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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냉전의 마녀들/ 폭격

by 이성근 2021. 5. 3.

냉전의 마녀들/ 김태우 지음창비2021.04

한국전쟁과 여성주의 평화운동 한국전쟁과 여성주의 평화운동

金泰佑 한국현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이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선임연구원과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폭격: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 『평화인문학이란 무엇인가(공저) 폭력이란 무엇인가: 기원과 구조(공저) 등이 있다. 강만길 연구기금과 김진균상을 수상했다. 미래 한반도 거주민들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역사학의 내용과 방법론을 고민하고 있다.

 

목차

서장

 

1장 시대의 역진에 맞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 재무장(再武裝)을 위한 사회복지의 희생 | 나의 운명에 불복한다

 

2장 귀를 기울이다

북한여성들의 절박한 호소 | 전후 유럽의 반파시즘과 국제민주여성연맹 | 국제여맹의 반식민주의와 제3세계 현지조사 활동

 

3장 프라하에서 신의주까지

특별한 이력의 여성들 | 나는 어떤 사전합의에도 반대한다 | 모스끄바의 웃음 | 최초의 전체회의와 갈등의 폭발

 

4장 지하의 아이들

유서를 쓰고 강을 건너다 | 하루 동안에 쏟아진 85천발의 소이탄 | 우리는 충분히 보았다

 

5장 그을린 사람들

평양으로 가는 길 | 절대적 폐허의 무() | 초대형 지하벙커와 불편한 환대

 

6장 거대한 무덤의 산 위에서

황해도 대학살: 안악과 신천 | 증언에 대한 의구심

 

7장 나의 이름으로

전시 성폭력의 주요 유형들 | 20세기의 전쟁과 전시 성폭력 | 증언의 고통 | 개전과 관련된 북한 측 주장의 불수용

 

8장 억압된 시선들

우리는 고발한다 | 압도하는 냉전, 억압된 제3의 시선들 | 그곳에, 여성들이 있으므로

 

도판 출처

찾아보기

감사의 글

 

역사의 많은 장면에서 기성권력을 위협하는 여자는 곧 마녀였다. 전쟁으로 인한 살육을 고발했던 국제여성조직 활동가들도 사실상 마녀 취급을 받았다. 냉전의 마녀들은 한국전쟁 당시인 1951년 무차별 폭격의 한복판에 있던 북한에 들어가 대량살상과 파괴의 참상을 조사했던 국제민주여성연맹 조사위원회 위원들과 참관인의 활동을 추적한다. “서로를 두려워하고 의심하는 낯선 이방인들이었던 21명의 여자들은 이 땅에서 벌어진 전쟁의 진상보고서를 결국 작성해냈다. 그들은 냉전이 아닌 평화의 편이었고, 마녀가 아니라 진실을 외치는 용감한 여자들이었다.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반도의 전쟁 참상이, 인간이 인간에게 가한 무차별적 폭력의 와중에서 더욱 처절했던 여성의 고통이 진저리를 치게 한다. 동시에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곳에 목숨 걸고 가서, 폭력과 광기에 맞서 인간성을 수호하고자 한 여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다시금 용기를 준다. 이 땅과 온 세상에 평화를! -한정숙(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

 

출판사 서평

지옥으로 변해버린 지상의 삶

저자는 전작 폭격으로 출간된 자신의 박사논문 집필 과정에서 한국전쟁기 미공군의 공식문서들을 치밀하게 분석해 미국 군사작전과 한반도 전쟁피해 규모의 충격적인 실체, 즉 개전 초기 군사목표만을 제한적으로 공격하는 정밀폭격 전략이 중공군의 개입 이후 1950115일을 기점으로 완전히 바뀌어 북한의 도시와 농촌의 인구밀집지역을 집중공격하는 초토화정책이 실시되었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국제여맹 조사위원회는 이러한 집중포화가 북한을 휩쓸고 간 1951516일 밤 북한 신의주에 도착했고, ‘거대한 무덤의 산이 되어버린 북한의 현실을 마주했다. 조사단은 10일이라는 짧은 현지조사 기간 동안 최대한 많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몇개의 조로 나뉘어 신의주, 평양, 황해도의 안악과 신천, 평안남도의 남포시와 강서군, 개천군, 자강도의 희천군, 강계시 등에서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단은 모든 건물이 사라지고 불타버린 땅에 토굴을 파고 그 구덩이에서 살아가는 주민들, 하루 동안 85천발의 소이탄이 하늘에서 쏟아진 현장, 광범하게 자행된 민간인 집단학살과 고문, 생매장, 참혹한 전시 성폭력의 흔적과 증언들을 기록했다. 폐허의 도시에는 여성과 노인과 어린아이들만 가득했다. 국가와 인종과 사상을 떠나, 조사위원들은 같은 여성으로서 북한 여성들에게 강한 연민과 연대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개성 강한 여성들이 모인 국제여맹 한국전쟁 조사위원회는 몇차례 논쟁적인 상황에 휩싸이거나 구성원끼리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최종보고서의 내용에 합의하는 데는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북한의 상황이 절박하고 절망적이라는 사실에 이론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사위원회는 미국을 강력하게 성토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들은 아무리 정당한 사유로 시작된 전쟁이라 할지라도 이렇게까지 모든 도시와 농촌을 완전히 불살라버리고, 도저히 군사적 목표로 간주할 수 없는 폐허 위에 계속 폭탄을 투하하는 행위를 묵과할 수 없다고 보았다. 힘없는 민간인에게 이토록 잔인한 전쟁을 어째서 끝내지 않고 있는지, 전쟁의 지속형식에 대해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철의 장막을 넘어 평화를 꿈꾼 여성들의 진면목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반파시즘·반식민주의·반전평화·국제여성연대와 여성의 권리신장 등을 주창하며 조직된 국제여맹은 당시 세계 최대의 여성단체로서 특히 냉전기에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조직의 좌파적 성격, 동독과 소련 등 공산권 국가들의 지원이 설립과 활동에 미친 영향 탓에 당시 첨예한 냉전질서 속에서 이들이 진정으로 추구하고자 한 가치는 묵살당했다. 한국전쟁 조사위원회의 보고서는 허구적 정치선전물로 공격당했고 미국정부는 자국의 보수적 여성단체들로 하여금 국제여맹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도록 배후에서 조종했다. 유엔 또한 국제여맹의 유엔 내 공식 지위를 박탈하는 강경조치를 취했다

 

이후 국제여맹은 반세기가 넘도록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한 채 망각되어왔다. 하지만 2010년대부터 서구 학계에서 국제여맹을 재평가하는 연구성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저자는 그 결과를 소개하며 국제여맹이 냉전블록을 넘어 서구의 여성단체들은 물론 베트남과 알제리 등 제3세계 식민지까지 활동범위를 넓혀 폭넓게 교류해왔고 조직의 주요 구성원들 또한 공산당과 무관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 다양성을 추구해 설립 초기부터 흑인과 아시아·아프리카의 식민지 여성들까지 평등한 회원자격으로 동참하고 당시 그 어느 국제여성단체에서도 볼 수 없는 다원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한다. 국제여맹이 결코 소련이나 국제공산당의 꼭두각시가 아니었고 오히려 억압적인 냉전질서와 정면으로 맞섰다는 주장으로, 이는 여전히 분단체제의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로 하여금 냉전의 그림자를 넘어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간 평화와 연대, 여성주의의 가치를 새롭게 고민하게끔 한다.

 

그녀들은 왜 마녀가 되었나

이 책은 국제여맹 조직이나 운동의 의의에만 집중하는 것을 넘어 한국전쟁 조사위원 개개인의 삶과 이야기를 복원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저자는 조사위원회의 보고서 외에도 다양한 자료를 수집했는데, 특히 영국 대표인 모니카 펠턴, 조사 과정에서 독립적 참관인으로 활동한 덴마크의 카테 플레론 등이 조사가 끝나고 본국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한 자료를 면밀하게 추적했다.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인물인 펠턴은 영국 노동당 애틀리 정권 하에서 주택문제 해결과 신도시 건설이라는 국책을 담당하는 도시계획가로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스티브니지 개발공사 총재직을 맡았던 여성이다. 펠턴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영국의 전쟁정책을 반대하며 전쟁의 실태를 알기 위해 조사위원회에 참여했다. 그녀는 다양한 신념을 가진 여성들로 구성된 조사위원회가 정치적 프로파간다와 무관하게 진상규명을 위해 협동해서 조사하고 모두가 확인한 사실만을 보고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조사가 끝난 후 그녀는 유엔군에 의한 학살 만행을 규탄하는 보고서 작성에 관여했고, 영국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 행동으로 그녀는 공직에서 해임당하고 보수 진영은 그녀를 반역죄로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공격했다. 결국 스티브니지 총재직에서 물러나는 것을 시작으로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내려놓은 모니카는 인도로 망명길에 오른다. 하지만 그녀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의 내용을 번복하거나 북한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화운동을 이어나가며 국제무대에서 활약했다.

 

저자는 이처럼 변호사, 정치가, 도서관장, 대학교수, 교장, 작가, 저널 편집장, 공기업 대표 등 자국에서 전도유망한 여성들이었던 조사위원들 개개인의 모습과 서사를 소설처럼 입체적으로 구현해냈다. 또한 파편으로 나뉘어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조사위원회의 여정을 시간순으로 재구성하면서 위원들 개개인의 동기, 내적 변화, 위원들 간의 갈등과 관계 변화와 같은 역동성까지 섬세하게 포착하는 한편, 그들이 목격한 전쟁의 양상과 전쟁피해의 규모와 같은 학술적 연구성과 및 그에 대한 역사학자로서의 분석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독특한 서술 방식을 사용했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조사 활동의 성과와 한계를 비판적으로 검증하기도 했다. 예컨대 통역원을 비롯해 현지에서 조사위원회를 도운 이들이 북한 주민들이었던 점은 북한 측의 입장이 조사 과정에 반영되었음을 짐작게 한다. 황해도 학살의 주체로 밝혀진 우익치안대의 존재가 조사단이 만난 피해자들의 증언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는 등 정황상 일부 정보와 증언이 왜곡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조사단 내부에서도 이런 상황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확인할 수 없는 피해 증언이나 북한 측에서 제공하는 사람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고 불만과 의구심을 드러기도 했다. 이런 한계점을 밝히며 저자는 현재 학계의 연구성과들에 근거하여 공중폭격, 집단학살, 전시 성폭력 등에 대한 국제여맹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검증한다. 특히 국제여맹 보고서의 폭격 관련 주장과 미공군 보고서의 내용을 병렬적으로 비교·검토했을 때 보고서에 서술된 폭격 방식, 폭탄 종류, 피해 양상 등이 미공군의 자료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것을 밝혀낸다.

 

국적을 초월한 여성들 간의 우정, 그리고 평화의 약속

전쟁으로 고통받는 제3세계 여성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고자 했던 외부세계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이 책은 냉전사와 한국전쟁사의 직접적인 주제와 함께 여성주의, 사회주의, 평화운동 등 폭넓은 가치를 동시에 다룬다. 특히 국제여맹 한국전쟁 조사위원회 활동은 1950년대 초반 남성들 사이의 거인으로 불리는 전세계의 여성들이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전쟁이 한창이던 한반도에 모여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미로울 뿐 아니라 장구한 여성평화운동의 도전과 시련의 역사에서 의미 있는 한 챕터를 구성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비록 그 활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거나 부당하게 비난받기도 했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이 국적을 초월한 평화 연대, 남성적 군사주의와 국가주의에 대한 맞대응, 자국민의 조롱과 비난을 감수한 용감한 실천을 몸소 일궈냈다는 사실이다. 냉전은 이 여성들의 존재를 역사에서 완전히 삭제해버리려 했지만, 흔들리는 분단체제와 탈냉전의 현실 속에서 국제여맹의 활동은 재평가 받아야 할 것이다.

 

조사위원들은 북한 여성들로부터 전쟁이 언제 끝날까요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고 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놀랍게도 조사위원들이 한반도를 다녀가고 정확히 70년이 지난 2021년 현재까지도 전쟁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2018년 남북한 정상의 판문점선언은 종전선언을 최우선 선결과제로 제시했지만, 2021년 현재까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더욱더 전쟁의 지속전쟁의 형식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던 국제여맹 조사위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전쟁이 왜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는지, 그 수행 방식은 왜 그토록 잔인했는지,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더 진지하고 집요하게 물어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21명의 여성은 유서를 쓰고 전쟁 중이던 북한으로 향했다, ‘냉전의 마녀들

국제민주여성연맹 한국전쟁 조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모니카 펠턴, 이다 바크만, 카테 플레론,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 옵샨니코바, 제르멘 안네바르, 에바 프리스터(왼쪽부터). 창비 제공.

 

작은 호텔방에 모인 여성들이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다. 부모님에게, 친구에게, 남편에게 남기는 유서다. 1951515, 한국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때다. 다음날이면 이 여성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인 북한으로 들어간다. 언제 어디서 포탄을 맞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기에 마지막 말을 남기는 것이다. 이들은 군인이 아니다. 덴마크, 체코슬로바키아, 네덜란드, 영국 등 18개국에서 모인 총 21명의 여성들이다. 대부분이 변호사, 정치가, 도서관장, 대학교수, 잡지 편집장 등 내로라하는 직업을 가진 인텔리. ‘잃을 것 많은여성들이 북한으로 향하는 이유는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학살의 참상을 직접 보고 기록해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여성들은 국제민주여성연맹(이하 국제여맹)의 한국전쟁 조사위원회 위원들이다.

 

<냉전의 마녀들>은 한국전쟁 당시 국제여맹이 10여일 동안 신의주, 평양, 황해도, 평안남도 등의 지역을 돌아다니며 목격한 민간인 대상 공중폭격, 집단 고문, 성폭력 등의 참상을 담은 책이다.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 ‘전쟁파시즘이 여성과 아이들의 일상을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할 수 있는지 생생하게 체험했던 당대 여성들은 평화반파시즘을 기치로 모여 국제여맹을 결성했다. 194511월 창립된 이 조직은 당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국제여성단체였다. 창립 5년 후 국제여맹은 북한 여성들의 고통에도 응답했다. 19511월 북한의 조선민주여성동맹은 미군의 가혹한 전쟁수행 방식과 피폐해진 일상을 고발하는 장문의 호소문 전 세계 녀성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표했다. 호소문이 결정적 계기가 돼 국제여맹 내에서 조사위원회가 꾸려진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는 북한 지역 조사 뒤 우리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조사보고서를 7개국 언어로 동시 발간해 북한 여성들의 고통을 공유했다.

 

보고서는 물론 조사위원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조차 많지 않다. 민간인 무차별 폭격 등 미군에 비판적인 내용이 담겼던 탓이다. 조사위원회의 행동은 발표 직후 매카시즘의 광풍을 맞고 소련의 선전 팸플릿으로 폄하돼 수장됐다. 2010년 이후부터야 해외 여성학계를 중심으로 이들의 활동에 대한 연구가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냉전의 마녀들>을 쓴 역사학자 김태우 한국외대 한국학과 교수는 조사위원회의 보고서와 미 공군의 기록, 조사위원들이 본국에 돌아가 남긴 개인 기록·언론 활동들을 치밀하게 파헤쳤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보고서 내용을 처음 접한 저자도 이를 소련이나 북한 측의 정치선전물로 쉽게 단정했었다고 한다. 하나 미군이 195011월을 기점으로 북한 도시와 농촌의 인구밀집지역을 핵심 타깃으로 설정한 이른바 초토화 정책을 폈다는 연구들을 속속 접하면서 국제여맹 활동에 다시 주목했다. 저자는 한국전쟁 관련 다른 기록과 위원회의 기록을 교차검증하고 보고서 주장 중 상당 부분이 신뢰할 만하다고 판단해 이를 한 권의 책으로 써내기에 이르렀다.

 

<냉전의 마녀들>은 기록 복원물이나, 한 편의 전쟁소설과 같이 인물의 서사를 군데군데 섞는 방식으로 쓰였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영국 조사위원인 모니카 펠턴이 있다. 펠턴은 위원회 파견 당시 영국 최초의 뉴타운 건설을 위한 스티버니지 개발공사의 총재직을 맡고 있었다. 그는 도시계획 분야에서 남자들 사이의 거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최고의 전문직 엘리트였다. 스티버니지 개발계획 추진으로 매우 바쁜 일정 속에서도 위원회의 북한행에 합류한다.

 

펠턴이 이야기 중심에 놓인 것은 그가 남긴 개인기록이 풍부해서이기도 하지만, 친미나 친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위원회 성격을 잘 드러내는 인물이라서다. 펠턴이 북한으로 떠난 가장 큰 목적은 애국심이었다. 당시 영국 내에서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국방비 증액을 둘러싸고 논쟁이 있었는데, 국방비 증액은 복지예산 삭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펠턴은 갈등의 배경이 된 한국전쟁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했다. 그는 북한행 목적에 대해 그 유일한 목표는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었고, 진실을 발견할 경우 그것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었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21명의 여성은 유서를 쓰고 전쟁 중이던 북한으로 향했다, ‘냉전의 마녀들

위원회에는 소련 대표인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 옵샨니코바 같은 위원도 있었지만, ‘친미적이거나 보수로 평가받을 만한 인물이 여럿 속해 있었다. 덴마크 출생 이다 바크만은 미국으로 망명해 미 전쟁정보국 덴마크부 최고지휘관을 지낸 완연한 친미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였다. 덴마크 조사위원인 카테 플레론은 덴마크 평화아카데미에 의해 보수로 분류되는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위원들은 모두가 모인 첫 날부터 설전을 거듭하며 위원회가 공산주의 혹은 반공산주의처럼 보이는 것을 경계하고 균형을 유지하려 했다.

 

각자가 속한 국가와 서 있는 자리는 달랐지만, 조사위원들이 보고 증언한 북한의 참상은 일관됐다. 195011월 유엔군의 초토화정책 이후 전쟁 초기 사용이 금지됐던 소이탄을 시가지에 폭격해 초등학교·시립병원·거주지가 파괴된다. 조사위원들이 만난 많은 사람들이 폭격 후 항공기가 저공비행을 하며 기총소사로 난사해 가족들을 잃었다고 증언한다. 펠턴은 예전에 20만명이 거주하던 도시를 지나갈 때조차 내가 본 것은 오로지 수천개의 굴뚝뿐이었다고 회상했다. 저자는 미군 외에 또 다른 학살의 주체였던 한반도 내 우익치안대와 관련해서는 현지 통역담당들이 조사위원에게 통역하는 과정에서 고의적으로 누락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한계점도 언급한다. 하지만 조사위원들이 미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 현장을 목격한 것만은 분명하다고 강조한다.

 

여성의 눈은 숫자로 카운팅되는 피해 규모보다 전시에 여성이 겪는 끔찍한 폭력을 응시했다. 4개로 나눠졌던 조사조 중에서 강원 지역 조의 조사보고서는 전체 분량의 4분의 1 이상을 성폭력 관련 내용에 집중적으로 할애했다. 집단강간, 강간 후 살해 기록이 메스꺼울 정도로 이어진다. 미군이 거리에서 여성들을 마구 잡아들인 후 한 장소에 모아놓고 군인유곽으로 활용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몇몇 북한 여성들은 이들이 외국에서 나온 여성 조사위원들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다짜고짜 울음부터 터뜨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펠턴은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고 기록한다. 저자는 면담자가 같은 여성이라는 사실, 그리고 어쩌면 북한의 일상과 동떨어진 낯선 외국인 여성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피해자들의 발화를 수월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국제민주여성연맹 한국전쟁 조사위원회는 북한 주민들을 직접 만나 미군의 민간인 대상 폭격과 전시 성폭력 실태를 조사했다. 보안상 이유로 중국 인민복 복장을 하고 신의주 문화회관에서 신의주 시내를 내려다보는 조사위원들 모습(왼쪽 사진)과 북한 내 작은 마을에서 회의를 하는 조사위원들. 창비 제공.

 

목숨을 걸었던 조사활동의 결말은 결코 아름답지 못하다. 본국으로 돌아간 여성들은 마녀사냥과 같은 고초를 겪는다. 펠턴은 스티버니지 개발공사 총재 직위에서 해임되고, 국가 배신 혐의로 재판정에 설 위기를 겪는다. 결국 인도 남부의 항구도시 마드라스로 망명해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다. 쿠바 조사위원인 칸델라리아 로드리게스는 한국에서 보고 들은 것을 계속 대중에게 알리고 다녔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강제 이송과 투옥을 당한다. 서독 조사위원 릴리 베히터는 본국에 돌아와 위원회 활동 당시 목격한 전시 성폭력에 관해 연설을 하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매카시즘이라는 광풍이 작용하기도 했으나, 친소·친미·공산주의·반공산주의 등 어느 카테고리로도 해석되지 않는 국제여맹의 활동은 당대 사람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배척받았다. “국제여맹의 대표적 캐치프레이즈인 반파시즘, 반식민주의, 반인종주의 등은 과거 여성운동사에서는 꽤나 생소한 내용들이었다. “국제여맹이 북한을 방문했던 1951년은 두말할 나위 없이 권위주의적 남성주의가 여성의 일상을 압도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사위원들은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망명할 정도로 심한 박해를 받았음에도 단 한 명도 위원회 최종보고서의 내용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 폭력과 살육이 난무하던 그 시기 반파시즘과 평화, 여성의 연대를 굳건히 지켜내려 하던 그들은 신념을 굽히느니 마녀들로 남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폭격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 김태우 지음 창비 : 2013.7

 

책을 펴내며

 

1부 서막

1장 폭격의 역사: 개관

2장 일제시기 조선인과 공중폭격

3장 냉전과 공중폭격

 

2부 북폭

4장 정밀폭격

5장 북폭, 그리고 논쟁의 시작

6장 북한의 피해와 대응

 

3부 평범한 임무

7장 폭격의 구조

8장 흰옷을 입은 적들

9장 남한지역 대량폭격

 

4부 초토화정책

10장 초토화정책의 결정

11장 불타는 눈밭

 

5부 협상하며 죽이기

12장 기계와 인간의 전쟁

13장 항공압력전략

 

맺음말: 극단의 기억을 넘어 평화로

감사의 글//참고문헌/도판출처/찾아보기

 

 

한국전쟁사 연구의 새로운 이정표이자

미국 측 연구에 의한 대한민국 젊은 역사학자의 강력한 반론

 

폭격: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은 독창적인 문제의식으로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기존의 연구경향을 넘어 지금까지 한국전쟁사 연구에서는 없었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다. 기존의 관련 연구들은 한국전쟁기 미공군 작전의 성과만을 긍정하는 방향과 무차별적 공중폭격의 비인도적 성격만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에 저자는 전쟁 전시기에 걸쳐 미공군은 군사목표 공격에만 역량을 집중했고 민간지역을 폭격하는 따위는 결코 행하지 않았다라는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고, 군사적 목표물 공격을 지향한 참전 초기 정밀폭격정책의 실상과 해당 정책에서 벗어나 무차별폭격으로 귀결된 배경과 과정을 냉철하게 짚어본다.

 

이를 위해 저자는 2000년을 전후한 시점부터 미국의 국립문서보관소(NARA)와 미공군역사연구실(AFHRA)을 통해 공개되기 시작한 한국전쟁기 미공군 문서 약 10만여장을 수집,분석했고, 당대의 러시아, 중국, 남북한 문서와의 교차분석을 통해 전쟁기 유엔 측과 공산 측 주장의 신빙성을 검증했다. 특히 저자가 면밀히 검토한 문서들은 미공군 조종사의 일일임무보고서 단위의 하급문서였다.

 

하급문서를 살핀 까닭은 한국전쟁기 미공군의 민간지역 폭격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논저의 경우(대표적으로 로버트 F. 푸트렐), 미군과 워싱턴의 고위층 인사들이 작성한 정책문서를 근거로 제시했고, 전쟁 초기부터 무차별폭격이 가해졌다고 강하게 비판하는 논저의 경우(대표적으로 브루스 커밍스, 존 할리데이), 대부분이 한국전쟁 당시 미국과 유럽의 언론기사들을 주요한 근거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의 논저에는 해당 주장을 제대로 검증해줄 실제 폭격 사례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배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의 저본이 된 저자의 박사논문(서울대 국사학과)은 발표 당시 과거사 정리와 관련하여 한국근현대사 연구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성과라는 호평으로 강만길연구기금을 받는 등 큰 화제를 낳았다. 저자는 해당 논문을 기초로 하여, 폭격 주체인 미공군 조종사들의 개인정보에서부터 사상에 이르는 종합적인 분석과, 미공군의 폭격이 대량학살 양상으로 나아가는 데 직접적인 원인이 된 초토화정책항공압력전략에 대한 연구를 더해 이 책을 완성했다.

 

한국전쟁기 미공군의 폭격정책: ‘군사목표 정밀폭격에서 초토화정책으로

이 책은 비행기 발명과 함께 시작된 공중폭격 역사에 대한 개론과 한국전쟁기 공중폭격의 주체인 미공군의 설립과 공중폭격정책 형성과정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다룬 제1서막을 시작으로, 북한과 남한 전역에서 이루어진 폭격의 실제 사례를 면밀히 검토한다.

 

그리고 한국전쟁 초기 북한지역 전략폭격과 북한의 대응을 그린 제2북폭’, 한국전쟁 초기 미공군의 남한지역 민간인 공격의 배경과 양상에 대한 제3평범한 임무’, 195011월 북한지역의 모든 도시와 농촌을 불태워버리기로 결정한 초토화정책의 배경과 진행과정에 대한 제4초토화정책’, 그리고 정전협상이 중국과 미국 간 세력전으로 더디게 진행되는 사이 꾸준히 계속된 폭격, 북한주민들을 죽음의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철도차단작전과 항공압력전략의 성격에 대해 분석한 제5협상하며 죽이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을 통해 저자는 미공군이 초기에 정밀폭격정책을 지향했음에도 무차별폭격의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상세히 규명하고, 무차별폭격으로 전이한 미공군의 공중폭격 양상과 정책 변화를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한국전쟁 발발 직전인 1949년 미국에서는 전략폭격의 무차별적 성격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었다. 때문에 미공군은 향후 전쟁에서 순수 군사목표만을 폭격한다는 원칙을 엄격히 준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 발발한 한국전쟁 초기 북한지역 폭격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미공군은 군사목표 정밀폭격정책을 준수했다. 그러나 민간인 희생은 불가피했다.

 

기술력 부족으로 레이더 조준을 통한 폭격은 오폭률이 높았고, B-29기 등의 전폭기는 항속거리가 짧아 목표지역에서 정찰 후 폭격을 수행하기가 어려웠으며, 전폭기를 목표지역으로 안내&#8226;통제하는 전술항공통제씨스템은 불안정했다. 더불어 착륙시 안전을 위해 일단 탑재된 폭탄을 모두 소진해야만 했기에 조종사들은 짧은 시간 내에 육감과 우연, 자의적인 판단에 의지해 표적을 식별&#8226;공격해야만 했다.

 

이러한 기술적인 요인에 더해 저자는 기존 연구를 살펴 폭격 수행자인 미공군 조종사들의 출신계급, 교육 정도와 참전 목적 및 동기, 미공군 내 문화 등을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또한 미공군의 폭격현장 피해분석 보고서를 살펴본 결과, 폭격목표에 대한 피해만을 다루고 해당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는 분석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폭격 성과에 대한 군의 인식 역시 민간인 희생을 야기한 원인이었음을 밝혔다.

 

이후 남한지역까지 확대된 공중폭격은 이러한 상황에 전쟁에서 최대한 빨리 승리하려는 전술적 목표까지 더해져 무차별폭격 양상으로 나아가게 된다. 전황이 악화되자 1950115일 맥아더는 미공군 사령관들에게 북한 민간인들이 거주하는 도시와 농촌지역 자체를 군사적 목표로 간주하고 소이탄으로 불태워 없애버리라는 공세적 명령을 하달했다. ‘초토화정책의 시작으로, 더이상 후방이란 없었다.

 

정전협정이 중국과 미국 간 이해다툼으로 지연되면서 민간인 피해는 지속적으로 늘어만 갔다. 그리고 1953, 미공군은 항공압력전략이라는 새로운 공군전략을 실행하게 된다. 이는 공군력에 가해진 기존의 정치적&#8226;군사적 제한요소를 해체시키고, 오히려 공군력을 정치적 압력수단으로 직접 활용하는 새로운 개념의 공군전략이었다. 북한군에는 치명적인 철도차단작전이 개시되고, 극동공군의 공군력을 파괴작전에 집중시켜 정전체결을 불과 2개월 앞둔 시점에서는 파괴의 정도가 최고치에 달했다. 미공군은 이미 초토화된 땅에서 민간인을 포함해 적의 전쟁수행 의지를 꺾기 위해 교통을 차단하고, 식량 생산수단인 저수지와 전답을 폭격했다.

 

위생 처리되지 않은 공중폭격 기록의 증언

폭격: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은 미공군의 기록으로 그들의 공중폭격정책을 밝히는 명민함이 돋보이는 책이다. 또한 실제 폭격을 수행한 조종사들의 무미건조한 기록 속에서 이 땅의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느꼈을 공포와 분노, 무고한 죽음을 생생하게 읽어낸 저자 특유의 예민한 감성이 빛난다.

 

이 책에 풍부하게 실린 실제 전폭기 조종사들의 임무보고서들은 한국전쟁 초기 남한지역에서조차 민간지역 폭격이 매우 일상적으로진행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미군 측의 용어를 빌리자면, 문서들은 하급문서로서 위생 처리된”, 즉 적절히 가공된 자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 극동공군은 문서작성 과정에서 민간지역을 향한 공격을 군사목표를 향한 공격으로 표현을 순화하여 기록하라고 지시해둔 상태였다. 그러나 매일 임무보고서를 작성해야만 했던 전폭기 조종사들은 자신의 임무를 마을’(village), ‘도시’(city), ‘흰옷을 입은 사람들’(people in white: 민간인을 의미)에 대한 폭격으로 여과 없이 표현하고 있었다.

 

즉 이 문서들은 한국전쟁기 공중폭격이 인도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의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가장 적나라한 자료였다.

 

공중폭격 기록을 통해 입증해낼 수 있는 사실은 미공군의 민간인 대량학살만이 아니다. 중국 역시 그들을 위한 전쟁을 수행했음을 엿볼 수 있다.

 

당시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지도부는 북한지역의 폭격피해가 이미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지칠 대로 지친 북한지도부는 정전협상에서 미국에 커다란 양보를 하고서라도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길 소망했으나 중국의 입장은 단호했다. 당시 정전협상에서는 공산 측의 자동(강제)송환원칙과 미국 측의 자원송환원칙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고, 중국은 자국의 위신을 지키고자 했다.

 

폭격피해와 관련된 북한지도부의 지속적 호소에도 불구하고 전쟁포로 논쟁은 15개월이나 계속됐고, 그사이 미공군의 항공압력전략은 대규모 민간인 희생을 낳았다. 조선인들을 돕기 위한 전쟁이라는 중국의 이른바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의 실체 역시 반증된다.

 

한국전쟁 정전협정 60주년. 하지만 한반도의 전쟁 위기는 여전하다. ‘5조 부칙을 포함해 전체 5개의 조문으로 구성된 군사정전협정의 제반 조항들은 전후 양측의 불성실한 협정 이행에 의해 사실상 와해된 상태다. 북한은 지속적으로 핵실험을 강행하며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미국은 한국전쟁기의 B-29기에 상응하는 B-52 폭격기와 B-2 스텔스 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에 출격시켜 긴장을 고조시켰다.

 

20133월 북한은 정전협정 완전 백지화를 공언했고, 실제 311일 한미 대규모 군사훈련인 키리졸브 훈련이 강행되자 오늘부터 이 땅에서 간신히 존재해오던 조선정전협정이 완전히 백지화되었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상황에 이 책은 한반도에서 전쟁과 공중폭격 문제는 반세기 전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한 오늘의 문제이며, 대량학살전쟁으로 귀결된 한국전쟁을 비추어 그같은 비극을 막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를 묵직하게 되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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