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23년 7월24일 ~28 '대통령 친인척 비리 엄단' 외치던 언론 다 어디갔나

이성근 2023. 7. 24. 11:54

한국 기업 상속세 부담 1기사, 진짜일까?

원칙있는 외교? '무능' 덮기위한 것 아닌가

검찰 핵심부의 네 가지 범죄 혐의와 특활비 특검

나쁜 것도 빨리 배우는 AI···유해물 걸러내는 노동자들 트라우마 호소

이젠 이승만·트루먼 동상까지... "친일 영웅화 두고볼 수 없다

'국가 재난에 대한 국가 책임' 부정한 헌법재판소

'대통령 친인척 비리 엄단' 외치던 언론 다 어디갔나

러 항공기-북 포탄 맞교환? 윤 편향외교 반작용 군사밀착

헌법재판소는 스스로를 탄핵했다

오갈데 없던 이승만·트루먼 동상,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세워져

시민사회단체 "정전협정 70주년, 이젠 전쟁 끝내야

서울시 예산 삭감은 서울노동권익센터를 어떻게 흔들었나

한국 기업 상속세 부담 1기사, 진짜일까?

‘30억 물려받으면 15억 세금 내라니’, ‘한국 기업의 상속세 부담은 OECD 1’, ‘최고세율 60% 상속세 부담이라는 언론 기사들이 보인다.

 

그러나 이 기사들은 완벽하게틀렸다.

첫째, 30억원 상속 시 내야 할 세금은 약 9억원이다. 세금 빼고도 21억원이 공으로 생기니 남는 장사다. 30억원의 50%15억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기사 제목은 누진제도를 오해한 오보다. 최고세율 50%가 적용되는 과표금액이 30억원인 것은 맞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세액이 50%는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아버지가 299999만원을 남기고 사망했다. 최고세율 50%를 피할 수 있는 금액이다. 그런데 아버지 주머니에서 5만원짜리가 발견되었다. 그럼 이 5만원을 버려야 할까? 물론 아니다. 상속세 최고세율 적용 구간은 30억원 초과분에 한한다. , 50% 세율 적용 금액은 30억원 초과분인 4만원일 뿐이다. 그래서 상속가액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각종 공제도 많이 존재한다. 특히, 배우자에게 30억원을 물려주면, 세금은 0원이 될 수도 있다.

 

둘째, 한국 기업의 상속세 부담은 정확히 0원이다. 기업은 상속세 부담이 있을 수 없다. 상속이란 자연인이 사망할 때 발생한다. 기업의 지분을 지닌 사람이 사망하여 그 지분을 자녀에게 넘겨도 기업은 아무런 부담이 없다. 상속재산을 받은 기업인의 자녀만 상속세 부담이 생긴다. 만약 기업이 자녀의 상속세를 대납한다면 이는 횡령이다. 절대로 기업은 상속세 부담이 발생하지 않는다. 만약 기업인의 자녀가 상속세 낼 돈이 없어서 기업의 지분을 매각해도 기업의 일부를 정부에 내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자본은 줄어들지 않는다. 주주 이름만 변동될 뿐이다. , 지분 소유자의 손바뀜만 발생한다.

2017629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마련한 상속·증여세 관련 공청회. 연합뉴스

 

셋째, 상속세 최고세율은 60%가 아니라 50%. 대단히 많은 언론 기사에서 최대주주 보유 주식 할증평가를 고려하면,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60%라고 언급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최대주주 보유 주식 할증평가가 무엇일까? 상속세 등 모든 세금은 실질과세 원칙이 기본이다. 형식과 상관없이 경제적 실질에 따라 상속가액이 평가된다는 의미다. 액면가 1만원짜리 주식이 시장에서 100만원에 거래되면 상속가액은 100만원이 되어야 한다. 만약 여기에 50만원의 세금이 붙으면 세율은 50%. 액면가 1만원 대비 상속세율이 5000%라고 말하면 잘못이다. ‘경영권 프리미엄이라는 개념이 있다. 낱개로는 100만원에 거래되는 주식도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으면 시장에서 120만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경영권 분쟁이 붙으면 주가가 20% 올라가는 것은 기본이다. 결국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하면 상속가액 자체가 120만원이 된다. 실질과세 원칙에 따라 시장 거래 가격을 고려한 상속가액 120만원에 최고세율 50%가 적용된다고 해석해야 한다. 낱개 가격 100만원 대비 상속세율이 60%라고 말하면 잘못이다.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말, ‘경영권

가장 잘못된 논리는 상속세로 경영권이 위협받는다는 주장이다. 일단 경영권이라는 말은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말이다. 경영을 할 수 있는 권리(management right)란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경영 시장에서는 오로지 지배력(control power)만 존재할 뿐이다. 지배력을 획득하는 방법은 둘 중 하나다. 50%+1주를 보유하든가, 또는 경영 실력을 입증하면 된다. 상속세로 아무리 지분이 희석되어도 경영 실력만 입증하면,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 만약 경영 실력이 없는 재벌 3세가 지분이 희석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면, 기업의 부가가치 창출 능력에 해가 될 수 있다. 상속세로 지분이 적절히 희석되는 것이 오히려 기업의 효율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시사인

 

 

원칙있는 외교? '무능' 덮기위한 것 아닌가

[현안진단] 70년의 정전상태, 언제나 지속가능한 평화를 보게 될까

 

정전 70, 여전히 불안정한 한반도 평화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정전협정, 1953. 7. 27)'이 체결된 지 70년이 되었다.

 

이 협정의 핵심 의무조항은 체결 당시의 전선을 휴전선으로 하여 전투행위를 멈추고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와 3개월 안에 평화체제 설립논의를 위한 정치회의를 개최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막대한 피해와 희생을 치른 채 전쟁을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생각에 이승만 대통령은 정전협정 서명을 거부했고, 한반도 평화문제 논의를 위한 제네바 극동평화회의(1954. 4)도 성과 없이 끝났다.

 

지난 70년 동안 한반도에는 평화체제가 부재한 상태에서, 더구나 최근 30년 동안은 정전체제도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는 상태로 정전이 유지되고 있다. 북한이 군사정전위원회 유엔군 측 대표를 미군 장성에서 한국군 장성으로 교체한 데 반발하면서 정전협정 유지관리 핵심기구인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가 1991년 이후 열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유엔군-북한군 장성급회담이 군사정전위원회 노릇을 사실상 대신하고 있다.

 

그 뒤로 남북관계가 파탄을 맞이하면서 북한은 아예 정전협정 백지화까지 선언(2013. 3. 5)한 상태다. 이처럼 한반도에서 정전상태는 법·제도적 장치가 취약한 상태에서 사실상 군사적 힘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남북이 군사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끝 모르는 경쟁 속에서 매우 불안하게 평화를 지켜가고 있는 셈이다.

 

최근 한·미동맹이 북한 핵위협에 대응하는 워싱턴선언(2023. 4. 26)에 따른 핵협의그룹(NCG)을 개최(7. 18, 서울)하면서 전략핵잠수함(SSBN)을 노출(7. 18 ~ 21, 부산)시키자, 북한 국방상은 미군 전략핵잠수함의 부산기항을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핵위협'이라며 미군 전략자산의 잦은 등장은 핵무기 사용조건에 해당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대해 한·미동맹은 북한의 어떠한 핵공격도 '즉각적·압도적·결정적 대응'에 직면하고 이는 '북한 정권의 종말'로 귀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미국의 오하이오급 핵추진 탄도유도탄 잠수함(SSBN) 켄터키함(SSBN-737) 내부를 시찰하며 잠망경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정전 70,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불안한 평화 70, 한국은 빈곤한 개발도상국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경제적으로 선진국 그룹에 들었고, 북한은 민생을 희생하면서 고생고생 끝에 결국 핵무기를 보유하면서 군사적으로 전략국가임을 선언했다.

 

70년 전 시점에서 한반도의 이러한 모습을 상상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것이 변했고 강산도 여러 번 바뀔 만큼 시간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으며 변할 수 없는 것도 있다.

 

하나는 한반도가 국제사회에 영향력이 큰 강대국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지정학적 조건이며, 또 하나는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로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는 남북한 정권의 대립구조에 기초한 분단체제이자 현실적으로는 불안한 상태로 유지되는 정전 질서이다. 둘 다 우리 외교안보의 취약점이다.

 

우리는 견결한 한·미동맹을 유지하며 개방을 통해 글로벌 경제에 적극 참여하여 국제경쟁력을 갖춤으로써 선진국 반열에 올랐고, 북한은 자주와 자립의 노선을 견지하며 경제를 희생하면서 절대무기라고 하는 핵무기를 손에 넣었지만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상황을 자초했다.

 

핵무기를 통해 활로를 열어보려는 북한의 노선이 가진 한계와 위험은 재론할 필요도 없지만, ·미동맹과 글로벌 협력을 통해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우리의 노선도 여전히 불안정한 기초 위에 서있다. 한반도 평화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앞으로도 지난 70년처럼 불안정하나마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하는 우리 위상(G7 확대정상회담 초대)을 고려하면 글로벌 안보에도 적절한 역할이 요구(NATO확대정상회담 초대)되는 것은 불가피하고 어떤 면에서는 바람직한 점도 있다. 그만큼 우리의 레버리지가 확충되고 다양해질 가능성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냉전시대와 달리 현재의 국제질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다.

 

냉전기에는 우리가 중·러와 적대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미국 주도의 글로벌 안보질서 강화와 한·미동맹의 대북억제력 강화가 일치했지만, 지난 30년간 탈냉전을 거치며 중·러는 우리와 국교를 맺고 경제관계를 확대해 왔고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공조의 중요한 파트너가 되었기 때문에 현재 우리 입장에서 국제공조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최근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추구하는 세계화 흐름이 후퇴하고 강대국들의 자국 우선주의와 대다수 나라들의 각자도생으로 국제질서가 복잡하고 매우 유동적으로 흐르고 있어, 우리 입장에서 국제공조를 단선적으로 말하기가 더욱 어려운 처지로 되고 있다. 또한 국제무대에서 영원한 친구나 적이 없다는 언급은 언제나 무시할 수 없는 지침이기도 하다.

 

국내외 상황이 힘들고 복잡할 경우 외교에서 원칙이나 이념을 내세우며 외교 상상력의 빈곤이나 무능을 덮기는 쉽다. 그러나 지정학적 조건이나 분단구조를 감안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글로벌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실용적 시각에서 외교 옵션을 가능한 한 많이 유지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상위 원칙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국제공조나 민족공조에 앞서 여야공조부터

심각한 미·중 경쟁구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서방 대 러시아의 대치국면을 보며 이것이 향후 지속적으로 강화될 국제질서로 예상하고, 신냉전 질서의 도래와 이로 인해 세계가 두 개 진영으로 쪼개 질 것(De-Coupling)이며 한반도에도 과거 냉전시기처럼 한··일과 북··러의 대립구도가 형성될 것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나 미국이 추구하는 글로벌 질서가 중국과의 관계단절이 아니라(이런 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중국발 불확실성과 위험요소를 없애는데 집중해야 한다(De-Risking)는 선으로 완화되면서 신냉전 주장은 일단 주춤한 상태다.

 

디리스킹 개념은 중국에의 과도한 의존을 경계하면서도 협력을 유지해 나가고자 하는 EU의 입장이 담긴 것으로(2023. 3. 30, EU 집행위원장의 중국 방문 연설), 즉시 미국이 지지 입장을 밝혔고(4. 27, 국가안보보좌관) 곧바로 G7 회의(5. 21, 히로시마)가 이를 뒷받침함으로써 미·중간의 극한 대립에 속도 조절의 명분을 제공하였다.

 

미 국무장관이 최근 베이징을 방문(6. 18 ~ 19)하고 중국 주석과 회동했다. 이어서 미 재무장관, 존 케리 기후특사, 미국외교의 전설 헨리 키신저까지 방중했다. ·중은 작년 미하원의장의 대만방문(2022. 8. 2 ~ 3) 이후로 끊긴 핫라인을 복원하고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방미와 북핵 문제 협의도 시작했다. ·미대화의 재개 여지가 생긴 것이다.

 

최근 월북한 미군병사(7. 21)의 처리과정에서도 북·미 대화는 필요해졌다. 특히 미국은 내년이 대선 레이스 기간이고 한반도에서 마찰의 소음이 들리는 것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일 관계에서도 대화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총리는 G7 회담 직후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정식 제의(5. 27)했고, 북한 외무성 부상은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화답(5. 29)했다.

 

북한이 군사정찰위성 발사계획(5. 31 ~ 6. 11, 실제발사 5. 31)을 국제해사기구(IMO) 외에 일본에만 사전 통보(5. 30)한 것도 주목을 끈다. 최근에는 일본 총리 직속으로 고위급회담 준비팀이 꾸려졌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단초들을 모자이크해 보면, 세계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마무리와 함께 전반적으로 '외교의 시간'으로 항로변침을 하지 않겠느냐 예견해 볼 만하다. 우리 외교가 국제질서의 신냉전 전환에 대비해서 가치외교를 내세우고 질주해 왔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흐름이 대화국면으로 전개될 때에도 대비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 북한의 핵개발 의혹으로 인한 한반도 전쟁불사 분위기에서 우리는'핵 가진 자와 손잡지 않겠다'며 대북 강경자세를 고집하다 북·미 제네바합의(94. 10. 21)로 정세가 급변하는 바람에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회담에는 참가하지도 못하고 경수로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한 적이 있었다. 우리 외교는 유동적 상황에서 외교 옵션의 고갈이 우리의 국익을 어떻게 위태롭게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 외교의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활용하기 어렵게 하는 장애가 외부가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 커지고 있어 심히 우려된다. 다름 아니라 우리 정치가 외교 문제를 정쟁 수단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외교에서 실용적 태도가 사라지고 이념적 극단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북정책과 관련한 남남갈등은 이미 우리 정치문화에 고질화 되어 있다. 거기에 더해 외교노선에 대한 정쟁은 국민들을 친중반일과 친일반중으로 갈라치면서 남남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외교에서 국제공조나 민족공조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여야공조다. 여야가 정권교체를 위해 경쟁을 하더라도 외교 측면에서 정권교체의 의미는 전임 정부의 외교 결과를 부정하고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공과와 책임을 이어받는 것이 되어야 한다. 외교는 '이어달리기'. 정권교체가 되어도 차기 정부가 책임 있게 외교를 이어가려면 여야공조는 필수다.

 

여야공조를 위해서는 정부·여당이 먼저 야당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 무엇보다 여야 영수회담을 거부하는 대통령의 태도 변화가 급선무이다. 국제공조든 여야공조든 최종책임은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전상태를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평화를 누리기를 바란다면 외교에서의 여야공조는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다.

평화재단 |프레시안

 

 

검찰 핵심부의 네 가지 범죄 혐의와 특활비 특검

35개월의 소송을 거쳐 지난 623일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에서 1차로 16,735쪽의 자료를 받았다. 검찰이 국민의 세금(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을 어떻게 썼는지 보여줄 자료들이었다. 그중 특수활동비 관련 자료는 6,805쪽이었다.

그런데 자료를 받은 이후에 여러 문제가 드러났다. 범죄 수준의 문제도 여럿이다.

또한 검찰 수뇌부와 간부들이 주로 쓰는 특수활동비의 예산 항목의 성격상, 범죄혐의에 검찰 핵심부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수사ㆍ기소를 담당하는 법 집행 기관인 검찰조직의 핵심부에서, 조직적인 불법 행위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드러나고 있는 불법 의혹의 목록을 정리하면 크게 4가지이다.

검찰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 관련 제기되는 4가지 불법 의혹을 도표로 정리했다.

 

불법 의혹1 : 특활비 자료 무단 폐기 (기록물무단폐기죄 및 공용서류 무효죄)

20171월부터 4월까지 대검찰청 특수활동비 74억 원에 대한 증빙자료가 단 1쪽도 없는 상태다. 서울중앙지검도 20171월부터 5월까지 증빙자료가 아예 없다. 뿐만 아니라 서울고등검찰청, 서울동부지검, 서울서부지검도 20171월부터 일정 기간에 특수활동비 지출 관련 자료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각 검찰청 담당자에게 어딘가에 있을 수 있으니 찾아보라고 했지만, 돌아온 답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다. 처음부터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과 존재하던 기록이 무단 폐기됐을 가능성이다.

 

우선 처음부터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2017년 당시에 시행되던 기획재정부 지침 및 감사원 계산증명지침, 법무부 지침에 따르면, 최소한 현금 수령자의 영수증은 남아 있어야 한다. 또한 지출결의서 같은 서류는 당연히 있어야 하고, 계좌 입금을 했으면 입금의뢰서도 남아 있어야 한다. 무려 74억 원의 국민 세금을 쓰고도 단 1쪽의 증빙자료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검은 ‘20179월부터 특수활동비 관리제도가 개선되었으므로 그 이전은 없다는 취지로 주장하지만, ‘엉터리주장이다. 게다가 결정적인 증거도 있다.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돈봉투 만찬사건으로 면직된 후에 제기한 행정소송(면직처분취소소송) 1심 판결문을 보면, 2017424일 서울중앙지검장 비서실 담당자가 특수활동비 금전출납부를 작성하고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렇다면 2017424일 당시에는 최소한 특수활동비 금전출납부라는 기록물이 존재했던 것이다. 또한 서울중앙지검에 특수활동비 금전출납부자료가 존재했던 것을 보면, 대검찰청에도 어떤 형태로든 특수활동비 지출 관련 자료가 존재했을 것이다.

 

민간기업이 비자금을 관리하면서 사용해도, 기록은 남기기 마련이다. 공공기관이 국민 세금 74억 원을 쓰면서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을 수가 없다. (관련 기사: 2017년 대검 특활비 74억 집행기록 없어졌다...무단 폐기 의혹)

 

그렇다면 남아 있는 가능성은, 존재했던 자료가 불법으로 무단 폐기되었을 가능성이다.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특수활동비 자료가 무단 폐기된 시점은 20176~12월 사이일 가능성이 높다. 20174월까지는 자료가 존재했던 것이 이영렬 전 지검장 판결문을 통해 확인되고, 5월에는 돈봉투 만찬사건이 터지면서 법무부와 대검찰청이 특수활동비에 대한 합동감찰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검찰청 담당자의 얘기에 따르면, 특수활동비 지출 관련 자료는 매년 비닐로 밀봉해서 보관한다고 한다. 2017년 자료도 밀봉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017년 자료를 밀봉한 시점에 이미 몇 개월 치 자료는 폐기되었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니 폐기 시점은 20176~12월 사이로 추정된다.

 

특히 서울중앙지검에 존재했던 특수활동비 금전출납부등의 자료가 폐기된 시점은 2017522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취임 이후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과 문무일 전 검찰총장, 당시 대검찰청 사무국장과 서울중앙지검 총무과장 등 관련자들이 해명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상황을 보면, 여러 검찰청에서 동일 기간의 특활비 자료가 증발된 것으로 보아 조직적인 폐기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또 다른 불법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인 폐기가 이뤄졌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의심하게 한다. (관련 기사: 다른 3개 지검·고검 특수활동비 기록도 증발... 검찰 조직적 폐기의혹)

불법의혹2 : 특수활동비 오ㆍ남용(업무상 횡령 및 국고손실죄)

특수활동비는 사용 용도가 엄격하게 정해져 있는 예산 항목이다. 특수활동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외교·안보, 경호 등 국정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라고 정의되고 있다. (기획재정부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

따라서 개인적인 용도에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특수활동비를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용도(수사, 정보활동과 무관한 용도)로 사용되었다면, 업무상 횡령죄가 성립될 수 있고, 오남용 금액이 1억 원 이상일 경우에는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5조에 따른 국고손실죄에 해당하여 가중처벌될 수 있다.

 

관련된 판례들을 살펴보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특수활동비 일부를 대통령실 고용노사비서관과 행정관에게 전달한 것을 업무상 횡령으로 보아 처벌한 사례가 있다. (대법원 2013. 9. 12. 선고 20136570판결)

 

또한 법원은 국가정보원장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전달한 사건과 관련해서도 업무상 횡령죄와 특가법상 국고손실죄를 인정한 바 있다.

 

당시에 법원은 특수활동비는 특수활동 실제 수행자에게 필요시기에 따라 지급하여야 하는 등 특수활동비의 사용은 해당 기관의 목적 범위 내에서 엄격히 사용되어야 한다라고 전제하고, 특수활동비를 그 용도와 사용 목적에서 벗어나 위법하게 사용한 것 자체로 업무상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 설사 국정원장 특수활동비를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지원하기 위해 전달했다고 해도 업무상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특수활동비를 용도와 사용 목적에서 벗어나 사용하는 것은 위탁자인 국가에 손해를 가하는 것이므로 국고손실죄도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 2021. 1. 14. 선고 20192678 판결. 대법원에서 확정됨)

 

위와 같은 법원 판례에 비추어 볼 때, 개인적 용도로의 사용은 물론이고, 수사나 정보수집 활동에 직접 사용하지 않은 경우에도 업무상 횡령 또는 특가법상 국고손실죄가 성립될 여지가 있다. 특히 영수증이 없는 부분, 연말에 흥청망청 몰아 쓴 부분, 명절 떡값으로 돌린 부분 등에 대해서는 수사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식은 지급은 특수활동에 직접사용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윤석열 특활비어디에 썼나명절 앞두고 무더기 지급)

 

또한 이영렬 전 지검장의 행정소송 1심 판결문을 보면, 서울중앙지검장이 받은 특수활동비를 사무실 운영비로 사용했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렇게 사용한 것도 특수활동비 용도에 어긋나는 지출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검찰의 특수활동비 오ㆍ남용에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관련 기사: ‘총장 몫 특활비’ 136, 별도 계좌에서 이중장부로 관리)

 

불법의혹3 : 행정소송 중에 법원 기만 시도(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죄)

검찰은 필자가 제기한 특수활동비 등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의 1심에서 제출한 준비서면과 항소이유서를 통해 특수활동비 집행 관련 정보가 부존재한다고 주장했다. 특수활동비와 관련해서는 모든 정보가 아예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특수활동비 지출증빙자료가 무려 6,805쪽에 달한다. 일부 기간의 자료는 증발했지만, 대검찰청은 20175월 이후 자료가 있고 서울중앙지검도 20176월 이후 자료는 있었다. 또한 검찰총장 비서실에서 별도로 작성ㆍ관리한 특수활동비 집행 내역도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방대한 자료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은 정보 부존재를 주장하는 서면을 수차례 법원에 제출했다. 한마디로 법원을 기만하려고 한 것이다. (관련 기사 : 검찰총장 특활비 공개 소송, 검찰 항소이유서 '궤변')

이는 소송 수행자였던 검사나 법무관의 잘못으로 돌릴 문제가 아니다. 1심에서 소송 수행자였던 검사는 나중에 나도 자료를 본 적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즉 본인도 자료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누군가의 지시를 받거나 허위 진술을 믿고 허위 내용의 답변서와 준비서면, 항소이유서를 작성한 것이다.

 

이처럼 명백하게 특수활동비 집행 관련 정보가 존재하는 데도,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이 정보 부존재를 주장하는 서면을 작성한 것은 허위공문서작성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서면을 법원에 제출한 것은 허위공문서를 행사한 것이다.

다만, 죄를 물을 주체는 공판을 담당했던 실무자들이 아니라, 자료가 존재하는데도 정보 부존재를 주장하도록 한 배후에 있는 인물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불법의혹4 : 업무추진비 관련 정보은폐(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이번에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이 공개한 업무추진비 카드 전표를 보면, 흐리게 복사되어서 판독이 아예 불가능한 비율이 40%가 넘는다.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은 시간이 오래되어서 카드 전표 자체가 희미해졌다고 주장하지만, 이렇게 많은 숫자의 카드 전표가 모두 흐리게 되었다는 것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그래서 원본 대조 요구를 했으나, 서울중앙지검은 그것도 거부하고 있다.

또한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은 업무추진비 카드 전표를 공개하면서 상호와 사용 시간을 가리고 공개했다. 그러나 대법원까지 확정된 판결에 따르면, 비공개할 수 있는 부분은 간담회 등 행사참석자의 소속과 명단, 카드번호, 승인번호, 계좌번호 등의 개인식별정보 부분에 한정된다. 그 외의 정보를 가린 것은 판결문을 무시한 것이고, 사법부의 판결을 위반한 것이다.

 

음식점 상호나 카드 사용 시간은 개인식별 정보가 아니다. 또한 카드 사용 시간은 업무추진비 사용의 적정성을 확인하기 위한 기본 정보이다. 23시 이후에는 사용이 제한되는 등의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검찰이 사용 시간을 가리고 공개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이처럼 검찰이 상호와 카드 사용 시간을 비공개한 것은 고의로 정보를 은폐하려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일종의 검증방해행위이다. (관련 기사: 검찰, '윤석열 식당' 이름·결제 시간 가린 백지 영수증줬다)

 

3개 시민단체와 뉴스타파가 지난 623일 자료를 받으면서, ‘왜 상호와 사용 시간을 가렸느냐고 대검찰청 운영지원과장과 담당 수사관에게 따졌는데, ‘회의에서 논의한 대로 공개한 것이라는 취지의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서울중앙지검도 동일하게 상호와 사용 시간을 가렸다. 그렇다면 이런 정보 은폐 행위도 조직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런 행위는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에 해당한다고 본다. 대법원까지 판결이 확정됐고, 판결확정 후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은 ‘623일 정보를 공개하겠다는 정보공개결정통지서를 필자에게 보냈다. 그리고 정보를 받기 위해 84만 원이 넘는 정보공개 수수료도 냈다. 이로써 필자가 정보공개자료를 받을 권리는 법률적으로 확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검찰이 정보를 은폐해서 필자의 알권리(정보공개를 받을 권리)’ 행사를 방해한 것이다. 이것은 형법 제123조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특별검사 도입이 필요한 이유

그렇다면 당연히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검찰 조직의 핵심부가 관련된 범죄를 검찰에서 수사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현재 공수처의 상황을 볼 때, 공수처가 수사한다는 것도 무리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 이에 시민단체들과 뉴스타파는 국회에 대해 아래와 같은 역할을 요청하고 있다.

첫째, 검찰 스스로 현재의 사태에 대해 진상을 밝힐 것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국회가 나서서 검찰 특수활동비 등 예산 오ㆍ남용 및 불법 폐기, 정보은폐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할 것을 요청한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당연히 나서야 할 상황이다. 특수활동비 지출증빙자료가 불법 폐기되었다는 의혹, 특수활동비의 용도와 목적에 맞지 않게 예산이 오ㆍ남용되었다는 의혹, 법원을 기만하기 위해 허위공문서를 작성ㆍ제출한 부분, 그리고 법원의 판결문조차 무시하고 정보를 은폐한 부분에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둘째, 국회의 국정조사와 함께 특별검사 도입도 추진될 필요가 있다. 만약 자료 불법 폐기가 2017년에 이뤄졌다면 공소시효(7)가 얼마 남지 않았다. 따라서 특별검사 도입을 추진하기 위한 법안 준비, 법안 발의 등이 지금부터 착수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일종의 국기문란사건이다. 다른 기관의 특수활동비와 예산 관련 범죄를 수사해 온 검찰이 자신들이 사용하는 특수활동비에 대해서는 내로남불식 태도를 보이고 있고, 거액의 세금을 사용하고도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당당하게 얘기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법원의 판결이 확정되었는데도 조직적으로 정보를 은폐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표현할 단어로, ‘국기문란이라는 단어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이러한 검찰의 행태는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국가의 재정관리와 예산관리 기준을 무너뜨리는 것이며,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만들어진 정보공개제도와 공공기록물 관리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헌법에 따라 국회가 국정조사와 특별검사 도입을 추진해야 할 때이다.

 

이것은 정파를 초월한 문제이다. 201711월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검찰 특수활동비 관련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특별검사법안도 발의한 바 있다.

권력기관 핵심부에서 공공기록물이 폐기되고, 세금이 오ㆍ남용되는 등 온갖 불법이 저질러진 의혹이 존재한다면, 국정조사를 하고 특별검사를 도입하는 것은 국회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승수 뉴스타파 전문위원 /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변호사) 뉴스타파

 

나쁜 것도 빨리 배우는 AI···유해물 걸러내는 노동자들 트라우마 호소

폭력, 괴롭힘, 자해, 강간, 아동 성폭력···. 인터넷 세상의 가장 어두운 콘텐츠들을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빠르게 배우고 있다. 문제는 AI가 학습한 폭력성을 걸러내는 건 인간의 몫이라는 점이다. 현재 AI를 개발하는 회사들은 챗봇의 유해콘텐츠 정화작업을 아프리카 저임금 노동자들에 맡기고 있고, AI나쁜짓에 고스란히 노출된 노동자들은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24(현지시간) “GPT의 폭력과 성폭력에 대한 묘사를 가려내는 작업을 하는 케냐의 노동자들이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케냐 의회에 AI의 유해 콘텐츠에 노출돼야 하는 직업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관련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을 마련해달라고 청원서를 제출했다.

 

GPT와 같은 생성형AI는 기업들의 서비스 상담부터 시나리오 작가까지 다양한 직업을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기대되지만, 정작 AI 스스로 폭력적이거나 유해한 콘텐츠를 걸러내지 못해 인간에 의존하고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실제로 챗GPT를 개발한 오픈AI는 챗봇 서비스를 출시하기 전인 202111월 아웃소싱 회사를 통해 AI의 폭력성을 걸러내는 작업을 의뢰했다. 오픈AI는 이를 위해 약 10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자들은 AI가 직접 생성한 수천개의 그래픽과 텍스트를 일일이 검토하고 분류해야만 했다. WSJ가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분류한 구절에는 폭력, 괴롭힘, 자해, 성폭력과 아동 성폭력 등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포함돼 있었다. 오픈AI는 근로자들에게 성적 내용을 포함한 생성물을 네 가지 심각도 범주로 분류할 것을 요청했다. 최악 등급인 C4는 아동 성폭력에 관한 생성물이었고 바로 전 단계인 C3에는 성매매·성노예제, 근친상간 등의 콘텐츠가 분류됐다. AI 유해 생성물 중에는 극도의 폭력성을 담은 그래픽도 있었다고 WSJ는 덧붙였다.

 

AI는 논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터넷 게시물 등 웹에서 학습할 수 있는 모든 자료들을 학습했다. 이 과정에서 AI는 웹세상의 가장 어두운 콘텐츠까지 고스란히 학습해 유해 생성물을 생성했고, 노동자들은 AI의 폭력적 콘텐츠를 일일이 검토하며 정신적 충격을 입게 됐다. AI 콘텐츠 분류 작업을 했던 케냐 근로자인 알렉스 카이루는 WSJ그 회사에서 일한 4개월 동안의 경험은 내가 일하면서 겪어본 최악의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폭력 콘텐츠를 가려내는 팀에서 일했던 또다른 노동자는 처음에는 AI가 생성한 유해 텍스트가 한 문장 수준이었지만, 5~6개 단락으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결국 팀원들이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고, 정신적 피로도를 호소한 노동자들은 더 자주 병가나 휴가를 내게 됐다.

 

웹상의 유해콘텐츠를 걸러내는 작업을 아프리카 저임금 노동자들에 아웃소싱하고 있는 기업은 AI기업 외에도 페이스북(메타), 트위터 등 다양하다. 케냐는 국민들의 높은 교육 수준과 영어 사용능력에 비해 인건비가 낮아 테크기업들이 선호하는 아웃소싱 지역이다.

 

SNS의 유해콘텐츠를 걸러내는 작업을 했던 케냐 노동자 카이루는 자살 관련 콘텐츠를 포함한 폭력적 게시물을 하루에 수백개 읽어야 했다어느날부터 악몽에 시달렸고 사교적이던 성격이 바뀌어 현재는 사람들을 기피하게 됐다고 말했다. 웹서비스 분석가 모파트 오키니 또한 한달 동안 15000개에 달하는 게시물에서 성적인 내용을 검토했다그 프로젝트에 6개월 참여한 뒤 트라우마와 불안, 우울증이 생겼다고 말했다.

 

테크기업들의 콘텐츠 관리 작업을 했던 노동자들은 웹상의 유해 콘텐츠에 1차적으로 노출되는 직업이 극도로 위험하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케냐의 법을 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1AI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법안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케냐 의회에 제출했다. AI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머시 무테미 변호사는 오픈AI와 아웃소싱 기업이 케냐의 허술한 법과 값싼 노동을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오픈AI 프로젝트에 참여한 근로자들은 시간당 평균 1.46달러(1870)를 받았다. 가장 많은 임금을 받은 사람도 시간당 3.74달러(4800)를 넘지 못했다.

 

케냐 노동자들을 고용한 샌프란시스코의 아웃소싱 기업 사마측은 프로젝트를 둘러싼 우려를 인식하고 지난해 3월 오픈AI와의 계약을 종료했다며 뒤늦게 노동자를 보호하고 기업이 따라야 할 명확한 지침을 정하는 법안을 제정하기 위한 노력을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향 이윤정 기자

 

 

이젠 이승만·트루먼 동상까지... "친일 영웅화 두고볼 수 없다"

우대현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상임대표 작심 비판... 경북도, 오는 27일 제막식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세워진 이승만·트루먼 동상. 오는 27일 예정인 제막식을 앞두고 천으로 덮어놓았다.조정훈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백선엽 예비역 대장 동상에 이어 이승만 전 대통령과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동상을 세우기로 하자, 독립운동가 후손이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구한말 대한광복회 지휘장 백산 우재룡 지사의 장남인 우대현(79)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상임대표가 24"친일인사가 거대 동상으로 국민 앞에 영웅시되는 것을 차마 두고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우 대표는 "최근 사회 일각에서 헌법 내용을 호도하고 임시정부의 법통과 4.19민주이념의 정신을 부정하는 일련의 행태들이 나타나고 있다""이는 친일에 앞장선 자들의 후손이 독립운동에 헌신한 독립운동가의 공로를 폄훼하고 독립운동정신을 말살하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백선엽이 친일파 아니다? 독립운동 헌신한 독립군은 뭔가"

그는 일련의 행태로 일부 보수세력이 1945815일을 건국절로 주장하는 것 국가보훈부가 독립유공자 포상심사기준을 변경해 독립운동에 공로가 있지만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포상을 취소하겠다는 등의 내용을 들었다. 또 경상북도가 경북독립운동기념관 관장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미화하는 등 친일성향이 뚜렷한 검사 출신을 임명하고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이 이승만 기념관 건립에 적극적인 것 역시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부끄럽게 하는 짓이라고 지적했다.

 

우 대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25년 임시정부 때 탄핵당했을 뿐 아니라 4.19혁명으로 쫓겨난 인물임에도 정부 차원의 지원을 공언하고, 백선엽 대장은 친일행적이 뚜렷함에도 친일파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그러면 일제강점기에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에 헌신한 독립군은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이승만과 트루먼의 대형 동상이 기습 설치되고 제막식을 앞두고 있는 것에 대해 "이승만 일당은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훈은 팽개치고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과 국내 독립운동을 주도한 광복회 인사들에 대한 테러를 자행하는 악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우 대표는 "독립군은 가고 없지만 유족으로 남은 우리들은 지금의 세태를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다""윤석열 정부와 보훈부의 행태에 양심적인 국민과 함께 저항할 것을 천명한다"고 강조했다.

 

우 대표의 아버지 우재룡 지사는 구한말 독립운동가로 1907년 정용기가 일으킨 의병에 가담해 연습장으로 있으면서 일본군을 습격하는 등 의병활동을 하다 일본군에 체포됐다 1911년 한일병합 특사로 석방됐다.

 

이후 1915년 박상진, 권영만과 함께 광복회에 가담하고 3.1운동 때 주비단을 조직해 중앙 총책임자가 되는 등 독립운동을 하다 1921년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무기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우 지사는 해방 후에도 대한광복회를 재건해 독립운동 유적지를 정화하는 사업에 전념했으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다.

 

27일 이승만·트루먼 동상 제막식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5일 백선엽씨의 동상이 세워졌다. 동상은 230초 간격으로 360도 회전하도록 제작됐다.조정훈

 

한편 경상북도는 오는 27일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이승만·트루먼 두 전직 대통령 동상 제막식을 한다고 밝혔다.

 

이승만·트루먼 동상건립추진모임이 지난 2017년 제작한 두 동상은 서울 전쟁기념관과 주한미군 영내에 설치하려 했으나 거부당하자 경기 파주에 보관돼 있다가 지난 616일 새벽 다부동전적기념관으로 옮겨 세웠다.

 

경북도는 지난 5일 백선엽 대장 제막식 때 두 동상의 공개를 검토했지만 정치적 갈등을 우려해 연기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날 열린 제막식에서 "동상을 만든 독지가가 3년을 헤매다가 저를 찾아왔다""왜 이런 어른들이 갈 데가 없는 나라가 되었느냐. 아직도 자유대한민국이 옳게 안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오마이뉴스 조정훈(tghome)

 

'국가 재난에 대한 국가 책임' 부정한 헌법재판소

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청구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5일 오후 수해를 입은 충남 청양군 인양리를 찾아 안전모를 착용하고 있다. 2023.7.25. 연합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심판에 대한 헌재의 기각 결정은 "이태원 참사와 같은 국가적 재난에서 국가가 해야할 헌법적 의무는 없다"는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다. 즉 헌재는 '국가 재난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전면 부정했다.

 

헌법재판소는 형사재판기구가 아니다. 법률의 위헌 여부 및 공직자의 헌법 위배를 따지는 것이 법원과 구별되는 헌법재판소의 고유한 기능이다. 따라서 탄핵의 요건이 '헌법 및 법률 위배'라고 하더라도 헌법재판소는 국가기관과 공직자의 '헌법적 책무'에 더 무게를 두고 판단해야 한다. 그럼에도 현재는 이상민 장관의 현행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만 정밀하게 따졌을 뿐, 국가 재난을 책임지는 국가기관의 장으로서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헌법적 의무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 "없다"고만 판단했다.

 

'국가 기관의 헌법적 의무'에 대한 판단은 고도의 정치적 결정의 영역이다. 이 영역에서 헌재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예방과 사고 직후의 대응에 대해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한 우리 헌법 전문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국가의 재해 예방 및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34조 제1, 6항에 따른 국가기관의 헌법적 의무를 위배한 점이 없다고 판단했다.

 

'헌법적 책임' 무시 '위법' 여부만 따져

이 탄핵심판에서 헌재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헌법적 의무 위배'보다는 '법률 위반' 여부만 중점적으로 따지면서 스스로를 형사재판 기구로 격하시켰다. 그러나 형사재판 기구라고 보더라도 헌재의 판단은 심각하게 불공정하고 부당하다. 헌재는 법률 위반 부분만을 정밀하게 들여다봤을 뿐, 현행법 상 이러한 국가 재난에 있어서 "행정안전부 장관이 해야할 일은 없다"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헌재는 재난안전법 위반 여부에 대해 피청구인이 보고를 늦게 받았고 현장 인근에 있지 않아 피해 상황과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고 재난대응 방안을 결정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현장지휘소에 도착해 현장상황을 보고받았으나 재난 원인과 유형, 피해상황 및 규모가 명확히 파악되지 않아 중대본과 중수본의 설치·운영을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피청구인이 적절하게 중대본과 중수본을 설치·운영하지 않았어도 현장 구조와 시신 이송 등 현장 활동은 잘 운영되고 있었고, 재난 현장에서의 긴급구조활동에 있어서는 각급 긴급구조통제단장의 현장지휘에 따르도록 되어 있고, 현장지휘에 대한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권한에 대한 직접적인 규정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행정안전부 장관이 재난기본법을 위반한 부분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형식적 법논리도 아니고 "행정안전부는 국가 재난에 대해 뭔가를 해야할 법적 의무가 없다"는 사전 인식이 있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판단들이다. 사실 판단은 부실하고 논리는 치졸하기 이를 데 없다. 헌재의 판단에 따른다면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어떤 사유로 보고를 늦게 받는다면 그 이전의 모든 행위 혹은 부작위는 법적 책임을 면제받게 된다. 보고를 늦게 받게 된 구조와 공직자로서의 책임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보고를 늦게 받고 파악된 정보가 적을수록 중앙행정기관이 져야 할 책임의 범위와 무게가 좁아지고 가벼워질 수 있다는 논리다.

이상민 탄핵이 기각된 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입장을 밝히고 있는 동안 유가족들이 오열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2023.7.25. 연합뉴스

 

"재난안전법상 중앙기관 책임·역할 없어"

또한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재난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와 상황을 모두 파악하고 수집하기 전에는 어떤 판단이나 정책적 결정을 하지 않아도 좋으며, 현장 구조활동이 어떤 식으로든 이루어지고 있기만 하면, 그때그때 보고를 받고 "최선을 다하라"는 식의 독려 외에는 해야 할 일이 없다는 얘기다.

 

더 나아가 현장에 대한 효율적인 통제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현장의 지휘책임 및 권한을 현장 소방재난 담당자에게 부여한 재난기본법의 취지를 오로지 '현장 책임'에만 국한하여, 그러한 현장 지휘가 더욱 원활하게 이루어져 효과적인 구조 활동이 가능할 수 있도록 환경과 구조를 마련하고 조성해야 할 중앙행정기관의 책임과 역할은 아예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헌재의 판단을 종합하면 "행정안전부는 재난안전법 상 재난 및 안전에 관한 정책의 수립·총괄·조정을 관장하는 기구로 지정되어 있을 뿐, 이태원 참사와 같은 돌발적인 재난에 있어서는 실질적으로 해야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으며, 따라서 재난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국가기관으로서 행정안전부의 책임은 전혀 없다"는 말로 줄일 수 있다.

 

헌재의 판단이 옳다면 재난의 책임은 현장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진 기초자치단체와 지역 경찰청과 소방청에 있을 뿐, 중앙국가기관은 그 어떤 책임도 없이 현장 기관들의 조치와 활동을 그저 지켜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도, 해야할 일도 없다는 뜻이 된다.

 

재난의 모든 책임은 현장 기관에만 귀속

이러한 헌재의 판단은 이태원 참사에 있어 용산구청과 용산경찰서 단위에서만 형사책임의 추궁이 이루어지고 112센터 관리와 기동대 운용 등의 책임이 있는 서울경찰청장 등 그 윗선에 대해서는 기소는 물론 수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상황, 또한 최근 충주 수해에 있어서도 현장 경찰에 대해서만 모진 책임 추궁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헌재는 대한민국이 국가적 재난에 대한 국가적 책임은 전혀 질 필요가 없는 국가라는 것을 이 결정을 통해 공식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이번 헌재의 결정이 국가 재난에 대한 국가 기관의 책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면, 이제 어떠한 재난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물론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정치적·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게 됐다.

 

헌재 결정 직후 헌재 주변을 뒤덮은 유가족의 오열과 그 분들이 흘린 피눈물은 이번 헌재 결정의 의미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제 국민의 안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오로지 헌법 조문에만 존재할 뿐,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고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아픔을 달래주고 감싸줄 헌법적 책무를 지닌 국가기관은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시민언론 민들레

 

 

'대통령 친인척 비리 엄단' 외치던 언론 다 어디갔나

대통령 장모 '법정구속'에도 조선·중앙 조용

문 정부 땐 대통령 가족 먼지털이식 보도하더니

윤 대통령 부인·장모·일가 숱한 의혹에도 '입꾹닫

대통령 가족 문제는 숨기려고만 해선 안됩니다. 밝힐 건 밝히고 알릴 건 알려야 합니다지금까지 대통령 가족은 어떤 식으로든 사고를 쳤고, 결국엔 드러났습니다.”

 

이 정부 어디에도 대통령 주변을 감시하며 경고음을 보내는 워치도그(watchdog)’가 보이지 않는다...역대 대통령 모두 친인척·측근 비리로 퇴임 전후 성치 못했다미리 막지 않으면 비극은 피할 수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의혹이 쏟아진다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이름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권력형 비리의 냄새가 널리 풍긴다당사자들과 권력 실세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 말한다. 과거에 여러 차례 경험했던 국가 최고 리더십의 붕괴 과정이 데자뷔처럼 어른거린다."

 

위의 글은 언제, 어느 매체에 난 것일까? 며칠전(지난 21) 통장 잔고증명서 위조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던 윤석열 대통령 장모 최은순 씨가 법정구속됐다. 그렇다면 이 글은 대통령 친인척(장모) 비리가 터져 나온 윤석열 대통령에게 던지는 언론의 경고문인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과 2021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쓴 칼럼과 사설들이다.

 

(2021312일자 조선일보 이동훈 칼럼 문준용, 문다혜, 그리고 대통령 처남’, 는 같은해 119일자 조선일보 배성규 칼럼 달님을 향해 짖는 부엉이가 없다’, 2019123일자 중앙일보 사설 대통령 주변 인물 비리 어물쩍 덮을 생각 마라’)

 

문재인 정부 당시 언론은 대통령 친인척 문제를 집요하게 보도했다. 문 대통령 부인 김정숙씨 옷이 사치스럽다, 아들이 코로나19 피해지원금을 받았다, 딸이 해외 이주한 배경을 밝혀라 등등 의혹 보도가 줄을 이었다. 심지어 손혜원 전 의원이 김정숙 씨와 대학동창이어서 특혜를 입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아들이 화천대유로부터 퇴직금 50억을 받은 것으로 유명한 곽상도 의원 등 국민의힘 측이 제기하면 언론은 이를 마구 받아쓰기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혹은 실체가 없거나 과장된 것으로 판명되어 언론에서 흐지부지 사라졌다.

 

그랬던 언론이 얼굴을 싹 바꿨다. 윤석열 대통령 친인척 비리에 대해 너무나도 조용하다. 윤 대통령 친인척 비리 의혹은 당선 이전부터 계속 제기되어 왔다. 법정구속에 억울해 자살하겠다고 악을 쓴 장모 최은순씨는 과거 요양병원 부정개설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받은 적이 있다. 해외에서 무기징역 정도의 중범죄에 해당된다는 주가조작 혐의는 검찰이 수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미온적이다. 얼마 전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이 제기됐고 최근에는 최은순 씨 일가가 양평고속도로 노선변경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주가조작을 비롯해 학력·경력 위조 등 배우자인 김건희 씨 의혹도 만만찮다.

 

최근 불거진 특활비 과다사용을 포함해 윤석열 대통령 본인, 부인 김건희씨, 장모 최은순씨가 모두 비리의혹을 사고 있다. 국민들은 ··비리 의혹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언론에서 김건희’ ‘최은순은 자주 눈에 띄지 않는다. 김건희씨가 자주 등장하는 경우는 윤 대통령 해외순방길의 전용기 앞, 해외정상들과 만나는 장소의 앞자리, 에코백을 든 모습의 사진을 통해서다. 2주 전 리투아니아 방문 때 명품쇼핑 논란에도 언론에서 김건희는 보이지 않았다. 양평고속도로 특혜 비리 의혹에도 언론은 정쟁’ ‘백지화’ ‘원희룡이 키워드였을 뿐, ‘김건희라는 이름은 제목에서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대통령 장모 법정구속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최은순씨가 법정구속된 21일 이후 언론은 이 사안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깊이 다뤘을까? 기사검색 사이트 빅카인즈에서 최은순씨가 법정구속당한 지난 21일 금요일부터 주말·휴일을 거쳐 24일 월요일 오전까지 최은순 AND 법정구속검색어로 기사를 찾아봤다. 검색대상 매체는 10개 종합일간지, 5개 경제지, 3개 지상파 방송과 1개 뉴스전문채널 등 19개 매체다. 검색된 기사는 총 58개로, 대부분의 기사는 법정구속 사실을 속보로 알리는 스트레이트 기사와 이후 추미애·송영길 전 대표 등 민주당 측 인사의 논평을 받아쓴 기사다.

 

조선일보는 속보’ 1, 중앙일보는 속보’ 2건과 민주당 측 반응 2건이 전부다. KBS는 단 한건도 없고 MBC, SBS속보’ 2건이다. 최은순씨 법정구속 사안을 대통령 친인척 비리 문제로 확대해 다룬 기사는 단 한 건도 없다. 한겨레, 경향신문, 동아일보만이 24일자 사설에서 다뤘다.

 

윤 대통령, 장모 법정구속 사과하고 특별감찰관 임명해야’(경향), ‘현직 대통령 장모 법정구속, 대국민 해명·사과도 없나’(한겨레), ‘항소심 판결이 엄중히 밝힌 최은순씨 법정구속 사유’(동아)

특히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지난 20223월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으로 대통령 친인척 비위를 상시 감찰하는 특별감찰관을 부활하겠다고 한 사실을 보도하고 사설까지 냈다. 그러나 그 약속 1년여 만에 윤 대통령 최측근 친인척인 장모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법정구속까지 당해도 특별감찰관약속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없다.

특별감찰관 부활가족측근 비리 엄단이 공직기강 초석’(동아일보, 2022315일 사설), ‘, 5년 공석 특별감찰관 임명 방침, 자신에게 엄격한 대통령 되길’(조선일보, 같은 날 사설), ‘민정수석실 폐지, 특별감찰관 임명비정상의 정상화다’(중앙일보, 같은 날 사설)

 

전임 대통령 재임기간인 불과 3~4년 전엔 대통령 친인척 비리에 대해 어물쩍 덮을 생각 마라’ ‘퇴임 전후로 성치 못했다’ ‘리더십 붕괴라고 경고하고 겁을 주던 언론들이 지금은 얼굴을 싹 바꿨다. 마치 손도 안대고 순식간에 가면을 바꿔치기하는 중국의 신비로운 전통공연 변검을 보는 것 같다.

 

언론은 흔히 시민들에게 보고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보고 들으려는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것 같다고 훈계하고 비판해왔다. 언론이야말로 보고싶은 것만 보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는 확증편향 증세가 더 심한 것 아닌가? 일본 핵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서도 겨우 2년여만에 말을 바꿨다. 이번에 김건희-최은순 게이트 의혹에 대해서도 언론은 눈과 귀와 입을 다 닫아 버렸다. 확증편향 탓인지 권력 눈치보기 탓인지 모르겠으나, 이러고도 언론이 신뢰회복을 말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시민언론 민들레

러 항공기-북 포탄 맞교환? 윤 편향외교 반작용 군사밀착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은 북한이 조국해방전쟁 승리(전승절) 70이라 부르는 정전협정 70돌을 기념해 국방성 주최로 열린 무장장비전시회-2023’ 전시장에 세르게이 쇼이국 국방장관을 포함한 러시아 군사대표단과 함께 방문해 신형무장장비들을 돌아봤다고 노동신문이 27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한-미 동맹 강화와 중국, 러시아를 겨냥한 가치 외교로 한-러 관계가 악화한 가운데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협력을 고리로 밀착하고 있다. 특히 북·러가 국방 분야 견해 일치를 강조하면서, 협력 정도에 따라 한반도 주변 정세가 다시 긴장과 갈등으로 요동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한 노동신문은 27일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26일 평양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등 러시아 군사대표단을 만나 국방안전 분야에서 호상(상호)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과 지역 및 국제 안보 환경에 대한 평가와 의견을 교환했으며 견해 일치를 보았다고 보도했다. 쇼이구 장관은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임에도 북한이 전승절로 부르는 정전협정 체결(1953727) 경축행사에 참가하려 러시아 군사대표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했다.

 

신문은 김 위원장이 쇼이구 장관 등 러시아 군사대표단과 함께 북한 국방성 주최로 열린 무장장비전시회 2023’ 전시장을 찾아 신형 무장장비들을 돌아봤다고 덧붙였다. 북한 매체가 공개한 사진에는 여러 종류의 탄도미사일과 지금껏 공개된 적이 없는 대형 무인정찰기 등이 담겼다. 쇼이구 장관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친서를 김 위원장한테 전했고, 김 위원장과 쇼이구 장관은 서로 선물을 주고받았다. 신문은 북·러가 이날 국방장관회담을 열어 두 나라 군대들 사이의 전투적 우의와 협조를 확대발전시키는 데 완전한 견해 일치를 보았다는 소식도 전했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은 러시아 군사대표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을 26일 만나 국방안전 분야에서 견해 일치를 이뤘으며 무장장비전시회-2023’을 함께 둘러봤다고 노동신문27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주목할 대목은 김 위원장이 혈맹인 중국의 당정대표단보다 푸틴의 최측근인 쇼이구 장관이 이끄는 러시아 군사대표단에 더 공을 들이는 듯한 모습이다. 노동신문은 전체 6개 면 가운데 1·2·3·5면을 러시아 군사대표단 관련 소식으로 채운 반면, 리훙중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국회부의장 격)이 이끄는 중국 당정대표단 소식은 2·6면에 실렸다. 질과 양 모두 러시아 쪽의 비중이 높다.

 

관심은 북·러가 어떤 부분에서 완전한 견해 일치를 이뤘는지에 쏠린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탓에 군수물자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첨단 무기가 아니라도 포탄 등 북한의 군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북한은 전부터 러시아에 첨단 탄도미사일 기술 항공기 방공 무기 등의 지원을 요청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북·러가 서로가 절실한 부분에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군사·외교 소식통은 한겨레에 러시아가 북한에 첨단 탄도미사일 기술을 지원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높지 않다. 다만 항공기와 방공 무기를 제공할지는 지켜볼 문제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1990년 한-소 수교 이후 지금껏 30년 넘게 북한에 공개적·공식적으로 무기를 지원한 적이 없다. 역대 한국 정부가 한-러 협력을 고리로 북-러 군사협력을 견제·제어한 영향이 컸다. 북한은 러시아에 포탄 등 군수 지원과 함께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 자치지역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루한스크인민공화국등의 재건 인력을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견해 일치가 군수물자일 가능성에 촉각을 세웠다. 외교부는 27정부는 관련 동향을 계속해서 예의주시하고 있다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해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해하는 북한과의 불법 무기 거래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존 커비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26(현지시각) 정례 회견에서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도움을 받으려고 다른 나라들을 접촉하고 있다그가 북한과 접촉하는 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270조국해방전쟁 승리 70돌 경축 대공연을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군사대표단장(국방장관), 리홍중 중국 당정대표단장(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 부위원장) 등과 함께 관람했다고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김정은 위원장 오른쪽이 쇼이구 장관, 왼쪽이 리홍중 부위원장이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문제는 윤석열 정부의 한-미 동맹 다걸기 외교와 가치 외교를 앞세운 러시아 자극 행보의 결과가 북-러 사이의 직접적인 국방, 군사 밀착이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생즉사 사즉생의 정신으로 우리가 강력히 연대해 함께 싸워나간다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친우크라이나-반러시아태도를 거듭 확인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 학살 혹은 전쟁법규에 대한 심각한 위반 등 국제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인도주의적 혹은 재정적 지원만 하는 것은 어려워질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시사하기도 했다. 당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그 나라(한국) 국민이 러시아의 최신 무기가 북한의 손에 있는 것을 볼 때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고 반발했다. ··일 공조 강화로 압박을 느낀 북한은 로씨야(러시아) 군대와 인민과 언제나 한 전호(참호)에 서 있을 것이라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 담화(127) 친러방침을 거듭 밝혀왔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은 27조국해방전쟁 승리 70돌 경축 대공연관람에 앞서 중국 당정대표단을 이끌고 방북한 리홍중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 부위원장을 만나 언제나 중국인민과 손잡고 나아갈 것이라 밝혔고, 리 부위원장은 시진핑 중국공산당 중앙위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친서를 김 위원장한테 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여러 전직 정부 고위관계자는 한겨레에 윤석열 정부의 국익을 외면한 편향 외교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북핵 문제 대응 등 한국의 안보에 굉장히 심각한 상황 전개라고 말했다.

한편, 김 위원장은 27조국해방전쟁 승리 70돌 경축 대공연관람에 앞서 리훙중 부위원장을 만나 언제나 중국 인민과 손잡고 나아갈 것이라 밝혔다. 리 부위원장은 시진핑 중국공산당 중앙위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친서를 김 위원장한테 전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헌법재판소는 스스로를 탄핵했다

[주장] 행안부장관 탄핵 기각이 의미하는 것... 무책임 정부의 '카르텔' 협력자가 되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관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공동취재사진

 

지난 25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이 일치한 의견으로 이태원 참사 관련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와 모든 기관은 해당 직무를 수행하거나 하지 않을 때마다 심판대에 오른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관련 공직자들이 주권자 국민에게 그 존재 이유를 입증한다. 이번 탄핵 심판 결과는 행안부장관 이상민에 대한 헌법적 심판이기도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존재 이유를 묻는 사건이다.

 

이태원 참사는 159명의 사망자와 320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행안부장관은 안전과 재난 관련 총괄 책임자로서 책임을 지고 진상규명과 국가 책임 인정 그리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한 다음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국정을 총괄하는 대통령이 나서 행안부장관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어 해임했어야 했다. 그러지 않으니 국회가 해임 건의를 의결했다. 대통령은 헌법적 근거를 가진 국회의 의사를 무시했다. 이제 제도적으로 남은 일은 탄핵 심판이었다.

 

시민 한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겨야 할 국가의 막중한 책무를 고려하면, 국가의 존재 이유가 달린 문제였다. 향후 사회적 참사의 방지와 사후 대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이었다. 이미 사회적 참사를 여러 번 겪은 한국 사회에서 시민들이 계속해서 국가를 신뢰할 수 있는지 마지막 시험대였다. 헌재가 국민을 대신해서 헌법적 심판을 하고 있는지 헌재 역시 심판대에 함께 오른 것이다. 그런데 헌재는 자신의 쓸모를 입증하지 못했다.

 

휴짓조각이 돼버린 헌법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지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심판 선고에서 재판관 전원 만장일치로 '기각' 결정이 내려지자, 대심판정을 나서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유성호

 

헌재는 '국민의 생명과 신체 안전을 보호하는 조치가 필요한 상황인데도 국가가 아무런 보호조치를 하지 않거나 적절하고 효율적인 보호조치가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를 하지 않았음이 명백한 경우만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헌법 제10조제2)를 위반'한 것이라는 낡은 공식을 고집했다. 21세기에 그런 국가가 과연 입헌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권력분립은 국가기관 간의 그런 '짬짜미'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헌재는 명색이 헌법을 재판하는 기관인데 헌법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헌법 또는 법률을 위배했는지를 판단해야 하는데(헌법 제65조제1), 주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만 기준으로 삼았다. 헌법재판이 아니라 법원도 할 수 있는 법률 차원의 재판이었다. 헌법은 법관에게도 헌법과 법률에 따라 심판하도록 명령하고 있는데도(헌법 제103), 헌법을 삭제했다.

 

헌재가 말했듯이 탄핵 심판은 고위공직자의 헌법위반이나 법률 위반에 대해 헌법위반을 경고하고 사전에 방지하는 기능을 한다. 헌재는 법률조항을 파편화해 미분함으로써 총체적인 법률적 책임조차 수많은 작은 조각으로 해체했다. 헌재처럼 꼼꼼한 법률 해석과 적용을 유지하면, 탄핵을 통해 파면될 공직자는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도 어찌 보면 헌재가 국민의 압박에 떠밀려 헌재 자신을 구명한 것뿐이다.

 

헌재는 가장 중요한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가 무엇인지를 해석하고, 특히 고위공직자가 어떤 헌법적 책임으로서 국정 운영에 임해야 하는지를 밝혀야 했다.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가 헌재에 제출한 의견서는 국민의 생명권 보호 관련해 유럽인권재판소의 기준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중 대표적인 예를 들면, 국가 또는 국가기관의 생명권 보호를 위한 조치 의무는 당국이 알고 있었거나 알아야 했던 생명에 대한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위험을 피하는 데 필요한 것을 모두 해야 하는 것이고, 만약 당국에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모든 조치를 하지 않았음이 드러나면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탄핵 심판은 이상민을 형사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행안부장관의 그 직을 계속 유지하게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안전과 재난의 총괄적인 책임을 그에게 계속 맡길 수 있는지 국민의 신뢰 여부를 헌법적으로 판단할 일이지 구체적인 재난안전법 위반 여부를 중심에 놓고 상세하게 따질 일이 아니다. 국정은 국민 전체와 관련된 사안이므로 국가공무원법상의 성실의무와 품위유지의무 위반으로 축소할 일도 아니다.

 

이러한 의무 위반을 인정한 재판관 세 사람의 별개 의견조차 안전과 재난 관련해 대통령 다음의 책임자인 행안부장관을 면책할 뿐이다. '단 한 사람도 자기 손으로 죽이지 않았으니 잘못이 없고 자신의 권한도 아니라는 아이히만'은 대한민국 헌재를 통해 이상민 행안부장관과 함께 좀비가 돼 살아났다.

 

잃어버린 신뢰

국가는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 관련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하는 헌법적 책무가 있다. 되풀이되는 사회적 참사, 노동 현장에서의 안전사고 등 산업재해, 사회구조적인 원인으로 인한 자살, 자연재해로 인한 참사 등은 모두 국가가 다양한 방식으로 책임져야 한다. 국가는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헌법전문)을 위해 존재하고, 헌법 제34조제6항에서는 재해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는 의무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헌재의 이상민 탄핵 기각 결정이 있기 열흘 전쯤 발생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는 14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유가족들은 협의회를 구성해서 무책임한 국가를 향한 고된 여정을 시작했다. 이상민 장관이 업무에 복귀해 수해 현장부터 갔다지만, 수해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자 구제 그리고 재발 방지 대책을 제대로 수행할지 신뢰할 수 없다.

 

장관은 탄핵 기각 관련 의견을 밝히면서, 6개월간 고심했다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내용은 없었고, 행안부를 지지하고 격려한 국민에게만 감사의 말을 전했다. 대통령실은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기는커녕 야당이 탄핵소추권을 남용했다는 입장이다.

 

헌재는 이상민 행안부장관을 면책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헌재는 주권자인 국민과 헌법의 인권 규범의 편에 서지 않고 무책임한 정부와 '카르텔' 협력자가 됐다.

 

헌재는 이상민을 탄핵하지 않는 대신 헌재 자신을 탄핵한 것이다. 입헌 민주주의 국가의 부재 상황에서 한반도 남쪽에 살고 있는 주권자 인민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할 기점에 서 있다.

오마이뉴스 오동석(pspd1994)

 

"이태원은 북한 소행" 이죽댄 보수단체... 유가족들 격분

헌법재판소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시민대책회의 기자회견 도중 유가족 박영수씨가 바닥에 쓰러져있다.공동취재사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은 기각됐고, 보수단체 회원들은 유가족들에게 "이태원은 북한 소행"이라고 빈정댔고, 유가족들은 실신했다. 2023725일 오후 서울 종로 재동 헌법재판소 주변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유가족들의 격한 항의를 받으면서도 보수단체 관계자는 스피커를 통해 "이렇게 좋은 날엔~"이라며 노래를 불렀다. / 오마이뉴스

 

 

오갈데 없던 이승만·트루먼 동상,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세워져

윤 대통령 화환 보내 "자유민주주의와 한미동맹의 표상" 축하... 시민단체, 8가지 죄악 열거 동상 건립 반대

27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이승만트루먼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조정훈

 

지난 2017년 제작된 후 건립 부지를 찾지 못해 방치되다시피 했던 이승만·트루먼 동상이 백선엽 예비역 장군 동상이 세워진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세워졌다. 동상을 세운 주최 측은 두 동상이 호국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칭송했지만, 반대 단체들은 역사의 반동을 멈추라고 주장했다.

 

경상북도와 칠곡군, 이승만·트루먼·박정희동상건립추진모임은 27일 다부동 전적기념관에서 이철우 경북도지사, 조갑제 동상건립추진모임 대표, 이승만의 양아들 이인수,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김재욱 칠곡군수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승만·트루먼 동상 제막식을 가졌다.

 

태극기와 성조기가 휘날리는 가운데 진행된 제막식에서는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고 미국 국가도 연주돼 숙연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화환을 보내 축하하고 강승규 사회수석을 통해 메시지도 전달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강승규 수석이 대독한 축사에서 "6.25 전쟁 당시 한미 두 나라 정상의 동상은 바로 자유민주주의와 한미동맹의 표상"이라며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야말로 역사의 원동력이라 확신하였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초하여 이 나라가 나아갈 비전과 전략을 마련한 선각자이셨다"고 강조했다.

 

이어 "트루먼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두 번의 세계사적 전쟁을 이끈 군 통수권자였다""그는 2차 세계대전과 6.25 전쟁을 겪으면서 세계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냈다"고 덧붙였다.

 

조갑제 대표는 "오늘은 이승만 대통령이 58년 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날이기도 하다""이날과 이곳이 갖는 역사의 무게에 압도당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자유가 공짜가 아니듯이 두 분의 동상 건립도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며 "고마움을 아는 이들이 손을 잡고 독립운동하듯이 그리고 민주적 절차를 통하여 쟁취한 것이기에 오늘의 감회는 더욱 남다르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두 분의 동상은 그냥 서 있는 쇳덩어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영혼이 깃든 세대를 넘어서 위대한 이야기를 전해줄 생명체적 존재"라며 "가장 비열한 남침에 직면한 한국과 미국의 두 지도자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세계시민정신이라는 가장 고귀한 선을 행함으로써 악에 이기는 길을 선택했다"고 칭송했다.

 

7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이승만트루먼 동상 제막식이 열린 후 보수단체들이 태극기와 성조기 등을 들고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

조정훈

 

정경희 의원(국민의힘·비례대표)"오늘은 두 분의 동상을 다부동에 모셨지만 앞으로 건국 대통령이신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은 반드시 서울 한복판에 모셔야 한다""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국회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이승만·트루먼 동상 건립 규탄 "역사의 반동 멈추라"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이승만트루먼 동상 제막식이 열린 27일 시민사회단체들이 동상 건립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조정훈

 

제막식에 앞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민족문제연구소,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50여 명은 다부동전적기념관 정문 앞에서 "윤석열 정부와 경상북도는 역사의 반동을 멈추라"며 이승만·트루먼 동상 건립을 규탄했다.

 

이들은 "오늘 들어선 이승만·트루먼 동상은 2017년 제작된 뒤 전쟁기념관과 주한미군마저 영내 설치를 거부해 건립 부지를 찾지 못하다가 지난 616일 기습 설치되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2021년 다부동전적기념관을 관리하던 칠곡운은 이승만 동상 설치에 대해 지역 이장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찬반이 팽팽하여 설치를 포기했고 경북도 역시 정치적 갈등을 우려해 동상 공개를 미뤘다""그런데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자 이철우 지사는 입장을 바꿔 동상 설치를 강행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승만의 죄악 8가지를 열거하며 "개화 청년, 독립운동가, 건국 대통령이라는 허울로 아무리 포장하려 해도 192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탄핵당한 사실은 숨길 수 없다""더욱이 해방 후 행태야말로 우리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죄악이 아닐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열거한 이승만의 죄악은 헌정을 유힌하고 언론을 탄압하여 민주주의를 압살한 죄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을 조장·비호한 죄 친일파를 등용하고 반민특위를 해체하여 민족정통성을 훼손한 죄 분단을 초래하고 북진통일을 외쳐 국민을 기만한 죄 정치군인을 양산하고 쿠데타의 토양을 마련한 죄 정부수립 뒤 독립운동세력을 탄압한 죄 정적을 죽이는 등 정치보복을 자행한 죄 부정부패를 만연시키고 매판경제를 구조화한 죄 등이다.

 

그러면서 "헌법에 충성하라는 윤석열 대통령과 집권여당에 묻는다""독재자 이승만 동상과 460억 원짜리 이승만기념관을 짓겠다는 당신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헌법에 충성하고 있는가"라고 꾸짖었다.

 

이승만트루먼 동상 제막식이 열린 27일 다부동전적기념관 정문 앞에서 시민단체들이 동상 건립을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서 있다.

 

박찬문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장은 "전국의 어디에도 세울 수 없었던 동상을 왜 칠곡에 세우느냐""한국전쟁 당시 숨져간 학도병들로부터 수많은 원혼이 서린 곳인데 한국 전쟁의 가장 큰 책임을 가진 이승만의 동상이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니라 저 계곡에 거꾸로 쳐박아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만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전 회장은 "1950627일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면서 '우리 국군이 지금 잘 싸우고 있은니까 안심하라'고 했다. 그때 서울 시민들은 이승만이 서울에 있는 줄 알았다"면서 "이승만이 전쟁 때 한 것은 도망 다닌 것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김 전 회장은 "이승만은 4.19 당시 이미 국민들로부터 심판을 받았다. 민족의 역적으로 심판받고 민주주의 파괴자로, 학살자로 심판 받았다"면서 "그런데 왜 여기 서 있느냐. 대한민국 땅 어디에도, 단 한 평의 땅도 내줘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승만·트루먼 동상은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와 고영주 전 MBC 이사장,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 등 보수 인사들로 구성된 '이승만·트루먼·박정희 동상건립추진모임'이 지난 20174월 제작해 서울전쟁기념관에 설치하려 했으나 기념관 측이 협조하지 않아 무산됐다.

 

이후 평택 주한미군사령부 영내에 설치해 기증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주한미군이 거절하면서 설치 장소를 구하지 못하자 한국자유총연맹 경북지부가 관리하는 다부동전적기념관을 설치 장소로 정하고 2021년 이철우 경북도지사에게 협조를 요청해 세우게 됐다.

오머이뉴스 조정훈(tghome)

 

 

시민사회단체 "정전협정 70주년, 이젠 전쟁 끝내야"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맞아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7일 오전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 앞에서 한국전쟁으로 희생된 모든 분들의 안식과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추모식을 진행했다.

 

이날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은 종전을 말하는 사람들을 반국가세력으로 매도하며 적대와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비현실적인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하고 한미 군사동맹, 한미일 군사협력에 올인하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이야말로 모두를 전쟁의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맞아 한국전쟁 관련국 간 대화의 단절과 군사적 대치 속에 한반도와 그 주변의 핵전쟁 위기가 갈수록 고조되는 상황이 우려된다""70년이면 충분하다. 불안정한 휴전상태로 지속되어 온 전쟁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한국전쟁 당사국들은 하루속히 전쟁의 종식을 선포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시 예산 삭감은 서울노동권익센터를 어떻게 흔들었나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예산 삭감으로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전년 대비 예산이 11억원 감소했다. 취약 노동자를 지원하는 사업이 중단되고 직원들은 임금 체불을 겪기까지 했다.

 

취약계층 노동자에 대한 권리구제 사업은 서울노동권익센터(이하 노동권익센터)의 역점 사업 중 하나다. 부당한 일을 겪고도 생업이 바빠 노동청, 노동위원회로 향하지 못하는 노동자를 위해 무료로 노무 상담을 제공한다. 지난해 노동권익센터에 입사한 김시운 노무사는 경비 노동자에게 연락을 자주 받았다. 한 달 단위로 초단기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빌미로 퇴직금을 주지 않는 고용주가 간혹 있었다. 그런데 이 권리구제 사업이 지난 5월 중단되었다. 예산이 삭감되면서다. “싸워볼 만한 사건이 많았는데 제가 해드릴 말은 이제 돈이 없어서 지원을 못해드린다는 말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역정을 내시더라. 그럼 우리 같은 사람은 어디에 가야 하느냐고.”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취약계층 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해 개소했다. 시사IN 조남진

 

노동권익센터가 예산 삭감으로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서울시의회가 지난해 말 노동권익센터의 운영 예산을 11억원 감액했다. 지난해 358200만원이었던 예산이 올해 들어 247000만원으로 31%가량 줄었다. 최근 3년간 예산을 비교해보면(202137억원·202041억원·201930억원) 차이는 뚜렷하다. 중점 사업들이 잇따라 중단되고, 급기야 직원 36명의 임금 체불까지 발생했다. 김시운 노무사는 임금 체불 상담을 하는 노무사가 임금 체불을 겪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관행적인 민간위탁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8월 서울시는 부정채용과 도덕적 해이 등 불공정 관행을 뿌리뽑기 위해 민간위탁 운영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손질하겠다고 밝혔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내건 서울시 바로세우기의 일환이다. 오 시장은 취임 후인 20219시민 혈세가 시민단체 전용 ATM으로 전락했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 기조에 따라 서울시 민간위탁 예산이 850억원 이상 감액되었고, 올해까지 민간위탁 기관 421곳 중 44건의 위탁사무가 종료되거나 운영방식이 전환되었다. ‘전임 시장 지우기라는 비판과 예산 효율화라는 반박이 맞부딪쳤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운영하는 서울노동포털에 뜬 안내 문구.

 

노동권익센터는 시민단체가 아니다. 지자체 사무를 위탁받아 사업을 행하는 민간위탁 기관이다. 비영리 민간단체와 공공기관의 중간적 성격을 지닌다. 20152월 개소 후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전태일기념관 5층에 자리잡았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임기 5년 차 시점이었다. 노동조합 바깥에 있는 미조직 취약 노동자를 지원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요구가 있었고, 서울시는 자치구마다 있는 노동자복지센터의 컨트롤타워 격으로 노동권익센터를 만들었다(서울특별시 노동기본조례). 다만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위수탁 계약을 체결해 운영 권한을 넘겼다. 2014년 서울시의회가 제출한 노동권익센터 민간위탁 동의안 심사보고서를 보면 업무의 능률성과 노동복지 업무 관련 단체들의 경험과 역량 활용이라는 이유가 제시된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한 노동권익센터 관계자는 돈은 안 되고 감정노동을 요구하는 민원성 업무가 대다수라 행정기관 공무원들은 피하려 하는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서울시 필요에 의한, 노동 행정의 외주화였던 셈이다.

 

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전문위원은 서울시가 노동권익센터를 만들면서 노동정책을 지방정부의 정책으로 바꿨다라고 평가했다. 노동정책은 고용노동부, 노동청, 노동위원회를 중심으로 중앙집권화되어 있기 때문에 지자체에겐 늘 취약한 분야였는데 이를 타개하려는 첫 시도였다는 것이다. 노동권익센터가 운영하는 휴() 이동노동자쉼터가 대표 사례다. 대리운전, 퀵서비스 배달 노동자를 위한 휴게 공간으로 서초·북창·합정 등 교통요지 다섯 곳에 운영 중이다. 2016년부터 누적 이용자가 23만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좋아 타 지역에도 비슷한 모델이 생겨났다. 그뿐 아니라 임금 체불부터 산업재해, 직장 내 성희롱 사건 등 노동 상담 3953, 권리구제 지원 2010건을 지난해 진행했다. 이용자들의 법률구조 사업에 대한 만족도는 80.7%, 추천 의사는 89.2%로 높은 편이었다.

서울노동권익센터에서 일하는 이민지씨(왼쪽)와 김시운씨는 서울시의회에 추경을 요구해왔다. 시사IN 조남진

 

하루아침에 일이 사라진 것

이 사업들이 올해 축소될 위기에 놓였다. 예산 삭감에 영향을 미친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 11월 서울시의회에서다. 서울시를 대상으로 하는 행정사무감사에서 강북노동자복지관, 전태일기념관 등 노동 분야 민간위탁 기관에 대해 민주노총 사유화’ ‘방만 운영이란 비판이 쏟아진다. 강북노동자복지관의 수탁업체는 민주노총이다. 전태일기념관은 노동복합시설로 서울시 예산을 받는 수탁기관이다. 당시 장태용 서울시의회 의원(국민의힘)특정 인물의 기념관(전태일기념관)을 세금으로 운영하는 게 정당한가라고 지적했는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가 직접 와서 보고 소감문과 사과문을 쓰라고 반발했다. 그 이후 강북노동자복지관과 전태일기념관, 노동권익센터 세 곳의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다가 지난해 12월 본회의를 거쳐 일부 복원되었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운영하는 휴() 이동노동자쉼터가 대표 사례다. 대리운전, 퀵서비스 배달 노동자를 위한 휴게 공간으로 서초·북창·합정 등 교통요지 다섯 곳에 운영 중이다.서울노동권익센터

 

노동권익센터에 편성된 올해 예산 25억원도 지난해 12월 되살아난 것이다. 전년도보다 31% 감액된 예산이었다. 사업 축소는 불가피했다. 서울시 노동공정상생정책관이 지난 3월 발간한 ‘2023년 서울노동권익센터 운영 및 사업계획에 따르면, 정책 연구조사와 노동 커뮤니티 지원사업, 노동센터 성과공유대회는 폐지되었다. 행사 위주의 사업이거나 노동단체를 지원한다는 이유에서다. 노동복지 기반의 시민단체를 선정해 노동 의제를 발굴하는 노동커뮤니티 지원사업의 경우 2022년 라이더유니온, 서울요양보호사협회, 행동하는 성소수자인권연대 등의 지원을 끝으로 중단될 예정이다. “자기 정체성을 갖고 일해온 연구자와 커뮤니티 사업 담당자에겐 하루아침에 일이 사라진 것이다.” 이민지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노동민간위탁분회 사무장의 말이다. 이동노동자쉼터도 2022년 대비 7억원, 취약노동자 법률구조 사업도 1억원가량 줄었다.

 

그런 와중에 임금 체불까지 발생했다. 서울시 사업계획에는 지난해 대비 감액된 사업 규모를 고려해서 사업 추진에 적정 인력으로 운영하라는 지침도 있다. 이를 두고 해석이 나뉜다. 서울시 노동정책과 관계자는 시사IN서울시의회 심의에 따라 결정된 사안이고, 서울시의 민간위탁 효율화 방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예산을 심의했던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회 한 전문위원은 “(시의회에서) 인건비 삭감을 언급한 적은 없다. 전반적인 사업 규모를 줄였는데 금년도 사업계획을 짜면서 노동권익센터와 서울시가 인건비 부분을 그렇게 조정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책임이 분산된 결과는 직원들이 떠안았다. 줄어든 예산을 두고 고통 분담을 해야 한다는 법적 사용자 측과 이를 거부한 노조 간의 갈등이 커지기도 했다. 임금 체불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 노동권익센터 관계자는 전체 예산이 일괄 삭감되면서 임금 삭감을 감내하지 않으면 올해 10월에 센터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직원 네 명이 연달아 퇴사했다. 빈자리가 늘면서 업무는 더욱 많아졌다. “서울시 입장에서는 적정 인력으로 운영하라는 지침이 하청 노동자에겐 사실상 정리해고를 의미한다. 그렇지 않으면 임금 삭감을 감내하라는 것이다.” 이민지 사무장은 서울시가 실질 사용자이고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법적 사용자인 원하청 구조하에서 하청 노동자의 노동권은 보호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모든 상황의 키는 서울시가 쥐고 있다. 예산부터 사업 수행, 평가 등 모든 권한이 원청 사용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노동권익센터만의 일이 아니다.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와 도시재생지원센터는 지난해 문을 닫았다. 두 사업 모두 박원순 시장 재임 시절 시작된 민간위탁 사업이다. 지난해 7월 서울시는 감사를 통해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가 특정 단체에 특혜를 제공하는 등 위반사항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 후 위탁계약도 종료되었다. 강북노동자복지관과 서울시노동자복지관을 각각 20년 이상 위탁운영해온 민주노총과 한국노총도 올해 9월 위탁이 중단될 예정이다. 서울시는 양대 노총이 장기간 독점 운영해오면서 노동자 지원시설이 아닌 노동조합 지역본부와 산하 노동단체 전용공간 등으로 변질했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민원의 하수구가 막혔다

민주노총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에 속한 김삼권 노동민간위탁분회장은 성찰과 자성이 필요한 지점이 있다고 말한다. 노동권익센터 소속인 그는 이동노동자쉼터 한 곳에서 일한다. “민간위탁 구조상 자칫 잘못하면 기관을 독점적으로 사유화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노조 조직률이 10%에 그치는 한국 사회에서 노조 바깥의 노동자가 아니라 노조 중심으로 운영됐다면 반성할 지점이 있다.” 하지만 단순히 특혜나 불공정 관행만으로 보기는 어려운 지점도 있다. 노동조합 내에도 수많은 영세·취약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동노동자쉼터에도 퀵서비스 노동조합에서 대관을 많이 한다. 겉으로 보면 노동조합 챙기기일 수 있겠지만, 퀵서비스 노동조합은 기껏해야 80명인,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취약 노동자로 이루어져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1916서울시 바로세우기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75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노동권익센터에 대한 추경안이 통과됐다. 예산 24000만원이 확보되면서 7월 급여부터 정상 지급하기로 했다. 노동권익센터 직원들의 임금 체불 사안이 공론화되면서 시의회가 뒤늦게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금 체불은 위수탁계약 위반이자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서울시 노동정책과 관계자는 노동권익센터의 사업은 그대로 유지된다라고 밝혔다. 하반기 공모를 통해서 수탁기관을 선정하겠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김시운 노무사가 보기에는 부분적 해소에 불과하다. 인건비를 제하고 나면 사업비로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난 6개월간 조직과 사업이 크게 흔들렸다. 책임을 서로 회피하는 원하청 구조하에서 사업장 내부 갈등도 커진 상태다.

 

지난 9개월간 노동권익센터에서 벌어진 일은 오세훈 시장 취임 후 본격화된 노동 지우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전문위원은 당장 피해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부문의 위축으로 인한 문제는 장기적으로 서서히 드러날 것이다. 노동 형태는 점점 더 다양해지는데 서울시가 어떤 대안으로 노동정책을 가져갈 것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김시운 노무사는 지금 노동권익센터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저희가 일하면서 쓰는 비유가 있다. 마치 민원의 하수구 같다고. 여기는 노동청, 경찰서, 인권위원회까지 두드리다 거절당하고 오시는 분들이 많다. 그 하수구가 지금 막힌 것이다.”

시사인 김영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