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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821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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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점령한 부엌, 괜찮을까? 819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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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자들’에게는 ‘쥐구멍’이 없다 821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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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821 프레시안
불평등이 문제다 (1)
지금 어떤 유령이 하늘을 떠돌고 있다. ‘불평등'이라는 유령이! 한국 사회에서 증가하는 불평등이 사람들의 행복감을 떨어뜨리고 자살, 우울증, 저출산, 과잉 경쟁, 일 중독 등 수많은 사회문제를 만들고 있다. 지난 30년간 아무리 경제성장률이 올라가고, 1인당 국내총생산이 상승하고, 한국이 세계적 경제대국이 되어도 수많은 사회문제들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문제는 경제가 아니다!
나는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가 사회경제적 불평등이라고 생각한다.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의 격차가 너무 벌어지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과 불평등은 더욱 심각하다. 남자와 여자의 격차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중년 세대에 비해 청년 세대, 노인 세대의 빈곤율이 지나치게 높아졌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분열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이 두 개의 국민으로 분열되고 있다.
점점 커지는 소득 불평등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도전이 급속하게 증가하는 불평등이다. 한국 사회의 소득과 자산이 소수의 부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대다수의 중산층은 아무리 노력해도 부자가 되기 힘들다고 체념한다. 실업자와 극빈층은 최소한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기조차 힘들다고 절망한다. 생존경쟁에서 실패한 사람은 절벽 아래로 추락한다. 먹이사슬의 최고 정점에 있는 포식자만 살아남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는 부익부 빈익빈 사회로 변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불평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상위 수준이다. 한국의 불평등은 지니계수, 상대적 빈곤율, 5분위 배율에서 완벽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상위 1%의 부의 집중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2014년 현재 한국의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상위 1%의 소득은 약 12.3%로 증가했다. 상위 10퍼센트는 약 44.8%를 차지한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높은 비율이다. '20대 80의 사회'는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이제 '1대 99의 사회'가 출현하였다.
신약 성경 '마태복음' 25장 29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과학자들이 공동으로 연구 성과를 만들지만 유명한 과학자가 무명의 과학자에 비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현실이 마치 마태복음의 구절과 같다고 주장했다. 이를 '마태 효과'로 불렸다. 우월한 사람과 열등한 사람의 작은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져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큰 격차로 커진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마태 효과가 그대로 실현된다. 부유한 사람은 점점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더 가난해진다. 부자에게 유리한 정책이 채택되지만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책은 밀려난다. 부자를 위한 감세와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 축소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불평등 사회가 만든 비극
대한민국 헌법 10조에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문구는 평등의 선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가 부자들만 존엄하고 가치 있고 행복한 권리가 있는 사회로 변했다. 놀라운 점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게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한국에서 노동시장의 소득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지나치게 커지고 있다. 반면에 임금 정책과 재분배 정책은 빈약하다. 최저임금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사회보험의 사각지대가 많아 사회적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사람이 많다. 여성, 청년, 노인, 장애인 등 약자를 돕는 사회보호 제도도 형편없이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중산층이 몰락하고 빈곤층이 늘어났다.
불평등이 커질수록 부자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끝없는 지위 경쟁에 빠져든다. 학벌, 미모, 사치품을 숭배하고 과소비에 빠져들지만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부유한 사람과 비교하며 자신에 대한 열등감이 커지면서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자존감이 약해지고 우울증이 확산되고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다. 사회의 활력이 사라지고 미래에 대한 비관주의가 널리 퍼지고 있다.
금수저, 흙수저의 세습사회
한국 사회의 더 놀라운 사회현상은 세습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2013년 재벌닷컴 자료에 따르면, 상장사 상위 1% 주식 부자들이 보유한 주식 가치가 78조원에 육박한다. 전문경영인보다 재벌 2세, 3세의 비율이 압도적이며, '상속형' 부자가 70%를 차지한다. 자기 힘으로 창업한 부자는 10명 중 3명에도 못 미친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믿는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세상이 갈라졌다고 한탄한다.
부모의 능력에 따라 자녀의 운명이 결정되는 '세습 사회'가 등장하면서 능력에 따른 자유로운 사회이동이 사라지고 있다. 계층 상승의 주요 통로가 되는 교육 기회가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결정되면서 균등한 기회를 강조하는 민주주의의 가치가 약화되고 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전 세계적 차원에서 세습된 부와 권력에 의해 과두제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는데, 한국이야말로 가장 대표적 세습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왜 한국인은 불행한가?
경제적 기준으로만 본다면 한국은 성공한 국가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1960년대 약 80달러에 비해 2014년 기준 3만 달러에 육박한다. 거의 300배 이상 증가했다. 세계 최고 기록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가 측정한 한국인의 '삶의 만족' 수준은 하위권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2만 달러가 넘고 3만 달러에 육박해도 행복감이 더 늘어나지 않는다. 가장 빠른 물질적 성공을 이룬 나라가 심리적 불행감에 직면했다는 역설적 현실이 바로 한국의 비극적 자화상이다. 이런 지독한 '한국의 역설'이 왜 발생한 것일까?
나는 한국인이 행복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를 불평등이라고 주장한다. 경제성장이 계속되어도 지나친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하면 행복감은 높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어마한 부를 차지한 소수의 부유층이 가장 큰 큰 몫을 차지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가난하게 살아간다면 1인당 국내총생산과 평균소득의 상승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에서 말한 대로 "동물들은 더 풍요로워지지 않는데 농장만 배를 불려가는 것 같았다".
2000년대 초반 노무현 정부 집권 시 삼성경제연구소와 전경련이 내세운 '2만 달러 시대'라는 장밋빛 환상은 실패로 증명이 되었다. 경제활동인구의 절반이 비정규직이이라면 2만 달러 시대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마치 '형은 뉴욕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내가 갖고 있는 것은 이 형편없는 티셔츠뿐이다'라고 쓴 옷의 문구와 같다.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게 바꾸어 말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은 2만 달러 시대를 이루었는데, 내가 얻은 것은 비정규직 일자리뿐이다'. 이러니 한국인의 행복감이 올라갈 수가 없다.
헬조선과 비관주의
2010년부터 한국 사회에 '헬조선'이라는 인터넷 신조어가 등장했다. '한국은 지옥이고 아무런 희망이 없고 조선 시대와 같은 신분제 사회가 되었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는 '금수저', '흙수저'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는 개인적 좌절감의 표현이다. 2015년 20~40대 세대 의식에 관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를 '헬조선'으로 부르는 것에 동의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자의 65.3%가 '동의한다'고 답변했다. '헬조선'이라는 용어가 생긴 이유로 '경제적 부의 분배가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아서'(21.6%), '개인적 노력을 통한 사회경제적 지위 상승이 힘들어서'(16.5%), '세월호 침몰 사고 등 안전에 문제가 있어서' (14.7%) 등 순서로 나타났다(<연합뉴스> 2016년 6월 30일).
2015년 발표한 한국 통계청의 사회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6.7퍼센트가 사회경제적 지위를 '하층'이라고 답변했다. 자신이 하층민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1988년 이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평생 노력해도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60퍼센트에 달했다. 절망적 분위기가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로마 역사가 플루타르크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불균형은 모든 공화국의 가장 오랜 치명적 우환"이라고 말했다. 현대 사회에서도 불평등이 가장 치명적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불평등은 단지 낮은 수입이나 빈곤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 사회학자 예란 테르보른이 <불평등의 킬링필드>에서 지적한대로 불평등은 우리의 건강, 자존감,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자원, 인간으로서의 역량을 손상시킨다. 불평등은 개인 뿐 아니라 경제성장에 해악을 끼치며 파괴적 갈등을 유발하며 사회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불평등이야말로 사회의 가장 큰 질병 중 하나이다. 불평등과 싸우는 과제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도덕적 의무이다.
불평등과 싸우는 국가의 역할
불평등의 완화와 해결이 없다면 사회통합의 어려움이 커질 뿐 아니라 지속적인 경제성장도 불가능하며 한국 사회의 미래도 없다. 특히 정치인과 정책 결정자들이 증가하는 불평등에 맞서 싸우는 역사적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불평등 문제가 공정하게 해결하도록 통합적 제도와 정치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학자와 지식인은 정부 정책의 본질과 예상되는 결과를 두고 진지한 토론을 벌여야 한다. 법인세 인하, 자사고 설립, 의료 민영화, 무역 자유화가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로마 철학자이자 정치가이었던 키케로는 로마 집정관 루시우스 카시우스가 항상 "퀴 보노(Cui Bono)?"라고 현명하게 물었다고 칭찬했다. 이는 "누가 이득을 얻는가?"라는 의미다. 나는 사회과학의 핵심적 질문 중 하나가 정부의 정책으로 '누가 이득을 얻는지' 그리고 '누가 이득을 잃는지' 따지는 일이라고 믿는다. 새로운 정부의 개혁 정책도 이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 김윤태 고려대학교 교수
핵발전소 많은 국가 순서로 폭발, 다음은 어디? 819
독일, 핵발전소 폐쇄 논의에 공급자 배제…전기는 소비자의 권리
독일은 명실상부한 유럽 최대의 산업 국가다. 당연히 전기를 많이 소비할 텐데, 독일은 후쿠시마의 핵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 자국의 핵발전소 17기 중 8기를 즉각 폐쇄했다. 이후 일부 전문가의 예상과 달리 독일이 이웃 국가에서 전기를 대대적으로 수입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프랑스에 전기를 수출하고 있다. 무슨 까닭일까?
안전을 이유로 전기레인지를 사용하는 가구가 우리나라도 늘어난다고 한다. 가전제품 전문가는 디자인이 수려한 프랑스 제품보다 다소 투박하더라도 독일제를 권한다. 에너지 효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덧붙이는데, 가정용 전기에 누진제를 적용하는 까닭에 우리는 전기레인지를 선뜻 구매하지 못한다. 국민 1인당 평균 전기 소비량을 단순 계산하면 우리는 독일이나 프랑스의 거의 두 배 가깝다. 전기레인지를 사용하지 않아도 그렇단다.
남은 9기의 핵발전소를 2022년까지 모두 폐쇄하기로 한 독일은 무모하지 않았다. 석탄을 태우는 화력 발전소가 충분하기 때문이 아니다. 석탄 매장량과 화력 발전소는 충분하지만 대기 오염을 피할 수 없으므로 점차 줄여나가려고 한다. 태양과 바람으로 생산하는 전기가 뒷받침하므로 과감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건설과 운영에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핵 발전이나 화력 발전 관련 산업계의 권력의 태도는 우리와 다르지 않고, 그런 거대 권력의 방해가 집요했지만 소비자의 단호한 행동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독일 남부에 위치한 프라이부르크는 '세계 환경 수도' 또는 '태양의 도시'로 세계인의 칭송을 듣는다. 곳곳에 에너지를 자립하는 마을이 있기 때문인데 어떤 선지자의 제안으로 시민들이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붙이며 화답하고 자동차 사용을 자제한 건 아니다. 숲이 풍부한 만큼 하천이 맑고 깨끗한 프라이부르크에 핵발전소를 세우겠다는 중앙 정부에 맞선 시민운동이 처절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70년대 오일 쇼크로 석유 가격이 치솟자 독일 정부는 프라이부르크 인근에 핵발전소를 추진했다. 시민들의 반대 시위는 강렬한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핵발전소가 없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전기를 지역에서 생산하자는 결심은 행동으로 이어졌고 핵과 같이 위험한 에너지뿐 아니라 화력처럼 더러운 에너지도 피하고자 노력했다. 태양과 바람에서 머물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나 축사의 가축 분뇨를 적극 활용했지만 눈물겹다기보다 아름다웠던 시민들의 행동은 다른 데 있었다.
초창기인 만큼 기술이 미비했던 당시의 재생 가능한 에너지 분야는 충분한 전기를 공급하지 못했지만 시민들은 전기 소비를 줄이는 노력으로 핵 발전이나 화력 발전소 도입의 명분을 없앴다. 에너지 전문가들도 시민들의 노력에 뜻을 모았다. 핵 관련 자본의 편에 서서 반대하는 시민들을 억압하는 정책을 연구한 우리와 달랐다.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산업 분야의 에너지 효율화를 높이는 데 독일 전문가들이 앞장섰다.
프라이부르크의 노력이 곳곳으로 확산된 요즘, 독일인들은 겨울철이면 집 안에서 외투를 입고 고급 식당도 손님이 없는 자리의 조명은 꺼 놓는다. 원가 이하로 전기를 공급하자 에너지 낭비가 일상화된 우리의 산업체들과 달리 이산화탄소 소비가 적은 생산기술을 개발하면서 지구 온난화 진행을 완화하려고 애를 쓴다. 에너지 소비를 90퍼센트 정도 줄이는 주택과 건축물의 공급을 의무화하는 독일은 산업체에서 사용하는 전기의 대부분을 태양에서 구할 준비를 마친 상태라고 한다. 참고로 독일의 태양은 우리보다 약하다.
58기의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프랑스는 정권이 교체된 요즘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비중을 늘리려고 노력하지만 아직 핵이 대세다. 전후 프랑스의 정권을 잡았던 샤를 드골은 철권통치로 유명하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말한 드골은 나치에 부역한 지식인, 특히 언론인을 사형에 처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 철권은 프랑스에 핵발전소를 집중시키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누가 감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으랴.
ⓒ프레시안
켜고 끌 때 복잡하고 위험하므로, 밤에도 가동해야 하는 핵 발전은 많은 전기를 버리게 만든다. 전기의 4분의 3을 핵발전소로 충당하는 프랑스는 핵발전소를 다수 도입한 전두환 정권처럼 과소비를 추동했다. 산업체와 가정은 전기 효율화에 관심이 부족했는데, 안전할 거라고 막연히 기대했던 핵발전소가 1986년 구소련과 1979년 미국에서 폭발했고, 2011년 일본은 폭발을 막지 못했다. 기술 부족이 아니었다. 대체로 핵발전소가 많은 국가 순서로 폭발했는데 다음은 어디일까?
연구자의 연구 과욕으로 폭발한 구소련과 노무자의 실수가 사고를 부른 미국의 핵발전소는 최신형이었지만, 지진과 쓰나미가 원인을 제공한 일본의 4기는 수명을 연장한 노후 시설이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새로운 핵발전소 건설이 시민들의 반대로 억제된 마당이므로 프랑스 역시 대부분의 핵발전소가 낡았다. 고장이 많아도 철저한 관리로 사고를 막으려 애를 쓰는데, 프랑스는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기관과 안전을 관리하며 통제하는 기관을 엄격히 분리했다. 운영과 통제 기관의 인적 교류가 활발한 우리나라는 사회적 합의 없이 수명 연장을 거듭해 왔다.
어느 산업 설비도 사용 시간이 길면 낡고 고장이 잦아진다. 작은 사고도 방심하면 끔찍한 폭발로 이어질 수 있기에 핵발전소는 철저한 관리와 통제가 필수다. 사고 발생이 드러나면 대충 얼버무리는 우리나라와 달리 프랑스는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가동을 중단시킨다. 한데 핵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의 양은 막대하다. 지역에서 자급하는 태양광에 비교할 수 없다. 그 막대한 전기가 한꺼번에 사라진다면? 소비에 익숙한 프랑스인들은 빗발치게 민원을 제기할 것이다.
독일의 많은 건물은 태양광 패널로 덮여 있다. 그 전기는 자신의 집과 지역에서 자급하는 게 원칙이다. 모자라면 핵발전소나 화력 발전소의 전기를 끌어오지만 대신 위험과 오염을 감수해야 한다. 불편하더라도 소비를 줄이고 효율화를 택한 독일인은 이웃 지붕의 태양광 패널에 관심이 많다. 고장 나면 이웃이 모여 팔 걷어붙이고 고친다. 그러므로 핵발전소 규모의 정전이 발생할 일이 없다. 때때로 이웃 프랑스에 전기를 수출할 여유가 있다.
어떤 전기를 쓸까? 우리나라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전력 회사가 많은 독일은 마을 단위로 선택이 가능하다. 핵발전소가 줄어들면 방사능 걱정도 줄어든다. 화력 발전소가 줄어들면 미세먼지 걱정이 줄어든다. 지구 온난화도 그만큼 억제될 텐데, 우리나라는 요즘 신고리 핵발전소 5호기와 6호기의 공사 중단을 놓고 일부 핵 발전 전문가들의 저항이 거세다. 핵 발전 산업계에서 거액의 연구비를 받은 학자이거나 그 산업계에서 제공하는 지원금에 길든 언론이 그들이다. 본질을 왜곡하며 공론화 과정에 전문가의 참여를 요구하지만 추악한 이기심을 의심하게 만든다. 핵발전소 건설 7과정에 주민의 참여와 공론화를 강압적으로 막던 자신들의 독선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독일은 2022년까지 자국 핵발전소를 전부 폐쇄하는 논의에 핵 발전 관련 산업계 전문가의 참여를 철저히 배제했다. 그들은 공급자가 아닌가. 다음 세대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핵 발전과 화력 발전의 중단은 정언명령이다. 가전제품 선택과 마찬가지로, 전기의 선택 역시 주부가 포함된 소비자의 몫이다. 그러므로 촛불이 이끈 핵발전소 폐쇄 논의에 핵 발전 추진론자들은 끼어들 자격이 없다. [월간 작은책]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점령한 부엌, 괜찮을까? 819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여름 부엌의 발견
부엌은 오랜 지혜의 저장고이다. 부엌에서 부엌으로 이어지는 전통이 다채로운 삶의 문화를 만들었다. 부엌은 철마다 자연을 들이고 내는 살아 있는 소통 공간이다. 누구나 철마다 무엇을 먹고 있는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제철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알았다. 자본이 주는 얼굴 없는 음식에 길들고, 스스로 자기답게 먹는 법을 잊어버린 시절,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저마다 갖가지 제철을 먹고 저장하는 부엌을 만났다.
제철 만나는 여름 부엌
홍대 앞에서 제철을 요리하는 카페 '수카라' 대표 김수향(43세) 님과 마침 한국을 방문한 재일교포 나순자(69세) 선생님을 함께 만났다. 일본 교토에 살면서 40여 년 한국전통음식을 연구해온 부엌살림 이야기와 제철 채소와 열매를 갖가지 방식으로 요리하고 발효 저장하는 여름 부엌살림 이야기를 나눴다.
▲ 지금 부엌은 '앞으로 생존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남을까?'에 대답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누리던 맛은 지금 체계가 무너지는 순간 존재할 수 없다. 냉장고 없던 시절 사람들이 살았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작은것이아름답다(김기돈)
"지금까지 대부분 냉장고 없이 살았어요. 전통 지혜를 철마다 적용해왔어요. 냉장고가 부엌에 들어오면서 사람들 건강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계절 상관없이 냉장고에 쟁여놓으면서 제철 음식을 못 먹게 된 겁니다."
나순자 님은 건강에 갖가지 문제가 생기는 원인으로, '냉장고 문화'를 지목한다. 부엌은 오랜 전통이 집약되어 있고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공간이었다. 늘 삶의 중심이었는데 점차 주변으로 밀려났다. 냉장고 기능도 다양해지고 온갖 편리한 도구들로 가득하지만, 단지 끼니를 때우는 공간이 됐다.
"앞으로 더 주변으로 밀려날 거라고 생각해요. 모두 대형마트에 의존하고, 즉석식품이나 가공식품을 데우거나 전자레인지 돌리는 것이 요리와 부엌을 대체했어요."
자본이 부엌의 실종을 빠르게 부추기고, 삶의 주도권을 빼앗고 있다. 그런 삶은 건강하지 않다.
김수향 님이 카페 수카라를 시작한 계기는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다. 11년 전 일본을 오가면서 잡지 만드는 일을 하는 동안 삶이 망가졌다. 일을 하다 정신 차리면 문 연 곳이 편의점과 고깃집 말고는 없었다. 다품종 소량 생산하는 유기농 농부로부터 제철 재료를 받아 요리하는 레스토랑 카페를 생각했다.
"수카라를 열고 보니, 다품종 소량생산 농부는 존재하지 않았어요. 생협조차 어느 정도 규모로 생산하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는 탓입니다. 카페 부엌은 냉장시설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있을 때 많이 쟁여놓고 많이 만들어 냉동해 놓게 됩니다. 냉장고 중심 부엌은 대형마트 식 소비 행태를 전제하니까요."
그날 먹고 소비할 만큼만 날마다 구입할 수 있는 시장도 사라졌다. 아침마다 조그만 접시에 그날 먹을 채소를 조금씩 파는 태국 치앙마이 시장 같이 곳이 제철을 먹을 수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고민이 다품종 소량생산 도시농부와 요리사가 함께 여는 농부시장 '마르쉐'로 이어졌다.
"마르쉐를 시작한 뒤로 냉장고를 덜 쓰게 됐어요. 제철을 다채롭게 요리할 수 있는 상황을 함께 만든 겁니다. 제철이 아닌 것을 먹으려는 건 사실 욕망입니다. 이것이 문제의 시작이에요."
제철을 먹는 기술, 제철을 먹는 생활의 여유, 제철에 대한 시각이 다 변해야 한다. 어떻게 제철의 것을 먹고살 것인가. 이것이 핵심이다.
예전 어머니들은 제철만 요리했다. 예전에는 냉장고 대신 '찬장'을 썼다. 유리문을 여닫고 옆은 바람이 통하는 구조인데, 아침에 만든 반찬, 당장 먹을 제철 밑반찬을 넣어뒀다.
"먹다가 남으면 말려 저장했어요. 계절이 바뀌면 자연 화학작용으로 숙성되고 영양이 풍부해지거든요.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제철 음식으로 부엌을 꾸리는 기술, 요리하는 기술입니다."
또한 냉장고 없던 시절에는 음식을 독점하지 않았다. 수박 한 통 들어오면 접시 들고 다니는 것이 일이었고, 관계를 잇는 함께 먹는 문화가 당연했다. 우리나라 저장음식에는 냉장고 없던 시절 지혜가 들어 있다. 다품종 소량생산 농부들은 자급을 위한 농사를 지었고 잉여를 나눴다. 그것을 어떻게 보관하고 가족에게 오랫동안 먹일 것인가 고민하면서 저장과 발효 기술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인간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부엌의 지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때 한순간 물, 공기, 흙이 모두 사라졌다. 문제 핵심에는 전기가 있다. 어디에서 온 전기인지 모르면서 소비하게 하는 체계였다. 전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고스란히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사고 당시 냉장고를 쓸 수 없으니, 아사(餓死) 직전까지 갔어요. 다 상하고 먹을 것이 없는 거예요. 생존 위기를 몸으로 느꼈어요. 지금까지 '인간력'을 잃어버리고 살았구나. 냉장고와 불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어요."
김수향 님은 그 뒤로 전자레인지를 버렸다. 전기 없이 가공하고 저장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지금 부엌은 '앞으로 생존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남을까?'에 대답하지 못한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사람들이 살았던 지혜를 배워야 한다. 그것이 '발효와 저장'이다.
일본 교토는 매우 덥고 춥고 습한 곳이다. 어느 곳보다 보존과 저장에 대한 고민이 많다. 나순자 님은 오래전 아주 작은 냉장고로 바꿨다. 아무리 바빠도 그날 먹을 것을 그날 바로 만들어 먹는다. 외식은 거의 하지 않는다.
"제철 채소 몇 가지만 있으면 풍성한 밥상을 차릴 수 있어요. 냉장고에 의존하지 않는 방법을 익히면 식생활이 풍요로워져요."
무엇보다 냉장고 없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냉장고 불이 꺼지는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남자 여자, 어린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인간력', 생활력이 있어야 해요. 먹는 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정말 중요해요. 식물을 요리하는 감각을 익혀야 해요."
지금까지 냉장고에 의존해왔던 생활방식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고마웠지만, 앞으로 다음 단계로 가야 한다. 극심한 기후변화, 화석연료 고갈, 핵발전소 위험이 일상에 놓여 있다. 지금까지 누리던 맛은 지금 체계가 무너지는 순간 존재할 수 없다.
"발효와 저장을 공부하는 이유는 몸이 원하는 것을 어떤 상황에서도 먹을 수 있는 능력, 요리력을 갖추려는 겁니다."
우리 일상에서 전기를 하나씩 배제시키고, 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야말로 여러 가지 삶의 기술이 들어오는 통로다.
음식과 관련해 여름은 특별한 시기이고 여름부엌 공간은 더더욱 그렇다. 여름에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옛날 부엌은 한국도 일본도 통풍이 좋았다.
"도시 부엌은 통풍이 안 되니까 음식도 쉬 상하고, 요리를 더 안 하게 됩니다. 냉동식품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거죠. 여름이야말로 제대로 제철 음식을 먹어야 하는 때입니다. 적당히 생각 없이 먹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에요. 먹는 음식이 나를 만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 부엌에서 발효와 저장을 공부하는 이유는 몸이 원하는 것을 어떤 상황에서도 먹을 수 있는 능력, 요리력을 갖추려는 것이다. 우리 일상에서 전기를 하나씩 배제시키고, 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야말로 여러 가지 삶의 기술이 들어오는 통로다. ⓒ작은것이아름답다(김기돈)
여름 부엌에서 살아남기
우선 말리기가 손쉬운 방법이다.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는 한국의 지혜이다. 말려서 바로 요리에 쓰거나 가루를 내서 뿌려 먹을 수 있다. 나순자 님은 덥고 습한 일본 교토에서 다양하게 말리기를 해왔다. 생선에서 채소, 고기까지 다 말릴 수 있다. 훈제도 가능하다.
"종이상자는 종이와 종이 사이 공기층이 있어요. 펼친 상자에 채소를 널어놔요. 무청 같은 것은 상자를 삼각형으로 세워 걸쳐놓죠. 버섯 종류는 볕을 보게 하고, 푸른 채소는 그늘에서 말려요. 1주일 정도 가끔 뒤집어 주면 됩니다."
방풍, 깻잎을 비롯해 다양한 말린 채소를 가루 내 소금과 섞으면 풍미가 좋은 소금이 된다. 일본 NHK에서 나순자 님 방법을 과학자가 실험했다. 종이상자가 가장 좋다는 결론을 내렸단다. 많이 말려서 쌓아두고 1년 내내 먹겠다는 것이 아니라 냉장고에 넣지 않고 보관하려는 것이다. 제철을 요리해 먹고 남는 것을 말린다. 말린 뒤 오일과 설탕을 넣어 2차로 가공하면 새로운 맛과 식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교토보다 한국은 더 말리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다.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집안으로 한두 시간 햇빛이 들어올 때 나무식기, 도마, 도자기 식기, 젓가락 숟가락을 소쿠리에 올려놓고 '햇빛 살균'하는 것이다.
여름에 너무 차게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되레 생강 같이 몸을 따듯하게 하는 음식이 필요하다. 밖에서 종일 찬 것을 많이 먹는데, 집에서는 된장국, 밥, 장아찌, 김치 정도로 간소하게 먹는 것이 좋다. 여름에 고기를 많이 먹으면 소화에 에너지를 뺏기는 탓에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여름에는 우선 부엌에 쟁여 놓은 것을 비워 가볍게 하고, 설탕 단맛을 최대한 피하고, 수입 과일보다는 제철 과일과 채소를 주로 먹는다.
일본 '우메보시'는 대표 여름 절임반찬. '매실을 말리다'는 뜻이다. 황매에 소금 14~20퍼센트 정도 넣고 한 달 뒤, 햇빛 쨍쨍한 날 대나무 소쿠리에 매실을 건져 펼쳐놓는다. 3박 4일 동안 햇빛 달빛 받아가며 말리면, 우메보시가 된다. 300년 된 것도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다. 매실을 햇빛에 살균도 하고 숙성시키는 것이다. 반찬이면서 방부 역할도 한다. 상온에서도 밥에 박아 두면 상하지 않는다.
"여름에 없으면 안 되는 음식이에요. 말린 채로 보관하거나, 다져서 페스토처럼 조미료로 쓰죠. 매실 씨앗도 육수를 내 국을 끓여요. 매실을 건져낸 '우메수'는 신맛이 나서 식초라고 불러요. 여기에 생강을 절여놓고 먹죠. 초밥 문화를 지탱해왔어요."
'누카즈케'도 중요한 여름 절임반찬이다. 쌀겨나 밀겨를 가볍게 볶아 소금물과 섞어 발효시킨 것이 '누카도코'다. 여기에 형형색색 갖가지 채소들을 소금으로 밑 절임한 뒤 넣어두면 장아찌 같은 누카즈케가 된다.
"토마토나 가지도 가능해요. 빨리 먹을 거면 하루 정도면 되고 조금 신맛을 원한다면 일주일 정도 넣기도 해요. 가끔 손으로 뒤적여 상재균으로 발효시켜요. 일본에서는 시집갈 때 엄마가 집안 누카도코를 물려줘요. '가족균'을 물려주는 거죠."
우리나라는 된장에 채소를 꽂아두는 문화가 있다. 요즘은 꽂아둘 만큼 장을 많이 담지 않으니까 발라 두기만 해도 된다. 된장과 술지게미를 반반 섞어 무를 꽂아 장아찌를 만들기도 한다. '나라즈케'라고 박 종류인 백과 속을 파낸 뒤, 소금에 절여 술지게미를 켜켜이 펴 발라 장아찌를 만들기도 한다. 우리나라 군산과 남원 쪽에서 아직 만드는 곳이 있다.
여름에는 연잎이나 감잎을 활용하면 방부 효과가 있어 상온에서 2~3일 먹을 수 있다. 주먹밥이나 생선과 밥을 싸거나 김치나 장아찌 담글 때 위에 덮기도 한다. 지역마다 잎을 활용한 사례를 모아보면 다양하게 응용해볼 수 있다. 우리는 유통기한 숫자에 너무 익숙해져 있지만, 발효 먹을거리들은 유통기한을 계량할 수 없다. 자신의 몸을 믿고 자기 혀로 확인하는 것이다. 김수향 님은 사람들에게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몸을 만들라, 그런 감각을 익히라 말한다.
"계량화로 균일한 맛을 내기는 좋아졌지만, 철마다 지역마다 해마다 기후에 따라 모두 맛이 다르거든요. 된장도 그해에만 나는 맛이 있는 거예요."
여름을 잘 나는 방법은 불을 최대한 안 쓰는 것이다. 찬물에 된장을 푼 냉된장국을 비롯해 다양한 냉요리법이 있다. 발효 저장음식이 있다면 더 쉽게 불 안 쓰는 요리가 가능하다. 날마다 새로 만들지 않아도 되니 생활의 속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발효와 저장은 여름부엌을 지키는 오래된 미래다.
▲ 음식과 관련해 여름은 특별한 시기이고 여름부엌 공간은 더더욱 그렇다. 여름이야 말로 제대로 제철 음식을 먹어야 하는 때이다. 먹는 음식이 나를 만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말리기는 손쉽게 적용할 수 있는 우리 부엌의 지혜이다. ⓒ작은것이아름답다(김기돈)
삼성 장충기 문자에 등장하지 않는 ‘공범자들’ 820미디어오늘
[비평] 기명칼럼에 드러난 언론계 ‘삼성맨’의 흔적…삼성의 국정농단 ‘공범자들’ 더 찾아내야
‘삼성 관제탑’이라 불렸던 삼성 미래전략실 장충기 사장(차장)이 받았던 문자에는 언론계의 노골적인 청탁과 공조 정황이 담겨있었다. 그들은 ‘언론인’이란 외투를 쓴 ‘삼성맨’이었고, 삼성이 지금껏 저지른 국정농단의 공범자들이었다. 하지만 문자로 드러난 공범자들은 조금 억울할지 모른다. 장충기 문자로는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삼성맨들’ 때문이다.
2008년 ‘이건희 전 회장의 눈물’이란 칼럼을 썼던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박근혜정부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을 맡았다. 2011년 ‘이건희 회장의 눈물’이란 칼럼을 썼던 문창극 중앙일보 대기자는 훗날 국무총리가 될 뻔했다. 삼성의 안락한 관리를 받고 있는 삼성장학생들은 지면과 화면 도처에 깔려 지금도 활약하고 있을 것이다.
▲ 삼성 깃발. ⓒ연합뉴스
예컨대 김세형 매일경제 논설고문은 “이재용 구속재판은 위헌적이다”라고 주장했고 “이재용 부회장 위치의 인물을 저렇게 쉽게 구속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는 김앤장 변호사의 발언을 강조했다. 한예경 매일경제 증권부 차장은 “포승줄에 수갑까지 채워진 이재용 부회장의 모습은 주주들의 머릿속에 부도덕한 기업의 주가 그래프를 그려 넣었다”며 “특검은 삼성의 브랜드까지 지켜야 할 의무는 없다고 본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성은 머니투데이 산업1부 기자는 이재용 재판을 두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싸움”이라는 익명의 법조계 관계자 말을 첫머리로 강조하는가하면 “정황만 있고 증거 부족한 세기의 재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손현덕 매일경제 부국장 겸 산업부장은 “삼성 같은 기업을 10개 이상 만들자던 정치가 이제 기업의 1등주의를 탐욕으로 부정한다”고 주장했고, “대기업의 벤처 인수 반대는 국민정서로 포장된 얼치기 논리”라고 주장했다. (손현덕 부국장은 편집국장과 논설실장을 거쳤고, 훗날 장충기 문자에 등장한다.)
▲ 2017년 2월22일자.
▲ 2012년 4월12일자.
▲ 2016년 10월19일자.
▲ 2013년 8월29일자.
▲ 2017년 2월21일자.
▲ 2017년 6월20일자.
▲ 2017년 5월1일자.
김정호 한국경제 수석논설위원은 이재용 구속 당시 ‘질투의 악법이 이 지경을 만들었다’는 칼럼에서 “기업을 처분해야 납부 가능한 고율 상속세는 인간 본성 부정하는 파괴 행위”라고 주장하며 “기업 상속을 부도덕한 행위로 몰아가는 한 한국에 미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대통령 박근혜를 만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위한 국민연금의 찬성을 부정한 방법으로 요청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상속세라는 식의 궤변이다.
이학영 한국경제 논설실장은 “틈만 보이면 기업들의 호주머니를 털어내려는 정치권력과 시민단체 권력은 그 자체로 기업들의 헤저드(위험요소)”라고 주장했다. 이만우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은 “시민단체의 삼성 비난을 접하고 주식을 처분했던 투자자는 땅을 치는데 시민단체 간부들은 정치권에서 부상하고 대학에서도 모금 능력을 자랑하며 위세를 떨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고스란히 삼성 재벌권력의 관점과 일치한다.
이재용 1심 판결을 앞두고 여론전도 활발하다. 2013년 제17회 삼성언론상 논평비평상을 받은 이철호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우울한 세계 1위 삼성전자’란 칼럼에서 “특검이 무리하게 구속기소를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다”며 “(삼성전자는) 지난 10년간 과감한 결단으로 세계 1위로 우뚝 올라섰지만 총수 부재의 위기 속에 5~10년 뒤가 두려운 분위기”라고 주장했다. 박종면 머니투데이 대표는 “이 부회장에 대한 1심 선고일이 다가올수록 괴담이 떠돌아다닐 것”이라며 “그중에는 출세욕에 불타는 서울중앙지법 판사들이 결국 정치적 판결을 내릴 것이란 내용도 있다”로 주장했다.
오동희 머니투데이 산업1부장은 ‘이길 수 없는 여론법정에 선 이재용’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여론법정이 득세하면 마녀사냥은 중세보다도 더 횡행할 것이고 우리 사회의 위험지수는 더 높아질 것”이라 주장했다. 이재용 재판을 ‘마녀사냥’에 비유한 셈이다. 박준식 머니투데이 산업1부 차장은 “이재용만 잡으면 된다던 특검이 12년형을 구형했다. 유아 성폭행범 조두순이 받은 형량”이라고 주장했다. 형량과 구형은 다르지만, 아예 이재용을 흉악범과 비교하는 식으로 이 재판을 비상직적인 것으로 묘사한 대목이다.
▲ 2015년 7월13일자.
▲ 2016년 12월12일자.
▲ 2017년 5월1일자.
▲ 2015년 6월29일자.
▲ 2017년 2월20일자.
▲ 2017년 7월24일자.
▲ 2017년 4월7일자.
▲ 2017년 8월15일자.
▲ 2017년 7월18일자.
▲ 2011년 7월12일자.
▲ 2017년 7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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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1월16일자.
▲ 2017년 2월23일자.
▲ 2012년 2월20일자.
▲ 2008년 7월11일자.
▲ 2017년 7월20일자.
▲ 2012년 4월18일자.
삼성장학생들의 활약은 전 방위적이었다. 조진래 헤럴드경제 산업부장은 “기업은 일류로 뛰려는데 이류, 삼류 규제를 들이대며 족쇄를 채워서야 되겠는가”라며 대기업 순환출자를 정당화했다. 조형래 조선일보 산업2부장은 “삼성이 투자 대신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서둘렀다면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는 사태는 막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세계 최고의 제조업체 삼성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임정효 파이낸셜뉴스 산업부장 겸 부국장은 “정치권은 전쟁터 맨 앞에 서서 치열하게 싸우는 대기업의 손발을 묶어야 한다고 난리다”라며 “정치권이 이제 현실감 없는 한가한 소리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한심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메르스 사태,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이재용 구속, 이재용 재판 등 삼성의 고비마다 삼성장학생들은 언론이란 외피를 쓴 채 삼성의 대변인을 자처했다. 여기 언급된 기명칼럼은 빙산의 일각이다. 기명칼럼을 썼던 이들 중 누군가는 삼성 간부에게 청탁을 하고 대가를 받았을지 모른다. 우리는 장충기 문자에 등장하는 이들만 비판해선 안 된다. ‘공범자들’을 더 찾아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장충기 문자가 추가로 공개될까, 거기 내 이름이 있을까 노심초사할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일말의 부끄러움이 남아있다면 속히 언론계를 떠나기 바란다.
공범자들’에게는 ‘쥐구멍’이 없다 821 미디어오늘
MBC·KBS 언론인들의 결사투쟁이 ‘흑역사’를 끝낼 것
지난 토요일(19일) 오후 집에서 가까운 극장을 찾아갔다. 다큐멘터리영화 ‘공범자들’(최승호 감독, 뉴스타파 제작)을 보기 위해서였다. 상영시간 20여분 전이라 그런지 좌석은 텅 비어 있었다. 화면에 잇달아 나오는 광고들을 무료하게 보고 있는데 관객이 두서너 명씩 짝을 지어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몇 분 만에 만석이 되었다. 나이 지긋한 부모와 자녀들부터, 청춘남녀들과 중고등학생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면모의 사람들이었다. 여느 때에 보면 관객들은 일행과 대화를 하면서 가벼운 표정으로 영화관에 들어오곤 하는데, 그날은 전혀 달랐다.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진지했고, 어떤 이는 엄숙해 보이기까지 했다.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자 ‘공범자들’을 추적하는 배우이며 해설자이기도 한 최승호(MBC에서 해직된 PD로 현재는 독립언론 뉴스타파의 앵커) 감독이 어떤 모임에서 MBC의 ‘공범자들’인 경영진을 기습 인터뷰하려다 거부당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는 황당한 표정으로 이렇게 독백을 한다. “모두 잘들 살고 있군.”
▲ 영화 ‘공범자들’ 포스터
2007년 12월 대선에서 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명박은 이듬해 2월25일 취임식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임자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정연주 KBS 사장을 몰아내기 위한 ‘공작’을 시작한다. 이명박이 당선자 시기에 장관 후보로 지명한 인물들의 부정과 비리를 KBS가 가장 열성적으로 찾아내 보도함으로써 취임 전부터 그에게 치명적 타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특히 2008년 5월에 시작된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KBS가 적극적으로 전한 뒤 이명박이 임명한 그 방송사 이사장 유재천(언론학자)은 사복경찰들을 동원해 회의장을 봉쇄한 채 사장 정연주 해임 결의안을 심의한다. 기자·PD·아나운서·기술인들을 비롯한 노동조합원들이 결사적으로 이사회를 저지하려고 했지만 결국 그 안건은 통과되었고 이명박은 8월11일 정연주 사장을 해임한다(검찰에 연행되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그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 선고를 받았다. 2012년 1월12일 대법원은 배임죄에 대해 무죄를 확정한 뒤 2월23일 해임처분은 무효라고 선고했다. 이명박 정권의 ‘KBS 장악 음모’를 위법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정연주 해임은 ‘이명박 식 언론 장악’의 서막이었다. 그는 최측근인 방통위원장 최시중을 앞세워 공영방송 KBS와 YTN에 ‘청와대 낙하산 사장들’을 내려보낸다. 2010년 2월에는 ‘공영방송 최후의 보루’이던 엄기영 MBC 사장을 압박과 회유를 통해 쫓아내고 ‘친한나라당 성향’의 김재철을 사장으로 임명하라고 방송문화진흥회(MBC를 관리·감독하는 이사회)에 ‘지시’한다. 공영방송을 ‘사유화’하는 이명박 정권의 정치공작은 임기 5년 동안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영화 ‘공범자들’은 그 흑역사를 생생히 고발하고 있다.
‘공범자들’의 타이틀백에는 영어 제목이 ‘Criminal Conspiracy’라고 나와 있다. ‘범죄 음모’라는 뜻이다. 주요 ‘공범자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 영화 ‘공범자들’ 스틸컷. (사진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최승호 감독)
이명박, 김재철(전 MBC 사장), 안광한(전 MBC 사장), 길환영(전 KBS 사장),김장겸(현 MBC 사장), 고대영(현 KBS 사장), 고영주(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백종문(현 MBC 부사장)
최승호 감독은 지난 9일 ‘공범자들’ 언론시사회가 열린 뒤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범자들’은 지난 9년 동안 공영방송 KBS와 MBC가 방송을 장악하려는 자들에 의해 어떻게 점령됐는지, 어떤 싸움과 희생이 있었는지 기록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지난해 10월 영화 ‘자백’을 개봉할 때만 해도 이 영화를 꼭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탄핵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새로운 정부가 탄생할 때 사회의 많은 부분이 변할 텐데 방송 장악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KBS·MBC가 동토의 왕국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영화라는 수단으로 호소하기로 했다.”‘공범자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 째인 8월17일에 개봉되었다. 새 정부가 ‘촛불혁명의 소산’이라고 자임하듯이, ‘공범자들’도 연인원 1700만여 명이 일구어낸 ‘명예 시민혁명’이 없었다면 태어나지 못했으리라. 박근혜가 청와대를 차지하고 있는 한 어떤 극장도 이런 영화를 스크린에 올려 줄 리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1시간45분에 걸쳐 ‘공범자들’을 보는 동안 나는 자주 관객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거의 모든 사람이 한 순간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채 웃음을 터뜨리거나 분노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승호 감독이 영화 말미에서, 어떤 행사에 참석하고 나오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께서 언론을 망친 파괴자라는 비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을 하자 그는 멍청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최 감독를 바라보기만 했다. 이 전 대통령이 내려보낸 김재철 사장이 공영방송 MBC를 망쳤다고 최 감독가 꼬집어 말하자 그는 차에 오르면서 최 감독에게 “지금 뭐 하나요”라고 엉뚱한 반문을 했다. 이 장면에서 관중은 폭소를 터뜨렸다. 고대영·김장겸·백종문 등이 끈질기게 따라붙는 최승호 감독에게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할 때는 객석에서 야유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영화 ‘공범자들’ 스틸컷. (사진은 김재철 전 MBC 사장과 최승호 감독)
8월20일자 네이버 포털 영화 사이트를 보면, ‘공범자들’에 대한 평점(10점 만점)은 ‘관람객 9.67’, ‘기자·평론가 6.44’, ‘네티즌 8.92’이다. 진보와 보수가 뒤섞여 있는 전문가 집단(기자·평론가)보다는 보통사람들이 이 영화에 폭발적으로 호응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나는 ‘공범자들’을 보는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최승호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 앞에서, 양심과 이성과 상식을 가진 언론사 경영진이라면 창피해서 ‘쥐구멍’이라도 찾을 텐데 그들은 부정하고 부패한 정권에 부역한 사실을 반성하고 참회하기는커녕 오히려 박근혜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혁명을 폄하했다. 그러면서 최근 ‘문재인 정부의 언론 장악 음모’를 비난하는 자유한국당을 든든한 ‘우군’으로 삼고 있음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들은 창피해서 숨을 쥐구멍을 찾지는 않겠지만, 최근 MBC와 KBS에서 기자·PD·아나운서들이 격렬하게 벌이고 있는 ‘부역자 퇴출’ 투쟁에 밀려서 숨을 수 있는 쥐구멍을 발견할 수도 없을 것이다. 특히 ‘공범자들의 끝판왕’인 이명박이 그의 별명에 걸맞는 ‘구멍’을 어디에서 구할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전국언론노조를 비롯해 240여개 언론·시민단체가 구성한 ‘KBS·MBC 정상화 시민행동’이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성명서(‘공영방송 정상화는 적폐인사 청산이 최우선이다 / 이인호, 조우석, 고영주, 김광동의 즉각 해임을 촉구한다’)에는 영화 ‘공범자들’이 다루지 못한 ‘주요 공범자들’의 행적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 3월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의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언론, 과연 공정한가' 토론회에서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왼쪽)과 이인호 KBS이사장(왼쪽)이 참석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이인호는 2014년 8월 29일 비틀린 ‘우익사관’ 논란에도 불구하고 KBS 이사장에 선임됐다. 그는 ‘김구는 대한민국 독립을 반대한 사람’, ‘(친일파 청산은) 소련에서 내려온 지령’이라고 말하면서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기에 앞장섰고, 그가 재임하는 동안 친일 문제를 다룬 ‘친일과 훈장’이라는 프로그램이 불방되는 등 ‘친일’은 KBS에서 가장 주요한 금기어가 되었다. 그리고 이인호가 KBS 이사장에 오른 뒤엔 청와대와의 커넥션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역시 극우 인사 논란 속에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로 선임됐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변형된 공산주의자’, ‘문재인 후보도 공산주의자이고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 등 극우적 이념을 담은 거짓말과 막말을 서슴지 않아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사람이다. 또한 그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위원직을 수행하면서 취득한 정보와 인맥을 이용해, 심의대상이었던 대학 법인에 법률자문이나 소송 수행 등을 한 정황이 있어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고영주가 이사장으로 있는 방문진은 MBC의 불법해고와 부당노동행위 그리고 세월호 참사 대형 오보 등 공영방송의 기능이 상실되고, 신뢰도가 추락했다는 비난에 대해선 ‘정치공작’이라며 공영성 훼손을 방조했다.”
‘공범자들’을 보고 난 뒤 아쉬운 점이 있었다. 이명박 못지않게 언론 장악의 ‘주범’인 박근혜의 행적을 본격적으로 파헤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 감옥에 들어간 뒤에 제작을 했기 때문이겠지만. 언젠가 ‘공범자들’ 후속편을 만들 수 있다면 주권자들의 심판을 위한 역사적 기록을 위해서 ‘박근혜 일파’의 공영방송 사유화와 자유언론 탄압도 반드시 다루어 주기 바란다.
▲ 영화 ‘공범자들’ 스틸컷. (사진은 안광한 전 MBC 사장)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는 오는 24일부터 닷새 동안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할 예정이고, KBS 본부도 비슷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두 방송사 모두에서 이사장과 사장 퇴진에 찬성하는 사원이 88~95%나 되는 상황에서 파업이 진행된다면 ‘공범자들’이 임기 채우기를 고집하면서 더 이상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두 노조는 2012년 때보다 더 강력한 의지로 ‘결사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관련 56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천박한 오락 프로그램" 마이크 잡은 문 대통령에 야당 독설821 오마이뉴스
문재인 정부 출범 100기념 국민인수위원회 대국민 보고대회가 지난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여주여자농업고등학교 황인경 양이 전달한 책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청와대 사진기자단
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문 대통령 '국민보고대회'에 "소통 아닌 쇼통" 맹 비난
제1야당이 대국민 토크쇼 하는 것 보고 대통령이 대국민 토크쇼를 한 모양." -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국민은 '쇼' 하는 대통령이 아닌 일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짜고 치는 고스톱 형식의 대회를 열었다." -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
청와대가 지난 20일 취임 100일간의 국정운영 성과를 국민에게 직접 알리는 대(對) 국민보고대회를 연 것을 두고 독설이 쏟아졌다.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등 야3당은 21일 이를 '쇼'로 평가절하 하면서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지상파 3사와 보도채널 2개사 등이 주말 황금 시간대에 이를 생중계한 것을 두고 '권언유착의 생얼을 보여줬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자유한국당] "지지율에 취한 청와대, 잔치와 축제에 빠졌다"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정우택 원내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남소연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21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아침에 시청률 발표된 것을 보니, 모든 방송사가 생중계를 한 토털 시청률이 10%도 안 됐다"면서 "대통령이 프라임 타임에 방송3사를 비롯해서 (생중계를 했는데도) 그러한 시청률이 나오는 것을 보면, 과연 이 정부의 지지율이 '관제 여론조사'가 발표하는 80%가 맞는가. 그것은 아니다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 조사 결과, KBS·MBC·SBS 등 지상파 3개사와 연합뉴스TV·YTN 등 보도채널 2개사 등의 국민보고대회 생중계 시청률 총합이 12.9%였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소통이 아닌 '쇼(Show)통'을 하는 것은 참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구호에만 그치지 않고 내실을 기하는 그런 정부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같은 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사람은 술에 취할 수 있지만 청와대는 지지율에 취해 있는 것 같다. 잔치와 축제에 빠져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독설을 내놨다. 특히 "'도덕적 타락자' 탁현민 행정관이 기획했다는 대국민보고대회는 그들만의 잔치고 그들만의 예능쇼나 다름없는 천박한 오락 프로그램을 짜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도 질타했다. 정 원내대표는 또 "누가 질문하고 누가 답변할 것인지 각본이 짜인 소통 아닌 '쇼통'에서 북한 핵문제나 살충제 (검출) 달걀 문제에 대해서 언급조차 없는 것이 대체 무슨 보고대회라고 얘기할 수 있느냐"라면서 "이 각본쇼를 보기 위해서 주말에 저녁뉴스를 다 버리고 가족들이 앉아 있는 이 시간에 생중계를 해야 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갑갑함을 금치 못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정권홍보용 정치쇼, 야당에도 반론권 보장하라"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어제 국민보고대회는 정권 홍보용 정치쇼에 지나지 않았다"고 혹평했다. 무엇보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 3일 만에 왜 또 다시 정권홍보용 정치쇼가 국민의 TV 시청권을 무시하고 버젓이 생중계되는지 언론인들에게도 묻고 싶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즉, 언론이 '쇼'를 위한 정권의 요청에 순응했다는 비난이었다. 그는 이날 국회서 연 비상대책회의에서 "청와대 국민보고대회에는 국민도 없고, 현안도 없었다"면서 "길거리에 나앉은 군산조선소 근로자의 눈물, 사드 보복으로 생사기로에 선 기업인의 피눈물, 살충제 검출 달걀 불안에 떠는 국민의 아우성, K-9 자주포 사고로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절규에 대한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어제 보고대회는 권력에 의해 완벽히 장악되고 길들여진 언론 자화상을 국민께 보여줬다. '권언유착'이 이 정도면 민주주의에 심각한 적신호가 켜진 것"이라며 "방송사에 야당의 반론권을 보장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청와대 쇼와 똑같은 시간대에 똑같은 분량으로 방송을 생중계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용호 정책위의장 역시 "국민과 직접 소통하려는 노력은 긍정적이지만 어제 국민보고대회는 최근 나라 안팎과 동떨어진 내용에 재미도 없고 홍보만 있는 정치쇼를 본 것 같아 씁쓸하다"고 평했다. 특히 "대통령은 국민은 '직접민주주의'를 원한다고 했는데 이는 헌법과 의회를 무시하는 오만하고 위험한 발상"이라며 "탁현민 연출 정치쇼로 국민을 직접 통치하겠다는 것인지 우려스럽다. 국민들이 언제나 문 대통령 곁에 남아있으리라는 것은 착각"이라고 비난했다.
[바른정당] "방송독점, 자화자찬의 디너쇼였다"
▲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가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주호영 원내대표. ⓒ 남소연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도 "국민들은 인디밴드가 열창하고 예능토크쇼를 하고 영부인이 깜짝 등장하는 것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안보문제, 원전문제, 살충제 (검출) 달걀에 대해 한 마디 언급도 없었고, 오늘 영결식이 열리는 순국 장병에 대한 언급도 없어 이건 아니다 싶었다"면서 "기대한 것은 그 무엇도 얻지 못한 허탈한 대국민 보고대회였다"고 평가했다.
주호영 원내대표 역시 "문 대통령의 100일 대국민 보고대회는 한 마디로 방송독점, 자화자찬의 '디너쇼'였다"라면서 "국민인수위원 250명만 모아서 짜고 치는 고스톱 형식의 대회를 열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문 대통령의 국민보고대회를 위해) 황금시간대에 지상파를 동원했어야 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보고대회 내용 역시) 시험으로 말하자면 전공 필수과목은 제출하지 않고 잘 본 선택과목만 제출하고 평가해 달라는 것이었다. 일방적인 이야기, 자랑만 하는 보고대회를 하지 말고 아프게 비판하는 것을 듣는 대국민 소통대회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판매 금지 DDT, 어떻게 친환경 달걀에서 발견됐을까 821한겨레
농식품부, 경북 지역 친환경 농장 두곳에서 검출 확인
한살림 “토양에 잔류한 DDT가 들어간 것으로 추정”
당국 “토양 검출 확인되면 검사에 DDT 추가 검토”
농림축산식품부 조사에서 디클로로디페닐트라클로로에탄(DDT)가 나온 경북 영천시 한 산란계 농장의 모습. (영천=연합뉴스)
다섯살 자녀를 둔 ㄱ씨는 최근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의 달걀에서 38년 전 국내 사용이 금지된 농약 ‘디클로로디페닐트라클로로에탄(DDT)’이 검출됐다는 공지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평소 자녀의 건강을 위해서 비싸지만 친환경 달걀만을 구입해 왔던 ㄱ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려 “아이에게 더 비싼 돈을 주고 농약이 든 계란을 먹인 셈이 됐다”고 토로했다. 해당 달걀은 한살림이 판매하는 유정란 중에서도 가장 비싼 가격인 10알에 7500원에 판매돼 왔다.
맹독성 살충제이자 제초제인 디디티가 달걀에서 발견돼 소비자들이 충격에 빠졌지만 어떤 경로로 ‘달걀’이 오염됐는지는 지금껏 누구도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디디티는 1970년대까지 농업분야에 널리 사용됐고 인체에 흡수되면 암 등을 유발할 수 있는 맹독성 물질로 확인되면서 1979년부터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38년 동안이나 제조와 판매가 금지된 농약이 친환경 달걀에서 검출된 경위에 궁금증이 이는 까닭이다.
앞서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5∼17일 전국 683곳 친환경 인증 농장을 대상으로 320종에 대한 잔류농약 검사를 시행한 결과 경북 지역 친환경 농장 두곳(경북 영천·경산)에서 디디티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친환경 인증을 받으려면 320종에 대한 잔류농약 검사에서 미량이라도 검출되면 안된다. 이에 농식품부는 영천과 경산 농장의 달걀에서 각각 0.047㎎/㎏, 0.028㎎/㎏의 디디티가 검출됐지만 잔류 허용 기준치 (0.1㎎/㎏)이하여서 친환경 인증만 취소하고 일반 계란으로 유통시키도록 조처했다.
그러나 달걀에서 디디티가 발견된 이유에 대해서는 농장주, 전문가, 정부 어느 쪽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유력한 설명은 농장을 짓기 전 뿌렸던 디디티가 토양 속에 잔류해 있다가 닭이나 달걀을 오염시켰으리란 추정이다. 디디티는 반감기가 최대 24년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살림 홈페이지에 게시된 디클로로디페닐트라클로로에탄(DDT) 성분 검출 공지글.
디디티가 검출된 경북 영천의 한 산란계 농장주 ㄴ씨는 한 언론과의 전화 통화에서 “디디티 농약을 구할 수도 없고 친 적도 없다”며 “친환경 농장을 만드는 데 모든 혼을 들였는데 이렇게 나와 황당하다”고 말했다. 이 달걀을 판매하고 있는 한살림 관계자도 “디디티를 사용하지 않았고 오염원도 없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친환경 농장이라 케이지가 아닌 운동장에서 풀어놓고 닭을 기르는데 이 과정에서 닭이 흙을 쪼아 먹다가 토양에 잔류한 디디티가 들어간 것으로 보고 역학조사를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디디티를 왜 검사하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친환경 검사는 규정에 따라 충실하게 해왔지만 (정부)관리지침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며 “닭을 키우는 농장의 경우 처음 농장 설립때 토양 잔류 농약에 대한 검사를 요구하지 않다보니 미처 이 부분까지 조사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디디티는 만들지도 않을 뿐더러 사용이 금지돼 있기 때문에 검사대상에서 아예 빠졌던 것”이라며 “농식품부와 토양조사 결과를 분석해 토양에서 검출될 개연성이 있다면 일반 계란의 잔류농약 검사 항목에 디디티를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등돌린 소비자…계란發 먹거리 불신시대821 코리아헤럴드
-햄버거병ㆍ질소과자ㆍ살충제 계란까지
-‘믿고 먹을게 없다’ 먹거리 총체적 불신
[‘먹거리 포비아’ 확산] 믿었던 ‘친환경 인증의 배신’…그 배후엔 ‘농피아’ 검은 유착
살충제계란 발견 친환경농장
농관원 퇴직자 상당수 재취업
적폐가 부른 ‘人災’ 청산 시급
국민들의 먹거리 공포를 확산시킨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가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친환경인증 농가에서 살충제 성분이 대거 검출됐기 때문이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찍힌 소비자들은 이런 행태가 과연 계란에서만 벌어졌겠냐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무엇보다 친환경인증을 총괄하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 출신들이 민간기업에 재취업해 인증사업을 수행하면서 친환경인증 자체가 부실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국민적 분노는 더 커지고 있다. 친환경인증의 총체적 부실엔 이른바 ‘농피아(농림축산식품부 공무원+마피아)’라는 기득권 세력의 검은 거래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먹거리 불안을 해소하려면 이러한 적폐의 실체를 명확히 규명하고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전국 1239개 산란계 농장을 대상으로 전수조사한 결과 49곳에서 시중에 유통할 수 없는 ‘살충제 계란’이 검출됐고, 이 가운데 63%인 31개 농장은 친환경인증을 받은 농가였다. 일반 농가 18곳보다 친환경 농가에서 ‘부적합 판정’ 계란이 많이 나온 것이다. 조사대상 친환경인증 농장 683개 가운데 절반이 넘는 55%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돼 친환경인증의 신뢰도도 무너졌다.
경북지역 친환경농장 2곳에서는 1979년부터 국내 시판이 금지된 ‘DDT’가 검출된 것으로 추가 확인됐다. 과거 살충제로 많이 사용되던 DDT(디클로로디페닐트라클로로에탄)는 인체에 흡수될 경우 암과 경련 등 이상증세를 일으키는 맹독성 물질이다. 분해가 잘되지 않고 체내 흡수 후 잔존량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가 최대 24년에 달해 세계적으로도 사용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정한 계란 잔류농약 검사 항목에는 피프로닐 등 27종만 포함돼 있고, DDT는 빠져 있었다. 식약처는 DDT가 워낙 오래 전에 사용 금지된 성분이어서 검사 항목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지만, 허술한 화학물질 관리실태를 보여준 셈이다.
이처럼 친환경농장의 계란에서 농약 성분이 대거 검출되면서 친환경 인증제도 자체가 무색해졌다는 평가다. 친환경 농산물 인증제도는 1999년 처음 도입돼 2002년부터 민간기업이 인증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64개 민간업체가 실무를 담당하고 농관원은 사후관리만 한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64개 민간 인증기업 가운데 13%의 기업에 농관원 퇴직자들이 재취업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에 ‘살충제 계란’이 발견된 친환경농장 중 상당수가 농관원 출신들이 퇴직 후 재취업한 민간업체로부터 인증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농관원 출신들이 포진한 민간 인증업체와 농관원 등 정부기관의 ‘검은 유착’이 이번 사태를 키웠던 셈이다.
정부는 64개 민간 인증기관을 통폐합하는 방안과 농가가 인증기관을 임의로 선정할 수 없게 하는 등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7~8월 생산 ‘살충제 농가’ 달걀 3700만개 ‘행방불명’821한겨레
부적합’ 49곳서 4200만개 생산…압류·폐기 10%뿐
보완검사때 적발된 3곳 달걀은 검사 기간에도 유통
‘살충제 달걀’ 35만 개 빵·훈제달걀로 일부 판매
정부가 살충제 성분이 검출돼 부적합 판정을 받은 농가에서 최근 생산된 달걀의 10%가량만 추적해 압류하거나 폐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다 적합 판정을 받았던 농가 가운데 3곳에서 추가로 살충제 성분이 나온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이들 농가가 생산해 시중으로 유통된 살충제 달걀에 대한 추적조사가 추가로 이루어져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전국 1239개 산란계 농장에 대한 전수검사 및 보완검사 결과, 최종적으로 52곳 농장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21일 밝혔다. 앞서 15~18일 전수검사 결과 나온 49곳 농가에다 보완검사를 통해 3곳 농가(전북 김제시 ‘황현우 농장’, 청양군 목면 ‘시간과 자연농원’, 아산시 둔포면 ‘초원농장’)에서 추가로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 성분인 플루페녹수론이 발견된 것이다.
정부의 전수검사가 마무리됐지만 총 52곳의 살충제 검출 농가에서 나온 달걀이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에 대한 파악은 완전하지 않은 상태다. 더군다나 정부가 전수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출하정지 조처를 내리는 기준도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식약처는 “앞서 판정받은 부적합 농가 49곳에서 7월1일~8월15일에 생산된 달걀 4210만6473개 가운데 직접 압류(혹은 폐기)한 것이 451만1929개”라고 이날 밝혔다. 부적합 농가에서 나온 달걀의 유통 단계를 추적해 상당수를 압류·폐기했다고 했지만, 이는 전체 살충제 달걀의 10.7%에 그치는 물량인 셈이다. 나머지 90%에 가까운 달걀의 행방에 대해, 윤형주 식약처 식품안전정책국장은 “지자체나 업체가 폐기·반품한 물량이 일부 포함돼 있고 소비자가 드셨거나 버리셨을 텐데 우리가 단정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렵다”고 답변했다.
추적조사 과정에서 이미 소비자에게 넘어간 것으로 확인된 물량들도 있다. 부산 유일식품은 부적합 농가에서 달걀 5400개를 구입해 ‘모닝빵’ 등 32개 제품을 제조했는데, 이 가운데 뷔페식당에 731.5㎏이 판매됐고, 충북 행복담기주식회사가 만든 ‘동의훈제란’ 26만7800개도 인터넷 등으로 팔린 상태다. 경기 주식회사 아침도 부적합 농가 달걀로 ‘아침란’ 2만8030개를 만들어 인터넷을 통해 전량 팔았다.
부실검사라는 지적에 따라 19~20일 보완검사를 통해 추가로 발견된 살충제 농가의 달걀은 이제부터 추적조사가 시작돼야 한다. 농식품부는 보완검사를 결정하고서도 “농가 반발과 달걀 수급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보완검사 대상 농가에 대한 출하중지 조처를 내리지 않아서 반발을 산 바 있다. 결과적으로 부적합 판정을 받은 농가 3곳의 달걀은 검사가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정상적으로 유통이 되고 있었던 셈이다.
실제로 농식품부의 출하정지 잣대는 그동안에도 오락가락 행보로 일관해, 뒷말이 무성했다. 농약 성분에 따라, 비펜트린은 허용기준치 이하일 경우에 정상 유통을 허용했으면서 피프로닐의 경우 기준치 이하일 경우에도 출하정지 조처를 내리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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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껍데기에 표시된 난각코드 혼선도 계속되고 있다. 이날도 정부는 종전에 밝힌 부적합 농가의 난각코드 7개가 잘못 발표됐다며, 이에 대한 오류를 정정했다. 식약처 쪽은 “농식품부의 농가점검 때 난각코드를 수기로 기록하면서 오류가 발생한 부분이 있었다”며 “난각코드를 정부가 관리하고 있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밭에서 잃어버린 약혼반지, 13년만에 당근이 찾아 줘
캐나다에서 13년 전 밭일을 하다 잃어버린 다이아몬드 약혼반지를 당근이 찾아 줘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캐나다 서부 앨버타주에 사는 올해 84세의 메리 그램스 할머니는 13년 전 가족이 경영하는 농장에서 일하다 다이아몬드 약혼반지를 잃어버렸다. 반지는 66년 전 남편에게서 받은 약혼반지로, 메리 할머니는 잃어버린 반지를 찾기 위해 농장을 구석구석 뒤졌으나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13년이 지나 이달 며느리가 저녁에 먹을 당근을 밭에서 뽑았는데 가운데가 이상하게 잘록한 당근이 나왔다. 흙을 털어내고 보니 다이아몬드 반지가 당근 가운데 끼어 있었다. 당근 뿌리가 반지 사이를 통과해 자란 것으로 보인다.
메리 할머니는 반지를 잃어버린 사실을 남편에게 고백하지 못해 다른 반지를 끼고 살았는데 그 남편도 5년 전에 사망했다고 한다.
메리 할머니는 현지 언론에 반지가 이런 모양으로 발견된 것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으며 언론은 "당근이 반지를 찾아줬다"고 보도하는 등 현지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고 NHK가 전했다. 다시 찾은 반지는 66년 전 남편이 끼워줬을 때와 마찬가지로 메리 할머니의 약지 손가락에 딱 맞았다고 한다.
"5·18은 北 소행, 전라도는 종북세력" 광장에서 펼쳐지는 역사왜곡 821 노컷
지난 11일 서울역 광장.
"5.18은 북한군이 침투해 저지른 폭동이다!"
"청주 유골 400여구는 광주에 침투해 폭동을 일으켰다가 사살된 북한군의 유해다!"
"전라도는 대한민국을 적으로 생각한다!"
확성기를 통해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반복해 들려왔다. '국혼운동본부'라는 단체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린다며 천막을 치고 장기 집회를 벌이고 있었다. 이 단체는 '5·18은 광주시민이 아닌 북한군 600여명이 침투해 일으킨 폭동'이며 몇년 전 청주 공동묘지터에서 발견된 유골 400여구도 '5·18 당시 침투했던 북한군이 사살당한 동료를 가매장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어 '광주시민들과 전남도민들은 이런 사실을 모른 채 북한에 끌려 다니는 빨갱이들'이며 '여전히 대한민국을 적으로 생각하는 세력'이라는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 단체는 "5·18을 진압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반란수괴가 아닌 애국자"이며 "5·18의 진상을 새롭게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6월부터 서울과 대전, 부산 등을 돌며 전국적인 홍보와 서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5·18 북한군 개입설'은 근거가 전혀 없다. 5·18 당시 시민군과 최근 북한 수뇌부의 사진을 비교해 얼굴 모습이 비슷하다거나 시민군의 총메는 방식이 북한군과 똑같다며 '북한군 개입'을 주장하고 있다.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비슷하다는 주장 이외에 합리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근거를 따질 필요도 없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등 보수정권도 '5·18 북한군 개입설'을 부인해왔다. 지난 2013년 6월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 과정에서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는 "5·18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5·18을 무력진압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조차 지난해 한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 "처음 듣는 얘기"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5·18 왜곡현상이 우려스러운 점은 젊은 층을 대상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혼운동본부는 '5·18 유공자 가산점 제도가 다른 국가유공자와 달리 특혜를 받으며 젊은이들의 공정한 기회를 빼앗아 가고 있다'며 고시생들이 몰려 있는 서울 노량진 등에서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5·18을 청년 취업난과 연결시키며 '5·18 북한군 개입설'을 확대재생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실제로 이 단체의 움직임은 보수 정치권의 반향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지난 5월 자유한국당 정준길 대변인은 5·18 진상규명을 요구하면서도 '북한군 개입의혹 등도 함께 조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최근 발간된 '회고록'에서는 '금시초문'이라던 기존 입장을 바꿔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역사왜곡에 가까운 5·18 폄하 현상에 대해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부쩍 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현상이 노골화된데에는 북한군 개입설을 초기부터 주장했던 지만원씨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판결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1년 수원지법 안양지원은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해 5·18 유공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지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고 2심과 대법원도 마찬가지로 무죄를 판결했다. 법원은 '지씨가 5·18을 거론했을 뿐 특정인을 거명하지 않아 명예훼손의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점을 내세워 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더 나아가 '5·18에 대한 비난보다는 지씨의 시각에서 재평가하려 했고 이로 인해 5·18에 대한 확립된 위상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씨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국혼운동본부 등 보수단체들이 '5·18 북한군 개입설'은 물론 지역감정을 노골적으로 유발하는 '전라도 배제론'을 더욱 강하게 주장할 수 있는 배경에는 지씨에 대한 무죄 판결이 한몫을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5·18 왜곡현상이 위험수위를 넘어서자 국회에서는 지난해 5·18 역사 왜곡행위를 처벌하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이 잇따라 제출됐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 '명예훼손 등 현재 형법으로도 처벌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 참석했던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법적·사회적으로 (5·18의) 역사적 사실이 공고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법으로라도 이것을 공고화시키려는 의도가 보여 찬성할 수 없다"며 마치 5·18의 성격을 놓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치즘의 광폭함을 경험했던 독일과 프랑스는 역사왜곡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을 두고 있다. 독일의 경우 나치당의 학살행위를 찬양하거나 부인,경시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에 처하도록 형법에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도 2차 세계대전당시 저질러진 반인도범죄의 존재를 의문시하는 사람에게 형법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5.18 기념재단 김양래 상임이사는 "5.18역사왜곡이 일어나는 근본원인은 정부의 진상조사가 미흡했기 때문"이라며 "지금이라도 5.18 진상규명 작업이 이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5.18을 겪어보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왜곡된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우려가 있다"며 "5.18 왜곡에 대해 재단도 법적대응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삼성그룹 2인자들의 오욕의 역사와 비참한 최후 821민중
아무리 사정이 다급하다 해도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이 최근 앞세운 ‘이재용 바보론, 최지성 1인자론’은 한국 기업 역사에 희대의 코미디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얼마나 절박하면 이따위 헛소리를 재판정에서 늘어놓는지 애잔한 마음까지 들 정도다.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이 사실상 그룹의 1인자였고, 이재용은 얼굴마담일 뿐이었다는 ‘최지성 1인자론’은 사실 반론조차 필요 없는 헛소리다. 제왕적 지배구조 시스템을 유지하는 한국 재벌들에게 바지사장은 1인자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삼성은 다른 그 어떤 그룹에 비해 2인자의 권력이 강했던 그룹이긴 하다. 하지만 그 삼성에서조차 2인자들의 최후는 늘 비참했다. 그리고 삼성의 역사를 살펴보면 권력의 정점에 올랐던 다른 2인자들에 비해 최지성은 매우 빈약한 권력을 누린 2인자였다. 그런 최지성이 난데없이 “내가 1인자다”라고 주장하다니, 웃기려고 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이런 농담은 이제 좀 접어뒀으면 한다.
막강했던 2인자 소병해, 이건희에 의해 축출 당하다
삼성그룹에서 2인자라고 불리는 자들은 주로 비서실장, 구조조정본부장, 전략기획실장, 미래전략실장 등의 호칭으로 불렸다. 이건희 회장이 회장에 오른 시점은 1987년인데 이때만 해도 삼성에는 구조본이니 미전실이니 하는 총괄 조직이 없었다. 당시에는 회장 비서실이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다.
삼성의 역사에서 비서실장으로 막강한 권력을 처음 휘두른 이는 ‘이병철의 분신’이라 불렸던 소병해 전 비서실장이었다. 소병해는 삼성 역사에 기록된 여러 2인자 중 매우 독특한 인물이었다. 우선 그는 정주영의 최측근이었던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과 함께 가장 한국 재벌 역사에서 가장 강력했던 2인자 권력을 구축했다. 또 한 가지, 소병해는 이병철 시대에 막강한 권한을 자랑했지만, 이건희 시대에도 3년이나 비서실장 자리를 지켰다. 2대에 걸쳐 2인자 자리를 누린 몇 안 되는 인물이라는 이야기다.
1942년생인 소병해는 1967년 25세의 젊은 나이에 공채 8기로 삼성에 입사했다. 그리고 1974년 서른둘의 젊은 나이에 회장 비서실에서 일을 시작했다. 일본말이어서 쓰기가 적절치는 않지만 업계에서 보통 이런 인물을 ‘가방모찌’라고 부른다. 어떤 사람의 가방을 메고 따라다니며 시중을 드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일본말이다.
호암 100주년 기념 영상에 등장한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민중의소리
그리고 이 가방모찌들은 오너의 온갖 사생활까지도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오너의 사생활을 아는 것은 곧 권력이다. 그래서 가방모찌 출신들은 오너로부터 오랜 사랑을 받는다. 비서실에 자리를 잡은 소병해는 1978년 38살의 젊은 나이에 이병철의 비서실장에 오른다. 38세에 그룹 2인자라니, 이병철이 소병해를 얼마나 아꼈는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당시 회장 비서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간단한 의전 조직이 아니었다. 이때 비서실에는 팀만 무려 15개가 존재했고, 직원 숫자도 250명이었다. 비서실이 그룹을 총괄하는 지금의 미래전략실 같은 역할을 한 셈이다. 소병해는 이병철이 세상을 떠난 1987년에도 여전히 비서실장 자리를 지켰다. 그의 나이 마흔 다섯 때 일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삼성의 새 리더는 삼남 이건희로 결정됐다. 이건희는 소병해와 동갑이었다.
이건희가 소병해를 3년 동안 비서실장으로 남겨둔 이유는 두 사람 사이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소병해는 ‘포스트 이병철 시대’를 대비해 동갑내기 이건희를 여러 차례 견제했고, 이건희는 이를 매우 불편하게 생각했다. 심지어 소병해는 이병철 살아생전 자기 조직을 가동해 이건희의 뒤를 캐고 다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새로운 총수가 등극했는데, 전시대의 2인자가 공존하는 현실. 삼성그룹에서 1인자와 2인자 사이에 가장 팽팽했던 긴장감이 감돌았던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짐작이지만 이건희가 집권 즉시 소병해를 내치지 못했던 이유는, 소병해가 그룹의 약점을 너무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건희는 시간을 두고 소병해를 내칠 기회를 찾았다. 이건희는 3년 탈상을 할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면서 소병해의 약점을 조사했다. 1990년 이건희는 기습적으로 소병해를 삼성생명 부회장으로 전보시켰다. 외견상 승진이었지만, 사실상 소병해를 그룹 핵심에서 몰아낸 축출이었다.
전보 사실을 발표하기 직전 이건희의 지시를 받은 삼성 비서실 직원들은 일제히 소병해 집으로 몰려가 소병해가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서류와 자료들을 모조리 압수했다. 소병해가 회사 기밀서류를 무기로 삼아 폭로에 나설 것을 대비한 이건희의 ‘꼼꼼한’ 조치였다. 12년 간 2인자의 자리를 지켰던 막강했던 소병해의 시대도 이렇게 허망하게 저물었다.
티스푼 사건의 주인공 이수빈
소병해 다음으로 2인자라 불릴만한 권한을 가졌던 사람은 이수빈 현 삼성생명 회장이다. 이수빈 회장은 지금 삼성그룹 내에서 이건희와 함께 회장 직함을 쓰는 단 두 사람 중 한 명이다. 이건희가 비자금 사건으로 현직에서 물러났을 때 그룹 회장의 역할을 대신한 경험도 있다.
이수빈은 소병해가 축출된 이후 1991년 이건희 시대 제 3대 비서실장 자리에 올랐다. 특이한 것은 그가 이건희의 고교(서울사대부고) 4년 선배였다는 점이다. 세간에서는 이런 인연으로 이수빈이 막강한 권한을 누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수빈 시대는 의외의 사건으로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1993년 벌어진 이른바 ‘티스푼 사건’이 그것이다. 3년 만에 소병해를 몰아내는 데 성공한 이건희는 1993년 야심차게 자신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했다. 삼성이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라고 부르는 이건희의 개혁 선언이 그것이었다.
이건희는 아버지와 자신의 차별점을 강조하기 위해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200여명의 삼성 고위임원을 호출했다. 그리고 여기서 그 유명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라는 말을 남겼다. 이건희가 강조한 대목은 “과거 양(量) 위주의 경영에서 탈피해서 질(質)을 중시하는 경영으로 탈바꿈하자”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평범한 경영혁신 선언 같지만, 사실 이는 “나는 아버지와 다른 새로운 군주다”를 선포하는 일종의 등극식이었다. 창업자 이병철의 카리스마가 수 십 년 동안 지배했던 삼성에서, 아들은 집권 이후 처음으로 “아버지가 중시한 양 위주의 경영을 버리고, 내 시대에는 질 위주로 기업을 바꾸겠다”고 외쳤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이수빈 비서실장이 눈치 없이 회장의 선언에 토를 달았다. “경영에서 질도 중요하지만 양적 성장도 어느 정도 이뤄져야 합니다”고 발언한 것이다. 물론 회의에서 이 정도 반론도 제기하지 못하면 그건 회의도 아니다. 문제는 한국 재벌들이 이런 건강한 충언을 기분 좋게 들을 정도로 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그 자리가 마침 이건희가 야심차게 준비한 ‘아버지와의 차별성을 강조한 등극식’이었다는 점에 있었다.
분노한 이건희는 앞에 놓여있던 티스푼을 강속구로 집어던졌다. 당시 회의 녹음 파일이 존재했는데, 나중에 그 파일을 들은 사람들은 티스푼이 부딪치는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이건희 회장이 찻잔을 내던진 줄 알았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2인자 따위가 자기의 야심찬 선언에 토를 다는 모습이 이건희의 격노를 불러온 것이다. 결국 이수빈은 얼마 안 있어 실각했다. 다만 이건희의 고교 선배였던 덕인지 이수빈은 오랫동안 삼성생명에서 전문경영인으로 남을 수 있었다. 이수빈은 실질적 경영에서 손을 뗀지 오래지만 지금도 여전히 삼성생명 회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재무통 이학수의 시대, 화무십일홍을 입증하다
이수빈의 공백을 메운 새로운 실세는 삼성그룹 역사상 소병해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누렸던 이학수 전 구조조정본부장이었다. 이학수는 이수빈 퇴임 이후 현명관 비서실장 등의 중간다리를 거쳐 1996년 비서실장 자리에 오른다. 소병해의 별명이 ‘이병철의 분신’이었다면 이학수의 별명은 ‘이건희의 오른팔’이었다. 삼성에서만 37년을 재직했고 1996년부터 2010년까지 장장 14년 동안 비서실장, 구조조정본부장, 전략기획실장 등을 거친 인물이다.
이학수에 대한 여러 평가가 있지만, 그가 그렇게 오래 삼성에서 2인자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가 재무 전문가라는 사실이었다. 이학수의 비중이 그룹에서 갑자기 커진 때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였다. 이전까지 비서실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던 무소불위의 조직이 구조조정본부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도 1998년 4월의 일이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상당한 강도로 재벌개혁을 추진했다. 이건희는 아마 이때 깨달았을 것이다. 과거에는 주먹구구로 회계장부를 조작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앞으로 그런 방식으로 회삿돈을 떼먹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외국 자본이 대거 유입되면서 삼성에게는 과거처럼 주먹구구식 탈세가 아니라 체계적으로 편법을 동원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이학수는 이런 면에서 완벽한 스펙을 갖고 있었다. 그는 원래부터 제일모직 관리과 출신이었고 회장 비서실에서도 줄곧 재무담당 임원으로 일했다. 회사에서 빠져나가는 검은 돈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정확히 알고 있었던 사람도 이학수였다. 이학수가 2인자로 등극한 이후 가장 먼저 추진한 일이 이재용에 대한 다양한 편법, 불법 증여 작업이었다. 1996년 이재용에게 처음 60억 원이 증여됐고, 이재용은 이학수의 전문적 ‘탈세 지식’에 도움을 받아 60억 원을 8조 원으로 불려 나갔다.
우리가 삼성 X파일 사건을 기억할 때 중앙일보 전 회장 홍석현의 이름만 떠 올릴 때가 적지 않다. 이회창 캠프로 돈을 전달하고, 검사들에게 떡값을 준 인물이 바로 홍석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기부의 도청파일을 잘 들어보면 홍석현이 삼성의 검은 돈에 대해 상의를 하는 상대 인물이 등장한다. 그가 바로 이학수다. 이학수는 이건희가 처남만큼 믿고 검은 돈 배달을 맡길 정도로 삼성의 검은 돈에 깊숙이 개입했다.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사장과 이학수 삼성그룹 비서실장 ⓒmbc 화면캡쳐
일각에서는 이학수가 14년 동안 그룹의 2인자로 자리매김한 이유를 여기서 찾기도 한다. 소병해가 이병철의 사생활을 낱낱이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면, 이학수는 이건희의 검은 돈 문제에 대해 샅샅이 알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러다가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이 터졌다. 이학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삼성전자 고문으로 물러났는데, 그의 파워는 여전히 강했다. 문제는 이학수 역시 소병해와 마찬가지로 2인자 주제에(!) 자기의 세력을 구축하려 했다는 점이다. 이건희가 공식적으로 물러나고, 이재용의 시대가 서서히 열릴 무렵 이학수는 자기 측근을 사장단에 대거 등용하며 힘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이건희가 2선으로 물러났을 때 이학수의 세 불리기는 도드라졌다. ‘이학수 사단’이 구축됐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이건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2011년 이학수를 내동댕이쳤다. 이학수만 내친 게 아니라 이른바 이학수 사단도 피의 숙청을 당했다.
사장단 6, 7명이 해임됐고 그들과 가까웠던 임원들도 줄줄이 목이 달아났다. 보통 삼성 고위임원들은 퇴직 이후 2~3년 동안 급여와 사무실, 차량을 제공받는 이른바 ‘전관예우’가 있었는데, 이학수 사단은 이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 숙청이 너무 광범위하고 신속해서 삼성에서는 이 사건을 ‘신묘사화(2011년은 신묘년)’라고 부른다. 이학수의 시대는 이렇게 이건희의 결심 한 번으로 처참하게 저물었다.
1인자는커녕 2인자로도 많이 부족한 최지성
삼성 역사에 강력한 이름을 남긴 이들 세 명 2인자들에게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총수와 남다른 사적(私的)인 인연이 있다는 점이다. 일명 ‘가방모찌’였던 소병해는 이병철의 사생활을 잘 알고 있었다. 재무 전문가 이학수는 이건희와 이재용의 검은 돈 내역을 속속들이 알았다. 티스푼 사건으로 물러났지만 이수빈은 최소한 이건희의 고등학교 선배였다. 게다가 소병해, 이학수는 자기만의 조직도 거느렸다. 이런 막강한 2인자들도 결국 총수의 결심에 삽시간에 축출 당한다. 그런데 최지성은 도대체 무엇을 갖고 있는가? 최지성은 비서실 출신도 아니고, 재무통도 아니다. 그는 삼성전자에서 영업으로 잔뼈가 굵은 영업통이다. 총수 가문과 가까이 있을 기회조차 없었다.
2012년 최지성이 미래전략실장으로 선임됐을 때 업계에서는 “무난한 사람을 뽑았다”는 평가가 주류였다. 여기서 ‘무난’하다는 것은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 권력이 넘어가는 시기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사람을 이건희가 2인자로 세웠다는 이야기다. 권력 이양기에 2인자가 소병해나 이학수처럼 막강한 것을 이건희가 피하고자 했다는 뜻이다.
그런 최지성이 이재용 살리겠다고 “이재용은 얼굴마담이고 사실 내가 삼성의 1인자요” 하고 나섰다. 이게 얼마나 웃긴 일인가? 소병해나 이학수가 저런 말을 했으면 그나마 덜 웃겼을 텐데, 역대 2인자 중에서도 별 볼일 없는 축으로 평가받던 최지성이 1인자를 자처하다니!
25일 이재용의 선고공판이 열린다. 이 재판에서 삼성이 벌이는 어처구니없는 대국민 사기극, 즉 “죄는 1인자 최지성에게 묻고 얼굴마담 이재용은 풀어 달라”는 전략이 먹히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한국사회가 그 정도 상식은 갖고 있어야 한다. 특검의 논고문을 한 번 더 인용한다. 부디 이번만큼은 재판부가 한국 사회에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시라!
핵폐기물 해법 없이 ‘덮어놓고’ 원전 확대 정책···후손들 안전까지 위협 824 경향
원자력발전소는 활활 타오르는 불을 향해 돌진하는 ‘불나방’으로도 비유된다. 위험천만한 핵폐기물을 안은 채 폭주기관차처럼 달려왔다. 에너지 빈국인 한국을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킨 밑거름이자 미래 먹거리 사업이라는 원자력계의 주장 앞에서 ‘안전’과 ‘지속가능성’이란 개념은 명함을 내밀 수 없었다. 그사이 ‘화장실 없는 아파트’는 미래를 갉아먹고 있었다. 브레이크 없는 원전 건설에 핵폐기물은 갈수록 늘어가고, 핵폐기물 처리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비용과 사고 위험 부담을 미래세대까지 안게 됐다는 것이다. 원전 확대 정책은 세대 간 형평성을 무너뜨려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40년간 국내에서 원전이 계속 건설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원전의 아킬레스건인 사용후핵연료, 즉 고준위 핵폐기물 관리에 대한 논의가 답보 상태였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논의를 계속 미뤄왔기에 원전 확대가 가능했다. 김수진 고려대 BK21플러스 연구교수는 “한국 원전은 경제적인 효과성에 따라 ‘계획의 관성’이 작용해 다른 의견이 낄 여지가 없이 계속해서 확대됐다”며 “우리도 세대 간 형평성의 차원에서 원전 건설이 과연 타당한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리 원전이 1977년 6월 가동을 시작한 이후 원전 확대 정책은 지속돼왔다. 하지만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이 만들어진 건 지난해였다. 지난해 5월 박근혜 정부가 행정예고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으로, 원전 36기를 수명연장 없이 가동할 때 총 5만112t의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한다는 전제로 수립됐다. 사용후핵연료 처리시설 부지를 2028년까지 선정해 2053년에 본격 가동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문재인 정부는 공론화를 통해 사용후핵연료 정책을 재검토키로 했다. 지난 정부 때 진행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과정이 민주적이지 않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특히 새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앞으로 가동되는 원전 수가 줄면 사용후핵연료 양이 감소하고 영구처분시설 규모도 조정될 수 있어 재공론화가 필요하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탈원전 정책을 이행하면 기존 계획보다 사용후핵연료 발생량이 30%(약 1만5000t) 줄어드는 것으로 집계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6월 영구정지된 고리 1호기를 포함, 지금까지 국내 원전에서 발생한 폐연료봉은 모두 44만96다발이다. 기존에 건설이 계획됐던 신규 원전까지 가동된다고 가정하면 원전 36기에서 30만6436다발의 폐연료봉이 더 생기게 된다. 이렇게 되면 총 74만6532다발에 달하는 폐연료봉을 처리해야 한다. 여기에 드는 비용은 64조1301억원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원전 감축 없이 기존 계획을 따른다면 한국에선 2089년에 마지막 원전이 정지된다. 올해 태어난 아이라면 72세가 되는 시점이다. 원전 해체나 핵폐기물 처리 비용이 애초 전망치보다 늘고 있는 게 세계적 추세인 점을 감안하면 미래세대에도 비용 부담이 전가될 수도 있다.
비용도 문제이지만, 안전 위협이 가장 큰 위험요소다. 국내 사용후핵연료 관리 기술력은 세계 수준에 못 미친다. 그간 핵폐기물 관리에 대한 논의나 관심이 적다 보니 기술 축적에 소홀했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 따르면 사용후핵연료를 운반·저장·처분하는 기술력은 미국과 스웨덴, 프랑스, 핀란드 등이 선두권에 있다. 이들 국가에 비하면 국내 기술력은 60~70% 수준에 그친다. 한국의 사용후핵연료 운반·저장 기술 수준은 세계 1위인 미국의 72.4%로, 기술 격차는 3.7년이다. 사용후핵연료 처분 기술은 1위인 스웨덴과 6년의 격차가 나고, 기술 수준은 62.6%에 그친다.
원전 기술 선진국이라고 하는 국가들조차 방사능이 안전한 상태가 되려면 최소 10만년이 걸리는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에 원전은 세대 간 형평성을 무너뜨리는 ‘괴물’이란 비판을 받는다. 특히 핵폐기물 처분 대책이 없으면 신규 원전 허가를 내주지 않는 정책을 일찌감치 폈던 독일과 달리, 한국은 지어놓고 보자는 식의 원전 확대 정책을 편 결과 현 세대는 물론 미래 세대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원전을 단계적으로 줄여도 사용후핵연료의 위험성은 그대로 떠안고 가야 하는데, 공론화가 제대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사용후핵연료 처리시설을 수용하겠다고 나설 지역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국민이 그 위험 부담을 고스란히 안게 됐지만 현재로선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삼성 뇌물’ 진상규명 ‘방해’한 고위공직자들 824 미디어오늘
[삼성 뇌물 재판 1심 돌아보기 ⑤] “모른다” “그런 일 없다” 일부 고위공무원 ‘뻣뻣’ 일관… 국정농단 사태에도 진실 외면
국정농단 주범들의 ‘모르쇠’만 문제였던 게 아니다. 수사기관의 칼 끝을 피해간 일부 고위공직자들은 진상규명 책임 앞에 불성실한 자세로 일관했다. 자신의 소관 업무에 대해서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며 증언을 회피하는 태도가 가장 두드러졌다. 삼성과의 유착 정황이 드러나도 불충분한 해명으로 넘겼다. 증거인멸 시도가 드러난 경우도 있었다.
원칙을 고민한 건 오히려 직원들이었다. 이들은 윗선의 부당한 지시에 업무일지 기록 등을 통해 증거를 남겼다. 적극적인 진술로 수사기관의 진상규명에 도움을 준 직원들도 있었다. 이들의 증언과 증거는 특검 수사에 요긴하게 활용됐다.
‘일지’ 증거남기는 사무관, ‘삼성-청와대’ 고리 끊는 부위원장?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대비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기관이다. 석동수 당시 공정위 기업집단과 사무관이 작성한 ‘업무일지’는 특검이 삼성 측 부정청탁 현안을 입증하는데 도움이 됐다. 2015년 10~12월 당시 삼성그룹의 현안은 ‘삼성물산 처분 주식수 최소화’였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새로운 순환출자고리가 만들어졌고 이에 그룹 계열사 중 일부가 고리를 끊기 위해 삼성물산 지분을 팔아야 했다. 기업 지배력이 걸린 문제였다.
이 과정에서 윗선의 부당 개입 의혹이 일었다. 공정위는 10월14일 기업집단과장·사무처장·부위원장·위원장의 결재를 거쳐 삼성SDI 및 삼성전기가 각각 500만 주 씩 처분해야 한다는 ‘1000만 주 처분안’을 결정했다. 이 결정은 김학현 당시 부위원장의 지시로 11월18일 돌연 재검토에 들어갔다. 김 전 부위원장이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사장을 만난 바로 다음 날이었다. 결국 공정위 전원회의에 부쳐진 이 건은 12월16일 ‘900만 주’ 처분으로 정리됐다. 부위원장은 12월22일 또다시 결정을 번복했다. 다음날 공정위는 ‘500만 주 처분안’을 최종 승인·결정했다. 500만 주 안은 삼성 측이 일관되게 요구했던 안이었다.
석 사무관은 11월 중순 부위원장의 결정 번복에 의아함을 품고 이 사안과 관련한 업무일지를 작성했다. 김정기 당시 기업집단과장의 지시였다. 누구를 언제 어디서 왜 만났는지, 위원장·부위원장 등의 지시 내용, 청와대 자료 송부 여부 등이 기록돼있다. 법정 증인으로 출석한 석 사무관과 김 과장은 당시 김학현 부위원장과 정재찬 위원장에게 논의 현황을 구두와 서면으로 지속적으로 보고했다고 밝혔다.
두 간부는 이들 보고 대부분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일관했다. 특히 10월14일 직접 보고서를 검토한 후 결재한 ‘1000만 주 처분’ 안에 대해, 정 전 위원장은 “저 업무를 한 번도 담당해본 적 없어 내용을 알고 사인한 게 아니”라고 증언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결재했는지도 기억이 잘 안난다” “당시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특검은 지난 6월2일 법정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이슈 및 입장 검토' 보고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 민원에 대한 공정위 회신안 △10월14일 결재안 요약 보고서 △11월4일자 삼성 순환출자 관련 대응방향 문건 △11월20일자 삼성 순환출자 관련 대응방향 문건 △11월26일 삼성 순환출자 관련 쟁점 검토 등 정 전 위원장이 보고받은 문건을 열거했다. 그는 모든 문건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결정은 왜 바뀌었을까. 김 전 부위원장은 결정에 오류가 있어 번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는 한편, 김 전 부위원장은 결정이 번복될 때마다 김종중 전 사장, 최상목 전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현 기획재정부 1차관)과 집중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 김 전 부위원장은 김종중 사장에게 공정위 논의 과정을 지속적으로 문자로 알려주기도 했다.
특검 측은 통화·문자내역을 제시하며 ‘현안 청탁을 받은 게 아니냐’고 추궁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통화 내용이 기억이 안난다” “(최 전 비서관과는) 순환출자고리 건의 통화는 아니었다” 등의 답을 내놨다. 500만 주 처분안이 최종 결정되기 하루 전인 12월22일 최 전 비서관과 아홉 차례 연락을 주고 받은 것에 대해서도 김 전 부위원장은 “의미가 없는 통화 아니었나 싶다. 무슨 통화를 그렇게 했는지…”라고 해명했다.
최 전 비서관은 “청와대가 어떤 지시나 역할을 하지 않았다”며 이에 부응했다. 최 전 비서관은 김 전 부위원장과 연락을 주고 받은 것에 대해 “경제민주화 이슈나 법안 관련 내용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삼성 현안을 챙긴 것도 “누구의 지시 때문이 아니라 언론 매체, 친구들 이야기 등을 통해 스스로 판단한 것”이라 강조했다.
김 전 부위원장의 모르쇠는 계속 됐다. 김 전 부위원장은 석 사무관 등에게 삼성 측 법률대리인과 논의해보라고 수회 지시한 바 있다. 그러나 김 전 부위원장은 법률대리인이 준 삼성 측 입장 문건 6건에 대해서는 “내용이 기억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모르쇠 진술은 청와대와 삼성 현안 간 연결 고리를 끊는 진술로 읽힐 수 있다. 특검은 위원장 결재까지 완료된 처분안이 이례적인 번복 과정을 거쳐 삼성 측 요구대로 결정된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입장이다. ‘500만 주 처분안’ 요구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최상목 전 비서관→김학현 전 부위원장’ 순으로 전달됐다는 취지다.
안 전 수석은 이 과정에서 최 전 비서관에게 ‘두 안이 모두 가능하면 500만 주가 좋겠다’고 말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특검에서 “최 전 비서관이 ‘안종범이 2안(500만 주)으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에 역정을 낸다. 형님 의견이 2안이니 위원장 2안 결정하도록 설득 부탁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안 전 수석, 최 전 비서관, 김 전 부위원장은 이후 법정에서 이 진술을 부분적으로 혹은 전적으로 부인했다.
떳떳하다는 공정위 간부, 휴대폰은 은폐했다
대화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다면 당사자가 진실을 고백하지 않는 한 진상은 규명하기 쉽지 않다. 말 맞추기 진술, 허위 진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 맞추기 진술은 이번 특검에서 확인된 사례다.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그룹 관계자 전원은 지난해 검찰 수사에서 ‘2015년 7월24일’ 두번째 대통령 독대 사실을 숨겼다. 그러다 특검 수사 개시 후 사실을 고백했다.
삼성그룹 현안과 관련된 고위공직자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삼성물산 주식 처분 건’의 경우에도 관련 고위공무원들은 “청와대의 개입이 없었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이례적인 결정 번복 △실무자 층의 반발 △삼성(김종중)-공정위(김학현)-청와대(최상목) 간 통화내역 △안종범 전 정책수석 ‘500만 주’ 발언 등을 고려하면 의혹 제기는 쉽게 거두기 힘들어 보인다.
청와대 개입을 철저히 부인하는 최상목 전 비서관은 이번 국정농단 사태에 깊숙이 연루된 인물이다. 최 전 비서관은 안종범 전 수석의 지시에 따라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논의를 주도했다. 그는 미르재단 설립을 위해 2015년 10월 네 차례 열린 청와대 회의를 주재했다. 경제수석실 행정관에게 삼성물산 합병 및 엘리엇 매니지먼트 분쟁 사태 등을 챙겨 보라고 지시했다. 각 행정관들로부터 대통령과 기업 총수 독대 시 작성된 ‘대통령 말씀자료’도 보고받았다.
김 전 부위원장은 증거인멸 의혹을 사기도 했다. 그는 특검 조사 초기에 “휴대폰을 버렸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마음을 바꾼 그는 이후 휴대폰을 특검에 제출하며 “로펌 변호사들이 핸드폰을 무조건 버리라 수차례 말했다”며 “몇 번을 망설이다 버리진 못하고 유심칩은 꺼내 버리고 나머지는 집에 가져와 아들의 차 뒷 트렁크에 넣어 두었다”고 진술서를 썼다.
“삼성만 청와대에 기업 현안 말 안해줬다”는 청와대 행정관
대통령에게 보고할 말씀자료를 “인터넷을 보고 작성했다”는 행정관도 있다. 윤인대 전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은 삼성그룹 관련 대통령 말씀자료와 관련해 진실 은폐 의혹을 사고 있다. 그는 말씀자료를 작성할 때 삼성그룹에 한해서만 ‘기업 건의사항 및 애로사항’을 직접 전해 듣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제출된 자료가 미비한 것을 두고 LG측엔 독촉을 했지만 삼성 측엔 하지 않았다. 두번째 독대가 있었던 2015년 7월, 윤 행정관은 말씀자료 작성에 참고한 삼성 자료에 대해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그때도 별다른 내용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며 “‘역시 삼성은 아무 내용이 없구나 내가 알아서 작성해야겠구나’ 그랬기 때문에 잘 기억이 안난다”고 말했다. 동시에 LG그룹 대관담당자에겐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며 독촉해 자료를 제출받았다.
윤 행정관은 삼성 측이 기업 건의사항을 전달해주지 않았다고 강조하며 “말씀자료 쓸 때 삼성이 제일 힘들었다” “다른 그룹은 현황이든 내용을 담아 오는데 삼성은 신경 안쓰는 거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 행정관의 진술은 동일한 업무를 한 다른 행정관의 진술과 배치된다. SK 등 기업 말씀자료를 작성한 방기선 행정관은 각 기업 대관 담당 임원이 보내준 현황 자료를 확인해서 말씀자료를 작성한다고 증언한 바 있다. 방 행정관은 ‘삼성그룹 관련 말씀자료 때도 대관담당 임원에게 현황자료 보내달래서 내용을 채웠다’고 법정에서 확인했다.
윤 행정관은 ‘메르스 사태’,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삼성물산 합병’ 등 말씀자료에 나온 삼성 현안의 경우 본인이 인터넷과 언론 등에서 보고 적은 내용이라 밝혔다. 아울러 그는 삼성 측에서 받은 자료가 없다고 강조했다. 윤 행정관은 ‘대통령이 누구에게 확인했냐고 하면 뭐라고 대답할 것이냐’는 특검 측 질문에 “사람이니까 실수를 한다”며 “그렇게 물어보면 인터넷보고 썼다고 하고, 뭐라고 하면 죄송하다고 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경향과 조선, 한명숙 총리 판결 ‘사법 적폐’라는 여당 강력 비판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3일 만기 출소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한 전 총리의 옥살이에 대해 검찰 수사와 재판 결과를 ‘사법 적폐’로 규정했다. 이에 경향신문과 조선일보 등이 민주당을 비판하는 사설을 내놓았다.
이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기소도 잘못됐고, 재판도 잘못됐다”고 말했다. 김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억울한 옥살이에서도 오로지 정권교체만을 염원한 한 전 총리님, 정말 고생 많으셨다”며 “향후 사법 정의가 바로 설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나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침신문은 더불어민주당의 지도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특히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보수신문은 물론 진보적 성향의 경향신문도 민주당을 비판했다. 다만 한겨레는 관련 기사에서 사안을 ‘공방’으로 다루고 사설이나 칼럼 등에서 의견을 내지는 않았다.
▲ 8월24일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은 이날 사설 ‘한명숙 영웅시한 민주당의 자가당착과 위험한 온정주의’에서 “검찰 수사가 한 전 총리를 타깃으로 이뤄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도 “한 전 총리 사건은 그가 건설업자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나와 유죄가 확정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신문은 “사법개혁이 필요한 이유로 여당이 한 전 총리 재판 결과를 거론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며 “한 전 총리가 민주화운동을 하다 투옥된 것도 아닌데 출소 현장에 여당 지도부가 우르르 몰려가 영웅 맞이하는 듯한 행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 비판했다.
표적 수사는 사실이지만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것도 사실이라는 주장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검찰은 야당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였던 한 전 총리를 표적 수사했다.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달러를 받았다는 1차 뇌물 사건이 무죄가 날 것이 확실시되자 2010년 4월 검찰은 또 다른 혐의로 한 전 총리를 옭아맸다. 경향신문은 “대법원이 2년 가까이 시간을 끌고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올려 표결하는 등 불필요한 억측과 오해를 산 측면은 있다”면서도 “그런데 한 전 총리가 돈을 받은 정황 증거가 드러났다. 건설업자가 발행한 1억원짜리 수표가 한 전 총리의 동생의 전세자금으로 사용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에서 한 전 총리 비서도 건설업자로부터 2억원을 받았다. 2015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건설업자가 건넨 수표를 한 전 총리가 받아 동생에게 줬다고 판단하고 대법관 8(유죄) 대 5(무죄)로 유죄를 확정했다.
▲ 8월24일 한겨레 6면.
경향신문은 “부패에 눈감고 권력에 굴종하는 사법부를 개혁한다면서 사법개혁의 깃발을 내걸고 있는 민주당이, 한 전 총리 감옥행을 사법 적폐라고 하는 것은 이 사법개혁의 정당성을 의심케 하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며 “민주당은 한 전 총리에 대한 온정주의 때문에 시대적 과제인 사법개혁의 순수성을 훼손해도 되는지 성찰해 보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1면 기사에서 한명숙 전 총리의 출소를 다루면서 “1억 수표 물증, 대법관 13명 전원이 유죄선고 했는데도 한명숙 유죄판결이 ‘적폐’라는 여당”이라며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했다.
▲ 8월24일 조선일보 1면.
동아일보 역시 ‘대법원 전원합의체 유죄판결을 적폐라는 집권당’이라는 사설을 통해 여당을 맹비난했다. 동아일보는 “수사와 재판의 유불리만을 가지고 평가를 달리하는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이라며 “집권세력의 근거 없는 사법부 비난은 곧바로 사법부 독립의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썼다.
▲ 8월24일 동아일보 사설.
이명박 정권의 '깨끗한 원전'이라는 거짓말824 프레시안
[민미연 포럼]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절약 문제
문재인 정부 들어 에너지 정책에 대한 '공론의 장'이 마련되는 등 에너지 논쟁이 한창이다. 이런 논쟁은 바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두고 촉발되었다. 늘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뒷전으로 밀려있던 에너지 및 환경 문제가 모처럼 전면에 드러나 세간에 주목을 받게 되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원래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은 문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이었다. 문 후보는 당시 '원전 제로', '청정에너지 발전 확대', '신재생에너지 전력 생산량 확대' 등의 공약을 발표했다. 그리고 정부 출범 후 공약이 구체화 됐다. 지난 7월 발표한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서 선정된 100대 과제 중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에너지를 목표로 하는 '친환경 미래에너지 발굴·육성'(37번째 과제), '미세먼지 걱정 없는 쾌적한 대기환경 조성'(58번째 과제), '탈 원전정책으로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의 전환'(60번째 과제) 등의 3가지 과제가 선정됐다.
그리고 이 과제는 '에너지 신산업 선도국가 도약 및 저탄소·고효율구조로의 전환',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 20% 달성', '노후 석탄발전소(8기) 일시 가동 중단', '30년 이상 된 노후 화력발전소(10기) 임기 내 전면 폐쇄', '원전 신규 건설계획(추가 6기) 백지화', '노후 원전 수명 연장 금지' 등의 정책으로 구체화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 한때(2009년 7월) '원자력 신뢰성 제고 및 원전 비중 확대'라는 정책이 '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5개년 계획'의 '10대 정책방향별 추진방안' 중 하나였다. 이 정책은 구체적으로 '탈 화석연료' 및 'CO₂ 감축'을 구실로 원자력 발전 설비 비중을 2009년 24%에서 2013년 27%, 2030년 32% 이상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원전 "핵심 및 원천기술의 자립화"를 꾀하고 "유망국가별 맞춤형 마케팅 전략을 통해 원전 수출을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세계적인 원자력 정책 추세에 역행하는 것으로 반드시 재고되어야 하는 사항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는 원전정책의 획기적인 변화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물론 이명박 정권의 에너지 및 환경 정책도 '녹색성장'이니 '환경과 경제의 선순환'이니 하는 애매하고도 모호할 뿐만이 아니라 상당히 의심스러운 구호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탈 화석연료'나 '온실가스 감축' 등을 목표로 한다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그다지 나쁘지 않고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소위 '원자력 마피아·원자력족·원전추진파'로 불리는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원자력이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라는 믿음이 참이라면, 원자력은 자원 고갈, 탈석유 그리고 탄소 배출 등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좋은 방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원전은 안전하지도, 깨끗하지도, 지속가능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우리는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섬(Three Mile Island), 1986년 4월 소련의 체르노빌(Chernobyl), 2011년 3월 일본의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엄청난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경험하면서 그 위험성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혹자는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을 강변한다. 하지만 영구정지된 것 포함해 전 세계 원전 599개(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30국에서 운영 중인 원전 447개) 중 이미 6개나 터진 상황에서 그런 주장은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원전은 현재 세대는 물론 미래 세대가 오랫동안 감당해야 하는 치명적인 핵 쓰레기를 발생시킨다. 게다가 핵 테러리즘의 위험이라는 불길한 경고까지 포함한다. 아닌 게 아니라 얼마 전 북한의 미사일 전력을 총괄 운용하는 전략군사령부가 남한 전역을 네 등분해 미사일 타격권을 지목한 곳이 울진·포항·부산 등 원전 밀집지역이나 인접지역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심지어 최근에는 원전이 사이버 공격에 취약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원자력은 우라늄 가채연수를 고려할 때 지속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채굴 시 방사능 누출 및 핵폐기물이 갖는 위험성 등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바탕으로 미루어보자면, 당연히 원자력은 에너지 전환의 후보로 부적절하다.
원자력 외 다른 에너지 전환을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러한 에너지 전환에 대한 요구는 긴 역사를 거치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거의 한두 세대 내에 이루어진 일이다. 시골이 고향인 현재 5,60대 한국 사람이라면 어릴 적 시골에서는 나뭇짐을 지고 산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가마솥이 걸린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짓고 난방을 하는 모습도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화석연료(化石燃料, Fossil fuel)라야 고작 등잔불을 밝히던 등유(燈油)가 전부였다. 밭을 가는 것도 소와 사람이 갈았고, 짐을 나르는 경우도 짐승이 끄는 달구지나 사람이 끄는 손수레가 고작이었다. 이것이 불과 1960년대와 70년대, 그리고 비교적 산골 지방에서는 80년대까지 흔히 볼 수 있었던 모습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주도하는 산업문명은 에너지를 순식간에 석유, 석탄, 가스 등의 화석에너지나 핵에너지 체제로 바꾸어 놓았다. 그 변화는 우리가 감지하지도 못할 정도로 급속하면서도 전면적이었다. 개인적 경험에서 판단되는 것이긴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고작 2,30여 년 동안 빠르게 이루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느새 또 다른 에너지 전환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산업문명은 인간의 욕구 충족을 위해 천연자원을 지나치게 착취해 왔고, 대규모로 변조하거나 조작하였으며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 자연이 지니는 근원적인 균형을 파괴해 왔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에게 편익만을 무한정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필연적으로 그리고 예외 없이 그 폐해를 동반했다. 이것이 가져다준 대표적 위기 중 하나가 에너지 위기다.
에너지 위기하면, 우리는 흔히 그저 단순하게 에너지 부족이나 고갈의 문제만을 생각하기에 십상이다. 하지만 에너지 위기는 에너지의 무분별하고 과다한 사용이 가져오는 생존 조건의 총체적인 위협을 일컫는다. 화석연료의 지나친 사용으로 인한 대기오염, 지구 온난화, 지구적 기후변화, 핵 쓰레기 문제 등의 환경 문제가 그것이다. 에너지 위기는 이렇듯 전 지구적이면서도 다차원적인 문제이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에너지 빈국이자 에너지 다소비 국가에 속한다. 그렇다 보니, 각종 에너지 위기에 노출돼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2015년 기준으로 원자력 발전을 포함하는 경우 82.7%이다. 원자력 발전을 제외하면 94.8%에 이른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로 알려져 있다. 한국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연구원이 발간한 '세계속의 대한민국 2016'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 1차 에너지 소비량은 9위에 해당한다. 그 비중은 2%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인당 에너지 소비량도 5.5TOE로 12위에 해당한다. 24위 일본 3.5TOE, 43위 중국 2.2TOE보다도 약 2배가량 높다. 석탄 소비량은 세계 7위, 원자력 소비량은 5위에 해당한다.
더욱이 줄어야 하는 에너지 소비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간한 '중기(2012~2017년) 에너지 수요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올해 총 에너지 수요는 2012년~2017년 기간 중 연평균 2.7% 증가하여 2017년에 31만7800만TOE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1인당 에너지 소비는 2007년 487TOE에서 2012년 555TOE, 그리고 2017년에는 623TOE로 연평균 2%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에너지 수입액도 지난해 대비 무려 34.9% 증가한 1641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중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크다. 총에너지의 석유 의존도는 1994년 63%를 정점으로 지속 감소하여 2012년에 38.2%, 그리고 2017년까지 35.0%까지 하락할 전망이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다. 원유와 천연가스 생산량은 순위를 매길 수도 없는 지경인데도 2015년 기준 원유 수입액 및 수입량은 세계 4위에 해당한다. 석유 소비량은 8위에 해당한다. 천연가스 소비량은 19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연히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에너지 안보 취약국이고 석유 안보 취약국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2015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은 OECD 회원국 중 5위에 해당하고 그 증가율은 2번째로 높다는 보고도 있다. 2007년 기준으로는 세계 1위를 차지한 바도 있다. 원전 밀집도는 세계 1위인 데다 사고 영향 범위 내에 400여만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수치들은 한편에서는 경제활동의 규모나 정도를 나타내는 자랑스러운 척도이기도 하겠으나, 그 어느 나라보다 각종 에너지 위기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취약성을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이제 화석 에너지에 대한 의존을 현저하게 줄이는 에너지 전환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와있는 것이다. 깨끗하고 안전하고 고갈되지 않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이른바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다. '신에너지'로는 수소에너지나 연료전지 그리고 핵융합에너지와 같은 것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재생에너지'는 인간의 시간 척도로 볼 때 전혀 고갈되지 않거나 아주 조금만 쓰이는 자연계의 에너지원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테면 태양·물·지열·바람·바이오에너지·조력 등과 같이 자연에 존재하는 에너지다.
그렇지만 이런 에너지가 자연에서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언제나 상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급량도 가변적이다. 게다가 밀도도 낮다. 그렇기에 이러한 에너지는 대부분 과학기술을 활용해 우리가 사용 가능한 전기에너지, 기계적에너지, 열에너지, 화확에너지의 형태로 변환해야 한다. 기술의 발전과 활용이 필연적으로 요구되며, 이로 인해 다시 자본 집약적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술은 아직 부족하다. 그래서 다른 것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고 효율적이지도 못해 많은 경우 상용화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렇듯 재생 가능 에너지의 이용은 어떤 종류의 재생 가능 에너지원을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시작해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의 문제 그리고 비용의 문제 등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들이 곧 극복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재생 가능 에너지의 이용을 위해 과학기술을 활용해야 하는 한 이것은 우리에게 편익만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필연적으로 폐해를 동반한다. 이러한 에너지의 이용은 한편에서는 고갈이나 이산화탄소 배출, 폐기물, 안전 등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는 하나 다른 한 편에서는 에너지 변환을 위한 설비를 설치하고 운용하는 과정 등에서 생태계 파괴 및 교란의 문제들을 마찬가지로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재생에너지가 화석에너지나 핵에너지보다는 낫기는 하겠지만, 결점 없는 완벽한 에너지는 아니다.
그렇다고 에너지를 안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나마 현 상황에서는 에너지 전환의 유망한 대안이기는 하다. 우리에게 '에너지 주권'과 '에너지 명령'의 저자로 잘 알려진 독일의 에너지 전문가 헤르만 세어(Hermann Scheer)도 핵에너지와 화석에너지의 물리적·생태적·경제적·사회적 한계 때문에 언젠가는 재생가능 에너지가 인류의 에너지 수요량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에너지가 되리라는 것은 눈앞의 현실이 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물론 이러한 전환은 신재생 에너지가 수반하는 여러 문제들을 극복하고 보완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에너지 위기에 대처하는 또 다른 방안은 바로 에너지 절약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에너지 절약'을 제1에너지 '불', 제2에너지 '석유', 제3에너지 '원자력', 제4에너지 '태양에너지'에 이어 '제5의 에너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말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2009년 신년호에서 "에너지 문제가 부각되면 사람들은 대체에너지 개발과 원자력에너지 부활을 주로 얘기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에너지 절약"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규정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는 원자력에너지나 신재생에너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 못지않게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거나 절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우는 용어라 할 수 있다.
에너지 절약 방식은 대체로 두 가지 차원에서 얘기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같은 양의 에너지를 가지고 더 많은 효과를 거두는 에너지 효율 향상이다. 11개 국제에너지기구(IEA) 회원국에서 1974년부터 2010년까지 에너지 공급원을 분석한 결과, 제1의 연료는 '에너지 효율 향상'인 것으로 조사되었다는 보도가 있다. 에너지원별 공급량과 효과를 분석한 결과 석유는 43EJ(Exajoule, 에너지 소비단위), 전기 및 천연가스는 22EJ인데 반해 에너지 효율 향상은 이보다도 월등히 높은 63EJ(15억2000만TOE)의 공급효과를 달성했다는 것이다.
다른 또 하나의 방안은 에너지를 쓸데없는 곳에 낭비하지 않고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가능한 한 에너지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삶의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포함한다. 다시 말해 에너지에 심하게 중독된 물질주의적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오히려 에너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질병적 수준의 물질주의나 소비주의가 치료되지 않는 한, 아무리 깨끗하고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가 무한정 주어진다 한들 이는 오히려 또 다른 자연자원의 낭비로 이어질 것이 뻔하고 결국에는 우리가 걱정하는 지구의 생태적 파멸에 이르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러한 에너지 전환이나 절약이 당장의 문제가 아니라, 먼 훗날에나 해당되는 사항이라고 보는 안이한 생각에 경종을 울리는 것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물론 이런 문제에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신중하고 바람직한 태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지게질로 땔감을 져 나르고 아궁이에 불을 때던 사람들이 자신의 세대 내에 원자력 시대가 불현듯 등장했다 사라지리라고 누가 상상을 했겠는가. 이렇듯 모든 것이 가속화되고 있는 오늘날 모든 위기와 기회는 우리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압축되어 급속하게 닥쳐올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위기와 기회들이 지난 것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러한 전환을 재촉하고 다그치는 것이 성급하거나 무모한 짓이 아님은 분명하다. 오히려 지금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사태는 더욱 악화돼 결국 어찌해볼 도리도 없이 파멸을 맞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제 에너지 전환이나 절약은 논쟁을 통해 선택해야 하는 사안이 아닐 수 있다. 에너지 전환과 절약은 혁명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은 그 누구든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 '지상 명령'이다. 아니 생존 주체로서 인간이 생존을 위해 따를 수밖에 없는 '자연법칙'에 견주어도 이상할 게 없다.
"피부가 양탄자 조각처럼 흘러내렸다"
[전쟁 국가 미국] 히로시마 은폐 (2)
'원자탄' 하면 떠오르는 시각적 이미지는 거대한 버섯구름이다. 반면 원자탄에 의해 죽거나 다친 수십만 희생자들의 사진을 본 사람은 거의 없다.
예컨대 네이팜탄에 의해 벌거숭이가 된 어린 여자아이가 울면서 도로를 뛰어가는 사진은 베트남전쟁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그리하여 반전 여론을 불러일으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런데 34만 명이 죽고 37만 명이 후유증을 앓았다는 원자탄의 경우, 피해자의 끔찍한 고통을 보여주는 사진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왜 그런가?
미국이 막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원자탄의 인간적 참상을 보여주는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피폭자 증언 등의 공개를 철저히 차단했다. 히로시마 당일 유일하게 피폭의 참상을 찍은 한 일본인 기자의 사진은 꼭 7년이 지난 후에야 공개될 수 있었다. 나가사키 피폭의 희생자인 동시에 구호작업에 나섰던 의사의 수기는 원고 완성 이후 2년 반이 지나, 그것도 일본군의 마닐라 학살에 관한 내용을 덧붙인 뒤에야 책으로 출판될 수 있었다.
마츠시게 요시토
히로시마 상공에서 원자탄이 폭발하던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주고쿠신문>의 사진기자 마츠시게 요시토(松重美人, 1913~2005년)는 자신의 집에 있었다. 막 아침상을 물리고 신문사로 출근하려던 참이었다. 그 순간,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하얀 섬광이 방 안을 가득 채웠고, 이어 1층과 2층의 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당시 윗옷을 벗고 있었던 마츠시게는 "수 백 개의 바늘이 동시에 온몸을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그의 집은 폭심(ground zero)에서 2.7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3백여 미터만 더 폭심에 가까웠어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폭심에서 반경 2.4킬로미터 이내는 폭발 효과에 의해 모든 것이 파괴된다. 그는 깨진 유리창에 의한 가벼운 상처만 입었을 뿐이었다.
피폭 40분 후 그는 카메라를 들고 신문사로 향했다. 그러나 거대한 불길 때문에 신문사에 닿을 수 없었다. 그는 발길을 돌려 시내로 이어지는 미유키 다리 쪽으로 갔다. 그곳에는 경찰 파출소가 있었고, 한 무리의 중학생과 경찰들이 있었다. 경찰은 학생들의 몸에 식용유를 부어주고 있었다. 피폭 당시 야외에 있었던 학생들의 화상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었다. 원자탄의 강력한 열선에 그대로 노출된 학생들은 끔찍한 화상을 입었다. 다음은 그의 회상이다.
"학생들의 등, 얼굴, 어깨, 팔 등에 공 크기의 물집이 부풀어 올랐다. 얼마 후 물집이 터지면서 피부가 마치 양탄자 조각처럼 흘러내렸다"
경찰과 중학생들 뒤로는 원자탄의 버섯구름이 여전히 뭉게뭉게 피어오르면서 파출소 쪽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마츠시게는 카메라를 집어 들었으나 첫 번째 셔터를 누르기까지 최소 20분이 걸렸다. 파출소 앞 광경이 너무도 끔찍했던 탓이다. 그의 회상.
"아마도 20분은 망설였던 것 같다. 마침내 용기를 내 한 컷을 찍었다. 그리고 두 번째 사진을 찍기 위해 4,5미터 앞으로 다가갔다. 지금도 그때가 생생히 기억난다. 나의 눈물로 뷰파인더가 뿌옇게 보이던 그 순간이..."
마츠시게는 24장짜리 필름 두 통을 가지고 집을 떠났다. 그러나 그날 10시간을 돌아다니면서 셔터를 누른 것은 고작 7번뿐이었다. 피폭자들의 고통이 너무도 끔찍했을 뿐만 아니라 고통 받는 그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것이 두려웠다고 한다. 그가 필름을 현상한 것은 그로부터 20일이 지난 후였다. 밤중에, 폐허가 된 그의 집 앞 야외에서, 방사능으로 오염된 시냇물로 현상액을 닦아내고 인화지는 불에 타 죽은 나뭇가지에 매달아 말렸다. 이렇게 해서 7장의 필름 중 5장이 사진으로 탄생했다. 원폭 피해를 찍은 인류 최초의 사진이다.
▲ 마츠시게 요시토가 원자폭탄이 떨어진 당일 히로시마에서 찍은 사진 ⓒ히로시마 평화 미디어 센터
그러나 수 주일 후 그의 사진은 히로시마에 진주한 미 점령군에게 압수됐다. 8월 6일 이후 다른 사람들이 찍은 사진도 압수됐다. 다행히 필름만은 간직하고 있었던 마츠시게는 복사본을 만들어 미국 기자들에게 전달했다. 그들이 미국으로 돌아가 보도해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사진은 보도되지 않았다.
마츠시게의 사진이 공개된 것은 히로시마 피폭 7주년인 1952년 8월 6일이다. 미국의 일본 점령이(1952년 4월) 끝난지 4개월 후다. 일본 잡지 <아사히 구라푸>가 '원폭 피해의 첫 번째 모습'이란 제목으로 특별판을 제작한 것이다. 이 특별판은 이후에도 4번 더 추가 인쇄돼 모두 70만 부가 팔렸다. 다음 달인 1952년 9월 29일, 미국의 <라이프>가 '원자탄 공격-무삭제판(When Atom Bomb Struck-Uncensored)'이란 제목으로 마츠시게의 사진 5장 중 2장을 공개했다. <라이프>는 일본 사진기자가 찍은 이 "삭막한" 사진들은 "지난 7년의 점령 기간 동안 미군의 검열에 의해 빛을 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나가이 다카시
나가사키 의과대학 조교수 나가이 다카시(永井隆, 1908~1951년)가 쓴 <나가사키의 종(鐘)>은 최초의 피폭자 수기다.
피폭 당시(1945년 8월 9일 11시 2분), 폭심 우라카미(浦上)에서 700미터 떨어진 나가사키 의대에 있었던 그는 자신도 머리 오른쪽부분 동맥이 절단되는 부상을 입었으면서도 살아남은 의사, 의대생, 간호사 등 20여 명과 함께 구호활동을 벌였다. 10월 15일에는 구호 상황을 정리한 <원자탄 구호보고서>를 대학 측에 제출했다.
방사능의학이 전공인 그는 1945년 6월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그동안의 연구 과정에서 미량의 방사능에 장기간 피폭된 탓이다. 나가사키 피폭으로 아내를 잃고 자신도 피폭자가 된 그는 집 근처에 움막을 짓고 6개월간 머물면서 잔류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그 결과를 정리한 것이 <나가사키의 종>이다. 즉 그 자신이 피폭자이자 방사능 전문가로서, 자신의 원자병의 실태를 자신이 관찰한 결과를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의 원고는 1946년 8월에 완성되었으나 실제 출판은 1949년 1월에야 이루어졌다. 미군의 검열 때문이다. 미군은 일본군에 의한 <마닐라 학살>을 부록으로 추가하는 조건으로 책의 출판을 허용했다. 일본군이 행한 만행에 비추어 보면 원자탄 피폭은 자업자득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이 책은 1949년 8월 한국에서도 번역 출판되었고(<나가사키의 종> 이승택 옮김, 삼일출판사) 1950년 2월까지 7쇄를 거듭했다. 일본에서 출간된 지 겨우 반년 만에 한글 번역판이 나온 셈이다. 당시 한국 신문에는 "원자폭탄이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켰다! (…) 해방 후 최대의 베스트셀러를 보자!"라는 광고가 실렸다고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했던 2011년, <그날, 나가사키에 무슨 일이 있었나-나가사키의 종>(김재일 옮김, 섬)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관련 증언, 기록, 사진 통제
9월 19일 맥아더 사령부는 일본 언론에 대해 새로운 검열 지침을 발표했다. 히로시마 관련 뉴스를 사실상 전면 통제하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미군의 검열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밝힐 수 없게 했다. 얼마 후 책 출판에 대해서도 통제가 가해졌다. 이렇게 해서 1945년에서 1948년까지 일본에서 원자탄과 관련해 출판된 책은 4권, 그리고 시집 1권이 전부였다. 그중 하나가 나가이 다카시의 <나가사키의 종>이다. 다른 하나는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존 허시의 <히로시마>다. 히로시마 피폭 당시 현장에 있었던 6명의 운명을 담담한 필치로 그려낸 이 책은 미국에서 최초의 반핵 여론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의 일본어 출판은 2년 이상 보류된 끝에 1948년에야 이루어졌다. 미국작가연맹의 거센 항의 덕분이었다.
일본인 연구자의 방사능 피해 연구 결과도 미군 검열 당국에 제출해야 했다. 미군은 출판을 무기한 보류시킴으로써 사실상 출판을 막았다. 검열은 1949년 10월까지 계속됐다. 하지만 원자탄 관련 논문은 미군 점령이 끝날 때까지 자유롭게 발간될 수 없었다. 이 기간 동안 원자탄은 일본에서 사실상 금지된 주제였다.
스즈키 마사오 박사는 원인불명의 새로운 질병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관련 연구와 연구 결과 발표를 통제하는 것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규탄했다.
맥아더는 미군의 검열은 일본에서 자행되고 있는 "악의적이고 거짓투성이인 선동캠페인"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국 학자 모니카 브로는 미군 점령정책에 관한 저서 <억압 받은 원자탄(The Atomic Bomb Suppressed)>에서 이렇게 비판한다.
"검열은 특정한 사실들을 은폐했을 뿐만 아니라 피폭 생존자들이 자신이 겪은 바에 대해 발언할 기회마저 박탈했다. 이 경험은 오직 그들만이 알고 있는 것이며, 모든 인류가 세계가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것이다.
그들은 미군의 명령에 따라, 또는 (처벌의) 두려움 때문에, 또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말을 할 수 없거나 말하려 하지 않았다. (미군의) 검열을 통해 일본은 세계로부터 고립됐다 (중략) 어느 누구도 일본 역사가 이마호리 세이지의 다음과 같은 지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원폭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침묵시킴으로써 세계 상황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기회를 잃어버렸다"
"절대 안 돼, 결단코 안 돼"
9월 16일 일본 문부성은 '원폭 피해 조사 특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조사 내용을 기록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일본영화필름공사 선발대가 9월 21일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전쟁을 반대했다가 일본정부에 의해 투옥된 바 있는 이와사키 아키라(岩崎昶)가 책임자였다. 한 달이 채 안된 10월 17일 선발대의 카메라맨 한 명이 나가사키에서 미군 헌병에게 체포됐다. 이후 모든 촬영이 금지됐고 그동안 촬영된 필름은 압수됐다. 10월 19일 미군은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대한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금지시키는 한편 이전에 촬영한 필름은 모두 미군에 제출토록 명령했다.
이후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대한 촬영은 미군 주도로 이루어진다. 미 전략폭격조사단의 다니엘 맥거번 중위의 권고에 의해서였다. 그는 이 동영상은 미국의 핵개발 프로그램에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 것"이라며 촬영 계속을 건의했다. "또 다시 핵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한 이러한 상황을 관찰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맥거번은 이와사키 팀을 지휘해 35밀리 흑백 필름으로 3시간짜리 다큐멘타리,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자탄의 영향'을 완성했다. 이 필름은 1946년 5월 5일 미 언론의 대대적 보도 속에 미국으로 반출됐다. 그리고는 철저히 비밀에 감춰졌다.
1967년 5월 18일 <뉴욕타임스>는 "1945년 히로시마 촬영 동영상 22년간 비밀에"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 필름의 존재를 처음 폭로했다. 다음해 펜타곤은 필름의 복사본을 일본에 전달했다.
미국의 저명한 다큐 작가 에릭 바르누는 이 필름을 보고 난 뒤 "이것은 대단한 폭로(It was a revelation)"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필름은) 우리가 핵무기의 영향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가를 알려준다...도대체 무슨 이유로, 무슨 권리로 이 동영상을 비밀에 부쳤단 말인가? 비밀 분류의 근거가 될 어떠한 군사정보도 담겨 있지 않은데"
바르누는 1년의 편집 끝에 이 필름을 <히로시마/나가사키: 1945년 8월>이라는 제목의 16분짜리 다큐로 만들었다. 뉴욕 등 미국에서 상영된 이 다큐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 <히로시마/나가사키: 1945년 8월>의 첫 장면 ⓒ유튜브
미군은 일본 측이 시작한 흑백 기록영화 외에 자체적으로 컬러 동영상도 만들었다. 다니엘 맥거번이 주도한 컬러 동영상은 자그마치 30시간 분량이었다. 일본이 만든 흑백 필름보다 훨씬 충격적인 영상이었다. 하지만 1946년 6월 펜타곤에 제출된 이 동영상 역시 30년 이상 비밀 속에 묻혀 있었다.
맥거번은 1983년의 한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원자력위원회(AEC), 펜타곤, 맨해튼 프로젝트 사람들은 이 필름들이 묻히길 원했죠. 그 사람들은 내게 '절대 안 돼, 결단코 안 돼'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동영상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거기에 담겨 있는 공포를, 그것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는 걸 두려워했던 겁니다. 여하한 조건에서도 이 필름들은 방영돼서는 안 된다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방사능이 인체에, 부녀자와 어린이들의 신체에 미치는 끔찍한 영향이 알려지는 걸 막으려 했던 겁니다.
그들이 이 필름의 상영을 막으려 했던 것은 그들 자신이 자신들이 저지른 짓에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새로운 핵무기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죠"
"원자탄의 실상을 모른다면 핵전쟁을 막을 수 없다"
이 컬러 동영상은 1980년대 초 공개됐다. 이 동영상이 일반에 알려진 데는 당시 촬영에 참가했던 한 미국인, 허버트 수산의 끈질긴 노력이 있었다. 그는 대부분의 미국인이 "거대한 버섯구름 사진 외에는 핵무기가 무엇인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거의 모른다"면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눈으로 볼 수 없다면 아무도 이 홀로코스트를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수산은 이후 37년간 이 필름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이 필름이야말로 핵무기는 결코 존재해서는 안 될 무기라는 것을 세계에 입증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 필름을 미국 TV에 방영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나는 이 필름을 꼭 찾아내고 싶었다. 원자탄의 영향이 실제 어떠한지를 미국 사람들이 직접 보게 하고 싶었다. 미국 사람들이 원자탄의 끔찍함을 알게 된다면 어떤 형태의 핵무기든 이에 대한 거대한 반대운동이 일어나고 군비경쟁이 종식될 거라 믿었다. 이 필름이야말로 세계 평화를 위한 가장 강력한 호소이다. 그런데 지나놓고 보니 나는 너무도 이상주의적이었고, 순진했다."
전쟁 이후 수산은 CBS 프로듀서로 일했다. 에미상을 수상할 정도로 유능한 방송인이었다. 그는 1950년 트루먼 대통령에게 필름 공개를 요청하는 호소문을 보냈다. 1963년에는 트루먼에 대한 다큐를 제작한 인연으로 그와 점심을 먹으면서 직접 호소하기도 했다. 유명 방송인 에드워드 머로우, 정치인 로버트 케네디 등에게도 호소했다. 하지만 비밀의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1978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한 사진 전시회에서 수산은 일본 큐레이터에게 필름에 관해 말했다. 이후 필름은 내셔널 아카이브스에서 발견됐는데 이미 기밀 해제된 상태였다. 일본에서는 필름 구매를 위한 모금 운동이 벌어졌다. 이 동영상은 1980년대부터 <그날 이후(The Day After)> 등 거의 모든 핵 관련 영화, 다큐멘타리의 원 자료로 크게 활용됐다. 핵시대의 가장 중요한 동영상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수산은 1983년 림프종이 발병해 1985년 64세로 사망했다. 촬영 당시 피폭의 후유증이다. 그의 유언은 이렇다.
"나는 내 아이들과 손주들이 제 명을 누리고 살길 원한다. 핵전쟁은 모든 것의 끝이다"
"미군 좋아요, 미국 최고예요"
베트남전쟁의 실상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반면 원자탄의 참상이 은폐된 것은 베트남은 미국과 전쟁 중이었던 데 비해 일본은 이미 미국에 패해 점령당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승자이자 점령군인 미국이 패자인 일본의 현실 인식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와 관련해 두세 가지 사례를 들어본다.
1945년 10월 하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스타디엄에서는 10만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대일본 승전 축하연이 열렸다. 캄캄한 가운데, B-29 폭격기가 서치라이트를 따라 스타디엄 상공을 지나가자 요란한 굉음과 함께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원자탄 투하를 재연한 것이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이 장면을 두고 "너무도 생생한 파괴의 재연"이라고 전했다. 미국인들은 집단적으로 원자탄의 파괴력에 도취돼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946년 7월 15일자 <타임>은 히로시마의 청소년들은 세계 어떤 나라의 아이들보다 미국을 좋아한다면서 한 일본 학생이 "미군 좋아요, 미국 최고예요"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아이의 어머니와 누나는 원폭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것은 진심일까? 원자탄 투하의 실상과 의미를 안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1964년 12월 6일 일본 정부는 미 전략공군사령관을 역임한 커티스 르메이 장군에게 최고훈장을 수여했다. 르메이는 전쟁 기간 동안 도쿄를 비롯한 일본 64개 도시에 잔혹한 공습을 지휘한 장본인이다. 그 스스로가 "미국이 전쟁에 패배한다면 나는 전범 재판에 회부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공습은 사실상 전쟁범죄였다.
패자 일본은 승자 미국이 듣고 싶어 하는 것만을 얘기했다. 미국 언론도 미국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것만을 전했다. 그러면서 원자탄의 범죄적 실상은 묻혀 버렸다고 할 수 있겠다.
'기레기' 없는 사회를 위해
[인권으로 읽는 세상] MBC, KBS 언론노동자들의 싸움에 함께하며
부패한 정치권력과 재벌이 등장하는 영화에 늘 함께 나오는 단짝이 있다. 바로 언론이다. 이들의 공고한 카르텔 속에서 언론은 '여론'이라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세상을 그들 뜻대로 움직이기 위해 사실 왜곡과 진실 은폐를 통한 '여론 형성'에 몰두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과정에서 뇌물 혐의 증거로 제출된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공개되었다. '좋은 기사, 좋은 지면으로 보답하겠다'며 협찬비 증액을 요청하고,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동영상 관련 보도에 '기사 취급하지 않도록 부탁했다'며 안심시키던 언론은 삼성에 지원한 자녀의 채용 호소와 '사외이사 한자리를 부탁한다'며 재취업 청탁에도 스스럼없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현실은 영화보다 더하면 더하지 결코 덜하지 않다.
보수 정권 10년이 보여준 것
'이명박근혜' 정권 10년은 민주화 이후에도 권력의 언론 장악이 얼마나 집요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증명한 시간이었다. 권력의 언론 장악은 대통령 측근을 내리꽂는 낙하산 인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정연주 전 한국방송공사 사장을 강제 축출하기 위해,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의 배후로 지목된 문화방송 <PD수첩> 제작진을 겁박하기 위해 공권력이 동원되었다. 언론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싸운 언론노동자들에겐 해고와 부당전보, 감봉 등의 중징계가 이어졌다. 정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프로그램은 방송이 취소되고 폐지되었다. 방송법 개정안 날치기 통과로 방송사업 관련 진입·소유·겸영 규제가 완화되어 여론의 독과점이라는 우려 속에서 종편 시대가 열렸다. 언론이 정권과 자본의 나팔수 노릇에만 충성하며 민주적 공론장이라는 제 역할을 지워내면서 한국사회에서 '기레기'는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니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때 애도의 행렬을 가로막는 권력에 항의하며 유가족들이 길바닥에서 밤을 지새운 날, 종편 채널 카메라가 집요하게 찍어댄 것은 거리의 쓰레기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어떤 시간을 겪어왔는지, 추모조차 못하는 상황이 왜 발생한 것인지가 아니었다. 사고 발생일인 2014년 4월 16일부터 구조에 힘써야 할 정권은 보도 통제와 함께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유언비어로 엄단하겠다는 의지만 밝힐 뿐이었다. 전원 구조가 오보라고 현장 취재기자들이 정정을 요구해도 언론사들은 정부 발표만 그대로 옮겨 내보내기에만 급급했다. 이러한 행태는 시간을 거슬러 2009년 용산참사와도 겹쳐진다. 당시 청와대는 용산참사 관련 보도를 연쇄살인사건을 부각해서 덮으라고 지시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정권에 해가 될 여론을 조작하라', '비판적인 언론에는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주라' 김영한 전 민정수석 비망록은 세월호 참사와 용산참사 당시 국민들이 들어야 했던 뉴스가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보여준다.
다시 시작된 MBC, KBS 언론노동자들의 싸움
언론이 권력의 충실한 하수인 노릇을 해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는 언론의 본성이라기보다 언론이 지니고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반증하는 것이다. SNS나 팟캐스트와 같은 인터넷 기반의 개인화된 매체의 영향력이 커졌지만, 방송과 신문과 같은 전통 매체는 여전히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뉴스의 생산과 전파에는 엄청난 재원이 투여되는데 지상파 방송, 종편, 거대신문들은 정부의 지원과 대기업의 광고에 의지하게 된다. 이를 매개로 권력과 자본은 언제나 언론을 장악하고 싶어 했다.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은폐할 수 있는 언론은 권력의 작동에 매우 유용하다. 얼마나 비중 있게, 얼마나 많은 채널에서 다루냐에 따라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하고 묻히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여론 작업에 호도되는 꼭두각시가 아닌 이상, 제대로 된 언론을 만들기 위한 싸움은 계속돼왔다. 박정희 정권 시기, 자유언론 실천 선언으로 해직되어 지금도 싸우고 있는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19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시민들이 주주로 창간한 한겨레신문, 광고주에 휘둘리는 주류 언론과 달리 시민의 후원과 지지를 통해 운영되는 인터넷 독립 언론들은 언론의 가치와 역할을 지키고 확장해온 싸움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기존 언론을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언론으로 만들기 위한 언론노동자들의 오랜 투쟁이 이어져왔다. 정권의 하수인 노릇에 충실히 부역해온 KBS와 MBC 경영진 퇴진을 촉구하며 제작 거부, 방송 거부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MBC는 24일부터 2012년 이후 5년 만에 총파업 투표를 시작했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언론을 위해
최근 개봉한 영화를 계기로 언론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침묵을 강요받던 시절 광주의 참상을 알렸던 독일 기자를 만나며, 권력의 언론 장악에 앞장섰던 공범자들과 이에 맞서온 저항자들의 지난 10년과 현재를 접하며 우리가 함께 지켜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질문해본다. 언론이 정치 권력의 홍보 기구로, 자본 논리의 전파자로 전락한 사회에서는 인권도 민주주의도 없다. 권력과 자본에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언론을 만들어가는 것은 언론노동자들만의 몫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가고 있고, 어디를 향해 가야하는지 함께 말하고 듣고 토론하기 위해서는 민주적 공론장으로서 언론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언론노동자들의 투쟁이 우리의 투쟁이어야 하는 이유다.
아바 필립, 로코 리치, 브루클린 베컴…미국 금수저들의 ‘흔한’ 아르바이트824중앙
위더스푼 딸 할리우드 식당서 서빙 아르바이트
마약 혐의로 체포된 마돈나 아들도 음식 배달하며 반성
'땀 흘리면서 돈의 가치 깨달으라'는 부모 교육관 따른 것
회춘한 리즈 위더스푼이 식당에서 서빙을 하고 있다고?’
최근 미국 할리우드의 한 식당을 찾은 이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유명 배우 위더스푼과 쏙 빼닮은 어린 여직원이 접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그는 할리우드 커플인 위더스푼과 라이언 필립의 딸 아바 필립(17)이었다. 흰색 티셔츠·감색 팬츠 차림으로 친절히 메뉴를 설명하고, 포크·나이프를 식탁 위에 가지런히 세팅하던 그의 ‘평범한 일상’은 현지 파파라치에 촬영돼 지난 22일(현지시간) 공개됐다.
이른바 ‘금수저’ 집안에서 유복히 자랐지만 궂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버는 ‘할리우드 키드’가 적지 않다.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허드렛일을 도맡는 이들의 모습은 종종 현지 언론에 포착되곤 한다. 이들 상당수는 "일을 하며 직접 돈의 가치를 깨닫으라"는 부모의 바람을 따르고 있다
지난해 11월 영국 런던 고급 주택가서 대마초 소지 혐의로 체포된 팝 스타 마돈나의 아들 로코 리치(17). “바른 생활로 돌아오라”(get back on the straight and narrow)는 어머니의 간청에 고민에 빠졌던 리치는 반성(?)의 목적으로 음식 배달 아르바이트를 택했다. 고급 레스토랑 음식을 고객 집의 현관까지 배달해 놓는 서비스 앱 회사인 ’델리벌루’에 취업한 것이다. “잦은 일탈로 노여워하는 부모를 달래는 방편”이라며 비아냥거리는 현지 언론 보도가 잇따랐지만, 실제로 런던 주택가 곳곳에선 자전거를 타고 성실히 음식을 배달하는 로코의 모습이 포착됐다. 최근 사진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뉴욕 파슨스대에 진학하는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빅토리아 베컴 부부의 맏아들 브루클린(18). 그도 3년 전 런던시내의 한 커피숍에서 일한 적이 있다. 당시 그가 받던 시급은 단돈 2.68파운드(3900원). 미성년자는 근무시간을 엄격히 제한하는 노동법 때문에 그는 하루 7시간 이상 일할 수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가 하루에 번 돈은 3만원 정도. 4시간 일하고 1시간 휴식시간을 갖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5억 파운드(6800억원) 이상의 재력을 자랑하는 집안에서 자란 그가 ‘푼돈’(?)을 벌고자 나선 것도 베컴 부부의 남다른 교육 철학에 따른 것이다. 묵묵히 커피숍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접시를 닦는 그의 모습이 공개되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부모 돈으로 편히 먹고 살 수 있었을텐데 대견스럽다"는 칭찬이 나왔다.
정치인 집안의 자녀들도 아르바이트로 사회경험을 쌓는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딸 사샤 오바마(16)는 아버지의 단골 해산물 음식점에서 지난해 8월 아르바이트를 했다. “딸들이 독립적이고 자신감 넘치며 스스로 좋은 삶을 개척할 수 있는 젊은 여성이 되길 바란다”는 어머니 미셸 오바마의 평소 철학을 따른 것이라고 한다.
사샤는 매사추세츠주 유명 휴양지인 마서스 비니어드섬에 있는 ‘낸시스 레스토랑 앤 스낵바’에서 시간당 12~15달러(1만3500원~1만6909원)를 받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샤는 테이크아웃 코너에서 일을 했으며 계산을 맡았다고 한다. 그가 일할 때 백악관 비밀경호국 소속 경호원 6명이 만일에 사태에 대비해 주변에 머물렀다. 식당 직원들은 처음에는 몰라봤다가 나중에 경호원들을 보고서야 사샤를 알아봤다고 한다.
책떼기, 퀵떼기 등 엽기적 뇌물…삼성은 어떻게 법조를 관리했나? 824 민중
뇌물의 유착을 파헤쳐야 하는 곳이 검찰인데, 삼성이 관리를 한 중요한 한 축이 바로 그 검찰이짐작컨대 삼성은 오랫동안 매우 광범위하게 검찰과 판사들을 관리해 왔다. 이건 일종의 짐작이지만, 매우 강력하고 근거 있는 짐작이기도 하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삼성과 법조의 유착에 대한 심증은 충분하지만 물증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에 관한 역사적 기록도 매우 빈약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뇌물의 유착을 파헤쳐야 하는 곳이 검찰인데, 삼성이 관리를 한 중요한 한 축이 바로 그 검찰이다. 그리고 그 기록을 남겨야 하는 곳이 언론인데, 삼성이 관리를 한 또 다른 축이 언론이다. 하지만 역사는 지배자의 탐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세상에는 언제나 그 탐욕에 맞서는 정의로운 내부 고발자와 언론이 있었다. 지금 우리는 삼성과 법조의 유착을 입증하는 단 두 개의 역사적 기록만을 갖고 있다. 하나는 소위 안기부 X파일로 불리는 안기부의 도청 파일이다. 이것은 이상호 전 MBC 기자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다른 하나는 삼성 비자금 사건에 관한 기록들이다. 이것 역시 내부 고발자 김용철 전 삼성 법무팀장(변호사)의 폭로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기부 X파일에 등장한 떡값 검사들
이 사건의 출발점은 안기부 비밀 도청팀인 미림팀이 1997년 대선 직전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대화를 도청한 것에서 시작됐다. 이 녹취록을 MBC 이상호 기자가 입수해 보도하면서 2005년 세상이 발칵 뒤집어졌다. 도청의 주요 내용은 당시 대선 주자들과 관련된 것이었지만,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은 이른바 ‘떡값 검사’에 모아졌다. 당사자들은 부인했지만 대화록에는 분명 홍석현과 이학수가 검찰 간부들에게 명절이나 휴가철에 떡값 명목으로 500~1000만 원의 금품을 지급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상호 전 MBC 기자ⓒ양지웅 기자
홍석현은 “회장께서 지시하신 거니까”라는 명목으로 명절 때마다 검사들에게 떡값을 돌렸다. 노회찬 의원이 공개한 7명 떡값 검사들의 명단은 그야말로 쟁쟁했다. 최경원, 김두희 전 법무부장관, 안강민 전 대검 중수부장, 김진환 전 서울지검장, 홍석조 전 검찰국장, 한부환 전 법무부차관 등 이름만 들어도 서슬이 시퍼런 주요 법조 인사들이 포함됐다.
재미있는 점은 노회찬이 공개한 7명의 떡값 검사 중 X파일이 공개될 당시 법무부 차관이었던 김상희가 포함됐는데, 홍석현이 김상희에 대해 “김상희 들어 있어요? 그럼 김상희는 조금만 해서 성의로써, 조금 주시면 엑스트라로 하고…”라며 그를 쩌리 취급을 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떡값 검사의 명단이 공개된 것도 파장이었지만, 그 와중에 검사들 사이에서도 ‘떡값의 레벨’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명색이 법무부 차관이었던 김상희는 명단이 공개돼 망신, 엑스트라 취급을 받아 망신, 그야말로 2중 망신을 톡톡히 겪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불법 도청된 내용은 증거능력이 없기 때문에 수사할 수 없다”며 금품 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황당하게도 검찰은 녹취록에 거론된 전ㆍ현직 검찰 간부의 실명을 폭로한 노회찬 의원을 기소했다. 노 의원은 결국 유죄 판결을 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상세한 증언
안기부 X파일에서 드러났던 떡값 사건은 그렇게 잊히는 듯 했다. 원래 뇌물사건이라는 것은 증거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준 사람이건 받은 사람이건 “내가 뇌물 줬어요”, 혹은 “내가 뇌물 받았어요”라고 털어놓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조계에서는 보통 뇌물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의 진술이 엇갈릴 때, 준 사람의 진술을 신뢰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증거나 증언이 희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내 뇌물 공방에서 “내가 뇌물을 줬습니다”라고 자수하는 사람이 등장했다. 바로 김용철 변호사였다. 그의 증언이 얼마나 상세했는지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이 정도 상세한 증언은 보통의 뇌물 사건에서 입수가 거의 불가능한 ‘노다지 증거’나 다름없었다.
“삼성중공업 유령 노조사건이 패색이 짙다며 상대방 변호사를 매수해서 회유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황당해서 거부했다. 하지만 검찰 선후배들에게 뇌물을 전해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나의 임무였다.
구조본(구조조정본부)의 한 간부가 검찰 관리 대상 명단을 검토해달라고 했다. 그 안에 삼성 장학생 명단이 들어 있었다. 이 명단을 기초로 검찰의 핵심 주요 보직 간부, 초임 근무를 서울지법에서 한 간부 판사, 사법시험 성적 우수자 등을 대상으로 리스트를 만들었다. 이들에게 설, 추석, 여름휴가 때 1년에 세 차례 500만 원에서 2000만 원의 뇌물성 현금을 전달했다. 물론 사안이 생기거나, 공을 세웠을 때는 액수가 몇 배 커졌다. 삼성은 삼성 장학생 검사의 승진을 밀어주고 인사에 영향을 끼쳤다. 서울지검장, 검찰총장 등 주요 보직 인사의 승진을 구조본에서 한 달 전에 아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현직 검찰의 최고위층 간부 가운데 삼성 장학생이 상당수 있다.
기자들 앞에 선 김용철 변호사ⓒ민중의소리
이건희 회장의 로비 지시는 구체적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사돈인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이 인천지검 특수부에서 수사 받게 되자, 인천, 수원 등 지방 특수부도 관리하라고 지시했다. 삼성 에버랜드 편법 증여 재판과 관련해서는 담당판사에게 30억 원 쯤 갖다 주라고 지시했다. 불가능한 일이어서 거절했다. 그러자 상사들은 나를 무능한 사람으로 여겼다.
돈을 전달할 때는 반드시 ‘회장 선물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기본 매뉴얼이다. 보통 월간지로 포장된 현금을 전달한다고 한다. 월간지 하나는 500만 원짜리 묶음이다. CD 케이스는 300만 원, 007 가방은 1억 원, 델시 여행용 가방은 30억 원짜리다.” - <시사IN> 2007년 11월 3일자 인터뷰
엽기적 뇌물, 책떼기 혹은 퀵떼기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중 주의 깊게 봐야 할 대목이 있다. “돈을 전달할 때는 … 보통 월간지로 포장된 현금을 전달한다고 한다. 월간지 하나는 500만 원 짜리 묶음이다”라고 말한 대목이다.
김 변호사는 “삼성의 포장 기술이 대단했다. 돈 500만 원을 포장하면 꼭 월간지 모양이 나왔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이 폭로가 사실임이 새로운 폭로를 통해서 밝혀졌다. 월간지 모양의 500만 원을 받았다는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돈을 받은 사람은 참여정부에서 법무비서관으로 일한 이용철 변호사였다. 최초 폭로자 김용철 변호사와 이름이 같아서 헛갈릴 수 있는데, 이용철 변호사는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 시절 법률특별보좌관을 지냈고 2003년 9월 청와대에 들어가 2005년 1월까지 법무비서관으로 일한 인물이다.
이용철 전 청와대 비서관이 기자간담회를 열고, "500만원의 뇌물은 삼성차원에서 줬을 가능성이 높다"고 폭로하는 모습.ⓒ민중의소리
이 변호사는 “청와대 재직 때 삼성으로부터 ‘책 포장’ 모양의 돈다발(500만 원)을 받았고 이걸 나중에 돌려줬다”면서 사진을 공개했다. 이 변호사가 돈을 받았을 때는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일 하던 2004년 1월 설 무렵이었다. 문제는 이 돈이 황당하게도 퀵서비스를 통해 전달됐다는 점이다. 이 변호사의 고백에 따르면 삼성 측 변호사가 선물이라며 집으로 보낸 책 1권 크기의 택배를 뜯어보니 문제의 돈다발이 들어 있었다.
웃긴 점은 돈 다발 월간지 포장지에 ‘이용철(5)’라고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용철 보낼 돈 500만 원’으로밖에 해석될 수 없는 이 포스트잇은 많은 점을 시사했다. 삼성이 이용철 비서관 외에 수많은 법조인들에게 바칠 월간지(?)를 제작했고, 액수를 헛갈리지 않기 위해 포장지에 레이블을 붙여 놨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상상을 해보라. 삼성의 비자금이 쌓인 어느 창고에서 수 백, 혹은 수 천 개의 현금 다발이 포장된다. 그리고 그 위에 ‘○○○ 500만 원’ ‘△△△ 1000만 원’ ‘□□□ 300만 원’이라고 딱지를 붙인다.
도대체 이 월간지를 얼마나 많이 찍어냈으면 아는 사람을 통해 정성스레 전달하는 것도 아니라 퀵서비스를 이용해 대량으로 발송했을까? 이 딱지를 보고 이용철 변호사는 “내가 500만 원짜리 인가 하는 모멸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당시 다른 언론 보도를 보면 삼성이 의뢰한 물건을 주로 배송했다는 퀵서비스 직원의 증언도 나온다. 이 직원은 “책 모양으로 포장된 물건을 자주 배달했다”고 말했다. 월간지 대량 발송이 흔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만한 증언이다. 그래서 이때 세간에서는 삼성이 뇌물의 새지평을 열었다며 ‘책떼기’ ‘퀵떼기’ ‘택배떼기’ 등의 신조어가 등장했다.
또 한 가지 엽기적인 사실이 있다. 이용철 변호사가 공개한 돈다발의 사진을 보면 돈다발에 ‘서울은행 B①분당지점’이라는 띠지(현금 100장 씩 묶을 때 쓰는 종이)가 그대로 붙어있었다(정말 안타까워서 하는 말인데, 앞으로 삼성은 뇌물을 줄 때 띠지 정도는 좀 제거하고 주는 성의를 보이자).
그런데 뇌물이 제공되던 2004년에는 서울은행이라는 은행이 없었다. 서울은행은 2002년 말 하나은행과 합병하면서 사라졌다. 그런데도 2004년 삼성이 제작한 월간지 형 현금다발에는 ‘서울은행’ 띠지가 버젓이 사용됐다. 이게 무슨 뜻일까? 삼성이 적어도 2002년 이전부터 각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해 알뜰하게 비자금을 관리해 왔다는 뜻이다.
물론 삼성은 이 모든 일들을 부인했다. 이용철 변호사에게 전달된 500만 원도 당시 삼성에서 근무하던 한 임원(상무)이 개인적으로 전달한 것이라는 게 삼성의 해명이다. 도대체 어느 임원이 개인적인 이유로 청와대 법무비서관에게 명절 선물로 현금을 전달하나? 그것도 2년 전 은행에서 인출한 현금을, 그것도 퀵서비스를 통해서 말이다. 삼성의 변명은 요즘 유행어로 말하면 ‘불 쉣’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 역시 제대로 된 수사로 이어지지 않았다. 수사를 맡은 검찰은 물론이고 조준웅 특별검사조차 “삼성은 물론 로비 대상자로 지목된 전현직 검찰 간부들이 한결같이 로비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고, 계좌 추적에서도 조직적 로비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사건을 덮어버렸다.
“전현직 검찰 간부들이 한결같이 로비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 수사를 중단하는 게 맞는 건가? 설마 특검은 전현직 검찰 간부들이 “내가 죄인이요”하고 자수라도 할 줄 알았단 말인가? 특검의 수사는 삼성이 얼마나 이 나라의 법조계를 장악하고 있었는지 의혹만 증폭시킨 장면이었다. 떡값 검사로 공개된 7명의 전직 고위 법조 간부들은 지금도 대형 로펌에서 고위직으로 일하며 막대한 부를 누리고 있다. 뇌물 공여자임이 분명해 보이는 이건희는 18조 원을 가진 거부가 됐다. 공범 이재용은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지 않았다면 삼성그룹의 3세 승계자로서 떵떵거리고 살았을 것이다.
삼성의 치밀한 관리를 받았던 한국의 사법부에게 2017년 8월 25일은 정말로 중요한 하루가 될 것이다. 이재용의 선고공판이 있는 바로 그날이다. ‘월간지 모양의 돈뭉치로 관리를 받은 집단’으로 영원히 기록될 것인가? 아니면 정의를 바로 세운 사법부로 남을 것인가? 사법부가 어떤 선택을 할지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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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 밥 짓고, 잠자는 13억 아파트 경비원 824 중앙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아파트 경비실. 두 사람이 마주보고 앉을 수 없을 정도로 공간이 좁다. 이현 기자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아파트 경비실. 지은 지 34년 된 아파트의 경비실 안은 두 사람이 마주 앉을 공간이 없을 정도로 좁았다. 기자는 몸을 45도로 틀어 어정쩡한 자세로 경비원 김모(68)씨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벽에 걸린 선풍기가 덜덜덜 소리를 내며 후덥지근한 바람을 연신 보냈다. 한 시간 남짓 대화하는 동안 락스 냄새, 하수구에서 올라온 냄새, 곰팡내가 뒤섞인 화장실 냄새가 코를 괴롭혔다. 김씨는 "문을 닫아두면 환기가 되지 않아 밥을 해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을 만큼 악취가 난다. 항상 문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경비원들은 화장실을 부엌이자 침실로 쓰고 있다. 선반 위에는 전기밥솥과 플라스틱 밥주걱, 밥그릇이 놓여 있었다. 다른 쪽 벽에는 프라이팬과 물바가지가 나란히 걸려있었다. 다리를 뻗고 누울 공간이 없어 밤에는 화장실과 경비실에 작은 의자들을 놓고 그 위에 판자를 깔아 변기 쪽에 머리를 두고 잔다.
이 아파트 경비원들은 경비초보에 딸린 화장실에서 밥을 지어 먹는다. 조리도구와 식기를 둘 곳이 화장실 뿐이기 때문이다. 경비대원 휴게실이 있지만 문이 잠겨 있어 이용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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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재건축을 추진 중이라 경비초소를 새로 짓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관리사무소 건물 1층에 부녀회 사무실로 쓰던 방이 경비대원 휴게실로 문패를 바꿔 달았지만, 경비원들은 여전히 화장실에서 밥을 푸고, 국을 데운다. 휴게실에는 싱크대와 조리시설이 없고, 문도 늘 잠겨있기 때문이다.
휴게실 열쇠는 ‘반장’이라 부르는 경비책임자 1명에게만 주어진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휴게 시간을 제한하거나 휴게실 이용을 막은 적은 없다. 다만 열쇠는 외부인 출입 등 안전사고를 우려해 나눠주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지하 주차장이 없어 수시로 이중 주차된 차를 밀어야 하고, 한 동 120세대에 밀려드는 택배를 하나하나 대장에 기록해두다 보면 초소를 비울 짬도 나지 않는다.
은퇴 후 집에만 있기 갑갑해 1년 전 마음먹고 직업소개소를 찾았지만 변변한 '스펙'이 없는 60대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김씨는 “경비실을 처음 봤을 때 기가 막혔지만 나이 먹고 갈 데가 없으니 감수해야 한다 생각했다”며 “주민들이 인격적으로 나를 존중해줘서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고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비실이 다리를 뻗고 누울 수 없을 정도로 작아 밤에는 화장실에 머리를 두고 눕는다.
그러나 관리회사의 부당한 업무 지시는 열악한 환경보다 더 참기 어려웠다. 지난달 12일 제헌절을 앞두고 관리사무소에서 태극기 60개를 가져가 아파트에 게양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주민 센터의 업무였지만 “자원봉사자가 줄어 일손이 부족하다”며 관리사무소에 협조를 요청한 일이었다.
김씨가 아파트까지 태극기를 옮기고 보니 퇴근시간이 다 되어 이튿날 교대한 다른 직원이 태극기를 달았다. 그런데 관리사무소 측은 "김씨만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았다"며 경위서를 쓰라고 했다. 김씨는 "강남구청의 캠페인 전단지에도 게양 기간이 7월 14일부터인데 그보다 일찍 게양하고 왜 경위서를 써야 하느냐"며 버텼다. 김씨는 관리사무소 직원과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 "노망났느냐"는 모욕적인 발언을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개발을 앞두고 13억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는 아파트였지만, 그 속에서 일하는 경비원의 여건을 챙기는 손길은 없었다.
김씨는 인권위와 청와대에 진정서를 냈다. 이에 용역회사는 지난 11일 김씨를 성북구 월곡동의 다른 아파트로 발령냈다. 새 근무지는 강남구 세곡동 집에서 2시간이 걸리는데다 첫 차를 타도 출근시간인 오전 6시까지 도착할 수 없는 위치였다. 170만원 남짓한 한 달 월급을 택시비로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김씨가 사정을 이야기하자 월곡동 아파트 관리사무소도 “같이 일하기 어렵겠다”고 난색을 표했다. 용역회사는 월곡동으로 출근을 하지 않은 김씨를 근태가 좋지 않다며 징계위에 회부했다.
대기발령 상태인 김씨는 요즘도 매일 경비대원 유니폼을 입고 변기 옆에서 밥을 짓는 경비초소로 출근한다. 일종의 ‘출근 투쟁’이다. 김씨는 “이 아파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의 경비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경비 이외 업무를 시켜도 해고 당할까봐 말도 못하고 참고 산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5ㆍ18 발포 명령 문건’ 처음 나왔다 824 한국
5ㆍ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가 계엄군에게 발포 명령을 하달했다는 내용이 담긴 군 내부 문건.
5ㆍ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가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에게 발포 명령을 하달했다는 내용이 담긴 문건이 처음으로 나왔다. 군은 그 동안 계엄군이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시민들에게 발포한 적은 있지만 발포 명령을 내린 적은 없다고 주장해왔다.
5ㆍ18기념재단은 24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광주 소요 사태(21-57)’ 문건 1장을 공개했다. 5ㆍ18 당시 광주에 주둔했던 505보안부대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첩보 상황 일지 형태의 이 문건엔 ’23:15 전교사(전투병과교육사령부) 및 전남대 주둔 병력에게 실탄 장전 및 유사시 발포 명령하달(1인 당 20발)’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별(*) 표시와 함께 ‘광주 소요가 전날 전 지역으로 확대됨에 따라 마산 주둔 해병 1사단 1개 대대를 목포로 이동 예정.’이라는 상황도 기록하고 있다. 이 문건의 맨 마지막 줄엔 ‘(80. 5.21 0:20 505)’라는 숫자가 적혀 있다.
5·18 헬기사격’···증언과 기록으로 보는 진실 824경향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동구 금남로 일대에 헬기가 떠 있는 모습을 기자들이 촬영한 사진. 5·18기념재단 제공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밝히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일부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헬기 사격’과 ‘최초 발포 명령자’ 등 핵심 의혹은 미제로 남아 있습니다.
1995년, 검찰이 ‘헬기 사격’ 여부에 대해 수사를 벌였지만 “헬기 사격은 없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군 자료상 공중사격 기록을 발견할 수 없었고 광주 적십자·기독·전남대병원의 진료기록부와 관계자 조사에서도 헬기 총격 피해자가 치료받은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발표합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진상 조사 특별 위원회 청문회 동행 명령장을 수령하는 최규하 전 대통령 측(1989년)
국방부도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를 꾸려 2007년 7월‘12·12, 5·17, 5·18사건 조사결과보고서’를 발간했지만 첫 발포 명령자가 누군지, 헬기를 동원한 발포는 몇 차례인지는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37년 동안 밝혀내지 못한 진실, 이번엔 어떨까요? 오랜 세월 많은 이들이 진실을 밝히려 애썼습니다. 증언과 증거들은 차근차근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어느 때보다 많은 증언과 증거들이 우리 곁에 쌓였습니다. 당시 증언과 기록을 정리했습니다.
■관련 증언
-고(故) 조비오 신부는 1989년 국회의 광주특위 청문회에서 “80년 5월 21일 오후 1시에서 1시 30분, 2시 정도에 상공에서 헬기 소리와 함께 기관총 소리가 드드득 세 번 울렸다”고 증언했습니다. 당시 적십자대원으로 활동했던 이광영씨와 시민 정낙평씨 등도 비슷한 증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95년에는 5·18 당시 광주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아놀드 피터슨 목사가 증언론을 냅니다. 증언록에서 피터슨 목사는 “5월 21일 오후 3시 30분쯤 계엄군 헬리콥터 3∼4대가 시민에게 총을 난사해 그날 하루 광주기독병원에서만도 사망자 14명과 부상자 100여명이 목격됐다”고 밝힙니다. 당시 국방부는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했습니다.
▶관련 기사: [단독]계엄군 만행 고발한 미국 피터슨 목사 부인 “우리집 발코니서 헬기 목격 사진은 남편이 직접 찍은 것”
-그러나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인회장은 “군은 헬기 출동 지시는 받았으나 실제 출동은 안 했다고 주장하지만, 목격자가 있고 금남로 건물 옥상에서 2명이 죽고 무등극장 앞에서도 사람이 죽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발생한 희생자들의 시신과 관을 촬영하는 기자와 사람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올해 1월에는 5·18기념재단이 헬기 사격에 관한 목격담을 담은 증언 기록이 공개됩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1995년 검찰의 5·18 관련 수사 당시 헬기 사격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제출한 시민 증언 자료집인데요, 자료에는 전남 나주의 한 시민이 “5·18 당시 광주로 통학하던 딸을 마중 가던 중 금당산 부근에서 헬기 난사로 사람이 숨진 사실을 기억한다”고 광주교구 정평위에 증언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또 당시 광주대 근처에 살았던 서모씨(당시 28세)는 “많은 총 소리가 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천장에 구멍이 뚫려 기왓장 틈으로 하늘이 보였다. 벽에도 총알이 박혀 있었다”고 증언한 것으로 돼 있었습니다.
▶관련 기사: 5·18때 헬기 사격 목격” 시민 증언 공개
-고은 시인의 시 ‘만인보’에도 헬기 사격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헌혈을 하고 돌아오다 계엄군의 총을 맞고 숨진 여고생 박금희양(당시 17세)의 죽음을 다뤘는데요. “양림동 건너가는 양림다리 다급한 호소였다/ 중략 / 피를 나눠주세요 / 중략 / 저도함께 가겠어요 / 전남여상 3학년 여고생 박금희/ (…) / 기독교병원 헌혈하고 돌아오는 길/ 탕 탕 탕 / 헬기에서 쏜 / 총 맞아 / 거리에 피 다 쏟아버렸다” 고 묘사합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검찰의 희생자 검시조서에, 박양은 1980년 5월21일 오후 2시쯤 광주 금남로 수미다실 앞에서 M-16 총탄에 배와 허리부분을 맞고 숨진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관련 기사: ‘만인보’가 기록한 5·18당시 헬기사격…여고생 죽음서 다뤄
-지난 21일에는 보다 충격적인 증언이 나옵니다. 5·18 당시 수원 제10전투비행단 101대대에서 복무했던 전투기 조종사들이 “5·18 사나흘 뒤인 5월 21일에서 22일 사이 비행단 전체에 출격 대기 명령이 내려졌다”고 증언했습니다. 500파운드 짜리 공대지 무장을 한 채로 말이죠. 그리고 출격지는 ‘광주’로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관련 기사: [5·18 특별조사 착수]“광주 폭격 위해 대기했다” 공군도 개입
고 조비오 신부/ 경향신문 자료사진
■관련 기록
현재까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헬기에서 사격했다는 공식 기록은 확인된 게 없습니다. 그러나 이를 시사하는 기록들은 존재합니다.
-우선 헬기들이 당시 광주 상공에 무장한 채 떠있었다는 기록은 실재합니다. 5·18 당시 계엄군이었던 전투병과교육사령부 작전처의‘보급지원 현황’ 문서에는 1980년 5월23일 벌컨포탄 1500발이 항공대에 보급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2군 계엄상황일지’에도 1980년 5월24일 AH-1J(일명 코브라헬기) 2대와 500MD 헬기 2대가 지상 엄호를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당시 지원된 헬기 등은 40여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떠있었을 뿐 아니라 사격까지 했음을 시사하는 증거도 나옵니다. 지난해 9월 광주 전일빌딩 외벽 등에서 총탄 흔적이 발견됩니다. 12월까지 150여개의 총탄 흔적이 발견되는데요. 전일빌딩은 1980년 당시 인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고, 이 건물에서 계엄군과 시민군이 총격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탄흔을 조사한 국과수는 “10층에서 발견된 총탄자국의 각도가 수평에 가깝고 1980년 당시 주변에 고층 건물이 없었던 정황으로 볼 때 헬기에서 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관련 기사: 5·18때 계엄군 헬기서 총격 흔적 80개 발견…옛 전남도청 앞 빌딩 10층서
광주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10층 기둥에서 발견된 총탄의 흔적 /광주시 제공
-지난해 12월에는 당시 계엄군이 헬기 사격을 요청했다는 내용이 담긴 군 보고서가 공개됩니다. 5·18 계엄군이었던 전투병과교육사령부가 1980년 9월, 육군본부에 제출한 ‘광주 소요사태 분석 교훈집’에 실린 내용인데요. 5·18 당시 광주에 배치했던 항공기의 임무와 운영 방식, 문제점을 다룬 이 보고서에는 ‘헬기 능력 및 제한 사항을 고려한 항공기 운용’ ‘유류 및 탄약의 높은 소모율로 고가(高價) 운항’이라고 기재돼 있습니다. 당시 ‘항공기가 운용됐고, 유류와 탄약을 많이 썼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특히 ‘표적 지시의 불확실, 요망 표적 위치에 아군 병력 배치, 공중 사격 감행 시 피해 확대 우려’ 라는 대목은 사격 요청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5·18 당시 공중 사격 요청 있었다”…軍 보고서 확인
5.18광주항쟁 당시 헬기 기총소사 등 관련증언하는 아놀드A,피터슨 목사/1995년
-올해 4월에는 ‘헬기 사격’에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탄피가 공개됩니다.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5·18 당시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은 탄피 6개에 대해 감식을 진행해‘이 중 3개가 1980년 5월 이전에 생산됐다’는 결과를 내는데요. 그 3개는 20mm구경 벌컨포와 기관총용 탄피였습니다. 국과수는 구경 20㎜의 벌컨포는 전투기 탑재용, 헬기 탑재용, 차량 견인식 등 3가지 무기류에 사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당시 검사를 의뢰한 5·18기념재단은 발견된 탄피와 총탄이 5·18 당시 헬기에 장착된 기관총에서 발사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2017년 2월 광주 서구 쌍촌동 5·18기념재단 사무국에서 김양래 재단 상임이사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중화기 탄피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5월에는 ‘헬기 사격’이 군 작전 지침에 의해 실시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기록도 공개됩니다. 1980년 5월22일 육군본부에서 5·18 진압작전을 지휘하고 있던 2군사령부로 내려보낸 ‘헬기 작전계획을 실시하라’는 제목의 지침서를 광주시가 공개했는데요. 지침서에는 “시가지에 부대 진입 시 고층 건물이나 진지 형식 지점에서 사격을 가해올 경우 무장폭도들의 핵심점을 사격 소탕하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또 당시 계엄군이던 20사단 작전일지에는 (1980년) 5월27일 오전 5시16분쯤‘무장헬기 위력시위’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날은 전남도청 진압작전이 펼쳐진 날이었습니다.
▶관련 기사: “5·18 당시 계엄군 헬기 사격” 광주시 “육본 작전지침 확보”
-그리고 이번에 실시되는 특별조사에서 5·18과 관련한 국군기무사령부(과거 보안사령부)의 존안자료 등 그동안 미공개로 분류됐던 군 기록물도 공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 기록들이 마지막 퍼즐을 맞춰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관련 기사: 국방부 “5·18 당시 전투기 출격대기 및 헬기 기총사격 의혹 특별조사 착수
'이재용 판결'에 호들갑 떤 <중앙>·경제지들, 무안하겠다 826 오마이뉴스
삼성 계열사 주가, 이재용 1심 선고에도 큰 영향 없었다
▲ 중앙일보는 26일 1면에 ‘한국 경제, 정치가 만든 창살에 갇혔다’는 제목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1심 선고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 임병도
박근혜씨에 대한 뇌물 공여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은 각각 징역 4년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됐습니다. 재판부는 삼성 승계 문제와 관련해 '삼성물산 합병은 이재용 지배력 강화와 관련이 있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도 삼성의 승계작업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뇌물공여', '특경가법상 횡령', '특경가법상 재산 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 규제법 위반' 혐의는 일부 유죄, '국회 위증' 혐의는 유죄를 받았습니다.
실형이 선고되었지만, 일각에선 징역 5년이란 1심 선고 형량이 낮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앙일보와 경제지들의 생각은 달라 보입니다.
'정치가 만든 창살에 한국 경제가 갇혔다'는 중앙일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선고가 나온 다음 날인 26일 중앙일보는 1면에 <한국 경제, 정치가 만든 창살에 갇혔다>는 제목으로 '형량이 과도하다'는 내용의 비판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중앙일보는 '결정적 물증 없이 유죄 선고 논란'이라며 마치 이재용 부회장이 부당한 판결을 받은 것처럼 보도합니다. 또한, '재계, 정권 요구 거부 힘든 게 현실'이라며 경영권 승계는 쏙 빼고 권력에 희생당했다며 억울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중앙일보는 2면, 3면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선고 관련 기사로 채웠습니다. 중앙일보는 4면에 <창업 79년 초유의 오너 부재.. 미래 결정할 대형투자 스톱>라는 제목으로 '수조 원의 대형 투자가 중단되고 글로벌 이미지도 나빠진다'라며 마치 글로벌 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식으로 보도합니다.
경제지, 일제히 이재용 옹호 기사 쏟아내
▲ 한국경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선고로 애플,구글 등 경쟁사들이 반사이익을 얻었다고 보도했다. ⓒ 임병도
경제신문들도 일제히 이재용 부회장의 1심 징역 5년이 안타깝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머니투데이는 1면에 <이재용 1심 징역 5년..'기업한 죄' 충격 빠진 재계>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머니투데이는 소제목으로 '대통령이 불러서 갔는데 뇌물죄라니'의 문장을 넣어, 마치 이재용 부회장은 죄가 없고 억울하다는 투로 기사를 서술했습니다. 서울경제도 1면에 <이재용 징역 5년.. '뉴 삼성' 꿈, 결국 길 잃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고 '글로벌 기업 삼성은 법치에 갇혔다'고 보도합니다.
한국경제는 5면에 <삼성, 리더십 공백 장기화.. 글로벌 신인도. 브랜드 가치 급락 우려>라는 기사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징역으로 '애플, 구글 등 경쟁사들 반사이익 희색'이라고 보도합니다. 마치 이 부회장의 선고가 한국 경제를 무너뜨린다는 뉘앙스입니다. 이처럼 경제지는 마치 이재용 부회장의 징역형으로 한국 경제가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다며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삼성 주가, 이재용 1심 선고에도 큰 영향 없었다
▲ 삼성전자 주가는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이후 계속 상승했으며, 1심 선고에도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 ⓒ 임병도
이재용 부회장의 1심 선고로 한국 경제가 흔들린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가장 쉬운 예로 삼성그룹의 주가를 살펴봤습니다. 가장 크게 요동친 주식은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호텔신라'였습니다. 그마저도 이재용 부회장이 보유하고 관여하는 삼성전자는 전날 대비 1.05% 소폭 하락했고, 삼성물산도 1.48% 하락에 그쳤습니다.
'호텔신라'와 '호텔신라우선주'는 이 부회장의 1심 선고로 동생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가 삼성 경영권의 공백을 메우게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 심리가 반영됐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재용 부회장과 동생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가 관여하는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호텔신라를 제외한 다른 삼성그룹 주식은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마피아식 경영은 옹호가 아닌 청산의 대상이다
대한민국 경제에서 대기업은 처벌의 대상이 아닙니다. 대기업을 마치 자신의 개인 재산처럼 마음대로 경영하는 재벌 오너 일가의 범죄 행위가 처벌 대상입니다.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은 범죄를 제대로 처벌할 수 있는 '사법 정의'입니다. 징역 5년은 삼성그룹 오너 최초의 1심 징역형 선고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형량이 낮은 부분이 2심에서 제대로 선고될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아직도 재벌오너 일가의 범죄 때문에 대기업이 무너진다는 '마피아식' 경영을 옹호하는 언론이 있기에 경제사범의 형량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언론이 해야 할 보도는 경제를 흔드는 '공포감 조성' 기사가 아니라 범죄를 저지른 재벌 오너가 없어도 대기업은 문제없다는 팩트를 알려주는 기사입니다.
보수신문·경제지에게 떨어진 지상특명 ‘이재용을 보호하라’ 826미디어오늘
1면 제목부터 “결정적 물증 없다”는 중앙일보…매일경제는 재계 입장으로 한 면 채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면서 탄핵된 대통령 박근혜씨의 도움을 기대하고 거액의 뇌물을 제공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28일 박씨와 최순실씨에게 433억원의 뇌물을 주거나 약속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는 25일 이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들에 대한 선고공판을 열고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공소사실과 관련해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 규제 및 처벌법 위반, 국회 위증 등 5개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결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 사건은 삼성 임원들이 경제정책과 관련해 최종 권한을 가진 대통령에게 승계 작업에 대한 도움을 기대하며 거액의 뇌물을 지급한 사건”이라며 “이 사건의 본질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신문들의 시각은 엇갈렸다.
▲ 서울신문 1면 기사
1. 중앙일보, 1면부터 “결정적 물증없이 정경유착 단정”
먼저 제목이다. 26일 9개 전국단위 종합일간지는 모두 이 부회장 관련 기사를 1면에 배치했다. 대다수 신문이 건조하게 ‘징역 5년’을 제목으로 뽑은 가운데 중앙일보의 제목이 눈에 띈다. 오늘 아침 발행된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1면 이재용 부회장 관련 기사 제목은 다음과 같다.
경향신문 <이재용 징역 5년 ‘정치권력·자본권력 부도덕한 밀착’>
국민일보 <이재용 부회장 징역 5년 선고>
동아일보 <이재용 징역 5년>
서울신문 <‘박근혜에 뇌물’ 이재용 징역 5년>
세계일보 <‘박근혜 뇌물’ 이재용 징역 5년>
조선일보 <이재용 징역 5년, 5개 혐의 모두 유죄>
중앙일보 <결정적 물증없이 ‘정경유착’ 단정>
한겨레 <법원 ‘정치·자본, 부도덕한 밀착’ 이재용 징역 5년>
한국일보 <이재용 뇌물죄, 징역 5년 실형>
경제지의 경우 ‘징역 5년’과 더불어 삼성그룹, 나아가 재계의 입장을 담은 제목을 뽑았다. 특히 머니투데이와 서울경제의 제목이 눈에 띈다. 다음은 주요 경제지의 이 부회장 관련 1면 기사 제목이다.
매일경제 <이재용 징역 5년, 삼성 총수 첫 실형>
머니투데이 <이재용 1심 징역 5년, ‘기업한 죄’ 충격 빠진 재계>
서울경제 <이재용 징역 5년 ‘뉴 삼성’ 꿈, 결국 길 잃다>
파이낸셜뉴스 <이재용 징역 5년, 삼성 시계제로>
한국경제 <이재용 징역 5년, 삼성 ‘망연자실’>
▲ 한겨레 8월26일자 사설
2. 경향, 한겨레 사설에서 “사필귀정”
신문들의 논조는 사설에서 극명하게 대비됐다.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이를 ‘사법정의’로 칭하며 “삼성그룹 임원들에게도 징역형이 선고됐다. 사필귀정”이라며 “무엇보다 이번 판결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정경유착에 사법부가 최초로 철퇴를 가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경향신문은 “삼성은 재판 과정에서 조직적인 증언거부, 입 맞추기 등으로 진실을 밝히기 위한 법원의 노력을 방해했다며 ”반성보다는 박 전 대통령의 강압과 협박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시종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최후진술에서 모든 책임은 부하들에게 떠넘겼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도 “추악한 정경유착 근절의 전환점 되길”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최고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부패한 정경유착 병폐에 법적 단죄가 내려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다소 미흡한 대목이 없지 않으나 적폐청산을 요구해온 1600만 촛불시민의 뜻에 어긋나지 않은 사필귀정의 판결”로 평가했다.
동아일보 8월26일자 사설
3. 박근혜는 이미 버린카드, 이재용 살리기 나선 보수언론
보수성향 언론은 이재용 부회장의 수동성을 강조했다. 박근혜씨와 최순실씨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이 사건이 전형적인 뇌물 사건이라면 (재판부의) 표현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기업 쪽이 수동적으로 끌려간 사건에 자본권력이란 말은 어색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도 사설에서 “서로 마음속으로 청탁을 주고 받았는지는 이들 마음속에 들어가 보지 않는 이상 확인할 수 없다”며 “두 사람이 이심전심 청탁을 주고 받았을 수도 있고 반대로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이 부회장이 어쩔 수 없이 응한 것일 수도 있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재판부 논리대로라면 이 부회장은 승마 지원을 강요한 대통령 요구를 거절했어야 유죄가 아니라는 것”이라며 “그랬다면 이 부회장은 ‘경제정책에 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으로부터 보복을 당했을 것이다. 이런 처지의 사람에게 5년 실형을 선고하는 것이 법적 정의인지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중앙일보 1면 기사
4. 중앙일보, 여전히 ‘삼성 家’?
‘범 삼성가’로 분류되는 중앙일보는 ‘뉴스분석’ 기사를 내보내며 재판부를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1면 기사에서 “재판부는 유죄증거로 '정경유착'을 내세웠지만 이를 입증할 결정적 물증은 끝내 없었다”며 “또 기업이 권력의 강압적 요구를 거스르기 어려운 현실적 상황도 고려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형사재판에선 범죄 사실에 대해 유죄로 판단하려면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묵시적 청탁이 이에 해당되는지 의문이다. 합리적인 의심을 넘는 정도로 피고인의 유죄가 입증되지 못할 때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일보는 “5개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 가장 낮은 수준의 형량을 선고한 것은 법리와 정치·사회 분위기 사이에서 확실한 물증 없이 판단을 내려야 하는 재판부의 고민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재판부가 법리보다는 여론에 따라 판단을 내렸다는 의미로 읽힌다.
▲ 매일경제 5면 기사
5. 삼성 입장으로 한 면 채운 매일경제
경제지의 경우 종합일간지에 비해 삼성그룹과 재계의 입장을 반영하는 기사 비율이 높았다. 매일경제는 “허탈, 충격의 삼성…변호인단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 “재계 ‘양형 너무 심해…우리 경제에 큰 악재’”, “경영공백 장기화 vs 큰 영향 없을 것” 이라는 기사로 5면 한면을 채웠다.
머니투데이는 1면 기사에서부터 재계의 우려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머니투데이는 “재계는 충격에 빠진 모습”이라며 “진심으로 안타깝다” “법원의 판단은 존중하지만 기업인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국가브랜드 향상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 등 재계입장을 반영한 기사를 비중있게 보도했다.
한국경제는 사설에서 이번 판결을 ‘정치 선고’로 칭하며 “이미 정치권과 여론재판으로 중형을 선고한 마당에 재판부에 독립적인 판단을 기대하는 것부터가 무리였는지 모른다”며 “무죄추정 원칙, 증거재판주의 등 사법의 기본원칙이 설 자리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수동적 뇌물’이라는 황당한 논리로 이재용 형량 최대한 깎아준 사법부 825 민중
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전 정권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수백억원대 뇌물을 제공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혐의를 일부 유죄로 판단해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지만, 양형 이유를 살펴보면 재벌에 대한 재판부의 관대한 시각과 논리적 모순점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25일 오후 이 부회장 등의 뇌물 사건 선고공판에서 이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직원들의 뇌물, 횡령, 국외재산도피, 범죄수익은닉 혐의 상당 부분을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구형한 징역 12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징역 5년 형량을 산정하는 데 고려된 건 재판부가 별도로 제시한 ‘양형요인’이다. 양형요인을 들여다보면 재판부가 ‘가중’ 요소보다는 이 부회장 등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감형’ 요소를 비중있게 적용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재용 승계 위한 뇌물’이라면서도 ‘수동적 뇌물’이라는 모순된 양형 사유
재판부는 이 부회장 등 피고인 모두에 대한 감형 사유로 “피고인들은 ‘승계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이나 이를 구성하는 개별 현안에 관해 대통령에게 적극적·명시적으로 청탁을 하고 뇌물을 공여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해 뇌물을 공여한 것”이라며 이른바 ‘수동적 뇌물’이라는 논리를 제시했다. 이어 “승계작업은 피고인 이재용의 계열사 지배력 확보를 위한 것이지만,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삼성그룹과 각 계열사의 이익에도 기여하는 면이 있다고 인정된다”며 “지배구조 개편 과정이 오로지 피고인 이재용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은 피고인들의 뇌물 및 횡령 범행에 대한 비난 가능성을 완화시키는 요소”라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 개인에 대해서도 “직접 대통령으로부터 승마와 영재센터에 대한 적극적·구체적인 지원 요구를 받은 당사자로서 대통령의 요구를 쉽사리 거절하거나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며, 수동적으로 뇌물공여 범행에 관한 의사결정을 한 것”이라며 “피고인의 뇌물공여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소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별도의 양형 사유를 제시했다. 이어 “피고인이 ‘승계작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개별 현안들에 관하여 대통령에게 청탁하였다거나 그 청탁의 결과로 자신이나 삼성그룹에 부당하게 유리한 결과를 얻었다는 사실까지는 확인되지 않고, 승계작업의 추진이 오로지 피고인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수동적 뇌물죄’라는 재판부의 논리는 판결 주문에서 제시한 이 부회장의 뇌물 혐의 유죄 판단 논리와 배치되며, ‘강압에 의한 피해자’라는 그동안의 삼성 측 논리를 상당 부분 반영한 것이다.
재판부는 주문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순환출자 고리 해소 작업 등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의 일환이며, 이 부회장은 승계작업을 위한 기업 지배구조 개편과 그 필요성을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고 전제했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승계작업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지원을 기대하고 최순실 일가에 승마지원을 했다고 판단했다.
결국 재판부의 주문과 감형 사유를 종합하면,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지배구조 개편을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지원 요구를 수동적으로 응했다’는 모순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이 부회장이 적극적으로 부정한 청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을 전제해 놓고, 정작 ‘수동적 뇌물’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형량을 깎은 것이다.
재판부가 다른 감형 요소로 제시한 ‘승계작업 추진은 계열사들 이익에도 기여하므로, 이 부회장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는 것도 납득이 어려운 대목이다. 이 부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쥐게 되면 계열사들의 이익이 곧 이 부회장의 이익으로 직결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이 부회장 외 다른 계열사들의 이익이 무엇인지도 특정하지 않았다. 나아가 ‘계열사들 이익’을 감형 요소라고 하면서, 계열사 합병에 대한 이해관계가 달랐던 주주들의 손해는 배척했다.
감형 사유 내에서도 논리적 모순이 발생한 부분이 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대통령의 지원 요구에 응함으로서 승계작업에 묵시적으로 ‘부정한 청탁’을 한 사실은 인정된다”고 해놓고 “‘부당하게’ 유리한 성과를 얻었다는 사실까지는 확인되지는 않는다”는 대목이다. 이는 ‘부정한 청탁을 했지만 부당한 성과를 얻은 건 아니다’ 혹은 ‘승계작업 추진은 계열사들의 이익에 기여하지만 유리한 성과는 아니다’는 말과 같다. 재판부가 감형 사유를 무리하게 집어넣으려다 내적 모순에 빠진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재판부가 선고할 수 있는 ‘최소’ 형량
재판부는 이렇게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 ‘징역 5년’이라는 형량을 제시했다. 이는 재판부가 이 부회장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을 때 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형량이다. 이 부회장의 혐의 중 처벌 기준이 가장 높은 것이 ‘50억 이상의 경우 징역 10년 이상’의 법정형 하한을 두고 있는 재산국외도피 혐의다. 이 부회장이 빼돌린 것으로 인정된 액수는 약 79억원이다.
이 부회장의 경우 판사가 경합범 가중을 적용하지 않고 감형 요소를 감안해 형기를 법정 최저형의 절반까지 깎아주는 ‘작량 감경’ 제도에 입각했을 때 재산국외도피 혐의로 처벌할 수 있는 최소한의 형이 곧 징역 5년인 셈이다. 이 부회장의 뇌물 사건과 같이 여러 혐의가 경합된 사건의 경우 형법 제56조에 의해 재판부는 가중 및 감경의 순서를 정해 형을 내리게 된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누범가중, 법률상 감경, 경합범 가중, 작량 감경 순이다. 이 부회장의 경우 가장 후순위인 작량 감경 부분만 적용된 케이스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김준우 변호사는 “형을 최대한 깎으려면 가장 중한 죄인 재산국외도피 혐의를 기준으로 형량을 반으로 줄여야 한다”며 “계산법 자체가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판사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감형을 해준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 “법원 결정 존중” 재계 “총수 공백 우려” 826 국민
靑 “정경유착 고리 끊는 계기되 길” 野 “억울한 재판 안되도록 해야”
청와대와 여야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법원의 유죄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과 함께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가 건전한 기업으로 거듭날 것을 촉구했다.
청와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25일 “우리 사회가 한발 더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어온 정경유착의 질긴 고리를 끊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세종시 홍익대 국제연수원에서 열린 연찬회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판결은 전 세계가 주목할 정도의 사안이었고 대한민국에 사법정의가 살아있는지, 정경유착에 철퇴를 가할 수 있는지 (전 세계가) 주목했다”며 “정경유착에 철퇴를 가한 판결에 국민이 안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이번 재판을 둘러싸고 정치·사회적 압박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항소와 상고심 절차에서 실체적 진실이 더 밝혀지고 억울한 재판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금주 국민의당 수석대변인은 “재벌의 변칙적인 경영권 승계에 경종을 울리고, 재벌총수와 정치권력간의 검은 거래에 뇌물죄 법리를 적용했다는 점에서 판결의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박정하 바른정당 수석대변인은 “최순실을 둘러싼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을 인정한 헌법 재판소의 결정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판결”이라며 “삼성이 이를 계기로 건전한 기업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했다.
재계는 삼성의 경영공백과 이미지 타격이 국내 기업 전체로 번지지 않을까 우려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 전반의 분위기가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윤리 경영에 예민한 유럽 등 해외 사업에도 한국 기업의 이미지가 추락해 부정적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걱정도 있다”고 전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삼성그룹 경영에 당장 영향을 주지 않더라도 길게 보면 비관적인 상황인 것은 사실”이라며 “공격적 투자를 하거나 큰 책임이 따르는 일을 전문경영인이 주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품위녀' 작가 백미경, "실제 강남 부자 취재, 천박한 자본주의의 표본" 826 국민
흥행을 기록하며 막을 내린 JTBC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의 작가 백미경이 드라마에 담고 싶었던 메시지를 전달하며 "실제 강남 부자들을 직접 취재했다"고 전했다. "그들이 어떻게 돈을 쓰는지 취재하면서 드라마보다 더 충격적인 현실에 놀랐다"는 그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표본"이라고 꼬집었다.
여성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백 작가는 '품위있는 그녀'를 통해 "상류사회를 동경하거나 리얼하게 해부하는 것에만 그치는 이야기 말고, 그 속에서 서민들이 자신의 삶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드라마를 쓰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인간의 욕망과 일그러진 감정은 부유층이나 빈곤층이나 똑같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늘 뭔가 손해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 시청자의 95%의 사람들이 '그래, 내 삶이 그렇게 틀리지 않았구나. 나 그럭저럭 괜찮게 살고 있네'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며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백미경 작가는 "드라마를 위해 실제 강남 부자들을 직접 취재했다"고 밝혔다. 강남 부자들이 돈을 쓰는 방법을 취재하며 충격적인 현실에 놀랐다고 한다. 그는 "탈세가 탄로 날까 봐 현금을 여러 금고에다가 넣어놨는데, 그 양이 너무 많아져서 돈이 썩을 때까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부자"도 봤다고 말했다. 이어 "돈 있는 '거의 모든' 부자들에게는 가정 말고 애인이 있으며, 또 그것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데서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목격했다"고 밝혔다.
그는 "불행하게도 제가 취재한 사람 중에는 돈을 제대로 쓰는, 아름다운 자본주의를 실천하는 사람은 사실 한 명도 없었다"라며 "천박한 자본주의의 표본이었죠"하고 덧붙였다.
사육시스템 악조건을 외면한 ‘호된 대가’ 주간경향 1241호
살충제 계란파동으로 온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다. 현재의 사육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위생적이고 안전한 계란 생산은 쉽지 않다. 안전한 계란을 위해서는 추가비용이 들고 계란값 인상이 불가피하다. 농민도 소비자도 만족할 수 있는 계란값은 얼마일까?
135억6000만. ‘천문학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될 이 숫자는 뭘까.
지난해 한국에서 소비된 계란의 양이다. 빵과 과자, 라면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먹은 것을 포함해 한 사람당 계란 256개를 먹은 셈이다. 한 해에 이만큼이나 생산하려면 닭은 몇 마리나 있어야 할까. 농림축산식품부의 통계자료를 보면 2017년 7월 기준으로 전국의 ‘산란용 닭’ 5738만2929마리가 지난 석 달 동안 하루 평균 계란 3497만8257개를 낳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00만개가량 감소한 수치다. 조류인플루엔자의 여파 때문이다. 전국의 농장에서 키우는 닭의 수는 훨씬 더 많다. 알을 낳는 닭(산란계) 외에 고기용 닭(육계)도 있기 때문이다. 산란계 양계장의 절반 가까이가 3만 수 이상을 기른다. 살아있는 닭들을 돌보며 3억개의 계란을 쏟아내는 이들 양계장의 하루하루는 얼마나 ‘전투적’일지 상상해볼 수 있다.
8월 14일부터 전국 양계장의 계란 출하가 ‘올스톱’했다. 계란 껍데기에서 ‘피프로닐’ 등 인체에 유해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농림부는 전국 산란계 농장 1239곳을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18일 기준 ‘친환경농장’ 포함 총 45곳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돼 소비자들의 분노와 충격을 자아내고 있다. 공장식 축사의 문제가 거론되며 동물복지농장이 대안으로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문제는 조류인플루엔자 등 몇 년째 유사한 문제가 쳇바퀴 돌듯 반복돼 왔다는 점이다. 소비자와 농업당국이 계란가격 외에는 무심했던 탓이 가장 크다.
경기도의 한 농장에서 양계장을 운영하는 ㄱ씨(54)는 며칠째 끔찍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ㄱ씨는 남편과 태국 등지에서 온 이주노동자 3명과 함께 다섯 명이서 닭 3만마리를 돌보고 있다.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아 친환경농장으로 인증 받은 곳이다. ‘살충제 계란 ’ 뉴스가 터지고 나서 농림부 검역관이 찾아와 계란 1판을 무작위로 가져갔다. 검역관은 “아마 사흘 후에는 계란을 출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사태는 일파만파 커져갔다. 미심쩍게나마 믿었지만 기대도 접은 상황이다.
농가의 노력과 환경의 악조건은 관심밖
오히려 ㄱ씨의 농장에서도 ‘살충제 계란’이 나왔다는 잘못된 보도가 나가 한바탕 난리가 났다. 다행히 언론사에 항의해 기사는 재빨리 지웠지만 쏟아지는 비난을 견디기 어렵다. 외지인이 오가는 통에 전염병이라도 돌지 않을지 가슴은 벌렁벌렁하기만 하다. 농장에서 살충제 계란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살충제를 뿌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충제를 뿌리지 않기 위해 ㄱ씨 농장 사람들이 기울이는 노력과 처한 환경은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은 억울하기만 하다. “환경이 악조건인데 정부에서 제시하는 것은 없고, 문제가 터지면 검사하고, 영업정지나 벌금을 때리며 책임을 지라고 하죠. 이러니까 양계를 다 안 하려 하죠.”
‘악조건’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문제의 발단이 된 ‘닭진드기’의 정체부터 살펴보자. 닭진드기는 ‘와구모’, ‘닭이’ 등으로 불린다. 유럽과 아시아의 농가를 괴롭혀 왔다. 0.7~1.0㎜ 크기의 절지동물로 닭의 배설물과 사료 등에서 번식해 성체가 되면 닭의 깃털 아래 붙어서 피를 빨아먹고 산다. 일선 농가에서는 조류인플루엔자(AI)보다 훨씬 두려운 존재다. AI는 가을철 등 특정 계절에 주로 찾아오지만 닭진드기는 사시사철 발생한다. 습하고 무더운 여름철의 발병률이 더 높기는 하다. 닭고기나 계란의 품질에 영향을 미쳐 인체에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도 모기에 물리면 가렵고 짜증이 나듯이, 닭들에게 가려움·불면증·스트레스를 유발해 산란율을 20%까지 떨어뜨린다. 닭장에 갇혀 있는 닭들은 목욕도 못 하니 더욱 고통이 크다. 닭진드기가 닭들에게 장티푸스 등의 병을 옮긴다는 점도 문제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는 국내 양계농가의 닭진드기 감염률을 94%로 보고 있다. 사람 역시 아무리 깨끗하고 좋은 집에 살아도 여름철 모기에 완전히 물리지 않을 방법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독일, 네덜란드 등 축산 선진국에서도 감염률은 80%에 달한다.
‘피프로닐’ 파동도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부터 시작됐다. 벨기에의 농장에서 검출된 피프로닐은 한국에서 검출된 양의 30배에 달한다. ‘악조건’이라는 것은 이런 환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농민을 괴롭히는 심각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축산업을 한 이상 각오해야 하는 ‘당연한 조건’에 가깝다. 이 조건에서 괴로워하는 것이 농민뿐이라는 점이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아우성을 치는데 방법이 없어요. 조심하라고만 하지 정부에서 딱히 제시하는 조건은 없어요. ‘이것은 된다, 저것은 안 된다’ 이런 기준도요. 한 달에 한 번 지역 양계협회에서 모임이 열리면 그 자리에 나가 농장주끼리 서로 노하우를 주고받아요.” 경기농업기술원은 지난해 전북 남원의 풍년종계원 이춘겸씨를 닭진드기 퇴치 우수사례로 선정했다. 이씨는 석회를 이용해 인체에 무해한 닭진드기 퇴치법을 개발했다. 이것도 이씨가 일본의 농가를 방문하면서 알게 된 노하우였다. 중·장년 이상의 농장주와 이주노동자들로 이뤄진 국내 농가에서 자체적으로 과학적·효율적인 진드기 퇴치법을 개발하기란 쉽지 않다.
쉽지 않은 효율적 진드기 퇴치법 개발
이 같은 사례 발굴을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당국이 연구에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피프로닐이 처음 검출된 지역인 경기도 남양주시는 문제가 터지자 동부팜한농이 2014년 개발한 ‘와구프리 블루’라는 친환경 살충제를 지난해부터 보급했다고 밝혔다. 책임을 개별 농장에 돌린 모양새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충제’가 농민들에게는 매력적인 대안이 된다. 정확히는 유일하게 선택 가능한 방법이 된다. ‘닭진드기’를 퇴치하려면 계사의 닭을 모두 비우고 소독해야 한다. ‘3만마리’나 되는 닭을 일거에 비우기는 쉽지 않다. 육계농장이라면 가능하다. 고기용으로 닭들을 싹 팔고 빈 계사를 소독한 다음 다시 병아리들을 채워넣는다. 그러나 산란계 농가에서는 계속 닭들이 계란을 생산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위생적 소독’을 감행했다가는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는다.
결정적으로 ‘닭진드기’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 ㄱ씨가 말했다. “닭진드기가 사람에게도 옮겨 붙어요. 방치하면 속옷, 생식기 등에도 들어가요. 살충제는 정말 ‘살기’ 위해서 뿌리는 거예요.” 이 문제에 대한 뚜렷한 해결법은 나오지 않았다. 닭이 스스로 모래목욕을 해서 진드기를 제거하는 방법을 제외한 각종 친환경적 방법들 역시 농업노동자가 겪는 어려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 않는다. 닭진드기가 농업노동자에게 옮을 틈도 주지 않고 값싸고 재빠르게 박멸할 수 있는 방법은 살충제뿐이다.
수의사와 의사, 정부당국과 연계하는 제대로 된 농업 방역업체가 없다는 점도 원인이다. 일본에서는 수의사의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하면 이를 방역업체가 체계적으로 살포하며, 지방정부가 이를 관리하는 시스템이 비교적 잘 돼 있다. 지난해 AI가 몰아쳤을 때 일본에서 살처분한 가금류의 수가 90만마리에 불과했다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한국의 경우 3000만마리 이상을 도살했다. 한국의 경우 구제역 등을 계기로 한우농가에서 시도되지만 양계농가에서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지방정부에서 지방직 공무원으로 수의사들을 채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수 등 처우의 메리트가 없고 승진에도 불리해 인기를 끌지 못한다. 구제역·AI 등으로 급하게 필요할 때만 쓰다 보니 고도의 전문지식과 기술, 농장과의 유대감이 필수인 방역사들은 계약직으로 채용돼 단기적으로만 일하는 경우도 많아 현장과 당국 간의 불신을 키운다. 윤종웅 한국가금수의학협의회 회장은 “한국에는 공공수의사라는 개념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의 공백을 파고드는 것은 농약회사다. ㄱ씨도 닭진드기 문제로 지방자치단체나 농업 관련 기관의 전화를 받은 적은 없지만 농약회사의 홍보전화는 받아봤다. 당연히 살충제 살포의 결과에 대해 말해주지는 않는다. 닭진드기 문제가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은 농약에 내성이 생겨 점점 더 박멸하기 어려워진 까닭도 있다. 서상희 충남대 수의과대 교수는 “국가의 과학기술심의위원회에서도 이런 농민을 위한 기술의 연구개발은 뒷전으로 밀린다. 농업과 농민이 그만큼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이라며 “농민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친환경 농장’에서 ‘살충제 계란’이 나온 것에 대한 분노가 크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다. 현재 HACCP 등에서 발행하는 등급체계는 3등급으로 이뤄진다. 일반 계란, 무항생제 인증 계란, 유기 축산물 계란이 있다. 공장식 축산이라도 사료에 항생제를 넣지 않으면 친환경으로 인증 받는다. 즉, 동물과 생산자는 무관하게 소비자에게 위해한가 여부만 관건이다. 동물에게 투여하는 항생제나 의약품은 반드시 수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받도록 하고 있지만 농약은 해당 사항이 없다. 즉 독성물질인 농약은 관리체계가 없다. 정작 ‘살충제’에 가장 많이 노출된 것은 농민이다. 결국 문제의 근원은 닭도, 닭을 기르는 이도 생물이라는 데서 오는 셈이다. 여기에 산업의 논리가 한 번 더 개입해 문제의 구조를 완성하는 것이다. ‘살충제 계란’에 분노하며 농가를 질타하는 한국 사회의 민낯이자 진짜 ‘악조건’인 셈이다.
정작 살충제에 가장 노출된 농민들
악조건은 ‘동물복지농장’을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동물복지농장’이 동물을 위해, 동물을 기르는 사람을 위해, 그리고 소비자들을 위해 훌륭한 것은 모두가 주지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양계장이 동물복지농장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것은 농가의 탐욕이나 무지 때문이 아니다.
경남 산청에서 최세현 대표가 운영하는 ‘간디 유정란’은 대표적인 동물복지농장의 산물이다. 닭은 1000마리만 키운다. 혼자서 운영하는데 이 정도 규모면 운영에 어려움이 없다. 무리를 해서 일하지 않아도 되고, 닭들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을 필요도 없다. 직거래를 통해 소비자들에게는 계란 한 알당 1000원에 판다. ‘작은 규모의 농장’을 유지하기 위해선 비싸게 팔아야 한다. 맛 좋은 친환경 달갈로 이름 높은 ‘청리 토종란’의 경우 한 알당 500원선에 팔린다. 농식품부의 조사를 보면 지난 2분기 일반란의 경우 양계장의 생산가는 한 판(30알)당 5904원, 도매가는 7050원, 소매가는 8362원이다. 한 알에 생산가 약 190원, 소매가 약 280원에 팔리는 셈이다. ‘동물복지농장’으로의 전환은 135억개 이상의 계란 생산량을 포기하는 동시에 1알에 280원가량으로 공급되는 값싼 계란도 포기하는 셈이다. 식당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계란찜이나 계란말이 서비스를 포기하는 길이기도 하다. 최 대표는 “개별 농가는 하청 및 납품구조로 인해 이윤이 박하다. 구조적 문제가 굉장히 큰 부분이다. 점진적으로 변화시켜나갈 수밖에 없다”며 “농가에만 적용되는 엄격한 품질인증제도 등을 이번 계기를 통해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살충제 계란 파동이 남긴 커다란 상흔은 중소규모 농가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는 점이다. 한편에서 동물복지농장을 이야기하는 한편 ‘값싼 계란’을 원하는 쪽에서는 대기업 식품육가공업체의 관리를 받는 농장의 수직적 계열화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보인다. 하지만 ‘닭고기 시장’을 보면 이 역시 대안이 아니다. 한국에서 양계업이 권장된 것은 1960년대부터다. 당시는 농가소득의 증대를 위해 집집마다 논·밭농사 외에도 닭·돼지 등의 경제동물을 기를 것을 권했다. 노태우 정부 때 조금씩 기조가 바뀐다. 1986년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정부는 양계업의 현대화와 과학화를 추진했다. 정부 보조금까지 지급하며 개별 계사의 규모를 늘리도록 했고, 사설 도축을 금지하고 현대화된 시설을 갖춘 곳에서만 도축을 허용했는데, 이때 성장한 기업이 하림이다. 한국 육계의 경우 87%가 ‘하림’과 계약한다. 즉 양계업의 과학화와 현대화는 하림을 정점으로 한 닭고기 시장의 수직계열화 구조를 탄생시켰다. 산란계도 ‘살충제 계란’ 파동을 통해 이 같은 구조로 재편하자는 목소리다. <대한민국 치킨傳>의 저자인 농촌사회학자 정은정씨는 “하림이나 SPC 등 대기업과 계약하는 경우 해당 기업이 농가의 위생 및 안전관리까지 도맡아 하는 경우로 오해받지만 실제로는 납품된 고기의 질만 검사하며, 안전 및 위생은 개별 양계장이 책임진다. 대기업은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는 동시에 원가절감을 위해 각 양계장을 경쟁시켜 저가 생산체계를 유지한다”고 말했다. 결국 ‘양계장의 하루하루’는 똑같아지는 셈이다. 그나마 양계장 입장에서 대기업의 수직계열체제로 들어갔을 때 이로운 것은 정기적으로 수입이 들어온다는 점이지만, 납품기준을 맞추기 위해 개별 농민은 더욱 큰 부담을 진다. 조금이라도 이득을 더 내기 위해 사육 두수를 늘리고 더 초과노동하지만 그렇게 나빠진 사육환경은 AI로 되돌아온다. ‘계열화’에서 답을 찾는 전략은 ‘출구전략’ 없는 구조로 들어가는 셈이다.
피할 수 없는 현대식 축산의 재조정
전국에서 계란 출하가 중단됐지만 양계장에서의 계란 생산이 중단된 것은 아니다. 현대축산은 공장에 곧잘 비유되지만 공장과 달리 문제가 생기더라도 ‘가동 중지’는 불가능하다. 닭들은 여전히 사료를 먹고 배설을 하며, 양계장은 사료를 공급하고 전력을 들여 계사의 위생을 유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드는 비용은 고스란히 양계농의 빚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양계협회조차 반성문에 가까운 논평을 낸 상황에서 ‘억울함’을 호소할 자리는 좁다. 곧 AI의 계절도 몰아친다. 자신의 양계장에 문제가 없어도 지역 내 농장에서 한 곳이라도 발생하면 닭들을 도살시킬 준비를 해야 한다. 방사형 농장에서도 ‘시즌’이 되면 닭들을 풀어 키우지 말라고 농식품부의 ‘지도’를 받는다. ㄱ씨는 “반복되는 이 과정이 너무 괴롭다”며 양계업계를 몇 년 후 그만둘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식 축산의 재조정은 피할 수 없다. 책임 있게 점진적으로 조정해나가는 것이 관건이다. 지난해 하반기 AI로 계란 한 판의 소매가가 8000원까지 올랐을 때 언론은 이를 ‘계란파동’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동물복지농장에서 직거래로 제공하는 판매가보다 비싸지 않다. 그러나 김재수 당시 농식품부 장관은 계란값 안정을 위해 수입까지 고려했다. 정은정씨는 “AI 등은 때때로 시장을 조정하는 기능을 한다. 현재의 저가 시스템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결국 시장조정을 통해 적절한 시스템을 찾아야 하는데, 정부는 계란 수입 카드로 양계농가만 압박해 이 기회를 놓쳤다. 김재수 전 장관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문홍길 가금연구소장은 “동물복지농장이 이상적이지만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해관계가 맞아야 한다. 동물복지와 관련해 설문조사하면 소비자들은 ‘(동물복지농장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가격이 올라도) 사먹겠다’고 응답하지만 실제 사먹는 수는 응답률에 미치지 못한다. 100% 동물복지농장으로 전환한다면 계란 수급을 맞추지 못하고 물가가 폭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의 시스템을 유지하자는 말은 아니다. 문 소장은 “케이지식 농장에서도 점진적으로 가축 밀집도를 개선하고, 닭진드기 문제는 수의학, 곤충학, 영양학, 화학 등 과학자들이 합동으로 연구를 해서 친환경적인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점진적인 방법이라도 시행이 된다면 계란값은 반드시 오른다. 농민도 소비자도 행복할 수 있는 적정한 계란값은 얼마일까? 한 알에 250원, 500원, 1000원. 이 중에 답을 찾고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먹거리 파동, 현대축산 잔혹사
ㆍ광우병 쇠고기에서 살충제 계란까지… 유럽에선 국가 간 책임공방으로 번져
세계가 얼마나 닮아 있는지, 또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는 ‘먹거리 파동’이다. 광우병 쇠고기부터 살충제 계란까지, ‘과학적 현대축산’이 가능한 선진국에서 터져나와 전 지구를 휩쓸다가 ‘현대적 대량도살’로 마무리된다. 스캔들의 원형은 영국 광우병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1984년 영국 서섹스 지역의 한 농장에서 소가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다가 푹 쓰러졌다. 이 농장의 소 133마리가 2년 동안 간질환자처럼 쓰러져 죽었다.
전염병 발생하면 가축들 살처분
영국 정부가 파견한 역학조사반은 133마리의 소 뇌에서 종양을 발견했다. 동물 사체로 만든 ‘동물성 사료’를 소가 먹기 때문에 광우병이 발병한다고 유럽 학자들은 분석한다. 1986년 영국 중앙수의학연구소(CVL)에서 133마리의 소는 광우병(소 해면상 뇌병증·BSE·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으로 죽었다고 발표했다. 광우병은 영국 축산가에 스멀스멀 기어들어 갔다. 1992년 소 3만8000마리가 광우병에 걸린 것으로 확인됐다. 1995년에는 영국산 쇠고기를 먹은 ‘인간광우병’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영국 정부는 칼을 빼들었다. 1996년 8월부터 광우병에 걸린 30개월 이상 소 440만마리를 단계적으로 도축했다. 광우병 발병지역도 격리조치했다. 이후 각국 정부는 동물 전염병이 돌면, 전염병 지역의 가축들을 모조리 살처분했다. 이들은 살처분이 가장 효과적인 감염 방지법이라 여겼다. 하지만 영국산 쇠고기는 유럽에 널리 수출됐고, 전염병 퇴치의 즉효약인 살처분도 널리 퍼졌다. 유럽을 거쳐 북미, 아시아까지 뻗어나갔다. ‘현대축산 잔혹사의 서막’이 시작된 것이다.
한국은 영국처럼 ‘축산 살처분’을 우선순위에 두는 나라 중 하나다. 지난 2010년 충남 천안시에서 발병한 구제역은 충남지역 366곳에 퍼졌다. 구제역은 돼지와 소처럼 발굽이 2개로 갈라지는 동물(우제류)에게 주로 발병한다. 입안에 물집이 생기고, 침을 많이 흘리고, 발굽이 헌다.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축산부)에 따르면, 이 구제역으로 모두 46만여마리의 돼지와 소가 땅에 묻혔다. 사람에게 옮기지는 않지만, 전염성이 강해 발병과 동시에 살처분 결정이 난다. 구제역이 퍼질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에서는 ‘예방적 살처분’을 하기도 한다.
8월 8일 네덜란드의 한 가금류 농가 앞에서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이 닭 도살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APF=연합뉴스
정부에서는 구제역 발생원인을 해외유입 또는 잔존 바이러스로 추정하지만, 구체적 유입 경로는 밝혀낸 적이 없다. 구제역이 퍼지면 소와 소와 돼지 가격이 떨어지고, 관광객이 감소하는 등 지역경제에 타격이 된다. 이에 정부는 병을 빠르게 덮어버릴 수 있는 살처분을 우선순위에 올려두는 것이다. 지역 환경단체와 동물보호단체들이 무차별적인 ‘예방적 살처분’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거나 일부 농가가 정부의 살처분 권고를 듣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살처분은 계속되고 있다. 기독교와 불교, 원불교, 천도교, 천주교 등 5대 종단 생명평화종교인협의회는 “전염병이 발생하기만 하면 반경 3km 이내의 가축을 몰살시키는 살처분 정책은 실효성도 없을뿐더러 관계당사자와 국민 모두에게 위협이 된다”고 밝혔다. 2014년까지는 살처분에 대부분 공무원이 동원됐다. 하지만 이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등 후유증이 심각하게 나타나자, 2015년부터 가축 매물을 전문적으로 하는 용역업체에 의뢰해 살처분을 하고 있다.
살충제 계란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지난 2016년 11월 중순에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AI)로부터 조류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는 살처분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AI는 닭, 오리 같은 조류에서 H5N6라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의 감염으로 발생하는 급성전염병이다. 감염이 되면 산란계의 경우 산란율이 차츰 떨어지면서 폐사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번 AI는 산란율이 감소할 틈도 없이, 곧바로 닭이 폐사할 만큼 급성으로 증상이 나타났다. 2016년 11월 23일 충남 아산지역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2000여마리가 폐사했다. 농림부에 따르면 AI 발생 후 6개월 만에 3만8000여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됐다. 이 중 닭이 83.3%(3154만마리)를 차지한다. 오리의 경우 10마리 가운데 4마리에 가까운 7.9%(332만마리)가 땅에 묻혔다.
계란도 살처분당할 위기에 몰렸다. 지난 14일 농축산부는 국내산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인 피프로닐이 검출됐다며 산란계 3000마리 이상을 키우는 농장의 계란 출하를 금지시켰다. 우리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네덜란드는 전국 180개 산란계 농장을 폐쇄했고, 산란계 100만마리도 살처분했다. 농장의 품번도 공개했다. 유럽에서는 이번 사안으로 국가 간 책임 공방 스캔들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독일 정부는 이 같은 계란이 유통된 것은 “범죄”라고 비난하며 벨기에와 네덜란드 당국을 비난했다. 이미 몇 달 전 각국의 가금류 농장에서 관련 성분이 들어간 살충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위험성을 인지했음에도 이 같은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EU 집행위도 벨기에 정부가 피프로닐 오염 계란을 발견하고 한 달이 지난 7월 중순에야 이를 EU에 통보한 점을 지적했다. 벨기에 정부는 지난해 11월에 네덜란드에서 피프로닐 오염 계란의 존재를 시사하는 내부 보고서가 이미 있었다며 책임을 넘겼고, 네덜란드 정부는 당시 계란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고 반박하며 논란이 커졌다.
이번에 문제가 된 피프로닐은 가축이나 애완동물에 기생하는 진드기를 없애는 데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하지만 피프로닐을 닭에 뿌려서는 안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국제식품규격(CODEX·Alimentarius)에 따라 정한 피프로닐 잔류 기준은 계란 0.02ppm, 닭고기 0.01ppm이다. 문제가 된 경기 남양주 마리농장에서 생산한 계란은 검출된 피브로닐 양이 0.0363ppm이었다. 단기간에 급성독성이 생길 수 있는 피프로닐 섭취량은 몸무게 60kg인 성인의 경우 0.54㎎/kg이다. 계란 한 개의 무게가 60g임을 감안할 때 문제가 된 계란 200개 이상을 한 번에 먹어야 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위험정보의 공유와 책임 은폐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은 충격적이다
보수언론의 ‘부동산 공화국 지키기’ 대작전 87 시사인
문재인 정부의 6·19 대책에도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오르자, 거대 보수 언론과 건설족들의 ‘공급확대론’이 다시 활개를 편다. 이들의 주장은 몇 가지 통계만 보더라도 허점이 드러난다.
참여정부 시기 거대 보수 언론 및 ‘건설족’들은 ‘강남 중·대형 아파트 공급을 확대하자’는 주장을 자주 폈다. 이들의 주장을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서울 강남벨트(강남·서초·송파구)에 중·대형 아파트 수요가 차고 넘친다. 공급은 너무 모자란다. 한때는 이런 수요-공급의 불균형을 판교 신도시의 중·대형 아파트 공급 증가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판교의 공급 물량이 당초 계획보다 크게 줄어들면서, 강남·서초·송파구 소재 아파트 가격이 중·대형 위주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승세가 분당과 용인, 평촌 등으로 확산되고 있기까지 하다. 정부는 이제라도 세금을 통해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려는 생각을 접고 강남, 판교 등에 중·대형 평형 아파트를 공급해야 한다.”
서울 강남 지역의 중·대형 아파트 부족 때문에 ‘강남벨트’ 등에서 국지적 집값 상승이 초래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안은 물론 규제 완화로 아파트 공급을 크게 늘리는 것밖에 없다. 이른바 ‘공급확대론’이다.
수도권 주택 가격 상승은 투기적 가수요 때문
공급확대론은 참여정부 때 거대 보수 언론과 건설족 등 ‘주택 건설 규제 완화’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집단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발명’한 것이다. 당시에도 수도권 집값이 급등했다. 다만 주택보급률을 감안하면, ‘서울 등 수도권 전체의 아파트 총량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건설족들은 어떻게든 주택을 추가로 지을 명분을 얻어야 했다. 건설족들이 집을 지어야 엄청난 광고비를 얻을 수 있는 거대 언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당시에도 ‘(수도권 전체는 아니지만) 강남의 중·대형 아파트 부족으로 나타난 집값 급등이 강남을 넘어 확산되고 있다’라는 주장이 퍼졌다. 전형적인 곡학아세였다. 참여정부 당시 수도권 주택 가격 상승은,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을 실탄으로 삼아 벌어진 투기적 가수요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후 분명해졌다.
놀랍게도 거대 보수 언론과 건설족은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버젓이 공급부족론을 천명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7월10일자에 문재인 정부의 첫 부동산 정책인 ‘6·19 대책’을 비판하는 기사(‘보름 만에… 부동산 6·19 이전으로’)를 썼다. 정부가 투기꾼 발호를 막기 위해 서울 전 지역에서 택지 아파트의 분양권 매매를 금지하는 6·19 대책을 발표했지만, 아파트 시장이 2주일 정도 잠잠하다가 다시 오르고 있으니 “인위적인 특정 지역 압박보다 차라리 규제를 완화해 공급을 늘리”자는 내용이다. 거대 보수 언론과 건설족의 이런 주장은 몇 가지 통계만 확인해봐도 쉽게 허점이 드러난다.
첫째, 서울시 전체뿐 아니라 이른바 강남벨트에 주택 실수요를 촉발할 만한 두드러진 인구 증가가 눈에 띄지 않는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 인구는 2003년 1017만4086명에서 2016년 993만616명으로 오히려 24만3470명이나 줄었다. 단, 가구 수는 2003년 371만4697가구에서 2016년엔 418만9839가구로 47만5142가구 늘었다. 인구가 줄어든 데 비해 가구 수가 크게 늘어난 것은 1인 세대의 증가 때문으로 풀이된다. 1인 가구 중 절대다수는 주택을 구매할 능력이 없다.
강남벨트의 경우 인구가 늘어나긴 했다. 서울시 통계를 보면 2003년 52만8977명이던 강남구 인구가 2016년 56만7115명으로 3만8138명 증가했다. 같은 기간 서초구와 송파구의 인구도 각각 5만2000여 명, 3만8000여 명 늘어났다. 가구 수로 따져도 각각 강남구는 3만7000여 가구(현재 23만4080가구), 서초구 2만9000여 가구(현재 17만3970가구), 송파구 3만8000여 가구(현재 25만8382가구) 증가했다. 그러나 이런 수치만으로 공급확대론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서울에서 강남 지역은 고시촌이라 불리는 관악구 신림동과 함께 1인 가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공급확대론자들은 강남의 실수요를 좀 더 확실한 근거 자료를 통해 입증할 필요가 있다.
둘째, 주택보급률(일반가구 수 대비 주택 수의 비율) 및 자가소유율(일반가구 수 대비 자가 소유 주택의 비율) 통계를 봐도 유의미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의 주택보급률은 2005년 93.7%에서 2014년 97.9%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강남구의 주택보급률은 93.7%에서 97.4%로, 서초구는 94.9%에서 100.1%로 각각 늘었다. 송파구만 같은 기간 0.4%포인트 줄었다. 반면 서울의 자가 소유율은 2006년 44.6%, 2008년 44.9%, 2010년 41.2%, 2012년 40.4%, 2014년 40.2% 등으로 오히려 떨어졌다. 서울의 경우, 주택은 늘어났는데 소유자는 줄어든 것이다. 다주택 소유자들이 주택 소유를 더욱 늘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를 ‘투기’라고 부른다.
셋째, 가계신용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의 비중과 규모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은 2008년 311조1584억원에서 2016년 545조8396억원으로 폭증했다. 부동산담보대출은, 경제정책이라곤 부동산 경기 활성화뿐이던 이명박 시대에 93조원 정도 증가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4년 동안엔 무려 141조원 이상 폭증했다. 박근혜 정부 때 ‘빚내서 집 사라’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초이노믹스’가 빚은 결과였다.
물론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이 전부 투기를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부는 저금리를 이용해 투기에 골몰했던 것으로 보인다. 굳이 주택을 소유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시장 참여자 중 상당수도 전세를 구하지 못해 혹은 집값이 더 오를까 봐 쫓기듯 주택을 구입했을 것이다.
더 정밀한 데이터와 정교한 분석이 나와야겠지만, 몇 가지 통계만 살펴보더라도 근래의 주택 가격 상승은 투기적 가수요와 저금리의 결합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자칫 문재인 정부가 공급확대론에 현혹되어, 보유세 등으로 투기적 가수요를 억제하는 대신 공급확대론으로 부동산 정책 방향을 정하거나 어설픈 절충에 나설까 우려된다.
문재인 정부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부동산 공화국’과 맞서 싸워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개인과 법인이 소유한 각종 부동산 소유 현황을 최대한 구체적이고 투명하게 파악하고 이에 따라 보유세를 강화하는 것이다.
투기 잡고 경제 살리는 ‘보유세’ 시사인 517호
8·2 대책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정책 대상 지역을 투기 강도에 따라 ‘조정대상 지역’ ‘투기과열 지구’ ‘투기 지역’ 등으로 나눠 차등적 규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초강경 대책이다.
핀셋 규제(과열 지구를 콕 찍어 투기 수요를 정밀 타격한다는 의미)’로 알려진 6·19 대책이 사실상 실패하자, 8·2 대책이 나왔다. 초강경 대책이다. 노무현 정부 때보다 한층 강한 규제 방안들을 ‘한꺼번에’ 시행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공황 상태에 빠진 느낌’이란 하소연이 새어나오고 있다.
8·2 대책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정책 대상 지역(서울 전역과 경기, 부산, 세종 등의 일부 지역)을 투기 강도에 따라 ‘조정대상 지역’ ‘투기과열 지구’ ‘투기 지역’ 등으로 나눠 차등적 규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조정대상 지역에 대한 규제를 기본으로, 투기가 심한 정도(투기과열 지구→투기 지역)에 따라 규제 수단이 추가된다.
‘조정대상 지역’의 경우, 주택청약 1순위의 자격 요건이 까다로워질 뿐 아니라 가점제(가구주 연령, 가족 수, 무주택 기간 등이 많고 길수록 높은 점수를 부여) 적용 확대로 실소유자들의 당첨 가능성을 높이기로 했다. 다주택자가 집을 파는 경우, 기존 양도세에 가산세까지 추가한다. 주택 3채 소유자의 경우, 양도소득세로 40%를 냈다면 앞으로 20%를 추가로 내야 한다(모두 60%). 이에 더해 ‘투기과열 지구’에서는 재개발 시 분양권 전매를 제한하고, 3억원 이상 주택을 거래할 때는 자금조달 및 입주 계획을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투기 목적의 주택 거래를 억제하기 위해서다. 더욱이 투기 정도가 가장 심한 ‘투기 지역’은 주택담보대출 건수가 종전의 ‘1인당 1건’에서 ‘세대당 1건’으로 제한된다. 이와 함께 투기과열 지구와 투기 지역에서는 LTV(주택담보대출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 역시 종전의 60%(LTV)와 50%(DTI)에서 40%로 강화되었다.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는 돈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오른쪽 표 참조).
이와 함께 공적 임대주택을 연간 17만 호씩 공급하고, 특히 수도권 내에서는 다양한 유형의 주택 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공공택지를 추가 확보하기로 했다. 강력한 투기억제 정책과 함께 실수요자 및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주택공급 확대 정책이 병행되는 셈이다. 무주택자들의 경우, 대출 규제가 강화되지 않고 청약 당첨 확률이 높아지는 데다 공공분양 및 신규택지 공급 확대로 ‘내 집 마련 기회’가 더 많아지리라 보인다. 투기를 잠재워 집값 상승을 차단하고 주택시장을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한편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재건축 주택에서 정상적 가격 상승분을 넘는 이익에 대해 세금 징수)’도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8·2 부동산 대책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현재 부동산 시장 교란의 주범을 다주택 소유자로 규정하고 이들의 투기 유인을 제거하는 데 정책의 방점을 찍었다. 청약, 세금, 재건축 및 재개발, 대출 등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칠 만한 거의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했다.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들을 축차적으로,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에 시행했다. 이는 참여정부 당시 ‘부동산 대책들을 축차적으로 시행하면서 시장의 내성만 키워줬다’는 반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매년 300조원 이상 부동산 불로소득
하지만 아쉬운 대목이 있다. 조세 정의와 투기 억제의 핵심인 ‘보유세(부동산을 소유하는 것 자체로 내는 세금) 현실화’가 누락됐다. 부동산 보유세가 현실화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현금을 넉넉히 가진 다주택자들이 집을 급매로 처분할 유인이 없다. 양도세를 중과해봤자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의 부자 24만2000명에게는 ‘부동산을 그대로 갖고 있게 하는’ 동결 효과를 발휘할 따름이다. 게다가 이번 대책에는 ‘임대소득자 등록 의무화 및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가 빠졌다. 결론적으로 8·2 부동산 대책은 투기 과열과 집값 앙등을 차단하는 동시에 부동산 가격 하락까지 막는, 현상 유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투기 억제 목적만으로 ‘보유세 현실화’를 주장하는 건 너무나 협애한 관점이고 인식이다. 우리는 지금, 왜 ‘보유세 현실화’가 간절한 과제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한국의 국부(국민순자산)는 1경2359조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그중 부동산 자산의 규모가 9136조원(75.3%)에 달한다. 토지+자유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300조원 이상의 부동산 불로소득이 발생한다. 부동산이 재벌과 부동산 부자들에게 편중돼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피땀 흘려 만들어낸 천문학적 부(富)를 매매와 임대를 통해 합법적으로 약탈하는 셈이다.
이런 ‘지대(rent) 추구자’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가장 큰 적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부의 창출에서 각 구성원들의 기여와 공로가 합당하게 평가될 때 정당화될 수 있다. 지대 추구자들은 가치 생산에 기여하는 정도에 비해 너무 많은 보상을 받는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을 정상화하려면, 공공 영역이 ‘지대’를 세금 등의 형태로 환수해서 사회적으로 유익한 부문에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사유화’된 지대의 ‘사회화’다. 이런 사회적 과제를 완수하는 최적의 해결책이 바로 보유세다.
보유세는 누구나 평등하게 누려야 할 토지사용권을 세금의 형식으로 보장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특히 토지 보유세는 시장을 왜곡하기는커녕 왜곡된 시장을 교정하는 구실까지 감당한다. 흔히 알려진 보유세의 투기 억제 및 가격안정화 효과는 보유세가 지닌 여러 장점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가운데 보유세 실효세율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OECD도 최근 포용적 경제성장과 세수 증대를 위해 보유세율을 높이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보유세는 경제에 활력을 줄 뿐 아니라 부동산 투기도 잡는 일석이조의 정책 효과를 발휘하는 세금이다. 문재인 정부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보유세 혁명에 착수해야 한다. 다만 참여정부의 종합부동산세와 달리 보유세는 토지에만 부과하고 누진 구조를 취해야 한다. 수취한 토지 보유세를 전 국민에게 토지 배당 등 적절한 형식으로 배분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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