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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로익 바캉-가난을 엄벌하다 外

by 이성근 2017. 11. 2.


  

<가난을 엄벌하다> 저자 로익 바캉| 역자 류재화| 시사IN| 2010.

원제 Les prisons de la misere

 

가난한 자를 감옥으로 몰아붙이는 새로운 형벌주의!

사회학자 로익 바캉이 이야기하는 '빈곤과 감옥'의 관계가난을 엄벌하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복지국가의 쇠퇴, 빈곤층의 증대를 감옥과 형벌 정책을 중심으로 분석한 책이다. 1980년대 이후 강경한 형벌 정책이 부상하게 된 이유와 양상을 살펴보면서, 형벌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미국에서 탄생했는지를 밝히고 있다. 저자는 먼저 1990년대 뉴욕의 '톨레랑스 제로' 정책에 주목하여, 이것이 법을 공격적으로 집행하는 형벌 정책의 대표주자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빈민과 도시 외곽 거주민을 타깃으로 하는 미국산 형벌 정책이 어떻게 전 세계로 퍼지게 되었는지 분석하고 있다.

 

저자 로익 바캉은 프랑스 몽플리에에서 자라 HEC(공립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다 피에르 부르디외를 만나면서 사회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19851990, 시카고 대학 사회학부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고, 19901993년 하버드 대학 소사이어티 펠로우(SOCIETY FELLOW)’의 멤버가 되었으며, 지금은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또한 프랑스 콜레주드프랑스/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유럽사회학센터의 연구원이다. 시카고 대학 박사과정 시절 미국 흑인 게토 지역의 하나인 시카고 사우스 사이드의 한 복싱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토대로 육체와 영혼-어느 복싱 견습생의 민족지적 노트라는 책을 썼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프랑스 유수의 시사학술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면서 많은 독자층을 얻었다. 가난을 엄벌하다는 프랑스에서 호평을 얻었고, 연이어 19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로익 바캉은 대표적 좌파 정론학술지 뉴 레프트 리뷰(NEW LEFT REVIEW), 독일 베를린의 논쟁(DAS ARGUMENT), 스페인 마드리드의 클라베스(CLAVES),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아푼테스(APUNTES)등 여러 잡지에 사회학..., 인류학, 정치학, 범죄학, 도시학, 철학과 관련한 다양한 논문을 게재하며 활발한 학술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피에르 부르디외의 대표적인 제자로 부르디외와의 대담을 엮은 성찰적 사회학으로의 초대(1992)를 출간했으며, 제국주의적 명분의 계략등 피에르 부르디외와 함께 공저 논문 여러 편을 발표했다.

 

서문 - 신자유주의 형벌 정책 비판을 위한 시민사회학

 

1부 미국산 형벌국가는 어떻게 전 세계에 파급되었나

맨해튼, 신형벌주의 생산공장

'톨레랑스 제로'의 세계화

런던, 미국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의 중계지

수입자와 동업자

신자유주의 형벌 제도와 상술

 

2부 유럽이 왜 사회복지국가를 포기하고 형벌국가를 추구하나?

미국의 복지국가와 형벌국가

감옥을 통한 빈민 정책

유럽 감옥의 특별 고객

사회적 판옵티즘을 향하여

화폐 통합에 이은 경찰 및 감옥 통합

 

로익 바캉과의 인터뷰 - "신자유주의는 이데올로기이지 현실이 아니다."

미주

 

출판사서평

로익 바캉은 1980년대 이래 20년 동안 서구에서 감옥이 팽창하고, 강경한 형벌 정책이 부상하게 되는 이유와 그 양상을 점검하고 있다. 경제적 규제 완화, 노동 유연화를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복지국가의 쇠퇴를 동반했다. 복지국가의 해체와 노동시장의 불안정화는 필연적으로 빈곤층의 증가를 부른다. 계급·계층 구조가 불안정해지면서 도시가 와해될 위기가 생기자 이에 대한 돌파구로 찾은 것이 강경한 형벌 정책이다. 사회 보장에서 철수한 국가가 문제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동시에 잘못을 도시 외곽 빈민들에게 돌리는 것이다. 또한 국가가 비용을 들여서라도 질서를 바로잡겠다고 하면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 있다. 이 책은 형벌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미국에서 탄생하고 세계에 수출되었는지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로익 바캉이 먼저 주목한 것은 미국의 뉴욕이었다. 1990년대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윌리엄 브래튼 뉴욕시 경찰국장은 톨레랑스 제로정책을 들고 나왔다. “범죄의 가장 확실한 발생 원인은 죄인 그 자신이다라는 것이 윌리엄 브래튼의 지론이었다. 그는 기업이 이익 목표를 정하고 관리하듯이, 범죄 등록 건수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뉴욕경찰국장은 매일 범죄건수를 챙기는 기업가처럼 경찰 업무를 지휘했다. 윌리엄 브래튼은 뉴욕의 치안 유지 예산을 대폭 늘렸다. 사회복지 분야 예산이 3분의 1 삭감되는 동안에 뉴욕의 치안 예산은 40퍼센트 인상되었다. 체포자 숫자가 늘어나자 법정에서 이와 관련한 재판을 감당하지 못해 쩔쩔매는 법정 병목 현상까지 벌어졌다. 사소한 경범죄에도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이 뉴욕의 톨레랑스 제로정책은 법 집행을 공격적으로 하는 형벌 정책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미국의 형벌국가화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교도소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7538만 명 수준이던 것이 198574만 명으로 늘었다가 1995년에 1005천여명, 1998년에 200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 상당수는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흑인이었다. 수감 인구가 15년 동안 세 배로 늘어난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수감자 팽창을 감당하기 위해 교도소 관련 예산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여기에 민영 교도소까지 급성장하게 되었다. 감옥 산업은 고용, 정년, 재정 수입이 보장되는 각광 산업이 되었다. 또한 보호관찰, 감시 체제, 범죄정보 및 유전자 정보 데이터화 등 형벌 저인망이 확장되었다.

 

작은 정부큰 감옥

법과 질서를 내세운 새로운 형벌주의가 유포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 보수적 싱크탱크와 미디어 담론이었다. 1990년대 맨해튼연구소라는 싱크탱크가 이데올로기 전파 역할을 맡았다. 이 연구소는 레이건 행정부에서 복지 비판의 1인자로 떠받들었던 찰스 머레이와 관련을 맺었다. 미국의 보수적 범죄학 대부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만든 깨진 유리창이론(일상생활의 소소한 무질서부터 바로잡아야 큰 범죄를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을 대중화한 것도 이 맨해튼연구소였다. 조지 켈링은 캔자스시티 경찰국장 출신으로 맨해튼연구소의 일원이 된다. 1984년 마거릿 대처의 상담역이었던 앤서니 피셔와 나중에 CIA 국장을 지내는 윌리엄 케이시가 시장경제 원칙을 사회 문제 전반에 확대할 목적으로 설립한 이 연구소는 도시 최하층민들이 야기하는 무질서를 철저하게 진압해야 한다는 논리를 전파했다. 이 연구소의 주장은 빈곤과 복지, 범죄에 관한 영국의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톨레랑스 제로정책은 미국, 서유럽, 남미의 다른 도시들로 파급되었다. 빈민과 도시 외곽 거주민을 타깃으로 하는 이 미국산형벌 정책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감소일로였던 유럽의 감옥 수감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이러한 형벌 이데올로기의 확산에 따른 결과이다. 복지나 경제 영역에서의 작은 정부큰 감옥없이는 성립하지 못한다고 로익 바캉은 말한다. 바로 로익 바캉의 표현처럼,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철 장갑을 끼고 나타났다. 가난한 자를 감옥으로 몰아붙이는 방식으로.

 

로익 바캉에 따르면, 신형벌주의는 경제, 사회 분야의 신자유주의와 짝을 이루어 죄와 벌 분야에까지 경제적 사고와 시장 효과, 개인의 책임 의무라는 도그마를 확대시키고 있다. 로릭 바캉은 이렇게 말한다. “경제 규제 완화와 형벌 규제 강화는 한 쌍을 이루고 있다. 사회복지 투자 완화가 복지국가의 와해를 야기하자, 계층 구조가 불안해졌다. 불안전으로 초래될 사회 해체를 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형무 예산의 초과 투자가 요구된 것이다. 형무 인플레이션은 신성불가침한 자연적 운명이나 재앙이 아니다. 전반적인 민주주의 대토론을 거쳐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결정할 것은 결정해야 하는 정치적 문화적 사안이다.” 국가가 법과 질서를 내세우면서 범죄를 강력하게 근절하겠다고 나선다고 무작정 박수칠 일이 아니라는 소리다.

 

로익 바캉은 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되었는가?

프랑스 남부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로익 바캉은 파리의 상업계 엘리트 양성기관인 HEC(공립경영대학원)에 입학했지만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친구의 권유로 피에르 부르디외의 강의를 듣고 사회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매주 콜레주드프랑스에서 부르디외의 강의를 듣고, 강의가 끝나면 부르디외의 집에까지 찾아가 열심히 강론을 들었다. 두 사람은 밀접한 사제관계로 발전했고, 그 대화와 공동 작업은 2002년 부르디외가 갑자기 사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부르디외가 죽은 후 로익 바캉은 사회학의 명문 시카고 대학으로 갔다. 그는 본래 다른 테마를 연구할 작정이었지만 캠퍼스에 인접한 흑인 게토를 목격하고 연구 주제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는 게토를 멀리서 추상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려면 게토로 들어가 밑바닥부터 기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게토 지역의 복싱팀에 들어가 복싱을 하며 지역의 젊은이들과 어울렸다. 가난을 엄벌하다의 헌사에 등장하는 아샹테는 로익 바캉의 스파링 파트너였다. 아샹테는 10대에 이미 6년을 감옥에서 보냈는데, 복서로 성공하지 못하자 다시 감옥을 들락거렸다. 로익 바캉은 감오에서 아샹테를 면회하거나 보석금을 지불하는 경험을 통해 게토에서 투옥되는 것이 너무나 흔한 일이고, 감옥과 게토는 밀접한 관계라는 것을 절감했다. 가난한 게토 주민이 감옥을 들락거리면서 더욱 가난해지고, 그 가족도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는 메커니즘을 목격하면서 로익 바캉은 왜 이 같은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지 감옥 조사에 뛰어들었다. 그는 빈곤과 감옥의 관계를 글로벌화와 형벌국가의 도래라는 구조적 변화 속에서 포착했다.

 

책속으로

 

지난 20여 년간 제1세계 및 제2세계에 이르는 경찰, 법원, 감옥의 부흥과 번영은 신자유주의 혁명의 결과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언제 어디서든 이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은 어떤 장애물이든 제거하며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간다. 저임금 노동시장의 규제 완화는 복지 제한 조치를 필연적으로 가져왔고, 이것이 다시 불안정 고용을 강화해 후기산업사회의 신 프롤레타리아를 만들어냈다. 26

 

미국 형벌 형식의 세계적 순환을 추적하다 보면 미국 예외주의라는 개념적 덫을 피할 수 있게 되며,사회 스펙트럼은 정치적,경제적 굴성에 영향 받기 쉬워 그에 따라 형벌국가으 성장이 불가피하다는 메커니즘을 강조하는 '최신 모더니티'의 애매한 논리도 피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미국 형벌국가의 성장을 특이한 사례로만이 아니라 악성 사례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사회의 불안을 형벌로서 통제하고, 그것을 가속화하고 강화하는 다수의 요소들 때문이다. 가령 기술관료 현장의 파편화, '개인의 책임성'을 주문처럼 외우는 도덕적 개인주의, 전체적으로 열악해진 노동 환경, 계급 및 인종 간의 심한 차별화, 최저 임금 노동에 굴복하는 흑인 계층 및 도심 게토화, 복지 축소 및 형벌(29)강화 수렴 프로그램에 적절한 타깃이 되는 게토. 29,30

 

이 책에서는 연계-발전하는 복지(31)및 형벌 제도 문제를 공공정책의 도구적,표출적 기능이라는 하나의 이론 틀에 담음으로써 처벌의 정치경제라는 표준 매개변수를 버린다. 대신 지난 사반세기 동안 선진국가의 사회복지 및 형벌 정책의 변화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피에르 부르디외의 '관료적 분야'개념에 따라 논지를 전개한다. 인색한 워크페어, 후덕한 프리즌페어는 도덕행동주의라는 철학 아래 빈자를 훈련하고 감독하는 단 하나의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신안을 만들어냈다. 31,32

 

윌리엄 브래튼은 과거에 썼던, 그 지역에 연고가 있어 주민을 잘 아는 경찰이 가서 문제를 해결하는 '지역 경비'방식이나 문제 해결 중심형 경찰 활동과는 정반대인 불관용형 경찰 활동 방식을 택했다. 개별 범죄자보다는 집단을 소탕하고 각종 특수 무기 및 장치들을 개발하고 재빠르게 정보를 전달하는 컴퓨터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런데 그의 진짜 혁신은 다른 데 있다. 경찰의 전통 유산인 둔한 보신주의 관료 체계를 혁신한 것이다. 그는 당시 최신 경영 이론이던 '리엔지니어링'과 피터 드러커의 '목표관리론'을 적용했다. 우선 경찰 조직의 군살을 빼기 위해 서장의 4분의 3을 퇴직시켰다. 또한 서장 평균 나이를 60대에서 40대로 낮췄다. 그는 경찰을 '이윤 센터'로 변모시켰다.여기서 이윤이란 범죄 등록 건수를 감소시킴으로써 발생한다. 이 단 하나의 기준으로 모든 치안 업무 성적표를 만들었다. 47

 

국가가 비용을 들여서라도 질서를 바로잡겠다고 하면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불안의 사회적,경제적 원인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국가는 책임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책임은 이제 사회보장이나 경제 정책의 영역에서 철수한 국가가 아니라 그런 "반사회적 행위가 횡행하는"지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하여 앞으로는 자기 책임 하게 자기가 사는 사회를 자신의 손으로 관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51

 


 

'범죄와의 전쟁' 하면, 우린 더 안전해질까? <가난을 엄벌한다>

연예인이 키우던 개가 무고한 시민을 물어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아직 사망의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더 놀라운 일은 그 우발적이고 비극적인 사건 이후에 발생했다. 온라인 포털에 불어 닥친, 반려견과 이를 관리하지 못하는 견주에 대한 시민들의 강한 혐오와 불안이 그것이다. 시민들은 평소 거리에서 반려견에 대해 그렇게도 강한 불안을 느끼고 있었나. 연예인의 일상과 도덕적 흠결을 매의 눈으로 감시하는 대중과 짧은 시간 들끓는 언론의 속성을 감안하더라도, 이 사건을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는 이상하다.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안전'에 민감하게 만들었는가.

 

뉴욕의 경찰은 한 때 행동 지침에 따라 목줄 없이 개를 풀어놓는 시민을 체포할 수 있었다. 심지어 횡단보도를 무단 횡단하거나 벨을 울리지 않고 자전거를 질주하는 등 대수롭지 않은 상황에서도 시민을 체포하는 게 가능했다. <가난을 엄벌하다>(시사인북 펴냄)의 저자 로익 바캉은 이와 같은 형사정책이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 시장이 시작한, 범죄에 대한 일련의 '톨레랑스 제로' 정책에 따른 결과였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범죄에 대한 무관용 정책은 신자유주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범죄의 정치적 활용 : 신자유주의와 한국의 군사정권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정책이, 경제 부문에서 국가 역할을 줄이면서 사회복지 예산은 없애고 동시에 법원과 경찰, 감옥의 기능은 키운다는 것이 <가난을 엄벌한다>의 핵심 내용이다. 국가가 경제 부문에선 사라지고 형벌 부문에선 더 강력하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3대 덕목인 자유시장, 개인의 책임과 의무, 가부장적 가치를 더 확대하고 전파하고자 했던 맨해튼연구소가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었고, 이를 선거에 적극 이용하여 당선된 줄리아니 시장이 1993년부터 '톨레랑스 제로' 정책으로 시정에 적극 반영하여, 신자유주의 형사 정책이 등장했다.

 

강력 범죄에 대한 무관용 정책은 그 자체로 시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엄벌주의 경향이 범죄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의 생활에도 침투하여 견주나 보행자, 자전거 운전자 같은 이들의 일상적 자유를 제한하는 데까지 나간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 대도시에서 시작된 무관용 정책이 결국엔 인종차별적으로 작용하여 흑인 수감자들만 배타적으로 늘렸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실제 범죄율 감소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연구도 있다. 본질적인 문제 해결 없이 시민들의 자유만 제한하는 결과만 초래한 것이다.

 

저자의 과감한 주장은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 형사정책이 고도의 기만적 정책이라는 점으로 이어진다. 사회복지와 형벌 제도의 연계를 통한 치안 정책은 점증하는 사회불안과 그로 인한 하층 계급의 불안정을 응징으로 처벌하는 정치 프로젝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국가는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이를 개인에게 돌리는 데 성공한다. 범죄 혹은 범죄자에 대한 증오를 활용하는 것은 사회적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유권자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매력적인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더 적극적으로 우리는 사회 불안을 범죄에 대한 증오로 해소했던 역사를 갖고 있다. 과거 정치적 정당성이 미약했던 권위주의 정권이 시작될 무렵에는, 언제나 범죄자들과의 전쟁이 있었다. 박정희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초기에 자유당 정치깡패 소탕을 명분으로 내세우기도 했고, 전두환은 국보위에서 삼청교육대라는 기관을 세우고 상습폭력배들을 격리하여 수용했으며, 그나마 선거를 통해 당선된 노태우는 아예 '범죄와의 전쟁'으로 캠페인 이름을 정하고 이를 보안사 정치 스캔들을 감추는 데 활용했다.

 

중산층이 호출하는 범죄와의 전쟁

우리 사회에서 범죄에 대한 무관용 정책은, 모범 시민인 중산층에게 감정적으로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안락하게 살아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러한 중산층이 안전에 대한 불안을 가장 많이 경험한다는 것이다. 중산층은 자신이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고 사회적 지위가 하락할 위험을 걱정하고 주택담보대출을 연체하여 집을 잃게 될 것을 우려하며, 자신의 아이가 더 좋은 대학에 취업하지 못하여 사회의 하층계급으로 떨어질까 끝도 없이 걱정한다. 과거 범죄와의 전쟁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다면 이제 시민들은 스스로 그 전쟁을 호출하고 있다.

 

견주와 반려견에 대한 증오와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견주에 대한 과도한 비난과 안전에 대한 강박의 기원을 한두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한국 사회에서도 신자유주의 형사 정책이 부상하고 엄벌주의가 확산되는 현상이 배경으로 지적될 수 있다. 최근 소년법 폐지 논란을 초래하며 청소년 범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의견이나 사형제 집행 찬성에 점점 동조하는 현상도 엄벌주의 경향에 부합한다.

 

우리의 불안이 한 걸음 나아가, 경찰이 목줄 없이 산책하는 견주를 재량껏 체포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가 된다면 시민들은 더 안전해지는 것일까. 다시 묻자. 한국 사회는 범죄나 사고로부터 시민의 일상적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한 사회인가? 그렇지 않다. 북한 변수를 제외하면 한국은 세계적인 안전 여행지이고, 객관적인 범죄율도 상대적으로 낮다. 우리의 불안은 범죄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 자체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전염병처럼 우리 의식에 숨어들고 그것이 엉뚱하게 어떤 범죄와 범죄자에 대한 과도한 증오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강력한 치안을 통해 안정을 달성하여 스스로의 자유를 구속하는 사회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시민적 자유와 권리를 스스로 통제하는 사회를 지향할 것인가. 프렌치 불독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우리가 개에게 물리는 것처럼 갑작스럽게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끼고 있다면, 이제 해결해야하는 문제는 달라진다. /프레시안 11.2 양지훈 변호사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저자 맷 타이비|역자 이순희|열린책들 |2015

원제 (The)divide : American injustice in the age of the wealth gap

저자 맷 타이비는 1970년생. 미국의 기자, 정치평론가, 칼럼리스트. 뉴욕 바드 칼리지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에서 공부했다. 1997년 러시아에서 격주간 영자 신문을 작가인 마크 에임스와 공동 창간했고, 2002년 미국으로 돌아와 네이션THE NATION, 플레이보이PLAYBOY, 뉴욕 프레스NEW YORK PRESS등에 글을 썼다.

 

2005년에 뉴욕 프레스를 떠나 롤링 스톤ROLLING STONE의 공동 편집장이 되었다. 2009[THE GREAT AMERICAN BUBBLE MACHINE]이라는 칼럼에서 골드만 삭스를 [거대 흡혈 오징어]로 지칭한 것으로 유명세를 탔다. 20142월 이베이 공동 설립자 오미디아가 만든 [퍼스트 룩 미디어]에 영입되어 경제 및 정치 비평 매체 [라킷RACKET]의 운영을 맡았으나, 경영진과 갈등을 빚다 8월에 롤링 스톤으로 복귀했다. 정치와 경제, 특히 금융 범죄에 관해서 미국 내에서 가장 중요한 목소리를 내는 언론인 중 하나로 여겨진다.

 

쓴 책으로 거대한 혼란THE GREAT DERANGEMENT, 오 마이 갓!뎀 아메리카GRIFTOPIA등의 베스트셀러가 있다.

 

역자 이순희는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불평등의 대가, 나쁜 사마리아인들,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등 경제서와 세계의 도서관, 아프리카의 운명, 제국의 미래등 역사서, 행복의 정복, 러셀 북경에 가다,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사람들은 왜 싸우는가등 버트런드 러셀의 책 그리고 희망의 불꽃,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등을 옮겼다.

 

목차

서문

 

1장 뜻밖의 결과

2장 불심 검문

3장 길에 서 있으면 안 되는 사람

4장 사상 최대의 은행 강도 사건

5장 무자격 이민자들의 시련

6장 국경을 넘나드는 범죄

7장 잔챙이 사기범

8장 큰 사기범

9장 부수적 결과

 

감사의 글

역자 후기

 

출판사서평

월스트리트 금융 기업들과 관료들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아끼지 않기로 정평이 난 롤링스톤의 기자 맷 타이비의 신작이다. 그는 골드먼삭스를 인류에게 들러붙은 흡혈 오징어로 표현한 것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타이비는 조직적인 사기로 세계 금융 위기를 초래한 금융 회사의 고위 임원들이 아무 처벌을 받지 데 반해, 가난한 사람들이 경미한 질서 교란 행위 때문에 감옥에 가는 현실을 대비시킨다. , 부의 양극화가 집어삼킨 미국의 사법 시스템을 해부한다. 최근 흑인에 대한 과잉진압 논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미국의 사법 불평등은 해묵은 숙제 중 하나인데, 타이비는 미국 사회가 가난을 죄악시하는 것을 넘어 실제로 처벌하는 데까지 나아갔음을 여러 사례를 통해 생생히 보여준다. 이 책이 그리는 것은 경제 논리에 잠식된 사법 시스템과 그 지배를 받는 디스토피아 미국 사회다.

 

눈먼 정의의 디스토피아

타이비의 논지에 따르면 현대 미국의 사법 시스템은 경제 논리에 따라 심각하게 왜곡되었다.

 

법치주의는 서서히 퇴색되어 가고, 그 대신에 실패한 자, 가난한 자, 약한 자를 범죄자로 몰아가고 강한 자, 부유한 자, 성공한 자의 위법 행위를 눈감아 주는 방향으로 설계된 특이하고 거대한 관료주의가 서서히 강화되어 왔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이 책에는 [부수적 결과]라는 다소 생소한 말이 나온다. 이것은 현 미국 법무부 장관 에릭 홀더가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작성한 회람문에 등장한 문구다. 그리고 현재 미국 법무부가 대형 금융 회사를 형사 기소를 하거나 형사 처분을 할 경우 미국 경제는 물론이고 세계 경제가 타격을 입을 수 있으니 아예 기소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할 때 쓰는 말이다. 이제는 사법 시스템에서조차 경제성을 따지는 시대가 되었다.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한 많은 범죄를 벌하는 데 성공하는 것이 긴요한 문제다. 이 논리에 따라 돈과 인맥의 비호를 받는 금융 권력의 범죄를 단죄하는 데 자원을 투자하는 것은 첫째,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야 하고 둘째, 그럼에도 실패할 확률이 지극히 높으므로 비효율적인 일이 된다. 반대로 변호사를 선임할 여유도 백도 없는 사람들의 범죄는 그야말로 손바닥 뒤집듯 쉽게 심판할 수 있으므로 경제적이다. 경제성 논리가 심화되면서 미국의 사법 정의는 이른바 가진 자들의 죄를 찾는 일은 아예 그만두고, 가난하고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의 온갖 시시한 위법 행위이를테면 담배꽁초 투척이나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행위 따위를 적발해 지엄한 법의 철퇴를 가하는 방향으로 완전히 방향 선회를 마쳤다. 타이비는 나아가 이것이 단순히 시스템 문제에 그치지 않음을 지적한다.

 

정부의 복지 급여에 의존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 47퍼센트를 공격하는 미트 롬니의 발언, 그리고 물을 져 나르는 사람들이 물을 마시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경멸감 밑에는 국민 심리에 뿌리내린 거대한 지상명제가 자리 잡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가난을 자체로 범죄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한때 가난한 이들의 울분을 상징하는 문구였다. 오늘날 우리는 이 문구를 잊지는 않았지만, 예전 만큼의 분노는 결코 느끼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는 한편으로는 약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격렬한 증오가, 다른 한편으로는 부자들을 향해 극찬을 아끼지 않는 비굴한 숭배가 넘쳐난다.

 

타이비는 이 현상의 원인을 관료제에서 찾고 있다. 그는 통제받지 않는 사법 시스템이 갈수록 미친 말처럼 날뛰면서 새로운 진리가 통하는 디스토피아를 만들었다고 진단한다.

 

새로운 진리는 공상과학 영화이자 디스토피아다. ……관료제는 체계적인 방식으로 약자들을 쥐어짜서 더 작고 더 온순하고 더 열등한 종으로 만들고, 강자들의 근육을 키워 주어서 도저히 현실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거대한 덩치에 웬만한 공격은 가볍게 물리치는 슈퍼맨으로 만든다.

 

이 세계에서 무일푼인 사람은 그야말로 범죄자 취급을 받고, 돈이 넘쳐나는 사람은 특정한 범죄에 대해서는 절대로 처벌을 받지 않는다.

 

조지 오웰이 그렸던 디스토피아에서는 [생각 범죄]가 원죄였다. 그러나 새로운 기업형 디스토피아에서는 궁핍, 특히 경제적 궁핍이 원죄다.

 

누가 감옥에 가는가

저자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명제를 제시한다.

빈곤이 심해진다. 범죄는 줄어든다. 수감 인구는 두 배로 늘어난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지난 20년간의 몇 가지 통계는 이 논리적 모순이 사실임을 보여준다. 첫째, 폭력 범죄가 줄어들었다. 1991년에 10만 명당 758건이었던 폭력 범죄는 2010425명으로 44% 넘게 감소했다. 이런 감소 추세는 살인, 폭행, 강간, 무장 강도 등 모든 형태의 강력 범죄에서 동일하게 나타났다. 강력 범죄율이 줄어든 원인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쨌든 지금도 여전히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누구나 공감하듯이 빈곤이 더욱 심화되었다. 1990년대에는 빈곤률이 감소했고, 이는 폭력 범죄의 감소에 대한 하나의 설명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증가했다. 2000년대 초 빈곤율은 10퍼센트 언저리를 맴돌았는데 2008년에는 13.2퍼센트로 치솟았고, 2009년에는 14.3퍼센트, 2010년에는 15.3퍼센트를 기록했다. 셋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수감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91년과 비교하면 2012년의 수감 인구는 100% 넘게 증가했다. 현재 미국의 가석방 혹은 수감 중인 인구(거의 600만에 달한다)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다.

 

수감자 비율을 살펴보면 더욱 흥미로운 결과가 나타난다. 2010년 기준으로 미국 인구의 12.6%를 차지하는 흑인은 전체 수감자의 38.2%를 차지한다(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의 2015년 통계에 따르면 비율은 43.5%까지 치솟아 100만 명을 넘겼다). 반면 인구의 56.1%인 백인은 수감자의 34.2%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 비율을 감안할 때 흑인의 수감율은 백인에 비해 6~7배 높다. 한마디로 흑인 청소년은 대학에 진학할 확률보다 감옥에 갈 확률이 높다. 히스패닉계는 백인에 비해 대략 3배 높은 수감율을 보였다.

 

왜 감옥에 가는가

사례를 보자. 26세의 노숙자 토리 매런은 강화된 불심 검문 정책 탓에 수감형을 받는다. 2011년 뉴욕에서 행해진 불심 검문은 684,724건에 달했고 이 중 흑인 등 유색인종에 대한 것이 88%였다. 2012년에 대마초 소지(뉴욕 주 법에 따르면 대마초 소지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그러나 검문 과정에서 대마초를 공중에 노출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즉 검문을 당하면 영락없이 소환장을 받게 된다) 등의 사소한 위법 행위에 대해 발부된 소환장은 60만 건이었다. 이는 사소한 위법 행위를 철저히 근절하는 것이 강력 범죄 억지에 효과가 있다는 이른바 깨진 유리창 이론에 따른 것이다. 한편으로는 줄어드는 경찰 급여와 예산을 충당하기 위한 자구책이다. 마치 잔챙이 고기들까지 싸그리 잡아들여 수익을 올리는 기업형 어업 행위와 비슷하다. 사법 시스템 또한 이런 식의 어로 행위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개편된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관료제.

 

앤드루 브라운은 뉴욕 빈민가 출신의 흑인으로 범죄를 저지르던 10대 시절을 청산하고 근면하게 살고자 한다. 그러나 의지와 상관없이 그가 사는 빈민가는 경찰들 수천 명에게 완전히 둘러싸인다. 그는 수차례 보행자 통행 방해혐의로 체포되어 소환장을 받는다. 간단히 말해서 집 앞 인도에 (걷지 않고) 서 있었다는 이유로 거듭 체포된다. 문제는 억지든 뭐든 이런 식으로 소환장을 발부하면 도무지 빠져 나갈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 들어 추방된 불법 이민자는 이미 100만 명을 넘겼다(2000년부터 2010년까지의 총 추방자가 16만 명이었다). 정책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민자 추방 시스템, 즉 적발하고, 구급하고, 추방하는 각 단계도 경제 논리에 지배당하는 것이 문제다. 이 모든 정책이 불법 이민자들의 푼돈을 갈취하는 방향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미 당국은 이민자들을 헐값으로 노동 집약 산업에 투입하다가 무면허 운전(불법 이민자는 면허 취득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등을 적발해서 벌금을 뜯어내고, 폭리를 취하는 구금 시설에 가뒀다가 멕시코 등으로 추방시킨다. 이후 이들은 대개 멕시코 갱단에 납치되어 몸값을 뜯긴 후 미국으로 다시 돌려보내진다. 이 사이클이 무한히 반복된다.

 

좀 더 기막힌 사례는 사회 복지 부정 수급을 이유로 감옥에 가는 사람들이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본인 명의의 자산이 2천 달러 이하여야만 수급 자격이 있다. , 가진 것이 거의 없다시피 해야 한다. 복지 부조는 현금 부조와 식료품 구입 쿠폰으로 지급되는데, 일단 수급 자격을 취득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다. 그러나 취급 자격을 얻지 못하는 게 나을 수 있다. 일단 수급 대상자가 되면 언제 범죄자 신세가 될지 알 수 없다. 캘리포니아 주 복지 수급 신청에 대해 타이비가 제시한 설명을 보자.

 

(신청서에는) 복지 수급 전 과정이 요약되어 있고 허위 신고의 결과에 대한 장문의 글이 들어 있다. [본인이 신청서에 쓰는 모든 내용이 진실임을 입증할 의무가 있고, 현금 지원과 관련해서 허위 신고를 하면 3년 이하의 징역, 식품비 보조 쿠폰과 관련해서 허위 신고를 하면 2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는 고지도 있다(은행을 비롯한 여러 회사들이 저지른 사기 사건들과 비교해 보면, 사기죄에 대한 처벌 수위는 사기로 인한 피해액이 적을수록 늘어나는 것 같다).

 

수급 자격은 매달 다시 심사하는데 매번 다른 복지사가 담당한다. 이전 복지사가 수급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더라도 이후 다른 복지사는 자격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오하이오 주는 2011년 복지 급여나 식품비 보조 쿠폰의 [과다 지급] 사례를 찾아내 주민들에게 22천 건의 환수 통지서를 보낸바 있다. 과다 지급액이 4백 달러 이상일 경우 주 정부는 수급자를 사기죄로 고발할 수도 있다.

 

벌받는 자들이 죄를 짓지 않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경미한 위법 행위에 대한 처벌이 놀라울 정도로 가혹하다는 것이다. 이들 사례에서 찾을 수 있는 결론은 하나다. 가난이 가중 처벌을 불러온다는 사실이다.

 

누가 감옥에 가지 않는가

반면, 타이비는 지난 2008년 이후로 전 세계 부의 40퍼센트를 날려 버린 금융계의 조직적인 범죄 행위의 대가로 감옥에 수감된 금융 회사 고위 임원은 지금껏 단 한 명도 없었음을 적시한다. 리먼브라더스 인수에서 주주들에게 돌아가야 할 50억 달러를 은닉/갈취한 리먼브라더스 전 임원들과 바클레이스 임원들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견실한 보험사 페어팩스를 무너뜨리기 위해 대리인을 고용해 거의 4년에 걸쳐 조직적인 공매도를 펼치고, 언론 조작을 하고, 온갖 비열한 짓을 마다하지 않았던 헤지펀드들 역시 아무 처벌을 받지 않았다. 엉터리 대출 심사와 로보사이닝 기법을 사용해 부실 대출을 하고 이 채권을 유통시켜 금융 위기를 일으킨 금융 회사들 역시 과징금을 물기는 했지만 처벌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이들은 정부에 총 260억 달러의 손실을 배상했다. 그러나 정부는 260억 달러의 금융 사기를 수감형이 필요한 중범죄로 다루지 않았다. 어느 카운티에서는 복지 급여 몇백 달러를 부정 수급한 자를 잡겠다고 해마다 26천 가구를 수색하고 있는데 말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타이비는 말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든, 다른 측면에서 보든 도대체 말이 되는 일이냐고 흥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이 되는 이야기다. 이런 방침을 밀어붙이는 건 돈 때문이 아니다. 여기서 핵심은 약자들을 옭아매는 데 있다. 진보적인 사람들이 흔히 쓰는 [두 개의 미국]이라는 표현만으로는 이런 현실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법률이 완전히 다르고 징벌(또는 징벌 면제)의 수위도 완전히 다르다. 부자들은 늘 특혜를 받고, 가난한 사람들은 늘 물살을 거슬러 헤엄쳐야 한다. 새로운 진리는 기존의 진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사악하고 훨씬 일그러져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타이비는 온전치 못한 사법 정의가 시스템이, 고착화된 제도가 되었음을 지적한다. , “관료제가 문제의 핵심이다. 미국 관료제의 암울안 현재를 타이비는 이렇게 묘사한다.

 

만일 당신이 거주하는 주나 워싱턴 주의 아주 사소한 법규 하나라도 바꾸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우선 수천 명의 로비스트를 동원해야 한다. 성공할 확률은 거의 없지만, 성공하기까지는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지루한 법정 싸움과 무의미한 탁상공론이 이어지는 법규 제정 절차에 10여 년을 바쳐야 하고, 게다가 수만, 수십만 페이지의 반박 문서와 의견서, 정책 문서와 씨름을 해야 한다. 더구나 이 절차들은 모두 인간의 결정에는 반응하는 법이 없고 오로지 관료 조직의 움직임에만 반응하는 공장식 체계가 기계적으로 만들어 낸 것들이다.

 

따라서 관료제 안으로 빨려들어간 사법 시스템을 온전한 상태로 되돌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사회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관료주의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이것은 현대 미국 경제를 관통하는 강력한 원칙이다. 개인, 더구나 돈이 넉넉하지 않은 개인은 이런 면에서 애당초 불리하다. 따라서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게임이 아니다.

흔히들 부자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관료제라면 틀림없이 부유한 개인에게 우호적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 관료제는 사람들을 덫에 빠뜨려 패자를 만들고 그들에게 벌칙을 안기는 일에만 몰두하고, 패자들은 갈수록 수적으로 줄어드는 승자 계층에 깔린 채 목숨을 부지해야 하지만, 승자들 역시 그 자리에서 언제 밀려날지 모른다.

 

결국 이 미친 사회에서 개인은 누구든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에 늘 시달리게 된다. 타이비의 책은 한국 사회가 이 디스토피아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고민하게 한다.

 

** 책속으로

가난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온 세상이 법률적 지뢰가 묻힌 지뢰밭이다. 공적 부조를 받는 가난한 사람이 하는 모든 일상적인 행동이 사기가 될 수 있다. 성관계를 하는 것도 사기가 될 수 있고, 병이 나는 것도 사기가 될 수 있고, 자식을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도 사기가 될 수 있다. [가난해 보이지] 않는 것도 사기가 될 수 있다. 7p. 432

 

문제는 법률이 오랜 기간 동안 불평등하게 적용될 경우, 어느 시점에서는 법률을 원칙대로 적용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의미에서 불법이 된다는 데 있다. 모든 종류의 체포가 불법적이고 부당한 것, 또한 도덕적으로도 강제력이 없는 것이 된다. 8p. 495

 

2008년 경제 위기가 터지자, 연방 정부는 경제 위기의 원인을 연구할 목적으로 금융 위기 조사위원회를 조직했다. 이 위원회에 책정된 예산은 980만 달러였다. 이 위원회의 필 엔젤리데스 위원장은 이 금액이 [올리버 스톤이 감독한 영화 월스트리트에 투입된 예산의 7분의 1 남짓이다]라고 꼬집었다. 한편, 같은 해에 연방 마약 단속국의 예산은 1302750만 달러에서 1502780만 달러로 증가했다. 8p. 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