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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오래된 미래

함양 금대암 전나무

by 이성근 2019. 5. 19.


함양 금대암 전나무[咸陽金臺庵1998 경남 기념물 제212호 수령500년 수고 40m 흉고둘레 2.92m ] 현존 전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됐다고 함

 

조선 성종 때의 문신 김일손(金馹孫)이 쓴 기행문인 유두류록(遊頭流錄)산사(山寺)를 찾으니 20여 명의 스님이 정진도량하고 있었다.’ 하였고, 유효인이 쓴 시 중에 잘 있느냐 금대절아, 송하문(松下門)이 예 같구나. 송풍(松風)에 맑은 꿈 깨어 잠꼬대를 하는구나라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볼 때 1403년 당시의 조사(租師) 행호(行乎)가 중창한 금대암에는 노송이 많았으며, 이 젓나무도 당시의 것이라고 추정된다.


금대암에서 압축파일을 풀다                      정태화

 

(1)

높은 단위에 앉아 계시니 심심도 하시겠다.

그 사실 대책도 없이 물어서 오래 출출하신 당신을 찾아오신 대추벌 한 마리 불경스럽게 흐흐 그대 입술에 내려앉아 계시니 금동불상金銅佛像 당신의 입술이 야단스럽게 부으셨다

지리산 옆구리 깊숙이 좌정하고 계시는 당신이 대웅전 높은 단입술 위에서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참에 청상靑孀 어머니 오체투지五體投止의 절, 오호라 달게 받아 드시면서 아랫배 방긋 부풀고 있는 중인데 대리석 섬돌에서 심심하신 고무신 한 켤레 나른한 하품 졸고 계신다.

 

그 가슴 왈칵 실리는 햇살, 낮잠 한 번 길게 주무시는 섬돌을 찾아오신 바람이 처마 끝 매달린 풍경을 댕그랑 댕그랑 흔들고 계신다.

 

이곳 금대암 오늘의 처지가 이와 같으니

이쯤에서 당신의 입술이 무슨 말이든 한 말씀하셔야 하겠다.

 

(2)

천년 세월 비바람 비빔밥 비벼서 달게 잡수신 적송赤松 한그루, 어깨를 늘어뜨려 내려놓으신 팔다리 가지를 떠나오신 산비둘기 한 마리

또르르 굴러 떨어진 풍경의 말씀 한마디 부리에 물고 푸드득 날아오르다가, 금대암 사찰寺刹 앞마당 바람 많은 허공을 빙빙 돌다가

천년바위 바람 터진 잔등 뿌리 내리신 전나무, 그 놈 참 튼실하게 자라 싱그럽구나, 중얼거리면서

우듬지 휘날리는 머리칼 하산하는 당신이 있다.

…………,

지리산 산자락 이름도 그럴듯한 다래원多來園 식탁에 앉아 삼계탕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계시는 사내

감출 수 없는 포만감飽滿感 졸음에 몰리는 동자승童子僧 동행同行의 아이를

그윽한 눈빛 지켜보고 계신다.

 

(3)

그때부터 수 천 년 세월이 흘러 지리산 옆구리 금대암 찾아오시는 사내가

수선화 같은 아내 한 분 모시고 와서

오체투지五體投止의 절, 108를 달게 받아 드시다가

금동불상金銅佛像 하산下山하시다가

늙은 잣나무 그늘 드리우고 계신다.

그러니 그대는,

 

날 저문 뒤 차려지는 아내의 저녁 밥상에 여분의 수저 한 벌 올려야 하겠다. 사람의 뇌경색腦梗塞이 모시고온 실어증失語症을 만나야 하겠다. 

높은 단허공에 계시는 입술에 오늘도 불경스럽게 대추벌 한 마리 날아드셨으니, 그 입술 야단스럽게 부풀어 오르신 사내를 위하여

아랫목 구들장을 장작불 뜨끈뜨끈 지피는 것도 모자라, 뜨거운 숯불 화로火爐를 당신의 머리맡 신주단지로 모셔들여야 하겠다.

 

시집내 사랑 물먹는 하마(시산맥사, 2015)


소나무과 Abies holophylla MAX. [ 沙松 , Niddle fir ]

젓나무라고도 한다. 젓나무라는 표기는 한국의 식물학자인 이창복이 전나무에서 젖(우유)이 나온다고 해서 전나무를 젓나무로 고친데서 비롯되었다.

전나무를 종목(樅木)이라 하며, 중국에서는 회목(檜木)이라 하고 일본에서 회()라고 쓴 것은 '하노끼'라고 읽고 전나무가 아니라 편백을 이르는 이름이다. 일본에서도 전나무는 종()이라 쓰고 '모미'라 읽는다. 중국에서는 전나무의 수관이 우산을 편 듯하고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흡사 풍마(風馬)가 질주하는 모양 같다 하여 포마송(鋪馬松)이라고도 하며 음이 같은 포마송(碼松)으로도 부른다.

 

높이 40m, 지름 1.5m에 달하는 고산 식물로서 풍치수로 흔히 심는다. 나무껍질은 잿빛이 도는 흑갈색으로 거칠며 작은가지는 회갈색이고 털이 없거나 간혹 있고 얕은 홈이 있다. 겨울눈은 달걀 모양이고 털이 없으나 수지가 약간 있다.

 

잎은 나선상 배열로 줄 모양이고 길이 4cm, 나비 2mm로서 끝이 뾰족하며 뒷면에 백색 기공선이 있고, 횡단면에는 수지구(樹脂溝)가 있다. 꽃은 양성화로 4월 하순경에 피며, 수꽃이삭은 원통형이며 길이 15mm로서 황록색이고 꽃줄기는 길이 4.5mm이다. 암꽃이삭은 23개가 서로 접근하여 달리고 길이 3.5cm로서 긴 타원형이며 길이 6mm 정도의 꽃줄기가 있다.

 

열매는 구과(毬果)로 원통형으로서 길이 1012cm, 지름 3.5cm 정도이고 끝이 뾰족하거나 둔하며 과경(果梗)은 길이 7mm정도이다. 10월 상순에 익는다. 실편은 거의 둥글고 길이 2530mm로서 흔히 밖에 수지가 묻으며 포는 밖으로 나타나지 않고 거의 원형이다.

 

우리나라 전국의 심산에서 자생하는 나무로 추위에 강하여 전국 어디서나 월동이 가능하다. 생육적지는 토양습도가 높고 공중습도도 높은 곳이다. 비옥한 토양에서 잘 자라며 어려서는 강한 나무그늘 속에서도 잘 자라는 음수이다.


전나무의 재목은 더위에도 썩지 않는다 하여 관 재료로서 중히 쓰였으며, 건축재료로는 곧고 크게 자라므로 사찰이나 궁궐, 대갓집의 기둥 같은 재목으로 많이 쓰였고 가구, 기구재, 특히 이남박, 함지 등의 재료로 쓰였다.

 

경도잡지(京都雜志)의 제택조(第宅條)에는 전나무에 얽힌 민속 같은 유습의 기록을 볼 수 있다. , 사대부집, 대문은 높고 키도 커서 보통사람은 얼씬도 할 수 없었다. 집 대청 앞의 전나무에 시렁(樅棚)을 매고 그 남은 가지 끝을 이끌었는데 흡사 호로양산을 편 듯도 하고 학이 날개를 편 듯도 하여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그 유습은 오래도록 전해져, 양반집 대청 앞에 해를 가리는 차일로서 전나무 시렁(樅棚)을 매는 유습을 볼 수 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나무는 아름다운 수형이 사랑을 받았으나, 오늘날 전나무는 크리스마스 트리로서 성탄절의 장식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전나무가 크리스마스에 쓰이게 된 것은 겔트민족이 상록수를 신성시하는 풍습에서 온 것이지만 유독 전나무를 사용하게 된 것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옛날 북유럽의 어느 숲 속에 사는 나무꾼(樵夫)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이 딸은 숲의 나무를 사랑했고 숲의 요정과 어울려 잘 놀았는데 밖에 나갈 수 없는 겨울이 되면 이 소녀는 문 앞에 서 있는 전나무에 조그만 양초를 걸어두어 요정을 위로했다.

 

그러던 어느 크리스마스의 전날 밤 나무꾼인 아버지는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되었는데 마침 멀리 전나무 하나에 빨간 불이 켜있어 그곳으로 달려가 보니 그냥 숲 속의 나무였다 한다. 그러나 사방을 살펴보니 다시 멀리에 불이 켜 있는 전나무가 있어 다시 그곳으로 찾아가는 것을 되풀이하다 보니 마지막 불 밝혀진 곳이 집 앞의 전나무에 딸이 밝힌 촛불이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으며 요정들이 인도했던 것이다. 이 전설 때문에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전나무에 불 밝히고 각종 장식품으로 아름답게 꾸미며 나무 밑에 선물꾸러미를 쌓아 두었다가 이브를 맞는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밤에 사람을 맞을 때는 전나무 가지나 소나무 가지에 양초를 세워서 현관으로 마중 나가는 풍습이 있다고 하며 이것으로 인하여 오늘날의 그리스도를 맞는 뜻으로 촛불을 밝힌다는 설도 있다. 전나무는 양재이고 수형이 아름다운데 비해 수명은 280~300년으로 추정되나 우리나라에는 500년을 넘긴 전설이 담긴 노거수들이 여럿 있다.

 

해인사의 학사대에 있는 두 아름이 넘는 전나무 노거수는 신라 때 최치원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여기에 꽂아두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는데 그 후에 그 지팡이에서 움이 돋아나서 자라 오늘날의 바로 이 전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공해와 에틸렌·아황산가스에 약하여 도시에서 점점 사라지는 수종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민속식물, 1997. 2. 15., 최영전



https//9594jh.blog.me/22084231520                                                                                      blog.daum.net.qutjrtk 070608

만나고 싶었으나 출입을 봉해놓아 가까이서 살필 수는 없었다.  근원부에서 약 2m 가량 수피가 벗겨져 있고  한 사람의 아름으로는 껴앉지 못하는 둘레다.

                 문화재청                                                                                    blog.naver.com/kwon5283/221458290691

 

금대암 전나무는 원래 두 그루였다.  어느 해 재해로 줄기가 손상당해 한그루는 사라졌다.  언제인지 2000년대  전인듯 하디  대웅전 앞에 후계목처럼 보이는 어린 나무가 자리고 있다.


덧붙여 창원마을 느티나무도 소개한다.

한번 크기를 재어보리라 마음먹고 줄자를 챙겨갔건만  정작 산책 나갔을 땐 빈손이었다.  다음으로 미룬다.  위성의 위치와는 역순이다. 어쨌든 마을의 느티나무 존재는 예사마을이 이니란 것을 짐작하게 한다. 아쉽게도 관련 자료는 찾아봤지만 전무하다


보호수 아래  -김석봉

 

마을 노인들은 당산 느티나무가 400년은 족히 넘었을 것이라고 했다 산림학을 전공한 박사가 당산나무 허리춤에 쇠꼬챙이를 꼽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쇠꼬챙이를 돌리자 쇠꼬챙이는 나무의 중심을 향해 깊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쇠꼬챙이가 한 바퀴 돌아갈 때마다 나무는 움찔거렸고 가늘게 신음했다

 

한 무리 새떼가 느티나무 위를 맴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근의 새들까지 모여들어 하늘은 어두컴컴했다 마을 노인들이 어깨를 움츠리며 웅성거렸다 순간 바람이 일었다 바람은 일정한 방향도 없이 거칠게 몰아쳤다 돌개바람 속에서 나뭇잎이 요동치더니 우수수 삭정이가 떨어졌다 허벅지만한 삭정이가 떨어져 먼지처럼 흩어지자 마을 노인들은 질겁하며 몸을 떨었다

 

쇠꼬챙이가 나무의 중심에 닿자 박사는 거꾸로 돌려 쇠꼬챙이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쇠꼬챙이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무의 나이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냈다 허리춤에 생긴 콩알만한 구멍으로 한 겹 한 겹 나무는 오장육부와 희로애락을 송두리째 쏟아냈다 구멍 속은 컴컴했고 뽀얀 속살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홍수와 가뭄이 번갈아 지나간 흔적, 그간 왕조가 창궐해서 멸망하고 마을이 불탔다 다시 건설되었다 몰려가는 무리 뒤에서 무당의 푸닥거리가 시작되고 마른 하늘엔 날벼락이 쳤다 화살 꽂힌 자리에 총알이 박힌 기구한 나이 앞에서 모두들 말을 잃었다 다만 길을 가던 한 나그네가 그늘에 들어 뙤약볕을 피할 뿐 나무는 더 이상 구멍 속을 보여주지 않았다.(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