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22.10.3~10.7 겨울이 오고 있다

이성근 2022. 10. 4. 00:10

쌓이는 미분양1~8월 미분양 물량 작년 말86%

"바이든으로 들리면 모여라" 했더니 최대 인원 모였다

한국 대통령 연설에 한국 현실이 없다

지자체가 시민단체의 ATM? 전국 예산 전수분석했더니 “0.2% 안팎

요양시설이 나을까 집이 나을까?

내돈안산리뷰 조작단보름이면 플랫폼 상품랭킹 상위권

어떻게든 갚으려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룰라 지지한 브라질 1020세대

고등학생이 그린 윤석열차김건희와 칼 든 검사들 탑승

유엔 부자나라 금리 인상, 세계 경제침체 부를 경솔한 도박

일본, 북 미사일에 주민대피 지시기시다 폭거, 강력 규탄

 

빨간바지 '그녀'가 몰고 온 열풍... 강남이 들썩였다

NLL포기' 선동과 '쇠고기 협상' 파동, 그리고 윤석열의 '전쟁

'그랜저 값에 팔린 해외광산자원안보도 '흔들

대기업 기부 줄이고 中企는 접대비 늘렸다을의 비애

부동산 활황기' 10명 중 3명은 '임대 목적' 주택 구매했다

신규주택 공급부족론은 철저히 파산했다

범보수 대권후보 한동훈 '1' '선두' 보도 언론사 주의 제재

한국엔 청천벽력,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겨눈 것

물가 오름세 멈칫했는데밥값은 낼 때마다 흠칫

고속철도 잔혹사 : 국토부 관료는 승승장구, 불편은 국민 몫

쌓이는 미분양1~8월 미분양 물량 작년 말86%

연이은 금리상승 압박 및 경기 침체 등 영향으로 주택 거래절벽 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미분양 주택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8월 주택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총 32722호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31284) 대비 4.6%(1438)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말(17710가구)과 비교하면 85.8% 늘었다.

미분양 주택은 지난해 101114000가구 규모로 바닥을 찍은 뒤 올해 들어 매달 증가하는 추세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수도권은 5012호로 전월(4529) 대비 10.7%(483) 증가했으며, 지방은 27710호로 전월(26755) 대비 3.6%(955) 증가했다 규모별로는 85초과 중대형 미분양은 3065호로 전월(2740) 대비 11.9%(325) 증가했고, 85이하는 29657호로 전월(28544) 대비 3.9%(1113) 증가했다.

 

다만 공사가 끝난 뒤에도 분양되지 못해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은 전국 7300호로 전월보다 0.8% 감소했다.

이민영 기자 mlee1@asiatoday.co.kr

 

 

"바이든으로 들리면 모여라" 했더니 최대 인원 모였다

8'김건희 특검·윤석열 퇴진' 촛불대행진, 처음으로 세종대로 한길에서 열려

윤석열 대통령 집권 이후 '김건희 특검·윤석열 퇴진' 촛불대행진에 가장 많은 인원이 모였다. 집회를 주관해 온 촛불행동은 이 집회를 앞두고 "'바이든'으로 들리는 사람 다 모여라"란 글귀가 적힌 홍보물을 뿌린 바 있다.

1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 근처 세종대로 한길에서 "윤석열 퇴진" 촛불대행진 집회가 열렸다.윤근혁

 

1일 오후 5시부터 서울 광화문 광장 바로 아래 세종대로 3개 차로에 걸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8차 촛불대행진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촛불대행진이 시작된 이래 광화문 근처 한길에서 집회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회를 맡은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현재 프레스센터를 지나 시청 앞까지 시민들이 들어오고 있다. 20161029(박근혜 퇴진) 1차 촛불혁명 집회 날 그 때 3만 명이 모였는데, 오늘 정확히 1차 시민혁명이 시작된 것 같다"면서 "오늘 무려 (연인원) 3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였다"라고 밝혔다.

 

그동안 촛불대행진은 서울 청계광장 길섶 등지에서 많게는 평균 1000여 명 규모로 일주일에 한 번씩 매주 토요일에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이날은 세종대로 3개 차로에 걸쳐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인 시민들은 다음과 같은 손팻말을 일제히 들었다.

"주가조작 허위경력 김건희 특검!"

"무능 무지 거짓말 윤석열 퇴진!"

 

여고생 교복을 입고 충북 진천에서 올라온 두 명의 참석자는 기자에게 "학력 위조와 논문 표절을 일삼은 김건희를 풍자하려고 이렇게 옷을 맞춰 입고 왔다"라면서 "이번에 진천에서 10명이 같이 왔는데, 모두 2016(박근혜 퇴진) 촛불을 함께 들었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서 공연한 가수 리아는 무대에서 "'바이든'이라고 말한 윤 대통령의 말을 '날리면'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 이래 최대의 거짓말"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촛불행진은 오는 22일 전국 시민들이 총집결하는 촛불 집중 집회를 서울에서 열 예정이다.

촛불행진을 이끌고 있는 김민웅 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페이스북에 "8월 초 (윤석열) 퇴진 촉구 집회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시기상조 분위기가 있었지만 이런 기류가 뒤집어지고 있다"라면서 "윤석열 정부는 국가를 이끌고 갈 수 있는 동력은 사라지고 억지와 막무가내, 뻔뻔함으로 내달아 국민적 저항을 맞았다"라고 강조했다.

 

안진걸 소장은 이날 거리 행진 직전 다음처럼 외쳤다.

"1022일 촛불대행진에 100만 명이 넘게 모일 것입니다. 시민혁명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윤근혁(bulgom) 오마이뉴스

 

 

한국 대통령 연설에 한국 현실이 없다

자유’ 21번 강조한 첫 유엔총회 기조연설

추상적 구호뿐북한 등 당면과제 실종

대통령님의 국정철학을 들어보니 지금 당장 유엔사무총장 하셔도 손색이 없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20(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7차 유엔총회에서 취임 후 첫 기조연설을 한 이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윤 대통령과 면담에서 이 같은 말을 했다고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기자들에게 밝힌 내용이다. 구테흐스 총장이 실제 이런 말을 했는지 여부와 별개로, 윤 대통령의 연설 내용이 유엔의 입장에서 듣기 좋은 말로 가득차 있었던 건 사실이다. 김 수석이 전한 말은 유엔사무총장인 내가 할 말을 당신이 했다는 취지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어 보인다.

 

영국·뉴욕·캐나다로 이어진 윤 대통령의 이번 해외 순방은 조문 불발과 당초 예고했던 것과 상당히 다른 한일·한미 정상회담, 그리고 비속어 발언 파문 등의 논란이 매일 터져나왔다는 점에서 거의 총체적 난국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대형 사고가 없었더라면 이번 순방에서 가장 논란이 됐을 부분은 바로 윤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이었다.

 

윤 대통령은 자유와 연대라는 제목의 11분 연설에서 자유21, ‘유엔20번 언급했다. 그다음으로 많이 등장한 단어는 국제사회’(13), ‘연대’(8) 등이었다. 윤 대통령의 연설은 자유진영의 연대를 강조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이 말은 미국이 세계패권에 도전하는 중국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싸잡아 적으로 규정할 때 쓰는 표현이다. 결국 연설 요지는 자유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미국 중심의 자유진영이 강한 연대를 통해 결집함으로써 현재 중국과 러시아의 행동을 저지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윤 대통령은 연설에서 북한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국이 유엔회원국이 된 이후 지금까지 30년 동안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언급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 문제를 매번 강조했던 문재인 정부와 달리 북한보다 더 큰 문제를 고민하는 글로벌 중추국가임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한국 대통령의 자격으로 유엔총회 연단에 선 윤 대통령의 연설로 적절한 것이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국가의 대표로 참석하는 유엔총회 연설은 그 나라가 필요로 하는 구체적 행동을 제시하는 자리이지 정치철학 설파의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연설은 자유와 가치 연대와 같은 추상적 구호에 머물 게 아니라 한국의 당면과제이자 사활적 문제인 북한 비핵화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한국 대통령의 비전을 제시하고 유엔회원국들의 적극 협력을 강조했어야 한다.

 

더욱이 미중 전략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유엔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지고 북한·러시아의 노골적인 핵위협에도 유엔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비등해지는 상황이다. 핵확산금지조약(NPT) 검토회의에서 결과문서조차 채택하지 못해 위기에 빠진 국제비확산체제의 영향이 한국에 고스란히 미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 대통령의 이 같은 연설 내용은 너무 한가하고 공허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다자외교에 정통한 전직 관료 출신의 한 외교전문가는 이번 윤 대통령의 연설을 두고 다른 나라 대통령들의 연설과 비교해보면 한국 대통령의 연설이 왜 부적절하고 미흡한지 한눈에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총회의 주제가 분수령의 순간(watershed moment)’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보다 적극적으로 한국의 현실을 국제사회에 각인시키고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촉구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지자체가 시민단체의 ATM? 전국 예산 전수분석했더니 “0.2% 안팎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1916일 서울시청에서 서울시 바로 세우기를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사회 지원 예산 자료를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17개 광역자치단체가 시민사회에 지원하는 마을공동체 활성화 사업 등 예산이 전체 예산의 0.1~0.2% 수준이라는 국책연구기관의 보고서가 나왔다. 서울시가 지난해 시민사회 지원 예산을 쟁점화한 것을 계기로 광역지자체의 실제 재정지원 규모를 처음 검증한 결과다.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진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시민사회 지원과 관련해 정책 일관성을 강조했다.

 

2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지난 8월 펴낸 지방정부의 시민사회정책 및 시민사회 공익활동 지원사업 현황조사보고서를 보면 서울시 등 17개 시·도의 2021년도 본예산 중 시민사회 공익활동 활성화 정책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사업내역 1446개의 예산은 모두 2288억원이었다. 각 시·도별로 시민사회 활성화 예산이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광주시(1.85%)를 제외하고 모두 0.1~0.2% 안팎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서울시는 지난 10년간 시 곳간이 시민단체 전용 ATM기로 전락했다며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기간(2011~2020) 예산을 비판했는데, 그 해 서울시의 시민사회 활성화 예산은 일반회계 전체 예산 277257억원의 0.23%641억원이었다.

 

분석 대상이 된 예산을 유형별로 보면, 마을공동체 활성화가 693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은 기타 시민참여 활성화(주민자치 등) 443억원, 자원봉사 활성화 364억원, 공익활동 직접 촉진(비영리단체 공모 등) 317억원, 보훈단체 지원 222억원, 국민운동단체 지원 109억원, 민주시민·인권교육과 평화·통일 관련 사업 101억원, 소비자단체 지원 36억원 등이다. 연구진은 국민운동단체 등 법정 단체 지원 예산 비중이 19.2%란 점을 들어 특정 단체의 육성과 지원에 보다 집중됐다시민사회 활성화 정책이 미진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국무조정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발주한 과제를 보사연이 수행해 지난 8월 제출한 것이다. 지자체 예산편성 운영기준을 참고해 세출예산 성질별 통계목 중 민간경상보조’ ‘민간단체 법정운영비 보조’ ‘민간위탁’ ‘자치단체 경상보조등에서 관련 예산을 추려내고, ‘시민’ ‘주민’ ‘사회적자본센터’ ‘도시재생지원센터등 열쇳말로 관련 예산을 추가로 파악했다.

 

연구진은 각 시·도의 시민사회 현황과 지자체의 시민사회 활성화 제도도 분석했다. 그 결과 시민참여와 시민사회와의 협치에 기반한 정책 기조와 지역 현실에 근거한 구체적인 시민사회 활성화 정책 수립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광역시·도는 20205월 제정된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에 따라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에 관한 기본계획을 수립할 수 있지만, 현재까지 수립된 지자체는 없으며 관련 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지자체가 다수라고 밝혔다. 연구진이 공익’ ‘참여’ ‘자치13개 열쇳말로 검색한 결과 11개 시·도가 시민사회 활성화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중앙정부에 대해서도 시민사회 활성화 관련 법률(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을 위한 기본법 등) ·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중앙정부와 지자체 사이의 정책 일관성을 높일 수 있도록 소통·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표준 방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치 권력의 교체로 정책의 불안정성이 예측되는 현재 시민사회 관련 정책의 연속성, 안정성,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사연이 이 보고서를 제출한 직후인 지난달 7일 국무조정실은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에 관한 규정을 폐지하는 입법예고를 공고했다. 시민사회에선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경향 허남설 기자

 

 

요양시설이 나을까 집이 나을까?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도입 이후 요양시설은 20081332개에서 20214057개로 늘었다.연합뉴스

 

거의 20년 전 일입니다. 2004년 여름 저는 충남 아산시 보건소에서 공중보건의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맡은 일 중 하나가 방문 진료였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분들의 집으로 찾아가 진료하는 일이죠.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환자 두 분이 있습니다. 중풍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60대 여성인데 고혈압 환자였습니다. 대소변 관리가 잘 되지 않아, 대변이 방바닥에 많이 묻어 있었습니다. 집으로 들어갈 때 신발을 정말 벗어야 하나 잠시 망설였던 기억이 납니다. 함께 사는 아들은 어머니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환자는 임신성 고혈압으로 인한 뇌출혈로 생긴 전신마비 환자였습니다. 기적적으로 엄마와 아이는 살았고, 남편과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키우며, 지극정성으로 그녀를 돌보았습니다. 이 가족의 이야기는 2004KBS 인간극장에서 사랑한다, 더 많이 사랑한다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습니다. 하지만 경제활동과 돌봄 사이의 외줄타기가 이어졌습니다. 가족이 적극적으로 생계 활동을 이어가자니 돌봄이 부족해지고, 적극적으로 간병을 하자니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되는 진퇴양난에 빠지는 것이죠.

 

당시 이분들에게 제공되는 국가의 돌봄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환자 모두 어떻게든 요양시설에 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첫 번째 할머니는 사실상 방치되고 있었고, 두 번째 가족은 간병 부담으로 인해 가족들의 삶의 질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이 맞는 결정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분들과의 만남은 제가 보건·복지·돌봄 제도를 다루는 경제학자가 되기로 결심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간병으로 인한 사회문제가 심각해지자 우리나라는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장기요양보험)을 도입했습니다. 이는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과 더불어 국가가 국민에게 가입을 강제하는 다섯 번째 사회보험입니다. 장기간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 누구에게나 올 수 있지만, 개개인이 이를 위해 미리 간병에 필요한 비용을 준비하는 것이 어려우니 국가가 (가입을 강제하는) 사회보험의 형태로 나선 것입니다.

 

집에서 지내고 싶어도 요양원 선택하는 현실

장기요양보험은 65세 이상 노인(혹은 65세 미만이라도 치매·중풍 등 노인성 질환을 가진 사람)6개월 이상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인정조사 과정을 통해 장기요양인정점수를 산출하여 요양 등급을 결정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그림 1과 같이 요양 등급은 총 6개로 나뉩니다. 장기요양인정점수가 95점 이상인 분들은 일상생활을 다른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거의 침대에 누워서 생활하는) 분들로 1등급을 받습니다. 인정점수 75점 이상 95점 미만이면 2등급, 60점 이상 75점 미만이면 3등급 이런 순서입니다. 1~2등급은 요양원을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며, 3~4등급은 집에 요양보호사가 찾아오는 재가 서비스만 이용 가능합니다.

 

그런데 장기요양보험은 아무래도 한정된 자원으로 운영하다 보니 노인이 집에서 지내기에 충분한 돌봄을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1~2등급을 받은 분들의 재가 서비스 월 한도액이 각 167만원, 149만원 정도입니다. 이는 하루 최대 4시간 정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수준입니다(이 중 15%는 본인부담금으로 지불합니다). 하지만 이분들은 사실상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보건복지부의 2019 장기요양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인원 중 47%가 재가 서비스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1~2등급을 받으신 분들 중에 집에서 지내고 싶지만 요양원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요양원은 하루 6~65000원의 20%만 부담하면(월 약 40만원) 24시간 돌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양보호사가 노인들 여러 명을 돌보는 형태로,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보통 노인 3~4명 이상이 한 방에서 공동생활을 합니다. 개인이 부담하는 비용은 비보험인 식비 및 이미용 비용 등을 포함해 대략 월 65~80만원 정도입니다.

 

3~4등급인 경우는 최대 3시간 정도 재가 서비스가 가능합니다. 이분들은 특별한 사유가 아니고는 요양원에 갈 수도 없습니다. 결국 가족이 경제활동을 하려면 보험 혜택이 없는 추가적인 간병비가 들어가니 이러한 틈을 요양병원이 채우고 있습니다. 등급 외 판정을 받았거나, 3~5등급을 받았으나 돌봄의 필요가 여전한 경우, 차선책으로 요양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양병원은 원칙상으로는 질병 치료나 재활을 목표로 합니다(그래서 건강보험에 의해 비용이 보조됩니다). 그러나 요양원처럼 입원을 위한 특별한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꿩 대신 닭처럼 요양병원에 입원하곤 합니다.

 

요양병원의 병실당 평균 병상은 6~7개로 역시 단체생활입니다. 요양병원의 입원비는 4~6인실의 경우 입원료는 약 40~50만원(1~2인실의 경우 비용이 크게 상승)이나 간병비 부담이 큽니다. 6인실에 간병인 한 명을 두는 경우 월 60만원, 간병인 두 명을 둔다면 월 120만원이 추가로 듭니다. 가령 고관절 수술 등을 했거나 해서 간병 부담이 큰 경우 개인 간병인을 두게 되는데, 이때 간병 비용은 최소 월 300만원입니다.

 

이제 현실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했으니 오늘의 주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해보겠습니다. 바로 돌봄이 필요하신 부모님에게 요양원·요양병원이 나을까, 집이 나을까?’입니다. 물론 재정적인 여유가 충분하면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고급스러운 시설에서 맞춤형 돌봄을 제공하는 시설에서 지내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좀 더 일반적인 형태를 상정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언론에서 일부 요양원의 실태를 보여주는 기사를 보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노인들은 군대처럼 아침 6시에 일어나야 하고, 기저귀를 가는 정해진 시간까지는 변을 보아도 기다려야 하기도 합니다. 극단적인 경우이겠지만, 일주일에 하루 정해진 시간에만 목욕할 수 있기에 (치매로) 온몸에 대변을 발라도 정해진 날까지 기다려야 하기도 합니다. 2022년 선진국에 진입한 대한민국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적지 않은 노인들이 처한 현실입니다.

 

이렇듯 요양원이 이상적인 돌봄과는 괴리가 크지만, 그렇다고 꼭 집이 더 나은 것은 아닙니다. 돌보는 이나 거주지의 상황이 열악하다면 부족하나마 시설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겠죠. 제가 20년 전 방문 진료를 통해 만났던, 집에 대변이 낭자했던 할머니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그렇기에 장기요양보험에서는 이런 경우 3~4등급인 분들도 요양원 입소를 허락합니다. 그래도 일반적으로 노인들에게 편안하고 익숙한 곳은 집입니다. 노인들은 개인 사생활이 제한되는 단체생활을 힘들어합니다. 필요한 돌봄과 의학적 처치가 충분히 가능하다면 집이 더 좋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20178, 여의도에서 정부의 치매국가책임제 관련 본인부담상한제 도입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연합뉴스

 

판정 등급에 따른 노인의 삶 추적했더니

그렇다면 현행 제도의 재가 및 시설 서비스가 필요한 도움을 충분히 제공하는지, 가족이 정상적인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지, 또한 어르신의 건강에는 어떤 것이 더 나을지 따져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시설과 재가 서비스 각각의 이용자를 단순 비교해서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습니다. 돌봄의 필요가 더 많을수록, 건강이 더 나쁠수록, 또 돌보아줄 가족이 없을수록 시설에 입소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따라서 시설에 계신 노인들이 재가 서비스를 받는 노인들보다 더 아프다고 해서 이게 시설 혹은 재가 서비스 때문인지 다른 요인 때문인지 알 수 없는 것이지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제 연구를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박사과정 시절에 장기요양인정점수가 거의 같으나 등급 판정이 아슬아슬하게 갈려(95, 75, 51점 전후) 받는 혜택이 달라지는 노인의 삶을 추적하는 연구를 하여 공공경제학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지인 저널 오브 퍼블릭 이코노믹스(Journal of Public Economics)에 게재했습니다(Kim and Lim, 2015). 이러한 연구 방법을 회귀-불연속 설계라 합니다.

 

결과는 노인의 상태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먼저 95점 전후의 전적으로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비교해봅시다. 95(1등급) 노인은 94.9(2등급) 노인에 비해 집에 있을 확률이 큽니다. 시설 입소로 인한 본인부담금 차이 때문입니다. 95(1등급)이면 하루 65190원의 20%인 약 13000원을, 94.9(2등급)이라면 약 12000원을 냅니다. 하루 1000원 차이지만, 이런 작은 차이에도 시설 입소의 확률이 2%포인트 줄었습니다. 이분들을 추적해보니 시설 혹은 재가 서비스로 인한 사망 여부, 건강 상태에는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계신 분들은 시설에 입소하신 분들에 비해 의료비 지출이 크게 줄었습니다. 의료비를 적게 지출함에도 같은 건강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기에 집에서 지내는 게 이득이었습니다.

다음은 75점 전후의 상당 부분도움이 필요한 분들입니다. 75(2등급)이라면 시설 입소가 가능하나, 74.9(3등급)이라면 집에서 지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둘은 거의 비슷한 사람들임에도, 아슬아슬하게 2등급을 받으면 시설을 선택할 확률이 크게 증가합니다. 이분들이 시설에 더 많이 입소한 결과 자녀의 돌봄 부담이 실제로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노인의 질병, 사망 및 의료비 지출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노인 처지에서는 (특별한 건강 및 재정상의 이득도 없이) 아무래도 집보다는 불편한 시설에 가신 것이지만, 자녀 처지에서 보면 자유로운 시간을 얻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51점 전후의 일정 부분도움이 필요한 분들입니다. 51(4등급)이라면 재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50.9점이면(치매가 아니라면) 아무런 도움이 없습니다. 4등급을 받아 다만 하루에 2~3시간 도움을 받는다 할지라도 가족들의 돌봄을 크게 줄여주지도, 노인의 건강을 증진하거나 의료비를 감소시키지는 못했습니다. 돌봄에 지친 가족이 숨 좀 돌리는 정도의 시간 여유 같은, 통계에 잡히지 못하는 도움이 될 수는 있었겠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요약하면 노인들에게는 재가 서비스가 (시설 서비스에 비해) 일반적으로 더 나은 선택지였습니다. 돌봄을 제공하는 가족에게는 시설 서비스가 더 많은 자유를 주겠지만 말입니다.

 

당시 제 연구는 아쉽게도 자료 부족으로 가족의 경제활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러한 자료도 가능해져서 후속 연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노인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의학적 치료가 긴급히 필요하지 않는 한) 집에서 충분한 돌봄을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의 돌봄은 현재 하루 4시간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장기요양보험료 두 배 인상에 동의해야, 하루 8시간 재가 서비스, 그리고 더 양질의 시설 서비스가 가능해질 터인데, 단기간에 쉽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돌봄을 제공할 건강한 배우자가 없는 한) 300만원이 넘는 막대한 추가적인 간병비를 감당할 수 있는 노인들만이 돌봄이 필요할 때 집에서 그나마 안락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노인 돌봄의 시설화를 낳았습니다. 장기요양보험 도입 이후 요양시설은 20081332개에서 20214057개로 늘었습니다. 장기요양보험과 무관한 요양병원도 덩달아 증가해서 2008690개에서 20211464개로 늘어났습니다(그림 3참조).

시사IN 최예린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노인이 원하는 곳에서 적절한 돌봄을 받을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즉 어느 정도 돌봄의 탈시설화가 필요합니다. 돌봄이 필요한 노인이 좀 더 (시설보다는) 재가 서비스를 택할 수 있도록 수가를 조정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중장기 과제로서 장기요양보험료 인상을 통해 재가와 시설 서비스 모두의 양적·질적 개선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급격한 노령화가 진행되는 현실은 지금 수준의 서비스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장기요양보험료 부담이 크게 증가할 것이 예견됩니다.

 

간병 인력이 모자란 것도 문제입니다. 지금은 내국인과 중국 동포만이 가능한 간병인 공급의 확충이 필요합니다. 홍콩의 외국인 간병인 모델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홍콩에서는 노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쇼핑하고 산책하는 모습을 우리나라보다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한국도 존엄한 노년을 위해 간병과 돌봄을 위한 좀 더 다각적인 방안이 강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 문헌

Kim, Hyuncheol Bryant, and Wilfredo Lim. "Long-term care insurance, informal care, and

medical expenditures." Journal of public economics 125 (2015): 128-142. 시사인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 및 정책학과 교수)

 

 

내돈안산리뷰 조작단보름이면 플랫폼 상품랭킹 상위권

리뷰 건당 3500기업형 광고실행사 기승

업체 엑셀 파일엔 쿠팡 리뷰 조작 현황 담겨

쿠팡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돈을 받고 상품 리뷰를 작성해주는 기업형 리뷰 조작 사건들이 성행해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 픽사베이

 

판매 랭킹’ 100위권 밖 오메가310’ 상품으로 만드는 데 보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리뷰 알바수백명에게 상품을 구매시킨 뒤 상품평을 쓰게 하고,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해당 상품 검색량을 높이는 방법으로 차츰 순위를 올렸다. 매뉴얼에 따라 체계적으로 진행된 일종의 플랫폼 여론 조작이었다. 그들에게 판매 랭킹은 의뢰인이 건넨 돈의 액수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는 고무줄 같았다.

“‘작업 리뷰달고 트래픽까지 넣으면 1페이지로 올릴 수 있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는 자신을 광고 실행사ㅈ업체의 김아무개 부장이라고 소개했다. “오메가3 상품 판매량을 올리고 싶다고 문의하자, 쿠팡에서 검색했을 때 10페이지 밖에 노출되는 상품을 1페이지까지 끌어올리는 데 대략 보름 정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단기 속성으로도 가능하지만, 너무 빨리 순위를 끌어올려 작전으로 의심받지 않으려면 시간을 두고 작업하는 게 안전하다고 추천했다.

 

김 부장의 설명은 과장이 아니다. <한겨레>가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엑셀파일에는 ㅈ업체가 지난 829일부터 913일까지 약 2주 동안 쿠팡에서 진행한 190건의 리뷰(상품평) 작업 현황이 담겨 있다. ‘6회차라고 이름 붙은 파일 안에는 리뷰 작업을 진행한 플랫폼명(쿠팡)과 실제 작업을 진행한 날짜, 상품명, 리뷰 작업자 이름, 쿠팡 아이디, 은행 계좌번호 등이 적혀 있다. 플랫폼 입점 업체로부터 리뷰 작업 의뢰가 들어오면, 김 부장이 작업자들에게 상품명과 리뷰 작업 내용 등을 전달해 일사불란하게 리뷰 조작이 이뤄지는 과정이 담긴 문건이다.

 

작업은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리뷰 의뢰를 받은 상품의 검색·판매량 등 특징을 분석해 하루 최소 10개에서 최대 500개까지 리뷰 작업 개수를 정하고, 순위가 올라오는 결과를 본 뒤 추가 리뷰 작업을 벌이는 방식이다. 김 부장은 자신의 회사가 수백명의 국내 리뷰 작성자를 확보하고 있다며 이들이 각자 상품을 구매한 뒤 리뷰를 작성해 불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쿠팡에서 발 지압 받침대' 상품의 리뷰 1개를 작성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약 2만원이다. 리뷰 의뢰인은 상품 구매 비용 16000원 안팎과 리뷰 작성료 3500원을 각각 작성자와 업체 쪽에 지급한다. 업체는 리뷰 작성료 3500원 중 2500원은 자신들이 갖고 1000원은 작성자에게 보낸다. 김 부장은 리뷰 2000건 이상을 구매한 기업들도 많다고 말했다.

 

실구매 리뷰 비용이 부담스러우면, 의뢰인이 리뷰 작성자에게 빈 박스를 보내고 상품평을 다는 편법도 가능했다. 의뢰인 쪽에서는 리뷰 작성자에게 보내야 할 상품 비용을 아낄 수 있다. 하루 1000명씩 해당 상품 페이지에 방문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트래픽 작업은 20만원짜리 추가 옵션이었다. 댓글 수와 상품 검색 빈도수, 판매량 등이 함께 늘어야 판매 랭킹이 올라가는 알고리즘을 노린 전략이다.

플랫폼에 번진 제로섬 게임, 리뷰 조작

취재 과정에서 만난 광고 실행사들은 대부분 플랫폼에서 리뷰 조작이 이뤄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내비게이션 전문이라고 소개하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특화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업체도 있었다. 판매 순위와 상품평을 보고 상품 구매를 결정하는 플랫폼 경제에서 이런 플랫폼 여론 조작은 이미 산업 곳곳에 퍼져 있었다.

 

김 부장은 쿠팡, 네이버, 올리브영, 무신사 같은 곳에서 물건을 판매할 때 대기업들도 모두 작업을 하고 시작한다. 순수하게 자발적인 리뷰로만 장사하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ㅈ업체는 누리집에, 지난 6년간 업무를 의뢰한 고객사가 2300여곳에 이르고, 고객사 1곳당 평균 1500만원의 매출이 상승했다고 홍보했다. 케이티(KT), 에스케이(SK)플래닛, 넷마블, 하이마트 등 300개 이상 업체와 제휴를 맺고 있다고도 밝혔다. 취업포털에 등록된 ㅈ업체의 한해 매출은 89억원이다. 이 업체는 최근 한 중앙일간지가 주관한 브랜드 만족도 조사에서 광고대행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온라인에는 비슷한 일을 하는 광고 실행사가 넘쳐난다. 온라인 비즈니스 정보 공유 누리집 셀클럽게시판에 댓글 광고를 문의한 지 10분여 만에 카카오톡으로 여러 견적서들이 날아왔다. 이커머스 상품 리뷰 1개에 4000,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상품평은 개당 5만원, 맘카페 바이럴 홍보는 10만원 안팎의 단가가 형성돼 있었다. 당근마켓 타임라인 중간에 올라오는 동네상점 광고 글에서 단골맺기는 1500, 후기 작성은 건당 5000원의 가격이 제시됐다. 구글 지도나 내비게이션 등에서 주변 음식점을 검색할 때 노출되는 상점 리뷰와 별점도 건당 5000원에 작업이 가능했다. 상품 리뷰 기준 최소 30개부터 의뢰가 가능하고, 대량 작업일 때는 할인도 가능했다.

 

광고 실행사들은 상품 랭킹을 높이려면 슬롯을 사용한 트래픽 작업도 필수라고 권했다. ‘슬롯이란 특정 상품의 검색량 트래픽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매크로 프로그램의 일종이다. 1슬롯당 유효 검색량으로 잡히는 트래픽이 100이 되는 것을 기준으로 5만원 안팎이 들어간다.

 

쿠팡 등 일부 플랫폼 기업이 리뷰 조작을 사실상 방치하거나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네이버는 과거 드루킹 뉴스 댓글 조작사건 등 논란을 겪은 뒤 비정상적으로 몰리는 트래픽과 댓글을 점검하고 있지만, 쿠팡은 트래픽과 조작 리뷰를 걸러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쿠팡은 이에 대해 자체 상품평 운영 정책을 통해 목적에 맞게 작성된 게시물만 노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쿠팡의 자체 브랜드(PB) 상품 리뷰 조작 의혹을 제기한 권호현 변호사(법률사무소 현명)쿠팡이 광고실행사나 댓글 의뢰자를 적발해 영업방해 혐의로 고발하거나 강력한 억제책을 내놓을 수 있다. 하지만 쿠팡 입장에선 댓글을 통한 이용자 유입과 상품 판매 수수료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자신들이 직접 자사 브랜드 상품에 우호적인 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을 받는 상황에서 입점 업체까지 단속할 명분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민 의원은 가짜 상품평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다. 중소 상인들은 쓰지 않아도 되는 돈을 쓰는 제로섬 게임 상황에 놓이게 돼 중소상인 전체에 큰 부담이 된다고 지적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어떻게든 갚으려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막다른 선택, 노인파산

개인파산신청자 중 60대 이상이 37.7%. 은퇴한 아버지에게 아들이 손을 벌렸다. 임대주택 보증금 담보로 빚을 냈다. 아들 회사가 망했다. 직장 구하러 간다기에 카드를 줬다. 아들이 뭘 먹는지 카드사가 알려줬다. 아들이 사라졌다. 새 카드빚이 남았다.

 

60대 부부는 IMF 때 빚을 내서 돈을 빌려줬다. 지인이 잠적했다. 20개의 카드를 돌렸다. 집과 상가가 압류됐다. 채권자가 차라리 도망가라했다. 파산하면 죄짓는 거라 생각해서 버텼다.

윤성훈씨(72·가명)가 지난 925일 자신이 사는 임대아파트에서 지팡이를 짚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윤씨는 빚 다 해결돼도 마음은 똑같을 것 같다. 자식만 돌아오면 좋겠다고 했다. / 이효상 기자

 

윤성훈씨(72·가명)2017년 빚을 졌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에 다니던 아들이 다달이 갚겠다며 손을 벌렸다. 수중에 목돈은 없었는데 껄렁거리는 애도 아니고 지 책임은 완수했던아들을 믿고 빚을 냈다. 윤씨가 홀로 살고 있는 국민임대주택 보증금을 담보로 저축은행에서 1400만원을 빌렸다. 아들의 회사가 문을 닫기 불과 몇 달 전이었다.

 

하루아침에 실직한 아들은 백방으로 새 일자리를 구했지만 자리를 잡지 못했다. 하루는 차를 끌고 윤씨의 집에 오더니 직장 구하러 멀리 가는데 기름값이 없다고 했다. 윤씨는 자신의 카드를 아들에게 건넸다. “이것도 다 갚아야 하는 빚이니 많이 쓰지는 마라. 밥은 굶지 마라고 했다. 한동안은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전해졌다. 어디서 얼마치 기름을 넣었는지, 어디서 뭘 먹었는지, 아들이 카드를 쓸 때마다 카드사가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고는 카드사에서도, 아들에게서도 아무런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아들이 카드빚만 1700만원을 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아들은 자취를 감췄다. 이후 한 번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윤씨에게는 3000여만원의 빚이 남았다. 몸이 멀쩡해도 70대 노인에게는 버거운 금액이다. 건설회사 현장직으로 일했던 윤씨는 은퇴 전 포클레인에 부딪혀 왼쪽 다리뼈가 산산이 부서졌다. 개인사업자인 포클레인 기사를 보호하기 위해 산재신청은 하지 않았기에 장해급여도 나오지 않았다. 다리는 펴지지 않고,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 위에서 보낸다. 그렇다고 돌봐줄 가족도 달리 없다.

 

소박하게 꿈꿨던 은퇴 후의 삶은 이내 비참해졌다. 하루가 멀다고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에서 돈을 갖다 썼으면 줘야죠. 빨리빨리 줘야죠라고 다그칠 때마다 피가 말리고 심장이 벌렁벌렁,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말이 무서운 게 아니라 돈을 빌리고도 갚지 않았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옥좼다. 윤씨는 빚지고는 못산다. 없어서 못 주고 있는데 죽을 맛이었다고 했다. 더 무서운 건 보증금을 담보로 낸 저축은행 빚이었다. “압류가 들어올지 모른다, 내일 당장 집에서 쫓겨나 길바닥에 나앉을 수 있다는 생각에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다. 잠들지 못하는 새벽이면 30년 전 사별한 아내의 사진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됐다. 그마저 이웃과 시민단체의 도움이 없었다면 생각지 못했을 방안이었다. 빚을 면책받을 수 있는 개인파산신청도 검토했지만 포기했다. 담보대출 받은 1400만원을 아들 통장에 바로 입금한 것이 문제가 됐다. 파산·면책에 까다로운 법원이 아들의 연락 두절을 완전히 입증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컸고, 윤씨가 대출받은 재산을 은닉한 후 고의로 파산을 신청했다고 의심할 여지도 있었다. 대신 채무를 조정한 후 분할상환하는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채무 원금은 3100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줄였고, 매달 6~7만원씩 갚아나갔다. 지난해 윤씨는 친지들의 도움을 얻어 집 보증금을 담보로 받은 대출을 최종 상환했다. 현재는 카드빚 120만원이 남아 매달 2만원 남짓을 갚고 있다. 이조차 그에겐 큰돈이다.

 

노후라는 건 생각할 수가 없다.” 아무리 계산해봐도 윤씨의 숫자에는 여유가 없다. 기초연금 307500원에 더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생계급여·주거급여로 약 8만원을 받는다. 부양의무자가 없음을 완전히 증명하지 못해 급여가 깎였다. 여기서 월세가 7만원, 관리비 7만원이 또 나간다. 2만원대의 통신비도 고정 지출이다. 남은 20만원 남짓의 돈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 한 달에 6~7만원을 갚아야 했던 지난해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오르는 물가를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통닭이라도 한번 먹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 만원돈 할 때도 못 사먹었는데 2만원이 넘어서. 창피스러워서 누구한테 말은 못 하고. 어쩌다 저녁에 나도 모르게 숨이 멈춰지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파산하는 고령층이 늘고 있다. 법원행정처 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 기준 60세 이상 개인파산신청자는 7752명으로 전체 파산신청자의 37.7%를 차지했다. 파산신청자 10명 중 4명이 고령층이다. 2015년만 해도 전체 파산신청에서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22.0%50(36.1%), 40(29.6%)에 뒤졌다. 그러다 2019년 들어 60세 이상의 파산신청이 40대를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50대마저 추월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다른 세대와의 격차를 더 벌리면서 고령층 파산 증가가 구조적 흐름으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고령 인구가 늘어나는 인구 구조의 변화가 주요한 원인이 됐다. 하지만 모두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전체 인구에서 60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518.5%에서 202124.7%로 늘었다. 같은 기간 22.0%에서 35.2%로 늘어난 60세 이상 파산신청자의 증가세보다 완만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위를 다투는 높은 노인빈곤율, 자산과 근로 능력이 없을 때만 면책이 가능한 파산제도의 경직성, 부족한 사회안전망이 노인파산 증가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쳤다.

 

주간경향이 접한 60세 이상 고령층은 크게 두가지 경로로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 윤씨처럼 자식의 경제적 위기가 고령의 부모에게 전이된 사례가 적지 않았다. 특히 코로나19는 이미 근로 능력을 잃은 고령층을 직접 공격하기보다는 자녀들을 위기에 빠뜨리는 방식으로 노인파산을 앞당겼다. 해묵은 빚에 오랜 시간 고통받다 근로 능력을 잃은 고령층이 돼서야 파산·면책의 조건을 충족해 파산신청을 하는 이들도 많았다. 길게는 1997IMF(국제금융기구) 외환위기 때부터 이어진 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로 빠르게 몸집을 불렸고, 대개 가정과 일상을 파괴했다.

2019112일 서울 성북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70대 노모와 40대 딸 3명이 하늘나라로 간다는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월세, 건강보험료 등을 연체한 네모녀의 집 우편함에 여러 신용정보회사에서 온 우편물이 꽂혀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빚의 연대, 가족

가족은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위기가 발생할 때 1차 저지선 역할을 한다. 자녀의 불행을 감당하기 위해 고령층이 빚을 내고, 반대로 자녀가 부모의 빚을 감당하는 경우도 있다.

 

올해 69세인 A씨는 개인파산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카드사 등에서 빌린 돈 2000만원을 갚지 못했다. 대출금 일부는 생활비로 썼고, 일부는 자녀에게 보냈다. 결혼한 큰 아이는 다니던 직장에서 몸을 다쳤고, 이후 재취업을 못 했다. 미혼인 둘째는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다니던 직장이 문을 닫았고, 현재는 아르바이트로 살아가고 있다.

 

A씨는 내 입 하나 먹는 거는 문제 없다. 아가 몸이 아프고 직장이 옳지 않으니 나는 안 써도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죽겠다카는데 엄마가 죽는 게 낫지 애를 죽일 순 없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단돈 500만원일지라도 갑자기 목돈이 필요할 때 고령층은 위기에 봉착한다. 은퇴 이후라 뚜렷한 수입원이 없고 유동성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60세 이상 연령층의 평균 자산은 48914만원이다. 이중 부동산 등 실물자산이 4198만원으로 전체 자산의 82.2%를 차지한다.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성 자산은 많지 않다는 얘기다.

 

일정한 소득원이 없는 노인가구라면 타격이 더 클 수 있다. 2021년 노인가구의 전년도 평균 소득은 2521만원이었다. 이들의 소득을 5구간으로 나눴을 때 하위 20% 가구(소득1분위)는 평균의 절반 수준인 1237만원을 벌었다. 2021년 노인가구가 사회보장제도 등을 통해 받은 공적이전소득이 1013만원이었던 만큼 소득1분위 노인가구는 스스로 벌어들인 소득이 거의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A씨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보험설계사 일과 미분양 아파트 분양 업무를 하고 있지만 좀처럼 계약을 따내지 못했다. 보험 고객관리가 안 돼 계약이 해지되면 오히려 받은 수당을 토해내야 했다. 보다 안정적인 벌이를 위해 요양보호사, 아이돌보미 자격증을 따서 며칠간 실습을 해보기도 했다. 아픈 무릎이 말을 듣지 않아 이내 그만뒀다. 일을 해서 갚으려고 해도 방법이 없다. 병원에 가봤냐는 질문에 A씨는 병원에 가면 안 된다. 병원 가면 오만가지 검사할 텐데 혹시 뭐라도 진단받으면 얼마나 (돈이) 깨지겠냐고 했다.

 

파산까지 이르지 않았지만, 자식의 빚 변제에 노후용 자산을 모두 투입한 사례도 있다. 60B씨 부부는 30대 아들의 사업이 코로나19로 운영이 불가능해지자 모아둔 은퇴자금 7000만원을 아들 빚 변제에 썼다. 그러고도 아들 빚을 다 갚지 못했다. 가족은 위기의 1차 저지선으로 기능하지만, 위기가 감당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면 붕괴가 시작된다. 금융취약계층의 채무조정 상담을 돕는 서울금융복지센터가 2020년 센터를 경유해 파산을 신청한 1108명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1인 가구가 50%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은퇴자금을 모두 써버린 B씨의 가족은 관계를 유지할 힘도 잃어가고 있다.

 

오래된 빚

노인파산에 이르는 또 다른 경로는 오래된 빚이다. 전라남도금융복지센터의 올해 상담내역을 보면, 채무 연체기간이 15년 이상인 경우가 812(31.2%)으로 가장 많았다. IMF 때 발생한 빚을 일부만 변제하면서 시간을 끌다 보니 대부분은 원금보다 많은 빚을 감당하고 있었다. 당시의 공격적인 채권추심에 주민등록이 말소되거나 주소지를 등록하지 못하거나, 통장도 만들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생활고와 싸우다 보니 혹은 사회적 도피로 인해 재기할 때를 놓치기도 했다.

 

번듯한 세탁소를 운영하던 62C씨 부부가 돈 못 갚은 죄인이 된 것은 1997IMF 직전의 일이다. “잠깐만 쓰고 돌려주겠다는 지인의 말에 C씨 부부는 빚을 내 돈을 빌려줬다. “곧 갚겠거니하고 3부 이자로 1000여만원을 빌려 지인에게 건넸다. 처음 세탁기계를 살 때, 아파트 상가 건물에 입주할 때 여기저기서 빚을 냈던 C씨 부부는 지인의 금전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악재가 이어졌다. 돈을 빌려준 지인이 잠적했다. IMF가 터지고 세탁비는 절반으로 떨어졌다. 1000만원만 빌려도 3부 이자면 월 이자가 39만원이 붙는다. 이자 막기에 급급하니 그때 풀리기 시작한 카드를 20개씩 썼다. 갚을 날짜가 돌아오면 20개 카드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느라 세탁소 일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카드 한도가 갑자기 줄면서 대환대출(앞선 대출금을 갚기 위한 대출)을 받기 위해 친지들을 보증인으로 세웠다. 그래도 막지 못했다. 2003년 살고 있던 집과 세탁소가 있던 아파트 상가가 압류됐다. 단칸방으로 옮겼고, 네 식구가 밥을 굶는 날도 있었다. 1000여만원으로 시작된 빚은 2억원까지 몸집을 불렸다. 남편 D씨는 일수까지 썼다. 하루에 12만원씩 넣어야 하는데 애들이 통닭 한마리 먹자고 하면 인상 쓰고 성질냈다. 아직도 애들이 그때 얘기를 한다. 벌이도 시원찮았지만 버는 족족 이자에 이자로 죽어나갔다고 했다.

 

일부의 빚이라도 탕감받을 수 있는 개인회생이나 파산제도가 있었지만 C씨 부부는 이를 이용하지 않았다. 빚을 졌으니 어떻게든 갚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C씨 부부는 2018년에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제도를 통해 채무를 일부 감면받았다. 55만원씩 빚을 갚아나갔는데 코로나19가 겹치면서 제때 돈을 넣지 못해 효력을 잃었다. 당뇨 합병증으로 C씨의 망막이 괴사해 병원비로 큰돈이 들어간 것도 돈을 갚지 못한 이유 중 하나였다. C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된 이후에야 파산신청을 검토하게 됐다.

 

C씨는 오죽하면 채권자가 도망가라고 했겠나. 인간적으로 도리가 아닌 것 같아 그렇게 하기는 싫었다. 파산하면 죄를 짓는 거라고 생각했다신용사회니까 신용을 잃으면 죽는 줄 알았다. 그러다 신용불량자가 됐고, 형제들에게 보증 서달라, 돈 좀 빌려달라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취약계층의 채무조정을 상담하는 주빌리은행의 유순덕 이사는 “IMF나 금융위기 때 청년 혹은 중년이었던 사람들이 고령층이 돼 채무를 정리하기 위해 오는 경우가 많다채무를 조정하는 방법을 모르다 보니 일하는 것도, 갚는 것도 포기하면서 살았다. 일찍이 채무를 조정해 일하게 했다면 세금을 내면서 노후생활을 했을 텐데 지금은 세금으로 부양해야 하는 취약계층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 83일 서울 종로구의 한 무료급식소에 노인들이 줄지어 서 있다. / 문재원 기자

 

험난한 파산

노인이 돼 비로소 법원의 파산·면책 결정을 받을 조건을 갖췄기에 노인파산이 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젊어서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고통받다가, 재산도 없고 근로 능력이 없는 인생 후반부에야 제도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고령층 파산이라고 마냥 쉬운 건 아니다. 아들에게 돈을 빌려준 윤씨는 재산은닉으로 의심받을 걸 우려해 파산신청을 하지 않았다. A씨 역시 빚을 내 산 10평 남짓 땅이 파산의 걸림돌이 될까봐 우려하고 있다. A씨는 기획부동산에서라도 일을 해보려다 이 땅을 억지로 샀다. 사실상 채용 조건부로 빚을 내 매입한 땅이었다.

 

전북 군산지역에서 취약계층의 채무조정을 돕는 살맛나는 민생실현연대 문규옥 사무국장은 지역 회생법원별로 파산·면책 결정 비율이 다르고, 같은 지역에서도 파산관재인별로 요구하는 서류도 크게 차이가 난다. 통신사 기지국의 위치정보나 가족과의 통화내역을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어르신들이 준비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변호사를 찾아가려면 없는 형편에 수백만원이 든다고 했다.

 

대전지역에서 취약계층 금융상담을 하는 민생네트워크 새벽의 임태영 이사장은 장기간 고생하다 60~70세를 넘겨 면책 결정을 받아도 재기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젊었을 때 파산 결정이 이뤄져야 취업을 하든, 자영업을 하든 재기할 수 있고 사회 환원 기회도 부여된다. 하지만 청년들은 노동력이 있다고 간주돼 파산이 까다롭다. 파산제도가 거꾸로 가고 있다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룰라 지지한 브라질 1020세대

브라질 대선이 치러진 2(현지시간)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 지지자가 간절한 표정으로 개표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브라질 대선 1차 투표에서 좌파 성향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이 48%대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청년세대의 지지에 힘입었다. 룰라 지지율은 16~24세에서 가장 높은데, 대선에 참여하려고 유권자로 등록한 16~18세 청소년이 200만명으로 이전 선거에 비해 47% 급증했다. ‘보우사 파밀리아등 강력한 복지 혜택을 누린 아이들이 룰라 지지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포르투갈 식민지배와 군부독재를 거친 브라질은 빈부격차가 극심했다. 노동운동가 출신 룰라는 2002년 대선에서 모든 브라질인의 하루 세 끼를 보장한다는 공약을 걸고 집권했다. 대표적인 보우사 파밀리아6~17세 자녀를 둔 빈곤 가정이 자녀를 학교에 입학시키고 예방접종을 받게 하면 현금급여를 지급하는 식으로 빈곤의 세대 이전을 막고자 했다. 현금은 가정의 어머니에게 전달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했다. 제도 시행 이후 브라질의 빈곤율은 200422.4%에서 20158.7%로 급감했고, 3600만명이 빈곤에서 탈출했다. 저소득층 및 다인종 학생들도 백인 중산층처럼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룰라를 지지하는 18세 유권자 로레나는 좋은 정책이 있어야만 세상은 바뀐다고 말했다. ‘남미의 트럼프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정치적 실패에 비하면 룰라의 부패 혐의나 수감 이력은 이들에겐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올해 76세인 룰라가 청년층 의제인 성소수자 인권, 인종차별, 기후변화에 공감하는 점도 지지 이유로 꼽힌다.

 

12세에 구두닦이로 일하기 시작한 룰라는 1980년 브라질노동자당을 창당해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바 있다. 보수 엘리트가 지배하던 브라질에서 그는 공감의 정치를 열었다. 201090%가 넘는 높은 지지율로 퇴임하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모든 정책의 최우선” “부자들을 돕는 게 투자라고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왜 비용이라 하는가라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코로나19 이후 브라질은 실직인구가 1200만명을 넘겼고, 배고픔에 시달리는 이들도 다시 늘었다. 청년들은 다시 한번 룰라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오는 30일 룰라와 보우소나루가 맞붙는 결선투표에 브라질의 미래가 달렸다./ 경향 최민영 논설위원

 

 

고등학생이 그린 윤석열차김건희와 칼 든 검사들 탑승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금상부천국제만화축제 전시

부천만화축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금상 수상작 <윤석열차>. 온라인 커뮤니티 누리집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이 전시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3일 폐막한 제23회 부천국제만화축제 전시장에 고등학생이 그린 <윤석열차>라는 제목의 그림이 전시됐다. 이 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경기도·부천시가 건립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개최했다.

 

작품을 보면, 윤 대통령의 얼굴을 한 기차가 연기를 내뿜으며 달려가고 있고, 기차에 놀란 시민들이 피하는 모양새다. 기차를 조종하는 기관사 자리엔 김건희 여사로 보이는 인물이 앉아 윤 대통령에게 뭔가 말하고 있고, 뒤로는 4명의 검사가 줄지어 칼을 치켜든 채 타고 있다. 기차에는 ‘2’라는 숫자가 적혀 있는데, 윤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시 기호 2번을 가리킨 것으로 풀이된다. 기차가 지나간 자리에는 부서진 건물들이 그려져 있다.

 

<윤석열차>라는 제목은 대통령의 이름 윤석열과 기차를 뜻하는 열차를 겹치게 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은 영국 아동용 애니메이션 <토마스와 친구들>에 나오는 주인공 토마스 기관차와 닮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작품은 부천국제만화축제가 지난 7~8월 진행한 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카툰 부문 금상(경기도지사상)을 받았다. 시상식은 지난 1일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진행됐으며, 수상작은 부천국제만화축제 기간(930~103) 한국만화박물관 2층 도서관 로비에 전시됐다. 이 작품은 현재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퍼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수상작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무작위로 추천한 심사위원들이 평가해 선정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쪽은 심사위원은 공정성 강화를 위해 심사위원 풀에서 선정된다이 작품뿐만 아니라 매년 수상작은 부천국제만화축제 기간에 전시하고 있다고 했다.

한겨레 정혁준 기자

유엔 부자나라 금리 인상, 세계 경제침체 부를 경솔한 도박

유엔무역개발회의, 경제 침체 경고

개도국들은 외채 위기 충격 빠질 것

물가 잡을 대안으로 가격상한제 제시

유엔이 부자나라들의 금리 인상이 개도국들에게 극심한 경제 충격을 준다고 경고했다. 기름값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로 혼란이 이어지고 있는 카리브해의 가난한 나라 아이티. 포르토프랭스/EPA 연합뉴스

부자 나라들의 금리 인상과 긴축 정책이 전세계적인 경제 침체를 부르면서 개발도상국들에 특히 큰 타격을 가하는 경솔한 도박이라고 유엔이 경고하고 나섰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3(현지시각) 내놓은 연차 보고서에서 부자 나라의 금리 인상이 개도국들에 부채 위기를 부르고 보건과 기후변화 대응에 필요한 자금 부족을 유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초저금리 시기에도 각국 중앙은행들은 물가인상 억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으며 건실한 경제 성장을 끌어내지도 못했다금리 인상을 통해 경제 침체 없는 물가 상승 억제가 가능하다는 생각은 경솔한 도박이라고 지적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등이 전했다.

 

보고서는 올해 들어 지금까지 단행된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중국을 뺀) 개도국의 미래 소득이 3600억달러(5159천억원) 가량 줄 것으로 추산하고 미국의 금리 인상이 개도국에 끼칠 악영향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를 1%포인트 올리면 이후 3년간 다른 부자나라들의 경제 생산을 0.5%, 가난한 나라들의 경제 생산을 0.8% 각각 낮추는 것으로 추산했다. 연준은 올해 들어 5차례의 금리 인상을 단행해 지난 3월까지 0~0.25%였던 기준 금리를 9152.25~2.5%까지 끌어 올렸다. 유럽연합(EU)과 영국 등 다른 부자나라 중앙은행들도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금리 인상을 이어가고 있다.

 

레베카 그린스판 무역개발회의 사무총장은 제네바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기침체의 벼랑 끝에서 물러설 시간이 아직은 있다“(중앙은행들의) 현재 정책 방향은 개도국의 가장 취약한 계층에 고통을 주고 세계를 경기침체에 빠뜨릴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기존의 2.6%에서 2.5%로 하향 조정하고, 내년에는 성장률이 2.2%로 더 둔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내년 말까지도 전세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 예상되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지난해 4분기부터 전세계 금융 상황이 악화되면서 개도국에서 자금이 순유출되고 있으며 현재 46개 개도국이 다양한 경제 충격으로 극심한 타격을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당한 정도의 충격을 겪고 있는 나라도 48개국에 이른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이어, 미국 달러 강세 속에서 개도국들이 자국 통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쏟아부은 자금이 이미 3790억달러(543조원)에 달했으며 이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새로 개도국에 제공한 특별인출권’(SDR) 액수의 2배에 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도국들의 이런 노력에도 여전히 많은 나라가 자본 이탈을 막지 못하면서 외채 위기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보고서는 우려했다. 보고서는 스리랑카의 경우 올해 초부터 지난 7월까지 달러 대비 자국 통화의 가치가 77.8%나 떨어졌으며 라오스(34.4%), 가나(32.1%), 튀르키예(31.4%), 수단(29.7%) 등도 극심한 통화 가치 하락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 보고서는 정책 결정권자들이 에너지와 식료품 부족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금리인상보다 가격상한제 등 직접적인 물가 대책에 집중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필요한 재원은 전세계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큰 이익을 챙긴 에너지 기업 등에 대한 일회성 초과이익세부과로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일본, 북 미사일에 주민대피 지시기시다 폭거, 강력 규탄

일본 공영방송인 <엔에이치케이>(NHK)는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북한 탄도미사일 관련 속보를 보도하고 있다. NHK 갈무리

북한이 4일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5년 만에 일본 상공을 통과해 태평양에 떨어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본 정부가 일부 지역 주민에게 대피 지시를 내리는 등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일본 공영방송인 <엔에이치케이>(NHK)는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북한 탄도미사일 관련 속보를 보도하고 있다.

 

 

빨간바지 '그녀'가 몰고 온 열풍... 강남이 들썩였다

[도시연구자 경신원의 '' 이야기] 복부인

 

1980년 임권택 감독은 사회고발 블랙 코미디 영화 <복부인>을 제작해 광복절 단성사에서 개봉했다. 주연은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한혜숙이 맡았고, 서울에서만 15761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는 생활비 문제로 남편과 말다툼을 벌이던 주인공(한 여사)이 운 좋게 아파트 입주 청약에 당첨되어 하루아침에 500만원이라는 큰돈을 벌게 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복부인이 된 한 여사는 토지사기단과 함께 부동산 투기에 가담해 거액의 재산을 모으게 되지만, 결국 사기단에게 재산을 모두 빼앗기고 경찰에 연행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복부인

임권택 감독의 영화, <복부인> 포스터 임권택

 

영화 <복부인>의 결말과는 달리, 우리 사회의 복부인은 강남의 투기 현장을 거침없이 누비고 다녔다. 종종 복부인의 상징처럼 표현되는 '빨간 바지'는 연희동의 '그녀',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씨를 빗대는 표현이었다. 이들은 '어떤' 지역이 '언제' 개발되지 미리 아는 듯했다. 복부인들이 휩쓸고 간 지역은 어김없이 땅값이 올랐고 그녀들은 엄청난 시세차익을 챙겼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 강남의 토지 가격은 1년 사이에 10배 이상 뛰어올랐다. 19631(3.3 m2)400원 하던 강남의 토지 가격은 19702만원, 197510만원, 그리고 1979년에는 40만원으로 폭등했다. 16년 만에 토지 가격이 1000배나 오른 것이다. 강남 일대의 토지는 집중적인 투기의 대상이 되었다. 일부 상류층 가정주부들도 강남 개발 열풍에 합류했다. '투기를 위해 복덕방을 수시로 출입하는 상류층 부인'을 의미하는 복부인이라는 신조어를 언론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1978년 특혜 분양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가 투기의 상징적인 대상이 되면서 복부인이라는 단어가 대중화되었다.

1963-1979 강남지역의 지가상승 1963-1979 강남지역의 지가상승 강남구지(1993)

 

정기수(1990)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50가구 이상의 주택을 건설하는 사업자는 공개 분양해야 한다"는 주택건설촉진법을 무시하고 정부 관리, 국회의원, 대학교수 등 고위급 인사들에게 주변 집값의 50% 수준으로 특혜 분양을 했다. 현대아파트는 분양과 동시에 5000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당시 분양가가 1평당 (3.3 m2) 44만원 정도였다고 하니, 30평 이상의 아파트 한 채 가격에 해당하는 금액이 프리미엄으로 붙은 것이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는 4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우리나라 최고의 아파트 값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1번지다.

 

강남구는 정부의 남서울 개발계획에 따라 1975년 탄생했다. 1970115일 서울시는 "과밀화되어가는 구시가지의 인구를 한수 이남으로 분산하고 새 서울의 균형 발전을 위해 남서울 개발을 추진한다"는 내용의 '서울시 도시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급팽창하는 강북의 인구를 분산하려고 정부는 강남 개발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강북의 명문 학교들을 강남으로 이전시켜 '강남 8학군'을 조성하고, 법원과 검찰청 같은 공공기관과 고속버스터미널을 강남으로 이전했다. 그 뿐만 아니라 애초 강북 왕복노선으로 계획되었던 지하철 2호선을 강남을 포함한 순환노선으로 변경해 건설했다.

강남종합버스터미널 임시 준공 197691일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이 완공되어 구자춘 시장과 운수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장되었다. 4개월 만에 급조된 고속버스터미널은 5만평의 허허벌판에 세 개의 승차장과 300평 규모의 공동정비고가 전부였다. 서울역사박물관 디지털 아카이브

 

1975년 당시 강남구의 면적은 상당히 커서 오늘날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를 모두 포함했다. 이듬해인 1976년 반포동, 압구정동, 청담동, 도곡동이 '아파트 지구'로 지정됐다. 1970년대 우리 사회는 비로소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하게 되었고, 집다운 집에 살아보고 싶은 욕구가 팽배했다. 주택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주택건설 10개년 계획' (1972-1981), '국민주택건설촉진법'(1973) 등이 제정되었고 집합주택 단지의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순자 아주머니

반포주공아파트는 1973년 대한주택공사가 건설한 최초의 주공아파트 단지였다. 99개 동으로 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평형도 22평부터 62평까지 매우 다양했다. 국내 최초로 복층 설계를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지역난방시설도 설치한 최신형 아파트였다. 분양 당시 반포주공아파트의 이름은 서울의 남쪽에 있는 아파트라는 의미로 '남서울 아파트'였다. 분양 광고에는 서울의 사대문 안인 남대문과 서울시청에서 멀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어머니의 친구분인 순자 아주머니도 반포주공아파트 분양광고를 보고 찾아 갔다가 동창들 가운데 가장 먼저 강남으로 이주하셨다. 오랫동안 불편한 단독주택에만 살다가 처음 본 아파트의 현대식 시설과 깔끔한 단지 환경에 반해 22평형을 400만 원가량에 계약하셨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가장 작은 평형이었지만, 70대 중반이 되어서도 계약하던 날의 기쁨을 잊을 수 없다고 하셨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밝았던 순자 아주머니는 다른 동창들보다 빨리 집을 장만해 부러움과 시샘을 한 몸에 받으셨다. 22평형 아파트를 사고 난 이후에도 억척같이 돈을 모아 2년 만에 반포주공아파트 32평을 1000만원에 매입해 이사하셨다. 그리고 3년 뒤, 그 아파트를 19803000만원에 매매하고 대치동에 미분양된 청실 아파트 43평을 3600만원에 매입해 전세를 준 뒤 특파원으로 발령받은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떠났다. 3년 만에 3배가 오른 것이다. 반포주공아파트는 대학교수들이 많이 살아서 교수 아파트로 불리던 고급 아파트였다. 강남의 아파트 가격은 해를 거듭할수록 올랐다.

 

'강남'이라는 지역에 대한 세인의 관심과 비판은 점점 더 벌어지는 강남과 비강남 지역간의 격차에서 비롯된다. 최근 5년간 강남 3구와 이를 제외한 나머지 비강남구(22개구)의 평균 아파트 매매가의 차이는 2배 가까이 증가했다. 2022426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전국주택가격조사에 따르면, 20223월 강남 3구의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은 203080만원, 비강남구는 97436만원이었다. 20173월 강남 3구와 비강남구의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의 차이는 54989만원이었으나 5년 뒤 그 격차는 105,644만원으로 벌어졌다. 1970년대 서울의 균형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강남은 오늘날 오직 3%만이 거주할 수 있는, 사회적 양극화의 대표적인 공간이 되어버렸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 권우성

 

밀레니얼을 설득할 근거

1990년대 초반 사람들은 강남의 낡은 아파트를 버리고 너도 나도 꿈의 신도시, 특히 제2의 강남인 분당으로 향했다. 1년 이상 앞당겨져 완성된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에 따라 우리나라 총 주택(1989년 기준 645만 호)33%가 지어졌다. 연평균 10% 이상의 높은 인구성장률을 기록하던 서울의 인구가 1990년에서 1995년 사이에 -3.6%로 처음으로 감소했다. 주택가격도 1991년을 기점으로 처음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전국의 주택 가격 상승률이 -2.1%, 서울은 -0.5%를 기록했다. 주택보급률도 199174.2%에서 199792%로 꾸준히 상승했다.

 

이는 비단 주택공급의 확대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신도시에 대한 열망은 강남을 떠날 만큼 강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의 규제뿐만 아니라 '전국의 돈을 끌어들이는(고재학, 2018)' 강남이 갖고 있는 지역적 가치를 비강남권이, 비수도권 지역이 갖도록 하는 것이다. '2, 3의 강남 만들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영끌까지 해가며 강남진입을 서두르는 X세대와 밀레니얼들에게 굳이 강남에 살지 않아도 될 이유가, 그들을 설득할 타당한 근거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고재학, '강남 아파트'라는 괴물 <한국일보> 2018. 7. 2.

정기수, 부의 '명문' 압구정동, 그늘 없는 아파트촌 <시사저널> 1990. 12. 27.

오마이뉴스

 

 

NLL포기' 선동과 '쇠고기 협상' 파동, 그리고 윤석열의 '전쟁'

이명박·박근혜보다도 '정치 기술'에 무능하다?

윤석열 정부는 '정치 기술'에도 참 무능한 정부다. 박근혜 정부, 이명박 정부 시절보다도 더 무능하다. 여기 두 가지 예시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NLL을 포기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201210월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 정문헌 당시 의원(현 종로구청장)200710월 남북정상회담 기록을 토대로 주장한 내용이다.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이명박 정부 통일비서관을 지내고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던 인물이다.

 

국정원이 갖고 있던 비공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내용은 뜬금없이 길거리에서 유출됐다. 폭우가 쏟아지던 20121214일 대선을 불과 닷새 앞두고 박근혜 당시 후보를 지원하는 부산 유세에서, 김무성 당시 의원은 부산 진구 서면 거리 길거리 단상에 서서 비를 맞으며 노무현과 김정일의 대화를 7분간 줄줄 읽어내려갔다. 국기문란과도 같은 일이 다반사이던 시절이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정권을 잡은 박근혜 정부가 검찰력을 동원해 막상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열어보니 NLL 포기 발언은 초본에도, 수정본에도 어디에도 없었다. NLL 포기 발언은 오히려 김정일 위원장이 했다. 게다가 NLL은 포기되지도 않았고,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어진다). 새누리당은 당시 이 스캔들을 대선 전후의핵심 이슈로 부상시키고, 전 정권도 아니고 전전 정권(노무현 정부) 때리기로 이용한다.의도는 뻔했다. 노무현 정부가 영토(NLL이 영토가 아니라는 건 이 글에서 따질 일은 아니다)를 포기했다는 이미지를 뒤집어 씌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해봐야,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이 스캔들을 떠올린 건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파문' 때문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아마추어리즘'은 여기에서 돋보인다.과거 새누리당은남북 정상회담 대화 극히 일부를 NLL 포기 발언으로 뒤집더니, 불리해지자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초본 수정 논란으로 프레임 전환을 시도했다. 당시 여론 상황만 보면, 잠시지만일부 성공하기까지했다.무려'비밀문서'소재다.버젓이'비속어영상'존재하는지금과완전히다른데,지금국민의힘은과거와같은'정치기술'시전하려하고있다.

 

아무리 양보해도 국민 세 명 중 두명은'바이든'으로 들렸고 '욕설'이 들렸다고 하는 상황이다. 단순 해프닝을 눈덩이처럼 키워놓았지만, 여론은 냉랭하다. 왜냐하면 욕설 영상은 비밀 문서도 아닌데다, 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바이든이든, 날리면이든) 논쟁이 여지없이 즉각적 반응을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에 대한 '진상 규명'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이미 유권자는 모두 각자 판단을 내렸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수사에 나선다면 윤석열 대통령을 제일 먼저 조사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여의도에 이미 퍼져 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작품'으로 MBC'광우병 선동' 프레임이있었다.2008년 촛불 시위의 본질은 '광우병 선동'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 첫해 정무적 참사로 기록된'한미쇠고기협정'의 졸속 협상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그해 418일 체결한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턱을 대폭 낮춰 미국에 '선물'을 안겨줬다. 특히 30개월 미만 미국산 소의 특정위험물질(Specified Risk Material, SRM)까지 수입을 가능하게 한 부분은 2000년대 초반부터 논란이 있어 온 공장식 축산과 도살로 인한 '광우병 소'에 대한 학계의 경고를 무시했다는 지적으로 이어졌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충분한 정무적 판단 없이 '화끈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한미 동맹 복원'(복원을 하려면 이미 폐허가 있어야 한다. 망가진 적 없는 '한미동맹 복원' 구호는 보수 진영 선거 전략의 교과서다.) 차원에서 밀어붙인 사안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여론에 밀려 두 번의 재협상을 해야 했다.그런데이걸'선동된대중'밀린것으로서사를다듬었다.자신들은잘못이없고,우매한대중이잘못해서벌어진일이란것이다.

28일 서울 마포구 MBC 본사 앞에서 박대출 MBC 편파·조작방송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 위원장(오른쪽부터)과 권성동 과방위원, 박성중 국민의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뉴욕 발언 보도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에선 '아침이슬'을 부르던 이명박 정부는, 뒤에서 '누구 돈으로 촛불을 샀는지' 뒤지면서 희생양을 찾고 있었다. MBC가 걸려들었다. 다소 과장이 있을 수 있을지언정, MBC <피디수첩>은 충실하게 광우병 담론의 역사를 보도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국민의힘은 MBC의 보도가 광우병의 위험을 필요 이상으로 부각시키는 바람에 '촛불 좌파 좀비'들이 선동에 놀아나 '한미 동맹' 훼손과 정부 전복을 획책한 것이란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정무적 판단 없이 밀어붙인 정책 실패는 '국민이 선동당했다''국민책임론'으로 둔갑했다. 그렇게 몰아가는 게 정권의 '자기 최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역대 정부와 비교했을 때 근근한 지지율로 국정을 이끌어간 가장 허약한 정부였던 것으로 기록됐다.

 

지금 국민의힘과 보수 언론은 "광우병 선동"과의 싸움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부여한 서사를 재활용하고 있지만 녹록지 않아보인다. 애초에 사과하고 넘어갔더라면, 며칠의 비판만 감수하면 될 일이었는데 이젠 돌이키기도 어려운 상황이 돼 버렸다.

 

낮은 지지율에 허덕이는 윤 대통령은 전가의 보도와 같은 '한미동맹 복원(다시 말하지만 폐허가 된 적이 없다)'을 내걸고 다자 외교 무대에서 무리하게 '양자 외교'를 추진했다. '흔쾌히' 합의됐다던 한미 정상회담은 불발됐고, 뒤늦게 일정을 만들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장에 들어가 48초 짧은 환담을 했다. 무엇을 '복원'한다는 것인지 모호한 상황에서 미국과 양자 정상회담 자체에 매몰되며 공허한 순방이 돼 버렸다.

 

그 때 터진 게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영상이다. 혼잣말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영상이나 취재 기자의 귀에 포착되면 뉴스가 된다. 이건 저널리즘의 간단한 상식이다. 저녁 식사하러 갔다가 옆방에 유력 정치인들의 모임을 알아채고 '귀대기'를 통해 엿들은 말도 뉴스가 되고, '사적인 식사 자리'에서 오간 거친 말들이라도 정치인들은 일단 지면에 나온 말들 자체는 인정해 왔다. 그런데 대통령이 "국회 이XX"이라는 말과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발리면'인지, '발리믄'인지 "쪽팔려서 어떡하냐"는 비속어를 섞어 누군가에게 '일침'을 날리고 있는 모습이 영상과 녹취로 잡혔는데, 이걸 뒤집겠다고 꺼내 든 게 하필 또 MBC.

 

무려 "한미 동맹의 뿌리를 흔드는"일을 획책하고 있다고 한다. 148개의 언론이 합세하여 한미동맹의 뿌리를 흔드는 일을 획책한다고 믿는 게 합리적일까, 윤석열 대통령 단 한명이 사적 대화에서 욕설이 섞였다는 걸 인정하는 게 합리적일까.

 

공교롭게도 2008년 촛불시위처럼, 이번 파문도 '외교 참사'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국민의힘은 '역공'에 나서면서프레임 전환을 시도한다. 이게 될 리가 있을까.윤석열 정부는 정치 기술에 관애서는 이명박 정부보다, 박근혜 정부보다 더 무능한 모습이다. 왜 그럴까.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이XX' 발언을 할 때 옆에서 동행했던 박진 외교부장관은 2008년 한미쇠고기협상의 졸속 협상 파문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었다.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2011년에 공개한 2008626일자 주한미국대사관 비밀 전문에는 제임스 신 미국 국방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박진 당시 의원이 618일 만찬에서 나눈 대화를 기록했다. 박 의원은 이 자리에서 이명박 정부의 한미쇠고기협상에 반대하는 촛불집회를 두고 "한국은 너무 많은 민주주의(too much democracy)를 가졌다"고 추측했다.이런분을데리고정치를하니,정치가있을까걱정스럽다.

 

대중이 너무 많은 민주주의를 가졌다는 인식 위에서 '대통령 비속어 영상' 스캔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라면, 이 정부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보다 더 박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대중이 선동당했다고 생각하기 전에, 스스로 '자기 최면'을 건 것은 아닐까 먼저 성찰해 보는 게 정치인이 갖춰야 할 기본 태도다. 사적 대화일지라도, 눈앞의 사실을 보도하는 게 저널리스트의 기본 태도인 것처럼.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

 

 

'그랜저 값에 팔린 해외광산자원안보도 '흔들

한국광해광업공단이 수백억 원의 손실을 보면서도 해외자산을 잇따라 매각한 건 경영정상화를 위한 구조조정이 최우선 순위였기 때문이다. 광해광업공단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동안 완전 자본잠식 상태를 이어왔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출범 직후 해외자원개발 혁신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광해광업공단에 대한 대대적 구조조정에 나선 이유다. TF는 이듬해 3월 광해광업공단이 보유한 모든 해외자산을 매각한다는 방침을 확정·발표했다.

문제는 해외광산 줄매각이 광해광업공단 재무구조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광해광업공단 부채는 201754300억원에서 지난해 72642억원으로 지난 정부 5년간 2조원 가까이 늘었다. 광해광업공단은 지난해 영업이익(2160억원) 90.4%를 이자비용으로 지출하기도 했다. 정부가 해외 시장에 매각 시그널을 보낸 데다 광해광업공단도 가격보다 처분에 방점을 찍으며 가격협상력을 스스로 낮춘 결과다.

 

원금 회수율이 60%에 불과했던 칠레 산토도밍고 구리 광산은 헐값 매각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다. 해외광산이 현대자동차 그랜저 1대 가격에 팔린 사례도 있다. 광해광업공단이 240만달러(35억원)에 사들인 캐나다 셰익스피어 구리 광산 지분은 20173만달러(4300만원)에 팔렸다.

 

국부 유출 우려도 커졌다. 정부가 자원안보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확보해야 할 핵심광산을 오히려 경쟁국에 넘기고 있어서다. 실제 광해광업공단이 지난 5년간 처분한 주요 해외자산은 장내 매각된 셰익스피어 광산을 제외하면 모두 현지 기업에 넘어갔다. 캐나다 자원개발업체 캡스톤이 헐값에 사들인 산토도밍고 광산이 대표적이다. 호주 물라벤 유연탄 광산과 캐나다 로즈몬트 구리 광산도 각각 현지 광산업체인 얀콜과 허드베이가 인수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해외자산이 정치적 논리에 따라 처분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자원 개발을 적폐로 낙인찍지 않았다면 자원안보 핵심인 해외광산을 전량 매각하는 결론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란 시각에서다.

 

해외자원 개발 동력도 사라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해외자원개발 특별융자사업예산은 20103093억원에서 지난해 349억원으로 약 10년 동안 89% 줄었다.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참여 중인 해외자원개발 사업은 2013535건에서 지난해 401건으로 25% 감소했다.

 

한편 광해광업공단의 자본잠식 상태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국회에 제출한 공공기관 2022~2026년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 따르면 광해광업공단 자본잠식은 2025년까지 이어진다./아시아경제 세종=이준형 기자

 

 

대기업 기부 줄이고 中企는 접대비 늘렸다을의 비애

코로나19 발생 이후 연 매출 1조원이 넘는 대기업이 내는 기부금 규모는 2년 연속 감소했다. 반면 연 매출 100억원 이하 중소기업이 접대비로 지출한 금액은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많이 버는기업들의 지갑은 점점 닫혀가지만 상대적으로 적게 버는중소기업은 사업을 위해 점점 더 많이 접대해야 하는 고달픈 갑을(甲乙) 공화국의 한 단면이다.

3일 국민일보가 국세청 국세통계포털(TASIS)에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법인세 규모별 신고 현황 점유비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934900억원이었던 매출 1조원 초과 법인의 기부금 납부액은 202032953억원, 지난해에는 31236억원으로 2년 연속 줄어들었다.

 

전체 법인의 기부금 중 이들 대기업이 낸 기부금 비율도 201966.0%에서 202063.9%, 지난해는 59.4%로 계속 감소했다. 그나마 전체 법인이 낸 기부금 규모는 코로나 사태가 확산한 202051546억원으로 전년 대비 1330억원 줄었다가 이듬해 52586억원으로 2019년 수준을 회복했다.

기부금에서는 매출 1조원 초과 기업 등 대기업 비중이 크다. 정부 관계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면서 대부분 대기업이 사회공헌 프로젝트 등을 운영하면서 기부금에서 대기업 비중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국내 전체 법인의 매출은 2017(46611504억원)부터 지난해 53808714억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그러나 법인의 매출 대비 기부금 비율은 여전히 0.1%에 불과했다.

 

반면 접대비에서는 중소기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컸다. 지난해 전체 법인의 접대비 중 매출 100억원 이하 법인이 지출한 접대비 비율은 55.5%였다. 이 비율은 201750.4%에서 해마다 꾸준히 늘어왔다. 매출 100억원 이하 법인의 접대비 지출 총액도 201753696억원에서 지난해 63172억원으로 4년 새 17.6% 증가했다.

 

서울 지역의 한 세무사는 중소기업일수록 원청이나 거래처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보니 접대비 지출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이 지출하는 접대비 규모도 2017106501억원에서 2020117468억원까지 꾸준히 늘다가 지난해에야 113740억원으로 소폭 줄었다. 법인 전체 매출에서 접대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 5년간 0.2%로 기부금 비율보다는 2배 높았다.

 

법인세 실적 자료를 통해 기부금과 접대비 규모를 확인할 수 있는 건 기부금에 대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세 당국은 기부금과 마찬가지로 접대비 규모 역시 파악해 세액공제를 한다. 사업과 직접 관계가 없는 대상에게 금전이나 물품을 지급하면 기부금으로, 사업 관련자에게 금전이나 물품을 주면 접대비로 간주한다. 기부금과 달리 접대비는 세액공제에 일정 한도를 둔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부동산 활황기' 10명 중 3명은 '임대 목적' 주택 구매했다

심상정, 2020~2022년 주택자금조달계획서 분석

2020년 이후 주택 구매자 10명 중 3명이 실거주가 아닌 임대 목적으로 주택을 구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 상당수는 집값 상승기에 '갭투자'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4일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주택자금조달계획서(2020~20228)를 분석한 내용을 보면 개인 주택구매자 1506085(연령 미상 제외) 중 임대 목적으로 주택을 구입한 매수자는 433446(28.7%)인 것으로 확인됐다.

 

임대 목적으로 주택을 구매한 이들은 집값이 폭등하던 2020년 상반기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 급격히 증가했다. 당시 41719명에서 136612명으로 1년 만에 227%가 늘어났다. 특히 2020년 상반기에서 2020년 하반기까지는 87.9%로 반기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이후 집값이 하락하기 시작한 2021년 하반기부터 전기 대비 30%가 떨어지면서 주택 구매 전체 비율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감소했다.

 

연령별로는 30(24.7%), 40(24.4%), 50(19.9%) 순으로 많고, 20(12.8%)도 적지 않다.

 

이들이 구입한 주택의 평균 가격은 43493만 원으로 가격대별 비중은 3억 원 미만(50.2%)이 절반가량으로 가장 높았고, 3~6억 원 미만(26.6%), 6~9억 원 미만(12.9%) 순이었다.

 

9억 원 이상의 고가 주택 구매자도 44411(10.3%)을 차지했다.

 

이들이 구입한 주택 유형은 시기별로 달라지는데 2020년 상반기에는 서울 아파트가 48%로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으나 2020년 하반기와 2021년 상반기까지는 경기·인천 아파트, 2021년 하반기 이후 비수도권 지역의 주택에 대한 매수자가 증가했다.

 

주택구매자금은 자기자본 35.1%, 금융기관 대출이나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 등 외부차입금 등 62.9%였다. 외부차입금이 아예 없는 경우(32672)를 제외하면, 이들 전체의 외부차입금 비율은 71.8%로 높아졌다.

 

이는 실거주 목적으로 주택을 구입한 매수자(자기자본 57.9%, 외부차입금 42.1%)와는 대조적이었다.

 

심상정 의원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으면 결국은 돈을 번다는 부동산 불패 신화를 넘어서지 않는 한 실거주자의 주거안전은 어렵다""정부는 임대사업자에 대한 과도한 혜택 및 상생임대 제도와 같이 다주택 임대인의 특혜를 강화하는 정책이 아니라 임대차보호법과 같이 임차인의 권리를 강화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

 

신규주택 공급부족론은 철저히 파산했다

미디어와 전문가들의 주택시장 상승론은 어디로 갔나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집값 급등 원인으로 공급부족을 꼽은 언론사 헤드라인. 사진=한국금융신문, 머니투데이, 한국경제, 에너지경제 보도 헤드라인(-)

 

지난해 연말과 올해 초 압도적 다수의 미디어와 자칭타칭 전문가들은 2022년 주택시장이 상승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들이 주택시장 상승을 전망하면서 내놓은 주된 근거는 신규주택 공급 부족이다. 그러나 주택시장이 대세하락을 본격화한 지금 신규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는 찾을 길이 없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재고 주택시장 공급량, 주택시장 가격 좌우

기억을 복기해보면 금방 알 일인데, ‘신규주택 공급부족론이 등장하는 건 늘 주택시장이 상승할 때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계속된 주택시장 대세상승기에 날마다 등장했던 신규주택 공급부족론이 대세하락이 본격화되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처럼 2008~2013년까지 이어진 서울 부동산 시장의 대세하락기에도 신규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버블 세븐 위주로 주택가격이 폭등했던 노무현 정부 시기엔 하루가 멀다 하고 신규주택 공급부족론이 미디어를 채웠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듯 신규주택 공급부족론은 주택가격이 올라가고 투기가 기승을 부릴 때만 등장하는 프레임이다. 이를 간략히 정리하면 '상품가격은 수요공급곡선으로 설명이 가능한데, 주택가격이 폭등한다는 건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는 신호이니 정부는 세금이나 대출 관리로 수요를 억제하지 말고 재건축 및 재개발 관련 규제를 전부 풀고 강남 등을 대체할 대체지를 발굴해 신규 주택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그래야 주택가격이 안정된다' 정도가 될 것이다.

통계청이 202111‘2020년 주택소유통계발표했다. 조사 결과 총 주택 18,525,844호 중 개인소유주택은 15,968,279호였다. 또한 일반가구 20,927천 가구 중 주택을 소유한 가구는 11,730천 가구(56.1%)였으며, 이중 주택을 1건만 소유한 가구는 8,539천 가구였다. 사진=통계지리서비스SGIS

 

하지만 신규주택 공급부족론자들의 곡학아세와는 달리 주택시장 가격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신규주택 공급량이 아니라 재고주택 시장의 공급량이다. 통계를 살펴보면 이런 사실이 명확해진다. 2020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전체 주택 수는 18,525,844호다. 한편 근래 5년간 신규 주택생산량은 연평균 전체 주택 총수의 4% 남짓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서 주택시장은 96%의 재고 주택시장과 4%의 신규 주택시장으로 구성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당연히 재고 주택시장의 공급량이 주택시장 가격의 향배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대한민국 전체 주택 수는 18,525,844호인데 이 중 1세대 1주택자 수가 8,539,421호다. 즉 총 주택 수 18,525,844호에서 1세대 1주택을 뺀 1천만 호가 다주택자 소유이거나 법인소유라는 것이다. 즉 실거주와 무관하며 재고 주택시장의 54%를 차지하는 다주택자 및 법인소유 물량 중 상당량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는 대신 투기적 가수요가 없거나 적다면 시장은 하향안정될 것이고, 다주택자 및 법인이 소유물량을 움켜쥔 채 매물을 내놓지 않는 대신 투기적 가수요가 많다면 시장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

 

기준금리 급상승과 함께 사라진 신규주택 공급부족론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주택시장 경착륙은 기존 재고 주택시장의 매물 폭증과 투기적 가수요의 소멸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발생했다. 물론 기존 재고 주택시장에서의 매물 폭증과 투기적 가수요의 소멸을 야기케 한 방아쇠는 한국은행을 포함한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돌진적으로 추진 중인 기준금리 인상이다.

 

재고 주택시장에서의 매물 잠김 현상 및 투기적 가수요의 폭발적 증가를 가능케 한 유동성 홍수 시대가 속절없이 저물고 긴축 시대가 도래하자 재고 주택시장에서는 숨어 있던 매물들이 눈사태처럼 쏟아지고, 영원할 것 같던 투기적 가수요는 아침 햇살에 사라지는 가을 안개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주택시장에서 96%를 차지하는 재고 주택시장의 매물이 쏟아지고, 투기적 가수요가 순식간에 퇴장하자 주택시장은 빠른 속도로 대세하락 중이다. 이제 시장 어디에서도 신규 공급이 부족하다는 소린 찾을 길이 없고 대신 윤석열 정부가 공언한 ‘250만 호 + a’의 주택공급이 계획대로 진행될까 근심하는 목소리만 가득하다. 3%대 기준금리가 유지되면서 신규 공급폭탄까지 더해진다면 주택시장의 대세하락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핀 것처럼 신규주택 공급부족론은 완벽히 난파했다. 그러나 단언컨대 장래 주택시장이 원기를 회복하고 상승 흐름을 본격적으로 타는 국면이 오면 신규주택 공급부족론은 좀비처럼 부활해 미디어를 또 다시 빼곡히 채울 것이다.

 

 

<민언련 시시비비>는 신문, 방송, 포털, SNS 등 다양한 매체에 대한 각 분야 전문가의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 주

기자명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범보수 대권후보 한동훈 '1' '선두' 보도 언론사 주의 제재

매일경제·서울경제 등 24개 언론사 주의제재신문윤리위 “5명 지지율 오차범위 내에 있어 우열 가릴 수 없어

 

범보수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 조사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면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오차범위 내에 있음에도 ‘1’ ‘선두등의 표현을 쓴 24개 언론사가 일제히 주의제재를 받았다.

지난 1일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홈페이지에 올린 윤리위 소식지를 통해 매일경제, 서울경제, 이데일리, 뉴스핌통신, 강원도민일보, 연합뉴스, 뉴스1, 전국매일신문, 부산일보, 세계일보, 중앙일보, 국민일보, 남도일보, 강원일보, 조선닷컴, 한경닷컴, 국제신문, 뉴시스, 매일신문, 대전일보, e대한경제, 파이낸셜뉴스, 영남일보, 경북일보 등 총 24개 매체에 주의제재를 내렸다고 밝혔다.

 

지난 730일부터 31일까지 이틀간 여론 조사기관 리서치뷰가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3%의 지지율을 얻었다. 이어 홍준표 대구시장(12%), 오세훈 서울시장(11%),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10%),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9%) 순이었다.

 

그러나 이 여론조사는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다. 한동훈 장관이 다른 후보들보다 6.2% 포인트 앞서야 ‘1’ ‘선두등의 표현을 쓸 수 있다.

미디어오늘  박서연 기자

 

한국엔 청천벽력,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겨눈 것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17일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전기차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AP Photo

미국이 구축해온 국제무역질서를 미국 스스로 허물고 있다. 이미 수년에 걸쳐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은 체스 게임의 체크(장기에서는 장군’)”를 외치는 순간에 해당한다. 한국과 유럽연합(EU)의 무역 당국은 ‘WTO 제소를 시사하고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미국이 WTO 제소가 무력하도록 이미 판을 깔아놓았기 때문이다.

 

지난 8,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IRA는 진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부자 증세로 7400억 달러를 조달해 기후위기 대처’ ‘복지 강화등에 사용한다. IRA는 미국의 산업정책을 위한 법률이기도 하다. 미국은 그동안 금융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적극 육성하는 대신 제조업은 해외에 맡겨왔다. 그랬던 미국이 제조업을 다시 자국 영토 내로 되돌리려 한다. 한국·독일 같은 제조업 강국들로서는 IRA를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바이든 정부가 제조업 강국들에게 겨눈 단도의 이름은 세액공제(tax credit)’. 미국 소비자가 어떤 제품을 샀을 때 그 비용 중 일부를 정부 예산으로부터 돌려받는 제도다. IRA 세액공제의 대상은 미국산전기차, 청정에너지 등이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소비자들이 세액공제로 대폭 할인된 미국산 전기차와 청정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면 탄소 배출 감소는 물론이고 미국 산업도 육성할 수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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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들은 전기차를 샀을 때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다만 그 전기차는 다음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첫째, 북미 지역(미국·캐나다·멕시코)에서 최종 조립된 제품이어야 한다. 한국·영국·유럽연합·일본·중국 등에서 조립되어 미국에 수출된 전기차는 세액공제를 받지 못한다.

 

둘째, 전기차 배터리를 구성하는 핵심 광물(알루미늄·흑연·리튬·니켈) 가운데 40% 이상이 미국 및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서 채굴·가공되어야 한다. 이 비율은 매년 10%포인트씩 올라가 2027년에는 80%에 도달한다. 특히 핵심 광물은 요주의 해외 법인(foreign entity of concern)’에 의해 채굴, 가공, 재활용된 것이 아니어야 한다. ‘요주의 해외는 이 부문 글로벌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중국을 의미한다.

 

셋째, 전기차의 배터리 부품(/음극재, 음극 기판, 솔벤트, 전해질 등) 역시 50% 이상이 북미산이어야 한다(2028년부터 100% 북미산).

 

IRA는 청정에너지(태양열·풍력·지열) 부문에서도 미국산 제품(태양광 패널·풍력 터빈 등)에 대한 세액공제 규모를 외국산보다 10%포인트 높였다. IRA와 별도로, 지난 9월 중순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에 따르면 미국에서 생산된 바이오 제품에만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늘리기 위해 지난 8월 초 제정된 반도체와 과학 육성법(The CHIPS and Science Act)’과 비슷한 취지다.

 

기후위기 전문가들은 IRA의 취지에 대체로 긍정적이다. 조너스 냄 존스홉킨스 고등국제연구소 조교수 등의 워싱턴포스트(812) 기고문에 따르면, “IRA는 미국 연방정부가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나선 가장 야심찬 노력으로 기후위기 정책(지구온난화 둔화)과 산업정책(미국 제조업 육성)을 결합시키려는시도다. 국가안보 차원의 대응이기도 하다. 미국은 청정에너지 등 첨단산업의 소재와 부품에서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중국은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지 않은 권위주의 국가다. 정치적 분쟁을 상대국에 대한 경제적 강압으로 해결하려는 유혹에 취약하다. 한국은 2016년 사드 배치로 중국의 경제보복을 감수한 바 있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첨단산업 지배를 우려할 이유가 충분하다.

 

다자간 무역체제는 죽었다

현대 아이오닉5 같은 한국산 전기차의 미국 시장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게 되었다.현대차 제공

한국·일본·유럽연합 등 미국의 무역 상대국이자 동맹국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현대 아이오닉5, 기아 EV6 등 한국 및 미국 이외 지역에서 만든 전기차들의 미국 시장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게 되었다. 세액공제를 받는 미국산 전기차들이 동종의 한국산에 비해 최대 7500달러까지 싸게 팔릴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제약사로부터 위탁받아 생산한 의약품을 다시 미국에 수출해온 삼성바이오로직스나 SK바이오사이언스도 만만치 않은 무역장벽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IRA는 세계무역기구(WTO)로 상징되는 그동안의 국제무역질서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산업정책을 지지하는 미국의 통상 분야 비영리기구인 미국의 번영을 위한 연합(CPA·Coalition for a Prosperous America)’ 같은 단체가 이렇게 표현할 정도다. “‘다자간 무역체제(WTO를 의미)’는 바이든 대통령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서명으로 칼에 찔려 죽었다.” 다만 이 문장의 뉘앙스는 바이든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찬사다.

 

CPAIRA‘WTO 살해범으로 단정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IRAWTO 규범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차별금지를 정면으로 거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차별금지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상품이다. ‘상품은 그 자체의 경쟁력으로 평가되어야지 국적에 따라 차별되면 안 된다는 이른바 자유무역의 이상이 WTO 조항들에 촘촘히 구현되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미국은 수입 제품미국산 제품을 차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내국민대우). 국산품에 10%, 수입품에 20%의 국내 세율(내국세율)을 부과해 후자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지 말라는 소리다. 또한 미국은 자국에 수입된 WTO 회원국들의 제품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최혜국대우). 예컨대 멕시코산에 10%, 한국산에는 20%의 내국세율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 같은 WTO의 차별금지 원칙에도 예외는 있다. 아무리 냉철한 자유무역의 이상을 들이대더라도 회원국들이 각자의 상황에 따라 보호·육성해야 하는 산업이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현실까지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IRA의 목표인 미국 산업 보호·육성을 위한 수입품 가격의 상대적 인상역시 WTO에서 전면 금지되어 있진 않다. 다만 그 수단은 관세 인상(다른 회원국과 협의 필요)으로 한정되어 있다. 내국세 제도의 변경으로 국산품의 경쟁력을 올리는 것은 명백한 WTO 위반이다.

 

미국산 전기차 관련 IRA 조항은 내국 세제 변경으로 미국산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행위다(내국민대우 위반). WTO 회원국을 미국의 FTA 체결국비체결국으로 갈라 체결국을 우대하는 배터리 핵심 광물관련 규정 역시 최혜국대우 위반으로 다툴 소지가 크다.

 

더욱이 어떤 나라든 다른 국가에 영향을 미치는 조치를 시행하는 경우, 그것이 조약(예컨대 WTO)과 어긋나지 않는지 검토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수입제한 조치들을 단행하면서 국가안보를 위해 불가피한 행위이므로 WTO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다같은 대의명분을 내세우곤 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9월 말 현재까지 ‘IRAWTO 위반여부에 대한 어떤 논의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IRA를 행정부와 의회에서 논의하는 과정에서부터 WTO는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과실범이 아니라 확신범의 마인드다.

 

WTO에 대한 미국의 불만

무역에서 IRA 같은 차별 행위가 용인된다면 다른 나라들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20세기 초엔 다수 국가들이 제각기 시행한 무역장벽 높이기가 대공황 및 전쟁을 초래했다. 이런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인류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이후 WTO로 흡수)라는 수단으로 규칙 기반 무역 시스템(rules-based trading system)’의 구축을 도모한 바 있다. 국가들이 강대국의 힘이나 의도가 아니라 초국가적인 규칙(물론 국가들의 합의에 따라 정한)에 따라 교역하는 무역에서의 법치주의를 의미한다. 이런 시스템이 작동하려면, 모든 국가들이 규칙을 따르기 위해서라면 주권 중 일부를 희생할 수 있다는 태세를 갖춰야 한다. 규칙 위반을 처벌하는 시스템도 필수다.

 

그러나 논의의 공간에 가까웠던 GATT에는 그런 힘과 기능이 없었다. 1995년에 출범한 WTOGATT의 강화·확대로 회원국들의 무역 관련 행위에 대한 실질적 감독을 가능하게 만들어 규칙 기반 무역 시스템을 실현하려는 시도였다.

 

61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각료회의.EPA

WTO는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WTO 설립을 주도한 미국이 이 무역체제가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거스른다고 판단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패권국가 입장에선 다른 수많은 나라와 협의해 규칙을 정하는 절차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WTO에 규정된 미국의 양허관세(그 이상 올리지 못하는 관세)는 매우 낮다.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자료에 따르면, 각국의 평균 양허관세율은 미국 3.4%, 유럽연합 4.9%, 영국 6.0%, 일본 4.5%, 중국 10.0%, 브라질 31.4%, 인도 50.8% 등이다. 한국은 17.0%. WTO가 중국·브릭스(BRICs, 신흥경제국) 등의 부상으로 인한 세계경제의 변동 및 이에 따른 새로운 이슈들을 미국의 국익에 합치하는 방향으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불만도 강했다.

 

2000년대 이후, 미국은 여러 수단으로 WTO에 저항하게 된다. 첫째, ·FTA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처럼, 하나의 해외 국가 혹은 소수의 해외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대다수 국가가 가입한 WTO가 버젓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일부 회원국들 사이에서만 더 좋은 혜택을 주고받는 자유무역 블록을 만들었다. 동질적 집단 내에서 분파를 조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이 이런 일을 추진한 근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회원국들이 블록화해서 다른 회원국들을 소외시키더라도 해당 블록의 무역장벽이 WTO의 그것보다 낮다면(예컨대, WTO에서 특정 상품의 관세율이 10%인데 블록에서 5%라면), 최혜국대우 위반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는 기이한 WTO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엔 WTO의 권위를 떨어뜨렸다. WTO 위반 가능성을 무릅쓰면서, 중국과 유럽연합 등의 동맹국을 가리지 않고 주요 상품들에 대한 관세를 일방적으로 대폭 올린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 대 중국, 혹은 미국 대 유럽연합 간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일이 사실상 WTO의 규범 밖에서 되풀이되었다. 피 튀기는 주먹다짐을 멍하니 뒷짐 지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감독기구(WTO)의 권위는 어떻게 될까?

 

셋째, 2019년에는 규칙 위반자를 처벌하는 WTO 기능을 마비시켰다. 회원국들은 무역분쟁에서 합의하지 못할 때 WTO의 분쟁해결기구로 사건을 가져간다. 2심제다. 1심에선 사실관계를 따져 분쟁 양측의 승패를 가른다. 2(WTO 상소기구)1심 결정이 WTO 규범을 제대로 해석한 것인지 심리해서 최종 판정을 확정한다. 2심이 진행되려면 최소한 세 명의 위원이 필요하다. 위원들에겐 임기가 있다. 그때마다 기존 위원을 재임명하거나 새 위원을 임명해야 상소기구가 돌아간다.

 

WTO 상소기구가 헛도는 까닭

미국은 2017년부터 ()임명을 방해했다. 201912월엔 위원 두 명의 임기가 만료되어 한 명만 남았는데 미국은 모든 후보를 비토해버렸다. 상소가 동결되었다. 1심에서 패소한 국가는 상소만 제기하면 최종 판정을 한없이 미룰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WTO는 국가들의 협정 위반 여부를 감독할 실질적 힘을 상실했다.

 

2018924일 당시 한·미 정상이 FTA 개정협정문에 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를 혐오하는 미국의 진보진영 일부도 상소기구 동결엔 환호한다. 미국의 대표적 진보 매체 중 하나인 아메리칸 프로스펙트(531)의 주장을 읽어보자. “(트럼프 당시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였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는 외교적 강공책과 더불어 전략적 천재성을 발휘했다. 상소기구 위원의 추가 임명을 막아 WTO를 주변화시켜버린 것이다. 이로써 구속력 있는 판결을 내릴 수 있는 WTO의 권력이 중단되었다. 미국은 WTO의 주변화 덕분에 산업정책을 추진할 공간을 열 수 있다. WTO 규범 위반으로 간주되는 상계관세도 다른 나라에 부과할 수 있다. 미국은 국내 생산능력을 재건할 수 있게 되었다.”(상계관세는 상대 수출국이 특정 상품에 대하여 수출장려금·보조금 등의 혜택을 주어 그 가격을 현저히 싸게 했을 때, 수입국이 경쟁력 상계를 위해 과세하는 차별관세를 말한다).

 

한국과 유럽연합이 IRA 건을 WTO 분쟁해결기구로 가져간다고 해도 바이든 정부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최종 판정이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억울한 일을 당해서 사법절차를 밟는데 대법원이 해체되어 가해자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나오지 않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미국은 자국이 지난 75년 동안 주도적으로 구축해온 자유주의적 이상(다자간 규칙 기반 무역 시스템)에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흠집을 내고 있다. IRA 등 최근 미국의 보호주의 정책들은 이 거대한 흐름에서 파생된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더해 힘센 나라들에선 환경, 노동권, 인권 등을 자유무역에 우선하는 가치로 내세우며 이를 기준으로 수출입을 제한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WTO로 상징되는 자유무역주의는 파국에 처하게 될까? 함부로 미래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무역주의의 운명을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 훨씬 더 암울하게 예측하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75년 만에 위기 맞은 자유주의 무역 시스템

1947년 출범한 GATT'자유무역'이라는 이상의 출발점이다. GATT의 기틀에서 탄생한 WTO는 더 강력한 권한을 가졌다. 그러나 이 같은 국제무역질서는 75년 만에 위기에 직면했다.

1947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준비위원회. 이 회의 이후 GATT가 출범했다.WTO 홈페이지 갈무리

 

각 나라가 멋대로 혹은 이웃 국가의 외교적 압박에 밀려 자국의 무역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기가 있었다. 1947년에 출범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이전까진 그랬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서방국가들은 대체로 각국이 경쟁적으로 보호무역 장벽을 쌓은 결과가 대공황과 전쟁이었다고 인식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무역질서의 목표는 자유무역이어야 했다. 자유무역에 동의하는 국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만약 두세 국가가 앞으로 우리들끼리 관세 없이 무역하자고 약속한다면 이는 특수한 경제블록에 불과하다. 그러나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수십 개의 국가들(다자)이 자유무역의 핵심인 차별금지 원칙을 수용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비로소 자유무역은 마치 각국 정부가 마땅히 따라야 하는 보편적 세계 규칙으로 여겨지게 될 것이었다. GATT양자(양국)’가 아니라 다자(수많은 나라)’규칙(자국의 자의적 결정이나 강대국의 강요가 아니라)’에 따라 교역한다는 규칙 기반 무역 시스템(rules-based trading system)’을 건설하기 위한 국가들 간의 논의 틀로 만들어졌다. 어떤 국가에서 생산된 상품이든 국적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마치 자기 나라에서처럼 다른 나라에서도 거래될 수 있는 자유무역의 이상세계가 GATT의 지향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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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당시 GATT가 그 이상을 실현하는 데 동원 가능한 수단은 많지 않았다. 각국이 20세기 초처럼 관세율 올리기 경쟁에 돌입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나라의 관세율을 0%로 만들고 싶었겠지만, 나라마다 각자의 경제발전 수준과 현실, 필요가 다르다.

 

이에 따라 주로 공산품을 대상으로 국가들이 관세를 멋대로 올리지 못하게 하는 규범을 만들었다. 국가마다 상품별로 그 이상 올릴 수 없는 관세율(양허관세)’을 정하는 방법이다. 예컨대 미국이라면 외국산 자전거에 부과하는 관세율을 3% 이상, 인도는 40% 이상으로 올리면 안 된다는 식이다. 양허관세는 다른 회원국들과 협의를 통해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회원국들은 양허관세 정도로는 자유무역의 이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국가들은 세계무역에 규칙이 필요하다는 점엔 대체로 동의했다. 그러나 그 규칙에 자국의 주권(예컨대 선진국의 저렴한 상품이 수입되어 자국 산업을 말살하지 못하도록 막을 국가의 권리)을 완전히 복속시켜야 한다고 보는 국가는 없었다. 노주희 변호사(민변 국제통상위원회)에 따르면, “1947년에 합의된 GATT(GATT 1947)는 잠정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차차 자세한 규범을 만들어가며, 그 규범을 국가들이 따를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발전시킬 계획이었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국가들은 여러 차례의 협상 테이블(라운드)을 열었다. 세계경제 상황의 변동과 이에 따른 다양한 이슈들(보조금, 비관세장벽, 농산물, 지식재산권, 해외투자 등)이 새롭게 발생하면서 회원국 전체나 일부는 ‘GATT 1947’과 별도로 크고 작은 수십 개의 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GATT는 이런 협정들의 내용을 회원국에 강제할 수 없는 느슨한 시스템이었다. 자유무역의 이상과 달리 국제무역의 현실 무대는 무법천지였다. 1970~80년대에 미국은 일본에 섬유·반도체 등의 수출을 자발적(?)으로 줄이라는 요구를 외교적 강압으로 관철했다. ‘세계화가 세계적 유행어로 등극한 1980년대 하반기부터 자유무역의 규범을 더욱 심화하고 확산시키려면 GATT보다 강력한 국제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미국을 중심으로 제기된다. 급기야 1994년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GATT9차 라운드에선 ‘WTO 설립이 합의되었다. WTO는 이듬해인 199511일 공식 출범한다. 2019년 현재 164개국이 WTO 회원이다.

 

 

WTOGATT를 대체한 것은 아니다. 공산품 관세율 중심이던 ‘GATT 1947’의 규범과 정신, GATT의 틀 내에서 만들어졌지만 다양한 회원국에 대해 강제력을 발휘하진 못했던 여러 협정 등이 WTO 협정에 부속서 형태로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당초의 ‘GATT 1947’이 수정 보완되는 한편 GATT 틀에서 논의된 다른 협정들과 결합하면서 몸집을 불린 결과가 WTO라고 보면 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는, WTOGATT 시절에 비하면 훨씬 강력한 영향력을 회원국들에 발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WTO 체제, “외교에 대한 법률의 승리

611WTO 해체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스위스 제네바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EPA

 

GATT 시절엔 회원국들이 GATT 틀에서 만들어진 협정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에만 들어가도 괜찮았다. 그러나 WTO에서는 부속서에 포함된 수십 개의 협정에 모두 동의해야 회원국이 된다. 이를 일괄 동의(single undertaking)’라고 부른다. 출범 당시의 미국은 자국에 부과된 너무 낮은양허관세율보다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으로 다른 GATT 회원국들을 WTO로 끌어들이는 데 훨씬 큰 관심을 기울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지식재산이 미국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WTO 회원국 자격으로 미국에 수출하고 싶은 나라들이 TRIPs까지 받아들이게 하려면 일괄 동의가 필요했다.

 

또한 회원국들은 자국이 협정들을 준수하는지 여부에 대한 감독 권한을 WTO에 부여했다. 노주희 변호사는 “GATT는 각국의 협상 대표들이 모여 뭔가 협의하고 약속하는 데 그친 반면 WTOGATT의 논의 틀에서 만들어진 협정들을 뒷받침하며 끌고 나갈 수 있는 국제기구로 설계되었다라고 말했다.

 

WTOGATT 당시와는 달리 주권국가인 회원국들에게 감독권을 휘두를 수 있게 된 가장 중요한 장치 중 하나가 바로 2심제인 ‘WTO 분쟁해결기구. 분쟁해결기구에서 나온 최종 판정엔 대다수 국가가 승복하기 마련이었는데, 이는 GATT에 비해 현격히 높아진 WTO의 위상을 입증한다.

 

이로써 GATT로 시작된 자유무역의 이상이 WTO에 이르러 규칙 기반 무역체제를 거의 실현한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노주희 변호사는 WTO 체제가 “‘외교에 대한 법률의 승리로 여겨졌다라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WTO 이전엔 국제무역분쟁이 발생하면 외교관들이 만나 협상으로 해결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WTO에선 협정 위반 여부를 법률가들이 해석하고 결정하고 집행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외교 교섭의 대상이던 통상 문제가 드디어 법적 규율의 문제로 전환되었고, 이를 분쟁해결기구로 뒷받침한 것이다.”

 

그러나 규칙 기반 무역 시스템의 이상은 GATT 출범 이후 75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체제가 타협과 보완을 통해 기존 자유주의적 기조를 성숙시켜 나갈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뀔지는 아무도 단언하지 못한다.

시사인 이종태 선임기자

 

물가 오름세 멈칫했는데밥값은 낼 때마다 흠칫

외식 가격 상승률 30년래 최고하반기 더 오를 듯

통계청이 9월 소비자 물가동향을 발표한 5일 서울 명동거리의 음식점들 앞에 가격이 적힌 간판들이 세워져 있다. 외식 물가 상승률은 9.0%19927(9.0%) 이후 302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문재원 기자

 

국제유가 하락 반영되면서

물가 상승률 두 달 연속 둔화

실제 체감물가는 더 높아져

공공요금·환율 등 변수 산재

 

국제유가 상승률이 둔화되면서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8월에 이어 두 달 연속 꺾였다. 다만 외식물가를 필두로 개인서비스 가격이 1990년대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라 실생활에서 체감하는 물가는 오히려 더 높을 수도 있다. 정부는 고환율로 수입물가가 큰 폭으로 뛰거나 국제유가가 다시 오를 가능성도 있어 물가 상승폭이 꾸준히 둔화하는 양상을 보일지는 확신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통계청이 5일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5.6%로 집계됐다. 지난 8(5.7%)보다 상승률이 소폭 둔화한 것으로 지난 7(6.3%)이 정점이었다.

 

물가 오름세 멈칫했는데밥값은 낼 때마다 흠칫

정부는 물가 상승률이 두 달 연속 둔화한 것은 국제유가 상승이 주춤한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석유류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16.6% 올랐는데, 지난 6(39.6%)과 비교해보면 상승률이 크게 꺾였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가파른 물가 상승세가 둔화하는 데 가장 중요 영향을 미치는 것이 석유류 가격의 오름세 둔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간 누적되어온 물가 인상 요인들이 개인서비스 가격에 본격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소비자들은 물가 상승률 둔화를 체감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지수는 오히려 오름세가 커졌다. 일시적 충격에 가격이 크게 변동하는 석유류와 농산물을 제외한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5% 올라 전달(4.4%)보다 상승폭이 확대됐다.

 

여기에 식료품과 에너지 관련 품목까지 제외한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도 같은 기간 4.1% 올라 지난해 11(1.9%) 이후 상승폭이 꾸준히 커지고 있다.

품목별로 볼 때 개인서비스 가격은 1년 동안 6.4% 상승해 19984(6.6%) 이후 가장 크게 올랐다. 같은 기간 외식 가격은 9.0% 오르면서 19927(9.0%) 이후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정부는 농축수산물 가격이 꾸준히 상승하는 데다 주류 출고 가격이 올라 외식비 상승률이 컸다고 설명했다.

 

전기·가스·수도 요금도 전년 동월 대비 14.6% 올랐다. 공과금이 오른 것은 8월까지 한시 시행되던 여름철 전기요금 누진구간 확대 조치가 종료된 영향이다.

 

정부는 “10월도 물가 상방 요인이 산재해 있다물가 상승률이 다시 커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개인서비스 가격 오름세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최근 높아진 원·달러 환율도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다음달에는 전기 및 도시가스 요금 인상이 예고돼 있고, 연말에는 택시 기본요금이 최대 50% 오른다.

 

국제유가도 불안하다. 현재와 같은 하락세가 하반기 내내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OPEC 산유국의 협의체인 OPEC+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인 하루 100만배럴 이상의 감산을 결의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지난 3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및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은 각각 5.2%, 4.4% 올랐다.

 

어 심의관은 “OPEC+가 감산을 결의하면 유가는 오르겠지만 원유 수요가 감소하는 영향도 있어서 감산의 파괴적 효과를 정리하기 어렵다석유류 가격 오름세 둔화의 지속 여부가 물가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고속철도 잔혹사 : 국토부 관료는 승승장구, 불편은 국민 몫

철도경쟁시대 개막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201612월 개통한 수서고속철도가 202212월이면 개통한지 만으로 6년이 됩니다.

수서와 평택 사이를 연결하는 수서고속철도 노선은 약 31700억 원을 투입한 끝에 57개월 만에 완공됐습니다. 당초 이 구간의 운행은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이 맡을 예정이었습니다.

SRT 노선이 출발하는 수서역 전경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민간사업자에게 운영권을 주기로 했다가 거센 반발 여론에 부딪혔고 박근혜 정부는 논란 끝에 SR이라는 새로운 법인을 만들어 사업권을 주었습니다. SR은 코레일 41%, 사학연금 31.5%, IBK기업은행 15% 산업은행 12.5%의 지분구조를 가진 공기업입니다. 이렇게 자회사 SR이 모기업인 코레일과 같은 고속철도를 놓고 경쟁하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철도 체제가 만들어졌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토교통부는 SR 출범으로 철도업체들이 서로 경쟁하게 되면 철도 서비스의 질이 좋아지고 이용자가 늘어나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코레일의 재무구조도 좋아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렇게 7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쯤에서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궁금증이 생깁니다.

경쟁 체제의 효과를 강조했던 국토부의 주장은 과연 맞았을까?

고속철 통합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는 왜 통합을 하지 않았을까

지금의 고속철도 분리구조는 국민에게 최선의 편익을 주고 있을까?

 

1. 경쟁의 효과는 어디에?

철도에서 유일하게 흑자가 나는 분야는 고속철도입니다. 일반열차와 화물열차의 원가보상률(수입을 원가로 나눈 값)50~60%대 수준으로, 운영하면 할수록 적자폭이 커지는 실정입니다. 장거리 이용자가 많은 고속철도는 요금은 높고 정차역은 훨씬 적어서 수익성이 좋습니다. 코레일은 그동안 고속철에서 나는 수익으로 일반열차와 화물열차에서 나는 적자를 어느 정도 메워 왔습니다.

2010년 고속철 경부선 2단계 공사가 완공되고 2015년 호남선 2단계 공사가 완공되면서 고속철 승객이 늘어났습니다. 덕분에 코레일은 2014년부터 3년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냈습니다.

코레일은 고속철 수익에 힘입어 2014년부터 3년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냈지만 SR이 출범한 2017년부터 다시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2017년 통상임금 소송 손실 4400억 원은 미반영.

 

그런데 SR 출범 직후인 2017년부터 다시 영업이익은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반면 SR은 출범 당시부터 코로나19 유행 직전인 지난 2019년까지 영업이익 흑자를 달성했습니다.

2014~2016년 코레일의 3년 연속 흑자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2004년 코레일이 철도청에서 분리돼 나온 후 처음 거둔 흑자입니다. 코레일이 자신의 영업 이익으로 금융 이자를 조금이나마 갚기 시작하면서 자력으로 만성 적자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코레일은 2004년 철도청에서 분리될 때 45천억 원의 채무를 떠안고 출범했습니다. 당시 정부가 탕감해 준 빚은 15천억 원입니다. 독일이 독일철도주식회사(DBAG)를 출범시키면서 누적 채무 670억 마르크(당시 한화 33조 원 규모)를 전액 탕감해 준 것과 비교하면 처음부터 감당하기 힘든 부채 규모를 떠안고 출발한 셈입니다. 코레일은 태생부터 안고 있던 45천억 원의 빚 때문에 출범 때부터 매년 25백억 원이 넘는 이자를 내야 했습니다.

철도청에서 분리된 2004년 코레일은 45천억 원의 채무를 떠안고 시작했습니다. 이자만 매년 2

5백억 원 이상을 내야했습니다. 이자를 갚기 위해 빚을 내야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재무구조입니다.

 

2014년 가까스로 영업 흑자를 달성하긴 했지만, 그 이전까지 코레일은 만성 적자에 시달렸습니다. 원금은커녕 이자를 낼 돈도 없어서 빚을 계속해서 늘려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됐습니다. 심지어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며 겹치면서 현재 코레일의 빚은 18조 원까지 늘어났습니다. 코레일이 안고 있는 막대한 부채 이면에는 태생적, 구조적 원인이 있는 셈입니다.

 

만약 원안대로 수서 신설 노선을 코레일이 운영했다면, 코레일의 재무구조는 진작에 개선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수서 노선을 SR이 가져가면서 코레일은 다시 영업 적자의 늪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서비스 경쟁을 통해 승객이 늘어나면 코레일의 경영이 좋아질 거란 장밋빛 미래도 허상에 그쳤습니다. 앞서 국토부 관료들이 예측했던 것들 중에 맞아떨어진 것은 수서 고속철도 신설 노선이 황금알을 낳는 알짜배기 노선이었다는 것뿐입니다.

 

SR과 국토부는 10% 수준의 철도 요금 인하, 객차 내 와이파이, 충전 콘센트 설치 등이 철도 경쟁의 효과라고 홍보해왔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10% 요금 인하는 경쟁의 결과가 아니라 이미 SR 출범 전인 2013년 국토부 철도산업위원회에서 결정한 사항입니다. 각종 편의 사양 역시 SR이 차량을 발주할 당시 받은 열차가 최신형 열차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는 편이 더 맞습니다.

고속철 이용자는 SR 출범 전인 2016년에 비해 2019년에 24천 명 정도 늘었습니다. 국토부 설명대로 경쟁의 효과가 효과를 본 것이었을까요?

고속철도 신설 노선이 완공될 때마다 고속철도 이용자수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2010년 고속철 경부선이 완공됐을 때, 그리고 2015년 호남선 구간이 완공됐을 때도 고속철도 이용자는 늘었습니다. SR이라는 경쟁업체가 새로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수서라는 황금 신설 노선이 생겼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SR이 생겨서 장점이 있다고 하는 거는 SR이 아니라 수서에 고속철도 노선이 새로 생겼기 때문에 얻는 이득입니다. 이거는 SR이 운영하든 코레일이 운영하든 그 효과는 똑같습니다. 강남과 서울 동남부 지역에서 고속철도 접근성을 확보하게 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는 거죠

박흥수 / 사회공공연구원 객원 연구위원

 

코레일과 SR 간에 고객 유치 경쟁이 있었다면 각 철도의 이용승객 수에도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요? 서비스 차별화와 치열한 고객 유치 마케팅을 통해 서로의 승객을 뺏고 뺏기는 과정이 있었을 테니까요. 우리는 가전 시장이나 자동차 시장 등등에서 경쟁으로 인한 시장 점유율의 변화를 많이 봐왔습니다.

노선이 겹치는 고속철 경부선과 호남선에서 KTXSRT 이용자 비율은 약 66 44의 비율로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코레일과 SR의 노선이 겹치는 경부선과 호남선의 이용승객 비율을 살펴보면, SR 출범 후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거의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66 34의 비율이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왜 이 비율이 매년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을까요?

2019SRT역 이용자실태조사결과를 보면 88%가 접근성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KTX 보다 가격이 저렴해서 이용한다는 사람은 3%에 불과합니다.

 

2019SRT 이용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이용객들이 SRT역을 이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접근성'이었습니다. 가깝기 때문에 간다는 것입니다. 반면 요금이 싸서 SR로 간다는 사람은 3%에 불과했습니다.

아무리 요금이 10% 싸다고 해도 서울역에 가까이 사는 사람이 SRT를 타기 위해 일부러 수서역까지 가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이 같은 결과는 국토부가 말했던 경쟁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문재인 정부, 그리고 김현미 장관은 왜 고속철을 통합하지 못했을까?

문재인 정부는 이전 박근혜 정부가 분리한 코레일과 SR을 통합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초대 국토부 장관으로 부임해 3년 넘게 이 사안을 다룬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도 국회의원 시절부터 분리 반대론자였습니다. 그는 201312월 고속철 분리가 문제가 됐을 때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현오석 부총리를 상대로 이렇게 따져 물었습니다.

 

코레일이 이사회 자체 보고 문건에서 분할하게 되면 한 해에 순손실이 1417억 원씩 생긴다는 겁니다. 이것은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지요. 사업을 하는데 다른 데는 다 적자이고 단 하나 돈을 버는 데(고속철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갖다가 분리시켜 버리면 남아 있는 부분은 당연히 적자가 쌓이지요.

김현미 당시 민주당 의원 / 국회 기획재정위 201312

 

김현미 장관이 신임 국토부 장관으로 부임한 뒤 국토부는 2018철도 공공성 강화를 위한 철도산업 구조 평가라는 연구용역을 발주해 코레일과 SR 통합을 위한 시동을 걸었습니다. 이 용역은 인하대 산학협력단이 낙찰받았는데, 그해 12월까지 6개월 안에 연구 결과를 내놓게 돼있었습니다.

20181030일 연구책임자인 인하대 김태승 교수는 국토부 철도국장을 만나 예비 중간보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연구 결과를 보고하자 국장은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굉장히 민감하고 예민한 결과가 있으므로 잠깐 과제를 중단을 하고 고민을 해보자.”

연구를 사실상 중단하라는 지시였습니다. 김 교수는 코레일과 SR을 분리 운영할 때 발생하는 중복비용이 559억 원이라는 연구결과가 문제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코레일-SR 통합에 유리한 연구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국토부 철도담당 공무원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는 겁니다.

통합연구용역 중간 보고서의 일부. KTXSRT를 하나의 운영사에서 운영하지 않고 분리해서 운영할 경우 발생하는 중복비용이 559억 원으로 나타났다고 적혀 있습니다.

 

황성규 당시 철도국장에게 확인을 요청했더니, 자신은 좀 더 객관성 있게 연구를 해야 된다라는 얘기만 했을 뿐 중단 얘기는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연구 결과가 객관적이라고 생각을 안 한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희망 사항을 보고서에 적은 것이다라고 하며 보고서 내용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연구책임자는 연구과제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은 설문조사까지 진행하려고 했지만 국토부는 이것도 막았다고 말했습니다. 설문 문항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이유였습니다. 기존에 나와있는 국책연구원의 설문조사를 토대로 만든 문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토부 측은 계속해서 트집을 잡았다고 합니다.

연구용역팀이 마련한 설문조사서. KTXSRT의 장점과 단점에 대한 질의가 같은 수의 항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리고 한 달여 뒤인 128, 강릉역에서 KTX 탈선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나중에 이 사고의 책임은 철로를 부실하게 시공한 철도공단 측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때 국토부는 안전실태에 대한 감사를 감사원에 요청했는데,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연구 용역을 중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안전 문제까지 같이 검토하는 연구 용역을 추진하겠다는 명분이었습니다.

하지만 10개월이 흘러 다음 해인 20199, 감사원 결과가 발표됐음에도 용역은 재개되지 않았습니다.

 

흐지부지 시간을 끌다가 그해 12월 국토부는 연구용역 계약을 종료했습니다. 연구용역팀에 안전전문가가 없어 더 이상 용역을 진행하기 힘들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연구책임자인 김 교수의 설명은 다릅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거였습니다. 559억 원이 딱 나오는 순간에 이거 나가면 자기들은 안된다

김태승 인하대 교수 / 연구책임자

 

통합연구용역이 중단되면서 통합 논의도 지지부진하게 마무리가 됐습니다. 이 모든 일은 김현미 전 장관 부임 기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김 전 장관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또 통합이 무산된 것에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어렵사리 전화 통화가 연결됐습니다.김 전 장관은 통합연구용역이 중단된 것에 대해 “KTX 사고가 나면서 안전 문제 때문에 중단된 것은 기억나는데 자세한 것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취재진은 연구용역 중간보고(20181030)가 이뤄지기 5일 전, 이미 큰 방향에서 코레일-SR 통합에 대한 국토부의 내부 논의가 결론났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김 전 장관이 전현직 국토부 철도 관료들과 만나 통합 문제에 대해 논의를 했고, 김 전 장관은 철도 통합에 반대하는 관료들의 의견에 사실상 동의 내지 묵인을 해줬다는 내용입니다.

 

이에 대해 김 전 장관에 물었더니, 모임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코레일은 우리 철도국을 굉장히 불신하고 철도를 쭉 해왔었던 (국토부) 팀들이 코레일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이에요. 통합을 지금 상태로 하는 거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하는 견해들이 국토부 내에 있는 건 사실이죠. 코레일도 효율화라든지 뭔가 정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전달이 됐는지는 모르겠는데, 회의야 맨날 해요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통합이 무산된 것에 대해서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했습니다. 국토부 일이 워낙 넓잖아요. 그런데 그걸 제가 무슨 모든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잖아요. 장관이 어쨌든 일을 하려면 방향성을 이렇게 가져가자 이런 건데 그다음에 동력을, 내부의 동력을 좀 끌어내려면 과정 동의가 좀 있어야죠 직원들 내부에서. 그런데 국토부 직원들이 여러 번 겪고 그러면서 굉장히 부정적이죠-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장관이 노력했지만 코레일의 경영효율화가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국토부 관료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는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철도 정책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를 낳은 이유입니다. 국토부 관료들이 주창해왔던 철도 경쟁의 효과라는 것이 신기루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여실히 증명됐음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고속철 분리에 관여하거나 철도 민영화를 주장했던 인사들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승승장구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SR 분리 출범을 진두지휘했던 김경욱 철도국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차관을 거쳐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으로 취임했고, 용역 중단 당시 담당이었던 황성규 철도국장도 차관까지 승진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철도 민영화 주창자였던 김한영 당시 국토부 교통정책실장도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철도공단 이사장에 임명됐습니다.

SR 분리를 주도하거나 철도 민영화에 찬성했던 국토부 철도 관료들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승진을 거듭하거나 주요 공기업,기관의 수장에 임명됐습니다.

 

3. 지금의 고속철도 분리는 국민에게 최선의 편익을 주고 있을까?

코레일은 SR을 자회사로 두고 있지만 두 회사는 경쟁관계입니다. 그렇다 보니 모바일 예약 시스템도 따로 운영합니다. KTX에서 SRT로 환승하려면 각각의 회사 앱을 깔고 들어가서 따로 예약해야 합니다. 코레일에서 운영하는 환승할인도 SR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서울역이나 용산역에서 KTX를 이용하는 승객들은 수서에서 SRT를 이용하는 승객들보다 10% 정도 비싼 요금을 내야 합니다. 그래서 지역차별이란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하지만 이런 불편조차 지역주민들이 느끼는 불만에 비하면 사소한 겁니다. SR이 운행하지 않는 지역 주민들은 SR 출범 때부터 강한 불만을 제기해 왔습니다. SR의 경부선과 호남선이 지나지 않는 지역의 사람들도 서울 강남권에 갈 일이 많습니다. 대형병원과 금융회사들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 판교의 연구단지에 가려면 SRT를 타고 수서역으로 가는 게 이동이 훨씬 편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사는 지역에 SRT가 오지 않는다면 코레일의 KTX나 무궁화열차를 타고 환승해서 수서로 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경남 창원이 대표적인 곳입니다. 수도권 외의 지역 가운에 유일하게 인구 100만이 넘는 특례시지만 SRT 열차가 지나는 인근 울산광역시와 비교할 때 차이가 너무 많이 납니다. 울산에서는 SRT를 타고 2시간이면 수서에 도착하지만 창원에서는 동대구까지 가서 20-30분 기다려 SRT로 환승해서 가면 수서까지 3시간이 걸립니다.

SRT가 지나는 울산과 KTX만 지나는 창원은 인구수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수서까지 기차로 이동하는 시간은 큰 차이가 납니다.

 

이런 불편은 경전선 라인에 있는 창원, 진주 등 경남지역뿐 아니라 동해선에 속해있는 포항, 전라선에 속해있는 전주, 여수 등의 주민들이 모두 겪는 문제입니다. 이들 지역 인구만 6백만 명에 이릅니다. 안 그래도 지역 불균형에 인구 유출까지 많은데 교통까지 불편하니 여간 불만이 아닙니다. 이런 불편은 코레일과 SR이 분리되지 않았다면 전혀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코레일과 SR이 통합하지 않는 이상 해결 방법은 없는 걸까요? SRSRT 열차를 이들 지역으로 열차를 운행하거나 코레일이 수서까지 KTX 열차를 운행하면 됩니다. 그런데 SR은 전체 열차가 32편성 밖에 없어 여유 열차가 없습니다. 고속열차 14편성이 들어오는 2027년에야 투입 여유가 생깁니다.

 

반면 코레일은 지금 당장이라도 열차를 투입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경전선과 동해선, 전라선에 하루 왕복 8회씩 모두 열차를 투입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 수서역 진입이 허용되면 모든 KTX 열차 요금도 10%씩 낮출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창원과 전주를 지나는 경전선, 포항으로 가는 동해선, 전주를 거쳐 여수로 향하는 전라선에는 수서행 고속철 열차가 없습니다. 코레일은 국토부가 승인만 하면 이들 노선에 수서를 오가는 KTX를 투입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아울러 모든 노선의 KTX 요금을 10% 인하할 여력도 생긴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현재의 경쟁구조와 선로용량을 고려해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코레일과 SR의 통합 여부는 이른바 거버넌스 분과위원회의 논의 결과에 따라 최종 결론을 도출할 예정이다라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검토만 하다 문재인 정부 5년을 지나 보냈던 국토부 관료들이 윤석열 정부에서도 국민들의 불편엔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수서발 고속철 유치는 SR이 오지 않는 지역의 오랜 민원이다 보니 지역자치단체장들의 핵심공약이기도 합니다.

SR과 코레일의 문제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던 문제인데 이 부분을 국토교통부가 정리를 빨리해서 합치든지 아니면 SR이 운행을 내부 사정상 못하게 되면 코레일에서 운행을 하게 해서 국민들이 편리하게 해 주는 것이 맞지 않느냐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박완수 경남도지사

 

국토부가 언제까지 국민들의 불편을 외면할 수 있을까요?

고속철도 잔혹사는 현재진행형입니다.

뉴스타파 최기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