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 신기후체제의 정치 브뤼노 라투르 지음, 박범순 옮김/이음· 2021.02.15.
브뤼노 라투르는 철학자이자 인류학자로 1947년 프랑스 동남부의 버건디, 본 지역의 와인 양조 집안에서 태어났다. 1982년부터 2006년까지 파리국립광업학교(Ecoles des Mines de Paris)의 신기술사회학센터(Centre de Sociologie de l’Innovation) 교수를, 2006년부터 2017년까지 파리정치대학 교수를 지냈다.
그는 아프리카와 캘리포니아에서의 현장 연구 이후 과학자와 엔지니어 분석의 전문성을 갖게 되었으며, 철학, 역사, 사회학, 과학 인류학 분야 외에도 과학 정책 및 연구 관리 분야의 많은 연구에 참여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실험실 생활Laboratory Life》, 《젊은 과학의 전선Science in Action》, 《프랑스의 파스퇴르화The Pasteurization of France》 등이 있으며, 근대성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담은 에세이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We have never been modern》와 ‘과학전쟁’의 결과를 탐구하기 위한 에세이를 모은 이 책 《판도라의 희망Pandora's Hope》을 펴냈다. 또한 환경 위기와 관련한 논문 여러 편을 모아 환경의 정치 철학에 관한 《자연의 정치Politics of Nature》를 출판했다.
현재 프랑스 파리정치대학 미디어랩과 정치예술(SPEAP)과정의 명예교수이자, 2018년 1월부터 독일의 카를스루에 미디어 아트센터(ZKM, Zentrum fur Media Kunst) 펠로우, 오펜바흐 미술대학(HfG, Hochschule fur Gestaltung Offenbach am Main)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수의 학회 멤버이자, 여섯 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013년에는 홀베르그 상(Holberg Prize)을 수상했다. 스무 권이 넘는 책과 15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1. 정치적 허구로서의 가설: 불평등의 폭발적 증가와 기후변화 부정은 같은 현상이다
2. 미국의 기후협약 탈퇴로 선포된 전쟁
3. 모든 이의 걱정거리로 전락한 이주 문제: 발 디딜 땅을 빼앗겼다는 깨달음
4. ‘글로벌화-플러스’와 ‘글로벌화-마이너스’를 구분하기
5. 글로벌주의를 신봉하는 지배계급은 어떻게 연대의 책임을 외면하는가
6. 인식론적 망상을 일으킨 ‘공통 세계’의 포기
7. 세 번째 극의 출현으로 흔들리는 로컬과 글로벌이라는 두 극의 관계
8. ‘트럼프주의’ 덕분에 발견한 ‘외계’라는 네 번째 유인자
9. 새로운 지정학적 조직: ‘대지’라고 부를 유인자의 발견
10. 왜 정치생태학은 그 문제의 중요성에 걸맞게 성공한 적이 없는가
11. 왜 정치생태학은 좌우파의 대립에서 벗어나는 데 그토록 어려움을 겪는가
12. 사회 투쟁과 생태 투쟁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13. 계급 투쟁은 지리-사회적 위치 사이의 투쟁이다
14. ‘자연’에 대한 한 관점이 어떻게 정치적 입장을 고정시키는가
15. 좌우파 이분법에 고착된 ‘자연’의 주문에서 벗어나기
16. 객체로 구성된 세계와 행위자로 구성된 세계의 차이
17. ‘임계영역’ 과학의 정치적 특성
18. 더욱 커지는 ‘생산 시스템’과 ‘생성 시스템’ 사이의 모순
19. 거주지를 기술하는 새로운 시도: 프랑스의 진정서 제도
20. 구대륙을 위한 개인적인 변호
주(註)
옮긴이의 말
출판사 서평
“불평등의 증가와 기후변화 부정은 같은 현상이다”
지배계급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책임을 외면하는가
라투르는 신기후체제에 관한 정치적 가설 중 하나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어떤 엘리트 집단이 지구의 환경 파괴에 대한 경고를 들었다고 가정한다. 그에 따른 두 가지 시나리오가 존재한다. 하나는 경고를 들은 엘리트들이 그 심각성을 대중과 공유할 만큼 깨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류가 큰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는 걸 알았지만, 그 피해는 엘리트 집단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받게 될 것이기에 경고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라투르는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1980년대 이후 나타난 탈규제와 복지국가의 해체, 2000년대 이후 나타난 기후변화의 부정,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40년 동안 급격하게 증가한 불평등을 하나로 꿰어 설명한다.
라투르는 또한 로컬과 글로벌이라는 두 개의 극을 통해 근대성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투쟁을 살펴본다. 그리고 여기에 ‘대지’와 ‘외계’라는 새로운 극을 등장시켜 글로벌과 로컬의 한계를 지적하고 지금의 정치적 상황들에 적용한다. 여기서 ‘대지’는 인간이 거주하는 환경이나 배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정치적 행위자를 뜻한다. 지구의 안정성이 담보되었을 때에, 인간들은 영토를 소유 가능한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그 땅 위에서 우리가 영원할 거라 믿었다. 그런데 그 영토 자체가 인간과 맞서고, 인간 생활에 관여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라투르는 특히 생태학이 ‘대지’를 엄밀히 정의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19세기 이후의 사회 투쟁에서 발생한 변화의 동력이 생태 투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분석한다. 그는 정치생태학이 왜 그 문제의 중요성에 걸맞게 성공한 적이 없는지, 왜 좌우파의 대립에서 벗어나는 데 그토록 어려움을 겪었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역사에 등장하는 진정서 작성이라는 ‘정치’의 고전적 개념이 나오기 전에 시행되었던 제도를 통해 하나의 가능성을 제안하며 논의를 마무리한다.
역사상 처음으로 80억 명의 인류를 감당하며 신음하는 지구
지금이 지구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한 바로 그 때이다
라투르를 소개하는 수식어는 너무나도 많다. 과학과 인문학을 아우르는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그중에서도 생태학과 사회학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21세기 사상의 최전선에 서 있는 학자이다. 라투르의 가장 유명한 이론으로는 ‘행위자-연결망 이론’을 꼽을 수 있다. 라투르가 이 책에서 말하는 ‘착륙’의 의미 역시 행위자-연결망 이론의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근대인들이 지구를 바라보는 시각은 마치 우주 영화 속에 등장하는 푸르고 동그란 암석 덩어리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그런 관점으로만 지구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지구 시스템이 인간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영영 깨닫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지구를 ‘행성’이 아닌 ‘대지’로 감각해야 한다.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을 다시 생각해보자. 풍부한 물, 숨 쉴 수 있는 공기, 비옥한 토양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우리와 나누는 자연을 말이다. 우리의 기반이 되어주는 이런 환경들은 오랜 시간 생명체 자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 한쪽에 유기체가 존재하고 다른 한쪽에 환경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양자에 의한 공동 생산이 있을 뿐이다. 인간은 더 이상 자연의 중심이 아니다. 다른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자연과 교류하는 일부일 뿐이다. 우리가 ‘우주로서의 자연’이란 관점에서 벗어나 ‘과정으로서의 자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라투르는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지도, 제도적 실체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 위기 상황을 이해할 철학적 발판을 제공하고 준비시킨다. 지금껏 그 어떤 인간 사회도 80억 명에 달하는 인류를 감당하고 있는 지구가 무슨 반응을 보일지 고심해 본 적이 없었다. 라투르가 말하는 신기후체제에 맞는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생각하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어디에 착륙하고 싶은지, 누구와 우리의 장소를 공유할 것인지 말이다.
라투르의 학문적 궤적을 집약한 도발적 논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전하는 팬데믹과의 연관성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은 2017년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한국어로 번역된 라투르의 저작 중 가장 근래의 것이다. 그만큼 최근 라투르의 관심사를 다루고 있으며,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학문적 궤적과 더 정교하게 발전된 논의들이 집약되어 있다. 그가 이 책에서 던지고 있는 메시지는 매우 ‘정치적’이며 신선하다.
라투르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한국어판 서문으로 인사를 전했다. 책이 처음 출간된 때와 현재의 상황을 비교하자면, 지금은 세계적 팬데믹 상황으로 락다운이란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라투르는 이 책에서 말하려는 이야기와 펜데믹 상황이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기후변화와 바이러스의 출현 모두 인간 활동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락다운 상황 앞에서 글로벌이란 단어는 순식간에 힘을 잃었다. 팬데믹 속에서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개념을 떠올린다면, 이제 공간은 실체가 위치하는 곳이 아니라 갈등과 법, 기술로 벡터화되는 곳이다. 더 이상 미터법을 따르는 공간의 정의를 당연히 여길 수 없게 되었다. 이와 관련된 더 깊은 논의는 이 책의 후속작이자, 곧 번역될 예정인 『나는 어디에?(O? suis-je?)』에서 살펴보게 될 것이다.
책속으로
다시 말해 이주의 위기는 일상이 됐다. 지금부터는, 엄청난 비극 속에 조국을 뒤로하고 국경을 넘어온 외부로부터의 이주민과 함께,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는 하지만 자기 자신의 나라에 의해 뒤로 밀려나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내부로부터의 이주민을 추가로 생각해야 한다. 이주의 위기를 개념화하기 매우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모두가 함께 겪는 몹시 고통스러운 시련, 즉 땅을 박탈당하는 시련에서 나오는 증상이기 때문이다.--- p.24
이는 인지 결핍을 고치는 법을 배워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같은 세상에서 살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며, 같은 이해관계를 직시하고, 함께 즐길 풍경을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위와 같은 합리적 생각에서 인식론의 악습, 즉 공유된 경험의 결핍에 불과한 것을 지적 결핍의 탓으로 돌리는 나쁜 습성을 발견한다.--- p.48
이 때문에 생태 정당들의 성장이 늦춰졌다. 그들은 우파와 좌파 사이에 자리 잡거나 그런 구분을 ‘초월’하려고 했지만, 그런 초월을 상상할 수 있는 지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 그들은 옆으로 한 발짝도 비켜서지 못하는 바람에 두 유인자 사이에 끼게 되었고, 그 유인자들 자체도 점차 현실성을 잃어 갔다. 정당들이 어디로도 신속하게 움직이지 못한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p.83
그들이 예견하지 않은 것은(사실 완벽하게 예견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이 진보의 지평선이 그저 평범한 지평선으로, 단순한 조정의 아이디어로, 갈수록 모호해지는 유토피아로 조금씩 변모해 가는 가운데, 서서히 진화 중인 지구가 거기에 어떤 물질적 기반을 제공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p.90
신기후체제의 이슈는 바로 우리가 어디에 기대어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는 데 있다. 탈중심화가 안건에 들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둘레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무한한 우주보다는 지구에 관한 문제이기에, 파스칼을 흉내 내어 “중심은 아무 데나 다 있고 둘레는 어디에도 없구나”라고 말해야 한다. --- p.123
기후변화 넘어설 열쇠는 ‘대지’에 있다
신기후체제 극복 위한 라투르의 정치기획…인간은 ‘대지의 것들’
대지에 속한 생명체에 불과한 인간이라는 관점으로 인식 전환해야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영토를 모두가 공유하는 ‘공통 세계’에서 분리하고, 지구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낼 생각이 없다. 공룡부터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를 짓밟고 앉아서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다. 라 데쿠베르 제공
과학기술학의 개척자 중 한 명인 브뤼노 라투르의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을 독해하려면,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을 비롯해 라투르의 기존 연구를 이해하는 게 좋다. 행위자-연결망 이론은 프랑스의 라투르와 미셸 칼롱과 함께 영국의 존 로 등이 1980년대에 발전시켰다. 단순히 살펴보면, 이 이론은 과학·기술을 연결망 구축의 산물로 보는데 과학자와 기술자 등 인간뿐 아니라 실험기기, 텍스트, 건물, 생물 등 다양한 비인간 역시 행위자로서 연결망에 참여한다고 보는 것이, 즉 인간과 비인간을 행위자로서 구분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자 특징이다. 예컨대 과학자와 실험기기가 네트워크를 이뤄 지식이 만들어지고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생을 설명하는 데서 시작한 행위자-연결망 이론은 1990년대 일반 사회이론으로 확장되고 인류학, 문화연구, 지리학, 환경학, 정치학, 경제학 등으로 확대 적용된다.
라투르는 1991년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갈무리·2009)를 펴내, 인간(문화)과 비인간(자연)의 이분법은 부적절하다고 설파한다. 실제로는 연결망 구축을 통해 자연과 문화의 하이브리드(hybrid)가 만들어져왔음에도 인간과 비인간이 다른 범주에 속하는 존재인 것처럼 여겨져왔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이분법 구도를 라투르는 ‘근대주의 헌법(constitution)’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실제 역사적으로 근대주의 헌법이 온전하게 작동했던 적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고 선언하는 데 이른 것이다. 라투르의 이론은 1999년 출간한 <판도라의 희망>(휴머니스트·2018)과 <자연의 정치>(국내 미번역)로 본격화한다. <판도라의 희망>에서는 근대주의 헌법의 이분법이 만들어진 연원을 궁구하며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어떤 질적 간극도 존재하지 않음을 밝혀냄으로써 근대주의 헌법의 한계를 지적하고, <자연의 정치>에서는 기후변화로 대표되는 근대성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근대주의 헌법을 대체할 새로운 정치철학으로서 정치생태학(political ecology)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근대주의 헌법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동시에 이를 넘어설 실천적 논의를 전개한 것이다.
2017년 출간되고 이번에 한국에서 번역된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은 라투르의 이런 지적 여정의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 책의 주요 열쇳말 중 하나는 부제에 담긴 ‘신기후체제’(New Climatic Regime)이다. 여기서 라투르는 기후변화라는 인류가 맞이한 절체절명의 위기뿐 아니라 이미 심화된 불평등과 대규모 규제완화, 인류를 파멸로 이끌고 있는 세계화로 인한 각종 위기 등이 몰려 닥친 오늘날을 ‘신기후체제’라고 규정한다. 이 책이 쓰여진 시기는 영국에서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통과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이미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이뤘음에도, 트럼프가 해치워버린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는 ‘기후변화 부정’의 양상을 보여주는데, 트럼프주의로 대표되는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의 존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기후변화는 지정학적 이슈이고 불평등 문제와도 연결된다. 1980년대 이래로 탈규제와 복지국가의 해체가 본격화하고, 2000년대 이후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흐름이 나타난 데 이어, 지금까지 극대화한 불평등은 서로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라투르는 이 책의 전반부에서 최근 50여년 간의 정치 지형을, 로컬과 글로벌이라는 양극을 구도로 설명한다. 근대성을 배경으로 로컬과 글로벌 사이에 벌여온 다양한 투쟁을 살피며, 여기에 ‘대지’와 ‘외계’라는 새로운 극을 등장시킴으로써 글로벌과 로컬의 한계를 지적하는데, 대지는 환경이나 배경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행위자다. 영토 자체가 인류에 맞선다는 아이디어는 우리가 오늘날 마주하고 있는 기후변화는 물론이고 코로나19 팬데믹과도 맞닿는다. 여기에서 기후위기에 생태학과 환경운동이 제대로 맞서지 못한 원인을 짚는데, 대지를 엄밀히 정의하지 못함으로써 19세기 이후 사회 투쟁에서 발생한 동력을 생태 투쟁으로 연결시키지 못한 데 있다고 분석한다.
이 대지의 개념은 신기후체제를 극복하고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할 라투르가 고안한 정치적 기획의 핵심이다. 인간을 자연과 분리된 초월적 존재로 보는 근대적 인식론은 생태계 파괴와 기후위기의 원인인 반면, 대지에 속한 생명체 중의 하나에 불과한 인간이라는 관점은 신기후체제에 맞설 매우 중요한 인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라투르는 “우리는 땅에 속해 있고, 대지의 것들 중의 대지의 것들이다”라고 강조하며 “자연에서 대지로 관심을 바꾸면 기후 위협 이후 정치적 입장을 얼어붙게 하고 사회 투쟁과 생태 투쟁 사이의 연대를 위태롭게 했던 단절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이때 인간과 비인간들로 공동 구성된 ‘대지의 것들’ 간의 관계는 의존성을 주요 원칙으로 삼는다. 인간은 분산된 역할 중 하나를 맡을 뿐이며 (기후)변화의 원인은 메커니즘이 아닌 발생(genesis)을 분석함으로써 찾게 된다. 이를 라투르는 기존의 생산 시스템(system of prodution)과 다른 생성 시스템(system of engendering)으로 구분하는데, “생산 시스템에서 생성 시스템으로 전환함으로써, 불의에 맞서 저항할 주체를 증식하고 이로써 대지를 위한 투쟁에 나설 잠재적 우군의 폭을 상당히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코로나19 팬데믹 가운데 인류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비인간인 바이러스는 행위자로서 인간과 연결되어 있다. 마스크와 진단 키트 역시 비인간 행위자로서 인간과 연결망을 형성하고 있다. ‘인간-바이러스-마스크-진단 키트’의 긴밀한 연결성에서 기후변화와 관련한 대지의 것들 간의 연결망을 알아차릴 수 있다. 라투르는 지난해 팬데믹이 시작할 즈음, 코로나19에 따른 고통과 혼돈은 더 큰 기후위기를 준비하기 위한 예행연습(드레스 리허설)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팬데믹은 신기후체제의 정치를 더욱 활성화하지 않을까? 그는 이 책 끝에서 다급한 투로 우리에게 요청한다. “당신은 어디에 착륙하고 싶은지, 누구와 함께 장소를 공유하며 살아가기로 했는지 이야기해 달라”고.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