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29~9.2 계획이 무너지게 생겼다... 이 정부를 믿고 갈 수 있을까?
'모피아'와 법무부 만났더니... 환경범죄가 경제범죄로 '합리화’
정부, 기업인 경제 형벌 32개 폐지·완화···폐수 흘려보내 질병 유발하는 행위도 처벌 감경
[한겨레사설] ‘규제완화 속도전’에 필요한 규제까지 날림 청산하나
변덕스런 날씨’에서 ‘기후재난’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
핵확산금지조약 평가회의, 러시아 반대로 결과문 채택 실패
비닐봉지와 종이봉투, 장바구니
"마스크 하루 사용량 2천만개…온실가스 1천t 발생“
부산 북항 대규모 재개발 추진…‘바다 경관 사유화’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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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는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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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이 무너지게 생겼다... 이 정부를 믿고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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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스런 날씨’에서 ‘기후재난’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 원전이 27일(현지시각) 또다시 폭격을 당했다. 지난 24일 원전 주변에서 발생한 화재를 포착한 위성 사진. 유럽우주국 로이터 연합뉴스
'모피아'와 법무부 만났더니... 환경범죄가 경제범죄로 '합리화'
한동훈·추경호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역동경제 실현 - 경제형벌 1차 개선 과제’
▲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대구 달서구 아진엑스텍에서 열린 제1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2.8.26ⓒ 연합뉴스
"민간중심 역동경제 실현을 위한 경제형벌 합리화".
현재 경제형벌이 비합리적이어서 역동적인 경제가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25일 법무부가 배포한 보도자료 제목이다.
26일 오전 한동훈 법무부장관과 추경호 기획재정부장관이 대구 성서산업단지 내 (주)아진엑스텍에서 열린 1차 규제혁신전략회의를 통해 '경제형벌 규정 개선 추진 계획 및 1차 개선 과제'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앞서 법무부는 "경제 관련 법률의 과도한 형벌이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외국인 투자 유치에도 악영향을 주는 등 부작용이 우려돼 왔다"면서 "국민의 생명·안전 등 중요 법익과 관련성이 적은 단순 행정상 의무·명령 위반 행위에 대한 형벌을 과태료로 전환하거나 비범죄화하고, 형벌 필요성이 인정될 경우 보충성·비례성 등 원칙에 의거하여 합리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형벌' 1차 개선 과제는 17개 법률 총 32개 형벌 조항에 이른다. 법무부는 이를 크게 '비범죄화'와 '합리화'로 구분해 소개했다. "기존 법률에 규정된 행정제재로 충분히 입법 목적이 달성한 경우"로 판단해 비범죄화한 경우는 13개 조항(형벌 폐지 2개, 과태료 전환 11개), "행정제재를 우선 부과하고 불이행시 형벌을 부과하는 형태로 '합리화'겠다고 밝힌 경우가 19개다.
더 이상 '죄'가 아니다... 사법리스크 완화
총 32건에 이르는 1차 개선 과제에서 먼저 눈에 띄는 대목은 '환경범죄'를 경제형벌 범주에 포함시켜 법적 처벌을 완화하겠다고 소개한 부분이다. 법무부는 이를 '합리화'의 예로 들었다.
"오염 물질을 불법배출하여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상수원을 오염"시킨 경우, 앞서 3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했지만 앞으로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하향하겠다고 했다. "오염물질을 불법배출해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한 경우" 역시 사망에 대해서는 기존 형을 유지하지만, 상해에 대해서는 기존 5년 이상 징역형을 3년 이상으로 하향하겠다고 했다.
이와 같은 내용의 환경범죄단속법 개정에 환경부차관이 찬성했다는 뜻이다. 보도자료와 함께 배포된 '경제 형벌규정 개선 추진계획 및 1차 개선 과제'의 출처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명시돼 있다. 지난 7월 출범한 '경제형벌 규정 개선 TF'를 지칭한다. 법무부·기재부 차관이 공동단장 그리고 고용노동부를 제외한 15개 정부 부처 차관이 참여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그중 하나다. 관련 내용으로는 ▲지주회사 설립 또는 전환 신고를 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한 경우 ▲사업내용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한 경우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가 주주의 주식소유현황 등을 신고하지 않은 경우 등이 포함됐다.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형벌이 아니라 모두 과태료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2022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현황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21년 12월 기준 자산규모 5000억 원 이상 지주회사는 168개, 그중 대기업집단 소속 지주회사는 48개다.
최고경영자의 이른바 '사법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을'에 대한 '갑'의 사법 리스크가 완화되는 내용도 담겨 있다. ▲납품업자 등에게 배타적 거래를 하도록 하거나 다른 사업자와의 거래를 방해한 경우(대규모유통업법) ▲원사업자가 수출 물품에 대한 내국신용장 또는 구매확인서를 미개설하거나 미발급한 경우(하도급법) 등도 시정명령을 거부할 경우에 한해 형사처벌이 가능해진다. 역시 주무부처는 공정위다.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주식을 취득한 중소기업창투회사 대주주가 중기부 장관의 주식처분명령을 위반"하는 경우도 앞으로는 '죄'가 아닐 수 있다.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 형벌을 3000만 원 이하 과태료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벤처투자법 개정의 골자다. 주무부처는 중소벤처기업부다.
'모피아'와 법무부
▲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대구 달서구 아진엑스텍에서 열린 제1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2.8.26ⓒ 연합뉴스
"대통령실 1~3급을 포함한 현 정부 장·차관급 고위공직자와 공공기관장, 이사·감사 등 전체 533개 직위에 임명된 504명을 전수 조사한 결과, 기재부 출신 '모피아' 관료가 무려 12%(65개 직위)에 이른다."
지난 7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사)경제정의연구소 발표 내용이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 기재부 출신 관피아 권력지도'란 제목의 자료를 통해 "모피아들이 내정된 65개 직위 중 56개 직위가 타 부처의 차관직이나 그 산하의 공공기관직 또는 이사직에 해당한다"면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방기선 1차관, 최상대 2차관 등을 모두 '모피아(기획재정부 출신 인사들을 마피아에 빗대 이르는 용어)'로 지목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윤석열 정부는 모피아를 개혁대상 1호로 삼고, 경제권력의 균형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윤석열 정부 역시 '십상시' 마냥 모피아 경제권력으로부터 예외 없이 휘둘릴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기획재정부는 최근 '월권' 논란에 휩싸였다. 25일 <한겨레>는 "기획재정부가 독자적으로 연구용역을 진행한 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방안을 마련해 고용노동부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기재부 개정안은 경영계 요구사항을 사실상 그대로 반영한 데다, 중대재해법 소관부처는 고용노동부여서 '월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대표이사 처벌을 피하기 위해 안전보건최고책임자를 경영책임자에 포함해달라는 기업들의 요구 내용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이날 법무부는 향후 계획과 관련해 "범 부처 형벌 규정 전수 검토를 통해 경제 형벌규정을 지속해서 개선해 나갈 예정"이라며 "2차 개선 과제도 민간의 개선 수요가 큰 법률을 중심으로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바로 그 중 하나다.
다음은 윤석열 정부의 '민간 중심 역동 경제 실현' 관련 타임라인.
6월 16일 : 경영책임자 사법 처벌 완화 내용 담긴 '새정부 경제 정책 방향' 발표
6월 28일 : 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에 검사 파견
7월 13일 : 경제 형벌규정 개선 TF 출범
7월 21일 : 13조1000억원 규모 감세 발표 - 법인세 감소분 6조8000억원
7월 26일 :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장관에게 '기업 형벌 규정 개선' 지시
8월 26일 : 경제형벌 규정 1차 개선 과제 발표
오마이뉴스 이정환
정부, 기업인 경제 형벌 32개 폐지·완화···폐수 흘려보내 질병 유발하는 행위도 처벌 감경
26일 오전 대구 달서구 아진엑스텍에서 열린 제1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앞줄 오른쪽부터),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경제단체장들이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장려한다는 목적으로 기업이나 기업인에 대한 형벌 규정을 완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정부는 법 위반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적은 조항 위주로 형벌 수준을 낮추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장에서 사고가 발생하거나 오염 물질을 불법 배출해 상해피해자가 발생하는 경우처럼 국민 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기업에 대한 처벌 형량을 줄여주기로 한 것은 우려스럽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획재정부와 법무부는 26일 열린 제1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경제 형벌 규정 개선 추진계획과 1차 개선 과제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이나 안전처럼 중요한 법익과 관련성이 적은 행정상 의무 위반 행위는 비범죄화하고, 형벌이 필요한 경우도 그 수준을 합리화하는 개선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장려하고 외국인 투자 유치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다.
지난 7월 출범한 범부처 경제 형별 규제 개선 태스크포스(TF)를 중심으로 마련된 이번 1차 개선 과제에는 17개 법률의 총 32개 형벌 규정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형벌 자체를 폐지하거나 형벌 대신 행정제재를 내리는 ‘비범죄화’ 대상 형벌이 13건, 형벌 수준을 낮춰주거나 우선 행정조치를 내리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형벌을 내리는 ‘합리화’ 대상이 19건 포함됐다.
우선 정부는 공사시행인가 등을 받지 않고 물류터미널을 건설한 경우(물류시설법 위반)나 식품접객업자 등이 손님을 꾀는 행위(식품위생법 위반)는 비범죄화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해당 행위에 대한 기존 징역 및 벌금형 규정을 삭제하고 사업 및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지주회사 설립·전환 신고 의무 등 공정거래법상 단순 행정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도 비범죄화 대상에 포함됐다. 다만 이들 행위에는 벌금형 대신 행정제재인 과태료 처분이 내려진다.
형벌 합리화 대상으로 정부는 기업이 오염물질을 불법으로 배출해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한 행위(환경범죄단속법 위반)나 업무상 과실로 공장 등에서 화학사고를 일으켜 사상자를 발생시킨 경우(화학물질관리법 위반) 등을 선정했다. 정부는 두 경우 해당 법 위반 행위로 상해 피해자만 발생한 경우 각각 징역·금고 기간이나 벌금 수위를 낮춰주기로 했다. 단, 사망자가 발생하면 종전 형벌 수준이 유지된다.
정부는 또 수출입 물품에 대한 원산지 표시 미비 등 행위(불공정무역조사법 위반)대해서는 종전 기수범과 동일하게 적용됐던 미수범 형량을 기수범과 차등화해 낮추는 식으로 형벌을 합리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외 납품업자에게 자신들과만 거래하도록 강요하는 행위(유통법 위반) 등은 형벌 부과에 앞서 과징금 등 먼저 행정제재를 내리도록 해 이를 이행할 경우 형벌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정부는 연내 정부 입법 등을 통해 이번 1차 과제에 대한 법률 개정을 신속하게 추진하고 기업의 개선 요구가 높은 중점 법률 등을 검토한 2차 개선 과제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각 부처별로 소관 형벌 규정을 전수 조사토록 해 선정하는 3차 과제도 이르면 올해 발표된다.
방기선 기재부 1차관은 “법률을 고쳐야 될 부분은 연말까지 정부가 입법안을 마련해서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며 “관계부처가 향후 소관 상임위 등을 통해서 입법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경향 이창준 기자
[한겨레사설] ‘규제완화 속도전’에 필요한 규제까지 날림 청산하나
규제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 환경 보전, 공정한 경쟁 등 여러 공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하지만 여건이 변해 필요성이 없어지거나 목적 달성에 비효율적이게 된 규제도 있고, 거래질서 확립을 위해 필요한데도 아직 규제를 만들지 못한 영역도 있다. 전자는 폐지하거나 개선해야 하고, 후자는 새로 마련해야 한다. 모든 규제를 악으로만 보면 이런 균형감각을 잃어버리기 쉽다.
정부는 26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 아래 제1차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열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943건의 규제혁신 과제를 발굴해 194건을 이미 개선했고, 현재 추진 중인 749건 가운데 434건을 연말까지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 편익을 높이고, 기업의 자율성을 확대할 것으로 기대되는 사안도 적지 않다. 문제는 속도전 하듯 규제완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필요한 규제까지 날림으로 청산하려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날 회의에선 기획재정부의 ‘경제 형벌 규정 개선 1차 추진 방안’과 환경부의 ‘환경규제 혁신 방안’이 중점 논의됐다. 둘 다 가볍게 처리해선 안 될 내용이 담겨 있다. 기재부는 기업들의 자유·창의를 막는 과도한 경제 형벌 규정을 행정제재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기업이 공정위 조사 등을 방해할 때 가하는 제재 수위까지 징역·벌금형에서 행정제재로 낮추는 것은 중대범죄를 조장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환경부는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할지 여부를 사전에 검토하는 ‘스크리닝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보고했다. 평가 대상이 줄어 제도가 무력화될 수도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 개선 과제 가운데 211건(올해 67건)은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국회에서 차분히 논의해야 한다
정부가 폐지를 적극 추진하던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대통령 지지율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 자영업자들의 거센 반발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의무휴업의 시행 여부는 지방자치단체에 맡겨져 있다. 각기 지역 형편에 맞게 더 좋은 상생 방안이 있는지 논의하게 놔두면 될 것을 정부가 나서서 제도를 손보려고 한 것 자체가 잘못이다. 아예 그만두어야 한다.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우월적 지위 남용으로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에서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제정을 추진하다 무산됐는데, 윤석열 정부는 ‘기업 규제’라며 아예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공정한 거래질서를 확립해야 관련 산업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다. 공론화를 거쳐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 250인 이상 대기업 비율은 12.8%로, 그리스에 이어 꼴지에서 두 번째,
9인 이하 영세기업 비율은 43.4%로, 역시 그리스에 이어 최다에서 두 번째이다. 아주 비효율적인 기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나?
대업에 대한 각종 규제와 중소기업에 대한 무제한적 혜택 때문이다.
그래서 영세기업과 중소기업간 구분선 밑에, 중소기업과 중견기업간 구분선 밑에, 중견기업과 대기업간 구분선 밑에, 기업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다.
기업은 더 이상 큰 기업으로 올라가기 싫은 것이다.
올라가봤자 규제만 늘어나고 혜택은 줄어드니까.
이런 상황을 그대로 두라는 말이냐?
https://www.youtube.com/watch?v=vaVs0D7bh18&t=37s
핵확산금지조약 평가회의, 러시아 반대로 결과문 채택 실패
2015년에 이어 두번 연속 합의 도출 실패
러시아, 우크라 자포리자 원전 거론하자 반대
“핵 보유국들, 핵무기 감축 노력도 안보여”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 앞에 유엔 상징이 표시되어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핵 재앙 우려가 커진 가운데 열린 제10차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가 러시아의 반대로 결과문을 채택하지 못한 채 26일(현지시각) 막을 내렸다. 2015년의 9차 회의에 이어 이번에도 191개 전체 회원국이 합의 도출에 실패함에 따라 핵군축의 진전을 기대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에이피>(AP) 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지난 1일 미국 뉴욕 유엔(UN)본부에서 시작된 핵확산금지조약 평가회의가 26일 회의 시간을 연장해가면서 막판 논의를 이어갔으나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이 회의는 애초 2020년 개최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2년 늦춰 개최됐다.
이고리 비시네베츠키 러시아 외교부 비확산 및 군비통제국 부국장은 “안타깝게도 이 문서에 대한 합의가 도출되지 못했다”며 36쪽의 최종 초안에 많은 나라가 동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와 프랑스 대표는 각각 ‘비동맹 운동’ 회원국 120개국과 유럽연합(EU) 등 56개국을 대표한 발언에 나서,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는 사실에 실망감을 표시했다. <요미우리 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28일치에서 러시아 대표단이 전체 회의가 열리기 불과 네 시간 전인 26일 오전 11시께 “중요 변경이 이뤄지지 않는 한 우리는 합의할 수 없다”는 뜻을 구스타보 슬라우비넨 의장(아르헨티나)에게 전해왔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가 이런 태도를 보인 것은 최종 초안에 담긴 자포리자 원전에 대한 언급 부분 때문으로 보인다. 이날 공개된 초안을 보면, 자포리자 원전과 인근 지역에서의 군사활동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초안엔 또 “우크라이나가 이 원전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원전 내 핵물질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음을 인식하면서 핵물질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걸 막으려는 원자력기구의 노력을 지지한다” “결정권 있는 우크라이나 기관의 (원전) 통제를 보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러시아 <타스> 통신은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자포리자 원전에 대한 논의 뒤 러시아가 합의에 반대했다고 전했다.
애덤 셰인먼 미국 비확산 특별대표는 “오늘 합의를 이루지 못한 건 러시아 때문”이라며 “러시아가 막판에 수정하려던 사항은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우크라이나를 지도에서 없애려는 명백한 의도를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슬라우비넨 의장도 최종 초안은 “세계가 분쟁 그리고 핵전쟁 가능성의 증가로 점점 고통받고 있는” 시점에 진전된 결과를 얻길 기대하는 당사국들의 다양한 관점과 기대치를 담으려 애쓴 결과물이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막판 ‘몽니’로 합의문 도출에 실패하면서, 핵군축을 이루려는 국제 사회의 움직임도 크게 후퇴하게 됐다. 베아트리스 핀 ‘핵무기 폐기 국제 운동’(ICAN)의 사무총장은 영국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최종 초안의 핵군축 관련 부분은 미국·러시아·프랑스·영국·중국 등 5대 공식 핵보유국들에 의해 이미 약화된 상태였다며 “핵보유국들은 아무 것도 이뤄내지 못함으로써 아주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아가 “어느 순간에 가면 핵무기가 없는 나라들은 이 조약이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015년에 열린 제9차 평가회의 때도 중동에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자유 지대를 설정하는 문제를 놓고 주요국들 사이에 의견이 갈리면서 결과문을 채택하지 못했다.
핀 사무총장은 평가회의가 합의 도출에 계속 실패하고 있다면서 ‘핵무기금지조약’(TPNW)에 더 많은 나라들이 동참해야 한다고 밝혔다 핵무기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의 이 조약은 지난해 1월 정식 발효됐으며, 지금까지 66개국이 비준 또는 가입했다. 5대 공식 핵보유국, 보유 추정국, 한국 등 핵우산에 포함된 나라 등은 이 조약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비닐봉지와 종이봉투, 장바구니
탄소발자국은 비닐이 가장 적어
지난 몇년 동안 우리나라도 비닐봉지 사용을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대형매장들은 공짜로 주던 비닐봉지를 없애고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판매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기후변화를 억제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섭섭한 이야기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형마트에서 산 식품을 종량제봉투에 담아올 때 그 봉투에 포함된 탄소발자국은 그 속에 담긴 식품의 1/1000에 지나지 않는다. 흔히 종이 쇼핑백이 비닐봉지보다 더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종이를 만드는 데 에너지가 꽤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비재생종이에 인쇄까지 하면 1kg에 평균 2.5~3kg의 탄소가 발생한다. 이는 폴리플로필렌 비닐봉지 1kg을 만드는 데 필요한 배출량과 맞먹는다. 재생용지로 만든 얇은 쇼핑백의 탄소발자국은 12g, 브랜드 매장에서 사용하는 고급스럽게 만든 쇼핑백은 80g이다. 아주 얇은 비닐봉지 하나의 탄소발자국은 3g, 보통 두께의 비닐봉지는 10g, 재사용이 가능한 두꺼운 비닐봉지는 50g이다.
문제는 또 있다. 종이 쇼핑백을 재활용하지 않고 땅에 묻으면 썩으면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고 메탄가스까지 나온다. 대체로 종이 1kg에 온실가스 500g이 배출된다. 비닐봉지는 잘 분해되지 않기 때문에 온실가스를 내뿜지 않는다. 게다가 종이 쇼핑백은 종종 터져서 사과가 길바닥에 나뒹구는 사고를 일으킨다. 저탄소 생활을 위해서라면 종이 쇼핑백보다 비닐봉지가 더 나을 수 있다.
물론 종이든 비닐이든 쇼핑백이 생겼다면 반드시 재사용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일회용품을 없애는 가장 쉬운 방법은 두번 이상 다시 쓰는 것이다.
그러나 비닐봉지는 탄소 배출 말고도 환경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 비닐은 생태계에서 수천년 동안 분해되지 않는다. 바다로 들어간 비닐봉지는 해파리 등 해양생물과 헷갈린다. 죽은 고래 뱃속에서 비닐봉지 80장이 나오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1년에 5000억에서 1조개의 일회용 비닐봉지가 사용된다. 엄청난 양의 쓰레기다. 탄소발자국 측면에서 보면 전세계 연간 탄소발자국의 1/10000에 지나지 않지만, 지구 환경은 탄소 생각만 한다고 지켜지지 않는다.
비닐봉지를 태워서 열에너지로 회수하면 탄소 배출은 물론 유해한 독성물질이 배출된다. 땅에 파묻는 것도 나쁜 선택이다. 비닐봉지를 모은 쓰레기는 부피도 크고 수천년 동안 썩지도 않는다. 비닐봉지가 심각한 탄소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지만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더 좋은 방법은 배낭이다. 배낭을 쓰면 무거운 무게를 힘들지 않게 옮길 수 있고 두 손도 자유롭게 된다. 바퀴가 달린 장바구니도 있다. 무거운 물건을 짊어지거나 들지 않아도 된다. 작은 장보기라면 튼튼하고 재사용이 가능한 장바구니가 좋다. 물론 장바구니를 만드는 데 들어간 탄소 배출량을 상쇄하려면 500번 이상 다시 사용해야 한다.
남준기 기자 namu@naeil.com
"마스크 하루 사용량 2천만개…온실가스 1천t 발생“
마스크 때문에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하루 1천t에 달할 수 있다는 추산이 나왔습니다.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실이 입법조사처에 요구해 받은 '마스크 폐기로 인한 환경오염' 보고서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하루 마스크 사용량을 2천만개로 계산했습니다.
여기에 KF94 수준의 마스크 1장 생산시 온실가스 50g이 발생한다는 영국 셰필드대 연구결과를 인용해 계산하면, 우리나라에서 마스크 때문에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하루 1천t에 달합니다. 연합뉴스TV
'기후 부정의' 피해 입는 파키스탄…두 달 새 홍수로 1천명 사망
빙하·폭우 '온난화 이중고' 겪어…"온실가스 1% 미만 배출국이 기후재앙 희생자“
파키스탄 3분의 1, 물에 잠길 것”…홍수 사태 ‘기후 재앙’ 규정
파키스탄 서북부 페샤와르 외곽에서 홍수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가재도구를 챙겨서 대피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히말라야산맥 빙하의 녹는 속도가 빨라지며 홍수 위험을 상시적으로 안고 있는 파키스탄에 올 여름 기록적 폭우가 겹쳐 1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중고'를 겪고 있는 파키스탄 정부는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 미만에 불과한 양을 배출하는 이 나라가 "기후재앙의 희생자"가 되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기후정의를 요구했다.
영국 매체 <가디언>을 보면 파키스탄 국가재난관리청은 28일(현지시각) 6월 중순 이후 시작된 이번 우기에 홍수로 인한 사망자가 1033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지난 주말에만 돌발 홍수로 24시간 만에 119명이 목숨을 잃었다. 재난청은 올해 홍수를 20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고 국토의 거의 5분의 1이 침수됐던 2010년 최악의 홍수 사태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고 있다. 이번 우기 홍수로 인구의 7분의 1에 해당하는 3300만 명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기반시설 및 재산 피해도 막대하다. 이번 홍수로 30만 채에 가까운 가옥이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많은 도로가 끊겨 고립된 마을이 속출하고 있다. 전기 및 통신이 끊기는 사례도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이에 더해 지난 주말 동안에만 최소 8만3000마리의 가축이 폐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홍수로 개발이 덜 되고 기반시설이 부족한 남서부 발루치스탄주와 남동부 신드주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발루치스탄주 남부의 강우량은 평년의 500%를 넘어섰다. 발루치스탄주의 최소 75%가 홍수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엔 9월에 또 비가 내릴 것으로 예측돼 피해 복구가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홍수 발생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신드주의 경우 당장 북부 지방에서 폭우로 불어난 물이 며칠 안에 하류로 흘러들어 추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스와트강이 범람하며 북부 카이베르파크툰크와주에서도 피해가 속출했다. 주민 35만 명이 대피했고 고립된 코히스탄 지역 주민들은 통신과 전기가 끊긴 상태로 헬기 구조를 기다리는 처지다. 영국 BBC 방송은 카이버파크툰크와주의 한 계곡에 수백 명이 고립돼 건너편의 취재진에게 의약품 등을 요청하는 쪽지를 던지며 구조를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가 녹는 속도가 빨라지며 파키스탄의 홍수 위험은 이미 커져 있는 상태다. <가디언>은 파키스탄 중앙을 관통하는 인더스강의 산쪽 지류에 빙하 녹은 물이 흘러든 데다 이번 폭우가 겹쳐 파키스탄이 대형 홍수에 직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밀려드는 물로 지류의 댐이 여러 곳 파손됐다고 덧붙였다. 파키스탄이 온난화가 배후로 지목되는 폭우 등의 극한 기후와 빙하 붕괴를 동시에 겪으며 피해가 극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상원의원이자 파키스탄 기후변화장관인 셰리 레흐만은 파키스탄이 "심각한 기후재앙을 겪고 있다"며 "이번 우기는 일반적인 우기와는 거리가 멀다. 이건 기후 디스토피아"라고 강조했다.
파키스탄 쪽은 다른 나라들의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탄소 배출량이 적은 파키스탄이 기후변화의 가장 피해를 입는 지역 중 하나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독일 환경단체 저먼워치가 지난해 발표한 세계기후위기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2000~2019년에 걸쳐 기후위기가 야기하는 극한의 날씨에 가장 취약한 국가 중 하나(8위)로 집계됐다. <가디언>은 파키스탄 당국자들이 "파키스탄이 세계 다른 나라들의 환경에 대한 무책임한 행위로 인해 불공정한 결과를 감내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디언>은 무스타파 나와즈 크호카르 파키스탄 상원의원이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에 1% 미만으로 기여하는 나라가 기후재앙의 희생자가 되는 것은 지극히 불공평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크호카르 의원은 파키스탄이 극지방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수의 빙하를 보유한 지역 중 하나라는 점을 강조하며 폭우와 더불어 빙하 붕괴 속도가 전례없이 빠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크호카르 의원은 2015년 한 페루 농부가 온난화로 안데스산맥 빙하가 녹아 발생하는 홍수 피해에 대해 온실가스 배출원인 독일 다국적 에너지기업 아르베에 그룹(RWE)에 책임을 물어 제기한 소송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이 "획기적인 소송" 결과를 본 뒤 히말라야산맥 빙하 붕괴로 홍수 피해를 겪고 있는 파키스탄 또한 "유사하게 움직일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홍수는 파키스탄의 경제적 위기도 가중시킬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프타흐 이스마일 파키스탄 재무장관이 홍수로 인한 경제적 영향이 적어도 100억 달러(약 13조5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파키스탄 국내총생산(GDP)의 3%에 이르는 금액이다. 매체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연료비 상승 및 기타 수입품 가격 상승으로 파키스탄의 물가상승률이 45%에 달하는 가운데 홍수가 약 800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농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돼 인플레이션이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9일(현지시간) 파키스탄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제공을 위한 회의가 예정돼 있지만 구제금융을 받더라도 홍수 피해 탓에 경제적 안정을 찾기가 더 요원해졌다고 진단했다. 지난 4월 경제 회복에 실패했다는 이유 등으로 의회의 불신임을 받아 퇴출된 임란 칸 전 총리가 퇴진에 불만을 품고 반정부 시위를 벌이다 테러 방지법 위반 혐의로 최근 입건되는 등 정치적 혼란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스마일 장관은 이번 홍수로 인한 즉각적 구호에만 적어도 10억 달러(약 1조 3500억 원)가 소요될 것으로 봤다. 파키스탄 정부는 우호적 외국 정부 및 국제금융기관 등에 피해 복구를 지원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프레시안 김효진 기자
부산 북항 대규모 재개발 추진…‘바다 경관 사유화’ 논란
1단계서 숙박·주거시설 6000채 추진
랜드마크 부지·부산역 환승센터에
오피스텔·레지던스 등 대거 승인
해수부·항만공사 “분양 위해 불가피”
시민단체 “부동산사업 전락”
지난 5월 부분 개방된 부산항 북항 1단계 재개발구역 랜드마크부지에서 시민들이 산책하고 있다. 김광수 기자
부산항 북항 1단계 재개발 구역에 6천채 규모의 숙박·주거시설 신축이 추진되자 시민단체들이 ‘바다 경관의 사유화’라며 반발하고 있다. 북항은 국내 항만 가운데 처음으로 재개발 사업이 시작된 곳이다.
해양수산부로부터 부산항 북항 1단계 구간 재개발을 위임받은 부산항만공사가 지난 24일 발표한 랜드마크부지(11만3316㎡·3만4338평) 개발 민간사업자 공모안을 보면, 지상층 연면적의 15%까지 오피스텔을 지을 수 있다. 일반상업지역인 이 구역의 건폐율(40%)과 용적률(600%) 기준을 적용하면 전용면적 80㎡의 오피스텔을 500~600채가량 지을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랜드마크부지는 높이와 건폐율, 용적률을 추가로 조정할 수 있는 특별계획구역이어서 부산시가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통해 건축 면적을 늘려줄 수도 있다. 오피스텔 규모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부산항 북항 재개발 조감도. 부산항만공사 제공
해양문화지구에 자리한 랜드마크부지는 애초 국내외 관광객을 상대로 한 문화·관광시설을 유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부산시 등이 문화·관광시설 종사자가 이용할 업무 공간도 함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해 부산항만공사가 오피스텔을 추가했다. 문제는 오피스텔의 경우 주거용으로도 사용이 가능해 ‘공유재인 바다의 사유화’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점이다.
같은 1단계 구역인 랜드마크부지 맞은편 부산역 앞 환승센터에도 생활형 숙박시설(레지던스)이 들어선다. 부산 동구는 지난 5월 버스·택시 승객의 승하차를 돕는 환승센터 건축을 허가하면서 생활형 숙박시설 1088채를 함께 승인했다. 전용면적 기준 34㎡ 320채, 38㎡ 448채, 45㎡ 320채다. 지하 4층, 지상 21층(높이 78m) 규모의 환승센터는 2만5709㎡(7790평) 터에 건축 총면적 18만1446㎡(지상 10만2648㎡, 지하 7만8798㎡) 규모인데 생활형 숙박시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63.19%(11만4660㎡)다.
주거시설 신축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부산세관 근처 복합도심지구에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에스(GS)건설이 2만7022㎡(8188평) 터에 1천여채 규모의 아파트 신축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맞은편 상업·업무지구(4만5969㎡·1만3930평)에도 협성르네상스·한국투자증권·동원개발 3곳이 생활형 숙박시설 2914채와 오피스텔 580채 등 모두 3494채를 완공했거나 추진 중이다.
지난 5월 부분 개방된 부산항 북항 1단계 재개발구역. 바다 위에 설치된 다리는 부산 남구와 영도구를 연결하는 부산항대교다. 김광수 기자
이런 상황은 2008년 10월 해양수산부가 도시관리계획 변경 결정을 하면서 분양을 쉽게 하려고 유사 숙박시설 건립의 길을 열어주면서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해수부는 상업·업무지구와 랜드마크가 들어설 해양문화지구에 들어올 수 없는 시설에 단독·공동주택을 포함하면서 신종 업종인 생활형 숙박시설과 오피스텔은 제외했다.
해양수산부·부산항만공사는 유사 숙박시설 허용이 성공적인 재개발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수익시설이 없으면 사업자들이 공모에 응할 유인을 제공하기 어렵고, 재개발 뒤 지역의 유동인구 규모를 키우려면 어느 정도의 숙박·주거시설을 함께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재헌 부산항 북항 통합개발추진단장은 “북항 재개발구역에 숙박·주거시설이 들어서면 침체한 옛 도심이 활력을 되찾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1단계 재개발 구역에만 숙박·주거시설 6천여채 건립이 추진되자 부산경실련 등 지역시민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북항 재개발은 100년 이상 시민 접근이 불가능했던 바다를 시민들에게 되돌려주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사업”이라며 “이런 곳에 숙박·주거시설을 마구 허용하면 바다가 사실상 사유화되는 것인 만큼, 지금이라도 숙박·주거시설 규모를 크게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시민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던 애초 취지를 벗어나 부동산개발사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난개발 도시라는 오명만 더하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5월 부분 개방된 부산항 북항 1단계 재개발구역 내 다리를 시민들이 건너고 있다. 다리 아래는 인공수로다. 김광수 기자
부산항 북항 재개발사업은 1단계와 2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153만㎡(46만여평)이며 국비 3362억원과 부산시 예산 2500억원, 부산항만공사 1조8359억원 등 2조4227억원을 들여 올해까지 도로·공원 등 기반시설을 완공한다. 2단계는 220만㎡(66만여평)이며 2030년까지 완공한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도시농업과 쪼개 기능 분산…서울시, ‘도시농민’ 느는데 거꾸로 정책
11년새 텃밭 7.5배·참여자 15배↑
시민단체 “예산축소·폐지 의도”…
시 “실질업무 맞춰 재배치”
서울 성동구가 운영하는 무지개텃밭에서 방울토마토가 영글어 가고 있다. 서울 성동구 제공
서울시가 최근 도시농업 전담 조직을 허물고 해당 업무를 여러 부서가 나눠 맡도록 한 데 대해 도시농업 관련 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단순한 기능 조정에 따른 조직 개편이라는 서울시의 해명에도, 관련 단체들은 시의 ‘도시농업 버리기’ 혹은 ‘박원순 지우기’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서울도시농업시민협의회 등 4개 단체로 구성된 도시농업 시민단체 연대체는 29일 “서울시의 최근 도시농업 관련 조직 개편은 앞으로 관련 예산을 대폭 축소하고 도시농업 업무도 없애버리려는 의도로 읽힌다”고 밝혔다. 이들이 공개한 항의 성명서에는 이날 낮 현재 2327명이 서명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12일 과장급 인사를 단행하면서 도시농업과를 사실상 공중분해했다. 경제정책실장 아래 있던 도시농업과와 6개 팀을 쪼개 이 중 3개 팀은 과장급인 농수산유통담당관 아래로, 나머지 팀은 소속이 다른 행정국과 푸른도시국 밑으로 분산 배치한 것이다.
단체들은 이번 조직 개편이 도시농업에 관심을 갖거나 직접 참여하는 시민이 늘고 있는 최근의 흐름과 배치된다고 본다. 실제 2011년 당시 29㏊(1만㎡) 면적에서 4만5천여명이 참여하던 서울의 도시농업은 2022년 5월 현재 218㏊ 면적에 참여자가 66만여명까지 불어났다. 10여년 새 면적은 7.5배, 참여인구는 15배 가깝게 늘어난 것이다.
더구나 서울시는 지난해 말 도시농업 관련 예산을 전년보다 60% 남짓 줄여 편성해 시의회에 제출했다가 관련 단체 반발에 부딪혀 원상 복구한 전례도 있다. 이런 이유로 시민단체들은 이번 조직 개편을 서울시의 도시농업 관련 정책 변화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인다.
일각에선 이번 조처를 오세훈 시장의 ‘박원순 전 시장 지우기’가 아니냐고 의심한다. 서울시에 도시농업 관련 팀(도시영농팀)이 생긴 건 이명박 전 시장 때인 2005년이지만, 이 팀을 과로 승격·강화하고 이름을 도시농업과로 바꾼 건 박원순 전 시장 재임 때인 2015년 8월이다. 도시농업 확대는 박 전 시장의 대표 사업 가운데 하나였던 셈이다. 서울시의 이번 조처를 비판하는 시민단체들은 “아무리 봐도 오세훈 시장이 진보적인 전임 시장의 주요 정책이었다는 이유로 도시농업을 없애려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대체 호미질하는 데 무슨 보수가 있고 진보가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단체들의 이런 시각에는 서울시 일부 간부들도 공감한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서울시의 한 간부는 “박 전 시장 때 만들어진 시민협력국이 사라진 것처럼 도시농업과 분해도 오 시장의 박 전 시장에 대한 생각이 반영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서울시는 “도시농업과란 명칭 자체에 상징성이 커서 실제 업무에 견줘 시민들의 기대감이 과도하게 컸다”며 “도시농업과 해체라기보다는 해당 업무를 실질에 맞고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조직을 재배치한 것”이라고 밝혔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기후위기는 피할 수 없다
지난 7월 빌 맥과이어의 저서 <찜통 지구(Hothouse Earth)>가 출간되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시급한 행동을 촉구하는 책은 지금까지 많았지만, 이 책이 주는 울림은 새롭다. 용감하게도, 지금까지 금과옥조처럼 여겨져 온 “평균 기온 1.5도 상승 예방”이라는 목표가 이미 실패한 것이 거의 확실하며, 2040년 즈음에는 2도 상승까지 벌어질 것이란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인 맥과이어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다. 영국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명예교수로서, 화산 연구를 중심으로 지질학과 지구의 기후위기 전반을 연구한 권위자이며 IPCC(정부 간 기후문제 자문기구)의 보고서의 최종 요약본 집필에도 참여했던 이이다.
그가 내놓는 데이터들과 참고로 한 연구들은 2021년의 26번째 파리 기후 협의회 이후의 것들에 기초하고 있으며, 믿을 수 있는 과학자의 필치로 과장없이 가감없이 기후위기의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 전하고 있다. 그런 그의 핵심 주장은 간명하다. “1.5도 심지어 2도 상승의 사태는 피할 수가 없다. 지금은 기후위기를 어떻게 회피할 것인가가 아니라, 다가오는 기후위기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여기에 대응하고 적응하는 방법을 함께 고민할 때이다.”
이 1.5도라는 숫자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으키는 효과보다는 “그 안에서 막으면 된다”는 기묘한 안심감을 심어주는 모종의 “가드레일”과 같은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가드레일”은 거의 확실하게 부수어 질 것이며, 지구 전체는 알지 못할 불확실의 위험천만의 미래로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탄소 순배출 제로” 등을 통해 1.5도 상승으로 막을 수 있다는 약속은 어떻게 된 것일까?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한다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인류 전체가 2030년까지 현재의 탄소 배출량을 45% 감축해야 한다. 실현 가능성이 심히 의문스러운 목표이다. 실제로 현재의 추세를 볼 때, 2030년의 결과는 오히려 탄소 배출량의 14% 상승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상식적인 판단으로 볼 때 그렇다면 1.5도 상승 그리고 2도의 상승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미래로 자리잡은 셈이며, 그 상승의 속도가 현재 보이고 있는 가속도로 볼 때 그 달성 시점도 2050년보다 훨씬 빨라질 것으로 보는 게 정직한 판단이라는 것이다.
하나 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기후위기는 이미 시작된 지 꽤 되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사람들이 “이상 기후”라고 생각하는 현상들(올여름 중부권을 덮친 ‘114년 만의 호우’, 유럽에서의 과열 기후 등)은 이미 몇십 년 전부터 나타나고 있었던 현상이며, 1.5도/2도의 상승이 이루어지는 것이 거의 기정사실이 된 지금, 앞으로 더욱 빈번하게 더욱 극악스럽게 나타날 일만 남았다는 게 솔직한 진실이라고 한다. 기후위기는 “기후” 위기가 아니다. 해수면 상승과 해안 도시의 지반 침하, 강물의 범람과 고갈, 식량 및 농업 위기, 콜레라 등 각종 질병의 창궐, 심지어 지진이나 화산과 같은 무서운 지각 활동의 증가까지 포함하여 인간의 “서식지” 전체를 뒤흔들어 버리는 총체적 위기이다. 지금 열거한 현상들뿐만 아니라 이것이 방아쇠가 되어 일파만파로 함께 벌어질 다른 현상들까지 생각하면, 1.5도/2도 상승의 앞날은 어두운 것이라기보다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2100년엔 인류 20%가 기후 유랑민
그렇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기후위기를 일부 자연과학자들이나 관련된 기술 관료들만의 고민거리로 생각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변화는 지구적 산업 문명의 근간을 흔들어 놓게 될 것이다. 무수한 기후난민들(혹은 “기후 이민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한 예로 힌두쿠시-히말라야의 빙하의 앞날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것인지 생각해 보자.
세계 인구의 최대 밀집 지역이라고 할 중국, 동남아시아, 인도 사람들의 삶은 황허강, 양쯔강, 메콩강, 갠지스강, 인더스강이라는 다섯 개의 큰 강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 다섯 개의 강 모두의 발원지가 힌두쿠시-히말라야 인접 지역이며, 여기에서의 빙하의 변화는 이 강들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금 급속히 진행되는 해빙으로 인하여 이 나라들은 강물 유량의 극심한 불안정에 시달리고 있으며, 몇년 전 중국처럼 대규모 댐이 붕괴할 뻔한 끔찍한 홍수도 나타나고 있고, 이 때문에 이 강들의 조절을 놓고 여러 나라들 간의 갈등이 극심해지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살 곳을 잃고 떠돌게 될 전 지구적인 유랑민들의 숫자에 대해 한 보고서는 2060년 12억명, 2100년에는 20억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100년에 지구 전체의 인구가 100억명 정도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5명 중 1명이 기후 유랑민이 되는 그림이다.
그래서 이 책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그 울림이 깊고도 크다. 다 끝났으니 포기하자고 말하기는커녕, 이 책은 지금까지 우리가 기후위기에 대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은 규모의 변화를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예정된 기후위기 악화에 대한 적응”의 뜻이라고 볼 수 있다.
전 지구에 수억명에 달하는 유랑민들이 떠돌 것이며, 각국 내에서는 생태 및 경제적 위기의 심화로 사회·정치적 위기가 극심해질 것이다. 게다가 토지나 수자원 등은 물론 니켈, 코발트 등과 같이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희소 자원들에 대해 강대국들의 확보 노력과 보호주의가 극을 달리게 될 것이며, 이것이 심각한 지정학적 갈등으로 치닫게 될 것임은 우리가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목도한 바가 있다. 이렇게 갈가리 찢어진 사회에서, 박탈감의 상태에 처한 다수 대중의 분노와 좌절을 토양으로 삼아 강력한 보호주의와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우익 포퓰리즘 독재가 전 세계를 휩쓸게 될 가능성도 대단히 높다. 1.5도/2도 상승이 자연과학자들이 말하는 우리의 거의 “예정된 미래”라면, 방금 말한 것들은 사회과학자들의 상식으로 볼 때 거의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예정된 미래”라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범지구촌적으로 풀 최고의 공공선
이제 기후위기는 먼 곳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닐 뿐만 아니라, “석유와 석탄 대신 배터리만 갈아끼우면 되는” 기술적 문제만도 아니다. 다가오는 대규모 위기 앞에서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할까. 수백만명의 난민들이 몰려올 때 우리는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우리가 기후난민이 되어 동북삼성이든 어디든 이주해야 할 처지가 되었을 때 그들은 우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이제 우리는 지구적 산업 문명 차원에서 “어떤 사회를 건설할 것인가”의 문제도 구체적,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은 누구이며, 자연과 우주 속에서 어떤 존재이며, 서로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도 풀어야 하므로, 인문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니 이렇게 따로 갈라볼 문제가 아니라, 여러 분과학문들이 함께하고 여기에 우리 사회를 살고 만들어가는 주체인 더 많은 평범한 시민들도 참여하여 구체적인 방안과 대책을 논의해야 할 최고의 ‘공공선’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글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시끄러운 ‘양치기 소년’의 또 하나의 외침으로 끝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얼마 전 무지막지한 폭우로 하수도 뚜껑이 날아가고 폭포가 거꾸로 치솟는 것을 보았다면, 이러한 사태가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이제부터 갈수록 빈번하게 벌어질 것임을 생각한다면, 그래서 이미 오랫동안 누적된 식량 농업의 위기로 인해 지금 나타나고 있는 인플레이션으로 장을 보러갔다가 낭패감에 젖었다면, 천연가스와 에너지 체계를 놓고 강대국 고래들이 싸우는 통에 난방비 전기값을 뒤집어쓰게 생겼다는 것을 직시한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할 때이다.
얼마 전 발표된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서는 놀랍게도 기후위기에 대처한 정책들(예를 들어 노후 건물들의 리모델링과 신규 건물의 에너지 절감 등)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책 저자인 빌 맥과이어의 메시지를 다시 한 번 반복하고자 한다. 이제 기후위기는 자연과학자들과 에너지 전문가들과 관련 업계 및 관료들이 알아서 할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 전체를 총체적으로 바꾸어 적응해 나가야만 할 거의 정해진 운명이라고.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경향
솔루션 저널리즘의 질문… ‘120년만의 폭우,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지난 여름, 우리는 기상 관측 이래 사상 최악의 홍수를 치렀다. 기상 이변은 더 자주 찾아올 것이고 갈수록 더 큰 피해를 만들 것이다. 문제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달라진 건 없다. 기상 이변은 한국만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그리고 언론은 어떻게 접근했는지 솔루션 저널리즘의 사례들을 살펴봤다.
“콘크리트를 거둬내고 빗물이 느리게 흐르도록.”
미국 뉴올리언스에서는 강변의 제방을 높이거나 빗물 펌프의 용량을 늘리는 것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2005년 허리케인 이후 도시 곳곳에 빗물 정원을 만드는 엄브렐러(Umbrella, 우산) 프로젝트가 출범했다. 키워드는 홍수 복원력(flood resilience)이다. 기후 변화 이슈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그리스트(Grist)가 홍수에 맞서는 뉴올리언스의 경험을 자세히 소개한 적 있다.
▲ How to Build a Flood-Resilient Community. Grist, 2022년 6월8일.
뉴올리언스는 지대가 낮은 데다 지반 침하가 계속되는 지역이 많았다. 강력한 빗물 펌프를 돌리고 있지만 콘크리트 밑은 사막처럼 말라가고 있었다. 서울도 마찬가지지만 뉴올리언스에서도 더 큰 하수관과 하수 탱크를 설치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해법이 거론됐다가 천문학적인 규모의 비용이 드는 데다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라는 현실적인 판단에 이르렀다.
결국 뉴올리언스 시민들이 선택한 해법은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흙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흘러내린 빗물을 최대한 빨리 강으로 흘려 보내는 게 아니라 최대한 가두고 머금어 두자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서울 강남역의 경우처럼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게 돼 있고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아무리 잘 만든 하수 시설도 넘치고 역류하게 된다. 뉴올리언스의 해법은 높은 곳의 물이 높은 곳에 최대한 오래 머물도록 천천히 흘러내리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엄브렐러연합에 따르면 500평방피트(46평방미터)의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바닥을 걷어내고 투수성 포장이나 잔디로 대체하면 최대 1000갤런(3785리터)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 300mm의 폭우가 쏟아질 경우 46평방미터면 대략 13.8리터가 된다. 빗물 정원 한 곳이면 거의 300배 넓이 면적에 쏟아지는 빗물을 담을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골목마다 있는 주차 공간만 투수성 포장으로 바꿔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물론 승용차 바퀴가 진흙 범벅이 되는 건 감수해야 한다.
비영리 단체인 어반컨서번시(Urban Conservancy)는 ‘앞마당 이니셔티브(Front Yard Initiative)’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를 뜯어내고 식물 정원과 자갈이 깔린 마당, 다공성 포장도로로 바꾸는 DIY 프로그램인데 여기에 일부 비용을 주 정부가 부담하고 기술 지원도 제공한다. 집집마다 옥상에 빗물 받이를 두고 빗물 저장 탱크를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배수 용량을 크게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홍수 복원력은 효과를 확인할 때까지 상당한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 정부 지원이 일부 있다고 하지만 저소득 계층은 당장 빗물 정원을 만드는 데 비용을 들일 여유가 없다. 임대 주택의 경우 집 주인의 허락 없이 공사를 할 수 없고 집 주인이 비용을 댈 리도 없다. 관리와 유지 비용도 감안해야 한다.
핵심은 공동의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뉴올리언스 주 정부는 연방 정부 예산으로 1억4000만 달러를 확보하고 녹색 기반 시설을 개발하는 200개 프로젝트에 22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저소득 계층 밀집 지역의 경우 주 정부가 비용을 모두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네덜란드, 1000년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네덜란드의 ‘Room for the River(강물의 여유 공간)’ 프로젝트도 세계 여러 나라의 벤치마크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네덜란드는 이미 1100년대부터 사회적 연대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누군가가 집 주변에 제방을 쌓으면 그 물이 이웃으로 넘쳐 흐를 것이기 때문이다.
▲ The Dutch Have Solutions to Rising Seas. The World Is Watching.New York Times, 2017년 6월15일.
수문학자 반 더 브렉(Van der Broeck)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강물의 범람을 막는 대신 흘러 넘치게 만드는 전략을 도입한 배경을 설명했다.
네덜란드는 1000년 이상 물과 싸워온 나라지만 1990년대 두 번의 홍수를 겪으면서 제방을 쌓고 수로를 파는 것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문제 의식을 갖게 됐다. 핵심은 강의 흐름에 맞서지 않고 강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제방을 허물고 새로운 물길을 냈다. 일부 마을을 통째로 비워야했고 과거 농지로 쓰던 곳이 오소리와 비버, 철새가 찾아오는 공원으로 바뀌었다. 홍수 때면 이곳이 넘치는 물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마스(Mass) 강 인근에 집수 지역을 30여 곳 만들어 물을 가두자는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져서 이렇게 조성된 범람원(flood plain)이 1300에이커(526만 평방미터) 규모, 투입된 예산만 27억 달러(3조5800억 원)에 이르렀다.
네덜란드는 ‘삼각주 계획(Delta Works)’라는 이름으로 1만 년만에 한 번 닥칠 수 있는 ‘종말론적(apocalyptic)’ 홍수에 대비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학교와 병원, 요양시설을 비롯해 기반 시설의 침수 가능성을 검토하고 필요한 경우 이전을 추진하는 것까지 포함된 전략이다. 삼각주 프로그램의 책임자인 페테 글라스(Peter Glas)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가까운 미래에 훨씬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Cities are finally treating water as a resource, not a nuisance, VOX, 2015년 9월5일.
텍사스주 휴스톤도 2011년 사상 최악의 홍수를 겪고 50억 달러 규모의 피해를 입은 뒤 네덜란드의 경험을 벤치마킹했다. 인터넷 신문 복스(Vox)는 “최대한 빨리 물이 빠져나가게 만드는 게 20세기 시스템이었다면 최근 녹색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숲과 습지의 기능을 모방해 살아있는 유기체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콘크리트 시스템은 정해진 용량을 넘어서면 부러지기 쉽지만 풀로 뒤덮인 습지는 쉽게 구부러진다는 설명이다.
물의 순환을 만드는 방법.
미국 위스콘신주 메디슨 하수관리청은 지난 2016년 새로운 과제를 맞닥뜨렸다. 연방 정부의 하수 처리 기준이 강화되면서 엄청난 예산이 추가로 투입될 상황이었다. 위스콘신주는 야하라(Yahara) 강에서 검출되는 인(燐,Phosphorus) 95%를 제거하고 있지만 새로운 기준에 따르면 기준이 96%로 높아졌다. 1억3000만 달러의 추가 설비가 필요했다.
기후 변화 전문 매체 엔시아 보도에 따르면 위스콘신주는 최종 수질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수질 오염을 관리하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수 처리 단계에서 인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하수로 유입되는 비율을 낮춰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게 이른 바 ‘원 워터(One Water)’ 프로젝트다.
이를 테면 잔디밭에 뿌리는 물은 식수만큼 깨끗하지 않아도 된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에서는 화장실 변기에서 흘러내린 물을 조경 용수 등으로 다시 사용하도록 건축 법규를 개정했거나 준비하고 있다. 샤워실 배수구에서 흘러나온 물이 다시 변기로 흘러가도록 하는 방식이다. 텍사스의 다우케미칼 공장은 브라조스 강에서 물을 끌어오는 대신 인근 지역의 폐수를 처리해서 공업용수로 쓰고 있다. 49억 리터의 담수 사용량을 줄인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폐수에서 바이오 고형물을 추출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도 발견할 수 있다. 유기물을 메탄으로 전환해 전기를 얻고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아이디어도 실행되고 있다.
▲ 10년 전인 2012년(위)과 2022년의 기사 비교.
비영리 기업 그린인프라(Green Infra)의 CEO 토니 웡(Tony Wong)은 ‘원 워터’ 접근이 가뭄과 홍수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주요 도시의 물 균형(water balance) 데이터를 살펴 보면 빗물과 폐수, 하수를 합한 양이 실제로 우리가 소비하는 물보다 많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건물 사이에 습지를 만들고, 공공 장소에 커뮤니티 정원을 조성하고 도시 과수원을 확장하고, 생활 폐수를 재활용하면서 담수화 플랜트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이야기다.
복스는 빗물을 강으로 흘려 보내는 하수도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필라델피아에서는 개울과 강변을 따라 토지를 개간하고 홍수 때 넘치는 강물을 저장할 수 있는 공원을 조성했다. 사유지에 빗물 정원이나 가로수 우물(street tree wells)을 조성할 경우 세제 혜택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런 녹색 공간이 오염 물질을 걸러내는 도시의 신장 역할을 하게 된다. 휴스턴의 인공 녹지는 연간 20억 갤런의 유출수를 걸러내고 130만 달러의 처리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미국 워터얼라이언스(Water alliance)의 CEO 래디카 폭스(Radhika Fox)는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깨끗한 물에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기후 변화의 위험에도 더 취약하다”면서 “‘원 워터’는 기후 변화 대책일 뿐만 아니라 형평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에 사는 부자들은 변기 물이 어디로 흘러가든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 ‘원 워터’ 순환을 이루지 못한다면 기후 변화는 취약 계층을 먼저 공격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재난이 닥친 다음은 이미 늦다.”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Nashville)은 반복적인 홍수를 근본적으로 막기 어렵다고 보고 상습 침수 지역에 사는 주택을 매입해서 공원으로 바꾸고 있다. 이미 발생한 피해를 복구하는 데 예산을 쓰는 게 아니라 미래에 발생할 피해를 줄이는 데 선제적으로 예산을 쓰자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한 번 피해를 입은 지역은 다음에 또 피해를 입거나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를 입게 될 수도 있다. 고쳐 쓰는 방식으로는 장기적으로 더 큰 피해와 부담을 안길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주택과 토지를 매입해 공원이나 산책로로 만들면 홍수가 나서 물이 불어났을 때 이 지역이 물을 가두는 역할을 하게 된다.
▲ As Floods Keep Coming, Cities Pay Residents to Move. New York Times, 2019년 7월6일.
내슈빌은 어떻게 이런 프로그램을 도입하게 됐을까.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1998년에 실험적으로 상습 침수 지역의 주택 93채를 사들인 경험에서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2010년 홍수로 20억 달러 규모의 피해를 입은 뒤 주택 매입 프로그램을 확대했고 4300만 달러를 들여 400채 이상의 주택과 공터를 매입했다. 연방 정부가 매입 비용의 75%를 부담하고 나머지는 주 정부와 시 정부가 부담하는 방식이다.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에 따르면 재난 예산의 20%정도가 사전 예방에 투입된다고 한다. 내슈빌처럼 홍수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는 데 1달러를 투입할 경우 6달러 이상의 피해 감소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이런 계산에 따르면 내슈빌이 주택 이전에 쓴 4300만 달러는 2억5800만 달러 이상의 피해 감소 효과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홍수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보험료가 연 300달러에서 월 700달러로 뛰어오르면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주민들을 모아놓고 설명할 때는 “25년 동안 처음 있는 홍수였지만 앞으로 10년 동안 이런 규모의 홍수가 4번 이상 발생할 수도 있다”면서 “지금 팔지 않으면 더 큰 피해를 입은 뒤에 떠나게 될 수도 있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내슈빌의 경험을 소개하면서 한계를 빠뜨리지 않았다. 비가 올 때마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살던 집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보상금이 1만 달러 밖에 안 된다면 컨테이너 박스 외에 집을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들은 가까운 미래에 또 다시 물에 잠길 위험을 기꺼이 감수한다. 모기지론에 묶여 있는 노인들도 이사를 할 여유가 없다. 연방재난관리청이 30년 동안 매입한 주택이 4만 채에 이르지만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매입 프로그램의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매입하지 않으면 결국 개인들끼리 거래하는 수밖에 없는데 침수됐다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거래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방글라데시에서도 비슷한 실험이 있었다. 2019년 7월 쿠리그람 지역에서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질 거라는 예보가 있었고 정부가 위험 지역에 사는 5000여명을 식별해 휴대 전화 뱅킹으로 1인당 10달러를 송금했다.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이 돈으로 미리 비상 식량과 대피 용품, 안전 장비 등을 구입하고 가축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재난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한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사례 가운데 하나”로 소개하면서 “재난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열심히 찾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0년 전만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침수 지역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구체적으로 피해 규모를 추산하는 것도 가능하게 됐다. 위성 데이터와 수학적 모델링을 활용하면 홍수나 가뭄을 최소한 며칠 전, 빠르면 몇 주 전에 미리 예측할 수 있다. 2017년 소말리아에 기근이 예상된다는 관측이 나왔을 때도 UN 등 구호기관에서 60만 가구에 상품권을 문자 메시지로 전송한 사례가 있었다. 재난이 예상된다면 피해 복구 이전에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비용을 쓰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루이지애나가 호치민에서 찾은 해법.
상습적인 홍수와 침수 피해를 겪었던 미국 루이지애나는 지구 반대편 베트남 호치민에서 해법을 찾았다. 메콩강을 끼고 있는 호치민 역시 루이지애나처럼 해수면 보다 낮은 곳에 자리 잡은 도시다. 비가 조금 많이 온 날이면 강이 불어나 제방이 무너지는 일도 있었다. 역시 아스팔트로 뒤덮여 빗물이 흡수될 곳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베트남 전쟁 때 불타버린 맹글로브 숲을 수십년에 걸쳐 복원하긴 했지만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염분을 견디지 못한 나무가 쓰러지고 나무 뿌리가 힘을 잃으면서 지반이 침하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베트남대학교 호롱피(Ho Long Phi) 교수는 뉴올리언스 공영 라디오 WWNO와 인터뷰에서 “그들이 우리를 보호하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 Delta Blues Part 1: The Battle To Keep Ho Chi Minh City Above Water. WWNO, 2015년 1월21일.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WWNO의 연속 보도 ‘삼각주 블루스(Delta Blues)’를 소개하면서 “컨텍스트를 바꾸는 강력한 솔루션 접근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삼각주 블루스’ 3부작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구성돼 있다.
1부는 해수면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뉴욕의 맨해튼처럼 해안가에 멋진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콘크리트 건물이 늘어날수록 홍수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호치민에서도 처음에는 홍수 대책으로 지반을 높이는 선택이 최선이었다. 이 지역 주민 현탄후안(Huynh Thanh Xuan)은 3년 전 집을 통째로 들어 지반을 4피트 높이는데 3만 달러를 썼다. 주변 이웃들이 비웃었지만 지금은 달리 대안이 없다는 걸 모두가 안다.
2부는 벼 농사를 포기하고 새우 양식을 시작한 바닷가 농부들의 이야기다. “메콩강 인근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물과 같다. 물은 길을 따라 흐르고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제방 안에 가두는 것보다 그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도록 돕는 게 해법이 될 수도 있다.’”
호치민의 해수면 상승은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1990년 후반 천문학적인 규모의 비용을 들여 해안선을 따라 거대한 제방을 건설했지만 이 제방이 완성될 무렵에는 상당수 농민들이 바다 새우 양식으로 직업을 바꾼 뒤였다. 수천 명의 농민들이 수문을 열어달라고 항의 시위를 벌였고 성난 농민들이 몰려가 강제로 수문을 개방하는 일도 벌어졌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 결과 새우 양식 등으로 지역 경제가 살아나긴 했지만 토지의 황폐화가 가속화됐다.
1부와 2부는 결국 대형 재난 앞에서 각개약진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결국 이런 방식으로 근본적인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3부에서는 현실적인 해법을 다룬다. 기본적인 홍수 피해 방지가 우선이지만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공동체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루이지애나대학교 엘리자베스 모솝(Elizabeth Mossop) 교수는 “빗물 탱크를 집집마다 무료로 나눠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WWNO와 인터뷰한 루이지애나해양기금의 로버트 트윌리(Robert Twilley)는 “사람들을 겁주는 전략은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WWNO는 쾌도난마의 해법을 내놓지는 않았다. 다만 선택 가능한 대안과 최선의 해법을 제안하고 있다.
“우리도 네덜란드처럼 높은 방파제와 제방을 건설할 수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현금이 많고 상대적으로 보호해야 할 인구가 많지 않다. 반면 사우스 루이지애나는 훨씬 넓은 지역에 재원은 적고 훨씬 더 취약하다.”
친환경 건축가 부트롱응야(Vu TrongNghia)는 “녹색 지붕을 만들지 않으면 건축 허가를 내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빗물을 거리로 밀어내는 대신 흡수하는 도시 계획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호치민은 1인당 녹지공간이 1평방미터밖에 안 된다.
루이지애나와 비슷한 여러 도시에서 선택한 해법은 결국 넘치는 물을 흡수할 수 있는 범람원과 공원을 만드는 새로운 도시 계획과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이다. 이 역시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겠지만 최선의 해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게 이들이 얻은 결론이다.
스폰지 시티를 만들자.
중국이 30개 스폰지 시티에 120억 달러 투입한다는 비즈니스인사이더의 기사도 눈길을 끈다. 진후아(Jinhua)의 얀웨이저우(Yanweizhou) 공원은 비가 오면 물에 잠기도록 설계돼 있다. 상하이는 푸동(Pudong) 지구 린강(Lingang)에 중국 최대 규모의 스폰지 시티 프로젝트를 도입했다. 건물 옥상에 정원을 조성하고 도시 곳곳에 습지를 만들고 도로에 투수성 포장을 깔았다. 옥상 정원의 규모는 430만 평방피트(39만 평방미터)에 이른다.
▲ China is building 30 'sponge cities' that aim to soak up floodwater and prevent disaster. Business Insider, 2017년 11월10일.
BBC 보도에 따르면 세계 주요 도시의 빗물 흡수력을 측정한 결과 호주 오클랜드는 빗물의 35%를 흡수해 흡수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기후 변화로 집중 호우나 홍수 위험이 커지는 반면, 도시의 흡수력은 떨어지고 있다”는 게 BBC의 경고다.
오클랜드에서는 2016년 오클리 크릭(creek)이라는 하천 주변에서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자연을 복원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빗물 흡수력이 크게 늘어났다. 비가 많이 오면 이곳이 도시의 스폰지 역할을 하게 된다.
흡수력을 높이려는 다양한 아이디어도 눈길을 끈다. 뉴욕에서는 보행자 도로에 화분 상자 수천 개를 깔았다. 로스앤젤레스에서도 콘크리트를 제거하고 자갈을 깔고 옥상 정원을 늘리는 등의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BBC의 제안은 빗물 터널을 만들고 배수 펌프의 용량을 늘리는 등의 노력이 필요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녹색 인프라가 이런 회색 인프라의 규모를 크게 줄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의미다.
▲ 집중 호우 : 세계 최고 ‘스폰지’ 도시의 홍수 대처법. BBC코리아, 2022년 8월27일.
“진짜 해법은 인식의 전환부터.”
제레미 스투츠맨(Jeremy Stutsman) 미국 인디애나주 고센(Goshen) 시장은 이런 농담을 하곤 했다. “세상의 종말이 오면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인디애나로 가십시오. 그곳에서 50년 후에 종말이 닥칠 테니까요. 물론 50년이 걸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뭔가를 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스투츠맨은 “기후 변화를 두고 논쟁을 벌일 때가 아니라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설득한다”고 강조한다.
인디애나주는 전체 면적의 24%가 습지인 데다 수많은 강 줄기가 흩어져 있어 폭우가 발생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2018년 2월에는 기록적인 홍수로 3만20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과거에는 연방재난관리청의 지원을 받기도 했지만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기상 이변이 속출하면서 우선 순위가 밀리는 경우가 많다.
인디애나주는 재난 구호 기금이 있는 몇 안 되는 주 가운데 하나지만 기금 소진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인디애나주에서 홍수 보험에 가입한 가구와 기업은 1% 수준이었다. 나머지 99%는 홍수에 속수무책이라는 이야기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가 특별히 고센의 실험에 주목했던 건 재난에 맞서는 과정에서 주민들을 설득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환경 교육을 시작했고 청년들의 지역 사회 참여를 독려했다. 청년 의원들이 발의해 시에서 관리하는 나무 캐노피를 45% 늘리는 결의안도 채택됐다.
▲ Application of the Sponge City concept at the site scale and at the catchment scale in Southern China. (a) classic sponge facilities with pipes and tanks to collect the water; (b) suggested sponge facilities characterized by infiltration to aquifer; (c) conceptual model with different zones for the application of the Sponge City concept.
한국 언론에서도 해결 지향의 보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주간조선은 아이디어 차원에서 거론됐던 ‘빗물세’를 대안으로 소개했다.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등 불투수 면적에 비례해서 세금을 부과하자는 아이디어다. 뉴올리언스나 루이지애나가 찾은 해법처럼 빗물을 밀어내는 게 아니라 스며들게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 의식이다. 서울은 불투수 면적율이 54.4%에 이른다. 주간조선 보도에 따르면 미국 뉴저지에서는 2019년부터 ‘빗물세(Rain Tax)’가 도입돼 지붕과 주차장 같은 불투수 시설을 대상으로 포장 면적에 따라 세금을 부과한다. 서울도 2012년 강남역 침수 사건 이후 빗물을 외부로 방출하는 정도에 따라 하수도 요금을 추가 부과하는 빗물세를 검토했으나 무산됐다.
다음은 김진수 국토해양팀 입법 조사관의 이야기다.
“불투수 면적이 적은 농촌 지역은 강수량의 약 45%가 지하로 침투하는데 도시 지역은 25% 이내의 강수량만이 지하로 침투한다. 도심지에서 발생한 강수가 지하로 침투하지 못하고 불투수면을 따라 흘러 유출량이 증가하면서, 반지하주택이나 지하차도, 터널, 지하철, 주차장 등의 도시시설에서 침수가 발생해 인명 및 재산피해로 이어진다.”
대덕넷은 예보 시스템 강화를 대안으로 제안했다. 홍수와 침수 위험을 3시간 전까지 분석하고 사물인터넷 기술을 활용해 하천과 도심의 수위와 유속을 모니터링하고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집계하는 시스템이 이미 구축돼 있다. 다만 황석환 건설연 수자원하천연구본부 박사에 따르면 이런 데이터를 종합해 대피 여부 등을 결정하는 콘트롤 타워가 없고 틀린 정보를 줬을 경우 책임 소재 등의 문제로 기관들이 나서지 않는 상황이다.
“침수는 10~20분 만에 발생한다. 홍수예보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한 기술이 어느 정도 마련된 만큼, 정확도가 70~80%라 하더라도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문제가 명확한 것처럼 해법 역시 숱하게 쏟아져 나왔다. 중요한 건 무엇을 선택하고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다. 한국은 네덜란드나 미국의 내슈빌, 베트남의 호치민과도 상황이 다르다. 밀집도가 높고 녹지 공간이 거의 없다. 반지하를 없애는 것도 해법이 될 수 없고 시간당 400mm의 기록적인 폭우에서는 빗물 탱크 역시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문제를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에 이르는 과정을 추적 보도하는 증거 기반의 보도 기법이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기후 변화와 기상 이변에 맞서 내놓은 여러 해법과 실패, 가능성을 살펴 보는 것은 우리 현실에 맞는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계획이 무너지게 생겼다... 이 정부를 믿고 갈 수 있을까?
지구 뜨거워지고 기후장벽 높아가는데... 미국·유럽 정책에 제조업 직격탄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의료보장 확충 등을 골자로 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 맨친 상원의원, 척 슈머 상원의원, 제임스 클리번 하원의원, 프랭크 펄론 하원의원, 캐시 캐스터 하원의원. ⓒ 연합뉴스
지구 온도가 너무 빨리 올라간다. 미국 기후 싱크탱크 '버클리 어스'는 지난 1월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혁명 전과 대비해서 1.3℃ 올랐다고 발표했다. 유엔은 2018년 지구 온도가 1℃ 상승했다고 보고했으나 그 후 단 3년 만에 0.3℃나 올랐다. 과학자들은 1.5℃ 상승을 마지노선으로 본다. 1.5℃가 오르면 남극이 본격적으로 녹으면서 해수면 상승 등 돌이킬 수 없는 기후 붕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속도라면 1.5℃는 이제 2년도 안 남았다.
지구 온도 상승 속도만큼 지구촌의 기후대응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은 산업과 투자, 외교와 무역을 포괄하는 기후정책으로 외부 나라들과 장벽을 세우고 있다. 우리나라는 슬기롭게 대비하고 있을까?
40℃를 넘는 살인적 폭염에 시달린 미국은 8월 중순 기후위기 대응에 초점을 둔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이름과 달리 미국과 미국인을 위한 기후대응책이다. 2030년 온실가스 40% 감축을 목표로 재생에너지, 전기자동차, 배터리에 3690억 달러(약 490조 원)를 정부가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그중 절반인 1800억 달러는 재생에너지 정책에 투입한다. 온실가스와 에너지 안보도 함께 해결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법이 입법화되자 한국산 전기자동차와 배터리는 즉각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에서 만든 전기자동차에만 1대당 7400달러(약 1000만 원)의 보조금을 주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부는 미국에 생산시설이 없는 현대 전기차 5종에 보조금 지급을 제외시켰다. 아울러 우리나라 배터리에 대해서도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다.
보조금 없이 경쟁에서 살아남기란 불가능하다. 지난 5월 현대차는 2030년에 한국에서 전기차 140만 대를 생산해서 미국으로 84만 대를 수출하겠다고 밝혔다. 이 계획은 지금 무너지게 생겼다.
포스코 1/3 이상 해외 생산 계획
자동차산업연합회는 지난 8월 25일 "매년 10만여 대의 전기차 수출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면서 정부에 대책을 촉구했다. 그러나 한덕수 국무총리는 같은 날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현지에 (전기차) 조립시설을 (구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이런 무대책은 일자리 절벽도 만들고 있다. 전기차 전환으로 국내 내연기관차 부품업체 30%가 사라지고 10만 8천여 명 노동자의 미래도 무너지게 생겼다.
유럽연합은 탄소에 가격을 매기는 무역장벽으로 대응한다. 지난 6월 유럽연합 의회는 '탄소국경조정제'를 통과시켜 철강, 플라스틱, 알루미늄 등 9가지 품목에 탄소국경세 적용을 결정했다. 해당 품목을 원재료로 사용한 완성품들도 모두 탄소국경세 적용을 받으니 대상이 광범위하다.
유럽연합 수입업체들은 우리나라 기업이 만든 고탄소 제품에 대해 계약을 거절할 수 있다. 런던에 있는 기후 싱크탱크 카본체인은 7월 탄소국경세 지침을 통해 "유럽연합 수입업체들은 저탄소 기업을 중심으로 장기간 계약할 것"을 권고했다. 한국 기업과 계약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제조업의 근간인 철강, 반도체, 플라스틱도 재생에너지를 공급하는 해외로 이전할 것이다. 지난 3월 포스코 그룹은 2030년 자사 조강(쇳물) 예정 생산량 6110만 톤 중 2310만 톤을 해외에서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기후장벽이 더 높아지면 포스코도 사업장 대부분을 해외로 이전할 수 있다. 우리나라 수출의 90%가 제조업인데 전적으로 수출에 의존해온 한국 경제는 지금 위험하다.
기후위기가 경제와 산업에만 문제가 될까? 과학자들은 지구 온도가 1.5℃ 오르면 남극이 녹는 효과만으로도 1.5미터 해수면이 상승한다고 경고한다.(<네이처> 2020. 9)
▲ 우리나라가 정말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관료가 아니라 시민공동체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아울러 시민과 공동체에 필요한 지원을 쏟아 부어야 한다. ⓒ 셔터스톡
뉴욕에 있는 기후 싱크탱크 클라이미트 센트럴은 해수면이 1미터 상승한다는 가정 아래 2030년 우리나라 인천, 송도, 시흥, 한강하구 지역의 피해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서울시의 10배인 5900㎢가 바다에 잠기고 330만 명이 재산을 잃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기후난민들이 집단적으로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시나리오다. 이런 기후 시나리오들이 너무나 잘 맞아떨어져 걱정이다.
지난 17일 윤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100일간 세계경제의 위기 상황을 체계적으로 대응했고, 민생경제를 살리려고 노력했고, 미래 먹거리 산업을 육성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은 기후위기 앞에서 경제, 민생, 먹거리가 총체적 위기를 겪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후대책으로 원전 30%만을 반복할 뿐이다. 기후정책이 실종된 이 정부를 믿고 갈 수 있을까?
시민공동체가 리더십 발휘해야
총체적 기후위기를 맞아 무엇을 해야 할까? '범국민 기후행동위원회'를 법적 기구로 만들어 대책을 세워야 한다. 기후 과학자들과 현장(산업체, 공동체)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해 정책을 만들고, 그 정책을 놓고 현장과 끊임없이 소통할 때 기후위기 해결의 동력을 얻을 수 있다.
기후위기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이들은 노동자와 그 가족, 농민, 시민들이다. 기후행동위원회는 이들이 피해자가 아니라 당사자가 될 수 있도록 정책과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에서 배울 게 있다면, 기후위기 피해 시민과 공동체를 대담하게 지원하고 시민공동체를 보호한다는 점이다. 이 법은 기후위기 피해 시민들에게 600억 달러(약 75조 원)의 대규모 예산을 배정하여 청정에너지, 주택 개량, 양질의 일자리를 지원한다.
우리나라가 정말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관료가 아니라 시민공동체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아울러 시민과 공동체에 필요한 지원을 쏟아 부어야 한다.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해지고 싶은가? 그러려면 기후위기의 가장 큰 당사자인 시민의 편에 서야 한다.
오기출 푸른아시아 상임이사/ 오마이뉴스
그린란드 '좀비 빙하' 붕괴 못 막는다…"해수면 최소 27cm 상승"
"보수적 전망한 것…무덤에 한 발 들인 상황"
▲2019년 8월 15일(현지시각) 그린란드 동부 빙산 근처에 배가 한 척 떠 있다. ⓒAP=연합뉴스
지구온난화로 그린란드의 '좀비 빙하'가 녹으며 향후 온실가스 배출 감축과 관계 없이 해수면이 평균 27cm 상승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배출 감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해수면이 평균 78cm까지 상승할 것으로 봤다.
국제학술지 네이처 클라이밋체인지에 29일(현지시각) 게재된 '그린란드 빙상 기후 불균형과 해수면 상승' 연구에 따르면 향후 온실가스 감축과 관계 없이 이미 진행된 온난화 탓에 그린란드 빙하 전체 부피의 3.3%에 해당하는 110조 톤의 빙하는 붕괴가 불가피해졌다. 해당 빙하가 모두 녹으면 지구의 해수면은 평균 27cm 가량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최소 전망값으로 만일 그린란드 빙하가 기록적으로 많이 녹았던 2012년 수준의 손실이 지속된다면 해수면은 평균 78cm까지 상승할 수 있다.
연구진이 불가피하게 녹을 수밖에 없다고 본 빙하는 여전히 두꺼운 빙상에 붙어 있지만 더는 빙원으로부터 눈을 보충 받지 못해 크기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소위 '좀비 빙하'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그린란드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눈이 빙하 가장자리가 녹는 만큼 보충돼야 하지만, 최근 수십 년 간은 그 균형이 깨져 빙하가 녹는 양은 더 늘어난 반면 보충되는 양이 줄며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2000~2019년 그린란드 빙하 손실과 만년설의 모양에 대한 위성 자료 분석을 통해 이러한 결론을 도출해 냈다.
연구의 공동 저자인 윌리엄 콜건 덴마크 및 그린란드 국립지질조사국(GEUS) 선임 연구원은 <AP> 통신에 "그건 '죽은 얼음'이다. 이제 녹아서 빙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며 "우리가 어떤 기후 (배출) 시나리오를 택하든" 이 얼음들은 녹을 수 밖에 없어 해수면 상승에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저자인 제이슨 박스 GEUS 교수는 현 상황은 "무덤에 한 발을 들여 놓고 있는 것과 같다"고 경고했다.
연구진은 모든 '좀비 빙하'의 손실 시기를 정확히 예측하진 못했다. 다만 이번 세기 말에서 2150년까지는 손실이 나타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추측이 나온다. GEUS 보도자료에서 박스 교수는 이번 추정은 "매우 보수적인 최저치"라며 "현실적으로 우리는 이번 세기 안에 이 수치의 두 배 이상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리처드 앨리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지구과학 교수는 <AP> 통신에 기온 상승이 현 상태로 지속된다면 그린란드 빙하 가장자리와 대부분의 산지 빙하는 계속해서 질량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며 현 상황은 "얼음 조각을 따뜻한 차에 넣은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콜건 연구원은 "해수면 27cm 상승과 78cm 상승은 파리 협정 이행에 따라 달라진다. 피해를 최소화할 여지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해수면 상승폭은 모든 지역에서 동일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며 해안 지역 주민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게일 화이트먼 영국 엑서터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 연구 결과가 "해안가에 살고 있는 6억 명의 사람들에게 나쁜 소식"이며 "전세계 부의 1조 달러(약 1348조 원)가량을 위협한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화이트먼 교수는 정치 지도자들이 기후 적응과 피해에 관한 자금을 신속하게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 김효진 기자
변덕스런 날씨’에서 ‘기후재난’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
서울에 집중호우가 내린 8월8일 저녁 서울 강남역 인근 도로가 물에 잠겼다.ⓒ독자 제공
서울이 충격을 받았다. 2022년 여름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사는 서울과 수도권을 강타한 수해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새삼 일깨웠다. 기후위기에 무관심했거나 또는 부정했던 이들도 이번 사태로 문제를 체감하기 시작했다. 8월11일 참여연대는 “우리 삶, 우리 일상이 위협받는 재난 상황이 바로 곁에 있다. 한반도 역시 기후위기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아니었다”라는 논평을 발표했다.
8월8일 서울의 강수량은 381.5㎜였다. 서울에 하루 동안 내린 비로는 기상관측 사상 최대치였다. 이전 기록은 1920년 8월2일 354.7㎜였다. 여기에 배수 관리 미비 등 행정 결함이 더해지면서 서울은 극심한 호우 피해를 입었다. 올여름 장마가 7월27일쯤 끝날 거라는 기상청의 전망도 완전히 빗나갔다. ‘장마가 끝나면 무더위가 온다’라는 오랜 날씨 법칙도 깨졌다. 예측 불가의 날씨 변동이 우리 일상을 습격했다.
그런데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해는 오래전부터 전국을 덮치고 있었다. 오히려 서울은 그 피해를 비껴간 편이었다. 환경부가 발간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 보고서 2020〉에 따르면, 호우와 태풍으로 인한 역대 피해 규모가 가장 컸던 해는 2002년 8월이다(재산 피해액 기준). 246명이 사망·실종되고 재산 피해액은 5조원이 넘었다(〈그림 1〉 참조). 피해는 전국에 걸쳐 일어났지만 강원도 지역이 유독 심했다. 태풍 루사의 영향으로 강릉 지역에 하루 동안 비가 870.5㎜ 내렸다.
두 번째로 피해가 심각했던 시기는 2003년 9월 태풍 매미 때다. 서울과 인천을 제외한 전국에 피해를 끼쳤는데 사망·실종 131명, 재산 피해액은 4조원대였다. 당시 하루 동안 비가 경남 남해에 453㎜, 강원 대관령에 397㎜, 전남 고흥에 304㎜ 내렸다. 2002년과 2003년 모두 6만명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20년 전만 해도 기후위기는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가 아니었다. 당시 한반도를 휩쓸고 간 태풍 루사와 매미는 기후위기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말해준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따뜻해진 바닷물이 태풍에 에너지를 공급하면서 그 파괴력이 무시무시해진다는 것을 절감하게끔 했다.
이 보고서는 2020년 7월 발간됐다. 그다음 달인 8월에 발생한 ‘2020년 폭우’ 기록은 빠져 있다. 6월부터 시작된 2020년 장마는 크고 작은 피해를 낳다가 8월 들어 전국에 물 폭탄을 퍼부었다. 8월2일 충북 충주 316㎜, 8월4일 강원 철원 269.5㎜, 8월7일 광주광역시 313㎜, 8월8일 전남 담양 413㎜ 등 전국 곳곳에서 일주일 이상 폭우가 쏟아졌다.
2020년은 ‘날씨가 증명한 기후위기’의 해
특히 전라, 충청, 경상 지역의 피해가 심각했다. 당시 수자원공사가 댐 방류 조절에 실패하면서 전남 구례군의 경우 읍내 전체가 어른 키 이상 물에 잠기는 초유의 피해를 겪었다. 인구 약 2만5000명인 구례군에서만 1000명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시사IN〉 제762호 ‘참혹했던 2020년 수해 그 후, 국가는 대체 뭘 했나’ 기사 참조 ).
이처럼 2020년은 기후와 관련한 ‘기록’들이 쏟아진 해였다. 겨울철 평균기온이 3.1℃로 전국 단위 기상관측을 시작한 1973년 이래 가장 높았고, 장마철 기간(중부 54일, 제주 49일)은 역대 가장 길었다. 6월에는 이른 폭염이 한 달간 지속되면서 평균기온과 폭염일수가 역대 1위를 기록한 반면, 7월에는 선선했던 날이 많아 관측 이래 처음으로 6월 평균기온(22.8℃)이 7월(22.7℃)보다 높은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이듬해인 2021년 1월 기상청은 ‘2020년 기후분석 결과’를 발표하면서 ‘날씨가 증명한 기후위기’라는 헤드라인을 뽑았다.
기후과학자 김백민 교수(부경대 대기환경과학)는 이렇게 말한다. 다가올 기후변화의 피해를 기후과학자들로 하여금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고 하면 ‘비가 많이 내리던 지역에는 비가 더 많이 오고, 가물었던 지역은 가뭄이 더 오래 지속될 것이다’라고.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아열대화가 진행되면서 강수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고, 2020년의 역대 최장 장마는 그 상징적인 사례였다.
올해 2022년은 기후과학자들의 ‘요약’이 한반도에 기이하게 적용된 해다. 대다수가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놀랍게도 올해는 ‘극심한 가뭄’의 해였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6월 초반까지만 해도 강수량이 평년의 절반에 불과했다. 특히 5월에는 평년 강수량의 6%인 5.8㎜가 내리는 데 그쳤다. 1973년 이후 최저치다. 전국 곳곳은 이미 식수와 농업용수 부족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가뭄으로 인한 대형 산불도 잇따랐다. 수도권 물난리 기사를 쓰고 있는 8월18일 현재에도 남부지방은 가뭄으로 타들어가고 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보자. ‘이상기후 보고서’라는 게 있다. 2010년부터 정부가 ‘관계 부처 합동’으로 매년 발간하는 보고서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해 나타났던 각종 기상이변 현상에 대한 기록, 원인 분석과 함께 총 8개 분야(농업, 국토해양, 산업·에너지, 방재, 산림, 수산, 환경, 보건)에 대한 사회경제적 영향과 정책 제언을 담고 있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이 보고서의 핵심 내용을 간추려보았다. 〈그림 2〉다. 발간되는 보고서를 매년 확인할 때와는 다르다. 이처럼 몇 년 치를 한꺼번에 모아놓고 보면 명확해진다. 지금 한반도에 어떤 섬뜩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해마다 ‘역사상’ ‘가장’ ‘최고’ ‘기록’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2015년에는 12월 평균기온과 평균 최저기온이 1973년 이래 가장 높았다. 평균기온이 가장 높았던 2016년에는 여름철 폭염과 열대야 현상도 심각했다. 10월에는 비가 내린 날이 역대 가장 많았다. 2017년 겨울에는 한파가 몰아치더니 4~5월에는 역대 가장 따뜻한 달 1~2위를 기록했다. 장마가 시작되는 6월에 비가 내리지 않아서 역대 최소 강수량 3위였다.
눈여겨볼 대목은 ‘5월의 고온 현상’이다. 〈그림 2〉에는 2014년이 빠졌지만 그해부터 5월 평균기온이 매년 최고치를 경신한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 연속이다. 2019년에도 평균기온 2위를 기록했다. 여름철이 본격 시작되기도 전 이미 한반도에 극심한 고온 현상이 고착화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봄철 가뭄과 산불을 악화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2018년은 최악의 여름철 폭염으로 기억된 해다. 그런데 그해 초에 매서운 겨울 추위가 이어졌음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한강이 71년 만에 가장 일찍 얼어붙었고, 곳곳에서 최저기온 기록이 경신됐다. 한랭질환자가 급증하고, 동파 사고가 계속됐다. 폭염이 물러간 10월에는 상층 기압골 영향으로 쌀쌀한 날씨가 이어졌다.
2019년은 태풍의 해였다. 1904년 근대 기상업무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태풍 수(7개)를 기록했다. 루사와 매미 같은 심각한 피해는 아니었지만 전국 곳곳에서 피해가 이어졌다. 필리핀 동쪽 해상의 높은 해수면 온도에 따른 기류의 상승 등이 태풍 발생의 원인이라고 기상청은 분석했다.
2020년에는 지난 몇 해 동안 계속된 겨울철 한파가 무색해졌다. 기상관측 사상 가장 따뜻했던 1월로 기록됐다. 그리고 앞서 설명했듯 역대 최장기간 장마가 이어졌고 많은 비가 쏟아졌다.
2021년은 ‘널뛰는 날씨’로 요약된다. 1월의 기온 변동 폭이 역대 가장 컸고, 4월에는 한파와 초여름 날씨가 동시에 나타났다. 10월 날씨 역시 ‘고온과 저온, 극과 극을 달렸다’라고 이상기후 보고서는 설명했다.
한반도의 이런 이상기후 현상은, 실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서울 수해가 발생하기 20여 일 전인 7월12일 주목할 만한 결과가 발표됐다. 2021년 한반도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기상청 국립기상과학원은 ‘2021 지구대기감시 보고서’를 통해 충남 안면도 기후변화감시소에서 관측된 이산화탄소 농도가 역대 최대치인 423.1PPM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산화탄소 농도 역대 최대치 기록한 해는?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 현상이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에 따르면 지난해 지구 평균 이산화탄소 농도가 전년보다 2.3PPM 늘어난 414.7PPM을 기록했다. 관측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인간 활동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의 핵심 원인이다.
올여름 유럽을 덮친 폭염 사태에서 눈길을 끌었던 것은 영국이나 독일 같은 선진국의 가정 에어컨 보급률이 5% 미만이었다는 점이다. 반면 한반도는 전 세계에서 연교차(가장 더운 달과 가장 추운 달의 평균기온 차이)가 가장 큰 지역에 속한다. 한국인이 기후위기에 둔감한 이유를 설명할 때 종종 언급되는 이야기다.
지난 몇 년간의 이상기후 기록은, 한반도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심각한 기후 재난이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것이 없음을 말해준다. 우리는 2022년 서울 수해의 기억을 다가올 해일을 막는 방파제로 만들 수 있을까. 내년에 발간될 ‘이상기후 보고서 2022’는 ‘남부지방의 극심한 가뭄과 중부지방의 폭우’로 요약될 가능성이 크다. 8월 현재까지는.
시사인 이오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