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16
기호-인천
의원 월급 지난해 실수령액 합쳐보니 1억2030만620원
소득격차 확대 속도 빨라졌다…”올해 더 심할 수도”
박근혜 탄핵 2년···태극기세력, 서울 도심 곳곳서 ‘박근혜 석방’ 구호
"대통령 박근혜 파면" 그후 2년, 각 정당 논평은?
경향신문이 입수한 한유총 단톡방엔 무슨 일이
사립유치원들의 협박
끼리끼리’ 동질혼 시대-결혼이 낳은 계급 양극화
불법 촬영’ 정준영-승리, 방송가 활보 어떻게 가능했나
IMF의 ‘역풍’ 언급은 경제위기 경고 아냐”
생명을 시장에 맡기자는 그들
어렵게 ‘SKY’ 합격하고도 771명 자퇴… 이유가?
대통령이 신념화한 역사, 그리고 '낙인의 언어들'
'두 얼굴'의 나경원, 손석희의 일침
서울시, 거미줄 전선 지중화로 보행공간 넓힌다
‘전두환 구속하라’ 노래 부른 초등학교 몰려간 보수단체 “사과하라”
보고서 속 '~함', '~음', '~임', 일제 잔재 맞다
'김학의 성접대 의혹'을 무혐의 처리한 검사들 살펴보니
‘아파트 공화국’에 던져진 ‘종부세 폭탄’의 진실
지면 2/3 보도에 2000만원, 네고 가격 1200만원”
국민-한국 3.11
한겨레-대구
중앙-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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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월급 지난해 실수령액 합쳐보니 1억2030만620원
⑤ 국회의원과 돈 1-세비
세후 실수령액 월 1천만원 정도
세전으로는 1억5017만6000원
장관보다 낮고 차관과 비슷해
근로자 평균보다는 훨씬 높아
세비 수준 놓고 입장 나뉘어
① 국민 평균 정도 받는게 적당
② 정부 감시 위해 충분한 지원 필요
의원들 ‘밥값’ 해야 논란 없어질 것
세비를 둘러싼 논쟁을 없애기 위해서는 국회의원들이 ‘밥값’을 해야 한다. 지금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사유로 파행과 다툼만 계속하면 얼마를 받든 욕을 듣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 7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임시국회 개회식이 열리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세비를 둘러싼 논쟁을 없애기 위해서는 국회의원들이 ‘밥값’을 해야 한다. 지금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사유로 파행과 다툼만 계속하면 얼마를 받든 욕을 듣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 7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임시국회 개회식이 열리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국회의원과 법무부 장관 그리고 검찰총장이 밥을 먹으면 누가 돈을 낼까. 김영란법 시행 이후로는 ‘나누어 낸다’가 정답이다.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과 셋이 모두 모여서 식사를 한 경험은 없지만, 각각 따로 먹어본 적은 있는데 실제로 계산을 함께 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각자 먹은 음식 값을 내야 하기 때문에 1만원짜리 냉면을 먹은 사람은 1만원, 2만원짜리 불고기 백반을 먹은 사람은 2만원을 내야 하지만 그렇게까지 야박하게 하지는 않고 N분의 1로 1만5천원씩 낸다. 말하자면 비싼 메뉴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정치판에서 통하는 생활의 지혜랄까.
식사비용을 누가 부담하는가 하는 것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치에서 돈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선출직 공무원에게 보수를 주기 시작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생계의 부담이 없는 귀족 계급만 정치를 할 수 있었는데 보수를 지급하면서 일반 시민들도 선거에 나서고 대표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원들이 받는 보수나 사용하는 비용은 늘 공격의 대상이 되어 왔다. 선거철이면 ‘반값 세비’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후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국회의원의 각종 경비 사용을 감시하는 시민단체의 이름은 ‘세금도둑 잡아라’다. 물론 적절하지 않은 비용 지출을 문제 삼는 것이겠지만,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가는 예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단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국민은 국회의원이 보수를 받지 않고 명예직으로 근무한다고 하면 두 손을 들고 환영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만 세비가 논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역사상 최연소 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참신한 행보로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스타 정치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29살)는 의원실 직원들 중에 낮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의 월급을 올려주기 위해서 높은 연봉을 받는 직원들의 보수를 깎았다. 박봉에 고생하는 젊은 직원들을 배려해주겠다는 조치였지만, 정작 언론은 왜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 자신의 연봉은 깎지 않느냐고 비판하고 있다. 미국 하원의원의 평균 연봉은 약 2억원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적당히 정해줬다고?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세비가 공식적으로 정해진 것은 국회가 생긴 지 10개월이 지난 1949년 3월31일이다.(대한민국 국회의 첫 회의는 1948년 5월31일에 열렸다.) ‘국회의원 보수에 관한 법률’이 통과된 것이다. 그럼 이 법이 생기기 전에는 공짜로 일을 했을까? 그렇지는 않다. 초대 국회의장이자 곧 대통령이 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적당히’ 정해줬다. 제헌의회 회의록을 보면, “우리가 2만8천 얼마씩을 세비라고 해가지고 그간 받아온 것은 (이승만 대통령이) 임시로 예산이 없으니 이만한 정도로 우리가 우선 세비라고 해가지고 보충해서 쓰라고 그러한 데서 그것이 기준이 나왔던 것입니다”라고 되어 있다. 국회의원의 세비에 관한 비판들 중에는 ‘자기가 받을 돈을 자기가 정하다니!’라는 얘기가 많다. 그렇지만 국회의원의 보수를 법률로 정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가 국가로서 체계를 갖추면서 생긴 일이다. 대통령이 적당히 정해주는 것이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 물론 액수를 정하는 과정이 투명하고 언론과 국민의 검토와 비판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스스로(!) 정한 초대 국회의회들의 세비는 연 36만원. 월급으로 따지면 3만원이다. 여기에 의장은 월 1만5천원, 부의장은 월 1만원, 그리고 상임위원은 매일 500원의 직무수당을 받는다. 개회 중 출석한 의원에게는 매일 1천원의 ‘거마비’도 나온다. 다만 국회 또는 정부로부터 전용 승용차를 배정받은 사람은 해당이 없다. (지금은 ‘전용 승용차’를 받는 국회의원은 없다. 13대 국회까지는 상임위원장에게 관용차가 나왔다는데 없어졌다. 기름값과 차량유지비 명목의 돈이 나오는데 이 돈으로 렌터카를 빌릴 경우 쏘나타 정도의 차를 탈 수 있다.) 대략 계산해보면 매월 총 4만~5만원 정도의 보수를 받았던 것 같다. 그 당시 수당을 제외한 국무위원(장관)의 월급이 2만5천원이었다고 하니 장관급보다도 높은 보수인 셈이다.
물론 이런 액수가 정해지기까지 의원들 사이에 치열한 논란이 있었다. 어떤 의원은 “일선에서 생명을 바치고 투쟁하고 있는 말단 관리들도 한달에 3000원에 불과한 월급을 받고 일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 국회의원도 3000~4000원을 받아야 되지 않느냐”라고 발언했고, 반면 또 다른 의원은 “가난한 사람도 국회의원이 되어 가지고 자기 정치이념을 끝까지 살리기 위해서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이만한 이 보수를 받는 것이 옳다고 지적합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헌의회 의원들의 형편을 지금과 비교할 수는 없다. 국가 경제 자체가 바닥이었던 당시에는 지역구가 지방인 의원들이 국회가 있는 서울에 방을 얻을 돈도 큰 부담이었다. 국회에서 직접 방값을 깎아보려고 나섰지만 예산 부족으로 의원 4명이 한방을 써야 한다는 내용이 회의록에 나온다. 의원들이 묵는 호텔에 밥값을 못 줘서 호텔이 식사 제공을 거절하기도 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채용한 친일파들은 큰 집과 자동차에 호의호식하는데 어렵사리 제헌의원으로 당선된 독립운동가 출신들은 집도 자동차도 비서도 사무실도 없다는 불만을 이런저런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들 어려운 시절이었고 의원들도 결코 여유 있다고는 할 수 없는 형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월급 명세서 들여다보니
우리나라의 대부분 직업이 그렇지만 국회의원의 보수 체계도 복잡하기 짝이 없다. 본봉 개념인 ‘일반수당’(명세서상에는 ‘봉급’)에 각종 명목의 부수적인 돈이 따라온다. 매월 받는 금액도 차이가 난다. 그 때문에 국회의원이 받는 ‘월급’ 액수에 대한 언론 보도도 들쭉날쭉하다. 정확한 금액을 알려면 실제 통장에 찍히는 액수(실수령액)를 봐야 한다. 여기에 내 월급봉투를 공개한다.
금태섭 의원실 제공
금태섭 의원실 제공
2018년 1년 동안 실제로 통장에 들어온 돈을 모두 합쳐보니 1억2030만620원(세금·보험료 등 각종 공제 뒤)이다. 수당, 활동비, 명절 보너스 등등을 모두 합친 돈이다.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제외한 모든 의원이 같은 돈을 받는다. 재선, 3선이나 초선이나 모두 마찬가지다. 재직 기간에 따라 봉급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매해 세비 인상률은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언론에서 국회의원이 받는 보수에 관한 기사가 나올 때는 의원 봉급에 ‘의원실 경비’(사무실 운영비, 출장비 등)도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그 돈은 전혀 별개다. 실제로 국회의원 월급 통장과 다른 계좌로 입금되고 관리도 보좌진이 한다.(의원실 경비도 중요하게 따져봐야 할 문제다. 경비로 지급되는 금액과 지출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쓴다.)
월평균을 내면 1000만원이 넘는다. 어떤 기준으로 봐도 많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도시 근로자 가구 월평균 소득이 527만원이다. 전국 가구 평균은 460만원이다. 그 정도 금액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국민의 대표인데 국민들이 버는 평균 수입 정도를 받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렇게만 줘도 국회의원 하겠다는 사람은 줄을 선다는 말이 들려오는 듯하다. 세비 깎자는 주장에 국회의원들이 공개적으로 반발을 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들보다 더 많이 버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반론도 있다. 국회의원에게 충분한 지원을 하는 것은 행정부에 비해서 갈수록 역할과 권한이 줄어드는 입법부의 구성원들이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법을 만들고 정부를 감시, 견제하는 본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돈을 적게 받겠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일을 더 많이, 열심히 하는 게 국민의 대표로서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는 취지다. 국회의원을 하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아침, 점심, 저녁 전부 약속이 있고 때로는 두세개의 식사 약속이 겹치기도 한다. 그럴 때 깨끗하게 자기 돈 내고,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서 정부에 전달하고, 소신을 지키면서 어려운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체 예산에서 국회가 사용하는 몫이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의원실 한곳당 한해 6억원(의원·보좌진 월급+의원실 경비)이 들어간다고 하니까 300명이면 1800억원이다. 우리나라 1년 예산 470조원에 비하면 많다고 하기 어렵다.(사무처 포함 국회 예산 전체는 6400억원이다.)
국회의원의 보수를 둘러싼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이 입법부 구성원에게 국무위원 수준의 급여를 지급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유권자가 직접 뽑은 국민의 대표가 행정부의 엘리트 직업공무원인 장차관과 대등한 위치에서 감시, 견제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같은 수준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입법기관으로 찬사를 받곤 하는 스웨덴 의회에서도 의장은 수상과 똑같은 액수의 보수를 받고 의원들도 1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차관급보다 약간 적은 돈을 받는다. (국회 사무처 자료를 보면, 수당을 포함한 세전 보수의 경우 우리나라 차관급 공무원은 1억5036만1900원, 국회의원은 1억5017만6000원이다.) 공무원의 보수가 지나치게 높다면 행정부 공무원과 국회의원의 연봉을 같이 깎아야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의 보수만 낮추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장관은 괜찮은데 의원은 아깝다?
양쪽 주장 모두 귀담아들을 부분이 있다. 입법부에 충분한 지원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국회의원이 되면 일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들이 국회의원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는 장관들의 월급에 대해서는 별 비판을 하지 않으면서 직접 뽑은 국회의원의 세비에 대해서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적어도 자신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은 좀 같은 처지에서 고민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접점을 찾으려면 결국 외부의 시각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세비 액수를 정할 때 시민들이 의견을 낼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 국회에 ‘세비결정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면 어떨까 한다. 투명한 과정을 거쳐 보수가 결정된다면 국회의원들도 “나는 세비를 덜 받겠다”는 식의 쉬운 구호가 아니라 진짜 해야 하는 일에 더 집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연한 말이지만, 세비를 둘러싼 논쟁을 진짜 없애기 위해서는 국회의원들이 ‘밥값’을 해야 한다. 지금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사유로 파행과 다툼만 계속하면 얼마를 받든 욕을 듣지 않을 수가 없다. 모처럼 열리는 본회의에 출석할 준비를 하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받는 돈에 걸맞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가. 경향 3.11
소득격차 확대 속도 빨라졌다…”올해 더 심할 수도”
우리나라의 소득격차가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회원국 중에서 심각할 정도로 커지고 있는데요. 그 속도가 매우 빨라 양극화도 심화하는 모습입니다. 제조업 부진에다 자영업자들의 경영난으로 올해 소득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기자]2,495명, 우리나라 직장인 약 1,690만7,000명 중 1억원 이상의 월급을 받는 사람 수인데, 비율로 따지면 0.014%밖에 되지 않습니다. 비율을 조금 높여 상위 0.1% 근로소득자가 1년에 벌어들인 돈으로 계산하면 하위 25%, 443만5,000명의 소득에 맞먹을 정도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격차는 갈수록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1990년 기준 최상위 20% 평균 소득을 최하위 20%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은 3.72배. 이 수치는 지난 4분기, 약 30년 만에 약 5.5배로 껑충 뛰었습니다.
고소득층의 소득이 늘 때 저소득층 소득은 오히려 줄어 그 격차가 더 심해졌다는 얘기입니다.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OECD 회원국과 비교해봐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우리나라 지니계수는 1997년 0.257에 머물렀지만 2016년 0.335로 가파르게 올라 회원국 35개 중 꼴찌에서 5등을 차지했습니다. 상위 1% 계층에 소득이 얼마나 집중됐는지를 보여주는 소득집중도 역시 7.8%에서 12%로 상승하며 그 증가폭이 두번째로 컸습니다. 올해도 상황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박상인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제조업 부진, 최저임금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부정적인 영향도 하반기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소득분배 악화가 개선될 가능성은 좀 낮지 않나…”
다만, 정부의 공공일자리 사업 확대와 저소득층 구직자의 생계를 보장하는 제도의 도입이 양극화 속도를 다소 늦출 수는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습니다.
연합뉴스TV 이동훈 yigiza@yna.co.kr
박근혜 탄핵 2년···태극기세력, 서울 도심 곳곳서 ‘박근혜 석방’ 구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선고 2주년을 맞은 10일, 헌법재판소, 서울역 등 서울 도심은 ‘태극기’의 물결이었다. 참가자들은 ‘박근혜 석방’을 외치는 동시, 문재인 대통령을 미세먼지에 비유하며 비판했다. ‘좌파’에 경도된 언론을 비난하며 보수 성향 ‘유튜브’만 본다는 이들도 많았다.
■“죄 없는 박 대통령, 탄핵 선고 너무 빨랐다”
10일 오후 헌법재판소가 있는 안국역 근처에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외치는 이들이 모였다. 집회는 보수 성향 단체 태극기혁명운동본부, 일파만파애국자총연합, 박근혜대통령구명총연합 등이 주최했다.
오후 1시쯤 태극기를 들고 안국역을 찾은 이연수씨(64)는 2년 전부터 태극기 시위에 참여해왔다. 이씨는 “2년 전 탄핵이 잘못됐고, 너무 서둘러서 진행됐다는 생각에 참석했다”며 “매주 서울구치소 앞에서 박 전 대통령 석방 시위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석으로 풀려난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일이 없다. 오로지 박 대통령 석방을 위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박 전 대통령이 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좌파 시민단체 등의 모함으로 탄핵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김수철씨(59)는 “원래 박사모를 싫어하고 보수도 아니었는데, 탄핵은 법치주의가 아니었다”며 “박근혜가 ‘무능했다. 게을렀다’ 다 좋은데 최순실이랑 경제공동체라고 뇌물죄로 몬 것은 엮어도 너무 엮은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무자비하게 난도질 당했다”고 말했다.
박연자씨(가명·61)는 머리에 헤어롤을 달고 집회에 나왔다. 당시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의 모습을 비판하기 위함이었다. 박씨는 “사람들은 우리보고 친박의 잔재라고 하지만, 나는 탄핵이 너무 성급했다고 생각한다”며 “당시 함께 시위에 나섰던 사람들이 죽기도 했는데 그게 억울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태극기와 성조기가 양면으로 인쇄된 깃발을 들고 현장에 모였다. 집회 현장 근처에는 성조기, 태극기 모양의 배지를 파는 이들도 있었다. 주최 측은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며 단상에 올라 “우리의 승리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2년 전 헌재는 스스로 법을 붕괴시켰습니다”라고 외쳤다. 이에 참가자들이 “옳습니다”라고 외치며 손뼉을 치기도 했다.
■“유튜브 보고 모여”, “젊은이들과 얘기할 기회 없어”
헌법수호단 등 일부 집회 참가자들은 오전 7시 박 전 대통령이 수감돼 있는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부터 시위를 시작해 안국역까지 행진해 도착했다. 서울역 등에서도 산발적인 집회가 열렸다. 서울역 집회에 참석한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는 “가짜 촛불세력들은 가짜뉴스를 퍼트리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돈 한푼 받지 않은 대통령에게 징역 33년이라는 정치재판까지 서슴치 않았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진행자의 구호에 맞춰 “탄핵 무효”를 외쳤다. ‘무죄 석방 1000만 국민운동본부’에서는 집회 참가자들로부터 박 전 대통령 석방 촉구 서명을 받았다.
경찰은 집회가 열린 서울역, 안국역 4번 출구 등 집회 장소 근처 교통을 통제했다. 안국역 근처에 약속이 있어 방문했다는 김민혁씨(19)는 “오늘이 탄핵 2주년인지 몰랐다”며 “어르신들이 아직까지도 저렇게 모여 계시는 것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젊은이들의 비판적 시선에 대해서는 ‘교육’이 문제라고 말했다. 청년세대와 얘기하고 싶지만 어렵다는 의견도 냈다.
이연수씨는 “요즘 젊은 세대는 어렸을 때 전교조 교육을 받으니까 우리하고는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라면도 제대로 못 먹고 고생하며 자랐다”며 “서른인 아들이 처음에는 내가 집회에 나오는 걸 창피해하더니 이제는 좀 이해해주는 것 같다. 대화가 잘 안 되지만 얘기하고 싶긴 하다”고 말했다.
오명숙씨(67)는 “자식들과는 멀리 살아서 이런 얘기를 잘 안 한다. 명절 때는 분위기가 안 좋아지니 관련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참가자도 “오늘 이런 자리 아니면 젊은 사람들과 얘기할 기회도 없다. 자식들에게는 얘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위 참가자들이 집회 일정 등의 정보를 얻는 곳은 유튜브였다. 이날 집회 현장 앞에도 개인방송 촬영자 수십 명이 몰렸다. 류준희씨(63)는 “언론도 너무 잘못했다. 공정하게 보도해야 하는데, 좌파정권에만 유리하다”며 “공중파 방송 안 보고 유튜브 본다”고 말했다. 박연자씨 역시 “나오기 전에 유튜브 방송으로 헌재가 탄핵 계획을 미리 세워뒀다는 뉴스를 다시 봤다”고 말했다. 고희진·허진무 기자 gojin@kyunghyang.com
"대통령 박근혜 파면" 그후 2년, 각 정당 논평은?
민주 "탄핵부정, 朴사면론은 퇴행"…한국 "탄핵은 상처, 과거 벗어나야"
주문(主文).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역사적 결정문 낭독이 있은 지 꼭 2년이 됐다. 여야는 각자 논평을 통해 탄핵의 의미를 기렸다. 특히 여권에서는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나온 '탄핵 부정',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논의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은 10일 홍익표 수석대변인 논평에서 탄핵을 "국민의 목소리와 행동으로 일으킨 촛불혁명이 적법한 절차를 통해 부패한 권력을 몰아낸 것"으로 규정하면서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책임 있는 당사자들의 모습은 어떤가. 국정농단 사건 재판이 여전히 진행 중이나 박 전 대통령은 재판을 전면 보이콧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 수석대변인은 이어 "한때 '진박 감별' 논쟁까지 벌이며 박 전 대통령과 함께한 한국당은 최근 전당대회를 거치며 탄핵을 부정하더니 급기야 형이 확정되지도 않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사면을 운운하고 있다"고 한국당에 화살을 돌리며 "(이는) 일말의 책임감도, 촛불혁명의 주역인 국민에 대한 존중도 찾아볼 수 없는 행태", "극우 지지층의 결집만을 노리는 근시안적 퇴행의 길을 가는 꼴"이라고 비난했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 글에서 "탄핵 후 2년, 대한민국이 무엇이 바뀌었는지 되돌아본다. 국민주권주의와 민주공화국, 자유시장경제라는 헌법가치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라며 "무엇보다 민심이 제대로 반영되는 선거제도 개혁과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은 우리가 꼭 이루어야 할 과제다. 탄핵 결정문을 다시 읽어보면서 신발끈을 다시 동여맨다"고 각오를 밝혔다.
민주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은 전날 "탄핵에 책임 있는 세력이 다시 퇴행적인 행태로 국민을 현혹하면서도, 정부·여당에 대한 실망의 반사적 이익을 얻는 잘못된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탄핵과 촛불혁명의 의미를 살릴 수 있다"며 "탄핵에 책임 있는 세력이 중심이 된 한국당이 선거제 개혁을 노골적으로 방해하면서 의원직 사퇴 운운하는 것에 대해 촛불민심은 '사퇴를 말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역사를 거스르는 비정상적인 정치에 대해서도 탄핵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의당도 정호진 대변인 논평에서 "박 전 대통령의 국가적 범죄행위에 대한 법의 심판이 진행 중이고, 켜켜이 쌓아놓은 적폐 청산도 진행 중"이라며 "그런데 탄핵 선고 고작 2년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국정 농단을 방조한 한국당에서 '탄핵 부정', 심지어 일고의 가치도 없는 '박근혜 사면'까지 거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대변인은 "최근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입에서 거론된 '박근혜 사면'은 최고 헌법기관의 판결과 촛불혁명의 불복이자 거부"라며 "사면 운운은 헌법질서와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친박 제일주의'를 드러낸 것으로 사실상 '도로 친박당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탄핵 사태 당시 박 전 대통령 소속 정당이었던 한국당은 김현아 원내대변인 논평에서 "탄핵은 우리 민주주의의아픔이자 상처, 그리고 교훈"이라며 "국민들은 탄핵의 아픔을 가슴에 새기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대통령과 민주당도 이제 그만 '탄핵 열차'라는 과거에서 벗어나 국민과 함께 미래를 향해 걸어가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김 원내대변인은 "한국당은 이날의 아픔과 상처 그리고 교훈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고, 이 아픔이 또다른 희망의 길이 될 수 있도록 정치적 소임을 다할 것"이라며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2년 전 국민들의 경고와 분노를 뒤로 한 채 권력에 취해 휘청거리고 있다. 탄핵을 국민 분노·상처를 자극하는 대상으로만 활용하고 자신들의 과오를 되돌아보는 거울로는 사용하고 있지 못하다"면서 "틈만 나면 2년 전 촛불과 광장의 민심을 들먹이며 자신들의 정책 실패, 독선 정치를 숨기고 있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 곽재훈 기자 nowhere@pressian.com
경향신문이 입수한 한유총 단톡방엔 무슨 일이
“아이와 교육은 없었다”… 경향신문 ‘3000톡’ 대화내용 1,4면 보도
한유총 소속 유치원 원장들은 개학연기를 “한유총의 힘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 “굴하지 말고 더 뭉쳐야 한다”등으로 평가했다. 이들의 대화 내용 중 어디에도 학부모 불편과 아이들 교육을 염려하는 말은 없었다.
경향신문이 안유총 단톡방 ‘3000톡’ 대화 내용을 입수해 9일자 1면과 4면에 보도했다. ‘3000톡’에 따르면 이들은 개원연기 이후에도 “한사협으로 모두 이동해 박힌 돌 빼내자”며 사실상 반격을 준비했다.
경향신문은 한유총이 올바른 대화의 길로 나서길 바란다며 한 사립유치원장이 보내온 2017년 9월 중순부터 지난 6일까지 총 9만8615건의 ‘3000톡’ 대화내용을 분석 보도했다.
▲ 경향신문 9일자 4면.
경향신문은 “한유총이 최근 2년가량 어떻게 내부여론을 조성해 실행했는지, 어떤 불법적인 행위를 저질렀는지 등을 회원 간 대화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가장 놀라운 사실은 한유총이 정부의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 대책에 반발해 투쟁을 벌이는 동안 이 10만건에 달하는 대화 중에 진정으로 아이들의 교육을 걱정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한유총 대화방에서 이덕선 이사장은 “위대한 영도자”고 통했다. “태양이고 영도자이신 유치원의 이덕선님 의향대로면 승리는 코앞이죠” 같은 찬양일색이었다. 반면에 사립유치원법을 추진하는 정부를 향해선 색깔론을 펼쳤다. 3000톡‘에선 “우리나라 유아교육은 문통(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다녀오더니 완전 북한식 탁아소 방법으로 바꾸어 나가겠다는 발상”, “모든 유치원이 국공립이 되면 그야말로 공산주의식 탁아소로 아무런 교육을 하지 않는다”는 등의 말들이 이어졌다.
▲ 경향신문 9일자 4면 머리기사.
이들은 인터넷 댓글을 통해 한유총에 집중된 ‘부패 프레임’을 바꾸려는 시도도 했다. 이들은 언론 기사마다 달아야 하는 댓글 예시도 제시했다.
▲ 경향신문 9일자 1면.
이들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유치원 3법을 ‘박3법’으로 불렀다. 이들은 “박3법이 발의되면 합법적인 죄인이 된다”, “교육부의 속셈은 박3법으로 대형유치원 집어먹고(설립자 감옥 보냄), 중소형은 시행령으로 폐원”, “박3법은 사유재산 정부 기부” 등이라는 주장을 내놨다.
사립유치원들의 협박
3월 신학기를 앞두고 사립유치원들의 폐원 신청이 잇따르면서 학부모들의 불편도 커지고 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비리유치원 실태가 폭로된 지난해 10월 말부터 올해 2월 말까지 넉 달 동안 교육당국에 폐원을 신청한 사립유치원은 전국적으로 170곳이다. 이 가운데 2월 말 현재, 28개 사립유치원이 폐원 인가를 받았다.
비리유치원 실태 폭로 이후, 넉 달 동안 전국 170개 사립유치원 폐원 신청
사립유치원들은 원장의 건강상의 이유나 시설 노후화 등을 내세워 폐원을 신청하고 있다. 하지만 폐원 속내는 다르다.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반발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3월부터 정원 200명 이상의 사립유치원에도 국가회계시스템인 에듀파인 도입이 의무화되고, 폐원을 하려면 학부모 2/3 이상의 동의를 받도록 유아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공교육 기관으로서 사립유치원의 회계처리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이지만, 사립유치원들은 폐원 신청을 통해 제도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은)는 유아교육법 시행령과 에듀파인 도입은 ‘사립유치원이 죽이기’이고 사유재산 침해라고 주장한다.
명목상으론 건강이 안 좋아 폐원신청, 속내는 유치원 시행령 개정 때문
정원 120명 규모의 경기도 파주 해마루유치원 학부모들은 지난 1월 말부터 2월 초순까지 유치원이 폐원할 거라는 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지난 1월 28일 해마루유치원 원장은 파주교육지원청에 폐원인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증빙자료 미비 등으로 반려됐다. 학부모 동의서도 재원생의 타유치원 재배치 계획서도 없었기 때문이다. 유치원 원장은 목격자들 제작진과의 통화에서 “‘건강이 안 좋아 쉬고 싶어 유치원을 폐원하려 했다”고 답했다.
▲파주시의 한 아파트에 걸린 현수막
그러나 폐원 속내는 다르다. 학부모 권주희 씨는 유치원 원장으로부터 직접 “3월부터 시행되는 유아교육법 시행령 때문에 앞으로는 폐원을 할 수가 없으니 지금 폐원하려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또 “에듀파인 도입 때문에 폐원한다”는 답변을 들은 학부모도 있었다. 실제 지난 2월 10일에 원장이 학부모들에게 보낸 사과문에서 “너무나 가혹한 유치원 시행령이 떨어지고 3월 전에 폐원하지 않으면 폐원할 기회도 없다고 하여 본의 아니게 폐원 결정을 하였습니다"라고 털어놨다.
폐원신청을 거부당하자 해마루유치원 원장은 다시 운영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학부모들에게는 정상 운영을 약속했다. 그러나 너무나 쉽게 폐원을 추진하는 원장의 행태에 신뢰를 잃어버린 학부모들은 다른 유치원과 어린이집으로 아이들을 보냈다. 현재 해마루유치원에는 단 5명의 원생들과 원장, 그리고 1명의 교사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원장이 에듀파인 도입을 두려워했지만, 해마루유치원의 경우 정원이 120명으로, 올해 에듀파인 도입 대상이 아니었다. 결국 학부모 동의도 없이 섣부른 폐원 신청으로 아이들의 피해만 키운 셈이다.
황당한 진급신청서에 모욕당한 학부모... 원장은 정신병원 입원 중
▲울산 연세유치원
울산 연세유치원의 학부모들은 지난해 11월 황당한 진급신청서를 받았다. 올해부터는 더이상 등하원 차량도 운행하지 않고 급식도 없다. 방과후 수업도 일체없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상 유치원 운영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 꼼수폐원 의혹마저 제기된다.
등하원 차량과 급식제공도 없다는 진급신청서 학부모들에게 보내
특히 진급신청서 말미에는 “학부모 부담금 없이 (공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국공립 유치원에 지원하시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당한 혜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라는 조롱조의 문장도 있었다. 학부모들은 황당함 속에서 모욕감을 느꼈다. 갑작스런 폐원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학부모들의 전화에 유치원 측은 “원장님이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라 답변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2018년 11월 6일 학부모들에게 전달된 울산 연세유치원의 1차 진급신청서
울산 연세유치원 원장은 연세유치원과 연세2유치원 두 곳을 설립 운영해왔다. 연세유치원에서는 원장을 겸하고 있고, 연세2유치원에서는 고용 원장을 두고 운영을 하고 있다. 그런데 2017년 울산교육청의 감사에서 연세2유치원의 회계비리가 적발됐다. 설립자 개인 보험료를 유치원 운영비로 납부하고 법적으로 금지된 시설사용료를 적립했고, 직원들의 수당을 부정 지급하는 등 비리가 드러난 것이다. 2천 6백여 만 원을 환수 조치당했다.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정책 정책, “비리유치원 퇴출을 밀어붙이는 행위”
연세유치원 원장은 작년 11월 학부모들에게 보낸 진급신청서에서 ‘회계투명성을 강조하는 정부의 유치원 공공성 강화 정책은 “비리유치원 퇴출을 밀어붙이는” 행위이며 사립유치원 수를 줄이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정부의 방침에 맞서지 못하고 굴복하여" 2019년 2월 28일부로 유치원을 폐원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 연세유치원은 한유총이 배포한 정부 정책 비판 만화를 아이들을 통해 각 가정에 보내기도 했다. 유치원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정부 정책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시한 것이다.
학부모들은 연세유치원 측에 여러 차례 정상화를 촉구했다. 원장이 장기 입원 중이어서 원장의 남편이 대리인으로 학부모와의 대화에 나섰다. 원장의 남편은 “유치원을 운영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폐원을 하고 싶으나 학부모들이 폐원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니, 특별활동과 같은 다양한 교육서비스 없이 누리과정과 체육활동만으로 운영하겠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유치원 측의 무성의와 배짱 대응에 지친 학부모들은 2월이 되자 아이들을 다른 유치원으로 보내야 했다. 현재 울산 연세유치원의 신입 원아 모집인원은 0명이다. 진급 의사를 밝힌 2명은 환불 조치를 받았다. 한때 정원 200명 규모의 대형 유치원이자 좋은 교육 프로그램으로 소문났던 울산 연세유치원은 하루아침에 교사와 원생이 없는 유령 유치원이 되었다.
학부모들 “먹튀 폐원” 막기 위해, 교육청에 감사 청구
학부모들은 이를 ‘꼼수 폐원’으로 본다. 또 ‘먹튀 폐원’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학부모 대표를 지낸 이정희 씨는 연간 50만 원을 납부했던 특별활동비가 적절하게 쓰였는지에 대한 철저한 감사를 관할 교육청에 요청했다. 울산광역시 교육청은 연세유치원에 대한 감사에 들어갔다.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의 장하나 활동가는 비리유치원들의 ‘먹튀 폐원'을 방지하기 위해서 폐원인가 심사를 할 때, 종합감사와 세무조사를 실시해서 회계 부정 여부를 철저히 밝히고, 부정 집행한 정부 지원금과 교육비에 대해서는 정부와 학부모에게 환급하도록 제도화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건강 문제, 건물 노후화” 이유로 일방 폐원에 맞선 학부모와 교사들
경기도 하남시 예원유치원은 아이들에게 ‘물죽’을 제공했다는 지난해 언론 보도로 인해 급식비리의 대명사처럼 불려왔던 곳이다. 급식비리 뿐 아니라 방과후과정 지원금 부당수령 등 여러 건의 비리와 부정이 드러났다. 특히 설립자 자신은 사무직원과 차량 운전사로 등록했고, 자격이 없는데도 설립자 아내는 교사, 며느리는 조리사와 행정업무를 맡겼다. 설립자 일가가 유치원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감사 이후 관할 교육청으로부터 경고 조치와 함께 4천 4백여 만 원의 환수 조치를 받았다.
▲2018년 하남 예원유치원의 지도점검 및 감사 결과 내용
이러한 비리는 고용 원장으로 2018년 2월 부임한 임미화 원장의 내부고발로 드러났다. 임미화 원장은 부임 2달 후인 지난해 4월 예원유치원의 내부 비리를 교육청에 고발했고 학부모들과 함께 개혁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자 설립자는 2018년 9월 일방적으로 유치원 폐원을 선언했다. 학부모들에게 전달한 폐원 명목은 설립자 자신의 건강 문제와 건물 노후화로 인한 누수 문제였다.
원장과 교사들이 유치원을 잘 운영하고 있는 시점에 유치원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 설립자 본인의 건강 문제가 폐원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받아들이는 학부모들은 없었다. 누수 역시 수업이나 활동을 못할 정도로 심각한 것도 아니었다. 경기도광주하남교육지원청에서도 예원유치원 설립자의 폐원신청을 두 차례 반려했다. 유치원 설립자는 지난해 12월 신입 원아모집 설명회를 앞두고 돌연 유치원을 폐쇄해 폐원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설립자의 폐원 선언 이후, 예원유치원의 학부모들은 무단 폐원을 막기 위해 청와대와 교육당국에 청원과 민원을 냈다. 그리고 예원유치원을 새롭게 이어갈 수 있도록 자구책 마련에도 나섰다. 당시 교육부는 ‘부모 협동형 유치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안을 마련 중이었다. 학부모들이 협동조합을 결성하면 지자체에서 적당한 건물을 빌려주고 공공형 유치원으로 운영하도록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예원유치원의 학부모와 교사들은 한 줄기 빛을 만난 것 같았다. 교육청과 하남시를 상대로 ‘부모협동형 유치원'을 위한 공간을 임대해 주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교육청은 하남시가 제공하라고 했고 하남시는 적절한 공간이 없다고 밝혔다. 학부모들은 하남시 관내의 모든 공공건물과 토지에 대한 정보를 분석했다. 유치원 설립 인가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곳은 찾기 어려웠다. 부모협동 유치원으로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가고자 했던 꿈은 물거품이 됐다.
▲하남 예원유치원의 임미화 원장과 도유진 학부모 대표가 지난 2월 20일 마지막 수료식에서 눈물의 포옹을 하고 있다.
이후 부모들은 아이들만이라도 같이 다닐 수 있도록 인근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집단 편입을 요청했다. 교육청은 그런 특혜를 줄 수 없다고 했다. 집단 편입이 된다 해도, 차량 운행을 지원하기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해가 바뀌고 올해 1월이 되어 하남교육지원청은 예원유치원 인근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학급을 증설해서 예원유치원 아이들을 받기로 했다. 등·하원 차량 운행과 돌봄시간 연장, 방학기간 1주 운영 등 사립유치원 수준의 운영 방안을 학부모들에게 약속했다.
2월 20일 눈물의 수료식을 끝으로 예원유치원은 문을 닫았고 학부모들은 기대 반 우려 반 속에 병설유치원으로의 첫 등원을 기다렸다. 그런데 개학 나흘 전인 2월 28일에 학교 측으로 하원 차량을 제공할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 직장생활을 하는 도유진 씨는 하원 차량이 제공되지 않는 유치원에 아이를 보낼 수 없다. 도 씨를 포함한 여러 엄마들은 병설유치원행을 포기하고 아이를 보낼 곳을 새롭게 알아봐야 했다. 결국 함께 가고자 애썼던 예원유치원의 아이들과 교사들, 학부모들은 설립자의 무단 폐원을 막지 못했고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설립자의 무단 폐원 선언은 사립유치원의 협박장이다. 학부모들은 폐원을 막아보려 애쓰지만 역부족이다. 예원유치원의 학부모와 교사들처럼 함께 갈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보려는 노력도 실패로 끝났다. 2019년 유치원 교육현장의 모습이다.
“우리 아이에서 끝이 났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다른 친구들이 피해 보지 않고 여기에서 잘 법을 잘 개정해주셔서 이렇게 갑자기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아이들이 볼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그렇게 잘 지나가는 과도기가 될 수 있게. -울산 연세유치원 학부모 이정희 씨 / 뉴스타파 3.8
끼리끼리’ 동질혼 시대
결혼이 낳은 계급 양극화
서울대를 졸업한 변호사 A씨는 이화여대를 졸업한 약사 B씨와 지난해 1월 결혼했다. 친구인 외교관 C씨는 함께 서울대를 졸업해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던 D씨와 결혼했다. 서울대를 졸업한 지상파 방송국 PD E씨는 역시 서울대를 졸업한 변호사 F씨와 결혼했다. 비슷한 시기에 고려대를 졸업해 대기업 건설회사에 다니는 친구 G씨는 서울대를 졸업해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H씨와 결혼했다. H씨의 대학 동창이자 대기업 유통회사에 다니는 I씨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을 졸업한 여의도 금융맨 J씨와 결혼했다. J씨의 회사 동기인 K씨는 지역방송국 아나운서 L씨와 결혼했다. ‘끼리끼리 결혼하는 것’이라는 말은 사회생활 좀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만한 말이다. 주변 누군가가 결혼한다 해서 결혼식장을 찾았더니 비슷한 직업의 비슷한 환경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더라는 얘기는 흔하다.
예전에는 젊은 의사, 변호사에게 ‘좋은 혼사’가 들어오는 일이 더러 있었다. 20년 전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한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지방 출신으로 사시 붙고 나면 음·미대 졸업하고 전업주부를 꿈꾸는 부잣집 딸들 만나보겠냐는 권유가 꽤 많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일이 예전처럼 흔하지 않다. 4년 전 한 대형 로펌에 입사한 변호사는 “입사 동기 중에 이른바 ‘혼테크’를 한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 결혼을 했지만 전문직이나 공무원, 대기업 사원 등과 결혼했다는 것이다. 결혼을 통해 사회·경제적 지위를 급격히 상승시키는 ‘혼테크’를 한 사례는 오히려 이야깃거리가 된다는 게 요즘 전문직들의 설명이다.
늘어나는 동질혼
사회학에는 ‘동질혼(Homogamy)’이라는 용어가 있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 결혼하는 경향을 말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 경제적 능력이 비슷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일컬어 동질혼이라고 말한다. 사회학자들에 따르면 최근 들어 한국 사회의 동질혼 경향은 점차 강해지고 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가 조사한 바를 살펴보자. 학력 수준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한국 사회에서의 동질혼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고졸 학력 남성이 고졸 학력 여성과, 대졸 학력 남성이 대졸 학력 여성과 결혼하는 교육적 동질혼은 전체 혼인의 58.1%였다. 대신 학력 수준이 낮은 여성이 높은 남성과 결혼하는 상승혼(Hypergamy·승혼)이 전체 혼인 건수의 41.0%를 차지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학력 수준이 높은 하강혼(Hypogamy·강혼)은 0.9%에 불과했다.
동질혼은 꾸준히 늘어났다. 2000년에 들어서면 전체 혼인의 71.7%가 동질혼으로 이뤄졌다. 동질혼 비중이 급격히 증가한 이유는 ‘승혼’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학력 향상에 힘입어 남성이 비슷한 학력의 여성과 결혼하는 일이 늘어난 것이다. 2015년에 들어서면 동질혼의 비중은 78.5%로 결혼하는 5쌍 중 4쌍은 동질혼으로 봐도 될 정도가 됐다.
실제 결혼시장의 모습을 따져봐도 같은 결과가 보인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2016년부터 2년간 성혼(成婚)시킨 부부 3024쌍을 조사해봤을 때 전체 부부의 56.5%가 동일한 학력 수준에서 결혼했다. 남성 학력이 더 높은 경우, 즉 승혼은 23.9%였고 여성 학력이 더 높은 경우, 즉 강혼은 19.6%나 됐다. 승혼과 강혼이 비슷한 수치다.
동질혼이 늘어나는 이유를 설명하자면 한 문장으로도 말할 수 있다. 여성들의 학력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질혼의 증가는 그 인과관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많은 한국 사회의 문제를 대표한다. 우선 저출산 문제와 관련돼 있다.
합계출산율 1.0명의 벽을 무너뜨린 심각한 저출산 문제의 원인으로 많이 꼽히는 것 중 하나는 청년세대의 미혼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 ‘초저출산현상 지속의 원인과 정책과제’를 보면 혼인율 감소가 저출산의 주요 원인이라는 점이 잘 드러나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의 설명이다.
“기존에는 유배우출산율, 그러니까 결혼하고 나서 아이를 낳지 않은 채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져서 저출산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막상 조사를 해보니 더 큰 문제는 결혼하는 사람 자체가 줄어드는 것에 있었습니다. 한국은 혼외 출산율이 굉장히 낮은 편인데 결혼하지 않으면 아이를 잘 낳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결혼 자체를 안 하니 출산율도 떨어지는 것이지요. 조사를 해보면 결혼해 아이를 낳지 않는 것보다 결혼을 안 하는 것이 출산율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질혼 아니면 비혼
왜 결혼을 하지 않을까. 많은 원인이 거론됐지만 최근 주목할 만한 보고서가 하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나온 ‘배우자 간 사회·경제적 격차 변화와 저출산 대응방안’이다. 저출산 해결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발간된 보고서인데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이명진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동질혼이 점차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자신과 같은 수준의 짝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육아정책연구소의 보고서 ‘청년층의 비혼에 대한 인식과 저출산 대응방안’을 살펴보자. 20~30대 미혼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결혼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가장 많은 대답이 ‘아직 결혼하기 이른 나이라고 생각해서’와 ‘내 기대치에 맞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였다. 보고서는 이를 ‘자발적 결혼 연기 사유’라고 이름 붙였는데 주위 환경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원하지 않아 미혼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고소득·고학력 미혼자 중에 자발적으로 결혼을 연기한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대학원 이상의 학력을 가진 고학력자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경우 자발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응답이 전체의 54.8%였다. 고졸 이하의 학력자가 35.6%가 ‘그렇다’고 대답한 것에 비해 뚜렷하게 높은 수치다. 소득별로도 차이가 난다. 월평균 소득이 400만원 이상인 사람은 61.0%가 자발적으로 결혼을 연기했다고 대답했다. 월평균 100만원 미만 소득을 얻는 사람 27.5%가 자발적이라고 한 것과 비교된다.
미혼 고소득·고학력자의 상당수가 아예 결혼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대학원 이상 미혼 고학력자가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비혼(非婚)을 선택한 경우는 14.3%에 불과했다. 반면 고졸 이하 미혼자의 33.3%는 비혼이다. 월평균 소득이 400만원 이상인 고소득자는 단 13.6%만이 비혼이다. 월 100만원 미만의 저소득자는 38.5%가 그렇다.
‘결혼불평등 사회’의 시작
그러니까 두 가지 현상이 눈에 띈다. 첫째, ‘끼리끼리’ 결혼하는 동질혼 경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것과 둘째, 결혼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이 나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결혼을 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만 결혼하는 ‘결혼불평등 사회’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책 ‘결혼시장’의 저자이자 법학자인 준 카르본과 나오미 칸은 저서에서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질혼 강화 현상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몇 가지 인상적인 부분을 발췌해보자.
“1960년대에는 미국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전형적인 가족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었고 그 이미지는 고등학교 중퇴자 가족이건 대졸자 가족이건 보스턴에 사는 가족이건 아이오와의 농촌에 사는 가족이건 다르지 않았다. … 1990년대에는 가족 패턴에 계급 차이가 나타났다. 대졸자 집단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집단에 비해 결혼을 훨씬 늦게 하고 끼리끼리 결혼하는 비율이 높아졌으며 월등하게 안정적인 가족을 꾸리기 시작했다.” (33쪽)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만 늘어난 결과 대학 졸업장이나 고도의 전문 기술이 없는 남성은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144쪽)
“원래는 언제나 소득 분포의 중간층에 안정적이고 결혼을 지향하는 고졸자들이 있어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중간층이 사라지고 있다.” (149쪽)
“진화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버스는 남녀가 상대의 어떤 부분에 매력을 느끼는지 연구했다. … 21세기가 되자 미국인, 특히 남성은 상대의 경제적 능력을 점점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동시에 상대가 집안일을 얼마나 잘하는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남성의 수는 급격하게 줄었다. 그리고 남녀 모두 사랑과 신체적 매력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게 됐다.” (129쪽)
“사회학자 크리스틴 슈워츠는 남녀가 모두 소득이 높은 배우자를 만나고 싶어하기 때문에 소득 수준이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할 확률은 점점 더 높아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더욱더 많은 남성이 결혼 생활에서 ‘자기 몫을 책임질 수 있는’ 여성을 찾고 있다.” (130쪽)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한국에서도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결혼을 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이 일단 크게 나뉜다. 결혼에 드는 비용이 2억원이 넘는다는 결혼정보회사의 조사 결과를 근거로 제시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결혼은 단지 낭만적인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상황이 뒷받침됐을 때 가능한 결과물이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의 불안정한 환경이 이런 경향을 더 강화시켰다고 설명한다.
김경근 교수는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동질혼 경향을 강화시킨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봤다. “전례 없는 구조조정과 대량 실업이 낭만적 동기에 따른 결혼이 가져오는 위험성을 냉철하게 성찰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단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결혼해서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이상, 보다 경제적인 조건을 살펴보게 됐다는 얘기다. 그중 가장 알아보기 쉽고 객관적인 요소가 학력 수준이었기 때문에 교육적 동질혼이 더 확산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에서 15년째 일하고 있는 M씨의 사연은 사랑과 결혼 사이에 높은 벽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M씨는 2004년 인천의 한 중소기업에 취직한 것을 시작으로 인천과 부천 등지에서 경력을 쌓은 업계 베테랑이다. 회사에서는 중요한 인재 대접을 받지만 예전 남자친구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그는 지인의 소개를 받아 유명 회계법인에 다니는 남자친구를 사귀게 됐다. “남자친구가 워낙 좋은 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부담도 좀 됐었는데 성격도 취미도 잘 맞아 오래 사귀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4년을 사귀고 결혼 얘기가 나오면서 문제가 생겼다.
“남자친구 집안과 저희 집안은 너무 달랐어요. 남자친구 아버지는 교사, 어머니는 전업주부로 딱히 특징이 없을 정도로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었어요. 그러나 저희 부모님은 이혼을 했었고 제 남동생은 여전히 취업준비 중이었지요. 남자친구 부모님은 제 얘기를 듣자마자 결혼에 반대했다고 해요.”
M씨가 남자친구와 결별하는 과정에서 받았던 가장 큰 상처는 의외로 친구를 통해서였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저를 위로해주면서 했던 얘기가 ‘난 네가 그 사람과 결혼해 신분상승 좀 하나 했었는데 역시 사람은 끼리끼리 살아야 하는 것 같아’였어요. 제 깜냥에 좋은 학교 나와서 잘나가는 남자친구 만나기란 어렵다는 얘기였지요.”
그리고 M씨와 헤어진 남자친구는 1년 뒤 다른 여성과 결혼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찾아본 상대방은 같은 대학을 졸업해 대기업에 다니는 여성이었다. M씨는 새로운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회사 상사가 소개시켜준 사람으로 근처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남성이다.
계급을 재생산하는 결혼제도
‘끼리끼리’ 결혼하는 사회에서는 결혼을 통해 계급이 재생산된다. 고소득·고학력 남성과 고소득·고학력 여성이 만나 꾸리는 가정이 순탄할 것이라는 건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고소득·고학력 남성과 고소득·고학력 여성이 결합하는 것은 단지 가정의 월평균 소득이 늘어난다는 수준에서 그치는 일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이기는 하지만 전국가정현황조사(National Survey of Family Growth)를 보면 ‘주변의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않다’고 대답한 사람들 사이에서 계급 차이가 드러났다. 저학력 집단의 사람들 중 53%가 “아는 사람 대부분의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않다”고 대답했지만 고학력 집단에서는 단 17%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여기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중요하다. 예전처럼 남성과 여성 간에 사회적 지위와 소득, 학력이 차이가 나는 경우를 떠올려보자. 남성은 생계부양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신윤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남성은 가부장적 책임 때문에, 여성은 ‘독박 육아’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설명했다. 반면 고소득·고학력 여성은 가정 내 성평등 문제에서 조금 더 자유롭다. 여전히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다른 계층에 비해 여성이 고학력·고소득일 경우에는 훨씬 더 평등하고 자율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다.
자녀 세대로 가면 동질혼은 계급 재생산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미 한국 사회에서는 부모의 계급이 자녀의 계급으로 대물림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이제는 개인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타고난 부모의 배경에서 직업과 소득의 차이가 발생한다. 특이할 만한 것은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직업과 소득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정규직인 경우 자녀가 정규직일 확률은 78%이고 아버지가 비정규직일 때 자녀가 정규직일 확률은 74%다. 아버지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머니가 정규직일 경우에는 다르다. 정규직인 어머니 밑에서 정규직 자녀가 나올 확률은 78%지만 어머니가 비정규직이면 68%로 크게 떨어진다.
남성의 입장에서는 여성의 전반적인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진 상황에서 더 상위 계급의 여성을 만나려고 할 것이다. 서울의 사립대 의대를 졸업한 의사 N씨는 “경제적으로 좀 어려움을 겪더라도 ‘혼테크’는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피부과 전문의인 그가 2011년 결혼할 당시만 하더라도 ‘개원하게 도와주겠다’면서 자신의 딸과 만나보라며 접근하던 재력가도 있었다. 그러나 N씨는 “마음 불편하고 밑지는 결혼생활을 하기 싫었다”고 말했다. “그보다는 저와 동등한 입장에서 동등한 시선으로 같이 어려움을 나눠가며 살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는 것이다. 결국 N씨가 결혼한 상대는 같은 대학을 졸업한 소아과 전문의였다.
동질혼이 낳는 문제들
실제로 육아정책연구소가 미혼 남성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보면 남성들 중 미래 배우자의 학력이 나보다 낮아도 된다고 응답한 사람은 6.3%에 불과하다. 배우자의 학력이 어떻든 상관없다는 사람이 34.5%이긴 하지만 나머지 59.2%는 최소한 자신과 비슷하거나 높아야 한다고 답했다. 소득이나 사회적 지위도 마찬가지다. 배우자가 나보다 소득이 낮아도 된다고 답한 30대 미혼 남성은 6.3%에 그친다. 사회적 지위가 낮아도 된다고 말한 사람도 4.4%에 불과하다. 고소득·고학력 남성들이 예전처럼 이성적 매력만 보고 여성을 결혼 상대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통계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렇게 동질혼 경향이 강해졌을 때 남게 되는 집단은 명확하다. 저학력·저소득 계층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저학력·저소득 남성 집단에 주목한다. 미국의 법학자 준 카르본과 나오미 칸은 “소득과 학력이 낮은 남녀 사이에서 결혼은 점점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며 이들은 결혼을 하더라도 이혼으로 끝맺을 확률이 높다”며 “심지어 대등한 결혼이라는 것은 고등교육을 받은 고소득 여성에게서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아직 이런 경향이 나타나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고소득·고학력 동질혼 가정의 이혼율은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저학력·저소득 가정의 이혼율은 높아지고 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다니엘 코엔은 저서 ‘출구 없는 사회’에서 동질혼의 강화는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유럽 사회처럼 동질혼 경향이 강하고 계급이 뚜렷한 곳에서는 얼핏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니엘 코엔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집단 밖에서 희생양을 찾으려고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쉽게 말하자면 ‘어차피 끼리끼리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상위 계급의 동질혼을 욕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능력과 사회적 지위에 맞게 선택해 살아가는 일일 뿐이다. 사람들은 공고해지는 계급에 분노하기보다 차라리 사회 밖의 희생양을 찾는다. 저소득·저학력 집단이 상위 계급이 아니라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분노를 돌리는 경향이 설명이 되는 셈이다. 결혼은 낭만적인 단어가 아니다. 예전에도 결혼은 사회를 유지하는 수단이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경제적·사회적 계급을 만들어내고 공고히 하면서 사회를 유지시킨다. 결혼이 계급을 창출하고 재생산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자유의지에 의한 비혼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결혼 못 하는 사람’에 사회적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주간조선 3.11 2548호
불법 촬영’ 정준영-승리, 방송가 활보 어떻게 가능했나
제 식구 감싸기’ 견제 기능 상실한 방송가
정준영 3년 전 같은 논란에도 3개월 만에 초고속 복귀
“인기 얻으면 더 큰 자극 원해” 연예인 ‘불법 촬영’ 반복 이유
‘약국’을 예능 소재로… 도덕불감증 부추기는 기획사
3년 전 이미 도덕성을 의심할 만한 ‘폭탄급’ 사건에 휘말렸다. 구설과 별개로 그는 11일 불법 촬영물 공유 보도가 나오기 전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KBS2 ‘해피선데이-1박2일’(‘1박2일’)을 비롯해 tvN ‘짠내 투어’와 ‘현지에서 먹힐까?’ 등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채널 인기 예능프로그램을 넘나들며 활약했다. 2016년 이미 성관계 불법 촬영물 유포 의혹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가수 겸 방송인 정준영(30)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3년 동안 방송 활동을 온전히 했다. 정준영의 부적절한 행위를 묵과한 방송국들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준영 사태’ 키운 ‘1박2일’
사회적 물의를 빚은 연예인에 대한 규제는 허술했고, 경계는 작동하지 않았다. 업계의 ‘제 식구 감싸기’가 ‘정준영 사태’를 키웠다. 정준영은 2016년 옛 여자친구를 상대로 한 불법 촬영을 한 혐의로 구설에 오른 뒤 불과 3개월 만에 연예 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같은 해 10월 자숙을 이유로 방송 활동 중단을 선언한 뒤 이듬해인 2017년 1월 ‘1박2일’로 복귀했다. 공영방송에서 제작하는 예능프로그램 제작진이 정준영의 방송 복귀에 제일 먼저 앞장선 셈이다. 검찰에서 정준영 관련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는 게 정준영 출연 재개의 이유였다. 당시 정준영은 옛 여자친구가 촬영에 동의했다고 주장했고, 정준영을 고소했던 옛 여자친구가 소를 취하했으나 경찰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카메라 등 이용 촬영)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정준영의 휴대폰 교체로 촬영에 이용된 휴대폰이 없다는 게 무혐의 처분에 큰 영향을 줬다.
무혐의라고 해도 논란이 된 사건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공영방송이라면 물의를 빚은 출연자 복귀에 더욱 신중해야 했는데 너무 빨리 복귀시켜 그의 도덕적 불감증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KBS에선 정준영 출연에 대한 내부 검증을 더 철저히 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정준영을 비롯한 출연자들이 ‘1박2일’에서 형, 동생으로 서로를 부르는 등 출연자와 제작진이 가족처럼 여기는 촬영 환경이다 보니 관계자들이 정준영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걸려가지고 ㅋㅋㅋ’… 정준영의 죄책감 부재
실제로 정준영은 당시 옛 여자친구와 찍은 동영상 촬영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숙하겠다고 밝혔지만 일상에선 반성의 기미가 없었다. 11일 SBS 보도에 따르면 정준영이 동료 연예인과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에서 정준영은 가수 용준형에게 ‘동영상 찍어서 보내준 거 걸려가지고 ㅋㅋㅋ’란 문자를 보냈다. 용준형이 정준영에 무슨 일이냐고 묻자 보낸 답이었다. 정준영은 또 다른 지인 김모씨에게는 ‘어ㅋㅋㅋ 아 영상만 안 걸렸으면 사귀는 척하고 (성관계를) 하는 건데’란 문자까지 보냈다. 웃음을 뜻하는 ‘ㅋ’까지 연발하며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지금까지 보도를 보면 정준영이 여러 연예계 지인들과 촬영 동영상을 공유한 거 같은데 그의 이런 행태를 과연 연예계 종사자들이 몰랐을지 의문”이라며 “그의 행실을 알면서도 쉬쉬하며 그를 방송에 출연시킨 게 아닌지 등 방송 제작 시스템 전반을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준영 감싸기에 급급했던 방송가는 이번 정준영 사태로 쑥대밭이 됐다. ‘1박2일’을 비롯해 ‘짠내투어’ ‘현지에서 먹힐까?’ 제작진은 12일 일제히 정준영 퇴출을 발표해 방송에 비상이 걸렸다. 출연자 검증에 소홀하다 제 발등을 찍은 셈이다.
“연예기획사 인성 교육 프로그램 의무화 정책적 검토해야”
불법 촬영 영상 유포 혐의를 받는 정준영과 승리는 얼굴이 널리 알려진 연예인이다. 누구보다 남의 눈치를 보고 행동 하나하나 조심해야 할 스타들인데 사람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 대화에서 불법촬영물을 공유하며 일탈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은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으며 스타덤에 오르면 더 특별한 경험과 자극을 얻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다”며 “유명 연예인을 상대로 마약과 도박, 불법 촬영 영상 촬영 등의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연예기획사가 인기에 취해 자제력을 잃기 쉬운 스타를 바로 잡아줘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승리의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YG)는 대마초 흡연과 향정신성의약품 반입으로 약물 문제를 일으킨 가수가 유독 많아 ‘약국’이란 비아냥을 들어왔다. YG는 이런 현실을 바로잡으려 하기 보다 오히려 예능 소재로 다뤘다.
YG는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예능콘텐츠 ‘YG전자’에서 소속 연예인이 소변검사와 약물 검사를 한 장면을 넣었다. 승리는 ‘YG전자’에서 만취한 외국인 여성 투자자로부터 화상 채팅으로 ‘몸캠’(신체 노출)을 제안 받은 신인이 요구를 거절하자 “이 새끼가 배부른 소리 하고 있어”란 말까지 한다. YG가 소속 연예인과 자사 관련 논란에 그만큼 둔감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창작과 아티스트의 자유를 핑계로 소속 연예인의 사회적 책임을 등한시한 YG의 매니지먼트 관행이 승리 문제를 키운 셈이다. 김헌식 동아방송대 교수는 “학업을 포기하고 연예인을 꿈꾸는 청소년 연습생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며 “연예기획사에 인성 교육 프로그램 등의 의무화가 가능한지 정책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단독] 文정부서 보조금 지원받는 환경단체 5배 늘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환경부의 보조금을 지원받는 환경단체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인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이 12일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2015~2018년 민간단체별 보조금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보조금을 지원받은 민간단체는 129곳으로 1년 사이에 5배 이상 늘었다. 2015년과 2016년엔 각각 21개 단체가, 2017년에는 25개 단체가 보조금을 받았다. 2017년 예산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에 편성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보조금을 받는 단체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큰 폭으로 늘어난 셈이다.
다만 보조금 총액의 증가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보조금 총액은 40억2700만원(2015년)→39억8000만원(2016년)→35억4300만원(2017년)→48억1000만원(2018년)이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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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을 받는 단체의 성격에도 변화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민간자원 순환활동 촉진’ ‘자연보전단체’ ‘야생 동ㆍ식물 보호 및 관리’ 등으로 분류된 단체에 보조금이 주로 지급됐다. 이에 따라 자원순환사회연대, 백두대간보전회, 한국자연환경보전협회, 자연보호중앙연맹, 야생생물관리협회 등 주로 야생동식물이나 자연보호단체 혹은 자원재활용 단체 등에 예산이 집중됐다.
반면 2018년부터는 ‘환경교육강화(학교-민간 연계지원)’라는 항목이 신설되면서 예산도 늘어나고 이전에는 지원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시민단체들이 대거 진입했다. 환경운동연합이나 YWCAㆍYMCA, 도시농업연대, 녹색주민연대, 녹색소비자연대 등이 대표적이다. 김학용 의원은 “과거 정부에서 21개에 불과하던 정부 보조금 지원 단체가 현 정부들어 급증했는데 그 사유가 명확하지 않다”며 “친여 성향의 단체들에 편향적으로 지원한 사례는 없는지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소속 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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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대해 환경부 측은 “환경교육강화 사업은 2018년 1월 환경교육 전담부서를 신설하면서 과거 민간대행에서 하던 사업을 직접사업으로 전환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한국당과 환경단체는 미세먼지를 두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7일 당 최고위에서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을 질타하면서 “환경단체에 한마디 하고 싶다. 환경단체는 지금 이 미세먼지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다. ‘이념 환경’을 한 게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국내 환경단체의 대표 격인 환경운동연합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177건의 성명서ㆍ논평을 발표했는데 정부의 정책 기조와 일치하는 탈원전을 주장하는 내용이 48건으로 가장 많았던 반면 미세먼지에 대한 내용은 9건에 그쳤다.
그러나 환경운동연합은 8일 “오늘날 미세먼지 사태는 미세먼지의 상시적 발생 구조를 만든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자유한국당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반박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환경단체들이 미세먼지 문제에 대해 경유차나 화력발전 등 국내적 원인에 집중하다 보니 중국발 미세먼지에 민감한 시민들에겐 소극적인 것처럼 비쳐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유성운ㆍ임성빈 기자 pirate@joongang.co.kr
“IMF의 ‘역풍’ 언급은 경제위기 경고 아냐”
최배근 건국대 교수, “외부 악조건 해소 처방 주문일 뿐” 반론
타르한 페이지오글루 IMF 연례협의 미션단장(왼쪽)이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19년 IMF 연례협회 주요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통화기금(IMF) 연례협의단이 “한국의 경제 성장이 중단기적으로 역풍(headwind)을 맞고 있다”고 분석한 것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IMF의 최소 9조원대 추가경정예산 편성 권고는 한국 정부가 경제 위기에 대비하라는 권고였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잘못된 해석”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IMF는 한국 경제가 잘 나아가고 있다고 진단했고, 추경은 외부적인 악조건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돈을 풀라는 교과서적인 처방이라는 주장이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14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IMF의 권고는 이례적이지도, 경고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우선 최 교수는 IMF가 쓴 역풍이라는 단어의 해석에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역풍의 정확한 의미는 항해하다 맞바람이 불어 어려운 상황”이라며 “핵심적인 것은 수출 환경이 나빠지고 있고, 이는 전세계 모든 경제에 적용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추진한 소득주도성장 같은 경제정책의 부작용으로 역풍을 맞았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라는 해석이다.
발표 자료를 보면 IMF는 우리나라의 현재 경제상태를 양호한 것으로 평가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최 교수는 “‘외환보유액도 많고, 경상수지 흑자도 지속되고 있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는 내용이 있다”고 언급하면서 “유럽에서 가장 좋은 독일의 경우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0.6%, 우리나라는 3.1%였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다만 IMF는 세계 교역량 감소로 수출이 둔화되는 것과 생산 가능인구 감소 등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는 지난해 성장률 2.7% 중에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2% 정도”라며 “IMF 권고는 수출 환경이 나빠져 성장률이 정부 목표인 2.6~2.7%에서 0.5%포인트 정도 떨어질 가능성이 있으니 교과서에 나온 처방처럼 정부가 개입해서 경기를 부양하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노동력 보충을 위해 여성들의 경제활동을 더 적극 지원하는 보육ㆍ아동수당 개선, 불평등 심화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 재정 투입 등의 조언은 “현 정부가 다 하고 있는 것들인데 더 강화하라고 주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득주도성장 기조의 적극 추진을 IMF가 조언했다는 해석이다.
최 교수는 야당이 추경예산안을 반대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지난 정부도 대대적인 추경을 편성한 만큼 경제성장을 위해 국회에서 신속하게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였던 2013년 17조3,000억원, 2015년 11조6,000억원, 2016년에도 10조원을 (추경) 편성했다. 야당이 IMF 처방을 듣지 않으면 자신들의 정체성을 의심받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생명을 시장에 맡기자는 그들
[서리풀 논평] 생명을 담보 잡은 자본의 파업, 왜 반복되나?
선천성 심장병 환자들과 보호자가 난리가 났다. 병원들이 수술에 사용하는 인공혈관을 구할 수 없어 수술을 못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 '고어' 인공혈관 안 팔면…심장병 앓는 2살 보배 살릴 방법도 없다). 재료를 독점 생산하던 외국회사가 2년 전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후 이제 재고가 바닥났다고 한다.
불행한 사태이나, 아주 놀랍지는 않다. 2년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사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치료재료나 약품 때문에 환자들이 고통을 받는 일이 어디 처음인가. 간암 환자에 쓰는 치료제 '리피오돌'이 말썽이 된 것은 채 일 년도 되지 않는다.
"최근 게르베가 한국 현지법인을 통해 리피오돌의 약가를 500% 인상하지 않으면 한국에 더 이상 이 약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통보했다. 최근에는 수입마저 중단되어 '리피오돌' 수급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서 일선 병원의 재고가 바닥나 간암 환자 치료에 적신호가 켜졌다." (☞관련 기사 : 환자단체 "암환자 목숨 볼모로 벼랑 끝 약가협상 다국적제약사 규탄")
먼 옛날(?) 2001년에는 그 유명한 글리벡 사건이 있었다.
"글리벡 개발사인 노바티스가 글리벡의 국내 공급과 관련, 현행 건강보험 약가 제도를 거부하겠다고 밝혀 당국과 마찰을 빚고 있다. (…) 한국노바티스는 25일 "복지부가 최근 고시한 보험약가 상한액에 상관없이 당초 우리측이 제안한 가격에 글리벡을 공급하겠다"면서 (…) 이와 관련,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않고 글리벡을 공급하겠다는 뜻"이라면서 "그렇게 되면 글리벡이 필요한 환자들은 회사측이 책정한 캡슐당 2만5천원 전액을 부담하고 약을 구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관련 기사 : 노바티스, 글리벡 보험적용 거부 파문)
인공혈관, 리피오돌, 그리고 글리벡. 어느 단계에서 어떤 모양으로 일이 틀어졌는지 조금 다를 뿐, 독점과 가격 협상, 이에 이어진 기업과 자본의 '파업'은 현상과 논리는 말할 것도 없고, 근본 배경과 구조도 같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비교적 간단하다. 이유도 분명하다. 약이나 재료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회사들이 요구하는 가격과 한국의 건강보험 당국이 주겠다는 가격이 서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이고 수요가 건강보험에만 있으면 협상을 통해 해결할 수도 있지만, 인공혈관, 리피오돌, 글리벡은 한국의 건강보험만 수요자가 아니다. 다른 곳에 수요가 충분하고 이익을 얻을 수 있으면, 한국 시장에 메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협상 전략으로 철수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 아니면, 팔지 않아도 그리 아쉬운 것이 없어서다. 다시 말하지만, 자본이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어떻게 보면 황당한, 특히 환자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런 사태가 생기면 사회적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가격 때문에 공급을 거부한 회사가 비인도적이고 비윤리적이라는 주장, 또 한쪽은 가격을 '후려친' 정부와 건강보험이 잘못했으니 이제라도 '제값'을 쳐주고 달래라는 것.
당장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당사자로서는(정부와 환자가 주로 그렇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독점 기업의 요구를 들어주든지, 사회적 압력과 국제 여론을 통해 타협을 보든지, 아니면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다시 타협점을 찾든지. 아주 익숙하지만, 특히 환자들로서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는 비슷한 일이 재발하는 것까지 막을 도리가 없다는 점이다. 자본과 이윤 동기를 핵심 요소로 하는 그 구조의 취약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경제신문이 내는 주간지까지 이런 기사를 썼겠는가(☞관련 기사 : 도 넘은 다국적 제약사 횡포-환자 생명 볼모로 가격 인상·공급 중단 '갑질').
"약값 인상을 내세운 다국적 제약사의 의약품 공급 중단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 2004년에는 다국적 제약사 로슈가 기존 치료제에 내성이 생긴 환자를 위한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의 국내 허가까지 받았지만 약값 협상이 결렬되자 아예 국내 출시를 중단했다. (…) 이처럼 생명과 직결된 의약품 중 다국적 제약사가 우리나라에 아예 들여오지 않거나 보험 적용을 신청조차 하지 않은 약이 적잖다. 식약처에 따르면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된 318품목 중 국내에 유통되지 않은 의약품은 76품목(23.9%), 국내 미허가 의약품은 14품목(4.3%)이나 된다."
이대로는 언제라도 같거나 비슷한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뜻이다. 독점 공급하는데, 환자에게 꼭 필요한 약이나 재료인데, 정부와 건강보험이 달라는 가격을 다 주지 않으면? 권력은 기업과 자본의 손에 있다. 언제라도 안전하게 파업을 벌일 수 있다.
이번 인공혈관 사태도 기업이 더 큰 권력을 쥔 것으로 보인다. 세계를 상대로 하는 다국적 기업이 보기에는 이 좁은 한국 시장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설사 단기적으로는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또 다르다. 한 나라만 가격을 낮추면 세계 시장이 영향을 받으니, 가격을 덜 주겠다는 곳에서는 철수하는 시범(위협이라고 해야 하나?)을 보이는 것도 괜찮다 여길 것이다.
환원주의적 구조 개혁론이 피로감을 불러올 법하지만, 다시 같은 주장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구조에 관한 한, 당장 가능한 비법 같은 것도 없으니 더 어렵다. 구조를 바꾸지 않고는 고통이 지속할 터, 그래도 구조 개혁은 가야 할 길이고 찾아야 할 해법이다.
먼저, 우리는 모든 노력과 시도가 공공성의 원칙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시장 원리'에 맡기지 않아 그렇다고 주장하는데, 이론으로 보나 실제를 보나, 황당하기 짝이 없는 소리다. 이들은 "가격을 낮게 주는데 누가 시장에 남아있겠느냐 철수하는 것이 당연하다, 가격을 올리고 다시 들어오라고 설득하라"고 주장한다. 명백히 잘못된 진단과 처방이다. 정부가 건강보험의 가격을 통제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거나, 시장 만능주의의 세례를 받은 결과가 아닌가 한다.
생명과 건강을 둘러싼 윤리 문제는 둘째 치고, 경제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다. 이들 재료와 약품은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게다가 그 범위가 세계 모든 국가다. 세계화된 시장에서 권력을 독점하는 다국적 기업의 행동. 그 원리와 법칙성.
독점 시장에서의 공급은 가격이 아니라 '이익 최대화'에서 결정된다. 가격이 좀 오른다고 같은 사태가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나. 외부효과까지 더하면, 시장에서 다른 독점적 공급자가 같은 경로를 뒤따르는 것이 더 심각하다. 나에게 유리한 선례가 있는데 왜 안 그러겠는가?
소박한 경제적 원리조차 보지 못하는 이유. 필수 약품과 재료조차 시장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리하여 돈 없으면 그냥 모든 불행한 결과조차 감수하라는 비아냥은, 그 모든 것이 상품화한 삶의 세계가 생명까지 장악했다는 의미다. 독점이든 다국적 기업이든, 생명이든 필수든 이 단계에서는 그 모든 가치가 무력하다.
공공성을 강화하는 구조적 대책이 있을 수 있을까? 먼저, 이런 시장에 대해, 독점적 지위에 있는 공급자가 마음대로 하라고 놔두는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약의 경우는, 심지어 그 미국에서도 지식재산권을 무시하는 '강제실시'를 논의한 적이 있을 정도다(☞관련 기사 : 신종플루 '대란'…타미플루 '강제 실시' 가능할까?). 국가와 사회가 개입해야 한다는 원칙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급선무다.
정책과 제도 이상으로는 '체제'를 바꾸어야 하는 과제. 심장병 수술에는 왜 한 회사가 독점 생산하는 재료를 쓰게 되었을까? 그 회사는 무슨 동기로 그 재료를 만들고 어떻게 '상품화' '시장화'했을까? 행위 주체와 참여자는 이 체제 속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한다. 심지어 과학과 지식도, 그리고 기술도 체제에 의존하며 변화하고 발전한다.
일부 소수만이 아니라 생산자, 의료전문직, 환자, 연구자, 기업, 정부 등이 모두 참여하는, 이제 한껏 상품화, 시장화한 '의료체제'가 이번 사태를 빚은 근본 구조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이 체제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생산체제'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과제. 체제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목표, 그리고 어떻게 해야 목표로 다가갈 수 있는지 하는 방법, 우리는 숙명처럼 이 두 가지를 고민해야 할 처지다. / 시민건강연구소
어렵게 ‘SKY’ 합격하고도 771명 자퇴… 이유가?
학생들이 선호하는 이른바 'SKY'대학 합격자 중 771명이 지난해 스스로 학교를 그만 둔 것으로 나타났다.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고액의 사교육비를 들여 어렵게 서울대·연세대·고려대에 합격하고서도 낮은 취업률 등을 이유로 중도탈락자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14일 종로학원하늘교육이 '대학알리미'를 분석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2017학년도) 4년제 대학 제적학생 208만8315명 중도탈락한 학생은 4.5%인 9만3871명이었다. 중도탈락 학생 비율은 2011학년도 이후 7년 연속 4.0%를 상회하고 있다.
탈락 사유로는 자퇴가 52.9%인 4만9682명으로 가장 많았고 미복학 30.0%인 2만8194명, 미등록 9.4%인 8866명, 학사경고 3.2%인 3029명 순이었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에서도 1196명이 중도탈락했다. 고려대는 518명, 서울대는 234명, 연세대는 444명이 대학을 합격하고도 학업을 중간에 그만뒀다. 이중 스스로 자퇴를 신청한 학생은 771명이다. 3개교는 전년도에도 1154명이 중도탈락 했다.
서울 소재 대학 중 중도탈락 학생 수가 600명을 넘는 곳은 경희대(909명), 한국외대(665명), 숭실대(648명), 중앙대(647명), 동국대(621명), 건국대(616명), 국민대(604명) 등이다.
시도별로 보면 전남에 위치한 대학이 6.4%로 중도탈락율이 가장 높았고 대전 5.8%, 전북 5.6%, 경북 5.5%, 충남 5.5%, 경남 5.4%, 광주 5.2%, 강원 5.2%, 경기 4.5%, 서울 2.9%, 인천 2.7% 순이었다. 비수도권 지역의 중도탈락율 평균은 5.2%, 수도권 3.4%보다 높았다. 가톨릭관동대, 경남대, 계명대, 대구대, 동아대, 동의대, 영남대, 원광대, 조선대 등 9개교는 중도 탈락 학생수가 1000명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액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면서까지 대학 입시에 목을 매면서도 해마다 약 10만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스스로 대학을 포기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지난 12일 발표한 2018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결과에는 지난해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역대 최고인 29만1000원을 기록했다. 가구당 실질적 사교육비 부담은 더 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도탈락 학생들이 이처럼 많은 이유에 대해 적성보다는 간판 위주의 대학 진학을 선택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017년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에 참여한 54개 대학 24만2790명을 상대로 분석한 결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중도탈락율은 4.5%로 가장 높았고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중도탈락율은 1.5%로 가장 낮았다. 수능은 시험을 통해 확보한 점수로 대학에 진학하지만 학종은 교과·비교과 활동에서 전공적합성을 평가받고 대학을 간다.
전국진학지도협의회 최승후 대학별고사 연구팀장은 "아이들이 적성에 안 맞더라도 대학 위주로 진로를 선택하다보니 그런 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낮은 취업률 탓에 명문대 진학이 취업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중도탈락하게 되는 원인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2018년 4년제 대학의 평균 취업률은 62.8%다. 고려대와 서울대, 연세대 등도 취업률이 68%에 불과했다. 취업률 계산시 처우가 열악하거나 고용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프리랜서, 1인사업자를 제외하면 취업률은 더 내려간다. 취업률이 낮다보니 학생들이 기업 취업보다는 의사나 약사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계열로 이동하기 위해 중도탈락을 결정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대에서는 공과대학에서 57명의 중도탈락자가 나왔고 농업생명과학대 54명, 자연과학대 28명 순이었다. 고려대와 연세대에서도 공과대학, 생명과학대학 등이 중도탈락율이 높았다.
종로학원하늘교육 오종운 평가이사는 "중도탈락이 높은 학과들이 취업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안정적이라는 측면에서 의사가 취업에 강세를 보이기 때문에 대학에 진학을 해놓고 다시 수능을 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한국대학입학사정관협의회 김정현 회장은 "중고교때부터 진로와 전공적합성을 포괄적으로 연계해 대학을 선택해야 중도탈락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뉴시스
대통령이 신념화한 역사, 그리고 '낙인의 언어들'
[김성희의 정치발전소] 정치는 역사와 어떻게 만나야 할까?
올해는 유난히 100년이라는 주기와 맞물린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많다. 3.1운동, 임시정부 수립을 포함해, 일제 강점 이후 1919년 격변의 와중에 순국한 선열의 추모 등 수많은 100주년이 달력에 빼곡하다. 우리는 이런 계기를 통해 과거를 차분히 돌아보고 미래를 열어갈 지혜를 얻는다.
그러나 역사 문제를 다루다보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과거를 다양한 방법으로 기억하는 것을 넘어, 현실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좀 더 쉽고 자극적인 방법으로 역사를 동원하고 싶다는 유혹이 그것이다. 이것은 역사를 정치적 편익 아래 굴복시키는 것이다.
'역사를 선과 악으로 깔끔하게 구분하고, 경쟁자들이나 이견을 악의 편에 몰아넣어 한 방에 제거하고 싶다. 그것이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며, 우리를 정화하는 것이다'라는 민족적이며 종교적이기까지 한 신념의 정당화가 그 유혹의 뒤를 잇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주장은 확신이 되고, 상대에 대한 불편한 심정은 불구대천의 적대감으로 편향성을 강화한다.
역사에 정의는 없다
인간의 유적 본질과 변화를 탐구함으로써 큰 지적 반향을 일으킨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N. Harari)는 40대 중반의 비교적 젊은 역사학자이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나고 자랐으며 현재도 히브리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이스라엘인이다. 유발 하라리가 속해 있는 이스라엘, 즉 유태인 공동체는 전 세계 어느 민족보다 강대국과 제국주의로부터 피해를 많이 받았다.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디아스포라(離散), 홀로코스트, 그리고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참혹한 압제와 탄압…. 그들이 제국주의자들로부터 받은 상처와 '피해자 기억'은 아마도 그 공동체 구성원에게 DNA처럼 각인되어 있을 터다.
강대국 역사 문제에 예민할 법도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역사에 정의는 없다"고 단언한다. <사피엔스>에서 그는 "세상에는 인간의 문화에서 제국주의를 제거하고 죄에 더렵혀지지 않은 소위 순수하고 진정한 문명만을 남기자는 취지의 학파와 정치운동이 있다"며 "이런 이데올로기는 잘해봐야 순진할 따름이고, 나쁜 경우에는 노골적인 민족주의와 편견을 가리려는 표리부동한 눈속임으로 기능한다"고 쓰고 있다. 그는 인류 문화의 복잡성을 감안할 때, "어떤 학술적, 정치적 외과수술을 한다 하더라도" 제국의 유산만을 도려낼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친일파', '친일 청산'이라는 낙인의 언어
600페이지가 넘는 <사피엔스>의 방대한 내용 가운데, 유독 이 대목이 눈과 가슴에 와 닿은 것은 최근 상황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 우리 정치지도자들에게서 '친일 잔재 청산', '친일파', '빨갱이' 같은, 1945년 해방 전후 시기라면 합당했을 정치언어들이 한 세기가 다돼가는 이 시점에서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대통령은 지난 2월, 검찰과 경찰 등 현 권력기관의 문제가 일제 식민 통치의 유산임을 강조하기 위해 "칼 찬 (일제) 순사"를 불러냈다. 대통령의 발언은 권력기관을 개혁해야 한다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 믿고 싶지만, 해방 이후 74년이 지난 마당에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과거 식민지 경찰을 끌어 오는 것은 아무래도 부적절했다. 지난 70여 년 간 우리에겐 권위주의 시기도 있었지만, 민주화 된 지 30년이 넘었으며 두 차례의 민주파 정부 집권기도 있었다. 우리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우리의 문제'를 지금에 와서 친일의 유산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다.
또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친일 잔재 청산'을 말했다. 대통령의 언어는 맥락과 개념에서 혼란이 없도록 가능한 적확해야 할 터다. '친일 잔재'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도 불분명하거니와 잔재를 청산한다는 것이 현실에서 어떤 것이며 무슨 의미가 있는지 대통령은 말하지 않았다. 다만 대통령은 "친일 잔재 청산은 너무나 오래 미뤄둔 숙제"라며 "민족정기 확립은 국가의 책임이자 임무"라고 강조했고, 이어 '친일잔재 청산'이란 "친일은 반성해야 할 일이고, 독립운동은 예우 받아야 할 일이란 단순한 가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이 열린 광화문 광장에서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청와대
그렇다면 74년이 지난 오늘, 누가, 어떤 친일을 반성해야 할까? 거의 한 세기 전의 일에 대해 우리는 선조의 무덤을 파헤쳐 부관참시라도 해야 할까? 아니면, 그 후손들에게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연좌의 책임과 반성을 요구해야 할까? 그러나 정작 기념사 어디에도 누가 친일파이고 반성의 주체인지, 친일 잔재 청산이나 민족정기확립의 구체적 내용과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볼 수 없었다.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대통령이 '친일 잔재'라는 말을 통해 끌어 오고 싶은 것은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적 이견에 대한 경멸과 증오였다고 생각한다. 보수세력을 친일파의 후예이자 악으로, 그리고 이들을 제거하는 것이 친일청산이고 적폐청산이며, 민족정기 회복이라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사회 일부에서 품어왔던 적대적 프레임이 그의 언어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대통령은 "빨갱이"라는 모욕적 언어가 일제가 민족을 갈라놓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말에 공감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문 대통령이 말한 '친일파', '친일 잔재 청산'이라는 낙인의 언어 역시, 이견을 허용하지 않고 서로를 증오하는 정치 문화를 은연중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짜 '친일파'와 '빨갱이'가 싸웠던 해방 직후가 아니라, 오늘 21세기 우리 사회에서 말이다.
"신념정치가 열 중 아홉은 허풍선이"
대통령도 사람이고 내면화된 기질이나 편견, 혹은 민족주의적 신념을 가질 수 있다. 만약 대통령이 아니라 개인이라면 타인을 위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를 표현하는 것도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권력을 다루는 정치지도자이다. 대통령이 책임성의 여과 없이 자신의 민족주의적 신념과 편견을 날것 그대로 표출하고 이를 통해 동료 시민을 '친일파와 애국자' 같은 양극화된 도식으로 동원‧배제한다면 그 정치적 결과는 참혹한 내전일 뿐이다.
100년 전 막스 베버는 '세상은 어리석고 비열하며 내가 이들을 뿌리 뽑고자 한다'는 말로 내면의 신념과 편견을 거침없이 표출하는, "신념정치가 열 중 아홉은 허풍선이(Gesinnungspolitiker in 9 von 10 Fällen Windbeutel)"라고 말했다. '청산', '척결' 등을 통해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정치가는 실제로는 자신이 정작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게다. 베버의 기준에서, 친일파와 친일 잔재를 깨끗이 청산함으로써 민족정기를 확립하겠다고 말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분명 자신이 하는 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신념 정치가로 보일 것이다.
정치는 역사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
그러나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베버가 허풍선이로 지목하지 않은 열 중 하나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신뢰의 근거는 없다. 대통령이 단순히 내지르는 것 이상으로 그 일을 책임성을 통해 진짜로 하고자 한다면 과거의 유산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단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 일의 첫걸음은 우리는 완전히 새롭게 시작할 수는 없으며, 언제나 과거와 연결된 시민들의 협력을 통해 삶과 역사를 이어갈 수 있을 뿐이라는 것, 무엇보다 역사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해 선과 악으로 나누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으며 미래를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대통령이 인정하는 데 있지 않을까 싶다.
김성희 정치발전소 상임이사 / 프레시안
'두 얼굴'의 나경원, 손석희의 일침
박근혜 정부 시절과 판이한 나경원 원내대표의 통일론
"나경원 원내대표가 펠로시 의장을 포함해 민주·공화당 정치인들을 만나 '남북경협 안 된다. 남측이 비무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고 전해 들었다. 이게 미국 정가의 (대북 강경) 분위기를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눈에 확 띄는 후일담이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하노이 회담' 결렬에 나 원내대표가 '악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지난 13일 서울시 공직자 평화·통일 특강에서다. 13일 <연합뉴스>는 문 특보가 "나를 대변인이라고 하면 모르겠지만, 어떻게 문 대통령을 대변인이라고 하나. 그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라는 나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이 청와대의 강한 반발에 이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간의 이례적인 국회 윤리위 맞제소를 부른 뒤 나온 발언이라 더 주목된다. 앞서 나 원내대표는 국회 연설에서 지난 2월 국회 대표단의 방미 일정 중 미국측 인사들을 만나 나눈 이야기를 아래와 같이 전했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저는, 미 펠로시 하원의장으로부터 북한이 비핵화(Denuclearization)는 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무장해제(Demilitarization)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코리 가드너 미 상원 동아태소위원장은, 북한의 변화가 없는데도 남북경협을 서두르는 한국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이 와중에 문재인 정부는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를 운운하고 있습니다. 한미 간 엇박자가 점차 심해지고 있습니다."
위 발언은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란 문제의 표현 직전에 나왔다. '하노이 회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직전인 지난달 26일 오후 나 원내대표는 한국당 긴급 의원총회에서 "한국이 배제된 종전선언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없이 종전선언이 섣부르게 추진되면서 한미동맹이 약화되고 대한민국 무장해제가 빠르게 진행되는 절체절명 안보위기 상황"이라며 방미 시 했던 발언들을 그대로 이어나간 바 있다.
이렇듯 북미 정상회담 전 미국 측 인사를 만나서까지 일종의 '재뿌리기'를 시도했던 나경원 원내대표. 13일 <조선일보>가 <문정인 "나경원 방미 발언, 하노이 회담 악영향">이란 헤드라인을 뽑게 한 나 원내대표의 활약(?)은, 북한과 통일에 대한 나 대표의 시각은, 그러나 박근혜 정부 시절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말 바꾸기'도 이런 말 바꾸기가 없을 정도다. 마치 '두 명의 나경원'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랄까.
통일 염원했던 2015년의 나경원
"안타깝게도 지금 남북은 통일을 위한 여정에 첫걸음을 내딛기는커녕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것만 같다. 예측 불가능한 지금의 북한 정권이 발걸음을 맞추기에 까다로운 상대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가 먼저 적극적으로 북한의 마음을 열어야 할 것이다."
지난 2015년 7월 24일자 <중앙일보> <[평화 오디세이 릴레이 기고] (4) 북한이 '대동강의 기적' 이루도록 지원하자> 중 일부다. 글쓴이는, 당시 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었다. 나 원내대표는 불과 4년 전만 해도 이렇게 '통일'을 염원하고 있었다. 외교통일위원장으로서 백두산과 중국 옌볜(延邊) 지역을 시찰하고 난 후였던 듯싶다.
나 원내대표는 칼럼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의 민족이요, 하나의 땅덩이였다"며 "두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으로 느낀 북·중 접경지대는 이전과는 다른 무게감으로 내게 각인됐고, 백두산 천지와 북녘 땅을 마주한다는 설렘으로 시작한 여정이 가슴에 새긴 것은 결국 '통일'이라는 두 글자였다"고 적었다. 감격적이고 희망 찬 문장들이 아닐 수 없다. 나 원내대표는 또 이렇게 주장했다. 태극기 부대의 눈에 비춰본다면 꽤나 '친북'적인 주장이라 할 만했다.
"무엇보다 경제 분야에서 교류 확대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지난날 서독은 동독의 정치적 요구에는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경제적 요구에는 매우 적극적이었다. 우리 역시 '한강의 기적'을 일궈 낸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이 '대동강의 기적'을 이뤄 낼 수 있도록 경제 인프라 구축을 지원해야 한다.
제2, 제3의 개성공단 설립이나 남북 FTA 등 획기적인 방안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남북이 함께 백두산을 세계적 관광지로 만들고, 금강산과 태백산을 묶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상호 접촉과 이해의 폭을 넓혀 가는 건 어떨까?"
환영할 만한 주장의 연속이다. 지난 2014년 1월 국내외를 놀라게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 기조의 일환임이 분명하지만, 어쨌든 4년이 지난 지금 봐도 전향적이고 도입할 만한 방안이다. 나 원내대표는 "우리의 통일은 차가운 머리만으로도, 뜨거운 가슴만으로도 이뤄지지 않는다"며 국제사회의 협력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렇게 말이다.
"결국 통일은 우리 홀로만 할 수도, 남들에게 맡기기만 할 수도 없다는 것. 우리 스스로 통일을 주도해 나가야겠지만 통일을 국제사회의 공통 관심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주변국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통일 외교가 중요한 이유다. 남과 북을 넘어 중국·러시아와 경제협력은 물론 평화협력을 위한 논의를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이를 위한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나경원의 말 바꾸기
"혹시 그때는 남북관계가 상당히 좋았다거나 환경이 다르지는 않았는지. 좋았던 것 같지는 않은데요, 아무튼. 다른 어떤 조건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러한 나경원 원내대표의 말 바꾸기를 두고, 13일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럴 만 했다. <중앙일보> 칼럼으로부터 1년여가 흐른 2016년 6월, <연합뉴스>가 주최한 한 심포지엄에 연사로 나선 나 원내대표는 역시나 북한에 대한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었다.
"이 대원칙(비핵화)에 대해서 우리가 좀 더 상상력을 가져보자…. 우리 비핵화에 대해서 좀 더 유연성을 가지고 접근해보자. 비핵화라는 것에 대해서 좀 더 단계적으로 접근을 해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제 정권이 바뀌든 안 바뀌든 일관된 우리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는 통일정책을 만들어가야 된다고…."
그렇다면, 국정농단 사태가 정국을 발칵 뒤집기 전인 2016년 6월은 어떤 시기인가. 이에 대해 <뉴스룸>은 "2016년 초에는 북한의 4차 핵실험이 있었다"며 "남북 관계, 북미 관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안 좋았을 때고, 강력한 대북제재도 시작됐을 때"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작금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상당히 진정 중인 현 정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남북 관계가 악화일로였다는 부연이었다.
나 원내대표가 2년 반 만에 말을 바꾼 배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두고 손석희 앵커 역시 "뭔가 발언이 달라진 것은 틀림없어 보이는데 외교통일위원장 때와 제1야당 원내대표와 어떤 자리가 달라서 그런 것일까요?"라고 물은 뒤, "2년 반 전의 발언과 지금 발언이 너무 달라서 나 원내대표로서는 설명이 좀 필요한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맞다. 그것이 궁금하다.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주장해 온 나 원내대표가 왜 말을 바꾼 건지, 왜 미국까지 건너가 북미정상회담에 악영향을 미친 건지 말이다. 혹시 대북 특사를 자임하기 위한 '큰 그림'이라도 존재하는 걸까. 이틀 전 국회 연설에서 나 원내대표는 여러 제안 중 아래와 같이 '대북 특사'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게 진심이긴 한 걸까.
"자유한국당이 직접 굴절 없는 대북 메시지 전달을 위한 대북특사를 파견하겠습니다. 정말 북한이 비핵화에 나선다면 담대하고 획기적인 대북 지원에 나서겠다고 직접 김정은 정권에 전하겠습니다."
지금은 왜?
▲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운데)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치고 나오며 파이팅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랬으면 좋으련만, 나 원내대표에게 그런 '큰 그림'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14일 CBS는 한국당의 한 핵심 당직자의 말을 빌려 국회 연설에 대해 "당내에서는 다들 잘했다고 나 원내 대표를 응원하는 분위기다"라고 전했다. 이렇듯 나 원내대표가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한국당의 분위기에 편승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연설 직후 국회를 나서며 주먹을 쥐고 "파이팅"을 외치던 나 원내대표의 표정이 두고두고 회자된 이유다.
CBS와 인터뷰한 용인대 최창렬 교수는 이를 두고 "자유한국당은 태블릿PC가 조작됐다거나 탄핵이 잘못됐다는 상식 이하의 발언을 해도 당 대표로 선출되고, 5. 18 관련 망언을 해도 최고위원으로 선출되는 그런 분위기"라며 "나 원내대표도 여기에 편승해서 극단적인 이념과 극단적인 편향을 동원해서 갈라치기를 하면서 지지층에 호소한 것으로 본다"고 평했다.
13일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한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역시 나 원내대표의 '대북 특사 파견' 주장에 대해서 "정부의 대북 정책과 대화에 반대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현실성이 없기 때문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며 "특사를 파견한다고 해도 북한에서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것은 뻔한 일로, 반대를 위한 꼼수, 오기"라고 꼬집었다.
결국 2년 반 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나경원'과 '원내대표 나경원'이 다른 사람일 수 없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은 원내대표로서의 존재감과 한국당 내 지지층 결집을 바탕으로 자기 정치를 부각하기 위한 '초강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러한 일관성(?)에서 비롯된 것이 외교통일위원장 시절 북한에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발언과 주장들이었던 셈이고.
여야에 따라, 입장에 따라 그저 말을 바꾼 나 의원의 행태가 어디 이번뿐인가. 2013평창스페셜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조직위원장 시절, 북한 참가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던 것과 달리 2018 평창 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 주장하며 남북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던 것도 정치인 나경원 아니었던가(관련기사: 6년 전엔 북한 초청 서한 보내더니... 나경원의 '올림픽 정치'). 오마이뉴스 / 하성태
서울시, 거미줄 전선 지중화로 보행공간 넓힌다
- 관악로 등 10곳 6.21㎞ 지중화로 쾌적한 보행공간 조성
서울시가 공중의 거미줄 전선을 정리해 쾌적하고 안전한 보행공간을 넓힌다. 서울시는 보행공간에 위치한 전봇대, 전선을 지하에 매설하는 공중선 지중화 작업을 올 한해 363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총 6.21㎞ 구간에 시행한다고 밝혔다.
보행공간을 점용하고 있는 전주와 어지럽게 얽힌 공중선은 도시미관을 해칠뿐더러 태풍 등으로 전도 위험성 우려까지 있어 시민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다 정비구간은 중랑구 중랑교~동일로 지하차도, 관악구 관악로(동측) 등 총 10개구간으로 소요예산은 서울시, 자치구, 한전이 25:25:50비율로 각각 분담한다.
필동로 지중화 작업 전(왼쪽)과 후(오른쪽). <사진제공=서울시>
서울시는 한국전력공사(한전)와의 협력을 통해 지난 15년간 약 1900억원을 투입해 73㎞에 달하는 공중선의 지중화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그 결과 서울 25개 자치구의 공중선 평균 지중화율은 2005년 48.7%에서 2018년 59.16%까지 개선됐다.
앞으로도 서울시는 가공배전선로 지중화사업 기본계획을 수립해 안정적인 재원 확보와 일관성 있는 지중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수요 조사 결과에 따라 수동적으로 시행하던 방식을 개선해, 도심경관 및 보행환경 개선 측면에서 간선 도로별 지중화사업 우선 순위를 선정, 체계적으로 시행한다. 특히 역세권·관광특구지역·특성화 거리 같이 유동인구가 많은 구간과 보행공간에 위치하여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구간 등 주요 간선도로를 우선적으로 정비한다.
한국전력공사 및 각 통신사와의 협력체계를 강화해 안정적인 재원 확보와 예산 활용도를 높인다. 이번에 승인된 사업구간은 조기에 완료될 수 있도록 속도를 높이고, 금회 승인을 구하지 못한 구간은 한전의 추가수요 조사 시에 재신청해 반영되도록 긴밀한 협력체계를 다진다.
공중선 지중화 사업 비용은 서울시, 자치구, 한전이 각각 분담하기 때문에 서울시가 단독으로 대상지를 선정해 추진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한전은 한정된 예산으로 전국단위 사업을 시행하다보니 서울시가 편성한 예산에 꼭 맞춰 사업을 추진할 수 없는 실정. 이에 서울시는 원활한 지중화사업을 위해 사업대상 평가·선정·잠정 승인 시기 등 제도개선에도 나선다. 서울시 고홍석 도시교통실장은 “공중선 지중화는 도시 미관 개선효과가 상당할뿐더러, 시민의 안전과도 직결되는 사업”이라며, “꾸준한 사업시행으로 지중화율이 많이 개선됐지만, 앞으로도 런던, 파리, 싱가포르 100%, 도쿄 86% 등 해외 선진 대도시 수준으로 지중화률을 높이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정은 기자 press@hkbs.co.kr 3.11
‘전두환 구속하라’ 노래 부른 초등학교 몰려간 보수단체 “사과하라”
자유연대·자유대한호국단 등 15일 기자회견
시민단체·학부모들 “어른들이 초등학생 겁박”
보수를 표방한 단체 회원들이 15일 광주 동산초등학교 앞에서 '전두환은 물러가라'고 노래한 행동에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수단체 회원들이 전두환씨의 재판 출석 때 ‘물러가라’고 외쳤던 학생들의 학교를 찾아가 항의하면서 눈총을 사고 있다. 자유연대, 자유대한호국단, 턴라이트 등 일부 보수단체 회원 10여명이 15일 광주시 동구 동산초등학교를 찾아가 교장과 교감의 사과를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교육도 질서 속에 유지돼야 한다. 아이들은 그 어떤 집단의 전위세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교장, 교감, 담임이 사과문을 발표하지 않으면 교육공무원법, 초중등교육법 등을 위반한 사항을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 장면을 자신들의 사회적관계망을 통해 중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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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초등학교 학생들은 지난 11일 전씨가 피고인으로 광주지법 형사법정에 출석하자 학교 복도의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 ‘전두환을 구속하라’고 노래를 부른 바 있다. 이 학생들은 한 방송사가 이 모습을 여러 차례 내보낸 뒤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이 학교는 1987년 6월9일 연세대 앞에서 열린 반독재 시위에 참여했다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한열 열사의 모교이기도 하다.
광주지역의 5월단체와 시민단체는 “학생들의 안전을 걱정한다니 어이없다. 광주를 자극하려는 의도에 휘말리지 않겠다”며 대응을 자제했다. 학부모들은 “전두환을 지지하는 극우세력이 초등생들을 겁박하고 있어 불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찰은 긴장 속에 기자회견을 지켜봤다. 경찰 쪽은 이날 “수업 중인 학교 앞에서 열린 회견의 소음은 주간 허용 기준인 65㏈에 미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보고서 속 '~함', '~음', '~임', 일제 잔재 맞다
3.1절 100주년, 정부 '공문'에도 일본 그림자가
공직사회에서 각종 보고서를 작성할 때는 반드시 ‘~함’이나 ‘~음’ 또는 ‘~임’으로 문장을 끝맺음하는 형태를 취한다. ‘~다’로 문장을 끝맺는 일반적인 서술식 문장이 아니라 이른바 ‘개조식(個條式)’ 문장이다.
아예 공직사회의 보고서 작성 매뉴얼은 “문장은 개조식으로 작성함”이라고 명문으로 ‘강제’한다. 필자는 이러한 ‘개조식’ 문장 구조가 우리 사회 관료 집단의 권위주의적이고 무책임성을 증폭시키는 데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로 작동되어 왔다고 분석한다.
필자가 이 문제와 관련해 몇 차례 기고문을 발표했는데, 그때마다 “학계에서 인정된 견해인가?”라는 불만섞인 문제제기가 나오는 등 관심이 적지 않았다. 공직사회의 이러한 개조식의 문장방식, 혹은 문체형태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다시 보충하여 개선의 필요성을 재삼 강조하고자 한다.
다만 여기에서 다루는 ‘~함’, ‘~임’, ‘~음’ 관련 내용은 주로 공직사회와 기업의 보고서의 형식이며, 최근 SNS상에서 빈번하게 이뤄지는 “....함?”, “....임?”, “.....음?” 등의 형식은 논외라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갑오경장과 ‘공문식(公文式)’ 그리고 일본의 ‘문어(文語)’
구한말 갑오경장 뒤 개화파들이 대원군을 축출하고 같은 날 제정, 공포한 것은 바로 칙령제1호 <공문식(公文式)>이었다. 이 <공문식>에 의하여 이른바 칙령과 의정부령, 각부령(各部令) 등 근대적 법령이 등장하였다. 봉건세력을 누르고 공문서제도를 근대적으로 개편한다는 명분이었다.
이에 따라 유길준 등 개화파 인사들은 大鳥 공사, 杉村 서기관(이러한 일본식 관직명이 120여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우리의 공무원 직급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의 지도 하에 일본 법전과 내각 제도를 모방하여 관제를 개편했고 문서사무 역시 일본을 그대로 모방했다.
공문서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무렵 기안문(起案文)을 비롯한 모든 공문서에는 이미 하나같이 일본의 문어체를 강제로 적용시켜 문장의 끝은 '~함'으로 맺고 있었다.
일제는 이 공문서 제도가 자신들의 침략정책에 유리한 조건을 만드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공문서 결재과정에도 깊이 개입했다. 이후 일제는 의정부를 비롯해 각부의 일본인 고문을 통해 공문서 결재과정을 주재했다. 이렇게 ‘~함’으로 끝맺음하는 일본 공문서 양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일본 메이지(明治) 시대에 '대일본제국 헌법'을 비롯해 ‘강력한 권위가 요구되는’ 법령의 문장이나 교과서 등에서 이른바 ‘문어(文語)’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문어’ 문장들은 이를테면 “천황은 육해군을 통수함(天皇ハ陸海軍ヲ統帥ス, 대일본제국헌법 제11조)”나 “규정에 따라 청원을 행할 수 있음(規程ニ従ヒ請願ヲ為スコトヲ得, 대일본제국헌법제30조)” 등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다’를 생략하고 ‘~함’, ‘~음’으로 문장을 맺는 형태이다.
일본이 ‘강제’한 ‘~함’ 형식의 공문서
구체적으로 구한말 시기의 문서를 살펴보면, 순한문 문장의 시기를 지나 한글이 사용되던 초기에는 거의 모든 글이 ‘~하니라’ 로 끝맺음을 하고 있었다. 일제 침략을 개탄하며 자결했던 민영환 등이 1902년에 기초한 <육군법률부제규정(陸軍法律附諸規定)> 제1조를 보면, “본 법률은 현역군인의 범죄한 자에게 시용(施用)함이라”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이명칠(李命七)이 저자인 『산학통편(算學通編)』도 모두 “~니라”, 혹은 “~하니라”의 형식을 띠고 있다. 그리고 대신들이 왕에게 보고하는 상주문은 ‘~다’의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갑오경장 이후 일본의 영향력이 절대화하면서 공문서뿐만 아니라 일본의 법률이나 교과서 등 서적이 그대로 직역되는 등 일본의 문장방식이 전반적으로 이식되었다. 1895년 제정된 경무청의 <문서정리규칙> 제1조에는 “총리대신 훈령도 차(此)에 공철(共綴)함이 가(可)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1908년에 제정된 <법규류편(法規類編)>의 내각기록과(內閣記錄課) 중 ‘궁내부(宮內府)’ 편에는 “참리관(參理官) 2인을 4인으로 개정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공문류별급식양(公文類別及式樣)> 제8조는 “훈령, 지령(指令) 등에 서압(署押)하는 예를 폐지하고 관장(官章)으로 대용(代用)함이 가(可)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1900년에 일본 수학교과서 등을 참조해 편역한 <정선산학(精選算學)>은 모두 ‘~함’으로 문장을 마치고 있다.
이렇게 ‘~함’의 일본 문어체는 ‘일제 강점기의 공문서’에 보편화되었다.
보고서 속 ‘~함’, ‘~음’, 권위주의와 소통 단절 초래 본래 명사화소(명사형 어미) ‘-(으)ㅁ’은 ‘확정성’이나 ‘결정성’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문장 마지막에서 ‘~함’이나 ‘~음’으로 끝내는 문장의 경우 이러한 경향성은 더욱 강화된다.
‘~함’이나 ‘~음’ 혹은 ‘~임’으로 끝나는 문장 방식은 정상적으로 글을 완료하지 않고 서둘러 결론을 내려 끝을 맺음으로써 읽는 사람과의 대화와 소통 대신 일방적으로 명령자 혹은 규정자 입장의 권위주의적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한다. 가령 “문장은 개조식으로 작성함”은 서술식의 그것보다 강제성과 권위를 더욱 강조한다. 특히 하급자를 대상으로 그러한 성격은 더욱 강화된다. 이런 문장 형식은 군대식 상명하복의 문화로 연결되며, 이는 일제 강점기의 공문서제도가 의도했던 ‘절대적 권위의 현현(顯現, 드러냄)’과 ‘무조건적인 복종의 유도’라는 본래의 목표와 정확히 부합한다.
이러한 개조식 문장에는 처음부터 상호 간의 진지한 논의와 토론을 할 수 있는 가능성과 그 분위기가 존재하기 어렵다. 더구나 여기에 창의성과 다양성이 공존할 수 없다. 결국 일제 잔재로서의 이 개조식 문장은 공직 사회와 기업 문화에서 상호 간의 토론과 대화를 단절시키고 대신 우리 사회에 상명하복 문화와 ‘빨리빨리주의’를 고착시키는 요인으로 조직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작동돼 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 / 프레시안
'김학의 성접대 의혹'을 무혐의 처리한 검사들 살펴보니
[주장] '정치검찰' 일색,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외압부터 BBK 특검 다스 수사까지
2013년에 조명됐던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재조사를 하면서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이 의혹의 당사자 김학의 전 차관을 15일 서울동부지검으로 소환해 조사합니다. 처음에는 '별장 성접대 의혹'이라 불리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의혹'은 여성 사업가와 건설회사 대표간 성폭행 수사로 시작됐습니다.
'성접대 의혹' 사건의 시작
2012년 여성 사업가 A씨는 중천건설 윤중천 대표가 자신을 성폭행하고 이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돈을 뜯어냈다면서 윤씨와 지인 B씨를 강간 혐의로 고소합니다. 당시 서울 서초경찰서는 윤씨와 B씨를 체포하고 강원도 원주 별장을 압수수색했습니다. 하지만, 증거가 없자 무혐의 처분을 내립니다. 윤씨가 무혐의 처분을 받자 여성 사업가 A씨는 윤씨의 벤츠 승용차를 찾아달라고 P씨에게 요청합니다. P씨는 윤씨의 벤츠 승용차에서 성관계 동영상이 담긴 CD 7개를 발견했고, 김학의 전 차관 성접대 의혹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별장 성접대 리스트'에 등장하는 사회 고위층
▲ 건설업자 윤중천씨가 정부 고위층 인사 등에 성접대를 한 장소로 알려진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의 한 별장. 정자와 연못 등이 보인다. ⓒ 성낙선
윤중천 대표가 고위층 인사들에게 성접대를 했던 강원도 별장은 민가에서 1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별장입니다. 2000평 대지 위에 총 6채의 건물과 수영장 2곳,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정자와 모형 풍차가 있어 이국적인 느낌을 줍니다.
건물 내부엔 대리석 바닥이 깔려 있고 원목가구와 고급 소파, 찜질방, 당구장, 가라오케 등이 설치돼 있으며 주말마다 벤츠 등 고급 외제차가 끊임없이 드나들었다는 주민들의 증언도 있었습니다.
윤 대표는 주말에 골프를 치고 난 뒤 고위층 인사를 자신의 별장에 초대해 술자리와 성접대를 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윤 대표가 단순히 즐기기 위한 모임을 연 게 아니라 건설사업을 수주하기 위한 로비성 접대를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 2013년 별장 성접대 의혹 리스트에 등장했던 사회 고위층 인사들의 말 ⓒ 임병도
MBC 'PD수첩'은 윤중천 회장의 강원도 별장에서 성접대 의혹을 받은 리스트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김학의(전 법무부 차관), 성OO(전 OO원 국장), 박OO(일산OO병원 원장), 이OO(OO당 인수위 대변인실), 박OO(OOO건설 대표), 이OO(OO그룹 부회장), 문OO(OOO그룹 회장), 김OO(OO건설 회장), 하OO(OO대 교수), 지OO(OOO피부과 원장), 최OO, 손OO 등 사회 유력인사
별장 성관계 동영상에는 2013년 3월 13일 박근혜 정권에서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된 김학의씨가 등장합니다. 당시 김 차관은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지만 저의 이름과 관직이 불미스럽게 거론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저에게 부과된 막중한 책임을 수행할 수 없음을 통감한다"라며 "더 이상 새 정부에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직을 사임한다"라고 6일 만에 차관직에서 사퇴합니다. 김 전 차관은 "확인되지도 않은 언론 보도로 인해 개인의 인격과 가정의 평화가 심각하게 침해되는 일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라면서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가 반드시 진실을 밝혀,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명예를 회복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윤중천 회장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건설회사가 50억 원대의 경찰청 교육원 골프장을 낙찰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과정에서 윤 대표가 경찰 수뇌부에 성접대를 하고 공사를 수주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당시 경찰 고위 관계자들의 실명이 거론되기도 했는데, 대부분 혐의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허준영 전 경찰청장은 트위터에 '만약 성접대 의혹이 사실이라면 할복자살하겠다'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육안으로 식별 가능했던 영상"... 하지만, 검찰은 '무혐의'
경찰이 확보한 동영상에는 다수의 여성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등장합니다. 동영상에는 김 전 차관이 함께 술을 마시던 여성과 성관계를 하는 장면이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성접대 의혹에 대해 SBS와 단독 인터뷰를 했던 여성 사업가 A씨는 윤중천 대표가 "(김학의 법무부 차관)이 검찰총장이 되면 한번 크게 써먹겠다는 얘기를 하고 다녔다"라고 밝혔습니다.
동영상에 등장했던 여성들은 영상 속 남성이 김학의 전 차관이라고 일관되게 진술했습니다. 경찰은 김학의 전 차관을 기소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서울중앙지검에 사건을 넘겼습니다.
하지만,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은 2013년 11월에 윤중천 회장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해 혐의가 없다면서 불기소 결정을 내립니다.
2013년 11월 검찰이 김학의 전 차관과 윤중천씨 성접대 혐의에 대해 동영상 속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리자, 피해여성은 2014년 7월 동영상 속 여성이 자신이라며 김 전 차관과 윤중천씨를 '성폭력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과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상습 강요)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합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는 '엉망진창'이었습니다. 1차 수사에서 김학의 전 차관을 무혐의 처분한 검사가 다시 수사를 배당받았고, 2차 수사에서도 동영상 속의 여성과 고소인이 동일 인물인지 확인하기 어렵다면서 다시 김 전 차관 등을 무혐의 처분합니다.
검찰 수사 과정이 부실했다는 지적을 뒷받침하는 말도 나왔습니다. 지난 14일 민갑룡 경찰청장은 국회 행정안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김학의 성접대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김민기 민주당 의원이 '당시 화질이 깨끗한 동영상 원본과 흐릿한 영상을 입수했는데 왜 흐릿한 영상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 의뢰했느냐'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민 청장은 "육안으로 봐도 식별이 가능했기 때문에 국과수 감정 의뢰 없이 동일인이라는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라고 답했습니다.
'별장 성접대 동영상 사건'을 무혐의 처리한 검사들
▲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을 수사했던 당시 검사 및 검찰 지휘 라인 ⓒ 임병도
1차, 2차 수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내린 곳은 서울중앙지검입니다. 그런데 당시 수사했던 검찰 지휘 라인을 보면 하나같이 '정치 검사'들이었습니다.
당시 1차 수사를 맡았던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은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 외압 의혹을, 박정식 3차장 검사는 BBK 특검 다스 수사팀장이었습니다. 2차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중앙지검장 김수남은 박근혜 정권 마지막 검찰총장이었고, 유상범 3차장 검사는 정윤회 문건 사건 부실 수사 의혹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현장에서 1차 수사를 지휘했던 윤재필 강력부 부장검사는 연예인 도박사건을 담당했고, 2차 수사를 했던 강해운 부장검사는 2017년 여검사 성추행 사건으로 면직됐습니다.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을 담당했던 검찰 지휘라인을 보면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 성접대 의혹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었을까 의구심이 생깁니다.
<피해 여성이 검사에게 보낸 편지>
검사님, 전 지금 세상에 진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제가 용기를 내어 조사에 임한 만큼 전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김학의, 윤중천을 법 앞에 국민들 앞에 심판을 받게 할 것입니다.
검사님, 이 세상에 제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세요.
그들을 제 힘으로 벌할 수 없어 목숨을 버리려고까지 했던
제 아픔을 느끼신다면 절대 김학의, 윤중천을 세상에 무릎 꿇게 하시고 처벌하여 주세요.
피해 여성은 별장 성접대 사건 이후에도 김학의 전 차관 등으로부터 서울 등지에서 수차례 더 성관계를 요구당했다면서 고소했습니다. 피해 여성은 검찰 조사 후 검사에게 장문의 손편지를 보내 김학의, 윤중천이 법의 심판을 받게 해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러나 법은 결코 피해자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피해 여성은 검찰의 힘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른 검사들이 오히려 승승장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검찰 개혁이 필요합니다. 이번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 성접대 의혹 사건' 재조사를 통해 검찰의 썩은 부위가 과감하게 도려내지길 기대합니다./임병도(impeter) / 오마이뉴스
‘아파트 공화국’에 던져진 ‘종부세 폭탄’의 진실
"6억 이상 아파트가 정말 전체의 9%밖에 안되나요?"
전국의 공동주택 공시가격(안)이 공개됐던 14일 저녁, 부동산 관련 인터넷 카페에 이런 질문글이 올라왔습니다.
"언론 보도를 보니 6억 원 이상 공동주택이 전국 전체 공동주택의 9%밖에 안 된다고 나오던데, 말이 안 되는 것 아닌가요?"(내용 요약)
해당 글에는 "오보다", "주위 아파트 보면 그 정도 가격이 없다"라는 댓글들이 줄줄이 달렸습니다. 실상은 어떨까요? 국토교통부의 공식 집계는 아래와 같습니다.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공시가격 3억 미만의 공동주택으로 전체의 69.4%를 차지합니다. 다음이 3억에서 6억 사이의 공동주택으로 전체의 21.7%, 6억 이상 공동주택은 모두 합쳐서 8.9%에 불과했습니다.
고가주택만 관심 두는 언론…'아파트 공화국'의 민낯
공동주택 공시가격(안)이 발표되자 대부분 언론의 관심은 고가주택 소유주가 받는 타격에 집중됐습니다. 가장 많은 기사가 쏟아진 건 종합부동산세가 얼마나 늘어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는데요. '세금 폭탄'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도 어김없이 등장했습니다.
[연관 기사] [뉴스9] 공동주택 공시가격 공개…고가일수록 상승률↑
종합부동산세 대상은 얼마나 늘어났을까요? 종부세 과세 기준에 해당하는 공시가격 9억 원 이상 공동주택은 지난해 14만 호에서 올해 21만 9천 호로 56% 늘어났습니다. 단순 비율로 보면 대상이 상당히 많아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앞서 자료에 나타났듯이 처음부터 종합부동산세 대상으로 아예 검토조차 되지 않는 주택(공시가격 6억 원 미만)이 전체의 91.2%에 달합니다. 다주택자 기준으로 6억 원이니까 1주택자인 9억 원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대부분의 공동주택이 종부세와 아예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종합부동산세는 인별합산입니다. 집이나 땅에 대한 과세가 아니라, 1인당 보유한 부동산 가격이 기준을 넘어야 과세한다는 얘기입니다. 가령 고가의 공동주택이라 하더라도 부부 공동명의이면 공시가격 9억 원이 아니라 12억 원부터 종부세가 나오기 때문에 과세 대상이 더 줄어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1주택자는 1,115만 명, 다주택자는 211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2018년 기준 종부세 과세 대상은 33만 명으로 전체 국민의 약 2%에 불과합니다.
국민 2%가 내는 종부세…얼마나 부담 늘까?
재벌과 연예인 등 초고소득 자산가들의 인기 주거지로 알려진 서울 용산구의 '한남더힐'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전용면적 244.78㎡의(약 74평) 한남더힐 2019년 공시가격은 55억 6,800만 원입니다. 공시가격은 전년보다 1.9% 올랐습니다. 이에 따른 재산세는 1,200만 원입니다. 종합부동산세는 3,800여만 원이 나오고요. 도시 재산세와 지방교육세, 농어촌특별세 등 기타 세금을 다 더하면 보유세 합계는 6,600만 원 정도가 됩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결론적으로 각종 세금이 1,900만 원 정도 늘어난 셈인데요. 여기에 장기보유 공제나 60세 이상 고령자 공제를 받는 경우 세금은 10~40%까지 더 줄어들 수 있습니다.
'한남더힐'만큼은 아니지만, 손에 꼽히는 고가 아파트인 서울 서초구의 '방배아크로리버' 149제곱미터 아파트를 볼까요. 2019년 공시가격은 10억 1천만 원입니다. 공시가격이 전년보다 16.51% 올랐습니다. 전국 평균 상승률의 3배 수준이죠. 재산세와 종부세 등을 다 합치면 총 보유세가 약 333만 원 나옵니다. 공시가격 인상으로 전년보다 늘어난 금액은 84만 원 정도였습니다. 역시 각종 공제를 받으면 세 부담은 더 줄어들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상위 1%의 고가주택에 부과되는 세금, 이 정도 세 부담이 정말 '폭탄' 수준인지는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깁니다.
'아파트 공화국'에서 소외된 연립과 다세대 266만 호
'부동산'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빽빽한 성냥갑 모양의 아파트 단지나 요즘 최신 트렌드인 타워형 아파트 풍경을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이제는 고유명사처럼 굳어진 '강남3구', '강남4구'를 떠올리는 분들도 있겠죠.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국민은 서울 강남이 아닌 곳에서, 절반 가까운 국민들은 아파트가 아닌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전국의 아파트는 1,073만 호, 연립과 다세대는 266만 호입니다. 단독주택까지 합하면 700만에 가까운 가구가 아파트가 아닌 곳에서 거주 중입니다.
서울 마포구의 한 빌라에서 5년째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30대 자영업자 권 모 씨는 이런 언론보도가 쏟아질 때마다 소외감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모든 언론보도나 하다못해 팟캐스트만 봐도 아파트 중심이고 아파트 얘기밖에 없으니까요. 연립이나 다세대 주택은 가격이 비싸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언론이나 정책입안자들의 관심이 떨어지면 다른 형태의 주택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정책적인 관심과 배려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역시 서울의 한 빌라에 살고 있는 30대 직장인 김 모 씨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합니다.
"경제적 여건 때문에 빌라에 살게 됐거든요. 빌라에 사는 것 자체에는 큰 불만이 없어요. 그런데 빌라는 가격이 오르지 않는 반면 관심이 집중되는 아파트는 가격이 계속 뛰니까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사람은 점점 더 돈을 벌게 되는 것 같아요."
공시가격이 공개되거나 부동산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한국 사회는 심하게 들썩입니다. 매번 '세금 폭탄' 논란도 반복됩니다. 상위 1~2% 부자들에게 해당하는 세금 소식을 98%의 국민들이 접하는 현실, 이제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슬기 기자wakeup@kbs.co.kr
“지면 2/3 보도에 2000만원, 네고 가격 1200만원”
언론사 보도 협조 공문 입수, 기사마다 광고협찬금 책정… 시상식도 언론사 수익사업
“전체 지면 2/3(10단) 보도 시 2000만원 발생(네고 가 1200만원).” 한 홍보대행사가 모 기업에 보낸 공문 일부다.
과거 세로쓰기 신문 시절 한 면은 위아래가 50cm였다. 당시 신문은 이를 15개 단으로 나눠 편집했다. 전면광고는 ‘15단 통광고’, 지면의 1/3을 차지하는 광고는 ‘5단 통광고’라고 불렀다.
동아일보와 계약한 이 대행사는 지면 2/3인 10단 보도 협찬비는 2000만원, ‘네고 가(할인가)’는 1200만원이라고 기업에 알렸다. 문서 이름은 ‘협찬내역서’, 발신자는 기획지면 ‘비즈포커스’ 실무자 A씨다.
협찬비는 기사 크기에 비례했다. 7단 보도엔 협찬비 1500만원에 할인가는 900만원, 5단 보도엔 1000만원에 할인가 600만원이었다. 전체 15단 기준 1면 총 금액은 3000만원(할인가 2100만원)이 된다. 가장 작은 5단의 절반인 경우 협찬비는 500만원, 네고는 300만원으로 책정됐다. “네고 가는 대기업, 공기관을 제외한 기업”에만 해당된다.
▲ 협찬공문 내용. 디자인=이우림 기자
▲ 2018년 4월2일 동아일보 기획지면.
기사가 실린 지면은 우수기업을 소개한다는 별도 기획특집이다. “뛰어난 인프라와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각 산업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는 우수 기업과 브랜드, CEO를 집중 조명한다”는 취지다. 지난해 4월부터 거의 매달 나왔다. 4개 지면에 10~14개 소개 기사가 실렸다. 내역서대로라면 협찬비 최대 규모는 한 번에 1억2000만원대다.
실제 금액은 내역서 발송 후 전화로 다시 논의해 정한다. 공문엔 “입금은 편집일 이전을 원칙으로”라는 조건도 있다.
A씨는 “돈받고 기사쓰는게 아니라 대행사에서 광고를 별도로 요청한다. 희망하지 않는 기업은 별도 광고없이 진행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보도될 업체가 기사에 대한 대가를 직접 내는 게 아니라 사후 광고 계약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취지다.
언론사의 시상식도 수익사업 기능을 했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한국일보 ‘대한민국 가치경영대상’ 협조 공문엔 참가비 400만원이 지면 구성 및 기업 참여 내용으로 적혀있다. 시상식은 2017년에 2회, 2018년 4회, 올해 1회 진행됐다.
수상 기업이 공문대로 참가비를 내면 수익은 한 회 4000여만원 규모다. 1개 지면을 통틀어 9~12개 기업에 대한 글이 실린다. 지난해에만 4회 기준 참가비만 1억6000여만원으로 추정된다. 참가비 명목은 편집비, 심사 진행비, 뉴스 영구 제공비다. 참가 기업엔 지면 보도, 엠블럼 및 선정타이틀 사용권한 부여, 뉴스 검색 서비스 제공, 상패수여 등 특전이 주어진다고 나와있다.
한국일보 대상사업 관계자는 “수상기업 선정은 납부를 하든 하지 않든 별개로 진행된다. 참가비는 행사 준비 비용 등이 있어 명목상 적어놓은 것일 뿐이고 선정된 기업 절반 이상이 참가비를 내지 않는다. 다만 일부 호의적인 기업이 이후에 광고계약을 맺기도 한다”고 밝혔다.
행사는 응모제였다. 마감일까지 준비사항을 다 갖추고 접수를 마쳐야 후보에 올랐다. 시상식이 언론사 수익사업이란 지적은 줄곧 있었다. 2005년 김태호 경남도지사는 한국경제신문·서울대가 주최한 ‘제1회 한국을 빛낸 CEO 상생경영분야’에서 대상을 받으며 주관처에 2200만원을 참가비로 냈다. 창원시는 2006년 동아일보·한국공공자치연구원이 주관한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을 받고 800만원을 냈고 ‘한국언론인포럼’ 주관 지방자치대상을 받을 땐 특집방송 촬영홍보비로 1200만원을 냈다.
▲ 한국일보 ‘가치경영대상’ 신청 협조문(오른쪽) YTN life ‘비즈라이프’ 촬영 협조 공문. 디자인=안혜나 기자
방송사 기업홍보 프로그램도 참가비가 있다. YTN life(YTN 자회사)의 ‘비즈라이프’ 외주제작사가 기업들에 보낸 ‘TV방송촬영 협조문’엔 외주편집비 500만원이 적혀 있다. 30여분간 중소기업 5~6개의 상품·기술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우수 기술력을 가진 국내 기업을 직접 탐방하고 심층 촬영해 방송을 통해 기업 신뢰성을 확보하고 시청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목적이다.
한 업체가 외주편집비용 납부를 내지 않겠다고 하자 협의는 더 진행되지 않았다. 광고성 보도란 지적이 나올 만하다. 이에 업체 측은 입장을 주지 않았다. YTN은 “외주제작사가 만든 방송을 납품받고 송출하는 구조라 기업 선정 방식 등 제작엔 관여하지 않고 그럴 이유도 없다”며 “방송사는 모니터링 시사를 통해 업체명·제품이 간접 홍보되지 않도록 모자이크 하면서 노력을 한다. 좋은 업체를 좋은 취지로 소개하는 측면이지 돈벌이 수단으로 업체에 의뢰하는 건 전혀 아니”라고 밝혔다.
외주제작사가 업체에 촬영비를 받는 건 방송업계 고질적 관행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모든 방송사의 오랜 관행이다. 기업 뿐 아니라 맛집, 학원, 기술자 등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대부분이 외주제작사를 끼는데 대부분 협찬금으로 제작비를 충당한다”고 말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언론사는 좋은 기업 홍보를 위해서 보도했다지만 변명으로 들린다. 문제는 이렇게 기사를 사고 파는 일이 너무 일상화돼 기자들이 둔감해질 정도인데도 독자들은 아직 보도가 객관적이라 생각하는 점”이라며 “블로그 체험수기를 예전엔 많이 믿었지만 지금은 사실상 협찬받아서 쓴 글이라고 모두들 생각한다. 언론 보도가 이렇게 취급되면 사실상 민주주의에 큰 피해를 준다”고 했다.
※ 기사 수정 : 2019년 3월15일 오전 11시59분 (1 ·3번째 단락 공문 발송 주체 수정)손가영 기자 ya@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