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어울리기/서평

한 번은 불러보았다

이성근 2022. 10. 10. 00:45

한 번은 불러보았다 정회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72| 2022.09

 

정희옥 -정회옥 다양성이 화두가 된 시대라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지나며 수많은 이유맥락에서 소수자가 만들어지고 낙인찍히는 과정이 되풀이되었다. 이러한 차별과 혐오는 왜 뿌리 뽑히지 않는지 의문을 떨칠 수 없었고, 소수자의 정치 참여를 연구하며 그것이 오랜 역사의 산물임을 깨닫게 되었다.사실 나에게도 차별과 혐오의 소사(小史)가 있다. 어린 시절 짓궂은 친구들에게 깜순이’, ‘시커먼스등의 별명으로 불렸던 일이다. 그럴 때면 부모님께 나를 왜 이리 까맣게 낳았냐고 대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의 나와 내 친구들은 우리 사회의 친백인성반흑인성을 그 조그마한 머리와 마음에 이미 체화했던 듯싶다. 이 책이 누구나 언젠가 한 번은 불러보았을,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을 그 멸칭들의 행간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가 되길 바란다. 화석처럼 굳어진 차별과 혐오의 역사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것을 바로 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현재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혐오와 차별의 정치학’, ‘소수자 정치론등을 강의하며 청년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인권, 차별, 통합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관련한 주제로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를 비롯해 다수의 책과 논문을 썼다.또한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위원, 경실련 정치개혁위원회 위원, 한국정당학회 이사, 한국의회발전연구회 연구편집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그 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 서울특별시 자치구의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 위원, KBS 공약검증 자문단, 한국정치학회 이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연구기관 평가위원 등을 역임했다.

 

목차

추천의 글

K의 시대에 드리운 ‘K-인종주의의 그림자_박노자

바로 지금 여기의 인종차별 문제_홍성수

설명할 수 없는 당신을 위해_우춘희

 

들어가며_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1부 인종에 갇힌 역사

1장 개화기: 인종이라는 신문물

인종주의의 교과서가 된 신문미국을 찬양하라흑인보다는 낫지만, 백인보다는 모자란서구라는 보편 문명한국인이라서 죄송합니다인종 개념의 위계화와 사회진화론하나님의 뜻을 따라 동포 일본을 본받자

 

2장 일제강점기: 열등감이 빚어낸 우리민족

역사의 심연망국의 학생들에게 각인되는 열등감과학으로 증명된 열등한 피민족 개조와 인종 전쟁민족주의의 등장황색 식민지에 가득한 배제의 논리

 

3장 한국전쟁기: 피만큼 중요한 반공과 숭미

반공주의로 날을 세운 공격성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하나의 대통령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친미를 넘어 숭미로

 

4장 경제성장기: 경제력으로 가른 인종의 귀천

우리잘살아보세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발전주의와 가족주의의 결합

 

5장 세계화 시대: 무한경쟁과 타자 혐오

한민족의 생존을 도모하라불안한 삶이 낳은 타자 혐오군부독재 시대와 민주화 시대의 공통점

 

6‘K’의 시대: ‘멋진한국인의 그림자

다시 태어나도 한국인한국 찬양과 타국 폄훼

 

2부 멸칭의 행간: 피부색, 민족, 경제력, 종교

1장 노란 피부 하얀 가면

백색 신화Colours Maketh Man?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그들도 안다

 

2흑형’: 개인을 집단으로 뭉뚱그리는 반흑인성

지배당한 자의 흑인 혐오흑형에 대한 고찰한국인의 조건수많은 피부색

 

3짱깨’: 국가 폭력의 희생자가 된 화교

비슷해서 더 싫다당신은 몰랐던 화교의 역사국가 주도의 차별조선족이라는 이유

 

4튀기’: 혼혈인 배제로 쌓은 한민족 신화

밑바닥 인생 중에서도 최고 밑바닥아버지의 나라를 찾아서환대의 조건, 금의환향다문화 없는 다문화 사회튀기부터 순종까지피 한 방울 법칙거부감과 우월감 사이

 

5똥남아’: 이주노동자 차별은 죽음을 낳는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아시아인 혐오우리도 돈 벌러 간다비닐하우스에서 사람이 죽는다인종주의를 조장하는 언론 매체

 

6개슬람’: 무슬림을 향한 자동화된 혐오

이유 없는 혐오혐오의 회로판난민인가 무슬림인가

 

나가며_한국식 인종주의 그 후

공론장에서 대면하는 인종주의더 알면 더 함께할 수 있다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새로운 민족의 탄생을 꿈꾸며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숨겨진 역사, 배제된 존재들

한국 근현대사는 대개 온갖 역경을 헤쳐나온 과정으로 설명된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달성한 산업화’, ‘피로써 쟁취한 민주화등은 그 자체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이력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이력 뒤에 배제의 논리가 숨어 있다고 설명한다. 한민족이 똘똘 뭉치기 위해서는 강철을 제련하듯 불순물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는 개화기에 발행된 한성순보》 《독립신문등 최초의 근대적 매체들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흑형’_개화기에 수입된 반흑인성]

흑인들은 동양인보다도 미련하고 흰 인종보다는 매우 천한지라.” 1897624일 자 독립신문사설은 흑인을 이렇게 묘사했다(38). ()흑인성이 노골적인데, 당대의 엘리트인 윤치호는 미국 사회의 흑인 차별을 정당한 일이라고까지 주장했다(41). 여기에는 하루빨리 문명화해야 한다는 절박함, 그러려면 나태함이나 미련함 같은 흑인성이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경계심이 깔려 있었다.

수천 년간 다른 인종을 접한 경험 자체가 없던 한국인이 개화기 들어 몇 년 만에 인종주의자가 된 것은, 미국을 근대화의 선생으로 여겼기 때문이다(28~29). 미국이 왜 아름다운 나라[美國]’인지 설명하는 1884217일 자 한성순보사설은 숭미주의적 시각을 잘 보여준다(25~26). ‘미제라는 이유만으로, 인종주의조차 비판 없이 수용했던 것.

 

이후 근현대사 내내 미국의 대중문화가 대거 유입되며 반흑인성은 인종의 문제에서 피부색의 문제로 확장되었다(127~128). 2019년에는 수단 출신의 이주노동자가 세탁 업체에 채용되었다가 며칠 만에 해고당했다. 해당 업체의 고객사인 어느 호텔에서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이 세탁 업무를 맡는 게 싫다고 항의했기 때문이다(125).

 

흑형이라는, 얼핏 친절하게 느껴지는 호칭 뒤에는 이러한 반흑인성이 숨어 있다. ‘흑인은 예체능에 강하다는 편견에 기반하는 데다가, (‘황형’, ‘백형이 없다는 데서) 유독 흑인만을 구분짓는 표현이기도 하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는 흑형을 모욕형 혐오 표현으로 규정한다(130). 흑형에 스며든 반흑인성의 오랜 역사를 알게 된 후에도, 이 멸칭을 농담처럼 쓸 수 있을까.

 

[‘짱깨’_지배당하는 자의 열등감이 촉발한 중국인 혐오]

조선인은 야만 인종.” “허언함은 조선인의 민족성.” “무능한 망국민.”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은 야만 인종론’, ‘민족성론’, ‘망국민론을 교육받으며, 식민주의를 내면화했다(50~54). 한국인의 민족주의는 이에 대한 저항 심리이자, (일본처럼) 누군가를 지배하고 싶다는 모방 심리로서 탄생했는데(143), 그 대상으로 눈에 띈 것이 중국인이었다.

 

계기는 1931년 만주에서 한국인과 중국인 소작농들이 충돌한 완바오산 사건이었다. 이것이 중국인이 한국인을 핍박한다는 식으로 와전되어 전해지자, 갓난아이부터 노인까지 당시 조선에 살던 많은 중국인이 무차별적으로 살해당하는 유례없는 제노사이드(집단 학살)가 벌어졌다.” 그 결과 200여 명의 중국인이 목숨을 잃었다(148~149).

 

이후 차이나타운이 없는 유일한 나라로 불릴 정도로, 한국은 법과 제도를 동원해 체계적으로 중국인을 차별해 왔다. 특히 1948년의 외국인에 대한 출입 규제와 외환 규제 조치’, 1950년의 외국인의 창고 폐쇄령등으로 무역업에 종사하는 화교의 경제력을 뺏는 데 집중했다. 1973년에는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 음식점에 중과세를 적용하거나, 쌀밥을 팔지 못하게 하는 등 촘촘한 규제를 가하기도 했다(150~153). 최근의 조선족 혐오 또한 그들이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논리를 동원한다(154~155).

 

그러한 역사 속에서 탄생한 멸칭이 짱깨, 이는 국민음식임을 자부하는 짜장면의 별칭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와 수천 년간 관계 맺은 이웃 민족(중국인)이자, 심지어 동포(조선족)인데도 차별하는 이중성을 잘 반영한다. 인종적으로 차이가 없고 역사를 공유하지만, 민족적·문화적 차이와 상충하는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그들을 혐오하는 것. 이는 인종 없는 인종주의라는 한국식 인종주의의 또 다른 특징이다.

 

[‘튀기’_한국판 피 한 방울 법칙]

우리 핏속에 잠복하여 있는 불순한 혼혈을 뽑아내자.” 혼혈인은 1949212일 자 경향신문기사처럼 매우 박한 취급을 받았다. 그들은 전혀 환영받지 못할뿐더러, ‘열등한 유전자라거나 부도덕한 문화의 결과라는 등 온갖 비난에 시달렸다(160~163).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혼혈인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다만 1950년대를 전후로 등장한 혼혈인은 (주로 주한미군인) 흑인이나 백인을 아버지로 두었기에 피부색이나 외모에서 확연히 차이가 났다. 그리고 이는 에 대한 한국인의 열등감을 자극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인종마다 피의 성분이 다르고, 이것으로 진화 정도를 알 수 있다는 인종계수 연구에 천착했다(54~56). 비슷한 시기에 미국은 피 한 방울 법칙이라 하여, 조상 중에 유색인종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백인이 아니라는 법을 명문화했다(178~180). 이를 근거로 한 흑백 분리는 주한미군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이를 직접 경험하거나, 가까이서 본 한국인은 자연스레 피가 섞이면 안 된다는 순혈주의를 품게 되었다.

 

게다가 한국전쟁 탓에 한국인은 반공주의, 내부의 적을 솎아내는 일에 숙련되었다. 이는 생존의 문제였으니, 실제로 이승만 정권은 강박에 가까운 태도로 혼혈인의 해외 입양을 추진했고, 이후에는 전세기를 동원해 대거 수출하기까지 했다(163~164).

 

종이 다른 두 동물 사이에서 난 새끼라는 뜻의 튀기에는 이처럼 극단적 배제의 역사가 녹아 있다. 해외로 입양된 혼혈인이 잘 살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들을 보면, 당시 한국인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듯싶다(165~167). 그런데도 혼혈인 혐오가 오늘날 다문화 가족 혐오, 결혼 이주자 혐오 등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피 한 방울의 다름조차 인정하지 않는 한국식 인종주의의 특징이 엿보인다.

 

[‘똥남아’_경제력으로 가른 인종의 귀천]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인다.” 경제성장기인 1968년 반포된 국민교육헌장의 일부다. ‘민족중흥’, ‘국가 건설등의 표현이 암시하듯, 당시 발전주의는 단 한 명도 빠짐 없이 투입되어야 할 국시(國是)였다(89~91). 뒤이어 세계화 시대의 막을 연 1993년의 대통령 취임사는 도약하지 않으면 낙오할 것이라며, 경제성장을 민족 간 경쟁의 차원에서 바라보았다. 이로써 타민족은 무조건 밟고 올라설 대상이 되었다(96~98).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가장 멸시당한 존재가 바로 동남아시아인이다. 한국에서 그들은 가난한 나라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대당하고, 외노자(외국인 노동자)’로 불린다. 이 멸칭에는 가난하면 문화적으로도 미개하고, 인지적으로도 열등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즉 경제력을 혐오의 근거로 삼는 한국식 인종주의의 특징이 녹아 있다. 가령 한국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백인 교수는 외노자라 하지 않지만(186), 반대로 인도인 교수는 어색해하는 식이다(138). 2019년에는 한국에서 9년째 유학 중인 미얀마인이 동남아시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불법 체류자 추방하라라는 막말을 들어야 했다(189~190).

 

비슷한 멸칭으로 똥남아가 있다. 가난한 동남아시아인은 더럽기까지 하다는 뜻으로, 차별의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베트남 현지에서 유행하는 한국어 교재 내용을 보면 함부로 때리면 안 돼요등의 표현이 담겨 있다. 경제력으로 인종의 귀천을 가르는 한국식 인종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비슷한 내용의 한국어 교재가 더욱 많아질 것이다(198~199).

[‘개슬람’_이유 없는 혐오]

모든 테러 분자는 이슬람이다.” 대구에서는 2020년부터 모스크 건축을 둘러싸고 지역 무슬림과 주민 간에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데, 공사장 근처에 내걸린 현수막 속 문구다. 이처럼 우리는 이슬람은 곧 사악하고 폭력적인 종교를, 무슬림은 곧 테러리스트를 자동적으로 떠올리는 연상 작용에 익숙하다(208~210).

 

사실 무슬림은 우리에게 낯선 존재다. 경제적이든 종교적이든, 충돌이든 협력이든 역사상 교류한 일 자체가 많지 않다. 그런데도 막연한 혐오를 품는 데는 미국 대중매체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1994년 작 트루 라이즈부터 2016년 작 런던 해즈 폴른까지, 저자는 기독교의 이분법적 관점에서 무슬림을 테러리스트로 묘사한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를 살피며, 우리의 무슬림 혐오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추적한다(204~205).

 

개화기에 서구 열강에서 무비판적으로 인종주의를 받아들였듯이, 오늘날 우리는 무슬림 혐오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 맹목적 혐오는 정치적 탄압을 피해 한국에 온 난민조차 예외로 두지 않는다. 2018년 조국 예멘의 내전을 피해 500여 명의 난민이 제주도를 찾았다. 곧 수많은 언론 매체가 “1인당 138만 원을 가져간다”, “난민으로 위장한 테러리스트다같은 확인되지 않은 소식을 보도하기 시작했고, 이는 대중의 이슬라모포비아를 한껏 자극했다. 물론 이는 이후 대부분 가짜 뉴스로 밝혀졌다(211).

 

그러한 혐오와 차별을 뿜어내는 멸칭으로 개슬람이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은 조선인 머리는 개와 다르지 않다라며 한국인을 멸시했다. 그때 당한 차별과 모욕을 반세기가 지나 무슬림에게 그대로 퍼붓고 있는 것이다(53). 모르면 알고자 하는 대신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것. 이것이 가장 최신의 한국식 인종주의다.

 

K의 시대, 그 이후를 그리다

바야흐로 ‘K’의 시대다. 오징어 게임부터 BTS까지, 한국(Korea)에서 만든 것, 또는 한국인이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마치 라벨을 붙이듯 온갖 것에 ‘K’를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made in Korea’가 경쟁력인 시대가 된 셈이다(105~106).

 

일제강점기 이후 지배당한 수모를 떨쳐내기 위해 한국인은 경제성장에 집착했다. 이 역사적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한국인은 똘똘 뭉쳐야 했고, 그 과정에서 다른 생각, 다른 존재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그렇다면 경제 규모 세계 10위에 오른 오늘날, 과연 우리는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한국은 오히려 우월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이때 핵심은 다양한 문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내 것을 자랑하기에 바쁘다. 유튜브를 가득 채운 국뽕콘텐츠가 대표적인 예다(107).

 

한국식 인종주의는 피부색과 민족, 경제력과 신앙 등 다양한 차별 기재를 능숙하게, 또 섬세하게 다룬다. 지난 150년의 근현대사를 지나며 이는 마음의 습관이라 할 정도로 우리의 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았다(143~144). 저자는 이를 혐오의 회로판이라고 설명하는데, 어떤 상황에서든 그에 알맞은인종주의가 자동적으로 튀어나오기 때문이다(66, 209).

 

이처럼 뿌리 깊은 한국식 인종주의의 역사를 뛰어넘기 위해 저자는 시민적 민족주의를 제시한다. 혈통이나 문화적 유사성, 경제력 등을 기준으로 순수한한국인을 골라낸다면, 과연 몇 명이나 해당될까. 그보다는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며 역사와 경험을 공유하는 일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정말로 우리는 모두 다 사람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명제에서 인종주의 논의는 시작되어야 한다.

 

 

 

흑형·짱개·똥남아’···“우리는 150여년 전부터 지독한 인종주의자였다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 대회가 19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열려 참가자들이 구호가 적힌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1등국, 아프리카 4등국

미국 유학 다녀온 개화기 엘리트

비 백인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

 

민족·발전주의 등과 시대별 결합

한국식 인종주의 스펙트럼 완성

 

흑형·짱개·튀기·똥남아·개슬람···

한 번은 듣거나 불러보았을 멸칭

인종차별 없는 한국? 그건 착각

 

한국에는 인종차별이 있을까, 없을까.

의외로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은 인종차별 없는 나라’ ‘이 정도면 외국인에게 차별 없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이는 순수한 믿음에 불과하다. 그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한국이 인종차별이 없는 나라라고 여긴다면 당신은 알고 보면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차별과 배제에 둔감한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한 번은 불러보았다>는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해 식민주의, 순혈주의, 민족주의, 발전주의, 우월주의 등 시대별 지배 담론과 얽히고설키며 한국식 인종주의가 만들어진 과정을 짚어본다. 150여년간의 여정은 흑형’ ‘짱깨’ ‘튀기’ ‘똥남아’ ‘개슬람등 우리 모두가 한번은 불러보았을 또는 들어보았을, 멸칭이 탄생한 배경이다. 소수자 정치론을 연구해온 저자 정희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많은 한국인이 인종주의자이면서도 스스로 인종주의자임을 깨닫지 못한다고 꼬집는다.

 

저자가 말하는 한국식 인종주의의 첫 단추는 강화도조약을 맺은 1876년 개항 이후다. 이때 미국 유학을 다녀온 개화기 조선 엘리트들은 백인 중심적이고, 비백인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서구의 위계적 인종 관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들은 근대적 매체인 신문을 통해 이를 그대로 전파했고, 대중도 인종주의를 흡수했다. 1899223독립신문사설은 영국과 미국을 비롯해 1등 문명국’ ‘일본과 이탈리아, 러시아 등은 개화국’ ‘대한과 청국, 태국, 페르시아, 미얀마, 터키, 이집트는 반개화국이라고 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야만스러운 4등 국가라며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저자는 개화기 엘리트들이 미국의 인종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더욱 관용적인 인종관과 세계관을 제시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리 사회는 차별과 혐오 없는 사회가 되지 않았을까라고 되묻는다.

 

저자는 한국인은 피부색이 검으면 위험하고 가난하며 열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것이 바로 한국식 인종주의의 민낯이라고 지적한다. 픽사베이

 

한국식 인종주의의 두번째 형성 시기는 일제강점기다. 일본에 저항하면서 순혈주의와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가 시작됐고, 일본의 일상적 폭력에서 비롯된 집단적 열등감이 함께 형성됐다. 반공주의가 시작된 이승만 정부 시절,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처럼 단일민족으로서의 통합과 단결은 생존과 번영에 직결됐다. 결과적으로 단일민족으로 뭉치는 데 방해되는 존재나 우리 민족이 될 수 없는 사람은 배제하는 문화로 이어졌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국과 접촉 속도나 빈도가 증가하자 수많은 한국인이 미국 대중문화를 자연스럽게 수용했다. 1952년 크게 유행한 샌프란시스코라는 노래가 있다. 나를 아메리카 아가씨로 칭하고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금문교를 생각하며 로맨스를 꿈꾸는 가사가 담긴 노래다. 저자는 한국 대중문화의 미국 지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노래로 꼽았다.

 

박정희 시대를 거치면서 경제발전주의와 가족주의가 결합했다. 이 역시 한국인의 타자 배제적 성향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수출 주도형 경제성장을 추구하면서 우리나라 대 외국대립축이 형성됐고 우리와 우리가 아닌 집단을 빠르게 구분하는 한국인의 배타성, 그 구분 기준이 경제적 성공이 되는 과정을 거쳐 한국식 인종주의는 점점 완성됐다.

 

21세기에도 한국은 여전히 피부색과 경제력 등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차별하는 사회다. 얼핏 친근감의 발로로 느껴지는 흑형이라는 유행어도 사실 인종차별적 표현이다. 단적으로 우리는 백형이나 황형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흑형은 흑인을 독립된 개인으로 보는 대신 몸이 좋은 집단’ ‘운동을 잘하는 집단등으로 간주하는 편견에 기반한다.

 

특히 한국식 인종주의는 피부색의 밝고 어두운 정도와 출신 국가의 경제력 수준이 중첩되어 매우 복잡한 모습을 띠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유행한 한국 관련 만화가 있다. 만화에서 한국인은 백인 남성에게 모든 인종은 평등하다.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을 멈춰라라고 울면서 호소하지만 정작 어두운 피부색의 동남아시아인 남성에게는 냉소를 띠며 노예 인종이라고 조롱한다. 한국식 인종주의의 이중성을 비꼰 만화다. 저자는 오늘날 한국인은 백인을 모방하는 동시에, 같은 인종이지만 경제성장이 더딘 동남아시아인을 멸시하는 태도를 보인다고 말한다.

인천의 차이나타운. 경향신문 자료사진

 

국가가 법과 제도를 동원해 체계적으로차별해온 또 다른 집단이 화교. 1894년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패배하면서 화교를 향한 조선인들의 멸시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1948년 외국인에 대한 출입규제와 외환규제, 1950년 외국인의 창고 폐쇄령 등의 조치로 무역업에 종사하는 화교의 경제력을 빼앗았다. 저자는 인종 없는 인종주의라고 표현했다. ‘국민 음식인 짜장면을 짱깨로 부르는 이면에도 이웃 민족(중국)이자 심지어 동포(조선족)인데도 차별하는 이중성이 깔려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저자는 타인에 의해 차별당한 역사와 타인을 차별해온 역사를 짚어가는 과정을 통해 한국을 인종차별이 없는 청정지역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착시일 뿐이라고 단언하며 제안한다. “우리는 150여년 전부터 지독한 인종주의자였다. 식민지배의 경험을 통해 민족이라는 전통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관용환대의 전통을 만들 차례다.”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아프리카 출신 D씨는 클럽에 갔다가 입장을 거부당했다. 수단 출신 C씨는 한 호텔과 도급계약을 맺은 세탁업체에서 채용을 거절당했으며 인도 출신 귀화인 A씨도 피부색 탓에 직장에서 동료 교사에게 모욕당했다. 모두 검은 피부색 때문이었다.

 

피부색에 따른 차별뿐 아니라 문화적 차별도 존재한다. 한국에 사는 중국인 '화교'에 대한 차별이 대표적이다. 국민 상당수가 중국 음식은 즐겨 먹으면서도 여전히 화교를 '짱깨'와 같은 멸칭(蔑稱)으로 부른다. 화교는 100년 이상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이방인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종적·문화적 차별은 언제부터, 왜 발생한 것일까?

 

근현대 한국인의 인종차별과 멸칭의 역사를 탐구한 대중 연구서다. 저자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개항기부터 시작된 변형된 오리엔탈리즘이 우리 문화에 깊이 스며들어 인종주의를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오리엔탈리즘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연유한 개념으로, 제국주의적 지배와 침략을 정당화하는, 서양의 동양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태도 등을 가리킨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식 인종주의는 1876년 개항과 함께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됐다. 당시 서재필, 유길준 등 개화파는 서구의 위계적 인종주의를 진지한 성찰 없이 그대로 수용했다. 이들 엘리트 계층은 독립신문 등 근대적 매체를 창간했고, 이를 통해 대중도 근대 관념인 인종주의를 접했다.

 

예컨대 서재필·윤치호가 만든 독립신문 사설을 보면 국가를 문명화 정도에 따라 등수를 매기고 위계화한다.

"잉글랜드·아메리카·프랑스·독일은 1등 문명국, 일본·이탈리아·러시아·덴마크는 개화국, 대한제국·청국·태국·이집트 등은 반개화국이다.“

 

왜곡된 인종주의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더욱 강화했다.

일본은 한국의 역사와 전통 등을 모두 열등한 것으로 치부했고, 이는 한국인의 의식에 패배감, 수치감, 죄의식, 보상 욕망을 심어줬다. 친일 지식인 이광수는 한국민의 성격적 결함 등을 제시하며 민족을 개조해야 한다고까지 얘기했다.

 

인종주의의 부상 속에 민족주의도 형성됐다. 역사가 신채호 등이 앞장서 외부에 가해지는 폭력에 대응하고 내부 단결을 강화하고자 민족주의 담론을 꺼내 들었다. 이후 민족주의는 식민지 해방, 근대국가 건설, 분단 극복과 통일, 경제성장, 세계화 추진 등으로 외피를 갈아입으며 한민족 문화에 공고히 뿌리내렸다.

 

그러나 이는 혈통을 중시하고 동질성과 순수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배타적 민족주의의 단초가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알제리 출신 포스트식민주의 사상가 프란츠 파농을 언급하며 식민지배의 부정적 영향을 설파한다.

 

파농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 앤틸리스 제도 흑인들이 그들을 지배하는 백인들의 사고방식마저 닮아간다고 비판했다. 파농에 의하면 앤틸리스 제도 흑인들은 학교에서 백인이 야만인에 관해 쓴 내용을 공부할 때 세네갈의 흑인을 떠올렸다. 자신들은 절대 흑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앤틸리스 제도의 흑인처럼 우리도 자기 자신은 황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동남아시아인만 황인이라고 착각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비판한다.

 

그는 "오늘날 한국인은 백인을 모방하는 동시에, 같은 인종이지만 경제성장이 더딘 동남아시아인을 멸시하는 태도를 보인다""서구중심주의 속에서 형성된 오리엔탈리즘을 한국식으로 변용하는 우리의 모습을 '복제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이어 "우리는 150여 년 전부터 지독한 인종주의자였다""식민지배의 경험을 통해 '민족'이라는 전통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관용''환대'의 전통을 만들 차례"라고 강조한다.

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나는 대학 수업에서 북한사 관련 강좌를 하나 가르친다. 그와 함께 한국 사회정치사 강의도 하고 있어서 가끔 남한과의 비교 차원에서 북한의 역사적 역정을 언급하기도 한다. 이렇게 수년간 강의하다가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내 강의에는 남한 교환학생이나 유학생들도 꽤나 많이 찾아와 수강한다. 그들 중에서 북한이 1950년대 말부터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실천해왔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나는 적지 않게 놀랐다. 칸트의 정언명령이나 조선왕조의 주요 군주들, 아니면 20세기의 주요 미국 대통령들에 대해서 알 만큼 아는, 교양이 풍부한 우수 학생들이, 북한사에 대해서만은 거의 북맹(北盲, 북한을 잘 모르는 사람)에 가깝다. 북한사의 긍정적인 부분들이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 안 나오고 언론에서도 잘 다루지 않아 그렇게 된 일면도 분명히 있다. 한데 독재 시절과 달리 북한 관련 정보가 국가적으로 더 이상 철저히 통제되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서 한글이 아니면 영문으로라도 원하기만 하면 북한 복지체계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찾아낼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정보 통제나 제한에 있지 않다. 그것은 바로 관심의 축, 그리고 한국에서의 앎의 지형이다.

 

한국인 대다수가 북맹이 된 이유를 굳이 찾자면 레드 콤플렉스나 언론들에 의한 여태까지의 북한 악마화 등에 있을 것이다. 한데 한국에서 잘 모르는 것이 꼭 북한만도 아니다. 사실 한국의 보편적인 대외적인 앎의 지형에는 어떤 커다란 이율배반이 내재돼 있다. 한국은 분명히 지리적으로 아시아에 위치한다. 아시아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한국을 먹여살린다는 수출의 대부분 역시 아시아로 향한다. 금년 같으면 전체 수출액의 약 60%는 아시아로의 수출이다. 그것뿐인가? 지금 한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약 12만명의 외국인 유학생 중에서 유럽과 북미 출신들은 약 1만명에 불과하고 게다가 그 상당수는 한국 동포 출신들이다. 나머지의 대다수는 아시아, 특히 중국과 베트남, 몽골 등지에서 온 학생들이다. 유학생뿐인가? 전체 국내 체류 외국인들의 대다수는 외국 국적의 해외 동포들을 포함한 아시아 출신들이며(중국 46.7%, 베트남 7.8%, 타이 7% 등등) 유럽과 북미 출신들은 10%도 안 된다. 말하자면 인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한국의 은 당연히 아시아에 있다. 한데 머리는 완전히 따로 논다. 언젠가 하나의 한반도 공동체를 같이 이룰 상대인 북한이나 인구이동, 교역, 교육 차원에서 대단히 가까운 베트남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한국인들은 교양상 구미권에 대해 철저히 배운다. 배우는 정도도 아니고 거의 내면화한다고 봐야 한다.

 

그 내면화 과정의 중심에는 당연히 교육이 있다. 한국은 세계와의 무역으로 먹고살지만, 한국 학교에서 세계사는 필수가 아닌 선택 과목이다. 그런데 소수만이 선택하는 그 세계사 공부 내용도, 따지고 보면 구미 역사 이외에는 주로 중국 등 일부의 동아시아사만 포함된다. 동남아시아와의 교역은 한국으로서는 대미교역보다 비중이 더 크지만, 동남아시아의 역사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언급 이상은 없다.

 

그렇다고 한국인의 성지(聖地)가 된 유럽과 미국, 그리고 일부 인접 지역의 역사 이외에는 세계사를 거의 안 배우는 것만이 문제일까? 북한사는 그나마 한국 근현대사의 맥락에서 아주 부실하게라도 언급되지만, 한국의 평균적인 고졸이 예컨대 북한 문학이나 영화 등을 배웠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국에는 북한 이외에 숙명적으로 가장 중요한 나라가 중국이겠지만, 세계사 수업에서 중국사를 약간 배울 수는 있어도 중국 근현대 문학은 학교의 어느 과목에도 속해 있지 않다. 믿기지 않는 사실이지만, 러시아만 해도 웬만한 교양인이 충분히 알 만한 중국 문호 바진(巴金, 1904~2005)<>(, 1933) 같은 역작들을, 한국에서는 중국학 전공자들 말고는 직업 작가들조차도 잘 모른다. 한데 데이비드 샐린저나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모르는 한국 독서인을 상상하기는 힘들 것이다. 한국 서적 시장에서 팔리는 책의 약 4분의 1은 번역서지만, 그중의 4할은 번역원서가 영어다. 중국 책의 번역출판은 4%쯤 되고, 동남아 서적의 번역출판은 1%도 안 된다. 학교 교육도 출판시장도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극도로 유럽중심주의적 세계관을 뿌리내리도록 열심히 같이 노력한다.

 

학교나 출판시장에 못지않게 언론들도 서구중심주의적 세계관의 유포에 한몫을 한다. 세계사를 선택과목으로 만든 한국의 학교 교육도 우물 안 개구리들을 키우지만, 언론도 크게 다를 바 없다. 한국 주요 일간지들의 국제면 비중은 6~10% 정도이며 주요 방송사들의 국제뉴스 비중은 10~14%뿐이다. 한국의 중앙 일간지들의 해외특파원 수는 전체적으로 80명을 넘지 못해 100여명의 특파원을 가진 영국 공영방송 <비비시>(BBC) 하나에 못 미치지만, 그들 중의 대다수는 미국과 유럽에 상주해 있으며 나머지는 중국과 일본에만 몰려 있다. 아시아에 위치한 한국이라는 나라의 언론들은, 이상하게도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들에 대한 보도를 영어권 주류 언론에 의존해서 한다. 영미권 통신사나 언론의 기사를 번역한 것 이외에는 남아시아나 동남아시아 등에 대해서는 주로 한국 투자나 한류의 확산 등 자국 중심의 소식들만 보인다.

 

보도 행태로만 보면 한국에 아시아는 경제적 이용물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충분히 주고도 남는다. 반대로 구미권으로부터의 보도들은 현지의 문학, 연예, 사상 동향까지 포함한다. 한국 교양인이라면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철학자 푸코나 데리다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데 예컨대 중국의 신좌파 사상을 대표하는 추이즈위안(崔之元)의 책 몇 종이 한국어로 번역출판됐다 해도 그를 아는 사람은 거의 극소수의 전공자들뿐이다. 한국에서는 서구중심주의의 철저한 내면화의 결과로 구미권은 보편이 돼도 나머지 세계는 그야말로 전문가들만 관심을 갖는 특수에 속한다.

 

무비판적 서구 추종의 결과들은 매우 심각하다. 구미가 보편이 되어 버린 만큼 한국에 맞지도 않고 그다지 긍정적인 효과도 없는 담론들도 구미의 새로운 진리라면 당장에 국내에서도 유행을 탄다. 신자유주의에 의해서 민생이 희생되는 한국 사회에는 차라리 자유시장의 결점과 재분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중국 신좌파들의 경제 구상이 더 적절하겠지만, 한국 대학의 경제학과들은 정통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로 메워져 있다. 미국 대학의 유행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학교가 여전히 커다란 병영을 방불케 하고 많은 직장들에서는 여전히 노조를 조직하려는 노동자들이 살인적 탄압을 받는 등 배움터와 일터의 기초적 민주화마저도 이루어지지 않은 한국 사회지만, 한동안 상당수의 한국 지식인들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욕망의 정치탈주’ ‘유목주의등을 핵심 화두로 삼았다.

 

4분의 1의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신음하고 3분의 1이 비정규직 신세가 되어 기본적 직장 안정성이나 사회적 권리들도 보장받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욕망의 정치보다는 임금착취나 노동배제의 정치학이 사실 훨씬 더 시급한 연구 대상이 돼야 하는데, 계급론적 접근이 더 이상 구미지역에서 유행이 아니라고 해서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도 외면을 당해왔다. 서구가 최종의 진리를 상징하는 반면, 한국보다 더 가난한 아시아 나라들은 너무나 쉽게 이미 서구화된 한국이 개발해 주어야 하거나 경제적으로 이용해도 되는 단순한 대상의 자리에 놓이게 된다. 예컨대 북한과의 통일을 북한의 자원과 저임금 인력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기회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비일비재하다. 이것이 유럽 오리엔탈리즘의 한국 복제판이 아니면 과연 무엇인가?

 

서구중심주의는 우리 앎의 지형을 심각하게 왜곡시켜 왔다. 한국이 북한과 평등한 통일을 이루고 아시아 이주민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이 되자면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으로부터의 해방이야말로 급선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한겨레 2018-11-14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 '인도'라는 이름의 거울 이옥순 (지은이)푸른역사2002-12

이옥순-숭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인도 델리대학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숭실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펴낸 책으로는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여성적인 동양이 남성적인 서양을 만났을 때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인도근대사》 《친밀한 적등이 있다.

 

 

목차

서설 인도라는 이름의 거울/7

1장 박제 오리엔탈리즘-영구의 인도/37

두얼굴의 인도/39

그곳-정글은 악이다/49

그사람들-뭔가 부족하다/62

그사회와 문화-시간속에 냉동되다/91

2장 복제 오리엔탈리즘-우리의 인도/107

소설은 상상의 세계?/109

여행기는 인도로 가는길?/134

신문잡지는 사실을 보도?/165

3장 상상의 동양을 넘어서/191

 

출판사 서평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은 어떤 책?"

"나는 여행이 좋았다. 삶이 좋았다. 여행 도중 만나는 기차와 별과 모래 사막이 좋았다. 생은 어디에나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켜놓은 불빛이 보기 좋았다. 내 정신은 여행길 위에서 망고 열매처럼 익어 갔다. 그것이 내 생의 황금빛 시절이었다.

여행은 내게 진정한 행복의 척도를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철학이나 종교적인 신념 같은 것이 아니었다. 신발을 신고 나서면 나는 언제나 그 순간에, 그리고 그 장소에 존재할 수가 있었다. 과거와 미래,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여기에 살아 숩쉬는 것을 가슴 아프도록 받아들여야만 했다. 매 순간에 춤추라. 그것이 여행이 내게 가르쳐 준 생의 방식이었다." -류시화 지구별 여행자

 

무려 15년씩이나 인도대륙을 돌아다닌 시인이 이야기한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온 '여행자'라고. 더 배우고 더 경험하고 성장하기 위해 지구별에 온 사람들이라고. 바로 그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손에 잡힐듯 가깝게 다가오는 책이다. -웹서점 알라딘 북리뷰

 

베스트셀러 시인 류시화씨가 15년에 걸쳐 인도를 떠돌아다니며 싸가지고 온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이 책 <지구별 여행자>에는 촌 구석구석에 살고 있는 인도사람들이 모여 있다. 여인숙 주인, 릭샤 운전사, 기차검표원, 망고가게 주인, 새점 치는 남자, 가짜 목걸이 장사, 귀 후벼주는 사람, 길거리 안마사, 기차 자리잡아 주는 사람, 직업 이야기꾼, 엽서 파는 여자아이, 시를 좋아하는 강도... -경향신문

 

그는 여행을 떠날 때 따로 책을 들고 가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언제나 새로운 길이 나타나는 세상이 곧 책이었다. 시인은 여행 중에 진정한 홀로 있음을 알았고, 그 홀로 있음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법을 배웠다. 여행길마다 ''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동아일보

 

왜 인도는 항상 '삶의 교훈과 깨달음을 주는 곳'인가?

지난달에 출간된 류시화의 산문집 지구별 여행자의 내용 소개와 각 언론매체의 서평이다.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이후 5년 만에 출간된 이 책에서 류시화는 "인도 대부분을 여행하면서 얻은 삶의 교훈과 깨달음을 시인의 깊은 사색이 느껴지는 필치로 잔잔하게 담아냈다. 작가는 37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의 삶 자체가 배움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의문을 던져본다.

또 인도 이야기인가? 또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인가?

왜 인도는 항상 삶의 교훈과 깨달음을 주는 곳이어야 하는가?

이 책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은 이러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요즘 만나는 낯선, 낯설지 않은 사람들

이제는 우리 주변에서도 얼굴빛이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여전히 낯선 이방인의 그것이다. 특히 우리보다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동양인을 대하는 서양인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식당에서, 냄새나고 추레하고 소란스러운 그들은 우리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네팔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태국…… 그들은 가난하고, 같은 동양인이지만 우리와 다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그들은 잘살고, 우리와 다른 서양인이지만 왠지 친근하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만들어낸 상황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이 책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은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인도가 아닌, '인도 신화 만들기'에 대한 책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인도에는 카레가 없다》《여성적인 동양이 남성적인 서양을 만났을 때등의 저작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인도 신화 만들기'를 비판하고, 인도의 사회와 문화·신앙 등 인도()'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해온 인도 근대사 전공 학자이자 작가인 이옥순 선생의 신작이다.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역시 인도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전작들과 다를 바가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매우 오랫동안 변함없이 지속돼온,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인도 신화 만들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 예리해졌다는 것이다.

 

오만한 시선이 만들어낸 '박제된 인도'의 모습

이를 위해 작가는 류시화·강석경·송기원 등 우리의 내로라하는 '인도 전문' 작가들의 산문집과 소설을 텍스트로 선택, 거침없는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작가가 보기에 우리 나라 작가들이 생산하는 텍스트들은 거의가 에드워드 사이드가 지적한 바 있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시선을 함유하고 있다. 이를 증거하기 위해 작가는 우선 19세기 영국이 식민지 인도를 상대로 만들어낸 '박제 오리엔탈리즘'의 뿌리를 파고든다. 영국은 자신의 정치적 필요를 따라 인도의 이미지를 자신의 열등하고 이국적인 타자로 창조했다. 그 결과, 인도는 오랫동안 이 고정된 이미지 속에 '박제'되어 있어야 했다. 이 이미지는 구체적으로 역사가 없고, 야만적이며, 비합리적이고, 나약하며, 열등한변하지 않는 인도이다. 영국 지배자는 자신과 다른 인도는 열등하다고 부정하고, 자신을 닮은 인도는 가짜라고 부정하는 이중적이며 오만한 시선으로 인도의 이미지를 고정시켰다.

 

가난하지만 행복하다? 동양이 구성한 동양의 이미지

문제는 이러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시선이 약 2세기의 시차를 건너뛰어 우리 나라에서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독하게 가난하고 더럽고 혼란스러운 인도. 그래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린애처럼 행복을 잃지 않는다.' 이런 류의 이미지는 영국 식민주의가 만들고 구성한 '오염된 지식'이나, 우리는 무심코 이를 '복제'하고 확대·재생산하여 '서구의 승리'를 강화하고 있다.

 

작가는 문학·영화·교과서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파되고 있는 이러한 이미지는 이중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특성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서양이 구성한 동양이 아닌 '동양이 구성한 동양'이라는 중층적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책 속에서 언급한 류시화·강석경·송기원 등의 작품은 이런 이중의 오리엔탈리즘, 복제 오리엔탈리즘의 실체를 적절히 드러내주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은 우리 안의 또 다른 파시즘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우리의 내면이다. 나와 남, ()와 타자(他者), 우리와 그들의 경계를 구성하는 상징이나 이미지는 우리의 의식을 구성하는 시대적·사회적 기후와 풍경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그렇다면 우리가 '복제'한 오리엔탈리즘, 인도의 모습은 우리의 어떠한 내면 세계를 보여주는 것일까. 작가는 비록 우리의 내면을 성찰해보자고 글을 끝맺고 있지만, 그 속에는 우리의 의식 속에 내면화된 강력한 의식체계, 일상적 파시즘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다. 시민사회를 규율화하는 이념적 도구인 파시즘은 반공이나 전체주의 등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남을 나와 다르게 보고, 그것을 그대로 틀 안에 가둬버리는 것, 그 시선이야말로 파시즘의 출발점인 것이다.

 

내용 소개

서설-'인도'라는 이름의 거울

영국과 우리 나라에서 출간된 소설과 여행기, 신문과 잡지에 실린 글 등 문자화된 재현 수단인 텍스트를 분석하여 상상력의 렌즈와 보는 자의 '전지전능한' 시선으로 박제되고,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복제되고 무의식적으로 수용되는 이미지들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구성되고 발전했는지 추적한다.

 

1장 박제 오리엔탈리즘 - 영국의 인도

영국이 인도에서 전성기를 구가한 1870년대에서 1920년대 초반까지를 다룬다. 이 반세기는 '해가지지 않는 나라'임을 자랑하며 세계 영토와 인구의 4분의 1을 통치한 대영제국이 낙관주의를 등에 지고 영광을 향유하던 이른바 제국주의시대였다. 이 무렵에는 새로운 대중매체로 떠오른 인쇄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하여 수많은 소설과 여행기, 잡지와 신문, 비망록과 일기, 선교사의 전기 등이 출간되어 제국의 영광을 널리 전파하였다. 인쇄 매체가 권위를 얻으면서 인쇄를 장악한 계층이 힘을 가지게 된 것도 이때였다. 그 결과, 영국의 권위에 종속되는 인도의 이미지가 문학을 통해서 창조·유포되었다. 특히 인도와 관련한 영문학은 열등한 인도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주요 창구였다.

 

2장 복제 오리엔탈리즘 - 우리의 인도

영국이 유포한 오리엔탈리즘을 복제하여 재생산하고 있는 우리의 복제 오리엔탈리즘을 다룬다. 인도를 낮게 보는 영국 지배자의 시선과 인식은 인도의 해방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부정적인 이미지는 오늘날 우리 나라에도 원초적인 형태로 남아 있다. 아시스 난디의 "서구의 승리는 서구인을 비동양인으로 정의하였고, 자기 이미지와 식민주의의 필요에 부응하는 세계관을 넘겨주었다"는 판단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해 보인다. 우리는 무심코 영국 식민주의가 만들고 구성한 인도의 범주화와 이미지를 모방 확대할 뿐 아니라, 오염된 인도 관련 지식을 재생산하여 '서구의 승리'를 강화하고 있다.

 

3장 상상의 '동양'을 넘어서

이 모든 과정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신비한 인도'라는 정형화된 이미지를 부정하고 깨트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냉철한 시각으로 인도의 '신비하지 않은' 요소를 좀더 면밀하게 분석하여 내보이는 것이다. '과거'의 인도를 다시 서술하고, '현재'의 인도에 다각도로 접근하여 고정된 인식과 분석의 범주를 넘어서서 '있는 그대로의' 인도를 보려는 노력, 비록 이러한 움직임은 서양을 변방으로 내몰지는 못한다 해도 '서양이라는 보편성'에 구멍을 내는 수단은 될 것이다.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우리 안의 옥시덴탈리즘

 

패권국의 이동?

역사가가 아니더라도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역사상 어느 국가도 패권국의 지위를 영구히 누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거대한 원형경기장에서 정복 전쟁을 재현하는 모의해전과 검투시합을 관람하며 열광했던 로마시민들에게 로마제국의 번영은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로마의 평화(Pax Romana)’라고 불렸던 고대 로마제국의 번영은 200년을 넘기지 못했다. 19세기 중반 영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인도를 비롯해 광대한 식민지를 거느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군림했지만, 2차 세계대전 후에는 영제국도 미국에 패권을 넘겨주어야 했다.

 

최근 미디어에서는 현재의 세계 패권국은 미국이지만 짧게는 10여년 길게는 50여년 정도 지나면 중국이나 인도가 패권국이 될 것이라는 예단이 자주 보인다. 저널리즘에서 자주 보이는 이런 상투적인 주장은 중심국의 권력이 탈중심화되고 서구와 미국의 지배가 끊임없이 도전받고 있는 현실을 일면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중국은 머지않아 일본을 앞지르고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 주도권을 장악할 것이며 나아가 미국의 아성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 역시 눈부신 경제성장 속도를 자랑하며 급속하게 산업화, 근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2015년 영국 국회의사당 광장의 처칠 동상 옆에 간디 동상이 세워졌다는 사실은 구() 식민지배국 영국과 피지배국 인도 사이의 역학관계 변화의 단적인 사례다. 이렇게 되면 다음 세기의 주인공은 중국이나 인도가 되지 않겠느냐는 예측은 타당성이 있게 들린다.

 

그러나 9.11 테러 이래 도전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미국의 지배는 여전히 견고하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처하며 자국에서는 테러와의 전쟁에 열을 올리며, 세계 여러 지역의 분쟁에 개입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좌파 사상가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와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가 공저 제국Empire 에서 치밀하게 분석했듯이, 미국의 지배는 근대 국민국가를 기반으로 했던 지난 세기의 제국주의 현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 권력이다. 미국이 구축하는 것은 식민지를 보유한 제국주의가 아니라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유동하는 자본과 노동력, 유엔 등 초국가적 국제분쟁 조정기구, 생명정치(biopolitics)의 규율과 통제를 특징으로 하는 전()지구적 주권으로서의 제국이다. 어디에나 존재하며 동시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탈중심화되고 탈영토화하는 지배의 장치가 바로 경계를 알 수 없는 제국이라는 것이다

 

제국에 관한 네그리와 하트의 분석을 염두에 둔다면 패권국의 중심이 중국이나 인도로 이동할 것이라는 저널리즘의 상투적 주장은 탈중심적이며 전지구적인 현대 권력의 성격을 간과한 순진한 발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순진해 보이는 발상의 밑바닥에 무언가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패권국의 이동이라는 관념은 근대주의와 거기서 파생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과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오리엔탈리즘 개념과 변형된 오리엔탈리즘으로서 옥시덴탈리즘 개념은 말할 것도 없이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것이다.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을 넘어서

우리의 안에 존재하는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의 모순적이며 기묘한 결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선, 우리의 인식 속에 뿌리깊이 자리한 옥시덴탈리즘에 관해서 이다. 패권국의 이동이라는 발상은 힘이 곧 정의라는 사회진화론의 이데올로기를 바탕에 깔고 있다. 19세기의 강대국이 영국이었다면 20세기는 미국의 세기이며 21세기는 동아시아와 중국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주장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사회진화론에 그 논리적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진화론적 사고는 서구가 경험한 근대화의 경로를 우리도 뒤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다름 아니다. 이 때 서구는 근대의 화신이자 문명의 표상으로 신화화된다. 실상과는 달리 서구를 이상화하고 따라야 할 모델로 설정하는 인식이 옥시덴탈리즘이다. 서구가 행한 식민지 지배를 혐오하는 감정과는 별개로, 우리도 힘을 가지려면 제국주의 국가를 모델로 해서 조국 근대화를 달성하고 따라잡아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옥시덴탈리즘에 갇혀 있다는 말이다.

 

옥시덴탈리즘적 사고에는 왜 영국이나 미국의 특수한 예가 보편적인 모델이나 역사의 바른 길로 인식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반성이 없다. 선진 유럽 국가들과 미국이 성취한 근대 문명에 감탄과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면서도 이들 국가들이 식민지와 관련된 온갖 악행을 저지른 장본인이라는 사실은 쉽사리 망각된다. 16세기 이래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아메리카 식민지 개척은 원주민 학살과 노예무역을 수반했으며, 19세기 영국은 중국과의 차()무역에서 발생한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중국에 밀매하는 범죄도 서슴없이 저질렀다. 또한 옥시덴탈리즘의 서구중심주의적 사고 속에서는 16세기 유럽의 팽창이 본격화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과 인도의 경제력은 서양을 능가했으며, 근대 자본주의 경제로의 이행기에 서양은 동양의 인프라와 부에 무임승차했다는 사실 역시 포착되지 않는다. 안드레 군더 프랑크(Andre Gunder Frank)리오리엔트Reorient 같은 연구는 근대 자본주의 성립기에 서양은 동양의 우월한 경제력에 의존했었다는 주장을 구체적인 통계로 입증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오리엔탈리즘이다. 강대국의 패권이 미국에서 중국이나 인도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에 한국인들이 각별한 공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구 제국주의의 피해를 입었던 아시아 지역에서 다음 세기의 세계질서를 주도할 강대국이 출현할 것이라는 예상은 약소국으로서 설움을 당해온 한국인들에게 통쾌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에는 서구 열강의 식민지 지배를 당했던 아시아인으로서의 동질감과 피지배의 경험자이기 때문에 평화 공존의 세계질서를 구축할 수 있으리라는 소박한 기대감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런 감정이야말로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 긍정적 오리엔탈리즘(positive orientalism)’의 산물에 다름 아니다.

 

인도는 200여 년간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으며, 중국 역시 1840년 아편전쟁 이래 서구 열강의 반()식민지 상태를 경험했다. 가야트리 스피박(Gayattri Spivak), 호미 바바(Homi Bhabha) 등 포스트식민주의 주요 이론가들이 인도 출신이며, 포스트식민주의 역사학을 주도하고 있는 서발턴(subaltern) 그룹과 같은 역사가 집단이 인도에서 배출된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에서 비판적으로 지적하고 있듯이,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이 제멋대로 그려왔던 동양의 모습을 탈피하고 원래부터 있었던 동양의 우월한 저력을 보여주겠다는 것이 긍정적 오리엔탈리즘이다. 서양이 동양을 타자화하고 비하하는 서구중심주의적 인식이 부정적 오리엔탈리즘(negative orientalism)’이라면 이에 맞서 동양이 자신을 이상화하는 인식이 긍정적 오리엔탈리즘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문제는 긍정적 오리엔탈리즘이 민족주의와 결합할 때는 타민족, 타종교, 타인종에 대해 매우 억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1992년 아요디야에서 벌어진 참극은 민족주의와 결합된 흰두 근본주의가 낳은 비극이었다. 아요디야 유적지는 힌두교도와 무슬림이 서로 자신들의 종교 성지라고 주장하는 곳이다. 아요디야는 힌두교의 영웅신 라마의 탄생지다. 그러나 1528년 이슬람 세력인 무굴제국이 이곳을 점령한 뒤 바브리 사원을 지었으며 이후 500여 년 동안 양측이 성지 연고권을 주장하며 갈등을 겪어왔다. 흰두교도들이 1992년 바브리 사원을 파괴하고 힌두교 사원을 세우려 한 뒤 종교 집단 간 충돌이 빚어져 2,000여명이 숨졌다.

 

과거의 약소국이 패권국가가 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공생과 공존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오히려 힘을 가지게 된 약자의 폭력은 더욱 위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과거의 피해와 상처가 현재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면 칼날을 마구 휘두르는 것을 더욱 제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자가 강자로 전환하는 힘의 논리의 추종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얻어지지 않는다. 21세기 우리가 새로이 경계해야 하는 것은 강자로 올라선 과거 약자의 폭력이 아닐까?

한편 미래의 강자중국이나 인도를 상상할 때와 현재의 중국과 인도를 대할 때 우리의 태도는 어떻게 달라지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지만 정작 우리는 오리엔탈리즘을 갖고 있지 않은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미래의 성장 저력은 있지만 아직 한국만큼 근대화되지 않은 중국이나 인도에 대해 갖는 환상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것이다. ‘불결하고 불편하지만 영혼이 살아 숨 쉬는 신비의 땅 인도라는 식의 모순된 인식이 인도에 대한 환상의 내용이다.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이 원조라면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은 복제 오리엔탈리즘(copy orientalism)’이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복제 오리엔탈리즘적사고를 생각하면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동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에서 보이는 한국 기업의 새끼 제국주의적행태가 이해된다.

 

요즘에는 한국이 지향해야 할 미래에 대해 한국은 패권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노골적인 주장을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미래지향적 국가모델은 무엇인가를 논할 때 빠짐없이 보수언론의 지면에 등장하는 단어가 강소국(强小國)이다. 남한 단독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남북한을 합치더라도 영토상 대국(大國)이 될 수는 없는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내실있는 소국(小國)으로 가자는 것이다. 패권국 지향 보다는 세련된 논리이지만 이것 역시 대한민국이 이웃 국가보다 강해져야 한다는 전제에는 변함이 없다. 강소국 역시 강국(强國)임에는 틀림없으니 규모가 작다고 해서 억압적인 국가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결론적으로 말해 한국이 나아갈 길에 대한 논의가 서양과 동양의 이분법,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의 이분법, 그리고 이런 이분법을 배태한 근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의 패권국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강소국이든 강대국이든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대한민국도 역시 타국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국가가 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근대의 잘못을 넘어서는 미래국가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염운옥 | 20160720일 민족문화연구원 웹진 民硏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자기 문화를 비하하는 문화적 식민주의에 대하여

서구의 시각으로 동양을 재단하고 비합리적, 비과학적이라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은 비서구 사회에 널리 퍼져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의 제3세계와는 다른 문화적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필자는 동양의 문화적 텍스트를 동양의 문화적 문법으로 해독한다는 의미의 동도동기론을 제기한다. 자문화를 스스로 비하하는 우리의 문화적 식민성을 넘어서려는 논의이다.

 

대부분 제3세계는 주로 서구의 식민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반제국주의는 곧 ()서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서구를 모방한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은 까닭에 반제국주의는 ()일본을 의미하는 것이었을 뿐 반서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서양은 언제나 일제와 대비되는 것으로 일제의 침략 의도를 견제하는 고마운 나라’(?)였던 것이다.

 

예를 들면, (1)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에 위반되는 일제의 신사참배를 완강하게 거부하던 서구의 모습은 일제의 압제에 시달리던 한국인들에게는 우리를 돕는 고마운 우방이자 친구로 여겨졌고, (2)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한 성경의 한글 번역은 천대받던 한글을 보급하는 근대적 계몽주의자들의 고마움으로만 기억되고 있으며, (3)기독교를 보급하기 위한 선교 기지로 설립된 각종 학교들이 단순히 근대 교육의 기초를 만들어준 고마운 이웃의 자비로만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노력과 봉사의 순기능을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순기능의 이면에 도사린 역기능에 대해서도 우리는 다시 읽어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해방을 맞이한 제3세계가 반제국주의’, ‘반서양주의를 외치고 있을 때, 우리는 고마운(?) 미군정(美軍政)의 도움으로 대한민국의 초석을 놓고 있었다. 모든 것이 미국의 기준과 가치에 입각한 것이었다. 일제 강탈기에 일제 잣대와 가치 기준에 입각해서 전통 문화가 재단되었다면, 해방 이후에는 미국의 잣대와 가치 기준에 입각해서 우리의 전통 문화가 다시 한 번 재단되는 비극을 맞이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화사의 비극을 비극으로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는 아직도 피가 솟구치는 분노를 느끼면서도, 서구 특히 미국에 대해서는 한없는 동경심을 지니고 있다.

 

일본의 대중문화 개방에 대해서는 온통 법석을 떨면서도, 정작 서구 특히 미국의 대중문화는 아무런 제약 없이 들어온다. 그 와중에 젊은이들은 서구 문화에 길들여지고, 서구의 잣대로 우리의 문화를 재단하는 오리엔탈리즘은 강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 문화사의 비극은 서구의 시각에서 스스로를 비하해 온 문화적 마녀 사냥에 있었다. 근대화를 가로막는 모든 것은 미신이나 봉건적 유산으로 낙인찍혔고, 그렇게 낙인찍힌 것들의 대부분은 우리 민족과 함께 오랜 역사를 함께 했던 전통 문화’,‘민족 문화였던 것이다. 그런 봉건적 유산’(?) ‘미신’(?)은 언제나 근대화=서구화=세계화라는 이름 앞에서 우리의 역사에서 사라져갔던 것이다.

 

우리 문화의 현주소

우리는 말로는 전통 문화의 창조적 계승과 서구 문화의 비판적 수용을 외치지만, 우리들 스스로가 전통 문화의 창조적 계승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를 냉정하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제도 교육 과정에서 우리 문화를 구성하는 기본 원리나 세계관을 배우지도 가르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 동안에 길들여진 서구 중심의 인식틀로 우리 문화를 바라보고 비합리적?冑墟隙灐신비적이라고 알고 있을 뿐, 우리 문화의 구체적인 모습들이 그러한 형태로 만들어지고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이유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의 전통 문화는 보아도 해독(De-coding)이 되지 않는 문화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전통 문화라는 것이 현상에서는 존재하지만 의미 구조로 읽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든 먹은 촌로(村老)에게 베토벤의 교향악을 들려주는 것이나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한국 전통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나 모두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이기는 매한가지다.

 

현대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모든 기준과 가치는 서구적 잣대로 재단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시각적인 기호와 이미지들이서양 것투성이인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전통 문화가 읽혀지지 않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전통 문화를 서구의 잣대로 읽어내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개항 초기에 서양인들을 파란 눈을 가진 서양 귀신(洋鬼)’이라고 이상한 사람 취급했었다면, 불과 1백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인이 한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동양 귀신이나 된 듯이 바라보는 것이 오늘날 우리 문화의 현주소인 것이다.

 

이것은 단지 우리의 특수한 역사에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세계 문화사에 있어서 오리엔탈리즘이라 불리는 문화적 헤게모니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 중심적 인식틀로서의 오리엔탈리즘

모든 문화적 산물은 그것을 만들고 변형시켜온 세계관과 사유체계로서의 문화적 문법이 있기 마련이다. 축구의 경기규칙을 모르면 축구가 재미있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화의 문법을 모르면 그 문화의 산물들을 해독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축구의 규칙을 통해서 야구를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비유는 문화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 서구 문화를 만들고 변형시켜온 서구의 문화적 문법으로 동양의 문화를 바라볼 때, 동양의 문화는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일 수밖에 없다. 서구인들이 그들의 시각으로 해독되지 않는 동양의 문화적 산물들을 바라보면서 비합리적’, ‘비과학적’, ‘신비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문화적 전통과 사유체계를 달리하는 서구인들이 처음 접하는 동양의 문화를 해독하지 못하고 수수께끼취급을 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우리가 우리 문화에 대해서 수수께끼취급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의 문화가 단절된 경험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동안에 길들여진 서구적 시각에서 우리 문화를 바라보는 왜곡되고 종속적인 인식틀 때문이다. 이런 인식틀이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이야기하는 오리엔탈리즘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은 동양과 서양이라는 차별적 이분법에 입각한 서구 중심적인 동양관으로서의 오리엔탈리즘과 그 의미작용의 질서가 형성된 역사적 과정을 밝히고, 현대사회에서 그것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재생산을 통해서 이제는 동양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이미 명백한 평가적인 가치판단을 포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우리들에게 서양적이란 합리적, 이성적, 논리적인 것을 의미하고, ‘동양적이란 비합리적, 비이성적, 비논리적, 신비적인 것을 의미하는 하나의 기호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기호들로 가득 찬 언설’, ‘담론’, ‘이미지들이 아무런 비판 없이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당연시된 지식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이데올로기/권력

누가 보아도 사기꾼같이 생긴 사람은 절대로 사기를 칠 수가 없다. 사람들이 이미 경계를 하고 조심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누가 보아도 권력/이데올로기라고 느껴지는 것들은 더 이상 권력/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가 없다. 그런 까닭에 현대사회의 권력과 이데올로기는 우리들에게 당연시되는 지식의 형태로 행사되며, 사람들의 합의동조를 통해서 자양분을 흡수하고 재생산된다. 우리들에게 너무도 당연하게 인식되는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을 해체하는 것은,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를 푸는 일보다도 더욱 시급한 일이다. 이제 우리들에게 당연시된 지식의 형태로 행사되는 지식-권력인 서구적 가치의 정당성을 의심해보고, 그 인식론적 근거를 해체함으로써 우리의 기준과 잣대를 만들어가야 할 때이다.

 

해방이후 반세기만에 맞이하는 우리 문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과 호응을 또 다시 서구 닮아가기로 낭비할 수는 없다. 21세기 문화와 정보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주체적인 문화철학을 준비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경쟁력 있는 문화 상품은 결국 우리의 전통 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변형하는 데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체질인류학적으로 숏 다리인 한국인끼리 상대방을 숏 다리라고 놀리면서 웃는 바로 그 웃음속에는 이미 우리들의 무의식에 당연시된 지식으로 자리잡은 오리엔탈리즘이 작동하고 있다. 그 인식론적인 근거를 해체해 낼 수 있는 이들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지식인상이며, 이런 해체를 통해서 새로운 문화철학을 정립해야 하는 임무가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 시대의 지식인들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다.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맞이하며

이제까지 서구 중심의 오리엔탈리즘에 의해서 부당하게 평가되어 온 자신의 전통 문화에 대한 편견을 해체함과 동시에, 왜곡된 자신의 전통 문화를 서구의 잣대가 아닌, 왜곡되기 이전의 자신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전제로 해서 재인식하여야 하는 동시 작업이 제3세계 지식인들의 과제이다. 필자는 이런 점을, 자신의 문화 전통의 맥락에서 스스로의 문화를 읽는 동도동기론(東道東器論)에 비유한 바 있다. 즉 우리의 문화적 텍스트들을 서구적 잣대가 아닌 우리의 사유체계와 인식틀을 통해서 재평가, 재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필자가 제시한 동도동기론(東道東器論)이다.

 

동도동기론(東道東器論)은 서양 문화와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개항기에 중국한국일본 등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한국), 중체서용론(中體西用論:중국), 화혼양재론(和魂洋才論: 일본) 등의 언어 구성의 틀을 빌어 온 것이다. 그러나 개항기의 이러한 개념들은 가치 판단이 내재된 개념이었다. , 정신 세계에 있어서는 동양이 더 우수하기 때문에 도(), (), () 등 주체로 삼고(=東道, 中體, 和魂), 물질 문명에서는 서양이 더 우수하므로 기(), (), () 등으로 삼아 단순한 기물로 이용하자(=西器, 西用, 洋才)는 가치 판단이 들어가 있다.

 

필자는 이러한 개념 사용법에서 가치 판단을 모두 제거하고, ‘문화적 텍스트를 기()로 그 텍스트를 구성하는 문화적 원리나 문법을 도()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동도동기론이란 동양의 문화적 텍스트를 동양의 문화적 문법을 통해서 해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논의에 따른다면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의 문화적 텍스트를 서양의 문화적 문법을 통해서 해독하는 서도동기론(西道東器論)에 빗대어 볼 수 있다.

 

모든 유형 무형의 문화적 텍스트(=)는 그것이 형성되는 토대로서의 구성 원리 문법 사유체계(=)가 내재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물질 문명’(=)에서 그것이 만들어지고 변형되어 온 구성 원리 사상적 토대’(=)를 분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문화적 텍스트를 그것이 형성된 문법 사유 체계와는 전혀 다른 문법 사유 체계를 통해서 해독하는 것은 올바른 시각일 수 없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텍스트를 그것이 만들어진 문법 사유 체계를 통해서 해독하는 동도동기론과 서도서기론이외에는 모두 부당한 편견(: 서도동기론, 동도서기론)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편견이 지적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마치 보편적인 시각이라고 강변하더라도 그것은 편견일 뿐이다.

 

그러나 동도동기론 서도서기론은 한 문화에 대한 정당한 문화 읽기이고, 현대의 해석철학자 가다머(Hans Georg Gadamer)가 이야기하는 정당한 선입견’(Legitimate Prejudices)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서구의 문화적 헤게모니에 너무나 깊숙하게 물들어 있어서 서양적이라는 것에 대해서 과학적, 합리적, 논리적, 이성적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반면에, ‘동양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와는 전적으로 반대되는 비과학적, 미신적, 비합리적, 신비적, 비논리적, 비이성적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러한 동서양에 대한 인식론적 이분법이자 언설(Discourse)이 바로 에드워드 사이드가 이야기하는 오리엔탈리즘이다. 사실 이런 오리엔탈리즘에 입각한 차별적 사고 방식은 오늘날 제도교육, 지식인의 글쓰기, 메스컴과 광고를 통한 기호 가치(Sign Value)’수동적 소비(Passive Consumption)’ 등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시각 문화의 종속성은 이런 거대한 흐름의 단편일 뿐이다. 또한 이것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필자가 중국에 있으면서 보는, 노랗게 염색한 머리, 한뼘 높이의 구두굽, 알 수 없는 영어투성이의 티셔츠 등 서구지향적인 모습은 한국이나 중국이나 매일반이다. 1969예술계창간호에서 박대인 (朴大仁:그는 외국인으로 본명은 Edward W. Poitras)은 당시에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국 음악계를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다.

 

과거에 한국의 예술가들이 한국과 한국의 문화에 대해 너무나도 과소평가 하여 왔던 것 같다. (중략)한국은 사상, 음성, 감정, 형상, 색깔 및 인간관계 등에 있어서 풍부한 유산을 소유하고 있다. 이런 많은 것들이 너무나도 무시당하고 있으며, 또한 무사려(無思慮)한 모방과 서투른 수작 때문에 말살되어 가고 있다.

 

또한 그는 자기 문화를 스스로 비하하고 과소평가 하면서 오로지 서양의 음악적 형식을 모방하여 자기도 서양인과 같은 예술가라고 인정받기를 바라는 비주체적인 한국 음악인들을 나도밤나무에 비유하면서 다음과 같이 충고하고 있다.

 

지금은 - (중략) - 자신을 가지고 우리 자신의 작품을 창작해 낼 때이다. 다시 말해서 만약 우리가 지금까지 나도밤나무와 같은 태도의 영향을 받아왔다면, 이제는 우리 자신이 참된 밤나무가 되었음을 굳게 인식할 때이다. - (중략) - 이제부터 우리는 나도밤나무가 되기를 그만두고 열매를 맺는 참된 밤나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도밤나무(학명: Meliosma myriantha)는 외견상으로는 밤나무와 비슷하나 이 열리지 않는다. 여름에 황백색의 꽃이 피고 가을에는 대신에 둥글고 붉은 열매가 열린다. 이러한 충고는 아직도 유효하다. 주권을 되찾은 해방 이후 50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우리들에게 한 외국인의 이런 오래된 지적이 가슴깊이 다가오는 것은 비단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세기를 준비하는 현시점에서 왜곡된 문화사에 대한 반성과 자각이 없다면, 이러한 지적이 또 다른 반세기동안 여전히 유효할지도 모른다.

우실하/사회학박사, 중국 요녕대학 한국학과 초빙교수 / 2000.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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