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12.14 ‘반목하고 대립하고’…갈등의 골 깊어진 한국
12.9 제주-중앙
국민 46% "자가용이 짐"… 마이카 시대 저물어간다
日시민단체, 아시아·태평양 전역 ‘일본군 위안소 지도’ 공개
‘혐한 증폭기’ 일본 TV 와이드쇼
한겨레 사설]검경 ‘휴대폰 쟁탈전’이 보여준 국정의 현실
가난한 노인이 스마트폰 더 못 다룬다
6억 시계 완판’ ‘4900원 와인 불티’…우리가 ‘사는’ 다른 세상
복지 지출 적어도 불만 표출 않는 건 국가 아닌 사적 해결이 몸에 익은 탓”
비트코인에도 소득세 부과한다
노무현 이후 3번째, 박원순이 쏘아올린 '대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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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법, 어디로 가나
내년 총선 “정부여당 심판” 41% vs “보수야당 심판” 48%
선명 좌파 색깔로 정체성 잡은 獨사민당, 배후엔 89년생 리더
‘반목하고 대립하고’…갈등의 골 깊어진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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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740조원…지자체 재산관리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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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짚은 선거법 개정 본회의 무산 원인
재판 잘못한 판사, 수사 잘못한 검사도 처벌하는 세상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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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13 경향 장도리
국민 46% "자가용이 짐"… 마이카 시대 저물어간다
[아무튼, 주말]마이카 시대 30년 4044명이 답했다
일러스트=안병현
중산층이 자가용차를 타고 나오자 가는 곳마다 길이 막히기 시작했다. 엑셀, 프라이드, 르망, 스텔라, 쏘나타…. 서울에서 등록한 자동차는 30년 전에 처음 100만대를 넘었다. 1990년 1월 일이다. 교통방송(tbs)은 그해 첫 전파를 쏘았다. 이른바 '마이카(my car) 시대'가 열린 것이다. 차에 커버를 씌우며 애지중지했다.
30년이면 자동차를 두세 번은 바꿀 수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으로 등록 자동차는 전국 2344만여 대(수입차 9.7%). 4인 가구가 3~4대를 굴리기도 한다. 하지만 자동차 증가 속도는 무뎌졌다. 2015년(4.3%)에 최근 10년의 극점을 찍었고 2016년 3.9%, 2017년 3.3%, 2018년 3%, 올해(6월까지) 1%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서울에서 승용차 통행 속도는 지난해 평균 시속 23.9㎞로 2013년(26.4㎞)보다 내려갔다. 도심 구간에선 18.3㎞. '봉달이' 이봉주의 마라톤 기록(2시간 7분 20초, 시속 약 20㎞)보다 느리다.
'자가용 없이도 살 수 있다.'
'아무튼, 주말'이 SM C&C 플랫폼 '틸리언 프로(Tillion Pro)'에 의뢰한 설문조사에서 4044명 중 2309명(57%)이 이렇게 답했다. 응답자의 75%는 최근 한 달 사이 운전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인구 2.2명당 1대로 자동차가 많아졌지만 편리하지만은 않다는 뜻이다. 46%는 "자가용이 '짐'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마이카 시대의 종언(終焉)인가?
50대 남성은 정체를 질색한다
지난 2~3일 20~50대 남녀가 이번 설문조사에 응답했다. 자가용이 불편한 이유로는 '유지 비용'(31%) '교통 체증'(30%) '주차난'(28%) '사고 위험'(10%)을 꼽았다. 연령과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40~50대는 '교통 체증'을, 20~30대는 '유지 비용'을 가장 버거워했다. 특히 50대 남성은 41%가 '교통 체증'을 으뜸으로 지목했다. 길이 막힐 때 가장 예민해지는 집단인 셈이다. 반면 50대 여성은 '주차난'(38%)을 가장 괴로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가 잘 돌지 않는 혈관처럼 정체는 만성적이다. 서울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 등 도시고속도로에서도 종종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서울 중구, 영등포구, 종로구, 금천구 등지는 주차장 확보율이 80% 안팎에 그치고 있다. 지방 소도시도 저녁이면 골목길마다 차가 그득하다. 기차역 앞에선 가족을 태우러 오는 승용차가 많아 택시 기사들이 허탕 치기 일쑤다.
우리나라 주차 면적 최소 기준은 1990년에 정한 폭 2.3m였다. 미국(2.7m)이나 일본(2.5m)보다 한두 뼘 작았다. 문을 열다가 '문콕' 사고가 빈발했다. 올해 3월 이후 신축 건물부터 이 기준을 폭 2.5m로 늘리도록 하는 주차장법이 시행됐다. 설문조사에서 이 변화에 대해 묻자 '전혀 체감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10%, '체감하지 못하는 편이다'가 49%였다. 10명 중 6명은 여전히 좁은 주차장에서 후진 기어를 넣을 때마다 살짝 긴장하는 셈이다. 51%는 '문콕 사고를 겪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자가용이 편한 까닭은 뭘까. 응답자들은 '시간 절약'(41%)을 1위로 꼽았다. '대중교통은 불편해서'(28%) '나만의 공간이라서'(22%) '아이가 있어서'(7%) 순이었다. '시간 절약'은 50대 여성(50%), '대중교통은 불편해서'는 20대 여성(32%), '나만의 공간이라서'는 20대 남성(26%), '아이가 있어서'는 30대 여성(13%)에게서 각각 다소 높게 나타났다.
자가용이 '짐'이라고?
경기도 고양에 사는 회사원 김인영(가명·43)씨는 3년 전에 아예 자가용을 처분했다. 서울 광화문으로 출근하는데, 정체가 심할 때는 대중교통이 승용차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김씨는 "운전대를 놓고 버스를 탄 뒤로 날마다 시간을 버는 기분"이라며 "책을 읽을 수 있고 걷기 운동도 돼 심신 모두 좋아졌다"고 말했다. 주말에는 남편 차를 쓴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자가용이 '짐'이라는 생각도 드는지 묻자 '매우 그렇다'가 7%, '그런 편이다'가 39%였다. 합치면 46%. 지난 30년 동안 대중교통이 편리해졌다곤 하지만, 자가용 없이도 살 수 있을까? '매우 그렇다'가 9%, '그런 편이다'가 48%로 조사됐다. 자가용이 없어도 된다는 응답은 20대와 50대에서 약간 높았고 30~40대에서는 평균 이하였다. 자가용을 필수품으로 여기는 집단은 30대 남성(56%)으로 나타났다.
평소 직접 운전하는 데 대한 만족도(10점 만점)를 물었다. '7점'과 '8점'이 각각 26%로 공동 1위를 차지했다. '9점 이상'이 12%, '6점'이 11%였다.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만족감이 높아졌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가용을 소유하는 시대는 저물어간다"고 말했다. '소카'나 '타다' 같은 렌터카·공유차 수요가 점점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생산자들이 자동차를 제조하고 진열해 팔면서 시장을 부양했지만 그 시대는 끝나간다. 공유 경제가 오기 전부터 소비자와 취향 중심으로 판도가 바뀌었다."
이제 환경과 안전, 자율주행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때 GM과 크라이슬러가 파산한 이후 풍향이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이항구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에서는 50~60대가 신차를 사고, 구매력이 부족한 20~30대는 중고차를 사는 형태로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며 "한국 시장도 이 경로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에서는 작년에 신차가 1700만대 팔렸고 중고차 판매량은 최초로 4000만대를 돌파했다. 지난해 국내 중고차 거래량은 380만대. 신차 판매(약 180만대)의 2배가 넘는다.
노인도 마지막 차 아니다
'서울에서 자가용은 값어치를 하나?'
미국 소셜미디어 사이트에 최근 이런 질문이 올라왔다. 추천 수가 가장 많은 답글은 '서울은 세계에서 대중교통이 아주 잘 구축된 대도시 중 하나다. 운전석에 앉으면 막힌 길이 뚫리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잦다. 주차장 찾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연료비와 유지비, 보험료와 수리비도 많이 든다'였다. 결론은 소유할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마이카 시대가 개막한 1990년대에 운전면허를 딴 40~50대는 이제 70~80대가 됐다.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2020년에 400만명, 2025년엔 7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도로교통공단은 전망한다.
고령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해마다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 8월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고령 운전자 관련 사고는 2014년 2만275건에서 2018년 3만12건으로 불어났다. 지자체들은 노인들을 향해 "운전면허를 반납하면 현금이나 상품권 등을 주겠다"고 손짓한다. 올 들어 지난 10월까지 이 혜택을 받은 고령 운전자는 5만3263명. 지난해(1만1916명)의 5배 가까이로 폭증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차"라고 고령 운전자들은 말한다. 과연 그럴까. 정부는 자율주행차 상용화 시점을 2027년으로 3년 앞당기겠다고 발표했다. 자동차 산업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과 공유 경제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이제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르면 3~5년 안에 고속도로처럼 고령 운전자들이 어려워하는 구간에서는 자율주행이 필수가 된다"며 "그들도 자율주행차로 한 번 더 갈아탈 수 있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그 시대가 개막하면 표지판이나 교통 체계를 바꿀 필요가 없어진다. 고령 운전자에게 면허 자진 반납 대신 자율주행차 구매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정책이 전환될 수도 있다.
'타다' 갈등을 비롯해 이 과도기를 지나 공유 경제로 패러다임이 바뀌면 한 가구에 2~3대씩 차를 굴릴 필요가 없어진다. 이호근 교수는 "자가용 2대 값을 합쳐 똘똘한 자율주행차 1대를 사게 될 것"이라고 했다. 주차장도 쓸모가 줄어든다. 자율주행차가 한 사람을 회사까지 태워다 주곤 알아서 돌아다니며 가족이나 친구가 다른 일을 보게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카 개념부터 달라지는 세상이 오고 있다.
방탄소년단 가방 덕분에… 주목 받는 폐차 재활용산업
폐차 가죽시트 업사이클링해 만들어 재활용 활성화 땐 2조~3조원 시장
한 폐차장에 폐차가 가득 쌓여 있다. 국내 폐차량은 연간 약 90만대 수준까지 늘어나는 추세다.
자동차는 부품 약 2만5000개가 결합해 탄생한다. 검수 과정을 거치고 신차 판매장에서 주인을 만난다. 1년 주행거리는 보통 1만㎞ 안팎이다. 사람처럼 자동차도 수명(약 15~20년)이 있다. 폐차 시기는 천차만별이지만 대체로 둘 중 하나다. 20만㎞쯤 달렸거나 폐차 비용보다 수리비가 많이 들거나. 한국자동차해체재활용협회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연간 50만대 수준이던 폐차 대수가 2016년 79만대, 2017년 88만대, 2018년 89만대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년에 90만대라면 하루에 2465대가 생을 마감하는 셈이다.
폐차장은 차의 무덤이다. 하지만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 입고된 차는 범퍼, 엔진과 변속기, 차축, 타이어, 배터리, 가죽 시트 등을 분리한다. 장기(臟器) 적출과 비슷하다. 액상 폐기물과 냉매 가스를 회수한 뒤 차피는 압축한다. 차피란 부품 재활용을 위해 내장을 들어내고 살을 발라내고 남은 흉곽, 즉 차 껍데기다. 압축한 차피는 파쇄 과정을 거치고 고철과 비고철은 회수한다.
'굿바이! 카'를 펴낸 남준희 굿바이카폐차산업 대표는 "1992년식 국민차 티코가 들어왔는데 2000년에 단종된 차라 해체하기 아쉬웠다. 6개월 동안 폐차장 마당에서 고객을 기다리다 결국 머나먼 아프리카 가나로 떠나보냈다"며 "통째로 나가면 운임이 많이 들어 운전석까지 잘라서 엔진·변속기를 포함한 앞부분, 뒷문과 범퍼만 내보냈다"고 했다.
방탄소년단(BTS) 리더인 RM(김남준)의 가방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폐차 가죽 시트를 디자인을 가미해 재활용한 업사이클링(upcy cling)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국내 폐차 산업은 연간 약 4000억원대인데 재활용 산업을 활성화하면 2조~3조원 규모로 성장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부는 노후 경유차를 조기 폐차하면 보조금(평균 161만원)을 준다. 서울시도 미세 먼지 저감 대책으로 지난 1일부터 중구·종로구 등 녹색교통지역(약 16.7㎢)에서 배출 가스 5등급 차량(노후 경유차) 운행 제한에 들어갔다. 걸리면 과태료 25만원을 문다../조선 박돈규 기자
日시민단체, 아시아·태평양 전역 ‘일본군 위안소 지도’ 공개
일본군 성 노예 실태 알리려 10년간 자료 집대성
한ㆍ일 외 대만ㆍ베트남ㆍ필리핀 등 20여개국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wam)’이 7일 공개한 일본군 위안소 지도. wam 웹사이트 캡처
“위안소야말로 군에 의한 조직적인 성 노예이며, 다른 국가의 전시 성폭력과 다른 일본군 범죄의 특징이다.”일본의 한 시민단체가 아시아ㆍ태평양 전역에 퍼졌던 일본군 성 노예 실태를 알리기 위해 당시 위안소가 있었던 곳을 지도에 표기하고, 상세 증언과 기록 등을 10년에 걸쳐 집대성한 웹사이트가 최근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8일 다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일본군 위안소 지도’가 확산되고 있다. 이 지도는 일본 도쿄(東京) 신주쿠(新宿)에 위치한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women’s active museum on war and peaceㆍwam)’이 만들어 7일 공개한 것으로, 해당 자료관은 일본 비영리 법인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인권 기금’에서 운영하는 사업의 일환이다.
웹사이트에 따르면 일본군 성 노예 제도의 실태를 전하기 위한 초기 위안소 지도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시민에 의해 만들어져 여러 가지 버전으로 발전해왔다. wam은 지난 2005년 설립된 후 2008년부터 여성국제전범법정의 위안소 지도 근거 자료 등을 데이터화하기 시작했고, 2009년 이를 처음 ‘일본군 위안소 지도’라 명명했다.
이번에 공개된 지도는 wam이 이후 10년 간 새로 나온 피해자와 목격자의 증언, 군인의 회고록, 공문서와 군 관련 자료, 연구자들의 조사 내용 등을 수집ㆍ반영한 버전이다. 이 지도에는 한국과 일본 외에도 대만, 베트남, 필리핀, 태국을 비롯해 러시아, 중국, 싱가포르, 미국령 괌 등 20여개 국가내 위안소가 설치됐던 지명들이 표시돼 있다. 각 지명을 누르면 해당 지역에서 이뤄진 범죄 관련 상세 내용도 확인할 수 있다.
wam 측은 “군에서 직영하거나 민간에 경영을 위탁, 또는 민간 성매매 시설을 군용으로 지정한 것 등 다양한 형태의 위안소가 있었지만 모두 일본군이 관리ㆍ감독했다”며 “위안소 외에 점령지와 전선에서 부대가 현지 여성을 감금하고 강간해 사실상 ‘강간소’라고 불러야 하는 곳도 있었고 특정 장교의 전용으로 뽑힌 여성도 있었는데,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일시적으로라도 다수의 일본군 장병 편의가 도모됐던 장소는 위안소로 기재했다”고 밝혔다.
wam은 향후 지속적으로 일본군 위안소 관련 제보를 받아 웹사이트에 반영할 예정이다. 이 웹사이트를 접한 누리꾼들은 “일본내에서 이런 지도를 만드는데, 우리나라에 ‘돈 받았으면 됐지 왜 일본한테 뭐라고 해서 나라를 어지럽히냐’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씁쓸하다”(타****), “양심있는 일본 시민단체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진실은 언젠가 다 밝혀질 것이다”(휘****) 등의 의견을 남겼다.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혐한 증폭기’ 일본 TV 와이드쇼
일본에서 오전 또는 낮 시간대 TV를 켜면 어느 채널이건 예외 없이 ‘정보프로그램’을 방영한다. 사회자 외에 5명 안팎의 패널이 등장해 뉴스와 예능, 생활정보 등에 대해 제작진이 마련한 리포트를 보고 의견을 주고받는다. 테마가 다양하고 방송시간도 2시간이 넘기 때문에 ‘와이드쇼’로도 불린다. 1964년 일본교육방송이 미국 NBC의 뉴스·정보프로그램 <투데이>를 본떠 만든 <모닝쇼>가 성공을 거두자 다른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도입했다. 와이드쇼는 시청률 확보를 위해 뉴스프로그램과 달리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이야기식으로 연출하며, 전문가 외에 입담 좋은 예능인들도 패널로 출연시킨다. 시청률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취재 가이드라인을 일탈하는 일도 심심치 않다. TBS 와이드쇼 제작진이 1989년 10월 옴진리교 비판에 앞장서온 사카모토 쓰쓰미 변호사의 취재영상을 옴진리교에 노출시켰다가 사카모토 변호사 일가족이 신도들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대표적인 폐해로 꼽힌다.
와이드쇼의 가장 큰 문제점은 뉴스의 희화화다. 심각한 사안을 흥미 본위의 만담거리로 만들어 시청자들의 정치의식을 마비시킨다. 일본 미디어비평가들은 국회에서 중대한 법안 등이 다뤄질 때마다 와이드쇼가 연예계 스캔들 등을 떠들썩하게 방영해 유권자들의 눈길을 돌려왔으며, 때로는 정권이 방송사에 그런 주문을 해온 의혹도 있다고 지적한다.
와이드쇼는 한·일 갈등 국면에서 혐한 정서를 확산시켰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조국사태’가 한창이던 9~10월 일본 TV들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의혹 보도 건수(878건)가 비슷한 시기 가와이 가쓰유키 일본 법무상의 부정선거 스캔들 보도(181건)의 5배 가까운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4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포럼에서 이홍천 도쿄도시대학 교수는 “일본 법무상의 이름은 기억 못해도 조국 장관 이름을 모르는 일본인이 드물 정도”라고 했다. 이 교수는 “한국 정치와 한국인을 바보 취급하는 보도나 네트우익의 논리를 와이드쇼가 여과 없이 소개하고 있다”고 했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타국에 대한 편견과 증오를 부추기는 와이드쇼를 ‘혐한 증폭기’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서의동 논설위원/ 한겨레
한겨레 사설]검경 ‘휴대폰 쟁탈전’이 보여준 국정의 현실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서 일했던 검찰 수사관의 사망 사건을 조사하겠다며 경찰이 휴대전화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에서 기각됐다. 앞서 검찰은 지난 3일 수사관이 남긴 휴대폰 등 유류품을 사망 하루 만에 모두 가져갔다. 변사(變死) 사건에서 경찰이 사인을 수사하는 도중 검찰이 뛰어들어 증거물을 통째로 가져간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검찰은 “변사자 부검 결과, 유서 등 객관적인 자료와 정황에 비춰봤을 때 타살 혐의점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경찰이 숨진 수사관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경위를 밝히겠다는 건 타살 혐의가 있어서가 아니다. 고인은 검찰 조사를 앞두고 “앞으로 힘들어질 것 같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9장 분량의 유서 중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보내는 내용이 3장이었는데, 그 안에는 “가족들을 배려해주시길 부탁드린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6급 수사관이 검찰총장에게 가족의 미래를 부탁한다는 건 언뜻 상상하기 힘들다. 검찰이 가족과 관련된 별건·강압수사를 통해 그를 압박하지 않았나 의심이 드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검찰은 해당 휴대폰의 포렌식 작업 결과도 경찰과 공유할 수 없다고 한다. 가히 ‘셀프 수사’라 할 수밖에 없다.
경찰은 6일 휴대전화 압수수색 영장을 재신청했다. 경찰은 “검찰은 하명수사 의혹을 수사하면 되고, 경찰은 변사사건을 수사하면 된다”고 했다. 그 말이 틀리지 않다. 이를 놓고 ‘검경 갈등’이나 ‘기싸움’으로 보는 건 좁은 시각이다.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당시 경찰은 사인 규명을 위한 부검을 방해했고, 검찰은 공정한 부검을 관철시키려 했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측과 밝히려는 측이 부닥쳤을 뿐 아무도 이를 ‘검경 갈등’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 윤석열 총장체제에서 검찰은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권력기관처럼 행세하고 있다. 수사지휘권을 갖고 있다고 해서 검찰이 절대 선(善)일 수는 없다. 검찰은 ‘셀프 수사’ 불신을 해소하고 객관성이 보장되는 방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의당 작동되어야 할 정부 내 조정 기능이 마비돼 있다는 점이다. 통상 검경 간 이견이 맞설 경우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조정하는 게 관행이었다. 그러나 현재 민정수석실은 여러 사건들로 불난 집 신세인 데다 개입할 처지도 아니다. 딱한 노릇이다. 이 때문에 어느 때보다 상호 협조가 필요한 국가수사기관이 다투며 공권력을 낭비하고 있다. 국정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지 않다는 한 사례다. 비슷한 일이 다른 곳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가난한 노인이 스마트폰 더 못 다룬다
KISDI 디지털 디바이드 실태 보고서… 앱 설치 가능 고령층 7.5% 그쳐 , 노인 내 디지털 격차도 커
스마트폰 앱 설치, 업데이트를 할 수 있는 고령층은 7.5%에 그쳤다. 세대 간 ‘디지털 격차’도 문제지만 노인층 안에서도 디지털 격차가 나타났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최근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의 실태’ 보고서를 발간했다. 디지털 디바이드는 디지털 정보격차를 의미한다.
[관련기사: 노인들은 우리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컴퓨터 활용 능력을 살펴본 결과 65세 이상 고령층은 10%만 컴퓨터를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포털/검색 사이트 정보 검색은 18.4%, 인터넷뱅킹은 7%, 온라인쇼핑 및 온라인 예약/예매는 6.5%, 이메일 열람 및 확인은 11.3%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20~30대는 96% 이상이 이들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gettyimagesbank.
스마트폰 활용 능력의 경우 65세 이상의 고령층은 문자메시지 열람과 확인을 할 수 있다는 응답이 62.1%, 인스턴트 메신저 열람과 확인 37%, 무선 네트워크 설정 17%, 앱 설치나 업데이트 7.5%, 파일 컴퓨터로 이동 5.7% 로 나타났다. 20~40대는 93% 이상이 이들 기능을 활용할 수 있었다.
기기 보유 조사결과 20~40대는 99% 가량이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었다. 60대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79%, 70대의 경우 35%로 연령이 높을수록 스마트폰 보유율이 떨어졌다.
노년 가구의 스마트 TV, 데스크톱 컴퓨터, 노트북 컴퓨터, 태블릿 PC 등 보유율이 다른 세대보다 크게 낮게 나타났다. 특히 노년 가구의 노트북 보유율은 1.4%에 불과했으며, 태블릿 PC 보유율은 0%다.
▲ 고령층의 PC 및 스마트폰 활용. 자료=KISDI
고령층 내에서도 미디어 활용능력에 격차가 컸다. 미디어 활용능력을 갖춘 고령층 가운데 월 소득 100만원 미만은 59.6%에 그친 반면 미디어 활용능력을 갖추지 못한 고령층은 91.5%로 나타났다. 미디어 활용 능력을 갖추지 못한 고령층 가운데 77.8%가 무직, 75.3%가 초졸 이하 학력이었다.
보고서는 “디지털 격차 완화를 위한 노년가구의 스마트폰 보급 확대 정책 및 스마트폰 활용 능력 교육 정책이 필요한 것으로 보이며 이 정책은 소득이 낮은 노인 가구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 고령층 내 디지털 격차. 자료=KISDI
지난해 시청자미디어재단이 주최한 미디어 교육 컨퍼런스에서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디지털 역량이 삶의 만족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그가 2017년 실시한 '노인집단 내 정보격차와 그에 따른 삶의 만족도 연구'에 따르면 독거노인, 부부노인 가구가 3세대가 함께 사는 노인들보다 디지털 접근성과 역량, 활용성은 물론 삶의 만족도까지 떨어졌다.
디지털 정보격차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면서 한국정보화진흥원, 시청자미디어재단, 한국언론진흥재단 등이 노인 대상 디지털·미디어 교육을 주관하고 있다.
이번 조사는 2018년 한국미디어패널조사에 포함된 4162가구의 가구원 9426명을 대상으로 분석했다. 금준경 기자 teenkjk@mediatoday.co.kr
‘6억 시계 완판’ ‘4900원 와인 불티’…우리가 ‘사는’ 다른 세상
ㆍ백화점 명품매장 20대 구매객 2년 새 7.5배…대형마트 할인행사엔 수백만명 북새통…
ㆍ유통업계 흥행상품, 초고가 아니면 초저가
ㆍ날로 심해지는 소비 양극화
현대백화점에서 전시·판매하는 총 327개의 다이아몬드로 만든 ‘하이 주얼리 댄서 익셉셔널 피스 브레이슬릿 워치’(6억8800만원) 등을 홍보모델이 선보이고 있다. 왼쪽은 롯데백화점이 판매하는 6억원대 후반의 시계인 예거 르쿨트르의 ‘마스터 그랑 트래디션 투르비옹’. 현대백화점·롯데백화점 제공
# 롯데백화점은 스위스 브랜드 예거 르쿨트르가 만든 6억원대 후반의 최고급 시계 ‘마스터 그랑 트래디션 투르비옹’을 전시·판매 중이다. 이 시계는 이미 복수의 구매자가 사간 것으로 파악됐다. 초고가인데도 들여놓으면 바로 팔리는 인기 상품이 된 것이다.
지난 11월2일 서울 성동구 이마트 성수점이 마련한 대대적 할인행사에 고객들이 아침부터 줄지어 서 있다. 신세계는 이번 ‘대한민국 쓱데이’에 600만명이 찾았다고 집계했다. 오른쪽은 지난달까지 약 100만병이나 팔린 한 병에 4900원인 도스코파스 와인. 이마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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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병에 4900원짜리 도스코파스 와인은 이마트에서 지난달 24일까지 92만병 넘게 팔려나갔다. 지난달 2일 신세계의 대대적 할인행사인 ‘쓱데이’는 일부 매장에서 점포가 문을 열기 전인 이른 아침부터 소비자들이 긴 줄을 서는 등 대성공을 거뒀다.
최근 소득 불균형을 반영하는 소비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명품 소비가 증가세를 보이는 한편, 대형마트의 초저가 상품이나 온라인몰의 할인 또한 큰 인기를 얻는 등 유통업계 흥행 상품은 ‘명품’과 ‘할인품’으로 양분되는 모습이다.
8일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지난 5월 판매를 시작한 고급 시계인 마스터 그랑 트래디션 2종(6억원 후반대 1종, 3억원대 1종)은 모두 완판됐다. 최근 추가로 1세트가 예거 르쿨트르 본사에서 공수됐다. 롯데 측은 “초고가 시계는 희소성 자체가 상품 가치여서 (해당 시계의) 판매 수량은 공개할 수 없다”며 “최근 각 1점씩 더 들여놓은 건 맞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과 갤러리아백화점이 6억원대 초고가 시계를 최근 전시·판매하기 시작한 것도 단순히 ‘고급 매장’ 이미지를 보여주는 차원을 넘어 실제로 팔리기 때문이다.
명품 구매는 더 이상 중장년층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롯데멤버스가 설문조사 및 엘포인트 거래 데이터 등을 분석한 결과 국내 명품 시장은 지난 2년간 약 3.5배 커졌다.
특히 20대의 명품 구매 건수는 2년 새 7.5배 늘었고 연령대별 비중 또한 5.4%에서 11.8%로 2배가량 커졌다. 이에 백화점 업계는 세일 기간은 확 줄이는 대신 ‘소비력이 뛰어난 고객’을 겨냥하는 방향으로 판매 전략을 급속도로 전환하고 있다(경향신문 10월14일자 21면 보도). 엘포인트는 롯데 내부 회사 30여곳과 제휴 업체 180개 이상의 3900여만명 데이터를 반영한다.
그렇다고 저가 할인 제품의 인기가 사그라든 건 아니다. 쿠팡이나 이베이코리아 등 경기 불황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싼 제품을 팔겠다는 온라인몰들의 저가 경쟁과 매출 성장이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도 초저가 경쟁에 합류했다.
특히 지난 2분기 299억원의 창사 후 첫 분기별 영업손실을 기록해 충격에 빠졌던 이마트는 8월부터 도스코파스 와인 등 초저가 제품들을 앞세워 영업이익 1162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지난달 그룹 차원의 할인 행사인 ‘쓱데이’ 하루 동안 600만명의 고객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주요 유통업체는 고가 상품에 대한 수요 증가와 초저가 상품의 인기 모두에 주목하고 있다. 백화점 등을 중심으로 고급 제품을 전면에 내세우는 동시에 온라인 e커머스 사업 등을 확대해 할인 경쟁을 본격화하는 등 ‘두 토끼 잡기’에 나섰다.
황윤희 롯데멤버스 빅데이터부문장은 “소득 격차를 나타내는 소득 5분위 배율 등을 보면 소득 불균형이 지속적으로 심해지고 있다”며 “이로 인해 저가나 고가 상품만 잘 팔리는 소비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홍재원 기자 jwhong@kyunghyang.com
“복지 지출 적어도 불만 표출 않는 건 국가 아닌 사적 해결이 몸에 익은 탓”
공공상생연대기금은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이 ‘상생과 연대’를 실천하기 위해 기금을 출연해 설립한 공익재단이다.
이날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는 한국 복지체계에 필요한 변화와 향후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사회적 가치에 대한 학자들의 제언이 쏟아졌다. 토론회는 지난 60년간 한국의 성장 요인과 향후 과제를 논의하는 1부 ‘대한민국 60년, 성찰과 모색’과 향후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사회적 가치에 관해 논의하는 2부 ‘공공부문의 사회적 가치 실현, 현황과 과제’로 나뉘어 진행됐다.
■ 토론회 주요 키워드 ‘복지국가’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 수십년간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끈 요인에 대해 “권위주의 개발국가가 재벌 대기업에 자원을 몰아줬기 때문”이라며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권위주의 국가였다는 것이 성공의 이유였지만, 앞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는 우리가 걸어왔던 성공의 길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권위주의 개발국가 시절에는 “(재벌 주도의) 경제 성장이 일자리를 만들고, 일자리가 불평등을 완화했으며, 불평등이 빈곤을 완화하는 형태”의 복지체계가 작동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어디까지나 저임금·장시간 노동과 결합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만, 성장률이 떨어지고 일자리가 줄어든 지금은 그조차도 불가능한 상황”이라면서 “개발국가 형태의 복지체계는 1990년대 초중반 이후 해체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의) 사회보험은 정규직 등 고용이 안정된 노동자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며 “조세부담률을 올리지 않으면 사회보험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국가가 경제성장률에만 목을 매느라 복지가 뒷전으로 밀리면서,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사적’으로 복지를 해결해 올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저성장·일자리 감소 추세
불평등 완화 기대 어려워
조세부담률 올려야 할 때
전병유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와 비교해 다른 나라들은 면세자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사람들이 세금을 내고, 그 세금을 복지로 되돌려받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면서 “국가의 복지지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복지에 대한 불만이 많이 표출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사는 방법’을 찾아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가가 책임을 방기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족과 시장을 통해서 복지를 해결하는 방법을 체득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 성장 우선주의의 한국 사회에서 복지는 항상 ‘성장’보다 뒷전이었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에서도 ‘복지’라는 단어는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빈약한 사회안전망이 계층 갈등을 악화시키면서, 이것이 투표에 반영되기 시작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개인이 갖고 있는 재산에 따라 투표 행태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앞으로는 정당이 ‘계층’을 불러낼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향후 정치에서는 노동이나 복지 등 여러 측면에서 정당과 정치, 정책이 제대로 만날 가능성이 높아질 거라는 기대도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사회적 가치, 도출과정 중요”
공공기관 ‘사회적 가치’ 인식
‘성과용’ 경제적 형태로 접근
뭘 추구할지 합의 우선돼야
토론회 2부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공공기관 경영평가 중 주요 항목으로 삼고 있는 ‘사회적 가치’의 실현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토론회 참여자들은 과연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가 먼저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승협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적 가치는 미리 규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에 대해 사회 구성원들이 협의를 해 나가야 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그런 게 없으니 공공기관들이 그냥 경영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활동을 ‘사회적 가치’라고 규정하고 이를 일방적으로 도입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대부분의 기관들이) 사회적 가치를 경제적 형태로 바꿔서 ‘우리는 몇천억원의 사회공헌활동에 투자했다’고 홍보하는 식인데, 이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몰이해”라며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실현하고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접근하다보니 ‘사회적 가치’란 말만 남발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주일 한국기술교육대 산업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기본적으로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지 논의해야 하는 배경들”이라며 “양극화에 대한 대처, 미흡했던 사회적 연대에 대한 대처, 정부 불신에 대한 대처가 (추구해야 할) 사회적 가치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비트코인에도 소득세 부과한다
내년 법개정 가상자산 과세키로… 양도·기타 소득 분류 놓고 고민
정부가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가상화폐)’ 거래에 소득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양도소득으로 볼지, 기타소득으로 분류할지의 구체적 과세 방식 결정만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가상자산 소득세 과세 방침을 정하고, 내년도 세법 개정안에 구체적 방식을 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가상자산은 가상화폐·암호화폐를 통칭하는 것으로, 가상화폐의 금융자산 속성까지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다’는 원칙에 따라 과세 방안을 논의해왔다. 가상자산 거래 과세 방안을 내년 세법 개정안에 담는 걸 목표로 관련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상자산 과세 논의는 2017년부터 이뤄졌다. 관련 법규를 개정해 과세 근거를 마련한 미국 일본 등과 달리 한국은 아직 가상자산에 대한 법적 개념도 정립하지 못했다.
정부는 가상자산 과세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우선 소득세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현행 소득세법에는 가상자산 거래로 얻은 소득을 규정하는 항목이 없다. 소득세는 법에 명시된 과세 대상에만 거둘 수 있다.
정부는 가상자산 거래로 얻는 소득을 양도소득으로 볼지, 기타소득으로 분류할지 고민 중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거래와 같은 양도소득으로 분류하면 과세 근거자료 확보를 위해 각 거래소로부터 가상자산 거래내역을 받아야 한다. 기준시가도 산정해야 한다.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고객 확인 및 이용자별 거래내역 분리 의무를 부과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거래내역 확보는 가능하다. 다만 이 법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가상자산 거래 소득을 상금, 복권 당첨금, 원고료 등과 같은 기타소득으로 분류하면 종합소득 성격을 띠게 돼 개별 거래에 세금을 매기지 못하고 연간 1회만 세금을 부과하게 된다.
또한 가상자산이 금융자산인지, 화폐인지를 둘러싼 쟁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미국 영국 등은 가상자산을 금융자산으로 보고 양도차익에 소득세를 매긴다. 이와 달리 국제회계기준(IFRS) 해석위원회는 지난 6월 가상화폐를 금융자산이 아닌 무형·재고자산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노무현 이후 3번째, 박원순이 쏘아올린 '대연정'
[取중眞담] 50년간 4차례, 독일 정치가 한국과 다른 점
▲ 박원순 서울시장이 11월 21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미세먼지 시즌제"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이 3일 오후 7시 국회에서 열린 토크쇼에서 내년 총선 이후 연정 수립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박 시장은 이틀 뒤 라디오 방송에서도 이 얘기를 또 했다.
듣는 사람들 입장에서 '생뚱맞은 얘기'였던 것은 틀림없다. 서울시장은 정치인이기보다는 행정가로 받아들여지고, 그런 사람이 여야가 날카롭게 대치하는 분위기에서 연정 얘기를 계속 꺼냈으니 말이다.
미리 밝히자면, 기자는 박 시장이 연정이라는 화두를 언젠가는 던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 시점이 이렇게 빠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박 시장은 그냥 행정업무를 챙기려고 서울시장이 된 사람이 아니다.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열망이 그를 시민운동으로, 더 나아가 정치에 발을 담그게 했다. 그런 사람의 눈에 앞으로 가지도, 뒤로 빠지지도 못하고 '꽉 막힌' 국회 상황이 얼마나 답답하게 보였겠는가?
최근 박 시장은 독일 기독교민주당-기독교사회당 연합(아래 기민당)이 사회민주당(사민당)과 2013년 총선 뒤 체결한 합의문을 입수했다. 양측이 4년 임기 동안 할 일을 나열한 합의문은 경제와 복지, 교육, 노동, 에너지, 사회통합, EU, 그리고 연방정부의 운영방식까지 240페이지(한국어 번역본 기준)에 걸쳐 세세한 부분을 짚어냈다.
"2022년까지 독일의 마지막 원전을 정지할 것"이라는 탈원전 담론부터 2015년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시급 8.5 유로)과 근로자파견법 확대 등등 다양한 이슈들이 정리되어 있다. 계약서 만들어놓고도 '문구 해석'으로 날 새우는 식의 싸움은 안 하려는 독일식 합리주의가 묻어나온다.
"의회 내에 설치되는 각종 위원회에서 연정의 참여노선과 의결 사항에 반하는 의사 표명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대목도 눈에 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식의 연정을 시행하려고 하면 당장 '연정독재'라는 반발에 부딪힐 것이다.
어쨌든 이 정도로 깊이 있는 합의를 한 독일식 연정이 박 시장은 꽤 인상적이었던 듯하다. 그가 이 문건을 읽은 사실을 언급하며 '총선 후 연정' 얘기를 꺼낸 이유다.
박 시장이 감명받은 독일의 대연정
2013년 합의문은 "약 50년 전 이루어진 첫 번째 대연정이 당시에 직면한 경제적 도전에 대한 대책으로 경제안정법과 성장법을 통과시켰다"고 기록했다. 양쪽 모두 이득을 본 과거의 경험이 지금의 만족스러운 '대연정 협상'을 이뤄냈다는 평가인 셈이다.
독일 대연정의 역사는 1966년 11월 28일 서독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민당 쿠르트 키징거 총리가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와 칼 실러를 부총리 겸 외무장관과 경제장관에 각각 기용하는 등 내각의 알짜배기 요직들을 내놓기로 한 것이다. 기민당은 전통적으로 중도노선의 자민당을 연정 파트너로 삼아왔는데, 자민당이 예산 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연정을 탈퇴하자 정국 안정을 위해 '적과의 동침'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 신문들은 '서독 대연정'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4.19 이후 의원내각제로 정체를 바꿨다가 1년 만에 실패하고 대통령제로 회귀한 상황에서 대연정은 '너무 먼 얘기'로 들린 듯하다.
독일(서독) 정치는 우리나라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편 가르기'와 이념 갈등은 이곳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1875년 4월 22일 창당된 사민당은 "모든 '합법적인 수단'을 활용하여 자본주의를 전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마르크스주의 강령으로 무장했다. 마르크스주의를 증오했던 히틀러가 집권하자 사민당 당원들 상당수가 유대인과 함께 척결 대상으로 지목돼 모진 박해를 받았다. 나치 독일이 패망한 후 반(反)히틀러 노선의 콘래드 아데나워가 우파의 새로운 기수로 기민당을 이끌었지만, 좌파정당 사민당과의 보혁 대결 구도는 그대로 이어졌다.
전후 두 번째 총선(1953년)에서 아데나워의 기민당은 표면상 마르크스주의를 철회하지 않은 사민당을 겨냥해 "모든 마르크스주의자의 길은 모스크바로 통한다"고 공격했다. 선거 때마다 색깔론 공격을 견디다 못한 사민당은 아데나워 집권 10년 만에 '생산수단의 사회화' 같은 마르크스주의 강령을 벗어던졌다.
▲ 1953년 서독 연방의회 선거 포스터. 콘래드 아데나워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은 표면상 마르크스주의를 철회하지 않은 사민당을 겨냥해 “모든 마르크스주의자의 길은 모스크바로 통한다. 그러니 기민당에 투표하라”고 선전했다. ⓒ commons.wikimedia.org
기민당은 미국의 지원(마셜 플랜)과 세계 경제의 호황에 힘입어 장기집권했지만, 히틀러 집권 시절 나치의 편에서 좌파를 탄압하거나 수수방관한 우파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지 못했다. 1953년 연방의원에 당선된 509명 중 129명이 나치당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었다.
'1966년 대연정'의 두 주인공을 디트릭 올로 교수는 <독일현대사>에서 이렇게 소개했다.
"젊고 야심 찬 직업 외교관이던 키징거는 1933년 나치당에 가담했다. 제3제국 시기 외무부의 선전 부서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명목상 당원 자격을 유지했다. 반대로 빌리 브란트는 10대에 나치 독일에서 도망쳤고, 2차대전 시기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 망명하는 동안 나치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제 강점기 해외를 떠돈 좌파 독립운동가와 전직 친일 관료의 '야합'이었지만 이들은 서로의 과거나 노선을 묻어두는 길을 택했다.
개성이 강한 두 지도자의 연합은 오래 가지 못했다. 3년 뒤 총선(1969년)에서 빌리 브란트의 사민당이 중도파 자민당과의 연합해 의회 과반수를 얻게 되자 키징거의 기민당은 다시 야당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대연정의 경험이 헛수고는 아니었다.
▲ 1966년 11월 28일 서독연방의회 1당(기민당)과 2당(사민당)이 대연정에 합의했다.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가 기민당 쿠르트 키징거 총리, 다섯번째가 사민당 출신 외무장관 빌리 브란트 ⓒ Commons Wikimedia
물과 불의 조화... 한국에선 왜
1982년 새 총리에 오른 기민당 헬무트 콜 총리는 TV에 나와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계승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념이 다른 정파가 권력을 잡으면 전 정권의 성과를 일체 부정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악순환'을 벗어나는 선택을 한 셈이다.
앙겔라 메르켈이 기민당을 이끈 최근 14년 동안에는 원내 1당과 2당이 연합하는 '대연정'이 세 차례(10년)나 성사됐다. '조정의 달인' 메르켈의 개인기 덕이겠지만, 대연정은 큰 잡음 없이 순항했다(대연정 유지에 비판적인 사민당 새 지도부가 최근 등장하며 메르켈은 이들과 재협상을 해야 할 처지가 됐다).
독일인들은 대연정을 '물과 불의 조화'라고 지칭한다. 여야의 긴장 관계 속에서 권력의 감시와 균형을 이루는 의회민주주의의 본질을 거스른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독일의 경험을 복기해 보면, 거대 양당의 연합 정치가 불필요한 감정 소모전을 상쇄시키고 분단 독일이 통일로 가는 분기점이 된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연정(1998년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DJP)은 있었지만 '대연정'은 실현된 적이 없다. 그러나 두 차례의 중요한 시도가 있었다.
2005년 7월 28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선거제도 개편을 고리로 한 대연정을 제안한 것은 유명하다. 당시 여당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 '깜짝 제안'이었다. 그해 8월 29일 경남 통영에서 열린 연찬회에서 유시민·윤호중·이목희·정청래·조경태 의원은 대연정을 지지했지만, 강기정·김영춘·문학진·송영길·우원식·이은영·임종인 의원 등은 반대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5년 7월2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정관련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의 개혁을 피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노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권력을 통째로 내놓으라면 검토해 보겠다"며 구애했지만, 키를 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청와대 회담 자리에서도 "안 된다"고 쐐기를 박았다. 잇따른 재보선의 승승장구로 정권 탈환을 확신하고 있던 한나라당은 노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꼼수' 정도로 치부했다.
박근혜 대표와의 회담 다음날 UN 총회 참석 및 중남미 순방을 위해 출국한 노 대통령은 전용기에서 내리면서 "당분간 대연정 얘기는 하지 않겠다"고 말문을 닫았다. 그러나 대통령이 대연정을 공론화할 기회는 영영 찾아오지 않았다. 대연정을 제안한 노 대통령에겐 "야당 기 살려주고 지지층만 분열시켰다"는 멍에가 씌어졌다.
두 번째 시도는 대중들의 기억에 그다지 선명하진 않지만, 2013년 1월 21일 문희상 민주당 비대위원장 입에서 나왔다. 민주당은 2012년 대선에서 졌지만, 새누리당 박근혜 당선자가 경제민주화와 복지 등에서 진보진영에서도 관심을 가질 공약들을 많이 내놓았으니 박 후보 공약과 민주당 공약 중 합의를 도출할 '대선공약실천위원회'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양측이 대선공약 실천에 대한 포괄적 합의에 이른다면, 박근혜 정부로서는 국회를 무력화 시킬 정도의 거대 의석(127석)을 가진 제1야당의 도움을 받아 순항할 기회였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머뭇거리는 사이 2012년 대선 직전에 터진 '국정원 댓글' 사건은 취임 첫 해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며 정국을 흔들어놓았다. 2013년 4월 21일 문 위원장은 국정원 댓글 수사중 좌천된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을 언급하며 "양심선언을 한 '광주의 딸'을 당력을 총동원해 지키겠다"고 정권과의 투쟁을 선언했다. 두 달 가까이 회자됐던 '대선공약실천위원회'도 없던 얘기가 됐다.
박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이른바 '경제활성화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했지만, 민주당의 벽을 넘지 못하자 2016년 총선에서 '판 갈이'를 시도했다. 박 대통령의 구상은 실패했고, 최순실 게이트까지 터지면서 불명예 퇴진했다.
우린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
촛불 집회의 열기에 힘입어 탄생한 문재인 정부도 현재 힘을 못 쓰기는 마찬가지다. 법을 임의로 통과시킬 수 있는 허들이 150석에서 180석으로 올라간 상황에서 선거법을 고쳐서라도 내년 총선에서는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보겠다는 심산이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한국 정치다.
물론 내각책임제에 기반을 둔 '독일식 대연정'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려면 풀어나가야 할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정치의 난맥상을 근본적으로 풀어보겠다는 논의가 진행된다면 발화자가 누구든 나는 일단 환영한다.
시민운동 시절에는 '아이디어 뱅크'였던 박 시장이 3선 시장을 거치면서 "기대에 못 미친다"는 얘기가 들리는 요즘이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제로페이 등에서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마이뉴스>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월례 조사에서 하위권을 맴도는 상황은 안타까움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기왕 얘기를 꺼냈으니 박 시장이 정치 분야에서도 전인미답의 성과를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손병관(patrick21) / 오마이뉴스
돈 몰리는 부동산 주식시장은 ‘꽁꽁’
시중자금이 부동산으로 쏠리는 현상이 여전한 가운데 주식시장은 상대적으로 투자자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2019년 3분기 중 가계신용(잠정)’ 자료를 보면 올 9월 말 현재 우리나라 전체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830조 3000억 원이다.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016년 말 715조 7000억 원, 2017년 말 770조 원, 2018년 말 808조 원으로 꾸준한 증가세를 지속했다. 올 들어 전체 주택담보대출 증가 규모도 1분기 4조 3000억 원, 2분기 8조 4000억 원, 3분기 9조 5000억 원으로 점차 커지는 추세다. 3분기에 아파트 매매와 전세자금 대출 수요가 늘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증가 폭이 전 분기보다 커졌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한은 “주택담보대출 잔액 증가”
예탁금·신용잔고 제자리걸음
국토교통부가 작성한 ‘부동산 공시가격에 관한 연차보고서’에서도 올 1월 1일 기준 전국 아파트 공시가격 총액은 2355조 6534억 원이다. 작년 1월 1일의 2138조 5452억 원과 비교하면 10.2% 늘어났다.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자 투자자들의 관심과 돈이 부동산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반면 코스피 시가총액은 2017년 말 1605조 8209억 원에서 작년 말 1343조 9719억 원으로 16.3% 줄었다. 지난 5일 기준 시총도 1384조 4028억 원으로 작년 말보다 3.0% 증가하는 데 그쳤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투자자가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에 맡겨 놓았거나 주식을 팔고서 찾지 않은 자금인 투자자예탁금은 지난 5일 기준 24조 8128억 원이다. 올 들어 이날까지 일평균 투자자예탁금은 25조 987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하루 평균 투자자예탁금 26조 9001억 원보다 6.7% 감소했다. 이정희 기자 ljnh@busan.com
세금 '0원' 집주인들이 서울 집값 폭등 주범
[기고] 정부 책임 추궁하는 경실련을 응원합니다
경실련이 서울집값 폭등과 땅값 상승에 대해 국토부 공무원 다수를 검찰에 고발하자 국토부가 해명자료를 냈다.
경실련의 고발 소식을 접했을 때 맘속으로 큰 박수를 보냈었다. 서울집값 폭등으로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는데, 그 고통의 가장 큰 책임이 국토부에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국민은 서울집값 폭등이 정부정책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 19일 '국민과의 대화' 중 시청자들로부터 실시간 질문을 받았는데, 1위가 "집값은 이미 오를대로 올랐는데 정부는 관망하나요?"였다. 정부가 제대로 된 정책을 실행하지 않고 관망만 해서 서울집값이 폭등했다는 질책이 담긴 질문이었다.
"정부가 관망만 해서 서울집값 폭등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잘못했다"거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집값이 안정됐다." "서울도 일부 고가아파트만 올랐다." "정부가 부동산정책을 잘하고 있다"는 말로 시청자의 분노를 치솟게 했다. 이런 대통령의 발언에 고무된 탓인지 국토부의 해명자료는 공격적인 문구 일색이었다. 경실련의 발표에 대해 "일방적 주장" "합리성 결여" "언론을 호도하고"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주장" 등으로 반박했다. 해명자료라기보다는 비난성명서를 방불케 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긴 서울집값 폭등에 대한 책임과 사과의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서울 주택가격 상승세는 뚜렷하게 둔화되어" "과거 주택시장 과열기의 상승폭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 등의 문구는 '국민과의 대화'에서 대통령이 한 발언의 판박이였다.
임대사업자들에게 엄청난 세금혜택을 제공한 이유가
경실련이 국토부 정책을 비판한 것 중 하나가 "임대등록 활성화가 투기세력에게 꽃길을 깔아준 것"이었다. 이는 사실을 매우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 "꽃길"이 어떤 꽃길인지는 국토부 공식문서에 나와있다.
국토부와 기재부 등 정부부처들이 2017년 12월 합동으로 발표한 '임대주택등록 활성화방안' 3쪽에는 '집주인'에 대한 혜택이 명시되어 있다. "지방세 감면 확대, 임대소득세 감면 확대, 양도세 감면 확대, 종부세 감면기준 개선, 건보료 부담 완화"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세금혜택이 망라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는 엄격하게 적용하는 LTV·DTI 규제도 임대사업자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 맘껏 대출받아서 주택에 투자하라고 권고하는 문서였다.
이런 엄청난 혜택을 제공한 이유에 대해 국토부는 이렇게 해명한다. "임대료 상승 제한(연 5%) 및 의무 임대기간(4·8년 이상)으로 임차인의 거주 안정성이 보장"되었다고 한다.
임대료를 매년 5% 인상하면 올릴 만큼 올리는 것 아닌가? 의무임대기간이라는 것이 필요한 이유도 이해할 수 없다. 다주택자들이 자기가 거주하지 않는 집을 세놓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세를 받기 위해 세를 놓는다. 그런데 국토부는 마치 의무임대기간을 정하지 않으면 임대인이 세를 놓지 않아서 임차인이 살 집을 구하지 못할 것처럼 말하고 있다. 국민을 기만하는 해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임대주택 매입수요로 서울집값 폭등
엄청난 세금혜택과 금융혜택을 제공했으니 돈 있는 사람들이 서울주택을 사재기했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국토부가 2018년 7월 발표한 보도자료 '2018년 상반기 임대사업자 7.4만명이 17.7만채 신규등록'을 보면 구체적인 수치가 나와있다.
그 자료의 부제는 '작년동기 대비 각각 2.8배 및 2.9배 증가'다. 임대주택등록이 2.9배나 급증한 이유에 대해 "작년 12월 발표한 '임대주택등록 활성화방안'의 정책효과가 본격화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 자료 4쪽에는 "상반기 중 등록된 17.7만채 중 서울이 6.6만채" 즉 37.3%라고 제시한다. 2018년 전체로는 서울에 약 14만채의 임대주택이 신규 등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해 서울에 신규 공급된 주택은 1.8만채였다. 실수요자의 주택매입을 제외하고 임대주택 등록을 위한 신규매입만으로도 신규공급의 몇 배에 달했으니 서울집값이 폭등하지 않으면 더 이상한 일이었다.
"강남권 고가주택 상승과 관련 없다"는 거짓말
보도자료 6쪽에는 "서울에서는 강남권(서초·강남·송파·강동)이 등록실적의 40.1%를 차지하였으며"라고 나와있다. 국토부 보도자료 내용을 종합하면 이런 내용이다. 임대사업자에게 세금혜택을 제공하자 임대주택등록이 급증했는데, 주로 서울에 집중되었다.
서울의 임대주택등록의 절반은 기존 보유주택을 매도하지 않고 임대주택으로 등록했다고 해도 나머지 절반은 신규 매입했을 것이다. 그럴 경우 2018년에만 서울에서 약 7만채의 매입수요가 발생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신규공급의 4배에 달한다. 서울집값 폭등의 가장 큰 원인이 임대사업자 세금혜택이었음이 매우 명백해진다.
서울에서도 강남지역에 임대주택등록이 집중되었으니 강남집값이 더 급등한 이유도 임대사업자 세금혜택이었다. 이처럼 명백한 사실에 대해 국토부는 또 거짓말을 한다. "등록 임대주택 세제혜택은 ... 강남권 고가주택 상승과 관련은 높지 않음"이라는 거짓해명을 내놓는다.
"과도한 세제혜택을 합리적으로 조정했다"는 거짓해명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혜택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일자 국토부장관은 TV 카메라 앞에서 그 혜택을 축소할 것처럼 발언했다. 그러나 2018년 '9.13대책'에 포함된 조치는 "폐지"는커녕 "축소"라고 할 수도 없었다. 2019년 이후 매입한 주택에 대해서만 혜택의 일부를 축소했기 때문이다. 2018년 말까지 등록된 136만채는 엄청난 세금혜택을 그대로 누리도록 했다. 그 중 서울이 약 50만채로 추정된다.
통계청의 '2018년 주택소유 통계'에 의하면 서울에서 다주택자가 투자목적으로 소유한 주택이 약 80만채다. 그 80만채 중 약 50만채가 임대주택으로 등록되었다. 서울집값이 하락하려면 다주택자의 투자목적 주택이 매물로 나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임대주택이 매물로 나와야 한다.
그러나 엄청난 세금혜택을 계속 제공하고 있으므로 매물로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일부 과도한 세제 혜택은 합리적으로 조정"했다고 해명하고 있으니 국민의 눈을 속이는 해명이라 할 것이다.
폭등한 서울집값을 하락시킬 의지 전혀 없음
경실련이 "현 정부 출범 이후 서울 아파트 값이 평균 4억원 상승하였다"고 제기한 사실도 국토부는 부정한다. 그러면서 "서울 주택가격 상승세는 뚜렷하게 둔화되어" 왔고, "과거 주택시장 과열기의 상승폭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해명한다.
국토부의 시각은 서울집값이 안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서울집값을 하락시킬 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없다는 말 아닌가. 경실련은 문재인정부에서 4억원 상승한 집값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라고 요구하는데, 국토부는 더 이상 오르지 않으면 됐지 않느냐고 대답한다.
'국민과의 대화'에서 대통령은 폭등한 서울집값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의지가 전혀 없음을 내비쳤는데, 국토부의 시각이 한 치도 다르지 않음을 해명자료에서 또다시 확인한다.
경실련의 용기있는 행동에 시민단체와 국민이 동참하길 기대한다
경실련의 문제제기와 책임자 처벌 요구는 매우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대다수 국민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 동안 서울집값 폭등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침묵을 지켜온 것이 사실이다. 국토부가 공격적인 해명자료를 내고 한술 더 떠서 경실련에 공개토론을 제안하는 안하무인의 행동이 이런 침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경실련의 고군분투에 많은 시민단체가 동참하길 기대한다. 나아가 국민 다수가 경실련의 용기있는 행동에 함께한다면 서울집값 하락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송기균 송기균경제연구소장 / 프레시안
공수처법, 어디로 가나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권력기관과 국민의 신뢰
공수처 설치에 대하여 자유한국당 등에서 반대가 심하다. 학계에서도 이미 이러한 찬반 논의가 있었다.
공수처 설치에 대한 국민들의 찬반은 최근에도 찬성 의견이 높았다. 오늘날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잃고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을 받게 된 데에는 검찰 스스로의 잘못이 가장 클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검찰의 비독립적 조직과 견제 받지 않는 과도한 권한이라는 제도적 문제로부터 기인하는 것이었다.
국회에서 패스트랙으로 본회의에 곧 부의될 공수처 법안은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 안 두 개다. 현재 각 당이 과반수를 점하지 못해 단일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두 법안 모두 부결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단일안을 만드는 것이 필수 불가결하다.
직접 수사권과 기소권, 공소유지권을 모두 갖는 공수처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인 현재의 검찰을 답습할 우려가 있고, 기소와 직접 수사의 분리라는 선진국의 경찰과 검찰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다. 영장청구권은 가지도록 하고. 기소권은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검사의 대상 범죄만으로 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공수처를 비롯한 모든 권력기관의 존폐는 민주적 통제 속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경찰, 검찰, 법원, 공수처 등 권력기관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의 인권보장을 위한 법치주의 실현에 이바지하여야 할 것이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와 권한 남용에 대한 견제 장치의 필요성
최근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에 대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뇌물수수)에 대하여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였다. 일부 범죄가 무죄이고, 나머지 범죄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검찰이 애초 김 전 차관에 대한 1차와 2차 수사를 제대로 하였다면 나머지 범죄도 공소시효가 지나기 전에 기소를 할 수 있었고, 법원도 유죄판결을 선고하였을 것이기 때문에 검찰의 제식구 감싸기에 대한 비판 여론과 함께 공수처의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었다.
한편 미국에서는 우리와 다르면서도 유사한 이유로 2019년 3월말 뉴욕주는 뉴욕주 검사감독위원회 소속으로 11명의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주 산하 62개 지역 검사들의 비윤리적이고 비전문가적 불법 행위에 대한 조사권을 가지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 특위는 청문회 개최권, 증인 및 관계자 소환권, 그리고 해당 사건과 관련한 모든 수사기록과 문서 열람권을 갖는다. 우리나라 공수처 반대론과 같이 뉴욕주 검사들은 이 특위가 위헌이라고 주장한다. 즉 자기들은 행정부 산하 선출직 공무원임에도 사법부와 입법부가 특위 구성원을 임명했다는 것을 이유로 한다.
특위 설치 배경에는 검사의 불법적 권한 남용(prosecutorial misconduct)이 있다. 미국 검사들의 불법 행위는 주로 "유죄거래협상"(Plea Bargain)에서 이뤄진다. 이 협상에서 검사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다. 즉 공개재판과 달리 유죄거래협상은 증거 등이 공개되지 않으므로 비윤리적인 검사들은 수사도중 불법 취득한 증거와 또는 증인 압박에 의한 거짓 증언을 변호인에게 숨기면서 피의자에게 유죄거래협상을 압박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다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이 생겨났으나 불법을 자행한 검사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이러한 사건을 계기로 뉴욕주 의원들이 검사의 부당행위 조사를 위한 특위 구성 법안을 만들었고 쿠오모 주지사의 승인으로 통과된 것이다.
공수처 설치 찬성과 반대론
문재인 정부는 2017년 7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설치 방침을 밝혔다. 이후 법무부가 2017년 10월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비리 수사를 전담할 독립기구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위한 자체 방안을 발표했다. 검찰 개혁 방안의 하나로, 전직 대통령·국회의원·판검사·지방자치단체장·법관 등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의 비리를 수사, 기소할 수 있는 공수처를 설치하고,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권, 기소권, 공소유지권을 공수처로 이양하여, 검찰의 정치 권력화를 막고 독립성을 제고하는 것이 그 취지다.
공수처 설치에 대하여 자유한국당 등에서 반대가 심하다. 학계에서도 이미 이러한 찬반 논의가 있었는데 이를 살펴본다. 먼저 공수처 설치 주장의 출발점은 공직비리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처리를 위해서 기존 검찰조직과는 달리 독립된 비리전담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장의 논거는 크게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권력형 부패사건에 대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및 공정성 문제를 해결하고, 검찰의 수사권, 기소독점ㆍ편의주의 등 막강한 재량권을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무위원회안도 "특별감찰관제도 등 기존 제도가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비리를 제대로 방지하지 못한 사실은 국정농단 사건, 검찰간부 비리사건 등에서 입증되었기에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공수처 설치는 반드시 필요하며", "검찰비리는 경찰이 수사하기 어렵고 검찰의 경우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있어 공수처가 검찰비리를 방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대안"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중립적 성격의 추천위원회가 공수처장을 추천하고 공수처 검사는 인사위원회를 통해 임명되므로 높은 정치적 중립성 및 독립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사정기관의 권력분점으로 경쟁을 높임으로써 검찰의 정치적 부담을 덜고 검사를 비롯한 고위공직자들의 부패행위를 효율적으로 엄벌하자는 것이다. 즉, 현 특별검사제는 정치적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상기간 한정으로 성과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민정수석 사건에서 보듯이, 특별감찰관 제도가 한계를 노출했다는 것이다.
셋째, 검찰비리는 경찰이 수사하기 어렵고 검찰의 경우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있으므로 공수처를 설치하여 검찰비리를 수사 및 기소하는 것이 검찰비리를 방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 검찰 자신의 비리에 대한 수사를 비롯하여 검찰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는 검찰 스스로 담당하는 것에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는 견해도 동일한 입장으로 볼 수 있다.
넷째, 해외사례를 볼 때 고위공직자에 대한 독립사정기구를 설치하는 경우 사회적 효용이 큰 것으로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공수처 설치의 필요성에 대하여 국민 대다수가 공감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공수처 설치에 대한 반대 논거들은 주로 찬성 논거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공수처 설치의 부작용을 강조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반대 논거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현재의 상황은 별론으로 하고 공수처가 고위공직자 부패사건을 처리하는 데에 있어서 오랜 세월동안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서 투쟁해 온 검찰보다 더 중립성이 보장될 수 있는지 의문이고,
둘째, 검찰 권력에 대한 견제기능은 법원이 행사하는 것이 헌법상 원칙으로, 법원의 충분히 활용하도록 함이 헌법체계에 부합하며, 셋째, 공수처를 독립된 기구로 상설화하여 검찰과 함께 수사할 수 있도록 한다면 필연적으로 수사권이 이원화될 수밖에 없는데, 인권을 다루는 국가기관의 업무에 사기업과 같은 경쟁의 원리를 도입할 수는 없으며,
넷째, 대통령 직속 사정기관으로 변질될 경우 오히려 입법부와 사법부에 대한 통제에 더욱 주력할 우려가 있고, 독립기구로 설치하더라도 그 장을 선거직으로 하지 않는 이상 임명권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임명직으로 하는 경우 여야간 이해관계가 대립하여 임명 자체가 어려울 수 있으며 향후 수사에 있어서도 정치적 중립성이 지속적으로 문제될 수 있고,
다섯째,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에 대한 부당한 차별로 평등원칙에 위배될 여지가 있으며, 여섯째, 행정작용을 담당하는 기구를 입법·사법·행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구로 설치할 헌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즉 헌법 제86조 제2항은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에 따라 행정각부를 통할하도록 하고 있는 바, 감사원과 같이 직접 헌법에 근거를 두어 예외로 지정되어 있는 기관을 제외하고는, 행정기능을 갖는 기관을 국무총리의 관할 외에 설치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헌법적 문제점, 실무상 문제점은 물론 이론적인 면에서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므로 공수처 설치보다는 검찰 자체 내 개혁이 더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설치에 대한 국민 여론
공수처 설치에 대한 국민들의 찬반은 최근에도 찬성 의견이 66.1%, 반대한다는 의견 26.9%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았다. 이러한 여론을 비추어 볼 때 공수처의 설치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본다. 또 이는 기존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상당히 누적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날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잃고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을 받게 된 데에는 검찰 스스로의 잘못이 가장 클 것이다. 권력기관인 법원과 검찰의 힘을 지탱하는 가장 밑바닥에는 국민의 신뢰가 자리한다고 볼 수 있는데, 검찰은 정권 등 외압이나 내부의 부조리로부터 비롯된 문제들을 노출시킴으로써 스스로 국민을 실망시켜 온 역사를 반복하여 왔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들은 검찰의 비독립적 조직과 견제 받지 않는 과도한 권한이라는 제도적 문제로부터 기인하는 것이었다.
단일안 마련의 필요성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으로 본회의에 곧 부의될 공수처 법안은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 안 두 개다. 현재 각 당이 과반수를 점하지 못해 단일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두 법안 모두 부결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단일안을 만드는 것이 필수 불가결하다. 두 법안의 큰 차이는 기소권, 공수처장 임명 부분이다. 백혜련 안은 판사, 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에 대해 공수처가 기소권을 갖도록 했고 최근 수정된 권은희안은 기소권 없이 검찰에 송치고 검찰이 기소하도록 했다. 다만 권은희안에 따르면 검찰이 불기소하면 기소심의위원회에 회부된다. 두 법안 모두 공수처의 영장청구권은 담고 있지 않다. 현재 일부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기소권 대신 영장청구권을 공수처가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사의 핵심은 강제수사권인데 강제수사권인 영장청구권이 없는 공수처는 현재의 경찰과 차이가 없어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를 막을 수 없다.
직접 수사권과 기소권, 공소유지권을 모두 갖는 공수처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인 현재의 검찰을 답습할 우려가 있고, 기소와 직접 수사의 분리라는 선진국의 경찰과 검찰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다. 영장청구권은 가지도록 하고. 기소권은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검사의 대상 범죄만으로 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방안에 대하여 서로 타협이 가능하다고 보여 본회의 부의 전 단일안 성안 시 이를 반영하여야 할 것이다.
권력기관과 국민의 신뢰
공수처가 설립된다면 공수처는 검찰과 비교하여 독립적인 조직과 제한된 권한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민주적 통제 측면 상 필요한 면이 있지만 공수처도 정치적 또는 권력형 외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신뢰가 공수처가 정치적 또는 권력형 외압으로부터 객관성과 중립성을 지켜나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될 것이다. 따라서 공수처를 비롯한 모든 권력기관의 존폐는 민주적 통제 속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진정한 신뢰는 진실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공수처 스스로 되새기고 진실을 왜곡시키지 않는 의지와 신념을 잃지 말아야 한다. 물론 공수처 시행 이후에도 제도적 보완과 개선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고, 권력자(특히 대통령)의 간섭에 대한 국민의 꾸준한 비판과 감시가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경찰, 검찰, 법원, 공수처 등 권력기관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의 인권보장을 위한 법치주의 실현에 이바지하여야 할 것이다. 정한중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 프레시안
내년 총선 “정부여당 심판” 41% vs “보수야당 심판” 48%
[국민일보창간 31주년 여론조사] 서울·PK 45 대 45 팽팽한 접전
문재인정부 집권 4년차에 치러지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은 정부·여당 심판론보다 보수 야당 심판론에 더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일보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5~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절반에 가까운 48.2%가 ‘개혁을 막고 국정 발목을 잡는 보수 야당을 심판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안보와 경제 위기를 초래한 정부 여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응답에 공감을 표한 응답자는 41.2%, 잘 모르겠다는 10.6%였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에서 정부·여당 심판론(45.5%)과 보수 야당 심판론(45.2%)이 팽팽히 맞섰다. 부산·울산·경남(PK)에서도 정부·여당 심판론과 보수 야당 심판론이 45.9%로 똑같이 나왔다.
보수세가 강한 대구·경북(TK)에서는 정부·여당 심판론이 55.7%로 보수 야당 심판론(40.2%)보다 높게 확인됐다. 대전·세종·충청권에서도 정부·여당 심판론이 45.7%로 보수 야당 심판론(42.1%)보다 조금 더 높았다. 반면 광주·전라에선 보수 야당 심판론이 66.8%로 정부·여당 심판론(21.8%)보다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다. 강원도에서도 보수 야당 심판론이 55.9%로 정부·여당 심판론(26.3%)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이념 성향별로 보면 중도층에서 정부·여당 심판론이 46.5%로, 오차범위 내이긴 하나 보수 야당 심판론(45.2%)보다 조금 더 많은 점이 눈에 띈다.
내년 총선에서 어느 정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느냐는 질문에 40.5%가 더불어민주당을 꼽았다. 자유한국당이 30.8%를 기록했고, 정의당은 6.3%로 조사됐다. 유승민 의원이 이끄는 가칭 ‘변화와 혁신’은 4.9%, 손학규 대표가 주도하는 바른미래당이 2.4%였다. 이어 우리공화당(1.5%) 민주평화당(1.4%) 민중당(0.9%) 녹색당(0.7%) 대안신당(0.6%) 순이었다. 공직선거법 개정안 처리라는 변수가 남아 있지만, 현재로선 민주당과 한국당이라는 거대 양당 구도하에 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중도층에선 39.9%가 민주당을, 28.7%는 한국당 후보를 뽑겠다고 답했다. 변화와 혁신이 7.4%로 정의당(4.5%)보다 조금 높은 3위를 기록한 점이 이채로웠다.
거대 양당을 제외한 나머지 당이 지난 총선 때 국민의당과 같은 제3지대 돌풍을 일으킬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새로운 정치 세력화를 꾀하고 있는 민주평화당과 대안신당 등 호남 기반 정당들은 아직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전체 지지율이나 호남 지역 내 지지율의 차이가 없었다. 특히 호남 지역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게 나오면서 민주평화당 지지자 중 39.4%가 민주당을 찍겠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된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대구·경북에서는 한국당 후보자를 찍겠다는 응답이 46.2%로 민주당(22.2%)을 압도했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한국당 후보를 찍겠다는 응답자가 40.3%로 민주당(36.7%)보다 오차범위 내 앞섰다. 권순정 리얼미터 조사분석본부장은 9일 “보수 세력이 사실상 와해되다시피했던 지난해 6·13 지방선거 때와 비교해 보면 영남권에서 한국당의 지지율이 회복되고 있다”며 “다만 PK와 TK는 사정이 달라서 민주당 지지율이 30%대를 유지하고 있는 PK에서는 여당이 승부를 펼쳐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선명 좌파 색깔로 정체성 잡은 獨사민당, 배후엔 89년생 리더
메시아로 떠오른 케빈 퀴네트…‘10년 메르켈 연정’ 붕괴되나
사민당의 구세주로 떠오른 케빈 퀴네트 청년 사민당 의장이 6일(현지시간) 베를린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89년생 정치인이 독일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올해 나이 30세로 독일 사민당(SPD)의 청년 조직을 이끌고 있는 케빈 퀴네트가 그 주인공이다. 퀴네트는 중도좌파 노선을 견지하며 지난 10년간 중도우파 기민당(CDU)·기사당(CSU) 연합과 손잡고 대연정을 구성했던 사민당을 뿌리부터 개조시키고 있다. 당 지도부 일원으로 앞장서 선명한 좌파노선을 외치며 당의 메시아로 떠올랐다. 사민당의 좌향좌에 기민당 소속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끌어온 ‘10년 대연정’은 붕괴 위기에 봉착했다.
로이터통신은 8일(현지시간) 지난 6~8일 베를린에서 열린 사민당 전당대회에서 퀴네트 청년 사민당 의장이 가장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전당대회 첫째날 ‘메르켈 대연정’에 부정적인 노르베르트 발터-보르얀스와 자스키아 에스킨이 대의원 투표를 거쳐 공동대표로 최종 추인됐지만 전대 기간 내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한 건 퀴네트였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독일 언론들은 지난 2017년 11월부터 청년 사민당을 이끌고 있는 퀴네트를 조명하는 기사로 도배됐다.
독일 유력 주간지인 데르 슈피겔은 퀴네트를 사민당의 머리 위에서 당을 탈바꿈시키는 사람으로 묘사하며 “공동대표에 오른 두 약소 후보의 승리는 곧 퀴네트의 승리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독일 정치계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두 대표는 이번 당대표 선거에서 청년 사민당 당원들에게 몰표를 받았다. 8만표에 달하는 이들의 표는 사민당 전체 당원의 5분의 1에 달했는데 퀴네트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동원한 것이었다. 트위터에서만 15만2000명의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는 퀴네트의 정치적 영향력이 중도 성향의 후보들을 패퇴시킨 것이다. ‘대부’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사람’ ‘사민당 새 왕좌의 막후 실력자’ 등 다양한 별명으로 불리는 퀴네트는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사민당 부대표 중 한 명으로 선출되며 지도부에 입성했다.
퀴네트의 급부상은 당의 정체성과 노선을 잃고 헤메는 사민당의 현실에서 비롯됐다. 나치에 저항하고 빌리 브란트, 헬무트 슈미트, 게르하르트 슈뢰더 등 탁월한 정치 리더들의 지도 하에 한때 40% 지지율을 기록했던 유서 깊은 정당은 애매한 행보 속에 지지율 10%대의 변변찮은 정당으로 쪼그라들었다. 청년과 부유층 당원들은 녹색당으로 떠났고, 전통적 지지층인 노동자들은 좌파당과 극우세력인 독일대안당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이 와중에 급진적인 노동·사회 정책, 부유세, 야심찬 녹색 이슈 선점으로 요약되는 퀴네트의 선명한 좌파 색채는 사민당에 신선한 충격을 안기고 있다. 직장 경험이라고는 콜센터 직원 3년이 전부인 퀴네트가 독일 기성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15세 때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퀴네트는 사민당이 자신들의 좌파 정체성에 대해 좀더 확신을 가질 것을 주문하고 있다. 지난해 초 당내에서 메르켈 보수 대연정 반대 운동을 주도하며 두각을 드러낸 그는 올해 초 ‘강화된 사회 정의’를 촉구하며 ‘BMW 등 대기업의 집단 소유’라는 도발적 담론을 던지기도 했다. 그는 전당대회 연설에서 “사민당을 불편하게 만드는 질문을 계속하며 당의 비전을 개발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우중충한 정장들로 가득한 전당대회장에서 퀴네트가 입은 밝은 빛깔의 녹색 셔츠는 화제가 됐다.
전당대회 마지막 날 사민당은 부유세 도입을 당의 장기 목표로 설정했다. 선명한 좌파 노선 설정을 공식화한 셈이다. 새 공동대표들은 사민당이 대연정에 일단은 잔류하되 대연정 다수파인 기민당·기사당 연합을 상대로 최저임금 인상, 기후변화 추가대책 등을 요구키로 했다. 대연정 협약서에 이 같은 내용을 반영하도록 협상에 나서겠다고도 했다. 중도우파 연합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민당의 급진적 변신에 메르켈 대연정이 붕괴 위기에 몰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반목하고 대립하고’…갈등의 골 깊어진 한국
상반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다른 장소에 모여, 정반대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이른바 조국 사태, 둘로 나뉜 대한민국 사회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죠. 이런 깊은 반목과 대립을 우리 국민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정부가 2016년 이후 3년 만에 한국인의 의식과 가치관을 조사했습니다.
[리포트]진보와 보수, 두 집단 사이의 갈등이 얼마나 크다고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갈등이 크다는 답변 91.8%. 3년 전 조사 때보다 14.6%p 높아졌습니다.
[최지온/서울시 성북구 : "많이 심화된 것 같고요. 예전에 비해서 집회 같은 것도 굉장히 많아졌고..."]
[박윤주/서울시 양천구 : "이기거나 지거나 이렇게 싸움이 너무 심화되는 것 같은, 그래서 답답한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우리 사회의 또 다른 갈등의 축을 이루는 비정규직 문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갈등에 대해 물었더니, 크다는 응답이 85%를 넘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갈등이 크다는 답변도 81%였습니다. 경제적 양극화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도 여전했습니다. 부유층과 서민층 간의 갈등이 크다는 인식이 80% 가까이 됐습니다.
[김진곤/문화체육관광부 대변인 : "경제적 양극화에 대해서도 심각하다는 답변이 90.6%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국민의 64%는 '전반적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고,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냐는 질문에는 84%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번 조사는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8월27일부터 9월27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5천100명을 상대로 개별면접 방식으로 진행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1.4%포인트입니다./ KBS 뉴스 김석입니다.
선거법, 언론과 거대정당 어설픈 득실 계산에 국민들 표만 털려
[민언련 신문 모니터보고서]
자유한국당이 28일 선거법와 공수처 저지를 위해 199개 법안에 대해 무작정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는 폭거를 저지름으로써, 20대 국회는 최악의 국회로 남을 전망입니다. 자유한국당은 공수처와 선거법 반대를 둘 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자유한국당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 선거법으로 보입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얼마 전 단식에 들어갔을 때 몇몇 자유한국당 인사들에게서 공수처법은 협상하고 선거법을 막자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 그 증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한국당은 지속적으로 이번 선거법이 ‘좌파세력의 장기집권 음모’라며, 새로운 선거법이 자유한국당에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자유한국당에 우호적인 언론들도 이와 같은 기사를 내놓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기사가 조선일보가 낸 <비례 50석 100%연동형 땐 정의당 6석→25석>(11월28일)입니다. 조선일보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만 하면,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어떻게 조정하는지와는 상관없이 민주당과 정의당의 의석이 늘어나고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의석은 줄어든다”고 주장했습니다. 터무니없는 왜곡입니다.
엉터리 의석수 계산으로 여론 호도하는 ‘기적의 수학가’들
햇빛이 식물을 얼마나 잘 자라게 하는지를 알아보고 싶으면 두 개의 화분을 준비하고, 흙의 성분·물의 양·주변 온도·식물의 종류·화분의 크기 등 실험 결과에 영향을 미칠 법 한 다른 변수들을 통제하고 햇빛의 양만 조절해 주어야 합니다. 이를 변인 통제라고 합니다. 초등학교에서 과학 교과서를 처음 접한 그 순간부터 배우게 되는 너무나 기초적인 개념입니다.
▲ 지난 11월28일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로 계산한 조선일보의 선거제도 예상 시나리오 (빨간색 네모).
그렇다면, 선거법 개정의 영향을 알아보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선거법 개정이라는 변수 이외에는 모두 변인 통제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에 대한 완벽한 방법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매 선거마다 지역구 구획부터 다르게 정해지고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도 매번 달라지며, 어떤 선거제도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유권자들의 투표전략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최대한 변인 통제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지난 20대 총선 결과에 새로운 선거법 계산식을 대입해서 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산하면 정당지지율, 선거참여정당 정도의 변수는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 보도에서 계산의 근거로 삼은 것은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입니다. 조선일보는 “27일 지금 당장 총선을 치른다면 선거 제도에 따라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예측해 봤다”며 “리얼미터 정당 지지율대로 유권자들이 비례대표 선거 투표를 했다고 가정”하고, “지역구 의석 분포는 지금과 같다고 봤다”고 했습니다. 즉, 조선일보의 계산법이란 지역구는 20대 총선의 결과를 대입하고, 비례대표는 현 시점의 지지율을 대입했다는 것입니다. 눈뜨고 봐줄 수 없는 해괴한 계산법입니다.
조선일보와 같은 날 서울경제도 같은 방식의 계산법을 사용한 기사 <민주·군소정당 이익 부합 ‘250+100%연동형’ 대안 부상>(11월28일)를 내고 “부의된 선거법에는 실제로 정당들의 목숨이 걸렸다”며 ‘셈법’만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선거제도가 불리한 것이 아니라 자유한국당이 망한 것 뿐
그런데 사실 조선일보는 비교적 제대로 된 계산을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지난 3월 민언련 모니터 <자유한국당 주장에 맞춰 표 편집한 조선일보>에 인용된 조선일보 <새 선거제 적용 땐… 여 128→143석, 한국당 113→95석>(3월18일 남강호‧김동하‧원선우 기자)인데요. 이 기사에서는 선거법 개정안 원안(지역구 225, 비례 75, 연동률 50%)에 20대 총선 지지율을 적용했습니다. 그랬더니 더불어민주당 105석, 자유한국당 110석, 국민의당 61석, 정의당 15석, 기타 무소속 10석을 가져가 자유한국당이 제 1당이 되는 계산결과가 나왔습니다. 조선일보는 며칠 후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이 “자유한국당 의석을 강탈해서 팔아먹으려 한다”고 주장하자 자유한국당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이 계산결과를 빼고 후속기사를 냈었습니다.
실제로, 20대 총선 결과는 표의 비례성이 깨진 선거였습니다. 지역구 득표수 총합 기준으로 보면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은 38.3%, 민주당 37.0%, 국민의당 14.9%, 정의당 1.6%를 얻었습니다. 비례 투표 기준으로는 자유한국당이 33.5%, 민주당 25.5%, 국민의당 26.7%, 정의당 7.2%였습니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양 쪽에서 자유한국당이 득표율에서 앞섰는데도 민주당이 1당이 된 것입니다.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은 정의당이 연동형비례제에서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정당인 양 날조하지만, 사실 가장 억울했던 것은 지역구 14.9%, 비례대표 26.7%를 받고도 38석(전체 의석의 12.7%) 밖에 얻지 못한 국민의당입니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20대 총선이 연동형비례제로 치러져 국민의당이 60석 이상을 얻었다면, 정치 지형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129석(123+6석)인 민주당과 111석(105석+6석)인 민주당의 영향력은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20대 총선 당시 자유한국당은 35%의 콘크리트 지지율이 있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상 초유의 헌정 파괴 사건으로 탄핵되기 전이었습니다. 그 난장판을 겪고 난 지금의 정당지지율로 선거결과를 계산하려고 하면 세계 어떤 선거제도를 들고 와도 자유한국당은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지금 시점에서 자유한국당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할 수 있는 선거제도란 득표율이 140%가 나왔다는 전설적인 러시아의 선거제도뿐일 것입니다.
이해득실 계산 속 사라진 ‘표의 등가성’ 문제
지역구 중심의 선거제도 하에서는, 10만명이 속한 지역구에서 투표하는 시민들의 1표는 20만명이 속한 지역구에서 투표하는 시민들의 1표에 비해 2배의 가치를 가지게 됩니다. 똑같은 유권자인데 국회가 선거구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내 표는 반쪽짜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 비례대표 확대와 연동형 비례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이 패스트트랙까지 올라오게 된 배경에는 이런 고질적인 ‘표의 등가성’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14년 말 헌법재판소가 공직선거법 제 25조 제 2항에 대해 표의 가치가 3.65배까지 차이가 난다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려 선거구 획정을 다시 해야만 했던 사건(2012헌마190), 15년 초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석패율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한 <정치관계법 개정의견>(2015년 2월25일)은 선거제도 개혁이 공론화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표의 등가성 문제를 가장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어느 지역에 살든지 1표의 영향력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는 비례대표 확대라는 점에서, 비례대표제 확대 필요성에 대한 판단은 박근혜 정부 시절 이미 의심의 여지없이 끝난 상황이었습니다.
문제는 비례대표제 확대는 어떤 형태이든 간에 앞서 보았듯 지금껏 지지율보다 높은 의석을 공짜로 차지하고 있었던 거대 양당의 기득권을 위협한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를 벤치마킹 하려고 했던 것이 국회의원들의 손을 거치며 복잡해진 배경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배경을 설명해 주는 언론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복잡해진 계산식은 그 자체로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최신형 블루투스 무선라디오에 ‘안테나가 없어 허전하다’길래 안테나를 붙여왔더니 ‘필요 없는 안테나를 쓸데없이 붙였다’며 나무라는 격입니다.
거대양당 국회의원이 아닌 보통의 유권자에게, 나의 한 표를 온전하게 한 표로 행사할 수 있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자유한국당, 그리고 자유한국당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언론들은 더 이상 국민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11월28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서울경제, 한국경제(*지면보도에 한함)
방치된 740조원…지자체 재산관리 '구멍'
누락·이중기재 등 엉터리 관리
17개 광역시·도 유형자산
재무제표 상으론 476兆인데
시·도별 대장엔 304兆 불과
예산 낭비에 토착비리 불러
전국 243개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 재산의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 각 지자체는 회계장부와 공유재산 대장을 사실상 ‘이중장부’로 관리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가 집계한 통계들도 제각각이다. 이 같은 공유재산 관리의 총체적 부실이 예산 낭비와 정책 비효율을 양산할 뿐 아니라 각종 토착 비리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한국경제신문이 한국공인회계사회와 삼일회계법인에 의뢰해 지자체 결산서를 분석한 결과 서울시를 비롯한 17개 광역시·도의 재무제표상 유형자산(일반유형자산, 주민편의시설, 사회기반시설) 규모는 476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광역시·도의 별도 대장에는 이들 유형자산에 해당하는 공유재산 및 물품이 304조5000억원으로 등재돼 있다. 같은 항목임에도 재무제표와 공유재산 대장 간에 170조원 이상 차이가 난다. 그만큼 회계장부에 인식된 자산이 공유재산 대장에 누락됐거나 축소 기재됐다는 뜻이다.
행안부가 집계하는 통계도 부실하다. 행안부가 243개 지자체에서 현황을 받아 집계한 전체 공유재산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740조1000억원이다. 행안부가 운영하는 지방재정 통합공개시스템 ‘지방재정365’에 공시된 전체 공유재산 규모는 798조1700억원이다. 똑같아야 할 수치가 58조원 이상 벌어져 있다. 행안부는 지방재정365 공시에 오류가 있다며 부랴부랴 원인 파악에 들어갔다.
한 행정학자는 “공유재산이 누락되거나 이중 기재되는 등 엉터리로 관리되고 있어 어느 누구도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공시된 수치가 취득원가 기준임을 고려하면 지자체의 실제 공유재산 가치는 1000조원이 훨씬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작지에 불법펜션·공유지 헐값 매각…지자체 재산은 '눈먼 땅'
공유재산 대장·회계장부 따로따로…총체적 관리 부실
#1. 이공휘 충청남도 의원은 관광단지로 개발을 추진 중인 안면도의 공유재산 목록을 살펴보다가 눈을 의심했다. 주거·경작용으로 시세보다 싸게 임대해온 충청남도 소유 부지에 버젓이 펜션과 상가, 식당들이 들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별장을 세우기 좋은 금싸라기 도유지엔 지역 주민이 아니라 서울 거주자가 임차 계약을 맺고 있었다. 이 의원은 지난해부터 충청남도의 공유재산 관리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2. 경기 가평군은 2014년 장애인복지센터 신축 명목으로 개인 소유 땅 3900㎡를 약 7억원에 매입했지만 지금껏 방치하고 있다. 신축비를 마련하지 못한 탓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 가평군이 매입한 부지는 가평군수의 재보궐 선거캠프에서 일했던 사무장 배우자의 소유지였다. 이 배우자는 땅을 사들인 지 1년9개월 만에 가평군에 팔아 3억원이 넘는 차익을 얻었다. 감사원은 가평군수를 직권남용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 공유재산이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공유재산은 지역주민 복지와 재정수입 확보에 활용해야 할 소중한 자산임에도 오랜 기간 방치되거나 사적 용도로 쓰이는 사례가 많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불투명한 관리 시스템에 재산 누수
감사원은 지난해부터 ‘지방자치단체 전환기 취약분야 특별점검’을 통해 지자체에 대한 집중 감사를 벌이고 있다. 지자체장 등의 권력형 비리, 공무원과 지방세력 간 토착 비리 등이 주요 감사 대상이다. 감사원이 적발한 각종 위법행위 중 공유재산과 관련된 게 여럿 포함돼 있다.
감사원이 공개한 감사 결과에 따르면 전남 고흥군은 민간 콘도 시설을 유치하면서 공익사업인 것처럼 가장해 저가에 토지를 팔아넘겼다. 고흥군의 한 직원은 공유재산으로 관리하던 폐교를 중학교 동창에게 민간숙박시설 용도로 매매계약하는 특혜를 제공한 것이 적발됐다. 지자체별로 공유재산과 관련한 이 같은 비리가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이 의원은 “소수의 토착세력이 공유재산으로 이익을 취하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는 건 불투명한 관리 시스템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유재산 누수를 막고 활용도를 높이면 세외 수입이 늘어나 주민의 세금 부담도 덜 수 있는 만큼 공유재산 관리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먹구구식 공유재산 통계
지자체 소유 재산에 대한 실태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같은 항목인데도 공유재산 대장에 기재된 수치와 재무제표상 수치가 제대로 맞지 않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경상북도는 재무제표상 24조7000억원에 달하는 부동산 등 유형자산이 있음에도 공유재산 및 물품 대장엔 3조원가량만 등재했다. 경상북도의 자산 대비 불일치 비율은 88.1%로 17개 광역시·도 중 가장 높았다. 전라남도(77.2%), 경상남도(68.2%), 충청남도(65.5%) 역시 장부 간 괴리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광역시·도 중 이 비율이 가장 낮은 전라북도(4.1%)는 최근 11조원에 달하는 누락 공유재산을 추가로 기재하면서 장부 간 간극을 좁혔다. 송지용 전라북도 의원이 공유재산 보고서의 금액이 현저히 적은 것을 보고 누락 재산을 찾아내 정정한 결과다.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에 따르면 공유재산의 가격 평가 등 회계처리는 지자체 회계기준을 따르도록 했다. 지자체 회계기준에선 취득원가로 자산을 평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윤정원 한국공인회계사회 공공회계연구팀장은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과 지자체 회계기준상 가격 평가 방법이 취득원가로 동일하기 때문에 같은 항목에선 수치도 같은 것이 정상”이라고 했다.
“유휴재산 활용 나서야”
기획재정부의 국유재산 관리를 벤치마킹해 공유재산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유재산은 정부의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과 국유재산 통합관리시스템을 연계해 누락과 오류 등을 없앤다. 감사원 결산검사 때 국유재산 및 물품 장부와 재무제표상 관련 자산내역을 대조해 차이가 나는 부분은 감사 보고서에 표시하도록 돼 있다. 이원희 한경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공유재산 장부는 등기부등본 같은 역할에 머무르고 있어 유휴재산이 있어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유재산 시스템처럼 소유, 위탁관리, 매각 등 모든 과정을 관리하기 위한 종합 시스템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 공유재산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 재산.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에 따르면 부동산, 선박, 항공기뿐 아니라 공영시설에 사용하는 기계, 지상권, 전세권, 저작권, 유가증권 등을 포함하고 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
청와대 공직자 보유 주택 40% 시세 올랐다
상위 10명 평균 27억원
신고가격은 절반에 그쳐
대통령비서실에 근무하는 전현직 공직자의 주택(아파트·오피스텔) 가격이 2년 반 동안 40%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1인당 평균 11억4000만원어치 주택을 보유하고 있으며, 상위 10명은 평균 27억원을 넘어섰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1일 대통령비서실 재산공개 분석을 통해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집값 상승으로 비서실 소속 공직자의 재산도 1인당 평균 3억2000만원 올랐다”며 “하지만 시세반영률이 턱없이 낮아 신고가격은 절반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경실련에 따르면 2017년부터 현재까지 재산을 공개한 청와대 공직자 76명 중 주택 현황을 신고한 65명의 주택 시세는 743억원으로, 2017년 이후 평균 40% 상승했다.
보유주택 가격 1위는 주현 중소벤처비서관으로 2017년 29억원에서 현재 46% 오른 43억원을 기록했다. 주택정책과 업무 연관성이 높은 김수현 전 정책실장은 2017년 9억원에서 현재 19억원으로 116% 상승했다. 김 전 실장이 소유한 경기 과천시 별양동 주공아파트가 재건축으로 10억원 가량 올랐기 때문이다.
장하성 전 정책실장도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한채에서 10억7000만원 상승 효과를 봤다. 장 전 실장의 현재 주택 가격은 28억원으로 60% 올랐다. 김상조 현 정책실장의 경우 서울 강남 청담동 아파트 가격이 2017년 11억원에서 현재 15억원으로 4억원 이상 재산상 이익을 냈다. 이번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흑석동 상가주택을 34억5000만원에 매각해 1년 만에 8억원 넘게 시세차익을 봤다.
경실련은 이번 조사에서 시세 파악이 비교적 쉬운 아파트와 오피스텔만 분석했으며 국민은행(KB) 부동산 시세 자료를 활용했다고 밝혔다. 가격상승률이 높은 10명이 보유한 12건에 대해 땅값 시세와 공시지가를 비교한 결과 시세반영률은 평균 39%에 그쳤다. 정부가 발표한 공시지가 시세반영률 64.8%로 조사된 곳은 한곳도 없었다고 경실련은 설명했다.
재산을 공개한 공직자 중 본인과 배우자 명의로 주택을 보유한 다주택자(2주택 이상)는 18명으로 조사됐다.
이중 3주택자 이상은 6%에서 10%로 증가했다. 경실련은 “공직자 재산 신고 때 공시지가가 아닌 시세를 반영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진보는 '연대' 보수는 '따로'
4+1 협의체 예산안 처리
'한국당·변혁'은 각자도생
총선을 앞두고 진보와 보수 양대 진영의 가는 길이 갈리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4+1'협의체로 제1야당 고립 전략에 나섰고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변혁(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은 보수통합은 커녕 각자도생 분위기다.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0일 예산안이 처리됐다.
이날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 처리 표결에는 민주당, 바른미래당 당권파, 정의당, 평화당, 대안신당 등 '4+1' 협의체 참여 정당·정치그룹 소속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졌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당권파 의원들은 대부분 표결에 아예 참여하지 않았다. 4+1협의체가 마련한 기금운용계획안 수정안도 마찬가지다. 한국당은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자체 수정안을 냈지만, 예산안 자체 수정안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부동의로 폐기됐다. 본회의에서는 법인세법과 조세특례제한법, 소득세법, 국가재정법 등 예산부수법안 4건이 처리됐다.
4+1협의체가 일시적이지만도 않을 전망이다.
연동형 비례제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법을 중심에 둔 검찰개혁법안들도 4+1협의체를 통한 처리가 예상된다. 유치원3법 역시다. 시차는 있지만 이미 1년여 뜻을 같이한 법안들이다. 이날 4+1협의체 가동은 민주당이 가야할 길을 보여준다는 평이다. 현실화된 다당제 아래에서 총선 이후 국회운영을 위한 제대로된 시험대라는 점에서다.
민주당 한 의원은 "국회가 민주당 아니면 한국당 2당만 운영하던 시절은 지났다"며 "연대를 통한 협치로 국회를 운영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말했다.
한국당은 원내대표 교체에 따른 4+1 협의체 무력화를 위한 시간끌기 전략도 통하지 않았다. 민주당 관계자는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결과가 나오는 게 바로 지도력"이라며 "원내 지도부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는 효과도 얻었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달리 보수진영은 각자의 길로 가기 바쁜 분위기다. 바른미래당 비당권파 모임인 변혁은 8일 창당 준비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변혁은 유승민 3대 원칙(△ 탄핵의 강을 건너자 △개혁보수로 나아가자 △낡은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짓자)에 입각한 야권 새판짜기에 주력할 방침이다. 다만 당분간 각자도생 분위기를 연출하다 결국 당대당 통합을 위한 지분확보 전략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한국당은 원내교섭단체 구성상 보수 우위 구도도 살리지 못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바른미래당과 공조를 통해 자연스런 보수통합 진척이 나왔을 것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며 "비례대표제 폐지, 199건 필리버스터 등 협상보다는 뭉개기 전략으로 일관하다 자중지란에 빠진 격"이라고 말했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12월 3일부터 5일까지 조사한 정당지지율은 민주당 40%인데 반해 한국당은 21%에 머물렀다.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을 포함한 진보진영은 50%를 넘었고 바른비래당과 자유공화당을 포함한 보수진영 지지율은 27%대에 그쳤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곽재우 기자 dolboc@naeil.com
'우승 축배에 도시 마비'…베트남은 지금 '박항서 홀릭'
(사진=베트남 매체 '징' 홈페이지 캡처)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대한민국은 붉은 물결로 가득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이 4강 신화를 써내자 열기는 절정에 달했다. 그리고 이 모습을 한국인 지도자가 베트남에서 재현했다. 히딩크 감독과 함께 했던 박항서 감독이 해냈다.
베트남 축구대표팀의 사령탑 박항서 감독은 22세 이하 축구 대표팀을 이끌고 10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 리살 기념 경기장에서 열린 동남아시아(SEA) 게임 축구 결승전에서 인도네시아를 3-0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베트남이 SEA 게임 60년 역사상 첫 축구 금메달을 따낸 순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박 감독이 있었다.
박 감독은 이제 베트남 축구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됐다. 지난해 아시아축구연맹(AFC) U-23(23세 이하) 챔피언십 준우승을 시작으로 아시안게임 4강 신화와 10년 만의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우승을 일궈냈다. 베트남은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2019 아시안컵에서도 8강에 오르는 경쟁력을 과시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에선 3승 2무(승점 11점)로 G조 1위를 달리고 있다.
(사진=베트남 매체 '징' 홈페이지 캡처
'박항서 매직'으로 완성된 우승에 베트남은 축제 분위기로 휩싸였다.
열띤 응원을 펼치며 베트남의 금메달을 기원한 국민들은 우승이 확정되자 모두 거리로 나와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쏟아진 인파에 도시는 마비됐고 거리는 금세 '금성홍기(金星紅旗)'로 붉게 물들었다. 베트남 언론 'Zing'은 "늦은 밤 시민들이 축배를 들면서 하노이와 호치민이 마비됐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또다른 현지 매체 '베트남넷'은 "모든 길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대부분 구간에서 교통체증이 벌어지고 있다"며 "사람들은 확성기를 들고 나가서 춤을 췄다. 오토바이 경적과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팬들의 모습을 설명했다. 2002년 4강 신화를 써낸 멤버였던 박 감독. 그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진 베트남은 지금 '박항서 홀릭'에 빠졌다.
(사진=베트남 매체 '징' 홈페이지 캡처)CBS노컷뉴스 송대성 기자
“잠 깨워서” “시댁 안가서”… 살해된 여성 887명
한국여성의전화, 10년간 언론보도 분석 결과
그림 김희서
최근 10년간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되거나 목숨을 잃을 뻔한 여성이 1600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 보도에 노출된 사건만을 집계한 것을 고려하면 실제 피해 여성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11일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2009~2018년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 살해 피해자 수는 887명, 살인미수 피해 여성은 727명으로 살해 위험에 놓였던 여성만 1614명이었다.
여성의 자녀나 부모 등 주변인 중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사람은 167명, 살인미수 등의 피해자는 219명이었다. 남성 파트너 폭력으로 10년간 2000명, 한해 200명의 피해자가 나온 것이다. 피해자 연령대를 살펴보면 40대가 27%, 50대가 10%, 30대 16%, 20대 13% 순으로 많았다. 특히 40대는 배우자 관계는 물론 데이트 관계에서 일어난 폭력 피해에도 가장 많이 노출됐다. 데이트 폭력으로 살해된 여성 228명 중 72명(31.5%)이 40대였다.
데이트 폭력이 주로 20~30대에서 많이 일어난다는 사회적 통념과 달리 40~50대 중장년층 역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다.
가해자들은 “헤어지자고 해서” “밥달라는 말에 대답하지 않아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잠을 깨워서”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아서” 등의 이유로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의전화 조재연 인권문화국장은 전날 열린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포럼에서 이같은 피해집계 결과를 설명하면서 “여성 살해의 문제에 대해 그 사회가 젠더에 기반한 폭력의 문제로 분명히 인식하고 국가적으로 대응하고 있는가는 성평등을 가늠해보는 최소한의 바로미터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친밀한 파트너에 의한 여성살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노의 주체, 분노의 원인과 책임의 귀결, 분노의 맥락과 방향 곳곳에 점철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없애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홍근 인턴기자
수요집회 옆에서 '소녀상 철거' 1인 시위
한겨울에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심지어 미세먼지가 있는 날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는 계속해서 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수요집회 현장에 1인 시위를 하며 소녀상 철거까지 주장하는 사람이 등장해 시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기자]수요집회가 열리는 날. 한 남성이 일본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입니다. 그런데 시위 목적이 일본에 대한 사과 요구가 아니라 수요집회 중단과 소녀상 철거입니다. 시민단체 회원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집니다.
1인 시위자는 다름 아닌 '반일종족주의' 공동 저자 이우연 씨. '반일종족주의'는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 동원은 없었다는 친일 역사관으로 문제가 된 책입니다. 이 씨는 소녀상이 한일 관계를 악화한다며 철거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 이곳에서는 이우연 위원이 1인 시위를 벌였는데요. 같은 시각 불과 20여m 떨어진 곳에선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수요집회 주최 측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면서도 불쾌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성희 /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 : 가슴 아픈 피해 사실을 증언한 할머니들에게 또다시 아픔을 주는 행동이죠, 명백한 역사 왜곡, 명예훼손입니다.]
수요집회 참가 시민들 역시 이 씨의 1인 시위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입니다.
[김수진 / 수요집회 참가자 :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같은 한국인인데….]
이 씨는 앞으로 시위를 계속 이어간다는 계획이고, 경찰은 1인 시위를 막기는 어렵다는 입장이어서 당분간 마찰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YTN 신준명
대역써서 최대한 불쌍하게… 자선단체 ‘빈곤 마케팅’
적지 않은 자선단체들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상황을 신랄하게 표현한 광고를 통해 동정심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후원금을 모금해 왔다. 그러나 후원 대상자의 인권과 사생활 침해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면서 최근 대역을 동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진은 한 자선단체가 진행하는 겨울철 저소득 가구 지원 캠페인 광고 중 대역 연기자가 붕어빵 노점에서 일하는 모습을 재현한 장면. 11일 세이브더칠드런 홈페이지 캡처
실제 후원 대상자의 열악한 환경을 광고의 배경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쓰레기로 덮인 집안에서 대역 연기자가 쪼그려 앉아 있다. 굿네이버스 홈페이지 캡처
결식아동을 위한 후원금 모금 광고 중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 장면을 대역 연기자들이 연기하는 모습. 월드비전 홈페이지 캡처
“생활이 어려운 조손 가정이기 때문에 따로 준비할 건 없고 허름한 옷과 화장기 없는 얼굴로 자연스럽게 오시면 됩니다.”
지난 9월 영상 및 영화 제작자와 연기자들이 활동하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NGO의 모금 콘텐츠 제작’이란 제목으로 게시된 연기자 모집 안내문의 일부다. 선발된 연기자는 자선 단체의 후원금 모집 광고에 출연하는데 역할은 주로 다음과 같다.
#1 붕어빵과 계란빵을 파는 노점에서 반죽이 담긴 주전자를 들고 있는 소녀. ‘거리에서 겨울을 맞이하는 열일곱 연희’란 문구 옆에서 소녀는 우울한 표정으로 거리를 응시한다.
#2 낡은 반지하 방에 쓰레기 더미가 천장 높이까지 쌓여 있고 벽에는 시커먼 곰팡이와 거미줄이 어지럽다. 처참한 환경 속에 한 소년이 힘없이 앉아 있고, ‘오늘도 사춘기 우진이는 이곳에서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라는 자막이 흐른다.
#3 편의점 밖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두 어린이가 컵라면을 먹고 있다. ‘친구들보다 키도 몸집도 작은 어린 남매. 남매의 식사는 오늘도 라면입니다’ 컵라면을 먹는 어린이들의 표정은 역시 어둡다.
연기자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최대한 우울하고 슬픈 표정을 짓고 때론 절망과 좌절감을 몸짓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국내 자선단체들이 11일 온라인에서 진행하고 있는 주요 후원금 모금 광고의 전형이다. 대다수 자선단체는 암울한 환경에 내몰린 이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 동정심을 유발하는 모금 방식을 활용해 왔다. 효과가 보장되기 때문인데 후원 대상자에 대한 인권침해, 사생활 노출 문제 또한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최근에는 이 같은 비판을 피하기 위해 대역을 내세우는 것이 대세다. 실제 후원 대상자의 인권침해 피해를 방지한다는 취지지만 실제 인물이 등장하지 않았을 뿐 처참한 환경을 강조하는 형식은 그대로다. 오히려 출연료를 지불하기 때문에 장소 선택과 상황 구성은 물론 연기자의 표정까지 보다 더 ‘리얼한’ 연출이 가능하다는 게 문제다.
이민영 고려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연출된 상황과 인물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미지를 한정시키고 시혜의 대상으로만 그들을 바라보게 하는 등 편견과 차별의 악순환을 유발한다”면서 “처참한 배경 속에 대역을 세우고 특정 포즈와 표정을 연출하는 등 현실을 왜곡하고 과장해 표현하는 일종의 ‘빈곤 포르노’로, 이 같은 방식은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다” 고 말했다.
홍보물 속 연기자들은 어둡거나 우울한 표정을 연기한다. 굿네이버스 홈페이지 캡처
방학 중 아동 지원 캠페인 홍보물 속 대역 배우의 우울한 표정. 굿네이버스 홈페이지 캡처
저소득 가정 아동 지원 캠페인 후원 대상자의 대역 연기자의 표정 연기. 세이브더칠드런 홈페이지 캡처
결식아동 지원 캠페인 광고에서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대역 연기자. 월드비전 홈페이지 캡처
어두운 배경 속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연기자.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굿네이버스 홈페이지 캡처
화장기 없는 얼굴, 염색하지 않는 머리는 자선단체 캠페인 홍보물에 출연하는 연기자들의 필수 요소가 됐다. 굿네이버스 홈페이지 캡처
‘아동 인권 보호를 위해 대역과 가명을 사용했습니다’라고 안내는 하고 있지만 눈에 띄지 않는 경우가 많아 연기자를 실제 후원 대상자로 오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안모(24)씨는 “광고에 등장하는 인물이 대역인 줄은 몰랐다. 이렇게 설정된 이미지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가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통해 ‘아동을 동정 및 시혜의 대상이나 약자, 피해자로 묘사하지 말고 삶을 위해 노력하는 주체자로 표현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나 강제성은 없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온라인 상에서 이런 식의 광고를 규제할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연말연시 기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자선단체들의 마케팅도 강화되는데 감정에 호소하며 눈물을 짜내거나 죄책감을 유발하는 방식의 광고 홍보 전략은 올바른 기부문화 형성과 확산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며 “밝고 희망적인 메시지로도 효과적으로 후원금을 유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 자선단체 관계자는 “어려운 현실을 적극적으로 드러내 감정적인 후원을 이끌어 내는 방식이 효과가 큰 것은 사실”이라며 “방식을 다양화해 기부 열기가 식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윤소정 인턴기자
어린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도 자주 등장한다. 세이브더칠드런 홈페이지 캡처
외로움, 기다림 의미하는 이미지도 홍보물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굿네이버스 홈페이지 캡처
등급컷 맞춰진 학교…등급 밖 공부 없나요
7·8·9등급 학생들에게 ‘학교와 공부’를 묻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중·상위권 맞춘 학교의 수업 진도
“늘 어렵고 너무 빠르다”는 아이들
학년 올라갈수록 더 힘든 현실에
“공부해도 안 해도 성적 같아” 자조
내년 1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박모양(18)의 내신 성적은 7~8등급이다. 박양은 국어 시간엔 국어 지문을, 수학 시간엔 수학 문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성적이 떨어지더니 고등학교에 가서도 회복되지 않았다. 고1 때는 마음을 굳게 먹고 수업 시간마다 선생님 말을 열심히 받아 적어 봤지만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 속상한 마음에 2학년 때부터는 공부를 완전히 포기했다. 박양은 “공부를 하지 않는 지금이나 열심히 했던 그때나 성적이 똑같다”고 자조 섞인 말을 내뱉었다.
박양은 누군가 옆에서 일대일로 공부를 가르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가정 형편상 학원에 다니지는 못했다. 그는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도 끝까지 붙잡고 이해시켜주려 했던 고1 때 국어 선생님이 아직도 고맙다. 공부를 못하는 건 스스로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자책한다. 박양은 “내신 2등급이 나오는 친구는 쉬는 시간에도 늘 문제집을 푼다”며 “내가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은 상위권 학생들을 어떻게 경쟁시킬지에 대해서만 지나치게 열을 올린다. 어떻게 가르칠 것이냐보다 어떻게 경쟁시킬 것인가에 매몰되면서 경쟁에 끼지 못한 학생들의 뒷전으로 밀린다. 하지만 1등급이 4% 있으면 9등급도 4%가 생기는 법이다. 서울 주요 대학에 갈 법한 1~3등급(상위 23%)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7~9등급(하위 23%) 학생도 있다. 공부를 못하는, 혹은 안 하는 7명의 중·고등학생과 재수생을 만나 공부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학교가 어떻게 변했으면 좋겠는지 물어봤다.
◆정시·수시 논쟁?…결국엔 ‘더 공정한 차별 찾기’입시 경쟁서 벗어난 ‘다양한 배움’에 목말라요
■ 중위권에 맞춰진 수업, 따라갈 수 없는 하위권
“저한테 공부는 칼이에요. 머리를 찔러요.”
20~30명이 같이 듣는 학교 수업은 어쩔 수 없이 상위권 혹은 최소 중위권 학생의 수준에 맞춰 진행된다. 중간·기말고사든 수능이든 시험 진도에 맞추려면 교사들도 계획에 따라 진도를 나가야 한다. 평균적인 학생들에게 맞춰진 수업은 유모군(15)에게 늘 너무 어렵고 빨랐다. 중학교 2학년인 유군은 경계선지능 청소년이다. IQ 71~84의 경계선지능 아동·청소년은 ‘느린 학습자’로 불린다.
유군은 거의 모든 과목에서 D등급을 받아 30명 정도 되는 반에서 27~28등을 한다. 그중에서도 제일 싫어하고 못하는 과목은 수학이다. 유군은 “수학은 더하기 빼기를 하던 초등학교 때는 쉽더니 점점 더 어려워진다”며 “어려워서 공부를 자꾸 미루다 보니 지금도 머리가 안 따라간다”고 말했다.
학교 수업을 들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는 수업을 하다 보면 자주 잠이 밀려온다. 그래도 선생님이 깨워주지 않으면 “선생님이 ‘공부 못하면 너만 손해’라 생각하고 안 깨우는 것 같다”며 섭섭해한다.
공부를 잘해보려고 애도 써봤다. 방과 후 사립재단에서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수학과 영어를 배웠다. 하지만 자원봉사 선생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스스로도 화가 나고 자길 가르치는 선생님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보여 점점 수업 듣기가 싫어졌다. 지역아동센터의 도움으로 유군은 ‘공부 병원’이라고 부르는 학습지원센터에도 매주 다닌다. 학교에는 유군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듣는 수업’이라고 표현하는 방과후수업이 있지만 수학과 국어를 각각 2주에 한 번씩 배울 뿐이라 턱없이 부족하다.
유군은 시험 점수가 잘 안 나올 때, 엄마가 공부하라고 잔소리할 때 ‘나도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엄마 잔소리나 시험 점수 말고 공부를 하고 싶은 다른 이유는 없냐고 묻자 “살아야 하니까”라고 답했다. 그는 “다들 사회생활 하려면 공부를 잘해야 된다고 말한다”며 공부를 못하면 낙오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을 비쳤다.
■ 교육 불평등, “친구는 강화 +10한 검, 나는 나뭇조각”
“인터넷에 나오는 그런 이야기 있잖아요. 가난한 집에서 하루 3시간만 자면서 공부해 성공하는 이야기. 그런 ‘가난 신화’를 믿었어요.”
왹비씨(23·활동명)는 수능을 네 번 봤다. 그는 서울지역 대학 중에서도 제일 좋은 대학, 서울대에 가고 싶었다. 돈을 많이 주는 회사에 취직하지 못해도 명문대에 가면 괜찮은 학벌을 내세워 과외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 터였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왹비씨는 그렇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난 신화는 말 그대로 신화일 뿐이었다. 가장 마지막에 치른 2019학년도 수능에서 그는 국어 6등급, 수학 8등급, 영어 7등급을 맞았다.
왹비씨는 자신의 입시를 게임에 빗대 “친구들은 강화 +10한 검을 들었는데, 나는 나뭇조각 들고 싸우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도 유군처럼 중상위권 학생들에게 맞춰진 학교 수업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왹비씨는 “다른 친구들은 중학교 때 이미 쌓고 온 개념을 나만 몰랐다”고 했다. 자신에게 꼭 맞는 ‘맞춤형 교육’을 해주는 학원에 가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 3년 내내 학원에 다녀본 적이 없다.
교육부가 지난 3일 발표한 ‘2018 국제학업성취도비교연구(PISA)’에 따르면,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일수록 기초학력수준에 미달하는 비율이 크게 높아졌다. 부모의 경제·사회·문화적 능력(ESCS)이 하위 25%에 속하는 저소득층 학생들은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24.2%로 나타나, 상위 25%인 부유층 학생들(7.1%)의 3.4배에 달했다.
고3 때 수능을 보고 왹비씨는 재수를 결심했다. 재수종합반 가격을 알아봤지만 한 달에 100만~150만원 하는 학원비는 그에게 무리였다. 기숙학원은 한술 더 떠 200만원이 넘어갔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게는 학원비 50%를 감면해준다고 했지만, 50%를 깎아도 학원비로 50만~70만원을 내면 생활비가 남지 않았다.
왹비씨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고시원 총무부터 시작해 콜센터, 편의점, 주방보조, 식당 서빙, 전단 배포 등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한 달에 80만~90만원을 벌면 3분의 1은 학원비로 썼다. 하지만 공부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하루에 8시간 일하고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 피곤해서 책을 펼 수가 없었다. 교육이 계층이동의 사다리이길 바랐던 왹비씨에게 교육은 미끄럼틀이었다. 제자리걸음만 반복할 뿐 미끄러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왹비씨는 입시경쟁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수능 치는 것을 그만두었다. 학생·청소년 단체인 ‘대학 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에서 청소년 인권운동을 시작하고 ‘대입 거부 선언’도 했다. 그는 “하다못해 고시원 총무도 2~3년제 대학 나온 사람을 찾는다”며 “좋은 대학을 나와야만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체제 자체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공부 ‘안’ 하는 아이들, 입시 없이는 의미가 없는 중등교육
등급컷 맞춰진 학교…등급 밖 공부 없나요.
“덧셈·뺄셈만 할 수 있으면 살 수 있어요. 저는 나누기·곱하기도 잘해요.”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인 옥모군(17)은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흔치 않은 고등학생이다. 유군과 왹비씨가 공부를 잘하고 싶지만 못하는 학생이라면 옥군은 공부를 안 하는 학생이다. 옥군은 고등학교 입학 이래로 공부를 한 역사가 없으며 앞으로도 할 계획이 없다. 매번 다 찍고 자는 내신 시험 성적은 평균 7등급 정도다. 이번 2학기 중간고사 역시 모든 과목이 7~8등급 나왔다. ‘다 찍고 자는데 어떻게 7등급이 나오냐’고 묻자 “예술적으로 찍으면 된다”고 능청을 떨었다.
그는 “대학에 갈 생각이 없으니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옥군은 3학년이 되면 위탁교육을 가서 조리를 배우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바로 군대에 갈 계획이다. 그때까지 학교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은 잠으로 때운다. 인터뷰를 한 당일에도 “1교시 국어 시간에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2교시를 건너뛰고 3교시가 돼 있었다”고 했다. 옥군이 코를 심하게 골자 친구들이 “이 정도면 밖으로 내쫓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옥군을 흔들어 깨웠다.
장모씨(20)의 학창 시절 별명은 ‘이끼’였다. 초록색 담요를 덮고 책상에 엎드려 자는 장씨를 보고 국어 선생님이 “야, 저 이끼 뭐냐”고 한 후로 그에게 이끼라는 별명이 붙었다. 장씨는 고교 시절 옥군만큼이나 수업 시간에 많이 자는 학생이었지만, 대학생이 된 지금은 자면서 보낸 고등학교 수업 시간이 조금 후회가 된다.
장씨의 졸업 당시 고등학교 내신 성적은 7~8등급이다. 고등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만 해도 장씨는 수학 수준별 분반 수업에서 가장 높은 반에 들어갔다. 하지만 미대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너는 영어랑 국어만 하면 된다”는 입시 미술학원 선생님의 말에 나머지 과목을 버렸다. 다른 수업은 들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재수를 거쳐 미대에 재학 중인 장씨는 “지금 와서 보면 특히 역사 같은 과목은 기본 상식이더라”며 “배워뒀으면 좋았을 것을 당시에 모든 공부를 입시로만 본 것이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2017년 기준으로 한국 고등학생의 대학진학률은 69%가량이다. 옥군처럼 고등학교가 최종학력인 학생이 30% 정도 된다는 뜻이다. 장씨처럼 원하는 대학이나 학과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일부 과목만 필요한 학생도 있다. 중등교육에서의 배움은 대학 진학이 아니라 중등교육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들 하지만, ‘대학 간판’의 존재감이 너무나 큰 한국 사회에서 학생도 선생님도 그 명제를 유념하기란 쉽지 않다.
입시 위주 교육이 싫어서 학교 공부를 안 했다는 학생도 있다. 내년 1월 공립형 대안학교를 졸업하는 긁적군(18·활동명)의 고등학교 내신은 6~7등급이다. 수학과 영어 성적이 잘 안 나왔다. 국어·사회·한국사 과목은 좋아했다. 모의고사를 치면 수학은 8~9등급이어도 한국사는 1등급이 나왔다.
긁적군은 2020학년도 수능이 치러지던 지난달 14일 투명가방끈 회원들과 함께 ‘대입 거부 선언’을 했다. 투명가방끈은 2011년부터 매년 대입 거부 선언을 주최해왔다. 올해는 긁적군을 비롯해 6명이 대입 거부 선언을 했다. 그는 대입 거부 선언을 한 이유에 대해 “입시 공부를 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긁적군은 전교생이 38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그 속에서도 차별은 있었다. 그는 “학교가 코딱지만 해서 오히려 차별이 뻔히 보였다”며 “그 작은 학교에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한두 명 있어 그 애들 중심으로 수업이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선생님들은 상위권 학생들을 명문고에 보내기 위해 선행학습을 시켰고, 공부를 중간 정도 하는 학생들은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긁적군은 친구들보다 성적이 잘 나오는 날이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시험 기간이면 남들보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성적을 잘 받는다는 건 누군가를 이겨야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경쟁을 가르치는 것 같아서 싫었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불공정성이나 정시 비율 확대 논쟁을 두고 긁적군은 “누가 누가 좀 더 ‘공정한 차별이냐’를 두고 경쟁하는 것 같다”며 “교육에는 차별이 있어서는 안되는데, 공정한 차별이라는 것이 웃기다”고 했다. 그는 “‘정시냐 수시냐’보다는 더 나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교육이 더 많은 다양성 포괄해주길
등급컷 맞춰진 학교…등급 밖 공부 없나요.
중학교 2학년 이모군(15)의 전 과목 평균 성적은 40점대다. 이번 2학기 중간고사에서는 수학 시험을 다 찍었더니 딱 한 문제를 맞혀 4점이 나왔다. 중학교에서 A~F로 나눠지는 등급은 관심이 없어 잘 모른다. 원하는 고등학교에 가려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학교 수업은 거의 듣지 않는다. 수업 시간에 어차피 잘 건데 그 시간에 그냥 집에서 노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런 이군도 좋아하는 과목이 있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일본어다. 이군은 “<원피스>나 <진격의 거인>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해 일본어 시간을 좋아한다”며 “다른 시간에는 다 자도 일본어 시간에는 깨어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이 만난 성적이 낮은 7명의 학생들은 모두 이군처럼 나름대로 좋아하는 과목이나 꿈이 있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박양과 유군은 미술 시간을 좋아했다. 유군은 “그림을 그리면 시간이 빨리 간다”고 했다. 긁적군은 수학 성적은 8~9등급, 우연히 잘 나와야 7등급이었지만 한국사는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1등급이 나왔다.
학생들은 학교에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학교가 보다 다양해졌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세계사를 좋아하는 옥군은 기타 치는 것도 좋아한다. 학교에 기타를 메고 가서 쉬는 시간마다 기타를 치기도 했지만, 제대로 배워볼 기회가 없었다. 그는 “음악 시간에는 주로 노래만 부르는데 악기도 가르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체육을 제일 좋아했다”고 답한 장씨는 체육 시간이 단지 공부를 안 해서 좋았던 것이 아니라고 했다. 장씨는 고등학교 체육 시간에 포켓볼, 골프, 양궁 같은 한 번도 안 해봤던 운동을 처음으로 접했다. 장씨는 “체육 시간은 수행평가를 해도 재밌었다”며 “지금 생각하면 체육 선생님이 엄청 애쓰신 것이더라”고 말했다.
학교 안에 경쟁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대입을 거부한 긁적군은 “학교는 저에게 배우고 싶었지만 배울 수 없던 공간이었다”며 “학교에 경쟁이 없었으면 제가 좋아하는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을 더 많이 공부할 수 있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이 바라는 학교를 위한 교육정책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공부는 머리를 찌르는 칼”이라는 유군처럼 배움이 느린 학생들을 위해선 1수업 2교사제(협력교사제)가 일부 학교에서 시범 운영되고 있다. 경쟁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긁적군에게 필요한 정책은 절대평가일 것이다. 이미 수능 과목 중 영어와 한국사는 절대평가로 전환됐고 2022학년도부터는 제2외국어/한문도 절대평가로 바뀐다.
다양한 수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학생을 위해선 ‘고교학점제’가 있다.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흥미에 따라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훨씬 넓어진다. 고교학점제는 현재 초4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2025년부터 전면 도입될 예정이다.
하지만 교육이 곧 입시를 뜻하는 한국 사회에서 학생들이 바라는 학교의 변화는 진행이 매우 더디고, 더디다. ‘공정한 차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교육정책은 힘이 없기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갈지자를 걸으면서 뒷전으로 밀린다. 정부는 본래 고교학점제를 2022년에 전면 도입하려 했으나, 지난해 대입제도 공론화에서 ‘정시 30%’가 결정됨에 따라 전면 도입 시기를 2025년으로 미뤘다. 최근엔 정부가 정시 비중을 다시 40% 이상 늘리겠다고 하면서, 국·영·수 위주의 수능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고교학점제가 제대로 안착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현장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왹비씨는 “사람마다 잘하고 못하는 것이 다르다”며 “국·영·수 위주의 입시 공부가 아니라 특기를 살릴 수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기업 종부세, 개인에 비해 턱없이 적다
법인당 부동산 148억
토지 세율 0.7% 이내
주택은 최대 2%까지
부동산을 대거 보유한 기업들이 개인보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 혜택을 크게 보고 있다. 종부세 대상 기업(법인)은 개인에 비해 13배 많은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데도 과표 대비 세금은 3배 정도 많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12일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이 종합부동산세 100분위 자료를 분석한 결과 부동산의 보유한 법인과 개인 상위 1%의 경우 부동산 가격 차이가 50배에 달했지만 세금 차이는 1.7배에 불과했다. 정 의원은 "개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부동산을 가진 법인들이 더 낮은 세금을 부담해 시설투자나 사람투자가 아닌 땅 투기에만 앞장선 꼴"이라며 "기업의 비업무용토지 내역을 공개하고 보유세 특혜를 전면 개선해 기업의 과도한 토지 소유를 방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개인과 법인이 납부한 종부세는 1조7000억원이다. 종부세 대상 개인은 37만6000명이고, 이들이 보유한 종부세 대상 부동산 공시가격은 425조원에 달한다. 1인당 11억원의 부동산을 가진 셈이다. 1인당 평균 종부세는 130만원으로 공시가격 대비 종부세 비율은 0.12%로 나타났다.
반면 법인은 개인보다 45배 많은 평균 5800만원의 종부세를 내고 있지만 공시가격 대비 종부세 비율(0.39%)은 3배 차이에 불과했다. 종부세를 내는 법인은 2만1000개로 이들이 가진 부동산 가격은 306조원이다. 법인당 148억원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상위1%의 경우 법인이 보유한 부동산가치가 50배에 달하지만 세금차이는 1.7배에 불과했다. 빌딩용지 공장용지 등 기업들이 보유한 부동산은 대부분 별도합산토지로 종부세가 부과된다. 이는 세율이 최대 0.7%로 주택(2%)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법인이 보유한 종부세 대상 부동산 중 별도합산토지는 235조원으로 전체의 77%를 차지하고 있다. 개인의 경우에도 빌딩과 상가 토지는 별도합산토지로 과세되지만 전체 부동산 중 차지하는 비중이 13%에 그친다./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급성장의 부작용을 넘어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
[좋은 도시를 위하여] 연재를 시작하며…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역임하고, 지금은 미국에서 독립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로버트 파우저가 <프레시안>에 '좋은 도시를 위하여'라는 연재를 시작한다. 그는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 <외국어 전파담>,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 등 인문사회 분야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현재는 외국어 학습에 대한 책을 집필 중이다. 편집자.
2019년은 나에게 '한국 지역 도시의 해'였다. 인천, 평택, 천안, 대전, 부여, 익산, 전주, 광주, 나주, 속초, 구미, 대구, 그리고 부산 등을 다녔다. 주로 지난 5월 출간한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 독자들과의 만남을 위해서였고, 몇몇 도시들은 개인적으로 다니며 둘러본 곳들이다.
도시를 향한 관심은 중학교 시절부터 비롯했다. 특히 한국의 지역 도시에 관한 관심은 1980년대 한국과 처음 만난 뒤 인연이 깊어지는 만큼 점점 커져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제 곧 막을 내릴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오랫동안 외면받았던 여러 도시들의 원도심과 상대적으로 낙후한 주거 지역은 '재개발'이라는 단어와 함께 사회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러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언젠가부터 '도시 재생'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오기 시작했고, 이윽고 이를 위해 정부가 나서서 큰 예산을 편성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로버트 파우저
2019년 한 해 동안 집중적으로 한국의 여러 지역 도시를 다니면서 나는 내심 한국 사회에서 중요하게 관심을 두고 있는 도시 재생의 방향을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모든 일정을 마친 뒤 나는 원하던 걸 얻었을까? 아니었다. 거꾸로 질문만 잔뜩 생겨버렸다.
첫 번째 품게 된 질문은 '도시 재생이란 과연 무엇인가'였다. 어떤 사람에게 도시 재생은 오래된 건물과 집들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첨단 시설을 갖춘 새 아파트와 빌딩을 지어 올리는 걸 의미할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역사적인 경관을 지키면서 동시에 그곳에 사는 사람이 편하고 쾌적하게 지낼 수 있도록 주거 조건을 업데이트하는 것을 떠올릴 수도 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업 공간의 세련된 유입을 통해 오래되고 낙후한 지역을 사람들이 북적이는 '핫플레이스'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도시 재생일 수 있다.
도시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산다. 당연히 복잡하다. 도시 재생이라는 주제를 두고 사람들마다 떠올리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매우 다양하다. 각자의 이해가 맞물리고 의견이 부딪치면서 갑론을박이 나오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정부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도시의 미래를 위해 정책을 설계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정부는 이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되, 적어도 도시 재생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세워 둬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 대한민국 정부가 생각하는 도시 재생의 정의는 무엇일까?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게 아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명확한 정의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 복잡한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보다는 '왜'를 고민해야 한다. 도시 재생을 둘러싼 수많은 의견들이 대두되는 복잡한 상황의 해결책이 아닌, 왜 이 일을 하는가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두 번째 질문이다. 누구를 위한 도시 재생인가? 이 답을 찾는 것이 급선무로 여겨졌다.
자동적으로 그곳에 사는 '주민'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낙후하고 살기 불편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좀 더 나은 주거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재개발을 둘러싼 찬반 논쟁에서 찬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런 주민들의 뜻을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고 관철하기 위한 명분으로 적극 활용한다. 오래되어 낙후한 거주 조건을 다 밀어내고 그곳에 최첨단의 주거 공간을 제공하는 일은 얼핏 좋아 보인다. 주민을 위한 도시재생이니 안 될 것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부로서는 난감하다. 그 지역에 사는 '주민만'을 위해 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정부 사업의 핵심 지향점은 무엇이어야 할까? 공익이다. 한 지역의 주민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시민을 위한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지역의 주민만을 위한 도시 재생이 아니라 모든 시민을 위한 도시 재생을 추진해야 한다. 대상 지역에 살고 있는 '오늘'의 주민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동시에 '내일'의 주민, 나아가 사회 전체의 이익과 미래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사회 전체의 이익이 곧 공익이다. 어디 정부만일까. 도시 재생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이 염두에 두는 것 또한 바로 공익이다.
이렇게 보자면 도시 재생의 철학적 기둥은 공익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또 이어진다. 한국 사회에는 공익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가? 도시 재생의 필요성, 즉 도시 재생을 왜 하는가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이 성립되어 있는가? 여러 지역을 다니며 경험한 바에 의하면 아직 그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듯하다.
세계적으로는 어떨까? 도시 재생보다는 도시 확장이 아직은 더 두드러진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두드러진 도시 재생의 출발점은 크게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했다. 바로 전쟁과 재난이었다. 이 두 가지 이유로 파괴된 도시의 회복을 위해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일본의 거의 모든 주요 도시는 크게 폭격을 당했고, 이들 국가는 각고의 노력으로 도시를 재생, 재건했다. 어떤 도시는 이전의 모습을 다시 복원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고, 어떤 도시는 완전히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실험과 옛 모습의 복원 사이의 수많은 도시 재생 사례들이 등장했다. 재난을 겪은 뒤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의 복구 과정에서 이런 사례들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재난과 전쟁의 고통을 극복하고 다시 사람이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민과 시민 모두의 공감대가 쉽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공감대의 손쉬운 형성 사례는 또 있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공장이나 철도 부지를 주거 또는 상업 공간 등을 위한 목적으로 재생하는 일이야 빈터를 활용하는 것이니 상대적으로 손쉽게 공감대를 이룰 수 있다. 세계적으로 그런 사례는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서울의 경의선 숲길 역시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전쟁과 재난의 피해가 아닌, 오래된 시간을 통해 낙후하고 쇠퇴한 도시마다의 원도심은 어떨까. 한 도시의 역사적 시간이 고스란히 쌓여 있는 원도심은 랜드마크와는 다른 의미로 도시의 얼굴이자 대외적인 이미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도시 재생의 중요한 대상이면서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이해가 맞물려 있다.
낙후한 원도심을 재생하는 사업은 한동안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초기에는 특별한 이견 없이 진행되었다. 시간이 흐른 뒤 도시 재생의 결과를 놓고 다양한 평가가 나왔다. 원도심 재생이 비교적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은 곳도 있긴 하지만, 공익보다는 일부 부동산 개발사업자들에게만 이익이 돌아갔다는 거센 비판을 받은 곳도 있었다. 도시 재생을 둘러싼 여러 과정을 오랜 시간에 걸쳐 미국 사회 전체가 지켜본 셈이다. 도시 재생을 위한 미국 여러 도시의 시도는 계속되었다.
1950~1960년대 들어 미국에서는 기존의 슬럼화한 주거지를 전면 철거하고, 새로운 아파트를 짓는 것이 도시 재생의 주요 방향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만만치 않았다. 도시마다 이 같은 시도가 기존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지역과 시민 사회의 비판이 고조했다. 도시 재생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기 전에 공적 자금을 투여해서 밀어붙이려던 계획은 전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시간이 흐른 뒤 많은 예산이 공원이나 도로 등 기본 인프라를 지원하는 쪽으로 수정 편성되었다. 정부와 민간이 의견의 충돌과 합의의 과정을 거쳐 도시 재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셈이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도시 재생 이전이나 이후나 그 지역에는 같은 사람들이 사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도시 재생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감소 추세이던 도시의 인구수가 회복하자,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심각해진 것이다.
이는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D. C 등 대도시에서 먼저 두드러졌다. 고소득자와 고학력층이 도시 재생을 통해 새로워진 지역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그 지역에 살던 주민이 밀려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미국에서 도시 재생을 둘러싼 여러 의견과 비판이 쏟아져 나왔고, 어떤 지역의 도시 재생을 위한 사회 전반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 매우 오랫동안 협의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미국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도시 재생의 과정이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들어 한국의 도시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도시 재생을 둘러싸고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가 거쳐 온 수십 년의 여러 과정이 최근 몇 년 한국 도시 재생 과정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매우 특수한 조건 때문이다. 바로 급성장이다.
유럽이나 북미, 그리고 가까운 일본만 해도 이미 19세기에 인구 100만 명 넘는 도시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본격적인 도시화는 20세기 중반에 시작, 1960년대 가속화한 이래 21세기 문턱까지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세계 여러 도시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도시화가 진행되고, 주민과 시민이 수십 년에 걸쳐 도시를 재건하고 재생하는 여러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문제에 직면한 것과는 달리, 한국은 불과 몇십 년 사이에 급속하게 진행된 도시화가 낳은 주택난과 교통난 등 급성장의 부작용에 대응하기에 바빴다. 국가와 시민 모두 '살고 싶은 도시', 이른바 '좋은 도시'를 돌아볼 여유를 갖기 어려웠던 것이 현실이다. 옛날이라고 할 수 없는 불과 몇십 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그러다 사회 경제적 수준이 올라가면서 이전에 미처 돌아보지 못한 여러 부작용의 결과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도시 재생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도시 재생은 어떻게 해나가야 할까? 그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좋은 도시', '살고 싶은 도시'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것이 전제된 뒤에야 개별 도시의 지역적 특색에 맞는 정책적 대응을 세우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과연 정부의 주도로만 이루어져야 할까? 세금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민간의 투자와 협력이 필수조건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공감대의 형성이다. 도시 재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물론, 근본적으로 모든 시민을 위한 좋은 도시, 모두가 살고 싶은 도시란 무엇일까에 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서부터 도시 재생의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닐까?
'좋은 도시'를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1980년대 이후부터 서울은 물론 한국의 여러 도시들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져왔다. 졸저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에 실린 대전과 전주, 대구에 관한 글 역시 나의 이런 오랜 관심사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한국의 도시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 나가느냐는 것은 내게도 매우 중요하다.
이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은 물론 세계 여러 도시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좋은 도시란 무엇인지, 좋은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에 관한 길을 함께 찾아가 보려 한다. 한국의 여러 도시에서 치열하게 진행 중인 여러 논의에 이 연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제 출발한다.
로버트 파우저 독립학자 프레시안
언론이 짚은 선거법 개정 본회의 무산 원인
[아침신문 솎아보기] 한국당 임시 회기에 필리버스터 신청, 민주당 연동률↓ 제안 ‘4+1 협의’도 흔들
조선일보 한국당 언급 안해, “독재정권도 선거법은 합의·해외도 소선거구 대세” 사실은?
공직선거법 개정안 등 패스트트랙 법안 상정을 위한 13일 국회 본회의가 무산됐다. 자유한국당이 임시국회 회기 결정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신청하고, 한국당 뺀 ‘4+1 협의체’도 합의안을 놓고 공조가 흔들린 게 원인으로 꼽힌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이날 저녁 본회의를 열지 않겠다며 여야가 16일 원내대표 회동 때까지 합의안을 도출하라고 주문했다.
14일 아침신문들이 이 사실을 1면에 주요하게 다뤘다. 신문마다 주목한 무산 원인은 갈렸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동아일보는 두 원인을 모두 1면에 언급하면서도 한국당이 본회의 개의 합의를 파기한 탓이 크다고 봤다. 한국일보와 조선일보는 4+1 협의체가 이견을 좁히지 못한 상황을 주 원인으로 봤다. 조선일보는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지연전술을 1면에 언급하지 않았다.
▲14일 경향신문 1면
▲14일 조선일보 1면
더불어민주당‧한국당‧바른미래당 등 여야 3당 교섭단체는 13일 오전 국회 본회의를 열어 공직선거법 개정안 등을 상정하자는 데 합의했으나 결국 개의가 무산됐다. 경향신문은 1면 머리에 “한국당이 본회의 첫번째 안건인 임시국회 회기 결정 안건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면서 여야 신경전이 벌어졌고, 결국 본회의가 무산됐다. 한국당이 여야 합의를 파기한 것”이라고 했다. 동아일보도 1면 머리에 “한국당이 임시회 회기 안전에 필리버스터로 맞대응하며 본회의가 무산됐다”고 했다.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도 본회의에 상정할 단일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한겨레는 1면에 “선거법 수정안을 내려던 4+1 협의체가 비례대표 배분 방식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도 원인”이라고 밝혔다. 5면 해설기사에선 “선거제 협상이 난항을 겪는 것은 자기 당의 비례의석 손실을 줄이기 위해 애초 합의한 패스트트랙 선거법 원안에서 소수정당의 양보를 거듭 요구해온 민주당 책임이 가장 크다”고 했다.
선거법 원안은 비례의석 75석에 연동률 50%를 적용하는 안이었지만, 4+1 협상 과정에서 비례의석을 50석으로 줄였다. 민주당은 잠정 합의안에 더해, 연동제를 적용할 비례의석을 50석 가운데 30석으로 상한하자고 했다. 경향신문은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의 반발을 두고 “민주당이 한국당과의 타결을 염두에 두고 자체 수정안을 마련한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다”라고 풀이했다.
▲14일 한겨레 5면
한국일보는 1면 머리에 “(본회의 상정 무산은) 4+1 협의체가 단일안 도출을 놓고 막판 파열음을 낸 데 따른 것”이라며 “민주당과 한국당이 선거법을 놓고 막판 극적 타결을 이룰 여지가 생겼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전략을 언급하며 “한국당과 합의가 불발될 경우, 민주당은 4+1 단일안 처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필리버스터 대상 법안은 다음 회기에서 의무적으로 표결한다는 취지의 국회법에 따라 선거법 표결을 19일에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도 했다.
조선일보만 한국당의 ‘첫 안건 필리버스터 전략’을 1면에 언급하지 않았다. “내부 밥그릇 싸움으로 합의안 마련에 실패하면서 상정이 불발됐다”며 “비례대표 50석을 어떻게 나눠갖느냐를 놓고 사실상 이전투구에 들어간 것이다. 이로 인해 이날 선거법 등 상정‧처리를 위해 소집됐던 본회의는 16일 이후로 연기됐다”고 했다. 이후 4면 기사 ‘“입법 청부업자 문희상!” “나가!”…난장판 국회’에서 한국당이 필리버스터 전략을 편 사실을 한 차례 언급했다.
▲14일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선거제도를 바꾸지 말자’는 주장을 폈다. 조선은 “선거제도는 좋고 나쁜 것이 없다”며 “제도를 바꾸려면 선거에 참여하는 주요 정당의 합의가 전제돼야만 한다. 제1야당이 반대하면 당연히 접어야 한다. 더 논의한다는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멀쩡한 선거제도를 바꾸는 이유도 어이가 없다. 여당이 공수처 통과용 표를 모이기 위해 군소 정당들을 끌어들이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지역구 소선거구제는 소수정당의 원내진입을 막는 승자독식 구조를 만든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에서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야당을 배제하고 선거법 틀을 바꾼 적은 없었다”, “지금의 소선거구제는 세계 민주국가 대부분에서 시행하는 것과 같다”고도 했다. 현행 소선거구는 1988년 노태우 정권 당시 여당인 민정당이 날치기 통과시켰다. OECD 37개국 가운데 26개국에서 각당의 전체 의석수가 정당투표 득표수에 따라 결정되는 비례대표제를 쓰고 있다. 이 사실은 한국일보와 프레시안이 각각 지적한 바 있다. 한편 한국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역대 선거제도는 모두 여야합의로 개정됐다”며 여야가 “원점에 섰다는 자세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했다 /김예리 기자 ykim@mediatoday.co.kr
재판 잘못한 판사, 수사 잘못한 검사도 처벌하는 세상 올까
2007년 7월 부정부패추방 시민연합 회원들이 서울 탑골공원에서 집회를 열고 법조비리 추방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향DB
지금까지 판결을 잘못했다고 처벌받은 판사는 없었다. 기소를 잘못했다고 처벌받은 검사 역시 없다. 법관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검사가 틀린 결정을 내리더라도 이들을 직접 처벌하는 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법왜곡을 죄로 처벌하자는 ‘법왜곡죄’라는 개념이 논의되고 있다.
2018년 6월 CBS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한 ‘사법부 판결에 대한 국민신뢰도’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3.9%가 사법부 판결을 “불신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뢰한다”는 27.6%에 그쳤다. “잘 모름”은 8.5%였다.
검찰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6월 <오마이뉴스>의 의뢰로 리얼미터가 ‘국가사회기관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검찰(3.5%), 국회(2.4%), 경찰(2.2%)이 가장 낮은 신뢰도를 기록한 3개 기관으로 꼽혔다. 사법농단으로 전·현직 고위법관들이 여전히 재판 중인 사법부(5.9%)보다 낮았다.
‘국민은 왜 사법부와 검찰을 신뢰하지 않는가?’
이 케케묵은 질문은 수없이 되풀이되지만 단 한 번도 법원과 검찰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들 자신이 변화하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위로부터의 변화는 실패했다.
군법무관 출신으로 검찰을 거쳐 변호사로도 일했던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책 <불멸의 신성가족>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1997년부터 법조계는 그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해졌다는데, 왜 시민들의 불신은 사라지지 않는 걸까?”
1997년 법조계에서 잊힐 수 없는 사건들이 연달아 터졌다. 1997~1998년 ‘의정부 법조비리’는 의정부지원 판사 출신의 변호사가 개업 후 브로커 역할을 하는 사무장을 고용해 1년 만에 17억원대의 사건을 수임한 사건이다. 구속된 이 변호사 소속 사무장 수첩에는 전·현직 판·검사 20여 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의정부지원 소속 판사 15명이 명절 떡값·휴가비 등의 명목으로 수백만원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것으로 확인했지만 검찰은 “관행이기도 하고, 사법부의 권위를 존중하는 차원”이라는 명목으로 ‘징계 조건부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다. 일반인들이라면 이미 구속돼 실형이 선고됐을 사건에 검찰은 ‘우리가 남이가’ 정신으로 판사들에게 선처를 베푼 것이었다.
이어 1998년 12월에는 ‘대전 법조비리’가 터진다. 대전지검 부장검사 출신의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이 수임료 일부를 횡령한 정황이 포착돼 해고되자 앙심을 품고 변호사의 ‘비밀장부’를 폭로한 사건이다. 비밀장부에는 현직 판·검사를 포함해 법원·검찰 직원, 경찰관까지 300여 명이 사건알선 명목으로 변호사로부터 소개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은 징계 및 인사 불이익을 받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국민은 왜 사법부·검찰을 불신하는가
김두식 교수는 책 서두에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판·검사들에게 의구심을 품고 질문을 던지면 ‘우리 법조계, 특히 법원과 검찰만큼 깨끗한 직역은 흔치 않다. 의정부와 대전에서 법조비리 사건이 터지기 전에도 사건 당사자에게 돈을 받고 재판을 하는 판사와 검사는 거의 없었다. 변호사들에게 실비나 휴가비, 떡값 등을 받는 경우는 혹시 있었을지 몰라도 그것이 사건에 영향을 주는 경우는 없었다’고 말했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었다”라고 적었다.
국민의 개혁 요구와 달리 사법부와 검찰 내부에 불의는 정말 없는 것일까. 있는 데 없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있어도 이를 구분할 판단력을 상실한 것일까.
불과 몇 년 전 지방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국내 굴지의 기업과 관련된 고발사건을 수사하던 담당검사가 피고발인들에 대해 일괄 기소의견으로 ‘결정문’을 작성, 본인서명까지 한 뒤 부장검사실로 올려보냈다. 그러나 부장검사는 이 결정문에 서명하지 않고 자신의 캐비닛에 넣었다. 이 검사는 이후 정기인사 기간에 맞춰 타 지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물론 원칙대로라면 옮길 시기가 아니었지만 그는 군소리 없이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 검사의 자리에는 임관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초짜검사’가 배치됐다. 얼마 뒤 부장검사가 직접 작성하고 서명한 ‘불기소 결정문’이 그 초임검사에게 던져졌다. 초임검사는 말없이 불기소결정문에 서명하고 사건은 불기소 처리됐다. 하나의 사건에 ‘기소결정문’과 ‘불기소결정문’이 공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부당 지시를 받은 초임검사도, 기소결정을 내렸다는 이유로 자리를 옮긴 검사도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이의제기도 하지 않았다. 검사 출신의 중견 변호사는 “그래도 그 부장은 양반”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냥 수사검사에게 ‘네 도장 들고 오라’고 불러 자기가 임의로 작성한 불기소결정문에 도장을 찍게 한 뒤 내려보내는 부장들도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어쩌다 한 번’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또 다른 검사 출신 변호사는 “사건 배당은 부장이 하니까 예를 들어 ㄱ검사가 무슨 사건을 갖고 있는데 부장이 전화를 해. ‘너 그 사건 갖고 있지. 내가 잘 하나 지켜본다’라고 전화를 하면 그게 사인을 내린 것이다”라고 말했다.
법원의 사정은 다를까. 국내 굴지 로펌에서 근무하다 그만둔 한 변호사의 목격담이다. “우리 로펌 대표와 법원장급 고등부장이 절친이었다. 가족끼리도 잘 아는 사이라고 들었다. 그 고등부장이 잘 나가는 사람이었는데 우리가 그 부장 방에 걸린 사건을 수임했다. 일반인들 생각이나 우리 생각에는 ‘아무리 둘이 친해도 쓸데없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재판이 끝날 때까지는 만나지 말아야 정상’이라고 하지 않나. 그런데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인데도 둘이서 만나서 ‘오마카세’ 잘하는 일식집도 가고, 호텔 레스토랑도 가고 그러는 거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건을 수임한 파트너 변호사는 따로 있으니 문제는 없어도 우리는 어떤 식으로 그 재판부 사건이 처리되는지 알지 않나. 그런데 이 바닥은 다 그렇게 돌아간다. 그리고 이 같은 만남이 부적절하다는 인식 자체가 그들에게는 없다. 이것의 확대 버전이 양승태 사법부와 김앤장의 부적절한 만남 아니겠나.”
김태정 검찰총장(오른쪽 두 번째)이 2007년 7월 서울 대검찰청에서 대전 법조비리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경향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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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미풍양속 ‘전관예우’
현금이 오가지 않아도 판사 월급으로는 쉽게 가기 어려운 고급 식당에 ‘모셔가고’, 술집에 판사 이름으로 고급 양주를 맡겨두는 비용 모두가 사실상 ‘판사 접대비’가 아니냐는 게 그의 얘기다.
심지어 사건 관계인이라고 할 수 있는 변호사들이 접대하는 자리에서 배석판사에게 호통치는 재판장을 본 변호사도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전관예우’라는 아름다운 미풍양속이 있지 않나. 그게 속된 말로 안 될 사건도 전관이 처음 들고 간 사건은 되게 만들어주는 관행인데 이 부장판사가 옷 벗고 나갈 때가 된 것 같았다. 우리(변호사)가 다 있는 자리에서 배석한테 ‘자네 내가 첫 사건 들고 가면 잘 해줄 건가’라고 묻는 거다. 배석도 그 자리에서 ‘네’ 하면 될 일인데 ‘부장님, 케이스 바이 케이스 아니겠습니까’라고 답을 했다. 그 말에 부장이 화가 나서 주체를 못 하니 변호사인 우리가 그 부장을 달래줬다.”
이 모든 일이 1997년 이전의 사례가 아니다. 사법농단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할 때도, 서지현 검사의 ‘미투’ 폭로에 이어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 과정에서 문무일 총장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한 안미현 검사의 기자회견, 임은정 부장검사의 검찰 간부 고발까지 검찰 내부에 균열을 내는 목소리들이 ‘현재 진행형’인 가운데서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법원과 검찰의 모습이다.
판사와 검사들의 ‘법원과 검찰 내부에는 그 어떤 부정부패도 없다’는 말은 결국 ‘이미 부정부패가 만연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로 해석될 수 있는 셈이다.
청와대 하명수사 논란으로까지 번진 검찰의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 수사는 그래서 검찰 내부에서는 ‘절차적으로 문제없다’는 결론이 날 수밖에 없다. 검찰은 법이 위임한 권한을 권력으로 해석하고, 자의적으로 휘두르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검사가 고소·고발에 의해 범죄를 수사한 때에는 고소·고발을 수리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수사를 완료해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울산지검은 고소·고발이 접수된 지 1년 8개월이 지날 때까지 단 한 번도 황 청장에 대한 소환조사를 하지 않았다. 형사소송법이 정한 ‘3개월’ 시한이 검찰의 수사현실에 맞지 않는 훈시규정에 불과하더라도 1년 8개월을 수사하지 않고 불안정한 피의자 신분으로 놔뒀다는 점은 상식적이지 않다.
소설가 정을병 선생은 단편 <육조지>에서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진다’라고 썼다. 그런데 검사가 미뤄 조지기도 한다. ‘왜 이 사건을 처리하지 않고 방치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나 원칙도 없이 한 사건을 2~3년 이상 방치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법원장 출신의 원로 변호사는 “어떤 사건은 무관심해서 미루고, 어떤 사건은 적절한 시기에 풀려고 미루는 거고, 법원도 그걸 모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의도적으로 지연한 정의’는 불법이다. 그러나 처벌받는 판·검사는 없다.
“판사와 검사는 자신의 판단이나 결정으로 처벌받지 않는다.” 일선 고등부장판사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지금까지 판결을 잘못했다고 처벌받은 판사는 없었다. 기소를 잘못했거나, 기소할 사건을 불기소하거나 오랫동안 공소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고 처벌받은 검사 역시 없다. 법관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검사가 틀린 결정을 내리더라도 이들을 직접 처벌하는 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법관과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제도(헌법 제106조 1항·검찰청법 제37조)가 있지만 이 제도가 도입된 이래 탄핵소추를 받은 판·검사는 없다. 대통령은 탄핵당해도 판·검사는 탄핵당하지 않는 셈이다.
의미 있는 형법 일부개정법률안
지난해 9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일명 ‘법왜곡죄’ 법안이다. 심상정 의원은 법안발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법원과 검찰은 과거 수많은 사건에서 권력을 위해 실체적 진실과 사법정의를 외면한 채 법을 왜곡함으로써 억울한 사법 피해자를 양산해 내었고, 현재까지도 전관예우와 법조비리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불공정한 사법현실에 비춰볼 때 우리 사회에서 법의 지배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법치주의를 훼손한 법관과 검사들을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법안에 따르면 이 법으로 기소된 판·검사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다. 벌금형 병과규정이 없는 강한 처벌규정을 담은 셈이다. 지난 6월 동일한 내용을 대표발의한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수위를 낮췄다.
법왜곡죄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법을 다루는 판사와 검사가 사실관계를 왜곡하거나 조작하고, 법규의 부당한 적용 또는 양형을 남용하는 행위 전체를 법왜곡죄로 규정하면 그 범위가 넓어진다. 다만 개정법안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법관이나 검사가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처리에 있어서 법을 왜곡하여 당사자 일방을 유리 또는 불리하게 만든” 것을 처벌하자는 게 법왜곡죄의 취지다.
현재 두 법안이 20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은 없다. 이 법안들 역시 ‘임기만료 폐기’ 딱지가 붙을 예정이다. 그러나 수십 년간 존재하지 않았던 ‘법관·검사 처벌법’이 등장했다는 것 자체로 의미는 있다. 판사도 제대로 재판하지 않으면 처벌받을 수 있고, 검사도 제대로 수사하고, 공소결정을 하지 않으면 처벌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국민이 인식하는 것만으로 변화는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21대 국회에서 이 법안을 재발의할 수도 있다.
이제는 수십 년간 반복해온 ‘판사와 검사는 왜 신뢰받지 못하나’라는 질문을 던지는 대신 ‘판사와 검사는 자신의 판단이나 결정으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문장을 고쳐야 하지 않을까. 판사와 검사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아니다. 판단에는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독일·스페인 등 유럽국가 형법에 법왜곡죄 명시
법왜곡죄는 각 나라의 문화적·역사적 특수성이나 사법구조에 따라 존재 유무나 형태, 내용이 각기 다르다.
대륙법을 따르고 있는 우리 법제상 가장 눈여겨볼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형법 제339조에서 ‘법왜곡죄(Rechtsbeugung)’를 명시하고 있다. “법관, 기타 공무원 또는 중재법관이 법률사건을 지휘하거나 재판함에 있어 당사자 일방에게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법률을 왜곡한 경우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한다”가 그 규정이다. 독일은 기소법정주의(기소하기에 충분한 객관적인 혐의가 있을 때는 반드시 기소를 하는 원칙)를 채택하고 있어 보편적으로 판사들이 행위의 대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소편의주의(검사가 임의로 기소 여부를 결정)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독일법을 모방해 법왜곡죄를 도입하게 되면 검사도 이 법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검·경수사권 조정안이 통과될 경우 경찰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독일은 실질적으로 소송당사자에게 이익이나 불이익을 입히지 않았더라도 잘못된 판결을 내릴 구체적 위험이 발생하는 것만으로 법익 침해를 인정하고 있다. 독일형법상 법왜곡죄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하는 중죄에 해당한다. 이 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법관은 공무담임권이 상실될 수 있다. 독일에서는 거의 매년 10건 안팎의 법왜곡죄 재판이 있고, 대부분의 법관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밖에 스페인은 고의의 법왜곡죄, 과실에 의한 법왜곡죄를 분리해 형법에 명시함으로써 처벌을 하고 있다. 노르웨이 역시 형법에서 공공 직무상 중죄를 규율하면서 그중 하나로 판사 등의 법왜곡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고 있다. 심지어 판사의 잘못된 판단으로 사형집행을 초래하거나 5년 이상의 징역형을 집행하게 된 경우에는 21년 이하의 징역형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덴마크·러시아·세르비아 등도 형법에 독자적으로 법왜곡죄를 명시·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가까운 일본은 법관의 법왜곡 행위를 독자적으로 규율하는 규정이 없다. 다만 특별공무원 직권남용죄라는 죄목하에 재판·검찰·경찰의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들의 직무를 보조하는 자가 그 직권을 남용했을 경우 가중처벌하는 규정을 둬 법관의 법왜곡 행위에 대해 처벌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형사정책연구원·2019)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