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25 ~10.30 노태우 ‘국가장’…시대의 상처를 덧내다

저널리즘 실종된 유명인 사생활 보도, ‘클릭 수 경쟁’만 남았나
공급망 교란·공급부족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괌·몰디브·칸쿤·스페인…‘입소문’ 타고 예약 연말까지 꽉 찼다
김일성의 죽음, ‘근친증오’의 폭발
미국 따라잡는다”… 남성 ‘키 증가율’ 세계 1위에 열광하는 중국
“인정하자, 한국은 ‘위드 코로나’ 준비가 늦었다”
박형준 "증거능력 없다" - 검찰 "국정원 서버 자료“
대통령 후보들의 새빨간 거짓말, 깜빡 속았다
검찰은 쇠락하는데... 야당은 검사 출신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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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원권 환수율 급감‥그 많던 현금은 어디로 갔나?
한일 해저터널·가덕도 신공항의 이면···'뭐든 해봐야 한다' 절박한 비수도권
1주택자 양도세 기준 12억 되면, 차익 7억 얻어도 세금 ‘0원’
빈곤 안고 고립된 이들...죽음도 삶만큼 불평등했다
NYT, 24년 늦은 김학순 할머니 부고 "20세기 가장 용감한 인물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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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을 믿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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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쓰기’ 먹고 자라는 이재명 ‘조폭 연루설’
도시개발법이 낳은 자식, 대장동과 엘시티
인구 감소, 지방 소멸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농촌의 땅과 사람들은 점점 더 조용해지네




저널리즘 실종된 유명인 사생활 보도, ‘클릭 수 경쟁’만 남았나
연예인, 스포츠선수 등 유명인 관련한 폭로성 보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내밀한 사생활뿐만 아니라 쉽게 공개되면 안 되는 개인정보까지 무차별로 드러나고 있는데요. 특히 유명인 사생활을 상품화한 언론의 경쟁적 선정보도가 급증하며 인권침해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어 공적 보도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공적 가치 없는 사생활 보도, 왜 양산되는가
한국 언론의 유명인 사생활 보도행태는 오래전부터 개선이 필요한 구태로 비판받아왔습니다. 2020년 언론중재위원회 시정권고 425건 중 사생활 침해가 103건(24.2%)로 1위를 차지해 언론보도로 인한 사생활 침해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전체 권고대상 매체 중 인터넷신문이 368건(86.58%)을 기록해 온라인 공간의 무분별한 공격과 빠른 확산 문제도 대두되고 있습니다.
공적 보도가치가 없거나 낮은 데도 유명인들의 사생활 보도는 왜 무분별하게 양산되고 있을까요? 최근 배구선수 이다영 씨 이혼 관련 폭로전이 경쟁적으로 보도된 경우도 공적 보도가치를 따지지 않은 채 ‘칼부림’ 등 과격한 표현이 연일 등장하며 선정적으로 다뤄진 사례입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에 대한 2차 가해성 보도도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조재범 전 코치의 1심 판결문이 법률전문 검색서비스 실수로 공개됐는데, 일부 언론이 구체적 가해사실 내용을 퍼 날랐습니다. 조 전 코치의 성폭력을 입증하기 위해 제출된 심 선수 휴대폰 메신저 내용이 고스란히 노출돼 보도됐는데요. 국가대표로서 부적절한 언행이 있었지만, 개인의 휴대폰 메시지를 동의 없이 보도한 점은 불법적 소지가 다분합니다.
배우 김선호 ‘전 여친’ 색출 나선 언론
10월17일엔 ‘대세 K배우의 실체를 고발한다’는 제목의 온라인 커뮤니티 글이 대대적으로 보도됐습니다. ‘K배우’가 전 여자친구인 자신에게 임신중지를 종용했다는 등 사생활에 관한 내용이었는데요. 10월20일 배우 김선호 씨가 ‘K배우’가 자신임을 시인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커뮤니티 글은 자극적으로 기사화됐고, 급기야 피해자인 여성의 신상정보를 캐내 퍼 나르는 보도가 쏟아지면서 피해 여성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배우 김선호 씨 관련 보도는 ‘유튜버’ 입을 따라다녔고, 그 방향은 커뮤니티 글을 작성한 ‘전 연인’을 향했습니다. 부산일보 <“혼인빙자에 낙태까지 강요한 K 배우의 사과를 요구합니다”>(10월17일 장혜진 기자)를 시작으로 커뮤니티 글을 ‘복붙(복사붙여넣기)’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한 유튜버가 ‘K배우’로 김선호 씨를 거론하자, 일부 매체도 유튜버 발언을 근거로 실명과 사진을 보도하기 시작했는데요.
조이뉴스24 <“K배우=김선호, 9월부터 前여친 문제로 곤욕” 의혹 제기>(10월18일 정지원 기자), 스포츠경향 <“사생활 폭로 배우, 김선호 맞다… 소속사도 이미 인지”>(10월18일 이선명 기자) 등은 “소속사도 이미 김선호의 전 연인 사생활 논란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그간 언론에 친화적인 태도를 바꾸고 전 직원이 연락을 끊고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라는 유튜버 말 외엔 별다른 취재 내용은 없었지만, 해당 언론은 실명과 사진을 내걸었습니다. 김 씨가 해당 내용을 시인하기 전까지 사실 확인 없이 나온 기사가 550여 개에 이릅니다.
더 큰 문제는 김 씨의 전 연인이라고 주장한 게시글 작성자 직업이나 실명을 거론하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김 씨 실명을 언급한 유튜버가 ‘전 여친 정체’ 등을 제목에 쓴 영상을 올리자 나온 보도인데요. 스포츠경향, 위키트리, 국제뉴스, 세계일보, MBC연예, 뉴스엔, 머니투데이, 매일경제, 한국경제, 서울경제, 스포츠투데이, 뉴시스, 중앙일보, 서울신문, 엑스스포츠뉴스, 여성조선, 파이낸셜뉴스 등이 해당 유튜버 발언을 받아썼습니다.
전 연인 실명·직업 보도하고 ‘2차 가해’ 우려?
이후 김 씨 전 연인의 직업과 실명, 사진까지 공개하는 보도까지 등장했습니다. 스포티비뉴스가 10월18일 ‘단독’을 붙여 제목과 본문에서 전 연인의 현재 직업과 이전 직업, 종사 기간을 구체적으로 적었습니다. 제주교통복지신문 역시 ‘단독’을 붙여 직업을 공개했고, 비슷한 보도는 톱스타뉴스, 한국경제, 인사이트, 세계일보, 시사매거진 등에서도 계속됐습니다. 국제뉴스는 김선호 씨 논란에 대해 별다른 언급 없이 10월20일 전 연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사람의 실명과 사진을 보도했습니다. 스타뉴스는 10월21일 전 연인이 최근 다시 일을 시작했다며 근황을 전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2차 가해 논란이 나오자 일부 언론은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전했지만, 이들 언론 역시 ‘신상 털기’를 해오던 매체였습니다. 세계일보 <“김선호 전 여친이 XXX 맞나요?”… 과열된 ‘신상 털기’ 우려>(10월20일 강민선 온라인 뉴스 기자)는 “A씨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뉴스엔 <김선호 비겁한 침묵 속 전 여친 신상털기, 2차 가해 심각 [이슈와치]>(10월20일 이민지 기자), 아시아경제 (10월22일 임주형 기자) 등도 “A씨에 대한 2차 가해가 심각하다”고 보도했지만, 정작 자신들이 어떤 보도를 해왔는지는 잊은 듯합니다.

▲ 논란된 배우의 전 연인 관련 추측성 기사 (10월21일, 네이버 ‘김선호’ 검색 결과)
심석희 욕설 파문, 조재범 ‘성폭행’ 판결 영향준다?
2차 가해와 과도한 사생활 침해 보도는 스포츠 기사에서도 나왔습니다. 디스패치 <[단독] “평창 금메달이 창피해”…심석희, 국가대표 조롱 논란>(10월 8일 오명주·구민지 기자)은 심석희 선수가 동료 험담 등을 주고받은 개인 메신저 대화를 보도했는데요. 심 선수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조재범 전 코치 측이 심 선수 휴대폰 포렌식 자료를 확보해 언론사 디스패치에 제공하며 알려지게 됐습니다. 당사자 동의 없이 메신저 내용을 보도한 것만으로도 범죄성이 충분한데, 성범죄 가해자 측이 제공한 피해자 관련 정보를 섣불리 가져다 일방적으로 쓴 겁니다.
메신저 대화는 동료 선수를 험담하고, 고의충돌을 의심할 여지가 있는 내용이었는데요. 험담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고, 고의충돌 여부에 대해선 조사를 통해 밝히면 될 일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를 성폭행 재판과 무리하게 연관 짓는 보도입니다.

머니투데이 <심석희 파문, 조재범 ‘성폭행’ 혐의 3심 판결에 영향 줄까[팩트체크]>(10월9일 유동주 기자)는 일부 커뮤니티를 출처로 “조재범 전 코치 사건에 대해 사실관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고 보도했는데요. 여러 전문가가 “성폭행 혐의가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언급한 내용이 기사에 포함됐는데도 커뮤니티 글을 굳이 언급하며 “추가 사실이 밝혀지기라도 하면”과 같은 가정으로 “재심 가능성”을 거론했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불필요한 의심을 키우고, 피해를 축소한다는 점에서 2차 가해로 볼 여지가 다분합니다.
심 선수를 향한 2차 가해는 더 있습니다. 법률전문 검색서비스 플랫폼에서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의 1심 판결문이 공개됐다는 사실이 이데일리 <[단독] 심석희 ‘2차 피해’ 나몰라?… 조재범 판결문 공개한 법률사이트>(10월14일 남궁민관 기자) 보도로 알려졌습니다.
판결문은 공개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해당 재판은 피해자 요청으로 비공개로 진행됐고, 판결문을 공개하는 것 역시 가해 사실이 상세히 적혀 있어 2차 가해 우려가 높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언론이 판결문이 공개됐다는 사실과 함께 그 내용을 상세하게 보도한 것입니다. 연합뉴스, 세계일보, 매일신문, 서울신문, 한국경제, 부산일보, 데일리안 등은 1심 판결문에 적힌 내용을 제목과 본문에서 모두 언급했습니다.
유명인 사생활 상품화, ‘클릭 수’ 욕심일 뿐
언론중재위원회는 국가·사회·개인의 법익을 침해한 사항을 심의 의결해 해당 언론사에 시정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당사자 동의 없이 유명인의 가족 등에 대한 사적 정보나 초상을 공개하는 보도, 유명인이라 할지라도 당사자 동의 없이 그와 관련된 내밀한 정보 및 사생활을 공개할 경우 △성폭력 가해자의 범행수법을 지나치게 자세히 보도하거나 사진이나 동영상을 게재하여 선정적으로 묘사한 보도 △인터넷 상 조롱성 게시글 등을 여과 없이 게재할 경우 △사회적으로 불명예스러운 사건에 대해 보도하면서 사건과 관련 없는 인물의 초상 등을 게재한 보도 등은 모두 시정권고 대상입니다.
유명인은 필연적으로 대중의 관심이 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언론이 그들과 주변인의 사생활이나 관련 내용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유명인이 잘못을 저질렀어도 언론은 해당 사안의 보도가치를 따져 보도할 것과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이다영 선수의 경우 잘못된 행위인 학교 폭력과 사생활인 이혼 등은 보도 가치가 분명히 다릅니다.
지금도 논란된 배우와 관련해 새로운 폭로 예고 내용이 보도되면서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커뮤니티 글이 기사화되고 있습니다. 기사 가치 없는 이런 보도가 계속 나오는 이유는 언론의 ‘클릭 수’ 욕심일 뿐 저널리즘 본연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언론 스스로 품위와 신뢰를 떨어뜨리는 보도에 대한 자성이 필요할 때입니다. 클릭 수만 높인다면, 돈만 된다면 어떤 소재든 모두 보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1년 10월17~21일 오후 6시 기준 네이버에서 ‘K배우’, ‘김선호’ 검색했을 때 나온 모든 기사 / 2021년 10월 8~21일 오후 6시 기준 네이버에서 ‘심석희’, ‘조재범’, ‘판결문’ 검색했을 때 나온 모든 기사.
민주언론시민연합/미디어오늘

공급망 교란·공급부족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글로벌 공급망, 타이레놀 모멘트
미국과 아시아의 제조 허브의 코로나19 봉쇄로 인한 공급망 교란, 주요 항구를 뒤흔드는 하역 노동자와 컨테이너의 부족, 장비 제조업체는 곡물 가격과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도 공급부족으로 인해 생산이 줄어들고 있다. 팬데믹 동안 철강, 플라스틱, 고무 및 기타 원자재에 대한 접근이 부족 했으며,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는 전력부족으로 인해 제철소와 제련소가 생산량을 줄인 후 제조업체는 더 큰 충격에 대비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은 주요 생산체계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고 생산과 유통 단계 어디에서든 교란이 발생해 공급부족을 야기할 수 있다.
글로벌 공급망은 소위 ‘타이레놀 모멘트(Tylenol moment)’를 맞이하고 있다. (1982년에 시카고에서 누군가 타이레놀에 청산가리를 섞어 유통해 7명이 사망했는데, 청산가리가 공장에서 들어갔는지, 유통과정에서 발생했는지, 소매점에서 발생했는지는 몰랐다.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여 타이레놀 복용을 아예 중단 버렸다. 이에 존슨앤드존슨 사는 기존 타이레놀을 수거해 전량 폐기하고 새로운 타이레놀을 최초로 알약 진공포장에 담아 유통함으로써 신뢰를 회복했다.) 코로나19 속에서 공급망 교란 상황을 넘어 공급부족을 해소하고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못할 것인가 하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공급망 교란과 공급부족으로 인한 곡물, 연료와 에너지, 물류, 주요부품값의 폭등은 전 세계 인플레이션을 이끌고 있고 이에 따른 성장률 하락은 물론 빈곤의 고통을 더하고 있다. 특히 식량 생산과 공급부족은 식료품비 인상만이 아니라 세계 기아율을 높여 8억명 넘는 사람들이 먹지 못하고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또한 화석연료의 사용을 높여 코로나19 확산으로 일시 줄어들었던 탄소배출량을 급격히 늘리고 있다.
물류대란과 노동력 부족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집에 오래 머물면서 온라인 전자 상거래 주문이 폭증하면서 국가 간 상품 수요가 늘어났다. 전 세계 물동량이 증가하기 시작했지만, 화물을 싣고 내리는 항만 인력은 부족했다.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확산하자 노동자의 수도 줄었고 이동도 쉽지 않았다. 봉쇄 등의 이유로 주요 항만기능이 중단 또는 단축되기도 했다. 이처럼 하역을 원활히 진행하지 못하자, 항구 근처 바다에 대기하는 선박도 급증했는데, 대기하는 선박들에는 컨테이너가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육지는 비어 있는 컨테이너가 부족해졌다. 그리고 항구마다 대기시간이 길어지면서 선박운송 시간도 계속 지연되고 다시 새로운 화물을 운송할 선박도 부족해지는 연쇄 부족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 부산항. 사진=gettyimagesbank
이처럼 물류대란은 먼저 노동력 부족문제다. 산유국인 영국에서 트럭 운송노동자 부족으로 석유부족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 그대로 보여준다. 부두 하역 노동자뿐 아니라 2년 가까이 배 선원, 트럭 운전기사 및 항공사 직원들은 감염 우려 속에서도 각종 검역, 여행 제한과 가는 곳마다 코로나 예방 접종 및 테스트 요구를 견디면서 버텨 왔다. 선원들의 경우 일단 배를 타면 다른 나라에 도착해도 그 지역에 내릴 수가 없기 때문에 육지에서 쉴 수도 없고 인원 교체도 되지 않아서 18개월째 사실상 바다에 갇힌 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국제해운협회(ICS)는 “모든 운송 부문은 노동력 부족 문제를 겪고 있으며, 코로나19 기간 동안의 열악한 처우로 인해 수백만 명이 그만둘 것으로 예상되면서 공급망은 더욱 큰 위협에 처하고 있다”고 밝혔다. 많은 노동자가 이제 한계점에 도달해서 전 세계로 상품을 운송하는 항구, 컨테이너 선박 및 트럭 회사의 운송 네트워크에 위협이 되고 있다.
에너지 공급부족과 원료 가격 폭등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원료의 공급이 수요보다 늘지 않아 전력난을 일으키고 전기료 등 에너지 가격 급등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의 부족이 에너지의 난을 이끌고 있는데, 이들의 공급부족은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하고 있고 특히 유럽과 중국의 에너지 원료 공급부족과 가격 급등의 원인은 서로 다르다.
세계 최대의 전력 생산국이며 석탄화력발전이 전체 발전량의 60%를 차지하는 중국은 먼저 주요 발전연료인 석탄 공급부족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 지난 2020년 10월 중국은 호주의 쿼드 참여와 중국차별에 대한 보복으로 호주로부터 석탄수입을 중단시켰다. 또한 중국 내 석탄 생산도 5년 전부터 당시 공급 과잉을 이유로 지속해서 줄여왔고, 최근 최대 석탄광산인 내몽골 광산이 부패혐의로 수사를 받아 채굴에 차질이 생겨 현재 공급량이 떨어진 것도 매우 크다.
특히 10월 들어 중국 최대 석탄 생산지인 산시성에 폭우가 내려 60개의 석탄광산, 372개의 비석탄광산, 14개의 유해 화학 공장 가동을 중단시켰고, 발전용 석탄 공급부족으로 인한 전력난의 여파는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부분적으로는 전력망의 부실로 인한 비효율 문제와 외국자본에 민영화된 화력발전소의 해태 문제도 지적될 수 있다) 이처럼 중국의 전력난은 석탄의 공급부족과 이로 인한 석탄 가격 인상으로 석탄화력발전소가 석탄발전을 더 줄이면서 나타났다.
한편, 유럽의 전기료 급등은 우선 전체 전력 생산의 5분의 1을 맡은 천연가스 가격이 급격히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봄 유럽은 이상 한파로 난방용 천연가스 수요가 급증했다. 그런데 유럽 천연가스의 40%를 공급하는 러시아가 시베리아 공장 화재를 이유로 천연가스 수출을 대폭 줄였다. 그러자 천연가스 가격이 대폭 상승했는데, 지난해보다 440%까지 뛰어올랐다.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하자 천연가스 연료로는 채산성이 맞지 않아 전력 생산을 줄였고 부족해진 전력을 채우기 위해 다시 석탄 발전을 시작하면서 이번에는 석탄의 수요를 증가시켰고, 석탄의 공급부족으로 석탄 가격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여기에 풍력발전소의 전기 생산량도 기대에 못 미치면서 연료 가격 인상에 한몫하고 있다. 유럽의 풍력 발전소는 북해 인근에 집중되어 있는데, 올해 풍속은 2000년 이후 가장 느리다. 유럽에서는 전체 전력 생산원 가운데 신재생에너지의 비율이 38%에 이르며, 풍력만 따지면 10%가량이다. 독일의 경우 풍력 발전량이 예년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전체 전력 생산의 4분의 1을 풍력에 의지하는 영국은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에너지 수요 증가와 연료 공급 부족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석탄 등 화석연료 발전을 확대하게 되었다. 반면 에너지 전환에 따라 석탄, 가스 등에 대한 투자는 기피하게 되면서 생산량이 줄었다. 석유도 산유국들이 코로나19 초기 유가하락의 경험 때문에 쉽사리 증산 계획을 내지 못하면서 다른 화석연료와 마찬가지로 가격이 치솟고 있다.
식량 공급부족과 곡물가 폭등
식량생산도 기후위기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식량 수출제한 문제도 있지만, 더 크게는 작년 식량 수출국에 가뭄과 같은 기상재해가 두드러져 생산량이 예상보다 늘지 않았다. 특히 주요 식량수출국인 북미와 남미에 가뭄이 계속돼 브라질의 겨울 밀 생산량이 20% 줄어 수출이 불가능해졌다. 또한 컨테이너 부족으로 커피와 같은 특수작물의 수출이 영향을 받고 있고, 상업 항공편이 줄면서 신선한 과일과 채소 수출이 어려워졌다. 물류 대란 및 유가 등 연료 가격 인상으로 전체 운송비도 상승하고 있어 공급에 더 큰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반면, 식량 수입국에서는 지난해 식량파동을 한번 겪으면서 올해 입도선매를 하거나 전략비축량을 늘리면서 식량수요가 크게 늘고 있어 식량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게다가 석유, 석탄, 천연가스 가격 상승으로 운송비만 커지는 게 아니라, 생산비도 증가하고 있다. 소맥, 옥수수, 원면 등 경작에 사용되는 비료 요소의 주요 원료는 천연가스 또는 석탄이고 질소계 비료의 주요 성분인 암모니아는 천연가스에서 추출된다. 천연가스와 석탄 가격 상승은 이들 비료 가격 상승을 유발했고, 석유를 주원료로 하는 화학비료의 가격과 농기계 운용비도 올랐고, 농기계 수요 증가로 농기계 가격도 올랐다

▲ 농업. 사진=gettyimagesbank
또한, 고유가로 인해 에너지 작물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식량 생산이 더 줄어든 탓도 있다. 더 많은 양이 연료로 전환될수록 식량 시스템에 남아 있는 농작물은 적어진다. 에너지 생산을 위해 사용되는 미국 대두유의 양이 2020년과 2022년 사이에 39% 증가했고, 브라질의 옥수수 에탄올 생산량은 작년 대비 50% 이상 증가했고 올해 또 25% 증가할 예정이다.
이런 모든 요인으로 인해 식량의 세계 도매가격이 상승했다. 콩과 옥수수는 작년 대비 56%와 68% 올랐고, 소비자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이로 인해 저소득층의 소득 감소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먹거리 접근을 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 식량농업기구(FAO)는 ‘2021년 세계 식량안보와 영양실태 보고서’에서 현재 굶고 있는 이들은 전 세계 인구의 1/10 수준인 7억2000만 ~ 8억1100만명 수준으로 추정하며, 수십 년 만에 가장 큰 증가 폭을 보였다고 밝혔다.
반도체 등 부품·원자재 공급 부족
반도체 주요 생산지인 동남아시아 지역의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반도체 부족 사태가 심화하면서 공급량이 줄어들자 자동차 등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다. 동남아에는 차량용 반도체 기업들의 생산 기지가 밀집해 있다. 그런데 선진국 대비 코로나 대응이 늦은 데다 백신 확보량이 턱없이 부족했던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에서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자 반도체 생산도, 유통도 급감했다(한편, 수요 측면에서 비대면-온라인이 확산하면서 전체적으로 반도체 수요가 폭증한 것도 공급부족의 원인이 되었다).
특히 공급망과 관련하여 반도체 등 부품 생산에서 적기(just-in-time)생산과 유연 생산(lean production)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유통 지연에 따라 재고부족 사태로 나타나 공급부족을 더 부추겼다. 적기생산이 이뤄지는 만큼 재고를 많이 쌓아둘 필요가 없었는데, 코로나19 확산으로 생산과 유통이 줄어들자 각 생산 공장에서 재고가 순식간에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부품 공급에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되었다. 이제 기업은 “적기”와 “만약에”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을 찾아야 할 수도 있다.
반도체 제조업체가 직면한 또 다른 문제는 프로세서 수요는 전방위적인 데 비해, 주요 반도체 업체가 우선적으로 판매하고자 하는 상품과는 거리가 먼, 기존 기술을 위한 수요라는 점이다.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국제경쟁의 가속화에 따라 7나노와 5나노 설계로 돌입하는 등 최첨단 초정밀 분야 생산에 치우쳐 있다. 그러나 정작 자동차와 스마트 냉장고 등에 필요한 반도체는 중간 수준의 기술, 40나노 또는 28나노 설계로도 충분하지만, 이런 반도체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생산 시설에 투자하는 업체는 많지 않다. 기업은 이곳에서 장기발전(장기 이윤)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투자를 망설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생산이 필요한 수요만큼 빠르게 확대되지 않아 공급이 부족하게 된다.
한마디로 투자와 이익(생산) 사이의 불균형 때문인데, 장기적으로는 해소가 되겠지만 상당기간 혼란을 거칠 수밖에 없는 문제다. 결국 생산 시설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반도체 기업들 모아놓고 협박에 가까운 방식으로 필요한 반도체 생산을 빠르게 현지화하는 방식으로 가든지,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자동차 기업이 직접 필요한 반도체를 만드는 방식(생산 내재화)으로 가든지 하면서 차츰 해소해 갈 것으로 보인다.
인플레이션, 통화량 아닌 공급측 문제
인플레이션과 관련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 통화량 문제가 아니라 공급부족에 따른 문제라는 점이다.
“이는 통화량이 화폐가치, 물가를 결정한다는 기존 통설을 부정하는 것으로 물가는 상품 가치량의 변화나 화폐 가치의 변화에 따른다. 초과수요가 존재하거나 공급이 부족할 때, 또는 생산성 향상에 따라 상품의 가치량 자체가 하락할 때 인플레이션이 유발된다. 인플레이션은 화폐 가치의 하락인데, 화폐 부문에서는 직접적으로 화폐가치가 하락할 때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관련기사 : 워커스 2020년 9월호 “중앙은행, 유동성은 늘려도 디플레이션은 못 막는다”, 홍석만]

▲ 사진은 10월6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외화 위변조대응센터 직원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최근 몇 달 동안 전 세계 물가상승이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크게 오른 상황에서 공급망 병목 현상이 이를 더욱 높이고 있다. 특히 공급망 문제는 물가를 통제하는 중앙은행이 손쓸 수 없는 영역이기에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앤드류 베일리 영국 중앙은행 총재도 “물가상승 상황을 예의주시할 것”이라며 “통화정책으론 반도체를 생산하거나 (발전량이 떨어진) 풍력 발전을 할 수도, 트럭 운전사도 확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이 인플레이션은 통화량 조절, 통화정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더 확산하지 않도록 관리할 수는 있지만) 오직 공급망을 정상화하여 공급부족을 해소할 때 해결이 가능하다.
공급망 교란과 공급부족, 주기적으로 반복
현재 공급부족과 공급망 교란에는 코로나19의 영향이 가장 크다. 현 상황에서 코로나19가 잦아들게 되면 물류 관련 노동력 부족도 어느 정도 해소되고 또 임금인상과 처우개선 등으로도 노동력 부족은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라 생산과 유통망의 교란도 해소될 것이다. 또한, 값싼 노동력 생산지 중심으로 형성된 가치사슬이 미국과 유럽 등 소비지 중심으로 국내화(리쇼어링) 하고 적기생산과 린생산 시스템의 보완을 통해 일정한 재고량을 확보하는 등 공급망 교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도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장기 전망이며, 가장 중요한 코로나19가 언제 잦아들어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공급망 교란이 장기화해 내년 하반기까지 지속하면, 공급망 병목과 교란,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경기 위축과 인플레이션이 결합한 ‘스태그플레이션’의 발생을 점치기도 한다.
더욱 큰 문제는 코로나19 이후에도 공급망 교란의 완전한 해소는 불가능하고 주기적으로 발생할 것이란 점이다. 코로나19 팬데믹도 기후위기 속에 벌어진 자연재해에 다름 아닌데 이와 같은 지구적 규모의 기후재앙이 주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전쟁을 제외하고 세계 경제에 가장 크고 광범위한 공급망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일련의 혼란 중 가장 최근의 것일 뿐이다.
2011년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자동차용 전자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폐쇄되어 전 세계적으로 조립 라인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때 대지진으로 반도체 회사들이 의존하고 있는 첨단 실리콘 웨이퍼 세계 1위 생산업체가 쓰러졌다. 몇 달 후, 전 세계 하드 드라이브의 약 4분의 1을 생산하는 태국의 공장이 물에 잠겨 PC 제조업체는 혼란에 빠졌다. 2017년에는 카테고리4 태풍인 허리케인 하비가 미국 텍사스와 루이지애나를 강타했다. 미국 최대 정유 공장과 석유화학 공장 일부가 혼란에 빠졌고, 이로 인해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주요 플라스틱과 수지가 부족하게 되었다. 2021년에는 코로나19 대유행 속에 허리케인 아이다의 여파로 미국 멕시코만 일대의 석유 생산시설이 중단되는 등 공급중단 사태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는 현재까지는 다소 특별한 환경재앙에 속하지만, 기후위기의 심화로 인해 환경재앙과 세계 경제의 변화는 충격의 빈도와 규모를 증가시키고 있다. 미국에서만 2019년에 발생한 40건의 기상재해로 1000억 달러가 넘는 피해가 발생했으며,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극단적인 기상 이변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와 공급망 교란사태가 확대되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미국이 2021년 9개월까지 ‘10억 달러 피해 규모의 기상·기후 재해(Billion-Dollar Weather and Climate Disasters)’ 18건을 겪었으며 올해는 그런 재앙 중 최악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거의 해마다 자연재해 규모가 늘어나고 있고 이에 따라 공급망 교란과 갑작스러운 공급 축소도 더욱 빈번해질 것이다.
또한, 반도체 부문에서 보듯이 자본간 국제경쟁의 확대에 따라 투자와 생산의 불일치 즉, 자본주의 시장경쟁시스템에 의해서도 공급망 교란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다극 세계가 형성됨에 따라 더 많은 무역 분쟁, 더 광범위한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보고 있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정치적 안정성이 세계 최하위 국가들과 수행되는 세계 무역의 비율이 2000년 16%에서 2018년 29%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알다시피 세계 무역의 80%는 정치적 안정성이 하락하는 국가들과 관련되어 있다. 세계 무역에서 그만큼 지정학적 위기가 증가하고 있고 그에 따라 공급망은 정치적으로도 흔들리는 혼돈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 공급망 교란과 공급부족은 이제 주기적(periodical)으로 발생하고 공급망의 ‘타이레놀 모멘트’도 주기화 한다./ 홍석만 참세상연구소 연구실장/미디어오늘
괌·몰디브·칸쿤·스페인…‘입소문’ 타고 예약 연말까지 꽉 찼다
사이판을 시작으로 괌·하와이(이상 미국)·싱가포르·몰디브·칸쿤(멕시코)·스페인·프랑스·스위스·그리스·터키·타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막혔던 해외여행 물꼬가 잇따라 터지고 있다. 주요 해외여행지 하늘길도 속속 열린다. 잔뜩 움추렸던 여행사들이 기지개를 펴고, 해외여행을 ‘절실해’ 하던 이들의 마음이 들뜬다. 여행사들의 해외여행 상품 출시와 마케팅이 활발해지고, 이용자들의 해외여행 상품 및 항공편 검색량이 빠르게 는다.

벌써부터 여행·항공업계에선 “11월 초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시행 및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요 여행·휴양지로 꼽히는 타이의 한국인 ‘무격리 여행’ 허용을 계기로 해외여행이 물꼬가 터지는 단계를 넘어 빠르게 ‘정상화’ 단계로 나아갈 것”이란 기대감이 커진다.
앞다퉈 열리는 해외여행 문
지난 6월 말 우리나라와 첫 트래블버블(여행안전권역) 협약을 맺은 사이판을 시작으로 백신 접종을 완료했거나 영문 코로나19 검사(PCR) 음성 확인서만 있으면 바로 떠날 수 있는 해외여행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신혼여행지와 휴양지로 각광받는 괌·하와이·몰디브 등이 개별 여행 허용 및 무격리 조건으로 우리나라 여행객을 받고 있고, 유럽에서는 스페인·프랑스·그리스·터키·스위스 등 20여개 나라가 ‘한국인 여행객 환영’을 외치고 있다.
여행·항공업계 “물 들어왔다, 노 저어라”
여행사들은 위드 코로나와 타이의 한국인 여행 무격리 허용을 계기로 해외여행이 정상화 단계로 나아갈 것이란 기대감을 바탕으로 앞다퉈 정상근무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여행사들은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지난해 상반기부터 대다수 직원들을 명예퇴직시키거나 휴직 발령하는 등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하나투어가 10월부터 육아휴직자 등을 제외한 직원 1100여명을 전원 출근시켰고, 인터파크여행도 정상근무 체제로 전환했다. 모두투어 등 다른 여행사들도 정상근무 인원을 늘리고 있다. 참좋은여행은 “지금은 유럽팀과 미주팀만 전원 출근 중이지만, 11월부터는 휴직자 절반 이상이 정상 출근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항공업계도 신발 끈을 조여매는 분위기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중단했던 주요 여행지 노선을 대상으로 운항 재개·증편을 서두르는 모습이다. 이미 사이판·괌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제주항공·진에어·티웨이 등이 주 1~2회 운항을 재개했다. 대한항공은 추가로 11월3일부터 인천~하와이 노선을, 에어서울은 12월23일부터 인천~괌 노선 운항을 재개하기로 했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
김일성의 죽음, ‘근친증오’의 폭발

1994년 7월8일 김일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의 죽음을 계기로 남과 북에서 폭발한 ‘근친증오’는, 27년이 흐른 지금도 남과 북의 화해·협력·공동번영의 노력을 뿌리부터 뒤흔들지 모를 ‘휴화산’이다. 1994년 7월12일치 <노동신문> 1면 갈무리
“말로는 각하가 김일성을 못 이깁니다. 절대로 말씀을 많이 하지 마시고요. 북한 경제가 내리막길로 들어섰기 때문에 정상회담에서 대북 경제지원을 요청할 겁니다. 그건 우리가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도와주면 우리 말을 듣게 되어 있거든요. 경제를 도와줄테니 휴전선 쪽에 전진 배치시켜 놓은 장사정포와 방사포를 뒤로 물리라고 요구해서 그걸 합의하게 되면, 우리 경제력을 지렛대로 삼아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틀을 짜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교류협력도 하면 되는 거고요.”
1994년 7월25~27일 평양에서 김일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마음이 분주한 김영삼 대한민국 대통령을 상대로 정세현 통일비서관은 이런 ‘벼락치기 주입식 교육’에 속도를 냈다. 김영삼 대통령은 무시로 “내 귀가 좋으니까 말로 해, 말로”라고 할 정도로 보고서 읽기를 싫어했지만, ‘감’이 좋고 이해가 빨랐다. 김 대통령은 자신의 주입식 교육에 “그래, 돈 주면 안 되겠나”라는 ‘정답’을 내놨다고 정세현은 회고록 <판문점의 협상가>에 적었다. 김영삼과 정세현의 대화를 고상하게 요약하자면 ‘경제와 평화·안보의 교환’ 전략쯤 되겠다.
마음이 바쁘기론 김일성 주석이 더했다. 김 주석은 1994년 7월6일 ‘경제부문 책임일군 협의회’를 지도하는 등 무너진 경제를 재건하려 동분서주했다. 숨지기 이틀 전이다. 김 주석이 살아서 마지막으로 서명한 문서도 경제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렇게 커져만 가던 첫 남북정상회담의 꿈이 날벼락을 맞았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1994년 7월8일 2시에 서거하시었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온 나라 인민들에게 알린다.” 1994년 7월9일 정오 북의 공식 발표로 외부에 알려진 김일성의 죽음은 세계를 서로 다른 색깔의 충격과 혼란에 빠뜨렸다. ‘김일성 없는 북한’을 상상할 수 없던 오랜 세월 탓이다.
<노동신문>에 실린 ‘질병과 사망 원인에 대한 의학적 결론서’를 보면, 김일성은 “심장혈관의 동맥경화증”으로 치료를 받아왔으며 “겹쌓이는 정신적 과로로 하여 1994년 7월7일 심한 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장쇼크가 합병됐다. 즉시 모든 치료를 하였음에도 심장쇼크가 증악돼 7월8일 2시에 사망”했다는 것이다.
“아쉽다”.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접한 김영삼의 첫 반응이라고 한다. “정상회담을 못 해서 아쉽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겠지만, 노벨(평화)상이 날아간 것도 아쉬웠겠죠”라고 정세현은 회고했다.
김영삼의 첫 대응은 ‘전군 비상경계령’이었다. 온 나라가 충격과 슬픔에 빠진 북을 향해, ‘우리는 기습 남침을 우려하고 있어’라고 답한 셈이다. 남에선 다수가 ‘필요하다’거나 ‘그럴 수도’라고 생각할 일이지만, 북의 격한 반발을 불러올 위험이 있는 대응이었다.
1994년 7월9일 정오 북의 공식 발표로 외부에 알려진 김일성의 죽음은 세계를 서로 다른 색깔의 충격과 혼란에 빠뜨렸다.
김영삼의 첫 대응은 ‘전군 비상경계령’이었다. 온 나라가 충격과 슬픔에 빠진 북을 향해, ‘우리는 기습 남침을 우려하고 있어’라고 답한 셈이다.
‘김일성 사망’ 공표 이틀 뒤인 1994년 7월11일 김용순 (조선노동당 중앙위 대남 담당 비서 겸) 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위원장은 이홍구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한테 보내온 전화통지문을 통해 “중대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측의 유고로 예정된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연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음을 위임에 의해 통지하는 바입니다”라고 알렸다. ‘위임’의 주체는 북이 “김일성 동지의 서거”를 알리며 “오늘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주체혁명 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신 김정일 동지께서 서 계신다”고 선언한 대로 ‘김정일’이었다. 북이 정상회담 ‘취소’가 아닌 ‘연기’를 통보해온 사실을 두고, 당시 남쪽 언론은 “북 정상회담에 ‘상당한 미련’”(<동아일보>) 등으로 해석했다. 이영덕 국무총리는 그날 국회에 나와 “남북이 이미 합의한 정상회담 원칙은 유효하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날 오후 야당인 민주당의 이부영 의원이 임시국회 외무통일위 회의에서 정부에 ‘조문단 파견 용의’를 물은 뒤로 사태가 이상한 방향으로 치달았다. 이부영은 북의 정상회담 연기 통보를 “김정일 체제가 되더라도 정상회담을 계속하겠다는 화해의 신호”로 읽고, “4가지 전제조건”을 달아 “정부 차원의 조문 검토 필요성”을 언급했다. “북과 대화해야 한다면, 김정일 체제 안정이 대화·협상에 필요하다는 인식을 정부가 갖고 있다면, 정상회담이 계속 추진돼야 한다면, 우리 국민의 양해가 성립한다면” 조문하는 게 어떻겠냐는 매우 조심스러운 제안이었다.
문제는 그다음. “수백만명을 죽인 전범은 조문해야 하고, 광주사태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지라는 게 말이 되느냐. 김일성은 실정법상 반국가단체의 수괴다.” 집권당인 민주자유당 박범진 대변인의 이 논평은 행정부와 국회의 조문단 파견 여부 논의를 비틀어 ‘사상 검증의 단두대’에 세웠다.
김영삼은 ‘김일성의 죽음’을 아쉬워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정상회담의 가능성이 사라지자 김영삼은 태도를 180도 바꿨다. ‘김일성의 죽음’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 폭발한 “냉전 반공주의의 광기”(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에 편승하며 이를 한껏 부추겼다. 꺼져가는 장작불에 기름을 끼얹듯. 매사를 국내 정치적 이해득실과 ‘여론 지지도 추이’라는 잣대로 판단하는 김영삼 특유의 ‘냉탕-온탕 오가기’다.
1994년 7월13일 저녁, 미국 영주권자인 박보희 <세계일보> 사장이 평양에 가서 조문을 했다는 <조선중앙방송> 보도가 나왔다. 이튿날 “남조선의 각당 각파 인사들과 각계각층 인민들이 평양에 조문단을 파견하려는 데 대해 사의를 표하며 따뜻한 동포애로 정중히 맞이할 것”이라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담화가 발표됐다. 애초 북은 ‘국가장의위원회 공보’로 “외국의 조의대표단은 받지 않기로 한다”고 발표한 터. 이런 까닭에 남쪽 조문단을 환영한다는 조평통 담화는 ‘남남갈등’을 부추기려 한 게 아니냐는 문제 제기를 피하기 어려웠다. 당연(?!)하게도 당시 통일부는 ‘조문 목적 방북 불허’ 방침을 재확인했고, 공보처는 세계일보사에 ‘박보희를 해임하라’고 압박했다.
1994년 7월18일 국무회의에서 이영덕 국무총리가 ‘김일성 사망’ 이후 처음으로 ‘김일성은 전범’이라는 취지의 정부 공식 견해를 밝혔다. “김일성은 민족분단의 고착과 동족상잔의 전쟁을 비롯한 불행한 사건들의 책임자”라 “조전 발송, 조문단 파견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한 무분별한 행동”이므로 “실정법을 위반하는 어떠한 행위도 법에 따라 엄단하겠다”는 것이었다.
같은 날 김영삼 대통령 주최 청와대 오찬 자리에서 박홍 서강대 총장은 “주사파 뒤에는 사노맹이 있고, 사노맹 뒤에는 사로청, 사로청 뒤에는 김정일이 있다. 공산당(조선노동당)에 입당해 국내 대학가와 노동계, 외국 등지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200~300명쯤 된다”고 말했다. ‘주사파’라는 멸칭으로 불린 ‘민족해방파’(NL)와 <노동의 새벽>의 시인 박노해로 유명한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은 당시 한국사회 변혁운동의 주도권을 놓고 사실상 적대적 경쟁 관계였을 뿐더러 사노맹의 대북관은 보수세력과 전혀 다른 이유로 매우 ‘반북적’이어서, 박홍의 ‘사노맹 뒤에 사로청, 그 뒤에 김정일’은 찰진 운율을 빼면 완벽한 모순이었다. 그러나 김영삼은 “무차별 폭력과 낡아빠진 공산주의를 맹종하는 학생들에게까지 언제나 관용으로 대해줄 수 없다”고 박홍의 ‘고발’에 ‘화답’했다.
이틀 뒤 김영삼 정부의 외무부는 1950년 4월10일 김일성이 박헌영과 함께 스탈린을 찾아가 전면 남침 방침을 ‘승인’받은 사실이 담긴, 러시아 정부가 제공한 ‘한국전쟁 문서’를 공개해 ‘김일성 전범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러시아 정부는 김영삼 정부의 일방적 문서 공개에 당혹하며 격하게 항의했다.
김일성의 죽음을 “우리 당과 혁명의 최대의 손실이며 온 민족의 가장 큰 슬픔”이라 규정한 북이 이런 소동에 침묵할 리가 없다. 북은 ‘조평통 성명’과 ‘조평통 서기국 보도’라는 공식 문서에서조차 “인간이기를 그만둔 김영삼 일당”과 “한 하늘 밑에서 같이 살 수 없다”며 “오직 징벌을 가하는 것으로써만 결산될 수 있는 가장 악질적인 반민족범죄”라고 온갖 저주를 퍼부었다.
첫 남북정상회담 코앞에서 돌발한 ‘김일성의 죽음’은, 남과 북의 ‘근친증오’를 폭발시켰다. 샴쌍둥이처럼 분리 불가능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 한번 일이 틀어지면 ‘죽이고 싶을 만큼’ 더 미워지는…. 그리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김영삼 정부 시기는 “남북관계의 공백기”로 역사에 기록됐다./한겨레 이제훈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미국 따라잡는다”… 남성 ‘키 증가율’ 세계 1위에 열광하는 중국
중국 국경절 연휴 마지막 날인 7일, CCTV를 비롯한 매체들은 중국 경제나 군사, 외교 문제가 아닌 ‘키’에 주목했다. “최근 35년간 중국 남성의 키 증가율이 세계 1위”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지난해 11월 국제 의학학술지 ‘랜싯’에 실린 논문 데이터를 뒤늦게 인용해 “2019년 중국 19세 남성의 평균 신장은 175.7㎝로 1985년에 비해 9㎝ 늘었다”며 “전 세계에서 증가 폭이 가장 크다”고 소개했다. ‘비감염성질환 국제연구네트워크(NCD-RisC)’가 200개국의 연구 2,181건을 분석해 표본 6,500만 명(5~19세 5,000만 명, 20~30세 1,500만 명)을 비교한 결과다.

중국의 성적표는 괄목할 만했다. 남녀 모두 동아시아에서 키로 한국과 일본을 제쳤다. 중국 19세 남성의 경우 1985년 세계 랭킹 150위에 그쳤던 키가 2019년 65위로 껑충 뛰었다. 중국 여성 평균은 163.59㎝로 세계 54위에 올랐다. 남녀 성인 평균 키가 가장 큰 국가는 각각 네덜란드(182.5㎝)와 라트비아(170㎝)로 나타났다.
이에 더해 국가위생건강위원회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보고서도 다시 끄집어내 분위기를 띄웠다. 2014~2019년 중국 18~44세 성인 남녀 평균 키가 각각 1.2㎝, 0.8㎝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미성년자의 경우에도 5년 만에 남자는 1.6㎝, 여자는 1㎝ 각각 자랐다.

1896~1996년 100년간 네덜란드(오른쪽 위 곡선부터), 미국, 한국, 일본, 중국 남성 평균 키 변화. 가장 최근 수치인 빨간색 네모 안을 보면 미국의 곡선(녹색)은 증가세가 꺾여 오히려 키가 줄어든 반면, 중국(갈색)과 한국(보라색)은 상승세가 가파르다. 2019년 중국은 한국마저 제쳤다. 'Our world in data' 캡처
중국이 열광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감히 넘볼 수 없던 미국과의 신체적 격차를 근접한 수준으로 좁혔기 때문이다. 2019년 미국 19세 남성의 평균 키는 176.9㎝(세계 47위)로 중국과 차이가 1.2㎝에 불과했다.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선 1978년 미국 177.54㎝, 중국 169.54㎝로 8㎝나 벌어졌던 것에 비하면 40년 만에 중국이 거의 따라잡은 셈이다.
특히 가파르게 상승하는 중국 남성의 평균 키 곡선과 달리 미국 남성의 수치 그래프는 오히려 소폭 감소세로 접어들어 중국의 자신감에 불을 지폈다. 지난해 국경 유혈 충돌로 관계가 험악한 ‘앙숙’ 인도의 경우, 남성 평균 키가 166.5㎝(180위)에 그쳐 중국에 비할 바가 못 됐다.
기세가 오른 중국은 온갖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잘 먹고, 잘 살고, 열심히 운동한 덕분에 키가 커졌다는 것이다. 성장기 아동의 육류와 우유 섭취가 원활해 영양공급이 충분하고, 개혁개방 이후 중국 인구의 절반이 넘는 8억 명이 빈곤에서 벗어나 생활수준이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중국 스포츠인구 비율이 2011년 28.2%에서 지난해 37.2%로 늘었고, 피트니스를 즐기는 중국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도 수백만 명 증가해 7,029만 명에 달한다는 구체적 수치도 제시했다.
중국 경제망은 “중국인의 키가 커진 건 단순히 신체의 성장뿐만 아니라 경제가 발전하고 삶의 질이 개선돼 중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총체적 국력이 얼마나 강한지가 키에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자부심이 묻어난다. 시진핑 주석이 7월 1일 공산당 창당 100주년, 10월 10일 신해혁명 110주년 기념식에서 강조한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키와 삶의 질의 연관성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며 “과거 유전적 요인으로 설명하던 키를 가늠하는 데 개인이 속한 사회의 생활수준이 중요한 지표”라고 힘을 실었다.

지난해 11월 의학학술지 '랜싯'에 실린 논문에 첨부된 세계지도 2건. 지난 35년간 각국 19세 여성(왼쪽)과 남성(오른쪽)의 체질량지수(BMI) 증가율을 나타냈다. 붉은색이 진할수록 체중이 더 급속히 늘었다는 의미다. 오른쪽 지도 파란색 네모를 보면 중국 남성의 BMI 증가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 1위 비만 대국 중국의 현실이 반영됐다. 중국 매체들은 이 내용은 쏙 빼고 키 증가율만 부각시켰다. 랜싯 캡처
하지만 중국에 불리한 내용은 쏙 뺐다. 키만 강조하느라 ‘비만 세계 1위’ 중국의 치부는 감췄다. 지난 5월 발표한 ‘중국 주민 영양 및 만성질환 보고서’에 따르면 18세 이상 중국인 가운데 과체중은 34.3%, 비만은 16.4%에 달한다. 둘을 합해 50%를 넘긴 건 처음이다. 14억 명 인구 중 6억 명을 훌쩍 웃돈다. 앞서 랜싯 보고서에서 중국 남성은 지난 35년간 키뿐만 아니라 ‘체질량지수(BMI·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 증가율도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중국 매체들은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았다.
더 심각한 건 도시와 농촌의 차이다. 1996년 중국 도시 아동의 키 증가율은 농촌 자녀에 비해 최대 5배 더 높았다. 부의 격차가 키에 반영된 것이다. 2014년 연구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발견됐다. 이후 간극을 좁히긴 했지만 2019년 농촌 가구 1인당 가처분소득은 1만6,021위안(약 295만 원)으로 도시 가구(781만 원)의 38%에 그쳤다. 미 CNN은 “키 증가율을 앞세워 중국인의 애국심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모든 중국 어린이들의 키가 고르게 자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인정하자, 한국은 ‘위드 코로나’ 준비가 늦었다”


10월4일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은 경기도 수원시 ‘코로나19 단기진료센터’에 있었다. 재택 치료 중인 코로나19 확진자들은 이곳에 들러 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상황실 모니터에 비친 모듈형 병동 안에서 평상복 차림의 입소자들이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 정도 입원하며 검사와 치료를 받고 증상이 회복되면 집으로 돌아간다. 이날 입소자 10명은 귀가해 재택 치료를 이어갔다. 나머지 한 명은 폐렴 증상이 있어 산소 공급 등의 처치를 하고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이송됐다.
‘몸이 아플 때는 집에서 컨디션을 살피다 증상이 심해지면 병원에 방문한다.’ 특별할 것 없는 상식이다. 그러나 코로나19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코로나19에 걸리면 병원이든 생활치료센터든 시설에 격리되고, 증상이 없더라도 며칠간 갇혀 있어야 한다. 집과 병원을 오가는 통원치료는 이제껏 상상하기 어려웠다. 임 원장은 진료 방식과 인식을 되돌려야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도 가능하다고 본다. 9월부터 10월12일까지 단기진료센터를 시범 운영했던 이유이다. 앞서 2월에는 경기도 코로나19 홈케어 운영단을 꾸리며 국내에서 처음으로 재택 치료를 도입하고 시행해왔다. 사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코로나 환자를 진료하는 방식이다.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임승관 원장이 해온 얘기들은 당시 시점에서는 꽤 낯설게 들렸다. 지난해 3월 〈시사IN〉 ‘주간 코로나’ 대담 첫 화(제653호 ‘코로나19, 가늘고 길게 가는 게 최선이다’ 기사 참조)에서 ‘수용 가능한 위험(Acceptable Risk)’이라는 개념을 언급했고, 그해 9월에는 “이제 전반전 15분을 뛰었을 뿐”이라고 짚었다. 그가 준비해온 사업들은 몇 개월이 흐른 뒤에야 쓸모를 인정받곤 했다. 돌아보면 그 모든 일이 코로나19와 함께 살기를 고민하고 행동에 옮겼던 흔적이다. ‘위드 코로나’로 가는 길을 묻기 위해선 그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여러 전문가들이 ‘재택 치료’를 위드 코로나의 필수 조건으로 꼽는다. 정부도 이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이 사업을 준비해온 처지에서 반갑겠다.
사실, 조금 염려가 된다.
왜인가?
추석연휴 끝나고 하루 확진자가 3000명 넘게 늘어나면서 병상을 배정받지 못하는 가정 대기자가 생겨났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서둘러서 재택 치료를 확대했다. 재택 치료자로 집계되면 그만큼 가정 대기자 수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으니까. 그런데 재택 치료를 하려면 인프라가 뒷받침돼야 한다. 보건소나 지자체에서 집에 있는 확진자를 모니터링하고, 필요할 때는 병원과 연계해 신속하게 이송해야 한다. 경기도 코로나19 홈케어 운영단은 2월부터 이걸 준비했다. 3월에 32명으로 출발해 9월에는 1900명까지 점진적으로 대상자를 늘려왔다. 다른 지자체는 이런 인프라를 갖춰 나가는 단계이다.
지난 9월부터 경기도는 코로나19 단기진료센터(아래)를 시범 운영했다.ⓒ시사IN 조남진
앞서 재택 치료를 도입한 목적은 무엇인가?
무증상·경증 환자들은 집에 있어도 안전하다는 걸 보여주는 모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중앙정부에서 가져다 쓸 수 있도록 말이다. 5월에 재택 치료 심포지엄도 열고 여러 경로로 정책 건의도 했다. 진척이 잘 안 되다가 4차 유행 이후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전격적으로 채택이 됐다. 위드 코로나로 가는 길목에서 정말 중요한 사업인데, 사회적 공감대나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혹시라도 신뢰가 훼손되는 일이 생기면 어쩌나 깊이 우려하고 있다.
‘K방역’으로 불리는 한국식 코로나19 대응 방식과는 다소 다른 얘기를 꾸준히 해왔다.
지난해 대구에 1차 유행이라는 큰 파도가 덮쳤을 때, K방역 전략을 빠르게 수립하며 성공적으로 넘어왔다. 대규모 진단검사 시스템을 구축하고, 생활치료센터처럼 창의적인 방안을 고안하고, 총리를 비롯해 관료들이 모두 달려가서 집중력 있게 대응했다. 잘했고 박수받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성공담이 각인 효과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대응이라는 자물쇠를 푸는 만능열쇠가 돼버렸다. 그다음부터 미로에 방이 나올 때마다 계속 같은 열쇠를 넣고 있다. 코로나19는 짧고 굵게 끝나지 않을 거고, 그 열쇠가 맞지 않는 순간이 올 텐데.
‘한국이 코로나19 대응 암호를 풀었다’라는 외신 보도가 나올 정도로 K방역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금도 비교적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지 않나?
지난해 2월부터 올해 6월까지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응단장으로 활동했다. 건축공사로 치면 현장 반장 같은 자리다. 일반적으로 전문가들은 이론을 토대로 의견을 내고 중앙정부 관료들은 회의를 통해서 현장을 접한다. 나는 일이 벌어지는 공사판에서 현장들을 접해왔다. 그래서 이 시스템의 실패적인 부분을 현실로 접했다.
K방역은 고비용·고효과·저효율 구조다. 검사와 추적에 엄청난 자원과 인력을 쏟아붓는다. 반면 전쟁의 후방이라 할 의료자원 확보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모델이다. 보건소나 방역 인력들은 소진되는데 의료자원은 간당간당하니 확진자 수를 억제하기 위해 검사와 역학조사 강도를 점점 더 높여야 한다. 2차 유행, 3차 유행을 지날 때마다 손실이 축적돼왔다. 구해야 하는 환자들을 다 구하지 못했던 순간도 있었다.
내가 매달려온 일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양적 확대’다. 코로나 환자를 두고 공공병원들만 보지 않고 민간 의료기관도 참여해서 절대적인 병상 수를 늘리고 이걸 아우르는 병상 배정 네트워크를 구축하고자 했다. 두 번째는 ‘질적 전환’. 하루 확진자가 1000명에서 1500명이나 2000명으로 늘어난다면 생활치료센터 몇 개 만들고, 전담병원에 의료인력을 추가 파견해 병상을 더 확보하면 된다. 하지만 5000명, 1만명일 경우에는 방법론 자체를 바꿔야 한다. 산술적으로 자원의 양을 늘릴 게 아니라 ‘효율’을 높여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재택 치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유행 규모가 어디까지 커질 수 있다고 예상했나?
코로나19가 시작되고 제일 많이 받은 질문이 앞으로 어떻게 되느냐는 거다. 그때마다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우리는 늘 대본을 한 개만 만들어왔다.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를 쓰는 데 에너지와 시간을 온통 투입한다. 팬데믹을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한다. 이것이 내가 주도하는 경기가 아니라는 걸 안다면 ‘예측’보다는 ‘대비’에 대해 더 고민하고 토론할 것이다.
모든 경우를 완벽하게 대비하기는 힘들다. ‘우리는 K방역 전략을 쓸 거야’, 좋다. 하지만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때, K방역이 실패했을 때에 대비해 백업 전략은 있어야 하지 않나. 메인 전략만큼 전력을 다하지는 않더라도 대안 전술을 준비하고 연습경기는 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주도하는 경기가 아니다?
주도권은 바이러스에게 있다. 기본적으로 이 관점을 공유해야 한다. ‘팬데믹은 생태적 현상이다. 인류가 취하는 조치가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가늠할 수 없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일이다.’ 나의 사고 틀은 이거다. 바이러스는 강한 상대. 우리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면 코로나19는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대표팀.

2002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모두 결국은 통제에 성공하지 않았나?
가로축이 전파력, 세로축이 치명률이고 각종 감염병이 좌표로 찍혀 있는 그림을 보셨을 거다(〈그림 1〉 참조). 점이 어디에 찍히는지에 따라 이 감염병이 국지적으로 끝날지 팬데믹으로 갈지가 정해진다. 코로나19가 찍힌 자리는 인류로서는 제일 안 왔으면 하는 지점이다. 치명률과 전파력 사이에 아주 적절한, 교묘한 균형. 에볼라처럼 최대 90%가 죽으면 모두가 문을 걸어 잠근다. 코로나19는 1%(초기 데이터 기준) 정도 사망한다. 그것 때문에 전 지구가 활동을 정지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활동이 일어난다. 그런데 R0(기초감염재생산지수)는 2.5 정도로 전파력은 센 편이다. 게다가 나이에 따라 위험도가 크게 다르다. 노인들은 걸리면 치명적이지만 젊은이들은 가볍게 지나간다. 세대 간 존중과 연대가 싹터야 헤쳐 나갈 수 있을 텐데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모든 연령대에서 비슷한 비율로 죽는 병이었다면 통제는 더 쉽게 됐을지도 모른다. 무역·교류 다 중단하고 방법을 찾았을 테니까. 인류 입장에서는 대응하기 제일 까다롭고 부적합한 지점에 있다. 이 병을 알면 알수록 깨닫는 거다. ‘퍼질 가능성이 매우 높구나.’
우리 정부는 검사·역학조사·격리를 이용한 ‘3T 전략’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유행을 억제할 수 있다고 믿어왔는데.
단기적으로는 가능하다. 이론적으로도 가능하고. 확진자가 증가하는 탄성을 그런 수단으로 계속 누르면 올라오지 않을 거라고 전제한다. 하지만 이건 ‘특정한 계(界)’를 설정한 거다. ‘사람의 행동은 내내 동일하다’라는 비현실적인 세계. 처음에는 술집에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가지만 이제는 가지 않나. 사회적 거리두기 지키라고, 여행 가지 말라고, 시위하지 말라고 하면 지난해까지는 어느 정도 통했지만 올해에는 그렇지 않다. 이건 자연과학만으로 풀 일이 아니다. 행동과학이고 사회과학이다. 놀랍게도 유행 초기부터 이런 원리를 이해한 나라가 있다. 스웨덴이다.

지난해 스웨덴은 비난을 무릅쓰고 록다운을 하지 않았다. 사진은 지난해 5월26일 따뜻한 날씨를 즐기는 스웨덴 말뫼 시민들의 모습.ⓒEPA
스웨덴? 스웨덴의 집단면역 실험은 전 세계적으로 큰 지탄을 받았다.
지난해 유럽 국가들이 록다운에 돌입할 때 스웨덴은 맹비난을 무릅쓰고 하지 않았다. 그때 스웨덴 정부가 이런 취지의 설명을 했다. ‘록다운이 유행을 통제하는 데에 효과적이라는 걸 우리도 안다. 그런데 두 번은 안 된다. 처음에는 수긍하고 따르겠지만 두 번째 록다운은 시민들이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 파도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에 다음이 없는 정책은 쓸 수 없다. 지금 피해가 크더라도 록다운 없는 방법으로 균형을 찾겠다.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행동양식 아래에서 길을 찾겠다.’
스웨덴은 지난해 봄에 이미 대학을 제외한 학교 문을 열었다. 등교하면 그로 인해 확진자가 늘어날 것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교육이라는 미래가치를 유보하면 안 된다고 판단한 거다. 확진자 발생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잘 관리하자, 그래도 늘어나면 받아들이자 한 거다. 나는 스웨덴이 오해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스웨덴은 집단면역이 아니라 일찍이 ‘위드 코로나’를 주장한 거다. 당시 그 용어는 없었지만.
위드 코로나가 그런 것인가? 일반적으로는 코로나19가 사라지진 않아도 백신접종률이 높아지면 독감처럼 되고, 확진자 수도 점차 줄어들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얼마 전 정부에서 주최한 ‘단계적 일상회복’ 토론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사회는 위드 코로나를 잘못 이해 혹은 잘못 설명하고 있다고. 우리는 여전히 K방역의 종식 담론 안에서 사고하고 있다. 위드 코로나는 K방역과 다른 장르다. K방역은 위드(with) 코로나가 아니라 ‘어게인스트(against) 코로나’이다. K방역은 제로 전략 혹은 통제 전략이었다. 그 전략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수용할 수 없는 존재다. 5~6월에 델타 변이 때문에 집단면역으로 종식이 어렵다는 게 확실해지고 다른 나라에서 한다니까 위드 코로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지금 한국의 위드 코로나 담론은 사실 K방역과 다를 게 없다. 위드 코로나는 우리가 2년간 인내해서 고난을 극복한 끝에 다다르게 된 성공 서사의 결말이 아니다. 보통 위드 코로나를 어떤 사건, 어떤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영업시간 제한을 푼다든가, 마스크를 벗는다든가. 어쩌면 정부·여당은 ‘끝내 이기리라’ 상록수 노래를 다시 틀고 성대하게 기념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위드 코로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어야 한다.
어떤 과정 말인가?
위드 코로나 국가를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영국·미국 유형이다. 유행 억제에는 실패했지만 생산력과 구매력을 바탕으로 백신을 일찍 확보하고 빠르게 접종률을 높인 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제하겠다는 전략. 두 번째는 북유럽 유형. 덴마크는 위드 코로나를 선언한 건 최근이지만 사실 올해 초부터 단계적으로 사회적 통제를 풀어왔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와 공존을 모색해온 스웨덴도 여기에 속한다. ‘과정으로서 위드 코로나’인 국가들이다. 한 방향의 항로로만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델타 변이가 나왔다 하면 대응 수준을 좀 높이고, 새로운 변화에 대한 정보가 쌓이면 다시 대응 수준을 조정하고. 구불구불 가지만 추세선은 점차 낮아진다(〈그림 2〉 ① 참조).
세 번째는 동아시아 유형인데 싱가포르가 대표적이다. 그동안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강한 억제 전략을 유지해온 국가들이다. 백신이 나온 뒤에는 접종률을 최대한 높인 뒤 계속 유행을 통제하면서 위드 코로나로 간다는 것(〈그림 2〉 ② 참조). ‘결과로서 위드 코로나’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과 가장 비슷한 노선이다. 정부가 백신접종률 70~80%에 도달하는 11월 초부터 ‘단계적 일상회복’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싱가포르의 백신접종률이 80%이니 한 달 뒤 우리의 미래다. 나는 요즘 정부나 전문가들이 싱가포르 때문에 당황하고 있다고 본다. 싱가포르 하루 확진자가 8월 중순까지만 해도 40명대였다. 지금 3000명 넘게 나온다. 우리나라로 치면 하루 신규 확진자 2만5000명이 생기는 셈이다.

9월15일 ‘전국신혼부부연합회’가 서울 여의도 인근에서 웨딩카 22대에 현수막을 건 채 시위를 벌였다.ⓒ시사IN 신선영
백신이 소용없는 건가?
아니다. 백신은 ‘열일’을 하고 있다. 정확히 봐야 할 부분이 있다. 덴마크(약 581만명)와 싱가포르(약 589만명)는 인구수가 거의 같다. 백신접종률도 비슷한데 최근 일주일간 일평균 확진자 수는 약 700명 대 약 3200명으로 매우 다르다(10월19일 기준). 앞으로 두 국가의 유행세가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지만, 현 시점에서 눈에 띄는 차이점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로 유럽은 엄청난 규모의 확진자가 나와서 알게 모르게 자연 감염된 사람이 많다. 덴마크의 백신접종률이 75%이지만 면역력을 가진 인구는 사실 그보다 많을 것이다. 반면 싱가포르는 유행을 성공적으로 관리해왔기 때문에 자연 감염된 인구가 별로 없다. 일종의 역설이다.
두 번째로 싱가포르는 ‘확진자’를 찾는 나라이고, 덴마크는 ‘환자’를 찾는 나라라는 것이다. 아주 결정적인 차이다. 싱가포르는 한국의 3T 전략과 비슷하게 방역을 한다. 추적검사해서 무증상, 경증 확진자까지 샅샅이 찾아낸다. 유럽은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아픈 사람, 증상이 있는 사람만 검사를 한다. 우리가 ‘70%다, 90%다’ 말하는 백신 효능도 임상시험 참가자 중에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을 검사해서 나온 수치이다. 싱가포르는 덴마크라면 찾지 않았을 감염자들을 다 찾고 있는 거다. 한국도 이렇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확진자가 3000명 넘게 나와도 싱가포르 상황은 사실 위험하지 않은 걸까?
확진자가 대량으로 발생했을 때 위험은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중환자 수나 사망자 수 같은 지표이다. 백신이 확진자 수를 기대만큼 줄이지 못할 가능성이 있지만, 중환자 발생이나 사망 위험을 감소시키는 효과는 어느 정도 기대에 부응할 것이다(10월19일 기준, 일주일간 일평균 사망자는 덴마크는 2명, 싱가포르는 9명이다). 또 다른 위험은 의료체계의 과부하이다. 병상이 포화된 상황에서 의료적 처치가 꼭 필요한 사람이 제때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고, 이런 상황이 사회에 알려지면 불안과 공포가 상승하게 된다. 이는 코로나19 대응에 필요한 의료체계를 얼마나 넉넉히 확보했는지 그리고 그 운영을 얼마만큼 효율화했는지에 달려 있다.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는 백신접종률이 목표에 도달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위드 코로나’라는 항해에 백신접종률은 단지 출항의 조건일 뿐이다. 진짜 항해는 그다음이다. 폭풍을 만날 수도 있고 암초 지대를 건너야 할지도 모른다. 백신이 우리 손에 있다 해도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 앞으로 나오는 변이에도 효능이 유지될지, 미접종자들을 어떻게 할지, 남아 있는 불확실성을 헤아리자면 끝이 없다.
지난해 11월에 이미 〈시사IN〉 ‘지속 가능 방역’ 연속 토론의 네 번째 순서로 ‘진단키트, 백신, 치료제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한 바 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백신 같은 ‘과학기술’에서 재난에서 벗어날 길을 찾으려고 한다. 물론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주연은 ‘사회체제’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한국 사회가 취해왔던 자세는 이런 거다. ‘히어로(백신)가 올 때까지 시민들은 움츠리고 있자.’ 문제는 히어로가 오셨는데, 훌륭하기는 한데, 악당은 그사이 레벨업(델타 변이)을 했고, 우리 영웅은 악당을 없애버릴 정도는 아니네. 세상에 완벽한 슈퍼히어로라는 것이 존재하기 어렵지 않나. 그래서 나는 지난해부터 이렇게 말하고 다닌 거다. ‘영웅이 오겠지만 그 사이에 시민들도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코로나19 대응의 균형점을 모색하고, 고통이 어느 한 편에 몰리지 않도록 무언가 해보자.’
영국처럼 백신접종률이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기본적인 방역 수칙만 남긴 채 일시에 사회를 여는 방법도 있지 않나?
‘위드 코로나’에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1번은 확진자 수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전략. 이전까지는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유일했고, 올해는 백신이라는 훌륭한 수단이 생겼다. 백신접종률을 높이면서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의 강도는 점차 낮출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여기에만 신경 써왔다. 하지만 조건이 더 필요하다. 2번 의료자원이다. 한국은 이걸 원활하게 못해서 코로나19 유행 내내 고생하고 있다. 재택 치료처럼 자원 활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질적 전환도 제때 준비를 못해 지금 고전하고 있지 않나. 3번은 인식 체계이다. 백신접종률이 높아지고 의료자원을 탄탄히 깔아놓는다 해도 사람들이 여전히 코로나19를 두려워하고 옆집에서 확진자가 생활하는 것을 꺼린다면 우리는 위드 코로나의 길을 걸을 수 없다.
영국은 하루에 확진자가 4만명씩, 사망자가 100명씩 나오는데 프리미어리그를 열고 경기장에서 막 응원하지 않나. 그 차이다. 한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율은 0.6% 정도다. 약 160명 중 1명. 이게 묘한 숫자다. 코로나19 유행이 2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간접적인 경험을 했다. 본인 혹은 가족이나 친구가 코로나19에 걸린 경우는 별로 없다. 보통 지인의 지인이 확진된 얘기를 전해 듣는 정도다. 유럽은 워낙 큰 유행을 겪은 탓에 코로나19를 직접 경험한 비율이 더 높다. 그러면서 위험 수용성이 생기고, 위험에 대한 인식도 실제에 가까워진 거다. ‘우리 아이가 걸렸는데 그냥 코감기 앓듯이 지나가네. 하지만 요양원, 요양병원 같은 곳은 정말 위험하니 우리가 거기는 철저히 보호해야 해’ 이런 식으로.
한국 사회에서 아직 코로나19의 위험이 과대평가되고 있는 걸까?
지난해 3월 대구 유행 때는 온당한 평가였다. 이 감염병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으니까. 하지만 그때의 위험 인식을 1년9개월째 변함없이 유지하면 오작동이 일어난다. 정부가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위기 소통)’을 통해서 적정한 위험 인식을 찾아가는 노력을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통 실패로 생겨난 시민들의 불안을 K방역, 통제 전략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물론 백신을 접종하면 질병의 객관적인 위험이 대폭 낮아진다. 하지만 그 전부터 위험 인식 체계를 한 계단 한 계단 내려왔어야지 갑자기 ‘백신 맞았으니까 높은 층에서 뛰어내려’ 하면 단번에 될 리가 없지 않나. 더 늦기 전에 위험 인식 체계라는 볼륨을 반대 방향으로 조금씩 돌려 낮춰야 한다.
또 하나, 그사이 코로나19 위험 이외에 사회의 다른 위험은 과소평가됐다. 감염병 재난의 피해를 살필 때 발생률이나 사망률 같은 의료적 지표만 있는 게 아니다. 자영업자들의 생존, 어린이들의 학습권, 젊은이들의 문화생활, 어르신들의 복지 등은 충분히 인식되지 못했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으니까. 매일매일 생중계되는 확진자 수에 시선이 과도하게 쏠려 있었다. 언론에서 주로 마이크를 잡는 건 의료계 전문가들이었고. 다른 사회적 피해는 의제와 담론에서 밀려났다. 위드 코로나는 이걸 되돌리자는 얘기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사람 몸속에 있는 바이러스만 봤다면 이제는 사람을 보자.

감염병 재난의 피해를 살필 때 의료적 지표만 있는 게 아니다. 자영업자들의 생존, 학습권 등은 충분히 인식되지 못했다. 위는 지난해 3월 한 대학의 캠퍼스.ⓒ시사IN 이명익
앞으로 어떻게 되느냐고 물으면 이번에도 모른다고 할 건가?
그렇다. 모른다(웃음). 확진자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지만 줄어들 수도 있다. 만약 늘어난다면 외국 사례를 봐서는 껑충 뛸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러 시나리오를 폭넓게 대비하려면 K방역처럼 고비용 전략은 안 된다는 점이다. 효율화·최적화를 해야 한다. 무조건 많이 검사하고, 많이 역학조사하고, 많은 확진자를 격리시키는 방식에서 벗어나 정말 효과가 있는 것들을 추려야 한다.
백신이 없던 2020년은 전반전, 백신이 개발되고 접종률을 높여온 2021년은 후반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후반전을 마치면 경기가 끝날 거라고 기대한다. 허탈하겠지만, 아니다. ‘위드 코로나’라는 연장전이 남아 있다. 코로나와 공존하는 길을 찾아가는 데에 또다시 시간이 걸릴 거다.
연장전은 어떻게 치러야 할까?
우선 인정해야 한다. 한국은 위드 코로나 준비에 늦었다는 것을. 요즘 혼란이 커지면서 조금씩 성찰이 일고 있다. 오류를 빨리 찾고 전열을 정비해야 한다. 삶은 단판 승부가 아니다. 서로 원망하고 비난하고 있으면 경기를 또 망치게 된다. 시민은 시민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밀려 있는 과제들을 성실히 해나가야 한다. 올해 초에 카뮈의 〈페스트〉를 다시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비웃을지 모르지만,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다.’ 역시 비웃음을 살지 모르겠지만, 참 많이 공감이 되었다. 어느 나라에서 확진자 몇 명이 나왔고 사망자 몇 명 생겼다 같은 결과가 그 사회의 유산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정이 남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힘으로 완전히 제어할 수 없는 재난을 만났을 때, 서로가 서로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말이다.
Tag#코로나19#위드코로나#K방역
시사인 김연희 기자
박형준 "증거능력 없다" - 검찰 "국정원 서버 자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 4대강 문건 '증거채택' 놓고 양측 공방

▲ 박형준 부산시장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 검찰은 지난 5일 선거시기 4대강 불법사찰 관련 발언이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한다며 박 시장을 기소했다.ⓒ 김보성
'4대강 민간인 불법사찰' 관련 증거채택을 놓고 박형준 부산시장 측과 검찰 측의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다. 부산지방검찰청은 지난 5일 박 시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고, 심리에 앞서 25일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이 열렸다.
[관련기사] '불법사찰 부인'한 박형준 부산시장, 재판 간다 http://omn.kr/1vgeo

부산지법 형사6부(류승우 부장판사)가 진행한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박 시장 변호인 측은 부산지검이 제출한 '4대강 사업 찬반 단체 현황 및 관리방안' 문건 등의 증거 능력을 문제 삼았다. 이 문건은 내놔라내파일·4대강재자연화시민위원회 등이 국가정보원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언론에 공개된 바 있다. 국정원이 작성한 이 문건 상단에는 '청와대 (홍보기획관) 요청사항'이라고 기재돼 있다.
이에 대해 박 시장 측은 "문서 보관자, 작성자, 보고자 등이 나타나지 않아 증거자료 채택에 동의할 수 없다"라고 부동의 입장을 밝혔다. "국정원이 불법사찰을 했는지 안 했는지 피고인은 알 수 없고, 두 문건에 증거 능력이 없을 경우 공소사실 유지가 어렵다"라는 것이 박 시장 측의 주장이었다.
반면 박 시장을 기소한 검찰은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였다. 검찰 측은 "문건은 압수수색 당시 국정원 서버가 출처이고 업무적으로 작성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작성자 확인 불가 등에 대한 박 시장 측의 지적에 대해서는 "참고인들을 강제로 소환할 수 없어 조사가 안 된 부분이 있지만, 향후 서면으로 다 밝히겠다"라고 설명했다.
양 측의 신경전이 이어지자 재판부는 부동의 관련 의견을 받아 내달 1일 다시 공판준비기일을 열기로 했다. 재판부는 "한 기일이 더 진행될지라도 1일 공판준비기일을 여는 걸로 하겠다. (관련 자료를) 가능하면 빨리 제출해달라"라고 요청했다.
앞서 19일 1차 공판준비기일에서도 박 시장 측과 검찰 측은 공소사실을 둘러싸고 의견이 충돌했다. 검찰은 "사찰에 관여한 사실이 있음에도 그러한 사실이 없다고 말해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라고 밝혔고, 박 시장의 변호인은 "해당 문건을 요청하거나 보고받은 바 없고, 관여한 사실도 없다'라고 맞섰다.
21.10.25 오마이뉴스 김보성(kimbsv1)

대통령 후보들의 새빨간 거짓말, 깜빡 속았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이미지 전략

▲ 한나라당 대선 후보 선출 전북 지역 합동연설회가 열린 전주 화산체육관에서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가 당원들에게 인사한 뒤 나란히 자리에 앉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선거는 후보자를 알아 가는 과정이 될 수도 있지만 '몰라 가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선거운동에서 쏟아지는 각종 정보들로 인해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선거가 갖는 이 같은 부작용을 보여주는 사례가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다. 유권자들을 기만할 수도 있는 선거의 어두운 면을 유감없이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6월 11일의 후보자 등록으로부터 시작해 그해 8월 19일의 투표로 끝난 한나라당 경선의 주자는 다섯 명이었다. 기호 1번 이명박, 2번 원희룡, 3번 박근혜, 4번 홍준표, 5번 고진화가 그들이다.
7월 20일 사퇴한 고진화 의원을 제외한 네 후보의 득표율에 관해 <매일경제>가 운영하는 8월 20일 자 MBN 뉴스는 "이명박 후보는 총 16만 3617표 가운데 49.56%인 8만 1084표를 얻어 7만 8632표에 그친 박근혜 후보를 2452표 차이로 앞섰습니다"라며 "1.5% 포인트 득표율 차이, 그야말로 초박빙 승부였습니다"라고 보도했다.
그런 뒤 "원희룡 후보가 2398표로 3위, 홍준표 후보가 1503표로 4위를 차지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1·2위가 각각 49.56% 및 48.06%, 3·4위가 각기 1.47% 및 0.92%를 득표했던 것이다.
[이명박] "난 일 잘한다"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은 이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경제 전문가 이미지를 집중 부각했다. 샐러리맨 출신으로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 회장(겸임)을 역임한 전력을 홍보하고 대운하 사업 등을 통해 경제를 일으킬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일 잘하는 경제 대통령감'의 이미지를 만들어 나갔다.
수용 인원이 7천 명인 안양체육관에 1만여 이상이 운집한 8월 13일 합동토론회 때도 그는 통로와 난간까지 꽉 들어찬 청중을 향해 자신이 '일 잘하는 대통령'이 될 것임을 역설했다. BBK와 도곡동 땅 문제를 비롯한 각종 의혹을 제기하는 박근혜에 맞서 일관되게 '일 잘하는 대통령론'을 역설했다.
다음날 발행된 <경기일보> 기사 "이(李) '될 사람에게 표 몰아달라' 굳히기"에 따르면, 13일 연설회 때 그는 "저는 남을 비방하거나 말 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일 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이길 사람에게 표를 모아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자신이 경제의 천지개벽을 일으킬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8월 15일 자 <대구일보> '한나라 대구·경북 합동연설'에 따르면, 14일 대구실내체육관 연설회 때 그는 "이제 대한민국도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경제지도자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며 "대구 경제가 어려운데 천지개벽을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 한나라당 대선경선후보 첫 합동연설회가 실시된 제주 한라체육관 연설회장에서 이명박 후보 지지자와 박근혜 후보 지지자가 몸싸움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박근혜] "난 깨끗하다"
그런 이명박에 맞서 박근혜는 자신이 흠 없는 깨끗한 인물임을 강조했다. 의혹을 많이 받는 이명박은 경선에 승리하더라도 본선에 나가면 질 게 뻔하므로 처음부터 흠 없는 자신을 선택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8월 17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마지막 합동연설회를 보도한 8월 18일 자 <동아일보> "이(李) '대한민국 신화 만들겠다' 박(朴) '정권교체 위해 강해졌다'"는 두 후보의 연설문을 요약해 보도하면서 "박 전 대표는 '흠 없는 본선 필승 후보 박근혜를 밀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 뒤 그의 주장을 이렇게 소개했다.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나면 무슨 수로 막겠나? 거짓이 승리하는 게 한나라당인가? 거짓으로 한나라당이 과연 집권을 할 수 있나?"
자신을 유능한 경제 대통령감으로 만들어간 이명박과 자신을 거짓 없고 흠 없는 대통령감으로 만들어간 박근혜에게 당시의 경선 유권자들이 설득을 당했다고 말할 수 있다. 49.56% 대 48.06%로 승부가 갈린 것은 양쪽 선전전 모두 주효했음을 보여준다.
이미지에 가려진 후보들의 정체
하지만 그런 이미지가 본모습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박근혜 역시 타인의 도덕성을 공격할 만큼 윤리적으로 탄탄하지 않다는 점은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나온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한마디가 잘 웅변한다.
불법자금을 받아 정치하는 행태가 그 자신뿐 아니라 그의 아버지에게도 있었으며 그 역시 영애 자격과 영부인 대행 자격으로 아버지의 국정 운영을 거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통령 재직 시절에 보여준 그의 도덕적 흠결이 대통령 취임 이후에 처음 발현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의 경우에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그는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도리어 나라 곳간을 축내는 인물임이 증명됐다. 그런 그의 특성 역시 대통령 취임 이후에 처음으로 발현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1992년에 그의 고용주인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통일국민당을 만들 때 그가 함께 가지 않고 민주자유당(민자당)에 들어간 것 역시 그의 윤리적 문제와 무관치 않은 일일 가능성이 있다.

▲ 17일 오후 서울 잠실체육관앞에서 열린 '한나라당 제17대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서울합동연설회'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이 대형 홍보물을 내걸자, 이명박 후보 지지자들도 이 후보의 발언이 담긴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2007.8.17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관인 김유찬 SIBC 대표는 "김유찬, '이명박 차명재산 지키기 위해 30년 은인 정주영 배신'"이라는 2018년 4월 13일 자 <세계일보> 인터뷰 기사에서 정주영 가문의 정아무개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근거로 이렇게 진술했다.
"정 박사에 따르면 1992년 초 이미 이 전 대통령의 가·차명 재산의 상당 부분을 파악하고 있던 당시 노태우 정권이 정 회장의 (통일국민당) 황색 돌풍을 잠재우기 위해 '다른 사람 명의로 돼 있는 차명재산을 뺏기고 감옥 갈래, 아니면 우리에게 협조하고 전국구 국회의원 감투 받을래'라고 이 전 대통령을 압박했고, 이 전 대통령은 이에 후자를 선택했다."
이명박은 1992년에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 현대그룹에서 일했다. 그랬던 그가 재산 형성 과정과 관련해 집권당의 협박을 받았고 그 때문에 정주영과 등을 돌려야 했다면, 그의 재산 형성 과정이 어떠했는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 인물인데도 그는 한나라당 경선을 통해 '일 잘하며 경제를 살릴 일꾼'이라는 이미지를 공고히 하는 데 성공했다.
이명박은 윤리적 특성뿐 아니라 시대적 흐름 때문에도 2008년 이후의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기에 부적합했다. 그가 취임한 2008년에 글로벌 경제위기가 발생하면서 기업의 자율성을 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가 그 정당성을 의심받은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개발경제 시대의 낡은 관행에 익숙해 있었던 이명박은 2008년 이후의 국가경제를 이끌어갈 적임자는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곳간만 축낼 인물이 일 잘하는 경제 대통령감의 이미지를 공고히 하고, 깨끗하다고 보기 어려운 인물이 흠결 없는 대통령감의 이미지를 공고히 한 것이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이다.
유권자를 기만한 경선
후보의 진짜 모습과 전혀 다른 이미지가 공고해졌다는 점에서 2006년 한나라당 경선은 후보를 알아 가는 과정이 아니라 후보를 '몰라 가는' 과정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유권자들을 기만하는 무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시 유권자들이 박근혜에 대해 또 다른 착각을 할 뻔했다는 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의 의혹을 공격하며 자기 후보의 깨끗함을 부각하는 박근혜 캠프의 전략이 본격 가동된 것은 '이명박은 경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가 상당히 굳어진 뒤였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박근혜 캠프 역시 자기 후보에게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만들어주려고 했었다.
박근혜가 6월 16일 한나라당 대표에서 물러나고 이명박이 6월 30일 서울시장 직을 퇴임하면서 대선 경쟁 열기가 뜨거워진 2006년 하반기에 박근혜 캠프가 주력한 것이 바로 그런 이미지의 형성이었다.
그해 8월 29일 자 <내일신문> '박근혜 첫 행보 키워드는 박정희와 경제'는 박근혜가 파독 광부들이 일하던 독일 탄광을 방문하고 중국에서 새마을운동 특강을 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점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보도했다.
한 측근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약점이 콘텐츠가 없다는 지적 아니냐. 콘텐츠의 핵심이 결국 뭐겠느냐. 결국 경제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란 걸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박 전 대표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적 업적을 환기시키는 것'"라고 말했다.
만약 이 전략이 주효하고 이명박 캠프의 선전전이 실패했다면, 이명박이 아닌 박근혜가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갖게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박 캠프는 이 전략을 성사시키지 못했고, '깨끗한 대통령' 이미지를 구축하는 쪽으로 에너지를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예비후보가 17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마지막 대선예비후보 합동연설회가 끝난 뒤 손을 들어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뒤로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이 내건 플래카드가 보인다. 2007.8.17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런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이 선거 때 나오는 각종 정보들은 후보에 대한 부정확한 이미지를 조성하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후보는 유권자에게 과감하게 거짓을 말한다. 그래서 지금의 시스템하에서 유권자들은 정확한 판단에 도달하기 위해 이중·삼중의 수고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후보자보다 유권자에게 더 힘든 것이 선거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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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쇠락하는데... 야당은 검사 출신 전성시대
[김종성의 히,스토리] 특수부와 강력부 출신의 선두 다툼... 검찰 과오에 대한 반성은?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을 이끄는 두 주자는 검사 출신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정치인·공직자·재벌 등을 상대하는 특수부(반부패수사부) 검사 출신이다. 홍준표 의원은 조폭·마약범·살인범 등을 상대하는 강력부 검사 출신이다. 후발주자 홍준표가 선발주자 윤석열을 뒤쫓고 있으니, 강력부 검사 출신이 특수부 검사 출신을 추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검사 출신이 하나 더 있다. 지난 9월 15일 1차 예비경선을 통과한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도 공안검사 출신이다. 검찰개혁으로 검찰 조직이 위축된 것과 달리, 보수정당 대선경쟁에서는 검사 출신들이 '호황기'를 맞고 있다.
군부 정권의 위세가 대단했던 198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검찰은 권력의 시녀로 불렸다. 그 후에도 어느 정도는 그런 면이 있었지만, 1987년 민주화(직선제 개헌) 이후의 검찰은 권력과 제휴하기도, 대결하기도 하기 때문에 지금은 그렇게 부르는 것이 '실례'다.
권력의 시녀로 불리던 시절만 해도, 검사 출신들이 보수정당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랬던 것이, 지금은 검사 출신들이 보수정당 대선 경쟁을 주도하는 상황으로 바뀌어 있다. 지난 30여 년간 검찰의 파워가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생각게 하는 현상이다.
공안은 저물고 특수는 뜨고
그 기간에 모든 검사들이 다 똑같이 강해진 것은 물론 아니다. 공안검사들의 경우에는, 전반적인 검찰권 강화 속에서도 여타 검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축됐다.
황교안 전 대표가 정치지도자로서 더 크게 부각되기 힘든 데는 공안검사 출신이라는 족쇄도 어느 정도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공안검사들이 정상적 업무를 벗어나 각종 조작 사건에 가담한 역사는 공안검사에 관한 부정적 이미지를 조성하고도 남는다.
공안검사의 이미지 약화가 본격 감지된 것은 1990년대 전반이다. 1993년 3월 11일 자 <조선일보> 기사 '공안부 시대 가고 특수부 시대 개막'은 "간첩단, 밀입북, 대학생 시위 등 시국사건과 이데올로기 쟁투가 끊이지 않았던 5·6공 시절은 공안의 계절이었다"며 김영삼 정권이 구시대 권력층에 대한 사정 작업을 개시함에 따라 특수부 검사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공안검사가 약해지는 조짐은 미세하게나마 1987년 이전에도 감지됐다. 공안부보다 특수부가 더 활기를 띠는 풍경을 묘사한 1986년 7월 11일 자 <동아일보> "검찰, 공안부보다 특수부 활기에 '이것이 정상'"이란 기사에서도 알 수 있다.
이 기사는 "검찰청사의 수사검사실과 수사관실마다 연행 조사를 받는 피의자들로 북적대는 가운데 수사관들은 연일 철야 작업"이라고 한 뒤 "한동안 폭주하는 공안 수요의 그늘에 가려 특별수사 활동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공안보다는 특별수사가 활발한 것이 검찰 본연의 모습이 아니겠느냐"는 검찰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했다.
검사 윤석열이 대권주자 윤석열로 변신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도 공안부가 저물고 특수부가 뜨는 지난 30년간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그가 국정원 댓글 수사나 대기업 수사들을 통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소속 부서가 강해지는 시대적 흐름에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공안부 검사와 특수부 검사의 차이점 중 하나는, 전자는 민중이나 반정부 세력 또는 반체제 세력을 주로 상대하는 반면, 후자는 사회의 주류에 있는 사람들을 주로 상대한다는 점이다.
이런 차이점이 있어서인지, 운동권 출신 검사들은 공안부보다는 특수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한겨레>의 검찰청 출입 기자였던 이순혁의 <검사님의 속사정>은 "80년대 학번 검사 가운데는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가 뒤늦게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의 길로 들어서 나름 활약을 펼친 이들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이 책은 "특이한 점은, 상당수가 정치인이나 재벌 등 힘 있는 이들에 대한 수사를 주로 하는 특수부에 포진해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다음, 이용호 게이트,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신정아 학력위조 사건 등을 다룬 윤대진 검사(연수원 25기)를 포함한 몇몇 사례를 열거한다.
79학번인 윤석열 역시, 운동권 학생은 아니었지만 그런 마인드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는 대학 1학년 때 서울대 이념서클인 국제경제학회에 잠시 몸담았다. 또 그가 '전가의 보도'처럼 펼쳐 보이는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는 그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인 1970년대만 해도 진보적인 서적에 속했다.
국가권력에 대한 경계심과 기업에 대한 무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프리드먼의 사상은 군부 정권이 중앙집권적으로 경제를 운영하던 1970년대 후반 대한민국에서는 진보적인 이념에 속했다.

▲ 국민의힘 윤석열(왼쪽), 홍준표 대선 경선 예비후보가 28일 서울 상암동 MBC에서 열린 대선 경선 예비 후보자 4차 방송토론회에서 방송 준비를 하고 있다. 2021.9.28 ⓒ 국회사진취재단
강력부 검사 홍준표
공안부 검사와 특수부 검사의 위상이 지난 30여 년간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은 데 비해, 강력부 검사들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덜 받은 편에 속한다. 1990년 10월 13일 노태우 정부가 선포한 '범죄와의 전쟁'이 강력부 검사들의 일거리를 늘려주기는 했지만, 이 분야 검사들의 위상은 정치적 영향을 덜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수부 검사보다는 강력부 검사로 더 많이 알려진 홍준표 검사가 정치적 두각을 보이게 된 데는 외부적 영향에 더해 개인적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는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고 국가정보원 직원들을 체포한 2013년의 윤석열 검사 같은 대형 사고를 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용납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독단 행동을 많이 했고 이것이 그가 세상의 주목을 받는 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
<소신이 있으면 두려움이 없다>에서 회고한 바와 같이, 1985년 1월 청주지방검찰청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홍준표가 처음 수사한 사건도 그런 류의 사건이었다. 이때 그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괴산군청 재무과장이 개입된 국유지 불법불하 사건을 고집스럽게 수사해나갔다.
괴산군청은 물론이고 충북도청에서까지 수사를 견제하고 현지 국회의원까지 재무과장을 비호하는 속에서도 그는 재무과장을 끝내 구속했다. 뒤이어 이 사건은 감사원 특별감사로 이어졌다. 그는 이런 식으로 조직폭력배들은 물론이고 권력층으로까지 수사 범위를 넓혀 1995년 SBS 드라마 <모래시계>의 모델이 되고 폭발적인 국민적 관심을 받으며 정치권에 진입했다.
홍준표의 행보는 1987년 이후에 위기감을 느낀 보수 권력층의 이해관계에 부응하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1990년에 '범죄와의 전쟁'과 '공안정국'이 함께 조성된 것은 사회질서를 다잡기 위한 보수 정권의 의도를 반영했다. 권력층 내에 그런 위기감이 있었기에, '법대로 집행'한다는 홍준표의 단독 행동이 용인된 측면도 없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 특성과 더불어 그런 시대적 상황이 지금의 홍준표를 만드는 데 기여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성공한 검사, 실패한 검찰
검사 출신들인 세 명의 국민의힘 대권주자들은 지지율 여하에 관계없이 적어도 검사 출신으로서는 성공한 사람들에 속한다. 검사 출신들이 유력 후보군을 형성하는 것은 군부독재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고 그 후에도 어느 정도는 그랬다. '검사들의 호황기'를 대선 국면에서 열고 있다는 점에서, 세 주자는 검사 출신으로서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을 상쇄하는 요인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들이 몸담은 검찰 조직이 국민의 신뢰를 잃어 지금은 현저히 약해져 있다는 점이다. 검찰이 기존에 갖고 있던 권한의 상당 부분을 경찰과 공수처에 내준 뒤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이 검찰권을 대거 박탈한 것은 검찰이 과도한 권한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검찰이 그것을 올바로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 조직에 힘입어 지금의 지위에 도달한 대선주자들은 대선 승리에 대한 목표 의식 못지않게 조직의 과오에 대한 죄의식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들의 성공을 도운 검찰 조직이 국민들에게 죄를 지어 크게 위축돼 있으므로, 참회하는 마음으로 표를 호소하는 게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임종성 오마이뉴스
반갑다! 직관... 수도권 야구장 모처럼 활기

국내 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율이 70%를 넘어서면서 단계적 일상 회복이 임박한 다가온 가운데, 24일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관중들이 열띤 응원을 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8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적용 중인 수도권에서도 접종 완료자에 한해 실외 경기장은 수용인원의 30%, 실내 경기장은 20%까지 관중 입장을 허용했다. 뉴스1



5만 원권 환수율 급감‥그 많던 현금은 어디로 갔나?
시중에 현금은 엄청나게 풀렸지만 한국은행으로 돌아오는 비율은 뚝 떨어졌는데 특히 5만 원권 지폐가 심하다고 합니다. 누군가 어딘가에 현금을 쟁여 놓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한데요. 그래서인지 금고 판매량이 1년 사이 두 배 늘었습니다.
리포트-올해 들어 8월까지 발행된 5만 원 짜리 지폐는 2억9천4백만 장. 금액으로는 14조7천억 원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 다시 한국은행으로 돌아온 건 19.1%. 다섯 장 가운데 한 장뿐입니다.
5만원 권들이 어딘가로 숨어버린 겁니다. 이런 현상은 작년부터 심해졌습니다. 2019년만 해도 환수율은 60%였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24%로 뚝 떨어지더니, 올해 19%로 더 떨어진 겁니다. 이렇게 갑자기 현금 회수율이 떨어진 건, 코로나 영향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온라인 비대면 거래가 크게 늘면서, 현금 유통량 자체가 좀 줄었습니다. 특히 현금을 가장 많이 받는 식당과 숙박업 매출이 줄면서, 은행 입금이 줄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엄연걸/식당 운영]
"월 평균 (현금) 매출이 한 300정도 됐는데 코로나 이후는 많이 줄어가지고 한 4-50만원 정도? 그냥 현금은 다 가지고 있었어요. 저축 안 하고."

또 코로나로 금리가 크게 내리면서, 굳이 현금을 은행에 넣어둘 필요성이 줄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지난해 금고가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금고 제조업체들의 매출은 2019년에 비해 2020년 두 배나 늘었습니다. 백화점에서 파는 비싼 금고들도 잘 팔렸습니다. 올해 백화점별 금고 매출은 현대백화점 30%, 롯데백화점 18.9%, 신세계백화점은 42.5% 올랐습니다. 금 거래대금도 크게 늘어나 1년 전보다 3배나 늘어났습니다. 당국이 파악하지 못하는 현금이나 금이 크게 늘어났을 가능성도 있다는 뜻입니다.



[정일영/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그러면 그냥 개인 금고에 넣어 놓고 있는 거예요?"
[이주열/한국은행 총재]
"그 전보다는 아마 개인이 갖고 있는 경우는 좀 그런 경향이 많아진 것은…"
실제로 코로나 이후 고액권 환수율은 다른 나라들도 조금씩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한국만큼 급격하게 떨어진 나라는 없습니다./MBC뉴스 이유경입니다.
한일 해저터널·가덕도 신공항의 이면···'뭐든 해봐야 한다' 절박한 비수도권
가덕도 특별법 ‘매표’ 행위 비판
쇠퇴 가속화하는 비수도권에선
‘뭐든 해봐야 한다’ 절박감 깔려

지난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때아닌 ‘한일 해저터널’ 논란이 불거졌다. 더불어민주당이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들고나오자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가덕도만으로 안 된다며 한일 해저터널 건설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김종인 당시 비대위원장은 “일본보다 월등히 적은 재정부담으로 생산 부가효과 54조원, 고용 유발효과 45만명의 엄청난 경제효과가 기대된다”고 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촉발된 한·일 갈등의 앙금이 여전한 가운데 한·일 공동으로 대규모 토목사업을 하자는 제안은 역풍을 불렀다. ‘친일매국노’란 비난이 쏟아졌고, 민주당도 “일본의 대륙 진출 야심에 이용된다”고 폄하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진지하게 다뤄볼 정책 제안이 지방선거에 등장하면서 논의가 엉뚱하게 흘러갔어요. 한국의 국력이 커졌는데도 일본만 득을 볼 것이라는 근시안적 사고에 갇혀 있는 것 아닌가요.” 지난달 3일 부산대 건축관에서 만난 서의택 한일터널연구회 공동대표(84·부산대 석좌교수)는 “한·일 화해의 통로는 물론 동북아 공동체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며 해저터널을 국가 미래전략 차원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 대표는 청와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 추진위원장으로 세종시 건설을 총괄한 도시계획 분야의 원로다. 2008년 설립된 한일터널연구회 역시 건축·토목 분야 교수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진지한 연구단체다.
한반도에서 일본 쓰시마섬을 거쳐 규슈를 연결하는 한일 해저터널은 일제강점기 때 처음 구상됐다가 1980년대 통일교 제안으로 수면 위로 부상한 이후 잊을 만하면 등장했다. 요즘과 달리 노태우·김대중·노무현 대통령도 관심을 표명한 바 있고,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에는 부산발전연구원이 동북아 통합교통망 구축 차원에서 가능성을 검토한 바 있다. 부산발전연구원은 당시 부산(가덕도)~쓰시마~이키~후쿠오카로 이어지는 222.64㎞(해저구간 146.81㎞) 노선을 제시하면서도 “경제성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공사비만 100조원이 드는 데다 통행량을 확보할지도 미지수라는 것이다.
서 대표는 양국이 공사비를 분담하는 데다 기술면에서도 문제가 없고, 터널을 계기로 한국이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떠오를 가능성에 주목했다. “선박과 항공에 더해 악천후 영향이 없는 철도로 물류를 다각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현성 여부를 떠나 한일 해저터널 구상이 나오게 된 데는 수도권 팽창과 반대로 쇠퇴가 가속화하는 비수도권에선 ‘뭐든 해봐야 한다’는 절박한 심리가 깔려 있다. 균형발전을 위해 수도권의 대학, 공공기관, 대기업을 지방으로 옮기라는 요구에는 ‘제로섬 게임’이라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국경 바깥에서 ‘플러스알파’를 찾아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취지가 한일 해저터널에 담겨 있다. 서 있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바뀐다. 수도권에선 한일 해저터널을 ‘민족주의’ 문제, 가덕도신공항을 ‘환경’ 이슈로 대하지만 동남권에선 지역경제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본다.

지난 13일 드론으로 촬영한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마을의 전경. 이 일대의 바다를 메워 가덕도신공항이 들어설 예정이다. 신공항의 경제성, 환경 영향 등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한일 해저터널 논란의 이면
바깥선 사업비·여객 수요 비관
안에선 철도·항공·항만 통한
‘물류 플랫폼 육성’ 가치에 주목
“인천공항 이용하면 된다지만
부산서 인천 가서 환승하느니
일본 공항이 차라리 더 가까워”
지난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선 여야 가릴 것 없이 중후장대한 공약을 쏟아냈다. 한일 해저터널과 가덕도신공항 외에도 하이퍼루프, 플로팅시티, 돔구장 등 100조원을 훌쩍 넘는 거대 개발사업들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워라밸’에 방점을 둔 공약이 쏟아진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감당 불가능해 보이는 공약들은 지역이 직면한 위기감의 크기를 대변한다. 식어가는 성장동력을 되살리려는 절박감이 공약들에 배어 있다. 1986~1991년 연평균 8.6%였던 부산의 성장률은 지난해 2%대에 그쳤고, 매년 청년 인구 1만명이 부산을 떠나고 있다. 부산상공회의소가 집계한 전국 1000대 기업(2020년 매출액 기준) 중 부산 기업은 29개에 그쳤다. 기업 총매출액도 27조9280억원으로 서울(743곳·1449조987억원)에 비할 바가 못됐다. ‘제2의 도시’라는 표현이 무색해진 지 오래다.
가덕도신공항 건설은 부산의 미래가 걸린 ‘상징 투쟁’이 됐다. 신공항이 논의된 계기는 2002년 중국 민항기가 김해공항에 착륙하려다 인근 돗대산에 추락해 129명이 숨진 사건이다. 공항 입지의 한계를 드러낸 이 사건은 동남권 신공항 논의를 촉발시켰으나 대구·경북권 공항 건설 논의와 맞물리면서 후보지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됐다. 박근혜 정부가 2016년 ‘김해공항 확장’으로 논란을 진화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단체장들이 논의를 다시 지폈다. 곡절 끝에 지난 3월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동남권의 침체와 메가시티 구상이 맞물리던 시점이다.
바깥의 시선은 신공항에 부정적이다. 대형 국책사업의 원칙과 절차를 무시하고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경쟁하듯 특별법을 통과시킨 것은 ‘매표’ 행위로 비쳤다. 수요가 적어 ‘멸치 말리는 공항이 될 것’이라는 비아냥도 쏟아졌다.
하지만 한일 해저터널, 가덕도신공항을 향한 비판과 멸시에 깔린 ‘수도권 중심주의’는 온당한 걸까.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는 부산항이 공항이라는 날개를 달면 물류의 시너지가 엄청나게 커집니다. 인천공항의 몫을 빼앗는 게 아니라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겁니다.”(허윤수 부산연구원 기획조정실장)
가덕도신공항은 부산 가덕도 남단 바다를 메워 조성한 598만㎡ 부지에 3500m 활주로 1본을 만드는 계획이다. 사업비는 부산시의 추계로 7조5440억원이다. 바깥의 시선은 사업비와 여객 수요에 맞춰져 있지만 지역에선 철도-항만-항공의 ‘트라이포트(Tri-Port)’ 구축을 통한 물류 플랫폼 육성이라는 ‘미래가치’에 주목한다. 부산항은 세계 항만 물동량 순위 6위에, 환적 화물로는 세계 2위다.
“중국의 항만은 자국 물동량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산항이 동북아 허브항입니다.” 부산항 기항 정기노선은 세계 3위(269개) 수준이다. “베트남에서 출발한 화물이 상하이를 거쳐 부산에 왔는데 물류 체증으로 지연됐다고 가정해 볼까요. 40피트컨테이너당 위약금이 1억원이라고 하면 5개만 해도 5억원이죠. 공항이 있으면 전세기로 1억5000만원에 운송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부산항은 미국을 향하는 태평양 항로의 마지막 포트입니다. 화주로서는 선택지가 늘어나는 거죠.” 신공항의 2045년 화물 수요는 117만6000t으로 현재 인천공항의 3분의 1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규슈지역 화물 수요는 신공항이 생기면 확보할 수 있는 플러스알파다. “규슈 권역의 항공화물이 13만t가량 되는데 후쿠오카 공항을 거쳐 간사이 공항에서 떠나는 루트보다 부산항으로 와서 가덕도신공항에서 운송하면 비용도 싸고 시간도 덜 걸립니다.”
가덕도신공항과 한일 해저터널이 조성되면 한국의 동남권과 일본의 규슈권이 국경을 넘는 ‘트랜스내셔널 경제권’이 형성될 수도 있다. 지역에선 그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서울에서 부산항의 경쟁력에 너무 무지·무관심해요. 우리는 국내가 아니라 글로벌 경쟁을 하겠다는 겁니다.”
김해공항 확장은 애초부터 대안이 되기 어려웠다. 안전 문제는 물론 24시간 공항의 필요성에 맞추기 어려운 사정 탓이다. 화물기는 주로 밤에 떠야 하는데 도심에 있는 김해공항은 소음 탓에 활주로를 쓸 수가 없다. 화물의 항공수요는 의외로 많다. 무게가 가볍고 단가가 비싼 첨단제품은 항공기가 적합하다. 공항이 있으면 배로 커피콩을 들여와 가공단지에서 로스팅한 뒤 비행기에 실어 비싸게 되파는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처럼 부가가치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구구절절 설명해도 비판론자들은 ‘인천공항을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뿐이다.
동남권의 국제선 항공 수요는 960만명으로 전국 2위, 김해공항은 인천공항 다음 가는 흑자 공항이다. “코로나19 이전 김해공항은 사람이 너무 많아 ‘도떼기시장’ 같았습니다. 제가 수원에 갔다가 ‘한강 이남에 공항이 없어 불편하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인천 가는 1~2시간도 멀어서 불편하다면 지방은 오죽할까요. 부산에서 인천까지 가서 국제선으로 환승하느니 일본 공항이 차라리 가깝습니다.”
‘런던에 공항이 있으니 맨체스터에는 필요 없다’고 하면 영국 사람들은 어떤 느낌일까. 부산에서 서울의 직선거리는 331㎞, 맨체스터에서 런던은 262㎞이다. 이 좁은 나라에 관문 공항이 하나 더 생기면 인천공항의 경쟁력이 떨어져 국가적 손실이라고들 한다. 대한민국 경쟁력이 아니라 ‘수도권 경쟁력’이 아니었을까.

한일 해저터널·가덕도 신공항의 이면···'뭐든 해봐야 한다' 비수도권의 절박감
기후위기 그리고 신공항
인천공항 확대는 당연하게 인식
환경단체들 반대 목소리 와중에
지역 삶의 문제조차 수도권 중심
가덕도신공항 부지에는 대항마을로 불리는 한적한 어촌이 있다. 마을 주변 국수봉, 남산, 성토봉을 깎아 바다를 메우게 된다. 대항마을을 찾은 지난달 14일 태풍 ‘찬투’가 남해안에 비를 뿌리면서 바닷가 마을 풍광이 스산하게 느껴졌다. 전망대에는 신공항을 환영하는 ‘브라이트 강서’라고 쓰인 비행기 형상 조형물이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몸체에는 “탄소중립 이행하라!! 가덕신공항 절대 반대!!”라는 글귀가 매직으로 흐릿하게 쓰여 있었다.
“저희는 생존권이 걸린 문제입니다. 평생 어업을 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김영석 가덕대항신공항생존대책위원장(59)은 “9대째 어업에 종사했는데 선산까지 있는 이 마을을 떠나서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다”고 했다.
대항마을은 숭어마을로도 불린다. 매년 봄이면 숭어 물길에 그물을 쳐두고 높은 곳에서 망을 보다 통째로 건져 올리는 ‘육수장망’ 어로법을 조선시대부터 대대로 이어오고 있다. “바다 일은 조류, 바람, 물고기의 움직임을 오랜 세월에 걸쳐 터득해야 해요. 마을마다 어촌계가 있는데 새로 들어갈 수도 없고요. 땅값은 보상을 받더라도 무형의 손실은 어떻게 보상받겠습니까.”
대항마을에는 350여가구가 살고 있다. 가덕도에 외지인 유입으로 ‘투기판’이 됐다는 뉴스들이 주민들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가덕도신공항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동남권을 넘지 못하듯 어민들 목소리 역시 마을 안에서 맴돌 뿐이다. “동네가 작으니 누가 관심 갖겠습니까. 차라리 매듭을 빨리 지었으면 나았을 텐데 정치인들 공약 다툼하다 우리만 날벼락 맞은 거죠.”
신공항 사업은 ‘탄소중립’에 역행한다는 환경단체들의 반대도 넘어야 한다. 단체들은 “항공기는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운송수단이며 공항개발은 기후위기 가속화를 부추길 뿐”이라면서 공항개발 계획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6차 공항개발 종합계획에 10곳의 신공항 계획이 포함된 것도 환경단체들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 ‘하늘로 간 4대강사업’ 아닙니까. 원주민들을 터전에서 몰아내고 예산이 막대한 사업을 제대로 검증도 안 하고 밀어붙이고 있잖아요.” 김현욱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 집행위원은 “기후변화로 몇십년 뒤면 부산 저지대도 물에 잠긴다는데 메가시티가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했다.
김 위원은 “가덕도는 생물다양성의 보고이며, 기후위기 대응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탄소흡수원”이라고 했다. 낙동강 하구의 생태축인 가덕도는 멸종위기 야생생물인 상괭이·수달과 다양한 어류들의 서식지이고,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하고 기후위기가 심각해지자 각국에서는 공항 건설을 보류하거나 단거리 항공의 운항을 금지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개발이건, 보존이건 지방은 논의에서 소외된다. 환경파괴로 인한 갈등의 현장은 대부분 비수도권에 있고,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소거되기 일쑤다. “최근 유력 대선 주자가 ‘가덕도신공항이 모두의 공존을 위한 길’이라고 썼대요. 원전이나 공항이나 현지 주민들은 그 공존에서 빠져있죠. 수도권이 지방을 식민지처럼 대한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주민들이 뭘 알아? 줄 때 받으라’는 거죠.”
균형발전도 환경문제를 피해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가덕도가 우리만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 신공항 건설은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잖아요. 전 지구적 관점에서 탈탄소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항마을 전망대에 설치된 신공항을 환영하는 비행기 조형물. 몸체엔 ‘탄소중립 이행하라!! 가덕신공항 절대 반대!!’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왼쪽 사진). 신공항 예정 부지인 대항마을 지역 주민들의 대책위원회 사무실로 쓰이는 컨테이너 건물 외벽에 ‘생존권 사수’ 구호가 선명하다.
신공항과 ‘수도권 중심주의’
“원전이나 공항 결정할 때마다
주민은 공존 대상서 빠져 있어
수도권이 지방을 식민지처럼
생각한다는 느낌 지울 수 없어”
균형발전·기후위기 대응 사이
균형점 찾는 사회적 논의 절실
동남권에선 수도권의 신공항 건설 반대 논리에 배어있는 ‘차별적’ 시선에 민감하다. 경제성을 이유로 한 반대뿐 아니라 환경주의자들의 반대 역시 ‘수도권 중심적’이라는 것이다. 화물공항이 없어 컨테이너 차량들이 탄소를 뿜어가며 인천공항까지 가야 하는 현실은 보이지 않느냐는 반발이다.
남종석 경남연구원 혁신성장경제연구실장은 “기후위기 때문에 신공항 건설을 반대한다면 인천공항 확장, 김해신공항 건설 모두 반대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며 “탄소배출이 늘어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인천공항은 되고, 동남권은 안 된다는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문제는 항공운송 산업 전반의 탄소 과다배출에 있는 것인데 가덕도신공항만을 겨냥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남 실장은 “인천공항 확대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지방공항’ 확대는 안 된다는 인식이 국토부 관료, 중앙언론, 지식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보인다”면서 “그들은 국제선 수요와 국내선 수요도 구별하지 않으며, 가덕도신공항과 기타 지방 공항들 간의 차이도 간과한다”고 덧붙였다.
이관후 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 창작과비평(192호) ‘지방소멸, 대안을 찾아서’를 주제로 한 좌담에서 “한국의 진보가 굉장히 서울중심주의적”이라고 했다. 제도를 바꾸거나 정책을 결정할 때 ‘지역인지감수성’이 없다는 비판이다.
기후위기와 지방소멸 의제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충돌할 공산이 크다. 지방이 쇠퇴할수록 토건에 대한 열망이 불타오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4대강사업, 평창 올림픽 가리왕산 알파인경기장 복원,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사업 논란에서 목도한 바 있다. 하지만 지방에 안정적인 일자리와 정주 여건이 갖춰졌다면 스키장 곤돌라와 케이블카에 그토록 목을 맬 이유도 없었다.
균형발전으로 개발과 보존 사이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 남 실장은 “삶의 지속과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토건사업은 필요하다”면서 “토건 자체를 백안시하면 지역 인프라가 약화되고 인구 감소로 이어지게 된다”고 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보급, 에너지그리드 구축 등 ‘그린 뉴딜’ 역시 엄밀히 따지면 토건 사업”이라며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면서 지역 인프라를 구축하고 인구를 유입시킬 수 있다면 토건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수도권 팽창, 지방 쇠퇴가 지속되는 한 비수도권 주민들의 개발 열망과 맞물린 시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반드시 필요한 사업과 그렇지 않은 사업에 대한 옥석 가리기가 필요한 이유다.
균형발전과 기후위기 대응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내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절실하다./경향




1주택자 양도세 기준 12억 되면, 차익 7억 얻어도 세금 ‘0원’
참여연대, 비과세 기준 현행 9억→12억 ‘소득세법 개정안’ 분석

세금 감면 혜택, 양도차익이 커질수록 확대…사실상 ‘부자 감세’ 효과
12억 소득 기준 실효세율…주택 매매 땐 7.42%, 투자·사업엔 39.49%
자산 양극화 부추길 우려…내달 기재위 조세소위서 개정안 논의 ‘촉각’
1가구 1주택의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준금액을 12억원으로 높이면 양도차익이 7억원에 달해도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가 주택일수록 감면받는 세금이 더 커지는 ‘부자 감세’가 자산 양극화를 더 부추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가 양도세 비과세 기준을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소득세법 일부개정안’을 토대로 세 부담을 분석한 결과, 3억원에 취득한 주택을 10억원에 팔게 될 경우 양도세는 ‘0원’으로 분석됐다. 이는 해당 주택을 5년 보유 및 거주한 것으로 가정하고, 기본공제(250만원) 외 비용 및 지방소득세는 제외한 수치다. 현재는 7억원의 양도차익이 발생하면 약 484만원의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세 감면 혜택은 양도차익이 커질수록 확대됐다. 3억원에 취득한 주택을 15억원에 매각하면 비과세 기준 변경으로 줄어드는 세금이 5446만원이었다. 20억원에 양도할 경우에는 세금 감면 폭이 6237만원으로 늘어났다.
현행 기준으로도 1주택자가 내는 양도세는 미국, 일본 등 주요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5년 보유·거주했을 경우 한국은 3억원에 취득한 주택을 15억원에 매각하면 약 8909만원의 세금을 부담해야 하지만 미국은 약 1억2500만원, 일본은 약 1억3275만원의 세금을 각각 내야 한다. 참여연대는 “현재 기준으로 비교해도 1주택자의 양도세는 주요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며 “비과세 기준을 12억원으로 완화할 경우 세 부담은 더욱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다른 세목에 비해 턱없이 실효세율이 낮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주택 매매를 통해 12억원의 양도차익을 거둘 때 실효세율은 7.42%인 데 비해 투자나 사업 등으로 얻었을 경우에는 39.49%의 세율이 적용됐다. 이마저도 비과세 기준이 상향 조정되면 양도세 실효세율은 2.89%로 낮아지면서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된다.
김용원 참여연대 간사는 “실거주 주택의 이사 등을 이유로 이미 1주택자의 양도세는 낮게 책정됐다”며 “이 같은 취지를 감안하더라도 1주택자가 얻게 되는 양도차익에 대해 세금을 지나치게 낮게 책정할 경우, 이를 악용하려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무주택자 비율이 40%를 넘고 이미 자산 격차가 심각한 상황에서 자칫 양극화 현상을 더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비과세 기준을 12억원으로 높이는 개정안은 11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은 개정안을 발의하기 전 두 차례 의원총회를 열고 지난 6월18일 당론으로 확정했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대장동 특혜 의혹으로 부동산 초과이익 환수가 현안으로 불거진 점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비과세 기준 변경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부동산 시장 변동성 확대를 우려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0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 국정감사에서 “양도세 과세 기준과 관련해 조정의 필요성이 일견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자칫 양도세 변동이 부동산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로 비치고 시장 안정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 경향
빈곤 안고 고립된 이들...죽음도 삶만큼 불평등했다
서울 무연고 사망 1216명 리포트]
올 무연고 사망 증가율 38%
코로나19로 돌봄서비스 막히고
사회적 고립 한층 더 심화시켜
2030도 22명...5명은 ‘청년 고독사’
<한겨레21>은 무연고 사망자들의 삶이 단순한 숫자 이상으로 기록되고 기억되길 바라며 ‘투명인간의 죽음: 무연고 사망자 1216명에 대한 기록’ 인터랙티브 페이지(remember.hani.co.kr)를 연다.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609일 동안 공영장례를 치른 서울 무연고 사망자 1216명에 관한 자료를 분석했다.
지난여름, 서울의 한 주택에서 고독사한 한영진(가명·50대)은 “냄새가 난다”고 이웃이 신고해 숨진 뒤 며칠 만에 발견됐다. 주검은 이미 부패한 뒤였다. 고아였던 그는 코로나19 유행 이후에 노래방을 인수해 운영했다. 장사가 잘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평소 마시던 술에 더 의존했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무연고 사망자로 공영장례를 치른 그의 주검은 ‘무연고 추모의 집’에 봉안됐다.
코로나19 시대에 노숙인, 쪽방촌 주민 등 가난한 이들의 사회적 고립은 심화되고 의료 사각지대로 내몰렸다. 이러한 상황은 죽음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한겨레21>은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609일 동안 공영장례를 치른 서울 무연고 사망자 1216명에 관한 자료를 분석했다.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으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바탕으로, 무연고 사망자의 연령과 주거지, 사망 원인, 생애 등을 다각도로 살피고 무연고 사망자의 가족과 지인을 만났다.
2021년 1~8월 공영장례를 치른 서울 무연고 사망자는 551명이다. 2020년 같은 기간(400명)에 견줘 37.8%(151명) 늘어났다. 2016~2020년 4년 사이 전국 무연고 사망자(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 기준) 연평균 증가율이 13.9%라는 점에 견줘보면, 지난 1년간 무연고 사망자 증가폭이 가팔라진 셈이다.
박진옥 나눔과나눔 상임이사는 “무연고 사망자가 해마다 증가하는 원인은 빈곤과 가족관계 단절 때문인데, 코로나19 유행이 경제적으로 빈곤한 사람을 더 빈곤하게 만들고 사람들 사이에 더 거리를 두게 했다”고 말했다. 고독사 전문 연구자인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도 “비대면 거리두기로 인해 기존 돌봄서비스가 약화되거나 지역사회복지관, 노인정 등이 문을 닫으면서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이 심화된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난 때 누가 죽음에 이르는지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가 ‘사회적 고립’이라는 점은 1995년 미국 시카고에서 발생한 폭염 사망자 연구 등에서 증명된 바 있다
실제로 무연고 사망자가 많이 발생한 서울의 자치구는 영등포구, 용산구 등 빈곤과 질병이 고여 있는 쪽방촌, 노숙인 지원시설 등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무연고 사망자(1216명) 10명 가운데 1명꼴로 영등포구(134명·11%)에서 발생했다. 그다음은 용산구(80명·6.6%)-중구(80명·6.6%), 종로구(78명·6.4%) 순서였다. 영등포 쪽방촌에서는 같은 주소지에서 2~3명씩, 모두 4곳의 주소지에서 9명이 차례로 숨졌다.
나백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예방의학 전문의)는 “무연고 사망자 가운데는 폐결핵, 간 질환 환자들이 많은데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거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더라도 퇴원 뒤 대부분 창문도 없는 고시원, 여관으로 가서 건강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무연고 사망자 1216명의 삶과 죽음은 다른 듯 닮았다. 가난, 질병, 관계 단절, 알코올, 가정폭력, 사회적 고립 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연령대별로 나눠보면 60대가 3명 중 1명꼴(30.4%)로 가장 많았다.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67%에 이른다. 하지만 태어나자마자 숨진 영아와 20대 청년 등도 있었다.
20~30대 무연고 사망자는 22명(1.8%)이다. 이 가운데 ‘청년 고독사’로 추정되는 이는 5명이다. 고독사란,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임종을 맞아 일정 시간(보통 3일)이 지난 뒤 발견되는 죽음을 뜻한다. 중국 국적자 1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4명은 모두 부모의 이혼·사망 등으로 인해 1인 가구로 살았다. 서울 20~30대 청년 1인 가구는 67만2565가구(2020년 기준)로, 전체 1인 가구의 절반가량(48.4%)에 이른다. 22명 가운데 ‘원인 미상’으로 숨진 청년은 모두 5명(고독사 3명 포함)이다. 송인주 선임연구위원은 “청년이 왜 알 수 없는 이유로 숨지느냐는 질문 아래, 고독사 현장에 남아 있는 물건들을 바탕으로 경제, 복지, 일자리 등의 영역을 전반적으로 분석하는 ‘사회적 부검’ 방식의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진수(0)는 2020년 겨울의 문턱에,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 앞에 있던 고무통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태어나 출생신고가 안 된 진수는 ‘성명 불상’으로 기록된 채 46일간 안치실에 있다가 경기도 서울시립묘지의 ‘나비정원’에 뿌려졌다. 처음이자 마지막 식사인 제사상엔 뽀로로 캐릭터 음료수와 초콜릿우유가 올라왔다. 무연고 사망자 1216명 가운데는 진수 같은 영아가 6명 포함됐다. 베이비박스나 거주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아이들이다.
무연고 사망자들의 사망 원인은 일반인들과 다르다. 2020년 서울 무연고 사망자 665명의 사망 원인에 대해 나백주 교수의 도움을 받아 심층 분석해봤더니, 1순위 사망 원인은 ‘달리 분류되지 않은 증상·징후’(24.4%·162명)였다. 이는 전국 사망자 평균(9.5%)보다 3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통계청 ‘2020년 사망원인통계 결과’ 보고서). 일반인 사망 원인 1순위인 암의 경우엔, 무연고 사망자는 16.1%로 사인 2위였지만 전국 사망자(27.5%)보다는 크게 낮았다. 반면 간 질환, 호흡기 결핵 등 특정 질환이 사망 원인이 된 비중은 일반인보다 아주 높았다. 건강 불평등이 죽음의 불평등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수치들이다.
열쇳말: 무연고 사망자란?
①연고자가 없거나 ②연고자를 알 수 없거나 ③연고자가 있지만 주검 인수를 거부·기피하는 경우에 기초지방자치단체가 개입해 무연고 사망자 주검 관련 업무를 맡는다.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는 공영장례를 치른다.
김규남 박다해 <한겨레21> 기자 3strings@hani.co.kr
NYT, 24년 늦은 김학순 할머니 부고 "20세기 가장 용감한 인물 중 하나“
'간과된 인물들' 시리즈 일환... "그의 증언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세상에 나오도록 영감 줬다“

▲ 1991년 8월 14일 자신이 일제시대에 정신대였다고 증언하는 김학순 할머니.ⓒ 연합뉴스
미국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NYT)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최초로 공개 증언·고발한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부고 기사를 실었다.
현지시각 25일 NYT는 김 할머니가 1997년 12월 세상을 떠난 지 24년 만에 뒤늦은 부고 기사를 냈다. 이 신문이 창간한 1851년 이후 잘 보도하지 못했던 주목할 만한 인물을 뒤늦게라도 소개하는 '간과된 인물들'(Overlooked) 시리즈의 일환이다.
지난 2018년 3월에는 유관순 열사가 사망한 1920년 이후 98년 만에 부고 기사를 내고 추모하기도 했다.
"20만 여성 끌려간 일본군 위안부... 국가 주도의 최대 범죄"
NYT는 김 할머니가 1991년 8월 14일 TV에 나와 자신이 17세 때 일본군 위안부에 끌려가서 당했던 경험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렸다고 서술하며 "그의 강력한 설명은 일본의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수십 년간 부인해왔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부인하고 있는 역사에 생생한 힘을 실어줬다"라고 소개했다.
또한 "일본이 193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20만 명에 달하는 여성들을 꾀어내거나 강제로 위안부 시설로 끌고 갔으며, 이는 국가가 주도한 성노예 범죄 사례 중 역사상 최대 규모"라고 지적했다.

▲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최초로 고백한 고 김학순 할머님 생전 모습 1991년 8월 14일 명동 향린교회에서 고 김학순 할머님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음을 최초로 고백하는 기자회견을 하였다. 이후 여성, 종교단체가 연대해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약칭 정대협)가 탄생했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시위가 열려 일본 정부의 태도를 규탄했다.ⓒ 정의기억연대 제공
그러면서 "김 할머니는 증언 6년 만인 1997년 폐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오래 기억되는 유산을 남겼다"라며 "필리핀, 인도네이사, 말레이시아, 중국, 호주, 네덜란드 등에서도 위안부 피해자들이 세상 앞에 나오도록 영감을 주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기사는 일본군 위안부를 '반인류 범죄'로 규정했던 게이 맥두걸 전 유엔 특별보고관이, 관련해 "내가 보고서에 쓴 어떤 대목도 김 할머니가 직접 증언한 영향력에는 근접하지 못한다"라고 말한 것을 전했다.
어렵게 위안부 수용소에서 탈출한 이후 김 할머니의 기구한 삶을 전한 NYT는 "당시에는 성범죄를 당한 여성 피해자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보다는 수치와 침묵 속에서 살도록 하는 문화 탓에 많은 피해자가 과거를 숨겨야 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할머니가 "일본은 위안부를 부정하지만, 내가 그 모든 것을 견뎌냈으며 그것이 실제였다는 살아있는 증거로서 항의하고 싶었다"라고 증언을 결심한 이유를 소개했다.
"김 할머니, 20세기의 가장 용감한 인물 중 하나"
한일 관계를 연구하는 알렉시스 더든 미 코네티컷대 교수는 NYT에 "김 할머니는 20세기의 가장 용감한 인물 중 하나"라며 "그의 증언 덕분에 역사학자들이 증거 문헌을 발굴하고, 유엔이 이를 전쟁 범죄로 규정하고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묻게 했다"라고 강조했다.
NYT는 "김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법적인 책임을 지고 보상할 것을 요구하며 지치지 않는 활동을 펼쳤다"라며 "하지만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인 1997년 7월 생전 마지막 육성 인터뷰가 담긴 유튜브 영상(바로보기)을 소개하며 부고 기사를 끝맺었다.
"100살이든 110살이든, 살아서 내 귀로 일본 정부와 일왕의 사과를 듣고 싶다.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기에 죽기 전에 증언하고 싶었고, (일본으로부터)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것 말고는 다른 소망이 없다."
오마이뉴스/ 윤현(yoonys21)
성남도공 사장 사퇴 종용 녹취’ 보도 소극적인 MBC 왜?
[비평] “시장님 명 받아” 성남도공 본부장 녹취 어떻게 보도했나
채널A ‘황무성·유한기 대화녹음’ 집중보도… SBS 두 꼭지, KBS 한 꼭지
별도 리포트 없던 MBC 뉴스데스크, 대신 이재명 해명에 집중
25일 지상파 방송사와 종합편성채널 저녁 메인뉴스가 주목한 사건은 2015년 당시 성남도시개발공사 초대 사장이었던 황무성씨가 사퇴를 종용받았다는 내용을 담은 녹음파일이다.
이날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에서 ‘황무성·유한기 대화녹음’을 공개했다. 두 사람 대화가 담긴 녹음파일은 ‘MBC를 제외한 방송사’들이 주목한 소식이다.
당시 유한기 공사 개발사업본부장이 이재명 성남시장, 정진상 성남시 정책실장, 유동규 성남도공 기획본부장 등을 언급하며 황 사장에게 물러나라고 하극상을 벌인 것인데, 특히 “시장님 명을 받았다”는 유 본부장 육성이 방송 전파를 타며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 채널A 메인뉴스 ‘뉴스A’는 25일 첫 번째 리포트 “‘시장님 명 받아’… 7번 등장한 ‘시장님’”에서 성남도시개발공사 초대 사장 황무성씨와 유한기 전 성남도공 본부장 대화 육성을 보도했다. 사진=채널A 화면
TV조선 ‘뉴스9’은 25일 녹음파일을 보도하진 않았지만 이 매체는 메인뉴스 시작 전 홈페이지에 녹취록 전문을 공개했다. TV조선은 “2015년 2월 대장동 개발사업 공모를 일주일 앞둔 시점에 유모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이 황무성 사장을 만나 사퇴를 종용한 녹취록 전문을 공개한다”며 “유모 본부장(유한기)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에 이어 ‘2인자’로 불리던 인물”이라고 했다.
이어 TV조선은 “당시 대화에서 유모 본부장은 정진상 당시 정책실장과 유동규 본부장을 수차례 언급하면서 사퇴 종용은 ‘지휘부’의 뜻이었음을 강조한다. 또 ‘시장’이란 단어도 7차례 등장한다”고 전했다.

▲ TV조선 ‘뉴스9’은 25일 오후 홈페이지에 녹취록 전문을 공개했다. 사진=TV조선 홈페이지
JTBC와 MBN 메인뉴스는 25일 오후 톱뉴스로 이날 오전에 벌어진 KT 통신 마비 소식을 전했으나 녹음파일 보도도 한 꼭지씩 전했다.
JTBC 뉴스룸은 “성남도공 초대 사장 ‘사퇴 압박’ 녹음파일 나왔다”는 제하의 리포트에서 “(두 사람) 대화가 이뤄진 날은 대장동 개발 민간사업자 공모지침서를 배포하기 일주일 전”이라며 “결국 황씨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다음달 사장직을 내려놨다. 그뒤 유동규 전 본부장이 사장 직무대행을 맡으며 대장동 개발 사업을 이끌었다”고 전했다.
MBN 종합뉴스도 ‘단독’을 달고 “‘황무성, 사직서 쓰고 재신임 받으라’”라는 제목으로 이 소식을 보도했다. MBN은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황무성 성남도공 초대 사장이 부하 직원으로부터 사직 압력을 받은 정황이 담긴 녹음파일을 MBN이 입수했다”며 “검찰은 황 전 사장의 사임과 관련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보도했다.

▲ KBS 뉴스9은 25일 다섯 번째 리포트 “황무성 사퇴에 이재명 측근 연루 의혹”에서 황무성·유한기 대화 음성을 보도했다. 사진=KBS 뉴스9 화면
MBC를 제외한 지상파 방송사 두 곳도 모두 보도했다. KBS 뉴스9은 다섯 번째 리포트 “황무성 사퇴에 이재명 측근 연루 의혹”에서 황무성·유한기 사이 대화 내용을 보도한 뒤 “검찰은 황씨 사퇴에 이른바 윗선 개입이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했다.
SBS 8뉴스도 열두 번째 리포트 “‘오늘 사직서 내세요’… 본부장이 사장 압박”과 곧바로 이어진 “40분 대화에 시장 7번 등장… ‘사퇴 종용 사과’” 리포트로 관련 소식을 전했다.
SBS는 “황무성 전 사장과 유한기 전 본부장의 대화에는 ‘시장’이라는 단어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며 “사퇴를 압박하는 상황에 당시 이재명 시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의심도 들 수 있는 부분인데, 유한기 전 본부장은 최근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온 뒤에 황무성 전 사장을 만나서 사과했다고 한다”고 했다.

▲ SBS 8뉴스는 25일 열두 번째 리포트 “‘오늘 사직서 내세요’… 본부장이 사장 압박”과 곧바로 이어진 “40분 대화에 시장 7번 등장… ‘사퇴 종용 사과’” 리포트로 관련 소식을 전했다. 사진=SBS 보도 화면
반면 MBC 뉴스데스크는 관련 소식을 별도 리포트로 전하지 않았다. 성남도공 초대 사장이 이 후보 측으로부터 사퇴 종용을 받았다는 내용은 검찰의 수사 내용을 전하는 리포트(“김만배·남욱 혐의 보강… 李 ‘공모지침서 직접 보고’ 부인”)에서 언급되는데, 이재명 후보 해명을 먼저 충분히 전하고 관련 의혹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MBC는 “이 지사는 측근인 정진상 당시 성남시 정책실장이 황무성 성남도시개발공사 초대 사장의 사퇴를 압박했다는 의혹에도 ‘전혀 사실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며 이 후보 해명에 집중했다.

▲ MBC 뉴스데스크는 25일 성남도공 초대 사장이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측으로부터 사퇴 종용을 받았다는 내용은 별도 리포트로 보도하지 않았다. 다만 검찰의 수사 내용을 전하는 리포트에 언급되는데,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 해명을 먼저 충분히 전하고 관련 의혹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사진=MBC 뉴스데스크
이후 MBC는 “앞서 황 사장은 검찰 조사에 나오면서 ‘사퇴 압박을 받았다’고 밝혔는데, 그 정황이 담긴 녹취파일이 최근 공개되며 파장이 일었다”며 “녹취록에는 유 전 본부장에 이어 도시공사의 두 번째 실세로 불렸던 유한기 전 개발사업본부장이 당시 황 전 사장에게 사퇴를 종용하는 과정이 드러나 있다”고만 전했다.
MBC를 제외한 주요 방송사들이 녹음파일 육성을 그대로 보도하거나 녹취록 전문을 공개했다는 걸 고려하면 매우 소극적인 보도다. MBC 뉴스데스크가 첫 소식으로 전한 내용은 공수처가 ‘고발사주 의혹’을 받는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보도였다./미디어오늘
누구는 못 받고 누구는 억? 퇴직금의 스펙트럼
퇴직금은 주 15시간 이상 근로자가 1년 이상 계속 근무할 때 발생합니다. 법령상 회사의 감독을 받아 일을 제공하고 임금 받고 일하는 사람을 근로자라고 합니다. 근로자인가 아닌가의 문제, ‘근로자성’은 퇴직금 소송에서 단골 쟁점입니다.
백화점 위탁판매원으로 의류 등을 판매하는 회사와 판매용역계약을 체결하고 백화점에 파견돼 매장 관리·판매 업무를 수행하는 ‘백화점 위탁판매원’의 근로자성을 부정한 사례가 있습니다(대법원 2020다207864). 최근까지 법원의 동향에 따르면 많은 직종의 분들이 퇴직금을 받지 못합니다. 보험설계사, 레미콘 차량 운전사, 도급제 신문 배달사원, 굴착기 소유자 겸 운전자, 아이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이돌봄인, 학습지 교사를 관리하는 지점장, 휴대전화 판매인, 자동차 카마스터, 미용실에서 동업 약정을 체결하고 일한 미용사는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퇴직금도 없다고 판단합니다.
퇴직금을 ‘쟁취’하는 사람들
최근 법원은 봉제공장에서 근로계약서 없이 작업량에 따라 급여를 받는 미싱사, 미싱보조원, 이른바 ‘객공’도 사용자의 지휘를 받고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라고 봤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0가합543664). 기존에 법원은 “객공의 어원에 비추어 보아도 사용자와 종속관계에 있는 근로자와 구별하기 위해 객공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왔다”라고 봐서 객공의 근로자성을 부정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법원은 이번에 “객공들은 매일 정해진 작업장에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조퇴·결근하면 미리 관리자에게 보고했다. 공휴일, 하계휴가 기간도 피고에게 고용된 다른 일반 직원들과 동일하게 적용됐다. 기본급이나 고정급 없이 작업량에 임가공단가를 곱한 금액을 지급받기는 했으나 매월 중순 무렵에 정기적으로 지급됐다. 피고는 작업지시서와 제품생산지시서 등을 통해 원고들의 봉제공정 업무수행에 관해 구체적으로 지시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근로자로 인정했습니다.
소송에서 어렵게 근로자로 인정받아 퇴직금을 받는 직업은 최근에 많아졌습니다. 고객을 대신해 결혼식장 예약, 혼수품 구매 등의 업무를 대행하는 웨딩플래너(대법원 2020도17654), 정수기 수리기사(대법원 2021다222914), 카드회사로부터 채권 회수 업무를 위임받아 추심 업무를 하는 채권추심원, 1~2년 단위 위탁계약 맺은 수도검침원, 방과 후 교사, 강의 위탁계약을 체결한 어학원 강사, 유아 체육강사, 대학입시 기숙 종합반 학원강사, 비율급제 학원강사 등도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근로자로 인정했습니다. 어느 기간제 교사는 364일 근무했다는 이유로 퇴직금 지급을 거부당했다가 대법원까지 가서 긴 싸움 끝에 퇴직금을 받기도 했습니다(대법원 2014다221074).
직업마다 획일적으로 볼 수는 없고 회사마다 사실관계가 달라 퇴직금이 긍정된 사례도, 부정된 사례도 존재합니다.
퇴직금 받는 근로자를 위한 팁
법으로 정한 퇴직금을 받는 대다수의 근로자를 위해 몇가지 소소한 팁을 제시해보겠습니다.
첫째, 퇴직 전 3개월간 시간외수당 최대한 많이 받기입니다. 예를 들면, 10년을 근무한 근로자가 마지막 3개월 월 평균임금이 250만원이면 퇴직금 2500만원, 마지막 3개월 잔업이나 특근을 많이 해 월 평균임금이 400만원이면 퇴직금 4000만원입니다(다만 DC형 퇴직연금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둘째, 연차휴가 안 쓰고 상여금 받고 퇴직하기입니다. 연차휴가는 사용하지 않을 경우 금전으로 지급해야 합니다. 퇴직 직전 1년간 상여금은 평균임금에 포함(1년간 받은 상여금 총액×12분의 3)됩니다. 최근에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성과급도 평균임금에 포함됩니다(대법원 2018다231536).
셋째, 4월 말에 퇴사하기입니다. 퇴직금은 분모(총 일수)가 적을수록 평균임금이 많아집니다. 예를 들면 월 급여가 400만원인 근로자가 4월에 퇴직하면 일 평균임금은 13만4831원(최종 3개월간 근무일수 89일), 만약 9월에 퇴직하면 13만434원(9월 퇴사는 92일)입니다. 조금이라도 늘어납니다.
넷째, 근속기간 늘리기입니다. 회사가 동의한 휴직기간은 휴직사유에 관계없이 근속연수에 포함됩니다(예를 들면, 육아휴직). 근로계약기간을 갱신 또는 반복하는 경우 근속기간 포함됩니다. 아르바이트에서 정직원 된 경우 아르바이트 시작일부터 근속기간으로 인정됩니다.
다섯째, 사직하는 경우 사직서 수리될 때까지는 무단결근하지 않기입니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수리(합의)될 때까지 출근하지 않고 무단결근하는 경우가 있는데, 무노동 무임금으로 퇴직금도 대폭 감액될 수 있습니다(이 경우 평균임금이 아닌 통상임금으로 산정하면 되지만 별도의 분쟁을 거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회사에서 ‘퇴직금 배수 규정’을 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법으로 정한 퇴직금이 1억원이고 2배수 규정이 있으면 2억원을 받고, 3배수 규정이 있으면 3억원을 받습니다. 원래 임원은 퇴직금이 없지만, 회사에서 임원 퇴직금 규정을 두고, ‘배수 규정’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기사에 의하면 롯데 2.5~3배, LG는 2.5~5배, 삼성은 1~3.5배, SK는 2.5~4배라고 알려졌습니다.
어떤 좋은 회사는 임원이 아닌 직원에게도 퇴직금 배수 규정을 두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1~10년차는 1배수, 10~15년차는 1.3배수, 15~20년차는 1.6배수, 20년차 이상은 2배수입니다. 혹시 우리 회사도 이런 규정이 있는지 알아보기 바랍니다.
어떤 회사에서는 50억원의 퇴직금을 받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6년간 근무한 해당 근로자의 월급 383만원 기준으로 예상 퇴직금은 대략 2100만원입니다. 50억원을 기준으로 볼 때 약 230배수입니다.
참고로 회사 경영상황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거액의 퇴직금 지급 규정 제정은 배임행위에 해당하고, 주주총회결의를 거쳤다 하더라도 그러한 위법행위가 유효하다고 할 수 없다는 판례가 있습니다(대법원 2014다11888). 대표이사의 거액의 기부행위를 업무상 배임죄로 인정한 판례에 비춰봐도 문제가 큽니다. 더 중요한 것은 법으로 정한 퇴직금 받기 위해 또는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애쓰는 평범한 시민에게 의문의 패배감을 주었다는 점입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
시 곳간이 시민단체 ATM”이라더니…근거 못대는 서울시
오세훈 시장, 무리한 ‘박원순 지우기’
오 시장 지난달 ‘비판 회견’ 관련
시의회 질의에 제대로 설명 못해
시 감사위 독립성도 훼손 우려
“박원순 중점사업 쥐 잡듯 뒤져”
“서울시 곳간은 시민단체 전용 에이티엠기(ATM·현금자동인출기)로 전락했다. (중략) 지난 10년간 민간보조금과 민간위탁금으로 시민단체에 지원된 총금액이 무려 1조원 가까이 된다. 집행 내역을 일부 점검해보니 정말 안타깝기 짝이 없다.”
지난달 13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발언이다. 오 시장은 이날 ‘서울시 바로 세우기―비정상의 정상화’ 브리핑을 열어, 전임 박원순 시장 시절 추진됐던 민관협치, 민간 위탁 사업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자금 창구’ ‘쌈짓돈’ ‘다단계 피라미드’ 등 범죄를 연상시키는 단정적인 표현까지 등장했지만, 구체적 데이터나 자료는 제시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샀는데, 관련된 서울시의회의 질의에도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에 1조원? 선정 근거도 못 내놔
당시 오 시장은 “지난 10년간 민간보조금 또는 민간위탁금이라는 명목으로 직접 또는 자치구를 통해 시민사회와 시민단체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시는 2012년부터 올해까지 10년간 민간위탁금으로 5916억9300만원, 민간보조금으로 4304억7500만원 등 모두 1조221억6800만원을 지원했다는 자료를 서울시의회 운영위원회(위원장 김정태)에 제출했다.
문제는 이 내역이 △도시재생 △사회적 경제 △주민자치 △협치 △주거 △청년 △노동 △도시농업 △환경 △에너지 △남북교류 등 12개 분야만 따로 분류해 산출해낸 수치인데다, 이 기간에 서울시 전체 민간 위탁·보조금의 6%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집행액의 94%의 쓰임새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언급 없이, 전임 시장이 힘주어 추진했던 과제에 투입된 6%만 문제를 삼은 모양새다. 서울시 담당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과거 시의회 등에서 문제가 지적됐던 사업들”이라면서도 구체적 지적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감사가 끝나는 대로 소상하게 설명하겠다”고 했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시 한 간부는 “그간 시의회에서는 12개 분야 외에도 민간 위탁 업무 전반(의 문제점 등)을 살펴봤다. 이번에는 박원순 시장이 중점 추진한 분야만 골라 좌표를 찍고, 쥐 잡듯 뒤져서 문제점을 찾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에 중복지원? 거짓말 수준 왜곡
당시 오 시장 발언 가운데 일부는 사실관계가 틀리거나, 고의로 사실관계를 왜곡한 듯한 부분들도 확인됐다. 일부 시민단체가 “사용한 경비를 투명하게 밝힌 정산보고서도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시민협력국·미래청년기획관 등 담당 부서들은 관련된 시의회 질의에 “해당하는 센터(민간기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결국 근거도 없이 민간 위탁기관들을 비리의 소굴처럼 보이도록 몰아붙인 셈이다.
또 “검증되지 않은 기관에 위탁된 공공시설들”이 운영되고 있다는 오 시장 언급과 관련해서도 실무 부서에서는 시의회 쪽과 통화에서 “검증되지 않은 기관에 어떻게 사업을 줄 수 있겠느냐”는 속내를 내비쳤다고 한다.
“특정 시민단체 중복지원은 허다했다”는 오 시장 발언은 교묘한 왜곡 비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시는 지난 10년간 서울시 지원을 받은 9016곳 가운데 두번 이상 지원을 받은 곳은 98곳(1.1%)이라고 밝혔다. 비중이 미미할뿐더러, 운영 성과 등을 언급하지 않고 중복지원만 놓고 ‘특혜’인 것처럼 몰아붙인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최근 3년간 네차례 청년기관을 운영한 ‘성북신나’는 성과 평가가 80점 이상으로 우수하고, 이용자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김정태 위원장은 “마을이나 청년, 이런 분야에 인력 풀이 그렇게 많지 않다. 응모가 없어 사명감으로 일하는 곳을 두고 중복지원이고 특혜라 하면 그건 ‘거짓말’ 아니겠냐”고 말했다.
오 시장은 또 전임 박 시장이 시민단체들을 지원하기 위해 ‘대못’을 박아가며 과도하게 보호·지원했다고 주장했지만, 박원순 시장 재임 9년 동안(2011년 10월~2020년 7월) 민간 보조금·위탁금 관련 감사 횟수는 43차례인데, 오 시장 재임 5년 동안(2006년 7월~2011년 8월) 감사는 9차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너머 새로운 서울을 만드는 사람들’ 등 서울 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26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내년도 서울시 예산안에서 주민자치와 노동·민생 영역 예산이 마구잡이로 삭감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오세훈 시장에게 이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내부 규정까지 바꿔 무리한 ‘답정너 감사’
이와 함께 서울시 감사위원회의 독립성 훼손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오 시장 취임 이후 서울시 감사는 사회적기업, 태양광, 노들섬, 사회주택, 청년, 플랫폼창동, 혁신센터, 공공급식 등 모두 전임 시장 중점사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위해 관련 규정까지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5일 ‘민간위탁 관리지침’의 ‘종합성과평가와 특정 감사 중복 시 업무부담 경감을 위해 특정 감사를 다음 해로 유예’한다는 규정에 ‘시 감사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같은 해에도 특정 감사를 실시할 수 있음’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여기에 오 시장은 지난 7월 기존 개방형 직위였던 감사위원장 자리에 내부 직원인 이해우 국장을 임명하기도 했고, 이 위원장은 지난달 13일 오 시장의 ‘서울시 바로 세우기’ 브리핑에 배석해 감사위 독립성 훼손 논란을 자초했다. 이에 시 안팎에서는 “‘답정너’ 감사를 위한 무리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민간 위탁이나 보조금 집행과 관련해) 행정이나 회계 처리에 미숙한 민간단체들을 사전에 충분히 교육하고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는 서울시 공무원들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객관적인 자료 제시 없이 언론브리핑을 통한 무분별한 비판은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서울시마을법인협의회와 서울시민사회네트워크, 서울마을활동가연대, 사단법인마을 대표들이 지난 20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는 서울의 지역시민사회에 대한 원색적인 정치적 공격을 중단하고 서울시민을 위한 정상적 시정에 집중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단체에 세금 1조?…“뻥튀기·짜깁기 도 넘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시민단체 1조원 지원’ 발언을 두고서는 1조원 자체가 상당 부분 과장된 수치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9일 서울시가 언론에 배포한 자료에서 1조원 가운데 민간보조금은 4304억7500만원이라고 밝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을 통해 입수한, 서울시가 최근 백혜련 의원실에 제출한 ‘오세훈 시장, 9·13 기자회견 관련 2020년 민간보조금 지원 현황(12개 분야)’ 자료를 보면, 2020년 서울시가 지원한 민간보조금은 624억5800만원이다. 여기에는 미집행액 127억1700만원이 포함됐다. ‘자치구 및 민간 축제 지원 육성’ 사업비(25억원) 등 항목인데, 편성됐지만 실제 지원은 이뤄지지 않은 예산이다.
민간보조금 항목에는 시가 자치구에 지급하는 ‘자치단체 경상지원금’ 241억2500만원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서울시의 지방보조금 운영·관리지침상 자치단체 경상지원금은 민간보조금이 아니라 자치구에 주는 지원금(공동단체 보조금)으로 분류된다.
결국, 민간보조금 가운데 미집행액과 자치단체 경상지원금을 제외하면 시가 민간단체에 지원한 예산은 279억8600만원(중복예산 제외)으로 줄어든다. 10년 동안 4304억이란 액수도 상당 부분 부풀려진 액수일 수밖에 없다.
이 밖에 시민단체 민간보조금 지원 예산에는 <조선일보>(서울형 햇빛발전 지원 380만4000원), <경향신문>(주민역량강화사업 2500만원), <문화방송>, <불교방송> 등 언론사도 포함돼 있었다. 서울대학교 등 10개 대학, 한화솔루션 등 대기업 계열사 등이 지원받은 예산 104개도 민간보조금 지원 현황에 포함했다.
윤순철 경실련 사무총장은 “2020년도 자료를 보면 많은 수치가 오 시장의 ‘서울시 바로 세우기’ 정책을 위해 짜깁기 형태로 끼워 맞춰져 있다”며 “시는 1조원이 어떤 사업 예산인지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인호 시 보조금관리팀장은 “미집행 예산이라도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하고자 예산이 세워졌기 때문에 편성액을 중심으로 수치를 구하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자치단체 경상지원금은 자치구로 내려주는 예산이지만, 시민사회단체에 지원되는 예산이라 1조원에 포함시켰다”고 했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노태우 ‘국가장’…시대의 상처를 덧내다
정부 국가장 결정…시민사회 반발
5·18단체들 “용납할 수 없어…노 정부의 숱한 탄압에 고통”
심상정 “오월의 상처 망각…내란죄에 국가장은 상식밖”
여당 일각도 “가당찮은 예우”

정부가 노태우 전 대통령 장례를 닷새간의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한 27일, 대구 달서구 안병근올림픽기념유도관에 마련된 국가장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12·12 사태와 5·18 민주화운동 등과 관련된 역사적 과오가 있으나 직선제를 통한 선출 이후 남북기본합의서 등 북방정책으로 공헌하고, 형 선고 뒤 추징금을 납부한 노력 등이 고려됐다.”(황명석 행정안전부 의정담당관)
“국가장의 취지인 국민 통합은 온전한 반성과 사죄가 있어야 가능하다. 학살자들은 시민들에게 사과한 적 없고, 우리 시민들 또한 사과받은 적 없다.”(광주 5·18 관련 단체들 성명)
정부가 27일 오전 국무회의를 열어 노태우 전 대통령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되 국립묘지에는 안장하지 않기로 결정하자, 시민사회는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반발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노씨와 그 가족이 추징금 납부와 광주학살 관련 사과조차 거부하고 있는 전두환씨와는 다른 행보를 걸었지만, 헌정을 유린한 이에게 국가장은 가당치 않은 예우라는 주장이다.
이날 오전 ‘고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 계획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정부는 본격적인 장례 준비에 나섰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국가장 장례위원장을,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이 장례집행위원장을 맡았고, 장례위 고문단 구성 작업이 진행 중이다. 장례 명칭은 ‘고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이며 오일장으로 26~30일 장례를 치른다. 장례 마지막 날인 30일 치러지는 영결식과 안장식 장소는 장례위원회에서 유족 쪽과 논의해 결정할 예정이다. 국가장 기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은 조기를 게양한다.
하지만 광주 5·18단체들은 “용납할 수 없다”며 즉각 반발했다. 김영훈 5·18민주유공자유족회 회장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우리 유족들은 전두환뿐 아니라 노태우 정부 밑에서도 숱한 탄압을 받았고 여전히 그때의 고통을 기억하고 있다. 노씨는 내란죄로 대법원에서 유죄를 확정받았기 때문에 국가장과 국립묘지 안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부가 이런 결정을 한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말했다. 유족회와 부상자회, 구속부상자회, 5·18기념재단 등도 성명을 내어 “국가의 헌법을 파괴한 죄인에게 국가의 이름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한 정부의 결정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군인권센터도 성명을 내어 “문재인 정부는 군인이 권력을 탈취하기 위해 국민을 학살하고, 휘하 부대를 움직여 상관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켜도 일단 집권만 하면 지도자로 추앙해줘야 한다는 잘못된 전례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대선 후보인 심상정 의원은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내란죄를 범한 전직 대통령의 국가장 예우를 박탈하는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겠다고 하는 것은 국민 상식에도 벗어나고, 역사의 무게와 오월의 상처를 망각한 것”이라며 “국가장 결정은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 국민의 가치관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당 일각에서도 반발하는 분위기다. 당 지도부는 ‘고심 끝에 내린 정부의 결정을 따른다’고 밝혔지만, 광주를 지역구로 둔 의원들을 중심으로 유감 표명이 잇따랐다.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광주 동·남갑)은 이날 <한겨레>에 “국가장 결정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유감을 표명한다”며 “소위 내란수괴 혐의를 받았고 국가권력을 국민을 살상하는 데 사용한 전직 대통령 노태우씨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예를 갖춰서 장례를 치르는 것을 많은 국민이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조오섭 의원(광주 북갑)도 “광주시민을 학살한 사람인데 국가장을 치르면 광주시청에 조기를 게양하고 분향소도 설치해야 한다. 이런 역사적 아이러니가 어디 있느냐”며 “(예우가 박탈된 전직 대통령 국가장을 금지하는) 법률 개정안을 빨리 처리하지 못한 우리의 책임도 있다. 매우 안타깝고 착잡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인 민형배 의원(광주 광산을)도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자기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며 “무력감을 주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양진 김용희 박경만 이주빈 기자 ky0295@hani.co.kr
비정규직 800만명에 더 벌어진 임금 격차, 정부는 뭐했나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상 처음으로 800만명을 돌파했다. 26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8월 기준 비정규직 노동자는 모두 806만6000명으로, 지난해 대비 64만명 증가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중도 38.4%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대로 정규직 노동자는 지난해보다 9만4000명 줄어들었다. 코로나19 사태가 2년째 지속되면서 안정적인 일자리는 줄고 불안정한 일자리가 느는 노동시장의 악화가 통계로 확인된 것이다.
전체 임금노동자는 지난해 2044만명에서 올해 2099만명으로 늘어났다. 코로나19 첫해인 지난해에 전체 임금노동자가 이전 해(2019년)보다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다소 나아진 것이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증가하는 일자리 대부분이 비정규직 노동자로 채워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비정규직의 자발적 선택 비중, 임금 수준, 고용보험 가입률 등 주요 노동여건 지표는 상당폭 개선됐다”며 여러 측면을 두루 살펴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이 무색하게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임금 격차는 더 벌어졌다. 정규직 노동자는 최근 3개월 월평균 임금이 지난해 323만4000원에서 올해 333만6000원으로 증가했다.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지난해 171만1000원에서 올해 176만9000원으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일자리 증가를 주도하는 것이 정부 공공 일자리 사업인 데다 그것도 60세 이상의 고용 증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점도 긍정적 해석을 어렵게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직후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은 자리에서 “임기 내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비정규직 문제를 적극 해결하겠다는 선언적인 의미가 큰 발언이었지만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거꾸로 가고 있다. 문재인 정권 후반기 들어 비정규직들의 형편은 더욱 열악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집계에 따르면 한국의 비정규직 비중은 회원국 가운데 콜롬비아와 1, 2위를 다투고 있다. 정부가 한 약속은 무엇이며, 그 많은 정책은 어떻게 된 것인지 당혹스럽다. 코로나19도 다른 나라보다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정부가 지금 할 일은 낙관적인 해석을 내놓는 게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10명 중 4명에 육박하는 노동시장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줄이는 활동도 강화해야 한다./ 경향 사설
백종원을 믿지 마세요
얼마 전 '백종원 게임'이라는 걸 알았다. 술자리 게임인데, 음식 이름을 얘기하고 그 자리에서 검색을 해서 그 음식의 '백종원 레시피'가 나오지 않으면 승자가 되는 게임이다. 어지간한 음식은 다 백종원 레시피가 있어서(심지어 그 음식을 파는 백종원의 프랜차이즈 매장도 있고) 가능한 게임이다.
게임은 모든 음식에 레시피를 제공하는 '대 백종원 시대'를 풍자하는 것이겠지만, 조금 다른 생각도 해봤다. '우리는 그 게임에서 몇 가지의 음식을 댈 수 있을까?' 점심시간 혹은 저녁 술자리의 초입에 늘 고민한다. '오늘은 뭘 먹지?'. 그래봤자 떠올릴 수 있는 음식들은 뻔하다. 몇 안 되는 후보군을 놓고 갑론을박을 이어가지만 이내 돌아오는 대답들이란 '그건 얼마 전에도 먹었어', '또 그거야?', '지겹지도 않냐?' 따위의 말들이다. 그건 어쩌면 상상력의 부재일까.
주말 데이트에 앞서 어떤 음식이 먹고 싶다는 연인의 문자를 받으면, 네이버를 검색한다. 음식이름을 검색하면 백종원 레시피만 줄줄이 나올 것이 뻔하니 '맛집' 키워드를 함께 넣는다. 하지만 이번에 나타나는 것은 스폰서 링크와 광고, 광고일 것이 분명한 맛집 기사들이다. 벌써 꽤 지난 농담이지만 '오빠랑'이라는 키워드를 함께 검색하면 찐 맛집이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오빠랑'도 광고에 점령당한 지 오래다.
가까스로 괜찮아 보이는 맛집을 발견해서 찾아가면 웨이팅만 1시간 30분이다. 예약도 안 되는 집이건만, '왜 예약도 안했냐?'는 핀잔이 돌아온다. 함께 1시간 30분을 기다려야 하는 이들 모두 다 비슷한 과정을 거쳐 왔겠지. 그러다 1시간 30분을 기다려 먹고 나오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1시간 30분을 기다릴 만큼 맛있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보다는 '왜 다들 똑같이 맛있다고만 하는 거지?, 나만 이상한가?' 같은 의문.
백종원과 황교익, 그보다는
한때 각광받던 미식평론가였던 황교익은 "떡볶이는 맛없는 음식"이라고 말했다가 된통 서리를 맞았다. 그러게 내가 들어도 참 얄미운 말이다(더구나 떡볶이 광고까지 찍었으니, 미워해달라고 애를 쓴 셈이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저도 먹고 싶다는 국민 소울 푸드 떡볶이를 맛없다고 하다니.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서 행복을 주고 있는 떡볶이의 위상과는 별개로, 떡볶이는 건강에도 별로 좋지 않고 결코 맛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음식이긴 하다. 특히 최근의 떡볶이들이란 소시지와 고기와 해물을 비롯해 온갖 (맛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잔뜩 넣어서 뒤죽박'죽'을 만들고 뒤섞인 맛을 감추기 위해 설탕과 캅사이신을 더 잔뜩 넣고, 그 자극적인 매운맛을 중화하기 위해 싸구려 치즈를 덮은 음식.

사실 지금 떡볶이는 괴식에 가깝다. 영양 면에서도 좋은 음식이기 어렵다. 밀가루나 쌀로 만든 떡은 탄수화물 함량이 너무 높다. 고추장도 장 자체에 당분이 매우 많은데 거기에 설탕을 한가득 집어넣어 소스를 만든다. 곁들이는 사리들도 면과 튀김 같은 고열량의 것들이다.
떡볶이를 사랑하고 좋아할 순 있지만 그 떡볶이를 맛있고 좋은 음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떡볶이에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말했듯 죽기 직전에도 생각나는 소울 푸드가 반드시 매우 맛있고 엄청 건강할 음식일 필요는 없다. 음식이란 것도 TPO가 있으니까. 황교익이 욕을 먹는 건 호오의 문제를 시비의 문제로 몰아세웠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대 백종원의 시대'를 이끌어가는 정서는 '용이성'이다. 누구나 쉽게 접근하는 맛,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레시피. 쉽게 접근하는 맛이란 익숙하고 자극적이어서 쉽게 '맛있다'고 여겨지는 맛이다. 김치찌개에 설탕을 들이붓고, 마가린으로 호떡을 굽는 맛. 나아가선 그 쉬운 맛을 표준화 한다. 프랜차이즈다. 더 싸고 더 쉽게 더 빨리 더 많이 만들어서 사람들을 더 많이 끌어 모으는 음식을 맛있고 좋은 음식으로 강변한다.
'음식장사'와 '음식' 자체를 분리하지 않음으로 사람들이 좋아하고 장사가 잘되는 음식과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구분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리하여 '대 백종원 시대'의 토대는 자본주의다. 표준화된 레시피로 저가의 음식을 대량생산하여 온갖 골목을 한 가지 프랜차이즈로 장악하는 풍토. 경리단 골목을 자기 프랜차이즈로 도배했던 장진우는 어느 광고에서 "레시피보다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사꾼에게는 틀린 말이 아니겠지만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말이다.
황교익은 떡볶이를 맛없는 음식이라고, 맛없는 음식엔 가치가 없다고 폄훼하는 것으로 떡볶이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을 맛없는 것을 좋아하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그들의 취향을 무시한 것. 백종원(으로 대변되는 요식 프랜차이즈의 아이콘들)은 맛없는 음식도 잘 팔리면 맛있는 음식이라고 여기는 최면을 걸었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의 취향을 '몰수'했다. 그래서 백종원 얘기가 맞는지, 그래서 <백스피릿>과 <골목식당>의 맛집이 맛있는지, 황교익 얘기가 맞아서 <수요미식회>의 맛집이 맛있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 어느 쪽에도 우리의 '취향'은 없기 때문이다.
실은 몰취향의 시대
개취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 취향이 어디서 왔는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실은 많은 취향 아닌 것들이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됐다. 취향을 갖는 것은 많은 노력과 경험, 단련을 필요로 한다. 백종원이 만든 김치찌개와 백종원이 만들지 않은 김치찌개만을 경험해 본 이가 김치찌개 취향을 이야기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여러 가지를 해봐야 각각의 차이를 알게 되고 차이를 알아야 장단을 발견하고, 구조와 문법을 이해하고, 그 후에야 비로소 취향이라는 것이 '발생'한다.
취향은 원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발생한 것을 훈련하여 발현시키는 것이다. 표준화된 맛의 프랜차이즈가 지배한 골목에선 취향이 발생하지 않는다.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표준을 주입할 뿐이다. 그것이 힙이나, 유행, 패션, 핫플 같은 외피로 꾸며진다고 해서 그것이 취향이 되진 않는다.
표준화된 시장에서 강요를 선택으로 착각하는 삶은 자기의 얼굴이 무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달걀귀신의 세계와도 같다. 동어반복의 영화와 음악이 만들어지고 더 많은 사람이 볼수록 더 많이 열광하는 것을 자기의 취향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세계를 확장하여 선택지를 넓혀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이것과 저것 중 하나만을 고르는 세계를 만든다. 맥락을 고려하고 사유를 확장하는 것을 귀찮아하게 되고 그것을 엘리트주의라 비판하게 된다.
몰취향이 잉태하는 것은 어쩌면 반지성의 사회다. 이는 '대중이 선택한 것이 오직 옳은 것', 그보다는 '소비자가 구매하는 것이 오직 옳은 것'이라는 자본주의적 알리바이에 기인한다. 그러나 대중, 소비자는 선택하지 않았다, 선택을 강요받았을 뿐이지.
몰취향의 강요를 개취의 선택으로 착각한 결과 새마을식당에 줄을 서고, <해운대>를 천만관객이 보고, 영화평론에 명징, 상승, 직조라는 단어를 썼다고 엘리트주의라 비난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성소수자를 혐오할 권리도 취향이라고 다양성이라고 우기는 반지성의 시대를 만들었다. 취향을 만들지 못해서 모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거대한 한 개의 자본이 만든 영화를 보면서도 그것을 유행에 충실한 힙스터(이건 정말 고전적이면서 현대적인같은 말이다. 유행 타는 힙스터라니)라고 말하는 지루한 사회를 만들었다. 몰취향의 문제는 사실 떡볶이의 문제만이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한국에 '취향' 같은 말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모두가 똑같이 머리를 빡빡 밀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생각을 강요받으며 똑같은 말을 하고 똑같은 노래를 들으며 똑같은 독재자를 찬양하며 사는 나라에 취향 같은 건 가당치 않았다. 취향이란 결국 '자기 자신'을 명확히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 학교 현관엔 현관문보다 큰 글씨로 단결과 통일이라고 적힌 액자가 붙어 있었다. 폭력과 야만의 시대였다. 폭력과 야만의 자리는 자본과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옷을 갈아입었을 뿐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몰취향의 시대.
그리하여 백종원 게임이 가능한 건 백종원이 정말 모든 음식의 레시피를 공개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아는 음식 종류가 몇 개 안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취향이 없는 우리들. 당신의 소울 푸드를 무시하는 황교익도, 마가린이든 설탕이든 다 때려넣고 잘 팔리는 음식이 좋은 음식이라고 말하는 백종원도 틀렸다. 그들은 이 몰취향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네이버 검색해서 나오는 맛집이면 다 맛있다고 여기며 더는 고민하지 않는 게으른 당신과 나는 이 몰취향의 시대를 지탱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취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사유하고 노력하고 단련해야 한다는 말이다. 더 많이 먹어보고, 더 많이 듣고, 보고, 감각하고 경험하고 이야기하는 것. 그렇게 발생한 것들을 갈고 닦아 다시 발현하는 것. 어렵고 지루하고 고단한 일. 하지만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면, 더 좋은 세계를 더 다양하게 살고 싶다면 그 정도 노력은 해내야 한다. 그래도 백종원 프랜차이즈에서 1시간 30분 대기하는 것보단 쉬운 일이지.
오마이뉴스 성지훈(acesjh)
무분별한 외신 받아쓰기, 언론은 김정은을 몇 번 죽일 것인가
북한뉴스 검증 ‘패싱’ 관행 오보, 게으른 언론 탓
‘김정은 사망설’이 또 등장했습니다. 10월23일 미국 타블로이드 잡지 ‘글로브’는 미국 정보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쿠데타를 통해 김 위원장을 축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9월19일 도쿄신문이 “북한 정권 수립 기념일 행사(9월9일)에 등장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역”이라는 기사를 낸 지 한 달 만에 김 위원장 ‘신병 이상설’이 다시 등장한 것입니다. 국내 언론은 곧바로 사망설과 대역설을 인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반복되는 김정은 위원장의 사망설’을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는지 살펴봤습니다.
반복된 외신 받아쓰기

▲ 10월24일, 미국 타블로이드 잡지 ‘글로브’ 표지를 보도한 한국경제
미국 글로브 보도를 가장 먼저 인용한 언론은 한국경제로 <“북 김여정, 쿠데타로 김정은 제거 후 대역 사용”…미 타블로이드 보도>(10월24일 정인설 기자)입니다. 한국경제는 글로브가 “미국 정보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이 지난 5월6일부터 6월5일 사이 비밀 쿠데타를 일으킨 김여정에 의해 살해됐다’고 보도”했으며 “지난달 9일 북한 정권수립 기념일 행사 때 갑자기 등장했는데 이때는 대역 인물”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어 “김정은과 9월 행사(북한 정권수립 기념일) 참석자는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았으며 안면인식 기술을 통해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경제는 “지난해부터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과 ‘사망설’이 주기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지만 “가짜 뉴스로 판명 났”고 국정원이 “이번 글로브 보도에 대해서도 ‘미국 언론에서 보도한 북한 쿠데타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고 덧붙였습니다.
뉴스1 <“북 김정은 사망?… 9·9절 등장은 대역”-미 타블로이드>(10월24일 정윤미 기자)는 ‘미주간지 글로브’가 “최신호 1면에 ‘김정은은 죽었다!’”고 보도했으며 “이번 호에서 타블로이드판 두 페이지 분량을 할애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1면에) 밝은 표정의 김 위원장 모습이 담긴 사진 2장”과 “하단에는 작게 김 부위원장 사진도 첨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매일신문 <또 ‘김정은 사망설’… “북 김여정, 올해 5, 6월 김정은 살해”>(10월24일 이수현 기자)도 한국경제 기사와 동일한 내용으로 글로브 보도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한국경제와 달리 반복된 ‘김정은 건강 이상설’은 가짜뉴스로 판명 났으며 이번 사안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밝힌 국정원의 주장은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매일신문이나 뉴스1을 보는 독자는 ‘김여정 쿠데타설’을 사실이라고 오인할 수 있게 만드는 문제 보도입니다.

▲ 10월25일, 미국 비즈니스인사이더 홈페이지 사진을 보도한 여성신문
여성신문 <미 언론, ‘김정은 후계 준비’ 추측 보도.… 국정원 “사실 아냐”>(10월25일 유영혁 기자)는 미국 인터넷신문 비지니스인사이더(BUSINESS INSSIDER)가 “김여정의 쿠데타설 보도에 이어 이번에는 ‘후계자’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고 전했습니다. 여성신문은 비즈니스인사이더의 “추측성 보도”라면서도 “북한이 김정은 없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 것”, “지난 1년간의 전개는 북한이 비공개로 김정은이 정말로 사라질 날을 준비하고 있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는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했습니다. 이어 글로브 김여정 쿠데타설 보도까지 덧붙여 확인되지 않은 기사를 재생산했습니다.
외신 보도라면 검증 없이도 믿을 만한가
북한 내부정보 취재가 어렵다고 해도 언론은 대북 보도의 경우 최소한 사실관계 확인을 해야 하며, 알려지지 않는 보도를 인용할 땐 도움 될 정보를 함께 실어 독자 이해를 도와야 합니다.
중앙일보 <미 매체 “김여정이 김정은 죽였다” 쿠데타설에 국정원 반응은?>(10월24일 박현주 기자)은 “실제 김 위원장이 6월 이후 공개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글로브 보도와 달리 김 위원장은 8월 28일 청년절을 맞아 청년들을 만나 사회주의 사상을 강조한 뒤 기념사진도 찍었다”며 글로브 보도의 허점을 짚었습니다.
뉴데일리 <“김여정 쿠데타, 김정은 사살설…사실 아니다” 국정원, 외신 보도에 신속대응>(10월25일 전경웅 기자)은 정작 “해외에서는 이 보도에 무관심하다”며 글로브가 “1년 전에도 같은 보도로 공식 석상에서 웃음을 샀다”고 비판한 미국 블로그 ‘보잉보잉’ 의견을 함께 보도했습니다.
파이낸셜뉴스 <김여정의 김정은 제거 쿠데타설… 국정원 ‘사실무근’>(10월24일 김경수 기자)은 “글로브는 그동안 주로 전세계 유명인들에 대한 자극적인 보도를 해왔”으며 “최근에는 죽어가는 영국여왕이 윌리암 왕세자를 왕으로 세우려 한다고 1면 보도했”고 “부시 전 대통령의 코카인 연루설, 호텔에서 포착된 오바마와 미녀 등 자극적인 기사를 써왔다”고 짚었습니다.
김정은 신병 이상설 적극 보도한 세계일보·MBN
김정은 위원장 신병 이상설을 전한 국내언론 보도를 분석하기 위해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김정은’을 검색한 결과, 9월 19~20일 도쿄신문 대역설을 인용한 기사는 34건이고 10월 24~25일 글로브지 사망설 보도를 인용한 기사는 50건으로 나타났습니다. 세계일보, MBN은 김정은 신병 이상과 관련된 보도를 매번 2건씩 보도할 정도로 가장 적극적이었습니다. 뉴시스, 서울신문, 중앙일보, 한국경제, SBS도 10월 글로브의 사망설 보도를 2건씩 받아썼습니다.

▲ 9월19~20일, 10월24~25일, 네이버 기준 김정은 신병 이상설 보도한 언론. 표=민주언론시민연합
세계일보 <홀쭉해진 김정은, ‘대역’ 썼나… 의혹 제기한 일 언론>(9월19일 김태훈 기자), 세계일보 <‘다이어트는 최고의 성형?’ 김정은 대역 가능성 제기한 일 언론>(9월20일 현화영 기자)은 모두 도쿄신문 보도를 근거로 하고 있으며 내용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세계일보 <국정원, ‘김여정 쿠데타’ 미 타블로이드 보도에 “전혀 사실이 아니다”>(10월24일 이도형 기자), 세계일보 <“김여정, 쿠데타로 김정은 제거 후 대역 썼다”… 미 글로브 보도에 우리 정부 “사실 아냐”>(10월24일 강민선 온라인 뉴스 기자) 역시 미국 글로브 보도를 전달한 유사 기사였습니다.
뉴시스, 매일신문, 서울신문, 중앙일보, 한국경제, MBN, SBS 역시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수준으로 보도했습니다. 사실 확인도 안 된 내용이 기사로 재생산되면 이슈는 과장되고 비슷한 내용의 저질 기사만 난립하게 됩니다. 이를 경계해야 할 언론은 이번에도 이런 관행을 되풀이하는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북한뉴스 검증 ‘패싱’ 관행, 한 달 전엔 ‘김정은 대역설’

▲ 오보로 판명난 북한 관련 기사. 위부터 MBN(2020년 4월21일), 연합뉴스(2015년 05월12일), 조선일보(2013년 8월29일)
김정은 사망설, 고위 인사 처형설 등 북한 관련 헛소문은 언론의 단골 오보 레퍼토리입니다. 1986년 조선일보 김일성 피살설 오보, 2013년 현송월 총살설 오보, 2020년 국내 언론이 대거 받아쓴 CNN 김정은 사망설 오보 등에서 볼 수 있듯 북한 관련 보도에서 사실 검증은 ‘안 해도 그만’이 된 지 오랩니다. 북한의 특수성 탓에 사실 확인이 어렵다는 한계도 있지만, 검증을 할 수 없다면 기사를 쓰지 않거나, 최대한 여러 취재원에게 사실 가능성을 확인해보는 게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입니다.
그런데 불과 한 달 전에도 언론은 글로브 보도를 받아쓰기한 것과 판박이 기사를 냈습니다. 9월 19일 ‘북한 정권수립 기념일(9·9절) 행사 때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본인이 아니라 대역일 수 있다는 의혹을 도쿄신문이 제기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연합뉴스 <“살 쏙 빠진 김정은 혹시…” 도쿄신문, 대역 의혹 제기>(9월19일 박세진 기자)에서 시작된 ‘김정은 대역설’ 옮겨쓰기는 이데일리, 경향신문, 디지털타임즈, TV조선, MBN, 서울신문, 머니투데이 등 총 34개 매체에서 반복됐습니다. “전했다”, “주장했다”, “거론했다”며 외신을 ‘복붙(복사붙여넣기)’ 수준으로 받아썼습니다.
이들 보도를 보면, 도쿄신문은 ‘대역설’ 근거로 “한국 국방부에서 북한분석관으로 일했던 고영철 다쿠쇼쿠대학 주임연구원의 주장” 하나를 내세웠고,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는 북한정치학자 의견도 함께 실었는데요. 기사 안에서도 주장이 엇갈리고 있지만, 제목엔 ‘대역설’을 앞세웠습니다. 더불어 도쿄신문과 이 신문이 언급한 두 학자의 주장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최소한의 검증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경제 <[천자 칼럼] 가게무샤(影武者)>(10월25일 홍영식 대기자)는 사실 여부가 불분명한 9·9절 김정은 대역설을 두고 “분명한 것은 ‘가게무샤’설이 나오는 자체가 김정은 체제가 불안하다는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 ‘가게무샤’는 ‘적을 기만하거나 아군을 장악하기 위해 세우는 대역’을 뜻하는 일본말인데요. 각종 ‘설’이 난무하는 건 이를 검증조차 하지 않고 받아쓰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태도에 그 원인이 있지 않은지 살펴보는 게 게 먼저 아닐까 싶습니다.
게으른 북한 뉴스 취재, 남북관계 걸림돌 된다
‘김정은 대역설’과 관련해 검증 없는 받아쓰기 등이 난무한 가운데 MBN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두 번째로 작성한 <[픽뉴스] 시민 울린 지하철 방송·또 폭행 논란·미래세대 위한 목소리·김정은 대역 의혹?>(9월19일 박자은 기자)은 최소한의 검증을 시도했습니다.
해당 보도는 통일·북한 문제를 다루는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을 인터뷰해 “일본 신문이 가게무샤(대역) 식 얘기를 너무 많이 하니까” 등의 발언을 전하며 “도쿄신문은 종종 선정적으로 북한 소식을 전하기도 해서, 일각에선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말도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충분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북한 관련 국내 전문가에게 해당 사안을 질문하고, 도쿄신문 북한뉴스를 어느 정도 신뢰해야 하는지 정보를 제공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 10월9일, 도쿄신문 ‘김정은 대역설’ 보도의 신빙성을 따져본 MBN
뉴스타파 <북한 뉴스 해부>(7월2일 강혜인 기자)는 북한 관련 국내 기사 2만 3천여 건을 분석해 ‘출처’가 어디인지, 그 ‘출처’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인지 분석했습니다. 어떤 인물이 가장 많이 북한 관련 기사 소스로 나오는지 집계한 결과, 1위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고 2위가 익명의 ‘관계자’였습니다. 심지어 이 익명의 관계자는 ‘관계자’, ‘고위 관계자’, ‘핵심 관계자’부터 ‘소식통’, ‘외교소식통’, ‘대북소식통’, ‘한미일 소식통’, ‘한미관계 소식통’, ‘한국 정부 관계자’, ‘익명의 관계자’, ‘미국 정부 관계자’, ‘익명의 미국 관리’, ‘고위 외교관’, ‘중국 관계자’ 등 이름도 다양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만큼 기사 신뢰도는 낮고 정체불명의 소식이 난무한 것입니다.
북한 관련 취재가 쉽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다양한 취재원을 확보하고 최대한 교차 검증하며 오보를 줄여나가는 게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박영흠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는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한국언론이 외신을 과도하게 신뢰하고 있고, 북한 관련 취재원을 한국언론이 그만큼 많이 확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오보 원인로 꼽았는데요. 북한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충분히 취재를 해왔는지, 나아가 저널리즘 기본원칙을 지키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전달해왔는지 언론이 되돌아보기를 바랍니다.
※ 모니터 대상 : 2021년 9월19~2일, 10월24~25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김정은’ 키워드 검색 후 나온 결과 중 관련 보도/민주언론시민연합
이탄희의 분노 "헌재, 법기술자적 판단... 공직자 먹튀 조장"
'임성근 탄핵심판' 각하 직후 "극히 유감"... 당사자 임성근 "합리적 결정에 감사와 경의“

▲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이탄희 의원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심판 선고 직후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임 전 판사는 탄핵 각하 결정이 내려졌다.ⓒ 이희훈
"국회는 헌법재판소에 헌법 수호 기관의 역할을 요구했는데 오늘 다수 의견은 법기술자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 그쳤다."
2017년 2월 법관 블랙리스크 관련 지시를 거부하고 법원을 떠난 판사 출신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8일 헌법재판소의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심판 사건의 각하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 의원과 같은 당 박주민 의원은 이날 오후 2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진행된 '법관(임성근)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의 선고를 방청했다. 국회에서 임 전 판사의 탄핵소추안 가결(2월 4일)을 이끈 두 의원은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이 주문을 읽자 어두운 표정으로 심판정을 떠났다.
이날 헌법재판관 9인은 각각 5인 각하(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이미선), 3인 인용(유남석·이석태·김기영), 1인 심판절차 종료(문형배) 의견을 냈다.
짧은 시간 논의를 거친 두 의원은 '다수 재판관이 임 전 판사의 퇴직을 이유로 각하 의견을 낸 점'과 '행여 그들이 각하 의견을 냈더라도 본안(임 전 부장판사에 행위에 대한 위헌 여부)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또한 '위헌 여부를 판단한 이들 전원은 인용 의견을 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주민 "과반수 이상 각하 의견을 냈으나 본안 판단으로 나아간 재판관은 모두 (임 전 부장판사가) 굉장히 심각한 위헌 행위를 저질렀다고 인정했다. 각하 판단을 한 재판관이라도 행위에 대한 헌법적 판단을 내려 위헌성 여부를 확인해주길 원했는데 아쉽게도 그렇지 못했다. 덧붙이면 지금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임기만료로 퇴직하거나 사퇴하는 공직자의 탄핵과 관련된 규정이 없다. 국회에서 입법적 개선을 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
이탄희 "본안 판단에 나아간 전원이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를) 중대한 헌법 위반으로 판단했다. 헌법 최고기관으로부터 이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다수 의견의 재판관이 본안 판단을 회피했다는 점에서 극히 유감이다. 국회는 헌법재판소에 헌법 수호 기관의 역할을 요구했는데 오늘 다수 의견은 법기술자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 그쳤다.
판결문을 선고 이전에 빼내고 손을 댄 행위만 확인된 게 두 건이다. 명백한 재판개입 행위에 대해 임기 만료를 이유로 아무런 조치가 내려지지 않는다면 사실상 재판개입 행위를 조장하는 꼴이다. 뿐만 아니라 헌법을 위반한 사람의 전관변호사 활동을 보장해 공직자 먹튀를 조장하는 꼴이다.
탄핵소추 재판 대상자는 대체로 임기제 공무원이고 앞으로도 (이번 사례처럼) 임기가 반료되는 경우가 계속 있을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임기가 만료됐다면 마찬가지의 일이 발생했을 것이다. 임기가 만료되는 경우라도 탄핵소추가 이뤄졌다면 임기 만료를 정지시키는 법 개정 절차가 반드시 추진돼야 할 것이다. 또한 임 전 판사 같은 명백한 재판개입 행위를 입법적으로 금지하는 재판개입 금지법도 반드시 필요하다."
취재진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도 박 의원은 "예전에도 각하 등 여러 의견을 내면서도 헌법적으로 의미가 있는 경우엔 평가를 해줬던 사례가 있다"라며 "그런 경우에 비춰볼 때 오늘은 형식적 판단에 그쳐 아쉬움이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박 의원은 '국회가 좀 더 빨리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면 각하를 면할 수 있지 않았겠나'라는 질문엔 "20대 국회 때 노력이 있었지만 의석수가 부족했고 21대 국회가 구성된 이후에야 논의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물리적인 어려움이 있었다"라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이 의원은 "양승태 사법농단은 헌정사의 비극적 사건"이라며 "본안 판단을 한 모든 재판관은 중대한 헌법 위반으로 의견을 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임성근 "헌재에 감사와 경의"

▲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심판 각하 선고 직후 피청구인 측 이동흡 변호사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희훈
임 전 판사는 헌법재판소 결정 후 입장문을 통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주신 헌법재판소에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저로 인해 불필요한 오해와 논쟁을 초래해 많은 분들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라며 "앞으로 더욱 겸허한 마음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겠다"라고 덧붙였다.
임 전 판사 측 이동흡 변호사는 결정 직후 심판정 앞에서 취재진을 만나 "(인용 의견은) 어디까지나 소수 의견이다"라며 "헌법재판소 의견은 법정 의견이 효력을 지닌다. 효력이 없는 소수 의견에 대해 피청구인 대리인으로서 의견을 내는 건 적절치 않다"라고 말했다.
이어 "각하 의견이란 건 본안에 나아가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본안으로 나아가 판단하잔 사람이 세 사람인데 헌법재판에 있어서 소수 의견은 구속력이 없으니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오마이뉴스 글: 소중한(extremes88)사진: 이희훈(lhh)
받아쓰기’ 먹고 자라는 이재명 ‘조폭 연루설’
장영하 변호사 기자회견 취재진 항의 나온 이유
이재명 집무실 사진에 “이 정도 강심장이면 조폭 의심”
“확인 않고 조폭 연루 보도는 망신주기 보도일 뿐”
장영하 변호사는 지난 20일 경기 성남시 수정구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국제 마피아파’ 소속 조직원 박철민씨 법률대리인이다. 이들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조직폭력배가 밀접한 관계라고 주장한다.
이틀 전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이 박씨 주장을 빌려 이 후보를 겨냥한 ‘조폭 연루설’을 제기했지만 박씨가 건넸다는 돈다발이 가짜로 확인되며 대망신을 샀다.
기자회견에는 취재진 50여명이 모였다. 사무실 중앙 모니터에는 이 후보가 성남시장 시절 집무실에서 한 인사와 찍은 사진을 띄웠다. 이 인사는 시장 책상에 양다리를 걸치고 의자에 앉아 양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우고 있다. ‘따봉’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장 변호사는 이날 이 후보가 조폭에 연루됐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근거는 부실했다. 특히 ‘따봉’ 제스처 사진 주인공이 조폭으로 의심된다면서 ‘조폭 연루설’ 근거로 삼았다. 현장 기자들도 근거 없는 주장에 실소를 터뜨렸다.

▲ 장영하 변호사는 지난 20일 경기 성남시 수정구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국제 마피아파’ 소속 조직원 박철민씨 법률대리인이다. 이들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조직폭력배가 밀접한 관계라고 주장한다. 사진=연합뉴스
시사IN 사진기자 : “변호사께서는 (사진 속 인사가) 누군지 모른다고 하셨잖아요? 판사 출신 변호사이신데 이렇게 근거 없이 말씀하셔도 되는가?”
장영하 :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지만, 이 사람이 조폭이라고 한 것이 아니고, 조폭으로 의심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여러분이 여러 카메라 들고다니고….”
시사IN 사진기자 : “조폭으로 의심된다는 것이지, 아니 처음 기자회견하실 때는 그런 이야기하지 않으셨잖아요. 확인을 좀 부탁드린다. 우리는 사진에 설명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TV조선 영상기자 : “우리가 이 사진을 방송에 사용할지 안 할지 판단하기 위해선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야 한다.”
장영하 : “그건 언론인 여러분들이 판단해서 하시고. 저는 알고 있는 바를 말씀드린 것이다. 저는 이 사람이 누군지, 조폭인지 아닌지, 저하고 토론할 것이 아니고.”
기자들 아우성이 커지자 장 변호사는 “(사진 속 주인공) 모습을 보면, 저 사람이 조폭이 아니고는 저런 자세를 취하기 어렵다고 추정할 수 있지 않겠나?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얼버무렸다.
사진이나 영상을 찍다 보면 등장할 수밖에 없는 모니터 속 사진이 이 후보 등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터져나온 취재진의 불만이었다.
장 변호사는 “내가 이 사진을 최초로 눈으로 접한 것은 가로세로연구소 방송”이라고 했다. 그는 가세연 출연진 김용호씨 방송을 인용하며 “조폭들이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길 바라고 있고,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조폭들 세상이 된다고 한다”면서 김씨 주장도 조폭연루설 근거로 삼았다.

▲ 이재명 성남시장실 사진은 국민의힘 대선경선 1차 컷오프에서 탈락한 장기표씨가 지난달 29일 페이스북에 “이재명 당시 시장 사무실에서 국제마피아 조폭이라는 이OO가 이 시장 책상 위에 발을 올려놓고 있다”면서 게시한 사진이다. 사진=장기표 페이스북
기자회견 현장을 취재한 조남진 시사IN 사진기자는 “사진 속 인물이 누군지 물어보니 장 변호사는 ‘조폭으로 추정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현장 사진을 내보내야 하는 우리로선 확인이 안 된 사진을 보도할 경우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오죽 답답했으면 TV조선 취재진도 사진 속 인물이 누구인지 확인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조 기자는 “사진기자들 상당수가 실소를 터뜨렸다. 어처구니가 없어서”라며 “이런 기자회견은 한 번 정도 들어볼 수 있지만, 장 변호사 주장이 진실인 양 써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장 변호사가 제시한 사진과 주장을 검증하는 취지의 질문이 부족했던 것은 매우 아쉬웠다”고 전했다.
장 변호사는 28일 통화에서도 “(사진 속 인물의 신원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며 “조폭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다만 시장실에서 시장 옆에 앉아 운동화 신발을 올리고 사진을 찍을 정도 강심장이면 조폭으로 충분히 의심할 수 있지 않느냐고 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일반인이 이 사진을 보는 순간 ‘어떻게 이렇게 발을 올릴 수 있어’라고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정리해보면 사진 속 ‘따봉’ 제스처 인사가 조폭으로 의심되는 이유는 시장 옆에서 책상에 발을 올려서인데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은 시장 집무실을 시민에게 개방해 화제였다. 각계각층 시민들이 다양한 포즈로 이 시장과 찍은 사진은 온라인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대선이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네거티브 공방이 심해지고 있다. 조폭 연루설이 대표적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실 사진은 국민의힘 대선경선 1차 컷오프에서 탈락한 장기표씨가 지난달 29일 페이스북에 “이재명 당시 시장 사무실에서 국제마피아 조폭이라는 이OO가 이 시장 책상 위에 발을 올려놓고 있다”면서 게시한 사진이다.

▲ 뉴데일리는 지난달 29일 “이재명 성남시장실 책상에 다리얹고 ‘낄낄’… 이 사람이 국제마피아 조폭인가?”라는 제목으로 사진을 그대로 인용 보도했다. 현재 기사는 삭제된 상태다. 사진=뉴데일리 기사
무책임한 받아쓰기가 이어졌다. 이를 테면, 뉴데일리는 지난달 29일 “이재명 성남시장실 책상에 다리얹고 ‘낄낄’… 이 사람이 국제마피아 조폭인가?”라는 제목으로 사진을 그대로 인용 보도했다. 현재 기사는 삭제된 상태다. 사실 확인이 안 된 사진에 이 후보 측은 ‘따봉’ 제스처 인사가 “사진 속 인물은 영어 강사로 활동 중인 정씨”라고 반박한 바 있다.
이 후보에게 20억원을 전달했다는 박씨 주장도 현재 일방적 주장에 그친다. 이 후보 측은 공세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박찬대 이 후보 대변인은 “두 사람 뒤에는 두 사람 폭로를 이용해 대선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배후세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며 “우리는 두 사람의 거듭되는 허위 폭로를 이재명 후보 당선을 방해하려는 세력들이 합작해 벌이는 ‘대선 정치 공작’으로 규정하며 끝까지 폭로 배후를 추적해 진실을 밝힐 것을 선언한다”고 했다.
반면, 국민의힘 대선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얼마 전 이재명 후보가 조폭 이모씨와 성남시장 집무실에서 찍은 사진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씨가 이재명 후보를 옆에 세운 채 책상에 구둣발을 올리고 찍은 사진이어서 그랬다”며 “지금껏 이재명 후보처럼 조폭과 연관된 논란이 많았던 후보는 없었다. 마치 이재명 후보 주변에 조폭이라는 유령이 떠도는 듯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폭연루설을 둘러싼 여·야 공방이 대선기간 계속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대선 후보와 조폭의 유착 의혹은 검증 대상이다. 단, 근거가 뒷받침해야 한다. 뉴스버스는 검증에 나선 매체다. 뉴스버스는 18일 “지난 2010년, 2014년 지방선거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당시 성남시장 후보)의 수행원 일부가 조직폭력배이거나 각종 폭력 전과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들은 이 후보가 성남시장 재선에 성공한 지난 2014년 전원 성남시와 성남시 산하기관 등에 취업했다”고 보도했다. 이 후보는 뉴스버스에 “(선거를 도왔던 특별경호단 단장 이씨는) 제가 알기로는 폭력배는 아니고 경호·경비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중에는 우리와는 인연을 끊었다”고 해명했다.

▲ 뉴스버스는 18일 “지난 2010년, 2014년 지방선거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당시 성남시장 후보)의 수행원 일부가 조직폭력배이거나 각종 폭력 전과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사진=뉴스버스 화면 갈무리
전혁수 뉴스버스 기자는 27일 미디어오늘에 “대통령은 국정 수반으로 헌법을 수호하는 자리”라며 “폭력으로 시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조폭들이 대통령 주변에 포진해 있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 기자는 “여러 차례 이 후보와 사진을 찍은 사람을 취재 대상으로 삼았다. 지난 7월 초부터 10차례 이상 성남을 오가면서 일반 시민부터 공무원, 법조인, 정치권 관계자, 전·현직 조직폭력배 등 다양한 취재원을 확보해 증언을 들었다. 관련 판결문 자료도 수집했다”며 “이후 이재명 후보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반론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 보도는 단순한 받아쓰기가 아니라 이 후보에게 제기되는 조폭 연루 의혹을 검증하기 위해 취재 후 수차례 확인을 거쳐 만들어진다”며 “반면 사진 속 책상에 발을 올린 사람을 확인도 하지 않고 조폭이라고 한다든지, 조폭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서 싣는 보도는 검증 보도가 아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망신주기 보도”라고 비판했다./ 미디어오늘


도시개발법이 낳은 자식, 대장동과 엘시티
[분석] 투명성과 공공성 차원에서 구멍 수두룩... 뒤늦게 법 개정 논의 시작

▲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일대 대장지구 개발 사업 공사 현장.ⓒ 이희훈
대장동 개발사업에 대한 민간업자 특혜 논란이 이어지면서, 이 사업의 근거가 된 도시개발법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000년 7월부터 시행된 도시개발법은 민간업자에게 토지 수용권 등 막강한 법적 권한을 부여하지만, 사업 공익성이나 투명성 확보 장치는 사실상 마련해 놓지 않고 있다. 택지개발촉진법과 공공주택특별법의 경우, 토지수용권을 부여하는 대신 공공주택 공급과 택지원가 공개, 민간업자 이윤 상한 등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대장동을 비롯해 각종 비리와 특혜 논란으로 얼룩진 부산 엘시티 사업도 도시개발법이 낳은 비극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현행 도시개발법은 공공이 지분의 절반 이상을 보유한 민관합동 법인(SPC·특수목적회사)에게 토지강제수용권을 부여한다. 토지소유자의 의사와 관계 없이 토지를 강제로 사들일 수 있는 권한이다. 대장동 개발사업의 경우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절반 이상(50%+1주)의 지분을 보유한 성남의뜰이 강제수용권을 통해 순조롭게 사업을 진행했다.
헌재는 합헌 결정 내렸지만... 공공성 확보 장치 없는 도시개발법
토지수용권에 반발한 주민들의 헌법소원도 이뤄졌지만,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8년 결정문에서 "사업시행자에게 수용권을 부여할 공공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다"며 "공익과 사익간의 균형도 적절히 유지하고 있으므로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피수용자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공공의 필요성'이라는 명분으로 원주민 토지의 강제수용을 정당화한 것.
하지만 공공의 필요성에 의해 토지강제 수용을 허용하면서도 막상 도시개발법에는 사업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장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선 도시개발법은 공공주택특별법과 달리 공공주택 공급 물량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공공주택특별법은 시행령을 통해 공공임대주택을 반드시 35% 이상을 확보하도록 하고 있지만, 도시개발법에 그런 내용은 없다. 공공주택을 15% 이상 확보하도록 하는 국토교통부의 지침이 있지만 강제력은 없다.
대장동 사업도 도시개발법의 이런 맹점이 악용됐다. 당초 대장동에는 A-9블록(221세대), A-10블록(1200세대) 등 2개 용지에 국민임대주택 1200세대가 들어설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땅이 잘 팔리지 않자, 성남시는 A-10블록 공급 계획을 바꿔 공공임대를 400세대로 대폭 축소하고 분양 물량을 800세대로 늘렸다.
그러고 나서야 LH에 토지 매각이 이뤄졌고 성남도시개발공사는 토지매각에 따른 배당금 1800억원을 가져갔다. 임대주택 물량이 대거 분양주택으로 바뀌면서 대장동 내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6%대에 불과하다.
부산 해운대 엘시티는 부산도시공사가 땅을 개발해 민간에 넘겨줬는데 공공임대주택이 단 한 채도 없다. 엘시티 사업에서는 공공이 당연히 기부채납을 받아야 할 공원과 진입도로 조성에도 부산시 예산이 투입됐다. 기반시설 조성에 공공 예산을 투입한 것은 큰 논란거리였다. 고(故) 윤일성 부산대 교수는 지난 2012년 '해운대 관광리조트의 도시정치학' 논문에서 "부산도시공사가 시 예산을 통해 해운대 관광리조트(엘시티) 내 공원과 도로를 제공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가격으로 환산하면 780억여원에 해당한다"라며 "특혜 행정의 백미"라고 비판했다.
정보 공개 의무 없고 개발이익 환수 장치도 미흡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인 엘시티(LCT). 엘시티 바로앞에 해운대해수욕장이 보인다.ⓒ 권우성
토지 조성비 등 개발사업의 기초적인 정보조차 도시개발법에 따른 사업에선 공개 의무가 없다. 택지개발촉진법과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른 사업의 경우 용지비와 조성비·인건비·이주대책비·판매비 등 세부적인 항목을 나눠 공개하도록 의무화한 것과는 차이가 크다. 도시개발법이 적용된 대장동과 엘시티 개발 역시 민간사업자가 토지 조성에 구체적으로 얼마를 썼는지 명확히 알려진 수치는 없는 상태다.
무엇보다 도시개발법은 민관합동사업에 참여한 민간업자의 개발이익을 제한하지 않는다. 택지개발촉진법이 시행령에서 민간사업자의 수익을 6% 이하(사업자의 이윤율은 총사업비의 100분의 6 이내로 한다)로 제한한 것과 비교하면, 민간사업자가 폭리를 취할 길을 열어둔 셈이다. 대장동 사업은 성남시가 5000억원의 개발이익을 환수했지만, 민간사업자인 화천대유 등은 아파트 분양과 택지판매 등으로 수천억원의 이익을 챙겼다.
부산 엘시티 사업의 경우, 공공이 환수한 돈은 토지매각 차액 3억원에 불과했다. 나머지 개발이익은 모두 민간사업자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사에 따르면, 엘시티 사업시행자인 엘시티PFV는 약 1조2020억원의 수익을 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소 의원은 "엘시티 사업은 민간 사업자들의 배만 불려주고, 부산 시민들은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현행 도시개발법을 두고 공공의 특권을 행사하면서도 공공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민간업자 폭리를 방치하게 만든 주범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당초 이 법이 민간업자 참여를 허용한 이유는 민간의 창의성을 활용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대장동은 아파트만 촘촘히 들어선 베드타운이 됐고, 해운대 앞바다는 엘시티라는 초고층 빌딩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창의적 도시 설계나 공익적 가치가 실현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법 개정 논의 시작... "공공택지는 공영개발 원칙 지켜져야"
이에 따라 국회에선 당초 의도와 다르게 민간사업자 특혜법이 돼 버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도시개발법에 대한 개정 논의가 시작됐다. 현재는 민간업자의 과도한 수익을 환수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은 각각 민간사업자의 개발이익을 제한하는 도시개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진성준 의원이 낸 개정안은 민간사업자 이윤이 총사업비의 10%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고, 이헌승 의원 개정안은 사업자 이윤을 총사업비의 6% 이하로 제한하는 방안이다. 수치의 차이는 있지만 일단 민간업자의 과도한 이윤을 제한하자는 데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도시개발법 개정 논의가 공공개발의 공익성 확보라는 큰 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민간업자 개발이익 환수에 더해 공공택지의 명확한 정의, 공공임대 의무 확보, 분양가상한제 적용 등이 추가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남근 참여연대 변호사는 "단순히 민간사업자 개발이익 환수가 중심이 된다면, 민간개발을 무조건 허용해 준다는 얘기가 된다"라며 "공공택지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논의가 종합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익적 목적에 따라 강제수용권을 행사해 조성하는 토지는 반드시 공공택지로 규정하고, 공영개발한다는 원칙에 따라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공공택지에서는 민간에 매각하는 땅을 최소화하고 토지를 판매하는 방식도 명확히 규정해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장은 "공영개발에서의 기본적인 원칙은 공공이 토지를 민간에 팔지 않고 계속 소유하면서 공공주택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돼야 한다"라며 "만약 부득이하게 토지를 팔더라도, 토지 판매와 아파트 분양에서 사업자가 과도한 이윤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철저한 환수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상호(lkveritas)/ 오마이뉴스
인구 감소, 지방 소멸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지방 중소도시부터 재편해야
'인구감소지역'의 등장
지난 10월 18일 행정안전부는 날로 심각해지는 지역의 인구감소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위해 '인구감소지역'을 지정하여 발표했다.
지난해 말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의 개정을 통해 근거를 마련해 두었던 인구감소지역을 처음으로 지정한 것인데, 전국의 89개 시·군·구가 이번에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됐다. 그간 다양하게 논의된 지방의 인구위기에 대한 진단과 대응을 인구감소지역의 지정을 통해 처음으로 제도화 한 것이다.
지정된 지역에 대해서는 인구감소지역 특별법 제정과 함께 향후 5년간 매년 1조 원 규모의 지방소멸대응기금과 국고보조금 지원 등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인구감소지역의 지정은 연평균인구증감률, 인구밀도, 청년 순이동률, 재정 자립도 등 8개 지표를 바탕으로 산정한 인구감소지수를 기초로 하였는데, 지역별 여건의 차이와 갈등 소지 여부를 고려해 구체적인 산정방식이나 결과는 별도로 공개하지 않았다.

▲ 표 1. 인구감소지역 지정현황. *는 해당 광역지자체 전체 시·군·구 수. ⓒ 행정안전부 보도자료(2021. 10. 18)
그런데 한 가지 흥미 있는 것은 행정안전부는 분명히 '인구감소' 지역을 지정했는데, 이후 주요 언론사의 기사 내용 상당수가 이 지역을 '지방소멸' 위기지역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인구감소지역의 주요 지원방안 중 하나가 내년 신설되는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구감소지역=소멸위기지역'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인구 감소가 소멸 위기와 직접적으로 등치되지 않음에도 자연스럽게 이러한 관계를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촌향도가 '지방소멸'이 되기까지
2019년 11월, 우리나라 인구문제의 양상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가 될 사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났다. 하나는 월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의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넘어서는 인구의 절대 감소, 이른바 데드크로스가 나타난 것으로(1619명 감소) 겨울철 일시적 현상일 것 같던 이 경향은 지금까지 2년 가까이 매달 이어지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수도권의 인구가 처음으로 비수도권 인구를 추월한 것으로(50.01%), 개별적으로도 큰 이슈가 될 만한 인구통계학적 사건이 같은 달에 동시에 시작된 것이다.
지방의 인구가 대도시로, 그리고 수도권으로 향하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시작된 이후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도시로, 서울로 향했고, 이것을 시골을 떠나 도시로 향한다는 '이촌향도(離村向都)'로 표현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시골에서 도시로 향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도시로 향하고 싶어도 향할 수 있는 시골의 인구 자체가 없어졌다. 이제는 지방의 중소도시, 더 심하게는 지방의 대도시를 떠나 서울과 수도권의 도시들로 향하는 '이도향도(離都向都)'가 현재의 양상이자 수도권 인구 50.01%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지방의 인구감소 문제는 2016년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방소멸위험지수'를 발표하면서 위기를 넘어 '소멸'에 대한 논의로 급격히 전환되었다. 지방소멸이라는 용어는 2014년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가 발표한 동명의 책에서 시작된 것으로, 20년 뒤 일본의 지역 중 절반이 소멸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일본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우리나라의 지방소멸위험지수 역시 첫 발표에서 전체 시·군·구의 36.8%인 84개 지역이 30년 내 소멸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소멸이라는 단어가 주는 강렬함과 절박함에 많은 사람들이 동조를 하게 될 정도로 지역의 위기가 현실이 된 것이다.

▲ 강원도 농업인력지원포털 ⓒ강원도청 홈페이지
인구감소와 '최소요구치'의 문제
경제지리학의 고전 이론 중에 독일의 지리학자 크리스탈러(W. Christaller)의 중심지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1933년 발표된 이 이론은 서비스 산업의 입지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데, 어떤 물건이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상점(중심지)이 생기려면 거리에 따라 늘어나는 운송비 등으로 가격이 소비자의 구매의사 수준을 넘어서기 전(재화의 도달거리, range of a good)에 판매자가 이윤을 남길 수 있을 정도의 수요(최소요구치, threshold)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중심지에서는 다양한 물건과 서비스를 공급하는데, 더 높은 수준의 중심지(고차 중심지)는 상대적으로 많은 종류의 물건을 넓은 지역에 공급하는 반면 낮은 수준의 중심지(저차 중심지)는 이 중 일부 상품만을 한정된 지역에 공급하는 역할을 맡게 되면서 중심지 간에도 위계가 생겨나게 된다.
지방의 인구가 감소하면서 겪는 문제 중 하나는, 기존에는 원활하게 공급되던 서비스가 인구가 감소하면서 최소한의 이윤(최소 요구치)을 확보하지 못하게 된 공급자들이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공급이 중단되는 것이다.
인구감소지역의 주민들은 기초적인 서비스와 상품을 제공받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생활여건이 악화되고, 이것이 지역을 떠나는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물론 주로 공공이 담당하고 있는 필수적인 기초생활서비스의 경우는 계속해서 공급되겠지만 최소요구치와 재화의 도달범위 간의 역전된 차이만큼 운영비의 적자가 발생해 추가적인 재원이 투입되거나 서비스가 열악해 질 수 밖에 없다. 특히 인구감소지역 대부분이 재정여건이 열악한 지역이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대응은 더욱 큰 난제가 된다.
89곳의 인구감소지역 모두를 바꿀 수 있을까
이쯤에서 다시 이번에 발표한 인구감소지역을 살펴보자. 세종시와 제주도의 경우 기초자치단체가 없으므로 이를 제외하고 기초자치단체에 해당하는 전체 시·군·구 수는 226개이며 이 중 수도권과 광역시를 제외한 비수도권의 시·군은 총 121개인데, 이 중 66%에 해당하는 80곳이 이번에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전체의 2/3가 인구감소지역이라는 것은 인구감소가 특정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으며, 국가 전체의 인구감소가 지속되고 있는 여건에서 어쩌면 이제는 우리사회의 일반적인 경향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아무리 훌륭한 지원대책이라도 89곳의 인구감소지역 전체의 인구를 증가로 반전시키는 것은 어쩌면 이룰 수 없는 꿈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인구감소가 지방 소멸로 이어지는 고리, 즉 인구가 줄어들면 지방이 소멸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그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다. 인구가 줄어든다고 해서 반드시 그 지역이 활력을 잃고 결국에는 사라지게 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모든 지역이 인구가 증가하고 변화와 혁신을 선도할 필요도 없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특색을 갖춘 지역도 필요하지만, 어느 지역은 평범하고 안온한 삶의 공간으로 남아있을 필요도 있다. 오히려 인구 감소의 시대에서 어떻게 지역이 주민들에게 제약 없는 일상적인 삶의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모색이 더 우선해서 필요하다.
소멸의 고리를 끊는 공간구조의 기능적 재편, 지방 중소도시에서부터
문제는 현재의 지역구조 하에서 이런 대응이 모두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경계가 그어진다는 점이다. 중심지의 체계는 행정구역과는 무관하게 서비스의 특성과 수요의 규모에 기반하지만, 현실 세계, 특히 공공부문의 서비스 공급은 행정구역이라고 하는 커다란 장벽을 마주하고 있다.
모든 것은 우리 지역 안에 있어야 하고, 옆 지역에 무언가 새로운 게 생기면 우리도 그것을 만들어야 지역이 잘 굴러가고, 정치인들과 행정가들이 일을 제대로 한 것이 된다.
하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된 공간에 인위적으로 담을 쌓으면, 불필요한 중복과 경쟁, 비효율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작금의 인구 위기에 대한 해법이 이 구도를 탈피하지 못하고 지역간 지원금 타기 경쟁으로 변질된다면 이 역시도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그치게 될 것이다.
인구감소가 지방 소멸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인구 과소지역의 기능적 공간구조를 재편할 필요가 있다. 중심지 체계는 계층성을 가진다.
고차-중차-저차로 이어지는 기능적 단위를 구분해 어느 공간규모를 필수적인 기초 서비스의 중심지로 설정할 것인지, 그 단위에서 공급되는 서비스는 무엇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즉 지방소멸 대응의 공간적 단위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전체 지역을 획일적으로 유지·존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선택적 압축과 연계를 통해 공간구조를 입체적으로 재편하고 정주기반을 효율화 해 주민들이 보다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당장 눈앞의 현안으로 부상한 농어촌의 소멸 위기 대응뿐만 아니라, 현재는 소멸 위기에 놓이지 않았더라도 농촌지역을 배후지로 하는 지방 중소도시의 쇠퇴 가능성에 대한 선제적 대응방안을 마련해야만 한다.
잠재적 위험을 안고 있는 인구 20~50만의 지방 중소도시는 당장의 소멸위기 정도는 조금 떨어지더라도 저차·중차 중심지로서 지역의 생활기반을 유지시키는 데에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이들 지역이 소멸의 위기로 전환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성호 경상국립대 지리교육과 교수 | 프레시안
농촌의 땅과 사람들은 점점 더 조용해지네

경북 의성군 점곡면에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한 농민이 들깨 타작을 하고 있다.ⓒ시사IN 이명익
농촌 소득격차에 관한 취재를 하고 있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보기 위해 농촌으로 갔다. 농민들에게 〈시사IN〉이 이런 잡지임을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 잡지도 몇 권 챙겨 갔다. 결과적으로 전부 드리지 못했다. 아니, 드릴 필요가 없었다. 경북 의성, 충북 보은 등에서 10명 넘는 농민을 만났는데, 그 가운데 3명이 〈시사IN〉 정기구독자였다. 그리고 셋 다 귀농인이었다. 두 사람은 집에서 보고, 한 사람은 모교에 기증한다고 했다.
반갑다기보다는 무안했다. 순간 우리가 지난 몇 해 동안 썼던 기사들이 머릿속에 흘러갔다. 농촌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룬 적이 있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 이분들은 이 외딴 농촌마을에서 무슨 생각으로 〈시사IN〉을 보고 있는 걸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부터가 농촌에는 〈시사IN〉 정기독자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시사IN〉을 구독하느냐는 질문에 한 농민이 말했다. “도시에서부터 계속 봤어요.”
2020년 기준 농민 인구는 231만7000명이다. 전체 인구의 4.5% 수준이다. 1970년 절반이었던 농민 비중은 1995년 10.9%로 떨어졌고, 25년 만에 다시 절반 아래로 줄었다. 닥쳐올 농촌 인구 소멸의 시점을 매년 1만명 넘는 귀농인들(2020년 1만7447명)이 늦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농촌 이야기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4차 산업혁명 담론이 지배하는 21세기에 농촌은 거대한 게토나 다름없고, 농민은 목소리 없는 소수자가 되어간다. 농촌 이슈는 농촌 밖으로 퍼져나가기 어렵고, 마침내 농촌 안에서도 사라질지 모른다.
몇 해 전 타이완 농촌에서 만났던 한 귀농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는 농촌 이야기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농민에게는 사회적 발언권이 없어요. 농민과 땅은 말을 잘하지 못하니까요.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많이 와야 우리의 이야기가 발언권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그의 말에서 젊은이라는 단어를 ‘언론’으로 바꿔본다. 아직 내보내지 못한 기사를 잘 쓰겠다는 다짐이다./ 시사인 이오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