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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12.11.14

이성근 2019. 2. 16. 23:09

 

NLL 포기발언의 진실

과연 노무현 전 대통령은 NLL을 포기했던 걸까. 노 전 대통령은 한국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오히려 NLL을 기정사실화하려 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북풍이 불고 있다. 108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의 폭로성 발언으로 시작된 이 논란은 대선 정국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새누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이란 영토선을 자의적으로 포기하는 심대한 과오를 범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애초에 NLL이라는 선을 만든 당사자인 미국의 견해는 명확하다. 19741CIA 보고서와 1975228일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이 보낸 외교전문에 따르면, 미국 측은 NLL이 영토선도, 해양경계선도 아니라고 못 박고 있다. 먼저 CIA 보고서는 1965년 유엔군 산하 해군구성군사령관이 유엔사의 작전통제에 있는 군함들이 북쪽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그어 놓은 한계선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키신저의 전문도 한국이 이 해역을 영해(territorial waters)’라 부르는 건 잘못된 용어이고, 그런 입장이 이 지역에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라고 지적하면서 “NLL은 유엔군사령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설정됐고 북한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국제법과 미국 해양법 시각과 배치된다라고 돼 있다.

 

김장수 국방장관이 청와대 지침을 따랐더라면

설령 새누리당의 주장처럼 NLL을 영토선이라고 치자. 과연 노 전 대통령이 이를 포기했던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 전 대통령은 비록 NLL이 국제법적 지위 없이 그어진 선이기는 하지만, 한국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2007년 정상회담의 ‘10·4 남북 공동선언문’ 5항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남과 북은 해주 지역과 주변 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 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 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 이용 등의 사업을 추진한다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여기에 NLL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백번을 양보해 정상회담장에서 그런 뉘앙스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해도, 공식 결과물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은 NLL을 기정사실화하려 했다. 엄격히 말해 10·4 선언 협상과정에서 공동어로구역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를 보지 못했고 그해 1127일부터 29일까지 평양에서 개최된 2차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다루게 됐다. 노 전 대통령은 김장수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협상의 전권을 부여해 서해 해상에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을 취하도록 지시했다. 필자의 기억으로 당시 청와대는 두 가지 안을 갖고 있었다. 일단은 NLL을 기점으로 한 등거리 공동어로구역 설정을 북한에 제시하되, 만일 북한이 수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등면적의 공동어로구역 설정을 제안하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등면적이라 함은 북한과 거리가 가까운 연평도 지역에서는 우리가 NLL 남쪽의 일정 부분을 양보하고, 대신 북한과 비교적 거리가 있는 백령도 지역에서는 북한 측이 NLL 북쪽의 일정 부분을 양보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김장수 전 장관은 북한 대표였던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등거리 공동어로구역 설정 제안을 거부하자 협상을 결렬시키고 이 사안을 낮은 수준의 실무회담으로 이관시켰다. 청와대 지침대로 김 전 장관이 등면적 원칙에 따른 공동어로구역 설정이라는 역제안을 했다면 상황이 크게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회담장에서 ‘NLL 포기를 언급했느냐 하는 것은 박근혜 후보의 말처럼 국정원이 보관하고 있는 대화록을 열어보면 쉽게 해결될 일이다. 그러나 이 점에 관해 북한이라는 상대가 있고, 국가안보가 더 중요하므로 바람직하지 않으며, 여야 합의가 있어도 보여줄 수 없다라고 한 원세훈 국정원장의 답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최고 정보책임자가 안 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는데도 여당이 대화록 공개를 계속 주장하는 것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판이 깨져도 무방하다는 근시안적 정파 이기주의의 발로라 아니 할 수 없다.

 

노 전 대통령이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에 집착했던 것은 경제협력을 통해 서해에 평화를 구축하고, NLL을 둘러싸고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는 것을 막고자 함이었다. 그러면서도 등거리 또는 등면적의 공동어로구역 설정을 제안함으로써 NLL을 기정사실화하려 했던 것이다. 이를 두고 ‘NLL 포기라고 왜곡, 폄하하는 것은 이 지역을 영원히 분쟁지역으로 남겨두고 북한과 대립구도로 가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선거전의 순간적인 우세를 위해 이를 정쟁화하는 것은 건설적인 대안 논의 대신 젊은이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시사인 26912.11.14

 

역사 인식 없이는 복지국가도 없다

복지국가는 무조건 일자리를 나눠주고, 현금보조 제도를 하나 더 만드는 게 아니다. 한국 사회 재설계에 관한 철학이 필요하다. 역사 인식은 배가 불러서논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 인식과 복지국가로의 진전은 별개 문제인가? 역사는 그저 과거에 관한 것이고, 복지국가는 미래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서로 무관한 것일까? 나아가 미래 복지국가 비전에 대한 선택은 과거를 덮은 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까?

 

나는 학기 초 복지국가에 대한 강의를 개인이 국가를 어떻게, 무엇으로 경험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곤 한다. 국가는 개인을 보호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지만, 개인을 빈번히 동원의 대상으로, 심지어는 죽음까지 포함하는 폭력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현대 복지국가의 성과 중 하나는 이러한 국가와 국민의 관계가 지배와 보호, 동원과 복종에서 비로소 새로운 단계로 진전되었다는 것이다. 국가는 국민에게 사회보장을 제공하고, 국민은 이를 충성을 대가로 누리는 시혜가 아닌 권리로 누리게 되었다. 현대 복지국가에서 국가는 개인에게 필요 욕구를 충족시키는 존재로 경험된다. 국가는 돌봄 제공자로, 소득 제공자로, 나아가 일자리 제공자로 확대된다.

 

국가에 대한 공포를 내면화한 한국 사회

현대 복지국가에서 사회보장은 국가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시혜나 구제가 아니다. 사회보장 급여나 사회서비스를 받는다는 것이 누군가에 대한 복종을 조건으로 하거나 시민으로서의 존엄과 자율성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것은 국민은 이러한 의사결정과 집행에서 주체로 참여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나눈다는 것이다. 요컨대 현대 복지국가는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이기는 하지만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크게 변화시켰고, 많은 이들이 복지국가의 중요한 조건으로 민주주의를 언급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많은 이들은 폭력을 통해 국가를 경험했고, 국가에 대한 공포를 내면화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는 동원되고 순응하였다. 따라서 그동안 자행된 국가의 폭력에 대해 제대로 성찰하고 그 의미를 명확히 할 때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 대한 현대적 전망이 제시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국가의 국민에 대한 극단적인 폭력이었고, 공포를 통한 지배의 상징이었던 장준하 선생 사건, 인혁당 사건이 집단적 망각 속에 묻혀 있다 다시 밖으로 나온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이러한 국가 폭력에 대한 제대로 된 성찰 없이 복지국가를 운운하는 것은 심각한 오해이거나 위선이다. 현대 복지국가로의 진전은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근본적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배하는 국가, 공포로 위협하는 국가, 감시하는 국가가 아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국가, 그리고 국민이 다양한 방식으로 의사 결정과 집행에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국가로의 전환을 꿈꾸지 않는 한 복지는 그저 정치적 필요에 따라 붙였다 떼어냈다 할 수 있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과거사와 민주주의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한 채 이를 미래에 대한 전향적(?) 태도로 덮어버린다는 공식을 복지국가에 적용할 수는 없다.

 

복지 논의에 시대정신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갖다 붙인다고 한들, 기존의 역사 인식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미래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가 없다. 누가 사과의 주체인지조차 분명치 않은, 용서를 구하는 것인지 아닌지조차 모호한 그런 입장 발표로 정리하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이는 과거에 관한 것인 동시에 미래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쌍용차 진압, 용산 사태, 민간인 사찰 등 한국 사회에서 국가의 국민에 대한 폭력과 강제라는 패턴이 변하지 않고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많은 증거들이 있다. 최근에는 어느 한 개인을 꾸준히 사찰하고, 어느 한 정치세력이 그의 생명까지 위협한 일도 있었다.

 

역사 인식은 어떤 정치인의 말처럼 배가 불렀기 때문에논하는 것이 아니다. 복지국가로의 미래는 무조건 일자리를 나눠주겠다는 약속, 현금보조 제도를 하나 더 만들겠다고 하는 약속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복지국가는 국가와 국민, 국가와 시장 등 사회관계 재편을 포함하는 한국 사회 재설계에 관한 철학과 계획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바탕 위에서야 이제 이륙을 시작한 한국 복지국가에 필요한 과제들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단절할 수 있는 의지와 단호함이 필요한 시대이다. 오랫동안 자행된 국가의 폭력으로부터의 단절, 나아가 점점 극심해지고 있는 시장의 폭력성 제어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요구된다. 자본주의 위기가 항구화된 시대에 바람직한 미래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은 그냥 모호한 말이 아닌 과거와 현재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요구한다.

주은선 (경기대 교수·사회복지학) 시사인 26212.9.26

 

우리는 도시에서 죽는다

그래서 생각했다. 도시에서 땅을 창출하는 도시 간척을 해야 한다고. 도시에 땅이 생겨나면 우리는 사람다워진다. 무엇보다 공감과 배려, 연대와 변화를 꿈꾸는 공동체가 형성된다.

농업은 구려요.” 아들 녀석 입에서 튀어나온 소리였다. 순간, 어찔했다. 네 식구가 오랜만에 막걸리와 빈대떡을 올려놓고 둘러앉은 자리. 아들 녀석은 학교에 다닌다면 중 3인데 몸에 약간의 문제가 있어 홈스쿨링을 한다. 말이 홈스쿨링이지, 스쿨은 없고 홈만 있는 형국이다. 아이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나는 성적이나 입시에 관한 언급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데 막걸리 기운을 빌려 , 농과대학 가지 않을래?”라고 운을 뗐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예상치 못한 답이었다. 어려서부터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던 아이였다. 한옥마을에 며칠 머물 때에는 한옥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함께 밥을 먹을 때, 이 음식이 어디에서 오고, 또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면 척척 답을 하던 아이였다. 생태적 감수성이 제법 발달해 있다고 믿어왔는데, 농업에 대한 인식은 엉망이었다. 하기야, 요즘 다 큰 아들에게 농과대학에 가라는 정신 나간 아비가 몇이나 되랴. 맞다. 농업은 구리다.

아니, 구렸었다. 똥오줌을 삭혀 땅을 살려야 했기 때문이다. ‘똥을 먹어야 산다는 말이 죽으면서 땅이 죽었다. 농업이 죽고 농촌이 죽고 농민이 죽었다. 1955~1963년 사이에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에게 농업은 유전자에 각인된 그 무엇이었다. 우리에게(나는 1959년 경기도 김포에서 출생했다) 농업은 역사이자 문화였으며, 농촌은 고향이자 현실이었다. 하지만 땅의 아들딸로 태어난 우리는 도시에서 성년식을 치러야 했다. 그리고 도시 변두리 셋방에서 부모가 되었다. 우리는 땅의 마지막 자녀이자 도시 최초의 부모였다.

 

분단 이후 근대화·산업화·도시화·민주화·세계화·정보화를 온몸으로 겪어낸 우리 세대의 꿈은 소박한 것이었다. 자식들 교육시키고 나면 시골로 내려가 살겠다던 꿈. 그러나 우리의 꿈은 외환위기 이후 풍비박산나고 말았다.

 

고용 없는 성장은 우리 자신은 물론 가족을 뿌리째 뒤흔들었다. 개인은 죽고 기업만 살아남는 사회였다. 승자만이 독식하는 사회였다. 민주주의는 경제논리 앞에서 무력했다. 부모 봉양과 자녀 양육이 전부였던 우리 앞에 100세 시대-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초고령화 사회가 턱하니 버티고 서 있다.

 

일터에서는 나가라 하고, 사회에서는 오라는 데가 없다. 대학을 졸업한 자식은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다. 취직하거나 결혼했다고 해서 완전 독립을 하는 것도 아니다. 얼마 전부터 혼자 중얼거린다. 900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 가운데, 노후를 전원에서 보낼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나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물려받은 땅도 없고, 모아놓은 노후자금도 없다. 나는 도시에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다.

 

나는 도시에서 죽는다. 그래서 생각했다. 도시를 농촌으로 만들자! 5년 전만 해도 나는 도시를 혐오했다. 도시는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이었다. 미래는 오직 농촌에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시골로 내려가는 길이 봉쇄되고 말았다. 도시를 재발견해야 했다. 하지만 도시 경작 수준이 아니었다. 도시에서 땅을 창출하는 도시 간척이어야 했다. 도시 농업은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 도시를 녹화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도시에 땅이 생겨나는 순간,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회복된다. 무엇보다 공동체가 형성된다. 이웃의 이름을 부르고, 음식을 나누게 된다. 공감, 배려, 연대, 변화가 가능해진다.

 

아파트 주차장을 과수원으로, 교차로를 텃밭으로

도시는 땅 위에 건설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땅의 아들딸이다. 도시농업은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들딸이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가는 거의 유일한 출구다. 공원이나 공터, 옥상이나 운동장을 땅으로 만드는 도시 경작을 도시 간척으로 확대해야 한다. 교차로 위에 상판을 덮어 텃밭을 만드는 것이다. 아파트 주차장 위에 상판을 깔아 과수원을 일구는 것이다. 순환도로 위에서 닭을, 강변도로 위에서 물고기를 키울 수 있다.

낡은 아파트를 빌딩농장으로 리모델링할 수도 있다. 도시에 땅이 생겨나는 만큼 우리는 사람다워진다. 도시에 땅이 늘어나는 만큼 삶의 정치, 풀뿌리 민주주의가 성숙한다.

 

아들아, 이래도 농업이 구리다고 할 것이냐. 도시농업이 우리의 미래다. 아들아, 너는 그래서 농업, 도시농업을 공부해야 한다. 너는 농민 후계자다.

이문재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시사인 26312.10.10

 

영토 문제, 정치의 종말

멀쩡한 사람을 미치광이로 만드는 데는 영토 문제를 건드리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없을지 모른다. ·일 정부는 거친 언사를 교환하며 실추된 권력기반을 강화하고 있다영토 분쟁은 원래 무서운 것이다. 이 문제가 기본적으로 국가 혹은 국민이라는 집단의 본능적 이기심에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이성적 언어가 개입할 공간이 매우 좁게 마련이다.

 

현재 일본에 사토 마사루(佐藤優)라는 외교관 출신의 정력적인 논객이 있다. 특이한 것은 그가 정통 우익 성향의 인물임에도 일본 재생의 길을 사회민주주의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현재 일본 사회가 파시즘 부활 가능성이 높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우려한다. 그 점에서 그는 비교적 양식 있는 지식인으로 볼 수 있다. 그가 지금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일본 논단에서 꽤 영향력 있는 필자로 평가받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인물도 영토 문제에 관해서는 막무가내라는 점이다. 수년 전 그는 독도(다케시마)에 근접한 오키섬(隱岐島)을 방문한 뒤 어느 잡지에 장문의 르포 기사를 싣고, “다케시마 영유권은 국가의 명예와 존엄이 걸린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문제다라고 결론지었다. 이번에도 그는 작심하고 블로그에 글을 올려 한국의 횡포에 대응하여 국가와 국민이 일체가 되어 반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역설했다.

 

멀쩡한 사람을 미치광이로 만드는 데는 영토 문제를 건드리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지 모른다. 영토 분쟁의 가공할 파괴성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로 전바오(珍寶)섬을 둘러싼 중·(中蘇) 대립을 들 수 있다. 우수리강 가운데 위치한 이 작은 섬은 19세기에 제정 러시아가 극동지역 진출 과정에서 청나라로부터 강제 할양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사회체제가 바뀐 상황에서 이 섬의 영유권은 모호한 상태로 방치돼 있다가 1960년대에 중·소 간 이념 대립이 격화됨에 따라 심각한 분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19693, 양측이 직접 무력을 사용하는 사태로 발전했고, 많은 희생자를 냈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경악할 것은 사태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소련이 중국의 핵시설에 대한 공격을 계획했다는 점이다. 소련은 자칫 핵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는 이 계획을 실행으로 옮기기 전에 은밀히 워싱턴과 접촉했으나 미국 정부가 반대했다는 기록이 있다. 미국과 불구대천의 관계에 있던 소련이 사회주의 형제국인 중국과 영토문제로 다투는 도중에 미국의 의견을 물었다는 이 이야기는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사회주의든 뭐든 현대 정치의 공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국가의 논리라는 것, 그리고 국가의 논리란 여하한 이념·사상·가치도 무력하게 만드는 가장 근원적인 힘 혹은 멍에라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닌가?


국가 이기심을 자극하는 정치는 범죄

한국 대통령의 독도행에서 촉발되어 지금 한·일 양국은 정상적인 외교행위가 중단되고 준전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대통령이 우리 땅을 밟은 게 뭐가 문제냐 하는 것이 보통 한국인들의 생각이지만,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상대 국가와 국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독도의 영유권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지, 그 역사적 진실을 아무리 말한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수긍하지 않는 한, 영토 분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영토 분쟁이란 그런 것이다. 설령 양쪽이 동의하여 국제사법재판소의 심판을 받는다 할지라도, 어느 쪽도 자신에게 불리한 결정에 순순히 따르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세계정부가 세워지기 전까지는, 전쟁이나 특수 상황이 전개되지 않는 이상, 영토 분쟁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 할 수 있다. 그것이 근대국가의 논리이다.

 

어떻게 보면 근대국가란 다른 국가, 특히 인접 국가와의 긴장관계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근본 동력으로 해서 움직이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번 사태로 인한 가장 큰 이익도 결국 양국 정부와 지배층에 돌아가고 있다는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국민적지지하에 지금 거친 언사를 교환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실제로 회복·강화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실추된 권력기반인 것이다.

 

그러나, 국가 이기심에 의존하는 정치란 오늘날 시급히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최대의 장애물이라는 것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은 국가 간 협력 없이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총체적 위기의 시대이다. 이 상황에서 아직도 국가 이기심을 자극하여 권력 기반을 강화하려는 통치방식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동시에 명백히 범죄적인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어리석고 무책임한 정치의 결말은 공멸밖에 없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시사인 26012.9.12

 

노무현과 MB의 독도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과 잘 싸우는 방법을 보여줬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일 행보는 전략적 틀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한국에 우호적인 일본 중도 인사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2005318, 일본 시마네 현 의회가 2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하는 조례를 통과시킨 직후였다. 청와대 관저에서는 만찬을 겸한 비공식 대책회의가 열렸다. 이해찬 총리를 비롯해 관계부처 장관과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당시 동북아시대위원장으로 일했던 필자도 그 자리에 있었다. 이 모임의 서두에서 노 대통령이 꺼낸 화두는 다음과 같았다.

 

·일 전쟁은 일본이 한반도를 차지하기 위해 치른 침략전쟁이었다. 일본은 19051월부터 이 전쟁을 빌미 삼아 경성에 자국 군대를 진주시켰고 한반도의 철도부설권과 울릉도의 산림채벌권을 챙겼다. 그리고 221일에는 독도를 자국 영토로 만들어 시마네 현에 편입했다. 사실상 무력으로 독도를 강탈한 것이다. 100년 전의 독도 병탄 다음 날인 2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선포한다는 건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통해 얻은 점령자로서의 권리가 지금도 유효하다고 믿는다는 뜻 아닌가. 이는 한국의 완전한 해방과 독립을 부정하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한 참석자가 노 대통령의 발언에 이어 최근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보통국가라는 명분하에 일본이 군국주의로 회귀하려는 흐름을 보여주는 행동이다라고 주장했다.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대통령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일본은 이제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다. 1930년대식 군국주의의 부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무엇보다 일본 국민이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군국주의 부활과 재무장을 동일한 것으로 단정해서는 곤란하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한다면 재무장도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 말이었다.

 

또 다른 참석자는 당시 마산시 의회의 움직임을 보고했다. 시마네 현의 다케시마의 날제정에 대한 보복으로 대마도를 한국 영토로 규정하는 조례를 채택하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노 대통령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관계부처 장관이 마산시 의회를 설득해 중단하도록 하라는 주문도 이어졌다. “대마도가 일본 영토라는 건 국제사회가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우리가 대마도를 우리 땅이라고 우기면 다른 나라들이 이를 어떻게 생각하겠나. 자칫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사실의 정통성마저 훼손되지 않겠나. 명분을 잃으면 도리어 되잡힐 수 있다.”

 

만찬 참석자 일부가 한·일 간 교류협력도 당분간 중단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이럴 때일수록 민간 차원의 교류는 지속하고 강화돼야 한다. 대다수의 일본 국민은 양식 있는 시민들이다. 이들과 공감대를 넓혀가야 일본 내 극우보수주의자들을 고립시켜 그들의 주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멈춰야 할 곳에서 멈추지 못한 MB

이제 20128월로 돌아와보자. 이명박 대통령의 대일 행보는 과연 현명한 전략적 판단 위에서 이뤄지고 있는가. MB 정부 들어 한·일 관계가 말 그대로 밀월을 유지해왔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가치동맹이라는 틀 위에서 진행됐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과 군수협정 체결, ·일 민주동맹과 한··3국 군사 공조의 모색은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현 정부 대일 정책의 골간이었다. 서울에서는 물론 도쿄의 그 누구도 청와대가 갑자기 지금과 같은 대립을 선택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과연 이를 관통하는 전략적 틀이 무엇인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냉철함을 기준으로 봐도 마찬가지다. 독도 방문으로 끝났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벤트84.6%라는 기록적인 국민적 지지를 받고 나자 청와대는 멈추어야 할 시점에서 멈춰서지 못했다. “일본의 국제적 지위가 예전 같지 않다라는 폄하론과 일왕이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면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라는 발언이 이어졌다. 언뜻 당연하고도 속 시원한 말일 수 있다. 그러나 일본 국민들, 특히 양식 있는 시민들의 마음을 얻어 극우주의자들을 고립시키는 일에는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 강상중 도쿄 대학 교수는 MB의 일왕 관련 발언이 치명적 결과를 가져왔다고 증언한다. 한국에 다분히 우호적이었던 중도나 좌파 인사들마저 등을 돌리게 됐다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과 협력하는 지혜를 남겼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과 잘 싸우는 방법을 보여줬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기는 한 것일까. 문득 두 전직 대통령이 그리워진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시사인 25912.9.5

 

자유도시크리스티아니아

크리스티아니아는 코펜하겐 중심부에 있는 공동체다. 집과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해방구가 형성되었다. 덴마크 정부가 특별해서가 아니었다수년 전부터 틈나는 대로 덴마크에 관한 자료와 문헌을 보고 있다. 국제기관들이 매년 발표하는 행복지수에서 늘 최상위를 차지하는 덴마크가 과연 어떤 나라인지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덴마크도, 유럽도 가본 적이 없다(원거리 항공여행을 단념했기 때문에 유럽까지 기찻길이 열린다면 모를까 아마 죽을 때까지 나의 유럽행은 실현될 것 같지 않다). 그런 까닭에 이해력에 명백한 한계가 있겠지만, 그래도 자료와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덴마크의 사회와 정치, 문화에 감탄할 때가 많다.

 

내 생각에 오늘날 덴마크인이 누리는 행복의 원천은 단지 잘 정비된 복지국가 시스템에 있는 게 아니다. 조금씩 더 들여다볼수록 덴마크는 기본적으로 폭력의 원리에 입각한 근대국가의 일반적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매우 독특한 인간적논리와 상식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전원 합의제 의사결정, 깃발과 화폐도 독자 사용

예를 들어, 코펜하겐 중심부에 있는 크리스티아니아라는 자유도시만 하더라도 그렇다. 현재 396694m²(12만 평) 정도 면적을 가진 이 지역은 덴마크 국가 내에 존재하면서도 국가의 행정 바깥에서 자치적 삶을 누리는 약 1000명의 주민으로 구성된 해방구(코뮌)이다. 원래 이곳은 덴마크의 오래된 해군기지였지만, 1970년대 초 기지가 폐쇄된 이후 집 없는 사람들과 자유로운 삶을 원하는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방치된 기지 건물 여기저기를 점유·거주하기 시작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자유도시가 형성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전원 합의제에 의한 의사결정 체제를 유지함으로써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하고, 공동체를 상징하는 깃발과 화폐도 독자적으로 만들어 사용해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40년 동안이나 이 자유도시는 지속돼왔고, 덴마크의 관광명소의 하나가 되었다.

 

관광명소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단순히 옛 해군기지 터를 보러 오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곳에 국내외 방문객이 끌리는 이유는 자본주의 산업문명이 강요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의 소박한 생활현장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 40년 동안 이곳 주민들의 삶을 지배해온 원리는 원래 이 기지를 점거했던 젊은이들이 공유하고 있던-68학생운동 세대의-반자본주의·반권위주의적 히피문화의 정신과 감수성이었다. 실제로 이곳 주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생계 문제를 해결하고 있지만,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불가결한 요소는 요가와 명상, 그리고 비폭력주의의 실천이다.

 

이 자유도시를 규율하는 규칙은 단순하다. 도둑질, 일체의 무기 휴대 및 중독성이 강한 마약과 담배, 그리고 자동차가 금지되는 것 말고는 모두 자유이다. 통행 수단은 보행이거나 자전거이다. 그리고 주민의 약 30%는 텃밭 농사, 자전거 조립, 목공, 공예, 문예활동, 관광객 대상 장사에 종사하고, 다른 30%는 코펜하겐 시내의 직장에 다닌다. 나머지는 일정한 직업 없이 빈둥거리며 지낸다. 물론 독자적인 학교·도서관·극장·공연장도 있다.

 

특기할 것은 마리화나의 자유로운 사용과 판매이다. 이곳의 마리화나 가게에서는 마리화나의 종류와 성질에 관해 언제나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지난 40년 동안 이 비합법적인 코뮌에 대해서 덴마크 정부는 대체로 너그러운 무관심으로 대해왔다. 그러나 주로 마리화나 문제로 때때로 국가 공권력과의 사이에 갈등과 마찰이 빚어지곤 했지만, 그때마다 공권력은 주민과 이들을 지지하는 덴마크 시민의 완강한 저항으로 물러났다.

 

최근 덴마크 대법원은 크리스티아니아 주민의 점거상태가 불법이라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정부는 퇴거를 강요하지 않는 대신에, 주민들이 시세보다 훨씬 싼 값으로 땅을 매입하여 합법적 지위를 획득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주민들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나 아직 돈을 마련할 전망이 서지 않아 불안한 상태인 듯하다.

 

그러나 결말이 어떻게 되든, 이것은 국가폭력에 의해 끊임없이 시달려온, 가령 한국 민초들의 감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덴마크라고 해서 성장과 개발의 이익을 탐하는 자가 없을 리 없다. 하지만 덴마크는 수도 한복판에 가난하게,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서식지를 어쨌든 인정하고 있다. 덴마크 정부가 특별히 착한 정부여서가 아니다.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하지만 그러한 해방된삶에 공감하는 다수 시민이 덴마크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시사인 25612.8.16

 

5·16이 과거의 문제라고?

헌법을 수호해야 할 최고 책임자들이 사법부가 내란죄로 판결한 5·16을 정당화했다. 과거의 문제라고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과거에 대한 평가는 미래를 규정한다.

7월 한 달은 5·16에 대한 논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법을 공부하는 처지에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었다. 정치적·역사적 관점과는 별개로 법적 관점에서는 이 문제는 이미 흘러간 얘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 당혹스러웠던 것은 이 사태의 주인공이 헌법을 수호해야 할 최고책임자인 국무총리와 국회의장, 그리고 차기 대통령 후보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일은 단지 개인적인 의견 차이일 뿐이라고 넘길 수 없는 일이 되었다.

5·16을 정당화하는 가장 세련된 논리는, ‘5·16 자체는 쿠데타가 맞지만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는 혁명이나 다름없다는 정도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지만, 헌법적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논리다. 5·16은 그 자체로 형법상 군사반란과 내란죄에 해당한다. 내란죄와 군사반란죄는 그 수괴에 대해 오로지 사형과 무기징역만 가능할 정도로 중한 범죄이다.

 

또한 우리 사법부는 이미 쿠데타가 군사반란과 내란죄에 해당하는 중범죄이며, 이는 혁명과 구분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 새로운 법질서를 수립한 혁명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지만,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하여 폭력으로 정권을 잡은 것은 새로운 법질서를 수립한 것이 아니며, 이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라는 것이 사법부의 판결이었다. 만약 5·16 군사 쿠데타의 주역들이 법의 심판을 받았다면 중형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우리 헌법의 목적, 유래, 이념 등을 담은 헌법 전문(前文)은 우리 헌법이 3·1운동과 4·19혁명의 이념을 계승한다고 선언한다. 그런데 이러한 4·19의 결과로 성립한 제2공화국은 1년도 채우지 못하고 5·16 군사 쿠데타로 무너졌다.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 정권은 헌법 전문에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라는 구절을 삽입했지만, 이는 1980년 개정 헌법에서 삭제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로써 5·16에 대한 헌법적 평가는 종료된 것이나 다름없다.

 

결과적으로 혁명적 변화를 이끌어낸 5·16을 단순히 쿠데타라고 폄하하는 것이 못내 억울한 사람들도 있는가보다. 하지만 5·16으로 인한 결과는 5·16에 대한 규범적 평가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쉽게 생각해보자. 타인을 위협해 재산을 강탈했으면 그 자체로 강도이지, 빼앗은 귀금속을 좋은 일에 써서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었다고 해서 강도라는 사실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군사 쿠데타의 결과가 과연 혁명적 변화라고 평가될 만큼 긍정적인 것인지조차 의문이다. 그 결과야말로 아직 역사적 평가가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결과에 대한 평가 자체가 논쟁 중인데, 어떻게 그 결과를 가지고 과정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그것도 헌정질서를 파괴한 중범죄 행위를 대상으로 말이다.

 

결과로 과정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오히려 우리 실정법은 5·16으로 인한 결과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민주화운동 관련 법률들은 박정희 정권이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를 했다고 보면서, 이에 저항했던 운동을 민주화운동이라고 규정한다. 당시의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은 이미 보상을 받았고, 박정희 시대의 피해자인 인혁당과 긴급조치 관련자들은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고 손해배상까지 받았다. 이러한 법률과 판결은 5·16의 결과로 세워진 통치 질서가 반민주적이고 위헌적이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연유로, 군사 쿠데타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가장 중한 범죄 행위인 군사 쿠데타가 그 결과에 따라 달리 평가될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국가와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결과에 대해서는 다원적 시각을 취하지만, 그 과정에서는 비타협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자기 정당화를 하는 이념이다. 쿠데타에 대한 정당화는 바로 그래서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혹자는 5·16은 과거의 문제이며 이제 미래를 이야기하자며 어물쩍 넘기려고 하는 모양이다. 참 답답하다. 과거에 대한 평가를 이야기해보자고 하는 것은 군사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통치할 우리의 미래가 너무 불안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따져 묻고자 하는 것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그 미래의 문제이다./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조교수) 시사인 25512.8.8

 

나도 종북주의자인가

평소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해서일까. 일부 보수 성향 학생들이 북한 인권과 3대 세습, 탈북자 문제 등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집요하게 물었다. 그 대화를 소개한다.

종북 몰이가 한창이다보니 그 여파가 필자 같은 사람에게까지 미친다. 평소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게 종북주의자 아니냐는 의구심으로 이어진 것일까. 농반진반으로 시작했던 학생들과의 토론이 사상 검증 수준까지 비화하고 말았다. 일부 극단적인 보수 성향 학생들은 아예 북한 인권이나 3대 세습론, 북핵 문제, 탈북자의 위상 같은 각론까지 파고들어 필자의 견해를 집요하게 물어왔다. 다음은 그 대화의 한 토막이다.

 

먼저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 발언 이후 종북 논쟁의 핵심으로 부각된 북한 인권 문제다. 인권이 보편적인 가치임은 틀림없지만 우리 정부의 당국자가 이를 정면으로 들고 나오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지에 대한 생각의 차이다. 자칫하면 상호 체제 인정과 존중, 내부 문제 불간섭, 상호 비방과 중상의 중지를 골자로 하는 남북기본합의서 제1남북 화해에 대한 기본 합의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렇게 움직일 때의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남북 관계의 악화와 긴장 고조, 그리고 평화의 위기다.

 

더욱이 인권에는 자유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식량 문제처럼 인간의 기본욕구 해소를 전제로 하는 생존권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녹록지 않은 것은 북한의 현실상 생존권과 자유권 사이에도 상쇄 관계가 있다는 딜레마다. 이명박 정부의 지난 4년 동안 지켜본 그대로, 남한 정부가 인권 문제를 정면에서 거론하면 평양은 우리의 식량 지원마저 거부하고 뻗댄다. 정부가 나서서 소리 높인 인권 주장에 오히려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만 피폐해지고 마는 것이다.

 

더 본질적인 문제도 있다. 외압을 가해 북한의 인권을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외부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핵심은 주민들 스스로 인권을 쟁취해야 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북한 주민들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대내외적 여건을 마련해주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 지도부가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고 개방과 개혁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게 가장 급선무다.

 

3대 세습 문제도 짚고 넘어가자. 필자는 3대 세습에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이를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않으면 종북으로 매도하는 것에도 역시 동의할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비판과 비난을 퍼부어도 유일지도체계와 3대 세습이 북한의 현실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남한 측의 비판은, 특히 정치인들이 앞장서는 비판은 평양으로 하여금 우리가 북한 그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믿게 만들 뿐이고, 이는 결국 대화나 교류 협력, 신뢰 구축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북핵 문제도 또 다른 쟁점이다. 필자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막강한 핵 군사력에 대해 억지력을 구축하고 남한과의 재래식 군비 경쟁에서 뚜렷해진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 나름의 자위적 조처라는 것이다. 체제 옹위나 국제적 위상 고양 같은 효과는 오히려 부차적일 수 있다.

 

탈북자 지원하고, 그들의 의견 경청해야 하지만

이렇게 놓고 보면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한반도의 분쟁 구조를 해소하고 진정한 의미의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뿐이다. 북한이 핵을 개발했다고 남한도 핵을 개발한다거나, 극단적인 군사행동의 끝을 본다거나, 이미 무력해질 대로 무력해진 경제 제재에 매달리는 정책으로 과연 평양이 핵을 포기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요즘 가장 민감한 탈북자 문제다. 탈북자들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남한에 온 것을 환영한다. 그러나 정부의 대북정책이 이들에 의해 휘둘려서는 안 된다. 그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북한 체제에 대한 적개심은 십분 이해하지만, 정부의 정책이 그런 감정 어린 시각에 따라 운용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 진영이 이들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분명히 경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부 탈북자들의 과도한 행동이 남남 갈등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한다면 이는 분명 정치적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가. 이런 시각이 종북주의인가. 필자가 보기에 다수 시민들의 생각은 오히려 필자 쪽에 더 가까울 듯하다. 섣부른 종북 논쟁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유다.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사람들, 또 이를 위해서는 남북 간에 최소한의 인식의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종북주의자로 매도한 뒤에 남는 것은 편협한 정치세력의 말초적 이익일 뿐, 미래를 고민하는 국가 전략적 이익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시사인 24912.6.27

 

경제성장 한계 넘으면 오히려 삶의 질 떨어져

유한한 세계인 지구상에서 무한한 성장이란 성립할 수 없는 것임에도 자본주의 시스템은 끝없는 성장을 추구한다. 이 부조리한 상황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존재는 경제학자들이다.

갈수록 세계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다. 논자들 사이에는 이 상황을 경기침체로 봐야 할지, 아니면 공황으로 봐야 할지에 대한 의견 차이는 있지만, 이것이 극히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異見)이 없는 듯하다. 자본주의란 본래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시스템이라고 하지만, 현재의 글로벌 금융 및 경제위기는 그러한 주기적인 경기순환 논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차원을 내포한 사태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하여 아마도 이 사태는 성장경제 시대혹은 심지어 자본주의 문명의 종말을 알려주는 신호로 해석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2008년 미국 금융계에 들이닥친 파산 위기에서 비롯된 지난 몇 년간의 상황을 되돌아보면, 파국의 일차적 원인은 물론 자본가의 탐욕과 사기와 협잡, 그리고 이들과 연계된 부패한 정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끊임없는 거품을 조장하는 금융 사기술(詐欺術)이 아니고는 더 이상 자본주의가 자기 증식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 언제부터인가 시작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 구조적으로 더 이상의 성장을 용납하지 않는 상황임에도, 무리하게 성장을 계속함으로써 빚어진 필연적인 결과가 지금 세계가 직면한 치명적인 위기 상황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유한한 세계인 지구상에서 무한한 성장이란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는 것임에도 이것을 무시하고 끝없는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기본적 모순과 지속 불가능성은 기실 오래전부터 주목돼왔다. 가장 대표적인 문헌은 1972년에 발간된 로마클럽의 보고서 <성장의 한계>일 것이다. 이 책은 세계경제가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하지 않는다면, 세계인구, 식량 및 산업생산력, 환경오염, 비재생 자원의 활용 가능성 등등 중요한 요인들에 의해 2030년에서 2050년 사이에 성장이 명백한 한계에 봉착할 것임을 예측했다. 그리고 그 예측된 시나리오는 40년이 경과한 지금 다수 연구자들에 의해 갈수록 그 현실성이 재확인되고 있다.

 

생각하면, 지구의 생물물리학적 한계 때문에도 경제성장이 더 계속될 수 없지만, 사회윤리적인 관점에서도 경제성장은 계속될 수 없다. 사람들은 성장에 의해 삶이 나아진다고 흔히 믿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성장에 의한 혜택은 매우 제한적인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칠레의 환경경제학자 만프레드 막스 니프는 경제성장을 통해서 어떤 사회든 어느 기간 동안은 삶이 개선되지만, 일정한 지점을 지나면 성장이 도리어 삶의 질적 퇴화를 초래한다는 것을 여러 자료로써 입증했다. 중요한 것은 경제성장이 도를 넘으면 삶이 정체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삶이 질적으로 후퇴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가령 고도의 성장을 경험해온 서구 사회에서 삶의 질은 1970년대 중반에 최고 수준에 달했다가 이후에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악화 일로였음을 보여주는 연구들에 의해서도 증명되고 있다.

 

경제성장이 도를 넘으면 삶의 질 떨어져

하기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한국 사회만 하더라도 그렇다. 지금 이 사회에서 성장의 혜택을 과연 누가 얼마만큼 누리고 있는지 모르지만, 대다수 서민들은 날이 갈수록 인간다운 존엄성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인권마저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온갖 모욕과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현실이 이런데도 아직도 이 사회는 경제성장이라는 주술에 사로잡힌 채 우리가 지금 탄 배가 타이태닉호라는 명백한 사실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내 생각에 이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존재는 경제학자들이다. 보수파, 진보파를 막론하고 오늘날의 경제학자들에게 의문의 여지가 없는 대전제가 있다면 그것은 계속적인 성장일 것이다. 그들이 성장 없는 경제(혹은 사회)를 상정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재의 지배적인 경제학은 결국 부분적인 합리성에 집착하면서 전체적 합리성은 망각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균형을 잃은 자폐적인 학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에 관해서는 일찍이 케네스 볼딩이라는 선각자의 통렬한 일갈이 있었다. “무한한 경제성장을 믿는 자는 광인이거나 경제학자뿐이다.”

 

그러나 결국 문제는 생활의 주체인 우리 자신이다. 성장 시대의 종식을 오히려 반기면서 성장 없는 사회가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건강하고 풍요로운 사회임을 상념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시사인 24812.6.21

 

성장시대의 종언

온갖 징후로 보아 식민지나 석유 같은 거대한 프론티어에 의지해 구축돼온 자본주의 문명이 이제 마지막 국면에 들어섰음이 확실해 보인다. 그와 함께 농경의 중요성이 증대될 것이다.

월터 프레스코트 웹이라는 역사가가 쓴 <거대한 프론티어>(1951)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일찍이 미국역사학회 회장을 지낸 중진 학자로서 이 책 말고도 주목할 만한 노작을 여러 권 썼다. 그런데도 오늘날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이미 60년 전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위기 상황의 본질을 꿰뚫어본 희귀한 책이다.

 

책의 요지는 간단하다. 지난 450년 동안 서구식 근대문명을 뒷받침해왔던 근본적인 물질적 기반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 물질적 기반은 바로 거대한 프론티어라고 명명할 수 있는데, 20세기 중반의 시점에서 이것이 사실상 소멸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15세기 말, 즉 중세 말기의 서구사회는 여러 의미에서 큰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단일한 기독교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던 서구사회는 토지에 비해 인구는 많고, 일반적인 경제생활의 정체 말고도 화폐 부족 현상으로 교역활동이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 그 결과 빈곤과 폐색감이 만연해 있었다. 봉건적 위계질서로 조직된 사회에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찾는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유니 진보니 하는 개념은 아직 완전히 낯선 것이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 돌연 출구가 열렸다. 결정적인 계기는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한 신대륙 발견이었다. 신대륙을 점유함으로써 서구사회는 오랜 폐색 상황을 벗어나서 매우 역동적인 근대 자본주의 문명사회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신대륙은 일찍이 유럽인이 꿈도 꿀 수 없었던 풍부한 자원, 금은, 농토를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원천이 된 것이다. 오랜 세월 신대륙에서 살아온 토착민의 존재는 유럽인에게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다. 유럽인은 가차 없이 이 장애물을 제거하고, 광활한 남북 아메리카를 마음껏 농단하고 약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대한 프론티어>의 저자는 이 프론티어를 단순히 아메리카 대륙에 한정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특한 시각을 드러낸다. 저자는 이 프론티어를 결국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아프리카, 아시아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서유럽인의 관점에서는 이 거대한 프론티어는 근대 자본주의 문명의 발전과 번영을 도모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재료이자 수단일 뿐이었다. 요컨대 지난 수백 년간 세계의 주인 노릇을 해온 서구문명은 하나의 전체로서 비서구 세계에 대한 경제적·군사적·정치적 지배와 정복을 통해서만 번영을 누리고, 확장되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서구 혹은 서구식 문명사회가 누려온 번영과 자유라는 것은 비서구 세계가 겪어온 빈곤과 억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실을 60년 전에 미국의 역사가가 명쾌하게 지적했다는 것도 흥미롭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의 저자가 이런 식으로 확장돼온 지난 450년간의 근대문명은 인류 역사 전체 맥락에서 심히 비정상적인것이라고 단언했다는 점이다.

 

시대를 뛰어넘는 <거대한 프론티어>의 메시지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비정상적인상황이 이제는 끝났다는 저자의 판단이다. 그는 아마도 제2차 대전 후의 식민지 독립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런 판단을 내렸는지 모른다. 물론 그의 예견보다 서구식 자본주의 문명은 더 오래 지속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책의 저자가 석유의 역할을 고려하지 못한 결과임이 분명하다. 식민지 못지않게 석유라는 마법의 물질이 또 하나의 거대한 프론티어가 될 수 있음을 그가 간과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오늘날 거의 모든 산업활동에 불가결한 요소, 즉 석유가 값싸고 풍부하게 공급되던 시대는 이제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기본적으로 <거대한 프론티어>의 메시지는 시대를 뛰어넘은 탁월한 선견지명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온갖 징후로 보아서 거대한 프론티어에 의지해 구축돼온 자본주의 문명, 성장의 시대는 이제 마지막 국면에 들어섰음이 확실해 보인다. 그러므로 성장을 삶의 암묵적인 대전제로 하여 형성되고 유지돼온 온갖 제도·조직·이념·사상의 유효성도 이제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냉정히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을 외면하는 정치·경제·사회적 기획과 비전은 모두 부질없는 말장난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거대한 프론티어>의 저자는 성장시대의 종언과 함께 당연히 농경의 중요성이 증대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시사인 22412.5.23

 

한국이 꼭 이란 제재에 동참해야 하나?

이란 사태가 한국 경제의 목을 조르고 있다. 정부는 원유 수입량을 줄이는 등 이란 제재에 동참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태세다. 그럴 필요가 있나?

이란 핵 사태로 한국 경제가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무엇보다 유가 상승이 문제이다. 연초 배럴당 105달러(117000) 하던 두바이유 현물 가격이 이란 사태로 지난주에는 122달러를 넘어섰고, 휘발유 판매가격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또한 6월 들어 미국 의회를 통과한 이란 제재법이 효력을 발생하게 되면 한국 정유업체들은 이란산 원유 수입을 상당량 감축해야 한다. 이 법안을 발의했던 메넨데스 미국 상원의원은 전년 대비 18% 수준의 수입 감축을 요청하고 있다. 전체 원유 수입량의 9.6%를 이란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서 이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대이란 수출시장 상실도 크게 우려된다. 인구 8000만명인 이란은 우리에게 연간 70억 달러를 상회하는 수출 시장이다. 대이란 수출액은 매년 증가 추세이다. 이란과 거래하는 기업만 해도 2000개가 넘는데 이 중 대부분이 중소기업이다. 대이란 금수 조처가 본격화되면 이들의 손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게다가 이란 정부가 금수 조처에 동참하는 한국 기업들에 대해 강력한 보복 조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어서 이들은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졌다.

 

이렇게 보면 이란 사태가 한국 경제의 목을 조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시종 미국 주도의 대이란 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원유 수입물량을 16%가 아니라 50%까지 감축하는 한이 있더라도 미국 정부와 공조를 취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동의하기 어렵다. 메넨데스 상원의원이 18% 감축안을 제시했을 때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정색을 하고 반박했다고 한다. 그 정도의 수입물량 감축은 동맹과 우방국 경제에 타격을 주면서 제재 동참을 거부하는 국가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1월 방한한 로버트 아인혼 이란제재 특사도 한국인들의 정서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매우 신중하게 접근했던 것이다. 이런 배경을 간과하고 미국 측 요구를 선뜻 모두 수용하겠다는 우리 정부 태도를 보면서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더욱 본질적 문제는 대이란 제재 동참 이유와 명분에 있다. 현재 이란 핵문제를 두고 미국 정보당국과 이스라엘의 견해차는 매우 크다. 이스라엘이 보기에 이란의 핵무기 보유 야망은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 군사행동을 통해서라도 이란 핵무기 개발 의지를 분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미국 정보당국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지난 216일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이란이 원한다면 1~2년 내 핵무기 제조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그런 의도는 없는 것으로 안다라고 증언한 바 있다. 이렇게 이란의 의도에 대한 상반된 정보 평가가 존재하는데 예방적 제재라는 명분 때문에 우리가 상당한 경제적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이란북한 연계는 위험한 발상

더구나 이번 이란 문제는 우리의 안보와 직결된 사항이 아니지 않은가. 어찌 보면 이란의 하메네이 최고 종교지도자,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 그리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세 지도자 간의 에고(ego)’ 싸움이라 할 수 있는데 왜 우리가 여기에 말려들어야 하는 걸까. 더구나 미국과 유럽연합이 지난 10여 년간 이란과의 핵 협상을 주도해오지 않았는가. 우리는 여기에 전혀 관여한 바 없다. 제아무리 한·미 동맹이 중요하다 해도 우리가 직접 관여하지 않는 현안 때문에 막대한 경제적 비용을 치를 수는 없다고 본다. 게다가 이번 추가 제재는 유엔 안보리 결의 사항이 아니라 미국 의회 결의 사항이다.

 

아인혼 특사는 지난 1월 방한 중 이란과 북한의 상황은 서로 연계된 문제이기 때문에 이란 문제가 진전되면 북한 문제에도 진전을 볼 수 있다라는 주장을 펴면서 한·미 양국의 긴밀한 협력을 강조한 바 있다. 이는 수긍하기 어렵다. 대량살상무기 확산 반대라는 명분 아래 한국과 미국은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제재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이란과 북한을 연계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스러운 발상이다.

 

이제 정부는 국익과 국민 정서를 헤아려야 한다. 동맹이라는 미명 아래 미국의 요구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미국과의 과감한 협상을 통해 우리 국민과 기업의 이익을 보호해주는 것이 정부가 할 일 아닌가./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시사인 23412.3.13

 

불의를 보고 침묵하는 것은 불의에 가담하는 것과 같다

 

박정희노믹스는 특권동맹만 배불린 성장

재벌을 중심으로 하는 특권적 성장 동맹에 대항해 노동자와 농민,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 그리고 시민사회가 함께하는 경제 민주화 동맹을 구축해야 한다.

지난 516일은 박정희 군사 쿠데타 50주년이었고, 1017일은 유신 쿠데타 39주년이다. 이에 맞추어 전국 15개 민주화운동 단체가 모인 민주평화복지포럼은 1019‘5·16 군사반란 50’ 3차 학술대회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갖는다. 또한 필자를 포함한 8인의 학자가 박정희 경제신화를 검증한 책 <박정희의 맨얼굴> 출판기념회도 한다. 10월 유신 때 필자는 중학교 2학년, 어린 나이였지만 아직도 당시에 느꼈던 공포와 분노가 뇌리에 생생하다. 청소년기를 유신 폭압 아래서 보낸 탓에 낭만을 즐기거나 방황할 틈도 없이 일찍부터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정희가 부동의 1위를 차지한다. 이는 박정희의 18년 집권 기간 중에 이룩한 고도성장 덕이다. 다수 의견은 박정희가 독재는 했지만 경제만은 잘했다는 것이다. 박정희 덕에 최빈국이던 우리나라가 먹고살 만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정희의 경제 업적에 대한 평가는 과장된 면이 있다. 우선 박정희 시대의 고도성장은 예외적인 성공이 아니었으며,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공통으로 나타났다. 박정희의 빼어난 지도력보다는 역사 및 환경 요인이 중요했음을 시사한다. 게다가 박정희 시대의 성장은 값비싼 희생의 대가였다. 고도성장 이면에는 노동자·농민·도시빈민의 막대한 희생이 있었다. 무엇보다 박정희식 성장은 정치·경제적으로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지속 불가능한 성장이었다. 정치·경제적 위기가 늘 잠재해 있었다.

 

특권적 성장 동맹만 배 불린 박정희의 나쁜 성장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박정희가 남긴 경제적 유산이다. 박정희의 고도성장 정책은 재벌·토건세력·경제관료 등을 축으로 하는 특권적 성장 동맹을 낳았고, 이들은 박정희 사후에도 건재해 오늘날까지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 동맹은 성장 지상주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한국 사회에 대한 그들의 지배력을 유지하고 확대해왔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웠던 747공약이야말로 성장 지상주의를 집약해 표현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고환율·저금리 정책, 부자 감세와 재벌규제 완화, 4대강 사업과 관치금융의 부활 등은 재벌·토건세력·경제관료 3각 성장 동맹의 이해관계를 정확하게 반영한 것이었다.

 

특권적 성장 동맹은 고용과 복지와 민생을 위해서 성장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그들만의 이익 챙기기에 급급했다. 그래서 성장은 하는데 양극화가 심화되고 민생은 더 곤궁해지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성장은 나쁜 성장이다. 이제 성장의 내용을 따져야 한다. 소수 특권층이 아닌 대다수 국민을 위한 성장을 해야 한다. 자본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고, 모든 이의 행복을 증진하는 성장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 시스템이 변해야 한다. 실질적인 기회 평등이 보장되고, 경제 의사결정에서 평등한 참여가 이루어지고, 최종적으로 분배의 평등도 제고되어야 한다. 이것이 곧 경제 민주화다.

 

1987년 정치 민주화가 이루어졌지만 경제 민주화는 별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민주화 이후에 개혁을 한답시고 시장자유화를 추진한 결과 재벌주도 경제가 되고 말았다. 관치의 반대가 시장 만능은 아니다. 시장을 살리되 민주적 통제를 하는 것, 즉 시장 자유화가 아닌 시장 민주화가 정답이다. 시장 기능을 존중하면서도 실질적 기회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제반 정책과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한 규제를 함께 도입했어야 했다는 말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재벌 개혁과 복지 확충이 바로 그러한 노력이었다. 하지만 성장 동맹의 위세는 강한데 민주·개혁 정부의 정치 기반은 취약했던 탓에 재벌 개혁은 용두사미가 되었고, 복지 확충은 미흡했다. 결과적으로 양극화는 오히려 심화되었다.

 

이제 근대화의 마지막 완성 단계인 경제 민주화를 본격 추진해야 한다. 1961년 박정희의 쿠데타로 성립된 개발독재 체제는 19876월항쟁으로 민주화를 이룰 때까지 4반세기 동안 산업화를 이룩했다. 이후 성립된 ‘87년 체제는 정치 민주화에서 큰 진전을 이루었으나 경제 민주화에는 실패했다. 87년 정치 민주화 체제도 4반세기가 흘렀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거쳐 탄생할 2013년 체제는 경제 민주화 체제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재벌을 중심으로 하는 특권적 성장 동맹에 대항해 노동자와 농민,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 그리고 시민사회가 함께하는 강력한 경제 민주화 동맹을 구축해야 한다. 시장 개혁 세력과 진보 개혁 세력이 경제 민주화의 기치로 하나가 돼야 한다. 이것만이 박정희를 진정으로 극복하는 길이다./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시사인 21411.10.29

 

박근혜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될 이유

박근혜 대통령이 탄생하는 순간 큰 자리는 모두 박정희족으로 채워지고, 국사 교과서는 친일과 독재에 한결 너그러운 방향으로 개악될 것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 내년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뽑힐 확률은 90%가 넘는다.”

 

어느 정치평론가가 하고 다니는 말이다. 그러나 그가 박근혜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 발언은 되도록 삼가는 것이 좋겠다. 그의 예측이 생뚱맞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 시점에서, 대한민국 유권자 다수는 차기 대통령으로 박 의원이 가장 유력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90% 이상이라는 것은 거의 확정적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대중매체에 빈번이 노출되는 논평가의 예측은 자기충족 예언이 될 가능성이 높다. ‘90% 이상운운하는 것 자체가 발언자의 뜻과 상관없이 박 의원을 돕는다. ‘박근혜라는 기표와 차기 대통령이라는 기표가 이미 바짝 다가가 있는 상태에서 얼씨구나!’ 하고 시멘트를 발라주는 격이다. 게다가 그의 자신에 찬 발언은 한국 정치의 탄력성을 너무 낮추본 예측이기도 하다.

 

박정희 2세와 김일성 2의 정상회담을 상상해보라

나는 박근혜 대통령2012년 대선에서 유권자가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이라는 점을 거듭 지적해왔다. 그리고 그 최악은 상징적 차원의 평가라는 점도 강조해왔다. 박 의원 말고 한나라당의 누군가가, 또는 민주당의 누군가가 차기 대통령이 된다 하더라도, 박 의원이 대통령이 됐을 경우보다 실질적 민주주의가 크게 전진하거나 곤두박질치지는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 아래서, 민주화 이후 권력 핵심부의 무능과 파렴치는 바닥을 친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리 애를 써도, 이명박 대통령보다 더 못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최악의 경우에라도 박근혜 정권이명박 정권 2가 될 것이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 대통령보다 잠만 조금 더 잔다면 이명박 정권보다 조금 나은 정권이 될 수도 있으리라. 그러니까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물질성을 크게 바꾸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상징 차원에서는 얘기가 전혀 다르다. 민주화 이후의 정권들은 박정희라는 기호와 일정한 긴장이나 무관심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 결과, 한국 제도권 안에는 꽤 튼튼한 박정희 비판 세력이 생겨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내년 대선에서 박 의원 말고 다른 사람이 대통령으로 뽑힌다면, 박정희에 대한 제도권의 평가는 지금 같은 균형 속의 길항을 이어나갈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탄생하는 순간, 이 균형은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일단 제도권의 큰 자리들은 박정희족()으로만 채워질 것이다. 이 정권 들어 권력과 민간 우익의 합작으로 개칠되고 있는 국사 교과서는 친일과 독재에 한결 더 너그러운 방향으로 개악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져온 종속 파시즘이 20세기 한국사에서 정통성을 부여받을 것이다. 승패가 불 보듯 뻔한 박근혜 체제아래에서 벌어지는 역사 전쟁은 대한민국을 얼마나 초라하게 만들 것인가. 한 국가의 자산에는 경제력이나 군사력 같은 물질 자산만이 아니라 긍지라는 것이 포함된다. 그리고 이 긍지라는 상징 자산의 가치는 때로 물질 자산의 가치보다 크다. 그 상징 자산은 이 정권 들어 자주 들려오는 국격이라는 말과도 통한다. 한 나라 역사의 정통성이 식민주의 부역 세력·파쇼 세력에게 주어질 때, 그 나라 구성원이 긍지를 느끼기는 어렵다.

 

박 의원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될 이유는 이 밖에도 많다. 그는 태어나서 한 번도 월급을 받아보지 못했으리라. 다시 말해, 진정한 뜻에서 노동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한국의 보통 사람들을 대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노동 없는 삶을 살아온 그가 지닌 재산은 도대체 어디서 난 것일까? 그 재산을 그가 지니는 것이 정당할까? 게다가 그가 북한 김정일과 남북 정상회담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박근혜 대통령은 틀림없이 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이다. ‘박근혜-김정일 정상회담’! 몸에 소름이 돋지 않는가.

 

물론 박근혜 대통령은 김정일 장군님과 달리 아버지에게서 직접 권력을 물려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박정희의 딸이 아니었더라면, 그 언저리에 근접도 할 수 없었으리라는 점 역시 또렷하다. ‘박정희 2세와 김일성 2세의 정상회담’! 그 장면은 한국 현대사의 온갖 모순을 응축한, 슬프고 잔인한 개그 콘서트./ 고종석 (저널리스트) 시사인 20611.9.2

 

천안함 폭침 확신은 형이상학의 영역

칼 포퍼는 자연·사회 과학에 절대 진실이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시각에 따르면 박선영 의원이 천안함 폭침에 가진 확신은 형이상학의 영역에 속해 보인다.

왜 지도자들은 거짓말을 하는가.’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인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 대학 교수가 올해 초 출간한 책의 제목이다. 이 책에서 그는 미국 국민이 확신했거나 절대적 진실이라고 믿었던 몇몇 외교 사건이 실제로는 지도자에 의해 날조됐거나 허위로 판명됐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열거하며 예리하게 비판했다.

 

대표 사례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다. 200296일 당시 체니 부통령은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와 우리의 우방·동맹을 대상으로 이를 증강시키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우리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라고 공언할 만큼 확신을 보였다. 가장 극적인 것은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의 퍼포먼스였다. 파월 장관은 유엔 안보리에서 하얀색 분말이 든 유리병을 내보이며 사담 후세인은 생물학 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추가 생산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라고 역설했다.

 

이라크가 알카에다와 연계돼 있다는 확신도 한몫했다. 2002927일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후세인이 오사마 빈라덴의 긴밀한 동맹 세력이라는 확고한(bulletproof) 증거를 가지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이 모든 확신은 결국 허위로 판명되고 말았다. 미국 정부는 이라크 점령 이후 연인원 8000여 명의 조사관을 동원하고 2000만 달러 상당 현상금을 내걸었지만 대량살상무기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라크가 국제 테러리스트의 거점이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확신의 언술은 이렇듯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이라크 전쟁이 전부일까. 미어샤이머 교수가 드는 또 다른 사례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통킹만 사건이다. 미국 정부는 196482일 북베트남 경비정 세 척이 통킹만에서 경비 업무를 수행하던 미국 구축함 매독스 호에 선제공격을 가해와 이에 즉각 대응, 한 척을 격침시키고 두 척에는 타격을 가했다고 발표했다. 닷새 뒤 미국 의회는 만장일치로 통킹만 결의안을 채택했는데, 존슨 행정부는 이를 베트남전 확전의 계기로 삼았다.

 

소련 정부가 이러한 움직임에 항의하자 미국 정부는 북베트남의 공격에 확실하고도 논쟁의 여지가 없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응수했다.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도 미 상원에서 북베트남은 통상적인 경비 활동을 하던 매독스 함에 계획적으로 일방 공격을 감행했고, 이에 대한 절대적 증거를 가지고 있다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1995년 맥나마라 장관 스스로 이는 미국의 자작극이었음을 시인한 바 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1941년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독일 잠수함이 북대서양의 미국 방어 해역에서 사전 경고 없이 미국 구축함에 일방적으로 공격을 가했다고 발표하고, 나치 독일에 대한 미국 국민의 경각심을 촉구한 바 있다. 이 역시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처럼 성숙한 선진 민주국가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은 참으로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런 일은 실제로 벌어졌다. 이것이 바로 확신의 한계다.

 

미국처럼 민주주의가 성숙한 국가도 이럴진대

얘기를 길게 인용한 것은, 얼마 전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느낀 점 때문이다. 천안함 폭침에 대해 사실상 확신을 강요하는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과 정부 발표를 신뢰하긴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라는 조용환 후보 간의 공방은 미어샤이머의 비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미어샤이머는 이른바 공세적 현실주의자라 불리는 보수파 학자다. 그런 그도 외교안보 사안에서 확신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마르크시즘과 독재에 대한 비판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철학자 칼 포퍼의 경고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저서 <억측과 반박>에서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에서는 절대 진실이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절대 진실을 확신하는 자는 과학자가 아니라 형이상학(종교)의 추종자에 불과하다는 논지다. 과학적 진실은 검증(verification)이 아니라 오로지 반증(falsification)이 가능할 때만 진실로서 의미가 있다는 역설이다.

 

포퍼의 시각에 따르면, 박선영 의원의 확신은 분명히 형이상학의 영역에 속해 보이는 반면, 조용환 후보는 비판적 반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겠다. 우리 현실에서 어느 시각이 바람직할지는 각자가 판단할 일이지만, 미국이나 영국의 보수가 한국적 분류상 보수보다 진보에 더 가까워 보이는 현실은 분명 아이러니가 아닌가./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시사인 2011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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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56일치 <한겨레> 1면에 실린 서울지역 한 고등학교의 성적 카스트기사를 읽으면서 떠오른 게 분노하라!”.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출신 스테판 에셀이 최근에 펴내 인구에 회자된 책 제목이다. 이 작은 책자에서 그는 분노의 능력을 인간을 형성하는 기본 요소의 하나로 꼽았는데, 우리가 분노를 잃으면 그 당연한 귀결로 앙가주망(참여)도 함께 잃는다고 경고한다. 젊은 시절에 분노 때문에 저항운동에 참여했다는 그가 93살에 이른 오늘 분노하라!”고 선동적인 책을 펴낸 것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에 더욱 벌어지는 간극, 날로 추락하는 인권과 지구 전체의 상황 때문이다. 아직 인간이어서일까, 전교생을 알짜(1~50), 예비(51~100), 잉여(101등 이하)”로 구분한다는 기사 앞에서 나는 분노에 떨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이하 르디플로) 한국판 5월호는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특집을 꾸렸는데, 그 정도가 아니라 프리모 레비의 이게 인간인가라는 물음을 던져야 할 지경에 이른 듯하다. 르디플로 특집에 실린 등록금은 미치지 않았다. 뻔뻔할 뿐이라는 글처럼, 우리가 흔히 미쳤다고 말하는 교육도 뻔뻔하다고 말해야 옳을지 모른다. 분노할 줄 모르는 토양에서 피어오르는 게 뻔뻔함이다. 교육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반인간적 횡포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 더욱 거세진 경쟁과 효율의 구호는 이미 교육의 목표는 인간을 형성하는 데 있다거나 학교는 더불어 사는 법을 연습하는 곳이라는 수사조차 지워버렸다. ‘선택과 집중은 본디 인간인 학생이 적성과 능력에 따라 학과목을 선택하여 집중한다는 뜻인데, 이젠 학교가 학생을 선택하여 알짜만 집중하여 특별반을 편성하고 각종 특혜, 심지어는 교사 선택권까지 주고, 나머지는 예비하거나 잉여로 내버린다는 뜻이 되었다. 그렇지 않다면 자율학습실과 기숙사를 성적에 따라 자격을 주고, 좌석 배치는 물론 사물함, 책상 크기, 컴퓨터 설치 등 각종 학습 환경에서까지 차별하고, 성적 우수자에게만 토론대회 참가 자격을 부여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다른 곳이 아닌 학교에서!

 

이런 학교에서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고 익힐까? 지독한 지적 인종주의를 학습하여 차별과 억압을 내면화하고 지적 인종주의에 의해 선택되지 않으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가령 뻔뻔한대학등록금 문제에 당사자인 대학생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이른바 상위권 대학에 진입한 학생들에게는 대물림 구조에 의해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점과 함께 지적 인종주의에 의해 선택되었다는 의식이 작용하는 한편, 상대적으로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중하위권 대학의 학생들은 지적 인종주의에 의해 버림받아 주체화에 이르기 어렵다는 게 작용한다. 선택된 자든 버림받은 자든 인간성 훼손의 피해자이긴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진보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듯이 인간성의 훼손도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조금씩 추락할 때 분노할 줄 몰라 익숙해지면 다시 또 추락하고 또 익숙해지면서 기어이 파국에 이르는 것이다. 프리모 레비에게 이게 인간인가라고 묻게 한 나치즘도 그런 경로를 밟았다. 특목고 우대와 자사고 확대, 고교선택제, 수능성적 공개, 학교 줄 세우기와 국민세금 차등 사용 등 경쟁만능주의 교육정책들이 하나하나 수용되고 익숙해지면서 마침내 학생들을 알짜, 예비, 잉여로 나누는 괴물학교를 만들기에 이른 것이다.

 

스테판 에셀은 <분노하라!>창조하는 것, 그것은 곧 저항이며, 저항하는 것, 그것이 곧 창조다라는 말로 끝맺는다. 나는 먼저 서울시민들에게 모레(511) 마감되는 학생인권조례 발기인 서명에 동참해달라고 마지막으로 호소한다. 우리 학교가 조금이라도 덜 흉물스럽게 하기 위해. /홍세화 장발장은행장, ‘소박한 자유인발기인 한겨레 11.5.8

 

<동아>의 추억, <경향>의 추억

과거 신뢰할 만했던 는 의 아류로 전락했다. 정권의 나팔수 구실을 했던 은 한국 저널리즘을 대표하는 신문 중 하나가 되었다.

종이 신문을 읽는 이들이 점점 줄고 있다. 뉴 미디어의 현란한 기세가 세상을 뒤덮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도 종이 신문을 서넛 정기 구독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경향신문> 하나만 받아 본다. 사실 <경향신문> 지면도 그 전날 인터넷 신문들에서 읽은 소식들로 대부분 채워져 있어서 반드시 구독해야 할 필요는 못 느낀다. 그러나 버젓한 신문 하나는 오프라인으로 읽어야 한다는 시민적 의무감에다, 종이 감촉이 주는 상쾌함을 못 잊는 구세대의 관성이 겹쳐 이 신문을 구독하고 있다.

 

나는 꽤 오랫동안 <조선일보><동아일보>를 종이 신문으로만이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보지 않았다. <조선일보>야 그 악명이 워낙 유구해 1990년대부터 인연을 끊고 살았지만, 지난 세기말까지 <동아일보>는 구독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9대구·부산에는 추석이 없다는 너절한 기사가 1면 머리에 올라가는 것을 보고 즉시 이 신문을 끊었다. 올해 들어서야, 가끔 <조선일보><동아일보>의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본다. <한겨레><한국일보>의 오피니언 면을 훑다가, 내친김에 <조선일보><동아일보>의 오피니언 면에도 눈길을 주는 것이다. 놀랐다. 한때 안티조선 운동이라는 것을 우호적으로 관찰한 바도 있어서, 나는 <조선일보>를 한국 최악의 신문으로 여겼다. 그러나 오피니언 면만을 놓고 볼 때, 이젠 <조선일보><동아일보>에 그 자리를 물려줘야 할 듯싶다. 이건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조선일보><동아일보>에 어떤 종류의 리버럴리즘이나 진보적 논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니까.

 

사내외 막론하고 <동아>엔 격조 있는 필자 없어  

그러나 보수든 중도든 진보든, 직업적 저널리스트의 글이라면 최소한의 격조라는 게 필요하다. 물론 김대중 칼럼이나 강천석 칼럼은 예상대로 노인정 잡담 수준이지만, <조선일보>에는 적어도 송희영이라는 고급 논객이 있다. 마치 스트레이트 기사를 쓰듯 스타카토의 단문으로 이어지는 송희영 논설주간의 경제 칼럼은 넓은 안목과 깊은 통찰력으로 독자를 계발한다. 그러나 <동아일보>에서는 사내외(社內外)를 따질 것 없이 그런 필자를 찾을 수 없다.

 

이 신문의 오피니언 면을 읽다보면, 누구라도 신문사 논설위원이나 직업적 칼럼니스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차마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한 논설위원의 글은 칼럼이라기보다 숫제 주정이다. 그 옛날의 <동아일보>는 어디로 갔는가? 한 주가 빨리 가기를 기다리게 했던 최일남 칼럼’ ‘김중배 칼럼은 어디로 갔는가? 삼성 재벌의 잘못을 준엄히 꾸짖던 홍승면의 <동아일보>는 어디에 있는가? 이 신문의 횡설수설난만이 아니라, 사설을 포함한 오피니언 면 전체가 횡설수설이다. <조선일보>, 분발해야겠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 <동아일보>특별한신문이었다. 물론 그 시절 정부에 눈 부릅뜨고 맞설 신문은 하나도 없었다. <동아일보> 역시 1974년 정부의 광고 탄압에 굴복해 이듬해 일백수십 명의 기자들을 쫓아냈고, 1980년에도 전두환 신군부의 압력으로 많은 기자를 내보냈다. 그러나 그런 수모를 겪으면서도 <동아일보>특별했다. 이 신문은 1단 기사나 행간을 통해서라도 시대의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에서 다른 신문들에 앞섰다. 말하자면 그 시절 <동아일보>신뢰할 수 있는신문이었다. 한국의 <아사히신문>이 될 수도 있었던 신문이었다. 그러나 이 신문은 <산케이신문>의 아류로, <조선일보>머저리 아우로 전락했다.

 

반면에 제5공화국 시절 <경향신문>은 친정부 신문을 넘어 그냥 정부 신문이었다. 그것도 시르죽은 정부 신문이었다. 그 시절의 <경향신문> 지면은 지금의 <동아일보> 지면 못지않게 추레했다. 그러나 지금 <경향신문>은 한국 저널리즘의 양식을 대표하는 신문이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것은 경향신문사가 지난 1998년 사원 주주 회사로 새롭게 출발한 것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기업의 지배구조와 자본의 운동력이 저널리즘의 질과 성격을 완전히 뒤바꿀 수도 있다는 증거다. 일정한 물적 토대는 독립 언론의 필요조건이지만, 비대화한 자본은 자기 증식을 위해 저널리즘을 꼭두각시로 부린다. <경향신문> 기자들의 살림살이는 분명히 거대 보수 신문 기자들의 살림살이에 견주어 애옥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은 한국 신문 저널리즘의 자존심이다. 힘내라, 경향!/ 고종석 (저널리스트) 시사인 18911.5.4

 

가진 자의 품격

19세기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는 많은 사람들이 나눔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모두 베푸는 자리에 서서 나눔을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나눔의 대상, 즉 베풂을 받는 처지에 서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베푸는 자가 사회적 발언권을 독점하기 때문이기도 한데(베풂을 받는 자는 유구무언이다), 위고가 나눔에 관해 발본적으로 사유한 것은 시혜, 온정의 대상은 이미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된 상태로 보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적 나눔이 요구되고 칭찬받는 사회보다는 그런 나눔 자체가 요구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진과 해일의 천재지변을 겪은 일본 민중에게 나눔을 실천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나눔을 베푸는 자가 베풂을 받는 자의 훼손된 인간의 존엄성, 비루함과 굴종에 대해서도 헤아릴 줄 알고 공동 책임을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사적 나눔보다는 공적 분배에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복지를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철학은 인간의 존엄성이어야 한다. 시혜적(선별적) 복지가 사적 나눔과 마찬가지로 대개 이미 훼손된 존엄성의 생존에 다가가는 것이라면, 보편적 복지는 사회구성원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그 이전에 다가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증세를 통한 공적 분배 없이 복지를 하겠다는 것은 사적 나눔, 곧 시혜적 복지에 머물겠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똑같은 말인 나눔분배가 전혀 달리 받아들여진다. 사적 나눔엔 모두 관대하지만 공적 분배에는 쌍심지를 돋우며 반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특히 가진 자들이 사적 나눔을 강조할 때 우리는 그 안에 공적 분배의 요구를 미리 막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음을 놓쳐선 안 될 것이다.

 

가령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제기한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이건희 삼성 총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아니면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를 도대체 모르겠다고 응수했다. 그가 평소 품고 있는, 성장의 반대인 분배에 대한 적대적 의지가 중소기업의 기술을 가로채고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재벌기업의 강자독점구조까지 자본주의 경제질서인 양 강변하는 데 이른 것이다. 이른바 상생 협력이 다만 말잔치에 불과한 그에게서 가진 자의 고품격이 요구되는 공적 분배에 대한 인식을 기대한다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것과 같다.

 

최근에 독일의 거부 페터 크레머는 미국의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의 기부문화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사회에서 얻은 이익을 공적 기구를 통하지 않고 사적 재산으로 선심 쓰듯 기부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는 기부액의 대부분이 세금 공제되기 때문에 부자들은 기부를 할 것인지, 세금을 낼 것인지를 놓고 선택을 하게 된다고 말함으로써, 사적 나눔과 공적 분배를 명확히 구분했다. 그처럼 공적 분배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품격은커녕, 미국의 부시 정권이 상속세 폐지 법안을 내놓았을 때 앞장서서 반대했던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 같은 부자의 품격조차 찾기 어려운 게 우리 사회 가진 자들의 실상이다.

 

이처럼 가진 자들의 모습 또한 각기 그들이 속한 사회의 반영물이다. 오늘과 같은 자본독재의 시대에 그들에게 그들 제품에 붙이곤 하는 고품격을 갖기를 바라는 것은 그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요구하는 것과 같아서 그들에게 달려 있지 않고 우리의 비판적 역량과 실천에 달려 있다. 그것은 백혈병에 걸려 꽃다운 나이에 진 삼성전자의 노동자들, 스물다섯살 아들의 죽음에 비통해하면서 오늘도 삼성본사 앞에서 두달 넘게 1인시위를 벌이는 어머니와 연대하는 한사람 한사람의 몸짓과 목소리에 달려 있다. /홍세화<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 한겨레 11.3.20

 

거위에게 배운다

시골살이를 시작한 지 벌써 9년째, 뱀 때문에 거위를 키우기 시작했으니 녀석들과 같이 보내고 있는 세월도 딱 그만큼이다. 제일 처음 만났던 거위에게는 맞다무답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한 놈은 사람의 의견에 맞다, 맞다”, 하면서 대답을 잘했고, 한 놈은 과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년 안 가 둘 다 죽었다. 맞다는 개울가에 하얀 털만 수북이 남기고 유체이탈이라도 한 듯 몸통이 사라졌고, 그의 짝인 무답이는 사람이 간섭할 수 없는 시간에 일어난 횡액에 놀라 절명한 것 같았다. 아마도 수리부엉이 짓이 아닌가, 추측했다. 슬펐지만, 야생의 일들이라 맞다의 털과 무답이의 주검을 산에다 정성스레 묻어주었다.

 

그리고 이내 새로이 구해 키운 거위에게는 아예 수리부엉이가 채가지 못하도록 철근이라는 금속성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철근이의 짝은 원소기호 Cu구리라 작명했다. 역시 부엉이 발톱을 의식하고 지어준 이름이었다. 그리고 한두 해 지났는데, 이번에는 구리가 뭔가 잘못 먹었는지 원인 모르게 밥통 앞에서 쓰러져 죽었다. 40년은 좋이 산다고 하기에 녀석들이 나보다 이 지상에 더 오래 머물 줄 알았는데, 거위에게도 생사는 수명과 관계없는 사고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구리가 죽기 전에 낳은 알 다섯 개를 마침 모성본능이 강한 암탉이 열심히 품어 세상에 새끼를 내놓았으니, 급체로 죽은 구리가 가족에게 둘러싸여 죽었을 테니 아주 고독하게 죽은 것은 아니었다.

 

암탉이 품어 세상에 내놓은 거위는 본래 다섯 마리였으나 한 마리는 이웃집 개한테 물려 또 죽었다. 그래서 지금 나와 같이 놀고 있는 거위는 다섯 마리, 즉 철근이와 그의 새끼들 네 마리다. 앞으로 또 어떤 돌발적인 생사화복의 함정이 잠복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 다섯 마리만은 최소한 백과사전에 적혀 있는 제 수명껏 수를 다하기를 바랄 뿐이다.

 

사람들이 내게 왜 거위를 키우는가, 하고 물으면 처음에는 뱀 때문이라고 답했지만, 요즘에는 선뜻 대답을 못한다. 대답을 머뭇거리는 이유는 녀석들이 내게는 이미 가족이기 때문이다. 가족의 한 성원에게 누군가 왜 그와 같이 사느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거위와 같이 살고 있는데도 뱀은 계속 출몰하므로, 이제 거위는 그 효용성과 관계없는 나의 가족이 되어 있다.

 

내가 거위에게 주는 것은 겨우 개울에서 마당에 끌어들인 물과 방앗간에서 구해온 싸래기(쌀가루)뿐이다. 그리고 하염없이 거위를 바라보는 일 정도다. 그러나 거위들을 한없이 바라보는 일은 겉보기와 달리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은 아니다. 놈들이 놀고 있는 것을 바라봐야 녀석들이 나를 의식할 것이고, 서로 의식한다는 것은 놈들과 내가 그런 방식으로 교통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라보는 법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겨울에는 가을에 사라진 풀이 눈과 얼음에 덮여 있기에 사람이 먹는 배추나 무청이나 과일껍질을 부지런히 구해 줘야 한다. 한때는 포대자루를 들고 농수산물도매상의 쓰레기장을 뒤져 푸른 잎사귀들을 구해 주었지만, 근래에는 한 칼국수집에서 김치를 담그고 남은 배추쓰레기들이 쌓이면 연락을 주길래, 쉽게 해결하고 있다.

 

내가 거위에게 주는 사랑은 겨우 그 정도다. 그러나 거위가 내게 주는 것은 더 다채롭고, 대체로 질이 좋은 것들이다. 부지런하지도 게으르지도 않고, 휘트먼의 시에 나오듯 통한의 참회도 할 줄 모르고, 욕망도 좌절도,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나 불의에 대한 분노도 없는 듯이 보이는 거위들이 내게 주는 교훈은 크고도 깊다. 측은지심이니 사양지심이니 하는 사단(四端)의 문명을 만든 적이 없기에 고통과 희생이 따르는 선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우정과 환대를 애써 역설하지도 않는다. 천작(天爵)도 비참도 없다. 경탄과 비탄도 없다. 물론 축적도 낭비도 없다. 스스로 당당하고 의연하게 지금 누리고 있는 생명을 즐길 뿐이다.

 

최소한 거위는 생태계에서 아무런 권한과 책임도 지지 않기 때문에 잘난 사람들이 잘났기 때문에 저지르는 온갖 해악과는 무관하고, 무해하다. 그런 것들이 하는 일 없이 스스로 빛나는 거위에게 내가 배우고, 같이 사는 이유들이다

최성각 | 작가·풀꽃평화연구소장 경향 13.3.13

 

경제부흥과 국민행복

조국 근대화의 영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씨가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부친이 군사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지 52년 만이고, 아끼던 부하의 손에 살해된 지 34년 만이다. 여기에 굳이 기간을 밝히는 것은, 전자는 산업화의 역사, 후자는 민주화의 역사와 얼추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취임사에서도 언급했듯이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은 변함없는 경제발전에 대한 믿음과 기대로 박정희의 딸을 대통령에 앉혔다. 사실 우리 역사에서 민주화는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인해 축적된 사회불안 요소들을 완화하는 정도로 진행되었을 뿐이지 그 자체로 통치의 목적이 된 적은 없다. 시대를 막론하고 통치자에게 국민을 먹여살리는일이야말로 최우선 과제였다. 전쟁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꿈결같이 사는 동막골의 촌장도 마을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과 안정감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잘 멕여야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과연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경제부흥국민행복이라는 두 단어로 이를 간명하게 표현했다. ‘문화도 얘기하고 있지만 전체 맥락으로 보아 경제발전을 위한 성장동력 정도로 인식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얼마 전 미국에서 20여년 만에 고국을 방문한 교포 한 분을 만나 소감을 물었더니, 물자가 너무도 풍부하고 잘사는 데 놀랐고, 그와 함께 낭비가 심한 데 또 한 번 놀랐다며 손사래를 쳤다. 세계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의 소감이니 한국이 물질적으로 잘사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새 대통령은 경제를 부흥해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선포했는데 과연 그럴까? 이미 충분히 잘살고 있는데 무엇을 가지고 더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건지 잘 이해가 안 간다. 우리 앞에 있는 선진국들의 비극은 너무도 잘살고 있는 데 문제가 있다. 경제학에 이스털린의 역설이라는 명제가 있다. 이스털린이라는 경제학자가 국민소득과 행복지수의 관계를 조사한 끝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존에 필요한 물질적 조건이 어느 정도 갖추어지면 더 이상 경제발전을 해도 별로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지금 어느 정도 잘사는 수준이 아니라 물자가 넘쳐나서 아무리 주의를 해도 낭비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살고 있다. 이때의 성장동력은 잘살아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보다 잘사는 상대방을 따라잡겠다는 오기와 탐욕밖에 없다.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 말미에 우리가 행복해짐으로써 한반도가 행복해지고, 나아가 세계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쳤다. 내가 행복하면 남들도 다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기득권자들이 갖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맹점이다. 서양 백인들이 자기네처럼 경제건설을 하면 다 행복해질 것이라며 전 세계를 식민지로 만들어 500년을 경영한 결과 지금 지구는 온갖 사회악과 폭력, 자연재해, 항시적인 전쟁의 위협 아래 신음하고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런 식의 경제개발은 내가 행복하면 남은 불행해지는방식이다. 내가 웰빙 목조주택에서 쾌적하게 잘 살면 동남아시아의 열대우림이 없어지고, 열대우림이 없어지면 그 지역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없어지는 동시에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된다. 내가 고품질의 신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수시로 갈아치우며 사용하면 기분은 좋겠지만, 그것을 생산하는 제3세계의 노동자들은 거의 노예와 다름없는 노동조건에서 일해야 한다.

 

먹고 먹히는 자본주의 정글에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없다. 만약 있다면 다른 나라 또는 다른 사회계층을 불행에 빠뜨려야 가능하다. 복지라는 것은 이렇게 불행에 빠진 사람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지 그 자체가 인간의 행복을 위해 고안된 게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추구하는 경제부흥-국민행복-복지의 연계 고리는 그러므로 특정계층을 위한 국정철학일 수밖에 없다. 황대권 | ‘야생초 편지저자 경향 13.2.27

 

경제민주화를 위해 언론이 다뤄야할 것

문제는 경제 살리기

경제민주화. 우리 시대의 숙제다. 2012년 대선 정국에서 후보들 두루 동의한다. 톺아보면 경제민주화가 대선에서 처음 불거진 시점은 지금이 아니다. 옹근 5년 전인 20071029일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의 불법 비자금을 정면 제기했다. 사제단은 삼성이 임직원 명의로 차명계좌를 개설해 정치, 사법, 행정부는 물론 언론계를 대상으로 검은 돈을 뿌려왔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어떤가. 5년이 흐른 지금 정의구현사제단의 결곡한 호소가 어떻게 귀결되었는가를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위기에 몰렸던 삼성은 되레 탈법적 경영권 승계를 법적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

 

사제단의 증언이 곰비임비 이어졌지만 2007년 대선판을 압도한 것은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경제 살리기였다. 그 한복판에 이명박 후보가 있었다. 경제 살리기를 내건 그의 선거전략 앞에 모든 의제는 무너져 내렸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에 걸쳐 부익부빈익빈이 해소되긴 커녕 비정규직이 되레 늘어나고 자살률이 가파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그 빈틈을 정확하게 노렸다. 이명박이 내세운 ‘747’공약은 당시 박근혜의 줄푸세가 그렇듯이 대기업 중심이기 때문에 결코 서민경제를 살릴 수 없다는 진실을 아무리 쓰고 말해도 도도한 흐름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정의구현사제단의 경제 민주화 요구가 흐지부지 되었듯이 이명박의 경제 살리기 또한 빛바랬다. 그의 국민 성공시대공약은 국민적 사기극임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바로 그래서다. 이명박과 같은 정당의 박근혜조차 줄푸세 소신경제민주화라는 세련된 화장으로 감추고 나섰다.

 

대선 후보들이 너도 나도 경제민주화를 부르대지만 어떤가. 국민 대다수는 시큰둥하다. 언론도 18대 대선에선 집중된 의제가 없다고 사뭇 개탄한다. 의제 설정이 본령인 언론이 스스로 의제를 설정하지 못한 채 다른 곳에 책임을 돌리는 모습까지 굳이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왜 유권자들이 시들한가는 따져볼 일이다. 나는 작금의 경제민주화가 내용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박근혜조차 그것을 공약하면서, 더구나 법인세 인하는 반대하며 그 말을 부르대면서 경제 민주화는 시나브로 의미를 잃어왔다. 경제 민주화가 시대적 숙제임을 부정하자는 뜻이 결코 아니다. 경제 민주화가 속빈 강정으로 전락했다는 뜻이다.

 

물론, 후보들의 경제민주화 정책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와 한국방송·문화방송·서울방송이 주도하는 여론시장에서 유권자들이 경제 민주화의 기호로 후보들의 차별성을 정확히 파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상대 후보의 주장을 살천스레 공산주의로 몰아치는 박근혜 쪽 주장이 큼직하게 보도되는 살풍경을 보라.

 

그래서다. 나는 지금 이 순간도 전국을 돌고 있는 2012생명평화대행진의 선언에 공감한다. 수많은 공약들이 떠들썩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빼앗기며 고통 받고 있는 현장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진단,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성 정치권의 추상적인 구호와 모호한 공약보다 구체적인 실천이라는 제언은 생생한 울림을 준다. 생명평화대행진은 지난 5년 동안 현장에서 내내 민중과 더불어 지며리 싸워온 인권운동가 박래군이 앞장서고 있어 더 미덥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강정마을 주민들, 용산 철거민들의 앞 글자를 따 하늘’(SKY)로 명명하고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자며 뚜벅뚜벅 걷고 있는 대행진은 제주에서 출발해 호남과 영남의 지옥같은 투쟁 현장들을 거쳐 경기도 평택까지 올라와 있다.

 

여기서 대통령이 되겠다며 경제민주화를 내건 후보들은 물론, 의제 설정력을 독과점한 신문과 방송에 정중히 제안한다. 생명평화대행진을 모르쇠 하더라도 좋다. 다만 지금 시대정신으로까지 회자되는 경제 민주화의 고갱이가 다름아닌 경제 살리기임을, 지난 15년 내내 호황을 거듭해 온 대기업들과 부익부로 재산을 불려온 10%가 아닌 국민 대다수의 경제 살리기임을 유권자들이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장기 침체기로 들어선 세계 경제에서 국민 경제를 살리려면 지금 어떤 정책이 절박한가를 남은 선거기간만이라도 활발하게 공론화해야 옳다.

 

국정 과제를 또렷하게 정의하고 그 해법들을 공론장에 내놓아 유권자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일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과 언론에게 주어진 의무다. 정당이 못한다면 언론이라도, 3대신문과 3대방송이 못한다면 경향신문과 한겨레만이라도, 어떤 후보의 경제민주화 정책이 경제 살리기에 적실한가를, 지금 죽어가는 해고노동자·비정규직·농민·도시빈민· 2030세대의 경제를 살릴 수 있는가를, 날카롭게 의제설정하고 국민적 소통에 나서길 간곡히 촉구한다. 그것은 보수와 진보를 넘어선 언론 고유의 문제다./손석춘 언론인 미디어오늘 12.10.29

 

박근혜와 언론의 역사 조롱

역사는 결코 우리를 배반하지 않습니다.”

 

원로 역사학자 강만길 선생의 믿음입니다. 그 낙관의 힘 때문일까요? 최근 뵌 선생은 여든의 춘추에도 술잔을 마다하지 않을 만큼 건강하시더군요. 물론, 선생은 역사가 직선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나선형으로 발전할 때도 오른쪽으로든 왼쪽으로든 한 바퀴 돌고 나면 더 높게 올라가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합니다.

 

그런데 김형. 공연한 조바심일까요. 저는 우리가 나선형의 오른쪽을 다 돌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박근혜 후보와 그를 두남두는 윤똑똑이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박근혜는 기자회견을 열고 “516과 유신, 인혁당 등은 헌법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사과를 표명했습니다. 언론들은 박 후보가 기존 생각을 크게 수정했다고 풀이했습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역사관 수정

하지만 어떤가요. 역사를 보는 눈이 보름 사이에 크게 수정될 수 있는 걸까요? 박근혜는 사과 2주일 전에 박정희가 인혁당재건위 관련 8명을 전격 처형한 야만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라며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언죽번죽 말해 거센 비판을 받았지요. 박근혜는 정계에 복귀한 뒤 지난 15년 내내 “5·16은 구국혁명을 박정희를 적극 비호해왔습니다. 기실 박근혜가 정계에 복귀하며 밝힌 이유도 박정희 유업입니다.

 

다 알다시피 역사관을 수정한 2주일 사이에 박근혜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새누리당 내부에서 대선을 이기려면 역사관 수정이 필요하다는 말이 솔솔 흘러 나왔습니다. 박근혜의 사과는 바로 그 요청에 응답입니다.

 

김형, 그런데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박근혜의 사과를 높이 평가하더군요. 나름대로 아량을 과시하고 참모들의 조언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과연 그렇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역사관 수정을 바라보아도 좋은 걸까요? 저는 두 사람의 그 평가를 보며 김대중 후보가 당선된 직후 전두환-노태우 석방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강력히 요청한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오히려 상황을 정확히 읽은 사람은 대선 출마를 밝힌 검사출신 이건개이더군요. 이건개는 박근혜의 사과에 대해 표를 얻기 위해 마지못해 한 것이라면서 “516에 대해 공을 더 부각시키면서 과를 발표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건개로서는 뒤쪽 이야기를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저는 앞의 말에 눈길이 더 쏠립니다.

 

문제는 한국의 신문과 방송입니다. 박근혜가 표를 얻기 위해서일망정 사과를 표명한 상처피해들에 대해, 당시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던가요? 박정희 정권 내내 찬가를 읊어대던 신문들, 올곧게 비판했던 기자들의 목을 치고 끝내 복직을 거부하는 신문들이 박근혜의 사과에 보이는 반응들은 차라리 연구 대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박근혜가 5·16쿠데타를 국민과 역사에 맡기겠다고 했을 때, 그 발언이 역사 앞에 겸손하고 정직한 표현이라고 적극 찬양했던 국립대학의 어느 교수는, 또 그 교수의 발언을 언제나 무게 있게 실어주는 신문들은 박근혜의 사과 앞에서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아니, 저들에게 논리적 일관성을 기대하는 게 애초부터 잘못이었을까요.

 

대통령 후보가 2주일 사이에 역사관을 바꾸는 기상천외한 풍경은 세계 정치사에 남을 희극입니다. 그 해괴한 광경을 긍정적으로 보도한 언론은 세계 언론사에 남을 우스개이지요.

 

다행히 박근혜의 사과에 진정성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그 검증은 박근혜로서도 좋은 기회이겠지요. 바로 아버지 박정희가 남의 재산을 강탈해서 설립한 정수장학회가 그것입니다. 정수장학회가 소유하고 있는 부산일보에서 언론자유 투쟁이 벌어지고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정수장학회는 물론, 육영재단, 영남대 재단을 비롯해 박정희 집권 시기에 부당하게 챙긴 재단들을 말 그대로 공공화한다고 약속해야 상처와 피해를 들먹이며 사과한 박근혜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언론 또한 마땅히 그런 요구를 의제로 설정해서 여론화해야 옳지 않을까요.

 

지금 언론이 던져야 할 질문

그럼에도 세 신문사와 세 방송사가 마땅히 제기해야 할 의제를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 야당 후보들조차 사뭇 통 크다는 듯이 박근혜의 사과를 받아들이는 모습은 생게망게합니다. 김형. 정치적 계산으로 역사관을 수정하는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이 될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말살에 쇠살인 역사관 정리를 높이 평가하는 자칭 오늘의 역사를 기록하는 언론이 그 권력과 유착할 때 이 나라는 어디로 갈까요?

 

저 역사를 조롱하는 대통령 후보와 그를 두남두는 언론 앞에서 원로 역사학자의 믿음을 다시 살펴봅니다. 역사는 결코 우리를 배반하지 않는다고 할 때, 혹 전제가 필요한 건 아닐까요? 우리가 최선을 다할 때라는 조건이 그것입니다./ 손석춘 언론인 미디어오늘 12.10.10

 

고희의 '대기자' 김영희에게 묻는다

[손석춘 칼럼] 한미 FTA로 일자리 35만개? 사실 확인은 했나

흰머리 흩날리며 언론을 지키는 기자. 언론을 천직으로 삼은 기자에겐 깨끗한 꿈이다. 해직된 후배들이 고생하는 데 나만 편할 수 없다며 교수 제의까지 거부한 송건호 선생을 서울 영등포의 허름한 한겨레 사옥에서 만났을 때다. 하얀 머리칼이 참 눈부시게 다가왔다. 당시 청암의 춘추를 짚어보니 고희 전이었다.

 

201111월 현재 한국 언론계에는 일흔을 넘긴 기자 2명이 현역으로 뛰고 있다. 행운의 주인공은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과 중앙일보 김영희 대기자다. 김 고문 보다 김 대기자의 나이가 많다. 1936년생이다. 일흔일곱 살에 현역인 언론인은 마땅히 아름답게 다가와야 한다. 언론계 후배라면 경의를 표하는 게 예의일 터다.

 

하지만 유감이다. 아무래도 그럴 수 없다. 당위와 현실이 달라서다. 청암과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을 대비하고 싶진 않다. 내가 조선일보 고문을 비판해 온 이유 또한 그가 오월의 민주시민들을 살천스레 몰아친 과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범죄적 보도에 진솔한 반성이 없어서만도 아니었다. 그가 노상 써가는 칼럼이 대한민국의 미래에 짙은 어둠을 드리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는 최근 서울시장 선거 국면에서도 박원순의 안보관을 의심하는 일차원적 색깔론을 무람없이 들이댔다.

 

고문과 대기자의 글은 남북관계에서 차이가 있다. 대기자는 햇볕정책을 지지해왔다. ‘사주인 홍석현 회장이 남북관계에 전향적인 배경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대기자의 글이 고문만큼 수구적이지는 않다. 그래서다. 일흔일곱 대기자의 칼럼에 칼을 들이대기까지 망설임이 컸다. 하지만 대기자의 행복한 노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연히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미래다.

 

대기자 김영희는 최근 국가이익에 역주행하는 민주당제하의 칼럼에서 현 시국의 첨예한 쟁점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대해 민주당을 날 세워 비난했다. “그들은 이명박 정부 아래서 수출이 늘고 경제사정이 호전되어 사회의 양극화 현상과 2040 세대의 불만이 완화되는 것을 경계한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한국 경제에 좋은 것,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면서 “FTA의 직접적 혜택은 한국경제에 돌아간다. 일자리가 35만 개 정도 늘고 농업의 경쟁력 강화가 기대된다고 썼다.

 

중앙일보 114일자 39.

 

곧장 묻고 싶다. 사실 확인을 했는가? 칼럼이라고 사실 확인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거나 왜곡 위에 주관으로 담는 의견은 저널리즘이 아니다. 기자의 상식으로 돌아가 살펴보자. 민주당이 경제가 호전되는 것을 경계한다는 주장은 기자로선 매우 부적절한 단언이다. 집권당 대변인의 정치공세 수준 아닌가. 농업 경쟁력 강화가 기대된다는 말은 더 뜬금없다. FTA의 직접적 혜택은 한국경제에 돌아간다거나 일자리 35만 개대목은 정권의 홍보성 부르대기일 뿐이다.

 

무릇 기자가 할 일은 정권의 홍보 문구를 옮기는 데 있지 않다. 대기자라면 말할 나위 없다. 더구나 전망은 크게 엇갈리는 상황이다. 이를테면 정책 경험을 갖춘 경제학자 정태인에게 한미 FTA우리 앞날에 어마어마한 걸림돌, 아니 낭떠러지. 실제로 한미 FTA를 두고 우리 사회는 분열하고 있다. 언론이 제 노릇을 전혀 못해서다. 신문시장을 독과점한 세 신문사는 다양한 의견을 소통시켜 공론을 형성해가야 할 섟에 오직 정파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김영희 기자가 몸담고 있는 <중앙일보>를 보기로 들어보자. “민노당 2중대 민주당따위의 1면 머리기사 제목에서 정파적 사고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언론인으로서 자기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걸까 새삼 궁금하다.

 

두루 알다시피 노무현 정권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 나선 순간부터 나는 날선 비판을 해왔다. 다만 20089월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그 미봉책의 바닥이 드러나 2011년 세계경제가 다시 위기를 맞을 때, 나는 이 땅의 자칭 보수세력도 한미 FTA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않겠는가 기대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다. 미국 의회 단상에서 의기양양 했던 대통령 이명박의 영혼 없는 연설을 톺아보라.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은 속성상 그렇다고 치자.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만이 한국 경제의 살 길이라고 아우성치는 저 언론인들의 사고를 정말이지 나는 이해할 길이 없다. 솔직히 부럽기도 하다. 대체 그들은 어떻게 저런 신념으로 무장했을까?

 

일흔이 넘도록 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사실 확인조차 무시하거나 노상 색깔공세에 사로잡힌 두 큰 기자에게 후배로서 예의를 지키는 길은 무엇일까? 훗날 한국 언론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한국 언론계를 이어받을 젊은 언론인들은 김대중과 김영희를 어떻게 쓸까. 상상에 맡기되 분명한 하나만 적시하자.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흰 머리 흩날리며 언론사를 지키는 기자가. / 손석춘 언론인 미디어오늘 11.11.8

 

한겨레신문 국민주신문경향신문 기자주주 신문

 

 

조중동TV와 자본의 왕국

언론환경 망치는 가공할 '자본의 힘'종편, 광고 직접영업까지 한다면?

조중동TV. 쓰고 싶지 않은 말이다. ‘조중동이란 말이 퍼져갈 때도 그 말을 즐겨 쓰지 않았다. 이를테면 칼럼 제목을 방우영 김병관 홍석현으로 썼듯이, 비판을 하되 언론노동자와 언론자본을 구분하고 싶었다. 물론, 그때도 자본의 성격 차이를 적시하긴 했다. 중앙일보가 남북관계에선 일부 전향적 모습을 보였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작은 기대는 속절없이 무너져갔다. 세 신문사의 언론 귀족들이 은퇴하면 그 자리를 내부의 새로운 언론인들이 채우리라 생각하며 비판 했지만, 곰비임비 닮은꼴 기자들이 재생산되고 있어서다. 더구나 정년을 한참 넘긴 그들은 지금도 여기저기서 붓을 휘두르는 반면에 나의 글은 일간지 독자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고백하거니와 새삼 자본의 힘을 절감하는 이유는 어느새 옹근 20년이라는 감상도 한 몫을 했다. 1991년의 찌는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다. 동아일보 김중배 편집국장은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자본을 경고하며 언론인들의 응전을 촉구했다. 언론 자본의 편집권 유린을 정치권력의 정직에 비해 숨은 권력의 야만으로 비판한 글을 기자협회보에 기고했던 나도 같은 날 사표를 던졌다.

 

그 뒤 20.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다. 그 사이에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들어섰다. 방송가도 변화의 모습은 사뭇 나타났다. 가령 언론노조 위원장이 문화방송 사장을, 한겨레 논설주간이 한국방송 사장을 맡기도 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사무국장이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을, 비판커뮤니케이션학의 대부인 언론학자가 방송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런데 어떤가. 2011년 현재 한국방송과 문화방송, 방송통신위원회의 살풍경을 보라.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민사회에서 조중동에 대한 비판 의식이 높아갔고 조직적인 안티조선운동이 벌어졌지만 바로 그 신문사들이 저마다 종합편성채널을 확보하고 방송 개국 준비에 한창인 게 현실이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옳을까. 무엇보다 먼저 짚을 대목은 자본의 가공할 힘이다. 20년 내내 자본의 힘은 우리 사회에서 무장 커져왔다. 언론자본 또한 말할 나위 없이 그 자본의 하나다. 물론, 모든 것을 자본 탓으로 돌리기란 바람직하지 않고 사실과도 다르다. 20년 동안 언론운동에는 성과 못지않게 착오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언론운동 내부의 문제를 정면으로 논의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은 자본의 힘부터 우리 모두 절박하게 인식할 때다. 주체의 문제를 논의하기 전에 객관적 조건에 대한 공감이 그만큼 절실하기 때문이다.

 

20년 전에는 전혀 가시권에 들어와 있지 않았던 방송을 저마다 거머쥘 수 있을 만큼 자본의 힘은 막강해졌다. 세 신문사의 자본도 종합편성채널을 확보했다. 세 신문사에서 언론자본의 권력은 어떤 도전도 받지 않는다. 세 신문사 노동조합은 노조라는 이름에 전혀 값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조중동TV의 개국에 그치지 않는다. 각각의 방송이 독자적으로 광고 영업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언론노조를 중심으로 언론 현장에선 세 신문사의 종편이 직접 영업에 나서는 걸 막기 위해 법적 장치를 요구하며 파업까지 벌이고 있지만, 한나라당 부라퀴들이 장악한 국회는 변죽만 울리고 있다.

 

그래서다. 이참에 조중동TV의 구성원들에게 쓴다. 조중동TV가 광고를 직접 영업할 때 그 폐해는 다름 아닌 구성원들에게 먼저 오기 때문이다. 자본의 힘이 프로그램마다 스며들 수밖에 없어서다. 한국방송이나 문화방송이 상대적이나마 대기업의 횡포를 한때 고발할 수 있었던 까닭은 직접 광고영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이 방송사 내부로 들어오고 더구나 광고까지 직접 영업할 때, 광고주인 자본의 압력은 나날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바로 그렇기에 조중동TV의 개국 요원들도 직접 영업에 대해 눈앞의 이해관계를 떠나 깊이 성찰해야 옳다.

 

만일 조중동TV가 끝내 직접 광고영업을 할 때, 기존의 방송사들도 광고 영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광고를 놓고 진흙탕싸움이 벌어지면 자본력이 약한 미디어들만이 아니라 종편 방송사들의 운명도 바람 앞 등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과연 그래도 좋은가.

 

조중동TV가 대한민국을 벅벅이 자본의 왕국으로 만드는 종결자가 된다면, 그것은 비단 그 방송사 구성원들만의 불명예에 그치지 않는다. 여든을 눈앞에 둔 김중배 선생은 최근 기자협회와 가진 인터뷰에서 인터넷 시대에 직업적 언론인들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며 새로운 사회를 여는 통찰자가 되라고 충고했다.

지금 이 순간도 세 신문사에서 애면글면 일하고 있는 언론노동자들에 대한 믿음을 다 버리지 않았듯이, 나는 앞으로 종편에서 일할 언론노동자들에 대한 믿음도 다 접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다. 우리 모두 경계심을 잃지 말자는 충정으로 쓴다. 언론계는 물론 자칫 대한민국의 미래를 자본의 왕국으로 캄캄하게 만들 수 있는 그 방송사의 이름을. 조중동TV

손석춘 새로운사회를 여는연구원 이사장 미디어오늘11.8.29

 

진보-민주화세력의 가면?

'대북 비판' 몰아붙이기 칼끝의 종점 '종북 색깔씌우기'

 

이제 가면을 벗을 때가 됐다.”

상대를 이중인격으로 몰아세우는 무례한 언사다. 20113<동아일보> 주필은 입만 열면 인권을 외치는 이 땅의 이른바 진보 민주화세력을 겨냥해 그렇게 썼다. 그는 무람없이 정죄한다. “당신들은 더 이상 민주화세력도, 진보세력도 아니다.”

 

그 칼럼을 읽으며 새삼 세월의 변화를 실감했다. 어느새 아득한 추억처럼 빛바랬지만 한 때 그 신문은 한국 언론의 희망이었다. 1970년대 유신체제에 용기 있게 맞섰던 기자들 130여 명이 대량 해직 된 사건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19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동아일보>는 전두환 정권과 맞서기 시작했다.

 

신문 지면에 김중배칼럼이 나오는 요일이면, 독자들은 감동에 젖어 읽었다. 다른 언론사의 젊은 기자들도 그 신문을 찾았다. <동아일보> 내부에서도 해직사태 이후 해마다 들어온 수습기자들 가운데 민주언론의 의지가 또렷한 젊은이도 많았다. 그 시기 <동아일보>는 전두환 정권이 서울대생 박종철을 고문해 죽인 사건을 집요하게 보도해갔다. 김중배 논설위원이 쓴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제하의 칼럼은 민주시민들을 거리로 불러들였다.

 

대북 비판 칼끝 종북 색깔씌우기

그런데 어떤가. 작금의 <동아일보>는 전혀 다르다. 언론의 본령이 권력 감시에 있다는 언론학 원론을 새삼 조곤조곤 들려주고 싶을 정도다. <조선일보>보다 한 술 더 뜬다는 말은 이미 언론계 안팎의 상식이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그 신문에 칼럼을 쓰고 있는 대다수 기자가 1980년대 중반에는 적어도 지금처럼 글을 쓰진 않았다.

 

왜 그럴까. 왜 그렇게 변했을까. 언론계의 명가로 불리던 신문사와 그 속에서 일하는 기자들이 조락한 모습은 언론과 대한민국의 내일을 위해 깊이 성찰해볼 사안이다. 더 말할 나위 없이 여기에는 가장 큰 원인이 똬리틀고 있다. 신문사 내부의 봉건적 구조가 그것이다. 뜻있는 언론인들과 민주시민들이 언론개혁운동을 벌여온 이유이기도 하다. 아직 사주의 황제식 경영은 바뀌지 않았고, 언론개혁은 여러 이유에서 명백히 후퇴하고 있다. 다만 구조적 문제가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기사를 쓰는 기자 개개인의 책임도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자시절 초기의 글과는 달리 진보·민주세력에게 날 선 칼날을 휘두르는 칼럼을 노상 쓰는 언론인들의 글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진보·민주세력=친북·종북세력이라는 등식이다. 들머리에 소개한 <동아일보> 주필이 쓰는 칼럼은 거의 모든 주제가 김정일 체제비판이다. 언론인으로서 그의 거주지가 서울이 아니라 평양인가 싶을 정도다. 물론, 그의 대북 비판이 국내 상황과 무관하진 않다. 비판의 칼끝은 진보·민주세력을 겨누고 있다. 그는 20113월 현재 한국의 민주화세력이 눈을 돌려야 할 곳이 어디인지는 자명하다북한이다라고 단언한다. 이어 그럼에도 남한의 진보라는 사람들은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 어떤 행동도 할 생각이 없다고 개탄하며 공격한다.

 

<동아일보> 주필은 물론, 진보세력을 훈계하는 칼럼을 즐겨 쓰는 <조선일보><중앙일보>의 언론인들에게 명토박아 둔다. 대한민국의 모든 진보·민주세력이 김정일 체제를 찬성한다는 판단은 너무 거칠고 사실도 아니다. 터놓고 말하면, 기자로서 공부를 하지 않는 데서 오는 무지에 지나지 않는다.

 

무릇 무지는 만용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 어떤 행동을 촉구하는 언론인들은 자신들의 논리에 동조하지 않으면 서슴지 않고 종북세력으로 몰아친다. 과연 그러한가? 아니다. 그런 식의 황당한 딱지붙이기는 신자유주의를 거론하는 어느 언론인의 칼럼에서도 확인된다. 가령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진보세력을 겨냥해 주체사상이 더 좋은가, 신자유주의가 더 좋은가라는 황당한 질문을 던진다. 솔직히 궁금하다. 과연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만 보기엔 젊은 시절에 본 그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다.

 

새삼 말할 가치도 없지만, 신자유주의와 주체사상 사이에 아무 것도 없는 게 아니다. 수많은 대안들이 있다. ‘멸공아니면 종북이라는 논리도 마찬가지다. 상대에게 색깔을 들씌우는 반민주적 사고의 연장이다.

 

극우수준 논리의 논객들 자성의 거울 보라

더러는 그 또한 표현의 자유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넘기기엔 현실이 너무 엄중하고, 언론의 영향력이 너무 크다. 보라. 휴전선 앞에서 김정일 체제를 무너뜨리자고 선동하는 유인물을 대량으로 풍선에 실어 보내고, 대규모 화력을 집중한 한미합동 군사훈련이 곰비임비 이어지면서 북은 불바다를 위협하고 나섰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 민주화를 위한 어떤 행동을 마구 선동하는 행태가 과연 성숙한 자세인가?

 

저마다 언론사를 대표하는 논객들이 극우단체 수준의 거친 논리를 칼럼으로 써대는 모습을 보며 혹 그들이 알리바이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 재벌의 비리나 비정규직의 고통,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양극화를 거론하지 못하거나 짚을 생각도 없으면서, 그 이유를 한국 사회에 발호하고 있는 종북 세력탓으로 돌리려는 합리화 심리가 읽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지금 여기서 우리 사회가 풀어가야 할 문제를 애면글면 의제로 설정하며 동분서주하는 사람들 앞에 그들이 조금이라도 겸손한 자세를 보이기를 진심으로 당부하고 싶다. 진보·민주세력을 싸잡아 종북주의따위의 색깔을 살천스레 들씌우거나 가면을 벗으라며 부르대는 자신의 얼굴을 찬찬히 거울에 비춰보라. 누가 보이는가? 젊은 날의 순수한 영혼은 어디로 갔는가?

 

그만하면 많이 누렸다. 이제 가면을 벗을 때가 됐다.

손석춘 새로운사회를 여는연구원 이사장 media@mediatoday.co.kr 11.3.11

 

'운동권 정서' 버리는 게 답일까?

운동과 정치의 관점이 융합할 수 없다는 관점을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제대로 된 운동과 정치가 아니어서 문제이지, 운동과 정치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한동안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이제 진보 진영은 제발 운동권 정서를 버리고 제대로 된 정당, 제대로 된 정책 입법에 집중해야 한다는 명제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지적은 굳은 이념과 무조건적 비타협 투쟁이 곧 진보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타당했다. 진보의 궁극적 실현은 오히려 수많은 미시적 정치 과정의 미로와 성가신 연합, 그리고 흡족하지 않은 타협의 결과에 의한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난 당시 그러한 주장이 때로는 균형감 있는 선을 넘어 과도하게 운동의 정서에 대해 비판적인 논지로 나아가는 것이 못마땅했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가 항상 운동의 관점에서 정치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난 프랑스 철학자 펠릭스 가타리의 항상 권력의지를 경계하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권력의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운동의 관점이 약해지고 협소한 의미의 권력의지만 강해지는 순간 우리는 정체성이 바뀌면서 그저 괴물로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동안 나의 주장은 큰 공명을 받지 못하는 소수파의 주장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흔히 한국이 중요한 벤치마킹 대상으로 여기는 미국 등의 선진 정치가 운동이 아니라 정당 중심으로 움직이고, 한국은 이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 두 가지 단단해보이는 가설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첫째, 진보 집권을 실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관 자체가 영구적 운동으로서의 정치이다. 그는 대선 기간 자신의 선거 과정을 단지 여론조사나 기부금 모금, 엘리트들의 정치 광고전 등을 위주로 하는 정치 캠페인으로 규정하는 것을 거부하고, 아래로부터의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간주했다. 이로 인해 주변 선거 전략가들이 그를 정치 철부지 혹은 운동권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클린턴 시대의 주류 진보 정치가 정치의 혼이 약화된 채 권력 쟁취의 관점, 여론조사의 관점에만 지나치게 매몰된 것에 비판적이었다.

 

철부지 운동권 취급을 받았던 오바마는 집권에 실패했을까? 이제 모두가 알 듯이 그는 선거의 구도, 미국 정치의 개념을 바꾸면서 의미 있게 집권하는 데 성공했다. 정치를 운동으로 사고하기에 백악관 진입 이후 정치에 실패하고 있는가? 비록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어려운 조건에서 부침과 오류를 거듭하지만, 그는 유연한 타협을 통해 의료보험 개혁에 성공했다. 그래서 난 운동과 정치의 관점이 서로 융합할 수 없다는 관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제대로 된 운동, 제대로 된 정치가 아니어서 문제이지 운동과 정치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진보 정당들, 운동권 정서 때문에 대중 정당 못 되는 거 아니다

둘째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지극히 허약한 수준, 정당의 극단적으로 취약한 토대를 더 절실히 자각하기 시작한 지식인들이 근대에 탄생된 정당 그 자체에 대한 과도한 환상에서 벗어나고 있다. 현재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이 운동권 정서 때문에 대중적 정당으로 거듭나지 못하는 걸까? 물론 여전히 일부 활동가들만의 정당 모델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는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일부 활동가들의 패러다임이 극히 협소한 사고방식이어서 문제일 뿐이지 운동적 사고 자체가 원죄는 아니다. 오히려 현재 문성근씨의 백만민란운동에 대한 지식사회의 기대감이 상승하고 있는 것에서 보이듯, 대중적 정당의 출발은 대중적 운동에서 시작된다. 사실 아직도 운동의 시각은 한국 정치에서 턱없이 부족하다.

 

한때 미드(미국 드라마) 폐인을 양산한 진보적 정치 드라마 <웨스트 윙>에서 백악관 입성에 성공한 진보 정치가들이 자신의 과제를 과거 러시아의 과격한 혁명가인 트로츠키의 영구 혁명에 비유한 것을 보고 놀란 기억이 난다. 즉 그들은 마치 영구 혁명처럼 민주주의란 부단히 운동의 관점에서 혁신되어야만 생명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웨스트 윙>과 그 드라마 정신의 화신인 오바마는 진보 정치의 혼을 이해하고 있다. 오바마는 오늘도 백악관에 어둠이 내리면 홀로 앉아 이 일을 하면서 나의 정체성까지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게임 체인지)라고 되뇌고 있을지 모른다. 즉 자신은 영원한 운동가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결의이다. 진보의 집권과, 집권 이후 성공을 간절히 바라는 이들이 곱씹어볼 대목이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미국학) 시사인 17711.2.16

 

 

썩은 정치·구린 언론 '추악한 썩구동맹'

[손석춘 칼럼] 언론의 후각마비·대통령의 거짓말2011 대한민국의 현주소

썩어도 너무 썩었다. 구려도 너무 구리다. 이명박 정권이 그렇다. 더러는 너무 격한 비난이라고 도끼눈 뜰 성싶다. 더러는 뜬금없다고 나무랄 법하다. 후각이 마비 또는 적응된 까닭이다.

썩고 구린내를 맡지 못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언론이 이중 잣대로 판단력을 흐려서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중 잣대는 한국 언론의 고색창연한 전통이다. 가령 똑같은 문제를 일으켜도 일반 교사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는 차별받는다. 일반 교사가 그랬다면 아예 보도조차 않을 문제를 전교조 교사일 경우는 마구 부풀린다. 물론, 깨끗한 교단을 내건 조직이기에 의연히 감수해야 할 몫일 수 있다.

 

문제는 한국 언론의 평소 행태다. 일반 교사에 견주어 전교조의 도덕적 우월성을 전혀 평가하지 않는 윤똑똑이들이 문제가 불거지면 전교조 교사에 더 높은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는 풍경은 아무리 보아도 남세스럽다. 아니, 불순하다. 비단 전교조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수와 진보를 다루는 언론의 이중 잣대는 완연하다.

 

언론의 후각마비·대통령의 거짓말

이명박 정권을 바라보는 언론의 눈도 마찬가지다. 이 정권은 으레 그러려니 하는 걸까? 아예 한 수 접어준다. 언론이라는 이름값을 위해서라도 최소한 짚어야 할 대목까지 구렁이 담 넘듯이 슬금슬금 지나간다.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과 은폐 의혹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굴욕적 재협상은 공화국의 기초를 흔드는 일임에도 사부자기 넘어간다. 공직 후보자의 국회 인사 청문 과정에서 결격 사유가 또렷하게 드러난 최중경도 어느새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활개치고 있다. 최중경의 처와 처갓집이 대전 그린벨트 안에 있는 밭과 충북 청원군의 임야를 사고팔아 6~15배의 이익을 챙긴 사실은 개발 예정지 투기의 전형이다. 심지어 서울 강남 오피스텔의 면적을 축소 신고해 세금까지 탈루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회 인사청문회에 대한 이 대통령의 인식이다. 설 연휴를 앞두고 방송 3사가 생중계한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그는 국민 앞에 사과를 표명해야 할 사안에 되레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대통령이 된 뒤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니까 상임위원장이 여당인 곳은 통과가 되고 야당인 경우는 이제까지 한 번도 통과를 못 시켰다면서 미국은 개인의 신상 문제는 국회가 조사해 (가부를) 결정하고 공개적 청문회에선 개인의 능력과 정책만 다룬다라고 사뭇 정치현실을 개탄했다.

 

적격 사유들이 곰비임비 불거져 한나라당에서도 사퇴를 요구받은 감사원장 후보 정동기에 대해서도 너무 과거의 잣대로 보는 것 같아 나와는 안 맞는 점도 있는 것 같다고 두남뒀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감사원장 후임 인선을 두고 대통령은 정말 감사원장으로 일할 수 있고 청문회도 무사히 통과할 사람을 찾는 것이 만만치 않다고 언죽번죽 말했다.

 

어떤가. 이 땅의 젊은 언론인들에게 가만히 짚어보길 권하고 싶다. 만일 지금 소개한 대통령의 발언에서 큰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면, 명토박아 말한다. 언론인으로서 후각이 이미 마비되었음을. 조금만 거리를 두었다가 다시 맡아보라. 대통령의 발언에서 썩은내와 구린내가 폴폴 풍기지 않는가. 아니 진동하고 있지 않은가.

 

썩고 구린 후보자들을 비호한 사실, 썩어 문드러진 자들을 그나마 걸러낸 우리 국회를 비난하며 미국 청문회를 들먹인 사실, 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할 감사원장 후보를 찾기 어렵다고 말한 사실, 야당이 상임위원장인 경우 한 번도 통과 못했다는 명백한 거짓말, 그 하나하나가 대통령으로서 부적격 발언이다. 대통령 자신이 썩은내와 구린내를 맡을 수 없을 만큼 후각이 마비 또는 적응했다는 증거다.

 

그 결과가 아닐까, 300만 넘은 가축들이 생죽음 당한 단군 이래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방역을 책임져야 할 정부의 고위관료가 되레 농민을 겨눠 살천스레 비난을 내뱉은 까닭은. 대통령 이명박의 후각을 믿어서가 아닌가. 아니, 그것을 감시해야 마땅한 언론의 후각을 만만히 보아서가 아닌가.

 

여기서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사옥의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언론인들에게 정중하게 묻고 싶다. “경찰이 백날 도둑을 지키면 뭐하나. 집주인이 도둑을 잡을 마음이 없는데라며 구제역에 시름하고 있는 축산 농가의 이른바 도덕적 해이를 들먹인 기획재정부 장관 윤증현, 그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각료였어도 모르쇠하거나 시늉만 내는 비판에 그쳤겠는가. 300만 가축의 대학살 앞에 방역 당국의 무사안일을 방관만 했겠는가. 저 썩고 구린 공직후보자들의 취임을 묵인했겠는가. 방송 3사가 생중계하는 일방통행식 대통령과의 대화에 나서 무람없이 거짓말 늘어놓는 대통령을 모르쇠 했겠는가.

 

·구 동맹은 대한민국 현주소

무엇보다 감사원장 시킬 사람이 없다는 대통령 발언이야말로 다름 아닌 자칭 보수세력에 대한 최대의 모욕 아닌가. 그럼에도 침묵하거나 변죽만 울리는 비판에 그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 침 뱉기에 동의해서인가.

 

물론, 세 신문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08월 거짓말 총리후보 김태호에 이어, ‘비리 백화점으로 질타 받은 신재민 문화관광부 장관 후보, ‘쪽방촌 투기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가 물러났을 때, 시민사회 일각에선 썩고 구린 자들의 공직 취임을 원천적으로 막을 입법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그 어떤 언론도 의제로 설정하지 않았다.

 

결국 썩고 구린 정치판은 지금 이 순간도 생생하다. 그 판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배후가 있어서다. 바로 신문과 방송이다. 정치와 언론의 썩고 구린 동맹, 2011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래서다. ·구 동맹얼굴에 다시 꼭꼭 눌러쓴다. 구려도 너무 구리다. 썩어도 너무 썩었다./ 손석춘 새로운사회를 여는연구원 이사장 미디어오늘11.2.9



Imagine (John Lennon & Plastic ono Band) (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