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근 2017. 12. 16. 17:02



침입종 인간/ 팻 시프먼 지음·조은영 옮김 |푸른숲 | 388| 18500

 

저자 팻 시프먼PAT SHIPMAN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인류학과 명예교수. 뉴욕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존스홉킨스대학교를 거쳐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고생물학과 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다. 동물고고학과 화석생성학의 세계적 대가로 케냐, 탄자니아, 이디오피아, 이탈리아, 프랑스, 인도네시아,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 발견된 화석을 주로 연구했다. 시프먼은 죽은 동물 뼈가 변형되는 과정과 이유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연구자로 화석학 연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인류 진화를 주제로 지금까지 100편 이상의 논문과 10권 이상의 책을 썼다. 네안데르탈인THE NEANDERTALS은 영국 왕립학회가 수여하는 과학도서상인 르네-플랑크상(RH?NE-POULENC PRIZE) 최종 후보에 올랐고 남편이자 루이스 리키 다음 세대를 이끈 저명한 인류학자 고앨런 워커ALAN WALKER와 함께 쓴 뼈의 지혜THE WISDOM OF BONES로 르네-플랑크 상을 받았다. 멀리 날아가다TAKING WING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엘리트 그룹인 파이 베타 카파(PHI BETA KAPPA)가 해마다 가장 중요한 책을 골라 수상하는 파이 베타 카파 과학상을 받았고, LA타임스북프라이즈 최종 후보,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 주목할 책에 뽑혔다. 미국과학진흥회와 영국 왕립 지리학회 회원이다.

 

역자 조은영은 서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천연물과학대학원과 미국 조지아대학교 식물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조지아대학교 식물학과와 충남대학교 생물과학과 연구원으로 일했다. 거시생물학에서 미시생물학까지 두루 익힌 자칭 척척석사’. 현재 과학책을 두루 번역하며 옮긴 책으로 10퍼센트 인간, 세렝게티 법칙, 랜들 먼로의 친절한 과학 그림책, 차라리 아이에게 흙을 먹여라등이 있다.

 

감수자 진주현은 법의인류학자.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고고학을 전공하고,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유학을 떠났다. 스탠포드대학교에서 인류학 석사 학위를,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10여 년간 세계 각지의 발굴 현장에 참여해 인류의 진화와 기원, 사람과 동물 뼈대의 구조적·기능적 차이 등을 주로 연구했다. 현재 하와이에 있는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기관(DPAA)에서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실종된 미군의 유해를 발굴해 분석한 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본업 외에 하와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뼈가 들려준 이야기, 제인구달 & 루이스 리키: 인간과 유인원, 경계에서 만나다, 옮긴 책으로 인류의 위대한 여행이 있다.

 

목차

추천의 말

감수의 말 침입종 사피엔스의 미래를 생각하다

 

1부 침입

1. 적은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인간이 발을 들인 곳

성공한 침입종 또는 잔인한 포식자

 

2. 들어갈 테니 준비해

침입종이란 무엇인가

침입종으로 인정받으려면

오스트레일리아에 입성한 최초의 인류

여섯 번째 대멸종의 주범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

그들은 얼마나 가까웠을까

현생인류 유전자에 끼어든 네안데르탈인 유전자

3. 시간이 관건이다

도구 제작자들

누가 무엇을 만들었나

유물의 나이를 계산하는 법

빠르게 진행된 네안데르탈인 멸종

 

4. 침입에 성공한 자는 누구인가

성공한 침입종의 조건

인간은 타고난 침입종인가

기후변화와 이동

무기는 알고 있다

네안데르탈인의 등장과 퇴장

 

2부 경쟁

5. 생존과 멸종을 말하는 두 가설

기후변화 가설: 살던 대로 살기에는 척박한

경쟁 가설: 나누어 쓰기에는 모자란

 

6. 저녁 반찬이 뭐지

먹이를 찾아다니는 운명

포식자 길드와 호미닌

무엇을 먹고 살았나

네안데르탈인과 보수적인 입맛

매머드 학살

 

7. 침입이 가져온 결과

흔들리는 생태계

늑대의 귀환: 옐로스톤 국립공원

내 먹이 건드리지마

네안데르탈인의 스트레스

 

8. 가고 가고 가버렸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의 경쟁 구도: 현생인류의 증가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의 경쟁 구도: 네안데르탈인의 감소

 

3부 선택과 집중

9. 저녁 식사에 누가 또 올까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

그들만의 경쟁: 포식자 길드 내부 경쟁

동굴곰, 동굴사지, 동굴하이에나대형 포식자들의 멸종

자기보다 더 큰 먹잇감을 노리다

매복 사냥꾼과 추격 사냥꾼

포식자 길드가 무너지다

 

10. 경쟁 압력에서 꿋꿋하게 버티기

동굴곰의 멸종과 갈색곰의 생존

가진 건 다 줘

옐로스톤 늑대와 침입종 인간

 

11. 믹 재거 원리: 원하는 것을 얻는 법

적응, 이동, 변화

매머드 메가 사이트

멸종의 도미노

 

4부 동맹

12. 개가 된 늑대

개와 늑대를 구분하는 방법

늑대-개의 정체

최초로 개를 길들인 자

늑대-개와 인간의 인연

개 없이 사냥했다면

개도 인간이 필요했다

 

13. 왜 하필 개였을까

가축의 조건

길들이는 일

가축으로서의 늑대, 그리고 늑대-

친구인가 도구인가

 

14. 늑대는 언제 개가 되었을까

늑대의 탈바꿈

시선을 통한 의사소통의 진화

인간과 개는 어떻게 친밀감을 형성하는가

동맹, 그리고 최후의 압박

 

15. 무엇이 왜 일어났는가

멸종하거나 살아남거나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이미지 출처

찾아보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고인류학, 생물학, 유전학이 새롭게 밝힌 인간 본성의 비밀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사람을 비롯한 생명은 유전자가 만든 기계이며,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기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라며 인간 행위의 본질에 대한 도발적인 주장을 펼쳤다. 유발 하라리가 쓴 사피엔스는 인류가 진화하고 번성한 긴 이야기를 통해 호모 사피엔스, 즉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기술했다. 도킨스와 하라리는 인간이 생각보다 위대한 존재가 아니며, 긴 지구의 역사에서 보았을 때 무자비하고, 공격적인 동물이라는 관점을 제시해 인간에 대한 환상을 깨뜨렸다. 한때 지구상에서 가장 똑똑하며 다른 생물종보다 우월한 존재라고 자만했던 우리는 이제 인간 역시 지구에 사는 여러 생물종 가운데 생존을 위해 투쟁한 종 중 하나라는 점은 점점 믿을 만한 현실이 되고 있다.

여기 고인류학, 생물학, 유전학, 기후학 등 최신 과학이 입증한 증거를 바탕으로 인간의 본성에 한층 더 근원적으로 접근한 책이 있다. 바로 푸른숲에서 출간된 침입종 인간이다. 수만 년, 수십 만 년이라는 긴 시간 단위 안에서 인류 진화를 연구하는 고인류학자인 팻 시프먼은 훨씬 짧은 시간 단위 안에서 살아 있는 생물을 연구하는 생물학 개념을 도입해 인간의 속성을 한 단어로 정의했다.


침입종.


시프먼은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 대륙에서 진화한 이래로 거침없이 진출해나가며 닥치는 대로 자연을 개척하고 적응한 끝에 지구 곳곳을 점령한 인간이야말로 지구상 가장 파괴적인 침입종이라고 말한다.

 

내가 정의하는 침입종의 개념은 한 종이 역사적으로 새로운 영역으로 이동하는 과정 이상을 의미한다. 침입종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한 가지 기준은 보통 침입이 불러오는 영향력에 있다.”(39)

 

인간은 궁극적인 침입종인가?

시프먼의 정의에 따르면 인간은 장기적으로 활동하는 강력한 침입종이다. 그는 지난 수세기 동안 일어난 많은 생물들의 서식지 소실과 서식 환경 파괴의 이면에 있는 수많은 원인을 단 한 종, 호모 사피엔스에게 돌려도 무방하다고 말한다.(48) 인간은 또한 강력한 종 확산 도구이기도 하다. 인간은 의도적이든 우연히든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할 때마다 다른 생명체를 끌고 다녔다. 역병을 옮겼던 쥐나 벼룩, 체내 기생충, 그리고 가축이 그 예다.(89) 긴 인류 역사에서 보았을 때 인간은 아프리카를 제외한 세계 모든 지역을 침입하고 점령했다.

시프먼은 인간이 침입종으로 활약한 첫 무대로 약 4만 년 전 유라시아를 주목한다. 현생인류가 유라시아로 진출한 뒤, 이전까지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며 잘 살던 그 지역 최상위 포식자들인 네안데르탈인과 동굴사자, 동굴하이에나, 동굴곰이 멸종했다. 시프먼은 인간을 침입종이라 정의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간단명료하게 전한다.

 

우리가 침입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진화의 역사에서 과거와 현재에 우리가 차지하는 위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49)


화석학의 세계적 대가가 최신 과학으로 풀어낸 인류 진화의 미스터리

인류학은 인간이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때문에 새로운 증거가 나오더라도 실험을 통해 그 증거가 가진 의미를 명확하게 규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프먼은 인류학을 역사를 다루는 과학으로 다시 정의 내린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시프먼은 지금까지 인간이 남긴 흔적을 역사적으로 기술해온 방법론을 뛰어넘어 획기적으로 발전한 분석 기법과 진보한 유전학을 인류학의 영역으로 끌어온다. 이를 통해 왜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고 현생인류는 살아남았는지’, ‘인간은 어떻게 가장 번성한 침입종이 되었는지’, ‘지구상에서 가장 힘이 센 동물 현생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등 인류학의 오랜 질문에 대해 시프먼은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방사성동위원소, 탄소연대측정법과 같은 정교한 분석 기법으로 화답한다. 즉 뼈와 유물 등 인간이 남긴 과거의 흔적을 현재의 과학적 기법으로 보다 객관적이고 정밀하게 분석한 것이다. 이 책은 과학적 기법에 기댄 인류학의 선봉자로서 시프먼의 관점과 연구를 집대성한 책이다. 시프먼은 이 책에 고인류학, 생태학, 기후학, 동물행동학, 유전학, 화석학을 종횡무진하며 최신 과학의 흐름을 단숨에 정리하면서도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았다.


시프먼은 동물고고학과 화석생성학의 세계적 대가이자 우수한 과학책을 여럿 발표한 저명한 작가다. 그는 죽은 동물 뼈가 변형되는 과정과 이유를 여러 실험을 통해 과학적으로 분석해 화석생성학 연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케냐,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이탈리아, 프랑스, 인도네시아,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 화석을 연구해온 시프먼은 남편이자 루이스 리키 다음 세대를 이끈 저명한 인류학자 고() 앨런 워커와 함께 쓴 책으로 영국 왕립학회가 수여하는 과학도서상인 르네-플랑크 상을 받았다.

 

침입종으로 시작해 전 세계를 지배한 사피엔스의 전략

밀어내고, 버티고, 착취하고, 필요한 만큼 변한다

 

왜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고 현생인류는 살아남았는가는 인류학의 오랜 미스터리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호미닌 중에 현생인류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유를 두고 그들이 언어를 사용하고 사회성이 뛰어났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침입종 인간은 네안데르탈인 멸종 원인을 말하는 대표적인 가설로 기후변화 가설과 현생인류와의 경쟁 가설을 소개한다.(113) 시프먼은 이 두 가설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며 기후변화와 새로운 능력을 갖춘 현생인류의 출현이 시너지 효과를 내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켰다고 주장한다.(338) 여기서 시프먼이 말하는 현생인류의 능력이란 현생인류가 보유했던 문화적 완충재와 융통성과 더불어 가축화라고 부르는, 또 다른 최상위 포식자와의 전례 없는 동맹을 결성한 능력이다.

 

살던 대로 살다가 멸종한 네안데르탈인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67) 둘 다 불을 쓸 줄 알았고, 무리 생활을 했으며, 자기 몸무게의 80배에 달하는 매머드 같은 대형 동물을 잡아먹었다. 도구 사용에 능숙했던 이 두 호미닌은 4만 년 전 유라시아의 최상위 포식자 가운데 유일하게 매머드와 털코뿔소의 뼈를 쪼개 영양분과 지방이 많은 골수를 빼먹을 수 있었다.(215) 같은 먹잇감을 잡아먹었던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그리고 당시 최상위 포식자였던 동굴곰, 동굴사자, 동굴하이에나, 유럽시미타고양이가 주를 이룬 포식자 길드 내에서 치열한 먹이 경쟁이 벌어졌다. 극심한 기후변화가 찾아왔고 먹잇감은 점점 부족했다. 한정된 자원을 나누어 써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시프먼은 가우제의 법칙’(생태적 지위가 같은 두 종은 공존할 수 없다는 생태학 법칙)을 인용해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한 종이 경쟁자인 다른 종을 몰아내거나 멸종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121)


시프먼은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유해에서 얻은 몸무게 정보를 이용해 계산한 두 종의 에너지 필요량을 비교하며 몸집이 크고 근육질인 네안데르탈인의 에너지 필요량이 현생인류의 에너지 필요량보다 7~9퍼센트가량 높았으며, 이는 현생인류가 더 혹독한 기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신체 조건을 갖췄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194) 그는 현생인류가 남긴 뼈바늘을 근거로, 현생인류가 옷을 만들어 입었고 이는 추운 서식지에서 살면서 매머드 같은 덩치 큰 짐승 사냥을 위해 긴 시간 바깥에서 버텨야 하는 상황에서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보았다.(230)


시프먼은 또한 현생인류는 원거리 투척 무기를 이용한 추격 사냥꾼인 반면 네안데르탈인은 손에 들고 사용하는 무기를 쓰는 매복 사냥꾼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214) 당시 유라시아는 광활한 초원이 펼쳐진 스텝이나 툰드라 지대였다. 시프먼은 풀숲에 숨어 있다가 먹잇감이 나타나면 손에 무기를 들고 코앞에서 공격해야 하는 네안데르탈인의 사냥 방식은 분명 불리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았다. 독일 튀빙겐 대학교의 생물학자 헤르베 보셰렌스와 도로케 드루커가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식단과 관련해 종합한 동위원소 분석 결과, 현생인류는 네안데르탈인보다 먹잇감 선택의 폭이 더 넓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시프먼은 이를 토대로 네안데르탈인은 늘 먹던 것을 먹으며 보수적인 입맛을 유지했다고 분석했다.(132)


살던 대로 살아온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고 융통성을 발휘했던 현생인류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시프먼은 여기에 보다 확실하고도 획기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바로 인간과 늑대-개의 동맹이다.

 

또 다른 최상위 포식자와의 전례 없는 동맹

인류가 살아남은 것은 단순히 개 덕분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개를 언제, 어디서 처음 길들였는지는 과학계가 가장 주목하는 연구 중 하나다. 벨기에 인류학자 미예제 거몽프레는 2009년에 현생 늑대, 현생 개, 그리고 선사시대 개의 두개골을 부위별로 측정해 각각을 구별하는 통계 기준을 설정하고 여러 유적지에서 발견된 미확인 갯과 동물의 화석을 연대 측정했다.(257) 그 결과 최초의 구석기 시대로 판별된 개의 화석이 무려 32,000년 전 것으로 나타났다. 시프먼은 이 연구가 개의 가축화가 인간이 농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한 약 9,000년 전에 이루어졌다는 기존 가설을 뒤집는 획기적인 과학적 발견이라고 봤다.


연구팀이 더 많은 갯과 동물의 미토콘드리아 DNA 게놈을 분석한 결과 다른 현생 개 또는 늑대에게 나타난 적 없는 특이한 형질을 가진 집단이 나타났다. 시프먼은 개인지 늑대인지 불분명한, 늑대에서 개로 탈바꿈해가는 과정으로 보이는 이 특이한 집단을 늑대-개라 이름 붙였다.(263)


늑대-개는 인간의 사냥 조력자로서 인간이 생태계를 착취하는 데 있어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시프먼은 이에 대한 근거로 실제 사람이 개를 동반했을 때 획득한 사냥감의 양은 사냥개 없이 사냥했을 때 보다 56퍼센트나 증가한다는 핀란드 과학자 베라 루실라와 마우리 페소넨의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281) 시프먼은 늑대-개가 다른 포식자들로부터 짐승 사체를 지키고, 남자가 사냥 나가 있는 동안 여성과 아이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았다.


시프먼은 가축화는 언제나 쌍방향으로 이루어지며 양쪽 파트너 모두에게 이로운 협약이어야 한다고 말한다.(288) 개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인간과의 동맹은 개를 다른 육식동물과의 경쟁에서 자유롭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개들은 인간이 나눠주는 음식을 먹으며 인간의 주거지에서 안전하게 머물며 다른 동물의 공격과 경쟁을 피할 수 있었다. 인간이 개를 필요로 했듯이 개도 인간이 필요했다.

 

인간과 개는 어떻게 친밀감을 형성하는가

늑대가 개로 탈바꿈하는데 필요한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시프먼은 가장 기본적인 조건으로 인간과의 소통 능력을 꼽았다. 그리고 돌연변이 형질인 인간의 흰색 공막, 즉 우리 눈의 흰자위가 개와 의사소통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흥미로운 연구를 소개한다.(321)


인간은 영장류 중에서도 유일하게 흰색 공막과 열린 눈꺼풀을 가지고 있어 멀리서도 다른 사람이 어디를 보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일본 도쿄기술연구소에서는 갯과 동물의 얼굴을 분석해 눈동자와 홍채의 색 대비 정도와 얼굴 안에서 눈의 위치가 얼마나 잘 보이는지에 따라 종을 세 유형으로 나눴다. 그 결과 회색늑대, 코요테와 같이 무리지어 사냥하는 동물들은 대개 홍채와 동공의 대비가 뚜렷해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을 알아채기 쉬웠다.(321~323)


시프먼에 따르면 가축화된 개는 시선을 통해 의사소통하는 늑대의 유전적 능력을 이어받았고 심지어 현재 개는 인간을 응시하는 시간이 늑대보다 평균적으로 두 배나 더 길다. 이는 인간이 가축화할 때 인간을 바라보는 시간이 긴 개체를 선택적으로 교배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325)


우리는 반려견의 눈을 맞추고, 개 역시 의사소통을 위해 인간의 눈을 바라본다. 흰색 공막이라는 돌연변이 형질은 개와 인간의 연결 고리가 되었고, 어쩌면 이 형질 덕분에 인간과 개는 수만 년 동안 가장 끈끈한 동맹 관계를 맺어왔는지도 모른다.

 

개와 손잡고 경쟁자를 물리친 인간

미래 인간은 AI와 손잡고 누구를 물리칠까

 

네안데르탈인도 현생인류도 호모 에렉투스도 모두 도구를 만들어 썼다. 그러나 이 중 인간만이 살아 있는 도구를 창조해 썼다. 이를테면 뛰어난 시력과 청력, 후각, 빠른 이동속도와 같은 동물의 능력을 빌려 쓰거나 동물을 길들여 필요한 자원을 얻어 쓰는 식이다. 더 나아가 동물의 유전자를 인간의 입맛에 맞게 계획적으로 교배해 세상에 없던 종을 만들어내기도 한다.(28) 시프먼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진화 과정에 의존하는 대신 도구를 창작해서 사용하는 방식을 인간의 습성으로 보았다.


시프먼은 인간이 동물을 가축화한 것은 최초로 도구를 발명한 것만큼 커다란 도약이며 이는 인간에게 폭넓은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고 말한다.

이제 인간은 살아 있는 도구를 창조하는 것을 넘어 생물이 아닌 다른 종, 인공지능이라는 도구를 만들어 손을 잡기에 이르렀다. 뛰어난 지능과 정교한 기술을 지닌 인공지능은 분명 인간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 최근 인공지능 이슈가 떠오르면서 인공지능이 과연 인간을 추월할지, 추월한다면 언제가 될 것인지가 화두다.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갈 기회와 위협을 예측하기 위해 뇌과학, 생물학, 의학, 컴퓨터공학 등 과학계에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새롭게 성찰하기 시작했다.


질문은 이어진다. 지금 우리가 정의하는 인간의 본성은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가? 현재 우리의 모습이 과연 인류 진화의 끝일까? 우리는 멸종되지 않을 수 있는가? 수십 만 년 간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한 인간의 다음 표적은 누구일지, 그 표적이 우리 자신이 되지 않으려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 됨을 이 책은 무겁게 시사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실체를 이해할 때가 되었다.

침입자.

언젠가 지구의 적과 마주쳤을 때, 그 적의 정체가 우리 자신이 아니라면 그 자체로 우리는 승리의 축배를 들어도 될 것이다.”(344)

 

1. 적은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우리는 실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서식지에 뿌리를 내렸다. 이는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키는 대단한 기록이다. -27

 

먹이피라미드 가장 꼭대기에 자리 잡은 최상위 포식자는 생태계의 모든 비포식성 생물 집단을 직간접적으로 잡아먹는다. 우리는 당연히 최상위 포식자로서, 새로 진입하는 모든 생태계에서 우리와 경쟁할지도 모르는 다른 최상위 포식자를 제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온 힘을 기울여왔다. -31

 

이 책은 인류 역사 중에서도 특별히 중요한 시점을 다룬다. 최후의 비인간 호미닌인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한 시기 말이다. 나는 이 책에서 네안데르탈인은 그들이 머물렀던 지리적 영역에 현생인류가 등장하는 바람에 멸종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인간은 적응력이 대단히 뛰어난 침입종이며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져간 시기에 완벽하게 침입종의 역할을 했다. -33

 

1856년 네안데르탈인이 종으로 처음 인정된 이후로 많은 고인류학자는 우리의 사촌이나 다름없는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한 이유를 두고 혼란스러워했다. 네안데르탈인 역시 불을 지필 줄 알았고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다. 네안데르탈인도 무리 사회에서 서로 협동하며 살았고, 무리 사냥으로 대형 포유류를 제압했으며, 적어도 어느 수준까지는 기호와 예술을 사용했고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33

 

2. 들어갈 테니 준비해

침입종은 고유종도 자생종도 아닌 원래 그 지역에 속하지않는 종이다. 따라서 침입종은 해당 지역의 토박이도 아니고, 그곳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나지도 않았으며, 그곳에서만 서식한다고도 볼 수 없는 철저한 외래종으로 종종 지역 생태계를 파괴한다. -35~36

 

막스플랑크 연구소 팀은 현생인류의 게놈에서 추출한 1,004개의 개놈을 조사한 결과, 네안데르탈인 게놈을 포함하는 부분이 현생인류 게놈에 무작위로 흩어져 있지 않고 게놈의 특정 DNA 구역에 물려 있음을 밝혀냈다. 그 구역에는 피부나 손톱, 머리카락과 연관된 단백질인 케라틴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가 풍부했다. -62

 

네안데르탈인에서 비롯된 모든 유전자의 기능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가장 놀라운 조사 결과는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을 20퍼센트나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사이에 지금까지 밝혀진 수준 이상으로 교배가 일어났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교배 이후 어떤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는 너무 해로운 나머지 자연선택의 힘에 의해 바로 제거되었고, 보다 덜 해로운 놈들은 용케 계속 남아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64

 

3. 시간이 관건이다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은 여러 면에서 비슷했다. 둘 다 몸집이 크고 머리를 쓸 줄 알았으며, 큰 먹잇감도 거뜬히 잡는 능숙한 사냥꾼이자 도구 제작자였다. 여럿이 함께 모여 살았고 불을 쓸 줄 알았다.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어쩌면 두 종 모두 언어를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67~68


연대 측정팀이 네안데르탈인의 유해 2구 중에서 더 높은 지점, 즉 지표면에 더 가까운 지층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유해를 가지고 오염 물질을 제거한 후 다시 연대를 측정한 결과, 보정 전 방사성 탄소 측정 연대가 BP 39,700+_1,00, 그리고 부정 후에는 42,960~44,600년 전으로 밝혀져 이 유해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오래된 것임이 드러났다. -83

 

무스테리안 말기에 관한 자료를 현생인류가 유럽에 도착한 가장 이른 시기와 비교해보면,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가 겹치는 기간인 최대 2,600~5,400년 정도다. 현생인류가 유럽을 거쳐 아시아로 확산하는 데 걸린 기간까지 고려한다면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은 현생인류가 각 지역에 도착한 이후 굉장히 빠르게 진행된 셈이다. -85

 

4. 침입에 성공한 자는 누구인가

인간은 장기적으로 활동하는 강력한 침입종이다. 침입종 인간의 주요한 특징은 지리적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히치하이커’, 즉 다른 종들을 끌고 다니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90

 

네안데르탈인의 멸종과 현생인류의 생존을 이해하려면 또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원인을 상세히 파악해야 한다. 바로 시간에 따른 과거 지구의 기후변화다. 기후 환경 역시 종의 존망을 좌우하는 커다란 원인이었음이 분명하다. -93

 

인간의 가까운 친척인 네안데르탈인은 레반트라고 부르는 중동 지역을 포함한 유라시아에 거주했으며 아프리카에는 살지 않았다. 레반트에서 발굴된 선사 유적지에는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약 13만 년 전부터 기후가 변하는 패턴에 따라 번갈아가며 해당 지역을 차지한 흔적이 있다. -93~94

 

시어는 현생인류가 활과 화살, 아틀라틀(투창기) 등 복잡한 발사 무기를 사용한 덕분에 실질적 우위를 점했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했다. 그러나 발사 무기는 네안데르탈인의 유해나 유적지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103

 

5. 생존과 멸종을 말하는 두 가설

이전에도 극심한 기후변화가 수없이 찾아왔지만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에 이르게 하지는 못했다. 어째서 이들을 마지막으로 덮친 추위가 수십만 년 동안 성공적으로 삶을 영위해왔던 한 종을 단 번에 쓸어버렸을까? -116

 

유럽에 침입한 현생인류는 자신들이 진화해온 아프리카의 생태계와 전혀 다른 생태계에 맞닥뜨렸음에도 침입에 성공했다. 기후가 변하고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현생인류는 더욱 빨리 적응하고 융통성 있게 행동했을 것이다. -119~120

 

생태계에서 먹이경쟁은 먹지 마, 그거 내 과자잖아같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사건이 아니라, 한 종의 생명현상 전체에 연결된 엄청난 사건이다. -122

 

 

6. 저녁 반찬이 뭐지

현생인류는 식육목이 아닌 영장목에 속한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자르고 으스러뜨리는 강한 이빨이나 힘센 사지, 예민한 감각 능력처럼 일반적인 육식동물에게 보이는 형태상의 특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호모 사피엔스는 영락없는 포식성 동물이다. -128

 

스티너와 쿤은 유라시아 생태계에서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생존 성공률이 크게 차이난 이유는 네안데르탈인에게는 불안정한 식량 공급을 보완할 수단이 확실히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네안데르탈인의 예비 식량이 현생인류보다 훨씬 제한적이었음을 암시한다. -140

 

현생인류는 어떤 네안데르탈인 유적지에서도 목격된 적 없는 엄청난 수의 매머드를 죽이고 그 사체를 다양한 용도로 썼다. 다음은 그라베티안 시대였는데, 몇 마리에서 수백 마리나 되는 죽은 매머드가 쌓인 수많은 매머드 무덤이 발굴되었다. 그 무렵 네안데르탈인은 인구가 엄청나게 줄었거나 최악의 경우 이미 멸종했을 것이다. -144~145

 

7. 침입이 가져온 결과

포식자의 침입과 그것이 야기한 연쇄효과를 제대로 연구한 사례를 살펴보자. 이왕이면 우리에게 익숙한 생태계를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 바로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이다. -151

 

새로 유입된 백인 정착민들은 생태계의 침입성 포식자 노릇을 하며 곧바로 최후의 경쟁자인 늑대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152

 

1995~1996년 캐나다에서 들여온 두 무리의 회색늑대 31마리가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방사되었다. 옐로스톤 생태계의 자연 균형을 복원하여 유럽인이 정착하기 이전의 생태계로 되돌리기 위함이었다. -154

 

기후변화 시기에 유입된 포식자는 평상시에 침입자가 가하는 충격의 몇 배에 달하는 영향을 준다. 따라서 옐로스톤에서 관찰된 것처럼 생태계의 1차소비자(초식동물) 사이에 연쇄효과가 극적으로 퍼질 것이다. 실제로 플라이스토세의 유라시아에 현생인류가 도착한 이후로 포식자 길드에서 엄청난 충돌이 일어났다. 화석 기록에 따르면 동굴사자, 동굴하이에나, 동굴곰, 유럽시미타고양이, 표범, 승냥이 등이 지역적으로 절멸했거나 완전히 멸종했다. -172

 

8. 가고 가고 가버렸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가 동시에 사냥감으로 점찍은 먹이종은 많다. 이런 사실이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을 기후변화 탓으로 돌리는 주장에 재밌는 문제를 제기한다. 기후가 달라지면서 네안데르탈인이 사냥하기에 적합한 서식지가 축소되고 먹잇감이 귀해졌다면, 왜 현생인류의 서식지와 먹이 개체군은 줄어들지 않았을까? -174

 

멜러스와 프렌치는 두 호미닌이 각각 만든 유적지 수와 규모, 석기 도구의 밀도, 유적지에 남겨진 동물 뼈 개수와 식별된 종, 먹잇감의 뼈에서 추정한 고기 무게를 비교했다. 분석 결과는 놀라웠다. 현생인류가 도착한 이후 유적지 수가 증가하여 조사 지역에서 총 호미닌 개체군이 약 2.3배나 증가했다. -177

 

달렌의 연구에 따르면 5만 년 전 이후 서유럽에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적 다양성이 감소했다. 연구팀은 네안데르탈인이 부분적으로 멸종되거나 개체군 병목현상을 겪은 뒤 살아남은 소수의 무리가 유럽 일부 지역에서 다시 개체군을 형성해 현생인류가 도착한 약 45,000년 전까지 남아 있었던 것으로 해석했다. -184

 

9. 저녁 식사에 누가 또 올까

네안데르탈인의 다부진 근육질 몸매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음을 의미한다. 그중에서도 추운 기후에서 젖을 먹여야 하는 네안데르탈인 여성이 처한 조건이 가장 열악했다. -194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가 당면한 문제는 단순히 다른 호미닌의 존재나 기후변화가 아니었다. 그들이 마주한 심각한 문제는 바로 플라이스토세 시대에 유라시아에 존재한 대형 육식동물 길드였다. -199

 

인류가 살아남은 건 식사메뉴와 개덕분이다



현생인류와 늑대-개는 긴밀하게 협력했다. 미국의 일러스트레이터 댄 버가 늑대-개와 함께 매머드를 사냥하는 초기 현생인류의 모습을 상상해 그린 그림. 푸른숲 제공

 

네안데르탈인은 도구를 이용했고 불을 사용할 줄 알았다. 무리 생활을 하면서 자기 몸무게의 80배에 달하는 매머드 같은 대형 동물을 잡아먹었다. 4만년 전 유라시아에서 매머드와 털코뿔소의 뼈를 쪼개 골수를 꺼내 먹을 수 있었던 최상위 포식자는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로 불리는 현생인류뿐이었다. 둘 중에 체력이 더 뛰어난 쪽, 다시 말해 뼈대가 굵고 근육도 한층 발달한 포식자는 네안데르탈인이었다. 그런데 왜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하고 현생인류만 살아남았는가

 

이 책의 저자인 팻 시프먼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인류학과 명예교수다. 특히 동물고고학과 화석학 분야에서 명성이 높다. 저자는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원인으로 흔히 거론되는 기후변화 가설’ ‘현생인류와의 경쟁 가설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간다. 그는 “4만년 전 이전에도 극심한 기후변화가 수없이 찾아왔지만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에 이르게 하지는 못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네안데르탈인을 고차원적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없는 야만적 원시인으로 몰아가는 경향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물론 두 종이 같은 지역에 살면서 한정된 자원을 나눠 써야 하는 상황, 다시 말해 경쟁이 발생했다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알려져 있다시피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20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진화했다. 그들이 유라시아로 진출한 시기는 대략 4만년 전이다. “수십만년간 유럽에서, 자신들의 방식으로 잘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과 새로운 침입자 현생인류의 경쟁은 그때부터 벌어졌다. 핵심은 당연히 먹이 경쟁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그들 각자의 메뉴가 무엇이었는가를 살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책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은 해당 지역을 점령했던 야생말, 붉은 사슴, 순록과 같은 대형 육상 포유류로부터 식이 단백질을 섭취했다. 이는 동굴사자, 늑대, 하이에나 등 최상위 육식동물과 비슷한 식성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이 해산물을 대량 섭취했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현생인류는 달랐다. 네안데르탈인에 비해 훨씬 폭넓은 식이 스펙트럼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현생인류는 소형 동물이나 연체동물을 포함해 훨씬 다양한 먹잇감을 섭취했다. ‘보수적인 입맛을 지닌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에 비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현생인류를 침입자로 규정한다. 침입종은 특유의 먹거리 융통성으로 토착종과의 경쟁에서 승리의 교두보를 차지했다. 현생인류의 개체는 점점 늘었고 보수적인 식성을 바꾸지 못한 네안데르탈인은 반대로 줄었다. “현생인류의 활동 영역은 점차 확대됐고 네안데르탈인은 축소됐다. 현생인류는 평균기온 영하 2.2도의 혹독한 지역에서, 네안데르탈인은 이보다 온화한 평균 6도의 지역에 거주했음에도 불구하고, 몸집이 큰 네안데르탈인의 에너지 필요량은 현생인류보다 7~8%가량 높았다. 이 또한 네안데르탈인에게 불리했다. “네안데르탈인은 체온을 유지하는 능력이 부족했고, 대사율이 높았으며,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다.”

 

이어서 승부를 가르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 등장한다. 침입성 포식자인 현생인류는 또 다른 라이벌인 최후의 경쟁자 늑대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현생인류가 택한 전략은 죽여 없애는 것이 아니라 포섭 혹은 동맹이었다. “현생인류는 유라시아에 도착한 이후 1만년도 안 됐을 때부터 늑대를 길들이기 시작했다. 저자는 늑대혹은 라는 표현보다는 늑대-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하면서, “가축화 과정은 쌍방향으로 이뤄지며 늑대-개에게도 인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이 가축화 과정에서 인간의 돌연변이 형질인 흰색 공막, 즉 우리 눈의 흰자위가 늑대-개와 의사소통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흥미로운 연구를 소개한다.

 

책에 따르면 현생인류는 늑대-개와 협업하는 사냥을 통해 생태계를 착취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늑대-개들은 인간이 던져주는 고기를 먹으면서 “(사냥한) 짐승의 사체를 다른 포식자들로부터 지켜냈다”. 현생인류만이 이처럼 살아 있는 도구를 사용했다. 저자는 현생인류를 특별히 강력한 최상위 포식자로 만든 것은 또 다른 포식자와의 동맹이었다면서 다른 어떤 포식자도 이 정도 수준으로 동맹한 적은 없었다고 강조한다. 이렇듯이 이 책은 식사 메뉴인간과 늑대의 동맹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네안데르탈인의 멸종과 현생인류의 번성을 설명한다. 고인류학, 동물행동학, 화석학, 유전자학, 기후학 등을 오가면서 두 개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저자의 내공이 깊다. 12.16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