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후에너지부? 문제는 환경부야 2. 재생에너지 탓? 사이버 공격? 스페인 ‘14시간 정전’이 보여준 위기 3. ‘전기 먹는 하마’ AI, 원전이 해결책일까 4. 재생에너지 탓? 사이버 공격? 스페인 ‘14시간 정전’이 보여준 위기 5. 부산 버스 준공영제, 예산 범위 초과하는 ‘만성 적자’ 운영 체계·지원 구조 개편 절실 6. 두려움의 뒷면을 만나다 7.인간-자연 이분법 너머, 선유도공원에서 8. 식민주의 떨쳐낸 새로운 국제 반핵연대가 익어간다
9. 물 뜨끈뜨끈해진 동해로 방어 등 난류성어종 집단이주 10.‘큰금계국 우후죽순’ 11.‘경북 경주 육통리 천연기념물 회화나무 노거수 12. 제주 한라산 정상에 산악열차...대한노인회·대기업 황당 콜라보 13. 16주년 갈맷길, 확 바꾼다 14.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취소해야" 환경단체 가처분 신청
15. 가덕신공항 올해 착공 무산… 부지조성 5200억 불용처리 16. "바다 살리려면 9개 나라 더 필요" UN해양총회 명과 암 17.‘"태아 시절 기후재난 노출, 뇌 발달에 악영향“ 18. 제주서 껍질 벗겨진 후박나무 43그루 발견
19430ppm 돌파한 이산화탄소… 혹독한 여름 예고에 ‘기후에너지부’ 시동 건 이재명 정부 20. 가평 잣이 사라진다… 4천t 달하던 생산량 2023년 24t에 그쳐 21. 멸종위기 붉은점모시나비, ‘강원도 삼척’ 최대 집단서식처 확인
22. 겨울철 동해안 별미 도루묵 여름에도 잡혀…바다 온난화 원인 23. 지도에 없던 섬, 갑자기 솟았다...기후위기 때문 24. 제주 바다 덮친 수천 마리 잠자리 떼…"기후 변화 영향 25. 문경 주흘산, 중국 장가계에 견줄 만한 세계적 명소 만든다 26. 가덕도 신공항, 지금이라도 재고하자 27. 아파트는 모래를 먹고 자랐고, 대한민국은 한강을 먹고 자랐다
기후에너지부? 문제는 환경부야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재선을 노리던 조지 H W 부시에게 면박 주던 빌 클린턴의 이 말은 널리 퍼진 유행어 중 하나가 됐다. 아주 성공적이었던 당시의 선거 표어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인용된다. 그런데 여전히 올바른 해법일까? 경제 우선의 당위가 지금도 유효한 것일까? 단언컨대 아니다. 2025년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가 아니다. ‘성장’도 아니고 ‘개발’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생존’이다. 생존을 위한 해법을 풀어내야 한다. 그 해법에 성장과 개발은 후순위 중 후순위다. 하지만 여전한 타성, 토건 개발을 발전과 등치시키는 관성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정부가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본격화할 모양이다. 통합 부처를 신설한 나라들의 온실가스 감축률에 큰 변화가 있었다는 분석을 보면 기후에너지부 편제가 좋은 수단일 수 있겠다는 기대도 생긴다.
물론 몇가지 전제가 있다. 무엇보다 기후에너지부가 기후위기 해소를 위한 첨병 역할이 아니라 또 다른 신산업 육성의 부흥 부서로 전락해선 곤란하다. 그리고 재생에너지 확대는 설비 확충을 넘어 공공성 강화를 통한 사회적 수용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또 에너지 생산만큼 수요관리가 중요하다. 에너지 수요관리 정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대표적으로 피크 수요관리를 들 수 있겠다. 전력 피크는 발전 설비 용량을 결정하고 막대한 비용을 유발한다. 피크 완화를 위해 수요 반응을 유도하는 혁신이 필요하다. 더해서 한국의 전력 생산과 소비 구조의 지역 간 불균형·불공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수도권의 막대한 전력 소비를 위해 특정 지역이 희생하는 구조가 수십년째 지속됐다. 에너지 분권, 에너지 민주주의가 구현될 때 지속할 수 있는 전환도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의 대전제는 안전과 지속 가능함이다. 탈핵이 기본 원칙으로 자리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기후에너지부 신설이 아니라 환경부의 정상화가 아닐까? 기후위기 대응 실패의 본질은 환경부가 제대로 된 규제자로 기능하지 못한 데 있기 때문이다. 생물다양성 위기에 대응하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부는 환경부가 규제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내려놓게 했다. 환경부도 환경산업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대통령이 그렇게 만들었다. 장관은 여러 차례 경제단체를 찾아가 “환경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기업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환경영향평가 간소화를 추진했다. 2023년 환경부 업무 목표에 ‘100조원 환경산업 수출’을 내걸었으니, 환경산업부의 등장은 현실이었다. 전 세계가 녹색 전환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한국의 환경부는 산업역군으로서 자리매김하고자 했다. 보호지역에 개발 사업을 들이고, 가뜩이나 구조적으로 부실한 환경영향평가 제도를 무력하게 비틀고,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화학물질 관리와 규제도 기업 편에서 손봤다.
기후위기, 생물다양성 위기를 가장 앞서 막아내야 할 부처가 환경부다. 기후에너지부 신설로 에너지 전환의 추진력이 확보되어도 환경부가 규제부처로서 제대로 서지 않으면 실패의 경로는 확실하다. 결국 핵심은 기후에너지부 신설이 아니라 환경부인 게 맞다.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 경향
재생에너지 탓? 사이버 공격? 스페인 ‘14시간 정전’이 보여준 위기
초유의 정전 사태로 스페인이 대혼란의 하루를 겪었다. 동네 마트와 경찰서는 비상이 걸렸고, 사람들은 휴대용 라디오와 손전등을 찾아 나섰다. AI 시대는 취약함을 드러냈다.
4월28일 대규모 정전으로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 광장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켜고 있다. ⓒEPA
4월28일 월요일 낮 12시 33분(현지 시각), 스페인 전역에 전기가 끊기던 순간, 발렌시아 근교의 작은 마을 알무사페스에 거주하는 나의 시어머니 레메 로렌테(74)는 강아지 린다와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던 중이었다. 기온 21℃, 구름이 살짝 끼긴 했어도 화창한 날씨였다. 평일 한낮의 공원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 몇몇과 놀이터에서 공을 차며 노는 어린아이들뿐이었다. 뭔가 좀 이상하다 싶었던 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거리에 평소보다 사람이 많이 나와 있었다. 웅성거리며 대화하거나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사람들을 지나 집에 도착했을 때, 레메는 나가기 전 작동시켜둔 세탁기가 멈춰 있는 것을 보았다. 안에는 빨래가 여전히 젖은 채 들어 있었다. 버튼을 눌러도 세탁기는 반응이 없었다. 전등 스위치를 켜고 수화기를 들어봤다.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았다. 옆 건물에서 구두 수선 일을 하는 이웃 카를로스를 찾아가 무슨 일인지 물었다. 카를로스가 말했다. “아니, 온 동네에 난리가 났는데 아무것도 몰랐어요?”
레메도 거리에 나온 사람들 무리에 합류했다. “알무사페스에만 끊긴 게 아니래, 전국에 다 전기가 나갔대.” “오늘 M이 셋째 아기 낳으러 병원 가지 않았어? 괜찮으려나?” “푸틴이 한 짓이야, 틀림없어.”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물론이고 곧 휴대전화와 인터넷도 끊겼다. 레메는 오래된 배터리 작동 라디오를 가지고 있어서 뉴스를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어떤 사람들은 자동차 라디오로 뉴스를 들었다. 뉴스를 들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 내용을 공유했다.
같은 시각, 동네 마트에도 비상이 걸렸다. 냉장고와 냉동고가 멈추었고 카드 결제가 되지 않았다. 현금이 없는 사람들 중 일부는 외상 장부를 쓰고 물건을 사갔지만 손님이 정신없이 쏟아져 들어오자 마트는 외상 판매도 멈추고 문을 닫아버렸다.
해가 지자 마을에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가로등 불빛 없는 거리는 어둠에 잠겼고 촛불이나 손전등을 든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서성거렸다. 골목을 순찰하는 경찰차의 확성기에서 끊임없이 안내가 나왔다. “전기 끊겼다고 경찰서에 전화하지 마세요. 지금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단전 신고가 넘쳐서 다른 업무가 마비된 상태입니다. 다른 큰일 있으면 그때 전화하세요.” 레메는 비교적 침착했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었다. 집에 휴대용 라디오나 손전등이 없던 사람들은 밤 늦은 시각 불안해하며 이웃집 문을 두드렸다. 뒷집에 사는 또래의 노인은 불안 발작을 일으켰다.
마을에 전기가 다시 들어온 건 다음 날 새벽 3시경이었다. 잠을 자고 있던 레메는 그 시각 간호사의 전화를 받고 깨어나 전기가 복구된 걸 알았다. 레메처럼 혼자 살면서 지병이 있는 노인들을 위해 긴급 상황 발생 시 손목에 찬 장비의 버튼을 눌러 의료기관을 호출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 서비스가 있는데 정전 동안 이 서비스도 먹통이 됐다. 전기가 돌아오자마자 담당 간호사가 노인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돌린 것이었다.
정전 당시 셋째 아기를 낳으러 병원에 갔던 M은 무사히 출산을 했다. 병원에 있던 비상 발전기는 긴급 수술에만 쓰여서, M의 분만실에는 전등 하나만 최소한으로 켜두었다고 했다. 레메는 “병원 상황이 어찌나 급했는지 빨리 분만을 끝내고 다른 환자를 보러 가려고 간호사가 M의 배 위에 앉아 아기를 밀어냈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그렇게 4.2㎏의 건강한 아기가 태어났고, 알무사페스 주민 대부분은 또다시 발생할지 모르는 정전에 대비해 배터리 라디오와 휴대용 손전등으로 ‘완전무장’을 마쳤다고 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프랑스 일부 지역까지 영향을 미친 초유의 정전 사태는 이렇게 마무리된 것일까. 레메가 사는 마을 알무사페스에서는 다행히 큰 사건 사고가 없었지만 스페인 전국적으로는 대혼란의 하루였다. 갈리시아에서 일가족 세 명이 발전기 사용 오류로 인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고 마드리드에서 촛불 화재로 한 명이 사망하는 등 현재까지 스페인에서만 정전 관련해 일곱 명이 숨진 것으로 보고됐다. 기차 총 116대가 선로 위에 멈췄고 승객 3만5000여 명의 발이 묶였다. 냉방장치가 멈추고 물과 음식이 제한된 기차 안에서 사람들을 구출하는 과정을 오스카 푸엔테 스페인 교통장관이 소셜미디어 X를 통해 중계했다.
재생에너지 때문? 사이버 공격?
이유가 무엇일까. 이베리아반도 전체에 약 14시간의 정전을 불러온 전례 없는 사고임에도 그 원인은 여전히 불명확하다. 4월28일 10시33분께 약 5초 동안 15기가와트(GW), 스페인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60%에 해당하는 전력 손실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스페인과 프랑스 전력망이 분리되어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는 사실만 확인되었다. 유럽위원회는 정전에 대한 독립적인 보고서를 6개월 내 작성해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큰 사건이니 서두르지 않고 제대로 진상규명을 하겠다는 의지다.
정식 조사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현재 원인으로 지목되는 주요 가설로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스페인의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늘었음에도 에너지를 관리, 통제하는 전력망이 불안정해서 순식간에 큰 정전 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이버 공격이다.
우선 불안정 재생에너지 전력망 가설을 살펴보자. 스페인 전력회사(부분 공기업)인 레드 엘렉트리카(Red Eléctrica)에 따르면, 스페인은 지난해 전체 전력 생산량의 약 57%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했고(풍력 23%, 태양광 17%, 수력 13% 등) 2030년까지 이 비율을 81%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는 현재 유럽 각국의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 평균(47%)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문제는 화력이나 원자력 같은 기존 발전 방식(터빈 회전)에 비해 재생에너지 발전 방식은 수요-공급 간 균형을 정밀하게 조절하기 쉽지 않아, 문제 발생 시 부분 단전 같은 대처를 빠르게 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를 보완하는 장치들이 존재하지만, 스페인은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면서 장치에 대한 투자를 그만큼 하지 않아 사고는 사실상 예정되어 있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너무 서둘렀다는 건데, 이는 스페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후위기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유럽 각국은 에너지 자급에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크다. 그 수단으로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리는 데 촉각이 곤두서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에너지 자립도가 채 30%도 되지 않는 스위스는 2024년 6월9일 국민투표를 통해 ‘재생에너지를 통한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 관한 연방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의 주요 내용은 향후 10~15년 동안 수력·태양광·풍력 발전을 중심으로 더 많은 재생에너지를 생산함으로써 스위스 전력 공급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알프스에 기존 수력발전소 13개를 확장하고 새로운 댐 3개를 건설할 예정이다. 국민투표에서 통과되었다고는 하나, 알프스 고산지대의 댐 건설은 사회적으로 매우 예민한 이슈다. 이 법안에 대해 전혀 다른 두 그룹이 반대를 하고 있다. 하나는 수력발전소 건설로 인한 자연 훼손을 우려하는 환경단체이고, 다른 하나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실제 수요에 훨씬 못 미칠 테니 원자력발전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우파 세력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질수록 에너지 수급 안정성에 대한 우려도 따라 커진다. 유럽에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가장 높은 덴마크조차도 불안정성을 보완하기 위해 화석연료가 아닌 다른 수단을 마련해둬야 한다며 탈원전 정책을 재검토하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2017년 국민투표로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 금지안이 통과됐는데, 최근 이를 다시 뒤집는 것을 목표로 또 다른 국민투표 안건이 준비 중이다. 이른바 ‘정전 방지 이니셔티브(No Blackout Initiative)’로, 친환경 에너지와 전력 안보를 위해서는 수력과 원자력을 결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극우 정당인 스위스 국민당과 다른 중도 우파 세력 및 여러 기업이 연합해서 안건을 도입했다.
이처럼 에너지와 환경을 둘러싼 의견이 각축하는 상황에서 실제로 스페인 정전 사태가 발생하자 재생에너지의 급속한 확장과 탈원전에 반대하는 쪽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2035년까지 모든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던 스페인 여론의 향방도 이제는 미지수다.
다음으로 사이버 공격 가설을 보자. 레드 엘렉트리카 및 스페인 정부는 현재 사이버 공격 증거는 없다며 이 가설을 배제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미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스페인의 여러 소규모 전력 생산업체를 취재한 결과 이들 업체가 정부로부터 사이버 방어 관련 정보를 요구받았으며, 또 이와 별도로 스페인 국립고등법원의 판사가 정전 사태 배후에 사이버 공격이 있었는지 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5월13일). 당장 증거가 없다 해도 최근 몇 년간 급증하는 에너지 시설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감안하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맞아 보인다.
구글앱 없이 살 수 있을까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연간 사이버 보안 보고서를 종합하면, 전 세계 에너지 시설에 대한 사이버 공격은 2020년에는 한 주 평균 504건이었으나 2024년 3배가 넘는 1577건으로 늘었다(〈그림〉 참조).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정치 상황, 그리고 계속 디지털화되고 있는 유럽의 전력망을 사이버 공격의 주된 동기로 꼽는다. 2022년 말 러시아의 해커 조직 샌드웜이 우크라이나의 주요 에너지 인프라 조직을 표적으로 삼아 감행한 다중 사이버 공격, 2023년 5월 덴마크의 에너지 기반 시설을 운영하는 22개 기업이 동시에 받았던 사이버 공격 등도 정치적 목적의 공격이었다.
한편 재생에너지 발전이 늘면서 중앙집중된 관리시스템으로부터 수많은 소형 관리시스템으로 전환됐는데, 이는 해커들의 표적이 늘어났다는 점에서 보안에 더 취약해진 면이 있다.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재생에너지 발전을 늘려온 스페인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의 정치적·환경적 동기는 충분했다고 볼 수 있다.
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이든 사이버 공격이든, 비슷한 사태가 또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이번 일로 사람들은 전기가 생각보다 더 많은 것들에 필수임을 깨닫게 됐다. 주유소의 주유 장치도 전기 없이는 작동이 안 돼 기름이 있어도 차에 넣을 수 없었다. 화장실 물내림 장치도 정전과 함께 멈춰버렸다. 휴대전화와 유선전화, 인터넷 연결망에도 연이어 문제가 생겼고, 신호등이 작동하지 않는 거리에서는 자동차 운전도 모험이었다. 그동안 전기차로 계속 전환해온 스페인 경찰차들은 정전이 더 길어졌다면 무용지물이었을 것이다.
4월28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폐쇄된 지하철역 밖에 대기 중인 사람들. ⓒAP Photo
전기에 의존하는 건 기계만이 아니었다. 사람의 기억도 영향을 받았다. 정전 다음 날인 4월29일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 보도에 따르면, 마드리드 도심 옷 매장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이 멈춰버린 지하철 대신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구글맵 없이는 방향조차 잡지 못해 망연자실했다고 한다. 구글맵, 휴대전화 주소록 없는 우리는 얼마나 독립적인가. AI가 모든 것을 해결한다며 감탄만 할 것이 아니라 AI 시대의 블랙아웃에 대비해야 한다.
시사인 취리히·김진경 통신원
‘전기 먹는 하마’ AI, 원전이 해결책일까
지난 2019년 폐쇄되기 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의 원전 1호기. 지난해 9월 마이크로소프트는 가동정지 중인 스리마일섬 원전 1호기를 2028년에 재가동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1979년 3월 원전 사고로 2호기는 영구 손상을 입었으며, 1호기는 사고 원전이 아니었지만 2019년 9월 폐쇄됐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지난해부터인가 인공지능(AI)은 국내 언론매체에서 종종 ‘전기 먹는 하마’로 묘사되곤 한다.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가동하는 데 막대한 전기 에너지가 들어간다는 사실이 여러 보고서를 통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을 주는 기술로 찬사를 받던 인공지능이 이제는 초기 기대와 달리 그 자체가 온실가스 배출원으로 지목받고 있다.
유엔 국제전기통신연합(ITU)과 세계벤치마킹연합(WBA)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디지털 기업의 친환경화’)에 따르면, 세계 디지털 기업들이 2023년 데이터센터에서 소비한 전력량은 581테라와트시(TWh)에 이르러, 한국 전체가 1년간 사용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거대 기술기업 4곳이 전력을 소모하며 간접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2020년 대비 15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거대 기술기업들이 지난해부터 탄소 없는 대체 에너지로 원전을 주목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원전 사고 여파로 가동정지 중인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1호기를 2028년에 재가동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고, 구글과 아마존은 차세대 원전 기술인 소형 모듈 원자로(SMR)의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소유한 기업 메타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운영 중단 위기에 놓인 원전의 20년 연장 운영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거대 기업들은 신규 원전 건설 계획도 추진한다. ‘인공지능이 일으키는 원전 르네상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난달 18일 대통령 선거 후보 토론회에서도 인공지능과 원전이 잠시 논쟁의 대상이 됐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원전을 짓지 않고 어떻게 인공지능 세계 3대 강국이 되나”라며 원전 부흥 정책을 강조했고,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원전도 필요하고 재생에너지도 필요하다” “(다만) 재생에너지 중심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며 “에스엠알(SMR) 연구개발도 계속해야 한다”는 정책 공약을 밝힌 바 있다.
원자력 발전은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원이지만,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보기에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많다. 원전 건설에는 막대한 비용과 10년 가까이 긴 시간이 필요하며, 사용후 핵연료 같은 폐기물 처리는 풀기 힘든 난제다. 소형 모듈 원자로는 아직 상업운전 일정이 불투명하며, 일부 설계 방식은 고순도 저농축 우라늄(HALEU)을 연료로 사용해 안전성과 핵확산 방지 측면에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문화인류학자는 미국의 비영리 매체인 ‘언다크’에 기고한 글에서 “환경 비용이 큰 21세기 기술을 구동하기 위해 위험하고 쇠퇴하는 20세기 기술을 되살리는 아이러니”라고 비판했다.
메타의 원전 지원 계획이 발표되던 즈음에 전해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소식은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2020년 이후 추가된 태양광, 풍력, 배터리 등 재생에너지 발전과 저장 설비 용량이 최근 이 지역이 하루 평균 사용하는 전력량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겠지만,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충분히 존재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한겨레
‘자전거 친화도시 1010’에 생활 정치의 답이 있다
이번 대선은 민주주의 회복의 전환점이자 시민의 평범한 일상을 되찾는 출발점이 됐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정당 간 이념 대결을 넘어, 정치가 시민의 삶 가까이에서 실질 작동하는 ‘생활 정치’ 회복이다. 이는 시민의 일상에서 정책이 만들어지고 실현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자전거는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지속 가능하고 안전한 삶을 위한 생활 정치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자전거는 단거리 이동에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일 뿐 아니라 국민 건강을 증진하고 교통 혼잡과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도 기여한다. 보행과 자전거 이용이 늘면 이동 속도는 다소 느려질 수 있지만, 그만큼 일상에 여유가 생기고 이웃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며 지역 상권도 살아난다. 도시 활력과 공동체 회복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지난 5월11일 (재)숲과나눔 자전거시민포럼은 ‘사람 중심·국가 책임·시민과 함께하는 자전거 친화도시 1010’ 정책 제안서를 발표했다. 핵심은 ‘10분 생활권 내 자전거 수단분담률(이용률) 10%’를 달성해 도보와 자전거 중심의 일상생활권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현재 약 1.5%에 불과한 전국 자전거 이용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포럼은 다음과 같은 정책 과제를 제시했다.
우선 국민의 보편적 이동권을 보장하는 ‘사람중심교통기본법’을 제정하고, 부처 간 정책 충돌을 조정할 국무총리 직속의 ‘사람중심교통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이어 자전거 정책의 주관 부처를 정비하고, 전기차 중심의 탄소중립 수송 부문 예산을 자전거와 보행에 재분배해야 한다. 또한 출퇴근 보조금, 세제 혜택 같은 인센티브를 도입해 시민의 자전거 이용을 실질적으로 장려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시민이 정책 수혜자에 그치지 않고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도록 커뮤니티 기반의 자전거 문화와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이 제안의 본질은 자전거 타기를 하나의 ‘문화’로 정착시키는 데 있다. 자전거를 통한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 시민이 주도하는 자전거 이용 조직 육성, 차 없는 거리, 자전거 타기 시민운동 등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는 일은 자전거를 ‘참여의 정치’로 전환하는 중요한 열쇠다.
생활 정치는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삶 속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노력은 더욱 중요하다.
지금까지 도시 정책은 자동차 중심의 효율성과 속도에만 초점을 맞춰 설계됐고, 그 결과 우리는 에너지 과소비, 대기오염, 기후위기 등 복합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이제는 성장 중심 정책을 넘어 삶의 질, 보편적 이동권 보장, 사회적 형평성, 지속 가능성을 반영하는 교통 정책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자전거 친화도시 1010’은 이러한 도시 문제를 해결하고 시민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실천적 전략이자 정치적 선택이다.
이번 대선은 단지 정권 교체에만 그치지 않고 생활 정치의 제도적 기반을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 자전거 정책을 보다 더 체계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부처 간 역할 조정이 필요하다. 특히 국토교통부가 이를 총괄할 경우, 정책 전반이 더욱 일관성 있게 운영될 수 있다. 자전거 인프라 확충 역시 지역 경제와 시민 삶의 질 향상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우리가 바라는 미래는 추상적인 거대 담론이 아니다. 시민들이 일상에서 여유를 누리는, 다양성과 존엄이 존중받는 사회다. 다가올 지방선거에서는 더 많은 후보들이 적극적으로 자전거와 같은 생활 정치 의제를 공약으로 내걸고, 시민들도 그러한 후보들을 선택함으로써 정치가 구체적인 변화를 이끄는 통로가 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생활 정치의 기반이 공고히 다져지며 자전거 친화도시를 위한 노력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기를 기대한다.
정예름 숲과나눔 자전거시민포럼 사무국장/경향
프랑스 파리, 15분 도시 정책으로 자전거 도.. : 네이버블로그
부산 버스 준공영제, 예산 범위 초과하는 ‘만성 적자’ 운영 체계·지원 구조 개편 절실
3000억 원의 대출로 운영되는 기형적인 부산 시내버스 준공영제에는 예산 범위를 초과하고 운영되는 방만 경영이 자리한다. 버스 운영 적자가 커지며 예산으로 감당할 수 없는 적자를 메우기 위해 대출이 생겨났고 대출액은 수천억 원대로 불어났다. 교통 전문가들은 비용 절감을 위한 준공영제 구조 개편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출 준공영제’ 어떻게 운영됐나
부산 시내버스 준공영제는 버스 운송 적자를 시 예산으로 메워주는 내용을 핵심으로 2007년 시작됐다. 시는 부산버스운송사업조합의 수익금공동관리업체협의회에 매달 손실 보전액을 지급한다. 매년 9월이 되면 내년도 손실 보전액을 예측해 예산을 편성한다.
하지만 손실 보전액은 매년 예산 범위를 초과한다. 이에 시는 궁여지책으로 2012년 은행 대출 카드를 꺼내들었다. 매년 6월이면 조합에서 최저입찰제를 통해 1년 만기 확정금리로 은행을 통해 대출을 하고 부산시는 예산을 편성해 원금 일부와 이자를 상환한다.
2012년 236억 원 대출을 시작으로 필요할 때마다 연평균 150억~200억 원을 은행에 빌리고 있다. 원금 규모가 커 전체 대출액 상환은 불가능해 적자 운영 폭은 해마다 증가했다. 최근 3년을 살펴보면 2022년엔 대출액이 601억 원 늘었고 2023년엔 480억, 2024년엔 220억 원 증가했다. 현재 시가 조합을 대신해 갚아야 할 대출 잔액은 2201억 원이다.
시는 준공영제 예산으로 은행 대출을 갚는데, 대출금 상환으로 구멍난 예산은 급한대로 추경으로 보충하고 있다. 올해 초엔 전체 대출액 중 550억 원을 갚았으며 대출 상환으로 발생한 준공영제 예산 부족분에 대해선 지난달 500억 원 추경을 통해 보충했다. 시는 나머지 2201억 원도 이런 방식으로 갚아 나갈 예정이다.
올해는 최근 끝난 노사 임금협상 결과에 따라 대출금은 더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지난달 28일 버스조합과 버스노조는 정기 상여금의 통상임금 반영, 64세 정년 연장을 핵심으로 하는 임금·단체협상 조정안에 서명했다. 시는 부족한 인건비를 지원하기 위해 오는 28일 799억 원을 대출할 예정이다.
■임계점 다다른 ‘대출 먹는 하마’
준공영제 운영을 위해 시가 버스조합에 보전하는 재정 지원금을 산정하는 기준은 표준운송원가다. 표준운송원가는 버스 1대당 하루에 드는 비용을 운전직 인건비, 임원 인건비, 차량 보험료, 유지·관리비 등을 기준으로 산정한다. 부산시는 이를 근거로 운송 비용을 정해 버스 조합에 운영 적자를 지원한다. 2014년 65만 6896원이었던 표준운송원가는 2023년 83만 4327원으로 상승했다.
표준운송원가가 10년 만에 15만 원 이상 올랐지만 버스업계 상황은 악화일로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중교통 이용객이 줄며 재정 적자가 커졌다. 버스 수익이 감소하면서 버스 운영 적자도 늘어났다. 2020년 부산시 시내버스 운송 적자는 2469억 원을 기록했다. 2019년 1766억 원이었던 데 비해 적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이후에도 이전 수준을 회복하기는커녕 적자 폭은 더 커졌다. 2022년엔 적자 3566억 원, 2023년엔 적자 3190억 원이었으며, 지난해에도 적자가 2820억 원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적자 폭이 3000억 원에 육박하고 은행 대출액도 한계치에 다다른 만큼 준공영제의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버스 회사들의 수익 구조, 시의 지원구조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를 통해 시 재정지원을 넘어서 대출까지 이어지는 준공영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한다는 것이다.
시는 지난달 버스 노사 임금 협상 과정에서 벌어진 파업 사태 이후 준공영제 개편을 선언했다. 하지만 한 달가량이 지난 지금까지 뚜렷한 개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중복 노선 개편을 포함해, 노선 입찰제 도입과 장기적으로 공영제 전환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는 2019년 준공영제 개편을 위해 노선 입찰제 도입을 추진했지만 실제 실현하지는 못했다. 노선 입찰제는 시가 시내버스 노선 면허와 운영권을 반납받은 뒤 위탁업체를 선정해 노선을 직접 운영하는 제도다. 시는 수익성이 떨어져 시내버스 업체가 운행을 기피하는 일부 노선을 이른바 ‘정책 노선’으로 지정해 노선 입찰제를 도입한다는 전략이다. 또한 시 예산 차원의 지원이 한계에 다다른 만큼 국비 지원 등 정부 차원의 버스 운영 체제 지원도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부산시 대중교통과 관계자는 “노선 개편 등 준공영제 효율성을 높여 재정 적자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두려움의 뒷면을 만나다
적의와 경외의 대상, 뱀
뱀을 먹는 뱀, 능구렁이
논둑에서 발견한 것은 두 마리의 뱀이었다. 한 마리가 다른 한 마리를 칭칭 감고 있는데 그 모양이 단단한 매듭 같았다. 휘감은 쪽은 검붉은 능구렁이로 온몸에 팽팽한 힘이 들어가 있고, 휘감긴 쪽은 초록색 유혈목이로 일자로 축 늘어져 미동도 없었다. 능구렁이가 유혈목이의 숨을 끊어 놓고 뜸을 들이는 참이었다. 삼키기까지는 상당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능구렁이가 유혈목이를 칭칭 휘감았다.
논에서 뱀을 만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논물에서 헤엄치는 무자치를 간혹 보는데, 위협적인 동물은 아니어서 덤덤히 지켜본다. 무자치는 물을 좋아해 물뱀이라 불리는데 몸집이 크지 않고 독이 없다. 헤엄치는 뱀은 많지만 잠수하는 뱀은 무자치뿐이다. 제초제와 농약 사용량이 늘면서 예전에 비해 무자치의 개체 수가 줄었다는데, 약 치지 않는 우리 논엔 미꾸라지와 개구리가 많아선지 심심찮게 보인다.
능구렁이는 뱀을 잡아먹는 뱀이다. 붉은 몸에 검은 무늬가 강렬해서 뱀 가운데 확연히 눈에 띈다. 맹독을 가진 까치살무사를 한 끼 밥으로 먹을 만큼 독사 사냥에 능한데, 정작 능구렁이 자신은 독이 없다. 이빨이 작고 독도 없어 휘감아 죄는 방식으로 사냥을 한다. 능구렁이는 독사뿐 아니라 독 두꺼비도 아무렇지 않게 먹는다. 무독이 맹독을 삼켜 맹독을 무독으로 만든다. 지독한 아이러니다.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이유
산 아래 사니 뱀과 마주칠 일이 많다. 물 고이는 자리에 연못을 만드니 개구리가 몰려들고 덩달아 뱀도 내려온다. 가장 흔한 건 유혈목이이고, 살무사는 가끔 보인다. 올챙이가 가득한 봄 연못에 들어온 뱀을 연못가에 앉아 관찰한다. 내가 휴대전화 카메라로 뱀을 겨누니, 뱀도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주시한다. 우리는 한동안 악의 없이 대치한다.
뱀이 나를 향해 두 갈래의 혀를 반복적으로 날름거린다. 뱀의 혀가 두 갈래인 것은 종교적 간교함의 증거가 아니라 효과적인 스테레오 후각 기관이라서다. 뱀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냄새 분자를 혀로 채집해 뇌의 후각중추에 전달한다. 혀에서 뇌까지 이어지는 정보 전달 시스템이 먹잇감을 공략하는 정밀도를 높인다. 수차례 혀를 날름대며 나를 탐색하던 뱀이 스르르 몸을 돌려 돌틈으로 사라진다. 비호감 인간임을 간파한 모양이다.
눈에 보이는 뱀은 무섭지 않다. 진짜 무서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뱀이다. 밭둑에 쌓아 둔 차광망을 두 팔로 안아 올리는 순간 차광망에서 툭 떨어지던 살무사, 손 씻으려고 끌어당긴 대야 밑에서 고개를 쳐들던 까치살무사, 무심코 들춘 폐자재 밑에서 꿈틀대던 능구렁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느닷없이 뱀과 마주치면 제아무리 강심장이라도 기겁하지 않을 수 없다.
연못에서 만난 뱀.
두려움에 대한 적의 혹은 경외
공포와 기피 감각은, 맹수에게 쫓기고 독사와 독충에 물리며 인류가 유전자 깊이 각인해둔 생존 본능이다. 발 없는 몸, 미끄러운 비늘, 두 가닥의 혀, 치명적인 독을 가진 뱀은 인간에게 두렵고 이질적이며 경이로운 존재다. 인간은 통제할 수 없는 대상에 이야기를 입히고 상징을 부여했다. 그리스 신화는 치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에 뱀을 둘렀고, 기독교 신앙은 에덴의 뱀을 사탄으로 표상하여 악을 인격화했으며, 우리 민간신앙은 ‘업구렁이’를 가정의 수호신으로 삼았다. 동서양의 종교와 문화에서 뱀은 증오와 적의 혹은 경외의 대상이었다.
현대의 뱀은 경외보다 혐오의 대상에 가깝다. 대도시를 건설해 야생의 위험을 밀어낸 사람들은 안락한 거실에서 스크린으로 야생동물을 감상한다. 교외와 시골 역시 확장된 인간의 영역이다. 어디를 가나 인간이 쳐놓은 물리적‧심리적 경계로 가득하다. 인간에게 밀려난 동물들은 합의한 적 없는 불명확한 경계를 넘나들며 생존을 이어간다. 신비롭고 기이한 영상 속 야생동물은 현실의 내 집 경계를 넘는 순간 박멸의 대상이 된다. 영문 모르고 경계를 넘은 동물을 인간은 혐오와 분노로 징벌한다. ‘무섭고, 해롭고, 징그러운’ 동물이라면 더욱 용서할 수 없다. 발을 굴러 해결할 일에도 삽을 들고 나선다. 과도한 공격은 두려움의 뒷면이다.
마당 한쪽에 쌓아둔 피죽 땔감을 치우자 땔감 틈에서 살무사가 고개를 든다. 화들짝 놀라 물러났다. 갑자기 쏟아진 햇살에 저도 놀랐을 텐데 도망갈 생각도 않고 가만히 있다. 어리둥절한 듯도 하고, 제 독을 믿고 버티는 듯도 하다. 독사는 서두르지 않는 성미 때문에 인간의 삽날에 희생되는 일이 잦다. 그냥 둘 수 없어 양동이와 집게를 가져와 녀석을 주워 담았다. 집 마당에서 멀리 떨어진 계곡 비탈로 데려가 풀어주니 낙엽 틈으로 스르르 꼬리를 감춘다. 나는 살해와 격돌이 싫다. 그들의 삶터를 밀어서 내 터로 삼았으니 일상의 조심성과 약간의 불편은 내가 감수할 몫이다.
그들의 속도를 짓밟은 인간의 속도로
논에 가려고 차를 몰고 마을길을 내려가다 뱀을 봤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시멘트길 위에 붉으스름한 뱀이 몸을 구부린 채 엎드려 있었다. 얼른 핸들을 꺾어 뱀을 피한 후 서행하며 사이드미러로 보는데, 여전히 그 자세 그대로다. 좋지 않은 예감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 뱀에게로 갔다. 몸길이가 1미터쯤 되는 검붉은 능구렁이 성체다. 시멘트 바닥에 손바닥만 한 핏자국이 있다. 발로 살짝 건드린다. 움직이지 않는다. 로드킬당한 것치곤 손상이 크지 않다. 꼬리 부위가 목 위로 올라가 있는 것으로 보아 심하게 몸부림친 것 같다. 즉사하지 못했으니 고통이 심했겠다. ‘대낮에 길 위로 올라오다니, 능구렁이답지 않구나. 빨리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왜 그랬니….’
해가 뜨거운데 몸이 마르지 않은 걸 보니 사고는 불과 몇 분 전에 일어난 듯하다. 이대로 두면 다른 차들이 계속 밟고 지나겠지. 시멘트 바닥에 갈려 풍화되는 건 그리 좋은 마무리가 아니다. 발로 살살 밀어서 풀숲 그늘 안으로 들여놓아 주었다. 자연의 청소부들이 능구렁이의 몸을 거둬 흙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핏자국도 곧 사라지겠지.
다시 차에 올라 엑셀을 밟는다. 그들의 길을 끊은 인간의 길을, 그들의 속도를 짓밟은 인간의 속도로 달려간다. 미안해하며, 미안해하며.
김혜형 작가, 농부/시민언론 민들레
인간-자연 이분법 너머, 선유도공원에서
김아연 작, ‘그림자 아카이브’. 선유도공원에 거주하는 비인간 행위자들을 감광해 기록한 설치 작품. 유청오 제공
반팔 티셔츠만 입을지 그 위에 얇은 카디건을 걸칠지, 긴소매 셔츠를 입는 게 나을지 고민되는 공원의 계절. 손가락이 허락하는 가장 센 힘으로 스마트폰 전원 버튼을 눌러 끄고 서울 한강의 양화대교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오후 세시의 선유도공원 산책. 바삭한 햇살, 넉넉한 나무 그늘, 서걱거리는 강바람. 다른 어떤 공원과도 다른 깊은 침묵이 흐른다. 텅 빈 공원을 느릿하게 걷다가 침묵의 틈에서 생동하며 관계 맺고 있는 무명의 존재들을 만난다. 울퉁불퉁한 시멘트 기둥의 생살과 지워지지 않는 물 얼룩에 포개진 덩굴식물, 허물어진 콘크리트 벽의 잔해에 서식하는 이끼와 곰팡이.
절경의 봉우리에서 버려진 섬으로, 숨겨진 폐허의 정수장에서 숭고의 미감을 발산하는 공원으로 변신을 거듭해온 선유도. 어쩌면 선유도공원은 서울에서 가장 ‘비인간적’인 공원일 테다. 여기서 ‘비인간적’은 비정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non-human) 생명체와 사물, 즉 나무와 풀, 새와 곤충, 물과 이끼, 햇빛과 바람, 옛 정수장의 부스러진 콘크리트와 녹슨 철근이 모두 능동적 주체가 되어 장소의 행위자(agent)로 작동한다는 뜻에서 비인간적인 공원이다. 선유도공원은 인간만이 공원의 주인이 아님을, 인간만이 도시의 거주자가 아님을 감각적으로 일깨워준다.
공원이라는 단어는 흔히 ‘자연의 재현’이나 ‘평온한 휴식의 공간’ 같은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공원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우리가 자연을 느끼고 누리기 위한 배경으로 존재한다고 여긴다. 이처럼 대상화된 공원의 개념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고, 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전제에 기반하고 있다.
허물어진 정수장 콘크리트 벽의 생살과 지워지지 않는 물 얼룩 위에 녹색 생명체가 동거한다. 선유도공원. 배정한 제공
하지만 생태 철학자 제인 베넷은 ‘생동하는 물질: 사물에 대한 정치생태학’(현실문화, 2020)에서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그는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 생명체도, 우리가 무생물이라고 부르는 사물과 물질도 고유한 능동성을 지닌 행위자로 환경의 구성에 깊이 관여한다고 논한다. “비인간으로부터 인간을 떼어내려는 헛된 시도를 단념하라. 그 대신 (…) 당신이 참여하고 있는 배치(일시 결합물) 내의 비인간들과 더 정중히, 전략적으로, 세심하게 관여하도록 노력하라.” 공원은 더 많은 것들과 더 많은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베넷의 시각으로 보자면 , 선유도공원은 인간 - 자연 이분법을 무력하게 하는 복합체 경관이다 . 공원에 남겨진 정수장의 침전조 구조물은 활력을 잃은 폐허가 아니라 , 식물의 뿌리 , 미생물 군집 , 빗물 , 기온과 상호작용을 하는 행위자다 . 식물은 설계된 대로 자라지 않는다 . 벽과 기둥에 예상치 못한 이끼가 퍼진다 . 공원의 행위자들은 설계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자율적인 생태적 질서를 형성하며 , 때로는 인간의 개입을 거부하거나 조정하기도 한다 . 선유도공원을 설계한 건 조경가이지만 , 실제로는 여러 비인간 생명체와 사물이 끊임없이 연대해 공간을 변형하며 재구성하고 있다 .
인간과 비인간이 복잡하게 얽힌 연결망인 선유도공원에 또 하나의 행위자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서울시 공공미술 프로젝트 ‘선유담담’의 하나로 설치된 조경가 김아연(서울시립대 교수)의 작품, ‘그림자 아카이브’다. ‘그림자 아카이브’는 선유도의 정수장 구조물(비인간 사물)과 식물(비인간 생명체)이 빚어낸 오랜 거주의 기억과 현재를 시아노타입(cyanotype: 청색 인화)이라는 고전적 인화 기법으로 포착한다. 캔버스 천에 감광된 그들의 그림자는 이 공간에서 살아가는 비인간들이 단지 기록의 대상이 아니라 생동하는 풍경의 주체임을 증명한다.
공원 곳곳에서 생동하는 사물과 생명체의 그림자를 ‘시아노타입’ 기법으로 포착했다. 김아연, ‘그림자 아카이브’. 유청오 제공
시아노타입은 19세기 식물학자들이 빛과 물, 약품을 이용해 식물 표본을 만들던 인쇄 기법이다. 햇빛으로 이미지를 현상하기 때문에 ‘선 프린트’라고도 불린다. 설계 도면을 제작할 때 쓰던 청사진도 시아노타입의 일종이다. 김아연은 이 오래된 기록 방식을 공원의 시간과 풍경에 겹쳐놓는다. 그는 “관찰과 발견과 느낌과 상상”을 통해 감각한 선유도공원의 “무위의 풍경을,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자라는 생명을, 오늘의 잠깐을, 물과 햇빛과 약품이 만나는 새로운 방식으로 기록하고자” 시아노타입을 택했고, 공원 곳곳에 서로 얽혀 거주하는 여러 사물과 식물의 윤곽을 햇빛에 감광시켜 기록했다.
김아연의 기록은 정밀한 재현이 아니다. 실루엣과 흔적, 즉 그림자만을 남긴다. 바람에 흔들려 명확히 찍히지 못한 경계들이, 햇빛의 강도에 따라 달라지는 미세한 잔상들이 그림자로 남아 짙푸른 캔버스에 하얗게 드러난다. 버드나무, 미루나무, 억새와 수크령, 노린재, 꽃매미, 바닥의 몽돌, 철제 펜스, 계단. 어떤 건 바람에 날려 불완전하게 나타나고, 또 어떤 건 그림자조차 희미하다. 김아연의 작업은 비인간들의 자기표현을 도와주는 일에 가깝다. 그들의 자율적 행위와 그 흔적이 드러나도록 자리를 마련해준 셈이다. 그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기록자이며, 그들은 작품의 대상이 아닌 공저자가 된다.
‘그림자 아카이브’는 우리가 기록이라는 말을 들을 때 떠올리는 명확성과 명명 가능성에 균열을 낸다. 대신 그것은 도시의 무명 존재들을 감광해 인간 너머의 세계를 보여준다. 눈에 띄지 않는 사물의 흔적을, 이름조차 없는 잡초의 자취를 빛의 언어로 정성스레 기록한다. 명명과 통제가 아니라 감응과 연대의 방식으로. ‘그림자 아카이브’는 도시의 공원에 잠재하는 비인간 존재들과 느린 대화를 시도하는 일종의 청취 행위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 그리고 그 목소리를 다시 도시에 되돌려주는 것. 공원의 모든 행위자는 생성, 활동, 소멸의 생애를 거친다. 선유도공원의 새 행위자인 진청색 ‘그림자 아카이브’도 탈색의 과정을 거치며 변해가다 어느 시점에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배정한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공원의 위로’ 저자/ 한ㅇ겨레
식민주의 떨쳐낸 새로운 국제 반핵연대가 익어간다
원폭80년 방미 증언단 기록③]마셜제도 피폭 비극
미국 핵폭탄 실험장이 된 섬나라 마셜제도
비키니 환초에서 강행된 첫 수소폭탄 실험
죽음의 땅,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그곳 원주민들
미 아칸소로 가 육가공 공장 노동자된 마셜 주민들
알맹이와 껍데기가 뒤바뀐 서양의 평화운동
일본 반핵운동, 가해 역사 삭제 피해자 코스프레만
김찬휘 전 녹색당 대표
뉴멕시코 앨버커키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7시 비행기를 타고 미국 남부의 작은 주 아칸소(Arkansas)로 향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고향인 아칸소 주가 핵무기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의아해 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아칸소 주에는 마셜제도에서 온 사람들이 무려 2만5천여 명이나 살고 있다. 현재 본국에는 4만여 명, 미국 전역에는 8만여 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태평양의 여러 섬에 살던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주해 오고, 더구나 미국에 더 많은 교민이 살게 된 경위는 비극적이다.
미국 핵실험장이 된 섬나라 마셜제도의 비극
5개의 큰 섬과 29개의 환초, 1220여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된 이곳엔 기원전 2000년 무렵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영국 선장 존 마셜이 이곳에 상륙한 것이 1788년, 그래서 백인들은 이곳을 “마셜제도”(Marshall Islands)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후 긴 식민지 역사가 시작된다. 1885년 독일이 이곳을 ‘보호령’으로 합병했고, 1914년 유럽에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태평양에 힘의 공백이 생기자 일본이 재빨리 침략하여 점령했으며, 태평양전쟁 중 1944년 미국이 일본을 몰아내고 점령했다. 미국 식민지가 된 이 섬에서 미국은 1946년부터 1958년까지 총 67번의 핵실험을 했다.


비키니 환초에서 강행된 첫 수소폭탄 실험
1954년 3월 1일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핵무기 실험이 마셜제도 비키니 환초에서 이루어졌다. 이 수소폭탄 실험의 코드네임은 “캐슬 브라보”(Castle Bravo). 핵과학자들이 폭탄의 파괴력을 잘못 계산했다. 예상치보다 최소 3배 최대 6배나 강한, 히로시마 ‘리틀보이’보다 무려 1000배의 폭발력을 지닌 수소폭탄이 터졌다. 가공할만한 방사능 낙진이 발생했고 전 지구는 그 파괴력에 경악했다. 또한 인근에서 참치 잡이를 하고 있던 일본의 다이고 후쿠류마루(第五福龍丸) 선원 전원이 피폭당했다. 일본에서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이은 세번째 피폭이라며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죽음의 땅,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그곳 원주민들
그러나 아무도 그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았다. 핵실험이 있을 때마다 잠깐 섬에서 소개되었다가 며칠 지나면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가던 그 주민들을 말이다. 게다가 캐슬 브라보 핵실험은 너무도 파멸적이라, 핵실험 이후 비키니 환초 주민들은 이전처럼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인근 환초나 킬리 섬 등으로 강제이주당했다. 흙과 물, 동물과 식물이 모두 오염되어 죽음의 땅이 되었다. 1972년 100명 가량의 주민이 스스로 비키니 환초로 돌아가기도 했지만 1978년 다시 강제 소개되었고, 이제는 주민이 살지 않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주민들은 방사능에 오염된 고향을 떠나 한 명씩 두 명씩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1980년대부터 이주가 본격 진행되었다. 당시 아칸소 스프링데일(Springdale)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지금은 두번째로 큰) 육가공 회사 타이슨푸드(Tyson Foods)가 있었다. 닭 가공에 값싼 이주노동력이 필요했던 이 회사는 마셜제도 이주자들을 끌어들였다. 먼저 정착한 사람들은 형제자매와 부모를 부르고, 딸과 아들을 데리고 와 결국 스프링데일은 마셜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가 되었다.
아칸소로 간 마셜 주민들, 반핵운동가 된 왕족 베네틱
아칸소 페이엣빌 공항에 내리자 마셜제도 출신인 베네틱(Benetick Kabua Maddison)과 그의 동료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베네틱은 2023년 핵무기금지조약 2차 당사국 회의 때도 한국 방문단과 함께 활동했고, 작년 8월 경남 합천의 비핵평화대회에도 참가한 우리의 가까운 동지다. 베네틱은 2013년 비영리단체 마셜교육이니셔티브(MEI)를 설립해 이끌고 있다. 차분하고 진지하며 친절하고 정감어린 베네틱. 그는 사실 마셜제도의 왕족이다. 그의 중간 이름 ‘카부아’가 왕족의 이름이다. 하지만 ‘왕족’ 하면 연상되는 태도와 자세가 그에게선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마셜제도의 문화와 역사, 특히 핵실험의 파괴적 역사를 널리 알리고 핵을 둘러싼 불의를 폭로하며 핵 없는 세상을 향해서 싸우는 젊은 반핵 활동가일 뿐이다.
페이엣빌 공항에서 우리 방문단은 2명이 합류하여 8명이 되었다. 대구에서 출발한 '생명평화아시아'의 성상희 님이 3번 비행기를 타고 총 40여시간만에 아칸소에 도착했다. 또 한 분, 베를린에서 유학하며 식민주의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이승주 님도 합류했다. 이제 10명 중 8명이 모였다.
스프링데일의 마셜 교육 이니셔티브
첫 행선지로 스프링데일에 있는 마셜 교육 이니셔티브를 방문했다. 손으로 짠 멋진 공예품들 사이에 특이한 나무 공예품(?)이 눈에 띄었다. 베네틱에게 물어보니 전통 항해지도라고 한다. 이름이 적혀 있는 덩어리가 섬/환초이고 나무가닥이 섬 사이의 해류의 흐름을 가리킨다고 한다. 유럽 ‘과학’의 도움이 없어도, 선주민은 생활의 체험 속에 축적한 집단적 지혜에 기반하여 정교한 생존 ‘과학’을 실천하고 있었음을 그것은 웅변하고 있었다.

짧은 회의를 마치고 마셜제도 친구들이 마련해 준 아늑한 에어비앤비 주택에 여장을 풀고 저녁을 먹으려는데, 베네틱이 타이 음식을 포장해 왔다. 며칠 뒤에 있을 핵무기금지조약 준비로도 바쁠텐데 음식까지 바리바리 싸서 찾아 온 그의 마음이 따뜻하게 전해져 온다. 베네틱과 우리는 밥과 술을 함께 하며 몇 시간 깊은 얘기를 나누었다.
알맹이와 껍데기가 뒤바뀐 서양의 평화운동
그는 서양이 주도하는 반핵운동이 알맹이와 껍데기가 전도된 것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서양 평화단체들은 핵 피해자들을 초대해 행사의 실속을 채우고, 그것을 근거로 정부나 기관의 보조금을 받고 시민들의 후원금을 모은다. 자신처럼 초대받은 핵 피해자들은 주체가 아니라 들러리일 뿐으로, 그저 교통비와 체류비를 제공받는 ‘초대손님’에 불과하다고 그는 통렬하게 비판했다. 베네틱은 새로운 국제 반핵연대를 만들고 싶어한다. 핵 피해자들을 ‘활용’하는 사업으로서의 반핵운동이 아니라, 실질적 피해자들과 진정한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반핵 연대 말이다. 그래서 그는 뜻이 맞는 핵 피해자들을 모아 선주민, 피해자를 운동의 주체로 세우는 ‘핵진실프로젝트’(Nuclear Truth Project)를 시작했다. 핵진실프로젝트는 '권리', '존중', '상호성'을 핵심원리로 하는 규약(Protocol)을 정하고, 그 약속을 견결히 지키는 운동을 일구어 나가고 있다.
일본 반핵운동, 가해의 범죄역사 삭제 피해자 코스프레만
핵무기 피해의 역사가 자신들의 구미에 맞춰진 내용으로 변질되어 ‘상품’으로 전시되는 또다른 실상으로, 우리는 일본의 사례를 말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인류의 유일한 핵폭탄 ‘투하’의 역사인 것도, 그곳에서 수많은 죄없는 희생자들이 발생한 것도 모두 맞다. 하지만 일본의 핵무기 피해는 일본의 전쟁 가해의 결과임을 잊으면 안 된다. 실제로 히로시마에는 일제의 제2육군사령부, 육군 5사단 등 많은 병영이 있었고, 나가사키에는 미쓰비시 중공업 등 대규모 군수 공장이 밀집해 있었다.
매년 8월 6일과 9일 사이 전세계에서 엄청난 방문객이 찾는 두 도시의 공식 행사에는 전쟁 범죄의 역사는 삭제되어 버리고 ‘피해자 코스프레’만이 난무한다. 이 과정에서 식민 지배의 소산인 한인 피해자를 포함한 수십 개 국적의 핵 피해자들이 존재했다는 사실도 함께 소거되어 버리는 것이다. 일본정부는 ‘유일 피폭국’이라는 상품 팔이를 그만 두고, 가해자로서의 반성과 사죄 및 배상이라는 바탕 위에서 핵 없는 세상을 향한 피해자의 운동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전 국민이 피폭자인 마셜제도공화국 총영사관
깊은 밤까지 우리의 얘기는 계속되었다. 이튿날은 마셜제도공화국(RMI) 총영사관을 방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총영사 앤저넷 앤젤(Anjanette Anjel)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대한민국의 역대 정부가 우리의 핵피해자들을 냉대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기억을 갖고 있는 우리로서는, 정부기관이 핵실험의 유산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민하고 애쓰는 모습이 신선해 보였다. 물론 마샬제도는 전 국민이 피폭자인 점을 고려해야 하지만 말이다.
대한민국도 정부 차원의 연대와 풀뿌리연대가 이렇게 함께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생각했다. 총영사님은 직조 공예품도 선물해 주시고 꽃공예를 박정순 님의 머리에 직접 꽂아 주셨다. 박정순 님은 머리에 꽃을 처음 꽂아본다 하시며 정말 즐거워하셨다. 총영사님은 근처의 ‘홈그로운’(Homegrown)이란 식당에서 우리 모두에게 점심도 사주셨다. 감자, 샌드위치, 오믈렛, 스크램블에그 등, 미국에 온 지 10일만에 처음 먹어보는 미국 가정식이라 모두 정말 맛있게 먹었다. 박정순 어머니는 식사 내내 꽃공예 장식을 꼽고 계셨다.

백인 서사 중심으로 꾸며진 오자크 박물관
점심을 마치고 베네틱의 안내로 오자크(Ozark) 역사박물관에 왔다. 오자크는 이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프랑스어 "aux-arcs"(아칸소의,~로, ~에)를 소리 나는대로 영어식으로 표기한 것이라고 한다. 박물관은 전형적인 향토 박물관이다. 오자크 지역의 역사와 생활상의 변화를 시대별로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온 베네틱은 이 박물관의 전시물과 서술 내용이 맘에 들지 않는다. 백인 중심의 서사이고 토착민과 비백인의 기여와 역할을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료를 보니 19세기 중반 아칸소 주의 백인과 흑인 노예의 비율은 4:1에 달했지만, 흑인들의 얘기는 귀퉁이 한 구석에 보일락 말락할 뿐이다. 아칸소가 자랑하는 타이슨푸드 공장의 작업장 사진에는 깨끗한 옷을 입은 백인이 웃고 있다. 그 공장에서 실제로 일했던 베네틱의 조상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워싱’(washing/ 세탁)된 박물관이 어디 한 두 군데랴.
바다-하늘-땅-우리 뜻의 마셜 원래이름 ‘아일릉긔나’
씁쓸한 마음을 품고 저녁에 증언대회가 열릴 마셜 교육이니셔티브로 다시 왔다. 행사를 기다리는 동안 베네틱의 모국어 교육이 시작되었다. 마샬제도의 원 이름은 ‘아일릉~긔나’(AelōñKeinAd)다. ‘아이’는 바다, ‘릉’은 하늘, ‘긘’은 땅, ‘아’는 우리를 뜻한다. 나라 이름이 ‘바다하늘땅우리’인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의 동학과도 통하는, 전세계 선주민들이 공유하는 심원한 세계관이 나라의 이름에 담겨있다. 말을 처음 배우는 초등학생처럼 우리는 베네틱의 본토 발음을 따라 했다. “아일릉긔나, 아일릉긔나.”

그럼 ‘아일릉긔나 사람들’은 ‘아일릉긔난’이냐고 물어보니, 아니었다. 뒤에 ‘n’이 붙으면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은 영어적 선입관! 앞에 ‘리’(ri-)를 붙이면 ‘사람’을 가리키게 되어, ‘리아일릉긘’이 된다고 한다. 앞에 ‘리’(ri)가 붙으면서 맨 뒤의 ‘아’(Ad, 우리)가 빠지게 되는데, ‘사람+우리’가 중복이 되기 때문이란다. 너무 합리적이지 않은가? 다시 본토 발음으로 연습해 본다. “리아일릉긘, 리아일릉긘.” 우리는 식민주의자들이 자기 이름으로 멋대로 붙인 ‘마셜’이란 호칭을 버리고 이제 선주민의 말을 쓰기로 약속했다. 지금부터 ‘마셜‘이라는 단어를 입밖에 내면 1달러씩 벌금을 내기로 약속했다. 저녁 행사 때도 좌중에게 인사할 때 이렇게 원어민의 말로 인사하기로 했다.
자식들에게 피폭 사실 숨긴 피폭자 1세대
5시 30분, 방미 증언대회가 시작되었다. 증언단의 대표 이대수 님의 인사말에 이어, 피폭 1세 박정순 님, 피폭 2세 김규리 님(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 부산지회), 이태재 님(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 회장)의 증언이 차례로 진행되었다. 이번에는 연재 1회 때 소개하지 못한 김규리 님 얘기를 하고 싶다. 김규리 님은 박정순 어머니의 1남 4녀 중 차녀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피폭자인지, 그래서 자신이 피폭2세인지 전혀 모르고 살았다. 피폭자임을 공개했을 때 돌아올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너무도 잘 아는 어머니가 오랫동안 비밀로 했기 때문이었다.
2011년에 히로시마에서 어머니와 이모들이 건강수첩을 발급 받았다고 할 때 김규리 님은 어리둥절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2019년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부산지부 후손회 창립식에 참여한 이후, 주위의 원폭 피해자분들을 만나면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짓누르고 있는 원폭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 왜 자신이 평생 수많은 병을 달고 살아 왔는지, 입원과 통원 치료, 독한 투약을 반복하고 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었다.
이제 그녀는 어릴 때부터 허약했던 것이 부모의 안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아서가 아님을 알고 있다. 남편도 그녀가 아픈 건 원폭 때문이라고, 그녀 탓이 아니라고 위로해 준다. 수많은 병마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쾌활하고 긍정적이며 주변을 배려한다. 그녀의 가방과 호주머니 속에는 항상 나눠 먹을 무언가가 있다. 그녀는 핵무기의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는 수많은 피폭 2, 3세들의 삶이 내버려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핵이 없는 세상을 향해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 핵실험 피폭지 ’루닛 돔‘ 방치
증언이 끝나고 아일릉긔나 중학생들의 발표가 있었다. ‘루닛 돔’(Runit Dome)에 관한 주제 발표였다. 아일릉긔나의 루닛 섬에는 핵실험으로 인한 플루토늄-239 등의 핵폐기물과 오염된 토양을 저장해 놓은 거대한 콘크리트 돔이 있는데, 그 이름이 루닛 돔(일명 ‘무덤’)이다. 1980년에 완공된 이 핵 무덤은 이후 주요한 균열들이 발견되었고, 자연적 노후화와 해수면 상승, 태풍의 엄습 등으로 현재 붕괴 위험에 처해 있다. 2020년 미국 에너지부는 루닛 돔이 당장 붕괴할 위험이 없고, 내부의 방사능 물질이 유출되어 어떤 측량가능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향후 20년간 없다는 후안무치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의 얘기를 전하는 중학생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가슴은 무척 아팠지만, 환하게 웃는 그들의 얼굴에서 우리는 ‘희망’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스프링데일에서의 공연과 토론
마지막은 매튜(Matthew John)의 노래 공연이 있었다. 매튜는 베네틱의 가까운 동료로서 마샬교육 이니셔티브에서 기획을 담당하고 있는데, 원래는 국가대표 축구선수였고 지금은 가수이기도 하다. 그는 아이를 가진 여성이 뱃속의 아이에게 전하는 사랑의 노래를 통기타를 치며 들려주었다. 유튜브에서 그의 예명 마크 하모니(MARK Harmony)를 검색해 보면, 그가 부른 아름다운 노래들을 들을 수 있다. 매튜의 노래에 대한 답가로 우리 8명은 함께 손을 잡고 감격스럽게 아리랑을 불렀다. 매튜는 ‘감사’의 노래로 화답했다.
총영사님과 영사관 직원들도 시간을 내서 다시 오셨고, 지역방송국(abc 40/29)에서 나와 행사 촬영과 박정순 님 인터뷰를 진행했다. 촬영분은 당일 저녁 뉴스에 나왔다. 박정순 님은 “미국은 세계 초강대국 아니냐, 그런데도 우리에게 저지른 일에 대해 아무 말이 없다. 미국은 사죄하고 배상하고 보상해야 한다.”고 일갈하셨다. 행사가 끝나고 중학교 학생 한 명이 박정순 님을 찾아와 “미래세대에게 들려주고 싶으신 말씀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어머니는 “넓은 세계에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자유롭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을 듣더니 학생은 밝게 웃으며 포옹을 한다. 80년의 세대 간격이 눈 녹듯이 녹아버리는 것 같다.
7시에 끝날 예정이던 행사가 8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오늘의 행사를 준비한 베네틱과 그의 동료 4명이 ‘우리 집’에서 9시부터 늦은 저녁을 같이 했다. 즐거운 만남에 술이 빠질 수 없는 법. 월마트에서 사 온 오자크 토착 맥주를 나눠 마시며 한국어로 ‘짠’을 외쳤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로싸(Rotha)는 한국어에 관심이 많다.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한글단어도 말할 줄 안다. 다음에 만날 때는 한국어를 훨씬 잘할 것 같다. 11시가 다 되어 ‘리아일릉긘’은 모두 귀가하였지만, 한국인들은 잘 생각이 없다. 비핵평화운동의 방향과 방법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다 보니 2시가 넘었다. 스프링데일은 잠들지 않는다.
김찬휘 전 녹색당 대표/ 시민언론 민들레
물 뜨끈뜨끈해진 동해로 방어 등 난류성어종 집단이주
고수온 속 최근 5년 어획 분석
- 2005~2019년과 비교해보니 전갱이 등 난류성 출현 늘어
- 울진 90%, 강원 고성 53%↑ 고수온 현상이 지속되면서 동해에 방어·전갱이 등 난류성 어종이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어
국립수산과학원은 지난 20년 동안 동해안에서 정치망으로 잡은 어획물을 분석한 결과 난류성 어종 출현 비율이 빠르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16일 밝혔다. 기후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으로 2005∼2019년과 비교해 최근 5년(2020∼2024년) 동안 방어 전갱이 삼치 등 난류성 어종의 출현 비율이 급증했다.
강원 고성은 약 53%, 강원 양양은 64%, 경북 울진은 90%까지 증가했다. 동해안 최북단인 강원 고성에서 방어 어획량도 꾸준히 늘었다. 방어에게 적합한 수온이 유지되는 시기가 5~10월에서 5~12월로 늘었다. 기후변화에 의한 수온 상승은 동해 연안을 따라 회유하는 어종의 이동 범위를 더욱 확산시켰고, 이로 인해 지역별 출현 어종과 우점종의 변화를 불러온 것으로 풀이된다.
2005~2009년의 평균 수온과 최근 5년간의 변화를 비교해 보면, 강원 주변 해역이 15.6도에서 16.7도로 1.1도 올라, 이 기간 0.7도 상승한 경북 해역보다 큰 변화를 보였다. 이는 대기로부터 유입되는 열의 증가와 지속적인 대마난류(Tsushima Current·쓰시마난류)의 유입량 증가로 16도 이상의 등수온선(같은 수온을 가진 지점을 연결한 점)이 강원 해역으로 빠르게 북상했기 때문이다.
국립수과원 관계자는 “기후변화에 의한 수온 상승이 동해 연안을 따라 회유하는 어종의 이동 범위를 더욱 확산시켰다”며 “이에 따라 지역별 출현 어종과 우점종의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장호정 기자 lighthouse@kookje.co.kr
‘큰금계국 우후죽순’
생태계 위해성 2등급 외래생물
도심·하천·도로변 등 빠른 확산
큰금계국은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매년 5월부터 8월 사이 노란색 꽃을 피운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외래식물로 우리나라에는 1950년대 관상용으로 도입됐다. 이후 ‘노란 코스모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도심 경관 조성에 널리 활용됐다. 그러나 국립생태원은 이 식물을 생태계 위해성 2등급 외래생물로 분류하고 확산 방지를 위한 식재 자제를 권고하고 있다. 2등급은 당장 심각한 생태계 위협은 아니지만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어 관리가 필요한 단계다.
전문가들은 큰금계국이 토종 식물의 생육지를 빠르게 잠식하고 곤충 생태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조속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경고한다. 국립생태원측은 큰금계국은 주변 식생을 빠르게 대체하며 생물다양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어 적극적인 확산 방지 조치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마을의 과거와 미래를 품고 살아갈 생명의 상징
경북 경주 육통리 천연기념물 회화나무 노거수
지속 가능한 지구 시스템에서 나무는 지구를 지키는 초병으로써 최전선에 서 있다. 지구에 나무가 없다고 상상해 보면, 지구는 의미 없는 먼지에 불과할 것이다. 생명체가 이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나무 덕분이다. 나무는 생명체가 필요로 하는 물과 공기, 흙을 정화해 건강한 삶을 가능케 한다.
또한 온도와 습도, 바람 등 미기후를 조절하고, 토양 유실과 홍수를 예방하여 지구를 안전하게 지켜준다. 나무는 인간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생명체를 품고 키우며 지구를 부양하고 보살피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며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이다.
650살·높이 20m·둘레 6m 노거수 1982년 천연기념물 제318호로 지정
우리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나무를 사랑하고 보호해 온 민족이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 깃든 숲을 ‘당산 숲’ 또는 ‘마을 숲’이라 불렀고, 그 숲의 나무를 ‘신령이 깃든 당산목’, ‘성황나무’, ‘신지핌나무’라 하여 신성시하였다. 이러한 나무는 액운이나 잡귀의 침입을 막는 마을의 신목으로 여겨졌으며, 훼손은 신체 훼손과 동일시될 만큼 금기시되었다. 이 가운데 역사적·문화적·학술적으로 가치 있는 당산목, 정자목, 풍치목 등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이러한 법적 보호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 제정된 ‘조선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보존령’ 제6호에서 비롯되었고, 해방 이후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는 국가유산청에서 관리하며, 산림청은 100년 이상 된 노목, 거목, 희귀목 등을 보호수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1972년에는 전국의 노거수를 일제 조사하여 요건에 부합하는 나무를 산림청과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보호 대상으로 삼았다.
보호수로 관리되던 나무 중 민속문화적 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승격된 나무가 있다. 바로 경북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1428번지의 회화나무 노거수이다. 이 나무는 “나무를 자식처럼 가꾸어 달라”는 유언이 전해지는 전설의 당산나무다. 나이는 약 650살, 높이는 20m, 둘레는 6m에 이르는 노거수이다. 1982년 11월 4일 천연기념물 제318호로 지정되었다. 안내판에는 나이가 400살로 기록되어 있으나, 전설에 따르면 고려 공민왕 시대(재위 1351~1374)에 심어졌다고 한다. 그의 마지막 재임 연도로 계산하더라도 650년이 된다. 전설을 뒷받침하듯, 마을 중심부에 노거수가 자리 잡고 있다.
속이 빈 노거수에 방충망이 설치돼 있다.
회화나무 노거수는 나이만큼이나 몸은 노쇠하여 큰 원줄기는 속이 비어 있었다. 주민들은 외과수술과 짐승이나 새, 곤충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촘촘한 방충망 설치와 나무 주변 아스팔트 도로에 유공을 뚫고 지팡이도 선물하였다. 마을 제사를 지내는 당산목임을 표시하는 바윗돌 제단과 금줄이 쳐져 그 위엄만은 아직도 건재하게 살아있었다.
육통리 회화나무 앞에 서면, 마치 한 세기의 숨결이 바람을 타고 흘러오는 듯하다. 속이 비고 몸이 휘어진 나무는 늙은 신령처럼 말없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생명이란 얼마나 질긴 것인가. 줄기 속 공동은 상처지만, 그 틈으로 햇살이 스며들고, 가지는 여전히 하늘을 향해 뻗었다. 공존이란 이름 아래, 나무도 사람도 서로의 시간을 감싸 안는다. 생명은 혼자가 아니다. 나무는 말없이 이 마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품고 있다.
회화나무에는 예부터 내려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전설이라고 하지만, 마을의 한 역사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려 공민왕 때에 부모님께 지극정성으로 효도하는 김영동이란 젊은 청년이 마을에 살고 있었다. 당시 북으로부터 홍건적이 침입하고 남으로부터 왜적이 침입하여 양민을 학살하고 노략질을 일삼는 바람에 백성들은 편안할 날이 없었다. 19세의 젊은 나이로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전쟁터에 나갈 것을 결심하고 회화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리고 부모님께 하직 인사를 하며 ‘소자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나무를 자식으로 알고 잘 가꾸어 달라’라고 하였다. 그는 왜구와 싸우다가 전사하자 부모는 그 슬픔을 이겨내려고 아들의 소원대로 회화나무를 보호하고 잘 가꾸었다.”
육통리 마을에서는 전쟁터에서 잃은 귀한 아들처럼, 부모의 마음으로 오늘날에도 정월 보름날 마을에서 가장 정결한 사람을 제주로 뽑아 제사를 지내고 있다. “나무를 심고 귀한 자식처럼 보살피고 가꾸어 달라고 유언한다.” 이보다 더한 노거수 사랑이 있겠는가 싶다. 우리 조상들의 나무 사랑과 지혜는 이 고사와 전설을 통해 더욱 빛난다. 국가유산청이 시행하는 2022년 자연유산 보존에 앞장선 마을 대표에게 수여하는 ‘당산나무 할아버지’ 상을 육통리 김상동 이장이 받았다고 마을 주민 한 분이 귀띔해 주었다.
육통리 천연기념물 회화나무는 단순한 노거수를 넘어, 수백 년간 마을 사람들의 정성과 믿음을 품고 자라온 살아 있는 역사이자 문화유산이다. 고려 시대 청년의 효심과 나라 사랑에서 비롯된 전설은 오늘날까지도 마을 제사와 공동체 정신으로 이어지며, 나무를 자식처럼 보살피고 가꾸어 온 조상들의 지혜와 자연에 대한 깊은 존중을 보여준다. 국가유산청이 ‘당산나무 할아버지’ 상을 수여한 것도 이러한 공동체의 노력을 인정한 것이며, 회화나무는 앞으로도 마을을 품고 또 다른 백 년을 살아갈 생명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웅장한 육통리 회화나무 줄기.
‘회화나무 앞에서’
바람은 묻는다
그대는 몇 해를 살아왔느냐고
줄기 깊숙이 숨은
옛 전설이 잎사귀마다 흔들린다
전쟁터에 나선 아들의 유언처럼
나무는 자식이 되고
부모는 나무와 함께
세월을 견뎠다
속이 텅 빈 몸
지팡이 몇 개에 의지하며
그늘을 나눠주는 노거수
마을의 기둥은 쓰러지지 않는다
신령이 깃든 나무 아래
주민의 기원이 피어난다
또 다른 백 년을,
육통리 마을을 품고.
/글·사진=장은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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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근 대한노인회장, 산악열차 건설계획 구체화...제주도 "오픈된 관점서 접근
대한노인회가 제시한 한라산 산악열차 조성 이미지.
제주 한라산 정상부에 산악열차와 럭셔리 호텔을 개발한다는 황당한 계획이 정작 도민사회도 모르게 대한노인회 차원에서 다뤄진 정황이 확인됐다. 제주도의회에 참석한 도 고위공직자도 "오픈된 관점에서 접근하겠다"고 답변해 논란이 예상된다.
대한노인회 공약에 포함된 '한라산 산악열차 조성사업' 은 한라산 정상부에 가칭 '백록'이라 명명된 16km 길이의 산악열차를 연결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열차의 종점에는 100실 규모의 산상호텔을 건립한다는 계획까지 포함됐다.황당한 발상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내용이 구체적이다. 대한노인회가 제시한 문서에는 "천혜의 관광자원인 한라산의 자연환경을 사계절 상시 체험할 수 있는 개념의 산악열차 관광시설 도입을 통해 동북아 최고 관광도시화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업 배경이 명시됐다. 미국 워싱턴이나 스위스 융프라우의 산악열차를 제주에도 도입하겠다는 구상이다.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산악열차 조성에 사업비 4000억원, 산상열차 조성에 1500억원 들이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산악열차는 급경사 구간 주행에 유리한 톱니·치차를 이용한 형식까지 제시했고, 산상호텔 내부의 테라스, 스파, 웰니스센터 등의 구체적 계획도 열거했다.이는 지난해 11월 대한노인회 회장에 취임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의 공약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최근 세계한인상공회총연합회 회장을 겸직한 이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서도 "기업인으로서 부영이 갖고 있는 무주리조트에 산상열차를 만들어보고 싶고, 또 제주도 산악열차도 저희가 꼭 하고 싶다. 무주의 산상열차와 제주도 산악열차는 국가적 먹거리고 생활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한노인회는 지난달 대선 후보 신분이었던 이재명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관련된 공약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노인회의 이 같은 계획은 11일 열린 제439회 제주도의회 제1차 정례회 문화관광체육위원회 회의 과정에서 드러났다. 고태민 위원장(국민의힘, 애월읍 갑)은 이 사업을 언급하며 "산악열차와 관련해 제주도 전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위원장은 "제주 관광산업 성장을 위해 여러가지 인센티브도 주고있지만, 신성장 산업이 없기 때문에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대기업 차원에서 제안을 했기 때문에 우리도 들어볼 필요는 있다"고 피력했다.
답변을 요구받은 김양보 제주도 문화체육국장은 "글로벌 관점에서 볼 때 스위스나 다른 나라를 보면 100년 전에도 산악열차를 한 데도 있고, 다양하게 문화의 특성에 맞게끔 하고 있다"며 "어떤 관광 시설이 필요한지에 대한 부분들은 폐쇄된 관점이 아니라 이제 오픈된 관점에서 다양한 의견을 듣고 접근을 하는게 좋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고 위원장은 "환경적 측면에서만 그냥 묻어두려고 하지 말고 지사를 설득하라. 우리의 현재 동력으로는 제주도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은 요원하고 관광발전은 어렵다"고 채근했다.
제주의소리
16주년 갈맷길, 확 바꾼다
부산시, 기본계획·디자인 용역
노선 재정비·신규 코스 발굴 등
욜로 갈맷길 6코스 '영도 흰여울 한 바퀴'. 이송도전망대에서 바라본 흰여울 문화마을과 절영해안산책로. 부산일보DB
2009년 처음 조성돼 대표 걷기 여행 코스로 자리 잡은 '갈맷길'이 16년 만에 전면 개편을 준비한다. 부산시는 갈맷길 조성 16주년을 맞아 '갈맷길 기본계획 수립 및 안내체계 디자인 개선 용역'을 시작한다고 16일 밝혔다. 이달부터 1년간 진행되는 용역은 기존 노선 개편과 신규 코스 발굴, 대중교통 연계 강화, 안내체계와 편의시설 디자인 개선 방안 등을 도출한다.
시는 최근 인구 고령화와 건강 중심 걷기 문화 확산, 다양한 이용 계층의 요구 등을 반영해 갈맷길도 새롭게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고 노선과 안내 체계, 콘텐츠 등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기로 했다. 용역에서는 기존 코스의 난이도와 구간 길이를 재조정해 노년층을 포함해 다양한 계층이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노선을 간소화하고 코스와 구간 개념을 새로 검토해 직관적인 길 안내 방안도 마련한다.
지역의 역사·문화·관광·자연 자원과 연결하고 숨겨진 보행 명소도 발굴한다. 불편한 구간은 대체 노선을 추가하고, 코리아둘레길인 남파랑길, 해파랑길과 중첩되는 구간은 통합 정비한다. 대중교통과 연계성을 높이고, 버스와 도시철도 환승 정보도 제공한다.
안내 체계와 편의시설 디자인도 전면 개편한다. 코스별 특성을 반영한 통일성 있는 디자인은 시민 설문을 통해 결정할 예정이다.갈맷길은 2009년 출발해 현재 9개 코스 23개 구간 278.8km로 운영된다. 지난해 한국관광공사의 걷기 여행 실태 조사에서 해파랑길, 제주 올레, 남파랑길에 이어 가장 많이 방문한 걷기 여행길 4위(9.7%)에 올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걷기 여행길로 자리 잡았다.
2022년에는 기존 코스 중에 접근성이 좋고 코스별 10km 안팎으로 테마를 더한 '욜로 갈맷길' 10개 코스 100km를 따로 구성해 선보였다. 욜로 갈맷길은 지난해 부산연구원이 발표한 부산 10대 히트상품 9위에 올랐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취소해야" 환경단체 가처분 신청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 허가를 반대하며 국립공원관리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 중인 환경단체 회원들이 사업 중단 가처분 신청을 냈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은 16일 춘천지방법원에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공원 사업 시행 허가 효력 정지를 위한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이들은 "본안 소송으로 사업 정당성에 대한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공사가 강행돼 설악산에 돌이킬 수 없는 훼손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시급하고도 필수적인 조치"라고 주장했다.
환경단체 회원들은 케이블카 사업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지형과 식생 훼손, 희귀 고산식물 소멸, 산양 등 멸종위기 종의 핵심 서식지 파괴를 들며 사업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특히 최근 국가유산청이 '희귀식물 보전 방안 검증 미비'를 이유로 공사 중지 명령을 내린 일을 언급하며 "사업 추진 과정의 심각한 부실을 보여주는 명백한 근거"라며 "국가유산청 등의 연구 결과 사업 예정지는 설악산 전체 평균보다 산양 서식지 적합도가 2.1배나 높은 핵심 서식지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다수 전문기관 역시 변경된 계획이 오히려 산양의 섭식과 번식에 필수적인 공간을 파괴한다며 '입지 부적합' 의견을 낸 바 있다"며 "국립공원을 파괴하는 사업을 멈추는 것이 공공복리에 해를 끼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설악산을 온전히 보전하는 것이 진정한 공공복리"라고 덧붙였다.
이날 가처분 신청에는 박그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공동대표와 양양 주민 등 29명이 신청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신청인들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을 상대로 낸 공원 사업 시행 허가 효력 정지 소송에서 패소했으나 원고 적격성을 인정받은 이들이다. 춘천지법이 1심에서 기각한 해당 사건은 오는 18일 항소심 두 번째 변론 기일이 열린다.※CBS노컷뉴스
가덕신공항 올해 착공 무산… 부지조성 5200억 불용처리
기재부 "예산 감액 불가피" 입장
"회계연도 이월 재검토" 여론도
이륙하는 항공기 모형이 설치된 부산 강서구 가덕도. 부산일보DB
가덕신공항 공사 지연으로, 정부가 올해 예산으로 잡힌 9640억 원 중에서 5200억 원가량을 불용 처리하기로 하면서 가덕신공항 적기 개항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기획재정부는 시공사 선정이 지연되면서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착공 후 신속한 공사 진행을 위해 다음 회계연도에 이월시킬 수도 있는 점을 감안해 불용 처리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비난이 나온다.
당초 가덕신공항 공사는 현대건설 컨소시엄과의 계약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상반기 우선시공분 착공에 들어가고 이어 실시설계를 거쳐 연말에는 본 공사 착공이 가능할 것으로 점쳐졌다. 이럴 경우, 건설사를 대상으로 공사비 선지급을 통해 건설사들의 유동성 확보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됐으나 결국 수의계약 절차가 중단되면서 이미 확보된 예산을 못쓰고 날리게 된 셈이다.
17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올해 가덕신공항 예산으로 편성된 금액은 9640억 원이다. 여기에는 부지조성 공사비 외에도 접근철도·접근도로 공사비, 여객터미널을 비롯한 건축물 설계비, 토지 보상비 등이 다 포함돼 있다.
기재부 측은 이 가운데 불용 처리되는 금액이 5200억 원가량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가덕신공항 건설은 현대건설의 사업 포기로 재입찰이 예고됐으나 그 시기는 언제가 될지 불확실하다. 기재부 관계자는 “가덕신공항 부지 조성 공사 예산은 공사가 지연돼 불가피하게 감액 처리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라며 “그렇다 해도 나머지 접근철도·도로와 건축물 설계비, 부지 보상비 등은 그대로 다 집행된다”고 밝혔다.
부지 조성 공사는 예산 문제로 올해 착공이 어려워졌지만 관련 인프라 공사는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가덕신공항과 연결되는 접근도로와 접근철도는 가덕신공항 준공 1~2년 후 완공되는 것으로 돼 있었다. 가덕신공항 완공과 별개로 이들 도로·철도 공사는 계속 진행될 예정이다.
가덕신공항 예산 중 접근도로는 796억 원, 접근철도는 195억 원이 올해 예산이며 여기에 부지 조성 공사를 하면서 투입되는 토지 보상비는 다소 유동적인데 2600억 원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울러 여객터미널 등 공항 건축물 설계비가 817억 원이 책정돼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재입찰에 속도를 낸다면 연말에 우선시공분 공사가 가능한 만큼 예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
"바다 살리려면 9개 나라 더 필요" UN해양총회 명과 암
'전 세계 공해의 30%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자'는 내용의 협정에 지금까지 모두 51개국이 비준을 완료했다. 협정 발효를 위해서는 60개국의 서명이 필요해 앞으로 9개 국가가 더 남았다. 우리나라는 동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이 협약에 이름을 올렸다. 전문가들은 보호구역을 지정하면 어류 생물량이 늘고 인근 지역 어획량도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13일(프랑스 현지 시간) 막을 내린 제3차 유엔 해양총회(UNOC). 총회 기간 동안 전 세계 공해의 30%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자는 내용의 협정에 20개국이 추가로 비준해 총 51개국이 비준을 완료했다. 협정 발효를 위해 필요한 비준 국가는 60개국, 앞으로 9개 국가만 남았다.
프랑스와 코스타리카카가 공동 주최한 이번 총회는 공해 해양보호구역 지정을 위한 국제 사회의 합의에 진일보를 내딛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가 역시 따르고 있다.
글로벌 해양조약(BBNJ)란?
그중 총회 기간 동안 20개국이 비준에 동참해 발효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글로벌 해양조약은 공해의 30%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제 협약이다. 협약이 발효되고 공해 해양보호구역이 지켜진다면, 보호구역 내 생태계뿐 아니라 인근 지역의 생태계 회복까지 기대해볼 수 있다.
해양은 지구 최대의 탄소흡수원 중 하나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함으로써 기후위기 완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과도한 어업과 각종 오염으로 심각한 생태적 위기에 놓여있다.
해양 생태계를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업, 채굴 행위를 전면 금지하는 해양보호구역을 늘리는 것이지만, 현재 전 세계 해양 중 완전하거나 고도로 보호된 지역은 2.7%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국가 관할 밖 해역인 공해의 보호구역 비율은 단 0.9% 수준으로, 현재의 보호 속도대로라면 2107년이 되어서야 30×30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국제 사회는 2022년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KMGBF)의 일환으로 ‘2030년까지 해양의 최소 30%를 보호하자는 ‘30×30 목표’에 합의한 바 있다. 이후 해양의 최소 30%를 보호하자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국가 관할 해역뿐 아니라 공해를 포함한 국제 해역의 보호가 필수적이라는 인식 아래, 국제 사회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글로벌 해양조약(BBNJ)’에 합의했다. 공해를 공동의 유산으로 보고, 국제협약을 통해 관리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조약에는 공해의 30% 이상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자는 결의가 담겨 있다.
그러나 국제 해역인 공해에 보호구역을 설정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적 수단으로 평가받아온 글로벌 해양조약(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협약에 따른 국가관할권 이원지역의 해양생물다양성 보전 및 지속가능한 이용에 대한 협정)이 발효되기 위해선 60개 회원국의 비준이 필요하다. 총회 전 비준 완료 국가는 이의 절반 수준인 30여개국에 불과했다.
글로벌 해양조약 비준에 20개국 참여…’앞으로 9개국 남았다’
이번 총회는 글로벌 해양조약 비준에 속도를 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국제 해양 보호 협정 비준 회원국 수가 50개국을 넘으며 실제 발효를 위해 필요한 60개국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동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협약에 비준한 나라다.
프랑스와 코스타리카카가 공동 주최한 제3차 유엔해양총회(UNOC)가 지난 13일(프랑스 현지 시간) 막을 내렸다. (사진 그린피스)
이번 총회 기간 동안에는 30여개국에 지나지 않았던 비준 완료 국가에 20개국이 추가로 참여하면서, 현재 기준으로 비준 완료 국가는 51개국이 됐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오는 9월 유엔 총회 전까지 몇몇 국가들이 추가로 비준할 것으로 예측돼, 60개국이 비준 완료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린피스 김연하 해양 캠페이너는 “글로벌 해양조약이 발효되어 공해의 30%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면, 인간 활동으로부터 자유로운 회복 공간과 시간이 마련되어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회복이 이뤄진다”며,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보호구역을 지정해 보호하면) 보호구역 내 어류의 생물량과 크기가 크게 증가하고, 인근 지역 어획량도 장기적으로 회복되는 스필오버 효과(Spillover effect)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호와 지속가능한 이용이 공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양보호구역은 보다 나은 해양 생태계 구축을 위한 핵심 솔루션”이라며, “전 세계 공해 보호구역은 2%도 채 되지 않으며 30x30 글로벌 목표 달성까지 4년 반도 채 남지 않은 지금, 조속한 실행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태아 시절 기후재난 노출, 뇌 발달에 악영향“
기후위기와 날씨재난이 뇌 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태아 시절 허리케인과 폭염에 노출됐던 아이 중 일부가 그렇지 않은 아이들과 비교해 뇌의 특정 부분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관찰됐다는 연구다.
기후위기와 날씨재난이 뇌 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연합뉴스 등이 블룸버그통신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기후 스트레스 요인이 임산부를 거쳐 결국 아기의 뇌 발달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PLOS One에 발표됐다.보도에 따르면 이번 연구는 미국 뉴욕 일대를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 샌디' 이후 수 년 간의 뇌 영상 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진행됐다. 지난 2012년 10월 뉴욕과 뉴저지를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는 약 120명의 사망자와 수십억 달러의 피해를 남긴 바 있다.
연구진은 약 8세 아이들 34명을 평가했는데, 이 가운데 11명은 샌디가 강타했을 당시 부모가 임신 중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태아 시절 허리케인을 겪은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뇌의 '기저핵(basal ganglia)' 부분이 유의미하게 더 크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 변화가 '아이들의 행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재해 당시의 스트레스가 부모를 통해 자녀의 신경 발달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다만, 연구팀은 이 같은 기저핵 변화가 아이들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까지는 명확히 규명하지 못했다.보도에 따르면 기저핵은 감정 조절 등에 관여하며, 우울증이나 자폐증과 같은 질환과 연관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된 바 있다.
특히 연구 대상 아이들 중 7명은 부모가 샌디뿐 아니라 임신 중 극심한 폭염에도 노출된 것으로 확인됐는데, 이들의 뇌 변화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이를 두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가 달라진 날씨나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허리케인 샌디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강수량 증가로 인해 더욱 큰 피해를 입힌 것으로 평가된다연구진은 "기후 위기가 단순한 환경적 비상사태가 아니라, 우리 지구를 물려받을 미래 세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신경학적 비상사태"라고 밝혔다.
제주서 껍질 벗겨진 후박나무 43그루 발견
환경단체 "약재로 쓰려고 벗긴 듯…불법 행위"
제주의 한 임야에서 껍질이 벗겨진 후박나무 수십그루가 확인됐다.(제주자연의 벗 제공.
환경 단제 '제주자연의 벗'은 16일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의 한 임야에서 후박나무 43그루를 무더기로 박피(껍질을 벗겨냄)한 현장을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이 단체에 따르면 박피된 후박나무들은 둘레가 70~280㎝, 높이는 10~15m에 달한다. 단체는 해당 나무의 수령이 최소 70~80년, 많게는 100년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박피된 후박나무는 밭둑에 6그루, 농로 주변에 13그루, 산림지역에 24그루 있었다.
후박나무는 난대 수종으로서 국내에선 제주도에 많이 분포하는 수종이다.이 나무는 키가 크고 수관이 넓어 그늘을 넓게 드리우기 때문에 제주에선 가로수로도 많이 쓰인다. 후박나무 껍질이나 잎은 민간요법에서 약재로 쓰여 왔다.단체는 누군가 약재로 쓰기 위해 이 같은 행위를 저질렀다고 추측하고 있다.
제주의 한 임야에서 껍질이 벗겨진 후박나무 수십그루가 확인됐다.(제주자연의 벗 제공.
단체에서 확인한 결과, 후박나무 박피가 이뤄진 곳의 지목은 '임야'로 생태계 보전 지구 5등급에 해당하기 때문에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적용을 받아 허가 없이 나무를 베거나 식물을 채취하는 행위가 불법이다.사유림이라 할지라도 보전지역은 관련 행위에 허가 절차가 필요하고, 일반 산지라도 열흘 전에 관계 기관에 신고해야 한다는 게 이 단체의 설명이다.
이 단체는 박피가 직접적으로 나무를 베는 행위는 아니지만 산림 훼손 행위로 간주할 수 있고, 생태계 보전 지구에선 5등급이라 해도 훼손 행위 자체는 엄격히 규제된다고 지적했다.
단체는 "합법이든 불법이든 이렇게 오래된 나무껍질을 무자비하게 벗겨내는 행위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박피가 과도하면 나무를 고사하게 할 뿐만 아니라 숲의 생물 다양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당국의 빠른 조치를 촉구했다.ksn@news1.kr
430ppm 돌파한 이산화탄소… 혹독한 여름 예고에 ‘기후에너지부’ 시동 건 이재명 정부
최근 날씨가 극단적인 변동을 보이고 있다. 지난 14일 새벽 부산에는 시간당 61㎜에 달하는 집중호우가 쏟아지며,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많은 강수량을 기록했다. 불과 하루 뒤에는 경기 내륙 지역에 올여름 첫 폭염주의보가 내려졌고, 서울 역시 소나기가 지나간 뒤 무더위가 이어졌다.
이처럼 폭우와 폭염이 번갈아 나타나는 ‘이상 기후’ 현상이 점차 일상화되고 있다.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재명 정부는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준비 중이며,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적·정책적 대비책 마련이 주목된다.
◇이산화탄소 농도 상승하고, 날씨 더워져
이미 기후변화는 막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하와이 마우나로아 관측소의 관측 자료에 의하면 지난 5일 기준 이산화탄소 농도는 430피피엠(ppm)을 기록해 산업화 이전 대비 약 60% 상승했다. 미국해양대기청의 조사에 따르면 전지구 월별 평균 기온도 지난해 전지구 온도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올해도 지난 1880년 관측 이래 △1월(1위) △2월(3위) △3월(3위) △4월(2위)로 기온편차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
김백민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이산화탄소 농도는 과거 100여년전부터 이산화탄소가 누적된 것으로 매년 2.5ppm~3ppm씩 일정하게 올라가고 있다”며 “당장 탄소 배출량을 ‘제로(0)’으로 만든다고 해도 농도는 쉽게 바뀌기 어려울 정도로 이상기후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불 건수와 피해 면적은 1980년대 대비 각각 2배·7.5배 증가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대형 산불이 발생할 확률이 2100년까지 50% 확대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극한 기후가 잦아지고 있다. 세계기상특성(WWA)은 지난 4월 국내 대형 산불을 300년에 한 번꼴의 이례적 기후현상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국내에서는 해수면 온도 상승이 북태평양 고기압 강화로 이어져 장마가 약화되고 가뭄, 폭염, 강풍 등 이상기후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반도 연근해(연안에서 가까운 바다)도 올해 저수온이었지만 여름이 다가오면서 작년처럼 수온이 치솟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이례적으로 8월과 9월에 역대 최고 수준의 폭염이 발생하면서 여름 전체 폭염일수는 역대 2위를 기록했다. 문제는 해가 갈수록 심각해진다는 점에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올해도 예년만큼 습도를 동반한 폭염과 그로 인한 열대야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명인 울산과학기술원 지구환경도시건설공학과 교수는 “작년에는 집중호우와 폭염이 번갈아 가면서 발생하는 복합재해가 많았다”며 “올해도 북태평양 고기압이 예년보다 일찍 발달해 더위가 계속되고 있으며, 작년 엘니뇨(동태평양 적도 부근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은 상태로 지속되는 현상) 현상으로 중위도가 영향을 받았던 것처럼 올해도 유사한 상태를 유지해 한반도도 작년처럼 더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후에너지부 산하 독립 기구정부도 국가적인 ‘기후위기 대응 콘트롤타워’ 증대 필요성에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준비하고 있다.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나눠 맡은 업무를 통합해 기후 위기 대응과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게 한다는 구상이다.
이미 기후 변화가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 된 만큼 기후 적응형 대책 마련을 위한 에너지 전환 정책 추진과 함께 기후 연구를 위해 데이터를 모을수 있도록 지원하는 독립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영국은 기후와 에너지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주무부처를 에너지 안보·넷제로 부처로 개편해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대응을 추진하는 만큼 이를 벤치마킹할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이명인 교수는 “기후변화는 결국 에너지 문제라는 점에서 기후에너지부를 통한 통합 거버넌스 구축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면서도 “기후변화 대응을 하려면 결국 날씨 데이터와 같은 데이터들이 중요하고, 농작물 작황 피해 대비 연구 등 인간의 적응 연구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기상청의 기능 일부 기능만을 떼어내기 보다 기후에너지밑에 기상청을 독립 외청으로 두거나 별도 독립기구를 만들어 과학기반 자료 취합, 관리, 생산이 가능하게 했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콘트롤타워를 구축하는 만큼 이번 기회에 국가적으로 에너지 전환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백민 교수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전향적으로 재생에너지도 확대하는 등 전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며 “탄소중립2050에서 더나아가 에너지독립2050까지 염두하고 정책을 추진해나갔으면 한다”고 밝혔다.
가평 잣이 사라진다… 4천t 달하던 생산량 2023년 24t에 그쳐
기후 변화로 잣나무 분포지 감소 원인
소나무재선충·허리노린재 병충해까지
가평군 가평읍 연인산 도립공원 탐방소 인근 야산에 소나무재선충병 감염목 등이 고사된 채 방치돼 있다
경기도의 대표 특산물인 ‘가평 잣’이 머지 않은 미래에 자취를 감출지도 모르게 됐다. 기후변화로 인한 잣나무 분포지의 감소는 물론, 소나무재선충과 소나무허리노린재 등 산림 병해충까지 번지면서다. 가평에 식재돼 있는 잣나무가 대규모 공격을 받고 있는 셈인데, 한 때 4천여t에 달하던 가평군 한 해 잣 생산량이 24t까지 떨어졌다. 전성기 생산량의 100분의 1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18일 경기도와 가평군 등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 가평군 잣 생산량은 2016년 3천865t으로 가장 많았다가 2017년 1천733t, 2018년 183t으로 급감하고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23년에는 생산량이 무려 24t까지 떨어졌다. → 그래프 참조
상황이 이렇자 잣 농가들도 폐업을 고민하게 되는 실정이다. 15년 동안 잣을 수확해온 이규열(60대) 가평잣협회장은 “생산량이 이대로라면 길게 봐야 5년 정도 버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재작년부터 가평에 있는 잣 농가들이 그만두는 추세다. 올 가을도 생산량이 지난해와 비슷하다면 (폐업을) 깊이 생각해보려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잣 생산량이 급감하게 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주된 이유는 기후위기로 인한 온도 상승과 병충해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023년 고려대학교 연구진의 ‘RCP와 SSP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활용한 우리나라 미래 수종 분포 예측 연구’를 보면, 당시와 같은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면 잣나무 분포 적합지가 2051~2080년이 되면 86%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기후 변화에 영향을 받아, 잣나무가 생육할 수 있는 환경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아울러 경기도 산림환경연구소는 2020년 조사를 통해 소나무허리노린재를 잣 생산량 감소 현상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에 대한 방제작업을 벌이고는 있지만, 방제는 주변 양봉 농가 등에 또다른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최근 열린 가평군 행정사무감사에서도 이 같은 문제의 심각성이 다뤄졌다. 최정용 군의원은 “잣은 가평의 특산품으로 (경기도나 지자체에서) 이를 살리기 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하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18일 가평군 가평읍 연인산 도립공원 탐방소 인근 야산에 소나무재선충병 감염목 등이 고사된 채 방치돼 있다. 2025.6.18 /김민수기자 kms@kyeongin.com
경기도 역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을 마련중이다.도 관계자는 “최근 이동수단이 발달해 소나무재선충 등의 움직임을 통제하기 더 어려워져 애로를 겪고 있다”며 “병해충뿐 아니라 기후 등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해, 대책마련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우균 고려대학교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는 “잣나무 감소가 지금 더 가속화됐을 수도 있다”며 “(생산량이 그렇게까지 떨어졌다는 것을 감안하면)가평의 경우 앞으로는 수확이 어려운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미 체감하는 폭염 정도도 높아졌고, 잣나무는 살더라도 잣을 생산해 내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결국 가평보다 고도가 높은 고산지대에서만 잣나무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영지·김민수기자 bbangzi@kyeongin.com
멸종위기 붉은점모시나비, ‘강원도 삼척’ 최대 집단서식처 확인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전국 분포조사’를 통해 해당 지역을 정기적으로 관찰해 왔으며, 2023년 5월 주민 제보를 계기로 광동댐 사면 약 2만5000㎡ 면적에서 최소 200마리 이상의 붉은점모시나비가 집단 서식하는 것을 3년에 걸쳐 확인했다.
날개에 선명한 붉은 점이 특징인 붉은점모시나비는 과거 전국적으로 분포했으나, 현재는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경상북도 의성군, 충청북도 영동군 등 일부 지역에서만 발견될 정도로 서식처 수가 크게 감소했다. 특히 도로 건설로 인한 서식처 파편화와 불법 포획으로 개체수가 줄어들면서 멸종위기에 처했다.
광동댐 상류 사면은 일조량이 풍부하고 암반이 많아 붉은점모시나비 유충의 먹이 식물인 기린초가 자라기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출입이 제한돼 불법 포획 등 위협요인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서식 환경을 제공한다.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삼척시 광동댐을 포함한 전국의 붉은점모시나비 서식처를 정기적으로 관찰해 종 복원에 필요한 기초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겨울철 동해안 별미 도루묵 여름에도 잡혀…바다 온난화 원인
멸치는 때를 가리지 않아…"미래는 어종의 다양성 낮아질 것"
강릉 주문진항의 도루묵
동해의 겨울이 빠른 속도로 따뜻해지면서 겨울철에 주로 잡히던 도루묵이 여름에도 잡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릉원주대 이충일(해양생태환경학과) 교수는 최근 열린 한 세미나에서 '강원 수산물 생산 감소와 연안환경 변화' 주제 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19일 자료에 따르면 1980년대 겨울철 경북 포항 앞바다 환경이 2010년 이후 강릉, 양양을 지나 속초 연안까지 북상하는 등 서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따듯해지고 있다.이에 동해 주 어획 어종도 변화해 1970년 연간 1천t에 불과하던 방어류는 2020년 1만t 가까이 증가했지만, 살오징어는 7만t 수준에서 1만t 조금 넘게 잡히는 등 난류성 어종이더라도 온난화 현상에 다르게 반응했다.
멸치는 2010년 이전 12월에 가장 많이 잡히던 것이 2021년 이후에는 때를 가리지 않고 잡힌다.특히 11∼12월에 주로 잡히던 동해안의 겨울철 별미 도루묵은 2021년 이후에는 7∼8월 여름에도 잡힌다.청어도 여름철 어획량이 늘어나고 있다.어획량은 줄고, 주 어획 시기는 사라지는 대신 연중 적은 양이 계절과 무관하게 잡히는 환경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온난화 과정에서 해양생태계는 빠르게 반응, 2050년에는 지금보다 어종의 다양성이 더 낮아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yoo21@yna.co.kr
지도에 없던 섬, 갑자기 솟았다...기후위기 때문
카스피해 북부에 생긴 섬. (사진 Yu. Shulgina, 러시아 시르쇼프 해양학연구소
해수면이 급격히 낮아진 카스피해에 새로운 섬이 나타났다. 과학자들은 이 섬이 멸종위기종 카스피해물범의 새로운 서식처가 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산하 해양학연구소는 카스피해 북부에 있는 섬 말리 젬추즈니에서 남서쪽으로 약 30km 떨어진 국립자연보호구역에 새로운 섬이 생겼다고 밝혔다.이 섬은 물 위로 약간 솟아있으며, 모래와 퇴적물이 떠올라 마르기 시작하면서 표면이 평평한 상태다.
연구원들은 2024년 11월 위성 사진에서 이 섬의 존재를 처음 발견하고 최근 섬에 상륙하려고 했으나 악천후와 얕은 수심으로 실패했다. 드론으로 촬영한 사진으로 섬의 모습과 크기만 파악한 상황이다. 연구진은 올해 하반기에 다시 섬을 방문해 특징을 자세히 조사하고, 정식 명칭도 부여할 계획이다.
이 섬은 카스피해 수위가 낮아지면서 생겨난 것으로 알려진다. 해양학연구소에 따르면 카스피해 수위는 역사적으로 꾸준히 변동해왔으나 최근에는 하강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1930년대와 1970년대에도 수위가 낮아진 기록이 있으며 2002년부터 2015년까지는 매년 6cm 이상 낮아졌고 2020년 이후에는 연간 최대 30cm씩 줄어들고 있다.
해양학연구소 수석연구원 스테판 포돌리아코 "카스피해에 섬이 생기는 이유는 내륙해의 수위가 장기적으로 변동하는 과정과 관련 있다"며 "수위가 낮은 시기에 해저가 솟아 물 위로 모래가 드러나면서 이런 섬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위 하강을 가속하는 원인으로 기후위기와 지각 변동을 함께 지목했다.
한편, 해양학연구소는 새로운 섬의 크기가 점점 커질 수 있으며 이는 생태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멸종위기종인 카스피해물범과 철갑상어 6종의 안정적인 서식처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스피해물범. (사진 Wikimedia Commons
카스피해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내륙해로, 호수와 바다의 특성을 모두 지닌 독특한 수역이다. 대양과 연결되지 않고 육지에 둘러싸여 있지만 염분이 있는 물로 채워져 있다./뉴스펭권
제주 바다 덮친 수천 마리 잠자리 떼…"기후 변화 영향
제주에서는 최근 수천 마리의 잠자리떼가 낚싯배를 덮치는 일이 잇따르고 있습니다.지난해 가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이렇게 초여름에 잠자리떼가 나타나는 건 이례적입니다.기후 변화가 그 원인으로 분석됩니다.
<기자>낚싯배에 수천 마리의 곤충 떼가 쉴 새 없이 날아듭니다.
[6월에, 우와 미쳤다. 이거 어떡해 이거.]낚시하는 사람의 몸에도 가득 달라붙어 있습니다. 아열대성 된장잠자리입니다.잠자리떼의 갑작스러운 공습은 무려 3시간 넘게 이어졌습니다.
2024년 9월 8일 제주 앞바다의 한 낚싯배에 날아든 잠자리 떼에 한 낚시꾼이 잠자리에 뒤덮여 있다 된장잠자리는 무게 0.3g, 몸길이 4㎝ 정도 '곤충계 철새'로 불릴 만큼 먼 거리를 자유자재로 이동한다 / 조선
[장용석/제주 어선 선장 : 한두 마리가 아니고 배 전체를 다 덮을 정도예요. 그래서 등이고 어디고 (달라붙어서) 거의 조업을 못 할 정도로….]된장잠자리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날아온 뒤 우리나라를 지나 일본 규슈 지역까지 이동하는데, 모기나 파리 등을 잡아먹어 익충으로 분류됩니다. 된장잠자리 떼 출몰은 이번뿐만이 아닙니다. 제주에선 지난해 9월에도 수천 마리의 된장잠자리 떼가 낚싯배를 덮쳤습니다.당시는 김녕항 인근에서 확인됐고, 이번에는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수월봉 인근에서 관찰됐습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초여름에 관측되는 건 이례적입니다.
된장잠자리는 장마전선을 따라 이동하는 경향이 있는데, 올해 제주에서 장마전선이 평년보다 빠르게 형성되면서 이른 시기에 관찰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특히 기후 변화로 인해 된장잠자리의 대발생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상황.
[도윤호/공주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 서식할 수 있는 온도 자체가 과거보다 점점 높아지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고온에서 성장하는 개체들은 대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히….]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제주, 매년 잇따르는 곤충 대발생 사례는 점차 뜨거워져 가는 지구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JIBS 권민지
문경 주흘산, 중국 장가계에 견줄 만한 세계적 명소 만든다
경북 문경 주흘산. 문경시 제공
중국의 장가계나 스위스의 융프라우와 같은 명소 만들기 프로젝트가 대한민국 경북 문경에서 진행되고 있다. 과거 \'선비\' \'문경새재\' \'탄광\' \'촬영지\' \'도자기\' 등으로 상징되던 이 전통도시가 현재 \'세계적 힐링관광도시\'를 꿈꾸며 자신만의 새로운 미래를 그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주흘산 케이블카\' \'하늘길\' \'복합 웰빙 리조트\'가 자리한다.
문경은 연간 250만명이 넘는 방문객을 자랑하지만 \'체류시간이 짧다\'는 고질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에 문경시는 \'잠시 머무는 곳\'이 아닌 \'머무르고 싶은 체험형 관광도시\'로의 전환을 위해 장기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서막은 케이블카가 열었다. 문경시는 지난해 4월 주흘산 케이블카 기공식을 가졌다. 4주차장에서 정상 인근까지 총연장 1.86Km 규모로 조성된다. 문경시는 또 417억원을 투입해 2027년 완공을 목표로 케이블카 상부 승강장에서 이어지는 총연장 2.3㎞의 \'주흘산 하늘길\'도 추진한다. 하늘길에는 \'트리탑로드\' \'잔도 클리프워크\' \'스카이 브릿지\' 등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다양한 콘텐츠로 구성된 서사형 체험공간이 탄생한다.
뿐만 아니라 문경시는 지난 16일 글로벌 웰빙 리조트 운영사인 테르메르그룹코리아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문경읍 하초리 일원 19만여㎡ 부지에 복합 웰빙 리조트 조성에 나섰다. 리조트는 문경새재·케이블카·하늘길 등 인근 관광자원과 연계해 시너지를 극대화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테르메그룹은 독일·루마니아 등에서 대규모 복합 웰빙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는 전문기업이다. 독일 \'테르메 에르딩\'은 연 190만명, 루마니아 \'테르메 부쿠레슈티\'는 연 160만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다.
신현국 문경시장은 "주흘산 케이블카, 하늘길, 복합 웰빙 리조트 등 관광 인프라가 완공되면 장가계(중국), 융프라우(스위스), 바나힐(베트남) 같은 세계 명소에 견줄 만한 관광지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덕도 신공항, 지금이라도 재고하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가덕도 신공항’ 사업이 첫 삽도 뜨지 못한 채 다시 표류하고 있다. 부지 조성 공사부터 참여하겠다는 업체가 없어 4차례 유찰 끝에 가까스로 작년 10월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2029년 말까지 부지를 완공하는 조건으로 10조5300억원에 수의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그러나 현대건설은 6개월간의 기술적 검토 끝에 기한 내 완공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공사 기간을 84개월에서 108개월로 연장해줄 것을 국토부에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지난달 30일 사업 불참을 발표했다.
2006년 동남권 신공항 논의가 본격화된 지 19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헛바퀴만 돌고 있는 것은 이런 대규모 국책사업이 기술적 경제적 타당성과 안전성을 무시한 채 포퓰리즘에 휘둘려 무리하게 추진되어 왔기 때문이다.
2011년 4월 국토연구원은 가덕도가 신공항 입지로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고, 세계 최고 수준의 공항 설계 업체인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은 2016년 6월 김해공항 확장을 최선의 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만약 부산시가 ADPi의 결론을 바로 수용했더라면 김해 신공항은 이미 완공 단계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런데 2021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김해공항 확장 방안이 폐기되고, 여야가 부산의 표심을 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밀어붙인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 2월 26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죽었던 가덕도가 다시 살아났다.
특별법 통과 직전까지 국토부는 가덕도신공항 7대 불가론을 고수해 왔고, 건설비가 28조까지 들 수 있다는 보고서를 공개한 바 있다. 그런데 천문학적 공사비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안전성이다.
가덕도신공항 건설에는 일본 간사이공항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1987년에 착공하여 1994년 개항한 간사이공항은 사방이 육지와 섬으로 둘러싸인 평균 수심 18m의 잔잔한 내해를 매립한 인공섬에 건설되었다. 그런데 당초 해수면에서 15m 높이로 건설한 공항은 2024년 말까지 13.66m나 가라앉았다. 개항 6년 만에 11m나 가라앉았고 지금도 매년 6㎝씩 침하하고 있다. 2018년 태풍 ‘매미’가 덮쳤을 때 활주로는 온통 뻘로 뒤덮이고, 터미널뿐 아니라 계류된 항공기의 엔진까지 침수되자 방파제 높이를 3.3m, 활주로 높이를 2.7m 올리는 전면적 보강공사를 한 바 있다.
가덕도는 간사이보다 입지 조건이 불리하고 침하 위험성도 훨씬 높다. 최고 12m 높이 파도가 밀려오는 태풍의 길목에 있고, 해저 연약 지반의 두께는 간사이의 세 배인 60m에 달한다. 현재 설계대로 활주로의 3분의 1은 섬을 절개한 육상에, 나머지는 매립지 위에 건설할 경우 육상 구간 활주로는 그대로 있는데 해상 구간의 활주로만 계속 가라앉는 부등침하(不等沈下)가 발생하여 안전성에 치명적 문제를 제기한다. 간사이공항도 부등침하를 겪고 있지만 가덕도의 부등침하는 차원이 다르다.
해상구간의 활주로가 간사이공항의 속도로만 가라앉더라도 육·해상 구간이 절단되고 두 구간 사이의 높이는 개항 이후 6년간 매년 2m씩 벌어진다. 이렇게 되면 9년 만에 완공하더라도 그 이후 상당 기간은 항공기 운항이 불가능해진다. 또한 태풍이 지나갈 때마다 파손된 부지와 시설을 복구하는 동안에는 공항을 폐쇄해야 한다. 더구나 안개와 강풍이 잦고 조류충돌 위험이 무안공항보다 200배 이상 높은 가덕도 해역에 현행 설계대로 인천공항이나 간사이공항 보다 15m나 좁고, 500m나 짧은 활주로를 건설하면 조종사의 우발적 실수가 대형 참사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다. 결국 김해공항 확장 예산의 몇 배를 들여 김해 신공항의 절반 규모에 불과한 가덕도신공항을 완공하더라도 반신불수가 되고, 기껏해야 김해공항의 보조 공항 역할밖에 할 수 없다.
정치권은 가덕도가 마치 부산 경제를 살릴 요술방망이라도 되는 것처럼 호도하여 부산시민들을 희망고문하는 것을 중단하고, 조속히 합리적 대안을 선택해야 한다. 안전한 공항을 지을 수 있는 넓고 멀쩡한 육지를 가까이 두고 20㎞나 더 떨어진 바다 위에 위험한 공항을 짓겠다는 발상은 부산 시민을 우롱하는 ‘야바위’나 다름없다. 가덕도신공항 예산이면 김해신공항뿐 아니라 신공항을 중심으로 한 광역철도망까지 건설할 수 있다. 부산시민들도 더 이상 허황된 ‘야바위’에 속지 말고 이제 실속을 차려야 한다.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조선
아파트는 모래를 먹고 자랐고, 대한민국은 한강을 먹고 자랐다
밤섬 폭파 1968년 ‘한강 상실’ 신호탄
‘기적’의 상징된 지배적 서사 뒤집어
발전 아닌 발전 위해 희생된 과정 추적

1968년은 세계사적인 해였다.
반전·반핵·반인종주의, 민권운동과 여성해방, 사회변혁을 향한 열망으로 ‘폭발’했던 그해에 한국에선 작은 ‘폭파’가 있었다. 1월 북에서 내려온 김신조 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하고, 2월 경부고속도로가 공사를 시작하고, 4월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금으로 포항제철이 창립하고, 12월 ‘국가주의 교육’을 강요하는 헌장이 선포되며, 반공과 군사독재와 정경유착이 결합한 개발주의가 모든 가치를 집어삼키던 그해 2월1일 오후 3시였다. 박정희의 ‘불도저’이자 ‘돌격 행정’을 펼치던 서울시장 김현옥이 밤섬을 폭파했다. 면적 0.057㎢ 작은 섬이었지만 섬으로 존재해 온 수만년의 시간이 멈추는 순간이었고, 섬을 품고 있던 한강에겐 수만년간 형성해 온 지형과 풍경을 빼앗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섬을 깨부수고 얻은 트럭 4만대 분량의 돌로 여의도 윤중제(여의방죽)를 짓는 것이 폭파의 목적이었다. 윤중제 건설은 여의도 매립의 기초였고, 여의도 매립은 박정희 정권 ‘한강 개발 3개년 계획’의 핵심이었으며, 한강 개발은 가난 극복을 앞세운 개발독재의 정치적 엔진이었다.
“그 아름다움이란 천국의 향기와도 같았다.”
영국 왕립지리학회 첫 여성 회원이었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1898년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출간)은 1894년 4월 작은 나룻배를 타고 마포, 송파, 팔당, 여주, 충주, 단양, 가평, 춘천 등을 물길로 여행하며 ‘천국’에 빗댈 만큼 한강에 매료됐다. “무엇보다 한강은 금빛 모래의 강”이라고 칭송했다. “한강 상실의 신호탄”인 밤섬 폭파 이전의 한강엔 수많은 섬들과 모래톱이 있었다. 한강 개발은 그 강으로부터 섬과 모래를 없애고 사람을 떼어내 인간과 자연을 서로 격리하는 정책이었다고 ‘한강, 1968’은 말한다


밤섬이 사라진 해 ‘1968’을 제목에 단 책은 ‘한강 파괴의 이력서’이자 강을 통해 돈과 권력의 욕망을 탐사하는 다큐멘터리다. 책은 한강을 ‘기적’의 상징으로 호명해 온 지배적 서사를 정반대로 뒤집는다. ‘한강은 발전한 것이 아니라 발전을 위해 희생됐다’는 시선으로 ‘파괴의 과정’을 추적한다.
“정복”과 “지배”. 김현옥이 개발을 추진하며 사용한 이 언어들에 한강의 운명은 이미 예정돼 있었다. 여의도 매립은 그 최전선이었다. ‘옛 여의도’는 현재(2.9㎢)보다 3배 이상 넓은 섬이었다. 1969년에 9.6㎢였던 면적은 개발로 급격히 줄어든 반면, 200m였던 여의도와 마포 사이 수면 폭은 1100m로 늘어났다. “섬을 파서 섬을 메”운 탓이다. 밤섬에서 나온 돌과 흙으로 윤중제를 쌓고 여의도와 한강 변에서 파낸 모래로 안을 채워 땅높이를 8m 올렸다.
매립과 준설은 한강을 뒤바꾼 두 축이었다. 1970년대 말까지 팔당에서 김포대교 구간의 매립 면적은 1만39㎢로 현재 여의도의 4.8배였다. 그 면적을 매립하는 데 끌려 들어가 사라진 모래는 여의도의 9.2배(26.61㎢)였다. 매립해서 생긴 땅엔 아파트를 지었다. 여의도와 동부이촌동, 서빙고동, 반포와 압구정의 주요 아파트들이 이렇게 들어섰다. “아파트는 모래를 먹고 자랐”고, 대한민국은 한강을 먹고 자랐다.

“이 모든 행위의 목적과 결과는 결국 돈이었다. (…) 1970년대 강은 땅장사의 대상이었다.”
모래 자체가 돈이었다. “서울 지역 내 한강 골재와 고수부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1981년 전두환의 느닷없는 지시는 이젠 뜨지도 않는 한강 유람선(현재 2척)의 실체와 연결돼 있다. 전두환 정권의 ‘한강종합개발사업’에 등장한 ‘뱃길 조성’의 진짜 이유는 대규모 준설로 물 위로 드러난 골재가 바닥났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의 뜻을 이행하려면 물속 모래를 파낼 수밖에 없었다. 뱃길과 유람선은 모래를 얻기 위한 알리바이였다. 골재 수요가 폭발하던 시기에 모래는 곧 이권이었다. 대통령의 지시를 저자는 정치자금과 연결 지어 해석했다.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이 대형 건설사 사장들에게 정치자금을 요구하며 골재 사업권을 넘기던 시절이었다. (공사비를 골재 판매 대금으로 충당하고, 선박 운행을 이유로 강바닥을 준설하고, 낮아진 하천 수위를 보강하기 위해 수중보를 만든 한강개발사업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빼닮았다. 전두환 정권의 한강 개발 당시 제3공구 공사를 맡았던 현대건설의 사장이 이명박이었다.)

그 결과 ‘금모래’는 사라졌고, 구불구불하던 물길은 직선이 됐으며, 도로로 차단된 한강은 “멀리서 바라보는 곳”이 됐다. “강은 강 안에 갇혔고 사람은 땅에 갇혔다.” 이 모두가 1968년부터 1986년까지 단 18년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그사이 한강의 본래 모습은 사람들의 머리에서 말끔히 지워졌다.
책엔 한강의 훼손을 안타까워하는 한 연구자의 땀이 묻어 있다. 저자는 국책연구기관에서 35년간 하천 복원과 홍수 대책, 4대강 등을 연구해 온 강과 물흐름 전문가다. 그가 특히 공들인 부분은 성실하게 발굴해 정교하게 편집한 수많은 사진들이다. 강과 자연의 논리가 아니라 돈의 논리가 관철돼 온 한강의 변화를 저자는 ‘증거 사진들’을 집요하게 찾아 밝혀낸다. 그중에서도 1940년대 후반부터 측량 목적으로 촬영한 시기별 항공사진들은 한강의 본모습뿐 아니라 그 모습을 잃어가는 ‘상실의 단계’를 구체적 장면과 수치로 확인시킨다. “강은 물론이고 강 위의 섬까지도 마음 내키는 대로 바꾸던 시대”에 여의도와 밤섬, 잠실, 선유도, 반포, 압구정, 미사리 등의 오늘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사진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책이 고발에서 그치진 않는다. 지금은 “복원의 시대”라고 저자는 말한다. 2024년 6월 유럽연합 의회를 통과한 ‘자연복원법’과 각국의 노력을 제시하며 복원의 방향을 ‘과거’에서 찾는다. 그는 “강에게 과거보다 더 나은 미래는 없다”고 단언한다.
“강변의 무수한 아파트와 도로, 강 곳곳의 제방을 다 없앨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조금만 방향을 바꾸면 한강의 모래를 되살릴 수 있다. 깊게 파서 낮아진 강바닥을 다시 높일 수 있다. (…) 막힌 강을 뚫어 강의 생태계를 회복할 수 있다. (…)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 앞에 흐르는 한강이 원래의 모습이라는 ‘착각’과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포기’와 여기에서 안주하려는 ‘타협’에서 우선 벗어나야 한다.”
폭파돼 잔해만 남았던 밤섬이 그 사실을 증명하며 조금씩 다시 자라고(1988년 측정 면적에 비해 2020년 1.6배 증가) 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