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9.13~9.18 촛불혁명 이후, 대중의 분노는 어디서 왔나

이성근 2021. 9. 13. 01:17

 

 

한국토지은행을 상상한다

1석과 171, 정당보조금은 1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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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은행을 상상한다

정부는 지난 825일 부동산관계장관회의에서 태릉골프장 부지를 녹지를 확충한 저밀개발 방식의 주거공간으로 개발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813일 촬영한 태릉골프장 모습 / 연합뉴스

 

세계경제의 중심지 뉴욕 맨해튼. 우리가 정책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토지임대를 거기서는 벌써 사업으로 추진해 돈을 벌고 있다. 바로 배터리파크시티 396694(12만평)가 그것. 공유수면을 매립한 사업 초기인 1970년대에 2억달러 장기채권을 발행한 후 2014년까지 모든 국채를 상환했음에도 2020년까지 누적 수익이 무려 38억달러(4조원)에 이르게 됐다. 지난 한해만 하더라도 뉴욕시에 23000만달러의 재정수입을 안겨다 주었다. 맨해튼의 경제성장에 따른 지대가치의 상승으로 번 돈으로 입주자의 재산세를 대납해주고 저소득층 임대주택 등 지속적인 재정에 기여하고 있다.

 

매립 후 일찌감치 시장에 매각하는 한국식 택지개발방식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 땅을 매입하고 이자를 감당할 만한 재력가가 일방적으로 이득을 봤을 것이다. 그리고 은행에서 대출받아 분양받은 매입자가 이자 부담을 만회할 정도로 땅값이 올라 매매차익을 거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뉴욕시는 토지임대를 했기 때문에 실거래되고 있는 시장지대를 받아 공익으로 환수할 수 있는 구조가 된 것이다. 거기에 14000세대의 주거의 보급을 포함한 성공적인 도시조성도 이뤄냈다. 지구촌 전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땅값시장에서 지대시장으로

매립해 얻는 땅이나 임야를 전환해 얻는 개발가능지나 시세 차이의 구조는 비슷하다. 그렇다면 우리도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1980~1990년대 금리가 10%에 가깝게 비쌀 때는 택지를 개발해 매각분양이라는 환금사업을 해야 추가개발용지를 확보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1~2% 금리시대는 매각보다 지대수입에 의한 경영이 훨씬 유리하다. 자금조달도 쉽다. 예전에는 자금난 때문에 여러곳을 동시에 개발하기 힘들었다면, 지금은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인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토지정책에 새로운 관점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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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점에서 다시 보자. 땅값이란 현재의 사용가치인 지대를 기반으로 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미래에 예상되는 불확실한 가치를 수치로 표현한 것이다. 이자율이 바뀐다든지, 경제상황이 요동친다든지 하면 땅값도 널뛰기한다. 마치 선물거래시장 같은 투기적 수치가 현실가치로 반영되는 것이다. 널뛰는 땅값·집값이 현실의 수요자들을 미혹시키고 현실가치인 현금을 그 이자로 투입하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허수가치의 상승을 기대하는 대가로 현시점 경제활동의 성과물이 투입되는 것이다. 현실의 경제여건을 향상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땅값이라는 미실현가치를 기대하는 심리로 투입한다. 그 돈이 어디로 가겠는가?

 

그 과정에서 불로소득을 챙기는 자도 많아진다. 이런 경향은 토지수요와 공급이 원활하지 못할 때 더욱 민감하다. 근본대책은 무엇인가. 교과서대로라면 첫째, 땅값시장의 크기를 줄이고 지대시장을 키울 것. 둘째, 지대시장을 키울 수 있도록 공공이 토지자산을 가급적 많이 확보해 갈 것. 가령 토지임대주택도 지대시장의 활성화 과정에서 보편적인 주거·주택정책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그러기 위한 공공의 토지확보 전략으로서, 보다 유연한 자금을 융통해 공적토지를 비축하고 활용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게 은행시스템이다. 필자가 이름해 한국토지은행’. 근본적으로 땅값 상승이 미연에 조정되고 불로소득 없는 공익 증대를 기할 수 있는 전략으로서의 은행시스템이다.

 

또 다른 현실의 상황을 보자. 수도권에 주택수급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거론되는 것이 그린벨트 해제다. 해제 후 개발된 곳도 있지만 아직 대다수가 보존상태이다. 슬기롭게 다룰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불이익을 받아온 토지소유자가 더 이상 불이익을 보지 않으면서 공익가치를 구현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수도권의 그린벨트는 개발 압력이 큰 만큼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해결방안이 필요하다.

 

바로 토지비축 시스템이다. 현재 공공토지의 비축에 관한 법률토지은행이란 이름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내부에 두고 있는데, 이젠 토지비축을 넘어선 역할, 즉 은행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2009LH 토지금고의 명칭만 바꾼 토지은행은 공익사업용지를 공급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부족한 재원, 실질적인 토지취득수단이 부재한데다, 매각 위주의 공급 등으로 이름뿐인 토지은행이다. 비슷한 토지비축을 주제로 하는 미국, 스웨덴, 캐나다, 일본의 토지은행에 비해 낮은 수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기존 토지금고형 토지은행보다 확장적이고 유연한 주거 보급을 위한 공공토지 비축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토지를 망라한 공적 자산의 확보·관리 역할과 그 중요성에 걸맞은 장치가 원점에서 요구되고 있다. 여기에 일반금융 기능까지 확대해 민간자본까지 끌어들일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시중의 유동자금을 적정이자의 채권으로 끌어들이는 등의 방식이 눈에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운영하는 토지은행 소개 화면 / LH홈페이지

 

일반은행 기능도 겸한 대만토지은행

외국의 토지은행 가운데 재원조달에 장점을 갖고 있는 사례는 대만을 꼽을 수 있다. 대만은 일찍이 쑨원(孫文)의 삼민주의(三民主義)에 입각한 토지정책이 세련되게 발전해온 편이다. ‘대만토지은행은 그 산물이다. 1945년에 출범한 이 은행은 헤드오피스가 30, 지점이 150, 해외지점이 8개나 있는 방대한 조직이다. 기능을 살펴보면, 토지금융채권 발행업무가 주된 업무의 하나다. 즉 토지매입의 재원을 일반채권을 발행해 조달하고 있다. 가령 은행설립 초기의 운영기록을 보면 토지금융채권은 원금을 발행 2년 후부터 2차에 나눠 균등 상환하고 3년에 전부 상환 완료한다. 이율은 발행 시기의 날짜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이자는 발행일로부터 만 6개월마다 상환하는 식으로 운영했다고 한다. 대만토지은행의 또 하나 중요한 업무는 부동산신탁과 대출업무로, 대출은 목적에 따라 더욱 세분해 운영하고 있다. 즉 대만은 토지은행 기능을 일반금융에까지 확대해 일반인에게 토지채권을 광범위하게 발행하고, 토지 관련 대출의 범위도 폭넓은 편이다. 그 과정에서 토지의 정보와 토지 확보에 유리한 운영을 하고 있다. 일반은행의 기능도 겸하고 있어 그대로 본받긴 어렵지만 우리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현재의 땅값이 시장에서 거래가 되긴 하지만 예측 가능한 신뢰라는 토대가 부재하다. 선물시장처럼 널뛰기하고, ‘영끌’, ‘막차같은 도박성 용어가 난무하고 있다. 뭔가 어색하다.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면 인간집단은 더욱 이성적 룰이 작동하도록 해야 하는데 땅값시장은 이상하게도 사행성 룰이 작동한다. 이젠 예측 가능한 범위의 이성적 영역에서 거래가 다뤄지도록 해야 마땅하다.

 

땅값이 아니라 땅사용료가 중심이 된다면 합리적 경쟁의 시장이 가능하다. 실물경제의 흐름이 선순환될 수 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런 지대시장에 가깝게 돌아가고 있는 곳이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별다른 첨단산업이 없음에도 6만달러의 고소득국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혹자는 세계물류 중심이라 그렇다고 하는데 그 정도의 지리적 이점을 가진 나라들은 한두군데가 아니다. 어째서 유독 싱가포르 경제만 잘 나가는가. 배터리파크시티 지대시장 일부만 놓고 본다면 뉴욕시도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가칭 한국토지은행의 역할은

은행이라는 이름은 뭔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듯한 느낌이 있다. ‘한국토지은행이 만들어진다면 국민이 자유롭게 예금, 매입, 거래할 수 있다. 연기금도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다. 국민에게 토지채권계좌라는 또 하나의 튼실한 정기예금 계좌를 선사하는 게 토지은행이다. ‘이 채권을 보유하면 당신은 부동산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국민이 될 수 있다는 것. 일반주식은 토지와 같은 미래가치를 다루고 있음에도 거래가 자유롭고 투명한데, 토지는 정보유통과 거래가 어려워 수요와 공급이 매치되지 않는 부분이 있고, 그나마 유통이 잘되는 아파트 쪽에 돈이 몰려 투기화되는 경향도 있다. 토지거래가 투명하지 못하고 음성적으로 되는 바람에 공익상의 손실도 크다.

 

대만형의 새 모델을 생각해본다. 토지비축 중심의 서구의 토지은행 모델과는 다른 금융적 토지은행 모델이다. 요즘같이 이자율이 낮을 때는 정기예금보다 약간만 더 얹어주는 채권시스템을 만들면 국민의 관심을 모을 것이다. 재원조달에 어려움도 없을 것이고, 토지임대 정책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다. 종래의 용어가 아니라 예금성 채권이라고 할까. LH가 공사 차원에서 하고 있는 토지비축을 토지은행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서 보편시스템으로 운영하자는 것이다. 그런 은행이 성립한다면, 증권거래소와 같은 토지거래소 기능을 토지주택은행 내에 두든지 병행하든지 해서 지대시장제와 지대개혁을 리드할 수 있다.

 

토지은행에 증권거래소와 같은 토지거래소 기능이 생길 수 있다. 좋은 자산을 최대한 자본을 확충해 가져오는 게 중요하고, 그렇게 하면 정부도 다양한 운영이 가능하다. 펀드, 리츠 등으로 다변화하고, 그렇게 되면 거래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이자가 아니라 배당을 받으면서. 맨해튼의 성공은 부동산가격 앙등으로 소수계층을 제외한 온 나라가 고생하고 있는 우리에게 영감과 비전을 준다. 당시 금리 5~7% 시세였던 공채를 매입한 것은 은행가였지만 한국토지은행이 있다면 이론상으로는 모든 국민도 그 채권 매입에 참여할 수 있다. 참여했다면 그 개인은 적지 않은 수입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토지은행이 역할을 제대로 하면 토지거래관리가 용이해진다. 거래시스템의 공익적 가치를 제고한다. 세제로만 환원시키고 있는 현행시스템은 공익가치가 일부에 불과한 데 비해 거래의 활성화가 주는 공익상의 이점은 막대하다. 한국토지은행은 토지주택거래시장 조정 역할을 한다. 기업 보유 부동산을 은행이 매입 시 이점이 있다. 펀드와 주식도 가동한다. 신뢰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토지은행에게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할 수도 있다. 조건에 해당하는 매물에 대해 우선적으로 감정가로 매입하는 권한을 주는 것이다. 공익상의 가치가 없을 때 일반매각이 가능하므로 과도한 지가상승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토지은행은 개발에 대한 투자도 할 수 있도록 한다. 미국, 캐나다는 은행에 주도권이 있다. 개발사업 진행 시 중간단계에서 계약금을 예치하면 은행이 중간공사비를 대출해준다. 사업 중간의 왜곡을 방지하고 민간개발이 활성화된다.

 

앞으로 주택·주거공급도 공공이 직접 개발하기보다 바우처로 가게 될 것이다. 5만호를 지으면 5000호는 바우처를 복지비용으로 발행하는 것이다. 선진국은 공공에서 직접 개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민간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토지은행이 기여할 수 있다. 토지은행이 활성화되면 토지의 공적 소유가 확대되고, 토지를 임대해 주택·상가 등으로 활용하게 한다. 토지임대료 수입과 직접 주택을 짓거나 매입해서 얻은 임대료 수입을 다시 국민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토지주택은행에서 공적 리츠를 만들어 국민주 방식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미국 뉴욕시 허드슨강을 따라 형성된 매립지에 조성한 배터리파크시티의 모습 / 위키피디아

 

토지은행의 지대시장 활성화 효과

국토보유세가 지대시스템으로 운영되면 토지은행에서도 토지를 담보로 한 대출이나 채권발행 등이 지가기준이 아니라 지대기준으로 전환될 것이다. 업무의 신뢰성이 높아지고 거래가 투명해지고 토지관리와 이용 등에 신뢰가 생길 것이다. 지대의 평가가 더욱 정확해지는 선순환효과가 생긴다. 지대시장 기능을 활성화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토지은행이 매개가 돼 지대시장이 활성화되면 장기적으로 소유와 사용을 분리해 거래하는 일이 익숙해진다. 일반적으로 토지보유의 유형은 1)사적 자유보유(private freehold) 2)사적 임대보유(private leasehold) 3)공적 자유보유(public freehold·정부나 공공기관의 권한 내에 있는 토지) 4)공공 임대보유(public leasehold·국공유지를 임대받아 보유하고 있는 형태) 5)비공식 사실보유(nonformal de factor tenure·무단점유토지) 6)공동체 소유(communal ownership·공동체가 토지를 공동으로 소유하는 형태)의 여섯가지 형태가 있다. 이들 유형에 맞는 소유와 사용의 기준과 개념을 세우면서 토지의 은행다운 일을 하게 된다. 소유형태에 따라 지대시장의 전략이 달라진다. 공적 개발목적의 토지뿐 아니라 전국 모든 토지에 대해 지대시장을 주도해갈 수 있다.

 

기후위기시대 환경문제를 고려한 체계적인 토지이용전략 수립을 위한 토대의 구축이 필요하다. 토지이용이 제대로 돼야 온실가스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다. 그러려면 유연한 주거 보급을 위한 공공토지의 비축을 위한 재원조달 장치가 있어야 하고, 토지수급과 거래의 원활화로 땅값 거품을 억제하고 불로소득을 미연에 방지하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한국토지은행은 지대시장의 활성화로 토지임대주택 등이 보편적인 주거정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역할을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반 국민의 안정적 예금자산 증식과 부동산정책 참여 기회도 준다. 토지은행이 매개가 돼 토지개발시장의 활성화가 촉진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전국 모든 유형의 토지에 대해 지대시장 구축이 가능할 것이다.

 

무엇보다 통일시대가 기대된다. 한국토지은행이 제대로 역량을 갖추면 북한 토지의 지대시장화를 감당해낼 수 있다. 북한 땅덩어리는 말 그대로 노다지가 아닐 수 없다. 한국경제와 같은 용광로 옆에 이런 맨땅이 생긴다면 맨해튼의 배터리파크시티가 거둔 4조원 수익은 조족지혈로 보일 것이다. 한반도는 어쩌면 금본위보다 탁월한 토지본위기축통화를 발행할 수도 있다.

이원영 수원대 교수·한국토지정책학회 이사/경향

 

1석과 171, 정당보조금은 1177

의석 없지만 연간 9억원 넘게 받는 민생당, 원외정당이지만 관심과 감시 필요

거대양당 특권 중 하나인 정당 국고보조금 개선해야대안 정치기본소득

대통령의 취임사처럼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 사회 각 분야에서 이 원칙이 지켜지는 세상은 오지 않았지만 그런 세상이 오더라도 결과가 정의로울지 의문이다. 경쟁에 참여하는 각 주체들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평등하게 기회를 제공해도 소수자·약자 입장에선 공정하다고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강자에게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하는 전통적인 분야가 다른 영역의 자원배분 권한을 가지고 있는 정치권이다.

 

미디어오늘이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실에서 받은 올해 3분기 정당별 국고보조금(경상보조금) 지급 내역을 보면 전체 약 1156000만원 중 더불어민주당(171) 525000만원, 국민의힘(104) 464000만원 등 두 정당이 약 85%의 보조금을 받아갔다. 국회의원을 배출한 원내정당 중 가장 의석수가 적은 기본소득당(1)은 약 800만원(0.07%), 시대전환(1)은 약 450만원(0.04%)를 받았다. 국회의원이 없는 원외정당인 민생당(0)은 약 23000만원을 받았다. 1분기와 2분기에도 대체로 비슷한 금액을 받았다.

 

세가지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왜 의석수에 비례하지 않고 거대 양당이 과도하게 많은 보조금을 받는가다. 시대전환 기준으로 민주당은 의석이 171배 많지만 3분기에 받은 보조금은 1177배 많다. 둘째, 원내정당인 기본소득당·시대전환 등보다 의원이 없는 민생당이 더 많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지다. 시대전환 기준으로 민생당은 3분기에 받은 보조금이 약 52배 많다. 셋째, 이러한 국고보조금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거나 없애면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20211,2,3분기 정당별 국고보조금(경상보조금). 의석수가 같더라도 득표율, 정책 등의 차이로 보조금에 차이가 있다. 자료=조정훈 의원실

 

국고보조금 배분, 거대양당에게 유리한 정치자금법

국고보조금 중 경상보조금은 정치자금법 27(보조금의 배분)에 따라 자신의 정당소속 의원들로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에 대해 50%를 정당별로 균등하게 분할한다. 3분기 기준으로 약 1156000만원의 총액 중 약 58억원은 일단 교섭단체를 구성한 민주당과 국민의힘, 두당의 몫이다.

 

나머지 정당 중 5석 이상의 의석을 가진 정당(정의당)에게 5%, 5석 미만 의석을 가진 정당의 경우 일부조건을 충족할 경우 2%씩 배분한다. 이렇게 배분하고 남은 보조금 중 다시 절반은 각 정당의 의석수 비율로 다시 배분하고, 잔여분은 국회의원선거(총선) 득표수 비율에 따라 배분한다.

 

요지는 무소속 의원을 빼고 정당별 의석수에 비례해 배분하는 게 아니라 교섭단체가 있는 거대정당이 그 이상을 가져가도록 룰(정치자금법)이 설계돼 있다는 뜻이다. 법을 개정해야 하는 문제지만 교섭단체조차 꾸리지 못한 20석 이하의 소수정당들은 법개정을 추진할 능력이 되지 않고, 법개정에 결정권이 있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법을 개정할 의지가 없다. 사실 그들 입장에선 법을 개정할 이해관계가 없다. 강자에게 유리한 룰, 전형적인 불공정 경쟁의 모습이다.

 

의원은 없지만 재정 풍족한 민생당

그렇다면 원내정당인 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보다 의원을 당선시키지 못한 민생당이 30~50배가량 많은 보조금을 받는 이유는 뭘까. 정치자금법 27조를 보면 지난해 총선(21대 총선)에서 득표수 비율이 2% 이상인 정당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데 민생당이 이에 해당한다.

 

올해 1·2·3분기를 합하면 올해 민생당은 약 7억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4분기까지 받으면 올해 9억원이 넘는 보조금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오늘 취재결과 현재 민생당에는 50억원이 넘는 재정이 있다. 대선을 완벽히 치를만한 금액은 아니지만 대선에서 아무런 역할을 안 하기엔 넉넉한 금액이다.

 

여기에 매년 10억원 가까운 경상보조금을 받으며 다른 주요정당처럼 여의도 국회 앞에 당사가 있지만 국회의원이 없다는 이유로 언론의 감시에서 벗어나 있는 곳이 민생당이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바른미래당, 대안신당, 민주평화당이 합당해 만든 민생당은 지난 20대 국회 때 원내정당이었다. 하지만 총선때 당선자를 내지 못하면서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4·7재보선에서 서울과 부산에 시장후보를 냈지만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 와중에 당 지도부를 차지하려는 세력간 갈등이 극심해졌다. 비상대책위원장이 사퇴하겠다고 했다가 이를 번복하거나 구파와 신파, 그 이상으로 갈라져 내분이 커졌다. 지도부직을 두고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하는 등 법적다툼까지 번졌다. 민생당은 지난달 말 전당대회를 통해 민주평화당 최고위원을 역임했던 서진희 당대표와 진예찬·이진·이승한 최고위원을 선출했다.

지난달 28일 선출된 민생당 지도부. 왼쪽부터 이승한 최고위원, 서진희 대표, 이진 최고위원, 진예찬 최고위원. 사진=민생당

 

관련 소식은 언론에서 찾기 어렵다. 정치부 기자들조차 민생당 상황을 잘 알지 못했다. 일부의 보도를 통해 본 민생당의 내분사태는 소위 눈먼 돈을 차지하려는 권력다툼으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정당 보조금을 분기별로 수억원씩 받는 정당에 대한 언론과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동시에 신생정당으로서 당원모집과 지역정당 창당에 힘을 쓰고 있는 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 입장에서보면 정당활동과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는 곳에 보조금이 공정하게 배분되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득표율에 비례해 지급 또는 정치기본소득

현행 정당 국고보조금 지급이 거대 양당에게 특혜라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는 가운데 대안은 두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교섭단체 몫을 먼저 배분하는 특권을 없애고 선거 때 득표율에 따라 배분해서 비례성을 강화하자는 주장이 가능하다. 2016년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의석수에 비례해 지급되는 정당 국고보조금을 득표율에 비례해 배분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여당인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에 제시했지만 새누리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수정당들이 오래전부터 주장해 온 대안이다.

 

정당 국고보조금은 지금껏 다룬 경상보조금과 선거때 받는 선거보조금이 있는데 거대 양당은 이번 총선 때 각각 위성정당을 만들었고 해당 위성정당(더불어시민당·미래한국당)에도 보조금을 받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처럼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당선자를 배출하고, 선거보조금을 받는 것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원내정당인 시대전환 원내정당인 기본소득당

 

기본소득을 주요 의제로 하는 시대전환과 기본소득당은 현행 정당 국고보조금제와 정치후원금 세액공제 대신 정치기본소득을 주장한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지난 2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저소득자들이 정치후원금을 내지 않아 정치로부터 소외되고, 날 포함한 국회는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정치후원금 양극화를 해소하는 방법은 모든 유권자에게 정치기본소득 바우처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인당 연간 1만원의 바우처를 지급할 경우 총선 유권자 수가 약 4400만명이니 연간 4400억원의 예산만 있으면 가능한 정책이다.

 

조 의원이 중앙선관위에서 받은 지난해 국회의원 후원금 모금내역 등을 본 결과 양극화가 뚜렷해 이런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안정적인 소득이 있을 경우 정치인들에게 후원금을 내고 연간 10만원씩 소득공제로 돌려받지만 저소득층은 후원하기도 벅차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를 도입할 경우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더 많은 재정을 확보할 가능성도 있다.

 

신지혜 기본소득당 대표는 지난 1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국고 보조금 제도와 현행 세액공제 제도를 폐지하고 유권자에게 정치쿠폰을 제공해 원하는 당이나 정치인에게 후원할 수 있는 정치기본소득을 제안한다안정적인 소득이 있는 사람은 후원을 하고 세액공제로 돌려받을 수 있지만 저소득층을 그러기 어려워 불평등하다고 말했다. 이어 당에서 정책을 만들 땐 1년에 1인당 10만원으로 설계했지만 5만원이든 3만원이든 일단 시작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좋은 일자리최소 연봉 “3천만~4천만원

한경연, ‘청년 일자리 인식 설문조사

기업 채용 상담 장면. <한겨레> 자료 사진

 

귀하가 생각하는 좋은 일자리의 최소 연봉은 얼마입니까?’ (다른 조건은 만족스럽다는 가정 하에, 초봉 세전 기준)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20대 청년을 대상으로 한 일자리 인식 설문조사중 이 항목에 대해 ‘3천만~4천만원이라는 응답이 40.2%로 가장 많았다고 12일 밝혔다. 4천만~5천만원 20.6%, 2천만~3천만원 15.2% 순이었다. 여론조사 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84~17일에 벌인 이번 설문조사에는 전국 거주 20대 청년 542명이 답했다고 한경연은 전했다.

고용노동부 임금직무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5~29살의 평균 연간임금 수준 추정치는 3217만원으로 청년들이 좋은 일자리의 최소 연봉으로 응답한 수치 범위 내에 들어 있다. 한경연은 청년들이 좋은 일자리의 조건으로 높은 연봉 외에도 근로환경 등 다른 조건들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근로 의욕을 높일 다양한 인센티브 고민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번 조사에서 65.2%평생직장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답했고, 희망 은퇴 시기로는 61~65(30.1%)을 많이 꼽았다. 이어 56~6026.3%, 66살 이상에 은퇴하고 싶다는 답은 19.7%였다. 청년 중 63.9%는 정년 연장이 청년 신규 채용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년 연장을 해야 한다면 근로 형태 다양화 등 고용 시장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답변이 33.6%로 가장 높게 나왔다. 이어 임금피크제 도입 27.0%, 직무능력 중심 임금체계 도입(호봉제 폐지) 22.0%, 연금수급 연령 상향 17.2%였다.

원하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 노동시장 유연화(22.4%)를 많이 들었다. 고용기업 인센티브 확대 18.7%, 창업 활성화 15.5%, 기업성장 방해하는 규제 개선 13.6%, 교육시스템 개편 10.9%, 글로벌 기업 유치 9.6%, 서비스업 육성 8.3% 순으로 조사됐다.

청년들의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는 뉴스로는 부동산값 폭등24.7%로 가장 높았고, 물가 상승(21.5%), 세금부담(20.4%)이 뒤를 이었다.

 

청년들이 생각하는 부자의 총자산 규모는 10~20억원 수준이 23.5%로 가장 많았고, 20~50억원 22.9%, 100~1000억원 20.6%였다. 청년들의 70.4%는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될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일자리 상황에 대해선 응답자의 62.9%(매우 나빠질 것 13.3%, 나빠질 것 49.6%)가 악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69.5%는 원하는 직장에 취업할 가능성이 작다고 응답해 일자리 상황을 어둡게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혁명에서 협동으로" 농촌 운동권 부부의 선택

[지역을 바꾸는 사람들] 유재흠 부안군 우리밀 영농조합법인 대표

농과대학을 나와도 농사를 짓는 사람이 거의 없다. 농사가 힘든 반면에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서울대학교 비농업학과를 나와 함께 농사를 짓는 부부가 있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농민운동에 투신한 부안군 하서면의 유재흠(부안군 우리밀영농조합법인 대표)-임덕규(부안군 여성농어업인 센터 대표) 부부 얘기다.

 

이들이 부안에서 농사를 지은 지 30년이 되었다. 강산이 세 번 변했다. 그들이 왜 농업에 투신했고, 투신 후 농사지으며 어떻게 지냈는지,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었는지 그리고 지역을 바꾸는데 어떤 기여를 했는지 궁금하다. 오랜 지인 유재흠을 지난 823일 부안군 우리밀영농조합 사무실에서 만났다.

 

애인 따라 고향도 아닌 부안으로

"고향 춘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림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 진학한 것이 1986년이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다. 이른바 건국대 항쟁(19861028일부터 31일까지 34일 동안 건국대학교에서 일어난 대학생들의 점거농성 사건)을 거치고 고향(춘천시 동내면)으로 내려가 농사일을 경험하면서 운동에 대한 고민도 깊게 하였다. 87년 대학 2학년 때 진로를 결정했다.

 

운동을 평생 하려면 직업을 뭘 할 거냐를 고민하다가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농사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었고, 휴학하고 내려와서 농사일을 좀 해 보니 그게 내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평생 농민운동을 하기로 딱 정리했다.

 

운동을 같이 할 사람을 찾던 중 지금의 아내 임덕규를 만났다. 그 무렵 임덕규는 영어영문학과(86학번) 학생으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약칭 전대협) 서울대 농민분과장을 맡고 있었다. 서로 관심이 같으니 자연스럽게 사귀게 되었다. 내가 인문대 학생회장이 되어 평양축전준비위원장을 하다가 8개월간 옥살이를 했는데 임덕규가 내 옥바라지를 해주었다.

 

1990년에 출소를 했고 임덕규는 91년에 농민운동을 위해 부안으로 떠났다. 1992년 그녀를 따라 부안으로 내려왔다. 임덕규가 고향(수원)도 아닌 부안에 내려간 것은 전대협 차원의 일종의 파견이었다. 당시 부안에는 엄영애라는 걸출한 여성운동가가 여성농민의 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활동가 파견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약칭 전여농, 1989년 창립)에 공식적으로 요청한 것이다."

 

- 땅 한 평 없이 몸뚱이 하나로 시작했으니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진짜 농사꾼이 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정착 과정의 어려움에 대해 말해 달라.

 

"사람들은 귀농을 해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함께' 전원생활을 꿈꾸지만, 나는 내 집도 없이 16년간 남의 집에서 살았다. 92년 결혼해서 97년까지 6년간 남의 집 곁방살이를 했고, 97년부터 2002년까지 남의 재실(齋室)에 거처했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는 하서미래영농법인 옆 작은 사무실에서 6년을 살았다. 그 사이에 딸(1993년 생)과 아들(1997년생)이 태어나서 자라고 있었으니 그 불편함은 말할 나위 없었다.

 

2008년 농약 사고로 영농조합법인이 풍비박산이 났다. 지금까지 앞도 보지 않고 살아온 것에 대한 후회도 되고 해서, 아내에게 우리가 시골 와서 16년을 살았는데 뭐 가진 거 있냐고 물었더니 집 지을 돈은 있다고 했다. 2009년 내 집을 짓고, 20101월 눈이 60cm나 내린 소한에 꽹과리를 치며 집들이를 했다. 새벽에 사무실 문 두드리는 사람이 없으니 세상 행복했다.

 

처음에는 내 땅이 없으니 정미소에서 날일로 시작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점차 안정되어 갔다. 1993년에 경운기로 논밭을 갈아주었고, 남의 논 5마지기를 빌려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김영삼 정부의 반값 농기계 정책으로 이앙기도 구입(150만 원)했다. 경운기와 이앙기가 있으니 땅을 계속 빌려 1995~1996년 무렵에는 35마지기까지 늘렸다.

 

96년에 처음으로 농업후계자 자금을 받아 논 1200평 한 필지를 평당 3만 원에 구입한 후 농업기반공사의 전업농 자금 등을 이용하여 2016년까지 계속 땅을 늘려왔다. 현재는 내 땅 14천 평(1만 평과 밭 4천 평)에 남의 땅 18천 평을 합쳐 32천 평(24천 평, 8천 평) 농사를 짓고 있다."

 

- 맨몸으로 시작해 내 땅 14천 평을 갖게 되었고 연소득도 웬만한 월급쟁이보다 나은 부농(?)이 되었으니 성공한 귀농인이다. 성공 비결(?)이 궁금하다. 한참 농사를 지을 때는 새벽 2시부터 밤 10시까지 10년간 일했다고 하는데 그게 가능한가.

 

"농사를 가장 많이 지을 때는 48필지(300마지기) 6만 평이 넘었다. 그런데 이들 논이 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5개 면에 흩어져 있다. 새벽 2시에 일어나 3시간 정도 물꼬를 보고, 4~5시에 트랙터를 끌고 나가서 아침 9~10시까지 로타리를 치고(모내기를 할 수 있게 논을 판판하게 고르는 일), 이앙기를 끌고 나가서 저녁 7시까지 모를 심고, 10시까지 초벌 로타리를 친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서 밥 먹고 잔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이렇게 일했다. 이 무렵에는 내 논 6만 평 이외에 남의 논 12만 평의 기계 작업을 했으니 18만 평 농사를 지은 셈이다. 기계 작업만으로도 1년에 몇천만 원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일인데, 그 무렵에는 40대 한 창 때라 피곤한 줄도 몰랐다. 다행히 논농사는 4월부터 6월 사이에 40일 바짝 일하고 여름에는 쉰다.

 

그러나 9월 중순 이후 벼 수확이 시작되면 다시 정신없이 바쁘다. 9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 벼를 베고 건조장에서 일한다. 105일경부터 벼가 밀려들기 시작하면, 한 열흘은 넣고 빼고 말리고 하는 작업을 반복하느라 거의 잠을 못 잔다."

 

농약 사고

"지역에 내려간 것은 농민운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내 농사도 열심히 지었지만 농민운동에도 헌신했다. 부안군 농민회 총무, 간사, 사무국장을 거쳐 전북 농민회 도연맹 정책위원장을 2006년까지 열심히 했다.

 

그런데 2000년 무렵부터 농민운동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사회의 민주화나 농민운동의 과제가 혁명적 방법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농민운동의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혁명적 과제가 없어진 마당에 혁명의 깃발을 들고 열심히 달린다 한들 의미가 없었다.

 

나의 시대적 과제는 투쟁을 통해서 얻은 성과를 생산 현장, 생활 현장에서 새로운 장으로 열어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농사짓기로 마음먹고 했던 공부가 협동운동에 관해서였다.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라는 책을 읽으면서, 정착 초기에는 이런 배움을 현실에 적용해 보려는 꿈으로 부풀어 있기도 했다. 낯선 현실 앞에서 뒤로 밀려났던 희망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협동운동 그 다음에 지역운동, 지역농업을 조직화하기 위한 생산조직을 결성하자고 고민을 정리하였다.

 

200017명의 회원으로 친환경 쌀 작목반(18ha)을 결성했다. 농업의 미래를 열자는 뜻으로 '미래작목반'이라 이름 지었다. 밥맛도 좋고, 환경을 생각하고, 먹는 이의 건강을 생각하며 농사를 짓자는 데 뜻을 모았다. 2003년에 5개 마을작목반, 100ha로 확대되면서 '미래작목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200412명이 500만 원씩 출자해 자본금 6천만 원으로 '하서미래영농조합법인'을 조직하고 땅도 1200평 구입했다. 정부의 친환경 농업지구 조성사업으로 창고와 건조시설, 퇴비생산시설 등 기반을 갖추었다. 정부로부터 8억 원을 지원받고 2억 원을 자체 부담했다. 생산물은 초록마을과 아이쿱 생협에 판매하고, 홈페이지를 제작해 인터넷 판매도 했다.

 

정부의 친환경 농업지구 조성사업으로 생긴 '청옥들 친환경단지' 안에 있는 주변 사람들은 다 들어오라고 했다. 농림부에서 친환경 자재를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참여자가 늘어났다. 단지 면적이 300ha, 생산량이 1800t으로 늘어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다가 사고가 터진 것이다."

 

- 영농조합법인에서 농약 사고가 터져 인생관이 바뀌었다고 들었다. 고름은 살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무슨 뜻인가?

 

"나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20081028일 오후 2시 부산시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전화가 왔다. 소비자 민원이 있으니 잔류농약 검사에 동의해 달라는 것이었다. 조사해 보니 판매한 쌀과 수매한 벼에서 잔류 농약이 검출되었다. 인증이 취소되고 판매가 중단되었다. 예상 손실액은 3억 원쯤 되었다. 이리저리 뛰며 읍소하여 모두 정리하고 나니 실제로 1억 원쯤 손실이 있었다.

 

사고가 어느 정도 수습되었지만 4월이 지나서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억울함도 두려움도 아닌 절망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감정의 자락을 통제할 수 없었다. 긴장을 늦추려고 술을 먹었다. 아침 7시부터 소주를 맥주 컵으로 한 컵씩 하루 종일 마셨다. 그래도 이상하게 취하지 않았다.

 

20년 전 지은 녹슨 하서미래영농조합법인 창고. 미래영농조합법인과 우리밀 영농조합법인이 이웃하고 있다. 지역재단

 

무엇이 문제였을까. 5월 어느 날 아침 노무현 대통령 서거 소식에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책을 읽을 수도 없다'는 대목의 유서를 읽으며 그분의 절망을 절절하게 공감했다. 불면의 밤은 이쯤에서 멈추었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나는 타인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끊임없이 타인의 이기심과 타협했다.

 

문제를 끄집어내고 밝혀내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을 피하려고 두루뭉술하게 정리하는 것이 대중적으로 잘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조직관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누구는 새벽에 화학비료를 뿌린다더라'라는 수군거림에 대한 너그러움이 결국 큰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고름은 살이 되지 않는다. 독하게 마음을 먹고 고름을 짜기로 다짐했다. 맨 먼저 나의 마음속에 있던 '보상 심리'라는 고름부터 짜내기로 했다. 금전적 손해도 컸지만 정말 나를 괴롭힌 건 배신감이었다. 믿었던 이웃이 몰래 농약을 쳤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한바탕 방황 끝에 사람을 원망하는 이유는 뭔가 기대하는 게 있기 때문이고, 그 기대의 밑바탕엔 '내가 당신들을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데' 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마음을 바꿨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살자고, 그것이 나를 살리고 남도 살리는 길이라고."

 

- 농약 사고 이후 법인을 어떻게 재건했나. 농민들의 의식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데.

 

"농약 쳐서 사고를 내 법인이 작살이 났는데 친환경 쌀값을 달라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농민도 있었다. 친환경 자재를 나누어 주면 '친환경 자재를 줘서 잘 쓰기는 하는데, 내가 자네가 주는 자재를 써주는 대신에 자네는 나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라고 묻는 농민도 있었다. 이대로는 법인이 지속가능하지 않아 조합원을 정리하기로 했다. 단지화, 규모화라는 명분으로 친환경에 대한 개념도 없는 사람들을 데리고 일하느라 엉뚱한 사고가 난 것이다.

 

300ha를 할 때는 5개 작목반에 100명의 조합원이 참여했는데 이것을 2개 작목반, 23, 80ha로 줄였다. 1800t씩 수매하다가 수매량이 400t으로 줄었다. 작목반을 줄인 이후로 아직까지 한 번도 사고가 나지 않았다. 참여 농가가 모두 친환경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작목반원을 줄이니 친환경단지가 무너졌다. 친환경 농사를 짓는 논 옆에 관행 논이 있다. 그 논에서 농약을 치면 옆의 친환경 논까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관행 논의 피해를 막기 위해 4m의 이격 거리를 두기로 하였다. 조합원이 친환경으로 짓더라도 논두렁 양쪽 4m까지는 관행으로 처리했다. , 수확할 때 양쪽 4m의 벼를 먼저 베어 관행 벼 처리하고 나머지 벼만 친환경 벼로 수매했다. 1200평짜리 논은 4000 평방미터(40미터×100미터)인데, 실제로는 3200평방미터(32미터×100)만 친환경 벼로 수매하는 것이다.

 

그래도 문제가 있다. 관행 농사를 하는 사람은 논두렁에 제초제를 습관처럼 친다. 제초제가 친환경 논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1m의 논두렁을 양쪽에 하나씩 더 쌓는다. 결국 새로운 논두렁 기준으로 이격 거리를 두면 1200평 기준 1000평방미터(10미터×100미터)의 벼가 관행으로 처리되지만 조합원들이 잘 지키고 있다."

 

국산 밀 자급도시 부안 만들기 프로젝트

밀 심기부안군 우리밀 영농조합법인

 

- 부안군 우리밀 영농조합법인의 대표를 맡고 있는데. 우리밀의 자급률이 1%에 지나지 않는다. 전망은 어떤가?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잉여농산물원조법(PL480)으로 밀이 대량 수입되면서 우리밀의 수난이 시작되었다. 결정타를 날린 것은 전두환 군사정권이었다. 1981년 밀 수매제가 폐지되고, 1984년에 밀가루 수입관세가 폐지되었다. 1990년에는 밀 알곡에 대한 관세마저 폐지돼 밀을 100% 수입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던 중 1992년에 생명농업을 추구하던 농민운동 지도자들과 시민운동세력이 힘을 모아 '우리밀 살리기 운동본부'를 결성했다. 16만 명이 32억 원을 출자했다. 우리밀 살리기 운동은 자급률 0%였던 우리밀을 한때 1t까지(자급률 0.5%) 늘릴 정도로 성공했지만 과잉생산과 불안정한 소비로 경제사업으로는 실패했다.

 

부안에서 밀농사를 시작한 것은 우리밀 살리기 운동과 때를 같이 한다. 처음에는 운동으로 시작해서 2000년대에는 우리밀 농협, 우리밀, 아이쿱생협 등과 관계를 맺으며 생산을 확대해 갔다.

 

2011'부안군 우리밀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해 부안 관내에서 밀 재배하는 농가를 하나로 모았다. 설립 당시에 밀 재배 면적이 70~80ha였는데 첫해 170ha, 이듬해 300ha, 2015년에 500ha로 꾸준히 늘어났으나 그 후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생산량 및 판매액은 연도별 풍흉에 따라 20191400t 13억 원, 2020850t 8억 원, 20212260t 21억 원으로 다소 불안정하다. 현재 조합원은 320명이고 자본금은 42200만 원이다. 우리나라 전체 밀 생산량이 대략 25t(자급률 1.2%)이니, 우리가 거의 10% 생산하는 셈이다.

 

정부가 최근 식량계획을 발표했는데 밀 자급률 20255%, 203010%를 목표로 하고 있다. 농가에 대한 지원(종자 반값, 보관·건조·기계시설 지원 등)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판로 확보를 위해 대규모 소비처를 발굴하고, 조직체를 육성하겠다는 등 다섯 가지 기본전략을 내세우고 있는데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기대를 해본다.

 

우리밀은 일반 시장이 없다. '우리밀 농협', 생협, '주식회사 우리밀'이 수매를 하는 특수 시장이다. 값싼 수입 밀에 대항해 일반 시장에서 판매하기 위해서는 밀 값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지 않으면 안 된다. 농가들에게 식량자급 직불금을 지급해서 밀 값을 20kg 포대 당 2만 원대로 낮추는 것도 방안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2녹색혁명'을 내걸고 국산밀 자급률 10% 달성을 목표로 유사한 정책을 추진한 바 있으나 실패했고, 자급률은 여전히 1%대에 머물고 있다. 국산 밀 가격에 대한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필자)

 

- '국산 밀 자급도시 부안 만들기'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1050억 원이 들어가는 엄청난 프로젝트인데 가능한 일인가.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 커졌다. 1050억 원은 과한 의지의 표현이다. 생산시설부터 인력육성까지 모든 체계를 갖추려면 많은 돈이 들겠지만 1년에 예산 2억 원만 있으면 부안군 자급률 30%가 가능하다. 나라 전체로 보면 500억 원이면 국산밀 자급률 10% 달성할 수 있다. 국내·외 밀 가격차가 150% 수준이면 국산 밀 소비가 가능한데, ha250원의 밀 직불금을 주면 된다. 자급률 10% 물량은 20t이니 500억 원이 필요하다. 밀 평균 생산량이 ha4t을 상회하므로 ha당 단가는 100만 원 정도면 될 것이다.

 

소비처를 늘려가며 다음으로 필요한 것을 찾아 시설 등을 하면 된다. 그렇다고 이 프로젝트가 전혀 허황된 것은 아니다. 우리밀을 부안군의 특화 품목으로 육성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저장시설 확충, 부안지역 국산밀 소비업체 발굴 등은 이미 성과를 내고 있기도 하다."

 

(당초 유재흠이 부안군 요청으로 제출한 기획안은 56억 원 프로젝트였으나 군과 도를 거치면서 농림부에 제출된 프로젝트는 1050억 원으로 부풀어졌다. 공무원들은 소비처를 찾고 투자를 늘리는 게 아니라 투자 계획부터 먼저 세운다. 유재흠은 밀 직불금 500억 원이면 밀 10%의 자급이 가능할 것이라고 하는데 1050억 원 프로젝트는 좀 뜬금없는 거 아닌가. - 필자)

부여군 우리밀 영농조합법인이 운영하는 밀 저장고지역재단

 

- 아이쿱 생활협동조합의 전국 생산자회 '파머스 쿱'의 부이사장을 맡고 있고, 구례 쿱 라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아이쿱이 친환경농업 생산자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아이쿱은 소비자 중심, 대농 중심이라는 비판도 있다. 소비자와 생산자의 연대라는 관점에서 아이쿱과의 관계를 설명해 달라.

 

"2008년 농약 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아이쿱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아이쿱에 하서미래영농조합법인의 쌀과 우리밀 영농조합법인의 밀을 계약생산하고 있다. 정부 수매 이외의 전량을 납품하고 있다. 아이쿱 생협의 생산정책은 생산자 정책이 아니고 소비 우선 정책이다. 어떤 판단 기준으로 소비를 할 것인가, 그걸 윤리적 소비로 어떻게 유도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생산자와 계약을 한다. 아이쿱의 매입가격이 다른 생협에 비해 반드시 높지는 않지만, 생산자는 소비가 가능한 수준을 고민하며 농산물의 품질 수준과 가격 결정에 참여한다.

 

소비 우선 정책이란 점에서 생산자가 뒷전이라는 오해가 생길 수 있는데, 시장에는 빼도 박도 못하는 경제 논리가 있다.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생협도 살아남지 못하고, 생협이 죽으면 생산자도 살아남을 수 없다. 소비자를 중시하면서 생산자와의 공존을 모색한다는 것이 소비 우선 정책의 핵심 내용이다.

 

구례와 괴산에 클러스터(가공·소비·휴양 복합시설)가 만들어지면서 생산회원들에게 1억 원 투자를 장려하고 있다. 현찰 1억 원을 가진 농가가 많지 않으니 생협에서 80~90%를 빌려주기도 한다. 투자금에 대해서는 결산에 따라 배당금도 나오고, 생산 장려금도 나온다. 생산자들은 계약을 통해 생산물을 안정적으로 팔 수 있고, 그 생산물을 2차 가공해서 발생하는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 다만, 아이쿱 생협의 전체 생산자가 3천 명쯤 되는데 생산자 정회원이 4백 명이라는 점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농업에서 협동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큰사진보기 미농사 회원들

미농사 회원들부안군 우리밀영농조합법인

 

- 부안군 지역농업의 미래를 위해 젊은 농부를 육성하는 '협동농사'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인데 잘 되고 있나.

 

"영농조합법인에 젊은 사람들이 막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청년 모임이 결성되었다. 하서미래영농조합법인의 조합원 7~8명에 농사는 짓지 않지만 뜻을 같이하는 '마음 농부'들이 결합했다. 16명이 2016년 창립총회를 열고 '미친 듯이 농사짓는 사람들'(약칭 '미농사')을 결성했다. 젊은 친구들이 좀 길게 농사를 지으려면 농사에 비전이 필요하다. 이 친구들이 가장 어려운 건 농지를 늘릴 수 없다는 거다. 직불금도 나오고 해서 논을 구하기 더 어렵다. 그래서 단위 면적당 소득이 높은 밭농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밭농사는 한 마지기에 조수익(생산비를 포함한 수익) 기준으로 논의 6배 정도가 나온다.

 

밭농사는 개인이 하기 힘들기 때문에 협업 방식으로 시도했다. '농사를 어떻게 협업할 것이냐'는 주제로 몇 차례 토의를 하고 일본 연수도 다녀왔다. '기술의 고도화와 비용의 최소화'라는 협동 농사의 원리는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7명이 뜻을 모아 양파 공동농사를 시작했다.

 

모든 것을 공동으로 했다. 육묘부터 수확-선별-출하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하고 공동 정산했다. 4000평에 양파를 심었는데 농사는 잘 되었지만 결산을 해보니 남는 게 없었다. 경험과 전문성이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함께하다 보니 비효율적이었다. 기술 수준을 높이는 게 무엇보다 필요했다. 이런저런 교훈을 남기고 양파공동농사팀은 해체되었다.

 

그러던 중 젊은 층에서는 한 단계 더 높은 공동농사의 모델을 만들었다. 양파공동농사를 함께했던 사람 가운데 4명이 모든 농사를 통합 일원화하는 시도를 했다. 밭농사뿐 아니라 논농사까지 모든 작물을 공동으로 재배하고 공동 계산하는 '살림통합협동농사'를 시작한 것이다. 모두 즐겁게 일했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양파공동농사와 살림통합협동농사의 실험은 우리에게 '농업에서의 협동은 어떤 모델이 어느 수준까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협동의 어려운 점은 책임을 나누는 것이다. 자연 의존도가 높은 농업의 특성상 살림을 통합하는 수준의 책임을 나누기가 쉽지 않다. 책임과 기여가 정확하게 계산되지 않을 뿐더러 나눈 몫을 두고 그것이 많든 적든 만족하기 어렵다. 농사의 협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농사기술도 중요하다. 기술 축적을 목표로 하는 협동 역시 매우 큰 가치가 있다.

 

'미농사'의 실험은 이런 의미에서 시행착오의 과정이다. 미농사의 실험을 토대로 영농법인의 밭작물 관리 체계가 정비되었다. 밭작물 재배의 노하우도 축적되어 재배 규모와 수확량이 관행 농사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협동의 다음 단계는 뭐가 될 것인지가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다."

 

"우리 동네만이라도..."

 

큰사진보기 유재흠 부안군 우리밀 영농조합법인 대표(왼쪽)와 인터뷰 하는 필자

 

혁명을 꿈꾸며 땅 한 평 없이 몸뚱이 하나 믿고 고향도 아닌 낯선 객지에 내려와 농민운동에 투신했다. 내 집도 없이 16년간 남의 집에서 살았다. 억척같이 농사짓고 치열할게 투쟁했다. 어떻게 그 힘든 세월을 견뎠을까 의아하다. 참으로 곰 같은 사람이다. 다만 머리가 좋고 꾀가 많은 곰.

 

세월이 바뀌어 혁명의 시대가 갔다는 것을 알았다. 좌절하기에는 지난 세월이 아깝다. 투쟁의 성과를 지역농업의 조직화로 발전시켰다. 죽음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시련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게 안정되었다. 두 개의 영농조합법인은 지역농업의 버팀목으로 성장했다. 이제 내 집을 짓고, 적지 않은 내 땅과 소득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협동을 통해 지역농업을 이끌도록 청년 농부들을 돕고 있다. 평생의 동지인 아내 임 덕규는 부안여성농업인센터 대표를 맡아 여성농민의 인권 신장과 아동교육에 힘쓰고 있다. 임덕규 대표는 2018년도 지역재단 지역리더상을 받았다.

 

그러나 지역에 머물 수 없다. 원래 혁명을 꿈꾸던 청년들이 아닌가. 유재흠이 꿈꾸는 한국농업과 농촌의 미래에 대해 물어보았다.

 

"협동을 통해 만들어진 생산조직은 지역을 돌아가게 하는 엔진이다. 이런 엔진이 많아져야 사람도 모이고 문화도 생긴다. 나의 고민은 이런 엔진을 어떻게 만들고, 누가 돌리며, 무엇을 싣고, 누구와 함께 어디로 갈 것인가이다. 거창하게 한국 농업이 아니라 우리 동네만이라도 괜찮다." 박진도(jd5285)/ 오마이뉴스

 

관료들, 최고권력 넘보다

정권과의 갈등, 팽배한 정치 불신이 정치의 관료화낳아

정치적 중립 팽개치고 현직 특권 이용한 건 국민 배신

윤석열, 최재형, 김동연. 이 셋은 문재인 정부에서 최고위 관료를 역임하다가 제20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선배 관료 출신 정치인인 이회창, 고건, 반기문. 이 셋 또한 공통점이 있다. 대통령선거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관료 출신 인사라는 점이다.

관료 출신 정치인들의 미래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다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정치에 뛰어든 뒤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가 검찰총장에 재직할 때인 20204월 검찰이 범여권 인사 고발장을 야권에 전달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김웅 당시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는 202043일과 8일 야당 인사로 추측되는 인물에게 두 차례 텔레그램을 통해 고발장과 증거자료를 보냈다. 이 자료를 전달받은 이에게는 전달된 메시지-손준성 보냄이라는 표시가 떴다. 두 번째로 보낸 고발장은 미래통합당에 접수되고 넉 달이 지나 판박이 내용으로 검찰에 제출되기도 했다. 최강욱 당시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가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의 고발장을 접수한 윤석열 검찰20201015일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두 번째 고발장의 요지대로 검찰 기소까지 이어진 셈이다.

핵심 당사자들은 의혹을 부인하거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지부진한 진실 공방이 계속 이어진다면 최악의 정치 해프닝으로 끝나겠지만, 윤 전 총장의 개입 여부까지 확인된다면 직권남용 이슈로 번질 수도 있다.

 

여기서 하나 궁금증이 생긴다. 관료들은 왜 정치를 비판하며 최고권력을 넘보고 있을까. 특히 문재인 정부 최고위 관료들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관료 출신 정치인들이 번번이 대통령을 꿈꾸다가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_편집자주

 

2021629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총장에서 사퇴한 지 117일 만이었다. 이 자리에서 윤 전 총장은 이제 우리는 이런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의 집권 연장과 국민 약탈을 막아야 한다. () 그래서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84일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온라인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감사원장에서 사퇴한 지 37일 만이었다. 최 전 원장은 권력의 단맛에 취한 지금의 정권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른 직무 수행에 벽이 됐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보름여 뒤 820일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충북 음성읍의 행정복지센터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부총리를 그만둔 지 29개월 만이다. “민생이 매우 어렵지만, 정치권은 기득권 유지를 위한 싸움만 한다. 삶의 전쟁, 정치 전쟁을 끝내기 위해 대선에 출마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고관 3명이 대선 출사표

세 사람 모두 문재인 정부에서 최고위 공직을 맡았던 관료 출신이다. 최고위 관료 출신들의 대선 출마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 사이에 이회창 전 감사원장(전 국무총리)이 세 번이나 대선에 출마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고건 전 국무총리가,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유력 대선 후보로 떠올랐다. 이 두 사람은 실제 출마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 관료 3명이 대선에 도전했다. 왜 그랬을까?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와의 갈등이 직접 원인이다. 윤 전 검찰총장은 20197월 취임한 직후부터 조국 수사울산시장 선거 수사’, ‘검찰 개혁등을 두고 번번이 문재인 정부와 정면충돌했다. 최 전 감사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인 에너지 전환’(탈원전)을 감사한 뒤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김 전 경제부총리는 소득주도성장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당시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과 대립했다.

 

이들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고, 현직의 특권을 활용했다. 오재록 전주대 교수(행정학)최근 윤 전 검찰총장, 최 전 감사원장의 활동을 보면 현직일 때 정치적 중립을 지켰다고 보기 어렵다. 자신의 편향적인 정치 성향에 따라 수사하고 감사한 것이다. 그런 행위를 바탕으로 대선에 도전하고 있다. 관료의 특권을 악용하고 국민을 배신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검찰이 국민의힘에 여당 쪽 인사와 언론인 등에 대한 고발을 사주했다는 의혹이 일어나는 것도 윤 전 총장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의심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이 보장된 임기를 마치지 않고 정치에 뛰어든 것도 비판받는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변호사)임기를 보장한 것은 국민을 위해 소신껏 일하라는 뜻이다. 임기 중에 대선에 출마한 것은 그 직책에 대한 국민과의 약속을 깬 것이다. 최소한 임기는 마치고 나왔어야 한다. 그래야 관료의 정치적 자유를 존중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관료들이 임기 중 대선에까지 나선 것은 문재인 정부의 잘못이 크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문재인 정부가 관료들의 정치적 중립을 무너뜨렸다. 정치적 중립과 임기를 보장했으면 이들이 대선에 나올 일은 없었다. 정권 초기 윤석열 검찰을 앞세워 적폐 청산 수사를 밀어붙인 것이 화근이었다. 사회를 분열시켰다고 비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과거엔 관료들이 정치에 진출할 때, 최고위직으로 일했던 정부와 관련 있는 정당 쪽에서 나왔다. 이번엔 반대다. 현 정부가 정치 논리로 관료의 전문성을 묵살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정당성은 선출된 사람만 가진 게 아니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뽑히고 규율받는 공무원에게도 정당성이 있다. 그것을 문재인 정부가 존중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료들이 대선 도전에 나선 데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맹점이 있다고도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먼저 한국 사회에 만연한 반정치주의’ ‘정치 불신이 꼽혔다. 예를 들어 2018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사회 신뢰도조사에서 정치계는 6.2%로 꼴찌였고, 공직계는 37.2%로 교육계(52.9%)에 이어 전체 2위였다. 행정 신뢰가 정치 신뢰를 압도한 것이다.

우원식 의원(더불어민주당)재난지원금이 결정되는 과정을 봐라. 선출직이 관료를 거의 통제하지 못한다. 정치보다 행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아서 어쩌지도 못한다. 앞으로 정치인이 관료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직업 관료들의 엄청난 규모와 광범위한 권한 역시 관료들이 대선 도전에 나선 배경이 됐다. 한국 정부에서 선출직 공무원은 극히 일부이며 대부분이 직업공무원이다.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의 전체 공무원은 113만 명인데, 선출직 공무원 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299), 지방자치단체장(243), 지방의원(3751), 교육감(17) 4300여 명에 불과하다. 선출직 1명 대 직업 관료 260여 명꼴이다.

 

직업 관료들은 이미 정치 영역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다. 예를 들어 행정부의 정무직(정치직)인 장관과 차관도 상당수가 관료다. 1기 내각을 기준으로 볼 때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의 관료 출신 장관 비율은 각각 33.3%, 37.5%, 38.9%, 16.7%였다. 관료 출신 차관은 문재인 정부 1기 내각 때 82.6%였고, 역대 정부도 비슷한 수준으로 추정된다.

 

또 사법부는 판사와 행정직 등 전체가 관료이며, 선출직은 단 한 명도 없다. 또 민의의 대변기관인 국회(사무처)에도 3400명이 넘는 행정직 공무원이 있다. 지방정부도 마찬가지다. 2020년 최영호 변호사가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18년 지방선거에서 선출된 자치단체장 243명 가운데 91(37.4%)이 관료 출신이었다.

 

100m 달리기 선수가 축구 국가대표 뛰는 격

전문가들은 관료들의 대선 출마 위험성을 경고한다. 먼저 선출직이 담당해온 정치 부문까지 관료들이 장악하려 나섰다는 분석이 있다. 정대화 상지대 총장(정치학)조국 사태와 재난지원금 이견 등을 보면 검찰과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자신들이 이 나라를 지키고 운영한다는 것이다. 관료들의 이번 대선 출마는 행정적 지배를 정치적 지배로까지 확장하려는 시도라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관료 문제를 연구해온 소준섭 박사(국제관계학)도 비슷한 의견의견을 밝혔다. “그동안 관료들은 국가의 경제나 사회, 외교, 국방 등을 모두 자신들이 운영한다고 생각해왔다. 다만 최고 권력인 대통령만 조금 예외였다. 이번엔 그 최고 권력도 스스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관료 출신이 정치를 하더라도 정치 경험 없이대통령선거에 나서는 일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정대화 총장은 윤 후보나 최 후보는 경로 설정이 잘못됐다. 관료 출신이 국회의원선거에 나서는 일은 얼마든지 이해한다. 그러나 대선 직행은 무리다. 대통령의 의사결정은 매우 복잡하다. 그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통령직을 수행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관료 출신들이 정치와 행정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섣불리 대선에 나섰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종민 의원(더불어민주당)“100m 달리기 선수가 갑자기 축구 국가대표를 하겠다고 나선 꼴이다. 국회의원은 여러 명이고 일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걸러질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가의 수많은 중대사를 결정하고 집행하고 책임져야 한다. 정부의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는 일이다. 경험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공동체에 재앙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정치-행정, 정치인-관료, 선출직 공무원-직업공무원은 분리돼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관료가 정치에 진출하려면 일정한 과정이 필요하다고도 입을 모았다.

 

정당이 외부 수혈 말고 실력 있는 정치인 키워야

현대 민주주의 정치의 원리 중 하나인 정치와 행정의 분리를 확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정치 기관인 국회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국회의 본질적 기능인 입법과 예산 편성을 온전히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조성대 한신대 교수(정치학)한국의 모델인 미국은 의회가 입법과 예산편성을 하기 때문에 의회의 힘이 세다. 직업공무원들이 선출직 공무원의 뜻에 반드시 따른다고 말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국회의원들이 장차관 등 행정부의 최고위직을 맡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국회 상임위에서 충분한 경험을 한 의원들이 해당 부처 장차관을 맡으면 좋은 정치를 하고 관료를 잘 통제할 수 있다. 그렇게 내각을 강화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회와 함께 정당도 강화해야 한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정치학)현재 정당들은 내부에서 실력 있는 정치인을 키우지 못하고 계속 밖에서 스카우트한다. 그러다보니 결국 관료밖에 쓸 사람이 없고, 관료가 대선에까지 도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당과 정치인의 잘못이지 관료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고위 공무원은 정당과 민간이 맡아야

정무직 공무원 무늬만 개방직민간인은 전체 대상의 4.3%에 불과

관료들의 권한이 비대해지는 것을 막으려면 이제 관료 개혁이 필수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된 일은 행정안전부 고위공무원단(2급 이상)을 정무직으로 바꿔 정당과 민간에 개방하는 것이다. 그래야 의사 결정과 집행을 정치인이 주도하고, 관료를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2006년 노무현 정부에서 도입할 때 중장기적으로 고위공무원단을 민간에 대폭 개방할 것을 염두에 뒀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지금도 외부 인사의 고위공무원단 임용은 극히 제한돼 있다.

 

미국은 고위 연방공무원 6천 명 모두 정무직

인사혁신처는 개방직 고위공무원 자리를 직위 총수의 20% 범위 안에서 지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는 20%에 크게 못 미쳤다. 20218월 말 기준으로 고위공무원단 직위 1599개 가운데 실제 민간인이 임명된 자리는 68개로 전체의 4.3%에 불과했다. 95% 이상이 직업공무원이었다. 더욱이 174개 개방직 가운데 122개는 일반 개방직으로 공무원과 민간인이 경쟁하는 자리였다. 현재 112명을 뽑았는데, 이 가운데 공무원이 91(81.2%), 민간인은 21(18.8%)으로 공무원이 80% 이상을 차지했다. 무늬만 개방직이었다.

정대화 상지대 총장은 고위공무원단을 직업공무원이 독점하고 정년까지 보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변화가 빠른 사회에서 다양한 의견, 아이디어가 정부에 반영될 수 있게 고위직을 대폭 민간에 개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대통령제의 모델인 미국은 국장급 이상 고위직 연방공무원 6천여 명이 모두 정무직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철학에 따라 임명해서 중하위 관료들을 통제하게 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관료 개혁 과제는 5급 공무원 시험(행정고시) 폐지다. 더미래연구소의 최지민 연구위원은 2017국민을 위한 관료토론회에서 과도한 공무원 계급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현재의 5급 채용 제도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 그래야 5급 시험 합격자 300명에게만 부여된 고위직 진입 통로가 개방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행정고시 합격자들은 시험 한 번으로 5급이 되고 자기들끼리 관료 기득권을 강화해 국가권력을 장악해왔다. 공무원도 다양한 경로로 뽑는 게 좋다. 시험을 치더라도 모두 9급부터 시작하게 해야 한다. 역량을 인정받으면 누구든 고위직으로 승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고시 존폐 두고는 의견 엇갈려

5급 시험 폐지엔 반대 의견도 있다.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조선의 과거에서 비롯한 행정고시 제도는 일종의 계층 사다리 성격이 있다. 행정고시가 없어지면 기득권층의 권력·부 독점이 우려된다. 기회의 균등이란 측면에서 행정고시 폐지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체 공무원 임용 제도를 현재의 시험에서 개방직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공석이나 새 일이 생기면 그 자리에 사람을 뽑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널리 채택하고 있는 제도다. 소준섭 박사(국제관계학)이렇게 해야 공무원들의 전문성이 높아지고 승진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도 덜 수 있다. 일본처럼 사회 전체가 보수적 관료들에게 발목 잡히지 않으려면 다음 정부에선 반드시 관료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https://www.youtube.com/watch?v=C4JBhS-LgSE

추미애 사자후 | 윤석열이 우습게 본 세상 추미애가 지켜내겠습니다 | 강원합동연설

 

탄원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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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번호: 2021고정593

탄원인: 청년기후긴급행동 및 이하 개인/단체

피탄원인: 강은빈, 이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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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들의 석탄발전소 건설을 반대해 온 청년기후긴급행동은 2021218일 두산 본사 앞 ‘DOOSAN’ 로고 조형물에 녹색 수성 스프레이를 칠하고, “Shame on DOOSAN, 최후의 석탄발전소는 내가 짓는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쳤습니다.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은 이은호, 강은빈 활동가에게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재물손괴죄 혐의로 각 300만 원, 200만 원 벌금형을 약식 기소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불복하고 정식 재판을 청구하였습니다. 수사 자료에 기록되지 않은 진실, 법정에서 변론할 우리의 이야기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2007년부터 추진된 베트남 붕앙-2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은 현지 주민들의 반대와 석탄발전의 시장 경쟁력 하락 등의 이유로 난항을 겪고 있었습니다. 제너럴일렉트릭,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중화전력공사를 포함한 국제적 기업들이 하나 둘 붕앙-2 사업을 철수하는 와중에, 2020'팀 코리아'라는 이름 아래 한국 기업들이 대거 참여해 그 빈 자리를 메웠습니다. 그 중 하나의 기업인 두산중공업은 베트남 외에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곳곳에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합니다.

 

화석연료를 태울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기후위기의 주 원인입니다. 두산중공업이 작년에 수주한 붕앙-2, 자와-9·10 석탄발전소만으로도 향후 25년 간 온실가스 5억 톤을 배출할 전망입니다. 이는 웬만한 국가가 한 해에 배출하는 온실가스 총량보다 큰 규모입니다. 기후재난은 나날이 잦아지고 심해지는데, 두산중공업은 눈 앞에 놓인 이익만을 취하고 있습니다. 화석연료 기반 사업에 의존하다가 재무 상태가 악화된 두산중공업은 202036천억 원의 구제 금융을 받으며 '친환경 에너지 사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두산중공업은 여전히 세계 각지에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며 핵심 자재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에 발표된 IPCC 6차 보고서에 따르면, 현 수준으로 대기 중에 온실가스를 배출할 시 20년 내에 한계점 1.5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 폭이 1.5를 넘으면 기후 시스템은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붕괴되어 기후재난이 더욱 극심해집니다. 올 여름 독일을 강타한 홍수는 수백 명의 사상자와 8조 원에 달하는 복구 비용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유례 없는 위기 앞에 지금 당장 우리가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도 결코 부족하지 않습니다.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중단은 어쩌면 가장 즉각적이고 효과적이고 쉬운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해 한국이 인도네시아·베트남 석탄발전소 수출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해 반대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저지 선언문을 발표하고, 산업통상자원부를 찾아가고, 한국전력 본사에 방문해 담당자를 만나고, 대사관 앞에서 붕앙-2 철회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2021129일에는 두산중공업을 포함한 붕앙-2 수출 참여 기업/기관에 질의서를 발송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피와 변명으로 일관했습니다. "대한민국 국회는 기후위기 대응이 국가 범위를 뛰어넘는 전지구적으로 추진되어야 하는 과제임을 인지하고, 국제적으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하여 정부와 적극 협력한다." 21대 국회가 97% 찬성으로 가결한 기후위기 비상선언 결의안 내용의 일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석탄발전 수출을 승인했고, 국회조차 이를 외면했습니다. 2021218, 붕앙-2 석탄발전소 착공을 몇 주 앞두고 우리는 절망 대신 저항을 택했습니다.

 

두산중공업은 청년기후긴급행동으로 인해 '회사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었고, 임직원들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1,840만 원 금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우리는 그저 묵묵부답하는 기업에 찾아가 친환경 수성 스프레이로 녹색 칠하고 두산중공업이 석탄발전소 건설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쳤을 뿐입니다. 우리가 선량하고 정중하게 요구할 때는 들은 체 않다가, 참다 못해 저항에 나서자 이를 불법행위로 규정합니다. 국경을 초월하는 대기업의 경제활동이 생태계, 지역사회, 기후위기에 미치는 피해는 과연 얼마로 값을 매길 수 있을까요.

 

존경하는 판사님, 우리는 벌금보다 기후위기 앞에 드리워진 절망이 더욱 두렵습니다. 모두가 기후위기를 말하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이 암담한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자 우리는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이상의 정황을 참작하여 청년들의 절박한 심정을 살펴주시길 기원합니다.

 

촛불혁명 이후, 대중의 분노는 어디서 왔나

2016년 겨울, 한국에서 폭발한 분노는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누적 1600만명이 ()박근혜기치 아래 모였다. ‘촛불혁명이 성공한 뒤에도 한국 사회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양한 전선이 새로 생겨났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사이의 분노와 갈등이 화두로 떠올랐다. 시민들은 기득권층의 위선과 무참한 범죄들에 격렬하게 분노했다. 난민이라는, 한국 사회에서 낯선 주제를 둘러싸고 격론이 전개되었다.

 

시사IN과 데이터 기반 전략 컨설팅 기업인 아르스 프락시아가 촛불혁명 이후 대중의 분노를 분석했다. 그들(우리)이 사건의 어떤 요소에 분노하고 누구에게 책임을 물었으며 어떻게 상황을 개선하기 바라는지 짚어보려 했다.

 

분석 대상 매체는 유튜브로 한정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유튜브는 상대적으로 새롭고 젊은 세대의 참여가 활발한 매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2030 세대의 견해를 반영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더욱이 유튜브 댓글은 포털 뉴스 사이트에 비해 조작 사례가 드물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이처럼 대중의 분노를 가늠하기 위한 작업에선 유튜브 고유의 한계 역시 존재한다. 바로 유튜브의 개인별 맞춤 시스템이다. 사실상 스마트폰 이용자 전부가 보는 포털 뉴스와 달리, 유튜브는 개인이 선호하는 채널만 구독한다. 또한 비슷한 영상만 유튜브 알고리즘에 따라 추천받는다. 이 같은 편향 문제를 어느 정도 보완하기 위해 취재팀(시사IN과 아르스 프락시아)은 분석 대상을 지상파 방송 3(KBS·MBC·SBS)의 뉴스 영상으로 정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조회수와 댓글양을 확보하면서 한쪽으로 쏠리지 않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다.

 

그런데 유튜브 시청자들이 온라인 공간에 별다른 생각 없이 남기거나 혹은 즉각적으로 분출하는 감정을 옮긴 것으로 보이는 의견들을 여론으로 간주해도 되는가? 취재팀은 이런 의견들이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전개되어온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오히려 긴요하다고 봤다. 시민들이 이성의 여과를 거치기 전에 품었던 솔직한생각이 현실이라는 의미다.

20195월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김학의 차관 등 권력층의 성폭력 사건을 규탄하는 시민들.연합뉴스

 

권력자가 국민을 개돼지로 본다

분석 대상 사건 13개는 취재팀 내부 논의를 통해 선정했다. 최초 선정한 사건들 중 방송 3사에서 적합한 표본 영상을 구하지 못했거나 댓글 수가 적은 것은 부득이 제외했다. 최종적으로 분석된 이슈는 N번방 사건(2019) 스포츠계 학교폭력 폭로(2021) 정인이 사건(2020)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접대 사건 재조사(2019)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논란(2019) 윤미향 전 의원 및 정의기억연대 논란(2020) 코로나19 국면 민주노총 집회(2021)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2018) 신천지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2020)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요원 정규직화 논란(2020) 제주도 예멘 난민 신청(2018) 일본 제품 불매운동(2019) 혜화역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2018)’이다.

 

지상파 방송 3사 유튜브 보도 영상 가운데 조회수와 댓글수가 가장 많은 것을 추렸다. KBS 21, MBC 20, SBS 22편이다. 여기 달린 댓글 총 114175개의 키워드를 뽑아 의미망을 분석한 뒤 영향력 높은 키워드가 담긴 원문을 역추적했다. 원문의 작성자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싶은)지 뽑아내기 위해서였다.

 

이른바 권력자가 연루된 사건들에서 유발된 분노부터 분석해보자. 한눈에 띄는 키워드는 개돼지였다. 두 가지 맥락으로 사용되는 키워드다. 하나는 권력자나 권력기관이 국민을 개돼지로 본다는 것. 다른 하나의 용도는 이런 권력을 믿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김학의 사건에서 시민들이 주목한 것은 단순한 부도덕성만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권력 관련 서사의 주된 키워드로 검찰을 꼽았다. ‘국민개돼지처럼 무시하며 군림하는 무소불위공무원집단이 부실수사를 자행했다는 줄기의 이야기가 읽힌다. 이는 특정 고위 인사의 추문을 콕 집어내 손가락질하는 것과 다르다. 국민 모두에게 평등하게 법을 적용해야 할 공무원이 특정인에게 특혜를 주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에게 해를 끼쳤다는 인식에 가깝다. 이 생각은 피해 당사자인 국민적폐 청산에 나서야 한다는 결론에 닿는다. 윤미향 의원을 둘러싼 논란 역시 사람들이 분노한 지점은 비슷했다. ‘위안부피해자를 사익에 이용했다는 인식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도 개돼지가 등장한다. ‘국회의원국민개돼지로 보고 기만했다는 것이다.

 

조국 사태에 대한 주요 키워드는 기득권이었다. 분석을 수행한 아르스 프락시아 김도훈 대표는 이 용어가 조 전 장관을 지칭하는 데에도, 언론을 비판하는 데에도 쓰였다라고 했다. 조국 전 장관에게 부정적인 이들은 기득권인 그가 국민우롱했고, 여기 현혹되는 건 바보라고 본다. 반면 조 전 장관에게 긍정적인 이들은 날조가짜뉴스를 유포하는 언론이야말로 기득권이며, 특히 일부 보수 매체가 혐의를 날조한다고 여긴다. 이들의 대책은 쓰레기매체의 폐간이다. 조국 사태를 보는 시각에서는 완전히 정반대인 사람들이 함께 기득권이 나를 무시했다며 입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201910월 서울 대학로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 촉구 집회가 열리고 있다.연합뉴스

 

개돼지라는 자조 섞인 분노는 기득권에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대중의 생각을 반영한다. 이것은 국제적 화두다. 미국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2018년에 낸 책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정치투쟁은 단순히 파이 조각을 둘러싼 싸움이 아니라고 적었다. 그는 경제적 요소가 아니라 감정적 요소에 주목한다. 사람은 경제적 자원을 얻기 위할 뿐 아니라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해 정치의 영역에 뛰어든다는 것이다. 이 관점이 트럼프 신드롬을 비롯해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보이는 분노의 정치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도 주장한다. 대중 영합적 정치인은 특정 집단의 분노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세를 키운다. 후쿠야마에 따르면, “정치지도자는 집단의 존엄성이 모욕당하거나 폄하되거나 무시당해왔다고 호소하면서 지지자들을 결집하곤 했다. () 굴욕을 경험했다고 느끼며 존엄을 회복하고 싶어 하는 집단은 단순히 경제적 이득만 추구하는 사람들보다 감정적으로 훨씬 더 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사적 제재로 즉각 정의 실현한다

N번방 사건과 학교폭력 폭로 사건, 정인이 사건은 국민적 공분을 불러온 사건이다. 피해자들이 아동·청소년이었기에 특히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하지만 영상에 달린 댓글 일부는 N번방·학교폭력 사건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을 거론했다.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말이 공통적으로 나왔다. 학교폭력 피해자를 두고서는 피해 사실을 과장한다고 주장했다. N번방 피해자에 대해 스폰을 받은(대가를 받고 자의로 성을 판)’ 것 아니냐는 막말까지 횡행했다. 온라인 공간만의 일탈로 볼 수 없다. 성폭력과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현실에서 수없이 당하는 공격에 가깝다(그림 1참조).

 

이들의 반대편에는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걱정하고 인권보호를 당부하는 이들이 있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가해 당사자뿐 아니라 시스템의 책임 역시 따져 물었다. 수사 당국(‘경찰’ ‘검찰’)무능하고, 사법부(‘판사’ ‘법원’)솜방망이 처벌만 내린다. ‘나라공권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는 국민이 직접 나서야 한다(‘국민청원’). 그런데 시스템을 바꾸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정의를 즉각 실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다수의 시민들이 제기하면서 키워드로 떠오른 용어가 바로 사적 제재.

 

사적 제재란 법이나 제도를 거치지 않고 개인 차원에서 복수하는 것이다. 유튜브 댓글에서는 폭력배를 고용해 학교폭력 가해 학생을 위협하거나 때려주는 삼촌 서비스가 거론됐다. 이들은 법 감정에 맞지 않는 솜방망이 처벌을 규탄한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사적 제재는 당연히 범죄다. 하지만 사법 신뢰가 낮은 사회일수록 사적 제재에 관용적이다. 사회학자 오찬호씨의 말을 들어보자.

 

“‘N번방은 관대한 판결을 먹고 자랐다는 말처럼, 범죄 적발과 처벌이 정교하지 못한 영역이 분명 있다. 하지만 사회가 무능하니까 저런 놈 만나면 죽여버릴 거다라는 식의 사적 복수를 부르짖는 경우가 한국에는 너무 많다. ‘어떤 경우에도 사적 복수를 허용하는 부작용이 더 크다는 사회적 합의가 없다. 그러니 보복 운전으로 사고가 나도 왜 보복 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봐야 한다같은 이야기가 너무 쉽게 나온다. 층간소음에 대한 보복 범죄에 대해서도 층간소음 안 당해보면 모른다는 사람들이 있다.”

 

사적 제재로 해결하기 어려운 집단의 일탈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 신천지교회발 코로나19 집단감염을 두고는 이만희 총회장에 대한 비난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 집단의 사이비성이 위험하다고 분노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개신교에 대한 반감도 보였다. 종교단체가 아니라 이익단체라는 비난도 있었다. 코로나19 전파 초기였던 당시, 중국 우한의 입국자를 막지 않은 정권무능을 탓하는 이도 있었다.

유튜브의 댓글 작성자들은 비리 유치원과 민주노총에 대해서도 비난 일변도였다. 두 건에 대해 공권력 활용을 적극 주문했다. ‘때려잡으라는 이야기다(그림 2참조). 비리 유치원에 대한 분노의 서사는 두 줄기다. 우선 해당 비리 범죄를 저지른 원장교사를 비난하는 의견이 거셌다. 이들은 나라공권력을 활용해 더 적극적으로 범죄를 색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하나는 어린이집·유치원에 대한 근본적 불안감이다. 영유아 특성상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학부모가 모두 알 수 없으며, 아이가 인질로 잡혀 있기에 무언가 요구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은 아이 키우기자체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법안정비를 주문한다.

 

적어도 유튜브 댓글만 보면, 지난 7월 집회로 민주노총은 인심을 완전히 잃은 듯하다. 보도 영상에 댓글을 단 사람들은 이 조직이 긴급한 사회 위기에도 돌발 행동을 불사하는 이기적인 강성조직이라고 본다. 이들의 시각에 따르면, 갈등을 정치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민주당은 정작 민주노총의 눈치만 본다. 댓글 작성자들은 사회악과 같은 이 조직의 위험한 행태를 바로잡으려면 공권력으로 진압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민’ ‘목숨공감이 없는민주노총 대신 노동자 권익 대변을 위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역사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국가권력의 적극적 행사를 요구하는 경우는 종종 나타난다. 그런데 이 요구는 앞의 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던 권력(기득권)’ 및 제도에 대한 불신과 마찰을 일으킨다. 사람들은 공권력을 믿지도,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에게 호의적이지도 않으면서 더 큰 공권력을 바라고 있는 셈이다. 이 분석 결과를 두고 포항공과대학교 이진우 석좌교수(인문사회학부)위험한 신호라고 진단했다(18~19쪽 인터뷰 기사 참조). 일탈이나 범죄 같은 갈등 상황에 대해 시민들이 무작정 공권력 강화만을 요구하는 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 군사정권이 그랬다. 불량배가 있으면 삼청교육대에 보내고 노숙인을 집단 수용소에 가뒀다. () 이 사태가 말해주는 건 우리 사회가 갈등해결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제도에 대한 신뢰가 낮은 상태에서 이런 요구가 나온다는 것은 더 나쁜 징후이다. 사람들이 국가에 공정한 심판역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력으로 을 진압해주기만 바란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평등과 공정에 대한 전혀 다른 인식이 부딪치기도 했다. 분노한 양측의 생각이 평행선을 달렸다. 인천공항 보안요원 정규직화나 혜화역 집회에 대한 생각들이 그랬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노력’ ‘준비’ ‘스펙’ ‘공부등을 긍정적 키워드로 사용했다. 정규직화는 깜깜이 채용’ ‘결과적 평등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에게 인천공항 보안요원 정규직화는 동일 업무에 대한 차별 철폐.

 

건설적 대안보다 응보적 분노에 관심

혜화역 집회는 남성 누드모델을 불법 촬영해 급진 페미니즘 성향 웹사이트 워마드에 올린 여성이 검거되자, 여성들이 수사기관의 편파수사를 주장하며 들고일어난 시위이다. 댓글에서는 부정적 의견이 다수였다. 댓글 작성자들은 같은 짓을 저지른 남성들도 처벌받으니 여성의 불법 촬영에 대한 수사를 편파로 몰아세우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에 대해서도 남자범죄자’ ‘취급하는 편파적 보도로 사태를 왜곡한다고 비판했다. 키워드 중엔 일견 성범죄 수사와 거리가 있어 보이는 화장’ ‘탈코르셋같은 용어도 적잖이 등장했다. 이 역시 페미니즘 비판의 맥락에서 나왔다. 댓글 작성자들에 따르면, 누구도 화장강요하지 않는데, 일부 여성은 탈코르셋운운하며 억압받아온 양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페미니즘의 현실과 다른 주장이 정신병과 같다고 표현한다.

92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경찰에 연행되는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연합뉴스

 

권력과 제도, 타인에 대한 적개심과 별개로, 이번 조사에 드러난 한국인상()은 긍정적이었다(그림 3참조). 일본 상품 불매운동과 제주도 예멘 난민 신청 보도 영상 댓글을 분석한 후 김도훈 대표는 이제 (한국인에게) 자학은 없다라고 요약했다. 선진국의 눈치를 보며 위축되고 열패감에 빠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한국인의 당당대응이다. 이런 한국인을 무시하는 아베정권이 싫다’. 여기 동참하지 않고 편가르기를 일삼는 정치세력과 언론은 토착왜구. 불매운동을 조롱하는 기업인은 한국인이 아니라 검은 머리 외국인이다. 제주 난민 신청에서 나타난 한국인상은 미묘하다. 자부심을 넘어 인종주의에 가까워 보이는, 우월의식을 담은 키워드가 등장했다. ‘무슬림난민과 달리 한국인은 부조리를 참지 못하고, 자존심이 강하고, 열심히 일하며, ‘도덕성이 높은, ‘개화된 사람들로 묘사되었다. 반면 무슬림은 테러를 하고, ‘법 위에 종교가 있으며, 한국과 문화가 다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돼지고기도 먹지 않는 무슬림난민은 유럽에서도 사회 문제라며 한국의 난민에 대한 반감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거센 분노는 난민에게 온정적인 인권단체를 향해 표출되었다. 인권단체들이 자국민을 등한시하고 세금으로 인권팔이한다는 비난이었다.

 

유튜브 댓글을 대상으로 한 이번 분석은 촛불혁명 이후 일부 계층에서 나타난 인식과 감정의 동요를 스케치한 것에 가깝다. 댓글을 남긴 뒤 작성자상당수는 해당 사건에 대한 생각을 바꿨는지도 모른다. 댓글 속 날선 문제의식과 원초적 해법은 숙고 과정에서 수정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자료만으로 2020년을 전후한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을 유추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다만 사회의 뇌관을 점검하는 의미에서, 사람들이 표출한 분노의 성격을 짚어봐야 한다. 부당함을 지적하고 건설적 대안을 모색하는 방향이 아니라 복수하고 고통을 줘야 한다는 응보적 분노성격이 짙었다. 사안마다 구체적 비난 대상을 찾아내 벌주려는 목소리가 있었다. 미국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2018타인에 대한 연민이라는 책에서 응보적 분노가 민주정치를 오염시킨다라고 말한다. 복수하려는 의지에서 자유로운 이행 분노(복수보다 상황의 개선을 지향하는 미래지향적 분노)’만이 건설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누스바움은 이행 분노의 대표 예시로 아이의 잘못을 알게 된 부모의 태도를 든다. 하지만 그는, 부모의 자애와 달리 우리가 늘 동료 시민을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데서 두려움을 느낀다라고 썼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화난 사람들의 유튜브 댓글에서 동료 시민에 대한 굳은 애정을 확인하기란 어려웠다.

 

20186월 예멘인들이 비자 없이 입국이 가능한 제주도에 체류하기 시작했다. 시사IN 이명익

시사인 이상원 기자

오세훈 “10년간 시민단체 지원만 무려 1시민단체 ATM기로 전락

오 시장, '서울시 바로세우기-비정상의 정상화' 입장문 발표

"시민단체 피라미드이자 다단계그들만의 생태계 만들어"

'서울시 바로 세우기' 입장문 발표하는 오세훈 시장

서울시 바로 세우기입장문 발표하는 오세훈 시장/연합

 

오세훈 서울시장이 박원순 전 시장 재임시절 대규모로 이뤄진 시민단체 지원에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겠다며 대대적인 수술을 예고했다.

 

오 시장은 13일 오전 서울시 바로 세우기-비정상의 정상화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시민사회와 시민단체에 지난 10년간 민간보조금과 민간위탁금으로 지원된 총 금액이 무려 1조원 가까이 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보조금이든 민간위탁이든 처음에는 선한 의도로 시작했으리라 믿고 싶다그러나 시민사회 분야 민간보조 또는 민간위탁 사업의 구조나 사업자 선정 과정, 예산 집행 내역 등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 시장에 따르면 민간위탁 사업은 일부 시민단체들을 위한 중간지원조직이라는 중개소를 만들어, 특정 시민단체가 중간지원조직이 되어 다른 시민단체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오 시장은 이에 대해 시장이 스스로의 책임하에, 시 공무원을 통해 엄정한 절차에 따라 해야 할 보조금 예산 집행을 시민단체에 통째로 맡겼다면 이는 시민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민단체 지원이 소위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운영돼 왔다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임기제 공무원으로 서울시 도처에 포진해 위탁업체 선정에서부터 지도·감독까지 관련 사업 전반을 관장하는 그들만의 생태계를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오 시장은 이것이야말로 시민단체의 피라미드, 시민단체형 다단계라면서 처음부터 시, 구 공무원이 직접 집행하고 정산하게 하면 될 것을 중간지원조직에 맡김으로써, 위탁금은 위탁금대로 나가고 수탁단체는 시 예산으로 보조금을 나눠주고 생색을 내는 기발한 사업구조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또한 오 시장은 민간보조 사업도 마찬가지로 특정 시민단체에 중복지원되는 경우가 허다했고, 과도한 예산 집행에 비해 성과평가는 매우 미흡했다심지어 경비를 투명하게 밝힌 정산보고서도 제대로 제출하지 않은 사례도 있다고 폭로했다.

 

오 시장은 마을공동체 사업, 청년 사업, 사회투자기금, NPO지원센터, 사회주택 등 시민단체가 개입한 사업들을 열거하며 시민의 혈세로 어렵게 유지되는 서울시의 곳간은 결국 이렇게 시민단체 전용 ATM기로 전락해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민간기업과 시민단체도 시 예산으로 공무를 수행한다면 공공기관과 다름없는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지난 10여 년간 시민사회 분야 민간보조와 민간위탁 사업을 추진해오는 과정에서 뿌리박힌 잘못된 관행들을 바로잡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것이 왜 박원순 전 시장 흔적 지우기로 매도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잘못된 행정을 바로잡는 것은 서울시 수장으로서 저에게 주어진 책무이며 시의회에도 주어진 견제와 균형의 사명인 만큼 협력해 주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배정희 기자 qazwsx6789@asiatoday.co.kr

 

시민단체가 다단계, 중개소?원색적 비난 나선 오세훈

10년간 1조원” “시민단체 쌈짓돈등 비난

고강도 감사 밝혔지만 구체적 근거 안내놔

시민단체 “60년대 관료제 패러다임반박

 

오세훈 서울시장이 13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시민사회 분야 민간보조와 민간위탁 사업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오 시장은 이날 서울시 바로 세우기라는 제목의 입장문에서 지난 10여년간 시민사회 분야 민간보조와 민간위탁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뿌리박힌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모든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화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이 13서울시 곳간은 시민단체 전용 에이티엠기(ATM·현금자동인출기)로 전락했다는 등 원색적인 표현으로 전임 박원순 서울시장 때 이뤄진 민관협치, 민간위탁 사업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감사 진행을 이유로 구체적인 사례는 제시하지 않았는데, 당사자들은 시민단체와의 협력 필요성마저 부정한 시대착오적 인식이라며 반발했다. 이 문제를 놓고 당사자와의 시각·인식 차가 워낙 커, 향후 감사 결과나 서울시 예산안 논의 과정에서 충돌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오전 오 시장은 서울시 바로 세우기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입장문을 낸 뒤 브리핑을 열었다. 그는 지난 10년간 민간보조금과 민간위탁금으로 시민단체에 지원된 총금액이 무려 1조원 가까이 된다집행 내역을 일부 점검해보니 정말 안타깝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감사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면서도 자금 창구’, ‘쌈짓돈’, ‘다단계 피라미드등 범죄를 연상시키는 단정적인 표현으로 공세 수위를 높였다. 그는 시민사회 민간위탁 사업은 일부 시민단체를 위한 중간지원조직이라는 중개소를 만들었다. 이것이야말로 시민단체의 피라미드, 시민단체형 다단계라고 꼬집었다. 서울시는 수백억 예산이 투입됐던 마을공동체 사업 등에서 민간인 출신들로 구성된 중간지원조직의 운영비와 인건비로 예산 절반가량이 쓰인 사실 등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 시장은 시민사회 분야 민간위탁 사업은 일부 시민단체들을 위한 중간지원조직이라는 중개소를 만들어냈고, 특정 시민단체가 중간지원조직이 돼 다른 시민단체들에 보조금을 지급해왔다시민 혈세를 내 주머니 쌈짓돈처럼 생각하고, ‘시민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사익을 쫓는 행태를 청산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사회 진영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10년간 1조원이라는 금액이 어디에 쓰였는지, 이 가운데 문제 있는 사업이 무엇이고 그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등은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를 뭉뚱그려 매도한 게 전부 아니냐는 것이다.

채연하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은 제목은 굉장히 자극적이었는데, 내용이 없어서 이런 문제 제기를 왜 할까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오 시장의 상황 인식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류홍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시민사회활성화위원장은 정부나 시장 중심 정책이 문제점이 많아, 시민단체를 통해 시민의 참여를 확대해 시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자는 것은 시대적인 요구라며 오 시장은 여전히 관이 정책을 떠맡아야 한다는 196070년대 관료제 패러다임 인식에 갇혀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변형석 서울사회적경제네트워크 이사장은 마을 곳곳의 문제를 찾아내고 모색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오 시장에겐 노는 것이자 시민들의 혈세를 낭비하는 것같다. 예산 집행의 철학 차이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오 시장이 이날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만큼, 향후 감사가 답정너방식으로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채 사무처장은 예산을 아껴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건 당연한 얘기다. 어떤 문제가 있으니 이걸 보완하자고 하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오 시장은 시민단체에서 하는 건 비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미리 내놓고 사업을 바라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재찬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상임이사는 분명히 개선할 점은 있다. 하지만 해당 사업들이 관의 경직성·한계 때문에 시작됐다는 점은 보지 않는다. 왜 시민단체와 같이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소통해야 한다. 오 시장은 공은 두고 과만 찾아다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양진 박태우 기자 ky0295@hani.co.kr

 

검찰 고발 사주 의혹보도, 따옴표 넘치고 검증 외면

[신문방송 모니터] 조선일보 사설 싣지 않고 옹호칼럼, 제보자 트집 잡기

인터넷매체 뉴스버스 <단독-윤석열 검찰, 총선 코앞 유시민·최강욱·황희석 등 국민의힘에 고발 사주>(전혁수 기자)92일 지난해 4·15 총선을 앞둔 시점에 검찰이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측에 범여권 정치인과 언론인 등 11명에 대한 형사 고발을 사주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스버스는 당시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검사 출신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 김웅 의원(현 국민의힘)에게 두 차례 고발장을 작성해 전달했으며 이는 미래통합당 측에 전달됐다고 보도했습니다. 고발장 속 피해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윤 전 총장의 부인 김건희 씨, 한동훈 검사장 등으로 알려졌는데 이번 사안이 검찰 사유화검찰의 선거개입등과 관련한 중대한 문제인 만큼 언론 보도도 쏟아졌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뉴스버스 첫 보도 이후 언론이 이를 어떻게 보도하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보수·경제지, 왜 적게 다룰까

 

경향·한겨레·한국·MBC 적극 보도

92일부터 7일까지 지상파3사와 종합편성채널4사 저녁종합뉴스, 6개 종합일간지와 3개 경제일간지 관련 보도를 확인했는데요. 뉴스버스 보도가 시작된 92일 저녁종합뉴스와 다음 날인 93일 신문지면 보도를 먼저 살펴봤습니다.

윤석열 검찰 고발 사주 의혹첫 보도 직후 방송 저녁종합뉴스(92신문지면(93) 보도량. =민주언론시민연합

 

뉴스버스 보도 당일인 92, 가장 적극 보도한 언론은 MBC입니다. 이날 저녁종합뉴스에서 MBC는 첫 번째 꼭지 <윤석열 검찰, 야당에 정치인·기자 고발 사주의혹>(윤수한 기자)을 시작으로 연달아 4건을 다뤘습니다. KBSSBS2, 종편4사는 각각 1건씩 보도했는데 대부분 뉴스버스 보도와 정치권 반응을 전하는 것으로 내용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TV조선(16번째), 채널A(13번째), MBN(14번째)은 보도순서를 뒤쪽에 배치하며 소극적인 보도양상을 보였습니다.

 

다음 날인 93일 신문지면에서는 한겨레 <윤석열 검찰, 야당에 여권인사 고발 사주의혹>(배지현 기자)1면 머리기사로 실었고, 경향신문 <“윤석열 측근 검사가 여권 정치인·언론인 고발장 야당에 전달김오수 진상조사”>(허진무 기자)과 한국일보 <윤석열 검찰, 야 통해 청부 고발 의혹대검 진상 조사”>(손현성 기자)1면 하단에 비중 있게 보도했습니다. 경향신문·한겨레·한국일보는 관련기사 4~5건을 추가로 싣는 등 다른 신문보다 적극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윤석열 검찰 고발 사주 의혹관련 신문 지면·방송 저녁종합뉴스(92~7) 보도량. 그래프&=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 보도행태는 이후에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MBC·경향신문·한겨레·한국일보는 자세히 사안을 짚으며 의혹에 관해 검증하는 보도를 이어갔지만, 경제지들은 3~4건의 보도만을 전하며 사안을 축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조선일보는 종합일간지 중 유일하게 한 자릿수인 단 6건의 보도를 내놨는데, 그마저도 사안에 대한 설명 없이 여야 공방을 전하거나 제보자나 조사자에게 의혹을 제기하며 논란을 만드는 보도였습니다.

윤석열 검찰 고발 사주 의혹사설 제목(위부터 93일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94일 동아일보, 97일 중앙일보)

 

사설에서도 언론의 적극성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났습니다. 조선일보와 경제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설을 통해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해 엄정 수사가 불가피하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습니다. 분석 기간 동안 경향신문·한겨레·한국일보는 각각 3건의 사설을 실었고, 동아일보는 2<윤석열 측근 고발 청부논란 철저히 진상 밝혀야>(94), <‘윤석열 측 사주논란 고발장 공개실체 확인 서둘라>(97)이었으며, 중앙일보 <윤석열 고발 사주논란, 정쟁보다 규명이 먼저>(97)1건을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관련해 사설을 한 건도 싣지 않았고, 되레 윤석열 후보를 옹호하는 칼럼이 오피니언면에 실렸습니다. 최원규 사회부장이 쓴 <고발됐다고 왜 피의자가 되어야 하나>(96)“‘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이란 단체는 최근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고소·고발이 접수되면 피고소인이나 피고발인은 바로 피의자가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우리 사회에서 피의자라고 하면 무슨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인식되기 마련인데, “고소·고발 남발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기에 프랑스처럼 피의자와 참고인의 중간적 지위를 갖는 변호인 조력을 받는 참고인제도같은 중간지대를 두는 것을 검토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조선일보, ‘윤석열 전태일기념관 방문적극 보도

조선일보는 94일 정치면 머리기사 <고발 사주, 국기문란·깡패윤석열 사실 아니면 다 물러나라”>(노석조·주희연 기자)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고발 사주 의혹을 두고 “‘희대의 국기 문란이자 정치공작이라며 총공세에 나섰다”, “윤 전 총장 개입 가능성을 기정사실화했다고 전했습니다. 더불어 야권 지지율 1위 주자인 자신을 겨냥한 역공작 가능성을 제기했다는 기사 내용 대부분이 여야 정치인 발언으로 전형적인 따옴표보도였습니다.

 

또한 조선일보는 전날 전태일기념관을 찾은 윤석열 후보 행보를 전한 <전태일 찾은 윤석열장기표와 함께 참배>(김민서 기자)를 고발 사주 의혹 기사 오른쪽에 나란히 배치했습니다. 언론사 중 유일하게 윤 후보 전태일기념관 방문 사진을 기사와 함께 실은 조선일보는 고발 사주 의혹 기사 제목 아래 사진을 도드라지게 편집하기도 했습니다. 경향신문 <전태일 열사 앞 묵념하는 윤석열>(94)처럼 사진기사에 그치거나 방송사들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 관련한 윤 후보 입장을 듣는 자료화면으로 사용하는데 그친 것과는 큰 차이가 났습니다.

 

전태일 열사와는 확연히 다른 윤석열 후보의 노동관은 경향신문 <120시간 바짝 일하고 마음껏 쉬어라?대권주자 윤석열의 시대착오적 노동관>(720일 이혜리·심진용 기자)에서 이미 지적된 바 있지만 조선일보는 근로자들의 노동 가치와 성장을 위해 그늘진 곳에서 애쓰신 분들을 다시 한번 기리기 위해방문했다는 윤 후보 발언을 비판 없이 그대로 전했습니다.

윤석열 검찰 고발 사주 의혹과 윤석열 후보 전태일기념관 방문을 나란히 편집한 조선일보(94)

 

누구를 위한 받아쓰기 보도인가

절반이 따옴표’, 검증보도 16% 그쳐

92일부터 7일까지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 관련 기사는 총 179건으로 보도 형식과 내용에 따라 5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여야 정치인이나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 관련자 발언을 인용한 기사는 따옴표보도’, 사안을 설명하거나 대검 수사 진행 상황, 국회 법사위 회의 등 기사는 사안설명조사상황’, 사건이나 관계자 발언을 검증한 보도는 검증보도’, 신문 사설이나 내외부 필진이 작성한 오피니언 및 방송 저녁종합뉴스 앵커 논평 등은 사설오피니언’, 그 밖의 내용은 기타로 분류했습니다.

윤석열 검찰 고발 사주 의혹관련 보도 내용 분석 결과(92~7). 그래프&=민주언론시민연합

 

분석 결과, ‘따옴표보도로 분류된 기사가 82(46%)으로 절반 가까이 차지했습니다.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의혹에 관해 설명하거나 수사 진행 상황을 설명한 보도는 44(25%), 검증보도는 29(16%)에 그쳤습니다. 사설·오피니언은 13(7%), 기타는 11(6%)이었습니다.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보도 초반부터 언론은 여야 정치인 발언을 받아쓰며 정쟁에 참여할 뿐 심층 취재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TV조선 <고발 사주 의혹에국정조사정치공작”>(93일 이태희 기자)은 윤석열 후보, 김경진 윤석열 캠프 대외협력특보,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발언으로 채워진 대표적 따옴표보도였습니다. 중앙일보 <여당 윤석열 검찰, 여권 고발 사주한 의혹윤측 정치공세”>(93일 남수현 기자) 역시 여당 대선주자와 윤석열 후보, 김웅 의원의 발언으로 채웠습니다.

 

사건 관련자 발언이 엇갈리고 있어 해명이 중요한 시점이었고, 윤석열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만큼 여야 대선 후보 의견을 듣는 기사도 필요했지만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보다는 윤 후보가 향후 정치권에 미칠 영향에 중점을 두고 따옴표보도를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이란 초유의 사건인데 제기된 의혹과 관계자 발언을 검증하는 보도가 16%에 그친 것은 언론이 제대로 된 취재를 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살 만한 모습입니다.

 

경제지는 더 적은 보도량을 보였는데 6일간 한국경제 3, 매일경제 3, 서울경제 4건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한국경제와 매일경제는 뉴스버스 보도 다음 날인 93일 사안을 설명한 기사 각각 1건과 94일과 97일에 따옴표보도 각 2건씩만 실었으며 검증보도는 전무했습니다.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보도를 관련자 발언으로 채운 매일경제(97)

 

94일 매일경제 <윤석열 게이트총공세또 정치공작, 증거 있으면 대라”>(박인혜정주원성승훈 기자)와 한국경제 <윤석열 고발 사주할 이유 없다정치공작 국민이 판단할 것”>(이동훈 기자)고발하라고 한 적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고발을 사주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에 안 맞는다. 야당이 고발하면 오히려 더 (수사를) 안 한다는 윤석열 후보 반론과 여야 대권주자들의 비판 발언을 전했습니다.

 

97일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 내용을 따옴표로 보도했습니다. 매일경제 <‘윤의혹정면충돌즉각 사퇴해야정치쇼 멈춰라”>(정주원성승훈류영욱 기자)고발장과 텔레그램 대화창 등 자료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진실 공방 논란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며 여야 정치인과 관계자들의 주장을 전했습니다. 한국경제 <장제원 녹취록서 김웅 고발장 내가 만들었다윤 상관없어”>(97일 고은이 기자) 역시 관계자들의 발언을 따옴표로 전하며 윤 전 총장을 비롯한 당사자들은 모두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여권의 공세는 점점 거세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매일경제와 한국경제 모두 발언을 전하는데 그쳤으며 당사자들이 부인한 내용에 대한 추가 취재 또는 발언 검증, 문제를 제기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제보자·조사자 트집 잡기 나선 조선동아

 

초 제보자가 누군지를 두고 논란이라고 전한 조선일보(96)

 

다른 신문이 적극 보도에 나서기 시작한 96일에도 조선일보는 단 한 건의 기사만 내놨습니다. 조선일보 <‘윤석열 고발 의혹최초 제보자 누구였나 논란>(96일 김승현 기자)최초 제보자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김 의원이 아닌 다른 국민의 힘 측 인사가 제보했다면 대선 경선 국면을 겨냥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 “외부 세력과 내부 인사가 결탁한 정치 공작 가능성도 지켜봐야 한다는 국민의힘 관계자의 발언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 기사에도 언급된 것처럼 뉴스버스는 최초 제보자는 국민의힘 측 사람이며 김웅 의원은 제보자가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결국 조선일보는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 내용은 보도하지 않고, ‘제보자에게만 집중해 논란으로 이름 붙인 것입니다.

 

채널A <“최초 폭로자, 지금은 다른 당 캠프에 있다”>(97일 안보겸 기자)는 제보자가 지난 총선 때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 당직자며 지금은 국민의힘 쪽 캠프가 아닌 다른 데 들어가 있다”, “옛날에 조작하고 그런 전력이 있었다는 김웅 의원의 주장을 보도했습니다. 이어 제보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을 모두 잡으려는 것이며 밝혀지는 순간 어떤 세력인지 알게 된다고 주장한 김웅 의원의 동아일보 인터뷰도 그대로 전했습니다.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은 제보자가 아닌 내용이 더욱 중요한 사안입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부수적인 소재를 계속 문제로 삼았습니다.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정희도 검사 주장을 보도한 동아일보(97)

 

동아일보 <대검, 손준성PC 포렌식중공수처도 수사 검토>(97일 고도예 기자)는 정희도 서울동부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검사가 감찰을 맡은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을 두고 여러 곳에서 친정권 인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인데 이런 분이 진상을 공정하고 진실하게 밝힐 수 있을까라며 믿지 못하겠다고 검찰 내부망에 쓴 글을 전했습니다. 조선일보 <“윤석열 의혹 규명, 친정권 한동수가? 못믿겠다”>(97일 이정구 기자) 역시 한 감찰부장은 친여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고발 사주 의혹 역시 프레임 조작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야당의) 대선 경선을 둘러싼 프레임 조작 가능성 역시 염두에 둬야 할 것으로 보인다는 정 부장검사의 주관적 의견을 여과없이 보도했습니다.

 

정치적 갈등으로 몰아가는 TV조선

TV조선은 97일 불필요한 갈등만 키우는 보도를 계속 내보냈습니다. TV조선 <“제보자 안다하자공익신고자 전환>(97일 박경준 기자)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제보자가 누군지 알 것 같다고 언급하자 의혹을 최초 보도했던 인터넷 매체는 제보자가 공익신고자 신분이 됐다이제 어느 누구도 신분을 밝힐 수 없다는 뜻이라며 논란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스버스 <단독-대검 고발사주제보자 공익신고메시지 주고받은 휴대폰 제출>(97일 윤진희 기자)제보자 A씨가 공익신고자 보호법상 공익신고자 신분으로 전환된 것으로 7일 확인됐다고발장과 증거자료를 받은 휴대폰 텔레그램 메신저 방의 화면 캡쳐물과 김웅 국민의힘 의원과 메시지를 주고받은 휴대폰을 함께 제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공익신고자로 전환된 사실이 확인됐을 뿐 김웅 의원 발언과 공익신고자 전환의 선후관계는 알 수 없었지만 TV조선은 김웅 의원 발언으로 제보자가 공익신고자가 된 것처럼 보도했습니다.

윤석열 검찰의 고발사주 의혹본질이 아닌 사안에 주목한 TV조선(97)

 

TV조선 <법무부·대검 감찰 이어공수처 수사 검토>(97일 김태훈 기자)는 대검·경찰·공수처 등 사실상 모든 수사기관에서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한 수사나 감찰에 들어갔다며 진상 조사 중인 사안에 국정농단사건의 수사 규모가 움직이는 상황이라는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발언을 전했습니다. 사안의 중대성으로 봤을 때 당연한 조치로 보이지만 TV조선은 수사기관이 과도하게 나서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나름 객관적 팩트생태탕 시즌2”>(97일 최지원 기자)에서는 여야 정치인 발언을 전하며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 본질이 아닌 정치적인 갈등으로 몰아가는 보도를 이어갔습니다.

 

조선일보·경제지, 김웅 오락가락 해명검증 외면

국민의힘 김웅 의원은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었던 손준성 검사와 당시 미래통합당 사이에서 고발장 전달자 역할을 했다는 의혹에 해명을 내놨습니다. 뉴스버스 첫 보도가 나온 92일엔, 윤 전 총장 등이 피해자로 적시된 고발장 존재를 명확하게 부인하지 않은 채 의원실에 수많은 제보가 있었고 제보받은 자료는 당연히 당 법률지원단에 전달했다고 했습니다. 뉴스버스는 손준성 보냄이라고 적힌 파일이 김 의원에게 전달됐음을 보여주는 텔레그램 대화방 캡처 사진도 제시했는데, 김웅 의원은 전달받은 대화창은 모두 지웠기 때문에확인이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뉴스버스가 96일 공개한 김웅 국민의힘 의원과 미래통합당 관계자의 텔레그램 대화방 캡쳐 사진

 

김 의원은 96일에도 해명을 내놨는데, 뉴스버스가 밝힌 김 의원 발언 내용과 차이가 있습니다. 김 의원은 전달받았다고 가정하더라도 총선이 임박한 상황인데 이를 신경 쓰기 어려웠을 것”,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없다라는 입장인데요. 뉴스버스 보도와 92일 전화통화에서 김 의원은 문제의 고발장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도 전달만 한 것 같다”, “검찰 측 입장에서 들어왔던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한동훈 검사장이 검언유착 사건 피해자로 포함된 것에 대해서도 그쪽(검찰)의 입장을 전달해준 것 같다고 답변했습니다. 92일엔 기억이 안 난다면서도, “전달을 한 것 같다”, “검찰 입장을 전달해준 것 같다라고 했지만, 96기억이 없다라는 입장으로 바뀐 것입니다.

 

진실 공방이 격화되는 와중에 핵심 당사자가 모호하면서 미묘하게 바뀐 해명을 내놓은 상황인데요. 조선일보는 김 의원의 해명 일부만 전달할 뿐 발언 변화 등에 대해 짚진 않았습니다. 첫 해명이 나온 다음 날인 93<“윤석열 검찰, 야당에 인사들 고발 요구사실무근”>(노석조·이정구·주희연 기자)에서 조선일보는 제보 받은 자료를 당에 전달하는 것은 전혀 문제 될 수 없다등 김 의원 주장만 짧게 전할 뿐 그의 해명이나 해명의 문제점에 주목한 기사는 없었습니다. 서울경제, 매일경제, 한국경제 역시 김 의원 해명을 소극적으로 언급하는 데 그쳤습니다.

 

김 의원의 해명을 따져보는 일은 기본 검증에 속합니다. 특히 고발장 등을 주고받은 SNS 캡처 사진 외에 명확한 물증이 없어 당사자 해명에 관심이 쏠렸는데요. 그렇다면 당사자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지, 일관성이 있는지 따져보는 것은 취재의 기본입니다. 김 의원이 공개적으로 밝힌 입장문을 확인하면 되는 일로 난도가 높은 취재도 아닙니다.

김웅 의원의 고발장 전달 의혹에 대한 오락가락 해명을 비판한 SBS(97)

 

실제 대다수 언론은 김 의원 해명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KBS <‘고발 사주의혹 풀어야 할 의문점은?>(93일 박민철 기자)에서는 김웅 의원의 모호한 해명도 의혹을 키우는 요인이라며 뉴스버스가 제시한 SNS 캡처 사진을 놓고 김 의원이 확인되지 않는다라면서도 총선 직전, 정신이 없을 때라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한 것을 지적했고요. 한겨레 <‘고발 사주의혹만 더 키운 김웅·손준성 해명>(97일 김미나·손현수 기자), SBS <‘전달자김웅 오락가락 해명에 혼선>(97일 박원경 기자), 채널A <오락가락 김웅 해명 따져보니고발장 작성 사실도 부인>(97일 송찬욱 기자) 등도 김 의원 해명이 일부 오락가락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법조인한 명이 주장하면 조작된?

고발장 등이 오고갔다고 알려진 SNS 대화방 캡처 사진도 이번 사건의 주요 증거입니다. 뉴스버스는 <단독-고발장 작성해 증거자료도 야당에 넘겨실명 판결문까지>(92일 전혁수 기자)에서 당시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김웅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에게 검언유착 의혹 보도 제보자 판결문을 보냈음을 보여주는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검언유착 의혹을 제기한 제보자 B씨의 과거 범죄 내용이 담긴 실명 판결문으로, 제보자 증언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검언유착에 연루된 한동훈 검사장의 명예훼손 피해를 뒷받침하는 데 쓰일 수 있는 자료입니다. 캡처 사진이 진짜라면 검사와 국회의원 후보자가 수사 자료인 실명 판결문을 빼돌린 것으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행위가 됩니다.

 

사주 의혹이 사실이라면, 범행 현장이라 할 수 있는 SNS 대화방은 특히 면밀하게 검증해야 합니다. 동아일보 <“서 고발장 건넨 증거” vs “사용자 이름 조작 가능”>(96일 배석준 기자)손 검사를 잘 아는 법조계 관계자들발언만을 근거로 대화방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관계자들이라고 했지만, 기사에 등장한 관계자는 검찰 출신 법조인한 명뿐이었습니다. ‘텔레그램 사용자가 자신의 이름을 임의로 변경한 뒤 타인에게 이미지 파일을 보내면 해당 파일에 변경된 이름이 표시될 수 있어 텔레그램 특성상 대화방에서 손준성 보냄이 있다고 해서 해당되는 실제 인물이 보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라는 주장입니다.

 

중요한 증거가 담긴 사진은 당연히 검증해야 하지만, “손 검사를 잘 아는 법조계 관계자한 명의 발언만 근거로 한 점은 손 검사와 친분이 있다는 점에서 편협한 분석이 나올 수도 있으며, 충분한 검증으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어떤 대화 중에 해당 파일이 전해졌는지, 해당 법조인의 발언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것인지, 해당 기사를 쓴 기자는 어떻게 손준성이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 손준성 검사라 판단한 것인지 추가 취재한 흔적이 없습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동아일보의 검증 의지를 가늠할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검찰 사유화논란, 진상규명 보도가 필요하다

윤석열 검찰 고발 사주 의혹은 뉴스버스의 단독 보도로 시작됐습니다. 핵심 물증인 고발장이나 텔레그램 캡처 사진 등의 진위를 다른 언론이 확인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검찰이 수사대상을 특정해 야당에 고발을 사주하고,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유력한 대선 후보가 정치적 목적으로 개입했을 수 있다는 점에서 검찰권력 사유화란 중대 혐의가 제기된 것으로 다른 언론의 적극적인 검증보도가 필요합니다. 당사자나 여야 정치인 발언을 받아쓰기하는 수준에 머무른 언론도 있지만, 중요한 증거 자료를 단독 입수해 적극 검증을 해나가는 언론도 있습니다.

 

한겨레, 발빠르게 고발장 전문 입수

한겨레는 뉴스버스의 첫 보도가 나온 직후 핵심 증거인 문제의 고발장 전문을 입수해 분석했습니다. <검찰 공소장 뺨치는 고발장 20’ “여권 총선 이기려윤석열 헐뜯어”>(96일 손현수 기자)“(지난해) 43일 전달된 고발장은 고발인 피고발인 범죄사실 고발이유 결론 증거자료 별지 등 20장으로 구성됐고, “범죄사실, 고발이유, 결론 등 본문만 13장에 달한다, “검찰의 공소장과 매우 유사한 형태라고 짚었습니다. 이후 지난해 48일 전달된 고소장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와 관련한 2013년 대법원 판례를 붙이는 등 법리 검토까지 마친 흔적이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지난해 미래통합당 관계자와 나눈 텔레그램 대화방 자료를 보도한 한겨레(96)

 

한겨레 <김웅, ‘손준성 보냄자료 100여건 나르고 확인 후 방폭파”>(96일 김경욱 기자)는김 의원이 당시 미래통합당 관계자에게 고발장 등을 전송한 것으로 알려진 지난해 43일과 8일 텔레그램 대화방 자료를 입수해 시간 순으로 정리했습니다. 43오전 1012분 제보자X 페이스북 캡처 이미지 등 87”, “오후 147분 지xx 실명 판결문(3) 이미지등을 전송했고, 김 의원이 확인하시면 방 폭파메시지도 보냈다고 보도했습니다. 김 의원은 “(텔레그램) 대화창은 모두 지웠다”,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이라 정신없이 바쁠 때라 기억이 없다라고 주장하던 상황으로, 김 의원이 고발장을 보냈는지 여부를 검증할 중요한 근거가 됐습니다.

 

KBS, 김웅 고발장·미래통합당 고발장 판박이발굴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48일 당시 미래통합당에 전달한 고발장이 미래통합당에서 실제 사용됐다고 보도한 KBS(96)

 

KBS <‘고발 사주넉달 뒤 실제 고발장과 판박이>(96일 한승연 기자)는 김웅 의원이 당시 미래통합당 관계자에게 전달한 고발장이 미래통합당이 실제 고발할 때 이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했습니다. 지난해 48일 김 의원이 보낸 것으로 알려진 이 고발장은 당시 최강욱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에 대한 고발장으로 허위사실 공표로 공직선거법을 위반했으니 처벌해달라는 취지의 8장짜리라고 KBS는 밝혔습니다.

 

이어 미래통합당이 넉 달 뒤인 지난해 8월 최강욱 의원을 실제로 같은 혐의로 고발할 때 고발장과 비교해본 결과 단어나 문구를 극히 일부 달리한 수준으로, “고발장 결론 부분 역시 문구 하나만 빼면 나머지가 완전히 같다KBS는 보도했습니다. 김 의원이 당시 미래통합당에 전달한 고발장이 실제로 활용됐음을 추측할 수 있는 자료로써 손준성김웅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의 연결고리 일부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주목해야 할 문제, 쟁점 짚어준 보도

급박하게 상황이 진행되고 파급력이 큰 사건이라는 점에서 사안을 자세히 설명하고, 주목해야 할 쟁점이나 놓쳐선 안 될 지점을 짚어주는 언론의 역할도 중요했는데요.

 

서울경제 <작성자도 유출자도 찾기 어려워뫼비우스의 띠 될 수도”>(97일 구경우·성형주 기자)는 이번 사건의 쟁점을 고발장, 이 작성했나’, ‘작성자, 밝힐 수 있나’, ‘유출자, 내부냐 외부냐등 총 5가지로 정리해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경향신문 <검사가 고발장 대신 썼다면 그 자체로 중대 비위>(93일 이효상·허진무 기자)검찰이 특정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고발장을 대신 써준행위의 중대성을 강조했는데요. ‘공익제보라는 김웅 의원 주장에 대해서도 공익제보와 수사를 하는 검찰이 특정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고발장을 대신 써준 것은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검찰의 공공연한 정치개입,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겨레 <‘스모킹건은 지씨 실명 판결문 열람 기록>(96일 배지현 기자)실명 판결문은 당사자 외 현직 판·검사만 열람할 수 있고,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을 통한 열람기록은 전산망에 남는다며 실명 판결문 열람기록이 스모킹건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한국일보 <고발장에 가족 피해 상세 윤 검찰작성 의혹 커져>(94일 손현성 기자)고발장에 기재된 수신처가 서울중앙지검이 아니라 대검 공공수사부라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고 했는데요.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이 접수되면 친정권 인사로 분류되는 이성윤 지검장의 지휘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음을 윤석열 검찰이 고려한 것일 수 있다는 겁니다. 국민들이 잘 모르고 지나갔을 수 있는 부분을 짚어준 보도입니다.

 

모니터 대상 : 202192~7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 TV조선 <종합뉴스9>, 채널A <뉴스A>, MBN <종합뉴스>,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서울경제, 한국경제 지면보도

민주언론시민연합

"도시가 죽고 사는 건 리더에게 달렸다, 이 두 도시를 봐라"

[로컬에서 희망찾기 ] 경신원 '도시와 커뮤니티 연구소' 대표

내년 대통령 선거(3.9)와 지방선거(6.1)가 멀지 않았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벌써 몇 년째 세계 꼴찌다. 급기야 지난해엔 처음으로 인구가 줄었다. 최근 연구는 가파른 인구 감소(저출산)가 수도권으로의 지나친 인구 집중 탓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수도권으로 몰리는 발길을 돌려세우지 못하면 인구 감소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큰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도 로컬(수도권 밖 지역) 의제는 여전히 뒷전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다시 로컬로 향하게 할까.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로컬 연구자들을 만나 의견을 물었다. 4회에 걸쳐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기자말]

 

도시도 사람처럼 나이를 먹는다. 도시 곳곳의 건물과 도로에 세월의 무게가 내려앉고, 도시에 물과 에너지를 돌게 하던 기반 시설에도 틈이 생긴다. 어디건 사람이 넘쳐나던 시절에는 낡은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거나 다시 길을 닦으면 그만이었다. 건물과 도로와 물과 전기를 쓸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지금 도시에 없는 건 사람이다.

 

나이 든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정책이 '도시재생'이다. 2013년 제정한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도시재생법)은 도시재생을 '쇠퇴하는 도시를 지역역량의 강화, 새로운 기능의 도입·창출 및 지역자원의 활용을 통하여 경제적·사회적·물리적·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적어도 헌 집들을 허물고 새 집을 지어 도시를 되살리겠다는 사업은 아닌 셈이다.

 

"물리적인 재개발에 대한 반성으로 나타난 게 재생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은 어렵다는 게 도시재생의 출발점인데, 우리나라는 물리적 재개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듯하다."

 

경신원 '도시와 커뮤니티 연구소' 대표의 눈에 비친 도시재생(뉴딜) 사업은 법에 담긴 취지와는 달랐다. 그는 2001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로 15년간 영국과 미국에서 주택 및 도시()개발 분야의 교육자와 연구자로 활동해왔다. 2008년 우리나라의 초기 도시재생 국가 R&D(연구·개발) 사업에도 참여했다.

 

경 대표는 정치 리더가 "로컬 중소도시를 살리는 열쇠"라고 했다. 그는 "도시가 죽고 사는 건 리더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면서 "자신의 정치적 야심이 아니라 지역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 무얼 할 것인지 고민하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고 했다.

 

"영국에 있을 때 10년 계획을 아주 유연하게 세우는 것을 보고 놀랐다"면서 무턱대고 청년들을 지원하기보다는 "도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큰 틀에서 정하고 거기에 맞는 산업과 사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사람에 대한 투자도 큰 그림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경 대표는 2001년 영국문화원 쉐브닝 장학생(Chevening Scholar)으로 선발돼 영국 버밍엄대학교에서 '도시 및 지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조교수로 근무했다. 2010년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D.C.의 도시연구소(Urban Institute)MIT 등에서 지속가능한 도시 및 주택 분야 관련 연구를 해왔다. 2016년 서울로 돌아와 서울대와 서울시립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며 <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 <엄마 말대로 그때 아파트를 샀어야 했다> 등의 책을 출간했다.

 

최근 경 대표와 서울의 어느 카페에서 인터뷰를 가진 뒤 화상으로 한 번 더 만났다. 아래는 경 대표와 나눈 대화다.

 

도시재생은 '사람 중심'이어야... 획일적 기준으로 '참여' 강요해선 안 돼

경신원 도시와커뮤니티연구소 대표경신원

 

- 영국에서 도시재생을 공부하고, 우리나라에서 도시재생법 초기 연구에 관여해온 걸로 안다.

"영국에서 지역재생 관련한 박사논문을 쓰던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이라는 개념은 매우 생소했다. 국토연구원과의 공동 세미나에 3년 동안 참여했는데 그때 자연스럽게 도시재생이란 개념을 우리나라에 알리게 되었다.

 

버밍엄대학에 재직하면서는 2008~2009년에 도시재생 관련 국가 R&D 사업에 참여했다. 서울대가 주도한 컨소시엄에 미국 콜럼비아대학, 일본의 와세다대학과 함께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도시 재개발과 재생의 발전 단계에 대한 비교연구를 수행했다."

 

- 여러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2013년에야 법이 제정됐다. 법안을 보니 어땠나.

"재건축, 재개발, 주거환경개발 사업 등과 관련된 기존 법안들을 한데 뒤섞어 놓은 것 같아서 몹시 실망스러웠다. 도시재생의 기본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해 보였다. 도시재생의 핵심은 '사람 중심'이라는 걸 여러 번 강조했는데 그런 내용이 빠져 있었다.

 

물리적인 재개발에 대한 반성으로 나타난 게 재생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은 어렵다는 게 출발점인데, 우리나라는 물리적 재개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듯했다."

 

- 영국의 도시재생에 대해 소개해 달라.

"영국에서 도시재생은 1980년대 대처 집권기에 경제 회복에 초점을 맞춰서 진행됐다. 그러니까 당시 영국의 도시재생은 경제 활성화로 도시를 되살리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에 들어서야 도시재생에 눈을 떴는데, 그때는 이미 영국에선 1997년에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여러 뉴딜 정책을 펼친 뒤였다. 노동당은 경제성에 더해서 커뮤니티 참여를 굉장히 강조했다. 그러다보니까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영국의 초기 도시재생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2016년에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경제적 회복보다 커뮤니티 참여에 너무 힘이 실리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도시재생에선 경제적 회복이 굉장히 중요하다. 일단 쇠퇴가 시작됐다는 건 경제적 측면에서 경쟁력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사람이 떠나는 첫째 이유는 일자리가 없어서다. 영국도 1990년대 중반부터 스코틀랜드 지역을 중심으로 빈집들이 빠르게 늘었다. 전에는 물리적 조건 탓, 그러니까 집이 낡은 탓이라고 봤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경제적 상황이 나빠지니까 집 상태가 아무리 좋아도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던 거다.

 

이걸 회복하려는 게 HMR(하우징 마켓 리뉴얼)인데 경제 정책과 물리적 개선이 결합하지 않으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영국 정부가 1998년쯤부터, 1950년대 이후 처음으로, 그것도 아주 대규모로 자본을 투입해서 민간 영역에 개입을 하기 시작했다."

 

- 주민 참여에 너무 힘이 실린다는 건 어떤 뜻인가.

"참여도 좋지만 그 정도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지역에 따라 주민 참여에 대한 기대치도 달라야 한다. 지금은 도시에 맞춰 정한 기준을 전국에 모두 똑같이 적용하고 있다. 대도시와 지방 중소도시의 쇠퇴 정도가 다르고 주민 역량에도 분명한 차이가 있지 않나. 서울 안에서도 그러한데, 어떻게 전국에 같은 기준과 방법을 적용할 수 있겠나.

 

쇠퇴지역에 사는 주민 대부분은 먹고 살기도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런 사람들한테 도시재생대학도 다니고, 미래 비전도 만들어내라고 하는 건 너무 무리한 요구다. 비현실적인 이상이다. 그래서 커뮤니티 참여가 반드시 정답은 아니라는 주제로 논문도 썼다.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인 아마르티아 센도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정치적 힘보다 경제적인 힘이 우선이라고 강조하지 않았나.

 

톱다운(top-down) 방식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정책이라고 하지만, 정부와 전문가들의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하다. 주민이 주체가 되어 재생이 가능한 지역이 있고 그렇지 않은 지역도 있다. 주민 역량이 강화될 때까지는 전문가의 영역이 존재해야 한다. 주민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지우는 건 올바르지 않다.

 

영국에서도 커뮤니티 참여는 1990년대 들어 이른바 '작은 정부'를 표방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흐름이다. 정부 역할을 축소하면서 제3섹터(the third sector), 커뮤니티의 역할을 강조한 건데, 어떻게 보면 정부가 져야 할 책임을 커뮤니티에 떠넘긴 거다. 2010년에 보수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빅 소사이어티'를 내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가 재정의 위기로 정부가 일정 부분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도시 되살리는 데 정치 리더의 역할이 열쇠... 큰 틀의 유연한 계획 수립 필요

경신원 대표가 쓴 두 권의 책파람북, 사무사책방

 

- 블로그(brunch.co.kr/@swkyung0221)를 보니 '로컬 크리에이터' 관련 연구를 진행했던데 소개해 달라.

"지난해에 중소기업벤처부와 창업진흥원 의뢰를 받아 <로컬 크리에이터 활성화 지원 현황 분석 및 전략 수립> 연구를 했다. 툭 터놓고 조금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불리는 이들 가운데 정말 기업가정신을 가진 이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기존 소상공인들을 넘어서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정부는 잠재력에 기대를 걸고 지원을 하지만 지원이 끊기고 나면 포기하는 이들이 많은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원금이 얼마든 그것에 대한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그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대부분의 정부 지원이 3년을 넘기지 않다 보니까 창업은 쉽게 하는데 오래 가지 못한다. 창업 이후에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할지를 잘 살피면서 로컬 생태계와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 로컬 생태계를 만들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나.

"경제를 되살리려면 경제활동인구를 다시 불러들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로컬 숍이나 카페가 생기는 것도 좋지만 소비 공간 구축을 넘어서 생산 활동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생산이 늘면 자연스럽게 소비도 늘어나니까. 도시가 자생력을 가지려면 생산 활동이 필요하다. 나는 거기에 관심이 있다. 무엇보다 창업자들 주변으로 산업이 일어나도록 해서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시재생도 로컬 창업도 지속가능하지 않다.

 

정말 지역을 바꾸고 싶으면 사람을 바꿔야 한다. 인구 유출을 막으려고 애를 쓰는데 인구가 이동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유입을 늘리는 데 더 힘을 쓰는 게 낫다. 새로 유입되는 인구와 기존 인구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도 고민해야 한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다. 새로운 인구를 늘리는 것 못지않게 늘어난 인구를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 정부가 내년에 로컬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는데 어떻게 보나.

"행안부, 국토부, 중기부에 과기부까지 부처들이 협력하지 않는 게 문제다. 그러다 보니 예산낭비도 심하다. 엄브렐라(우산) 조직을 만들어서 가지고 있는 예산을 합쳐 더 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의미 있는 사업을 하도록 해야 한다.

 

월드뱅크의 도시 경쟁력 순위를 보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작은 도시들이 앞자리를 차지한다. 사람들은 큰 도시가 경쟁력이 높을 거라고 보지만 급성장하는 도시는 아주 작은 도시들이다. 그런 도시들을 보면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가령, 터키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는 카펫을 잘 팔 수 있게 정부와 지자체가 작은 공항을 만들어줬다. 지역 산업을 뒷받침할 인프라를 구축해준 거다. 그만큼 (정치) 리더십이 중요하다."

 

-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로컬 의제는 여전히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내가 MIT에 있을 때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게 도시 분야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리더십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하는 거였다. 도시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리더십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상당히 인텐시브(집중적인)한 코스였다.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건 도시 계획가로서 어느 정도 성장을 하면 결국 정치 리더가 되어 도시의 비전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시가 죽고 사는 건 리더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의 디트로이트가 가장 극명한 예다. 시장이 잘못된 판단을 해서 도시가 아직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같은 기간 뉴욕이 성장한 건 좋은 리더를 만난 덕이다. 도시 계획 프로그램에는 리더십 프로그램이 꼭 필요하다.

 

도시가 바뀌려면 로컬 크리에이터만으로는 어렵다. 리더의 역할이 크다. 그들에게 비전을 주고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것도 리더의 역할이다. 자신의 정치적 야심이 아니라 지역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 무얼 할 것인지 고민하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그게 로컬 중소도시를 살리는 열쇠다."

 

- 우리나라 정치 리더들도 많이 만나봤을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나.

"영국에 있을 때부터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다. 지금도 관료들이나 지자체장들은 벤치마킹할 수 있는 외국 사례를 알려달라고 요청하는데, 그런 질문을 받으면 먼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공부하라고 답한다. 자기 도시의 문제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자기 도시의 문제를 깊이 파악해야 다른 도시가 가진 특성과 문제도 보인다. 한 도시만을 벤치마킹하려는 건 의미가 없다."

 

- 우리나라 지자체들도 때가 되면 'OOOO 5개년 계획' 같은 것들을 발표하지 않나.

"향후 10년의 계획은 있어야 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유연한 계획이어야 한다. 영국에 있을 때 10년 계획을 아주 유연하게 세우는 것을 보고 놀랐다. 큰 방향을 정하고 해마다 평가를 해나가면서 계획을 조금씩 바꾼다. 이렇게 유연한 구조로 가야 한다. 도시는 굉장히 유기적으로 변하는데 옛날처럼 한 번 세운 계획을 수십 년 동안 쥐고 가면 안 된다. 사회 경제적인 상황에 맞춰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여러 방향을 생각해야 한다.

 

도시가 발전하려면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무턱대고 청년들을 지원해 보자는 생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도시 정체성이 사라질 수도 있다. 도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큰 틀에서 정하고 거기에 맞는 산업과 사업을 지원해야 한다. 방향성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사람에 대한 투자도 큰 그림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 도시 연구자로서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

"우리나라는 그동안 지나치게 개발 위주로 도시 문제를 다루다 보니 지역이나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도시 문제는 사회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도시를 구성하는 것도, 또 도시를 살리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이해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이런 철학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함께 의미 있는 사례를 만들어 보고 싶다."

오마이뉴스 윤찬영(sesayon)

 

지금 한국은 초저신뢰 사회다

불공정사회를 펴낸 이진우 교수를 만나 한국 사회의 갈등과 분노에 대해 물었다. 그가 내놓은 핵심 키워드는 신뢰였다. 국민이 권력을 믿지 못하고, 개인이 타인을 믿지 못해 갈등 회복이 어렵다.

지난 8불공정사회를 펴낸 이진우 포항공과대학교 석좌교수(인문사회학부)는 정치철학자다. 독일에서 프리드리히 니체 연구를 수행했고, 한국의 현실 정치에 대한 책도 여러 권 출간했다. 이 교수를 만나 한국 사회의 갈등과 분노에 대해 물었다. 그가 내놓은 핵심 키워드는 신뢰였다. 국민이 권력을 믿지 못하고, 개인이 타인을 믿지 못하기에 갈등을 회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비관적이었다.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앓아온 이 질병의 예후가 몹시 나쁘다고 그는 본다.

 

이번 조사에서는 정부와 공권력, 시스템의 문제에 대한 불신이 읽혔다. ‘자력 구제를 대안으로 꼽는 목소리도 나온다.

 

비극적이고 심각한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신뢰를 바탕으로 성숙하는데, 다양한 지표상 한국은 초저신뢰 사회에 가깝다. 가족 단위의 소규모 집단만 믿고, 더러는 가족도 믿지 못한다. 적나라하게 파편화된 사회라고 봐야 한다. 타인을 신뢰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한다. 개인의 권리가 훼손될 때 갈등을 조정하고 상황을 바꾸는 게 국가의 법과 제도인데, 이걸 신뢰하지 못하면 각자의 자기방어 본능만 남아 서로 부딪힌다. 그렇다고 건강한 개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기 이익과 권리는 챙기지만 사회적 책임의식은 없다.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딛고 일어서야 할 경쟁 상대라고만 판단한다.

 

이진우 교수는 사람들이 시스템을 믿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 정치세력의 양극화에 있다고 말한다.시사IN 신선영

 

왜 시스템을 믿지 못할까?

근본적 원인은 정치세력의 양극화라고 생각한다. 우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제도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면 시스템을 신뢰할 수 없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쓴 책 중간에 서야 좌우가 보인다에서도 현실 정치를 다뤘는데, 이때도 우리 사회가 분열되고 양극화되었다는 조짐이 보였다. 다양성이 없고, 중도가 없다. 본래 문화적으로 진보적인 사람이 경제적으로는 보수적이고, 경제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도 정치적으로 진보적일 수 있다. 다층적 갈등이 발생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이게 당연하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는 좌우 이분법이 통한다. ‘진보적 집단’ ‘보수적 집단만 남아 이 문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민주주의 제도는 정착되어왔지만 민주주의적 태도, 생활민주주의는 무너져 있다.

 

불공정사회에서 한국인은 관용이 없는 갈등 사회에 살고 있다고 적었다.

다양한 이념과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제도가 민주주의다. 존 롤스는 이를 공정한 협력체계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의견이 다른 상대를 협력 대상은 물론 경쟁자도 아니고, ‘제거 대상으로 파악한다. 이 인식은 부의 분배에 대한 관점에도 악영향을 준다. 사회가 공정한 협력체계라고 인정한다면 내가 얻은 지위와 부에 사회가 기여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노력과 능력을 들여 성과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협동의 산물이고, 사회의 이익이 포함되어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한국 사회처럼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고 경쟁만 긍정하는 곳에서는 타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식이 자라날 수 없다.

 

공정과 능력주의는 수년간 한국 사회의 화두였다.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연관이 있나?

그렇다. 지난 10년간 포항공대에서 사회문제를 토론해보니, 대부분의 학생이 양극화나 빈부 격차, 새로운 빈곤 문제에는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능력주의 비판에는 거부감을 보였다. 한국 청년 대다수가 그러리라고 본다. 그런데 사회적 이익의 배분이 지위나 계급, 신분이 아니라 개인 능력에 따라 배분되어야 한다는 능력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부모의 지위와 같은 비능력적 요소가 영향을 줘선 안 된다. 20대가 제기하는 공정 문제는 능력에 따라 보상받지 못하는 구조다. ‘돈도 실력이야라는 정유라의 글이 논란을 불렀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조국 사태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 사건들뿐만 아니라 생활하면서 피부로 느낀 바가 누적되었다고 본다. ‘능력주의라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것, 즉 제도를 신뢰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요구다.

 

흉악 범죄나 집단 일탈에 대해서는 공권력을 확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감지된다.

상당히 위험한 요소다. 우선 공권력의 기능을 어디까지 확장할지가 모호하다. 가령 사회에 범죄 집단이 많으면 강력한 경찰력을 요구할 수 있다. 모든 범죄자를 색출하고 엄하게 처벌해 시민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처럼 AI 감시시스템을 활용해 국민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는 빅브라더를 원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두 번째로, 공권력 통제가 사회 구성원들의 존재 자체를 붕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노동자 권익을 향상시키려는 이익집단이 없다면 노동 현실이 나아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누가 보더라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이단·사이비 교회도 있을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의 역량은 이런 집단들의 갈등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조정하는지에 달려 있다. 갈등 조정 능력이야말로 유일한 쟁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해서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는 것은 이 사회적 기능이 떨어져 있다는 의미다. 국가 시스템을 믿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공권력을 요구하는 게 대단히 모순적이다. 나를 간섭하고 구속하는 국가는 싫어하는데, 다른 이해집단과 갈등을 겪을 때는 (이들을 진압할) 강한 경찰과 군대를 요구한다.

 

이번 분석 결과 한국 사회에 대한 불만은 높은데, ‘한국인상()’은 긍정적이었다.

제주도 예멘 난민 신청 사건은 이른바 국뽕과 연결시켜 볼 수 있다. ‘난민은 도덕의식이 없고 테러 범죄 가능성이 높다는 식의 편견이 가득했다. 추후 거짓으로 밝혀진 뉴스도 여럿 나돌았다. 타 문화에 대한 존중과 이해도가 아주 낮다. 이런 생각이 우리 자존감을 높여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타인과 비교 없이도 자기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자존감이다. 우리 사회는 스스로를 타인에 견줘 평가하려는 자존심만 강하다. 반대로 국뽕은 (선진국) 외신 보도에서 비롯된다. 정책도 행정도 일본과 비교하고 서구와 비교한다. 남들과 비교해 가치를 높이려는 태도는, 남들 시선이 바뀌면 언제든 자기 인식도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책에서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 통합 관점에서 본다면 문재인 정권은 매우 무능하다. 이 정권은 정치적 자원이 많았다. 촛불혁명에 국민 80~90%가 지지를 보냈다. 지금은 촛불을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민이 양쪽으로 쪼개지고 진영 간에 대화와 소통이 없다. 강력한 지지를 갖고 출범했음에도 대립을 심화시켰다는 점에서 박하게 평가한다. 차기 대선에서 한국을 이끌어갈 지도자가 어느 진영에서 나오든 신뢰를 구축할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이 작업은 오래 걸린다. 지난 4년간 문재인 정부가 이루지 못한 것이라, 차기 정권의 핵심은 국민 통합, 신뢰 구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사인 이상원 기자

 

 

저기선 소리 여기선 곡소리? 각 도시 사장님들의 다른안부

코로나19 사태가 19개월째를 맞았다. “살려달라550만 자영업자들의 절규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주간경향이 인터뷰한 파리, 도쿄, 애틀랜타, 토론토의 식당 사장님들은 정부지원금 덕에 버틸 만하다고 입을 모았다. 자영업자에 대한 보상과 지원이 당연했던 여러 도시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주변이 한산하다. / AP연합뉴스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되던 지난해 4월 미국 뉴욕의 타임스스퀘어 거리가 텅 비어 있다. / AFP연합뉴스

지난해 여름 일본 도쿄 신주쿠구의 유흥가인 가부키초에서 주점들이 영업 중이다. / 교도통신연합뉴스

 

100만원을 빌리면 이자가 20만원. 충남 천안에서 대형 카페를 운영하는 허희영씨(45)는 올해 끝내 사채에 손을 댔다.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곤두박질쳐 최근엔 반의반 토막이 났다. 폐업을 하면 각종 대출금을 상환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담보 잡힌 아파트가 넘어갈 것이 뻔했다. 아홉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고시원에 갈 수는 없었다. 불법 사금융 전단지를 보고 급하게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돌려막기를 반복한 결과 현재 그의 사채는 1억원이 넘는다.

 

코로나19 사태 19개월째. 550만 자영업자들이 살려달라며 절규하고 있다. 호프전문점, 주점, 노래방, 식당들이 줄줄이 스러지는 가운데 폐업조차 어려운 자영업자들도 있다. 폐업하면 갚아야 하는 대출금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지난 1년간 자영업자들이 빌린 돈은 130조원에 이른다(한국은행 가계부채 DB).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의 현실은 신종 감염병이 초래한 천재지변인 걸까. 나랏돈을 풀어 시민의 경제활동을 보호한 사례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간경향이 지난 827일부터 2주간 전화와 e메일로 인터뷰한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 미국 애틀랜타, 캐나다 토론토의 식당 사장님들(한국 교민)1인당 1~2억원의 코로나19 지원금을 받았다. 허희영씨는 같은 기간 600만원을 받았다. “자영업자가 말라죽어가는 현실은 감염병의 비극이 아니라 정책의 비극이다.

 

프랑스, 일본, 미국, 캐나다는 코로나19 재정지출에 많게는 국내총생산(GDP)25.4%, 적게는 9.6%를 투입했다. 한국의 지출규모는 4.5%였다. 재정을 아끼니 자영업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주간경향의 취재에 응한 이모씨가 운영 중인 프랑스 파리의 한식당 / 이씨 제공

 

그동안 정부의 방역시스템은 자영업자의 영업을 옥죄며 굴러갔다. 그들의 감내가 장기화해서일까. 잇따른 차량시위도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국회에서 한 자영업자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잘못이 있으니 매를 맞겠지라고 판단하는 무심한 관전자 입장이 돼 가는 것 아닌가.”(곽아름씨)

 

자영업자의 아픔은 당연하지 않다. 어느 누구의 고통도 관전 거리가 돼서는 안 된다. 파리, 도쿄, 애틀랜타, 토론토의 식당 사장님들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들은 자영업자가 파산하면 고용은 줄고 미래의 국가 부담은 더 늘어난다. 자영업자 지원은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미래를 위한 효율적 선택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파리 사장님 “1억원 받았습니다

프랑스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진 것은 지난해 3월부터다. 당시 정부는 전국 상점에 봉쇄령을 내렸다. 파리에서 23년간 한식당을 운영해온 이모씨(66) 역시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그는 이때만 해도 “200일 넘게 쉬게 될 줄은생각지 못했다. 코로나19 확산 수준에 따라, 봉쇄령이 풀릴 때도 있었지만 이내 재발령되기 일쑤였다. 지난해는 사실상 내내 휴업상태였다.

 

지난해 봄 이씨의 식당엔 7명의 직원이 있었다. 식당 휴업으로 일을 쉬게 된 직원의 급여는 국가가 책임졌다. 직원들은 정부로부터 매달 기존 실수령액 84%를 받았다. 이씨가 추가로 내야 하는 돈은 없었다.

 

정부는 봉쇄기간에도 포장판매는 허용했다. 이씨 역시 포장영업을 고민했다. 만약 직원이 나와 일하게 된다면, 사업주는 나머지 16%를 부담하면 된다. 그러나 그만큼의 돈을 더 받자고 일하러 나오겠다는 직원은 별로 없었다.

 

결국 포장판매도 못 하게 됐지만, 생활고에 신음할 만큼의 상황에 이르지는 않았다. 지난해 3월부터 월 1500유로(207만원)씩 받았기 때문이다. 가장 골칫거리인 임대료는 국가보증 대출을 4만유로(5500만원)를 받아 해결했다. 정부는 자영업자들에게 기존 매출액의 최대 30%까지 융자 지원을 했다.

 

정부의 지원이 있었지만, 프랑스의 자영업자들도 고통이 컸다. 이씨는 셧다운이 잦다 보니 지난해 가을엔 매물로 나온 가게들이 많았고, 돈 많은 업자는 싸게 나온 매물을 주우러 다니는 현상이 벌어졌다고 했다.

 

게다가 당시 프랑스에선 코로나19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그해 1028일 또 한 번의 대대적 봉쇄가 불가피하다는 담화를 발표한다. 대신 이때부터는 정부 지원규모가 더 커졌다. 지난해 11월부터 이씨와 같은 사장님들은 월 1만유로씩(1381만원) 받기 시작했다. 이 지원금은 거리 두기를 전제로 영업이 정상화된 올해 5월 즈음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여름 프랑스 파리의 번화가인 생제르맹데프레 거리에 있는 카페 카페 드 플로르의 직원들이 개점 준비를 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올 초여름, 파리의 거리는 예년의 모습을 찾아갔다. 이씨도 5월 하순부터는 영업을 지속할 수 있었다. 다만 거리 두기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100석이 넘는 좌석수를 줄여야 했다. 정부는 이 시기의 매출 손실분도 지원했다. 그는 5~6월간 대략 3500유로(480만원)를 받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씨가 지원받은 금액은 약 82000유로(11300만원). 프랑스와 한국의 물가차이를 고려해 빅맥지수(유럽은 한국의 1.26)로 보정해봐도 9000만원 수준이 된다.

 

폐업조차 어려운 한국 사장님

다른 식당들도 최소 1억원씩은 다 받았다고 말하는 이씨에게 재정악화 우려 목소리는 없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영업자가 폐업하고 파산할 경우 국가는 그들의 삶을 돌볼 의무가 있기 때문에 더 큰 비용이 나갈 수도 있다세금을 낸 것만큼 공화국 시민의 권위를 보호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답했다.

 

이씨는 오히려 곤경에 처한 자영업자들을 지켜보고만 있는 한국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했다. 그는 자영업자는 다른 이의 도움 없이 스스로를 고용한 사람들이고, 이익이 발생하면 각종 세금을 내고 온갖 부담을 진다면서 이들의 몰락을 구경만 하고 있는 국가는 존립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같은 기간 한국의 사장님들은 얼만큼의 지원금을 받았을까. 파리의 이씨와 유사한 규모(100)로 식당을 운영하는 한국 인천의 이영재씨(59) 사례를 살펴봤다. 그는 지난해 추석 연휴를 앞두고 200만원(새희망자금), 올봄 300만원(버팀목자금) 그리고 최근 900만원(희망회복자금)을 지급받았다. 합하면 1400만원이다. ‘파리 사장님이 받은 지원금의 약 15%.

 

2019년 창업할 당시 6억원의 자금을 대출 없이 마련했던 이영재씨는 얼마 전 집을 담보로 1억원의 빚을 냈다. 마이너스통장을 만들고 각종 대출을 끌어모아 5000만원을 만들었지만 벅찼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의 소상공인 대출지원도 있었으나 이씨는 2000만원밖에 대출받지 못했다.

 

한때 11명에 달하던 직원은 4명으로 줄었다. 정부는 휴직자에 대한 고용유지지원금을 지원했지만 빚으로 버티는 그는 사업주 몫이 부담스러워 신청하지 않았다.

 

이영재씨는 한국은 코로나19 충격이 크지 않아 재정을 더 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홍남기 부총리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인생을 부정당하는 모멸감 같은 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의 창업자금 6억원은 새벽 1시에 자고 6시에 일어나며치열하게 직장생활을 했다는 증거였다. 그는 최근 가게를 내놨다. 권리금이라도 받고, 빨리 폐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식당에 쏟아부은 6억원은 증발하고, 빚을 떠안게 되겠지만 더는 추락할 수 없었다.

 

만약 2년 전에 제가 그 6억원을 가지고, 대출을 더 받아 아파트를 몇채 사서 굴렸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저는 그런 불로소득이 싫어서, 땀 흘리며 일하고 싶어서 가게를 열었는데 제 생각이 틀렸나 봅니다.”(이영재씨)

애틀랜타 사장님은 2억원

GDP25.4%를 코로나19 대응에 쏟아부은 미국의 자영업자들 사정은 어떨까. 6년간 애틀랜타에서 일식당을 운영 중인 김모씨 부부의 사례를 살펴봤다.

 

애틀랜타의 김씨 역시 파리의 이씨처럼 코로나19 하면 락다운 충격부터 떠오른다고 했다. 지난해 3월 정부의 봉쇄 발표 이후 매장영업이 중단됐다. 테이블 위에 의자를 모두 올려 다이닝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표시했다. 김씨 부부는 대신 포장영업에 집중했다. 12명에 달하던 직원도 4명으로 줄였다. 코로나19로 실업급여가 강화됐기 때문에 반발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정부의 지원금은 그해 6월부터 나왔다. ‘급여보호프로그램(PPP)’에 따라 약 3개월간의 락다운에 상응하는 지원금 6만달러를 받았다. PPP 자원금은 일단 대출 형태로 지급되지만 직원고용과 사업장 유지에 사용했음을 증명하면 모두 탕감된다. 무상지원이나 마찬가지다.

 

김씨는 6만달러를 두달 반 동안 모두 소진했는데 대략 4만달러는 직원 월급에, 2만달러는 임대료와 관리비에 썼다고 했다. ‘급여보호를 위한 지원금인데 이 돈으로 임대료까지 내도 되는 걸까. 김씨는 직원을 고용하려면 일단 식당을 유지해야 하니까, PPP 지원금으로 렌트비와 유틸리티 비용 지출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PPP지원은 한차례에 그치지 않았다. 김씨네 식당은 올 상반기에도 한 번 더 6만달러(2PPP 지원금)를 받았다. PPP 외에 레스토랑 회생 자금(RRF)지원도 있었다. 김씨 부부가 받은 RRF 지원금은 대략 6만달러였다. 나아가 한국으로 따지면 군청 격인 카운티로부터는 15000달러를, 주정부로부터는 5만달러를 지원받았다.

미국 애틀랜타의 김모씨가 운영 중인 일식당. 코로나19가 닥치기 전에 촬영한 사진이다. / 김씨 제공

 

코로나19 이후 김씨 부부가 자영업자로서 받은 지원금은 모두 245000달러다. 한화로는 약 28500만원이다. 미국과 한국의 물가차이를 고려해 빅맥지수(미국은 한국의 1.4)로 보정하면, 2억원이다.

 

같은 기간 한국의 허희영씨가 받은 지원금을 살펴보자. 대형 카페를 운영하는 그는 김씨 부부와 업종은 다르지만 기존 고용 규모(11)가 비슷한 수준이었다.

허씨는 올봄 200만원(버팀목자금)을 받고 최근 희망회복자금으로 400만원을 받았다. ‘애틀랜타 사장님’(2억원)3%.

 

한국은 미국의 PPP처럼 일하는 직원에 대한 급여지원은 없었다. 대신 휴직자의 수당 상당액을 지원(고용유지지원금)했다. 허씨는 이 지원금으로 직원 2명을 휴직케 했지만 6개월 만에 중단했다. 사채를 쓰는 마당에 사업주 몫을 계속 부담할 수는 없었다. 잠시나마 받았던 고용유지지원금은 1600만원 수준. 이 지원금까지 합한다 해도 애틀랜타 사장님이 받은 지원금의 10분의 1이다.

 

부정수급부작용도 있지만

물론 대규모 재정을 지출한 국가에선 부작용이 없지 않았다. 미국은 물론 캐나다(GDP 대비 15.9% 지출)에서도 부정수급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한화로 따지면 약 14000만원의 지원금을 받은 캐나다 토론토의 라면가게 자영업자 김모씨는 정부지원을 받기 위해 허위로 직원을 만들거나 매출액을 떨어뜨리기 위해 현금만 받는 사업장 등 각종 부정수급 사례가 나온다면서도, 그럼에도 재정정책 자체는 매우 신속히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규모가 있는 식당의 경우 대개 25~30만캐나다달러(23000~27000만원)를 받았다“15만캐나다달러를 받은 저는 지원폭이 낮은 수준에 속한다고 덧붙였다.

봉쇄령이 풀리자 영업을 재개하고 있는 캐나다 토론토의 한 의류상점 / 로이터연합뉴스

 

캐나다 정부가 (부정수급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부작용을 감수하고라도 경제가 굴러가도록 만드는 일이 급선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도 정책이 의회에서 막히는 일은 있지만, 이번 코로나19 지원 정책은 한차례도 의회에서 거부된 적이 없습니다. 정부의 신속하고 전폭적인 지원 덕에 소상공인이 점포 문을 닫거나 파산한 경우는 적어도 제 주변엔 한사람도 없습니다.”(토론토 자영업자 김모씨) 충분한 액수의 긴급수혈이 가장 효율적인 대응책이라는 점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찔끔 지원금만 덧대다가 폐업이 속출한 올해에 이르러서야 정당한 보상논의가 시작됐다. ‘골든타임이 한참 지났다. 손실보상법이 국회를 통과하긴 했지만 올 7월 이후의 손실분만 법을 적용하기로 했다. 법안 논의 과정에서 기획재정부가 “(코로나19 기간 전체에 대해 보상을 하면) 기존에 지급된 지원금은 환수해야 할 수도 있다면서 난색을 표해 결국 이들의 의견이 관철됐기 때문이다. 2019년 연매출이 65000원이었으나, 이제까지 600만원을 지원받은 허씨는 정부의 환수논리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는 여당은 지난해의 손실보상도 (법안에) 넣겠다고 했다가, 결국은 지키지 못했다면서 처음부터 희망고문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했다.

 

도쿄 야키니쿠 사장님은 42000만원

코로나19 국면에서 한국의 K방역은 여러모로 일본보다 앞서 있었다. 최근 일본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150만명을 돌파했다. 한국(27만명)6배에 달한다. 그러나 재정지출 규모 면에서는 일본이 한국보다 나았다. 일본은 GDP16.5%를 풀었다. 한국(GDP 4.5%)4배다.

지난 712일부터 822일 사이 오후 8시까지 영업제한을 알리는 안내판이 일본 도쿄 야키니쿠 가게 내부에 붙어 있다./김형재씨 제공

 

일본 도쿄에서 야키니쿠 가게 2곳을 운영 중인 김형재씨(55)의 사례를 보자. 야키니쿠는 한국의 갈비와 유사한 음식이다. 도쿄 스카이트리 인근에 본점, 마츠야역 근처에 분점이 있다. 본점은 벌써 문을 연 지 27년이 됐다. 제대하고 일본에 유학 갔다 눌러앉았다. 타지에서 장사해 번 돈으로 두 자녀를 키웠다.

도쿄는 아직 긴급사태선포 지역이다. 일본은 도쿄에서만 8월 한때 50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왔다. 이달 말까지 긴급사태 상황은 이어진다. 긴급사태가 발효되면 밤 8시까지만 영업이 가능하고, “원래 야키니쿠와 맥주, 레몬사와 하이볼을 판매하는데술도 팔 수 없다. 그는 여러 재난을 겪었지만 코로나19여태까지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라고 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때보다 장사가 더 어렵다고 장사하는 이들끼리 이야기한다.

 

본점은 테이블 9개에 59.5(18), 분점은 66.1(20) 규모다.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만 총 14명이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직원을 한명도 줄이지 않았다. 매출 감소폭은 27년 중 가장 컸지만, 올초부터 일종의 방역 협력금 형태로 가게당 하루 최대 10만엔(105만원·긴급사태 선포시 지급)까지 지급돼 그래도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본점은 상한선인 10만엔, 분점은 8만엔을 받는다. 2019년 매출액과 코로나19 확산 이후 매출 감소액을 비교해 책정한 액수다.

일본 도쿄에서 야키니쿠 가게를 운영하는 김형재씨의 가게 내부

 

지금까지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급된 방역 협력금을 합치면 4000만엔(42300만원·식당 2곳 합산)이다. “신청하면 지급까지 3개월씩 걸리지만 그래도 주는 게 다행이다. 20204월에는 무이자·무담보 융자 지원을 해준다고 하길래 만약을 대비해 8000만엔(84600만원)을 빌려놨다. 2023년부터 갚아나가면 된다.

 

일본 도쿄의 신오쿠보에서 냉면집을 8년째 운영하는 차종일씨(53)가 받은 지원금도 한국과 비교하면 진짜 천만다행으로 버틸 수 있는만큼 나왔다. 그는 1993년 일본으로 넘어와 20년간 회사생활을 하다, 한국에서 냉면집을 하는 어머니의 가게를 일본 분점으로 열었다. 좌석은 35. 일본 손님이 더 많다. 7년간 꾸준히 매출이 늘다, 코로나19가 확산되고 나서 매출이 2019년 대비 60%가량 줄었다.

 

매출 감소를 지원하는 범위는 넓다. 지원금 총액도 문 닫을 걱정까진 안 해도 될 만큼 나왔다. 코로나19 이후 지금까지 받은 지원금은 1770만엔(19000만원). 항목별로 따져보면 월세지원금(6개월·170만엔·1792만원), 방역 협력 서약서를 쓰고 받는 지원금(1400만엔·14900만원) 등이 나왔다. 3000만엔(31700만원)의 융자도 받았는데 그중 500만엔의 이자는 구에서 지원해준다. 나머지 2500만엔은 연이율이 1.3~1.6%. 일본 정부는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배달·포장용 물품까지 지원했다. 차씨는 일회용 용기, 젓가락, 메뉴판 제작비(액수 68만엔·720만원)를 지원받았다.

 

일본의 자영업자 지원에는 여러 배경이 있다. 일본은 올림픽 개최(7)와 선거(9) 일정 때문에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기도 했다. 올림픽 개최 기간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선 안 됐고, 적절한 자영업자 지원은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컸다. 반면 악조건도 있었다. 일본은 2020, 11년 만에 세수입이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부동산 세수 등이 늘어 오히려 코로나19 국면에서 세수가 증가한 한국과는 정반대였다. 지원금만 받고 아예 문을 열지 않는 가게도 종종 보였지만, 정부의 자영업자 지원에 불만 여론은 커지지 않았다.

 

한국 자영업자들이 묻는다

한 어르신이 평생 모은 돈 10억원에, 대출 10억원을 받아 볼링장을 차리셨대요. 영업이 잘 되다가,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었다고 합니다. 임대료를 못 내 끝내 폐업했는데, 대출금 10억원을 어떻게 갚아요. 집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셨대요. 얼마 전 그분 가족에게서 들은 얘기입니다.”

 

지난 2월 국회 앞에서 삭발했던 허씨는 번호를 어떻게들 아는지 자꾸 전화가 걸려온다고 했다. 주로 자영업자나 그 가족들이 사연을 털어놓고 대신 싸워달라고 부탁하는 전화다.

 

앞장서 싸우다 보니 허씨는 공무원들과도 얘기할 기회가 몇차례 있었다. “한국은 자영업자 비중이 높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코로나19 아니었어도 폐업할 가게였을지 모르는데 왜 지원하냐는 거죠. 그런데 자영업자가 왜 많아졌을까요. 50대에 회사에서 잘렸는데 받아줄 곳 없으니까 가게를 차리는 거잖아요. 그게 그분들 책임인가요. 이런 구조를 방치한 정부 잘못은 없는 건가요. 비명 한번 못 질러보고 돌아가신 자영업자들의 얘기는 왜 언론에는 잘 나오지도 않나요.”

 

허씨의 질문에 한국사회는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한국의 국가채무는 GDP48.7%(지난해 기준), 선진국들(미국 133%, 프랑스 116%, 일본 225%)의 절반이 안 된다. 그럼에도 국가부채 증가를 우려하는 보도는 계속되고 있다. 전대미문의 신종 감염병 사태에서 국가 재정을 아낀 선택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

송윤경·김원진 기자 kyung@kyunghyang.com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자체 곳간만 같아라?

ㆍ일부 지자체 일반 예비비 수백억원 남아재정안정화기금 등 곳곳에 남는 돈

 

예비비 편성을 최소화하고, 재정 지출 확대를 위한 적극적인 예산 편성과 집행을 통해 잉여금이나 불용액 발생을 좀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해주시고요”(이혜원 양평군 의원·국민의힘). 지난 20201215일 경기 양평군의회 본회의. 지방자치단체에 예비비로 남는 예산을 열심히 쓰자는 제안이 나왔다. 당시 코로나19로 피해를 입는 이들이 계속 늘어나던 상황이었다.

지난 827일 열린 서울시의회 임시회 1차 본회의 / 서울시의회 제공

 

지난 98일 서울 관악구의회 본회의. 이번에도 예비비가 논란이 됐다. “갑자기 늘어난 예산에 당황해 이것저것 쓸 수 있는 데는 다 쓰고도 200억이 넘는 돈이 남아 190억을 예비비로 편성했습니다”(이기중 관악구의원·정의당). 이기중 구의원은 이날 자영업자들은 말라죽는데, 왜 남는 예산을 안 쓰는지모르겠다며 벼랑 끝에 몰린 주민들을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주장했다.

 

지자체의 예산 중 예비비는 쓰지 않고 남은 예산에 가깝다. 지방자치의 근간인 지방자치법은 재정을 균형 있게 써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운다. 돈이 있는데도 안 쓰는 게 능사는 아니다. 균형 있게 재정을 써야 한다는 원칙에는 꼭 너무 낭비하지 말라는 의미만 있지 않다. ‘너무 남기지 말고시민에게 거둬들인 세금을 적재적소에 쓸 수 있을 만큼 써야 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예비비가 쌓인 지자체는 적극적으로 예산을 써 시민의 피해 지원에 나섰을까. 주간경향은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된 2020년 예비비 결산자료를 조사했다. 서울(25)과 경기(31)의 기초지자체,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 6대 광역시의 기초지자체 49곳의 예비비 내역을 분석했다. 각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2020년도 결산서를 찾았고, 결산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하지 않은 일부 지자체에는 별도로 요청해 확인했다. 분석이 어렵게 결산서 파일에 키워드 검색을 막아놓은 곳도 보였다.

 

지자체들도 할 말은 있고, 저마다 사정을 이야기한다. “코로나19 때문에 계획된 대형 사업을 못 했다”(부산 A)거나 코로나19로 출장 혹은 대면업무가 줄어 예비비가 누적됐다”(서울 B)는 항변이 가장 많이 나왔다. “예비비에 쌓아두지 않고 또 다른 항목(기금)으로 남는 예산을 돌려둔 지자체가 많은데, 이들은 왜 지적하지 않느냐는 주장(경기 C)도 들렸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코로나19로 출장을 못 가 돈이 쌓였다면, 적어도 그만큼은 코로나19 대응에 쓸 수 있었던 것 아닌가”(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라는 지적처럼 시민이 낸 세금이 재난상황에 적극적으로 쓰이지 않은 사실은 변함이 없다.

 

코로나19 속 남는 예비비

예비비는 크게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로 나뉜다. 일반회계 예비비는 비교적 지자체에 재량권이 주어진 예산이라면, 특별회계 예비비는 특정한 목적에만 쓸 수 있는 계정에 남게 된 돈이다. 일반회계 예비비는 지자체 의지에 따라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나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 지원에 쓸 수 있다. 특별 예비비는 ‘OO지구 개발처럼 특정 쓰임을 목적으로 한 예산 중 남은 돈이다. 대부분 지자체 조례에 특별 예비비 용도를 규정해놨다.

 

지자체가 코로나19에 적극 대응했는지 가늠하기 위해 주목할 항목은 일반회계 예비비다. 일반회계 예비비가 쌓였다면 지자체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시민에게 예산을 적극 활용하지 않았다고 추론할 수 있다. 시민 입장에선 세금을 내고도 마땅히 받아야 할 행정서비스를 돌려받지 못한 셈이다.

 

서울 25개 자치구별 일반회계 예비비를 보면, 100억원 넘게 예비비를 남긴 곳이 발견된다. 서울에선 중랑구(2614000만원)가 예비비를 가장 많이 남겼다. 성북구(1361490만원)와 강서구(1667615만원)의 일반회계 예비비가 뒤를 이었다. 지방재정법은 일반회계 예비비는 전체 예산의 1%에서 편성하도록 한다. 중랑구는 2020년 예산이 8070억원이었는데, 일반회계 예비비가 전체 예산의 3.24%(2614000만원)였다.

 

경기도 31개 시·군에서는 2020년 이천(389936만원원), 광명(3461968억원), 하남(3384871만원)순으로 일반회계 예비비가 많이 남았다. 이천과 하남은 20205차례 추경을 했다. 광명은 같은 해 6차례 추경을 진행했다. 추가예산 편성을 통해 코로나19 확산으로 피해를 입은 시민에게 세금을 돌려줄 기회가 있었지만, 일반회계 예비비를 여전히 남겨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20년 상반기 코로나19 확산으로 큰 피해를 본 대구의 자치구들도 일반회계 예비비가 쌓였다. 동구(3599582만원), 서구(2162159만원), 남구(2772587만원), 북구(2237591억원)에서 일반회계 예비비를 모두 200억원 넘게 남겼다. 달성군만 남은 예비비가 없었다. 인천의 동구, 연수구, 남동구, 부평구, 계양구의 일반회계 예비비 또한 100~200억원 사이에 분포했다. 부산 금정구(481억원), 남구(416억원)에서도 적지 않은 일반회계 예비비가 남았다.

재정안정화기금도 남는다

달성군처럼 상대적으로 일반회계 예비비를 많이 남기지 않은 지자체도 보였다. 서울에서는 종로(33357만원), 강남(42000만원), 성동(125000만원), 마포(171120만원)의 일반 예비비가 적었다. 은평구는 일반회계 예비비가 ‘0’이었다. 경기에서는 연천, 여주, 의왕, 양주, 의정부, 안양, 안산의 일반회계 예비비가 ‘0’이었다.

 

일반회계 예비비의 절대액이 적다고 해서 지자체가 예산을 적극적으로 썼다고 단정짓긴 어렵다. 예비비가 아닌 다른 항목에 남는 돈을 옮겨놓은 지자체도 최근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이 대표 사례다. 강남의 올해 8월 기준 회계를 보면 재정운용(안정화)기금4391400만원이 쌓였다. 광진구(3776700만원)나 관악구(1641100만원)의 재정안정화기금도 적지 않게 모였다.

 

재정안정화기금은 201611월 도입됐다. 세입 감소나 지역 경기침체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쌓아둔 돈이다. 예비비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용 목적이 명확한 편이다. 지자체 의지만 있었다면, 코로나19 국면이 재난 상황임을 감안해 재정안정화기금을 지역 경기침체 시 사용목적에 맞게 적극 써도 됐다.

 

사용처가 정해진 특별회계 예비비에도 함정은 있다. 일반 예비비가 3억원 정도에 불과한 서울 종로구의 전체 예비비는 2841900만원에 달한다. 특별회계 예비비가 많이 남아서다. 2019년 말 지자체 특별회계 예비비 잔액은 약 6조원이었다. 종로구의 특별회계 예비비는 2808000만원인데, 이중 주차장 특별회계2788400만원이 쌓였다. 종로 외에도 서울 중구(3445400만원), 용산구(2146850만원), 마포구(5026132만원), 서초구(2558300만원), 송파구(3398387만원)에서 특별회계 예비비 중 주차장특별회계 규모가 컸다.

지난 5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위-서울시 구청장 정책현안 회의 / 연합뉴스

 

주차장특별회계에는 주차장 건설, 관리, 주차단속 등 주차 업무에 쓰일 목적의 돈이 쌓인다. 주로 주차 과태료가 주차장특별회계로 간다. 여러 지자체에서는 서울은 추가로 주차장을 지을 공간이 부족해 주차장특별회계에서 큰돈 쓸 일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용도가 제한적이라고 하지만, 특별회계 예비비를 코로나19처럼 위급상황에서 사용할 방법은 있다. 20205월 지방재정법이 개정되면서 특별회계 예비비를 융자 형태로 다른 용도로 쓸 수 있게 됐다. 특별회계 예비비 용도를 한정해놓은 조례를 개정해도 폭넓게 사용이 가능하다.

 

예비비는 왜 많이 남을까

2019년보다 코로나19가 퍼진 2020년에 전체 예비비가 더 남은 지자체도 보였다. 연도간 차이는 코로나19 국면에서 적극적으로 지자체 재정을 쓰지 않은 정황 중 하나다. 2020년 서울 자치구 예비비와 나라살림연구소에서 제공받은 2019년 예비비를 비교해보니, 서울 광진, 성북, 마포, 영등포에서 2020년 예비비가 전년 대비 10% 이상 늘었다.

 

지자체 예비비가 불어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상민 연구위원은 “7년 전쯤부터 전국에 예비비가 쌓이기 시작했다. 행정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예비비에 그대로 담긴다고 했다. 지자체는 세수 예측을 정밀하게 하지 않은 채 보수적으로 예산을 편성한다. 예산이 남으면 6~7차례씩 혹은 그 이상 추경을 진행한다. 중앙정부와 달리 한국 지자체는 경기가 나빠서가 아니라 예산이 남아 추경을 한다.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 한 가게에 전기사용계약 해지 예정 알림장이 여러장 붙어 있다. / 이석우 기자

 

추경을 해도 예비비가 많이 남는 이유로는 크게 두가지가 거론된다. 서울에선 자치구 사이 눈치보기의혹이 있다. 25개 중 24개 자치구 구청장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어서 서로 의견을 한쪽으로 모으기 쉬운 구조다. 예를 들어 서울시 구청장협의회를 통해 합의되지 않으면 코로나19 지원정책도 독자적으로 진행하길 꺼리는”(이기중 관악구의원) 식이다. 서울은 올해 부동산가격 상승으로 세수가 더 걷혀 예비비를 더 지출할 여력이 되지만, 서로 눈치보기가 작동한다면 이번에도 예비비 사용은 어려워진다.

 

예비비를 누구에게, 어떻게 쓸 방법을 떠올리지 않아 (혹은 못 해) 적극 집행하지 않기도 한다. “코로나19가 터지고 난 직후에는 사실 어디에, 어떻게 예비비를 써야 할지 잘 몰랐다”(대구 D)는 이야기처럼 예비비를 위기 상황에 쓰려면 적극 행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지자체장의 의지와 공무원들의 역량이 코로나19 국면에서 더 부각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목적 없는 목적성 예비비규제해야

균형재정 원칙따라 초과수입 발생 시 추가지출 계획 세워야

 

국가재정에 오해가 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가정 살림을 통해서 국가재정을 비유적으로 이해하면서 생긴 오해다. 그러나 가정 살림, 중앙정부 살림, 지방정부 살림 운용의 원칙은 모두 다르다. 가정은 경기가 안 좋으면 지출을 줄여야 한다. 수입이 늘면 지출을 늘릴 수 있다. 월급이 올라 소고깃집에서 외식하는 것이 가정 살림의 행복이다. 중앙정부는 반대다. 경기가 안 좋으면 오히려 지출을 늘려 적자재정을 펼쳐야 한다. 내수경기를 방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기가 회복되면 흑자재정으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마련하는 것이 원칙이다.

 

지방정부는 어떨까? 지방재정은 균형재정이 원칙이다. 흑자도 안 되고 적자도 안 된다. 수입만큼만 지출해야 한다는 의미다. 1조원을 벌면 1조원을 쓰고, 2조원을 벌면 2조원을 써야 한다. 거꾸로 말하면 1조원만 필요하면 1조원만 걷어야 한다. 중앙정부가 세금을 걷고 지출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부의 재분배 역할, 경기조절 역할 등이 있다. 그러나 지방정부가 세금을 걷고 예산을 지출하는 이유는 원칙적으로 행정서비스 제공이다. 거꾸로 말하면 시민이 지방정부에 세금을 납부하는 이유는 받은 행정서비스 비용을 지불한다는 의미다.

지방정부 균형재정 원칙은 지방회계법이나 지방재정법이 아닌 지방자치법에 명시된 원칙이다. 지방정부 균형재정 원칙은 재정운용의 기술적 측면이 아니라 지방자치제도의 본질이라는 의미다. 쉽게 말해 내가 지방정부에 돈을 내면 지방정부는 내가 낸 것만큼 행정서비스로 되돌려주는 것이 지방정부 재정운용의 원칙이다.

 

그런데 지방정부에 지나치게 많은 돈이 남아 있다. 2019년 말 기준 32조원의 남는 돈(순세계잉여금)이 존재한다. 아무런 행정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그냥 지자체 통장에 존재하는 돈이 32조원이다. 민간에 있으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내수경제에 보탬이 될 돈을 지방정부가 흡수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 돈맥경화를 일으키고 있는 돈이다.

 

물론 행정을 하다 보면, 어느 정도 돈이 남는 것은 당연하다. 초과수입이 생기거나 불용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자 예비비도 편성해야 한다. 만일의 사태가 생기지 않았다면 설정해놓은 예비비는 그대로 남게 된다.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다. 적절한 수준의 예비비는 당연하지만, 허용범위를 벗어난 예비비 설정은 막아야 한다는 얘기다.

 

원칙적으로 예비비는 일반회계의 1% 이내에서 편성해야 한다. 그러나 재난 대비 등 특정한 목적을 지정한 목적성 예비비는 1% 범위 밖에 존재한다. 문제는 이런 목적성 예비비의 설치 목적이 그 목적으로 사용할 돈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실질적으로는 발생한 수입에 맞춰 지출사업을 편성하지 못하거나 안 할 금액을 그냥 지출하지 않기 위한 용도로 쓰인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조금 설명이 더 필요하다.

 

중앙정부가 추경예산을 편성하는 이유는 메르스나 코로나19 같은 추가수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반면 지방정부가 추경예산을 편성하는 이유는 초과수입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균형재정 원칙인 지방정부는 초과수입이 발생하면 그만큼 지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추가수입만큼 지출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이때, 추경에서 예비비를 증액한다. 추경 때 예비비를 증액한다는 의미는 균형재정 원칙을 어기고 초과수입을 쓰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는 행정서비스에 대한 비용은 받았으나 행정서비스는 제공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목적 없는 목적성 예비비를 규제해야 하는 이유다./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

김원진·김서영 기자 onejin@kyunghyang.com

오세훈 "박원순, 서울시에 '대못' 박아놨다"

오세훈 서울시장.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오세훈 서울시장이 고 박원순 전 시장 재임 기간인 지난 10여년 간 추진된 시민사회 분야 민간보조와 민간위탁 사업 개선과 관련해 "전임 시장이 박아놓은 '대못' 때문에 당장 시정 조치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16일 서울시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전임 시장이) 잘못된 것을 바꾸려고 해도 바꿀 수 없도록 조례, 지침, 협약서 등 다양한 형태로 시민단체에 대한 보호막을 겹겹이 쳐놨다"며 이 같이 말했다.

 

오 시장은 전임 시장 시절 만든 '서울시 민간위탁 관리지침'을 언급하며 "행정의 비효율을 초래하는 각종 비정상 규정이 '대못'처럼 박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종합성과평가를 받은 기관은 같은해에는 특정감사를 유예해주도록 한 규정을 들면서 "사업 담당 공무원의 지도감독 과정에서 위법이 의심되는 점이 발견돼도 시 감사위원회가 즉시 감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잘못을 덮고 은폐할 시간을 줄 수밖에 없다""심지어 비리, 갑질, 성폭력 등 심대한 문제로 시민 민원이나 내부고발이 있어도 즉시 감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오 시장은 "두번째 대못은 수탁기관은 바꿔도 사람은 바꿀 수 없도록 한 규정"이라며 "'민간위탁 관리지침'에 포함된 '수탁기관 공모 및 선정 운영기준'과 현재 서울시에서 사용하는 '민간위탁 표준 협약서'에는 수탁기관이 바뀌어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승계 비율이 80% 이상 되도록 하게끔 획일적으로 규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오 시장은 "새로 위탁받은 단체는 기존 단체의 직원을 대부분 떠안아야 한다""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한 이런 특권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오 시장은 '세번째 대못'으로 관련 조례 등에 따라 각종 위원회에 시민단체 추천 인사를 포함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언급하며 "수탁기관을 선정하는 적격자 심의위원회는 물론이고 보조금 단체를 선정하는 위원회까지 시민단체 출신들이 자리를 잡고 자기편, 자기식구를 챙기는 그들만의 리그가 생겨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가 전체 민간위탁, 보조사업 중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마을, 협치, 도시재생, 사회적 경제 등 민간위탁 9개 분야, 민간보조 12개 분야를 살펴보면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 약 9개월간 민간보조금과 민간위탁금으로 집행된 금액은 1160억원, 지원을 받은 단체도 887곳으로 집계됐다.

 

오 시장은 지난 10년간 민간보조금과 민간위탁금으로 지원된 총 금액이 1조라는 주장에 "근거 없는 금액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주헌 기자 zoo@mt.co.kr

전세집이 없어서 저런 비싼 델 가냐  그것도 전세도 아니고 월세를 ..도대체 뭐냐 

주한미군도 거부한 이승만·트루먼 동상, 경북에 설치?

광복회 "국민 버리고 도망간 이승만은 치욕"... 경북도 관계자 "총의 모아 추진예정

동건추가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전기념관에 이승만 전 대통령과 트루먼 미국 전 대통령 동상을 세우려 하자 광복단체 등이 반발하고 있다.경북도 제공

 

민간단체가 제작해 수년째 설치 장소를 찾지 못한 이승만 전 대통령과 트루먼 미국 전 대통령의 동상을 경북도 등이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설치하겠다고 하자 광복회 등 시민단체들이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광복회 등은 "국민을 버리고 자기만 살자고 먼저 도망간 이승만의 동상은 역사의 치욕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와 고영주 전 MBC 이사장,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 등 보수 인사들로 구성된 '이승만·트루먼 동상건립추진모임'(아래 동건추)은 지난 7월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만나 이승만·트루먼 동상 설치 협조를 요청했다.

 

동건추 위원인 김영원 전 홍익대 교수가 지난 20174월 제작한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과 트루먼 미국 전 대통령 동상은 당초 서울 전쟁기념관에 설치하려 했으나 기념관 측이 협조하지 않아 무산됐다. 이후 평택 주한미군사령부 영내에 설치해 기증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주한미군이 거절하면서 설치 장소를 구하지 못했다. 이들은 결국 한국자유총연맹 경북지부가 관리하는 다부동전적기념관을 설치 장소로 정하고 경북도에 협조를 요청했다.

 

경북도는 지난 15일 오후 동건추, 광복회 경북도지부와 대한민국상이군경회,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 등 경북도 10개 보훈단체 그리고 한국자유총연맹, 경북도새마을회 등 3개 민간단체와 다부동전적기념관에 모여 동상 건립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두 전직 대통령의 동상을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세우는 데 대다수가 동감하고, 칠곡군에 조속히 설치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하기로 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동상 설치에 적극 찬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도 관계자는 "15일 간담회는 보훈단체를 중심으로 우호 분위기를 확산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진행됐다""칠곡군 보훈단체 회장들도 '늦은 감이 있다'며 찬성했고, 백선엽 장군 동상까지 같이 설치하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진보 세력이라든지 반대단체도 있기 때문에 총의를 모아 시간을 갖고 추진할 예정"이라며 "전적기념관 소유권이나 관리 권한이 칠곡군에 있어서 칠곡군과 일정을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6.25전쟁 때 한미연합작전이 시작된 최초의 지역이 다부동전투"라며 "트루먼 대통령은 신속한 참전 결정을 하고 이승만 대통령은 미군이나 유엔군이 참전할 수 있도록 외교능력을 발휘했다. 한미동맹의 상징이 있는 다부동전적기념관이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국민 죽인 배신자 동상 세울 수 없어"

경북 칠곡군에 있는 다부동전적기념관.조정훈

 

그러나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광복회 경북지부는 "트루먼 미국 33대 대통령은 1947년 트루먼 독트린을 천명하면서 한반도를 비중요지역으로 분류했고, 그 결과 미국의 방위계획선에 한국을 제외하면서 북한이 남침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며 동상 건립 반대 입장을 냈다.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전환될 때 38도선 이북으로 진격을 머뭇거렸고, 중공군이 개입할 때 맥아더 사령관이 요청한 만주 공격을 막아 통일의 목전에서 다시 분단되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

 

광복회 경북지부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북한이 서울 점령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 혼자 살겠다고 대전으로 도망가면서 한강다리를 폭파하도록 해 수많은 국민을 수장시킨 장본인"이라며 "역사의 치욕이지 자랑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을 버리고 자기만 살자고 먼저 도망간 이승만의 동상은 역사의 치욕이 될 것"이라며 "한국전쟁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투루먼 독트린에서 명시한 한국 포기 선언"이라고 주장했다.

 

광복회 경북지부는 간담회 전 다부동전적기념관에 두 전직 대통령의 동상을 세우는 것은 맞지 않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만들어 뿌리려 했으나, 경북도 관계자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일 광복회 경북도지부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은 6.25 때 혼자 살려고 국민들을 배신하고 먼저 도망간 사람"이라며 "4.19 때는 나라를 버리고 미국으로 망명한 사람인데 이런 사람을 기리는 동상을 세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 지부장은 트루먼 미 대통령에 대해서도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되고 김일성이 적화통일이라는 잘못된 판단을 하게 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남북이 분단되는 원인을 제공한 사람의 동상을 세운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한편 동건추는 지난 2017년 박정희 동상을 만들어 서울 상암동 박정희기념도서관에 기증 형식으로 세우려다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아직 동상 설치에 대한 승인을 하지 않고 있다./오마이뉴스 조정훈(tghome)

 

가짜 미투 원하는 심리 만연성폭력 피해자에겐 공포로

[김희원의 질문] 박진성 시인 소송 반전 판결 이끌어낸 이은의 변호사

한국의 미투 바람은 진원지인 미국보다 어쩌면 더 강하다. 성폭력에 대한 시각은 전에 없이 민감해지고 엄중해졌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검증 요구 또한 이토록 강한 때가 없다. 성폭력을 바라보는 남녀의 머나먼 간극은 젠더 간 인식 격차의 핵심이고 갈등의 근원이다. 이 혼란한 현실을 상징하는 일이 박진성 시인 사건이다. 한때 가짜 미투의 희생자’ ‘성폭력 무고 피해자로 통했던 박씨는 얼마 전 두 건의 민사소송에서 잇따라 성희롱·스토킹이 사실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201610월 박씨 성폭력 첫 폭로자였던 98년생 김현진씨(51,100만 원 배상 판결), 20년 전 연인관계였다고 박씨가 주장한 유진목 시인(81,000만 원 배상 판결)은 피해자임을 인정받기까지 왜 이렇게 많은 비난과 고통을 감당해야 했을까. 이들을 대리한 이은의 변호사는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고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이 큰 것이 가짜 미투를 찾으려는 심리를 부추긴다피해자에게 거짓이라는 비난은 공포 자체라고 말했다. 14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성범죄 피해자에게 씌워지는 무고의 굴레에 대해 물었다.

이은의 변호사가 14일 서울 서초동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김희원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만나 성폭력 범죄에 엄중해진 동시에 가짜 미투 의심도 커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한국의 미투 바람은 진원지인 미국보다 어쩌면 더 강하다. 성폭력에 대한 시각은 전에 없이 민감해지고 엄중해졌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검증 요구 또한 이토록 강한 때가 없다. 성폭력을 바라보는 남녀의 머나먼 간극은 젠더 간 인식 격차의 핵심이고 갈등의 근원이다. 이 혼란한 현실을 상징하는 일이 박진성 시인 사건이다. 한때 가짜 미투의 희생자’ ‘성폭력 무고 피해자로 통했던 박씨는 얼마 전 두 건의 민사소송에서 잇따라 성희롱·스토킹이 사실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201610월 박씨 성폭력 첫 폭로자였던 98년생 김현진씨(51,100만 원 배상 판결), 20년 전 연인관계였다고 박씨가 주장한 유진목 시인(81,000만 원 배상 판결)은 피해자임을 인정받기까지 왜 이렇게 많은 비난과 고통을 감당해야 했을까. 이들을 대리한 이은의 변호사는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고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이 큰 것이 가짜 미투를 찾으려는 심리를 부추긴다피해자에게 거짓이라는 비난은 공포 자체라고 말했다. 14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성범죄 피해자에게 씌워지는 무고의 굴레에 대해 물었다.

 

"가짜 미투 찾는 심리 바탕엔 사법체계 불신"

-박진성 시인은 성폭력 무고로 온갖 고통을 겪었다고 주장했고 많은 이들이 사실로 여겼다. 이제는 박씨의 거짓말이 드러나고 있지만 한동안 거짓 미투의 대명사로 꼽혔던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우선 박씨의 독특한 성향이 있겠다. 일반적인 폭력의 패턴은 상대방을 위협해 요구에 따르도록 하지만, 박씨는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죽을 거라는 자해로 귀결되는 식이라고 피해자들은 말한다. 이 때 걱정과 두려움에 등 떠밀려 원치 않는 요구에 내몰리는 이들이 있다. 선량한 마음을 이용하는 것이 온당한가. 일반적인 패턴에서 벗어나 있을 뿐 모두 폭력이다. 여느 성폭력과 다르지 않다. 피해를 호소하면 박씨는 특별한 관계였는데 관계가 틀어지자 가해자로 내몰렸다는 취지로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 상대방이 누구인지 특정하고 임의로 짜깁기한 자료들을 게시한다. 그러니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보면 성폭력 피해자에게 물음표가 생긴다. 여성들이 어리고 마음이 여려서 조심스럽게 의사소통을 했던 것들이 자칫 나중에 합의로 추단돼 유죄 입증이 어려워진다. 이런 성향의 피해자들이 고소를 한 후 무고로 맞고소를 당하니 사과·합의하게 된다. 이를 토대로 첫 언론 보도에 대해 박씨가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폭로가 모두 허위라고 단정한 판결이 20187월 나오기에 이르렀다. 재판부는 소송 당사자로 참여하지도 않았던 3명의 피해 폭로 여성들에게 허위단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신중하게 고민했어야 했다. 기사가 명예훼손 소지가 있다고 판결하더라도 이렇게 단정적으로 쓸 일은 아니었다. 이 중 김현진씨의 폭로는 사실이었고, 나머지 2명이 무고로 기소됐으나 유죄가 확정된 이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들에게 비난이 거세게 불어닥쳤다.

 

사회적으로는 가짜 미투의 증거를 원하는 심리가 있다고 하겠다. 우리 사회가 급진적으로 변하는 것 같지만 사실 사회적 합의는 느리게 온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수사와 판결이 피해자 입장에서 보다 엄중해져야 한다는 여론에 떠밀려 여기까지 왔으나 이에 대한 반발도 크다. ‘아군을 찾던 사람들이 이 사건에 집착하면서 박씨가 주민등록증을 공개한 김씨에 대한 2차 가해가 일파만파로 커졌다. 가해자에 이입한 사람들도 있지만, 내가 억울하게 성범죄로 몰릴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피해자나 그 입장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피해를 신고해도 제대로 수사되고 적확하게 처벌될 것으로 믿지 않는다. 그만큼 성폭력을 둘러싸고 우리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뜻이다. 법이 제대로 판단할 것이라는 신뢰마저 없으니 불안하고 불안을 뒷받침하는 증거로서 가짜 미투를 찾으려 한다.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과 같다. 사고사인데 경찰을 못 믿으니 의문사를 암시하는 뭐라도 나오면 믿으려 한다.”

-성범죄 가해자는 처벌을 피하려 피해자를 공격한다 쳐도 평범한 남성 다수가 동조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검찰 처분사건 통계를 보면 2018년 한 해에 성폭력 범죄로 기소된 건수가 14,400여 건, 성폭력 무고죄로 기소된 건수는 208건으로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억울하게 성범죄자로 몰릴까 봐 걱정하는 남성들이 꽤 많다.

빈도는 낮지만 드러나면 충격이 커서 그럴 것이다. 평범한 사람을 상대로 상습적으로 무고 범죄를 저질러서 돈벌이로 삼는 프로 무고러가 엄연히 존재한다. 무고를 당하는 입장의 분노도 이해한다. 또 돈이 목적이 아니라 인간 관계에서 배신감을 못 참고 무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 비록 합의추단되는 관계에 있었다고 해도 폭력적 결별 등으로 상처받으면 상대방을 처벌하고 싶어 한다. 보자기에 돈을 싸 들고 와서 돈이 얼마가 들든 처벌받게 해달라고 상담한 사람도 있었고, 성폭력 사건 1심 재판부까지 속여 피고인이 감옥에 갔는데 2심에 가서야 무고 증거가 드러난 사건도 봤다. 대개 무고 공방이 치열한 성폭력 사건은 각자 입장의 진실이 충돌하는 경우다. 어쨌거나 거짓말로 고소하면 무고다.”

 

"가난하고 기댈 데 없는 피해자 무고 몰리기 십상"

-실제 성폭력 피해자는 폭로나 이후 벌어질 일을 감당하기도 어려운데 거짓말이라는 비난까지 시달리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것 같다.

피해자 입장에서 그런 악플은 그저 불쾌가 아니라 공포 자체다. 나 자신이 삼성전기 재직 중 직장 내 성희롱을 겪고 법정 싸움을 벌일 때 경험했던 일이다. 첫 기사가 나갈 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공포스러웠다. 로스쿨에 가서 변호사가 된 것도 피해를 입고 그 피해를 공론화했던 곳에서 계속 머물다가는 버티지 못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김씨는 사건이 시작된 17세부터 성희롱에, 2차 가해에, 무고 협박에 이미 너무 많이 다치고 흔들린 상태였다. 어디로 가야 하나, 무슨 돈으로 변호사를 구하나 막막한 시기를 지나고서 만났다. 파고가 높으니 절대적으로 의지하며 손잡고 나아가게 된다. 소송을 거치면서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 어리니까 더 직관적이고 투명한 측면도 있다. 오히려 의연하게 버티고 내가 힘을 얻었다. 또 문단 내 성폭력에 대한 눈물겨운 연대가 있었다. 유진목 시인이 모금의 주축이 됐다. 스스로 제일 많이 내고 연대의 깃발을 꽂았다. 승승장구한 언니들이 아니라 돈은 없지만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하는 언니들이 있었다. ‘네 나이 때는 못했는데 지금은 싸울 수 있어라는 여성 문인들이 나섰다.

 

돌부터 맞고 시작한 김씨와 유씨는 소송이 전화위복이 되었지만 김씨에 대한 성희롱이 일부만 인정된 것은 아쉽다. 예를 들어 빵현진 먹고 싶다’ ‘성폭행해도 안 버릴 거지라는 카톡 문자는 인정하고, 야한 시를 보겠냐고 들이밀고 키스나 섹스 해 봤어?’라고 물은 것, 김씨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로 신고하겠다고 하는데도 집요하게 사귀자고 추근댄 것은 인정하지 않았다. 미성년자에게 선생님이 보낸 이런 문자가 성희롱인지 아닌지 이해를 구해야 하는 현실이 아쉽다.”

 

성범죄 인식 조사

 

-성폭력 피해자가 무고로 맞고소당하는 이유나 배경이 있나.

내가 맡았던 성폭력 사건들 중 김씨처럼 어린 나이에 우월한 지위의 사람에게 성폭력을 당한 사건들이 더러 있다. 그 피해자들이 대체로 어리고, 가난하고, 기댈 어른이 없는 이들이었다. 한부모 엄마 밑에서 어렵게 자란 유도선수 신유용씨는 검찰 진술에서 왜 일찍 피해사실을 말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그는 20198년 전 코치 손모씨의 성폭행을 폭로했고 손씨는 징역 65개월을 받았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엄마가 혼자 남매 키우며 운동 잘하는 것 보는 게 유일한 낙인데 차마 내 일로 부담을 줄 수 없었다며 처음으로 울었다. 나도 검사도 다 같이 울었다. 그의 엄마를 만났을 때 표정에서 딸의 피해도 미투도 몰랐고 알았어도 도와주지 못했을 거라는 미안함과 분노와 자괴감이 읽혔다.

 

가수 박유천씨 성폭행 피해자 A씨는 대학에 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등록금을 벌기 위해 유흥업소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한달 만에 피해를 당했다. 룸 내 화장실의 위험성을 알기 전이었고 앞서 고소한 여성이 무고와 공갈로 실형을 선고받은 상황에서 앞선 변호사들이 손을 놓아 여성단체가 나를 소개했다. 박씨가 A씨를 무고죄로 고소해 구속영장이 청구되기 열흘 전이었다(박씨는 20197월 강제조정으로 5,000만 원 손해배상 명령을 받고 올 1월에야 지급했다).

 

유튜버 양예원씨도 옷 가게와 사진촬영 모델을 해서 번 돈으로 동생들 학원비를 내고 자기는 삼각김밥을 사먹으며 연예인 꿈을 꾸었던 사람이다. 비공개 촬영장에서 성추행 피해를 입고도 일은 해야 했고, 이미 찍힌 수위 높은 사진들이 행여 유포될까 봐 스튜디오 실장의 연락을 끊지 못했다. 오해 받을 카톡이 퍼지고 안티가 생기고 언론 대응을 해야 할 상황이 되니까 당시 변호사들이 언론 대응은 알아서 하라며 연락을 안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여기저기서 다치고 버려져서 내게 왔다(양씨가 고소한 실장은 사망했고 촬영모집책은 징역 26개월을 받았다). 이들이 성폭력 피해자가 되고 피해 사실을 빨리 알리지 못하고 혼란을 겪으며 무고로 몰린 데에는 가난과 착한 마음이 있다.”

 

"수사기관과 법원, 성폭력 기준 명료히 세워야"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희롱을 인정한 직권조사마저 취소 소송을 당했다. 이를 토대로 보도한 기자 등에게 사자명예훼손 고소도 제기됐다. 정철승 변호사가 유족을 대리해 소송을 주도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유족이 얻을 게 무엇인지 의문이다. 박 전 시장이 자살한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라. 그가 과연 진실을 파헤친다고 들쑤시고 세간에 다시 회자되는 걸 원할까. 정 변호사 입장에선 손해 볼 게 없다. 어차피 진영에 따라 시각이 갈리는 사건이라 소송에서 어떤 결과가 나와도 기존의 믿음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정 변호사 입장에선 내가 견제구를 날렸다는 것을 진영 내에서 이미 인정받은 형국으로 보인다.”

 

이은의 변호사는 "사법체계가 성범죄를 적확하게 판결한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수사기관과 법원이 판단기준을 명료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왕태석 선임기자

 

-성범죄 가해자가 사망한 경우 성범죄 자체가 부정되기 쉽고 유족도 현실을 못 받아들이는 것 같다. 얼마 전 사망한 로펌 대표변호사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서는 이의신청을 통해 경찰의 불송치 결정문을 받아 공개했는데.

가해자가 사망한 경우 수사기관이 피해 사실을 확인해 주지 않으면 피해자가 무고 타이틀까지 갖게 된다. 그래서 피해사실이 담긴 경찰의 불송치 결정문을 받아 공개했다. 그랬기에 피해자가 비난과 의심으로 곤죽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피해 당사자가 공개하는 것은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나마 가해자가 로펌 대표변호사쯤 되니까 수사기관이 요청에 부응했을 것이다. 가해자가 유명인이든 아니든, 피해자의 사회적 지위가 높든 낮든, 고소 후 가해자가 사망하면 최소한 피해자에게는 수사 결과를 줘야 한다. 박 전 시장 사건이 다시 고소 대상이 된 데에는 정치적 이유도 있지만 수사기관이 명확히 사실관계를 밝히지 않은 책임도 있다.”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이 강화되고 실제 선고되는 형량이 과거보다 무거워지기는 했는데 사법체계의 신뢰를 어떻게 높여야 하나.

법원이 성범죄 피해자에게 주는 자리가 넓어졌고 양형이 높아졌다. 그러나 기계적으로 변화한 정도다. 판결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고 대중의 이해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성범죄는 범죄 상황, 진술 등을 일일이 사실인지 아닌지 따지는 식으로 판단할 수 없다. 피해자 진술이라고 해서 사진 찍듯 정확할 수 있겠나. 그걸 요구하는 게 더 이상하다. 특히 상습 폭행은 피해자가 가해자와 계속 반목하지 않는다. 하나하나의 진위가 아니라 첫 피해가 일어났을 때의 진위와 상황, 첫 피해 이후 피해자가 놓인 현실적인 입장과 심리상태 등 총체적 관계를 규정하고 피해를 인정해야 한다. 사법체계가 이런 역할을 해줘야 한다. 판결문은 엄청 엄한데 벌금형을 선고하는 판사도 있고, 합리적 판결을 했지만 판결문이 추상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판결에서 이 성범죄가 왜 유죄인지, 왜 무고가 아닌지를 더 친절하게 설명하고 대중이 납득하게 하면 사람들이 억울하게 성범죄자로 몰릴까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수사기관도 가해자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으로 끝낼 게 아니라 피해사실을 확인해 줘야 한다.”

김희원 논설위원 hee@hankookilbo.com

 

코로나 여파, 택시 지붕에서 '채소 재배'하는 태국

16(현지시간) 태국 방콕에 주차된 채 방치된 택시 지붕에 미니 정원이 조성돼 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관광이 주수입인 태국의 경기 침체가 심해지는 가운데 손님이 없어 사실상 영업이 중단된 방콕의 한 택시회사에서 택시를 이용해 미니 정원을 조성해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관리는 운전기사들이 맡고 있다.

 

택시 위에서 자란 가지, 고추, 오이, 바질 등은 방콕에 머무는 실직 운전자와 운수회사 직원들의 생계에도 도움을 주고 있으며, 재배된 작물을 우선 소비하고 "만약 작황이 좋다면 그 잉여분을 판매할 계획"이라고 회사 관계자는 밝혔다.

한편 태국의 확진자수는 최근 140만 명을 넘어섰으며 이중 1%가 넘는 14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그러나 태국 정부는 다음 달 1일 방콕과 치앙마이 등 5개 유명 관광지를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한 해외 관광객들에게 재개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nyh5504@tf.co.kr

 

무연고사 리포트]쓸쓸한 죽음 5명 중 1명은 50..노년만의 문제 아니다

지난 5년간 무연고 사망자 1757

50대가 2411명으로 23.27% 차지

코로나 창궐 이후 증가세로 전환돼

경기지역 5년새 3배 이상 증가

40대도 사망자수 꾸준히 늘어 심각

외로이 세상을 떠나는 무연고사는 더 이상 노년층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무연고 사망자 가운데 50대가 5명 중 1명꼴로 집계되면서 쓸쓸한 죽음을 맞는 중·장년층도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아시아경제가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의 무연고 사망자 발생 추이를 전수조사한 결과 지난 5년 동안의 무연고 사망자 수는 1757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사망 연도 및 연령 추정이 불가능한 사망자 396명을 제외한 1361명을 연령대별로 분류하니 65세 이상이 4799(46.31%), 50대가 2411(23.27%), 60~64세가 1762(17.01%) 순으로 나타났다. 40대와 40대 미만도 각각 978(9.44%), 411(3.97%)으로 적지 않은 분포를 보였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50대 무연고 사망자의 비율이다. 사회에서 물러나는 연령대인 50대의 무연고 사망자 수가 증가세로 돌아선 것. 201623.87%의 비중을 차지했던 50대 무연고 사망자 수는 201725.37%로 고점을 찍었다가 201824.57%, 201921.70%로 하향 곡선을 그렸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창궐한 지난해에는 다시 22.29%로 소폭 상승했다.

 

지역별로 살펴봐도 세종을 제외한 모든 광역자치단체에서 50대 무연고 사망자의 비율은 20~32%로 높은 축에 속했다. 무연고 사망자 수가 1000명 이상인 서울과 경기, 부산의 50대 무연고 사망자 비율도 각각 22.64%, 22.95%, 24.04%였다. 광주의 경우 전체 무연고 사망자 95명 가운데 3분의 1가량인 31(32.64%)50대였다.

 

이 기간에 절대적인 50대 무연고 사망자 수는 297395524521674명으로 2배가 넘게 증가했다. 특히 경기 지역의 경우 201646명에 불과했던 50대 무연고 사망자 수는 2020147명으로 3배 넘게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도 같은 기간 25명에서 61명으로, 서울도 88명에서 136명으로 큰 폭으로 늘었다.

50대뿐만 아니라 40대와 40대 미만의 무연고 사망자 비율도 증가세를 보였다. 전체 무연고 사망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고 있지만, 절대적인 사망자 수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40대 무연고 사망자의 경우 2016134명에서 2020262명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고, 40대 미만 무연고 사망자 또한 같은 기간 68명에서 114명으로 급증했다.

 

전체 무연고 사망자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연령대는 여전히 60대 이상이었다. 노인으로 분류되는 65세 이상의 비율이 전체의 절반 가까이로 압도적이었다. 광주와 대전, 제주를 제외한 모든 광역자치단체에서 40% 이상의 분포를 보였고, 부산(49.96%)과 전북(51.98%)은 절반을 넘나드는 수치를 보이기도 했다. 60~64세 무연고 사망자도 13~21%(세종 제외)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두 연령대를 합친 60세 이상으로 범위를 넓혀 보면 광주와 대전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무연고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이 연령대에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기초생활수급자 등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노년층의 쓸쓸한 죽음이 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윤석열 조화, 내동댕이 후 발길질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경선 후보가 17일 오전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았으나 우리공화당 당원 등 반대자들의 강한 저지에 부딪혀 경찰 도움을 받아 겨우 참배를 마치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윤 후보는 이날 오전 10시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박정희 생가에 도착했다. 하지만 우리공화당 당원 등 200여 명의 강력한 저지에 막혀 생가에 들어가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다.

반대자들은 윤석열 후보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킨 장본인이 이 자리에 왜 찾아왔느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자유를', '죄 없는 대통령을 구속한 윤석열은 물러가라' 등의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윤 후보의 생가 진입을 막아섰다.

 

결국 윤 후보는 오전 1010분쯤 반대 무리를 뚫고 박정희 추모관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추모가 끝난 뒤에는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겨우 빠져나갔다. 윤 후보가 참배하는 데 걸린 시간은 2~3분에 불과했다.

 

당초 참배 후 기자들과 일문일답이 예정돼 있었지만 반대자들의 극렬한 기세에 취소됐다. 윤 후보는 몰려드는 사람들을 피해 황급히 자신의 차량에 올라탔고 경북 영덕으로 향했다.

오마이뉴스

100년 뒤 인구 1500만 명 시대,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지역소멸에 대한 경제지리적 내러티브 : 항아리와 팽이 사이

인구 통계적 내러티브

 

내러티브란 '어떤 사물이나 사실, 현상에 대하여 기승전결로 구성된 줄거리'를 뜻하며, 특히 여기에는 '명확한 결말'이 존재한다.

 

McPartland(1998)는 지리학에 있어서 이러한 내러티브적 사고는 특정 지역에 대한 지리적 상상력의 발달, 지역정서에 대한 공감적 이해 등에 근본적인 토대를 두고 있어서 지리 교수-학습에 있어서도 상당한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최근 경제학에서도 중요한 경제적 현상에 대한 내러티브가 바이러스와 같이 전염(바이럴 내러티브)되면서 경제적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감사원의 자료에 나타난 지역소멸 통계에 대한 인구 통계적 내러티브를 살펴보면, <그림 1>과 같이 '명확한 결말'이 존재한다.

 

, 우리나라 인구를 50100년간(20672017) 장기적으로 추계해보면, 인구피라미드가 2017년 항아리 형태에서 100년 후인 2117년에는 팽이형태로 전환하게 된다. 정말 이렇게 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통계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명확한 결말이다. 여기에 수치를 제시하면 이 결말의 해피 엔드(우리나라 총인구 20175136만 명 21171510만 명)를 볼 수 있게 된다.

그림 1. 인구피라미드 변화(20172117). 현 수준의 출산율, 중위 수준의 사회적 이동이 지속된다는 가정 하의 통계청 추계. 출처 : 감사원, 2021. 7. 감사보고서: 인구조조변화 대응실태(지역)

 

경제지리적 내러티브

이러한 결말을 대학 중심으로 살펴보면, '확실한 결말'은 우리나라 비수도권 지역에서 고등교육의 뿌리가 소멸되는 것이다.

 

2021년 현재 전국 어디에서 공부하더라도, 수능 등급이 아무리 낮아도 수험생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그러나 수험생들은 수도권으로 향한다. 최근에 비수도권 대학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 중 하나는 한 학과에서 신입생들의 등급 편차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입학 정원 30명을 기준으로 하는 학과의 경우, 20명까지는 예년 등급을 유지하면서 입학생이 들어왔고, 나머지 10명은 예년보다 56등급이 낮은 학생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결말에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 간의 격차는 더욱 커지게 되며, 입학생의 남북방한계선이 수도권 영역으로 한정될 것이다. 이는 혁신성장 기업의 남북방 한계선과 맥을 같이 하고 있어서 더욱 '웃픈'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성장기업을 위한 입지정책방안'(강호제류승한서연미표한형, 2019. 7. 15., 국토정책 Brief.)을 제시한 국토연구원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고용연구개발매출 성장을 함께 달성하는 809개의 혁신성장기업 입지분포에는 남북방한계선이 존재한다고 한다.

 

, 북방한계선은 서울 중구종로구이며, 남방 한계선은 경기도와 인접한 천안 북구이고, 서쪽과 동쪽의 한계선은 각각 안산반월, 성남 중원구 사이다. 확실한 결말을 지닌 경제지리적 내러티브들이다.

 

지역불균등 발전이라는 인재(人災) 줄이기와 지역 인재(人才) 만들기

통계청의 인구 통계를 살펴보면 1925년 우리나라 총인구는 약 1900만 명(합계 출산율 6.59)이었다. 이는 약 200년 후인 2117년 추계인구인 1510만 명보다 많은 인구이다. 현재 우리는 바이럴 내러티브로 회자되고 있는 약 20년 후 인구 4000만 명의 시대를 이미 1985년에 경험했다. 그렇다면, 과거와 무엇이 다른 것일까?

 

1985년 당시 우리나라는 비록 군부 독재 시기였지만, 청장년층 인구의 강한 버팀목과 함께 3저 호황 국면에 들어서면서, 1960년 이후 산업구조 조정을 통한 2차 경제 도약의 시기였다.

 

물론 이 시기에도 1960년대 이후 시작된 이촌향도에 따른 지역 간 불균등 발전을 고민했고, 1984년에는 합계 출산율이 OECD 평균 이하로 떨어지는 저출산 사회에 진입했던 시기로, 고질적인 문제점들은 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명확하지만 비극적인 결말(우리나라 총인구 21171510만 명)'인 조선시대 말기로의 회귀를 고민한 시기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지역소멸 위기는 부정적인 결말을 예측하고도 방치한 인재(人災)인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지금부터는 인재(人災)를 줄일 수 있는 인재(人才) 육성 정책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를 주장하는 이유는 우리의 명확한 결말이 어차피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균형발전과 관련하여 정치적 야심가들이 원하는 '큰 것 한방'의 정책은 이미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이루어졌다. 조금 늦긴 했어도 이 정책의 기조는 매우 타당한 처방이었다. 이제는 가랑비에 젖은 옷을 천천히 말려야하는 점진적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몇 가지를 제안해 본다.

 

먼저, 비수도권 지역에 투자를 촉진할 수 있는 '지방투자촉진' 정책의 확대이다. , 기업의 동북방 한계선을 확대시키는 정책이다.

 

수도권의 기업들의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면, 비수도권은 수도권보다 더 높은 강도의 규제완화와 입지 이전 기업에 대한 파격적인 인센티브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한 예로, 필자는 혁신성장기업의 유치를 위해서 비수도권 지역에 수도권보다 강도가 높은 '특허박스 제도'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특허박스 제도란 특허 등의 지식재산을 사업화하여 발생한 소득에 대해 법인세를 감면해 주는 제도를 말한다. (문은희, 2018, 특허박스제도 도입 관련 입법과제)

 

이와 더불어 비수도권 지역에서 이를 담당하는 전담 조직과 그 공무원들에 대한 파격적 대우가 필요하다. 최근 정부 공공기관 내부 자료와 전문가 인터뷰에 의하면, 전라북도는 지난 20042021년 현재까지 기업유치 실적이 전국 최고였다. 이는 전라북도 공무원들이 손품과 발품을 팔면서 이뤄낸 성과이다. , 남방 한계선을 남쪽으로 더 확장시킨 것이다. 인재(人才) 등용의 결과이다.

 

다음으로, 비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MZ세대 청년들이 선호하는 입지조건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밀레니얼 청년세대를 위한 산업입지 공급방향'(조성철, 2020. 9. 7.)을 제시한 국토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지금의 청년들은 도시내부 공간에서 학습과 산업이 연관되고,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휴먼웨어 위주의 복합공간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자기표현의 시대였다면, 5차 산업혁명은 자아실현의 시대가 될 것'이다. 이는 혁신적인 기술발전을 통한 성장 동력과 함께 점점 인간과 인간성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됨을 의미한다. 작고하신 이민화 교수의 통찰력이다.

 

마지막으로 대학 공간의 과감한 개방이다. 이때 주의할 점은 대학 소유자들의 땅 장사형 사업 참여는 철저히 막아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비수도권 지역을 살리겠다는 좋은 취지로 실행했던 지역산학협력 사업은 일부 부실대학의 퇴출을 막는 정책적 폐해를 낳기도 했다.

 

대학 공간은 대체로 도심에 입지해 있으며, 청년들이 휴먼웨어를 창출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큰 공간이다. 이를 건전한 인재(人才)와 기업 육성의 터전으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국토부교육부중기부의 캠퍼스 혁신파크 사업과 같은 사업의 지속과 산업부의 캠퍼스 산학융합지구(기존 사업 조정), 대학 기반의 경제자유구역(U-FEZ, University-Free Economic Zone) 조성(기존 사업 조정) 등의 기존 사업의 조정을 통한 새롭고 적극적인 인재(人才) 유인책이 필요하다.

정성훈 강원대 지리교육과 교수 /프레시안

"라떼는 참치세트 받았어"..'시대' 알수있는 추석선물, 요즘 대세는?

매년 인기 있는 '추석선물세트'는 그 시대 상황을 가장 잘 반영한다. 귀한 대접을 받았던 과자선물세트가 천덕꾸러기가 된 것부터 코로나19(COVID-19) 유행으로 인해 손소독제 선물세트가 등장하는 등 추석선물세트의 변천사를 살펴봤다.

 

귀한 몸 '설탕'생필품보다 '커피' 주고받았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사진제공=동서식품

 

18일 유통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1950~1960년대 선물은 먹거리 귀했던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생필품이었다. 지금은 흔해진 쌀, 계란, 돼지고기 등이 인기였다. 특히 '설탕'이 최고의 선물이었다. 당시 설탕은 생산능력의 한계로 인해 일본에서 생산 가공된 완제품이 수입됐고 이로 인해 소비자들에겐 귀한 식자재였다. 설탕 외에도 비누, 조미료 등도 인기가 높았다.

 

추석선물세트를 본격적으로 주고받기 시작한 건 산업화 바람이 분 1970년대다. 공산품 생산이 크게 늘어나면서 설탕, 쌀과 같은 생필품보다 과자, 커피 등 기호식품을 선물했다.

 

아이들에게 로망이었던 과자도 명절마다 꼭 받고 싶은 선물들로 꼽혔다. , 화장품을 비롯해 식생활과 거리가 있는 속옷, 스타킹 등 사치품들, 수입상품 선물세트 등이 인기를 끌었다.

 

소비력 급증하자 수입 과일 선물IMF 불자 참치캔 인기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사진제공=동원F&B

 

소비력이 상승한 1980년대에는 선물세트의 고급화 바람이 불었다. 주요 대도시마다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추석선물로 고급 과일, 도자기세트, 넥타이 등 고급 의류가 잘 팔렸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경제가 호황기를 맞이하면서 '호화 선물세트'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당시 일부 언론에서는 고급 선물 가격이 10만원대에 달한다며 과소비에 대해서 우려하기도 했다.

 

IMF 외환위기를 맞은 1990년도에는 선물세트의 인기가 차갑게 식었다. 80년대와 달리 참치캔, 식용유, 조미료 등 생필품 위주의 저렴한 선물세트들이 인기가 많았다.

 

양극화 현상도 뚜렷했다. 100만원대 수입양주 세트와 영광굴비 세트 등의 고가제품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90년대 후반 경기가 회복되면서 생필품보다 인삼 등 기호품을 주고받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핵가족화 따라서 작아진 선물'김영란법' 반사이익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 1(928)을 앞둔 2017925일 서울의 한 백화점 추석 선물세트 코너에 김영란법 선물가격 상한선인 49900원 짜리 곶감이 판매되고 있다./사잔=뉴스1

 

2000년대에는 '건강'을 키워드로 한 선물세트가 인기를 끌었다. 수삼, 영지버섯, 비타민, 오메가3 등 건강식품으로 트렌드가 바뀌었다. 또 가족의 구성원 숫자가 점점 줄어들면서 선물세트의 크기도 작아지는 변화가 있었다.

2010년대에는 와인, 바닷가재, 디저트 등 이색적인 선물들이 등장했다.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법률의 등장으로 5만원 이하의 실속 선물세트들이 주목을 받았다.

 

사과, , 한우 등의 농산물 선물이 5만원대 가격을 뛰어 넘어 인기가 하락하고 김, 멸치 등 건어물 세트들과 곶감 등이 반사이익을 누리는 효과도 나타났다.

 

손소독제·마스크 주고받다이제는 '위스키' '샤인머스캣'

샤인머스켓 선물세트 /사진제공=이마트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19 시대에 맞춘 손소독제, 마스크 등 위생용품 선물세트도 등장했다. 또 한우, 홍삼, 온라인 상품권 등을 비대면 방식으로 주고받는 일이 늘었다.

이번 추석에는 와인, 위스키 등 '홈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것)' 열풍이 선물세트에도 불고 있다. 홈플러스는 추석선물세트로 위스키를 전면 배치하는 변화를 꾀하기도 했다.

 

제수용 과일인 배, 사과, 귤 등을 제치고 샤인머스캣, 애플망고 등의 고급 과일 인기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고향 방문이 어려워지면서 프리미엄 선물을 찾는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구단비 기자 kdb@mt.co.kr

 

101세 철학자의 끝 모를 흑백논리

김형석, 문재인정부가 사회주의 경제관 절대시? 유럽은 극좌인가?

박정희 전두환 시절 흑백논리 땐 침묵하고 지금 흑백논리로 소리쳐

 

도무지 지나침을 모른다. 101세 철학자는 한가위 연휴인 일요일에도 MBN과의 인터뷰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편 가르기 없애기라며 영어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흑백논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언론과 기회 닿을 때마다 흑백논리를 비판하는 김형석 전 철학교수다.

 

하지만 이상하다. 흑백논리를 비판하는 철학자 자신이 흑백논리에 흠뻑 사로잡혀 있다. 더구나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에 편향적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기실 바로 그래서 조중동 신방복합체가 부쩍 그를 부각하고 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MBN 시사스페셜-김형석 명예교수 직격 인터뷰 제일먼저 해야 할 일은 편 가르기 없애기유튜브 갈무리

 

조선일보가 101세 철학자를 우려먹는 풍경은 안쓰럽기조차 하다. 조선닷컴은 그가 문재인 정부 들어 나라가 무너지고 있다고 개탄했다는 발언을 대대적으로 부각했다. 그 인터뷰를 대서특필한 날, 조선일보는 늑대가 자기들은 안 잡아먹을 줄 아나제목으로 류근일 전 주필의 칼럼을 실었다. 83세의 그는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최후의 결전이 벌어지고 있다며 자유주의 진영과 좌파 파시즘 세력의 싸움이 그것이란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냐 반()대한민국이냐의 사생결단이란다.

 

참으로 궁금하다. 대체 그는 누구를 염두에 둔 걸까. 그가 말하는 온건 진보를 수정주의로 매도하는이들은, 한국에 있다는 좌파 탈레반, “좌파 파시즘은 누구를 지칭하는 걸까.

 

우리 시대의 철학자라라면, 더구나 원로라면 바로 조선일보가 노상 펴나가는 흑백논리를 바로 잡아주어야 옳다. 논리학의 상식에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가 있다. ‘상대의 주장을 반박하기 쉽도록 왜곡한 후 그것을 반박하는 오류83세 언론인과 101세 철학자가 난형난제로 펴간다. 대한민국 언론의 수치요, 철학의 희화화다.

 

101세 철학자는 숱한 인터뷰나 기고문에서 조중동의 오래된 흑백논리를 전혀 비판하지 않는다. 아니, 문제의식조차 없어 보인다. 인터뷰를 보자. 조선일보 기자가 흑백논리와 편 가르기가 고질적인 문제라고 묻는다. 김 교수가 답한다. “영국이나 미국 사람을 만나보면 흑백논리가 없다. 우리는 조선왕조부터 원수 갚느라 다 죽이고 은혜 갚느라 끼리끼리 뭉쳤다세계는 다원사회로 가고 있다.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는 낡은 생각이다.”

조선일보 서 살 때 경험해보니 언론통제는 자유통제 신호대통령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기사 갈무리. 사진=조선일보 홈페이지

 

질문한 기자와 답한 철학자 공히 허수아비 때리기, 유체이탈의 오류에 갇혀있다. 심지어 식민사관 인식마저 묻어난다.

 

김 교수는 문재인 정부를 사회주의적 경제관을 절대시하는 과오를 범한다거나 “150년 전 계급투쟁의 폐습을 계승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조선일보의 내로라하는 전현직 주필들이 문재인을 좌파정권으로 몰아치는 수법과 똑같다.

 

하지만 냉철히 짚어보자. 바로 그것이 흑백논리의 전형 아닌가. 한국의 부익부빈익빈 경제 질서에 대해 조금이라도 개혁 정책을 펼라치면 좌파로 훌닦고 있지 않은가. 대체 문재인 정부의 어떤 정책에서 사회주의적 경제관의 절대화를 읽을 수 있단 말인가.

 

사대주의 사고가 또렷한 그의 발언도 짚어보자. 유럽 정치가 그의 말처럼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는 이유는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이 정권을 주고받는 틀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사회주의 경제관을 절대시하는 정권이라는 김 교수의 잣대로 본다면, 그가 칭송하는 영국프랑스독일에서 사회민주당 계열의 정부가 집권해 복지정책을 편 사실은 뭐라 할 것인가. 그들은 극좌란 말인가. 우리는 진보정당이 국회에서 원내교섭단체를 가진 경험도 없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절 흑백논리가 대한민국을 지배했다. 철학자 김형석은 그 시대의 흑백논리에 침묵했다. 그리고 지금 나라가 무너진다며 흑백논리로 소리친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젊은 세대를 오도할까 우려스럽다. 나라가 무너지는 상황 아니니 편안히 노후를 보내시길 충정으로 권해드린다.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미디어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