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18
11.13 한겨레 -주간경향
인간말종들 한겨레21 제1186호(11.10)
시애틀, 창조도시의 비인간적 실험실 1110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베트남, 세계 제2의 공장이 된 이유
노조 없는 파업
‘단타족’ 사라질까?…지방 민간 아파트도 전매 제한 1110 조선
공기업은 채용비리 단속하는데...대기업은 '직원자녀 우선채용' 여전
與 '73개 적폐청산 리스트' 다 조사한다며 계획표 짰다
한미일 합동훈련 거부가 “아마추어 외교”라는 조선일보 1111 미디어오늘
밥하다 잡혀와 징역 6년… 재건축 '탐욕'이 부른 형벌 1110 국민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신화 1110 경향
50%가 소외된 교육에 미래는 없다
유럽의 동물복지, 농장동물 위해 100년간 토론하다 [작은것이 아름답다] 1111
'바꿔치기 대통령'의 비극 -이명박-박근혜 10년은 '염병 공화국'이었다
노조가 반긴 국민연금 김성주 이사장 1110 아주경제
은행 임원 잘못 저질러도 징계는 항상 '솜방망이'…왜 1110 연합
'이명박근혜'는 못한 일, 공정위 전속고발권 대폭 축소 1112 프레시안
全은 골목성명 朴은 대독성명…MB 공항성명의 결말은1112 머니투데이
사립대 총장 집단 반발에… ‘입학금 폐지’ 무산 위기 1112 국민
사총협, 입학금 관련 조사 거부… 교육부에 통보
50년에 25%…시골 나무보다 빨리 자라는 도시 나무, 이유는? 한겨레1114
또 역대급 4행시 참사 발생…이번엔 국방부다 1114 한겨레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또…’ 반응에 풍자 댓글 봇물
도둑들 경향 1113
‘세금도둑’ 홍준표를 고발한다 1113 경향
박정희 재단이 손가락질 받는 3가지 이유 1115노컷
말춤’ 추는 김정숙 여사 본 문 대통령 표정
시민사회·정치권이 한목소리로 ‘박정희 동상’을 반대하는 이유 1115민중
시민사회·정치권 “친일·독재 박정희 동상 절대 안돼” 한목소리
‘JSA 귀순’ 대응 사격 안한 우리 군 조처 과연 문제일까 1115 한겨레
굴·홍합 통해 매년 미세플라스틱 1만1천개 먹는다
한국인 32%만 “난 건강해” OECD 꼴찌···삶의 만족도도 ‘최하’1115경향
외환위기 20년, 끝나지 않은 고통](상)“퇴직금 다 털어 자영업 뛰어들었지만, 버틸 수가 없었다”
상)외환위기 대가는 ‘비정규직 공화국’
(상)외환위기 책임자들 정치권으로, 재계로, 경제관료로…국민 고통과는 괴리된 삶
상)건전성 좋아졌지만 성장은 제자리…‘기업 체질개선’ 아직 멀었다
(상)세금으로 연명하던 기업 퇴출…30대 그룹 63% ‘물갈이’
63명중 22명이 운동권·시민단체 출신… 주목받는 비서관 3人 1118 조선
한국경제·문화일보·아시아경제 ‘반올림 왜곡’ 법정으로 1118 미디어오늘
반올림 측, ‘왜곡보도’ 10건 대상으로 세 번째 손해배상 청구소송…앞선 소송은 모두 승소
천안함 인양업체 부사장 “폭발한 배와 천안함 다르다” 증언
경찰청 '유대균·박수경' 불륜 찾으려 정액 채취 시도1118 노컷
"치정관계 부각하라" 지침 하달…오피스텔서 쓰레기통·이불까지 뒤져
류여해 "포항 지진은 文정부에 대한 하늘의 경고" 발언 논란 1118 프레시안
박정희 추종자들, 이래도 동상이 필요한가?
부산주택 8.8%(9만8000채) 외지인 소유…양산사람 최다 1118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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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17 경향 장도리
인간말종들 한겨레21 제1186호(11.10)
최근 나를 두 번이나 크게 놀라게 한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JTBC)라는 탐사보도 프로다. 이 프로는 최근 과거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에서 무고한 시민들에게 자행한 조직적 간첩조작을 다뤘다.
나는 먼저 그 간첩조작 사건들이 오로지 실적을 올리고 조직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광범하고 무차별적으로 벌어졌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짐작은 했지만 설마 저 정도일가 싶게 마치 일상의 사무를 처리하듯 죄 없는 사람들을 간첩으로 만드는 ‘숙련된’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왜 사과하지 않는 걸까
방송이 끝날 무렵엔 또 다른 의미에서 놀라움을 주는 장면이 있었다. 지난 시대, 그것도 민주정부라고 하던 김대중 정부 때 한 철학교수가 간첩 누명을 쓰고 곤욕을 치른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의 담당 책임자인 전직 기무사 요원이 이제는 고인이 된 그 교수의 유가족을 찾아가 그때의 잘못을 사죄하는 모습이 방영됐다. 그 모습은 대개 ‘애국’이라는 미명으로, 또는 위에서 시켜 어쩔 수 없이 했다는 논리로 사과는커녕 반성도 하지 않아온 관행(?)을 깨고 국가폭력의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직접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아마 우리 사회에선 거의 있어본 적 없는 희귀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은 짧았으나 내게 긴 여운을 남겼다. 그리 길지 않은 사과 한마디로 피해자 유가족의 오랜 원한과 울화가 풀리는 해원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제작 배포한 영화 <공범자들>도 최근에 접한 인상적인 기록물이었다.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와는 대조적으로 이 영화엔 지난 이명박·박근혜 ‘도둑정권’ 시기에 수많은 기자와 프로듀서를 탄압해 그 영혼과 신체를 공히 피폐하게 만들고 공영방송과 준공영방송을 ‘권력의 시녀’로 전락시킨 크고 작은 범법자들이 나온다. 그 인물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자신이 저지른 일에 사과는커녕 유감의 뜻 한마디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거듭되는 인터뷰 요청에 도망가고, 얼버무리고, 나아가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거나 협박을 해댄다. ‘뻔뻔스럽다’라는 말로 다 표현할 수도 없는 후안무치한 인간들을 보며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타락할 수 있을지 차라리 연민을 느끼게 했다.
우리는 잘못을 저지르고 그것이 잘못이라고 깨달았을 때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사과해야 하며, 사과는 빨리 할수록 좋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현실에서, 특히 공적 영역에서 이런 가르침은 무용지물에 가깝다. 염치를 알 만한 공인들이 금방 들통날 거짓말과 말도 안 되는 부인과 발뺌을 아무렇지 않게 늘어놓는 모습을, 자주 익숙하게 보아왔다. 도대체 왜 그럴까. 한시라도 빨리 뉘우치고 사과하면 피해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구원도 훨씬 쉽고 빠르게 온다는 걸 모를 리 없는 이들이 왜 저렇게 인간적 품위를 내팽개치며 구차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망가져가는 것일까.
친일파부터 세월호 책임자까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그로 인해 잃는 게 많아서일 것이다. 그 잘못으로 돈이든 권력이든, 어떤 안락이든 원래 자기 것이 아니어서 자신이 취하면 안 될 것을 가지게 된 사람들은 이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게 시작한 작은 거짓말이 큰 거짓말을 낳고, 그러다보면 진실과 거짓이 혼동될 지경에 이를 것이다. 그때가 되면 회피도 도망도 없이 뻔뻔해지고, 점점 더 뻔뻔함이 확신에 찬 당당함으로 바뀌고, 피해자에게 2차·3차의 가해도 서슴지 않는 괴물이 되어간다. 멀리 친일파부터 가까이 세월호 책임자들까지 이런 인간말종형의 괴물들이 살아남아 승리자가 되고 지배자가 되는 끔찍한 사회가 오늘의 한국 사회가 아닐까./김명인 인하대 교수·계간 <황해문화> 주간
시애틀, 창조도시의 비인간적 실험실 1110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파리에서 런던까지, 시드니에서 몬트리올까지, 암스테르담에서 뉴욕까지 전 세계의 모든 대도시는 역동적이고 포용력이 있고 혁신적이고 지속적인 발전을 추구하고 창의적이고 연결성이 높은 곳이고 싶어 한다. 그렇게 구매력이 높고 젊고 고학력인 '재능 있는 인재들'을 사로잡으려는 것이다. 기업과 부동산개발업자들이 콧노래를 부르는 시애틀처럼 말이다.
“이곳에 분노가 머물 자리는 없습니다.”,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개의치 않아요, 당신이 우리 이웃인 게 좋아요.”, “인종, 출신, 성적 성향, 종교와 무관하게 우리는 모든 손님을 환영합니다.”
시애틀에 있는 많은 가정집의 정원에 세운 팻말이나 상점의 유리창에 때때로 아랍어, 스페인어, 한국어로 이렇게 적혀 있다. 2017년 6월, 성 소수자 인권의 달(LGBTQ Pride Month, 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퀴어의 권리를 주장하는 최대 축제)을 맞아 무지개 깃발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거리 모퉁이마다 달린 이 깃발은 다소 가격대가 높은 7색 스페셜 컬렉션을 출시한 신발브랜드 닥터 마틴의 매장 진열장도 장식했다. 무지개 깃발은 1962년 만국박람회의 유산으로, 바늘 형태의 탑에 비행접시를 올린 듯한 스페이스 니들과 스타벅스 본사 꼭대기에도, 시청 앞 게양대 성조기 밑에도 걸려 있다.
태평양 연안에 자리한 시애틀은 주민의 87%가 지난 11월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에게 투표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정책에 반대하는 법률적 저항이 시작된 곳으로, 개방과 관용, 다양성을 도시의 가치이자 표상으로 삼고 있다. 이 세 가지 미덕은 도덕적 의무인 동시에 상업적 전략이자 성장의 지렛대이며, 도시의 ‘비교우위’이기도 하다.
“출신이 다양하고 다채로운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도시와 같은 곳에서 서로 어울려 지내면 그들의 아이디어가 서로 만나고 뒤얽혀 풍성해집니다. 서로 다른 개인들이 모여 우리 주민으로 어우러지면, 도시에는 활기가 넘칩니다.” 브라이언 서랫 도시경제발전부장의 말에 이어, 새뮤얼 아세파 도시관리계획 부장도 나섰다. “우리가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재능 있는 인재를 끌어모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개방적인 도시여야 하지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동했습니다. 포드가 디트로이트에 공장을 짓자 사람들이 디트로이트에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30년, 40년, 50년을 일했습니다. 지금 젊은 임원들은 우선 살고 싶은 도시를 선택합니다. 창의적이고 포용력 있고 자연과 가깝고 야외 활동과 밤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도시를 선호합니다.”
구매력의 70%를 보유한 ‘창조계급’을 잡아라
아세파 부장은 아디스아바바 태생으로 매사추세츠주 공과대학교(MIT)에서 도시관리계획을 전공했다. 서랫 부장과 아세파 부장 모두 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로부터 이론적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대중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 대다수 동료에게서 비난받는 이 토론토대학 교수는 15년 전부터 도시정책 결정권자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창조적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1)이 서점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후, 2002년부터 끈질기게 되풀이된 그의 이론은 실상 간단하다. 한 마디로, 산업, 제조, 채굴로 대표되는 ‘구식경제’는 이제 ‘창조경제’에 자리를 내줘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시의 목표는 더 이상 고속도로와 콘퍼런스 센터를 짓고 세제 혜택과 보조금을 지급하며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혁신, 발명, 그리고 포괄적으로 지적 자산을 활용해 부를 창출해야 한다. 그러려면 ‘재능 있는 인재’, 즉 예술가, 엔지니어, 저널리스트, 건축가, 경영자, 자본가, 법학자, 연구원, 정보기술자, 의사 등이 필요하다. 즉, 서랫 부장과 아세파 부장, 이 두 사람처럼 명망 있는 학교를 졸업하고 결정권을 지닌 자리에 올라, 높은 보수를 받는 이들을 도시로 끌어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연봉은 각각 13만 2천 달러, 16만 7천 달러이다.(2)
플로리다 교수의 과감한 계산에 의하면, 미국 경제활동인구의 30%가 ‘창조계급’이고 구매력의 70%가 그들에게서 나온다. 이 핵심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플로리다 교수는 그들의 이미지에 걸맞은 도시를 재창조하자는 ‘턴키(turn key)’ 해법을 제안한다. 대부분 젊은 고소득자인 이들은, 더 이상 예전 화이트칼라처럼 교외에 정착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할 수 있고 새벽 3시에도 문을 연 식당이 있으며, 공정무역 제품을 살 수 있는 유럽식의 ‘다이내믹한 도심지’를 선호한다. 그들은 특히 ‘활기 넘치는 거리, 독립카페, 예술, 음악, 야외활동’은 물론 ‘출신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을 즐긴다. 그러므로 그들이 유입되길 원하는 도시는 이런 조건에 맞춰 자전거도로와 콘서트홀, 박물관을 세우고 차별을 철폐하고 높은 수준의 대학교를 지원함으로써 도시 이미지를 개선해야 한다.
플로리다 교수는 ‘경제적 성공을 위한 세 가지 T인 포용(Tolerance), 재능(Talent), 기술(Technology)로 자신의 이론을 포장했다. 그리고 잡다한 자료(동성커플, 외국인, 가시적 소수자의 비율, 출원된 특허와 스타트업의 숫자, 대졸자 비율 등)를 섞어 각종 지표(‘게이’, ‘보헤미안’, ‘재능’ 지수 등)와 순위표를 만들고 (각 도시가 개선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유럽과 캐나다까지 대상 지역을 확대했다. 그의 방법은 ‘창조계급’에 해당하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언론, 공공정책 결정권자, 기업대표들은 플로리다 교수를 예찬했고 그는 세계 방방곡곡으로 초청돼 강연했다. 그가 (대략 2년에 한 권씩) 출간하는 책은 찬미와 강연 초청장을 불러 모아 그의 권고 사항은 국제도시 간 경쟁에서 ‘모범 실천 방안’의 지위를 차지했다. 시드니에서 파리, 몬트리올에서 베를린까지 모든 대도시는 이제 역동적이고 혁신적이고 지적이고 창의적이고 지속 가능하고 연결된 곳이길 원한다.
창조도시에서 탈산업화에 맞서 살길을 모색하려는 10여 개 미국도시는 플로리다 교수와 그의 컨설팅업체 ‘크리에이티브 클래스 그룹(Creative Class Group)’에 도움을 청했다.(박스기사 참조) 창조 노선으로 이미 접어들었던 다른 도시도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받아 기뻐하며 지적노동자를 불러 모으기 위한 노력을 배가했다. 플로리다 교수가 2003년 시장의 초청으로 강연을 했던 시애틀이 바로 그런 경우다. ‘에메랄드 시티’ 시애틀과 인근 지역은 오랫동안 ‘구식경제’로 생계를 이어왔다. 주위 환경을 이용한 산림업, 북미의 가장 대표적인 항구를 활용한 조선업과 항만업, 특히 지역산업의 꽃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보잉사를 중심으로 영화를 누린 항공 산업 등이다. 당시 기업은 다양성 대신 넉넉한 보수로 흑인 중산층의 단합을 이끌었다. 1970년, (시애틀이 속한) 킹 카운티 내 아프로 아메리칸 중 49%가 자택을 보유했는데 이는 인종과 무관하게 전체 인구를 통합한 전국 평균(42%)보다 높은 수치였다.(3)
재능 있는 인재가 넘쳐나는 에메랄드 시티
오늘날 이 수치는 28%에 불과하다. 30년이 넘게 시애틀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투쟁한 존 폭스 ‘시애틀지킴이연합(Seattle Displacement Coalition)’ 설립자는 “신기술 붐 때문”이라고 딱 잘라 말하며 “1970년대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보잉사는 수천 명의 노동자를 해고했습니다. 이에 따라 시애틀 인구도 감소했고 부동산 시장은 무너졌지요. 땅값이 비싸지 않으니, 도심지를 ‘재개발’하려는 민간자본이 유입됐습니다. 1980년대부터 사무실 건물이 곳곳에 들어섰고 전문직 청년층과 딩크족들이 들어왔지요”라고 설명했다. 이야기의 소재는 ‘재능 있는 인재’로 이어졌다.
1986년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 본사를 시애틀 북동부 레드먼드로 옮겼다. 당시 ‘캠퍼스’의 6개 동에서 일하던 직원 수는 800명이었으나, 이제 4만 4천 명으로 늘었다. 1987년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사를 차려 트렌디한 카페를 필두로 세계를 공략하고 나섰다. 그리고 1994년 제프 베조스는 아마존을 설립했고, 소박한 온라인 서점에 불과했던 아마존은 곧 전자상거래의 거인으로 거듭났다. 플로리다 교수의 베스트셀러 저서가 출간된 2000년대 초반, 시애틀은 (다양한 지수를 종합한) ‘창의성’ 지수에서 5위를 차지했다. 이제 시애틀은 스스로 현대적이고 혁신적인 대도시의 전범으로 여기고, 관광청에서는 시애틀의 전통적인 애칭인 ‘에메랄드 시티’를 음성 약어 ‘See@L’로 대체하려는 계획안을 만지작거리다가 내려놓았다.(4) 시애틀의 대담한 시도에 반한 플로리다 교수는 자기 이론의 모델로 시애틀을 꼬박꼬박 언급한다. 시애틀도 이에 호응하듯 도시 정책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근거로 플로리다 교수의 이론을 내세운다.
15년 전부터 미국 도시는 인재유입 전쟁에 뛰어들었고, 시애틀은 두려운 경쟁자로 자리매김했다. 시애틀은 ‘세 가지 T’를 갖추기 위해 무엇이든지 한다. 애지중지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낡은 공장을 번쩍이는 사무실로 변모시킬 도시계획을 짜고, 자전거도로를 마련하며, 공동생태정원 개발을 지원한다. 또한 ‘스타트업 시애틀’ 프로그램과 매년 시청에서 열리는 ‘스타트업 위켄드’를 통해 ‘스타트업 정신’을 고취한다. ‘인종·사회적 정의를 위한 이니셔티브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제도적 인종차별’에 반대한다. 이 투쟁에는 기업도 동참한다. 스타벅스는 ‘시애틀 시어터 그룹’과 파트너십을 맺고 “젊은 예술가들에게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한다. 아마존은 ‘LGBTQ 공동체’를 위한 ‘글라마존(Glamazon)’, 여성을 위한 ‘위민@아마존’, ‘흑인 노동자 네트워크’, ‘장애인을 위한 아마존 피플’ 등의 프로그램으로 사무실 내 다양성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아마존 워리어’라는 전역 전투원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이런 노력의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시애틀이 ‘2012년 창조성 순위’에서 오스틴을 제치고 4위를 차지한 것이다. 같은 해, 여행 전문지 <트레블+레저>는 ‘힙스터를 위한 최고의 도시’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을 시애틀에 부여했다. 다른 경쟁자로는 이웃 서부 도시 포틀랜드와 샌프란시스코가 있었다. 4년 후 재평가될 이 순위는 마케팅연구사 ‘인포그룹’에서 타투이스트, 자전거 판매상, 독립 카페, 수제 브루어리, 빈티지 패션샵, 음반 가게 등의 숫자를 반영한 ‘힙스터 지수’를 통해 평가한다.(5) 한 지역 월간지의 표현을 빌자면 시애틀은 이제 ‘사람들이 혁신을 이루고,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살고, 대체로 가치관을 공유하는 이웃과 함께 지내려고 오는 곳’(6)이 됐다.
고학력, 부유층, 백인남성 중심의 ‘다양성의 도시’
전 세계 대학졸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시애틀의 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지난 몇 년간 이런 추세가 강화됐다. 2015년 7월에서 2016년 7월까지 2만 1천 명이 새로 이주해 현재 인구는 총 70만 명에 달한다. 한때 ‘제트 시티’로 불리던 시애틀은 해를 거듭할수록 고학력에 부유층인 백인 남성을 불러 모으고 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에서, 구글과 페이스북의 엔지니어링 센터에서, 또 수많은 현지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엔지니어, 정보기술자, 알고리즘과 마케팅 천재, 광고업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최근 인구조사에 의하면, 시애틀에 거주하는 25~44세 남녀 성비는 118대 100이다. 센트럴 디스트릭트처럼 1970년 73%에 이르렀던 흑인 인구 비율이 20% 미만으로 급감한 지구도 있다.(7)
가끔 예외가 있긴 하지만, 시애틀에서는 대부분의 인터넷 대기업이 식당, 미용실, 스포츠룸, 의료시설 등을 갖춘 자급자족 체제의 종합단지를 교외에 세운 실리콘밸리와 대조적인 모델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이곳 기업들의 상당수가 한때 노동자 지구나 산업 지구였던 도심지에 자리 잡고 있다. 아마존 웹사이트에는 플로리다 교수의 영향을 받은 말투로 “교외에 정착하는 편이 더 저렴하겠지만 시애틀 도심에 투자하기로 한 것은 의식적인 선택이었습니다. (…) 우리 직원들은 도시 중심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직원 중 15%는 사무실 근처 주택단지에 살고, 20%는 걸어서 출근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아마존은 자신의 ‘도심 캠퍼스’에 자부심이 강해서 일주일에 2회 무료견학을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에 참여하려면 석 달 전에 예약해야 한다. 거대 온라인 유통업체 아마존은 현재 에메랄드 시티인 시애틀에 건물 33채를 보유하고 있다. 다른 건물도 신축 중인데 대표적으로 150m에 달하는 고층건물 4채와 유리로 된 거대 돔형 건물 3채가 있다. 회사는 이 돔형 건물이 친환경적이고 혁신적이며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설계된 미래형 사무실이라고 소개했다. 차도로 둘러싸인 친환경 보석상자가 될 이 ‘바이오돔’에는 식물과 나무 300종, 식물벽, 연못, 정보기술자들이 새집처럼 높은 곳에 있는 콘퍼런스 룸에 가기 위해 지나게 될 현수교 등이 마련될 예정이다.
현재 아마존 시애틀 본사에는 4만 명이 일하고 있다. 고용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신입사원을 위해 ‘회사 오는 길’ 안내판이 거리 곳곳에 붙어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창업한 폴 앨런이 운영하는 부동산개발업체 벌컨의 도움을 받아 아마존은 사우스 레이크 유니언 지역에 촘촘한 망을 구축하고 있다. 이미 베조스는 2012년 벌컨을 통해 건물 11채를 10억 달러 이상 지불하고 구입했다. 한때 창고, 작업실, 자동차 판매점으로 북적이던 사우스 레이크 유니언 지역은 이제 개방형 쇼핑센터와 흡사한 모습이다. 완벽하게 가지치기한 관목으로 꾸미고 종잇조각이나 담배꽁초는 찾아볼 수 없는, 깨끗한 보도가 신축된 것이다. 거리는 저녁과 근무시간에는 한적하지만 점심시간이면 파란색 명찰을 목에 건 아마존 직원들로 북적인다. 화창한 날이면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다양한 출신의 청년들이 이국적인 메뉴, 유기농 음식, 글루텐프리 식단을 즐기러 푸드트럭과 식당으로 향한다.
노동자들이 거주했던 인접 지역에서는 크레인과 포크레인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부동산개발업자들이 한 구획씩 밀고 들어오다가 마지막 남은 서민주택단지마저 철거하고 새로운 복합단지를 세우고 있다. 이 복합단지는 고급스러운 취향을 지닌 고객층의 구미에 맞는 서비스로 채워질 예정이다. 가장 최근 지어진 건물에는 옥상정원, 반려동물을 목욕시킬 수 있는 공용 공간, 셰프를 초대해 노하우를 배우는 시연용 주방 등이 갖춰져 있다. 다른 건물에서는 유기농 식용닭을 키우는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해먹이 놓인 일광욕실과 포커룸을 마련했다.
시애틀의 마트 계산원은 시애틀에 살지 않는다
다른 건물에서는 수제 맥주를 제조할 수 있는 장비를 대여하고 반려동물을 위한 스파와 아마추어 목수들을 위한 창의력 실험실이 될 공방을 운영한다. 가격 또한 ‘창의적’이다. 이 럭셔리 건물에서 가장 작은 원룸의 월 임대료는 1천 5백 달러(한화로 약 169만 원-역주). 시애틀 시청이 용도지역 규정을 개정하고 저층 주택 중심의 주거지역이었던 곳에 고층건물 신축허가를 내주면서 예전에는 도심지에서 주로 발생했던 부동산 투기가 도시 전역에 확대됐다.
“우리는 ‘밸러드화(化)’라고 불러요.” 린다 멜빈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런 현상에 자신의 이름을 내준 밸러드 지역에 사는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부동산개발업자들이 주택을 두서너 채 구입하고 15~20개의 원룸이 있는 건물을 세워 비싸게 임대합니다. 그러면 녹지는 사라지고, 주차공간은 부족해져 거리마다 교통체증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결국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게 되지요.” 린다 멜빈은 무미건조한 기하학적 형태의 신축건물을 가리키며 “이런 건물들을 보면 레고 블록이 연상된다”고 덧붙였다. 적절한 표현이다. 우리는 어느 건물 앞을 지나고 있었는데, 작은 정사각형 유리창이 가지런히 뚫린 그 건물의 모습은 교도소를 연상시켰다.
“부동산개발업자들은 이걸 ‘마이크로 아파트’라고 불러요. 학생 등 1인 가구 임대용이지요.” 주방과 욕실까지 포함된 약 10㎡의 공간이 월 800~900달러(한화로 약 90~100만원-역주)에 임대된다. 시애틀에서 거주하기에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다. 공원 한복판이나 다리 밑이나 고속도로 램프 근처에 텐트를 치고 숙박을 해결하는 노숙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킹 카운티의 노숙자는 1만 7백 명. 유례없이 높은 숫자인데 2016년에 비해 8% 증가한 것이다.(8) 아마존 붐 이후, 시애틀의 부동산 가격은 매년 10%씩 상승했다. 이에 대해 폭스는 설명했다. “집주인들이 원하는 대로 임대료를 올려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9) 시애틀은 점점 서민층은 살 수 없는 곳이 되고 있습니다. 식당 종업원과 상점 계산원도 그곳에 살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시애틀에 살 수 없는 이 사람들은 켄트, 렌턴, 투퀼라, 오릴라 등 점점 더 먼 교외에 자리 잡습니다.”
사실상 우리가 만난 단순노동자들(소수민족 출신의 여성이 다수) 중, 시애틀에 사는 사람은 없었다. 슈퍼마켓 직원, 우버 운전자, 개인주택 가정부, 은행 야간 경비원, 패스트푸드점 판매원, 박물관 매표소 직원 등 이들 모두 일터로 가기 위해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해야 한다. 2014년 시의회는 2021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하는 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부동산 가격 상승을 따라잡기에는 부족하다. “시장의 힘이 얼마나 무력한지, 경제순환을 위해 노동자용 주택도 공급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입니다.” 크샤마 사완트 시의원은 마르크스주의적인 표현을 쓰며 설명했다. 그는 2013년 민주당 출신 7명과 함께 시의원에 당선됐고 1877년 이래로 시청에 입성한 최초의 ‘사회당원’이다. 2016년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버니 샌더스를 지지한, 경제학 박사 출신의 사완트 시의원은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대료를 엄격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평등을 심화시킨 시애틀의 진보주의
플로리다 교수의 창조도시 또한 ‘자기모순’과 씨름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진보주의를 지지하며 민족, 보건 또는 환경문제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일부 정치인들이 사실상 서민층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다. 재능 있는 젊은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사용된 민족적, 성적 다양성이라는 마법의 주문이 간접적으로 사회적 다양성의 후퇴로 표출되고 있다. 종이봉투에 부과되는 환경 부담금과 520번 다리를 이용하는 교통량을 줄이기 위한 통행료도 저소득층에 유독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전거도로가 마련되고 ‘친환경’ 건물이 등장했다는 소식은 곧 임대료가 오른다는 말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풍자적인 사례는, 다름 아닌 ‘비만과의 전쟁’이다. 다른 ‘스마트’ 도시(버클리,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의 선례를 따라 시애틀도 2017년 6월 탄산음료세를 도입했다. 2리터 당 약 1달러가 부과되는 이 세금은, 서민층에서 많이 소비하는 탄산음료를 주로 겨냥하고 있다. 시의회는 탄산음료처럼 열량이 높은 우유가 들어간 음료, 다시 말해 유행을 선도하는 계층에서 즐겨 마시는 ‘라테’나 ‘프라푸치노’ 같은 음료는 세금부과 대상에서 제외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진보주의의 앞길을 밝히는 등불인 시애틀이라면서 환호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지독하게 불평등한 도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민층을 위한 살 곳조차 제공하지 못하고 부동산개발업자는 시청을 제집 드나들 듯합니다. 워싱턴주에서는 소득세가 없으니 미국에서 가장 후진적인 조세제도를 운용하는 겁니다. 부자들의 소득 중 각종 세금과 공과금으로 들어가는 비율이 가난한 사람들보다 적습니다.”
토비 세일러는 이렇게 개탄했다. 은퇴한 변호사로 ‘밸러드화’ 중인 프리몬트 지역에 사는 그는 민주당 내 좌익에서 활동한다. 그는 특히 시애틀이 상당수의 이웃 도시들과는 달리 부동산개발업자들에게 개발영향부담금(Impact fee)을 부과하지 않아서 유감스럽다고 했다. 수많은 주민단체가 그의 주장에 동조한다. “부동산개발업자들이 계속 건물만 지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들의 프로젝트로 발생한 결과에 책임을 지기 위한 비용도 지급해야 합니다. 학교를 짓고 대중교통을 마련하고 도로를 만들고 하수도를 관리하고 방화시설을 마련해야지요.” ‘시애틀의 공평한 성장(Seattle Fair Growth)’ 단체 회원이자 최근 부동산개발업자들의 투자가 시작된 월링퍼드 주민인 수산나 린은 설명했다.
선거유세 활동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는 벌컨 리얼 이스테이트, R.C. 헤드린, 시티 인베스터스 LLC 등 로비기업(10)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시의원들은 ‘대협상’이라 불리는 ‘주택 구매능력과 거주 적합성 어젠다(HALA, Housing Affordability and Livability Agenda)’계획에 사활을 걸었다. 시청이 도시개발계획을 수정하고 저층주택 지구에 고층건물 신축을 허가해 부동산개발업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그들은 개발계획 지구에 (지역에 따라) 2~9% 비율의 저가주택을 의무적으로 건설하거나 부담금을 지급하는 방안이다.
“이로써 향후 10년간 5만 주택이 신축됩니다.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상승을 억제할 수 있을 겁니다.” 시애틀의 비즈니스 지구가 내려다보이는 사무실에서 만난 서랫 부장은 이렇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린은 이에 반박했다. “우리는 성장을 향한 무한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대협상’은 주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부동산개발업자들의 배만 불릴 겁니다. 게다가 이것은 우리와 협의하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강요한 결정입니다.” 이 계획을 수립한 위원회 구성원 28명 중에서 18명이 부동산개발업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으며, 지역단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는 1명에 불과했다.
워싱턴주보다 서쪽에 있는 그랜트 카운티와 리츠빌 카운티에서 무지개 깃발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요가 클럽과 LP 레코드 판매점도 마찬가지다. 산업지구이자 시골인 이곳에는 미국을 횡단하는 트럭만 지나는데, 이곳 유권자들은 워싱턴주의 가장 가난한 카운티 24개와 마찬가지로 트럼프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다양성을 표방하며 창의적인 사람들만의 왕국을 구축하고, 제조업을 포기하고 고학력자의 사회로 전환하고, 지역경제는 목재와 토사를 집중적으로 활용해 이뤄진다. 따라서 친환경 개발을 예찬하는, 시애틀에서 유행하는 진보주의는 이곳에서 어불성설이다./ 글·브누아 브레빌 Benoît Bréville
(1) Richard Florida, <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 And How It’s Transforming Work, Leisure, Community and Everyday life>, Perseus Book Group, New York, 2002 (개정판, Basic Books, 2012). 초판의 국문 번역본으로 <창조적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2002년)과 <신창조계급>(2011년)이 있다.
(2) 1달러는 약 0.85유로, 한화로 약 1,125원. 즉 13만 2천 달러는 한화로 약 1억 4,850만원, 16만 7천 달러는 약 1억 8,790만 원이다.
(3) Gene Balk, ‘The rise and dramatic fall of King County’s black homeowners’, <The Seattle Times>, 2017년 6월 12일.
(4) Serin D. Houston, ‘Ethnography of the city: Creativity, sustainability, and social justice in Seattle, Washington’, <Geography-Dissertations>, Paper 69, Syracuse University, 2011.
(5) Katrina Brown Hunt, ‘America’s best cities for hipsters 2012’, <Travel+Leisure>, New York, 2013년 11월 및 ‘Study: Seattle tops Portland as most “hipster” city in US’, 2016년 7월 27일, www.infogroup.com
(6) Rachel Hart, ‘Sanctuary pages’, <Seattle Magazine>, 2017년 4월.
(7) Gene Balk, ‘Historically black Central District could be less than 10 % black in a decade’, <Seattle Times>, 2015년 5월 26일.
(8) Vernal Coleman, ‘Homeless in state increased last year’, <Seattle Times>, 2017년 6월 7일.
(9) 임대료 인상률이 10%가 넘는 경우, 60일 이전에 통지만 하면 된다.
(10) Cf. Casey Jaywork, ‘How Amazon and Vulcan bought their way into city hall this year’, <Seattle Weekly>, 2016년 3월 8일.
아이디어를 비즈니스로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는 자신의 저서 <창조적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의 성공을 금전적 이익으로 전환하는 재주가 있었다. 언론 덕분에 전문가 대열에 합류한 그는 15년 전부터 방송에 빈번히 출연하고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파이낸셜 타임스>, <USA 투데이>, <더 애틀랜틱>등의 일간지에도 종종 등장한다. 그리고 자신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트위터 사용자 140명’으로 꼽은 <타임 매거진> 등의 정기간행물에 기고를 늘렸다. 이런 명성을 바탕으로 플로리다 교수는 ‘크리에이티브 클래스 그룹’이라는 컨설팅회사를 설립했다. 전 세계의 도시(멤피스, 샌디에이고, 탬파, 로체스터, 디모인, 엘패소, 밀워키, 오스틴, 볼티모어, 디트로이트, 클리블랜드, 토론토, 몬트리올, 밴쿠버, 더블린, 팜플로나, 브리즈번, 케이프타운, 예루살렘)를 비롯해 박물관, 재단, 대학, UN, 미국 노동부, 아부다비 글로벌 시티 포럼 등이 그의 고객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플로리다 교수는 트렌드 리더 고객층을 사로잡으려는 민간 기업과도 함께 일한다. 그는 ‘창조계급’의 입맛에 딱 맞는 광고를 제작하려는 주류업체 바카디, 캐나다를 역동적인 나라로 홍보하려는 에어캐나다, 비용이 많이 드는 자사 공연을 유치할 만한 북미 도시를 파악하려는 엔터테인먼트 그룹 ‘태양의 서커스’ 등에게 컨설팅을 해줬다. BMW 자동차, 컨버스 운동화, 앱솔루트 보드카 술, 르메르디앙 호텔, 구글 검색엔진, 컴퓨터 대기업 마이크로소프트 등에도 크리에이티브 클래스 그룹의 손길이 닿았다.
플로리다 교수는 보고서 발행과 더불어 유료 강연에도 적극적이다. 강연 요청이 워낙 많아서 일정조율을 위해 그는 비서(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투자 대비 최대수익’을 올리기 위한 최적의 입지를 찾는 부동산개발업자를 대상으로 한 강연도 있고, 기업대표나 인사팀장 등을 상대로 ‘재능 있는 인재를 영입해 장기근속을 유도’하는 비법을 공개하는 ‘인재영입 전쟁’ 관련 강연도 있다. ‘창조계급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에 관한 강의에서는 이 소비 집단에 속한 이들의 특징을 자세히 짚어준다. 강연 안내서에는 “플로리다는 그들이 누구이고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읽고 소비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결정을 좌우하는 원칙은 무엇인지에 대한 수년에 걸친 자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라고 적혀있다. 또 ‘다양성 추구 노력을 부가가치로 전환’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 강연도 있다. 이런 강연의 강연료는 얼마일까? 회당 3만 달러에서 4만 달러까지도 한다.
베트남, 세계 제2의 공장이 된 이유 17.2.1
▲ <사이공 2> 시리즈, 2016 - 데보라 섀퍼
약 40년 간 베트남은 역동적인 성장을 기록했고, 국민들의 생활도 향상됐다. 기근은 사라지고, 청년층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그리고 트위터를 즐기며 가족과 함께 한국이나 일본 드라마를 시청한다. 그러나 노동환경은 여전히 열악하고, 경제의 해외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풍부한 검은 머리카락, 반짝이는 눈빛을 지닌 활력 넘치는 50대의 응우옌 반 티엔은 베트남공산당이 ‘엉클 호의 경제전선 병사’라고 부르는 이들 중 한 명이다. 베트남 민주 공화국의 설립자이자 베트남 독립 영웅인 호치민을 빗댄 표현이다. 그는 세계 의류 시장에서 미국의 갭, 일본의 유니클로, 스페인의 자라 등의 다국적 기업과 함께 일한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객들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수도 하노이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박장 시 외곽의 한 공장에서 그를 만났다. 기다란 창고 안에는 네 줄로 늘어선 기계와 노동자들로 가득했다.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여성이다. 공장 외곽에 있는 한 건물에는 소박한 책상들이 놓여 있다. 이곳에 조상들에게 부와 번영을 기원하는 제단이 보인다. 베트남 기업을 방문할 때마다 건물의 외부나 로비에는 제법 웅장한 제단이 있다. 이따금 사람들은 제단에 향을 피운다.
응우옌 반 티엔은 베트남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기업, BGGC(Bac Giang Garment Corporation)의 사장이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수출용 의류는 베트남 현지 시장에서는 판매가 금지돼있다. 브랜드 가치를 하락시킨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이다. 주 6일 근무를 하며 3~5백만 동(15~25만 원)의 월급을 받는 노동자들이 이 옷을 구입하기도 어렵겠지만 말이다. 10년 전 BGGC는 종업원 350명에 단 하나의 공장을 보유한 회사였고, 사장은 단순히 기술 감독원에 불과했다. 민영화가 되기 전이었다. 민영화라는 단어는 아무도, 어디에서도 언급하지 않는다. 민영화는 국유화, 주식회사화, 국영화 등의 단어로 대체된다. 주식은 더 이상 국가 소유가 아니라, 주식을 구입하거나 구입을 원하는 직원들의 소유임을 의미하는 용어의 성스러운 노선 전환이다. 공식적인 용어에 의하면, 기업은 모든 베트남인들을 위한 공동소유가 됐다. 처음에는 공평하게 분배되는 듯 보였지만, 결국 사회자본과 금융자원을 가진 이들이 가장 크고 좋은 몫을 차지했다. 방문객을 맞이하는 BGGC의 로비 한 가운데 걸린 사진의 주인공은 응우옌 후 퍼이(1)다. 그는 공산당원 출신이지만, 주식 매입과 자본 상승으로 현재 회사자본의 40%를 소유하고 있다. 어쨌든 BGGC는 번성해 공장이 5개, 종업원은 1만 4천 명으로 늘어났고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예전에 국가에서 관리하던 시절에는 당이 지도하는 인민위원회와 상무부에서 기업에 주문을 넣었다. 1987년부터 공인된 명칭인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와 함께 서구의 유명한 브랜드들이 단추 디자인부터 실, 가격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관리했다. 국가의 속박과 번거로운 서류절차로부터 벗어나서 기쁘다는 응우옌 반 티엔은 “돈은 이렇게 번다”는 걸 배웠다.
자본주의적 성공에는 특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구체제에서 벗어난 이후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주식회사로 전환된 대다수의 큰 기업들이 적자를 기록하거나 소득이 없었다”라고 한 유명 변호사가 말했다(그는 익명 표기를 요구했다). 그 변호사는 전직 국가 고위관료로, 현재는 비즈니스 분야 대형 로펌을 운영 중이다. 그의 직업 변화는 베트남의 발전 경로와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다. 1986년 도이모이, 즉 개혁정책이 시작된 이래 업계 1위 통신사 비에텔(VietTel), 유제품 그룹 비나밀크(Vinamilk), 미국 포브스지 선정 세계부호로 꼽히는 팜 낫 부엉 회장이 이끄는 빙그룹(Vingroup)과 같은 기업들은 예외적인 경우다. 특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빙그룹은 법을 넘어서서 부동산 사업권과 공공시장에서 혜택을 받아 막강한 이윤을 올렸다. 비에텔은 군부 소유로, 인공위성과 주파수 이용에 특권을 누리고 있다. 비나밀크는 싱가포르 펀드 등 외국기업이 소유하고 있다.
국가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면서 자본을 일부만 개방한 다른 기업들은 엄청난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무능력과 부패가 결합한 결과”라고 변호사는 단언한다. 페트로베트남(PetroVietnam)기업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이 기업은 소득과 적자폭에 따라 여러 명의 경영진들이 해고됐다. 공산당 응우옌 푸 쫑 서기장은 부패가 베트남 국민들의 생활을 어렵게 하고, 결국은 점점 자본이동에 노출시키며 경제를 약하게 하기에 부패근절 운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베트남 기업은 항상 작은 연못에서 헤엄치고 있었지만 이제는 넒은 바다가 눈앞에 있다”고 변호사는 말한다. 그 넓은 바다에는, 자유무역협정(FTA)과 무자비한 경쟁이라는 격랑이 도사리고 있다.
▲ <사이공 2> 시리즈, 2016 - 데보라 섀퍼
섬유기업 BGGC는 경쟁을 잘 안다. “가격 인하를 위해 일부 대기업 고객들은 베트남이나 중국, 또는 두 나라를 모두 활용한다”라고 사장은 말한다. “경쟁을 위해 모든 것을 줄여야만 했다”는 그는, 그 ‘모든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유니클로는 베트남에 하청을 주는 대신, 중국내 하청 공급량을 동결시켰다. 일본 브랜드의 다른 공급처중 하나인 레버스타일(Leverstyle)은 중국 종업원 수를 약 1/3 줄이고, 2020년까지 판매량의 40%를 생산할 예정인 공장을 베트남에 짓고 있다. 이 업체는 5년 전만 해도 베트남에 공장이 없었다.(2) 약 10년 전부터 (나이키, 아디다스, 푸마, 라코스테 제조 하청업체인) 대만의 푸첸(PouChen) 같은 대기업들이 중국공장을 버려두고 베트남 남부 호치민 인근에 2천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의류섬유기업협회(Vitas, 경영자 기구)의 부회장 쯔엉 반 캄에 의하면, 베트남 섬유수출의 65%는 외국자본 기업이나 외국기업고객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1970년대 소련 관료 스타일의 부회장은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획일화를 거부하는 젊은 세대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Vitas에서 처음 개혁을 요구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젊은 세대에게 일자리를 주어야만 한다. 이것은 우리가 가진 유일한 자산이다.” Vitas가 선구자였던 셈이다.
“세계경제는 해외이전의 물결에 의해 움직인다. 일본과 한국으로 향하기 위한 해외이전 물결은 유럽을 떠나 중국으로 옮겨갔다. 중국의 임금 상승과 함께 해외이전은 베트남, 방글라데시, 버마로 넘어왔다. 이는 당연한 법칙이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윤창출까지는 10~15년 정도의 사이클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을 훈련시키고, 실적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세계무역기구 전 사무총장이자 확고한 사회주의자 프랑스인 파스칼 라미는 말했다.
대다수의 경영진들이 그렇듯이 쯔엉 반 캄은 미국 및 11개국과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상당한 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열정적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무역협정”이라고 평가하지 않았던가.(3) 세계은행의 예상을 토대로 섬유업계는 현재 세계시장 점유율은 4%지만 2015년에는 11%로 오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고, 전자업계는 약 18%의 수출증가를 기대하고 있다. 반면 베트남 지도자들은 향후 10년 간 연간 0.8%~2%의 추가성장을 전망하고 있다.(4)
삼성의 기침 한 번에 감기에 걸린 베트남
이런 달콤한 약속은 최근 몇 년간 외국 기업이 베트남에 공장을 설립하는 열풍에 공헌했다. 물론 ‘임금 덤핑의 법칙’도 투자자에게 동기가 됐다. 일본 기업 포스터일렉트릭(Foster Electric)의 시미즈 타츠지 일본 대표와 라 반 짠 베트남 대표가 이에 대해 완곡히 설명한다. 포스터일렉트릭은 애플의 아이폰에 장착하는 마이크와 외국자동차 회사를 위한 스피커를 제작한다. “베트남 노동자들의 경쟁력은 높다. 초창기에는 숙련이 덜 돼 있었지만 그들은 금방 배웠다. 우리는 3천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기본 월급은 약 150~200달러로 중국에서는 평균 650달러였다. 우리는 인건비를 상당히 절약하고 있다.” 사실상 노다지인 셈이다. 중국의 공장을 줄이는 기업은 포스터일렉트릭 외에도 많다. 삼성은 베트남의 한 도시에서 4만 6천 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150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폭스콘, 애플, 캐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것이 유일한 동기는 아니다. TPP로 미국과 태평양 11개국 간에(5) 관세가 줄어들고 2015년경에 완전히 사라진다는 점이 최근의 열풍에 상당히 기여했다. 미국의 협상가들은 ‘원산지’에 대한 강력한 규칙을 제정했다. 베트남에서 모든 부품까지 완전히 제조되거나 TPP 파트너 국에서 만든 부품으로 생산된 상품만 수출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중국은 제외됐다. 중국에서 생산된 부품이 베트남에서 조립되는 경우에는 면세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십년 전부터 베트남에 공장이 몰려들었다.
미국과 TPP의 도움으로 베트남은 이미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공장이 됐다. 최우선 파트너이지만 싫어하는 중국을 궁지에 몰아넣을 준비가 됐다. 베트남의 제1공급자이자 고객인 중국은 베트남과 중국해(베트남에서는 동해라고 부른다)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TPP는 경제 뿐 아니라 정치적 영향력도 가지고 있다.(6)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가 TPP에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어서 상황이 바뀔 위험이 있다. 11월 어느 날 베트남 텔레비전에서 방송되던 미국 CNN 뉴스가 중단되며 파란 화면이 정지상태로 나온 적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값싼 베트남 상품이 미국을 위협한다”며 비난했다고 한다. 혹시라도 CNN을 보는 정숙한 베트남인들의 귀에 이러한 저속한 비난이 들어가지 않도록 한 것이다.
현재 베트남 지도자들은 월마트, 나이키, 애플, MS 및 다른 기업들이 대통령에게 이성을 되찾아 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이를 기다리며 응우옌 쑤언 푹 총리는 11월 18일 국회에서 베트남은 이미 12개의 자유무역협정에 체결했음을 상기시키며, TPP든 아니든 경제통합의 추구를 표명했다. 현재 아시아 국가 전역에서 베트남에 투자하고 있다(일본, 대만, 싱가포르, 한국, 중국의 순). 총리는 EU와의 FTA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베트남과 EU의 FTA는 큰 논란 없이 2016년 6월 프랑스 의회에서 비준됐다.
베트남은 성장의 희망을 수출과 외국자본의 유치에 걸고 있다. 베트남은 유치를 위해 많은 특혜를 제공하고 있다. 9년 중 4년 반 동안 완전히 면세를 해주고, 농업을 희생시키며 토지에 대한 접근성을 용이하게 만들었고, 지방 정부의 추가지원과 행정 절차 간소화 등의 혜택을 부여했다. 덕택에 공장이 가동됐고 2016년에 6.5%의 성장을 기록했다. 2000년 이래 베트남은 매년 5.5~7.6% 성장해 왔다. 덕분에 지방에서도 성장을 꿈꾼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에는 의존성이라는 대가가 있다. 실례로, 삼성은 베트남 전자제품 수출의 60%를 차지한다. 이 거대한 한국기업이 갤럭시 노트7의 배터리 폭발로 기침을 한 번 했더니, 베트남 전체가 감기에 걸렸다.
계획경제부 관할 연구소인 경영중앙기구(CIEM)에서 만난 응우옌 안 드엉 연구원은 이러한 위기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신흥 부유층과 특권을 유지하려 하는 베트남 기업인들을 비난한다. 경제 정책과의 부팀장인 이 젊은 연구원은 솔직하게 설명한다. “외국 기업들은 자본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없다. 생산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들이 부동산에 투자하는 베트남 기업들보다 낫다. 게다가 그들은 현지 기업들과 경쟁을 일으키며 경영의 향상을 가져온다.” 베트남의 지배적인 생각을 요약하자면 외국인 직접 투자는 실질적으로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주고, 그들이 있기에 기회가 있고, 그들이 없다면 발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노동인권과 환경을 위협하는 성장에의 욕망
기술도 자본도 없지만 국민이 젊고(절반이 30세 이하), 인구가 많고(생산가능 인구 5,380만 명), 교육수준이 높은(문맹퇴치율 98%) 국가가 후진국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베트남 정부는 싱가포르, 대만, 중국을 강하게 만든 ‘저임금’이라는 위험한 교리에 기대를 걸려고 한다. 베트남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의 에르빈 쉬바이스헬름은 타국과의 차이점을 지적한다. “싱가포르, 중국, 대만 등은 그래도 자국시장을 보호하고 조절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국에서 외국인이 한 회사를 100% 소유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리고 투자와 동시에 반드시 기술 이전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베트남은 모든 것을 판다. 베트남은 기반투자나 국가 자원의 사용에 대한 요구도 없고 어떤 주문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베트남은 노동법 위반을 거의 감독하지 않아 대기업 내에서 수많은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환경규범에 대한 경계도 크지 않다. 베트남 중부 하띤 지방에 자리 잡은 대만 기업 포모사(Formosa)의 해양오염 사건이 발생했다. 포모사가 제철소에서 나온 독성물질을 바다에 버려 해안가의 200km가 오염됐다. 수많은 물고기가 폐사했고, 4만 명이 넘는 어부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관광업은 무너졌다. 사건 초반 하노이의 포모사의 대표 초우 추안 판은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물고기와 새우를 택하던지 제철소를 택해라”(7)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과오를 변명했다. 당시 이 회사는 생계가 걸려있던 어부들이나, 먹거리 안전을 걱정하는 도시 중산층들에 개의치 않은 태도를 보였다. 어부들은 호치민시에서 대거 시위를 벌였다. 정부는 시위의 주동자를 체포했고 시위대 십여 명을 몇 시간 동안 유치장에 가두었다. 정부는 서둘러 조사를 벌인 후 어부들에게 배상금을 지불하도록 명했다. 초우 추안 판 대표는 결국 사임했다.
2009년 중국 기업 차이날코(Chinalco)가 보크사이트 광산을 개발하자 많은 시민들이 시위에 나섰고, 전쟁영웅 보 응우옌 얍 장군도 ‘심각한 환경훼손의 위험성’에 관해서 신문 기고까지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8) 성장에 대한 욕망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소비에 대한 갈망은 도시를 자동차와 오토바이로 가득 찬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길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공기는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오염됐다. 환경 및 식품 안전을 위한 단체와 조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6년 봄, 하노이 주민들은 수백 년 된 나무 십여 그루에 대한 벌목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성공했다. 젊은 IT기업인인 루엉 응옥 쾨는 메콩 델타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해 미국 몬산토 사의 유전자 변형 옥수수와 쌀이 수입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도시와 시골 사람들이 반대시위에 함께 결집하기를 희망한다. 현재 그의 SNS상에는 수십 명의 젊은이들만이 모인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포모사 사건 같은 일회성 문제에 대해서는 결집한다. 그러나 쉽사리 세계화 대열에 동참하면서, 우리의 천년 문화를 보호하고 조상에 대한 존경과 세대 간의 관계, 연대와 윤리라는 가치를 지키면서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정작 이런 고민은 못하고 있다.”
디엔 비엔 푸 전투에 관한 책(9)의 공저자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 다오 칭 현은 말한다. 공산당은 이런 종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나중으로 미루는 선택을 했다. 2016년 1월 열린 13회 공산당 회의에서 견해차가 여실히 드러났다. 민영화를 장려한 총리는 제거되고, 서기장이 권력을 얻었다. 그러나 토론은 개혁의 속도에만 초점을 맞추었고 그 내용에 대해선 다루지 않았다. 한쪽은 개혁의 속도를 가속화하고, 규범과 관행을 바꾸기 위한 압력 수단으로 FTA를 이용해야한다고 생각한다. TPP를 대비해 사회경제 문제 관련법 60개가 이미 수정됐다. 다른 한쪽은 변화를 제어하기 위해 속도를 늦춰야한다고 생각한다.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시장경제 또는 온건한 시장경제 둘 중 하나로 선택은 축약된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성향의 시장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글·마르틴 뷜라르 Martine Bulard
(1) 서기장과 가족 관계는 아니다. ‘응우옌’이란 성은 베트남 인구 절반이 쓰는 성이자 가장 많이 쓰이는 이름이다.
(2) ‘China manufacturers survive by moving to Asian neighbors’, The Wall Street Journal, New York, 2013년 5월 1일
(3) 제니퍼 웰스, ‘Will the TPP transform the garment manufacture in Vietnam: Wells’, The Toronto Star, 2015년 10월 6일
(4) ‘Potential macoeconomic implications of the Trans-Pacific Partnership’, Global Economic Prospects, Banque mondiale, Washington, DC, 2016년 1월
(5) TPP에는 미국과 베트남 이외에도 캐나다, 멕시코, 칠리, 페루,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일본, 브루나이, 말레이시아가 참여한다.
(6) 자비에 몽테아르,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 회복’,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1년 6월
(7) ‘물고기 집단 폐사, 포모사는 사과했지만 조사는 계속 된다’, Le Courrier du Vietnam, 2016년 4월 27일
(8) 장 클로드 포몬티, ‘베트남, 중국, 보크사이트’, Planète Asie, 2009년 7월 3일, http://blog.mondediplo.net
(9) 공저, ‘건너편에서 본 디엔 비엔 푸 전투, bô dôi의 말’, Nouveau Monde Editions, Paris, 2010년
베트남 국가 정보
인구: 9,150만 명. 30세 이하는 54%이며, 15세 이하는 25%이다.
평균수명: 76세
문맹 퇴치율: 93%
인간개발지수(HDI): 127위
인터넷 사용 인구: 3,1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34%(전 세계 평균은 33%)이며 세계 18위다. 2,200만 명이 페이스북을 사용한다.
고용 현황: 생산가능 인구 5,370만 명 중 노동계약서와 사회 보장을 갖춘 공식 취업자는 약 1/3에 해당되는 약 1,800만 명에 불과하다.
실업률: 2015년 기준 3.1%이나, 비공식 노동자의 수에 따라 조정된다.
노조 없는 파업
‘서른 살이 넘으면 더 이상 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몸이 버티지 못합니다’라고 판 유옌은 단언했다. 32세의 판 유옌은 일본 정종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정종 제조 업무에서 품질 관리원으로 업무가 바뀌자, 그는 무척 기뻐했다. 호치민시 7구내 대중적인 동네 골목 안 깊숙이에 있는 아담한 거처에서 그의 남편과 같이 일하는 동료 7명과 함께 판 유옌을 만났다. 주 6일, 3교대로 근무하는 업무의 혹독함에 대해 모두들 입을 모아 말했다. 휴일은 고향 집에 가기에는 너무 짧고, 간신히 휴식을 취할 정도다.
그러나 아무도 불평 하지 않는다. 사회가 역동적인만큼 이들은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저축을 해서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 가게를 열거나 가족농장을 확장하는 꿈을 꾸고 있다. 두 명의 여성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다. 한 여성은 도시에서 사무직으로 취직하기 위해 저녁에는 기숙사에서 오토바이로 한 시간 걸리는 시내로 가서 영어 수업을 듣고 있다. 다른 한 여성은 일본에서 일자리를 3년 간 보장해주는 학원에 9천만 동(465만원)을 수업료로 냈다. 이 돈은 그녀의 1년 6개월치 임금에 해당되는 금액으로, 저축한 돈을 털고, 가족에게 빌려서 마련했다. 베트남은 여러 나라와 협정을 맺고 인력 수출을 하고 있으며 2016년에는 11만 5천 명의 인력이 해외로 나갔다.(1)
꿈이 실현되기를 기다리며 이들은 급여의 150%까지 받을 수 있는 초과 근무를 한다. 기본 급여가 월 2백만 동(10만 3천원)으로 매우 낮기 때문이다. 몇 시간을 추가로 근무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이론적으로는 연간 200시간을 넘길 수 없지만 예외적인 경우에는 300시간 또는 법정 주당 근무 시간인 48시간 근무 후 추가로 4~6시간을 더 일할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더 많은 시간을 일하지만, 더 많이 벌지는 못 한다는 점이다. 후에 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일부 추가근무 시간은 수당이 지급되지만, 나머지 시간은 경영진이 보충 근무하라고 결정하면 보충근무시간으로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는 설날에 가족을 만나러 가고 싶지만 불가능하다. 경영진은 반나절의 휴식을 강요했고 이 시간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남성이 말했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우리는 추가수당을 받을 수 없다. 우리는 패자고, 기업이 승자이다’라고 판 유옌은 말했다. 그렇다면 노조는 무엇을 하는가? 이는 우문이다. 물론 노조는 존재하지만 노동자의 요구를 지원해주지 않는다.
일종의 원만한 해결을 조율하는 기관인 노동관계중앙연구소에서 일하는 도 꾸인 찌에 의하면 1995~2015년 사이 5,722번의 파업이 있었다. 그러나 베트남노동자총연맹이 주최한 파업은 단 한 건도 없었다. 1995년 헌법에 파업권이 등장하지만 원칙적으로 단일 노조만이 파업을 지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표현을 정리하면 파업은 ‘업무 중단’이 돼버렸다.
채택된 명칭이 무엇이든 노동자들은 점점 더 자주 업무를 중단하고 있다. 2000년도에는 100여 건의 파업이 일어났고 2016년에는 약 500건이었다. 70%의 파업은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일하는 외국기업에서 일어난다. 베트남 기업의 3/4은 중소기업이다. 주요 동기는 임금, 노동 환경, 식사다. ‘대부분 노동자 그룹이 요구사항을 경영진에 전달한다. 때로는 공식 노조가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면 파업이 시작된다’라고 도 꾸인 찌는 말했다. 이것은 일종의 전투준비 같은 것이다. 그러면 베트남노총이 나서서 경영진과 중개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요구는 수용되고 파업은 중단된다고 도 꾸인 찌는 말한다. 파업이 장기화 되는 경우는 드물다. 임금 인상 파업의 경우에는 같은 공단 내에 있는 모든 기업, 같은 국적을 가진 기업으로 파업이 퍼진다.
정부에 문제를 제기하는 파업이 일어나기도 한다. 2015년 3월, 호치민시 빈탄 산업단지 내 대만 그룹 푸첸의 유유엔 공장 노동자 9만 명이 기계 가동을 중단하고 고속도로를 차단했다. 퇴직금을 줄이는 법에 반대하는 파업이었다. 정부는 법안을 수정해야만 했다.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정부는 기업이 사회보장 분담금을 내는지 확인할 것과 필요할 경우 법원에 고발 할 것을 약속했다. 사실 다른 다국적기업처럼 푸첸은 원천징수를 했지만 이를 비축해 두지는 않았다. 의료보험도, 실업수당도, 퇴직금도 비축하지 않았다. 위협은 효과가 거의 없다. 2016년 11월 마지막 의회 회기에서 노동부장관은 사회보장 적자가 13조 동(5억 5천5백만 유로)을 넘었다고 밝혔고, 그는 기업의 경영진을 다시 한 번 비난했다.
베트남노동자총연맹은 이런 문제에서도 논외다. 요컨대 노조 지도자들은 기업의 경영진에게서 월급을 받는다. 노동자의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은 매우 형식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조의 투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들의 역할은 노동자의 권리를 방어하기 보다는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의 조화를 이루는데 훨씬 가깝다.(2) ‘문서상으로는 개혁 의지가 존재한다. 노조 지도층은 사회주의 성향의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시스템이 짧았던 사회주의 시절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단체 협상에 참여하려고 노력한다.’라고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의 에르빈 쉬바이스헬름이 말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다.
역설적이게도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TPP가 기존질서를 뒤집어 주리라 기대하고 있다. 미국이 사회적 진보를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첫 세계화를 이룩했던 미국이다. 물론 TPP는 복수노조의 탄생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노동조건 및 생활환경의 향상과 동의어는 아니다. 베트남 정부와 버락 오바마는 노조의 미국식 설립 절차를 상세히 명시한 조약에 동의했을 뿐이다.(3) 미국은 정기적으로 전문가를 보내서 잘 이행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가 이를 계속할지는 모르겠다.
‘단타족’ 사라질까?…지방 민간 아파트도 전매 제한 1110 조선
지방 민간택지에서 공급되는 아파트도 10일부터 분양권을 전매할 수 없다. 지방 광역시도 최소 6개월에서 일부 지역은 입주 때까지 분양권을 전매할 수 없게 돼 단기 투자수요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인기 지역은 여전히 시세차익을 노리는 청약 수요가 몰릴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8·2 부동산 대책 후속 조치로 내놓은 주택법 개정안이 10일부터 발효돼 시행에 들어간다. 개정안에 따라 그동안 수도권에서만 적용되던 민간택지 전매제한이 지방 광역시로 확대되고, 지방 청약조정 대상지역은 과열 정도에 따라 분양권 전매제한을 최소 6개월에서 최대 소유권 등기 이전을 할 때까지로 확대 적용된다.
지방 민간택지 전매제한을 앞두고 부산을 비롯한 지방 청약 열기는 극에 달했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전매제한 이틀 전인 지난 8일 부산 ‘광안자이’ 1순위 청약에선 최고 216대 1의 경쟁률이 나오는 등 평균 102.9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모든 가구가 1순위 마감됐다. 광안자이는 GS건설이 부산 수영구 광안동 광안1구역을 재개발해 공급하는 아파트 단지다. 분양권 전매제한 시행을 앞두고 ‘분양 막차’를 타려는 청약자들이 대거 몰린 것으로 보인다.
▲ 지난 8일 청약신청을 받은 부산 ‘광안자이’는 평균 102.9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면서 1순위 마감됐다. /GS건설 제공
같은 날 1순위 청약을 받은 울산 ‘전하 KCC 스위첸’도 30대 1의 평균 경쟁률을 기록했다. 앞서 7일 1순위 청약을 받은 광주 ‘힐스테이트 연제’도 평균 22.7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일성건설이 9월 20일 대구 북구 고성동에 공급한 ‘오페라 트루엘 시민의 숲’은 198.7대 1의 경쟁률로 청약 1순위 마감되며 올해 대구에서 가장 많은 청약자가 몰렸다.
부산과 대구 등 광역시를 중심으로 청약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은 청약 당첨만 되면 계약금을 치르자마자 분양권을 되팔아 시세차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보면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센텀 미진 이지비아’는 지난 7월 전체 184가구의 30%가 넘는 58건의 분양권이 전매됐다.
분양권 전매가 금지되면 지방 청약 과열은 다소 누그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매 기간이 설정되면 계약금을 치른 후 곧바로 웃돈을 붙여 되팔 수 없기 때문에 일정 기간 돈이 묶일 수 있다. 지역에 따라 입주 시점까지 분양권을 못 팔 수도 있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기존 수도권에서만 적용되던 민간택지 전매제한이 지방 광역시로 확대 적용되면서 과거와 같은 세 자릿수 청약 경쟁률은 이제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며 “지방도 잔금을 치를 여력이 되는 실수요자 위주로 청약시장이 재편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방 분양권 전매제한 근거 등을 담은 주택법과 시행령이 적용되는 지역을 보면 부산 해운·연제·동래·남·수영·부산진구 등 청약 조정대상지역의 공공·민간택지 분양 아파트는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할 때까지 분양권 전매를 할 수 없다. 부산 기장군은 택지유형 간 청약경쟁률의 차이, 지역 여건과 다른 청약 조정대상지역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민간택지 전매제한 기간이 6개월로 설정됐다.
청약 조정대상지역이 아닌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울산 등 지방 광역시는 공공택지에서 1년간 분양권 전매가 제한되고 민간택지에서도 6개월간 분양권 전매를 할 수 없다. 이번에 새로 설정된 분양권 전매제한 기준은 10일 이후 입주자 모집승인을 신청하는 단지부터 적용된다.
공기업은 채용비리 단속하는데...대기업은 '직원자녀 우선채용' 여전
정부가 공공기관의 채용 비리를 일제히 점검하고 취업 준비생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기 위해 블라인드 채용(Blind·학력, 경력 등 선입견을 가질 수 있는 요소를 빼고 심사하는 방식)을 확대하는 가운데, 일부 대기업은 ‘동등한 조건일 때 직원 자녀를 우대하거나 우선 채용한다’는 특혜성 조항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원 자녀 우선 채용’은 고용 세습으로 현대판 음서제(고려·조선시대 때 상류층 자손은 과거 시험을 보지 않고 채용하는 제도)로 불린다. 고용노동부는 단체협약에 조합원 가족을 특별·우선 채용하는 내용이 있는 기업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리고 있지만, 주로 노동조합이 반발해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 일부 대기업, 법 위반 소지에도 특혜채용 유지
9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대기업 중에서는 현대차 (154,000원▼ -%)와 기아차 (34,750원▼ -%), 현대중공업 (158,000원▼ -%), 대우조선해양 (19,900원▼ -%), GS칼텍스, 현대제철 (57,500원▼ -%)등이 직원 자녀를 우대하거나 우선 채용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유지하고 있다.
고용부가 지난 2015년에 매출액 상위 30대 대기업의 단체협약 실태를 조사했을 때는 SK이노베이션, 현대오일뱅크, LG화학 (406,000원▼ -%), SK하이닉스 (82,000원▼ -%)등도 조합원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내용이 단체협약에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폐지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신규 채용 시 업무상 사망한 조합원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조항이 단체협약에 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신규 채용 시 같은 조건이라면 종업원 자녀를 우선적으로 뽑는다는 조항을 20년 넘게 유지 중이다. 현대중공업은 이 조항을 1994년에, 대우조선해양은 1996년에 만들었다.
GS칼텍스는 조합원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내용을 2015년에 삭제했지만, 업무상 재해로 순직 또는 퇴사하는 경우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조항은 남겨뒀다. 현대제철은 ‘같은 조건일 때 질병, 부상, 정년퇴직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내용이 단체협약에 담겨있다.
재계에서는 대기업의 직원 자녀 우선채용 단협 조항이 고용정책기본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본다. 기본법 7조는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채용할 때에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신앙, 연령, 신체조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학력, 출신학교, 혼인·임신 또는 병력(病歷) 등을 이유로 차별을 하여서는 아니 되며, 균등한 취업기회를 보장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공기업은 채용비리 단속하는데...대기업은 '직원자녀 우선채용' 여전
◆ 6개 기업 평균 연봉 8622만원…“부의 대물림”
직원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맺은 6개 대기업 직원의 작년 평균 임금은 8622만원에 달한다. 기업별 직원 임금은 GS칼텍스가 1억1313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기아차(9600만원), 현대차(9400만원), 현대제철(8700만원), 현대중공업(6718만원), 대우조선해양(6000만원) 순이었다.
6개 대기업 직원의 평균 임금은 우리나라 전체 정규직 근로자가 작년에 받은 평균 임금 3354만원의 2.5배 수준이다. 1800만원 안팎인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과 비교하면 약 5배 많다. 이 때문에 대기업이 직원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것은 사회 계층 간 이동을 막고 부(富)를 대물림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들이 이 조항을 유지하는 이유는 대부분 노조원들이 반발하면서 협의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작년에 이 조항을 삭제하려고 했지만, 노조가 반발해 무산됐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조항을 삭제하자고 노조 측에 요구했는데,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고용부 시정명령도 받았기 때문에 사측은 올해도 조항 삭제를 요청했고 현재 노조도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기업은 “직원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조항으로 입사한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하면서도 실제 몇명이 입사했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 조항에 따라 지금까지 몇 명이 입사했는지는 밝히기 어렵다. 회사에서도 기밀 사항”이라고 했다. 다른 기업들도 비슷한 입장이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직원 자녀를 우선 채용하라는 것은 노조원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것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청년들이 공평한 취업 기회를 얻도록 세습 규정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與 '73개 적폐청산 리스트' 다 조사한다며 계획표 짰다
A4용지 49쪽에 분야별로 정리
'수사·감사·청문회·언론 활용 관련자들 일벌백계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국정감사에서 제기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 문제점 73건을 '적폐'로 규정하고 앞으로 '청산' 작업을 더 확대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지난 9일 당 정책위원회가 의원들에게 배포한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적폐 현황' 문건에는 분야별로 '문제 현황'과 관련 대상자를 거론하면서 "검찰 수사 의뢰, 감사원 감사 청구, 국회 청문회 개최, 언론 및 시민 단체 활용 등을 통해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했다. 정권 출범 6개월 동안 '청산'을 해왔지만, 내년에도 내내 검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 국회 청문회 등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당 정책위는 지난 9일 이러한 내용의 문건을 소속 의원 121명에게 보냈다. 49쪽 분량의 이 문건은 총 73건을 13개 국회 상임위별로 분류하고 '현황'과 '조치할 사항 또는 향후 추진 방안'으로 정리했다. 민주당은 권력형 비리나 정치 개입 등만이 아니라 정책적인 문제도 다 '적폐'로 규정하고 문책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예를 들어 이 문건에서는 '2014년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당시 이면 합의가 있었다'며 '국회 청문회를 개최해야 한다. 김장수(당시 국가안보실장), 윤병세(외교장관), 김관진(국방장관) 등에 대한 증인 채택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미 외교부에서 '적폐 청산 TF'를 만들어 조사 중인 위안부 협정에 대해서도 '결과가 미흡하면 국회 청문회'라며 '협상이 이병기 국정원장 주도로 이뤄졌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주고, 그렇게 안 하면 다시 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런 식이라면 전 부처가 1년 내내 조사만 받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전직 대통령 관련 의혹은 더 확대 조사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4대강 사업의 경우 "대선 후보 시절 경선 비용 기부자들의 4대강 공사 수주 및 MB 정부 낙하산 수혜 여부, 대운하 공약 당시 불법 자금 수수를 통한 경선 비용 유용 여부 등을 수사 및 감사원 감사를 해야 한다"며 "이상득 전 의원, 정종환 전 국토부 장관 등의 개입 규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박근혜 정부 때의 '인천시 검단 스마트시티' '대구 하수 슬러지 처리장' 사업도 적폐로 지목했다. 그러면서 각각 "뉴스타파 등 언론과 실체를 파악하려 준비" "대구 방송인 TBC와 계속 진행 예정"이라고 했다. 지자체까지 '적폐 청산'하겠다는 것이다. 권영진 대구시장, 유정복 인천시장은 모두 야당 소속이기도 하다.
49쪽 문건 中 50차례 언급… 'MB' 수사 총공세
서병수·윤병세·김장수… '적폐청산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
한미일 합동훈련 거부가 “아마추어 외교”라는 조선일보 1111 미디어오늘
한중 정상회담, 조선일보의 이상한 딴지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1일 오후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베트남 다낭에서 정상회담을 갖는다. 사드 배치이후 냉랭했던 양국 관계가 풀릴지 주목된다. 정상회담에서는 북한 핵·미사일 대응 방안과 한·중 무역 통상문제가 주로 다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한미일 삼각동맹 중, 일본과의 동맹을 부인한 것은 중국과의 관계복원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 11월11일자. 1면.
정부는 같은 차원에서 한미일 합동 항모 훈련을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이 소식을 1면에 실었고,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이를 두고 “아마추어 외교”라고 주장했다. 아래는 조선일보 주장의 일부다.
“우리가 일본과 동맹을 맺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한반도 유사시 우리를 도와줄 미국 증원 전력의 태반이 일본에 있다. 사실 일본에 있는 미군 전력의 존재 이유 자체가 한국 지원이다. (중략) 그런데 정부가 일본과의 군사 협력을 이렇게 백안시해도 우리 안보에 정말 문제가 없는 것인가? (중략) 지금 정부 외교는 당장 눈앞의 시진핑 국가 주석과의 정상회담밖에 없는 듯하다. 혹시 시 주석을 불쾌하게 만들까 노심초사하는게 눈에 뻔히 보인다. 한국은 대국은 아니지만 그렇게 작은 나라도 아니다.”
조선일보 11월11일자. 31면.
하지만 조선일보의 보도에도 나와 있듯 한미 합동훈련은 진행한다. 일본에 있는 미군이라고 지휘권이 일본에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일본은 전범국가로, 피해국가인 한국은 현재 아베 총리가 진행하는 평화헌법 개악에 명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주장은 언뜻 대한민국이 일본 자위대를 일본군대로 인정하라는 주장으로도 보인다.
밥하다 잡혀와 징역 6년… 재건축 '탐욕'이 부른 형벌 1110 국민
지난달 20일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법의 한 법정. 재판을 받던 잠실진주아파트 재건축 조합 이사 A씨(71·여)가 왈칵 눈물을 쏟았다. A씨는 7300억원의 사업비가 책정된 잠실진주아파트 재건축 수주전에 나선 한 설계업체 부사장에게 "당신 회사가 50억원 상당의 일감을 따도록 해주겠다"며 2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A씨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A씨는 중형 구형을 예상하지 못한 듯 충격에 빠졌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눈물을 흘렸고 변론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지난 7월 4일 잠실진주아파트 자택에서 곧 80세인 남편을 위해 아침밥을 차리다가 들이닥친 수사관들에게 뇌물수수 혐의로 체포됐다. 구속 상태로 조사와 재판을 받아왔다. 현행법상 재건축조합 임원이 1억원 이상의 뇌물을 받으면(요구·약속 포함) 10년 이상의 징역 혹은 무기징역에 처해 질 수 있다. 뇌물을 다시 돌려줘도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성필)는 10일 A씨에게 징역 6년과 벌금 2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재건축 사업의 청렴성과 집무집행 공정성 등 신뢰를 훼손, 일반 조합원들에게 부담이 전가됐다"며 "다만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아무런 전과가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변호인은 "A씨가 (조합 임원이 뇌물을 받으면 공무원과 같이 취급해) 강하게 처벌되는 걸 알지 못했다. 돌려주면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법에 대해 아무런 개념이 없었다"고 말했다.
70대 할머니가 집에서 밥하다 잡혀와 6년간 옥살이를 하게 된 배경에는 재건축사업에 내포된 '탐욕'이 있었다. 최근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가 한국의 부자(금융자산 10억원 이상 소유자) 4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부자들은 가장 유망한 투자처로 부동산을, 가장 유망한 부동산 투자처로 재건축을 꼽았다. 서울 강남3구(서초·강남·송파) 부자들의 투자용 재건축 아파트 보유율은 23.6%, 총 자산 100억원 이상인 부자들의 재건축 물량 보유율도 21.4%에 달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재건축 조합 관계자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고, 정부도 각종 규제로 재건축 열기를 식히려 하고 있지만 오히려 재건축을 향한 대중의 관심은 커져만 가고 있다. 정비기반시설은 양호하나 노후·불량 건축물이 밀집한 지역에서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시행하는 것이 주택 재건축 사업이다. 과연 재건축 사업은 어떻게 시작됐고,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욕망이 결집된 돈벌이의 정점에 자리 잡게 됐을까.
오락가락 재건축 정책
재건축의 역사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업화를 통해 도시로 인구가 몰려들면서 주택난이 극심해졌다. 아파트 붐이 이어졌지만 당시의 시공 기술로는 10∼20년만 지나도 자재가 부식되고, 노후화를 피할 수 없었다. 부실 공사가 원인이었던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는 오히려 노후 아파트에 대한 공포를 더욱 키웠다. 재건축 사업은 오래된 아파트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자금과 행정지원 없이 손쉽게 주택 공급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각광받기 시작했고, 관련 제도도 마련됐다.
재건축 사업의 법적 규정은 1984년 4월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시작됐다. 단독주택과는 성격이 다른 집합건물의 특성을 반영해 건물 전체에 대한 재건축 추진 근거가 명시됐다. 다만 법 집행을 위한 구체적인 시행령은 마련되지 못해 실제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이에 따라 1987년 12월 도입한 게 ‘주택건설촉진법’이다. 노후·불량 주택에 재건축 조합을 결성해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겼다. 1988년 서울 마포아파트 재건축 조합이 최초로 사업 인가를 받으며 본격적인 재건축 붐이 막을 올렸다.
1990년대 잇따른 장려 정책으로 호황을 누리던 재건축은 2001년 초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정부 규제를 받게 됐다. 건설교통부는 2001년 7월 ‘소형 주택 건설 의무제’ 부활을 발표하고 서울시도 고밀도 지구의 용적률을 250% 이하로 제한했다. 2002년 정부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제정을 통해 재개발·재건축·주거환경개선사업을 통합 규제키로 한다. 그럼에도 재건축 시장 열기는 더 커져갔다.
참여정부는 규제를 더 강화했지만 이명박정부 들어 재건축 용적률을 상향 조정하는 등 완화 분위기와 함께 재건축은 제2의 붐을 맞았다. 박근혜정부도 재건축 허용 연한을 40년에서 30년으로 줄였고,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하며 재건축 시장을 더 키웠다. 다만 문재인정부 들어 6·19와 8·2 대책 등 다시 규제가 시작됐고,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도 내년 1월 1일부로 부활할 예정이다.
한국만의 재건축, 식지 않는 인기
전면 철거 방식을 택하는 한국의 재건축은 외국엔 생소한 개념이다. 국토가 광대한 미국은 주로 새로운 물량 건설을 통해 주택난을 해소하고 있고, 도시 보존의 분위기가 강한 프랑스 등은 재건축 사업이 아예 없다. 결국 노후 주택 전면 철거 후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는 재건축은 한국의 독특한 건설 사업 형태인 셈이다.
용적률 상승으로 가치가 높아진 토지와 아파트가 결합하면서 재건축 아파트 가격은 끊임없이 상승해 왔다. 반포 주공1단지 전용 140㎡의 경우 지난 8월 역대 최고가인 35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1971년 이 아파트 분양 당시 가격은 가장 비싼 게 775만원이었다. 46년간 물가는 20배가량, 서울 땅값은 60배가량 뛰었지만 거래가는 500배 넘게 오른 것이다. 실제로 역대급 규제를 담은 8·2 부동산 대책 이후 잠시 주춤했던 서울 재건축 아파트 값은 6주 만에 다시 상승 전환했다. 잠실 주공5단지 전용 82㎡ 물량의 경우 역대 최고치에 근접한 17억원 이상의 매물이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청약을 받은 서울 강남구 ‘래미안 강남포레스트’(개포시영 재건축)는 185가구 모집에 7544명이 몰려 평균 40.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저금리에 갈 곳 잃은 돈이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노다지’로 불리는 재건축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끊이지 않는 재건축 비리 어떻게
규모가 큰 재건축 단지의 경우 사업비는 천문학적으로 올라간다. 최근 현대건설이 수주한 반포 주공1단지의 경우 총 사업비가 10조원에 달한다. 돈이 집중되면서 조합원과 건설사를 비롯한 수많은 업체 간 이익 다툼과 함께 ‘검은 돈’ 거래도 난무한다. 자금력을 앞세운 시공사의 개발이익 창출 욕구(분양수익)와 조합의 시세차익(개발로 인한 정비구역 내 지가 상승) 욕심이 맞물려 재건축을 비리의 대명사로 만들고 있다.
재건축 조합 고위층이 시공사나 협력업체 지정을 대가로 뇌물을 받거나 조합비를 횡령하는 게 대표적 수법이다. 최근 롯데건설은 서울 서초구 한신4지구 재건축 사업 수주 과정에서 조합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의혹으로 경찰의 압수수색을 당하기도 했다.
국토부는 최근 시공사의 이사비 과다 지급을 금지하는 한편 금품·향응 등을 제공한 건설사가 1000만원 이상 벌금형을 받거나 직원이 1년 이상 징역형을 받을 경우 2년간 재건축 정비사업 입찰참가 자격을 제한하는 초강수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다. 비리 차단을 위해 정부가 사업 전반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일본의 경우 중요 정비사업에는 공무원들이 사업 전반에 걸쳐 참여한다”며 “근본적으로 정비사업 방식이 재건축에서 선진국처럼 재생과 리모델링으로 바뀌어야 조합 비리가 근절될 수 있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도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윤리교육뿐 아니라 정비사업 전문가 자격제도 등을 검토해 무분별한 경쟁과 비리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재건축 사업 진행은 민간 자율에 맡기되 정부가 사업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신화 1110 경향
류웅재 한양대 교수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최근 4차 산업혁명은 우리 사회의 화두로 각광을 받고 있는 키워드 중 하나이다. 일례로 정부는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구성해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학계의 다양한 관련 세미나도 이의 경제적, 사회문화적 변화뿐 아니라 정치적 거버넌스 등에 관한 주제로 학술 모임을 열기에 분주하다. 그러나 테크놀로지나 공학 비전공자의 시각으로도 그 담론의 편향과 과잉에 기인하는 위험성은 비교적 자명해 보인다. 특히 최근 우리 사회의 4차 산업혁명 담론들과 관련해 이것이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 같은 느낌을 주고,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우려와 불안을 자아내는 것이 단지 나만의 기우는 아닐 것이다.
이는 2016년 초 세계경제포럼인 다보스포럼에서 기술혁명이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있다며 의제로 제시된 개념이다. 단순화하자면, 이는 인터넷 가상공간과 현실세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집적된 데이터의 분석과 활용, 사물의 제동 및 제어가 자유롭게 이뤄지는 발전을 의미한다. 그러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했나. 나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말의 성찬을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보다 정확하게 이런 언술은 사실 실체 없이 유령처럼 떠도는 비어 있는 말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처럼 4차 산업혁명을 마치 광풍이 몰아치듯 이야기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이는 작가 김훈의 표현처럼 뻔한 소리이지만, 나는 이러한 뻔한 소리의 그 뻔함이 무섭다. 왜냐하면 4차 산업혁명이 인류가 구성해왔던 기존 질서와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관련된 새로운 혁신기술 간의 협력 관계를 추동할 것이라는 약속은 이전의 정보화 사회나 지식경제, 인터넷 혁명과 창조경제, 소셜미디어 등 후기자본주의의 플랫폼을 구성하는 담론들에서도 무수한 변종으로 유사하게 환원론적이거나 전체주의적인 기세로 주장되어 오던 것들이다. 혹자는 소셜미디어를 위시한 집합지성의 등장은 기존에 볼 수 없던 방식의 공유와 협업을 통한 개인의 역능화나 권력의 분화를 가져왔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기술진보나 생산양식의 변화가 우리의 삶과 등가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대개 이들이 우리의 삶을 구체적으로 증진하거나 윤택하게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우리는 경험적으로 이러한 기술진보의 약속이 교묘하고 공허한 기표임을 체감한다.
조금만 예민하게 우리의 역사적 감각을 소환한다면 세상의 많은 것들이 근본적으로 변한 것 같지만 정작 중요한 그 무엇은 변하지 않았음을 깨닫는 일이 어렵지 않다. 그중 하나가 보통 사람들의 곤고하고 남루한 일상이자 그것이 정초한 무거운 삶의 조건들이자 구조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순수하게 보이는 공학적 담론은 현실에서 저항하기 어려운 힘과 무게를 획득하고 완강하게 우리의 의식과 정념을 지배한다.
문제는 어떻게 친숙한 일상성이나 시대정신으로 포장되어 그 불순함을 간파하기 쉽지 않은 기술진보의 낭만화한 논리, 혹은 악의 평범성과 용기 있게 대면하고 이를 지혜롭게 극복해낼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기술결정론자나 자본가의 언어를 내면화해 발화하는 대중은 어떻게 이를 낯설게 하거나 효과적으로 저항하는 가운데 새롭고 참된 자신들의 언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신자유주의 체제하 산재한 무수한 위험과 생존을 개인화하는 교묘한 전략들에 맞서 잉여나 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이에 대한 유효한 대안과 담론구성체를 구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다만 우리 사회가 획일화된 기술결정론적 신화와 그러한 인식의 피상성, 혹은 부박함에 관해 담대하게 대면하고 용기 있게 발화하는 것이 그 시작일 것이다. 특히 이러한 신화화한 담론의 양가성에 관해,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은 이면의 정치경제적 욕망에 관해 정치와 학계, 언론과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성찰과 정책적, 상상적 대안의 모색, 나아가 기술을 비판적 지적 탐구이자, 가치함축적인 사회적 의제, 문화적 산물로 인식하고 발화하는 것일 듯하다.
50%가 소외된 교육에 미래는 없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안전하게 어림잡아 50%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우리의 교육시스템에서 소외된 학생의 비율 말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창의력이니 인공지능과의 경쟁이니 하는 말들이 돌고 있고 이 때문에 대대적 근본적 교육 혁신이 필요하다는 소리가 높지만, 정작 절실한 개혁은 그 하위 50% 이상의 학생들이 소외나 방기되지 않는 교육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설로 하자면, 현존의 교육 시스템이 기실 ‘좋은 대학’에 갈 상위 일부 학생을 가려내기 위한 시스템임을 부인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 학생들은 왜 교실에 앉아있는 것일까. 그들은 중학교만 들어가도 안다. 이 시스템은 자기와 별 혹은 아무 상관이 없고 자신은 그 상위 몇 %의 들러리일 뿐이라는 점을. 노력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몇십년간 발전하여 튼튼히 굳어진 우리의 대학 입시 교육 시스템의 철통같은 위계구조는 웬만한 개인의 ‘노오력’ 따위로는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게 아님을 깨닫고 이내 주저앉는다.
2차 산업혁명은 개념과 수행의 분리라는 테일러주의의 원리를 지향했다. 그래서 소수의 엘리트와 다수 대중의 분리가 요구되었고 전자에게는 과학적 훈련에 기반을 둔 지도력이, 후자에게는 순응성이 당연한 덕목으로 요구되었다. 또 이러한 두 가지 인간형을 길러내는 것이 2차 산업혁명기의 교육시스템이었다. 중간 관리자 화이트칼라는 대학 교육을 받고, 특급 엘리트는 특급 대학을 나와 고시나 유학을 거친다. 나머지 대다수는 블루칼라가 되어 엘리트들의 지시에 따라 노동을 수행한다. 요컨대 일할 사람과 일 시킬 사람을 나누는 것이 2차 산업혁명기의 교육시스템의 중요한 기능이었다. 특히 고도의 압축성장을 거친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논리가 노골적으로 관철되었고, 그 결과 나타난 것이 현재의 야수적인 입시 경쟁의 교육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이렇게 할 것인가? 지금 덮쳐오고 있는 새로운 산업화 물결의 성격을 많은 이들이 ‘초연결성’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정확한 규정은 어렵고 또 무의미한 말이지만, 인간과 사물과 사회와 자연이 이전에 상상하기 힘든 전면적 방식으로 연결을 맺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혁신과 가치창출의 원천은 그 연결망을 어떻게 확장하고 더 빽빽하게 유기화시키느냐에 있다. 중심도 주변도 주연도 조연도 없다. 모두가 모두의 능력과 욕구와 지식을 서로 이용하고 십분 의존해야 한다.
50% 이상의 학생을 수동적 존재로 사실상 방기하는 교육시스템으로는 이러한 산업의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핀란드 사람들이 1등을 뽑는 교육이 아니라 뒤처지는 학생이 없는 교육으로 방향을 전환한 중요한 이유이다. 알량한 몇 문제로 경쟁력이니 변별력이니 운운하면서 내 새끼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모두 참여하는 지적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논의하는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우등생 출신이다. 그러니 이 하위 몇십 %의 학생들이 현재의 학교 교육에서 받게 되는 절망과 모욕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영어 포기, 수학 포기 나아가 여러 과목을 포기한 학생에게 하루에 여덟 시간을, 그것도 매일같이 의자에 묶어놓고 하나도 이해 못할 내용을 일방적으로 퍼붓는 것이 과연 교육인가. 나는 이것이 체계적, 조직적인 모욕의 훈육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군소리 말고 조용히들 엎드려 있어라”라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살고자 하는 힘이 강한 학생들의 경우 반항과 일탈과 교사 및 학우들에 대한 증오심과 폭력을 드러내는 것이 어찌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방어기제일 것이다.
새로운 산업사회에 맞는 교육개혁이 제일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은 이 하위 몇십 % 학생들에 대한 모욕을 멈추는 것이다. 100m 달리기에는 분명 실력의 서열이 있고, ‘선착순’을 한 번 돌리면 확연히 드러난다. 하지만 인간이 익혀야 할 모든 종류의 능력에서 다 이렇게 우열의 순위를 정할 수 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환상이며, 그렇게 하려는 진정한 의도는 사실상 ‘잘난 놈’과 ‘못난 놈’을 나누어 차별하겠다는 데에 있을 뿐이다.
학습 능력과 열의가 처지는 학생들에게 열의를 북돋아 스스로의 머리를 열어낼 수 있도록 돕는 방법과 프로그램의 개발 및 실행이 그래서 현재 요구되는 교육개혁의 제1의 과제일 것이며, 이를 위해 자원과 노력의 투여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2차 산업혁명의 경제가 ‘뛰어난 소수가 다수를 먹여살리는’ 경제였다면, 이제 나타나고 있는 경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연결과 의존’에서 가치가 창출되는 경제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동물복지, 농장동물 위해 100년간 토론하다 [작은것이 아름답다] 1111
고통 없이 살고 죽을 권리 - 이혜원 건국대 3R동물복지연구소 부소장
농장동물은 낯선 공간으로 이동할 때 큰 두려움을 느낀다. 이동할 때 밀도와 이동거리는 동물의 고통과 직결된다. 대부분 처음 이동하는 농장동물이 겪는 공포와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동물에 대한 예의가 필요하다. 모든 동물은 '고통 없이 살고 죽을 권리'가 있다.
두려움과 고통에서 자유로울 권리
1824년 영국에서 첫 동물보호단체가 생긴 뒤 독일을 포함한 여러 유럽 국가들 내에서 동물보호 운동이 활발히 이뤄졌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동물보호 운동뿐만 아니라 동물복지 연구를 기반으로 한 동물보호 정책과 법이 다양하게 제정됐다. 동물복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유럽 시민 의식과 사회적 분위기는 세계에서 모범이 되고 있으며 유럽의 동물복지 법 규정과 정책은 다른 국가들에게 동물복지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1979년 영국 농장동물복지위원회(Farm Animal Welfare Council)는 인간이 사육하는 농장동물 복지에 있어 동물의 5대 자유를 제시했다. 이는 한국의 동물보호법 제 3조, 동물보호의 기본원칙 제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동물복지를 적용한 운송과 도축 과정은 동물의 5대 자유 가운데 '통증, 부상, 질병으로부터의 자유'와 '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의 자유'가 연관돼 있다.
독일의 많은 동물복지학자들은 이러한 자유가 제공될 수 있는, 현실 가능한 도축장 환경에 대해 조사하는 동시에 도축장에서 동물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연구했다. 그 결과물이 다양한 법규와 정책의 기반을 마련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보통 산란계는 부화하고 1년 4∼6개월 정도를 살며, 육계는 부화하고 30∼35일을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돼지는 보통 육돈으로 사육되는 하이브리드종 경우 체중이 100킬로그램 정도에 도달하면 도축된다. 이정도 체중이 되기까지 약 6개월 정도가 걸린다. 닭은 살면서 두 번 정도 차량 이동을 하는데, 부화장에서 사육장으로 옮겨질 때와 사육장에서 도계장으로 옮겨질 때이다. 대부분 육돈은 살면서 차량으로 이동하는 건 한번이다. 축사에서 태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특정 몸무게에 도달해 도축장에 옮겨질 때가 바로 그 한번이다.
이때 동물들은 낯선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동물에게 직접 체벌이나 거친 핸들링을 하면 매우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심지어 처음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멀미를 하는 경우도 있다. 낯선 동물들과 함께 승차한 탓에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급정차나 급제동 때문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특히 동물 이동시에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는 차를 탈 때와 내릴 때 높다는 여러 연구 결과가 있다.
동물복지에서 고통과 두려움을 최소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농장동물들이 운송되는 과정과 도축되기 직전에 어떻게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지 많은 고민들과 연구가 진행됐다. 특히 사회적인 동물에게 자신의 눈앞에서 다른 동종이 죽는 모습을 보는 것은 엄청난 공포를 일으키는 일이다. 따라서 살아있는 동물 앞에서 동종을 죽이지 말아야 한다는 법조항이 한국 동물보호법 뿐만 아니라 유럽연합 규정에도 명시돼 있다.
▲ 동물의 고통과 두려움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건 동물에 대한 예의에서 출발한다. ⓒpoliticalanimal.org.uk
100년 연구를 통해 동물과 마주하다
독일 동물보호법(Tierschutzgesetz)은 기본법, 한국의 헌법에 해당하는 법률로 공포됐다. 동물보호법에 딸린 하위법으로 동물보호농장동물사육법, 동물보호도축법, 동물보호동물운송법, 동물보호개법이 있다. 동물보호도축법에는 도축장 동물 관리, 도축장 내 근무자 자격 조건, 움직임을 제한하는 동물 보정, 동물을 기절시킬 때 준수해야 하는 최소 규정이 명시되어 있다. 이는 유럽연합의 '도축 시 동물보호 규정(Council Regulation No. 1099/2009)'을 기반으로 제정됐다.
동물이 도축장에 도착해 내릴 때 하차대의 각도가 20도를 넘어서는 안 되며, 계류장에서는 깨끗한 마실 물이 충분하게 제공돼야 한다. 상자에 담겨 운송된 동물은 차에서 내린 뒤 2시간 안에 도축하지 않을 경우 마실 수 있는 물을 반드시 주어야 한다. 동물이 도축장에 도착해 6시간 안에 도축하지 않을 경우 적정한 사료를 주어야 한다. 동물 특성상 함께 계류된 다른 동물의 성별, 나이, 출신에 따라 서로에게 공격성을 보인다면 분리해 계류하도록 한다.
2013년부터 도축장 내 동물이 기다리는 공간의 근무자, '기절·방혈·적출' 관련 모든 근무자들은 독일 동물보호도축법 4조항과 유럽연합 규정 1099/2009 7조항에 따라 자격증을 갖고 있어야 한다. 독일은 지자체마다 설치된 동물검역, 식품 위생, 동물복지 업무를 담당하는 수의국에서 도축장 근무자들에게 자격증에 필요한 현장 교육을 한다. 교육과정은 소, 돼지, 양, 염소, 말 과정과 가금류 과정, 토끼 과정으로 나눠져 있다. 필요에 따라 동물마다 적용하는 차량 핸들링, 관리, 보정, 기절, 방혈, 매달기 분야에 대한 시험을 거친다. 교육을 신청할 때 참여자는 도축할 때 어떤 분야, 어떤 동물, 어떤 기절에 대한 시험을 볼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선택한 동물종 수에 따라 마취와 관련된 이론교육을 3~6시간 받는다. 교육을 마친 뒤 수의국에서 필기, 구두, 실습 시험을 치른다. 시험에 모두 합격하면 독일 동물보호도축법과 유럽연합 규정에 따라 거주하는 곳 담당 수의국에서 자격증을 받게 된다.
독일을 포함한 유럽에서는 100년 넘는 시간 동안 농장동물에 대한 예의를 바탕으로 사람답게 이용하기 위한 다양한 내용을 지속해 토론했다. 이를 바탕으로 동물복지학자들은 현실 가능한 방안을 연구를 통해 제시했다. 현재 많은 나라들의 동물복지 정책은 이런 과정을 통해 마련됐다.
동물의 감정을 존중하는 이동과 도축
종종 도로에서 개방된 화물트럭에 농장동물을 싣고 이동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이동할 때 밀도와 이동거리는 동물의 고통과 직결된다. 열악한 기후상태에 그대로 노출된 채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비좁은 상태로 이동할 때 동물이 겪는 두려움과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2013년 개정한 국내 동물보호법 제9조에 동물운송에 관한 규정이 있다.
'운송 중인 동물에게 적합한 사료와 물을 공급하고, 급격한 출발·제동으로 충격과 상해를 입지 않도록 할 것, 동물 운송차량은 운송 중에 동물이 상해를 입지 않고, 급격한 체온 변화, 호흡곤란 같은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출 것, 병든 동물, 어린 동물 또는 임신 중이거나 젖먹이가 딸린 동물을 운송할 때에는 함께 운송 중인 다른 동물에게 상해를 입지 않도록 칸막이 설치 같은 조치를 할 것, 동물을 싣고 내리는 과정에서 동물이 들어있는 운송용 우리를 던지거나 떨어뜨려서 동물을 다치게 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 운송을 위하여 전기몰이도구를 쓰지 말 것.'
문제는 동물보호법에 규정한 운송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는데 있다. 동물복지 인증을 받는 농장을 빼고는 대부분 먼 거리를 고통 속에 이동한다. 동물의 감정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이동은 태어나 짧은 생을 사는 농장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무엇보다 우선 이동 차량의 규격과 구조를 정해야 하고, 무진동차량 같은 동물복지 차량이 도입돼야 한다. 동물 운송을 맡은 운전자가 규정에 따라 이동하도록 교육하고 의식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아울러 동물이동 관련 내용을 더욱 세심하게 법령으로 규정하고 유럽 수준의 체계를 갖춰야 한다.
도축도 동물보호법 10조 동물복지 도축체계에 따라 '혐오감을 주거나 잔인한 방법으로 도축해서는 안 되며, 불필요한 고통이나 공포,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한 방법에 따라 '고통을 최소화해야 하며, 반드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다음 도축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동물복지 도축장은 도축과정을 일일이 모니터링 해야 하고, 기존 도축장보다 많은 도축 인력이 배정돼야 한다. 정부는 이산화탄소 기절법을 유도하지만, 민간 도축업체들은 비용 때문에 대부분 전기를 쓴다. 조금만 더 배려해도 동물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 '도축예약제'를 통해 늦게 도착한 동물들이 화물트럭에서 물이나 사료도 먹지 못하고 사흘 넘게 기다리는 고통을 덜 수 있다.
최근 국제 사회에서도 세계동물보건기구(OIE), 국제표준화기구(ISO)를 중심으로 동물복지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동물복지를 실천하지 않는 도축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수출입이 불가능한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 도축장 현황은 포유류 86개소, 가금류 62개소이다. 이 가운데 동물복지 도축장은 4곳뿐이고, 제주에 2곳이 추가될 예정이다. 갈 길이 멀다. 정부가 도축장을 전수 조사해 동물복지 도축장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도 현재 동물복지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정책 제안과 확립에 필요한 동물복지 연구를 시작하는 단계다. 이윤만을 앞세우면 동물복지는 불가능하다. 동물에 대한 예의,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살아 있는 생명은 어떠한 존재든 '행복하게 살고 고통 없이 죽을 권리'가 있다.
'바꿔치기 대통령'의 비극 -이명박-박근혜 10년은 '염병 공화국'이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파면된 박근혜 씨가, 제1호 당원으로 이름을 올렸던 자유한국당에서까지 쫓겨나자, 곳곳에서 뒷말이 무성하다. 문자 그대로 '설상가상'이었다. 그는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으로 구속돼 있으면서, '재판 거부'까지 이어가는 중이다. 자유한국당에서는 그녀의 제명을 놓고 여러 소리가 나오고 있으나, 쉽게 말해서 '당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볼멘소리가 설득력을 얻는 듯하다.
사유야 어찌 됐건 부모 모두 참혹한 죽음을 당한데 이어, 본인까지 가혹한 말로(末路)를 맞이하고 있는 듯 한 느낌이어서, 인간적으로 연민의 정을 금할 수 없다. 새삼 '천국'과 '지옥'을 오간 그의 일생을 살펴보며 '그가 평범한 사람으로 세상을 살았으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한마디로 그녀는 애당초 민주주의 한다는 나라에서, 대통령이 되지 말았어야 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그녀에게서는 민주 시민으로서의 기초적인 소양조차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우리가 아는 대로, 그녀가 남다른 유년기와 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민주주의 교육을 거의 접해보지 못한 태생적 한계를 말하는 목소리들이다. 때문에 '군사문화'나 '일사불란'이나 '불통' 앞에서 '공정', '대화'나 '존중', '설득' 따위는 맥을 못 추게 되어있다고, 그래서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는 이야기다. 원천적으로 자질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를 구속해 재판대에 세운 기소장을 보면, 이런저런 범죄를 저질렀다고 적혀 있으나, 요약하자면 그의 죄는 최순실 씨와 함께, 국민 속이며 나라를 요절낸 대목이 될 듯싶다.
우리 헌법 제1조는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임을 밝히면서, 나라 주인이 바로 국민이라 강조하고 있다. 헌법이 그 국민의 주인 된 권한을 그저 위임해 주었을 뿐인데도, 그는 그 약속된 믿음의 고리를 스스로 끊어버렸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사건 결정문도 그가 '국민 신임을 배반'했다고 적시했다. 헌법에 따라 정당한 절차가 진행 중인 재판을 그녀가 보이콧하고 있는 것도 바로 '신임 배반' 차원의 작태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도 공정하거나 당당해 보이지 않는다. 요즘 국정원 수사 과정에서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별난' 이야기들 대부분은, 바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국정원이 벌인 지극히 온당치 못한 사연들이다. 이 나라에서 가장 힘센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이 팔을 걷어붙이고 총대를 멘 이야기다.
대선에 대비해 심리전단이 탈바꿈되고, 수천 명의 민간인 댓글부대가 꾸려졌다. 단순한 정부 업적 홍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국민들의 뇌리에 특정 후보가 각인 되도록 속임수 여론을 조작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정치공작 조직이었다. 국가정보원 법에 따르면 국정원은 정치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어있으나, MB맨인 원세훈 원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국정원은 법을 초월해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직원들을 독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론조작 댓글 작업은 치열했다고 했다. 포털 사이트 다음의 토론광장인 아고라까지 국정원 조직이 장악했던 사실은 대부분 모른다. 토론 글의 절반 정도를 국정원 심리전단과 민간 댓글부대인 사이버 외곽 팀이 벌떼처럼 덤벼 도배질한 적도 있다고 했다.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구실은 이른바 '좌티즌(좌익 네티즌) 척결 작업'이었으나, 포커스는 박근혜 대선 지원이었다. 이 정치 공작 댓글 작업은 국정원의 영향권 안에서 군의 사이버 사령부와 기무사에서도 맹렬히 이뤄졌다. 거의 모든 언론도 국정원의 손바닥 위에서 놀았다. 국정원이 만든 한 방송사 대책문건에는 '공정보도 견제 활동 강화'라는 기막힌 대목이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별도로 국정원은 박승춘 씨가 만든 국가 발전 미래교육협의회에도 거액을 대주며, 전국 각지의 예비군 정신 교육장에서 박근혜 찬가를 부르도록 했다. 그뿐만 아니라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DJ가 받은 노벨상을 취소해 달라고 노벨상위원회에 청원서를 내기도 했다. 그야말로 무불간섭(無不干涉)에 무소불위(無所不爲)였다.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빼놓지 않고 해낸 셈이었다. 대공 업무를 다루게 되어 있는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이 그랬다.
국가정보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게 되어있다. 그런 국정원이 이명박 당시 대통령 모르게 일을 벌였다고 믿을 사람은 없다. 때가 때였던지라 그 무렵 대통령은 원세훈 원장으로부터 소소한 것까지 '관심 사항'을 수시로 보고받고 있었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데에는 결정적인 순간에 경찰의 '결정적 한 건(件)'이 있었다. 대선을 여드레 앞둔 2012년 12월 1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국정원 심리전단 여직원이 정치 댓글 작업을 하다 야당 측에 발각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정원의 조직적 댓글 공작은 쉬쉬하던 상태였다. 대선 판이 발칵 뒤집혔다. 내키지 않았으나, 경찰이 수사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대선 불과 사흘 전인 12월 16일 경찰이 밤 11시 넘어 무슨 작전 하듯 황급히 한 장의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대선 후보 관련 비방・지지 게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물론 거짓이었다. 그때 경찰은 이미 국정원에 의한 조직적 댓글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대선을 코앞에 둔 그날 밤 경찰의 이 발표는 선거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밝혀진다.
2013년 12월 19일, 대선 1년에 즈음하여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가 전국의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의미 있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만약 작년 대선 직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 경찰이 사실대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면 누구에게 투표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한 511명 중 81.8%의 응답자들은 '그래도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했을 것'이라 했으나, 12,9%는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을 것'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리서치뷰는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을 것'이라 답한 응답자 12.9%를 박근혜 후보의 득표 51.55%에 대입하면 6.65%가 되고, 이를 대선 득표율에 반영할 경우 박근혜 후보 득표율은 51.55%에서 44,9%로 낮아진다고 분석했다. 반면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은 49.02%에서 54,67%로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당락이 뒤바뀌는 결과가 된다.
물론 '1년 뒤'의 '여론조사' 내용일 뿐이다. 허나 MB정권이 국정원과 검・경・군・언론 등을 총동원해 국민 속이기를 한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적지 않게 고개를 끄덕인다. 대통령이 바꿔치기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다. 바꿔치기 된 대통령은 박근혜 씨이고, 대통령을 바꿔치기 한 사람은 MB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MB는 왜 그런 끔찍한 일을 강행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MB 자신의 '대통령 임기가 끝난 후의 안전보장'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보도되고 있는 대로 국가정보원은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대통령과 손발을 맞춰가며 나쁜 짓을 이어갔다. 일부 '살아있는' 검사들에 의해 대선 댓글 작업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원세훈 전 원장을 기소했다는 이유로 괘씸죄를 적용해 검찰총장의 목을 쳤다. 문제의 대선 댓글 수사과정에서 검찰의 압수수색이 임박하자, 국정원은 허위서류 등을 비치한 가짜 심리전단 사무실을 만들어 놓는 기상천외의 사기극을 벌이기까지 했다.
박근혜 청와대가 "돈 좀 가져오라"고 하면 국정원 간부가 5만 원권 다발을 007가방에 채워 007 접선 공작하듯이 몰래 문고리 비서관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규정상 정당한 돈이 아니었다. 그게 다 우리가 낸 세금이었다. 흥청망청이었다.
지난 1월 25일 구치소에서 특검에 조사를 받으러 오던 최순실 씨가 호송버스에서 내리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라고 입을 열더니, "자백을 강요받았다"에 "억울하다"고도 했다. 모두들 어이없어하던 그때, 한 60대 청소 아줌마가 작심한 듯 목청을 높여 최 씨를 꾸짖는다. "염병하네!"라고 악을 썼다. 그러지 않아도 국정농단 사건에 끙끙 앓으면서 억장이 무너져 내리던 많은 국민들이 통쾌하다며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사전에 보면 염병은 전염병의 준말이거나, 급성 전염 열병인 장티푸스를 이르는 말인 것으로 풀이돼있다. 실제로 최순실 씨가 그런 염병을 앓고 있어서 아줌마가 그렇게 소리 지른 것은 아니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증오를 느낄 때 사람들은 흔히 그렇게라도 욕을 하면서 분을 삭인다. 그 무렵 이 나라 민초들은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어쩌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줌마에게 '사이다 폭격을 감행해 준 우리들의 영웅'이라는 칭송을 보냈다.
사실 우리는 오랫동안 너무 많은 '염병' 모습을 보면서 분노와 증오를 키워왔다. 예의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MB나 박근혜 씨에 대해서도 "염병하네"라는 욕설을 쏟아내고 싶어 하는 듯하다. 솔직한 눈빛들이 그렇다. 그래서 비극이다. 대통령 바꿔치기로 의심받는 온갖 여론 조작 작업도 두말할 나위 없이 '염병 활동'이었다. 종교계 학계 문화계 등 각계 '비협조적' 인사들에게 마구잡이로 좌빨(좌익 빨갱이) 딱지를 붙여댄 것도 '염병하는' 짓들이었다.
특히 '공정보도를 견제'하기 위해 언론계 내부에서조차 얼굴에 철판 깔고 날뛰던 사람들 역시 용서받지 못할 '염병 환자'들이었다. 그들의 반(反)헌법적 민주언론 파괴 작태를 감싸러 덤비는 바람잡이들 또한 염병하는 사람들임이 틀림없다.
어찌 보면 최근 한 10년 가까이 이 나라는 '염병 공화국'이었다. 우리는 지금 그 '염병'을 치료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필자는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민주주의 복원과 마피아 시스템의 청산을 외쳐왔다. 민주주의가 복원되면 '염병'은 저절로 낫게 되어있다. '염병 없는 세상'이 그립다. / 오홍근 칼럼니스트
노조가 반긴 국민연금 김성주 이사장 1110 아주경제
전주 출신 의원·공적연금 강화특위 간사 역임
문재인 정부 출범때 국정기획위 복지 공약 담당
시민단체와 국민연금노동조합이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임명을 일제히 환영하고 나섰다. 이들은 김 이사장이 국회의원 시절 국민연금 국가지급보장 명문화 등 제도 개선에 앞장서왔고, 이 분야에 전문적인 식견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9일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은 김 이사장에 대해 “국민연금 제도와 기금에 대해 폭넓고 전문적인 식견을 갖춘 인물”이라고 높이 평가하며 “국민 편에 서서 잘못된 정부 정책을 바꾸고, 제도 개선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행동은 △사회적 합의를 통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 △사각지대 해소 △장기재정 안정을 위한 공공인프라 투자 등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도 “김 이사장이 19대 국회에서 보여준 국민연금에 대한 입장과 활동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이사장 임명에 환영 입장을 밝혔다. 노조에 따르면 김 이사장은 의원 시절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하락 중단을 비롯해 국가지급보장 명문화, 기금운용 투명성·공정성 제고, 기금의 사회책임투자 강화, 기초연금의 보편성 증대 등에 나서왔다. 노조는 특히 핵심 사업인 기금운용의 투명성·공정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조는 “기금운용과 관련 권력과 시장에서의 독립성이 철저히 보장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국민연금 제도 지속성과 제도 본연의 목적에 충실할 수 있는 기금운용 원칙도 재정립해야 한다”면서 “기금운용 원칙의 중심에는 운용 기관과 운용 과정의 민주성·투명성 강화, 가입자 대표성 강화가 놓여야 한다”고 제시했다.
김 이사장은 취임사를 통해 이런 당부와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공단 창립 30주년을 맞은 뜻깊은 시기에 막중한 책임을 맡게 돼 어깨가 무겁다”면서 “국민연금이 ‘국민이 주인인 연금’으로 다시 태어나 국민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국민연금이 ‘연금다운 연금’이 될 수 있게 저소득층 가입지원과 출산·실업크레딧 같은 가입기간 늘리기 등 사각지대를 줄이는 데 노력하겠다”고 밝히고 “스튜어드십코드 도입과 사회적책임 투자 원칙에 입각한 주주권 강화 방안에 대한 연구 등을 통해 기금운용의 독립성·투명성·전문성을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이사장은 국민연금공단이 있는 전북 전주 출신으로, 전북도의원을 거쳐 2012년 19대 총선 때 전주시 덕진구에서 당선되며 국회에 입성했다. 19대 국회에서 보건복지위원회 간사를 비롯해 원내부대표,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특별위원회 간사로 활동했다. 문재인 정부에선 사실상 인수위원회인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전문위원 단장을 맡아 복지 분야를 비롯한 공약 전반을 손질했다.
지난 9월 국민연금공단 임원추천위원회 추천과 이달 1일 보건복지부 장관 제청을 거쳐 6일 문재인 대통령 임명을 받았다. 다음 날인 7일 취임했다. 임기는 3년이며, 1년 단위로 연임할 수 있다.
은행 임원 잘못 저질러도 징계는 항상 '솜방망이'…왜 1110 연합
시중은행 임원들이 인사청탁·채용비리·금품수수 등 각종 비위행위를 저질러도 자체 징계규정이 아예 없거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등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이 조직·문화 혁신 방안 발표를 통해 임원에 대한 별도 징계기준을 마련한 만큼 시중은행도 이에 준하는 임원 징계규정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채용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우리은행은 임원에 대한 별도의 징계규정이 없다. 비위 행위가 적발되더라도 내부 징계 대상이 아니므로 조치를 취할 수 없다. 비위 임원에 대한 자체 규정이 없다 보니 금융감독당국에서 구체적인 조치 사항이 내려오지 않는 한 별도의 징계 없이 사표 수리 정도가 전부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27일 채용비리에 연루된 남기명 국내 부문 부문장과 이대진 검사실 상무, 권모 영업본부장 등 관련자 3명을 직위 해제했다. 검찰 수사 결과 등에서 명확한 비리 증거가 입증되지 않으면 이들은 다시 복귀한다. 최종적으로 유죄가 확정되더라도 법적 처벌만 있을 뿐 우리은행 내부적으로 별도의 징계를 받지 않는다. 해임되더라도 거액의 퇴직금과 성과급 등을 챙겨 나갈 수 있다.
우리은행은 내달 인사 혁신 방안 발표에서 비위가 적발된 임원에 대한 징계규정을 새로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임원 징계규정이 있다 하더라도 그 내용이 허술하거나 실제 징계가 내려지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KEB하나은행은 지배구조 내부규범에 의거한 인사 관련 내규에 '징계면직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 임기 중이라도 해임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임원이 잘못을 저질러도 사표만 수리되면 해결되는 구조는 마찬가지다. 실제로 KEB하나은행은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인사청탁으로 임원이 됐다는 의혹을 받는 이상화 글로벌영업2본부장에 대해 징계위원회를 열고 징계 수준을 결정할 예정이었지만 이 본부장의 사표를 수리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이 본부장이 은행의 심각한 이미지 실추를 가져오는 등 징계 사유가 충분했으나 징계위원회가 열리지 않음에 따라 퇴직금 등도 모두 수령해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도 징계위원회 등에서 비위 수준에 따라 감봉·정직·면직·성과급 환수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징계가 이뤄진 경우는 극히 드물다. KB금융은 비윤리적 행위, 손실 발생, 법률 위반의 경우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거나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있음에도 2013년 경영정보 유출로 경징계를 받은 어윤대 전 회장에게 10억 원이 넘는 성과급을 지급했다. 또 주전산기 교체를 둘러싼 내분으로 KB사태를 일으켜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임영록 전 회장과 이건호 전 행장에게도 성과급 일부를 지급해 논란이 된 바 있다.
금감원은 채용비리로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김수일 부원장에 별도 징계 없이 사표를 수리한 것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9일 조직 쇄신안 발표를 통해 별도의 임원 징계안을 마련했다. 임원의 비위 사실이 확인되면 업무에서 즉시 배제하고 기본급 감액 수준을 기존 20%에서 30%로 확대된다. 또 임원이 사표를 제출해 퇴직할 경우 퇴직금을 50% 삭감하고, 나머지 절반도 무죄가 확정될 경우에만 지급하기로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징계를 받고도 은행 내부에선 아무런 책임 없이 옷만 벗으면 되다 보니 임원은 먹튀 한다는 느낌이 강하다"며 "시중은행들도 금감원에 준하는 임원 징계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명박근혜'는 못한 일, 공정위 전속고발권 대폭 축소 1112 프레시안
김상조 공정위, 혁신안 중간 발표...'솜방망이에 물 먹이기'
그간 유통업계 불공정행위 양산의 원인 중 하나로 여겨져 온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이 대폭 축소된다. 이에 따라 앞으로 개인이나 민간 기업이 유통업체의 위법 행위를 직접 수사당국에 고발할 수 있게 됐다. 솜방망이 논란을 낳은 낮은 수준의 과징금 부가 수준도 기존보다 2배 상향된다. 공정위 무혐의 결정에 승복하지 않는 소비자나 기업은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 가능한 사인의 금지청구제도 도입된다.
10일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이 같은 개선사항을 담은 '법집행체계 개선 TF' 논의결과 중간보고서를 발표했다
공정위 전속고발권 대폭 축소
공정위는 김상조 위원장 취임 후, 유통업계와 대리점업계, 가맹업계 등을 중심으로 갑을관계에 따른 폐해 개선을 위해 해당 TF를 발족했다. TF는 신영선 공정위 부위원장과 외부전문가 10인으로 구성됐다. 그간 TF는 다섯 차례 회의를 통해 11개 개선 과제를 선정했다.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공정위는 해당 과제 중 △전속고발제 폐지 △과징금 부과수준 2배 상향 △사인의 금지청구제 도입 △징벌배상제 확대 △지자체와 조사권 분담 등 5개 사항 개선을 확정했다. 우선 공정위는 이른바 유통3법(가맹법, 유통업법, 대리점법) 상 전속고발제를 폐지키로 결정했다. 공정위는 "갑을관계에서 비롯되는 불공정행위 근절이 시급하고, 위법성 판단 시 고도의 경쟁제한 효과 분석이 요구되지 않는다"며 "고소·고발 남발 및 무리한 수사 우려가 크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전속고발제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모아졌다"고 밝혔다.
다만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표시광고법 등에서는 전속고발제 폐지 여부를 정하지 않았다.
그간 전속고발권은 공정위가 독점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공정위가 고발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형사제재로 이어지지 않아, 주로 힘 있는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를 근절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대표적으로 '안방의 세월호 사건'으로 불린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터졌을 당시, 전속고발권 폐지 목소리가 컸다. 다만 당시는 표시광고법상 전속고발권 폐지가 이슈가 됐다. 이번 TF 보고서에서 표시광고법상 전속고발권은 존치키로 결정했다.
이에 관해 김상조 위원장은 "표시광고법이 적용 범위가 넓어 TF 위원들의 고민이 많았을 것"이라면서도 "오늘 발표 내용은 TF 위원 의견으로, 이 의견을 공정위가 그대로 따르겠다는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향후 최종 결정 시 변경 여지를 남겨뒀다.
▲ 지난 1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김상조 위원장이 공정거래 법집행체계개선 TF 중간보고서 발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솜방망이에 물 먹인다
제재 수준이 미미해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과징금 수준은 기존의 두 배로 올라간다. 이에 따라 담합에 관한 정액과징금 상한은 기존 매출액의 10%에서 20%로 상향된다. 시지남용의 경우 3%에서 6%로, 불공정거래행위에 따른 과징금 상한은 2%에서 4%로 오른다.
그간 한국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집단소송제 등 기업의 불공정행위에 관한 민사 제재수단이 미비한 데다, 과징금 수준도 낮아 기업의 시장질서 교란 행위를 효과적으로 제재할 수단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 2004년 담합에 관한 과징금 부과율이 기존 매출액의 5%에서 10%로 오른 걸 제외하면 근 20여 년간 법상 부과율 상한이 2~3%의 낮은 수준에 머물러왔다.
이는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와 비교해서도 극히 낮은 수준이었다. 공정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바탕으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담합 과징금 부과율 상한액은 미국의 경우 관련 매출액 대비 20%, 유럽연합(EU)은 30%에 달해 한국의 10%에 비해 크게 높았다.
담합사건에서 부당이득 대비 부과 과징금액 비율도 미국(57%), EU(26%)에 비해 한국은 9%에 머물러 크게 낮았다.
사인 금지청구제 도입
공정거래법에 사인의 금지청구제도 도입된다. 그간 공정위에 불공정행위를 신고한 이는 공정위가 해당 건을 무혐의 결정한 경우, 이 결정을 수용하지 못해도 공정위에 재신고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결정에 따라 피해를 입은 소비자나 기업은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 가해자의 불공정거래행위 중단 요청 소송을 곧바로 법원에 제기할 수 있게 됐다. 이번 결정에 따라 공정거래법은 물론, 앞으로 하도급법 및 유통3법에도 사인의 금지청구제가 도입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편 공정위는 앞으로 조사권 일부를 지자체와 나누기로 했다. 이는 김상조 위원장이 취임 이후 실효성 있는 시장거래질서 조사를 위해 필요하다고 꾸준히 강조한 사안이다. 그간 공정위 인력이 부족해 공정위 조사권만으로는 중소기업·소상공인의 불공정거래 피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어, 지자체가 조사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였다.
TF 논의 결과, 앞으로 공정위는 가맹분야에서 우선 지자체와 조사권을 분담하기로 했다. 국내 프랜차이즈 시장 규모가 매우 커, 조사권 강화가 가장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국내 프랜차이즈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가맹본부 4200개, 가맹점 21만개, 종사 노동자 80만여 명에 달한다.
이에 따라 가맹사업의 경우 앞으로 17개 광역지자체가 가맹사업법 집행 여부에 관한 조사권과 처분권을 행사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가맹분야 정보공개서 등록·관리 업무는 공정위에서 지자체로 이양하고, 피해 구제 활성화를 위해 각 지자체에 분쟁조정협의회가 설치된다. 이번 중간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은 6개 과제는 앞으로 TF에서 추가 논의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내년 1월 중 TF 최종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김상조 위원장은 "오늘 발표한 내용은 의원 입법안에 반영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정기국회에 처리되지 않은 법안이 있다면 다시 판단해서 정부 입법 추진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全은 골목성명 朴은 대독성명…MB 공항성명의 결말은1112 머니투데이
]朴 "진실 밝혀질 것" 불복 19일만에 영장..全 "정치공작" 檢 소환 불복 이튿날 압송
12일 오전 11시58분 이명박 전 대통령을 태운 제네시스 승용차가 인천국제공항 VIP(귀빈) 출입구로 들어섰다. 그는 차에서 내리며 밝은 회색 정장의 단추를 잠갔다. "눈이 부시니 조명을 좀 꺼달라"며 말문을 열고는 군과 국가정보원의 댓글 조작 지시 정황에 대해 "상식에 벗어난 질문을 하지 말라"며 일축했다.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에 대해서는 "감정풀이식 정치보복"이라고 말했다. 4분간 회견을 마친 이 전 대통령은 공항으로 급히 들어섰다.
이 전 대통령의 완강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여전히 이 전 대통령의 뒤를 바짝 쫓는 형국이다.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이 군의 댓글조작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가운데 이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댓글을 달라고 지시할 만큼 한가한 자리가 아니다"고 추가 해명했지만 현장 취재진들은 공허하다는 반응이었다.
이 전 대통령의 이날 4분간의 공항 즉석 회견은 질의응답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자회견보다는 성명 발표에 가까운 형태였다. 전직 대통령들 중 적잖은 경우가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후 금고의 신분이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날 이 전 대통령의 4분 공항성명이 갖는 의미도 크다는게 정치권의 반응이다. 이 전 대통령의 강한 부인이 어떤 조사 결과로 이어질지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 후에도 일정 기간 청와대에 머물다가 지난 3월 12일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당시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이 박 전 대통령의 입장을 대신 읽었다. 이른바 대독성명이다.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에 대한 불복의 의미였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영장이 발부되기까지는 그로부터 19일이 걸렸다.
반발 성명의 원조는 따로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 1995년 12월2일 서울 연희동 자택 앞에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검찰의 출두 통보 이튿날 전격적으로 이뤄진 이른바 골목성명이다. 그는 "검찰의 태도는 진상규명 때문이 아니라 현 정국의 정치적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보아 검찰의 소환요구 및 여타의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전 전 대통령은 골목성명 발표 후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갔다가 새벽 5촌 조카의 집에서 구속돼 안양교도소로 압송됐다. 골목성명 하루 만이었다.
사립대 총장 집단 반발에… ‘입학금 폐지’ 무산 위기 1112 국민
사총협, 입학금 관련 조사 거부… 교육부에 통보
“학생에게 줄 국가장학금 대학에 나눠달라” 요구도
교육부는 눈치보기 급급
내년 재정지원 참여 조건에 입학금 폐지 연계 결정 못해
사립대학 총장들이 입학금을 폐지하려면 학생에게 돌아갈 국가장학금을 떼어 대학에 달라고 요구했다. 모든 사립대에 국고 1000억원을 조건 없이 나눠달라고도 했다. 부실대학에도 국고를 투입하란 얘기다. 그러면서 교육부의 입학금 관련 조사는 집단 거부키로 했다. 교육부는 사립대 눈치를 살피며 우물쭈물하고 있다. 사립대 입학금 폐지 정책이 무산 위기에 놓였다.
12일 교육부에 따르면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사총협)는 최근 ‘교육부 학부 입학금 단계적 감축 계획 조사 의견 유보 건’이란 공문을 교육부에 보내왔다. 공문에는 “입학금 단계적 감축계획 조사는 3자협의체(교육부 사총협 학생대표)에서 논의 중이므로… 사립대에서 교육부로의 통보는 유예토록 공지했다”고 밝혔다.
사총협이 정부의 입학금 조사에 제동을 거는 내용이다. 개별 사립대에는 교육부 조사에 응하지 말 것을, 교육부에는 이런 결정 사항을 통보한 것이다. 교육부로선 굴욕이다. 교육부는 지난 1일 전국 사립대에 입학금을 감축하는 방안을 마련해 13일까지 제출토록 요구했다. 교육부는 입학금의 20% 정도만 실제 입학 업무에 쓰인다고 본다. 나머지 80%를 언제 어떻게 줄일지 계획을 내도록 한 것이다. 교육부는 대학들의 계획을 받아보고 이를 토대로 국가장학금Ⅱ 유형 등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이었다.
사립대의 집단 반발 등으로 지난 9일 열린 ‘대학, 학생, 정부 간 입학금 제도개선 협의체’ 회의도 파행됐다. 당초 교육부는 이날 회의에서 입학금 축소·폐지 틀을 확정한 뒤 13일쯤 이를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어그러졌다.
사총협은 이날 회의에서 새로운 입학금 폐지 조건을 내걸었다. 국가장학금Ⅱ 유형 가운데 일정 규모를 떼어내 대학 재정에 투입하라는 것이다. 국가장학금은 학생 소득에 따라 지급되는 Ⅰ유형과 정부가 대학의 학비 경감 노력에 대응해 지급하는 Ⅱ유형으로 구분된다. 대학이 학비 경감을 위해 노력해도 국가장학금은 학생에게 돌아가는 혜택이므로 대학 재정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논리다.
정부재정지원사업 예산 가운데 1000억원가량을 모든 사립대에 구분 없이 지원해달라는 요구 조건도 제시했다. 정부 재정지원사업에선 모든 대학이 혜택을 보기 어렵지만 입학금 폐지는 모든 사립대 재정에 충격을 준다. 따라서 정부재정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대학들도 ‘남는 게 있어야 동참한다’는 게 사총협의 논리다. 교육부 관계자는 “두 방안 다 수용 불가하다”고 선을 그었다.
교육부는 그러나 사립대의 협조를 이끌어낼 방안을 정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다. 교육부는 5∼7년 사이에 입학금을 폐지하려던 기존 방침이 느슨하다는 비판에 따라 4년제 대학은 3년내, 전문대는 5년내로 폐지 목표 시점을 다시 설정했다. 사립대들이 이를 따르려면 과거보다 강력한 당근책이나 채찍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내년 재정지원사업 참여 조건으로 입학금 폐지 여부를 내걸지조차 결정하지 못했다. 사립대들이 정부 정책과 재정 지원을 연계하는 것에 부정적이란 이유에서다. 입학금은 결국 돈 문제이므로 재정 지원과 강하게 연계하지 않으면 입학금 폐지 논의가 탄력을 받기 어렵다. 교육부 내부에선 입학에 드는 비용으로 인정되는 비율을 현재 20%에서 30% 수준으로 높여주자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율이 올라간 만큼 사립대는 이득, 대학 신입생은 손해를 보게 되는 방안이다
50년에 25%…시골 나무보다 빨리 자라는 도시 나무, 이유는? 한겨레1114 도시나무 50년 동안 시골나무보다 25% 크게 자라‘열섬효과’ 영향으로 광합성 증가·생육기간 연장돼국제 공동연구 결과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려
같은 나무라도 도시에 살면 시골에 사는 나무보다 빨리 자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독일 뮌헨기술대 연구자들이 중심이 된 칠레, 미국, 일본 등 8개 나라 공동 연구팀은 13일 학술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세계적으로 대도시에 있는 나무들이 주변 시골에 있는 나무들보다 1960년대 이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일본 삿포로, 독일 베를린, 미국 휴스턴, 베트남 하노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 등 한대에서 아열대까지 다양한 기후대를 대표하는 10개 대도시와 그 주변에서 다양한 수종의 나무 1383 그루의 심재 샘플을 수집해 집중 조사했다. 분석 결과 도시에 있는 나무들이 시골 나무보다 빠르게 성장하면서 같은 연령대의 시골 나무보다 더 크게 자란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 나무와 시골 나무의 상대적 크기 차이는 나무의 나이가 오래 될수록 다소 좁혀지는 추세를 보였다. 수령 150년 이상된 나무들을 조사해봤더니, 50년까지 평균 25%에 이르던 성장율 격차는 100년까지는 18%, 150년까지는 14% 정도로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도시 나무들의 성장을 가속화하는 주요인은, 인구가 집중된 도시의 온도가 과다한 에너지 사용에 따른 열 배출과 이를 흡수할 녹지 부족 등으로 주변 교외 지역보다 높게 나타나는 이른바 ‘열섬효과’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열섬효과가 광합성 활동을 촉진하고 생육 기간을 늘렸다는 것이다. 도시 나무의 빠른 성장은 그늘을 만들어 도시의 기온을 낮추고 대기오염을 완화시켜 도시민들의 복지와 건강에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 하지만 생애주기 단축이라는 부정적 효과도 수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무가 더 빨리 노쇠해 고사해 버린다는 얘기다.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 증가에 따른 기후변화는 도시와 시골 나무 양 쪽에 고루 영향을 끼쳐, 1960년대 이후 나무들의 성장을 가속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를 이끈 뮌헨기술대의 한스 프레츠쉬 교수는 13일 대학이 배포한 설명자료에서 “지구 온난화 이외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와 토양 속 질소 침적량 증가에 따른 시비 효과가 (나무의 성장을 촉진하는) 잠재적 추진력으로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역대급 4행시 참사 발생…이번엔 국방부다 1114 한겨레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또…’ 반응에 풍자 댓글 봇물
국방부 산하 국방정신전력원의 4행시 이벤트 공모 화면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또….’
국방부 산하 국방정신전력원이 11월17일 애국선열의 날을 맞아 순국선열의 정신을 이어가자는 뜻으로 ‘순국선열’ 또는 ‘애국지사’로 짓는 4행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벤트 시작 하루 만에 댓글이 300개가 넘어가는 등 반응이 뜨거운데요. ‘기발하고 멋진’ 댓글을 기대했던 국방정신전력원 입장에서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닐 겁니다. ‘순’수한 마음으로/‘국’민에게 봉사했던/‘선’열들의 충심을/‘열’열히 받들자(아이디 mpm****)와 같이 행사 취지에 맞는 4행시 댓글도 있지만, 대부분은 최근 검찰이 수사 중인 군 사이버사와 국정원 댓글 공작, 국방비리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댓글입니다. 지난해 국정농단으로 대한민국을 뒤흔든 최순실씨도 단골 소재입니다.
‘순’전히/‘국’민세금 으로 대/‘선’때 사이버 댓글조작/‘열’심히 했네요/‘애’국한다고 포장하였지만/‘국’민들에게 딱 걸렸음에도/‘지’버릇 개 못 준다고 끝까지/‘사’기치네요(아이디 스모킹*)
‘순’고한 희생은 원하나/‘국’가가 책임지는 것도 아니고/‘선’별된 애들을 데리고 가는데/‘열’어보면 돈 없는 자들만 가는 군대/‘애’시당초 국가의 검은 녹슬어/‘국’방비리만 남은 이 시기에/‘지’극정성 빌어도 모자랄 판에/‘사’기꾼들 또 시작이네(가*)
‘순’실이가 돈 해먹고/‘국’정원은 조작하고/‘선’장놈은 먼저 튀고/‘열’ 받겠냐 안 받겠냐?/‘애’끓는 마음으로/‘국’가가 부른다/‘지’금 당장/‘사’이버전사령부로!(LE*)
‘순’실이의/‘국’정농단/‘선’거개입 국정원/‘열’일했네 아주~(pooh****)
‘순’리대로 밝혀라/‘국’정원아 밝혀라/‘선’의의 명령이다/‘열’ 셀 때까지 밝혀라(sky*****)
‘순’대국처럼 나라 말아먹던 MB를/‘국’방부는 댓글 부대를 만들어 그렇게나 빨아댔지/‘선’심쓰듯 이딴 이벤트 하면/‘열’ 받겠니 안받겠니~ 그래서 다스는 누구꺼니?(hun****)
‘순’진하네/‘국’방부/‘선’물까지 준비했네/‘열’심히 써줘야지, 그렇다면/‘애’들도 아니고/‘국’민이 바보인 줄 아나?/‘지’금 이런 이벤트 열면/‘사’람들이 막 원하는 사행시 써줄 것 같나?!(빛과 ****)
4행시 참사를 불러온 국방정신전력원은 어떤 곳일까요. 군인들의 정신전력 교육과 연구를 맡고 있는 국방정신전력원은 2013년 12월 창설됐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대선공약 중 하나가 군 정신전력 강화였는데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유난히 ‘정신력’을 강조했지요. 지난해 3월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열린 ‘2016년 장교 합동임관식’에 참석해 축하연설을 하면서 “애국심과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국가안보를 더 튼튼하게 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국방정신전력원 창설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산을 부활시킨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국방정신전력원의 전신은 1977년 대통령령으로 창설된 국군정신전력학교로 이후 국방정신교육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98년 김대중 대통령때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폐지된 바 있습니다. 2013년 창설 당시 민주통합당이 대변인 논평을 통해 “유신시대의 유물을 역사 속에서 다시 꺼내려는 이유가 신임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비판한 배경입니다. (▶관련 기사: 민주당 “유신시대 유물인 국방정신교육원 부활이라니”)
N행시 참사는 몇 달 전에도 있었죠. 자유한국당은 올해 6월19일부터 29일까지 당명을 소재로 5행시 공모 이벤트를 진행했는데요. 새 지도부를 뽑기 위한 2차 전당대회를 앞두고 응원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취지였습니다. 이벤트는 시작 나흘 만에 댓글이 3000여개가 달릴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이었습니다. 대부분은 박근혜 정부 적폐와 최순실 국정농단에 직간접적인 책임을 공유하는 자유한국당을 향한 비판과 조롱의 목소리였습니다. (▶관련 기사: 누리꾼들 ‘성지’된 자유한국당 5행시 공모전)
‘자’유 찾아 삼만리/‘유’치하기 끝이 없지만/‘한’번만 더 믿고 싶었는데/‘국’민이 이제는 안 믿어/ ‘당’당히 말하는데 이제 국민을 찾지 마요”(아이디 주*윤)
‘자’기만 모르는/‘유’체이탈 화법으로/‘한’심한 국정 발목잡이/‘국’민들 속 터진다/‘당’장 국회를 떠나라”(신*기)
‘자’유한국당은요/‘유’구한 역사를 가진 정당입니다/‘한’나라당의 차떼기와/‘국’가부도·국정농단도/‘당’신들의 작품이죠”(전*신)
이 목소리를 들은 자유한국당의 반응이 흥미로운데요. 자유한국당 홍보본부장 박성중 의원은 7월21일 5행시 공모전 당선작을 발표하면서 “격려도 많았지만 80% 이상이 뼈아픈 질책과 지적 사항이었다. 뼈아픈 지적도 밟고 일어나야 하니 이렇게 공개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까지 5행시에 가세한 것을 두고는 “다른 당에서 무관심보다 반응을 해주는 것이 재미있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무플보다 악플’이라는 반응인데요. 쏟아지는 국민들의 질책마저 이렇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관련 기사: 자유한국당 5행시 당선작 드디어 나왔다!)
도둑들 경향 1113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범죄는 살인과 절도다. 카인은 하나님이 동생의 제물만 받자 질투심에 동생 아벨을 죽였다. 인류 최초의 살인이다.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금단의 열매를 훔친 것은 최초의 절도다. 범죄는 범죄다. 누구도 살인과 절도를 오래된 관행이니 봐주자는 말은 하지 않는다. 아예 그런 말을 못하게 성문(成文)화한 게 법이다. 가장 오래된 성문법인 함무라비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同害)보복의 원칙을 담았다.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은 높이 2.25m 돌에 “이 땅에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그리하여 강자가 약자를 함부로 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라고 법전의 서문을 새겨 놓았다. 기원전 1700년의 일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광범위하게 진행된 법치 파괴는 살인·절도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중대범죄다. 국기 문란에 헌정 질서를 유린한 국사범(國事犯)이다. 박근혜의 ‘문고리 3인방’은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매달 1억원씩 월급처럼 받았다. 이들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지난해 7월 잠시 중단했다가 두 달 뒤에 다시 2억원을 가져오게 해 직접 받았다. 전액 5만원권 현금이다. 국정원은 박근혜의 ATM(현금인출기)이었다. 이명박은 국정원을 사설흥신소로 전락시켰다. 군은 사병화했다. 청와대는 내 집이고, 대한민국은 내 나라라고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 시절, 국회·국정원·금융감독원의 권력자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신의 직장에 꽂아넣었다. 검찰 관계자는 “요즘엔 뇌물 몇 억원 주는 것보다 아들·딸 취업시켜주는 게 훨씬 효율적인 뇌물”이라고 했다. 강원랜드 평균 연봉은 7073만원이다. 그곳의 2013년 신입사원 합격자 518명 중 493명(95%)이 외부 청탁을 받은 별도관리대상자였다. 불합격자 중 200여명도 청탁이 있었으나 ‘빽’이 약해 떨어졌다. 한국전력공사·석유공사·석탄공사·지역난방공사·토지주택공사·도로공사·디자인진흥원·부산항만공사…. 지금까지 채용비리가 밝혀진 공공기관은 23곳, 금융기관은 14곳이다. 신입사원 채용은 겉으로만 공채였을 뿐, 실상은 반칙과 특권의 잔치판이었다. 최순실은 딸을 이화여대에 집어넣었고, 뒷문으로 들어간 그 딸은 “돈도 실력이야.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고 했다. 들러리를 선 취업준비생, 수험생들의 좌절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황장엽은 “북은 미쳤고, 남은 썩었다”고 했다. 프랑스혁명과 러시아 10월혁명은 귀족들의 부정부패에서 비롯됐다. 중국의 장제스(蔣介石) 정부와 월남은 극에 달한 모럴 해저드 때문에 무너졌다. 영국의 재상 글래드스턴은 “부패는 국가를 몰락으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고 건재해 있는 게 놀라울 정도다.
적폐가 대단한 게 아니다. 불공정, 불평등, 부정의가 적폐다.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적폐청산은 불공정한 특권구조를 없애자는 것이다. 촛불은 적폐청산을 요구했고, 촛불로 탄생한 새 정부는 적폐청산을 국정과제 1호로 삼았다. 당연하다. 정권이 바뀌지 않았으면 이런 진실도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검찰은 그 수사를 진행 중이다.
수구 야당과 보수언론에선 썩고 곪은 상처를 도려내는 적폐수술을 정치보복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눈감고 넘어가자는 얘기다. 형사소송법 제195조는 “검사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하여야 한다”고 명시해놓고 있다. 범죄혐의를 보고서도 눈을 감는다면 검사의 직무유기다. 문제는 적폐청산이 아니라 지금껏 적폐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승만은 1948년 반민특위가 친일 민족반역자를 처단하려 하자 “안보상황이 위급한 때 이들을 동요시켜서는 안된다”며 가로막았다. 친일 기득권 세력은 “반민특위가 민족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반격했다. 이명박은 “이러한 것(적폐청산)은 국론을 분열시키고, 안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다. 반민특위의 비극은 되풀이되고 있다. 반민특위 해산으로 친일 민족반역세력은 일제 때부터 누려오던 기득권을 계속 유지했다. 수구세력이 적폐청산에 저항하는 것도 ‘지금, 이대로, 쭉’을 바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의 학습효과도 없다. 좀도둑은 감옥에 가지만 나라를 말아먹은 큰도둑은 되레 당당하다. 기원전 고대국가에서도 정의를 실현하자고 돌에 새겼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정의를 포기하자고 한다. 다산 정약용은 큰 도적을 제거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모두 죽게 된다고 했다/ 박래용 논설위원
연말 삼성전자 인사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 1114 한국경제
(1) 경제계 엘리트로 공인 받는 삼성 임원이 갖는 상징성
(2) 1054명에 달하는 임원숫자
(3) 인사키워드 타기업에 영향
지난주 초 단행될 것으로 예상된 삼성전자 임원 및 비(非)전자 사장단 인사가 늦춰지면서 그 원인과 배경을 둘러싼 관측이 무성하다. 삼성 내부 및 다른 기업뿐만 아니라 관계, 법조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 인사가 웬만한 정관계 인사보다 더 주목받는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일개 민간기업에 불과한 삼성 인사가 왜 이렇게 관심을 받게 된 것일까. 첫 번째 이유로는 삼성 임원이라는 직함이 지니는 상징성이 거론된다. 특히 애플 등을 제치고 세계 최고 제조업체로 등극한 삼성전자는 예나 지금이나 부동의 한국 대표 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삼성전자 임원이 된다는 것은 샐러리맨으로서 성공과 출세의 정점에 선다는 의미를 지닌다.
지난해 삼성전자 등기 임원의 평균 보수는 48억3700만원으로 2위인 GS리테일(30억500만원)보다 20억원 가까이 많았다. 또 상무 이상이 되면 회사에서 중대형 세단이 제공되면서 해외출장 때 항공기 비즈니스석도 이용할 수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임원 명함을 갖게 된다는 것은 해당 인물이 한국 경제계의 엘리트로 공인받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이는 세계 금융업계의 최고봉인 골드만삭스 파트너와 임원들이 월스트리트 직원의 선망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블룸버그통신 등 미국 유력매체들은 지난 9일 골드만삭스 매니징디렉터(전무급 임원)로 승진한 509명의 명단을 모두 공개했다. 매년 그렇게 해왔다. 앞으로 월가를 끌고갈 파워 엘리트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등기 임원과 미등기 임원을 합쳐 1054명에 달하는 삼성전자의 임원 숫자도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다. LG전자(313명) SK하이닉스(158명) 등 전자업계 다른 대기업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많다. 이처럼 많은 임원 하나하나는 폭넓은 네트워크를 통해 경제계 전반에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구매, 마케팅 쪽의 임원이 바뀌면 협력업체와 유통업계 대표들은 하루라도 빨리 만나보기 위해 발을 구른다.
국내는 물론 해외도 마찬가지다. 기술 쪽 임원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의 새로운 흐름을 흡수하기 위해 평소 학계 등 전문가 그룹과도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규제권을 쥐고 있는 정부 관료들과의 인맥도 전통적으로 두터운 편이다. 법조계는 좀 더 현실적인 이유로 삼성 인사에 관심을 기울인다. 특히 퇴직자 거취를 집중적으로 묻고 다닌다 한 대형로펌 관계자는 “삼성전자 법무팀 임원 출신은 웬만한 판·검사보다 인맥이 좋아 주요 법무법인의 영입 1순위”라고 전했
삼성의 대규모 인사는 연말·연초 인사를 준비 중인 다른 기업 인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삼성 인사 방향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 때문에 다른 기업 오너, 최고경영자(CEO)들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올해 삼성전자가 사장단 퇴출 기준으로 ‘만 60세 이상’을 삼았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부사장, 전무급에도 연령 제한이 있는지 탐문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인사 뒤 조직개편 방향도 다른 기업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다. ‘스피드 경영’과 ‘권한 위임’을 표방한 삼성의 사업 조직이 산업계 흐름에 맞춰 어떻게 변신해가는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금도둑’ 홍준표를 고발한다 1113 경향
2009년 5월19일 영국 국회의 마이클 마틴 하원의장이 의장직을 중도사퇴했다. 314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영국 국회의원 공금유용 스캔들’의 여파였다.
‘영국 국회의원 공금유용 스캔들’은 영국 국회의원들이 주택보조금을 허위로 청구한 사례가 드러난 데서 시작됐다. 지방에 사는 국회의원이 국회의사당이 있는 런던에 숙소를 유지할 수 있도록 국민세금으로 주택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 제도를 일부 국회의원들이 악용해서 허위로 비용을 청구했던 것이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주택보조금만이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공금유용 사례들이 드러났다.
심지어 반려동물 사료비용을 공금으로 사용하는 등 국회의원들이 사적인 지출을 공금으로 사용한 사례들이 드러난 것이다. 마틴 하원의장이 사퇴한 이유는 의원들의 주택보조금 사용내역에 대한 공개를 몇 년간 지연시킴으로써 문제를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공금을 유용한 것으로 드러난 영국 국회의원 46명이 의원직을 중도사퇴했다. 영국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독일에서도 2002년 공적인 해외출장에서 쌓인 마일리지를 사적으로 사용한 것이 드러나 유력 정치인이 정계은퇴를 한 일이 있었다. 그래도 이런 나라들에서는 공금을 유용한 정치인들이 더 이상 정치를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어떤가? 유력 정치인이 국민세금을 횡령해서 생활비로 사용한 사실을 스스로 자백했는데도, 처벌도 받지 않고 버젓이 정치를 계속하고 있다. 바로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 얘기다.
홍준표 대표는 2008년 5월 구성된 제18대 국회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1년 동안 맡았다. 국회에서 여당 원내대표는 국회 운영위원장을 겸임하며, 월 4000만~5000만원 정도의 특수활동비를 매달 지급받는다. 특수활동비는 영수증을 제출할 필요도 없고 사용내역도 보고할 의무가 없는 예산항목이다. 홍준표 대표도 당연히 이 기간 동안 특수활동비를 수령했다. 아무리 영수증을 안 붙여도 된다지만, 특수활동비는 “특정한 업무수행 및 사건수사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로서 “편성된 목적대로 집행하여야”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홍준표 대표는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2015년 5월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래와 같은 취지의 글을 올린다.
‘2008년 여당 원내대표를 할 때 매달 국회 특수활동비를 4000만~5000만원씩 받았는데, 그 돈을 현금화해서 쓰다가 남은 돈을 아내에게 생활비로 줬다. 아내는 그 돈을 대여금고에 모아뒀다.’
그리고 그 돈을 자신이 2011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나갈 때에 경선자금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적인 용도에 써야 할 세금을 사적인 생활비로 횡령했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한 것이었다. 법적으로는 업무상 횡령에 해당하는 행위이다. 형법 356조 1항에 따르면, 업무상 횡령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범죄다. 홍준표 대표는 논란이 일어나자, “특수활동비는 일종의 직책수당이므로 맘대로 써도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특수활동비는 명백하게 직책수당이 아니다. 그리고 특수활동비를 잘못 썼다가 업무상 횡령으로 처벌된 판례도 존재한다.
대법원은 2013년 9월12일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공무원이 특수활동비를 정해진 용도대로 쓰지 않은 것은 ‘업무상 횡령’이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특수활동비를 생활비로 사용한 홍준표 대표의 행위는 명백하게 업무상 횡령에 해당한다. 문제는 이 사건에 대해 박근혜 정권 시절에 제대로 수사도 안 했고 처벌도 안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홍준표 대표는 대선에 출마했고, 제1야당의 대표도 맡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유력 정치인이라고 해서 공금횡령을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다면 ‘정의’라는 단어는 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시민단체가 나섰다. 예산감시운동을 전문으로 하는 시민단체인 ‘세금도둑 잡아라’가 고발인을 모집해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를 11월 안에 고발할 예정이다. 업무상 횡령죄의 공소시효는 10년이므로 아직 공소시효가 남아 있다. 누구든 취지에 공감한다면 세금도둑 잡아라 블로그(sedojab.tistory.com)를 통해서 고발에 참여할 수 있다. 공금을 횡령해 생활비로 쓴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처벌하지 않는 국가는 국가라고 부를 수도 없다. 유력 정치인이라고 해서 공금횡령을 봐준다면, 그런 사회에서 ‘법 앞의 평등’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홍준표 대표를 고발한다. 한 가지 미리 경고한다면, 이것을 정치적으로 왜곡하지 말라. 공금횡령은 보수든 진보든 반드시 처벌받아야 하는 일이다. 이런 행위를 옹호하려는 정당이 있다면, 그 정당은 세금도둑당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회는 지금이라도 연간 81억원의 특수활동비, 88억원의 업무추진비, 13억원의 예비금, 86억원의 입법 및 정책개발비, 46억원의 정책자료집 발간 및 발송비 등 연간 314억원이 넘는 예산에 관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의정활동에 정당하게 썼다면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예산들이다.
그런데 국회는 이 예산항목들에 대한 세부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국회 스스로 세금도둑들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금이라도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박정희 재단이 손가락질 받는 3가지 이유 1115노컷
지방정부 조례 짓밟아, 승인절차 무시 안하무인, 서울시와 약속도 어겨
(사진=박정희 대통령 기념재단 홈페이지 캡처)
'박정희 대통령 기념재단'(이하 재단)의 오만방자한 행태가 도마에 올랐다. 공적 목적의 재단이 현행 제도를 앞장서 무력화하고, 지방정부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등 전직 대통령의 생애와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서라는 설립 취지를 무색케 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재단이 비판 받는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첫째, 박정희 동상을 재단이 위치해 있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설치하는 문제를 둘러싼 시민들간 갈등을 조장하거나 방조하고 있다. 재단은 동상을 서울시 소유인 재단 부지 내에 설치할 계획을 밝혔으면서도 막상 관련 절차를 밟지 않고 있다.
현행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해당 부지에 동상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마포구를 거쳐 서울시에 허가신청을 접수 하는 등 정해진 과정을 따라야 한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지난 3일 재단측에 공문을 보내 허가 절차를 안내하기까지 했다.
서울시가 11월 3일 박정희 재단측에 보낸 공문. 박정희 동상을 설치하기 전에 심의를 받으라고 안내돼 있다. 하지만 재단측은 14일 현재까지 신청서를 접수하지 않고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하지만 재단은 지난 6일 서울시측에 조례에 따라 심의를 받겠다는 의사를 나타냈지만, 실제로는 그로부터 8일이 지난 14일까지도 아무런 허가 절차를 밟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허가 절차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시민들간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13일에도 동상 기증식을 놓고 찬성측과 반대측간 극렬한 갈등 상황이 재현됐다.
둘째, 재단은 동상 설치를 막무가내로 추진하고 있다. 재단은 서울시에 허가신청서를 접수하지 않은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동상 제작을 이미 완료해 버렸다. 동상이나 기념비 등은 승인권자인 서울시의 허가를 받고 제작에 들어가야 한다. 그동안 모든 조형물들이 그랬다. 심의 전에 이미 실물을 제작한 경우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따라서 심의 이후 부적합 판정을 받고 제작조차 되지 못한 조형물이 많다. 2015년 신해철 기념비, 올해 정일형 박사 흉상 등 최근 3년 사이 6건의 조형물이 서울시 심의 결과 부적합 판적을 받고 사업이 보류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심사를 받는 측에서 조형물을 만들어가지고 오면 심사 위원들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데,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겠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박정희 기념재단 만큼은 그런 절차를 무시했다. 누구도 열외 없이 조형물과 관련된 제도에 복종했지만, 박정희 재단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그 결과 태어나서는 안될 박정희 동상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셋째, 재단은 서울시에 '배은망덕'한 행위를 일삼고 있다. 재단은 1999년 5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와의 화해' 차원에서 '박정희 기념관' 건립 지원을 약속함에 따라 서울시가 2001년에 무상으로 내 준 부지위에 터를 잡았다. 그해 체결된 서울시와의 협약에 따라 재단은 문제의 부지에 공공도서관, 전시관 등을 짓도록 돼 있었지만, 재단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2001년 서울시와 박정희 재단간에 체결된 협약서. 재단측은 공공도서관을 부지에 건립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미 2012년에 박정희 기념관을 문 열었으면서도, 협약서에 나온 공공 도서관은 아직 개관하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호의를 우롱한 것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지난 6월 재단 이사장을 면담해 도서관 운영이 어렵다면 마포구청에 기부채납해달라고 촉구하는 일도 있었다. 재단측은 내년 상반기에 증축된 도서관을 개관하겠다고 했지만, 이번에는 약속이 지켜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한편, CBS 노컷뉴스는 재단측의 해명을 듣기 위해 재단측 여러 사람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끝내 닿지 않았다.
말춤’ 추는 김정숙 여사 본 문 대통령 표정
필리핀을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현지 동포와의 만찬에서 ‘말춤’을 선보였다.
문 대통령과 김 여사는 14일(현지시간) 오후 필리핀 마닐라 샹그릴라 호텔에서 현지 거주 동포 300여명을 초청해 만찬을 겸한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이자 한인 출신 현지 방송인 라이언 방(방현성)도 참석했다.
라이언 방은 “필리핀 대통령 앞에서 노래할 땐 안 떨렸는데 문 대통령 부부 앞에 서니 많이 떨린다”며 “저는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 춘다. 하지만 평창올림픽의 성공 개최를위해 춤을 추겠다”고 말했다. 이어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개사한 ‘평창스타일’에 맞춰 흥겹게 ‘말춤’을 추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필리핀 교민들도 무대에 올라 ‘말춤’에 합류했다. 자리에 앉아있던 교민들 역시 모두 일어나 몸을 흔들었다. 그러자 한복을 입고 있던 김 여사도 환하게 웃으며 팔을 교차시키고 말춤을 췄다.
김 여사는 춤을 추던 중 문 대통령과 눈을 맞추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미소를 띤 채 그런 김 여사를 지그시 바라봤다. 문 대통령은 춤 동작을 따라하지는 않고 웃으며 박수로 화답했다.[출처] - 국민일보
시민사회·정치권이 한목소리로 ‘박정희 동상’을 반대하는 이유 1115민중
시유지에 신고 절차도 없이 기증식 진행··· 시민단체·정치인들 “독재·친일 인물 동상 안돼”
13일 서울 마포구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앞에서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동상건립추진모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박정희대통령 동상 기증식이 열리고 있다.ⓒ뉴시스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돌을 맞이해 박정희기념재단이 설치를 강행하려 한 4.2m 높이 박정희 동상과 관련해 법적 절차를 무시한 일방적인 건립 시도라는 비판이 나온다. 시의 땅을 무상으로 빌려 쓰고 있는 박정희기념도서관 앞에 동상을 세우려면 사전에 서울시의 심의를 거쳐야 하지만, 재단은 이를 따르지 않고 동상 기증식을 개최하는 등 향후 동상 건립을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은 독재와 친일 행적으로 역사적 논란이 큰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건립 자체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어서 동상 건립을 둘러싼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13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기념도서관에서 동상 기증식이 진행됐다. 당초에 박정희 동상 설치를 강행하려 했지만 이날 4m가량의 박정희 동상이 그려진 현수막으로 대체됐다.
실제 설립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동상 설치 과정에 불법적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상이 건립될 박정희도서관은 시 소유의 땅이라서 동상을 세우려면 사전에 서울시 심의를 거쳐야 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14일 현재 박정희재단으로부터 들어온 동상 건립 심의 요청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동상 건립을 직접 추진하는 주관 기관이 신청하면 안건을 올리고 공공미술위원회가 구성돼 심의에 들어간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총 두 달이 소요된다. 재단이 13일 박정희 동상을 세우고자 했다면 두 달전에 관련 절차를 밟아야 했다. 하지만 재단은 서울시로부터 상암동 부지를 무상 임대받았으므로 서울시 심의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변명으로 불법으로 설치를 강행하려 했다. 만약 위원회의 심의를 받지 않거나 혹은 심의 결과 불허 결정이 났는데도 막무가내로 동상을 세우면 철거 대상인 '불법 공작물'이 된다.
시민사회·정치권 “친일·독재 박정희 동상 절대 안돼” 한목소리
기증식까지 마친 박정희재단, ‘뒷북 신고’ 후 동상 건립 추진 계획
박정희대통령 동상 기증식이 열린 13일 서울 마포구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앞에서 동상 건립에 찬성하는 단체와 반대하는 단체가 경찰 병력을 사이에 두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시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헌법정신에 입각해서 독립군과 민주주의를 기리라고 했지, 박정희의 친일과 독재를 기리라고 한 것은 아니다"며 "마치 살인을 했지만 나한테 잘해줬으니까 살인자는 아니다. 도둑질을 했지만 장물을 가져다줬으니까 절도범이 아니다는 건데, 이게 원시 사회도 아니고 현재 공동체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질타했다. 친일과 독재 등에 대한 과거가 청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박 전 대통령을 우상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역 주민 등은 '박정희동상 설치 저지 마포비상행동'을 꾸리고 동상설치를 막기 위한 천막농성 등을 진행했다. 정치권에서도 박정희 동상 건립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이날 기증식을 방문해 박정희 동상 설립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노 의원은 이 같은 의견을 담아 박정희기념재단 측과 면담하려 했으나 재단 측 관계자가 나오지 않아 면담이 진행되지 않았다. 자신의 지역구에 동상이 세워진다는 소식을 들은 손혜원 민주당 의원은 "박정희가 마포에 한 일은 마포강가에 산더미처럼 쓰레기를 갖다버린 일밖에 없다"며 "감히 어디다 누구 동상을 세우냐"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마포을지역위원회 등도 박정희 동상 건립 반대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동상 기증식을 마친 기념재단은 서둘러 심의 절차를 밟아 동상 설치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재단은 동상 설립 심의 요청을 오는 19일 정도에 할 예정이고, 이에 따라 동상 설치 여부는 내년 1월께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동상설립을 막기 위한 천막농성과 심의위원회에 동상 반대 관련 자료를 보내는 등 적극 대응을 예고했다
‘JSA 귀순’ 대응 사격 안한 우리 군 조처 과연 문제일까 1115 한겨레
3대 쟁점 정리
① 대응사격 왜 안했나?
“북한군 사이 교전…남쪽 피탄흔적 없어”“대응 사격은 유엔사 교전규칙에 어긋”
② 왜 수색 늦어졌나?
“낙엽 많고 감시카메라 없어 수색 어려워”“북 병력 증강상황…수색은 우선 순위 아냐”
③ 북, 정전협정 위반했나?
“반입금지 중화기, 남북 모두 소지” “북이 적대행위 했느냐에 초점 맞춰야”
15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비무장지대(DMZ) 내 남한 대성동 마을의 태극기와 북한 기정동 마을의 인공기가 마주서 있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군인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귀순한 지 이틀이 지났지만, 군의 대응 방식을 둘러싸고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보수야당과 일부 언론에서 “왜 대응 사격을 하지 않았느냐”는 등 비판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오히려 혼란이 더 가중되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군 작전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 사이에선 대체로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관계로 볼 때 우리 군의 대응이 적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① 대응사격을 했어야 하나
북한군 4명은 13일 사건 당시 귀순을 시도하던 북한군의 뒤를 쫓으며 권총과 AK 소총 40발을 쐈지만, 우리 군은 대응 사격을 하지 않았다.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다음날인 1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이와 관련해 “처음으로 북한군의 총탄이 우리 지역에 피탄된 것으로 추정되는 엄청난 일이 일어났는데 우리 군은 어떤 대응태세를 취했느냐. 대응사격을 왜 안했느냐”고 따졌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유엔사 교전규칙을 이유로 대응사격할 수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서욱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중장)은 “유엔사 교전규칙은 첫째 아군에 위해를 가하는 상황인지, 둘째 위기 고조의 우려가 없는지 등을 함께 판단해 대응하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당시 북한군이 자기들끼리 총격을 하고 있었을 뿐 우리 군에게 총격을 하는 상황이 아니어서 대응 사격은 유엔사 교전규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유엔사의 관할 구역이다. 우리 군이 2004년 11월 경비 임무를 넘겨받았지만 여전히 합참이 아닌 유엔사의 작전통제를 받는다.
당시 북한군 4명은 남쪽으로 달아나는 북한 군인을 향해 총을 쐈다. 따라서 북한군의 총탄이 우리 지역에 떨어졌을 개연성이 있는 만큼 대응사격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지난 1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 총탄이 최종 피탄된 지역이 우리 쪽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 쪽도 (총알이) 맞은 걸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합참 관계자는 “우리 지역에선 피탄 흔적이 아직 발견된 게 없다”고 해명했다. 피탄 흔적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응사격은 무리라는 것이다. 설혹 피탄 흔적이 발견되더라도 대응 사격은 적절한 대응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원식 전 합참 차장은 “북한군 총격의 목적이 자기편 장병의 귀순을 막으려는 것이지 우리를 위해하려는 적대하려는 행위가 아니라는 게 명백한 상황에서 대응 사격을 하면 나중에 정전위원회에서는 우리가 도발한 것으로 몰릴 수 있다”며 “우리 군 장병들의 대응과 조처는 적절했다”고 말했다.
②총맞은 귀순병을 16분간 시야에서 놓친 배경은 뭔가
북한군 4명이 남쪽으로 달아나는 귀순병을 향해 총을 발사한 것은 오후 3시15분이다. 그러나 우리 경비병력이 군사분계선 50m 남쪽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은 오후 3시31분이다. 무려 16분 동안 귀순병의 행방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경계 실패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이에 대해 합참은 두 가지 설명을 내놓고 있다. 하나는 당시 총성이 울린 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후방 지역에서 북한군의 무장병력이 증강되고 남쪽으로 총을 조준하는 상황이어서 이에 대한 대비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에 귀순병 수색은 우선 순위에서 밀렸다는 것이다. 또 귀순병이 쓰러져 있던 장소에 낙엽이 쌓여 있었고 감시 카메라도 없는 지역이어서, 육안으로 발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설명도 내놓고 있다. 실제 귀순병은 적외선으로 탐지하는 ‘열상감시카메라’(TOD)로 발견했다.
총성이 울리는 긴박한 상황에서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도 나온다. 임호영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긴박하고 혼란스럽게 전개되는 전장 상황을 마치 축구 중계 방송을 보듯 항상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라며 “결과적으로 우리 장병들이 잘 대처했기 때문에 귀순병을 무사히 구출해 후송할 수 있었던 것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사건 상황이 합동참모본부에 첫 보고된 것은 오후 3시 33분이었다. 3시15분에 북한군의 총성이 울리고 18분 뒤였다. 합참은 긴급상황의 경우 15분 내에 보고하라는 지침을 운용하고 있다. 지침을 위반한 늑장 보고가 이뤄진 셈이다. 서욱 작전본부장은 전날 국회에서 “현장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조치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 같다”고 해명했다. 군 작전 경험이 있는 예비역 출신들은 늑장보고 부분에 대해서도 비교적 관대한 평가를 내렸다. 신원식 전 합참차장은 “현장에서 총성이 들린다고 무조건 상부에 보고할 수는 없다. 상황을 파악한 뒤 해야 하기 때문에 보고를 15분 이내로 해야 한다는 규정에 얽매일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임호영 전 부사령관도 “‘15분 이내’ 룰은 애초 탈영 등 우리 군 내 상황을 빨리 보고해 조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이게 나중에 일반화된 것이다. 이런 룰을 유동적이고 복잡한 상황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15분 이내 룰은 없애고 ‘가급적 빨리 보고한다’로 바꿔 현장 지휘관에게 융통성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 총성 뒤 1시간 10분 뒤인 4시25분에 보고된 것에 대해선 “국회 예결위에 출석 중이라면 쪽지라도 넣어서 보고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③ 북한군이 정전협정 위반했나
북한군은 이번에 귀순병을 향해 권총과 AK 소총을 마구 쐈다. 1953년 7월 맺은 정전협정은 비무장지대에서 민사경찰은 ‘보총과 권총만 무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 유엔사와 북한군은 보총이 “방아쇠를 잡아당길 때 마다 총탄 1발 이상 발사할 수 있는 무기라고 정의된 바 있는 자동식 무기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데 합의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유엔사 군정위 관계자는 “공동경비구역에서는 권총(피스톨)이나 소총(라이플)까지는 소지할 수 있지만 머신건(기관총)과 오토매틱(자동소총)은 안된다. 이는 4차 정전회담(1953년 7월 31일)에서 합의된 내용”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보유한 에이케이(AK) 계열 소총에는 AK-47과 AK-74 등이 있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군이 귀순병에 쏜 AK 계열 소총이 AK-47인지, AK-74인지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둘 다 연발 자동발사 기능이 있기 때문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는 휴대할 수 없는 무기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북한군의 정전협정 위반 여부는 유엔사 군정위가 면밀히 검토해서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판문점에서 AK 소총을 쏜 것이 정전협정 위반인지 아닌지 여부를 따지는 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원식 전 합참차장은 “원래 M-16과 AK 소총 등의 반입은 안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남북이 모두 반입해 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AK 소총의 정전협정 위반을 거론하는 것은 오래 전에 의미가 없어졌다. 우리도 문제가 된다”며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문제삼으려면 북한이 우리에게 적대행위를 했느냐쪽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굴·홍합 통해 매년 미세플라스틱 1만1천개 먹는다
내장째 먹어 그대로 섭취…수돗물에도 들어있어
물속 미세플라스틱은 ‘화학물질 칵테일’
물벼룩 내장에 들어있는 미세플라스틱(형광을 띤 초록색 물질). 내장째 먹는 수산물을 통해 미세플라스틱과 그속에 포함된 유해화학물질이 몸속으로 고스란히 들어온다. 코린 리들, ‘오르브 미디어’ 제공.
■ 수돗물에서도 나오는 미세플라스틱
미국의 비영리 언론기관 오르브 미디어(Orb Media)는 미네소타대학교 공중보건대학과의 공동조사를 통하여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의 14개 나라 수돗물 샘플 159개 중 83%에서 미세플라스틱(microplastics)이 검출됐다고 9월 5일 누리집에서 밝혔다(1). 미세플라스틱의 잠재적 위해에 대해서는 그동안 가끔 뉴스에서 다루어졌는데 대부분 해양생태계의 오염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다 최근에는 하천수도 미세플라스틱에 오염된 것으로 밝혀지더니(2), 이번에 급기야는 매일 마시는 수돗물까지 오염된 것으로 확인되어 충격이 크다. 그래서인지 환경부는 9월 7일 국내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실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동안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들어 가서 그 조각을 먹은 물고기, 거북, 새 등 바다 생물이 죽거나 심한 부상과 질병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크고 작은 플라스틱 조각이 가득 차 있는 바다 생물의 사체 사진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뉴스나 사진이 적지 않게 충격적이긴 하지만 사람의 문제로 곧바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눈에 보이는 크기의 플라스틱 조각을 사람이 직접 먹을 일은 없어도 미세플라스틱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 작은 크기 때문에 생태계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새롭고 직접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향유고래의 뱃속에서 발견된 다량의 플라스틱 쓰레기. 칸자나 애둘랴누코솔(푸껫 해양생물센터) 제공.
우선 미세플라스틱은 크기가 매우 작기 때문에 동물성 플랑크톤처럼 아주 작은 생물을 포함하여 먹이 섭취방식이 서로 다른 다양한 생물체 안에서 발견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의 최근 조사를 보면, 경남 거제와 마산 일대의 양식장과 근해에서 잡은 굴과 담치, 게, 갯지렁이 가운데 97%인 135개 개체의 몸속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되었다(3). 이는 큰 플라스틱 조각과 달리 생태계 먹이사슬의 밑바닥부터 광범위한 미세플라스틱 오염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엔에 딸린 해양환경보호 과학 전문가그룹(GESAMP)이 2016년에 발간한 보고서 ‘해양환경 속 미세플라스틱의 발생원, 동태 그리고 영향’(4)을 보면, 해양생물의 몸속으로 들어간 미세플라스틱 대부분은 소화기관에 머물다 배설된다. 따라서 내장을 제거하고 먹는 물고기를 통해서 인간이 미세플라스틱에 노출될 가능성은 크지 않았지만, 내장까지 모두 먹는 홍합, 굴, 새우 등의 섭취를 통해 노출될 가능성은 있다. 이 연구에서 유럽인은 홍합과 굴 섭취를 통해서 해마다 평균적으로 1만 1000개의 미세플라스틱을 먹게 될 수 있다고 한다.
김포 대명포구 활어공판장에 덕적도 인근에서 잡아올린 참새우가 쓰레기 더미와 뒤섞여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그러나 내장을 제거하고 먹는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 보고서를 보면, 나노미터(10억분의 1m) 수준의 작은 미세플라스틱은 세포벽을 통과해 내장 이외의 조직까지 침투한다고 하니 내장을 제거하더라도 일부는 여전히 몸속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엔환경계획(UNEP)은 2016년 5월 보고서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와 미세플라스틱’(5)에서 “나노 크기의 미세플라스틱은 태반과 뇌를 포함한 모든 기관 속으로 침투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있으며, 실제로도 내장 이외의 체내 조직에 박혀있는 미세플라스틱이 이미 관측되고 있다.
■ 미세플라스틱 속에는 유해화학물질이 있다
플라스틱 조각을 반복적으로 섭취한 해양동물(물고기, 바닷새, 거북, 고래 등)은 소화기가 막히거나 손상되고, 소화 용량이 줄어 쇠약해지면서 성장이 둔화하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어느 정도 크기 이상의 플라스틱 조각에 의한 물리적 위험의 사례이다. 반면에 내장 혹은 그곳에서 다른 기관으로 이동한 미세플라스틱의 물리적 위험은 아직 잘 모르니 이를 알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굴과 홍합을 즐겨 먹는 나의 허파나 뇌에 미세플라스틱 알갱이들이 박히게 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그러나 물리적 위험이 전부는 아니다. 플라스틱에 들어있는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잠재적 위험도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플라스틱의 뼈대인 중합체 자체는 일반적으로 독성을 띠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플라스틱에는 중합체 말고도 여러 종류의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기능 보완을 위해 의도적으로 첨가제(가소제, 난연제, 자외선 안정제, 열-안정제, 염료, 충전제, 촉매, 용매 등)를 섞는데, 여기에 수천 종에 이르는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이 가운데는 독성물질, 발암물질, 환경호르몬, 중금속 등 다양한 유해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플라스틱 제조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예컨대 폴리스타이렌의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과 첨가제 중의 불순물도 종종 유해하다. 중합체의 원료물질인 단량체가 반응이 덜 된 채 남아서 유해할 수도 있다(예컨대 폴리스타이렌의 단량체인 스타이렌). 플라스틱 어린이 완구나 학교에 깐 인조잔디에서 중금속 등 유해물질이 흔히 검출되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양식장 스티로폼 부이 떨어져 나온 미세 플라스틱 모습. 잘게 부서지면서 플라스틱의 표면적은 늘어나 각종 유해화학물질을 더 많이 흡수하게 된다. 이종호 ‘동아시아 바다 공동체 오션’ 제공
또한 하천이나 바닷물 속의 플라스틱은 물속에 녹아 있던 오염물질을 흡수하거나 흡착한다. 특히 잔류성 유기오염물질, 잔류성과 생물 농축성이 있는 독성물질, 중금속 등은 플라스틱에 강하게 끌린다. 예를 들어 잔류성 유기오염물질의 하나인 폴리염화바이페닐(PCBs)은 물속 농도보다 100만배 정도 높게 그 물속의 플라스틱에 농축된다. 이쯤 되면 하천이나 바닷물 속 플라스틱은 가히 ‘화학물질의 칵테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미세플라스틱의 경우, 크기에 견줘 표면적이 넓어서 큰 플라스틱 조각보다 단위 무게당 오염물질을 훨씬 더 많이 붙잡을 수 있으니 더 진한 칵테일이라 할 수 있다(미세플라스틱 중에서도 화장품이나 치약 등 개인 위생용품 속의 미세 알갱이(microbeads)는 하수에 섞여 배출된 후 하수처리장을 거쳐 하천으로 방류된다. 이때 하수처리장에 머무는 동안 생활하수 중의 수많은 오염물질과 접촉하여 더 많은 수의 화학물질을 함유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듯 플라스틱은 생산될 때부터 이미 여러 종류의 화학물질을 함유하고 있기도 하지만 폐기된 후 하천이나 바닷물에 도달한 플라스틱 특히 미세플라스틱에는 훨씬 더 많은 수의 유해화학물질이 추가된다. 즉, 플라스틱 조각이나 알갱이는 수많은 유해화학물질의 보유자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수돗물을 마시면 그 속의 미세플라스틱을 먹게 되며 당연히 그 속의 유해화학물질도 먹게 되는 것이다. 사실 미세플라스틱이 아니라도 수돗물에 많은 수의 유해화학물질이 미량이나마 녹아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미세플라스틱과 거기에 농축된 유해화학물질을 추가로 마시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몰랐다.
그러나 수돗물만은 아니다. 그 수돗물을 써서 씻고 조리한 음식, 하천에서 서식하는 물고기, 하천수를 농업용수로 사용하여 재배한 작물 등이 모두 미세플라스틱 오염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바다에서 나는 조개, 새우, 게, 생선 등 물고기나 김, 미역 등 다양한 해양수산물도 마찬가지이고. 사실상 거의 모든 식재료와 음료수가 포함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미세플라스틱과 그에 함유된 유해화학물질을 함께 먹고 있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팀이 남해 연안에서 미세플라스틱을 조사하는 모습. 남해 일대에서 채집한 대부분의 수산물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 한국해향과학기술원 제공.
이 전체 과정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소비로부터 출발한 플라스틱이 글자 그대로 우리의 몸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이다. 플라스틱도 유해화학물질도 모두 석유에서 출발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석유를 에너지원이나 자원으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그 폐기물까지 먹고 마시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과연 우리가 석유 시대를 사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석유 시대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현재까지도 석유 시대의 대표적 폐기물인 플라스틱을 얼마나 많이 섭취하며 그로 인해 어떤 위험이 초래될지 아직 깜깜이다.
하천과 해양생태계의 미세플라스틱 오염이 속속 밝혀지고 있고 앞으로는 오염된 물이 사용된 경작지, 공원, 산림, 하수 찌꺼기가 살포된 토양 등 육상생태계의 오염도 밝혀질 가능성이 크다. 미세플라스틱에 의한 하천과 해양생태계의 교란에 비추어 보면 토양 및 육상생태계의 미세플라스틱으로 인한 오염 실태가 밝혀지는 것은 실제 대책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두렵기까지 하다.
■ 사전예방 강화해야
우리가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 속에서 사는지 실감하려면 정상적인 처리가 이뤄지지 않는 곳에 가 보면 된다. 내전 중이던 세르비아의 요즈아 모라비 강 모습. 에이피 연합뉴스
유엔환경계획은 2006년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지구적인 공동대책이 필요한 가장 새로운 핵심적 이슈로 지정했다. 이렇듯 미세플라스틱이 커다란 잠재적 위협이 되자 개인 위생용품 속의 미세 알갱이를 중심으로 정부의 규제나 기업의 자발적 생산과 사용의 금지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 우리의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올해 들어 국내에 유통되는 치약과 화장품에서 미세 알갱이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미세플라스틱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사실 충분한 대책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의도적으로 생산되는 전체 미세플라스틱 중에서도 개인 위생용품용은 아주 작은 비중(5% 미만)을 차지한다(6). 또한 큰 플라스틱의 분해나 마모(예컨대 타이어)가 가장 중요한 미세플라스틱의 배출원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대부분의 자동차 타이어의 재질을 얼마나 빨리 마모되지 않는 것으로 바꿀 수 있을까?
미세플라스틱 오염을 해결하는 일은 쉽지 않다.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거의 모든 곳에 플라스틱이 쓰이고 또 환경으로 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은 그렇기 때문에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대책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 원심분리나 막(membrane) 분리, 미세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미생물 등 다양한 잠재적 처리기술도 없진 않다. 그러나 배출의 특성상 사후처리는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전예방을 당장 강화해야 한다.
즉, 의도적 미세플라스틱 사용을 하루빨리 금지하고 나아가 그보다 더 중요한 2차 배출원의 감소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 모든 플라스틱의 사용을 원천적으로 줄이고 사용된 플라스틱의 재활용을 최대화하도록 정부와 기업, 시민이 구체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석유 시대를 사는 우리가 미세플라스틱의 위협을 줄이기 위해 해야 하는 최소한의 일이다. 이동수/ 환경과공해연구회 운영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한국인 32%만 “난 건강해” OECD 꼴찌···삶의 만족도도 ‘최하’1115경향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어려울 때 도와줄 가족과 친지, 자신이 생각하는 주관적 건강 정도도 최하위였다. 업무가 과중하다고 느끼는 업무부담은 높았지만 하루 중 쉬는 시간은 OECD 평균에 못 미쳤다.
15일 OECD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더 나은 삶의 지수 2017’을 공개했다. 보고서를 보면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5.9점을 기록, 통계가 집계된 31개국 중 가장 낮았다.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지난해와 같았지만 OECD 평균이 지난해 6.5점에서 7.3점으로 올라가면서 상대적으로 뒤처졌다. 지난해에는 38개국 중 30위였다.
사회적 지지도는 최악이었다. ‘어려울 때 믿을 만한 친구나 친척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국인들은 75.9%만 “그렇다”고 답해 41개국 중 가장 낮았다. OECD 평균은 88.6%였다. ‘나는 건강하다’고 느끼는 주관적 건강상태도 바닥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건강하다고 답한 사람은 32.5%로 OECD 평균(68.7%)의 절반에 불과했다. 조사 대상 37개국 중 꼴찌다.
저녁에 혼자 거리를 걸을 때 안전도는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했다. 63.9%만이 “안전하다고 느낀다”고 답해 OECD 평균(68.7%)보다 낮았다. 조사 대상 41개국 중 26위였다. 노동환경도 전반적으로 좋지 못했다. 업무가 과도하다고 느끼는 업무부담도는 51.6%로 OECD 평균(36.9%)에 비해 크게 높았다. 통계를 공개한 38개국 중 4번째로 높다. 직장인이 하루 중 쉬는 시간은 14.4시간으로 OECD 평균(14.9시간)에 미치지 못했다. 22개국 중 15위 수준이다.
반면 시민참여는 높았다. 투표율은 77.2%로 OECD 평균(68.6%)을 넘어섰다. 조사 대상 41개국 중 11위다. 이는 10년 전인 2007년에 비해 14%포인트가 상승한 것으로 투표율이 계속 떨어지는 다른 OECD 국가와는 다른 모습이라고 OECD는 분석했다. 보수정권 9년을 지나면서 억눌렸던 민심이 지난해 촛불집회로 분출됐고, 그것이 높은 투표율의 원인으로 보인다.
외환위기 20년, 끝나지 않은 고통](상)“퇴직금 다 털어 자영업 뛰어들었지만, 버틸 수가 없었다”
외환위기 당시 ‘눈물의 비디오’는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구조조정의 일상화를 보여주는 신호탄이었다. 화면에서 한 직원이 1998년 2월 문을 닫게 된 제일은행 테헤란지점 앞에서 은행 간판을 바라보고 있다(오른쪽 사진). 제일은행이 서울지역 지점장 부인을 대상으로 개최한 행사에서 이 비디오를 본 참석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왼쪽).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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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퇴직을 앞둔 15년차 여행원은 비디오 속에서 눈물을 쏟았다. “남은 사람들이 잘해서 예전의 제일은행으로 살려내주길 바랍니다.” 자신은 회사를 나가야 하는 입장이면서도 남은 사람들을 응원했다. 1997년 영업점 통폐합을 앞둔 제일은행 테헤란로지점 직원들이 마지막까지 부실기업 업무를 처리하는 일상을 담은 8분짜리 비디오의 원제는 ‘내일을 기다리며’였다. 외신들도 이 비디오를 보도할 정도로 외환위기의 상징이었다. 비디오 속 사람들처럼 당시 제일은행을 나가야 했던 사람들은 지난 20년을 어떻게 살았을까.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망하지 않을 것이라던 은행이 망했고 평생직장은 사라졌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첫번째 세대. 외환위기는 정년이 보장되던 시대에서 정년은커녕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시대로 전환되는 기점이었다.
“아들이 취업 준비할 때 그러더라고요. 절대 아버지처럼 회사에서 밀려나고 싶지 않다고.” 1970년 제일은행에 입행했던 이수철씨(64·가명)는 40대 중반이던 때에 명예퇴직을 당했다. 외환위기 때 중·고생이던 자식들은 이제 30대가 됐다.
이씨는 1998년 1월 명예퇴직했다. 1997년 1월, 11월 명예퇴직이 있었고 더 이상의 감원은 없다고 한 뒤였다. 동서랑 사우나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경험도 없이 계약을 했지만 분양도 안되자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소송을 걸었다. 10개월인가 재판에 매달려 이겼고 다행히 퇴직금은 건졌다. 뭐라도 해야 하니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했다. 1년 정도 공부했는데 잘 안됐다. 이씨는 “일이 없을 때가 제일 괴로웠다”고 말했다.
우연히 복사집에 들렀다가 이 일은 할 수 있겠다 싶어 2003년 6개월 동안 무급으로 일을 배워 복사기 하나로 복사집을 시작했다. 영업이 힘들었지만 명함을 일일이 돌리면서 거래처가 늘어났다. 그는 “나를 봐서인지 큰아들이 어떻게든 삼성에 들어가겠다고 악을 쓰고 준비하더라고. 가슴이 쓰렸다”고 말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부터 하향세였다. 결국 올해 3월 복사집도 그만뒀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 가족을 먹여살린 기계였는데 ‘이제 그만할 때가 됐나’ 싶어 2주 동안 잠이 오질 않았다”고 말했다.
제일은행에서 같이 명퇴했던 남동생은 퇴직 후 1년 동안 음식점을 했지만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씨는 “주방일 할 줄 모르면 음식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다들 자영업에 뛰어드니 간판집만 돈을 벌었다”고 말했다. 남동생은 주식 투자를 하며 지내다 4년 전 심장마비로 죽었다.
퇴직금 하나로 자영업에 뛰어들던 시절이었다. 1970년 제일은행에 입행한 윤은수씨(64·가명)도 1999년 퇴직금으로 ‘이바돔 감자탕집’을 열었다. 장사가 잘되나 싶더니 6개월 뒤에 30m 거리에 감자탕집이 생겼다. 3개월이 또 지나자 500m 거리에 ‘이바돔’에서 또 지점을 냈다. 1년 반쯤 버티다 포기했다. 이후 채권추심업체에 계약직으로 다니며 아이들을 길렀다. 그는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빚을 갚으라고 하면서 돈을 버는 구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미래에 대한 대비는 전혀 없는 상태였다. 제일은행에서 1998년에 명퇴한 김덕재씨(64·가명)는 “우리는 여기서 55세에 정년퇴직하고, 퇴직 전에 애들 다 결혼시킨다고 했었어요. 지점장도 하고 퇴직금도 받으면 노후가 보장되는 삶이라고 계산하고 살았는데 모든 게 무너졌죠.”
제일은행은 부실채권을 감당하지 못해 1997년 말 경영개선명령을 받았다. 이후 은행 정상화 방안에 따라 해외매각이 결정됐고 1997년 1월 1조5000억원, 7월 4조20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자구 노력으로 1997년, 1998년 대규모 명예퇴직을 받았다. ‘눈물의 비디오’에서 한 행원은 “제일은행이란 이름은 지금까지 나의 든든한 뒷배경이 되어줬고 회사를 나간 후에도 그러리라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1999년 5000억원에 제일은행을 인수한 뉴브리지캐피털은 5년 후 1조1500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기며 제일은행을 되팔았다.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명퇴 직전 본점 심사부에서 일했던 이수만씨(64·가명)는 외환위기 전 작성했던 서류가 잊히지 않는다. 모 그룹 회장이 행장실을 다녀간 뒤 1억달러를 대출해주라는 서류가 내려왔다. “당연히 대출해주면 안된다는 것을 모두들 알았다. 기업 회장이 왔다 가면 대출이 일사천리로 되던 시절이었다. 당시 관료들은 ‘펀더멘털’이 탄탄하다며 안심하라고 했지만 결국 사기였다. 관료들은 안이했고 재벌들은 배짱을 부렸다. 결국 피해를 본 건 우리 같은 평범한 직장인들이었다.” 이씨는 “지금은 과연 달라졌는가”라고 물었다.
이수만씨는 1998년 10월 명예퇴직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아내를 설득했지만 지금은 후회가 된다. “그때 더 버텼다면 어땠을까. <미생>이라는 만화에서 그랬죠. 회사는 정글이지만 밖은 지옥이라고.” 이씨는 “은행원들은 그래도 퇴직금도 받았잖아요. 일반 기업 사람은 퇴직금은커녕 몇 달치 월급도 못 받은 경우가 허다했어요.” 한때 실업자 165만명에 실업률이 7.6%까지 치솟고 자살, 노숙인, 가정 해체 소식이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던 때였다.
20년이 지났지만 나아졌을까. 이수철씨는 “지금이 더 위기”라고 말했다. “지금은 일자리가 없잖아요. 외환위기 때부터 비정규직이 확 늘었는데 상황이 나아지면 빨리 없앴어야 했는데 정치권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질질 끌다가 이렇게 됐어요. 같은 일을 하고도 임금을 적게 받는 비정규직이 이렇게 늘어서야…. 결국 젊은 세대들에게 피해가 된 거예요.”
상)외환위기 대가는 ‘비정규직 공화국’
ㆍ국민 89%가 ‘최악 영향’ 꼽아
ㆍ올해 경제지표 호전에도 불구 양극화 심화 ‘위기의 상시화’
꼭 20년 전이던 1997년 11월14일 김영삼 대통령은 강경식 당시 경제부총리로부터 “IMF(국제통화기금)와 자금지원을 협의하겠다”는 보고를 받고 이를 재가했다. 사실상 IMF 구제금융 신청을 결정한 순간이었다. 이미 한국은행이 사태의 심각성이 외환위기로 번질 가능성을 전달하고 IMF 자금지원 요청이 필요하다는 보고를 했지만, 정부는 최대한 IMF에 자금을 요청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당시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은 대통령 보고에도 일부러 이 내용을 축소했다. 그러나 이미 연초부터 한보와 기아 등 재계 상위 그룹이 줄줄이 부도로 쓰러지고, 10월 한 달에만 1조원 이상의 외국자본이 한국을 빠져나가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주일 뒤인 11월21일 밤 임창열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정부는 IMF에 대가성 차관을 요청키로 했다”고 밝혔다. 고속성장과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는 자부심이 있던 한국 경제가 혹독한 구조조정과 실직을 겪고, 중산층의 희망이 사라지는 어두운 터널에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20년이 흐른 지금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난 듯하다.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상황에서도 한국은 올해 3%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정보기술(IT) 업종을 중심으로 수출 역시 호조를 보이고 있다. 1997년 당시 무리한 차입과 부실경영으로 부도를 맞았던 국내 대기업들의 재무구조는 세계화와 금융실명제 등의 흐름을 타면서 투명해지고 안정화됐다.
그럼에도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도리어 외환위기는 한국 사회에 ‘위기의 상시화’를 고착화했다. 구조조정은 사회 곳곳에 붙어 있고 평생직장이 사라진 자리에 비정규직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빈부격차와 양극화가 급격히 심화되면서 이제 중산층 진입을 기대하는 서민들의 희망도 많이 사그라들었다. 외환위기가 기업의 부도에서 촉발됐다면 현재는 가계빚 증가에 따른 ‘가계 부도’가 시한폭탄처럼 다가오고 있다. 20년 전에도 문제였던 재벌 중심 경제체제는 더욱 공고화됐다.
14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외환위기 발생 20주년을 계기로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상대로 최근 실시한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IMF 외환위기가 현재 한국에 끼친 영향(복수 선택)을 묻자 응답자의 88.8%는 비정규직 문제 증가를 꼽았다. 공무원·교사 등 안정적인 직업 선호 경향을 낳았고(86.0%), 국민 간 소득격차를 키웠으며(85.6%), 취업난을 심화시켰다(82.9%)는 반응도 높았다. 현재 한국에 가장 중요한 과제로는 경제 면에서는 일자리 창출 및 고용 안정성 강화(31.1%)를 꼽았다.
임원혁 KDI 글로벌경제연구실장은 “국민들은 외환위기 극복의 원동력으로 금 모으기 운동 같은 국민 단합을 구조조정이나 개혁 노력보다 더 높게 평가하고 있다”며 “포용적 성장을 통해 사회 응집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상)외환위기 책임자들 정치권으로, 재계로, 경제관료로…국민 고통과는 괴리된 삶
ㆍ정책 결정 책임자들은
외환위기는 경제 분야의 고위 관료들에게도 위기였다. 그러나 이들의 위기는 잠시에 그쳤다. 많은 국민들이 실직으로 길고 긴 고통의 터널을 지나야 했던 것과 대비된다.
1997년 11월19일 당시 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과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은 정책 실패를 이유로 경질됐다. 강 전 부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을 불과 열흘 앞둔 시점에도 “내 재임 기간에는 창피해서 IMF에 못 간다”고 버텼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 전 부총리는 동부그룹 금융보험부문 회장을 거친 뒤 현재는 농심의 사외이사로 있다. 김 전 수석은 2015년 한국무역협회 회장에 오른 뒤 지난달 사의를 표하고 물러났다.
임창열 전 부총리는 경질된 강 전 부총리를 대신해 IMF에 구제금융을 공식 요청하고 고강도의 경제 구조조정을 받아들였다. 김영삼 정부의 마지막 경제부총리였지만 ‘소방수’ 역할을 한 공으로 이듬해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가 됐다. 그는 2014년 9월 킨텍스 대표이사로 취임한 후 지난 8월 3년 연임에 성공했다.외환위기의 원인이 때 이른 자본시장 개방에 있다고 한다면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도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으로 있으면서 무리한 환율 방어정책을 펼치다 외환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공직에서 밀려난 뒤 한직을 맴돌다 이명박 캠프에 합류해 다시금 비상했다.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이명박 정부의 첫 경제수장을 맡았고 다시 금융위기 극복을 명목으로 고환율 정책을 추진했다. 수출대기업을 위한 정책이지 서민경제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현재 산업은행장 재직 당시 직권남용 등 혐의로 수감 중이다. 외환위기 당시 윤증현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은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외환위기 대책을 주도했던 인물 중 하나다. 그는 2009년 2월 기획재정부 장관에 임명되기 전 인사청문회에서 외환위기 책임론과 관련해 “고위 관료의 한 사람으로서 경제위기로 인해 전 국민이 고통을 받은 데 대해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상)건전성 좋아졌지만 성장은 제자리…‘기업 체질개선’ 아직 멀었다
ㆍ부채비율·차입금 의존 줄었지만 제조업 매출 증가율 등 ‘뒷걸음’
ㆍ보유금 쌓아놓고 투자·고용 인색…중국 수출 쏠림·구조개혁 ‘느슨’
“그때야 기업들이 은행에서 돈 빌리기 쉬운 시절이었죠. 부채비율이 800%, 1000%가 돼도 돈이 나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꿈도 못 꿉니다.”
1996년 신입사원으로 재무팀에서 일했던 한 대기업 임원은 외환위기가 기업들의 재무지표를 ‘온정주의’에서 ‘안전주의’로 바꿨다고 회상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느슨했던 부채비율 관리가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며 엄격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와 투자자들을 비롯해 기업 내부에서도 감시하는 눈이 많아졌고 그만큼 재무건전성과 투명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환란의 경험이 뼈아팠던 만큼 지난 20년간 기업들은 변했다. 이전까지 외형 키우기를 ‘최고 미덕’으로 여겼던 기업들은 일제히 수익성 강화와 재무건전성 확보에 집중했다. 그 결과 우리 기업의 부채비율 등 자산건전성 지표는 몰라보게 개선됐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기업경영분석’을 보면 기업들의 매출액 증가율, 매출액 영업이익률, 부채비율이 모두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 및 리스크 관리가 엄격해지고 이를 감시하는 주주들의 목소리 또한 높아진 것은 외환위기가 남긴 유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양적 지표는 개선됐지만, ‘안정성’에만 치중하고 성장을 위한 전략에는 소홀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은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 부채비율은 1997년 396.5%에서 올 2분기 말 66.7%까지 낮아졌다. 같은 기간 차입금 의존도 역시 54.22%에서 20.0%로 개선됐다. 기업의 빚 갚는 능력이 몰라볼 정도로 향상된 셈이다. 외환위기의 핵심 기제였던 부실금융기관들이 대거 정리되고 부실채권 비율도 1999년 8.3%에서 2001년 2.9%로 감소했다. 100대 기업의 현금성 자산은 127조원에 달한다.
반면 성장성과 수익성 지표는 정체되거나 나빠졌다. 제조업 전체 매출액 증가율은 1997년 11.02%에서 올 상반기 8.4%로 뒷걸음질쳤고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당시 8.25%에서 지금 8.4%로 제자리걸음이다. 외환위기를 겪은 기업들은 당시의 ‘트라우마’로 쌓아놓은 보유금을 풀지 않고 있고, 전반적인 투자와 고용 또한 위축된 상황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수출 대기업 의존형 경제구조는 심화됐다. 외환위기 당시만 해도 대중국 수출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97%로 3위였지만 지금은 23.4%로 부동의 1위다. 이 때문에 ‘사드 갈등’이란 한 번의 바람이 단번에 위기로 바뀌기도 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바싹’ 조여맸던 구조개혁도 느슨해지며 기업의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다시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도 높다. 산업연구원 자료를 보면 ‘좀비 기업’으로 불리는 한계기업이 2011년 1736개(9.34%)에서 2015년 2359개(12.7%)로 늘었다. 한계기업은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이다. 이들은 금융권의 자금 지원으로 연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사이 산업 구조조정은 지지부진해졌고 자동차, 조선, 화학, 철강 등 한국의 주력 산업들은 중국의 추격을 당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나 SK 등 과감히 혁신에 나선 일부 기업들은 성장을 계속하며 글로벌 대열에 올라섰지만 조선과 철강, 자동차, 해운 등 경제와 수출을 이끌었던 주력 업종들은 수익성 악화와 성장동력 실종을 맞으며 위기에 다가가고 있다”고 말했다.
](상)세금으로 연명하던 기업 퇴출…30대 그룹 63% ‘물갈이’
세무공무원이던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정년을 앞두고 역술가에게 점을 본 뒤 “흙과 관련된 사업을 하라”는 말을 듣게 된다. 1974년 2만원에 일제강점기 때 폐광된 강원도의 몰리브덴 광산을 사들여 한보상사를 세웠다. 이후 4424가구로 당시 최대 규모였던 은마아파트 건축을 계기로 재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보그룹의 본사는 은마아파트 상가에 위치했다. 이후 철강 등으로 사업의 세를 넓히며 그룹 창립 20여년 만에 재계 14위에 한보그룹을 올려놨다. 정권을 향한 ‘통 큰 로비’가 사업의 밑천이었다.
한보철강이 제철소를 지을 돈이 부족해 여기저기 손을 벌리며 ‘은행 돈 먹는 불가사리’로 소문이 나면서 은행 대출이 막히고, 사채로도 연명이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1997년 1월23일, 한보그룹의 주거래은행이었던 제일은행은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재가 아래 한보그룹의 부도를 선언했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요청’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외환위기는 1970년대 이후 고속성장을 이어가며 ‘한강의 기적’을 일궜던 한국 경제 전체에 급제동을 거는 사건이었다. 전 국민의 삶과 의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었지만, 정부와 금융권의 비호 아래 덩치 키우기에만 집중했던 한국 대기업들이 줄지어 부도 신세를 맞았다.
■ 한보·기아·대우…무너진 ‘대마불사’
1997년 외환위기는 수익성과 내실보다 무리한 외형 키우기, 매출에 집중하던 당시 한국 기업들을 한 방에 무너뜨린 사건이었다. 지금이야 연간 3% 성장률도 목표치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지만,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7.6%였다. 연 6~8%대의 고속성장 시대가 이어질 것처럼 보였다. 일단 빚을 내 투자하면 어떻게든 수출로 이어지면서 마냥 연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업만 키우면 정경유착으로 덩치를 더 키울 수 있었다. 한보그룹만 하더라도 수서·대치 택지개발 예정지구 특별분양을 위해 정태수 회장이 청와대 관계자 등 정·관계 유력 인사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상납했다. 이후에도 주택 사업에서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각종 계열사를 만들고, 기업 인수를 강행하며 문어발식 확장을 이어갔다. 철강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제철소를 지을 돈을 무리하게 회사채 발행, 차입, 어음, 매각 등으로 확보하려고 한 것이 화를 키웠다. 최종적으로 1997년 1월23일 50억원의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부도에 이르렀으며, 당시 한보철강이 졌던 빚만 5조원에 육박했다.
당시 재계 14위 그룹이었던 한보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당시 종금사들이 앞다퉈 여신을 회수하자 다른 대기업들도 연쇄부도 위기에 몰리게 됐다.
한보를 시작으로 삼미, 대농, 진로, 한신공영 등 당시 30대 그룹에 속한 기업들이 차례로 무너지더니 급기야 재계 서열 8위 기아그룹이 부도유예 대상 기업이 됐다. 대외적으로 아시아 외환위기의 전운이 감돌면서 태국발 외환위기도 겹쳤다. 돈줄이 마른 금융사들이 기아차 대출금을 일제히 회수하면서 기아차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진 것이다.
한국 기업의 세계화를 상징했던 대우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그룹 전체가 해체됐다. 대우는 1967년 대우실업을 모태로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등으로 사업을 넓히며 20여년 만에 4대 그룹 안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급성장했다. 특히 1993년부터는 ‘세계경영 우리기술’의 슬로건을 선포하고 옛 공산권 국가와 개발도상국에 공격적으로 해외법인을 세우며 사세를 크게 키웠다. 1993년 당시 150여개 수준이었던 대우의 해외법인은 1998년 11월 396개까지 늘었다.
그러나 삼성을 제치고 재계 서열 2위에 오른 지 1년 만인 1999년 8월, 대우는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을 걷게 된다. 당시 11개 계열사는 회사가 통째로 팔리거나 사업 부문별로 분할 매각되면서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대우조선해양 등 일부 계열사는 여전히 새 주인을 기다리며 대우그룹 구조조정 20여년이 되어가도록 지난한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 무리한 외형·차입 확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한국의 30대 그룹 가운데 19곳이 현재 해체되거나 3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30대 그룹의 63%가 물갈이된 것이다. 실속보다는 외형이 기업의 지향점이었다. “부채도 자본”이라며 기업들은 대출에 막힘이 없었다. 그사이 기업의 경쟁력은 자라지 않았다. 당시 대기업들의 부도 사태는 기업의 수익성이 떨어지자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 핵심이다. 자동차, 건설, 철강 등의 산업들이 대체적으로 공급에만 치중하면서 어느 정도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무리하게 매출 확대, 외형 성장에만 집착했다.
LG경제연구원은 당시 보고서에서 “양적 확대에 주력해왔던 기업들의 성장전략을 세계 경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확대되고 후발 개도국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점차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며 “전반적인 공급 과잉과 생산성 저하로 한계기업의 퇴출과 인수·합병 등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이유는 금융시장의 변화에 기업들이 적응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자율화되면서 국내 금융기관들이 대기업을 지원하는 형태도 이전과는 달라진 것이다. 과거에는 대기업이 부실화하더라도 정책당국의 지원을 받아 손실을 메꿀 수 있었지만, 더 이상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워지면서 금융기관들이 부실기업들을 조기에 정리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진 것이다. 이 같은 변화에 대기업들이 재무구조의 안정성을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했지만 무리한 차입경영을 이어가면서 결국 부도를 맞게 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1996년 당시 30대 그룹 평균 부채비율이 355%였고, 한보의 경우는 2086%에 달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공업 중심에서 중화학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전환, 부채로 투자를 일으키고 수출로 이어지는 양적 성장 정책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 IMF 외환위기 당시 기업들의 부도 사태”라고 지목했다.
63명중 22명이 운동권·시민단체 출신… 주목받는 비서관 3人 1118 조선
任실장이 맡은 비서실만 따지면 운동권·시민단체 비중 57%
지역은 영남 21명·서울 16명… 서울대 출신 24명으로 최다
연령대는 50대가 69% 차지
문재인 대통령이 그간 공석(空席)이던 국방개혁비서관 인사를 최근 마치면서 정부 출범 6개월여 만에 청와대 비서진(비서실·정책실·안보실) 63명(16일 사퇴한 전병헌 정무수석 제외)의 진용이 갖춰졌다. 장관급인 실장 3명, 차관급인 수석 및 보좌관 12명, 부처 1급에 해당하는 비서관 48명 등 청와대 참모진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운동권과 시민단체 출신이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참모들 경력을 분석한 결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나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 각종 사회운동의 범주에 들어가는 시민단체 출신들이 전체 63명 중 22명(35%)이었다. 국가안보실 등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분야의 외교관, 군인 등 부처 파견 공무원 23명(37%)을 제외하면 가장 큰 비중이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정책실을 제외하고, 임종석 비서실장이 관장하는 비서관급 이상 30명만을 대상으로 좁혀보면 운동권·시민단체 출신은 17명(57%)이 된다.
한국경제·문화일보·아시아경제 ‘반올림 왜곡’ 법정으로 1118 미디어오늘
반올림 측, ‘왜곡보도’ 10건 대상으로 세 번째 손해배상 청구소송…앞선 소송은 모두 승소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를 지원하는 인권단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반올림)이 2015년 삼성과 직업병 피해자 간 교섭을 둘러싸고 일부 매체가 허위 사실을 보도했다며 언론사를 상대로 세 번째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반올림은 지난달 30일 문화일보, 한국경제, 아시아경제 등 언론사 3곳에 대해 “악의적, 지속적, 반복적으로 반올림에 대한 허위 및 악의적 기사를 작성·배포했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허위 보도로 지목된 기사는 2015년 8월부터 2016년 1월까지 한국경제 기사 7건 및 문화일보 기사 2건, 2016년 5월 아시아경제 기사 1건 등 총 10건이다.
반올림은 해당 기사들이 반올림의 주장을 왜곡보도해 반올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형성했다는 입장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은 조정위원회의 권고안을 대부분 수용했지만 반올림은 공익법인을 설립하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한다”는 취지의 보도다.
한국경제 “삼성 1000억 출연에도… 반올림 ‘공익법인’ 설립 고집”(2015년 8월4일자) 제하의 기사는 “삼성전자가 지난 3일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에 대해 ‘1000억원의 사내 기금을 조성해 협력사 직원까지 보상하겠다’며 조정위원회의 안을 대부분 수용했다”면서 “시민단체 반올림은 ‘공익법인을 설립하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다”고 적었다. 한국경제는 동일한 내용을 이후 세 차례 더 보도했다.
삼성과 직업병 피해자 간 난항에 부딪힌 교섭을 중재하고자 구성된 조정위원회는 2015년 7월 17개 조항으로 구성된 조정권고안을 발표했다. 삼성은 이 중 피해 보상 기준 등을 규정한 1개 조항을 부분 수용했고 나머지 16개 조항을 수용 거부했다. ‘삼성이 조정권고안 대부분을 수용했다’는 보도가 허위라는 지적이 나오는 지점이다.
관련 시기에 발표된 반올림 입장문, 성명서 등을 살펴보면 반올림이 공익법인 설립을 배타적으로 주장한 사실은 찾아볼 수 없다. 반올림은 ‘독립적 보상기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로 공익법인 설립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반드시 공익법인 만이 독립적 보상기구가 돼야 한다는 주장은 하지 않았다.
반올림은 “이 기사는 일반 국민들에게 마치 삼성전자가 조정권고안을 수용했음에도 반올림이 이를 수용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심어준다“며 ”반올림 때문에 피해 보상이 지연되고 있는 것처럼 보도해 반올림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과 언론인권센터,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은 22일 오전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언론보도피해 공익소송’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하늬 기자
문화일보 2015년 10월12일자 “사과 요구 → 조정위 거부 → 권고안 수정요구…‘반대 쳇바퀴’ 8년” 기사는 “반올림은 발병자와 가족 등 당사자 8명과 활동가로 구성돼 출발했으나 보상 논의를 먼저 하자는 당사자들에게 탈퇴를 요구해 결국 분열됐다”, “삼성전자와 가대위는 사단법인을 제외한 대부분 권고안을 수용했으나 반올림은 최근 권고안에 대해 15개 항목에 걸쳐 조목모족 반대하며 수정을 요구했다”, “반올림의 수정 요구안에는 삼성전자가 내년부터 매년 100억 원 이상을 무기한 내놔야 한다는 황당한 요구까지 포함돼있다” 등의 내용을 적시했다.
반올림에 따르면 위 모든 지적이 사실과 다르다. 반올림은 위 기사가 “한쪽의 주장에 대해서만 보도함으로써 기사를 접하는 일반인은 반올림이 마치 떼를 쓰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갖도록 했다”며 명예를 훼손한 허위 보도라고 주장한다. 해당 보도가 집중된 시기는 삼성과 직업병 피해자 간 교섭이 결렬되면서 반올림 측이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한 때다. 삼성전자는 2015년 7월 조정권고안이 발표된 이후 반대입장을 밝혔고 9월3일 권고안에 없는 보상위원회를 일방적으로 발족시켰다. 반올림의 반발에도 보상위원회가 마련한 기준에 따라 피해 보상이 추진되자 반올림은 2015년 10월7일 △진정성 있는 사과 △배제 없는 피해 보상 △투명하고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대책 등을 주장하며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반올림은 “(해당 시기 부터) 일부 언론사가 ‘삼성은 직업병 문제 해결에 나섰는데 반올림이 이를 방해하고 있다’는 취지의 기사를 쏟아냈다”며 2016년 9월부터 언론사를 상대로 한 민사 소송을 제기해왔다. 법원은 같은 기간 허위 보도를 한 디지털데일리 및 뉴데일리경제에 대해 각 1000만원씩 반올림에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이번 소송은 이들 소송에 뒤이은 민사소송이다. 반올림은 이번 소송에서 기사 1건마다 300만 원의 배상액을 청구했다
천안함 인양업체 부사장 “폭발한 배와 천안함 다르다” 증언
[단독-항소심공판] 정호원 88수중개발 부사장 첫증언, 7년만에 군과 다른 목소리…“선저 긁히거나 부딪힌 흔적…작업자 핸드폰 압수”
7년 여 전 침몰한 천안함 함미를 인양했던 업체의 부사장이 폭발한 배의 상태와 천안함 절단면 등의 손상 상태와 다르다고 증언했다. 또한 함미 절단면의 손상이 무언가의 충격으로 긁힌 것으로 보였으며, 선저의 스크래치에 대해서도 해저에 가라앉은 후 생긴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동안 수중폭발이었다는 해군과 합조단의 주장과 실제 현장에서 작업했던 이들의 시각은 크게 다른 것으로 법정에서 7년 여 만에 처음 확인됐다.
2010년 4월초부터 4월15일 천안함 함미를 인양할때까지 작업을 했던 88수중개발의 부사장을 맡고 있는 정호원씨는 14일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윤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위원의 명예훼손 항소심 재판에 출석해 이같이 증언했다.
정 부사장은 당시 모두 30여 명의 88수중개발 작업인원이 백령도로 투입됐으며, 본인은 부산의 본사에서 현장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정 부사장은 천안함 손상상태와 폭발로 인한 선박의 손상상태에 대해 다르다고 밝혔다. 실제로 정 부사장은 지난 2012년 유증기 폭발사고가 났던 두라3호의 시신 인양 및 수습을 했다고 말했다. 정 부사장은 폭발로 크게 손상된 두라 3호의 사진(장면)을 제시하며 ‘날카롭다는 것이 저런 것이냐’는 피고인 신상철 전 위원의 신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이것이 천안함과 같은가라는 신문에 정 부사장은 “다릅니다”라고 밝혔다.
폭발한 배와 천안함이 어떤 면에서 다른지에 대해 정 부사장은 “제가 폭발전문가가 아니라 분석을 못해 (폭발전문가로서) 말씀을 못드리지만, 큰 충격에서 그렇게 됐는데, 특히 내부폭발해도 (두라3호와 같은) 저정도인데, (외부에서) 미사일 맞았거나 (어뢰가 폭발했다) 하면 선체 일부가 떨어져나갔다고 봐야한다”며 “(군에서 폭발) 실험을 하거든요. 유류 보급함을 폐선하기 전에, 예를 들어 청평함 등이 있다. 구축함 테스트 해서 쏴서. 그런 것을 보면. 저런(두라3호 같은) 형태”라고 증언했다.
두라3호 폭발사건에 대해 정 부사장은 “2012년 1월 두라 3호가 자월도 인근해역에서 삼등분된 사건으로, 청소하다가 불꽃이 일어나 터진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 경기도 평택 해군제2함대 사령부에 전시중인 천안함 함미. 2015년 4월. 사진=조현호 기자
▲ 지난 2012년 1월5일 오전 8시5분께 인천시 옹진군 자월도 북쪽 3마일 해상에서 4191톤급 유류운반선 두라3호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이 일어났다. 두라3호 선체가 처참하게 부서져 있다. (해경제공) 사진=연합뉴스
폭발로 침몰한 선박의 특징에 대해 정 부사장은 “폭발이 생기면 격실에 있는 사람은 무조건 사망하고, 폭발하게 되면 (손상 부위에) 돌출부위가 많이 생긴다”며 “선체 안에서 폭발시 밖으로 나온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시신의 경우 팔다리가 각각 따로 있었다. 시신이 온전하게 한 곳에 있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11명 가운데 4명의 시신의 경우 벽에 발렸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형체가 처참했다고 정 부사장은 답변했다.
이에 대해 외부 수중폭발과 내부폭발 절단면의 차이가 있느냐는 윤준 재판장 신문에 정 부사장은 “(방향은 다르더라도 폭발로) 돌출된 부위가 퍼지는 형태는 동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호원 부사장은 절단면과 함미 선저의 스크래치에 대해서도 반파 후 해저에 침몰하면서 조류에 쓸려내려가다 생겼을 것이라는 해군과 합조단의 그동안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정 부사장은 지난 2010년 4월16일자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함미의 절단면 부근에 무언가에 긁힌 듯 사선 모양이 많이 있다’고 말한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설명을 요구하자 “배가 있으면 군함의 경우 회색 계통으로 도색을 하는데, 절단된 면을 보면 절단되면서 쇠끼리 부딪힐 수 있는 것처럼 기스난 자욱이 있다, 그 쇠모양의 색깔이 달랐다”고 답했다. 긁힌 자욱의 원인에 대해 정 부사장은 “어떤 요인으로 파손됐는지는 모르나 큰 충격에 의해 절단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정 부사장은 ‘뭔가에 긁힌 것 같으냐’는 김종귀 변호사의 신문에 “쇠끼리 부딪혔든지, 뭔가 긁혔으니 그런 것 아니겠나”고 답했다. 또한 ‘800톤이 나가는 함미가 침몰지점에서 발견된 지점까지 물살이나 해류에 의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해저의 지면에 쓸려 스크래치가 생기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김 변호사와 윤 재판장 신문에 정 부사장은 “사선형식으로 내려가도 … (저렇게 되긴 힘들다) 돌을 던져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 박히지 거기서 굴러가 이동하지 않을것이라는 뜻이냐는 신문에 정 부사장은 “예 맞다”고 말했다. 결국 이동하면서 생긴 스크래치가 아니라는 것이냐는 신문에 정 부사장은 “부딪히면서 생길 수는 있다”면서도 “(해저 바닥에) 긁히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답변했다.
▲ 함미의 절단면 선저 중앙에 나타나 있는 스크래치. 2017년 3월 촬영. 사진=조현호 기자
함미 선저의 스크래치는 해저로 떨어질 때 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냐는 심재환 변호사의 재차 신문에 정 부사장은 “넘어질 때 난 스크래치일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함미 인양 작업 중에 작업자의 휴대폰까지 압수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정호원 부사장은 “직원들이 저한테 자료를 사진이나 전송하는데, 이와 달리 (혹시라도) 개인적으로 부인이나 자녀에게 보낸다든지, 현장 작업 모습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는 게 목적이었다”며 “긴급한 일이 생겨 각자의 가정에 연락해야 하면 해군 관계자 휴대폰을 빌려줄 테니 각자 휴대폰을 반납하라고 요구했다. 이 때문에 반납 과정에서 시끄럽고, 멱살잡고 싸우는 일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증언했다.
정 부사장은 “군인도 아닌 민간인한테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군인이면 몰라도 전쟁도 아니고”라고 비판했다. 그는 “현장에 있는 모습이나 사진 영상 자료를 외부 유출하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당시 ‘함미 이동작업을 할 때 선체를 조금만 들어서 외부에 보이지 않게 하라’는 군의 지시가 있었다는 보도내용과 관련해 88수중개발도 그런 군의 지시를 받았는지에 대해 정 부사장은 “그런 지시를 받고, 검은 차단막이 있는데, 그것을 덮어놓고 작업을 했다”며 “작업자들에게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한편 정 부사장은 애초 천안함 함미를 인양할 때 체인을 두 가닥을 걸어 들어 올리고 있었으나 수면 위로 올라온 상태에서 군이 한 가닥을 더 요구한 과정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두 가닥이면 충분하다는 견해를 밝혔지만, 해군이 이를 수용하지 않아 세가닥을 걸게 됐다는 것이다. 인양 날짜도 기상악화 등을 이유로 사흘 뒤로 연기됐다고 그는 증언했다.
당시 함미 중량에 대해 정 부사장은 800톤으로 봤으며, 체인 한 가닥이 지탱할 수 있는 무게가 1000톤이므로 두 가닥이면 2000톤이라고 정 부사장은 설명했다. 두 가닥으로 최대 2200톤까지 인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4월12일 수면위로 들어올렸을 때 해군이 두 가닥 사이에 한 줄을 더 걸자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또한 세 줄을 감아도 올릴 수 있는 최대 중량은 2200톤으로 동일하다고 정 부사장은 증언했다.
‘체인 세 개 걸라고 했을 때 증인 업체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느냐’는 신문에 정 부사장은 “현장에서 그렇게 얘기했다, 그랬더니 군은 안전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고 답했다. 결국 88수중개발에서 두줄로 해도 충분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하나를 더 걸었다는 것인가라는 재판장 신문에 정 부사장은 “예”라고 답했다. 체인 하나를 더 걸면 용역비가 추가되는지에 대해 정 부사장은 “동일하다”고 답했다.
▲ 2015년 4월15일 인양했을 때의 천안함 함미 모습. 합조단보고서
▲ 천안함의 함미 인양작업을 맡은 88수중개발(함미)과 해양개발공사(함수)는 사고 해역의 기상악화로 지난 2010년 4월12일 오후 대청도로 피항했다. 소형크레인선인 유성호(좌)와 중앙호(우)가 대청도 선진포항에 정박해있다. 사진=연합뉴스
▲ 법원에 제출된 서울신문 2010년 4월16일자 기사내용 및 정호원 부사장 사진. 사진=법원제출자료
경찰청 '유대균·박수경' 불륜 찾으려 정액 채취 시도1118 노컷
"치정관계 부각하라" 지침 하달…오피스텔서 쓰레기통·이불까지 뒤져
경찰청이 세월호 사고 당시 도주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검거에 실패하자 "유대균과 박수경의 치정관계를 부각하라"는 지침을 일선 수사팀에 하달한 사실이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드러났다.
유 전 회장 검거 실패에 따른 비난 여론이 박근혜 정부에 쏠리자 '유대균 호위무사'로 알려진 박수경(37·여)씨와의 불륜 증거를 찾아내 언론에 흘려 '물타기'를 하려 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본청의 지침을 받은 당시 수사팀은 사건과 무관한 사생활의 영역에 공권력을 투입해 유 전 회장의 장남인 유대균(47)씨의 정액 채취까지 시도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예상된다.
경찰에 검거된 유대균씨.(사진=자료사진)
◆ 경찰청 "유대균·박수경 치정관계 부각하라" 지침 '유병언 일가 TF'에 하달
18일 사정당국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2014년 7월 25일 유씨와 박씨가 경기도 용인 수지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검거되자 경찰청은 당시 일선 수사팀에 "유대균과 박수경의 치정관계를 부각하라"는 지침을 하달했다. 이 지침을 받은 수사팀은 본청 수사기획관(경무관)을 팀장으로 60명 규모로 운영된 '유병언 부자(父子) 검거 총괄 태스크포스(이하 경찰청 TF)'다.
경찰청 TF는 세월호 사고(2014년 4월 16일)가 나자 도주한 유병언 부자 검거가 장기화되면서 구성된 전담팀으로, 본청 수사국장(현 김귀찬 경찰청 차장)의 지휘라인에 있었다. 이성한 경찰청장 역시 경찰청 TF 출범 직후 "유병언 부자 검거가 장기화 되는데 지금까지의 검거방식을 재점검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검토해 반드시 검거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병언 부자 검거 공로자 3명에게는 1계급 특진도 내걸었다.
이후 경찰은 2014년 6월 12일 유 전 회장이 전남 순천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검거에 실패하자 장남 유씨를 검거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했다. 유씨와 박씨는 그해 7월 25일 경기도 용인의 한 오피스텔에서 함께 검거됐다.
"유대균과 박수경의 치정관계를 부각하라"는 본청의 지침은 이들이 검거되자마자 수사팀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경찰청 TF는 검거 하루 만인 7월 26일 두 사람이 3개월여 동안 동거한 오피스텔에 과학수사요원 등 10명 안팎의 인원을 투입해 현장 감식을 벌였다. 경찰은 현장 감식의 목적에 대해 "유씨와 박씨의 도피를 도운 조력자가 더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경찰에 검거된 박수경씨.(사진=자료사진)
◆ "유대균 정액 찾으려 오피스텔서 쓰레기통·이불 뒤졌는데 안 나와"
하지만 주목적은 따로 있었다. 경찰청 TF에 참여했던 경찰 고위관계자는 "본청에서 (유대균과 박수경의 치정관계를 부각하라는) 지침을 받고 유씨의 정액을 찾기 위해 용인 오피스텔에서 쓰레기통이랑 이불까지 확인했다"며 "그런데 정액은 안 나왔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고 당시 경찰 수사의 본질은 유병언 일가 검거와 도피 조력자를 찾아내는 것이었는데, 공권력이 남녀 간 불륜을 찾는데 동원된 것이다. 유씨는 세 자녀를 둔 유부남이었고, 박씨는 두 자녀를 둔 유부녀였다. 태권도 선수이면서 국제 태권도 심판 자격증도 보유한 박씨는 빼어난 미모로 태권도계에서 '미녀심판'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유씨의 도피 조력자이자 '호위무사' 역할을 한 것으로 세간에 알려지면서 두 사람이 내연관계가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됐었다. 경찰은 유씨의 정액을 찾는데는 실패했지만, 대신 박씨가 도피 기간 수기로 작성한 일기장을 발견했다. 박씨의 일기장은 2~3일에 한 번 쓰는 식으로 20여일 치 분량으로, 유씨와 남녀 관계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었고 신앙심과 관련된 내용이 다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신도인 박씨는 유병언 일가 도피 조력자로 알려진 '신엄마' 신명희씨의 딸이다. 경찰이 감식반을 투입해 유씨의 정액 채취를 시도한 행위를 두고 경찰 내부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도의 한 경찰서 형사과장은 "본청이 그런 지침을 내리고 감식반이 유씨의 정액 채취까지 시도했다면 정말 충격적이다"라며 "이런 일은 경찰 조직 특성상 독자적으로 못한다.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고 당시 본청 수사국장이었던 김귀찬 경찰청 차장은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그런 지침을 일선 수사팀에 내려 보낼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기자들이 그 당시 유씨와 박씨의 관계가 어떠냐고 집중적으로 질의를 했다"며 "청와대에서 지침을 하달 받은 사실도 없다"고 해명했다. 이성한 전 경찰청장은 "(정액 채취는) 밀폐된 공간에 남녀가 몇십일을 같이 있었으니까 둘 관계가 어느 정도인가 수사에 참고하려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며 "내가 현장에 있었어도 했을 것"이라고 했다.
류여해 "포항 지진은 文정부에 대한 하늘의 경고" 발언 논란 1118 프레시안
'포항 시민들 보고 그런 말이 나오나' 비난 쇄도
자유한국당 류여해 최고위원이 경북 포항 지진 사태를 '문재인 정부에 대한 하늘의 경고'로 표현, 논란이 일 전망이다. 류 최고위원은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유한국당의 공식 보도자료다.
"이번 포항 지진에 대한 문 정부에 대한 하늘이 준엄한 경고 그리고 천심이라고 하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결코 이를 간과해서 들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내일 또다시 누가 불의의 계기 될지 걱정해야 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결코 정상이 아닌 것 같다."
류 최고위원의 이같은 발언은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것, 문재인 정부의 인사 문제, 전병헌 전 수석에 대한 검찰 수사 등을 언급하며 나온 것이다.
박정희 추종자들, 이래도 동상이 필요한가?
[기고] 박정희 독재의 후유증을 고발한다
올해 박정희(1917~1979) 출생 100돌을 맞아 '박정희 기념재단'이 독재자 박정희의 동상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있을 수 없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더욱이 우리 국민 3명 중 2명이 박정희 동상에 반대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독재자의 동상 건립을 추진하는 것은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 관련 기사 : 국민 3명 중 2명이 박정희 동상에 반대한다)
박정희 독재 정권의 후유증은 한국현대사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박정희는 친일세력 등용문제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중병을 앓고 있는 정치적으로 선동된 지역감정, 그리고 군사독재의 유산인 획일적 사회풍토를 만들었다. 더욱이 박정희 정권기의 '영원한 2인자' 김종필(1926~ )은 지난 1961년 6월 중앙정보부를 창설함으로써 한국의 역사를 민주주의에서 퇴보시키고, 개인의 사생활이 철저히 무시된 통제국가, 경찰국가를 만드는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
박정희 정권은 처음부터 합법성이 철저히 결여된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그래서 그는 쿠데타 정권의 정당성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세력에게 감시, 고문, 협박으로 다스렸다. 박정희는 1961년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하자 곧 국회를 해산시켰고, 일제강점기 이래로는 처음으로 어떤 종류의 정치, 집회의 활동도 금지했다. 1961년 말에 이르러서는 3000명이 넘는 박정희의 정적이 체포되었다.
박정희가 일으킨 5.16쿠데타는 우리정치에 새로운 국면을 가져왔는데 그것은 우리 정치·사회에 개성과 개인의 독창성이 무시된, 전체주의화, 획일화를 가져온 것이다. 박정희는 계엄령이 없이는 우리나라를 제대로 통치할 수 없었다. 현재의 많은 부조리와 모순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이후의 정권이 박정희 정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은 것은, 계엄령이나 '국가원수 모독죄'가 없이도 국가를 통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무시하고 탄압한 박정희 정권은 많은 면에서 일제 식민지 정권과 유사성이 많다. 박정희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인 시민의 정치참여나 국민투표는 시간 낭비로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여겼다.
1963년 3월에 접어들어 박정희는 그가 한 약속을 서슴없이 깨뜨리고, 군정은 4년간 더 연장될 것이라고 밝힌다. 이러한 박정희의 발언은 국내외적으로 많은 반향을 일으킨다. 결국 한 달 후인 4월 8일, 박정희는 불가피하게 군정 연장 계획을 취소한다고 밝히고 자신은 참여하지 않고 연말에 대선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또 한 번 국민과의 약속을 주저 없이 깨뜨리고 대통령으로 출마하여 결국 정권을 거머쥐게 된다.
박정희가 만든 공화당은 한마디로 권위주의적 독재정권이다. 박정희는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혹은 참여정부 같은 개념을 의심쩍어했고, 국민의 대변자를 모아놓은 국회의 기능을 신뢰하지 않았다. 1967년 대선을 치르고 박정희는 또 간신히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당시 야당인 신민당과 학생들은 이 선거를 '부정선거'로 이름했다. 결국 박정희는 전국 31개의 대학과 136개의 고등학교에 한동안 휴교 조치를 내림으로서 정권의 명맥을 유지해 나갔다.
일제가 식민지 기간을 통해서 한반도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민주주의보다는 '경제 제일주의'를 내세웠던 것처럼, 박정희는 '중단 없는 전진'이나 '경제성장'을 최고의 자부심으로 삼았다. 일제가 한때 주창했던, 민관군이 아닌 군관민, 부국강병, 서민의 탈정치화, 반공 등의 가치이념이 박정희 정권을 통해서 재계승되고 재등장했다. 박정희는 자신의 임기가 4년인 것도 잊은 듯 중앙집권적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웠다. 1961년부터 1971년 사이 남한의 GNP는 연평균 8.7%가 증가했고, 수출은 연간 36%가 증가했다. 더욱이 1972년부터 1978년 사이 남한 GNP 연간 평균 성장률은 10%를 웃돌았다. 1961년부터 1978년 사이 남한국민 개인당 수입도 240%가 증가했다.
박정희 정권기, 성장과 함께 사회 양극화 더욱 심화
그러나 남한의 급속한 경제 성장은 동시에 급속한 인플레를 동반했다. 1962년부터 1971년 사이의 도매가격은 연평균 12%가 증가했고, 1972년부터 1979년 사이엔 연평균 18%가 증가했다. 성장과 함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 시기에 소득분배를 살펴보면, 1965년 최하위 30% 근로자의 전체 소득률은 19.3%이었다, 그러던 것이 1975년엔 16.9%, 1980년엔 16.1%로 점점 떨어졌다. 결국 박정희 정권을 통하여 국가 경제는 부강해졌지만, 서민을 위한 부의 분배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상대적 빈곤층은 더욱 증가해갔다.
흔히 1960~70년대 남한의 급속한 경제성장 '기적'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박정희와 함께 정주영(1915~2001)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여기서 정주영과 함께 꼭 거론되어야 할 인물이 전태일(1948~1970)이다. 1960~70년대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됨에 따라 산업구조의 변화와 함께 농촌이 파괴되고 도시노동자의 수가 급증하면서 빈부격차와 노사대립이 심화되었다. 사회적 불균형이 확대되는 가운데 박정희 정권의 편파적 노사 개입이 이루어졌다. 이에 노동운동은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 민주노조 결성,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저항을 벌였다.
1970년대에 발생한 전태일 분신자살사건, 동일방직사건, YH무역농성사건 등은 노동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사회적 인식을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청계천 평화시장 피복공장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동료들을 보며 한없는 연민과 분노를 느낀다. 그가 구한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분명히 명시해 놓았지만 현실적으로는 폐지에 불과했다. 전태일은 작업 환경의 개선을 요구하며 여러모로 최선을 다하지만, 기업주와 박정희 정권의 강력한 유착 관계로 그의 노력은 모두 수포가 된다. 절망한 그는 마침내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는 산 제사를 드림으로써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세상에 알리고 숨을 거둔다.
1970년대 초반 나의 큰어머니는 동네 앨범 공장에서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일했다. 그때 큰어머니는 격무로 인해 건강이 많이 악화됐는데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하루를 쉬면 공장주가 3일분 월급을 맘대로 공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당 노동행위에 대해 노동자가 전혀 저항할 길이 없는 것이 박정희가 내세운 이른바 '조국 근대화'였고, '선진 조국'이었다. 시민의 권리신장과 아무런 상관없는 경제 성장은 기득권세력과 가진 자들을 위한 축제일뿐 아무것도 아니다.
근로자의 근무조건 개선이나 사회복지 프로그램 같은 이른바 '좌익사상'에 대해 박정희는 반공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반공은 마치 박정희 정권의 존재 이유처럼 보이기도 했다. 박정희를 비판하는 어떠한 행동도 '자생적 공산주의자' 혹은 빨갱이로 몰렸다. 건전한 비판은 발붙일 곳이 없었고 '적과 동지'의 흑백논리, 이분법적 개념만이 우리사회를 휩쓸었다.
제2 집권기를 맞아 박정희는 놀랍게도 이승만(1875~1965)의 전철을 똑같이 밟아 온갖 시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자적으로 삼선개헌을 실시한다. 그래서 열린 1971년 대선에서 박정희는 가까스로 김대중(1924~2009)을 물리쳤다. 그러나 이 선거에서 김대중은 도시지역에선 51.4 % 대 44.9 %로 박정희를 제압했다. 이때 박정희는 국민에게 어떤 '배신감'을 느꼈었던 것 같다. "중단 없는 전진, 경제성장, 민족중흥의 영웅인 나를 이렇게 대접할 수가…"는 아마도 박정희가 국민들에게 느낀 분노와 '배반'의 감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박정희는 1971년 4월 27일 대선이 끝나고 곧 국가비상사태에 이어지는 계엄령을 선포한다. 비록 박정희는 이 당시 중공이 대만을 대신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으로 앉은 것 때문에 국내외적인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당시 <뉴욕타임스> 사설은 박정희의 이러한 정책에 대해 이렇게 보도한다.
"외부의 관망세력, 미 국무부와 주한 미대사관은, 미스터 박이 선포한 위협사태의 흔적을 전혀 감지할 수 없다. 미스터 박이 외부 위협이라고 우려한 것은 분명히 군사적 도발이 아닌 그 반대의 데탕트(국제 간의 화해무드)일 것이다."(1971년 4월 28일 자 <뉴욕타임스>)
국회를 해산한 박정희
그러나 <뉴욕타임스>의 이런 지적에도 아랑곳없이, 박정희는 1971년 10월 마침내 국가 안보를 위한다는 이름 아래 유신을 선포한다. 유신체제는 박정희에게 거의 무한한 권력을 부여해 줬다. 그는 이제 비상계엄을 맘대로 선포할 수 있고, 국회를 해산하고 허수아비 입법기관인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만든다.
국회 해산에 뒤이어 김대중, 김영삼(1927~2015)을 비롯한 야당 정치인은 하루아침에 체포, 구금되었다. 박정희는 그것도 모자라 통일주체국민회의 의원의 3분의 1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스스로 부여한다. 이어서 박정희는 비상사태를 연속적으로 선포함으로써, 언론자유, 학생데모, 지식인들의 비판에 족쇄를 채웠다. 급기야 8명의 대학생들에게 사형을 내려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박정희의 죄가 이렇게 큰데 어떻게 감히 그를 기념하는 동상을 그것도 소중한 국민의 혈세로 공유지에 건립하겠다는 망상을 한순간이라도 할 수 있을까? 어쨌든 유신은 박정희의 독재체제를 합법적으로 보장해 주었고, 그에게 영구집권의 길을 열어 놓았다. 이때 박정희가 내놓은 것이 소위 '충효 논리'다. 국가(박정희 자신)에게 아무 말 말고 무조건 충성하라는 통치이념인 것이다.
곧이어 1973년엔 야당 지도자 김대중이 중앙정보부원들로부터 일본서 납치당한 후, 죽을 고비를 넘겨서 중정 지하실로 끌려오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긴다. 1974년 1월에 들어서는 긴급조치 1, 2호가 선포된다. 국가안보와 공공의 안녕질서가 위태롭다고 하는 논리였다. 이제 누구든 박정권을 조금이라도 비판하는 자는 15년 징역을 받게 된다. 이 당시 긴급조치 위반으로 15년 징역을 받은 이들이 장준하(1918~1975), 김동길(1928~ ) 등이다.
정치 토론을 불법화시킨 박정희
긴급조치를 이용해 박정희는 정치 토론을 불법화했다. 역사는 도전과 응전을 통해서 발전한다는 논리를 알 길이 없는 듯 박정희는 어떠한 형태의 자신에 대한 도전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때 함석헌(1901~1989)을 비롯한 재야인사들은 기도회나 평화행진을 벌임으로서 박정희의 독재정권에 저항했다. 마침내 1975년, 박정희는 긴급조치9호를 선포했고, 이제는 박정희나 긴급조치에 대해 비판하는 것조차도 범법행위로 간주되었다. 한 인간이 비판받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참 불행한 일이다. 하늘 아래 완전한 인간이 없건만….
1978~1979년에 이르러 박정희는 "나 한번 더하게 해줘"라며 4선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저항은 높아만 갔다. 사람이 권력에 미치게 되면 이렇게 치사하게 되나 보다. 이제 경제 성장 논리에 분배를 외면당한 시민들의 분노는 박정희가 어떤 방법을 쓰던 통제가 어려워져 갔다.
엎친 데 덮친다더니 박정희는 결국 1979년 김대중을 '빨갱이'로 조작, 사형을 선고한다. 그러나 국내외의 압력으로 박정희는 김대중에 대한 사형을 집행할 수 없게 된다. 더욱이 1979년 10월 박정희는 야당 지도자인 김영삼의 국회의원직을 박탈하고 국회에서 추방한다. 그러자 부산과 마산에서 이에 반대하는 데모가 일어나고 박정희는 다시 계엄령을 선포한다. 이때 박정희의 오른팔이라던 차지철(1934~1979)은 "각하 탱크로 50만 명을 깔아 죽이더라도 정권을 유지하셔야 합니다"라는 '직언'을 했다니, 그리고 그런 차지철을 오른팔로 두고 나라의 비상사태를 논의하다니…. 결국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는 술자리에서, 차지철은 화장실에서, 총을 맞고 즉사한다. 어찌 한 정권의 말로가 이렇게 추잡하고 너절하게 끝나는지…. 하여간 이렇게 박정희는 허무하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도 지금 독재자 박정희 추종자들은 역사적 '위인'에 한정하고 있는 동상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고(故) 노무현(1946~2009) 대통령이 남긴 말처럼 사람이라면 "좀 부끄러운 줄 알아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 1979년 벌어진 비극의 역사는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박정희 추종자들은 명심하길 바란다. / 김성수 <함석헌 평전> 저자
부산주택 8.8%(9만8000채) 외지인 소유…양산사람 최다 1118 국제
통계청, 전국 현황 분석
부산지역의 외지인 소유 주택은 9만8000호로, 경남 양산과 김해 창원 사람들 순으로 많았다.
통계청이 17일 공개한 ‘2016년 주택소유통계(2016년 11월 1일 기준)’에 따르면 전국 주택 1669만2000호 가운데 개인이 소유한 주택은 1452만1000호로 1년 전보다 37만4000호(2.6%) 증가했다. 이 가운데 주택 소재지와 동일한 지역에 거주하는 자가 주택을 소유한 비중은 시·도 기준으로 86.7%, 시·군·구 기준으로는 76.3%였다. 시·도 기준으로 외지인이 해당 지역의 주택을 보유한 비율은 세종시가 37.8%(27만 호)로 가장 높았다. 전국 평균은 13.3%였고, 부산 8.8%, 경남 9.5%, 울산 6.9%이었다.
부산지역 외지인 소유 주택 가운데 외지인의 거주지역은 경남 양산시가 8.8%(8200호)로 가장 높았다. 이어 김해시가 8.5%(8000호), 창원시가 7.4%(6900호)로 많았다.
주택 소유자 1331만1000명 중 1건만 소유한 사람은 1133만2000명(85.1%), 2건 이상을 소유한 사람은 198만 명(14.9%)으로 2건 이상 소유자의 비중이 전년 대비 0.5%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군·구 기준으로 2건 이상 주택소유자 수가 많은 지역은 경남 창원시 4만3000명, 경기 용인시 4만2600명, 경기 수원시 3만8300명의 순으로 나타났다.
가구의 주택소유율은 55.5%로 전년 대비 0.5%포인트 감소했다. 지역별로는 울산(62.6%) 경남(60.7%) 경북(58.8%) 등의 순으로 높았다
2048명이 제주 개인주택 5채이상 보유...외지인 소유 10% 1117 제주의소리
이주열풍이 이어지면서 제주지역 개인주택의 외지인 소유비율이 10%를 넘어섰다. 1인당 2채 이상 보유비율도 높아지면서 전국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통계청이 17일 발표한 2016년 주택소유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도내 총주택 중 개인소유 주택은 18만1000채로 2015년 17만채와 비교해 6.6% 늘었다. 개인소유 주택 중 도민 소유는 16만3000채로 90.0%를 차지했다. 나머지 10% 1만8000채는 외지인 소유였다. 외지인 소유 주택은 2015년 1만6000채에서 1년 사이 2000채나 늘었다.
도내 주택을 보유한 외지인을 실제 거주지역별로 분류하면 서울 강남구 출신이 700채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기 하남시와 경기 고양시 출신이 600채로 뒤를 이었다 주택을 보유한 도내 16만1000명 중 2채 이상 보유자는 19.0%(3만499명)로 세종시 19.3%에 이어 전국에서 비율이 두 번째로 높았다. 2채 이상 보유자는 전국 147개 시 지역 비교에서도 서귀포시가 19.5%로 서울 강남과 서초구에 이어 전국에서 다섯 번째로 높았다. 제주시는 18.8%로 일곱 번째였다.
복수의 주택 보유자 중 3채 보유자는 4367명, 4채 보유자는 1089명이다. 5채 이상 보유자도 2048명에 달했다. 주소지별로 보면 제주시 1636명, 서귀포시 412명이다. 소유주택은 각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주택 전부에 대해 소유지분을 고려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합산한 결과다. 단독주택 1채와 공동소유 주택 1채가 있다면 2채로 반영했다.
미당이 남긴 얼룩 1117 시사인
지난달 받아본 어느 월간지에서 흥미로운 대담을 읽었다. 다름 아닌 미당문학상 존폐 여부를 놓고 벌어진 논전이었다. 미당 서정주의 삶과 문학을 긍정하는 동시에 미당문학상을 옹호하는 편에서는 미당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시인 한 명과 최근 간행된 <미당 서정주 전집>(은행나무, 2017)의 간행위원이기도 했던 문학평론가 한 명이 나왔다. 한편 폐지론자 쪽에서도 똑같이 시인과 문학평론가가 한 명씩 나섰다. 편집으로 순화된 지면인데도 혈투의 열기가 생생하게 감지되었다.
<미당 서정주 전집>서정주 지음은행나무 펴냄
미당문학상은 2001년 제1회 수상자를 낸 이후 올해 17회 수상자를 낸 만큼, 상의 존폐를 왈가왈부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은 듯하다. 게다가 수상자의 면면을 보면, 가히 한국 시단의 ‘올스타’라고 해도 될 정도다. 여기에 서정주에 대한 판단을 삼가면서 그의 이름으로 제정된 상에 아무런 자각이 없는 채로 후보 되기를 수락했던 무수한 시인들과, 이 상의 본심과 예심 심사위원으로 활약한 인사들까지 합하면, 한국 문학계는 미당에 의해 오염되고 내파되었다고 해야 맞다. 노벨상의 재원이 다이너마이트로 번 돈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이제는 아무런 허물이 되지 않듯이, 미당문학상의 성공으로 미당의 과거사는 햇빛 쏟아지는 마당에 널린 빨래처럼 뽀송뽀송하게 세탁되었다.
초기에 미당문학상 제정에 반대하는 여론이 있기는 했지만, 한동안 조용했던 폐지론자들의 목청이 올해 들어 다시 높아졌다. 혹자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유사 시대정신이 되어버린 ‘적폐 청산’이 문학계에서 본보기로 찾아낸 것이 미당문학상이라고 말한다. 그런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올해 들어 폐지론자들이 목청을 드높이게 된 근본 원인은 미당문학상의 광폭 행보에 있다. 미당은 근대주의(모더니즘 문학)와 사회주의(경향파 문학) 모두를 물리치고 ‘생의 구경적(究竟的) 탐구’를 자신의 시업으로 삼았던 시인이다. 한국 시단에서 그의 이름이 대표하고 있는 것은 한국 전통의 미학과 정신이다. 미당문학상은 이러한 미당 본래의 성격에 충실해야 했다. 그랬다면 설혹 한 인물을 기념하기에 부적당한 오점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무슨 대수랴. 선배 문인의 이름과 후광을 걸고 주어지는 문학상들이 그 선배의 문학 정신을 올곧게 계승한 경우에 주어진다는 합의가 미당문학상의 경우에는 확실한 허구가 되었다. 미당문학상은 미당의 시 정신을 살린 시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당을 오욕에서 건져내고 그를 영광스럽게 해줄 시인에게 주어진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당문학상 심사위원과 수상자들이 미당의 미학이나 정신세계는 물론 정치관과도 맞지 않는 김수영문학상이나 5·18문학상을 중복 심사하거나 수상한다는 점이다. 올해 5·18문학상을 놓고 벌어진 파동도 미당문학상과 연관된 인사들이 심사를 한 데다가, 미당문학상을 받았던 이가 5·18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기 때문에 벌어졌다. 미당문학상이 한국 문학계를 오염시키고 내파시켰다는 주장은 이런 뜻이다. 미당문학상과 그 옹호자들의 광폭 행보는 의식 있는 문인들에게 위기감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이 상이 제정되고 17년째가 된 지금 새삼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세월이 걸러놓은 친일 부역 작품
ⓒ이지영 그림
미당의 옹호자들은 미당의 과거사에 대해 그가 ‘정치적 백치’였다거나 정신분열증을 앓은 ‘광인’에 가까웠다는 궁색한 변명을 자주 내놓는다. 하지만 한국 문학 연구자들은 서정주가 해방 직후 시단의 주류였던 ‘정지용류’의 감각파를 밀어내고 그 빈자리에 자신과 김영랑·김소월을 대입한 치밀한 인정 투쟁의 기획가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능지수 180이 넘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을 변호한답시고, ‘이 사람은 정신병자입니다’라고 말하는 변호사가 되지 말라. 미당 옹호자들은 미당을 사시로 보는 문인들만 설득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순진한 태도로 일관하는데, 이들이 돌파해야 하는 것은 한 줌의 문학계가 아니라 그의 이름이 등재된 3권짜리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 2009)이며, 16권짜리 <친일반민족행위관계사료집>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9)이다. ‘문예작품을 통해 본 친일 협력’이라는 부제가 붙은 사료집 제16권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그의 「항공일에」를 비롯한 「송정 오장 송가」 등을 보면, 시국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녀온 1급 시인으로서의 재능을 ‘성실히’ 활용한 시, 즉 상당한 시적 형상성이 뒷받침된 세계를 노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해방 후 ‘살기 위해서 친일했’으며 ‘순리에 따르는 삶’을 살아왔다는 서민적 고백을 여러 번 남겼지만, 해방 이후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권력을 향해 적극적 협력을 거듭해온 생의 이력을 갖고 있다. 그의 ‘친일’은 한시적 사건이 아니라, 그의 인생 전체와 한국 사회의 서민적 삶의 방식을 통어하는 프로그램의 일부가 노출된 형태였다고 보는 시각도 성립이 가능할 것이다.”
올해 20권짜리 <미당 서정주 전집>이 나왔다. 이 결정본 전집을 만든 간행위원들은 미당이 쓴 친일 부역 작품을 모조리 누락했다. 세월은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작품만을 걸러놓는다. 예컨대 우리는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남긴 <사미인곡(思美人曲)>과 <속미인곡(續美人曲)>만을 기억할 뿐, 그가 어떤 정치적 입장에 섰고 어떤 과오를 저질렀는지 잘 모른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 그의 전력과 무관한 독립된 작품으로 읽히고 있다. 그러므로 부역 작품을 전집 속에 넣어 미당의 잘못을 후세의 귀감으로 널리 광고할 필요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이들은 자신들이 존중하고 싶은 미당의 상(像)만을 남겨놓고자 했다. 이것이 미당 옹호자들이 <친일인명사전>과 <친일반민족행위관계사료집>을 돌파하는 방식이다.
1948년에 설치된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가 좌절되지 않았다면 미당문학상도 생겨날 리 만무했다. 미당문학상이 이륙하는 데 활주로 노릇을 한 1~3회 수상자들(정현종· 황동규· 최승호)은 경멸받아야 한다.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비트겐슈타인의 조카>(현암사, 1997)에 이렇게 썼다. “상을 받는다는 것은 자기 머리에 똥을 싸게 하는 것이다. 상을 받는 사람은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 상은 누구 머리에 똥을 싸고 싶어 하는 무지한 사람들이 주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똥을 쌀 권리가 있다. 상을 받는 사람은 그들의 상을 받겠다고 나설 만큼 저열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극도로 곤란한 처지에 있을 때만, 삶과 생존이 위협받을 때만, 그리고 사십 세까지만 상금이 딸려 있는 상 혹은 그저 단순한 상이나 표창을 받을 권리가 있다.” 장정일 (소설가)
01. 영화 '천공의 성 라퓨타' 中 너를 태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