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4일 헌재 윤석열 파면 축하 시민대회 외

탄핵되겠지 ...4일 새벽 4시에 잠들었다. 사무실에서 밀린 업무며 이것 저것 장리하다보니 다른날 보다 많이 늦었다. 보통 2시쯤에는 귀가하지만 이날은 늦었다. 결과적으로 눈을 뜬 시각은 탄핵선고가 끝난 다음이었다. 여러 가지 억측과 시나리오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내란수괴의 반헌법 행위를 묵과하지 않았고 8:0 전일일치 파면을 선고했다.
천만 다행한 일이었다. 지난 세달 저녁시간과 주말 집회는 웬만하면 다 참여했고 기록했다. 무대에 오라 발언을 도모하기도 했지만 정작 마음먹고 간날은 행진만 있어 무위에 그쳤다. 기록하며 예의주시했던 것은 집회 현장 밖이었다. 다시말해 길가에 선 사람들, 행사장 주변이었다. 현장과 그들은 딴세상이었다. 간혹 행진이 있을 때면 박수를 치며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 없지 않았으나 대부분 무심했고, 행진이 서면지나 중장령 고령층이 밀집한 부전시장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욕설이 날아들었다. 그들은 내란수괴와 내란수괴 부역자 그 잔당에 우호적인 사람들이었다. 사실 그 조차도 익숙한 장면이 되어 그럴려니 했지만 그것은 또 다른 윤석열과 국짐같은 시대반역 당을 만드는 근원이기에 경계와 더불어 인식재고에 공을 덜여야 한다. 한마디로 암적 존재로 고착해선 안된단 말이다.
그런가운데 4월3일 부로 교육감 업무에 들어간 김석준 후보의 당선은 큰 위로가 되었다. 그는 4월4일 헌재 판결을 학생들이 보게 일선학교에 지시했다. 앞서 서면 거리의 무심한 청년들 또한 역사교육의 부재가 야기한 결과 중의 하나다. 그들의 시선이 시대와 더불어 가고자 하는 노력이 병행될 때 보다 안전한 미래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안타까움이 지배했던 탄핵기간이었다. 참담한 사실은 그토록 바라던 탄핵은 되었지만 생활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며칠 전 통장 장고가 0가 되기도 했다. 메꾸어 넣어야 할 돈이 적립되지 않자 은행으로부터 2번이나 독촉문자를 받았고 통화까지 했었다. 주거래 통장에서 잔고가 0가 되고난뒤 외상처럼 쓴돈은 고작 10만원 남짓이었다. 그 바람에 동백전을 이용한 버스지불도 중단되었다. 난감했다. 들어와야 할 몇 건의 자문심사비며 회의비가 늦게 입금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 또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방생한 번민이 며칠을 지배했다. 내가 생존할 수 있는 토대는 무엇인가. 자체 방어력과 조력 후원 네트워크가 허물어 진다면, 영락없는 빈털털이가 되는 것이다. 딴에 자존심은 있어 싶게 말 꺼내지도 못하기에 혼자 속앓이를 하다 침묵이 어어지면서 동시에 기억속에 잊혀지면서 고립되다 사라지는 시나리오가 현실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나이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게속이어 진다.

'윤석열퇴진부산행동'은 12. 3 내란범 윤석열이 4일 헌재의 파면 결정을 이끌어 낸 것은 '시민광장의 힘' 이었다며 수천 명의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파면 축제 "빛의 광장 승리의 밤" 대회를 개최했다.
'아리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여는 공연으로 시작된 대회는 '박종철합창단', '금강필과노래하는동지들', '부산민예총음악위원회' 등의 축하무대가 이어졌고, 시민대회를 유지해 온 숨은 대회 준비단 소개, 시민대회 개근 참석 시민들도 소개되면서 축제의 밤이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부산대 및 동아대 민주동문회 등에서는 '파면' 빵과 떡, 음료 등을 참가 시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하였다. 아래는 시민대회 현장.

비주류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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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사진관

▲2025. 4. 4. 부산시민 축하대회 “빛의 광장 승리의 밤” 현장비주류사진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