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근 2025. 2. 24. 00:38

악재에 악재 겹친 한국 경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오로지

계엄령 선포로 인한 정국 혼란은 구조적 위기에 빠져 있던 한국 경제에 치명타를 가했다. 경기침체 극복을 위해 재정확장·성장 모델 개혁 등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2024년 12월4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한 시민이 비상계엄 관련 보도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선포 이후 한국 정치는 대혼란에 빠졌다. 미증유의 정치적 사태는 안 그래도 어렵던 한국 경제에 커다란 충격을 가했다. 계엄에서 탄핵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 혼란은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위기를 극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비상계엄 발표 직후 주식시장이 급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이미 2024년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약세를 보인 한국의 주식시장과 원화 가치를 다시 타격한 것이다.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자 주식시장은 빠르게 회복되었으나 환율은 여전히 높게 유지되었다. 환율은 지난해 12월2일 1달러당 1406원에서 12월31일엔 1477원으로 급등했다. 이후 약간 하락했다가 다시 올라 2월4일 현재 1455원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1월16일 환율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약 30원의 환율상승이 정치적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엔 외국자본도 한국을 빠져나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그 한 달 동안 외국인 증권투자는 주식에선 25억8000만 달러, 채권에선 12억8000만 달러 규모의 순유출이 나타났다. 코로나19의 충격이 컸던 2020년 3월 이후 최대 규모다. 같은 시기 외국인들의 한국 국채 보유액도 약 3조원 감소했다.

글로벌 신용평가회사들도 한국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계엄 직후인 지난해 12월4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정치적 위기가 투자자들의 심리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지만 향후 1~2년 동안 한국의 신용등급이 변화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지난 1월9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화상 면담을 마친 뒤 신용평가사들은 ‘정치적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외국인 투자 또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치적 위기는 국내 경제에 여러 경로를 통해 악영향을 미쳤다.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것은 민간소비였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해 11월 100.7에서 12월 88.4로 급락했고 올 1월에도 91.2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12월 소매판매지수도 1년 전에 비해 3.3% 하락했다. 세상이 불안하니 연말연초 모임 취소 등 소비가 위축되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당시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2016년 10월 소비자심리지수는 102.7이었는데, ‘최순실 국정농단’ 스캔들이 터진 뒤인 11월엔 96으로 하락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같은 해 12월 국회의 탄핵 의결 이후 2017년 1월엔 93.3까지 떨어졌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2017년 3월) 다음 달인 4월에 들어서야 101.8로 회복되었고 정권교체 뒤인 6월에 112.3까지 올라갔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박근혜의 국정농단 스캔들보다 더 큰 정치적 충격을 한국 경제에 가한 것 같다. 최근의 소비자심리지수 하락 폭이 박근혜 탄핵 당시보다 더 크다.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이 나올 때까지 소비가 위축될 공산이 크다.

정치의 혼란은 기업경영과 투자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한국은행 기업경기조사에 따르면 전 산업 기업심리지수가 지난해 11월 91.8에서 12월 87.3, 올 1월 85.9로 낮아졌다. 기업들의 업황 등을 보여주는 기업경기실사지수도 지난해 12월부터 하락했다. 기업경기와 소비자심리를 통합한 경제심리지수는 지난해 11월 93에서 12월 83.3, 올 1월 86.7을 기록했다.

계엄 선포는 ‘기업대출 잔액’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과 12월 사이에 11조5000억원이나 줄었다. 기업대출 잔액은 주요 은행들이 기업에 빌려준 상태인 돈의 총액을 의미하는데, 기업들의 사업 의욕이 줄거나 은행 측이 대출을 꺼리면 기업대출 잔액이 감소한다. 이는 은행과 기업의 재무관리 때문에 보통 12월에 줄어드는 경향이 있지만 지난 12월에는 유독 감소 폭이 컸다. 글로벌 경제와 국내 정치의 불확실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경제학의 여러 실증연구들은 쿠데타나 내전 같은 정치 불안이 장기적으로도 투자와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한다.

내수와 수출 모두 취약해진 한국 경제

소비와 기업활동이 위축된 결과 지난해 12월 노동시장도 크게 악화되었다. 통계청 고용동향에 따르면 2024년 12월 취업자 수는 건설업과 도소매업 등을 중심으로 전년(2023년) 같은 달 대비 5만2000명 감소했다. 코로나19 시기인 2021년 2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실업자는 111만5000명으로 증가하여 지난해 12월의 계절조정실업률이 3.7%를 기록했다. 11월의 2.7%에 비해 1%포인트 높아졌고, 2023년 12월의 3.2%에 비해서도 0.5%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2024년 10~12월) 경제성장률은 전 분기(2024년 3분기) 대비 0.1%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의 기존 전망치인 0.4%보다 매우 낮은 수치다. 한국은행은 이미 지난해 11월, 2024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2.5%에서 2.2%로 낮추었지만 최종 결과는 더 낮은 2%에 그쳤다. 이 역시 정치적 위기에 따른 12월 거시경제의 둔화와 관련이 크다.

문제는 계엄 이전부터 한국 경제가 이미 취약한 상태였고 성장의 둔화 조짐도 뚜렷했다는 점이다. 2023년 경제성장률이 1.4%로 매우 낮은 편이었는데, 2024년에도 1분기의 반짝 성장을 제외하면 경기가 부진했다. 지난해 1분기 성장률은 1.3%로 높았지만, 2분기는 민간소비와 GDP가 각각 –0.2% 성장률(역성장)을 나타냈다. 3분기는 수출이 –0.2%, 건설투자가 –3.6%로 역성장하면서 성장률을 끌어내려 0.1%에 그쳤다.

특히 실질임금이 2022년부터 2024년 1분기까지 줄어들어 민간소비를 둔화시켰다. 소매판매지수는 2022년 2분기 이후 2024년 4분기까지 11분기째 전년도 같은 시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러한 내수 위축의 직격탄을 받은 이들이 바로 자영업자들이다. 이미 2023년에 폐업한 개인, 법인 사업자 규모가 98만6000명으로 전년도(2022년)에 비해 크게 증가한 상태였다. 개인채무조정 및 회생 신청자 수도 2023년에 크게 늘어났는데 지난해엔 더 증가했을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안 그래도 좋지 않던 한국 경제에 정치적 위기가 엎친 데 덮친 격이 된 셈이다.

 
경기도 시흥시 배곧신도시 빈 상가의 유리창에 임대 모집을 알리는 전단들이 가득 붙어 있다. ⓒ시사IN 조남진

구조적으로 봐도 한국 경제의 취약성이 뚜렷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중국에 대한 부품 등 중간재 수출을 급속히 증가시키며 성장세를 구가했다. 따라서 2000년대 이후 경제성장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역할이 더 커졌다. 수출과 수입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2년엔 95%까지 높아졌다. 결국 한국엔 다시 한번 ‘수출주도적 성장 모델’이 정착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 같은 내수 중시 모델을 추진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그러나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경제 질서의 전환과 중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는 이러한 성장 모델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선진 각국은 이제 경제 안보를 중시하며 적극적으로 산업정책을 추진 중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세계경제 패권 갈등을 필두로 지경학적(Geo-economic) 분열이 심화될 전망이다.

특히 관세 인상을 내세우는 트럼프의 재집권은 세계화 후퇴와 보호무역 흐름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한편 중국은 자국 산업을 급속히 발전시키면서 한국으로부터 중간재(특히 정보통신산업 부문)를 수입할 필요성을 크게 줄였다. 이에 더해 중국 경제 전반이 둔화되면서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 여건을 더욱 악화시켰다. 이런 흐름에 따라 한국의 2023년 대중 수출은 전년도(2022년)에 비해 19.9%나 줄었다. 대중 무역수지도 180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2024년엔 대중 수출 규모 자체는 약간 증가했으나 대중 무역수지는 68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결국 한국 경제는 ‘내수 정체’라는 내부적 문제와 세계경제 질서의 변화라는 외부적 충격에 동시에 직면하고 있었다. 한국은행은 이미 지난해 11월, 2025년 경제성장률을 1.9%로 하향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란 사태가 터지며 성장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든 것이다. 실제로 1월 한국은행은 2025년 성장률 전망치가 1.6~1.7%로 하향 조정될 것으로 판단했다. JP모건 1.2% 등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대(對)한국 성장률 전망치는 1% 초중반대로 더욱 낮았다. 더 멀리 보면 세계에서 최고로 빠른 고령화와 최저 출산율로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할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2040년경에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1% 미만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경제가 이렇게 어렵다면 기댈 곳은 정부밖에 없다. 경제학 교과서는 이런 경우 정부가 곳간 문을 열어 재정확장으로 경제를 부양하고 시민들의 소득과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가라앉는 경제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기는커녕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이른바 ‘민간주도 경제’를 강조하며 정부의 역할을 방기했다. 정부부채 증가가 우려된다며 재정건전성만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정부예산에서 총지출의 증가율(전년 대비) 명목경제성장률보다 낮은 긴축 기조가 지속되었다.

게다가 경기가 부진한데도 부자와 기업에 대한 감세를 강행하면서 세수결손이 2023년엔 56조원에 달했다. 같은 해 관리재정수지(정부의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수치)는 GDP의 3.9%에 이르는 87조원 적자를 기록했다. 세수결손은 2024년에도 약 3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윤석열 정부는 낡은 ‘낙수효과 경제학’에 기초하여 감세로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해서 경제성장을 촉진하겠다고 주장했다. 낙수효과는 실증적 근거가 희박한 논리이고, 이는 한국에서 입증되었다. 경제관리의 방기로 인한 경기둔화는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을 떨어뜨린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이력 효과’ 극복하려면

윤석열 정부의 실정, 그리고 계엄 이후의 경험이 한국 경제에 주는 교훈은 아마도 정치가 경제에 정말로 중요하다는 점일 터이다. 잘못된 정치는 경제를 엉망으로 만든다. 현재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필수 조건은 대통령 탄핵의 신속한 최종 결정과 대선을 통한 정국 안정이다.

정치적 충격으로 인한 한국 경제의 위기를 막으려면 재정확장 같은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꼭 필요하다. 1월16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정치적 위기로 인한 경기둔화에 대응하여 15조~20조원 규모의 추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상목 권한대행도 1월21일, 민생과 산업지원을 위한 추경에 관해 국회와 논의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1월31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추경에 걸림돌이 된다면 민생회복지원금도 양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월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재정확장은 ‘위기의 상흔’으로 표현되는 ‘이력 효과(한번 발생한 경제적 충격이 이후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오랫동안 부정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치는 현상)’를 극복하는 데 필수적이다. 최근의 거시경제학 연구들은 심각한 불황이 장기 실업자 증가와 기업의 신기술 투자 정체를 낳아 장기적으로도 경제의 생산성 상승 및 경제성장률을 하락시킨다고 보고한다. 총수요 측의 충격이 총공급과 경제성장에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각국이 코로나 팬데믹 당시 대규모 재정지출을 시행한 것은 이 같은 연구에 기반했다. 한국 정부 역시 신속하게 대규모 추경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전 국민 지원보다 형편이 어려운 저소득층이나 자영업자에 대한 선별 지원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나아가 한국의 경제구조와 성장 모델 자체를 균형 잡힌 방향으로 개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경제 질서의 급변이라는 조건하에서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하려면 과도한 수출 의존보다는 내수 촉진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를 위해 취약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강화하고 임금을 인상하며, 증세와 사회복지 확대를 통한 소득재분배 확충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전략산업 발전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적극적인 공공투자와 산업정책이 요구된다. 정부는 경제를 시장에 맡기는 것을 넘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신재생에너지나 환경친화 산업, 그리고 인공지능 같은 미래산업 발전을 위해 산업정책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정권교체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역할과 경제 프로그램이 중요하다. 하지만 민주당은 증세에 소극적이고, 최근 당대표가 실용주의와 기업주도 성장을 강조하는 등 다소 혼란스러운 모습도 보이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부터 진보적인 경제구조 개혁과 새로운 성장전략을 위한 구체적 논의를 시급히 발전시켜야 한다.

현재의 정치적 위기가 민주주의 회복만이 아니라 성장 모델의 전환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힘은 결국 정치를 바꾸는 시민들로부터 나올 것이다.

이강국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부 교수)/시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