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4~10.12.17
걱정스러운’ 마초들의 과잉 대응
전쟁을 스타크래프트 게임 정도로 아는 마초들은 자신들의 체제가 견고하다는 환상과, 북한을 곧 붕괴시킬 거라는 희망적 사고에 취해 있다.
가장 견고한 체제에 대한 가장 무모한 도전? 최근 북한의 연평도 도발 행위를 보며 나의 머리에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간 질문이다. 이 표현은 적군파가 서독에서 벌인 테러 행위에 대해 프랑스의 위대한 철학자 사르트르가 한 논평을 인용한 것이다. 사르트르가 보기에 당시 독일은 서방 국가 체제 중 자유민주주의의 활력과 내성이 가장 강한 고리였고, 따라서 이에 대한 적군파의 도전은 가장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사르트르의 이 논평을 접한 이후에 나는 테러에 대한 관점을 세우는 데 항상 이를 기본 토대로 삼아왔다.
공산주의 혁명의 아버지 레닌도 사르트르와 비슷한 시각을 표출한 바 있다. 레닌은 자신의 형을 비롯한 테러리스트들이 러시아 황제에 대해 벌인 테러 행위가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그들의 권력을 공고화하는 데 이용되는 현상을 보면서 테러의 효율성을 의심하고, 어리석음을 경멸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에 기초해 그는 테러는 자신이 파괴하고자 하는 적을 오히려 강화한다는 유명한 테제를 남겼다. 레닌의 테제를 접한 뒤 나는 사르트르의 논평과 더불어 이를 항상 내 시각의 핵심 기준선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빈 라덴이 내가 수십 년간 지켜온 사고 틀을 뒤흔들어버렸다. 난 처음에 그들의 테러가 가장 견고한 체제에 대한 가장 무모한 도전이라고 쉽게 믿었다. 혀를 차며 빈 라덴의 어리석음을 조롱했다. 단기적으로는 사르트르와 레닌의 테제가 적용되는 듯 보였다. 첨단 무기와 정보망으로 견고하게 무장한 미국은 아프간 동굴 하나하나를 집요하게 뒤지며 그들의 아지트를 파괴해나갔다. 부시 정부는 야당을 제압하며 빈 라덴의 의도와 달리 가장 강력한 정부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레닌과 사르트르의 테제를 적용하려면 아주 중요한 단서 조항이 필요함을 나는 조금씩 절감하게 되었다. 즉 자유민주주의 체제라고 해서 서독처럼 다 견고한 것은 아니라는 점과, 테러에 대한 지혜롭지 않은 대응을 유발시키면 레닌의 테제와 달리 테러가 매우 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섬뜩한 진실을 자각한 것이다.
미국은 비록 첨단 무기라는 하드 파워에서는 견고하지만, 공포와 분노 그리고 이를 이용한 탐욕스러운 팽창 욕구를 통제하지 못하면서 자신들의 취약한 소프트 파워를 드러내버렸다. 빈 라덴이 이를 미리 계산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최소한 그는 레닌의 테제를 비웃기나 하듯이 미국을 급격한 퇴조의 길로 이끌었다. 신경 발작적으로 과잉 팽창을 시도한 미국의 안보와 이로 인한 천문학적인 적자 경제는 지금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마저 위협하고 있다. 테러는 내적으로 견고하지 못한 적에게는 안보와 경제를 동시에 무너뜨리는 매우 효율적 무기라는 빈 라덴의 새로운 테제가 성립한 것이다.
9·11 테러에 대한 미국의 과잉 대응과 ‘닮은꼴’
북한의 도발 행위는 사르트르와 레닌 대 빈 라덴 중 누구의 테제가 옳음을 증명할까? 북한은 애초에 도발의 마스터플랜에서 남한의 견고성을 얼마나 중요한 변수로 계산했을까? 나의 짧은 지식으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당시 미국이나 한국의 일부 엘리트에게서 드러나는 견고성 수준의 유사성이다. 당시 백전노장이자 위대한 보수인 콜린 파월 합참의장은 군대도 가보지 못한 이들이 다양한 결과를 치밀하게 생각하지 않은 채 과잉 대응을 주장하는 것에 충격과 분노를 표현한 바 있다. 그리고 그 극단주의자들은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미국이 단 며칠이면 중동을 정리할 수 있는 것처럼 떠들어댔다. 과잉 대응 속에서 정작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로운 활력과, 건전한 경제 시스템을 보호하는 일이 전환기 미국의 현실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 비슷한 현상들이 이 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전쟁을 스타크래프트 게임 정도로 아는 마초들은 자신들의 체제가 견고하다는 환상과, 곧 북한을 붕괴시키고 한반도를 정리할 수 있다는 희망적 사고에 취해 있다. 이라크에서 농약이나 뿌리는 경비행기를 보고 미국 본토 공격용 무기라고 떠들어댄 이나, 보온병과 폭탄을 구별 못하는 이의 희극마저도 슬프게도 닮았다. 이후 2012년 우리는 지금을 돌아다보며 ‘가장 견고한 체제에 대한 가장 무모한 도전’이었다고 북한 지도부에 조소를 보낼 수 있을까 심각하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미국학과) 시사인 169호 10.12.17
진보의 경박성에 관해
자본력이 약한 신문은 이른바 진보세력에게도 만만한 동네북인가, 얼마 전에는 해학과 풍자를 담는 한홍구-서해성의 직설 난에 쓰인 ‘놈현 관장사’라는 표현에 반발하여 국민참여당 유시민씨가 ‘한겨레 절독’을 말하더니, 최근에는 북한의 3대 세습 문제에 관한 민주노동당의 입장을 비판한 신문 사설을 문제삼아 민주노동당 울산시당이 ‘경향 절독’을 선언하고 나섰다.
경기도 수원의 한 독자가 지적한 대로 한국의 신문은 보수신문과 진보신문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몰상식한 신문’과 ‘상식적인 신문’으로 나뉘는데, 흥미로운 일은 스스로 진보라고 말하는 사람의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를 절독하겠다는 소리는 종종 듣는 데 반해 스스로 보수라고 말하는 사람의 ‘조중동’을 절독하겠다는 소리는 듣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적용될 듯싶지만, 나는 그보다 한국의 이른바 진보의식이 성찰과 회의, 고민 어린 토론 과정을 통해 성숙하거나 단련되지 않고 기존에 주입 형성된 의식을 뒤집으면 가질 수 있는 데서 오는 경박성, 또는 섬세함을 통한 품격의 상실에 방점을 찍는다.
신문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조용히 끊으면 그만일 터인데 소문내거나 선언하는 모습이 딱 그렇다. 이런 경박성에는 진보를 택한 자신에 대한 반대급부 요구도 담겨 있다. 경향이나 한겨레가 자기들 요구에 반드시 부응해야 한다는.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북한에 관해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세계는 일단 지극히 부정적으로 형성되는데, 그중 일부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독서나 특별한 경험을 통해 그때까지 형성한 의식을 뒤집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성찰과 회의, 고민이 생략됨으로써 ‘극도의 부정’이 ‘극도의 긍정’을 낳고 ‘모 아니면 도’ 식의 시각만 남아 섬세함이나 균형감각이 설 자리를 잃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북한 내정에 간섭하는 것과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게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는 데 섬세함까지 필요하지 않음에도 삼대 세습을 비판하면 내정간섭이며 반북이 되므로 남은 선택지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의 “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주노동당의 판단이며 선택”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심지어 “진정한 진보는 용납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까지 포용할 수 있는 톨레랑스를 가져야 한다”(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 박경순 부소장의 말)는 궤변까지 나온다. 톨레랑스는 차이를 용인하라는 것이지 용납할 수 없는 것을 포용하라는 게 아니다.
북한 관련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에겐 고정관념처럼 떠오르는 말이 있다. 프랑스 파리 15구에서 만난 한 식당 주인의 “고픈 배는 나중에 채울 수 없다”는 말이다. 다른 모든 것은 나중에 채울 수 있지만 지금 주린 배는 나중에 채울 수 없다. 그럼에도 사르트르가 강조한 ‘지금 여기’에 관심이 더 큰 나는 북한의 3대 세습에 비판적이면서도 북한에 쌀을 보내지 않는 이명박 정권에 더 비판적이며, “권력이 (선출되지 않는) 시장에 넘어간” 한국 사회에서 삼성을 비롯한 재벌기업의 세습 문제와 독재자의 딸 박근혜씨가 가장 강력한 차기 대선후보라는 점을 되돌아보자고 주문한다.
그러나 통일과업을 지상명제로 주장하고 그것을 진보의 자격조건인 양 강조하는 세력이 북한의 세습체제가 앞으로 굳어질 때 통일 과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에 관해 말하지 않는 것은 자기부정이 아닌지 묻고 싶다. 북한 세습체제는 우리의 통일 여정에서 분명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겠는가. 리영희 선생도 지적했듯이 통일은 남북 양 체제의 변화를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한데, 북한의 세습체제를 그대로 둔 채 그리는 통일의 상은 어떤 것인가. 이 간단한 질문에도 ‘말하지 않는 게’ 민주노동당과 당대표의 ‘판단이며 선택’일까./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10.10.10
뿌리 깊은 학벌문화를 고착시키는 학번 따지기
나이와 학번을 따지면 대화나 논쟁이 대등하고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한다. 또한 뿌리 깊은 학벌문화를 더욱 고착시킨다.
동년배보다 학교를 2년 일찍 들어가다 보니 고교·대학 동기들로부터 ‘구박’을 많이 받았지만, 동기들과는 나이 상관없이 허물없이 잘 지낸다. 그런데 1~2년 정도 학교 후배 중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가 많아 약간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 후배들은 내 나이를 알면서도 ‘선배님’ 또는 ‘형님’이라고 부른다. 특별히 나를 대우해줘서라기보다는 고교 기수, 학번이 나이에 우선한다는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재수·삼수해 대학을 늦게 들어와 나이가 많은 사람과도 동기 간에 말을 놓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학교의 연이 없으면 나이가 예민한 문제가 된다. 서로 대화하다가 상대의 말투에 불쾌감을 느끼고 “너 몇 살이야!” “당신 왜 나에게 반말이야!” 식의 말이 오가다가 폭행으로 나아가는 사건이 많이 벌어진다. 사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각기 말 놓고 지내는 두 사람이 있었는데 셋이서 함께 만나고 보니 그 두 사람은 고교 선후배 관계였다. 그래서 세 사람이 모이면 서로 말투를 어떻게 해야 하나 혼란에 빠졌다. 시쳇말로 ‘족보가 꼬인 것’이다.
운동권 출신들도 자유롭지 못해
이렇다 보니 우리는 사람을 처음 만나면 상대의 나이나 학번을 확인하려고 애를 쓴다. 누가 ‘위’이고 누가 ‘아래’인지 확인하고 ‘위계’를 잡기 위해서이다.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운동권 출신들도 이러한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연장자나 선배를 존중하는 것은 미덕이다. 우리말에 있는 존칭이나 경어체도 소중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나이와 학번을 따지는 문화는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첫째, 대화나 논쟁이 대등하고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한다. 후배나 나이가 적은 사람이 선배나 연장자에게 문제를 제기하면 ‘건방진 놈’ ‘싸가지 없는 놈’으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둘째, 그 결과 올바른 문제 해결책을 빨리 선택하기 어려워진다.
1997년 8월 대한항공기의 괌 추락사고 원인은 위기 징후를 포착한 부기장이 선배인 기장에게 직언을 하지 못한 데 있었다. 이후 대한항공 부사장으로 부임한 데이비드 그린버그는 조종사들의 영어 사용을 의무화한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이 “그라운드 안에서는 모두 반말로 하라”고 지시한 것은 같은 맥락이었다. 셋째, 학번을 따지는 순간 대학 학번이 없는 사람은 순식간 당황하게 되는 바, 결과적으로 뿌리 깊은 학벌문화를 더욱 고착시킨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오륜(五倫)의 한 덕목인 ‘장유유서’의 미덕을 배워왔다. 그런데 유교가 국교였던 조선시대에 산 사람들 사이의 위계질서도 지금 같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선비들의 경우 아래위 5년 정도는 상대의 ‘호’를 부르며 대등하게 교유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오성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 간의 우정을 보자. 많은 사람이 두 사람이 동년배 친구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오성은 1556년생, 한음은 1561년생으로 나이가 5년 차이였다. 둘은 과거 시험에 합격한 후 만났는데, 한음은 정8품, 오성은 정9품으로 보직을 받는다. 나이가 많은 오성이 낮은 직급을 받았지만, 서로 막역한 친구가 되었다.
지금같이 나이와 학번을 세밀하게 따지며 서열을 잡는 문화는 오히려 ‘근대’의 산물이 아닌가 추측된다. 일제강점기 군국주의의 지배, 광복 후 권위주의와 군사독재 지배가 한국 사회를 상명하복의 위계 사회로 고착시킨 것이 아닌가 한다. 이 같은 위계 문화는 느슨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제 학교·직장·활동 등의 연이 있는 선후배의 경우 직함을 붙여 호명하거나 ‘김 선배’ ‘조 선생’ 등으로 부르며 ‘평존칭’을 사용하고, 그런 연이 없는 경우도 ‘박 형’, ‘이 형’ 정도로 부르면서 ‘평존칭’을 쓰는 쪽으로 옮아갔으면 좋겠다./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사인 160호 10.10.7
친일’ 청산은 역사적 정의다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국가가 존속하는 한, 친일 문제를 망각의 벽장 속에 집어넣을수도 없고, 집어넣어서도 안 된다. 그것이 지금 단계의 역사적 정의(正義)다.
광복절과 국치일을 함께 보듬고 있는 8월이다. 새삼 친일 문제를 되짚어보게 된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해 출간한 <친일인명사전>이 논란을 일으켰듯, 친일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뜨거운 감자다. 따지고 보면, 친일 문제 당사자들(의 후예나 옹호자들)의 (자기)변호에 들을 만한 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반도의 근대화에 이바지했다? 부분적으로 그랬을 수 있다. 일본이 패망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못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식민시대 말기 조선 저명인사들의 전쟁 선동이 설령 반(反)인도적 범죄에 가까웠다 하더라도, 그들을 전혀 변호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서방에 맞서는 ‘대동아공영권’은 그들에게 양심을 밑절미로 삼은 신념이었을 테니.
한번 이런 반(反)사실 추론을 해보자.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미국을 이겼다면? 이기지는 못했더라도 적당한 선에서 전쟁을 멈추고 한반도를 여전히 영유하고 있다면? 민주화한 일본의 조선 동화정책이 성공해 한반도 주민집단이 일본 열도 주민집단과 똑같은 정치적 권리를 누리고, 그 결과 자신들을 일본인이라 여기게 됐다면? 그래서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라 고유한 영토가 됐다면? 그랬더라면 오늘날 ‘친일 문제’가 제기될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거의’라는 말을 붙인 것은, 그런 상황에서도 조선의 독립을 희원하는 조선인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이들은 ‘분리주의자’라 불릴 것이다. 그러나 100년 동안의 정치적 동거가 한반도를 일본화해, 대다수 한반도 주민이 일본 열도 주민에게 별다른 적의를 지니지 않게 되었을 법하다. 물론 지금의 한국이 그렇듯, 열도와 반도를 아우르는 상상 속의 일본에서도 선거 때가 되면 두 지역 사이에 경쟁심과 적대감이 기승을 부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이 나라를 두 동강 낼 정도로 큰 힘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때, 역사 교과서에서 ‘친일’이라는 말은 긍정적 함의를 지니게 됐을지 모른다. 지난 천년 동안 중국 역사에서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받던 남송(南宋) 시대의 주전파(主戰派) 무장 악비(岳飛)가 오늘날 비판적으로 조명되고, 금(金)과의 화친을 주장해 ‘간신’이라 비난받던 진회(秦檜)가 재평가되면서 긍정적으로 조명되듯 말이다. 그 옛날 금나라 영토를 영유하는 지금의 중국이 남송의 ‘정통성’에 집착해 금나라를 제 역사 바깥으로 밀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것은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흔히 ‘정치적’이라는 뜻이다.
다시 상상 속의 일본으로 돌아가자면, 그 나라의 역사 교과서에서 20세기 전반기 한반도의 ‘친일파’는 독일이나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프로이센이나 사르데냐 왕국을 지지했던 사람들처럼 ‘진보적’ 정치세력으로 평가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기의 ‘독립운동가’들은 분열주의적 테러리스트로 폄훼될 것이다. 그때 일본 열도 주민들의 역사적 상상력 속에서 이순신은 통일신라 이후의 한국인들(특히 한반도 동남부 지방의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계백 같은 이들과 중첩될 것이고, 그 일본이 지금처럼 입헌군주국이라면, ‘천황’의 혈통을 한반도(특히 고대 백제)와 연결시키는 역사학적·정치학적 담론이 널리 퍼져 있을 것이다.
친일파 청산에 조선은 적극적, 한국은 소극적
문제는 실제 역사가 이 같은 상상대로 흘러오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에 졌고, 한반도는 일본에서 분리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한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이라는 두 국민국가가 한반도에 들어섰다. 한국이든 조선이든, 건국의 이념적 버팀목은 ‘일본제국주의의 부정’이었다. 그래서 ‘친일’ 문제는 두 나라에 피할 수 없는 숙제가 되었다. 한국과 조선의 건국은 친일파 청산과 나란히 이뤄졌어야만 했다. 친일파 청산에 더 적극적이었던 조선이, 그 문제에 소극적이었던 한국에게 ‘정통성’을 뽐내던 시절이 있었던 것은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삼았다.
역사를 긴 눈으로 볼 때, 국민국가 체제는 언젠가 해체될지도 모른다. 그 세계에선 20세기 전반부 한반도에서 있었던 친일 세력과 반일 세력의 갈등도 하찮은 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눈앞의 일은 아니다. 우리가 지금 사는 세계는 국민국가로 이뤄진 세계이고, 이 국민국가 체제가 쉽사리 해체될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이 우리가 친일 문제를 덮어둘 수 없는 이유다.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국가가 존속하는 한, 친일 문제를 망각의 벽장 속에 집어넣을 수도 없고, 집어넣어서도 안 된다. 그것이 지금 단계의 역사적 정의(正義)다./고종석 (저널리스트)시사인 153호 10.8.19
천안함의 진실과 ‘북한 주적론’
“논리로 안 되면 인신을 공격하라.” 고대 로마 시대의 학자이면서 정치가인 키케로가 남긴 반어법 수사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에 ‘천안함 이슈리포트’를 보낸 참여연대를 향해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반응을 보인 정운찬 총리에게 잘 어울리는 말이다. 한 나라의 총리라면 천안함과 같은 국가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모든 진실을 밝힐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으며 정상국가의 총리라면 응당 그래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는 참여연대가 서한에서 지적한 조사결과의 8가지 의문점과 6가지 문제점에 관해 논리로 반박하는 대신 인신을 공격하는 쪽을 택했다. 그 자신, 그가 모시는 대통령, 그와 한패인 수구언론의 사주들 중 한 사람이라도 병역 의무를 필했더라면 그의 발언이 조금은 덜 몰염치했을까?
천안함 사건은 발생부터 조사결과 발표까지 온통 의문투성이다. 그래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참여연대만이 아니며, “0.001%의 설득이 안 된다”는 동양학자 김용옥 박사의 말에 공감하는 사회구성원이 한둘이 아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한겨레21> 최근호에서 미국 버지니아대 물리학과 이승헌 교수는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이 내놓은 흡착물질은 폭발의 결과물로 볼 수 없다”, “모래와 소금밖에 없다”고 증언하여 어뢰 폭발의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럼에도 진실을 밝히려는 모색과 행동은 사라지고 정치공학과 마녀사냥만 난무한다. 한국의 이른바 국격의 수준이 그 정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천안함 사건의 철저한 조사와 평화적 해결”을 요구했을 뿐이다. 그러나 우익단체들과 수구언론들에게 마녀사냥의 표적이 되고 있다. 다시금 프리모 레비의 말을 되새기는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괴물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 수가 많지 않아 그리 위험하지 않다. 실제로 위험한 것은 의문을 품지 않고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평범한 기계적 인간들이다.”
이명박 정권 후기로 들어서면서 극우반공주의와 이분법적 냉전 논리가 기승을 부리고 국가보안법이 다시금 활개를 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이 나뿐일까. 이미 참여연대뿐만 아니라 의문을 품는 모든 이들에게 ‘이적행위’, ‘매국노’의 딱지를 붙이고 있으며 정치검찰을 다시금 동원할 태세다. 특히 ‘북한 주적론’을 더 강화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을 통해 드러난 정부와 군의 총체적 무능에 대한 비판을 피해 가려는 것이며, 6·2 지방선거에서 심판받은 이명박 정권의 위기의식이 그들의 무능과 결합하여 과거의 손쉬운 통치방식에 집착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개탄하듯이 남북관계는 20여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해양과 대륙을 동시에 만나는 반도의 지정학적 위상에서 최악의 형태인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분할선으로서 분단을 고착시키는 이론의 하나인 ‘북한 주적론’은 사실상 한국이 교전권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구체성이 없다. 그런데 천안함 사건을 기해 이명박 정권과 수구세력은 ‘북한 주적론’을 강화하면서 미국이 갖고 있는 전시작전권을 환수할 시기를 더 연기할 것을 주장한다. ‘북한 주적론’은 전시작전권을 환수했을 때라야 그 구체성이 있음에도 ‘북한 주적론’을 강화하는 한편 전시작전권 환수의 연기를 주장하는 모순이 무엇을 말하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아차려야 한다. 그것이 북한을 중국 대륙에 밀어붙여 북한의 중국 종속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내부로 향한 칼날로 작용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의문을 품고 진실을 요구하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이적행위로 몰아붙일 수 있는 배경이 다른 데 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더욱 천안함의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진실은 스스로 말한다고 하지만 때론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모두 진실 찾기에 나서야겠는데 정운찬 총리에게 학자적 양심에 마지막으로 호소해보는 것은 무망한 기대일까.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10. 6.20
국제사회 웃음거리 된 천안함 외교
지방선거는 국민의 승리이다. 국민은 북풍 속에 가려진 무능과 삽질의 횡포에 분노했고, 시대착오적 광기를 가려냈으며, 질식할 만한 일방주의를 반대했다.
한때는 바람보다 먼저 눕더니, 결국 바람보다 먼저 일어섰구나. 풀들의 승리다. 위대한 국민이다. 상식이 이겼고, 몰상식이 졌다. 평화가 이겼고, 전쟁이 졌다. 민주주의가 이겼고, 지역주의가 졌다. 탈근대의 시대에 전근대적 북풍으로 선거를 치른 세력의 ‘아웃’이다.
냉전반공주의라,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다. 과거 냉전반공주의는 친일파에게 변신의 정당성을 주었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도구였으며, 무능과 부패를 감추는 공포였다.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다시 ‘냉전의 추억’이라니. 경악할 만한 사태였다. 그래도 정도껏 하지, 과했다. 너무 심했다. 무모함이 역풍을 불렀다. 그들은 풀들의 위대함을 간과했다. 풀들은 북풍 속에 가려진 무능을 보았고, 시대착오적 광기를 가려냈으며, 삽질의 횡포에 분노했고, 질식할 만한 일방주의를 반대했다.
뉴라이트와 조·중·동 프레임의 패배
패배의 핵심은 뉴라이트 세력이다. 조선·중앙·동아 프레임의 패배이기도 하다. 그들은 북풍을 통해 선거에서 이기려고 했고, 승리의 여세를 몰아 사회의 재배열을 꿈꾸었다. 전쟁의 공포를 통해 ‘유사 파시즘’을 구축할 태세였다. 그들이 생각한 미래는 ‘오래된 과거’였다. 한국 사회에서 일제강점기 시절을 미화하고, 독재를 옹호하며, 분단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통하리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자신만의 언어로 한국 사회를 해석했다. 소통을 거부하고 불통을 선택한 결과다. ‘시대와의 불화.’ 그것이 패배의 핵심이다.
뉴라이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미국 네오콘처럼 역사에서 퇴장할 것인가?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에서는 네오콘의 무모함을 질타하는 전통 보수가 있었지만, 한국에는 없다. 한국에 후쿠야마 같은 보수 논리로 뉴라이트의 무모한 이상주의를 비판하는 학자가 있는가? 한국에 키신저 같은 외교 경륜으로 ‘실패할 외교’를 질타하는 원로가 있는가? ‘보수의 부재’는 뉴라이트의 잔존을 의미한다. 뉴라이트가 보수의 자리를 차지하는 이상, 그것은 한국 보수의 비극이 되겠지만, 진보 진영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선거는 자신이 잘해서가 아니라 상대의 몰락으로 이기는 경우가 많다.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뉴라이트 세력이 정당·언론·행정부를 장악한 현실이 나쁘지 않다. 그들의 특이한 인식 구조는 시민으로부터 지지를 받기 어렵다. 또한 그들은 홍보에 강하니, 알아서 말들을 쏟아내주지 않는가? 언론의 퇴행 속에서, 공권력의 동원 속에서, 시민들이 그들의 정체를 깨닫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러나 시민들이 스스로 정당의 역할을 대행하는 현실은 허약하고, 불안하다. 한국 진보·개혁 진영이 스스로의 힘으로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정당의 재건이 남겨진 핵심 과제다.
무능한 외교안보팀 전면 교체해야
선거는 끝났지만, 천안함은 이제 시작이다. 북풍의 핵심, 천안함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이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가는 과정이 시작되고, 국제 검증이 시작되었다. 중국과 러시아가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책임을 강조하면서, 상식적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국내적으로 이명박 정부는 입증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시간도 없다. 6자회담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무능한 외교안보팀을 전면 교체하는 것이 맞다. 원점에서 대응하는 것이 순리다.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미국 부시 행정부는 2006년 중간선거에서 패배하면서, 네오콘과 결별했다. 럼스펠드가 퇴장하면서 국무부의 협상파가 외교를 주도할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도 그렇게 할 것인가? 기대하기 어렵다. 최소한 부시 행정부는 이념과 외교를 분리할 수 있었다. 미국의 관료제도는 최소한 영혼을 팔지는 않는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팀은 이념 과잉이고, 영혼이 없는 관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며, 결정적으로 무능하기까지 하다.
진정으로 위기라고 생각하면, 그것이 곧 기회다. 북풍은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동시에 국제사회의 검증에 직면해 있다. 더 이상 대한민국의 국격을 떨어뜨리지 말기 바란다. 동북아 질서의 변화는 쏜살같은데, 냉전반공주의 외교로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시대와 어울리고 국제사회와 호흡하는 새로운 외교안보팀을 기다려본다. 이 정부의 임기 절반은 실패했다. 그러나 아직도 절반이 남았다. 너무 멀리 나갔지만, 아직 ‘역사의 평가’를 수정할 시간은 충분하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통일학부) 시사인 143호 10.6.14
Raindrops Keep Fallin' on My Head (B.J. Tomas) (1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