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걍향 장도리 323~27
코로나19 바이러스, 흑사병 ‘마녀사냥’ 과 본질은 같다
공포 바이러스, 팬데믹 되다
바이러스보다 빠르게 퍼지는 공포
코로나19에 이성과 세상이 멈췄다
3월18일 서울 송파구의 한 교회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코로나19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나의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코로나19 공포라는 유령이. 감염병 공포는 유령처럼이지 않는다. 감염병 공포는 바이러스보다 더 빠르게 퍼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람 몸에 침투해 생명의 장기인 폐를 마비시킨다면, 공포 바이러스는 인간의 컨트롤타워인 뇌에 침입해 이성을 마비시킨다. 폐가 마비되면 숨을 빼앗겨 생명이 스러진다. 이성이 마비되면 일상생활이 비정상으로 된다. 그 끝은 혼돈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이제 세계 대유행 감염병을 뜻하는 팬데믹(Pandemic)이란 새로운 이름을 단 코로나19는 세계 곳곳을 질주하고 있다. 감염병 공포는 한국뿐만 아니라 각국에서 경제·보건의료·정치·종교·스포츠·문화·교육 등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것들을 바꿔놓고 있다. 그 모든 것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밑바닥에 감염병에 대한 비정상적인 공포가 깔려 있다.
공포는 감염병의 영원한 동반자
감염병은 늘 공포와 함께 찾아왔다. 어제까지의 세상에서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그렇다. 그러나 치명적인 감염병의 대유행과 관련한 공포가 지구온난화, 환경파괴 등과 맞물리면서 공포가 우리 뇌 속에 단단히 각인됐다. 인간은 오랫동안 호모사피엔스란 종 자체를 멸절시킬 수 있다는 위험의 공포에 노출됐다. 여기에는 언론·정치인·전문가·환경운동가 등이 한몫했다. 핵전쟁, 살충제(<침묵의 봄>)와 환경호르몬(<빼앗긴 미래>) 같은 화학물질, 인구 폭발(<인구폭탄>), 자원 감소(<성장의 한계>), 식량 위기, 에이즈, 기후 위기, 유전자변형식품, 생명공학, 질병X, 소행성·혜성 충돌 등이 위험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수십 년간 대재앙을 반복해 들려주는 공포 문화는 위험끼리 서로 견인하며 더욱 증폭됐다. 이런 위험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와 소설, 미래예측 보고서, 영화 등은 사람들의 공포를 더욱 극대화했다. 아마겟돈과 세상의 종말은 때론 사이비 종교로 이어져 사회를 혼란 속에 빠뜨렸다. 상상이나 근거 없는 예측이 곧 현실이 될 것처럼 여긴 사람들 사이에서 공포 바이러스가 퍼져나가 뇌 속에 나사못처럼 박혔다. 누군가가 여기에 자극을 주기만 하면 언제든지 공포 바이러스는 활성화된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이 이 공포 바이러스를 다시 일깨웠다.
인간이 위험을 대하는 태도는 위험마다 다르다. 물론 사람마다, 나라마다 다르기도 하다. 폴 슬로빅 등 위험 사회학·심리학자들은 사람이 특히 더 위험하게 느끼는 위험의 특성이 있다고 말한다. 신종 감염병 같은 새로운 위험, 비자발적 위험, 전세계에 치명적 결과를 가져다주는 위험, 과학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위험, 주의해도 피하기 어려운 위험, 균등하지 않게 영향을 끼치는 위험 등에 상대적으로 더 크게 위험을 느낀다는 것이다. 즉, 공포를 가지게 된다. 코로나19를 비롯한 많은 치명적 감염병이 이에 해당한다. 방역에서는 일반인의 이런 위험 인식을 바탕으로 위험(위기) 소통과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새로운 감염병이 발생하면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더 잘 대처할 수 있다. 최근 발생한 에볼라바이러스병과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신종플루 등에 의한 인명 손실은 이전 유행 감염병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다. 결핵은 봉건체제를 무너뜨린 중세의 흑사병보다 더 무서운 감염병이다. 지금도 전세계 인구 4분의 1이 감염된 결핵은 19세기 초엔 전체 인구 7분의 1을 숨지게 했을 정도로 흔한 질병이자 정말 오래된, 치명적인 감염병이었다. 지금까지 10억 명 넘는 희생자를 냈다고 한다. 1918년 전세계를 휩쓴 공포의 스페인독감(인플루엔자A)은 5천만 명 정도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2003년 사스의 세계 유행은 환자 8096명과 사망자 774명을 낳았다. 2012년부터 산발적으로 중동과 한국 등에서 유행하는 메르스 사망자 수도 2012년 첫 환자 발생 이후 환자 2500여 명과 사망자 862명을 기록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홍콩독감에 이어 두 번째로 팬데믹을 선언한 2009년 신종플루 대유행 때는 7억~14억 명이 감염돼 15만~57만 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케냐 호마베이 지방병원의 국경없는의사회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클리닉.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과학 발전? 비이성적 감염병 공포 ‘여전’
공포는 환자나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낳는다. 감염병 역사에서 고전적 이야기다. 나병(지금의 한센병), 페스트, 결핵, 매독 등 거의 모든 감염병에서 벌어진 보편적 현상이다. 감염병이 병원미생물 때문에 생긴 것인 줄 모르던 시대나 알던 시대를 구분하지 않고 이런 일이 벌어졌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선언된, 첨단과학기술 시대의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포가 몰고 오는 혐오와 차별, 그리고 낙인 문화는 20세기 후반 에이즈 유행 때 극명하게 잘 드러났다. 1980년대 초반 원인 모를 괴질이 미국을 덮쳤다. 인간 면역체계가 무너져 각종 감염병에 손쓸 수 없고, 희귀암이 게이 청년층에 퍼졌다. 3년 뒤 인간 면역체계를 공략하는 생면부지의 바이러스가 범인임을 밝혀냈다. 그리고 바이러스에 오염된 혈액의 수혈이나 혈액제제, 안전하지 못한 성관계로 전염되는 것을 알았다.
이런 과학적 성과에도 사람의 행동은 비이성적이었다. 감염자·환자 가까이 가기를 꺼리고 동성애자를 차별했다. 환자를 부도덕한 인간으로 매도하는 일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다. 일각에선 ‘도덕적 타락(동성애)에 대한 신의 벌’이란 낙인을 찍었다. 한국에선 아직도 이런 낙인 문화가 사라지지 않은 채 일부 기독교단체가 ‘동성애=에이즈’란 혐오를 확대재생산하는 주장과 시위를 하고 있다. ‘에이즈 감염자나 환자는 길거리를 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 ‘집단수용시설에 격리해야 한다’ ‘에이즈 감염자의 입국을 막아야 한다’ 등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황당무계한 주장이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우리 종교인, 정치인, 언론인 사이에서 막힘없이 퍼져나갔다
에볼라바이러스병은 어느 감염병보다 높은 치사율 때문에 전세계, 특히 진원지인 아프리카에서 공포의 감염병으로 통한다. 라이베리아 출신 간호사 살로메 카르와는 그 공포의 희생자였다. 그는 2014년 에볼라바이러스병 유행 때 목숨 걸고 환자들을 돌봤다. 그 와중에 감염됐지만 살아남았다. ‘에볼라 전사’란 호칭을 얻었다. 그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인류가 희생과 박애의 상징으로 여겼던 그는 산후 합병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의료진은 에볼라바이러스병이 재발한 게 아니냐고 의심해 진료를 거부했다. 출산 닷새 만에 카르와는 숨지고 말았다. 감염병 공포가 낳은 비극이었다.
1918년 스페인독감이 창궐하면서 미국 캔자스주 포트라일리에 꾸려진 미군 임시병원에서 환자들이 치료받고 있다. 미국국립보건박물관
‘공포 팔기’와 과도한 상상력이 문제
공포는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지고 유지된다. 언론의 주특기는 ‘공포 팔기’다.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겁주기는 시청자와 독자의 눈과 귀를 단박에 사로잡기 때문이다. 언론이 보인 공포 팔기는 나중에 주요 성찰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반성은 잠시뿐이다. 다시 재난이 발생하면 주특기는 유감없이 발휘된다. 영국 생물학자 로빈 베이커는 <달걀껍질 속의 과학>에서 “인간에게 나타나는 불합리한 두려움의 원인은 매스컴의 과대 선전과 지나친 상상력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맞아 시민들이 아직 자신의 지역에서 새로운 환자가 생긴 것을 모르는데도 우리 언론은 첫 발생 소식을 전하면서 그 지역 주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는 ‘예언적 공포 팔기’ 보도를 한다. 다들 공포에 떨고 있다는 소식에 공포를 느끼지 않는 사람조차 함께 공포 떨기 행동에 들어간다.
잘못된 믿음이 있는 한 공포는 수그러들지 않는다. 중세의 페스트, 즉 흑사병은 그냥 역병이 아니다. 대역병(Great Plague)이다. 유럽 인구 3분의 1을 포함해 유라시아 대륙에서 최대 2억 명가량을 죽인 것으로 추산되니 그렇게 불릴 만하다. 당시는 무엇이 이런 공포의 ‘괴질’을 일으키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신의 벌이나 공기 중 사악한 기운, 곧 장기(氣) 때문이라고 여겼다. 때론 자기 몸을 채찍질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편타고행(鞭打苦行)을, 때론 악마와 손잡고 흑사병을 퍼뜨렸다며 수많은 유대인을 화형에 처하는 ‘마녀사냥’을 벌이기도 했다.
감염병 유행을 ‘신의 벌’로 보는 인식은 코로나19가 대유행하는 21세기에도 남아 있다. 신천지 이만희 교주가 ‘마귀의 짓’이라거나 일부 기독교 목사와 교인이 신천지 교인들의 집단감염을 두고 ‘하나님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해 벌어진 벌’로 보는 것이다.
지금은 공포보다 과학과 이성에 기대야 할 때다. 이탈리아는 중국에 이어 코로나19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국가다. 제노바는 14세기 흑사병이 동양에서 서양으로 전해진 창구 구실을 했다. 제노바는 지금 공포의 도가니 속에 있다. 파스타면 등 먹거리와 생필품을 사러 나온 한 노인은 가게에 이미 물품이 동난 것을 보고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이런 일은 없었다”며 한숨을 쉬고 돌아갔다. 어느 학교 교장은 이탈리아에서 벌어지는 비이성적인 일들을 일갈하고 이성을 촉구하며 학생들에게 편지를 썼다. 이 편지는 감염병 공포가 가져다주는 위험과 과학과 이성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다. 이는 결코 이탈리아만의 일은 아니다.
“외국인을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정부 당국 간에 격렬히 충돌하고, 최초 감염자를 히스테릭할 정도로 찾아내고, 전문가를 경시하며, 감염됐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을 사냥하고,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엉터리 치료법을 시도하고, 생필품을 사재기하고, 의료 위기가 오는 등 거의 모든 것이 19세기 이탈리아 문호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페스트를 소재로 쓴) 소설 <약혼자들>(1827)에 그려져 있습니다. 사실 이는 오늘치 신문에서 튀어나온 내용이라 해도 무방해 보입니다. 질병이 전세계에 급속히 확산하는 건 우리 시대가 남긴 결과입니다. 수백 년 전에는 그 속도가 조금 느렸을지 모릅니다. 예나 지금이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벽은 없습니다. 이런 사태가 초래하는 큰 위험 중 하나는 인간관계에서 ‘독을 품는 것’, 그리고 시민의 생활을 야만으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감염병 공포가 만들어내는 광기와 혼돈의 사회에서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일침이다. 인간이 공포의 포로가 되는 한 감염병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공포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강력한 마취제다. 이성이 마비되면 마녀사냥을 하고 희생양을 찾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은 위험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질 르 뮈지의 그림 . 벨기에 왕립미술관
‘공포 백신’은 숙의민주주의
사람들은 대개 치명률이 높은 감염병에 공포를 더 느낀다. 또 쉽게 전파되면 치명률이 높지 않더라도 불안에 떤다. 만약 치명률도 높고 전파도 잘된다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여기에다 어떻게 전파되는지도 잘 모른다면 공포는 증폭된다. 코로나19는 인간이 공포를 느끼게 하는 두 요인 가운데 ‘강한 전파력’이라는 확실한 무기를 지녔다.
하지만 우리는 코로나19의 정체를 상당 부분 알아가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정체가 더 확실하게 드러날 것이다. 따라서 임상 경험과 과학기술로 알아낸 지식을 시민과 잘 소통하면 확산을 막고 그 속도도 늦출 수 있다. 또 감염될 경우 사망에 이를 위험이 큰 취약계층의 감염 관리를 잘하면 두려움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감염병은 그 자체로 위험 요소지만 때론 감염병 공포가 더 심각한 피해를 준다. 공포는 혼돈을 낳기 때문이다. 미국 법학자 캐스 선스타인은 <공포의 법칙들>에서 “위험이 실질적으로 심각한데도 사람들이 이를 느끼지 못하거나 반대로 사소한 위험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 숙의민주주의만큼 좋은 도구는 없다”고 밝혔다. 외국의 저명한 학자들이 최근 잇따라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 언론의 자유 보장과 민주적인 책임 시스템을 갖춘 한국의 사회·정치적 체제를 모범적 사례로 꼽는 것과 맥이 닿아 있다. 코로나19 감염병과 그 공포에 면역력을 길러주는 건, 정확한 정보에 기초한 민주적인 소통과 긍정과 희망이라는 백신이다.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보건학 박사 jjahnpark@hanmail.net / 한겨레21
보수유튜버의 문재인 지지자 감별법, 어이가 없다
[민언련 선거보도 모니터] 3월 3주차 이주의 나쁜 유튜브 채널(3/12~18)
신의한수는 정치․시사 이슈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 중 구독자 수 1위입니다. 3월 20일 현재 구독자 수 121만이며, 유튜브 인기 동영상에는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게시물이 올라옵니다. 그런데 신의한수에서는 최근 미래통합당의 공천을 비난하면서 세월호 혐오를 드러냈습니다.
3월 12일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은 강남병에 김미균 시지온 대표를 전략 공천했습니다. 그러자 미래통합당 내부에서는 김미균 씨의 몇몇 SNS 게시물을 근거로 김미균 씨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습니다. 결국 미래통합당 지지층의 강력한 반발로 하루 만에 김미균 씨 전략공천은 철회됐고, 김형오 위원장도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신의한수는 <다반뉴스/문재인 핵심 지지층 2030이 떠났다!!>(3/12)에서 김미균 씨를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신의한수 출연자 홍철기 기자는 김미균 씨가 2019년 청와대 추석선물을 받고 페이스북에 감사의 뜻을 표한 글을 보여주면서 "제가 찾았어요. 게임 끝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출연자 박완석 기자도 "정체성이 드러나네"라고 응수했습니다. 청와대 추석 선물에 감사를 표한 것을 두고 '정체성'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다음 발언은 더욱 문제였습니다. 출연자 홍철기 씨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자고 한 김미균 씨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두고 마치 대단한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비난한 겁니다.
신혜식 신의한수 대표 : 리멤버 2014년 4월 16일 기억하자.
홍철기 기자 : 진짜 피가 거꾸로 쏟는다 이거 보면.
신혜식 신의한수 대표 : 아니 이렇게 이런 거 노란 거 보면 광화문에 난리가 나고 색깔마저도 그런데, 리본을 갖다가 이렇게 달아놓으면.
박완석 기자 : 아, 뒷골 당긴다.
홍철기 기자 : 아, 진짜 뒷골 당기네.
신혜식 신의한수 대표 : 전혀 우리하고 정체성이 맞지 않는데? (중략) 지금 세월호 때문에 오히려 안산 단원갑 주민들은 말이죠. 오히려 그때 새누리당 김명연 의원을 뽑았단 말이야. 하도 난리를 치니까. 거기 민심이 그래요. 얼마나 많이 울궈먹었습니까.('우려먹었습니까'의 비표준어_편집자주)
▲ 세월호 참사에 대한 혐오 쏟아낸 <신의한수>(3/12) ⓒ 민주언론시민연합
미래통합당 정체성은 세월호 참사 추모 금지?
신혜식 신의한수 대표를 비롯한 신의한수 출연자들은 김미균 씨가 페이스북에 2016년 4월 16일에 올려놓은 세월호 참사 추모 게시물을 보자마자 혐오표현을 쏟아냈습니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 '뒷골 당긴다', '얼마나 우려먹었느냐'와 같은 말들이었습니다. '(미래통합당과) 정체성이 맞지 않는다'는 대목에서는 미래통합당의 정체성이 '국가적 참사 피해자의 아픔을 짓밟고 혐오하는 것인가'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요. 신의한수의 이러한 반응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보수 유튜버들의 인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2014년에 발생했지만, 2020년 현재까지도 수사와 처벌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유가족들도 여전히 고통 받고 있습니다. 2015년, 2019년에 이어 올해 3월에도 유가족 중 한 분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아직 규명되지 않은 진실들, 특히 신의한수처럼 세월호 참사를 모욕하는 시선들이 국민들과 유가족들을 힘들게 합니다.
부실했던 구조 과정의 문제는 아직도 규명되지 않았으며, 구조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고 진상규명마저 방해했던 박근혜 정부에서 책임자 처벌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자는 애도 표시는 이념의 문제도, 정치적 문제도 아닙니다. 그러나 신의한수는 SNS상의 추모마저 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중국 봉쇄론' 위해 각종 음모론 만들어내는 가로세로연구소
가로세로연구소(이하 가세연)는 계속해서 코로나19와 관련된 각종 음모론을 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대확산의 원인을 '국내 중국인 간병인'으로 지목하면서 여전히 '중국 혐오'를 조장하고, '중국 입국금지'를 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3월 13일 방송에서는 근거도 없이 법무부 공무원의 극단적인 선택과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을 연관 지으면서 또 '중국인 간병인'을 거론했습니다. <간결한 출근길/조선족 간병인 게이트!!>(3/13)에서 간결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간결 : 코로나19를 담당한 법무부 공무원이 한강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중략) 이상하죠. 이 사람이요, 자살한 시점이요, 한 번 보세요. 25일이에요. 25일 새벽입니다. 발견된 게 9시 8분이고, 이 사람이 자살을 했던 시점은 새벽이요, 새벽 5시쯤입니다. 금천구에 이 확진자요. 불법체류로 의심되는 이 확진자가, 24일에, 검체 채취하고 (25일에) 확진을, 확진을 받았어요. 관련이 있을까요? 저는 몰라요, 저는 모릅니다. 근데 이런 사실들은 같이 엮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여러분들한테 묶어서 보여드리는 거예요. 자, 이거 관련해 가지고 질병관리본부가 어떤 일을 했는가. 지금, 지금 이 사람은요, 지금, 직업이 간병인인지 아닌지는 몰라요, 이건.
본인이 자꾸 '저는 몰라요'라고 반복하니 대체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하는 것인지 의아하지만, 요약해보면 '코로나19 담당 법무부 공무원이 한강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불법체류로 의심되는 코로나19 확진자 발생과 엮일 수 있다', '그 확진자가 간병인인지는 모르겠다'는 겁니다. 제시한 근거는 공무원의 사망 일시와 코로나19 확진자의 확진 시기가 비슷하다는 것 하나뿐입니다. 나머지는 모른다고 합니다.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고 음모론의 뉘앙스만 남기면서 '모릅니다'라고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은 허위조작정보를 퍼뜨리는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가로세로연구소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지만 사실관계를 따져보겠습니다. 금천구청에서 밝힌 해당 확진자의 동선을 살펴보면, 해당 확진자는 2월 16일 중국 칭다오에 방문했다가 하루 만에 금천구 자택으로 돌아온 뒤 증상이 나타난 후에는 총 3차례 자택 인근 병원에 방문했고, 2월 24일에 금천구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검체를 채취한 후 2월 25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가로세로연구소는 최근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의 원인을 중국인 간병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여기서도 "(금천구 확진자) 직업이 간병인인지 아닌지는 몰라요"라고 여지를 남겼는데, 금천구가 공개한 동선만으로는 직업을 알 수도 없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은 말하지 않거나 사실이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간결 씨는 이 발언에 앞서 청도대남병원의 코로나19 '슈퍼전파자'는 '중국동포 간병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이미 청도대남병원에서 근무했던 중국 국적의 간병인은 대남병원의 최초 감염원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물론 가세연은 당국의 공식발표나 사실관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고상한 브런치/'두 번 칼질 당한' 박근혜 대통령!!!>(3/18)에서도 가로세로연구소는 최근 요양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것을 두고 "요양병원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 중국인"이라며 중국인 간병인이 코로나19 감염의 원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출연자 이병열 고릴라상념TV 대표는 "중국으로부터의 전면 입국차단을 하지 않은 결과"라고 덧붙이기도 했죠. 가세연은 이미 과학적으로 효과 없음이 드러난 '중국 전면 입국차단'에 매달리면서 정부를 비판하고 그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확진자와 안타까운 선택을 한 공무원까지 엮으며 음모론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민주당 비례후보에게 '피해자다움' 강요한 가로세로연구소
가세연 <충격 단독/통합당 강남병 '김미균' 정체 폭로!!!>(3/13)에서는 성범죄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시대착오적인 시각을 보였습니다. 출연자 이병열 고릴라상념TV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공천 결과를 논하던 중, 더불어민주당 국민공천심사단 심사를 통과한 비례대표 후보 박은수 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병열 고릴라상념TV 대표 : 이 사람 SNS를 보면은, (중략) 뭔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죠. 아마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야, 성범죄 피해자는, 저렇게 성 표현을, 공개적인 곳에 하면 안 되는 것이냐, 자신의 육체미를, 열린 공간의 과시하면 안 되는 것이냐' 이런 지적 나올 수 있습니다. 있어요. 할 수 있어요. 제가 그거 하지 말란 얘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일반적이지 않다는 거죠. 보통 저런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 보이는 태도랑은 조금 다르다. 그걸 이겨내고서, 저렇게 당당해질 수 있다. 그럼 박수 받을 만한 일이죠. 아, 상처를 잘 이겨냈구나. 너무나 충격도 받았고 힘들었을 텐데. 그러나 일반적이지 않다라는 거죠. 그러면 저 사람이 과연, 정말 진실한 사람으로서 천거가 되었느냐. 글쎄요. (중략) 일반적이지 않다. 그러다 보니까, 제가 말씀드렸지만, 전국사연자랑, 전국처지자랑으로, 선거가 완전히 변질이 되다 보니까, 과연 이야기를 막 지어내는 사람들은 없을까. 우리가 좀 잘 봐야 된다는 거죠.
민주당 비례대표 국민공천심사 후보자 자기소개에서 대학시절 불법촬영 성범죄 피해를 겪었다고 밝힌 박은수 후보가 자신의 SNS에 올린 사진들을 보고 한 말입니다. 박 후보 사진 중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고 찍은 것이 있으니 일반적인 성범죄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고 심지어는 "전국사연자랑"에 불과하며, "이야기를 막 지어"냈을 가능성까지 있다는 것이죠. 아무 이유도 없이, 개인적인 추정만으로 성범죄 피해를 겪은 특정 정당 후보를 모욕한 것입니다.
더 안타까운 점은 이병열 씨 본인도 이러한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 이 씨는 자기 발언에 쏟아질 비판이 걱정됐는지 "성범죄 피해자는, 저렇게 성 표현을, 공개적인 곳에 하면 안 되는 것이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고 했고 자신의 취지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구색 맞추기일 뿐, 이 씨의 발언은 '성범죄 피해자라면 저런 사진을 공개적인 곳에 올릴 수 없다'는 차별적 시선에 불과합니다.
발언을 교묘하게 섞어 만들어낸 '거짓말', 전형적인 가짜뉴스 수법
신의한수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하지 않은 발언을 교묘하게 섞어서 박원순 시장이 코로나19 사태 대응에서 거짓말을 한 것처럼 몰아갔습니다. <일일뉴스/황교안, 김형오 양아들 수양딸 집으로 돌려보내라!>(3/12)에서 3월 9일부터 많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서울 구로구 콜센터를 논하면서 박원순 시장이 거짓말을 했다고 비판한 것인데요. 발언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주희 기자 : 각 다른 층에서 근무를 하는 확진자가 나와서 좀 더 확산세가 더 많지 않을까 하는 그런….
(중략)
홍철기 기자 : 아, 지금 다른 층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나요?
이주희 기자 : 네, 네, 다른 층입니다.
홍철기 기자 : 그러니까 지금 그동안 보도를 보면은 박원순도 나와서 '다른 층에서는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얘기를 했잖아요.
신혜식 신의한수 대표 : 거짓말이에요, 거짓말.
홍철기 기자 : 거짓말인 게 드러났잖아요. 당연히 여러분들, 에어로졸 감염, 그다음에 엘리베이터 같이 타면 당연히 같이 접촉을 할 수밖에 없잖습니까.
그러나 박원순 시장은 신의한수가 주장하는 것처럼 '다른 층에서 확진자가 나오지 않아 걱정할 것이 아니다'라는 발언을 한 적이 없습니다. 3월 11일 CBS 표준FM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박원순 시장은 11일 현재까지 다른 층에서 나온 확진자는 없지만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여 "다른 층에 근무하는 콜센터 직원들도 전부 검체를 채취해서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날 JTBC <뉴스룸>과 한 인터뷰에서도 박원순 시장은 "나머지 콜센터가 위치하고 있는 7, 8, 9층에는 검사가 지금 거의 대부분 진행됐는데 아직은 양성은 나오지 않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다른 층 확진자가 나온 12일에는 온라인 브리핑을 통해 "(구로 콜센터가) 제2의 신천지 사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해당 건물의) 오피스텔 주민 중에서는 확진자가 나오지 않는 등 생각보다는 많지 않다는 측면에서 (집단감염 확산에 대한) 그런 우려까지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밝혔죠.
콜센터의 업무 특성상 밀집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아 확산세가 빨랐는데, 콜센터가 입주해 있는 해당 건물의 11층 외에 다른 층에서 근무 혹은 거주 중인 사람들의 감염 여부도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3월 11일까지는 다른 층의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3월 12일 오전에는 9층과 10층에서 근무하는 직원 2명도 확진자로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10층에서 나온 확진자는 콜센터가 아닌 다른 회사의 근무자로, 3월 15일 중앙방역대책본부 브리핑에 따르면 이 확진자가 해당 건물의 첫 감염 사례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즉, 신의한수는 박원순 시장의 '(해당 건물의) 다른 층에서는 아직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으나 검사 중'이라는 3월 11일 발언과 '(구로 콜센터가) 제2의 신천지 사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상황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 그런 우려까지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3월 12일 발언을 제멋대로 뭉뚱그려서 '다른 층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아니다'라고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박 시장이 하지도 않은 말로 박 시장을 비난한 셈이 됐습니다. 이렇게 일부 사실과 중대한 허위를 뒤섞어 여론을 오염시키는 것이 허위조작정보의 전형적 특징입니다.
원전에도 자동차에도 수명이 없다고?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보수 유튜버들이 자주 언급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인데요. 특히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한국전력이나 대기업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논리를 애용합니다. 펜앤드마이크TV <3월 12일 10시 정규재의 텐텐뉴스>(3/12)에서 조선비즈 <단독/"월성 원전 수명 알려달라"…이제야 전문가 찾는 정부>(3/12)의 내용을 전하던 정규재 펜앤드마이크 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규재 펜앤드마이크 대표 : 월성 원전의 수명을 알려 달라, 이제야 전문가를 찾는 정부입니다. 그런데 원전에는 수명이 없습니다, 여러분. 원전에는 수명이 없습니다. 그럼 지금 뭐, 30년이다 뭐다 하는 것은 뭐냐, 그건 영업허가입니다. 예를 들어서 자동차가 있죠. 자동차가 수명이 있습니까, 여러분 혹시? 그러나 모든 자동차는 정기점검을 받죠. 뭐, 2년에 한 번입니까, 아니면 몇 년에 한 번인지 모르겠습니다만은. 저에게도 정기점검 받으라고 표가 와 있는 것을 잠깐 봤습니다. 근데 정기점검을 받아라, 정기점검 받는 걸 수명이라고 얘기할 수 없잖아요. 자동차 수명이 없습니다. 근데 원전에, 수명이 없습니다. 영업허가를 30년 내주는 겁니다. 그럼 그대로 또, 다시 쭉 보고 문제없으면 또 연장하는 겁니다, 또 연장하는. 근데 이 문재인 정부는 월성 원전의 수명을 좀 다시 한 번 측정해보자, 수명을, 없습니다, 그런 개념 자체가.
너무도 당연하지만 '원전에 수명이 없다'는 정규재 씨의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원자력안전정보공개센터에서 밝힌 '설계수명 만료 원전의 안전관리'에는 버젓이 '설계수명'이라는 개념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설계수명이란 발전소를 처음 설계할 때 설정한 운영기간인데요. 원전의 안전성 및 성능 기준을 만족하면서 공학적으로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 기간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원전의 대부분은 설계수명이 30~40년입니다. 신고리 3호기처럼 최근에 지어진 신규 원전은 설계수명이 60년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소의 설계수명은 설계할 때 설정한 각종 기기와 설비의 재질, 내구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업자가 설정하며, 운영허가 신청 때 제출하는 최종 안전성분석보고서에 명시하도록 합니다. 규제기관에서는 인허가심사 시 설계수명 기간 동안의 안전성을 확인하여 최종 승인합니다.
▲ 원전에는 수명이 없다고 주장한 <펜앤드마이크TV>(3/12) ⓒ 민주언론시민연합
다만 한국의 고리 1호기처럼, 당초 설계수명이 끝난 뒤 가동연장 허가를 받아 수명을 연장하는 원전들이 있습니다. 고리 1호기는 설계수명 30년 이후 10년의 연장허가를 받아 가동한 뒤 2018년 영구폐쇄 됐습니다. 이처럼 원전의 수명을 한 차례 연장할 수는 있어도 영구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수명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또한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의 위험성은 환경단체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습니다. 때문에 해외 여러 국가들의 노후 원전폐쇄 사례 역시 늘고 있습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펴낸 <세계원전시장 인사이트>(2018/7/27)에 따르면,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은 일본은 2013년 원전의 안전 기준을 엄격히 정한 신규제기준이 시행돼 수명연장을 하지 않는 원전이 많아졌죠.
원전 수명 연장의 위험성은 사실 정규재 씨의 말 속에 숨어있습니다. 자동차에 수명이 없다니요. 포털 사이트에서 '자동차', '수명' 두 단어만 검색해도 자동차 수명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는 내용의 게시물들이 넘쳐납니다. 자동차에 수명이 있음을 아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죠. 자동차의 수명이 다하면 어떻게 될까요. 잦은 고장 후에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자동차가 이러한데 하물며 원전은 어떨까요. 돌이킬 수 없는 참담한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탈원전을 비판하려다 '자동차에 수명이 없다'는 황당한 논리까지 동원해야 했던 펜앤드마이크TV의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미래한국당 공천 비판하며 장애 운운한 펜앤드마이크 정규재
펜앤드마이크TV <3월 12일 10시 정규재의 텐텐뉴스>(3/12)에서 정규재 펜앤드마이크 대표는 자신이 비판하고자 하는 인물에 대해 '장애가 있냐'고 따졌습니다. 정규재 씨는 미래통합당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의 사천 논란과 일부 인사의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공천 논의가 바람직하지 않다며 비판하던 중 박형준 씨는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비판하는 근거 중 하나로 장애를 언급했습니다.
정규재 펜앤드마이크 대표 : 그 박형준이는 뻔뻔스럽게도 비례당(미래한국당)에 떡(하니) 올려놨어요. 어디 다리가 불편합니까, 예? 무슨 박형준이가 장애가 있어요, 무슨 전문성이 있어요? 아무것도 없잖아요. (중략) 그 요즘 보수도(보수 유튜버들도) 웃기는 겁니다. 유튜브들이 이번에 많이 들어갔거든요. 비례(미래한국당)에다가. 저는 공짜로 먹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왜 공짜로 먹으려고. 어디 다리가 아프나, 장애가 있나, 무슨 뭐냐?
정규재 씨는 본인의 발언이 장애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명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형준 전 혁신통합추진위원장과 보수 유튜버들이 뻔뻔하고 쉽게 비례대표 공천을 차지하려 한다는 부정적 맥락을 말하려다가 장애인 대표성도 없고, 전문성도 없는 그를 왜 추천했냐고 지적한 것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발언이 적절한 것일까요? 보수 유튜버들과 박형준 선대위원장의 비례대표 무임승차를 지적하고자 한다면, 그들의 자격 여부 자체에 집중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규재 씨는 '(비례공천을) 왜 공짜로 먹으려고. 장애가 있나'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장애인에게 매우 무례하게 들릴 수 있는 부적절한 표현입니다. 또한 이 말 속에는 '장애인은 무임승차 한다', 또는 '장애인은 비례대표 공천을 쉽게 받는다'는 편견이 담겨있다고 봐야 합니다.
비례대표제는 후보자 개인이 아닌 정당에 투표한 결과에 따라 국회 의석을 배분하는 선거제도입니다. 거대양당과 기성정치인에게 유리한 지역구 선거의 다수대표제를 보완하고 군소정당과 정치 신인, 사회적 약자에게 의회진출의 기회를 주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실제로 이번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의 최혜영 후보 등 기존 정치권에서 소외됐던 장애인과 여성, 청년들이 비례대표 공천을 받은 바 있습니다. 따라서 누군가의 비례대표 자격을 이야기할 때 '장애도 없으면서 무슨 자격이냐'고 따지는 것은 비례대표제 본래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 민언련 유튜브 모니터 보고서는 출연자 호칭을 처음에만 직책으로, 이후에는 ○○○ 씨로 통일했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20년 3월 12~18일 정치‧시사 주제의 유튜브 채널 중 구독자 수 순위 상위 10개 채널의 게시물 및 정치‧시사 주제의 유튜브 인기 동영상
민주언론시민연합(ccdm1984)/ 오마이뉴스
보수 정치인들 '무릎 꿇리는', 국내 최대 극우단체의 실체
[한국의 보수단체들 4] 자유공화당의 굴레 '천만인무죄석방본부'
▲ 서울역 태극기 집회 모습. 배경 현수막 오른쪽 상단에 주최는 천만인무죄석방본부, 주관은 우리공화당(현 자유공화당)이라고 표기했다. ⓒ 김종성
최근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잠시 쉬고 있지만, 토요일마다 열리는 서울역 태극기집회에서는 천만인무죄석방본부(이하 천만인본부)를 만날 수 있었다. 자유공화당(대한애국당·우리공화당) 당명이 자주 바뀐 것만큼이나, 천만인본부 명칭도 여러 번 바뀌었다. '박근혜 대통령 무죄석방 1천만 국민운동본부'로 불리기도 했고, '박근혜 대통령 무죄석방 천만인 서명운동본부'로 불리기도 했다.
지난 3년간 천만인본부와 자유공화당 명의로 국내 최대 규모의 친박집회가 서울역에서 열렸지만, 이들의 관계에 대한 언론보도는 그리 명확하지 않다. 일례로, 지난 2월 2일 <국민일보>는 "우리공화당과 천만인무죄석방본부 등 우파 성향 단체들도 서울구치소 앞과 서울역, 광화문광장 등지를 오가며 정부를 규탄하고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는 태극기 집회를 열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는 자유공화당과 천만인본부가 상호 대등하게 병렬돼 있다.
작년 7월 16일 <연합뉴스>는 '우리공화당, 광화문광장 천막 자진철거... 8개 동 다시 칠 것'이란 기사를 통해 "이 장소는 우리공화당 산하 조직인 천만인무죄석방본부가 이달 30일까지 집회신고를 낸 곳"이라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는 둘이 수직관계로 표기됐다.
이들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모호하게 처리한 기사도 있다. 작년 7월 5일 <노컷뉴스>는 "이번에 천막이 설치된 장소는 우리공화당 관련 조직인 천만인무죄석방본부가 이달 30일까지 집회신고를 낸 곳"이라고 보도했다. 수평관계인지 수직관계인지 드러나지 않는 '관련 조직'이란 애매한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이 같은 모호함은 자유공화당과 천만인본부에 의해서도 생기고 있다. 이들은 서울역 태극기집회의 선전 포스터나 플래카드에 '천만인무죄석방본부 주최, 자유공화당 주관'이라고 표기했다.
주최와 주관의 차이에 대해 국립국어원은 "주최는 상급기관(계획하여 시행), 주관은 하급기관(진행)이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천만인본부가 상급기관이고 자유공화당은 하급기관이 된다.
그런데 자유공화당 홈페이지에 실린 조직도에서는 <연합뉴스> 보도처럼 천만인본부가 자유공화당 산하 기구로 표시돼 있다.
▲ 자유공화당 조직도. ⓒ 자유공화당
사실상 한 몸
그러나 자유공화당은 대놓고 상부기관을 자처하지 않는다. 자유공화당은 천만인본부를 서울역 집회의 주최기관으로 떠받든다. 서울역 집회는 자유공화당이 가장 중시하는 활동이다. 이런 활동의 주최기관이 천만인본부라는 사실은, 양자의 관계가 실제로는 수직적이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점은 자유공화당의 공식 발언에서도 나타난다. 예컨대, 광화문 천막 사건과 관련해 지난 3월 15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자유공화당은 "우리 당과 천만인무죄석방본부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울시 공무원들 그리고 용역 깡패들의 용역업체 등을 상대로 특수폭행치상 등의 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고 밝혔다. 자신들과 천만인본부를 나란히 배열한 것이다.
비슷한 태도는 천만인본부에서도 나타난다. 이 단체는 광화문 천막 사건과 관련해 작년 8월 21일 서울시장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우리 천만인무죄석방본부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불법거짓 탄핵의 진실을 밝히고 무죄석방 촉구 및 명예회복을 위한 구명운동을 목적으로 2017년 7월 15일 설립한 시민단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자유공화당이 대한애국당이란 이름으로 탄생한 2017년 8월 30일 이전에 자신들이 태어났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면서 "천만인무죄석방본부는 우리공화당이 주관하는 태극기집회를 지금까지 140회 주최해온 단체"라는 소개를 덧붙였다.
천만인본부가 책임지는 서울역 집회의 '진행권'이 우리공화당(현 자유공화당)에 위임된 듯한 느낌을 풍기는 설명이다. 이처럼 외부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발언들이 천만인본부와 자유공화당 명의로 나오다 보니, 양자의 관계가 언론보도에서조차 불명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사실은, 그 둘이 실질적으로 별개가 아니라는 점이다. 2018년 11월 26일 자 <연합뉴스> 기사에 "대한애국당과 이 당 당원들이 주로 가입한 시민단체인 천만인무죄석방본부"라는 표현이 나오듯, 두 조직의 구성원은 상당 부분 겹치고 있다.
양자는 활동 면에서도 사실상 한 몸처럼 움직인다. 각각의 지도부에 서로 다른 사람들이 배치됐지만, 실제로는 함께 활동하고 있다. 천만인본부뿐 아니라 자유공화당의 주 무대도 서울역 태극기집회다. 사실상 동일한 사람들이 두 개의 명의로 동일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4·15 총선에 대비해 지난 11일 구성된 자유공화당 지역구 공천관리위원회의 위원장에도 허평환 천만인본부 공동대표가 임명됐다.
지난 2월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조원진 대표는 "천만인무죄석방본부와 우리공화당이 이끌어가는 두 축"이라는 표현을 썼다. 마치 양면을 가진 동전처럼 정당 활동 때는 자유공화당 쪽을 보여주고 대중 활동 때는 천만인본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동전의 양면
2017년 초에 태극기집회를 주도한 단체는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이하 탄기국)'였다. 탄기국은 헌법재판소 탄핵결정 뒤 '대통령 탄핵무효 국민저항총궐기 운동본부(이하 국저본)'로 변신했다. 하지만 국저본도 생명력이 길지 못했다. 그해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 뒤 동력을 상실하고 약해졌다.
이 상황에서 태극기집회 내부의 강경파와 온건파가 분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국저본 내부의 강경파는 천만인본부로 모이고, 온건파는 '태극기 시민혁명 국민운동본부'로 모였다. 그 뒤 천만인본부는 여타 태극기 단체들과 판이한 길을 걸었다. 민간단체가 아닌 '정당'의 길을 걸은 것이다. 국회의원 조원진이 포함된 천만인본부는 이 단체 회원을 중심으로 대한애국당을 만들고 극우 정당의 모습을 갖췄다.
그러나 이 변신에는 한계가 있었다. 자유공화당은 천만인본부의 틀을 벗어날 수 없었다. 천만인본부라는 외양을 벗어버리고 오로지 정당의 길로만 나설 경우, 토요일마다 서울역에 모이는 수천 명의 지지를 상실할 가능성이 있었다. 서울역 집회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소수파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시간과 금전을 들여 토요일마다 모이는 것은, 급속한 사회변화에 파묻히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과 정체성을 표출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서울역 집회 참가자들의 이 같은 정서는 원내 의석 확대를 꾀하는 조원진 대표에게 굴레가 될 수밖에 없다. 정당의 몸집을 불리자면 유권자들과 타협을 모색할 수밖에 없고, 이는 서울역 집회 참가자들의 이탈을 부르는 자충수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자유공화당과 천만인본부의 공존 관계를 가능케 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태극기집회를 기반으로 정치세력화를 꾀하는 세력의 입장에서 볼 때 천만인본부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지원군이다. 이들과 함께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다 보니 동전의 양면처럼 천만인본부와 자유공화당을 번갈아 보여주는 일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자유공화당이 천만인본부의 틀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경계는 자유공화당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jjsi****라는 아이디의 사용자는 2018년 8월 7일 대한애국당 평당원 카페인 '태극기애국동지회 평당원 카페'에 올린 글에서 대한애국당 명의로 태극기단체 연합집회에 참가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8/15 광화문 연합집회는 천만인무죄석방본부에서 추진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천만인본부가 아닌 대한애국당 간판으로 태극기집회에 나서는 것은 박근혜를 지워버리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자유공화당이 천만인본부를 제치고 태극기집회에 뛰어드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한 것이다. 이런 당원들의 존재가 자유공화당의 세력 확장을 지연시키는 동시에, 천만인본부에 대한 자유공화당의 의존도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목해야 할 대상
▲ 2019년 7월 6일 당시 우리공화당 조원진 공동대표가 서울역 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친 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차 태극기 집회를 열고 천막을 설치했다. ⓒ 이희훈
자유공화당의 정치적 진로가 간단치 않을 것임은 최근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3월 4일 공개된 박근혜 친필 편지에는 "기존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여러분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 주실 것을 호소"한다는 문구가 들어 있다. 자유공화당으로부터 최고의 충성을 받아온 박근혜가 자유공화당이 아닌 미래통합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한 것이다. 또 박근혜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한 곳도 자유공화당이 아니라 미래통합당의 분신인 미래한국당이다.
이는 자유공화당보다 천만인본부의 생명력이 더 길 수도 있다는 추측을 낳을 만한 요인이다.
서울역 태극기집회에서 주목해야 할 대상은 자유공화당이 아니라 천만인무죄석방본부다. 지난 3년간 최대 규모의 극우집회를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천만인무죄석방본부에 있었다. 김종성(qqqkim2000)/ 오마이뉴스
취약계층이냐 기업이냐… 이재명-손경식 ‘코로나 지원 우선순위’ 논쟁
“최근 재난소득 지원 방안이 제기되고 있는데 다른 나라에서도 현금 지급 정책의 효과가 제한적인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기업의 경비 지출 완화에 더욱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국민들이 쓸 돈이 없어 ‘병들어 죽기 전에 굶어죽겠다’고 하는 처참한 상황을 이용해서 한몫 챙기겠다는 경총. 제발 같이 좀 삽시다.”(이재명 경기지사)
이재명 경기지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기업 부담 완화 차원에서 법인세 인하 등을 요구한 손경식 경총 회장을 정면 비판했다. 전 국민 재난기본소득 지급 등을 주장해온 이 지사가 코로나19 피해 구제에 있어 기업보다 서민을 앞세워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향후 ‘지원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쟁으로 번질지 주목된다.
이 지사는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들 죽어가는 이 와중에 또 챙기겠다는 경총’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손 회장이 지난 18일 제기한 기업 우선 지원 요구를 정면 비판했다.
이 지사는 “소비 부족으로 투자할 곳이 없는 이때 1,000조원 넘는 사내유보금을 가진 기업들이 법인세를 깎아주면 그 돈이 과연 쓰일까? 멈춰서는 경제 순환에 도움이 될까?”라고 물음을 던진 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나 미국 등 선진 자본주의 국가까지 감세 아닌 현금 지급을 하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이기적인 주장”이라고 손 회장을 공격했다. 이 지사의 주장은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최근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경기 부양책으로 정부가 국민에게 직접 현금을 지원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말한 점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 지사는 이어 “국가적 위기, 국민의 고통을 이용해 공적자금을 수십조원씩 받아 챙기던 꿀 같은 추억을 잊지 못하는 모양”이라며 “제발 같이 좀 삽시다”라고 강한 톤으로 경영계를 비판했다. 이 지사의 발언은 앞서 손 회장이 지난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주요 경제주체 초청 원탁회의’에 참석해 재난기본소득 지급안을 “실효성이 없다”고 평가하면서 “기업에 대한 법인세 인하, 사회보험료 납부 유예, 고용지원 업종 확대 등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된다.
두 사람의 상이한 입장은 한정된 정부 재원을 어디에 먼저 지원해야 하느냐는 논쟁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개인이냐 기업이냐’라는 일도양단식 논쟁보다는 피해 정도의 심각성을 따져 가장 취약한 계층, 업종, 지역, 부문을 선별해 우선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굳이 우선 순위를 따지자면 기업보다 더 취약한 개인에게 먼저 지원하는 게 맞지만, 재난기본소득처럼 일괄적 지원책이 아니라 정말 도움이 절실한 취약 계층을 선별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코로나19 피해 기업에는 금융을 통한 지원이 유효한 만큼 굳이 우선 순위를 나눌 필요 없이 취약 부문별 맞춤 지원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거대 양당, 비례대표 선거의 흑역사를 새로 쓰다
거대 양당의 비례정당 꼼수
군사정권 독재 수단으로 도입됐지만
사표 줄여 표심 제대로 반영하고
소수자 정치 진출 통로로 자리매김
지난해 ‘준연동형’ 도입 결실
선거제 개혁 방해해온 미래통합당
비례정당 비판해온 더불어민주당
위성정당 만들어 비례의석 늘리기
의원 꿔주기, 공천 파동 구태 재연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대의기구는 언제나 인민의 축소판이어야 한다. 지도가 산과 계곡, 강과 호수, 숲과 평야, 도시와 읍을 표시하듯 의회 내의 의견과 열망, 소원들은 원본에 정확히 비례해 제시돼야 한다.”
프랑스 혁명가인 미라보 백작이 1789년 1월 프로방스 의회에서 비례대표의 이상을 천명하면서 한 말이다.(박동천, ‘비례대표 선거제도의 간추린 역사’) 시민혁명으로 의회 주권이 확보됐고, 선거에서 ‘비례성’에 주목하는 발상이 관심의 대상이 됐다. 우리나라의 비례대표제 역시 비례성을 높이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특히 ‘촛불혁명’ 이후 불붙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요구는 지난해 말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이어져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처음으로 연동형 방식으로 치러지게 됐다.
하지만 이 선거제도는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 비례대표 폐지까지 주장하며 선거제도 개혁을 막아선 미래통합당은 물론이고, 선거법 개정에 사활을 건 더불어민주당까지 ‘비례용 위성정당’ 꼼수를 부리며 제도를 무력화하고 있다. 거대 양당이 함께 비례대표 선거의 흑역사를 쓰고 있다.
비례대표 선거제도 변천사
우리나라에 비례대표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63년 6대 총선에서다. 전체 의석의 4분의 1인 44명을 ‘전국구’라는 이름으로 뽑았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세력의 논공 행상 차원에서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 이후 9·10대 총선에선 비례대표를 없앴다. 그나마 선거라는 절차마저 무력화하고 대통령이 사실상 임명하는 ‘유신정우회’ 의원을 지역구와 별도로 뽑았다. 전두환 정권은 11대 총선(1981년) 때 전국구를 부활시켰다. 92석으로 크게 늘린 뒤 3분의 2를 제1당에 무조건 줬다. 독재정권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적 절차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면서 제도 개선이 조금씩 이뤄졌다. 13대 총선(1988년)에서 소선거구제로 바뀌면서 지역구가 224개로 크게 늘었고, 비례대표 의석이 지역구의 3분의 1인 75석으로 확대됐다. 1당이 전국구 의원 절반을 차지했다. 문민정부에서 치러진 14대 총선(1992년)부터는 ‘지역구 의석 없는 원내 정당’이 가능해졌다. 지역구 당선자가 없더라도 유효투표수 3% 이상을 얻은 정당에 1석을 우선 배분하도록 했다. 2000년 16대 총선 때에는 이름을 ‘비례대표’로 바꾸었다. ‘돈 전(錢)’자 전국구로 불릴 만큼 공공연했던 ‘공천헌금’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비례대표 후보에 여성할당제(30%)도 도입됐다.
선거제도가 획기적인 변화를 맞은 건 2004년 17대 총선에서다. 지금의 정당명부식 1인2표제(지역구 1표, 정당투표 1표)가 실시됐다. 정당득표율 3%를 넘는 모든 정당이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받게 됐다. 국회가 제 머리를 깎은 건 아니었다. 앞서 2001년 헌법재판소가 비례대표 의석을 1인1표제 방식에 따라 배분하는 게 위헌이라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헌재는 기존 방식으로는 “국민의 의사가 투표 결과에 정확하게 반영되지 않는다”고 했다.
변화한 선거제도로 인해 지역주의에 기댄 ‘소선거구-단순다수대표제’에 기반을 둔 기득권 체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정당득표율 13%로 비례대표 8석을 얻었고, 지역구 2석을 더해 자유민주연합을 제치고 제3당을 차지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이 정당득표율에서 민주당을 제치고 2위(26.7%)를 차지해 비례대표 13석을 얻었다. 비례대표제는 여성과 장애인, 다문화가정 등 소수자의 정치 진출 촉매제 구실도 했다. 2005년에는 비례대표 후보 50% 이상을 여성으로 정하고, 홀수 번호 배치를 의무화하는 선거법이 개정됐다. 19대 총선(2012년)에선 첫 이주민 출신 국회의원(이자스민)이 비례대표제를 통해 탄생했다. 20대 총선 지역구 여성 당선인 26명 가운데 비례대표 출신이 15명에 이른다.
비례대표제의 단점도 물론 있다. 현행 제도는 정당이 공천한 후보 명부 전체를 놓고 정당에 투표하는 구속명부식이어서, 후보 개개인보다는 정당에 대한 믿음이 유권자의 주요 선택 기준이 된다. 정당의 민주적 운영과 공천 과정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부적합 인물이 당선될 수 있다는 얘기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 탈락자들로 이뤄진 친박연대가 비례대표 8석을 얻었고, 19대 총선 때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경선 부정 사건이 발생했다. 20대 국회에선 비례대표의 당적 변경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비례대표는 탈당하면 의원직을 잃고, 당이 제명하거나 합당·해산하면 의원직이 유지된다. 최근 바른미래당 비례대표 8명은 ‘셀프 제명’을 하고 일부는 통합당 공천을 받았지만 법원의 제명 취소 판결로 결국 탈당 절차를 밟았다. 소속 정당 당적을 유지한 채 다른 정당 당직을 맡아 활동한 의원들도 있다.
한편으로 눈여겨볼 것은 17대 국회 이후 비례대표 의석수가 오히려 줄었다는 점이다. ‘비례성’뿐 아니라 ‘대표성’을 높이려면 의석수가 늘어야 하는데도 오히려 17대 56석, 18·19대 54석, 20대 47석으로 감소했다. 전체 의석의 15%에 불과하다. 이는 지역구별 인구 편차를 줄이라는 헌재 결정에 따라 수도권 대도시 지역구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의원 정수를 늘리는 대신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이는 손쉬운 방법을 썼기 때문이다. 20대 총선을 1년여 앞둔 2015년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했지만, 국회는 이와 정반대로 갔다.
하지만 촛불 이후 선거제도 개혁 목소리가 커지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더는 외면하기 어려운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다. 민주당은 소극적이었지만, 이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이 줄기차게 주장하거나 공약해온 것이었다. 민주당은 결국 공직자범죄수사처법과 연동해 선거법 개정에 나섰고, 패스트트랙 지정(2019년 4월30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의결(8월29일), 본회의 의결(12월27일)까지 천신만고 끝에 연동형 도입의 첫걸음을 뗐다.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비례의석 ‘나눠 먹기’ 싸움 점입가경
그러나 민주당과 야4당의 최종안 협상 과정에서 내용이 후퇴했다. 애초 지역구를 225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75석까지 늘여 50% 연동률을 적용하기로 했지만, 결국 비례대표는 1석도 늘리지 못했다. 50% 연동률도 30석까지만 적용되고, 나머지 17석은 현행대로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한다. 석패율제도 없었던 일이 됐다. “한계가 너무 커서 개혁이라 부를 수도 없다”(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평가가 나왔다. “의석을 전혀 늘리지 않은 ‘미니’ 비례제, 절반만 연동형 원리를 적용하는 ‘준’연동형, 30석 상한선까지 씌운 ‘캡’ 연동형”이라는 ‘삼중의 자물쇠’를 걸었기 때문이다.
이런 후퇴는 민주당이 “거대 정당이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협치를 만드는 역사적 결단을 하겠다”는 약속을 걷어차고 소수정당을 압박한 결과다. 축소된 제도는 선거 국면이 되자 왜곡되기 시작했다. 자유한국당의 위성정당 창당이 구체화하면서 민주당의 비례의석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자 말이 뒤집혔다. 더 나아가 비례 정당을 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말도 뒤집었다. “소수정당의 원내진출을 돕겠다”며 민주화 원로들이 주도한 ‘정치개혁연합’과 논의하다가 결국 지난 18일 친문 지지자 중심의 플랫폼 정당인 ‘시민을 위하여’와 함께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하기로 했다. 이로써 4월 총선은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의 비례대표 의석 나눠먹기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 다음은 두 당이 이 과정에서 보여준 여러 행태다.
① 노골적인 이름
자유한국당은 애초 위성정당 이름을 ‘비례자유한국당’으로 등록하려 했다. 하지만 중앙선관위는 “‘비례’는 사전적 의미만으로는 정당의 정책과 정치적 신념 등 가치를 내포하는 단어로 보기 어렵다”며 ‘비례○○당’ 식의 이름을 쓸 수 없다고 결정했다. 위성정당은 ‘미래한국당’으로 창당했고(2월5일), 자유한국당은 보수 합당을 하면서 당명이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2월17일). 민주당도 ‘더불어’를 위성정당 이름에 넣었다.
② 의원 꿔주기
선거 기호는 의원 수가 많은 순서대로, 의원이 없으면 가나다순으로 부여된다. 의원 꿔주기는 정당투표 용지 상위를 차지하기 위한 자리싸움이다. 통합당은 한선교 의원을 위성정당 대표로 파견하고, 비례대표 2명을 제명해 보내는 등 모두 6명을 꿔주었다. 비례대표 후보 공천 파동으로 지난 18일 한 대표가 사퇴하자 5선 원유철 의원 등 4명을 추가로 보냈다. 민주당도 위성정당에 보낼 의원들을 골라 설득 중이다. 10명 이상 보내야 한국당보다 상위 순번을 받을 수 있다.
③ 후보 급조
후보 등록은 오는 26~27일이다. 한국당은 500여명의 공천 신청자가 몰려 ‘3분 면접’을 통해 후보 명부를 만들었다. 통합당이 반발해 명단을 수정했으나 지난 19일 선거인단(100명) 투표에서 부결돼 명부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자체 후보를 공모하기로 한 ‘시민을위하여’는 20일 공천관리위원회와 민주당 인력을 포함한 검증팀을 구성했다. 선관위는 지난달 6일 비례대표 후보 추천과 관련해 “당대표·최고위원회가 후보자 및 순위를 결정해 추천하는 것은 위법”이라며 “민주적 심사절차를 거쳐 대의원·당원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의 민주적 투표절차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④ 정책 토론 불가
공식 선거운동은 다음달 2일 시작된다. 그러나 민주당과 통합당은 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하는 텔레비전 토론회에 참가할 수 없다. 신문·방송·인터넷 광고도 할 수 없다. 비례대표 선거가 정당에 대한 투표 성격을 갖기 때문에 선거법은 토론과 광고를 비례대표 후보를 추천한 정당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⑤ 탈당-입당-제명-복당?
민주당은 비례대표 후보 25명을 모두 탈당시켜 위성정당에 보낼 예정이다. 이들이 당선된 뒤 민주당에 돌아가려면 제명되거나, 더불어시민당이 해산 또는 민주당과 합당해야 한다. 한국당은 처음부터 위성정당을 표방한 만큼 통합당과 합당할 것으로 보인다.
예전보다 ‘비례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됐던 이번 총선은 거대 양당 위성정당의 등장으로 오히려 선거제도 개혁 이전보다 악화할 것으로 점쳐진다. 정책과 인물, 구도는 보이지 않고 ‘비례용 위성정당 대결’만 남아 거대 양당의 양극 정치가 한층 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국민들이 4년 뒤 22대 총선을 이 제도로 치를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두 거대 정당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대로 하자는 의견보다 예전 제도로 돌아가자는 의견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 “윤석열 등 검찰쿠데타 세력 명단 공개” 논란
쿠데타·야차 등 거친 표현 쓰며
현 정부 수사 검사 14명 명단 제시
전 법무부 고위 간부, 적절성 논란
김경율 “현 정부의 블랙리스트” 비판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 페이스북 갈무리
4·15 총선에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는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이 ‘검찰발 국정농단세력·검찰 쿠데타 세력 명단’이라며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롯한 현직 검사들의 명단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논란이다. 지난 1월까지 검찰개혁의 주무를 맡아온 법무부 인권국장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황 전 국장은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2019 기해년 검찰발 국정농단세력/검찰 쿠데타세력(쿠데타세력) 명단(을) 최초공개”한다며 윤 총장을 비롯해 현직 검사 14명의 명단을 올렸다. 해당 명단에는 한동훈 부산고검 차장, 박찬호 제주지검장, 송경호 여주지청장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대부분 지난 1월 좌천성 인사 전까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수사와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수사,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수사를 지휘했던 검사들이다
황 전 국장은 해당 리스트에 대해 “평소 추적하면서 쌓아온 제 데이터베이스와 경험 그리고 다른 분들이 제공한 정보에 기초한 것”이라며 “아직도 고위직에 그대로 많이 남아있죠? 2020년에는 기필코...”라고 밝혔다. 그는 “국민들이 야차들에게 다치지 않도록 널리 퍼트려 주세요”라고 덧붙였다. ‘야차’는 불교용어로 귀신을 뜻한다.
황 전 국장은 ‘법무부가 만든 블랙리스트가 아니냐’는 댓글에 “블랙리스트는 비공개 은밀한 명부인데, 이것은 그게 아니라 whitelist(화이트리스트)”라고 답글을 달기도 했다. 화이트리스트는 통상 정권에 친화적인 단체에 부당하게 이익을 주기 위해 작성된 리스트를 뜻한다.
황 전 국장은 지난 2017년 비검사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법무부 인권국장에 임명됐다. 지난 1월 사임 전까지 검찰개혁추진지원단 단장을 맡아 법무부에서 검찰개혁 관련 업무를 주도했다. 황 전 국장은 이날 오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 출마자 기자회견에서 “작년 흔히 말하는 조국사태는 정확하게 규정하자면 검찰의 쿠데타”라며 ”쿠데타를 진압하기 위해서 애를 쓰다가 새로운 소임을 가지고 올해 검찰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한 판 뜰 수밖에 없다”고 발언했다.
최근까지 검찰개혁의 주무를 맡아온 전직 법무부 인권국장으로서 ‘도를 넘은’ 처신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사건을 쫓아온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위원장(회계사)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 정부가 가지고 있는 법무부 블랙리스트인 셈”이라며 “국정농단 수사, 엠비(이명박 대통령)수사, 세월호 7시간 수사, 사법농단 수사, 삼성 수사, 삼성노조 파괴 수사, 국정원 댓글수사한 나쁜 검사들 명단”이라며 황 전 국장의 글을 비판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장기화되는 '코로나', 심각한 한국, 그리고 세계 경제
외국인투자기업 10곳 중 4곳, 사업 축소 고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한국 경제에도 빨간등이 켜졌다. 국내 외국인투자기업 10곳 중 4곳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한국에서 생산·판매·투자 등 사업 축소를 고려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지난 10∼16일간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100인 이상 주한 외국인투자기업 150곳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사태 영향 및 대응' 설문을 진행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22일 밝혔다.
외국인투자기업 48%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글로벌 생산·유통망 재편을 고려하겠다고 답했고, 이 가운데 86.1%는 한국 내 생산·유통망 축소를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시 국내에 진출한 외투기업의 41.3%가 한국 내 사업 축소를 고려하겠다고 답한 셈이다.
"한국, 2020년 GPD 성장률 -1% 전망"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로 한국 경제는 물론, 세계 각국의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한다는 전망도 나왔다.
22일 영국 경제분석기관 '캐피털 이코노믹스'가 지난 19일(현지시간) 수정한 세계 주요국 경제전망을 보면, 한국의 2020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로 전망됐다. 2월말 전망치 1%와 비교하면 한 달 만에 2%포인트를 낮춘 셈이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전망치도 모두 하향됐다. 미국의 전망치는 이달 초까지 쭉 1%대를 유지해 왔으나 이번에 0%로 떨어졌다. 유로존의 경우, 올해 경제성장률을 -8.5%로 전망하기도 했다. 유로존 중 가장 심각한 '코로나19' 타격을 받은 이탈리아는 -9%로 전 세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 외에도 중국 -3.0%, 일본 -4.0%, 독일 -8.5%, 프랑스 -8.5%, 영국 -7.0%, 캐나다 -2.0%, 호주 -1.0% 등 대부분 국가의 마이너스 성장을 전망했다.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
생계가 다급할수록… ‘재난의 맨앞자리’에 불려나왔다
확진 제로 동두천이든 최악의 대구이든
코로나19에 후순위로 밀려난 사람들
감염보다 생계 다급함이 더 무서워
대구에서 297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지난 8일 최순희 할머니가 서구 평리동 거리를 돌며 폐지를 줍고 있다. 대구/옥기원 기자
바이러스는 이 사회가 누구를 감춰왔고 무엇을 은폐해왔는지 정확하게 드러냈다. 이 세계의 후순위로 밀려나 있던 사람들이 바이러스가 진격하는 최전선으로 끌려 나와 가장 먼저 찔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평소 눈에 보이지 않던 사람들을 재난의 맨 앞자리에 보이게 함으로써 눈에 보였다.
■ 바이러스는 가난한 순서대로 밖으로 불러냈다
사람들이 바이러스를 피해 집 안으로 숨을 때 최순희(가명·83) 할머니는 거리로 나왔다. 인적 끊긴 동네를 돌며 할머니는 폐지 상자를 주웠다. 대구에서 297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날(지난 8일 대구 서구 평리동)이었다. 감염병이 대구를 휩쓸면서 평리동 거리에선 사람들이 증발했다. “지난 30년간 이렇게 쥐 죽은 듯한 적이 없었던 동네”(한 주민)에서 할머니의 손수레 끄는 소리가 쥐들도 숨죽인 골목을 울렸다.
“이거라도 안 하믄 밥은 우예 묵노.”
그에겐 감염의 두려움보다 생계의 다급함이 무서웠다. 신천지 교인 집단감염으로 741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며 대구의 공포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달 29일에도 할머니는 폐지를 주웠다. 그는 공사장에서 일용직 노동을 하는 61살 아들과 산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했다. “기관지가 나빠 자주 일을 나가지 못하는” 아들은 “그마저 코로나 때문에 일이 끊겨 한달 가까이 집에 있었”다. 최근엔 이빨까지 빠지며 건강이 악화됐다.
아들의 수입이 끊기자 할머니는 생계가 막막했다. 차상위계층에 식재료와 음식 등을 지원하던 지역사회보장협의체도 감염 확산으로 활동을 멈췄다.
“코로나가 왔든 뭐가 왔든 내가 나와서 폐지라도 주워야 입에 풀칠을 한다카이.”
할머니가 온종일 폐지를 모으면 보통 4천원을 벌었다. 코로나19 탓에 택배 물량이 늘고 버려지는 상자가 많아지면서 1천원어치쯤 더 주울 수 있었다. 위험과 바꿔 얻은 ‘코로나 특수’를 끌고 할머니가 대구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 중 한곳인 평리동의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코로나19 탓에 사람이 더욱 뜸해진 턱거리마을 거리. 동두천/이문영 기자
개학이 연기된 아이들이 바이러스를 피해 집에 있을 때 ‘그 아이들’은 집 밖으로 나왔다.
“대구에서 온 동생이 확진자였대.”
지난 10일 경기 동두천시 광암동 턱거리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휴대전화로 돌고 있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문자를 확인한 선생님이 방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대구에서 동두천의 형 집을 다녀간 동생이 코로나19에 확진됐고 형도 보건소에서 감염 검사를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형 집이 ㄱ마트 근처라고 문자는 전했다. 방 안에서 마스크를 쓰고 음악을 듣는 아이들에게 다른 선생님이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우리 동네도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야. 그래도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개인위생 더 신경쓰자. 영진(가명·14)이도 마스크 써야지.”
“까먹고 집에 두고 왔어요.”
영진이의 장난스러운 말에 선생님이 마스크 하나를 가져다줬다. 남은 마스크가 몇개 없었다. 다행히 동생 영건(가명·12)이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영진이와 영건이는 편부 가정 아이들이었다. 베트남인 엄마와 이혼한 아빠는 주중에 트럭을 몰고 전국을 다니며 물류 배달을 했다. 형제 둘이 어른 없는 집에서 살았고 아빠가 사둔 컵밥과 라면을 주로 먹었다. 아빠는 토요일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챙긴 뒤 이튿날 다시 떠났다. 형제가 더 어렸을 땐 선생님들이 걱정될 때마다 집을 찾아가 청소와 빨래를 해주거나 돌아가며 아이들과 잤다.
문자 내용이 사실(이튿날 동두천시는 ‘가짜 뉴스로 확인됐다’며 유포자를 수사 의뢰)이라면 검사 결과에 따라 동두천시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ㄱ마트는 선생님들이 날마다 아이들의 식사와 간식 재료를 구입하는 곳이어서 걱정이 더했다.
부모가 집에 머물며 돌볼 형편이 못 되는 아이들이 지역아동센터(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 가정, 조부모·한부모 가정 아이들 대상)로 나와 긴급돌봄을 받았다. 센터에라도 나오지 않으면 코로나19의 두려움을 집에서 혼자 감당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었다. 동두천시 지역아동센터들에도 2월28일부터 휴원 조처가 내려졌지만 긴급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 예외적으로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밥을 먹었다. 이 아이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보다 다급한 것은 혼자 두지 않는 보살핌이었다. 등록 아동 18명 중 센터 외엔 돌봄 받을 곳 없는 아이들이 12명이었다. 관내 아동센터 가운데 가장 많았다. ‘턱거리마을’인 까닭이었다. 동두천에서도 가장 가난한 마을이었다.
코로나19 확산 뒤 인적이 끊긴 대구 서구 평리동의 한 골목길. 대구/옥기원 기자
■ 바이러스는 전후방을 가리지 않았다
평리동이 위치한 서구는 대구의 구시가지다. 전체 가구의 절반(49%)이 월평균 소득 200만원 미만(100만원 미만은 26%)이다. 신시가지인 수성구나 달서구의 2배에 이른다. 평리동엔 서구에서도 노령인구와 낙후 주택이 가장 많다.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좁은 골목길 사이로 오래된 다세대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지난달 18일부터 평리동 거리에선 사람들이 사라졌다. 신천지 교인인 31번째 확진자가 서구(22일 기준 대구 확진자 6387명 가운데 서구 확진자는 493명) 주민이란 사실이 이날 공개됐다. 닷새 뒤엔 선별진료소인 서구보건소의 코로나 대책 총괄 공무원(감염예방의학팀장·신천지 교인)의 확진 소식이 전해졌다. 불안이 마을 전체를 감쌌고 일상은 정지됐다.
마을을 휘도는 고개를 넘을 때마다 숨이 턱에 찼다는 동두천 턱거리마을은 기지촌이었다. 1954년 캠프 호비 주둔 뒤 미군기지에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을을 형성하며 숨이 턱에 차는 삶을 꾸렸다. 1970년대까지 동두천에서 가장 번화했던 턱거리마을은 주둔 미군이 감소하기 시작하면서 쇠락했다. 생계수단이 사라지자 턱거리 사람들도 마을을 떠났다. 기초생활수급자인 홀몸노인들과 동두천에서 가장 집값이 싼 동네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남아 400여가구를 이뤘다. 감염 사태가 커지자 캠프 호비는 정문을 폐쇄해 병사들의 턱거리마을 출입 자체를 차단(보산동 캠프 케이시 쪽으로 일원화)했다.
감염병의 힘이 확진자 수로만 확인되는 것은 아니었다. 바이러스가 사람을 지운 풍경은 코로나19 사태의 최전방 대구와 22일 현재까지 아직 확진자가 한명도 나오지 않은 후방의 동두천이 다르지 않았다. 대구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가 미감염지인 턱거리마을의 가난한 일상까지 원격으로 흔들고 있었다.
조기현 다울건설협동조합 대표와 조합원들이 지난 7일 대구 중구 반월당역 앞에서 노숙인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다. 대구/옥기원 기자
■ 바이러스는 안전망 얇은 곳을 파고들었다
“건강관리 잘하셔야 돼요. 한 분만 (코로나) 걸려도 이(식사 나눔)조차 못 하니까.”
조기현 다울건설협동조합 대표가 도시락을 나눠주며 당부했다. 마스크도 못 쓴 노숙인들이 도시락과 음료수를 받아 들고 서둘러 구석으로 흩어졌다.
대구 반월당역에서 조 대표가 준비해 온 도시락 상자를 풀자 노숙인 40여명이 모여들었다. 그는 지난달 중순부터 노숙인들이 많은 대구역~동대구역~반월당역을 오가며 도시락을 제공하고 체온을 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쉼터와 종교기관들이 무료급식소 운영을 중단한 뒤부터였다. 노숙인들에겐 “밥 한끼가 무엇보다 시급한 예방주사”였다. 밥 먹을 곳을 잃은 노숙인들이 소문을 듣고 대구 전역에서 시간 맞춰 찾아왔다.
“오늘 첫 식사예요.”
한 남성이 밥덩이를 입으로 밀어넣으며 말했다. 아직 힘이 남아 있어 가끔씩 공사장에서 일용직 노동을 한다는 그는 “지난 두달 동안 하루도 일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에게 ‘마스크를 쓰고 흐르는 물에 30초씩 손을 씻어야 한다’는 예방 수칙은 수행 불가능해 보였다. 대구 시내 5곳의 노숙인쉼터 운영이 중단된 뒤 노숙인들이 씻고 먹을 수 있는 최후의 공간도 사라졌다.
대구에서 노숙인들의 밥길을 끊은 코로나19가 턱거리마을에선 밥길을 만들고 있었다.
“할머니, 공부방이에요.”
오후 4시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이 준비한 도시락을 들고 아이들 집을 찾았다. 센터에 나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들이 직접 도시락을 배달했다. 엄마가 일을 나간 뒤 할머니가 두 손녀를 돌보는 집에서 혜진·혜민(가명)이가 달려 나왔다. 그들 집 근처엔 연천군에서 확진된 군장병이 다녀간 탓에 방역팀이 출동한 국밥집이 있었다.
일거리 없는 턱거리마을의 가난한 부모들은 일을 찾아 마을 밖으로 나갔다. 바이러스의 공격을 피해 ‘일시 멈춤’ 할 수 있는 부모는 없었다. 일을 쉬어야 바이러스를 피할 수 있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일을 쉴 수 없었고 바이러스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며 가난을 쏘았다. 선생님이 혜진이네 집을 나서며 전화했다.
“동호(가명)야, 출발하니까 내려와 있어.”
선생님을 보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동호가 자동인형처럼 귀를 갖다 댔다. 도시락을 건넨 선생님이 동호의 체온을 재고 온도를 기록했다. 동호 엄마는 콜센터에서 일하며 아들을 키웠다. 전날(9일)부터 서울 구로의 콜센터에서 집단감염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이윤을 짜내는 경영기법은 가난한 노동을 밀집시켰고 가난은 노동의 ‘거리두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날 찬민(가명)이와 현지(가명) 남매 집엔 도시락을 배달하지 않았다. 남매는 엄마의 친정인 베트남에 가 있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엄마는 귀국을 미뤘다. 일용직 건설노동자인 아빠는 현장 일이 끊겨 생활을 위협받고 있었다.
턱거리마을에서 시작해 마을 밖 신시가지(지행동·송내동)를 거쳐 돌아오는 도시락의 경로는 ‘가난이 몸을 숨긴 동선’이었다. 바이러스가 이 동선을 찾지 못하게 하려면 손을 씻는 것만큼이나 가난을 씻어내야 했다.
박용성 성공회 애은성당 신부가 지난 7일 대구 평리동의 차상위계층 노인들에게 긴급구호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대구/옥기원 기자
■ 바이러스는 허약한 시스템을 감염시켰다
“신부님요, 고맙소.”
박용성 신부(7일 대구 평리동 애은성당)가 골목 저편으로 사라질 때까지 김정자(가명·86) 할머니는 인사를 멈추지 않았다. 집 앞엔 신부가 두고 간 쌀과 라면과 통조림이 있었다.
“내가 감염병 전파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신부는 생필품을 현관 앞에 두고 전화로 알린 뒤 대면 접촉을 피했다. 전화를 받은 할머니가 물건을 확인하는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며 신부가 말했다.
“급한 일 생기면 연락하세요.”
보름 만에 처음 외부 사람과 대화한 할머니가 음료수를 대접하려 했으나 신부는 극구 사양했다. 신부는 차상위계층 홀몸노인들의 이름과 주소·전화번호를 들고 그들의 집을 찾아다녔다. 대구의 모든 행정력이 추가 확진자 찾기와 병상 마련에 집중돼 취약계층을 살피는 데 구멍이 생기자 지역 종교인들이 긴급구제에 나섰다. 하루에도 수백명씩 감염자가 발생하는 대구에서 노인들은 마트에 가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2주째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한 김정자 할머니는 식료품이 떨어지자 성당에 ‘구조 요청’을 보냈다.
할머니는 코로나로 동사무소 공공일자리까지 끊겨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다. 그는 마을 청소를 해서 받는 27만원과 기초연금 30만원으로 한달 생계를 꾸려왔다. 정부와 자치단체는 차상위계층에게 지원하던 자활근로와 식품 등을 코로나19 사태로 잠정 중단했다. 동사무소는 “감염 우려 때문에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되고 일을 못 하니 수당도 지급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달엔 하루도 일을 못 했잖아. 이번달엔 꼭 해야 되는데.”
그 바람으로 할머니는 날마다 확진자 수가 불어나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또 봤다.
‘눈 달린 바이러스’가 가난을 겨냥할수록 가난한 삶들은 더 깊은 가난 속으로 잠겨 들었다.
동두천 턱거리마을에서 홀로 지내는 한 할머니가 대문에 써 붙인 글귀. 평소 할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경로당에서 보냈으나 코로나19로 경로당이 폐쇄되면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동두천/이문영 기자
■ 바이러스는 ‘고립된 가난’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할머니 반찬 왔어요.”
턱거리마을 안에 있는 동두천나눔의집(성공회 소속)이 조영숙(가명) 할머니의 방문을 두드렸다. 방문엔 할머니가 쓴 “나 노인정 가요”가 붙어 있었다. 평소 할머니는 대부분 경로당에 가 있었다. 이날은 경로당 가야 할 시간에 경로당에 가지 못한 할머니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마을의 홀몸노인들은 1960년대에 지어진 전형적인 기지촌 가옥(방 한칸에 연탄아궁이 겸 부엌 하나)에서 혼자 지냈다. 나눔의집은 일주일에 한번씩 그들을 찾아가 반찬을 나눴다. 감염병 재난은 그들을 집 안에 두고 자물쇠를 채우고 있었다. 국가의 돌봄 체계가 작동하지 않거나 해결 능력을 초과했을 때 가난한 자에겐 더욱 가혹한 피해가 닥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마을 단위로 구축해온 공동체적 돌봄과 관계망이 국가적 재난 앞에서 그나마 사각지대를 줄이고 있었다. “코로나로 고립이 장기화되면 고립사 위험이 높아질 수도 있다”고 나눔의집 김현호 신부는 우려했다. 지난해 연탄가스를 마신 홀몸노인이 조영숙 할머니 옆방에서 사망한 지 며칠 만에 발견됐다.
턱거리마을의 경로당 세곳은 모두 폐쇄됐다. 경로당이 문을 닫자 대화 상대가 경로당 친구들밖에 없는 할머니들이 한 주민의 집을 택해 모여 있었다. 모임을 방지하기 위해 경로당을 폐쇄했으나 갈 곳 없는 그들은 경로당보다 좁은 방에 모여 마스크 없이 10원짜리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가난은 바이러스를 피해 도망갈 곳이 없었다.
경로당에서 제공하는 밥은 그들이 하루 한끼 먹는 밥의 전부였다.
“제대로 먹는 밥이 고작 그거였는데 경로당에도 못 나오니 우린 어떡해. 죽어지지도 않고….”
한 할머니가 웃는 듯 우는 듯 탄식했다.
“연탄이 떨어져서 걱정이야.”
최철국(가명) 할아버지가 길거리에서 버려진 상자를 줍고 있었다. 붕괴가 우려되는 슬레이트집에서 그는 혼자 산다. 수급자가 아니어서 폐지를 주워 생활한다. 공과금을 못 내 전기가 끊어지기도 했다. 수급자는 국가의 최소 지원 체계 안에라도 있었지만 수급자가 아닌데 수급자만큼 가난한 그는 재난에 훨씬 취약했다. 그가 반찬을 받아들고 들어간 좁은 방은 몸 둘 곳 없이 가난으로 꽉 차 있었다.
코로나19로 연탄 지원이 중단되자 그는 봄이 올 때까지 추위를 어떻게 견딜지 걱정했다. 그에게 연탄을 넣어주던 연탄은행엔 후원금이 끊겼고 배달을 돕던 군부대도 장병들을 내보내지 않았다. 그는 “연탄보릿고개”(오성환 동두천연탄은행 대표 “동두천에서 연탄 지원을 해온 15년 동안 최악의 시기”)의 꼭대기에서 찬바람을 맞고 있었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한 뒤 자가격리 중인 대구 중증장애인 김호형씨가 휠체어를 타고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대구/옥기원 기자
■ 바이러스는 ‘제도의 공백지대’를 찾아냈다
대구 중증장애인 김호형(가명)은 생사의 공포를 오갔다. 지난달 18일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방문했을 때 확진자와 접촉한 뒤부터였다. 자가격리 통보를 받자 감염 위험으로 활동지원서비스가 중단됐다. 그는 8평짜리 원룸에 홀로 갇혔다.
그의 “하루하루가 막막”했다. 당장 먹고 씻는 것이 괴로움이 됐다. 격리 이틀 뒤 구청에서 생쌀과 라면을 택배로 보냈다. 그는 모욕받는 기분이 들었다. “(의도적으로 그러진 않았겠지만) 음식을 직접 해 먹을 수 없는 처지를 놀리는 것 같았”다.
감염의 공포로 김호형은 잠도 이루지 못했다. 몸이 약한 그에게 전염병은 치명적이다. 구청과 보건소에 빠른 검사를 요청했지만 대구 지역 신천지 교인 1만여명에 대한 전수 검사 탓에 계속 뒤로 밀렸다.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은 뒤 장애인단체들이 줄곧 주장한 ‘장애를 고려한 감염병 종합대책’은 코로나19 사태에 와서도 작동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가 자격증 없는 활동지원사에게도 수당을 지급한다는 긴급대책을 발표했지만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나설 사람은 없었다. 장애인단체 활동가가 직접 방호복을 입고 활동 지원에 나섰을 때에야 그의 고통에도 조금 숨통이 트였다.
17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성명을 내어 “현재까지 전국에서 확진된 발달장애인은 5명(가족은 7명), 자가격리된 발달장애인은 모두 18명(가족은 20명)이지만 정부 지원은 전혀 없어 오직 가족이 감당해야 한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턱거리마을은 의료공백 지대였다.
마을에 마스크 살 약국 하나가 없었다. 건강 이상을 문의할 보건소도 없었다. 마을이 쇠락하면서 세개 있던 약국은 차례로 철수했다. 마지막 약국이 마을을 떠난 지 15년이 지났다.
마스크 살 곳 없는 아이들과 홀몸노인들이 마스크 없이 지냈다. 마스크 5부제가 시행 중이었지만 아이들에겐 마스크 파는 시내까지 나가 줄 서서 마스크를 대리 구입할 부모가 없었고, 부모가 있어도 지방에 있었고, 같이 살아도 하루 노동이 다급해 마스크 살 시간이 없었다. 홀몸노인들은 마스크를 사러 갈 기력이 없는데다 시내로 나가는 버스는 한시간에 두번밖에 다니지 않았다. 시청에서 지역아동센터에 마스크를 지급했으나 아이들이 사용하기엔 양이 부족했다. 센터 선생님들은 한 대형은행에 신청해 받은 지원금(15만원)으로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구입했다.
아프리카 기니 출신 난민신청자인 하디야는 대구 지역에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달 중순부터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대구/옥기원 기자
■ 바이러스는 이 세계의 서열을 확인시켰다
‘등록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재난은 더욱 가혹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등에겐 마스크 살 자격(주민등록번호나 외국인등록번호가 확인돼야 가능)도 주어지지 않았다. 바이러스가 자격을 따져 공격하진 않았지만 바이러스를 방어할 마스크는 자격이 있어야 주어졌다.
대구의 난민 신청자 하디야(31)는 세 아이에게 먹일 밥을 걱정했다. 그와 남편은 5년 전 아프리카 기니에서 왔다. 반정부 시위 참여 뒤 탄압을 피해 한국에 들어왔다. 부부는 3차례 난민 심사를 받았으나 인정을 거부당했다. 체류 기간은 남아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에게 마스크를 구입할 자격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코로나19 때문에 남편은 식당의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할 수 없었다.
“손님이 (외국인을) 싫어한다고 코로나 끝나고 오래요. 우리 애들 밥 먹여야 하는데.”
엄마의 걱정을 아는지 세 아이가 방 안을 뛰어다녔다. 국제아동단체의 지원을 받아 아이들을 집 앞 어린이집에 보내왔으나 코로나 확산으로 어린이집이 문을 닫았다. 다섯 식구가 한달째 집에 묶여 있었다. ‘마스크 없는 외국인’이 돼 밖에 돌아다니면 공격적인 시선들을 견뎌야 한다. 건강보험을 갖지 못한 그들은 치료비가 없어 아파서도 안 된다. 하디야는 오는 7월 넷째 출산을 앞두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숨겨지고 감춰지기 때문이었다. 바이러스는 가난이 숨긴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을 감춘 사회 앞에 끄집어냈다. 19가 종식되더라도 20이 되고 21로 이름을 바꾸며 코로나는 다시 올 수 있었다. 그때마다 바이러스는 이 사회가 빠뜨린 사람들의 주소로 정확하게 찾아갈 것이었다.
대구/옥기원 기자, 동두천/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텔레그램 성범죄 처벌 청원, 누가 ‘누더기’로 만들었나
1호 국회 청원 때 10만명 동의
국회 ‘딥페이크 처벌’ 추가 그쳐
법사위 회의록 안이함 드러내
김인겸 “n번방 사건 저도 잘 몰라”
김도읍 “청원한다고 다 법 만드나”
송기헌 “일기장 그림까지 처벌?”
국민동원청원 누리집에 올라온 텔레그램 디지털범죄 해결 청원. 국민동원청원 누리집 갈무리
텔레그램 등을 통한 성착취 범죄에 대한 분노 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정작 이를 처벌할 법안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지난 1월 1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직접 국회 국민동의청원 시스템에 올라온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텔레그램 성범죄 해결 청원)에 동의했지만, 정작 국회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조금 손보는 수준에 그쳤다.
지난 1월10일부터 실시된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30일 동안 10만명의 국민이 동의하면 국회 본회의에 보고되고 관할 상임위원회에서 논의하도록 하는 제도다. 텔레그램 성범죄 해결 청원은 국민동의청원 시스템에서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첫 국민 청원이었는데, 텔레그램 성범죄 해결을 위해 국제 공조 수사와 수사기관의 디지털 성범죄 전담부서 신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엄격한 양형기준 설정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국회는 지난 5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일부 개정해 연예인이나 지인의 사진을 합성해 불법영상물을 만드는 ‘딥페이크’ 처벌 규정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실제 지난 3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국회의원 및 관계자들의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안일한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딥페이크 처벌 규정 신설과 관련해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은 “소위 ‘엔(n)번방 사건’이라는 (것)은, 저도 잘은 모른다”며 “자기는 (딥페이크 영상물을)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도읍 미래통합당 의원은 “청원한다고 법 다 만듭니까”라며 “굳이 새로운 구성요건을 만들 필요가 있나. 법정형 가중처벌 양형은 법원에서 알아서 해도 되는데 굳이 이런 구성요건이 필요하나?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일기장에 혼자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처벌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발언했다.
전문가들은 무한 유포 및 재생산이 가능하고 완벽한 삭제가 사실상 불가능한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을 반영한 법률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령 성착취물 공유나 시청 자체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에 피해자가 성인인 경우 협박죄나 강요죄 등으로 에둘러 처벌할 수밖에 없는 불분명한 현행 법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취지다. 김현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변호사)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성착취물은 구체적인 피해자가 있기 때문에 이를 유통하는 경우 더 강력한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며 “디지털 성범죄를 따로 조율하는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입법부뿐 아니라 사법부도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양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위원회 오선희 변호사는 “법원은 그동안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관대한 처벌을 해왔다. 각종 범죄의 선고 기준을 정하는 대법원 양형위에서 우리 사회 가치관에 반하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실형 선고 원칙을 마련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 영상…“알바 모집” 속아 ‘노예’가 되었다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① 피해자 심층 인터뷰
철벽보안 악용한 계정 ‘박사’
돈 급한 여성들 ‘알바’로 유인
개인정보 빼내 나체사진 등 요구
‘노예녀’라 칭하며 대화방에 유포
피해자 20명 넘어…경찰 수사 중
텔레그램. 러시아의 두로프 형제가 개발하고, 독일 엘엘피(LLP)사가 운영 중인 오픈 소스 인터넷 모바일 메신저다. 서버 코드 암호를 깨는 사람에게 상금을 주는 해킹 대회를 열 정도로 철벽 보안을 자부한다. 국내에선 2014년 ‘카카오톡 사찰 사건’ 때 벌어진 ‘사이버 망명’ 사태를 통해 유명해졌다
그런 텔레그램이 여성과 아동·청소년에게 성착취의 고통을 안기고 있다. 강력한 보안은 뜻밖에도 성착취물마저 비밀스레 유통할 수 있는 세계를 보장했다. 텔레그램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유통 사실을 최초 고발(▶관련 기사 : [단독] 청소년 ‘텔레그램 비밀방’에 불법 성착취 영상 활개)한 <한겨레>가 피해자들을 심층 인터뷰하고 가해자 주변을 추적해 텔레그램 성착취의 세계를 탐사했다.
20대 초반인 최지수(가명)는 3년 전 수중에 돈 한 푼 없이 타지 생활을 시작했다. 은행 대출로 간신히 살 곳을 구하고 생활비를 마련했지만, 대출 이자와 밀린 월세가 감당할 수 없이 불어났다. 대부업체를 찾아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트위터에 올라온 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홍보 아르바이트를 하면 300만~600만원을 한 번에 지급한다는 구인글이었다. 이 글에는 텔레그램 아이디가 함께 적혀 있었다. 최지수는 곧바로 텔레그램에 가입하고 ‘알바 구인글 보고 연락드렸습니다’라고 말을 걸었다.
곧 ‘박사’라는 계정이 응답해왔다. 박사는 최지수를 비밀 대화방으로 불렀고, 텔레그램 전화하기 기능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제안은 간단했다. “홍보 알바와 ‘스폰 알바’가 있다. 스폰 알바는 돈이 바로 지급된다”고 했다. ‘스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은 없었다. 최지수는 박사가 연결해주는 ‘매칭남’과 만나서 식사하고 시간을 보내는 일 정도로 생각했다. 박사는 사무적인 말투였지만, 호감을 주는 20대 후반~30대 초반 정도의 젊은 남성 목소리였다. 전화기 너머로 여성 직원들이 마치 콜센터에서 상담하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박사는 “우리 회사는 인증된 회사”라며 최지수를 안심시켰다.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있으니, 돈을 받기 전까지는 매칭남에게 개인정보를 절대 보내지 마라”는 걱정 섞인 당부까지 했다.
이후 박사는 선지급을 위해 필요하다며 최지수에게 얼굴과 주민등록증이 함께 담긴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했다. 계좌번호와 연락처도 요구했다. ‘대출받을 때도 주민등록증 사진은 자주 찍었으니까 이상할 건 없다’고 최지수는 생각했다. 최지수의 첫번째 착각이었다. 원하는 걸 모두 받은 박사는 “남성이 매칭됐다”며 “곧 연락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매칭남’은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으로 말을 걸어왔다. 계정 이름은 ‘폭스밤’이었다. 폭스밤은 최지수를 상대로 ‘기괴한 면접’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꼭 새끼손가락을 펴고 찍으라며 얼굴 사진 몇장을 요구하더니, 급기야 나체 사진을 요구했다. 몸과 얼굴이 같이 나오면 5장, 얼굴이 안 나오면 10장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낄 무렵, 갑자기 박사가 통장 사진을 보내왔다. “지금 우리 통장에 매칭남이 160만원을 보냈다. 사진을 보내면 바로 이 돈을 입금해주겠다”고 했다. 망설이던 최지수는 나체 사진과 가슴 사진 7장을 폭스밤에게 보냈다. 폭스밤과의 텔레그램 대화방은 대화 내용이 3초 뒤면 자동으로 삭제되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비밀 대화방이라 금세 지워지니 그 사람만 잠깐 보고 마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최지수의 두번째 착각이었다.
폭스밤의 요구는 점점 더 엽기적으로 변했다. 속옷을 머리에 뒤집어쓴 사진을 보내라고 했다. 최지수가 머뭇거릴 때마다 어찌 알았는지 박사가 등장했다. “이제 마지막이다. 이것만 하면 돈이 계좌로 바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좋지 않은 예감과 돈에 대한 간절함 사이에서 고민하던 최지수가 용기를 내어 폭스밤에게 “더 이상 못하겠다”고 말하자, 이번에는 박사가 텔레그램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목소리는 이미 차갑고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씨X, 좋게좋게 하자. 얼른 영상 보내. 돈 안 받고 싶냐?”
이후 박사는 최지수에게 나체 상태로 카메라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비는 영상을 찍으라고 요구했다. 최지수는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박사가 사진을 보내왔다. 최지수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친구 목록이었다. “내가 네 친구들 연락처 다 땄다. 이제 전송 버튼만 누르면 너의 나체 사진이 친구들한테 갈 것”이라고 했다. 발아래가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짧은 순간, 홀린 것처럼 어떤 단계들이 흘러가더니 순식간에 모든 것이 파괴됐다. 최지수는 곧바로 비밀 대화방에서 나온 뒤 텔레그램을 삭제했다. 텔레그램을 지우면 악몽 같던 그 순간도 지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번째 착각이었다. 지독한 현실이 닥쳐오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지금 텔레그램방에서 지수씨의 사진이 유포되고 있으니 더 이상 박사에게 사진을 보내지 말라’는 메시지를 다른 에스엔에스 계정을 통해 보내왔다. 최지수는 이미 박사가 개설한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 여러 곳에서 ‘텔레그램 단 하나의 별, 박사의 노예 ○○녀’로 불리고 있었다. 박사가 만든 방에서 수천명이 최지수의 나체 사진을 ‘관전’했다. 박사가 최지수를 자신의 노예라고 소개하면, 관전자들은 키득대거나 최지수의 몸을 품평하며 성착취 발언을 쏟아냈다. 최지수는 전화번호를 바꾼 뒤 살던 집에서도 나와 친구 집으로 피신해야 했다.
최지수의 피해는 박사가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을 통해 여성을 성착취하는 수법의 전형이다. <한겨레>는 이런 방식으로 박사에게 성착취 피해를 당한 여성이 최소 20명 이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피해 여성 중에는 청소년도 있었다. 박사는 피해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 동영상을 제작한 뒤 관전자들이 있는 별도의 텔레그램 대화방에 이를 유포했다. 박사가 유포한 영상 속 여성들은 자신의 몸 위에 ‘노예’, ‘박사’ 등의 글씨를 쓴 뒤 나체로 사진을 올리거나 몸에 상처를 낸 뒤 사진을 찍었고, 나체로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등 엽기적인 행위를 하기도 했다. 관전자들은 성착취 피해 여성들에게 점점 더 자극적이고 가학적인 영상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이 요구를 이행해내는 박사를 왕처럼 모시고 추종했다.
역시 자신을 20대 여성이라고 소개한 이은혜(가명)도 박사가 만든 기괴한 면접의 피해자다. 이은혜도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극심한 생활고를 겪으며 급전이 필요하게 됐고, 최지수처럼 트위터에서 ‘스폰 알바’를 구한다는 글을 보고 박사와 텔레그램으로 연락했다. 이은혜도 역시 남성을 만나 간단히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박사는 이은혜와도 신뢰 관계를 형성해 얼굴과 주민등록증이 함께 담긴 사진 등 개인정보를 확보했다. 그리고는 돌변해 나체 사진과 눈을 뒤집어 까는 표정의 얼굴 사진, 나체 상태로 몸을 흔드는 영상 등을 찍어 올리라고 요구했다.
이은혜는 2주 뒤 자신의 사진과 영상들이 박사가 운영하는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에서 유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비밀 대화방에는 이은혜의 집 주소까지 공개됐다. 관전자들은 “저 집으로 찾아가서 같이 ‘돌림X’하실 분 구합니다”라며 성폭행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은혜도 텔레그램을 탈퇴하고 전화번호도 바꿨다. 그래도 불안함이 가시지 않아 휴대전화에 112를 저장해뒀다. 우울증이 심해져 약을 복용하고 있다.
<한겨레>가 확인한 박사의 범죄는 철저히 ‘협박’을 기반으로 한다. 박사는 피해 여성의 신상 정보를 검색해 그 여성의 에스엔에스 계정을 찾아내고, 가족이나 친구 등 지인들의 연락처를 알아낸다. 이 작업이 완료된 뒤에야 ‘매칭남’을 소개하고 ‘면접’을 진행하며 요구하는 사진의 수위를 높여간다. 피해 여성이 거부 의사를 밝히면 협박이 시작된다. “성매매하려 했다고 가족들에게 알리겠다”, “내가 네 친구들, 가족들의 이름과 연락처, 주소를 다 안다”는 겁박이다. 돌변한 박사의 태도에 넋이 나가면, 은밀한 탈출 방법을 제안한다. “돈이 들어왔다. 이제 마지막이다. 이것만 찍으면 돈이 입금될 것”이라는 식이다. 그래도 거부하면 “너의 집 앞으로 내 직원들을 보내서 죽일 것”이라는 살해 위협까지 한다. 끝내 돈은 입금하지 않고, 여성이 모든 걸 포기한 채 박사의 요구에 순종해야만 끝을 볼 수 있다. 피해 여성은 대화 기록이 이미 사라졌기 때문에 협박과 강요의 증거를 모을 수도 없다.
박사는 이렇게 만들어낸 성착취 영상을 텔레그램 대화방에 올리면서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이 넘는 ‘입장료’를 내걸고 관람자를 유치한다. 박사의 비밀 대화방에선 ‘모든 거래는 비트코인으로만 한다’고 명시돼 있다. 피해자 유인부터 사진과 영상 유포, 거래까지 모두 흔적을 남기지 않는 은밀한 방법이다.
박사는 성착취 피해 여성들을 자신의 ‘노예’라고 부른다. 박사는 피해 여성들의 개인정보와 사진, 영상을 묶은 뒤 이들과 전혀 상관없는 스토리를 창조해 유포한다. 피해 여성들에게 사진과 영상을 찍을 때 새끼손가락을 들게 한 건, 이 성착취물이 박사의 ‘작품’임을 알리는 동시에 피해 여성들이 자신의 ‘노예’ 리스트에 트로피처럼 소장되어 있음을 알리는 ‘워터마크’다. 몸에 ‘박사’, ‘나는 노예입니다’ 등의 글씨를 적고 사진이나 영상을 찍게 하는 것도 피해 여성들을 소유물로 만들고자 하는 일종의 마킹이다. 박사는 1만명이 넘게 들어와 있는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에서 어떻게 여성을 착취해 영상을 찍게 만들었는지를 다룬 소설 형식의 글을 써내려가기도 했다. 관람자들은 이 소설을 읽고 “제발 노예녀 영상을 더 풀어달라”며 환호한다.
인격 살해와 다름없는 성착취물이 유통되는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은 올해 초부터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경찰은 피해 여성 일부의 신고를 접수해 박사의 범죄와 이에 동조한 가해자들을 수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박사는 반드시 잡을 것”이라며 “검거를 위해 최대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텔레그램의 철벽 보안 시스템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수시로 삭제하는 박사와 가해자들의 증거 인멸로 인해 추적이 쉽지 않다. 이를 아는지 이들은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도 불법촬영물과 아동·청소년 성착취 동영상을 버젓이 유통했다.
“제가 본 텔레그램 방에는 저보다 더 어린 피해자들도 있었어요. 그 피해자들이 일단 희망을 잃지 않고 잘 버텼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박사란 사람 꼭 검거해서 합당한 처벌을 받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꼭 좀 잡아주세요, 제발.” 이은혜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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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언론 등 쓰는 ‘외국어 표현’ 국민 10명당 4명은 모른다
문체부 한글문화연대 외국어표현 이해도 조사 발표
응답자 60%이상 이해하는 단어는 3분의1도 못미쳐
세대 간 이해도 격차가 많이 나는 주요 외국어 표현
정부와 언론 등이 쓰는 외국용어들을 국민 10명당 4명은 알지 못하며, 6명 이상 이해하는 단어는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와 함께 지난 1~2월 나라 안 16개 지역의 14~79세 국민 1만1074명에게 정부 자료, 언론 기사 등에 사용된 외국어 표현 3500개에 대한 이해도를 조사한 결과를 23일 발표했다.
먼저 예시한 외국어 표현들에 대해 국민이 얼마나 이해하는지 파악해보니, 조사 단어 중 응답자의 60% 이상이 이해하는 단어는 30.8%(1080개)에 그쳤다. 세대별로는 60대 이하에서 60%이상 이해하는 단어는 1378개(39.4%)인 데 비해, 70살 이상 응답자의 60% 이상이 이해하는 단어는 242개(6.9%)로 훨씬 낮았다.
조사한 외국어 표현들에 대한 국민 이해도를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전체 평균은 61.8점이었다. 60대 이하는 66.9점이었으나 70살 이상은 28.4점으로 세대 간 외국용어에 대한 이해도 차이가 도드라졌다. ‘큐아르(QR)코드’, ‘팝업창’, ‘키워드’, ‘모바일앱’, ‘패스워드’, ‘스쿨존’, ‘노키즈존’등 346개 표현에 대해 이해하기 쉽다고 답한 비율은 60대 이하와 70세 이상 사이에서 단어마다 50% 이상 격차가 났다.
특히 정보통신 용어인 ‘큐아르(QR)코드’의 경우 70대 이상 조사대상자들 중에서 이해한다는 응답이 전무했고, ‘루저, 리워드, 스트리밍, 리스펙트, 스킬, 메디컬, 3D’ 등 1245개 표현은 70세 이상 응답자의 10% 이하만 이해하기 쉽다고 응답했다.‘청장년 세대에서는 일상어로 쓰이는 외국용어들을 70대 이상에서는 대부분 알아보고 쓰지 못하는 셈이다. 이와함께 조사에 응한 국민의 74%는 일상에서 외국어 표현을 많이 쓴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70세 이상 응답자 이해도가 10% 이하인 주요 외국어 표현
코로나19 관련 쉬운 우리말 대체어
외국어 표현 사용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는 비율은 36.1%에 불과했고, 연령대가 높을수록 외국어 표현 사용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문체부 국어정책과 쪽은 “이번 조사결과는 어려운 외국어 새말이 많이 들어와 신문맹률이 높아지고 소통이 어려워지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코로나 19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의 여러 외래 용어들을 우리말로 바꾸는 등 대중에게 쉬운 우리말 대체어를 널리 알리고 인식시키려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번 조사 분석결과는 문체부 누리집(www.mcst.go.kr)과 ‘쉬운 우리말을 쓰자!’ 누리집(www.plainkorean.kr)에서 검색할 수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뜨거운 감자된 '9월 학기제'…"사회적 비용 문제"
[앵커]코로나19 여파로 개학이 미뤄지며 '9월 학기제 도입'이 뜨거운 감자가 됐습니다.
충분한 방역기간을 확보하는 동시에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처럼 9월에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자는 주장인데,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 신새롬 기자가 짚어봅니다.
[기자]3월이 아닌, 9월에 새 학년을 시작하는 '가을 학기제'
미국과 중국, 유럽 등 대부분의 나라는 긴 여름방학을 보낸 뒤, 새 학년을 시작합니다. OECD 국가 중 계절이 반대인 호주를 제외하면, 일본과 한국만 봄에 학기를 시작하는 겁니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코로나19로 학교 개학이 미뤄진 만큼, 9월 학기제 도입을 위한 기회로 삼자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충분한 방역기간을 확보하는 동시에 세계 주요국과 학사 일정을 맞추자는 겁니다.
실제 9월 학기제는 앞서 세 차례나 시행이 검토됐지만, 사회적 혼란과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이유로 무산됐습니다. 수능 등 입시 일정 변경으로 인한 혼란은 물론, 기업 채용 등에도 파장이 불가피합니다.
<송기창 /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 "학교에서 등록금 결손이 발생하는 문제가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취업시장에 인력이 한 학기 공급이 늦어지는 문제가 있잖아요."
또 2월 학사공백 해소 등 9월 학기제 도입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사회 전체 시간표를 6개월 뒤로 미루는 방식을 공론화 과정없이 도입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경회 / 성신여대 교수> "(9월 학기제는) 학제 개편하고 같이 논의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준비를 해야하죠. 이 코로나19로 갑자기 하면 굉장히 혼란이 생기고…"
9월 학기제에 대한 장기적 논의를 시작하더라도, 당장은 코로나19로 인한 학습 공백을 메우는 데 더 집중해야 할 시기라는 지적입니다.
연합뉴스TV 신새롬입니다. (romi@yna.co.kr)
미녀를 붙잡은 듀공
MBC 여론조사] 재난 긴급생활비 찬성 69.5%…"개학 더 늦추자" 우세
“박근혜 뜻 따르자” 후보자 기고 실은 언론사 제재
김성주 예비후보 고발 사실 전한 프레시안에 “반론 없다” 주의 제재
후보자가 선거 기간 선거에 대한 기고를 할 수 없음에도 이를 위반한 언론사들이 제재를 받았다.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는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심의 결과를 공개하고 선거와 관련된 예비후보자의 기고를 올린 언론사에 제재 조치했다고 밝혔다.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기구로 인터넷 언론의 선거 보도를 심의한다.
김천인터넷뉴스, 다경뉴스, 고령인터넷뉴스, 미디어유스, 강북인터넷뉴스, 인터넷핫뉴스 등 6개 매체는 “박근혜 전 대통령 뜻 따라 보수대통합으로 문재인 정권 끝장냅시다”라는 제목의 이달희 미래통합당 예비후보의 글을 실었다.
이달희 예비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님이 차디찬 감옥에서 천일만에 보내신 절절한 나라사랑의 친필서신은 미래통합당 예비후보의 한 사람으로 저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며 “그분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모든 보수세력들은 미래통합당을 중심으로 조건 없이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고령인터넷뉴스 화면 갈무리.
그러면서 이달희 예비후보는 “벼랑 끝 경제, 뒤틀린 국방·외교, 무너진 법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이번 4.15 총선에서 문재인 정권 끝장내야 한다”며 “사대주의 굴욕외교로 우한폐렴을 초기에 차단하지 못하고 전 국민을 코로나19의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 문재인 정권을 투표로 심판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터넷선거보도심의 규정은 선거일 9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 유리 또는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후보자 명의의 글을 싣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단 후보자의 선거와 무관한 내용의 기고는 가능하다.
같은 글을 올렸지만 매체에 따라 제재 수위는 달랐다. 김천인터넷뉴스, 다경뉴스, 고령인터넷뉴스, 미디어유스가 주의 제재를 받은 반면 강북인터넷뉴스와 인터넷핫뉴스는 공정보도 협조요청을 받았다. 공정보도 협조요청은 일종의 권고 조치이며 주의는 제재에 해당한다.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후보자의 글을 게재했더라도 경쟁 후보자 관련 소식을 함께 다룬 언론에는 공정보도 협조요청을 결정했다. 반면 이달희 후보자에 대한 소식만 보도한 매체에는 주의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4일 프레시안 기사 “‘김성주’ 또 고발당했다...국민연금공단 전산관련사업 의혹 고발장 접수”는 김성주 예비후보측이 신청해 심의한 결과 ‘주의’ 제재를 받았다. 시민단체가 김성주 예비후보의 국민연금공단 재직시절 직권남용 등 의혹을 고발했다는 내용이다. 김성주 예비후보자는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고 프레시안을 ‘일부 언론’으로 지칭하며 비판했다.
▲ 김성주 예비후보 보도자료 일부. 김성주 예비후보는 관련 의혹을 부인하며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는 “후보자의 평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보도하면서 당사자의 반론없이 특정 시민단체의 일방적 주장만을 인용하여 보도한 것으로, 선거 시기 유권자를 오도하거나 신청인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제재 이유를 밝혔다. 통상적으로 언론사들이 고발 사실을 전하는 기사를 쓰는데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는 ‘반론’을 받지 않았다고 제재한 것이다.
이어 프레시안은 6일 “‘고발당해 고발당했다고도 못쓰면’...홍길동 같은 기자 될 순 없다” 칼럼을 통해 김성주 예비후보를 비판했다. 사안의 진위와 별개로 고발당했다는 사실을 전한 기사를 허위로 간주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다. 김성주 예비후보측은 이 칼럼도 심의 신청했으나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는 ‘기각’했다.
한편 매일경제, 한겨레, 한국경제, 뉴시스, 연합뉴스 등 14개 언론사는 TBS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후보자가 표본오차 범위 이내임에도 ‘밀렸다’ ‘밀어냈다’ 등 단정적인 제목을 써 공정보도 협조요청을 받았다. 오차범위 내일 때는 우열을 표기해선 안 된다.
금준경 기자 teenkjk@mediatoday.co.kr
[조동(朝東) 100년] ⑨ 전두환 찬양과 유착으로 '고속 성장'
박정희 독재정권의 언론 탄압에 저항한 젊은 언론인들을 몰아냈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1979년 10월 26일 유신독재가 끝나는 순간에도 조선일보는 박정희를 미화하고 찬양했다.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찬탈한 이후, 조선과 동아는 독재자 전두환을 향한 낯부끄러운 찬양 기사를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충성의 대상이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광주시민, ‘폭도’·‘극렬분자’로 표현…계엄군 ‘자제’, ‘노고’ 칭찬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조선과 동아일보는 광주 시민들을 폭도와 극렬분자, 난동자, 불순분자로 매도했다.
▲ 1980년 5월 25일 조선일보.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시민을 ‘난동자’로 표현했다.
▲ 1980년 5월 26일 동아일보는 계엄군이 광주 시민들을 ‘불순분자’, ‘극렬분자’라고 발표한 것을 그대로 옮겨적었다.
당시 조선일보에서는 사회부장 김대중 씨(현 조선일보 고문)가 광주 현장을 취재했다. 공수부대의 ‘전남도청 학살’ 이틀 전인 5월 25일, 김대중 씨는 현장 르포 기사를 낸다. ‘바리케이드 너머 텅빈 거리엔 불안감만…무정부 상태 광주 1주’라는 제목이었다. 김 씨는 기사에서 광주시민을 ‘총을 든 난동자’로 묘사했다.
▲ 1980년 5월 25일 조선일보에 실린 ‘무정부 상태 광주 1주’ 기사. 광주 시민을 ‘총을 든 난동자’라고 묘사했다.
5월 27일,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전남도청에 있는 시민들을 무력 진압했다. 전남도청이 아직 피로 물들어 있던 5월 28일, 조선일보는 이런 사설을 냈다.
조선 사주 방우영...전두환의 ‘국보위’ 참여
1980년 5월 31일 전두환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이하 국보위)’를 출범시킨다. 당시 조선일보 사장이던 방우영(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삼촌)은 국보위 입법위원으로 참여한다. 전국지 규모의 언론사 사주로선 유일했다.
▲ 008년 1월 22일 열린 방우영의 회고록 출판기념회에서 악수하는 전두환과 방우영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언론사 사주가 국보위에 참여한다는 사실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조선일보가 신군부와 밀착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당시 정당성이 부족했던 쿠데타 정권은 국보위에 언론사 사주를 포함시켜 정당성을 부여받으려고 했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전두환 신군부 세력 입장에서 조선일보는 굉장히 고마운 신문사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두환 ‘구국의 지도자’…매년 새해 첫날 1면 전두환 사진 등장
전두환이 대장으로 전역하고 대통령 자리를 꿰찰 무렵, 조선 동아 두 신문은 노골적인 찬양 기사를 냈다. 전두환의 전역식 하루 뒤인 1980년 8월 23일 두 신문이 내놓은 기사다. 각각 ‘인간 전두환’, ‘새 시대가 바라는 새 지도자상’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 1980년 8월 23일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 ‘인간 전두환’. 전두환을 찬양하는 내용이 가득하다.
▲ 1980년 8월 23일 동아일보 기사. 제목은 ‘새 시대가 바라는 새 지도자상’이다.
전두환이 대통령 자리에 오른 다음날, 두 신문은 아래와 같은 전두환 기사로 지면을 채웠다.
이후 두 신문은 새해 첫날 신문 1면에 전두환 또는 전두환 부부·가족 사진을 신년사와 함께 크게 실었다.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있었던 마지막 해인 1987년까지 한해도 빠뜨리지 않았다.
▲ 1981년 1월 1일 조선일보 1면. 전두환 가족의 사진과 함께 신년사가 실렸다.
▲ 1982년 1월 1일 동아일보 1면. 전두환 부부 사진을 올렸다.
▲ 1986년 1월 1일 동아일보 1면. 한복을 입은 전두환의 사진을 실었다.
‘민주화 목소리’ 외면…좌경·용공으로 ‘매도’
반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과 대학생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수백·수천 명이 시위에 나섰지만 두 신문은 보도하지 않거나, ‘1단 기사’로 처리하기 일쑤였다. 또 80년 5월 광주 시민들을 ‘폭도’, ‘난동자’로 매도했듯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대학생들을 ‘좌경’, ‘용공’, ‘불순세력’, ‘폭력세력’으로 몰았다.
조선·동아, 전두환 정권 거치면서 매출액 급등
전두환 정권을 거치는 동안 조선과 동아 두 신문은 거대 신문사로 성장했다. 2003년 강준만 교수가 펴낸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 편』에 따르면, 1980년 동아일보 매출액은 265억 원이었지만 1988년에는 885억 원으로 증가했다. 조선일보 매출액은 1980년 161억 원에서 1988년에는 914억 원으로 5배 넘게 뛰었다.
방우영 “5공화국과 유착해 소리(小利)를 택한 일은 한푼도 없다”
1988년 언론청문회가 열렸을 때, 전두환 정권과 두 신문의 유착과 특혜를 따져 묻는 국회의원들의 질의가 이어졌다. 당시 동아일보 회장 김상만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고, 당시 조선일보 사장 방우영은 특혜 사실을 부인하며 “정부의 일반적인 선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 방우영 사장은 “본 증인 또 조선일보사는 5공과 유착해서 소리(小利, 작은 이익)를 택한 일이 한푼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개각 발표가 임박하면, 언론사마다 누가 장관이 될지 예측하는 이른바 ‘하마평(下馬評) 기사’를 쏟아낸다. 그런데 80년대 조선일보의 하마평 기사 적중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 비결은 뭘까? 홍주환/ 프레시안
코로나19 위기에 집값거품 꺼지나
심리적 지표인 ‘호가’ 이미 하락
2~3개월 후 주택시장 시련기 시작
“2008년보다 더 심하게 추락할 것”
세계경제가 코로나19 패닉에 빠지면서 집값폭락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재 주택시장은 7년간의 상승세를 이어온데다, 거품이 많이 낀 상태다. 주택시장이 붕괴되면 그만큼 충격도 클 수밖에 없다.
2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단지마다 견고하게 유지되던 ‘호가’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송파구 헬리오시티 전용 84㎡는 17억원이던 호가가 16억5000만원으로 떨어졌다. 전용 99㎡는 19억5000만원에서 18억원으로 하락했다. 강동구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 전용 97㎡도 15억5000만→14억5000만원으로 낮아졌다. 호가 하락은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진다는 의미다.
이미 아파트 가격하락세는 시작됐다. 이달 들어 서울 강남아파트 값이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섰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강남(-0.01%)·서초(-0.03%)·송파(-0.08%) 등 강남3구 아파트값이 하락세를 이어갔다. 전주에는 지난해 3월말 이후 약 1년 만에 강남4구(강동구 포함)가 일제히 하락으로 돌아섰다. 정부 공식통계인 한국감정원 자료도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이 지난해 7월 이후 8개월여 만에 상승세를 멈춘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강남지역에서 시세보다 수억원 낮은 매물이 등장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주택 실거래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1억원에 거래된 송파구 잠실리센츠(전용 84㎡)는 올해 3월 16억원에 매매가 이뤄졌다. 3개월 전 26억8000만원에 거래됐던 서초구 반포리체(84㎡)도 지난달 21억 7000만원에 팔렸다.
주택시장 침체 가능성은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코로나19위기가 장기회될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정부의 강력한 규제가 시장을 더욱 옥죄고 있다. 보유세 강화(공시가격 및 종부세율 인상), 대출규제 강화(15억 초과 LTV 금지 등) 등이 속속 시행되고 있다. 유주택자 부담이 가중되고, 수요자 손발은 묶인 셈이다. 경제불황에 대한 우려로 개인과 기업이 현금보유를 늘리는 것도 주택시장엔 악재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앞으로 2~3개월 후부터 서울 주택시장에 시련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송인호 KDI 연구위원은 “통상 경제침체 여파는 금융에 먼저 오고 부동산은 6개월 가량 뒤따른다”며 “이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만 홀로 상승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코로나19가 몰고올 충격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심할 것이란 분석이 많다. 2008년 주택시장은 된서리를 맞았다. 강남 아파트의 대명사격인 은마아파트가 좋은 예다. 당시 5월 12억6500만원하던 대치동 은마아파트(84㎡) 실거래가가 2013년 1월엔 8억3000만원(34.4%)까지 낮아졌다. 은마아파트는 금융위기로 저점을 찍은 뒤 7년간 상승곡선을 탔다. 그러나 코로나19위기로 2008년보다 더 심한 추락이 예고되고 있다.
[관련기사]
▶ [은마아파트 보면 강남집값 보인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약 40% 하락
김병국 기자 bgkim@naeil.com
코로나19가 드러낸 ‘약한 고리’
재난은 약자들에게 가혹하다. 택배 노동자는 물량에 치여도 일을 멈출 수 없고, 플랫폼 노동자는 일거리를 잡을 수 없다. 간병인, 콜센터 직원 등 가장 취약한 이들의 삶이 무너진다.
ⓒ시사IN 신선영 3월10일 대다수 점포가 휴점에 들어간 대구 서문시장의 한산한 풍경.
쿠팡맨이 죽었다. 46세 김 아무개씨. 3월12일 새벽 2시께, 경기도 안산의 한 빌라 4층에서 5층 사이 계단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계단을 오르내리며 10박스를 몇 번에 걸쳐 배송하던 중이었다. 오전 1시께 김씨의 배송이 멈추자 1시30분쯤부터 동료 쿠팡맨이 그를 찾아 나섰다. 30분 뒤에 발견된 김씨는 심폐소생술에도 깨어나지 못했다. 경찰은 사인이 허혈성 심장질환이라고 했다.
아이가 둘이다. 다른 직장에 다니다 퇴직한 뒤 공백 기간 쿠팡에서 일하려 했다. 3개월 수습 계약직으로 고용되어 2월14~15일 본사 교육을 받고, 2월16~17일 동행 배송에 나갔다. 2월18일부터 단독 배송에 투입됐다. 밤 10시에 출근해 오전 7시까지 새벽 배송을 맡았다. 김씨가 속한 야간조는 1차 배송을 새벽 3시까지 마친 뒤 2차 배송을 오전 7시까지 끝내야 했다.
김씨가 배송을 시작한 2월18일은 코로나19가 신천지 대구교회를 중심으로 급속히 퍼져나가기 시작한 때다. 김씨가 일했던 안산 1캠프(물류센터에서 가져온 상품을 분배하는 기지)의 한 쿠팡맨은 “코로나19가 터지고 나서는 체감상 물량이 30%는 늘어난 것 같다. 가구수가 같아도 한 집에서 여러 개, 고중량을 시키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우유나 김치, 쌀, 요플레가 무겁다”라고 말했다. 물건 1개당 무게가 21㎏ 이상이면 쿠팡맨이 직접 배송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집에서 여러 개를 시킬 때의 무게 제한이나 하루 배송 물량, 배송 가구수 등엔 제한이 없다.
숨진 김씨는 야간조 비정규직이었다. 쿠팡맨 약 7000명 중 입사 2년 미만 계약직이 80% 정도다. 계약직도 다시 ‘노멀’과 ‘라이트’로 나뉘는데, 라이트의 배송 물량은 노멀의 75% 정도다. 그만큼 급여도 적게 받는다. ‘라이트’로 입사한 수습 쿠팡맨 김씨는 9단계까지 이어지는 쿠팡의 임금테이블 ‘잡(job) 레벨’에서 맨 아래 단계다.
쿠팡이 늘어난 물량에 대처하는 방법이 쿠팡맨 채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이 자기 차량이나 도보로 로켓배송을 수행하는 ‘쿠팡플렉스’가 있기 때문이다. 건당 수수료로 돈을 번다. 이른바 ‘플랫폼 노동자’다. 쿠팡은 코로나19로 늘어난 물량에 대응하기 위해 쿠팡플렉스를 3배로 늘렸다고 설명한다.
쿠팡맨 김씨가 숨진 지 5일이 지난 3월17일 밤 11시. 그가 일하던 안산 1캠프 입구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자가용·밴·봉고차 행렬이 두 줄로 늘어서 있었다. 일찍 도착한 자가용들이 밤 10시30분부터 차례로 물건을 실으러 캠프에 들어갔다. 캠프 앞에서 대기 중이던 박성우씨(41·가명)는 쿠팡플렉스 심야배송을 시작한 지 한 달 되었다고 했다. “드라마나 영화 분장 일을 하는데, 코로나19로 작품이 계속 연기되고 다른 일도 안 잡히고 있어서 시작했다. 하루에 50~60개 배송하는데 시작한 시점에 비해 단가가 많이 떨어졌다. 1000원 넘던 개당 배송단가가 지금은 900원, 800원이다. 비닐로만 포장된 물건은 개당 단가가 750원이다.”
ⓒ시사IN 조남진 3월18일 최세욱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 사무장(가운데)이 노동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같은 캠프에서 쿠팡맨 김씨가 숨진 것을 그는 뉴스를 통해 접했다. 박씨는 “쿠팡맨하고는 별로 부딪칠 일이 없는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우리도 시간의 압박이 심하다. 오전 7시까지 못 끝내면 전화가 온다. 제시간에 못하는 사람에겐 일감을 안 준다. ‘블랙리스트’도 있다. 중간에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도 정해진 시간 내로 일을 끝내야 한다. 나도 얼마 전에 배송하다 어지러움을 느낀 적이 있다.”
레슬링·주짓수·합기도를 가르치는 체육관 관장 주동철씨(44·가명)는 쿠팡플렉스를 시작한 지 3주째다. 그 역시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고 이 일을 하게 되었다. “2주 전만 해도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많이 나오진 않았다고 하더라. 하루 100개 넘게 배송하는 ‘선입차’와 하루 100개 미만 배송하는 ‘후입차’ 모두 (코로나19) 이전에는 40~50대였다가 요즘 90대로 늘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허탕 치는 날도 생긴다. 엊그저께도 여기서 기다리다가 ‘물량이 없어서 1인당 10개도 안 돌아갈 것 같은데 어떻게 하겠냐’고 하기에 빠지겠다고 하고 돌아갔다.”
그가 운영하는 체육관은 초토화되었다. “원래는 1월에 예비소집을 하며 이벤트를 열면 2월부터 입관이 시작된다. 그렇게 1년을 산다. 하루 20~30명이 입관 문의를 해오다가 2월에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문의 자체가 없어졌다”라고 주씨는 말했다. “시청에서 연락이 와서 ‘만약에 휴관 안 하다가 확진자가 나오면 전국적으로 체육관 이름과 사업자 번호가 뿌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결국 반강제로 3월1일 휴관했다가 보름 만인 어제 다시 열었다. 60명이던 관원이 6명 남았다.”
주씨는 월 88만원인 임차료를 내지 못했다. 어제 건물주에게 임차료를 내라는 문자를 받았다.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주씨는 사범 3명의 월급을 주기 위해 적금을 깼고, 차와 금붙이를 팔았다.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도 받았다. “후배 관장이 정부에서 한다는 소상공인 대출을 신청했다. 신청자가 너무 많아 두 달 후에야 받을 수 있다더라. 오늘 당장 10만원이 없어 죽겠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겠나.” 하루 3~4시간 들여 60개 배송하면 4만2000원을 가져가는 ‘플랫폼 노동자’ 주씨는 배송 중 사망한 수습 계약직 쿠팡맨 김씨를 보는 심경이 복잡하다. “안타까운 일이긴 한데, 우리랑 물량을 나눠서 했으면 어땠을까. 쿠팡맨과 우리는 입장이 다르다. 우리는 물량이 없어서 문제다.”
간병인은 ‘투명인간’ 취급
비정규직 김씨는 물량에 치여도 일을 멈출 수 없었다. 플랫폼 노동자 주씨는 일거리를 원해도 잡을 수가 없다. 코로나19 시대에 사회적 거리두기 흐름을 타고 ‘특수’를 누린다는 배송업체 현장에는, 재난의 충격을 온몸으로 맞는 취약계층의 삶이 어지럽게 뒤틀린다.
경북 청도군 청도대남병원은 정신과 환자 103명 중 101명이 집단 감염된 장소다. 청도대남병원 정신과 폐쇄병동 환자를 돌보던 간병인 임 아무개씨는 환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된 사실을 모른 채 엿새간 간병하다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사망했다. 그의 나이 77세. 당뇨를 앓고 있었다. 경북 경산에 사는 임씨는 간병인을 구하기 힘든 청도로 아픈 몸을 끌고 일하러 왔다. 그의 시급은 4200원이었다. 최저임금법 위반이 아닐까? 간병인은 일부를 제외하면 노동자도 자영업자도 아닌 ‘특수고용 노동자’다. 개인사업자 신분이기에 최저임금 등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대구의 한 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 김정희씨(가명·64)에 따르면, 간병인은 코로나19 국면에서도 ‘투명인간’이고 ‘이방인’이다. “환자에겐 이런저런 검사와 조치를 취해주는데, 우리한테는 검사를 받아보라는 이야기도 없다. 병원에 확진자가 있어도 어떤 환자인지 간호사들은 알지만 우리는 알기 어렵다. 환자의 식사 수발을 들고 기저귀를 가는데 산재보험도 없다. 불안해서 일을 못해도 실업급여는 적용되지 않는다. 자식들이 용돈을 주며 일하지 말라고 하는 정도다. 마스크도 항의해서 겨우 1주일에 2개 지급받는다.” 김씨는 보험설계사로 10년 일할 때도 특수고용(특고) 노동자 신분이었다. 이후 간병인으로 일해온 14년 동안에도 ‘특고’ 신분이 유지되었다. 남편을 일찍 여읜 가장인 김씨는 “엄연히 노동을 하는데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한다. 후배들이라도 언젠가는 우리처럼 억울하지 않고 보람 있게 일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수원시 제공경기도 수원시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휴먼콜센터의 상담원 좌석마다 가림막을 설치했다.
코로나19 감염의 최전선에 있는 간호사와 간병인은 여성이 대부분인 직종이다. 서울에서 첫 집단감염이 일어난 구로 콜센터도 그랬다. “구로 콜센터 직원이 아프다고 했는데도 오후 6시에야 퇴근할 수 있었다. 콜센터 다니는 사람들은 왜 그랬는지 다 안다. 관리자들이 안 보내준다. 당장 한 명이 빠지면 응답률이 떨어지는데, 관리자들은 거기에 목숨을 건다.” 경기도의 한 전자회사 콜센터에서 일하는 50대 초반 5년 차 상담원 이진희씨(가명)가 말했다. 구로 콜센터 직원들은 에이스손해보험의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폭 120㎝인 책상 앞에서 모니터 하나를 두고 파티션을 사이에 둔 채 온종일 말하며 일하는 이씨도 하청업체 소속이다.
“원청에선 하청 직원에 관심이 없다. 하청 관리자들은 실적으로 평가받으니까 응답률 떨어진다고 하루에 두 명 이상 연차를 못 쓰게 한다. 몸이 아파도 그냥 천천히 전화를 받으라고 할 뿐이다. 우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나중에 내가 아프면 네가 쓰러져서 같이 119 타고 가자. 그게 아니면 안 보내주니까’ 그런다. 언젠가 한 명이 화장실 갔는데 내가 또 가려고 하니 관리자가 막았다. 그래서 ‘제가 여기서 싸게 되면 아무도 근무를 못 해요’ 하고 다녀온 적도 있다.”
신천지 예배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보면서 ‘칸막이만 없지 우리랑 똑같네’라고 생각했던 콜센터 상담원들은 구로 콜센터 집단감염에 대해 ‘터질 게 터졌다’고 생각했다. 콜센터 상담원 확진자 A씨는 상담일을 하는 동안 여의도 증권사들에 녹즙을 배달하기도 했다. A씨의 ‘투잡’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씨는 말했다. “콜센터 관리자들은 ‘카드빚이 많은 생계형 직원들을 선호한다’ 따위 얘길 공공연히 한다. 대부분 노조가 없다. 이번 사태가 끝나더라도 콜센터만은 정부에서 노조 만들라고 적극적으로 독려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직장갑질119에서 코로나19 관련 제보를 받고 있는 윤지영 변호사는 “제보의 강도가 점점 강해졌다”라고 말했다. “초반에는 ‘쉬어야 되는데 그냥 쉬긴 뭐하니까 연차를 쓰라고 하는데 이게 맞느냐’는 제보가 많았다. 그러다 무급으로 휴직하라는 제보가 이어졌고, 나중에는 회사가 힘들다면서 권고사직을 시키는 사례가 많았다.”
30대 초반의 한 대한항공 파견업체 노동자는 3월1일부터 2주째 무급휴직 상태라고 했다. 출국장 안에서 승객을 인도하고, 티켓을 확인하고, 수화물을 체크하는 국제선 출입국 업무를 해왔다. “안 그래도 일본산 불매운동 때문에 사람을 줄인단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처음엔 몇 명만 무급휴직을 받다가 점점 대상자가 많아졌다. 기간도 5일, 6일, 2주, 그러다 한 달로 늘어났다. 이제는 회사도 버틸 수 없으니 권고사직을 권유하고 있다. 입사 10~11개월 된 신입 2명은 조금 있으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1년 근무가 채워지니, ‘2주 후에 권고사직하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항공사에 고용유지지원금을 주겠다고 했지만 그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파견업체는 그 혜택을 받지 못한다. 지금은 하루하루 무급휴직에 들어가고 있는데 이제는 4월 한 달 통으로 들어갈 사람을 자원받고 있다. 그 뒤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직원들 사이에선 쿠팡맨을 해야 하느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시사IN 조남진 3월8일 인천공항 계류장에 항공기들이 줄지어 서 있다.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구직자에게도 코로나19는 닥쳐왔다. 김미정씨(가명·26)는 카페 두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 카페는 외국인 손님이 주로 오는 곳이었는데 외국인이 급감했다. ‘다른 알바가 그만두는 김에 너도 이번 주까지만 나오는 게 어떻겠느냐’는 이야길 들었다. “말은 부탁이지만 사실은 해고잖나. 그냥 알았다고 했다. 다른 카페에서는 주휴수당이 부담되니 시간을 좀 줄여서 주 15시간 미만으로 해달라고 했다. 생활비를 계속 벌어야 하는 취업준비생이어서 물류센터 알바를 구했다. 취업 준비할 동안 계획을 잡은 생활비가 안 채워지니까 스트레스 받는다. 상반기 채용도 불안정하다. 원래 3월 둘째 주에 공고가 나면 일주일 정도 시간을 주는데 이번에는 3월 말까지 자기소개서를 받더라.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모르니 이러는 것 같다. 삼성은 4월로 밀렸다.”
“국가가 평등하지 않구나”
무료 급식소는 문을 닫거나, 마스크를 쓴 노숙인에게만 개방한다. 간편식만 배송되어 2주째 빵만 먹은 노숙인도 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던 활동지원사가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장애인 자가격리자가 13명 정도 발생했다. 인력 지원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어려운데 5년 전 메르스 때도 지원체계를 요구했지만 전혀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13명 중 기어서라도 움직일 수 있는 분은 혼자 계셨고, 나머지 아주 중증의 8명 정도에게만 지역의 장애인 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이 직접 가서 지원했다. 그것도 숫자가 모자라서 한 사람이 식사 시간에 이 집 돌고 저 집 돌았다. 자가격리 지원품도 생쌀, 생양파인데 장애인들이 요리를 해먹을 수 없었다. 우리가 긴급하게 도시락을 보냈다”라고 말했다.
똑같이 때려도 약한 곳부터 부러진다. 이것은 재난의 그늘도 재난의 뒷모습도 아니다. 재난 본연의 속성이다. 1995년 시카고 폭염으로 700명 넘게 사망했을 때,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집단은 노인과 빈곤층, 1인 가구였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의 희생자는 청도대남병원의 정신과 폐쇄병동에서 나왔다. 한국 사회는 아플 때 돈 걱정 없이 쉴 수 있는 상병수당 제도조차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바이러스의 습격을 받았다. 가장 취약한 곳부터 툭툭 끊겨 나간다. 정부의 특수고용 노동자 생활안정자금 융자 지원은 산재보험의 대상이 되는 9개 직종 특수고용 노동자에 그쳤다. 실업급여 없이 무급휴직 중인 한 장애인 복지관의 특수고용 노동자 놀이치료 강사는 “국가가 평등하지 않구나, 느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보여준 한국 사회의 풍경이다./ 시사인 전혜원·나경희·김영화 기자
왜 코로나19로 아픈 사람들이 죄송해야 하나
코로나19 확진자나 의심자는 피해자임에도 죄책감에 시달린다. 확진자의 동선을 포함한 개인정보는 과도하게 공개되고 있다. 질병에 걸린 이는 자기관리에 실패했다는 낙인이 찍힌다.
ⓒ연합뉴스 월9일 서울의 한 쪽방촌 주택 빨랫줄에 세탁한 면 마스크가 걸려 있다.
“죄송합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
에서 한 말이다. 그는 왜 사과했을까. 감염돼서 죄송하고, 출근하지 못해서 죄송하며, 감염당한 이후 자신의 들숨과 날숨에 누군가 감염되어 죄송했다. 정말 죄송해야 하는 게 그들일까. 코로나19가 인류에 의한 재앙이고 결과라면, 확진자나 의심자 상태인 이들은 ‘피해자’다. 그런데 왜 그들이 죄송해야 할까.
우리는 약자들이 죄송한 사회를 살고 있다. 6년 전 ‘송파 세 모녀’가 남긴 마지막 메모도 ‘죄송합니다’로 시작해서 ‘정말 죄송합니다’로 끝났다. 만성질환을 앓는 큰딸과 부상으로 식당일을 그만둔 어머니는 노동할 기회를 얻기 힘들고 노동해도 가난한 사회의 힘겨운 생존자였으며, 터무니없이 엉망인 한국 사회복지제도의 피해자였다. 그럼에도 월세를 제 날짜에 못 내서 죄송하고, 아파서 죄송하고, 임노동 시장에 고용되지 못해서 죄송했을 것이다.
불현듯 찾아온 질병과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떠날 수 없는 가난의 굴레에서 사람들은 좌절을 느낀다. 노력하면 질병과 빈곤을 ‘예방’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사회에서, 그들의 좌절감은 실패한 자신의 책임이다. 구조의 책임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권력의 속성인데,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아픈 이들과 가난한 이들은 자기 경영과 관리의 실패자가 됐다. 실패자로서 세상에 민폐가 된 이들은 존재가 죄송해진다.
코로나19 상황에 비춰보면, 확진자나 자가격리 상태에 있는 이들이 죄책감이나 자책감에 시달린다. 손을 더 자주 씻었으면 괜찮았을까, 그때 거기 왜 갔을까, 비싸더라도 KF 94 마스크를 썼어야 했을까, 그때 재채기하는 사람 앞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아서였을까. 버스 말고 택시를 탔으면 안전했을 텐데…. 수없이 자책의 이유를 찾고 자신이 좀 더 조심했더라면 감염되지 않았을 거라며 절망한다.
코로나19 현실에서 확진자의 동선을 포함한 개인정보는 과도하게 상세히 공개되었고,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왜 굳이 그렇게 많이 돌아다녔느냐, 조심성이 너무 없었던 거 아니냐 정도의 말은 너도나도 쉽게 뱉는다. 그들을 비난하는 기저에는 감염된 것은 ‘그들의 잘못’이라는 의식이 흐르고 있다. 사실 이런 의식의 흐름은 새로울 게 없다. 우리 사회는 질병의 개인화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질병에 걸리면 다들 한마디씩 한다. 짜게 먹어서, 운동 안 해서, 술 마셔서 암·고혈압·당뇨 등이 왔다며 손쉽게 생활습관을 지적한다.
알다시피 가난하면 질병에 더 많이 걸리고, 질병에 걸리면 가난으로 미끄러진다.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이동하는 대표적 이유가 병원비이다. 인명은 재천이 아니라 소득이 결정하고, 고용이 불안정할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더 많이 아프다. 이처럼 우리는 건강 불평등 사회를 살고 있고 건강과 빈곤은 밀접하다. 하지만 건강이 개인의 생활습관과 노력으로 지킬 수 있다는 환상은 질병이 사회적 결과라는 사실을 자꾸 지운다.
이를테면 나는 마스크를 꼭 쓰고 다녀야 한다는 기저질환자에 속하지만 나도 마스크를 구하지 못했었다. 여러 약국과 인터넷도 틈틈이 들어가 보았지만, 너무 비싸고, 종일 마스크 사기에 매달려 있을 수도 없었다. 취약한 몸으로 생계유지 노동도 빠듯한데, 마스크 사는 일까지 감당할 체력도 시간도 없었다. 마스크를 안 써서 위험에 노출되는 것과 생계 노동을 못해서 빈곤이라는 위험에 더욱 노출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골라야 할까. 몸이 아픈 빈곤층 상당수가 후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코로나19라는 불확실한 위험보다 빈곤이라는 확실한 위험이 더욱 직접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내가 확진자가 되었다면, 사람들은 부주의하고 게을러서 마스크도 안 쓰고 다녔다고 비난할 것 같다. 효율성도 떨어져서 사회에 짐이 되는 몸인데, 민폐까지 끼친다며 내 아픈 몸을 조롱할 것 같다.
쪽방 주민들의 손 씻기를 보자. 찬물만 나오는 공동 세면장은 손 씻기를 불편하게 하고, 무엇보다 코로나19를 이유로 평소보다 서둘러 폐쇄된 급식소는 위장보다 마음을 더욱 쓰리게 만들었다. 소외감은 자괴감으로 이어지고, 손 씻기와 마스크를 찾아 헤맬 의지가 꺾였을지 모른다. 개인의 잘못된 습관, 부족한 관리 때문에 질병이 왔다? 바로 그 ‘습관’과 ‘관리’가 삶에 녹아 있는 건강 불평등이다. 건강이 개인의 노력으로 지켜질 수 있다는 환상은 건강의 사회성과 연대성을 휘발시키고, 그 빈자리에 ‘질병은 자기관리 실패’라는 낙인을 찍게 만든다. 아픈 몸을 비난하는 문화는 변화할 줄 모른다.
질병의 고통은 사회적 관계에서 온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세계적 인재(人災) 앞에서 인간이 생태계의 지배자가 아니라 그 일부임을 인정하면서, 다른 종들과 지구와의 연결성을 회복하는 게 근본적 대안이라는 주장이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있다. 생태계 파괴로 야생동물 서식지가 줄어들면서, 야생동물에게 돌던 바이러스가 인간을 숙주 삼아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픈 몸과 질병을 대하는 태도의 전환이 먼저 있어야 한다.
최근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이 코로나19 관련해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인식조사 결과(조사기관 한국리서치)를 분석해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감염보다 더 두려운 것이 주위의 비난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상황별 두려움’을 묻는 질문에 ‘내가 확진자가 됐을 때 주변으로부터 비난, 추가 피해를 받는 것이 두렵다’라는 항목이 3.52점으로 제일 높았고, ‘무증상 감염되는 것’이 3.17점, ‘주변에 증상이 의심되는데도 자가신고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두렵다’가 3.10점이었다(5점 척도 기준). 질병의 고통은 세포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키는 조사 결과다.
현재 코로나19 상황은 아픈 이들을 ‘질병 난민’으로 만들고 있다. 이러면 ‘박해’를 피해 수면 아래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질병을 근거로 차별과 낙인을 하지 않는 것은 윤리의 문제다. 동시에 아픈 이들이 질병으로 인해 차별과 낙인을 겪지 않으리라는 신뢰를 가질 수 있을 때 사회적 예방이 적극적으로 가능해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목적은 바이러스와의 전쟁 자체가 아니라, 우리 일상을 위험으로부터 지키는 것이다. 현재는 질병을 둘러싼 차별과 혐오 때문에 사회가 위험해지고 있다는 인식을 좀 더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게 필요하다. 정부와 사회는 질병이 생물학적 실체인 동시에 세상의 온갖 편견·환상·감정·이야기가 돌아다니는 장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생물학적 바이러스 방역만으로는 일상의 안전을 지킬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픈 게 죄송하지 않은 세상이다.
조한진희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저자)/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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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경제적 지원’에 성패 달렸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를 위한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연합뉴스
지난 22일부터 보름 동안의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됐다. 정부는 다음달 5일까지 종교시설, 실내 체육시설, 유흥시설의 운영 중단을 강력히 권고했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상황에 따라 학원, 피시방, 노래방 등도 대상에 추가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생필품 구매, 의료기관 방문, 출퇴근 등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출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정세균 총리는 지난 21일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를 위한 담화문’에서 “어려움이 있겠지만, 지역사회 감염을 차단하고 우리의 일상을 되찾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것을 양해해달라”고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는 코로나19 방역은 물론 코로나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도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지금 경제 충격의 가장 큰 원인은 국민들이 코로나19 감염이 두려워 외부 활동을 기피하면서 소비가 급속히 가라앉고 있는 데 있다. 코로나19 확산세를 확실히 잡지 못하면 정부가 재정·통화정책을 총동원해도 소비가 살아나기 힘들다. 백약이 무효가 될 수 있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를 지키지 않을 경우 시설 폐쇄와 구상권 청구 등 강력한 법적 조처를 취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강제 조처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는 동안 영업을 중단해야 하는 소상공인이나 일을 쉬어야 하는 임시·일용직 노동자 등 취약계층이 받게 될 경제적 충격은 배가될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도에 비례해 이들이 입게 될 손실도 커진다. 지난 두달 동안보다 훨씬 혹독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이들이 코로나에 걸려 죽으나 굶어서 죽으나 똑같다는 절박한 심정을 갖게 된다면,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는 성공하기 어렵다.
정부가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기간 동안 이들이 입게 될 손실을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는데, 정세균 총리의 담화문에는 이 대목이 빠졌다. 당장 구체적 지원 방식과 규모를 확정하기 어렵다면 일단 ‘최대한 지원’을 약속하고 세부 방안을 마련하기 바란다. 추가경정예산 등 기존 대책으로는 부족하다. 희망이 있어야 고통의 시간을 버텨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24일 열리는 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뒷받침하는 강도 높은 경제적 지원이 병행된다면, 코로나19도 잡고 경제위기 극복의 돌파구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겨레
코로나 급증세 일본 "노인 사라지면 국가 좋아져"…7만이 '좋아요'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일본에서 취약 계층인 고연령층 혐오 일러스트가 확산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21일 트위터에는 일본 국적인 것으로 추정되는 한 누리꾼이 두 장의 일러스트를 게시했다. 이 일러스트에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수십 명의 노인들을 떠받치며 힘겨워하다 노인들이 사라지자 두 손을 치켜들며 기뻐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 일러스트에는 노인들의 머리 위에 사망한 것을 뜻하는 천사의 고리와 날개가 표현되어 있으며,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보이는 바이러스들이 노인들의 주변에 떠 있다. 상대적으로 코로나19에 노출되기 쉬운 노인들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일러스트를 올린 누리꾼은 일본어로 "빨리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 게시글은 순식간에 1만 5000여 건 이상 재공유됐으며, 7만 건 이상의 '좋아요'를 받았다.
이 게시글에 일부 누리꾼들은 "이 정도의 글은 너무 심하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지만, 몇몇 누리꾼들은 "(노인이 없으면)국가가 좋아지는 것은 사실"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 누리꾼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구세주"라는 답글을 남겨 500건의 '좋아요'를 받았다.
29일 (현지시간) 도쿄의 거리에서 ‘우한 폐렴(코로나19)’ 을 막기위해 마스크를 쓴 여성이 걸어가고 있다. /사진 = 뉴스1
이같은 '노인 혐오' 게시글은 일본의 코로나19 확진자가 1000명을 돌파한 가운데 노인 시설 등을 중심으로 감염 사례가 이어지자 젊은층의 불안감이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간사이 지방의 효고 현에서는 노인 요양시설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해 이용자와 가족 등 50명 가까운 인원이 확진 판정을 받은 바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에히메 현에서도 3개 복지시설에서 45명의 집단감염이 확인됐다.
군마 현의 야마모토 이치타 지사는 지난 22일 정확한 연령대가 공개되지 않은 노인 남성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고령자가 감염될 경우 위험성이 높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 니투데이 오진영 인턴기자,
프랑스, 안일한 시민의식에 극약처방 내리다
프랑스 정부는 외출 자제를 권고하며 ‘국민의 연대’를 강조했다. 그러나 파리 도심과 교외 공원, 운하 등이 사람들로 가득 차자 ‘전 국민 이동금지령’을 선포했다.
ⓒAFP PHOTO ‘전 국민 이동금지령’이 내려지자수많은 인파로 붐비던 파리트로카데로 광장(사진)이 적막해졌다.
프랑스도 코로나19 전염이 심각하다. 3월18일 오전 9시 현재 확진자 수는 7730명에 이른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한 나라이기도 하다. 지난 1월24일 프랑스 보건부는 파리에서 중국인 관광객 2명, 우한과 결연 도시인 보르도에서 중국계 프랑스인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그 후 중국에서 온 비행기 승객들의 체온을 확인하고 상담하는 의료 지원을 실시했다. 1월31일과 2월2일 우한에 있는 자국민을 본국으로 데려왔다.
감염병과 함께 공포가 번졌다. 평소 잘 팔리지 않던 마스크 주문이 폭주했다. 2월1일 라디오 프랑스앵포에 출연한 마스크 제작회사 대표는 “한 해 2000만 개였던 물량을 5억 개까지 늘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의사들은 아시아인에 대한 대중의 공포를 전했다. 2월1일 라디오 프랑스앵포와의 인터뷰에서 스트라스부르 중앙병원의 바이러스 전문 박사 사미라 파피크르메르는 “‘대중교통에서 중국인처럼 보이는 사람 옆에 내 아이가 앉았는데 걱정이다’라는 연락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르노블 중앙병원의 전염병 담당의 장폴 스탈은 ‘중국에서 받은 택배가 안전한가?’ ‘트램에서 아시아인을 지나쳤는데 괜찮나?’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2월18일 보건부는 의료 전문가들을 불러 모아 환자가 급증할 때의 대책을 논의했다. 프랑스 의사연합 대표 장폴 아몽은 “위급하지 않은 환자의 치료·입원을 늦춤으로써 병상을 마련하자”라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 경증 환자는 자가격리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또 네 번째 확진자가 중국인 환자와 상담했던 의사인 점을 고려해, 유증상자는 응급 전화번호인 15번을 이용한 뒤 의료기관에 가도록 당부했다.
2월23일 이웃 나라 이탈리아에서 확진자 100명 이상이 나오자 인접한 지역을 중심으로 불안감이 퍼지기 시작했다. 2월23일 알프마리팀 지역의 의원인 공화당 소속 에리크 시오티는 “평소 1만명가량이 이탈리아와 교류하는 알프마리팀 지역을 위한 긴급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다음 날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프랑스 남동부 리옹으로 향한 버스 운전사가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보여 격리됐다. 2월25일에는 중국 여성 한 명과 프랑스 남성 한 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프랑스 남성은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에 다녀온 사람이었다.
한국의 확진자 동선 확인 정책에 ‘관심’
이탈리아 국경 봉쇄론에 대해 프랑스 정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2월23일 프랑스2와의 인터뷰에서 올리비에 베랑 장관은 “바이러스는 국경에서 멈추지 않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라디오 유럽1에 출연한 제롬 살로몽 보건부 사무총장은 “국경 폐쇄는 솅겐 협정 때문에 복잡한 문제다”라고 말했다. 솅겐 협정은 유럽 내의 가입국들이 상호 자유롭게 통행하도록 하는 조약이다. 이탈리아와의 국경을 봉쇄한다고 하더라도, 스위스 등 솅겐 협정에 가입한 다른 접경 국가를 통하면 프랑스에 확진자가 유입될 수 있다는 뜻이다.
보건부는 2월24일 확진자 12명 가운데 2월14일 숨진 80대 중국인 관광객 외 11명은 모두 완치 후 귀가 조치했다고 밝혔다. 베랑 장관은 “현재 프랑스에는 확진자가 없으며, 바이러스의 확산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2월25일에서 26일으로 넘어가는 밤 파리 라피티에 살페트리에르 병원에서 60세 프랑스 남성 확진자가 사망했다. 최초의 프랑스인 사망자였다. 문제는 불투명한 감염원이었다. 2월12일부터 입원했던 이 확진자는 이전 사례들과 달리 위험 국가 방문 이력이 없었다. 2월26일 같은 지역에서 역시 위험 국가 방문 이력이 없는 다른 프랑스인 확진자가 발생했다. 북부 오드프랑스의 지역보건기관(ARS)은 위기대응팀을 꾸려 두 확진자의 접촉자들을 찾기 시작했고, 최초 사망자가 거쳐 간 크레이 병원은 잠정 폐쇄됐다. 2월27일 정부는 우아즈 지역에서 확진자가 12명 추가됐다고 밝혔다. 북동부 스트라스부르와 남동부 안시에서 이탈리아 롬바르디아를 방문한 확진자가 추가 발생했고, 그 가족들도 감염되었다. 바이러스가 프랑스 전역으로 퍼지자 2월28일 저녁 올리비에 베랑 보건장관은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됐다고 알리고, 전염병 경보 단계를 2단계(바이러스 확산 억제를 목표)로 격상했다.
지역사회 감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우아즈 지방에서는 정부의 정보 부족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 지난 2월29일 라디오 프랑스앵포와의 인터뷰에서 이 지역 출신 공화당 의원 막심 미노는 “도지사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해도 국민들에게 전해줄 정보가 거의 없었다. 언론을 통해 알게 되는 정보도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프랑스 정부는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확진자 발생 지역과 거주 지역만 공개할 뿐 확진자들의 동선은 알려주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몇몇 현지 언론은 한국 정부의 대응을 전했다. 3월11일 〈르푸앵〉은 ‘서울은 코로나바이러스와의 투쟁에서 모범 학생인가?’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확진자 동선 확인 정책을 다뤘다. 이 매체는 한국의 대응이 “사생활 보호 문제라는 의문을 유발할 수는 있지만 (해당 장소 방문자들이) 검사를 받게 할 수 있다”라고 보도했다. 3월12일 라디오 프랑스퀼튀르는 ‘한국이 좋은 전략을 찾았다면?’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의 코로나19 감염 증가율이 감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규모 검사와 확진자 동선 체크, ‘사회적 거리두기’ 강조 등 한국의 대응을 분석하는 내용이었다.
3월이 되자 코로나19는 삽시간에 프랑스 전역으로 퍼졌다. 3월1일 루브르 박물관이 폐쇄되고 에어프랑스는 5월31일까지 항공권 무료 취소를 시행했다. 3월3일부터 정부는 시중에 있는 마스크를 회수해 의료진에게 보급하기 시작했다. 3월5일 파리교통공사(RATP) 직원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3월8일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어섰다. 문화부 장관 프랑크 리에스테르와 국회의원 10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3월12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대국민 특별담화를 통해 전국의 어린이집 및 초중고교, 대학의 무기한 휴교령을 내리고, 고령자 외출 자제 권고, 실업자 수당 보장 등을 발표했다. 이틀 뒤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3월15일 0시부터 식당, 카페 등 필수적이지 않은 공공장소를 폐쇄하겠다”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위협을 느끼지 못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필리프 총리가 외출 자제를 권고하며 국민들의 ‘연대’를 강조했음에도 다음 날인 일요일, 문을 닫은 식당과 카페 이외의 파리 도심과 교외 공원, 생마르탱 운하 등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프랑스 정부는 3월16일 ‘극약처방을 내렸다. 전 국민 이동금지령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3월17일 정오부터 15일간 출근, 슈퍼마켓, 약국, 산책 등 특별한 이유를 적은 서류(déclaration sur l’honneur)를 소지하지 않고 이동한 경우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는 지금 전쟁 중입니다”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시사인 파리∙이유경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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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한번도 타국 영토인 적 없어”…일본 중학 교과서 또 ‘개악’
일본 중학 사회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
독도 “일본 고유 영토” 주장보다 더 강화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국가 및 개인 배상 완전 해결”
내년부터 사용될 일본 ‘교육출판’의 중학교 사회과 역사교과서 중 일부.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이고 “한국이 불법 점거를 계속하고 있다”고 적혀있다. 독도 강치 사냥 사진은 2015년 검정본에는 없었으나 이번에 새로 실렸다.
내년부터 사용될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 ‘독도가 한번도 일본 영토가 아닌 적이 없다’는 취지의 표현이 등장하는 등 관련 서술이 더욱 악화됐다. 지난해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를 계기로 한-일 관계가 잔뜩 냉각된 상황에서 악재가 하나 더 얹혀졌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2021년부터 4년 동안 사용할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23일 일제히 발표했다. <한겨레>가 중학교 사회과의 역사 7종, 지리 4종, 공민 6종 등 세과목 검정본을 살펴본 결과,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이며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주장이 이전보다 강도 높게 서술되고 사진 등의 시각물 사용도 늘었다.
일본문교출판은 사회과 역사교과서에서 “일본 정부는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가 한번도 타국의 영토인 적이 없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한다”고 적었다. 일본 정부는 “고유의 영토”라는 뜻이 한번도 일본 영토가 아닌 적이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해 왔는데, 이를 교과서에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또한, 독도의 일본 영유권 주장을 위해 독도 강치(바다사자) 사냥 사진을 시각물로 사용한 사례도 늘었다. 일본은 일본 어민들이 예전부터 독도에서 강치 사냥을 했던 사실을 일본 독도 영유권의 근거라고 주장해왔다. 이번에 일본문교출판, 교육출판이 강치 사냥을 하는 어민 사진을 새로 실었다. 도쿄서적과 제국서원은 직전인 2015년 검정본부터 강치 사진을 실었다.
채택률이 가장 높은 도쿄서적의 역사교과서에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발효되기 직전 한국은 공해 상에 일방적으로 경계선을 긋고, 한국 쪽에 일본 고유의 영토인 다케시마를 넣고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는 구절을 넣었다. 이외에도 검정을 통과한 중학교 사회과 역사 교과서 7종 가운데 4종에 “일본 고유의 영토이고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또한, 도쿄서적의 사회과 공민교과서에는 “일본이 (한국의) 독도 불법점거에 항의하는 한편, 국제사법제판소(ICJ)에 맡겨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자고 1954년, 1962년, 2008년 등 3차례에 걸쳐 제안했지만, 한국이 거부하고 있다”는 기술을 2015년 검정본에 이어 이번에도 실었다. 일본 중학생은 사회과 역사, 공민, 지리 과목에서 반복적으로 ‘일본은 독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데 한국이 막무가내로 거부하고 있다’고 배우게 되는 셈이다.
중학교 교과서의 독도 관련 서술 분량이 2015년보다 급격히 늘지는 않았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 들어서 초·중·고 교과서 개악 작업이 한차례씩 이미 완료됐기 때문이다. 아베 정부는 지난 2014년 2월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와 ‘교과서 검정기준’, 그리고 2017년과 2018년엔 법적 구속력까지 있는 학습지도요령을 개정해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교육하도록 했다.
일본문교출판은 ‘배상 문제와 역사 인식’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1965년 일-한 청구권협정에서 국가와 개인의 청구권 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것을 확인하는 동시에, 일본은 한국에 경제원조를 했다”고 서술했다. 일본 정부는 개인 청구권 존재 자체는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서술은 없었다.
양기호 성공회대(일본학) 교수는 이번 교과서 개정에 대해 “한-일관계에는 악재다. 한-일 청구권 협정이 서술됐는데, 일본이 역사나 영토 문제에 대해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독도도 처음엔 ‘영토 분쟁이 있었다’ 정도로 출발했는데 지금은 한국을 불법국가로 취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글·사진 조기원 특파원, 김소연 기자 garden@hani.co.kr
신문·방송 넘나들며 여론 모는 종편, 재승인 심사 결과는?
[각종 논란에도 탈락 가능성은 희박]
5·18왜곡에 막말·편파 방송 논란
‘법정 제재 4건 이하’ 조건 달아도
행정소송·이행실적 공백기 악용
저널리즘 평가 기준 무력화 시켜
[MB때 개정된 미디어법이 결국…]
신문·방송 겸영 언론복합체 탄생
정치적 편향에 여론 다양성 훼손
막말 패널들은 정치권 환영받기도
“특혜 회수하고 규제 장치 손봐야”
<티브이조선><채널에이> 등 종합편성채널(종편) 2곳이 지난주 방송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재승인 심사를 받았다. 2011년 12월 개국 이후 세 번째다. 5·18 왜곡과 막말 등 불공정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두 종편은 이번에 어떤 성적표를 쥐게 될까. 정치적 편향과 선정성 등 종편의 문제점은 여전하지만 개국 당시 0.5%를 밑돌던 시청률이 각종 특혜에 힘입어 최고 2%를 넘는 등 시장에 안착해 이번에도 탈락할 방송사가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 지난주 종편·보도 의견 청취
방통위는 방송, 경영·경제·회계, 법률, 기술, 시청자소비자 분야 등 외부 전문가 13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꾸려 지난 16~20일까지 5일간 종편과 보도채널 등 방송사 4곳에 대한 재승인 심사를 진행했다. <연합뉴스티브이><와이티엔>(YTN)등 보도채널 2곳은 이달 31일이 방송 유효기간 만료이고, 종편 2곳은 다음달 21일까지다. <제이티비시>(JTBC)와 <엠비엔>(MBN)은 11월 심사가 예정돼 있다.
심사에선 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정성 실현 그리고 재승인 때 부과된 조건 이행 여부 등을 따졌다. 방송사 대표들을 불러 의견도 들었다. 티브이조선은 2017년 재승인 심사 때 기준 점수인 650점에 미달했으나 조건부로 승인돼 ‘봐주기’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채널에이도 660점대로 간신히 통과했다. 이번 심사도 ‘커트라인 언저리’의 턱걸이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3년 전 종편 재승인 조건은 오보·막말·편파와 관련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심의에서 중징계인 법정제재를 매년 4건 이하로 줄이라는 것이었다. 지난달 방통위는 종편 재승인 조건 이행 점검에서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여기엔 몇 가지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티브이조선이 행정소송을 걸어 법정제재 무력화에 나섰는데, 이렇게 되면 법원 판결까지 검증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또 종편 두 곳의 재승인 조건 이행 실적과 계획서는 이미 지난해 제출돼 올해 방심위 제재나 4월 총선 보도를 점검하는 선거방송 제재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공백기를 틈타 티브이조선의 올해 법정제재가 벌써 4건이나 된다. 방심위 제재 건수를 기준으로 한 평가가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신문-방송 넘나들며 여론 독과점
종편들이 지배주주인 조·중·동·매경 등 신문사와 인사 교류, 콘텐츠 공유 등 과도한 넘나들기를 하면서 여론의 독과점과 왜곡이 심해지자, 둘의 분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연우 세명대 교수(광고홍보학)는 “종편은 최대주주인 신문사 사주의 방송에 대한 영향력이 크다. 신문과 방송이 서로 다른 회사지만 사회적 현안에 대해 같은 목소리로 전하면 신문·방송 두 플랫폼을 통한 여론 쏠림 현상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며 “이명박 정권 때 강행 처리된 미디어법 개정으로 여론 다양성이 훼손되고 있다. 이를 구분할 칸막이 제도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조선일보가 티브이조선의 <미스터트롯> 기사를 대대적으로 펼치고, 티브이조선이 조선일보를 인용하며 안건을 확대재생산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또 종편은 시사프로그램에서 관계사 신문기자를 패널로 동원하기도 한다. 티브이조선이 지난달 <신통방통> 패널 4명 가운데 3명을 조선일보 기자(2명)와 티브이조선 해설위원으로 채우자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패널 구성의 편향성을 문제 삼기도 했다.
종편 승인 당시 신문·방송 겸영 사업자의 여론 독과점을 억제하기 위해 일간신문의 구독률을 시청점유율로 환산해 합산하는 ‘시청점유율 30% 제한’ 제도를 도입했지만 기준이 높아서 어떤 방송사도 해당하지 않아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김성해 대구대 교수(신문방송학)는 “티브이조선은 언론복합체를 통해 정치권, 대기업, 법조계 등 기득권 세력과 결탁해 이들의 이해관계를 옹호하기 위해 방송을 사유화한다”며 “민주적 여론 형성을 방해하는 언론복합체를 해체하기 위해 종편과 신문은 철저히 분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정치 혐오 조장하며 여론 호도
종편이 정치 혐오를 조장하며 바람직한 정치 문화 담론을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질타도 나온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나 패널들이 한쪽 지지자들만 의식해 성숙한 공론을 이끌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박태순 미디어로드연구소 소장은 “종편의 정치 보도나 대담·토론 등을 보면 정치공학적 접근과 패권주의 시각으로 한국 정치를 망치고 있다. 정치인들도 이런 종편에 휘둘린다. 패널들이 국민을 자극하는 발언으로 여론을 호도하거나 한쪽으로 몰고 간다”고 짚었다.
종편에 출연하며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등 편향적 발언을 일삼았던 패널이 정치권에 입성하기도 한다. 채널에이 토크쇼 <정치데스크>의 단골 패널인 조수진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대깨문, 대깨조” 등 막말로 지탄을 받았지만, 이번에 미래한국당의 비례대표 당선권 번호를 따냈다.
방송시장의 공정 경쟁을 위해 종편에 주어졌던 특혜를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유선영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황금채널 배정, 지상파와 차별화된 1사 1렙 광고제도 등 그동안 종편에 쏟았던 특혜를 회수하고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콘텐츠 품질 제고를 위한 방송심의 강화 등 규제 장치도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방심위 ‘솜방망이’ 심의…종편들, 총선 앞 정당 홍보매체로 뛰어”2020-03-10
김이택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 ㅣ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
“어떻게 자기 역사 정리하는 것마저 거짓으로 하나”
조선·동아 100년 왜곡보도 아카이브등 ‘시민행동’ 활발
코로나 보도, 과학정보 전달보다 정부 공격에만 초점
허위정보, 정부 나서기보다 정보통신망법부터 손봐야
지상파 지배구조 개선, ‘이용마법’ 추진부터 시작해야
현 정부 ‘언론개혁’에 소극적, 현상 유지 급급한 인상
김언경 사무처장은 100주년에 즈음한 조선·동아일보 연재 기사들에 대해 “어떻게 자신들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마저 거짓으로 하나,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했다. 올 4월 재승인 심사를 앞둔 <티비조선> 등 종편 보도에 대해선 “지난 2017년 3월 조건부 재승인을 받았을 때는 시사토크쇼 수도 줄이고 방송도 좀 조심하는 듯 싶더니, 방통심의위가 여전히 종편에 솜방망이 심의를 내리는 것을 확인한 이후 다시 과거 막무가내 방송행태로 돌아갔다”고 지적했다. 현 정부의 언론개혁에 대해서는 “의지가 분명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며 “(보수언론들의) 언론탄압이라는 반격을 우려해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것 같아 아쉽다”고 꼬집었다. 인터뷰는 지난 4일 한겨레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뒤 전화로 추가했다.
■ 조선·동아 100년
- 57개 언론·시민사회·종교단체로 꾸려진 ‘조선동아청산시민행동’(시민행동)이 지난해 9월 발족했다. 어떻게 활동하고 있나?
“시민행동이라는 연대체 차원에서 공통으로 추진하는 일도 있지만, 연대에 참가한 각 단체들이 잘할 수 있는 것들을 개성있게 역량껏 진행하고 있다. 민언련은 지난해 9월부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100년간 왜곡 보도를 정리한 아카이브를 만들었다. <조선일보 대해부>와 <동아일보 대해부>를 토대로 국회 도서관에서 문제 기사의 마이크로 필름을 일일이 찾아서 설명을 붙여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 자유언론실천재단은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최악보도 100선>(이하 ‘최악보도 100선’) 책자를 만들었다. 언론소비자주권행동은 1인 시위에 이어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언론노조를 비롯해 민주노총 각 지본부도 역량껏 조선일보 100년을 지적하는 선전 활동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 언론자유를 외치다 쫓겨나 아직도 복직하지 못한 동아투위, 조선투위 어르신들이 계셔서 우리가 이런 동력을 받아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을 보면 일을 안할 수 없다. 코로나19로 사람이 모이는 행사들은 많이 취소됐으나 조선일보 동아일보 앞에서의 1인시위는 4월1일까지 계속할 것이고, 동아투위 기자들이 길거리로 쫓겨난 3월 17일에도 의미 있는 기념식을 하려고 준비중이다”
시민행동은 지난 5일 조선일보 100주년을 맞아 조선일보 인근 원표공원에서 최악보도 10선 전시회를 열었다. 일장기를 제호 위에 올리고 일왕 부부사진을 1면에 실은 조선일보 지면을 두루말이 휴지 100개에 새겨넣은 설치미술 작품도 전시했다.
- 이번 행사는 어떤 취지인가?
“청와대 게시판에 조선일보를 폐간시켜달라는 청원까지 있으나 그런 힘은 국민이 가지고 있다. 왜곡보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시민이 늘어나고 언론을 보는 안목이 높아져야 한다. 과연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자랑하는 만큼 떳떳한 언론이었는지 평가하고 그 실상을 국민에 알려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100주년을 곱게 보내줄 수는 없지 않느냐고 생각했다.”
‘조선동아 거짓과배신의 100년청산 시민행동’이 5일 오전 서울 조선일보사 옆 원표공원에서 연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오종선 미술가가 <조선일보>의 반민족 역사를 두루마리 휴지로 형상화한 설치미술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조선일보 친일보도 지면을 휴지에 새겨넣은 건 어떤 의미인가?
“조선일보가 신문이면 휴지는 팔만대장경이란 식의 풍자가 있듯이 신문 품격이 휴지조각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상징적 의미다. 오가는 시민들이 작품 앞에서 셀카를 찍는 등 반응도 좋더라.”
- <최악보도 100선>가운데 10선을 따로 뽑아서 전시하고 있다. 어떤 것들인가?
“조선투위 선배들이 일제 시대 3건, 박정희 정권 시절 2건, 전두환 정권 5건을 뽑아주셨다. 일제 시대, 특히 1930년대 후반 이후 매년 1월1일에 일왕 부부사진을 크게 싣는 등 충성을 맹세하는 보도를 조선 동아 모두 폐간 때까지 계속했다. ”
-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 사례는?
“박정희 정권 때는 조선일보의 유신체제 찬양 사설이 두드러진다.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알맞은 조처로서 이를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비상사태는 민주주의 향상과 발전을 위해 하나의 탈각이요 시련이요 진보의 표현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고 썼다. 전두환 정권 때는 1986년 부천서 성고문 보도가 대표적이다. 당시 ‘성을 도구화’했다며 가해자 대신 피해자를 매도했다. 용공조작이 판치던 시절이었다.”
-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지난해부터 여러 연재물들을 싣고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어떻게 자신들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마저 거짓으로 하나,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자신들의 과거 신문을 제대로 읽었다면 과연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물론 괜찮았던 시절이 있었으니 완전 거짓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랑하려면 과거의 잘못된 보도도 제대로 반성했어야 한다. 그런 내용은 하나도 없이 단편적인 일부 사실만 가져다 과장하는 게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조선일보가 3월4일치에 김일성 사망 등 과거 오보를 반성한다고 했다. 그러나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진정성 없이 ‘미안해’ 한마디 툭 던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게 아니라 하루 130건이나 기사가 나가는데 그 중에 오보가 없었겠느냐는 식이니 ‘영혼 없는 사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일제 시대 이래 왜곡·은폐 보도에 대한 사과는 없는데.
“그렇다. 일제와 독재 아래서 처음엔 생존을 위해 그랬다고 조금은 변명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중엔 점점 언론권력에 맛을 들이면서 기득권 유지를 위해 권력자의 나팔수가 됐다. 독재자 찬양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런 눈에 보이는 찬양보도보다 더 나쁜 것이 그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며 온갖 고통을 당한 분들과, 노동자 농민,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은폐했던 무보도와 그들을 억울하게 매도했던 왜곡보도다. 이에 대해서 조선일보는 백배 사과해야 한다.”
- 조선일보가 100주년을 맞은 지난 3월5일치에 대대적인 지면을 할애했다. 읽어본 소감은?
“너무 기가 막혔다. 오보 몇가지를 사과했을 뿐 본질적인 잘못, 즉 친일 보도와 독재에 부역한 데 대한 사과는 없더라. 오히려 일제 시대엔 민족지로서 역할했고 이후에도 권력과 싸우며 최선을 다했다는 식이다.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솔직하게 사과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더라. 그리고 100년이라고 100면 지면을 냈는데, 그 내용이 충실했던 게 아니라 사실상 광고로 채워졌다. 그 많은 기업 광고가 순수하게 자발적인 광고였을까, 조선일보는 자신들이 얼마나 지라시로 기능하는가를 100주년날 100면 보도로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 조선일보의 과거사를 돌아보면 박정희 정권 때도 그랬지만 특히 전두환 정권과 유착해 급성장하지 않았나?
“그렇다. 일반 대중에게는 조선일보가 어떻게 사세를 확장했고 독재자에 아부해왔는지 역사가 제대로 정리돼 있지 않은 게 사실이다. 박정희 정권 때는 특혜차관으로 사옥을 짓는 등 독재자가 주는 당근으로 성장해왔고 전두환 정권 때도 정권과 유착해 사세를 키웠다. 그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보도를 할 수 있었겠나.”
■ 문재인 정부와 언론보도
- 조선・동아일보 뿐 아니라 언론 전반을 짚어보자. 문재인 정부 들어 언론 보도 행태를 평가한다면?
“진보 언론이나 보수 언론 모두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을 설명하고 정보를 주는 보도는 별로 없었다. 주52시간제 같은 노동정책이나 최저임금 인상만해도 다 좋은 것도 아니고 다 나쁜 것도 아닐텐데,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확하게 장단점을 짚어주는 보도는 없었다. ”
-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었는데 관련 보도는 어떻게 보았나?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 부작용이 있다면 뭐가 문제인지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 소득주도성장이라면서 왜 최저임금만 내놓고 다른 것은 없는지 지적하고 대안 제시하는 보도가 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보수언론들은 정책의 실패 보다는 너무 흔들었다는 생각이 앞선다. 거의 소설 쓰듯이 프레임을 먼저 만들어놓고 맞는 사례를 찾아다니는 보도가 많았다. 진보언론도 실현 가능한 정책인지, 과도하게 오른 건 아닌지 등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에 대해 정부에 따져묻는 보도가 더 많았어야 한다. 진보적인 학자들도 만나 보면 반은 찬성하고 반은 미흡하다고 하는데 이런 목소리가 진보언론에는 잘 안 보였다. 정부가 촛불정신을 잘 구현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물었어야 했다.”
- 이른바 ‘조국 사건’을 둘러싼 갈등은 격렬했다. 언론의 보도태도는 어떻게 평가하나?
“과열과 편향이 심했다. 합리적인 검증 보도는 아니었다. 검찰 수사를 따라가는 식의 보도가 아니라 사실 여부를 끈질기게 검증했어야 한다. 국민이 분노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었다면 마녀사냥식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지점, 이 사건이 던지는 과제를 충분히 보도했어야 한다. 이 점에선 한겨레 경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검증된 사안에서 조 전 장관이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면 개인의 문제인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관행적 구조적 문제인지를 구분했어야 하는데 너무 한 가족을 표적으로 보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극단적으로 의견이 갈린 상황도 언론이 자초했다. 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계층간 격차가 크고, 사다리가 무너져버린 상황을 고민하는 보도가 더 많았어야 한다고 본다.”
- 검찰 수사 보도의 관행에서 비롯된 문제도 있지 않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서도 그랬듯이 검찰은 자기들이 원하는대로 언론플레이를 해왔다. 이번에 그게 적나라하게 들통났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옳은 수사를 했다쳐도 검찰이 내놓거나 흘리는 행태는 부적절했다. 국민들에게 다 드러났다. 검찰개혁, 검찰과 언론의 부적절한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국민적 목소리는 분명히 있다. 이를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사안이었다. 나경원 미래통합당 의원 자녀 비리 논란과 비교해 보면 조국 사건이 애초 그렇게 난리칠만한 사안이었을까 싶다. 언론은 그걸 지적하는 대신 검찰이 주는대로 받아썼다. 엄청난 중죄인이 나온 것처럼 보도했다. 왜 이런 수사를 하는지를 캐묻는 보도는 부족했다. 조국 개인에 대한 호불호를 둘러싼 논쟁으로 흐른 건 우리 사회에도 큰 마이너스였다.”
- 최근의 코로나19 보도는 어떻게 보나?
“세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비과학적인 보도다. 합리적인 수준의 의사, 감염학회 등 전문가 집단, 질본 등의 의견을 물어 과학적 정보를 국민들에 잘 전달해야 한다. 의학적 판단과 외교적 판단은 다를 수 있다. 중국인 입국금지 안해서 퍼졌다는 주장을 야당과 조중동이 게속하는데 매우 비과학적이다. 구체적인 근거를 들지도 못한채 우기는 보도를 하고 있는 게 큰 문제다. 둘째는 그런 보도를 통해 혐오가 발생한다는 게 문제다. 중국인, 대구, 신천지 등등 특정 집단을 찍어 혐오를 부추기는 건 위험한 보도행태다. 표적을 찍어 불안을 해소하려는 경향을 언론은 경계해야 한다. 셋째는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정부 공격에 초점을 맞추는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다. 정부의 허점도 있을 것이고 고통받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소외돼 정신병원에 감금돼 있다 돌아가신 분들, 사각지대를 찾아서 보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 공격으로만 이어져서는 안된다. 문제가 있으면 찾아서 지적하고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하는데 지금은 트집잡는 식의 관념적인 보도가 너무 많다. <경향신문>이 집단시설이 병에 취약하다는 걸 3면개 특집을 했는데 같은날 조선일보는 입국금지 하지 않는다고 정부를 비판하는 보도로 도배했다. 과연 어떤 것이 국민을 위한 보도인가. 고통받는 국민을 찾아서 짚고 해결을 촉구하는 게 언론 역할이어야 하지 않겠느냐.”
■ 민언련 활동과 종편
- 민언련 얘기를 해보자. 언론 감시가 중요한 역할인데 어떻게 활동하고 있나?
“언론 모니터링이 대표상품이다. 6개 신문과 7개 방송사, 종편 토크쇼까지 다 본다. 작년부터는 유튜브도 포함했는데 전부 다 할 수는 없으니 ‘혐오표현’ 등 꼭 살펴봐야 할 주제만을 정해서 틈틈이 모니터해보고 있다.”
- 21대 총선을 맞아 총선미디어감시연대 활동을 민언련이 주도적으로 하고 있는데.
”화요일엔 ‘이주의 좋은 방송과 나쁜 방송보도’를 발표하고, 수요일엔 신문, 목요일엔 종편 시사토크쇼, 금요일엔 유튜브 모니터 결과를 발표한다. 매일 이메일과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매주 신문·방송의 정책보도나 혐오조장 보도 여부 등을 양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도 따로 내고 있다. 최근 일간 ‘기고쓰’라는 고정물을 만들어 카톡방을 통해 매일 민언련 회원들을 통해 일반 시민들에게 뿌리고 있다. ‘기자님, 고양이가 쓰셨어요?’의 약자로 ‘무슨 기사를 이 따위로 썼냐’는 뜻이다. 신문·방송·종편의 가장 황당한 보도를 하나씩 뽑아서 짧게 코멘트하는 글인데 반응이 좋다.”
- 모니터링에 대한 반응이나 성과는 어떤가?
“조중동만이 아니라 나쁜 언론이 너무 많아져서 우리는 우리대로 지치는데, 막상 언론사들은 우리의 비평에 대해 정파적이라고 우기면서 귀담아 듣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점보다 더 답답한 건 종편 시사토크쇼의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종편 모니터링 결과를 방통심의위에 내는데 중징계가 많이 안 나온다. 특히 티비조선과 채널에의 경우 더욱 그렇게 보인다. 이전 방통심의위는 의견이 맞서면 표결을 통해서 중징계를 쉽게 내렸고, 그 과정에서 청부심의, 정치심의 논란이 생겼다. 현재 4기 방통심의위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겠다면서 표결이 아니라 소통과 합의를 중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하게 합의냐 표결이냐의 문제가 아니지 않나. 정말 다시 반복돼서는 안될 심각한 문제 방송에 대해서는 법정제재를 내려야 한다. 그게 방통심의위가 존재하는 이유다. 합의냐 표결이냐가 아니고 방통심의위가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잘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형평성 문제도 있다. 최근 <한국방송>의 조국 전 장관 관련 김경록 피비(PB)보도에 대해서 관계자 징계라는 엄청 강한 중징계가 나왔다. 그 보도가 잘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종편에서는 이런 수준의 보도는 그야말로 일상다반사였지만 중징계가 나온 적이 없다. 방통심의위가 보다 정교한 심의규정 적용과 일관되고 형평성에 맞는 심의를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메시지가 나오지 않는다면 종편은 계속 이렇게 방송해도 된다고 여길 것이다.”
- 티비조선은 박근혜 정부 때도 가까스로 재승인을 받지 않았나?
“2017년 3월에 조건부로 재승인을 받았다. 그 뒤로는 시사토크쇼 수도 줄이고 방송도 좀 조심하는 듯 싶더니, 방통심의위가 여전히 종편에 솜방망이 심의를 내리는 것을 확인한 뒤엔 다시 과거 막무가내 방송행태로 돌아갔다. 다른 종편들도 요즘은 재승인에 대한 불안이 없어졌는지 눈치 안본다. 최근엔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선수, 즉 정치인이나 정당의 홍보매체로 뛴다고 할 정도로 방송 내용이 많아지고 있다.”
- 손석희 앵커가 하차한 뒤 <제이티비시>는 어떤가?
“좀 평범해졌다고 할까, 손 앵커 특유의 맥락저널리즘이나 집요함이 없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다.”
- 이명박 정부에서 종편에 내준 특혜들이 많은데 원상복귀 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강하다. 특히 종편들이 광고회사를 산하에 두고 직접 영업하는 1사1랩 방식은 경영과 편성 보도의 장벽을 무너뜨린 것 아닌가?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말이 랩이지 자회사다. 같은 회사 광고국이나 마찬가지다. 2018년엔가 <엠비엔> 미디어랩 일지가 유출된 적이 있다. 광고사가 광고 팔러 다니며 프로그램 편성까지 좌지우지 하더라. 다른 종편사도 비슷하다고 봐야 한다. 1사1랩 방식은 당연히 없애야 한다. 지금의 코바코와 같은 민영랩, 아니면 백보 양보해서 종편4사가 하나의 랩을 운영하는 방식으로라도 개선이 필요하다.”
■ 유튜브 문제
- 1인미디어로서 유튜브에 대한 문제제기가 적지 않다.
“모니터 해보면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 최근에 한 유튜브를 봤는데 끊임없이 욕설하는데 엄청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조회수도 엄청나더라. 이렇게 욕설이나 혐오표현이 여과없이 나오는데도 시청자가 많은 건 심각한 문제다. 우리 사회에서 더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하고 미디어 교육도 필요하다. 최소한의 에티켓이나 선을 지키는 문화는 만들어가야 한다. 유튜브 속에서 벌어지는 검증되지 않은 허위조작 정보와 더 심각한 혐오 표현의 문제는 대응이 필요하다.”
- 지난해 <한겨레> 좌담에서 사이비 언론의 소탕이 필요하다고 했던데. 어떤 대안을 갖고 있나?
“표현의 자유를 꽃피우는 유튜브 시장이 되려면 우선 모법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의 기준을 잡아서 5·18이나 일본군성노예 문제처럼 명백하게 입증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피해자를 모욕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선행돼야 한다. 정보통신망법에 보면 불법행위 사례가 있는데 거기에 포함시키면 된다. 무조건 정부에 빨리 해결하라고 촉구하는 건 위험하다. 다른 하나는 차별금지법이다. 소수자 혐오를 막으려면 차별금지법이 있어야 한다. 그 정도만 되면 현격한 위반은 차단할 수 있다.”
- 외국에서도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지 않나?
“프랑스는 선거 시기엔 허위조작정보 여부를 48시간 이내 판단해서 허위정보인데도 그냥 두면 벌금을 물린다. 독일 역시 나치 찬양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 식으로 엄격한 제한이 있다. 우리는 5·18이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을 폄훼해도 유튜브가 자체적으로 삭제하지 않는다. 유튜브코리아가 주요하게 보는 것은 저작권 등 명백한 위법행위 뿐이다. 우리가 신문과 방송을 모니터하고 포털을 감시했지만 이제는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시민이 많이 접하는 매체에 대한 감시와 개선을 촉구하는 시민운동이 이뤄져야 한다. 허위조작 정보와 혐오표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모법과 시민운동 두 가지가 병행돼야 한다.”
‘조선동아거짓과배신의 100년청산시민행동’이 5일 오전 서울 조선일보사 옆 원표공원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이 친일, 독재 찬양, 반민주 반노동 보도에 대한 조선일보의 반성을 촉구하는 참가자들의 발언을 녹화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지상파 개혁
- 지상파 방송의 사장 선출 등 지배구조 개선 문제에 진전이 없다.
“어떤 정권이 집권을 하더라도 경영진에 영향력 발휘하려는 생각을 갖는 것 자체가 문제다. 개인적으로 민주당도 지상파 지배구조에서도 마음을 비웠으면 한다. 사장 선출만은 국민에게 내줘야 한다.”
- 어떤 방식을 말하나?
“많은 사람들이 공영방송사 이사 선임방식에 대해서 오해하는 것이 있다. 각 정당이 몇 명씩 몫을 나눠가져 추천하면 방통위가 사실상 거의 그대로 추천을 하고 대통령은 이를 무조건 임명하는 법 규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법은 없다. 현행 방식은 법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냥 관행이다. 민언련은 여야 정당이 나눠먹기 식으로 추천하는 관행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방통위가 스스로 판단해서 추천하되 최대한 방송전문성과 독립성 지킬 수 있도록 중간지대를 두어야 한다고 봤다. 이 중간지대는 해당 언론사 종사자들로 구성돼야 한다고 봤다.
그리고 이런 이사회 구성과는 별도로 공영방송 사장은 100명 이상으로 구성된 사장추천위원회가 선출하고 이사진 구성에서 정치권 입김을 배제해야 한다. 애초 이 주장은 돌아가신 이용마 기자가 내놓은 것이기에, 우리는 일명 ‘이용마법’이라고 부르고 입법을 추진했다. 이 법이 이른바 ‘이재정 안’으로 상정되었으나 국회에서 검토조차 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 언론노조를 비롯한 언론단체와 시민단체들이 미디어개혁위 구성을 추진하고 있는데.
“4월에 워크숍을 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유동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급하게 출범하는 바람에 미디어와 관련해서는 큰 틀의 변화는 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미디어 관련 정책부서부터 과기부·정통부·문화부로 산재되어 있었지만, 부처를 통폐합하거나 기능을 조정하지 않고 사람만 바꿨다. 우리는 미디어 관련 종사자, 학자, 시청자, 전문가 등이 함께 모여서 미디어 정책 정부부처와 역할, 법안 등 모든 내용을 숙고하는 미디어개혁위원회를 대통령 산하 직속기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려면 정보가 제대로 소통돼야 하고 미디어와 관련된 정부기구, 필요한 법안 등을 모두 용광로에 넣고 숙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하고, 아무리 늦어도 정권 끝나기 전에는 숙의 결과가 나와야 한다.”
■ 문재인 정부와 언론개혁, <한겨레>
- 현 정부가 언론개혁은 사실상 손놓고 있는 것 아닌가?
“사실 현 정부가 언론개혁에 대해 적극적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냥 현상유지 하겠다는 수준으로 보인다. 어찌보면 나만 건드리지 않으면 된다는 정도의 소극적인 태도랄까. 보수언론이 언론자유박탈, 언론장악이라며 반격을 가해올 것을 지레 짐작하고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언론과 척지지 않고 현상만 유지하다가, 최근에는 유튜브 등 허위조작정보 관련 대응만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허위조작정보가 나쁘다고 말하고 국가가 그 영을 세우려면 실질적으로 보다 영향력있고 사회적 책무가 큰 기존 언론의 왜곡 편파보도부터 제대로 세워야하지 않을까? 기성매체들이 하는 허위조작정보는 놓아두고 유튜브에 대해서만 시시비비를 가리려 한다면, 제대로 된 대책은 아니다.”
- 노무현 정부에 비해서도 언론개혁의지가 약한 것 아닌가?
“아무래도 노무현 정부 당시 보수언론의 반격을 학습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소홀하다는 생각이다”
- 과거 언협의 핵심 인사들이 <한겨레> 창간에도 적극 관여했다. <한겨레>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한겨레가 어떤 정신으로,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매체인지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고 그 가치가 잘 이어지고 있는지 구성원들이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가치와 철학이 더 깊어지면서도, 감각있고 젊은 언론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한겨레가 미디어 비평에 대한 투자를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 이건 독자 입장에서 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미디어비평을 하다보면 한겨레에게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남을 감시·견제하다 보면 자신은 잘 하는지 끊임없이 스스로 돌아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rikim@hani.co.kr
조주빈에 암호화폐 지갑 연 그들은 누구인가
[아침신문솎아보기] 한겨레 “국내외 513개 지갑에서 8825이더 입금” 동아일보 “가상화폐 현금으로 바꾼 뒤 직원이 봉투에 넣어 던져”
한겨레가 텔레그램에 ‘박사방’을 열고 미성년자 등의 성착취 범죄를 저지른 조주빈씨의 암호화폐 지갑(은행계좌에 해당)에 최대 32억원의 자금흐름을 포착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와 블록체인 전문매체 ‘코인데스크코리아’는 조씨가 박사방에 돈을 보내라고 공지한 암호화폐 지갑 추적결과를 보도했는데 “조씨가 박사방 운영 등에 활용한 ‘이더리움’ 암호화폐 지갑에서 최대 32억원에 이르는 자금을 포착했다”며 “국내 301개, 국외 80개, 개인지갑 132개 등 총 513개 지갑에서 8825이더(이더리움 단위)가 입금된 내역”이라고 했다.
이들 매체에 따르면 조씨는 적어도 2018년부터 성착취물을 제작했고 지난해 7월부터 n번방에 이름을 알렸으며 박사방 가입비로 최대 200만원의 암호화폐를 회원들에게 요구했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가 총기와 마약판매 등을 미끼로 다수 사기범죄를 저질렀는데 경찰은 성착취를 비롯한 각종 범죄 수익에 암호화폐 지갑 사용가능성을 수사하고 있다.
한겨레는 3면 “조주빈 ‘암호화폐 지갑’, 2018년에 이미 10억 쌓였다”에서 “조씨는 고액방 입장을 원하는 회원에게만 일대일 비밀채팅으로 자신의 암호화폐 지갑 주소를 알려줬다”며 “또 무료로 입장이 가능한 ‘맛보기방’ 등에서 ‘암호화폐를 후원금으로 송금하면 언제든 고액방에 입장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그래서 정작 박사방에 있던 사람 중에서도 암호화폐 지갑 주소를 아는 회원은 많지 않았다”고 했다.
▲ 25일자 한겨레 3면 기사
그러다 경찰 수사망이 좁혀오던 지난 11일, 조씨는 ‘문의방’을 만들어 회원 11명에게 후원금을 입금할 ‘모네로(조씨의 주 거래계좌)’ ‘이더리움’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주소 3개를 공지했다. 조씨 모네로 계좌엔 조씨 집에서 압수한 현금 1억3000만원보다 많은 2억~3억원의 암호화폐가 보관됐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도 2면 “조주빈, 가상화폐(암호화폐)로 거래 감추고 ‘현금 던지기’로 추적 피해”에서 조씨가 암호화폐로 돈을 받으면서도 자금흐름을 피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이를 보면 조씨는 회원들에게 암호화폐 구매대행업체인 A사에 모네로 구매를 의뢰하게 한 뒤 A사는 모네로를 구입해 회원들에게 전달하고, 회원은 구매한 모네로를 박사가 지정한 거래 주소로 전송한다. 박사방 운영 직원이 거래소 등에서 이를 현금으로 바꾸는 방식이다. 현재 A사와 거래한 회원 명단은 경찰에서 수사 중이다.
이렇게 암호화폐를 현금으로 바꾼 강아무개씨는 봉투에 이를 담아 이 현금을 직원 김아무개씨가 거주하는 경기 수원시 한 아파트 소화전에 넣고, 김씨가 현금을 편의점 택배나 계좌이체 등으로 조씨에게 보내는 수법이다. 또는 조주빈이 인천 자택 주변에 직원들이 ‘던지기’한 현금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경찰이 16일 조씨 검거 당시 자택에서 현금 1억3000만원을 발견했는데 당시 조씨는 “나는 박사가 아니라 직원”이라며 “돈 심부름을 했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 25일자 동아일보 2면 기사
경향신문은 8면에서 미성년자 청착취물을 제작·유포·소지한 사람을 강하게 처벌해야 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실제 관련 사건은 어떻게 처벌받았는지 살폈다.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에선 성착취물 제작에 대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유기징역을 규정하지만 소지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을 규정했다. P2P 파일 공유 프로그램으로 영상 8개를 배포하고 컴퓨터에 아동·청소년 사진 2664개를 저장한 ㄱ씨는 벌금 3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처벌이 약한 사례가 많았다.
이 신문은 “아청법상 제작·유포·소지 관련 범죄는 양형기준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법원은 성착취물 제작과정에서 피고인이 피해자를 협박했는지,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했는지 형량 결정에 고려했는데 아청법은 피해자가 성착취물 촬영에 협조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제작하면 처벌하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고도 했다.
경향신문은 “아청법에는 피해자가 스스로 촬영하도록 유인하는 소위 ‘그루밍’은 처벌 조항이 없어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사례들이 더러 나온다”며 “아동복지법은 아동에게 음란한 행위를 시키거나 이를 매개하면 처벌한다고 규정한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만난 17세 피해자와 주종관계를 맺고 오프라인에서까지 범행을 이어간 판결에서 법원은 아청법과 아동복지법을 적용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 25일자 국민일보 만평
최근 텔레그램 성착취방 관련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다룬 기사도 있다. 경향신문은 “‘박사’ 선정적 보도…‘디지털 성착취’ 문제 본질 흐린다”란 기사에서 범죄사실과 무관한 행적을 인용한 보도, 가해자 개인의 일탈로 몰아가는 보도 등을 비판했다.
조선일보가 24일 조씨 얼굴을 1면에 공개하면서 봉사단체에 가입해 장애인을 돌봐 주변에서 선량한 청년으로 비쳤다고 한 보도, 뉴스1이 조씨가 다닌 대학 관계자 말을 인용해 ‘학점 4.0에 완벽주의 면모를 보였다’고 전한 것 등의 보도를 언급했다. 또 조씨 정치성향을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설왕설래가 이어진 것도 거론했다.
경향신문은 “모두 조씨가 저지른 범죄와 무관한 정보들”이라며 “조씨 신상에 주목한 보도는 성범죄 원인이 그의 성격적 결함에 있었다는 편견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전문가들은 디지털 성폭력이 물리적 성폭력에 비해 경미한 범죄라는 인식, 유사 범죄가 제대로 처벌받지 못했던 현실을 먼저 짚어야 한다”고 했다. 또 “가해자를 ‘주인공’으로 한 보도가 오히려 범죄자의 영웅심리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전문가 입을 통해 했다.
또 “자극적 보도는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번 사건을 처음 경찰에 신고하고 공론화한 대학생 기자 ‘추적단 불꽃’이 유튜브에서 “청와대 청원에 언급한 영상을 목격한 건 ‘n번방’이나 ‘박사방’이 아닌 클릭 몇 번이면 들어갈 수 있는 쉬운 방”이었다며 “사건을 자극적이게만 다룬 뉴스는 2차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고 한 것을 전했다.
▲ 25일자 서울신문 만평
SBS가 조주빈씨의 실명을 보도한 23일 이후이자 경찰이 신상공개를 결정하기 전인 24일 조간까지 조씨를 실명으로 보도하지 않았던 한겨레는 25일 3면 ‘알려드립니다’에서 한겨레 ‘범죄 수사 및 재판 취재 보도 시행 세칙’에 따라 실명공개를 이유를 알렸다.
한겨레는 “n번방 사건 피의자 조주빈씨는 불특정다수의 아동과 여성을 상대로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유포해 금전적 이득을 챙겼고 자신의 범죄를 시인하고 있다”며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고 유사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조씨 실명을 보도하는 것이 공익 가치가 크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한편 경향신문은 ‘사회적 거리 두기’란 용어를 ‘물리적 거리 두기’로 바꿔 표기한다고 알렸다. 이 신문은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사람들끼리 사회적 단절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오해될 수 있어 ‘물리적 거리 두기’로 표현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며 그 이유를 밝혔다.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성적 욕망 표출하는 여성은, 도구로 써도 된다'는 n번방
'금기와 도구화' 양극단 해체하고, 오롯이 피해자 편에 설 수 있어야
10살 때 처음 자위를 했다. 우연히 벌어진 일이었다. 내 몸이 이런 느낌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두려우면서도 신기했다. 그때부터 내 섹슈얼리티의 탐구가 시작됐다.
탐구를 한창 진행하고 있을 때, 친구들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혹시 나만 이러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성관계란 어떤 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대놓고 이야기하긴 어쩐지 쑥스러웠다. 인터넷 채팅에서 나와 같은 소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지만, 인터넷엔 13살 소녀와 만나고 싶어 하는 아저씨들밖에 없었다. 본능적으로 피했다. 저 아저씨들은 나를 해할 거라는 본능적인 감이 있었다.
나는 나를 해할 것 같은 아저씨들이 아니라 또래 소녀들과의 대화가 필요했다. 가슴은 언제 커지는 걸까, 브래지어는 언제 하는 걸까, 생리는 언제 하는 걸까, 궁금한 게 많았다. 하지만 또래 소녀들과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누구도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고 기술가정 시간에 '자위'라는 걸 배웠다. 내가 10살 때부터 해오던 걸 '자위'라고 부른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신이 났다. 학교에서 자위를 배우다니. 각자의 몸에 대해서, 안전하고 청결한 자위의 방법에 대해서 수업 시간에 마음껏 배우게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당시 남성이었던 기술가정 선생님은 자위에 유독 관심을 보이는 나를 부담스러워했다. 나는 '자위는 숨겨야 하는 건가 보다' 생각했다.
중3이 된 후 여성만 자위를 숨기는 거라고 깨달은 사건이 있었다. 국사 공부를 할 때 동생 책을 빌린 적이 있다. 책을 펼치자마자 온갖 성기의 그림, 여성과 남성이 성관계를 하는 그림, 야한 말들, 자위를 뜻하는 '딸딸이' 등의 은어 등이 가득 적혀 있었다. 동생에게 이거 다 혼자 그린 거냐고 물었다. 동생은 당황해 하며 친구들이랑 장난으로 그린 거라고 했다.
그때 알았다. 남성은 또래 친구들과 자위와 성과 몸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구나. 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여성은 이런 걸 숨기고 남성은 드러내도 된다고 배워갔다. 여성이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이 사회에선 금기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여온 억압의 경험이 내게 알려줬다.
성인이 된 후에도 금기를 깨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걸 깨면 어딘가 망가진 여성이 되는 것 같았다. 자위를 해 본 적 있느냐는 남자친구의 질문에 나는 "그게 뭐야?"라든지, "아니, 안 해 봤어"라는 말로 답하곤 했다.
욕망을 억눌러야 하는데, 남성의 성적 도구는 돼야 한다는 역설
▲ 여성들은 불법촬영물로 인해 오랜 시간 고통을 겪어왔으나, 실제로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많았다. ⓒ pixabay
그런데 여성의 성적 욕망을 못 드러내게 하는 사회에서 여성이 성적 도구로 이용 당하는 일들이 있었다. 불법촬영물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죽음을 택하는 여성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성인이 된 후에만 벌어진 일들이 아니다. 약 20년 전부터 동영상이 유출된 여성 연예인은 잘못한 게 없는데 죄송하다고 기자회견을 해야 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한 피해 여성 연예인은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는 남성 앞에서 무릎을 꿇기도 했다.
여성의 몸은 남성의 도구로써 이용된다.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수많은 남성이 여성의 몸이 등장하는 불법 촬영 영상을 다운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는 돈을 벌기 위해 여성이 등장하는 불법 촬영 영상을 P2P 사이트에 올린다. 양진호가 천 억대 자산가란 걸 생각하면 여성이 나오는 불법 촬영 영상에 대한 남성의 수요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 짐작할 수 있다.
남성의 신체를 촬영한 이미지 혹은 영상을 가지고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몸캠 피싱'이다. 여성과 피해 양상이 어떻게 다른가 궁금해서 몸캠 피싱 피해자 모임 카페를 자주 방문한 적이 있다. 온라인을 매개로 한 건 같지만, 여성의 불법촬영 유출과 피해의 양상이 사뭇 다른 듯했다.
여성이 불법촬영 당한 영상은 P2P 사이트, 온갖 포르노 사이트 등에 유포된다면 남성의 영상은 유포 범위가 상대적으로 좁았다. 또한 여성은 영상이 유포된 후 업체를 통해 아무리 삭제를 진행해도 완전한 삭제가 되지 않아 절망을 겪는다. 반면 내가 카페에서 목격한 사례들에서, 남성 피해자의 지인들은 "너 잘못한 거 없어", "남자가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어쩌다 재수 없게 걸린 거야"라며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비난했다.
남성이 피해자인 경우, 가해자가 남성의 몸캠 영상을 지인을 중심으로 유포하는 이유는 남성의 몸을 성적 도구로 활용하기 위함이 아니다.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온라인을 통해 유포하지 않고 수치심을 빌미로 피해자에게 직접 돈을 입금하라는 협박을 하기도 한다. "입금하지 않으면 네 몸캠 영상을 퍼뜨린다"는 식이다. 이렇듯 피해 양상은 비슷하지만 여성의 몸은 남성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대규모 유포가 진행되고, 남성의 몸은 여성의 도구로 활용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대규모 유포는 진행되지 않는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여성의 성적 욕망은 금기라고 체화해 왔고, 나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을 견디며 살아왔다. 하지만 한편에선 여성은 남성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도구로 이용된다. 비슷한 사례에서조차 남성 피해자는 성적 도구로 이용되지 않았지만, 여성은 철저하게 남성을 위한 도구로 이용됐다.
여성은 성적 욕망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금기와 남성의 성적 욕구를 충족해야 한다는 도구, 그 사이에 늘 존재해 왔던 것이다.
오로지 '여성'만이 도구로 취급됐다
▲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와, 박주민 최고위원, 진선미 의원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텔레그램 N번방 성폭력 처벌 강화 긴급 간담회’에 참석해 아동성착취물이 포함된 불법촬영물 제작, 유포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텔레그램 N번방의 범죄를 규탄하며 재발금지법 통과와 해당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그리고 갓갓, 박사, 와치맨 등의 가해자들이 저지른 n번방 사건이 터졌다. 피해 여성 70여 명 중 청소년이 1/3 정도 된다. SNS에서 자신의 성적 욕망을 표출하다(이런 계정을 '일탈계'라고 부른다) 가해자들이 보낸 피싱 링크에 잘못 접속해 모든 신상 정보가 털린 이들도 꽤 된다고 한다. 이 이후는 많은 이가 아는 대로다.
피해 청소년들은 나와 비슷한 성장기를 보낸 것으로 짐작된다. 내가 청소년이던 시절,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이 있었으면 나도 n번방의 피해자가 되었을까.
익명의 누리꾼은 네이버 지식인에 "자기 몸 영상 올리는 음란녀들부터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닌지"라고 올리며, 시청료를 냈는데 방이 없어졌으니 되레 자신이 피해자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성적 욕망을 표출하는 건 음란한 게 아니다. 남성 청소년들이 성에 대해 농담을 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듯(여성 혐오적 표현을 쓰는 건 다른 문제겠으나) 여성 청소년도 똑같을 뿐이다.
일탈계는 여성만 운영하고 있지 않다. 남성들도 운영한다. 그들도 성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성관계를 할 파트너를 찾기도 하고, 자신의 신체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남성들은 n번방의 피해자가 되지 않았다. 오직 여성만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표출했다는 이유로, 26만 명 남성 가해자의 도구가 돼 끔찍한 피해를 입었다.
또 절망스러운 건, 여러 포르노 사이트에 'telegram korean' 등의 키워드가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리고 있다는 거다. 2차, 3차 피해가 시작되고 있다는 뜻이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끔찍한 26만 개의 남근들이 성적 욕망을 표출한 여성을 어떻게 도구로 썼는지, 수많은 피해자들의 존엄을 어떻게 짓밟았는지 봤다.
우린 목격자다. 목격자가 해야 할 일은 여성을 억압하는 금기와 남성을 위한 도구, 양 극단의 사이에만 놓은 채 남성의 입맛대로 여성을 가져다 쓰는 남근 중심 사회에 저항하는 것이다.
"Not all man(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니에요)"이라며 변명부터 하는 이들의 말은 들어주지도 말자. 이 사태에서 피해 여성들에 대한 조금의 비난도, 남성의 성욕에 대한 조금의 인정도 있어서는 안 된다. 어떤 순간에라도 오롯이 피해자 편이어야 한다. 성녀와 창녀, 양 극단을 부수고 해체해서 가해의 수렁에 빠진 자매들을 건져와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하민지(hmj9431) /오마이뉴스
백범김구-글쓴 요지는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글의 앞과 뒤가 좀 내용이 서로 맞지 않는 거 같아 말씀 드립니다. 글쓴님의 글을 보면, 어렸을 적부터 성을 터부시 당하고, 성적용망을 숨겨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우리사회가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자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사회 전체가 그러합니다. 남자라고 사회적 욕망을 자유롭게 드러내지 못하는 사회입니다. 남자는 됐는데, 여자는 안 된다는 피해자 의 입장에서만 이야기와 뒤편의 성적착취 또는 범죄와는 논리가 연결 되지 않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저 엔번방 사람들은 물론 가해자이고, 법으로 강력하게 처벌 받아야 된다고 봅니다. 제가 보기에도 괴물들 같이 보입니다. 그렇지만, 저 사람들이 저런 잘못된 길에 들어 설때, 우리 사회에 문제는 없었는지, 건전하게 해소할 수 있었다면 저런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양산 되었을지 궁금합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건들지 않고 지엽적인 문제만 보는 것이, 이번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될수 없는 문제 인가 합니다.
jeep-성적 욕망을 표출하는 것도 다 같은것이 아니다. 고상하고 그 사회가 용인하는 수준인지, 아니면 개처럼 표출하는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 는 이전 판결이 새삼 그리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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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ep 내, 그건 1955년 권순영판사가 한 말이구요.
연세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65년 전 법 판결을 그리워하시다니,
참으로 시대착오적이시네요. 그리고 저 말의 구현체였던 혼빙간음죄는 09년 헌재판결로 사라졌어요.11년이 지나도 바뀐 법에 적응을 못하시네요
"대기업 무너지면 수많은 중기도 끝장" 전경련, 한시적 규제유예 촉구
[15대 분야 54개 과제 건의]
"원샷법 적용 全업종 확대 등
가용수단 총동원해야 할 때"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2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한시적 규제 유예제도’ 재도입을 촉구했다. 전경련은 “대기업 한 곳이 무너지면 몇백, 몇천 개의 협력업체가 무너지는 고통을 겪고 종사자들도 힘들다”며 “방역만큼이나 경제에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경련은 정부에 15대 분야, 54개 과제 해결을 건의했다.
허 회장이 제안한 ‘한시적 규제 유예제도’는 주 52시간근로제 등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에 대해 최소 2년간 규제를 유예하고 유예기간 종료 후 부작용이 없으면 항구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이다. 해당 제도는 금융위기 직후인 지난 2009년 총 280건, 2012년 26건, 2016년 303건의 과제에 대해 시행된 바 있다.
기업의 자발적 사업재편을 촉진하는 기업활력법(원샷법)의 적용 대상도 모든 업종과 기업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샷법은 적용 대상이 과잉공급업종으로 제한돼 있어 코로나19의 직격타를 맞은 항공운송·정유 업계에는 활용하지 못한다. 이어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금융사들의 반대매매를 일시적으로 중지할 것을 제안했다. 전경련은 기업 입장에서 대주주의 담보 주식이 반대매매되면 기업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어 투자 등 경영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가 인력이동을 제한하고 있는 데 대해 기업인에 한해 완화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과 함께 외국 기술인력에 대한 한시적 비자 연장도 주문했다. 환율 방파제가 될 수 있는 통화스와프 규모도 무제한에 가깝도록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전경련은 민간 차원의 국제공조의 일환으로 세계경제단체연합(GBC), 미국 상공회의소 등과 함께 위기 극복을 위한 공동 건의를 준비하고 있다. 업종별 대책도 내놓았다. 대표적으로는 오프라인 유통업을 살리기 위해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제를 한시적으로 폐지하는 한편 온라인 판매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 밖에 민간과 공공 부문 투자가 동시에 이뤄질 수 있도록 세제지원 확대로 민간 투자를 촉진하고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확대 및 조속한 집행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변수연기자 diver@sedaily.com
just****대기업 사내유보금 수백조는 어쩌고 이 기회에 대기업 규제풀어달라는 이야기가 나오냐?
회원gang****벽창호한테 아무리 이야기 해봐야 소용 없을 것이다
오로지 총선에서 몰살시키고 탄핵으로 가는 길 밖에 해결책이 없다다들 정신 차려라~~~~
회원whdd****결국 네들 돈벌게 해주세요. 라는거 아니냐? 네들 돈벌어서 언제 단 한번이라도 그 이익을 위해 희생한 이들을 위해 뭔가라도 해본적이 있냐? 지금것 그냥 모두 꿀꺽이었지
[조동(朝東)100년] ⑩ '1등 신문' 조선일보, 기자들 정관계 진출도 '1등'
1994년 12월 23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새 내각의 명단을 발표한다. 새로 발탁된 국무위원 중에는 두 달 전 서울시장에 임명된 최병렬을 포함해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직무대리 포함)이 모두 4명이나 포함돼 있었다.
김용태 내무부 장관, 김윤환 정무1장관, 주돈식 문화체육부 장관, 최병렬 서울시장이 그들이다. 한 국무회의에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이 4명이나 들어갔다는 건 이 신문과 권력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 1994년 12월 24일 개각 후 첫 국무회의를 마친 뒤 기념촬영 사진. 조선일보 출신 국무위원이 4명이나 포함돼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조선일보 사주 방우영은 이 모습을 특별히 기억했다. 3년 뒤인 1997년 펴낸 회고록에서 “좋은 땅에 좋은 씨를 뿌린 조선일보사이기에 많은 인재를 키웠고 또 이런 선배들이 계셨기에 오늘의 위상을 성취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조선일보 출신 정치권 진출 늘어나
조선일보 출신 기자들의 정치권 이동이 본격화된 건 박정희 독재 정권 시절부터다. 1949년부터 1971년까지 조선일보 편집국장과 주필, 부사장 등을 지낸 유봉영은 1971년 공화당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이에 앞서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성인기는 1963년 공화당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해 64년 공화당 홍보분과위원장을 맡았다.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장 출신 윤주영은 1963년 공화당 대변인으로 발탁됐고, 1965년 박정희 정권에서 무임소 장관, 1971년 문화공보부 장관으로, 1976년에는 유신정우회(유정회) 국회의원이 됐다. 윤주영은 이후 다시 조선일보사로 돌아가 조선일보 이사, 방일영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조선일보 정치부장 출신의 선우연은 1971년 청와대 공보비서관, 1979년 유정회 국회의원을 지냈다. 역시 조선일보 정치부장 출신의 이종식도 1973년과 1979년 두 차례 유정회 의원을 지냈다.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출신의 박현서도 1979년 유정회 의원으로 선출됐다.
유신 독재 시절, 전체 국회 의석의 1/3을 차지한 유정회 소속 의원들은 유신 헌법에 따라 대통령 박정희가 추천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뽑았다. 당시 유정회 국회의원들은 의회에서 유신독재의 친위대 역할을 했다.
조선일보, 자사 기자들 무더기 권력 진출했던 80년대 이후 급성장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권력을 찬탈한 후, 조선일보 출신 기자들은 대거 권력 핵심부로 들어갔다. 조선일보는 60년대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신문 중 하나였지만 80년대를 거치면서 이른바 ‘1등 신문’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조선일보가 80년대에 갑자기 뜨기 시작한 이유는 신군부와의 결탁”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일보 기자들의 정관계 진출이 늘면서 조선일보가 내놓는 고위공직자 인사 예측기사의 적중도가 다른 경쟁지보다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영향력도 커져갔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권력 내부 긴밀한 정보에 접근하고 확보할 수 있었던 언론사가 조선일보였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신학림 뉴스타파 전문위원은 “조선일보의 성장은 전두환 정권 출범을 전후해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들이 권력 요직에 진출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일본 특파원을 지낸 허문도는 1980년 전두환 중앙정보부장서리 비서실장과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시작으로 1982년 문화공보부 차관, 1984년 청와대 정무1수석, 1986년에는 국토통일원 장관으로 영전하는 등 전두환 정권 내내 권세를 누렸다.
그는 전두환 신군부 입맛에 맞는 언론판을 짜기 위해 1980년 언론 통폐합을 주도했고, 언론인 천여 명이 강제해직당한 언론 학살극에도 관여했다. 여소야대였던 1988년 언론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그는 “사이비 기자가 발붙일 소지를 없애기 위해” 언론통폐합을 했다고 답했다.
이른바 ‘킹 메이커’를 자처하며 권력을 향유했던 김윤환도 조선일보 편집국장 직무대리 출신이다. 그는 1992년 대선 당시 대구 경북지역 유세에서 ‘우리가 남이가’ 라는 지역감정 발언을 한 인물이다.
김윤환은 1979년 유정회 의원으로 집권세력에 발을 들인 뒤, 전두환 정권에서 집권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 창당발기인, 정무1수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고, 노태우 정권에서 정무1장관, 민정당 원내총무, 김영삼 정권에서 역시 정무1장관과 민주자유당(민자당) 대표위원을 지내는 등 정부와 집권당을 오가며 30년 넘게 정관계 핵심 자리를 지켰다.
정관계 요직에 진출한 조선일보 출신 인사들을 거론할 때 뺄 수 없는 사람이 최병렬이다. 1980년부터 1985년까지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그는 1985년 집권당인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또 노태우 정권에서 청와대 정무수석과 문화공보부, 공보처, 노동부 장관을 지내며 승승장구했고, 1994년 김영삼 정부에선 관선 서울시장에 임명됐다. 이후 한나라당 대표를 거쳐 지금은 미래통합당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최병렬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던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제 상식으로, 제 양식으로 이 사람이 대한민국 대통령인가, 나는 솔직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라는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1980년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김용태는 이듬해인 81년 집권당인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한 후 내리 네 번 국회의원이 됐다. 또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내무부 장관과 대통령 비서실장에 올랐다.
조선일보 정치부장을 거쳐 편집국장, 논설위원을 지낸 주돈식은 김영삼 정부에서 정무수석, 공보수석, 문화체육부 장관, 정무1장관 등 권력 요직을 두루 차지했다. 현역 최다선(8선) 의원으로 한나라당 대표,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지낸 서청원 의원도 조선일보 기자 출신이다.
조선일보 기자들, MB 대선 캠프 디딤돌로 권력 진출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조선일보 기자들의 정치권 이동은 계속됐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집권당을 향했다.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출신의 최구식은 2004년과 2008년 두 차례 한나라당 의원을 지냈다. 그는 2011년 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 사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조선일보 편집부국장 출신의 김효재는 2007년 이명박 대선 캠프에 합류한 뒤, 집권여당 국회의원이 됐고, 이후 청와대 정무수석에 임명됐다. 그는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돈 봉투를 살포한 혐의가 인정돼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다. 또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과 관련, 조선일보 출신인 최구식 의원에게 수사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1년도 안 돼 이명박 대통령의 사면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 초대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었던 신재민도 주간조선 편집장 출신이다. 신재민 역시 2007년 이명박 대선 캠프에 들어갔고, 2010년 문체부 장관 후보자가 됐지만 위장 전입과 투기 의혹으로 낙마했다.
유튜브 논객으로 활동중인 진성호 전 국회의원도 조선일보 기자 출신이다. 그도 2007년 이명박 대선 캠프에서 인터넷본부장을 맡았고 2008년 집권당인 한나라당 의원이 됐다. 유튜버로 변신한 그는 지난해 강원도에 산불이 났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행적을 두고 ‘술에 취해 있었던 것 아니냐’는 ‘가짜 뉴스’를 유포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으로 가장 최근에 정계에 진출한 이는 강효상 미래통합당 의원이다. 강 의원은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6년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언론과 홍보 관련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장관 49명 중 조선일보 출신은 6명(김동성, 윤주영, 이광표, 최병렬, 이어령, 주돈식), 동아일보 출신은 1명(이웅희)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현미/ 뉴스타파
26만 가담자 대다수, 조주빈과 공동정범인 이유
법조인들 “조주빈에 자금제공, 서로 이용하며 범죄행위 북돋아”
포털‧방통심의위 피해자 보호조치도 부족…텔레그램성착취대책위 기자회견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대응 및 쬬 쬬 쬬 피해지원하는 법조인을 비롯한 활동가들이 꾸린 시민대책위원회가 텔레그램 성착취방에 참여해 영상을 본 가담자 대다수가 ‘박사방’ 조주빈씨 등 운영진의 공동정범이라고 밝혔다. 정부와 포털, 규제기관이 착취영상과 인적사항 삭제 등 적극적인 지원조치를 하라고도 촉구했다.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는 26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죄질에 상응하는 처벌과 피해자 보호조치로 사건의 근본적인 해결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여성의 인격을 훼손하려는 목적으로 구성한 커뮤니티에서 서열은 누가 얼마나 더 여성을 능욕하느냐에 따라 결정됐다. 텔레그림 성착취 네트워크는 방을 관리하기 위해 서열을 만들고, 규칙을 정하고, 심사를 거쳐 참가자를 선정하는 등 조직범죄의 면모를 갖췄다”고 강조했다.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는 26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태의 근본 해결을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피해자 지원 변호인단에 참여하는 조은호 변호사는 성착취방에 유료로 입장한 가담자 대다수가 조씨와 수행원 등과 같은 운영진과 공동정범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단순 이용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가장 소극적으로 가담한 이들도 공범”이라고 했다.
텔레그램 성착취방 사건의 범행수법은 5가지로 나뉜다. ‘박사방’ 조주빈과 수행원 등 운영진은 아르바이트 등 광고로 희생자를 찾고, 신분증을 요구하거나 해킹을 해 개인정보를 취득했다. 이렇게 얻은 신상을 빌미로 성착취하고, 수행원은 직접 성폭력을 행사했다. 이들은 해당 불법촬영물을 텔레그램방에 공유한 뒤 다시 이를 빌미로 성착취를 이어갔다.
조 변호사는 “대화방에 유료 가입해 영상을 관전한 가담자들은 자금을 제공하고 품평을 통해 영상물 제작을 의뢰하고 지지했다. 자금제공자이자 주문자, 소비자”라며 조 변호사는 세부 행위에 따라 교사‧방조범으로 분류될 수 있지만, 대다수는 공범에는 정범과 동일하게 처벌받는 공동정범이라고 했다. 그는 판례상 ‘공모’는 법률상 뚜렷한 형식을 요구하지 않고 암묵적 ‘공동가공의사’가 상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는 26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태의 근본 해결을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지원 변호인단의 박예안 변호사는 해외 국가들의 경우 온라인 어플리케이션이 퍼지며 새로 산업화한 아동성폭력과 성착취에 발빠르게 대처한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고수익 알바로 유인해 노출사진을 얻어내고 유포로 협박하는 수법은 해외에도 퍼져 있다”며 “기존 법리를 적극 반영해 상응하는 처벌을 하는 한편, 새로운 법리도 도입했다”고 했다.
캐나다는 ‘비동의 영상물 유포’를 5년 이하 징역의 중범죄로 규정해 처벌한다. 비동의에는 당사자 의사 확인 부주의까지 포함했다. ‘사적인 이미지’의 뜻을 형법에 새로 규정해 재판부가 자의 해석할 여지도 없앴다.
미국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유통, 업로드, 독려하는 행위도 ‘제작’ 정의에 포함해 초범에 최소 징역 15년형을 선고한다. 단순 소지나 시청 행위도 10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캘리포니아주는 사이버 전담부서를 설치해 온라인 성착취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정부와 포털, 방통심의위원회가 그간 소극적이던 피해자 보호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변호인단의 원민경 변호사는 정부가 △미신고 피해자가 안전하게 신고할 통로와 절차를 마련하고, △의료‧상담‧법률지원을 제공하며 △2차피해를 막도록 게시물 삭제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 변호사는 포털을 비롯한 정보통신서비스 사업자가 피해자 정보를 알리는 게시물에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대형 포털이 제공하는 ‘자동완성어’ ‘연관검색어’를 통해 피해자의 인적사항이 ‘n번방’ 표현과 함께 유포됐다. 그는 “피해자가 지난해 요청해 삭제한 이름도 최근에 검색량이 많아지다 다시 검색어에 올랐다. 피해자와 가족은 매일매일 모든 게시물을 모니터링하고 신고하며 고통을 겪고 있다”고 했다.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는 26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태의 근본 해결을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원 변호사는 “현행 법령상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신상이 게시돼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게시물을 임의로 삭제 ‧게시중지할 수 있다. 피해자가 반복 신고하지 않더라도 게시물과 검색어가 삭제되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 변호사는 방통심의위도 사업자를 강제해 피해자 인적사항 신속 삭제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방통심의위는 사진‧영상물 포함 게시물을 24시간 이내 삭제조치하지만, 피해자의 인적사항은 일반게시물로 분류해 신속처리하지 않는다. 그는 “피해자 인적사항 게시물에도 24시간 이내 삭제조치하는 한편,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들에게도 삭제 의무를 부여하라”고 밝혔다.
노선이 공대위 활동가는 이날 취재진을 향해 “여전히 피해자의 정보가 포털 검색어에 오른다. 기사를 쓰면서 피해자를 유추할 수 있는 기사 작성이나 2차피해 검색을 유도하지 않도록 유의해주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김예리 기자 ykim@mediatoday.co.kr
"n번방의 남성성, 존재하지 않는 '허기'를 쫓는 좀비와 같아"
텔레그램 성착취 공대위 'n개의 성착취, 이제는 끝내자' 기자회견
"조주빈은 악마가 아닌 평범한 인간"
그는 "성착취 네트워크를 끝장내려면 조주빈이 악마가 아닌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며 조 씨가 어떻게 피해자를 협박해 '노예'로 만들었는지에 주목했다. 그는 "피해 여성의 촬영물을 주위에 유포하겠다는 협박은 여성들에게 큰 압박이 된다"며 "법원에서 성폭력으로 판결한 사건의 피해자조차 '문란한 여자'라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것이 우리 사회"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미 사회에 존재하는 '피해자 낙인찍기'가 이들 집단의 협박에 조력하는 공모자"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그의 어린 시절도, 성격도, 외모도, 친구도, 가족도, 취미도 궁금하지 않다"며 "오로지 검찰과 법원과 사회가 그를 어떻게 벌할 것이냐는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조주빈 이전의 수많은 가해자들을 너그러이 방면해온 검찰과 법원은 성착취 네트워크를 유지시킨 강력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공대위는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유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대형 포털 등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적극적인 피해자 보호조치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피해자 보호 제도 마련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공동변호인단을 통해 성착취 피해를 지원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이라며 "디지털 기반 성착취에 강력 대응할 수 있는 법 제·개정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법무부는 서지현 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이 법무부의 '텔레그램 n번 방 성착취 사건' 등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꾸린 '디지털 성범죄 대응 TF'에 합류했다고 밝혔다. TF는 진재선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을 총괄팀장으로 △수사지원팀 △법·제도개선팀 △정책·실무연구팀 △대외협력팀 등 5개 팀으로 구성된다. 법무부는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 엄정 대응하도록 하는 한편, 피해자 보호 및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 판 '조주빈'은 35년 형 선고
박예안 변호사는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n번방'과 유사한 온라인 성착취 범죄사례가 급증하는 추세"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성착취 범죄(sex extortion, sextortion)'이라는 새로운 법적 개념을 도입해 온라인 성착취 범죄자를 처벌하고 있다"고 말했다.
캐나다는 형법으로 온라인 성착취 범죄의 대표적 유형인 비동의 유포를 처벌하고 있다. 미국은 아동·청소년 이용 성착취물을 제작할 경우 초범이라 할지라도 최소형량 15년에서 최대 30년까지 선고한다. 단순 소지 및 시청 목적 접근만 해도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이 부과된다. 성인 피해자의 경우 연방법에서 직접 처벌하는 조항은 없지만 26개 주와 워싱턴 D.C.에서는 주 법률로써 온라인 성착취 범죄를 중범죄로 보고 처벌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박사방 사건'과 유사한 '마크 P 반웰 판결'이 있었다. 피고 마크 반웰은 대부분이 미성년자였던 43명의 피해자를 온라인을 통해 고수익 모델 일을 미끼로 유인했다. 피해자에게 모델 포즈라는 명목으로 성적인 노출 사진을 요구하고 피해자가 사진을 보내면 이에 대한 유포를 빌미로 점차 수위 높은 성적인 사진을 요구했다. 반웰은 연방법원으로부터 35년 형을 선고받았다.
한편 'n번 방'의 파생방 중 하나인 '고담방'을 운영한 '와치맨' 전모 씨는 과거 음란물 유포로 집행유예형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그는 집행유예기간 중 '고담방'을 개설해 운영했다. 검찰은 현재 그에게 3년 6개월을 구형했다. 박사의 후계를 노린 16세 '태평양'은 지난달 구속 송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은 기자 프레시안
그놈’들 인면수심 끝은 어디… 10세 미만 소아 불법촬영물 방까지
속속 드러나는 추악한 텔레그램 대화방들
‘박사방’ 유료회원 추정 40대 남 극단적 선택
10세 미만 아동을 성적으로 착취한 음란물을 공유하는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에서 오간 대화 내용(일부는 모자이크 처리). 독자 제공
미성년자 포함 수많은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한 동영상을 제작ㆍ유포하다 붙잡힌 조주빈(25)의 ‘박사방’에 이어 추악한 범죄가 자행된 텔레그램 비밀대화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엔 채 열 살이 안된 소아들의 불법 음란물만 공유한 대화방까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27일 텔레그램 내 불법 음란물 관련 제보자 A씨에 따르면 최근까지 텔레그램에는 ‘어린이 갤러리’라는 비밀대화방이 운영됐다. 비밀번호를 받고 입장한 30명 이상의 회원들은 소아의 신체 등을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했다.
회원 가운데 자신을 소아과 레지던트라고 소개한 이는 진료를 받기 위해 온 아이를 불법 촬영한 사진 등을 공유했다. 태권도장에서 근무한다고 밝힌 한 회원은 도장에 다니는 아이들을 성추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이들이 공유한 영상물 중에는 10대 미만 아동과 성관계를 하는 것까지 있어 아동 성폭행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회원 중 일부는 조주빈처럼 10세 미만 어린이들을 협박해 불법 음란물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접근해 “선물을 보내줄 테니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식으로 친분을 쌓으며 개인정보를 얻고 신체 사진을 요구한 것으로 A씨는 파악했다. 일단 사진을 확보하면 “부모님에게 알리겠다”고 협박을 하며 지속적으로 성착취 사진과 영상을 받아내는 수법이다. A씨는 “성에 대한 관념이 부족하고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라 협박하기가 성인보다 쉬웠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동 음란물을 판매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글. 독자 제공
이런 아동 음란물은 텔레그램과 트위터 등에서 ‘로리 영상’이란 이름으로 수만~수십 만원에 거래됐다. 하지만 유통하다 적발돼도 처벌은 약했다. A씨는 “지난해 경찰에 검거된 켈리는 사실 ‘n번방’보다 ‘로리방’으로 더 유명했다”며 “영상 수만 개를 판매했지만 1심에서 고작 1년형을 받았다고 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A씨가 언급한 텔레그램 닉네임 켈리는 성착취 영상이 공유된 n번방을 최초 운영자인 ‘갓갓’에게 물려 받은 신모(32)씨다. 지난해 11월 춘천지법은 ‘수사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신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신씨는 과거에도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폭력 범죄로 징역형의 집행유예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어 ‘솜방망이 처벌’ 논란을 불렀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4월 내놓은 ‘2017년도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추세와 동향분석’에는 미약한 처벌의 현주소가 담겨 있다. 아동 음란물을 제작한 성범죄자 중 실형을 받은 건 20.8%에 그쳤다. 징역 형량은 평균 3년 2월에 불과했다. 범죄 전력이 없거나 범행을 시인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받은 비율은 무려 78%였다.
한편, 이날 오전 2시 50분쯤 서울 한강 영동대교에서 박사방 유료회원으로 추정되는 40대 남성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유서에는 ‘박사방에 돈을 입금했는데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죄책감이 들고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찰은 유서 내용 등을 토대로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 중이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그 '오덕식'이 'n번 방' 재판 맡는다고?
여성단체연합 성명서 내고 비판 "심각한 결격사유 있는 문제적 인물"
'n번 방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커진 가운데 'n번 방'의 파생방이자 '박사'의 후예를 자처한 '태평양' 사건의 담당 판사가 오덕식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으로 알려지면서 담당 재판부를 바꿔야 한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덕식 판사는 고 구하라 씨와 고 장자연 씨 등 성범죄 사건 등의 담당 판사였다.한국여성단체연합은 27일 성명을 내고 "오덕식 판사는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피해자의 일상 복귀를 어렵게하는 판결을 내린 인물"이라며 "오덕식 판사는 텔레그램 성착취 관련 재판뿐만 아니라 어떠한 성폭력 관련 재판도 맡을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오덕식 판사는 고 구하라 씨와 최종범이 연인관계였다는 이유로 최종범의 불법촬영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며 "또 재판 과정에서는 ‘영상의 내용이 중요하다’며 불법촬영물을 받아보고 판결문에 두 사람의 성관계 횟수와 장소까지 적는 등의 2차 가해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또 "고 장자연 씨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던 전 <조선일보> 기자에게도 무죄를 선고하고 서울시내 웨딩홀에서 수 십 차례 불법촬영을 저지른 사진사에게도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등 성인지감수성이 전무한 판결을 내렸다"며 "사법부는 미투운동을 통해 여성들이 요구했던 사법 정의 실현에 대한 책임을 또 한 번 방기하려는가"라고 말했다.
오덕식 부장판사 이외에도 10대 청소년에게 음란물을 유포한 20대 남성에게 벌금형을 내리고 성매매 영업을 해 부당이득을 챙긴 남성·성매매 영업을 해 부당이득을 챙긴 남성·아동 성착취 동영상을 유포한 남성 등에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등 성폭력 관련 범죄에 관대한 판결을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올해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우리 사회의 성평등 실현에 악영향을 끼친 '성평등 걸림돌' 중 하나로 오덕식 판사를 선정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성적폐 카르텔 개혁을 위한 공동행동이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덕식 판사를 규탄했다. ⓒ프레시안(조성은)
조성은 기자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배한철의 역사의 더께/낯선조선3]조선시대 살인사건의 절반은 묘지다툼이 원인
고전들이 전하는 조선의 실제 모습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달랐다. 유학을 국가의 근본으로 삼은 조선이었지만, 조상신을 숭배해 비과학적인 풍수설을 맹신했다. 묘지에 대한 집착이 병적이었다. 이를 둘러싼 분쟁이 빈발했다.
사진1. 닭 장수. 1900년. 조선사람들은 항상 모자를 썼다. 닭장수가 갓을 쓰고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미국 헌팅턴도서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1762~1836)이 쓴 <목민심서>는 다음과 같이 개탄한다. "묘지에 관한 송사는 이제 폐해만 있는 풍속이 되었다. 구타와 살인 사건의 절반이 이로 인해 일어난다. 남의 묘지를 파버리는 변고를 저지르는 행위를 효행이라고 생각한다. … (중략) … 장사를 지내고 나면 자리가 나쁘다고 세 번, 네 번 개장하는 동안에 묘자리를 두고 송사가 생겨 마침내는 원수가 되고 마니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권력자들이 남의 묘를 강제로 빼앗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마찬가지로 <목민심서>의 내용이다. "참의 홍혼(1541~1593)이 양주목사로 있을 때, 후궁의 친족이 권세를 업고 함부로 고을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묘를 썼다. 홍혼이 법에 따라 (후궁 친족의) 묘를 파내버리자, 관찰사가 이를 듣고 놀라고 주위에서 모두 몸을 떨었다."
묘터를 놓고 종종 살인도 벌어졌다. 정조의 형사판례집 <심리록>에 따르면, 1794(정조 18) 경북 경산의 박사읍사는 은삼손과 무덤자리를 놓고 다투다가 발로 음낭을 차서 죽여버렸다. 당시에는 사대부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묘지를 넓게 차지하려고 다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자 나라에서는 법으로 평민들은 분묘 사이에 간격을 둘 수 없도록 금지했다. 묘지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보니 분쟁이 잦을 수 밖에 없다. 박사읍사는 어머니 묘소가 은삼손의 조상 묘에 의해 머리가 눌리고 청룡이 침범 받고 있다면서 묘지 이장을 요구하다가 결국은 살인까지 저질렀다. 정조는 "범행이 사납고 간특하다"며 엄중 처벌을 지시했다.
TV사극을 보면 조선시대 죄수들은 목에 `나무 칼`을 주로 차고 있다. 중국의 형벌제도에 따른 것으로 죄의 경중에 따라 칼의 무게도 달랐다. 칼은 죄수의 행동을 제약하고 고통을 배가하기 위해 씌웠다. 그 고통은 죽는 것보다 더 했다. <목민심서>는 "나무 칼을 목에 씌우는 법은 후세에 생긴 것이고 선왕의 법은 아니다. 나무 칼은 옥졸을 위한 것이다. 칼을 씌워 놓으면 쳐다볼 수도, 굽어볼 수도, 숨을 쉴 수도 없다. 한 시각도 사람이 견딜 수 없다. 죽이면 죽일지 언정 나무 칼을 씌우는 일은 옳지 않다"고 썼다.
사진2. 북한산 대서문. 1900년대초. 오늘날 수풀이 무성한 북한산과 달리 나무가 거의 없다. 조선중기 온돌이 널리 확산되면서 무분별한 벌목으로 대부분의 산들이 민둥산으로 변해버렸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형벌제도가 엄격했지만 사람사는 세상이라 무뢰배들이 존재했던 모양이다. 조선말 궁중에 쓰는 그릇을 납품하는 공인 지규식의 <하재일기>는 타이르는 노인에게 행패를 부린 불량배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어젯밤 이웃 서시운의 집에서 무뢰한 불량소년들이 북을 치며 시끄럽게 노래를 불렀다. 광릉 소년 두서너 명도 와서 함께 놀았다. 이웃에 사는 노인이 국상(신정왕후 기년상)을 만나 국법에 저촉되는 일을 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소란을 피우고 더 시끄럽게 떠들었다. 통탄할 노릇이다. 그런데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불량배들이 밤중에 노인 집으로 몰려가서 몽둥이로 문짝을 부수고 욕지거리를 엄청나게 쏟아냈다. 괴이하고 밉살스럽다." 노소의 구분도 뚜렸했던 시대여서 매우 낯설다.
고전은 생소한 생활상도 들려준다. 우리 조상들은 학문을 중시했지만 책도 귀하게 여겼던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실학파의 스승 이익(1681∼1763)의 대표저술 <성호사설>은 우리 책을 오히려 일본에서 구입해 찍어야 하는 상황을 개탄한다. <성호사설>에 의하면, 송나라 학자 진순의 <성리자의(性理字義)>와 <삼운통고(三韻通考)>는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에서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발간한 <이상국집(李相國集)>도 국내에 남아 있는 것이 없어서 일본에서 구해다가 간행했다. 일본은 법이 엄해서 우리나라 서적이 일본 곳곳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는 데 반해 일본의 책은 나라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일본의 인쇄술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성호사설>은 "일본에서 찍은 책판의 문자는 자획이 정연하여 우리나라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놀라움을 표시한다.
조선은 `모자의 나라`였다. 식사를 할 때도 모자를 벗지 않았다. 여러 모자 중 갓이 여러가지 문제를 초래했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1741~1793)가 저술한 <앙엽기>의 한 대목이다.
"갓의 폐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나룻배가 바람을 만나 기우뚱거릴 때 조그마한 배 안에서 급히 일어나면 갓 끝이 남의 이마를 찌르고 좁은 상에서 함께 밥을 먹을 때에는 남의 눈을 다치게 하며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난쟁이가 갓 쓴 것처럼 민망하다. … (중략) … 지금의 갓은 허술하게 만들어져 갓모자(윗부분)와 갓양태(차양)의 사이에 아교가 풀어지면서 서로 빠져버린다. 역관들이 연경에 들어갈 때 요동 들판을 지나다가 비를 만나면 양태는 파손되어 달아나고 모자만 쓰고 가니 중국 사람이야 보통으로 보나 같이 간 사람은 다 비웃는데 그렇다고 어디서 갓을 사겠는가. … (중략) … 나태한 풍습과 오만한 태도가 모두 갓에서 생기니 어찌 옛 습속이라 하여 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자를 중시하는 풍습은 이미 고려 때도 있었다. 송나라 사람으로 1123년(고려 인종 1) 고려에 사신을 왔던 서긍의 저술한 <고려도경>은 "고려인은 모자를 쓰지 않은 맨머리를 죄수와 다름없다고 수치스러워했다. 무늬가 들어간 비단 재질의 두건을 소중히 여겨 두건 하나의 값이 쌀 한 섬에 달했다. 가난한 백성은 이를 마련할 길이 없어 대나무 모자를 만들어 썼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만의 독특한 생활양식이면서 오늘날 세계적으로 진가를 인정받는 난방 시스템이 있다. 바로 온돌이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이 온돌에 의한 폐해가 적잖았다. 조선후기 문신 성대중(1732∼1809)의 <청성잡기>에 따르면, 인조 때 도성의 내사산(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에 솔잎이 너무 쌓여 여러 차례 산불이 나자 임금이 대책을 고심했다.
김자점(1588~1651)의 건의로 도성 집들에 명해 온돌을 설치하도록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나라로 확산됐다. 갑자기 온 나라로 퍼져나간 온돌의 영향으로 습지나 산이 모두 민머리가 되어버려서 장작과 숯이 갈수록 부족해졌다. 성대중은 "내가 일본에 가보니 온돌이 없어 노약자들도 모두 마루에서 거처했다. 나 역시도 (그곳에서) 겨울을 나고 돌아왔지만 일행 중에 아무도 병난 자가 없으니 이는 습관들이기 나름"이라며 온돌무용론을 폈다. /매일경제
조동(朝東) 100년] ⑪ 사주들의 목에 걸린 독재자의 훈장...권언유착의 증거
1969년 6대 대통령 박정희는 장기집권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2번째 대통령 임기 반환점을 돌며 그는 대통령을 세 번 이상 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는 이른바 ‘3선개헌’을 추진했다. 북한의 위협을 막아내고 경제 발전을 이룩하려면 강력한 영도력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 1969년 7월 25일 ‘3선개헌’ 관련 대국민 특별담화를 발표하는 박정희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박정희 ‘장기집권 논리’ 그대로 옮겨 보도한 조선·동아일보
조선과 동아일보, 두 신문은 박정희의 영도력이 필요하다며 3선개헌 논리를 그대로 옮겨 적었다.
▲ 1969년 ‘3선개헌’ 반대 시위를 진압하는 전투경찰 (사진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1969년 8월 8일 ‘3선 개헌’을 반대하며 국회 본회의장에서 농성중인 신민당 의원들 (사진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특히 조선일보는 3선개헌은 법으로 옳고 그름을 따질 문제가 아니라며 개헌에 힘을 실어줬고, 개헌 반대 시위에 대해서는 폭력성을 부각했다.
1968년 ‘신동아 필화사건’으로 해직된 천관우 전 동아일보 주필은 3선개헌이 있던 1969년 기자협회보 기고문을 통해 당시 언론이 “잠든 사이에 스며든 연탄 가스에 취해 비명 한 번 못 질러 보고 어리둥절하고 있는” 상태라고 개탄했다.
▲ 1969년 7월 4일 조선일보 ‘3선개헌’ 반대 시위 관련 기사
박정희의 장기집권 기도에 맞서 야당인 신민당은 물론 함석헌, 장준하 등 재야인사, 시민과 학생들이 나서 3선개헌을 반대했지만, 1969년 10월 개헌안은 국민투표에서 통과된다. 정부·여당의 위법적인 선전 운동과 공무원을 동원한 부정 투표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투표 결과가 나오자 호외까지 발행하며 압도적 찬성으로 반대를 물리쳤고, 박정희 정권이 신임받았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박정희 장기집권의 길이 활짝 열렸다.
▲ 1969년 10월 18일 조선일보 호외 지면.
박정희, 장기집권 길 연 뒤 조선·동아 사주에게 훈장 수여
3선개헌이 통과된 후인 1970년 5월 13일, 박정희는 당시 조선일보 사장 방우영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한다. 국민훈장은 국가와 사회 발전에 공헌한 유공자들에게 국가원수가 주는 포상 중 으뜸가는 훈격이다. 방우영의 서훈 사유는 “언론의 창달과 언론계 육성, 언론인의 자질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였다.
▲ 1970년 5월 13일 박정희로부터 훈장을 받기 위해 서 있는 故 방우영 전 조선일보 사장 (오른쪽 두 번째) (사진 출처 : e영상역사관)
같은 해 8월 15일 광복절. 이번에는 조선일보 회장 방일영과 동아일보 회장 김상만이 박정희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서훈 사유는 ‘국가와 사회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는 것이었다.
▲ 조선·동아일보 사주에게 수여된 국민훈장. 사진은 국민훈장 중 가장 훈격이 높은 무궁화장
전두환, 조선·동아 사주에게 최고등급 국민훈장 수여 …”민주언론 창달 기여”
군사반란과 광주학살로 권력을 꿰찬 전두환 신군부는 채찍과 당근으로 언론 길들이기에 나섰다. 세제 혜택 등 언론사에 특혜를 주는 동시에 이른바 ‘언론통폐합’을 통해 입맛에 맞게 언론판을 새로 짰다. 이 과정에서 천 명 넘는 언론인들이 강제 해직됐다.
1982년 4월, 신문의 날을 맞아 조선·동아 사주 방일영과 김상만은 1970년 박정희에 이어 이번엔 전두환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국민훈장 가운데 가장 훈격이 높은 ‘무궁화장’이었다.
▲ 1982년 4월 6일, 이광표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으로부터 훈장을 받는 故 김상만 전 동아일보 회장(왼쪽)과 故 방일영 전 조선일보 회장(오른쪽) (사진 출처 : 국가기록원)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는 방일영과 김상만의 서훈 공적서에는 “민주언론 창달과 신문기업 육성에 기여한 원로 언론인에 대하여 국민훈장을 수여”한다고 적혀 있다.
▲ 1982년 김상만·방일영 등에 대한 훈장 수여를 건의한 영예수여 문서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두 신문 사주가 받은 훈장이 권언유착의 증거와 같다고 지적했다. 김서중 교수는 “언론이 (독재 권력의) 관리대상이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징표일 수 있고, 큰 언론들은 결정적인 국면에 정권에 굴복해 기여한 바가 있기에 정권 차원에서 보상하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과 동아일보, 두 신문사의 사주들이 독재정권으로부터 특혜와 훈장을 받았을 때, 신문사에서 쫓겨난 젊은 기자들은 제도 언론이 보도하지 않았던 진실을 알린 죄로 유신 법정에 서야만 했다. 포승줄에 꽁꽁 묶인 기자들은 박정희와 두 신문 사주를 향해 무슨 말을 했을까.
홍주환 뉴스타파
천안함 10년 2심재판서 밝혀진 의혹 8가지
항소심 재판 4년 증거·증언들 “(MB에도) 천안함 좌초 보고” 생존자 24명 진술서 원본서 ‘충격’ 인양책임자 “폭발아니다”
천안함 침몰사건이 벌어진지 10년이 흘렀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을 잇는 정부는 북한이 어뢰로 공격한 사건이라 발표하고 끝내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 명예훼손 형사재판을 10년째 벌이며 진실규명 노력이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지난 2010년 5월부터 시작된 이 재판은 2016년 1월25일 1심 재판 선고로 마무된 이후 그해 2월부터 현재까지 항소심 재판이 이어져왔다. 지난 4년 여에 걸친 항소심 재판에서 그동안 제기된 의혹이 추가로 규명되거나 밝혀졌다. 당시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최초 보고가 좌초였으며 이명박 대통령에도 그렇게 보고했다고 증언했고, 생존자진술서 원본을 보면 58명 가운데 24명이 ‘충격’이었다고 진술했다. 천안함 선체를 인양한 업체 책임자는 폭발이 아니라고 증언했다. 구조하러갔던 UDT대대장은 최초 수색때부터 선체 절단면 동영상을 촬영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정부 백서에 나온 함수의 수심와 위치에 오류가 밝혀졌다. 천안함 프로펠러가 저절로 부러졌다는 법정에서의 해군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절단기로 절단했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천안함 침몰원인이 좌초나 외부물체와 충격으로 입증된 것이 아니다. 판정이 내려진 것은 아니다.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최초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의 공개가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지난 4년 재판 주요 증언을 살펴봤다.
1.김태영 “천안함 사건직후 내게 좌초로 보고했다”
김태영 전 국방부장관은 지난해 5월16일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김형두) 심리로 열린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위원 명예훼손 사건 항소심 재판에 출석해 천안함 침몰사건 직후 처음엔 자신도 어뢰피격이라는 주장을 미심쩍어 했으며, 최초 보고는 좌초였다고 밝혔다. 김 전 장관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도 보고했다고 증언했다. 김 전 장관은 “처음엔 좌초로 비슷하게 보고받았다. 해군이 정확한 사고사실을 몰라 저한테 애매하게 보고됐고, 제가 대통령께도 (좌초라고-기자 주) 말씀드렸더니 이 전 대통령이 ‘이거를 북한의 행동이라고 어떻게 확인할 수도 없는 것이니 정확히 처음부터 객관적으로 조사하라’고 해서 그런 식으로 조사했다”고 밝혔다. 그는 김 전 장관은 최원일 천안함장을 만나 물었더니 울면서 어뢰피격이라고 해 그 때부터 어뢰라고 확인(판단)했다고 밝혔다. 처음엔 북한 공격이라고 생각지 않았다고 했다.
2.생존자 진술서 원본 24명이 ‘충격’ 14명이 ‘폭발’
이 재판에서는 그동안 일부만 공개됐던 생존자진술서 원본 700여쪽 자리가 증거로 제출됐다. 지난 2018년 12월20일 재판에서는 신상철 피고인의 변호인인 심재환 변호사가 이 진술 내용을 분석한 결과 생존자 가운데 24명이 최초 작성한 진술서에서 ‘충격’이라고, 14명이 ‘폭발’이라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20명은 불확실한 진술이었다. 윤종성 전 민군합조단 과학수사분과장 겸 군측 조사단장(현 성신여대 교수)을 신문하는 과정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날 변호인이 공개한 천안함 절단면 부근인 CPO 침실에 있던 생존자인 조타장 원사 김병남은 “폭발 아님. 외부 부딪치는 소리. 외부충격. 파공”이라고 진술했고, 갑판장 상사 김덕수는 “폭발음은 아니었다, 외부충격”이라고 진술했다. 이 두 사람의 진술은 처음 공개됐다. 전탐장 김수길 상사도 “충격. 상선같은 것이 부딪힌 것. 충돌. 충돌음”이라고 진술했다. 이 진술들은 합조단이 ‘천안함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합조단 보고서)에 요약 기록한 58명의 생존자 진술에도 빠져있다.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에 전시중인 천안함 함수 선제. 사진=이우림 기자
3.인양책임자 “천안함 폭발한배 아니다” 주장
사고 직후 침몰한 천안함 함수와 함미 선체를 인양한 책임자들은 천안함 절단부위가 폭발한 배의 모양과 다르다고 의견을 법정에서 내놓았다. 최초의 증언은 재판 7년 만인 지난 2017년 11월15일 공판에서다. 2010년 4월초부터 4월15일 천안함 함미를 인양할때까지 작업을 했던 88수중개발의 부사장인 정호원씨는 천안함 손상상태와 폭발로 인한 선박의 손상상태가 다르다고 밝혔다. 폭발한 배와 천안함이 어떤 면에서 다르냐고 묻자 정 부사장은 “특히 내부폭발해도 (두라3호와 같은) 저정도인데, (외부에서) 미사일 맞았거나 (어뢰가 폭발했다) 하면 선체 일부가 떨어져나갔다고 봐야한다”며 “유류보급함 폐선 전에 (군에서 폭발) 실험을 하는데, 그런 것을 보면. 저런(두라3호 같은) 형태”라고 증언했다.
이어 8주기였던 지난 2018년 3월28일 KBS 추적60분팀은 함수를 인양한 업체 대표인 전중선씨와 인터뷰 내용을 방송했다. 전씨는 “북한에서 어뢰가 와서 쏴요? 십원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라며 “저거는 포맞은 배가 아니다. 폭발한 배가 아니다. 바닥도 스크래치가 있는 것을 선명하게 봤다”고 밝혔다. 그는 “어뢰로 맞았는데 스크래치가 왜 생기냐”며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를 못하는 그런 일”이라고 주장했다.
4.절단면 첫 수색부터 동영상 촬영
해군은 천안함 침몰직후 구조 수색을 하는 과정에서도부터 천안함 선체를 동영상으로 촬영해놓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당시 해군특수전 여단 1대대 소속 UDT대대장(당시 해군중령)이었던 권영대 현 인천해역 방어사령부 27전대장(해군대령)은 2017년 2월16일 재판에 출석해 당시 잠수사들에게 수중카메라로 동영상을 찍어보라고 지시했으며, 촬영한 영상을 보고 내부폭발은 아닌 것 같다고 판단해 상부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구조팀이 사고원인을 알 수 없는데 신상철 피고인이 ‘알고도 은폐했다’고 허위주장했다는 검찰 주장과 거리가 있다는 반론이 나온다. 절단부위 상태를 초기부터 알고 있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5.어뢰에 엉켜붙은 철사 뭉치 왜 펜치로 제거했나
천안함 사건 원인의 결정적 증거로 지목된 이른바 1번 어뢰에 엉켜붙은 철사뭉치가 항소심 재판에서도 미스터리한 쟁점이었다. 특히 최초 어뢰발견 직후 동영상에 철사뭉치가 보였지만, 이를 국방부 이송한 뒤 촬영한 사진을 보면 조사관들이 철사뭉치를 펜치로 제거하고 있었다. 지난 2018년 7월19일 재판에서 국방부가 법원에 제출한 CD에 들어있는 사진이었다. 해군이 함께 어뢰에 뒤엉켜 인양된 철사뭉치를 그대로 두지 않은채 임의로 제거한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 2010년 5월15일 오전 쌍끌이어선이 수거해 올렸다는 이른바 1번어뢰 수거직후 동영상. 추진후부와 프로펠러 사이의 축에 남아있는 녹의 모양이 무언가에 감겼던 흔적처럼 보인다. 사진=검찰의 법원제출 동영상 갈무리
6.어뢰축의 녹 자국 뭔가, 왜 축 간격을 줄였나
재판부는 지난 2017년 5월18일 재판에서 1번 어뢰 수거직후 촬영 동영상을 상영했다. 이 영상을 보면, 어뢰추진체의 추진후부와 프로펠러 사이의 축에 뚜렷이 남아있는 녹의 형태와 딸려나온 밴드의 형태가 거의 유사했다. 이 영상에서 추진후부와 프로펠러 사이의 축 간격이 이후 사진에서는 크게 좁혀져 있었다. 조사과정에서 이를 좁혀 이 자국을 안보이게 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7.천안함 프로펠러 왜 절단해놓고 부러졌다 거짓말했나
천안함 사고원인과 무관해보이는 해군의 거짓말도 의문을 낳았다. 천안함 함미 우현의 프로펠러의 날개 하나가 잘려 있는 모습을 두고 검찰과 해군측은 2011년 재판에서 늘 부러졌다고 주장해왔다. 해군은 2018년 9월13일에야 플라즈마 절단기로 잘랐다고 실토했다. 천안함 선체 현장검증 과정에서 피고측 심재환 변호사가 “깨진게 아니라 잘라낸 것 아니냐”고 따지자 윤수정 검사는 “보고서 49쪽에 보면 거치대 올라탄 상태에서 바닥에 내려놓다가 잘렸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날 오후 5시가 넘어 재판부가 함미 프로펠러를 다시 보러 갔더니 해군의 김창호 중령은 “선체를 육상에 올릴 때 안착하다 (프로펠러가) 낮아서 플라즈마 절단기로 절단했다”고 밝혔다. 왜 이 같은 사실을 8년 동안 거짓말 해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을 낳았다.
8.함수 위치 표시 오류 밝혀져
정부가 천안함 사건 직후 반파된 함수의 위치를 백서에 잘못 표시한 사실도 재판에서 밝혀졌다. 2017년 10월10일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국립해양조사원의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 제출 사실조회 회신 자료에 따르면, 국립해양조사원은 천안함 함수의 최종 침몰 위치인 백령도 남방 37-54-20N, 124-40-59E 지점의 수심이 24m라고 밝혔다. 국립해양조사원은 이 수심(24m)을 1992년 수로 측량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건 1년 뒤 발간한 공식 책자인 ‘천안함 피격사건백서’에는 해당 지점의 수심에 대해 표에는 20m로, 해도상에는 5~10m로 기록돼 있었다. 특히 백서의 해도에 표기된 함수최종 침몰위치는 실제 위치보다도 약 800~900m 남쪽이었다. 윤준 서울고법 형사5부 재판장은 그해 9월26일 공판 시작에 앞서 “백서에 있던 함수의 위치 표시가 잘못된 것 같다”며 “국립해양조사원의 사실조회 회신을 보면, 좌표가 37-54-20N, 124-40-59E인 것은 같은데, 그(것을 표시한) 점이 다른 데에 있다”고 밝혔다.
▲ 국립해양조사원이 제출한 함수위치 표시. 사실조회 회신자료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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