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24 머 저런 기 다 있노, 이판사판인가
기업 사회공헌활동, '이익추구 동기'가 컸다
사회공헌과 '이익조정 회계' 분석
공헌 많이 하는 회사가 이익조정
지배구조 좋은 기업은 동기 달라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기업의 이익 추구 동기가 더 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5일 한국공인회계사회가 발간하는 '회계·세무와 감사연구'에 실린 논문 '기업 지배구조와 사회적책임활동이 이익조정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기업사회적책임활동(CSR) 수준이 높은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이익조정의 규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자가 내부적으로는 회사의 이익조정을 실행하면서 CSR을 이용해 외부에는 회사가 투명하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동기가 작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익조정은 기업 또는 경영자가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향상하기 위해 주로 '재량적 발생액'을 사용해 이익을 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발생액은 감가상각이나 재고자산, 회계기준 변경 등 현금의 입출이 없어도 거래 발생으로 향후 생길 이익과 손실을 당기에 반영하는 것으로 영업 현금흐름활동과 무관하다. '재량적 발생액'은 경영자의 재량에 따라 측정방식을 달리하는 것으로 회계부정은 아니지만 이익조정을 위해 활용된다.
◆ESG기업 3636개 표본 분석 = 논문의 저자인 홍철규 중앙대 교수는 "CSR 수준이 높은 기업이 상대적으로 이익조정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전략적(이익추구) 동기에 의한 CSR이 윤리적(사회적 의무) 동기에 의한 CSR보다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 기업들은 이익의 상향조정보다는 하향조정 성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익을 낮추는 행위는 탈세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연구는 2011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점수결과가 공시된 기업을 대상으로 3636개 표본(기업-연도)을 추출, 다중회귀분석을 통해 진행됐다. ESG평가기업들은 CSR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ESG 공시기업들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이번 연구는 기업의 지배구조와도 연결해서 분석을 벌인 것이 특징적이다. 기존 연구들은 CSR과 지배구조가 이익조정에 미치는 영향이나 상호관계를 각각 독립적으로 검토해서, 이들 간의 상호작용이 이익 조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았다.
지배구조가 좋고 CSR 수준이 높은 기업들이 CSR을 실시할 때 윤리적 동기와 전략적 동기 중에 어느 동기에서 실시할 가능성이 더 높은지를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기업지배구조와 CSR' 상호작용 첫 연구 = 연구결과 CSR 수준이 높은 기업 중에서 지배구조가 좋은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이익조정의 크기가 더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홍 교수는 "이같은 결과는 지배구조가 좋을 경우 CSR 활동이 윤리적 동기에 의해 발생할 가능성이 높지만, 지배구조가 나쁠 경우 CSR 활동은 지배구조가 좋을 경우에 비해 전략적 동기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배구조가 좋은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익조조정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연구에서 지배구조는 △주주 권리보호 △이사회 △공시 △감사기구 △경영과실 배분 등의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지배구조가 좋은 경우, 지배구조가 경영자에 대한 통제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기업에 추가적인 부담을 요구하는 자율적 선택영역인 CSR을 활발히 수행하는 기업의 경우에 CSR은 윤리적 동기에서 수행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홍 교수의 설명이다.
한편 이번 연구에서는 지배구조가 좋은 기업이 나쁜 기업에 비해 이익조정의 규모와 방향에 있어서 다른 특징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홍 교수는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가 사실상 경영진에 대한 통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기업지배구조와 재량적 발생액의 관계에 대해 의미있는 결과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CSR 수준을 고려한 분석에서는 지배구조가 이익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기득권으로부터 약자를 지켰던 위대한 판사
긴즈버그는 중립을 강조하지 않았다. 생각을 감추지도 않았다. 그는 인간의 보편타당한 권리가 실질적으로 구현되어야 하며 사법이 소수자 인권 보장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AP Photo 2013년 7월24일 워싱턴 연방 대법원 자신의 방에 서 있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 대법관.
판사로 재직한 기간이 10년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판사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에 답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9월18일 삶을 마감한 위대한 판사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많은 이들의 롤모델이었지만, 판사인 내게는 위 질문에 대한 답을 삶으로 보여준 법률가였다.
1960년대부터 미국에서 여성 인권운동이 활발해졌다. 변호사 긴즈버그는 1970년대부터 다양한 성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이것을 ‘여성의 권리’가 아닌 ‘인간의 권리’를 위한 활동이라고 불렀다. 의미 있는 소송을 제기하고 변론하여 승소 판결을 이끌어내는 게 그의 무기였다. 긴즈버그는 ‘성차별이 존재하는 줄 모르거나’ ‘성차별이 여성들을 보호한다고 생각했던’ 판사들에게 성차별의 존재와 의미, 해악을 차근차근 가르쳤다고 회상했다.
상상해보자. 성차별을 겪어본 적 없는 남성 엘리트 법관 9명에게,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유산관리인 지위를 박탈당하는 게 왜 부당한지 설명하면서 그가 느꼈을 감정을. 남성이란 이유만으로 자녀 양육자로서 사회보장 혜택을 못 받는 게 왜 부당한지 설명하면서 그가 느꼈을 감정을. 차별로 고통받는 자들이 차별 구조의 수혜를 입는 자들에게 차별은 부당하니 이를 바꿔달라고 호소해야 할 때의 막막함을 상상해보자. 원래 1 더하기 1이 왜 2가 되는지 설명하는 게 가장 어려운 법이다.
판사가 되기 전부터 긴즈버그는 판사들이 시대정신과 사회 변화에 무지할 수 있음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판사들이 법의 형식논리에 치우쳐 구체적 현실을 살피지 않을 때 그는 그 사회의 규범은 시민들과 동떨어진 죽은 규범이 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판사들이 시민사회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들의 법 해석이 정답이라며 오만해질 때 시민은 주권자에서 피통치자로 전락하고 민주주의는 파괴됨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재판에 대한 시민의 분노와 절망을 이해하고 성찰의 계기로 삼는 판사가 되었다(최소한 시민의 분노와 절망을 놓고 사법 독립 침해라고 말하진 않았다). 나아가 시민에게 분노와 절망을 일으키지 않는 판사가 되려고 노력했다.
긴즈버그는 재판에 처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상황, 특히 소수자나 약자가 어떻게 목이 밟히고 있는지 드러내는 데 주목했다. 현저히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법이 내리눌러 평평하게 만들어야만 그들이 ‘실질적으로’ 법의 평등한 보호를 받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그들은 진정한 주권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득권의 정점에 올라 있다고 여겨지는 연방 대법관이 소수자와 약자의 곁에 서서 외쳤다. “그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해주지 않는 법 해석은 폭풍우 속에서 우산을 내던지며 비에 젖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인지부조화와 염치없음 그 자체다.”
연방 대법관이 되어 기득권의 최정점에 올라 오랜 세월을 보냈으니 시대 변화에 둔감해지고 무뎌질 법도 했다. 그러나 그는 노년까지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단호한 지성을 유지했다. “중요한 문제가 걸린 사건이라면, 나는 내 길을 가겠다. 이를테면 표현과 언론의 자유, 젠더 평등에 관련된 문제라면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항상 기득권에 맞서 무엇이 문명인지를 또박또박 읽어나갔다.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 보편타당한 인권의 구현을 제시했다. ‘꼰대에 저항하는 단호박.’ 그는 ‘Notorious RBG(악명 높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라고 불리며 청년들의 우상이 되었다.
연대 속에 잠드소서, R. I. P. RBG
긴즈버그는 판사로서 밑도 끝도 없는 중립을 강조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을 감추지도 않았다. 그는 인간의 보편타당한 권리가 실질적으로 구현되어야 한다고, 사법이 소수자 인권 보장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소수자들은 자신의 보루가 되어줄 연방 대법관이 최소한 한 명은 있구나, 부당한 차별에 맞서 법에 기댈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한 희망은 연방 대법원의 문을 두드리는 소송이 되었다. 연방 대법원은 충실하고 투명한 토론이 담긴 기념비적인 판결로 화답했다.
긴즈버그의 이런 태도는 현직 판사로서 나 자신을 계속 되돌아보게 만든다. 우리 사법은 국가권력에 맞서 인권의 보루가 되어야 할 책무를 여러 번 저버렸다. 군부독재로부터 시민의 생명과 자유를 지켜주지 못했고, 사법부 조직의 이익을 위해 재판 당사자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훼손했다. 사법 신뢰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사법 불신이 당연한 상황에서 가장 힘든 이들은 소수자와 약자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 재판에 충실히 임하고 있는 것일까. 재판을 통해 ‘실질적으로 평등한 법의 보호’를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고 있는가. 사법이 내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기댈 곳이라는 희망을 안겨주고 있나.
대법원 판결과 동종 유사 사건의 하급심 판결들을 검색하여 내 사건에 대입해보며 ‘무엇이 무난한 정답일까’를 찾기에 급급한 게 현실이다. 재판 당사자들은 법정에 출석하여 법대 위의 나를 간절히 쳐다보지만,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다. 그들을 보기보다는 변호사가 써낸 단정한 서면 속 주장들과 제출된 자료들을 대조해보면서 사안을 파악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당사자들이 어떤 상황이었을지 상상해보려고 노력하지만 그 상상의 시간조차 끊어내야 한다.
ⓒAP Photo 긴즈버그 미국 연방 대법관 사망 다음 날인 9월19일 워싱턴 연방 대법원 청사 앞에서 한 시민이 그를 추모하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기존 규범 해석이 혹여나 구조적 차별을 재생산하지는 않는지, 당사자들이 처한 구체적 상황에서 평등한 법의 보호가 실질적으로 작동하게 하려면 어떻게 법을 해석해야 하는지, 시대 인식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우리 사회의 담론은 어떻게 성숙되어가는지. 이런 문제를 파악하고 소통하고 궁리하는 일은 이런저런 현실적 한계를 핑계로 늘 뒤로 밀린다. 나는 사실 현실을 핑계 삼아 직업인으로서 판사직을 그냥저냥 수행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가 가끔 직업인을 넘어 판사의 사명에 충실한 이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 현실로 쉽게 도피해버리는 내 나약함과 나태함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머나먼 미국의 위대한 법조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이런 의미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세상을 떠났다. 스스로 놀랄 만큼 공허해졌다. 어떤 식으로라도 그를 애도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이 글을 쓴다. Rest in Power, RBG.
시사인 류영재 (판사)
]①밀레니얼 개미들이 묻는다 “불로소득, 꼭 나쁜건가요”
“일의 노예는 싫다”…‘돈’을 좇는 청년들
“노동으로 돈 버는 시대는 옛말…불안한 일자리, 집 한채도 못사”
시작하자마자 80%. 지난 3월 ‘동학개미운동’ 대열에 올라타 카카오 주식을 산 1998년생 투자자 한시화씨가 밝힌 자신의 투자수익률이다. 1993년생 조한울씨는 주식과 채권 등 각종 자산에 투자하고 ‘애·차·개(아이·자동차·반려동물) 삼종세트’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면 마흔 전에 은퇴하고 노동소득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본다.
한국 증시에서 전례 없는 최근의 투자 열풍에는 2030이 핵심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경향신문은 9월1일부터 30일까지 주식 등에 투자 중인 20~34세 청년 70명에게 돈과 투자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 출생자) 혹은 ‘Z세대’(1997년 이후 출생자)로 불리는 이들에게서, 자본소득이 노동소득보다 점점 빨리 불어나는 세상을 살아가려면 ‘게임의 규칙’을 장악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엿보였다.
일정한 소득이 없는 대학생, 취업준비생도 온·오프라인에서 부지런히 정보를 습득하며 투자에 참여하고 있다. 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주식게시판이 속속 생기고 투자동아리 가입 열기도 뜨겁다. 경제 뉴스와 기업 공시,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분석보고서를 훑으며 투자처를 모색하고 세뱃돈과 장학금을 모아 주식을 산다. 금융자본주의 연구자 박준영씨(40)는 “그동안 청년세대가 좋은 직장과 안정적 소득을 얻기 위해 몰두하던 ‘자기계발’이 이제는 ‘자본계발’로 넘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하는 자기 자신’을 자조적인 뜻에서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자낳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이 투자에 골몰하는 배경엔 불안정한 노동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힘들게 일해도 임금 상승률은 집값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고, 평생 일해서 번 돈으로는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기술의 발전은 언제 내 일자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투자를 만류하는 부모에게 이들은 말한다. “우리는 노동소득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세대”라고
이런 상황에서 지금보다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얘기하려면 ‘투자’라는 열쇠가 있어야 한다.
투자를 ‘투기’로 인식하던 이전 세대와 달리 밀레니얼·Z세대 중에서는 “저축 대신 주식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청년들은 투자를 “공정한 게임” “노력하는 만큼 보상이 따르는 일”이라고 본다. 이들은 1997년 외환위기를 “돈 있는 사람에겐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라는 교훈을 남긴 사건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큰 위기를 지나면 V자 반등이 온다”는 믿음을 남긴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다.
2020년 투자에 몰두하는 다양한 청년들은 한국 사회의 어떤 점을 비춰주고 있는 걸까. 인터뷰와 설문조사, 전문가 진단을 통해 ‘자낳세’(자본주의가 낳은 세대) 2030의 투자 열풍을 4회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①‘자기계발’에서 ‘자본계발’로
주식투자에 대한 2030 청년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용돈과 아르바이트 수입으로 투자 위험성이 큰 주식시장에 직접 뛰어든 대학생도 많다. 취업절벽을 넘어서긴 어렵고, 일자리를 얻는다 해도 저금리·저성장·팬데믹의 불확실한 시대를 헤쳐나가려면 월급만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이들은 말한다. 건강한 노동소득보다 불로소득을 꿈꾸는 것 아니냐는 기성세대의 우려에 경제적 자유를 갈망하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지난달 28일 오전 출근시간대 서울 신도림역에서 대학생 유지희씨(22)가 자신이 투자한 종목의 주식 차트를 띄운 태블릿PC를 들고 바쁘게 각자의 일터로 향하는 시민들 사이에 서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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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일 새벽 3시. 카톡 알림이 울렸다. “마소(마이크로소프트) 수직 낙하하네요.” 미국 장 마감을 세 시간 앞두고 시작된 대화가 이날 낮까지 쉬지 않고 이어졌다. 300명이 모인 이 오픈카톡방의 이름은 ‘Pick 해외주식 투자방’. 테슬라 유상증자는 악재일까 호재일까, 지금은 ‘추매(추격매매)’ 적기일까 아닐까, 미국 기술주를 모은 ETF(상장지수펀드)와 애플 개별주 중 어떤 것을 사는 게 유리할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이 끊임없이 돈 얘기를 주고받았다.
평일 점심시간. 닉네임 ‘윤’이 잡담 물꼬를 텄다. “근데 금융자산이 얼마나 있어야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회사에서 일하기 진짜 싫어요.” 닉네임 ‘달러줍줍’이 맞장구를 쳤다. “열나게 노동해봐야 돈이 안 돼여 ㅠㅠㅠㅠㅠ.”
익명의 단톡방 참가자들은 무슨 일을 하고 왜 투자를 시작하게 됐을까. 경향신문은 지난달 주식 등에 투자 중인 청년들을 심층 인터뷰하며 그 답을 찾고자 했다. 살아 온 배경만큼이나 투자 목표와 목적도 제각각이지만 이들의 생각에는 대체로 다음의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노동소득이 아닌 자본소득을 올려야 산다. 둘째, 열심히 공부하면 주식도 필승이다.
#직장인 #일의허무함 #투자만이_희망이다
편의점 점주 정호준씨(33)는 지난해 지인이 추천한 주식을 사서 두 달만에 200만원의 수익을 냈다. 하루에 9시간 밤낮 없이 일한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더 늦기 전에 제대로 주식을 공부해볼 생각이다. 권도현 기자
난 편의점 점주, 어떻게 벌 것인가
정호준씨(33)는 강원도 원주에서 4년째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의 건축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월급쟁이의 삶을 벗어나고 싶어 자영업을 택했지만 편의점에서의 삶이야말로 진짜 쳇바퀴 돌기였다. 하루 9~10시간씩 주말 없이 일하는 그는 본사와의 계약기간 5년이 끝나는 내년까지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게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씨는 지난해 처음으로 주식을 사서 두 달 만에 팔고 200만원을 벌었다. “와. 아무 일도 안 하고 지인이 추천한 대로만 했는데 월수입의 거의 절반을 얻었잖아요. 추석, 설날까지 반납하고 일해온 게 허무하게 느껴지더라고요. 20대에 토익점수, 영어공부, 이런 것에만 신경썼는데. 일찍부터 경제 관념을 갖추는 요즘 20대들을 보면 ‘나는 왜 저러지 못했나’ 싶어요.”
직장인 권혜원씨(30)에게 주식은 ‘타임캡슐’이다. 그동안 모은 돈 1200만원을 적금이 아닌 주식에 넣었다. 주가는 장기적으론 오를 수 밖에 없고, 돈을 잃는다면 그것은 버티지 못한 때문이라고 믿는다. 권도현 기자
난 직장인, 주가는 언젠간 오른다
국내 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조한울씨(27)는 유튜브를 ‘스승’ 삼아 투자한다. 세계적인 투자자 레이 달리오가 고안했다는 ‘사계절 포트폴리오’를 본떠 주식과 채권, 원자재 등에 자산을 골고루 배분했다. 경기가 좋든 나쁘든, 금리가 낮든 높든 안정적인 수익을 유지하는 게 목표다.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던 시절엔 관심이 없었어요.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니 내 생각보다 노동소득이 빨리 끊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월급이 끊겨도 생계를 지속할 방법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는 재테크를 ‘구명조끼’에 비유했다.
의사 강현범씨(28)는 일주일에 사흘씩 집에서 주식 투자를 한다. 그에게 주식은 실력만큼 돈을 버는 ‘공정한 스포츠’다. 의사 월급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경제적 자유’에 이르는 수단이기도 하다. 권도현 기자
난 의사, 주식은 ‘공정한 스포츠
강현범씨(28·가명)는 의대를 졸업했지만 인턴, 레지던트로 이어지는 전공의 과정은 밟지 않았다. 부모님이 원하던 의사라는 직업을 갖게 됐는데, 막상 의대 공부가 적성에 너무 맞지 않았다. 치열한 경쟁과 긴 노동시간…. 전공의 과정을 마친 뒤 개원한다고 삶이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다. 병원이 답답하게 느껴지던 그때, 대학동기 형으로부터 ‘주식’을 접했다. “마우스 하나로 돈을 번다는 게 달콤해 보였어요. 열심히 공부하면 내가 진짜 원하는 ‘돈과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겠구나….” 상대적으로 고소득자인 의사가 주식투자에 골몰하는 것을 의아해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그는 ‘노동으로 버는 돈’으론 경제적 자유를 얻기 어렵다고 본다. “의사라는 일에는 다른 직업적 의미도 있지만 오로지 경제적 측면만 봤을 때는 월급 상승에 한계가 있잖아요. 반면 자본소득은 내가 잘하기만 하면 한계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4년을 흰머리가 생길 정도로 치열하게 주식공부를 했다. 지금은 월·화·토요일 사흘을 병원에서 일하고 수·목·금요일은 거주 중인 오피스텔에서 모니터를 본다. ‘초단타 투자자’인 그는 같은 종목을 하루 이상 들고 있는 법이 없다. 7000만원을 가지고 종일 샀다, 팔았다 거듭하다 보면 하루 거래액이 3억원에 달하는 때도 있다. “하다 보니 투자가 점점 더 안정적으로 변해가고, 버는 속도가 빨라지고…. 그러니까 주식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줘요.”
#열공 #자본계발 #투자는_공정하다
이화투자분석회(EIA)에서 활동하는 대학생 박황숙씨가 동아리원들과 온라인으로 기업분석 세미나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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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니라 돈이 돈을 벌게 하라’
잘만 투자하면 높은 수익률 가능
되레 정정당당한 소득으로 느껴
전북 한 대학에 다니는 이서준씨(23·가명)는 수능을 치른 2017년 첫 투자를 해봤다. 람보르기니를 끌고 모교에 찾아왔던 ‘슈퍼개미’ 선배처럼 되고 싶었다. 어머니가 빌려준 수백만원을 등락 폭이 큰 대선테마주에 모두 넣었다. 첫 주에 큰돈을 벌었다가, 다음주 이틀 만에 모두 날려버렸다. “그때 배웠어요. 주식은 감당할 수 있는 액수로만 해야 되는구나. 여윳돈으로 해야 되는 거구나.”
이후 군적금과 장학금을 모아 다시 주식에 넣었다. 공직 진출을 꿈꾸며 로스쿨 진학을 준비 중인 그는 지금 “700만원을 굴리면서 돈에 대한 개념을 정립 중”이라고 했다. “여전히 저는 노동소득이 사회의 근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게 전부는 아니죠. 게다가 꿈을 이루려면 돈이 필요할 것 같아요. 부패가 왜 있겠어요? 관료가 돈이 없다면 소신대로 움직일 수가 없잖아요.”
대학생 유지희씨(22)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어떻게 보면 투자로 큰돈 버는 게 오히려 공정해요. 금수저도 흙수저도 똑같이 리스크(위험)를 갖고 들어가잖아요. 매수·매도 시점도 다 내 선택이고. 정정당당하게 돈을 버는 거죠.”
전국 400개 대학 학생들이 이용하는 대학별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도 속속 ‘주식게시판’이 생겨나고 있다. 투자 동아리도 인기가 높다.
대학생 박황숙씨(23)는 매일 경제신문을 읽고 기업 공시와 주가 추이를 확인한다. 딸 셋인 집에서 옷 하나 편히 못산 기억이 ‘돈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꿈꾸게 했다. 지금은 ‘돈 공부’가 제일 재밌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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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대학생, ‘돈 공부’가 제일 재밌다
서울 한 대학 재테크 동아리 회장 정지원씨(25)는 “코로나19 국면인데도 이번 학기 신입 지원자가 모집정원의 3배수에서 5배수로 오히려 늘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대학 투자동아리 회장 배윤기씨(25)는 하루 3~5시간씩 투자 관련 공부를 한다. 경제 관련 뉴스를 매일 챙겨보는 것은 기본이고 전자공시시스템을 둘러보고 애널리스트들의 분석보고서까지 훑는다. 처음에 50만원으로 시작해 지금은 1000만원가량 투자하고 있다. 회원 80~90%가 실제 투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즐겨 보는 유명 유튜브 ‘슈카월드’(구독자 88만명)나 ‘듣똑라’(구독자 23만명) 등은 주식종목을 찍어주는 ‘리딩방’과는 다르다. 기업 재무제표 보는 법부터 터키와 그리스의 국경분쟁까지,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를 확장할 수 있는 콘텐츠가 인기를 끈다. 인터뷰에 응한 대다수 20대 투자자들이 “주식을 시작하자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말했다.
#파이어 #일은_나_말고_돈이
지난달 28일 오전 출근시간대 서울 지하철 신도림역에서 대학생 유지희씨(22)가 자신이 투자한 종목의 차트를 띄운 태블릿PC를 들고 바쁘게 일터로 향하는 시민들 사이에 서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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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늙는다. 그러나 자본은 늙지 않는다. 자본이 일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최근 주식 입문자들의 대표적 ‘투자 멘토’로 꼽히는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2015년 한 방송에서 한 말이다. 노동소득이 아닌 ‘불로소득’으로 ‘경제적 자유’를 달성할 것. 이는 국내에 최초의 ‘재테크 열풍’을 일으킨 베스트셀러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가 20년 전부터 설파한 얘기이기도 하다.
‘캐컴’은 보드게임을 통해 기요사키 주장의 핵심을 전달하는 금융지식 공유 스타트업이다. 게임의 목표는 ‘쥐탈출’, ‘일하지 않고도 부자로 살며 꿈을 이룰 수 있는 상태’에 다다르는 것이다. 여윳돈을 묵히지 않고 적절히 빚도 내가면서 끊임없이 투자해야 ‘쥐탈출’에 성공할 수 있다. 이 회사 공동대표 김주환씨(25)와 이은수씨(22) 모두 20대다. 특성화고에서 경영을 전공하고 대기업 정규직으로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씨는 3년 전 이 게임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돈은 내가 아니라 돈이 버는 것이구나.’ 승진하고 연봉이 올라도 끊임없이 아이 학원비와 카드값에 시달리는 직장 선배들을 보며 ‘이런 식으로 사는 게 옳은 걸까’ ‘언제까지 나의 시간을 돈과 맞바꿔야 할까’ 의문이 커지던 때였다. 착실하게 소비를 줄이면서 관련 서적을 읽고 투자자문사를 찾아 컨설팅도 받았다. 이씨의 금융자산은 1억원에 다다른다.
그의 목표는 10억원을 모아 “서른 살에 은퇴하는 것”이다. 이후엔 자산에서 나오는 금융소득으로 생활하며 사업을 계획하고 싶다고 했다. “보통 사람들은 일을 해야 돈을 번다고 생각하지만, 부자들은 일하지 않아도 돈이 들어오는 시스템을 만들어요.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관습적 사고에서 벗어나서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계급이 정해져 있는 신분제 사회도 아니잖아요.”
이씨 같은 이를 지칭하는 말이 있다. ‘파이어(FIRE)족’이다. ‘경제적 독립과 조기 은퇴(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를 추구한다는 뜻이다. 1990년대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파이어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크게 늘었다. 경기 침체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밀레니얼들이 늦어도 40대 초반에 은퇴하는 것을 목표로 허리띠를 꽉 졸라매 은퇴자금을 모으는 삶의 양식을 택한 것이다.
조한울씨도 2030년 은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서울에 안 살고 ‘애·차·개 3종세트’만 안 하면 가능해요. 계산해보니 5억~6억원 정도만 있으면 원금 손실이 전혀 없이 월 150만원을 쓸 수 있겠더라고요.” 경제적 자유를 이룬 다음엔 생계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 꿈이다. “은퇴 이후 아예 일을 안 하고 놀겠다는 게 아니에요. 바리스타에 꽂히면 커피 내리는 일을 하고, 질리면 여행 가이드 하고… 톱니바퀴 속 노동자가 아니라 온전히 나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돈의편에_서면_지지않는다
중앙대 투자동아리 ‘VIM’ 학생들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암호화폐 관련 투자연구세션을 진행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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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길고, 주식은 언젠간 오른다”
군적금·장학금에 대출받아 넣기도
‘리스크’조차 이들에겐 희망의 다른 말
이들의 꿈은 실현 가능할까. 인터뷰에 응한 청년 다수는 주식을 ‘저축’처럼 여기고 있었다. 일부는 대출을 받아 투자하기도 했다. 정부가 보증하는 서민금융 ‘햇살론’을 이용해 투자자금을 마련했다는 대학생도 있었다. 투자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인터넷 기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투자금이 대거 몰렸다가 ‘거품’이 꺼지면서 대규모 주가 폭락이 있었던 2000~2001년의 일이 재현되는 것은 아닐까. 청년 투자자들에게 물었더니 “위기가 곧 기회”라는 답이 흔하게 돌아왔다.
“은행에 1000만원을 넣으면 10만원을 받아요. 주식은 지금 200만원을 넣으면 3개월만 해도 30만원은 벌거든요. 일종의 ‘고수익 적금’이죠.” 이렇게 말하는 권혜원씨(30)는 “좋은 회사의 주식을 사면 장기적으로는 주가가 반드시 오를 수밖에 없고, 그때까지 동요하지 않고 잘 버티기만 하면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믿는다.
“다들 그러더라고요. 외환위기 때도 현금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돈을 벌었다고.”
대학생 정지원씨는 이런 견해를 밝혔다. “실물경제가 망가지더라도 금융경제에서는 승승장구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기회를 포착하는 안목이 있다면 투자를 하는 게 오히려 경기가 나쁠 때 헤징(위험 회피) 효과가 있는 것 아닐까요?” 박재현씨(28)도 비슷한 생각이다. “옛날에는 주식 하면 망한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유튜브를 보니 주식은 도박 같은 게 아니라 공부해서 종목만 잘 고르면 손해는 안 보는 일 같더라고요.”
올해 4월부터 투자를 시작한 석종경씨(26)는 이렇게 말했다. “우린 어차피 오래 살아야 하잖아요. 지구가 끝장날 거라곤 생각하지 않으니까…. 지금 돈을 넣어 두면 중간에 폭락하더라도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언젠가는 다시 오르지 않을까요?”
심윤지·오경민·윤기은·이창준·조해람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①5%만 성공한다 해도…노동보다 투자가 “가성비 높다”
ㆍ밀레니얼 세대 투자 열풍의 의미는
MZ 세대(밀레니얼 세대+Z세대)의 투자 열풍이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사회경제적 의미를 전문가들은 어떻게 분석할까. 경향신문은 인류학과 문화학의 관점에서 한국의 재테크 현상을 살펴본 20~40대 젊은 연구자들과 과거부터 이어진 투자 흐름을 분석해온 금융전문가 등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들은 가성비 떨어지는 불안한 노동 현실과 공부한 만큼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믿음, 투자전문가들에 대한 불신이 ‘동학개미운동’이라 불리는 사상 최대의 직접투자 현상으로 나타났다고 얘기한다.
가성비 낮은 노동, 경제적 자유로
수많은 시간과 비용 들여 직장 얻어도
수도권에 번듯한 ‘내 집 마련’ 어려워
불안정한 현실이 더욱 투자로 내몰아
청년들에게 노동은 점점 더 ‘가성비 낮은 선택’으로 인식된다.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직장을 얻었지만, 월급과 저축으로 수도권에 ‘내 집 마련’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2016년부터 올해(1~7월)까지 연평균 임금상승률은 0.7~5.3%에 그친 반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매년(9월 기준) 7.0~22.9% 올랐다. “부동산시장에서 느끼는 청년들의 좌절과 분노가 주식투자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문화경제적 관점에서 한국의 재테크 현상을 연구해온 김보형 미국 밴더빌트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38)는 “노동과 저축만으로 자산 증식이 어렵다는 인식은 외환위기 이후부터 강화돼왔다”며 “20년이 지난 지금 금융투자가 노동의 대안으로 여겨지는 현실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이 더 악화됐음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청년들은 여전히 최소한의 경제적·심리적 안정을 위해 노동소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불안정한 노동 현실은 청년들을 더욱 투자로 내몬다. 김 교수는 “몸을 갈아넣듯 일해도 인간답게 살기 어렵다는 인식은 금융투자를 가성비 높은 선택으로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문화학과 박사과정에서 금융자본주의를 연구하는 박준영씨(40)는 “평균 5% 이내 사람들이 주식투자로 성공한다고 볼 때, 청년들은 그 낮은 확률을 ‘좋은 직장’에 취업할 확률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도 표현했다.
청년 다수가 투자 이유로 꼽은 ‘경제적 자유’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한국의 금융투자 문화를 연구하는 이승철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40)는 “엄청난 대박을 꿈꾼다기보다는 남들에게 갑질 당하지 않고 사는 정도의 자유”로 설명한다. 김 교수는 “억압적이고 집단적인 노동문화에서 벗어난다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30~40년 뒤 노후 걱정이 청년들의 투자 동기로 작용하는 현상도 주목해볼 수 있다. 지난 7월 나온 미래에셋의 밀레니얼 연구 보고서를 보면 청년들의 재무적 목표 중 ‘은퇴자산 축적’은 ‘주택구입 재원 마련’ 다음으로 중요했다. 현재 노동소득을 축적하는 국민연금으로는 노년의 경제적 자유를 누리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현재 소득대체율이 40%에 불과한 국민연금은 저출생·고령화로 수급자가 가입자보다 점차 많아지면서 이르면 2041년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MZ 세대가 투자 행위를 합리화하고자 경제적 자유 개념을 내세운다는 분석도 있다. 소득을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강조해온 한국에서 노동이 없는 주식·부동산 수익은 ‘투기’라는 부정적 관점으로 인식돼왔다. 김 교수는 “경제적 자유 개념이 청년들의 불로소득 추구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고 말했다.
투자는 공정하다는 믿음
누구도 정확히 예측 못하는 주식시장
한국 사회 곳곳의 불평등과 대비
청년들은 ‘공정한 경쟁의 장’으로 인식
청년들은 투자를 ‘공정하다’고 인식한다. 돈만 있으면 주식을 사고 매도·매수 종목과 시점을 스스로 선택해 수익을 거둘 수 있다. 누구도 다가올 상황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에 ‘위험(리스크) 부담’도 똑같다. 이는 ‘노력하는 만큼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귀결된다.
청년들이 생각하는 투자의 공정함은 실제로는 ‘기회의 평등’과 가깝다. 정보통신기술(ICT) 발달로 각종 투자 정보를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쉽게 얻게 됐다. 주식투자는 더 이상 금융기관과 전업투자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일상에서 유튜브 등을 통해 투자를 배우고 재테크를 함께 공부하는 현상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승철 교수는 “청년들은 주식투자를 공부한 노력의 결과가 나오는 공정한 경쟁의 장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주식시장은 개인의 노력과 무관한 요인이 개입되는 한국 사회의 여러 경쟁의 장과도 대비된다. 홍기빈 전환사회연구소 공동대표는 “노동시장에는 이른바 ‘엄마·아빠 찬스’가 있고, 안 좋은 대학교를 나오면 패자부활전도 주어지지 않는다”며 “청년들에게 투자는 아무런 배경이 없어도 최고가 될 수 있는 게임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주식시장은 투자 성패를 가를 수 있는 고급 정보에 대한 접근이 제한돼 있고, 성공한 개미보다 실패한 개미가 더 많다는 경험적 인식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청년들이 주식투자를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개인투자자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를 하는가?>라는 서울대 인류학과 석사 졸업논문으로 투자자들 사이에 이름이 알려진 김수현씨(26)는 “주식시장의 구조적 모순이나 불평등에 저항하기보다는, 이를 잘 간파하고 어떻게 이용할지에 더 관심을 갖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불신의 간접투자, 기회의 직접투자
전문투자자 불신으로 간접투자 줄고
스마트폰도 직접투자 진입장벽 낮춰
최근 청년들의 투자는 특정 회사 주식을 바로 사들이는 ‘직접투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과거 투자 열풍이 전문투자자가 운용하는 주식형 펀드에 대한 ‘간접투자’를 중심으로 일었던 것과 대비된다. 미래에셋 밀레니얼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투자 시 선호도는 주식 직접투자가 9%포인트 증가한 반면 주식·채권 혼합형 펀드는 4%포인트 하락했다.
최근 금융투자 통계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확인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사에 맡겨둔 대기성 자금인 ‘투자자 예탁금’은 지난 1월 28조7000억원에서 8월 60조500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9월 53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9월 주식거래활동계좌수는 3370만개로 1월보다 420만개 가까이 증가했고 이 중 절반 이상이 20·30대 소유인 것으로 분석된다.
간접투자가 외면받게 된 원인으로 우선 증권사 등 전문투자자들에 대한 불신이 꼽힌다. 과거 수수료까지 내며 간접투자한 결과는 좋지 않았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주식형 공모펀드 연평균 수익률(2.3%)은 평균 정기예금 금리(연 2.5%)보다도 낮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펀드 수익률이 기대치에 못 미치다보니 ‘전문운용사에 맡겨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발생한 ‘주식시장 양극화’는 청년들의 직접투자 심리를 자극했다. ICT와 친환경 산업의 주식 가치는 급상승한 반면 전통 제조업 등은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주가가 폭락했다. 최 센터장은 “잘 안되는 종목까지 보유한 펀드 등 간접투자를 선택할 요인이 줄었다”며 “결국 더 잘되는 주식에 집중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마트폰으로 주식투자를 가능케 한 기술 발달도 디지털 세대의 직접투자 진입장벽을 낮췄다.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에 익숙한 청년들이 투자 경험을 나누며 직접투자의 불안감을 해소한다는 분석도 있다. 유명 투자 유튜버 ‘삼프로TV’ 이용자들의 댓글을 분석한 박준영씨는 “주가가 상승했을 때는 축하하고 하락했을 때도 격려하는 등 투자와 관련해 심리적 위안을 주고받는다”고 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위기를 잘 이용하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청년세대의 인식 변화가 투자 증가를 이끈 중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투자 열풍을 두고 “주가 상승을 이끄는 개인투자자들의 힘이 처음 극대화됐다”고 설명한 그는 “청년들은 과감한 위험 부담으로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것을 유리한 전략이라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식투자 ‘유행’ 얼마나 갈까…베스트셀러로 본 재테크 20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한 청년이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 코너에 진열된 서적들을 둘러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지금은 모두가 주식투자를 하는 것만 같지만, ‘유행’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교보문고와 알라딘 경제경영 부문 베스트셀러를 살펴보니 당해 상황에 따라 관심 분야가 크게 갈렸다.
인터넷 기업에 대한 기대감이 증시에 반영됐던 2000년, 자본소득의 중요성을 설파한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재테크 열풍을 불러왔다. 같은 해 <나는 초단타매매로 매일 40만원 번다>가 나란히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2001년 ‘닷컴버블’이 꺼지자 투자를 권하는 책은 상위권에서 빠졌다. 생산성 향상과 리더십을 다룬 <겅호!> <프로페셔널의 조건> 등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 가장 많이 팔린 책은 <한국의 부자들> <나의 꿈 10억 만들기>였다. 정부가 부동산 관련 규제 정책을 쏟아냈으나 집값은 오르고 시장이 들썩이던 때다. 이듬해 <집 없어도 땅은 사라> <부동산과 세금> 등이 크게 환영받았다.
자본 소득 중요성 설파한 ‘부자아빠…’
IT 기대감 불던 2000년에 많이 팔려
노무현 정부 땐 부동산 서적들 인기
금융위기 당시엔 투자 관련 책 사라져
최근 다시 주식 관련 서적 상위권으로
2006년부터 이듬해까지, 사회 초년생을 대상으로 저축과 투자의 중요성을 설파한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가 상위권을 장악했다. 2008년에는 <현영의 재테크 다이어리>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에는 미국 화폐발행권을 둘러싼 음모와 갈등을 다룬 중국 학자 쑹훙빙의 <화폐전쟁>이 큰 인기를 얻었다. 세계적 불황이 오면서 투자 관련 책은 한동안 상위권에서 사라졌다. 2010년부터 2년간은 국내외 경제질서에 비판적인 서적이 잘 팔렸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삼성을 생각한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이다. 이 기간 상위권에 살아남은 재테크 서적은 저축의 중요성을 강조한 <4개의 통장>과 <운명을 바꾸는 10년 통장>이었다.
2013년부터 부동산 관련 책이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나는 돈이 없어도 경매를 한다>가 대표적이다. 부동산시장이 침체되고 담보대출을 갚지 못하는 집주인이 늘면서 경매에 나온 집이 많은 때였다. 2015년에는 <나는 부동산과 맞벌이한다>가 상위권에 올랐다. 저자는 종잣돈 1500만원으로 집을 41채 샀다며 독자들에게 “전세금 상승분을 이용해 집을 계속 사 모으라”고 조언했다.
2016년부터 2년간은 산업 변화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우버, 에어비앤비 등의 성공을 다룬 <제4차 산업혁명>과 소셜미디어와 마케팅 분야의 혁신을 다룬 <필립 코틀러의 마켓 4.0>이 인기였다.
2018년, 자수성가한 30대 미국 사업가가 쓴 책 <부의 추월차선>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저자는 노동으로 돈을 벌어 아끼고 모으는 사람을 ‘현대판 노예’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임대 시스템, 콘텐츠 시스템 등으로 부를 창출하는 ‘지름길’에 진입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2019년, 20년 전 베스트셀러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가 다시 1위에 등극했다. 올해 가장 인기 있는 두 권의 책은 지난 2월 베스트셀러에 오른 후 10위권 밖을 벗어난 적이 없다. <주식투자 무작정 따라하기>와 <존리의 부자되기 습관>이다./박광연·최미랑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①88년생 '돈알못'의 파산 후기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청년들의 투자 열기가 뜨겁다. 경향신문은 9월1일부터 30일까지 전국 20~34세 청년들에게 돈과 투자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많은 청년들이 투자를 통해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싶다고 했다. 일을 안 하거나 할 수 없게 되더라도 금융소득으로 생계 유지가 가능하게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1981년 이후 출생자)’와 ‘Z세대(1997년 이후 출생자)’ 사이에 널리 퍼지고 있는 이같은 인식을 들여다보기 위해 금융지식 공유 스타트업 ‘캐컴’을 취재한 내용을 후기 형태로 전한다
경향신문 기자들이 스타트업 캐컴이 보드게임을 통해 제공하는 ‘금융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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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나의 파산에 대한 회고이다. 다행히, 게임에서 말이다.
금요일 밤 우리 넷은 마스크를 쓰고 역삼역 인근의 회의실에 모여 앉았다. 사회부 심윤지(28), 사진부 권도현(32), 경제부 박광연(30) 그리고 나.
텅빈 대차대조표와 연필, 계산기, 그리고 쥐 모양 말이 우리 앞에 주어졌다. 90분간 진행되는 이 게임의 목표는 ‘쥐탈출’. 쳇바퀴 돌듯 월급 기다리는 삶을 벗어나려면, 나 말고 돈이 벌어온 돈, ‘불로소득’이 지출보다 커야 한다고 했다. 이를 달성하면 패스트트랙을 달려 꿈을 이루게 된다.
주사위를 던져 말을 옮기면 우리네 인생에서처럼 돈 쓸 일도 찾아오고 돈 벌 기회도 찾아온다. 뭔가 선택할 때마다 각자 계산기를 두드려 자신의 대차대조표를 고쳐 쓴다.
나는 애초에 직업 카드를 잘못 뽑았다. 옆자리의 심은 의사가 됐는데 나는 트럭운전수였다. 월급이 대여섯 배 차이가 났다.
시작한지 얼마 안 돼 내 말이 ‘출산’에 멈췄다. “와! 축하합니다!” 게임규칙에 따라 모두가 박수를 쳤다. 내 입에선 “헐” 소리가 나왔다. 재무제표에 육아비용을 더하자 현금흐름이 즉시 반토막이 났다. 카드를 뒤집으면 이따금씩 투자기회가 주어졌지만 내게 주어진 돈으론 살 게 마땅찮았다. 찔끔 주식을 사 봤지만 별 도움이 안 됐고 부동산은 시도도 못했다.
주사위 말이 ‘해고’에 멈췄을 때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월급은 끊기는데 대출금은 계속 내야했다. 아이가 또 태어났을 때는 맙소사, 육성으로 “아아악”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나는 안심하고 있었다. 심을 빼면 우리 다 고만고만한 것 같아서였다. 맞은편 권은 나보다 월급 쬐금 더 받는 교사, 대각선의 박은 나보다도 더 못 받는 정비공. 우리 중 그래도 박이 이재에 밝긴 하다. 평소 동기들이 하겐X즈 아이스크림이나 마카롱 사먹는 걸 보면 돈 못 모은다고 잔소리하는 게 그의 역할.
박은 우리들 주사위가 구르는 동안 자신의 대차대조표를 열심히 들여다보더니 기본값으로 주어진 빚부터 척척 갚았다. 이자로 나가는 돈을 줄여 현금흐름을 확보해 투자에 쓰려는 것이었다. 그제야 내 부채란을 자세히 들여다봤을 땐 이미 현금이 없어 빚을 줄일 방법이 없었다. 옆에서 의사 선생 심이 투자를 거듭해 대차대조표를 바쁘게 썼다 지웠다 하는 동안 나는 멍하니 앉아있을 밖에.
“저, 할 것 같은데요?” 게임종료 3분을 남기고 박이 말했다. 어느 순간부터 빚 쭉쭉 당겨 이것저것 사모으더라니, 쥐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박의 말은 패스트트랙으로 나가고 이젠 주사위도 한 개가 아닌 두 개로 던지는 것이었다. 심이 옆자리에서 허탈한 듯 불만을 터뜨렸다. “이렇게 많이 버는데도 나는 왜 안돼!”
박도 게임 종료 삼십분 전에 출산에 당첨됐다. 그러나 나와는 상황이 달랐다. 이미 자산축적과 그에 따른 금융소득이 궤도에 오른 후라 아무 타격이 없는 듯 했다.
심에겐 기본값으로 주어진 주택대출과 학자금대출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권은 부동산엔 진입조차 할 수가 없었다며 슬퍼했다. 게임이 종료되자 매니저 이은수씨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어찌나 답답하던지! 두 분이 대출을 엄청 두려워하시더라고요!” 놓쳐버린 기회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권과 심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나는 쳇바퀴의 굴레 안에 남았을 뿐 아니라 파산까지 했다. “기자님은 운이 나빴던 거예요. 세 번 해고당하고 애도 둘이나 낳았잖아요.” 그저 게임일 뿐인데, 운이 나빴을 뿐이란 말이 위로가 되지 않았다.
캐컴은 이 쥐탈출 게임을 활용해 금융지식을 공유하는 스타트업이다. 이곳 대표인 이씨는 국내 식품 대기업에서 3년여를 일하다가 올해 퇴사했다고 한다. 몇해 전 쥐탈출 게임을 해보고 큰 충격을 받은게 계기가 돼 투자를 시작했다고 했다. 승진, 연봉, 카드값, 아이 학원비…. 선배들 사는 걸 보니 그게 사는 건가 싶었다고 한다.
이씨는 “돈을 모르고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건 노예를 자처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지금은 신분제 사회가 아니잖아요. 부자될 방법이 있는데 왜 시기, 질투, 동경만 해요?” ‘난 안 될거야’ 말하는 친구들 보면 정신 차리게 해 주고 싶단다. 캐컴이 투자를 받게 되면서 부업으로 하던 매니저 일을 올해부터는 본업으로 하게 됐다. 다들 여기 와서 돈 얘기 좀 실컷 했으면 좋겠다고.
이씨와 공동대표인 김주환씨(25)도 짧은 회사 생활을 해 봤다. 과장님, 부장님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저토록 훌륭한 능력을 갖췄는데 잘 돼도 저 모습이라니. 인천국제공항공사 취업을 목표로 편입을 준비 중이었는데, ‘나인투식스’의 삶으론 부자 근처에도 못 가겠다고 생각해 진로를 틀었다. 부자 되는 방법을 부자만 아는 건 부당하다는 생각으로 캐컴 일을 맡았다.
게임이 끝난 후 우리는 곧 두 사람의 활기와 총기에 압도당했다. 이씨는 ‘스타벅스 커피 마실 돈으로 스타벅스 주식 한 주를 사라’는 경구를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었다. 지난주에는 버스를 타고 판교를 지나다 네이버 사옥 옆에 이 회사 새 건물이 올라가는 걸 보고 네이버 주식을 더 샀다고 했다. 치킨을 먹다가 양념이 훌륭하면 이런 건 어디서 만드는지 관련 기업 주식을 찾아 본다고도 했다. “기업분석, 가치투자, 이런 것 몰라도 시작할 수 있어요. 완벽하려고 생각하면 돈 언제 벌어요.”
박이 미국 인덱스 펀드로 10%대 수익을 내고 있다고 밝히자 이씨가 눈을 반짝이며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칭찬의 뜻이었다. “밤에도 돈 벌고 계시네요.”
두 사람에게 순수하게 자기 돈으로 시작한 투자로 얼마를 모았냐고 물어봤다. 그동안 서로도 공개하지 않았던 눈치였다. 둘다 현재 ‘굴리는’ 돈이 1억원 정도라고 했다. 4년 넘는 회사생활로 얼추 이 정도 모은 게 큰 자랑이던 박이 흠칫하는 게 느껴졌다. 수익률을 묻자 이씨가 30%정도라고 했다. “아뇨. 더 먹을 수 있었는데요.” 몹시 높은 것 아니냐는 감탄이 이씨 말에 잘렸다.
“대표님은 목표가 뭔가요?” 박이 이씨에게 물었다.
“서른에 은퇴요. 지금 제가 스물 셋이니까요.”
둘러앉은 우리 모두 마스크 안에서 벌어진 입을 한동안 다물지 못했다. 서른…. 심은 이 년, 박은 일 년 남았네….
그는 98년생. 나는 88년생. 우리는 열 살 차이가 난다. 나는 저때 뭘 하고 있었지? 이 분은 내 나이 땐 뭘 하고 있을까. 특성화고를 다닌 이씨는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곧바로 취직을 했다. 무역과 금융에 흥미를 느껴 투자자문사를 찾아다니고 관련 책과 유튜브 콘텐츠를 섭렵하며 돈 공부를 했다고 한다. 지금 투자해 모은 돈으로 서른엔 월급에 매이지 않고 금융소득을 굴려 생활하면서 하고싶은 사업을 구상할 거라고 했다.
대학 문을 나온지 올해로 꼭 10년째. 세 군데 직장을 거치며 쓰고 남은 돈은 대충 전세금에 처박아둔 내 머릿속에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아니야, 그래도 ‘밀레니얼’인데 선곡을 바꿔야지. ‘넌 멍청이! 트윗! 트윗! 트윗! 트윗!’ 그동안 우리들 앞에 위풍당당하던 박도 어깨가 축 내려간 것이 생각이 많아진 듯 했다.
“여러분, 시장의 공황은 기회란 걸 꼭 기억하세요. 주식시장에서 시간은 젊은 사람들 편이니까요.” 카페를 떠나는 우리를 배웅하며 이씨가 이렇게 말해주었다. 요즘 가는 곳마다 한숨 뿐인데, 어디서도 들지 못한 희망의 말들이 이곳에 있었네.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시민 10명 중 6명 “한국은 불공정 사회”…‘공정’에 대한 갈증 여전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노력·능력보다 부모 등 배경이 성공 좌우”
20~60대 모두 1순위로 꼽아
시민들은 한국 사회에서 성공을 결정하는 데 있어 ‘본인 노력이나 능력’보다 ‘부모 등 배경’이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자녀 특혜 의혹 등을 거치면서 부모의 지위가 자식에게 대물림되는 현상과 관련한 불신이 커진 결과로 풀이된다.
경향신문·한국리서치가 5일 공개한 창간 74주년 기념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33%가 보상이나 성공을 결정하는 데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부모 등의 배경이나 외부 압력’이라고 답했다. ‘본인 노력이나 능력’(27%)보다 6%포인트 높다. ‘혈연·지연·학연 등 연고’(19%), ‘결정자나 윗사람의 편견이나 감정’(11%) 등이 뒤를 이었다.상당수가 한국 사회에서의 성공 여부에 개인 노력·능력보다 별도의 편법이 개입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70대 이상을 제외한 모든 세대에서 ‘부모 등 배경이나 외부 압력’이 성공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답했다. 특히 30대에서 ‘부모 등 배경이나 외부 압력’ 응답비율이 가장 높았고, ‘본인 노력이나 능력’ 응답비율은 가장 낮았다. 30대의 41%가 ‘부모 등 배경이나 외부 압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본인 노력이나 능력’(22%)이 가장 중요하다는 응답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20대에서도 36%가 성공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모 등 배경이나 외부 압력’이라고 답했다. ‘본인 노력이나 능력’은 31%였다.
한편 20·30대와 60대가 ‘혈연·지연·학연 등 연고’ 응답이 16~17%로 나타난 데 비해 40·50대는 각각 23%, 27%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성공에 연고가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총장은 장관 부하가 아니다” 윤석열 발언이 남긴 과제…검찰 ‘정치적 독립’과 ‘민주적 통제’의 양립
‘거역’ ‘중상모략’ ‘부하’ ‘장관이 친구냐’….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주고받던 거친 말폭탄은 지난 22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화려하게 터지며 주목을 끌었다. 국감 중계방송 합계 시청률이 10%에 육박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내용 면에서 국감은 두 사람의 갈등이 정쟁의 소재가 된 현상만 두드러지게 보여줬다. 정치권력이 장악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어려울 정도로 검찰 권한이 막강하다는 사실이 재확인된 반면, 건설적 해법은 논의되지 못했다.
가장 주목받은 발언은 “검찰총장은 법무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는 윤 총장의 말이었다. 라임 사건과 가족 관련 수사에 총장을 배제하는 수사지휘를 한 것을 겨냥했다. 윤 총장은 ‘준사법기관’ 검찰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행정부의 개입으로 해석한 반면, 여권은 이 발언을 검찰이 선출된 권력의 민주적 통제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부하’란 말을 의전상 상하관계나 인사 등 일반적 사무에서 지휘를 받는 관계라고 해석하면 검찰총장을 법무장관 아래로 보는 것이 맞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러나 총장이 장관 명령을 일방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존재는 아니며 이 관점에서는 윤 총장 발언이 꼭 틀린 것도 아니라는 견해도 많다. 검찰청은 법무부의 외청 형태로 존재하지만 사무관할에 있어서는 준사법기관으로 분류되며, 검사는 개개인이 독립 관청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검찰청법 제8조는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라면서도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돼 있다.
검찰을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면서, 동시에 민주적으로 통제한다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실상 유일한 규정이다. 장관이 인사·감찰권을 쥐고 총장을 통해 개입하되 개별 사건에 대해선 검사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이다. 이 때문에 지방검사장이 장관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도록 하자는 법무검찰개혁위원회 권고안은 검찰의 정권 예속 가능성을 높인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당은 총장에게 수많은 첩보보고가 올라가는 것을 우려했다. 이 경우 보고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정한중 한국외대 교수는 “총장이 사건에 대해 지휘할 필요도 있고, 지휘를 전제하려면 보고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감에서도 여당은 지난해 서울중앙지검이 옵티머스 사건을 무혐의 처분해 피해가 커졌다며 당시 지검장이던 윤 총장에게 책임이 있다고 따졌지만 윤 총장은 “부장검사 전결사안이라 (보고 받지 못해) 수사에 대해 알지 못했다”며 “좀 더 살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답했다. 다만 정 교수는 “이번 국감을 보니, 그런 (첩보)보고를 너무 많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일선 검사에 대한 대검의 통제가 심해질 우려가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검찰이 독립성을 내세우면서 ‘준사법기관’으로서 지위만 주장하는 것에는 온전히 동의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정태호 경희대 교수는 “소극적으로 기소되기를 기다렸다가 사건을 심리하는 사법부와 달리 검찰은 적극적으로 사건을 찾고 수사를 한다는 점에서 그 본질은 행정기관”이라며 “검찰이 준사법기관의 지위를 가지려면 검사가 법에 규정돼 있는 객관 의무에 충실해야 하는데, 한국 검찰은 민사소송의 당사자처럼 움직이는 관행이 있다”고 말했다.
법규에 규정된 총장의 권한이 논란이 되는 것은 검찰의 권력 자체가 비대한 데다 잘 통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직접수사권과 경찰 수사지휘권을 모두 갖고 있으며, 기소권은 독점한다. 정한중 교수는 “총장의 권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검찰이 직접수사를 너무 많이 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며 “총장과 장관 모두 법에 규정된 권한을 자제해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당 의원들이 검찰권력의 구조적 문제를 총장 개인의 문제로 몰고 가면서 이런 측면이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장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는 “바람직한 검찰개혁과 검찰의 상을 잡기 위한 정책적 방향에서 국감이 이뤄졌어야 하는데 전무했다. 마치 윤 총장 인사청문회 같았다”고 평했다. 그는 “내년 시행을 앞둔 수사권 조정에 대한 점검이라도 이뤄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윤 총장과 여당 의원들이 모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며 형사사법제도의 근본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장이 열렸다는 점에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며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인사기구 등을 만들어 유신시대·5공 때 만들어진, 검찰총장에게 권력이 집중된 피라미드형 조직구조를 21세기에 맞게 고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은하·이보라·허진무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부루오션-장관의 지시를 선처 요청이라고 말하는...... . 또 법무부 휘하에 있으면서 부하가 아니라는 검찰총장... 통제 않되는 희안한 권력형 검찰 총장을 대통령이 응원했다고.... 진짠가?.. .. .과거독재 정부에서는 그냥 단칼에 아웃인데... 민주주의 좋은 건가?, 희안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골치 아픈 환부는 도려 내야 하는데..... 추다르크가 유일한 대안이네..........공감10/반대1
능선길-팔이 안으로 굽는 게 정치적 독립은 아니지 않은가? 울산 고래고기 30억 뇌물도 무혐의 부하 여검사 성희롱도 무혐의 동영상도 무혐의 그렇게 웬만한 건 다 무혐의 주는 치외법권지대가 검찰인데 여기서 더 이상의 정치적 독립 운운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스스로 정화가 안 된다면 통제를 받아야만 하는 집단이라는 뜻이다. 권력은 능력이나 사고방식에 비해 너무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사권이든 기소권이든 하나를 내려 놓게 하거나 국민이 뽑은 정권의 통제를 받으면서 간접적인 심판을 받게 하거나 아니면 공수처 밖에는 지금은 논의할 어떤 다른 주장도 불필요하다고 본다.
검찰을 비호하는 것이 검찰로부터 단독이니, 독점이니 하는 혜택을 받기 위한 것인가?
꼭 그래야만 언론으로 존재할 수 있다면 차라리 경향은 문 닫아라!그게 국민과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마지막 길이다.
내멋에산다-한마디로 말하면 안하무인 수구꼴통 꼰대 총장이란 생각 밖에 없네요. 검찰총장은 누구의 지휘통제도 받지 않겠다는 잘못된 사고의 소유자 참 끔직합니다. 점잖은 박상기법무장관의 지시도 마치 아랫 사람이 윗사람에 선처를 요청했다는 식의 생각 어이상실입니다. 이런 정치검찰이 총장으로 있는 이상 검찰의 어떤 수사도 믿을 수 없다고 봅니다. 추미애 법무장관은 끊임없이 검찰의 잘못된 관행과 사고를 뜯어 고치기 위한 감찰과 지휘권 행사를 반복해 시행해야 할거라 봅니다. 문재인정부 들어서 검찰에 정치로 부터 독립된 수사를 보장해 주었더니 대통령 상투 위에 올라 앉아 수염을 흔들고 있으니 분노가 치밉니다.
‘검사 술 접대 은폐 의혹’ JTBC 보도가 오보라고?
조선일보 “JTBC 오보 판명”→“오보 논란 제기”… JTBC 법조팀, 증언 토대로 한 내용 “은폐 의혹, 계속 취재해 보도”
윤석열 검찰총장이 출석한 지난 22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말미. 뜨거운 쟁점 가운데 하나는 JTBC 보도였다.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후 JTBC 뉴스룸 단독 보도를 인용하며 ‘검사 술 접대 의혹’이 검찰에 의해 은폐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JTBC는 이날 “1년 전 ‘그집’ 종업원 ‘김봉현과 검사들 왔었다’”라는 리포트를 통해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검사들에게 술 접대를 했다는 서울 청담동의 한 유흥업소 현장 소식을 전했다. 김 전 회장이 지난해 7월 A변호사와 검사 3명에게 1000만원어치 술접대를 했다는 장소다.
JTBC는 유흥업소 종업원들 증언을 보도했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종업원들은 “검사들이 왔고, 일행 중에 변호사도 있었다”, “비밀대화방, 접대방, 대기방으로 부르는데 모두 예약했다. 검사들은 비밀대화방에 있었다”고 증언했다.
▲ JTBC 뉴스룸 22일자 리포트 “1년 전 ‘그집’ 종업원 ‘김봉현과 검사들 왔었다’”. 사진=JTBC 뉴스 갈무리.
가장 눈에 띄는 증언은 “올해 4월쯤 서울남부지검 검사와 수사관들이 현장 조사를 위해 찾아왔다”는 대목. 익명의 종업원(보도에서는 ‘종업원 2’로 표기)은 “남부지검에서 한 번 와서 가게가 뒤집어진 적 있다”며 “영장 없이 오셔서 ‘영장도 없이 왜 왔냐’고 했고, 그때 제가 가게에 있었다. (종업원 B씨의) 휴대전화도 가져가고 김봉현씨 그 부분 때문”이라고 말했다.
JTBC는 이어진 리포트에서 “JTBC가 만난 종업원들은 서울남부지검 검사와 수사관들이 찾아온 시점을 지난 4월쯤으로 기억했다”면서 “당시 검찰 사람들은 ‘김봉현 때문에 왔다’며 김 전 회장 카드 거래내역을 보여줬다고 한다. 또 ‘검사들도 업소에 손님으로 다녀간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김남국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JTBC 보도를 인용하며 “(남부지검이) 지난 4월 현장에 나가서 검사들 비위를 구체적으로 조사했다는 것이다. (검사 비위 사실이 검찰총장에게) 보고되는 게 맞지 않느냐”고 윤 총장에게 따져 물었고, 윤 총장은 “보고 받은 바 전혀 없다. 남부지검이 김봉현 조사를 시작한 게 5월 말인데 (남부지검이) 어떻게 4월에 현장조사했다는 것인지 시간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어 윤 총장은 남부지검에 확인했다며 “김봉현씨는 4월23일 체포돼 수원으로 압송됐고, (JTBC가 보도한) 유흥주점 3곳에 대한 압수수색은 지난 4월14일 영장을 받아 21일 압수수색을 집행했다”며 “(유흥주점 압수수색은) 청와대 행정관의 금융감독원 검사 무마와 관련돼 있는 것이었지 김봉현 진술을 듣고 한 것이 아니다. (압수수색 시점은) 김봉현 체포 전”이라고 반박했다. 즉, 김봉현 전 회장이 ‘검사 접대’ 진술을 검찰에 하기 전 시점에 남부지검 수사팀이 ‘검사 접대’ 비위를 파악하려 유흥주점 압수수색에 나서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
▲ 조선일보는 22일 늦은 밤 “JTBC 오보로 ‘검사 접대’ 헛발질 질문한 민주당 김남국… 尹 ‘무슨 말인지’”라는 제목의 기사(위 사진)를 보도했다. 이 기사 제목은 “‘검사 접대’ 헛발질 질문 민주당 김남국… 尹 ‘무슨 말인지’”로 바뀐 상태다. ‘JTBC 오보로’라는 표현이 제목에서 빠졌다. 사진=조선일보 기사 갈무리.
그러자 일부 언론은 JTBC 보도가 오보였다며 김 의원 질의를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22일 늦은 밤 “JTBC 오보로 ‘검사 접대’ 헛발질 질문한 민주당 김남국… 尹 ‘무슨 말인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 의원은 JTBC 보도를 인용해 질문을 한 것이었는데, 사실상 해당 보도는 오보로 판명났다. 당시 남부지검 검사들이 유흥업소에 조사를 나간 것은 김 전 회장이 체포도 되기 전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김 전 회장이 아직 체포도 되지 않았고, ‘검사 접대’ 진술은 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남부지검이 ‘검사 접대’ 로비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유흥업소를 조사했다는 앞뒤 안 맞는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조선일보 보도 제목은 현재 “‘검사 접대’ 헛발질 질문 민주당 김남국… 尹 ‘무슨 말인지’”로 바뀐 상태다. ‘JTBC 오보로’라는 표현이 제목에서 빠졌다. JTBC 보도가 “오보로 판명났다”는 표현도 “오보 논란이 제기됐다”고 수정됐다. 원래 보도에서 한 발 물러난 모양새다.
JTBC 취재진은 오보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JTBC는 전날에 이어 23일 오후에도 ‘검사 술접대 의혹’을 추가 보도할 예정이다. 연속 보도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윤 총장이 ‘김 전 회장 체포 시점보다 압수수색 시점이 앞선다’며 검찰의 조사 은폐 가능성을 차단한 것에도 JTBC가 구체적으로 반박할지 주목된다.
JTBC 법조팀은 23일 오후 미디어오늘에 “22일자 보도는 현장에서 종업원들에게 들은 증언을 토대로 보도한 것”이라며 “‘검사 술접대 의혹’과 ‘은폐 의혹’이 사실인지 여부를 계속 취재해 보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이목 집중된 윤석열 국감, 언론의 평가는?
[아침신문 솎아보기] 중앙일보 “윤석열 말이 옳다” 한겨레 “윤석열 성찰 없어” 경향 “여야 부끄러운 줄 몰라”
수사지휘권 문제와 관련 윤석열 총장은 “법리적으로 검찰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며 강경하게 말했다. 박범계 의원이 “윤석열의 정의는 선택적 정의”라고 말하자 윤 총장은 “선택적 의심이 아닌가. 과거에는 저에 대해 안 그러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윤 총장은 추미애 장관의 인사에 대해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던 검사들이 좌천되는 일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1월 이후에는 좀 많이 노골적인 인사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윤 총장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임명권자인 대통령께서 총선 이후에도 적절한 메신저를 통해 흔들리지 말고 임기를 지키면서 소임을 다하라고 말씀 주셨다”고 답했다.
라임 사건에 대한 법무부의 지휘권 행사와 관련 윤 총장은 “부당한 것은 확실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사기꾼이라고는 말을 안 하겠지만 중범죄를 저질러 장기형을 받고 수감 중인 사람들의 얘기, 중형의 선고가 예상되는 사람들의 얘기 하나를 가지고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검찰을 공격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했다. 채널A, 라임사태 등 지휘권 발동에 대한 지적으로 보인다.
조중동, 윤석열에 힘 싣기
이날 보수신문은 윤석열 총장의 발언을 제목으로 전하는 기사가 많았다. “윤석열 ‘한동훈 비호? 식물 총장인데 누굴 비호하겠나’” “윤석열 ‘박상기 장관이 조국 선처해줄수 있냐고 물었다’” “검찰총장은 장관 부하 아냐... 지휘권 위법”(조선일보) 기사가 대표적이다
중앙일보는 “윤석열 검찰총장 말이 구구절절 옳다” 사설을 내고 “이런 황당한 사태의 배경에는 정권의 뜻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고 울산시장 선거의혹,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비리 수사를 진행한 윤 총장의 소신이 있다는 것을 국민은 안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앙일보는 “전 정권 관련 수사를 할 때는 정의로운 검사라고 한껏 치켜세우더니 자신들에게 칼날이 향하자 적폐 검사로 모는 여권의 자가당착”이라고 꼬집었다.
조선일보 역시 사설에서 “지금 정권은 사기범들의 말을 이용해 윤 총장을 공격하고 있다.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행태”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문재인 정권 이후 정치가 사법의 영엽을 자꾸만 침해하고 권력의 힘으로 지배하려는 행태가 잦아지면서 오늘의 사태를 낳은 것”이라고 했다.
양측 비판한 경향, 윤석열 비판한 한겨레
반면 한겨레는 윤 총장에 비판적인 사설을 냈다. 한겨레는 “지휘권 수용해놓고 ‘위법’... 장관 저격한 검찰총장” 기사에 이어 “수사지휘 수용하고 국감서 비난 쏟아낸 윤 총장” 사설을 냈다. 한겨레는 수사 지휘권과 관련 “사흘 전엔 곧바로 수용해놓고 국정감사장에서 뒤늦게 비난을 쏟아내는 걸 보니 당혹스럽기까지 하다”며 “윤 총장은 또 가족 관련 사건이나 언론사 사주 만남 등에 대해선 전혀 성찰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정치권의 진영논리를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여야 모두를 겨냥했다. 경향신문은 “라임수사 사령탑 사임 속 진영논리 대결장 전락한 검찰” 사설을 통해 “추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충돌로 검찰이라는 공적 시스템이 갈수록 망가지는 모습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1년 3개월 전만 해도 윤 총장을 옹호하던 여당, 비난하던 야당이 정반대 주장을 하면서 부끄러운 줄 모른다”며 여야를 함께 비판했다. 보수신문이 여당의 이중성만 지적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대목이다./금준경 기자 teenkjk@mediatoday.co.kr
부동산 쭉쭉 오르는데 월급은…자산 불평등 ‘갈수록 심화’
ㆍ피케티지수, 10년 동안 계속 상승
ㆍ작년 8.6…일본 버블 때보다 높아
불평등 수준을 보여주는 ‘피케티지수’가 한국에서 최근 10년간 줄곧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가격 상승률이 국민소득 증가율을 앞지른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은 지난해 한국의 피케티지수가 8.6으로 전년(8.1)보다 0.5 상승했다고 한국은행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전했다. 2010년 7.6을 기록한 이후 오름세다. 지난해 같은 기간 선진국에 비해서도 높다. 독일의 피케티지수는 4.4, 미국 4.8, 프랑스 5.9, 영국 6.0, 일본 6.1, 스페인 6.6 등이었다.
피케티지수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고안한 것으로, 가계와 정부의 순자산을 국민순소득으로 나눠 산출한다. 수치가 높을수록 한 사회에서 평균적인 소득을 올리는 이들이 부를 쌓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며, 소수가 고가의 자산을 많이 점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가계가 보유한 부동산·상가·금융자산 등 순자산 총액은 9307조원, 정부가 보유한 순자산은 4391조원으로 이 둘을 합친 국부(國富)의 연말잔액은 1경3698조원, 피케티의 수식에서 사용하는 평균잔액 기준으로는 1경3357조원이었다. 같은 기간 국민순소득은 1554조2000억원이었다.
특히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토지자산 비율은 2013년 4.0배에서 2018년 4.3배, 2019년 4.6배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그만큼 가팔랐다는 뜻이다. 일본·프랑스·호주 등은 2.4~2.8배이고, 캐나다·네덜란드는 1.3~1.6배 수준에 불과하다.
고 의원은 “부동산 버블이 극심하던 1990년 일본의 피케티지수가 8.3이었는데 지난해 한국은 이보다도 더 높다”며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지나치게 가격이 높은 부동산시장이 정상화돼야 한다”고 말했다./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정부재정으로 가계부채 덜어주는 선진국...“한국, 재정준칙으로 막는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조폐공사 등 종합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제공 = 뉴시스
선진국이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부재정으로 가계부채를 덜어주는 데 방점을 두고 있는 데 비해 한국정부는 재정준칙을 도입하는 등 ‘돈줄 묶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질타가 23일 나왔다.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안’을 발표한 홍남기 부총리겸 기획재정부장관은 ‘그 정도는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고수했다.
앞서 5일 홍 부총리는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안’을 발표하며 “재정준칙의 기본 구상과 설계는 통상 재정건전성이 합리적으로 확보·견지되도록 재정준칙을 마련하되, 심각한 국가적 재난위기 시 재정역할이 제약받지 않도록 한다는 기조 하에 검토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유연성을 일부 뒀지만 재정준칙의 기본 원칙은 ‘재정건전성’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양산시 을)은 이날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정부가 빚을 안지면 국민이 빚을 지게 된다”라며 선진국 6곳과 한국의 재정상황을 비교한 결과를 발표했다.
김 의원이 2006년부터 올해까지 총 15년간 인구 5천만명 이상, 1인당 GDP 3만 달러 이상인 6개 국가(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일본)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과 가계부채비율을 분석한 결과, 2006년 이후 현재까지 이들 국가의 정부부채 비율은 2006년 86%에서 현재 153.4%까지 상승한 반면, 가계부채 비율은 64.8%에서 62.9%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김 의원은 재정준칙이 엄격하기로 유명한 ‘독일’의 사례도 언급했다. 김 의원은 독일이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가계부채가 늘어나자 정부 부채비율을 77.9%에서 90.4%로 큰 폭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위기 상황인 만큼 정부가 빚을 내서라도 가계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적극 지원한 것이다.
김 의원은 “그 결과, (독일의) 가계 대출비율은 2009년 이후 오히려 줄어들었다”라고 설명했다.
6개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가계부채비율은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주요 선진국의 평균 정부부채 비율은 153%인 데 비해 한국의 정부부채 비율은 40%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가계부채의 경우 주요 선진국은 평균 62.9% 수준인데, 한국은 95.9%에 이른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양산시 을)은 23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세계 6곳과 한국의 재정상황을 비교한 자료를 발표했다.ⓒ제공 = 김두관 의원실
김 의원은 “다른 선진국들이 정부재정으로 가계 부담을 덜어줄 때 기재부는 ‘돈줄’을 묶어두고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질타했다.
홍남기 부총리는 “세입 증가율 등 여건을 볼 때 재정이 더 이상 적극적으로 역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재정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라며 “코로나19 위기 과정에서도 4차례 추경을 통해 재정 역할을 소홀했다고 보지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홍 부총리는 김 의원이 “한국은 재정이 튼튼한데 가계부채로 힘든 국민들을 생각해 재정준칙 도입안을 포기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을 하자 “예”라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이어 “(기재부는) 재정준칙을 제시하면서 예외적인 보강장치를 마련하고 25년 회계년도에 적용하는 등 사전 준비, 완충 장치를 마련했다”라며 “그 정도는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뜻을 꺾지 않았다. / 민중의 소리 장윤서 기자
딥페이크가 만들어낸 두 얼굴의 시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전·현직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와 도널드 트럼프까지. ‘딥페이크(deepfake)’ 영상에 나오는 주인공들이다. 인공지능을 이용해 특정인의 얼굴을 다른 화면에 덧입혀 디지털 영상을 위조하는 이 기술을 활용하면 각국의 지도자가 실제로 말하고 움직이는 듯이 꾸밀 수 있다. 살아 있는 사람들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살바도르 달리나 앤디 워홀 등 이미 세상을 떠난 예술가의 얼굴도 딥페이크 기술로 재현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 시도 역시 눈길을 끈 바 있다. 기술의 발달로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진짜 얼굴과 가짜 얼굴의 차이를 눈여겨봐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디즈니연구소가 공개한 고해상도 딥페이크 영상. 윗줄 가장 왼쪽의 배우 얼굴에 아랫줄 배우들의 얼굴을 덧입힌 영상을 나란히 제시하고 있다. / 디즈니연구소
지난 9월 29일 미국 비영리단체 리프리젠트어스(RepresentUs)가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민주주의는 선거가 실패하면 사라지고 마는 취약한 것”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김정은 위원장의 얼굴이란 걸 알 수 있지만 여기 나오는 그의 얼굴과 행동은 진짜가 아니다. 단지 얼굴만 덧씌워 합성한 티가 나는 것도 아니고, 표정과 목소리까지 실제에 가깝게 구현하기 때문에 얼핏 봐선 부자연스러운 점을 찾기 힘들다. 해당 단체는 미 대선을 앞두고 투표를 독려하려는 목적으로 이 영상을 만들어 공개했다.
앤디 워홀 등 예술가 얼굴 생생히 재현
현실의 인물을 등장시켜 가공하는 딥페이크 기술과는 다소 다르지만, 컴퓨터그래픽으로 가공한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내는 기술까지 포함하면 그 발전상은 놀랍다. 글로벌 가구·생활용품 기업인 이케아의 일본 하라주쿠점 모델 ‘임마(IMMA)’는 젊은 여성의 모습을 본뜬 가공의 인물이다. 해당 업체의 가구로 둘러싸인 집에서 자연스럽게 생활하는 모습을 표현한 사진 같은 광고 그림들은 모두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었다. 다양한 동작부터 머리카락 한올까지 섬세하게 재현한 이 가상모델은 이미 전 세계에서 유명해져 소셜미디어(SNS)에 팬들까지 생긴 인플루언서가 됐을 정도다.
딥페이크 기술은 인공지능으로 사람의 얼굴 윤곽과 표정 변화를 학습해 다른 새로운 영상에 적용시킬 수 있다. 보다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보이려면 본뜨는 대상의 다양한 얼굴 사진이나 영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연예인이나 정치인 같은 유명인의 얼굴일수록 활용도가 높다. 영화와 음반 제작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주로 활용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새롭게 촬영할 필요 없이 기존의 자료를 편집·합성하면 배우나 모델의 몸값을 절감하면서도 새로운 영상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전까지는 상상에 머물렀거나 조악하고 단편적인 수준에 그쳤던 얼굴 합성이 실제 영상으로 구현되는 양상은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미국의 디즈니연구소는 지난 6월 100만 픽셀급으로 해상도를 높인 딥페이크 영상을 공개하며 상업영화에 딥페이크 기술을 적용할 가능성을 선보인 바 있다. 해상도가 낮아 큰 화면에서는 티가 날 수밖에 없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되면서 예견된 변화도 있다. 나이가 들거나 세상을 떠나 지금은 재현할 수 없는 배우들의 예전 모습을 머지않아 영화에 자연스럽게 등장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딥페이크의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더욱 부각된 상태다. 국내에서는 성착취 영상을 공유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박사방’ 운영자 중 한명인 강훈(18)이 여성인 지인의 사진을 나체 사진과 합성해 유포한 혐의로도 수사를 받았다. 또 200여명에 이르는 국내 연예인을 포함한 딥페이크 1000여건이 해외에 서버를 둔 사이트 등에서 공유되고 있어 경찰이 수사에 들어가는 등 피해는 점차 늘고 있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이달 초 딥페이크를 이용한 가짜 음란물 영상을 만들어 유포한 혐의로 피의자 2명이 체포된 바 있다. 네덜란드 사이버 보안기업 ‘딥 트레이스’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이 회사가 확인한 딥페이크 사진·영상은 1만4678건으로, 전년 대비 84% 급증했다. 이 가운데 96%가 유명 할리우드 여배우 등의 얼굴을 음란물 영상에 끼워 넣어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발전한 기술을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며 세계적으로 이런 성착취 성격의 영상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데서 심각성을 더한다. 최근 출시되고 있는 컴퓨터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높은 성능에 비해 전보다 낮은 가격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도 딥페이크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술로 자리 잡는 배경이 되고 있다. ‘생성적 적대 신경망(GAN)’이라 불리는 인공지능 기술은 영상에서 움직이는 장면뿐 아니라 음성 변조 등에도 폭넓게 활용될 수 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 공개된 프로그래밍 소스를 이용해 영상을 조작할 수 있고, 프로그래밍 언어를 모르더라도 조작된 영상을 바로 내려받을 수 있는 웹사이트까지 등장했을 정도여서 대중화되는 속도도 빠르다.
딥페이크 영상 제작·배포 처벌 대상
현재까지는 일반인의 얼굴 사진이나 음성은 인공지능이 충분히 학습할 만큼 데이터가 축적되지 않아 딥페이크에 악용된 예가 적었지만 이러한 변화에 따라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의 얼굴이 악용될까 걱정할 때가 닥칠 수도 있다. 관련 정책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 중 하나도 이 부분이다. 음성통화로 시도하는 보이스피싱을 넘어 영상통화로 지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달하며 돈을 입금하라고 요구할 경우 이러한 사기 방법을 피할 대책이 뾰족하게 나와 있지 않다.
게다가 단 한장의 사진으로도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나오고 있어 기술 분야 기업은 물론 정부로서도 선제적으로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유향 국회입법조사처 과학방송통신팀장은 “딥페이크의 가장 큰 위험은 일반 국민은 물론 정부도 무엇이 진짜 또는 가짜인지를 식별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라며 “정부 차원에서도 사용자 활용 허위동영상 판정 도구 배포 등 기술적·정책적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창과 방패의 싸움이 된 딥페이크 영상 제작과 진위 감별 기술개발의 대결은 기본적으로 같은 기술적 토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딥페이크 인공지능이 ‘진짜 같은 가짜’ 영상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도록 학습되는 반면, 딥페이크 탐지 인공지능은 가짜 영상에서 어떤 부분이 편집되었는지를 학습하게 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이 탐지 도구를 개발하고 탐지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가 하면,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해당 플랫폼을 통해 유포되는 게시물들을 찾아 삭제하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사업’의 주요 과제 중 하나로 딥페이크 탐지용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사업을 진행한다. 영상 변조에 활용된 알고리즘을 파악해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상을 탐지하고 원본 및 딥페이크 영상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이전까지는 처벌 대상이 아니었던 딥페이크 영상 제작·배포 행위가 성폭력범죄 특례법 개정안에 따라 지난 6월부터 처벌 대상이 된 점도 과거와는 달라진 점이다.
하지만 딥페이크 기술이 가져올 역기능은 줄이고 순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보다 진전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승환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딥페이크 기술은 명과 암이 존재하나 현재 부정적인 인식이 더 강해 이를 고려한 정책수립이 요구된다”며 “정부는 딥페이크 산업 활성화를 고려한 정책조합을 구상하는 동시에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자율규제나 입법규제, 과징금 부과 등 다양한 수준의 규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교통사고만큼 많은 임금체불 건수
2020년 현재 한국의 자동차 등록 대수는 약 2300만 대다. 그리고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약 22만9000건 발생했다. 부상자는 34만명에 달한다. 2020년 현재 15세에서 64세까지 한국의 경제활동인구는 약 2500만명이고, 2018년 한 해 동안 일어난 임금체불은 약 22만5000건이었다. 임금체불을 당한 사람의 수는 35만명에 이른다.
매년 일어나는 교통사고 규모와 임금체불 규모를 늘어놓고 보면 묘하게 비슷하다. 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크고 작은 교통사고의 빈도만큼 임금체불이 매년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 수도 있겠다. 반대로 임금체불 경험은 있지만 운전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한국에서 운전하는 것이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과연 어느 쪽이 비정상적인 수치일까? 교통사고는 자신이 아무리 안전하게 운전해도 의도치 않게 경험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사고’에 해당하는 것이라면(물론 안전운전이나 교통법규 준수 등으로 어느 정도 예방할 수는 있다), 임금체불은 그것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확실한 법률과 제도가 존재함에도 명백한 인간의 의도가 개입되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한국의 임금체불액은 2018년도 기준 약 1조6000억원으로 경제 규모가 3배 정도 큰 일본보다 오히려 10배 많고, 우리보다 인구가 6배 이상인 미국과 비교해도 많다. 이 정도면 임금체불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다양한 정책적 시도가 있었지만 완화되는 경향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는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최근 지방정부 차원의 다양한 노동행정이 실험, 집행되고 있다. 지방정부들은 다양한 정책을 도입하여 미조직·비정규직 노동 등 중앙정부 노동행정의 빈구석을 메우며 수년에 걸쳐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러다 보니 서울시와 경기도를 중심으로 고용노동부가 가진 ‘근로감독권’을 지방정부에도 이양해달라는 요구가 나온다. 최근 지방정부들이 노동행정에서 새로운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기업과 노동자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근로감독권을 분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권한을 둘러싼 논쟁을 좀 더 생산적인 결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앞서 짚어본 고질적 문제인 임금체불의 대안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소액 임금체불’ 근로감독은 지방정부가 맡도록
근로감독관들의 가장 큰 고충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1인당 수백 건에 달하는 임금체불 사건을 다루면서 불법파견, 부당노동행위 등 심도 깊은 기획이 필요한 영역에 대한 수사를 하는 게 어렵다고 호소한다. 이런 양쪽의 요구와 어려움을 고려하여 ‘소액 임금체불’에 대한 근로감독을 지방정부에서도 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은 어떨까? 접근성과 생활밀접성이 강한 지방정부가 상대적으로 법적 판단 여부가 간단한 소액 임금체불에 관해 신고 및 처리 절차를 갖추어 해결한다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들이 산업안전 및 기획감독에 집중하도록 여유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위생, 안전 같은 영역에서 점검·조치 등의 수단이 있는 지방정부는 임금체불이 많이 일어나는 서비스업 등에 대해서도 특기를 발휘할 수 있다. 좀 더 나아가 근로계약서 작성, 임금체불, 휴게시간 준수 등 ‘기초고용질서’ 영역은 지방정부가 상시 감독하고, 고용노동부의 각 지청은 기업의 부당노동행위나 굵직한 노동사건 등을 전담하도록 이원화하는 것도 고려해봄직하다.
모든 사회적 자원과 힘을 중앙에 집중시켜 강력한 공권력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은 사실 과거의 권위주의 정치와 닮아 있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와 노력 속에서 더 좋은 성과를 내는 정치제도다. 이제 노동정책 역시 지방자치와 민주주의의 발전 속도에 맞게 새로운 고민과 시도를 해볼 필요가 있다.
시사인 조성주 (정치발전소 상임이사)
노년 된 ‘전공투 세대’ 세상 한 번 더 바꾸자
[‘젊은 노인’ 시대가 온다]
고령자 비율이 높아지는 만큼 젊은이의 부담이 커진다. 일본 정부는 사회보장비 재원을 어디서 확보할 것인가? 결국 정치의 문제다. 결자해지, 전공투 세대가 정치를 바꾸어야 한다.
ⓒEPA 2019년 9월16일 도쿄에서 ‘노인의 날’을 맞은 ‘단카이 세대’가 아령 운동을 하고 있다.
〈싱글의 노후(おひとりさまの老後)〉라는 책이 한때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7년 발간된 이 책은 싱글로 살아가는 여성들이 고령자가 되었을 때 어떻게 살면 좋을지, 그리고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을 다룬 에세이다. 통계뿐 아니라 고령자 선배들의 이야기가 알기 쉽게 담겼다. 이 책은 밀리언셀러가 되었고, 〈싱글, 행복하면 그만이다〉(이덴슬리벨, 2011)라는 한국어판도 나왔다.
저자인 우에노 지즈코는 여성학, 젠더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저명한 사회학자다. 최근에는 고령자의 개호(돌봄) 문제 연구에도 힘을 쏟고 있다. 우에노는 〈싱글의 노후〉 남성판인 〈독신의 오후-남자, 나이 듦에 대하여(男おひとりさま道)〉(현실문화사, 2014),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한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おひとりさまの最期)〉(어른의 시간, 2016)을 출간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이 세 권을 ‘싱글 3부작’이라 부른다.
1948년생인 우에노는 ‘단카이 세대’에 속한다. 단카이 세대란 1947년부터 1949년경까지 ‘제1차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통상산업성(현 경제산업성) 관료이던 사카이야 다이치가 1976년에 발표한 소설 〈단카이 세대〉로부터 생긴 용어다. 소설은 제1차 베이비붐 세대가 초래하는 고령화사회를 예측했다. 이 소설 역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일본 후생노동성 통계에 따르면 1947년생은 267만8792명, 1948년생은 268만1624명, 1949년생은 269만6638명으로 세 해의 출생자 수가 각각 260만명을 넘는다. 1947년부터 1949년까지 3년간 출생한 이를 합하면 약 806만명에 달한다. 이런 단카이 세대가 모두 75세 이상이 되는 해가 2024년이다. 2022년부터 75세 이상이 되기 시작해 2024년에 완결된다.
일본에서는 65세부터 75세 미만을 ‘전(전반)기 고령자’로, 75세 이상을 ‘후(후반)기 고령자’로 부른다. 2012년 단카이 세대가 전기 고령자로 접어들자 정부는 대응책을 내놓았다. 2012년 8월 정년퇴직한 뒤에도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65세까지 같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법률이 제정되어 2013년부터 시행되었다. 고용형태는 약간 달라질 수 있지만 65세까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65세가 되면 기본적으로 직장을 그만두거나 고용형태가 달라지지만, 노동인구의 감소로 65세부터 69세까지 남성의 절반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2025년부터 단카이 세대가 일제히 후기 고령자가 되면서 사회보장비 급등이 문제가 된다. 사회보장 지급액은 2018년 121조 엔(현재 환율로 약 1350조원)에서 2025년 약 140조 엔(약 1560조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아사히 신문〉 9월9일). 의료보험 지급액도 늘어난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국민의료비의 총액은 2025년에 61조8000억 엔(약 688조원)이 될 전망이다. 고령자가 늘어나면 그만큼 국가의 의료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25년에는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가 30.3%를 차지하게 된다. 5년 뒤 일본은 10명 중 3명이 고령자가 된다.
자연스럽게 치매 고령자도 늘어난다. 치매 고령자는 2012년 462만명이지만, 2025년에는 약 700만명으로 늘어난다고 후생노동성은 예측한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약 5명 중 1명이 치매 고령자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고령자 개호도 심각한 문제다.
고령자 세대의 약 70%가 홀로 살거나 고령자 부부 둘이 산다. 특히 홀로 사는 고령자가 현저히 늘어나고 있는데 2025년에는 약 680만명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한다. 단카이 세대가 후기 고령자가 되면서 초래할 현상을 모두 합쳐, 일본에서는 ‘2025년 문제’라고 부른다.
단카이 세대는 ‘전공투(全共闘) 세대’와 겹친다. 전공투란 전학공투회의의 약칭이다. 1968년부터 1969년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시절, 어느 정파에도 속하지 않는 학생들이 집결해서 만든 조직이다. 니치다이(일본 대학) 전공투, 도쿄 대학 전공투 등이 유명하다. 학생운동을 열심히 한 사람들이 이제 후기 고령자가 된 것이다.
지난해 12월 출간된 〈속 전공투 백서〉는 2018년부터 2019년에 걸쳐 과거 학생운동 참가자 약 47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첫 설문조사는 1994년에 실시했고 그 결과를 〈전공투 백서〉에 담았다. 처음 조사를 실시했을 때 40대 후반으로 회사나 사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이들이 25년 뒤에는 모두 70대 노인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개호나 연금 등 고령자 문제를 의식한 질문이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공적인 연금’에 관해서는 ‘받고 있다’는 응답이 92.0%를 차지한다. 연금 금액은 100만 엔(약 1110만원)부터 200만 엔 사이가 41.3%로 가장 많았고, 200만 엔부터 300만 엔 사이가 29.0%였다. 그다음으로 많은 응답이 50만 엔(약 556만원)부터 100만 엔 사이였다. 응답자 가운데는 500만 엔(약 5566만원) 이상 연금을 받는 이도 있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응답자 가운데 0.6%밖에 안 되었다.
〈싱글의 노후〉를 출간한 2007년, 우에노 지즈코는 50대 후반이었다. 남자와 동거한 시기도 있지만 책을 쓸 당시 싱글이었다. 그는 결혼하든 안 하든 사람은 오래 살다 보면 결국 마지막에는 모두 싱글이 된다고 했다.
우에노가 책을 쓸 당시 홀로 노후를 맞이하는 고령자들을 “불쌍하다” “불행하다”라고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결혼도 못하고 아이도 없으니 어떻게 노후를 살아갈 것인가?” “고독사를 하면 어쩌지?”라며 우려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우에노처럼 단카이 세대에 속하는 여성이 결혼을 안 하는 ‘비혼율’은 3%밖에 안 되었다. ‘여성은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노후에는 자녀들이 늙은 부모를 돌보고, 자식·손자·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음을 맞이한다.’ 이런 게 일종의 정상적인 라이프스타일로 인정받았다. 그래서 싱글 여성의 노후는 “불행하다”로 귀결되었다.
사실은 달랐다. 〈싱글의 노후〉의 후기에서 우에노는 자기와 같은 비혼 싱글을 위해 쓴 책이 비혼자, 기혼자, 그리고 여성뿐만이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호감과 공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남편을 잃은 고령 여성이 우연히 이 책을 읽은 뒤에 “이건 나를 위해 쓰인 책이라고 느꼈다”라고 말하는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우에노는 〈슈칸 긴요비〉와 인터뷰하면서 “이제까지 싱글의 노후는 ‘비참’했다. 그래서 싱글의 생존을 위해서 쓴 책인데, 예상보다 훨씬 많이 팔렸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이런 책을 원하는 독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싱글의 노후〉가 지지와 공감만 받은 것은 아니다. 2007년 출간 당시에도 “우리의 노후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라는 40대를 전후한 세대, 젊은 세대한테 비판을 받았다. 우에노도 〈슈칸 긴요비〉 인터뷰에서 “이건 단카이 세대의 연금과 저축이 있는 사람들의 시나리오이지, 우리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엄한 비판을 받았다”라고 토로했다.
이 돈으로 어떻게 노후를 살아가나
필자는 50대 후반 싱글 여성이다. 솔직히 노후가 불안하다. 일본에서는 자기가 받게 될 연금을 알려주는 통보서가 1년에 한 번 온다. 나는 현재 직장에 오기 전 다른 직장에서 20년간 근무했다. 지금 회사에서는 매달 후생연금보험으로 약 3만7000엔(약 41만원)을 내고 있다. 여기서 근무한 지 약 2년이 지났다. 이전에 다닌 직장에서 얼마나 후생연금을 납부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1만 엔 정도 낮은 금액이었을 것이다. 이전 직장을 그만둔 뒤에는 프리랜서로 원고를 쓰거나 번역 일을 했다. 그땐 매달 약 1만5000엔(약 16만원)의 국민연금보험을 납부했다. 직장을 다닐 때도, 프리랜서로 일할 때도 꼬박꼬박 연금보험을 냈다. 통보서에 적힌 금액을 보니, 한숨밖에 안 나왔다. ‘이런 돈으로 어떻게 노후를 살아가란 말인가?’
그래도 필자 세대는 아직 괜찮다고 할 수 있다. 고령자 비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젊은 사람들의 부담이 커진다는 의미다. 일본 정부는 늘어나는 사회보장비 재원을 어디서 확보할 것인가? 소비세를 또다시 올릴 것인가? 과연 적더라도 연금이 제대로 나오기는 할까?
재원의 확보와 효율적인 배분은 결국 정치의 문제다. 단카이 세대가 후기 고령자가 되면서 일으키는 2025년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달라져야 한다. 결자해지, 전공투 세대이기도 한 단카이 세대들이 일본 정치를 바꾸려면 더 분발해야 한다. 이것이 나 자신뿐 아니라 젊은이들을 위한 정치일 것이다.
시사인 문성희 (<슈칸 긴요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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