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0~11.25
11.21 경향-중앙
서울 집값, 도쿄보다 1억 이상 비싸…'거품' 맞다 1119 프레시안
한푼도 안 쓰고 9.2년 모아야 서울 집 마련, 도쿄는 4.7년
일용직 세금이 너무해…소득 23% 늘어날 동안 세부담 175% 치솟아 1120한겨레
미장·배관공 등 소득공제 7년째 방치 ‘벼룩의 간 빼먹기’
“싱싱한 처녀를 끌고 오겠습니다” 베트남 전쟁의 한국언론 1119 미디어오늘
공수처 설치, 노무현 대통령 죽음 ‘한 풀이’로 몰고 간 조선일보 1122 미디어오늘
지금, 행복하십니까](5)성장의 결과보다 방향 중요…분배 잘되는 나라가 행복했다 1122경향
도시숲, 미세먼지 저감 효과 큰데 예산은 되레 깎였다
가계빚, 3분기에 31조원 급증…1400조 넘었다 1122한겨레
한국은행 “가계신용 1419조1천억원” 발표
한국경제 최대리스크는 가계부채·북한·미 금리”
이국종 작심 브리핑 "응급환자 죽는 나라에 살려 왔겠나" 1122프레시안
귀순 병사 브리핑서 한국 의료 실태 호소
북한 귀순병은 왜 국군병원으로 이송되지 않았을까
보수는 촛불 시대를 잘못 읽고 있다 1120시사인
국회, 자기 특수활동비는 '모르쇠' 1122내일
‘학벌=취업은 옛말...’ 박사 5명 중 1명 실업자 1122민중
정파정당'과 '정치혐오' 오가는 민주노총 선거 1123 프레시안
[민주노총을 말한다] 진보대통합 VS 사회세력화, 왜 '정치세력화'가 어렵나
댓글 ‘공범’들 “나도 풀어달라” 1124경향
ㆍ임관빈 전 국방부 실장 법원에 구속적부심 청구
유골 발견 알리지 말라”는 유족 부탁 따랐다? 해수부 변명의 모순 1124 경향
‘이국종 신드롬’이 들춰낸 사각지대, 죽음에도 계급이 있다 1124 한겨레
깜짝 놀랄 정도로 노동자·농민분 많다”는 이국종 교수
속물 근성 그대로 드러내는 짝짓기 프로그램 ‘하트 시그널’
KBS 파업 아나운서들, 부역 아나운서들에게 "마이크 내려라" 호소1124 오마이뉴스
“화성의 ‘흐르는 물’은 모래입자 흐름” 새 주장 1124 한겨레
‘올해의 세계 건물’에 흙집이 뽑혔다, 왜?
한국-경인
기호-한겨레
인천-민중
중부-대구매일
1120 국민-내일
1121 중앙-경인
기호-인천
중부-경기
민중-대구매일
한국-국민
1121 한겨레-주간경향
1122 기호-경기
경인-경향
중부-대구매일
민중-국민
경향-중앙
한국-내일
1123 국민-중앙
기호-경인
한겨레-인천
중부-경기
경향-한국
1123 내일-1124 민중
11.20~24 경향 장도리
1124 경인-한겨레
경향-한국
중앙-기호
중부-경기
대구매일-국민
내일-시사저널
서울 집값, 도쿄보다 1억 이상 비싸…'거품' 맞다 1119 프레시안
한푼도 안 쓰고 9.2년 모아야 서울 집 마련, 도쿄는 4.7년
서울 집값이 일본 도쿄보다 1억 원 이상 비싸다. 서울 집값 중윗값은 4억3485만 원인데, 도쿄 집값 중윗값은 3억1136만 원이다. 중윗값이란, 가장 높은 값부터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딱 중간에 있는 값이다. 서울 집값에 상당한 거품이 끼어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실이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입법조사처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인 박 의원은 19일 보도자료에서 이런 내용을 소개하며 "도시 가구가 소득을 한푼도 쓰지 않고 9.2년을 모아야 서울에서 가격이 중윗값인 집을 살 수 있다"고 밝혔다. 도시 가구 소득은, 통계청이 발표한 2인 이상 비농가 도시 가구 연평균 소득인 4718만 원을 적용했다.
일본 도쿄, 싱가포르, 미국 뉴욕보다도 3∼5년 긴 수준이다. 같은 기준을 적용할 때, 일본 도쿄 거주 가구는 4.7년, 싱가포르 4.8년, 미국 뉴욕 5.7년 소득을 모으면 중윗값 주택을 마련할 수 있었다.
따라서 자신이 보유한 집에서 사는 자가점유비율도 다른 나라보다 크게 낮았다. 지난 2015년 한국 1911만2000가구 가운데 자신이 보유한 집에서 사는 가구는 1085만 가구였다. 자가점유비율이 56.8%에 그치는 셈이다. 이는 영국(2007년 기준) 71%, 미국(2011년 1분기 기준) 66.4%, 일본(2008년 기준) 61.2%보다 4.4∼14.2%포인트 낮은 수치다.
전국 시도 평균 집값 중윗값은 2억853만 원이었다. 서울의 집값 중윗값이 전국 평균의 1.9배 수준이다. 집값 중윗값이 두 번째로 높은 곳은 2억5739만 원을 기록한 경기도였다. 전국에서 집값 중윗값이 가장 낮은 곳은 전라남도로 7931만 원이었다.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의 인구 100만 명 이상 주요 도시 27곳 가운데서 서울은 14위였다. 집값 중윗값이 가장 높은 도시는 미국 9억3164만 원을 기록한 미국 샌프란시스코였다. 두 번째는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시드니로 9억1186만 원이었다. 일본 도쿄를 제외한 세계 주요 도시 가운데 서울보다 집값 중윗값이 싼 곳은, 캐나다 오타와(2억7589만 원), 미국 시카고(2억7222만 원), 미국 애틀랜타(2억1356만 원), 영국 리버풀(2억148만 원), 일본 오사카(1억9808만 원) 등이었다
일용직 세금이 너무해…소득 23% 늘어날 동안 세부담 175% 치솟아 1120한겨레
조세재정연, 2011~2015년치 분석
연소득 3천만원 이하인 경우엔상용직보다 세금 더 내는 구조
불합리한 과세 방식에 방치돼
2011년부터 4년간 일용직 노동자의 소득은 23% 증가에 그쳤으나 이들이 낸 소득세(지방소득세 제외)는 170%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근로소득이 3천만원 이하인 경우엔 일용 노동자의 소득세 부담이 상용 노동자보다 오히려 더 컸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취약계층인 일용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의 무관심 속에 불합리한 과세방식에 방치돼 있는 셈이다.
19일 김재진 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재정포럼’ 11월호에 실은 ‘일용근로자 800만 시대, 과세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보면, 국세청에 신고된 일용근로소득은 2011년 47조2076억원에서 2015년 57조9393억원으로 22.7% 늘었다. 같은 기간 일용근로소득에 대한 세액은 1113억원에서 3058억원으로 174.8% 증가했다. 소득 증가에 견줘 8배 가까이 세부담이 는 셈이다. 실질 세부담을 뜻하는 일용근로소득에 대한 소득세 실효세율은 0.2%에서 0.5%로 훌쩍 뛰어올랐다.
세법상 일용 노동자는 동일한 고용주에게 3개월 미만(건설공사의 경우 1년 미만) 고용된 이들로 2015년 기준 812만6028명에 이른다. 미장공·배관공과 같이 주로 건설 현장이나 배달원·식당보조 등 서비스업에서 일당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이들이 내는 근로소득세는 하루 단위로 원천징수된다. 일급에서 10만원을 정액 공제하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 6% 세율을 매긴 뒤, 여기에 55%의 근로소득 세액공제를 적용해 세액을 결정한다.
추가적인 세액공제 혜택이 없는데다, 정액공제 액수(10만원)가 2009년 이후 8년째 그대로 유지되면서 정작 현실에선 세부담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김재진 연구위원은 “물가상승 등에 따른 임금상승으로 인해 세금을 내지 않는 면세점(일급 13만7천원) 이하 일용직 노동자가 줄어들며 전체 소득 증가보다 훨씬 빠르게 세부담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불합리한 문제로 인해, 급여 3천만원 미만인 경우에선 일용 노동자가 상용 노동자에 견줘 평균적으로 더 많은 소득세를 부담했다. 1천만원 이하 구간에선 상용직은 세부담이 전혀 없는 데 견줘 일용직은 1인당 평균 6500원을 냈고, 1천만~2천만원 구간과 2천만~3천만원 구간에선 일용직이 상용직보다 각각 3만1500원과 1만5천원을 더 부담했다.
관련기사
연소득 줄어도 일 13만7천원 넘게 벌면 세금…이상한 일용직 과세기준
김 연구위원은 “세법을 수십년간 연구해왔지만 이런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찾아보니 선행 연구도 없었다. 한마디로 연구 사각지대에 일용 소득 과세가 놓여 있고, 이는 정책당국이나 납세당국도 마찬가지”라고 짚었다.
미장·배관공 등 소득공제 7년째 방치 ‘벼룩의 간 빼먹기’
일용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소득 과세 방식은 상용직 노동자의 경우와는 많이 다르다. 우선 상용노동자는 연간 소득 합산액에다 소득 수준에 따라 세율이 달라지는 누진세율(6~40%)을 적용해 과세한다. 반면 일용노동자는 연간 소득이 아닌 하루 단위(일급)로 세금(세율 6%)이 부과된다. 일급이 나올 때마다 원천징수로 과세 절차가 끝나 버리기 때문에 연말정산도 없다. 인적공제나 자녀·의료비 세액공제와 같은 대부분의 소득·세액공제도 받지 않는다. 일용노동자가 받는 공제는 근로소득공제와 근로소득세액공제 두가지뿐이다. 이런 과세 방식은 연간 소득 파악이 어려운 현실과 더불어 일용노동자들의 세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로 1970년대에 도입됐다. 상용노동자들이 받는 각종 공제를 일용노동자는 받지 못하는 터라 얼핏 일용노동자들이 불리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소득세율 중 가장 낮은 세율이 적용되고, 일급 중 일부(현재는 10만원)는 정액 공제(근로소득공제)를 해주기 때문에 세 부담이 거의 없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이런 정책적 배려가 2011년 이후엔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2011년 이후 일용노동자들의 세 부담이 급증한 데는 최저임금과 시중 노임단가 인상에 따라 시급이 크게 오른 영향이 컸다. 이에 따라 연간 근무일수가 늘지 않아 연 소득이 늘지 않더라도 세금을 내야 하는 일용노동자가 급증했다. 일급 기준 과세 방식으로 인해 면세점(일급 13만7천원)을 넘기는 노동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실제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를 보면, 2011년 당시 일용노동자의 시간급은 9700원이나 2015년 현재 1만2900원으로 33%나 올랐다. 그러나 해당 기간 동안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월평균 근로일수는 16.7일에서 12.8일로 크게 줄어들면서 월평균 급여액은 135만5천원에서 129만7천원으로 감소했다. 소득이 줄어도 세금은 느는 역설이 발생하는 이유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노동 시장에서 고용·소득 안정성이 가장 떨어지는 일용노동자들이 상용노동자보다 세금을 더 내는 상황도 빚어지고 있다. 상용노동자들은 각종 공제 덕택에 세금을 적게 내거나 아예 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근로소득자(일용직 제외) 중 세금을 내지 않는 면세자 비중은 46%(2015년 현재) 수준에 이른다.
실제 김재진 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각 연도 국세통계연보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15년 기준 총급여(과세대상 근로소득) 3천만원 이하인 근로소득자는 평균적으로 일용노동자보다 세금을 덜 낸 것으로 나타났다. 한 예로 총급여가 1천만원 이하인 경우 일용노동자는 1인당 평균 6500원의 세금을 냈지만, 일반 근로소득자의 평균 세액은 0원이다. 총급여 1천만~2천만원 사이에선 일용노동자는 4만8천원을, 상용노동자는 1만6500원을 내고 있으며, 총급여 2천만~3천만원에선 일용노동자와 상용노동자는 각각 14만원과 12만5천원을 세금으로 내고 있다.
일급 기준 과세 방식은 일용노동자 내에서 세금 형평성을 훼손하기도 한다. 연간 기준으로는 소득이 같더라도 근무일수와 일급에 따라 세액은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가령 연간 일용 근로소득이 3천만원으로 같더라도 일급으로 30만원을 받고 연간 100일을 일한 일용노동자와 300일 일하고 일급 10만원을 받은 일용노동자가 부담하는 세액은 각각 54만원과 0원으로 큰 차이가 있다. 같은 이유로 연간 소득이 더 적은 일용노동자가 그렇지 않은 일용노동자보다 세금을 더 내기도 한다. 소득에 따라 세액이 달라져야 하는 조세의 일반 원칙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불합리한 문제가 오랫동안 지속된 이유는 뭘까. 김재진 선임연구위원은 “일용근로자의 근로소득공제액은 2009년, 원천징수세율은 2011년, 근로소득 세액공제는 2004년에 개정된 이후 그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상용 근로소득은 거의 매년 소득공제, 세율, 세액공제가 개정되어 왔다”며 “일용 근로소득공제액 10만원은 2009년 이후 거의 10년째 변동이 없어서 그동안의 임금 상승률, 물가 상승률 등이 반영되지 못함으로써 일용근로자의 소득세 부담은 지속적으로 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정책 당국자나 연구자, 심지어 납세자 단체 쪽에서도 일용 소득 과세의 문제점을 인지하거나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없었기 때문에 일종의 커다란 사각지대였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임재현 기획재정부 소득법인세정책관은 “아직까지 어떤 경로로든 일용 근로소득 과세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었던 터라 이 문제에 대해 검토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일용 소득 과세의 불합리를 줄이기 위해서는 소득세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최근 수년간 시급이 오른 점을 고려해 근로소득공제를 현재보다 더 높이거나 일용 소득에 한해 별도의 공제제도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개선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싱싱한 처녀를 끌고 오겠습니다” 베트남 전쟁의 한국언론 1119 미디어오늘
파병 당시 언론, 가부장제·군사주의 활용해 전쟁 정당화…한국군 학살의 역사, 반성하고 진상규명하는데 언론도 앞장서야
“한국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 지난 11일 베트남전 한국군 파병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말했다고 전해진 이 발언으로 다시 베트남 민간인학살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파병 당시 대중잡지를 분석한 연구 “대중매체에 표상된 베트남전쟁과 젠더 이데올로기-1964~1973년 ‘선데이서울’, ‘여원’을 중심으로”(이진선, 2017년)에 따르면 당시 미디어는 베트남여성 뿐 아니라 한국여성도 한국 군인을 위로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했다.
논문은 대중잡지 ‘선데이서울’과 ‘여원’을 베트남파병이 이뤄진 기간인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분석했다. ‘베트콩’(공산진영)을 상대로 싸우는 한국군, 한국여성의 지원을 받는 한국군, 실제론 폭력도 당했지만 한국군을 ‘위로’하는 베트남여성, 한국군의 전유물이 된 베트남민중 등이 미디어에 등장했다. 정부는 반공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가부장제와 군사주의 등을 적절히 활용했고 미디어는 이를 확산시켰다.
한국군 파병은 공산주의로부터 폐허가 된 베트남민중을 구하기 위한 과정으로 이미지화했다. 자연스럽게 ‘구원자’가 벌인 학살은 미디어에서 사라졌다. “맨주먹으로 2명의 적을 생포한 장하사”(1967년 11월호 여원), “울려고 내가 왔나 싸우려고 내가 왔지, 낯선 월남 땅의 청룡소총수”(1969년 8월31일자 선데이서울) 등은 베트콩을 때려잡는 군인의 용맹함을 강조했다.
▲ 베트남파병 당시 포스터. 박정희 정부는 '타도하자 베트콩', '평화의 십자군' 등의 포스터를 통해 베트남전 참전을 독려했다.
또한 “청룡포병대대 용사들은 푸옥 록 마을에 아담한 팔각정을 지어 주고 60세 이상의 노인 58명을 초대하여 인삼주 맥주, 그리고 아리랑 담배로 경로회를 베풀어 주었다”(1966년 9월호 여원)처럼 시혜를 베푸는 모습도 등장했다. 한국전쟁에서 미군이 한국에 행했던 일과 흡사하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한국 여성은 한국군을 돕는 역할로 묘사된다. 주로 ‘현모양처’, 군인들을 위로해주는 어머니의 따뜻함, 남편·아빠가 없는 가정에서 여성의 어려움 등을 강조하며 후방에서 전장을 돕는 국민의 역할을 담당하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모성은 근대의 발명품이라고 알려졌지만 전쟁이나 징병제가 유지되는 현 한국 상황에선 예외였다.
실제 베트남전쟁 당시 탈영이 많았고, 가족들의 반발이 심했다. 국가가 가족들을 모아놓고 정신교육을 했다는 증언까지 있다. 국가와 미디어는 ‘현모’의 따뜻함으로 잔혹한 현실을 덮는다. ‘양처’로는 채명신 장군의 부인 문정인씨가 많이 등장했다. 문씨는 당시 이화여대에서 ‘홈커밍퀸’으로 뽑히는 등 ‘엘리트 여성’의 대표주자로 전쟁 당시 ‘내조의 롤모델’이 됐다고 해당 논문은 분석했다.
▲ 선데이서울 1969년 3월30일자. 베트남 위문공연을 간 한국 여성들의 모습
위문공연·위문편지 등은 역시 성애화한 형태로 군인을 위로했다. 선데이서울은 주 독자층이 남성이기 때문에 선정적인 이미지를 노출시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경향이 강했고, 여원은 주 독자층이 여성이기 때문에 ‘편지를 보내달라’는 요청이 주를 이뤘다는 차이도 있다.
김활란 이화여대 초대총장이 일제강점기 제자들에게 위안부 참여를 독려하고, 한국전쟁 당시엔 학생들을 동원해 ‘파티대행업’에 나섰던 것은 베트남전 당시 이대에서 열린 파월가족위안의 밤 행사 등과 함께 국가가 바라는 여성의 역할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아무리 지독한 냄새가 난다고 할지라도 결국 닭고기보다도 소고기보다도 우리 병사들의 입맛을 끄는 것은 김치이고 고추이고 마늘입니다”(여원 1966년 9월호)와 같이 파월장병에게 씨앗 보내기 운동, 김치보내기 운동 등이 강조됐다. 저자는 “‘국민화’가 강해지고 ‘상상의 공동체’는 더욱 공고화된다”며 “그것을 비판하는 초월적이고 역사 외재적인 관점을 갖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쟁국가-군인-한국여성’의 위계가 뚜렷해지면서 권력은 강한 동원력을 갖게 됐다. 이때 발산하는 에너지는 폭력이 아니라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 정도로 여겨졌다. 다음은 1967년 7월호 여원에 실린 소설형식 기사의 한 부분이다. ‘꽁가이’는 베트남말로 여자, 소녀란 뜻으로 성차별적인 단어다.
“오늘 허길주 하사 분대는 베트콩 꽁가이 하나를 차고 와야 해”
“염려 마십시오. 입으로 꼭 깨물어 뜯어도 비린내도 나지 않는 싱싱한 처녀를 끌고 오겠습니다”
여성의 몸은 남성의 식민지였고, 베트남은 ‘한국 내부의 식민지’였다. 논문은 베트남전쟁 당시 미디어가 베트남여성은 베트콩의 악함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거나 한국군의 치어리더 역할로 활용되는 등 ‘성적인 동물’ 이하로 표현됐다고 지적했다. 열등한 베트남여성이 한국 남성과의 결혼을 통해 문명화되는 판타지도 드러난다.
▲ 여원 1967년 2월호. 월남의 신부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벌인 수많은 성폭행과 양민학살은 이런 토대에서 발생했다. 한국군은 80여건에 걸쳐 약 9000명의 민간인들을 집단학살했다. 베트남엔 3기의 한국군 증오비와 50여기의 위령탑이 서있다. 한국사회는 이를 은폐하는 쪽에 가까웠다. 베트남전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전쟁특수’를 누린 사건 수준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등에 공식 사과하지 않았다. 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문명금·김옥주씨가 생전 모은 돈을 베트남전쟁 진실위원회에 기증했는지를 고민해보면 한국군이 벌인 만행을 정치인의 말로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한국 정부가 나서서 비용과 노력을 들여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가해 주체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동시에 그런 자세를 일본 정부에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언급한 “마음의 짐”에는 이런 것들이 포함됐을까. 한-베 평화재단은 지난 16일 “진정한 사과는 가해사실에 대한 인정과 책임이 전제돼야 한다”며 “문 대통령의 영상 ‘사과’가 형식적인 외교적 수사로 끝나지 않기를” 기대했다. 이어 “그 길에 언론의 바른 역할도 기대해 본다”고 덧붙였다.
공수처 설치, 노무현 대통령 죽음 ‘한 풀이’로 몰고 간 조선일보 1122 미디어오늘
문재인 정부 ‘조각’이 완료됐다. 조중동은 일제히 사설을 내고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임명을 비판하고 나선 반면 한겨레와 경향은 스트레이트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전했다.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논의가 난항을 겪는 가운데 보수신문은 검찰의 문제를 언급하는 대신 ‘문재인 대통령의 개인적 한풀이’ 프레임을 강조하고 나섰다.
공수처 설치, 한국당은 왜 막아서나
문재인 정부 ‘사법개혁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렸다.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에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논의가 공전되면서 연내처리가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 세 번 열린 소위에서 여야 의원들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여당은 공수처장 후보를 야당에서 모두 추천하는 안을 제시했다. 공수처 설치가 야당을 향한 ‘칼’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그러나 한국당은 ‘공수처 설치 반대’를 당론으로 제시하며 “더 이상 각론을 다룰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맞섰다. 여상규 한국당 의원은 “통과 가능성 없는 법안을 자꾸 올리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여당이 파격적인 안을 제시했음에도 한국당이 ‘협상’의 여지를 두지 않는 데는 최근 야권 인사에 대한 수사와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일보는 “최근 최경환·원유철·이우현 의원 등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 정치권의 시각”이라며 “한국당의 반대 기류는 최 의원에 대한 검찰의 국회 의원회관 압수수색이 진행된 후인 20일 밤부터 확연히 강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겨레는 검찰 출신 의원들이 많은 자유한국당의 특성상 ‘검찰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결과’라는 의심을 내놓았다. “합리적인 반대 논리나 타당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역대 국회마다 검찰개혁이 실패한 것은 검찰 출신 의원들의 이해가 작용한 탓이 컸다. 이번에도 검찰 출신 야당 의원들이 배후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공수처가 신설되면 검찰의 권한이 공수처로 이양되기 때문에 검찰기능이 약화된다.
‘개인적 한풀이’로 몰고 간 조선·동아
반면 조선과 동아는 ‘검찰 무력화’ 프레임으로 몰아세웠다. 공수처가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라는 목적은 표면적일 뿐이고 검찰에 대한 현 정부의 피해의식과 불신이 검찰이 아닌 또 다른 ‘수사기관’을 만들게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조선일보는 “일부에서는 적폐청산 수사에 속도를 내던 검찰이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사정의 칼 끝을 정치권 전체로 확대하는 시점에서 청와대가 공수처 카드를 꺼낸 것에 주목하고 있다”면서 “검찰 무력화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라는 ‘일부의 주장’을 전했다.
▲ 22일 조선일보 보도.
또한 조선일보는 “검찰 개혁 못한 게 한으로 남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제목으로 뽑아 3단 기사로 처리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의 검찰개혁 과거 발언 타임라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과 검사들의 대화 △검찰의 참여정부 대선자금 수사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을 거론했다.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노무현 정부가 검찰개혁 의지는 있었지만 시기를 놓치면서 개혁에 실패했고 이것이 결국엔 노 전 대통령 죽음으로 이어졌다는 게 문 대통령의 기본 인식”이라며 “문 대통령의 책 곳곳엔 검찰과의 뿌리 깊은 악연이 언급돼 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 검찰이 그동안 저지른 비리와 권력과 결탁해온 문제는 제대로 언급되지 않았다. 공수처 설치가 검찰에 대한 ‘보복’이자 개인적 ‘한풀이’처럼 보이게 하는 프레임이다.
지금, 행복하십니까](5)성장의 결과보다 방향 중요…분배 잘되는 나라가 행복했다 1122경향
ㆍ노르웨이, 물질보다 삶의 질 높고…부탄, 국민 행복지수로 정책 결정…일본, 생활만족 높지만 미래 불안
.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들이 볼 때 한국은 동경의 대상이다. 세계은행 자료를 보면 1960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58달러로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170달러), 가나(183달러)보다 적었다. 말레이시아(235달러), 필리핀(252달러) 등 동남아 국가와는 격차가 꽤 컸다. 그랬던 한국이 60년도 안돼 세계 30대 부국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해외에서 한국을 보는 것만큼 한국민들은 경제적 성취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이 괴리는 행복도에서도 나타난다. 유엔의 ‘세계행복리포트 2017’을 보면 한국의 행복순위는 56위로 태국(32위), 대만(33위), 말레이시아(42위)에 뒤진다. 심지어 한국은 경제력이 크게 작은 아프리카 알제리(53위)보다 행복도가 낮다. 이런 경향은 1인당 3만달러 시대가 열린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게 문제다. 계속해서 성장담론에 매달리는 것이 맞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비슷한 경제력을 가진 나라 중에서 한국은 행복도가 가장 낮은 나라”라며 “정부 정책이 GDP에 매몰되기보다 국민생활을 향상시키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 성장과 행복, 나라마다 사연이 다르다
경향신문이 취재한 노르웨이, 일본, 부탄, 그리고 탄자니아는 부와 행복의 상관관계가 각기 달랐다. 부와 행복도는 결코 비례하지 않았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더 나은 삶의 지수 2017’ 1위는 노르웨이였다. 유엔의 ‘세계행복리포트 2017’ 1위 국가도 노르웨이였다. 노르웨이는 올해 행복과 삶의 질을 평가하는 국제기구 평가에서 1위를 휩쓸고 있다. 노르웨이의 1인당 GDP는 7만812달러(2016년 세계은행 발표 기준)로 세계 4위다. 돈도 많지만 국민행복은 그보다 더 높다. 실제 OECD 자료를 보면 노르웨이의 삶의 질은 9.6점(10점 만점)으로 물질적 상태(8.8점)보다 높다. 노르웨이가 단순히 ‘돈이 많아서 행복한 나라’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만큼 정책적 노력을 많이 했다.
노르웨이 사회의 행복도를 끌어올리는 복지제도와 일·가정 양립 환경은 사회구성원들이 싸우면서 성취한 것들이다. 노동자와 사용자들은 100년 전부터 노동시간 단축을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그 결과 대부분의 노르웨이 사람들은 주당 37.5시간 아래로 일한다. 시간이 많으니 틈만 나면 자연으로 놀러 가고, 아이도 제 손으로 직접 기르니 행복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고,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삶의 질’을 훼손하지 않는 관점에서 문제풀이에 접근하고 있다는 의미다.
부탄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아니지만 ‘가장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라는 사실을 취재팀은 확인했다. 정부는 국가총행복(GNH)을 토대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다. 예컨대 GNH가 낮은 지역에는 별도로 막대한 재원을 투입한다. 제아무리 중요한 개발정책이라도 환경오염 등으로 인해 주민들의 행복도가 낮아진다면 거부된다. 환경영향평가가 아닌 ‘행복영향평가’인 셈이다. 부탄이라고 유토피아는 아니다. 지난 10년간 8.6%의 가파른 성장 속에 청년실업률은 10% 안팎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자살률도 높아지고 있다. 서구 문물 유입에 따른 서구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행복에 대한 개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그럼에도 성장을 위해 효율성을 강조해온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적지 않다.
‘한국의 미래’인 일본은 여전히 경제의 양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면서 주관적 행복도를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성장률과 1인당 소득, 청년실업률 등 거시지표가 최근 개선되면서 생활만족도는 높아지지만 그대로 행복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에는 만족하지만 미래에 불안을 느끼는 경향성은 되레 확대되고 있다. 미래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어느 정도 포기하고 현실의 만족에 집중하는 ‘작은 행복’ 현상이 확대되는 이유다. 민주당 내각은 주관적 삶의 만족도를 높이려는 고민을 했지만 자민당 내각으로 바뀌면서 양적 경제성장이 다시 강조됐다. 한국도 성장률, 고용률 등 지표에 매달린다면 일본의 뒤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 거시지표는 향상돼도 국민들은 불행한 괴리가 계속될 수 있다는 의미다.
빈국 탄자니아의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소는 ‘기회 상실’이었다. 무너진 공교육은 신분상승 기회를 박탈했다. 부정축재와 부의 대물림에 따른 빈부격차는 노동의욕을 꺾는 것으로 보였다. 60년간 계속되는 1당 체제는 정치적 무기력증도 불러왔다. 탄자니아에서는 한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촛불집회에서 비롯된 평화적 정권교체를 부러워하는 지식인층이 많았다. 다만 매년 7% 넘는 초고속 성장에 마구풀리 행정부의 개혁정책은 향후 탄자니아의 미래에 기대를 갖게 했다.
하혁진 주OECD 주재관은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행복도를 일률적으로 평가하기는 힘든 구석이 있다”며 “경제지표, 교육, 환경, 노동 등 각 국가의 부족한 부분을 파악해 이를 만회하려는 노력을 해야 행복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 행복지수, 정책으로 반영돼야
23일 대전 통계센터에서는 통계청과 한국 삶의 질 학회가 주최하는 ‘국민 삶의 질 측정 워크숍’이 열린다. 이 자리에서는 청소년, 노인, 여성 지표를 어떻게 측정하고 정책적으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논의한다. 주제 발표는 통계청을 비롯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한국노동연구원, 경기연구원 등이 맡았다. 수원시와 경북도도 참석한다. 중앙부처에서는 보건복지부가 참석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 전체를 조율하는 총리실이나 기획재정부는 보이지 않는다.
OECD 주요국들과 달리 한국에서 행복지표는 참고용 통계에 불과하다. 정책적으로도 복지·고용 등 사회 분야지 경제가 다룰 분야는 아니라는 인식이 강하다. 기재부는 GDP, 고용률, 실업률 등 전통적인 거시 경제지표에 주력하고 있다. 행복도를 들여다보는 주관 부서는 딱히 없다. 한국개발연구원 등이 내년 한국형 행복지수를 개발하더라도 정책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어진다. 학계, 언론도 GDP에 함몰된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기재부 당국자는 “행복도는 아직 미진한 부분이 많아 국가 전체를 보는 지표로 쓰기엔 힘들다”며 “별도로 행복지표나 지수를 들여다보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가 GDP에 집착하는 또 다른 이유는 행복도는 측정하기 힘들뿐더러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행복도를 높이는 추진 체계를 만들어 집행한다고 해도 국민들이 체감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5년짜리 단임정부로서는 제대로 추진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 역시 ‘국민행복시대’를 내세우면서도 국민행복도를 높이기 위한 차별화된 정책을 제대로 펴지 못했다. 이런 고민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도 정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어젠다를 들고나오면서 정책이 바뀌고 있다.
일본 행복 연구 권위자로 알려진 야마우치 나오토(山內直人) 오사카대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1년 민주당 정권 시절 삶의 질에 대한 조사를 했지만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행복 연구의 중요성이 떨어지면서 정책적 지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며 “무엇보다 어떤 정권이 되어도 행복에 대해 계속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앙정부와 달리 지방정부에서는 행복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민선시장 시대가 자리를 잡으면서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최고의 관심사가 됐기 때문이다. ‘시민이 행복한 서울’을 비전으로 잡은 서울시는 2013년부터 88개 지표를 망라한 생활지표를 발표하고 있다. 미세먼지 농도 등 정책지표와 함께 가구원수, 초혼연령 등 기술통계도 함께 공개한다. 시의회는 ‘행복조례’도 추진하고 있다. 서윤기 시의원이 주도하는 행복조례를 보면 행복증진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시행, 행복지표 개발과 측정·보급, 행복영향평가 도입 등을 담고 있다.
경기연구원도 올해 처음으로 ‘삶의 질’을 조사해 발표했다. 주거, 행정, 복지, 노동, 소득 등 경기도의 종합적인 삶의 질을 측정하기 위해서다. 경북도, 충남도 등도 행복도에 관심이 많은 지자체로 손꼽히지만 아직까지 체계성은 뒤떨어진다고 평가된다. 황금회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요한 것은 지속적이고 꾸준한 연구”라며 “효과적인 데이터가 수립되면 경기도에 맞는 정책대안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행복지수가 실생활을 바꾸는 지표로 쓰이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양해’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여유가 필요해서다. 박진 교수는 “손에 잡히는 급격한 변화를 기대하기보다 몇 정권을 거치는 꾸준하고 장기적인 개선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기대감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며 “‘결과’보다는 ‘방향’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감시하고 평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시숲, 미세먼지 저감 효과 큰데 예산은 되레 깎였다
ㆍ숲 1㏊당 대기오염 물질 연간 168㎏ 흡수…도심 열섬현상 완화도
ㆍ서울·경기·인천, 1인당 도시숲 면적 WHO 최소기준 크게 못 미쳐
ㆍ2011년 예산 834억·올해 677억…황주홍 의원 “도시숲 확충 필요”
“도심에 거대 인공숲인 한밭수목원이 생겨난 뒤 공기가 몰라보게 깨끗해졌어요. 여름철에는 한결 시원해졌고요.”
대전 둔산지구에 사는 김모씨(53)는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한밭수목원 덕분에 쾌적한 생활을 하게 됐다고 만족해한다. 국비·지방비 등 297억원을 투입해 2005년 문을 연 국내 최대 인공수목원인 한밭수목원(면적 38만6000㎡)은 ‘도심의 허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수목원 내 생태숲·관목원·야생화원·습지원 등에 1504종 60만8000본 나무와 풀이 숲을 이루어 시민들의 안식처로 자리 잡았다.
미세먼지가 증가하고 지구온난화가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한밭수목원과 같은 ‘도시숲’의 존재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도시의 미세먼지를 줄이고 열섬현상(도심 온도가 주변 지역보다 높게 나타나는 현상)을 완화시키는 등 도시가 떠안고 있는 환경 문제를 줄이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정부의 도시숲 관련 예산은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황주홍 국민의당 의원이 21일 산림청 등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5년 기준 서울의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23㎍/㎥로 세계보건기구(WHO) 권고기준(10㎍/㎥)을 2배 이상 초과하고 있다. 이는 도쿄(16㎍/㎥), 런던(15㎍/㎥) 등 선진국 주요 도시에 비해서도 높다. 2015년 서울에서 25일 동안 폭염주의보가 발령되는 등 최근 들어서는 폭염 피해도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등 국내 대도시가 안고 있는 미세먼지 등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도시숲 확대가 손꼽힌다. 도시숲을 포함한 숲은 1㏊당 연간 168㎏의 미세먼지와 이산화황·이산화질소·오존 등의 대기오염 물질을 흡수한다고 알려졌다. 도시숲이 있는 도심은 숲이 없는 도심에 비해 미세먼지 농도는 40.9%, 부유먼지(PM10) 농도는 25.6% 각각 낮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나뭇잎 표피세포의 굴곡, 섬모, 돌기, 왁스층 등이 미세먼지 등의 대기오염 물질을 흡착·흡수하는 덕분이다.
도시숲은 여름철에 주변 기온을 낮춤으로써 폭염과 도심 열섬현상을 완화시키는 데도 탁월한 기능을 한다. 도시숲 기온은 도심에 비해 최대 3∼7도 낮다. 위성영상으로 기온차를 분석해 보면 서울 홍릉숲은 주변 도심보다 표면온도가 최소 5도 이상 낮게 관측되곤 한다.
국내는 인구밀집지인 수도권을 기준으로 할 때 1인당 ‘생활권 도시숲’ 면적이 WHO 권장기준인 9㎡에 못 미친다. 수도권의 1인당 생활권 도시숲 면적은 서울 5.32㎡, 인천 7.56㎡, 경기 6.62㎡다. 독일 베를린과 영국 런던 등은 WHO 기준의 3배에 이르는 도시숲을 확보하고 있다.
수도권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도시숲 확충이 시급하지만 국내 도시숲 관련 예산은 2009년 944억원, 2011년 834억원, 올해 677억원 등으로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황 의원은 “우리나라는 전체 국민의 92%가 도시에 거주하기 때문에 도시숲 조성의 필요성이 더욱 크다”며 정부 차원의 관심을 촉구했다.
가계빚, 3분기에 31조원 급증…1400조 넘었다 1122한겨레
한국은행 “가계신용 1419조1천억원” 발표
하반기 입주물량 많아 주담대 증가 지속
예금은행 기타대출 7조원 늘어 사상최대
올 3분기에 가계부채가 31조2천억원 늘어나 누적 가계부채가 1419조원1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국은행이 22일 내놓은 ‘2017년 3/4분기 중 가계신용(잠정)’을 보면, 가계대출은 전 분기 대비 28조2천억원이 늘어난 1341조2천억원, 판매신용은 전 분기 대비 3조원 늘어난 78조원으로 집계됐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금융기관 등에서 빌린 가계대출과 신용카드·할부금융 등을 통한 외상 구매인 판매신용을 더한 것으로, 사채를 제외한 가계의 모든 빚(부채)을 뜻한다.
3분기 가계부채 증가액 31조2천억원은, 올 1분기(16조6천억원)와 2분기(28조8천억원) 증가액을 뛰어넘는 수치다. 가계부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계대출은 예금은행(15조원), 저축은행·신협·우체국 등 비은행예금취급기관(4조3천억원), 보험·연금·카드사 등 기타금융기관(8조9천억원) 모두에서 고루 증가했다.
예금은행은 주택 매매와 입주물량 증가에 따라 주택담보대출이 확대된 데다 신용대출까지 증가했다. 한은 경제통계국 문소상 금융통계팀장은 “정부가 8월2일 부동산대책이 발표됐지만, 기존 계약 물량이 있어 7~8월은 주택거래량 자체가 많았다. 9월에는 줄어들었지만 분기 합계로는 전 분기에 비해 늘었다”며 “2015년 아파트 분양이 많았는데 올 하반기 본격적인 입주가 시작된 것도 (주택담보대출 증가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은 올 1분기 7만4천가구, 2분기 7만7천가구에서 3분기에는 13만3천가구로 뛰었는데, 4분기에는 12만가구(잠정)로 더 늘어날 예정이다.
예금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기타대출은 7조원이 증가해 2006년 통계작성 이후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문 팀장은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뱅크의 신용대출이 2조7천억원가량 추가된 데다 일반 은행들도 신용대출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주택금융공사·주택도시기금 등 공적금융기관, 보험사, 카드·할부사, 증권사, 카드사·캐피탈사 등을 포괄하는 기타금융기관의 대출 규모도 1분기(7조9천억원), 2분기(8조6천억원)에 늘어난 8조9천억원에 달했다. 다만, 저축은행·신협·우체국·새마을금고 등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3분기 대출 증가액은 리스크관리 강화 등에 따라 2015년 1분기(1조5천억원) 이래 가장 낮았다.
판매신용은 추석연휴 신용카드 이용금액 증가 등으로 전 분기(1조8천억원)에 비해 1조원 넘게 늘었다.
자료: 한국은행
한국은행이 아닐 발표한 3분기 가계부채 증가액 31조2천억원은, 10월 초 금융위원회·금감원이 내놓은 ‘3분기 가계부채 속보치’(24조4천억원)에 비해 6조8천억원 많은 수치다. 이는 두 기관의 계산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금융위·금감원과 달리 한국은행 통계에서는 신용카드 할부 등 판매신용(3조원)을 비롯해 주택도시기금과 장학재단 대출, 연금기금·증권사·대부사업자 대출 등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문 팀장은 “신협이나 상호금융에서의 조합원 대출을 금융위 쪽에서는 가계부채로 계산하지만, 한국은행은 개인대출 형식을 띤 사업자금 대출은 통계에서 제외한다”며 “수치가 다르기보다는 포괄하는 기관의 차이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경제 최대리스크는 가계부채·북한·미 금리”
국내외 금융·투자 전문가들이 올 하반기 한국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로 가계부채 문제와 북한 관련 지정학적 리스크를 손꼽았다. 한국은행이 20일 내놓은 ‘2017년 하반기 시스템리스크 서베이’를 보면, 응답자들은 한국 금융시스템의 주요 리스크 요인으로 가계부채(87%)와 북한 관련 지정학적 리스크(82%), 미 연준의 금리인상 등 각국의 통화정책 정상화(75%), 부동산시장의 확실성(56%)을 손꼽았다. ‘시스템리스크 서베이’는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의 리스크를 파악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2012년부터 매년 두차례 국내·외 금융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유선 설문조사로, 올해 하반기(10월30일~11월6일)에는 해외 금융기관 한국투자 담당자 8명, 국내 금융기관 경영전략·리스크 담당 부서장과 주식·채권·외환 등 금융시장 참가자 60명을 상대로 조사가 이뤄졌다.
응답자들이 1순위로 응답한 항목 비중도 가계부채(35%), 북한 관련 지정학적 리스크(28%), 연준의 금리인상 등 주요국 통화정책 정상화(24%) 순이었다. 발생할 경우 충격이 큰 리스크로도 가계부채와 북핵 문제를 답한 이들이 많았으며, 다만 발생 가능성이 높은 리스크로는 미국 금리인상 등 각국의 통화정책 정상화라고 응답한 이들이 많았다. 발생 시기로는 북핵 리스크와 통화정책 정상화는 1년 이내 단기, 가계부채와 부동산시장 불확실성은 1~3년 사이 중기에 발생 가능성이 크다는 답변이 많았다.
한은은 “올 상반기 조사 때도 가계부채(85%)와 지정학적 리스크(71%)가 가장 큰 리스크로 지목됐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두 요인을 지목하는 응답 비중이 상승했다. 또 상반기 조사에서는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강화(51%)와 취약업종 기업 구조조정(44%)도 주요 리스크 요인으로 손꼽혔는데, 이번에는 두 요인이 빠지고 부동산시장 불확실성이 주요 리스크로 새로 편입됐다”고 설명했다. 조사 항목 가운데는 한국 금융시스템 안정성에 대한 신뢰도가 포함돼 있는데, 신뢰도가 ‘높다’는 답변은 40%에서 47%로 높아지고, ‘낮다’는 답변은 4%를 유지했다.
이국종 작심 브리핑 "응급환자 죽는 나라에 살려 왔겠나" 1122프레시안
귀순 병사 브리핑서 한국 의료 실태 호소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귀순한 북한 병사의 상태를 알리는 브리핑에서 이국종 아주대 중증의료센터장이 한국의 응급 의료 현실을 적나라하게 질타했다.
2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총상을 입은 채 귀순한 북한군 병사의 회복상태 브리핑을 한 이국종 교수가 환자 인권 문제에 관해 심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간 여러 차례 한국 의료 현실을 비판해 온 이 센터장이 여론이 초미의 관심을 가진 이번 일을 예로 들어 다시금 비판의 날을 세움에 따라 향후 응급 의료계를 둘러싼 논란이 되살아날 것으로 보인다.
22일 이 센터장은 아주대 중증의료센터에서 2차 브리핑을 열어 "환자를 치료하는 건 이벤트가 아니"라며 "중증외상센터가 더는 환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인데, (여론이 관심을 가지는) 귀순 병사 말고 (치료가 필요한) 다른 환자가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이어 적절한 응급 치료가 어려운 다른 환자를 두고 "지금 목숨과 사투를 벌이는 이가 많다"며 "기자 여러분이 지엽적인 것만 보지 말고, 의료 현실의 이면을 들여다보시라"고 강조했다. 취재진이 궁금해 한 귀순 병사의 상태 말고 부족한 응급 의료 현실을 강하게 강조한 셈이다.
이 센터장은 작심한 듯 "제가 얘기해 보니 북한 병사는 자기 의사로 (남한으로) 넘어왔는데, 그 사람이 빗발치는 총알을 뚫고 내려온 이유는 한국의 긍정적 모습을 기대해서지, 응급 환자를 병원이 수용하지 못해 죽어가는 모습을 보려고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제 대한민국 청년으로 살아갈 북한 군인이 한국에 기대하는 모습은 자기가 어디서든 일하다가 위험한 일을 당해 다쳤을 때 30분 내로 응급 수술적 치료가 이뤄지는 나라"라며 "한국에 살면서 사고 났는데, 정작 그때는 갈 곳도 없고, 전화 걸 데도 없고, 아는 끈이 없어서 병원에 전화 한 통 못해 허무하게 생명을 잃는다면 그가 왜 여기 넘어왔겠느냐"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 센터장은 아덴만 작전 등을 통해 이름이 알려지자 기회가 되는 대로 한국의 부족한 응급 의료 현실을 지적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자신이 의료계에서 '왕따'에 가까운 존재라고 자괴감을 표하기도 했다.
이 센터장이 이처럼 의료 현실을 지적하는 이유는 한국의 중증의료센터가 열악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교수에 따르면, 중증외상센터가 태부족하고 의료진도 부족해 살릴 수 있었음에도 살리지 못한 환자 비율이 35%에 이른다. 사고 현장에서부터 이송 단계에 이르기까지 골든아워를 지키지 못해, 사망한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중증외상센터를 찾는 이 대부분은 비정규직 노동이나 위험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로 알려졌다. 이 센터장이 중증외상센터를 "국가가 국민에게 반드시 제공해야 할 사회안전망"이라고 그간 강조한 이유다.
하지만 노동 환경이 열악하고 선호하는 의료진도 부족해 전문의부터 태부족한 게 중증외상센터의 어려움을 그린 MBC 드라마 <골든타임> 등이 이런 현실을 그린 바 있다.
이 센터장은 한편 귀순 병사의 건강 상황에 관해서는 "해당 병사는 주한 미군이 30분 만에 현장에서 센터로 이송해 왔다. 이것이 미국, 일본, 영국의 스탠더드"라며 "현재 환자의 의식은 명료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다만 "환자가 심리적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세를 보이고 있다"며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관한 평가와 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적어도 수일 이상 중환자실 치료를 이어갈 예정"이라며 "이후 환자의 이송과 치료에 관해서는 관계 기관과 협의해 결정할 문제"라고 전했다.
북한 귀순병은 왜 국군병원으로 이송되지 않았을까
[민미연 포럼] 사명감 있는 군의관 양성이 군의료 개혁의 시작
얼마 전 판문점으로 북한 군인이 귀순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총상을 입었다. 해당 군인은 유엔사 헬기로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 이송되어 여러 차례 수술을 받은 상태다. 이 사건을 접하며 누구나 의문을 품은 것은 '북한에서 귀순하다 총상을 입은 군인을 왜 국군병원이 아닌 판문점에서 거리도 먼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이송했느냐?'는 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총상환자를 제대로 치료할만한 능력이 우리 군 병원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에서 총상환자를 접하는 것 자체가 군과 민간 모두 드문 일이다. 그러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군이 존재하듯 군의료 체계 역시 전쟁과 같은 상황을 대처할 능력을 갖춰야 함은 당연하다.
군의료에 총상치료 능력은 꼭 필요하지만, 이를 갖추는 건 쉽지 않다. 몇 년 전 영국 군의관들이 돼지를 대상으로 치료 실습을 하다가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영국군 외과 군의관들은 아프간 현지 야전병원에 파병되기에 앞서 덴마크와 공조하에 코펜하겐 근교 NATO군 훈련캠프에서 돼지를 대상으로 총상환자 실습을 했다. 마취제를 투여한 돼지를 숲에 옮긴 후 저격수가 특정 부위에 사격을 하고 이를 치료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돼지 18마리가 폐사했고 동물보호단체의 극렬한 항의를 받은 바 있다.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한국보다 훨씬 높은 덴마크와 영국이 이러한 방법을 은밀히 사용할 정도로 총상환자 치료 임상경험은 군의료에 절박한 역량이다.
총상 치료 사안을 차지하고서라도 일단 우리나라 군의료의 고질적 문제는 군에 복무 중인 거의 모든 군의관이 병 계급과 마찬가지로 징병되어 온 인력이란 점이다. 병사들이 하루빨리 제대하고 싶어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군의관 역시 마찬가지이다. 특히나 고임금을 향유하는 의사라는 직책에 비해 월급은 박봉일 테고, 성취감도 부족한 시스템이기에 더 그러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군 장교 경험은 취업이나 사회생활에 상당 부분 도움이 되고 장교나 부사관은 선호 받는 직업이지만, 민간에서 높은 처우를 받는 의사에게 군 복무는 결코 매력적이지도 경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10만 원이 조금 넘는 월급을 받으며 온갖 고생을 하는 병사들 입장에선 군의관으로 편히 군 생활하며 장교 월급 받는 게 부럽겠지만, 상당수의 당사자에겐 그저 아까운 기회비용일 뿐이다.
총상환자 문제를 비롯해 군의료 체계 개혁을 위해 필요한 핵심 과제는 바로 인력 변화이다. 군의료에 사명감을 갖고 군의관을 업으로 선택하는 전문군의관이 늘어나야 군의료 바로 세우기를 시작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국방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을 제안한다. 군의관에 종사할 이들을 사관학교처럼 별도로 선발해 양성하자. 그 형태가 국방의학전문대학원 같은 '의전원' 체제냐, 각 군 사관학교식의 학부냐는 형식은 면밀히 검토해 결정하면 될 것이다. 신설되는 국방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정원은 최소 100명 이상 되어야 한다. 왜냐면 의과대학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진료와 임상경험을 갖춘 교수진을 바탕으로 다수의 과목이 운영되어야 하며, 원활한 교육을 위해 일정 규모 이상 정원은 필수이다.
또한 군의료 특성상 다수의 역량 있는 외상외과 전문의 양성을 위해 수련의 과정은 외상센터가 특화된 주요 대학병원이나 총상환자를 자주 접할 수 있는 미국 병원 등에서도 가능하도록 다방면의 지원이 필요하다.
물론 국방의학전문대학원이 설립된다고 해서 군의료가 당장 나아지진 않을 것이다. 수련 기간을 감안해 최소 10년 이상 시간은 지나야 조금씩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더불어 인력뿐 아니라 전반적 시스템 개선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가장 빠른 시점이다. 하루빨리 국군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의 구체적 계획을 세우고 군의료 인력 양성체계 혁신을 실천하자. 특히나 의대 정원 증가를 수반하므로 의사협회 등의 반대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논리적 대비도 필요하다.
국방의학전문대학원을 통해 사명감을 가진 군의관이 배출된다면 군의료 전반의 개선뿐 아니라 여러 긍정적 파급효과도 예상된다. 첫째, 공보의 확보가 좀 더 수월해진다. 군필자들이 다수 진학하는 의학전문대학원 신설과 의사면허 소지자 중 여성 비율이 늘면서 군의관과 공보의 확보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방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은 그 숫자만큼 군의관 대신 공보의를 배치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므로 심각한 인력난을 겪는 농어촌 지역 공중보건의 확보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둘째, 외상외과 분야 전문인력 확대이다. 꼭 총상뿐만 아니라 각종 재난과 사고 시 이를 치료할 역량을 갖춘 외상외과 전문의가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국종 교수로 유명한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도 이 교수 외 중증외상치료 전문의가 없다(함께 근무하는 의사는 응급의학전문의). 군의료 특성을 반영해 국방의학전문대학원은 실력 있는 외상외과 전문의를 양성하고, 향후 민간인이라 할지라도 중대 외상이나 총상 등을 당한 긴급 환자 치료를 지역별 국군병원이 수행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 주치의 제도에 대해 언급하겠다.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에서 대통령의 주치의와 일부 민간의원 의사가 연관되어 큰 논란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당선 직후인 지난 5월 양방분야는 분당서울대병원 송인성 명예교수, 한방분야는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김성수 원장을 선임했다.
참고로 미국 대통령은 대학병원 교수가 주치의를 맡지 않는다. 현직 군의관을 대통령 담당 의사로 임명할 뿐이다.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가까운 존스홉킨스대학병원이 아닌 육군병원에서 진료를 받는다. 물론 미국을 꼭 따라하자는 건 아니지만, 대통령 담당의사에서 보여주는 미국의 시스템은 군 통수권자로서 배울만한 모습이다.
군의료에 대한 신뢰회복은 민간 대학병원에서 대통령 주치의를 선정하는 관례를 깨는 것부터 시작하자. 이를 통해 군 통수권자로서 위상을 확립하고 군의료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키워가자.
보수는 촛불 시대를 잘못 읽고 있다 1120시사인
바른정당 의원 9명이 탈당해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갔다. 자유한국당은 이제 116석이 되어 121석인 더불어민주당을 위협할 정도로 커졌다. 이것으로 보수 세력이 복원된 것일까?
바른정당 의원 9명이 탈당해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간다. 김무성 의원 등 8명은 11월9일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바른정당 대표권한대행인 주호영 원내대표만 11월13일 바른정당 전당대회까지 업무를 보고 탈당한다. 이로써 자유한국당은 116석으로 덩치를 키우게 된다.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의 121석과 불과 5석 차이여서, 향후 상황 변화에 따라 원내 1당 탈환도 노려볼 수 있다. 20석이던 바른정당은 11석으로 쪼그라들면서 교섭단체 지위도 잃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분열했던 보수의 주도권 경쟁이 일단 자유한국당 우위로 정리되는 흐름이다.
바른정당은 지난 1월24일 의원 33명이 속한 원내 4당으로 공식 출범했다. 바른정당은 탄생부터 ‘동상이몽 정당’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었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보수 개혁이 불가능하니 신당을 만들어 보수 혁신을 해야 한다는 기류가 한 축이었다. 대선 주자였던 유승민 의원, 오랫동안 ‘남원정’으로 불렸던 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정병국 의원 등이 이 노선을 대표했다.
하지만 실제로 집단 탈당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에너지는 따로 있었다. 유력 대선 주자였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거점이 될, 친박계 색채를 뺀 탄핵 찬성파 보수 신당이 필요했다. 반 전 총장을 불러들여 대선 경쟁력을 바탕으로 보수 진영을 주도하는 당으로 올라선다는 구상이었다. 이 경우 당시에는 새누리당 내에 남아 있던 20명 안팎의 ‘친반기문’ 그룹이 2차 탈당을 할 가능성도 유력했다. 이 ‘반기문 플랫폼’ 기획이 결정적인 집단 탈당의 에너지를 제공했다. 김무성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중심에 있었다.
두 기획은 모두 신통찮은 결과를 냈다. ‘반기문 플랫폼’ 기획은 반 전 총장이 출마 선언도 못하고 레이스에서 탈락하면서 허탈하게 실패로 돌아갔고, 바른정당이 보수 내부 경쟁의 대안으로 자리 잡는 데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 결과, 어정쩡하게 연합되어 있던 두 기획의 봉합선을 따라 균열이 일어났다. 대선 직전에 의원 13명이 탈당해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갔다. 이번 2차 탈당에서 9명이 나왔다. 의원마다 사유가 다르지만, 크게 보면 ‘반기문 플랫폼’ 기획에 끌렸던 인사들이 더 쉽게 복당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서 조문하는 추모객.
ⓒ시사IN 조남진 국가정보원 정치 개입 사건 당사자의 오피스텔 앞 대치 모습.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가족과 만나는 모습.
ⓒ시사IN 신선영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 모습.
이제 자유한국당에서는 어느 정도 자신감도 느껴진다. 이탈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재결집한다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는 어려워도 선전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현재 자유한국당이 차지한 광역단체 6곳을 다음 지방선거에서 지키지 못하면 대표를 사퇴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6곳은 수도권인 인천, 영남권인 부산·울산·경남과 대구·경북이다(경남은 홍 대표 본인의 지사직 사퇴로 현재 공석이다).
현실은 간단치 않다. 근본적으로 새누리당 분당의 원인이 해소되지 않았다. 새누리당 분당의 원인은 ‘정권 재창출 불가 판정’과 ‘보수의 정치적 파산’이었다. 전자에 대한 반응이 ‘반기문 플랫폼’이었다면, 후자에 대한 반응이 ‘보수 혁신 경쟁’이었다. 이제 전자는 지나간 문제가 되었고, ‘반기문 플랫폼’에 베팅했다 실패한 의원들은 모양새 나쁘게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거치며 보수가 정치적 파산 선고를 받았다는 현실까지 지나간 문제가 되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 제명에도 여론은 싸늘
이 질문을 자유한국당 지도부는 ‘못 들은 척’하고 있다. 홍준표 대표는 11월3일 박근혜 전 대통령 당적 제명을 대표 직권으로 의결했다. 여론 반응은 신통치 않다. 11월10일 나온 한국갤럽 정례조사에서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12%다. 지난주 9%보다 3%포인트 올랐지만, 보수 지지층의 복원과는 거리가 멀다. 한때 지지율 40%를 넘나들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평까지 들었던 보수의 전성기와는 비교하기도 어렵다.
왜 그럴까. 문제의 본질이 박 전 대통령 개인의 잘못만으로 가려질 성질이 아니라서다. 이회창 대선 후보 캠프에서 정치를 시작해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청와대와 정당을 넘나들며 일했고, 지금은 컨설턴트로 있는 한 보수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방선거는 물론이고 2020년 총선까지도 이길 생각은 하지 말라고 보수 쪽 지인들에게 말하고 다닌다. 유권자가 보수에 분노하는 정도가 결코 단발성이 아니다. 상황이 가볍지 않다.” 그는 보수 집권 9년 동안 벌어진 사건들 중에서도 세 가지를 지목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그렇게 돌아가시고, 세월호 참사가 나고, 박근혜 국정 농단이 터지고…. 지금 사람들 마음속에 이게 다 연결되어 있다. 나라를 맡겨놨더니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일어나느냐고 한 묶음으로 생각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이게 나라냐’는 구호는 탄핵 사태를 불러온 국정 농단 하나만 보고 나온 외침이 아니었다. 짧게는 박근혜 4년, 길게는 이명박·박근혜 9년에 대한 ‘종합평가’의 성격도 있었다. 단순한 무능이나 부패의 문제를 뛰어넘어, 한국의 보수 세력이 국가 운영을 맡기에는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그게 선거 한두 번에 바뀔 리가 있겠느냐고.” 컨설턴트는 한숨과 함께 덧붙였다.
‘중대한 하자’란 무엇일까. 두 차례 보수 정부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앞서 거론된 셋 말고도 두 장면을 더 꼽을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2012년 대선에서 펼친 국정원과 군을 동원한 정치 개입 사건,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2015년에 감행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다. 이 다섯 장면은 보수가 정치적·사회적 반대파를 대화 대상이 아니라 ‘적’으로 간주하고, ‘적’을 물리치기 위해 국가권력을 초법적·불법적으로 동원한 대표 사례다.
몇 걸음 더 뒷걸음질을 쳤다면, 한국은 더 이상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위치까지 밀려날 수도 있었다. 원로 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는 신간 <정치의 공간>에서 이렇게 쓴다. “냉전과 분단 조건하에서 보수는 민주주의 원리와 제도, 사회 통합의 문제를 소홀히 하더라도 정치적 헤게모니는 쥘 수 있었다. (…)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잘 보여주듯 한국 보수는 민주주의의 역전도 불사할 만큼 권위주의적 권력 행사를 서슴지 않았다. 억압적·이데올로기적 정부기관의 대선 개입, 언론 통제, 반대 세력에 대한 사찰과 정치적 배제, 이데올로기적 검열 등은 권위주의적 통치의 전형적 특징이다.” 보수 집권기 9년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권위주의로의 퇴행’이었고, 2016년 촛불집회는 주권자들이 퇴행을 결정적으로 막아낸 장면이었다.
그러므로 보수가 요구받고 있는 혁신이란 특정인(박근혜) 제명이나 당사 이전 따위 수준을 훌쩍 넘어선다. 권위주의로의 퇴행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필요하고, 헌정체제와 법치주의 원칙과 민주적 다원주의 원리를 훼손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 퇴행을 막아낸 주권자들의 마음에 다시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바른정당 기획의 한 축인 보수 혁신이란 이것이 성공할 때 의미가 있다.
바른정당은 당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종북몰이 보수’를 청산 대상으로 규정하는 등 의미 있는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난 7월 이혜훈 바른정당 당시 대표도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매카시즘을 반대한다. ‘문재인이 집권하면 김정은이 집권하는 거다’ 식의 종북몰이 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종북몰이는 한국 보수가 상대를 대화 대상이 아닌 ‘적’으로 낙인찍을 때 즐겨 사용해온 논법으로, 근본적으로 다원주의 원리와 불화하는 것이었다. 이를 청산 대상으로 규정한 것은 한국 보수의 뿌리 깊은 반(反)다원적 전통과 단절하려는 중요한 시도였다.
ⓒ시사IN 신선영 11월9일 바른정당을 탈당해 자유한국당에 복당한 의원들이 홍준표 대표(가운데)와 만세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런 의미 있는 시도가 자리를 잡기 전에 자유한국당의 중력에 당이 반토막 났다. 보수의 주도권을 잡은 자유한국당 내에서 제대로 된 혁신 논의가 분출하는 기색은 아직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제명으로 쇄신이 완수된 양 넘어가는 정도만으로도 친박계의 적지 않은 저항을 겪어야 했다. 정부를 맡겨도 좋을 세력으로 유권자들이 보수를 다시 봐줄 근거는 사실상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지독한 관성이다. ‘좋은 시절’을 오래 누려온 보수는, 자신들이 헌정체제와 법치주의 원칙과 민주적 다원주의 원리에 충실하다고 입증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다. 그보다는 진보·보수 양당 구도만 복원하면, 유권자 지형도 예전만은 못해도 얼추 생존은 가능한 수준으로 복원되리라 기대한다. 그러던 와중에 집권 민주당 정부가 민심을 잃으면 다시 기회가 굴러들어와 주리라고 기대한다. 현 상황을 타개하려 내놓은 해법이 보수 ‘혁신’이 아니라 ‘단일대오 형성’이라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지금 보수가 내놓는 해법은 양당 구도 복원이다. 2016년 촛불집회를 ‘단발성 이벤트’로 볼 때나 나오는 결론이다.
‘합리적 보수’에 구애하는 안철수 대표
자유한국당이 원하는 보수 지지층 복원이 보수 혁신을 수반하지 않는 이상, 거대한 유권자 블록이 대안을 찾지 못하고 허공에 뜨게 된다. 시장 자유를 선호하고 지나친 국가 개입에 반감을 갖고 있으며 대북 강경책을 지지하는 유권자층은 한국에 제법 두껍다. 이 유권자가 문재인 정부의 모든 정책을 지지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이 유권자 중에서도 헌정체제와 법치주의 원칙과 민주적 다원주의 원리를 훼손하는 정치세력은 아예 후보로 고려조차 하지 않는 성향이 있을 수 있다. 이 ‘헌정을 존중하는 보수주의자’들은 현재 마음을 둘 정당이 사실상 없다.
보수 유권자가 공중에 뜨면서 국민의당의 노선 투쟁도 불붙고 있다. 안철수 대표와 친안계가 노리는 포지션이 여기다. 친안계로 분류되는 한 수도권 의원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보수 유권자들이 지금 지지할 정당이 없다. 지금 자유한국당이 대표 보수 정당으로 돌아오면서 친박계도 은근슬쩍 함께 오는데, 이들을 극우로 주변화하는 게 국민의당의 사명이자 살길이라고 본다. 역사적 의미를 생각하면 바른정당이 비교섭단체가 되었다고 통합 논의가 사라질 이유는 없다”라고 말했다. 안철수 대표를 정점으로 하는 ‘국민·바른 통합 기획’은 국민의당 내에서 큰 파열음을 내고 있다. 박지원·유성엽 의원 등 호남 계열 인사들은 친안계가 그리는 그림이 무리수인 데다 사리에도 맞지 않다며 연일 안 대표를 성토하고 있다.
보수의 혁신과 재구성은 박근혜 제명과 기존 보수 세력 통합 정도로는 완수할 수 없는 과제다. 위기의 본질은 한국 보수가 손쉽게 헤게모니를 유지하던 기존의 전선이 해체되고, 오히려 다수 유권자가 보수를 헌정체제와 다원적 민주주의 ‘밖’에 있는 그 무엇으로 의심한다는 데 있다. 최장집 명예교수는 이를 압축해 표현했다. “좋은 시절은 끝났다. 보수는 존립하기 위해서라도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사실이 아직까지는 자유한국당 내에서 충분히 인식되지 않고 있다.
국회, 자기 특수활동비는 '모르쇠' 1122내일
상임위 활동 등 대부분 '특수하지 않은 항목' … 2018년에도 65억원 책정
'특수하지 않은 항목'으로 짜여진 국회 특수활동비가 도마 위에 올랐다. 국정원 등의 특수활동비를 감시하고 개혁과 관련한 법안을 심사해야 하는 국회가 자신들이 사용하는 '불투명한 특수활동비' 수술에 대해서는 미온적이라는 지적이다.
22일 국회에 따르면 내년 예산안에 반영된 국회 특수활동비는 65억7209만원으로 입법 및 선거관리 비용으로 책정돼 있다. 가장 많이 배정된 게 '입법활동지원'으로 18억5200만원이었다. 위원회 운영지원 15억4972만원, 사무처 기관운영지원 11억10만원, 특별위 운영지원 6억6694만원, 의원외교활동 5억5337만원 순이었다.
세부내역을 보면 교섭단체 운영지원, 국정감사 활동비, (상임)위원회 활동비, 국가사업검토 활동비, 국제회의 참석, 국회 운영협의지원 등 '특수하지 않은 항목'이 대부분이다. 영수증 첨부 없이 국회의장, 운영위원장 등 상임위원장, 간사 등이 나눠 쓰는 '쌈짓돈'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업무추진비, 사업추진비, 특정업무경비에도 국회운영협의 활동비, 의원특별활동비, 국정감사 활동지원, 국정감사활동 협의조정 등 특수활동비 세부내역과 비슷한 항목으로 예산이 짜여 있다.
특수활동비 편성이 가능한 '기밀성을 요하는 정보수집과 수사활동과 그에 준하는 국정수행활동'과 무관하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특수활동비 축소와 사용내역 공개에 대해 요구하기에 앞서 국회가 먼저 특수활동비를 줄이고 사용 세부내역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그동안 국회에 계류됐던 특수활동비 사용내역 공개를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최근 민주당을 중심으로 다시 법안을 발의하려고 하지만 여당 내부에서도 의견차가 크다.
민주당 정책위 핵심관계자는 "특수활동비는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서 "특수활동비 내역 공개 등 당의 공식 입장은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국회 사무처는 특수활동비 내역공개도 거부하고 있다. 사무처는 참여연대가 제기한 '국회 특수활동비 세부지출내역을 공개하라'는 행정소송 1심에서 패한 후 항소를 제기, 현재 재판에 계류중이다.
참여연대는 2015년 국회에 2011~2013년 회계연도 의정지원, 위원회운영지원, 의회외교, 예비금 세항의 특수활동비 세부지출 내역에 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소송을 냈다. 국회 사무처 핵심관계자는 "문재인정부의 방침이 중요하겠지만 국회에서 공개하게 되면 다른 부처들도 따라서 해야 하는 부담이 있어 항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참여연대 장유식 변호사는 "특수활동비의 투명성 확보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국회가 먼저 적극적으로 사용내역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벌=취업은 옛말...’ 박사 5명 중 1명 실업자 1122민중
24일 오전 졸업식이 진행된 성신여자대학교에서 한 졸업자가 학사모를 들고 서 있다.ⓒ고승민 인턴기자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고학력자 5명 중 1명이 실업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22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17년 국내 신규 박사학위취득자 조사결과 올해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들 중 취업을 하지 못한 실업자는 22.9%에 달했다. 취업 중인 박사는 43.4%, 취업확정은 30.9%였다.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박사도 2.8%에 달했다. 이는 고학력자에 대한 미취업자 비율을 조사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지난 2014년 첫 조사 당시 21.3%, 2015년 20.3%, 2016년 21.6%를 기록했다.
이 같은 결과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조사연도 2월과 전년 8월 국내 200여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얻은 수치다. 성별로는 여성 미취업자가 남성보다 높았다. 남성 박사 미취업자는 21.2%, 여성 박사 미취업자는 25.9%였다. 연령별로는 30세 미만이 35.4%로 가장 높았고, 30~34세가 32.9%, 35~39세 26.2%, 40~44세 14.3%, 45~49세 11.6%, 50세 이상 12.9% 등이다.
또한 수도권 박사의 미취업률은 비수도권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20.1%였던 수도권 박사 미취업자는 작년 22.5%, 올해 24.1%로 높아졌다. 비수도권 박사의 미취업률은 21.5%다.
‘방사능 우려’ 일본산 노가리, 원산지 바꿔친 나쁜업자들 1117
부산경찰청, 수입업자 A 씨 등 6명 검거.. “일본 현지 샘플조사 악용 범죄”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따른 방사능 오염 우려로 수입이 금지된 노가리를 대거 수입한 업자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이 공개한 어획 경로.ⓒ부산경찰청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따른 방사능 오염 우려로 수입이 전면 금지된 일본산 노가리(어린 명태)의 원산지를 속여 판매한 업자들이 경찰에 검거됐다.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수입업자 A 씨 등 3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7일 밝혔다.
A 씨 등은 지난 2014년 4월부터 1년 동안 후쿠시마 등 수입금지 해역에서 어획된 노가리 480t의 원산지를 ‘홋카이도’로 조작하는 수법으로 국내에 들여와 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두 차례에 걸쳐 수입신고가 7억1000만 원으로 들여와 국내에선 8억5000만 원에 팔아치운 것으로 드러났다. 방사능 지역 수산물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거둔 부당이익금만 1억4천여만 원에 달한다.
이들의 원산지 조작이 문제되는 이유는 정부가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해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자 이 일대 8개 현에서 나오는 모든 수산물의 수입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현, 이바라기현, 군마현, 미야기현, 이와테현, 도치기현, 치바현, 아오모리현 인근에서 어획한 수산물의 경우 방사능 오염이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이로 인해 국내 판로가 막히자 A 씨와 같은 수산물 업자들은 일본 수출업자의 도움을 받아 노가리를 ‘홋카이도’ 지역으로 옮겨 원산지를 둔갑시켰다. ‘홋카이도’에서 어획한 것처럼 산지증명 관련 서류를 일본 북해도청에 신고한 뒤 국내로 들여왔다.
경찰은 수입금지 발표 이후 한층 강화된 방사능 기준으로 검사하는 우리 정부와 달리 수출국인 일본 현지에선 샘플 검사만 하고 있는 점을 악용했다고 설명했다.경찰 관계자는 “수입자들의 이같은 행동은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를 위협하는 범죄행위”라며 “앞으로 비슷한 사례에 대해 더 적극적인 단속 활동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파정당'과 '정치혐오' 오가는 민주노총 선거 1123 프레시안
[민주노총을 말한다] 진보대통합 VS 사회세력화, 왜 '정치세력화'가 어렵나
민주노총이 새 집행부 선출을 위한 임원선거 일정에 돌입했다. 이번 임원선거에는 김명환 전 철도노조 위원장, 이호동 전 발전노조 위원장, 윤해모 전 현대자동차지부장, 조상수 현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등 4명의 후보가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입후보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대부분 후보가 비슷한 공약을 내걸고 있어 딱히 쟁점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나마 언론에서 관심을 두는 것은 문재인 정부에서 요구하는 노사정위원회의 복귀 여부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노사정위 복귀 여부를 비롯해, 각기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과 선명성을 드러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프레시안>에서는 민주노총 선거 관련, 쟁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차기 집행부에서는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민주노총이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진보대통합인지, 아니면 사회세력화인지를 짚어보는 기고를 싣는다. <프레시안>은 민주노총의 미래와 관련해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논쟁이 활발히 이뤄지길 바라며 지면을 열어 놓을 예정이다. (기고 보낼 곳 : kakiru@pressian.com)
민주노총 선거, 쟁점이 없는 게 아니라 쟁점을 모르는 게 문제다. 물론 달라진 시대적 과제와 대중 정서에 맞춰 표를 받아야 하니 후보들이 비슷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이심전심만 있는 건 아니다. 노사정위원회 문제 말고도 분명한 쟁점이 또 있다.
차이는 이렇다. 민주노총이 진보정당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게 '지상과제'라는 측이 있고, 반대로 아예 민주당과 더불어 정치세력화 하자는 쪽, 그리고 오직 총파업 전선으로 조합원들을 모으는 투쟁만 강조하는 분들이 있다. 반면 한 후보는 정당통합으로 귀결된 실패한 정치세력화를 반대하며, 전에 없던 '노동자 사회세력화'란 화두를 던졌다. 이 이야기를 해보자.
ⓒ프레시안(최형락)
'사회세력화론'에 대한 예민한 반응
들리는 소문으론 일부 활동가들이 '사회세력화'란 화두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치세력화를 거부하는 '반정치'이고, 심지어 '정치혐오'라고 한다. 이분들은 아마도 '당 건설'이라는 의미로 국한된, 협소한 의미의 정치세력화를 노동운동의 최고 전략으로 여기며 민주노총을 진보정당의 지지 기반으로 만들고자 하는 분들일 것이다.
말은 맞다. 조직된 노동자가 정당을 키워서 집권하고 정치혁명을 이루는 게 세상을 바꾸는 카운터펀치라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아직은 변혁이론일 뿐이고, 정치세력화는 지금 고작해야 진보정당 통합과 같은 말이 돼버렸다. 이 안타까운 등치는 누가 만든 것인가? 더욱 문제는 카운터펀치는커녕 수천만 관중의 링을 감당할 체력부터가 노동운동에 없다는 점이다.
민주노조 조직률 5% 이하. 그것을 두고 어떤 분은 5개의 진보정당에 민주당까지 가세해 '아주 맛있게 뜯어 먹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표현한다. 민주노총에서 진보대통합을 통한 정치세력화를 하지 못하다 보니, 각각의 정당에서 조합원들을 끌어간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진보정당을 합치자고 올인 한다면 민주노총이 사냥감이 아니라 변혁의 주체라도 되는 것일까? 과연?
이건 이미 수차례 실패한 일이다. 통합진보당이 그랬고 최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5개 수정안까지 판판히 부결된 진보대통합이 또 그랬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송중기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지만 <태양의 후예>도 아닌 민주노총이 그 불가능한 일에 매달릴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나 또한 촛불항쟁 이후 준비가 부족하더라도 다시금 정치세력화의 열정과 합의가 있을까 기대했다. 허나 현장은 냉정했고, 말했다시피 대의원대회는 진보대통합 방침을 폐기해 버렸다. 정치의식이 높다는 활동가들도 그러한데, 이 중차대한 역사적 기회에 또 다시 진보대통합을 하자며 남은 체력마저 소진해야 할지 묻고 싶다. 진보정당은 쪼개지고 당원들은 흩어지고 어떤 분들은 서로 증오한다. 그럼에도 하겠다는 진보대통합. 상당 기간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진보정당 통합을 외치는 이들에게 묻는다
진보정당 활동을 하시는 분들의 열정과 헌신이 남다름을 인정한다. 그러나 노동조합이라는 울타리를 쳐 양떼를 모으고, 집단 입당으로 몰아가는 '정당세력화'의 열정에 무슨 희망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에 앞서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이 되기 위한 대중운동의 열정이 절실한 시대가 아닐까? 차라리 '직장갑질119'와 같은 활동이 전략적 힘을 얻고 확장된다면 훨씬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진보정당들을 합치자는 분에게 묻고 싶다. 노동조합도 없고 심지어 노동조합을 불편해하는 90%의 노동자들을 어쩔 셈인가? 이런 현실에서 과연 변혁을 영도한다는 노동계급의 존재가 느껴지는가? 나는 한국 사회 변혁적 노동운동의 생존 과제는 광범위한 주체형성, 즉 노동계급의 형성이라고 본다.
물론 노동계급은 추상적 실체로서 존재한다. 사회과학이나 생산관계 분석의 대상으로서 존재한다. 그러나 오늘도 길에서 마주친 그 수많은 노동자들은 하나의 세력, 조직화된 계급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사회세력화는 그러한 노동자들을 세력화된 계급으로 형성시켜 나가는 시대적 과제를 강조한다. 그 중심에 민주노총을 세우자는 것이 '민주노총 중심의 사회세력화'이고, 계급대표성 확보다. 바닥을 뒹구는 노동조합의 사회적 영향력부터 높여야 한다. 자신을 노동자로서 정초하지 않는 노동자들을 찾아가야 한다. 그렇게 사회세력화 된 노동계급의 모든 행위는 곧 정치가 될 것이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정당 정치를 통해 권력을 창출하는 것도 세상을 바꾸는 과정에서 중요한 과제일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 사회세력화'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정당을 통한 정치세력화는 사상누각이다. 이미 실패했으며 민주노총 강령에 박힌 정치세력화는 겨우 말의 권위만 남았다. 과정이 실패했다고 목표까지 부정하는 건 과한 일이다.
요컨대 '사회세력화'는 정치세력화를 부정하는 경로가 아니다. 관성에 빠진 전략과 자기 깜냥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민주노총의 성찰이자 혁신의 경로다.
진보대통합이 아닌 민주노총 중심 사회세력화가 우선이다
실패한 정치세력화를 강조하기 위해 '정파정당 세력화'란 말도 쓰기도 한다. 불쾌한 낙인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긴 '나는 정파가 없다'는 말을 무슨 공정성이나 도덕성의 상징으로 여기는 분들이 있으니, 정파란 말이 참 더렵혀지긴 했단 의미다.
그럼에도 '정파정당 세력화'란 주장은 나름의 분석과 우려를 담고 있다. 진보정당들이 통합할 의지도 가능성도 희박한 상황에서 일부 정당만이 민주노총을 추동해 통합을 정치세력화의 원칙으로 의결시킨다면? 결국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는 특정 정당의 세력 확장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래, 그게 다 정치고 능력일 수 있다. 그러나 '촛불'과 '노동존중 시대'로 상징되는 이 기회의 순간에 진보대통합에 역량을 쏟겠다니? 동의할 수 없다. 과연 진보대통합이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이 되고 싶은 민주노총에 갈급한 과제인지 의문이다.
이번 민주노총 선거에서 모든 후보들은 100만, 200만, 300만 민주노총 시대를 열자고 외친다. 이러한 공통점이 단지 다투어 남발되는 공약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이심전심 모두가 절실한 과제와 역사적 기회를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지금 민주노총의 역량은 여기에 전부를 쏟아 부어도 모자란 상황이다. /홍명교 금속노조 조합원
댓글 ‘공범’들 “나도 풀어달라” 1124경향
ㆍ임관빈 전 국방부 실장 법원에 구속적부심 청구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구속 11일 만에 법원의 구속적부심사를 통해 석방되자 공범으로 함께 구속된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이 자신도 풀어달라고 검찰에 요구하다 법원에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했다.
23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임 전 실장은 지난 22일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에서 피의자 조사를 받던 중 김 전 장관이 석방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1부(재판장 신광렬 수석부장판사)는 22일 오후 9시30분쯤 김 전 장관이 청구한 구속적부심사를 인용했다.
임 전 실장은 수사팀 관계자에게 “내 위 장관님도 풀려났는데 (공범인) 나도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은 후 “검찰이 먼저 석방해주지 않으면 나도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검찰 측은 “(석방 여부는) 검토해보겠으니 법원 절차(구속적부심사 청구)는 알아서 하라”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임 전 실장은 23일 서울중앙지법에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했다. 심사는 24일 열리며 담당 재판부는 김 전 장관의 구속적부심사를 한 같은 재판부다. 임 전 실장은 국군 사이버사령부를 지휘하면서 김 전 장관과 공모해 군의 정치관여 활동에 적극 가담한 혐의(군형법상 정치관여)로 지난 11일 김 전 장관과 함께 구속됐다. 임 전 실장은 이와 별개로 연제욱 전 사이버사령관 등으로부터 매달 100만원씩 수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전날 김 전 장관 석방을 시작으로 검찰의 국정원 수사 관련 다른 구속 피의자들도 잇따라 구속적부심사를 신청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다만 형사소송법에는 ‘공범 또는 공동 피의자의 구속적부심사 순차 청구가 수사방해의 목적임이 명백할 경우’ 피의자에 대한 심문 없이 구속적부심사 신청을 기각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유골 발견 알리지 말라”는 유족 부탁 따랐다? 해수부 변명의 모순 1124 경향
세월호 인양 후 유해가 수습된 단원고 조은화·허다윤양 가족들이 “앞으로 작은 뼈가 더 나와도 알리지 말아달라”고 해양수산부에 부탁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세월호 유골 발견 은폐’ 논란이 더 거세지고 있다. 일각에선 ‘가족들 부탁을 들어준 건데 뭐가 문제냐’며 은폐를 지시한 해수부 관료들을 두둔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골 발견 사실을 숨겨 보직 해임된 해수부 현장수습본부 이철조 본부장과 김현태 부본부장은 정말 잘못이 없을까.
24일 일부 언론이 보도한 조은화·허다윤양 가족의 인터뷰 내용을 종합하면 두 가족이 ‘뼈 발견 비공개’를 요청한 이유는 두 가지다. 이미 유해를 수습해 지난 9월 장례를 다 치른 상황에서 작은 뼈들이 추가로 발견될 때마다 중계방송 하듯이 언론에 알리지 말고 가족들이 조용히 수습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 그리고 아직 뼈 한 조각 찾지 못한 나머지 5명의 미수습자 가족들의 심정을 배려하자는 것이다.
이런 부탁은 앞으로도 세월호에서 추가로 발견될 뼈들이 은화·다윤양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다. 이 전제는 지금까지 수색 상황을 기반으로 한 합리적 가설이지만 ‘절대적 진리’는 아니다. 그런 식이라면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3년 7개월 넘게 기다려온 미수습자 가족들의 시간이 모두 헛된 것이 되고 만다. 은화·다윤양 가족은 결코 나머지 5명의 미수습자 가족에까지 뼈 발견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이철조 본부장과 김현태 부본부장은 17일 유골 발견 후 사흘 동안 누구에게도 유골 발견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정상적인 업무 절차를 무시한 월권이고 독단이었다. 20일 뒤늦은 장관 보고 뒤 질책을 받고 ‘절차대로 조치를 취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이마저도 따르지 않고 뭉갰다.
이들의 일탈 행위가 은화·다윤양 가족의 부탁과 관련이 없다는 것은 과거 사례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추석 연휴 직후인 지난달 10일과 11일 목포신항 수색현장에서 유골이 연달아 발견됐다. 당시에도 은화·다윤양 가족의 부탁은 유효했고 발견된 뼈가 은화·다윤양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은 같았다. 그러나 대응은 전혀 달랐다.
당시 해수부는 현장 매뉴얼대로 즉시 선체조사위 미수습자 담당팀에 유골 발견 사실을 전파했다. 국방부, 해경, 국과수 등 관계기관의 실무자들이 모인 단체 카카오톡방에도 같은 내용이 공지됐다. 은화·다윤양 가족은 물론 5명의 미수습자 가족에게도 곧바로 발견 사실을 알렸다. 이후 DNA 검사 결과 유골은 각각 은화·다윤양의 것으로 확인됐다. 수습 현장의 정상적인 업무 절차를 지키면서도 은화·다윤양 가족의 요구를 충실히 이행한 것이다.
이때와 지난 17일 유골 발견에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다음날 5명 미수습자 가족들의 장례식이 예정돼 있었다는 것 뿐이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16일 목포신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족을 가슴에 묻겠다”고 밝혔다. 여론 악화에 눈물을 머금고 수색 중단을 결심한 것이다. 18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장례식만 끝나면 해수부는 미수습자 수색을 공식 종료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유골 은폐 사실이 드러나기 직전인 22일 오후 3시쯤 해수부 고위 관계자는 수색 공식 종료 여부를 묻는 경향신문 기자에게 “미수습자 가족들도 다 장례 치르고 (목포신항을) 떠나셨기 때문에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조만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철조 본부장은 23일 해수부 진상조사 결과 발표 자리에서 “미수습자 가족들이 장례식을 앞두고 극도로 심리 상태가 불안정했는데, 어떤 충격을 가중시키는 그런 역효과를 예상해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유골 발견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장례식이 끝난 후 알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미수습자 가족들은 은폐 사실이 알려진 뒤 “분통 터지고 화가 난다. 알았으면 장례를 치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철조 본부장 등 해수부 관료들은 시종일관 미수습자 가족들을 최우선으로 배려해 사실을 숨긴 것처럼 말했지만 드러난 정황을 놓고 보면 유골 발견 공개로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충격을 입을 쪽은 해수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참사 이후 지금까지 팽목항과 동거차도, 목포신항 등 현장을 누비며 인터넷 방송으로 세월호 소식을 전해온 유족 문종택씨의 말이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목포신항을 떠나면 그동안 인양과 수색작업으로 골치 아팠던 해수부가 제일 반길 거라는 건 삼척동자도 알 수 있잖아요. 그런 판국에 뼈가 나왔다 하면 미수습자 가족들이 결정을 번복할 수도 있고 장례식이 연기될 수도 있는데 해수부가 어떻게 판단할 지는 뻔한 거 아니에요?”
경향신문이 유골 발견 은폐 사실을 처음 보도한 지난 22일 해수부는 오후 5시쯤 비공식 채널을 통한 첫 해명에서 “발견된 뼈가 사람뼈인지 동물뼈인지 확인하느라 닷새가 걸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17일 발견 당시 이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가 사람뼈임을 확인했다는 사실을 재차 지적하자 2시간여 뒤 “발견된 뼈는 은화·다윤양의 것일 가능성이 높고, 은화·다윤양 가족들의 비공개 부탁이 있어서 그랬다”고 말을 바꿨다. 두번째 해명은 은화·다윤양 가족의 인터뷰를 통해 일부 사실로 밝혀졌다. 그러나 해수부 내 세월호 담당 공무원들이 자의적인 판단으로 미수습자 가족과 국민을 기만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이국종 신드롬’이 들춰낸 사각지대, 죽음에도 계급이 있다 1124 한겨레
깜짝 놀랄 정도로 노동자·농민분 많다”는 이국종 교수
2010년 <한겨레21> 아주대 중증외상센터 환자 전수조사
중증외상 응급진료 부실로 잃는 환자 한 해 1만명 육박
중증외상센터에는 가난이 숨쉰다. 아주대 중증외상센터 이국종 센터장은 22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외상환자) 대부분의 분들이 사실 블루칼라 계층”이라며 “한 번은 어떤 언론인 분이 저희 병원에서 한 일주일 동안 숙식을 하시면서 그 환자분들을 전수조사한 적이 있다. 정말 90% 이상이 대부분 사회 기관을 형성하는 산업, 소위 말해서 산업 현장이나 아니면 적어도 운수계통이나 그런 데서 일을 하시면서 사회를 떠받치시는 분들이었다”고 밝혔다.
치료도 결국은 ‘돈’이다. 이국종 센터장은 “외과의사들은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에선) 경제적으로 크게 베네핏(이익)이 없으면 어떤 일에 있어서 혼신의 힘을 기울여서 하지 않는 그런 경향이 있다. 외과의사들이 사실은 큰 수익이나 그런 걸 벌어들일 수가 없다”며 외상외과 치료 분야의 열악함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의료보험에서의 문제라든가 그런 것들이 다 복합적이다. 정부의 한 가지 정책만 가지고 해결할 수 없다”며 “국가 재정이 한계가 있는데 의료보험의 지원을 무조건 늘릴 수가 없기 때문에 참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이국종 센터장이 언급한 ‘일주일 동안 숙식을 하시면서 그 환자분들을 전수조사한 어떤 언론인 분’은 한겨레 김기태 전 기자다. <한겨레21>은 2010년 11월 마지막 주,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 중증외상특성화센터와 서울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에서 밤을 보냈다. 당시 <한겨레21>에 실린 두 편의 기사 “‘이 사람, 살려만 달라’ 외침에도 가난이 묻었다”, “해마다 9245명 목숨 살릴 수 있었다”를 재구성해 다시 중증외상센터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엉성하고 열악한 응급의료 시스템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기사 안 인물, 표, 인터뷰 내용 등은 모두 2010년 11월23일 기준임)
■ “1300명이 넘는 응급환자를 수술했지만 외제차 탔다는 사람은 딱 한 명 봤다”
환자들 주변에 주렁주렁 달린 링거나 인공신장 등 온갖 의료장비를 보면, 중환자실보다 차라리 공상과학(SF) 영화의 실험실 같았다. 환자들도 사람이 아니라, 사이보그 같은 느낌마저 줬다. 그만큼 환자를 둘러싸고 정글처럼 어지럽게 얽힌 장비와 기구가 많았다. 그 사이를 지나 몇 발자국 다가서야 ‘사람’들이 보였다. 비로소 동네 슈퍼마켓 아주머니나 세탁소집 주인 같은 이웃의 얼굴들이 보였다. 환자들 침상 끝에는 사고 내역과 상처 부위에 대한 메모가 있었다.
19살 권욱식 씨는 5층에서 추락했다. 뇌출혈을 비롯해 골반과 양쪽 폐, 콩팥 등 상한 신체 부위가 10곳이 넘었다. 살아 있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78살의 최은순 씨는 넘어져서 의자 모서리에 부딪혀 병원을 찾았다. 72살 하영권 씨는 티코를 몰고 가다 덤프트럭과 부딪혀서 실려왔다. 간과 폐가 다 상했다. 대부분 ‘배를 열어’ 손상된 장기를 꿰매고, 장기에 필요한 응급장비에 연결한 뒤, 다시 ‘배를 덮은’ 환자들이었다. 모두 의료장비의 힘을 빌려 간신히 하루씩 삶을 연장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저승에 두 발을 모두 담갔다가, 이곳 중환자실에서 뒷자락이 잡혀 이승으로 힘없이, 조금씩 되돌아오고 있는 듯했다. 교통사고, 추락, 자살 등이 사고 원인이었다. 이국종 교수는 “대부분 노동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1300명이 넘는 응급환자를 수술했지만 외제차 탔다는 사람은 딱 한 명 봤다”고 말했다.
<한겨레21> “이 사람, 살려만 달라” 외침에도 가난이 묻었다. 2010년 11월23일 기준.
■ 가난한 사람이 잘 다치고 죽는다
<한겨레21>이 만난 환자는 사고를 당해 생계가 막막한 여성 가장이거나 사다리 작업을 하던 노동자, 정신질환자, 재중동포 등이었다.
수액이 줄줄이 연결된 딸의 주위를 노모가 맴돌았다. 아무리 서성여도 딸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기자를 의료진으로 착각한 그는 기자의 소매를 잡고 “어떻게든 살려달라”고 하소연했다. 머리가 하얗게 센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환자인) 김씨가 사는 곳은 경기도 성남이었다. 어려운 살림살이라, 마음 좋은 분이 거의 무료로 세를 준 집에서 살고 있다. 2개의 방에는 김씨 모녀와 김씨의 두 딸이 살았다. 고1과 중2였다. 마침 시험 기간이었다. 병원에서 만난 김씨의 직장 동료 강정희(31)씨는 “두 딸에게 시험 잘 보면 어머니도 나을 거라고 말했다”고 낮게 전했다. 김씨는 남편과 10년 전에 이혼했다. 김씨의 벌이로 네 식구가 살았다. 김씨가 다치면서 네 식구의 수입은 끊겼다. 70대 노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딸이 건강하게 살아남기를 바라는 일뿐이었다. 기약하기는 암담했다.
20분 남짓한 면회 시간이 끝나갔다. 중환자실을 가로질러 환자 신우만(53)씨의 부인 함운희(53)씨가 힘없이 지나갔다. 신씨는 10월22일 회사에서 사다리로 작업을 하다가 다쳤다. 사다리가 왼쪽으로 기울어서 그도 함께 땅으로 떨어졌다. 골반과 팔뼈가 모두 부러졌다. 가까운 정형외과로 갔다가, 아주대병원으로 넘어왔다. 의식을 잃은 신씨의 얼굴은 거무스름했다. 언뜻 봐도 60대로 보였다. 병색 때문이라기보다 밖에서 오래 일한 사람 특유의 거친 피부색이었다. 아내는 회사에서 산업재해 처리를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와 상의했는지 물었다. 아직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왜 연락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우선 사람부터 살려야죠”라고 답했다. 유난히 체격이 작은 함씨가 총총히 중환자실을 떠났다. 뒷모습이 불안했다.
중증외상특성화센터 중환자실에서 모두 18명의 환자를 만났다. 이들의 일 가운데 이른바 ‘비싼’ 직업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 마트 판매직, 음식점 배달부 등 서비스업 종사자가 4명이었다. 또 일용직 노동자를 포함한 생산직 노동자가 3명이었다. 무직이 2명, 학생이 2명이었고, 사무직 노동자는 1명이었다. 65살 이상 노인이 3명이었고, 나머지 3명은 직업이 확인되지 않았다. 병원 쪽에 물어보니, 18명 가운데 6명이 치료비 지급에 어려움이 있다고 입원 당시 환자 본인 혹은 보호자가 말했다. 상당수 환자는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었다.
18명이 중환자실에 실려온 사연은 달랐다. 교통사고가 많았지만, 자살과 추락, 낙상도 있었다. 대부분 그저 운이 없었다. 하필이면 가로등이 없었고,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 하필이면 사용하던 사다리가 넘어졌고, 하필이면 덤프트럭이 차를 받았다. 그저 부주의했고, 운이 없었다. 과연 그럴까? 단정하기 어렵다. 교통사고와 자살, 산재로 생기는 외상은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계층에게 하필 더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주거환경과 노동환경, 생활여건이 달라지면 사고가 날 확률도 높아진다.
<한겨레21>이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 요청해서 받은 ‘2009 표본병원 손상유형 및 원인통계’ 자료를 분석해보면, 노동직이 외상을 입을 확률이 사무직보다 약 25% 높았다. 정최경희 이화여대 교수(예방의학)가 2008년 우리나라 사망 불평등의 원인을 분석해 내놓은 논문에서도, 우리나라 44살 이하 국민 가운데 사망 불평등의 가장 큰 원인은 ‘교통사고 등으로 생기는 외상’이었다. 각자의 사회·경제적 위치는 그 사람이 다쳐서 사망에 이르는 확률도 바꿔놓았다. 개개인의 사고를 그저 ‘드센 팔자’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다.
수원 아주대학교병원 응급실에서 2010년 이국종 교수의 모습. 정용일 기자.
■ “환자들이 병원장실에 칼을 들고 올라오지 않을 정도로만 응급실을 유지한다.”
아주대병원은 심야에 수술실이 여유가 있는 편이다. 병원 수술실 19개 가운데 심야나 주말에 열 수 있는 수술방이 3~4개다. 서울에서 크다는 대학병원도 심야에 수술실 문을 2개만 여는 곳이 있다. 밤에 병원을 찾는 응급환자, 더구나 수술환자는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다. 응급환자들은 회전율이 높지 않고, 의료 수가도 높지 않다. 병원들이 응급실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이유다. 쉬운 말로 “돈이 되지 않고, 골치만 아프기 때문에” 모든 병원에서 애물단지다. 취재 도중 만난 한 응급의학과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환자들이 병원장실에 칼을 들고 올라오지 않을 정도로만 응급실을 유지한다.”
병원을 이미 떠났거나 떠날 준비를 하는 18명 환자들이 앞으로 삶의 어느 골목에서 다시는 차에 치이거나, 건물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빌 뿐이다. 정부는 6161억원을 들여 전국에 6개 광역외상센터를 짓고 관련 의료인력을 양성하겠다고 올해 초 발표했지만, 정작 2011년 예산안에서 이 사업에 책정된 예산은 없었다.
수원 아주대학교병원 수술실. 정용일 기자
■ 한국 응급실에선, 베트남 전쟁 전사자의 2배가 죽는다
2008년 정구영 이화여대 교수(응급의학) 등이 내놓은 ‘응급의료체계 성과지표에 관한 연구’ 논문은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논문은 강씨의 경우처럼 숨겨진 죽음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했다. 연구진은 2006년 8월부터 2007년 7월 사이 전국 20개 대형 응급실의 외상 사망 환자의 의무기록을 펼쳤다. 551건이었다. 이들의 의무기록을 분석한 결과, 연구진은 551명 가운데 179명은 살릴 수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179명 가운데 살릴 수 있는 확률이 75%가 넘었던 환자는 21명이었고, 25~75%였던 환자는 158명이었다. 두 집단을 합한 ‘예방 가능한 사망률’은 32.6%였다. 응급실에서 사망한 환자 10명 가운데 3명은 살아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뜻이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그만큼의 환자들을 죽인 것은 엉성한 우리 응급의료 시스템이었다.
이 연구 내용과 우리나라 전국 외상 사망 통계를 함께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한 통계가 나온다. 김윤 서울대 교수(의료관리학)가 이를 계산했다. <한겨레21>은 그가 보건복지부의 용역을 받아 지난 3월 제출한 보고서를 최영희 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받았다. 내용을 보면, 2007년 건강보험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61만3392명의 중증 외상환자가 응급실을 찾았고, 그 가운데 사망한 환자는 2만8359명이었다. 여기에 앞서 집계된 ‘예방 가능한 사망률’을 곱하면 예방 가능한 사망 건수는 무려 9245건으로 추산됐다. 응급실을 살아서 나올 수 있었던 1만 명 가까운 환자들이 주검이 되어 나왔다는 말이 된다. 살아남은 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암담한 통계였다.
회생 가능 비율이 75%가 넘었던 환자들만 골라내도 그 수는 1113명이었다. 미국 쪽 자료를 보면, 한국군이 지난 1964~73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는 동안 전사자 수가 4407명이었다. 2000년대 한국 응급실에서, 베트남 전쟁 10년 동안 사망한 수의 두 배에 가까운 사람들이 해마다 ‘전사’했다.
수원 아주대학교병원 수술실 이국종교수가 2010년 수술 준비를 하고있는 모습. 정용일 기자
■결국은 돈이다
이런 문제가 생기는 구조적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절대 다수의 병원들이 중증 외상환자 유치에 소극적이다. 병원의 수지타산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는 여럿이다. 우선, 다른 과의 경우 환자들이 의사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지만, 외상외과는 의료진이 환자들을 기다린다. 수요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 정해진 병원 일정에 따라 환자를 받고 수술하고 퇴원시킬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그래서 병원들은 외상외과나 응급의료과의 규모를 늘리지 않는다.
또 환자가 밀려드는 3차 의료기관은 병상 가동률보다 회전율을 중하게 여긴다. 그렇지만 중증 외상환자는 오랜 시간에 걸친 치료가 필요하다. 또 신체 여러 곳이 다쳐서 온 환자들은 외상외과뿐 아니라 정형외과, 신경외과, 성형외과 등과 협진이 필요하다. 그만큼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건강보험의 의료수가 혜택이 많은 것도 아니다. 가장 고된 업무를 하는 외상외과 의사들은 정작 병원에 수익을 안겨주지 못한다. 병원에서는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의사를 찾아온 다른 환자들과 달리, 병원에 실려온 환자들은 의사에 대한 신뢰도도 높지 않다. 서울의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병원에서는 구색을 맞추는 정도로만 응급실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니 외상외과로 오는 의료인력도 드물다. 몇 안 되는 외상외과 전문의들도 갑상선이나 간암 치료 등 ‘돈이 되는’ 분야로 옮겨탔다.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외상 전문 외과의사로 인정받는 이는 이국종 아주대 교수나 조항주 의정부 성모병원 교수 등 다섯손가락에 꼽힌다. 수요가 없으니 공급도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외상외과 세부 전문의를 교육하는 병원이 없다. 이를테면 이국종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병원 외상외과에서 연수를 받았다. 미국에서는 외상외과 전문의들이 12년의 정규 과정을 마치고도 2년간 추가로 전문 소생술 교육을 받는다.
피해는 고스란히 중증 외상환자들에게 돌아온다. 이들이 구급차에 실려가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기는 힘들다. 중증 외상환자들이 “수술방이 없다” “중환자실 자리가 없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 이유다. 혹시 입원할 수 있어도 제대로 된 수술을 받을 확률은 떨어지게 된다.
속물 근성 그대로 드러내는 짝짓기 프로그램 ‘하트 시그널’
출연자 스펙과 재산 노골적으로 강조
남성은 스펙 여성은 외모 부각하기도
〈테라스 하우스 : 하와이 편〉에 등장하는 출연진들. 에비앙, 유야, 로렌, 유스케, 나오미, 에릭(왼쪽부터) 사진 넷플릭스.
가디언과 버즈피드 등의 국외 매체들도 인기의 비결을 궁금해하는〈테라스 하우스〉라는 일본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있다. 2012년부터 후지 TV에서 방송한 기획물로, 지난 시즌부터는 넷플릭스와 손을 잡고 함께 제작해 전 세계에 배포하고 있다.
최근 한국 넷플릭스에 새로운 시즌 〈테라스하우스 : 하와이 편〉이 공개되기도 했는데, 생전 처음 만나는 남녀 여섯 명이 하와이의 공동 주택에서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담았다. ‘동거 생활’이라고 하면 애정촌 〈짝〉처럼 주말에 하루 정도 놀다 헤어지는 프로그램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기간이 좀 길다. 중간에 ‘졸업’을 선언하고 집에서 나가면 사람이 바뀌기는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6개월 이상을 같이 살 수 있다.
입주 조건도 좋다. 풀장이 있는 거대한 저택과 두 대의 차량을 제공한다. 대본도 없고 재미를 위한 무리한 기획도 없다. 저녁마다 시간을 정해놓고 마음 가는 사람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라든지, 한 달 안에 연애를 못 하면 퇴출이라든지 하는 규정도 없다. 같이 사는 걸 예쁜 영상으로 촬영할 뿐이다.
기획도 대본도 없어서 지루할 것 같지만,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까지의 청춘 남녀 여섯 명이 뿜어내는 호르몬은 심심할 틈을 주지 않는다. 중간중간 1주일 동안의 생활을 편집한 영상을 일본의 연예인 패널 6명이 모여 변죽을 울리며 감상평을 쏟아내는 재미도 있지만, 본격적인 재미는 역시나 테라스 하우스 6인의 생활 그 자체에 있다.
〈테라스 하우스 : 하와이 편〉에 등장하는 패널들.
한국에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다. 지난 9월 첫 시즌을 마치고 새로운 시즌을 준비 중인 채널 A의 〈하트시그널〉이라는 프로그램이다. 공식적인 기획 이름은 ‘러브라인 추리게임’으로 역시나 청춘 동거가 프로그램의 주된 콘셉트다. 여섯 명의 남녀가 한 달 동안 같이 살며 정해진 시간마다 마음에 둔 사람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매회 방송에서는 이들의 러브라인을 추론하는 ‘예측단’ 여섯 명이 등장해 변죽을 울리는데, 러브라인을 추리한다는 것만 빼면 테라스 하우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합숙 기간 이성에게 직접적인 고백은 할 수 없다’는 등의 조건이 있긴 하지만, 역시나 재미는 ‘시그널 하우스’라 부르는 공동 숙소에서의 생활에 있다.
〈하트시그널〉의 출연진. 왼쪽부터 김세린(24), 장천(32), 배윤경(24), 서주원(23), 강성욱(32), 서지혜(21). 사진 채널A.
그러나 두 프로그램을 견주어보면, 조금 다른 점이 눈에 띈다. 테라스 하우스 하와이 편에 출연한 이번 시즌의 최초 출연자는 여섯 명이다. 엄마가 운영하는 티셔츠 가게에서 일하는 26살의 에비앙, 하와이에서 영어를 배우고 할리우드로 건너가 배우로 성공하겠다는 18살의 유야,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는 18살의 로렌, 기타와 우쿨렐레 연주로 앨범까지 낸 18살의 유스케, 별다른 직업이 없는 23살의 나오미, 가구 제작자인 27살의 에릭이 주인공이다. 집과 차가 제공된다고는 해도, 먹고 살고 데이트도 해야 하니 직업이 없는 대부분의 출연자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들 중 많은 청춘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자기 자신을 설명하다.
사회적으로 선망받는 직업의 출연자가 나오는 경우도 드물고, 학력이나 학벌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경우도 드물다. 집안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알 방법도 없고 묻는 사람도 없다. 이번 시즌 후반에는 29살에 할리우드 배우를 꿈꾸며 레스토랑에서 서버 아르바이트를 하는 ’다이시’라는 남자가 나오는데, 그의 직업이나 불확실한 미래가 애정 선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개그맨 패널들이 야한 얘기를 쉴새 없이 떠들기는 하지만, ‘스펙이 좋다’는 식의 대사를 던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제로는 ’연봉이 얼마야?’라고 물었는지는 모르지만, 영상만 봤을 때는 여섯 명의 남녀들이 순수하게 테라스 하우스 안에서 서로가 보여주는 매력에 끌리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의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출연진들의 신상정보를 두고 여러 루머가 도는 모양이지만, 검색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하트시그널〉은 다르다. 〈하트시그널〉은 대놓고 ‘스펙’을 강조한다. 특히 두드러진 건 1회와 2회다. 사회자 윤종신은 출연자의 직업은 2회에서 밝힐 예정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직업을 알게 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지 궁금하다.” 시즌 전반에 세 명의 남자가 등장하는데, 한 명은 법무법인의 변호사(장천), 한 명은 카레이서(서주원), 한 명은 뮤지컬 배우(강성욱)다. 여성 세 명의 직업은 각각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공연 홍보 마케터(김세린), 구두 디자이너 겸 배우 지망생(배윤경), 대학생(서지혜)이다. 물론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은 없고, 뭔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이미 갖춘 스펙으로 승부한다. 출연자들이 몰고 온 이탈리아와 독일산 자동차를 자세히 보여주고 값비싼 손목시계와 브랜드 신발을 클로즈업으로 잡는다.
출연진 대부분이 서울에 거주 중인 건 촬영장이 삼청동이라는 사정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출연자마다 역삼동, 삼성동, 연희동, 동대문이라며 거주 지역을 친절하게 강조하는 이유도 모호하다. 출연진 중 카레이서인 서주원이 “한국에서 프로 경기에 참여하는데 10억 원이 들고 슈마허처럼 유명한 선수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1년에 40억 원이 필요하다”고 언급했을 때 패널들은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패널들은 “(카레이서라니) 태가 날 수밖에 없는 남자였어”라는 멘트를 던지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숨길 수 없는 속물근성이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출연진에겐 아무 잘못이 없다. 출연진의 재력이나 직업 자체가 속물근성의 습성일 수는 없다. 다만 이를 노골적으로 과시해 보여주는 제작진의 태도는 어쩔 수 없는 속물근성을 드러낸다.
소위 말하는 ‘리얼리티 동거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건 출연자의 매력이고, 재력도 직업도 중요한 매력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매력을 강조하는 지점이 남녀 간에 다르다는 지적을 피해갈 순 없다. 30대 여성인 ㄱ씨는 “남성 출연진은 나이가 상대적으로 많고 직업과 부를 강조하는 반면 여성 출연자의 경우 어린 나이와 외모 애교 등을 매력의 요소로 보여주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30대 여성 ㄴ씨는 “21살짜리 대학생을 32살의 변호사가 벤츠로 어딘가에 데려다주는 장면을 보고 TV를 껐다”며 “이 프로그램이 어떤 관계를 강조하고 싶은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대본은 없다고 하지만, 그런 출연자를 선택한 것만으로 그리고 싶은 그림이 뭐였는지 충분히 봤다”고 밝혔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프로그램을 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야 할까.
KBS 파업 아나운서들, 부역 아나운서들에게 "마이크 내려라" 호소1124 오마이뉴스
KBS 새노조 소속 아나운서들, 동료에 파업 동참 부탁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 없다"
파업 중인 KBS 아나운서들이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 아나운서들에게 "이제라도 마이크를 내려놓고 함께 고대영 체제를 무너뜨리자"고 제안했다. 지난 22일과 23일 차례로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새노조) 소속 아나운서들은 성명서를 내고 방송 중인 아나운서들에게 파업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경력 15년 이상 된 고연차 아나운서들이 22일 성명서를 낸 데 이어 저연차 아나운서들도 23일 성명서를 냈다.
이광용 아나운서(29기)는 개인 SNS 계정을 통해 해당 성명서를 덧붙이며 "고대영 체제의 KBS에서 끝까지 마이크를 들고 있는 동료들을 향해 보내는 글"이라며 "분노를 삼키고 진심을 담아 썼다. 널리 공유해달라"고 당부했다.
"방송 중인 아나운서의 길과 고대영 사장의 길 다르지 않아" 비판
해당 성명서에서 KBS 아나운서들은 "파업을 하고 분신 같았던 프로그램을 내려놓은 대신 우리는 당당함을 얻었다"며 "고대영 체제의 종식이 멀지 않았음을 예감한다"며 서두를 열었다.
이들은 또 방송 중인 아나운서들을 향해 "여러분이 향하는 길은 KBS를 재앙적 수준으로 망친 고대영 사장의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함께 고대영 체제를 무너뜨리자.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공영방송을 해치는 사장과 그 체제를 허물어버릴 때만이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선택의 시간이 왔다. '부역'의 '역'은 '부릴 역(役)'이 아닌 '거스를 역(逆)'을 쓴다. 부디 역사를 거스르는 편에 서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파업 중인 KBS 아나운서들은 2012년 MBC 총파업 당시 파업을 홀로 중단하고 뉴스로 돌아간 아나운서를 언급하며 "해당 아나운서는 이후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로까지 발탁된다. 이 사건은 MBC 아나운서들의 위상을 바닥으로 처박은 충격적인 사건임이 틀림없다"라고 회고한다.
아나운서들은 이어 "고대영과 이인호가 이끄는 KBS는 공적책무를 수행할 만한 기능을 상실한 채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은 그 잘못에 동조하는 행위다"라며 "이제라도 마이크를 내려놓아라. 우리는 방송하는 로봇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
(KBS 아나운서 11기~29기)
마이크를 놓은 지 80일이 넘었습니다.
성기영 실장, 원석현, 오유경, 한상권 부장, 유애리, 김성수, 조건진, 강성곤, 김관동, 김동우, 임수민, 성세정, 김성은 유지철 아나운서, 그리고 방송 복귀를 택한 1노조 소속의 아나운서들. 여러분을 사무실에서 보지 못하는 사이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역사도 이렇게 저절로 바뀌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4.19와 6.10이 그러했고, 가까이는 촛불 혁명이 그랬던 것처럼 역사의 변화와 발전은 그냥 찾아오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눈 한 송이의 의지가 모여 폭설이 되듯 수많은 개인들이 죽어라 힘을 모을 때만 변화와 발전이 이뤄졌습니다. 우리의 지난 80여 일이 바로 그런 나날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분신과도 같았던 프로그램을 내려놓은 대신 우리는 당당함을 얻었습니다. 공영방송 아나운서라는 그 빛나는 명예는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2017년의 가을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대영 체제의 종식이 멀지 않았음을 예감합니다.
3년 전, 길환영 사장 퇴진 투쟁을 다시 생각합니다. 당시 이사회가 길환영 사장의 해임 제청 사유로 적시했던 것들 중 첫 번째가 '사장으로서 직무능력 상실'이었습니다. 양 노조의 파업과 각 협회의 제작거부로 사장으로서의 업무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사회의 해임 결정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지금의 고대영 사장은 이사회에서, 심지어는 국정감사장에서도 끊임없이 회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방송 차질은 없다고 강변하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첫 번째 해임 사유를 원천봉쇄하겠다는 의도입니다. 그래서 지금 마이크를 손에 들고 있는 여러분은 고대영 체제의 생명 연장 기도에 악용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아라! 뉴스광장과 아침마당에, 930뉴스에,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 12시뉴스에, 우리말겨루기와 1대100 등등에 아나운서들이 마이크를 들고 있지 않느냐? 이보다 더 확실한 사장의 직무 수행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고대영 사장은 주장할 것입니다.
지금 마이크를 잡고 있는 여러분 중에는 노동조합이나 아나운서협회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분들도 있습니다. 공영방송 KBS와 그 얼굴인 아나운서의 역할과 기능을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이 고민했던 분들입니다. 하지만 이 가을 여러분이 향하는 길은 KBS를 재앙적 수준으로 망친 고대영 사장의 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지금 KBS는 공정성과 신뢰도의 추락에서 오는 위기의 상황을 넘어섰습니다. 국민들은 KBS의 존재가치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치에 대한 존재 증명 책임은 여러분과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공영방송을 해치는 사장과 그 체제를 허물어버릴 때만이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아올 수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고대영 체제를 무너뜨립시다. 여러분의 지난 80여 일은 숱한 번민의 나날이었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수동적인 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후부터 마이크를 드는 당신의 시간은 고대영 체제를 연장하고 존속하기 위해 기능하는 능동적이고 의도적인 시간일 것입니다.
우리와 여러분이 이 시기에 부여받은 공영방송 아나운서로서의 사명은 마이크를 내려놓아 고대영 사장의 첫 번째 해임사유가 <경영능력의 '완벽한' 상실>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 왔습니다.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지, 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지를.
'부역'의 '역'은 '부릴 역'(役)이 아닌 '거스를 역'(逆)자를 씁니다. 부디 역사를 거스르는 편에 서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KBS 아나운서 30기~42기)
방송 중인 아나운서여!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지난 20일 본관 민주광장에서는 모금방송이 있었다. 매일 집회를 열던 민주광장을 지진 피해자를 생각하며 잠시 양보하고 침묵시위를 벌인 우리들은 분노를 넘어 이루 말할 수 없는 착잡함을 느꼈다. 지진 피해자를 돕는다는 구실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고대영 체제를 돕기 위한 방송에 아나운서들이 동원되었기 때문이었다. 한 쪽은 검은 마스크를 쓰고, 또 한쪽은 마이크를 들고 마주했던 상황은 고대영 체제가 만든 비극의 한 장면이었다.
2012년 MBC 총파업 당시 MBC 아나운서들은 기가 막힌 경험을 했다. 함께 싸우던 모 아나운서가 파업을 중단하면서 던진 발언 때문이다. "2008년 입사할 때쯤 2012년 런던올림픽 방송을 한다는 하나님의 비전이 있었다. 파업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고 끊임없는 기도에 대한 주님의 답은 '런던 올림픽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유명한 신의 계시 발언이다. 이후 MBC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파업을 접었고, 이 아나운서는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로까지 발탁된다. MBC 아나운서들의 위상을 바닥으로 처박은 충격적인 사건임에 틀림없다.
방송 중인 아나운서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의 그 선택은 대체 어떤 이유 때문인가? "아나운서로서 중립을 지키고 싶다.", "나는 회사가 부여한 임무에 충실할 뿐이다.", "내가 속한 조합을 버릴 수 없다" 이렇게 대답할 것인가?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공영방송 정상화를 바라는 국민들에게는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신의 계시란 핑계와 다를 바 없다.
지금 방송 중인 아나운서여!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고대영과 이인호가 이끄는 KBS는 공적책무를 수행할 만한 기능을 상실한 채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중립이라는 미명 아래 마이크 앞에 서는 것은 고대영과 이인호 체제를 비호하고 오히려 힘을 실어주는 선택이다. 역사가 잘못 흘러가고 있을 때 중립을 지키는 것은 그 잘못에 동조하는 행위일 뿐이다.
'KBS 아나운서'라는 영광된 이름을 함께 나누는 선배 동료들이여, 이제라도 마이크를 내려놓아라. 그대들의 운명을 고대영과 이인호의 폭주기관차에 싣지 마라.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그 자리에 선 자부심을 잃지 마라. 싸구려 보직이나 영혼 없는 방송에 몸을 맡기지 마라. 우리는 방송하는 로봇이 아니다. 우리는 KBS의 상징이자 자존심인 KBS 아나운서다.
“화성의 ‘흐르는 물’은 모래입자 흐름” 새 주장
2015년 NASA 연구진 ″경사면에 소금물 흐름 증거″
2017년 NASA 다른 연구진 ″지형분석 결과 모래흐름″
최종 확인 위해선 후속 연구와 탐사 필요할 듯
2015년 미국항공우주국(나사)는 화성의 헤일 분화구에서 흘러내리는 100m가량 길이의 어두운 색 줄기들이 소금 성분을 함유한 흐르는 물인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밝혔다. 영상은 나사와 제트추진연구소, 애리조나대 과학자들이 만든 것으로 가상 색으로 처리됐다. 나사 제공
2015년 미국항공우주국(나사)는 화성의 헤일 분화구에서 흘러내리는 100m가량 길이의 어두운 색 줄기들이 소금 성분을 함유한 흐르는 물인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밝혔다. 영상은 나사와 제트추진연구소, 애리조나대 과학자들이 만든 것으로 가상 색으로 처리됐다. 나사 제공
2년 전 화성에 ‘흐르는 물’이 있다는 미국항공우주국(나사)의 발표를 사실상 뒤집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라 ‘화성의 흐르는 물’의 존재는 현재로선 유보적이며 앞으로 더 많은 확인 연구가 필요할 듯하다. 최근 나사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물의 흐름이 있는 곳으로 지목된 화성 표면의 지형을 분석해 ‘현재 화성에 물의 흐름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다른 해석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9월 말, 나사는 “오늘날의 화성에 액체 물이 흐른다는 증거를 확인했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이런 내용의 화성 관측과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에 나사 연구에 참여한 애리조나대학 등 연구진은 화성 표면에서 어두운 띠 모양의 줄기들이 비탈을 타고 내려오는 지형이 있으며, 이 줄기들에 소금기의 소금수화물이 덮여 있다는 스펙트럼 분석 증거를 얻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지난 15년 동안 이런 현상이 따뜻한 계절에 나타났다가 추운 계절에 사라지는 반복적인 패턴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이 지역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경사선(RSL, 반복경사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런 발견 보고는 현재에도 화성에 생명체가 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큰 주목을 받았으며, 세계 언론매체들이 주요 기사로 이 소식을 전했다. 이 결과는 당시에 과학저널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발표됐다.
그런데 따뜻한 계절에 나타나는 이런 지형의 특징이 사실은 액체 물의 흐름이 아니라 응집성 없는 모래 입자들의 흐름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또다른 나사 소속 연구진의 다른 분석 결과가 최근 나왔다.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실린 이 논문에는 2015년 논문에 참여했던 애리조나대학 달과행성연구소 연구자도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 나사가 공개한 영상. 화성 표면의 경사면에서 관측된 물의 흐름은 사실 모래 입자들의 흐름일 수 있다는 다른 연구결과가 나왔다. 나사 제공
연구진은 2015년 연구진이 주로 사용했던 스펙트럼 분석과 다른 방법으로 화성의 경사면 지형을 분석했다. 이들은 지형학 분석 모형을 이용해, 관측된 경사면의 지형 특성이 바람의 작용에 의한 응집성 없는 모래 입자들의 흐름과 일치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연구진은 ˝따뜻한 계절에 나타나고 소금수화물이 검출된 점은 초기에 물의 역할이 일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렇지만 액체 물의 양은 적거나 없는 듯하다˝˝고 밝혔다. 현재의 화성 표면은 여전히 건조하고 황량하다는 것이다.
나사가 발표한 연구결과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진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0년 12월 나사 연구진은 '지구 생명체의 6대 구성물질 중 하나인 인(P) 대신에 독성물질인 비소(As)를 써서 디엔에이(DNA)를 구성하는 새로운 생명체를 발견했다'는 요지의 논문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해 큰 주목을 받았지만 곧이어 큰 논란을 겪어야 했다. 당시 논문의 데이터와 해석이 올바른지를 두고서 일부 과학자들이 잇따라 문제를 제기하자, 논문을 실었던 <사이언스>는 반년 만에 나사 연구진의 논문을 반박하는 여덟 건의 글과 나사 연구진의 해명을 온라인판에 실었다. '비소 미생물 논문' 논란은 나사의 과장 홍보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발견된 과학적 증거를 어떻게 적절히 해석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관련기사 링크: ″의문 키운 NASA '비소 미생물' 본격논쟁 국면으로″〕
‘올해의 세계 건물’에 흙집이 뽑혔다, 왜?
제10회 세계건축축제 - 지진 피해 컸던 중국 윈난성 흙집 시범주택 ‘대상'에 선정
‘올해의 세계 건축물’에 뽑힌 중국의 흙집. 세계건축축제(WAF) 제공
세계 최대 건축 경진대회 가운데 하나인 제10회 세계건축축제(WAF)에서 그랑프리인 '올해의 세계 건축물' (World Building of the Year)에 중국의 흙집이 선정됐다. 홍콩중문대가 윈난성 쿤밍대와 함께 추진한 이 흙집 시범 프로젝트는 지진으로 폐허가 된 중국 남서부 윈난성 자오퉁시 광밍마을에 지어졌다. 이 지역에는 지난 2014년 8월 규모 6.5의 강진이 발생해 수백명이 숨지는 피해를 입은 것을 비롯해 이후에도 여러 차례 강한 지진이 일어났다. 이 시범 주택은 값싸면서도 지진에 견딜 수 있는 튼튼한 흙집 기술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흙벽 안에 강철과 콘크리트 막대를 보강해 내진 강도를 높였다. 노인 부부를 위해 지어진 이 시범 주택은 지난해 완공됐다. 첨단 재료와 기술을 활용한 건축물을 예상한 일반의 예상과는 다른 선택이다.
주최 쪽은 "이 흙집이 안전하고 경제적이며 편안하고 지속가능한 재건 전략을 제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강조했다. 심사위원단은 심사평에서 "이 건물이 보통 사람들이 직면하는 중대한 문제를 다루는 데 하나의 전범을 보여줬다"며 전통적 재료와 건축에 신기술을 덧붙임으로써 ‘과거의 지혜와 현대의 노하우를 결합’한 것에 찬사를 보냈다. 심사위원단은 또 지진 위험에 노출돼 있는 저개발국 주민들에게 이런 건축 방식을 널리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 대회 감독 폴 핀치는 이 건물에 대해 "부유한 나라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나라에서도 적절한 건축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중국 흙집의 내부.
15~17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68개국 434개의 건축 프로젝트가 최종 후보로 선발돼 경쟁을 벌였다. 참가작들은 이란의 병원에서 중국의 소형 내진 주택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핀치 감독은 "이 행사는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 추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며 "이를 위해 건축가들에게 향후 10 년 동안 직면하게 될 주요 도전 과제에 대한 지침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주요 과제들은 기후변화, 에너지, 온실가스, 물, 윤리, 가치, 문화적 정체성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