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3~12.27 규제는 더 강해져야 한다
12.21 인천-주간경향
우리 안에 ‘태극기 부대’ 있다
경향신문 기자협회 성명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12.16 대책에 대한 단상... 규제는 더 강해져야 한다
진학 컨설팅 기준액 ‘강남 5000원·인제 100원’
북 영공 통과 못해…항공사들, 공중에 날린 돈 ‘매년 550억원’
서울 집값 올린 데는 외국인도 한몫… "그중 절반은 중국인"
‘전두환판 강제징집’ 녹화공작 피해 1192명 첫 확인
단순 두통·어지럼증 MRI 검사땐 환자 부담 2배 는다
'성과급 잔치' 공기업…퇴직금도 더 챙긴다
조국과 우병우,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부산 3채 이상 다주택자 3만5106명
공수처에 통보’ 새 조항···검찰 “독소조항” 비판에 “상호 견제”
경향 사설]타당성 없는 검찰의 공수처법 ‘독소조항’ 반발
180도 상반된 두 신문의 조국 구속영장 기각 보도
분배·평등보다 성장·경쟁 선호 강해진 청년들…왜?
부동산 투기 근절되면 우린 집을 살 수 있을까?
진중권 "대통령에 기생하는 '친문'이 권력을 훔쳐간다"
NHK "北, 미사일 발사" 대형 오보..."이런 게 전쟁 일으킬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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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기호
1223 제주-중앙
민중-국민
한국-경향
국제-경인
대구-한겨레
인천-내일
1224 기호-주앙
경기-경인
국민-민중
대구-한겨레
한국-경향
1223~27 굥향 장도리
우리 안에 ‘태극기 부대’ 있다
국회 난입한 ‘태극기 부대’ 거친 욕설
일상으로 돌아가면 평범한 노인 모습
“노년층 누적 모멸감 탄핵 계기 결집”
이른바 보수 기득권 세력이 배후 조종
인정 못 받고 무시당하면 누구나 위험
지난 16일 태극기 부대 국회 난입 사건의 여파가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태극기 부대는 2016년 말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 나타났습니다. 과거 ‘어버이 연합’과 우리공화당 등 박근혜 대통령 석방 및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는 모든 세력의 연합체라고 보면 과히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이들은 주로 서울역 앞 광장과 광화문 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했습니다. 광장은 열린 공간입니다. 누구나 광장에 나가서 집회하고 시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광장에서 하는 태극기 집회는 정당한 일입니다.
그러나 국회는 광장이 아닙니다. 국회는 대의민주주의의 중추적 기관입니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의원들이 국민을 대신해 갈등하고 대화하고 절충하고 타협하고 의결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국회에서 집회와 시위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국회 기자실인 정론관 브리핑룸에서도 구호를 외치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런 국회에 태극기 부대가 난입했습니다. 황교안 대표와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태극기 부대를 국회 경내로 끌어들였습니다.
태극기 부대는 정의당 사람들 머리채를 잡고 침을 뱉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설훈 최고위원을 폭행하며 “빨갱이 잡았다”고 낄낄거렸습니다. 여기까지는 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내용입니다.
그런데 태극기 부대의 국회 난입 및 만행에 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따로 있습니다. 국회 사무처 직원과 보좌진, 그리고 국회를 출입하는 기자들입니다.
16일 오전부터 국회 안으로 밀려 들어온 태극기 부대는 수십명, 수백명씩 무리 지어 국회 본관 주변을 빙빙 돌며 건물 안으로 진입을 시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회 사무처 직원, 보좌진, 기자들과 마주쳤습니다. 태극기 부대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일단 험한 욕부터 해댔습니다.
“야 이 빨갱이 00들아! 씨00들아! 확 00을 뽑아버릴까보다! 똑바로 보도해 00들아! 핸드폰 치워 이 00야!”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 입에서 그렇게 험한 욕이 튀어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기한 것은 남성보다 여성들이 훨씬 더 욕을 심하게 해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의 눈빛은 뭔가에 취한 듯 이글이글 타고 있었습니다.
태극기 부대 주력은 국회 본관 2층 앞 주차장에서 종일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국회 기자실은 1층 앞쪽에 있기 때문에 태극기 부대가 지르는 소리를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녁때가 되니 귀가 먹먹했습니다
이날 태극기 부대의 행패를 겪은 한 기자는 “노인을 공경하라고 배웠는데 이번 일로 그럴 마음이 싹 사라졌다”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다른 기자는 “국회 침투에 성공했다는 승리감에 도취한 탓인지 광화문에서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었다”고 분석했습니다.
태극기 부대는 다음 날에도 또 그 다음 날에도 국회로 몰려들었지만, 국회 담장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16일 국회 경비에 실패한 경찰이 국회 출입구를 철저히 틀어막았기 때문입니다. 국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태극기 부대는 국회 앞에서 매일 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태극기 부대의 요구 사항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들이 국회로 몰려드는 이유가 뭘까요? 태극기 집회를 알리는 우리공화당 보도자료의 제목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좌파독재 악법 공수처 저지
우파궤멸 음모, 연동형 비례대표제 저지
죄 없이 불법 인신 감금 1000일, 박근혜 대통령 석방
문재인 좌파독재정권을 국민의 힘으로 끌어내자!
간명하지요? 그들은 국회와 헌법재판소에 의해 정당하게 이뤄진 탄핵 절차와 결과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선거에 의해 정당하게 선출된 문재인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회법에 따라 진행되는 입법 절차와 내용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 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통째로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는 너무나 정치적이고, 틀에 박힌 주장입니다.
태극기 부대가 분노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요? 태극기 부대를 구성하고 있는 개개인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제가 이런 궁금증을 갖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16일 저녁 태극기 부대가 국회 경내를 빠져나갈 즈음 저도 국회 밖으로 나와서 9호선 국회의사당역에서 여의도역 쪽으로 가는 전철을 탔습니다. 6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두 사람이 태극기를 둘둘 말아 가방에 넣고 좌석에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꽤 고급이었습니다. 다소곳이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은 무척 교양이 있어 보였습니다.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조금 전까지 국회 경내를 휘젓고 다니며 젊은 사람들을 향해 극단적 욕설을 퍼붓던 노인들과, 전철에 얌전히 앉아서 친구와 조용히 대화하는 노인들이 같은 사람들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태극기 부대는 도대체 누구일까? 그들은 왜 모이기만 하면 극도의 공격성을 띠는 것일까? 인터넷에는 이런 문답이 떠 있었습니다.
질문 :태극기 부대는 왜 항상 화나 있나요? 도대체 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고 미국 깃발을 들고 춤을 추고 소리 지르고 20~30대 사람이 지나가면 막대기 들고 때리려 하고 진짜 왜 그래요? 해외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될까 봐 창피해 죽겠네요.
답변 :그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죄가 없다고 믿고 있으며 문재인 정부가 죄 없는 박근혜를 가둬 놓고 안 풀어 준다고 화가 나 있습니다.
역시 너무 정치적이고 뻔한 답변입니다. 논문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2018년 한국정치학회보에 실린 <인정을 위한 저항 : 태극기 집회의 감정 동학>(김진욱 허재영)이라는 논문이 있었습니다. 초록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연구는 태극기 집회에서 발생한 사회적 인정과 정치적 저항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사회적 무시가 낳은 모멸감은 정치적 저항이 촉발되는 데 주요한 영향을 미친다. 모멸감은 비슷한 속성과 가치를 가진 사람들에게 확산된다. 이 감정은 잠재되었다가 특정한 계기에 의해 집단적 저항으로 분출되곤 한다. 집단적 저항은 모멸감의 생성, 확산, 그리고 행위를 통한 분출의 과정을 따라 발생한다. 이러한 경로를 태극기 집회를 통해 살펴보고 인정받기 위한 저항의 과정을 분석하였다. 태극기 집회의 주된 참여자는 노년층이었다. 이들은 그동안 사회적으로 무시당하던 존재들이었다. 결국 이들의 누적된 모멸감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하는 촛불 집회를 계기로 결집되었다. 이 연구는 태극기 집회 주최 측과 태극기 언론은 모멸감에 내재된 노년층의 도덕적 신념을 강화시켜 집단적 저항에 참여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꽤 설득력 있는 분석이었습니다. 궁금증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정신과 의사 정혜신 씨의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 <당신이 옳다>(2018)라는 책이었습니다. 책에서 이런 대목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서명을 받던 곳에서 일군의 노인들이 서명대 집기를 부수고 유가족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일이 있었다. 그 고통스러운 소동이 끝난 후 행패를 부리던 노인 중 한 명과 얘기를 나누게 됐다. 나는 그 소란에 대해서 묻지 않고 “고향이 어디세요?” 물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오래전 세상을 떠난 아내와 살았던 시절로 갔다가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아들과 며느리 이야기로 옮겨왔다. 거리에 버려진 부서진 장롱 같은 그의 삶을 듣다가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다.
한참 만에 노인이 불쑥 말했다.
“내가 아까 그 아이 엄마(세월호 유가족)들한테 욕한 건 좀 부끄럽지.”
“그런 마음이셨군요. 그러셨군요.”
나는 그렇게만 말했다. 사과를 받고자 시작한 얘기가 아니었지만 노인은 사과를 했다. 사과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진 않았지만 노인의 마음속에 미안함이 조금씩 고이고 있다는 걸 대화 중에도 느낄 수 있었다.
노인은 보수단체에서 개최한 강의를 들었다. “우리나라가 지금 이렇게 잘살게 된 건 모두 어르신들 덕분이다. 어르신들이 진정한 애국자다. 오랜 세월 고생 많으셨다”는 얘기를 듣는데 코끝이 시큰했다. 노인이 말도 안 되는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한 것도 자기 존재를 알아주는 사람들(보수단체 강사 등)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오랫동안 온기조차 없었던 방구들에 불이 지펴지듯 마음이 덥혀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노인이 그 당당한 폭력을 후회한 것도 자기 존재에 주목해 주고 자기 삶에 귀 기울여준 사람(나)을 만나서였다.
길에서 어버이 연합 노인을 만났을 때 노인의 입에서 자동적으로 나오던 “종북 세력,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얘기를 뒤로 물리고 “밥은 드셨어요? 고향이 어디세요?”라고 한 것은 이야기의 과녁을 맞추기 위해서다. ‘그’라는 존재의 중심에 빠르게 들어가기 위해 부질없는 논쟁이 될 게 뻔한 시국과 관련한 얘기들을 뒤로 치워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날 그곳에서 그 노인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면 노인도 그날 그곳에서 자기 자신을 만나지 못하고 다시 다람쥐 쳇바퀴 같은 수렁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을 것이다.
공감은, 생각과 감정들이 실타래처럼 엉켜서 나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그 부위에 미사일처럼 정확하게 꽂히는 치유 나노로봇이다. 이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고 정교하며 부작용 없는 치유제를 나는 아직 만난 적이 없다.
어떻습니까? 저는 정혜신 씨의 책에서 태극기 부대 구성원과 그들의 분노에 대한 저의 궁금증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덤으로 태극기 부대를 만난다면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처방까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착각하면 안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태극기 부대는 외계인이 아닙니다. 다른 나라 사람도 아닙니다. 우리나라 노인들입니다. 가정에서 자식들의 외면으로, 사회에서 젊은이들의 경멸로 상처받은 노인들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기 원하는 인정 욕구가 있습니다. 사랑받기 원하는 사랑 욕구가 있습니다. 그런 원초적 욕구를 채우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 의해 무시당하고 경멸당한다고 생각하면 열패감과 모멸감을 안고 키우게 됩니다. 열패감과 모멸감은 적절한 계기가 생기면 누군가를 향한 맹목적 증오와 분노로 폭발할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태극기 부대 노인들을 향해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젊은 사람들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 안에 태극기 부대의 씨앗이 자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태극기 부대 노인은 바로 나의 미래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고요? 자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9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공수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문제의 핵심은 노인들이 아닐 것입니다. 노인들의 열패감과 모멸감을 자극해 분노를 증폭시키고 선동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이른바 보수 기득권 세력의 탐욕이 훨씬 더 큰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악마는 귓가에 은밀한 속삭임으로 사악한 마음을 부추겨 사람을 조종한다고 합니다. 황교안 대표와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태극기 부대 노인들에게 혹시 지금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닐까요? /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경향신문 기자협회 성명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한국기자협회 경향신문지회는 2019년 12월13일자 경향신문 1·22면에 게재 예정이었던 ㄱ기업에 대한 기사가 해당 기업의 요청을 받고 제작과정에서 삭제된 데 대해 독자들에게 사과하는 성명을 22일 발표했다.
경향신문지회는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성명을 통해 “ㄱ기업이 기사 삭제를 요청하며 구체적인 액수의 협찬금 지급을 약속하자 사장이 기사를 쓴 기자와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기사 삭제에 대한 동의를 구했다”며 “편집국장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기사가 삭제된 후) 해당 기자는 사표를 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지회는 “경향신문 구성원들은 ‘독립언론’으로서 경영난과 정부의 견제, 변화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오직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감시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왔다”며 “그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적절한 통제 장치도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지회는 이번 사태를 인지한 즉시 사장과 편집국장, 기사를 쓴 해당 기자와의 면담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지난 19일 기자총회를 열었다. 사장과 편집국장, 광고국장은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로 했다.
경향신문지회는 “이번 일을 외부로 솔직하게 공개하고 사과드리는 것이 독자 여러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며 “향후 내부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이 사태를 면밀히 조사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할 것이며, 경향신문이 더 나아지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경향신문지회의 성명서 전문.
독립언론 경향신문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2019년 12월13일자 경향신문 1면과 22면에 게재 예정이었던 A기업에 대한 기사가 해당 기업의 요청을 받고 제작과정에서 삭제됐습니다. A기업은 기사 삭제를 조건으로 협찬금 지급을 약속했습니다. 사장과 광고국장은 A기업에 구체적 액수를 언급했습니다. 사장은 기사를 쓴 기자와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동의를 구했습니다. 편집국장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기자는 사표를 냈습니다. 경향신문 기자들은 이 사실을 인지한 즉시 사장·국장·해당 기자 면담을 거쳐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12월19일 기자총회를 열었습니다.
경향신문의 편집권은 경영권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습니다. 경향신문 구성원들은 오랫동안 ‘독립언론’의 소중한 가치를 지켜 왔습니다. 경영난과 정부의 견제, 변화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오직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감시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적절한 통제 장치도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사장과 편집국장, 광고국장은 이번 일에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로 했습니다. 경향신문은 내부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이 사태를 면밀히 조사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할 것입니다.
경향신문 구성원들은 이번 일을 외부로 솔직하게 공개하고 사과드리는 것이 독자 여러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는 이번 일이 경향신문이 더 나아지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아래는 한국기자협회 경향신문지회의 결의사항입니다.
1. 사장은 즉각 모든 직무를 중단한다. 신속하게 차기 사장 선출 절차에 착수한다.
1. 편집국장, 광고국장은 모든 직무를 중단한다. 사규에 따라 두 사람에 대한 인사위원회를 열어 징계를 검토한다.
1. A기업이 약속한 협찬금의 수령 절차를 중단한다.
1. 기자협회, 노동조합, 사원주주회가 포함된 내부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한다.
1. 이 모든 과정을 내외부에 투명하게 공개한다.
2019.12.22 한국기자협회 경향신문지회
12.16 대책에 대한 단상... 규제는 더 강해져야 한다
거인의 정원에 봄이 오려면...
전격적으로 발표된 정부의 12.16 부동산 대책과 관련한 기사가 연일 쏟아진다. 대출 규제로 인하여 중산층 실수요자의 주거사다리를 걷어찼다는 비판, 공시가 현실화, 종부세 상향 예정으로 중산층 주거 부담이 커졌다는 비판이 많다. 아예 시가 15억 원 이상 아파트의 대출을 아예 금지한 조치를 두고는 과도한 재산권침해라며 위헌소송까지 제기된 상태다.
대출규제 조치가 빚내서 집 사고자하는 시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조치인가?
시계를 2012년, 2013년으로 돌려보자. 이명박 정부 말기, 박근혜 정부 초기였던 당시는 부동산 가격이 더 오르지 않으리라는 예상이 많았다. 서울 수도권의 경우 미분양이 넘쳤다. 양도세 감면 혜택, 무이자 중도금대출 등 대출규제를 아무리 풀어도 사람들은 집을 사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다주택자들은 보유 주택을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였다. 이 때문에 전세 수요가 급증하여 전세가격 폭등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실수요층이라고 일컬어지는 무주택자 또는 1주택자라 하더라도 무리한 대출을 끼고 집을 사겠다고 작정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집값 상승에 대한 불안감, 즉 '투기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실수요자'라는 단어는 '거주할 곳을 찾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강조하지만, 그 이면에서 '집값이 더 오를 것 같은 불안', 즉 '투기 심리'가 함께 작용하지 않으면 집을 구매하고자하는 욕구는 사라진다.
최근 30대 주택구입자 비중이 커진 현상은 매우 우려된다(30대, 서울아파트 구매비중 32%... 주택소비 주력계층 되다, 헤럴드경제 2019.11.11., 젊은 집주인이 온다.. 작년 보금자리론 70%가 20,30대 파이낸셜 뉴스 2019.9.22.). 초기 자금이 적고 소득이 받쳐주지 않은 상태에서 큰 대출은 주택 구매자로 하여금 예측할 수 없는 상황 변동으로 인한 큰 위험에 노출되게끔 하기 때문이다.
소득이 적고 가진 돈이 적으면 그에 맞는 주거 형태를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우연히 집을 언제 구입했는지에 따라서 자산 격차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며, 당장 목돈이 없는 사람들, 주거 취약 계층에게 질 좋고 저렴한 주택을 꾸준히 공급하는 것이 공공의 역할이다. 집값상승 불안감에 기댄 투기 수요에 발맞춰 대출을 많이 받을 수 있게 해주는 정책은 결코 부동산 대책이나 주거안정 대책이 될 수 없다.
서울의 30년 이상 된 재건축아파트단지들을 보면 분양받아서 수십 년 간 살고 있는 노인 세대가 많다. 그들은 현재는 소득이 없지만, 수십 년 전 우연한 선택으로 소득대비 자산 가치를 기준으로 훨씬 저렴한 가격에 주택을 구입하였을 뿐이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단칸방에서 신혼을 시작하였지만 부부 중 한사람의 소득만으로도 알뜰살뜰 아파트 마련하고 자녀들 교육시키며 살 수 있었다.
도시의 확장, 인프라 구축, 인구의 변화, 제도의 변화에 따라, 어느 곳에 집을 사고 팔았느냐에 따라, 내 할아버지가 어디서 농사 지으며 터 잡고 살았느냐에 따라 우연히 자산 격차가 극심해졌을 뿐인데, 이것을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감당하게 하는 것이 온당한가? 우연한 선택의 결과 누리게 된 자산 가치 상승은 온전히 내 것이고, 우연히 기회를 얻지 못한 이웃의 박탈감은 그들의 탓인가?
최고의 정책은 집값이 급등락하지 않고, 소득 대비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언제라도 무리한 대출 없이 자신의 소득범위에서 원리금을 상환할 정도 수준의 집을 구입할 수 있게끔 하는 정책이다. 부동산을 언제 구입했는지, 어디에 구입했는지가 계층이동 수단이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부동산 대출 규제 정책은 결코 서민의 내 집 마련 꿈을 앗는 대책이 아니다. 오히려 이번 12.16 대책은 소수의 초고가 아파트만을 집중적으로 규제하는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비판에 정부는 더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요 중산층의 내 집 마련 꿈을 앗아간다는 식의 융단폭격 언론보도를 보고 있자니 왜 문재인 정부가 보다 강력한 정책을 들고 나오지 못 하는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이번 12.16 대책을 두고 공급 확대 정책이 빠졌다는 비판에 대해 '우리가 돈이 없지 집이 없나'라고 답하고 싶다. 돈이 부족한 시민에게 필요한 정책은 소득을 높이고 집값을 낮춰주는 것이지, 소득은 적은데 큰 대출을 허용해주고 비싼 집을 사게 만들어 집값을 더 높이는 것이 아니다.
불안 심리에 기댄 투기 수요로 인한 부동산 가격 폭등은 거인의 정원에 점점 더 높고 두꺼운 담장을 치고 아이들이 결코 발을 들일 수 없도록 한다. 북풍과 눈보라로 가득 차 결코 봄도, 아이들도 돌아올 수 없는 황무지가 될 것이다. 아이들이 떠난 정원에서 과연 거인은 행복할까?
(높은 가격에 부동산을 구입한) 거인(건물주, 집주인)이 힘든 이유는 (높은 임대료, 대출이자로) 아이들(자영업자, 세입자, 젊은 세대)이 떠났기 때문이다. ('건물주도 힘들어요' 머니S, 2019.12.19.) 거인의 정원을 아이들에게 돌려주지 않으면 거인도 불행해진다.
거인의 정원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넓고 아름다운 거인의 정원, 꽃이 피고 아이들이 모여들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가득한 곳이었다. 그러나 집을 비워두었던 거인이 돌아와서 아이들을 모두 내쫓았다. 아이들이 떠나고 나자 거인의 정원에는 다시 꽃이 피고 봄이 찾아오지 않았고, 눈과 서리, 북풍 우박만이 춤을 추었다.
어느 날 아침 창밖에서 향긋한 냄새가 나고, 파릇파릇 새싹이 피어오르고 새들이 노래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담장의 구멍으로 몰래 들어와서 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거인은 정원에서 아이들을 내쫒았기 때문에 봄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담장을 허물고 아이들과 함께 놀았다. 거인은 이제 할아버지가 되었고, 아이들이 뛰어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내 정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바로 저 아이들이야.'
▲ 12.16 대책이 발표된 후 일부 초고가 아파트 대출만 규제하는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비판과 정부의 인위적 대출 규제 정책이 반시장적이라는 비판이 동시에 이어지고 있다. 1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새내역 인근 상가의 부동산중개업소에 부동산 매물들이 게시돼 있다. ⓒ연합뉴스
조정흔 감정평가사 / 프레시안
진학 컨설팅 기준액 ‘강남 5000원·인제 100원’
사걱세, 교육청 44곳 조사
최고 50배 차이 ‘천차만별’
각 지역 교육청이 정한 ‘진학 컨설팅’ 적정 기준 액수가 교육청에 따라 50배까지 차이가 나는 등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걱세)은 178개 지역 교육청의 진학상담·지도 교습비 적정기준을 전수조사한 결과를 22일 공개했다. 각 지역 교육청(교육 지원청)은 학원이 교육청에 신고한 교습비가 과도한지 여부를 판별하고 계도하기 위한 ‘교습비 조정기준’을 둘 수 있다. 교습비 조정기준은 과목이나 지도 목적에 따라서 세부적으로 정할 수 있다.
사걱세가 ‘진학지도’ 명목의 교습비 조정기준 액수를 조사한 결과, 현재 진학지도 명목으로 교습비 조정기준액을 따로 둔 지역 교육청은 44개로, 평균 조정기준 액수는 분당 314원이었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최대 50배까지 차이가 나는 등 편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강남서초교육지원청은 분당 5000원인 데 반해, 강원 인제교육청은 100원으로 책정해두고 있었다.
사걱세는 “강남서초를 제외하면 평균 조정기준 액수가 205원으로 뚝 떨어질 정도로, 강남서초만 유별나게 높게 책정돼 있다”면서 “강남서초의 조정기준이 마치 컨설팅 업계의 적정한 ‘시가’처럼 인식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진학지도 교습비 조정기준이 전혀 없는 지역교육청이 134곳이나 되고, 그나마 조정기준을 두고 있는 지역교육청도 해마다 개정을 하지 않아 사교육비 상승을 방치하고 있다는 문제도 지적됐다. 충남 예산교육지원청의 경우 조정기준을 마지막으로 개정한 시기가 8년 전인 2011년이었다.
사걱세는 “교습비 조정기준은 사교육 시장의 무리한 교습비 책정을 방어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며 “다른 지역보다 최대 50배 높은 강남서초 조정기준을 적정한 수준으로 개정하고, 조정기준이 제대로 갖춰져있지 않은 지역 교육청 역시 조속히 조정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북 영공 통과 못해…항공사들, 공중에 날린 돈 ‘매년 550억원’
ㆍ‘연 2만회 미주 운항’ 대한항공·아시아나, 일본에 통과료 연 220억 지급
ㆍ북한 통과료는 30% 저렴…거리도 늘어 30분 지연에 항공유 480억 낭비
ㆍMB 정부 때 북 영공 통과 금지된 뒤 지금의 일본 우회항로로만 가게 돼
항공업계가 업황 부진으로 실적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북한 영공 회피에 따른 대형 항공사들의 손실액만 연간 500억원 이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항공사들이 10년 가까이 일본 영공으로 우회하고 있어 그동안 손실액은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은 국내 항공사들로부터 짭짤한 영공 통과료를 챙기고 있다.
4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국내 대형항공사(FSC)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화물기 포함 연간 2만회가량 일본 영공을 통과해 미주 지역을 오가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북한 영공을 통과하는 것에 비해 항공사엔 추가 부담으로 작용한다.
남북은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 4월 상호 영공을 개방해 민항기의 영공 사용을 허용했다. 물론 국적기들이 북한 영토 위를 날아다닌 건 아니고 북한 영공인 해상 경로를 사용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천안함 사건 등으로 남북관계가 악화하면서 북 영공 통과를 금지하는 정부의 5·24 조치가 나왔고 이때부터 국적기들은 일본 등으로 우회 운항하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일단 미 서부지역 쪽을 오가는 항공기는 일본 쪽으로 우회해 편도 기준 30분가량을 더 비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도착시간이 지연될 뿐 아니라, 싱가포르 항공유가 배럴당 75달러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30분 동안 우회하는 데 들어가는 항공유 가격도 대형기 1대당 240만원 안팎이다. 2만대의 항공기가 1년에 480억원어치의 항공유를 일본 상공에서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 영공을 지나려면 보잉747 기종 기준 건당 통과료 110만원가량을 지불해야 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미주 운항으로 일본에 지불하는 통과료만 연간 220억원이다. 북한 영공 통과료는 30%가량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 해상을 지나갈 때보다 약 70억원 많은 금액을 매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으로 우회하는 2만대의 항공기는 매년 550억원 가까운 추가 비용을 쓰고 있다. 업계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각각 360억원과 180억원 이상을 추가 부담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미주 서부지역을 오가는 일본 쪽 우회 항로만 감안한 추산이다.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지만 뉴욕 등 미 동부지역을 오가는 항공기 또한 북한 서해 영공을 피해 15~20분가량 더 소모하며 중국 쪽으로 우회 비행한다. 또 FSC뿐 아니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오가는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들도 북 영공을 피해야 하므로 이런 비용이 상당하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항공업계가 호황일 때는 이런 문제가 특별히 거론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 항공사가 최근 일본 승객 급감과 경기 불황 등으로 2분기 이후 대규모 적자를 내는 등 한 푼이 아쉬울 때여서 전사적인 비용절감에 나선 상태다.
우회 항로 문제는 당분간 해결되기 어려워 보인다. 북·미 대화에 큰 진전이 없어 대북 제재가 풀리지 않고 있는 등 한반도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항공사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으냐”며 “상당 기간 일본과 중국으로 우회하는 현 항로체제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재원 기자 jwhong@kyunghyang.com
서울 집값 올린 데는 외국인도 한몫… "그중 절반은 중국인"
집값 상승세가 다시 심상치 않자 정부가 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다시 내놓은 가운데 그동안 집값을 올리는 데는 외국인들의 영향도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국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23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10월 신고된 서울 주택 매매 1만4145건 중 매입자 주소가 서울이 아닌 ‘기타 지방’은 3407건으로 전체 거래의 24.08%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2658건)보다 749건 늘어난 것으로 올해 들어 최대치다.
전체 거래에서 외지인이 서울 주택을 사들인 비율도 지난 9월(22.56%)보다 1.52%p 상승했다. ‘기타지방’으로 분류된 매입자는 지방이나 해외에 거주 중인 사람이다. 이들은 송파구(257건) 주택을 가장 많이 사들였다. 이어 강서구(257건), 노원구(215건), 성북구(213건), 강남구(186건) 순으로 집계됐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일대 아파트 전경. /조선일보 DB
외지인의 부동산 진출이 늘어나는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외국인의 주택 매수가 많았고, 특히 중국인의 서울 부동산 진출이 계속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홍철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국감정원에서 제출받은 ‘서울시 외국인 주택매매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5년 1월부터 올 8월까지 외국인은 서울 주택 1만341채를 사들였다. 이중 중국인이 매수한 주택은 4773채(46.2%)로 절반 정도다. 미국인은 2674채(25.9%)를 샀고 일본인은 185채(1.8%)를 매입했다.
특히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아지는 추세다. 2015년 중국인은 722채(32.49%)를 매수해 미국인이 사들인 631채(28.39%)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2017년부터 서울 주택을 매수한 외국인 중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50%를 넘어섰다. 올해 8월까지는 미국인이 서울 190채(18.77%)를 사는 동안 중국인은 619채(61.16%)를 샀다.
자치구별로는 서울 금천구와 구로구, 영등포구, 중구 등에서 중국인의 비중이 높았다. 올해 초부터 8월까지 외국인이 매수한 금천구 주택은 총 154채다. 이 중 중국인이 산 주택은 88채로 97.77%를 차지했다. 구로구에서는 같은기간 외국인이 산 154채 중 146채(94.80%)를 중국인이 샀다. 영등포와 중구는 외국인이 산 주택 중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각각 73.17%, 61.90%로 나타났다.
외지인들이 서울 부동산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서울 주택 가격이 꾸준히 상승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주택 중위가격은 6억5718만원으로 올해 내내 상승 중이다. 2016년 11월 서울 주택 중위가격(5억866만원)과 비교하면 약 1억5000만원 정도 올랐다. 아파트 가격은 더 가파르게 뛰고 있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8억8013만원으로 2016년 11월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5억9674만원)과 비교하면 약 3억원 정도 올랐다.
정부 규제로 오히려 기존 서울 새 아파트값이 더 오를 가능성이 커지고 저금리까지 겹치면서 외지인들이 서울 주택을 사들인 것으로 보인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우리나라는 외국인 부동산 매입이 전면개방된 나라"라며 "중국인들이 서울 주택을 매수하는 비중이 높아진 이유는 대림동, 자양동 등에 상권을 형성하면서 주택시장까지 넘어온 것"이라고 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정부가 규제할수록 집값이 상승하고, 향후 공급이 원활하게 되지 않으면 집값이 또다시 오를 것으로 판단한 외지인들이 서울 주택을 매수한 것"이라며 "저금리 기조까지 겹치면서 투자 수요까지 가세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조선비즈 김민정 기자
‘전두환판 강제징집’ 녹화공작 피해 1192명 첫 확인
군 과거사위 작성 전체명단 입수
학생 강제 징집해 ‘프락치’로 활용
39년 만에 진실규명위 꾸려 “처벌” 촉구
유시민·심재철·김선수 등 포함돼
전두환 군사정권 당시 강제징집과 폭력을 당한 윤병기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 추진위원회’(추진위) 위원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씨 집 앞에서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의 책임자인 전씨의 처벌과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강제징집과 녹화공작 및 선도공작 등 피해자들은 이날 전씨 집 앞에서 신군부의 강제징집이 시작된 1980년 이후 피해자 모임을 처음 꾸린 뒤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1980년대 초 학생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을 강제징집하고 이들을 ‘프락치’로 활용한 전두환 정권의 ‘녹화공작’ 피해자 전체 명단이 최초로 확인됐다. 피해자들은 39년 만에 진실규명을 위한 모임을 꾸리고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22일 <한겨레>가 입수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녹화공작 및 강제징집 대상자 명단을 보면, 1천명이 훌쩍 넘는 피해자들이 교내 시위, 유인물 제작, 야학 운영, 동아리 활동 등의 이유로 강제로 휴학 등을 당해 군대에 끌려가거나 입대 뒤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 명단에는 유시민(60) 노무현재단 이사장, 심재철(61)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함께 김선수(58) 대법관, 한상혁(58)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이강택(57) 교통방송 사장 등이 포함됐다.
김 대법관은 서울대 고전연구회 회장을 맡았고 1981년 5월 불법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두달 뒤 강제징집을 당했다. 유 이사장은 1980년 5월 교내시위 참여, ‘농촌법학회’ 활동 등의 이유로 같은 해 9월 군대에 끌려갔다. 심 원내대표도 ‘농촌법학회’ 활동과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돼 1981년 2월 강제 입대했다.
빨갱이라 짓밟고 자술서·프락치 강요…“죽지 못해 산 지옥”
“손톱 밑을 바늘로 찔렀던 고문 트라우마로 아직도 손톱을 짧게 못 깎아요. 초인종을 누르면 경찰인 것 같고, 아직도 누군가가 절 감시하는 것 같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아요.”
황병윤(58)씨는 1983년 경찰에 붙잡혀 강제로 군대에 끌려간 이후 3년의 기억이 아직도 꿈에 나올 정도로 생생하다. 1983년 7월 말께 대구대 4학년이었던 황씨는 동아리 모임을 마치고 귀가하다가 경찰에 체포됐고, 대구남부경찰서에서 한달간 조사받았다. 황씨는 이후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곧 육군 50사단에 강제징집됐다.
황씨는 군에서 3년간 꼬박 고문과 폭력, 따돌림에 시달렸다. 출생부터 강제징집 전까지 만난 사람들과 친구, 가족들의 이야기를 모두 담은 ‘자서전’을 쓰도록 지시받았고, 쓰지 않으면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 15일간 돌연 휴가증을 끊어주며 학내에 간첩과 북한 찬양자를 조사해 전하는 ‘프락치’ 노릇을 강요받았다. “데모하거나 사회 서적을 읽었다는 내용의 편지만 받아도 불려가 귀싸대기를 맞았고 부대 안에서 빨갱이 취급을 받으며 집단 구타를 당하기 일쑤였어요. 군대 안에 있는 3년 내내 제 일거수일투족은 기록돼 위로 보고됐고 추궁당했습니다.”
김현동(57)씨도 1983년 3월30일 밤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집에 서울동대문경찰서 형사가 찾아와 잠깐 조사할 일이 있다고 해 따라나섰다가 유치장에 갇혔다. 4월1일 밤 11시 김씨는 경찰서 지하실의 작은 방에 끌려갔다. 붉은 조명이 비추는 방에서 누군가 007가방을 열더니 징집 영장을 꺼내 사인하라고 했다. “싫다”며 저항하자, 형사인지 군인인지 모를 6~7명이 김씨의 몸을 짓누르고 포박했다. 그는 4월2일 경기도 의정부시 101보충대에 실려 갔고, 삭발당한 뒤 군인이 됐다.
김씨가 강제징집된 것은 성균관대에서 ‘휴머니스트’라는 사회과학 동아리를 하면서 교내 집회에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그해 5월 김씨는 보안부대에 끌려갔고, 황씨와 똑같이 2주일 동안 100쪽이 넘는 ‘자서전’을 대여섯번씩 새로 썼다. 보안부대는 대학 시절 일에 대해 집요하게 캐묻고 캐물었다. 부대는 김씨 역시 황씨처럼 휴가를 보내준 뒤 학교 동료들의 동향을 파악해 서울 퇴계로 ‘진양상가’에 있는 국군보안사령부 분실에 가서 보고하라고 했다. “프락치 짓은 죽어도 못하겠으니까 친구들한테 저를 피해 다니라고 하고 바깥으로 빙빙 돌았어요. 보고 거리가 없으니 진양상가에 가면 ‘너 그러면 군 생활 재미없을 줄 알라’고 협박당한 뒤 다시 학교 주위를 빙빙 도는 일이 반복됐죠. 아무 말도 안 할 수는 없었으니 경찰에 잡혀간 경력이 있어서 군에서도 알 만한 사람들 동아리 사람 이름 정도는 말할 수밖에 없었죠. 지옥에 있는 심정이었어요. 죽지 못해 살았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1980년 9월부터 1984년 11월까지 학생운동에 참여한 대학생들을 강제징집했고, 1982년 9월부터 1984년 12월까지 이들을 프락치로 활용하는 녹화공작을 진행했다. 2006년 7월 국방부 과거사위 발표를 보면, 강제징집자는 1152명, 녹화공작 대상자는 강제징집자 921명 등 모두 1192명이었다.
군대에서 동료를 배신하라고 요구하는 프락치 공작은 노태우 정권까지 이어졌다. 1984년 종교·시민단체와 국회 등에서 녹화공작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은 뒤 강제징집은 중단됐지만, 군은 ‘선도공작’으로 이름을 바꿔 노태우 정권 때까지 수백명의 군인들에게 프락치 활동을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소 2천명에 가까운 청년들이 군에서 고통을 당했다.
강제징집·녹화공작 당시 석연찮은 죽음을 맞이한 이들은 6명이다. 선도공작 등까지 포함하면 모두 9명이 프락치 강요 등으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의심된다. 하지만 진상규명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2002년 강제징집·녹화공작 과정에서 군에서 숨진 6명 가운데 4명의 죽음이 국가폭력과 관련있다고 인정했다. 나머지 2명에 대해서는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이후 강제징집과 녹화·선도공작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는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맡았다. 국방부 과거사위는 2006년 녹화공작의 전반적인 규모 등을 조사해 발표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군이나 국가가 공식 사과하는 일은 없었고, 구체적인 피해자 명단도 확인해주지 않았으며, 피해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동안 피해자들은 쉽게 나서지 못했다. 죽지만 않아도 다행이었던 시대에 강제징집은 큰 고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되레 ‘군에 끌려가 프락치로 활용됐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렇게 억눌러온 고통이 지금은 울분이 되어 터지고 있다. 전남대 학생이었던 노영필(58)씨는 1983년 군에 끌려가 군인들에게 고문과 폭행을 당했다. “조사가 끝날 때쯤 목욕을 시켜준다는데, 옷을 벗고 목욕탕에 들어가니까 온몸이 엉망이더라고요. 그래도 참았죠. 동료들의 이름을 이야기할 수는 없었으니까….” 노씨는 이제 40년 전의 고통이 세상에 투명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희생된 사람이 많았잖아요. 오히려 군대에 끌려갔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녹화공작 자체가 국가권력의 명백한 폭력인데 가만히 두고 넘어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강제징집 피해자 조종주씨가 다른 피해자들에게 남긴 글
조종주(56)씨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등 사회과학 책에 대한 소감을 적은 편지가 경찰에 압수돼 대학교 2학년 때 대구북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조씨는 개학날 다시 경찰서에 끌려갔고 그길로 지프에 실려 대구 50사단에 간 뒤 군인이 됐다. 신병교육 때 강제징집된 동료들과 길거리의 돌멩이처럼 차이고 맞은 조씨는 2개월 만에 탈영했다. 하지만 몰래 만난 엄마가 “깔딱숨”밖에 쉬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군으로 돌아갔다. 최근 그는 그 기억을 글로 써 다른 피해자과 공유했다. ‘전두환과 끝까지 싸운다’는 내용이다.
“저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에요. 실제 친한 친구가 죽은 사람들의 트라우마는 말도 못합니다. 그런데 전두환은 골프를 치고 쿠데타 날 잔치를 하더라고요. 40년이 지났지만 싸울 겁니다. 제 인생의 버킷리스트는 강제징집 문제 해결입니다.”
강제징집 피해자들이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씨 자택 앞에서 국군보안사령부가 부여했던 관리번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녹화공작 피해자들 “전두환 처벌받아야” 집앞서 회견
피해자 213명으로 구성된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 추진위원회(추진위)는 21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전두환씨의 사죄 등을 요구했다. 전두환 신군부의 강제징집이 시작된 1980년 이후 강제징집과 녹화공작·선도공작 등 피해자들이 진실규명을 위한 모임을 꾸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추진위는 이날 오전에는 서울 연희동 전두환씨 집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980년대 전두환 정부의 강제징집 등 진실규명과 주요 책임자 처벌”을 호소했다.
이들은 특히 전씨의 처벌을 강조했다. 윤병기 추진위 공동위원장은 “전씨가 29만원밖에 없다면서 골프를 치고, 치매라면서 술을 마시는 걸 보면서 피해자들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며 “녹화공작 최종 지시자인 전두환이 어떤 식으로든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황병윤 공동위원장도 “피해자들이 전두환의 최근 행보를 보고 국가폭력을 공개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추진위는 이날 정부와 국회, 군사안보지원사령부(옛 보안사령부)에 △녹화·선도공작 관련 자료 공개 △공식 사과 및 재발 방지책 마련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전두환씨를 비롯한 책임자 사죄 등을 요구했다. /정환봉 권지담 기자 bonge@hani.co.kr
단순 두통·어지럼증 MRI 검사땐 환자 부담 2배 는다
복지부 내년 3월 본인부담률 80% 상향
건보 적용뒤 지출 예상치 넘어 대책 마련
8만8천~18만원 본인부담 2배 가량 증가
<한겨레> 자료사진
내년 3월부터 별다른 이상 증상 없이 두통·어지럼을 느껴 엠아르아이(MRI·자기공명영상촬영) 검사를 받는 환자들의 본인부담금이 올해보다 약 2배 증가한다.
보건복지부는 23일 오후 제25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두통·어지럼으로 인한 뇌·뇌혈관 엠아르아이 검사에 대한 환자 본인부담률을 80%로 올리는 방안을 내년 3월1일부터 실시할 예정이라고 보고했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뇌질환이 의심될 때 시행하는 뇌·뇌혈관 엠아르아이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의료기관별로 38만2천~66만4천원이던 환자 부담이 8만8천~18만원으로 줄어든 바 있다.
복지부의 이번 결정은 줄였던 환자 부담을 일정 부분 다시 늘리는 조처다. 현재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두통·어지럼으로 뇌 엠아르아이 검사를 받을 경우 환자는 11만100원(본인부담률 40%)을 내지만, 내년 3월부터 부담금이 22만300원(본인부담률 80%)으로 늘어난다. 다만, 감각·운동 신경을 간단하게 살펴보는 신경학적 검사에서 이상 증상이 있거나, 뇌압 상승 소견이 나온 뒤에 진행하는 엠아르아이에 대한 환자 본인부담률은 지금처럼 30~60%로 유지되며 부담금액도 달라지지 않는다.
일부 뇌 엠아르아이에 대한 환자 본인부담률을 상향 조정하는 까닭은, 건보 적용에 따른 지출 규모가 예상보다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뇌 엠아르아이 건보 적용으로 연간 1600억여원의 지출을 예상했으나, 그동안 지출 추이를 고려할 때 연간 2730억~2800억원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했다.
손영래 복지부 예비급여과장은 “연간 지출액(추정)이 예측치를 60% 이상 초과한 것은 검사가 필요한 대기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과소 추계한 부분과 두통·어지럼 등 경증으로 인한 검사가 과도하게 증가한 부분이 절반씩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병·의원 등 중소형 의료기관에서의 두통·어지럼으로 인한 엠아르아이 진료비 증가율이 대형병원에 견줘 4~10배 높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별다른 증상 없이 두통·어지럼을 호소하며 엠아르아이를 찍은 환자 가운데 5~10%는 실제 뇌 질환을 진단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손영래 과장은 “두통·어지럼에 따른 엠아르아이를 모두 의미 없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환자 부담을 높이는 동시에 내년 1월부터 뇌 엠아르아이 검사가 많은 의료기관을 모니터링하는 등 공급자 통제도 강화해 의사와 환자가 엠아르아이 검사 여부를 상의하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문재인 케어) 시행으로 올해 4월까지 약 700개 항목에 대해 건보 적용을 확대했으며, 이에 따라 연간 4조5천억원의 재정 지출을 예상했다. 뇌·뇌질환 엠아르아이나 광중합형 복합레진 충전치료 같은 항목은 애초 예상보다 더 많은 비용이 지출될 것으로 보이나, 전체적으로는 예상치를 밑도는 연간 3조8천억원~4조원이 쓰일 것으로 복지부는 전망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성과급 잔치' 공기업…퇴직금도 더 챙긴다
수조 적자내도 'A' 받아 성과급
"퇴직금 산정 때 성과급도 반영"
기재부, 공기업 129곳에 지침
퇴직금 최대 1천만원대↑ 효과
사진=연합뉴스
내년부터 한국전력 국민연금관리공단 등 129개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임직원의 퇴직금 산정에 성과급을 포함할 수 있게 된다. 공기업은 적자를 내더라도 일자리 창출, 상생협력 등을 잘하면 높은 경영등급을 받을 수 있는 구조여서 공공기관의 ‘방만경영’을 부채질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정부 경영평가를 받는 129개 경영평가 대상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에 “퇴직금 산정 때 성과급을 포함하고 이에 따른 추가 인건비를 내년 예산에 반영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상당수 공공기관은 이달 초 퇴직금 산정 기준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공기업 임직원은 내년부터 퇴직금이 수백만원에서 1000만원대까지 늘어난다. 퇴직금 산정 기준이 되는 평균임금(퇴직 전 3개월간 임금 평균)에 성과급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에 따른 조치”라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한국감정원을 시작으로 한국공항공사 한국산업인력공단 한국마사회 등의 퇴직금 소송에서 대법원은 “계속적·정기적으로 지급하고 있으며 지급 대상과 조건 등이 규정돼 있다면 퇴직금 산정 기준에 들어간다고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한국경제
조국과 우병우,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민정수석의 직권남용 혐의... 사안의 중대성과 혐의 숫자는 큰 차이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왼쪽)과 조국 현 청와대 민정수석 ⓒ 권우성/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구속될까? 오는 26일 법원의 조국 전 장관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이 23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이하 직권남용) 혐의로 조 전 장관 사전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한 것을 두고, '박근혜 청와대' 우병우 전 민정수석비서관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실세'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혐의이고, 검찰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두 사건은 같은 점보다 다른 점이 더 많다.
두 사건은 무엇이 닮았고, 무엇이 다를까.
[닮은 점] '민정수석의 봐주기'라는 혐의
우선 공통점은 혐의다.검찰이 보는 조 전 장관의 혐의는 2017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이 비위가 있는 유재수 당시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을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 하지 않고 사표 처리로 정리하는 데에 민정수석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우병우 전 수석의 경우, 검찰은 우 전 수석이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을 인지하고도 엄정한 감찰을 해야 할 직무를 포기한 채 오히려 그 진상을 은폐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검찰은 우 전 수석에게 직권남용이 아닌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이 조 전 장관과 우 전 수석에 적용한 법조항은 다르지만, 그 혐의를 '민정수석비서관의 봐주기'로 봤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다만, 우 전 수석에겐 직권남용 혐의도 적용됐다. 우 전 수석이 공정거래위원회로 하여금 CJ E&M을 검찰에 고발하도록 하거나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었다.
[다른 점] 사안의 중대성, 혐의의 숫자는 큰 차이... 우병우는 세번만에 구속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검찰은 2017년 2월, 4월, 12월 3차례나 우 전 수석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법원은 검찰의 3번째 청구 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렇다면, 우 전 수석처럼 조국 전 장관에게도 영장이 기각될 경우 계속 청구가 가능할까? 사안의 중대성 측면에서 보기에 쉽지는 않아 보인다.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사건의 중대성을 국정농단 사건과 동일하게 보기 어렵다. 법원은 2018년 2월 우 전 수석의 직무유기, 직권남용 등의 혐의에 대한 1심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우 전 수석의 직무유기에 유죄를 선고하면서 "(유 전 수석이) 국가적 혼란사태를 심화시키는 데 일조한 책임이 있고, 국회 증인 출석마저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함으로써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대하는 국민적 여망을 외면했다"라고 지적했다.
우 전 수석의 다양한 혐의 역시 조 전 장관과 다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017년 2월 우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을 처음 청구할 때 적시한 혐의는 직권남용, 직무유기, 특별감찰관법 위반,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불출석) 혐의였다. 이마저도 법원은 "영장청구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의 정도와 그 법률적 평가에 관한 다툼의 여지 등에 비추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기각했다. 그해 4월 2번째 구속영장 청구도 비슷한 이유로 기각됐다.
우 전 수석은 2017년 12월 3번째 구속영장 청구 때 구속됐다. 이때는 특별감찰관 사찰 관련 혐의가 추가됐고, 법원은 이에 대해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은 3차례 우 전 수석 영장실질심사에서 그의 직무유기나 직권남용에 대해서는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조국 전 장관의 직권남용은 어떨까. 그 결과는 26일 늦은 밤 또는 27일 새벽 나올 것으로 보인다. 선대식(sundaisik) /오마이뉴스
부산 3채 이상 다주택자 3만5106명
통계청 2018년 ‘집 부자’
- 전국 11채 이상 3만7487명
- 정부, 종부세 강화 ‘속도전’
전국에서 주택을 11채 이상 소유한 ‘집 부자’가 지난해 11월 기준 3만7500명에 육박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부산에서 집을 3채 이상 보유한 사람은 총 3만5106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통계청이 22일 공개한 ‘2018년 주택소유 통계’ 세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11월 1일 기준으로 주택을 11채 이상 가진 사람은 총 3만7487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7년(3만6731명, 이하 11월 1일 기준)보다 2.1%(756명) 증가한 것이다. 관련 통계가 시작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2만 명대였던 주택 11채 이상 소유자는 2015년 3만6205명으로 늘어난 뒤 2016년 3만7193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2017년에는 감소세를 보였으나 지난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며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해 집을 3채 이상 보유한 부산지역 다주택자는 2017년(3만5247명)보다 0.4%(141명) 줄어든 3만5106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울산도 9867명에서 9358명으로 5.2%(509명) 감소했다. 경남은 2만7866명에서 2만9246명으로 5.0%(1380명) 늘었다.
통계청은 다주택자의 주택 수를 시·도별로 집계할 때 최대 기준치를 ‘3채 이상’으로 삼는다.
한편 기획재정부는 ▷공시가격 9억 원 이상 주택에 부과되는 종합부동산세를 1주택자에 대해서도 강화하고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의 종부세 부담 상한을 200%에서 300%로 올리는 내용의 종합부동산세법 일부 개정안을 이번 주 초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석주 기자 serenom@kookje.co.kr
공수처에 통보’ 새 조항···검찰 “독소조항” 비판에 “상호 견제”
4+1 공수처법 수정안 ‘24조 2항’ 거센 논란
검 “사실상 범죄 수사 보고…수정과정 절차적 하자”
법조계 일각 “상호 감시로 과잉·부실 수사 막을 것”
경향신문 자료사진.
여야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합의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최종 수정안에 담긴 ‘공수처에 대한 통보 조항’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대검찰청은 “독소조항”이라고 비판한다. 공수처를 찬성하는 법조계 일각에서는 “공수처 기능을 살리려면 반드시 필요한 조항”이라고 맞선다.
공수처 수정안 24조 2항은 “다른 수사기관이 범죄 수사 과정에서 고위공직자 범죄를 인지한 경우 그 사실을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고 돼 있다. 공수처에 수사 개시를 보고해야 하는 기관은 검찰·경찰·금융감독원 등이다.
■ “수사 컨트롤타워” vs “기우”
검찰은 24조 2항의 ‘통보’를 사실상 공수처에 대한 ‘수사 보고’라고 여긴다. 대검은 26일 취재진에게 보낸 공식 입장문에서 “공수처는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으로 구성되어 고위공직자 등의 중요 사안에 대한 수사를 하는 단일한 반부패기구일 뿐 전국 단위의 검찰, 경찰의 고위공직자 수사 컨트롤타워나 상급기관이 아님에도 검경의 수사 착수 단계부터 그 내용을 통보받는 것은 정부조직체계 원리에 반한다”고 했다.
검찰은 공수처가 고위공직자 수사 정보를 전달받아 사건을 취사선택할 권한을 갖게 됐다고 문제 삼는다. 검찰은 공수처가 사실상 ‘사건 배당’을 하면서 공수처와 검찰 간 상하관계가 설정된다고 본다. 한 검찰 관계자는 “공수처가 모두 수사기관의 수사를 시작 단계에서부터 ‘고’하거나 ‘스톱’할 권한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공수처 설립을 찬성하는 법조계 인사들은 과한 우려라고 본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의 수사 대상인 고위공직자 범죄에 한해서만 통보하게 돼 있다”며 “2300명의 수사검사를 보유하고 모든 범죄에 대한 기소가 가능한 검찰에 비해 인원과 수사 대상이 현저하게 적은 공수처가 상급기관이 된다고 우려하는 것은 견강부회”라고 말했다.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소속 김용민 변호사는 “늘 수사 주도권을 가져온 검찰이 사건을 배당받는 위치에 놓이자 반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 “과잉수사” vs “상호 견제”
대검은 입장문에서 “공수처가 입맛에 맞는 사건을 이첩받아가서 자체 수사를 개시하여 ‘과잉수사’를 하거나 검경의 엄정한 수사에 맡겨놓고 싶지 않은 사건을 가로채가서 ‘뭉개기 부실수사’를 할 수 있다”고도 했다. 검찰의 이러한 주장은 공수처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다. 검찰은 대통령이 공수처장과 공수처 검사를 임명하는 구조 아래에서 친정부 인사에 대한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본다. 한 검찰 관계자는 “만약 공수처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사건을 인계하라고 하면 고발장이 접수된 초기 단계부터 사건을 넘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검찰과 공수처 간 상호 감시로 과잉·부실 수사를 막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양홍석 변호사는 “독점적 수사권한을 가진 검찰이 고위공직자 내사를 하며 생긴 과잉수사의 폐해가 공수처보다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공수처가 부실수사를 한다면 검찰이 공수처 검사를 수사해 물고 물리는 견제를 하면 된다”고 했다.
대검은 24조 2항이 수정안에 들어간 과정도 절차적 하자라고 했다. 이 조항은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나 법제사법위원회 논의 없이 4+1 협의 과정에서 포함됐다. 한 검찰 관계자는 “사개특위에서 토론도 없이 포함됐다”며 “공수처장이 수사 여부를 정하는 것도 위헌 소지가 많다”고 했다. 김용민 변호사는 “규모가 작은 공수처는 자체 내사로 수사를 개시하기 어렵다”며 “이 조항이 없으면 공수처는 고소·고발 사건에만 의존하게 돼 고발이 있기 어려운 판검사 비위는 더욱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윤지원·유희곤·김원진 기자 yjw@kyunghyang.com
경향 사설]타당성 없는 검찰의 공수처법 ‘독소조항’ 반발
‘4+1 협의체’가 합의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최종 수정안에 대해 검찰이 반대 입장을 내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 검찰은 특히 공수처법에 ‘검찰과 경찰 등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의 범죄 혐의를 인지한 경우 그 사실을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간 데 대해 “중대한 독소조항”이라고 했다.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글자 그대로 공수처는 고위공직자 범죄를 전담하는 기관이다. 검찰·경찰이 수사 중 고위공직자 비리가 포착되면 전담 수사기관에 넘기라는 건 중복수사를 방지하고 수사의 효율성을 위한 당연한 장치다. 수정안 이전 원안에도 ‘이첩 의무’를 규정해 수사의 우선권을 보장하도록 했다. 그게 공수처를 설립한 취지에 부합된다. 국가정보원법에 관계기관이 대공수사를 할 때는 국정원에 즉시 통보하도록 하는 것과 같다.
대통령이 공수처장 임명에 관여하는 점을 들어 ‘수사의 중립성 훼손’ 등의 위험이 크다고 주장하는 건 더욱 얼토당토않다. 공수처장은 추천된 후보 2명 중 한 명을 대통령이 임명한다. 추천위원 7명 중 6명이 추천에 동의해야 하는데 그중 2명이 야당 몫이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반대하면 추천 자체가 이뤄질 수 없다. 검찰총장보다 훨씬 까다로운 임명 절차다. 검찰 논리대로라면 대통령이 인사 전권을 가지고 있는 검찰이야말로 ‘수사 중립성 훼손’ 위험이 더 크다. 실제 검찰은 그동안 권력에 유착해서 그런 일을 해왔다는 비판 때문에 수술대에 올라있지 않은가.
공수처는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으로 구성된다. 검찰의 일개 지청 수준의 작은 규모다. 조국 전 법무장관 수사팀에 검사 30명, 수사관 70명이 달라붙은 것에 비하면 5000~7000여명인 고위공직자 범죄를 제대로 감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막강한 조직과 인력을 갖춘 검경에 고위공직자 범죄 정보를 알려줄 의무를 두는 게 더욱 긴요하다.
다만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안전장치는 더 필요해 보인다. 공수처 입맛에 따라 선별적 수사가 가능하다는 우려도 일견 타당해 보인다. 자칫 정무적 판단이 개입할 경우 공수처는 정당성을 잃게 된다. 공수처·검·경 3자 협의체를 두고 거기서 일정한 기준에 따라 수사 착수, 수사 분담 등을 결정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국가권력기관에 대한 ‘분권을 통한 견제와 균형’ 원칙은 공수처도 예외가 될 수 없다.
180도 상반된 두 신문의 조국 구속영장 기각 보도
[아침신문 솎아보기] 조선 “죄질 나쁘다고 인정” 한겨레 “조국 해명 받아들인 셈”, 수사가 문제 vs 법원이 문제 엇갈리기도
법원은 27일 새벽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 조국 전 장관은 2017년 청와대 민정수석 재직 당시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뇌물수수 등 비위사실을 파악하고도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감찰을 중단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동부지법 권덕진 영장전담판사는 범죄혐의가 소명됐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어 구속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감찰 중단이 법치주의를 후퇴시키는 등 문제가 있으나 피의자의 진술 및 태도, 피의자의 배우자가 구속 재판을 받는 점 등을 감안해 범죄의 중대성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양한 사유를 제시하면서도 일부 사유는 모호하거나 서로 상충되는 면이 있다.
조선 “죄질 나쁘다고 인정” 한겨레 “조국 해명 받아들인 셈”
27일 아침신문은 같은 기각 결정을 다루면서도 다른 면에 주목했고 상반된 분석을 했다.
우선 조국 전 장관의 범죄 혐의에 법원이 어떤 판단을 했는지 평가가 엇갈린다. 한겨레는 법원의 여러 판단 가운데 “범죄의 중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강조해 별도 기사를 내고 “사실상 (위법이 아니라) 정무적 판단에 해당한다는 조 전 장관과 청와대 쪽 해명을 받아들인 셈”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법원의 결정 가운데 감찰 중단이 가진 법치주의 후퇴 등 문제를 지적한 점을 ‘죄질이 나쁘다’고 요약해 전했다. “‘죄질 나쁘나 도주 우려 없다’ 조국 영장 기각”(중앙일보) “법원 ‘죄질 나쁘지만 배우자가 구속돼 있는 점도 고려’”(조선일보) 등이다. 이는 재판부가 범죄 혐의가 심각하다고 인지했다는 해석으로 ‘조 전 장관의 해명을 받아들인 셈’이라는 대목을 부각한 한겨레의 보도와 상반된다.
▲ 조국 전 장관 구속영장 기각 소식에 상반된 평가를 내린 조선일보와 한겨레 기사.
수사가 문제 vs 검찰이 문제
수사가 문제인지 법원 판단이 문제인지에 대한 판단도 엇갈린다. 한겨레, 경향신문은 과잉 수사에 초점을 맞췄다. “조국 구속영장 기각...검찰 과잉수사 제동”(한겨레), “검찰, 표적 수사 비판 직면할 듯... 윗선 캐기도 차질 예상“(경향신문) 등이다.
한겨레는 “조 전 장관의 신병 확보에 사활을 걸어온 검찰은 타격을 받게 됐다”며 “여권 안팎에서는 혐의가 나올 때까지 수사하는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라는 비판이 나왔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검찰은 수사 초기부터 조 전 장관에 대한 표적수사를 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며 조 전 장관의 검찰 개혁 행보가 수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을 언급했다.
반면 보수 신문은 과잉 수사가 아니라 법원의 판단에 문제를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법원 판단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검찰 관계자의 입장을 비중 있게 전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사건 때는 법원이 직권남용을 폭 넓게 인정한 반면 이번 사건의 경우 그렇지 않아 ‘이중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 법원 판단에 문제를 제기한 중앙일보 기사와 검찰 수사에 문제를 제기한 경향신문 기사.
공수처 독소조항 논란
국회 ‘4+1 협의체’가 합의한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공수처법) 최종 수정안에 검찰의 반발이 거세다. 논란이 된 대목은 ‘검찰과 경찰 등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의 범죄 혐의를 인지한 경우 그 사실을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이첩 요구’를 규정한 초안과는 다른 내용이다.
검찰은 △공수처는 검찰의 상급 기관이 아니고, 입맛에 맞는 수사만 해 과잉수사와 뭉개기 부실수사가 우려되고 △대통령과 여당이 공수처장 내지 검사 임명에 관여하는 구조에서 수사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고 △기존 패스트트랙안의 중대한 내용을 변경하는 등 절차적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보수신문은 검찰과 마찬가지로 ‘독소조항’ 프레임으로 기사를 썼다. 동아일보는 “독소조항 없애고 검찰개혁 본 뜻으로 돌아가야” 사설을 내고 “고위공직자 수사를 공수처가 독점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헌법에 없는 공수처의 검찰 지휘는 위헌”이라는 전문가 의견을 기사 제목으로 썼고 사설에는 “수사 검열하는 민변 검찰”이라며 반발했다.
▲ 공수처법 문제를 다룬 조선일보와 경향신문 기사.
동아일보는 법안 내용 가운데 수사처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내용을 ‘수사처 규칙’으로 정한다고 바꾼 점에 문제를 지적했다. 헌법상 규칙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은 법원, 국회, 헌법재판소, 중앙선관위 등 4곳 뿐이라며 “위헌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했다.
반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검찰의 반발을 전하면서도 이를 반박하는 데 비중을 뒀다.
독소조항 논란과 관련 한겨레는 “논란이 된 조항을 새로 만든 게 아니라 공수처가 요구해 사건을 가져갈 수 있는 권한을 줬으니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조항을 추가한 것”이라는 더불어민주당 설명을 전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한겨레에 “회신 조항도 봐야 한다. 즉 공수처가 통보를 받고 며칠 내로 수사할 것인지 아닌지 회신하게 돼 있다”며 “언제 공수처가 사건을 가져갈지 모르는데 수사를 성실히 하겠나. 미리 교통정리를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경향신문은 사설을 통해 검찰의 반발을 언급하며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중복 수사를 방지하고 수사의 효율성을 위한 당연한 장치”라고 했다. 또한 경향신문은 과잉수사가 아닌 상호견제이고, 규모가 작은 공수처가 컨트롤타워로 작용한다는 건 기우라는 반박을 전했다.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분배·평등보다 성장·경쟁 선호 강해진 청년들…왜?
서울 19~39살 1만명 설문조사
4년 전 설문조사 때보다
경쟁사회 지향적 응답 많아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두고
절차적 공정성 중시성향 뚜렷
“주변 품어줄 여력 없는
청년층의 현실 반영된 결과”
‘세대간’만큼 ‘세대내’ 격차도
기회의 불평등 해소하고
세대갈등 넘어 세대균형으로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 청암홀에서 서울시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주최로 열린 미래세대 권익 보호를 위한 세대 간 격차 해소 토론회에서 신관영 중앙대학교 교수(왼쪽 넷째)를 비롯한 참가자들이 전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해 연말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김난도 교수)는 올해 한국사회의 예상 키워드 가운데 하나로 ‘밀레니얼 가족’을 제시했다. 1980년대~2000년 사이 태어나 현재 20대~30대를 가리키는 ‘밀레니얼 세대’는 향후 한국사회를 이끌게 될 주역이자, 현재 사회변화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실제 올 하반기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조국 사태’를 계기로 ‘불공정에 분노하는 청년세대’가 크게 주목받았고, 이들의 시각에서 기성세대를 분석한 <불평등의 세대>, <386 세대유감>이 출간돼 학계에서 세대론 논쟁이 일기도 했다.
이제는 정치도, 기업도 이 밀레니얼 세대를 이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들 세대를 다룬 베스트셀러 <90년생이 온다>를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했다. 이 책 표지에 나온 문구는 이렇다. ‘얘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세대균형지표 개발 작업을 진행중인 서울시 청년청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그런 청년들의 ‘속내’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최근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서울시내 거주 19~39살 1만명과 기성세대인 40~64살 1500명을 설문조사(온라인 패널방식)했다. 설문에서는 공정성 등을 둘러싼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시각차를 확인할 수 있었고 그런 차이가 최근 더욱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청년세대 내 격차도 심각했다.
■ 성장·경쟁 중시 성향 더욱 강화돼
청년층은 한국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한다고 생각할까. ‘분배 중시 사회’(-3)와 ‘성장 중시 사회’(+3) 사이에서 고르게 한 결과, 청년세대 평균 답은 +0.47이었다. 성장 쪽에 무게를 둔 셈이다. 기성세대(+0.19)도 성장 쪽이었지만 선호 정도는 덜했다. ‘능력 차를 보완한 평등사회’와 ‘능력 차를 인정한 경쟁력 중시 사회’ 가운데서도 청년들(+0.55)은 기성세대(+0.44)보다 더 경쟁사회를 선호했다. ‘연대·협력’과 ‘경쟁·자율’을 두고서도 중립에 가까운 기성세대(+0.04)와 달리 청년세대(+0.16)는 경쟁 쪽으로 기울었다.
‘세금을 많이 내고 위험에 대한 국가책임이 높은 사회’와 ‘세금을 적게 내고 위험에 개인책임이 높은 사회’를 두고서는 청년세대(-0.31)는 전자 쪽을 선호했지만, 그 정도는 기성세대(-0.36)보다 덜했다. 청년들은 분배보다 성장, 평등·연대보다 경쟁을 선호하고,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도 기성세대보다 미덥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청년세대의 이런 인식은 최근 몇년 사이 더욱 심화한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2015년 8월 20~34살 서울 거주 청년 332명(전국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같은 질문을 던진 바 있다. 당시 분배와 성장 사이에서 청년들은 사실상 중립(+0.01)에 섰고, 평등보다 경쟁을 선호했지만 그 정도(+0.14)는 이번(+0.55)보다 훨씬 낮았다. 연대와 경쟁을 두고서는 이번 조사(+0.16) 때와 달리 연대(-0.17)를 선호했고, 세금을 더 내더라도 국가보장이 많은 쪽을 선택한 비중(-0.61)도 이번(-0.31)보다 더 많았다. 표본 수와 조사대상 연령층에서 차이가 있어 조심스럽긴 하지만, 경쟁과 성장 등 보수적인 덕목들을 선호하는 서울 청년들의 경향성이 더욱 강화된 셈이다.
가치관의 차이는 일상 또는 주요 현안에 대한 시각차이로 이어졌다. 팀 작업을 한 경우 ‘팀원 모두 같은 평가를 받는 것이 공정’(-3)과 ‘기여도가 다른데 같은 평가를 받는 것은 불공정’(+3)하다는 설문에 기성세대(+0.14)는 중간에 가까웠지만 청년세대(+0.82)는 확실하게 후자 쪽에 섰다. 협동을 이유로 한 무임승차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관련해 ‘동일한 일을 하고 있다면 일정한 자격조건을 충족시키면 정규직화하는 게 공정하다’(-3)와 ‘동일한 일을 해도 엄격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규직화하는 것은 불공정하다’(+3점) 사이에서도 기성세대(-0.01)는 중립적 견해를 보였지만 청년세대(+0.27)는 후자 쪽에 섰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처우의 평등보다, ‘같은 대우를 받으려면 같은 관문(시험)을 거쳤어야 한다’는 시험 앞에서의 평등을 중시하는 셈이다. 이른바 절차적 공정성이다.
이는 지난해 초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논란 때 확인된 바 있다. 대회 개최 직전 정부가 북한과 단일팀 구성에 합의했다고 발표하자, 20~30대들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크게 일었다. ‘열심히 노력해 정당한 절차를 밟아 선발된 국가대표 선수들이 왜 링크에 서지 못해야 하느냐’는 이유에서였다. 과거 남북 단일팀 구성은 전국민적 지지를 받았지만, 이제 젊은층은 이념이나 애국 등 거대한 가치를 이유로 개인이 왜 피해봐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국 전 법무장관 논란 때 유독 젊은층 사이에서 비판여론이 높았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올해 취업에 성공한 서아무개(26)씨는 “학창 시절 집과 학교에서 주입받은 삶의 목표는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가기’였다. 각자 노력한 성적에 따라 갈 수 있는 대학이 정해졌는데 성적이 높든, 낮든 내가 경쟁해서 얻은 결과였기에 모두가 받아들였다”며 “그런데 입시나 취업 때 누가 부모 도움이나 (장애인, 지역출신 등에) 가산점을 받는다고 하면 왠지 불합리한 것 같고, 내 노력을 비웃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 청년층 내부 계층격차 해소책을
결혼·출산, 주거, 계층이동성 등 문제를 두고서도 세대 간 시각차는 확연했다. ‘사회적 환경은 내가 원할 때 결혼하기 어렵다(어려웠다)’, ‘사회적 환경은 내가 원할 때 아이 낳기 어렵다(어려웠다)’ 항목(1~5점 척도)에 청년세대(3.68, 3.85)는 동의한다는 쪽이 많았지만, 기성세대(2.79, 2.74)는 반대였다. ‘내 능력과 노력으로 원하는 집에서 살 수 있다(있었다)’에도 기성세대(3.14)는 긍정하는 쪽이었지만, 청년층(2.73)은 반대였다. 계층상승과 패자부활 가능성(1~7점 척도)을 두고서도 기성세대는 (4.35, 4.36)는 긍정하는 반응이 많았지만, 청년세대(3.44, 3.42)는 부정 답변이 우세했다.
설문에서는 세대 간 차이만큼이나 청년층 내부 계층 간 차이도 확인됐다. 본인이 느끼기에 경제적으로 상층(1358명) 청년들은 하층(3260명) 청년들보다 유학 경험(37.5%, 27.1%)은 물론, 기업·공공기관 등에서 인턴 경험(39.2%, 25.5%), 공무원시험 준비 경험(27%, 17.5%) 등이 많았다. 설문조사를 총괄한 글로벌리서치 김태영 이사는 “취업준비를 위해 시간을 더 쓰고, (시간 들여) 공무원시험을 준비할 수 있다는 자체가 (경제적) 자원이 있다는 것“이라며 “부모세대가 가진 경제 격차가 이런 식으로 (청년세대에게)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의 차이로 인해 하층 청년층은 취업시 상층보다 20%가량 적은 급여를 받았다. ‘건강하다’와 ‘수면시간이 충분하다’(1~5점 척도)에도 하층은 2.85와 2.78로 부정적 답변이 더 많았지만, 상층은 3.57과 3.39로 반대였다. ‘어려움에 부닥칠 때 주로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것 같나’는 질문에 부모라고 답한 비중이 상층은 60.6%였지만 하층은 46.1%로 낮았다. 대신 친구를 찾는다고 답한 비중은 하층(22.8%)이 상층(19.2%)보다 많았다. 하지만 어려울 때 기댈 수 있는 친구 수는 상층 4.3명, 하층 2.6명이었다. 결국 부모의 경제력 차이가 청년세대의 수입과 미래 전망은 물론, 건강과 사회적 자본(네트워크) 격차로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세대균형지표 개발을 위해 설문을 설계한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은 “청년층은 피해자, 기성세대는 가해자라는 세대갈등론을 넘어 기회와 가능성의 균형을 의미하는 세대균형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며 “아울러 세대 내 불평등 문제도 심각한 만큼, 청년세대 안에서 경제적 격차에 따른 기회의 불평등 해소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이순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hyuk@hani.co.kr
부동산 투기 근절되면 우린 집을 살 수 있을까?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문제는 가격이 아니다. '주거 레짐'을 전환하자"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지난 12월 16일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대책의 이름이다. 금융위, 행안부, 기재부, 국토부 합동으로 며칠 밤낮으로 고생해서 주택'시장'을 안정화하고자 하는 많은 대책을 담았다. "1. 투기적 대출수요 규제 강화, 2. 주택 보유부담 강화 및 양도소득세 제도 보완, 3. 투명하고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 4. 실수요자를 위한 공급 확대 등"이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애초 '주택시장 안정화'가 제목인지라 '주거권 확보'는 다음 기회로 미뤄둔 것일까. 임차인을 위한 대책은 없다.
세입자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이번 대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대출 규제를 통해 15억 기준의 '초고가주택'은 담보대출이 불가능해졌다. 다만 현금으로 사거나 전세를 안는, 즉 갭투자를 하는 경우에는 살 수 있다. 정작 실제로 사려는 사람은 배제된다는 불만이 제기되나, 그 정도 고급주택을 사려고 할 때도 대출을 해주어야 하느냐는 반론도 있다. 9억 원 기준의 고가주택에는 주택 가치 대비 담보인정비율(LTV)을 40%에서 20%로 하향 조정했다. 빚내서 집 사지 말라는 뜻이다.
또한 보유부담을 높이고자 중합부동산세 세율을 상향 조정하였다. 3주택자나 조정대상지역의 2주택자의 경우는 조금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등 보유세 부담을 강화하였다. 장기보유 특별공제에는 기존의 보유 기간 뿐만 아니라 '실제 거주했는지'를 요건으로 추가했다. 직접 살지 않을 것이면 세금을 많이 내라는 말이다.
그런데 임대차 관련해서는 "3. 투명하고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에서 네 번째 하위 과제로 '임대등록 제도 보완'이 있으나, 임차인을 위한 직접적인 내용은 찾기 힘들고, 등록사업자에 대한 내용만 네 가지 항목이 있을 뿐이다. 구체적으로 보자.
첫째, '임대등록 시 취득세, 재산세 혜택을 축소'하는 것이 있다. 기존에는 면적 기준만 적용했는데, 이제 가액기준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비싼 집은 임대사업을 해도 세제 혜택에서 제외하겠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임대료 통제 없이 세금만 더 부과하면, '조세귀착'으로 임대료가 상승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조치다.
둘째, '등록 임대사업자 의무 위반사례에 대해 합동 점검'을 추진한다고 한다. 그동안은 위반사례에 대해 어떻게 조치했는지 모르겠으나,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셋째, '등록 임대사업차 책임 강화를 위해 등록을 요건을 강화'하겠다는 것 역시, 진일보한 것일 수 있으나, 결국 기본 사항을 정비하는 차원으로 평가할 수 있다.
넷째, 임차인 보증금 피해 방지를 위한 사업자 의무 사항을 강화 적용하겠다는 것 역시, 내용을 보면 '보증금 미 반환 시' 등록 말소 후 세제 혜택을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이 규제로 사고 예방의 효과가 나타나길 바랄 뿐이다. 이 항목 말미에 언급된 '권리관계 설명 의무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것 정도가 임차인에게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런데 이것 역시 당연히 그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투기가 근절되면 우리는 집을 살 수 있을까?
임차인의 권리는 언제쯤 본격적으로 다뤄질까.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자가점유율은 57.7%이다. 지난 몇 년째 55%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자기 집이 있어도 전세를 내주고 남의 집에 사는 비율인 자가'소유'율은 이보다 좀 더 높아서 61.1%이다(2017 주거실태조사). 대략 5%는 임차인과 임대인의 정체성이 겹친 경우다. 어쨌든 40% 넘는 이들은 세입자로 살고 있다.
본인의 노력이나 정부의 지원이 조금만 더 있으면 조만간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이 55%와 65% 사이의 10% 정도라고 보아도, 대략 열 명 중 네 명은 상당 기간, 혹은 열 명 중 세 명 이상은 계속해서 세입자로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쯤 정부는 이들의 문제를 제대로 다룰 것인가? 이들이 모두 자기 집을 가지게 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일까?
사실, 이른바 복지국가들의 자가점유율은 우리나라와 별로 차이가 없다. 이는, 복지국가는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이 많은 나라가 아니라 세입자가 마음 편하게 사는 나라'라는 방증이다. 오히려 무리한 대출을 통해 자가보유를 장려한 부작용은 이미 2000년대 말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통해 경험한 바 있다.
설령 투기를 근절해서 집값이 잡힌다 한들, 대다수 청년들이, 고시원 사는 50대 1인 가구가 집을 살 수 있을까? 20억 원 하는 고급 아파트가 10억원 되고, 그래서 순차적으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도 6억 원짜리 중급 아파트가 3억 원이 된다면, 매월 100만 원씩 25년을 저축해야 한다. 40%는 대출을 받는다 해도, 15년이다. 그동안은 어디에서 살까. 이들에게 급한 건 15억, 9억 원 이상 주택의 '가격 안정'이 아니라, 부담가능한 주거비(임대료)다.
이번의 강력한 조치를 통해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 보유주택이 매물로 나와 가격이 안정화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그런데 이는 '신규 공급'이 아니다. '투자' 목적으로 보유했던 주택 중에 빈집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현재 누군가 살고 있는 집이 대부분일 것이다(설령 빈집이어도 과연 수요로 연결될지도 미지수인 것은 별론으로 둔다. 빈집이 빈집이었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거주하고 있던 임차인은 어떻게 될까. 그 사람들이 전부 다 그 매물로 나올 집을 살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아닐 터이고, 다주택자들도 일부는 매물로 내놓지만 버티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몇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본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다주택자 중 일부는 보유주택을 매물로 내놓기보다는, 전세가를 올려서 비싸진 세금을 벌충하려 한다. 자기 집이 있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이 집에 전세 살면서 다른데 세를 준 사람은, 임차인으로서 오른 임대료를 다른 곳에서는 임대인으로서 올려서 벌충하려 할 것이다. 결국 임대료 상승이 확산된다.
매물로 나올 경우는 어떨까. 9억 이상의 경우 LTV가 20%이므로, 전세가가 집 가격의 80% 이상인 경우에는 대출을 받아 가능하다. 9억 이하인 경우에는 그보다는 수월할 것이다. 그래도 현 거주자가 살 수 있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매물로 나온 집은 그 집을 현 거주자가 대출을 받아 살 수 없다면, 누군가 살 여력이 되는 사람이 살 것이다. 이때 새 주인이 강화된 세제 규정에 따라 '실 거주의 세제 혜택'을 바란다면 직접 살기 위해 이사 들어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전에 자기가 살던 집을 내놓으면 이 또한 매물이 되긴 하겠으나, 어쨌든 현 세입자는 나가야 한다. 퇴거한 세입자는 그 동네에서 새로운 임차 수요가 되거나, 원래 자기 집에 들어가려는 경우에는 그 집의 세입자를 퇴거시킬 것이다. 임차수요도 줄줄이 증가한다. 새 주인이 비운 옛집이 시장에 나오긴 하겠으나,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전월세가격 상승의 요인도 만만치 않다.
집값을 잡아 시장을 안정화시켜야 공공임대주택을 짓기도 쉬워지고 자기집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아지며, 자연스럽게 임차인의 처지도 나아진다는 원론적인 이야기가 있지만, 얼마나 현실화될 것인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다. 마치 '주택 필터링 효과'로 자가소유율이 늘어날 것이라는 말만큼 공허할 수도 있겠다. 주택을 많이 공급하면, '주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주거 상향 이동이 일어나서 자가 소유자가 많아질 것이라는 논리처럼 말이다. 주택 필터링 효과를 위해 공급에만 신경을 쓴 결과는? 1주택자는 줄고, 다주택자만 늘어났다. 2005년에서 2016년 사이 다주택자들은 6.6%에서 15%로 늘었다. 세입자도 따라 늘었다.
상황이 이러한데, 투기가 근절되고 주택시장이 안정화되어야 공공정책의 개입 여지가 커지고 임차인 보호도 쉬워진다는 '단계론'이 강해서인지,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는 좀처럼 '강남 아파트' 가격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임대 부문의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순서가 있는 문제일까? 순서가 있다면, 혹시 반대는 아닐까?
집을 가지지 않아도 임차인으로서 살기 편해지면, 굳이 이런저런 규제를 하지 않아도 구매수요는 줄어든다. 이때를 놓치면 영원히 집을 못 살까 봐, 임대인의 횡포를 피하기 위해서, 까지는 아니어도 주거 안정을 위해서 무리해서 집을 살 필요가 없어진다. 따라서 수요가 줄어들면, 역설적으로 자기 집을 구매하려는 사람들도 수월해진다. 충분히 가능한 논리다.
주거 사다리가 굳이 필요 없는 단일모델
케메니(Kemeny)는 임대시장의 성격을 단일 모델과 이원 모델로 구분하였다. 단일 모델(unitary model)의 개념은 임대주택이 사회적 시장(social market)이라 할 만큼 '하나의 부문'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영리 부문의 민간임대주택과 비영리 부문의 사회임대주택은 서로 비슷한 조건에서 경쟁하며, 다양한 비영리 공급자들이 활동하여 서로 구분이 모호한 단일임대시장이 형성된다. 대표적인 나라가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웨덴, 스위스, 독일 등이다 (홍인옥 외, 2011).
반면 이원 모델(dualistic model)에서의 비영리 부문은 영리 부문과 분리되어 서로 간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다양한 공급자가 있기 보다는 공공이 대부분의 역할을 담당하는 공공임대주택 부문으로 구성된다. 결과적으로 대개 잔여화된 상대적 소수의 빈곤가구를 위한 주택으로 취급되어 사회적 낙인(social stigma)이 가해지게 된다. 주로 영미권 자유주의 국가들의 경우인데, 국가의 정책은 주로 자가소유의 촉진에 초점이 맞춰지고, 거주자들의 자가선호 경향도 높지만, 자가소유율이 쉽게 높아지지는 않는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모델이다.
2017년에 정부가 발표한 주거복지 로드맵에서는 '주거 사다리 구축'을 주요 목표로 제시했다. 제목부터가 '사회통합형 주거 사다리 구축을 위한 주거복지 로드맵'이다. 주거격차가 있는 구조에서 '주거 상향 이동'을 도와주기 위해 사다리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다. 이원 모델에서는 꼭 필요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단일 모델에서는 굳이 주거 사다리가 필요없다. 물론 전혀 없을 수는 없으나, 상대적으로 격차 매우 적기 때문이다(그림1). 당장은 사다리가 필요할 순 있으나, 우리도 애초의 격차를 줄여 나갈 수는 없을까?
▲ 그림 1. 이원 모델과 단일 모델의 비교
주거체제론적 접근
주택문제를 '주거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 및 국가의 역할' 차원에서 파악하는, 주거 체제 혹은 주택 레짐(Housing Regime)론적 접근은 우리에게 생소하다. 이러한 주거 레짐 시각의 연구들은 복지국가의 유형론(에스핑-엔더슨)을 차용하여 주거체제도 자유주의, 조합주의, 사민주의의 유형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미국과 같은 자유주의 모델은 제도화된 복지서비스라기보다는 소외계층에 대한 잔여적 의미의 복지 서비스이며, 자가소유 위주의 주택정책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중모델의 국가론적 해석이다. 한국과 상당히 유사하다.
보수적 조합주의 모델은 한편으로는 잔여적이나 제도적 보장도 부분적으로 이루어진다. 국가를 대신해서 계층별 맞춤형 주택과 주거복지서비스를 시장이 어느 정도 해결한다는 점에서 혼합 또는 절충형이라 할 수 있으며, 프랑스나 독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과 일부 비슷한 성격을 보인다.
덴마크, 네덜란드와 같은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앞의 단일 모델과 유사하며, 주거권을 보편적 권리로 인정하고 주택의 공공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 덕분에, 주택의 탈상품화 정도는 크고 계층화의 정도는 낮다(표1).
▲ 표 1. 주거체제 유형 비교 (출처 :훅스트라(Hoekstra, 2003)의 <table 2.1> 번역)
조합주의, 특히 사민주의 모델은 대체로 주거보조비를 지급하며, 임대료 규제도 일정한 수준으로 적용된다. 앞서 단일모델처럼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등 다양한 비영리(제한 영리) 공급자들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주택시장'에서 상품의 가격을 억지로 조절하려고 밤낮을 새워 규제를 만들기보다는, '복지국가 사회서비스'의 차원에서 서비스 사용료(임대료)를 어떻게 책정하느냐에 관심을 둔다. 여기서는 최고급 주택의 가격이 얼마인지, 공공/사회주택을 몇만 호 더/덜 공급하는지가 아니라, '모델이 무엇이냐'가 쟁점이다. 그리고 임대 부문과 자가 부문의 주거 격차가 완화되는 어떤 모델에서는, '투기 근절'이 목표가 아니라 결과가 된다.
이때 세입자의 임대료는 자가 부문 주택소유자의 기회비용과 대출이자와 같이, '서비스 사용료'의 성격을 가진다. 한국에서도 구입자금 이자율 인하 등을 통해 자가 부문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나 전월세 자금을 지원하는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서구의 복지국가의 사례를 토대로 정리된 위의 주거 레짐 유형에 한국이 딱 들어맞지는 않을 수도 있고, 특정 유형이 반드시 우리의 목표가 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주거복지의 핵심가치라 할 수 있는 주거 중립성과 주거 선택권을 한국에 맞는 방식으로 추구하지 못할 이유 역시 없다.
주거 중립성과 주거 선택권
임차인의 처지가 자가소유자에 비해 크게 불리하지 않은 경우를 주거 중립성(Tenure neutrality)이 높은 경우라 할 수 있다. 사회통합의 시각에서는 주거 중립성이 강할수록 사회(공공)임대 부문에 대한 차별이나 사회적 낙인이 덜하며, 주거 점유 형태에 따른 유불리함의 차이도 작아서, 자신의 현재 형편과 선호에 맞는 주거 점유 형태를 고르는 주거 선택권을 행사하기 수월해진다. 주택의 수요가 구매부문으로 집중되지 않아 자가소유도 수월한 사회라고 볼 수도 있다.
앞서 단일 모델에서 영리 부문과 비영리 부문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말은 여기서 '주택 점유 형태의 중립성'이 높아진다는 말과 동전의 양면이다. 반면 주거 중립성이 약한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특정 분야에 입주자의 선호가 집중되어 경쟁이 격화되며 주거 선택권이 제한된다.
재화의 성격이 다르니 다소 비약이 있으나 '선택권' 개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교통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본다. 차량의 경우, 한 번 안 샀다는 이유만으로 영원히 차를 못 사게 되진 않는다. 버스를 타는 것이 지하철이나 자가용에 비해서 심하게 불리하지도 않다. 짐이 많거나 급한 사정이 있으면 택시를 타되, 평소에는 버스를 타거나, 정시성이 중요할 땐 지하철을 선택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부 역시 각각의 수단에 필요한 인프라를 '대체로' 골고루 투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거 선택권도 마찬가지다. 분리가 심하지 않아 상황에 따라 단기거주 시에는 형편에 맞는 수준의 임대, 장기거주 시에는 자가, 공동체를 추구하면 협동조합 방식 등의 주거를 선택할 수 있다(그림2). 정부가 자가부문에 대한 지원만큼, 혹은 그 보다 더 임대부문을 지원한다면 주거 중립성의 제고와 주거 선택권의 신장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 그림 2. 교통 선택권과 주거 선택권의 비교
항아리에 물을 채우기 위해서는 가장 아래의 구멍부터 메워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지금까지 열여섯 번의 크고 작은 부동산 대책이 나왔다. 이중 임차인 권리와 관련된 것은 2017년의 '주거복지로드맵' 외엔 두 가지 뿐이다. 2017년 12월 13일 발표한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은 등록활성화 후 본격 관리를 위한 디딤돌이었다고도 하나, 사실상 임대사업자를 위한 혜택에 머물렀다. 2018년 7월 5일 발표한 대책은 공공임대주택 공급, 분양가 상한제의 민간주택 공급 등의 공급지원과, 전세자금 지원 등 금융지원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신혼부부·청년 주거지원방안'이 나왔다.
수요맞춤형 주거복지의 관점에서 보면 분명 과거보다 진일보하였지만, 주거체제론적 차원에서 보면 여전히 아쉽다. 정부의 정책기조를 보면 임대 부문과 자가 부문의 격차를 해소하는 단일모델의 관점이라기보다는, 이원모델의 잔여적 관점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이다. 금융지원의 경우 임대료 통제가 없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지금의 다주택자들에게 투자자금을 보태준 결과가 되었다. 구멍난 항아리에 물을 채우겠다고 부었더니 다 새나간 꼴이다.
문제는 '상품'의 가격이 아니다. 주택 혹은 주거를 둘러싼 시스템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관점이다. 분양가는 규제하면서 왜 임대료는 규제하지 못할까? 임대료를 통제하지 않고 전월세 자금을 지원하니, 그 돈이 결국 작금의 '갭투자' 열풍에 뛰어드는 다주택자의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되어버리지는 않았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 그것도 지위재나 사치재에 속하는 상품의 가격을 통제하려 허다한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다수 임대 부문을 복지국가의 주거 서비스 일환으로 편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개의 의문으로 보일지 모르나, 결국 같은 질문이다. 우리는 어떤 주거 레짐을 원하는가?
참고문헌
- Hoekstra (2003) "Housing and the Welfare State in the Netherlands: an Application of Esping-Andersen's Typology", Housing, Theory and Society, 20(2)
- Kemeny, J. (1995) From Public Housing to the Social Market, London: Routledge.
- 홍인옥 남기철 남원석 서종균 김혜승 김수현 (2011) 주거복지의 새로운 패러다임, 서울: 사회평론
최경호 한국사회주택협회 정책위원장 /프레시안
진중권 "대통령에 기생하는 '친문'이 권력을 훔쳐간다"
"대통령 권력 훔치기 위해 검찰·언론이라는 '눈'부터 가리려 한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지지한다"며 "촛불집회를 통해 탄생한 문재인 정권은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진 전 교수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끔 제 뜻을 오해하신 분들이 눈에 띄는데 저는 아직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지지"하며 "문재인 정권이 성공하기를 절실히 기원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 정권은 진보적 시민만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보수적 시민들까지 함께 나서준 촛불집회를 통해 탄생한 정권"이라며 "그래서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문재인 정권이 성공하려면 권력 주변이 깨끗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진 전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 중에서도 강직한 성품의 윤석열 검사를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것도, 그를 임명하면서 "살아 있는 권력까지 철저히 수사하라"고 당부한 것은(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라며 "저는 그렇게 말씀하신 대통령의 진정성을 아직은 믿는다. '불편하더라도 '윤석열'이라는 칼을 품고 가느냐, 아니면 도중에 내치느냐.' 저는 이를 정권의 개혁적 진정성을 재는 시금석으로 본다"고 밝혔다.
진 전 교수는 특히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현 정권 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문재인 정권을 겨냥한 표적 수사로 비쳐지는 것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타냈다. 그는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대는 것을 정권에 흠집을 내는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며 "외려 권력 앞에서도 검찰이 살아있다는 것은 문재인 정권이 '아직은'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보수든 진보든 권력은 그 속성상 감시를 받지 않으면 반드시 썩게 되어 있다. 그래서 성공한 정권이 되려면 권력의 주변을 감시할 감찰과 검찰, 그리고 언론의 '눈'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돕는 길"이라고 말했다.
진 전 교수는 민정수석실의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대통령 주변을 감시하는 것은 원래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업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눈'의 역할을 해야 할 민정수석실의 기능은 마비되어 있었다"면서 "친문 '측근'들이 청와대 안의 공적 감시기능을 망가뜨려 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친문 '측근'들이) 국민이 대통령에게 공적으로 행사하라고 준 권력을 도용해 사익을 채웠다. 하지만 친문 패거리 사이의 끈끈한 '우정' 덕에 그 짓을 한 이는 처벌은커녕 외려 영전했다"며 민정수석실의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감찰 중단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어 그는 "일부 부패한 측근들은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프레임'을 짠다. 그 구조는 간단하다. 자기들 해 드시는 데에 거추장스러운 감시의 '눈'을 마비시키는 것"이라며 권력에 대한 견제 및 감시의 중요성을 환기했다. 진 전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그 '눈'의 역할을 하는 것은 두 가지"라며 "하나는 검찰이고, 다른 하나는 언론이다. 범인들이 범행 전에 미리 CCTV 카메라부터 제거하듯이 그들 역시 대통령의 권력을 훔치기 위해 사회의 두 '눈'부터 가리려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구축하고 있는 매트릭스"라고 말했다.
진 전 교수는 최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역시 비판했다. "아키텍트들이 프로그래밍을 짜면('프레임'이 만들어지면) 일부 어용 언론인, 일부 어용지식인들(그 중에는 아예 대놓고 '나는 어용'이라고 자랑하는 이도 있다)이 나서서 바람을 잡는다"는 것. 이어 '서초동 집회'를 언급하며 "시위대가 검찰개혁의 제도화를 원했다면, 그들은 여의도로 갔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공익을 해치는 이 특권세력들의 '사익'을, 그들은 '검찰개혁'의 대의로 프로그래밍 해 지지자들의 머릿속에 집어넣어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 전 교수는 친문 세력의 프레임이 "이제 와서 윤석열을 '우병우'로 몰아가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자기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검찰개혁의 적임자라고 칭송했고, 대통령이 기수까지 파괴해가며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윤석열 총장에게 "갑작스런 변이가 생겼을 리 없고 그냥 상황이 달라졌다"며 거듭 친문 '측근'들을 겨냥했다. 그러면서 "공적 권력을 사유화하여 이득을 챙기는 쓰레기들이 외려 자기에게 맡겨진 일 열심히 하는 이들을 기득권자라 모함한다. 그 옆에서는 친문 패거리와 야합한 사이비 언론인들이 묵묵히 제 역할을 비판적 언론인을 외려 검찰과 야합한 협잡꾼으로 몰아간다"고 경계했다.
진 전 교수는 친문 '측근'들이 "검찰과 언론을 공격함으로써 그들이 뭘 얻을지는 빤하다"며 "이렇게 정치적 선동으로 대중의 위세를 동원해 감시하는 '눈'들을 모두 가려버리면, 이제 그들은 살판이 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진 전 교수는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알릴레오> 송년특집 방송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충심에는 변화가 없다"면서 "이 정부의 성공을 위해 내가 악역을 맡은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를 인용하며, "저는 윤석열 총장이 이 말 실제로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는 그(윤석열)의 성품, 그 동안에 그가 보여준 행적, 그리고 지금 그가 하는 일과 모순되지 않고, 정합적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진 전 교수는 끝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주변 사람들의 말을 믿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 말대로 대통령은 주변 사람들 중에서 누가 충신이고 누가 간신인지 잘 구별해야 한다. 거기에 정권의 성패가 달려 있다"며 "제가 보기에 주변에 간신들이 너무 많다"고 비판했다.
이어 시민들에게 "자기들이 진정으로 개혁을 원한다면, 자기들이 열심히 옹호하는 그것이 과연 나라와 대통령을 위한 공익인지, 아니면 대통령 권력에 기생하는 일부 친문 '측근'의 사익인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이명선 기자 /프레시안
NHK "北, 미사일 발사" 대형 오보..."이런 게 전쟁 일으킬 수도"
일본 공영방송 NHK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속보를 내보냈다가 오보로 밝혀져 사과를 했다.
27일 NHK는 오전 0시 22분께 '북한 미사일 바다에 낙하한 것으로 추정 홋카이도(北海道) 에리모미사키(襟裳岬) 동쪽 약 2000㎞'라고 인터넷으로 속보를 내보냈다.
그러나 해당 보도는 오보였다. NHK는 20여분 후 이를 삭제하고, "잘못해서 속보를 내보냈다"며 "훈련용으로 쓴 문장이며 사실이 아니었다. 시청자·국민 여러분께 사과한다"고 했다.
NHK 오보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안보 전문가인 비핀 나랑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이런 특별한 시점에는 이와 같은 가짜 알람(오보)이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나랑 교수는 "백 나인에 있던 트럼프가 안드로이드로 이 알람을 보고, 그의 주변의 누구도 이것이 확실하지 않다고 못하는 걸 상상해보라"라며 "그가 즉각 대응 조치로 핵무기 발사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
‘악의적’ ‘허위’ 검찰 쓰는 용어보면 정치인인줄
검찰 주관적 표현 쓰며 스스로 정치화 드러내, ‘서초동 검찰당’ 비판까지…객관·증거에 입각한 수사기관으로 돌아가야
검찰이 최근 언론에 내놓은 입장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립적이어야 할 수사기관인데 최근 답변들을 보면 그렇지 않은 표현을 사용해서다. 검찰과 같은 수사기관에선 객관 증거를 보고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하지만 검찰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상대방의 의도를 확실한 근거 없이 추측하거나 비난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검찰은 노무현재단, 유시민, 그 가족의 범죄에 대한 계좌추적을 한 사실이 없습니다. 법집행기관에 대한 근거 없는 악의적 허위 주장을 이제는 중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24일 유튜브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검찰이 노무현재단 계좌를 들여다본 사실을 확인했다”고 하자 서울중앙지검이 이날 내놓은 답변이다. 유 이사장이 검찰개혁을 강하게 주장하며 검찰을 비판하는 가운데 검찰이 명확한 근거없이 상대를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이다.
허재현 리포액트 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알릴레오 입장에선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 물론 그 의혹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악의적 허위 주장인지 아닌지는 검찰이 알릴레오 관계자가 아닌 이상 알 수 없는데 ‘악의적’ ‘허위’ 이런 어휘까지 사용하는 건 감정적”이라며 “그냥 ‘그런 사실 없다’는 답변만 하는 게 검찰로선 최선”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요즘 검찰 공식답변을 보면 국가기관이 아닌 우익NGO나 유튜버 등이 쓰는 어휘들이 공식 답변에 등장하는 인상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검의 답변엔 논리적 허점도 있다. ‘범죄에 대한 계좌추적’ 단서를 달았다. 범죄가 아닌 다른 사유로는 들여다봤을 가능성을 남겨놓은 답변이다. 실제 유 이사장이 다음날인 25일 수사기관이 당사자 몰래 계좌를 추적할 때 금융거래내역통지를 유예하는데 이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검찰은 경찰이 계좌를 추적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지난 2010년 법무부 훈령으로 시행한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 공보준칙’을 보면 검찰은 사건관계인(피고인·참고인 등)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수사·재판에 영향을 줘선 안 된다. 또 공보준칙 13조(일반원칙)에선 공보는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에 한정하고 주관적 가치 평가가 언급되지 않도록 한다. 무죄추정 원칙에 따라 추측·예단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표현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답변을 보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킨다.
한겨레 정치팀장은 지난 4일 칼럼에서 이제 일선수사에서 물러나야 할 검찰총장이 더 공격적으로 수사를 주도하는 행태를 지적하며 소위 “‘윤석열식 정치’로 인해 ‘서초동 검찰당’의 힘이 여의도와 청와대를 압도하는 형국”이라고 했다. 검찰이 중립이나 객관의 틀을 벗고 ‘악의적’, ‘의도’ 등 정치적 수사를 쓰는 건 스스로 정치화했다는 걸 드러내는 근거라고 볼 수 있다.
검찰과 출입기자단의 결탁 의혹을 보도한 MBC PD수첩 지난 3일 방송 이후 대검은 “검찰 및 출입기자단 명예를 훼손하기 위한 악의적 보도”라며 “현재 진행 중인 중요 수사들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한 의도가 명백한 것으로 보여 매우 유감스럽다”고 했다.
지난 6일 박건식 MBC PD는 MBC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서 “‘중대수사를 방해하려는 어떤 의도다’ 이건 검찰이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라며 “검찰은 증거주의에 입각해서 말해야 한다. 이건 정치인이나 점쟁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 말했다. 이어 “(검찰과 기자단의) 유착구조를 비판했다고 중대수사를 하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검찰이 스스로 언론플레이를 통해 수사해왔다는 걸 반영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지 개선을 위한 수사를 활용하기도 했다. 지난 9월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검 간부들과 식사자리에서 “나는 ‘헌법주의자’이며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졌다. 검찰개혁에 반대하기 위해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무리하게 수사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정치적 레토릭으로 응대한 것이다.
국회에서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연내 표결 처리 계획이 나오자 대검은 26일 “사전 보고하면 공수처가 입맛에 맞는 사건을 ‘과잉수사’하거나, 검경에 맡기고 싶지 않은 사건을 가로채 가서 ‘뭉개기 부실수사’를 할 수 있다”며 ‘독소조항’이란 표현까지 썼다. 그동안 검찰이 ‘과잉수사’와 ‘뭉개기 부실수사’를 해왔다는 비판 때문에 검찰개혁이 화두에 올랐다. 개혁대상인 검찰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이유로 국민의 대의기구를 상대로 언론플레이에 나서는 모양새다.
이런 지적에 대검은 입장을 주지 않았다. 대검 대변인실 관계자는 2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미디어오늘의 질의가) 이미 나온 검찰 입장에 대한 추가 질의인데 추가 질의에는 따로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대검은 지난 10월14일 “절제된 검찰권을 행사하겠다”며 전문공보관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이날 대검은 검찰의 직접수사가 과도하다는 비판에 헌법의 ‘과잉금지’ ‘비례원칙’ 등을 지키고 검찰권을 절제해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에선 차장급 검사, 일선 검찰청에선 인권감독관을 전문공보관으로 지정해 수사와 공보를 분리하고 국민의 알권리 보장하며 피의사실공표 논란 등을 불식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사법농단 재판정 진풍경 관찰기
피고인도 증인도 법조인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변호인은 재판을 지연시키고, 몇몇 판사 출신 증인들은 증인석에 앉아 검사의 추궁을 받는 상황을 못 견디는 듯했다.
ⓒ시사IN 이명익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월11일 검찰에 출석하기 전 대법원 앞에서 입장을 밝히는 동안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 조합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묶음기사
양형 기준 만들랬더니 국회의원 ‘형량 컨설팅’
법원행정처가 대법원 재판에 접근하는 법
‘박근혜 명예훼손 사건’ 판결 내용 수정
사법농단 현직 판사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매주 두 번씩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이 열리고 있다. 지난 5월 시작된 재판은 7개월이 지나도록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오늘까지 신문한 증인이 28명인데 (···) 현재 상황에서 예정된 증인은 250여 명에 이릅니다(11월8일 검찰 의견 진술).” 피고인도 증인도 법조인인 이 재판은 한 발자국을 내딛기가 힘겨워 보인다.
김앤장 소속 한상호 변호사가 증인으로 출석한 8월7일에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와 있던 2015년 5월, 한 변호사는 대법원 집무실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을 직접 만났다. 한상호 변호사는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에서 일본 기업 측 대리를 맡았다. 재판 때 검찰이 김앤장 사무실에서 압수수색해 확보한 문건에 대해 물으려 하자 한상호 변호사는 재판부에 간곡하게 요청했다. “제가 걱정하는 비밀 보호에 어긋나게 되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건을) 인용하면서 물어보시면 제가 계속해서 증언을 거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변호인으로서 비밀 준수 의무가 있는데 의뢰인인 일본 기업과 관련된 내용이 공개될 경우 업무상 비밀 누설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결국, 문건 내용을 직접 읽는 대신 그 내용이 있는 부분을 특정해 묻는 방식으로 신문이 이루어졌다. “4페이지 밑에서 네 번째 줄부터 5페이지 다섯 번째 줄 ‘많이 배웠다’ 부분, 증인이 한 얘기 맞습니까?(검찰)” “너무너무 죄송하지만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한상호).”
양승태·박병대·고영한 피고인 측과 검찰은 거의 매번 재판 진행 절차를 두고 다툰다. 검찰은 “재판의 지연은 재판의 거부와 같다”는 법언까지 인용하며 신속한 심리를 요구한다. 반면 피고인 측은 “신속한 재판보다는 정확한 재판을 원한다”라고 버틴다.
“이런 재판은 처음 본다”
11월13일 재판에서는 서증 조사가 문제였다. 서증 조사는 검찰이 확보한 ‘서류로 된 증거(서증)’를 법정에서 재판부에게 설명하는 절차이다. 양승태 법원행정처 등에서 작성한 사법농단 의혹 문건들이 이 서증에 해당한다. 증인으로 나온 문건 작성자가 증거에 위·변조가 없음을 확인하는 ‘진정성립’을 거치면 해당 증거에 대해 서증 조사를 할 수 있다.
변호인들은 진정성립이 끝난 서증에 대해서도 대부분 증거 조사를 반대했다. 작성자뿐만 아니라 이 문건에 관련된 이들까지 증언을 마친 뒤에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서증 조사가 늦어질수록 재판도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반발했다. “(재판장님) 진정성립이 된 서증 조사는 허락해주심이 기존에 맞는 소송 지휘가 아닌가 싶습니다.” 고영한 피고인의 변호인은 “서증 조사 시기는 재판장의 원칙적인 권한”이라고 맞섰다.
ⓒ시사IN 신선영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고영한 전 대법관.
11월1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5부 박남천 재판장은 핵심 증인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신문을 마칠 때까지는 쌍방이 동의한 서증만 조사하겠다는 기준을 다시 밝혔다. “저희 사건에 보고서가 많이 올라오는데 보고서를 작성한 사람, 검토한 사람, 또 거기에 대한 보조 자료를 준 사람, 중간에 전달한 사람 등 여러 관련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서증의 의미를 완전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관련자의 증인신문을 다 마친 다음에 증거 조사를 해야 바람직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재판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어느 변호사는 “원칙적으로 양측의 동의를 얻어 서증 조사 계획을 세우는 게 맞지만 보통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은 형사소송법에 아주 충실하게 진행되는데, 이런 재판은 거의 처음 본다”라고 말했다. 재판독립이라는 헌법상 기본 원칙을 어긴 혐의로 피고인석에 서게 된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에게 재판 절차의 원칙은 이례적일 정도로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다.
사법농단 의혹 사건에 가담한 전·현직 판사들도 연달아 증인으로 나오고 있다. 대부분 20대 초반에 사법고시에 합격해, 최상위 성적으로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서울 소재 법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한 뒤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밟아온 이들이다(21쪽 인포그래픽 참조). 그래서일까. 몇몇 판사 출신 증인들은 법대 아래 증인석에 앉아 검사의 추궁을 받는 상황을 참을 수 없어 하는 듯했다.
10월25일 증인으로 출석한 최누림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판사는 공격적으로 답변을 이어갔다. 최누림 판사는 2015년부터 2017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 심의관으로 근무했다. 이 시기 최누림 판사가 작성한 보고서는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을 통해 청와대에 전달됐다. 헌법재판소의 현대차 비정규 노조 업무방해 사건을 검토한 이 문건에는 ‘불법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지 못한다면 형사처벌 공백이 발생하고 불법 파업이 폭증해 산업계, 재계의 부담이 급증하고 국가 경제가 급속히 악화’될 것이라는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이날 재판에서 최 판사는 이 문건이 청와대 전달용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검사가 “검찰 조사에서는 청와대에 전달될 수 있다는 말을 임종헌 차장에게 들었다고 하지 않았나”라며 진술조서에도 그렇게 써 있다고 하자, 최 판사는 “몇 페이지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 청와대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최 판사를 직접 조사했던 검사는 재판이 끝날 무렵 이렇게 되물었다. “그럼 제가 썼습니까?”
10월2일 증인으로 나온 임성근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법정에서 ‘사법행정’에 대한 본인의 철학을 설파했다. 양승태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중요 사건의 접수와 종국 보고’라는 대법원 규칙을 뛰어넘어 그 이상의 재판 정보를 수집했다. 임 판사는 “‘중요 사건의 접수와 종국 보고’는 최소한을 정한 것이다. 국회 국정감사 준비 등 사법행정상 필요한 한도에서는 얼마든지 보고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임성근 판사는 그 자신도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있던 2015년, 임 판사는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 재판부로부터 판결 구술본을 미리 받아보고 손수 첨삭했다. 임 판사는 이 혐의로 기소돼 별도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날 재판에서는 임성근 판사가 검찰 조사를 받으며 이에 대해 정당하다는 취지로 진술한 내용이 공개됐다.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조언해 해당 부분을 자진해 고치게 하는 건 수석부장판사의 당연한 임무(이다).”
ⓒ연합뉴스 임성근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법정에서사법행정에 대한 본인의 철학을 설파했다.
법관 경력이 길수록, 고위급일수록 증인으로 나온 판사들은 떳떳했다. 사법행정을 지휘할 권한을 행사했을 뿐 사법농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11월29일 재판에는 윤성원 전 인천지방법원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으로 임명돼 사법농단 연루 의혹을 받은 윤 전 법원장은, 올해 1월 시민단체가 발표한 탄핵 대상 판사 명단에 포함되자 사표를 냈다. 그의 증언 태도는 유별난 데가 있었다. 우배석 심판 판사의 질문에, 윤 전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의 일 중 하나를 말씀드리면”이라고 운을 떼며 답했다. 법원행정처 경험이 없는 후배 판사를 가르치는 듯한 말투였다.
모든 판사 증인들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 건 아니다. 변호인들은 11월6일 증인으로 출석한 문성호 서울중앙지법 판사로부터 원하는 답을 좀처럼 얻어내지 못했다. 문성호 판사는 2015년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으로 근무하면서 이규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지시로 ‘통진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결과 보고’ 문건을 작성한다. 재판 개입으로 읽힐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박병대 피고인의 변호인이 “이런 종류의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문제점과 향후 대책 검토는 심의관이 통상 하는 정상적인 업무이죠?”라고 묻자, 문성호 증인은 머뭇거리더니 “내용마다 다를 것 같다”라고 말했다. 변호인은 집요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그 내용 중 위법하지만 어쩔 수 없이 본인 의사에 반해 기재한 것이 있습니까?(변호사)” “보고 주체가 요구하는 내용을 반영시키는 식으로 일을 해왔습니다(문성호).” “그중 위법하고 부당하지만 한 일 있습니까?(변호사)” “당시는 둔감하게 넘겼던 문제도 지금 다시 보면 적절하지 않은 것도 보입니다(문성호).”
ⓒ시사IN 신선영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박병대 전 대법관.
11월13일 증인으로 나온 임효량 수원지방법원 판사는 임종헌 차장이 시킨 일에 대해 “도저히 보고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2016년 법원행정처 기획 제2심의관이었던 임효량 판사는 ‘각급법원 주기적 점검 방안’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는 이 문건에서 검토한 내용에 대해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법원행정처에서 비공식적인 자료를 수집한다는 것 자체가 사찰로 인식될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었다”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임효량 판사는 법원행정처 근무 판사들은 법관이 아니라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행정공무원이라 상급자의 의사 결정에 복종해야 했다는 취지로 증언을 마무리했다. 증언 내내 괴로워 보였던 문성호 판사도 사법행정권 남용 가담 혐의로 법관징계위원회에서 받은 징계(견책)에 대해서는 징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한번 하는 순간 관성이 생기더라”
8월부터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을 방청하며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증언이 하나 있다. 최희준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헌법재판소로 파견을 나가, 헌법재판소의 주요 재판 정보와 내부 정보를 수집해 법원행정처에 보고했다. 10월18일 증인으로 나온 최희준 판사는 “처음에는 주저했는데 한번 하는 순간 관성이 생겨 점점 보고를 많이 드리게 됐다. 부조리극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다. 부끄럽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저를 이해한다는 연구관들도 있다.” 이 짧은 증언에서도 최 판사는 후회와 자기 연민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법원 조직 곳곳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손발이 되었던 판사들이 있다. 이 판사들이 없었다면 사법농단은 법원을 집어삼키지 못했을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제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지만, 이들은 오늘도 법대(법정에서 바닥보다 높은, 법관이 앉는 자리)에 올라 누군가를 심판한다. 경남지방변호사회는 11월19일 2019년도 우수 법관을 선정했다. 사법농단 연루 의혹을 받는 김민수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 구민경 창원지법 부장판사가 이름을 올렸다.
IS, 성탄절 맞춰 나이지리아서 기독교인들 10명 참수
↑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며 배포한 동영상 / 사진 = IS 선전매체 아마크
거품과 현실' 사이…서울 집값, 정말 안녕한가요?
케첩 1개가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 케첩의 '적정한 가격', 대체 얼마일까요? 맞습니다. 시쳇말로 '케바케(Case by Case)',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관점이 있을 수 있을까요? 먼저, 이 케첩을 만들 때까지 얼마나 큰 비용이 들어갔는지를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원료인 토마토 가격은 얼마이고, 케첩을 시장까지 운반하는 비용 등은 얼마인지를 따져보는 거죠.
또 다른 방법도 있을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조금 더 직관적이고 간단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케첩이 얼마나 팔리는지 보는 것입니다. 가령, '나는 케첩 1병을 100원에 내놨는데, 시장에 나온 다른 케첩을 보니 2병을 묶어 200원에 내놨네. 아, 그렇다면 얼추 적정 가격을 정했구나'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그 시장은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시장 가격 또한 적절하다."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결국, '적정 가격'이란
1) 전반적인 경제 시스템을 모두 고려하거나,
2) 다른 제품의 가격과 비교해보며 정할 수 있다.
● 경제학자들의 '케첩 논쟁'
미국 시카고대학교에 유진 파머란 교수가 있습니다. 파머 교수는 2007년 당시 미국 주택 시장을 두고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습니다. . "사람들은 집을 살 때, 전반적인 주택 시세에 따른 잠재 가격을 보고 결정한다. 그래서 주택시장 가격은 합리적이고, 미국 주택시장에 거품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파머 교수 주장은 전문용어로 '효율적 시장 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 EMH)'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시장의 모든 정보는 즉각 가격에 반영된다', 이 정도 요약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앞서 얘기한 케첩 적정 가격 얘기로 돌아가면 2)번, 즉 적정 가격은 다른 케첩들의 가격 비교를 통해 합리적으로 결정된다는 거죠.
그런데 파머 교수가 이 발언한 뒤 얼마 가지 않아 골치 아픈 일이 터집니다. 골치 아프다고 하기에 규모가 조금 크고 강도도 셌습니다. 세계 금융위기가 닥친 겁니다. 미국 집값은 순식간에 폭락했습니다. 물론, 파머 교수는 여기저기서 많은 비난을 받았죠. (한때 노벨경제학상 수상 후보 '0순위'로 언급되던 그는,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2007년 이후 수상권에서 멀어졌다가 2013년에서야 노벨상을 수상했습니다.)
로렌스 서머스란 또 다른 경제학자가 있습니다. 하버드대 교수이자 제71대 미국 재무장관, 제27대 하버드대학교 총장을 지낸 석학입니다. 서머스는 1985년, 자신의 논문을 통해 파머 교수가 펼친 가설을 이렇게 비판했었습니다.
"전통 경제학자는 케첩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생산 비용과 소비자 소득 등을 고려해 적정 가격을 판단한다. 그러나 소위 금융 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근본적인 요인들보다는 여러 케첩 사이의 수익률 차이에만 더 관심을 둔다." '자산 가격'이 경제 기초 여건과 동떨어져 일어나는 현상을 비판한 겁니다. 그러면서 그런 주장을 펴는, 파머 교수를 포함한 학자들을 '케첩 경제학자'라고 이름 붙이고 비꼬았습니다.
2007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진 뒤 예일대 로버트 쉴러 교수도 서머스 교수 주장을 인용해 파머 교수를 비난했습니다. "파머 주장, 그것은 전형적인 '케첩 경제학'이다", 이렇게 말이죠. 적정 가격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진 석학들의 날 선 논쟁. 바로 현대 경제학에서 유명한 '케첩 논쟁'입니다.
● '거품'끼리 비교하며 커지는 적정 가격
서론이 제법 길었습니다. 경제학 석학들의 싸움, '케첩 논쟁'이 대체 우리랑 무슨 상관이기에 이리 길게 설명했느냐, 바로 이 '케첩 논쟁'이 오늘 우리 주택시장, 정확히는 '서울 주택시장'에 주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서울 집값은 파머가 주장한 '효율적 시장 가설'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가령 서울 강남의 어느 아파트가 20억 원에 팔렸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러면, 강북의 아파트는 15억 원, 더 멀리 떨어진 경기도 어느 아파트는 10억 원 이런 식으로 서로 간의 '비교'를 통해 주택의 적정 가격은 정해집니다. 경제적 근본 요인보단 다른 집값과의 '비교'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죠.
'케첩 논쟁'을 통해 본 집값은 이런 모습이 될 겁니다. 케첩 원가는 1만 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시장에 나와 있는 다른 케첩을 보니 "어라, 웬일인지 5만 원, 6만 원 하네" 케첩 생산업자는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원가 1만 원에, 이윤 1만 원을 더해 2만 원에 내놓으려던 것을, 다른 케첩 가격을 본 뒤 과감히 7만 원에 내놓기로 하는 것이죠. 그 뒤에 비슷한 집을 내놓는 또 다른 사람은 그 7만 원을 보고 더 높은 가격에 내놓습니다. 케첩을 주택으로 바꿔도 크게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거품'은 자꾸 쌓여만 갑니다. 주택시장에서 매기는 적정 가격이란 원가가 아닌 거품들끼리 비교를 통해 정해지고 있습니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도 주택 시장의 이런 현상을 아프게 비판했습니다. "사람들은 주택을 구매할 때 자기 집 가격과 다른 집 가격은 매우 주의 깊게 비교하지만, 정작 그 집값이 말이 되는 수준인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 '서울 집값' 구름 위에 떠 있는 존재
그렇다면 서울 집값에 낀 그 거품, 어느 정도나 쌓여 있는 것일까요? 현재 주택 중위가격은 보수적으로 잡아도 7억 원이 훌쩍 넘습니다. 가구 중간 소득을 연 5천만 원대로 계산하면, 소득 대비 집값(Price to Income Ratio, PIR)은 '14배' 가까이 달합니다. 한마디로, 14년 가까이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서울에서 중간 정도 가격대 주택을 살 수 있다는 거죠.
이 14배라는 수치는 얼마나 높은 것일까요? 미국 실리콘밸리 새너제이가 9.4배, 런던 8.3배, 뉴욕 5.5배, 싱가포르 4.6배이니 분명히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벌어들이는 소득에 비해 현재 서울 집값은 지나치게 높다고는 거죠. 일반 서민들이 '서울 집값'을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거처럼 느끼는 것도 과장은 아닐 듯싶습니다.
● 왜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가?
이 '집값 구름'이 얼마나 높이 떠 있는지, 현실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한 청년이 있습니다. 다행히 안정된 직장을 구했고, 앞으로 30년 동안은 평균 5천만 원 정도 수입이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 청년이 결혼해 자녀도 낳고, 가정을 꾸려고 합니다. 집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런데 당장 집을 살 만큼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을 사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청년은 얼마짜리 집을 사는 게 현실적일까?
이 청년은 소득의 20%가량을 저축해, 집 사는데 진 빚을 갚아가려고 합니다. 그럴 경우, 이 청년은 매년 1천만 원(5천만 원 X 0.2)을 갚을 수 있습니다. 앞서 한 가정대로 30년간 일한다면, 은퇴할 때까지 이 청년은 산술적으로 3억 원을 갚을 수 있습니다. 즉, 3억 원짜리 집을 사면 은퇴해 소득이 없어지기 전에 빚을 다 갚을 수 있는 것이죠. 3억 원은, 대략 연소득(5천만 원) 6배 정도에 해당하는 가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고려하지 않는 게 있습니다. 은행에 내야 하는 이자입니다. 은행이 이자도 받지 않고 금리를 '0%'로 빌려주는 경우는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또, 세금 등 집을 보유했을 때 내야 하는 비용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청년은 현실적으로 3억 원보다 더 저렴한 집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전통적으로, 적정 집값은 앞서 계산한 6배보다는 낮은, 연소득의 3∼5배 이내여야 한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주택담보대출도 소득과 연계해 고려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서울에 사는 젊은이들은 연 소득의 3~5배 정도 하는 집을, 다시 말해 3억 원 미만의 주택을 서울에서 구할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벌어들이는 소득과 집값의 심리적 간극은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게다가, 이 간극은 시간이 갈수록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감정원 실거래가격 통계를 보면, 서울 아파트 3.3㎡당 평균 가격은 2013년에서 올해 9월까지 99%나 폭등했습니다. (1,767만 원 → 3,530만 원). 그런데 같은 기간 명목임금은 24.6%밖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일자리상황판) 한마디로, 집값은 쭉쭉 폭등하는데 임금은 상대로 찔끔찔끔 오르는 것입니다.
대다수 젊은이는 이 대목에서 좌절합니다. '취업 전쟁'을 뚫고 어렵게 직장을 가졌다고 해도,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집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은 '0'에 수렴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건 지극히 상식적이고 또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소득과 집값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 정부는 세금에 합당한 공공서비스를 지원했는가?
이런 현상은 환자로 치면 심각한 만성 질병에 걸린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치료법은 없을까요? 임차료 부담을 낮추고, 보유세를 높이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일각에선 '세금 폭탄'이란 비판도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표한 조사(부동산 보유세 현황과 쟁점)를 곱씹어 보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보유세가 OECD 국가들의 그것보다 높은지, 보유세 실효세율(민간 부동산 자산총액 대비 보유세 금액 비율)을 살펴본 것인데, 우리나라는 0.16%로 OECD 13개국 평균인 0.33%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특히, 영국(0.78%), 프랑스 (0.57%), 일본(0.54%) 등과 비교하면 3~5배나 낮습니다. 아직은 보유세를 더 올릴 공간은 있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또, 공시지가 현실화해 '집값 장벽'이란 사회적 비용에 따라 세금을 내게 하는 것도 처방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세금을 많이 걷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세금이란 '국가가 사회 안전과 질서를 보호하고, 국민 생활에 필요한 공공재를 공급하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에게 강제로 징수하는 돈'입니다. 당연히 (조세) 저항이 생깁니다. 세금을 많이 걷는 만큼, 즉 조세 부담률이 높아진 만큼 국가도 효율성의 관점에서 그에 합당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걷어 들인 세금으로 핵심 요충지에 임대 주택을 충분히 공급하고, 장기적으로는 지방의 교육, 의료시설도 강화해야 하는 것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서울로만 몰리는 것도 분산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금이 소득과 집값의 간극을 좁혀 사회 구성원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돕는 긍정적 수단으로 돌아오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정부도 그에 합당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왔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 '18번' 쏟아진 처방
지난 2년 반 동안 쏟아진 처방은 18번에 달합니다.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정부의 진단과 처방이 정교하지 않았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국민 10명 중 6명이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신뢰하지 않는다"라고 답한 것도 이와 궤를 같이할 것입니다. 한세현 기자vetman@sbs.co.kr
김건모 성폭력 의혹’ 전하는 유튜브·언론에 절망적
[민언련 신문‧방송‧종편 모니터 보고서
가수 김건모 씨의 성폭력 의혹이 불거지면서 자극적‧선정적인 보도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6일 김세의 전 MBC 기자와 강용석 변호사가 설립한 ‘가로세로연구소’(이하 가세연)의 유튜브 라이브입니다. 이날 가세연은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건모 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증언을 전했습니다. 이후 9일과 17일에 라이브 방송에서도 김건모 씨를 둘러싼 성폭력 의혹을 전했습니다.
유튜브라는 공간의 특성과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유튜브 라이브’의 특성으로 인해 이 영상은 시민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구체적이고 자극적으로 가해 방법이 묘사되고, 피해자가 성적 행위의 대상처럼 인식될 만한 선정적인 내용 설명이 나왔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매우 선정적인 내용의 유튜브 방송을 언론이 마구잡이로 받아쓰고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시 정황증거를 말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표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유튜브라는 규제 영역 바깥에 있는 매체의 특성으로 인해 가로세로연구소는 이를 잔뜩 선정적으로 부풀려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엔 방송심의규정 및 신문윤리강령,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 등의 다양한 준칙이 존재하고, 기성 매체는 이를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언론이라면 이런 가로세로연구소 방송 내용 중에서 기사화해선 안 되는 내용을 판단해서 걸러줬어야 합니다. 그러나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이 포털에서 ‘김건모’를 검색하여 지난 6일부터 나온 기사 중 문제의 기사를 살펴보니 언론이 성폭력 사건을 보도하는 취지는 외면한 채, 선정적이며 인권 침해적인 보도만 넘쳐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상세한 성폭력 피해 묘사
6일과 9일 나온 가세연의 유튜브 라이브 이후 기사들도 문제가 많았지만, 특히 17일 나왔던 유튜브 라이브에서 더 선정적인 가해 방법이 많이 묘사되었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유튜브 라이브에서 그런 내용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기성 언론이 이를 기사화하는 것이 정당화될 순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브 당일인 17일과 다음 날인 18일까지 계속 유튜브 내용을 그대로 옮기다시피 한 보도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게다가 이런 선정적 보도를 내놓는 양상은 주요 일간지나 주요 방송사 인터넷판은 물론, 주요 경제지‧연예 스포츠 매체‧위키트리와 같은 인터넷 언론 모두 비슷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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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일간지 중에서는 서울신문 <“왁싱여부 본다며 만지려 했다” 김건모 제보 또 나와>(12/17 김유민 기자), 국민일보 <“소파에서 본인 걸 보여주고…” 김건모 세번째 피해자의 말>(12/18 신은정 기자), 조선일보 <가세연, 김건모 세번째 피해 주장녀 인터뷰 “작업실서 바지 지퍼내려”>(12/18 황민규 기자) 등의 기사가 있었고요. 주요 경제지 중에서도 한국경제 <김건모, 법정 싸움에도 계속되는 폭로…가세연 “신체 노출하며 ‘좋아하냐’ 물어”>(12/18 김수영 기자), 매일경제 <가세연, 김건모 세번째 피해자 인터뷰 공개 “작업실서 지퍼 내려…”>(12/18 김소연 기자), 아시아경제 <“김건모, 왁싱했냐며 신체 만지려 했다” 성추행 의혹 추가 폭로>(12/18 김가연 기자) 등을 내놨습니다.
연예스포츠 매체 중에선 스포츠경향 <“김건모, 제모했냐며 신체 만지려 시도…이런 수위는 처음”>(12/17 이선명 기자), 헤럴드POP <‘가로세로연구소’, 김건모 피해 추가 폭로 “바지 지퍼 열어 보여줬다”(종합)>(12/17 이미지 기자)가 있었고 위키트리 기사 중엔 <김건모 피해 주장 여성 “피아노 옆쪽 쇼파에 누워 성기 보여줬다”>(12/17 빈재욱 기자)도 있었습니다.
내용은 더욱 문제가 심합니다. 위키트리 기사에서는 선정적인 내용을 앞에 제시하면서 17일 라이브에서 나온 피해자의 발언을 기사화했습니다. 피해자가 유튜브 라이브에서 증언한 “전자 건반 피아노 옆쪽에 소파가 있었다. 거기에 이제 본인이 누워서”라고 시작하면서 당시 상황을 자세히 묘사한 내용을 기사에 실었습니다. 서울신문 기사에서도 피해자의 발언을 전하면서 김건모가 어떻게 성폭력을 저질렀는지 자세히 전했습니다.
이런 내용을 그대로 기사화하는 것은, 성폭행 피해 사실을 너무 자세하게 묘사함으로써 2차 피해를 일으킨다는 문제와 더불어 성폭행 피해 사실 자체를 성애화하게 되고 가십으로만 성폭행 피해를 다룸으로써 범죄의 심각성을 낮추게 되는 아주 총체적인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2018년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함께 만든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에서는 △언론은 성폭력·성희롱 사건을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 소재로 다루거나, 가해자의 책임이 가볍게 인식되는 보도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언론은 성폭력·성희롱 사건의 가해방법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을 지양해야 하고, 특히 피해자를 ‘성적 행위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할 수 있는 선정적 묘사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피해자 스스로 피해 사실을 드러내는 ‘미투’라고 해서 이런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유튜브 라이브에서 본인이 밝힌 것이니’ 보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언론임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김건모 성폭력 보도는 클릭 장사를 위해서, 선정성만을 잔뜩 부각시킨 ‘쓰레기 기사’라는 겁니다.
유흥업소 직원은 강간해도 된다? 문제적 의견을 비판 없이 전달
문제의 기사는 한국경제의 <“유흥업소 직원인데 ‘강간죄’라니…” 김건모 사건 후폭풍>(12/10 신연수 기자)입니다. 기사의 시작은 “노래방 도우미 강간미수, 기소유예 가능한가요?” “텐XX 직원이 성추행으로 고소했습니다.”입니다. 김건모 씨가 유흥업소 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논란이 되자, 유흥업소 종사자와 성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 ‘이게 강간죄가 되냐’며 법률 상담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 이 기사의 요지입니다. 기사는 이어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온라인 법률 상담 사이트와 개인 변호사 블로그 등에는 김씨와 마찬가지로 노래방 도우미, 룸살롱 접대부 등 유흥업 종사자들로부터 강제추행, 성폭력 등 혐의로 고소당한 상담 사례가 수십 건 올라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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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의 문제는 ‘유흥업소 직원을 상대로 왜 성관계하면 안 되냐’는 범죄적 시선을 비판하지 않고 그대로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유흥업이 합법인 한국에서 유흥업소 직원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성매매는 불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흥업소 직원이 곧 성판매자일 것이란 인과관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전형적으로 특정 성별과 특정 직업군을 성적 대상화 하는 시선입니다. 한국경제는 제목에서도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의 말을 따옴표 처리해서 “유흥업소 직원인데 ‘강간죄’라니”라고 썼습니다. 한국경제는 기사를 통해 유흥업소 직원에 대한 강간을 부추기고 싶었을까요? 유흥업소 직원에 대한 성폭력을 합리화하는 의견을 비판 없이 그대로 전달해선 안 됩니다.
비슷한 문제는 세계일보 <김건모 성 추문 이어지자 누리꾼 일각 젠더 이슈화 “술집녀가 미투하는 시대”>(12/18 장혜원 기자)에서도 발견됩니다. ‘유흥업소 직원들의 미투 운동은 부당하다’는 내용의 댓글을 모아놓은 기사입니다. 세계일보는 왜 굳이 이런 댓글을 모아 기사를 썼을까요? 미투 운동에 나서는 데엔 어떤 조건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거짓 미투’란 프레임을 재생산하기도
13일 김건모 씨 측 소속사에서 보도자료를 내고 “김건모는 해당 여성은 물론 피해사실 조차 전혀 모른다”, “해당 여성을 명예훼손과 무고죄로 고소한다”, “진실된 미투는 보장돼야 하지만 거짓 미투, 미투 피싱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그러니 이 또한 전형적인 가해자 입장일 뿐입니다.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에서도 “가해자의 변명을 그대로 전달하여 피해자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호기심 어린 질문 및 남성 중심적 통념에 근거한 질문은 삼간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경제의 <김건모 측 “‘성폭행 주장’ 여성, 무고로 고소…거짓 미투 없어져야”>(12/13 신지원 기자), 중앙일보 <김건모 측 “거짓 미투 없어져야” 성폭행 피해 주장녀 맞고소>(12/13 배재성 기자), 동아일보 <김건모 “미투를 가장한 거짓 미투”…무고로 맞고소>(12/13 박태근 기자) 등 주요 일간지 인터넷판은 ‘거짓 미투’란 가해자가 만들어낸 용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쓰고 있습니다.
특히, 위키트리에서는 <“접대부를…” 침묵하던 김건모,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전문)>(12/13 권미정 기자)이란 제목의 기사를 냈는데요. 제목에서 ‘접대부’라는 표현을 쓴 것 자체가 일단 문제입니다. 이 표현은 여성 비하적이고 성차별적인 단어입니다. 김건모 씨 측에서 낸 입장문에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은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접대부(강용석 변호사 보도자료의 표현 인용)로, 모 유튜브 방송에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김건모의 취향을 이용하여 거짓으로 꾸며낸 사실을 마치 용기를 내어 진실을 폭로하는 것처럼 하였습니다”라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접대부라는 표현을 기사 제목으로 뽑는 것은 문제입니다.
피해 여성이 ‘신변보호’ 요청한 것을 왜 부각하나
지난 14일엔 피해 여성이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신변보호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피해 여성이 전 국민적으로 사랑을 받았던 김건모 씨를 상대로 성폭행 범죄 사실을 밝히고 있는 데다 성범죄 피해자라면 그 자체로 불안감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 피해자가 신변보호를 요청한 것을 부러 기사화해서 집중 조명하는 보도들이 있었는데요. 예를 들면 중앙일보 <윤지오 받은 신변보호…‘김건모 성폭행’ 주장녀도 가능할까>(12/16 남궁민 기자)를 보면, 올해 초 고 장자연 씨 사건의 증언자로 신변보호 요청을 했던 윤지오 씨를 제목에 내세우면서, 마치 피해 여성이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걸 공론화시키고 있습니다.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왜 문제냐고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론에서 피해 여성의 신변보호 요청을 지적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유는, 올해 초 윤지오 씨가 신변보호를 받고 있는 것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했었기 때문입니다.
또 국민일보 <‘미우새’ 하차한 김건모와 신변보호 받는 여성…성폭행 폭로 후 엇갈린 행보>(12/17 천금주 기자) 기사에서는 ‘김건모는 미운오리새끼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는데, 피해 여성은 신변보호를 받는다’는 식으로 적고 있습니다. 고통 받고 아파해야만 피해자입니까? 가해자는 이러해야 한다, 피해자는 이러해야 한다는 통념을 제시하면서 이분법적으로 그리고 있어 문제입니다. 게다가 피해 여성이 마치 대접받고 있는 듯한, 사회에서 대단한 호의를 받고 있는 듯한 묘사는 왜 필요할까요? 김건모 씨가 출연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피해 여성은 신변보호를 받는 것. 이건 어쩌면 당연한 과정입니다.
데일리안 <‘김건모 곧 소환’ 피해자 신변보호 요청 왜?>(12/16 이한철 기자)도 ‘신변보호 요청을 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왜?’라는 질문을 붙임으로서 마치 신변보호를 요청한 이유를 궁금해 했습니다. 사실 기사에 보면 자세한 내용이 소개돼 있지도 않습니다. 제목에서 부러 ‘왜?’라고 물음으로서 신변보호 요청을 부각하고, 앞서 소개했던 중앙일보 기사와 마찬가지로 마치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도록 만드는,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기사라 문제입니다.
김건모 의혹 외에도 이어지는 ‘가세연 받아쓰기’
한편, 가세연은 김건모 씨 외에 다른 의혹들을 폭로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지만 내용을 보면 대부분 근거 없는 주장과 억측들입니다. 그러나 언론은 이 같은 가세연의 의혹 제기를 열심히 ‘받아쓰기’ 해주고 있습니다. ‘가세연에 따르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따옴표만 친다면 그 어떤 억측이나 막말, 의혹도 다 괜찮다는 식입니다.
18일 유튜브 라이브에서 가세연은 김건모 씨랑 친하다는 한 연예인의 성추문을 폭로했습니다. 이날도 이를 목격한 피해 여성의 증언이 그대로 방송됐는데, “그때 당시에 무한도전에 나왔다”는 말로 화제가 됐습니다. 이후 <무한도전>과 유재석 씨가 구설수에 오르자, 다음 날 가세연은 아예 ‘유재석 첫 단독 기자회견 이유’라는 제목을 걸고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이날 유재석 씨는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녹화에 따라 기자간담회를 열긴 했습니다. 그러나 가세연의 전날 의혹제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일부러 시청자들을 낚기 위해 이런 제목을 쓴 것입니다. 19일 라이브에서는 MBC 김태호 PD가 탈세한 의혹이 있다거나 유재석 씨가 지난해 6‧13지방선거 날 파란 모자, 파란 청바지, 파란 신발을 신었다며 노골적으로 특정 정당을 편들고 있다는 식의 근거도 논리도 없는 루머가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카더라’식의 가세연 주장을 그대로 받아쓰는 언론들이 더욱 문제입니다. 조선일보 <‘가세연’, 연예인 성추문 추가 폭로…“당시 무한도전 출연”>(12/18 장우정 기자), <“김건모말고 또 있다”…가세연, ‘바른생활 연예인’ 성추문 폭로>(12/19 황민규 기자), <‘국민MC’까지 건드리는 가세연…“유재석은 좌편향 연예인, 주가조작 의혹도”>(12/20 황민규 기자), 국민일보 <‘김건모와 친한 바른생활 연예인’ 또다른 성추문 폭로>(12/19 김상기 기자) 등 종합일간지는 물론 YTN <김건모 이어 또 다른 연예인 성추문 불거져 “당시 ‘무도’ 출연”>(12/18 최보란 기자), MBN <‘가세연’, 연에인 성추문 추가 폭로 “‘무한도전’ 나온 적 있다”>(12/19 안하나 기자) 등 방송사 인터넷판도 짜 맞춘 듯이 똑같습니다. 비슷한 내용에 비슷한 제목, 하나같이 가세연의 주장을 받아쓰고 있습니다. 뉴스1의 <‘가세연’, 다른 연예인 성추문 의혹도 제기 “‘무한도전’ 출연한 적도”>(12/19 안태현 기자), 매일경제의 <“‘무한도전’ 출연 연예인+김건모와 친분”…가세연, 연예인 성추문 추가 폭로[종합]>(12/19 이다겸 기자) 등을 보면 매체 종류와는 상관없이 모두 가세연 말을 받아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중 가장 나쁜 건 위키트리 <“여자들과 합석하면…” ‘무도’ 출연했던 김건모 ‘절친 가수’가 한 말(영상)>(12/22 윤희정 기자)과 같은 기사입니다. 가세연에서 나왔던 온갖 억측을 종합해서 기사를 써냈기 때문입니다. 위키트리는 가세연이 주장한 ‘김건모와 친한 연예인’ 단서 하나를 가지고 연예인 하나를 지목, 그가 이전 방송에 출연해 김건모 씨에 대해 했던 말들을 기사화했습니다. 가세연 주장과 마찬가지로, 이 기사에서도 해당 연예인이 김건모 씨와 엮이는 데 큰 이유는 없었습니다. 언론들의 무차별 ‘가세연 받아쓰기’로 루머가 루머를 낳고 있습니다.
유튜브 채널 낮잡아보던 언론, 저질 논란에는 앞뒤 안 가리고 퍼 나르기 바빠
최근 가세연의 김건모 성폭력 관련 폭로는 성폭력 범죄를 고발하여 성범죄를 줄여나가자는 문제의식보다는 이 사안을 자신들의 장삿속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전형적인 상업적 잇속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저급한 수준의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유튜브 채널의 행태를 기성언론은 신이 나서 확대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성범죄를 다루는 언론의 수준은 그 사회 전반의 성 의식과 인권 의식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성폭력이라는 그 사안 자체보다 더 부끄럽고 끔찍한 성폭력 보도 논란이 있었습니다.
2004년 12월 이른바 밀양 성폭력 사건 당시, 언론은 무리한 인터뷰를 했고, 피해자 신원을 노출하는 바람에 피해자는 언론 보도 후 학교에도 못 가고 지역을 떠나는 등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2005년 8월 육영재단 국토 순례단 간부의 성희롱 의혹이 나왔을 때 <조선일보>는 박근영 당시 이사장의 발언을 제목으로 뽑아 <“성희롱? 딸들이 애라도 뱄냐”>(2005/8/6)라고 보도했습니다. 2011년 명문대 학생들이 여학생을 성폭력 한 당시에는 가해자 측 가족으로부터 수사 기록 등을 제공받아 관련자의 진술이나 자료 중 피고인에게 유리한 부분을 기사화하거나 사실을 왜곡했습니다. 2012년 고종석 사건 당시에는 언론사 간 과열 경쟁과 선정적 보도가 있었고, 특히 피해자 집 위치와 내외부, 피해자 상해 흔적을 보도하는가 하면 피해자의 그림일기장까지 훔쳐 보도했습니다. 피해자의 인권을 간과한 기사가 진보, 보수 매체를 가리지 않고 넘쳐나던 ‘야만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 같은 부끄러운 성폭력 보도를 반성하면서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실천을 강조하며 조금씩 진전을 이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보도는 지난 10여 년의 성폭력 보도의 작은 진전을 한순간에 되돌려놓았습니다. 김건모 씨는 공인이고, 그의 성폭력 논란은 중대한 기삿거리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지금 김건모 씨를 둘러싼 보도들이 우리 사회의 성폭력을 줄여나가자는 성폭력 보도의 취지에 맞는 것인가요? 성폭력 보도는 누군가에게 흥미 위주의 이야깃거리를 남기거나 누군가를 조롱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우리 국민은 이처럼 저질스럽고 황당한 성폭력 보도를 보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 운운하면서 이따위 보도를 내놓는 모든 언론사들은 즉각 이 행태를 중단해야 합니다. 특히 이 같은 보도를 초등학생들도 보는 사이트에 버젓이 유통시키고 있는 포털은 향후 이 같은 행태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아야할 것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12월 6~22일 포털에서 ‘김건모’를 주요 키워드로 ‘거짓 미투’, ‘신변보호’ 등을 검색하여 나온 기사 전체 /출처 : 미디어오늘
Oh! Danny 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