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인간 없는 세상

이성근 2022. 9. 26. 02:06

<인간 없는 세상>(앨런 와이즈먼 지음, 이한중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랜덤하우스 2007.10

 

앨런 와이즈먼 (Alan Weisman)-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이자 애리조나 대학 국제저널리즘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디스커버20052월호에 소개, 인간 없는 세상(원제:The World without Us)의 뿌리가 된 짧은 에세이 인간 없는 지구미국 최고의 과학 저술로 선정되었다.하퍼」「뉴욕타임스」「애틀랜틱먼슬리등의 매체와 미국의 국영 라디오 방송인 NPR에 진보적 관점의 통찰력 넘치는 글을 기고해온 그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객원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홈랜즈 프로덕션의 선임 라디오 프로듀서이며 다수의 수상 경력을 가진 베테랑 작가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가비오따쓰: 세상을 다시 창조하는 마을등이 있다.

 

목차

감수의 말_ ‘인간 있는 세상이 지속되려면

한국어판 서문_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화해를 꿈꾸며

인간 없는 세상 연대기

프롤로그_ 원숭이에 얽힌 화두 하나

 

chapter1 미지의 세상으로의 여행

1 희미한 에덴의 향기

2 집은 허물어지고

3 잃어버린 인간들의 도시

4 인간 이전의 세상

5 사라진 동물들

6 아프리카의 역설

 

chapter2 그들이 내게 알려준 것들

7 키프로스섬의 비극

8 카파도키아의 지하도시

9 떠도는 플라스틱

10 텍사스 석유화학 지대

11 흙과 땅의 기억

 

chapter3 인류의 유산

12 세계 불가사의의 운명

13 한국 비무장지대의 교훈

14 세상 모든 새들의 노래

15 방사능 유산

16 우리가 지형에 남긴 것

 

chapter4 해피엔딩을 위하여

17 자발적인류멸종운동과 포스트휴머니즘

18 예술은 우리보다 길다

19 바다, 온 생명의 요람

 

에필로그_ 우리의 지구, 우리의 영혼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인간 없는 세상 연대기

우리가 사라진 후, 지구는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인가? 이 세상에서 인류와 함께 사라져갈 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이 세상에 남기게 될 유산은 무엇인가?

 

2일 후 | 뉴욕의 지하철역과 통로에 물이 들어차 통행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7일 후 | 원자로 노심에 냉각수를 순환시키는 디젤 발전기의 비상연료 공급이 소모된다.

1년 후 | 무전 송수신탑의 경고등이 꺼지고 고압전선에 전류가 차단된다. 이렇게 되면 고압전선에 부딪혀 매년 10억 마리씩 희생되던 새들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나게 된다.

3년 후 | 난방이 중단됨에 따라 몇 해의 겨울을 거치며 갖가지 배관들이 얼어터진다. 내부가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면서 건물이 손상된다. 예컨대 벽과 지붕 사이의 이음매에 균열이 생긴다. 도시의 따뜻한 환경에 살던 바퀴벌레들은 겨울을 한두 번 거치는 동안 멸종된다.

10년 후| 지붕에 가로세로 18인치의 구멍이 나 있던 헛간이 허물어진다. 사람 없는 집은 대부분 50, 목조가옥이라면 기껏해야 10년을 못 버틴다.

20년 후| 고가도로를 지탱하던 강철기둥들이 물에 부식되면서 휘기 시작한다. 파나마운하가 막혀버리면서 남북 아메리카가 다시 합쳐진다. 우리가 즐겨 먹던 일반적인 밭작물들의 맛이 지금 같지 않은 야생종으로, 그러니까 인간의 입맛에 맞게 개량되기 전 상태로 되돌아간다.

100년 후 | 지금 지구상에 남아 있는 코끼리들은 상아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일이 없어지면서 개체수가 스무 배로 늘어난다. 반면 너구리, 족제비, 여우 같은 작은 포식자들은 인간이 남긴 생존력이 엄청나게 강한 고양이 등에 밀려 개체수가 오히려 줄어든다.

300년 후 | 흙이 차오르면서 넘쳐흐르던 세계 곳곳의 댐들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강 삼각주 유역에 세워진 미국의 휴스턴 같은 도시들은 물에 씻겨나가 버린다.

500년 후 | 온대지역의 경우 교외는 숲이 되어버리면서 개발업자나 농민들이 처음 보았을 때 모습을 닮아간다. 알루미늄으로 된 식기세척기 부속과 스테인리스스틸로 된 조리기구가 풀숲에 반쯤 덮인 채 있다. 그것들의 플라스틱 손잡이는 본체에서 떨어져 나왔어도 여전히 멀쩡하다.

1천 년 후 | 뉴욕 시에 남아 있던 돌담들은 결국 빙하에 무너지고 만다. 인간이 남긴 인공구조물 가운데 이때까지 제대로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은 영불해협의 해저터널뿐일 것이다.

35천 년 후 | 굴뚝산업 시대에 침전된 납이 마침내 토양에서 전부 씻겨나간다. 이에 비해 카드뮴은 완전히 씻겨나가기까지 75천 년 세월이 걸린다.

10만 년 후 | 이산화탄소가 인류 이전의 수준으로 떨어진다(좀더 걸릴 수도 있다).

25만 년 후 | 금속 케이스가 일찌감치 부식된 플루토늄 핵폭탄의 플루토늄 수준이 지구의 자연적인 배경복사 수준으로 떨어진다.

수십~수백만 년 후 |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는 미생물이 진화한다.

120만 년 후 | 인류가 남긴 청동 조각품은 아직도 형태를 알아볼 수 있다.

30억 년 후 |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모습이겠지만 갖가지 생명체가 여전히 지구상에 번성할 것이다.

45억 년 후 | 미국에만 50만 톤 있는 열화우라늄-238이 반감기에 이른다. 태양이 팽창함에 따라 지구가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적어도 10억 년 동안은 지구 최초의 생물을 닮은 미생물이 다른 어느 생물체보다 오래 남을 것이다.

50억 년 이후 | 죽어가는 태양이 내행성들을 다 감싸면서 지구는 불타버릴 것이다.

영원히 | 우리가 남긴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 전파는 계속해서 외계를 떠돌아다닐 것이다

 

책 속으로

사파라 사람들은 석기시대에도 완전히 접어들지 않은 상태였다. 거미원숭이를 조상이라 믿는 이들은 아직도 사실상 나무에 살고 있다. 야자나무 잎으로 짠 지붕을 받치기 위해 덩굴로 야자나무 기둥들을 묶어 살고 있으니 말이다. (중략) 여전히 사냥을 하긴 했으나 며칠을 돌아다녀도 맥 한 마리, 심지어 메추라기 한 마리도 구경 못하는 때가 많았다. 그러자 그들은 금기였던 거미원숭이 사냥을 시작했다. 아나 마리아는 손녀들이 권하는 그릇을 다시 밀쳐냈다. 엄지 없는 조그만 손이 바깥까지 튀어나온 초콜릿 빛깔의 고기가 담긴 그릇이었다. 그녀는 마다한 삶은 원숭이 고기를 찌푸린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조상을 잡아먹는 지경까지 왔으니, 이제 더 남은 게 무엇이냐?” --- pp.13-15

 

우리 모두가 느닷없이 사라져버린 뒤의 세상을 상상해보자는 것이다. 그것도 내일 당장 말이다. (중략)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자. 집과 도시, 주위의 지대, 그 아래의 포장된 땅, 그 땅 속에 숨겨진 흑 등을 다 그대로 두고 인간만 몽땅 추려내는 것이다. 우리를 다 쓸어버리고 나면 무엇이 남는지 보자. (중략) 잃어버린 땅을 되찾아 아담 또는 호모하빌리스 이전 시절의 푸른 빛깔과 향기를 되살리려면 얼마나 오래 걸릴까? 우리가 남김 흔적을 자연이 전부 지워비릴 수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창조한 가장 훌륭한 것들, 예컨대 건축, 미술, 정신의 발현 등은 어떻게 될까? 태양이 팽창하여 지구를 잿더미가 되도록 태워버릴 때까지 남아 있을 만한 무궁한 것이 과연 있을까? 지구가 다 타버린 뒤에라도 우주에 우리의 자취가 희미하게나마 남기나 할까? 우리가 한때 여기 있었다는 신화 등이 별들 사이에 남을까? --- pp.16-17

 

인간이 사라진 뒤, 기계를 믿고 더욱 오만해진 인간의 우월성에 대한 자연의 복수는 물을 타고 온다. 그것은 선진국에서 가장 널리 이용되는 목조 건축에서부터 시작된다. 빗물은 먼저 아스팔트나 슬레이트로 만든 지붕 외피를 타고 든다. 지붕 이음새나 모서리 부분에 방수용 철판을 대준다고 하지만 하염없이 내리는 빗물은 어느새 외피 아래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중력) 지붕틀에 가해지는 중력이 커지면, 썩기 시작한 금속판을 고정해주던 핀이 푸릇한 곰팡이를 소복하게 뒤집어쓴 젖은 나무에서 풀려 빠져나온다. 새가 와서 부딪히거나 벽이 기울면서 가하는 압력 때문에 깨진 유리창 속으로 빗물이 들이친다. 유리가 깨지지 않더라도 비나 눈은 창턱 아래로 어떻게든 기어코 스며든다. 지붕에서는 나무가 계속 썩으면서 지붕틀이 서로 떨어져나가기 시작하고, 결국 벽이 한쪽으로 기울면서 지붕이 무너져내리고 만다. --- pp.32-33

 

한곳에서 물이 넘치면 다른 곳으로 쏟아지지요. 36시간이면 전부 물바다가 되어버립니다.” 비가 오지 않아도 지하철 펌프만 가동을 멈추면 며칠 안에 물바다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 정도가 되면 포장된 도로 밑에 갇힌 흙이 씻겨나가고, 그로부터 머지않아 도로가 갈라지고 터지기 시작한다. 아무도 하수구를 치워주지 않아 막혀버리면 지면에 새로운 물길들이 생겨난다. 물에 잠김 지하철 천장이 무너지면서 갑자기 물줄기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이스트사이드의 4, 5, 6호선 위의 도로를 떠받치고 있던 쇠기둥이 20년 동안 물에 잠기면 부식하여 꺾여버린다. 이렇게 무너져내린 렉싱턴대로는 이내 강이 되어버린다. --- p.44

 

브루클린식물원의 부원장 스티븐 클레맨츠는 두 세기 안에 나무들이 개척자 역할을 한 풀들을 대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도랑에 엄청나게 쌓인 낙엽은 공원에서 이동해 온 토종 참나무와 단풍나무가 자라기 좋은 비옥한 토양이 되어준다. 새로 자라는 아카시아와 보리수 나무는 해바라기나 블루스템이나 뱀풀 등이 사과나무와 함께 자리를 늘려갈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질소를 고정하여 토양을 더욱 기름지게 해준다.-p47

 

1970년에는 케냐 전체에 2만 마리나 퍼져 있던 검은코뿔소가 이제는 400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나머지는 동양에서 약으로 쓰인다며 뿔 하나에 25,000달러에 거래되고, 예멘에서 기념용 칼의 손잡이에 소용되면서 모조리 밀렵당했다. 이제 본래의 야생 서식지인 애버데어에 남아 있는 검은 코뿔소는 70마리에 불과하다고 한다.-106

 

그러는 사이 자연은 계속해서 복구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지붕이 주저않은 곳에서는 야생 제라늄과 필로덴드론이 솟아나 바깥벽을 타고 내려간다.(...) 밤에는 달빛 아래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이 없는 어둑한 해변에 붉고 푸른 바다거북들이 알을 낳으러 잔뜩 몰려든다.-170

 

인간이 없어지고 나면 가장 먼저 혜택을 볼 것들 중 하나가 모기일 것이다. 인간중심주의적 세계관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피가 모기의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사실 모기는 다양한 맛을 즐길 줄 아는 미식가다. 대부분의 온혈 포유류뿐만 아니라 냉혈인 파충류, 심지어 새의 정맥에서도 빨아먹을 줄 안다.-p184

 

인간이 없어지자, 한때 동족이 원수가 되어 싸우던 지옥은 오갈 데 없던 생물들이 가득한 곳으로 변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천만하던 곳은 사라질 뻔했던 야생돌물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반달가슴곰, 스라소니, 사향노루, 고라니, 담비, 멸종 위기의 산양, 거의 사라졌던 아무르표범이 매우 제한된 이곳의 환경에 의지해 산다. 유전적으로 건강한 개체군이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영역이라고 하기에는 좁은 구역이다. 만일 비무장지대의 북쪽과 남쪽이 전부 인간 없는 세상으로 갑자기 변한다면, 그들은 다른 곳으로 퍼져 수를 늘리고 이전의 영역을 되찾아 번성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한국에 게티즈버그와 요세미티를 합친 듯한 곳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보세요.” DMZ포럼의 공동 창립자인 하버드대학 생물학자 E. O. 윌슨의 말이다. 지뢰를 제거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고 농사나 개발도 할 수 없겠지만, 관광 수입이 상대적으로 더 많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앞으로 100년이 지나면 지난 세기에 이곳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이 공원이 될 겁니다. 그것은 한국 사람들이 가장 아끼는 유산이 될 뿐 아니라, 전 세계가 따를 수 있는 모범이 될 겁니다. 달콤한 전망이다. 하지만 이미 DMZ를 넘보는 개발 세력들에게 먹혀버리기 쉬운 전망이기도 하다. --- pp.260-266

 

우리가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된 다른 동물들, 예컨대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사냥당하고 멸종 위기에 처한 큰뿔산양이나 검은코뿔소 등이 과연 그 일을 축하할지는 알 수가 없다. 우리가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동물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 개나 말처럼 길들인 종류이다. 그들은 늘 주어지던 먹이를 아쉬워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목줄이나 고삐를 매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정 많았던 주인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돌고래, 코끼리, 돼지, 앵무새, 그리고 인간의 사촌 침팬지와 보노보원숭이까지 우리가 가장 영리하다고 생각하는 동물들은 아마 우리를 그다지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가운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들에게 위험을 주는 것 또한 대개 우리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없어서 슬퍼할 것들은 주로 우리가 없으면 정말로 살 수 없는 존재일 것이다. 대표적으로 사람 머리와 몸에 사는 이를 들 수 있다. 진드기도 우리가 없으면 큰 상실을 맛볼 것이다. 200여 종의 박테리아도 우리를 자기네 집이라 부른다. 특히 우리의 대장과 콧구멍, 입 속, 이빨에 사는 것들이 그렇다. 수백 마리의 작은 포도상구균이 우리 피부 어느 곳에나 살며, 겨드랑이와 가랑이와 발가락 사이에는 더 많이 산다. 거의 대부분이 유전적으로 우리한테서만 잘 살 수 있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우리가 없어지면 그들도 사라질 것이다.--- pp.329-330

 

 

앨런 와이즈먼은 왜 <인간 없는 세상> 썼을까?

젖은 낙엽이 떠올린 책

이른 아침. 파란 하늘을 쳐다보며 낙엽 쌓인 길을 걷는다. 완연한 가을이다. 어젯밤 비바람에 나뒹굴던 낙엽은 젖어 추레하다. 발길 피하는데, 주차된 고급 승용차에 덕지덕지 붙었다. 유난스레 비가 많던 올여름은 지나갔다. 짧은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겠지. 올겨울 거리에 눈이 며칠이나 쌓일지 궁금한데, 고맙게 우리는 4계절을 잃지 않았다.

 

부지런한 미화원의 빗자루로 커다란 자루에 담긴 낙엽은 저녁이면 한쪽에 쌓일 것이다. 어디로 갈까? 시립 양묘장에서 퇴비로 활용한다면 다행인데 소각장으로 직행하는 건 아닐까? 젖은 낙엽은 민원을 부르니 미화원들은 서두르고 싶을 텐데, 문득 '낙엽을 그대로 두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고 싶다.

 

미화원은 물론, 어느 날 모든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낙엽에 가려진 도로와 골목, 그리고 도시는 장차 어떻게 변할까? 비와 눈을 맞으며 쌓인 낙엽 사이로 새 풀이 돋겠지? 보도블록 사이로 작은 풀이 비집고 나온 이 길은 어떻게 변할까? 그런 점을 눈여겨본 과학저술가가 있다.

 

앨런 와이즈먼. 비무장지대를 방문한 그는 <인간 없는 세상>(앨런 와이즈먼 지음, 이한중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에서 사람이 사라지면 지구는 어떻게 변할지 상상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천만했던 곳이 50년 만에 야생동물의 훌륭한 피난처로 변한 모습에 경탄했다. 내전으로 황폐해진 니카라과 해안이 10년 만에 되살아났으니 50년이면 충분하다는 걸 되새기면서 걱정한다. 지뢰가 사람 접근을 봉쇄하는 폭 4킬로미터에 241킬로미터 길이의 비무장지대는 스스로 복원되었다. 귀룽나무가 군집을 이루고 두루미와 물까치가 넘나들며 고라니와 산양이 누비는 생태계가 되었는데, 언제까지 보존될 수 있을까? 개발 삽날이 여전하다.

 

두루미가 날아든 비무장지대가 게티즈버그와 요세미티를 합친 자연생태계로 거듭나기를 희망한 앨런 와이즈먼은 묵시록부터 펼친다. 자동차 충돌로 거리가 온통 엉망일 텐데, 이틀 지나면 뉴욕 지하철에 물이 가득해지고 일주일 지나면 핵발전소의 냉각수 순환 모터가 정지되리라 추정한다. 자연은 본연의 모습을 회복한다. 1년 후 고압전선에 부딪혀 희생되던 10억 마리의 새들이 자유를 구가하며, 100년 후 상아 잃을 일 없는 코끼리가 20배 이상 늘어난다는 건데, 의외로 너구리와 여우는 야생화된 고양이에 의해 밀려날 것으로 짐작한다.

 

정유 시설과 화학공장들은 어떻게 될까? 비상 발전소가 가동을 멈추는 순간 통제장치는 기능을 잃고, 석유가스와 수소탱크가 새며 폭발해 시멘트 구조물들이 박살될 것이다. 탈황장치가 멈출 테니 산성비가 한동안 대지를 적실 것이다. 멕시코만이나 쿠웨이트의 가스매장 지대는 무척 오래, 어쩌면 영원히 불타겠지만, 공장은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미생물이 석유화학 찌꺼기를 제거하면 나무가 자라오르고, 시내가 흐르면서 방울뱀과 비버도 돌아올 것이다. 우리나라 석유화학단지는 대개 갯벌 매립한 자리를 차지했다. 갯지렁이와 조개들이 들어오겠지.

 

3만 개 넘는 핵폭탄은 임계질량 넘지 않아 무사하겠지만 핵발전소는 다르다. 핵폐기물이 모인 수조의 물이 끓어넘치며 어마어마한 방사능을 함유하는 증기가 거대한 버섯구름처럼 폭발하고 오염된 수많은 동식물이 돌연히 변하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원래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체르노빌을 보라. 이건 이전으로 돌아가려면 세월이 더 필요하더라도 푸틴이 일으킨 전쟁 와중에도 겉보기 평온하다. 사람이 비키자마자 나무와 풀이 무성해졌다.

 

500년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맨해튼의 마천루 자리에 해양성 나무와 풀이 들어와 안정될 것으로 짐작하는 앤런 와이즈먼은 1000년 뒤 돌담마저 무너지면 인간이 세운 거대한 구조물은 영불 해저터널이 유일할 것으로 예상한다. 35천 년이 지나면 굴뚝산업의 오염물질이 토양에서 자취를 감추고 10만 년이 지나면 온실가스가 인류 이전 상태로 줄어들며 25만 년이 지나면 방사능이 자연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본다.

 

수백만 년 후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미생물이 진화할 것이며 30억 년 후 상상 불가능한 갖가지 생물체가 번성할 지구는 50억 년 후 태양과 더불어 불타버릴 것이라 예상한다. 그래도 인간이 남긴 라디오와 텔레비전 전파는 영원히 외계를 떠돌아다닐 것이라는데, 인간은 그 장면을 볼 수 없다. 먼 훗날보다 눈앞의 변화가 궁금한데, 낙엽에 덮일 거리는 누가 차지할까? 톡톡이와 거미를 찾아 도롱뇽과 두더지가 돌아다니고 뱀 노리는 올빼미와 족제비가 삵과 경쟁하는 동식물의 터전으로 회복하려나.

 

수억 년, 아니 수천 년도 생소한 인간은 수십 년 앞을 예측하지 못하면서 자연을 훼손하며 하루를 불사른다. 내일을 위한다면서 미래세대의 안전을 해친다. 돈과 기술과 에너지를 들여 관리해야 유지되는 시설을 늘어놓고 뿌듯해하면서 수익을 위해 아이 세대의 생존마저 위협한다. '4대강 사업' 같은 토목건축이 그렇지만 생명공학과 핵산업도 마찬가지다. 갯벌 매립에 이은 초고층빌딩이 그렇다. 명단은 길게 이어질 것이다.

 

50년 만에 자연을 거의 회복한 비무장지대처럼 독일 베를린의 화물터미널도 50년 방치하자 자연스러워졌다. 그 부지는 공원으로 개방했는데, 비무장지대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다. 우리 새 정부는 보전할 의지가 있을까? 휴식년제가 등산로 통행을 3년 막자 꼬리치레도롱뇽이 마등령 계곡을 되찾았지만 개방하자마자 사라졌다. 온갖 생물이 떠난 강, , 바다, 갯벌은 회복할 기회를 찾지 못하지만, 석유와 기술과 자본은 한계가 분명하다. 자연은 결국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석유는 고갈이 눈앞이다. 관리하지 못하면 콘크리트도 아스팔트도 삭는다.

 

다채로운 생물로 안정된 생태계에 마지막으로 등장한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면서 오만해졌다.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화석연료 과소비로 자연을 지배한다고 착각하지만, 기상이변으로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생태계가 감당할 수 없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비행기와 선박이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지만, 코로나19 된서리를 맞았다. 온실가스 증가로 영구동토가 녹으면 어떤 감염병이 치명적으로 창궐할지 전전긍긍한다. 화석연료 없이 무용지물인 최첨단 기술과 도구는 생태계가 안정돼 있을 때 유용할 따름이거늘, 오늘도 순환을 거부하는 플라스틱이 지층에 쌓인다.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린 다음 날, 도시를 스친 바람은 건물 사이에서 베르누이 정리를 증명했다. 간선도로에 드문드문한 낙엽이 골목에 쌓여 빗물에 젖었다. 그대로 두면 봄부터 톡톡이가 뜯어낸 낙엽을 미생물이 분해하겠지. 어딘가에서 도마뱀이 찾아오고 도마뱀 노리는 족제비가 두리번거리겠지. 풀이 돋으면 초식동물이 돌아오겠고, 초식동물을 노리는 육식동물도 찾을 텐데, 공장식 축사의 소와 돼지들은 다 어디로 갈까? 개와 고양이는 사람 도움 없이 살 수 없는 가축을 먹어치우다 늑대와 삵으로 돌아갈까?

 

웬걸! 낙엽은 구역 미화원이 말끔히 치워낼 것이다. 앨런 와이즈먼은 왜 <인간 없는 세상> 썼을까? 사람이 갑자기 사라질 리 없으니 소용없는 상상이라는 걸 잘 알면서. 더욱 거대해지는 기계가 없다면 신기루 같은 삶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걸 경고하는 거겠지. 그때가 언제일까? 당장 내일은 아니다. 기상이변이 해마다 심각해지지만, 내년도 아닐 것이다. 현재 환경을 30년 전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한 세대 뒤의 환경을 누가 점치려나?

 

분명한 건, 환경은 과거보다 빠르게 변하고 에너지와 기술은 머지않아 한계에 부딪힌다는 점이다. 지구촌 기상이변은 사회적 약자부터 고통을 안기건만.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집안은 그저 평온하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해도 청소년들은 대학 입시를 준비할 뿐, 자연에 관심이 없다. 산후조리원과 요양원이 고독한 세대를 돌볼 따름이다. 그러므로 비에 젖은 낙엽이 떠올린 <인간 없는 세상>은 내일을 위해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중국에서 석탄을 자제해 그런지, 요사이 파란 하늘이 자주 나타난다. 중국으로 가는 러시아의 천연가스도 화석연료다. 즐거울 수 없는 행운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파란 하늘 아래, 가을비에 젖은 거리를 지하철까지 걸으며 아침부터 생각이 많았다. 서둘러 내려가야 한다. 약속에 늦을라.

박병상 60+ 기후행동 상임공동대표/ 프레시안 22 9 23

 

지구 멸망을 생각하지만, 냉소할 수 없는 이유

김초엽이 쓴 소설 <지구 끝의 온실>과 기후정의행진

"식물. 오직 식물만이 내 소설을 구원해줄 생물이라는 거였다." 작가의 말 중문슬아

 

부쩍 멸망에 관해 생각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3년째 지속되는 코로나19 확산과 대형산불, 80년만에 기록적인 폭우, 많은 대도시를 혼란에 빠뜨린 태풍 힌남노의 강타 앞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으로 내몰리고 목숨을 잃었다.

 

'재난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는 말처럼 가난한 이들의 자리 먼저 발 빠르게 찾아온다. 야속한 재난 앞에 스멀스멀 차별과 혐오가 고개를 들기도 한다. 코로나19'살인'적으로 늘어난 택배 물량에 폭우 속에서 새벽배송을 담당하다 목숨을 잃은 사람. 폭우로 침수된 방 안에서 바깥으로 빠져나오지 못해 목숨을 잃은 가족들. 화염 속에 미처 도망가지 못해 생명을 잃은 동물들. 한파에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이주노동자. 쫓겨나는 전쟁 난민들.

 

소설 속 멸망의 모습은 현실과 닮아 있다

김초엽 소설 <지구 끝의 온실> 속 멸망의 모습이 이와 꼭 닮았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을 대체하는 로봇이나 미래형 운송수단을 보편화시켰지만 이 모든 것을 무력화시키는 대재앙을 불러왔다. 2055'더스트'라 불리는 유해 먼지가 자가 증식하며 급격하게 대기층을 잠식한 것이다.

 

소설은 멸망의 시대 한복판을 통과해 살아남은 여성 '나오미'와 재건 이후를 살아가는 연구자 '아영'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더스트생태연구센터'의 연구자 아영은 더스트 시대 독점종이었던 모스바나의 기원을 추적하며 '나오미'를 만나게 된다.

 

더스트는 호흡하며 살아가는 모든 존재를 순식간에 죽게 만들었다. 세계 인구의 90%가 더스트에 의한 급성중독으로 죽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외부 대기와 격리된 '돔 시티'를 만든다. 돔 시티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권력과 돈을 지닌 자들이다.

 

세상은 돔 시티의 안과 바깥으로 나뉘고, 사람들은 마시기만 해도 목숨을 앗아가는 이 먼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살상용 로봇을 만들어 서로를 겨누기 시작한다. 더스트 항체를 지닌 일부 '내성종'인 사람들은 사낭꾼에게 쫓기며 피를 빼앗기고 체 실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주로 여성들이다.

 

더스트 시대에는 이타적인 사람들일수록 살아남기 어려웠어.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이니까, 우리 부모나 조부모 세대 중 선량하게만 살아온 사람들은 찾기 힘들겠지. 다들 조금씩 다른 사람의 죽음을 딛고 살아남았어. (<지구 끝의 온실>, 64)

불완전한 이들이 모여 서로를 구하는 '온실'

돔시티에서 쫓겨나 살아남은 여성들은 돔 바깥 외딴 숲에서 자신들만의 공동체 '프림 빌리지'를 만든다. 나오미와 아마라도 내성종으로서 생체실험을 당하다가 가까스로 돔 시티를 탈출해 숲속을 헤매다 이 곳에 당도하게 된다. 이곳에 모인 이들 대부분 세상으로부터 착취당하고 버려진 사람들이다.

 

돔 없이도 식물을 재배하며 살아가는 이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는 '온실'이 있다. 이 온실에서 정체모를 식물들을 연구하는 레이첼은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경작할 수 있는 식물을 개량해 제공한다. 사람들 중에는 그를 신성시하는 이들도 있지만 오로지 온실 속에서 식물 연구만 하는 사이보그 레이첼은 신체 대부분이 기계로 이뤄져 지수의 정비가 없으면 정작 살기가 힘들다.

 

돔시티는 다른 사람들을 밀어나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강자들의 공간이라면 레이첼의 온실은 식물들이 머무르고, 불완전한 이들이 서로를 살려내는 곳이라는 점에서 대비된다. 약하고, 불안정하고, 밀려난 이들이 착취당한 고통과 아픔을 안고서도 서로를 구하기 위해 애쓴다.

 

프림빌리지 사람들은 어떤 신념 없이, 거창한 대의명분 없이, 영웅의 숭고한 희생 없이 이들은 서로를 기억하며 그들이 약속한 것을 각자의 자리에서 지켜낸다. 마을 밖 황폐한 세상으로 나아가 그저 세계를 떠돌며 모스바나의 씨를 뿌리는 작은 약속을 그들은 기꺼이 지킨다. 아무도 그들의 존재와 방식을 기억해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들은 자신과 서로를 구원하고, 결국 이 세계를 구한다.

 

이 소설은 인간 스스로 초래한 절멸의 세계, 그 고통에 대한 이야기이자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온실, 마을의 공간은 불안정하지만 절대적인 환대를 제공한다. 이 짧은 환대의 시간이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세계를 바꿀수 있는가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우리만이 아니었군요. 모두가 잊지 않았어요."

"맞아요. 당신들이 약속을 지켰고, 세계를 구한거예요."

 

"인간은 언제나 지구라는 생태에 잠시 초대된 손님에 불과했습니다. 그마저도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위태로운 지위였지요"라는 아영의 이메일 내용은 모든 재난이 인간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꼬집는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고 우리의 유일한 보금자리인 지구환경을 스스로 파괴한다. 인간 이외의 존재를 끊임없이 과소평가한다.

 

지금 세상은 감염병과 기후재난, 전쟁과 경제위기 등으로 혼돈에 휩싸여 있다. 이 혼란 속에서 회복 불가능한 멸망이 찾아올 것이 자명해보여 두렵고, 슬플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이게 끝이라고 냉소할 수 없는 것은 모스바나의 씨를 뿌리는 작은 사람들이 이 세계에도 있기 때문이다.

 

약속을 지켜내는 그들의 단단한 마음을 발견할 때마다 더이상 가만히 있지말고 할 수 있는 걸 해보자고 내 마음에 말을 걸게 된다. 연대가 기후위기를 막아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오는 924일 기후정의행동에 연대해야할 이유다.

문슬아(rabongtree) 오마이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