에서 “전남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이 서린 곳입니다”, “전남의 국민들이 이순신 장군과 함께 불과 12척의 배로 나라를 지켜냈습니다”라는 연설 장면을 보여줬습니다. 영상이 끝난 후 윤태윤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을 향해서 아마 작심 발언을 했다는 평가가 나오는데 특히 이 같은 발언은 애초에 원고에 없었던 발언”이라며 영상에 나온 문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 삼았습니다.
정부 비판과 삼성 걱정 틈새에 ‘삼성 신제품 광고’까지 놓치지 않은 TV조선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을 걱정하는 대담은 이 부회장의 일본 방문 전에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7월3일) 진행자 엄성섭씨는 “일본의 경제 보복에 삼성과 SK가 초비상”이라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루라씨는 문재인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언급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찾아서 반도체 산업의 세계 1등이 돼 달라면서 정부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정부간의 갈등이 기업에까지 불똥이 튄 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해외 언론에서도 외교 문제와 경제 문제를 연관시키는 것은 국제 통상 규칙에 어긋난다며 일본에 대한 비판이 나온 상황에서 이루라씨는 그 책임이 우리 정부에게 있는 듯 묘사한 것입니다.
이후 TV조선은 삼성전자의 신제품 테스트 과정을 자료화면으로 보여줬고 이루라씨는 “저기 보시는 게 이달 출시가 유력한 삼성전자의 갤럭시 폴드”라며 제품을 설명했습니다. 여기에 진행자 엄성섭씨는 “이거 화면이 완전히 그냥, 완전 접히는데요”라며 감탄했습니다. 이루라씨는 “이걸 만들기 위한 핵심 기술 역시 일본에서 수입한 그 소재”가 필요하다며 “이게 없으면 생산이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씨는 “삼성 측이 두 달 치 제고를 확보한 것으로는 알려졌”지만 “목표로 했던 연내 100만 대 생산에는 적신호가 켜졌다”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의 방송을 정리하면 ‘일본 수출규제로 삼성전자가 위기다’ ⟶ ‘문재인 대통령은 지원하겠다고 말했으면서 불똥만 튀긴다’ ⟶ ‘삼성전자 신제품이 수출규제로 생산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내용을 본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마치 정부 때문에 삼성전자가 피해를 본다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삼성이 여기서 왜 나와?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의 삼성에 대한 마음은 다른 뉴스를 전달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났습니다. 가사도우미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중기 DB그룹 전 회장의 소식을 전하던 중 TV조선은 갑자기 삼성가를 소환했습니다.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7월16일) 출연자 이도운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기업인들이 초심 잃고 사업의 어떤 목표를 잃거나, 목표를 잘못 세워 쓰러지는 상황이 많”다며 김중기 전 회장을 비롯한 몇몇 기업가들의 부도덕적 행태을 지적하더니 대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들을 보면 나름 기업가 정신이 살아있”다며 삼성가를 칭찬했습니다.
이도운 문화일보 논설위원 : 삼성, 현대 이런 기업을 보면은 삼성은 이병철 회장이 어쨌든 삼성을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었고 그 아들 이건희 회장은 그래도 삼성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 아들 이재용 회장은 지금 여러 가지 논란도 있고 어려움도 있습니다만 세계 최고 기업으로서 삼성전자를 유지하기 위해서 활동을 하는데 지금 여러 가지 위기가 한꺼번에 와서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 7월16일 재벌가의 성폭행 의혹에 느닷없이 삼성가 칭찬한 이도운씨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
이도운씨가 “최고의 기업”이라는 단어를 3번이나 써가며 칭찬한 기업이 삼성이라는 점은 쉽게 이해하기 힘듭니다. 특히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다른 재벌 소식을 전하다 할 발언은 아니었습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뉴스타파 <삼성 이건희 성매매 의혹…그룹 차원 개입?>(2016년 7월21일)를 통해 성매매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단순히 풍문으로 전해진 의혹이 아닌 실제 증거 영상이 보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사건입니다.
또한 이재용 부회장을 언급하며 사용한 “논란”이란 단어는 삼성 바이오로직스의 회계사기와 이를 이용한 불법 승계 의혹을 의미했습니다. 즉, 이도운씨는 삼성 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와 불법 승계를 “논란”이라 축소하여 발언한 뒤 이를 이 부회장의 “어려움”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이도운씨는 국민에게는 “불법”이고, 이 부회장에게는 “어려움”인 삼성가의 기업 승계 작업을 이 부회장의 관점에서 전달한 것입니다.
바이오로직스는 사라지고 이재용만 남았다…TV조선은 ‘삼성본부 핫라인’인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의 관점을 전달한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에서 절대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바로 ‘삼성 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입니다. TV조선이 뜬금없이 삼성을 소환해 칭찬하고 걱정하는 동안 검찰의 삼성 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수사는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7월5일, 검찰은 그간의 조사로 회계사기가 이뤄졌다는 잠정 결론을 내리고 김태한 삼성 바이오로직스 대표를 한 달여 만에 다시 불러 회계사기 의혹을 조사했습니다. 이 내용을 다룬 경향신문 <검찰, 삼배 김태한 대표 재소환...이재용 부회장 조사 임박>(7월5일, 조미덥 기자)은 검찰이 “분식회계로 회사 가치를 부풀린 뒤 이를 근거로 이뤄진 대출과 유가증권시장 상장, 임원 상여금 지급 등에 회계사기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며 수사상황을 전달했습니다.
이어 7월10일 한겨레 <단독-안진 회계사들 “삼성 요구로 합병비율 보고서 조작”>(7월10일, 임재우 기자)는 삼성물산 의뢰로 합병비율 검토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회계사들이 최근 검찰 조사에서 “삼성이 요구한 합병비율에 맞추기 위해 제일모직 가치는 높이고 삼성물산 가치는 낮추는 식으로 보고서 내용을 조작했다”고 진술했다는 단독 보도를 냈습니다. 이렇게 조작된 안진의 합병비율 검토 보고서는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는 주요 근거로 활용됐고, 2015년 합병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사실상의 기업 승계를 완성했습니다. 또한 회계사들의 합병 비율 보고서 조작 실토는 이후 있을 이씨의 국정농단 대법원 선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TV조선이 이재용 부회장의 행방을 전하는 동안 한겨레 <조작된 ‘1대0.35’…이재용 위해 국민 노후자금 수천억 날려>(7월11일, 최현준‧임재우 기자) 등 삼성가 승계의 불법성을 밝혀내는 기사들은 연이어 나왔습니다. 하지만 TV조선은 이재용 부회장이 일본에 가고 오는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할 뿐 삼성가의 승계와 관련된 불법성은 단 한 마디도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이 추구하는 것은 ‘삼성과 관련된 보도’인지 ‘삼성 홍보’인지 헛갈리는 이유입니다.
※ 민언련 종편 모니터 보고서는 패널 호칭을 처음에만 직책으로, 이후에는 ○○○씨로 통일했습니다.
※ 모니터 대상 : 2019년 7월 1~15일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
홍콩 시위와 중국을 보는 눈
홍콩에서 내려진 오성홍기
새로운 뉴스와 새롭지 않은 시각
지난 6월 초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홍콩 시위의 불길이 몇 달째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홍콩 시위대는 자발적이고 때로는 창발적인 방식으로 도심 시위와 연대 파업 등을 이어나가고 있다. 며칠 전에는 홍콩국제공항 점거농성으로 공항의 업무가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일도 있었다.
한편, 이렇듯 장기화되고 있는 홍콩 시위를 중국의 중앙정부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두고 불안하기만 한 예측성 기사들이 주요 뉴스로 타전되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홍콩의 접경지역인 선전에 집결하고 있다고 알려진 가운데 홍콩 시위대에 대한 강경 무력 진압 가능성이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그로부터 1989년에 발생한 천안문의 비극이 다시금 상기되기도 한다.
이처럼 홍콩 시위와 관련된 '새로운' 뉴스들을 하루건너 전해 듣지만 그 뉴스에 접근하고 또 반응하는 방식에서 드러나는 '전혀 새롭지 않은' 상투적 문법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요컨대 홍콩 문제에 내포된 역사적 복잡성을 간과한 채, 대개는 중국과 홍콩의 대립 내지 정부와 시민의 대립이라는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의 국가권력의 문제로 쉽게 환원해 버리는 데 그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단편적인 이해방식이 중국이라는 국가를 바라보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더 공고히 하는 식으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뒤따른다. '오성홍기'에 자연스레 시선이 머무르게 되는 이유이다.
'오성홍기'와 홍콩 시위
중국의 국기인 오성홍기가 최근 홍콩 시위의 전개 국면에서 주요 키워드로 등장하고 있다. 8월 초 홍콩의 시위대가 '홍콩 독립'을 외치며 빅토리아 하버 부둣가에 걸려있던 오성홍기를 끌어내려 바다에 내던졌다. 이 사건을 두고 중국의 주요 매체들은 중국의 상징인 국기의 훼손을 곧 국가 존엄의 훼손이라고 규정하고 중국 정부의 강력한 대처를 요구했다.
이와 정반대로 며칠 전부터는 SNS를 중심으로 '오성홍기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중국어권 연예인들의 게시글과 관련된 뉴스가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다. 게시글의 내용 그대로 '오성홍기를 수호하는 14억 명'의 중국인 중 자신도 포함되어 있음을, 다시 말해 중국 정부에 대한 지지 의사를 명확히 밝힌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홍콩 경찰'로 대변되는 국가 공권력에 대한지지 표명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물론 그들 직업의 특성상 중국시장을 의식한 불가피한 전략적 선택일 수도 있으나 여기에서 그 복잡한 내막을 파헤칠 일은 아니다. 그들의 입장이 아마도 상당부분 중국 '국민'의 의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 정도를 할 뿐이다.
이 '오성홍기'를 마주한 홍콩과 중국 측의 서로 엇갈리는 의견 표명은 어떤 의미에서 홍콩 시위 문제에 접근하는 주류적인 해석방식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바다에 내버려진 오성홍기에 대한 의미 규정이 이른바 '국기의 수호'라는 다분히 국가주의적 반응 양식에 입각하여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고민해볼 여지가 있다.
그런 까닭에 오성홍기에 실린 홍콩 시위의 의미란 국가의 권위와 존엄을 상징하는 그야말로 '실체'로서 '반중국' 대 '친중국' 간의 대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된다. 국가권력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고 중국의 국민으로서의 호명에 적극적으로 찬동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홍콩 시위로부터 제기된 다양한 질문은 쉽사리 왜소해져 버리고 만다.
이 시점에서 1949년 신중국의 출범과 함께 국기로 공인된 오성홍기의 역사성을 다시 되새기는 것은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여기에서 이른바 '1949년'으로 귀결되는 중국공산당의 전사를 줄줄이 읊을 일은 아니다. 다만 당시 오성홍기에 새겨진 '새로운 중국'의 지향이 지금처럼 국가주의로 수렴되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만은 짚어두고 싶다.
오성홍기의 '五星' 가운데 중심에 있는 가장 큰 별이 중국공산당을 지시한다는 사실은 꽤 알려져 있지만 나머지 네 개의 별이 각각 노동자, 농민, 소자산계급과 민족자산계급을 뜻한다는 것까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를 두고 중국공산당의 영도에 방점을 찍을 수도 있겠으나 이 네 개의 별은 근대 중국의 대안적 혁명세력으로서 중국공산당이 어떤 정치적 정당성 위에 서고자 했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새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합정부와 혼합경제로 대변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정체성 표명은 단순한 정치적 타협의 결과라기보다는 근대 중국을 관통하는 혁명의 주된 목표였던 '민주변혁'에 대한 실천적 경험 및 해석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근대 중국의 역사가 곧 국민국가의 수립이라는 목표와 궤를 같이 했고 그것의 달성을 위해 민족주의적 동력이 무엇보다 긴요했지만, 적어도 새로운 한 시대를 열어젖힌 중국공산당의 이른바 '勝因'(승인)은 민주와 항일(민족주의) 의제를 결합시키고 평화와 민주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적극적으로 받아 안았던 데 있었다. 1949년 오성홍기에 각인된 중국의 국가적 정체성은 최소한 '하나의 중국'이 아니면 모두 배제하고 억압하는 지금과 같은 국가주의적 운위에 기반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중국에 대한 우리의 질문 양식
다른 한편으로 홍콩 시위에 등장한 오성홍기가 '반중국'과 '친중국'이라는 반/국가주의의 표현 도구로서 활용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다분히 단순화된 구도를 통해 홍콩 시위의 제 양상을 관찰하는 것이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자칫 홍콩 시위에 대한 관심이 이미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반중'이라는 정서를 재생산하고 강화시키는 소재를 또 한 차례 '발견'하는 것 정도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관해 어떤 논의를 시도하건 결국 '기-승-전-일당독재'로 끝나게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중국을 대면하는 방식은 다분히 단선적인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홍콩 시위 문제를 사실상 한국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거의 유일한 관점이라 할 수 있는 권위주의 내지 전체주의라는 구도 속에 바로 용해시켜 중국에 대한 비난의 근거를 재삼 확인하는 하나의 사례로 삼는 것으로는 홍콩 시위로부터 가시화된 복잡다단한 현실과 현상들의 역사적·구조적 연원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홍콩 시위에 대한 인식과 중국을 보는 눈이 서로 직결된 것이라면 과연 중국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면서 동시에 성찰적이고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홍콩 시민들의 외침을 바로 눈앞에서 마주하는 있는 지금, 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들과 연대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에 대한 우리의 질문 양식은 달라져야 하지 않는가/김하림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연구교수 /프레시안
Mr,Blue Sky (Electric Light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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