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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오래된 미래

울주 어음리 회화목.팽나무

by 이성근 2019. 2. 21.

 

 

어음리의 집들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몰랐다.  지난 1월 들판에 서있는 모습을 우연히 고속열차를 타고  가다 보았다.  그리고 다음엔 반드시 사진을 찍어보리라.  

 

마을이 사라지는 와중이던 2018년 4월의 노거수를  다음 로드뷰를 통해서 접근해보았다.   그 이듬해인 지난 2017년 10월께 주민들이 현수막을 내걸었다.

 

어음리의 팽나무와 회화나무는 수령 150여 년이 지난 것으로 추정돼 지난 2000년 노거수로 지정된 바 있다.   

 

두 나무가 소재한 마을의 이름은 어음 하리 였다.  두 노거수의 수고와 나무 둘레는 각각 15m, 2.4m  /13m, 2.4m

 

어음리(於音里, 너리미, 나리미, 어음) 본래 언양군 상북면의 지역으로 지형이 널처럼 생겼으므로 너리니, 나리미 또는 어음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중남면의 평리 일부를 병합하여 어름리리라 하고 울주군 언양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2월 읍으로 성격됨에 따라 언양읍 어음리가 되었다.

 

어음리(於音里)는 본래 언양군 상북면 지역으로, 너른 들이 있으므로 너리미·나리미라 불렀다. 어음상리(上里)와 어음하리(下里)의 두 행정마을이 있으며 이를 줄여 어상·어하라고 부르고 있다.

 

어음리는

화장

산을 배경으로 남쪽은 남천내(南川), 북쪽은 고헌산에서 발원한 감천(坎川·감내 거랑)이 동리를 둘러싸고 흘러 최하단부에서

양수

(兩水)가 합류되며, 여기에 형성된 삼각주를 요도(蓼島)라 한다. 요도는 그 모습이 마치 배가 떠가는 듯한 행주형(行舟形)으로, 요도 마을

중앙

에는 아직도 짐대가 두 곳 있다.

 요도지신(蓼島地神)은 음력 정월 보름에 어음리에서 행해지는 당신제(堂神祭)에서 어음상리의 신위로서 남신(男神)이며, 이사신(里社神)은

여신

(女神)으로 어음하리의 신위다. 이들 당사신(堂社神)은 서로 부부지간으로 남신인 요도지신에게는 곡자주(

막걸리

)를, 여신인 이사신에게는 감주(甘酒)를 마시게 한다.

 요도는 배산(背山)이 흡사 주장고모(走獐顧母·달아나는 노루가 뒤돌아보는 모습)의 형세를 띠고 있다고 해서 어음(於音)으로 개칭했는데, 이것은 어음(於音)의 우리말 "느리미·너리미"에 대한 유래를 말해 주는 것이다. 어음의 뒷산을 주장고모라 하는 것은 고모산과

고무

재가 뒷받침해 주고 있다. 어음 동편의 산을 고모산, 어음하리에서 반천(盤泉)으로 넘는 재(嶺)를 고무재라 하는데 고무재는 고모재(顧母嶺)가 변한 말로 둘 다 고모에서 나온

이름

이다. 노루를 옛날에는 "나리"라 하였고, 지금도 "노리"라고도 한다. 또한 암노루는 "느렁"이라 한다. 노루가 갖고 있는 뜻이나 음이 옛 지명에는 여러 가지로 나타나며, "장(獐)"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요도는 1376년(우왕 2)에 정몽주(鄭夢周) 선생이 성균대사성(成均大司成)으로 있을 때 이인임 등의 배명친원(排明親元) 외교정책을 반대하다 유배됐던 곳이다. 울주의 요도로 귀양 가라는 명을 받고 울주에 와서 요도라는 섬을 찾았으나 아무리 찾아도 그러한 섬은 없었다. 그러다 언양현에 요도라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그 곳에서 귀양살이를 했다고 한다. (경상일보 03.4.30) 요도설화는 1937년 7월 발간한 彦陽面勢一班에 수록되어 있다.

 

부산사람인 내가  KTX를 타고 가다 어음리 노거수를 주목한 것은 평소 노거수에 대한 관심도 관심이지만 그 처지가 부산이나 언양 별반 다를 바 없다는 딱한 마음에서 였다.  안타까운 노릇이다.  어음리 노거수의 운명이 예의주시 된다.

 

 

 

19.4.8

 

후기:  우연히 소식 전해 들었다 . 서울서 행사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이야기 끝에 대구 후배가 이  나무를 안다며 ...네이브 블로그 우대한 솔맨 이 올린 삼남읍 도호소공원 집 근처 500년된 팽나무 보호수란 글이었다. 2022년 3월에 작성한 글에서 가져왔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그런데 회화나무가 아니고 팽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