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4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세상
[KBS 신년여론조사①] 행복은 ‘소득순’…남성은 ‘공정’, 여성은 ‘안전’ 원해
진보는 ‘청와대’, 보수는 ‘검찰’을 가장 신뢰
신 3저 시대를 사는 법- ① 저성장의 늪
[경향사설]검찰의 ‘조국 불구속 기소’가 말하는 것
MBC여론조사③] 부동산 대책 "적절" 51.1% VS "과도" 40.4%
공무원 보수 2.8% 오른다…대통령 연봉 2억3천여만원
이것만 보면 2020년 미디어 전망·쟁점 한 눈에
서울 17.6억 대 3.7억…아파트 상·하위 가격차 9년만에 최대
차기 대선주자 선호, 이낙연 25.3%…2위 황교안 10.9%
“대치동 초등생들, 고교 ‘수학 정석’ 배워”… 돈ㆍ계급 대물림하는 빗장도시
대치동에만 학원 1000여개… 공교육 흔드는 사교육 1번지
“6학년까지는 전학가야” 학생들 빨아들이는 대치동 초등학교
부울경 총선 후보 지지도 민주·한국 ‘37.6%’ 동률
[4.15총선 민심 들여다보기] ‘먹고사는 문제’가 총선 승패 가른다
“경제성장이 박정희 공로? 위험한 착각입니다
나만 없는 현강 자료”… 조바심으로 먹고 사는 대치동
대치동 아이돌 ‘1타 강사’는 계약금만 수십억
미국 집값 폭등의 주범, 사모펀드
신문과 TV는 이제 정보산업의 '제왕'이 아니다
수도권 인구 첫 50% 돌파,지방이 사라진다
['동물국회 방지법' 무시 하더니…] 국회 회의방해 '심판대'
집시법 공백 때문에 ‘폭력집회’ 용인된다고?
손석희 하차가 의미하는 것
새해 ‘조선·동아 폐간’ 무기한 시위나선 사람들
자사고·외고, 일괄전환까지 5년간 ‘감독 사각지대’
1.1 중부-기호
한겨레-중앙
한겨레-서울
1.2 서울-경기
국민-한겨레
대구-내일
경향-경인
국제-인천
서울-민중
경향 장도리 2019 12.30~2020.1.3
1.3 중앙-경인
기호-인천
국민-중부
한겨레-한국
대구-기협
내일-경향
국제-민중
[KBS 신년여론조사①] 행복은 ‘소득순’…남성은 ‘공정’, 여성은 ‘안전’ 원해
소득 올라갈수록 삶의 만족도 오른다…계층 대비 ‘뚜렷’
2020년 핵심 가치…남성은 ‘공정’, 여성은 ‘안전’
"자신의 삶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고 있습니까?"…10명 중 5명은 만족
돈을 더 벌수록 행복할까요?…"예, 적어도 지금 한국 사회에선"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통용될 문장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월 소득 200만 원 미만부터 월 소득 700만 원 이상까지 계층별 삶의 만족도를 분석했더니, '단계적'으로 삶의 만족도가 올라가는 그래프가 나타났습니다. 누군가는 이상할 것도 없는 결과라 하겠지만, 지금 한국 사회는 '행복은 소득순'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회라는 게 확인됐습니다.
주관적 소득계층으로 보면 더욱 극명해집니다. 자신을 소득 상위층인 80%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현재 삶 만족도는 무려 82.4%였습니다. 자신을 소득 하위 20% 이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19.5%만 자신의 현재 삶에 만족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소득 계층별로 삶에 대한 만족도가 뚜렷하게 갈린 겁니다.
"10년 뒤에는 살기 좋아질까?"
그럼 우리 국민들은 10년 뒤에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할까요? 팽팽했습니다. '살기 좋아질 것 같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32.9%, '차이가 없을 것 같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32.4%, '살기 좋아지지 않을 것 같다'고 본 사람들은 32.8%였습니다. 지금보다 10살을 더 먹게 될 2030년에 대해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모습입니다.
미래에 대한 전망도 소득 계층별로 갈렸을까요? 이번엔 소득이 높든, 낮든 우울한 미래 전망을 내놨습니다. 월 소득 200만 원 미만 가구는 39%가 '살기 좋아지지 않을 것 같다'고 응답했습니다. 월 소득 700만 원 이상 가구 역시 34.8%가 '살기 좋아지지 않을 것 같다'고 응답해 비슷했습니다.
직업으로 보면 농·임·어업 직군에 속한 사람들이 10년 뒤를 가장 우울하게 전망했습니다. 이 직군의 49.9%가 '살기 좋아지지 않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살펴야 할 대목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 1위 공정, 2위 안전
이런 상황에서 '2020년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가장 핵심적인 가치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결과는 2019년을 장식한 사회적 이슈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1위는 '공정'이었습니다. 20.2%의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핵심가치가 '공정'이라고 응답했습니다. 2019년 이른바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국민들이 느꼈을 상대적 박탈감 탓인 것으로 보입니다. 2위는 '안전'이었습니다. 14.7%의 사람들이 답했습니다. 이는 지난 5월 CCTV 영상 하나로 온라인을 달궜던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 4월에 발생한 '강원 산불'과 5월 '헝가리 유람선 참사' 등 안전 사회에 대한 열망을 드러낸 사건들 탓이었을 겁니다. 3위는 '평등'이었습니다. 11.5%의 사람들이 답했습니다. '평화'와 '정의'가 각각 11.5%와 11.4%를 기록해 비슷한 비중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남녀 선택 갈렸다…20대·여성·빈곤층 '불안'
특이한 점은 남녀가 바라보는 핵심가치가 달랐다는 점입니다. 남성들은 2020년 필요한 핵심가치로 '공정'을 뽑았습니다. 남성 중 23.7%가 그렇게 응답했습니다. 이어서 '정의'라고 11.8%가 응답했고, '평등·평화'라고 각각 11.4%씩 이어서 답했습니다. 여성들은 '안전'(19.9%)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뽑았습니다. 이어 '공정(16.8%), '평화(14.0%)' 순이었습니다. 또한 20대(17.6%), 200만 원 미만 소득(23.7%)에 속한 사람들에서도 '안전'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높았습니다. '안전 사회'를 바라는 계층이 어떤 사람들인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이념도 선택 갈랐다…보수 '자유', 중도 '안전', 진보 '평등'
핵심 가치는 이념성향을 가리지 않기도 했고, 이념성향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진보와 중도, 보수 모두 '공정'을 1위 핵심가치로 뽑았습니다. 자신을 진보적 성향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24.3%가, 중도는 21.2%가, 보수는 16.6%가 '공정 사회'를 열망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2위로 뽑은 가치는 이념 성향별로 갈렸습니다.
보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자유'(15.6%)를, 중도는 '안전'(16.8%)을, 진보는 '평등'(14.1%)을 공정에 이어 핵심 가치로 꼽았습니다.
2020년 첫날, '새로운 10년'이 눈앞에 있습니다. 국민이 느끼는 '행복'과 '핵심가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수면 위로 올랐습니다. 올 한해는 우리 사회가 이 목소리들에 응답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길 기대해봅니다.
이번 여론조사는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천 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3, 24, 26일 사흘간 유무선 결합 임의전화걸기(RDD) 방식으로 전화 면접을 실시했고, 응답률은 12.2%(7,224명과 통화해 1,000명이 응답 완료)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입니다.
진보는 ‘청와대’, 보수는 ‘검찰’을 가장 신뢰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계약서 없이 거래한다고?
온라인에서 낯선 사람과 중고물품을 거래하며 마음 졸여본 분들 적지 않을 겁니다. 다이아몬드 거래의 메카로 유명한 뉴욕 맨해튼 47번가의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2천 개가 넘는 맨해튼의 보석상들은 신기한 방법으로 거래를 하는데,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거래하면서도 계약서 없이 '악수' 하나로 거래를 합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사실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를 히브리어로 '마잘'(Ma-zal)이라고 하는데, "행운을 빕니다"라는 의미로 신뢰한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하는 맨해튼 가의 유대인 거래상. 〈2011년 KBS 특별기획 ‘사회적 자본’ 화면〉값비싼 다이아몬드를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하는 맨해튼 가의 유대인 거래상. 〈2011년 KBS 특별기획 ‘사회적 자본’ 화면〉
신뢰에 기반한 유대인 보석상들의 오랜 거래 전통, 이는 신뢰가 없을 때 필요한 각종 거래 비용과 시간을 절약해 줍니다. 다만 한 번 신뢰를 잃게 되면 그 보석상은 영원히 거래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처럼 신뢰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 이상의 가치와 효율성을 지닙니다. 서울대 경제학부 김병연 교수팀의 연구 결과 한국의 사회신뢰도가 북유럽 국가수준으로 향상되면 경제성장률이 1.5%p 상승해 현재 2%대인 경제성장률을 4%대로 올릴 수 있을 것이란 분석도 있었습니다. 이를 사회학적 용어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부르는데, 신뢰는 분명한 자본입니다.
당신은 우리 사회를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서론이 길었습니다. KBS가 신년을 맞아 여론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여러 결과 가운데 신뢰 부분을 보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신뢰수준에 대한 문항에 '믿을 수 있다'(매우 믿을 수 있다 1.6%, 믿을만한 편이다 20.7%)는 응답은 22.2%(합산치는 각 응답 비율의 소수점 두 번째 자리를 합산 후 반올림)였습니다. '믿을 수 없다'(전혀 믿을 수 없다 11.9%, 믿을만하지 않은 편이다 24.2%)는 응답은 36.1%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응답자 10명 중 1명은 우리 사회를 전혀 믿을 수 없다고 평가하며 극도의 불신을 보였습니다.
"그래도 믿을 수 있는 건 내 가족 뿐"
사람에 대한 신뢰 수준을 물어봤습니다. 전혀 신뢰할 수 없다 0점, 보통은 5점,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 10점의 11점 척도로 점수를 매겨달라고 했습니다.
조사 결과 가족에 대한 신뢰점수는 8.7점, 이웃에 대한 신뢰는 5.8점, 처음 만난 사람에 대한 신뢰점수는 3.7점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가족에 대한 신뢰가 높았는데 다소 특징적인 부분은 가구소득 월 2백만 원 미만 응답자의 가족 신뢰점수는 7.7점으로 월 5백~7백만 원 가구소득의 가족 신뢰점수 9.2점보다 1.5점 낮았습니다. 소득 하위 가구에서는 상대적으로 가족을 덜 믿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을 어떻게 믿어요?"
처음 만난 사람에 대한 신뢰점수 3.7점을 조금 더 살펴보면, '전혀 신뢰할 수 없다'면서 0점을 준 응답자는 18.5%로 5명 가운데 1명꼴이었습니다. 보통인 5점을 준 응답자는 38.8%였고, 5점 미만 즉 보통 미만의 점수를 준 응답자는 0점 응답자를 포함해 46.2%로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보통 이상의 점수를 준 사람은 12.7%로 10명 중 1명 정도에 그쳤고,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면서 10점 만점을 준 응답자는 1.6%로 100명 중 1명에 불과했습니다.
국가·사회 기관 불신 톱3 불명예는 '국회·언론·검찰'
사람에 대한 신뢰수준에 이어 국가 및 사회기관에 대한 신뢰수준도 물어봤습니다.
청와대가 4.6점으로 가장 높았고, 정부부처(행정부) 4.4점, 경찰 4.2점, 법원 3.8점, 검찰 3.7점, 언론 3.1점, 국회 2.7점 순이었습니다.
10점 만점에 보통 점수가 5점인데, 보통 수준의 신뢰를 받은 기관은 조사 대상 기관 중에 한 곳도 없었습니다. 특히 언론과 국회는 앞서 봤던 '처음 만난 사람'(3.7점)보다도 신뢰 점수가 낮았고, 검찰은 같았습니다. 신뢰가 바탕이어야 할 기관들이 오히려 낙제에 가까운 신뢰도를 보인 것입니다.
진보는 청와대, 보수는 검찰…이념 성향에 따라 엇갈린 신뢰
특징적인 부분은 자신의 이념성향을 진보 혹은 보수라고 응답한 이들의 기관별 신뢰도가 차이가 났다는 점입니다. 진보 성향의 응답자들은 청와대에 평균 6.0점의 신뢰를 보이며 기관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줬고, 검찰에 대해서는 기관 가운데 가장 낮은 2.5점의 신뢰점수를 줬습니다.
반면 보수 성향의 응답자들은 검찰에 평균 4.9점의 가장 높은 점수를 줬고, 청와대에 대해서는 5등인 3.6점을 줬고, 이어 언론 3.4점, 국회 2.9점을 줬습니다.
가족 빼고는 믿을 데 없는 한국사회…2020년은?
앞부분에서 사회적 자본의 근간인 신뢰는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 사회·경제적 발전을 이끈다고 설명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 우리 사회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가족' 외에 딱히 없었습니다.
국회에 대한 불신은 법에 대한 불신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고, 검찰 불신은 공정한 법 집행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할 겁니다. 언론 불신 역시 뉴스를 믿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 위해 다른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할 겁니다. 모두 직간접적인 비용 증가와 비효율,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불신의 원인제공을 각 기관이 했다는 것은 뼈아픈 부분입니다./ 오대성 기자ohwhy@kbs.co.kr
신 3저 시대를 사는 법- ① 저성장의 늪
공공의 역할 획기적 강화 필요
2019년 세밑 기획재정부에선 주요 간부들이 재정관리국 재정집행관리 과장을 찾는 일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재정집행관리과는 중앙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사업이 제대로 추진되는지를 점검해 예산 집행을 관리하고 독려하는 부서다. 수조원대 예산을 편성하거나 경제정책을 입안하는 부서에 견줘 다소 한가한 부서로 여겨졌다. 하지만 2019년 경제성장률이 1.9~2.0%에 머물 것으로 예측되면서 이 부서에 눈길이 쏠렸다. 민간의 성장 기여도가 바닥을 친 지금, 2019년 예산의 이·불용액을 최소화하는 ‘마른 수건 쥐어짜기’에 2.0% 성장률 달성의 성패가 달렸기 때문이다.
2019년 성장률이 2%대로 올라서든, 아니면 우려대로 1%대로 추락하든 경제 당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듬해인 2009년(0.8%) 이후 가장 낮은 경제 성적표를 받아들게 됐다. 1960년대 산업화가 진행된 뒤 지금까지 한국 경제성장률이 2%를 밑돈 때는 △제2차 석유파동이 있었던 1980년(-1.7%)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은 1998년(-5.5%)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세 차례뿐이었다. 특히 2019년처럼 외부에서 닥친 ‘경제위기’ 없이 2%에 턱걸이하는 저성장을 고민한 사례는 없었다. 한국의 경제성장 전략이 근본적 위기에 봉착한 것 아니냐는 위기 담론이 힘을 얻는 이유다.
전례 없는 저성장
2019년 저성장 현상에는 여러 이유가 겹쳤다. 먼저 세계경제 부진이 컸다. 제조업 둔화 등의 영향으로 2017년 5.7%이던 세계 교역량 증가율이 2018년 3.6%, 2019년 1% 안팎으로 가파르게 떨어졌다. 수출주도형 경제체제인 한국에는 수요 부진 여파가 곧바로 닥쳤다. 특히 ‘슈퍼 사이클’을 누리며 최근 2~3년 한국 경제를 이끌던 반도체 단가 하락과 수요 감소는 큰 충격을 줬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2019년 세계 반도체 시장 매출액이 전년보다 12.8%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대외 경제 여건이 부진한 가운데 세계경제를 이끄는 두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다툼은 한국 경제를 그로기(강타로 비틀거리는 상태)에 빠지게 한 결정타가 됐다. 두 나라의 무역전쟁은 2018년 미국이 중국산 818개 품목에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본격화했고, 2019년 5월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율을 25%로 올리며 전방위로 퍼졌다. 한국 경제는 지난 10여년 동안 중국과 일본 등 동북아 제조업 강국과 분업 구조를 만들며 성장했다. 산업구조와 환율 등이 중국 경제와 동조화됐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베이징에 불어닥친 찬바람은 한국 경제에 눈보라를 일으킨 셈이다.
일본형 복합 불황?
대외 여건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동안 경기순환기도 공교롭게 하강 국면에 들어갔다. 국가 경제는 한 단계에 머무는 게 아니라 상승(확장)과 하강(수축)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며 성장한다. 한국 경제는 2017년 9월을 정점으로 경기 하강기에 접어들었다. 2013년 3월 저점에서 시작한 ‘제11순환기’다. 고점까지 경기 상승기가 54개월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2~3년 동안은 경기 수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소득주도성장 등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을 늘리는 정책 효과로 민간소비 증가율이 모처럼 상승세를 보였지만, 경기 수축 앞에서는 백약이 무효했다. 더구나 고령인구가 급속히 늘면서 저축이 늘고 소비 성향이 떨어지는 악재까지 겹쳤다.
이에 따라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경제 전망 속보치를 발표할 때마다 성장률 전망치를 낮췄다. 한국금융연구원을 비롯해 LG경제연구원, 한국경제연구원,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등은 2019년 성장률 전망치를 1%대 후반으로 예상했다. 국외 투자은행은 더 비관적이다. 메릴린치와 모건스탠리는 각각 1.6%, 1.7%로 예측했다. 2019년 7월 전망치를 2.2%로 낮춘 한국은행도 4개월 만인 11월 2.0%로 낮춰 잡았다.
일각에서는 현재 저성장 국면을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일본 장기 불황과 비교한다. 소비자물가 증가율이 2019년 9월 역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한데다, 국민경제의 종합적인 물가 수준을 보여주는 GDP디플레이터도 2018년 4분기(-0.1%) 이후 네 분기 연속 하락했다. 경기 급락이 저물가와 결합하는 ‘복합 위기’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 힘이 실리는 것이다.
거시경제를 운용하는 기획재정부는 이런 디플레이션 진단에 선을 그으며, 경기를 반등시키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먼저 정부 총지출을 2020년 9.5%에 이어 2021년 9.1% 늘리며 경기회복의 마중물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정부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의 3% 이내로 관리한다는 재정 운용의 불문율도 깼다. 2020년 예산안에 따르면,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국내총생산의 3.6%에 이를 전망이다. 구윤철 기재부 2차관은 “경기 수축기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재정을 밀어줘야 한다. 물이 철철 넘쳐 산업의 싹이 돋아나도록 예산안을 짰다”고 말했다.
이런 정책 방향은 세계적 경기 부진을 관측하는 주요 국제기구의 권고와 인식을 같이한다. 올리비에 블랑샤르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불황을 극복하려면 약간의 과열은 감수할 정도의 강력한 거시경제 정책을 펴야 한다”고 권고했다. 확장적 재정과 통화정책의 조합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닥친 부진의 늪을 넘어서야 한다는 뜻이다.
서울의 한 생활용품 매장에서 손님들이 저렴한 물건을 고르고 있다. 경기 부진이 지속되면서 불황형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연합뉴스
성장 엔진 살리기
정부는 성장 전략의 궤도 수정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한국 경제의 생산성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뒤 10년 동안 한국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7.9%에서 2.2%로, 5.7%포인트나 급락했다. 같은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의 2%포인트 남짓 하락과 비교하면 성장 엔진이 빠르게 식고 있다는 뜻이다.
사회 체계의 효율성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총요소생산성 둔화도 심상찮다. 2001~2005년 평균 잠재성장률(5.1%)에서 2.2%포인트 기여도를 차지하던 총요소생산성은 2016년 이후 절반 이하(0.9%포인트)로 떨어졌다. 노동시장 경직성, 혁신성장 부재 등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누적되면서 생산성이 떨어지고 잠재성장률도 계속 낮아지고 있다. 실제 2000년대 초반 5.1%에 이르렀던 잠재성장률은 점진적으로 하락해 2019년 2.5~2.6%에 머무는 것으로 정부는 추산한다.
정부는 2020년 중점을 두고 추진할 정책으로 경제·사회 구조개혁을 상정하고 있다. 연공급 중심의 경직적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등 노동시장을 개혁하는 한편,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신산업을 추진하기 위한 사회적 타협 메커니즘도 만들어가기로 했다. 기존 규제와 제도만으로 규정할 수 없는 신산업이 태동해 이해관계자 대립이 생기면, 이익 공유 협약을 체결해 상생협력기금을 조성하는 등 사회적 타협의 길을 열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또 급격한 고령화로 생산연령인구(15~64살) 감소 등 인구구조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2기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를 꾸리기로 했다. 이 밖에도 민간과 공공, 민자사업을 합쳐 100조원대 투자를 발굴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불확실성에 지갑을 닫는 민간부문 경제성장 기여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최대 15조원 규모 민간투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울산의 석유화학공장, 인천의 복합쇼핑몰 등이 유력한 후보다.
공공성 재정립
그러나 이 정도 대책으로 바닥까지 떨어진 경제 활력이 살아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반도체 경기 등 대외 여건이 다소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미-중 무역분쟁 불씨가 꺼지지 않았고 중국 경기 둔화가 심해질 우려도 있다. 국내에선 2018년부터 시작된 생산연령인구 감소가 10년 동안 약 260만 명에 이를 전망이다. 한국 경제가 경험하지 못한 ‘축소사회’로 이행하는 데 순조롭게 적응하는 어려운 숙제가 남아 있는 셈이다.
많은 전문가는 공공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산·소비·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인구 증가가 전제돼야 하지만, 각자도생에 내몰린 시민이 ‘출산 파업’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노동과 자본 등 요소투입형 경제성장에 골몰한 정부가 공공 역할을 사실상 방기했다고 지적했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경제학)는 “정부가 경제성장 외형을 만드느라 출산과 양육, 교육과 주거 등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개인 책임으로만 밀어냈다”며 “공공부문이 이런 역할을 맡아줘야 개인이 불안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고,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숙제인 저출산을 해결하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도 “한국 경제가 맞닥뜨린 구조적 문제인 저출산 개선과 생산성 제고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과감한 재정 운용을 주문하고 싶다”며 “기존 복지제도에 예산을 좀더 투입하는 수준을 넘어, 저출산 대응과 사회 구조개혁을 위한 새 정책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경향사설]검찰의 ‘조국 불구속 기소’가 말하는 것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불구속 기소했다. 혐의는 12개다. 두 자녀의 대학·대학원 입시 때 허위 증명서·표창장 등을 제출해 해당기관의 업무를 방해했고, 딸이 받은 장학금 600만원은 뇌물이라고 했다. 차명주식을 보유하고도 신고하지 않았으며, 보고서조작 지시, 노트북 등 증거를 숨겼다고 했다. 검찰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도 업무방해 등 8개 혐의에 대해 추가 기소했다. 조 전 장관 가족 비리의혹 수사는 강제수사 126일 만에 마무리됐다.
‘조국사태’가 사회에 던진 화두는 가볍지 않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누려온 특권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시민은 분노했고, 지지와 반대로 갈려 대립했다. 한편으로 그런 진통 위에서 공정·평등에 대한 갈망이 분출됐고, 검찰·교육 개혁이 뿌리 내리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조국사태가 저문 해의 마지막 날 일단락된 것은 시사적이다.
이와 별개로 검찰 수사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조 전 장관과 그 가족 수사에 4개월 넘는 기간 동안 30여명의 검사 등 100여명이 동원돼 70여곳에 달하는 압수수색을 벌였다. 그 결과 조 전 장관 부인과 동생, 조카가 구속됐고 조 전 장관은 불구속 기소됐다. 앞으로 ‘법원의 시간’이 남아 있지만 온나라를 뒤흔든 사건의 중간 결과치고는 너무 빈약하지 않은가. 검찰은 또한 조 전 장관에 대해 청와대 감찰무마의 주범으로도 지목,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당했다. 이러니 수사 의도에 의심이 제기된다. 검찰개혁의 저지, 조 전 장관 낙마를 기대한 정치적 행위 아니냐는 비판에서 검찰은 자유로울 수 없다. 윤석열 총장은 경자년 신년사에서 “형사 법집행은 비례와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먼저 ‘과잉 및 정치 수사’ 논란과 관련해 성찰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검찰은 시민의 강력한 검찰개혁 의지를 ‘기소’할 수 없었다. 그 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 제정 등 무소불위 검찰권력을 통제할 견제장치가 하나둘 마련되고 있다. 마침 윤 총장도 공수처 설치 등을 ‘형사절차의 변화’로 인정하고, 검찰 본연의 책무를 완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불공정, 돈·권력 선거, 약자·서민 상대 범죄에 대한 단호한 대응도 강조했다. 시민들은 검찰이 스스로의 다짐을 얼마나 성실하게 실천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MBC여론조사③] 부동산 대책 "적절" 51.1% VS "과도" 40.4%
MBC가 새해를 맞아 실시한 신년 여론조사에서 고가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한 12.16 부동산 대책에 대해 51.1%가 ‘집값 안정을 위한 적절한 조치’라고 답했습니다.
반면 '실수요자의 주택 구입을 막은 과도한 조치'라는 응답은 40.4%였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과도한 조치’라는 응답이 47.2%로, '적절한 조치'라는 응답 45.5%보다 오차 범위 내에서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고가주택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인상과 관련해선 '1주택자이더라도 고가주택이면 종부세를 감면해줘선 안 된다'는 응답이 56%로, '1주택자에게는 감면해줘야 한다'는 응답 41%보다 많았습니다.
새해 경제 전망에 대해선 '더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이 38.6%, '지난해와 비슷할 것'이라는 응답은 36.1%였고, 더 나아질 거라는 응답은 23.2%에 그쳤습니다. 다만 지난 11월 조사 때와 비교하면 나아질 거라는 응답이 18.9%에서 23.2%로 늘어난 반면, 나빠질 거라는 응답은 45.5%에서 38.6%로 줄었습니다.
'올해 일본에서 열리는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절반 이상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본이 방사능 오염 우려가 있는 후쿠시마 농산물을 선수촌에 공급하고, 욱일기 응원을 허용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52.4%가 보이콧에 찬성했고, 42.4%는 반대했습니다. 지난 9월 조사 때보다 보이콧 찬성 응답이 59.1%에서 52.4%로 줄어든 반면, 반대 응답은 36.7%에서 42.4%로 늘어났습니다.
북미 비핵화협상에 대해서는 절반에 가까운 46.9%가 지금처럼 교착상태가 계속될 거라고 전망했습니다. 현재 상황보다 진전될 것이라는 응답은 26.1%, 악화될 거라는 응답은 20.7%였습니다.
공무원 보수 2.8% 오른다…대통령 연봉 2억3천여만원
2020년 지방공무원 보수가 2.8% 인상된다. 재난발생 현장 근무 공무원에게 지급하는 비상근무수당도 오른다. 행정안전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지방공무원 보수규정 일부개정령안`과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이 30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개정령안은 물가와 민간임금 수준을 고려해 내년 지방공무원 보수를 2.8% 인상하도록 했다.
다만 대내외 경제여건을 고려해 정무직 공무원을 포함한 2급 상당 이상 지방공무원은 내년 인상분을 모두 반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20년도 대통령의 연봉은 2억3천91만4천원, 국무총리 연봉은 1억7천901만5천원으로 정해졌다.
부총리·감사원장은 1억3천543만5천원, 장관(장관급)은 1억3천164만원, 인사혁신처장·법제처장·식품의약품안전처장 1억2천974만원, 차관(차관급)은 1억2천784만5천원이다.
대통령을 포함한 정무직 연봉은 인상분 반납을 반영하고, 2019년도 인상분 반납으로 반영하지 않았던 인상률을 반영해 실제로 받게 되는 연봉이다. 결과적으로 대통령 연봉은 2019년도 2억2천629만7천원에서 내년 2억3천91만4천원으로 2.04%(461만7천원) 오르게 됐다. 총리, 부총리, 장관, 차관의 실제 연봉 인상률도 2.04%다.
한편 비상근무명령을 받고 방역초소 등 재난발생 현장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에게 지급하는 비상근무수당의 지급 한도는 월 5만원에서 월 6만5000원으로 오른다. 또 직무 중요도와 난도가 높은 업무를 수행하는 6급 이하 공무원들에게는 중요직무급을 신설해 월 10만원을 지급한다. 출산장려를 위해 육아휴직 대신 시간선택제로 전환한 공무원에게 지급하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수당`도 올린다.
현재는 상한선을 150만원으로 두고 월봉금액의 80%를 지급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주 5시간 단축분에 대해서는 민간과 동일하게 월봉 금액의 100%를 주고 상한액도 200만원으로 확대한다. 또 임기제 공무원이 육아휴직 복직 후 6개월 이전에 임기 만료로 당연퇴직하는 경우 육아휴직수당 합산금을 일시불로 지급하는 내용도 개정안에 포함됐다.
2019 공무원 봉급표 (사진=인사혁신처)
한국경제TV 디지털전략부 김현경 기자
이것만 보면 2020년 미디어 전망·쟁점 한 눈에
[2019년이 가리킨 2020년 미디어] MBN과 CJENM의 운명부터 기자 단톡방 사건의 결말까지…미디어오늘이 꼽은 12개 쟁점
■ “해장국 언론”
“해장국 언론을 원하는 국민이 다수인 상황에서 언론개혁은 불가능하다.” 조국 사태 이후 강준만 교수가 언론의 정파성 문제와 함께 언론의 정파성을 추동하는 뉴스수용자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했다. 논객 진중권씨는 ‘알릴레오’·‘뉴스공장’을 “성인용 디즈니랜드”로 명명하며 한겨레의 정파성까지 비판하고 나섰다. 올해 KBS·MBC·YTN·JTBC 등에서 불거졌던 보도국 내부 갈등은 결국 ‘해장국 언론’에 대한 입장차로 귀결된다. JTBC는 신년 토론 주제로 ‘언론개혁’을 잡았다. 그 어느 때보다 상호비평이 활발해진 언론계에서 ‘조중동OUT’ 이상의 언론개혁 논의가 등장할지 주목된다.
▲'버닝썬 2탄' 영상을 요구하는 대화(왼쪽)와 대화 직후 불법촬영물이 공유된 대화(중간). 가수 정준영씨가 속옷 차림의 여성들과 찍은 사진(오른쪽)도 공유됐다. ⓒDSO
■ 끝나지 않은 ‘기자 단톡방’ 사건
기자들의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포르노·불법촬영물 유포 사이트 링크 140여개가 발견됐다. 2017년 11월부터 2019년 4월까지 공유된 사진은 590여장이었다. 성매매 업소 추천도 이뤄졌다. 방이 폐쇄되기 직전까지 여성의 헐벗은 사진이 올라왔고, 그들은 반성하지 않았다. 사이버성범죄 사건에 기자들이 가담했던 이 사건은 여성 이슈를 다루는 언론계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언론계의 지속적인 성찰과 변화가 없는 한 사회적으로 젠더 감수성이 높아진 지금 언론에 대한 불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현재 가담자 12명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며 경찰은 이들은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상태다.
▲뉴스타파 보도화면 갈무리. ⓒ뉴스타파
■ 기사 거래, 이제는 달라져야
지난 2월 뉴스타파의 ‘박수환 문자’ 보도로 조선일보 기사 거래 정황이 드러났다. 보도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청탁에 따라 파리바게트 그룹사 SPC에 유리한 기사를 써줬다. 로비스트 박수환에게 조선일보는 언론사가 아닌 영업수단이었다. 12월엔 경향신문에서도 기사 거래 논란이 불거졌다. SPC에 불리한 기사를 빼주는 대가로 5억 원을 받기로 했다는 것. 진보성향의 언론사조차 이처럼 자본 권력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여전히 언론계는 음성적인 협찬과 광고를 통한 지면 거래가 이뤄진다. 언론 신뢰도 최하위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기사 거래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 대응이 필요하다.
▲CJENM 허민회 대표이사가 12월30일 상암동 CJENM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를 하고 있다. ⓒCJENM
■ CJENM, 조작방송의 끝은
12월30일, CJENM Mnet의 ‘프로듀스101’ 시리즈 순위 조작에 대해 허민회 대표이사가 직접 사과했다. 하지만 본사는 여전히 ‘피해자’였고, 순위조작사태 핵심인 로데이터 역시 공개하지 않았다. 기자들의 질문에는 “수사결과가 나오면 말씀드리겠다”며 피해갔다. 조작으로 탄생한 아이즈원·엑스원 등의 활동은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프로듀스’ 시리즈는 돈만 벌면 된다는 방송사의 상업주의가 낳은 괴물이었다. 만약 이번 사태가 ‘조작하면 안 된다’ 대신 ‘걸리면 안 된다’는 교훈을 남긴다면, 시청자들을 또 한 번 기만하는 일이 될 것이다. 재판 과정과 CJENM의 후속대응까지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MBN. ⓒ연합뉴스
■ MBN의 암울한 미래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가 지난 11월 자본시장법과 외부감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MBN 법인과 이유상 매경미디어그룹 부회장, 류효길 MBN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2011년 종편 개국 당시부터 주주구성에 위법성이 있었던 사실이 드러나며 언론계에 유례없는 압수수색과 검찰수사가 진행 중이다. MBN으로서는 수사결과에 따른 재허가 취소 위기 가능성이 있다. 설령 재허가 취소에 이르지 않는 제재를 받더라도 올해 11월 재허가 심사라는 관문을 또다시 통과해야 한다. 수사결과 및 방통위 처분에 대한 MBN 경영진의 ‘자세’가 결정적 변수가 될 전망이다.
▲TV조선과 채널A 로고.
■ 문재인정부 첫 TV조선·채널A 재승인 심사
심지어 박근혜정부에서 이뤄진 2017년 재승인 심사과정에서 TV조선은 합격선인 650점을 넘기지 못했으나 청문회를 거친 뒤 조건부 재승인을 받았다. 올해는 어떨까. MBN의 차명주주 논란에 따른 불법승인문제는 TV조선과 채널A에도 달가울 게 없는 소식이다. 재승인 심사를 앞두고 자사의 주주구성과 관련해 지금껏 묻혀있던 새로운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 때문이다. TV조선과 채널A, 그리고 제1야당은 심사결과에 따라 ‘언론탄압’을 주장할 수도 있다. 이번 심사부터는 국민 의견을 재승인 심사위원들이 사업자에게 물어보고, 이에 대한 답변을 심사에 반영하는 ‘국민이 묻는다’ 제도도 선보인다.
▲7월12일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코리아나호텔 외벽에 ‘조선일보 폐간하라’라는 글자를 띄웠다. ⓒ정민경 기자
■ 조선일보·동아일보 100주년
조선일보는 2020년 3월5일, 동아일보는 4월1일 창간 100주년을 맞는다.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두 신문사가 각종 행사·포럼으로 광고 싹쓸이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조선일보는 100주년을 맞아 방상훈 사장에서 방준오 부사장으로의 본격적인 경영 승계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시민사회는 언론노조를 중심으로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 행동’을 발족시켰다. 조선·동아일보의 100년을 평가하는 각종 행사·서적·방송프로그램도 활발하게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공모를 통해 ‘시민이 뽑은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보도’를 선정, 3월 중 발표할 계획이다.
▲JTBC 사옥. ⓒJTBC
■ 손석희 없는 JTBC
1월2일 ‘뉴스룸’을 끝으로 손석희 JTBC 대표이사가 앵커직에서 물러난다. 보도국에서 그의 영향력은 현저히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당장 MBC사장 출마설이 돌 정도로 JTBC와의 향후 미래 또한 부정적이다. JTBC는 2019년 각종 여론조사에서 하락세였으나 여전히 1위였다. 그러나 2020년 ‘손석희 없는 JTBC’가 등장함으로써 JTBC뿐만 아니라 타 방송사의 영향력·신뢰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2016년 태블릿PC 보도 이후 압도적인 신뢰도·영향력 1위였던 JTBC로서는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변곡점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영향력·신뢰도 하락이 예상된다.
▲KBS와 MBC 로고.
■ MBC와 KBS의 과제
MBC 계약직 아나운서 9명이 지난해 1월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를 인정받았다. 그리고 이어진 기나긴 소송. MBC가 제기한 행정소송 1심 변론이 12월19일 끝났다. 선고 기일은 2020년 3월5일. 이 무렵 새롭게 취임할 MBC 사장은 아나운서 부당해고 사태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더불어 사내에 만연한 위기의식을 극복할 경영책을 내놔야 한다. KBS로서는 만성적인 경영위기 극복을 위해 높은 신뢰도·공정성을 바탕으로 수신료 인상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양대 공영방송은 조국 사태 이후 이목이 쏠린 출입처·출입기자단의 문제와 관련해 새로운 취재방식으로 대안을 보여줘야 한다.
▲방송의 개념이 달라질 예정이다. ⓒ게티이미지
■ 20년 만에 달라질 ‘방송’
1999년 11월 통합방송법 제정 이후 20년 만인 지난 11월 방송통신위원회가 중장기 방송제도 개선 방안을 냈다. KBS와 EBS는 공영방송, MBC는 공공서비스방송(PSB)으로 분류하고 기존 방송 개념은 방송서비스(역무)로 바꾸고 시청각미디어서비스(가칭) 개념을 신설할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OTT로 세상을 보는 시대변화에 맞춰 방통위는 OTT에 대해서도 내용규제·과세 측면에서 필요한 규제를 도입할 방침이다. 방통위가 총선 이후 본격 제도개선에 나설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20년 만의 변화에 업계와 시민사회의 논쟁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유튜브. ⓒ게티이미지
■ 유튜브 전쟁
국내 최대 동영상 광고 플랫폼 스마트미디어렙(SMR)이 21일부터 국내 방송사 VOD를 유튜브에 제공하기 시작했다. 방송사 콘텐츠가 2014년 유튜브에서 철수한 지 5년 만의 ‘사건’이다. 이제 바야흐로 모든 콘텐츠는 유튜브로 모인다. 유튜브에서 뉴스를 소비하는 이용자도 늘고 있다. 4월 총선은 유튜브 를 중심으로 프레임 전쟁이 벌어지는 첫 번째 선거가 될 것이다. ‘유튜브발’ 허위정보에 선관위가 어떻게 대응할지도 관심사다. 유튜브 영향력이 강해진 만큼 ‘노란딱지’ 결정 과정의 투명성 요구부터 구글세 논의까지 유튜브 생태계를 둘러싼 논의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IPTV와 케이블TV가 손을 잡았다. ⓒ게티이미지
■ LG헬로비전, 유료방송 질서재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를 승인했다. 새 이름은 ‘LG헬로비전’이다. 경쟁 관계였던 IPTV와 케이블TV가 손을 잡으며 유료방송업계 질서는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현재 통신3사가 추진하거나 검토 중인 케이블TV를 더하면 KT+스카이라이프+딜라이브(37.31%), LG유플러스+CJ헬로(24.43%),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23.83%)로 통신사들의 유료방송 점유율은 85%를 넘게 된다. 이 경우 케이블TV의 지역채널이 사라지며 지역성 훼손이 예상된다. 입수합병 과정에서 노동자 생존권 문제도 쟁점이다. 통신3사 독과점으로 유료방송이 재편되는 데 따른 견제와 비판이 요구된다.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서울 17.6억 대 3.7억…아파트 상·하위 가격차 9년만에 최대
KB국민은행 가격동향 분석]
상위 2
0%가 하위 20%의 6.8배
소득보다 자산 양극화가 더 심각
지난해 집값 격차 확대 두드러져
9억 이상 대출규제로 가격차 줄 듯
전국의 상위 20% 고가 아파트와 하위 20% 저가 아파트의 가격 차이가 9년 만에 최대치로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서울과 일부 광역시에서 고가주택 가격이 급등한 데 반해 중저가 주택이 밀집한 지방 중소도시에선 부동산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아파트값 양극화 현상이 심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1일 케이비(KB)국민은행의 ‘케이비주택가격동향 시계열 자료’를 보면, 지난해 12월 전국 아파트 5분위 배율은 6.8로, 2011년 1월(6.9) 이후 8년11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5분위 배율은 주택을 가격순으로 5등분해 상위 20%(5분위) 평균 가격을 하위 20%(1분위) 평균 가격으로 나눈 값으로, 배율이 높을수록 고가주택과 저가주택 가격 차가 크다는 것을 뜻한다. 지난 3분기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의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이 5.37이었던 점에 견주면, 아파트 가격의 5분위 배율이 보여주는 자산 양극화 정도가 소득 분배 불평등보다 더 심각한 셈이다.
다만 전국 아파트 5분위 배율은 집값 추이에 따라 등락 폭이 큰 편이다. 국민은행이 5분위 배율을 첫 조사한 2008년 12월 이후 2009년 12월까지 7.9~8.1이었던 배율은 2015년에는 4.4~4.5까지 떨어졌다. 이는 2005~2008년 집값 급등기에 높아졌던 5분위 배율이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닥친 부동산경기 침체기를 거치며 대폭 낮아진 것이다. 이후 집값 회복과 함께 다시 상승세를 탄 5분위 배율은 지난해 고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집값 급등 탓에 9년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우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12월 전국의 1분위 아파트 평균 가격은 1억835만원으로 전년도 같은 달 평균 가격(1억1407만원)보다 573만원 낮아졌다. 반면 5분위 고가 아파트의 지난달 평균 가격은 7억3957만원으로 1년 전 평균 가격(7억685만원)보다 3272만원 상승했다. 이에 따라 전국 아파트 5분위 배율은 2018년 12월 6.2에서 지난해 12월에 6.8로 커졌다. 서울의 지난달 5분위 배율은 4.8로, 전년도 같은 달의 4.7에서 소폭 높아졌다. 서울의 지난달 1분위 아파트 가격은 평균 3억7019만원, 5분위 고가 아파트 가격은 평균 17억6158만원을 나타냈다. 지난달 경기·대전·대구·울산 등의 5분위 배율도 2013년 국민은행에서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높았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정부가 ‘12·16 부동산대책’을 통해 단행한 9억원 초과 주택 대출 규제 강화와 15억원 초과 대출 금지 조처가 앞으로 5분위 배율 등락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대출 규제로 시가 9억원 초과 주택을 일컫는 이른바 ‘똘똘한 한 채’에 대한 투기가 주춤해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김규정 엔에이치(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고가주택은 대출 없이 현금으로 살 경우에도 강도높은 자금출처 조사를 받는 등 규제 여파로 고가와 중저가 아파트의 매매가격 격차가 줄어들 여지가 생겼다”고 짚었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차기 대선주자 선호, 이낙연 25.3%…2위 황교안 10.9%
이 총리, 호남·40대·진보층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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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홍준표·박원순 뒤이어
“대치동 초등생들, 고교 ‘수학 정석’ 배워”… 돈ㆍ계급 대물림하는 빗장도시
[학벌의 탄생, 대치동 리포트] <1>빗장도시에 갇힌 아이들
“학원서 친구 자면 일부러 안 깨워요” 大入 경쟁 넘어 전쟁
교육열로 포장된 신분상승 욕망… 1등도 꼴찌도 좌절ㆍ열등감
지난달 대치동의 한 학원 입구(왼쪽 사진)에 성적 향상 사례가 게시돼 있다. 대치동에서 만난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기 중엔 4, 5개, 방학 때는 더 많이 학원을 다닌다”고 말했다. 배우한 기자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 정석(수학의 정석ㆍ고교 수학 참고서)을 배우는 동네.”
서울 대치동 학부모 이진경(41ㆍ가명)씨가 말하는 2020년 대치동의 ‘속도’다. 그는 “대치동에서는 ‘적당한 선행(先行)’이라는 게 있다”고 했다. “여기서는 ‘수학 상하(고1 과정)’공부하려고 학원에 가면 초등학교 5, 6학년이 가장 많아요. 중2 우리 딸도 지금 실력정석(고1 심화과정) 수업을 듣는데, 거의 다 초등학생이에요. 그 반에 초등학교 3학년도 3명이나 있는데, 그중 한 명은 심지어 잘한다는 거 아니겠어요?”
대입을 향해 미친 속도로 달리는 곳. 2020년 겨울, 대치동은 경주에서 낙오되지 않으려는 이들의 끝이 보이지 않는 트랙이다. 교육과정보다 3, 4년이상 빠른 선행 학습의 이유는 결국 대입. 미리 배울수록 대입에서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아이를 대학에 보낸 선배 엄마들은 수학은 중학교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더 많이 하고 오라고 해요. 고등학교 오면 내신이다, 수능이다, 시간 없는데 어느 세월에 수학을 진도대로 배우고 앉아있냐면서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사거리에서 지하철 분당선 한티역 사이 1.5㎞ 거리. 이 일대를 지칭하는 명칭, 대치동 학원가에는 강남구 학원(2,279개)의 절반인 1,057개가 몰려 있다. ‘누구보다 뛰어난’ 타이틀을 획득하기 위해 너나 없이 달려나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치열한 사냥터. 그리고 ‘학벌’이라는 유령이 태어나 자라는 산실이기도 하다. 부유한 미래를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카드로 여겨지는 학벌. 한국일보는 2020년 신년기획 시리즈 ‘학벌의 탄생, 대치동 리포트’를 통해 공동체보다 개인의 ‘파편화된 이익과 행복’을 양분으로 덩치를 키워가고 나날이 폐쇄화되는 ‘학벌의 탄생지’ 대치동의 오늘을 조망하며 학벌이 부를 대물림하고 계층의 사다리를 끊어버리는 오랜 병폐를 치유할 대안을 모색한다.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듣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다. 배우한 기자
◇성적 경쟁? 피 튀기는 ‘전쟁’
대치동은 사시사철 뜨겁다. 학원으로 빼곡히 들어찬 빌딩 속으로 쉴새 없이 사람들이 사라지고, 1층 카페는 학원 숙제를 위해 몰려든 학생들로 붐빈다. 지나가는 학생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학기 중엔 학원 4, 5개, 방학 때는 더 많이”라는 답이 공식처럼 돌아오는 곳. 학원 수업이 끝나는 오후 10시에는 아이들을 데리러 온 부모들로 도로가 북새통을 이룬다. 학군 프리미엄으로 인근보다 집값이 수 억원 더 비싸도 부동산에는 대치동 입성을 바라는 부모들의 문의가 쇄도한다.
대치동 활황의 기저에는 자신의 학력과 부를 대물림 하려는 부모들의 욕망이 있다. 그래서 대치동에는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자식도 누리기를 바라는 중산층, 전문직 부모들이 유독 많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명문대, 의대 진학을 통한 성공이라는 대치동식 교육관에 부합하는 사람들이 대치동으로 몰려들고 있다”며 “대치동에는 그래서 자녀 대학에 집착할 필요 없는 청담동, 압구정 같은 ‘진짜 부자’들 보다는 자산이 적은 ‘애매한 부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대치동을 도시학에서 말하는 ‘빗장도시(Gated Community)’로 설명하기도 한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주택 가격이 너무 높으니까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제한돼 있는데, 그 안에서 학력과 부를 재생산하고 있다”며 “대치동은 빗장도시의 대표적인 형태”라고 말했다.
대치동에서는 모두가 잠재적 경쟁자다. 누군가 성적이 오르면, 누군가는 떨어지고, 한 명이 붙으면 한 명이 떨어지는 법.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정보도 쉽게 발설하지 않는다.
대치동에서는 그러다 보니 친한 친구끼리도 ‘어디 학원 다녀?’라고 묻지 않는 암묵적 규칙이 있다. 큰 길가에 있는 대형 학원들과 달리, 학교별 내신에 특화된 알짜배기 학원들은 뒷골목에 숨겨져 있는 곳이 많아서다.
극심한 경쟁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회자될 정도다. 지난달 은마아파트 앞에서 만난 고등학교 1학년 박혜영(16ㆍ가명)양도 “특히 (강남 8학군에서도 내신 경쟁이 치열한) 숙명여고 학생들은 학원에서 프린트를 나눠주면 자신이 어떤 학원인지 모르게 하려고 학원 이름 적힌 맨 앞장을 뜯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함께 독서실을 가던 김지현(16ㆍ가명)양도 “학원에서 친구가 자면 일부러 안 깨우는 분위기”라고 거들었다. 대치동 미래탐구 학원의 정현두 입시센터장은 “여기서는 이번에 우리 애가 서울대, 연대를 갔다 하더라도 어디서 컨설팅, 지도를 받았는지 굳이 남들한테 안 알려준다”며 “우리 애가 반수(대학을 다니다 중간에 재수를 선택)해서 의대에 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좋은 대학을 나와야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고, 어느 대학을 가는지가 평생 월급의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에 엄청난 투자를 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라며 “승자만이 모든 것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대입은 경쟁을 넘어선 ‘교육전쟁’ 수준”이라고 정의했다.
대치동에서는 학원 등록조차 쉽지 않다. 밤샘 줄서기에는 가족이 총동원된다. 박혜영양은 “이번에도 E국어 수업 들으려고 친구 오빠가 접수 시작 전날 오전부터 줄 섰는데, 번호 표가 88번이었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초등학생 전문 수학 학원인 H학원도 입학 시험 때마다 1,000여명씩 몰리기로 유명하다. 이곳은 1년에 두 차례 치러지는 입학 시험에 붙어야 다닐 수 있다. 이 학원 졸업생 학부모 김모(45)씨는 “초등학생을 둔 대치동 부모들 사이에선 H학원 시험을 통과해야 ‘수학 좀 하는 애’라는 인식이 있다”고 했다.
학원도 이를 교묘히 이용한다. 대치동 유명 학원에서 상담실장을 했던 한 학부모는 “각 학교 전교 1~3등은 그 엄마들한테 학원에서 먼저 연락해 등록시켜 주는 우선 예약제가 있다”며 “걔네가 우리 학원 다니면 홍보도 되고, 성적 잘 나올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치동 학원은 철저한 레벨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아이들끼리 학원 반(레벨)으로 우열을 가리는 모습도 쉽게 눈에 띈다.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의 기폭제가 된 것도 수학 학원인 G학원에서 쌍둥이가 속해 있던 반이었다. G학원은 실력에 따라 1~6반으로 나뉜다. 숙명여고 졸업생 학부모 조모(49)씨는 “쌍둥이가 G학원 낮은 수준 반이었는데, 이 동네 부모라면 그 반 애들은 절대 숙명여고 전교 1등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강남 3구 학원·대치동 학원 수. 강준구 기자
◇“과학고 떨어져서…” 실패 그 후
대치동 아이들은 학원에서, 학교에서, 수시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다. 1등은 1등대로, 꼴등은 꼴등대로, 아이들은 좌절감과 열등감에 짓눌린다.
특히 고입에서 한 차례 실패한 아이들은 열여섯, 열다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쓴맛을 본다. 지난해 말, 대치동에서 만난 중학교 3학년 이대현(15ㆍ가명)군은 자신이 지금 “방황 중”이라고 했다. 상반기에 치른 과학고, 영재고 입시에서 모두 탈락해서다. 이군은 “대학을 잘 가면 되긴 하지만 약간 화나긴 해요”라고 심정을 전했다. 이군은 계속 ‘못할 것 같다’ ‘안될 것 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꿈은 수학자요. 그런데 안 될 것 같아요. 과학고 떨어져서 능력이 안 돼 못 할 것 같아요. 이미 한 번 뒤처졌잖아요.”
이과 선호도가 월등히 높은 대치동에서는 영재고, 과학고 입시 열기가 대입을 방불케 한다. 이들 학교가 원하는 대학을 가기에 보다 수월하다는 인식에서다. 대치동에서 25년째 입시 지도를 하고 있는 이소연 스터디브릭스 원장은 “영재고 들어가는 순간, 거기서 버티기만 해도 어느 정도 대학이 보장된다, 대입이 어느 정도 끝났다고 생각한다”며 “휘문중(남중) 3분의 1 정도는 영재고 준비를 한다”고 설명했다. 영재고, 과학고 입시에 실패하면 ‘공부 시킨 게 아깝다’며 전혀 다른 방향인 외고, 국제고로 틀어 진학시키는 부모들도 있다고 이 원장은 귀띔했다.
대치동의 이런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은 무기력함을 강하게 표출하기도 한다. 학원조차 쉽게 들어갈 수 없는 동네에서 뒷줄로 밀린 학생들은 꿈꾸는 법조차 잊은 듯했다.
지난달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난 단대부고 3학년 김민준(18ㆍ가명), 박준호(18ㆍ가명)군은 이곳에서 학원을 5, 6개 다니지만 특별히 가고 싶은 대학도, 되고 싶은 것도 없다고 했다. 김군과 박군 모두 고등학교 1학년 때 다른 지역에서 은마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박군은 “저희가 중위권이라 ‘인서울만 하자’ ‘인서울이면 좋다’하는 생각 뿐”이라며 “꿈 생각 보다는 학교, 학원 가는 게 먼저”라고 했다.
상위권 학생도 대치동의 속도가 버겁기는 마찬가지다. 이날 대치동에서 만난 한영외고 3학년 이은영(18ㆍ가명)양은 “도태되지 않으려고 대학에 간다”고 했다. 이양은 “대학도 못 가면 인간 구실 못 한다고 배우잖아요. 뭔가 다른 세계를, 공부를 잘 못해도 잘 살 수 있는 세계를 볼 수가 없어요. 학교에서도 너 공부 못해도 잘 살 수 있다는 얘기를 안 해주고요.”
오랜 기간 대학 하나만을 목표로 전력 질주해온 아이들은 실패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대치동의 고1 학부모 정유진(49ㆍ가명)씨는 “대치동에서는 3수까지 하는 애들이 많고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안 돼서 아무것도 안 하는 애들, 혼자 나와서 사는 애들이 주변에 많다”고 말했다. 대치동의 여러 학교가 대학진학률 40%를 밑돈다. 휘문고의 2019학년도 대학진학률은 36.1%에 그친다.
정씨는 “얼마 전 우리도 아이가 ‘2년 동안 이렇게 쉬지 않고 공부할 생각하면 힘들다’는 말에 탈(脫)대치를 고민했다”며 “어마어마한 학원비를 내면서 애들 성적이 그만큼 나오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불행해지는 게 이 동네”라고 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대치동에만 학원 1000여개… 공교육 흔드는 사교육 1번지
학벌의 탄생, 대치동 리포트] <1>빗장도시에 갇힌 아이들
개발 더뎌 임대료 저렴… 1990년대부터 학원 몰려들어
“대치동 학원들은 이전까지의 통념, 즉 ‘학원’은 공교육의 보완재에 불과하다는 통념을 깨뜨리고 2000년대에 들어 공교육까지 흔드는 ‘괴물’이 되어갔다.”(한종수∙강희용 ‘강남의 탄생’ 중에서)
흔히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을 설명한 한 대목이다. 실제로 중∙소∙대형 입시학원뿐 아니라 외국어, 예체능, 직업기술까지 온갖 종류의 학원이 그야말로 총망라된 이곳은 연간 20조원(2018년 기준 19조5,000억원)에 육박하는 국내 사교육 시장을 떠받치며 학생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대치동(1~2, 4동 포함)에만 강남구 전체 학원(2,279개) 중 절반 이상(1,057개)이 모여있다. 그 뒤를 잇는 신사동(372개)과 역삼동(344개)의 약 3배에 이른다.
지금이야 사교육 중심지, 강남의 중심부로 통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치동은 압구정동 등 인근 지역에 비해 개발이 더딘 강남의 주변부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이 ‘주변부적 특성’이 아이러니하게도 대치동을 사교육 중심지로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1991년 정부의 ‘사교육(학원∙과외) 금지 조치’(1980년)가 해제되면서 학원산업들이 강남으로 몰려들며 활개를 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교육계에선 이 시기를 “강남 사교육이 싹 튼 시기”라고 말한다. 박배균 서울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한국지역지리학회 학술대회(2017년)에서 발표한 ‘대치동은 어떻게 대한민국의 사교육 1번지가 되었나?’에서 “강남의 주변부였던 대치동 일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로 인해 사교육업체들의 주요 선호지가 됐다”며 “왜 하필 대치동이 사교육 1번지가 됐는지 (알기 위해선) 대치동의 장소적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199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등장으로 대치동은 사교육 시장 내 입지를 굳히게 된다. 수능 맞춤형 강의를 제공하되 대규모 업체를 비롯해 소규모 독립학원들까지 그야말로 ‘없는 학원이 없는’ 다양성이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강남 아파트 값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학원 수업이 끝나는 심야 시간 아이를 데리러 온 학부모들의 차량 때문에 대치사거리 등 학원가 밀집 지역이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이색풍경은 대치동을 상징하는 모습 중 하나가 된 지 오래다. 과거 대치동에서 10년 동안 개인 보습학원을 운영했던 A(46)씨는 “지난 20여 년 동안 사교육 업체들끼리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강의는 물론 영업 노하우를 쌓아온 것”이라며 “사교육 시장이야말로 대치동의 정체성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6학년까지는 전학가야” 학생들 빨아들이는 대치동 초등학교
학원가 인근 초교 과밀… 학년 올라갈수록 학급↑ ‘역피라미드’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부동산 앞에 매물 가격이 붙어 있다. 배우한 기자
맹모(孟母) 맹부(孟父)의 대치동 선호는 초등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에서 확인된다. 서울시내 초등학교 과밀학급 ‘빅3’ 중 2곳이 대치동 학원가 인근에 있다. 학령인구 급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집을 불리는 이 학교들을 두고 블랙홀 같다는 말까지 나온다.
1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 556개 공립초등학교 가운데 학급당 학생 수 1위는 대도초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도곡동이지만, 대치동 학원가를 걸어서 이용할 수 있어 학부모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대도초는 한 반에 평균 34.8명(2019년 4월 기준)이 모여 수업한다. 대치동에 위치한 대치초도 한 반 평균 인원이 34.1명으로 비슷하다. 또 다른 교육특구인 목동의 목운초(34.7명)도 유명한 과밀학급이다. 이에 반해 서울 초등학교의 평균 학급당 학생 수는 23.4명이다. 학령인구 급감의 여파로 30명대였던 서울 초등학교의 평균 학급당 학생 수가 무너진 게 지난 2009년(29.8명)임을 고려하면 이들 학교만큼은 아직도 10년 전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경원 시교육청 학교지원과 주무관은 “서울시 초등학생 인구는 매년 2%씩 감소해 전반적으로 학급당 인원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지만 학군 수요가 있는 강남, 목동, 상계 지역은 과밀학급 현상이 나타난다”며 “서울로 인구가 유입된다기 보다는 서울 안에서 이동이 일어나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도초에 대한 학부모들의 선호는 가히 열광적이다. 사립초에서 전학 오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있다. 대치동에서 25년째 입시 지도를 하고 있는 이소연 스터디브릭스 원장은 “대도초는 대치동 뜨내기가 아닌 진짜 이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저작권 한국일보]대도초ㆍ대치초(선호 학군)와 서울 A초등학교(비선호 학군) 학년별 학급 수. 강준구 기자
주된 전입 시기는 초등학교 고학년이다. 그러다 보니 대도초와 대치초 모두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급 수가 늘어나는 ‘역피라미드’ 형태를 보인다. 대도초는 1학년은 10반이지만 6학년은 13반이다. 대치초도 1학년은 6반, 6학년은 5개 반이 늘어난 11반이다. 반대로 비(非)선호 학군의 초등학교는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학급 수가 줄어드는 피라미드 모양이 나타난다.
학생이 과도하게 몰리면서 부작용도 적지 않다. 대치동 학원가에 인접한 많은 학교가 콩나물시루 같은 빽빽한 교실, 유휴 교실 부족으로 교육 활동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대도초만 해도 미술실, 음악실 같은 특별실 운영은 생각조차 못 하는 실정이다. 강남서초교육지원청 담당자는 “대도초는 2018년 교실을 증축했는데, 얼마 못 가 이마저도 다 채워진 블랙홀 같은 학교”라고 설명했다. 위장전입도 서슴지 않는다. 부촌의 상징인 타워팰리스에서까지 대도초 학군인 ‘도곡렉슬’로 주소지를 옮기는 일이 꽤 많다고 부동산에서는 귀띔했다. 대도초는 궁여지책으로 2019년 한 해에만 다섯 차례나 가정통신문을 통해 학군 안내와 전출을 독려하기도 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부울경 총선 후보 지지도 민주·한국 ‘37.6%’ 동률
한신협 전국 1만 명 여론조사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4.15총선 민심 들여다보기] ‘먹고사는 문제’가 총선 승패 가른다
민생경제 ‘후보·정당 선택에 영향 미친다’ 81.8%, 1위
한일관계, 검찰개혁, 적폐청산 ‘문재인표 이슈’도 강세
유권자들은 오는 4.15총선에서 후보와 정당 선택에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이슈로 민생경제를 꼽았다.
한일·한미관계, 검찰개혁, 적폐청산, 부동산정책, 남북관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순으로 영향력이 강한 것으로 집계됐다. 문재인정부의 핵심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여전히 살아있지만 표심을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는 역시 ‘먹고사는 문제’가 압도적이라는 분석이다. 문재인정부가 총선까지 남은 4개월 동안 민생경제에서 어떤 성적을 거두는가에 따라 여당의 총선 성적표가 영향 받을 것으로 보인다.
내일신문과 디오피니언이 지난달 21~22일 실시한 여론조사(3면 ‘어떻게 조사했나’ 참조)에서 ‘다음 항목이 총선에서 후보와 정당선택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라고 묻자 ‘민생경제’의 경우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이 무려 81.8%에 달했다. 주요 경제활동층인 20대(84.5%) 30대(91.0%) 40대(83.7%)에서 높게 나왔다. 서울(84.9%)과 인천·경기(82.7%) 등 수도권에서 상대적으로 민생경제를 중요 변수로 봤다.
안부근 디오피니언 소장은 2일 “표심에 가장 영향을 주는 건 역시나 민생경제”라며 “경제문제는 정권 책임이라고 보기 때문에 (여권이) 총선까지 남은 4개월 동안 최소한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라도 키우지 못한다면 민생경제의 (표심) 영향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역대 어느 정권 때보다 격랑이 일었던 ‘한일·한미관계’도 ‘영향을 미친다’는 답이 68.2%로 전체 이슈 7개 가운데 두번째로 높았다. 문재인정권이 강력하게 추진해온 ‘검찰개혁’(67.2%)과 ‘적폐청산’(66.9%)도 뒤를 이어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수도권 아파트 가격 폭등으로 귀결된 부동산정책은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이 64.0%였다. 북미 대치로 인해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남북관계는 61.6%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에서 보수야권 패배의 원인으로 꼽혔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영향을 미친다’는 답이 54.4%로 전체 이슈 7개 가운데 꼴찌였다.
안 소장은 “(문재인정권의 핵심정책인) 한일관계와 검찰개혁, 적폐청산의 표심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강한 것은 아직 그 이슈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가 살아있다고 봐야하는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안 소장은 “다만 박근혜 탄핵이 54.4%로 꼴찌인 것은 탄핵 이슈가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정도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경제성장이 박정희 공로? 위험한 착각입니다
최근 20권으로 완간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제8권은 ‘경제 성장: 박정희 공로? 위험한 착각!’이라는 다소 공세적인 부제를 달고 있다. 박정희의 장기독재와 민주주의 탄압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그의 경제 성장 공로만은 인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근현대사 연구의 권위자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무슨 근거로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서 교수는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한 국내 요인과 국제적인 조건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면서 이 주제로만 거의 20분 가까이 열변을 이어갔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8~20권
서중석, 김덕련 지음/오월의봄·각 권 1만5500원
“독일은 1945년 이후, 일본은 한국전쟁 직후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룹니다. 대만은 60년대 초반부터 80년대까지 고도성장을 하고, 프랑스 등 서유럽도, 프랑코 독재 치하의 스페인조차 60년대부터 경제가 성장합니다. 세계 경제가 좋았던 시기죠. 유가가 배럴당 2달러 이하로 아주 낮았거든요.”
세계 경제 호황은 1973년 오일 쇼크 이전까지 이어졌다. 일단 국제적 조건이 좋았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다음은 국내 요인. “(4·19 이후 수립된) 장면 정부 모토가 경제제일주의였어요. 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 셋째도 경제. 장면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박정희가 그대로 이어받았죠. 그때 우리 국민의 경제발전 열망이 엄청났어요. 교육열은 물론 높았죠. 이승만 때 초등학교 진학률이 이미 90% 넘었어요. 대만보다도 높았죠. 이게 경제발전의 기본이거든요. 그런데 이승만 정부가 선거에만 매달리느라 경제발전에 실패한 거죠.”
국내 요인도 이미 충분히 성숙해 있었다는 얘기다. 중남미와 다르게 토지(농지)개혁에 성공해 (노동력의 원천인) 인구 이동의 제약이 없었던 점도 중요한 성공 배경이다. 그리고 오일 쇼크 이후 선진국 경제가 휘청거릴 때 우리는 되레 기회를 잡았다. 유가 폭등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 산유국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지면서 중동 건설 특수가 생겼는데, 이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질과 잘 맞아떨어졌다. “공사기한에 맞춰 순식간에 만들어주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것이다. “그때 건설부 장관이 (나중에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김재규였어요. 김재규가 큰 공을 세웠죠. 그런데 김재규는 ‘내가 한 게 아니다. 기업인들의 역할이 컸다’고 말해요. 실제로 정주영 같은 사람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죠. 박정희하고 별 상관이 없어요.”
중화학 공업 투자도 중동 특수 덕분에 가능했다고 서 교수는 말했다. 그전에는 정부가 특혜를 준다고 해도 나서는 기업이 없었는데, 중동 건설 붐으로 자본을 축적한 뒤에는 재벌들이 너도나도 뛰어들게 됐다는 설명이다. ‘경제는 박정희’라는 등식이 조작된 신화에 불과하다는 서 교수의 구두 논증은 쉼 없이 이어졌다. 긴급조치 9호라는 폭압 속에서 치러진 78년 12·12 총선에서 야당의 승리, 유신 체제 몰락을 가져온 부마항쟁이 밤이면 민중항쟁의 성격을 띠었던 점 등 박정희 정부의 경제 실정을 뒷받침하는 사실들이 즐비했다.
“독일 ‘라인강의 기적’의 경우 (연방경제장관과 수상을 지낸) 루트비히 에르하르트의 역할이 크기는 하지만 그 사람의 공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대만도 장개석(장제스)이나 그 아들인 장경국(장징궈)의 공이라고 하지 않죠. 오히려 독재자들이라 비판합니다. 프랑코는 스페인에서 (말하길 꺼리는) 금기 인물이고요. 박정희가 열심히 안 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국내외 조건을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박정희 혼자 이뤄낸 게 아니라는 겁니다.”
비교적 가까운 과거를 돌아보는 현대사 공부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한때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사실이 과연 역사적 사실이 맞는지 되짚어 봐야 할 것들이 여전히 많다. 올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부마민주항쟁만 해도 국민이 그 내용을 잘 모르는 이유는 당시 유신체제의 철저한 보도통제 탓이다. 계엄선포를 하고 나서야 신문에 보도됐다. 또 박정희 정권은 북한의 남침 야욕을 강조하는 총력안보운동과 반공운동을 동시에 펼쳤는데, 박정희가 외신기자들을 만나서는 ‘북한이 과연 쳐들어오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서 교수가 박정희 연설집에서 확인한 장면이다. 전쟁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국내 통치용으로 북의 위협을 과장한 것이다. 국내에선 북한의 남침 준비 증거로 땅굴을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일본 기자를 만나서는 땅굴이 전면전 수단은 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현실적인 얘기를 하기도 한다.
지난 2015년 3월 나온 제1권 ‘해방과 분단, 친일파: 현대사의 환희와 교차로’를 시작으로 완간까지 거의 5년이 걸린 이 시리즈의 주인공을 꼽으라면 단연 박정희다. 제5권 ‘제2공화국과 5·16쿠데타: 미국은 왜 쿠데타를 눈 감았나’부터 제15권 ‘유신 체제 붕괴: 김재규는 배신자인가’까지, 전체 20권 가운데 무려 16권이 박정희 시대를 다룬다. 8·15 해방 이후 1987년까지 42년 가운데 18년을 집권했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한편으론 서 교수가 그동안 해방 직후와 이승만 시대에 관해 책을 많이 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조봉암과 1950년대> <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 등이 그것이다. 서 교수로선 그동안 늘 부채로 남았던 ‘박정희 시대와 거짓말’에 관한 기록을 일반인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정리했다는 의미도 있다.
이번에 나온 시리즈 마지막 세 권은 6월 항쟁을 다룬다. 18권 <6월항쟁의 배경: 개헌투쟁과 전두환의 반격>, 19권 <6월항쟁의 전개: 현대사를 바꾼 최대 동시다발 시위>, 20권 <도도한 민주화 물결: 전두환·노태우의 항복 선언, 그후> 등이다. 문답 형식으로 이뤄져 있어 부담 없이 술술 읽히는 게 장점이다. 사진과 신문기사 등을 풍부하게 곁들여 사실의 바다에서 표류하지 않도록 맥락을 잡아준다.
“근현대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열기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바로 그 시점에 친일파의 시각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뉴라이트가 등장하고 활개를 치기 시작했죠. 나는 역사 전쟁이 싫지만, 한편으론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한국 현대사만큼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해주는 스승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민주주의 교과서라고 생각합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나만 없는 현강 자료”… 조바심으로 먹고 사는 대치동
학벌의 탄생, 대치동 리포트] <2>불안을 먹고 사는 학원가
매번 바뀌는 대입 제도에 혼돈“A부터 Z까지, 믿을 건 학원뿐”
새해를 앞둔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근처 한 카페에서 수험생으로 보이는 한 학생이 문제집을 풀고 있다. 배우한 기자
“우리 애 대학 원서 접수할 시간까지 정해서 알려주더라고요.”
지난해 큰 딸(21)이 서울의 한 상위권 A대학 디자인학부에 입학했다는 학부모 윤혜정(가명ㆍ49)씨.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윤씨는 아이가 고 2가 돼서야 미대 진학으로 진로를 바꾼 탓에 급하게 미대 입시학원을 수소문했던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윤씨가 선택한 학원은 윤씨 딸을 비롯해 A대학에 지원하는 수강생 50여명에게 원서접수 시간을 일일이 정해줬다. 접수 시간대가 비슷하면 실기시험 순서도 비슷해질 가능성이 높고, 같은 학원에 다녀 그림 분위기나 패턴 등이 유사해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게 학원 측 설명이었다. 윤씨는 “합격에 영향을 줬는지는 모르지만 학원이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주니 안심이 된 게 사실”이라며 “이런 것까지 신경을 써주는 건 대치동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먹이 삼아
사교육 업계에선 ‘대치동은 부모들의 불안을 먹고 산다’는 말이 오간다. 대치동에 가지 않으면 우리 아이가 명문대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부모들의 불안감은 지난 20여 년간 대치동을 사교육 시장의 메카, 나아가 ‘학벌의 산실’로 자리 잡게 한 동력이었다. ‘대치동에만 있는 강사, 대치동에서만 주는 강의 자료, 대치동에서만 알려주는 대입 정보’란 학원 측 설명이 학부모들로 하여금 과감한 투자를 하게끔 만든다는 게 사교육 업계 안팎의 목소리다.
대치동에서 20년 간 운영돼 온 입시학원에서 현재 고등부 전체 운영을 맡고 있는 박모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에게 강의 자료를 나눠줄 때 ‘이 자료들은 절대 밖에서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같은 학교 친구의 학원자료가 궁금한 데 빌려주지 않는다? 그걸 알게 된 부모는 혹시 그 강의 자료에서 수능 예상문제가 나오는 건 아닐까 초조해집니다. 학원으로 끌어들이는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죠.”
2000년대 초반부터 대치동 수업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들을 수 있는 인터넷 강의가 확대돼 왔음에도 대치동에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불안감이 작용해 왔기 때문이다. 대치동 학원들은 소위 ‘현강’(현장 강의)에서만 제공하는 강의자료가 따로 있다. 주로 강사들이 직접 만든 문제 모음집과 해설 자료들이다. 대부분의 학원이 저작권 침해 등의 문제를 이유로 인터넷상에 게재하지 않는 이 현강 자료를 얻기 위해 학생들은 학원에 몰린다. 특히 새 학기나 방학이 시작될 무렵 이른바 ‘1타강사(1등 스타강사의 줄임말)’로 불리는 유명 강사들을 보유한 대치동 학원들에선 학생들이 수강 등록을 하기 위해 밤새워 줄을 서는 모습까지 흔하게 볼 수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대치동에서 재수학원에 다닌 정영진(20)씨는 “강사들이 현강할 때 수능 대비 자료를 더 많이 챙겨 준다”며 “그걸 아는 학생들로선 좋은 자료를 받아 가야겠다는 생각에 학원에 직접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학생 강희주(20)씨는 “스타강사들은 주로 자신의 강의를 듣고 명문대에 간 강의 조교들을 20~30명씩 거느리고 자료 만드는 데도 이들을 투입한다”며 “현강을 들으면 이 조교들이 틈틈이 입시 상담도 해준다. 내가 가고 싶은 대학에 먼저 간 선배들을 바로 만날 수 있다는 점도 대치동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원하는 성적을 얻으려면 결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사실을 이들도 뒤늦게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정씨는 대치동 현강이 반드시 성적 상승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그는 대치동 학원을 “콩깍지에 가깝다”며 “겉에선 보기엔 대단해 보이지만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입시에서) 망한다는 점에서 다른 학원에 다니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털어놨다.
[저작권 한국일보]사교육비 총 규모 증가 추이/ 강준구 기자/2020-01-02(한국일보)
◇뛰는 입시정책 비웃는 대치동
사실 대치동의 ‘불안 마케팅’이 효과를 거두는 데엔 변화를 거듭해 온 대입정책 탓이 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널뛰듯 오락가락한 대입정책이 학부모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고, 이를 간파한 학원들이 변화하는 입시 정책에 발 빠르게 적응하면서 이들을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대치동에서 유명 논술 강사로 활동 중인 A씨는 “정부가 최근 정시 확대를 발표한 뒤 학원 상담실장들의 영업 멘트가 ‘어머니, 이번에 정시 확대된 거 아시죠’로 시작됐다”며 “기존에 내신 위주로 운영하던 수업도 ‘수능 모의고사와 함께 대비해주겠다’는 식으로 전략을 바꿨다”고 귀띔했다. “대입정책이 어디로 뛰든 그 위를 날아다니는 곳이 대치동”이라는 게 A씨 설명이다.
바뀐 대입정책에 따라 대입전략을 새로 짜야 하는 학생, 학부모들로선 ‘믿을 건 학원뿐’이란 인식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특히 대치동의 경우 어느 지역보다 다양한 종류의 학원이 모여 있어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선 ‘A부터 Z까지 다 있는 곳’으로 통한다. 대치동에 거주하며 고1 아들(17)을 키우는 학부모 이은아(가명∙45)씨는 “내가 모든 대입전형을 꿰뚫고 있지 않는 이상, 우리 아이가 어떤 전형으로 대학에 갈 수 있는지 학원이 알아서 전략을 짜주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또 다른 고1 학부모 역시 “체대나 미대입시, 특기자 전형 같은 ‘틈새시장’을 노리는 학생들을 위한 학원들도 어차피 대치동에 다 있다”며 “검증된 백화점이나 다름없는데 이 곳을 떠나는 게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홍섭근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은 “사교육에 투자해서 이른바 스카이(SKY) 대학을 가는 학생들은 실제로 사교육이 필요 없었을 지도 모르는 0.01%에 불과하다”며 “(학원들은)아주 소수의 학생들 사례를 일반화한 뒤 불안감을 자극해 홍보효과를 누리는 것 뿐”이라고 지적했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대치동 아이돌 ‘1타 강사’는 계약금만 수십억
학벌의 탄생, 대치동 리포트] <2>불안을 먹고 사는 학원가
강의실력은 물론 외모ㆍ입담 갖춰… 토크 콘서트에 수백 명 몰리기도
2020학년도 수능 성적표가 배부된 지난달 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고 학생들이 성적을 확인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대치동을 키운 8할은 ‘1타 강사(1등 스타 강사)’다. 2020년 대치동의 1타 강사는 아이돌급 인기를 누린다. 까다로운 대치동 학생, 학부모의 눈높이에 맞는 강의 실력은 필수. 외모와 입담까지 갖춰야 1타 강사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다. 1타 강사의 경우 계약금만 수십억원을 상회해 걸어 다니는 기업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다.
2020년 대치동의 간판, 1타 강사들은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젊은 피가 주류를 이룬다. 대치동에서 가장 ‘핫’한 1타 강사 중 한 명은 수학 강사 현우진. 1988년생으로, 스탠퍼드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대치동에서 강의를 하다 2014년 말 메가스터디교육에 영입됐다. 2018년 한 해에만 본인이 집필한 ‘뉴런’ 교재 99만권을 팔아 치우는 등 연 매출 3,569억원(2018년 기준) 상당의 메가스터디교육을 이끄는 대표 강사로 자리 잡았다. 현우진 강사의 경우 2018년 초 강남에 지상 4층 규모, 320억원대 건물을 매입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투스의 이지영 강사도 사회탐구 영역의 독보적인 1타다. 수학과 달리, 문과 학생만 듣는 과목이라는 한계에도 누적 수강생만 250만명에 달한다. 그 역시 서울대 윤리교육과를 졸업한 30대의 젊은 강사다. 김동욱(국어ㆍ메가스터디교육), 유대종(국어ㆍ스카이에듀), 이명학(영어ㆍ대성마이맥) 등도 대치동에서 손꼽히는 1타 강사다.
학생들은 1타 강사를 연예인처럼 따른다. 수능이 끝나고 열리는 일종의 팬 미팅, ‘토크 콘서트’에는 수백 명이 선생님 실물을 보기 위해 몰려든다. 업계 관계자 A씨는 “영상으로 보여지는 직업이고 본인도 수입이 좋다 보니 패션, 피부 관리에 상당히 신경을 쓴다”며 “학생들도 연예인 보듯이 하다 보니 강사를 뽑을 때 카메라 테스트는 기본이 됐다”고 귀띔했다.
학원 측도 매출을 좌지우지하는 1타 강사 모시기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A씨는 “학생들이 1타 강사 때문에 홈페이지를 방문했다가 다른 선생님 맛보기 강의를 들어보고 20~40만원대 ‘패스(수능 전까지 해당 업체의 인터넷 강의를 무한대로 이용할 수 있는 연간 수강권)’를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며 “스타 강사 영입은 학생 유입 효과나 마케팅 차원에서 좋다”고 말했다. 강사는 학원과 계약을 맺고 움직이는 개인사업자다.
2016년 7월, 대치동 국어 1타 강사였던 이모(52)씨가 수능 6월 모의평가 문제를 유출한 혐의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편 대치동 1타 강사가 보장하는 큰 부와 명성 탓에 벌어지는 사건 사고도 적지 않다. 수년간 대치동의 국어 1타 강사였던 이모(52)씨는 2016년, 평소 알고 지내던 교사를 통해 수능 6월 모의평가 문제를 유출했다가 구속됐다. 1타 강사로서의 적중률,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6월에는 수능 국어 유명 강사인 박광일씨가 필리핀에 회사를 차려 경쟁 강사를 비방하는 댓글을 조직적으로 달아온 사실이 확인돼 파문이 일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미국 집값 폭등의 주범, 사모펀드
[김광기의 '인사이드 아메리카'] 제국이 그들의 배를 불리는 방식 ⑥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주택 중간가격은 100만 달러(약 11억 6000억 원)를 훌쩍 넘었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2018년 10월 8일 자 'Life on the Dirtiest Block in San Francisco') 트위터와 우버 같은 세계적인 기업의 유치를 집값 폭등의 탓으로 흔히 돌리곤 한다. 그곳엔 일자리가 있고 일자리를 얻는 이들이라면 거주할 곳이 필요하니까. 그러나 지금의 터무니없이 오른 가격은 그것만으로는 충분히 설명이 안 된다. 그렇다면 그 가격을 누가 왜 어떻게 올렸을까? 거기에 누가 일조하고 그 큰 그림을 누가 그렸는가? 그 큰 그림의 승자와 패자는 누구인가? 그것을 따져 보는 것이 이번 편의 목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미국의 부동산 시장에서 적용된 '자유주의 정책'과 직결되어 있다.
이를 위해 힌트를 주는 장면 하나를 먼저 보자.
임차인과 사모펀드
#장면 1.
2018년 11월 어느 날 일군의 시위대들이 캘리포니아의 산타모니카(Santa Monica)의 한 회사 사무실 앞으로 몰려가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그 회사는 뉴욕에 본사를 둔 사모펀드 블랙스톤(Black Stone)의 지부이다. 이들은 '법률개정안 10'(일종의 임대차 보호법안 통과)이 좌절되자 이에 항의하기 위해 여기로 모여든 것이다.(☞ 관련 기사 : <에이비씨7> 2019년 11월 8일 자 'Protesters arrested during Santa Monica rally over rejection of Prop 10') 도대체 사모펀드와 임대법이 무슨 관련이 있기에 그럴까?
그 답은 간단하다. 사모펀드 블랙스톤이 바로 주택임대사업을 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런데 보통의 임대업이 아니니까 문제다. 영국의 매체 가디언은 캘리포니아주에서의 주택 가격과 임대료가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매체는 이것을 ‘성층권 가격’stratospheric price이라고 묘사했다. 얼마나 높이 치솟았으면 성층권이라는 것일까?) 서민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는데 그 원흉이 바로 블랙스톤을 위시한 사모펀드라고 콕 짚어 지적하고 있다.(☞ 관련 기사 : <가디언> 2018년 10월 23일 자 'How California public employees fund anti-rent control fight unwittingly') 도대체 미국의 임대주택 시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것은 블랙스톤을 위시한 사모펀드가 어떻게 서민들의 삶을 결딴냈는지를 살펴보는 것을 의미한다.
부동산 업계의 최강 제국, 사모펀드 블랙스톤
스티브 슈워츠만(Steve Schwarzman) 블랙스톤 회장은 2015년 가을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에 "블랙스톤이 현재 세계 제일의 부동산 소유주다”라고 선언했다.(☞ 관련 기사 : <비즈니스 인사이더> 2015년 11월 16일 자 'Blackstone is now 'the largest owner of real estate in the world'') 그의 말은 허튼소리가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제시한 다음의 도표를 보라. 그야말로 부동산업계의 제국 중 제국이 바로 블랙스톤이다. 도표는 2010년에서 2015년 사이에 부동산 업계에서 선두를 달리는 10개의 사모펀드를 보여준다. 블랙스톤은 그 중 최강으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 부동산시장의 선두 그룹 사모펀드 현황. 2010년~2015년 동안 부동산 투자 총액으로 본 사모펀드 선두 그룹의 순위. 블랙스톤이 약 470억 달러(약 55조 원)로 단연 업계 1위이고 그다음이 스타우드, 론스타가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어느 정도라 회장이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일까? 블랙스톤은 2012년 7월 기준 미국 14개 지역에 86억 달러 들여 4만 4000채의 주택을 구입했고, 2019년 6월 현재 17개 지역에서 8만 채를 보유한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부동산업체다. 그런데 부동산은 원래 블랙스톤(Black Stone)의 주력 사업이 아니었다. 했다 해도 상업용만 조금 손댔을 뿐이다. 그러나 2012년부터 전략을 확 바꿨다. 부동산에 주력했고 그것도 상업용보다는 일반 주택에 꽂혔다. 그런데 그것도 주택을 사고파는 것이 아닌 임대사업으로.
블랙스톤은 가격이 대폭락한 지역의 은행에 압류된 집들을 대거 매입해서 되팔기보다는 임대사업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채택했다. 알다시피 사모펀드는 현금 총알(loads of cash)이 두둑한 재력가들(deep-pocketed investors)로 이루어진 자본 제국이다. 게다가 이 제국은 '임대주택증권'(rental-home-backed security)을 발행해 더 많은 자금을 끌어들여 헐값에 내놓은 주택들을 아귀처럼 쓸어 담았다.
그라운드 제로는 애리조나주, 피닉스
그런데 블랙스톤이 맨 처음 임대사업 시작한 것은 캘리포니아가 아닌 애리조나주의 피닉스(Phoenix, Arizona)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피닉스가 2008년 이후 주택가격이 정점에서 2011년 무려 60%나 떨어진 대폭락 지역이기에 그렇다.(☞ 관련 기사 : <월스트리트저널> 2019년 6월 19일 자 'The Future of Housing Rises in Phoenix: High-tech flippers such as Zillow are using algorithms to reshape the housing market') 둘째, 막대한 이익을 노리는 사모펀드에게는 그저 수십 채의 주택 매집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대량 매집이 훨씬 남는 장사이니까. 대량 매집의 최적지가 바로 피닉스였다. 왜냐하면 피닉스는 뉴욕과 보스턴 같은 대도시가 아니니 원래부터 주택가격이 높았던 지역이 아니다. 대도시는 아무리 거품 붕괴로 주택 가격이 내려갔다고 해도 피닉스처럼 대량 매집이 불가능하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지 반대로 되기는 어렵다. 그처럼 부동산 초짜들이 사업에 손을 대기에는 원래 가격이 낮았던 데다가 거품까지 꺼져 대폭락까지 한 피닉스만 한 데가 없었다.
블랙스톤을 위시한 대형 임대주택투자자(큰손)들은 피닉스를 발판(그라운드 제로)으로 하여 조지아주 애틀랜타(Atlanta, Georgia)와 텍사스주 달라스(Dallas, Texas)로 뻗어 나갔다. 그리고 이제는 미국 전역에서 30만 채 이상을 싹쓸이 하고 있다. 물론 캘리포니아도 포함된다. 몸집을 불렸으니 총알은 탄창에 두둑한 터. 그 때문에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압류된 주택들의 대량 매집도 가능하게 됐다. 게다가 이들은 주택공급이 부족한 시장을 선택해서 지역 건축업자들과 결탁해 자신들만을 위한 주택을 짓는 이른바 '핀셋 건축' 꼼수 부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관련 기사 : <월스트리트저널> 2019년 6월 19일 자 'The Future of Housing Rises in Phoenix: High-tech flippers such as Zillow are using algorithms to reshape the housing market')
2008년 이후는 사모펀드 세상
2008년 이후는 그야말로 사모펀드의 세상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월가의 대형투자은행은 어느 정도는 감시의 대상이 된 듯 보였다. 적어도 그런 것처럼 흉내를 냈다. 그러나 월가에 기반한 사모펀드는 거기서조차도 완전히 빗겨 나 있다. 그래서 설사 밑천이 별로 없어도 초저금리 거래가 가능해 얼토당토않은 사업 구상도 현실화 할 수 있었다. 수익률에 걸신들린 투자자들이 냄새를 맡고 사모펀드로 마구 유입되었다. 감시와 규제가 없는 곳, 그것은 투기꾼들의 천국이다. 그것은 새로운 월가의 블랙홀이다.
사모펀드의 경영 전략은 매우 단순하다. 사모펀드가 부채를 안고 기업을 인수한 후 값을 최대한 올려 매각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것을 투자자에게 배분한다. 수익이 난다는 소문이 나면 날수록 돈은 몰려들게 되어 있다. 이른바 차입매수(Leveraged Buyout). 사모펀드가 매수 대상의 자산과 수익을 담보로 은행에서 자금을 차입하여 매수합병을 하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현재 가진 돈 없어도 인수할 기업을 위해 빚을 지고 기업을 인수한다. 그러나 그 빚은 인수 대상에게 떠넘기고 바이, 바이! 망해가거나 저렴한 기업 인수한 뒤 분칠 살짝 해서 또 다른 구매자에게 팔아치운다. 거기에 비상장회사가 상장회사를 사서 합병하는 우회상장도 당연히 포함된다. 그러면 이를 주도한 사모펀드는 엄청난 수익을 창출한다. 때로 이것을 넘어 사모펀드는 매수한 회사의 직접 경영에 손을 대서 인수 기업에 '감 놔라 배 놔라'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수기업에 대한 애정을 갖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오직 목적은 수익 창출. 그것도 막대한 수익 창출. 수익이 나면 곧바로 미련 없이 떠난다. 다른 먹잇감을 찾아서.
블랙스톤의 2인자 존 그레이 좌우명
블랙스톤은 임대주택 사업을 자회사 인비테이션 홈즈(Invitation Homes)를 통해 시행해 천문학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 그 책임자는 현재 블랙스톤의 2인자, 존 그레이(Jon Gray). "절대로 적게는 먹지 않는다. 크게 먹는다. 그것도 상상 이상으로 왕창!"이라는 좌우명을 갖고 사는 월가 사람이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신부동산 부호(the new property barons)'라고 칭한 그는 다음과 같이 인터뷰했다.
"나는 성공의 취약성을 안다, 그것은 (아버지 다이달로스(Daedalus)의 경고를 무시하고 밀랍의 날개로 날다 태양에 너무 접근해 밀랍이 녹아 바다에 떨어졌다는 인물) 이카로스(Icarus)와 같다. 나는 내 무덤에 '그저 상당한 내부수익률(internal rates)을 올렸을 뿐'이라는 묘비가 적히길 원치 않는다."(☞ 관련 기사 : <파이낸셜타임스> 2016년 4월 4일 자 'Investment strategy: The new property barons')
▲ 임대주택 사업에 뛰어들어 사모펀드 블랙스톤을 세계 부동산업계 1위에 올린 존 그레이. 그는 웬만한 수익은 성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상상 이상의 수익만을 추구한다고 공공연히 천명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그가 블랙스톤의 자회사 인비테이션 홈즈를 통해 손댄 임대주택 사업이다. Ⓒ파이낸셜타임스
가히 그저 고만고만한 성공은 성에 안 찬다는, 즉 확실한 대박만을 노린다는 거대 탐욕의 노출 선언이다. 그것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존 그레이의 투자 철칙: 바이(Buy), 픽스(Fix), 앤드 셀(Sell)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미국의 단독 주택 가격은 절반 이하로(40~70%) 수직으로 하강했다. 특히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가 심했다.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었던 대표적인 곳이기에 그렇다(왜 그곳이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었는지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거품이 갑자기 꺼지고 모든 이들이 부동산 시장에서 손을 털 때, 존 그레이는 역발상으로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즉 매매가 아닌 임대사업으로. 돈 버는 데는 가히 천재적이다. 왜냐하면 당시엔 아무리 집이 헐값에 나와도 구매할 사람들이 없었으니까. 투자처로서의 매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진짜로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대출 자격 요건이 안 돼서 못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으니까 그렇다.
이것을 간파한 자가 블랙스톤의 존 그레이다. 그는 이런 이들이 발걸음을 옮길 곳이 임대주택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자가가 아니면 월세를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니까(미국엔 전세가 없다). 그래서 그간 등한히 해 온 부동산 사업에, 그것도 전혀 해 본 적 없는 임대주택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뛰어들자마자 바로 압류된 주택 시장의 최강자로 등극했다. 그의 예감은 적중했다. 그것을 파이낸셜타임스가 제공한 도표에 잘 보여준다. 임대주택 비율이 금융위기 이후 대폭 상승했기 때문이다. 2005년 33%에서 2014년엔 37%로 증가했다. 2014년 현재 1천 5백만 가구가 임대하고 있다. 그러면 그 이전에는 왜 임대사업이 월가의 큰손들의 구미를 당기지 못했을까? 그것은 시장규모가 작았기 때문이다. 2005년 당시에는 1200만~1300만 가구만 임대해 거주했기 때문에 큰손 투자자들의 눈에 들어오지 못했다. 월가의 제국들은 적당히 먹는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탐욕에 찌든 야수들에겐 먹잇감도 덩치가 커야 덤벼들 가치가 있으니까.
▲ 미국 자가주택 대 임대(월세)가구 구성 비율 현황. 2005년에 임대가구는 33%인데 비해 2014년에는 37%로 4%포인트 더 증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미 인구조사국
그레이의 임대주택 투자 전략도 사모펀드의 기본 경영 방침과 그대로 일치한다. 매수대상을 헐값에 차입매수 해서, 약간 분칠해 매각하듯, 임대주택도 개당 헐값에 대량매집해서(buy), 2만 5000달러(약 3000만 원) 정도 들여 간단히 손 보고(fix), 임대(sell)하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부동산업계의 절대 강자가 되었다.(☞ 관련 기사 : <포브스> 2016년 10월 18일 자 'Jonathan Gray: The Man Who Revolutionized Real Estate Investing on Entrepreneurship In A Big Company')
규제 없는 곳에 우뚝 선 망나니 제국, 블랙스톤
그런데 임대가구가 늘어난 것은 이들 사모펀드 제국들이 그린 큰 그림 때문이기도 하다. 일종의 피드백 효과라고 할까? 이제 막 붙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니까. 이들이 주택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았기 때문에 그렇다. 대량 매집 자체가 주택 가격 올려놓은 일차적 효과 가져온다. 그리고 대량 매집으로 공급도 줄어든다. 그러면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 꿈은 요원해진다. 천정부지로 오른 집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러니 임대가구가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미국만이 전 세계에서 '나 홀로' 경기가 좋다고 말들 하는 데 앞의 사실의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일반 서민들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것은 왜일까? 규제 없는 곳에 어김없이 제국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즉 자유주의 정책은 망나니를 양산할 뿐이다. 이것의 한 가지 예를 지금 캘리포니아를 위시한 미국의 전 지역에서 목도하고 있다. 사모펀드의 난동으로 미국의 집값이 하늘로 치솟는 폭등을.
내부의 적에게 강탈당한 영토
모든 전쟁은 궁극적으로 영토를 차지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미국의 사모펀드는 이 전쟁에서 백전백승의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자. 사모펀드는 미국의 외부의 적인가? 내부의 적인가? 내부의 적이 승승장구하는 곳엔 자멸이 다음 수순이다. 하긴 서민들의 주거 안정성이 파괴되는 마당에 그런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그러니 미국은 더 이상 외부의 적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호들갑은 떨지 말기를….
그렇다면 사모펀드가 집값만을 올려 서민들을 괴롭히고 있을까? 결코 아니다. 모든 제국은 하나를 주면 열을 달라고 하는 법. 하나에 만족하는 신사 제국은 없다.
다음은 임대업에 뛰어든 사모펀드에 의해 피를 보고 있는 임차인들의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미리 살짝 결론만 말해주고 이 글을 마치고 싶다. 사모펀드가 대량 매집하는 데 아무런 규제가 없듯이, 임대업을 하는 데도 아무런 규제가 없다. 오직 그들이 맘대로 활개를 칠 수 있게 만든 자유주의 정책들만 있을 뿐이다.
참고
- "Blackstone is now 'the largest owner of real estate in the world'," Business Insider, November 16, 2015.
- "Life on the Dirtiest Block in San Francisco," New York Times, October 8, 2018.
- "How California public employees fund anti-rent control fight unwittingly," The Guardian, October 23, 2018.
- "Protesters arrested during Santa Monica rally over rejection of Prop 10," ABCNews7, November 8, 2019.
- "Jonathan Gray: The Man Who Revolutionized Real Estate Investing on Entrepreneurship In A Big Company," Forbes, October 18, 2016.
- "Investment strategy: The new property barons," Financial Times, April 4, 2016.
- "The Future of Housing Rises in Phoenix: High-tech flippers such as Zillow are using algorithms to reshape the housing market," Wall Street Journal, June 19, 2019. / 김광기 경북대 교수 / 프레시안
신문과 TV는 이제 정보산업의 '제왕'이 아니다
[기고] 정보 생산과 소비가 혼재 심화 속 공익, 공정한 정보 생산에 노력해야
'기레기', '검찰 보도자료 베끼기', '해장국 언론과 확증 편향' - 최근 한국 대중매체의 현주소를 비판하면서 언론 개혁의 당위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JTBC는 한국 언론의 위상을 살피는 특집 방송을 했다. 정치사회적 양극화 속에 격렬한 대치와 비판이 일상화되면서 사회적 거울이며 목탁이라고 하는 대중매체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른 신세가 된 것이다.
대중매체는 전 세계적으로, 그 어떤 시기보다 가장 충격적인 혁명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그 변화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대중매체가 전담하던 뉴스 또는 정보의 생산과 유통 기능이 IT기술의 발달과 보급으로 모두에게 개방된 점이다. 한국이 세계 정상급 정보 강국이라서 대중매체가 누리던 기득권이 가장 심하게 붕괴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이 집약되어 있는 스마트폰의 우리 사회 보급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서구에서 오늘날과 같은 대중매체가 등장한 것은 서구의 식민지 쟁탈 등이 겸해졌던 자본주의 발달과 시기를 같이 한다. 세계 각 지역의 주요 특산품에 대한 정보 등이 거래되기 시작한 원시적 미디어가 신문의 초기 형태가 된 것이다. 미디어는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라디오, TV 등에 이어 SNS의 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문, 라디오, TV 등 전통적 대중매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소수 공영이나 국영을 제외하고는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대중매체가 공익성, 공정성을 아무리 강조한다 해도 영리 추구라는 체질을 완전히 벗기는 어렵다. 영리 추구라는 기능에는 정치적 통제나 탄압, 유혹이 끼어들 취약점이 내재되어 있어 한국의 경우처럼 오랜 기간 그 피해가 컸다. 그래서 끊임없는 사회 감시 등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었다.
그러면 한국의 대중매체가 당면한 현실과 그 문제는 과연 어떤 무엇이며 그 개선은 어떻게 시도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정보사회 전체, 즉 정보 생산유통과 함께 정보 소비를 동시에 살필 때 그 해답의 윤곽이 드러날 수 있다.
정보 생산 대중매체는 그 정보 생산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엄청난 위기 상황이라서 심각한 고민과 대처가 필요하다. 대중매체는 최근까지 뉴스라고 하는 가장 큰 정보 상품의 생산을 전담 해왔다. 그러나 정보와 IT 산업 발달에 따라 정보 생산이 대중매체 밖에서도 이뤄지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뉴스라는 정보 생산은 대중매체가 전담해 소비자인 대중과는 완전히 그 영역이 달랐다. 그러나 오늘날 정보 생산과 소비가 뒤섞이면서 그 구분이 사라진 것은 유사 이래 최초의 현상으로 대중매체에는 큰 타격이라 하겠다.
오늘날 정보나 뉴스의 전문성이나 진위라는 가치 판단을 빼면 누구나 그것을 스마트폰에서 생산해서 대중매체에 전달하거나 스스로 유튜브, 팝 캐스트에 올리면 전 사회를 상대로 확산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대중매체의 시각에서 보면 오랜 기간 보장되던 밥그릇이 깨져나가고 있는 최악의 위기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대중매체라는 권력에 의해 장악되었던 정보 생산이 소비자에게 일부 개방된 것은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볼 때 긍정적인 혁명적 변화라 하겠다.
정보 생산이 대중매체의 범위를 벗어난 것은 전 사회적으로 볼 때 그 역기능보다는 생산성과 이익이 크다고 평가된다. 대중매체가 뉴스를 전담하는 구조에서 비롯된 역기능도 심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1인 미디어가 무책임하게 정보를 양산하는 것이 유튜브 등에서 허용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으나 이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볼 수 있겠다. 시장 자정 기능에 의해 언젠가는 질서가 잡힐 것으로 추정된다.
정보 유통 : 유통부분은 포털이나 플랫폼이 대중매체가 생산하는 뉴스의 유통을 거의 전담하면서 대중매체의 발행 부수, 시청률 부분의 이익을 일부 잠식하고 있다. 즉 대중매체의 경제적 이익이 발생하던 부분이 외부의 관리, 통제로 넘어간 것이다. 대중매체가 본래의 위상을 회복하려면 앞으로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할 부분이다.
정보 소비 : 정보 소비 부분은 어떤가. 오늘날 정보 소비자들은 과거와 달리 정보 생산에도 참여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대중매체에 영상을 직접 제공하는 식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1인 매체를 통해 정보를 생산한다. 그러나 인간의 정보에 대한 생체 기능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는 점을 기반으로 살필 때 과거와 큰 차이는 없다고 하겠다.
오늘날 뉴스를 포함한 모든 정보에 대해 소비자는 좋아하는 것만 듣고 기억하면서 확증편향이 심화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보 소비자를 간접적으로 흠집 내는 듯한 표현이다. 그러면 이는 오늘날의 독특한 현상일까? 그렇지 않다. 인간의 정보에 대한 생체 반응이 원시시대부터 그래왔다고 보아야 한다. 인간의 정보에 대한 반응은 원래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고 일상생활의 행복을 위해 기여하는 특성이 있다.
인간의 정보에 대한 반응, 즉 수용 태도를 보면 여러 형태가 있다. 즉 폭탄이 터지는 등 생명의 위협을 받거나 모두의 중요한 관심사에 대한 정보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다. 다음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거나 소비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정보를 수용하거나 기억하는 것은 대단히 선택적이다. 예를 들면 선거에 대한 정보나 상품 광고에 대해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듣고 기억하는 식으로 두뇌가 다양하게 작동한다. 유튜브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정보를 생산하는 영상을 찾아가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중매체의 위상이 급변하면서 동시에 가짜뉴스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중매체는 그러나 가짜뉴스라는 표현을 기피한다. 대중매체의 시각에서 보면 뉴스가 일정한 환경과 전문적 작업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가짜뉴스라는 용어는 존재치 않고 가짜 정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가짜뉴스에 대한 개념 규정도 아직 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가짜뉴스는 해외의 경우 돈벌이 차원에서 범죄사업의 하나로 등장했다.
어찌 됐든 최근 유럽 등에서 가짜뉴스에 대한 대책으로 제시되는 것을 보면 새로운 정보 환경에 대한 대응이 범사회적으로 다각적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즉 공익적 정보가 양산될 수 있도록 대중매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 팩트 체크 기능의 강화, 건강한 정보의 유통 환경을 만들기 위한 포털이나 플랫폼의 자정 기능 강화 등이다. 거짓 정보의 범람과 함께 대중매체의 위상 변화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표현의 자유의 영역이 1인 미디어의 등장으로 더욱 확대 심화되고 그로 인한 그늘도 짙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런 점을 충분히 살펴 대처한다면 대중매체에게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대중매체 문제를 종래의 대중매체가 정보 산업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시절의 시각에서 접근하면 그 해답을 찾기 어렵다. 대중매체의 배타적 전문성이, IT 기술 발달로 사라진 상황에서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시대착오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한국은 초고속 정보통신망과 함께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를 시도하고 있다. 정보환경의 비약적 발전 속에서 유튜브,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SNS의 전면적인 보급으로 정보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나타날 탈 대중매체 현상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대중매체가 생존 영역을 고수하고 확대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공익, 공정한 정보의 양산 기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 / 프레시안
수도권 인구 첫 50% 돌파,지방이 사라진다
서울·경기·인천 2592만5799명
비수도권 14개 시·도 인구합 초월
지역인구소멸 ‘카운트다운’ 시작
“국가살리기 차원 특단 대책 필요”
수도권 인구 50.001%’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3개 시도 인구가 강원도를 포함한 비수도권 인구를 넘어섰다.이는 역대 정부의 지역균형발전정책이 사실상 실패한 것을 의미하며 국가비상사태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2일 행정자치부 주민등록인구 통계에 따르면 2019년 12월말 현재 대한민국 전체 인구 5184만 9861명 중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인천광역시 3개 시·도에 2592만 5799명이 거주,50.001%를 차지했다.이들 3곳을 제외한 비수도권 14개 시·도 인구는 2592만4062명으로 수도권 인구가 1737명 더 많았다.
수도권쏠림 현상은 문재인 정부 들어 더욱 심화됐다.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말 수도권 인구 비중은 49.6%로 지난해 말(50.0%)까지 2년간의 증가율이 무려 0.4%p다.이는 지난 2010년(49.2%)부터 2017년(49.6%)까지 7년간의 증가율과 같다.통계청은 지난 해 시·도별 장래인구특별추계에서 수도권 인구가 2047년 2526만명(51.6%)에 이르러 비수도권(2364만명·48.4%)과의 격차가 3.2%p로 더 커질 것으로 예측했다.
['동물국회 방지법' 무시 하더니…] 국회 회의방해 '심판대'
지난해 4월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발해 국회 회의를 방해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의원 23명이 국회 선진화법(국회회의방해죄) 위반혐의로 기소됐다. 이른바 '동물국회'를 막겠다며 한국당의 전신 새누리당이 주도해 2012년 5월에 제정한 법의 첫 적용사례가 됐다. 여야 모두 검찰의 기소에 편파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정당간 협의와 타협을 전제로 한 정치를 외면하고 극단대치로 일관한 후과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불법에 대한 저항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던 한국당 의원들의 처지가 옹색해졌다. 국회법은 제166조에서 국회 회의를 방해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처하도록 하고 있는데, 선거법은 19조에서 회의 방해죄로 500만원 이상을 선고받을 경우 5년간 피선거권을 제한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경중에 따라 총선 공천과정에서 기소를 고려할 수 밖에 없다. 총선 이후 내려질 것으로 보이는 판결결과에 따라 보궐선거 가능성이 있어 '낙인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여야간 경합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의 공천전략에서 특히 영향력을 미칠 공산이 크다. 법 제정 후 첫 사례로 국회가 스스로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규정의 실효성을 평가하는 기준이다. 여기에 20대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 등도 한국당 의원들에게는 불리한 요소다.
민주당 의원 5명은 국회법이 아닌 폭행 혐의로 기소됐다.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돼야 피선거권이 제한되기 때문에 한국당 의원들에 비해선 그나마 부담이 적다. 민주당은 검찰이 기소가 기계적 균형을 맞추려는 작위적 판단이라며 반발했다. 이해식 대변인은 "특히 대부분이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출신인 점을 고려하면 명백한 보복성 기소"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3일 국회에서 '검찰공정수사촉구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이 건과 관련한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한편, 서울남부지검 공공수사부(조광한 부장검사)는 2일 여야 의원 28명과 보좌진,당직자 8명 등 총 37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한국당의 경우 충돌 사건에 연루돼 수사대상에 오른 61명 중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당시 원내대표 등 14명이 정식기소됐다. 검찰은 혐의가 무거운 의원들은 정식 공판에 넘기고, 비교적 가벼운 의원들에 대해선 약식명령을, 상대적으로 죄가 무겁지 않다고 판단한 경우 기소유예 처분했다고 설명했다. '공동 폭행' 혐의로 고발당한 민주당 의원 39명에 대해서는 이종걸 박범계 표창원 김병욱 의원 등 4명을 정식재판에 넘기고 박주민 의원에게는 약식명령을 청구했다.
이 밖에 문희상 국회의장의 사보임 직권남용 사건과 바른미래당 의원들의 사보임 접수방해 사건에 대해선 무혐의 처분했다. 문 의장이 임이자 한국당 의원에게 강제추행·모욕혐의로 고발당한 사건 역시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이명환 김형선 기자 mhan@naeil.com
집시법 공백 때문에 ‘폭력집회’ 용인된다고?
폭력은 현행 집시법·형법으로도 처벌 가능… 보완입법 안한 국회 직무유기, 집회폭력 우려만 집중보도
해가 바뀌면서 ‘입법공백’, ‘법적공백’ 등이 문제라는 기사가 이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에 위배(헌법불합치)되는 법률들을 개정하라고 준 시한을 국회가 어기면서, 법적 효력 자체가 사라지는 법률들이 생겨서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도 여기에 포함돼, 당장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폭력 집회를 처벌하지 못하게 됐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집회·시위 장소를 제한하지 않으면 폭력이 생긴다는 시각은 집회·시위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헌재 결정 취지와 어긋난다.
우선 헌법재판소 결정 내용을 보자. 헌재는 지난해 국회의사당(5월31일), 국무총리 공관(6월28일), 법원(7월26일) 인근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11조를 2019년 말까지 개정하라고 했다. 이 기관들을 보호하려는 목적은 인정하지만, 각 기관의 역할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집회까지 전면 금지하는 건 과도하다는 취지다. 헌재는 집회의 자유를 ‘필요최소한의 범위’에서 제한하려면 어떤 집회를 예외적으로 허용할지 등을 국회가 정해서 법을 만들라고 했다. 각 기관으로부터 100미터 이내 장소에서 집회·시위를 하지 말라는 집시법 조항은 지난 1일부터 법적 효력, 즉 위반 시 처벌 근거가 사라졌다.
이후 ‘입법 공백’을 우려하는 보도들이 이어졌다. 특히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 안팎에서 벌인 집회·시위가 ‘폭력사태 선례’로 언급됐다. 지난달 18일 JTBC 뉴스룸 기사는 “2주 뒤부터 집시법 ‘공백’…국회 폭력집회 처벌 어려워”라는 제목을 달았다. 손석희 앵커는 “국회 안에서 일어난 폭력 집회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는 현행 집시법이다. 그런데 작년에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인해서, 이 집시법이 당장 내년부터 효력이 없어진다. 그제(16일) 같은 폭력 시위를 막을 수 있는 대체 입법이 필요한데 국회는 손을 놓고 있다”며 리포트를 소개했다. 리포트 영상은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이 국회 경내에 진입해 과격하게 진행한 집회 장면으로 시작됐다.
▲ 지난달 JTBC '뉴스룸' 보도 갈무리.
3일자 한국경제 기사(효력 잃은 ‘국회 100m내 집회금지법’)도 “지난달 16일 국회 본관 앞에서 보수단체 및 보수정당 지지자 수천 명이 대규모 집회를 열고 본관 진입을 시도했다. 이날 국회 본관 입구가 폐쇄됐고 본회의는 열리지 못했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집회 참가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등을 고발했다. 경찰은 영등포경찰서에 전담팀을 꾸려 불법행위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작년 4월에는 국회 주변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국회 담장을 무너뜨리고 경내에 침입해 재판에 넘겨졌다”고 전했다.
집회·시위 금지 장소 제한이 없으면 ‘폭력집회’를 처벌할 수 없다는 전제는 성립하기 어렵다. 현행 집시법에 따라 집단적 폭행·협박·손괴·방화 등으로 공공 안녕·질서에 직접적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시위는 주최할 수 없으며, 신고서가 접수됐더라도 경찰이 이를 금지할 수 있다. 확성기 등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소음을 발생하거나, 신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기구를 휴대·사용하는 것 또한 금하고 있다. 명백한 폭력행위는 집시법이 아닌 기타 법률로 처벌할 수 있다. 실제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집회를 이유로 한국당을 고발한 사유엔 집시법 뿐 아니라 특수공무집행방해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특수재물손괴,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이 적시됐다. 앞서 정의당도 한국당 측을 모욕, 특수폭행, 특수상해, 재물손괴,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헌재도 결정문에서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대규모 집회가 행해지는 일정한 경우에는 국회의 헌법적 기능이 훼손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집시법은 이러한 특수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집회의 성격과 양상에 따른 다양한 규제수단들을 규정하고 있다. 집회 과정에서의 폭력행위나 업무방해행위 등은 형사법상의 범죄행위로서 처벌된다”며 “국회의사당 인근에서의 옥외집회를 예외적으로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수단들을 통하여 심판대상조항이 달성하려는 국회의 헌법적 기능은 충분히 보호될 수 있다고 할 것이므로, 단지 폭력적·불법적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심판대상조항에 의한 일률적·절대적 옥외집회의 금지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라 밝혔다.
▲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
다만 헌재 결정이 국회, 법원, 총리공관 등 경내 집회·시위를 전부 허용하라는 취지가 아닌 데다, 명확한 대응 원칙이 없으면 혼선이 있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2일자 한국일보(국회 100m 이내서 시위 가능해져…속 타는 경찰)는 “경찰 내부에선 새해부터 국회 주변이 새로운 시위 격전지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앞으로 국회 경계에서 100미터 이내 장소에서도 집회 시위가 가능해지면 더는 기존 방식으로 대응하는 게 어려워진다. 당장 국회 담장 바로 앞에서 시위를 벌일 수도 있다. 원칙적으로 국회 안에서 시위를 하진 못한다 해도 사실상 국회 지근거리서 시위를 하는 게 가능해지는 만큼 자칫 흥분한 시위대가 국회 담장을 넘는 돌발 상황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오민애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는 “경찰과 같은 ‘관리’자들이 집회·시위를 관리나 통제 대상으로 본다면 (장소 금지 규정이) 필요할 수 있지만, 집회의 자유를 원칙적으로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11조 폐지 이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경내 행위들에 대해서는 공공기관이 아닌 사기업 소유일지라도 경찰에 시설 보호 요청 등을 할 수 있다. 국회나 법원 등은 일반인들에게 아무 요건 없이 개방된 곳이 아니고 출입이 어느 정도 제한된 곳들”이라는 것이다. 그는 “경찰이 사전에 일률적으로 집회·시위를 금지하고, (신고를) 검토해 허용해야만 상황을 방지할 수 있는 건 아니”라며 “집시법 규정을 둬야만 규제가 가능하다는 논리도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 지난 2013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참여연대가 국회 앞 100m 이내 집회를 전면 금지하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대한 헌법 소원을 제기하며 개최한 '국회를 시민 품으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집시법 개정과 국회 시설의 자유로운 이용을 제한하는 조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권·시민단체들은 “집회의 자유는 집회의 시간과 장소, 방법, 내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없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며 집시법 11조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지난해 헌재 결정 이후 ‘집시법 11조 폐지 공동행동’은 “집회를 통해 의사를 전하고자 하는 대상이 있는 곳, 집회의 계기를 제공한 사건이 발생한 곳 등 참가자들의 효과적인 의사표현을 위해 집회 장소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집회 장소는 집회의 목적 달성과 맞닿아 있다”며 “국회와 법원 등은 사회 구성원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그 어떤 장소보다 치열하게 여론이 형성돼야 하는 곳이다. 국회의 의결과 법원의 판결도 입법·사법 권력을 위임한 시민들이 있기에 가능한데, 시민들의 목소리로부터 분리된 국회와 법원이 시민들을 위한 판단을 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국회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이 시급하다. 헌재 결정을 전후해 11조를 전면 폐지하는 안(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예외장소에서 국회의사당(권칠승 더불어민주당)과 국무총리공관을 삭제하는 안(박홍근 더불어민주당), 국회 금지를 삭제하고 총리공관 집회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안(김삼화 바른미래당), 법원을 삭제하는 안(송갑석 더불어민주당), 법원과 헌법재판소를 삭제하되 일부 제한규정을 두는 안(유동수,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등이 발의됐으나 모두 계류 중이다. 오 변호사는 “정부가 바뀌기 전에는 민중 단위 주최 집회를, 지금은 청와대·국회 등 앞에서의 집회를 폭력적이고 시끄럽게 보는 인상이 있는 것 같다”며 “법안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벌어지는 양상 만을 갖고 상황을 평가하다보니 더 우려 중심으로 (보도가) 나오는 거 같다”고 지적했다. 노지민 기자 jmnoh@mediatoday.co.kr
손석희 하차가 의미하는 것
[기자수첩] 손석희 사장 총선 앞두고 하차, 설득력있는 그 이유
손석희 보도담당 사장의 대표이사 승격에 관심이 쏠렸던 2018년 11월20일자 중앙그룹 인사에서 김용달씨는 경영총괄 부사장이 됐다. 그의 역할은 ‘뉴스룸’ 앵커를 맡으며 보도를 총괄해야 하는 손 사장의 경영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었다.
지난 12월6일자 인사에서 김용달 부사장은 JTBC 대표이사가 됐다. 1년 만의 빠른 승진이었다. 그렇게 JTBC는 홍정도·김용달·손석희 3인의 대표이사로 운영되는 기묘한 체제가 됐다. 그리고 불과 한 달 만에 손석희 대표이사는 ‘뉴스룸’ 앵커에서 하차하며 사실상 보도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 모든 것은 우연일까.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재단 이사장에겐 야망이 있다. 최근에도 동교동계 원로들이 홍 이사장에게 제3지대 신당 합류 여부를 타진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홍 이사장으로선 손석희 사장의 존재가 앞으로 그의 정치 행보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홍석현 이사장의 정치 행보가 힘을 얻으려면 반드시 삼성이라는 ‘뒷배’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손석희 사장에 대한 분노로 따지자면 친박계와 삼성가家는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다.
▲2018년 11월23일자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여기에 더해 중앙일보는 2016년 대비 2017년 –5.91%의 역성장(한국언론연감)을 기록했다. 중앙일보에선 최근 신문과 디지털을 분리하는 조직개편이 이뤄졌는데 이 과정에서 신문 쪽의 위기감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신문 입장에선 문재인 정부 들어 ‘한겨레 수준으로’ 줄어든 삼성광고를 회복해야만 한다. 오너 입장에서는 중앙일보의 사정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2019년 내내 하락세였던 JTBC 시청률·신뢰도·영향력도 손석희 사장에게 선택의 폭을 줄였다.
만약 자유한국당이 차기 정권을 잡는다면 새 정부의 첫 번째 ‘청산대상 1순위’는 어디일까. ‘친박’을 폐족으로 만든 1등 공신, 최순실의 태블릿PC를 보도하며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JTBC다. 손석희 JTBC사장은 0순위가 될 수 있다. 적어도 홍석현 이사장 입장에선 ‘마주할 미래’일 수 있다.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나서 손 사장을 내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 레임덕 시기에 내치는 것도 의미가 없다. 기회주의자처럼 보일 수 있다. 오너일가로서는 2020년 총선이 차기 행보를 위한 ‘이별’의 마지노선이었고, 그 결과 총선 전 손석희 사장 하차로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새해 ‘조선·동아 폐간’ 무기한 시위나선 사람들
언론소비자주권연대, 광화문 일대에서 피켓시위 시작
새해 언론시민단체 회원들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폐간을 위한 무기한 시위를 시작했다.
언론소비자주권연대(이하 언소주) 회원들은 1일부터 ‘조선·동아 폐간을 위한 출정 선언문’을 발표하고 매일 오전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코리아나 호텔 앞, 광화문 광장, 동아일보사 앞, 동화면세점 앞 등에서 피켓시위를 무기한으로 벌이기로 했다.
이들은 ‘조선‧동아 폐간을 위한 출정 선언문’에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거짓과 배신으로 시작된 혼돈과 야만의 시대가 끝없이 지속되고 있다”며 “우리는 2020년 첫 날인 오늘부터 무기한 시위(농성)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 광화문 일대에서 피켓시위를 여는 시민들의 모습. 사진=언소주 제공
이 선언문은 “100년 전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일어난 3·1 독립혁명운동에 놀란 일본 제국주의의 교활한 당근정책으로 태어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올해는 그 거짓과 배신의 역사가 100년이 되는 해”라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일제에 야합과 부역으로 민중들의 독립 열망과 의지에 찬물을 끼얹었고, 해방 후에는 미국에 빌붙고 일본과 한통속이 되어 진실과 정의를 왜곡하고 민족자주와 평화통일을 억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나치에 협력한 언론을 폐간하고 부역 언론인들을 처단했다”며 “그러나 해방한지 75년이나 지난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라고 되물었다.
언소주 회원들은 “친일파와 그 후손들은 재벌들과 결탁한 협잡꾼이 되어 여전히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며 “온 나라를 거짓과 배신이 팽배한 사회로 만드는데 앞장서며 국민들을 공범으로 끌어들여 자신들의 원죄를 덮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이에 우리는 풍찬노숙하며 목숨 걸고 싸우셨던 선열들의 일만 분의 일이라도 투쟁하여야 한다는 심정으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단죄하려 한다”고 밝혔다.
자사고·외고, 일괄전환까지 5년간 ‘감독 사각지대’
2025년 일반고로 일괄전환 담은
시행령 개정안 조만간 발효 예정
학교 비리 손쓸 수단 마땅찮고
사회통합전형 강제할 방법도 없어
교육부 “교육청과 협력해 관리 강화”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의 일반고 ‘일괄 전환’이 2025년이 되어서야 시행될 예정이어서, 유예기간 동안 교육당국의 관리감독에 구멍이 숭숭 뚫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사회통합전형 의무에서 비켜나 있던 일부 학교들은 이런 특혜를 계속 누릴 수 있게 됐고, 학교 비리가 발생하더라도 적절한 처분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6일 입법예고가 종료되는 교육부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보면, 교육부는 자사고의 설립 근거를 담은 조항(제91조의3) 등 자사고·외고·국제고와 관련한 규정들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법적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부칙에선 시행령 개정안을 2025년 3월1일부터 시행하되, 재지정 평가와 관련된 사항들의 삭제는 공포한 날부터 시행한다고 규정했다. 정부는 국무회의를 거쳐 이르면 이달 중 시행령 개정안을 공포할 예정이다. 한마디로 ‘일괄 전환’ 시기를 2025년까지 유예하고, 그때까진 교육청이 5년마다 실시하는 재지정 평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동안 법적으로 사회통합전형을 운영할 의무가 주어지지 않은 자사고 6곳(민족사관고·상산고·현대청운고·포항제철고·광양제철고·하나고)은 현재 누리는 특혜를 5년 동안 더 누릴 수 있게 됐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제91조의3 3항)은 자사고로 하여금 입학정원의 20% 이상을 기초생활수급권자·차상위계층·국가보훈대상자와 그 자녀를 대상으로 선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자립형사립고였다가 2009년 자사고로 전환된 ‘전국 단위’ 자사고들에게는 이 규정이 적용되지 않아왔다. 2010년 부칙을 통해 이를 면제받았기 때문이다. 이들 학교 가운데 사회통합전형을 20% 이상 운영하는 학교는 하나고가 유일하다. 상산고는 3% 수준, 민족사관고는 0명이다.
그동안 이들 학교에 대해선, 전국 단위로 학생을 선발하는 혜택을 누리면서도 사회통합전형을 운영해야 할 법적 의무는 지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지난해 상산고에 대한 재지정 평가 과정에서도 이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전북교육청이 사회통합전형 운영 등에서 감점을 줘 상산고의 자사고 지정을 취소했는데, 이에 대해 상산고가 “법적 의무가 아닌데 감점을 준 것은 부적절하다”며 이의 제기를 한 것이다. 교육부 역시 같은 논리로 전북교육청의 지정 취소 처분에 동의하지 않아, 결국 상산고는 자사고 지위를 유지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시행령 개정 때 관련 부칙을 삭제하는 등 이 학교들에 주어진 특혜를 없앴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지정 평가를 아예 하지 않는 데 따른 부작용도 예상된다. 재지정 평가는 이 학교들을 감독하는 교육당국의 가장 큰 정책 수단인데, 앞으로 5년 동안 이를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 감사에서 회계비리가 드러났지만 아직 관련 처분을 받지 않은 휘문고 사례가 대표적이다. “휘문고의 자사고 지정을 즉시 취소하라”는 일각의 요구에, 그동안 서울시교육청 쪽에서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 한편 올해 재지정 평가에 반영할 수도 있다는 태도를 취해왔다. 그런데 재지정 평가 자체가 없어졌으므로 서울시교육청으로선 다른 정책적 수단을 강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혹시라도 ‘일괄 전환’이 무산되면 자사고·외고·국제고에겐 특혜만 남을 수도 있다. ‘사각지대’가 없도록 교육 당국의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런 지적들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법으로 반영하지는 않았지만 교육청과의 협력을 통해 교육과정 운영, 사회통합전형 선발, 법정부담금 납입 등 학교의 책무사항에 대한 지도감독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시 확대’ 등의 영향으로 유예기간인 5년 동안 ‘입시 명문’으로서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영향력이 유지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일괄 전환’ 뒤에 치러진 올해 고등학교 입시에서 전국 단위 자사고인 하나고, 상산고, 민사고 등의 경쟁률은 전년에 견줘 외려 올랐다. 오종운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면학 분위기, 입시 실적, 전국 단위 선발 효과 등의 영향으로 중학교 상위권 수험생들의 지원이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