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21.11.21~27 학살자 전두환 반성 없이 죽다

이성근 2021. 11. 23. 00:15

한국 52% “코로나 사태 곧 끝난다미국 30%, 일본 28%

조선일보 눈덩이 종부세한겨레 이 빠진 호랑이

박형준 부산시장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증인만 39

이 땅의 젊은 유권자에게 보내는 어느 꼰대의 조언

학살자 전두환, 반성 없이 죽다

언론은 15년째 '폭탄타령'... 종부세 거짓말을 멈춰라

인간 전두환이라 했던 조선일보를 돌아보다

노화를 재촉하는 음식 5

전두환 빈소의 유튜버들

경제지·세계·조선·중앙, 종부세 폭탄·쇼크 쏟아내다

수시 폐지? 대한민국 대선후보들 이 정도밖엔 안 되나

'트럼프 문화전쟁'의 격전지가 된 미국의 학교

차별금지법·기후변화, 이번 대선에서도 "나중에"?

[창비 주간 논평] 다시 어둠을 밝히는 마음으로

신장위구르 무슬림과 아프가니스탄

박형준 "국정원 보고서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 적 없다

무엇을 위해 싸우나···‘사람이 보이지 않는 세계의 분쟁지역

12·12 군사 쿠데타와 인권유린의 현대사

팬데믹 후유증’, 뒤늦게 벌금내지 않으려면

외국인 가진 우리 땅 '31.7조원

 

 

한국 52% “코로나 사태 곧 끝난다미국 30%, 일본 28%

세계 28개국 여론조사, 사우디 79% 가장 낙관

잘 대처한 국가 뉴질랜드 73% 1, 한국 58%

코로나19 사태가 곧 끝날것으로 보는지에 대한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의 조사 결과. 누리집 갈무리

 

코로나19 대유행이 곧 끝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의 비율이 한국은 52%, 미국은 30%, 일본은 28%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제 여론조사기관 입소스는 지난 924일부터 108일까지 한··, 미국, 영국 등 28개국 국민 22016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관련 여론조사를 해 20(현지시각) 공개했다. 핼리팩스 국제안보포럼(HISF)의 의뢰로 이뤄진 조사다.

 

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28개국 중 코로나19 대유행이 곧 끝날 것으로 보는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로 79%였다. 인도가 77%로 뒤를 이었고, 말레이시아와 중국이 69%61%3, 4위였다. 한국은 이탈리아와 함께 52%5위권에 속해, 코로나19 사태를 비교적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국가에 속했다.

 

미국(30%)과 오스트레일리아(29%), 일본(28%), 캐나다(27%)30% 이하로 최하위권에 속했다. 4개국 모두 선진국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28개국 전체로 보면, 코로나19가 곧 끝날 것이라는 응답이 45%로 지난해 조사보다 12%포인트 늘었다.

 

바이러스가 억제됐다고 증명될 때까지 국경을 닫고 출입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보느냐는 문항에는 56%가 동의했다. 이는 작년 조사 때보다 12%포인트 낮아진 것이다. 말레이시아가 85%로 가장 높았고, 인도가 75%, 터키가 70%로 뒤를 이었다. 한국은 48%28개국 중 20번째에 속했다.

 

코로나19 대유행에 훌륭한 리더십을 보여줬다고 생각하는 나라나 기구를 묻는 말에는 뉴질랜드가 73%1위였다. 캐나다(73%)와 독일(71%), 스웨덴(70%)이 상위권이었고, 한국은 58%, 프랑스(59%)와 영국(58%)과 비슷했다. 중국과 미국은 각각 47%, 46%로 하위권이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조선일보 눈덩이 종부세한겨레 이 빠진 호랑이

국세청이 올해 종합부동산세 고지서를 22일 납세자들에게 보낸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종부세 세율 인하, 1주택자 종부세 폐지 등을 거론하며 종부세 폭탄론이 재점화하는 가운데 이날 아침신문에선 종부세 부담이 증가했다는 보도가 많았다. 반면 한겨레는 소수의 집 부자를 제외하면 종부세는 1~2주택 보유 가구에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정부에 따르면 종부세는 98%의 국민과는 무관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1‘2021 국민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22일 아침신문에선 부동산 문제에 대한 발언을 위주로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주택 공급에 더 노력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담은 발언을 1면 기사 제목으로 뽑았고, 한겨레는 임기내 부동산 하락 안정세 목표라며 대통령 의지를 담은 발언을 1면 기사 제목으로 뽑았다.

 

손바닥에 ()’자를 그려넣고 TV토론회에 나서 주술 논란에 휩싸였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1일 다시 대형교회를 찾았다. 지난달 윤 후보는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방문한 바 있다. 이번에 예배 옆자리에는 지난 9월말 아들인 래퍼 장용준씨(예명 노엘)의 경찰관 폭행 사건으로 윤석열 캠프 상황실장직을 사퇴한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과 논문 표절로 석사학위를 반납했으며 국사 국정교과서 주장, 색깔론 등으로 논란이 된 전희경 국민의힘 서초갑 조직위원장이 앉았다.

 

동아 다주택 납세자들 크게 당황

한겨레 종부세 폭탄아니라 이 빠진 호랑이’”

 

조선일보는 1면 톱기사 “‘종부세 작년보다 3배 뛰었다곳곳서 한숨에서 올해 주택분 종부세 대상자는 80만명을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작년(665000)보다 14만명 이상 늘어난다. 3개월 전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별위원회는 대상자가 765000명이라고 추정했는데 더 늘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3면 톱기사에선 눈덩이 종부세라는 표현을 쓰며 종부세 폭탄론을 이어갔다.

 

조선일보는 “80만명을 넘는 올해 종부세 납부 인원과 6조원에 육박하는 종부세액은 2005년 종부세 도입 이래 역대 최대 규모라며 금액은 최소 57363억원으로 작년(14590억원)4배 수준이라며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서 조세 저항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종부세위헌청구시민연대는 최근 위헌 소송에 참여하는 소송인단 모집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도 1면에서 사전신청을 통해 홈택스에서 종부세 고지 금액을 미리 확인한 다주택 납세자들은 급증한 세금에 크게 당황하고 있다고 전했고, B1면 기사에선 올해 1주택자와 다주택자의 세율이 모두 인상되고, 공시가격도 크게 올라 납세자들이 체감하는 충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고 보도했다.

 

매일경제 1면 톱기사 전국 종부세 대상자 80만명 육박”, 한국경제 1종부세 고지서 보내는 날 다시 시작된 위헌 소송등 경제지에서도 종부세 폭탄론에 힘을 실었다.

 

반면 한겨레는 2종부세 완화 1주택 9만명 면제다주택자는 증여로 방어막이란 기사에서 “1주택자 세 부담 경감을 위헌 조처들이 폭넓게 적용되는데다, 다주택자들은 가족 간 증여를 통해 사전 방어막을 쳤기 때문에 실제 종부세가 폭탄이 아니라 이 빠진 호랑이에 불과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1가구 1주택의 종부세 과세 기준이 이번부터 공시가격 9억원 초과에서 11억원 초과로 상향 조정된 게 종전과 달라진 점이라며 올해 기존 과세 기준(9억원)이 유지됐을 경우 종부세 대상자는 854000명으로 추산됐으나 과세 기준이 11억원으로 상향 조정되면서 89000명이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고 전했다. 이어 공시가격 11억원은 시가로 15~16억원 수준으로 서울의 경우 최근 집값이 크게 오른 과열지역 내 중소형 아파트 대부분이 비과세 대상에 포함된다고 했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이 지난 19국민 98%는 종부세와 무관하다우려가 과장된 것이라고 했다. 종합하면 2%, 80만명에 해당하는 세금에 대해 윤 후보는 감세를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조선일보는 1면부터 비중있게 종부세 폭탄론을 주장한 것이다.

 

한겨레는 “1가구 1주택자에게 적용하는 종부세 세율은 지난해 0.5~2.7%에서 올해 0.6~3.0%로 높아져 명목세 부담은 소폭 늘지만 1가구 1주택자에게 적용하는 노령자 공제와 장기보유 공제를 고려하면 실질적인 세부담은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는 게 부동산 업계의 분석이라며 현재 노령자 공제는 만 60살 이상부터 20~40%, 장기보유 공제는 5년 이상 보유부터 20~50%가 적용되며 양쪽 합쳐 최대 80%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고 했다.

 

또한 한겨레는 올해부터 부부가 1주택을 공동명의로 보유한 경우에도 과세특례를 선택해 처음으로 노령자 및 보유기간 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다주택자의 경우 세율이 높아졌지만 다주택을 보유한 가구의 경우 가족 간 증여로 명의를 분산해 종부세 부담을 줄이는 관행이 이미 보편화했기 때문현실적으로 (갑절 이상 늘어나는 사례는) 극소수게 그칠 것이라는 게 부동산 업계의 분석이라고 보도했다. “종부세가 인별 과세 원칙인데 배우자와 자식이 1주택씩 3채 보유했더라도 개인별로 과세하는 점을 활용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22일 한겨레 사설

 

한겨레는 사설 “‘종부세 폭탄론에 부화뇌동하면 대선도 멀어진다에서 올해 종부세는 고가 주택 보유자 상당수에게는 종이호랑이에 가깝다이런 실상을 알면서도 종부세 폭탄이라고 주장한다면 그 의도가 세금을 줄이는 데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윤석열 후보가 내년 이맘때면 종부세 폭탄 걱정 없게 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상위 2%98%가 걱정하도록 하는 구도에서는 기득권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사정이 이런데도 민주당은 제대로 반론 한번 펴지 못하고 있다이래서야 조세정의는커녕 부동산 안정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폭탄론에 부화뇌동하다가는 대선 승리도 그만큼 멀어질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박형준 부산시장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증인만 39

정식 재판 앞두고 증인신문 기일 확정, 주요 증인은 조율 필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형준 부산시장의 정식 재판에서 증인만 39명이 소환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지법 형사6(류승우 부장판사)22일 오전 열린 박 시장의 5차 공판준비기일을 통해 증인신문은 오는 29, 1210, 1217일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박 시장이 참여하지는 않아도 된다. 형사소송법 제221조의2(증인신문의 청구) 1항에 따라 공판기일 전에 증인신문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재판부가 공무상 출장이 많은 박 시장을 배려하기 위한 차원이다.

 

증인 명단으로는 검찰이 주장했던 청와대 보고 시스템을 확인할 수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명진스님 사건 관련자들과 박 시장과 관련된 '4대강 사찰' 관련 증인들이주가되면39명이출석할것으로예상됐다.

 

다만 박 시장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다는 주요 증인인 홍보기획관 재직 시절 청와대에 파견을 나왔던 국정원 직원에 대해서는 국내 입국이 어려워 영상재판도 거론이 됐으나 증인신문 마지막일로 예정된 128일까지 재판장에 출석할 것을 조율하기로 했다.

 

검찰이 국정원에서 압수한 박 시장 관련 '4대강 사찰' 관련 서류에 대한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애초 오는 121일 직접 현장을 방문해 확인할 예정이었으나 증인신문 등 관련 절차들로 인해 연기하기로 했다.

 

박 시장 변호인 측은 "선거 부분도 있어서 재판이 (내년) 1월말까지 변론 종결되고 재판장이 선고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재판부에 불출석하는 증인의 경우 취소 결정을 내리고 빠른 재판 진행을 요청했다.

 

재판부는 "다음 기일에 출석하는 증인을 보고 일정을 대폭 조정할 수 있다. 신속하게 진행되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급하게 해서 빠져선 안 된다"며 증인신문 기일을 통해 재판 일정을 조율해나가겠다고 전했다.

 

한편 박 시장이 직접 출석하는 정식 재판은 오는 26일 부산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프레시안

 

이 땅의 젊은 유권자에게 보내는 어느 꼰대의 조언

영혼을 갉아먹는 악마는 언제나 달콤한 속삭임으로 다가옵니다

MZ세대에겐 현재의 한국이 헬조선, 3포를 넘어선 전포(全抛)시대로 다가오면서 여러분 대부분이 고통에 처해있는 상황입니다. 저도 미래에 대한 전망을 잃고 방황하는 두 자식의 아버지입니다. 때로는 잠을 자다가도 자식들 생각에 식은 땀을 흘리며 벌떡 일어나 앉은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다소간의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시기에나 말세론과 종말의식이 있었으며 동시에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과제상황이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 주어져 있었습니다. 제가 살아온 젊은 시절의 과제는 유신체제와 군부독재에 저항하여 민주화의 시대를 여는 것이었으며, 저도 이에 참여하여 4-5번의 체포와 두 번의 제명을 당하면서 이후 대학졸업장 없이 칠십 년 가까운 일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냉정하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물론 젊은 세대에게 절망적인 현재의 한국상황을 만든 것은 부분적으로 우리들 선배세대의 책임일 수 있고, 한편으로는 국제적 시대의 흐름일 수 있습니다. 또한 지난 십 수 년간 여야를 막론하고 국정을 책임졌던 여러 대통령을 포함하여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고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촛불시민이 만들어준 역사적 기회를 제대로 대처해내지 못한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제가 누구보다도 앞장서 지난 4년 내내 비판의 칼날을 세우고 분노를 분출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비난과 손가락질만으로는 현실을 반전시키지는 못합니다. 오로지 상황에 대한 냉정함과 분노를 넘어선 판단과 선택 그리고 결집된 행동만이 여러분들에게 미래를 열어 줄 것입니다. 개인 뿐만 아니라 MZ이라는 세대집단 그리고 지평을 넓혀 공감하는 시민사회가 함께 결집하여 선택하고 행동할 때만이 변화의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미국을 대표하는 시대의 지성인 웅거 교수는 각성된 주체가 변혁의 출발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복잡계라는 현대이론에서는 행위자가 가장 주요한 변수이라는 행위자 기반(중심)이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여러분들 자신 하나 하나가 변화의 주역이고 반전의 동력으로서 앞장서고 결집하고 행동할 때만이 헬조선같은 현재의 상황에 새로움의 가능성이 열리고 개벽의 세상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40여 년의 세월을 먼저 살고 경험한 꼰대 세대의 한 사람으로 염치를 불구하고, 다가오는 대선이 새로운 변화를 위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여러분들의 판단과 행동에 도움이 되고자 몇 가지 조언의 말을 아래에 적어 봅니다.

 

첫째의 조언은, 여러분에게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가져온 가장 핵심적인 배경 혹은 시대적 흐름은 어려운 표현이지만 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와 소위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격변이라는 것입니다. 기술적 격변에 대해서는 각설하고 신자유주의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국경을 넘어서는 생산중심이론과 시장에 대한 절대적 맹신 그리고 금융우위의 통화정책을 기반으로 탐욕스런 자본의 이익실현에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무력화시키는 이념적 체계와 현실정책의 수단을 합하여 통칭 신자유주의라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겠지만, 신자유주의가 전행되는 시기에는 스스로 존재가 목적인 인간이 철저하게 이익실현의 수단이 되고 인류모두에게 주어진 토지와 천혜자연이 아무 제약도 없이 사적 소유물로 전락되고 심하게 오염됩니다. 국가별 관세와 경제정책이 방해가 되면 세계화라는 강대국의 논리로서 이를 무력화시키는 과정에 IT와 금융기법의 신기술 등이 결합되면서, 지난 3-40여 년간 전세계를 대상으로 부의 극심한 집중과 양극화, 비정규직과 임시직의 양산과 노동조건의 열악화(rush to bottom) 그리고 사회안전망의 일방적 축소 등이 이루어져 왔으며, 이전의 20: 80 불평등 사회가 무색하게 10: 90를 넘어서 1: 9: 90의 사회로 급속하게 재편되어 왔습니다.

 

현재 거대기술기업의 소유주 중심으로 수퍼리치 30명이 지닌 자산이 인류전체의 절반인 밑으로 40억 명의 재산을 능가합니다. 미국에게 질세라 한국사회도 예외가 아니어서 1%의 부자가 소득의 20%을 독차지하고, 금융과 부동산 자산의 경우에는 이들 1%의 소유가 50%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부모찬스가 없는 MZ 세대 대부분에게는 오로지 비정규직, 임시직, Zero-time의 앵벌이 직업만이 선택지로 주어질 뿐입니다. 그리고 한번 가난에 빠지면 이는 헤쳐 나오기 어려운 함정이 됩니다.

 

부자들의 넘쳐나는 자금은 금융영역을 넘어 묻지마-부동산에 몰리면서 투기의 광풍을 일으키고 누진적 보유세와 양도차익 환수 이외의 모든 정책을 무력화시키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일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현재의 빈부격차는 삼정의 문란과 배고픔으로 농민반란이 빈번하였던 구한말의 상황보다 더욱 심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재의 상황에서 여러분들이 선택적으로 인간다운 미래를 만들어 가려면,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고 신기술의 혜택을 모두가 공유하는 방식 그리고 이를 추진할 강력한 리더십의 정치지도자를 선택하는 것 이외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그런데 야당의 모후보는 신자유주의를 기획하고 주창했던 장본인인 시카고 학파의 프리드만이라는 교수를 가장 존경해 마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다닙니다. ‘프리드만은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대주주의 이익을 실실현하는 것이라는 극단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던 인물입니다.

 

더구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세계가 엄청난 타격을 받고 아직도 후유증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실정으로,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한 광범하고 일반적인 합의가 형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신자유주의는 지구에서 추방시켜야만 하는 야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난데없는 홍두깨처럼 괴수인 프리드만을 스승으로 삼고 신자유주의의 기세를 더욱 확장하겠다고 하는 야댱 모후보의 발언은 여러분들을 인간이 아니라 자본의 이익실현의 수단으로 삼아 더욱 옥죄겠다는 폭언의 다름아닌 이야기입니다. 주당 120시간을 일하자?

 

두 번째의 조언은 인류가 직면한 전면적 위기의 대응 방식에는 여전히 기득체제를 고수하려는 상기에 언급한 야당 모후보의 발언처럼 신자유주의의 꼼수적 연장 또는 이의 변형인 대중영합주의가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시민들의 생계를 중심주제로 삼는 변혁적 실용주의, 정치학적 표현으로는 시민주권적 민족주의가 새로이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중영합주의는 현재의 실패와 어려움이 내부의 구조적 모순에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의 화살을 엉뚱한 외부와 상대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인물들로 미국의 트럼프와 이탈리아의 살비니 등을 들 수 있는데, 어려움의 원인이 난민유입과 중국 그리고 소수유색인종에 있다고 책임을 돌리고 있으며, 기존의 기득수혜의 계층과 소수의 부자들을 보호하는데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하고자 합니다. 이들이 가장 손쉽게 동원하는 것이 달콤한 감세조치이자 (자본을 위한) 규제완화입니다. 감세와 규제완화는 신자유주의의 핵심이자 기둥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기득권과 부자를 위하여 기울어진 운동장이 현실적응의 올바른 원칙이며 가난한 자들의 숙명이며 익숙해진 편안함이라고 악마의 궤변을 벌립니다. 더구나 이들은 법전을 앞세워 질서를 주장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공정을 이야기합니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질서와 공정은 한마디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의미합니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일어난 실화를 들어 봅시다. 국기문란죄에 해당하는 고발사주의 배경을 국민 대다수가 백주대낮처럼 지켜보고 있는데도, 엘리트 검사출신이라는 자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이야기하고 있고, 이를 요청한 또 한사람 검사는 법전 뒤에 숨어서 눈알만 굴리고 있습니다 - 이들을 법꾸라지라고 합니다만, 이를 조사해야 하는 검찰과 경찰은 아예 먼 곳의 불구경하듯 합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검찰공화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라고 부릅니다.

 

반면에 같은 공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되, 기울어진 운동장의 조건을 역으로 차별하여 기득권과 부자들을 불리하게 하고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에게 유리하게 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전환적 조치를 이야기한다면, 이는 신자유주의를 혁파하려는 변혁적 실용주의라고 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입에 발린 감세와 규제완화가 아니라 1-5%의 부자들을 대상으로 누진적 토지보유세와 자산세를 강화하여 이를 재원으로 95%의 일반서민을 위한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고 특히 젊은 여러분들에게 기본소득과 기본금융과 기본주거권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은 미래세대를 위한 개벽세상을 열어가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가 중장기적으로 보편적 세제개혁을 실시하고 사회상속계정을 도입하여, 25세에 이른 청년에게 기본자산을 제공하고 아이디어와 의지가 충만한데 자금이 없어 창업을 못하는 젊은이들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시대가 오기를 기대하여 봅니다.

 

한가지 추가하자면 기득권 중심의 영토방어주의에 관한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난민거부로 나타나고 미국에서는 유색인종의 차별로 사건화되고 있습니다만, 한국에서는 출생의 배경, 학력과 자격증, 국가고시, 부모찬스 그리고 아파트 지역과 평수 등으로 표현되는 모든 것들이 자신의 기득권(영토)를 방어하려는 기제들입니다.

 

대중영합주의는 상기의 복합적인 기득권의 영토기제를 활용하여 서로에게 반목을 조장하고 여러분을 굴종의 기회주의자이자 이기적 개인으로 타락시킵니다. 당연히 미래에 펼쳐지는 새로운 사회에서는 모든 개인에 대한 기회의 존중과 자격이 아닌 능력과 그리고 배경이 아닌 실질적 성과를 기준으로 적용하면서 기존의 영토방어주의를 혁파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차기정부 향후의 경제운용은, 빨대처럼 모든 성과를 상위의 1%가 독차지하는 현재의 구조를 방치한 채, GDP중심의 양적 성장주의가 되어서도 부자들을 위한 주식지표가 평가의 기준이 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맹자가 나라의 역할은 제민지산 즉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듯이, 미국의 바이든이 외교정책의 목표를 미국시민들의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듯이, 경제와 사회의 발전은 오로지 일반 서민들의 일상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하는 것에 우선적인 방점을 두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검찰, 법조, 언론, 고급관료, 기회적 지식인 등 지난 70여 년 특혜와 지위가 형성된 기득권층과 자산가들의 저항이 엄청나고 거세게 일어날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제어하고 돌파할 행정적, 법제적, 정치적 돌파력을 지닌 의지의 정치인이 차기 대통령이 되어야만 합니다. 새로운 대통령은 기득권에 얽매여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다음 대통령은 통치자가 아니라 젊은 여러분에게 기회와 계기를 만들어주는 길라잡이의 수단이어야 합니다.

 

더욱이 외국의 거대자본과 기업들이 한국을 압박하여 올 때 당당히 국민주권적으로 이를 방어하고 국가적 이익을 지켜날 만큼 민족적 자존과 긍지를 지닌 인물만이 여러분의 미래를 지켜줄 것입니다. 분단상황에 처해 있는 민족의 현실을 정치적인 수단으로 악용하고 외세에 의존하여 한반도의 불안을 조장하는 자가 아니라, 역사와 민족 앞에 자신을 헌신하고 독자적인 주권국가의 지도자로서 강대국의 압력과 세계무대에 당당할 수 있는 인물이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이번 대선의 향방과 대세가 여러분 MZ세대가 쥐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입니다. 다시 말하면 미래에 펼쳐질 세상은 바로 여러분들의 판단과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이번 대선의 성격과 선택은 여야의 후보를 떠나서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과거로의 회귀이냐, 변화의 새로운 시대로 진입이냐

- 신자유주의적 예종의 연속이냐, 자기실현의 변혁적 모험의 길이냐

- 기득권 질서와 법전을 앞세운 검찰공화국의 시대이냐, 아니면 역사의 맥동에 따라 시민주권의 창발적 시대를 실현하느냐

 

이제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곧 선택의 시기가 다가옵니다.

글맺음으로 나의 마음을 대신하여 프랑스의 전설적인 외교관 스테판 에셀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젊은 시절인 제2차 대전의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한 시기에 레지스탕스의 지도자로 이름을 날렸고, 종전 이후에는 유엔의 인권대사로 임명되어 인류역사의 금자탑이라고 할만한 세계인권선언문의 초안작업에 참여하여,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영원한 대사님이라는 명예호칭을 받은 인물입니다. 그가 임종을 앞둔 93세에 유언처럼 작성한 팜플렛에 ‘<분노하라> - 저항하라 그리고 점령하라고 적었습니다.

 

레지스탕스 출신다운 그의 격렬한 조언으로, 이후 월가점령의 운동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최근에는 프랑스에서 노란조끼의 저항운동이 전개되었으며 급기야 금요일의 기후행동으로 십대의 소녀 그레타 툰베리를 세계적인 분노의 환경운동가로 변신시켰습니다.

 

여러분들도 해방 이후 70여 년간 누적된 기득권을 사수하려는 악마의 달콤한 밀어에 속지 말고, 직면한 현실에 분노하고 함께 행동하고 미래를 향한 거점을 확보하시길 바랍니다. 내년 3월에 있을 대선에서 여러분의 선택으로 새로운 출발점이 이루어지길 조언합니다.

 

202111, 대선을 100여 일 앞둔 어느 날에 - 다른백년 명예이사장 이래경. 프레시안

 

학살자 전두환, 반성 없이 죽다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하고, 내란을 일으켜 시민을 학살한 뒤 고문과 압제로 인권을 유린했던 독재자 전두환이 23일 사망했다. 한국 현대사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도 언제나 뻔뻔한 당당함을 유지했던 학살자는 이날 오전 서울 연희동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져 숨을 거뒀다. 국민은 지난 40여년 수없이 사죄의 기회를 줬지만 거짓과 핑계로 일관했던 그는 죽는 날까지 단 한마디 사과도, 참회도 없었다.

육사 11, 하나회 결성해 박정희 친위대 활동

경남 합천군 율곡면에서 태어난 전두환은 대구공고를 졸업하고 1951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1955년 육사를 졸업하고 육군 제25보병사단에서 소대장으로 첫 군생활을 시작했다. 1959년에는 미국 특수전 파견 교육 장교로 선발됐고, 이어 제1공수특전단 본부에 배치됐다. ‘정치 군인의 면모가 드러난 것도 이때부터다. 그는 육사 2기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기인 이규동의 딸 이순자와 1959년 결혼했다. 19615·16 쿠데타 때 서울대 학군단(ROTC) 교관으로 일했던 그는 육사 후배들을 설득해 군부 혁명 지지 시가행진을 하게 했고 이 일로 박정희의 신임을 얻어 국가재건최고회의 비서관 자리에 앉았다. 그 뒤 박정희의 최측근으로 부상하며 중앙정보부 인사과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1공수특전단 부단장 등을 지냈다. 1969년엔 육사 동기 중 최초로 대령으로 진급해 1970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1974년 육사 11기 최초로 별을 달고 대통령 경호실 작전차장보, 1보병사단 사단장 등 요직을 맡았다. 1979년에는 국군보안사령관 자리에까지 올랐다. 전두환이 1963년에 노태우 등 육사 11기들과 조직한 사조직 하나회는 그가 군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이 됐다. 하나회는 박정희 친위 세력으로 역할을 하며 영향력을 키웠고 10·26 사건으로 정국이 혼란하던 틈에 전두환이 정권을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2·12로 정권 찬탈, 5·18로 유혈 진압

9791026,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자, 전두환은 국군보안사령관 겸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 자격으로 수사를 맡았다. 그리고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당시 계엄사령관이던 정승화를 연행하고 군을 장악했다. 1980517,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 인사들은 시국을 수습한다는 명목으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정당·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국회를 폐쇄했으며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했다. 학생·정치인·재야인사 등 2699명도 구금했다. 전두환은 이에 맞선 광주시민을 총칼로 학살하며 진압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가 2005년 집계한 통계를 보면, 5·18 사망자는 모두 606명으로 집계됐지만, 암매장 등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죽음이 많다.

신군부에 밀려 최규하 대통령이 직에서 물러나자, 전두환은 그해 8월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는 취임 뒤 정당을 해산하고 1027‘7년 단임 대통령제가 담긴 새 헌법을 공포했다. 1981년 민주정의당에 입당했고, 새 헌법에 따라 간접선거 방식으로 1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1986115일 서울 가락동 중앙정치연수원에서 당 총재인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표위원 등 당직자, 소속 의원, 당원, 각계인사 17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민정당 창당 5주년 기념식에서 전두환씨 부부가 당원들의 환호에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전두환 대통령집권 시절 한국은 저금리·저유가·저달러 상황에서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누렸지만 민주화를 향한 열망은 한층 거세졌다. 198512대 총선을 계기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가 터져 나왔고 1987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드러났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그럼에도 그해 4, 전두환은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며 체육관 선거를 유지하겠다고 버텼다. 이에 반발하는 국민들이 전국 각지에서 시위를 벌였고 결국 629,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노태우 당시 민주정의당 대표가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기에 이른다.

 

전두환은 노태우를 후계자로 세우고 퇴임 뒤에도 민정당 총재로 남아 막후 권력을 휘두르려 했다. 그러나 노태우 집권 뒤 여소야대국회에서 5공 비리와 5·18 민주화운동 진상조사를 위한 목소리가 들끓었다. 권력을 넘겨받은 친구이자 육사 동기 노태우도 그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19881123, 전두환은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한 뒤 부인 이순자씨와 함께 내설악 백담사로 들어갔다. 이 정도로 정치적 책임을 갈음하려는 자기 유폐였다.

 

퇴임과 구속, 전 재산 29만원

본격적인 징벌은 김영삼 정부 출범 뒤 시작됐다. 민정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 후보로 1992년 대선에서 당선된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 중반인 1995년 말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특별법을 제정해 전두환과 노태우를 전격 구속했다. 쿠데타로 인한 정권 찬탈(반란수괴, 반란모의참여, 반란중요임무종사, 불법진퇴,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 상관살해, 상관살해미수, 초병살해, 내란수괴, 내란모의참여, 내란중요임무종사, 내란목적살인)과 대통령 재직 시절 뇌물수수(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였다.

피고인 전두환씨(오른쪽부터)가 노태우씨,유학성 전 중앙정보부장과 19968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12·12. 5·18사건 선고공판에서 기립해 있다. 연합뉴스

 

전두환은 이에 반발하며 연희동 자택 앞에서 “(12·125·18)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나 정부가 정치적인 이유로 특별법까지 제정해 재조사한다니 응할 이유가 없다. 법을 존중하기 위해 사법부의 조처만 수용할 것이라는 골목 성명을 발표한 뒤 고향으로 내려갔다. 검찰 수사팀은 경남 합천으로 내려가 그를 압송했고 법정에 세웠다.

1995122일 자택 앞 골목에서 전씨가 검찰 소환 방침을 정면 반박하는 2쪽 분량의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는 모습. 전씨는 이후 고향인 합천에 내려가 버티다가 체포돼 구속되었다. 연합뉴스

 

전두환은 1심에서 반란수괴와 부패 혐의로 거액의 추징금과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고,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검찰은 처벌이 약하다며 상고했지만 19974월 대법원은 전두환에게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199715대 대선 유세에서 김대중(새정치국민회의이회창(한나라당이인제(국민신당) 후보 모두 전두환 사면복권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고, 대선 이틀 뒤인 그해 1220일 김영삼 대통령이 그를 사면 복권했지만 추징금은 전부 내야 했다.

 

그러나 전두환은 추징금 완납을 거부했고 전 재산이 291000원이라고 항변하며 공분을 샀다. 전두환은 2003428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추징금 환수를 위한 재산 명시 관련 재판에서 기업한테서 뇌물을 받은 것은 잘못이지만, 그렇게 받은 돈을 민정당 관리 등 정치 활동에 다 써서 남은 게 없다며 해당 금액이 적힌 예금과 채권 증서를 제출했다. 그가 제출한 재산 목록에는 진돗개, 피아노, 그림, 병풍, 응접세트, 카펫, 에어컨, 텔레비전, 냉장고, 시계, 도자기, 컴퓨터, 식탁세트 등도 적혀 있었다. 출소 뒤에도 그는 연희동에 살면서 경호를 받고, 골프를 치러 다니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미납한 추징금은 956억원이다.

 

사자명예훼손단죄 못 받고 떠나

말년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2017년 전두환은 3권짜리 회고록을 내놨다. 법원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된 내용이 담겨 있는 1권 판매를 금지했다. 이 회고록에서 그는 ‘19805월 광주 상공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고 조비오 신부의 증언이 거짓이라며 가면을 쓴 사탄”,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 조 신부의 유족은 전두환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결국 전두환은 2019311일 경찰 경호팀의 호위를 받으며 피고인 신분으로 광주지방법원 법정에 섰다. 1999광주에서 책임 있는 분들이 중심이 돼 초청하면 광주도 방문 못 할 이유가 없다고 호기를 부렸던 그는 광주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당시에 헬기에서 사격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과 전두환 쪽 모두 판결에 불복하면서 항소심 재판이 이어졌고, 전두환은 올해 8월 항소심에 출석했지만 인적 사항을 확인하는 판사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고 어지럼증을 느낀다며 재판 시작 20여분 만에 퇴정하기도 했다. 그 직후 악성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을 진단받고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더는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그였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발언(지난 1019)으로 다시 한번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019117일 강원도 홍천 한 골프장에서 전두환씨가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를 바라보고 있다. 임한솔 제공

 

그의 죽음에 5·18민주유공자유족회 등은 공동성명을 내어 전두환이 죽더라도 5·18의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오월학살 주범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고, 만고의 대역죄인 전두환의 범죄 행위를 명명백백히 밝혀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학살자는 죽음으로도 진실을 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언론은 15년째 '폭탄타령'... 거짓말을 멈춰라

[민언련 언론포커스] 투기공화국 혁파를 위한 마지노선, 더 강화해야

국세청이 지난 22일부터 올해분 종합부동산세 고지서 발송을 시작했다. 언론은 "세금폭탄", "공포의 종부세" 등 공포심을 조장하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민주언론시민연합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고지서가 발부되자 올해도 어김없이 대다수 언론이 '세금폭탄' 프레임을 쏟아내고 있다. 종부세가 생긴 지 15년이 지났건만 언론의 '세금폭탄' 타령은 그칠 줄을 모른다. 하지만 과거에도, 지금도 종부세는 '세금폭탄'이 아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21년 주택분 종부세 고지 인원은 94.7만 명이고, 세액은 5.7조 원이다. 국민의 98%는 종부세 과세대상이 아닌 것이다. 2%에 해당하는 종부세 과세대상 중에서도 다주택자와 법인이 세액의 대부분을 부담한다.

 

고지 세액 5.7조 원 중 다주택자(인별 기준 2주택 이상 보유자 48.5만 명, 2.7조 원) 및 법인(6.2만 명, 2.3조 원)이 세액의 88.9%를 담당하고 있다. 주목할 대목은 전년도에 비해 다주택자 및 법인 비중은 납부 인원의 경우 55.6%에서 57.8%, 세액은 82.7%에서 88.9%'소폭'이나마 늘었다.

 

좀 더 살펴보면 다주택자 투기 억제를 위한 과세강화 조치로 3주택 이상자(조정지역 2주택 포함) 과세인원이 전년 대비 78%, 세액은 223% 각각 증가했다. 한편 다주택자(48.5만 명) 3주택 이상자가 85.6%(41.5만 명)인데, 이들이 다주택자 세액(2.7조 원) 96.4%(2.6조 원)를 부담하고 있다. 종부세가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다주택자 투기 억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 법인의 과세인원(6.2만 명, +279%)과 세액(2.3조 원, +311%)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세대 1주택자, 종부세 부담 거의 없다

1세대 1주택자의 주택가격별 인원 비중 및 평균 세액 표를 살펴보면 전체 1세대 1주택자 인원 중 72.5%는 시가 25억원 이하자로 평균세액은 50만원 수준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세대 1주택자의 주택가격별 인원 비중 및 평균 세액 표를 살펴보면 전체 1세대 1주택자 인원 중 72.5%는 시가 25억원 이하자로 평균세액은 50만원 수준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기획재정부

 

반면 1세대 1주택자는 당해 연도 종부세 고지 세액(5.7조 원) 중 고작 3.5%(13.2만 명, 0.2조 원)를 부담하며, 전년도 대비 종부세에서 차지하는 인원 비중과 세액이 모두 줄었다. 공제금액을 기존의 9억 원에서 11억 원으로 올린 데다(실거래가 기준 13~16억 원), 장기보유특별공제와 고령자공제 합산공제율을 기존 최대 70%에서 80%로 상향하는 등 1세대 1주택자 보호를 더 두텁게 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체 1세대 1주택자 인원 중 72.5%는 시가 25억 원(공시가격 17억 원, 과세표준 6억 원) 이하자로 평균 세액은 50만 원 남짓에 불과하다. 한편 시가 20억 원(공시가격 14억 원, 과세표준 3억 원) 이하자 평균세액은 고작 27만 원(전체 1세대 1주택자 중 44.9%)에 머문다.

 

시가 약 16억 원(공시가격 11억 원) 이하 주택 보유자는 종부세 과세대상에서 제외되는데, 2021년 기준 시가 약 16억 원(공시가격 11억 원) 초과 주택 수는 34.6만 호(1.9%)에 불과하다. 이쯤 되면 세금폭탄이라는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모함이자 선동인지 알 수 있다.

 

물론 주택분 종부세가 전년도(1.8조 원)에 비해 올해(5.7조 원) 크게 늘어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코로나 팬데믹 등에 따른 유동성 홍수 탓에 주택가격이 폭등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공정시장가액비율 상향이나 공시가격 현실화율 제고 등은 마땅히 해야 할 시장 정상화 조치였으며, 다주택자와 법인에 대한 세율 강화도 투기 억제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였다.

 

투기 공화국 대한민국, 종부세 더 강화해야

2020 국민대차대조표(잠정)에 따르면 대한민국 부동산자산 규모는 15202조 원에 달한다. 이는 물경 국내총생산(GDP)8배 수준이다. 2002GDP5배를 약간 상회하던 부동산자산은 불과 18년 만에 8배에 도달했다.

GDP 대비 부동산자산 가액은 많은 국가가 400% 내외에 머무는 반면, 대한민국은 무려 800%에 육박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대한민국 다음으로 GDP 대비 부동산자산 가액이 높은 프랑스와 호주도 600%를 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부동산공화국이자 투기공화국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아래 표가 잘 보여주듯 대한민국 보유세 실효세율은 선진국 가운데 하위권에 속한다. 부동산 투기 억제 및 불로소득 환수의 최적 정책수단인 보유세 실효세율이 이렇게 낮으니 투기를 막을 길도, 치솟는 부동산을 잡을 방도도 없는 것이다.

국가별 최근 실효세율 및 데이터 연도토지+자유리포트

 

결국 언론이 앞다퉈 쏟아내는 세금폭탄론은 거짓말이다. 야당 후보가 주창한 종부세 형해화는 당장 철회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주장이다. 종부세는 더 강화하거나 백 보를 양보하더라도 종부세를 발전적으로 지양할 세금에 역사적 소임을 물려주어야 한다

오마이뉴스 이태경(ccdm1984)

 

인간 전두환이라 했던 조선일보를 돌아보다

전두환의 죽음에 부쳐

12·12부터 언론통폐합까지 특별했던 전두환과 조선일보

손석춘 교수 권언복합체 결탁 앞장선 게 조선일보

 

분단의 비극이 해소되는 날까지 현실적으로 이곳, 이땅의 궁극적 운명은 군의 어깨에 달려 있다. 어떤 논리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우리의 오늘의 생존의 조건이고 상황이다

 

19791230격동의 70년대를 보낸다조선일보 사설 중 일부 내용이다.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군부에 조선일보는 이렇게 화답했다.

 

전두환 군사 독재는 언론자유를 말살했다. ‘땡전뉴스로 대표되는 전두환 찬양 보도는 폭압적 정권 하 언론의 생존법이 굴욕에 가까웠다는 걸 보여준다.

 

특히 전두환 정권과 조선일보의 관계는 각별했다. 손석춘 교수(건국대학교)는 자신의 저서 조선평전을 통해 결국 전두환은 1979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160여일 만에 대통령이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걸린 쿠데타과정에서 가장 큰 공은 언론, 그 중에서도 통단사설로 전두환을 새로운 길잡이라 선동한 그(사주 방우영)가 단연 제일의 앞잡이라고 비판했다

1979116일 전두환 당시 계엄사 합동 수사 본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사건 관련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전두환과 조선일보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평가하는 건 전두환 정권 시기 결탁이라고 할 정도로 찬양에 가까운 보도를 내놓고, 언론통폐합 조치로 경쟁 매체가 쇠락의 길을 걸은 반면, 조선일보는 전성기를 누렸기 때문이다.

 

197912·12 군사반란부터 언론통폐합 조치까지 관련한 조선일보 보도 내용을 발췌해 정리한다. (참고문헌 조선평전_손석춘 교수)

 

1980130일 일본 신문 산케이와의 회견에서 선우휘 조선일보 주필은 이렇게 말했다.

 

언론규제는 없는 것이 낫다. 하지만 한국에서 언론의 제약이 가해져도 하는 수 없는 상황이 있다. 4·19에서 5·16까지의 1년은 어떠했는가. 언론의 자유와 책임이 전혀 양립되어 있지를 않았다. 하룻밤새 모든 신문이 정부에 대해 비판적으로 나서게 되고 1년 내내 연일 조석간을 통틀어 정부를 두들겨 팼다그 사태를 한국 언론이 심각하게 반성하지 않고 5·16에 의해 언론규제를 받게 되자 이번에는 언론의 자유를 붙잡고 슬픈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너무도 감성적인 처사이다

 

손석춘 교수는 선우휘 주필의 발언을 군부의 언론 통제를 정당화하는 감성적 망언이었다하지만 당시 모든 언론인이 선우휘 같지는 않았다. 경향신문과 한국일보 기자들은 언론 자유의 신장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꼬집었다.

 

당시 전두환의 국군보안사령부는 ‘K-공작계획에 따라 언론사 간부의 성향을 파악하고 회유했으며 학자와 평론가의 기고를 조직해 우호적인 여론인양 조작했다.

 

전두환이 비상계엄을 확대한 1980517일부터 조선일보는 전두환 군부의 스피커를 자처했다. 522일 조선일보 1면 제목은 광주 일원 소요 사태였다. 다음날 23일 전두환 정권이 발표한대로 김대중 씨 수사 중간발표가 실렸다. 5251면 사진은 총기 널린 폐허의 광주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이날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사회혼란의 틈바구니에서 또는 격앙된 군중 속에서 간첩이나 오열이 선동하고 방화 살상의 선봉적 역할을 하리라는 것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 일이고 실제로 그런 증거가 포착되기도 했으며, 서울에서는 남파간첩이 체포되고 했다. 이들이 지역감정을 촉발시키는 등 갖은 유언비어를 퍼뜨려 민심을 흉흉케 함으로써 사태를 격화시켰으니라는 것도 십분 짐작이 가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전두환에 맞선 동료 언론인에 대해서도 냉혹했다. 계엄사령부가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언론인 8명을 연행해 조사 중이라고 발표하자 조선일보는 정부와 국민 모두가 일치단결, 국가보위와 난국 타개에 정진하고 있는 이 때 확고한 시국관을 가지고 국민을 올바로 계도해야 할 언론인이 자신들의 신성한 사명과 책무를 망각하고 도리어 악성적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시켜 사회 민심을 자극 현혹시키는 행태를 계속하여왔다라고 썼다.

 

전두환 대통령 만들기라고 평가받는 보도도 이어졌다. 그해 89미국이 전두환 장군을 지지할 것이라는 AP통신 기사를 인용한 기사를 실었다.

 

전두환을 새 시대를 영도할 지도인물로 국민적 기대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라고 쓴 812일자 1면 기사는 전두환과 조선일보의 특별한 관계를 한눈에 보여준다.

 

지금도 조선일보를 대표하는 코너로 운용 중인 팔면봉에서 당시 조선일보는 대통령 최규하 하야 발표(816)가 있자 정치일정 급속히 앞당겨질 듯, 새로 덮는 지붕 빠를수록 안도감이라고 썼다.

 

전군 지휘관들이 전두환 대통령 추대를 결의하자 조선일보는 국가보위의 주체인 군의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새 지도자가 되어야겠다는 소신을 천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금도 널리 회자되는 인간 전두환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선 그의 투철한 국가관과 불굴의 의지, 비리를 보고선 잠시도 참지 못하는 불 같은 성품과 책임감, 그러면서도 아랫사람에겐 한없이 자상한 오늘의 지도자적 자질은 수도생활보다도 엄격하고 규칙적인 육군사관학교 4년 생활에서 갈고 닦아 더욱 살찌운 것이 듯하다라고 썼다.

1980823일자 조선일보 3

 

827일 체육관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전두환은 조선일보 사주 방우영을 국가보위입법회의 위원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전두환은 28개 신문, 29개 방송, 7개 통신을 각각 14, 3, 1개로 언론통폐합 조치를 내렸다.

 

조선일보는 이번 결정은 한국언론사상 일대 혁명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언론기관이 국민에게 각종 지식과 고도의 정보를 전달하는 등의 올바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왔으나 이런 과정에서 공익성 우선이라는 세계적인 추세를 뒤따르지 못하고, 지나치게 상업주의적 경향을 띠어왔다는 점이 그동안 크게 논란 되어왔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언론통폐합으로 신문시장에서 30여년간 1위였던 동아일보는 동아방송을 잃는 등 경쟁매체의 몰락이 시작됐는데 조선일보는 이를 언론개혁으로 포장한 것이다.

 

손석춘 교수는 전두환의 뜻에 따라 언론사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기자가 실직하는 시장 상황은 신문과 방송사로 하여금 전두환 찬양에 앞 다퉈 나서게 했다그 과정에서 전두환 군부가 가장 공이 컸다고 본 조선일보는 1980년대 내내 신문시장에서 고속 성장했다고 지적했다.

 

손석춘 교수는 23일 통화에서 국가보위입법회의에 사주 방우영이 참여했다. 사실상 5공화국은 권언복합체라 규정할 수 있고, 조선일보는 그 한 축으로 볼 수 있다박정희 정권 때까지 언론이 권력에 예속된 상태였다면 80년대에 언론은 정권에 일방 예속된 게 아니라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세력이었고, 그 결탁에 앞장섰던 게 조선일보였다고 밝혔다. 미디어오늘 이재진 기자

 

 

노화를 재촉하는 음식 5

나쁜 습관을 가진 사람은 빨리 늙는다. 담배는 끊고 햇볕 노출은 줄일 것. 소파에 늘어져 하루를 보내는 대신 하루 30분 이상 밖에서 걷는 게 좋다.

 

노화를 재촉하는 음식을 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음식일까? 미국 건강 매체 잇디스닷컴이 정리했다.

 

포테이토칩 = 해가 지면 TV 앞에서 감자칩을 먹는 사람은 또래보다 나이들어 보인다. 감자칩에는 소금이 많아서 부기를 유발하고 눈가 피부의 탄력을 앗아가기 때문. 영양학자 리사 헤임에 따르면, 감자칩에는 또 트랜스 지방산이 많아서 인터류킨 6를 자극한다. 인터류킨 6란 노화와 관련된 염증 지표. 바삭한 간식이 당길 때는 감자칩 대신 통곡물 크래커나 견과류를 먹는 게 현명하다.

 

에너지 드링크 = 설탕이 많이 들었다. 게다가 산성이라 치아에 손상을 가한다. 미소가 깨끗해야 젊어 보인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 에너지 드링크 대신 물을 마시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자. 적어도 하루 8~10잔을 마셔야 피부를 맑고 탱탱하게 유지할 수 있다.

 

타르트 = 머핀이나 케이크도 마찬가지. 달콤한 디저트는 노화를 앞당긴다. 당분과 지방이 너무 많아서 몸매가 퍼지는 건 물론, 치아 건강도 나빠지기 때문이다. 영양학자 알렉산드라 밀러에 따르면 단 음식은 피부 속 콜라겐과 엘라스틴을 파괴한다. 또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핫도그 = 안에 들어간 소시지가 문제다. 방부제가 들어간 가공육은 노화의 원인이 되는 프리 라디컬을 만들어낸다. 프리 라디컬은 세포와 DNA의 산화를 촉진하고 암으로 이어질 수 있는 손상을 일으킨다. 베이컨도 멀리할 것. 역시 가공육인 베이컨에는 질산염이 들어 있어서 알츠하이머병 등 노화 관련 질병을 유발한다.

 

프라이드치킨 = 높은 온도로 기름을 가열하는 과정에서 프리 라디컬이 생성된다. 한밤의 치맥은 허리 라인뿐 아니라 내부 장기에도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영양학자 캐서린 존은 튀길 때 사용하는 기름은 식물성이라 하더라도 세포의 호흡을 방해하고 면역 기능을 떨어트린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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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기자 (youngchaeyi@kormedi.com)

 

전두환 빈소의 유튜버들

© 경향신문 24일 전 대통령 전두환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유튜버들이 촬영을 하고 있다. 이들은 빈소를 방문한 한 시민이 전두환은 역사 앞에 사죄하라고 하자, 우르르 몰려가 욕설을

 

어떤 놈이야!” “전두환이랑 5·18이 무슨 상관이야!”

 

2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실 1호 앞. 전두환씨의 빈소가 마련된 이곳에서 오후 915분쯤 소란이 일었다. 소동의 주인공은 전씨 빈소를 촬영하던 보수 유튜버들이었다. 전씨 부인 이순자씨가 잠시 빈소를 나선 순간이었다. 취재진이 이씨에게 “5·18 희생자들에게 할 말 없냐고 묻자 유튜버 여럿이 소리를 질렀다. “돌아가신 데 와 가지고 저런 소리를!” “대한민국의 영웅이야!”

 

이들은 빈소가 운영되는 내내 기자들 질문을 고성과 욕설로 가로막았다. 조문을 마친 정진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빈소를 나서자 기자들은 빈소 안에서 유족과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물었다. 취재진이 “(5·18 희생자에게) 사과할 의향이 있다고 하던가를 묻자 유튜버들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사과를 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 전 사령관이 5.18민주화운동을 두고 “(북한군이) 한국에 300여명이나 되는 남하해 가지고서는 일으킨 사건 아니겠냐고 말했을 때도 비슷했다. 취재진이 방금 말씀은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주장이냐고 묻자 유튜버들은 그건 사실이다. 주장이 아니라. 북한 교과서에도 나온다면서 질의응답을 가로막았다

 

기자들의 질문이 막힌 자리엔 유튜버 자신의 시선이 담긴 질문이 채워졌다. 이들은 정 전 사령관을 향해 많은 국민들이 전두환 대통령의 위대한 업적을 잘 알고 있다. 업적에 대해 한 말씀 부탁한다고 했다. 국가 경제를 12% 이상 성장시킨 훌륭한 분이고, 88올림픽도 성공적으로 마치게 해줬다는 것이지요?”라고 물었다. 기자들을 향해 이 빨갱이 XX들아!”라는 욕설도 했다. 취재에 나섰던 기자 일부가 유튜버들 고성 때문에 답변이 들리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 사이 유튜브 생방송으로 흘러나간 장면은 전씨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역사부정론 뿐이었다.

 

기자라는 직업의 핵심 역할은 사실관계를 취재해 시민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기자가 다뤄야하는 팩트엔 정치인을 비롯한 책임있는 이들이 특정 사안과 관련해 발언하는 내용도 포함된다. 유튜버들도 질문할 권리는 있다. 하지만 다른 취재 주체의 질문을 가로막을 권한은 없지 않은가. 정작 정 전 사령관이나 전씨가 2년 간 머물렀던 백담사의 주지 도후스님이 취재진과의 질의응답을 마치고 떠났을 때 유튜버들이 찾은 사람은 기자였다. “저 사람 누구예요?”

 

유튜버들은 지난해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숨진 채 발견된 날에도 취재 현장에서 물의를 일으켰다. 박 전 시장의 시신이 발견된 서울 종로구 와룡공원에서 이들은 목을 매달았나? 떨어졌나?” “외모가 심하게 손상됐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한국기자협회가 만든 자살보도 권고기준과는 거리가 먼 물음이었다. 일부 유튜버는 문재인 정권 차원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과 관련해 무언가 숨기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닌가라는 황당한 음모론을 제기했다. 그때 문제는 부적절한 질문이었다. 지금은 남의 질문을 가로막는 행태까지 나아간 것 아닌가.

 

전씨 빈소가 문을 닫기 직전인 이날 밤 10시쯤 소동의 끝은 또다른 고성이었다. 다른 빈소의 일반 시민이 전씨 빈소 앞으로 와서 일그러진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나도 고인 모시고 싶어요!” 간헐적으로 이어진 유튜버들의 고성에 지쳤다는 그는 병원 관계자와 기자들을 향해 저런 짓 좀 못하게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유튜버들을 향해 말했다. “조용히 좀 해주세요. 왜 내가 당신들의 정쟁에 휘말려 쓸데없는 얘기를 들어야 합니까.”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경제지·세계·조선·중앙, 종부세 폭탄·쇼크 쏟아내다

(1)] 자극적 용어로 공포 불안 부추기는 보도 15년째 반복

국세청이 1122일 올해 주택분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고지했습니다. 최근 집값이 크게 상승하고 공시가격이 현실화되자 고지 이전부터 늘어날 종부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종부세 고지 후 일부 언론은 세금 폭탄론을 또다시 꺼내들었습니다. 종부세를 설명할 수 있는 수치 중 부러 큰 숫자만 떼다 제목에 싣거나 종부세 영향력을 빌미로 과세 대상자를 늘리는 방식이 줄곧 사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고령층장기보유자 부담을 경감해주는 등 실수요자 보호 장치를 정부가 잘 마련했는지 살피고 불합리한 과세는 없는지 따져보는 것은 언론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부의 불평등이 극심한 상황에서 집값 안정과 조세 정의 구현을 목적으로 하는 종부세를 마치 전 국민이 세금 폭탄을 맞을 것처럼 소개한다면 왜곡 보도에 다름 아닙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종부세를 둘러싼 최근 언론보도를 살폈습니다.

 

세금폭탄론힘 실으려 수치 부풀리기?

94만 명·42%종부세 대상자 큰 숫자만 보도

종부세는 고가 주택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입니다. 국회는 지난 91가구 1주택 종부세 과세 기준율을 공시가격 9억 원에서 11억 원 초과로 상향했습니다. 이로 인해 시가 15~16억 원이상의 주택이 종부세에 해당하며 종부세 대상자 89천여 명이 감소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2021년 주택분 종부세 개인·법인 고지 현황 (1122, 기획재정부 보도참고자료)

 

그럼에도 이번 종부세 납부 대상자를 두고 언론보도엔 ‘94만 명‘42% 증가라는 표현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94만 명이란 수치는 2021년 주택분 종부세 고지 인원(947천명, 개인법인 합산)으로 전 국민(5200만 명)2%에 해당합니다. 기획재정부는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전 국민의 98%는 과세대상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은 시민들이 과하게 인식할 수 있는 ‘94만 명이라는 숫자를 더 많이 언급했습니다.

1122일부터 23일까지 종부세 중 94만 명과 42%를 강조해 다룬 보도

 

‘42% 증가란 표현은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올해 전체 종부세 납세자가 얼마나 증가했는지 비율을 의미합니다. 개인 납세자는 36%, 법인납세자는 287.5% 증가했고, 전체로 따지면 42% 늘었습니다. 언론은 종부세 증가 사례를 보도할 때 대부분 개인 납세자 사례를 인용하지만, 납세자 비율은 개인과 법인을 합산한 전체 숫자를 인용했습니다. 틀린 수치는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더 커 보이고 과하게 판단될 수 있는 숫자를 가져다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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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종부세 대상자에 대해 과하게 인식될 수 있는 숫자들만 선택해 보도한 동아일보

 

더 큰 수치를 찾아서종부세 대상자 늘리기

종부세 대상자가 국민의 2%만 해당한다는 정부와 일부 언론의 지적이 잇따르자 이번에는 종부세가 실제로는 더 많은 국민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보도가 등장했습니다. 조선일보 <“국민 2%만 종부세? 전국 가구수로 따지면 4%, 수도권 유주택자의 10%”>(1123일 정석우·김충령 기자)종부세는 실질적으로 가구 단위로 납부하니 가구 수를 기준으로 하고 또 주택이 있는 가구 수를 기준으로 종부세 대상자 비율을 따지는 게 맞는다는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의 발언을 전했습니다. 이어 주택 소유 가구는 1173만가구(작년 11월 기준)”종부세 대상자가 모두 독립된 가구라고 가정할 경우 종부세 납부 가구 비율은 전국 가구 수의 4.0%, 유주택 가구의 8.1%”라고 주장했습니다.

1123, 종부세 납부자 비율을 다양하게 계산한 조선일보

 

매일경제 <2%라더니전국민 종부세 영향권>(1122일 김정환·이종혁·전경운 기자)은 전문가들이 영유아 등 모든 연령층이 포함된 인구로 종부세 비중을 계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꼬집었다고 전했고, MBN <뉴스추적-국민 98% 종부세 무관?>(1122일 배준우 기자)네 식구가 사는 집에 아버지가 종부세를 내면 나머지 75%(가족들)는 종부세와 무관하다고 할 수없다며 정부 설명에 억측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집을 한 채라도 가진 가구가 1173만이고, 개인 종부세 부과 대상 숫자(885천 명)를 고려해 보면 집이 있는 사람 중 7.5%는 종부세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주택소유통계 결과>(1116)에 따르면 일반 가구(개인) 2093만 가구 중 주택을 소유한 가구는 1173만입니다. 따라서 언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주택가구 수 대비 종부세 비율을 따진다면, MBN과 같이 1173만 가구 중 개인 종부세 납세자인 885천 명에 해당하는 숫자를 비교하는 것이 더 적합해 보입니다. 조선일보와 같이 전체(개인+법인) 종부세 납세자 94만 명을 두고 계산해 8.1%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한겨레 <종부세 완화 1주택 9만명 면제다주택자는 증여로 방어막>(1122일 최종훈 기자)에서 설명하듯 종부세는 배우자와 자식이 각각 1주택씩 3채의 주택을 보유했다고 해도 이를 합산하지 않고 개인별로 과세합니다. 이러한 인별 과세 원칙에 따라 국민은 가족 간 증여로 명의를 분산해 종부세 부담을 줄이고 있으며 가족 내 여러 채의 주택을 보유한 사람은 1주택자 40만 명 중 268천 명(67%)에 해당할 정도로 높은 수치입니다. 따라서 종부세가 인별 과세임을 무시한 채 종부세 대상 비율을 높이기 위해 유주택자 중 종부세 납부 비율을 계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전체 종부세 89%, 다주택자·법인

언론이 강조해야 할 숫자는 89%입니다. 올해 부과된 종부세 고지세액 57천억 중 5조에 해당하는 89%는 다주택자와 법인이 부담합니다. 특히 다주택자 가운데 85.6%(415천 명)는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나 3주택 이상자로, 다주택자 세액 27천억 원 중 96.4%(26천억 원)를 부담합니다. 전체 종부세 대상 인원의 6.5%(62천 명)인 법인이 내야 할 세액은 전체의 41.3%(23천억 원)를 차지했으며, 1주택자엔 총 종부세액의 11%7천억 원이 부과됐습니다.

 

KBS <종부세 고지누가, 얼마나 더 내나?>(1122일 박예원 기자)는 종부세 전체 세액 중 법인 몫이 23,000억 원, 40%를 차지하며 개인으로 보면 다주택자가 27,000억 원, 47%를 부담해 조정지역 내 2주택이나 전체 3주택 이상인 사람들대부분 세금을 부담한다고 보도했습니다

2021년 주택분 종부세 개인·법인 고지 현황(1122, 기획재정부 보도참고자료)

 

MBC <종부세 5.7조 원89%는 다주택자·법인이 낸다>(1122일 이정은 기자)세금의 89%는 다주택자와 법인이 부담하며 종부세는 한 사람씩 별도로 매기기 때문에, 부부가 각자 한 채씩 가진 실질적인 다주택자들도 1주택자로 분류하며 진짜 실수요자로 볼 수 있는 <1세대 1주택자>가 부담하는 세금은 2천억 원, 전체의 3.5%”라고 짚었습니다. 실제 종부세 납부자 대다수는 다주택자 중에서도 3주택 이상자·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 등에 2주택 이상 보유자이거나 법인입니다.

 

폭탄역대급쇼크충격공포패닉누가 많이 썼나

경제지와 세계조선중앙, 자극적 용어 두드러져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언론이 얼마나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종부세 보도를 전하고 있는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제공하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서비스 빅카인즈와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알아봤습니다. ‘폭탄’, ‘역대급’, ‘쇼크’, ‘충격’, ‘공포’, ‘패닉과 같이, 언론이 종부세 보도를 전할 때 거의 빼놓지 않고 사용하는 단어를 종부세와 함께 검색했는데요. 그 결과, 빅카인즈에서는 총 383건의 보도, 네이버에서는 총 959건의 보도가 나왔습니다.

1116일부터 23일까지 빅카인즈와 네이버에서 자극적 용어로 검색된 종부세 보도량 순위 (기사 중복 허용)

 

언론사별 보도량에 따라 순위를 매겨보니 5개 경제지(매일경제, 서울경제, 아시아경제, 한국경제, 헤럴드경제)와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을 빅카인즈와 네이버 20위권 내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언론이 종부세 폭탄등 자극적인 용어로 공포와 불안을 부추기는 보도를 내놓은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매년 연말 정부가 종부세 고지서를 발행할 때마다 반복되고 있는데요. 1123일 현재 대한민국 인구는 약 5182만 명으로, 올해 종부세 납부 대상자는 947천 명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1.8%에 해당합니다. 종부세 보도에서 자극적 용어 사용으로 일관하는 언론들은 결국 1.8%만을 대변하며 그 외 98.2%에게도 공포와 불안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종부세 문제에 대해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앗아가기 때문에 더욱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니터 대상 : 20211121~22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 기사 / 20211121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 TV조선 <종합뉴스9>, 채널A <뉴스A>, MBN <종합뉴스> 저녁종합뉴스 / 20211116~23일 빅카인즈(종합일간지, 경제지, 지역일간지, 방송사 등 54개 언론사 뉴스)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검색된 종부세관련 보도

미디어오늘/ 민주언론시민연합

 

 

수시 폐지? 대한민국 대선후보들 이 정도밖엔 안 되나

[아이들은 나의 스승] '도돌이표' 대입 전형 공약, 민망하다 못해 안쓰럽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일인 18일 오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부모들이 고사장으로 향하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다.연합뉴스

 

이쯤 되면 한심하달 수밖에 없다. 공약이랍시고 선거철에 '죽지도 않고 찾아오는 각설이' 마냥 다시 또 어김없이 등장했다. 대입 전형 이야기다. 몇몇 대선 후보들이 청년을 위한답시고 당선되면 수시를 폐지하겠다며 목청을 돋우고 있다. 100% 정시로 선발하자는 거다.

 

'문제는 승자독식의 사회 구조야, 바보야!' 삼척동자도 아는 근본적인 원인은 나 몰라라 하고 애먼 대입 전형만 다시 손 보겠다는 뜻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지금의 수시 전형이 정시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대안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그저 '구관이 명관'이라며 옛날로 돌아가자는 퇴행적 사고다.

 

세월이 흐르면 고통스러웠던 기억조차 앨범 속 따듯한 추억인 양 여겨진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가 주야장천 기출문제만 달달 외우듯 반복해서 푸는 야만적이고 획일적인 교실 풍경을 까맣게 잊은 걸까. 그건 교육이 아니라 '사육'이었다.

 

암기 과목이라는 역사와 영어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논리를 따지는 수학조차 문제 풀이 과정을 통째로 외우던 시절이었다. 유형이 비슷한 문제를 하도 많이 풀다 보니, 출제 의도는 몰라도 정답은 맞히는 '내공'을 터득하기도 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됐으니 말이다.

 

"차라리 그때가 더 공정했던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에게 종종 듣는 이야기인 건 맞다. 오로지 명문대 진학을 꿈꾸며 종일 책과 씨름해야 하는 그들에겐 대입의 교육적 가치와 사회적 의미를 생각해볼 겨를이 없다. 당장 자신의 유불리만 저울질해 판단할 뿐이다. 거칠게 말해서, '옳고 그름'은 개나 줘버리라는 식이다.

 

어디서 전해 들었는진 몰라도, 전두환 정권 때의 학력고사 방식이 최선이라고 말하는 아이마저 있다. 자신의 점수를 고려해 원하는 대학에 먼저 지원하고 시험을 치러 당락이 결정되는 게 가장 공정하다는 주장이다. 이것저것 재고 따질 필요가 없으니 명쾌하지 않으냐는 거다.

 

'대입의 불공정은 복잡한 전형에서 비롯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진학지도를 담당하는 현직 교사들조차 이렇게 생각한다. 대선 후보들이 선거철 앞다퉈 수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거는 것도 그래서일 테다. 과연 100% 정시 주장처럼 전형이 단순해지면 불공정이 해소될 수 있을까. 단언컨대, 천만의 말씀이다.

 

그저 '공정하게 보일' , 별반 차이가 없다. 가정의 경제력과 자녀의 성적이 정확히 비례하는 상황에서 대입 전형이 어떻게 달라지든 예나 지금이나 상류층의 꽃놀이패일 뿐이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점수 높은 아이가 수시 성적도 좋고, 그 역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기회의 불공정

무엇보다 기회의 불공정을 간과한다. 한날한시에 똑같은 문제지로 시험을 치러 맞힌 개수로 우열을 가리는 걸 공정하다고 철석같이 믿을 뿐, 시험장에 앉기까지의 과정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까지는 어쩔 수 없으니 이것만이라도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아이는 수능을 '불공정한 사회에서 공정하길 기대하는 마지막 마지노선'이라는 표현을 썼다. 누구 말마따나, 부모 잘 만난 것도 실력 아니냐는 일종의 체념이다. 거대한 불공정의 산 앞에서 무릎 꿇은 채 호미로 흙 한 줌 걷어내려는 눈물겨운 노력이라고나 할까.

 

안타깝게도, 공정에 목매단 아이들조차 어떤 전형을 통해 명문대에 합격했는지 궁금해할 뿐, 그가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는지 따져보지 않는다. 명색이 지성인이라는 대학생들 사이에 '수시충(수시 전형으로 합격한 사람)', '지균충(지역균형선발 전형으로 합격한 사람)', '사배충(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을 통해 합격한 사람)' 등의 혐오 표현이 스스럼없이 나오는 요즘이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합격한 게 아니므로 '벌레'로 취급당해도 싸다는 인식이다. 불공정한 경쟁을 통해 승자가 된 것이 잘못일 뿐, 승자독식이 뭐가 문제냐고 반문하는 아이 앞에 할 말을 잃는다. 또래 중에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면 대번 '지질이'라는 조롱을 듣게 될 거라고 말했다.

 

공정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이토록 강퍅해졌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일 뿐, 그들을 나무랄 순 없다. 우리는 9수를 통해 사법고시에 합격한 야당의 대선 후보의 사례를 보면서도 기회의 불공정을 간파해내지 못하는 외눈박이 사회다. 되레 그의 목표를 향한 불굴의 의지를 상찬하는 목소리만 드높다.

 

무려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10년 동안 기약도 없는 시험을 뒷바라지해줄 수 있는 가정은 거의 없다. 그의 사법고시 합격은 온전히 넉넉한 집안의 경제력 덕분이다. 폐지된 지 이미 오래인데도 부활시키자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 사법고시조차 마냥 공정하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대입 전형이라고 다를까. 정시와 수시를 두고 사법고시와 로스쿨과의 관계로 비유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대개 자사고의 의대 진학률이 일반고에 견줘 압도적으로 높은 건 재수든 삼수든 합격할 때까지 응시하기 때문이다. 흡사 인디언 기우제 하는 식이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누가 뭐래도 몇 년이고 경제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어서다. 9수까지 해가며 사법고시에 끝내 합격하는 경우와 하등 다를 바 없다. 그걸 공정하다고 하려면, 누구든 돈 걱정 없이 그렇게 시도할 수 있도록 여건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물론, 허황한 바람일 뿐이다.

 

근본적인 해법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17일 오후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서 예비소집에 참석한 수험생들이 유의사항 등을 듣고 있다.연합뉴스

 

철저한 승자독식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애초 공정한 시험이란 허상이다. 대입 전형이 크게 정시와 수시로 나뉜 후,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야 하는 아이들의 부담이 커졌다는 게 핵심일 뿐, 공정성과는 무관하다. 실상 공정하다는 믿음 때문에 아이들이 정시를 선호하는 게 아니다.

 

코흘리개 초등학생조차 'SKY 서성한 중경외시'를 읊고 다니는 현실에서 공정한 대입 전형을 기대하는 건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다. 대입 전형 방식에 대해 고민하기보다 학벌 구조와 지방대 차별 의식을 어떻게 혁파할 수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대선 후보들의 '도돌이표' 대입 전형 공약이 민망하다 못해 안쓰럽다.

 

요컨대, 정시와 수시 중 어느 전형이 더 공정하냐에 천착하는 건 바보짓이다. 차라리 정시가, 혹은 수시가 아이들의 대입 준비를 위한 학습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고 설득하는 게 합리적이다. 물론, 승자독식의 사회 구조를 해체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굳이 영화의 대사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대통령이 되어 나라를 경영하겠다는 사람이라면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고작 대입 전형을 두고 밑도 끝도 없는 공정성 논쟁을 벌일 게 아니라, 거대한 불공정의 산을 허물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의 대선 후보들의 그릇의 크기가 이 정도밖엔 안 되나.

 

사족 하나. 언젠가 아이들에게 점수 높은 아이가 우대받는 게 과연 공정하냐고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백 보 양보해서, 도덕적이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대우를 받는 게 공정하다고 해도, 과연 도덕 시험 점수가 높다고 도덕적인 인간이라 말할 수 있는지, 나아가 인간의 능력과 잠재력을 수능 방식의 일제고사로 평가할 수 있는지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다.

 

아이들이 뭐라고 답했을 것 같은가. 평가가 기존의 사회 구조를 지탱하기 위한 도구라거나, 시험 제도의 변천이 곧 제대로 된 평가를 위한 노력이라고 말하는 제법 진지한 아이들은 극소수였다. 대다수는 그런 고민을 할 시간에 한 문제라도 더 풀어보는 게 도움이 된다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귀찮다는 거다.

 

내 질문에 진지하게 답했던 아이와 시큰둥해 하던 아이, 둘 중 누가 더 수능을 잘 볼 것 같은가. 수능 점수를 높이려면 유형에 따른 기출문제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푸는 게 왕도라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다. 부디 오해는 마시라. 수시가 정답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오마이뉴스 서부원(ernesto)

 

'트럼프 문화전쟁'의 격전지가 된 미국의 학교

[백인 우월주의의 또다른 이름, CRT ] 백인 학부모들의 분노는 공화당의 '꽃놀이패'?

이민자들이 만든 국가 미국에서 인종문제는 태생적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1863년 노예해방, 1963년 민권법 제정 등을 통해 인종적 불평등이 형식적으로 해소된 듯 보이지만 2021년 현재에도 인종주의는 여전히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이다. 지난 19일 시위 현장에서 총기를 난사해 2명을 살해하고 1명을 중태에 빠뜨렸던 18세 백인 소년 카일 리튼하우스가 '무죄' 평결을 받은 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로 폭증한 아시안 혐오범죄 등이 그 방증들이다.

 

백인 우월주의를 부추겨 집권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공화당)2020년 대선에서 패하고 조 바이든 행정부(민주당)가 들어서면서 '공화당 주(레드 스테이트)'들을 중심으로 확산된 '비판적 인종이론(Critical Race Theory) 교육 반대' 움직임도 미국에서 인종주의가 갖는 힘을 보여준다.

 

'CRT 교육 반대'는 트럼프가 장악한 공화당에서 민주당 세력을 상대로 벌이는 '문화 전쟁(Culture War)'에 속하는 이슈이기도 하다. 한국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했던 '국정 한국사 교과서' 사태를 연상시키는 2020년대 미국 내 역사 교육 논란의 정치사회적 함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어느 날 갑자기 정치적 격전장이 된 교육위원 선거

지난 114일 치러진 오하이오주 교육위원회(School Board) 선거는 이제껏 보지 못한 치열한 경쟁 속에 치러졌다. 오하이오주 교육위원회 협의회에 따르면, 4년 전과 비교해 올해는 선거에 참여한 후보들의 숫자가 50% 넘게 증가했다. 예년과 달리 1351명이나 신규 후보자로 입후보하면서 1277명의 기존 교육위원들과 자리 경쟁을 벌였다.

 

교육위원은 전직 교육자나 학부모들이 정당과 무관하게 출마해 투표를 통해 당락을 가르는 자리다. 교육 예산, 교육감 고용 등 교육 관련 일들을 논의하는 역할로 정치적 권한을 행사한다기보다 지역에서 봉사하는 자리로 여겨졌다. 그러다보니 지역 유권자들의 관심이나 선거 후원금 등과는 거리가 먼 자리였다.

 

그런데 교육위원 선거가 갑자기 미국 정치에서 새로운 격전지가 됐다. 이는 이번 오하이오주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6월 버지니아주 라우던 카운티의 교육위원회 공청회에는 주민 200여명이 몰려와 방청을 하다가 서로 다른 입장의 학부모들 사이에 몸싸움이 발생해 2명이 체포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어 버지니아주 라우던 카운티와 페어팩스 카운티에서는 일부 학부모들이 보수 성향을 시민단체('파이트 포 스쿨스', '스탠드 업 버지니아')와 함께 민주당 성향의 교육위원들에 불만을 품고 주민소환투표 청원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흐름은 지난 2일 있었던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까지 이어져 학교 교육에 불만을 제기하며 응집된 학부모들은 글렌 영킨 공화당 후보의 당선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지난 9일 열린 버지니아주 라우던 카운티 교육위원회 회의에 학부모들이 참여해 일부 교육위원들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폭스뉴스 화면 갈무리

 

왜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일까?

교육위원회에서 결정하는 이슈 중 학부모들을 분노하게 만든 이슈는 크게 두 가지다. 교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와 '비판적 인종 이론(Critical Race Theory, 이하 CRT)' 교육이다. 하나는 보건, 다른 하나는 교육 내용에 대한 것이라 서로 별개의 이슈로 보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연결돼 있는 이슈다. 두 가지 모두 트럼프 지지 세력이 집중하는 이슈다. 그러나 마스크 착용 의무화와 CRT 교육 반대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마스크와 백신 접종 반대는 트럼프 지지자들 중에서도 '열성'만 공감하는 이슈다. 반면 CRT 반대는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 일부 보수 내지는 중도 성향의 학부모들도 찬성하고 있다.

 

'경합주(swing state,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 성향이 혼재하는 지역)'로 분류되는 버지니아의 이번 선거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준다. 영킨은 '교육' 이슈에 집중하면서 교외 지역(Suburb)의 백인 중산층 유권자들의 '불만''불안'을 자극했다. NBC 출구조사에 따르면,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영킨은 백인 여성 유권자들을 상대로 트럼프보다 20% 포인트 더 많이 득표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이 용어를 아는 사람조차 드물었던 CRT는 이제 선거판을 흔드는 이슈 중 하나가 됐다. CRT는 무엇이며, 왜 백인 중산층 유권자들은 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비판적 인종 이론(CRT)'이란 무엇인가?

CRT1970-80년대에 데릭 벨 하버드 로스쿨 교수와 다른 법학자들에 의해 걔발된 이론이다. 이는 인종주의가 미국 법과 제도들에 내재되어 백인들의 지배력을 유지한다는 입장으로, 인종차별이 특정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유색인종에게 불평등한 제도화된 체계라는 주장이다.

 

이 용어를 처음으로 쓴 킴벌레 크렌쇼 전 컬럼비아 로스쿨 교수는 지난 3<가디언>와 인터뷰에서 "비판적 인종 이론은 인종이 만들어지고, 인종 불평등이 촉진되는 방식, 이런 불평등이 만들어진 우리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설명하고, 추적하고, 분석하려 하는 이론"이라면서 "우리가 인종적 불평등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아무런 노력 없이도 불평등이 재생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공립학교에서 CRT를 가르치나?

전미 교육위원회 협의회(National School Board Association)CRT를 미국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 과정까지(K-12) 가르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CRT는 로스쿨 등 대학원 과정에서나 논의가 가능한 개념이다.

 

CRT는 트럼프 세력이 만들어낸 '공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공화당 정치인들과 일부 백인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CRT를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CRT가 흑인 아이들에게 피해의식을 내면화하고 백인 아이들에게 죄의식을 심어준다고 주장한다. 버지니아주 라우던 카운티의 공화당 여성위원회 패티 히달고 맨더스는 3<가디언>과 인터뷰에서 "그들은 이를 평등, 다양성, 통합 교육이라고 부르지만 기본적으로 CRT"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미국에 존재하는 인종적 불평등과 관련된 교육 전반을 CRT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안소현 케네소 주립대학교 교수(사회교육학)<프레시안>과 화상 인터뷰에서 "CRT 교육에 대한 반대 여론은 극우세력이 만들어낸 정치 기획"이라고 말했다. <뉴요커>는 지난 6월 극우성향의 프리랜서 언론인이자 활동가인 크리스 루포가 2020년 보수 성향의 맨해튼 연구소에 이 문제에 대한 글을 기고하고 소셜 미디어, 보수 언론 등을 활용해 여론을 확산시킨 과정에 대해 보도했다

 

루포는 업무 관련 교육에서 인종문제와 관련된 내용에 불만을 가진 보수 성향의 연방 공무원의 제보를 계기로 CRT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그가 지난해 92일 보수매체 <폭스뉴스><터커 칼슨 투나잇>에 출연한 일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해 트럼프 정부 차원의 일이 됐다. 이 방송에서 루포는 "CRT가 연방정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고발했고, 칼슨은 "이는 보수주의자들이 깨어날 필요가 있는 미국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다. 대통령과 백악관은 연방정부에서 CRT 교육을 폐지하라는 행정명령을 즉각 내리는 것이 그들의 권한이다"라고 동조했다. 루포는 다음날 마크 매도우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트럼프는 그해 9월 백악관 회의에서 "애국 교육(Patriotic education)"을 촉진하기 위한 '1776 위원회'(미국 건국 연도인 1776년을 강조)를 결성하겠다고 밝혔다. 루포는 '1776 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됐다.

 

2020년 미국을 흔든 BLM의 역풍

장성관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사무차장은 <프레시안>과 화상 인터뷰에서 "지난해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BLM(Black Lives Matter, 흑인들의 생명도 소중하다)'에 대한 반발 차원에서 CRT 교육 금지 이슈가 확산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말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BLM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안소현 교수는 'CRT 교육 반대' 주장이 일부 백인 학부모들에게 공감을 얻게 된 이유에 대해 인종적 다수로서 백인 집단의 지위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트럼프 전 대통령까지 재선에 실패하자 존재의 위협을 느끼게 된 백인 보수세력에서 CRT를 화두로 삼고 집중적으로 여론화 시켰다"고 말했다. 지난 10<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폭스뉴스>는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3개월 동안 무려 1900건이나 CRT와 관련된 보도를 쏟아냈다.

필립 콥런드 보스턴대 교수 보스턴대 홈페이지 갈무리

 

"CRT 반대, 인종적 자본주의와 과두정치의 변형"

필립 콥런드 보스턴대 교수(사회복지학)<프레시안>과 서면 인터뷰에서 CRT 교육 반대 운동에 대해 "인종적 자본주의와 인종 과두정치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인종적 자본주의는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위해 인종주의를 활용하는 것을 말하며, 인종적 과두정치는 이렇게 획득한 부와 위계적 인종 질서에 기반해 소수의 사람이 사회적 권력을 독점하고 행사하는 정치(과두제)를 말한다. 일부 백인 학부모들이 표출하고 있는 분노는 정치적, 궁극적으로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백인들의 반응을 조종하는 일부 정치 엘리트들에 의해 생산되고 지원되고 있다.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보았듯이 백인들의 분노와 공포는 미국에서 계급.계층을 유지하려는 정치와 정책에 대한 지지를 불러온다."

 

'교육 문제'라는 외피를 두른 정치적 기획인 'CRT 반대'는 현재 미국 사회의 인종적 위계와 이에 기반한 경제적, 사회적 특권을 유지하고 대물림 되기를 바라는 일부 백인 유권자들을 결집시키려는 목적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프레시안 전홍기혜 특파원

 

차별금지법·기후변화, 이번 대선에서도 "나중에"?

[창비 주간 논평] 다시 어둠을 밝히는 마음으로

한라산에 이어 서울에도 때 이른 첫눈이 내렸다. 아직은 단풍철이어야 할 시간을 서둘러 마감하고 겨울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달라지는 절기의 감각 앞에서 누군가는 기후위기의 심화와 그 대처를 근심하고, 다른 누군가는 '위드 코로나'가 잘 자리 잡아 방역과 생계를 위해 여전히 분투 중인 시민들에게 이 겨울이 너무 혹독하지 않기를 기도할 것이다. 이렇듯 얼마 남지 않은 한해에 대한 상념이야 사람마다 다양할 테지만, 내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부쩍 추워지고 어두워진 저녁 거리를 바라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5년 전 이맘때를 돌이켜보게 된다. 주말마다 열리는 대규모 집회 사이사이 이런저런 행사를 챙기며 그해 겨울 온통 거리에서 살았던 기억이 남아 있다.

 

4대강사업이 진행되고 세월호참사까지 겪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동안 무엇보다 참담했던 것은 '이것이 나라냐'라고 할 만큼 엉망이 되어가고 있는 체제와 함께 이 시간을 사는 우리도 조금씩 망가지고 있고, 거기서 나 자신도 벗어나기 어렵다는 두려움이었다.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던 주민이 목숨을 끊고, 쌍용차 해고 이후 죽음이 계속 이어져도 분향소를 엎으려는 드잡이뿐 마땅한 예의조차 없던 시간이었다. 단식 중인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투쟁'이라는 것이 자행되고 끝없는 막말이 이어지던 그 무렵은 혹시 정권이 바뀌기 전에 세상이 먼저 망가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떳떳하지 못하고, 답답하고, 부끄러웠다.

 

촛불은 그런 막막함을 일순간에 바꿔놓은 흐름이었다. 정권 퇴진의 요구로 시작되었으나 그 이상으로 새로운 세상을 외치는 발랄함이 있었고, 어제 집회에서의 갈등이 격론 끝에 내일의 집회에서 지켜야 할 새로운 수칙으로 등장하는 유연함이 있었다. 한해 전 겨울, 시위 현장에서 농민을 조준하여 물대포를 쏠 정도로 기세등등하던 경찰의 태도도 그러한 대세와 함께 바뀌었다. 반드시 비폭력을 고집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논란도 있었으나 우리가 이 정도 나섰으면 박근혜 퇴진 정도는 당연한 일이고, 세상은 이미 바뀌고 있다는 자신감과 기대가 가득한 시간이었다. 심지를 환하게 밝힌 촛불부터 LED 촛불까지, 어둠 속에서 함께 불을 붙이고 밝음을 나누며 확인하는 행위에는 그만큼 특별함이 있었다.

 

20161217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어떠한가. 시대의 흐름을 바꾼 기여를 인정한다고 해도 촛불의 이름을 쉽게 불러내기는 조심스럽다. 촛불과 함께 등장했던 새로운 흐름의 많은 부분에서 그사이 생겨난 거리감이 마음에 걸리지 않을 수 없다. 촛불 이후 한국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온 문제와 갈등은 촛불이 만든 문제라기보다 촛불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문제제기 당사자들에게는 실망을 넘어 때로 절망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나중에"라고 외치는 청중들 사이로 급히 퇴장한 일을 두고 해명을 내놓았지만, 노무현 정부 때 처음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여전히 제정되지 않고 있을뿐더러 최근에는 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의 국회 심사기한을 2024년으로 연기하면서 제정 의지 자체를 의심하게 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의 대응 역시 위기의 긴박함에 비추어 더디거나 여전히 성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면모를 보일 때가 많고, 끊이지 않는 산재사고를 지켜보노라면 과연 이 정부가 누구 편인가라는 근본적인 차원에서조차 회의가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촛불 이후의 변화가 당장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에 실망하여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던가' 쉽게 회의하는 마음을 돌아볼 필요도 있다. 합법적 절차에 따라 이뤄낸 대통령 탄핵이 아무리 대단한 일이었다 한들 그것은 시작일 뿐, 우리 자신이 그 일부이기도 한 낡은 세상을 바꾸는 일은 더 오래고도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과정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5년 전 그 겨울에도 그저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심판하면 된다며 기다렸거나, 눈에 보이는 정치적 해법만을 셈하고 있었다면 아마도 한 사회의 감각을 바꾸는 사건으로서의 촛불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간절함으로 불을 밝히는 마음, 다음이 무엇이 될지는 알 수 없다 해도 일단 나부터 움직여 큰 변화의 일부가 되고자 함께했던 그 밤거리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을 마치며 다시 촛불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촛불 5년을 지나며, 그리고 한반도와 한국에 중요한 변화가 출현할 수 있는 새해를 맞이하며 빼놓을 수 없는 화두이기 때문이다. 촛불 5년 동안 우리 주변에 즐거웠던 일, 슬펐던 일, 화를 나게 했던 일들이 모두 있었다. 이는 우리 삶 속에서도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촛불 속에서 우리가 한발 내디딘 지점은 무엇이었는가를 묻고 그 방향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역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프레시안

 

신장위구르 무슬림과 아프가니스탄

중국 내 무슬림은 모두 10개 민족으로 전체 인구의 1.8%인 약 2500만여명으로 추산한다. 이중 후이족(回族)이 약 1050만명으로 가장 많고, 위구르족이 약 1000만 명으로 그 뒤를 바짝 뒤따르고 있다. 카자흐족은 3번째로 많은 160만명으로 집계한다.

 

무슬림은 이슬람 발흥 초기인 7세기부터 중국에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구당서(舊唐書)에 따르면, 이슬람 정통 칼리파 시대 3대 칼리파 우스만(Uthman)이 당 조정에 사신을 보낸 것이 양측 관계의 시작이다.

 

751년에는 서로 군사적으로 대립했다.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이 이끈 당군은 오늘날 키르기즈스탄과 카자흐스탄 국경 사이에 흐르는 탈라스(Talas)강에서 신흥 이슬람 칼리파 압바스(Abbas) 칼리파조 군에게 패배했다. 이때 포로로 잡힌 당나라 군인이 무슬림 세계에 종이 만드는 기술을 전수했다고 한다.

 

당은 755년 안록산의 난 당시 과거의 적이었던 압바스 칼리파조에 도움을 청해 원병을 지원 받았다. 이때 상당수의 무슬림 군인들이 당의 수도 장안(오늘날 시안)에 머물렀다. 또 광저우(廣州) 톈저우(泉州) 등 동남해안 도시에는 이미 무슬림들이 상인으로 왕래하거나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무슬림은 오늘날 서안에서 이란 호라산 (khorasan) 지역으로 이어지는 육로와 바그다드 페르시아만 인도양 태평양을 거치는 해로를 따라 중국으로 들어왔다.

 

이슬람 발흥 초기부터 중국과 교류

무슬림이 중국에서 가장 흥한 시기는 몽골이 세운 원나라 때다. 몽골인들은 중앙아시아 투르크계, 페르시아계 무슬림을 중용했다. 이른바 색목인(色目人)들이 이슬람 중국 전파에 일조했다. 무슬림이 중국 문화를 수용해 소화하기 시작한 것은 이보다 한참 후대인 16세기로 명나라 후반기다. 산시의 후덩저우(1522~1597)가 세운 무슬림 교육기관 경당(經堂)에서 중국어로 자신의 종교를 알리는 지식인이 나오면서부터 진정한 의미의 중국 이슬람이 등장했다.

 

왕다이위(1573~?)가 쓴 현존 최초의 이슬람 소개 중국어 서적 정교진전(正敎眞詮)을 시작으로 마주(1640~?)의 청진지남(淸眞指南), 류즈(1644~1730)의 천방성리(天方性理) 천방전례(天方典禮) 천방지성실록(天方至聖實錄) 등이 등장했다. 특히 마주와 류즈는 유학에 조예가 깊은 이른바 회유겸통(回儒兼通)의 무슬림 학자다.

 

그러나 중국 지식인의 이슬람 평가는 박했다. 류즈의 천방전례는 사고전서(四庫全書)에 포함되는 영광을 누렸지만 "바탕이 잘못되면 좋은 말은 소용이 없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정부는 무슬림들이 마주나 류즈 같은 무슬림처럼 중국 문화에 동화해 살아가길 바란다. 특히 신장 지역 위구르 무슬림들이 그러길 바란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다.

 

국제문제로 떠오른 위구르인 탄압

중국 전체 면적의 1/6을 차지하고 지하자원이 풍부한 신장위구르자치구는 중앙아시아로 나가는 관문으로, 중국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일대일로에서 핵심지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 주민은 대다수가 튀르크계 위구르인 무슬림으로 중국 한족과는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

 

신장은 19세기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를 두고 영국과 러시아가 벌인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의 희생양이다. 영국은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1884년 청이 신장을 점령하는 것을 지지했다. 중국정부는 청나라가 원래 중국령이었던 곳을 다시 돌려받았다는 뜻에서 이곳을 신장(新疆), '새로운 강토'라고 이름 지었다고 강조한다.

 

위구르인들은 1933~1934, 1944~1949년 두차례 짧은 독립의 기쁨을 누렸을 뿐, 1949년 이래 신장은 중국령이다. 중국은 1955년 신장을 자치구로 지정했지만, 주민들을 중국인으로 동화하지는 못했다. 개혁개방에 힘입어 서부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신장으로 한족 이주 정책을 실시했다. 완전한 중국령으로 만들기 위한 대규모 식민정책이다. 그 결과 한족이 신장 지역 경제권을 장악했고, 위구르인들은 2등 시민으로 전락했으며, 신장의 수도 우루무치는 한족의 도시로 변모했다.

 

위구르인들이 중국의 정책에 반발해 저항과 독립의 기운을 보이자 중국정부는 1998년부터 '엄타'(嚴打)'라는 작전명을 내걸고 반발하는 위구르인들을 강력하게 진압했다. 특히 이슬람 신앙도 엄히 단속해 18세가 되기 전에는 종교 관련 교육이나 활동을 완전히 금지했다. 주민들이 거주지를 벗어난 곳의 모스크에 가는 것 또한 불법이다. 중국정부는 위험한 인물로 판단한 위구르인을 '직업교육훈련센터'에서 '재교육'한다. 중국인으로 만드는 교육이다. 위구르인의 언어를 중국어로 바꾸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위구르족 탄압 관련한 내용이 국제적 논란이 되기 시작한 올 4월 중국정부는 샤오캉백서를 발간, 신장위구르자치구 등 8개 지역 소수민족 집단 거주 지역 거주민 1560만명 이상이 정부의 빈곤타파 정책의 혜택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직업교육훈련센터는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논란의 대상이다. 중국정부는 학교라고 하지만, 국제사회는 수용소라고 비난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설을 인권유린 시설이라고 목청을 높이는 나라 대부분은 비무슬림 국가들이라는 사실이다. 무슬림 국가들은 조용하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무슬림이 조금이라도 차별을 받으면 모든 매체를 동원해 비난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중국정부 지원 급한 탈레반은 고분고분

신장과 아프가니스탄이 맞닿은 와한(Wakhan) 골짜기를 중심으로 혹시라도 위구르 독립 세력이 세를 불릴 것을 염려해 중국은 탈레반이 재집권하기 한달 전 톈진에서 탈레반 대표단을 만나 아프가니스탄 내 위구르 반중독립세력 통제를 요청했다. 중국의 경제적 지원이 절실한 탈레반은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고 호응하면서 중국을 안심시켰다. 최근에도 탈레반은 중국정부에 아프가니스탄 내에는 위구르 독립 세력이 없다고 재확인해 주었다.

 

그러자 탈레반과 대립하고 있는 아프간 내 IS-호라산(IS-K)은 보란 듯이 위구르 출신 대원을 내세워 쿤두즈(Kunduz)에서 자살폭탄 공격을 감행했고, 중국에 고분고분한 탈레반을 "창녀"라고 부르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탈레반이 팔레스타인과 카슈미르 지역 무슬림의 저항을 지지하면서도 중국의 신장위구르 무슬림 억압정책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의 대의경쟁에서 탈레반이 밀리는 형국이다. 이는 갈수록 탈레반에게 큰 짐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신장 독립운동을 펼치는 위구르인들은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의 신장 지지가 부담스럽다. 9.11 테러 이후 중국정부가 위구르인들을 모두 테러분자로 몰아 신장 독립운동을 탄압해왔기 때문이다. 위구르 독립운동가들은 폭력을 앞세운 극단주의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중국과 관련해서 무슬림들은 예언자가 했다는 '중국까지 가서라도 지식을 구하라'(Utlub al-'ilm wa law fi's Sin)는 말을 가장 즐겨 인용한다. 무함마드가 한 말은 아니라고 하는데, 위구르 독립운동에 머리 아픈 중국으로서는 적어도 무슬림들이 와한 골짜기를 통해 신장으로 들어오지 않길 바랄 것이다./ 내일신문

 

박형준 "국정원 보고서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 적 없다"

공직선거법 위반 첫 재판 출석해 입장 표명...증인 조사 등 재판 속행

4대강 사찰' 관련 첫 재판에 출석한 박형준 부산시장이 "국정원 보고서라는 것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그런 몰상식한 행동을 한 적 없다""대통령은 직접 국정원으로부터 보고를 받는다. 다시 받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4대강 사찰 관련 관여 여부에 대해 선을 그었다.

 

부산지법 형사6(류승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기일에 출석한 박 시장은 이같은 입장을 밝히면서 "2018년에도 (4대강 사찰) 문건들이 제기되어 입장을 똑같이 얘기한 바 있다""불법사찰을 지시하거나 하도록 종용하거나, 관여한 것은 전혀 아니다라는 입장을 얘기했다"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지난 4·7 부산시장 보궐선거 당시 '4대강 사업 민간인 사찰 의혹' 관련에 대해 "지시, 요청하거나 보고를 받은 사살이 없고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한 것이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는 고발장이 접수되어 재판을 받게 됐다.

 

검찰은 지난 1019일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4대강 사업 주요 반대인물이나 단체 등에 대한 관리방안이나 견제방안을 보고해줄 것을 국정원에 요청했고 이러한 요청에 따라 작성된 보고서를 받고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지시까지 받았음에도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약 12회에 걸쳐 그러한 사실이 없다고 발언해 허위사실을 공표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날 첫 공판에서도 검찰은 '4대강 사업 찬반단체 현황 및 관리방안', '4대강 사업 주요 반대인물 및 관리방안' 등 문건이 박 시장이 지난 2009년 청와대 홍보기획관으로 재직할 당시 요청해서 작성된 문건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박 시장 변호인 측은 해당 문건의 작성되는 과정에서 당시 청와대에 파견됐다는 국정원 직원만 조사했고 직접 박 시장에게 지시를 받았거나 요청을 한 직원이 있거나 해당 문건 정보를 수집한 담당자도 특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특히 증인 신문 요청을 26명이나 한 것을 두고 "수사를 근거로 기소한 것이 아니라 법정에서 수사하겠다는 것은 위법이다. 기소는 수사를 통해 증거를 확보하고 공소사실을 입증하기 위함이다. 그렇지 않고 검사가 불충분한 증거로 기소해놓고 공판 절차에서 새로 증거를 조사해서 입증하는 것은 명백한 공소권 남용이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증거로 제시했던 박 시장의 언론 인터뷰 내용을 두고는 "인터뷰한 전체적 질의는 불법적인 지시를 하거나 보고를 받거나 사찰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불법 의도한 바 없고 불법이 이뤄진 적 없다. 대법원 판례에 따라 불법에 관여한 바가 없었음을 강조하면서 인터뷰에 응한 것이라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재판부도 내년 3월 대통령 선거 전까지 박 시장에 대한 재판을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속에서 오는 29일 첫 증인 신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심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증인 신문 중에서는 국정원 전·현직 직원이 다수이기에 비공개로 진행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 이견이 나타났다. 검찰은 "차폐막까지 설치해야 한다"고 요청했으나 박 시장 변호인 측은 "증인 표정도 봐야한다"며 맞받아치면서 재판부는 양측 의견을 추가로 취합해 증인 신문 방식 등을 정하기로 했다.

박호경 기자(=부산)프레시안

 

무엇을 위해 싸우나···‘사람이 보이지 않는 세계의 분쟁지역

분쟁지역인 파키스탄의 아이 / 컨선월드와이드 제공

 

근대국가의 시작부터 냉전 시기까지의 분쟁은 영토갈등이나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 간(inter-state)’ 전면전을 의미했다. 하지만 냉전 이후 국제질서가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로 재편되면서 분쟁의 양상은 국가 내부(within state or intrastate)’ 행위자들의 내전(civil war)으로 확장됐다. 인종이나 민족, 언어와 문화, 종교 간의 이질성을 원인으로 집단 간 분쟁이 발생했고 대량학살과 인종청소라는 극단적 결과가 뒤따랐다. 최근에는 테러리즘까지 가세하며 분쟁의 형태는 시간이 갈수록 세분화·다양화되고 있다.

 

분쟁의 양태가 다변화하는 만큼 피해 범위는 넓어졌다. 소수 집단, 국가 단위의 갈등은 전 세계적 문제를 야기했다. 9·11 테러 이후 시작된 대테러 전쟁에 미국의 동맹국들이 휘말리거나 중동지역의 내전으로 발생한 대규모 난민이 유럽에 문제를 만들었다. 외부의 군사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는 것을 의미했던 전통적 안보개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국가의 존립보다 일상에서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확장된 안보개념으로 시대정신은 변화했다. 이른바 인간안보의 시대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중심의 안보

인간안보는 유엔개발계획(UNDP)1994년 발간한 인간개발보고서에서 처음 사용된 개념이다. 이는 군사와 정치가 상위정치(high politics)이고 배고픔, 정치적 억압, 질병 등은 하위정치(low politics)로 구분한 전통적 안보기조를 뒤집었다. ‘평화의 의미도 인간 생존을 위협하는 하위정치 요소들로부터의 자유로 확장됐다. 안보를 책임진 주체는 구성원들의 가난, 억압, 질병 등을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설사 국가 존립에 영향을 주지 않는 분쟁이라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안보의 핵심이 됐다.

 

실제로 인간안보가 실패하고 있는 지역에는 공통점이 있다. 2006년부터 세계기아지수를 발표하고 있는 아일랜드 국제인도주의단체 컨선월드와이드는 지난 11162021년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기아 위험 상위 10개국 중 8개국이 분쟁 상황에 놓여 있다. 소말리아, 예멘, 동티모르 등은 국가 존속과는 별개로 매해 기아지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다. 분쟁을 관리하지 못한 결과가 국가 단위의 전통적 안보가 아닌 사람 중심의 인간안보를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컨선월드와이드 제공

 

그렇다면, 한반도는 어떨까. 1950년 시작된 한국전쟁은 7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전 상태다. 분쟁의 장기화는 한국과 북한의 운명을 갈랐다. 컨선월드와이드의 2021년 세계기아지수에 따르면 북한의 기아 수준은 전 세계 21번째로 나쁜 상태다. 낮음, 보통, 심각, 위험, 극히 위험으로 나눠진 단계표 기준으로 심각상황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5세 미만 아동의 영양은 좋아졌으나,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영양결핍 인구비율은 42.4%10년 전(42.7%)에 비해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북한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국가는 아프리카 앙골라(20), 수단(22) 등이 있다.

 

한국은 당장 기아에 놓일 가능성이 낮지만 분쟁 당사국이라는 점에서 위험을 안고 있다. 분쟁을 연구한 국제정치학자 데이비드 D. 캐플런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재에 대해 쓰는 일이다. 하지만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은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인간안보를 나타내는 지표들은 분쟁의 장기화가 가난, 억압, 질병 등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이 이러한 경향에서 언제까지나 예외일 수는 없다. 상존하는 위험의 제거라는 측면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이 주목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2021년 세계기아지수 TOP 25 국가/컨선월드와이드 제공

 

현대 사회의 분쟁은 민족(인종), 종교, 역사, 문화, 정치(이데올로기) 등의 복합적 요소들이 혼재돼 있다. 매일 세계 곳곳의 소식을 접하지만 각 지역 분쟁의 원인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모든 분쟁은 이익 추구라는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쪽의 평화를 저쪽의 비평화로 구축하려는 것이 출발점이다. 이를 위해 분쟁의 원인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은 역사에서 손쉽게 확인해 볼 수 있다. 결국, 분쟁 해결은 원인 보다 결과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2021년 현재, 대표적인 분쟁지역 사례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중국이라는 소용돌이

지리적 경계로 갈라졌던 국가 간 분쟁은 기술 발전과 함께 한계를 뛰어넘었다. 지난 세기 분쟁이 유럽의 을 중심으로 했다면, 21세기는 동아시아의 바다를 중심으로 갈등 지점이 옮겨졌다는 의미다. 동아시아의 바다는 쿠릴열도부터 뉴질랜드까지의 태평양 일대와 중국 남동부와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차이나반도 등으로 둘러싸인 남중국해 일대 등으로 구성된다. 중국은 양 해역 모두에서 크고 작은 갈등의 중심에 서 있다.

중국 남동부와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차이나반도 등으로 둘러싸인 남중국해 일대

 

특히 문제가 되는 곳은 총 700여개의 암초와 산호섬 등으로 구성된 4개의 군도(일정한 지역 안에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섬의 무리)가 있는 남중국해다. 이곳의 중요성은 중동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수송로와 어족, 원유, 천연가스 등의 자원 측면에서 설명된다. 대만,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이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남중국해와 관련된 군비경쟁의 일부만을 설명할 뿐이다.

 

캐플런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군비증강을 유럽으로부터 패권을 쟁취한 미국의 부상과 닮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은 플로리다부터 베네수엘라까지 이어지는 카리브해와 멕시코만을 통칭하는 대카리브해를 장악하며 지역 패권국이 됐다. 이를 위해 활용한 것은 흔히 고립주의로 불리는 먼로 독트린이다. 미국은 유럽과 전쟁을 벌이기보다는 인근 해역, 육지로의 접근만을 막았다. 당시 영국은 막강한 해군을 보유했지만 무력충돌을 감행하지는 못했다. 미국이 자신들의 앞바다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의 행보는 미국의 역사를 재현하고 있다. 남중국해를 장악해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제어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활용하는 전략도 직접 대결이 아닌 반접근/지역거부 전략이다. 중국 인근 해역으로 미국의 접근을 차단하며 결코, 남중국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전달하고 있다.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왜 중국이 미국과 다를 것이라 기대하느냐. 중국이 미국보다 더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가, 더 윤리적인가, 덜 민족주의적인가라고 말했다. 지역 패권국의 등장이 기존 질서의 해체를 의미한다는 것은 미국이 입증한 역사다. 결국 남중국해 분쟁은 지역 패권을 추구하는 중국과 이로 인해 이뤄질 글로벌 세력균형을 막으려는 미국의 충돌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 독자 기술로 제작한 1호 항공모함인 산둥함. 남중국해를 방어한다. / AP 연합뉴스

 

그런데 분쟁에 관한 중국의 특수성은 국가 간 갈등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은 다종족·다민족·다종교 갈등을 태생적으로 포함한다. 특히 신장웨이우얼(위구르)자치구와 시짱(티베트)자치구에서는 분리주의 움직임이 있다. 본래 위구르족과 티베트족은 역사적·민족적으로 중국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한족과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민족융합론을 내세우며 위구르와 시짱 지역으로 한족 이주를 장려했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행보에 위구르족과 티베트족은 반발하고 있다. 신장웨이우얼 지역은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청나라에 점령됐다. 이곳의 원주민인 위구르족은 1864년 반란을 통해 카슈가르 왕국을 세웠으나 1884년 청나라에 완전히 병합됐다. 위구르족은 1933년에도 동투르키스탄이슬람공화국으로 분리독립했으나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에 다시 점령됐다. 2000년대 이후로도 위구르족의 분리독립 요구는 끊이지 않고 있다. 티베트 분리독립 움직임도 이와 유사하다. 본래 독립세력이었던 티베트족은 1904년 영국의 침략으로 붕괴된다. 영국은 1906년 중국과 영토협정을 맺고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을 인정해 버렸다. 이후 달라이 라마에 의한 독립 통치가 가능했던 시기도 있었으나 역시 중화인민공화국에 의해 점령된다. 티베트는 달라이 라마의 망명 정부를 중심으로 분리독립 운동을 하고 있다.

위구르족 여성들이 중국의 탄압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왼쪽)/AP·AFP 연합뉴스. 중국의 박해를 피해 인도로 온 티베트 난민들이 인도 다람살라에서 2022 베이징 올림픽 반대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모습./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신냉전

유럽을 동·서로 구분하는 경계점에 위치한 우크라이나는 지리적 요충지라는 이유로 몽골, 폴란드,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의 지배를 받았다. 한때 서부는 폴란드, 동부는 러시아로 분할된 적도 있다. 특히 냉전 시기에 소련의 곡물창고와 광공업기지 역할을 하며 드네프르강을 중심으로 서쪽은 우크라이나, 동쪽은 러시아 문화권이 확립됐다.

친러시아 세력의 분리독립 움직임이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크림반도는 2014년 러시아가 장악했다.

 

문제는 소련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 내부에 갈라진 문화권이 지역주의로 고착화됐다는 점이다. 친서방파와 친러시아파의 갈등은 대통령선거 때마다 쟁점이 됐고, 충돌을 만들었다.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 동남부쪽에 있는 크림반도에서 갈등이 폭증됐고, 러시아군이 친러시아파 보호를 명분으로 크림반도를 장악했다. 같은해 동부 돈바스지방에서도 러시아계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 ‘루한스크인민공화국이 분리독립을 추구하며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충돌했다. 양쪽에서 약 13000명이 사망한 유혈 사태였다.

 

이렇듯 우크라이나 내부에 있는 친러시아 세력은 분쟁 양상을 내전과 국가 간 전쟁 사이에 위치하게 만든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분쟁을 침략이 아닌 원래 러시아 몫을 돌려받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크림반도는 1783년에 재정 러시아에 의해 병합된 땅이다. 이를 1954년 소련 서기장이었던 흐루쇼프가 우크라이나에 양도했다. 하지만 1991년 우크라이나가 소련에서 탈퇴하면서 크림반도도 우크라이나로 넘어가게 됐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재장악하며 부동항인 흑해로의 자유로운 접근과 흑해 함대의 안정적 존속이 가능해졌다. 이와 동시에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해 크림반도가 서방세계에 넘어갈 수 있는 위험도 차단했다. 러시아는 친러시아 성향을 보이는 독립국가연합(CIS) 회원국에게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위해서도 우크라이나가 필요하다. 정치·경제·군사적 요충지로써 우크라이나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2014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 당시 무장한 친러시아 시위대의 모습 /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러시아와 서방 세력은 우크라이나를 두고 다시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서 약 10만명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켰다. 이에 미국, 우크라이나, 터키, 루마니아 4국은 군함 7척을 동원해 지난 1112(현지시간) 흑해 공해상에서 연합 해상 훈련을 벌였다. 우크라이나를 제외하면 이들은 모두 NATO 소속국이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긴장감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내년 초 전쟁 가능성도 제기된다.

 

종교 간 격돌 카슈미르

인도와 파키스탄이 맞붙은 카슈미르는 종교가 분쟁의 시발점이 된 대표적 지역이다. 과거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배하며 힌두교도와 무슬림을 철저히 분리 통치했다. 이러한 기조는 인도가 독립할 때에도 이어졌는데 당시 인도 내부에 갈라져 있던 각 왕국은 힌두교의 인도와 이슬람교의 파키스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카슈미르의 비극은 무슬림 인구가 77%를 차지하면서도 힌두교가 지배층을 형성한 상황에서 발생했다.

인도-파키스탄 분쟁의 시발점이 된 카슈미르 지역

 

카슈미르의 귀속은 당시 왕이었던 하리 싱의 뜻에 맡겨졌는데 그는 반란이 일어나자 인도에 투항해 버렸다. 인구구성의 다수를 차지하는 무슬림이 반발했고, 파키스탄이 이 문제에 개입했다. 결국 카슈미르 문제로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의 원인이 됐다. 전쟁은 유엔의 중재로 19491월에 끝났다. 양국 군대가 점령한 선을 기준으로 정전을 하고 이후 주민투표로 귀속국을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주민투표는 이뤄지지 못했고, 영토분할도 정전상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파키스탄이 실효적 지배하는 카슈미르는 북서부지역 길기트 발티스탄과 서쪽의 아자드 카슈미르다. 반면 인도령 카슈미르는 남부의 잠무 카슈미르다. 면적은 인도령이 약 3배 정도 더 넓다. 인도는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반환을 요구하고, 파키스탄은 인도령 카슈미르의 반환을 요구한다. 여기에 중국도 카슈미르 일부 지역인 아크사이친과 트랜스카라코람을 장악하고 있어 총 3개국이 엮여 있는 상황이다.

인도 북부 카슈미르의 스리나가르에서 복면을 쓴 반정부 시위자가 경찰차 위로 뛰어오르고 있다. / AP 연합뉴스

 

현재 문제가 되는 곳은 인도령 카슈미르다. 무슬림들이 인도 정부를 상대로 분리독립 투쟁을 하고 있다. 이들도 파키스탄으로 편입을 요구하는 쪽과 카슈미르 자체 독립국을 원하는 쪽으로 갈라진다. 각각 히즈블무자헤딘과 잠무카슈미르해방전선이다. 지난 1012일에는 잠무 지역에서 인도군 장교 1명과 사병 4명이 무장세력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힌두교를 믿는 민간인들까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표적 살해되고 있다. 카슈미르는 분쟁 관리의 실패가 인간안보를 위협하는 대표적 사례가 되고 있다.

 

분쟁 해결을 위한 인식 전환

이상의 사례들은 각각 영토, 정치, 역사, 종교적 이유 등이 중첩되며 분쟁지역이 됐다. 갈등의 원인은 셀 수 없이 많아질 수도 있다. 집단의 이익이 걸려 있다면 어떤 이유를 동원해서라도 갈등하는 것이 국제질서의 본질이다. 안보개념이 더 이상 국가단위의 생존에 머무르지 않는 것도 분쟁의 주체와 원인이 날이 갈수록 분화되기 때문이다. 결국,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인간안보가 보다 확고해진다면 중국, 우크라이나, 카슈미르 등의 분쟁 원인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을 위협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비판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질병·기후위기와 같은 인간 생존을 위협하는 사안에 대한 지구적 차원의 공동 대응도 가능하다.

 

대표적인 분쟁이었던 냉전은 총성 한발 울리지 않고 종식됐다. “네가 불안해져야 내가 안전해진다는 인식의 단순한 전환이 인류사의 가장 큰 분쟁을 끝냈다. 보다 빠르게 인간안보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경향 김찬호 기자

 

12·12 군사 쿠데타와 인권유린의 현대사

1993년 말, 기자는 장태완 장군으로부터 12·12 당시의 일지와 육필 수기를 입수했다. 그 기록에는 전두환씨가 치밀한 계획 아래 내란을 획책했다는 정황이 담겨 있었다.

쿠데타 이후 보안사에서 기념촬영하는 신군부 세력. 앞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전두환.

 

공교로운 일이었다. 전두환씨가 90세 일기로 사망한 1123일 오후 광주광역시 봉선동 소화자매원에서는 조비오 신부 5주기를 기리는 쌀 나눔식행사가 열렸다.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고 조비오 신부를 전두환씨가 회고록에서 사탄’ ‘거짓말쟁이같은 단어를 사용해가며 비방한 데 대한 사자명예훼손 사건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분노한 광주시민의 민심을 재판부에 전달하려는 취지로 마련된 행사였다. 지난해 1심 재판부는 5·18 때 진압군의 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판시하고 전씨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럼에도 전씨는 반성과 사과는커녕 자신은 광주학살과 무관할 뿐 아니라 광주시민의 씻김굿 제물이 되었다며 뻔뻔한 태도로 버텼다. 이런 전씨에 대해 유족과 5월 단체들이 항소심 재판부에 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가중처벌해달라고 촉구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였던 것이다. 당일 오전 전두환씨가 사망했어도 쌀 나눔식 행사는 열렸지만, 사자명예훼손 형사재판의 항소심 재판은 공소기각으로 사실상 종결될 것으로 보인다. 조비오 신부 유족 대표로 이번 소송을 수행해온 조카 조영대 신부는 쌀 나눔식 행사장에서 전씨 사망 이후의 대응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아무런 반성 없이 떠난 광주학살 수괴에 대해 광주시민은 분노하고 있다. 비록 전두환씨는 죽었지만 아들 전재국씨를 상대로 민사재판을 계속 진행해 법정에서 끝까지 5월 광주의 진실을 밝혀나가겠다.”(‘“진실 규명을 위해 소송, 끝까지 간다”‘ 기사 참조)

1123일 광주 소화자매원에서 고 조비오 신부를 기리는 쌀 나눔식행사가 열렸다.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제공

 

일각에서는 전씨가 사망함으로써 그 시대의 죄악상도 이제 막을 내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에게는 당치도 않은 말이다. 전씨에게는 여전히 역사적 단죄가 기다리고 있다. 그에 대한 준엄한 평가를 역사의 영역으로 넘기기까지는 부족하고 불충분한 사법적 단죄가 적잖이 작용했다. 기자는 1989년 언론에 발 디딘 이래 오랜 세월 유신시대와 전두환 시대 등 군사쿠데타를 통해 등장한 통치자들이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집중 추적하고 억울한 피해자들을 해원하는 일을 주요 어젠다로 삼아왔다. 그 과정에서 군 내부 정치 사조직 하나회를 등에 업고 전두환씨가 권력을 찬탈해나가는 과정의 퍼즐을 맞춰갈 수 있었다. 197912·12 쿠데타와 19805·17 비상계엄확대조치 및 광주학살이라는 일련의 군사반란 및 내란 과정을 거쳐 정권을 잡은 전두환씨와 뒤이은 노태우씨는 자신들의 권력 태생에 대한 논의를 철저히 터부시했다. 그들이 집권하던 13년 동안 오로지 반란 세력들이 내세우던 승리의 무용담만 난무했다.

 

1993년 말, 기자는 12·12 당시 진압부대를 이끌었지만 처절하게 패한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현 수도방위사령관)을 만났다. 장태완 전 사령관이 말했다. “12·12는 육군 중장 3, 소장 4, 준장 7, 대령 11, 중령 5, 무장병력 약 6000명이 이끄는 대()전복부대가 전복부대로 돌변해 일으킨 약 7시간 동안의 군사반란이다.” 군사반란. 지금은 자연스러운 표현이지만 그때만 해도 입에 담기 어려운 금기어였다. 장 전 사령관은 전두환 일당은 자기네가 저지른 불법행위를 합리화하고 보신하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어 5·18 광주학살이라는 엄청난 참사를 빚었고, 국민으로부터 사랑받아야 할 군대를 저주의 대상이 되게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이날 장태완 장군은 그동안 비밀리에 간직해왔다는 12·12 그날 밤의 7시간 진압작전 일지를 건네줬다. 이어 그가 진압작전 실패 후 보안사에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은 뒤 전두환 정권 시절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써서 진실을 밝힐 날이 올 때까지 꼭꼭 숨겨 보관해왔다는 반란 진압 실패 육필 수기도 넘겨줬다. 이렇게 12·12 군사반란에 대한 객관적 증인과 증거를 최초로 세상에 공개했다. 이를 통해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쓰러진 10·26 사건을 계기로 전두환의 권력이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정치군인으로서 사조직을 결성해 조직적이고 치밀한 계획 아래 내란을 획책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10·26 사건 합동수사본부장 맡은 전두환

19791026, 유신정권의 제왕적 통치자였던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손에 암살당하자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을,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은 10·26 사건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았다. 합동수사본부장 자리는 전두환에게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한 정권 탈취 과정의 입문이었다. 전두환은 합수부장 자리를 이용해 상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꾸몄다. 김재규와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억지 누명을 씌워 제거하고자 한 것이다.

 

최규하 대통령이 정승화 총장 체포 재가를 거부하자 전두환 세력은 사전에 이에 대비해 짜놓은 각본대로 무력으로 정승화 체포에 나섰다.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비밀리에 동원해 쿠데타 반대 진영 장성들을 한자리에 불러내 무력화하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사태 초기 전두환·노태우 등 반란군에 맞선 진압군은 이런 음모를 제대로 눈치 채지 못했다. 합수부장 전두환이 군 안팎의 모든 중요 정보를 틀어쥔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로서 정보를 철저히 통제했기 때문이다. 정병주 특전사령관, 장태완 수경사령관 등 순수 야전군인들은 정치군인 전두환 수하 하나회 장교들이 짠 치밀한 사전 각본에 따라 12·12 초저녁에 서울 연희동의 한 요정에 볼모로 잡혀 있었다.

 

약속 장소에 전두환이 나타나지 앉자 뒤늦게 심상치 않은 낌새를 챈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즉시 부대로 복귀해 반란 진압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휘하 부대장 중에서 비밀 사조직 하나회에 가담한 상당수 장교가 반란 진영에서 전두환의 지시와 명령을 따르고 있었다. 장태완 장군에 따르면 전두환은 197911월 중순부터 당시 계엄사령관이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제거하고 군부를 장악할 계획을 세운 뒤, 하나회를 비롯한 동조 세력 규합에 나섰다. 전두환은 12·12 쿠데타를 위해 사전 계획을 치밀히 모의했는데, 모의 과정에서 허화평 보안사 비서실장, 허삼수 보안사 인사처장, 이학봉 보안사 대공처장, 장세동 제30경비단장, 김진영 제33경비단장 등의 동조를 얻었으며 11월 말경에는 황영시 제1군단장, 노태우 제9사단장, 백운택 제71훈련단장, 박희도·최세창·장기오 공수여단장 등 하나회 출신 선후배 동료 장성들로 반란 모의를 확대했다.

 

전두환은 정승화 총장 연행에 대한 세부 계획서를 이학봉 중령으로부터 전달받고, 이를 확정한 후 합동수사본부 조정통제국장이던 허삼수와 합본 수사2국장 우경윤에게 실행할 것을 지시했다. 허삼수와 우경윤 등은 전두환의 비밀 지시를 받고 1212일 오후 650분경에 무장한 33헌병대를 육군참모총장 주변 공관에 배치했다. 그런 다음 오후 710분경에 공관으로 들어가서 육군참모총장 정승화를 총으로 위협해 끌고 나와 730분에 국군 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로 연행함으로써 전두환이 군의 지휘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군무 이탈 등 반란 폭동 행위가 매우 심각했다. 육군참모총장 체포를 목적으로 반란을 일으킨 제33헌병단이 공관의 경비를 맡고 있던 해병대 병력에게 포위당하자 장세동은 수도경비사령부 제33경비단장 김진영에게 소속 반란군 중대 병력을 인솔해 총장 공관으로 출동하도록 지시했다.

 

장태완·정병주 등 반란 진압 진영이 저항 태세를 갖추자, 반란군 지휘부는 직속상관이던 장군들을 사살하라고 지시하는 등 상관 살해 기도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날 새벽 반란군이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정 사령관은 손목 관통 총상을 입었으며 정 사령관의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훗날 중령 추서)이 총살당했다. 국방부에서 반란에 맞서던 정선엽 병장도 반란군에 총살당했다. 그날 밤 장태완 수경사령관, 정병주 특전사령관, 이건영 3군사령관, 하소곤 육본 작전참모부장, 문홍구 합참본부장, 김진기 육본 헌병감, 윤흥기 9공수여단장이 반란 진압 진영에서 분투했다. 이들은 반란 진압에 실패한 뒤 전원 체포돼 보안사에서 고문을 받고 강제 예편당하거나 한직으로 전보됐다가 군복을 벗어야 했다. 반면 반란 진영에 가담한 하나회 장교들은 이후 정권을 잡고 전두환·노태우 정권 13년간 정부 요직을 독차지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진압으로 희생된 친지를 떠나보낸 시민들이 울고 있다.나경택 전남매일 기자

 

‘5·18 특별법이 만들어지기까지

1994년 초 장태완 장군의 이 같은 회고록 내용이 공개되자 여야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당시 국회는 평화민주당 소속 권노갑 국방위원을 위원장으로 12·12사태 진상조사특별위원회(12·12 조사특위)를 구성해 활동에 들어갔다. 장태완 장군을 비롯해 12·12 반란 진압 진영에 섰다가 이후 전두환 세력에게 처절하게 보복당한 진압군 측 몇몇 장성도 추가로 국회에 증인으로 가세해 12·12 진상규명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는 딜레마에 빠졌다. 1993년 집권 초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전격 해체하는 등 문민 우위의 군통수권 확립을 강조했지만 민정당·공화당·통일민주당 3당 합당으로 등장한 정권이었기에 전두환·노태우의 군사반란 및 내란 범죄 처벌 문제가 집권당의 정체성 논란으로 확산될까 염려한 것이다. 그러자 1994년 중반 들어 반란 진압군 측 일부 장성과 5·18 관련 시민단체 등이 전두환·노태우 등을 군사반란 및 내란 범죄 책임자로 조사해 처벌해달라는 고소장을 직접 검찰에 제출했다. 고발장을 접수하고도 1년여 동안 차일피일 수사를 미루던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장윤석 검사는 결국 19957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라는 희한한 논리를 들어 전두환과 노태우씨를 불기소 처분했다. 이 같은 검찰의 행태에 12·12 5·18 피해자들은 격앙했다. 5·18 관련 단체는 검찰 처분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 심판을 청구했다. 199511월 헌재가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다라고 판결하자 비로소 김영삼 대통령이 움직였다. 그는 집권 여당에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규명 특별 입법을 지시했다. 이로써 국회에서 공전하던 ‘12·12 특별법‘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제정되었다. 당황한 검찰은 그제야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전두환씨에게 소환장을 보냈다. 이에 전씨는 “5공화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은 좌파 운동권의 주장과 같으므로 검찰 수사에 응하지 않겠다라는 골목 성명을 발표한 후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가버렸다. 1995123일 검찰은 전두환씨를 도주자로 간주해 구속영장을 들고 합천으로 내려가 체포해서 서울로 압송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결과 12·12 군사반란 진압에 앞장섰던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기자에게 최초로 제공했던 증언과 자료, 주장이 대부분 사실로 확인되었다. 검찰은 전두환씨에게 반란수괴’ ‘반란모의 참여’ ‘반란 중요임무 종사’ ‘상관살해’ ‘내란수괴’ ‘내란모의 참여’ ‘내란 중요임무 종사’ ‘내란목적 살인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전씨의 가장 큰 죄목이 반란수괴’ ‘내란수괴두 가지인 이유는 정권 찬탈 과정이 12·12 쿠데타와 이듬해 5·17 비상계엄령 확대의 두 단계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반란수괴죄와 관련해 법원은 전두환이 12·12 당시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성원들을 규합한 데서 나아가 군 지휘권 강탈을 위해 황영시·노태우·백운택·박희도·장기오·허화평·허삼수·이학봉·장세동·김진영 등과 철저히 모의하고 주도한 것으로 판시했다.

 

한편 전두환에게 내란수괴혐의가 적용된 배경에는 1980517일의 비상계엄령 확대조치가 결정적 사유였다. 법원은 이를 국민들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위협적인 요소로 말미암아 그 선포 행위도 협박 행위이며 그 유지 행위도 범죄 실행 행위인 협박 행위로 판단되므로 비상계엄의 선포 유지 기간 동안 모두가 내란죄에 해당한다라고 판시했다. 5·17 계엄 당시 계엄포고령 문안뿐 아니라 포고문·담화문 등 일체도 이희성 계엄사령관 명의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합동수사본부에서 문안을 작성해 계엄사에 보냈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전두환은 계엄사령관 이희성을 압박해 광주항쟁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윤흥정 사령관을 소준열로 교체하도록 함으로써 실제 내란행위를 주도했다는 것이다.

 

517일 비상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었지만 유일하게 광주 전남대학교 앞에서는 이튿날인 518, 비상계엄령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그러나 계엄군은 이를 흉포하게 탄압했으며 분노한 광주시민을 너나없이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들었다. 이후 광주에서는 계엄군의 대검에 찔려 살해당한 학생·시민들의 시신이 발견되는 등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으로 인해 광주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결국 521, 계엄군은 집회 중인 광주시민을 향해 발포해 무고한 시민들을 살상했다. 분노한 시민들은 광주 시 외곽으로 나가 자체적으로 무장했다. 당황한 계엄군은 광주시내에서 후퇴한 뒤 광주를 철통같이 봉쇄했으며, 527일 전남도청을 공격해 남아서 끝까지 저항하던 시민군을 사살했다. 이 대목에 대해 대법원은 내란 수괴 전두환이 정도영을 국방부 회의에 참석하게 하여 자위권을 발동케 했으므로 내란 목적의 살인을 실행하였다고 판단했다. 결국 법원은 전두환에게 반란수괴, 불법진퇴, 지휘관 계엄지역 수소이탈, 상관살해, 상관살해 미수, 초병살해, 내란수괴, 내란목적 살인,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9개 중범죄를 적용해 19961심에서 사형을 선고했다. 1997년 대법원은 전씨에게 무기징역에 추징금 2205억원을 확정했다.

19961216‘12·12 5·18 사건항소심에 전두환(앞줄 맨 오른쪽) 등 피고인들이 참석했다.연합뉴스

 

하지만 12·12 군사반란에 비해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저질러진 계엄군의 만행에 관한 검찰의 조사와 진실 규명은 부실했다. 당시 발포 명령 최종 책임자 규명이라든지 헬기 기총소사, 계엄군의 성폭행 등 수많은 범죄혐의에 관한 진상조사가 철저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게다가 199712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5·18 광주학살에 대해 아무런 반성이나 사과 한마디 없었던 전두환씨를 사면해주도록 건의했고, 사면이 이뤄졌다. 이후 전두환을 정점으로 하는 반란 및 내란 세력은 틈만 나면 가짜뉴스를 들고나와 5·18의 진상을 왜곡하고 폄훼하기 시작했다. 21대 국회 들어 뒤늦게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5·18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돼 활동에 들어간 연유다(‘‘아래로부터의 진실’ 5·18 조사는 계속된다기사 참조).

 

노태우씨와 달리 전두환씨는 살아생전 법정 추징금 납부도 끝까지 회피하며 수중에 29만원밖에 없어서 못 낸다라는 둥 국민을 우롱했다. 그는 죽기 전까지 왕년에 쿠데타를 함께했던 하나회 멤버들을 대동해 주기적으로 골프장과 강남 초호화 식당을 드나들며 호의호식하는 삶을 살았다. 전두환의 역사 뒤집기 시도는 2010년대 이후 더욱 집요해졌다. 그는 2017년 발간한 회고록을 통해 자신을 광주시민의 씻김굿 제물이라거나 북한 특수군 600명이 광주에 침투해 5·18을 일으켰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퍼뜨렸다. 또 당시 계엄군의 총칼에 쓰러져가는 시민들을 대변하는 등 5·18의 정신적 지주로 평가받는 고 조비오 신부가 헬기 기총소사를 목격했다고 증언한 데 대해 거짓말쟁이’ ‘사탄이라는 등 거침없는 인신공격을 일삼았다. 전두환의 회고록은 5·18 광주학살을 정당화하고 신군부 잔존 세력이 회고록을 통해 아직도 자신을 지지하는 일부 극우보수 세력을 결집하려는 노골적인 의도로 풀이됐다. 결국 광주 5월 단체들이 법원에 낸 전두환 회고록 배포 및 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져 전씨의 이런 의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또 조비오 신부의 유족 조영대 신부가 전두환씨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민형사 고소했다. 2018년 광주지법 민사법원은 전씨로 하여금 5월 단체와 고 조비오 신부 측에 7000만원의 손해배상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지난해 형사법정에서도 사자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돼 전두환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받고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20191212일 전두환씨가 고급 음식점에서 쿠데타에 가담했던 인물들과 오찬을 즐기는 장면(사진)을 당시 정의당 임한솔 부대표가 촬영해 언론에 공개했다.정의당 제공

 

진실 규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군사쿠데타와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을 통해 권력을 찬탈한 뒤 폭압 통치로 민의를 틀어막고 온갖 인권유린을 저지른 전두환씨는 수십 년에 걸친 국민적 지탄을 받으면서도 천수를 누리다 떠났다. 죽는 날까지 일말의 양심조차 보이지 않은 전두환씨의 말로에 국민들은 분노와 유감으로 착잡한 심정이다.

 

전두환씨가 사망했다고 해서 그가 뿌린 악업의 씨앗이 저절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상처와 악행의 그림자는 도처에서 현재진행형이다. 우선 전씨는 19805월 광주에서 시민 대량학살 피해를 입힌 책임이 막중함에도 불구하고 죽는 날까지 전혀 죄를 뉘우치지 않고 도리어 거짓 궤변으로 광주의 상처를 덧냈다. 심지어 전씨의 부인 이순자씨는 전두환은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궤변을 공공연히 늘어놓았다. 전씨는 최근 들어 슬그머니 광주 5·18은 북한군 특수부대 침투로 일어난 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자위권 발동으로 이뤄진 사태라고 주장해 5·18 피해자와 국민을 분노케 했다. 그뿐이 아니다. 5공화국 시절 전두환 정권은 삼청교육대 피해자를 양산하고, 대학생 수천 명을 민주화 요구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 강제징집해 이른바 녹화사업으로 죽이고 불구로 만들었다. 오늘도 전두환 정권이 자행한 끔찍한 인권유린 범죄의 피해자들은 여전히 피멍 든 가슴을 쓰다듬으며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를 통해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전씨는 갔어도 진실과 정의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시사인 정희상 기자

팬데믹 후유증’, 뒤늦게 벌금내지 않으려면

코로나19는 사회불평등을 강화했고, 사회불평등은 건강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지금의 어린이들이 수십 년 후 건강 상실이라는 뒤늦은 벌금을 안 내게 하려면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

아동기에 경험한 사회경제적 역경은 아동기 건강불평등은 물론 성인기 건강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위는 서울 영등포의 쪽방촌 모습.시사IN 이명익

 

밤늦은 퇴근길, 사무실을 나와 지하철을 타러 가는 중에 거나하게 취한 행인을 여럿 만났다. 한참 동안 잊고 있었던 풍경이다. 다음 날 새벽 출근길에는 취객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토사물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 불유쾌한 잔해는 예전과 달리 난데없는 상념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이게 얼마 만인가! 과연, 코로나19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는 것인가!

 

사람들이 다시 일터로 학교로 발걸음을 옮기고, 식당과 공연장이 분주히 손님을 맞고 있다. 아마도 그토록 기대해왔던 포스트 코로나의 모습일 것이다. 이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좋았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모두에게 가능할까? 지난 2년이 누군가에게는 해외여행을 못 가서 속상한 시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못 먹고 즐거운 공연을 관람할 수 없어서 아쉬운 시간, 혼잡한 대중교통 출퇴근을 피할 수 있어 편안한 시간이었다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원래의 상처가 더욱 깊어지고 새로운 상흔이 보태진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돌아가야 할 아름다운 과거는 대체 어느 평행우주에 존재할까?

 

코로나19 이후 뉴질랜드 신규빈곤아동 18000

지난해 말 유엔개발계획(UNDP)은 코로나19 유행을 거치며 2억명 넘는 인구가 새롭게 극단적 빈곤에 빠져들 것이라고 추정했다. 원래 형편이 안 좋았던 저소득 국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올해 6월 뉴질랜드의 아동빈곤행동그룹(Child Poverty Action Group)2020년 한 해에만 새롭게 빈곤층이 된 뉴질랜드 어린이가 18000여 명에 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시작된 주거비 상승 문제는 고려하지도 않은 수치였다.

 

사실 아동빈곤 퇴치는 저신다 아던 총리가 2018년부터 야심차게 추진해온 역점 과제였고, 코로나19 대응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강도 높은 봉쇄조치로 인해 빈곤 가정 어린이들이 심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예상하고, 아동수당 25달러(주당)를 추가로 지급했으며,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근로 세액공제 조건도 완화했다. 봉쇄 때문에 일자리에 타격을 받은 이들에게 임금 보전으로 130억 달러를 지원하기도 했다. 임금 지원금은 평소 구직수당의 두 배에 달했고 빈곤화를 막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적극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오래전부터 주거와 소득 불안정에 시달려왔던 이들의 타격을 완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빈곤아동의 숫자는 늘어나고, 이는 대부분 선주민 가정에 집중되었다. 평소 강력한 아동빈곤 정책을 추진해왔고, 팬데믹 시기 재정투자에도 적극적이었던 뉴질랜드의 이러한 결과를 보면 국내 상황에 대해서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5월 한국은행의 연구보고서 코로나19가 가구소득 불평등에 미친 영향에 따르면 20202~4분기 소득 하위 20% 가구의 전년 대비 소득 감소율은 17.1%나 되었다. 소득 상위 20%의 감소 폭 1.5%의 열 배가 넘는 수치이다. 하위 소득군 중에서도 특히 대면 서비스 일자리에 종사하고 미성년 자녀가 있는 여성 가구의 소득 감소율은 23.1%에 달했다. 팬데믹이라는 전 지구적 재난을 인류가 함께 겪었다지만, 사회계급의 거대한 피라미드 중 어디에 서 있는지에 따라 사람들이 경험하는 시간은 너무나도 달랐다.

20203,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단체 주최로 시민들이 코로나19 예방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시사IN 이명익

 

사회불평등이 몸에 남기는 상흔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전설 속 고난 극복의 유전자를 타고났다는 K-민족 아닌가? 어떻게든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삶을 이어가고자 고군분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분투에는 대가가 따른다. 몸에, 문자 그대로 상흔이 새겨진다.

 

인류는 오랜 시간에 걸쳐 외부의 위협과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기전을 진화시켜왔다. 위험하고 긴장되는 상황에 처하면 손에 땀이 나고 혈압이 상승하며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의식하지 못하지만 몸에 비축해놓은 에너지를 활용하기 위해 혈당 수치도 높아진다. 이러한 과정을 이항상성(allostasis)이라 부른다. 변화하는 외부 조건에 적응하기 위한 필수적 조절 기전이다. 이항상성을 진화시키지 못했다면 인류는 가혹한 생태계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곰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몸에 쌓아두었던 에너지를 빨리 동원하고 심장이 빠르게 박동하여 산소와 에너지를 근육에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없었다면? 결말은 독자의 상상에 맡겨두겠다.

 

위기 상황이 종료되면 생리적 반응은 평상시로 회복해야 한다. 그런데 위협적인 스트레스 상황이 너무 자주 반복되거나 지속되면, 우리 몸에는 부하(load)’가 걸리고 닳아 해지게된다. 혈압, 혈당, 스트레스 호르몬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염증 반응물질이 증가하면, 뒤이어 동맥경화증·당뇨병·대사증후군·심장병 발병 빈도가 높아진다.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해 술과 담배, 고열량 식품에 빠져드는 것 또한 건강에 부정적 결과를 낳는 이항상성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고질적인 생계 근심, 불안정한 일자리, 가정불화, 일터의 스트레스, 열악한 주거환경. 곰이나 사자에게 쫓기는 스트레스는 사라졌지만 오늘날 계층 피라미드의 아래쪽에 위치한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이런 위협에 직면한다. 영국의 유명한 화이트홀 연구에서는 공무원들의 직급이 낮을수록 심장병 발병률이 높았는데, 그간의 스트레스 수준을 반영하는 이항상성 부하 지표들이 관련 있었다.

 

더욱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러한 이항상성 부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축적되어 장년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아동기에 경험한 사회경제적 역경은 아동기 건강불평등은 물론 성인기 건강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영국의 1958년 출생 코호트 연구에서는 출생 시기 사회경제적 지위를 반영하는 엄마의 학력 수준이 아동·청소년기의 물질적 박탈, 20대 초반의 비만 위험과 관련이 있었고, 44세에 측정한 이항상성 부하 척도와도 관련이 있었다. 미국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어린 시절 어려운 사회경제적 환경에 놓였던 이들일수록 스트레스 반응 매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의 편도체(amygdala)가 외부 자극에 과잉 활성화된다는 점을 확인하기도 했다. 아동학대를 경험했던 이들이 성인기에 비만·당뇨·심장질환·정신질환 위험이 높아지는 것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20205,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이동 검사소에서 한 아이가 진료를 받고 있다.AP Photo

 

네덜란드 기근 연구의 교훈

1980~1990년대 영국의 역학자 데이비드 바커는 서구 사회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관상동맥질환·고혈압·당뇨병 등이 늘어났는데, 과거에 가난했던 지역일수록 이런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태아의 장기가 발달하는 결정적 시기에 영양부족에 노출되면 이에 적응하기 위해 에너지를 축적하도록 태아의 몸이 프로그래밍되고(이를 절약 표현형 가설·thrifty phenotype hypothesis’이라 한다), 나중에 영양이 풍족해졌을 때는 이러한 형질이 부적응적인 것이 되어 중장년기 대사성질환의 위험을 높인다고 추론했다.

 

이러한 가설은 비극적인 자연실험을 통해 점차 사실로 입증되었다. 네덜란드 기근 연구이다. 1944년 말, 나치가 네덜란드 서부 지역을 봉쇄하고 이후 한파로 물자 이동까지 가로막히면서 이듬해 봄까지 최악의 기근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시기 하루 섭취 열량은 겨우 400~800에 불과했다고 한다. 임산부들도 똑같이 굶주림을 겪었다. 다행히 머지않아 전쟁은 끝났다. 네덜란드는 빠른 경제성장과 함께 풍족한 식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태아 초기 엄마 뱃속에서 기근을 경험했던 이들이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 전쟁 전후에 태어난 다른 형제들보다 비만율이 높았다. 심혈관질환과 대사성질환, 정서장애 유병률도 높았다. 심지어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그 자녀 세대에서도 건강 문제가 확인되었다. 기근이라는 사회적 경험이 어떻게 생물학적으로 유전될 수 있을까?

 

유전체 분석기법이 발달하면서 그 비밀도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임신 초기 엄마 뱃속에서 기근을 경험한 이들은 그렇지 않은 형제들과 비교했을 때, 대사조절에 관여하는 DNA 부위의 메틸화에 변화가 관찰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동물실험 연구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역학적 연구들에서 속속 확인된다. 이를테면 감비아 지역의 연구에서도 식량 사정이 좋지 않은 우기에 임신된 아이들이 건기에 임신되어 태어난 아이들에 비해 대사조절에 관여하는 DNA 부위에 메틸화 변화가 관찰되었다.

 

DNA의 염기서열 자체는 변화가 없지만 외부 스트레스가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기전에 변화를 일으켜 표현형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후성유전적(epigenetic) 변화라고 한다. 오래전 배운 대로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틀렸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이들에게 충격이겠지만, 후성유전적 변화가 후손에게 계승될 수 있다는 점 또한 동물과 인간 연구에서 속속 확인되었다.

 

태아 시기의 영양결핍만 후성유전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임신 중 엄마의 우울증은 자녀의 출생 3개월 시점에 측정한 스트레스 호르몬 수용체의 메틸화에 변화를 일으켰다. 아동기의 학대 경험은 뇌의 해마 부위에 있는 스트레스 호르몬 수용체, 우울증 관련 신경전달물질 수용체 부위의 메틸화에도 변화를 유도했다.

 

건강정치노트지면에 이항상성 부하, 후성유전학이라니 뜬금없는 것 같지만 건강불평등 문제의 발생 기전과 개입이라는 측면에서 이는 상당히 중요한 개념들이다. 이항상성 부하는 사회심리적 고통이 어떻게 우리 몸에 상흔을 남기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후성유전학의 발전은 자연 대 양육(nature vs. nurture)’이라는 오래된 이분법을 폐기하고, 유전체와 환경의 상호작용에 대한 설명을 다시 써내려가는 중이다. 이러한 발견은 사회불평등이 어떻게 우리 몸으로 들어와 건강불평등으로 이어지는지, 특히 생애 초기의 돌봄과 보호가 평생에 걸쳐 건강에 어떤 장기적 영향을 미치는지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다.

 

20137월 서울시는 자살 예방에 도움이 될 만한 문구를 마포대교 난간에 새겼다.시사IN 신선영

 

당연한 건강불평등은 없다

건강불평등에 대한 강의를 하다 보면 좋은 이야기인 건 알겠는데, 그럼 어떤 정책을 써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좀 알려달라하는 요청을 종종 받는다. 하지만 건강불평등 기전에서 알 수 있듯, 세상에 아주 혁신적이고 특별한 건강불평등 정책이란 없다. 이미 계층 피라미드의 상층에서 향유하고 있는 기본적인 건강 보호 자원에서 우리는 답을 찾을 수 있다. 화려한 대저택일 필요는 없지만 안정적이고 쾌적한 주거, 아이들에게 좋은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시설과 부모의 시간 여유, 적당량의 균형 잡힌 식사, 당장 내일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기본적인 소득보장 같은 것들 말이다. 아동기 환경이 중요하다고 해서 아동수당이나 보육시설 확충, 무상 예방접종처럼 아동에게 특화된 정책에만 한정할 필요도 없다. 예컨대 최저임금제도를 아동정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1999년 영국이 이 제도를 도입한 것은 아동빈곤율을 낮추기 위해서였다.

 

1997~1998년 외환위기 시절 우리 사회는 자살률 급등을 경험했다. 특히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던 이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두드러졌다. 한국 사회는 이를 사회적 타살이라고 명명하면서 당연한 결과처럼 받아들였다. 그러나 비슷한 위기에서 다른 반응이 나타나기도 한다. 소련의 주요 교역국이던 핀란드는 1990년대 초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면서 심각한 경제위기를 경험했다. 한국처럼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 핀란드에서 자살률 급증은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과 함께 금융위기를 경험한 일본에서도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중장년 남성의 자살률만 폭등했지, 여성이나 노인들의 자살률은 거의 변함이 없었다. 한국에서만 남녀 모두, 중장년과 노인 모두에게서 자살률이 급증했다. 경제위기가 자살률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닌 것이다. 사회가 어떤 완충장치를 가지고 있느냐, 어떻게 개입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백신에 이어 치료제 개발 소식까지 들리는 것을 보니 코로나19 팬데믹도 조만간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잦아들 확률이 높아졌다. 하지만 대규모 유행이 사그라진다고 해서 그동안 겪었던 고통까지 흔적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니다. 팬데믹의 후폭풍 속에서 더욱 고군분투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당장 눈에 띄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러한 역경과 사회심리적 고통은 우리 몸에 흔적을,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지속될 상처를 남길 것이다. 몇 년 뒤 우리 몸이 그 대가를 치르지 않도록 하려면, 특히 지금의 어린이들이 수십 년 후 건강 상실이라는 뒤늦은 벌금을 내게 하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개입해야 한다. 시의적절한 정책, 효과적 정책을 만들어낼 정치가 절실하다. 다가오는 정치의 계절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초래될 건강불평등 문제에 우리 사회가 정면으로 맞서는 정치적 기회의 창이 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터무니없는 기대일까?

Tag#코로나19#팬데믹#건강#불평등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시사인

 

외국인 가진 우리 땅 '31.7조원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1년 상반기 외국인 토지보유 현황'에 따르면, 상반기 외국인 보유 토지는 256.7(25674)로 전 국토의 0.26%인 것으로 조사됐다. 외국인 보유 토지 공시지가는 316906억 원으로 작년 말 대비 0.6% 증가했다. 국적별로 살펴보면 미국이 외국인 전체 보유면적의 53.3%를 차지하고 있으며, 중국 7.9%, 유럽 7.1%, 일본 6.5% 순이었다.

CBS노컷뉴스 안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