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원자

저주받은 원자 미국의 핵기술 도박이 만들어낸 현재진행형 지구사 제이콥 햄블린 지음, 우동현 옮김 l 너머북스 l 2022.09
Jacob D. Hamblin미국 오리건주립대Oregon State University 역사학과 교수. 과학과 기술, 환경의 국제적 차원들을 연구하며, 특히 핵역사, 환경사, 해양사 분야의 전문가다. 이 책을 포함해 『해양학자들과 냉전: 해양과학의 신봉자』Oceanographers and the Cold War: Disciples of Marine Science,『우물 안의 독: 원자력 시대의 여명기 바닷속의 방사능 폐기물』Poison in the Well: Radioactive Waste in the Oceans at the Dawn of the Nuclear Age, 『대자연을 무장시키기: 파국적 환경주의의 탄생』Arming Mother Nature: The Birth of Catastrophic Environmentalism 등을 썼다. 냉전사의 전개와 냉전기 미국의 학지(學知) 형성을 환경사적 맥락에서 다루는 탁월한 학자이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감사의 말
서론
1부 원자력의 약속
1장 가지지 못한 자들
2장 천 년을 일 년으로
2부 원자력의 선전
3장 과거의 나쁜 꿈 잊기
4장 유색 원자와 백색 원자
5장 영역 다툼과 녹색혁명
3부 원자력의 금지
6장 물, 피 그리고 핵무기 보유국 집단
7장 원자력 모스크와 기념비
8장 불신의 시대
결론 풍요라는 환상
옮긴이 후기
주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천 년을 일 년으로’ 원자력의 약속과 미국의 핵기술 도박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파괴한 원자폭탄과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원자’를 세상에 내놓았다.‘평화를 위한 원자력’계획은 한국전쟁과 닿아 있다. 한국전쟁에서 원폭 사용을 주장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거대한 열핵무기(수소폭탄)를 실험하려는 자신의 계획에 쏟아질 세상의 주의를 분산시키려고 했던 것이었다. 이 원자는 질병을 치료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고, 사막을 꽃피우고, 모두에게 풍족한 에너지를 제공할 것이었다. 이 원자의 운명은 과거 식민지였고, 최근까지 점령지의 신세였고, 프란츠 파농이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이라고 이름 지은 유색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원자가 가진 선전상의 잠재력은 실로 컸다. 자연의 맥박을 빠르게 하고, 경제개발 도상에 있는 나라들의 발전을 가속화하고, 그 나라들이 질병, 기근, 에너지 부족의 마수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것이라 했다.
『저주받은 원자』는 이 과도한 풍요의 수사, 원자의 약속이 미국의 지구적 권력 행사를 위한 정치적 무기였다는 것을 그 역사적 전환 단계를 따라가며 잘 보여준다. 아이젠하워 이후 모든 미국 대통령은 1950~60년대에는 방사선 동위원소를, 1970년대 이후에는 원자로(핵기술)를 가지고 각국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세계의 우라늄과 토륨 시장을 장악했으며 특히 석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이 약속을 채택했다. 다른 여러 나라들도 각국의 전략적 필요에 의해 이 약속을 포용하며 원자로를 지었고 전문가들을 훈련시켰다. 원자력의 약속들은 전후 일본의 회복, 가나의 범아프리카주의, 생존을 향한 이스라엘의 추구, 인도에 대한 파키스탄의 벼랑 끝 전술, 이란의 원자력 자립에 내장되었다.
이 책이 보여주듯이 민수용 원자력의 홍보는 엄청난 도박이었고, 평화를 위한 원자는 결코 평화로운 적이 없었다. 미국은 평화만큼이나 같은 정도의 폭력을 수출했다. 평화와 풍요를 약속하는 동시에 종속의 씨앗을 뿌렸고, 한편으로는 오늘날 핵무기 보유국의 출현을 가속시켰다.
원자력 발전을 단순히 에너지 필요와 기후변화를 해결하는 기술적 선택지로만 여기는 것은 지구적 핵질서의 불신을 가리는 프레임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이후에도 식량·물의 풍부한 보급, 살충제 없는 구충, 암 같은 질병의 치료처럼 원자의 약속은 계속 강력하게 유지되었다. 특히 기후변화에 대한 대안, 깨끗한 에너지라는 담론은 훨씬 강화되어 현재에까지 이르렀다. 심지어 2011년 최악의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겪고도 핵기술이 수많은 인간의 불행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미국의 태도는 확고했다. 버락 오바마의 에너지장관 스티븐 추는 원전이 기후변화의 대안이라고 다시 확언했다. 그러나 『저주받은 원자』는 ‘평화를 위한 원자력’ 프로젝트가 순전히 선전에서 시작되었고, 개발과 풍요에의 열망을 자극했으나 예컨대 인도에서 기적의 곡식과 이스라엘에서 사막의 변신 프로젝트처럼 실현되지 않은 신기루였음을 지적한다. 오로지 그 약속들은 정치적 도구로서 지정학적 권력과 영향력의 지속적 강화 같은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존재했음을 밝혀낸다.
제이콥 햄블린은 21세기 여명에서 벌어지는 지구적 원자력의 분규는 냉전기의 동서 간의 대립이 아니라 대부분 백인 나라들과 이른바 개발도상의 나라들 사이에서 벌어졌다고 했다. 세계 핵질서는 지구의 북반부와 남반부를 분리한 것이다. 이 책이 던지는 여러 주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IAEA(세계 원자력 기구)를 비롯한 국제기구·조약의 진화다. IAEA는 시초부터 인종주의적 정치학이 침투했으며 한때 이집트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1997~2009)를 제외하면 미국과 유럽에 권력을 집중시키는 장치였다.
결론적으로 『저주받은 원자』는 원자력 발전을 단순히 에너지 필요와 기후변화를 해결하는 기술적 선택지로만 여기는 것은 지구적 핵질서의 불신을 가리는 프레임이라고 말한다. 원자력 발전을 지정학적 영향력, 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 인종주의적 분리, 군비 확산, 전쟁 같은 지구적 사안과 연계하여 우리의 이해를 심화하고 국제적인 시야를 확보하길 촉구한다.
최초로 쓴 원자력의 국제사
옮긴이 우동현 박사(UCLA, 북한사)는 이 책의 큰 미덕 가운데 하나로 미국과 서구 중심의 전략이 해당 지역에서 타협과 절충으로 나타난 역사를 재구성했다는 점을 든다. 저자는 국제사의 렌즈를 통해 구식민지·저개발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핵기술 이전을 최대화하기 위해 미국의 수사를 받아들이면서도, 핵무기 비(非)확산 질서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포착한다. 일본처럼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면서도 철저히 미국의 하위 파트너를 자처하거나, 이스라엘·파키스탄처럼 강대국의 간접적 비호 아래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이라크처럼 핵무기 개발을 철저히 숨기려고 했던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은 우리에게 단순한 친핵/비핵의 이분법이 아니라 원자력을 다층적으로 볼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해 준다.
“한반도에서 원자는 앞으로 상당 기간 확고부동하게 자리할 것”
제이콥 햄블린이 제시하는 이러한 ‘평화적 핵기술’의 국제사에서 한국과 북한의 위치는 어디쯤 있을까? 저자가 쓴 한국어판 서문에 잘 드러나 있듯이 한국은 당시 미국의 아이젠하워가 제시한 ‘평화를 위한 원자력’ 계획에 깊이 매료된 국가 가운데 하나였다. 1950~60년대 미국의 좌절 시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인도나 이스라엘, 파키스탄이 그랬던 것처럼 자본주의 핵보유국의 도움으로 핵기술을 이전 받았고, 1978년 고리원전을 가동하면서 풍요로운 미래라는 원자력의 약속을 실현한 듯했다.
북한은 한국만큼이나‘평화를 위한 원자력’ 수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국제 핵질서 수호라는 측면에서는 미국의 하위 파트너인 소련은 전력 생산이 아닌 농업, 의학에 초점을 맞춘 연구용 원자로만 북한에 주었다. 그럼에도 북한은 IAEA(1974)와 NPT(1985)에 가입하면서 소련에 원전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우동현 박사는 핵기술을 매개로 한 북한과 소련의 관계는 이 책의 주요한 주제인 인종주의, 신식민주의를 연상시킨다고 한다.
책 속으로
안사리는 이란이 원자로용 연료 제조에 필요한 시설을 지을 기술적 노하우를 얻지 못할까 봐 불안해했다. 지난여름, 인도는 핵분열 장치를 폭파해 핵무기 능력이 또 다른 나라로 확산되었다는 세계의 항의를 불러 왔다. 안사리는 이런 상황을 이란이 우려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만일 이란이 원자력 배전망에 투자한다면, 언젠가 이를 위한 연료 생산 기술은 얻지 못하는 게 아닌가? 키신저는 “기술적 장애가 있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해결될 거라고 희망합니다”라고 싹싹하게 인정했다. 그날 아침, 키신저는 대통령과 다른 종류의 회의를 했다. 키신저는 ‘이란 건’을 언급하며 “그들이 지금 하는 일을 실현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란인은 수많은 재정적 약속을 한 결과로 조만간 석유 생산량을 줄일 능력을 상실할 터였다. “만일 우리가 이것과 같은 거래를 하나 더 할 수 있다면, 우리는 OPEC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p.18
한국 정부는 화학자 박철재처럼 일본에서 교육받은 한국인 과학자들을 핵기술자로 훈련하려고 미국의 국립연구소들과 영국, 프랑스, 독일의 다른 훈련 계획들에 이들을 파견했다. 박철재는 조국의 원자력 발전 계획을 수립하겠다는 동기부여를 받고 귀국했다. 박철재는 문교부 관리들과 함께 미국의 대규모 개발원조 꾸러미를 희망했다. 고위급 미국인은 그러한 약속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워커 시슬러는 1956년 서울을 방문해 원자력의 혜택에 관한 일련의 강연을 했는데, 자신의 회사 디트로이트 에디슨이 개발 중인 페르미Fermi 증식로에 초점을 맞췄다.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은 이에 큰 흥미를 느꼈다.--- pp.132~133
미국은 원자력 발전의 약속을 이용해 이란의 두 손을 묶었고, 다른 나라들에도 똑같이 하려고 계획했는데 종종 실제 목표는 석유였다. OPEC 나라들은 막대한 석유 매장지를 깔고 앉아 산업화된 서구 경제에 동력을 공급하면서 1970년대 중반 유례없는 지구적 권력을 가졌다. 미국인과 유럽인은 자신들이 자원이 취약한 처지에, 즉 자신들이 ‘후진적’이라고 묘사했을 소수 나라의 변덕에 종속되는 상황에 처했음을 발견했다. 그들은 단호히 종속의 추를 반대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하였다. 이를 가능하게 할 ‘당근’은 바로 군용 전투기·탱크·로켓 같은 첨단기술과 관련된 다른 값비싼 제품·서비스와 함께 제공되는 원자력 발전이었다. 역설적으로, 이들 거래 중 대다수는 제공자가 약속했고 수령자가 상상했던 핵 프로그램으로 현실화되지 못했으며 1980년대와 그 너머의 엄청난 불신의 시대로 이어졌다. 여전히 남아시아·중동에서 원자로는 권력의 상징이 됐고, 수많은 정부들이 야심찬 핵개발 계획에 재정을 지원했으며, 그중 다수는 은밀한 핵폭탄 프로그램과 병행했다. 핵무기 확산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미국·유럽 정부들에 풍요의 미래를 약속하는 방식으로 원자력 기반시설을 독려하는 일은 세계의 천연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고 변화하는 지정학적 풍경 속에서 영향력을 다시 획득하기 위해 나 아갈 분명한 길임이 명백해 보였다.--- pp.347~348
체르노빌 이후 IAEA와 회원국들의 대민 홍보전은 원자력 발전을 풍요의 기술로뿐 아니라 대기를 오염시키는 다른 에너지 원천들의 대안으로 묘사했다. 그러한 주장은 인구 성장·질병·오염·기후변화가 제기하는 재앙에 가까운 위협 한가운데 닥쳐온 종말에 대한 해결책으로 핵에너지를 다시 프레임하여 사고나 방사선 피폭에 대한 늘어나는 환경적 우려를 굴절시켰다. 이 주장은 체르노빌의 결과가 아니라 세계 석유 파동·비밀 핵무기 프로그램의 증가·비확산의 정치학이라는 맥락에서 수년간 원자력 지지자 사이에 그리고 IAEA 자체에 스며들었다. 그것들은 미국·소련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수많은 정부가 비평가들로부터 평화적 핵기술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헌신한 상징이었다.--- pp.350~351
평화를 위한 원자력’, 70여년 거짓말의 역사
패권 위해 미국이 벌여온 ‘핵기술’ 도박
‘풍요’의 약속은 끝내 ‘불신의 시대’로
1960년 2월 프랑스는 최초로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며 ‘핵무기 보유국’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런데 프랑스가 핵실험을 벌였던 장소는 자국이 아니라 2차 대전 이후까지도 손에서 놓지 않으려 했던 식민지 알제리였다. 알제리는 1962년 독립을 쟁취했지만, 독립전쟁에 투신했던 작가 프란츠 파농(1925~1961)은 한 해 앞서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1961)에 이렇게 썼다. “독립은 방향 전환을 가져오지 않는다. (…) 똑같이 오래된 땅콩 수확, 코코아 수확, 올리브 수확… 이 나라에는 어떠한 산업도 세워지지 않는다.” 파농은 알았던 것이다. 제국 열강들이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에게 산업화·경제화 따위의 꿈을 제시할 것이나, 그것은 신기루와 같은 것이라고.
미국의 역사학자 제이컵(제이콥) 햄블린(오리건주립대 교수)이 쓴 책 <저주받은 원자>의 제목은 파농의 글에서 ‘저주받은’이란 수식어를 따왔다. 핵 역사, 환경사 등을 주로 연구해온 지은이가 이 책에서 펼쳐 보이는 것은 ‘원자’의 역사와 그 배경에 깔린 국제정치학이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일본에 투하한 원자폭탄을 통해 전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이라는 것을 입증한 미국의 핵기술은 그 뒤 70여년 동안 지구사를 좌우한 주인공이었다. 무엇보다 지은이는 그 역사적 흐름에 담긴 인종주의적·식민주의적 맥락을 밝혀내는 데 주력한다. 우리가 익숙한 ‘동서’ 갈등의 역사와 달리, 원자의 역사는 ‘남북’으로 갈린다는 것이 핵심이다.
출발점은 미국이다. 종전 뒤 미국은 가장 앞선 핵기술을 보유한 ‘가진 자’였으나, 여기에 쓰이는 자원은 자신들이 ‘후진국’이라 여겼던 나라들에 의존해야 하는 ‘가지지 못한 자’이기도 했다. 이를 극복하는 한 가지 전략은 “그러한 나라(이른바 ‘후진국’)들에서 원자의 평화적 적용이 자급자족, 원료 상품들, 기초적인 위생과 의학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독려하는 것”, 한마디로 핵기술을 미끼로 삼아 비대칭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핵기술 공유·협력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시종일관 분리적이었다. 핵기술은 위험한 것이므로 아무에게나 함부로 넘겨줄 수 없다. 그러나 소비에트연방은 이미 경쟁자의 위치에 있었고, 영국·프랑스 같은 유럽의 제국 열강들도 순차적으로 ‘핵보유국’이 되기 위한 길에 올라탈 것이었다. 미국의 주요한 목표는 ‘다른’ 나라들이 “각자의 몫을 발견해 서구 편을 택하도록 독려하는 것이었다”.

그래픽 동혜원 hwd@hani.co.kr, 게티이미지뱅크·위키미디어코먼스
1953년 아이젠하워가 발표한 ‘평화를 위한 원자력’ 계획은 이런 맥락으로부터 나왔다. 아이젠하워는 ‘가지지 못한’ 나라들을 겨냥해 핵기술이 농업·의학 등에서 빈곤·질병·경제에 대한 새로운 기술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고, 이를 위해 핵기술을 공유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미국은 산업 발전에 갈급한 여러 개발도상국들이 원하는 ‘전력 생산용’ 원자로에 대해선 이를 수출할 어떤 계획도 없었고, 식량·의학 등 민간적 활용에 대해선 장밋빛으로 포장만 했을 뿐 구체적인 비전이 없었다. ‘평화를 위한 원자력’은 수소폭탄 실험 등 미국의 핵기술 독주에 대한 국제적인 견제를 분산시키는 한편, 핵기술 공유를 미끼로 동서 갈등에서 대외정책을 유리하게 이끌어나가기 위해 감행한 ‘도박’이었던 것이다.
미국이 던진 도박패는 이후 전지구에서 끊임없이 일어날 모든 국제정치적 갈등의 근본적인 씨앗이 되었다. 미국·서방 세계를 중심으로 한 핵무기 보유국들과 이들을 상대로 핵기술을 얻어내려 한 아시아·아프리카·중동·남미 지역 개발도상국들 사이의 갈등이 핵심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평화를 위한 원자력인지, 핵무기 개발을 위한 것인지 가를 수 없는 상황 아래 자신의 패권을 위해 미국이 구사한 비대칭적인 대외 전략은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들만 낳을 뿐이었다. 예컨대 아프리카에서 가나와 남아공은 모두 ‘평화를 위한 원자력’을 받아들였으나, 미국은 범아프리카주의를 주창한 가나의 은크루마 정부가 아닌 인종분리주의를 유지한 남아공 정부를 지원했다. 핵기술에 대한 열망이 컸던 인도는 끊임없이 견제했으나, 이스라엘은 아예 동반자로 삼았다. 그 와중에 ‘평화를 위한 원자력’의 실체는 어디에도 없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방사선을 활용한 변이식물 육종 등에서 성과를 봤다고 홍보했지만, 식물학자 로널드 실로는 “국제원자력기구와 이를 후원하는 부유한 국가들이 식량 공급 증가에 일조하는 원자력의 역할에 대해 허위 주장을 펼치면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의 개발 프로젝트를 강탈했다”고 비판했다가 낭인이 됐다.

‘평화를 위한 원자력’을 주제로 에릭 니체가 제너럴 다이내믹스를 위해 고안한 포스터 여러 장 중 하나. 출처 제너럴 다이내믹스. 너머북스 제공

1961년 은크루마(왼쪽) 가나 대통령이 뉴욕의 국제연합(UN)을 방문해 사무처장 랄프 번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출처 국제연합. 너머북스 제공

1967년 일본 국립방사선육종장에 있는 방사선탑. 이른바 ‘감마 정원’은 변이 유발 등 식물에 대한 방사선의 효과를 연구하기 위해 쓰였다. 사진 골드버거. 출처 국제원자력기구. 너머북스 제공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1955년 국제 학술대회 동안 의장을 맡았던 인도 물리학자 호미 바바(오른쪽). 출처 국제연합. 너머북스 제공
1964년 중국이 ‘핵무기 보유국’ 집단에 합류하면서, 말뿐이었던 ‘평화를 위한 원자력’은 아예 “미국·소련·영국·프랑스 그리고 이제 중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수중에 핵무기가 들어가지 않게 막는”, ‘비확산’ 체제로 바뀌게 된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안보를 제일의 목적으로 삼고 잠재적인 핵무기 프로그램을 탐지하는 등 치안 유지 및 감시·사찰 구실을 하는 기구로 탈바꿈했다. 비확산 조약의 체결은 “세계를 노골적으로 가진 자들과 가지지 못한 자들로 나누었을 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원자로 취득을 간섭한다는 위협도 제기했다.” 이미 ‘평화를 위한 원자력’에 담겨 있던 인종주의·식민주의가, ‘신식민주의’로 고착된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불신의 시대’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원자의 장밋빛 약속은 기후변화의 위협 등을 타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19년 일부 학자들이 <뉴욕 타임스>에 ‘원자력 발전이 무해한 에너지 생산의 형태로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지은이는 이 약속은 “세상의 가장 가난한 나라 앞에서 달랑거릴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앞에도 놓여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70여년 동안 거듭됐던 ‘풍요’의 약속은 과연 세계를 어디로 이끌었나? 남쪽과 북쪽에서 각기 다른 맥락으로 핵기술이 가져다주는 ‘풍요’에 매달리고 있는 지금 한반도에서, 특히나 되새겨야 할 질문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녹색’·‘평화’·‘저비용’… 원자력에 붙는 모순된 수사
미국 주도 원자력 계획 과정 담아
자국 패권 유지 위해 ‘평화’ 이용
에너지 제공 빌미로 핵기술 이전
방사능 위험·핵무기 확산 부추겨

▲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1953년 12월 유엔총회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창설을 제안하고 있다.유엔 제공
최근 정부가 탈원전 기조를 폐기했음에도 저비용·청정 에너지로 규정된 원자력을 둘러싼 논쟁은 그치지 않고 있다. 깨끗하고 안전하며 풍요로운 미래를 약속한 원자력에 대한 전 세계적 신념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역사의 궤적을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이컵 햄블린 미국 오리건주립대 역사학과 교수의 저서 ‘저주받은 원자’는 1950년대 이후 70여년간 미국 주도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 계획이 세계에서 어떻게 전개됐는가를 종합적으로 다룬 국제사 기록이다.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려고 평화적 핵기술을 이용해 온 역사를 통해 원자력을 다층적으로 볼 실마리를 제공한다.

▲ 1955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국제 학술대회’ 개막식. 참석자들이 미국의 실험용 비등수형 원자로 모형을 보고 있다.유엔 제공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파괴한 원자폭탄과는 다른 ‘새로운 원자’를 세상에 내놓았다. 아이젠하워 정부는 원자력이 질병을 치료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고 모두에게 풍족한 에너지를 제공해 과거 식민지였던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가속할 것이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이는 자국 수소폭탄 실험 계획에 쏟아질 세상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미국 역대 정부는 각국의 핵 프로그램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세계 우라늄·토륨 시장을 장악했다. 핵무기 확산의 위험에도 산유국들에까지 원자력 기반 시설 설치를 독려한 이면에는 석유를 확보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미국이 집중적으로 원자력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키자 원자력은 공포의 대상에서 욕망의 대상으로 전환됐다.

▲ 이란 테헤란대학의 연구용 원자로는 이슬람 혁명(1979년) 이전인 1967년 가동되기 시작했고, IAEA는 전문가들을 파견해 훈련을 지원했다. 1970년 이란인 과학자들이 방사성 동위원소 관련 실험을 하는 모습.유엔 제공
각국 지도자들은 핵기술 이전을 최대화하고자 미국의 수사를 받아들이면서도 핵무기 비확산 문제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한다. 일본은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음에도 철저히 미국의 하위 파트너를 자처했고, 이스라엘은 미국의 비호하에 핵무기를 개발했다. 반면 이라크는 핵무기 개발을 철저히 숨기려고 했다. 평화적 핵기술은 잠재적인 핵무기 개발 기술이었다는 점에서 원자력은 결코 평화로운 적이 없었고 핵무기의 확산을 부추겼을 뿐이다.
기술 종속에 따른 신식민주의는 원자력 분야에서도 예외가 없었다. 수많은 개도국들이 핵기술을 채택했지만 전문성, 장비, 연료 측면에서 미국과 서유럽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1960년 프랑스는 첫 원폭 실험을 할 때 자국이 지배하는 알제리를 실험장으로 썼다.

▲ 1991년 한스 블릭스(왼쪽) IAEA 사무총장이 이라크의 핵 능력을 평가하고 있다.유엔 제공
핵무기 보유 감시와 평화적 핵 사용을 위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대한 비판도 눈길을 끈다. IAEA는 개도국에서 수많은 프로그램에 착수했는데, 1960년대 들어 세계보건기구(WHO),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격렬하게 충돌했다. WHO 과학자들이 방사성 낙진의 위험에 대해 언급하자 IAEA는 WHO를 밀어내려 했다. IAEA는 방사선을 오염 물질로 묘사하는 어떠한 서사에도 단호하게 대항했고 방사선을 활용해 곡물 내 단백질량을 늘리는 등 원자력이 세상의 질병, 기근, 인구 과잉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돼 있음을 다양하게 홍보했다. 광범위한 회원국을 보유한 IAEA는 원자력이 가져올 ‘녹색 혁명’의 청사진을 과장해 미국의 영향력 확대에 기여했다.
저자는 탈원전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다만 ‘평화적 원자력’이라는 약속이 수십년간 세계인의 공포와 야심을 유리하게 이용해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도구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결론적으로 원자력 발전을 단순히 에너지 수요와 기후 변화를 해결하는 기술적 선택지로만 여기는 것은 지구적 핵 질서의 불신을 가리는 프레임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서 원전 개발로 누가 이득을 볼지, 그에 따른 비용은 누가 어떻게 치를지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책이다./ 서을신문 하종훈 기자
美 '평화 위한 원자력' 전략, 패권 유지에 어떻게 활용됐나
1975년 미국 백악관에서 제럴드 포드(왼쪽부터)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 후상 안사리 이란 경제재무성 장관이 회동하고 있다./사진 출처=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1975년 3월4일 이란 팔라비 왕조의 경제재무성 장관 후상 안사리는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서면서 ‘원자력 이란’이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몇 달 전 수도 테헤란을 방문한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이 안정적인 석유 공급을 대가로 5년간 수십억 달러 상당의 장비와 125억 달러의 규모의 민간 무역 거래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원액의 절반 가량은 이란의 민수용 핵개발 계획 발전시키는 용도였다. 언젠가 석유 고갈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원자력은 이란의 미래로 보였다.
하지만 미국의 속셈은 달랐다. 바로 석유수출국기구(OPEC) 무력화였다. 그날 아침 키신저는 대통령과 가진 회의에서 이란·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이 핵기술처럼 돈이 많이 드는 사업에 투자하려면 감산은커녕 석유 생산량을 계속 늘려 미국의 에너지 안정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번역 출간된 ‘저주받은 원자’는 1950년대 이후 70년 동안 미국이 자신들의 국제 패권과 지정학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아시아·아프리카·중동·중남미 등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력’ 전략을 어떻게 구사해왔는지 분석한 책이다. ‘풍요한 원자’라는 약속이 실상 미국의 지구적 권력 행사를 위한 정치적 도구였다는 것이다. 특히 책은 한국과 북한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핵기술을 발전시켜 온 현실을 국제 역학관계의 맥락에서 통찰할 수 있게 해준다.
저자는 제이콥 햄블린 미국 오리건주립대 역사학과 교수다. 그는 원전을 둘러싼 다툼을 기술적인 해결책이나 동서 진영간 대립이 아니라 신식민지나 인종주의 문제와 연계해 입체적으로 들여다본다. 책 제목의 ‘저주받은’도 알제리 독립운동가이자 작가인 프란츠 파농의 유작인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The Wretched of the Earth)’에서 따왔다. 파농은 이 책에서 제국주의 국가들이 기술 이전을 통해 수백 년이 소요되는 경제적 발전을 단기간에 이룰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지만 실제 결과는 식민주의 구조 지속이라고 비판한다. 저자는 신생 독립국들이 외화를 벌기 위해 국내 천연자원을 국제시장에 헐값으로 팔고 선진 과학기술을 얻기 위해 강대국에 종속되는 신식민주의적 관계가 원자력 분야에서도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 계획의 출발은 한국전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육군참모총장 출신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재임 기간 1953~1961년) 대통령은 1952년 대선 당시 한국전쟁에서 원자폭탄 사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폭이 지나치게 악마화됐다고 불평했고 수소폭탄 실험에 대한 세상의 관심을 분산시키려 했다. 미 정부는 핵 기술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풍요의 뿔 ‘코누코피아’로 보이도록 선전했다.
“원자와 함께 라면 자연이 가하는 제약을 극복할 수 있고, 자연의 맥박은 빨라질 수 있으며, 자연에서 오는 재앙을 극복할 수 있다.” 미 정부와 과학계는 원자력이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는 값싼 에너지원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핵분열 부산물로 나오는 방사선을 쬐면 해충과 세균을 사멸시켜 주요 식품의 유통기한을 늘리고 밀과 쌀의 고단백 변이종의 만들어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다고 과장했다. 생태계, 비료, 인체의 신진대사를 연구하는데도 방사선은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1960년대 일본인 변이식물 육종가 카와이 타케시가 자신이 만든 변종 쌀과 함께 서 있다./사진 출처=IAEA
처음에는 이니셔티브의 내용이 모호하고 과학적 근거가 빈약한 신기루에 불과했지만 선전전의 효과는 컸다. 특히 새로 독립해 경제가 취약했던 개발도상국들은 미국의 원전 이전 약속에 매달렸다. 미국은 1560~60년대에는 방사선 동위원소를, 1970년대 이후에는 원자로나 핵기술을 가지고 각국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 원자력 원료인 우라늄과 토륨 시장을 장악했고 석유 자원 확보에도 원전 기술을 지렛대로 활용했다. 반면 저개발국가들은 국가 기반시설의 주요 부분을 미국과 유럽의 전문성·장비·연료에 의존하며 새로운 형태의 기술 종속에 직면했다.
또 미국은 ‘평화적인 원자력 공유’라는 이름 아래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설립해 세계 통제 수단으로 활용했다. 원자력 상용 기술에 접근하려는 나라들은 IAEA의 엄격한 사찰과 감시를 받아야 했다. 미국은 이라크가 핵무기 개발 계획을 숨겼다는 이유로 전쟁까지 벌였다.
더구나 미국은 민수용이라 하더라도 몇몇 우방 외에는 원전 기술을 이전할 의지가 없었다. 한국의 경우 1950년대 물리학자인 박철재 등 과학자들을 미국으로 보냈지만 접근할 수 있는 시설은 대학의 연구용 원자로에 그쳤다. 그나마 한국은 미국이 공산주의 확산에 대응해 ‘개발 국가의 본보기’로 삼아 각종 지원에 나선 덕분이었다. 한국은 미국의 시간 끌기 등 우여곡절 끝에 1978년 고리원전을 가동하게 된다.

미국의 반대에도 핵개발 계획에 전념한 인디라 간디 인도 총리/사진 출처=UN
이 같은 ‘평화를 위한 원자력’이라는 레토릭을 패권 유지에 활용한 미국의 이중적인 전략은 핵무기 확산이라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많은 나라들이 민수용·군사용 핵개발 계획을 주권과 힘의 상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또 평화적 핵기술이라는 것은 결국 잠재적인 핵무기 개발 기술이기도 했다. 북한을 비롯해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이란 등은 경제와 평화를 빌미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대내적인 국민 통합과 외교적·군사적 시위 수단으로 삼고 있다.
저자는 “지구적 핵질서는 가난한 국가들을 부상시키는 대신 식민지기를 떠올리게 하는 방향으로 구조화된 것처럼 보인다”며 “평화적 원자라는 약속을 미국이 주도하며 다른 수많은 국가를 포함한 정부들이 분명히 활용하고 오용하며 착취했다”고 비판한다/ 서울경제 최형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