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종차별주의 (인간, 동물, 자연의 새로운 관계 맺기) 에므리크 카롱 지음, 류은소라 옮김 l 열린책들 l 2022.02
원제Antispeciste - Reconcilier L'Humain, L'Animal, La Nature
AYMERIC CARON-진중한 주제를 논리력과 솔직함으로 과감하게 풀어내는 프랑스 방송 기자이자, 작가. 1971년 불로뉴쉬르메르에서 태어났으며, 1995년 에콜 쉬페뢰르 드 저널리즘을 졸업한 뒤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기자 및 평론가로 일했다. 동물권의 열렬한 수호자인 그는 1990년대에 채식주의자가 되었으며, 2013년 『노 스테이크 NO STEAK』를 출간해 프랑스에서 3만 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며 화제가 되었다. 2014년 그는 모든 고기와 우유, 달걀 등 동물성 식품은 물론, 가죽이나 모피와 같은 동물 유래 제품을 거부하는 완전 채식주의자인 비건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동물권 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방송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는, 2015년 동물권리보호기구 L214가 주최한 강연에 『동물 해방』으로 전 세계에 반향을 일으킨 스탠퍼드 대학교 피터 싱어 교수, 네팔에 거주하는 프랑스 작가이자 승려인 마티외 리카르, 기자 겸 작가 프란츠 올리비에 지에스베르와 함께 참여한 바 있다. 2018년에는 〈지구와 모든 시민에 대한 존중〉을 목표로 활동하는 〈살아 있는 생태학자들의 모임REV〉을 만들었으며, 학교 급식에서의 채식 메뉴 제공, 사냥과 투우 금지 등을 위해 적극 발언하고 있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라 반종차별주의를 대대적으로 공론화하는 역할을 했다. 그 외 지은 책으로 『옳지 않음INCORRECT』 (2014), 『유토피아 XXIUTOPIA XXI』 (2018), 『살아 있는 것VIVANT』 (2018), 『자연의 복수LE REVANCHE DE LA NATURE』 (2020) 등 다수 있다
목차
머리말
에베레스트
1장 동물인 나는 고로
오늘 밤 사자가 죽었다│종차별주의란 무엇인가│동물원 줌 아웃│작은 거인들│모두 동일하게 이루어졌다: 세포, 분자, 원자│동물회의론자│첨부 자료: 의식에 관한 케임브리지 선언│육화의 우연
2장 살해된 동물
미디어 속 동물 농장│첨부 자료: 2016년 L214의 비강 도살장 조사│사육동물들 #지옥같은삶│대학살│분열증 │오그르
3장 동물 착취의 종식을 위해
모두의 책임, 모두의 잘못│윤리라는 이름의 전차│동물 윤리학│네가 원치 않는 바를 돼지에게 행하지 말라│살기 그리고 살도록 내버려 두기│폐지론자│동물에게 어떤 권리가 있나│극단적 비건이 종차별주의적인 이유│내 침대
4장 반종차별주의는 새로운 휴머니즘이다
신 코페르니쿠스 혁명 인간 대 동물?│도덕적 고려의 범위를 확장하기│반종차별주의자는 의식 있는 자다│반종차별주의자와 아미스타드│돈 문제│사육자들의 이익을 위한 사육 폐지
5장 초인으로서의 반종차별주의자
불평등에 대한 동의│사기꾼에 대한 보상│돈은 완벽한 속임수다│경쟁보다 이로운 상호부조│웃음과 망각의 통로│필과 슬라이, 성공의 슬픔│행복은 살 수 있는 게 아니다│저항하기│보이콧│절대적 초인
6장 근본생태학
생태학의 진정한 목표가 인간을 자연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있는 이유│모두가 생태주의자│생태학은 과거에 대한 향수인가│덜 생산하기, 덜 낳기, 더 잘 행동하기│동물의 고통을 거부하는 데는 정치적 구분이 없다│반종차별주의는 21세기 이데올로기 혁명이다│심층생태학과 근본생태학
7장 생태 민주주의를 위해
생명체 공화국 구상하기│진정한 민주주의 구축하기│정치적 시간, 다시 생각하기│국회, 자연 의회│생명체 공화국의 우선순위
맺음말
감사의 말
참고 문헌 및 출처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동물 해방』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21세기 동물 권리 선언
〈종차별주의〉라는 용어는 1970년 영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라이더Richard Ryder가 만들었으며, 1975년 호주의 철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가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에서 이 용어를 가져다 쓰면서 널리 알려졌다. 에므리크 카롱은 『반종차별주의』에서 사회에 만연한 〈종차별주의〉 도그마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 〈반종차별주의〉라는 용어를 개념화하고 사회적 투쟁으로 발전시킨다. 그가 말하는 반종차별주의란 인간 종에 속한다는 이유로 다른 동물을 죽이거나 학대하거나 착취하는 일체의 가학 행위에 반대하는 입장을 말한다.
싱어의 〈동물 해방〉은 동물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지 않는 것이 확실할 경우 사육이나 도살, 동물실험도 용납될 수 있다. 카롱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동물이 고통받지 않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생명은 존재 그 자체로 귀하게 여기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을 착취할 권한을 부여받지 않았다. 과학은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하나의 생물 종이며 비인간 동물도 나름의 탁월한 지능·감각·의식·의사소통 능력·공감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일깨워 준다. 카롱은 동물에게 비인간 인격체로서의 지위를 부여할 것을 주장하며, 네 가지 기본 권리, 즉 죽임을 당하지 않을 권리, 고문당하지 않을 권리, 상업의 대상이 되지 않을 권리, 감금당하지 않을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인간과 동물, 자연의 화해를 위한 21세기 동물권 선언이다. 고통받는 동물에 대한 연민을 넘어서 우리가 동물 권리를 진지하게 다뤄야 하는 논리적이고 합당한 근거를 마련한다. 이 책을 통해 인간, 동물, 자연이 어떤 관계로 나아가야 할지, 반종차별주의의 시각으로 동물 권리의 방향을 내다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 동물, 자연의 상생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당신은 종차별주의자이거나 반종차별주의자다. 여기에는 중립항이 없다.”
- 「1장 동물인 나는 고로」 중에서
동물을 반려동물, 식육 동물, 취미 동물, 야생동물, 해로운 동물, 보호 동물, 혐오 동물로 구분하는 기준은 다분히 인간의 편익과 관련 있다. 개와 고양이는 애지중지하면서 닭, 돼지, 소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것도 마찬가지다. 카롱은 이 책에서 과학적 관점, 윤리적 쟁점, 언론의 영향, 경제 논리, 철학적 태도, 법률과 정치 등 동물 권리와 연관된 문제를 속속들이 끄집어내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의 허점과 부당함을 드러내며, 인간이 누리는 권리를 동물에게로 확장하는 새로운 휴머니즘을 제시한다.
2016년 프랑스에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책은 용어의 생소함에도 불구하고 반종차별주의를 대대적으로 공론화했다. 이 책은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하나의 생물 종에 불과하다〉라는 명제에서 출발한 논의를 생태 민주주의로까지 확장한다. 생태 민주주의는 모든 생명체는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존재로서 존중받아야 하며, 이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를 정치 체제에서 보장받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가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에 맞서 투쟁해 왔듯, 반종차별주의는 약자와 평화를 위한 〈사회적 투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규정한다.
동물권 증진을 가로막는 이유는 돈 문제, 고용 문제 등 정치·경제적 문제와 연관돼 있다. 카롱은 사육·육류 산업의 경제적 이득, 기업의 압력에 휘둘리는 언론, 〈스타〉 지식인의 무관심, 생태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인, 인간에게 이로운 환경법 등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끔씩 육류를 섭취하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일주일에 며칠간 채식을 하는 채식주의자. 가끔 육류를 섭취함)부터 완전 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까지 다양한 방식의 채식을 인정하고 독려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다양한 채식 요리를 성장시키는 동시에, 보이콧 등 개개인의 실천으로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정치적 힘을 발휘할 것을 설득한다.
〈인간은 광활한 우주 한복판에 놓인 외딴 동물원의 나이 어린 방문자에 불과하다.〉(36면) 인간을 모든 살아 있는 존재의 구성원으로서 바라본다면, 오늘날 다른 생물에 대한 인간의 행위는 약자에 대한 강자의 착취와 폭력, 종 간 불평등 조장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종차별주의자로 남을 것인가, 반종차별주의자가 될 것인가? 이 책은 인간과 다른 종의 관계를 협력과 상생의 관계로 새롭게 세우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책속으로
*첫 문장: 나는 동물을 사랑하지 않는다.
모든 동물이 인간과 똑같다고 선언하자는 게 아니다. 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인간과 다른 동물 종과의 차이로 인해 동물들에게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것은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다. 어떤 권리인가? 앞으로 논의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내 생각에는 네 가지 기본 권리가 필요하다. 인간은 더 이상 동물을 먹거나, 가두거나, 고문하거나, 상업화해서는 안 된다.--- p.9
첫째, 감각 능력을 지닌 살아 있는 존재를 단순히 〈자원〉으로 여길 권리가 여전히 인간에게 있는가? 둘째, 인간이 특정 동물의 운명에 대해 다른 동물보다 더 격앙하는 것이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소, 돼지 심지어 닭, 토끼, 양 그리고 수많은 동물은 인간이 그들에게 가하는 대로 고통당해야 하는가?--- p.29
즉, 당신은 종차별주의자이거나 반종차별주의자다. 여기에는 중립항이 없다. 둘 중 어디에 속할지는 우리의 행동에 달렸다. 서구 사회는 대부분 종차별주의적이지만, 그 안에서도 종차별주의의 도그마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적지만 점차 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스스로를 〈반종차별주의자〉라 칭한다. 이 책의 제목 또한 조금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나는 반종차별주의자다.
스페시즘, 즉 종차별주의는 자신이 어떤 종에 속한다는 이유로 다른 동물에게 차별을 가하는 일체의 행위를 가리킨다. 종차별주의는 두 가지 차원으로 나타난다. 첫째, 종차별주의자는 인간이 아닌 동물의 고통은 인간의 고통보다 덜 중요하다고 단정한다. 둘째, 종차별주의자는 근거 없는 범주를 만들어 반려동물, 식육 동물, 취미 동물, 야생동물, 해로운 동물, 보호 동물, 혐오 동물 등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위의 차이에 따라 동물 종을 스스럼없이 차별적으로 대한다. 모두가 똑같이 인식 능력, 생리적 욕구, 고통과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지니는데도 말이다.--- p.29~30
아무리 절세미인이라도, 자신의 미모에 대해 결코 자만해서는 안 된다. 그녀가 공들여 자신의 몸을 가꾼다고 해도, 아름다운 외모는 자신의 공으로 얻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동물을 어리석거나 못생겼다고 평가하며 무시하고 학대할 때,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오히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약한 존재에 대해 최대한의 관대함을 지녀야 한다.--- p.82
고기 광고는 동물 사육에 대한 가공된 이미지를 담고 있다. 보통 광고 속 닭, 돼지, 소 들은 마음껏 자연을 누비는 믿기 힘들 정도로 행복한 존재다. 이들은 오직 우리의 접시에 얼른 놓이기만을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p.91
고기 소비를 촉진하려는 정부의 입장은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설명된다. 농업 종사자들을 달램으로써 가장 중요한 경제 영역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것이다. 프랑스는 유럽 내 소 생산 1위, 유제품 생산은 독일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농업 강국이다.--- p.101
그런데 오늘날 서양에서 가장 선호하는 반려동물인 개와 고양이도 역사적으로 항상 사랑받는 대상이었던 것은 아니다. 프랑스와 독일에 지난 세기까지도 개고기를 파는 정육점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p.127
동물 윤리학은 요약하면 개별적 비인간 동물에 대한 인간의 도덕적 책임에 관한 연구다. 정확히 말해서, 동물 윤리학은 종이 아니라 개체로서의 동물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강조한다.--- p.146
동물 윤리학은 이미 정해진 정답지를 제시하는 독단적인 학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제 막 펼쳐진 성찰의 장이다. 따라서 반종차별주의자들이 서로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인간에게 감수성을 가진 모든 동물에 대한 의무가 있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의무의 성격을 두고 입장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바로 복지론과 폐지론이다.--- p.148
한편, 싱어는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지 않는 것이 확실하다면 사육과 도살도 용납하기에 생명 그 자체를 신성하게 보지는 않는다. 싱어는 절대적으로 동물권에 기여했고, 그의 책 『동물 해방』은 40년 전에 이미 동물권 보호 운동의 논거를 마련했다. 그의 의견은 반드시 참조해야 할 기준이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치가 있다. 하지만 싱어가 보인 두 가지 입장은 내게 의문의 여지를 남긴다. 나는 다른 생명보다 더 가치 있는 생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생명은 특정 조건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 자체로 신성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p.160~161
또 다른 이유인 먹는 즐거움, 〈고기는 정말 맛있어, 난 고기를 사랑해〉. 하지만 이 또한 도덕적 관점에서는 성립될 수 없는 근거다. 어떤 행동도 즐거움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연쇄 살인범은 사람들을 죽이면서 희열을 느낀다. 강간범은 강간을 쾌락으로 삼는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이들 모두 용서받지 못한다. 극단적인 폭력 상황과 비교할 것도 없이, 일상에서도 개인적 즐거움만으로는 정당화될 수 없는 수많은 상황이 있다.--- p.179
먹는 순간은 즐거워야 한다. 간디는 성적 금욕 또한 필요하다고 했으나, 그리 적절한 것 같지는 않다. 비거니즘은 자기 조절이 필요한 이념이지만, 금욕주의는 아니다. 오히려 채식 요리법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움으로 가득한 감각의 향연이다. 우유와 달걀조차도 과자를 음미하는 데 전혀 손색없는 식물성 재료로 대체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달걀흰자 거품은 병아리콩즙으로 대체할 수 있다. 정말 그렇다! 내가 직접 만들고, 맛을 보고 만든 머랭 쿠키는 완벽했다. 맛을 보여 준 유명 파티시에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채식 요리법은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고 발견하며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다.--- p.182
오늘날 동물법은 이와 같은 모순과 오해 속에 놓여 있다. 동물법은 동물을 위하는 취지 같지만, 실제로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이익에 유리하게 제정됐다. 논리적으로는 동물의 감각 능력만을 고려하여 동물의 권리를 강조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동물에게 부여하는 유용성만이 고려된다. 어떤 개나 고양이의 생명은 우리가 그 동물과 애정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 반려동물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유용성 때문에 보호받는 혜택을 누린다. 유럽 문서들에 정의된 사육동물 복지 기준은 구금 상태가 고통을 초래하여 생산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로 한계를 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기준들은 종종 무시된다.--- p.193
나는 비인간 동물을 인간 사회에서 떼어 놓으려는 생각에는 반대한다. 모든 종을 하나로 연결하는 생물학적 연계성에도 맞지 않고, 자연에서 서로 다른 종들 사이에 분명히 존재하는 협력과 공생 관계에도 어긋나는 생각이다. 모든 동물을 자유롭게 풀어 보자. 그들 가운데 몇몇은 금방 다시 인간에게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이는 대단히 반가운 소식이다. 인간이 다른 종들보다 우월한 종이 아니라는 증거 중 하나일 테니 말이다.--- p.201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다만 우리는 언제나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다. 그러나 진영에서 벗어난 이들을 단두대로 보내고, 자신들은 순결의 증표를 얻으려는 동물 권리 운동가들은 잘못된 길을 택한 것이다. 동물 착취에 맞서 싸우는 모든 사람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 대놓고 모순이 있지 않는 한, 모두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 채식주의자나 플렉시테리언*의 약점을 지적하기 전에, 무관심한 육식주의자들에 비해 그들이 기울이는 노력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또한 오랫동안 혀에 각인된 미각을 하루아침에 버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p.205
더 나아가 순결한 비건이 아니라고 다른 이들을 공격해대는 극단적인 행동가들은 사실은 종차별주의적이다. 동물 권리 보호 운동에는 실제로 온건한 이들부터 가장 급진적인 이들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그런데 관용이 없는 일부 급진주의자는, 자신들이 남들보다 더 지적이고 더 감수성이 있는 우월한 존재처럼 행세하며 다른 사람을 무시한다. 이런 태도야말로 뭔가 생각나게 하지 않는가? 반종차별주의자는 차이를 무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차이를 인정한다. 물론 그 출발은 인간에서부터다.--- p.207
동물권 투쟁은 약하고 힘없는 자들을 보호하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일이다. 여기에는 경계가 없다. 부당함과 폭력이 지배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저항하고 맞서는 것은 당연하다.--- p.221
오늘날 언론에 등장하는 지식인 중에 누가 동물 윤리, 자연 또는 전쟁이나 노동에 대해 진지하고 혁신적인 성찰을 보여 주는가?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모델을 제안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은? 없다.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마이크를 건네는 이들은 대부분 이에 대해 언급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을 알리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그들은 단순하고, 단순화시키며, 우리 감각 촉수를 자극하는 담론의 효과를 알고 이를 이용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가져다주기 위해 전쟁에 나서야 한다! 우리에게는 이민자 문제가 있다! 우리는 프랑스의 가치를 잊어버렸다!〉 이런 진부하고 또 사실에 반하는 주장들도 진지한 태도로 아는 척하며, 종종 왜곡된 문학적 인용과 교훈이 될 만한 역사적 사건의 연대를 인용해서 부드럽게 포장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p.237
동물을 사랑하지 않는다, 존중할 뿐!
모든 ‘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동물권 선언
인간과 동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존재
“어떤 동물도 인간을 위한 수단 돼선 안돼”
지난달 한 방송 드라마 촬영 과정에서 말이 사망해 동물 학대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강력한 처벌과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경남 창원에서 고양이가 잔혹하게 살해된 사건에 관한 국민청원에도 12만명 이상이 찬성했다. 동물의 열악한 삶에 대한 연민, 동물 학대에 대한 분노는 이제 동물운동단체를 넘어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확대돼가는 추세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식탁에는 동물들의 ‘살’이 주요 먹거리로 올라온다. 소, 돼지, 닭 등의 비참한 사육 실태에 대한 고발이 끊이지 않는데도 말이다. 과연 인간은 동물의 삶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동물의 권리를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을까?
<반종차별주의>는 이 질문에 대해 가장 근본주의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동물은 인간과 동일한 권리를 갖고 있기에 인간과 똑같이 대해야 한다는 것이 지은이의 핵심 주장이다. “나는 동물을 사랑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을 존중할 뿐이다”라는 책의 첫 문장은 이 주장을 간결하게 드러내준다. 프랑스의 방송 기자이자 작가인 지은이는 완전 채식주의자이며 동물권 운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반(反)종차별주의’는 “한 존재를 그가 어떤 종에 속한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 즉 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종차별주의는 두 가지 차원으로 나타난다. 첫째, 인간이 아닌 동물의 고통은 인간의 고통보다 덜 중요하다고 단정한다. 둘째, 근거 없는 범주를 만들어 반려동물, 식육 동물, 야생동물, 해로운 동물, 보호 동물, 혐오 동물 등을 구분하고 차별적으로 대한다.
인류사에서는 항상 열등하다고 간주된 집단과 이를 정당화하는 이념이 있었다. 노예, ‘미개인’, 여성, 동성애자 등이 그들이다. 하지만 인류는 점차 이들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는 쪽으로 도덕적 사고를 확장해왔다. 이제는 인간을 넘어 동물에 대한 차별을 중단해야 할 차례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우리의 관심 범위를 비인간 동물에게로 넓혀 이들을 도덕적 고려의 대상으로 보고, 낡은 인간중심주의와 결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종차별주의의 근거는 명확하다. 현대 과학이 인간과 동물 간의 차이가 없다는 점을 밝혀주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인간은 동물들이 자신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이고, 지능과 감정이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인간과 동물은 탄소, 수소, 산소, 질소 등 같은 화학 원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단세포 생물이라는 공통된 조상에서 진화해왔다. 인간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5500여종의 포유류 가운데 하나다. 분자생물학은 인간이 침팬지와 98.5% 이상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고, 소와는 80%, 쥐와도 80%, 심지어 초파리와도 50%의 유전자가 같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동물들도 고통을 느끼며 쾌락, 슬픔, 우울, 기쁨, 괴로움 등의 감정이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능도 있다. 그들의 상당수가 공감과 연대의 능력이 있다. 동물행동학자들은 닭이 스스로 학습할 뿐 아니라 다른 닭에게 배우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닭은 영장류에 가까운 의사소통 능력이 있고, 위험에 처한 동료에게 연민을 느낄 줄도 안다. 암양은 울음소리로 자녀들과 의사소통한다. 무리 한가운데에서 어미가 새끼를 부르면 정확히 그 어미의 새끼 양만 대답한다. 어린 고래들은 장난치는 것을 좋아한다. 비둘기는 사물을 세고 종류별로 분류하는 상당한 지능이 있다.
하지만 인간들은 먹기 위해, 모피 생산을 위해, 동물 실험을 위해, 단순한 즐거움을 위해 무수한 동물들의 생명을 빼앗고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여전히 진행 중인 집단 학살의 주체들이다.”
같은 반종차별주의자들 내부에서도 동물에 대한 의무의 성격을 놓고 복지론과 폐지론이 나뉜다. 복지론자들은 원칙적으로 동물을 이용하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단지 동물 사육 및 동물 실험 조건을 최대한 개선해 동물들이 불필요한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반면 폐지론자들은 어떤 동물도 인간을 위한 수단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보고 모든 형태의 동물 착취를 당장 끝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은이는 후자의 입장에 서 있다.
그럼 반종차별주의자가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행동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고기, 우유, 달걀, 가죽, 모피 등 동물에게서 비롯된 제품을 먹거나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동물을 사냥하거나 동물 쇼를 보거나 동물을 가두거나 동물들을 경쟁시켜서는 안 된다. “감각 있는 생명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가능한 한 줄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실천하기는 보통 사람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지은이는 자신도 아직 가죽 신발을 신고 있다고 고백한다.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나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는 태도가 중요하다.
지은이는 한발 더 나아가 ‘생태 민주주의’를 제안한다. 이는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의견을 표현할 수단을 부여하고 이들을 고려하는 확장된 민주주의”다. 비인간 동물들의 입장은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은 인간들에 의해 반영된다. 생태 민주주의하에서는 의회와 나란히 ‘자연 의회’가 존재하며, 자연 의회는 의회가 가결한 법안이 생명체의 이해관계에 위배된다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인간들 사이의 평등도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 인간이건 아니건 자신과 다른 존재를 차별하려 드는 인간의 강한 성향 등을 감안하면 동물에게까지 도덕적 고려의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는 지은이의 주장이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은이는 “인류를 진보로 이끈 모든 이데올로기적 전환은 처음에는 조롱받고 불신을 샀다”며 “반종차별주의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널리 인식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언젠가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말한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진화의 역사에서 인간은 뒤늦게 동물 공동체에 합류한 생물 종이다. 그런데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동물을 학대·무시하고 자원 취급해도 되는 걸까.
스페인 기업, 문어 대량 양식 계획…"지능·감정있는 동물" 반대
스페인의 다국적 수산물 기업 '누에바 페스카노바'가 내년부터 문어 양식을 시작해 2026년까지 연간 최대 3천t의 문어를 양식으로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페스카노바는 이를 위해 스페인 카나리제도 그란카나리아섬에 6천500만 유로(약 878억원)를 들여 양식장을 세울 예정이다.
문어는 독립심이 강하고 영역에 대한 인식도 확실해서 그간 좁은 양식 공간에서는 조기 폐사하거나 동족을 잡아먹는 등의 문제로 양식이 성공하지 못했다. 페스카노바 측은 양식 환경을 개선해 문어를 5세대까지 번식해 양식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과학자들과 동물권보호 단체들은 도구를 사용할 정도로 지능이 높고 스트레스나 행복감을 느낄 줄 아는 문어를 양식하는 것에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물권보호 단체들이 '문어 양식 중단'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2022-02-24
문어의 삶
왜 난 사람으로 태어났을까? 다른 생물들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문득 들곤 합니다. 다른 생물로 태어났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또 어떤 감정이 들고 생각을 하는지도 말입니다. 그들의 삶을 보면서 내 삶을 투영해보곤 합니다.
문어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문어로 산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한참을 고민하게 합니다. 문어는 척추가 없는 연체동물로 머리와 8개의 다리, 입과 눈이 있습니다. 문어(文魚)는 학문이나 문자를 이르는 문(文)과 물고기 어(魚)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문어는 글을 아는 먹물을 좀 먹은 물고기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어에 대한 어원은 원나라의 문헌 '여황일소'에서 '문어의 생김새가 사람의 민머리와 닮았다'하여 '믠어'로 부르다가 한자로 '문어(文魚)'로 쓰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머리의 생김새를 보고 문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지만 문어 머리만 보면 사람 머리와 흡사하게 생겼습니다. 그래서인지 문어는 상당히 똑똑한 동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문어가 두뇌가 똑똑하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었습니다. 문어는 대략 강아지의 지적 수준을 갖고 있으며 사람으로 치면 3세 정도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어의 지능에 관련된 실험 결과 문어는 반복적인 학습에 습득을 보였으며 병뚜껑이나 수족관 문을 열 수 있습니다. 또한 장난감을 주면 가지고 놀기도 하며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인지 잘 대해주는 사람인지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 호주 시드니대학교 교수가 문어의 생태 연구를 하던 중 암컷 문어가 자꾸 귀찮게 하는 수컷 문어를 쫓아내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암컷 문어는 진흙과 조개껍질을 뭉쳐 던져서 쫓아냈다고 합니다. 이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사물을 던지는 행위는 상당히 높은 지적 수준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보통 무척추동물은 뇌가 없다고 하지만 문어는 작은 뇌가 있습니다. 뇌가 있기 때문에 반응이 다른 동물과는 다르지만 그것만으로 지능이 높은 것은 아닙니다. 연구결과 문어의 지적능력을 뛰어나게 해 준 것은 바로 다리에 있었습니다. 문어의 다리에는 5천만 개가 넘는 뉴런으로 구성된 신경조직이 잘 발달되어 있으며 이 다리들은 뇌에 지시 없이 자율적으로 조율하고 행동하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문어의 다리에 있는 원형 빨판은 화학물질을 감지하는 세포를 갖고 있어 다리에 닿는 순간 적인지 먹이인지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문어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이런 분산 신경계를 갖고 있는 오징어나 낙지 역시 지능이 높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문어의 특성을 보여준 '나의 문어 선생님'이라는 다큐가 있었습니다. 문어와 사람이 관계를 통해 친구가 되는 내용입니다. 문어는 충분히 친구를 인식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다큐를 보고 나면 펄펄 끓는 냄비에 살아있는 문어를 넣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습니다.
다시 난 왜 인간으로 태어났을까 생각됩니다. 현재를 우리의 모습을 갖게 해 준 선행 인류는 수많은 멸종위기 시기를 거쳐서 진화를 거듭되어 만들어졌습니다. 대략 원시 포유류가 나온 1억 년부터 선행 인류까지 나오는 동안 1천억 마리가 살고 죽었다고 추론하고 있습니다. 그 후 우리는 몇 백 만년 동안 놀라운 단계와 사회성이 만들어져서 지금 지구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내가 문어로 태어났다면 오랜 시간 동안 진화과정을 거쳐서 현 문어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우는 다를 뿐입니다. 포획과 남획을 당할 것이며 알지 못하는 오염이나 교란에 의해 죽임이나 서식지가 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인류는 다른 생명들이 변화 적응하지 못하는 세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많은 생명들은 다시는 이 지구에 돌아올 수 없는 생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인류도 물론 지구에 존재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만 다른 생물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재 인류가 해야 할 몫입니다. 수많은 생명이 삶을 살고 죽고 하는 순환적인 생태를 유지해야만 인류도 존재할 수 있는 지구가 될 수 있습니다./ 박현수 (사)충북생물다양성보전협회 /중부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