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정의감 중독 사회

이성근 2023. 4. 2. 02:32

<정의감 중독 사회>, 안도 슌스케지음, 송지현옮김, 또다른우주펴냄. 또다른우주 202303

원서 : しい その正義感りにつながる

 

: 안도 슌스케 (安藤俊介)

1971년 일본 군마 현에서 태어났다. 도카이대학을 졸업하고 캐나다에서 유학한 후 외국계 기업, 민간 싱크탱크 등을 거쳤다. 화나는 일만 가득했던 2003년 이전에는 사소한 일에 쉽게 화내고 짜증 내는 사람이었다. 욱하는 성격 때문에 인간관계가 삐걱거리고 화를 내는 스스로가 진저리 났던 그는 2003년 미국 뉴욕에서 분노를 다스리기 위한 심리 트레이닝인 앵거 매니지먼트를 만난 후 성격은 물론 인생까지 바뀌는 전환점을 맞았다. 미국에서 아시아 최초로 앵거 매니지먼트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 후 일본으로 돌아가 이론과 기술을 전국에 보급했다. 현재는 일본 앵거 매니지먼트 협회 대표 이사로 기업과 교육 기관, 의료 기관 등 수많은 곳에서 세미나를 하며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는 미국 내셔널 앵거 매니지먼트 협회에 재적된 1,500명 이상의 앵거 매니지먼트 퍼실리테이터 중에서 15명만 뽑히는 최고 등급의 트레이닝 전문가에 등록되어 있는데 미국인 이외에 유일한 일본인이다.

 

목차

1장 정의감이 강한 사람

쉽게 소비되는 정의 / 정의가 숨통을 조인다 / 정의감이 강한 사람은 자주 화가 난다 / 분노가 생겨나는 구조 / 나의 정의와 당신의 정의

 

2장 정의감 중독은 마음의 어둠에서 시작된다

나의 분노에 다수가 공감하는가 / 공공의 정의를 판별하는 기준, 빅 퀘스천 / 정의감은 어디서 생겨나는가 / 핵심 믿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해결되지 않은 마음속 어둠에서 비롯된 분노 / 정의감이 폭주하는 조건 / 왜 정론은 미움받는가?

[정의에 대한 오해 1] 손님은 왕?

 

3장 정의감에 중독되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정의감에 중독되는 사람이 늘고 있다 / 왜 정의감은 중독성이 강할까? / 정의감 중독 체크 리스트

[정의에 대한 오해 2] 목소리 높이는 소수에게 마이크를 넘기지 말자

 

4장 정의감 중독에서 벗어나기

정의감을 내려놓는 연습 / 관여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 사람과 사건에 대한 허용도를 높인다 /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것을 알아낸다

[정의에 대한 오해 3] 공정한 세계 가설에 사로잡힌 사람들

 

5장 정의감 중독인 사람과 잘 지내는 법

정의감 중독의 다섯 가지 유형 / 고독한 유형 / 질투 유형 / 독선가 유형 / 집단 심리 유형 / 열등감 유형

출판사 리뷰

분노는 어떻게 정의감을 내세운 마녀사냥이 되었나?

마음속 어둠에서 생겨난 정의감 중독의 메커니즘과 대응법!

 

사회학자 오찬호, 경제학자 조귀동 강력 추천!

미국 최고의 분노 조절 전문가 15에 선정,

전 세계 70만 부 넘게 저서가 판매된 안도 슌스케 화제의 신작!

 

언제부턴가 각자의 정의로 서로를 공격하는 세태가 심해지고 있다. 정의를 내세우면서, 공정을 내세우면서 약자를 차별하고 혐오를 조장하기도 한다. SNS를 사용하는 사람은 누구나 악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온라인 세상에 익숙해지면서 가깝고 먼 인간관계에 대한 거리 감각이 저하되어 사적으로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과도하게 참견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제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사람들 누구나 사생활이 공개되고 비판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참교육’, 신상 털기, 디지털 자경단이 온라인에 횡행하고, 사람들은 사적제재와 자력구제를 다룬 드라마에 열광한다.

 

정의감 중독 사회는 일본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사건으로 시작한다(12). 한 프로레슬러가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아끼는 레슬링 유니폼을 다른 출연자가 세탁기에 넣고 빠는 바람에 못 쓰게 되자 상대 출연자에게 크게 화를 냈는데, 방송 후 그 레슬러의 태도를 지적하는 글이 쏟아지고 개인 SNS에도 많은 악플이 달리자, 비극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 사건이 발생한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이 방역지침을 잘 지키는지 서로 감시하고 환자 발생 지역 번호판을 단 자동차의 차주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하는 등, 평소라면 정의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을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타인을 공격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저성장, 양극화, 감염병 위기, 인플레이션, 경기 침체 속에서 두려움과 불안이 가스처럼 내면에 쌓이면, 자잘한 갈등이 도화선이 되어 사람들의 내면에 충전된 가스가 폭발하면서 격한 분노와 사회적 대립으로 이어진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꼭 필요한 정의감이 서로를 감시하고 비난하는 명분으로 활용되면서 부담스럽고 거리를 두고 싶은 것으로 바뀌고 있다.

 

정의감 중독 사회는 정의감이 서로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어 버린 현대사회의 문제를 분노 조절 전문가의 시각에서 분석한 독창적인 저서이다. 저자 안도 슌스케는 미국 앵거 매니지먼트 협회에 등록된 1,500명 이상의 퍼실리테이터(교육생 및 조직 구성원의 변화를 촉진하는 조력자) 중에서 15명만 뽑는 최고 등급 전문가로 선정되었고, 귀국 후에는 일본에 앵거 매니지먼트 이론과 기술을 확산하는 데 힘썼다. 그의 저서는 미국과 아시아 각국에서 지금까지 7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로 공정을 내세워 차별을 내면화한 세태를 날카롭게 지적한 사회학자 오찬호는 주관적인 잣대로 정의감을 휘두르며 극과 극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마주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날 선 분노들 사이에서, 차분하게 숨 쉬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고 밝혔다. 객관적인 데이터로 계층 세습의 현실을 밝혀냄으로써 세대 간 혐오와 대립 프레임에 정면 도전한 세습 중산층 사회저자 조귀동은 인스턴트식품이나 패스트패션같이 손쉽게 올바름을 소비하는 시대에 거리를 두고 감정과 행동을 찬찬히 되돌아볼 것을 주문한다. 긴 안목에서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건전한 행동을 하는 것인가 따져보라는 조언은, 다양한 감정 과잉을 유도하는 디지털 시대에 경청할 가치가 있다고 이 책을 추천했다.

 

정의감이 진짜 우리 삶과 세상을 더 낫게 만들려면, 그것이 내세우는 명분에만 주목하지 말고, 내면에 대한 성찰과 사회에 대한 참여를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정치적 양극화로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복원하려면 나의 정의감, 타인의 정의감이 어디서 생겨났는지 고민하고, 소통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 책은 바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대화하기 위한 전제 조건을 알려준다.

 

수많은 상담 사례를 통해 밝혀낸 정의감 중독의 메커니즘,

심리적 동기에 따른 다섯 가지 유형과 대응법까지!

사람들은 누구나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있다. 개인의 핵심 믿음(core belief)은 가정과 소속집단 속에서 어려서부터 형성되는데, 사람들은 어떤 상황을 마주하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핵심 믿음을 기준으로 그 상황에 의미를 부여한다. 현대사회는 개인의 이동성이 증가하고 정보가 무한대로 교류되므로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수많은 다양성을 접하게 된다. 그런데 이처럼 다양한 가치관, 취향, 문화에 접하다 보면, 핵심 믿음에 반하는 것들도 자주 접하게 될 수밖에 없다.

 

핵심 믿음에 어긋나는 것을 보면, 이건 옳지 않다는 정의감이 발동한다. 그러나 마음이 평온하고 사고가 유연하다면 웬만한 것들은 그냥 넘어갈 수 있다. 문제는 바로 내면에 부정적인 에너지가 쌓여 있을 때 발생한다. 개인은 물론 사회 전반에 불안과 불만이 가득 쌓여 있으면, 작은 불꽃에도 쉽게 발화되어 큰 폭발로 이어지게 된다.

 

성장이 정체된 사회에서 불충분한 기회와 자원을 두고 경쟁이 심해지면, 조금만 남보다 높은 곳에 올라서도 자신은 그럴 자격이 있다고 합리화하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질타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저자는 대표적인 심리적 오류 중 하나인, 성실한 사람이 성공하고 게으른 사람은 대가를 치른다는 공정한 세상 가설(Just-World Hypothesis)’을 믿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크게 늘었다는 데이터를 제시한다(135). 운이 나쁜 사람들이나 약자들을 도덕적으로도 공격하는 차별과 혐오는 우리 사회 전반에서 목격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개개인의 심리적 약점을 파고든 정의감 중독이 확산하고 있다. 저자는 수많은 상담 사례를 통해 정의감 중독인 사람들이 무엇보다도 외로운 사람들, 이 세상에 자신의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임을 지적한다. 정의감 중독 유형 중 고독한 유형이다. 경쟁 상황에서 유독 공정을 내세우는 열등감 유형도 자신의 자리가 불안하다고 느껴 과잉 반응하게 된 사람들이다. 시기와 질투를 정의감으로 정당화하는 질투 유형은 공격 대상을 적극적으로 찾으며 공격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꽉 막힌 자신의 세계에만 안주하는 독선가 유형’, 누군가 선두에 서면 뒤에서 함께 돌을 던지지만, 분위기가 바뀌면 바로 물러서는 집단 심리 유형도 있다. 이 책은 정의감을 과도하게 내세우는 사람들의 심리적 약점을 설명하고,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효과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알려준다.

 

무익한 정의감 내려놓기 + 바꿀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

내가 느끼는 정의감이 유익한지, 무익한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앵거 매니지먼트(anger management)에서는 빅 퀘스천(big question)’을 기준으로 삼는다. 저자는 긴 안목으로 보았을 때 나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건전한가?’라는 질문(빅 퀘스천)을 충족할 수 있는 정의감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내려놓으라고 권한다. 장기적으로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정의만 추구하기에도 인생은 짧다. 관여해야 할 일,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저자는 알코올 없이 살 수 없는 만성 알코올 중독처럼, 정의감을 휘두르는 쾌감에 빠져 그것이 정체성이 되어버린 만성 정의감 중독을 주로 언급하지만, 누군가의 강요나 자신의 주량을 잘 몰라 갑자기 많은 알코올을 섭취한 나머지 건강이 위험해지는 급성 알코올 중독처럼, 정의감을 내세운 과도한 공격에 위축되어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급성 정의감 중독에 대해서도 섬세한 해법을 제시한다.

 

의견이 다르면 입을 다물고, SNS에 글을 올릴 때마다 철저하게 자기검열하고, 정의를 내세우는 목소리 큰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것도 위험 신호다. 자신의 가치관을 뚜렷하게 정립하지 못하고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만성 정의감 중독인 사람들에게 쉽게 휘둘리고, 내면에 화가 쌓이다 못해 자신 역시 정의를 내세워 만만한 타인을 함부로 공격하게 될 수도 있다.

 

복잡하고 혼란한 세상에서 중심을 잡고,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려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한편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내가 추구하는 정의를 실현하려면, 상대방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것보다 그들 스스로 마음을 열도록 이끄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솝 우화에서, 거센 공격으로 외투를 날려버리려 했던 바람은 지고, 따뜻하게 행인을 비춰 스스로 벗게 한 해가 내기에서 이겼다. 정의감을 내세운 공격은 바람, 공감과 배려는 해다(65).”

 

 

책 속으로

과거에는 누군가 실수를 하면 직접 지적하거나 아니면 그냥 넘어갔다. 지금은 상대방에게 주의하라고 일러주는 대신 그냥 찍어서 SNS에 올릴 수 있다.---1장 정의가 숨통을 조인다중에서

 

수많은 내담자와 상담하면서 알게 된 것은, 상대에게 닿지 않을 무익한 정의감을 폭주시키며 화내는 사람은 평소 내 자리가 없다, 나를 받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고독의 뿌리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자신을 스스로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스스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바닥에 구멍이 뚫린 컵에 계속 물을 붓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선 해야 할 일은 물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바닥에 뚫린 구멍을 막는 것이다.

---2장 정의감이 폭주하는 조건중에서

 

정의감을 내세우는 사람은 정론을 말한다. ‘正論은 문자 그대로 정당하고 올바른 말, 옳고 그름을 드러내는 말이다. 그런데 정론은 타협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옳고 그름을 미리 단정했으므로 상대에게는 그것을 수용하든지 거부하든지 두 가지 선택지만 남는다. 상대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정론을 펼치는 것은 타인의 감정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태도다. 우리가 대화에서 바라는 것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이다.

---2장 왜 정론은 미움받는가중에서

 

구글에서 정의 중독을 검색하면 기사가 많이 뜨는데, 대부분 2020년 이후에 작성된 기사다. 일본에서 정의 중독이라는 단어는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후 급속히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중독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 의미는 체내에 독성을 가진 물질이 일정량 이상 들어와서 기능 이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두 번째 의미는 그것이 없거나 부족하면 못 견디는 병적인 상태이다. 알코올 중독을 예로 들면, 첫 번째는 급성 알코올 중독’, 두 번째는 만성 알코올 중독을 뜻한다. 정의감 중독 역시 급성 정의감 중독만성 정의감 중독으로 나뉜다.

---3장 정의감에 중독되는 사람이 늘고 있다중에서

 

정의에 중독되고, 거기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우선 정의를 내세울 때는 활력과 보람을 느낀다. 또한 옳고 그름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항상 내 편을 찾을 수 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류가 세상에 출현했을 때부터 집단에 속하는 것이 안전을 확보하는 방법이었다. 정의를 부르짖는 것만으로 소속할 집단을 발견하고 안전을 보장받았다고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정의에 대한 굳건한 신념은 내면의 갈등과 혼란을 덜어준다.

---3장 왜 정의감은 중독성이 강할까?중에서

 

목소리 큰 소수(noisy minority)’의 반대 개념은 조용한 다수(silent majority)’. 사람들은 먹고사느라 바쁘고 다른 사람들과 대립하는 걸 피하려고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도 대개 입을 다문다. 하지만 성가시니까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내버려 두자는 태도는 사회 전체적으로는 큰 문제가 된다. 강력한 소수가 정치적 영향력까지 지니게 되면, 다수가 침묵하는 상황은 사회와 국가라는 배의 키를 소수파에게 넘겨주게 된다.

---정의에 대한 오해 2 : 목소리 높이는 소수에게 마이크를 넘기지 말자중에서

 

정의감을 느꼈을 때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야 할 일은 관여해야 할 필요가 있고 동시에 내가 개입해서 뭔가 할 수 있는 일뿐이다. 나머지 정의감은 내려놓아야 한다. 정의감을 내려놓는 것에 저항감을 느낄 수도 있다. 내가 바꿀 수 없어도 정의감 자체는 소중하지 않은가? 하지만 정의감을 내려놓는 것이 곧 패배나 타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정된 에너지와 시간을 소중하게 쓰기 위해 선택하고 집중하는 것뿐이다.---4장 관여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중에서

 

허용도가 낮고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못마땅한 사람이나 일들이 항상 눈에 띈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기준이 뚜렷한데, 기준이 높다 보니 수용할 수 있는 영역이 매우 협소하다. 반면 허용도가 높은 사람은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고 그 사이에 있는 영역 대부분이 회색지대다. 흑백논리가 아니라 흑에서 백으로 점차 농도가 옅어지는 그라데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의와 불의 사이에 다층적인 광범위한 영역이 존재하므로 어떤 사람이나 사건에 대해 극단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정도를 따져 상대적으로 평가한다.---4장 사람과 세상에 대한 허용도를 높인다중에서

 

노력한 사람이 보답받는다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노력이 부족해서다. 언젠가부터 자기책임이라는 말이 곳곳에서 쓰인다. ‘잘 풀리지 않는 사람은 본인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인데 왜 세금을 써서 도와주어야 하는가?’라는 식이다. 한편, 현실에서는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 처벌받지 않고, 별로 노력하지 않았는데 잘사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그럴 때마다 분노하고 세상을 한탄하게 되기 쉽다. 이상을 현실로 착각하면 스스로를 괴롭히고 타인을 비난하게 된다.

---정의에 대한 오해 3 : 공정한 세계 가설에 사로잡힌 사람들중에서

 

질투 유형은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동경의 대상을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 셀럽들의 흑역사가 드러나면 그럼, 그렇지하고 쾌감을 느낀다. 자신이 셀럽처럼 살지 못하는 것은 그들처럼 부도덕하거나 뻔뻔하지 못해서라는 비뚤어진 합리화로 나아가기도 한다. 유명인들이 대중의 비난을 받는 것은 마땅히 치러야 하는 대가라는 엉뚱한 논리를 내세우기도 한다.---5장 질투 유형중에서

 

열등감 유형이 남들에게 내세우는 잣대는 자신의 열등감을 반영하는 것일 때가 많다. 열등감을 자극하는 사람, 자신처럼 열등해 보이는 사람에게 가혹하다. 이런 사람에게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방어 심리를 자극할 뿐이다. 이들에게는 우열을 따질 필요 없는 편한 관계가 중요하다. 경쟁할 필요 없는 자잘한 일상사로 자연스럽게 다가가면 좋다. 경쟁심을 느끼지 않는 편한 사람들과 만나다 보면, 이 세상은 우열을 나눌 수 없는 다양성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언젠가 깨닫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5장 열등감 유형중에서

 

추천평

잘못했으니 욕먹어도 싸다는 식의 논리가 넘쳐나면 정의의 사도인 양 무례한 짓을 일삼는 이들이 많아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에서는 참교육운운하며 당당하게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인증 사진을 공유하고 환호하는 폭력적인 집단 분노가 퍼지고 있다. 정의의 이름으로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이에게 저자는 목소리만 크면 정의가 되는지따져 묻는다. 정의감 중독 사회는 주관적인 잣대로 정의감을 휘두르며 극과 극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마주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날 선 분노들 사이에서, 차분하게 숨 쉬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 오찬호 (사회학자·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민낯들저자)

 

인터넷에 넘실대는 정의 구현 구호와 디지털 자경단의 활동을 분노라는 키워드로 살펴보는 책이다. 악성 댓글, 사이버 테러, 극단적 집단 행동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그러한 행동들이 옳고 도덕적인 행위라는 확신 때문일 것이다. 인스턴트식품이나 패스트패션같이 손쉽게 올바름을 소비하는 시대에 거리를 두고 감정과 행동을 찬찬히 되돌아볼 것을 주문한다. 긴 안목에서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건전한 행동을 하는 것인가 따져보라는 조언은, 다양한 감정 과잉을 유도하는 디지털 시대에 경청할 가치가 있다.

- 조귀동 (경제학자·세습 중산층 사회』 『전라디언의 굴레저자)

 

괴물이 된 개딸? 당신도 혹시 '정의감 중독'인가요?

소위 '개딸(개혁의 딸)' 현상, '양아들(양심의 아들)' 현상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견이 있긴 한데 저는 이게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는 새로운 정치 행태라고 생각해요." (유튜브 '이재명', 지난해 514)

 

"우리 모두를 위해서 이게 정말 바람직하다, 필요하다 하는 일들이 가끔씩은 자해적인 결과로 나타나기도 하죠. 최근 그런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어요. 집안에 폭탄 던지는 것과 똑같죠." (유튜브 '이재명'-당원존 라이브, 지난 314)

 

고작 10개월이 흘렀을 뿐이다. 그런데 이른바 '개딸''양아들'에 대한 이재명 대표의 생각에는 큰변화가 생긴듯하다. 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언뜻 떠오르는 사건 몇 개만 꼽아보자. 홍영표 의원 비난 대자보 제작,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 신상 털이, '수박(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으로 비이재명계 의원들을 지칭하는 속어) 7' 포스터 제작, 수박 깨기 행사 개최, 반명 트럭 시위 개최, 이원욱 의원 악마화 조작 포스터 유포 등...

 

이 모든 것이 '개딸'만의 소행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초기 개념으로서 '개딸', 그러니까 이 대표 지지자 가운데 2030 여성으로만 국한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개딸'이란 용어가 2030 여성을 넘어 이 대표 강성 지지층 전체를 아우르는 대명사로 널리 쓰이고 있음을 고려하면, 저 일련의 사건들에서 '개딸'의 역할을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범인이 누구든 간에 대중은 이 사건들의 용의자로 이미 '개딸'을 지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의 눈에 비친 '개딸'은 과격하고 누군가를 증오하고 파괴하려 하는 혐오 집단에 가깝다. 처음 품었던 '개혁'의 의미는 온데간데없이 멸칭(蔑稱)이 된 지 오래다.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더불어수박깨기운동본부 관계자들이 비명계 의원들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수박'은 이 대표를 지지하지 않는, 겉과 속이 다른 배신자라는 뜻으로 이 대표 측 지지자가 지난 대선 당시 경선 상대였던 이낙연 전 대표의 측근 등을 비난할 때 쓰는 표현이다. 연합뉴스

 

당 내에선 '개딸'과의 결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드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이 대표는 이미 심리적 결별 상태에 접어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최근 자당 의원들과 한 비공개 간담회에서 자신도 문자 폭탄을 받았다며 하소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사적 의미"라며 개딸을치켜세우던 것은 어느덧 과거의 일이 되었다. 이제'개딸''잼파파'의 소꿉놀이는 끝났단 얘기다.

 

그러나 여전히 개딸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당원들이 느끼는 분노와 실망감은 매우 정당하고 정의롭다(김용민)", "세비에는 욕 값도 포함돼있다(정청래)"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은 개딸과 결별해야만 할까. 대중 정당으로서 민주당은 개딸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논쟁을 제대로 치러내기 위해선 다음의 물음들을 피할 수 없다. '개딸'은 정말 정의로운가. '개딸'의 욕은 정당한가.

 

각자의 '뇌피셜'로 옥신각신하다 보면 끝이 없을 터. 개딸 논쟁에서 나름의 판단 기준을 제공하는 책 한 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의 분노 조절 전문가 안도 슌스케가 집필한 <정의감 중독 사회>.

 

개딸 논쟁, '빅 퀘스천'을 떠올릴 것

"만약 악당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우리 집이 무너졌다면, 정의를 위한 일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p29)

 

안도 슌스케는 이같은 가정 상황을 던짐으로써 정의라는 단어를 순식간에 낯설게 만든다. 그는 "정의를 무기 삼아 자신의 분노를 합리화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정의의 이름으로 분노를 마구 표출하며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를 경계하라며 정의의 이면을 들춘다.

 

그렇다면 공공의 정의를 내세우는 일들, 가령 '개딸'이 정의를 내세우며 하는 일들은 정의로운 행동으로 볼 수 있을까.

 

저자는 공공의 정의를 판별해내는 기준으로 '빅 퀘스천'을 제시한다. 앵거 매니지먼트(분노 조절) 분야에서 말하는 빅 퀘스천이란 "긴 안목으로 보았을 때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건전한가?"라는 물음이다. 첫째 자신에게, 둘째 주위 사람들에게, 셋째 긴 안목으로 보았을 때, 넷째 건전한가. 이 네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만 모두가 인정할 만한 공공의 정의라고 칭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답하기 가장 쉬운 '건전한가'를 먼저 묻는다. '개딸'의 행동들은 과연 건전한가. 안도 슌스케는 이 질문과 관련해 "상대방이 납득하기 어려운 분노에 휩쓸려 행동하면,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상대와 대립하며 오히려 자신이 지키려 했던 지역사회에 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이 기준에 비춰본다면 '개딸'의 행위들은 그리 건전하다고 말할 수 없을 듯하다. '수박 깨기', '트럭 시위' 등 행위가 그들이 지키려 했던 지역사회(민주당)에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개딸'들의 집단행동은 '건전하다'는 조건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긴 안목으로 보았을 때'는 어떤가. 이 물음은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아닌 훗날 이어진 결과가 좋았는가를 보라는 뜻이다. '개딸'들이 행한 과격 행위들의 결과는 무엇이었나. '개딸'은 그들이 지키려는 대상인 이 대표를 난처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와의 관계도 틀어지고 말았다. 그러니 '개딸'은 이 기준 또한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라는 항목은 또 어떤가. '개딸'의 과격 행위는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이나 다른 당원들에게 불쾌감을 주었다. 나아가 이 대표 또한 불편함을 느끼는 수준에 이르렀으니 이 기준에서도 탈락이다.

 

마지막 기준은 '자신에게'. 가장 답하기 어려운 항목이다. 저자는 이와 관련해 "그 일을 하면 나 자신에게는 어떤 이익이 있는가? 그저 눈 앞에 있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심판하고 싶은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사실은 다른 일 때문에 느낀 분노를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에게 풀려는 것은 아닌가?"라고 묻는다. 이는 그 누구도 아닌 '개딸' 스스로 곱씹어야 할 질문일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4일 오전 울산시당을 방문해 당원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네 가지 기준 중 적어도 세 가지 기준에서 '개딸'의 행동이 공공의 정의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음이 증명되었다. 안도 슌스케는 "공공의 정의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느끼는 분노가 사실은 혼자만의 착각에 불과하다면, 자기 자신을 분노로 태워버리게 된다"고 우려한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정의감에 중독될까? 저자는 이를 세 가지 이유로 설명한다. 첫째 활력을 느끼고, 둘째 정의의 기준이 같은 사람들에게 일체감을 느끼게 하고, 셋째 내면의 갈등과 혼란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개딸'들은 온라인 카페 '재명이네 마을' 안에서 만난 이들과 친목을 도모하며 안정을 찾는다. 옳고 그름의 이분법으로 바라보면 세상사가 명쾌해진다. 비이재명계 의원들을 악마, 자신과 친이재명계 의원들을 선으로 여김으로써 '개딸'들은편안함을 느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편안함에 안주하다 보니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채 정의감 중독 상태에 이르렀다. 결국 <정의감 중독 사회>가 제시한 기준에 따르면, '개딸'은 정말로 정의롭다기보단 정의감에 중독된 상태로 봐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중독은 어떤 경우에도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이에 저자는 정의감 중독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 관여할 일과 관여하지 말 일,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라. 둘째, 사람과 사건에 대한 허용도를 높여라. 셋째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것을 알아내라.

 

그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분노와 정의감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타인도 불편하게 만든다면 비가 안 온다고 기우제를 지내는 것과 근본적으로 별 차이가 없는 행동"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분노에 대한 내면의 성찰을 강조한다. 내가 추구하는 정의를 실현하려면 상대방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것보다 그들 스스로 마음을 열도록 이끄는 것이 효과적이란 이야기다. "정의감을 내세운 공격은 바람, 공감과 배려는 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정의감 중독 사회>가 말하는 메시지는 여기까지다. '개딸' 논쟁에 진심인 독자들이라면 아쉬운 마음이 들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개딸들이 스스로 마음을 열도록 이끌 수 있단 말인가. 그 답은 비슷한 시기 출간된 또 다른 책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에서 조금이나마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개딸'의 생각을 바꾸려는 시도는 이미 여러 번 있었다. '개딸'의 집중 공격을 받는 비명계 의원들은 갖가지 방법을 써봤다. '이견도 수용해야 민주주의'라며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당을 분열시키는 해당 행위'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말도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 내 '개딸 피해자'는 나날이 늘어만 갔고, 심지어 이 가운데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포함됐다.

 

급기야 이 대표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 대표는 최근 한 달 사이 무려 5번이나 내부 공격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이 또한 무소용. '개딸'들은 오히려 보란 듯이 이원욱 의원 반대 집회를 개최하고, 이 의원의 눈과 입꼬리를 올린 조작 포스터를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단일대오가 좋으시다면, 윤심 단일대오 깃발이 나부끼는 국민의힘으로 가십시오(박용진)", "개딸들에 대한 분노조차 아깝다는 생각이 밀려온다(이원욱)"

 

이원욱 의원 반대 시위 포스터

통제 불가능한 '개딸'들을 향한 민주당 의원들의 감정 상태는 우려와 분노를 넘어선 절망, 포기, 그 어디쯤에 있는듯하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더니, '개딸'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이대로 포기해야만 하는 것일까.

 

신간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은 인간의 신념과 확신, 세계관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이러한 비관주의를 통째로 뒤흔드는 책이다. 저자는 심리학과 뇌과학의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베스트셀러 <착각의 심리학>을 써낸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맥레이니다.

 

사실 맥레이니야말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굳게 믿었던 비관주의자였다. 그랬던 그는 9.11 테러 음모론자와 극단적 광신도 집단 '웨스트보로'의 신도 등 도무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이 자신의 신념을 한순간에 뒤집는 사례를 지켜보며 자신의 가설을 수정한다. 그리고 심층 인터뷰와 뇌과학, 신경과학, 심리학 등의 최신 연구를 망라해 견고한 믿음에 균열을 내는 설득법을 찾았다.

 

맥레이니는 다양한 사례에서 아주 중요한 공통점 하나를 발견했다. 음모론과 종교적 믿음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는 결정적 순간에 이성이 아닌 감정이 작동한다는 점이었다.

 

"낙태와 동성 결혼, 사형제도 같은 주제의 경우 제시되는 반론의 수가 늘어날수록 피험자들은 자신의 견해가 받는 위협이 마치 신체가 받는 위협인 것처럼 반응했다. (중략) 이 실험에서 관찰된 두뇌 반응은 숲속에서 곰을 마주쳤을 때 일어나는 반응과 매우 유사하다'라고 설명했다."(p237)

 

'개딸'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근거들을 갖다 대봤자 오히려 그들의 공격 성향만 끌어올릴 뿐이라는 이야기다. '잼파파'가 나서서 "내부의 작은 차이로 균열이 생겨 떨어져 나가면 손실"이라며 개딸들을 어르고 달래봤자 소용없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성은 감정의 노예"라는 데이비드 흄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유튜브 '이재명'-당원존 라이브갈무리.

맥레이니가 주목한 방법은 단 20분간의 대화로 유권자의 마음을 바꾸는 설득 기법으로 알려진 '딥 캔버싱'이었다. 딥 캔버싱은 상대방의 믿음을 반박하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접근법이다.

 

"판단하지 않는 태도로 경청하면서 이야기를 공유하는 단계를 제외하자 (설득의) 효과가 사라졌고, 다시 포함하자 효과가 돌아왔다. (중략) 존중하는 태도로 상대방의 개인적 경험에 귀를 기울이고 그 다음엔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사람들을 찾아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들의 이야기도 성의껏 들어주는 거죠. 그 과정을 통해 인간적인 느낌과 공감이 형성되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사실 그게 설득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p355)

 

저자는 이처럼 상대방의 믿음을 반박하지 않고, 공감을 매개로 이야기를 들어주다보면 상대방이 부지불식간에 깨닫게 되는 바가 있다고 했다. 바로 자신이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내적 성찰과 숙고의 기회가 없으면, 관심 있는 이슈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옳다는 자신감을 계속 유지하게 된다. 이와 관련한 인상적인 사례는 '설명 깊이의 착각'이라는 심리 현상에 대한 실험에서 볼 수 있다. (중략) 해당 이슈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달라고 요청하자, 그들은 당황했고, 자신이 그 이슈와 관련 정책에 대해 아는 것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따라서 그들은 처음보다 덜 극단적인 입장으로 변했다." (p93~94)

 

"우리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자기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때 우리는 믿음직하지 않은 서술자다. 심미학에서는 이를 '내성 착각'이라고 부른다. 자신에 대한 위의 생각은 따지고 보면 짐작과 추측인 셈이다."(p269)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보자. 경청과 충분한 공감을 바탕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일단 그렇게 대화가 진행되면 상대방은 생각보다 자신의 정보가 빈약하단 사실을 스스로 깨달을 것이고, 결국 자연스럽게 확신을 내려놓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맥레이니가 풀어놓은 설득의 기술이다.

 

사석에서 의원들을 만나면 이와 비슷한 경험담을 종종 전해듣는다. 문자 폭탄을 보낸 이들에게 의원이 직접 전화를 걸어서 대화를 해보면 그 사람이 생각보다 아는 게 없더라는 것. 그리고 대화 끝에 상대방이 오해를 풀고 동일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정중하게 사과를 하더라는 이야기다.

 

최근 전용기 의원이 자신의 SNS에 올린 사례도 이에 해당한다. 전 의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반말로 공격하던 보수 성향 지지자는 전 의원과 통화 후 존대말로 "감사합니다"라면서 "우좌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고 했다. 불과 몇 분 만에 일어난 이 놀라운 일은 결국 감정이 작동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전용기의원페이스북갈무리.

소크라테스 대화법이 연상되는 '길거리 인식론'도 딥 캔버싱과 유사한 원리와 목표를 갖고 있다. 저자는 길거리 인식론의 궁극적 목적에 대해 "대화가 끝날 때쯤 상대방이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것"이라며 "이 대화의 초점은 사람들을 혼자만의 생각 순환 고리에서 빠져나오게 이끄는 것, 메타 인지 상태로 유도하는 것. 자신의 추론 과정을 되돌아보고 제대로 이해하게 이끄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역시 "타인의 잘못이나 허점을 들춰내 지적하기 위한 대화가 아니""그들이 결론에 어떻게 도달했는지 함께 생각해보고 그걸 인지하게 돕는 게 목적"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딥 캔버싱과 길거리 인식론의 자세한 방법은 책에서 직접 확인하기를 권한다.)

 

이들 설득법의 중요한 공통점은 변화의 주체가 '그들 스스로'라는 점이다. 어떤 신념이나 확신에 이르게 된 과정을 스스로 되돌아보고 자기 안의 모순을 깨닫게 유도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단 것이다. 우리는 그저 질문을 통해 그들의 변화를 도울 뿐이다.

 

의원들 입장에선 '의정 활동도 바쁜데 왜 이런 감정 노동까지 해야 하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기 위해,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자처한 사람들이다. 진심으로 국민을 설득하고 싶다면, 의원들도 그들을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 진심은 언젠가는 통하게 돼있다.

 

그런 점에서 맥레이니는 끈기를 당부한다. 그는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끊임없이, 집요하게 두드리라고 한다. 수없이 숲에 던져지던 담배꽁초가 어느 날 대형 산불을 일으키듯이, 똑같은 종류의 충격이 10억 번 가해지다가 10억 번 바로 다음 회의 충격으로 거대한 변화가 촉발하는 법이니까.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그 두드리는 행동을 멈출 것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만일 당신이 바라는 변화가 상당히 큰 변화라면 평생 두드려야 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손에 쥔 망치를 내려놓지 않는 것이다."(p407)

프레시안 서어리 기자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 극단의 시대, 견고한 믿음에 균열을 내는 설득의 과학

데이비드 맥레이니 저/이수경 역 | 웅진지식하우스 | 20230306| 원제 : How Minds Change: The Surprising Science of Belief, Opinion, and Persuasion

 

: 데이비드 맥레이니 (David McRaney)

괴짜 저널리스트’, ‘심리학계의 이단아로 주목받는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최고의 언론인 상으로 손꼽히는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상을 두 차례나 수상했다. 자칭 심리학광인 그는 2009년부터 심리학과 뇌과학의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 행동을 지배하는 편견, 선입관, 망상을 유쾌하게 폭로하는 글을 블로그에 연재해왔다. 그가 인간 심리 매뉴얼을 게재할 때마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 교수가 댓글을 남기고, 뉴욕타임스가 링크를 거는 등 저명한 학자들과 각종 매체의 찬사를 받으며 큰 화제를 일으켰다. 이를 엮은 책 착각의 심리학You Are Not So Smart은 전 세계 17개국에 수출되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현재 그는 동명의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약하고 있다.

 

맥레이니는 한때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믿었던 비관론자였다. 그러나 자신의 아버지를 비롯하여 음모론자, 정치 극단주의자, 광신도 등 도무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의 가치관이 한순간 뒤집히는 장면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스스로 신념을 바꾸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한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은 저자가 수년간 맹렬한 지적 호기심을 바탕으로 설득의 원리를 파헤치는 장대한 여정을 담았다. 완강했던 믿음을 바꾼 이들을 직접 만나 심층 인터뷰하고, 심리학자, 인지과학자, 설득 전문가 등과 협업한 끝에 분열과 갈등을 이기는 과학적 설득법을 밝혀낸 결과물이다. 그 외 저서로는 똑똑하지 않은 뇌로 똑똑하게 살아가기You Are Now Less Dumb가 있다.

 

목차

이 책을 향한 찬사

들어가며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바꾸고 싶었다

 

1장 탈진실의 시대 _9·11 테러가 조작되었다고 믿는 사람들

음모론 여행동료들이 역겨운 짐승처럼 보이다한순간에 광기로 변한 신념진실은 죽었다?

 

2장 딥 캔버싱 _20분 만에 유권자의 마음을 바꾼 대화법

사이언스에 게재된 설득 기법동성 결혼 찬반 투표, 50만 표심이 바뀐 이유20, 단 한 번의 대화면 된다이유 없는 믿음은 없다50년 전 기억을 소환하는 이유딥 캔버싱에 대한 과학적 검증사람들은 말 바꾸기를 인지하지 못한다

 

3장 양말과 크록스 _드레스 색깔 논쟁이 우리에게 남긴 것

지구를 분열시킨드레스 색깔 논쟁인간의 뇌는 진실을 보지 못한다SURFPAD 법칙, 뇌가 모호한 정보를 처리하는 법회색 크록스 vs 분홍색 크록스내 믿음이 객관적이라는 착각프레임 경쟁, 의견은 같지만 해석이 다르다

 

4장 불평형 _믿음이 흔들릴 때 뇌에서 일어나는 일

나이테처럼 새겨지는 믿음의 체계앎과 믿음, 그 사이수백 년간 기러기 나무를 믿은 사람들불평형, 변화를 받아들이는 고통외상 후 성장의 메커니즘인지 부조화의 불편한 진실의견을 받아들이게 되는 티핑 포인트

 

5장 웨스트보로 _광신도가 사이비 종교를 떠나는 이유

동성애자, 잘 죽었다웨스트보로를 떠나다괴물이라 생각했던 그들의 호의평범하고 친숙한 이웃의 증오소셜 미디어에서 직면한 자기 모순기꺼이 악의 구렁텅이로접촉과 교류, 그리고 다정함바깥 세계의 공기

 

6장 부족 심리 _좋은 구성원이 되기 위해 악행을 벌인다

뭘 좀 아는사람이 된 기분반박당할 때 곰을 마주친 듯 느낀다우리 대 저들에 관한 심리 실험사회적 죽음이 신체적 죽음보다 두렵다소속감과 집단 정체성의 위력음모론 순환 루프, 인간의 본능자기 가치 확신의 중요성진실은 사회적이다

 

7장 논증과 토론의 힘 _편향되고 게으른 우리의 뇌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세계관의 진화와 딜레마인간은 논증에 최적화되어 있다설득, 진화의 산물

 

8장 설득의 심리학 _메시지를 효과적으로 관철시키는 심리 전략

믿음, 태도, 의견, 가치관면도기 광고에는 왜 유명인이 나올까나와 관계있는 메시지에 끌린다설득을 위한 4가지 조건

 

9장 길거리 인식론 _단 한 번의 대화로 충분하다

길거리 인식론 실험어떻게’, ‘믿는지 물어보라길거리 인식론의 9단계변화를 위한 피라미드확신은 감정의 산물이다경청과 스토리텔링의 효과사실을 믿는 세상을 위한 기법들 왜 타인의 마음을 바꾸고 싶은가

 

10장 사회 변화의 순간 _진정한 변화를 이끄는 네트워크의 조건

빙하기의 혼란이 인류에게 남긴 것10년 만에 뒤바뀐 동성 결혼 찬반 논쟁접촉, 경계에서 기적을 만들다더 나은 설명, 더 나은 변화백신 거부자에게 벌어진 폭포 효과누구라도 불씨가 될 수 있다계속 두드려라, 곧 열릴 것이니

 

나가며 우리가 뿌려놓은 변화의 씨앗들

감사의 글

찾아보기

출판사 리뷰

이성이 통하지 않는 이 시대, 지식과 논리로는 그들을 설득할 수 없다

탈진실의 시대, 인간의 신념·확신·세계관이 바뀌지 않는다는 통념을 깨는 도발적인 과학서

 

2030세대 자녀들이 각종 음모론과 가짜 뉴스로 채워진 부모님 유튜브 알고리즘을 의도적으로 바꾸는 사례가 늘고 있다. 유해 채널을 차단하고 음식, 동물 등 무관한 채널을 구독해 알고리즘을 정화시키는 것인데, ‘키즈 가드를 빗대 중년 가드라 불린다. 아무리 명백한 사실과 근거로 반박해도 부모님을 설득할 수 없었기에 찾은 자구책이다.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 개인적 신념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탈진실(post-truth)의 시대,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깊은 무력감에 빠져 있다.

 

17개국에 수출된 베스트셀러 착각의 심리학으로 전 세계 지식인과 언론의 찬사를 받은 과학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맥레이니는 신간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을 통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우리의 비관주의를 뒤흔든다. 그는 음모론자, 정치 극단주의자, 광신도 등 도무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의 신념이 한순간에 뒤집히는 순간을 포착하고, 심층 인터뷰와 뇌과학, 신경과학, 심리학 등 최신 연구를 망라하여 견고한 믿음에 균열을 내는 가장 효과적인 설득법을 제시한다.

 

인간의 생각이 형성되고 변화하는 결정적 원리를 과학적으로 탄탄하게 분석한 이 책은 출간 이후 아마존 경제경영·과학 분야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위기에 처한 이 시대를 위한 처방전”(다니엘 핑크), “사람들의 마음이 꽉 닫힌 시대에 그것을 여는 방법을 훌륭하게 분석한 책”(애덤 그랜트)으로 전 세계 지식인들의 격찬을 받고 있다.

 

음모론자, 동성애 혐오, 낙태 반대론자는 갑자기 왜 마음을 바꿨나

인간의 확신이 흔들리는 결정적 순간에서 포착한 과학적 설득법

 

평소 심리학광으로, 강연과 칼럼 등을 통해 인간 인식의 오류를 적나라하게 폭로해온 저자는 지금껏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고 믿던 비관론자였다. 그런데 2010년경부터 미국 내에서 동성 결혼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바뀌는 현상을 목격한다. 1년 만에 미국인 절반 이상이 동성 결혼을 찬성하고, 동성 결혼을 반대하던 조지 부시가 돌연 두 여성의 결혼식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맥레이니는 동성 결혼, 인종 차별, 흡연 등 주요 이슈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가 한순간에 뒤집히는 현상 기저의 인간 심리에 주목하게 된다.

 

저자는 수년간 믿어온 9·11 테러 음모론을 한순간에 철회한 유명 음모론 유튜버 찰리 비치(Charlie Veitch)를 만난다. 찰리는 신념이 바뀐 순간을 내 안에서 갑자기 뭔가 !’ 하고 터지는 것 같았습니다라고 묘사했다. 테러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를 만난 것이 변화의 가장 큰 계기였는데, 그는 어머니조차 FBI에서 섭외한 배우라고 폄훼하는 음모론 커뮤니티 동료들이 역겨운 짐승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아들을 잃은 슬픔이라는 강렬한 감정이 견고했던 찰리의 신념을 뒤흔든 것이었다. 마음을 바꾼 이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저자는 인간의 확신이 흔들리는 결정적 순간에 이성이 아닌 감정이 작동한다는 것을 포착해낸다. “이성은 감정의 노예다라는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의 말을 재확인하며,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관념적 설명만 늘어놓기보다 생생한 경험을 파고드는 것이 더 유리한 이유를 밝힌다. 이 책은 왜 똑같은 증거를 마주하고 누군가는 믿음을 철회하고, 누군가는 믿음을 더욱 강화하는지, 광신도가 어떻게 종교 집단을 떠나게 되는지, 생각이 변화할 때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등 인간의 확신을 둘러싼 의문점을 과학적으로 탄탄하게 분석하고 있다.

 

논박당하면 신체적 위협을 느끼는 뇌, 20분간의 대화로 마음을 바꾸다

딥 캔버싱, 동기 강화 상담, 길거리 인식론설득 연구의 최전선에서 밝혀낸 대화의 기술

 

우리는 흔히 빈틈없는 논리와 객관적인 사실로 타인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성과 논리로 맞설수록 그들은 확신을 더욱 강화할 뿐, 진정한 설득의 조건은 따로 있었다. 저자는 단 20분간의 대화로 유권자의 마음을 바꾸는 설득 기법 딥 캔버싱을 취재한다. 미국 내에서 설득의 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고, 정치와 공공 담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도구로 평가받고 있는 딥 캔버싱은 사이언스에 텔레비전 광고, 홍보물 등 전통적인 투표 독려를 합친 것보다 102배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게재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맥레이니는 이외에도 설득력 높은 메시지를 분석한 정교화 가능성 모델’, 심리 치료 전문가들이 활용하는 동기 강화 상담’, 의심에 도달하는 올바른 방법을 제시하는 길거리 인식론실험 등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대화 기법을 소개하며 아래와 같이 가장 효과적인 설득법을 제시한다.

 

첫째, 내가 바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바꾸게 해야 한다. 인지신경과학자 세라 김벨(Sarah Gimbel)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반박당할 때 곰을 마주친 것과 같은 신체적 위협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렇기 때문에 주장에 반박하기보다 스스로 결론에 도달하게 된 과정을 되돌아보고, 자기 안의 모순을 깨닫게 유도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 둘째, 구체적인 경험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라. 낙태 합법화를 반대하던 70대 여성 마사는 딥 캔버싱을 통해 50년 전 친구가 불법 낙태 시술로 목숨을 잃을 뻔한 경험을 떠올렸고, 대화 끝에 낙태 합법화 찬성으로 의견을 바꿨다. 강한 감정을 유발하는 실제 경험은 마음을 바꾸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셋째, 스토리텔링을 활용하라. 브룩먼과 조시 칼라는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대화를 제외하자 딥 캔버싱의 효과가 사라졌고, 다시 포함하자 효과가 돌아왔다고 밝혔다. 스토리텔링의 기반이 되는 경험이 제3자의 것이어도 상관이 없었고, 3자가 이야기하는 모습을 찍은 영상도 효과가 있었다.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과정에서 라포르가 형성되는 것이 설득의 효과를 높이는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SURFPAD 법칙, 드레스 색깔 논쟁으로 밝혀낸 인간 인식의 맹점

 

어떤 현상에 대한 해석이 다를 때 논쟁이 시작된다. 그런데 색깔이라는 객관적인 지표도 사람마다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사건이 있다. 바로 2015SNS를 뜨겁게 달군 드레스 색깔 논쟁이다. 드레스가 흰색-금색이냐, ‘파란색-검정색이냐 하는 색깔 논쟁으로 단숨에 화제가 된 이 사건을 과학계에서는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였다고 저자는 밝힌다. 왜일까?

 

드레스 색깔 논쟁을 2년간 집요하게 연구한 신경과학자 파스칼 월리시(Pascal Wallisch)와 인지과학자 마이클 카를로비치(Michael Karlovich)는 평소에 접하는 조명이 자연광인지, 인공광인지에 따라 전자는 흰색-금색으로, 후자는 파란색-검정색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이것이 뇌가 불확실한 정보를 마주하면 사전 경험을 이용해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해야 마땅한 것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내는 ‘SURFPAD 법칙’(불확실성(Substantial Uncertainty)이 분기된(Ramified) 또는 갈라진(Forked) 사전 확률(Priors)이나 가정(Assumptions)과 만나면 의견 불일치(Disagreement)가 발생한다는 뜻)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드레스 사진에 드러난 조명이 모호했던 탓에 이를 해소하는 방식에 따라 두 가지로 의견이 나뉘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뇌가 각자 모호함을 해소하는 방식에 따라 도달하는 결론이 다른데, 우리가 이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떻게 저 드레스를 파란색으로 볼 수 있지?” 놀라워하며 상대방을 이해의 범주에서 제외하기 시작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 대 저들의 갈등이 시작된다. 따라서 저자는 논쟁을 하면서 상대방의 결론에만 집중하기보다 그들이 결론에 도달한 과정, ‘어떤견해를 가졌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리고 그런 견해를 갖게 되었는지 묻는 것이 바로 진정한 설득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인류는 마음을 변화시키도록 진화했다

대화와 경청, 분열된 사회를 극복할 유일한 돌파구를 찾다

 

사람들의 완고한 가치관은 물론 사회적 통념이나 규범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인류는 노예제, 여성 차별, 동성 결혼 등에 대한 인식 전환을 통해 스스로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유연한 존재라는 사실을 입증해왔다. 어떤 생각은 바꾸는 데 100년이 걸리기도 하지만 어떤 생각은 한순간에 뒤집히기도 한다. 인지심리학자 톰 스태퍼드(Tom Stafford)는 인지 반응 검사를 통해 혼자서 추론할 때 83%가 한 문제 이상 틀렸다면, 3명 이상의 집단에서는 아무도 틀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개인의 사고와 추론에는 한계가 있을지 몰라도 집단은 의견 불일치, 평가, 토론의 과정을 거쳐 결국 진실에 도달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애초에 생각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했다면 우리 사회에 논증과 토론의 개념이 퇴화되었을 거라고 덧붙인다.

 

각자 자신만의 알고리즘에 빠진 극단의 시대, 우리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이 갈등을 극복할 돌파구를 찾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반증하는 것처럼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곧 깨달을 것이다. 수없이 숲에 던져지던 담배꽁초가 어느 날 대형 산불을 일으키는 촉매가 되는 것처럼 똑같은 종류의 충격이 10억 번 가해지다가 10억 번 바로 다음 회의 충격으로 거대한 변화가 촉발한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그들과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무력감에서 벗어나 한 번 더 대화하려는 노력, 존중하고 경청하는 태도, ‘왜 그들을 변화시키고 싶은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들이 결국 견고한 벽을 두드리고, 마침내 균열을 낼 것이다. “우리 사회를 마비시키는 광기가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책이라는 뉴욕대학교 교수 더글러스 러시코프의 추천사처럼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진정한 변화를 맞이하기 위한 희망적이고 실천적인 제안으로 가득하다.

 

책 속으로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봤다. 나는 왜 아버지의 생각을 바꾸고 싶은 걸까? 나는 아버지에게 전 아버지를 사랑해요. 그래서 아버지가 잘못된 정보에 속는 게 너무 속상해요라고 말했고, 우리의 입씨름은 바로 끝났다. 아버지와 나는 인터넷에서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 타인의 생각에 이의를 제기할 때 당신의 의도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양쪽 모두 내가 옳고 당신이 틀렸다는 태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들어가며중에서

 

찰리는 깨달음의 순간을 표현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 안에서 갑자기 뭔가 !’ 하고 터지는 것 같았습니다.” 비행 학교 체험, 건물 설계도, 건축 회사, 폭파 전문가 등이 음모론에 대한 그의 확신을 조금씩 무너뜨렸다. 이 모든 경험은 그의 생각이 틀릴 가능성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그는 희생자의 가족을 보고 자신이 틀렸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숙소로 돌아간 찰리는 강렬한 깨달음을 경험한 것이 자기 혼자뿐임을 알고 적잖이 놀랐다. 나머지 음모론자들은 호글랜드가 FBI에게 세뇌당한 것이라고, 또는 자신들을 속이기 위해 BBC가 섭외한 배우라고 믿었다. () 찰리는 내게 그들이 혐오스러웠다면서 역겨운 짐승처럼 보였다라고 말했다.---1장 탈진실의 시대중에서

 

이 조직은 10년이 넘는 기간에 15,000명 이상의 시민을 만나 대화를 나눴으며, 그 내용을 녹화해 자세히 분석하면서 대화법을 개선했다. 이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개발하고 다듬은 랩의 방식은 매우 빠르게 믿을 만한 효과를 보여줬기 때문에, 많은 사회과학자가 직접 관찰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그것은 유권자의 집을 찾아다니는 선거운동인 일반적인 캔버싱을 한층 발전시킨 딥 캔버싱(deep canvassing)이라는 기법이다.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이 기법은 2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사람들이 오래 지켜온 견해를 버리고 입장을 바꾸게 만들었다.---2장 딥 캔버싱중에서

 

진실이 불확실하면 뇌는 과거 경험을 토대로 가장 옳다고 느껴지는 현실을 만들어냄으로써 그 불확실성을 해결한다. 뇌가 비슷한 방식으로 불확실성을 해결하는 사람들끼리는 의견이 일치한다. 드레스를 파란색-검은색이라고 인식한 사람들처럼 말이다. 한편 뇌가 그와 다른 방식으로 불확실성을 해결한 사람들끼리도 의견이 일치한다. 드레스를 흰색-금색으로 본 사람들처럼 말이다. SURFPAD 법칙의 핵심은 이 두 집단이 각자 자신의 의견을 확신한다는 점에 있다.

---3장 양말과 크록스중에서

 

우리는 자신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처음 감지하면, 즉 예상과 경험이 일치하지 않으면, 본능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면서 자신의 모델을 조절하지 않으려고 저항한다. 기존 모델을 눈앞 상황에 적용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뇌가 기존 모델로는 부조화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새로움을 수용하기 위한 새로운 개념의 층위를 생성함으로써 기존 모델을 수정한다. 그 결과 돌연한 깨달음을 경험한다.---4장 불평형중에서

 

잭과 메건을 만나기 전에, 나는 그들이 웨스트보로를 떠난 이유가 동성애자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동성애에 대한 관점에서 교회와 갈등이 생겨 결국 탈퇴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와 달랐다. 동성애자와 유대인에 대한 잭과 메건의 생각, 자녀 양육법에 대한 관점, 그리고 그들 자신에 관한 생각까지, 이 모든 것은 교회를 나온 후에변화했다.---5장 웨스트보로중에서

 

앤서니는 그런 점에서 길거리 인식론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했다. () 이들의 목표는 타인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더 엄밀하고 정확하게 사고하는 법을, 확신이나 의심에 도달하는 더 나은 방법을 사람들이 발견하게 돕는 것이 목표다. 대화의 초점은 사람들이 무엇을믿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그리고 믿는지에 맞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사람들 각자의 인식론을 바꾸게 유도하는 과정이 실제로는 그들의 마음을 바꾸는 것 같았다.---9장 길거리 인식론중에서

 

각 집단이 변화하면 결국 변화하는 총 사람 수가 늘어나고 따라서 사람들의 영향력도 강해진다. 확산 효과 또는 침투 현상이라고도 불리는 이런 네트워크 효과는 모든 주요한 여론 변화를 추동하는 힘이다. () 그러므로 백신을 거부하는 태도를 변화시키려면 먼저 거부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파악하고, 그들이 어떤 단체를 가장 신뢰하는지 알아낸 후, 그 단체의 활동을 통해 백신을 보급해야 하며, 그 활동이란 해당 인구 집단 내에서 가장 사회적으로 긴밀히 연결된 그룹에 호소할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 이는 백신만이 아니라 그 어떤 이슈에서도 마찬가지다.---10장 사회 변화의 순간중에서

-----------------------------------------------------------------------------

세상을 바꾸는 99.9%의 힘 '정치의 무기(武器)는 말이다

서로 다른 구성원들의 갈등을 설득과 동의를 통해 조정해야 하는 민주주의는 정치가들의 말에 의해 작동된다. 그러므로 정치인의 말은 품격과 논리, 그리고 설득력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저속하고 비논리적이며 감정에 치우치면, 상처가 증오가 되고 적대감으로 바뀐다.

 

상대진영을 공격하고 깎아내리기 위해서 천한 말을 사용하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요즘 정치인들의 언어로 인해 사회가 분열하고 있다. 인류의 긴 역사를 통해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감동적인 연설을 복기(復記)해 봄으로써 우리 국민을 감동시키고 사회를 단결시킬 수 있는 정치적 언어를 찾아보고자 한다.

 

민주주의를 완성한 아테네의 정치지도자 페리클레스

기원전 431, 지금으로부터 2453년 전.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전쟁(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전사한 젊은 아테네 청년들을 포함한 전몰장병을 추도하는 장례식을 열었다.

 

관례에 따라 장례식에서는 마지막 순서로 아테네를 대표하는 시민의 연설을 들을 차례였다. 그때 투구를 쓴 긴 얼굴의 페리클레스가 연단을 향해 오르자 운집한 시민들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다른 연설 때 같으면 그의 이름을 연호했을 터였지만, 오늘은 전몰자 추도 장례식이다.

 

그는 이 전쟁의 아테네 시민군 총사령관이자 아테네의 첫 번째 시민, 즉 민회(民會)의 지도자로서 추도사를 하게 된다. 시민들은 그가 긴 얼굴을 감추기 위해 투구를 쓰고 다닌다고 알고 있었지만, 그의 뛰어난 연설 솜씨에 의해 오히려 그의 투구는 자신들에게 보여주는 그의 시그니처였다.

 

페리클레스, 그는 기원전 495년 아테네 북쪽 콜라르고스 데모스의 귀족 가문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크산티포스는 뮈칼레의 전투에서 승리한 장군이었고 어머니인 아가리스테스는 시퀴온의 참주(僭主,tyrant는 본래의 황통, 왕통과 같은 혈통에 관계없이 실력에 따라 군주의 자리를 찬탈하고, 신분을 뛰어 넘어 군주가 되는 사람을 말함)인 클레이스테네스의 증손녀다.

 

그처럼 친가와 외가로부터 물려받은 명성과 재산은 그가 정치 활동을 하는 기반이 됐다.

소년시절부터 독파한 수많은 고전으로부터 자신의 논리를 마련할 토대를 구축한 그는 소크라테스, 프로타고라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엘레아학파인 제논의 신의 가르침이 곧 이성(理性, 사물의 이치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라는 주장에 감동하여 이성의 정치를 평생 신념으로 삼 았다.

 

가난한 다수의 편에 섰던 진짜 귀족

집안이 좋았지만 그의 일상생활은 매우 검소했다. 호화로운 마차를 사용하지 않고 주로 걸어 다녔다. 다른 사람의 저녁 초대에 응하지 않았으며 술도 삼갔다. 친구들과 격의 없는 어울림마저도 지도자의 위엄을 잃게 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했다.

 

서민적인 듯 보이지만 사실 그는 민중(民衆)과 친밀한 건 아니었다. 민중은 곧잘 싫증을 내기 때문에 가끔씩 그들 앞에서 연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살아있을 당시 아테네는 그리스에서 패권을 확립하고 스파르타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치르고 있어 과감한 변혁으로 민주주의의 제도를 갖추고 민중을 결속시켜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아테네의 정치는 민중 주도의 민주주의라야만 한다는 확신아래 아테네 민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위대한 지도자라는 호칭을 받고 있었다. 이처럼 민주정치가로서의 신념과 자질을 겸비한데다 그의 처신은 신중하고 사려 깊었다. 그래서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저자는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부자이면서도 가난한 다수의 편에 서서 활동했고, 부자들과 대립함으로써 귀족 출신인 자신의 약점을 극복했으며 전제적 통치권을 노린다는 반대파의 의심도 물리치고 귀족의 지지를 받았던 키몬과도 맞설 수 있는 강한 세력을 확보했다

 

연단에 올라선 그가 헛기침을 몇 번 하면서 묵언(默言)상태에서 주위를 둘러보고, 자기에게 집중된 시민들의 시선에 초점을 맞춰가면서 방망이 치는 심장의 고동을 진정시켰다. 그런 다음 드디어 식장의 침묵을 깨고 낮으면서도 자신 있는 목소리로 그의 말을 기다리는 민중을 향해 대화하듯 연설을 시작했다. 이 연설이 그 유명한 페리클레스의 전몰장병 추도사가 됐다.

 

연설은 진실만을 말하고 있다는 믿음을 줘야

앞서 이 연단에 섰던 사람들 대부분은, 장례 행사의 마지막을 추도 연설로 마무리하도록 법을 만든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곤 했습니다. 연설을 통해 전몰자들을 명예롭게 해야 한다거나, 그렇게 하는 것을 가치 있는 일로 여겼습니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전몰자들은 자신들이 칭송받을 만한 이유를 이미 행동을 통해 충분히 보여줬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명예는 지금 여러분이 보고 있듯, 우리 도시국가가 마련한 장례 행사처럼 행동으로 칭송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 이상 말로 표현할 것까지 있나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행동으로 보여 준 용기를, 우리가 얼마나 큰 믿음을 갖고 보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어느 한 개인의 연설에 맡겨져 그 사람의 서툴거나 뛰어난 연설로 평가받게 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완벽하세 균형 잡힌 연설을 한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는 한 그럴 수밖에 없지요. 죽은 사람과 친했거나 호의를 가졌던 사람들에게는 연설이 말해줬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나 죽은 사람에 관해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에 비해 뭔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죽은 사람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질투심에서 연설이 과장됐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남들에 대한 찬사란, 자신도 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선까지만 용납되고, 그 이상은 시기와 불신을 낳기 때문이지요. 그렇기는 해도 옛사람들이 이런 관습을 좋은 법으로 인정한 이상, 그 법에 따라 여러분의 생각과 희망을 표현하도록 노력하는 일은 저의 의무일 겁니다.

 

저는 이 도시국가를 세운 우리 선조의 이야기로 연설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이런 기회에 그들을 생각하며 경의를 표하는 것이 올바르고 또 적합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처음 이 땅을 차지해 살게 된 이후 그들은 용기를 발휘해 나라를 잃지 않고 지켜 냈고 그 결과 자유로운 도시국가를 후대에 물려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옛 선조들이 이런 칭송을 받을 만했다면 우리의 부모 세대들은 더더욱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왜냐면 그들은 선조들로부터 이어받은 것에 자신들의 분투와 노력을 덧붙여,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대단한 통치 체제를 물려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뒤 오늘 여기 모인 우리의 나이든 시민들은 우리의 통치 체제를 가꾸고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용기를 보여 주었고, 전시에건 평시에건 우리의 도시국가를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남을 모방하기 보다는 남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저는 여러분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이야기로 이 연설을 지루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선조들이 전쟁에서 어떻게 싸웠고, 이민족 내지 다른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침공에 맞서 어떻게 싸웠는지 되풀이해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어떠한 정신으로 우리가 직면한 역경을 헤쳐 왔는지, 그리고 우리를 위대하게 만든 우리의 정체(政體, Politeia, form of government)와 삶의 양식(way of life)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논의하고 싶습니다.

 

그런 뒤에 전몰자들을 기리는 말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연단에서 우리의 정체와 삶의 양식이 어떤 것인지를 언급하는 일은 이 장례식에 제격일 뿐만 아니라, 아테네 시민이든 외국인이든 여기 모인 모든 청중에게 유익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정체는 이웃 나라들의 제도를 흉내 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부터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남을 모방하기보다 남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체는 민주주의라고 불립니다.

 

권력이 소수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수 시민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적인 분쟁을 수습해야 하는 문제가 있을 때는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합니다. 누군가를 공적 책임을 갖는 자리에 앉히고자 할 때 우리가 고려하는 것은, 그가 속한 계급이나 그가 가진 특권이 아니라 그가 보여 준 실질적 능력입니다.

 

이 나라에 기여 하는 한, 그 누구도 빈곤하다고 해서 정치적으로 무시당하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정치 생활이 자유롭고 개방적인 것만큼 일상생활 역시 그러합니다. 이웃이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즐긴다면 그것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해를 주지 않는 것은 물론, 감정을 상하게 할 험악한 얼굴로 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생활에서는 자유롭고 관용을 베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적 업무에서는 법을 준수합니다. 법은 깊이 존중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권위 있는 자리에 앉힌 자라면, 우리는 그에게 복종합니다. 법 그 자체, 특히 억압받는 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을 준수합니다. 위반하면 수치로 여기는 불문율에도 순순히 복종합니다.

 

누구나 법을 준수하고, 위반하면 수치로 여겨야

중요한 사실이 또 있습니다. 하루 일을 마쳤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과 정신 건강을 위해 모든 종류의 여가를 향유합니다. 사계절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경기와 대회를 개최합니다. 아름답고 유쾌한 개개인의 가정은 나날의 노고를 잊게 합니다.

 

이 도시의 위대함 때문에 만물이 이 도시에 집결하고, 그래서 우리 아테네인은 세상의 산물을 마치 이 땅에서 난 것인 양 즐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군사정책도 적과는 다릅니다. 먼저 우리 도시국가는 온 세계에 개방적입니다.

 

외국인을 추방함으로써 이방인의 견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설사 이 개방성 때문에 적이 우리에게서 뭔가를 알아내 이익을 도모할지라도 장비나 책략보다 우리의 용기를 믿습니다.

 

군사 교육에서도 적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엄격한 훈련으로 용기를 함양시키려 하지만, 우리는 자유롭게 살게 하면서도 그들에 맞서 조금도 밀리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라케다이몬인(스파르타인)은 단독으로 출병하지 않으며 모든 동맹군과 상의한 뒤에 우리의 영토로 출병합니다.

 

이에 반해 우리는 우리 힘만으로 적에 맞서며, 다른 나라에서 싸울 때도 적을 어렵지 않게 제압하고 있습니다.

 

어떤 적이든 한 번도 우리의 전군(全軍)과 맞서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해군을 증강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의 육군을 각지에 파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 군의 일부와 교전해 승리를 얻으면 그 부분적인 승리를 가지고 우리 전체를 격파했다는 소문 을 퍼뜨리고, 격파당하면 우리의 전 세력에 정복됐다고 말합니다.

 

가난이 부끄러움이 아니라,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는 게 부끄러움

우리는 고된 훈련이나 엄격한 군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침착함과 함께 우리에게 익숙한 용기를 갖고 위험과 대면합니다. 다가올 곤경 때문에 전전긍긍하지도 않습니다. 전열에 서면 평소 휴식 없이 훈련에 시달렸던 자들보다 훨씬 용감하게 행동합니다.

 

이상 이야기한 것만으로도 우리의 도시가 전시에든 평시에든 다름없이 가히 경탄하기에 충분하다는 점을 보여 주지만, 이게 다가 아닙니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도 사치에 빠지지 않습니다. 지혜를 사랑하면서도 유약하지 않습니다. 부자는 부를 자랑하지 않고 단지 그것을 활동의 적절한 바탕으로 삼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단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그것을 이겨내는 노력을 게을리 하는 데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각 개인은 자신의 일만이 아니라 도시국가의 일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자신의 일에 전념하는 사람도 정치 일반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을 그저 자기 일에만 신경 쓰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이곳 아테네에서 하는 일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만이 정책에 대한 결정을 우리 스스로 내리거나 적절한 토의에 부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사이에 모순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나쁜 것은 결과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지 않고 행동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남다른 점은 또 있습니다.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은 목적을 신중히 검토하는 자세와 그것을 과감하게 단행하는 능력을 아울러 지니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다른 나라 사람들을 보면 무지가 만용을 불러일으키고, 신중하게 생각한답시고 망설이는 태도로 일관합니다. 삶의 공포도 환희도 잘 알고, 게다가 위험에 겁을 먹지 않는 자라야 진정으로 강한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 대한 선행의 개념에서도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남들과는 달리 선한 일을 통해 우방을 만들지, 혜택을 바라고 우방을 만들지 않습니다. 선행을 베푸는 측은 상대가 느끼는 고마움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속적인 선의를 보여 줌으로서 계속해서 더 큰 신뢰를 얻습니다.

 

반면 의리상 은혜를 갚으려는 측은 자발적으로 선행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빚을 갚고자 하는 의도로 그리하기 때문에 진심을 잃게 됩니다. 우방을 돕는 방법도 특별한데, 우리는 손익을 따져 돕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가치를 믿고 두려움 없이 돕습니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상과 같은 점들을 고려할 때, 저는 우리의 도시국가를 그리스의 학교(the school of Hellas)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더욱이 우리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은 다양한 분야에서 삶을 향유하면서 자신만의 능력을 영예롭게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장례 행사 자리라고 해서 이렇듯 호언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실체적 진실이라는 것은, 앞서 언급했던 우리의 자질로 인해 우리가 얻게 된 이 나라의 국력이 실증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 도시국가 가운데 시련을 통해 명성 이상의 힘을 보여 준 것은 오늘날 오직 우리뿐입니다.

 

우리에게 패한 적도 우리에게만은 수치심을 느끼거나 한을 품지 않으며, 우리를 따르는 속국도 우리 이외에 자신들이 의무를 다할 적합한 맹주는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그 힘을 보여 준 우리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도 미래의 사람들에게도 경탄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 것으로 충분할 뿐, 우리에겐 호메로스의 찬가도, 잠시 귀를 즐겁게 하는 멋진 표현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용기 앞에 굴복한 온 바다와 육지는 길을 열어 우리를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우방에게 베푼 선행으로, 그리고 적에게 가한 고통의 기억으로 세상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기념비를 남겼습니다.

 

이토록 위대한 아테네를 위해 여기 이 사람들은, 이 도시국가를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과감한 결단으로 고귀하게 싸우며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 도시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 고난을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은 여기 남은 우리에게도 의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탁월함을 보여준 전몰용사

우리의 도시국가에 관해 이토록 길게 이야기한 이유는, 우리와 전혀 비교될 수 없는 자들과의 싸움에 있어서 우리가 지키고자 한 것이 훨씬 더 가치 있음을 보여줌으로서 이제 이야기할 전몰자들에 대한 칭송에 확실한 근거를 부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의 도시국가를 찬양함으로서 전몰자들을 칭송하는 주된 근거는 거의 모두 말했지만,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도시국가를 빛낸 것은 오로지 여기에 잠든 사람들의 용기와 용맹함 덕분이라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공적과 그에 대한 예찬이 이곳에 묻힌 사람들처럼 서로 완전히 일치하는 예는 그리스 어디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안식하게 될 사람들이 맞이해야 했던 최후는, 그것이 처음 참여한 전투였든 마지막인 전투였든,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탁월함을 보여 주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들 가운데 인간적인 실수를 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국을 위해 싸운 무용이야말로 그 사람의 단점을 상쇄한다는 주장은 옳습니다.

 

선행은 악행을 덮어 주고, 개인으로서의 단점보다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그가 보인 용기가 더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가운데 누구도, 누리지 못한 부의 쾌락을 아쉬워하며 기가 꺾이거나, 언젠가 부의 기쁨을 누릴지도 모르는데 하는 기대 때문에 죽음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적에게 복수하고자 했고, 이것이야말로 생명을 내던질 만한 비길 데 없는 영광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며 적을 섬멸하기로 결심을 굳히고, 다른 모든 것을 초월해 이 결의가 성취되길 기원했던 것입니다.

 

전운이 확실치 않음에도 희망을 걸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으로 임무를 대담하게 수행해 내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보았으며, 그리하여 뒤로 물러나 생명을 보존하기보다는 맞서 싸우다 죽기를 택했습니다.

 

불명예스러운 기회주의적 태도 대신 온몸을 바쳐 전열을 고수한 그들은, 자신의 운명이 도달한 절정의 그 순간 두려워하기보다는 영광스럽게 죽음과 마주했습니다.

 

위대함이란 수치스러움이 무엇인지 아는 것

이리하여 그들은 이 도시국가에 어울리는 합당한 자들이 됐습니다. 살아남은 우리가 더는 위험한 상황이 계속되지 않기를 희망하는 것은 당연하나, 우리 역시 전장에 나서면 이들 못지않게 담대함을 보일 각오를 해야만 합니다.

 

누군가는 용감하게 도시국가를 지키는 것의 가치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를 되풀이해서 강조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말을 경청하는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우리 도시국가의 위대함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이 나라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도시국가의 위대함을 느낄 때마다 돌아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한 위대함은 전장에서 수치스러운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자신의 의무를 자각하며 비겁하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에 의해 획득된 것임을 말입니다. 그들은 설령 시도하다가 실패하더라도 이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하면서 가장 고귀한 헌신을 하겠다고 여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최고의 무덤과 함께 각자의 한 몸을 나라에 바쳐 더는 늙고 소멸할 수 없는 찬사와 영광을 얻었습니다. 지하에 묻히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들의 영예로운 이름은 영원히 기억되고,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의 말 속에서 기념될 것입니다.

 

온 땅은 이 대단한 사람들의 묘지가 되어, 모국에서 묘석의 비문에 드러날 뿐만 아니라 아무 관련이 없는 땅에서도 무형, 무언의 기념비로서 사람들의 마음에 깃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파란만장한 생애의 종말을 맞을 때 충실한 행복한 최후여야

여러분은 그들을 모범으로 삼아, 자유가 없는 곳에 행복이 없고, 용기가 없는 곳에 자유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전쟁의 위험 앞에서 조금도 망설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견지하지 못하는 비참한 자라면 자기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싸울 필요가 없을지 모릅니다.

 

행운도 지나치면 악운을 초래할 수 있음을 감수하려는 사람들만이 생명을 걸고 행복을 지키려 합니다. 긍지 있는 인간은, 조국을 위해 온 힘을 다하고 홀연히 죽어 가는 것보다 겁을 내고 살면서 수치를 당하는 것에서 더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여기 모인 전몰자의 부모가 되는 여러분께 안타까운 애도의 말씀은 드리지 않으려 합니다. 그보다 저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위로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이 세상이란 수많은 삶의 변천이 있는 곳임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나마 여기 잠든 전몰자들처럼 영광으로 가득 찬 최후를 맞이하고, 여러분이 바치는 것과 같은 애도를 받을 수 있으며, 그 파란만장했던 생애의 종말에서 충실했던 사람들이야말로 행복한 최후였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여러분이 설득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전에 누렸던 기쁨을 오늘 이후로는 남들의 손에서 찾아야 할 때, 여러분은 수없이 슬픔을 느낄 것입니다.

 

행복을 모르는 사람은 불행도 쓰라리지 않습니다. 고통은 오랫동안 익숙했던 행복을 상실하는 것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아직 자식을 낳을 수 있는 사람들은 태어날 자식에 대한 희망으로 견뎌야 합니다.

 

새로 태어날 자식들은 가정에서는 죽은 자를 잊게 하는데 도움을 주며, 도시국가로서는 인구와 방위의 양 측면에서 필요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내 자식의 생명을 나라에 바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공동체가 공평하고 정의롭게 운영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여러분 가운데 나이가 있는 분들은 행복했던 인생이 요구하는 대가로 여기는 동시에, 슬퍼해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위안 삼아 죽은 사람들의 명예에서 마음의 안식처를 찾기 바랍니다.

 

명예를 사랑하는 마음만이 늙지 않습니다. 누군가도 말했듯이 은퇴할 나이가 된 사람은 사리사욕을 따르지 않고 존경받는 데서 기쁨을 느낍니다. 여기에 모여 있는 전몰자의 형제나 유자녀 여러분, 여러분의 앞날에 힘든 싸움이 기다리고 있음을 압니다.

 

사람이 죽었을 때 그를 칭송하는 것은 세상의 관습입니다. 비록 여러분이 영예로운 행동을 했을지라도 죽은 사람만큼의 명성을 얻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죽은 자들의 공적에 미치지 못한다고 간주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있을 동안에는 모두 경쟁심 때문에 서로를 질투하지만, 세상을 떠나 버린 사람에게는 순순히 경의를 표하는 게 인간입니다. 오늘 이후 미망인이 되는 분들에 대해 한마디 언급할 게 있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짧은 권고에 다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이 타고난 본성에 따라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이 큰 명성이 되겠지만, 그래도 가장 큰 명성은 좋게 든 나쁘게 든 남자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데 있습니다.

 

관습법에 따른 제 연설에서 제가 해야 할 말은 다했습니다. 여기에 안치된 사람들의 영예를 위해 거행되어야 할 의식도 이미 마쳤습니다. 그들의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에 필요한 것은 도시국가가 책임집니다. 이는 전몰자들과 그 유족들이 겪을 시련에 대해 나라가 해야 할 당연한 보상입니다.

 

용기에 가장 큰 상을 주는 나라야말로 가장 훌륭하고 가장 용감한 시민들이 다스리는 곳입니다. , 이제 각자 연고가 있는 전몰자들에 대한 애통함은 충분히 풀었으니, 모두 이곳을 떠납시다.

 

도덕적 비애(悲哀)를 뚫고 비상하게 하는 정치적 언어

끝까지 읽어보셨는지. 짧은 영상에 익숙해진 요즘 길고 긴 연설 글을 정독해서 읽으려면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셨다면 이미 훌륭한 연설이나 정치적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자료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링컨 미 대통령은 페리클레스의 연설문을 가지고 남북 전쟁 중이었던 18631119,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게티즈버그에서 한 연설문을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링컨의 연설문은 페리클레스의 연설을 273자로 줄인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또한 아테네 시민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삶을 옹호하는 자세는 미국 독립 전쟁 직전 영국으로부터 비롯된 군사적 두려움에 굴하지 않고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했던 독립 운동가 패트릭 헨리의 1775년 의회 연설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아울러 가난과 부에 대한 페리클레스의 연설은 1930년대 대공황 시기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연설 가운데 우리가 두려워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라는 논지 역시 페리클레스의 연설로부터 받은 영향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인간 삶의 비극적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에 대한 페리클레스의 연설은 2011년 애리조나주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 희생자에 대한 오바마 전 대통령의 추모사에서 부활했다.

 

그는 갑작스런 이별은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고 말함으로서 우리가 우리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했는지, 나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했는지, 자신의 배우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얼마나 자주 했는지를 돌아보게 했다.

 

도덕적 비애감(moral pathos)을 뚫고 비상하는 인간 활동이라는 정치적 언어

물가가 오르고 살림살이가 하루하루 팍팍한 우리나라 경제에 희망을 주고, 하루가 멀다 않고 미사일을 쏘아 대는 북한의 도발을 멈추게 할, 세상을 바꾸는 99.9% 말의 힘이 우리나라 정치인의 정치적 언어로부터 나와 온 나라가 감동으로 넘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윤영무 본부장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

좋아요. 그쪽 의견에 설득당했습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TV 토론에서건 의회의 토론에서건 한 번이라도 누군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당연히 없을 것이다. 우리가 모두 너무나 객관적으로 논리를 주장하기 때문에 정치에서건,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건 똑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각자가 올바른 해결책, 더 나은 논리를 상대에게 납득시키려 학술 토론의 장을 연다. 모두 자신의 논리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95퍼센트는 토론을 한 뒤에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해서, 이 게임은 끝을 모르고 계속된다. 그래서 논리가 도달하는 곳은 소망의 달성이 아니다. 모두가 희망에 부풀어 자기 연설문을 읽어대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 토론 클럽이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보다 더 우리를 자극하는 것은 없다.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많은 일을 한다. 자존감에 목숨을 거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자존감은 때로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다른 목표와 경쟁을 한다. 그럴 땐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인정받아 우리의 자아를 어루만질 것인가, 아니면 다른 목표를 추구할 것인가 양단간에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는 이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상대를 설득하고 싶을 때는 그에게 가서 나의 멋진 아이디어를 선보이고 싶은 충동이 솟구친다. 그래서 그와 토론을 벌여 그에게 나의 아이디어를 납득시키고 나의 논리가 더 뛰어나며 그가 틀렸음을 입증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명성과 인정의 욕망이 너무 크다 보니 누구도 자기가 틀렸다고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하물며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내가 틀렸다는 말이 듣고 싶을 리가 없다. 그러니 당신이 설사 토론에서 이긴다고 해도 그 밖의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다.

 

상대에게 내 의견을 당당히 말하는 것이 능력으로 통하는 세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항상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문해야 한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싶은가? 아니면,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고 싶은가? 이것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목표이며, 그 달성에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행동 방식이 요구된다. 상대에게 내 의견을 말하지 않고 상대를 반박하거나 비판하지 않으려면 한 가지가 필요하다. ,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뒷전으로 밀어놓아야 한다. 내가 옳고 싶은 욕망을 눌러야 하는 것이다. 사실 내 의견이 있는데 입을 다물고 있기란 죽기보다 힘들다. 상대방 못지않게 나의 욕망도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이 목표를 빠르게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에고ego를 제쳐놔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런저런 방향으로 아이디어가 있으십니까?”, “제안해주시지 않으시겠어요?” 등 몇 가지 의도적인 질문만으로 이미 상대는 당신이 원하는 쪽으로 오게 되어 있다. 그것이 자신의 아이디어라고 믿으면 상대는 그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예상치 못했던 힘을 발휘할 것이다. 남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면 아예 관심도 두지 않을 텐데 말이다.

아니면, 처음부터 상대에게 도움을 청하라. 이런 방법을 두고 소크라테스 방식Socrates Method’이라고 부른다. 철학자 소크라테스처럼 상대에게 계속 교묘한 질문을 던져서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마치 상대가 원하는 결과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이 책은 다양한 실험으로 입증한 심리학 법칙을 기반으로, 가족, 친구, 연인, 동료 등 일상에서 부딪칠 수 있는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본질을 꿰뚫고 최적의 솔루션을 찾아내는 심리학적 사고법은 어느 시대나 유용하다. 이 책의 독자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도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으로

객관적으로 생각하세요”, “너무 감정적이군요”,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마세요.” 사람들은 올바른 정보와 논리를 주장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잘못된 믿음 때문이다.--- p.23

 

나와 견해가 다른 주변의 침공에 대비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나의 태도와 정반대의 성향을 띠는 신문을 구독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토론을 해보면 그 방법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그동안 백신 접종을 통해 얼마나 면역이 되었는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반대 논리와 자주 접할수록 면역력도 높아진다--- p.37

 

대부분의 사람은 토론을 할 때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경청하지 않는다. 도통 관심이 없기 때문에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애써 하지 않는다. 그래서 상대의 얼굴에다 대고 이렇게 말한다. “대체 나한테 뭘 원해요? 정말 이해가 안 돼.” 그 말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못한다. 하지만 상대를 정말 이해하지 않고서는 결코 자신의 뜻을 관철할 수 없다.--- p.64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 인간은 객관적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작동한다. 인간에겐 감정과 욕망이 있다. 그것을 무시하는 사람은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소망을 충족시킬 수 없다. 결국 이 간단한 규칙이 통한다.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당신을 돕는다.--- p.80

 

아주 간단한 성공의 규칙이 도출된다. 상대와 최대한 많은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통점을 최대한 강조해야 한다. 유사성의 원칙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특징에 통한다. 출신, 나이, 학벌, 직업, 취미, 정치적 입장, 성격, 소통 스타일 등. 심지어 외모에도 통한다.--- p.97

 

동기 파악을 통해 사람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깨닫고 나면,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타인의 욕망을 탐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p.125

 

대부분의 사람은 모든 문제에 대해 즉각 발언을 하지 않으면 손해를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힘이 있는 사람, 진짜 발언권이 있는 사람은 말수가 적고 말소리가 낮으며 제일 마지막에 말을 한다.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다.--- p.175

 

협상을 질질 끌면서, 적어도 상대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게 하는 편이 오히려 성공의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최대한 만남의 횟수를 늘리라. 상대가 도저히 포기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후에야, 문제가 되는 지점을 테이블 위에 꺼내놓도록 한다. 지금까지의 노력이 모두 허사가 된다면 참기 힘든 인지부조화가 발생할 것이다. 이 때문에 상대는 웬만큼 껄끄러운 문제에도 훨씬 더 협상에 호의적으로 행동할 것이다.--- p.221

 

어떤 결정을 내려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 것인지 고민인 경우가 많다. 모두들 입을 모아 최대한 긍정적인 자세를 가져야 하며 기회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타인을 설득하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이 바로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 왜 실수일까? 앞에서 배운 소유 효과를 상기해보자. 무언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추가로 얻고자 하는 욕망보다 항상 강하다.

--- p.241

 

우리는 자주 듣는 말을 더 진실하다고 생각한다. 흔히 계속 되풀이한다고 어떤 주장이 진실이 되지는 않는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그 말은 틀렸다. 적어도 그 주장을 듣는 상대의 머릿속에서는 계속 반복한 주장이 진리가 된다.--- p.250

설득의 법칙/ 폴커 키츠 저

 

 

 

당신의 분노는 무기가 된다 분노에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원칙들

안도 슌스케 저/부윤아 역 | 해냄 | 202106

 

목차

프롤로그

 

1장 분노에는 의미가 있다

분노는 나쁘지 않다 | 화를 내도 인기 있는 사람 | 분노로 사회는 발전했다 | 분노가 필요한 이유 | 약이 되는 분노, 독이 되는 분노 | 분노의 쾌락 | 분노는 사람을 매료시킨다

 

2장 분노는 개인과 사회를 변화시킨다

분노는 동기가 된다 | 억울한 감정을 디딤돌로 | 차별에 대한 분노 | 분노가 만들어낸 노벨상 | 분노를 행동으로 | 법 제도를 움직인 분노 | 사회를 바꾼 분노 | 분노로 얻어낸 권리, 선거권 |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 세계의 흐름을 바꾸다 | 자유에 대한 투쟁 | #MeToo 운동 | 5분의 힘 | 보복 운전 박멸 프로젝트 | 분노는 엑셀이면서 브레이크다

 

3장 분노를 다루는 자가 분노를 지배한다

사람들이 분노를 잘 다루지 못하는 이유 | 분노와 마주하라 | 분노가 일어나는 구조 | 분노를 키우지 않는 두 가지 힌트 | 분노의 지뢰를 없애는 방법 |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분노에 대한 대처법 | 마이너스 감정을 대하는 방법 | 마이너스 상태를 개선하는 방법 | 자신의 분노 패턴을 파악하라

 

4장 당신의 분노는 무기가 된다

파멸의 무기, 변화의 무기 | 분노를 무기로 삼는 구체적인 방법 | 명확한 목표를 잡아라 | 이상적인 목표에 필요한 것 | 이상적인 목표로 가는 길 | 마음의 벽을 낮추는 루틴 | 빅 퀘스천의 기준에 맞춰라 | 사적인 분노와 공적인 분노 | 공적인 분노의 조건 | 첫 번째, 정의 | 두 번째, 공감 | 세 번째, 시대성 | 그 분노에 공감하는가?

 

5장 분노를 받아들이는 용기

분노의 실패를 받아들여라 | 실패를 인정한다면 | 관여하지 않는 용기 | 도망치는, 퇴각 전략 | 분노로 실수하지 않으려면 | 분노의 파도에 휩쓸리지 마라

 

에필로그

 

옮긴이의 말

 

책 속으로

세상 사람 모두가 온화해진다면 분쟁이 줄어들고 다양한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무도 화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세상이 결코 천국처럼 좋은 세상이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분노는 무언가를 변화시키기 위한 원동력이자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p.17

 

우리가 당연한 것처럼 갖고 있는 선거권은 투표를 할 수 없었던 선인들의 분노에서 시작되어 얻은 귀중한 권리이다.--- p.65

 

분노는 무언가를 바꾸게 하는 액셀 역할을 한다. 반면 분노를 느끼는 것에 죄악감이 있다면 분노를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게 되기 때문에 동시에 브레이크 역할도 한다. 앞으로 움직이려는 힘과 그 자리에 멈추려는 힘이 상호 작용하여 괴로운 딜레마의 상황에 놓인다.--- p.83

 

분노를 어떤 곳으로도 돌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자신이 어디로 분노를 쉽게 돌리는지 알아두는 것도 분노의 감정과 잘 지내기 위해서는 무척 중요하다.

그렇다면 분노는 어디로 향해야 할까? 어느 쪽으로 분노를 향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판단하는 기준을 앵거 매니지먼트에서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의미하는 빅 퀘스천이라고 부른다.--- p.131

 

시대를 만드는 사람은 자신이 꿈꾸는 미래와 같은 시대가 언젠가 올 것이라는 믿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그에 따라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다.--- p.177

 

사람은 약한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 압도적으로 강한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 없기 때문에 곁에 있을 이유가 없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은 강하고 기댈 만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약함 역시 갖고 있는 사람을 따른다. 역설적이지만 자신의 약함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사실은 강한 사람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 p.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