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1~5.15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다니는 보수언론들
윤미향과 정의기억연대 향한 마녀사냥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다니는 보수언론들
“그만하세요. 조선일보” 고성 나온 정의연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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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 때리기'에 이용수 할머니 이용한 조선‧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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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과 정의기억연대 향한 마녀사냥 안 된다
[ 기고 ]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다니는 보수언론들
나에게 지난 5월7일은 한국 보수언론과 많은 기성언론들의 문제를 드러내는 세 가지 보도가 있었던 날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첫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과에 대한 보도다. 알맹이 없고 정작 피해자는 배제된 이 기만적 쇼는 언론보도를 통해서 그럴듯한 의미있는 사과로 탈바꿈했고 심지어 노조 혐오로도 이어졌는데, 그것은 삼성홍보실의 승리였고 광고의 힘이었다.
둘째,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간 클럽과 성적지향을 연결시켜서 공포와 혐오를 부추기는 국민일보 등의 보도가 있었다. 중국인, 신천지 때와 마찬가지로 희생양을 삼기 위해서 방역과 아무 관련없는 감염 피해자의 소수자성을 매개로 삼아 이미 존재하던 혐오와 편견을 조장하려는 의도가 아주 노골적이었다.
셋째, 윤미향 당선자에 대한 보도였고 이것이 이 글에서 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이다. 보수언론 등은 늘 그랬듯이 검증되지 않았고 당사자의 반론도 없는 보도를 통해서 한 사람의 인생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수 십 년간 일본 제국주의의 전시 성노예 범죄에 맞서 피해자와 헌신적으로 연대해 온 사람들은 순식간에 기금횡령범이자 거짓말쟁이로 둔갑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역사와 성과는 한순간에 누더기가 됐다. 그것도 피해자와 연대자의 오랜 인간적 관계를 파괴하고 이간질하는 가장 악랄한 방법을 통해서 말이다. 곧 ‘그럴 줄 알았다’, ‘그 돈들은 조총련으로 갔을 것’, ‘파렴치한 위선자’, ‘기생충’, ‘간첩’, ‘빨갱이’ 등 온갖 막말 댓글들이 달렸다. 공격받는 당사자에게는 피눈물이 날 일일 것이다.
▲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인. 사진=이치열 기자
아마 다음 수순은 뭔가 수상쩍은 ‘시민단체’가 등장해서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당선자를 고발하고 그러면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수사에 나서고, 그러면 사람들은 더욱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진실은 아주 나중에 이미 모든 게 무너지고 만신창이가 되고 나서 밝혀질 것이고, 공격과 의혹을 쏟아내던 언론은 그것을 귀퉁이에 작게 싣거나 무시할 것이다.
왜 그런 식으로만 보냐고? 이런 식으로 당하는 사람을 한 두 번 본 게 아닌지 않은가. 바로 얼마 전에도 유시민 씨를 상대로 이런 장난을 치려다가 들통난 사람들을 보지 않았는가. 그때 채널A 기자의 이야기는 ‘유시민이라는 사람은 적도 많아서, 거봐라 위선적인 인간이 많이 설쳤네 라며 온갖 욕을 먹을 거고 인생 종치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개혁과 정의를 말하던 사람의 이중적 행태’가 아주 잘 먹히는 기사거리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나라의 보수언론과 기성언론들을 보면 마치 먹이감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같을 때가 많다. 누가 또 표적이 돼서 속보, 단독, 특종 경쟁 속에 실검에 오르고 영혼까지 탈탈 털리게 될지 걱정하게 된다. 물론 이런 일이 반복되고 이런 수법이 통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런 자극적인 기사들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혹하게 해서 단기간에 클릭수를 높이고 그것이 수익으로 연결되는 구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더불어서 이 구조는 입장과 생각과 진영이 다른 사람에 대한 무의식적인 부정적 감정도 이용해서 유지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사고 과정과 판단에는 이성만이 아니라 무의식과 감정도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와 입장, 생각, 진영이 다른 사람의 ‘숨겨진 약점과 흠결’이 드러나거나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면 방어하고 싶은 생각이 커지기가 어렵다.
당장 나부터도 비판적으로 보던 어떤 사람이나 단체가 만약 이런 식의 공격의 표적이 되기 시작한다면 선뜻 방어에 나서기보다 소극적이 되고 복잡한 심정이 들 것 같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설사 아무리 정의기억연대의 운동 방식과 정치적 입장에 대해서 차이와 이견이 있었고, 유시민 씨에게 비판적이었고, 윤미향 씨의 출마를 지지하지 않았더라도, 또 민주당이나 시민당이 아니라 진보정당들이 정치적 대안세력이 돼야 한다고 보더라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당선자가 반일 감정을 조장하고 사사로운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지난 30년 동안 피해자들을 이용하고 ‘앵벌이’ 시켜 왔다고? 정기적 회계감사와 국세청 신고까지 해왔는데도 돈이 어디로 빼돌려진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소송 지원과 국제 연대와 역사에 대한 조사와 기록 등에 많은 돈이 쓰여질 수밖에 없는지 알면서도 피해자 지원으로 돈이 다 가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거의 대부분 신뢰하거나 동의할 수 없다.
‘반미를 말하더니 딸을 미국으로 유학 보냈다’는 유치한 비난에는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이처럼 보수적 기성언론들이 검증되지 않고 당사자의 반론도 반영하지 않은 일방의 주장을 통해서 어떤 사람들의 인생과 노력을 하루아침에 쓰레기로 만드는 것을 지지할 수는 없다. 내가 그런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길 바란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물론 보수언론들은 처음과 달리 이튿날부터는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당선자의 반론도 마지못해 일부 반영하기 시작했다. 너무 모순이 분명하고 근거가 취약한 일방적 주장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미 반박 증거가 제시되기 시작한 재정문제보다는 원래부터 문제 삼아 온 정의기억연대의 운동 방향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비판을 더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이용수 선생님의 이번 주장이 핵심 근거가 되고 있다. 친일적 보수언론들이 전시 성노예 피해자의 존재와 목소리를 이처럼 관심갖고 신뢰하며 대대적으로 실어주는 일은 참 낯선 일이다. 이들이 언제부터 피해자의 주장은 무조건 진실이고 검증도 필요없이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한다는 기계적 ‘피해자 중심주의’의 신봉자가 된 것인가.
이 지점에서 나는 ‘피해자 앞에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는 윤미향 당선자와는 좀 생각이 다르다. 피해자와 연대하고 존중하다는 것은 토론과 이견 제시도 포함하는 것이다. 이용수 선생님의 그동안의 용기와 투쟁을 높이 평가하고 지지하기에, 그것과 모순되는 지금의 말씀들에 대한 이견도 숨길 수 없다.
나는 피해당사자들의 증언이 담긴 책들은 ‘내용 검증이 제대로 안된’ 것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료들이고, 30년 동안 1400번 넘게 지속된 수요집회는 ‘없애야 하는’ 게 아니라 일본정부의 진정한 반성을 촉구하는 강력한 무기였으며,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증오와 상처’만 남기는 일이 아니라 정당한 투쟁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화해와 대화’를 가로막는 것은 잘못을 인정하지도 책임지지도 않는 아베 정부의 탓이며, 이미 수요집회와 피해자들에게 연대해 온 평범한 수많은 일본인들은 진정한 화해와 대화가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 줘 왔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 때문에 이용수 선생님과 많은 선생님들의 그동안의 투쟁은 커다란 의미와 성과를 남겨 온 것이다.
▲ 지난 4월22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의기억연대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제1천436차 정기 수요시위를 코로나19 확산 방지 온라인 생중계로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물론 이용수 선생님의 심경의 변화에는 나름의 이유와 맥락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살펴보고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토록 오랜 기간의 지난한 투쟁에도 여전히 답이 없는 일본정부, 피해자들을 한일관계의 걸림돌 취급해 온 한국정부, 벌써 많은 분이 세상을 등지게 된 상황 속에서 절박함과 갑갑함은 쌓여갔을 것이다.
일본군 전시 성노예 범죄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홍윤신 연구자는 이렇게 지적한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일본 정부와 국제사회→한국정부→정대협 비판에서→결국에서 스스로가 서 있던 수요시위라는 공간 자체까지 부정하게 된 할머니의 좌절감과 아픔에 초점을 맞추어야 되지 않을까? … 이 모든 구조속에서 슬며시 숨어 <운동가>와 <피해자>의 대립구도만 부상하게 하는 언론 구조속에서 우리가 과연 얼마나 많은 면죄부를 일본정부에게, 한국정부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들에게 주어 왔는지 물어야 할 것이다.”
정의기억연대의 운동에도 당연히 성과뿐 아니라 수많은 오류와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자본과 권력에 맞선 오랜 지난한 투쟁들을 가까이 안에서 살펴보면, 거기에는 바깥의 멀리서 보듯이 순결하고 정의로운 사람들과 아름다운 연대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온갖 인간적 결함과 갈등, 서로에게 준 상처와 문제점들도 있을 수밖에 없다. 어떤 운동이든 결국 불완전한 인간들이 좌충우돌하며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운동은 그런 문제들도 아프게 돌아보고 같이 바로잡으며 힘겹게 풀어나가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도,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였던 윤미향 당선자의 남편까지 끌어들여서 다시 색깔론까지 꺼내들기 시작한 보수언론들의 야비한 마녀사냥식 몰아가기부터 분명히 막아서고 중단시켜야 한다. 그때 진정으로 생산적인 돌아보기와 토론이 가능해질 것이다./ 전지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실행위원 mediatoday.
“그만하세요. 조선일보” 고성 나온 정의연 기자회견
피해자 지원 회계 불투명 의혹에 “왜곡” 반박, ‘윤미향 연봉’ ‘영수증 전수 공개’ 질의에 “본질 왜곡 그만” 항의
위안부 피해 생존자 이용수 할머니의 공개 비판으로 논란에 오른 정의기억연대(이사장 이나영) 활동가들이 언론의 ‘아니면 말고식’ 의혹 보도에 비판을 쏟아냈다. 맥락을 종합 취재하려 하지 않고 일부 사실관계만 편파적으로 나열하면서 일본군 성노예제 반대 운동 전체를 폄훼한다는 지적이다.
정의기억연대는 11일 오전 10시30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인권재단 사람 다목적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7일부터 보도 등을 통해 제기된 비리 의혹 논란에 입장을 밝혔다. 피해자 지원금이 불투명하게 운영됐고, 정의연이 정부와 피해자 사이를 가로 막고 피해자들을 자신의 의도대로 이끌었다는 의혹이다.
▲정의기억연대는 11일 오전 10시30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인권재단 사람 다목적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7일부터 보도 등을 통해 제기된 비리 의혹 논란에 입장을 밝혔다. 사진=민중의소리
논란은 이용수 할머니가 7일 기자회견에서 “데모(수요집회)해서 돈 걷은 걸 (피해자들한테) 하나도 쓴 건 없었다”거나 “2015년 한일협정 때 10억엔이 일본에서 들어오는데, (윤미향) 대표만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직후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의혹 제기가 줄이었다. 동아일보는 국세청 홈택스 공시 자료 상 2016~2019년 기부금 49억 1600여만원을 모금해 18.7%인 9억 2000여만원만 피해자 현금 지원으로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도 이를 계산하면 1인당 106만원이라며 “할머니들 위해 모은 성금인데 정작 받은 건 106만원”이라 썼다.
회계 논란은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으로 옮겨갔다. 조선일보는 ‘윤 당선인 부부가 신고한 ’1년 소득세 100만원‘ 수입으론 미국 유학 중인 딸 학비를 댈 수 없다’며 학자금 조달에 의혹을 다시 제기했다. 윤 당선인은 과거 언론에 “1년 장학금을 주는 학교로 찾아갔다”고 해명한 바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또 ‘김복동 장학금’이 정의연 이사를 포함해 진보적인 사회단체 자녀들에게 지급됐다며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재일조선학교 학생에게 지급했던 김복동 장학금은 지난 1월 김 할머니 사망 후 조의금 등 재원을 추가해 ‘시민단체 활동가의 대학생 자녀’를 수혜대상으로 추가했다.
2015년 한일협정에 참여한 청와대·외교부 관계자들은 ‘윤 당선인이 협정 당시 일본 정부의 10억엔 출연을 미리 알았다’고 언론에 밝히고 있다. 중앙일보는 10일 윤 당선인이 ‘일본 돈 받지 말라.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의연 전신) 돈 생기면 우리가 드린다’고 전화했다는 한 익명 피해자 할머니 편지를 공개하며 “개연성 있는 주장”이라고 보도했다.
▲9일 조선일보 4면
▲8일 중앙일보 2면
정의기억연대 “피해자 지원 불투명? 억울하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정의연은 피해자 생계만 지원하는 인도적 지원단체가 아니다”며 언론이 정의연 사업의 일부인 ‘피해자 현금 지원’에만 집중해 왜곡이 일어났다고 반박했다. 정의연은 △피해자 지원 △수요시위 △기림사업 △국내연대 △남북연대 △국제연대 △나비기금 △연구조사 지원 △교육사업 △장학사업 △홍보사업 △모금사업 등 12개 사업을 운영한다.
정의연의 피해자 지원은 현금 지원에 치중돼있지 않다. 피해자 지원금은 기본적으로 1993년 제정된 ‘위안부피해자법’에 따라 정부가 지급한다. 정의연 현금 지원은 크게 4차례 있었다. 1990년대 초 피해자 생계를 지원하려고 모금운동을 해 생활지원금을 지원했고 1995년 일본이 ‘아시아여성기금’으로 사죄없는 위로금을 지급하려 할 때 다시 모금운동을 열어 지원한 적이 있다. 2017년에도 2015년 일방적인 한일합의 결과에 반대해 ‘100만 시민모금운동’을 진행해 할머니 8명에게 1억원씩 지급했다. 지난해부턴 여성가족부의 피해자지원센터 사업을 위탁받아 운영 중이다.
한해 사업 수익의 상당 부분은 기부금 수입이고 이중 상당 부분은 ‘지정 기부’ 수입으로 용처가 따로 정해져있다. 정의연이 공개한 회계자료를 보면 2019년 기부금 7억6500여만원 중 지정기부 수입이 2억7800여만원이고, 2018년엔 12여억원 중 6억500여만원, 2017년은 15여억원 중 2억8900여만원이다. 나머지 비지정 기부 수입에서 12개 사업 운영비가 자율로 지출된다.
사업비용은 이런 비지정 기부 수입에 각종 행사협찬 등 기타 수입을 합한 회계에서 지출한다. 2019년엔 사업비용 12여억원 중 4억5600여만원이 피해자 지원에 들어갔다. 2018년엔 4억4700여만원 중 2300만원을 지출했다. ‘100만 시민모금운동’으로 7억원을 모금했던 2017년엔 사업비 11억8500만원 중 8억6400만원을 피해자지원에 썼다.
이나영 이사장은 수요집회 모금액과 관련 “2019년 총 459여만원을 모금했다. 모금액은 집회 진행에 다 사용된다”며 “진행비는 연간 1억1000여만원을 넘는다”고 해명했다.
한경희 정의연 사무총장은 각종 공시자료 기록이 미흡한 사실에 대해 “상당히 큰 규모의 사업을 진행하지만 마땅한 적절한 전달 인력이 굉장히 부족한 상황이다. 야근을 밥 먹듯 하며 일했지만 부족했다”며 “더 노력해서 미진한 부분 개선하겠다.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11일 조선일보 10면
▲이용수 할머니가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의 활동에 대해 비판을 제기한 것에 대응해 정의기억연대가 기자회견을 연 11일 오전 이나영 이사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2020.05.11ⓒ민중의소리
윤미향 연봉·모든 영수증 공개 요구에 “왜곡 질문” 고성 나와
회견과 질의응답은 1시간 30분 가량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왜곡된 질문을 그만하라”는 고성도 나왔다. 조선일보 기자가 ‘윤 당선인 연봉을 어디서 얼마나 줬느냐. 중복 지원 받았느냐’고 묻자 정의연 측은 “기자회견을 연 본질과 맞지 않는다. 피해 할머니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기사엔 응하지 않겠다”며 “중복 수령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 기자는 ‘윤 당선인 남편이 운영하는 언론사 홈페이지에 정의연 배너가 걸려있는데 광고비가 지출됐는지’와 ‘재단 운영 장학사업 중 윤 당선인 친척과 가족이 수령한 내용이 있느냐’고 물었다. 정의연 측은 “지출된 적 없다”며 “친척이 선정되는 게 왜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정의연 활동가들과 관련된 내용 하나도 없다”고 답했다.
십여분 후 이 기자가 ‘(기부금 지출) 영수증 세부 내역을 전체 공개할 생각 있으시냐’고 다시 묻자 오성희 활동가는 “그만하세요. 조선일보”라며 “질문에 문제가 있다. 나가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 활동가는 ‘해소가 안 돼서 그런다’는 기자의 대답에 “그만하시라”고 소리쳤다.
오 활동가는 이어 “회견 자료를 보고도 해소가 안되는 부분은 연락주시면 성실히 답변 드리겠다”며 “어떤 의도를 가지고 기사를 쓰는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의연 활동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회복 운동이라는 점, 활동가들도 인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해달라”고 밝혔다.
정의연은 기자회견 이후 나온 '기부금 사용내역을 공개 못한다'는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명백히 의도적인 오보"라며 "기자회견을 통해 기부금 수입 내역과 지출내역을 상세히 문서로 배포했다"고 반박했다.
또한 정의연은 직원 1인당 월급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라는 조선일보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도 "급여액 부분은 공시 등을 통해 공개로 총급여액이 기재되어 있고 기자회견 자료에도 정의연 활동가 인원수가 기재되어 있었고 그 부분에 대해 소명했다"고 반박했다.
“이용수 할머니에 계속 연락 드리는 중”
요미우리신문 기자가 ‘(정의연이) 한일 젊은이들 사이를 나쁘게한다’는 이용수 할머니의 발언의 입장을 묻자 정의연 측은 “수요시위는 개인의 운동이 아닌, 전세계 남녀노소 시민들이 30년간 참여해하고 이끌어온 것”이라며 “할머니께서 서운해한 부분은 30년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폭염과 혹한 속에서 수요시위를 하며 고통을 겼은 게 (배경으로) 있다. 그분을 거기 세운 건 수요시위가 아니라 일본”이라고 말했다. “문제가 해결되면 당연히 소멸될 것이고, 이는 정의연이 아니라 운동에 참여한 모든 시민들이 함께 정리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2015년 피해자들에게 일본 출연금을 받지 말라고 한 것은 단체 프레임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냐’는 중앙일보 기자 질문에 이상희 정의연 이사는 “(질문 자체가)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이 이사는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이 2015 한일합의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때 할머니들 의사를 확인하려고 변호사들이 일일이 만나 뵙고 의사를 확인했다”며 “기본적으로 2015 합의 내용과 한국정부 입장, 합의의 진정한 내용이 무엇인지 설명했다”고 말했다. 또 “기금 수령 여부는 할머니들이 결정하게끔 했다. 수령하신다는 할머니껜 ‘수령은 수령이고 우리는 우리대로 문제제기 할 수 있다’고 했다”고 밝혔다.
정의연의 ‘일본 출연금 10억엔’ 인지 시점엔 “정부 공식 발표 전엔 전달받은 적 없다”고 답했다. 언론은 2015년 12월28일 정부발표가 임박해서 이상덕 당시 외교부 동북아국장이 윤 당선인을 찾아가 관련 내용을 설명했고, 2017년 외교부 한·일 위안부 합의 검증 태스크포스(TF) 검토 보고서에도 ‘15차례 이상 피해자와 관련 단체와 접촉했다’는 문구가 적혔다고 강조했다.
정의연 측은 “10억엔 부분은 언론에서 얘기가 이미 나왔다. 외교부는 정례적으로 설날 등에 정대협과 나눔의 집을 방문해 인사한다. 외교부에게 (TF 보고서 내용을) 물어보니 그때라고 답했다. 이때 국장급·고위급 협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은 사실 없다”고 밝혔다. 발표 직전 12월27일 외교부가 합의내용을 일방 통보했으나 28일 실제 발표된 내용과 달라 당혹스러웠다고도 밝혔다.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 이유에 대해 이나영 이사장은 “30년 운동사다. 무엇보다 활동가들이 피해자와 가장 가까이 있었다. 부모님하고도 사이가 맨날 좋지 않듯, 서운한 것과 갈등이 분명 있었을 거다. 그렇지만 기쁨, 지지, 공감이 훨씬 많았을 테니 30년을 유지해 온 거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서운한 감정을 느끼셨을 수 있고, 할머니들께서 고령이시기 때문에 더 그 마음을 들었어야 했다. 이게 미흡했다고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고도 말했다.
이 이사장은 “윤 당선인도 (논란 후) 수차례 이용수 할머니께 전화드렸고, 어제도 직접 내려가서 만나뵈려 노력했는데 만나지 못했다고 들었다”며 “정의연도 할머니와 주변에 계신 분께 계속 연락을 드리고 있다. 할머니께서 굉장히 힘들실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회견을 여는 것도 혹시나 건강에 영향을 줄거란 걱정도 크다”고 말했다.
손가영 기자 ya@mediatoday.co.kr
죄수와 검사Ⅱ(한명숙) ② 사라진 증인, 빼앗긴 비망록
2011년 6월 13일 밤 11시쯤,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서울구치소 앞에 한 기자가 나타났다. 한 시간 뒤 자정이 넘어가면 이른바 ‘한명숙 뇌물 사건’의 핵심 증인인 한만호 씨가 구치소에서 나올 예정이었다. 한만호는 요즘 말로 ‘핫한’ 인물이었다. 한 씨 출소를 기다린 기자는 오마이뉴스 소속 구영식 기자. 그는 한만호를 인터뷰하기 위해 한밤중에 이곳에 나왔다.
‘증인 한만호’는 누구인가
경기도 고양시에서 한신건영이라는 건설사를 운영하던 한만호는 2008년 부도 이후 사기죄 등으로 구속 수감됐다. 통영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한만호는 2010년 3월 갑자기 서울구치소로 이감됐다. 그리고 곧바로 검찰에 불려간다. 검찰 출정은 여러 번 이어진다. 한만호는 검찰에서 엄청난 사건을 진술하고 만다. 2007년 당시 고양시 일산 갑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던 한명숙 전 총리에게 9억 원을 정치자금으로 줬다는 내용이다.
▲ 2009년 검찰의 뇌물 의혹 수사에 대해서 한명숙 전 총리가 반박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명숙 뇌물 사건’ 관련 검찰 수사 과정은 2010년 4월 언론에 생중계되다시피 보도된다. 당시는 6월 2일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한명숙 전 총리는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상황이었다. 결국 선거에서 한 전 총리는 불과 0.6% 포인트 차이로 여당 오세훈 후보에게 패배한다. 검찰은 광범위한 수사 끝에 선거 직후인 7월 한명숙 전 총리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기소한다.
‘한명숙 사건’의 반전은 2차 공판기일에서 벌어졌다. 검찰에서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한 한만호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당연히 검찰 측 핵심증인으로 나왔다. 이 자리에서 한만호는 검찰 조사를 받을 때 했던 진술을 완전히 뒤집는다. 한명숙 전 총리에게 ‘돈을 준 사실 없다’는 증언이었다. 검찰 조사 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후 재판은 검찰과 변호인단의 치열한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다.
구영식 기자가 서울구치소 앞에 간 2011년 6월 13일은 한명숙 사건 공판이 한참 진행될 때였다. 그날은 검찰 핵심 증인이었으나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한 한만호가 2008년 사기죄로 받은 징역 3년 형을 마치고 출소하는 날이었다.
기자들은 오지 않았다
구영식 기자는 많은 기자들이 서울구치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장에 온 기자는 자신밖에 없었다. 구 기자도 의아하게 생각했다. 한명숙 사건에서 검찰 진술을 법정에서 뒤집은 핵심 증인을 만날 수 있는 첫 기회인데 왜 아무도 오지 않았을까. 구 기자는 당시 진보 언론들도 이미 한명숙 전 총리가 유죄일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자정이 넘어 한만호가 구치소에서 나왔다. 구 기자는 2분 38초 동안 그를 인터뷰했다. 구 기자는 취재 수첩에 이런 내용을 빼곡하게 적어놓았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구치소 관계자가 옆에서 듣고 메모를 했다. 그리고 상부에 보고했다. 법무부와 검찰이 한만호를 매우 민감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구영식 오마이뉴스 기자는 ‘한명숙 사건’의 핵심 증인 한만호를 마지막으로 만난 기자다.
한만호는 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법정에서 진술한 것이 진실이며, 한명숙 전 총리는 곧 누명을 벗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수사는 “잘못된 사람의 말을 믿고 잘못 작성된 자료를 근거로, 잘못된 목적을 가지고. 당시 서울 시장 당선을 돕고,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 세력을 척살하기 위해 저질러진, 잘못된 수사”라고도 말했다. 구 기자는 짧은 기사를 송고했다.
한만호의 인터뷰 중 구 기자가 쓰지 못한 대목도 있었다. 검찰이 한만호를 불러 여러 차례 ‘교육’을 시켰다는 내용이었다. 검찰이 한명숙 측 변호인 대역을 맡아 질문하고 한 씨에게 대답을 준비하게 하는 식이었다는 말이다. 한명숙 전 총리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날짜를 특정하는 방법, 상대 변호인의 질문을 피하는 방법까지 검찰이 교육했다고 한만호는 구 기자에게 말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한만호의 변호인이 구 기자에게 이 부분은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은 뒤 한만호는 검찰에 찍힐 대로 찍힌 상황이었고 위증 혐의로 검찰 수사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검찰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구 기자는 이해했다.
검찰이 압수한 ‘한만호 비망록’
구 기자가 자정까지 한만호를 기다린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한만호의 출소 나흘 전인 6월 9일 검찰은 한만호의 감방을 압수수색했다. 위증 혐의를 수사한다는 명목이었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한만호가 구치소에 있는 동안 작성한 모든 기록을 가져갔다. 일기, 편지, 메모, 참회록, 비망록… 한만호가 15개월 동안 쓴 두 박스 분량의 기록이 검찰 손에 넘어갔다.
구 기자는 한만호가 출소 이후 비망록을 다시 쓰지 않을까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만호는 비망록을 다시 쓰지 못했다. 검찰은 2011년 7월 한만호를 위증 혐의로 기소했다. 2015년 한명숙 전 총리는 유죄가 확정되고 구치소에 수감된다. 2016년 한만호도 위증죄로 징역형을 선고 받고 다시 수감됐다. 2018년 2년 형기를 채우고 한만호는 출소했다. 구 기자는 한 씨가 출소 이후 심리적 스트레스로 술을 많이 마시고 건강이 나빠졌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한만호 씨를 만나보고 싶었다. 검찰에 압수당했던 비망록을 되찾아서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고,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말이 남아있을 수도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한만호의 위증죄 재판에서 한 씨 변호인을 맡았던 변호사를 찾아 연락했다. 변호인은 최강욱 변호사였다. 최 변호사는 21대 총선에서 열린민주당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최강욱 변호사는 한만호를 처음 만났을 때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당시는 민변을 중심으로 변호인단이 구성돼 한명숙 전 총리 재판에 대응하고 있었다고 한다. 최 변호사는 한명숙 변호인단의 부탁으로 수감돼 있었던 한만호에게 접견 신청을 했다. 한만호는 감옥에 있는 동안 자신의 사업을 다른 사람들에게 다 빼앗길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초조해하다 검찰의 회유로 거짓 진술을 했다고 최 변호사에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최 변호사는 그렇게 한만호의 변호인이 됐다.
▲ 최강욱 변호사는 2011년 한만호의 위증 혐의 사건 변호인을 맡았다.
최 변호사도 한만호가 2018년 출소 이후 어떻게 지냈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한만호가 2018년 몇 번 찾아온 적이 있는데 건강이 좋아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청와대 공직을 맡은 이후로는 연락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사망 소식을 건너 들었다고 말했다. 가지고 있었던 가족들의 전화번호로 연락했지만 아무도 연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 세상에 없는 ‘핵심 증인’
한만호가 운영하던 한신건영은 2008년 폐업됐다. 한신건영의 등기부등본 주소 등을 토대로 한만호가 살던 곳들을 찾아가 봤다. 가족들이 지금도 살고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웃이었던 사람은 두 아들과 함께 살던 한만호를 기억했다. 재판을 받으러 다니는 등 어려운 처지였다는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마지막에 집세 등을 깔끔하게 처리하지 않아서 안 좋게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어엿한 건설업체 사장이었던 한만호는 두 번의 수감 생활을 거치면서 각박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만호의 유족을 수소문했다. 한만호의 아버님이 종친회에서 임원을 했다는 풍문을 듣고 한 씨 종친회에 연락했다. 연결을 해 줄 수 없다고 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가까이 지냈다는 지인들도 만나봤지만 허사였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람들을 만나다 비교적 가까운 친지와 연락이 됐다. 기자에게 한만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는 눈치였지만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한만호는 2018년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했다. 옥살이를 2번 하는 동안 부친과 모친 모두 세상을 떠났다. 넉넉한 집안에서 자라 중견 건설업체를 운영하던 아들이 옥살이를 하게 되고 세간에서는 뇌물을 준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 뒤 부모는 화병에 걸렸다고 한다. 부인과는 이혼했다. 한만호는 사망한 뒤 화장을 해 선산에 있는 부친 묘소 옆에 뿌려졌다고 한다. 아무도 묘를 관리할 사람이 없어서 따로 묘를 만들지는 않았다는 게 취재진과 만난 친지의 말이다.
▲ 한만호의 사진을 구할 수 없었다. 뉴스타파는 관계자들의 설명을 토대로 몽타주기법으로 한만호의 모습을 재구성했다.
한만호에게는 어린 아들이 둘 있었다. 지금은 성인이 됐다. 아들에게 연락을 해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수소문해 집으로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 아무도 한만호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혹시 한만호가 남겼을 수도 있는 유품을 확인하려는 기대는 접어야 했다. 비망록은커녕 사진 한 장 구할 수 없었다.
비망록은 어디에
강기석 뉴스통진진흥회 이사장은 1977년부터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30년 넘게 기자 생활을 했다. 2011년 한명숙 전 총리 재판 당시에는 노무현 재단에서 상임 운영위원을 맡고 있었다. 재단에서 한명숙 전 총리 재판 내용을 회원들에게 알리기 위해 취재를 해야하는 상황이었는데, 당시 재단 직원 중엔 기자 출신이 강기석 운영위원밖에 없었다. 강 기자는 그렇게 빠짐 없이 한명숙 재판을 방청하고 기록하는 일을 맡게 됐다. 2015년 대법원이 한명숙 전 총리에게 유죄를 확정한 뒤 강 기자는 취재 내용을 묶어 <무죄>라는 책을 펴냈다. 일종의 재판 기록이었다.
▲ 강기석 기자는 2016년 ‘한명숙 사건’의 재판 기록인 <무죄>를 출간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이 책에서 한만호 비망록이 언급된 대목을 발견했다.
설사 한만호가 자기 비망록 원본을 찾아갔다고 하더라도 당시 재판부 결정에 따라 법원에는 관련 자료가 남아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뉴스타파 취재진은 비록 한만호는 만나지 못했지만 그가 감방에서 쓴 비망록을 구할 수 있었다. 비망록 표지에는 ‘수인번호 3382 한만호’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노트는 재소자들이 사용하는 교정 노트. 분량은 1,200여 페이지. 이 안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뉴스타파는 한명숙 사건의 핵심 증인 한만호의 비망록 내용을 3편에서 최초 공개한다.
▲ 한만호가 수감 생활을 하며 작성한 비망록 표지. 수인번호와 이름이 선명하다.
김경래/ 뉴스타파
'굿바이' 공인인증서…8부 능선 넘었다
'천송이 코트' 논란의 결말…21년만에 본회의 통과만 남아
번거로운 절차 없는 사설인증서 서비스 경쟁 치열해질 듯
공인인증서를 발급받기 위해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한 뒤 보안카드 일련번호를 입력하고 본인인증을 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0분. 생체인증 앱을 통해 지문을 등록하고 인증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3분. 복잡한 절차 때문에 많은 불편을 초래한 공인인증서가 사라지게 될 전망이다. 1999년 도입된 이후 21년 만이다.
◆'공인인증서' 지위 없앤다= 11일 국회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자서명법 전부개정안은 과학기술정보통신방송위원회 처리 이후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이미 여야가 합의한 만큼 변수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21년만에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정하는 공인인증기관과 공인인증기관에서 발급하는 공인인증서 개념을 삭제하는 내용을 담았다. 공인인증서와 사설인증서의 구별을 없애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공인인증서 폐지 논란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근혜 정부에서 '천송이 코트'로 이슈가 되면서 공인인증서의 문제가 불거졌다. 해외 쇼핑객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천송이가 입은 코트를 구매하려 했다가 액티브엑스(Active X)와 공인인증서 때문에 포기했다는 얘기가 논란이 됐다. 이에 당시 금융위원회가 전자상거래 공인인증서 의무사용 규정을 없애면서 결제 문제는 개선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국민들의 불편은 이어졌다. 공인인증서가 전자서명법상 다른 사설인증서에 비해 우월한 지위를 가져 주요 공공기관들은 대체 인증서비스를 채택하지 않는 경향이 컸기 때문이다. 여전히 대부분의 정부 사이트에서 주민등록등본을 비롯한 민원서류를 발급 받으려면 공인인증서가 필수적이다.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공인'이라는 지위 때문에 시장을 독점한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민원서류를 발급할 때 공인인증서의 복잡한 절차를 감수해야 했다.
◆민간 인증서 춘추전국시대=
개정안 통과로 이 같은 문제는 점차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공인인증서와 사설인증서가 법적으로 동등해지면 보안카드 이용, 번거로운 갱신 절차를 갖고 있는 지금의 공인인증서는 자연스럽게 시장 경쟁에서 도태 되면서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시장에는 다양한 회사가 제공하는 사설인증서 서비스들이 존재한다. 이동통신 3사와 핀테크 보안 기업 아톤은 모바일 본인인증 서비스인 패스(PASS)로 간편인증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PASS는 인증서 발급 건수가 지난해 4월 108만건에서 올해 1월 1020만건으로 9개월 만에 10배 성장했다. 카카오도 카카오톡 기반으로 카카오페이 인증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 3월기준 가입자가 900만명을 넘었다.
전문가들은 향후 공인인증서의 지위가 폐지되면 민간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국민 입장에서는 간편한 인증 절차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당분간은 민간업체들의 춘추전국시대가 이어질 것이다. 카카오나 통신3사나 먼저 주도권을 갖게 되는 기업이 인증플랫폼 시장을 독점하게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아시아경제 부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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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산 방지 위해 참석자 제한하자 200여명 반발...민, 비례대표 투표용지 10장 공개
정당보조금 '또' 쏟아진다
분기마다 110억원씩 무의석 민생당도 15억
"교섭단체 잭팟" 비판도
경상보조금은 정치자금법 27조에 따라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에 총액의 50%를 균등 배분한다. 55억원을 더불어민주당(120석) 미래통합당(92석) 민생당(20석) 미래한국당(20석)에 같은 규모(13억7500만원)로 분배한다는 얘기다. 5석 이상 20석 미만의 더불어시민당(8석) 정의당(6석)엔 총액의 5%(2억7500만원)씩 나눠준다. 의석이 없거나 5석 미만의 의석을 가진 정당 중에서는 최근 선거 득표수 비율 등 일정요건을 충족한 정당에 대해서만 총액의 2%(1억1000만원)씩 지급된다.
더불어민주당은 30억원을 훌쩍 넘는 보조금을 받고 미래통합당은 20억원을 겨우 넘을 전망이다. 21대 총선에서 19석을 확보한 미래한국당이 16억원선에 근접하고 단 한석도 얻지 못한 민생당은 15억원정도를 받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18석을 얻은 더불어시민당은 7억원, 6석을 확보한 정의당은 6억원을 수령할 것으로 보인다.
21대 총선에서 얻은 의석이 없어 앞으로 원내 활동이 불가한 민생당은 지난 3월말 선거보조금으로 80억 원을 챙겼다. 미래한국당은 61억원을 받아냈다. 더불어민주당은 120억원, 미래통합당은 115억원을 받았다.
경상보조금은 보조금 총액을 매년 분기별로 균등분할 지급하고 선거보조금은 전국단위 선거가 있을 때마다 한꺼번에 1년치를 모두 준다. 따라서 대통령, 지자체, 총선이 있는 해에는 두 배의 보조금을 받게 된다.
민생당 이상돈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원내정치에선 최대의 기득권세력이 20석을 겨우 넘긴 작은 교섭단체 정당"이라며 "의원숫자는 양당의 4분의 1밖에 안되지만 원내교섭은 동등하게 하고 정당보조금도 양당과 비슷하게 갈라 갖는다. 20석만 넘겨서 교섭단체만 되면 젖과 꿀이 흐르는 최고의 기득권 정당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래통합당은 소속 의원들을 방출해서 미래통합당을 교섭단체로 만들어서 61억원을 또다시 받아냈다"며 "건전한 정당정치를 위해 선거자금을 지원한다는 것이 정당정치를 얼마나 끝없이 타락시킬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선거보조금 지급과 관련해서도 "지역구 후보는 15% 득표를 못하면 선거비용을 보전받지 못하지만 민생당은 총선에서 전멸해도 80억원을 토해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면서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고 했다. 그는 "창당해서 의원 20명만 모으면 잭팟이 터지는 교섭단체 제도는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퇴직리포트]노후 걱정 없는 '金퇴족', 그 비결은?
하나금융, '대한민국 퇴직자들이 사는 법' 발간
50대 퇴직자 55% 다시 취업·창업
한달 생활비 400만원 이상 필요하지만 현실은 252만원
퇴직자 절반이 40대 후반 50대 초반에 직장 그만둬
금퇴족, 30대 연금 가입 및 내집 장만 덕에 걱정 덜어
우리나라 50대 이상 퇴직자 10명 중 5명은 퇴직 후에도 계속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 후 국민연금을 받기까지 10여년을 보내야 하는 가운데 월평균 생활비 252만원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변 경조사를 챙기고 여행도 가는 등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하려면 월 400만원 이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실과 이상의 생활비 격차가 크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젊었을 때부터 연금에 가입하고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사람만이 노후에 대한 걱정이 적었다.
하나금융그룹 100년행복연구센터는 이 같은 내용의 생애금융보고서 ‘대한민국 퇴직자들이 사는 법’을 발간했다고 11일 밝혔다. 보고서는 서울 수도권 및 5대 광역시 거주자 중 주된 직장에서 퇴직해 국민연금을 받기 이전인 50대 이상 퇴직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담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61.3%)이 ‘4말5초(40대 후반 50대 초반)’에 회사를 그만뒀다. 이들이 국민연금을 처음 받기까지 소득이 없는 ‘소득 크레바스’ 기간은 평균 12.5년이다.
/연합뉴스
이 기간을 버티기 위해 퇴직자들은 지출부터 줄였다. 설문에 응답한 퇴직자 3명 중 2명은 퇴직 전 대비 생활비를 28.7% 줄였다. 응답자의 월평균 생활비는 252만원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기본적인 생활비에 경조사비·여가생활비 등을 감안해 이상적인 노후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월 400만원 이상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퇴직자들이 선택한 것은 다시 ‘일’이었다. 퇴직자 중 절반가량은 재취업(37.2%)이나 자영업(17.9%)을 했다고 응답했다. 배우자도 절반 이상(58.6%)은 일을 하고 있어 가구 단위로 보면 경제활동 비중은 84.8%로 올라갔다.
일은 하고 있지만 생활비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는 퇴직자는 많았다. 퇴직자 중 36.4%는 일을 그만두면 당장 또는 1년 이내에 형편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걱정을 안고 살았다.
반면 퇴직 이후 노후자금이 충분하다고 응답한 이른바 ‘금(金)퇴족’도 있었다. 금퇴족은 전체 응답자의 8.2%를 차지했다. 이들은 한 달 생활비로 일반 퇴직자보다 56만원 더 많은 308만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이 퇴직 후 충분한 노후자금을 가질 수 있는 비결로 젊은 나이에 연금에 가입해 일찍 내 집을 마련한 점이 지목된다. 조사 결과 금퇴족의 62.2%가 생활비를 마련하는 주요 방법이 금융자산인 가운데 그중에서도 절반가량(47.1%)이 퇴직연금·연금저축·개인연금보험 등 연금을 꼽았다. 특히 금퇴족의 연금 가입률은 30대 초반에 28%를 기록해 40대 초반에는 46.3%를 찍었다. 같은 기간 일반 퇴직자가 20.4%에서 29.3%로 집계된 것과 대조적이다.
금퇴족의 대부분(92.7%)이 본인 또는 배우자 명의로 자가 주택을 보유하고 있었다. 생애 첫 주택을 마련한 시기는 절반가량(46%)이 34세 이전이라고 대답했다. 반면 일반 퇴직자의 경우 74%가 자가 주택을 보유해 34세 이전에 주택을 보유한 비중은 35.7%에 그쳤다. 거주 주택 이외에 상가·오피스텔 등을 보유한 비중도 금퇴족이 일반 퇴직자보다 배가량 높았다.
조용준 100년행복연구센터장은 “금퇴족은 경제활동을 포함해 금융자산·임대소득 등 생활비 원천이 다양하다”며 “일찍부터 노후자금을 성공적으로 운용해 소득원의 분산을 이룬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퇴직자 월 생활비, 희망은 400만원 현실은 252만원
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50대 전모 씨는 최근 친척이 운영하는 학원에서 셔틀버스를 운전하면서, 짬을 내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2년 전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했지만, 국민연금을 받으려면 아직 8년 가까이 남아 있는 상황이라 마음이 조급하다. 막상 퇴직을 하고 나니 회사에 다니던 때 일상이던 비용들도 하나하나 부담이 됐다. 여가활동까지 줄이다 보니 괜히 울적해지는 날도 많다.
하나금융그룹은 11일 ‘100년 행복연구센터’ 개소를 기념해 ‘대한민국 퇴직자들이 사는 법’ 보고서를 발간했다. 수도권과 광역시 거주 50세 이상 남녀 퇴직자 1000명을 설문해 만들었다. 응답자들이 밝힌 퇴직 이후 생활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 퇴직 후 소득 공백 평균 12.5년
보고서에 따르면 50세 이상 퇴직자들이 국민연금 수령 때까지 버텨야 하는 소득 공백 기간은 약 12.5년. 이 기간 퇴직자 3명 중 2명가량은 생활비를 29%가량 줄이거나, 재취업에 나서고 있다.
응답자의 38.1%는 50∼54세에 퇴직했고, 45∼49세 은퇴자도 23.2%나 됐다. 이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생활비는 월 400만∼500만 원이었지만, 실제 지출하는 평균 생활비는 약 251만7000원으로 이에 크게 못 미쳤다. 써야 할 돈을 못 쓰고 사는 것이다. 응답자들은 “한 달 생활비 200만∼300만 원이면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하며 먹고살 수는 있지만, 경조사를 챙기고 여가를 즐기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의견이었다.
이 때문에 퇴직자 절반(55.1%)은 재취업이나 창업을 했다. 배우자도 절반 이상(58.6%)이 일을 한다. 수입은 월평균 393만7000원. 퇴직자 36.4%는 일을 그만두면 늦어도 1년 안에 형평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를 안고 산다.
서울 강동구에 거주하는 60대 퇴직자 강모 씨가 일자리를 알아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월 130만 원 남짓의 국민연금으로는 생활이 안 된다. 아직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지만, 60대이다 보니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는 상가 야간경비 정도다. 그의 아내는 그보다 먼저 동네 아파트 아이들 ‘등·하원 돌보미’로 용돈 벌이에 나섰다.
퇴직자의 65%는 퇴직 후 심적 후유증을 경험했다.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의 압박감(44.8%), 사회적 지위 상실(42.7%) 때문이었다.
○ 노후자금 충분한 ‘금(金)퇴족’의 비결
노후자금이 충분하다고 밝힌 퇴직자는 8.2%. 보고서는 이들을 ‘금퇴족’으로 분류했다. 이들은 퇴직자 평균 월 생활비보다 22% 많은 307만9000원을 생활비로 지출한다.
금퇴족들은 노후 준비의 비결로 ‘경제활동 재개’보다 ‘금융자산 마련’을 꼽았다. 특히 퇴직연금과 연금저축 등 연금에 일찍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퇴족의 28%는 이미 30대 초반에 연금에 가입했고, 40대부터 가입한 비율도 46%로 퇴직자 평균(각각 20.4%, 32%)보다 일렀다.
투자금융 자산도 적극 활용했다. 금퇴족의 절반가량(47%)은 30대 후반부터 투자금융 상품에 돈을 넣었다. 금융회사의 자산관리 설명회, 책이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노후자금 운용 관련 정보를 모았고, 이른 내 집 마련을 통해 주거 안정성과 비상 노후 재원을 확보한 경우가 많았다. 또 거주용 주택 외에 다른 부동산 자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급이나 사업소득 외에 금융자산 및 임대 소득 등으로 소득원을 다양화해 노후 안정성을 높인 것이다.
조용준 100년 행복연구센터장은 “퇴직 이후에 자녀 결혼, 부동산 활용, 간병·상속 대비 등 여러 이슈에 차례로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퇴직 이후를 고려한 전문적인 자산 관리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동아 /김자현 기자 , 장윤정 기자
윤미향 “숨소리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장관’이 생각나는 아침”
위안부 기부금, 자녀 유학비 유용 의혹 불거져
“겁나지 않아, 친일세력 모략에 당당히 맞설 것”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지난달 8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434차 정기수요시위에 참석해 보라색 리본 배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최근 자녀의 유학비를 둘러싼 논란에 휩싸인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국회의원 당선자는 “6개월 간 가족과 지인들의 숨소리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생각나는 아침”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윤 당선자는 12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미국 시간으로 5월 10일 조선일보 기자가 딸이 다니는 캘리포니아대(UCLA) 음대생들을 취재하기 시작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제기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회계부정 의혹은 해당 단체의 이사장을 지낸 윤 당선자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기부금을 자녀의 미국 유학비 등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으로까지 번졌다. 윤 당선자는 “수사기관의 불법행위로 피해를 본 남편의 형사보상금이 유학비 출처”라고 해명한 바 있다.
윤 당선자는 “정의연과 저에 대한 공격은 30년간 계속된 세계적인 인귄운동의 역사적 성과를 깔아뭉개고 21대 국회에서 더욱 힘차게 전개될 위안부 진상규명과 사죄와 배상 요구에 평화인권운동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보수언론과 미래통합당이 만든 모략극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겁나지 않는다. 친일이 청산되지 못한 나라에서 개인의 삶을 뒤로 하고 정의 여성 평화 인권의 가시밭길로 들어선 사람이 겪어야 할 숙명으로 알고 당당히 맞서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친일 세력의 부당한 공격의 강도가 더 세질수록 저 윤미향의 평화 인권을 향한 결의도 태산같이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지난 10일 인천시 부평구 한 아파트에 이태원 클럽을 방문했다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주민을 비난하는 벽보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경기일보 제공
출입기자 1700명 시대, ‘국회 기자’의 오늘
[미디어오늘 창간25주년] 국회 등록 언론사만 507곳…앞으로 더 늘어날 수도
국회는 가장 많은 언론이 모이는 핵심 취재처 중 하나다. 지난 11일 기준 국회에 등록된 언론사는 507곳, 출입기자는 1700명에 달한다. 대략 3만여명으로 추산되는 전체 기자직 종사자의 약 5%가 국회에 등록된 셈이다. 다른 출입처에 비해 출입·취재가 자유로운 국회는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언론 군상을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미디어오늘은 국회 사무처 협조를 받아 최근 14년간 국회 출입기자 등록 변화를 살펴봤다.
국회 출입기자는 인터넷 언론에 상시 출입증 발급이 시작된 2004년(17대)부터 큰 폭으로 증가했다. 국회는 내규에 따라 2년 단위로 갱신되는 상시, 1년 단위의 장기 출입기자증 및 일시취재증(최대 7일)을 발급한다. 출입증 유형에 따라 출입·취재가 가능한 영역이 다르고, 지정석 배정도 상시 출입기자를 보유한 언론사에 한해 이뤄진다. 출입등록에서부터 차별을 호소했던 인터넷 언론사들로서는 17대 국회부터 진입장벽이 허물어진 셈이다.
국회에 출입이 등록된 인터넷 언론사는 2006년 50곳, 2010년 94곳, 2015년 138곳, 2019년 186곳으로 꾸준히 늘었다. 지난 13년간 인터넷 언론사만 136곳이 새롭게 국회 출입 매체로 등록된 것이다. 같은 기간 일간지 48곳, 방송사 34곳, 통신사 22곳, 주·월간지 58곳이 늘어난 데 비하면 압도적인 증가세다.
다만 매체 유형별 기자는 여전히 일간지 비중이 높다. 전체 출입기자 가운데 일간지 소속은 2006년 43.5%에서 2010년 32.1%로 줄었으나 2015년 31.6%, 2019년 31.0% 등 방송·통신·인터넷·주간·월간지에 비해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인터넷 언론 기자의 경우 2006년 17.7%에서 2010년 19.1%에서 꾸준히 늘어 2019년 23.8%로 나타났다.
▲ 2006~2019년 국회 출입기자 현황. 디자인=이우림 기자
출입기자의 경우 2006년 866명에서 2009년 1000명을 넘어선 뒤 약 10년 만인 2019년 1700명을 넘은 상황이다. 장기 출입기자가 2006년 191명에서 2019년 796명으로 4배 이상 늘어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언론사별 배정 인원이 제한되는 상시출입은 평균적으로 500명대가 유지됐다. 이런 추이는 출입등록 제한이 없는 한 앞으로도 국회 출입기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을 시사한다.
현재로서도 국회 기자실은 포화상태다. 기자들의 취재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공간이 기존 ‘정론관’ 대신 ‘소통관’으로 올해 초 확대·이전되면서 약 130석이 증가했으나 여전히 자리 부족을 호소하는 기자들이 있다. 주요 정치인이 국회에 나타날 때마다 여러 명의 기자가 마이크나 휴대전화를 들이대는 모습은 정치인의 말 한마디조차 ‘취재 경쟁’ 대상이 된 현실을 보여준다.
한 국회 출입 기자는 “의원들이 예전에는 (회의 등이 끝난 뒤) 나와서 인터뷰도 잘 하지 않았는데 미디어 플랫폼이 늘어나다 보니 그런 것들에 민감해지고 활용하는 일도 많아졌다. 종편 같은 경우 오후 시간 내내 정치 뉴스 프로그램을 하니까 밑그림 등이 필요한 일이 더 많아졌다”며 “예전엔 뉴스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여겨졌던 일들도 (정치 뉴스를) 소화할 시간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최근 들어서는 유튜버들도 취재 경쟁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소위 패스트트랙 사태를 기점으로 미래통합당(구 자유한국당)에 우호적인 ‘보수 유튜버’들의 국회 진출이 본격화됐다. 인터넷신문사로서 장기출입증을 받는 ‘펜앤드마이크’ 사례도 있지만, 취재 출입증이 아닌 일반 방문증으로 국회에 들어와 촬영에 나서는 경우도 종종 포착된다. 통합당 일각에선 ‘보수 유튜버들에게 입법조사원 자격을 주자’는 주장도 나온 바 있다.
기존 언론사들의 출입·취재 수요가 꾸준한 상황에서 내규상 자격요건이 없는 유튜버들까지 모여들자 국회 사무처는 난처한 기색이다. 유인태 사무총장은 “이미 출입증 받은 기자들이 천몇백명인데 몇천명, 만명까지 내주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통합당에선 유튜버들 출입 제대로 안 시킨다고 ‘언론 탄압’ 소리까지 나오는데 의원들이 압력을 넣는 대로 하나하나 (출입증을) 주면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겠더라”고 털어놨다.
사무처는 향후 국회 출입기자들이 참여하는 언론환경개선자문위원회가 마련한 기준에 따라 출입기자 요건 등을 정비한다는 계획이다. 출입등록이 돼 있는 기자나 매체들 중에서도 실질적인 취재·출입 활동이 확인되지 않으면 출입증이나 지정석을 조정해나갈 방침이다.
▲ 2006~2019년 국회 출입기자 현황. 자료=국회 미디어담당관실, 디자인=안혜나 기자
국회 사무처 발주로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국회 언론환경 개선방안 연구’를 수행한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국회는 열린 공간이고 민주주의 심장이기에 누구나 취재할 수 있도록 열어놓는 것은 바람직하다”면서도 “한국 언론보도 자체에 정치 분야가 지나치게 많다. 국민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기능에 진척이 없는 상태에서 출입기자 수만 늘어나는 건 마냥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실제 늘어난 기자 수만큼 기사의 질이 높아졌느냐에 대해선 대부분 고개를 젓는다. 한 정당 관계자는 “어느 매체인지 모르는 언론사들도 꽤 있고, 등록만 했지 얼굴 볼 일 없는 기자들도 많다”며 “출입 언론이 많은 만큼 책임도 커져야 하는데 오보 등에 대해 사과하고 인정하는 사례는 별로 못 봤다. 인터넷을 통해 기사들을 보니까 ‘클릭 수’ 기준으로 광고가 실리고 선정적으로 (기사나 제목을) 뽑는 점이 안타깝다. 언론 입장에서도 출입처 입장에서도 폐해”라고 지적했다.
한 국회출입 기자도 “기자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정쟁 전문 기자’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하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정책적인 면보다 화제를 쉽게 끌 수 있는 ‘싸움판 국회’ 보도에 더 익숙한 건 사실”이라고 호소했다. 다만 그는 “무조건 정책적 면이 부족하다기보다는 국회 내에서 이뤄지는 논쟁도 정책적 측면에서 비롯된 부분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문제의 원인을 모두 언론에 돌리는 건 한계가 있다. 광고 매출이 중요한 현실, 포털에서 짧은 호흡으로 이뤄지는 뉴스 소비 패턴은 선명하고 자극적인 기사가 ‘잘 팔리도록’ 하는 구조적 문제다. 써야 하는 기사량, 잦은 인사 이동 등 취재기자가 충분한 시간을 들이기 어려운 점도 고질적 문제다. 2017년 ‘언론의 국회 및 의회정치 보도관행과 개선방안’(채영길·조재희·조인호)을 주제로 한 국회 연구용역 보고서는 보도의 질을 높이기 위해 △기자의 자율성 보장 △기자의 전문성 확보 △심층보도의 확대 및 주제의 다양화 △국회의 적극적 소통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국회 사무처는 정책 기사를 유도하기 위해 공보업무를 강화하고 있다. 상임위원회를 비롯한 전 부서에 미디어담당관을 두고, 법안심사 관련 보도자료 배포를 활성화하는 식이다. 유인태 사무총장은 “국회 관련 기사가 대부분 부정적인데 상임위 차원에서 보도자료를 냈더니 ‘옛날 신문’ 아닌 데에서는 꽤 다뤄주더라”며 “언론이 반정치주의에 물들어있거나 정작 정책을 홍보해도 기사 하나 안 쓰는 데도 많다. 국회 직원들도 매스컴에 잘못 접촉했다가는 시달림을 당하다 보니 ‘동굴 속’에 있었다. 그래서 ‘양지’로 나오게 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노지민 기자 jmnoh@mediatoday.co.kr
문 대통령 그린뉴딜 검토지시에 ‘MB 녹색성장과 뭐가 다른가’
비공개토론서 검토지시 “일자리, 외교적 접근” 언급, 격론 가까운 토론도…한국판 뉴딜 얘기하다 왜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 프로젝트에 이어 이번엔 ‘그린뉴딜’도 검토해보라고 지시해 그 배경이 주목된다. 그러나 ‘그린 뉴딜’이라는 사업이 정확히 뭘 말하는 것인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 의문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과 같이 녹색성장을 내세운 대규모 토목공사와 어떻게 다른지 등에도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에 청와대 관계자는 입장을 보내온 반론을 통해 “4대강 사업 같은 토목공사와는 기본 컨셉트가 완전히 다르고, 그 점을 충분히 설명했는데도 어떻게 다른지 해답을 못내놓았다는 지적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며 “아직 출발 단계에 있어 구체적인 세부사업까지는 제시할 수 없다는 점을 이유로, 이미 정책이 시행되어 부작용까지 드러난 4대강 사업과 뭐가 다르냐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반박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13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국무회의 비공개토론에서 ‘그린 뉴딜’의 두가지 중요성을 언급했다고 전했다. 강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첫째 그린뉴딜은 그 자체로 많은 일자리 만들 수 있다” “둘째는 외교적 접근으로, 국제사회 그린 뉴딜에 대한 한국 역할을 적극적으로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강 대변인은 “실제로 유럽 등은 그린뉴딜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며 “유럽에서는 지난해부터 기후 변화 아닌 기후 위기라는 표현 쓰고 있을 정도”라고 주장했다.
강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이날 회의에서 “그린 뉴딜이 화두라며 한국판 뉴딜에 포함돼야 한다는 의견 많은 데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중소벤처기업부 부 등이 협의해 그린뉴딜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지 확인해서 서면으로 보고해달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같이 3개 부처 지시가 끝나자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발언을 신청해 국토부도 ‘그린 뉴딜’이 가능하니 서면 보고서에 작성하는데 참여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강 대변인은 전했다. 특히 강 대변인은 김 장관 발언 후 격론에 가까운 토론이 있었다면서 ‘그린 뉴딜이 우리사회가 가야 할 중요과제이자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핵심 가치임이 분명하지만, 한국판 뉴딜이 우리 사회 모든 것을 담은 큰 그릇이나 큰 우산으로 모든 과제를 다 안고 갈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자 김현미 장관은 선도국가로 가려면 기후 변화에 적극 대응해야 하고, 한국판 뉴딜에 그린뉴딜이 전면 대표상품으로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포함시켜달라는 의미라고 재반론했다고 했다. 강 대변인에 의하면, 결국 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은 일시적 일자리 창출로 위기 넘기자는 것이 아니라 선도형 경제로 바꿔나가는 지속가능한 토대를 갖춰나가는 것으로 스마트시티 등도 포함될 수 있는 것 같으니 국토부도 서면보고에 참여해 중요한 일을 해달라”고 말했다. 이번 주말이나 내주 초에 이들 4개 부처로부터 ‘그린뉴딜’ 보고서를 받아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그린뉴딜과 관련, 당시 회의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이 방역 선도했는데, 기후 변화 포함한 그린 뉴딜 국제사회 변화가 매우 크다, 구체적이어서 한국이 선도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의견을 냈으며,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기후 변화 대응하는 것은 비용이 아니다, 산업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이라고 했고,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역시 ‘그린뉴딜은 필수다, 디지털 경쟁 필요하면서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고 언급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그린뉴딜 개념이 구체적으로 뭘 뜻하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한 기자가 ‘그린 뉴딜 개념도 (그) 회의에서 공유하지 않았느냐’, ‘이명박 정부 때 추진한 4대강 사업도 녹색성장의 주요 프로젝트였고, 재활용 쓰레기를 활용 에너지 자원 만들기도 했는데, 그린 뉴딜이 이런 이전 정부 추진과제와 다른 것인지, 겹치는 부분도 있는지, 혹시 대규모 토목사업 연계한 것은 아닌가’라고 질의했다.
이에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그런 부분에 구체적인 보고를 받아보겠다는 뜻”이라며 “어떤 사업인지 디테일하게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한국판뉴딜의 경우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대면 산업 활성화’ ‘노후화된 국가기간시설의 디지털화’ 등 세가지 큰 축이었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그린뉴딜이 저탄소정책을 뜻하는 것은 분명하다”며 “온실가스를 줄이는 저탄소로 가는 과정에서 여러 사업 있을 수 있는데, 대통령이 포인트를 둔 것은 어떻게 일자리를 발굴할지 보고해달라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이후 이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보내온 입장에서 “노후화된 SOC에 도시, 산단 등에 인공지능이나 디지털 기술을 결합해서 스마트 산단이나 스마트 도시 등을 만드는 것을 예로 들수 있다”며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낙후된 중소기업 밀집 지역을 디지털 그린 스마트 타운으로 만드는 것도 예로 들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선도국가로서 한국의 역할을 하는 것, 그린 뉴딜을 토대로 선도경제로 가겠다는 것”도 차이라면서 “대통령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강조한 ‘인간안보’는 질병, 재난, 환경 등의 인간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한 국제사회에서의 연대와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인데, 그린 뉴딜의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다른 기자가 ‘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을 말씀하다 갑자기 그린뉴딜을 얘기하는데, 5월초 여당에서 토론이 있었는데, 그런 요청이 들어온 것이냐’고 묻자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여당내 토론이 있었다는 것은 알았겠지만, 구체적 요청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며 “민주당 토론도 갑자기 한 게 아니라 선거공약으로 준비해왔다”고 답했다. 그는 “우리사회 화두라고 했다. 그린뉴딜이 어느날 뚝 떨어진 개념이 아니라, 지금 비상한 시국에서 나오는 각종 대응책으로, 일자리 차원에서 접목해려는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오랫동안 연구했다면 왜 3주년 특별연설에는 담화에 포함시키지 않았느냐’는 어느 기자의 질의에 이 관계자는 “여러 가지를 파악하고 검토하다가 이번에 지시하게 됐다”며 “3주년 특별연설에 담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이메일 바로가기
지구와 크기·궤도 닮은 ‘슈퍼지구’ 발견됐다
지구와 닮은 외계행성 케플러-62f의 모습 (사진=NASA Ames/JPL-Caltech)
미국 IT매체 씨넷은 12일(현지시간) 뉴질랜드 캔터베리 대학 천문학자들이 지구와 꼭 닮아있는 ‘슈퍼지구(super-Earth)’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연구진들은 "새로운 행성은 지구의 크기와 궤도까지 비슷한 몇 안 되는 외계행성 중 하나"라고 밝혔다.
새로 발견 된 행성은 우리 은하에서 약 2만5000광년 떨어져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우리 태양보다는 작은 항성 주위를 여행하고 있다. 행성의 질량은 지구보다 약 4배로, 지구와 해왕성 사이의 질량을 가지고 있으며, 항성의 질량은 우리 태양의 약 10%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이 행성의 1년은 약 617일로 알려졌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결과를 천문학 분야 학술지 ‘천문학 저널’(The Astronomical Journal) 최신호에 공개했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을 백 만 번에 한번 일어날 만한 희귀한 일이라고 밝혔다. 천문학자들은 이 행성을 발견하기 위해 ‘미시중력렌즈’(gravitational microlensing)로 불리는 기술을 사용했다. 이는 두 천체가 관측자의 시선 방향에 겹쳐 놓일 때 앞 천체 때문에 뒤 천체의 빛이 휘어져 관측자에게 밝기가 증폭되어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뉴질랜드 캔터베리 대학 천문학자 안토니오 헤레라 마틴 박사는 “이 행성과 항성의 결합으로 생긴 중력이 더 멀리에 있는 항성의 빛을 특정 방식으로 확대시켰다"며 "우리는 전 세계에 있는 망원경을 사용해 빛이 휘어지는 현상을 측정했다”고 밝혔다.
지구와 같이 암석을 가지고 있으며, 질량이 지구보다 무거워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슈퍼지구는 그 동안 많이 발견됐지만, 질량과 궤도까지 비슷한 행성은 찾기가 힘들었다.
NASA(미 항공우주국)는 수퍼지구에 대해 "지구보다 최대 10배 가량 더 크다"며, 물로 가득 찬 행성, 얼음 행성, 가스로 가득찬 행성에 이르기까지 구성은 다 다를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정현 미디어연구소 l/지디넷코리아
가요속 '사랑' 단어, 90년간 4만3000번이나 사용됐다…국립한글박물관 특별전 집계
목포의 눈물’ 가사지. 가사 중 ‘삼백연 원안풍’의 원래 가사는 ‘삼백년 원한 품은’이었다. 300년전 무렵이면 임진왜란(1592~1598년)이 연상된다.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가사를 바꿨다.|국립한글박물관 제공
노랫말에서 사용된 단어중 최고는 역시 ‘사랑’이었다. 그 다음을 ‘말’과 ‘사람’, ‘눈물’, ‘때’가 이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15일부터 10월18일까지 기획특별전(<노랫말-선율에 삶을 싣다>)을 열면서 1920년부터 2010년까지 발표된 노래 2만6000여곡을 대상으로 노랫말에 등장하는 단어들의 빈도를 조사한 결과 ‘사랑’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박물관측이 대중가요 노랫말의 발자취와 노랫말에 담긴 우리말과 글의 묘미를 소개하는 특별전을 기획하면서 1920~2010년 사이 90년간 유성기 음반과 <한국가요전집>(1980년·세광출판사), 노래방 업체에 등록된 노랫말들을 전부 분석한 결과다.
‘단장의 미아리고개’ 가사지, 작사가 반야월의 친필글씨다.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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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를 달린 ‘사랑’ 단어는 무려 4만3549회가 나왔고, 그 뒤를 ‘말(2만2049회)’과 ‘사람(1만9559회)’, ‘눈물(16,650회)’, ‘때(15,949회)’, ‘맘(마음)(15,705회)’이 이었다. ‘가슴(1만3980회·11위)’과 ‘세상(1만3581회·12위)’, ‘눈’(1만1354회·13위)도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노래 제목이나 노랫말에 ‘사랑, 말, 사람, 눈물, 마음, 가슴, 세상’ 등의 상위 빈도 단어가 들어 있고, 사랑의 감정을 직관적으로 보여 주는 다양한 장르의 노래 19곡을 믹싱하여 소개했다.
특별전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시대의 아픔을 담은 노랫말의 의미이다.
민요 ‘늴리리야’가 실린 민요시화곡집. 가사에는 당대의 사회상 시대상이 담겨있다.|국립한글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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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적인 예로 “사공의 뱃노래 감을 거리며…”로 시작되는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손목인 작곡·문일석 작사)은 1935년초 오케레코드가사가 개최한 전국 ‘향토 찬가’ 모집에서 당선된 노래다, 임을 향한 그리움, 그리고 사랑과 관련된 노래로 알려져있지만 이 노래에는 숨겨진 코드가 있다. 바로 ‘삼백연(三栢淵) 원안풍(願安風)은…’과 ‘임’이라는 가사다. 가사는 “삼백연 원안풍은 노적봉 밑에 임자최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임그려 우는마음 목포의 노래”로 끝난다. 그런데 이 ‘삼백연 원안풍’의 원래 가사는 ‘삼백년 원한 품은’이었다. 300년전 무렵이면 임진왜란(1592~1598년)이 연상된다.
가수 남진씨의 ‘임과 함께’ 음반. 1970년대 들어 산업화 도시화가 본격화되면서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을 담은 노랫말이 유행했다. 서구 영화 속 펼쳐진 초원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남진의 ‘임과함께’는 대중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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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말에 등장하는 ‘임’ 역시 연인이 아니라 ‘조국의 광복’을 비유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어로 알려졌다.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우리말의 표기와 발음을 미묘하게 변형한 노랫말을 슬쩍 집어넣었던 것이다. 이런 요소들은 일제강점기 백성들의 설움을 달래주는 코드로 이해됐다(손목인의 <자서전>·1992년). ‘목포의 눈물’은 음반 발매 당시 5만 장 이상이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김미미 국립한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그간 대중가요를 주제로 한 다양한 전시가 열렸지만, 대중가요 앨범이나 가수가 아닌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본격적으로 다룬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나훈아의 ‘고향역’이 실린 음반,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음을 담은 노랫말로 돈을 벌기위해 도시로 떠나온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며 큰 인기를 끌었다.|국립한글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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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에서는 국내 최초의 창작 대중가요로 알려진 ‘낙화유수’(1929년)부터 진정성 있는 노랫말로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의 ‘IDOL’까지 총 190여 곡의 대중가요 노랫말과 더불어, 각종 대중가요 음반 및 가사지, 노랫말 책, 축음기 등 총 206건 222점의 전시 자료를 소개한다.
대중가요의 노랫말은 대중을 위해 생산되고 대중에 의해 소비되었다. 따라서 노랫말 속에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이야기와 정서를 담고 있다.
김민기의 ‘아침이슬’ 검열자료. 1970년대부터 담담하고 진솔하게 삶을 노래한 포크송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삶의 고뇌를 아침이슬에 빗대어 표현한 노래이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민중운동 모임에서 <아침이슬>의 인기가 높아지자,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의 ‘묘지’라는 노랫말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금지됐다.|국립한글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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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눈물’에서 보듯 1920~1945년 이전까지는 식민 지배 아래에서 대중이 겪은 설움과 울분을 비유적인 단어들로 표현하는 시 같은 노랫말이 유행했다. 1950년 전후에는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위로한 ‘단장의 미아리 고개’(1957년 추정)와 미8군 쇼 등을 통해 들어온 이국적인 지명과 리듬을 섞은 ‘늴리리 맘보’(1957년) 같은 노랫말이 인기를 얻었다.
‘사랑하기때문에’가 실린 유재하의 1집 음반, 인간과 인생에 대한 고민을 담은 노랫말이 대중가요 노랫말의 수준을 한층 높였다는 평을 듣는다.|국립한글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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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슈샤인 보이’(1954년)의 ‘헬로 슈-샤인 헬로 슈-샤인 구두를 닦으세요 구두를 닦으세요’라는 경쾌한 노랫말 뒤에는 한국 전쟁의 피난살이 중에 생긴 전쟁고아들이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시대상이 감춰져 있다. ‘앵두나무 처녀’(1956년)의 ‘서울이라 요술쟁이 찾아갈 곳 못 되더라‘라는 노랫말에는 경제 개발에 따른 이촌향도 현상과 녹록치 않은 도시 생활에서의 좌절감이 나타나 있다. 1960~70년대에는 도시의 화려한 성장과 이상을 표현한 ‘임과 함께’(1972년),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오는 소외감이나 고향에 대한 향수를 표현한 ‘고향역’(1972년) 노랫말이 동시에 유행했다.
주현미가 부른 ‘앵두나무 처녀
’가 실린 음반(1985년). 1956년 김정애가 발표한 노래인데 먹고살기 힘든 농촌을 떠나 무작정 도시로 떠난 젊은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디뤘디.|국립한글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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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에는 포크송과 발라드가 유행하면서 ‘아침이슬’(1971년)처럼 삶의 진지한 성찰을 보이거나 ‘사랑하기 때문에’(1987년)처럼 서정적인 노랫말이 대중에게 큰 반응을 얻었다.
특히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삶의 고뇌를 아침이슬에 빗대어 표현한 노래였는데,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민중운동 모임에서 인기가 높아지자 금지곡이 됐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의 ‘묘지’라는 노랫말이 불온하다는 이유였다. ‘아침이슬’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풀어낸 노랫말로 사랑 노래가 대부분이었던 대중가요의 노랫말에 큰 혁명을 가져왔다고 평가받는다.
1990년대 이후 대중을 대상으로 한 문화적 표현이 한층 자유로워지고 한류, K-pop 등 전 세계를 무대로 한 노래가 주목받게 되면서 노랫말의 주제와 성격도 이전 시대에 비해 훨씬 다양해졌다. 김미미 학예사는 “최근에는 ‘나’를 사랑하고 ‘나’를 표현하라는 자존감과 정체성을 강조한 노랫말들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큰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다”고 밝혔다.
국립한글박물관이 특별전을 계기로 조사 의뢰한 노랫말 단어 사용빈도. ‘사랑’ 단어가 압도적이었다.|국립한글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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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에서는 다양한 시대의 노랫말을 보다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노랫말과 어울리는 각 시대의 공간을 연출했다. 예컨대 일제 강점기의 노랫말을 보고 듣는 공간은 당시의 음반 가게와 음악다방이 들어서 있던 경성의 거리를 재현했다. 음악다방에서는 그 당시 다방에서 유행했던 재즈풍의 노래 ‘청춘계급’(1938년)이 흘러나온다. ‘탭댄스’ ‘샴팡’ ‘윗카(vodka)’ 등 서양의 이국적인 문화와 음악을 즐기는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의 모습이 노랫말에 그려져 있다. 전시장에는 작은 무대와 함께 붉은 카펫이 깔려 있었던 1960~70년대 당시의 음악다방을 재현하였다. 음악다방에서는 탁자가 놓여 있는 소파에 앉아 커피향을 맡으며 당시에 유행했던 노래와 노랫말을 감상할 수도 있다. 심동섭 국립한글박물관장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 19의 대유행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노랫말로 잠시나마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갈 수 있는 전시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수요집회 중단 요구하는 보수단체의 실체... 특히 이 사람
"서울의 중심에서 친일을 외치는" 반일동상 진실규명 공동대책위원회
▲ 지난 2월 19일, < 반일종족주의 >로 유명세에 오른 이우연 박사와 일행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및 관련 운동단체들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이하나
▲ 5월 13일 옛 일본대사관 근처에서 집회를 가진 ‘반일동상 진실규명 공동대책위원회’. ⓒ 김종성
코로나19로 인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우리공화당의 대규모 장외집회가 모습을 감춘 가운데, 소규모 극우단체들의 활동이 시선을 끌고 있다. 정의기억연대와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제1439차 수요집회에 대응해 맞불 집회를 연 '반일동상 진실규명 공동대책위원회'(반일동상 공대위)도 그중 하나다.
13일 수요집회가 열린 옛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위안부 인권회복 실천연대'와 공동으로 약 20명 규모의 '제23차 위안부상 철거촉구 수요정기집회'를 가진 반일동상 공대위는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하고 수요집회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집회 현장에 대자보로 내걸었다. 대자보 내용 중 하나는 일본이 1995년에 위안부를 지원하겠다며 등장시킨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 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과 관련된 것이었다.
"할머니들이 아시아여성기금 지원금(1인당 500만 엔)을 받으려 하자, 정대협은 당신들이 이 돈을 일본으로부터 받으면 창녀가 된다. 절대로 받지 말라.(대신 정부가 받아 기념관 등 건립)"
"무궁화 자매회 할머니들 '개인이 받으면 창녀이고, 정부가 받으면 당연한 것이라는 말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 - 중앙 2005. 4. 14
피해자 할머니들이 아시아여성기금에서 제공되는 1인당 500만 엔을 받으려 하자 정의기억연대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창녀'라는 말까지 운운하며 기금 수령을 막았다는 것으로, 피해자 모임인 무궁화 자매회와 정대협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정대협 관계자가 피해자에게 그런 막말까지 했다는 것이고 2005년 4월 14일자 <중앙일보>에 보도됐다는 주장이다.
위안부 할머니와 위안부 인권단체 폄하
▲ 대자보에 인용된 <중앙일보> 기사. ⓒ 중앙일보
해당 <중앙일보> 기사에 그런 글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지만원, 위안부 문제를 해부한다 (하편)'란 기사에 그 글귀가 실려 있다. 그런데 이 기사는 <중앙일보>가 쓴 게 아니었다. 기사 상단에 이렇게 적혀 있다. "<지만원씨의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글 전문>."
극우 논객 지만원씨가 홈페이지에 쓴 글을 <중앙일보>가 그대로 옮겨놓고, 이를 근거로 반일동상공대위가 <중앙일보> 기사임을 내세워 '창녀' 발언 운운했던 것이다.
그동안 지만원씨가 해왔던 주장이 얼마나 황당하고 근거 없는지는 5·18 광주항쟁에 대한 터무니없는 강변에서도 증명된다. 그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찍힌 할머니·할아버지 및 아기들의 사진을 놓고 북한에서 파견한 공작조 사진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리을설·황장엽·최룡해·최선희 같은 거물급들이 기발을 쓰거나 변장한 채 광주에 투입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뉴스에 가끔 나오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차관)은 2020년 현재 중년 여성이다. 그런 그가 40년 전에 '광주 아이'로 위장해 공작을 벌였다는 주장이다.
그런 지만원씨가 홈페이지에 아무렇게 쓴 글을 <중앙일보>가 그대로 소개했고, 반일동상 공대위는 이런 과정을 언급하지 않은 채 '창녀' 발언이 <중앙일보>에 보도된 듯 대자보를 제작했다.
반일동상 공대위 대자보에는 이 외에도 황당한 내용이 많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위안부 인권단체의 활동을 '비즈니스'란 표현까지 써가며 폄하했다. 이들이 들고 있는 대자보 중 하나는 제목이 '위안부(소녀상) 비즈니스'다.
이들의 활동은 장외집회뿐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도 전개되고 있다. 이번 수요집회 전날인 12일에는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국회의원 당선인과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를 아동학대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수요집회를 아동학대로 몰아세우는 이유와 관련해 이들은 "청소년에게 성노예·강간·집단강간·성폭력·강제연행·매춘·전쟁범죄·구금 등과 관련한 내용을 가르치는 시간"이라는 점을 들었다.
반일동상 공대위의 출범
▲ 13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시위(왼쪽)와 더불어시민당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인의 사퇴 등을 요구하는 집회 사이에서 통제중인 경찰이 반사경에 비치고 있다. ⓒ 연합뉴스
대규모 극우단체들의 활동이 소강 국면에 들어간 가운데 이처럼 적극적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반일동상 공대위는 작년 12월 2일 출범했다. 반일민족주의에 반대하는 모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위안부와 노무동원 노동자 동상 설치를 반대하는 모임 등으로 이루어진 연합단체다.
이 단체의 결성은 <반일종족주의> 공동 저자인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4·15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광주 서구갑 후보로 출마해 5·18 모독 발언을 했던 주동식 <제3의 길> 주필, 최덕효 <한국인권뉴스> 대표, 김소연 대전시 의원이 손해배상소송을 당한 게 계기가 됐다. 이들이 서울 용산역 등에 있는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일본인 노동자와 닮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2일 '한국민의 명예 실추시키는 역사왜곡 반일동상 설치 중단하라!'는 성명에서 이들은 "작가 부부의 노동자상은 <아사히카와 신문> 사진(속)의 홋카이도에서 강제사역 당한 일본인 모습과 흡사"하다고 주장했다. 1926년 9월 9일자 <아사히키와 신문>에 보도된 일본인 징용 노동자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조각가인 김서경·김운성 부부로부터 명예훼손 손해배상소송을 당했다. 조각가가 일본인을 모델로 노동자상을 제작했다는 점을 법정에서 입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극우세력의 여론전을 지원받고자 이들이 반일동상 공대위를 만든 것이다.
공대위 출범 당시 이들이 소송에 부담을 느꼈다는 점은 위 성명의 결론 부분에도 드러난다. 이들은 소송 대신 합의점을 찾자고 호소했다. 법정 밖에서 공개토론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진실의 입을 봉하려 토론을 기피한 채 거액의 소송을 벌이는 것은 비루한 행위입니다. 우리 공대위는 지금이라도 노동자상과 관련한 역사적 진실 찾기를 위해 연구자 등 지식인들이 법정 밖에서 공개토론을 통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우연
▲ 지난해 6월 10일 <에프엔엔 프라임> 기사 "서울의 중심에서 친일을 외치다... 징용공 판결은 역사왜곡, 한국인 연구자가 국제연합에" ⓒ FNN
이렇게 시작된 반일동상 공대위의 활동은 강제징용 노동자상뿐 아니라 위안부 소녀상의 철거를 목적으로도 전개되고 있다. 주목할 사실은 이런 활동이 일본 측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점이다. 반일동상 공대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이우연 연구위원이 작년 7월 2일 일본 자금을 받고 국제연합 인권이사회 정기회의에 참석해 "한국인 노무자들의 임금은 높았고, 전쟁 기간 자유롭고 편한 삶을 살았다"는 망언을 한 사실은 유명하다. 일본 언론은 '서울에서 친일을 외친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그를 주목하고 있다.
후지뉴스네트워크(FNN)가 발행한 작년 6월 10일자 <에프엔엔 프라임>(FNN PRIME) 기사 '서울의 중심에서 친일을 외치다... 징용공 판결은 역사왜곡, 한국인 연구자가 국제연합에(ソウルの中心で親日を叫ぶ…「徴用工判決は歴史歪曲」韓国人研究者が国連へ)'는 이우연 사진과 함께 그의 주장을 상세히 소개했다.
신문에 보도된 그의 주장은 "징용 노동자상의 설치는 역사적 사실에 반하며, 문재인 정권은 일본과의 우호관계를 회복해야 한다"거나 "한국에서는 일본인 탄광부의 사진이 징용공으로 유포되는 등의 역사왜곡이 벌어지고 있다" 등이다.
일본 정부는 미국 각지에 소녀상이 세워지는 것을 극렬히 저지하고 있다. 또 노동자상이 확산될 가능성에도 우려를 품고 있다. 2018년에 부산 일본총영사관 인근의 노동자상이 철거되자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내각 대변인)이 기자회견을 열어 "계속해서 이러한 동상이 설치되지 않도록 단단히 주시할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도 그런 기류를 반영한다.
소녀상과 노동자상이 계속 확산되고 '전범국 일본'의 이미지가 확산되면, 일본의 숙원 사업인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이 무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본 정부와 언론은 '반일동상'에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 이우연이 반일동상 철거운동을 벌이고 있으니, '서울의 중심에서 친일을 외치고 있다'며 일본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이우연과 함께하고 있으므로 반일동상 진실규명 공동대책위원회도 일본 극우세력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단체가 그들의 바람을 어느 정도나 충족시켜줄 수 있을지 주목해볼 만하다./ 김종성 오마이뉴스
조국 수호했던 공지영, 정의연엔 "정의 파는 사기꾼" 리트윗
공지영 작가. 연합뉴스
.친여(親與) 성향의 공지영 작가가 최근 '기부금 유용 의혹'을 받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를 비판하는 글을 여러번 리트윗했다. 공 작가는 '조국 사태' 때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옹호하는 발언을 수차례 했지만,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선 비판글을 리트윗하며 다른 입장을 내비쳤다.
지난 9일 공 작가는 "(정의연은) 각종 명복으로지들 배 불리고 명분·정의 팔며 사업체 꾸리는 사기꾼들"이라는 트윗을 공유했다. 10일에는 "난 후원금으로 할머니들이 생활하기 어렵지 않게 지원하는 줄 알았다"는 내용의 글을 리트윗했다. 11일에는 "정의연의 기자회견을 봤는데, 불쾌했다. 억울하면 긴말 필요 없이 내역 공개하면 되는 일이다. 할머니께 사과한다고 했지만 떼로 나와 질문에 답변할 수 없다며 분노 표출하는 태도가 옳은가"라는 내용의 글을 리트윗했다. 13일에는 "막말로 사람들이 돈 보내줄 때는 할머니들 살아계실 때 마음껏 드시고 싶은 것 드시게 하고, 그동안 고생하셨으니 앞으로는 우리가 돈 보내줄 테니 잘 모시라는 당부의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걸 위해 돈을 보내준 건데 진심 그걸 모르면 안 되는 것"이라고 비판한 글을 공유했다.
한편 윤 당선인은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의 폭로로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기부금 사용처에 대한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이 할머니는 "성금‧기금 등이 모이면 할머니들에게 써야 하는데 할머니들에게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인과 정의연 측은 해당 의혹을 모두 부인했으나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윤 당선인은 12일 페이스북을 통해 "6개월간 가족과 지인들의 숨소리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생각나는 아침이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홍수민 기자 sumin@joongang.co.kr
죄수와 검사Ⅱ(한명숙) ③ "나는 검찰의 개였다" 한만호 비망록 단독 입수
이른바 ‘한명숙 2차 뇌물 사건’의 뇌물 공여자이자 핵심 증인인 고(故) 한만호 씨가 옥중에서 남긴 친필 비망록을 뉴스타파가 입수했다. 한만호 씨는 지난 2010년 4월 죄수 신분인 상태에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소환된 뒤 “한명숙에게 9억 원의 정치 자금을 제공했다”고 진술해 한명숙 전 총리가 기소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법정에서 자신의 진술을 번복해 큰 파장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공책 29권, 천 2백 쪽 분량인 한만호 비망록에는 한명숙에게 뇌물을 줬다고 진술했다가 번복한 이유가 자세히 적혀 있다. 비망록에서 한만호는, 자신이 추가 기소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사업 재기를 도와주겠다는 검찰의 약속 때문에 거짓 진술을 했다며 자신을 검찰의 “강아지”로 표현했다. 또 검찰이 처음 약속과는 달리 언론 플레이를 통해 서울 시장 선거에 적극 개입하는 것을 보고 진술 번복을 결심했다고도 했다.
한만호가 검찰 조사에서 처음에는 한명숙이 아니라 당시 한나라당의 다른 정치인에게 뇌물을 줬다고 진술했지만 검찰이 이를 묵살하고 한명숙 관련 진술만 요구했다는 주장도 비망록을 통해 처음으로 드러났다.
▲ 뉴스타파가 입수한 고(故) 한만호 씨의 친필 비망록. 노트 29권, 1,200페이지 분량이다.
마침내 공개되는 ‘한만호 비망록’
이른바 한명숙 2차 뇌물 사건의 두 번째 공판기일이었던 2010년 12월 20일, 서울중앙지검 510호 법정에 나온 한만호는 이렇게 말했다. (아래 한만호 비망록에서 발췌해 인용하는 문장들은 최대한 원문을 그대로 옮겼기 때문에, 어법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통영교도소로 이감된 지 불과 21일 뒤인 2010년 3월 30일, 한만호는 갑자기 서울 구치소로 이감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의 요구 때문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만호는 자신이 왜 서울구치소로 이감됐는지 전혀 몰랐다.
● 3월 30일 아침 화장실에서 세면 도중 이송명령 받고 즉시 짐 꾸려서 방 동료와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이송 교도관에게 어디로 누가 부른 것이냐, 무슨 자격이냐 (물으니) 검사가 부른 것이란 것 밖에 모른다(고 답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겹쳐졌다. 추가 사건이 있나, 아마 누가 검찰에 직접 고소했나보다.- 한만호 비망록 1072쪽 중
서울구치소로 이감된 한만호는 2010년 4월 1일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출정을 나가 조사를 받게 된다. 2-3시간 조사를 받고 나서야 한명숙이라는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 4월 1일. 통영에서 올라온 다음 날 소환되어 부도 경위와 피해자들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제가 무슨 신분으로 조사받는 것이냐 물었다. 아무 신분도 아니고 그냥 조사하는 것이다.... 이때까지는 한 총리님 건이라 생각못했다… 2-3시간 지난 후 알고 지내는 정치인 있느냐 물었다. 이때부터 한 총리님 예감이 들었다.
- 한만호 비망록 21쪽 중
그런데, 비망록에 따르면 한만호는 이날 조사에서 한명숙이 아닌 다른 정치인에게 돈을 준 사실을 얘기했다. 한나라당 친박계 의원이었다.
▲ 한만호는 비망록에, 검찰 조사에서 한명숙이 아니라 당시 한나라당 정치인에게 뇌물을 준 사실을 진술했다고 적었다. 당사자가 사망해 확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해당 정치인의 이름은 가렸다. 한만호 비망록 56쪽 중.
한만호는 비망록에 이 주장을 모두 4차례나 반복해서 적었다. 그만큼 이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소환된 첫날, 한나라당 의원에게 정치자금 제공 사실을 진술했다고 주장하는 한만호의 비망록 또 다른 부분.
한만호가 정말로 한명숙이 아닌 한나라당 의원에게 6억 원을 줬는지는 지금에 와서 밝히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돈을 줬다는 당사자, 한만호가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만호가 비망록을 통해 거듭 주장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다른 의원의 이름을 댔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이를 묵살했다는 것이다. 검찰의 관심은 오로지 한명숙에게만 있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뉴스타파는 검찰에 당시 한만호가 한나라당 다른 의원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한 게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왜 그러한 진술을 묵살했는지 질의했으나 보도 시점까지 답을 받지 못했다. (검찰은 보도가 나간 뒤인 2020년 5월 14일 오후 1시 경 보내온 답변서에서 “한만호가 한명숙 외 다른 정치인에게 금품을 주었다는 진술은 전혀 없었으며, 비망록에 적힌 내용은 한명숙에게 전달한 금품의 사용처를 허위로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라고 답했다.)
“특수부 조사실에 법조 브로커 나타나 검찰 협조 종용”
2010년 4월 1일 중앙지검 특수부에 불려가 첫 조사를 받은 한만호는 다음 날에도 특수부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다. 검사와 수사관이 그에게 했다는 말은 협박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말이었다. 그래도 한만호는 버텼다.
● 4월 2일 특수부 다시 소환됩니다. 수사관님과 검사님이 절대 불이익이 되지 않게 하겠다. 한 총리에 대해서 사실대로 답변해달라. 선택해라, 협조해서 도움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힘들게 해서 어려워지시든지. (그래서 저는) 한 총리님에 대한 이야기는 거론조차 하지 말아라.(고 답했고) 이렇게 종결됩니다.- 한만호 비망록 21쪽 중
4월 3일, 검찰은 한만호를 또 소환했다. 그런데 이날 오후 중요한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한만호가 비망록에서 ‘법조 브로커’라고 주장한 남 모 씨였다.
● 오후 끝날 무렵 조사실로 데려가더니 남00이 뛰어들어왔다. 얼굴 보는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다. - 한만호 비망록 21쪽 중
남 씨는 한만호가 구속된 이후 회사 정상화를 명분으로 한신건영에 감사로 입사한 인물이다. 감옥에 갇혀 있던 한만호는 수감생활 초기에는 회사에 있는 남 씨를 믿고 의지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남 씨가 사실은 자신의 회사를 빼앗으려 한다고 의심했다.
● 남00에 대하여... (중략) 법정 관리 하겠다 하여 가져간 서류 악용해서 지분, 회사 양도해가고, 아버님께도 경매시 2억인가 준다고 하여 서류 받아가서 회사 강탈한 것임.
- 한만호 비망록 163쪽 중
그런데 남 씨는 스스로 법조계와 수사기관 인맥을 과시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었다. 한만호는 법조 브로커로 활동했던 남 씨의 뒤에 법조 권력이 있다 믿었고, 이를 두려워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인물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조사실에 나타난 것이다. 조사실에 나타난 남 씨는 한만호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 “사장님 협조하시고 도움을 받으시지요. 앞으로 다른 건 추가 기소로 또다시 어려워지실텐데요.”... “서울시장 선거도 있고 이 건은 전체를 직접 계획하고 주도하는 아주 윗선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협조 안하시면 무척 힘들어지실 것입니다.”
- 한만호 비망록 21쪽, 61쪽
검사와 수사관들의 종용에도 한명숙에게 돈을 준 적이 없다고 버티던 한만호는 남 씨의 얘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비망록에 “하늘이 무너지는 공포감”을 느꼈다고 썼다.
▲ 한신건영에 관계했던 ‘법조 브로커’ 남 모 씨의 협박을 받고 한만호는 “하늘이 무너지는 공포감”을 느꼈다고 기록했다. 한만호 비망록 61쪽 중.
그날 밤, 구치소에 돌아온 한만호는 검찰에 협조하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 돌아와서 밤을 꼬박 새웠다. 이것이 현실이고 대세며 따라야할 시류라면 따를 수 밖에. 협조해서 회사 찾고 복수하고 피눈물 흘리는 피해자분들 회복시켜드리고 재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겠다. 제 자신에게 합리화했다.- 한만호 비망록 21쪽 중
한만호가 검찰에 협조하기로 결심한 첫 번째 동기가 공포였다면, 두 번째 동기는 희망이었다. 한만호는 구속된 이후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복수와 재기를 꿈꿨다. 구속 이후 자신의 회사를 빼앗아간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출소 뒤 회사를 되찾아 재기하는 꿈을 꿨던 것이다. 비망록에 쓰여진 한만호의 주장에 따르면 검찰은 그에게 협조의 대가로 그 꿈이 이뤄지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 검찰과의 ‘진술 거래’를 주장하는 한만호의 기록. 한만호 비망록 61쪽 중.
한만호가 일단 검찰에 협조하기로 결심하고 나자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특수부 조사실에서 남 씨의 협박을 받고 난 다음 날부터 한만호는 “스토리를 구상해” 검찰에 진술하기 시작했다. 4월 5일 1차 조서, 4월 8일 2차 조서, 4월 12일 3차 조서, 4월 22일 4차 조서, 5월 11일 5차 조서가 완성된다. 검사와 수사관들은 그에게 식사 등의 편의를 제공하며 칭찬했다고 한다.
● 자필 진술서 작성 이후부터는 한만호는 없어지고 오로지 검찰의 안내대로 따르는 강아지가 되었고 매일 점심이나 저녁 식사 때마다 검 수사관들의 립서비스에 마냥 흐뭇해하고 옳고 그른지 판단력은 없어졌거나 마비되어버렸다.- 한만호 비망록 1086쪽 중
“진술조서 암기시켜 테스트.. 모멸감 잊지 못해”
한만호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처음으로 소환된 2010년 4월부터 그해 12월까지 검찰에 무려 73번이나 출정을 나가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한만호의 진술조서는 딱 5회 분량이다. 나머지 68번은 검찰 조사실에 나가 어떤 조사를 받았던 걸까. 비망록에 그 답이 있었다.
● 출정 전날에 방에서 운동장에서 시험 준비하느라 혼자 중얼중얼대서 다른 수감자들이 이상한 사람으로 쳐다봤다. → 실수없이 잘하면 칭찬해주고 저녁(식사). 그 능멸, 모멸감을 죽어서도 잊지 않을 것이다.- 한만호 비망록 77쪽 중
▲ 검찰이 진술조서를 암기시키고 매주 시험을 보게 했다고 주장하는 한만호의 비망록 내용. “그래도 20년 넘게 CEO한 사람을 마치 저능아 취급했다”는 대목이 그가 느낀 모멸감의 정도를 보여준다. 한만호 비망록 139쪽 중.
검찰이 재판에 대비해 한명숙 측 변호인들의 질의에 대답하는 법을 알려주고 진술조서를 암기하도록 시켰다는 것이다. 이런 ‘교육’ 과정 중에 일어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한만호가 3차례에 걸쳐 3억 원씩 한명숙에게 가져다 줄 때, 두 사람 사이의 통화 횟수를 임의로 조정했다는 것이다.
● (9억 원을) 3번에 걸쳐 제공했다 허위 진술시 검찰에서 (한 총리와의 통화 횟수가) 매번 3번씩 433으로 스토리 만들었다가 나중에 332로 했다 소동이 되니 그냥 333으로 하자 합의하고 진술과 연습했다...종종 자금제공 순서가 바뀌고 해서 검사님이나 수사관님들이 당황한 적이 몇 번 있었다.- 한만호 비망록 70쪽 중
한만호의 변호인을 맡았던 김정범 변호사 역시 한만호에게서 같은 얘기를 들었다.
“제가 한만호 씨한테 물어봤어요. 조서를 작성하지 않은 경우에는 뭘 했냐 하니까 음식을 시켜서 먹고 그 다음에 나중에 재판을 하다 보면 변호인이 이러이러한 공격을 할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될 것이냐 그래서 시나리오를 가지고 연습도 하고 그랬다고, 한만호 씨는 그렇게 얘기를 했었어요, 당시에는. (기자: 만약에 그랬다면 그거 불법 아닌 겁니까?) 그렇죠. 당연히 불법이죠. 있을 수 없는 거죠. 대한민국 검찰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이죠.”
- 김정범 변호사 인터뷰 중
“진술 번복의 동기는 검찰의 언론 플레이와 선거 개입”
이렇게 검찰의 “강아지”가 되어 충실하게 증인의 역할을 수행하던 한만호는 대체 왜 자신의 진술을 법정에서 번복하기로 결심한 걸까? 한만호 비망록에 따르면 검찰의 ‘언론 플레이’와 ‘선거 개입’이 결정적인 계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만호는 검찰에 협조를 결심하면서 검찰의 약속을 한 가지 받았다. 자신의 진술을 선거 전에 언론에 유포하지 않는다는 약속이다. 한만호가 검찰에 협조를 시작한 게 2010년 4월 초, 서울시장 선거는 6월이었고 이미 한명숙은 야당의 서울시장 후보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한만호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렸다고 한다.
▲ 검찰이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언론플레이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에 개입했다고 주장하는 한만호의 자필 기록. “검찰의 언론플레이는 ‘마술사’ 수준이다”라는 대목이 눈에 띈다. 한만호 비망록 142쪽 중
한만호와 검찰 수사관 사이에서는 이런 대화까지 오갔다고 한다.
● 수사 초기에 언론에 악의적 보도 계속 터져나오게 되어 - 수사관에게 노무현 대통령도 저래서 (논바닥에서 시계) 자살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 총리님도 이러다 그렇게 되시는 것 아닐까요. 정말 걱정됩니다. - 그런 일 절대 없을 것입니다. 한 사장님은 그런데 신경쓰지 마십시오. 우린 그런 걱정 안 합니다. 정말 걱정이 됐고 꿈도 서너 번 비슷한 내용으로 꾸었다.
- 한만호 비망록 1111쪽 중
한만호는 검찰이 약속을 지켰더라면 법정에서의 진술 번복을 감행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망록에서 여러 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 약속(언론에 안 나오게)대로 언론에 악의적인 이야기 흘리지 않았으면 증인의 심정이 그토록 고통스러움을 느끼지 못할 수 있었다. 총리님을 뵙는 것도 아니고. 증인도 살아야할 생각에 너무나 절박했기에 검찰의 진술을 유지했을 것이다.
….그런데 언론 기사 내용은 그런 증인의 심정이 한층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아득함 뿐이었다. 거짓 진술, 사실이 아닌, 날조였기에
- 한만호 비망록 152쪽 중
한만호 비망록에 따르면 검찰은 한만호의 진술을 언론에 계속 흘리면서 (한만호는 이를 ‘언론질’이라고 표현했다) 서울 시장 선거 지지율을 계속 점검했다.
▲ 검찰이 서울시장 선거 지지율을 계속 점검했다고 주장하는 한만호의 자필 기록. 한만호 비망록 1038쪽 중.
결국 한명숙은 서울 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후보에게 불과 2만 6천여표, 0.6% 포인트 차이로 패배했다. 선거 전 여론 조사에서 20% 포인트가 넘게 벌어졌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적은 차이로 패배한 것이다. 한명숙이 간발의 차이로 패배하자 한만호는 더욱 큰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했다.
● 총리님의 서울시장 선거 결과가 왜곡되고 검찰이 언론을 통해 무차별 이미지 훼손 기사 나올 때마다 죄책감으로 가슴 속에 선혈이 터져나올 듯한 고통을 느꼈다. 부관참시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진술을 바로잡아 진실을 밝힐 것이다.
- 한만호 비망록 7쪽 중
한명숙에게 돈을 줬다는 자신의 진술을 번복하기로 결심한 한만호는, 그러나 검찰에는 이런 결심을 밝히지 않고 숨겼다. 선거는 이미 끝났고, 검찰에서 진술을 번복해봐야 통하지 않거나 겁박을 당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 검찰에서 진술 번복 시도하지 못한 이유는? 처음부터 윗선의 주도 계획하에 방대한 조직이 움직여서 시작된 수사라 법정이 아니고서는 섣불리 시도했다간 어떤 명목으로든 (횡령 불법자금 로비 기타 등등)으로 보복당할 것이란 두려움에 표정 관리하며 법정 증언날만 기다렸다.
- 한만호 비망록 134쪽 중
“검찰 언론플레이는 마술사” “언론은 관변 아첨 기관”
한만호는 비망록 곳곳에서 검찰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쓰는 듯한 언론의 행태에 분노를 표출했다. 한만호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 밖에서 사람들이 조중동이나 일부 언론이 권력의 나팔수라 해서 과장된 말이려니 했는데 제가 직접 당해보니 조금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었어요. 언론의 권력은 견제 감시하는 기관이 아니고 적어도 정치 사건에 관해서는 기관지나 관변 아첨 기관이 되어 있는 것 알 수 있었지요. 조중동과 경제 신문은 충성 다툼이 술집 아가씨 분칠하듯 하구요.
- 한만호 비망록 1163-1164쪽 중
▲ 한만호는 비망록 곳곳에서 이른바 조중동 등 보수 언론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한만호 비망록 1164쪽 중.
사건 당시 한만호의 변호인이었던 최강욱 변호사는, 한만호가 검사실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마주친 적이 있다는 에피소드를 전하기도 했다.
“검사가 불러서 갔는데 어떤 사람이 앉아있다가 나가더라는 거예요. 그리고 책상에는 동아일보가 펼쳐져 있었고. 그 검사 지금도 현직에 있어요. 젊은 사람이 있다가 나가고 이 사람(한만호)이 이렇게 들어오니까 둘이 스쳤을 거 아닙니까? 이렇게 쳐다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동아일보 기자예요.’ (라고 답하더라는 겁니다.)”
- 최강욱 변호사 인터뷰 중
검찰, 한만호 비망록은 “허위 사실, 모순된 논리”
검찰은 한만호의 비망록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면서 증거 목록에 이런 설명을 달았다. “한만호가 진술 번복 후 허위 사실과 모순된 논리로 검찰을 공격”
▲ 검찰이 한만호 비망록을 법원에 제출하면서 작성한 증거목록
검찰이 이렇게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비망록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이, 한만호의 법정 진술 이후에 쓰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한만호가 어떤 이유로 법정에서 검찰 진술을 번복한 이후 그 사실을 정당화하기 위해 비망록을 작성했다는 의미다. 검찰의 이같은 방어논리는 일리가 없지 않다.
뉴스타파는 검찰의 방어논리가 얼마나 근거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한만호가 진술 번복을 하기 전에 적어놓은 기록들을 면밀히 살폈다. 한만호 비망록 가운데는 그가 검찰에 진술 협조를 결심한 시기인 2010년 4월부터 법정에서 진술 번복을 감행한 2010년 12월 사이에 기록해놓은 편지와 메모들이 다수 있다. 물론 그 가운데 한명숙 사건을 직접 언급한 부분은 많지 않다. 언제든지 뺏길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마도 검찰이 다 확인하지 못했을, 의미심장한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2010년 5월, 그러니까 한만호가 본격적으로 검찰에 협조를 하던 시기 한신건영의 부하직원에게 보낸 편지의 초안이다.
▲ 한만호가 2010년 5월 한신건영 직원에게 보낸 편지의 초안. 검찰에 협조를 함으로써 자신의 억울함이 풀릴 것이라 기대하는 내용이다. 한만호 비망록 994쪽 중.
한만호가 진술 번복 이후에 주장한 것처럼, 검찰에 협조를 하면 자신의 사건을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함으로써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줄 것이라는, 즉 진술 협조의 댓가를 기대하며 암시하는 내용이다.
같은 시기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이제 검찰은 자신의 편이라는 자신감도 엿보인다. 감옥에 갇혀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을 토로했던 과거의 편지들과 사뭇 달라진 분위기였다.
● 혹시라도 이번 사건 이후에 어느 누구라도 힘들게 하거나 괴롭히려는 느낌만 들어도 서신하도록 해. 절대 용서하지 않고 뿐만 아니라 그 댓가가 처절함을 반드시 몸서리쳐지게 해줄 것이니까- 한만호 비망록 989쪽 중
역시 아내에게 보낸 같은 편지 가운데는, 한명숙 총리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일말의 죄책감이 엿보이는 편지 내용도 있다.
● 이번 사건으로 내 운명이 어찌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로서는 내 인생의 마지막 남은 선택을 하게될 것 같아... 이 사건으로 희생되는 분들이, 어떤 형태로든 희생자가 생길 것이고... 출소 후에 그나마라도 희망을 기대했던 사람들 몰락시키는 것이…
- 한만호 비망록 989쪽 중
“용서받지 못할 일을 내가 저질렀나 보다”
감방에 갇힌 죄수도 신문을 구독할 수 있다. 한만호 비망록 가운데는 그가 신문을 보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필사해놓은 노트가 있다. 역시 진술 번복 이전에 작성된 것이어서 그가 어떤 심경이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기록이다.
2010년 6월과 8월 사이, 한만호가 신문에서 필사해 적어놓은 메모다. 날짜는 적혀 있지 않지만 앞 뒤 메모를 통해 날짜를 추정할 수 있었다. “금수회의가 따로 없습니다. 입만 열면 생고기 뜯고 난 비리칙한 냄새가 납니다. 포식을 끝낸 짐승처럼 저희들끼리 화해롭습니다. 피묻은 발톱을 핥고 고깃점이 묻어있는 털 고르는 일이 남았습니다.” 한만호는 이 메모에 대해서 별도의 설명이나 주석을 달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떤 심정으로 이 부분을 필사해 두었는지는 추측할 수 있다. 자신과 검찰의 행태를 적확하게 묘사했다고 느껴 필사해둔 것은 아닐까.
▲ 한만호가 2010년 6월에서 8월 사이 신문을 보고 필사해놓은 메모. 한만호 비망록 817쪽 중
보다 직접적으로 한만호의 심경을 보여주는 필사 메모도 있다. 2010년 10월과 11월 사이 작성된 메모다. 한만호는 이향아 시인의 <세상의 후미진 곳에서>라는 시를 필사해 두었는데, 시의 내용은 이렇다. “이 세상 후미진 곳에서 / 나를 아직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나보다 / (중략) / 용서받지 못할 일을 내가 저질렀나 보다 / 그의 눈물 때문에 온종일 날이 궃고/ 바람은 헝크러진 산발로 우나보다 / 그래서 사시사철 내 마음이 춥고 / 바람결 소식에도 귀가 시린가 보다”
▲ 한만호가 2010년 6월에서 8월 사이 신문을 보고 필사해놓은 메모. 한만호 비망록 823쪽 중
한만호는 자신의 진술 때문에 한명숙 총리가 선거에서 패배했을 뿐 아니라 언론을 통해 여론 재판을 받게 되자 그 괴로운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위에서 인용한 이향아 시인의 시구 마지막 부분과 상당히 유사하게 느껴진다.
● 독거방에 있을 때에도 식사 때 좋아하는 음식이나 간식을 포만하게 먹었을 때도 파렴치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선거가 끝난 뒤에 찾아온 한여름 독거방 더위에도 한밤중에 일어나 심정을 추스리느라 한여름이었음에도 귀가 시리고 손발이 저려왔다.
- 한만호 비망록 40-41쪽 중
한만호가 법정에 나와 진술 번복을 한 이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기 위해 “허위 사실과 모순된 논리로 검찰을 공격”하기 위해 비망록을 썼다는 검찰의 방어 논리는, 그가 진술 번복 이전에도 비망록 곳곳에 검찰로부터의 대가를 기대하는 내용이나 양심의 가책을 표현하는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그 근거가 취약하다.
진술 번복 그 후의 기록
한만호가 법정에 나와 진술을 번복하자 검찰은 한만호의 부모를 찾아갔다. 검찰은 “진술 번복의 이유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한만호는 큰 압박감을 느꼈다.
● 증언 이후에 검사님이 부모님 만나고 왔다. 언제 출소할지 모르겠다 하고 오셨다. 기막히는 이야기였다. 번복하지 (용기내지) 못했던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가 부모님이 걱정하실 것 (추가기소나 형을 다 살아야) 때문이었는데 그 약점을 노리셨다.
- 한만호 비망록 38쪽
검찰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한만호는 법정에 6차례나 다시 나와 검찰에서의 진술이 허위였다고 재확인했다. 대질 신문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만호가 이렇게 법정에서 분투했던 때는 그가 만기 출소하기 불과 서너달을 앞둔 시점이었다. 검찰에서의 진술을 법정에서도 유지했더라면 그는 2011년 6월 별탈없이 만기출소했을 것이다. 그리고 검찰이 약속한 도움을 받아가며 재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고집스럽게 진술 번복을 유지했고, 결국 검찰은 그를 위증혐의로 기소하기에 이른다. 2011년 7월 한만호가 출소하고 불과 한 달 뒤의 일이다. 만기 출소 4일 전 감방 압수수색을 당해 비망록 전체를 검찰에 빼앗긴 것도 이 위증혐의와 관련된 수사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위증은, 재판에서 고의로 거짓 증언을 했을 때 적용되는 범죄 혐의다. 한만호의 진술이 위증인지 아닌지는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 사건이 결론이 나야 밝혀지는 일이다. 그런데 검찰이 한만호를 위증혐의로 기소한 것은 한 전 총리 사건의 1심 판결이 내려지기도 전의 일이었다.
“한명숙 총리에 대한 재판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먼저 기소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도 없었고 그것은 어떻게 보면 한만호 씨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검사가 기소한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고요. 결국은 한만호 씨의 진술을 다시 번복하도록 하려는 압박용이랄지 아니면 그 재판에 한명숙 총리에 대한 재판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그런 방법으로 서둘러 위증죄로 기소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 김정범 변호사 인터뷰 중
1심에서 무죄가 났던 한명숙 사건 판결이 2심에서 정형식 부장판사에 의해 뒤집히고 재판 거래 의혹을 받고 있던 양승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자, 검찰은 이미 기소해뒀던 한만호의 위증혐의를 기어코 다시 수사해 2016년 5월 그를 구속시켰다. 한만호는 출소 5년만에 다시 감방에 가게됐고, 2년 뒤 만기 출소했지만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출소 이후 스트레스와 무리한 음주가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0년 만에 빛을 본 한만호의 비망록, 그것은 검찰의 겁박과 회유를 받아 거짓 진술을 했던 사람의 진실된 자기 고백이었을까, 아니면 법정에서 위증을 한 위증범의 자기 정당화였을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당사자, 한만호는 이제 세상에 없다. 뉴스타파는 그의 진실을 밝혀줄 다른 증인을 찾아 나섰다. (4편으로 이어집니다.)
‘한명숙 사건’의 쟁점은?
한명숙 뇌물 사건은 1차 사건과 2차 사건으로 나뉜다. 검찰이 2009년 12월에 기소한 1차 사건은 대한통운 전 사장이었던 곽영욱이 인사 청탁 등의 대가로 한명숙 전 총리에게 5만 달러를 줬다는 혐의다. 이른바 ‘의자가 뇌물을 받았다’는 것으로 회자되었던 이 1차 사건에 대해서는 1심과 2심, 대법원 상고심에서까지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뉴스타파가 이번에 <죄수와 검사Ⅱ>를 통해 다루고 있는 사건은 2차 사건이다. 한신건영 대표 한만호가 한명숙 전 총리에게 9억 원 상당의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혐의다.
한만호는 법정에 나와 진술을 번복하면서, 9억 원 가운데 6억 원은 H교회 건물 공사 수주를 위한 로비 자금과 성과급 명목으로 한 전 총리 측과 무관한 다른 사람들에게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한만호가 돈을 줬다고 지목한 사람들이 법정에 나와 한만호와의 대질 신문까지 이루어졌으나 양측 주장이 엇갈렸다.
따라서 당시 재판에서는 나머지 3억 원이 주된 쟁점이 됐다. 한만호가 3억 원을 한명숙 전 총리의 비서 김 모 씨에게 빌려준 건 확인된 사실이다. 다만 이 돈의 성격이 사적인 대여금인지, 아니면 정치자금인지, 그리고 한 전 총리가 여기에 개입했는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3억 원 가운데 2억 원은 검찰 기소 전에 이미 한 전 총리의 비서 김 씨가 한만호에게 갚았다. 그런데 수표로 지급된 나머지 1억 원은 한명숙 전 총리 동생의 전세 자금으로 사용됐음이 드러났다. (이 1억 원 역시 검찰 기소 전에 상환됐다.) 검찰은 비서 김 씨가 3억 원을 받았다가 돌려주는 과정에 한명숙 전 총리가 개입했다고 주장했고, 변호인 측은 한 전 총리와 무관한 한만호 - 김 모 비서 - 한 전 총리 동생 3자 사이의 사적인 금전 대차 거래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23차례 공판 및 현장 검증 끝에 2011년 10월 무죄를 선고했다. 한만호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전달한 일시와 방법, 한만호가 한 전 총리의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있었는지 여부, 한만호의 장부에 적혀 있는 ‘한’이라는 글자가 한 전 총리를 의미하는지 여부 등이 세부적인 쟁점이었다. 2013년 9월 2심 법원의 정형식 판사는 단 4차례 공판 끝에 1심 판결을 뒤집어 유죄를 선고하면서 9억 원의 정치자금법 위반을 모두 인정했다. 재판 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양승태 대법원은 2015년 8월 상고를 기각하고 최종적으로 유죄를 확정했다./ 심인보/ 뉴스타파
'이태원 클럽' 학원강사 한명이…한 눈에 보는 인천 2·3차 감염
머니투데이 백지수 기자,
학원 더 보낼 수 있어 좋아” 온라인 개학의 서글픈 초상
일부 학부모 “겉으로는 반대하지만…
형편에 따른 학력 격차 더 심해질 것”
당국 설문은 고3 학부모 63% “불만”
초교 저학년은 72% “만족” 엇갈려
“서울 지역 고등학생 부모들은 겉으로는 온라인 교육을 반대하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반깁니다. 학원에 부담 없이 다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 서글픈 얘기입니다. 온라인 개학이 길어질수록 집안 형편에 따른 학력 격차가 더욱 심해질 겁니다.”(한 고등학생 부모)
코로나19 사태로 등교 개학이 미뤄지고 있는 데 대해 상급학교 진학을 앞둔 중3, 고3 학부모들의 불만족도가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교육부와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6일까지 권익위 국민생각함 홈페이지에서 학부모 58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온라인 개학에 대한 학부모 만족도가 학년별로 큰 차이를 보였다고 14일 밝혔다.
중 1·2학년 학부모의 만족도는 61.3%였지만 중3 학부모는 45.1%만 온라인 개학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또 고1·2학년 학부모의 만족도는 65.3%였으나 고3 학부모는 37.5%에 불과했다. 반면 초등학생 학부모는 66.5%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초등학교의 경우 오히려 저학년 학부모의 만족도(72.2%)가 고학년 학부모(60.6%)보다 높았다.
불만족한 이유로는 ‘학생들이 교육 프로그램을 적절히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 60%로 가장 높았고, ‘교육 콘텐츠에 만족하지 않는다’(27.7%), ‘전염병 예방에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5.6%) 등이 꼽혔다. 이 밖에 ‘저학년·맞벌이 학부모 부담 과중’, ‘학교의 관심 정도에 따라 교육 편차 발생’, ‘서버·접속 불안정’, ‘과도한 컴퓨터·스마트폰 사용’ 등이 뒤따랐다.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낸 온라인 개학 개선 의견 중에서는 ‘교육부 또는 각 교육청이 주관해 학생의 관심과 참여를 높일 수 있는 학년별 공통 콘텐츠를 개발해 달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중·고등학생 부모들은 3학년 우선 등교를 원했다. 특히 그 이유로 ‘학력 격차 발생’을 가장 많이 꼽아 학원 수업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사교육 정도에 따라 교육 격차가 심해질 수 있다는 불만과 불안감을 표출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윤미향 때리기'에 이용수 할머니 이용한 조선‧중앙
조선‧중앙, 정의연 의혹 보도 2~3배 많아...민언련 “이간질 의도”
중앙일보 14일자 3면 기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문제제기로 불거진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 기부금 의혹과 관련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갈등 확대’, ‘정치 쟁점화’에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높다.
이용수 할머니가 기자회견에서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인(전 정의연 이사장)을 공개 비판한 다음날인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나흘간 <조선일보>·<중앙일보>는 다른 언론사보다 2~3배가량 많은 22건, 12건의 보도를 각각 쏟아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14일 발표한 모니터 보고서에서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다면 근본 배경을 찾아보고 이용수 할머니가 제기한 의혹의 객관적 규명이 필요하지만 일부 언론은 정치적 목적에 매몰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용수 할머니의 문제제기 수준을 벗어나 의혹을 키우고 윤 당선인을 비롯한 위안부 운동 자체를 공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용수 할머니의 의혹 제기 이후 언론은 정의연의 회계 유용 의혹부터 윤미향 당선인 자녀의 유학 비용,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사전 인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캐고 있다.
민언련은 보고서에서 “<조선일보>는 22건 중 19건, <중앙일보>는 12건 중 10건이 의혹을 제기하거나 확대하는 보도로 전체 관련 기사의 대부분”이라며 “<조선일보>는 8건을 갈등 부각 및 정치쟁점화에 쏟아부어 유독 정치적 의도를 노골화했다”고 분석했다.
이 기간에 반론 또는 의혹 규명 차원의 보도를 균형 있게 실은 <경향신문>‧<한국일보>와 7건의 관련 보도 모두를 반론과 의혹 규명에 할애한 <한겨레>와 대조적이라고 민언련은 꼬집었다.
<중앙일보>는 14일자 지면에선 이용수 할머니 인터뷰 기사를 포함해 6꼭지에 걸쳐 정의연과 윤 당선자를 비판했다.
정의기억연대 전 이사장인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에 대한 수요집회 기부금과 한일 위안부 합의 관련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서 1439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온라인 생중계로 열리고 있다.ⓒ뉴시스
특히 민언련은 “할머니의 기억이 왜곡돼 있다”는 윤 당선인의 해명과 정의연의 입장을 두고 “이 할머니가 치매에 걸렸다는 것”, “위안부 문제로 국민 성금도 받고, 일본 측 위로금도 받고, 국회의원까지 된 사람들이 이제 갑자기 그토록 떠받들던 이 할머니를 진짜가 아닌 듯이, 치매 노인인 듯이 취급하고 있다”고 비판한 <조선일보> 사설의 문제를 짚었다.
민언련은 “이용수 할머니가 기부금 운용이나 2015년 상황에 일부 오해가 있다는 취지라 하더라도 이용수 할머니의 ‘기억’을 언급한 더불어시민당, 윤 당선인도 더 주의했어야 한다”면서도 <조선일보>는 윤 당선인 등 여권을 공격하기 위해 느닷없이 이용수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가 아닐 가능성을 꺼냈고, 결과적으로 이용수 할머니를 모독한 셈이 됐다“고 했다.
“조선‧중앙을 필두로 한 정치적 보도, 각종 네거티브는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을 빌미로 잡았을 뿐, 처음부터 할머니를 위한,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기사를 낸 게 아니”라고 바라본 민언련은 “이로써 우리 사회의 이른바 ‘보수언론’이 위안부 문제를 피해자 입장에서 보도하지 않는다는 뼈아픈 현실만 재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pd저널 박수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