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4.2 부산지역 언론, 박형준 후보 '엘시티 의혹' 해명성 보도만
“박원순 사건 다룬 ‘비극의 탄생’은 2차 가해 집약체”
괴물이 되어버린 혁명가
종부세 폭탄'이 아니라 '종부세 특혜'가 문제다
국민의힘 때문에 3개 선거' 의령에서 이낙연-김종인 격돌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서울대를 해체하라
전 세계 ‘부자 나라’ 집값 사상 최대 수준…각국 ‘과열 대책’ 고심
국가부채라는 ‘신기루’에 꽁꽁 묶인 한국
‘정권심판론’ 키운 정부·여당의 미래는?
한겨레사설] 선거 의식한 섣부른 ‘부동산 규제완화’ 위험하다
“알고도 손대지 못했다”는 대통령의 고백
부산지역 언론, 박형준 후보 '엘시티 의혹' 해명성 보도만
네이버, ‘알고리즘 보수 편향’ 다룬 MBC ‘스트레이트’에 소송
기밀 해제 문서에 담긴 베트남전 국군 포로 실체
‘하룻밤 80만원’ 호텔 스위트룸 동났다
“박원순 사건 다룬 ‘비극의 탄생’은 2차 가해 집약체”
언론인권센터, 손병관 기자 저서 비판
언론인권센터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의 취재 기록을 담은 전 서울시 출입기자의 저서에 대해 “2차 가해의 집약체”라고 비판했다.
언론인권센터는 25일 ‘기자의 책무는 취재윤리와 인권보호에 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지난 19일 출간된 손병관 기자의 저서 ‘비극의 탄생’에 대해 “기자로서 가져야 할 취재윤리를 지키지 않은,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책이자 피해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2차 가해의 집약체”라고 규탄했다.
단체는 “책의 저자인 손병관 기자는 출간 전부터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목격자들의 증언을 담았다고 밝혔다. 언뜻 보면 ‘기자’가 ‘취재’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로 이루어진 책처럼 보인다”며 “하지만 ‘비극의 탄생’은 기자로서 가져야 할 취재윤리를 지키지 않은,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책이다. 또한 피해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2차 피해의 집약체”라고 강조했다.
‘비극의 탄생’ 취재 과정에서 취재원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지적도 했다. 언론인권센터는 “취재원이 기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했다 하더라도, 후에 보도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취재원의 의사를 존중해 주는 것이 옳다. 하지만 손 기자는 취재원의 증언을 동의도 받지 않고 책에 실었다”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취재원의 동의를 받지 않고 인용을 하는 일은 기자윤리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언론인권센터는 “손 기자는 대화의 빈도와 목적, 내용이 모두 베일에 싸여있다며 의문을 제기하고 피해자가 받은 사진이 얼마나 더 노골적이고 성적인 의미를 내포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한다”면서 “이미 성희롱으로 판단된 사안이지만 본인이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검열하려고 하는 태도는 매우 폭력적이다. 마치 내용물이 공개된다면 사건의 반전이 있을 것이라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어 “기자는 일반인이 보고 들은 바를 전달하는 일반적인 수준과는 달라야 한다. 일반인들이 주고받을 법한 내용을 기자의 이름으로 쓰는 것을 취재라 부를 수 없다”며 “손병관 ‘기자’는 자신의 관찰이 전부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기자라는 직업에 기대어 시대에 뒤떨어지는 개인 의견을 취재기로 둔갑시킨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언론인권센터는 “‘비극의 탄생’이 언론의 관점에서 신뢰를 무너뜨릴 뿐 아니라 언론 인권적 관점에서 매우 위협적이라고 판단한다”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마무리했다.
정인화 인턴기자/국민일보
만들어진신과인간-기..레....기 니들은 처벌 받지 않는 1차..2차..3차 가해자 들이다.
괴물이 되어버린 혁명가
0년 이상 지명수배자였던 ‘시부야 폭동 사건’의 지휘자 오사카 마사아키가 2017년 체포됐다. 일본의 좌익 학생운동은 애꿎은 피해자와 좌절한 가해자만 양산한 채 스러졌다.
ⓒEPA 2017년 5월23일 일본 도쿄의 한 경찰서에 붙은 오사카 마사아키의 지명수배 포스터.
2013년쯤이었나, 추석 연휴에 일본 대마도(쓰시마섬)를 다녀왔지. 출입국 수속을 밟고 있으면서 벽에 나붙은 지명수배 포스터에 대충 시선을 두던 아빠는 깜짝 놀라고 말았어. 범죄 발생 일시가 소화(昭和) 46년인 거야. 소화, 즉 쇼와는 1989년 세상을 떠난 히로히토 ‘덴노’의 연호거든. 그가 쇼와 원년을 선포한 것이 1926년이니까 쇼와 46년이면 1971년이 돼. 즉 1971년의 범죄자를 일본의 변방이라 할 대마도 출입국관리사무소 벽에서 2013년 마주한 거야. 사진 속 범죄자 오사카 마사아키는 1949년생, 23세에 지명수배자 명단에 올라 65세가 될 때까지 도망 다니고 있었던 셈이지.
그는 무슨 범죄를 저질렀던 것일까? 단어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중핵파’ ‘경관 살해 범인’ ‘시부야 폭동 사건’ 등. 그제야 이 사람이 어떤 종류의 범죄자인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어. 오사카 마사아키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초반, 세계적으로도 가장 극렬했던 일본 좌익 학생운동의 일원이었다.
한국의 학생운동도 가열차기로 유명했지만 일본의 극단적 학생운동 그룹은 상상 이상으로 극렬했다. 일본 최고의 대학이라 할 도쿄 대학에는 69학번이 존재하지 않아. 1969년 일본의 학생운동 연합조직 전학공투회의, 줄여서 전공투가 도쿄대 야스다 강당을 점거하는 등의 사태가 빚어지면서 학사일정이 마비됐기 때문이지. 일본 좌익 학생운동은 치열한 내부 노선 투쟁을 거치면서 이합집산을 거듭했는데 과격파들은 과잉된 행동으로 오히려 힘을 잃고 점점 고립되었어. 심지어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의심하다 죽고 죽이는 사태까지 치달았고 ‘처음은 창대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미약한’ 결말을 맺게 되지.
위에서 등장한 ‘중핵파’는 일본의 좌파 조직인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 전국위원회’를 일컫는 이름이다. 일본 경찰이 40년 가까이 추적해왔던 중핵파 오사카 마사아키는 과연 어떤 일을 저질렀을까? 1971년 ‘시부야 폭동 사건’으로 눈을 돌려보자.
그 무렵 일본은 오키나와 반환 문제로 시끄러웠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래 미군이 점령하고 있던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하되 미군 병력과 기지는 존속시키는 데에 미국과 합의했지. 일본 좌파들은 미군 철수 없는 오키나와 반환 반대를 외치며 격렬한 투쟁을 전개한다. 일본 좌익 학생운동 세력은 무장봉기를 통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창했는데 각 조직들의 극단성은 이미 도를 넘어서고 있었지. 적군파는 아예 국제 테러리즘과 손을 잡았고 여객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넘어가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1970년 요도호 사건). 중핵파가 집중한 싸움은 나리타 공항 건설 반대 투쟁과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투쟁이었어. 1971년 11월10일 오키나와에서 경찰 한 명이 숨지는 폭력사태가 빚어졌고 11월14일에는 중핵파의 주도하에 ‘전국 총결집 도쿄대 폭동 투쟁’이라는 대규모 집회가 벌어졌다. 당시 중핵파 전학련 위원장의 지침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화염병, 쇠파이프는 물론, 폭탄 등 모든 무기를 사용해 폭동을 일으키고 권력의 주구인 기동대를 섬멸하라.”
전투 같은 시위, 아니 시위를 빙자한 전투가 도쿄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시부야구에 있던 가미야마 파출소도 습격당했다. 기동대원 27명이 있었지만 중핵파 조직원 150여 명이 일시에 달려들자 대책이 없었지. 그 난리 가운데 불운한 기동대원 한 명이 중핵파의 포로가 되고 말았어. 자본주의의 억압에 분노하고 프롤레타리아의 세상을 꿈꾸던 이상주의자들은 이상(理想)의 불길 속에서 악마가 돼 있었던 거야.
현장에 있던 한 사람은 훗날 이렇게 증언했다. “‘죽여라’를 부르짖는 가운데 엉망으로 구타당한 기동대원을 중앙으로 끌고 가 옷깃을 잡고 석유를 부었다. 그리고 화염병 하나가 그 머리에 꽂혔다.” 불길은 5m나 치솟았다고 기록돼 있다. 사람을 생으로 태워 죽인 거야. 중핵파 기관지는 이렇게 호언한다. “드디어 해냈다! 우리의 동지를 살해해온 권력의 감시견을, 게다가 그 가증스러운 가스총 사수를 섬멸했다(〈전진〉 1971년 11월22일).”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때 시위, 아니 살인의 ‘지휘’를 맡은 이가 오사카 마사아키였어. 수십 년이 지나서도 일본 경찰이 이를 갈며 그를 잡고야 말겠다고 벼른 이유가 이해되지?
그 후 그는 완전히 종적을 감췄다. ‘연대를 구해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았던(전공투의 슬로건)’ 일본 좌익 학생운동의 해는 일찌감치 산 너머로 떨어졌지만 소규모 조직은 살아남았고 오사카 마사아키는 그들 속에 은신해 수십 년을 지냈다. 원래대로라면 공소시효가 만료되기에 충분한 시간이 지나도록. 그러나 그에게 불운 하나가 찾아온다. 질병 치료를 이유로 공범자에 대한 법원 재판이 1981년 정지되면서 이 사건 공소시효가 중지된 상태였는데 2010년 법 개정으로 살인죄의 공소시효 자체가 폐지돼버렸지. 오사카 마사아키를 향한 수배의 그물이 거둬지지 않았던 거야.
ⓒ연합뉴스 1971년 11월, 시부야 폭동 사건에서 기동대원이 숨졌다. 사진은 당시 경찰이 설치한 바리케이드가 불타는 장면.
‘진격의 거인’이 된 운동
일본 경찰은 백발이 되고 폭력 성향도 거의 누그러진 중핵파 조직원들 속에서 오사카가 수십 년 동안 은신해온 사실을 간파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7년 5월 히로시마의 중핵파 사무실에서 60대 노인 한 명을 체포하게 돼. 이 노인은 조사 과정에서 내내 묵비권을 행사했고, 경찰은 유전자 감식을 맡긴다. 조사 결과가 밝혀졌을 때 일본 열도는 크게 한 번 출렁였지. 오사카 마사아키가 맞았던 거야.
그렇게 오사카 마사아키는 체포됐지만 잔존 중핵파는 그의 무죄를 주장했다. 반세기 전의 증언과 증거가 확고부동할 수 없고, 실제로 중핵파 관련 사건에서 무고함을 주장하는 이가 수십 년 동안 감옥에 갇혔던 일도 있었으니까. 최종 판결은 지켜보아야겠지.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일본 좌익 학생운동이 “폭력적인 행동으로 세상에 쇼크를 주어 주목을 받는 것이 ‘혁명적’인 호소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나도 사회를 얕잡아보고 표현의 자유를 남용해 자신의 목을 조르는 행위(〈아사히 신문〉 1967년 10월9일)”라는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일 거야. 그들은 무의미한 폭발을 반복하면서 애꿎은 피해자와 좌절한 가해자만을 양산한 채 스러져갔어. 수십 년 동안 골방에 갇혀 신념 ‘따위(아빠는 감히 이 표현을 쓴다)’를 고수한 쓸모없는 혁명가처럼 말이다.
전공투 이후 일본에는 학생운동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만큼 학생들의 사회참여가 끊겼다. 전공투 세대 상당수는 “1970년대 이후 투쟁의 장소를 바꾸어 다양한 개별 과제를 통해 일본 시민사회를 변화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러나 개별 과제 속으로 확산된 운동이 시민사회 전체의 변혁운동으로 연결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정아영 ‘일본의 1968년 학생운동에 대한 사회적 기억과 평가’, 〈경제와 사회〉).” 모든 운동은 좀 더 나은 인간의 삶을 추구하지만 대개 그 추진 과정에서 인간의 희생과 배제를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기 일쑤다. 운동의 대의가 개별 인간의 권리와 일상을 넘어서는 거인이 될 때 대개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이 되기 십상이지.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에 나오는 무뇌 거인들처럼 말이야. 20세기를 통틀어 우리는 여러 무뇌 거인들을 목격했다. 그중 작은 것 몇 마리는 한국 역사에서도 더러 발견되지 않을까./ 김형민 (SBS Biz PD)/ 시사인
종부세 폭탄'이 아니라 '종부세 특혜'가 문제다
[기고] 2월 17일 종부세법시행령 개정으로 임대사업자 종부세 특혜 더 확대
때아닌 '종부세 폭탄' 기사가 난무한다. 종부세고지서가 발부되는 것은 11월 말경이다. 종부세 대상이 확정되는 시점도 6월 1일이다. 지금 주택을 소유하더라도 6월 1일 전에 매도하면 종부세 부과 대상이 아니다. 종부세를 누가 부담할지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종부세 대상자가 21만 가구 증가했다는 기사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다.
'종부세 폭탄'의 근거는 공시가격 상승과 종부세율 인상이다. 서울의 경우 올해 공시가가 평균 19.91% 올랐다. 공시가격 상승은 집값급등의 결과이므로 종부세를 더 부담하는 가구들은 그보다 몇십 배만큼 재산이 증가했다.
공시가격 상승으로 다주택자들은 가혹할 정도로 종부세 부담이 증가한다는 기사도 눈에 띈다. 이는 현실을 전혀 모르고 쓴 기사다. 다주택자들이 종부세를 1원도 내지 않고 빠져나갈 구멍을 정부가 마련해줬기 때문이다.
국토부의 분석에 따르면 강남구 ㄱ 아파트(114㎡)는 1주택자일 경우 종부세가 556만원 오른다. 재산세를 합해도 보유세 증가는 742만원이다. 그 아파트의 공시가격은 작년에만 3억4000만원 올랐다. 공시가 기준으로 계산해도 보유세 증가액의 46배만큼 재산이 증가했다.
160만채 임대주택 대부분이'종부세 0원'
이론상으로 2주택자부터는 종부세 부담이 급증한다. 공제액이 공시가 기준으로 9억원에서 6억원으로 줄고, 종부세율도 크게 오른다.
가령 공시가 5억9000만원인 관악구 아파트와 15억5000만원인 강남구 아파트를 소유한 2주택자는 보유세가 무려 2363만원 증가한다. 이런 세금부담이 무거워서 주택 한 채를 매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기사가 보도된다.
그러나 이런 세금계산은 말 그대로 '이론상' 그렇다는 것이지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 만약 2주택자가 강남구 아파트를 공시가가 6억원 이하였을 때 임대주택으로 등록했다면 상황은 극적으로 반전된다. 공시가가 아무리 올라도 종부세를 1원도 내지 않는다.
전국에 등록된 160만채 임대주택의 대부분이 '종부세 0원'의 특혜를 누리고 있다.
종부세법시행령 제3조(합산배제 임대주택)는 종부세를 비과세하는 대상을 규정하고 있는데, 임대사업자가 등록한 임대주택이 그 대상에 포함된다.
'합산배제'란 비과세를 의미하는 법률용어로 말 그대로 종부세를 산정할 때 주택을 합산하지 않고, 따로따로 계산한다는 것이다. 각 주택의 공시가가 6억원 이하일 경우 종부세를 비과세한다. 그것도 임대주택 등록일을 기준으로 하므로 등록 후 주택가격이 급등해도 종부세는 0원이다. 특혜도 이만한 특혜가 없다.
집값이 비싼 서울의 경우 2주택자의 상당수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여 '종부세 0원'의 특혜를 누리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어마어마한 세금특혜를 받는 2주택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되는지에 대해 국토부는 자료의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서울 3주택자 이상 대다수 임대사업자로 등록했을 것
3주택자 이상은 대부분 임대사업자로 등록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에 3주택 이상을 소유할 경우 주택가액이 20억원을 넘을 것이므로 종부세 부담이 수천만원에 달할 것이다.
임대사업자로 등록만 하면 “종부세 0원”의 특혜를 누릴 수 있는데, 수천만원의 종부세를 부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시가 6억원 이하, 전용면적 85㎡ 이하면 누구나 임대주택 등록이 가능했므로 2017년과 2018년 임대주택 등록이 봇물을 이뤘다.
몇 달 전 어느 국회의원실이 국토부로부터 받아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전국에서 임대주택을 가장 많이 등록한 3명이 모두 서울 거주자다. 1위는 임대주택을 753채나 등록한 서초구 거주자이고, 2위는 591채 등록한 강서구 거주자, 3위는 586채 등록한 마포구 거주자였다.
그 주택들의 상세 내역을 국토부가 공개하지 않고 있으나, 서울 거주자들이므로 상당수의 주택이 서울과 수도권에 소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 채당 가격이 서울평균 주택가격보다 낮은 4억원으로 가정하더라도 이들 3명의 총주택가액은 각각 3012억원, 2364억원, 2344억원이다.
종부세를 정상적으로 과세할 경우 이 3명이 부담해야 할 종부세액은 각각 100억원을 크게 초과한다. 그러나 종부세법시행령 제3조의 '합산배제' 조항에 의해 이들 3명은 종부세를 1원도 안 낼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위 시행령 제3조를 폐지하여 종부세를 정상적으로 과세하면, 이들 3명이 소유한 1930채의 상당수가 매도로 나올 것이다. 이 외에도 서울에 등록한 임대주택 50만채의 상당수가 매도로 나올 것이므로 집값은 대폭 하락할 것이다.
집없는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집값정상화 시민행동'은 작년 11월과 12월, 올해 2월 기자회견을 통해 이러한 종부세 특혜를 폐지할 것을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에 요구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여당은 이 세금특혜를 폐지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것 같다.
2월 17일 종부세법시행령 개정해 임대사업자 세금특혜 더 확대
지난 2월 17일 국무회의는 이 시행령 제3조를 개정했는데, 놀랍게도 세금특혜를 폐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확대했다. 건설회사가 등록하는 임대주택의 대상을 공시가 기준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상향하고, 전용면적 기준을 85㎡에서 149㎡로 대폭 확대했다. 건설회사가 분양가를 지나치게 높게 책정하여 미분양이 발생하더라도 임대주택으로 등록하여 '종부세 0원', '양도세 100% 감면' 등 엄청난 세금특혜를 누리도록 해줬다. 건설회사들이 앞으로 분양가를 더 올릴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집없는 국민이 겪고 있는 극도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집부자와 건설회사의 이익에만 골몰하는 청와대와 정부의 본심을 읽을 수 있다.
언론이 말하는 '종부세 폭탄'은 재산이 증가한 금액의 일부를 세금으로 더 부담하는 것으로 '폭탄'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것마저도 2주택자 이상은 빠져나갈 커다란 구멍이 있다.
이 구멍을 허용하는 법이야말로 과세의 공정성을 무너뜨리고 집값을 폭등시킨 악법 중의 악법이다. 이 세금 특혜를 폐지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공정성을 되살리고, 무주택 국민의 고통을 줄이는 길이다./송기균 송기균경제연구소장/프레시안
'국민의힘 때문에 3개 선거' 의령에서 이낙연-김종인 격돌
28일 각각 방문해 지원 유세 ... 이낙연 "LH 사태 사과"-김종인 "압도적지지“
의령에서는 군수와 광역·기초의원을 새로 뽑는 선거가 치러지고 있다. 의령에서 3개 재보궐선거는 모두 국민의힘 때문이다.
옛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소속이던 이선두 전 의령군수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군수직을 잃어 재선거를 치르자, 국민의힘 소속이던 경남도의원이 의령군수 선거 출마를 위해 사퇴해 보궐선거를 치른다. 이어 국민의힘 소속이던 의령군의원이 사퇴해 경남도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의령다' 선거구에서 기초의원을 새로 뽑는다. 의령 지역 광역의원은 1명이다./윤성효(cjnews)/ 오마이뉴스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서울대를 해체하라
최근 서울대 총학생회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 하나가 세간의 관심을 끈 모양이다. 24일 『뉴스핌』의 보도에 따르면 19일 서울대 총학 자유게시판에는 ‘서울대 총학의 선택적 분노에 박수를 보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고 한다.
내용인즉슨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관련 의혹에 대해서는 규탄 성명과 촛불집회를 주도했던 서울대 총학생회가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자 딸의 입시비리 의혹에서는 왜 침묵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 글 이후에도 “조국 때는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 이번에는 채점 교수가 진술하는데 다들 뭐하냐?”, “친일 왜구 방패 서울대 총학으로 바꿔라”, “선배들과 대한민국을 욕보이지 말라”는 글이 연이어 게시됐다.
이번 사태 외에도 비슷한 논란이 최근 꽤 있었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 총학 게시판은 최근 정치인들의 자녀 관련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각종 비판과 조롱글로 도배됐다. 2019년 조 전 장관을 규탄하며 촛불집회까지 벌였던 서울대 총학이 일부 보수 정치인들 의혹에 대해서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이중성을 보인 탓이다.
그런데 나는 이 보도를 보면서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한국 사회가 진지하게 서울대 해체(해체든 폐지든 상관없다)를 고민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서울대 총학생회의 편향이 못마땅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왜 조 전 장관은 비판하고 보수 정치인은 감싸느냐?”라는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건 그들의 정치적 선택이고, 총학생회는 늘 이런 정치적 선택을 해왔다.
내가 이 사태를 보면서 서울대 해체를 떠올린 것은 서울대가 한국 사회 공동체에 기여하기는커녕 공동체에 위해를 가할 확률이 훨씬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질문을 던져보자. 그들의 보수화가 한국 사회의 공동체를 위한 것인가?
물론 그들은 “그렇다”고 주장하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천만의 말씀이다. 단언컨대 서울대 보수화는 기득권 네트워크의 한 단면이다. 서울대를 나왔는데 세상이 기득권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그 세상은 결코 자신들에게 유리하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보수를 지지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보수를 지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공동체를 위해 아무런 일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되레 이기적 사회를 부추기는 국립대라면, 국가가 이를 지원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게다가 그들에게 서울대 프리미엄이라는 막대한 기득권을 안겨줘야 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나는 한국 사회가 이 질문을 회피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어떤 사람이 공부를 잘 하나?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 행동경제학과 게임이론에서 종종 다루는 공공재 게임(public goods game)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준 뒤 공공금고에 얼마를 기부할 것인가를 묻는 게임이다. 많이 기부하는 사람일수록 공공을 위한 신념이 강하고, 적게 기부하는 사람일수록 공공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 인간이다.
실험을 해보면 평범한 사람들은 받은 돈의 40~60%를 기부한다. 인간은 공공을 위해 기꺼이 이 정도를 희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실험에서 밝혀진 코미디 같은 사실이 하나 있다. 행동경제학자인 제럴드 마웰(Gerald Marwell) 뉴욕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1981년 위스콘신 주립대학교 경제학과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이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낸 기부금은 받은 돈의 20%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여러 공공재 게임의 중 가장 낮은 기부율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40~60%를 기부하는데!
이게 무슨 뜻일까? 간단하다. 공부를 잘 할수록 공공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만 챙기는 이기적 인간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위스콘신 대학교는 미국 국공립 대학 중 알아주는 명문이다. 노벨상 수상자도 21명이나 배출했다. 이런 명문대학교 경제학과 학생들은 일반인에 비해 절반도 공공을 위해 기부하지 않는다.
사실 이건 조금만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결론이다. 인류는 수만 년 동안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그 공동체 안에는 분명 재능이 출중한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사냥을 잘 하거나, 요리를 잘 하거나, 쇠를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거나 하는 등의 재능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출중한 재능을 누구를 위해 사용했을까? 당연히 공동체를 위해 사용했다. 이건 수만 년 동안 한 번도 변하지 않았던 불변의 진리였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한국 사회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치나? “너 공부 열심히 해서 꼭 국가와 공동체에 덕을 끼치는 사람이 돼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 본 적 있나? 그렇지 않다. 우리가 그들에게 하는 말은 “너 공부 열심히 해서 꼭 너 혼자 잘 먹고 잘 살아야 해”라고 가르친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공부를 잘 하겠나? 당연히 개인의 성공에 관심이 지대한 사람이 공부를 잘 한다. 어렸을 때부터 남보다 자기만 아는 사람이 공부를 열심히 할 이유를 더 잘 찾는다.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이 서울대학교를 간다.
인기 드라마 SKY캐슬이나 펜트하우스에서 명문대 진학을 노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묘사되는지 보라. 그냥 드라마 이야기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드라마들이 히트하는 이유는 그게 허구가 아니라 이 사회의 단면이기 때문이다.
눈을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고?
예나 지금이나 서울대 학생들이 자랑하는 슬로건이 있다.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는 것이다. 자뻑 충만한 낯 뜨거운 슬로건이 아닐 수 없는데, 나는 이 슬로건이 이제 정말로 걱정스러워졌다.
그들의 주장처럼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물었을 때 관악을 봤다고 치자. 그 미래는 “내가 1등이다”라는 선민의식에 가득 찬, 출세 지향적이고 이기적이며, 기득권 수호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차지다. 공공의 안녕은 안중에도 없다. 대한민국에서 유일무이한 최고 학교이기에 그들의 네트워크를 견제할 세력도 없다. 그게 내 조국의 미래라면 정말로 절망스럽지 않은가?
서울대학교ⓒ양지웅 기자
내가 알기로 2000년 처음으로 비운동권이 서울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이후 20년 중 거의 15년 가까이 비운동권이 그 학교 총학생회를 휩쓸었다. 최근 7, 8년 사이에는 아예 운동권 후보가 출마조차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런 사실들이 무엇을 의미하나? 그들은 더 이상 사회나 공동체 문제에 관심이 없다. 공공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생각도 없다. 2019년 서울대 생협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했을 때 당시 한 총학생회 간부가 메신저를 통해 “생협 X같네”라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졌는데, 나는 그 사실을 듣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미 그 학교 총학생회는 그런 존재였다.
“그들 중에는 생각이 올바른 이들도 있지 않겠느냐?”는 반론은 물론 옳다. 잘 찾아보면 당연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반적으로 이기적인 사람들로 가득한 국립대학교의 존재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다른 명문대학도 다 그렇지 않느냐?”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서울대는 다른 그 어떤 대학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압도적 지위를 갖고 있다. 게다가 이 학교는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공공의 자산으로 운영되는데 가장 반공공적이고, 민중의 세금으로 운영되는데 가장 반민중적이다. 조국의 미래를 물으면 관악을 보라는데, 그 관악에는 이기심만 가득할 뿐 공동체를 향한 희망이 없다.
그렇다면 이 학교를 그대로 놔둬야 할 이유가 도대체 뭔가? 그래서 말한다. 이 지긋지긋한 기득권을 당장 해체하자. 그리고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공립대학교에서는 이기심이 아니라 이타심을, 개인이 아니라 공공의 정신을 가르치자. 이것이 우리의 교육을 정상화시키고 공동체의 가치를 새롭게 다지는 초석이 될 것이라 나는 굳게 믿는다.
**사족:“교육적 관점에서 서울대를 해체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이 나올까봐 덧붙인다. 나는 교육 문제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이 칼럼도 서울대 해체의 교육적 관점을 논한 글이 아니다. 하지만 교육적 관점에서 당연히 여러 반론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대를 해체하면 연세대나 고려대가 그 바통을 이어받을 것 아닌가?”라거나, “교육 경쟁력이 하락하면 어떻게 할 거냐?” 등의 반론이 그것들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뛰어난 전문가들이 고견을 피력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 매우 공감했던 교육 전문가의 글을 아래에 소개한다. 2019년 『오마이뉴스』에 실린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서울대가 특별한 이유 3가지, 사라져야 할 이유 8가지’라는 글이다. 이완배기자/민중의소리
전 세계 ‘부자 나라’ 집값 사상 최대 수준…각국 ‘과열 대책’ 고심
등록 :2021-03-29 16:25수정 :2021-03-29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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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금리에 경기부양책 겹치면서 OECD 회원국 사상 최고 수준
뉴질랜드는 최대 23%까지 오르면서 “집 구하기가 악몽같다”
북미·유럽도 과열 조짐…일부 국가 대출 규제 나섰지만 역부족
전세계 부자나라들의 집값이 저금리와 경기 부양책에 힘입어 급증하면서 과열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매물로 나온 주택. 크라이스트처치/AP 연합뉴스
전세계 부자나라들의 집값이 급등하고 있지만 주택시장 과열을 막을 수단이 마땅하지 않아 각국 정부가 고심하고 있다.
세계 주요국이 코로나19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금리도 최저 수준으로 낮춘 여파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집값이 지난해 3분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이 28일 보도했다. 연간 집값 상승률도 약 5%로 지난 20년 사이 최고치였다.
미국의 지난해말 기존 주택 판매 가격은 중간값 기준으로 한해전보다 13% 상승했고 거래량도 14년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미국보다 경기 회복세가 약한 유럽의 집값 상승세도 만만치 않다. 네덜란드의 경우 공급 부족 여파로 집값이 2019년에 6.9% 올랐는데, 지난해에는 이보다 더 높은 7.8%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덴마크의 경우는 대출 수수료를 뺀 순수 이자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면서 지역에 따라 집값이 연 5~10%씩 상승하자, 중앙은행이 최근 과열을 경고했다. 카르스텐 빌토프트 중앙은행 부총재는 “이런 상승세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티프 매클럼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도 지난달 집값이 연율로 환산하면 17%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자 시장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집값도 계속 오르지만, 시드니의 경우 주택 담보대출 신청이 줄지 않고 있다. 대출 알선 업체 쇼어파이낸셜의 크리스천 스티븐스 신용 자문역은 최근 대출 신청 처리 기간이 며칠에서 한달 이상까지 늘었다며 “대출 문의가 이렇게 쇄도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의 경우 지난 2월 집값 상승률이 한해 전보다 23% 상승하자, 정부가 대출 기준을 강화하는 등 규제에 나섰다. 이 나라 최대 도시 오클랜드에서 자동차로 4시간 거리의 지역에 사는 샘 힌들(29)은 입찰 방식의 주택 구매 경쟁에서 6번 떨어진 뒤 친구 집을 넘겨받았다며 “집 구하기가 악몽 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각국 정부는 마땅한 주택시장 과열 해소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집값을 잡는 데는 금리 인상이 효과적이지만 경제가 코로나19 충격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않아 금리를 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출 기준 강화가 거의 유일한 대응책이지만, 이 정도로는 역부족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국가부채라는 ‘신기루’에 꽁꽁 묶인 한국
한국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재정지원에 쓴 돈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적다. 적자성 채무 비율도 높지 않다. 국가채무 비율이 어느 정도여야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 오히려 재정준칙이 경기회복을 늦추고 혼란을 부를 수 있다.
ⓒ사진:시사IN 조남진, 사진합성 :시사IN 이정현
지난 3월2일, 정부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4차 맞춤형 피해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15조원 추가경정예산안(국가의 1년 예산이 성립되고 난 후에 부득이한 사유로 자금을 추가 편성해서 성립시킨 예산)을 편성하면서, 이를 위해 9조9000억원 규모의 국채를 발행하기로(9조9000억원을 빌리기로) 했다. 국채는 국가가 돈을 빌리는 대신 그 자금을 빌려준 사람이나 법인에 건네는 증서다.
이날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네 차례 추경에 이어) 사실상 다섯 번째 추경안’이라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금번 추경으로 2021년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비율은 48.2%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절대 수준을 보면 아직 OECD 국가 평균보다 낮지만 부채 증가 속도를 보면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에서 30%대, 30%대에서 40%대로 넘어오는 데 7~9년이 걸렸지만, 금번 전대미문의 코로나 위기 대응으로 현재 속도라면 4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데 2~3년밖에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우리나라와 같은 비기축통화국은 대외신인도 관리가 중요한데, OECD 국가 중(2019년 기준) 기축통화국 국가채무 비율(평균)은 100%를 넘어서나 반면 비기축통화국 채무비율은 50%를 넘지 않는 수준이라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우리의 경우 중장기적으로 성장률 저하 추세, 초저출산 대응, 초고령사회 도래, 통일 대비 특수상황 등으로 재정지출이 빠르게 증가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포인트입니다. 여러모로 궂은소리를 듣더라도 재정 당국의 목소리를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5월16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정부가 ‘4차 대책’으로 9조9000억원을 더 빌리면 국가채무는 966조원, 국가채무 비율(국가채무/국내총생산)은 48.2%로 추산된다는 내용이다. 3월2일의 정부 발표 이후, ‘국가채무 1000조원 시대’를 걱정하는 경제지와 보수지의 보도가 줄이어 쏟아졌다. 한국은 1997년에 외환위기를 겪은 바 있다. 시민들이 나랏빚 증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페이스북 글은 국가채무 증가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다. 실제로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점진적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해 고령화 속도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다. 잠재성장률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시민들의 소득 증대가 지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정부로서는 ‘들어오는 돈’, 즉 조세수입의 기반이 약화된다. 이에 비해 고령화가 빨리 진척된다는 것은 복지수요 증가로 ‘정부에서 나갈 돈’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지난 1월 류덕현 중앙대 교수(경제학)가 국회사무처에 제출한 연구용역 보고서(〈코로나19 대응 재정정책의 효과와 재정건전성 관리방안 연구〉)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일본의 경우 고령화 비율 1%가 증가할 경우 GDP 대비 복지지출이 1%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도 일본과 유사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는 예산 당국의 속내를 다음과 같이 추정하기도 했다. “한국의 예산 당국은 60% 내외의 국가채무 비율을 ‘마음속 적정수준’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고령화로 복지지출 소요가 늘어날 것과 통일 이후 사용할 재원에 대한 대비로 어림잡아 (60% 가운데) 20%를 감안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
한 경제난은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말처럼 전대미문의 위기였다. 한국 정부는 2020년 한 해 동안 네 차례나 추경예산을 편성했다. 이는 59년 만의 일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재정지출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국가채무 비율은 과연 어느 수준이 적정할까?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 5월16일로 돌아가 보자. 이날 대통령이 주재하고 각 부처 장관과 금융위원장 등이 참여하는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매년 봄에 이 회의가 열린다. 이 회의에서 향후 5년간의 국가재정 운용계획(‘2019~2023년’ 같은 방식으로)과 다음 해(여기서는 2020년) 예산안 편성의 기본 틀이 정해진다. 이 회의에서 방향을 정한 국가재정 운용계획은 9월 정부 차원에서 확정된다. 그날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국가채무 비율 40%를 유지하면서 나라 살림을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채무 비율을 40%로 삼는 근거가 무엇이냐”라고 한 발언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사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어느 정도 수준일 때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의문을 품었던 ‘국가채무 비율 40%’ 역시 특정한 이론적 근거는 없는 임의적 수치일 뿐이다. 2015년 발표된 장기재정 계획에서 처음 만들어진 숫자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장기재정 계획을 발표할 2015년 당시 국가채무 비율이 40%에 육박했기 때문에 (예산 당국이) 채무비율 관리 수준을 40%로 정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국가채무 비율에 관한 한 일화를 전해주었다.
“20여 년 전쯤에 한 국책연구원의 연구자가 ‘국가채무가 20%가 된다, 그러면 위기가 온다’는 내용의 논문을 냈다가 문제가 돼 민간 연구소로 옮긴 적이 있다. 그리고 국가채무가 증가하다 보면 관성이 생긴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국가채무 비율이 60%까지 갈 수밖에 없을 터인데 그 시점에선 ‘80%가 마지노선이냐, 아니냐’는 식으로 기준을 바꾸고 논쟁을 벌이게 될 것이다.”
적정한 국가채무 비율? “모른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2025년부터 매년의 재정적자(정부의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값이 마이너스 수치인 경우)를 GDP의 3%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내용이다(GDP 대비 -3%). 대체로 재정적자가 쌓여 형성되는 국가채무 역시 GDP의 60%를 넘지 못하게 통제한다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 재정준칙으로 정한 상한선을 넘어가는 경우에는 정부지출이 필요하더라도 돈을 사용하는 것이 매우 어렵게 된다. 이런 내용을 담은 ‘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안’이 이미 국회로 넘어가 있는 상태다.
기획재정부가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재정준칙이 국가채무 비율 60%를 상한선으로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 재정학 연구자들은 이 수치가 1992년 유럽연합의 마스트리히트 조약(1992년 유럽 12개국이 타결한 유럽의 정치·경제 통합에 관한 조약)과 관련 있을 것으로 본다. 당시 유럽연합에 가입하려는 나라들은 먼저 자국의 국가채무 비율을 60% 이하로 맞춰야 했다. 하지만 이 수치를 정할 당시, 유럽연합을 추진하는 세력들 역시 국가채무 비율이 60%여야 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다만 1990년대 초반 유럽 주요국들의 국가채무 비율을 평균으로 산출하면 60% 내외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유럽의 경제통합에 필요한 나라별 국가채무 비율을 이 수치에 맞춘 것이다. 이런 사례를 보더라도 ‘국가채무 비율이 어느 정도가 적정한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모른다’가 정답에 가깝다.
한국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들어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표현대로, ‘사실상 다섯 번째 추경’을 했다. 그러면서 국가채무가 증가했다. 이 규모는 적정한 것일까? 일단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서 가늠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국가별 지출을 비교한 IMF의 자료(〈COVID-19 대유행 국가 재정 조치의 재정 모니터 데이터베이스〉, 2020년 12월 말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재정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선진 10개국 중에서 가장 낮다. 이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는 일본(44.0%)이다. 그다음 이탈리아(42.3%), 독일(38.9%), 영국(32.4%), 프랑스(23.5%) 순이다. 한국은 13.6%로 이들 나라에 비해 크게 낮았다. 한국은 ‘코로나 재정’을 굉장히 아껴 쓴 나라인 셈이다.
더욱이 ‘코로나 재정을 어떻게 썼나’도 살펴봐야 한다.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지출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실업급여, 임금보조금, 감세, 기업보조금, 가계에 대한 현금 지급 등 각종 경제주체들에게 직간접으로 현금 혜택을 제공하는 방법이다. 여기서는 ‘재정지원’이라고 부르자. 다른 하나는 빌려주는 방법이다. 기업이나 은행, 중소 자영업 등에 대출이나 보증 등으로 ‘유동성 지원’을 시행하는데, 이는 혜택을 입은 개인이나 업체가 언젠가 갚아야 할 돈이다.
IMF 자료에 따르면, G20 가운데 미국·일본·독일·프랑스·한국 등 10대 경제 선진국들의 재정지출 방법을 보면, 대출이나 보증 같은 ‘유동성 지원’이 직간접적 현금 지급인 재정지원보다 많은 편이다. 10개국은 평균적으로 GDP의 11.3%를 재정지원에 사용했다. 그런데 한국은 GDP 대비 재정지원의 비중이 다른 경제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편이다. 나라살림연구소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한국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재정지출에 GDP의 13.8%를 쓰고 있다. 그런데 재정지원(‘추가 지출 등’)의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낮은 편이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추가로 쓴 재정지원은 GDP 대비 3.4%로 G20 경제 선진국 10개 국가 중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참고로 다른 나라들의 GDP 대비 재정지원(‘추가지출 등’) 비율은 일본 15.6%, 영국 16.3%, 독일 11.0%, 프랑스 7.7%, 이탈리아 6.8% 등이다. 한국은 국가채무가 직접적으로 늘어나는 재정지원보다 가계·자영업자 등 민간이 부담을 지는 유동성 지원(저리대출, 대출 원리금 상환유예 등)에 더 적극적이었던 셈이다.
이상민 연구위원은 ‘고령사회 도달 시점 국가채무 비율’에 주목한다. 한국은 저출산 고령사회로 급격하게 진행 중인 나라다. 고령화가 급속히 전개되면 그만큼 노인이 많아지므로 복지수요가 크게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미 고령사회(65세 인구가 비중이 14% 이상)에 도달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국가채무 비율을 바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각국별로 ‘고령사회에 도달한 시점’을 따로 포착해서 비교해보면 어떨까? 그렇게 해보니 한국의 ‘고령사회 도달 시점(2018년)’의 일반정부 부채비율은 40.0%로 나타났다. 독일(1972년 36.8%), 프랑스(1979년 32.6%)보다는 조금 높지만 미국(2013년 105.1%), 일본(1995년 84.4%), 영국(1975년 50.1%)에 비해서는 낮다. 이상민 연구위원은 “비슷한 조건의 시점에서 국가채무 비율을 비교해보면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위험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높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먼저 국가채무 비율 지표만으로는 ‘나쁜 부채’와 ‘좋은 부채’를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국가채무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금융성 채무’와 ‘적자성 채무’다.
금융성 채무의 경우, 해당 채무를 지는 것과 동시에 ‘그 채무를 상환할 자산(대응자산)’이 발생한다. 빚을 갚기 위해 별도의 재원을 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정부가 시민들에게 돈을 빌리면 국가채무가 발생한다. 그런데 그 돈으로 달러화를 사들여 자산으로 갖게 된다면, 해당 국가채무의 리스크는 어떨까? 외국환 평형기금(외평기금)을 사례로 설명해보자.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외국환(주로 달러)을 사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되는 기금이다. 정부는 예컨대 민간으로부터 1141만원을 빌려 조성한 외평기금으로 1만 달러를 사들일 수 있다. 빌린 1141만원은 국가채무로 잡히지만, 1만 달러라는 대응자산이 정부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처럼 외평기금을 조달하기 위해 빌리는 돈을 금융성 채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채무의 만기 구조 살펴야
적자성 채무의 경우에는, 정부가 돈을 빌릴 때 대응자산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금을 걷는 등 빚을 갚기 위한 재원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의 국가채무 835.6조원 가운데 적자성 채무는 506.9조원(60%)이다. 나머지 40%는 대응자산이 발생해 있는 금융성 채무다. 한국의 국가채무에서 금융성 채무의 비중이 적지 않은 셈이다. 금융성 채무는 대응자산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미치는 악영향이 적자성 채무에 비해 훨씬 작다.
이상민 연구위원은 “한 사람은 빚이 1000만원 있고, 다른 사람은 빚이 1억원 있다고 해서 1억원 빚이 있는 사람이 더 불건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1000만원 빚진 사람은 생활비가 없어서 신용대출을 받았고, 1억원 빚진 사람은 10억원짜리 아파트를 사기 위해 1억원 담보대출을 받은 사람이라고 치자. 빚은 10배가 넘지만 아파트라는 대응자산을 가진 사람이 재무적으로 훨씬 더 건전하다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여론이 국가채무 비율에만 ‘집착’하다 보면, 국가기관이 수치를 ‘마사지’하기 위해 ‘장난’을 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2차 추경에서 정부는 외평기금으로 지출할 예산을 크게 줄였다. 그 덕분에 국가채무는 당초 예정보다 2조8000억원 정도 덜 발생했다. 국가채무 비율도 그만큼 낮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당초 계획에서 확보하기로 되어 있었던 달러 등 외화 자산도 2조8000억원만큼 줄어들었다. 외화 자산이 많을수록 경제위기에서 국가경제를 방어하는 능력이 강해지는 경향을 부인할 순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나라 살림은 국가채무 비율의 저하에 따라 더욱 건전해진 것인가, 아니면 위태로워진 것인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국가채무(분자)를 GDP(분모)로 나눈 것이다. 분자인 국가채무는 이전부터 누적해 쌓이는 저량(stock) 개념이다. 분모인 GDP는 1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부가가치를 합한 유량(flow) 개념이다. 한번 늘어난 국가채무는 누적되어 채무비율을 지속적으로 증가시키기 쉽다. 그래서 누적되는 국가채무(저량)를 1년 단위 GDP(유량)로 나누면 해당 국가의 부채 상황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가재정이 성숙한 나라일수록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지난해 3월 서울 서대문구 대학가 인근 상점에 휴점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처럼 국가채무의 규모나 국가채무 비율 수준만을 두고 적정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그 자체로 논란의 소지가 있다. 또 총량에 따라 재정건전성을 따지다 보면 ‘낮으면 건전하고, 높으면 불건전하다’는 식의 논의로 흘러가기 쉽다. 그래서 다양한 보조 지표를 활용해 국가채무의 지속가능성 측면(국가채무를 부담 가능한가, 지속 가능한가)에서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국가채무(저량) 대신 국가채무 이자(유량)를 GDP(유량)로 나눈 국가채무 이자비율을 통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판단하기도 한다. 글로벌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고(정부들이 돈을 빌리기 쉽게 되면서)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지난 수년 동안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국가채무 규모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그러나 국가채무 이자비용은 안정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2019년 국가채무 이자비용은 18.0조원으로 전년보다 7000억원 감소했다.
류덕현 교수가 국회사무처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채무의 지속가능성을 검토할 때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조건이 있다. 그중 하나가 국가채무의 만기 구조다. 한국 국가채무의 평균만기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7.2년, 7.7년, 8.4년, 9.2년, 9.7년으로 지속 증가해왔다. 10년 이상 장기물의 비중이 증가해서다. 정부가 장기적으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국가의 신용도가 높다는 의미다. 단기에 상환해야 할 돈이 많을수록 그 나라 경제는 위험에 취약해진다.
한국의 2019년 국가채무는 2020년부터 2068년까지 분산해서 상환할 예정이다. 이 중에서 잔존만기가 1년 미만인 국가채무 비중은 7.3%다. 1~3년 미만의 경우 19.4%, 3~5년 미만의 경우 18.9%. 5~10년 23.5%, 10년 이상 30.8%로 구성되어 있다. 잔존만기 1년 이하인 단기채무 비중(7.3%)이 주요 선진국의 평균(20.4%)보다 현격히 낮다.
다른 나라의 단기채무 비중을 살펴보면 이탈리아 40.4%, 스웨덴 33.2%, 프랑스 23.7% 등으로 한국보다 훨씬 높다. 한국 정부가 1년 안에 당장 갚아야 하는 국가채무가 적다는 점은 재정의 지속가능성에서 대단히 유리한 측면이다.
두 번째로 봐야 할 것은 ‘외국인 보유 국가채무 비중’이다.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미국·유럽연합·일본 같은 기축통화국보다 재정을 좀 더 보수적으로 운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어떤 정부가 돈을 빌릴 때, 빌려주는 측은 국내 연기금이나 금융기관일 수도 있지만 외국인 및 해외 기업일 수도 있다. 전체 국가채무 가운데 외국인으로부터 빌린 돈의 비중(‘외국인 보유 국가채무 비중’)이 크면 그 자체로 국가경제의 리스크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 다행히 한국의 ‘외국인 보유 국가채무 비중’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기획재정부의 ‘2020~2024년 국가채무 관리계획’에 따르면, 외국인 보유 국가채무 비중은 14.1%(정부의 국채 백서 〈국채 2020〉에 따르면, 외국인은 2020년 말 기준 국고채 발행 잔액의 약 16.7%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다. 다른 주요국의 외국인 보유 국가채무 비중은 평균 25.7%로 나타났다. 한국의 경우 대략 86%의 국채를 내국인·금융기관이 갖고 있는 셈이다. 외국인들이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국채를 판다고 해도 국가경제에 대한 충격이 적다.
류덕현 교수는 ‘적정 국가채무 수준 논쟁은 결국 향후에 필요한 재원 조달을 위해 어느 정도의 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할 것인가의 문제이고, 이는 조세부담률-국가채무-국가복지 수준이라는 재정 트릴레마(fiscal trilemma)와 연결 지어 논의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트릴레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힘든 딜레마가 3중으로 엮여 있는 것을 말한다. 어떤 한 나라가 ‘높은 복지수준, 낮은 국가채무 비율, 낮은 조세부담률’을 동시에 만족시키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세 가지 지표 가운데 두 가지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희생할 수밖에 없다. 류 교수는 2019년 OECD 자료를 통해 여러 나라를 4개 그룹으로 분류했다. 국가채무 비율과 국민부담률(조세부담률은 GDP에서 조세가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고, 국민부담률은 여기에 연금이나 사회보험 등의 부담을 포함한다)의 평균치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룹 1(높은 국채비율-높은 국민부담률-높은 복지수준), 그룹 2(낮은 국채비율-높은 국민부담률-높은 복지수준), 그룹 3(낮은 국채비율-낮은 국민부담률-낮은 복지수준), 그룹 4(높은 국채비율-낮은 국민부담률-높은 복지수준)로 나눌 수 있다. 한국은 그룹 3에 속한다. 한국은 OECD 국가들 중에서 복지수준이 낮은 편이고 국가채무 비율과 국민부담률도 낮다. 불평등 완화와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에 정책 우선순위를 둔다고 하면 국가채무를 늘린 일본(그룹 4)의 길을 가거나 국민부담률 혹은 조세부담률을 높인 스웨덴(그룹 2)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암묵적 재정준칙’ 운용이 적절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복지지출이 자연적으로 증가한다면 이에 대한 재원 조달을 일본처럼 할 것인가, 스웨덴처럼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않는다면, 국가채무 규모가 늘어날 때마다 ‘재정건전성 논란’은 반복되기 쉽다. 지난해 코로나19 대응에 기획재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재난지원금 등을 위해 추경을 편성할 때마다 국가채무 비율 규모를 두고서 보수·경제지가 재정건전성 논란을 지폈던 것처럼 말이다.
ⓒ시사IN 신선영 지난해 6월 ‘코로나19 긴급 고용안정지원금’ 신청을 위해 고용노동청을 찾은 시민들.
최근 ‘나랏빚 1000조원’을 이야기하면서 국회가 재정준칙 도입에 나서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보도가 여럿 나왔다. ‘한국형 재정준칙’은 국가채무 비율을 60%, 통합재정수지 -3%를 기준으로 계산식을 만들었다. 우석진 교수는 “재정 당국의 고민이 이해는 된다. 재정지출이 늘어날 때 재정관리 측면에서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도입하려는 재정준칙 기준 계산식으로는, 국가채무 비율이 60%가 될 경우 정부가 재정정책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2025년부터 시행한다고 하지만 재정준칙을 적용하게 되면 그 이전부터 기준을 맞추기 위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류덕현 교수에 따르면, 한국은 IMF와 OECD 등에서 재정준칙이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나라’로 분류된다. 중기 재정운용계획, 재정성과 평가, 장기 재정전망 등 정부 재정의 적자 편향을 감소시킬 만한 여러 정책적 기제가 있다. 류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재정준칙이 경기의 회복을 지연시키며 공공서비스 수준을 낮추는 긴축정책을 채택하도록 정부를 압박할 우려가 있다. 법으로 만드는 순간 손발이 묶여 오히려 혼란이 올 수도 있다. 채무 수준의 상한선을 두는 것에 대한 객관적 근거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못한 것도 문제다. 단기적으로 채무 증가 속도를 완화할 수 있는 실효적 조치를 도입해 이 방식을 ‘암묵적 재정준칙’으로 운용하는 것이 적절하다”라고 말했다.
‘재정이 화수분이 아니다’라는 기획재정부의 고민에는 귀 기울일 만하다. 정부가 합리적 재정 관리에 힘써야 한다는 말은 항상 옳은 말이지만, 효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하고 소득분배를 개선하며 경제안정과 성장에 기여하는 것이 정부 재정의 역할이다. 특히 코로나19 시기에 국가채무의 증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각국 정부도 확장적인 재정정책으로 위기 대응에 나섰다. 한국의 GDP 대비 정부 총지출 비중은 31.2%(2018년 기준)에 이른다. 경제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커졌다. 위기의 순간에 재정정책의 손발이 묶이면 국민 삶이 고단해진다. 국가채무 비율만 쳐다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시사인 / 차형석 기자
‘정권심판론’ 키운 정부·여당의 미래는?
불만에 찬 여론이 스스로 오류가 없다고 믿는 정권의 태도와 만날 때 정권심판론은 힘을 얻는다. 여야가 바뀐 채, 10년 전 상황과 비슷하다. 다만 지금의 여당은 읍소를 건너뛰고 비교우위만 남겼다.
4·7 보궐선거는 5년 만에 등장한 변곡점이다. 2016년 촛불집회 이후, 집권 더불어민주당이 판세가 뒤진 채로 출발하는 첫 선거다. 촛불집회 이후 민주당은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을 전부 크게 이겼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압도적인 연승 가도였다. 이번엔 구도가 반대로 잡혔다. 서울에서는 ‘안정적 국정운영 위해 여당 후보 당선’을 원하는 응답자가 33%, ‘국정운영 심판을 위해 야당 후보 당선’을 원하는 응답자가 59%다(3월20~21일 방송 3사 공동 여론조사. 이하 모든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3월 초만 해도 이 정도 차이는 아니었다. 3월8~9일 여론조사(KBS 의뢰,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는 ‘안정적 국정운영 위해 여당 후보 당선’을 원하는 응답자가 40%, ‘국정운영 심판을 위해 야당 후보 당선’을 원하는 응답자가 49%다. 불과 열흘 남짓 동안 정권심판론이 10%포인트 치솟고 국정안정론이 7%포인트 빠졌다. 정권심판론과 국정안정론의 비율은 선거 결과를 비교적 잘 예측하는 선행지표다. 이것은 현재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를 야권 단일화 컨벤션 효과만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의미다. 현 정권에 대한 평가 자체가 나빠졌다.
3월의 최대 이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내부정보 이용 투기 사건이었다. 부동산 문제는 분노의 뇌관이다. 민주당도 이 대목에 신경을 많이 쓴다. 서울과 부산의 국민의힘 시장 후보인 오세훈·박형준에게 부동산 투기 의혹을 집중 제기한다. 오 후보는 서울시장 재직 시절 내곡동 땅 특혜 의혹을, 박 후보는 부산의 초고가 아파트인 해운대 엘시티 특혜 의혹을 받고 있다. 민주당은 부동산 투기에 분노한 민심이 야당 후보로 옮겨가길 바란다. 그러나 여론은 시큰둥하다. 두 선거 모두 약 15%포인트 격차가 대체로 유지된다. 왜 부동산에 분노한 민심이 야당 후보의 부동산 의혹에는 분노하지 않을까? 여당 지지층 일각의 지적처럼 유권자의 ‘선택적 분노’를 탓해야 할까?
여론분석가인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은 “이슈 자체보다도, 정부·여당이 이슈를 다루는 태도가 정권심판론을 자극하는 변수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정부·여당은 부동산 이슈를 사과와 반성보다 공세와 비교우위(“야당보다 우리가 더 낫다”)로 관리해나갔다. ‘부동산 적폐 청산’을 내걸고, 오세훈·박형준 후보에게 공세를 펴는 노선이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사의도 ‘추후 수용’이라는 어정쩡한 형태로 정리했다. 불만에 찬 여론이, 스스로 오류가 없다고 믿는 정권의 태도와 만날 때, 정권심판론은 폭발력이 높아진다. 여론이 무오류의 태도에 분노한다는 관점으로 보면, 오세훈·박형준 후보를 향한 여당의 부동산 공세가 여론을 반전시키지 못하는 이유도 설명된다.
윤석열 두고 엇나간 당·청
무오류의 태도가 용인될 수도 있다. 실제 성과와 이어질 때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남북관계에 극적인 진전이 있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는 한때 정부·여당에 대한 경고신호가 켜졌지만, 코로나19 방역 성과가 유권자들을 납득시켰다. 하지만 2021년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부·여당은 이런 조합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부동산 이슈에서는 무오류의 태도가 야권 후보에 대한 공세와 비교우위 노선을 낳았고, 그를 지켜본 여론은 급격하게 정권심판론으로 기울었다. 검찰개혁 이슈 역시 부동산 이슈와 비슷한 궤적을 그렸다.
부동산 문제는 유권자를 건드리는 분노의 뇌관이다. 3월 정치권의 최대 이슈는 LH 직원 땅 투기 사건이었다. ⓒ시사IN 이명익
문재인 대통령은 1월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질문을 받고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다”라고 답했다. 이 발언 이후 윤석열 전 총장의 정치적 파괴력이 훅 꺾였다. 한국갤럽 1월 둘째 주 조사에서 윤 전 총장의 차기 주자 지지율은 13%였다. 대통령 기자회견이 반영된 2월 첫째 주 조사에서는 9%로 빠진다. 국민의힘 지지층이 대거 지지를 철회했다(1월 38%, 2월 28%). 정부·여당이 ‘윤석열 카드’를 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윤석열 포용정책’이었다. 대통령 기자회견은 그걸 입증했다. 2월에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검찰개혁 속도조절론이 나왔다.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2월24일 국회에 나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임명장을 받으러 온 날 대통령이 속도조절을 당부했다”라고 말했다. 이후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와 설전을 벌이며 당·청 엇박자를 노출했다.
결국 속도조절론이 후퇴하고 신속추진론이 대세를 잡았다.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른바 ‘검수완박’)을 골자로 하는 검찰개혁 법안이 추진되자, 윤석열 검찰총장은 사퇴의 계기와 명분을 잡았다. 그는 “검수완박은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친다)”을 사퇴 명분으로 내세웠다.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 발언에 발목이 묶였던 그는 3월4일 ‘사퇴에 성공’했다. 사퇴 이후인 3월 둘째 주에 한국갤럽 차기 주자 지지율 24%를 기록해, 민주당 이재명 경기지사와 동률로 뚜렷한 양강 구도를 만들어냈다. 한 달 만에 15%포인트가 올랐다. 이완되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43%가 그를 차기 주자로 지목하며 재결집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으로 이어지는 긴 투쟁이 질서 있게 수습되지 못했다. 검찰개혁 찬반을 떠나서, 이슈 피로도가 대단히 높은 상태가 지나치게 오래 지속됐다. 이 대목에 대한 정부·여당의 성찰과 반성이 나오느냐가 중요했다.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 발언은 그런 신호로 받아들여졌고, 이슈 피로도도 이완됐다. 하지만 이후 검찰개혁 이슈는 다시 공세 국면으로 돌아섰다. 여기서도 무오류의 태도가 또다시 등장했다는 인상을 여론에 남겼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왼쪽)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갈등은 검찰개혁에 대한 이슈 피로도를 높였다. ⓒ연합뉴스
정부·여당에 무오류의 태도가 등장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검찰개혁이든 부동산 정책이든, 여론의 일시적 반대가 있어도 결국 가야 할 길이라는 사명감이 집권세력 핵심에서 공유되고 있다. 강성 지지층은 어떤 식으로든 이런 태도의 오류를 지적하는 여당 정치인에게 가혹한 압박을 가해왔다. 두 경향이 만나면 검찰개혁 속도조절론이나 부동산 정책 다변화 같은 온건한 우회로도 봉쇄되기 쉽다. 정부·여당에 불만을 품는 여론이 무오류의 태도와 만나면 투표 말고는 정권의 태도를 바꿀 방법이 없다고 느낀다. 심지어 야당을 대안으로 인정하지 않는 유권자조차도 그쪽으로 움직인다. 4·7 보궐선거는 잔여 임기 15개월짜리 선거다. 경고 메시지로 쓰기에 유권자도 부담이 덜하다. ‘본게임’ 격인 대선은 11개월 후에 있다.
이슈가 역동적으로 충돌하는 지층의 한 칸 아래, 좀 더 장기적이면서 치명적인 약속 위반도 있었다. 2020년 4월 총선에서 여당의 압승은, 코로나19 재난기를 돌파하기 위해 정부·여당에 힘을 실어준 결정이기도 했다. 재난기는 갈림길이다. 정치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따라서 격차는 결정적으로 커지기도 하고 놀랍도록 줄어들기도 한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통과하면서 탈락자들이 평생 불안정노동과 취약 자영업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격차사회로 굳어졌다. 재난이 격차를 키우는 사례다. 정치가 할 일을 하지 않을 때, 재난은 전형적으로 이런 결과를 낸다. 반대로 20세기 중엽의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을 통과하면서 상하층의 격차가 극적으로 줄어드는 ‘대압착’을 만들어냈다. 전쟁을 거치며 고소득자의 세금이 크게 오르고, 군수산업 성장으로 노동자의 소득이 올랐으며,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협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정부가 법제도를 정비해주었다. 일련의 정치적 결정과 행동을 묶어 부르는 이름이 ‘뉴딜’(새로운 사회계약)이었다. 정치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작동할 때, 재난은 불평등을 줄이고 공동체를 복원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코로나19 위기에 등장한 ‘한국판 뉴딜’도 본래 취지는 이것이었다. 지난해 6월9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위기가 불평등을 키운다는 공식을 반드시 깨겠습니다. 위기를 불평등을 줄이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상생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위기 극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한국판 뉴딜의 궁극적인 목표가 여기에 있습니다.”
2021년 민주당의 메시지에 없는 것
이 말은 정확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었으나, 이후 현실은 반대 방향으로 전개됐다. 지난해 연말 한국은행은 코로나19 이후 소득격차 확대와 대·중소기업 생산성 격차 확대가 동시에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이 폭등하면서 자산 보유 계층은 코로나19 재난에서 오히려 부를 불렸다. 영세 자영업자와 불안정노동자 등 취약계층은 영업제한 조치와 경기후퇴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 대비가 하도 선명하고 인상적이어서, 재난기의 시민들은 격차 확대를 사실상 실시간으로 체감했다. 여기서 오는 박탈감은 실제 격차 그 자체보다도 크게 각인될 수 있다.
반년이 지나서 대통령은 “뼈아프다”는 반성을 내놓았다. 지난해 12월14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라 영업이 제한 또는 금지되는 경우 매출 급감에 임대료 부담까지 짊어지는 것이 공정한지에 대한 물음이 매우 뼈아프게 들립니다. 모두가 고통을 분담해야 하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약자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고통의 무게를 함께 나누고 정부의 책임과 역할을 높여나갈 방안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6월의 정확한 문제의식은 반년 동안 여전히 문제의식에 머물렀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 끝에 5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뒤에서 스타트한 선거 국면이 도래했다. 이에 민주당이 들고나온 대응책을 ‘비교우위론’으로 부를 수 있다. 국민의힘과 상대평가를 해달라고 유권자에게 호소하는 전략이다. 오세훈·박형준 후보에 대한 공세는 부동산 문제에서 비교우위를 내세운다.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3월25일 “국민 여러분, 도와주십시오”라는 제목으로 공식 선거운동 시작 메시지를 낸다. “앞으로 가자는 후보와 뒤로 가자는 후보가 겨루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절박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국민 여러분을 뵙겠습니다.” ‘읍소 더하기 비교우위’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나름 공인된 공식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여당인 한나라당·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이 자주 꺼내들었다. 여당에 대한 실망과 심판 정서는 높지만, 야당을 대안 삼기에는 차마 손이 나가지 않는 구도에서 여당이 쓰기 좋은 카드다. 그 시절의 민주당은 노무현 정부 이후의 지지층 붕괴를 복원하지 못하면서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보수 여당은 무릎 꿇기, 회초리 치기, ‘잘못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피케팅, 석고대죄 퍼포먼스까지 다양한 읍소 전략을 구사했다. 불만에 찬 유권자에게 “우리 불만을 저 사람들이 알고는 있다”라는 신호를 보내는 게 핵심이었다. 그렇게 1단계로 유권자들의 정권심판 의지를 누그러뜨린 후, 2단계로 말을 건다. “그래도 저 야당은 차마 못 찍을 정당이니, 우리한테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면 그때는 실수하지 않겠습니다.” 이 메시지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우선 누그러뜨린 후에야 도착할 수 있으므로 1단계가 2단계보다 더 중요하다.
2021년 현재 국민의힘이 다시 대안으로 인정받았다는 징후는 아직 없다. 여전히 비호감도는 높고, 보궐선거가 아니었다면 국민의힘을 찍기 부담스러워하는 유권자층이 여전히 두텁다. ‘읍소 더하기 비교우위’ 조합이 작동하기 좋은 토양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메시지에는 과거 보수정당의 메시지와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읍소’가 매우 간략하고 추상적이거나, 그마저도 없다. 이낙연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의 메시지에는 “잘못은 통렬히 반성하고 혁신하며, 미래를 다부지게 개척하겠습니다”라는 말만 있다. ‘잘못’은 구체적 내용 없이 단어 하나로만 지나간다.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의 유명한 지지자인 정철 카피라이터가 만든 투표 독려 메시지는 SNS에서 크게 화제를 모았고, 여당 의원들도 퍼 날랐다. 여기에는 아예 ‘잘못’ 이야기가 없다. “압니다, 당신의 실망 허탈 분노” “기대가 컸기에 더 크게 실망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화를 내십시오 욕을 하십시오 매를 드십시오. 당신 마음이 누그러진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십시오”라고만 쓴다. 민주당을 찍던 유권자들이 분노하는 현실은 인정하지만, 분노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무오류의 태도는 여기서도 발견된다. ‘읍소 더하기 비교우위’에서 1단계인 ‘읍소’는 무오류의 태도에 묶여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남는 것은 그저 “국민의힘보다는 우리가 낫지 않느냐”는 비교우위 하나다.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3월22일 〈한겨레〉와 인터뷰를 했다. 이 인터뷰는 무오류의 태도와 ‘읍소를 건너뛴 비교우위론’의 종합판이다. “우리 민주주의는 아직 취약하다. 국정농단 세력인 국민의힘이 집권하면 과거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나 김영춘 부산시장 후보나 도덕성이 야당 후보를 압도한다.” “이해찬 전 대표가 ‘윤석열 전 총장이 대선 나오면 생큐’라고 했는데 저도 같은 생각이다.” “지금 부동산 공급 문제는 5년 전 정책의 결과다.” 이것은 정권 핵심 인사들이 대체로 공유하는 인식의 꾸러미다.
3월15일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와 열린민주당 김진애 후보가 후보 단일화 2차 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 후보가 단일 후보가 됐다. ⓒ연합뉴스
일련의 결과로, 2021년의 정치 구도는 갈수록 10년 전인 2011년을 닮아가고 있다. 2011년에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을 겪었으되, 야당인 민주당이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덕에 버티고 있었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이어진 시장직 사퇴로, 서울시장 선거가 대선을 14개월 앞두고 갑자기 생겼다. 이 공간에서 제3지대 현상이 폭발했다.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현 국민의당 대표)이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내며 대선주자로 떠올랐고, 안 원장의 지지를 받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야권 단일화 끝에 서울시장이 된다. 이로써 여당은 정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이 구도는 10년 만에 여야만 바뀌어서 재현되고 있다. 국민의힘이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집권 민주당은 임기 내내 안정적 우세를 누려왔다. 하지만 대선을 11개월 앞두고 예정에 없던 서울시장 선거가 열리며 정권심판론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윤석열 전 총장으로 대표되는 제3지대 현상과 연대·연합을 구축하면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전망이 범야권에 생겼다.
“잘 지는 게 중요하다”
“선거는 이기는 게 늘 최선이다. 지금도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지는 선거라면, 그때는 잘 지는 게 중요하다.” 민주당의 한 재선의원은 서울시장 판세를 두고 알쏭달쏭한 말을 했다. 이 말의 의미 역시, 2011년의 거울에 비춰보면 좀 더 분명해진다. 서울시장 패배 이후 여당에서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출범한다.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김종인·이준석 등 기존 보수 여당과 결이 다른 인물들을 지도부에 대거 투입한다. 이로써 쇄신과 경제민주화라는 이미지를 중도층에 각인시켰다. 일련의 과정은 2011년 10월 서울시장 패배에 대한 질서 있고 성공적인 대응이었다. 2012년 12월 대선이 가까웠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은 유일한 대선주자 박근혜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보수는 쇄신의 외양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여 2012년 대선을 다시 이겼다.
“잘 지는 게 중요하다”라는 말은, 민주당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졌을 경우(3월25일 현재 시점에서는 더 가능성 높은 미래다) 그 패배로부터 올바른 교훈과 쇄신을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선거 패배 이후에는 마치 공식처럼, “중도층을 못 잡아서 졌다”와 “지지층을 결집시키지 못해서 졌다”라는 상반된 평가가 등장하게 되어 있다. 이 평가가 어느 쪽으로 수렴되느냐가 패배 이후의 행보를 결정한다.
3월16일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왼쪽)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후보 단일화 TV 토론회에 참석했다. 오세훈 후보가 단일 후보로 선출됐다. ⓒ국회사진기자단
이 해석 투쟁의 예고편은 이미 진행 중이다. 사후 해석의 이 두 갈래 길은 현재 15%포인트 안팎의 열세를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와 이어져 있으므로, 남은 기간의 선거 전략을 또한 결정한다. 지지층을 열광시키는 강한 결집 메시지로 갈 것이냐, 중도층이 듣고 싶어 하는 반성과 읍소 메시지로 갈 것이냐를 가른다. 이해찬 전 대표는 3월19일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나와 “선거가 아주 어려울 줄 알고 나왔는데 요새 돌아가는 것을 보니 거의 이긴 것 같다”라고 말했다. 채널(‘김어준’)과 메시지 모두, 지지층을 강하게 결집시켜 선거를 치르자는 노선에 충실하다.
2011년 한나라당 ‘박근혜 카드’에 대응하는 2021년 민주당 대선주자는 이재명 경기지사다. 둘 다 당대의 집권세력과 당은 같지만 관계가 껄끄럽고, 둘 다 당내 선두 대선주자이고, 둘 다 정권 재창출의 위기감이 높아질수록 이득을 보는 포지션이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도 있다. 2011년에는 서울시장 선거와 대선 사이에 총선이 있었다. 박근혜 위원장은 2012년 4월 총선 공천권을 행사해 친위 세력을 당 주류로 포진시켰다. 이것으로 그는 총선 이후 대선 경선에서 무혈입성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런 2단계 승계 절차를 기대할 수 없다. 서울시장 선거가 끝나면 완충 단계 없이 곧바로 대선 경선으로 돌입한다. 민주당이 승리하면 승리하는 대로, 패배하면 패배하는 대로 주류와 비주류는 결과 해석을 놓고 치열한 주도권 다툼을 피하기 어렵다. 이재명 지사는 여기서 핵심 지지층과 확장성 사이의 딜레마에 빠질 위험이 크다. 더욱이 ‘2011년 박근혜’는 핵심 지지층의 거부를 거의 받지 않았지만, ‘2021년 이재명’은 제법 크게 받는다. 2011년 보수 여당처럼 질서 있고 성공적인 대응을 끌어내기에는, 2021년 민주당이 처한 조건이 여러모로 더 나쁘다. 이것은 ‘서울시장 선거에 지면 민주당이 쇄신에 나서리라 기대하는 유권자’에게 특히 나쁜 소식이다/시사인 천관율 기자
한겨레사설] 선거 의식한 섣부른 ‘부동산 규제완화’ 위험하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31일 “정부·여당은 주거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정책을 세밀히 만들지 못했다”고 공식 사과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시작된 공직자 땅투기 의혹이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에 최대 악재가 되고 있다. 그 배경에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불신도 자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 사과했지만, 여당의 책임도 무겁다는 점에서 이 위원장의 사과는 당연하다고 본다.
관건은 정부·여당의 향후 정책 방향이다. 이 위원장은 “생애최초주택구입자, 청년, 신혼세대 등에 대한 금융규제 완화”를 약속했다. 앞서 홍익표 정책위의장도 29일 “장기무주택자, 생애최초주택구입자 등 서민 실수요자에 대한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하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소득기준과 주택가격을 더 높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서민 실수요자는 이미 금융규제에서 우대를 받고 있지만, 집값이 급등한 탓에 내집 마련이 더 어려워진 현실을 고려하면 혜택을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선거 판세가 불리하다고 해서 허둥지둥 규제를 푸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금리 상승 위험에 대비해야 할 시점에 금융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감당하기 힘든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민주당은 공시가격 현실화 속도도 늦출 계획이다. 정부가 집값 안정과 조세 형평성 제고를 위해 현재 시세의 70%인 공시가격을 2030년까지 90%로 높이겠다고 발표한 지 불과 5개월 만에 말을 바꾼 것이다.
정책이 고정불변할 이유는 없다. 문제점이 드러나면 수정하는 게 맞다. 하지만 기존 정책의 실패 원인과 새 정책의 타당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것은 무책임하고 무원칙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특히 선거를 코앞에 두고 손바닥 뒤집듯 하는 정책 변경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정부는 이날 2·4 대책의 하나로 서울 도심에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한 ‘도심 공공주택 복합개발사업’ 1차 후보지 21곳을 발표했다. 엘에이치 사태 이후 야당은 공공 주도 방식의 포기를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집값을 다시 불안하게 할 것이라며 기존 계획을 고수했다. 옳은 판단이라고 본다.
정부는 상황이 어려울수록 지켜야 할 것과 고쳐야 할 것을 잘 구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선거의 유불리만 따져 조변석개하다가 집값 불안이 재연되면 책임질 수 있겠는가
“알고도 손대지 못했다”는 대통령의 고백
방향이 다른 부동산 정책 시그널이 난무한다.
지난 29일, 문재인 대통령은 LH 사태의 핵심을 ‘부동산 불평등’이라고 했다. “우리는 알고도 하지 못했다”고 반성하며 “근본적 대책”을 주문했다.
같은 날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재건축규제 완화를 약속하고 다녔다. 홍익표 정책위의장은 정부가 가장 강력하게 추진했던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풀어주겠다고 공언했다.
임기가 4년 지난 문재인 대통령의 새삼스러운 고백은 당황스럽다. 그간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다. “세금을 강화해 다주택자의 서울 아파트를 내놓게 해달라”는 30대 워킹맘의 질문에 “3기 신도시 수도권에 30만호가 공급된다”고 은근슬쩍 넘어갔던 그다. (2019년 국민과의 대화) ‘부동산 가격 회복의 기준이 취임 전인가’를 묻는 질문에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모호한 답변을 했던 대통령이다. (2020년 신년 기자회견)
임기가 4년이나 지났는데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손대지 못했다”고 이제 와 고백하면 국민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원점으로 되돌아가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을, “부동산 부패의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라는 대통령의 말을 믿고 싶다. 하지만, 대통령이 알고도 놓아버린 기회가 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깊어진 불평등의 까마득한 골짜기도 마찬가지다.
선거전에 나선 여당의 부동산 발언들을 보면 대통령 의지가 실현될지 의심스럽다.
박영선 후보는 35층 층고 제한 완화를 약속했다. 한강변 고가 아파트 재건축에 40층·50층을 지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뜻이다. 겉으로는 주택 공급 확대에 따른 주거안정이라는 논리를 갖다 대지만, 한강변 고가 아파트를 지어준다고 서민 주거가 안정되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평당 5~6천만원짜리 한강뷰 아파트에 청약 당첨이 된다 한들, 십수억원의 돈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홍익표 정책위의장의 말은 더 우려스럽다. 간신히 안정세로 돌아선(상승폭만 조금 줄어든, 여전히 오르고 있는 상황에 불과하지만) 아파트 구매 수요를 자극한다. 장기무주택자나 생애최초주택구입자에 대해서는 주택담보대출 비율을 완화해주겠다고 한다. 연봉 8천만원 이상 받는 사람들에게도 정책대출을 해주겠다고 나선다. “가격이 너무 올라 무너진 주거사다리”를 빚으로 복원하겠다는 뜻이다. “가격을 낮춰달라”는 민심은 어떻게 할 것인가.
홍민철 기자 plusjr0512@vop.co.k
부산지역 언론, 박형준 후보 '엘시티 의혹' 해명성 보도만
미디어감시연대, "시민사회 박 후보 불법사찰 의혹 제기...지역언론 적극적 보도 없어“
4·7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가 받고 있는 엘시티 특혜분양 의혹 등과 관련해 부산지역 언론이 해명성 보도에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2021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미디어감시연대(이하 미디어감시연대)가 지난 3월 15일부터 3월 21일까지 <국제신문>, <부산일보>, KBS부산, 부산MBC, KNN를 분석한 결과 박형준 후보의 ‘엘시티 특혜분양 의혹’과 관련한 기사가 32건이었다. 이중 26건이 제기되는 의혹에 박형준 후보의 답변이 대응하는 ‘공방 보도’였다.
<부산일보>는 의혹을 검증하는 기획기사를 2건 내놨지만 박 후보의 해명이 주를 이뤘다.
<부산일보>는 지난 18일 '4·7쟁점현미경' 코너에서 익명의 공인중개사 취재를 거쳐 ‘저층부인 탓에 인근 건물의 조망 간섭을 받아 로열층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미분양 물량이 많은 탓에 마이너스 피까지 등장했다’ 등 박 후보 해명과 일치하는 검증 결과를 내놨다.
<부산일보>는 이날 <부산시장 보선, ‘막가파식 진흙탕 싸움’으로 갈 건가> 사설에서도 “단지 고가의 아파트를 보유했다는 사실만으로 저렇게 격렬히 몰아붙이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며 ‘비리로 얼룩진’, ‘난개발의 정점에 서 있는’ 엘시티의 상징적 의미를 ‘단지 고가 아파트’라고 의혹을 축소했다.
미디어시민연대는 24일 낸 모니터 보고서에서 "엘시티 특혜분양 비리 의혹은 향후 부산 시정 운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후보 자질에 대한 검증임에도 사안의 크기를 축소하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17일 <국제신문>이 보도한 <여당, 박형준 겨냥 ‘닥치고 공격’…아직은 약발 안 먹혀>도 박형준 후보에 대한 의혹제기를 민주당의 네거티브 전략으로 바라본 전형적인 기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미디어시민연대는 "<국제신문> 해당 보도는 ‘아직까지 민주당의 공세가 지역 민심에 먹혀들지 않는 모습’이라며 두 후보의 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여론조사 결과가 그 근거라고 말했다"며 "후보검증과 여론조사 결과를 연결해 ‘약발 안 먹혀’와 같은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여론조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후보 검증은 불필요하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보내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월 17일자 국제신문 기사. ⓒ2021미디어감시연대
박준형 후보 자녀 입시비리 의혹은 후보가 받는 의혹 중의 하나로 언급되는 정도였다. <김영춘·박형준 우호세력 ‘외곽 지원전’ 치열>(국제신문, 3/18), <민주당 엘시티 총공세…박형준 “불법 없다”>(부산MBC 3/17), <정책 실종 선거판에 엘시티 공방만>(KNN,3/17) 등 여당의 파상공세로 치부하는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부산시민사회가 제기한 국정원 불법 사찰 의혹 역시 지역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지난 16일 부산시민·환경단체들은 MB 정부 당시 청와대 홍보기획관이었던 박 후보의 국정원 불법 사찰 책임을 물으면서 검찰에 고발했다.
미디어감시연대는 "박형준 후보의 불법사찰 의혹에 대한 부산시민사회 움직임이 이어졌으나, 이에 주목해 해당 사안만을 기사로 내거나 기자회견 외에 적극적인 취재에 나선 지역언론은 없었다"며 "무엇보다 시민사회의 이러한 움직임은 대부분 지면과 뉴스에 반영조차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PD저널/ 손지인 기자
네이버, ‘알고리즘 보수 편향’ 다룬 MBC ‘스트레이트’에 소송
‘알고리즘 보수편향’ 첫 보도에 정정보도 청구 소송 제기, 후속 보도 소송은 “검토 중”
네이버가 소송을 제기한 방영분은 지난해 12월 MBC ‘스트레이트’의 ‘인공지능(AI) 뉴스편집 보수 편중 심각’ 보도다. ‘스트레이트’는 네이버 PC 뉴스홈 헤드라인 영역에서 보수언론 52.2%, 뉴스통신 3사 21.1%, 중도언론·진보언론·전문지·잡지·지상파 방송사 25.6%를 각각 차지한다며 네이버가 보수 매체에 편중돼 있다고 보도했다.
‘스트레이트’ 보도는 네이버 알고리즘을 추적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집계 대상인 PC뉴스홈을 통해 뉴스를 보는 비율이 미미해 표본에 대표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고, 5분마다 기사를 수집하는 방식으로 집계했는데 중복 집계 우려가 있고, 매체 성향 구분이 모호하다는 점에서 지적을 받기도 했다.
네이버 역시 소송을 제기하며 조사 방법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3월 ‘스트레이트’는 네이버 뉴스 모바일을 기준으로 알고리즘을 추적하는 후속 보도를 통해 네이버가 보수언론에 편중됐다고 보도해 사회적 논란이 불거졌다. 네이버는 3월 후속 보도가 나온 이후 지난해 12월 방영된 첫 보도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네이버는 3월 보도에 대한 법적 대응 여부는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3월 보도 취재 과정에서 네이버는 MBC 스트레이트에 보낸 설명자료를 통해 “네이버 뉴스 알고리즘에는 매체의 성향을 별도로 파악하거나 매체의 성향을 반영하는 요소가 전혀 없다”며 “테스트의 방식(설정 기준)과 기간(일별, 시간별)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으므로, 특정 기간 일부 매체에 국한된 테스트를 일반화하는 것은 적합한 조사방식이 아니다”고 밝혔다.
MBC는 네이버의 소송제기와 관련, “따로 드릴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네이버와 ‘스트레이트’는 과거에도 갈등이 있었다. 2018년 ‘스트레이트’는 삼성 관련 의혹 보도 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이던 ‘장충기’ 검색어가 네이버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순위에 진입한 후 12분 후에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스트레이트’는 “왜 네이버 실검에선 삼성이 사라질까? 스트레이트에서 두 번의 방송 이후 핵심 주제어였던 삼성은 어느 곳에서도 검색 순위에 오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네이버는 “로직과 운영 원칙, 투명성 강화와 외부 검증 노력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드린 바 있지만 ‘스트레이트’는 당사의 답변을 반영하지 않고 유독 삼성 관련 검색어만 순위에서 사라진다고 강조하며, 네이버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순위가 ‘수상하다’고 보도했다”고 반박했다. 네이버는 ‘스트레이트’에 공개 검증을 제안하기도 했다.
금준경 노지민 기자 teenkjk@mediatoday.co.kr
기밀 해제 문서에 담긴 베트남전 국군 포로 실체
베트남전 한국군 포로와 민간인 실종자는 박정희 정권의 외면으로 밀림에서 죽거나 북한에 팔려갔다. 〈시사IN〉은 미국 국방부와 한국 외무부, 보안사 문서를 통해 진실을 공개한다.
ⓒ시사IN 이명익 베트남전 포로로 잡혀 북한으로 강제 이송된 안학수 하사의 동생 안용수 목사가 미국 국방부의 기밀 해제 문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 종전 45년이 넘도록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전쟁포로와 그 가족들이다. 이들은 아직도 국방부를 상대로 국가의 본분을 저버린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고 있다. 더 나아가 스스로 진상규명에 뛰어들어 박정희 정권과 군부가 감춰온 베트남전 당시 한국인 포로의 진실을 한 꺼풀씩 벗겨내고 있다.
〈시사IN〉이 이 기사에서 처음으로 공개하는 두 가지 기밀 해제 문서들 또한 그들의 피눈물이 밴 산물이다. 두 문서는 베트남전 한국인 포로 문제를 둘러싸고 여전히 풀리지 않은 해묵은 숙제를 일깨워준다. 하나는 미국 국방부 내의 ‘전쟁포로 및 실종자 담당부서(DPMO)’가 작성한 베트남전 기간 한국인 포로와 실종자들에 관한 기록이다. 또 하나의 비밀문서는 박정희 정권 당시 국군보안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베트남전 파병 한국군 포로 가족을 상대로 수십 년 동안 벌여온 ‘간첩 공작’이다.
1990년대 말에 기밀 해제된 미국 국방부의 포로 관련 문서에는 한국인 실종자와 포로 18명의 명단이 포함돼 있다. 미국 국방부는 명단에 들어간 인물들을 전쟁포로(PP), 포로수용소 사망자(KK), 전사자(BB), 송환자(RR), 협상에 따른 유해 송환자(NR), 무단이탈 및 탈영자(AA) 등으로 분류했다. 이 명단에서 한국인 18명은 전쟁포로(PP)나 포로수용소 사망자(KK)다. 무단이탈 탈영자(AA)로 분류된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들 중 군인은 박성렬 병장, 김인식 대위, 정준택 하사, 안학수 하사, 조준범 중위, 안삼이 상병, 이용선 병장, 박양정·임준성·이윤동씨 등이다. 민간인으로는 김성모·김흥삼·민경윤·이기영·김수근·이창훈·신창화·채교상씨 등이 명단에 올라 있다. 민간인 가운데 김성모씨와 김흥삼씨는 ‘포로 수감 중 사망자’로 분류됐다.
미국 국방부의 포로 관련 문서에는 한국인은 물론이고 연합군 포로 명단도 실려 있다. 모두 3000여 명에 달한다. 연합군 포로의 경우 대다수가 미국과 월맹(越盟, 베트민)의 지난한 협상을 거쳐 생환되거나 유해라도 송환받았다. 하지만 한국인 포로 중에는 그런 사례가 단 한 명도 없다.
ⓒ연합뉴스 1966년 7월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의 모습.
“1인당 3000달러에 북으로 강제 이송”
미국 국방부의 포로 관련 문서는 2005년 기자가 베트남전 종전 이후 최초 입수해 공개한 한국 외무부 비밀문서 〈베트남 전쟁 포로 및 실종자 송환〉(CA0006682)과 일부(15명) 명단이 겹친다. 미국 국방부와 한국 외무부가 각각 작성한 베트남전 포로 관련 비밀문서를 비교 분석하면 한·미 양국 정부가 한국군 포로 송환을 위해 기울인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미군은 물론 박정희 정권조차 종전 무렵까지 한국인 포로와 실종자에 대해 철저히 은폐·왜곡했다는 사실만 드러난다.
국군 포로는 베트남전 파병 초기인 1965년부터 발생했다. 국방부와 주월(주베트남) 한국군사령부는 실종된 군인에 대한 별다른 구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정부 내에서조차 일부 참전 국군 포로에 대한 정보가 최초로 공유된 것은 베트남 파병 4년여가 흐른 1969년 말부터였다. 그해 8월19일 주한 미국 대사는 베트남전 미군 포로 석방을 위해 한국 외무부에 협조를 요청하는 다음과 같은 서한을 보냈다.
“미국 정부는 1969년 9월6일부터 13일까지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제21차 국제적십자사 총회에서 전시 미군 포로 상태에 관한 국제적 관심을 집중하고자 하니 한국 정부가 적극 동의해달라.”
한국 외무부는 이 전문을 국방부에 보내 “파월 한국군 가운데서도 공산(월맹) 측에 포로로 잡힌 사람이 있는지, 있다면 그 현황을 알려달라”라고 회신을 요청했다. 1969년 8월20일 국방부는 실종자 3명의 명단만 달랑 보냈다. 1965년 11월3일 정찰을 나갔다가 실종된 박성렬 병장(맹호부대)과 1966년 9월9일 외출 중 실종된 육군건설지원단 소속 안학수 하사, 그리고 1967년 12월2일 타고 있던 헬기와 함께 실종된 박우식 대위였다. 국방부는 당시 외무부에 보낸 전문에서 이들 실종 군인 3명에 대해 “포로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포로로 간주한다”라고 공식 의견을 달았다.
하지만 얼마 후 박정희 정권의 태도가 돌변했다. 각각 1965년과 1966년 베트콩(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에 포로로 잡힌 박성렬 병장과 안학수 하사는 하노이 포로수용소에서 북한으로 강제 이송된 후 북측의 대남방송에 나온 사실이 밝혀졌다. 월맹군이 생포한 한국군 포로를 하노이 포로수용소에 구금한 뒤 북한으로 넘긴 것이다. 당시 북한은 하노이에서 중국을 거쳐 평양으로 한국군 포로를 강제로 끌고 가는 대가로 1명당 3000달러의 몸값을 월맹 측에 지불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1969년부터 1971년까지 월남 1군단 51특수보병연대 합동작전상황실 소속 하사관으로 베트남어·영어 동시통역을 맡았던 황민수씨는 이렇게 증언했다.
“1970년 11월 하순 월남군에 붙잡혀 포로가 된 북한군 심리전 장교 피○○ 심문장에 통역관으로 참여했다. 여러 정보 중 한국군 포로 및 납북자 문제가 핵심이었다. 그는 당시 월맹 측에 3000달러를 주고, 포로로 붙잡혀 있던 안학수 하사의 신병을 넘겨받은 뒤 북한에 강제로 데려가 대남 심리전 방송에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심리전 장교 피씨는 심문 순간에도 한국군 포로 6명이 하노이 포로수용소에서 곧 북한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즉각 이 내용을 파월 1군단 사령부에 비밀 보고했다. 귀국한 뒤에 국방부와 보안사로부터 ‘북한군 포로 심문 과정에서 취득한 비밀을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황씨는 지금이라도 한국 정부가 베트남전 포로의 진실을 조사한다면 사실대로 증언할 용의가 있다며 포로 유족에게 확인서를 써주었다.
미국 국방부와 한국 외무부 기밀문서를 종합해보면 1970년 들어 월맹 측과 월남 정부, 그리고 국제적십자사 간에 포로 교환 협상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그중에는, 1970년 12월10일 제94차 파리 회담에서 베트남 외무장관이 월맹 공산군 포로 9000여 명을 잡고 있다면서 월맹이 억류한 연합군 포로 1000여 명과 맞바꾸자고 제안하는 내용이 나온다. 박정희 정권이 베트남전 포로 실종자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던 1971년 봄, 미군과 월맹군은 포로 570여 명을 상호 송환하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미국 국방부 기록에 따르면, 미국 측은 한국군 포로 명단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그들을 송환받기 위한 노력은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한국 정부(외무부)가 한국군 포로 문제를 끝내 외면할 수 없었던 계기는 1972년 11월19일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가 한국 정부에 보낸 한 장의 서한 때문이었다. 당시 국제사면위는 인도차이나 지역에 억류된 민간인 포로 석방과 송환을 분쟁 당사국 간에 체결하게 하고자 합의 의정서 시안을 만들어 당사국인 한국 박정희 대통령과 김종필 국무총리 앞으로 서한을 보낸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인권 개념이 희박했던 유신체제 인사들은 국제사면위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몰랐다. 외무부 장관은 주영국 한국 대사에게 전문을 보내 이 단체의 정체를 자세히 파악해서 보고하라는 훈령을 내렸다.
ⓒ연합뉴스 안학수 하사(왼쪽)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1966년 9월9일 실종됐다. 이후 납북돼 북측의 대남방송에 나온 사실이 밝혀졌다.
국제사면위원회의 움직임을 계기로 한국군 포로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인도적 비난 대상이 될 것을 우려한 외무부는 부랴부랴 한국군 포로와 실종자 파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외무부의 독촉에 1972년 12월18일 국방부는 3년여 만에 추가 실종자 7명의 명단을 ‘2급 기밀’ 딱지를 붙여 제공했다. 이 문서에는 앞서의 박성렬 병장과 안학수 하사가 북으로 가서 대남방송에 나서면서 북한 체류가 확인되었다고 적혀 있다. 나머지 실종자로는 정준택 하사, 안삼이 상병, 이용선 병장, 김인식 대위, 조준범 중위 등이 추가되었다.
당시 국방부는 외무부에 1972년 9월30일 기준으로 작성한 ‘베트남 전쟁 사망·실종·부상자 통계자료’도 넘겼다. 이 기밀 문건에 따르면, 당시까지 베트남전에서 국군 3722명이 전사했고, 935명이 순직했으며, 179명은 ‘일반 사망’했다고 분류되어 있다. 포로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실종자는 장교 1명과 사병 4명 등 모두 5명으로 파악되었다. 이 서류들에는 극비 사항이므로 “12월 말일까지 파기하라”는 국방부 직인이 찍혀 있다. 당시 군부와 박정희 정권이 베트남전 피해 실상과 포로 문제가 국민에게 알려지는 것을 철저히 막으려 했다는 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972년 말은 베트남 전쟁 종전 협상이 마무리되고 철군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박정희 정권은 그해 10월17일 유신헌법을 공포해 철권 독재체제를 구축하느라 온 나라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베트남 전쟁 자체를 유신 선포의 명분으로 삼았다.
박정희 정권은 국군 포로나 민간인 실종자 문제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1973년 봄 들어 베트남 전쟁 종전을 앞두고 포로 송환 문제가 국제 이슈로 부각되었으나, 한국 정부는 ‘한국군에 포로는 없다’는 공식 입장을 철저히 고수했다. 그해 3월15일 귀국한 이세호 주월 한국군사령관은 박 대통령을 만난 뒤 기자회견을 자청해 “월남전에서 한국군 포로는 단 1명도 발생하지 않았다”라고 발표했다.
이런 대국민 기만극은 오래갈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철군에 들어간 주월 한국군사령부와 박정희 정권을 포로 문제로 난처하게 한 쪽은 북베트남(월맹)이었다. 3월23일 사이공에 있던 주월 한국 대사가 “베트콩 측이 3월25일께 일방적으로 한국군 포로 1명을 석방한다고 미군에 통보했다”는 긴급 전문을 본국에 날렸다. 단 1명의 포로도 없다고 우기던 박 정권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일주일간 국방부·외무부·주월 한국 대사관 사이에 숨 가쁘게 오간 ‘석방 포로맞이 비밀문서’들은 정부가 이 문제로 얼마나 혼비백산, 우왕좌왕했는지 드러내준다. 국방부에는 아예 포로 관련 자료가 없었다. 돌아올 포로에 대한 신원 파악은 현지 대사관 몫이었다. 처음에는 포로 이름이 인정철 준위라고 한국 측에 잘못 전해졌다. 포로를 사이공에서 맞을지 필리핀 클라크 공군기지에서 맞을지, 어떻게 귀국시킬지를 놓고 정부는 혼란에 빠졌다. 3월25일 포로의 신병을 인수한 뒤에야 송환 포로 신상이 본인 입으로 확인되었다. 그는 유종철 일병이었다.
그해 7월25일 주베트남 한국 대사관은 포로의 신분을 밝히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긴급 전문을 한국 정부에 보냈다. ‘맹호기갑연대 2대대 8중대 1소대 유종철 일병. 부산 영도가 고향인 유 일병은 1972년 4월19일 안케패스 작전 중 베트콩 기습으로 포로가 되었다.’
ⓒ연합뉴스 1973년 3월20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베트남전 참전군 환영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사열을 하고 있다.
사망 처리됐던 호적에 ‘부활’이라 적혀
군부는 곤혹스러운 처지가 되었다. 이미 유 일병을 전사자로 처리해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시킨 뒤였기 때문이다. 포로로 붙잡힌 유 일병을 전사자로 처리한 군은 1972년 5월11일 그에게 인헌무공훈장까지 추서했다. 유족에게는 전사 통지서와 함께 유품이라며 관물 24점을 전달했고, 장례비 100만원을 주어 장례도 치르게 했다. 그로부터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1973년 3월27일 밤 9시, 국방부가 ‘죽인’ 유종철 일병은 군인 신분을 감추기 위해 민간인 복장으로 김포공항에 입국해 가족 품에 안겼다. 사망 처리되었던 그의 호적에는 ‘부활’이라는 단어가 적혔다. 유종철 일병이 살아서 돌아온 뒤 국방부는 더 이상 한국군 포로는 없다고 주장했다. 주월 한국군사령부는 한술 더 떴다. 국군 실종자를 ‘찾을 필요가 없는 쓰레기’에 비유한 것이다. 1973년 3월27일 열린 국무회의 기록을 보면, 박정희 정권의 국군 포로에 대한 인식과 보호 의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주월 한국군 실종자는 전투 중 발생한 행불자가 아니고 모두 자의에 의한 탈영자로서, 일부는 북한에서 방송한 사실이 있고, 나머지도 범법 도배자들이므로 이들을 포로로 간주하지 않고 있으며 송환 요청을 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미국 국방부의 포로 실종자 담당 부서에서 조사해 작성한 한국군 실종자 및 포로 관련 문서는 내용이 다르다. 베트남에서 사라진 한국인 18명 중 16명은 ‘전쟁포로’이거나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한 자’로 기록돼 있다. 박 정권이 주장하듯이 부대 무단이탈이나 탈영 등 군형법상 범죄를 저지른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원인 모를 실종자 2명이 포함돼 있을 뿐이다. 결국 베트남전 한국군 포로와 민간인 실종자들은 박정희 정권과 군 수뇌부의 비인도적 처사로 국제미아가 된 후 구출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밀림에서 죽어가거나 북한으로 팔려갔던 것이다.
종전 후 이들의 신상 처리 문제는 타이에 있는 미군 실종자수색센터(JCRC)로 넘어갔다. JCRC는 베트남 전쟁에서 실종된 미군의 행방을 탐색할 목적으로 미군이 운영하는 기구였다. 1973년 1월23일 사이공에서 창설된 이 기구는 베트남 전쟁 종전 후 타이 내 나콘파놈 공군기지로 옮겨 활동했다. 1973년 10월12일 주타이 한국 대사가 외무장관에게 짤막한 전문을 하나 보냈다. “베트남 전쟁에서 실종된 제3국인 행방 탐색에 대해 미국 대표가 성명서를 발표함. 내용 요약: 미국 측의 거듭된 요망 사항에 공산 측 묵묵부답. 미국 측은 공산 측의 무성의와 비협조를 비난함.” 이것으로 박 정권의 베트남전 국군 포로 대응은 끝이었다. 이후 아무런 정부 대책도 없이 그들은 역사 속으로 잊혔다.
이처럼 한국 정부는 자국민 실종자 실태를 파악하고도 국민에게 쉬쉬했을 뿐 아니라 이후 베트남과 수교하는 과정에서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종전 이후 45년이 흐른 오늘도 베트남 전쟁 실종자를 찾아 수색을 벌이고 유해 발굴 작업을 지속하는 미국 정부와 무척 대조된다.
한국 정부가 버린 베트남전 포로 문제는 잊히는 듯하다가 미군 포로 송환 과정에서 곁가지로 불쑥불쑥 드러난다. 한양건설 직원이던 김흥삼씨와 김성모씨는 1968년 베트남에 파견돼 한국군 작전을 지원하는 도로 건설공사 중 월맹에 납치되었다. 두 사람은 하노이 포로수용소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한 끝에 사망했다. 이들의 유해는 전쟁이 끝난 뒤 베트남 정부가 ‘한국인 사망자’로 따로 분류해 보존해두기까지 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별다른 송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방치되다가 1981년 미군이 베트남전 유해 송환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신원이 드러나 그제야 고국 땅을 밟았다. 1967년 베트남에서 군사작전 도중 헬기와 함께 사라진 박우식 대위는 35년 만인 2002년 8월 미군 유해발굴단이 베트남에서 그의 유해를 찾아내 한국 내 유족에게 인계함으로써 실종 35년 만에 국립대전현충원에 잠들 수 있었다.
1967년 10월 베트남에 태권도 교관으로 파견되어 월남군 7사단에서 근무하던 박정환 중위는 1968년 1월 베트콩에 납치된 후 캄보디아 형무소에 502일간 갇혀 있다가 1969년 6월 가까스로 한국에 돌아온 베트남전 국군 포로의 산증인이다. 베트콩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북한으로 압송되던 도중 천신만고 끝에 탈출에 성공한 박씨는 북한으로 끌려간 포로와 실종자를 방치한 한국 정부를 이렇게 비판했다.
“내가 포로가 된 뒤 탈출을 시도하면서, 살아 돌아가면 환영을 받으려나 바보가 되려나 고민이 많았다. 캄보디아에서 감옥 생활 중 재판받고 실형을 다 산 뒤 고국에 돌아가면 어떤 대접을 해줄지 자신이 없었다. 미군은 포로가 되어도 조국이 배신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한국군 포로는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을 것을 걱정했다. 그 와중에 자신감을 잃고 속수무책으로 북한에 끌려간 포로도 상당수였을 것이다.”
ⓒ연합뉴스 1987년 8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미군 실종자 문제 처리를 위한 회담이 열렸다.
귀환 뒤에도 수십 년 동안 침묵 강요
박씨는 귀환 뒤에도 보안사령부와 중앙정보부 등 정보 당국의 강요에 의해 포로가 된 사실, 북송 중에 태권도 교관의 기지를 살려 필사적으로 탈출한 경과 등에 대해 수십 년 동안 침묵을 지켜야 했다. 그는 2009년 통일부 납북피해자지원단에 출석해 안학수 하사를 비롯해 납북 포로가 된 참전군인들의 실태를 증언했다. 또 자신이 포로가 된 후 강압에 의한 북송 도중 탈출한 사실에 관해서도 생생히 진술했다.
베트남 전쟁 포로 관련 연구 권위자인 경북대 허만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32만명이 참전한 베트남전에서 최소 20명 이상 국군 포로가 존재했으리라는 것은 상식이다. 정부는 이역만리 전투지로 간 군인을 구출하는 역할을 포기했다. 파병 당시 야당의 거센 반대 속에 파병했으므로 비난 소지를 없애려고 포로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종전 무렵 미국과 북베트남의 파리 평화회의가 열렸을 때라도 우리 측 명단을 보내 포로 송환을 요구했어야 했다. 이제라도 공익을 위해 희생된 이들, 안학수 하사 가족을 비롯해 베트남전에서 실종된 분들에게 국가가 가한 잘못을 인정하고 적절한 보상과 명예회복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책무라고 본다.”
시사인 정희상 기자
‘하룻밤 80만원’ 호텔 스위트룸 동났다
억눌렸던 여행욕구 분출 "하룻밤 묵더라도 비싼 곳에서"
1년새 특급호텔 요금 35% 급등…숙박 불황과 딴 세상
제주 중문의 프리미엄급 리조트인 롯데 아트빌라스. 73개동 독채로 이뤄진 이곳은 요즘 주말에 방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성수기 때도 텅텅 비었던 이 리조트가 대박이 난 건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고 나서부터다. 하룻밤 숙박 가격은 웬만한 특급호텔의 2배 수준인 평균 70만~80만원대다. 비싼 건 150만원을 넘는다. 심지어 개인용 자쿠지와 풀이 완비된 96평(13개동)과 115평(5개동)은 작년 중반부터 거의 만실이다. 아트빌라스 측은 "회원들보다 일반 투숙객들의 발걸음이 더 잦아졌다"며 "독채형 구조라 편히 즐길 수 있어 가격대가 높아도 여행족이 몰린다"고 설명했다.
청정 지역으로 급부상한 제주도가 코로나19가 발생한 지난 1년간 전국에서 특급호텔 방값이 가장 많이 오른 지역으로 부상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만들어낸 `호텔 방값 뉴노멀`이다.
2일 매일경제신문이 숙박 스타트업 온다에 의뢰해 2019년과 2020년 2년간 전국 프리미엄급 호텔(4성 및 5성)과 풀빌라의 `평균 방값(ADR·Average Daily Rate)` 추이를 조사한 결과, 제주 지역 연간 상승률이 35.4%로 1위를 차지했다. 평균 방값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30만원을 넘어섰다. 온다는 전국 3만여 개 호텔·펜션 중 70%를 넘는 2만1000여 개의 판매 중개 및 가격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는 숙박 스타트업이다. 이번 조사는 3성급 이하 비즈니스급 호텔을 제외하고, 코로나19 시대 내국인 이용률이 급증한 전국 풀빌라·고급펜션과 4·5성급 특급호텔만을 대상으로 한 결과다.
반대로 3성급 이하 중저가 호텔들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며 극과 극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온다가 취합한 결과 중저가 펜션과 3성급 이하 비즈니스급 호텔까지 포함한 전국 평균 방값은 10만원대 초반이지만, 제주는 7만원대로 전국 최저 수준이다.
오현석 온다 대표는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고급화`와 `개별화`가 숙박 뉴노멀로 떠올랐다. 제주권뿐만 아니라 지방 주요 관광지에서 고급 숙소를 찾는 여행객이 부쩍 늘어났다"며 "반대로 중저가 펜션과 호텔들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는 극과 극 양상이 지난 1년간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막히자 제주로 호화여행…중저가 호텔·도심상가는 썰렁
코로나 1년 제주관광 `양극화`
신혼부부·2030 `밀물`
허니문여행지로 제2 전성기
`비싸도 프라이빗` 풀빌라 불티
호텔 한달살이도 꾸준히 인기
유커 등 외국인 `썰물`
관광객 들썩이던 쇼핑가 한산
시내면세점 철수, 상가 임대중
카지노 수익도 60%이상 줄어
코로나19 확산으로 해외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되자 제주도가 국내 최고 럭셔리 여행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 제주 관광을 마친 방문객들이 돌아오는 편 발권을 위해 제주공항에서 줄을 서고 있다. [박진주 기자]
제주시 노형동에 우뚝 솟은 2개의 쌍둥이 타워. 지난해 말 문을 열면서 여행족을 무섭게 빨아들이는 드림타워다. 제주권 호텔로는 고가인 30만원 후반대 방 1만개를 최근 홈쇼핑에 공개했는데 1시간 만에 완판됐다.
한미선 롯데관광개발 홍보팀 과장은 "주방도 개방 형태로 완전히 공개돼 안심하고 드실 수 있다"며 "비싸도 사적이면서 개인 공간에서 비대면으로 즐길 수 있다면 사람이 몰린다. 코로나19 시대가 만든 새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제주도가 고급 여행의 핫스폿으로 떠올랐다. 가격 불문이며, 안전이 보장되고 비대면인 곳으로 일단 가고 보는 `코로나19 여행 뉴노멀`의 최대 수혜지가 된 셈이다. 제주 중문의 호텔 터줏대감인 호텔신라에는 코로나19 시대 새로운 예약 기준이 생겨났다. 20만원대 초반의 일반 방보다 먼저 예약이 마감되는 것은 놀랍게도 하룻밤에 100만원대인 코너 스위트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이라면 성수기에나 겨우 찼을 법한 이 방, 요즘은 3개월 전에 예약해야 그나마 방을 구할 수 있을 정도다.
서일호 호텔신라 홍보총괄 부장은 "딱 10개밖에 없는 희소가치도 있지만 비싸도 사적인 분위기에서 즐기겠다는 호캉스족 수요가 반영된 것 같다"며 "신혼여행 패키지로 묶어도 이 방이 가장 먼저 나간다"고 귀띔했다.
호텔을 찾는 호캉스족의 구성도 변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제로 상태였던 신혼여행족 비중은 신라, 롯데 등 중문 지역 호텔의 경우 20~30%대에 육박하고 있다. 특히 자녀 동반 가족 고객이 전체의 70~80%를 차지했던 것과는 달리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신혼여행족을 포함해 2030 밀레니얼 세대의 방문 비중이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호텔 한 달 살이`도 새로운 흐름이다.
제주 신라스테이가 작년 말부터 선보인 신라스테이 한 달 살기 패키지는 지난 2월 말까지 300개가 넘는 누적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김대관 문화관광연구원장은 "코로나19 여행의 새 기준 핵심이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비롯된 사생활 보호와 안전"이라며 "알뜰·초저가 위주의 숙박 추세도 코로나19 시대에는 독채형 빌라나 풀빌라, 특급호텔의 스위트룸 같은 고급형으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성은 야놀자 숙박마케팅 팀장은 "코로나19로 개인화된 공간에서 즐기는 여행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면서 "440개 독채 풀빌라 전문관을 열었는데 단 1주일 만에 제주도 독채 빌라들이 인기 순위 상단을 대거 점령했다"고 말했다. 숙박 스타트업 온다에 따르면 실제로 코로나19 이전 20만원대 초반에 불과했던 제주 내 고급형 풀빌라 1박당 가격은 코로나19 시대를 기점으로 30만원대 초반까지 35.4% 치솟으며 작년 전국 방값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신혼여행 커플이 즐겨 찾는 유명한 빌라는 성수기 1박 가격이 70만원을 훌쩍 넘고 최고급형 빌라는 1박 가격이 200만원대에 육박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5월 초 어린이날과 맞물린 연휴나 주말에는 방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부석현 제주관광협회 기획부장은 "하늘길이 제한되면서 제주가 제2의 신혼여행지로 전성기를 맞고 있다"며 "가격대를 불문하고 안전한 비대면 숙소를 선호하는 경향이 코로나19 시대의 숙박 기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이 주로 찾던 곳은 된서리를 맞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해 2월 4일 제주지역 무사증 입국 제도를 중단한 여파가 컸다. 외국인 발길이 끊기면서 면세점, 카지노 등 관련 업계가 고사 위기에 놓였다.
제주관광협회가 집계한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은 21만명으로 2019년 173만명보다 87% 줄었다. 2011년 중국 바오젠그룹 직원 1만1000명이 방문해 `제주의 명동`으로 불리는 제주시 연동 누웨마루거리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지난달 23일 밤 9시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웠다.
술집과 노래방, 편의점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 상가가 문을 닫았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오전 10시에 시작해 밤늦게까지 영업을 해오던 곳이다. 근처 부동산 관계자는 "코로나19 이전에는 이곳을 찾는 손님 중 절반 이상이 중국인이었다"면서 "몇몇 상가들은 임대를 붙여놓고 세입자를 찾고 있지만 문의가 거의 없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제주관광공사가 운영하던 시내면세점은 철수했다. 2017년 사드 사태 이후 영업이 위축된 상황에서 코로나19까지 겹치자 지난해 4월 제주신화월드 내 JTO면세점의 문을 닫았다. 제주의 한 시내면세점 관계자는 "코로나19 이전에는 하루 평균 500~700명이 이곳을 찾았다면 최근에는 100명도 안 된다"면서 "이에 따라 일부 브랜드 면세점 영업을 중단하고 직원을 다른 지역 매장에 파견을 보낼 정도"라고 말했다.
도내 8개 카지노가 올린 수익도 60% 넘게 줄었다.
제주도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지면서 지역 경기가 크게 위축됐다"며 "코로나19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뾰족한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 매일경제[신익수 여행전문기자 / 제주 = 박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