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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길에서

스크랩: 꼴불견이라고?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한글 낙서가 반가웠다

by 이성근 2019. 12. 9.


꼴불견이라고?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한글 낙서가 반가웠다           

산티아고 순례길 탐방기-2 카미노와 관광 콘텐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만난 풍경. 산티아고 순례길은 아름다운 길이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어도, 중대한 결심을 앞두지 않아도 일부러 찾아가서 걸을 만한 관광 콘텐트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전에 품었던 질문은 하나다. 사람들은 왜 이 길을 걷는가. 이 천 년 묵은 옛길이 21세기에도 세계적인 관광 콘텐트로 추앙받는 까닭은 무엇인가. 여행기자로서 응당 던져야 하는 질문이었다.

             

순례와 여행

        


산티아고 순례길 곳곳에서 만나는 십자가. 순례자들이 여러 소지품을 놓고 간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여느 트레일과 태생부터 다르다. 성서에서 기원이 시작하는 기독교의 오랜 문화유산이다. 누천년에 걸쳐 신화가 포개지고 역사가 얹혀 길은 스스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산티아고 순례길은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순례는 육체적 희생을 동반하는 참회의 행동이다. 하여 이 긴 길을 걷는 건 신앙과 관계없이 순례의 의의를 지닌다. 하루에 25씩 여러 날을 걷는 건 누구에게나 고통이어서이다. 중세의 순례길은 지금보다 위험했다고 한다. 늑대·곰 같은 야생동물이 수시로 습격했고, 곳곳에서 강도도 출몰했다. 중세 교회는 참회 순례를 제도화했다. 죄를 지어도 순례를 통해 성지를 방문하면 속죄해줬다. 그 속죄와 구원의 의식이 전통으로 뿌리내렸다. 미국의 어느 인류학자는 산티아고의 순례자를 걸어 다니는 상처(Walking Wounded)’라고 정의했다.

        



순례자 여권. 교회나 교회가 지정한 장소에서만 발급한다. 하루에 도장 3개 이상을 찍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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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을 걷다가 점심으로 먹은 순례자 메뉴. 피자 같은 빵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사발에 따라서 마시는 포도주였다. 순례길에서는 포도주를 우리네 막걸리처럼 마신다. 스폐인은 세계 3위의 와인 생산국이다. 중세의 순례자는 대부분 가난했다. 그들의 순례를 돕기 위해 교회에서 먹을 것과 잘 곳을 지원했다. 그 전통이 아직도 알베르게(Albergue)라는 순례자 전용 숙소로 남아 있다. 알베르게는 크리덴시알(Credencial)이라 불리는 순례자 여권 소지자만 이용할 수 있다. 시설은 조악해도 싼값에 먹고 잘 수 있다. 공립 알베르게는 교회·선교회 등 기독교 기관과 단체에서 운영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사무국에 따르면 지난해 순례 증명서를 받은 327378명 중 종교적 이유만으로 순례길을 걸은 사람은 25%였다. 종교와 상관없이 문화를 체험하고 싶었다는 사람은 9%였다. 순례자의 66%는 종교와 문화 모두를 이유로 들었다. 사무국은 콤포스텔라(순례 증명서)를 발급하기 전에 인터뷰를 한다. 이때 길을 걸은 이유를 묻는다. 20년쯤 전만 해도 인터뷰에서 탈락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순례자 자격을 획득해도(최소 100이상 걸어야 한다) 종교적 동기가 약하다고 판단되면 순례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풍경. 서양 순례자들이 비틀즈의 '애비 로드' 앨범 재킷을 흉내를 내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이제 즐거운 하이킹 코스로도 활용되고 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종교와 무관하게 순례길을 방문하는 여행자가 전 세계에서 몰려든다. 800나 되는 전체 코스를 한 번에 다 걷는 순례자도 있지만, 요즘에는 구간별로 순례길을 체험하는 여행자가 훨씬 많다. 버스나 오토바이로 주요 도시를 찍고 다니는 여행자도 있고, 순례자를 겨냥한 사설 알베르게와 호텔도 즐비하다. 스페인의 여러 도시에서 순례길을 걷는 주말 행사가 진행된다

 

그래도 순례길이 갖는 애초의 의의는 유효하다. 놀고먹고 마시고 떠드는 여느 여행과 순례길을 걷는 고행의 여정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당신의 진실한 사랑을 다른 사랑과 어떻게 구별하나. 가리비 껍데기, 모자, 순례자 지팡이, 그리고 샌들을 통해.’ 햄릿에 나오는 대사다. 셰익스피어가 쓴 사랑대신에 여행을 넣어도 무방해 보인다.


순례 또는 관광

 

순례길을 걷는 내내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다가 갑자기 하늘이 개곤 했다. 잠깐 하늘이 열리자 그림 같은 풍광이 눈앞에 펼쳐졌다.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봤다.

 

.국내에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루는 패키지상품이 여럿 있다. 트레킹 전문 여행사나 성지순례 전문 여행사가 판매하는 보름 여정의 상품이 대부분이다. 보통 순례길 200를 걷는다. 유럽 패키지여행 상품 중에 하루 이틀 순례길을 경험하는 여정도 있고, 프랑스 길 풀코스 상품을 운용하는 여행사도 있다.      나는 79일 인천산티아고 직항 여행상품을 이용했다. 일정 중 닷새를 꼬박 걷기만 했다. 775길이의 프랑스 길 가운데 막바지 115를 걸었다. 전체 코스의 7분의 1 정도를 걸은 셈이다. 나에게는 이 여정이 적당했다. 직장인의 경우 1주일만 휴가를 내고 참여하면 순례를 인정받을 수 있어서였다. 최소 32일 걸린다는 800순례는 아무에게나(혹은 아무 때나) 허락된 도전이 아니다.


우리 일행은 모두 42명이었다. 인솔자가 흥미로운 얘기를 했다. “순례길은 순례길이네요. 패키지여행에 혼자 참가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건 처음이네요.” 나중에 확인해보니 모두 8명이 개인 참가자였다. 이 먼 나라까지 돈을 내고 혼자 걸으러 온 사람들. 800순례는 엄두를 못 내고 대신 115라도 걷겠다고 나선 사람들. 어렵게 결단까지는 성공했는데, 아직은 다 잘라내지 못한 사람들. 이들의 어정쩡한 용기에 나는 공감했다.


일행의 60%는 기독교 신자였다. 그들 대부분은 정말 신앙의 힘으로 길을 걸었다. 한 중년 여성은 이틀째 되는 날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가이드가 말렸는데도 끝까지 걸었다. 순례 증명서를 받고서 그는 환한 얼굴로 말했다. “말씀을 받았어요. ‘일어나 걸어라.’ 그래서 기쁘게 걸었어요.” ‘일어나 걸어라는 성경 말씀이다. 또 다른 신자는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희와 함께함이니라는 성경 말씀을 암송하며 걸었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되뇌는 말씀이라고 했다. 일행 42명 모두 콤포스텔라를 받았다.

 

순례길 이정표. 온갖 언어의 낙서로 이정표가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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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는 벽에도 수두룩하다. 일부러 걸음을 멈추고 낙서를 한 순례자의 정성(?)이 각별하다.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낙서.

 

여러 나라의 언어로 장식된 낙서판. 태극 문양과 '환영합니다'는 한글 낙서가 나는 반가웠다.

 

.순례길을 걷기 전 한국인이 순례길 이정표에 낙서했다고 고발하는 방송 뉴스를 본 적이 있다. 한국인 관광객이 순례길에서도 사고를 쳤나 싶었다. 지난해만 한국인 5665명이 콤포스텔라를 받았다. 잠깐 구경만 하고 돌아간 한국인은 더 많았을 터이다   그러나 길에서 발견한 한국인의 흔적은 볼썽사납지 않았다. 순례길에는 무수히 많은 낙서가 있었다. 스페인어·영어·아랍어·일본어·중국어 등 전 세계의 온갖 언어가 이정표와 담벼락에서 보였다. 그림도 꽤 많았다. 낙서 대부분은 응원 문구였고, 종종 욕설도 눈에 띄었다. 최근의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구호도 있었다. 어 어지러운 낙서 속에서 한글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되레 나는 반가웠다. 물론 욕설은 없었다

 

카미노와 여행기자

 

산티아고 순례길의 숲은 의외로 깊었다. 깊은 숲에 마침 햇볕이 들었다. 비가 내려 가방에 넣었던 카메라를 얼른 꺼냈다. 셔터를 몇 번 누르자 다시 비가 내렸다.

 

.나는 십수 년을 여행기자로 살았다. 수없이 많은 밤을 여행 가방을 싸며 보냈다. 하나 이번처럼 설렜던 전날 밤은 기억에 없다. 아니, 설렜다기보다는 심란했다. 나도 여행에서 돌아오면, 무언가를 내려놓거나 무언가와 헤어져야 할 것 같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정말 아름다운 길이었다. 여태 걸었던 수많은 길 중에서도 순례길은 손에 꼽는 아름다운 길이었다. 종교적 동기나 문화적 호기심이 없어도, 이전의 일상과 결별해야 하는 절박한 사정이 없어도 이 길은 일부러 찾아와 걸을 만한, 아니 걸어야 하는 길이었다.  

 

유칼립투스 숲길. 높이가 50m는 족히 될 법한 거목 아래를 순례자들이 걷고 있다.

 

유칼립투스 나뭇가지에 누가 걸어놓은 신발 한 켤레. 이 높은 가지에 어떻게 신발을 올렸을까 궁금했다.

 

.내가 걸은 갈리시아 지역은 숲이 고왔다. 생각보다 숲이 깊고 커서 즐거웠다. 해발고도 250700m 내륙 산간지역을 오르내렸는데, 높이 50m는 될 법한 거대한 유칼립투스 군락지를 지날 때는 눈 앞에 펼쳐진 이국적인 풍광에 숨이 막혔다. 시골 마을 특유의 여유가 길에서 흘렀다. 길바닥의 소똥은 의외의 복병이었지만.

 

비가 막 그친 뒤 풍경. 마을에서 안개가 올라왔고 풀밭의 빗물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비가 잠깐 그치자 나무 사이로 햇빛이 들어왔다. 길바닥은 질었지만, 걸음은 가벼웠다.

 

.걷는 내내 비를 맞았다. 스페인 북부지역은 11월부터 3월까지 우기에 해당한다. 하루에도 여러 번 우비를 입고 벗기를 반복하다, 11월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건 우리네 사는 꼴과 꽤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종일 비가 내리는데 하루에 두어 시간은 꼭 볕이 들었다. 우비 뒤집어쓰고 터벅터벅 걷다가도 하늘이 열리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걸음이 가벼워졌다. 그 두어 시간 덕분에 순례는 끝내 행복했다. “비는 산티아고에서 순례자의 친구라는 미국 인류학자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산티아고 성당 중앙 제단에는 예수 대신 성 야고보가 앉아 있다.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든 예의 순례자의 모습이다. 순례자들은 제단 옆으로 올라가 야고보를 등 뒤에서 안을 수 있다. 성인의 어깨를 만지고 포옹하고 입을 맞춘다. 신자는 아니지만, 감히 의식에 동참했다.

 

스페인 서쪽 해안마을 묵시아. 피니스테레처럼 순례를 마친 순례자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마을이다.

 

.순례를 마친 이튿날. 스페인 땅끝마을 피니스테레에 갔다. 순례자들이 이 해안에서 자신의 신발이나 옷가지를 태워 대서양에 띄우는 의식을 치렀다. 순례길에서도 누군가가 놓고 간 신발과 지팡이가 자주 보였다. 아직도 눈에 밟히는 건 가족사진이다. 나뭇가지를 꺾어 만든 십자가 아래에는 낡고 바랜 사진이 꼭 있었다. 나는 피니스테레의 해안 바위에 10년 가까이 쓴 손수건을 놓고 왔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스페인) ·사진=손민호 기자

 

지난해 32만명 찾았다1000년 역사 헤아리는 걷기 여행길

산티아고 순례길 탐방기-1 카미노의 역사 또는 숨은 진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 성 야고보의 유해를 모신 성당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점이다. 사진 중앙의 주인공은 예수가 아니다. 지팡이를 든 성인 사도 야고보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그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왔다. 11월 하순, 닷새 동안 모두 115를 걸었다. 800나 된다는 전체 코스를 다 걷지는 못했지만, 의미 없는 여행은 아니었다. ‘콤포스텔라라 불리는 순례 증명서를 받았다. 산티아고 순례길 사무국은 걸어서 100이상, 자전거로 200이상 순례길을 경험하면 증명서를 발급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기를 2회에 걸쳐 연재한다. 첫 회는 카미노의 역사와 숨은 진실이다.

저마다의 카미노

 

산티아고 순례길의 흔한 풍경. 한 순례자가 포르토마린이라는 도시를 들어가는 장면이다. 이 다리는 로마 시대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스페인 북쪽의 작은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을 이른다. 코스는 10개가 넘는다. 가장 대표적인 코스가 프랑스 길이다. 전체 순례자의 90% 정도가 선택한다. 프랑스의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해 30여 일 동안 약 800를 걷는다. 순례자의 작가 파울루 코엘류도, 제주올레를 만든 서명숙 이사장도 프랑스 길을 걸었다. 그리고 인생이 바뀌었다. 어쩌면 세상도 바뀌었다.

북쪽 길은 스페인 북부 이룬에서 이베리아 반도 해안을 따라 걷는 약 820길이의 길이고, ‘포르투갈 길은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약 630를 걷는 길이다. 출발점은 달라도 모든 길의 종점은 같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이 도시의 성당에서 길이 끝난다. 다시 말해 산티아고 순례길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성당을 가는 길이다(스페인의 땅끝마을로 불리는 피니스테레까지 가는 길도 있다. 산티아고 성당까지 걷고 추가로 걷는다).

 

산티아고 순례길 전체 지도. 10개가 넘는 길이 하나의 도시로 향한다. [지도 롯데관광]

 

산티아고 순례길 지도, 지도 오른쪽 사리아에서 산티아고까지 115를 걸었다.[지도 롯데관광

 

.나는 프랑스 길의 막바지 115구간을 걸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동쪽 사리아에서 출발해 하루 평균 23씩 걸었다. 5만 보 넘게 걸은 날도 있었다. 순례 증명서에는 내가 걸은 길이 115라 표기됐으나, 지도에 표시된 거리는 117.5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거리 표기가 제각각이다. 이를테면 프랑스 길은 순례자 여권에 775로 나오지만, 지도에는 모두 800가 넘는다고 적혀 있다. 어차피 저마다 제 길을 걷는다.


산티아고와 제임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의 성 야고보 상.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 있는 성 야고보의 유해,

.St. James, Saint-Jacques, Santiago, Santo Jacobo.

 

모두 한 사람을 가리킨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이름은 성 야고보다. 성 야고보의 스페인어 표기가 산티아고고, 로마자 표기가 세인트 제임스다.

야고보는 예수의 십이사도 중 한 명이다. 그의 무덤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 있다. 유럽 각지의 기독교인이 성 야고보의 무덤을 찾아 떠난 순례가 현재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걷기여행길이 된 것이다. 코스가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고, 종점이 하나뿐인 까닭도 이 때문이다. 순례의 역사는 얼추 1000년을 헤아린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최종 종점이라 불리는 피니스테레.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이 땅끝에서 순례자들은 자신의 신발이나 옷가지를 태워 대서양에 띄우는 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지금은 무언가를 태우는 행위가 일절 금지돼 있다. 대신 신발 상이 갯바위에 설치돼 있었다.

 

.사도 야고보?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익숙한 사도 요한이 야고보의 동생이다. 형제는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다 예수의 제자가 된다. 예수가 베드로와 함께 두 형제를 각별히 아꼈다고 한다. 야고보는 성서에서 십이사도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된다. 생전의 야고보가 이베리아 반도 일대 즉 지금의 스페인에서 복음 활동을 했다. 요즘도 수많은 기독교인이 야고보가 걸었던 길이라 믿으며 이 긴 길을 걷는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과도 같은 가리비 껍데기. 기념품으로도 인기가 좋다.

 

가리비 껍데기로 만든 산티아고 순례길 기념품

 

.서기 44. 야고보가 예루살렘에서 처형된다. 야고보의 제자들이 스승의 유해를 수습해 스승이 선교활동을 했던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으로 보낸다. 야고보의 유해를 실은 배가 스페인 해안에 다다랐을 때 가리비가 감싸줘 배를 육지로 이끌었다고 한다. 2000년이 지난 지금, 가리비 껍데기가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으로 쓰이는 까닭이다

 

정복자 간달프

 

성 야고보는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든 순례자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서기 813. 한 수도사가 이베리아 반도 들판 위에서 신비로이 빛나는 별을 목격한다. 이후 들판에서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고, 교회는 이 자리에 성당을 짓는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의 이름은 이 신화에서 비롯된다. ‘산티아고는 성 야고보의 다른 이름이고, 콤포스텔라는 들판(Campus)’(Stellae)’을 합친 말이다. 별이 쏟아지는 들판의 사도 야고보. 이 긴 이름의 도시가 품은 뜻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누군가 놓고 간 사진이 자주 눈에 띈다.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길에 놓인 사진에서 슬픈 사연을 읽게 된다. 길은 걷는 건 이처럼 무언가를 내려놓는 일이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작은 십자가. 그 아래 놓은 애견 사진.

 

.도시가 건설되자 순례의 시대가 시작된다. 14세기에만 연 100만 명 이상이 순례를 했다는 기록도 있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마주쳤을 법한 이름들, 이를테면 샤를마뉴 대제, 성 프란체스코, 이사벨라 여왕 같은 인물도 이 길을 걸었다고 한다. 지금의 순례길은 1123년 프랑스 사제 에임리 피코가 남긴 다섯 권짜리 가이드북에서 기초한다. 길이 천 년 묵었으니 가이드북도 천 년을 헤아린다.


신화는 이따금 비밀을 감추는 기능을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그러하다. 냉정히 따져 보자. 이스라엘에서 죽은 야고보의 무덤이 스페인 북쪽 들판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역사학자들은 당시 스페인 정세에 주목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재해석한다.     7세기 아프리카의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이 이베리아 반도를 침략한다. 스페인의 기독교인이 이슬람교도들에 터전을 빼앗기던 시절, 마침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반도에서 발견된다. 이어 성인의 은혜를 받기 위해 고통을 수반한 순례 운동이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다. 우연치고는 기막힌 우연이다


뿔뿔이 흩어졌던 스페인은 성 야고보를 중심으로 다시 뭉친다. 종교적 차원의 움직임만은 아니다. 실제로 순례길을 따라 군대가 조직되고 결집한다. 마침내 149212일 국토회복운동 레콘키스타(Reconquista)’가 끝난다. 무려 700년 만에 외세를 몰아낸 것이다. 이후 스페인은 대양으로 나아갔고, 전 세계를 통치한다.

 

성 야고보 상이 서 있는 순례길 이정표.

 

.순례길 곳곳에서 성 야고보의 이미지를 만난다.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든 순례자의 모습이다. 영락없는 마법사 간달프다. 실제로 영화 반지의 제왕은 성 야고보에서 간달프의 이미지를 빌려왔다고 한다.

야고보는 칼을 차고 말을 탄 모습으로도 표현된다. 산티아고 마타모로스(Santiago Matamoros). 무어인을 죽이는 산티아고라는 뜻이다. 중남미 곳곳에도 비슷한 동상이 남아 있다. 16세기 신대륙을 정벌할 때도 스페인은 성 야고보의 힘을 다시 빌렸다. 이때의 야고보는 산티아고 마타인디오스(Sanntiago Mataindios), 인디언을 죽이는 산티아고다. 이 시대가 우러르는 구원의 길은 어쩌면 전쟁의 길이었다.


2018년 한국인 5665명 순례

 

산티아고 순례길 사무국이 발급한 순례 증명서. 종이가 고급스럽다. 양피지다.

 

.길에도 부침이 있나 보다. 외세가 물러난 뒤 산티아고 순례길은 잊힌 길이 된다. 스페인 왕정이 사실상 순례를 금지한다. 길을 따라 반대 세력이 뭉칠까 저어해서였다. 간신히 명맥을 이어오던 순례길은 1980년대 이후 반전에 성공한다.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방문하고, 1987년 파울루 코엘류가 발표한 순례자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1993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순례길은 다시 전 세계의 이목을 끈다.

 

묵시아. 성모 마리아가 야고보를 위로하기 위해 나타났다고 하는 작은 해안 마을이다.

 

피니스테레의 신발 태우던 장소 지금은 아무것도 태울 수 없다. 대신 많은 순례자가 손때 묻은 소지품을 놓고 간다. 여기에 나는 10년 가까이 사용하던 제주올레 손수건을 놓고 왔다.

 

.산티아고 순례길 사무국에 따르면 2018년 순례길을 걸을 사람(순례 인증서를 받은 사람)은 모두 327378명이다. 도보 순례자는 306064명이고, 자전거 순례자는 2787명이다. 휠체어 순례자도 79명이나 있었다.    국적으로 보면 스페인과 이탈리아인이 전체 순례자의 절반을 넘는다(52.28%). 한국인은 모두 5665명으로 전체 순례자의 1.73%를 차지했다. 전 세계 9위로 비유럽 국가 중에서 1위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1477, 중국 1111, 대만 1024명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은 왜 산티아고 순례길을 사랑할까. 그건 탐방기 2관광 콘텐트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다룬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스페인) ·사진=중앙 . 손민호 기자


손민호 기자와는 2011년 일본 큐슈 올레 개장 때 같이 걸어 본 적이 있다. 지켜본 결과 여행 전문기자 답게 맛깔나게 글을 쓰는 것 같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늘 걸어보고 싶었던 길 중의 하나였다. 만약 사)걷고싶은부산에 계속 적을 두었다면 가능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그 이후로는 긴 길을 걸을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손기자의 글이 걷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게 만드는 충동적 글은 아니지만 다시 걷고 싶은 마음이 이는 것은 무슨 끼닭일까 ?.


시인의 마을 -정태춘.박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