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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쌍용차 다룬 <내 안의 보루>...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궁핍함

by 이성근 2014. 4. 11.

 

▲ <내 안의 보루> 고진|컬처앤스토리 |2014.03.03

 

[서평] 쌍용차 다룬 <내 안의 보루>...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궁핍함

강남좌파'인 나, 이 책 읽고 반성했습니다- 조국

 

필자는 평소 노동3권의 중요성과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취약함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20여 년 전의 노동야학 경험과 그 후의 이런저런 간접 경험 외에는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게 없다. 그러했기에 이 책의 저자에게 서평을 부탁받고 난감했다. '강남좌파'라는 야유를 받고 있는 내가 노동운동의 깊숙한 이야기를 다룬 책을 평하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책의 첫 장을 여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첫 장을 열자마자 빨려 들어갔다. 이 책은 한국 노동운동(가)의 문제의식, 힘, 한계, 고통, 희망을 어떠한 분식(粉飾)과 치장 없이 생생히 드러내준다. 한국에는 '짧은 시간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루었다' '국민소득 3만 불 달성은 시간문제다' 등의 자화자찬이 떠돈다. 5년 간격으로 대통령과 4년 간격으로 국회의원을 자유로이 뽑을 수 있다. 국가보안법이 있지만 처벌의 회수와 강도는 약해졌으며, 웬만한 좌파 표현은 허용된다.

 

 

거리에서 최고급 명품을 쉽게 접할 수 있고 화려한 건축물은 위세를 뽐내며 번쩍 거린다. '마이 카' 시대는 안착되었고, 중산층 시민은 1년에 해외 여행 한두 번씩 다녀올 여력을 갖고 있다. 1950년대 말 고 김일성 주석이 북한 인민에게 약속했던 "이밥에 고깃국"은 남한에서 실현된 것이다!

 

 

노동없는 민주주의 비극

 

그러나 이 모든 것 뒤에는 엄청난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가 있다. 노동 무시와 경시를 넘어 노동 탄압과 억압이 있다. 1987년 6월 전국적으로 일어난 민주화운동은 1987년 헌법을 탄생시켰고, 이후 우리는 '1987년 헌법체제' 아래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체제는 1987년 7~9월 전국적으로 발생한 노동자대투쟁을 반영하지 못하였다. 1987년 헌법체제는 출발부터 '노동 없는 민주주의'였다.

 

 

책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여성 노동운동가 '경희'가 연탄가스 중독으로 미닫이문을 열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외로이 죽은 시기도 이 즈음이었을 것이다.한국 사회는 1997년 IMF 위기를 맞이하면서 더욱 더 '노동 없는 민주주의'로 나아갔다. 정치권력은 5년마다 바뀌지만, 경제 권력의 '새로운 독재'는 변함이 없다. 대의민주주의의 틀을 빌려 귀족의 과두정이, 시장경제의 이름을 내걸고 족벌지배 자본주의가 자리 잡았다. 정리해고의 칼바람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산 속에 노동은 '비용', 노동자는 '일회용 소모품'으로 전락했다. 노벨평화상을 탄 대통령, 노동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이끌던 두 번의 '민주정부'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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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조직률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노동자계급을 대변하는 힘있는 대중적 진보정당은 아직 만들어지지 못했다. 노동자계급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져 서로를 불신하고 있다. 대기업 노조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상태인 소속 조합원의 임금과 복지를 증진시키는데 주된 관심을 보인다. 노동운동 내부의 부패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지난 대선 이후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가 시대적 화두가 되었지만, 그 정신이 이루어진 대표적 나라인 독일이나 스웨덴에서 시행되는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말하는 이는 거의 없다. 반면 파업에 대한 폭력적 진압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에 더하여 노동자 개인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서 각개격파"하여 "한 놈 한 놈 굴비 꿰듯이 우리 편으로" 만드는 노무관리가 작동하고 있다(84면).

 

 

소설 <내 안의 보루>는 바로 이러한 현실과 온 몸으로 맞서 싸운 사람들의 장중한 이야기다. 두 주인공 중 김혁은 7년에 이르는 여섯 번의 감옥 생활에서도 "생선 젓갈이 들어간 김치"(47면)를 요구하고,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좋아하며, 투쟁의 와중에도 라벤더를 키우고 그 향기를 느끼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다(190면).

 

 

다른 주인공 한상균은 밥맛이 없어도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밥을 꼭 다 비우고(117~118면), 긴박한 파업투쟁의 현장에서도 "느긋한 표정"을 잃지 않고 여유 있는 웃음을 짓는 사람이다(229~230면).

 

 

이들은 많은 운동권 출신 사람들이 현실 사회주의 붕괴와 IMF 위기를 겪으면서 신자유주의라는 정글 자본주의에 굴복하거나 그 '괴물'을 추종하는데 급급했던 시절, 그 괴물과 정면대결을 벌였다. 그 싸움 속에서 공안당국에게 '좌경체제전복' 또는 '극렬과격' 등의 낙인이 찍히고, 각종 법률 위반으로 여러 번 투옥된다. 이 소설 속에는 21세기 한국노동운동사의 중요한 투쟁이 녹아들어 있다. 주인공들은 기업의 경영 과오가 노동자들에게만 전가되는 현실에 맞서 싸운다. 배부른 대기업 '노동귀족'의 기득권 지키기라는 우파적 비난도 견딘다. "위대하신 김일성 장군님" 운운하며 '신앙고백'을 하는 활동가와도 마주친다.

 

 

희망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술, 여자, 돈으로 치밀하고 끈끈하게 휘감아 들어오는 사측의 유혹을 뿌리친다. 투쟁을 앞둔 노동자 내부의 불안과 동요를 다독인다. 파업현장에서 소외감으로 힘들어하는 비정규직 동료를 끌어안는다. 그 와중에 주인공은 노동의 국제적 연대도 실천한다. 불법체류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노동3권이 심각하게 제한받는 건 물론 인간으로서의 최소 존엄마저도 무시당하다가 추방되는 "한국에서 가장 천한 사람들"(172면)인 이주노동자들과 월세 방에서 같이 살면서 연대하고 지원한다.

 

 

저자는 이 속에서 드러나는 주인공들의 불굴의 의지, 무한한 헌신의 순간순간을 꼼꼼하고 생동감 있게 묘사한다. 이 책을 덮은 후 질문을 던져본다. 민주화운동 경력을 자랑하는 야당 지도자,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는 유명정치인, 진보적 이론과 정책을 구성하는 지식인 등은 이러한 노동의 분투가 벌어질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최근 <시사인> 독자인 주부 배춘환씨가 '불법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당한 노동자를 지원하는데 써달라며 아이 학원비 4만7000원을 <시사인>에 보낼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 무엇보다도 내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생각해본다. 모진 시간을 버텨낸 주인공 두 사람의 힘은 어디서 왔을까? 쉽지 않은 노동운동의 현실을 그들은 어떻게 헤쳐 나갈까? 그들에게 운동의 시작은 '분노'였지만(220면), 패배와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 새로 시작하는 힘은 "연대의 소중함"이었다(296면). 그들은 계속 전진할 것이다. 새로운 패배를 맞이하더라도 무릎 꿇지는 않을 것 같다.

 

이제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에 분노하는 사람은 이 주인공들을 향하여 연대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주인공들을 만나는 것이 연대의 출발일 수 있다. <내 안의 보루> 출판 인세 전액은 '4만7000원의 기적-노란봉투 캠페인'에 기부된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주인공들이 한 말을 해야 한다.

 

 

"희망은 너 자체다. 그러니 너를 놓치마."(김혁, 160면)

 

"견뎌!"(한상균, 289면)

 

 

김혁과 한상균이 서로에게 '보루'였던 것처럼,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보루'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노동운동에 헌신하기 위해 '정희'에게 이별을 통보한 김혁에게 '철수'가 던진 말을 다시 김혁에게 보내고 싶다.

 

"지금 네 옆에 있는 여자가 진짜다."(100면)

 

 

혁명가에게도 사랑이라는 보루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저자 고진은 김혁의 친구다. 쌍용차 파업투쟁으로 김혁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왜 투쟁하는 삶을 선택했는가를 고민했다. 2012년부터 쌍용자동차 파업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다가 김혁의 제안으로 이 책을 썼다.

 

 

출판사 서평

ㆍ 우리는 어쩌다 아무 죄 없는 노동자들을 잘라내는 걸 구조조정이라고 여기게 됐나.

우리는 어쩌다 그렇게 죄 없이 쫓겨난 노동자들이 24명이 죽도록 무심한 나라가 됐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ㆍ 쌍용차 파업투쟁 속 두 남자, 한상균 노조위원장과 김혁 활동가의 생생한 이야기!

 

ㆍ 출판 인세 전액을 손해배상과 가압류로 고통을 당하는 노동자들과 그 가족을 위하여 아름다운재단의 긴급지원 사업 <노란봉투>에 기부합니다.

 

2009년 4월 7일 쌍용자동차는 2,646명에 대한 일방적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하였다.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위원장 한상균은 공장 안에서, 활동가 김혁은 공장 밖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내 안의 보루’는 쌍용자동차 파업투쟁의 두 남자, 김혁과 한상균의 이야기이다.

 

 

무명의 활동가 김혁은 누구인가?

그는 2001년 ‘대우자동차 농성투쟁’ 2003년 ‘명동성당 이주 노동자투쟁’ 그리고 2009년 ‘77일간의 쌍용차 파업투쟁’에 이르기까지 세 번의 큰 싸움을 거치며 세 번 모두 구속되었고, 학생운동 시절까지 합쳐 여섯 번의 구속과 감옥을 겪었다.  그래서 김진숙(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은 ‘김혁은 개인의 존재가 아니라 역사이고 상처이며 또한 현재이다.’라고 하였다. ‘내 안의 보루’는 김혁이 왜 쌍용자동차 파업투쟁의 현장을 지켰으며, 어떻게 노동자들과 77일의 파업투쟁을 겪었는지를 보여준다.

 

 

한상균

2008년 12월,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선거에서 ‘민주연합 대표’로 당선된 한상균! 그는 대중투쟁의 지도자로서 흐트러짐 없이 77일간의 쌍용차 파업투쟁을 이끌었으며, 3년의 옥고를 치른 후, 다시 문기주, 복기성과 함께 171일간의 철탑 농성에 돌입했다. ‘내 안의 보루’는 노동조합에 대한 그의 생각, 파업투쟁에서의 고뇌 그리고 왜 그는 쌍용차 투쟁을 멈추지 못하는지를 심도 있게 그려낸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은 이 둘을 가리켜 ‘여린 사람’이라 부르며, 그들의 투쟁을 ‘질긴 싸움’이라 했다. 그렇다. 이 소설은 여린 두 사람, 김혁, 한상균의 질긴 싸움을 섬세하게 다루며, 독자들이 김혁을 통해 쌍용차를 들여다보고, 한상균을 통해 대중운동의 생명성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은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며, 아직도 진행 중인 쌍용차 투쟁을 김혁과 한상균의 시각에서 그렸다. 소설 전반부는 대중 투쟁의 현장에 서기까지의 김혁을 조명한다. 투쟁 앞에서 고민하는 그의 모습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김혁은 과거 인물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에, 현재의 투쟁에 서 있다. 그는 현장에 있어야 함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서 쌍용차 파업에 참여한다. 한상균과의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필연적인 사건이었다. 80년 광주를 함께 경험한 두 소년이 오십이 다 되어 파업현장에서 서로를 알아본 것이다. 김혁과 한상균의 이야기는 학생으로 출발해 지난한 운동의 길을 걸어온 활동가 김혁과 생활인으로 살다 노동운동에 눈뜬 한상균이 거대한 투쟁현장에서 서로의 보루가 된 이야기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결의는 긴박한 사건이었다. 2009년 5월 21일의 밤은 숨 막혔다. 왜 그들은 파업을 결의할 수밖에 없었나? 이 책은 그 과정을 꼼꼼히 따진다. 무엇보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더불어 그 속에서 노동자들을 투쟁으로 내 몬 사측의 기획 부도설을 제기한다.(본문 240p)

 

 

노동자 2,646명의 해고가 눈앞에서 현실화 되는 순간에 과연 쌍용차 노동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사측의 법정관리 신청, 3개 법인의 부실한 보고서 그리고 법원의 인력구조 조정안 수용! 그것은 잘 짜인 각본이었고 결국, 노동자들은 파업투쟁을 결정했다. 바로 그 한가운데에 한상균을 비롯한 노동자들이 목숨을 담보로 파업투쟁을 벌였고, 김혁은 그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지난 2월7일 서울고법 민사2부는 쌍용자동차가 단행한 대량해고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리해고의 출발점이 된 안진회계법인의 2008년 회계감사보고서가 왜곡 조작됐고 이를 토대로 한 정리해고는 부당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미 그 내용을 충분히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한상균이 강조한 내용이었다. (본문 310~311)

 

독자들은 한상균과 김혁을 통해서 쌍용차 파업의 본격적인 내용을 낱낱이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김혁은 한상균과 함께한 5.18 공원묘역에서 다짐한다.

“나는 이들이 처음부터 민주주의란 가치를 위해서 일어섰다고 보지는 않아. 너도 총을 들고서 시민군에 합류했었다 했지? 그때 우리 나이 열아홉이었다. 시민군과 함께 싸우면서 민주주의를 배우고, 후에 그것이 중요한 가치임을 깨달았잖아. 역사, 정의, 노동해방, 이런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먼 가치임에도 분노를 느껴 행동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들 아닐까. 나는 행동으로 분노를 표출해야 한다고 생각해. 여기에 묻힌 이들이 어떤 사회적 원리와 법칙에 통달해서 움직이지는 않았을 거야. 나는 분노하지 않으면 변화가 없을 것이라 믿는다. 이들의 분노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잖아. 세상이 변했다고 하면서,

 

다들 늙어가기만 한다. 나도 오십이니 적은 나이는 아닌데 아직도 분노할 일이 있고, 그것을 결단이라는 이름으로 고민했다. 이제는 고민하지 않고 일어서련다.”

 

김혁은 투쟁가로 살아갈 것이며, 한상균은 쌍용차 문제해결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음악출처: 다음블로그 음악과 여행

Nat King Cole - Time And The Ri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