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이성근 2017. 12. 16. 17:11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반다나 시바 지음, 우석영 옮김, 책세상 펴냄)

원제 Who Really Feeds the World?

 

저자 반다나 시바는 인도 출신의 물리학자이자 세계적 환경 사상가, 환경 운동가. 세계화와 GMO에 반대하며 경제 정의, 식량 정의, 젠더 정의를 옹호해왔다. 과학기술생태학 연구재단, 그리고 씨앗에서 식탁까지를 연결하며 토종 씨앗과 생물 다양성의 보존, 로컬 푸드, 생태 농업을 실천하는 인도의 농장?교육 공동체 나브다니아NAVDANYA’를 이끌고 있다. 세계미래위원회의 리더 가운데 한 명이다. 대안노벨평화상인 올바른살림살이상(1993), 존 레논-오노 요코 평화상(2008), 시드니 평화상(2010) 20개가 넘는 국제적인 상을 받았고, 살아남기STAYING ALIVE, 에코페미니즘, 물전쟁, 누가 세계를 약탈하는가, 지구와 함께 평화를, 지구 민주주의, 석유에서 흙으로, 세계화의 새로운 전쟁10여 편의 저작을 출간했다.

 

역자 우석영은 생명·자연 철학, 자연 윤리학, 지속 가능성 분야 연구자. 자연계와 생명, 땅과 농업, 인체, 요리를 전일적 시각에서 함께 이야기하는 푸드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미술(미학), 철학, 생물학과 생태학을 서로 연결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낱말의 우주,수목 인간,철학이 있는 도시등의 저작을 출간했으며, 새로운 푸드 시스템의 필요와 과제를 탐구한 책인페어 푸드를 번역했다

 

목차

들어가는 글 _9

 

1장 폭력적인 지식 패러다임이 아니라 농생태학 _33

2장 화학 비료가 아니라 살아 있는 토양 _55

3장 독과 살충제가 아니라 벌과 나비 _75

4장 독성 어린 단일경작이 아니라 생물 다양성 _101

5장 대규모 산업형 농업이 아니라 소농 _125

6장 종자 독재가 아니라 종자 독립 _145

7장 세계화가 아니라 지역화 _173

8장 기업이 아니라 여성 _215

9장 푸드의 미래, 우리의 선택 _239

 

옮긴이 해제

: 온전한 자연과 식과 인간, 셋이 아닌 하나 _266

_284

찾아보기 _303

 

출판사 서평

씨앗에서 식탁까지, 인간과 자연을 돌보는 길

내가 먹는 것이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까?

먹는 것, 먹는 일, 그리고 먹는 인간을 둘러싼 생명의 그물을 성찰하다

 

우리의 식탁이 위협받고 있다. 2017년 여름의 살충제 계란 파동에서 다시 확인했듯, 공기와도 같은 우리의 삼시세끼가 안전하지 않다. 농수산물 안전성 조사를 확대하겠다는 대책이 대통령 시정연설에 포함된 것도 이러한 밥상의 공포를 반영한 것일 테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직면한 먹는다는 것의 문제는 유해물질 규제 같은 안전 관리의 문제를 넘어선다. 그것은 음식과 이 세계를 대하는 패러다임의 문제이자, 일상생활에서 거시적인 권력관계까지를 포괄하는 식량 민주주의의 문제다.

 

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생태사상가?운동가인 반다나 시바의 신간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는 음식에 대한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시각에 기초해 음식과 농업을 둘러싼 지식과 사유와 실천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장하는 책이다. 세계화와 GMO에 반대하며 경제 정의, 식량 정의, 젠더 정의를 옹호해온 수십 년 동안의 지적?실천적 역량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시바는 착취의 법칙에 기초한 산업 패러다임반환의 법칙에 기초한 생태 패러다임의 전쟁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식량 위기의 근원이라고 지적한다. 탐욕과 이윤을 동력으로 하는, 화학비료와 GMO 등에 의존하는 세계화된 산업농이 자연의 상호 연결성과 생물 다양성에 기초한 소농을 파괴함으로써 식량과 농업 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재의 푸드 시스템은 지속 가능성, 정의, 평화 같은 중요한 모든 기준에서 볼 때 심각하게 고장 나 있다.

 

이 책은 폭력적인 산업 패러다임에서 토양과 동식물과 인간의 건강을 증진하는 생태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만이, 산업화?세계화된 푸드 시스템에서 생태 친화적이고 인간 친화적인 푸드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만이 지구의 안녕과 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길이라고 말한다. 이 전환은 하나의 선택지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 자체와 직결된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미디어를 중심으로 맛있고 멋있는 음식을 어떻게 잘 먹을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는 이른바 먹방의 시대에, 맛과 영양과 이윤의 차원을 넘어 씨앗에서 식탁까지를 아우르는 사회?정치?생태?문화적 맥락으로 시야를 확장하는 반다나 시바의 목소리는, ‘먹는 인간인 우리로 하여금 먹는 것먹는 일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넓고 깊은 생명의 그물을 성찰하게 한다.

반다나 시바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급진적 과학자 중 한 명이다” _가디언 The Guardian

 

살아 숨 쉬는 씨앗, 살아 숨 쉬는 토양, 살아 숨 쉬는 식량, 살아 숨 쉬는 농민

이 책은 농생태학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단지 당위 차원에서 강변하는 책이 아니다. 반다나 시바는 이론과 주장을 펴는 데 머무르는 사상가가 아니다. 1970년대에 목재회사의 삼림파괴에 맞서 여성들이 마을의 나무를 껴안고 숲을 지켜냈던 인도의 칩코운동에서서부터 지구와 생명과 여성의 권리를 지키는 다양한 행동에 투신해온 반다나 시바는, 구체적 실태와 자료를 들어 산업농 시스템의 허구적 신화를 논파하고, 자신의 경험을 포함해 생태적이고 민주적인 푸드 시스템을 위한 다양한 실천들을 소개한다.

 

반다나 시바의 연구와 실천을 대표하는 것이 각각 이른바 녹색혁명에 관한 연구와 나브다니야운동이다. 시바에 따르면, 녹색혁명이란 인도에 도입된 화학물질 기반의 농업 모델에 붙여진 잘못된 이름이다. 전쟁 무기를 생산했던 화학기업들이 2차대전 후 화학비료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으며, 1960년대 중반에 녹색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종자?화학물질패키지를 남반구 국가들에 수출했다는 것이다. 녹색혁명이 식량문제를 해결했다는 신화가 만들어졌지만, 시바는 현실은 다르다고 말한다. “펀자브의 녹색혁명이 남긴 것은 사막화되다시피 한 토양, 고갈된 대수층, 생물다양성의 손실, 농가 부채, 살충제 탓에 암에 걸린 환자들을 라자스탄으로 태워 가는 암 기차였다.” 오늘날에는 GMO를 기반으로 하는 2차 녹색혁명이 진행 중인데, 시바에 따르면 이로 인해 이득을 얻는 것은 오직 기업들뿐이다.

 

나브다니야는 반다나 시바가 1987년에 종자 보존, 생물 다양성 보호, 생태농법 보급을 목표로 조직한 공동체이자 운동이다. 시바는 1994년부터는 고향인 둔 밸리에서 나브다니야 농장을 시작했다. 100개 이상의 마을에 여성들이 운영하는 종자은행을 만들어 3천 종이 넘는 쌀 품종을 보존하는 등 나브다니야는 소농들과 함께 지구 자연과 화해하는 식량?농업 시스템을 실천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생물 다양성 기반의 생태농업이 토양의 비옥도를 높이고 온실가스를 감축하면서 건강하고 풍요로운 먹을거리를 생산할 뿐 아니라 농가 소득 증대에도 유리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반다나 시바는 나브다니야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푸드 시스템의 움직임을 제시하면서, 세계 식량의 70%를 생산하는 소농들에게 권력을 이동시켜야 하며, 종자 독립과 생태농법을 실천할 기회와 권리가 실질적으로 농민들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권력 전환을 통한 푸드 민주주의는 농지와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에 기여함으로써 지구 민주주의의 확립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지금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오늘과 내일의 세계를 누가 먹여 살릴 것인가? 반다나 시바는 이 질문에 분명하게 답한다. ‘푸드가 생명의 그물이고 세계가 가이아(다채로운 존재와 생태계 그리고 여러 민족과 문화로 활력이 넘치는 어머니 지구)라면, 이 세계를 먹여 살리는 것은 생물 다양성과 소농들의 지혜라고. 화학비료와 농약, 단일경작, 종자 독재에 기초한 대규모 산업농은 세계를 부양하는 것이 아니라 위협하고 있다고. “30여 년의 연구와 삶의 경험은 내게 한 가지 진실을 가르쳐주었다. 식량 문제의 해답은 산업농이 아니라 농생태학에, 생태농업에 있다.” 반다나 시바는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해 기초해 농생태학이 발전시킨 실천들, 즉 이 세계를 먹여 살리는 주체를 구체화한다.

 

# 지금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화학비료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토양이다.

화학비료에 기초한 세계 농업 시스템에서 매년 240억 톤의 비옥한 토양이 사라지고 있으며, 토질 악화는 청정수 감소, 기후변화, 식량불안, 그리고 빈곤의 가능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비옥한 토양이 식량 생산의 기초다.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내는 것은 군집의 형태로 토양 내 먹이 그물을 구성하는, 무수히 많은 토양 유기체들이다. 생물 다양성, 그리고 유기 물질이 풍부한 토양은 기후 적응과 수자원 보존을 위한 최고의 방책이기도 하다. 물은 살아 활동하는 토양에 꼭 필요한데, 유기농법은 유기물 재순환을 통해 토양의 보수력을 키워 물을 보존한다. 이런 토양은 스펀지같이 되어 더 많은 물을 흡수하고 이로써 농업용수 사용량을 줄이고 기후변화 회복력에 기여한다. “건강한 흙이 건강한 식물을 생산한다.”

 

# 지금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독과 살충제가 아니라 꽃가루 매개자들이다.

벌과 나비 같은 꽃가루 매개자들은 한 식물에서 다른 식물로 꽃가루를 옮기며 이 과정에서 식물을 수정시킨다. 아인슈타인이 마지막 벌이 사라질 때 인류도 사라질 것이라고 얘기했듯, 꽃가루 매개자들이 없다면 식물은 자기를 재생산할 수 없고, 식물이 재생산을 못하면 식량 공급이 위태로워진다. 2차대전 당시 화학전을 위한 실험실에서 탄생해 전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유해생물억제제(농약)는 인간을 비롯해 표적으로 삼지 않은 수많은 유기체들에게도 독성을 발휘한다. 해충을 박멸하겠다고 죽음의 물질을 끌어들여 불균형을 심화할 것이 아니라 꽃가루 매개자들과 해충의 자연적 균형을 복구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먹을거리가 가진 영양과 건강, 생태계들 내의 지속 가능한 삶을 복구해야 한다.

 

# 지금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독성 어린 단일 경작이 아니라 생물 다양성이다.

7천 종이 넘는 생물이 인류를 먹여 살려왔지만, 오늘날엔 단 30종의 작물이 인류의 식단에서 90%의 칼로리를 제공하며, 3종의 작물(, , 옥수수)이 칼로리 섭취의 5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화학물질에 기초한 산업농 시스템이 종자?식품 대기업들의 통제와 결합해 획일적인 단일경작에 집중함으로써 생물 다양성이 사라지고 식탁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지구를 먹여 살린다는 것은 토양에서 해양에 이르기까지, 미생물에서 포유동물에 이르기까지, 식물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온전함과 다양성을 갖춘 푸드웹(먹이그물)을 지속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이 시스템의 기초는 이 행성이 생명을 만들어내고 유지하고 재생하는 과정인 생태 과정이다. 지구의 통화는 생명이고 푸드다. 자연은 산업농이 말하는 것과 다르게 살아 숨쉬고 있으며 이 자연의 다양성이 우리를 먹여 살린다. 단일경작에서 다양성으로의 전환, 단위 면적당 산출량이 아니라 단위 면적당 영양과 건강의 총량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대규모 산업농이 아니라 소농, 농사짓는 가정, 텃밭 일꾼들이다.

우리의 식탁에 식량을 제공하는 것은 전 세계의 소농들이다. 소농들이 토양과 식물과 동물을 더 잘 보살피고 생물 다양성을 키우기 때문에, 화석연료나 유독성 화학물질, 부주의한 테크놀로지들로 대체하는 대규모 산업농보다 오히려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한다. 농민은 식물을 번식시키는 자, 종자를 보존하는 자, 토양을 보존하고 만들어내는 자, 물을 보호하고 수호하는 자다. 농민은 식량을 생산하는 자다. 오늘날 세계의 소농은 세계 자원의 30%만 사용하면서도 세계에 필요한 식량의 70%를 공급하고 있다. 여기에 크고 작은 텃밭들을 추가한다면,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식량의 대부분이 작은 규모의 땅에서 재배된다는 것은 한층 더 분명해진다. 식량 문제에 관해서라면 생태학적?문화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작은 것이 크다.

 

#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종자 독재가 아니라 종자 독립이다.

씨앗은 푸드 시스템의 첫 번째 연결점이다. 씨앗이 없으면 식량도 없다. 씨앗이 다양하지 않으면, 생명체의 건강에 꼭 필요한 식량과 영양도 다양할 수 없다. 씨앗의 다양성이 사라지면, 기후 혼돈과 기후 불안정성의 시대에 기후 회복력도 있을 수 없다. 수천 년간 자유롭게 진화해오며 지구 생명의 다양함과 풍부함을 제공해온 씨앗을 기업들이 사유화하고 있다. 이윤을 위해 종자를 통제하고 개조하고 유전적으로 변형시키는 글로벌 기업 10곳이 230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세계 상업종자 교역량의 1/3을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종자를 장악해 푸드 시스템을 장악하려는 기업들의 종자 독재에 맞서 종자 독립을 실현해야 한다.

 

#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세계화가 아니라 지역화이다.

푸드는 세계 어디에서나 판매 가능한 향수나 보석 같은 상거래 품목이 아니다. 지상의 모든 존재가 푸드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개입하며, 모든 문화나 지역이 자체적으로 푸드를 생산한다. 모두가 먹어야만 하므로, 지역의 식량 주권은 식량 안보의 관건이다. 세계화 20년은 우리에게 농업 위기, 식량 위기, 감염병, 음식 폐기물과 점점 심각해지는 생태 위기를 남겼다. 하나의 푸드 시스템으로서의 산업형 세계화는 지구와 인류를 망쳤다. 이제는 지역 경제, 지역 푸드 시스템에 집중하는 새로운 푸드 생산?유통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렇게 지역을 살리는 시스템이 우리에게, 생명의 그물의 일부인 살아 숨 쉬는 진짜 식량을 가져다줄 것이다.

 

#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여성이다.

종자, 생물 다양성, 토양, 물과 더불어 자연의 법칙, 생태학의 법칙에 따라 일하기. 이것이야말로 식량 생산의 기초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지식과 실천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몫이었다. 여성은 씨앗, 생물 다양성, 영양에 관한 광대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사회들을 통틀어 식량?영양?음식물의 재배와 공급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은 여성들이며, 이러한 여성들이야말로 농업을 진화시킨 장본인들이다. 지금도 여성이 세계 식량 생산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여성 농민들과 생물 다양성 간의 파트너십이 인류 역사에서 세계를 먹여살려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식량 안보를 위해 보존하고 진흥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파트너십니다.

 

책속으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패러다임 전환, 권력 전환이다. 기업의 탐욕이 만들어낸 산업농은 우리에게 지속 가능성과 건강을 보장하지 않으며, 보장할 수도 없다. 반면 우리는 농생태학으로 전환할 수는 있다. 종자를 보존하고 토양에 생명을 되돌려주고 생물 다양성을 더욱더 풍요롭게 만들고 소농과 여성들을 보호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차릴 수 있다. 우리의 아름다운 지구를 궁핍한 지구로 만드는 활동을 이제는 멈춰야만 한다. 희망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지 아닌지는 순전히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지구와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작동하는 푸드 시스템을 위한 희망의 씨앗 말이다.”

 

이 세계를 먹여 살리는 일은 우리 시대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 몇 가지를 제기한다. 음식에 관한 질문은, 다른 생물 종들을 멸종으로 몰고 갈 권리가, 다른 인류 구성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섭취할 권리를 부정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지를 묻는, 지구 및 다른 생물 종과 인류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관한 윤리적 질문이다. 음식에 관한 질문은 앞으로 인류가 지구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농업의 생태적 토대를 파괴하며 스스로를 자멸의 길로 몰아갈 것인지를 묻는 생태적 질문이기도 하다. 음식에 관한 질문은 또한 우리의 식문화, 우리의 정체성, 그리고 우리의 장소 감각과 토박이성에 관한 문화적 질문이기도 하다.”

 

오늘날엔 단 30종의 작물이 인류의 식단에서 90%의 칼로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겨우 3종의 작물(, , 옥수수)이 칼로리 섭취의 5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기록되었던 7,098종의 사과 가운데 96%가 사라져버렸다. 멕시코에서는 1930년에 보고된 모든 옥수수 종자 중 겨우 20%만이 남아 있다. 생물 다양성의 급속한 붕괴는, 농지를 식량 생산의 그물, 생명의 그물로 인식하지 않고 상품 생산을 위한 공장으로 인식하는 푸드 시스템 아래서 일어났다. 이 공장들은, 한때 전쟁을 위해 고안되었고, 수천 년간 우리의 지구에서 번성해온 다양한 생물 종들을 파괴하고 있는 화학 물질에 의존해 운영된다. 생물 다양성이 생태계들의 안정성과 생태학적 기능들을 강화하는 반면, 유기체 집단??유전자의 감소는 전체 유기체 군집들의 효율성과 회복력을 약화시킨다.”

 

우리 자신이 곧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변화가 되도록 하자. 독에 물든 푸드 시스템에서 생명력 넘치는 푸드 시스템으로의 전환에 우리 각자가 모두 기여하자. 그 어떤 농민도 자살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어린이도 굶주림으로 죽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사람도 음식 때문에 아파서는 안 된다. 지구 자연 그리고 지구 자연의 공동 생산자인 인류는 훌륭하고 건강한 식량을, 전체를 먹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 이제 우리 자신의 집합적 창조 에너지를 지구를 돌보는 식량이라는 미래를 설계하는 데 쏟기로 하자. 세계화된 농업과 그것의 전쟁 도구들을 통해서 지구 자연에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지구와 함께 일하며 우리의 토양과 씨앗과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기로 하자.” --- 본문 중에서

 

먹는 존재가 알아야 할 진실

입으로 들어간 음식은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 무엇을 먹는지에 따라 삶이 정해져간다. 당신이 회사를 다닌다면 그저 밥을 사 먹는데 만족할지 모른다. 몸에 좋은 재료를 찾으며 손수 요리하기란 쉽지 않다. 어떤 음식을 먹을지 선택할 뿐, 직접 만들지 않으면 음식 감각은 퇴화해 간다. 조미료를 줄이고 건강한 맛을 찾는 감각, 공장이 아닌 자연에서 자란 재료를 찾는 감각, 그리고 민주주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가 음식이라는 음식 주권의 감각이 그것이다.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반다나 시바 지음, 우석영 옮김, 책세상 펴냄)는 음식주권 감각을 키워주는 책이다. 음식이 맛없고 위험하다고 불평하는 누군가를 푸드 민주주의자로 만드는 교과서이다. 인도 출신 물리학자이자 환경 사상가, 환경 운동가인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는 철학과 사상, 시사와 과학 증거를 동원하여 이 책을 썼다. 지은이는 현장에서 음식주권을 위해 싸워온 활동가답게 대립구도로 음식과 관련된 쟁점을 정리했다. 이분법 구도는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산업과 농업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선순환 한다고 믿는 이에게 저자는 맹목적으로 보일 수 있다.

 

지은이는 각 장 제목도 문제의식과 대안 제시라는 대립 항으로 만들었다. 이 책을 읽는다면 철학과 사상이 중심인 1장보다는 자신이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이 담긴 장부터 읽기를 추천한다. 2장 화학비료가 아니라 살아 있는 토양, 4장 독과 살충제가 아니라 벌과 나비, 5장 대규모 산업형 농업이 아니라 소농 정도가 우리네 일상과 관련된 장이다. 달걀 살충제 파동으로 평소 좋아하던 달걀을 먹지 못했다면 4장을 읽는 식이다. 지은이는 작물과 식량에 뿌려지는 살충제는 화학전 물질로부터 유래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독자는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떤 맥락으로 만들어지고 유통되는지를 알게 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이 말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창비 펴냄)에서 유홍준 교수가 책을 소개하며 쓴 문장이다.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에도 제법 어울린다. 당신이 이 책에 빠지게 된다면, 그간 음식을 사랑했던 만큼 음식을 둘러싼 세계를 보게 된다. 그 때 당신은 그 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당신이 생태주의 편에 서서 음식을 먹기를 원한다. 작게는 식탁에 쓸 재료를 선택하는 일부터, 크게는 사상과 지식과 문화의 전쟁에 참여하기를 바란다. '산업 패러다임'으로부터 나온 음식과 '생태 패러다임'으로 만들어진 음식 중 어느 음식을 먹을 것인가. 음식은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17.1125 프레시안 이정규기자



반다나 시바()“2차 대전 지원 기업, 농화학 산업 주도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

올바른 행동이 성공이자 평화우린 우리의 사람다움 지켜야

 

이탈리아 나브다냐 회원들이 이윤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범대서양투자무역동반자협정(TTIP)’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Manlio Masucci 제공

 

두 공간에서의 삶을 동시에 살아갈 수 있는 현대이다. 온라인의 공간, 그리고 실제 부딪치고 소리 내는 오프라인 생활현장. 개인의 생활이 이 둘의 경계가 모호해질 정도로 연결되는 만큼, 세상을 움직이는 돈과 권력 또한 이 둘의 영역에서 엽렵하게 개인의 모든 것을 수집하고 있다. 빅데이터 정보가 기업과 정치권력의 실제 이익으로 귀속되는 온·오프 소비정치시대이다. 개인이 단속해야 할 곳은 어디까지일까? 물리학자이자 농부이며 사상가인 반다나 시바(65)와 함께 오늘날 지구를 관통하며 진화해가는 자본의 질주를 진단해 본다.

 

유럽과 북미에서 더욱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반다나 시바는 세계를 대표하는 환경운동가이자 농업정책가로 반세계화 시민운동을 이끌고 있다. 그와의 대화는 16일 인도의 나브다냐(Navdanya) 뉴델리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나브다냐는 지구는 한 가족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반다나 시바가 30여 년 동안 매진해온 지구 민주주의 운동이다. 이 운동은 세계의 토종 씨앗을 갈무리하며 생태적인 유기농사를 이끈다. 인터뷰에 앞서 찾은 인도 북부 데라둔, 나브다냐 생물다양성 보존 농장에는 프랑스, 미국, 네덜란드, 라닥에서 온 젊은이들이 생태농법을 배우고 있었고, 정갈한 고요 속에서 초록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시바는 종자 전쟁, 식량 전쟁, 금융 전쟁, 디지털 전쟁이 하나의 사이클 속에서 개인들을 공습하고 있다고 경고하며 올바른 행위, 그것이 곧 평화라고 역설했다.

 

안희경: 여성 지성과의 대화 첫 대담자인 쥘리에트 비노슈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2년이 넘었지만 아직 우리는 평화를 찾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두 전쟁 사이에 있는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니라고요. 그런데 선생님은 우리가 사는 이 시간이 바로 전쟁 속이라고 하십니다. 왜죠? 지금도 창 너머로 평화로이 오가는 사람들의 수다 소리가 들려오는데요.

 

반다나 시바: 2차 세계대전의 공습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으니까요. 전쟁을 자행하던 기업들이 여전히 농업과 화학산업으로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히틀러에게 독가스를 대던 기업은 농약산업의 대표주자가 됐고, 폭탄공장은 나트륨 비료산업을 선도합니다. 요즘 테러리스트들이 쓰는 폭탄을 왜 질소폭탄이라고 부를까요? 비료로 만들기 때문이에요. 물질적인 면으로 보면 전쟁은 끝나지 않은 거죠. 농업으로 들어와 우리 삶을 계속 죽이고 있습니다. 75%의 물이 죽었고, 75%의 벌과 75%의 토양이 사라졌어요. 기후의 50%가 타격을 받았는데, 이는 앞으로 더 대대적인 인명이 죽을 수 있다는 재앙을 예고합니다. 여기에 한 줌 기득권 무리들이 벌이는 간접적인 폭격, 바로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려는 전쟁까지 함께하고 있어요.

 

: 2차 대전 역시 후발 산업화 국가들이 새로운 시장을 갖고자 벌인 건데요.

 

시바: , 이들은 계속 새로운 시장을 노리고 있어요. 이제는 그 시장에 화학물질뿐 아니라 유전자변형생물(GMO), 유전공학까지 결합시켰습니다. GMO와 화학물질은 대중을 상대로 벌이는 정치적 도발이에요. 어제 인터뷰하러 왔을 때 제가 서둘러 나갔던 이유도 국회에서 요청이 왔기 때문이에요. 유전자변형 겨자씨를 밀어붙이는 부패사건을 조사하는데, 제 조언이 필요하다고 급히 부른 거죠. 인도에서는 아직 유전자변형 식량은 생산하지 않습니다.

 

: 하지만 인도의 시장에도 많은 GMO 제품이 있을 텐데요. 한국산 간장, 과자가 늘어선 가게라면 그 원재료가 대부분.

 

시바: 미국에서 오죠. 유전자변형 콩에 라운드업을 사용해 키웁니다. 라운드업은 베트남 전쟁에서 쓰던 고엽제와 같은 성분의 제초제예요. 이를 사용하는 GMO 종자를 키웠던 스리랑카 농민 4만명이 죽었습니다. 신부전으로요. GMO 제품은 또 다른 차원의 전쟁이죠. 겨자는 수입 문제가 아니라, 생산의 문제거든요. 이미 인도 정부가 유전자변형 가지를 밀어붙인 적이 있었지만 막아냈습니다. 아직까지 인도에서 GMO 농작물을 재배하지는 못해요. 그런데, 지금 겨자를 미는 거죠. 인도사람들이 늘 먹는 중요한 식량이라서 그래요. 다들 겨자기름으로 요리하고, 피클도 만들고, 주요 칼슘원인데다 봄을 나타내는 색도 겨자색이죠. 문화공격이에요. 정치적 전쟁이고, 지식전쟁입니다. 왜냐? 유전자조작은 과학을 죽이는 날조된 체계니까요. 과학은 바로 아는 겁니다. 영어 science안다는 뜻을 가진 scio- 라는 말에서 왔어요. “안다라는 의미는 제게 있어 열정이에요. 저는 무지한 채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지구가 작동하는 원리를 알고 싶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싶고, 사람들이 권리를 더 잘 행사할 방법을 알고 싶어요. 그래서 지구를 파괴하고, 삶을 파괴하고, 1995년부터 30만명의 인도 농부를 자살로 몰아간 그 사람들의 실체를 드러내려는 겁니다.

 

: 30만명이라는 자살자 숫자는 들을 때마다 믿기 힘듭니다.

시바: 거기에 작년에만 자살률이 또 14% 올랐어요.

: 왜죠?

시바: 정부가 사람들의 일상을 가지고 더 비참한 게임을 시작했답니다. 지금 현금을 못 쓰게 해요. 당신도 여기서 60달러 이상 현금을 쓸 수 없었을 거예요.

: 공항에서도 그 이상 환전을 안해 주더군요. 저는 화폐개혁 기간이라서, 묻혀있는 현금을 순환시키려는 일종의 경제 활력을 모색하는 작업이라 생각했어요.

시바: 아닙니다. 모두 신용카드를 쓰라는 강압이에요. 돈을 쓰되 카드로 쓰라는. 그러면 가난한 사람들은 돈을 만질 수가 없어요. 우리 집 앞에 배추를 들고 와 정직하게 값을 부르는 그이는 무슨 수로 돈을 만지겠습니까? 자살이 늘 수밖에요. , 제가 전쟁이라고 부르는 예를 또 들어 볼까요. 이 기업들, 몬산토 바이엘, 듀폰, 신젠타 모두 2차 대전에 비용을 대던 기업의 연장입니다.

 


: 작년 9, 바이엘이 몬산토를 샀죠.

시바: 거기에 듀폰이 하나로 합쳐졌고, 신젠타가 중국회사와 합병했어요. 중국시장 진출이라는 전략이죠. 이 모두는 아이지 파벤(IG Farben)과 하나입니다. 거대 화학기업으로 뉘른베르크 재판에도 섰던 전범기업이죠. 아이지 파벤의 파트너 회사로 바스프(BASF)도 있고, 모비(MOBAY, 몬산토 바이엘)도 있어요. 우리는 이들을 독성 카르텔(Poison Cartel)이라고 불러요. 지금도 전쟁이에요.

 

: 신젠타, 바스프, 몬산토 모두 한국에 나와있는 기업들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비료는 유기농으로 전환되고 있는데요. 2004년엔 화학비료 사용 농가에 대한 보조금도 중단했고요. 비료만이라도 변화하고 있다는 건 뭔가 시스템이 달라지고 있다는 거 아닐까요?

   

반다나 시바가 지난달 6일 인도의 나브다냐 뉴델리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며 거대 기업에 의한 화학물질과 유전자변형생물(GMO) 산업의 위험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안희경씨 제공


시바: 글쎄요. 유기농은 그들의 공습을 멈추고자 모색하는 우리들의 저항인데요. 하지만, 같은 공격자에 의해서 전쟁은 계속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어요. 그러니까 진정한 평화는.

 

: 100년 동안 오지 않은 거네요.

시바: , 우리는 100년의 대량학살, 100년의 생태학살이라고 부릅니다. 강제 수용소에서 대량학살을 했고, 땅을 일구는 농민 수십만명을 죽였고, 지구 아이들의 미래를 죽이는 것도 학살이니까요.

 

: 농사는 지역적인 주권의 문제 아닌가요? 농민의 선택이고, 종자와 농법의 혁신은 지난 세기 처음으로 인류를 기근에서 벗어나게 했는데요.

시바: 지역의 주권은 많은 조약, 협정으로부터 어마어마한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세계무역기구(WTO), 자유무역협정,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지역 식량체계를 파괴했고, 그 땅에 독성화학제품을 쏟아부었죠. 저들이 비타민A를 증진시켰다며 심게 한 볍씨, 골든 라이스(Golden rice)도 결국 독성 카르텔이 조작한 녹색과학이라는 신기루입니다. 비타민A는 녹색잎 채소만 잘 먹으면 충분해요. 종자를 조작해 상품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린 겁니다. 어떤 GMO 종자도 유기농 종자보다 영양이 높은 것은 없어요. 이 기업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수십조원의 시장을 눈앞에 보고 있으니까요. 오늘 아침 스리랑카에서 전화가 왔더군요. 이 다국적기업 카르텔이 정부를 접수해서 공공 기금으로 독성카르텔을 확산하려고 하니 도와달라고요. UN과 각국 정부를 손아귀에 넣은 것도 모자라 지금은 현금거래까지 건드리려 합니다.

 

: 농화학산업이 금융에까지 손을 댄다는 건가요?

시바: . 12000억달러의 경제가 얼마만 한 규모인지 상상할 수 있나요? 거기의 95.7%가 현금거래로 이뤄져요. 인도 시장이죠. 순차적으로 설명할게요. 빌 게이츠도 이 게임에서 큰 몫을 쥐고 있습니다.

 

: 빌 게이츠가요?

시바: 자선사업가로 알려진 그 빌게이츠요. 우리 시대의 가장 대단한 식민지 개발자입니다.

 

: 하지만 엄청난 돈을 아프리카에 기부하는데요?

시바: 시장을 창조하려고 하는 거죠. 그는 아프리카를 녹색혁명의 동맹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토종 씨앗을 지키던 탄자니아 농부들이 체포됐어요. 바로 빌 게이츠가 GMO 종자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빌 게이츠는 자선사업가라는 이미지를 먼저 창조했고, 그 뒤에서 독성카르텔과 함께 UN에 돈을 좀 주고 WHO를 손에 넣었어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약간의 돈을 주고 모든 식량농업기구를 장악했습니다. 유니세프(UNICEF·유엔아동기금)에 돈을 내고는 어린이를 위한 재단들을 잡았고, 그런 다음 자신을 위한 시장을 창조하고 있어요.

 

: 그가 만든 건 소프트웨어 시장 아닌가요?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이 밑천이고요. 그의 프로그램은 지금 무료로 누구나 쓸 수 있죠.

시바: 아닙니다. 소프트웨어 특허를 통해 번 돈입니다. 우리는 그의 소프트웨어를 복제할 수 없어요. 그래서 빌 게이츠 말고, 원래 개발자들이 소프트웨어를 개방해야 한다고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빌 게이츠는 또 다른 위험한 시도를 하는데, 생명공학에 정보기술을 융합하고 금융기술까지 융합하는 공격입니다. 인도 정부가 지폐사용 금지 선언을 하자마자 빌 게이츠가 달려와 연설한 이유도 여기 있어요.

 

: 왜 인도죠?

시바: 가장 큰 시장이니까요. 식민지를 개발할 때, 집중하는 것은 단 한 가지예요. ‘얼마나 많이 가져올 수 있는가?’ 그가 새로 만든 회사가 에디타스예요. 에디트, 편집이죠. 생명을 조각조각 섞는 거예요. DNA 차원에서 여기서 잘라서 저기로 붙이고. 그는 생명을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명은 스스로 조직되어 있는 유기체예요. 진화하는 네트워크입니다.

 

: DNA 차원의 게놈 편집(genome editing)은 작년에 엄청난 뉴스였습니다. 바이오산업에 새바람을 일으킬 혁신이라고 들썩였는데요.

시바: 거기에 금융테크놀로지까지 합병해 화폐와의 전쟁을 선포했어요. 그들의 용어입니다. 자 보세요. 제가 당신한테 100루피를 주면, 당신은 홍차를 사 먹으려고 차이 장사에게 돈을 주죠. 그는 또 다른 곳에 돈을 쓸 거예요. 고용이 일어나고, 생산이 일어나고, 진짜 음식이 만들어지고, 실제 웰빙이 진행됩니다.

 

: 한 마을에 나그네가 와서 여관방을 잡으면, 돈을 받은 여관주인이 푸줏간에 가서 빚을 갚고, 푸줏간 주인은 술집 외상값을 갚고, 나그네가 그날 묵지 않고 돈을 찾아간다 해도, 반나절 만에 마을에 돈이 돌아 다들 숨을 돌린다고 합니다. 경제학자들이 설명하는 돈의 힘이죠.

시바: 그런데, 100루피를 비자나 마스터 카드로 지불한다면요? 디지털 단계에서 은행은 즉각적으로 6%에서 10%의 수수료를 벌어요. 그다음 두번째 거래에서 또 10%를 벌죠. 그러니까 100루피 지폐가 100번을 옮겨 다닐 때는 늘 100루피일지라도, 사람들의 생활이 달라지는 반면, 디지털 세상에서는 아닙니다. 100번의 돈거래는 돈주인에게만 기회를 줘요. 돈주인은 1만루피도 벌 수 있어요. 디지털 이체는 소프트웨어 특허로 돈을 버는 것과 같아요. 우리는 소프트웨어를 공공재라 생각하지 않죠. 빌게이츠가 특허라는 구조를 만들어 우리 생각까지 바꿨어요. 하지만 돈은 공공재에요. 다른 사람과 지폐를 교환하며 생활을 만들어 가니까 공공재 영역에 들어가죠. 하지만 특허받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금융거래되면 수수료(임대료)가 발생하면서 돈은 개인의 손아귀로 가게 됩니다.

 

: 오늘날 하느님으로 일컬어지는 건물주와 같은 시스템이군요.

시바: 최상의 권력이죠. 임대주는 일을 하지 않아도 노동자인 나로부터 임대료가 걷히고 권력도 휘두르고.

 

: 자유무역협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금융개방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바로 그 돈이 돈을 가장 많이 벌기 때문인데요. 금융경제 역시 시장 강탈을 위한 2차 대전과 같은 패턴입니다.

시바: 완전히 똑같죠. 특히 강조하고 싶은 건 이들의 배후입니다. 몬산토와 바이엘이 합병했을 때, 어떻게 작은 바이엘이 거대한 몬산토를 살 수 있을까 의아해했어요. 파악해 보니 배후에 다른 소유주들이 있더군요. 바로 금융거래로 돈버는 대형 투자 펀드들이에요. 뱅가드(Vanguard·세계 최대 투자기업, 자산 보유 3조달러), 캐피털 그룹(Capital Group·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투자기업, 자산운용액 13009억달러) 같은 기업들요. 이들이 독성 카르텔뿐 아니라 코카콜라, 펩시, 마이크로소프트, 모든 걸 갖고 있어요. 그래서 금융 전쟁, 종자 전쟁, 식량 전쟁, 디지털 전쟁은 모두 같은 사이클에서 운영된다고 봐야 하는 거죠.

 

: 2008년 금융위기를 맞고 금융자본 개방이 몰아칠 때부터 들던 생각이 있어요. 이제 시민은 사라졌구나. 오직 고객님만 남은 세상이 된 거죠. 성인이 된다는 의미도 크레딧카드 빚을 얻는 자본주의의 시민 고객님이 되는 거고요.

시바: 제가 렌트 이코노미 (rent economy 임대경제)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래요. 농부들은 마땅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 농민도 마찬가지죠. 나는 아직도 2003년 칸쿤에서 자결한 이경해씨를 잊지 못합니다. 그는 자유무역이, WTO가 세상 농부를 죽이고 있다고 알렸어요. 한국농부들은 1993년부터 저와 함께 싸웠습니다. 독성 카르텔들이 이제 화학제품으로는 더 이상 돈이 안되니 씨앗을 갖겠다고 바이오산업으로 옮겨가던 1987, GMO의 출현을 알게 됐어요. 아직 유전자 변형이 무엇인지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죠. GMO는 그들이 생명의 창조자가 되겠다는 도발이에요. 세계 곳곳에 전했습니다. 1993, 대규모 저항운동을 조직해 WTO 합의문이 서명되기 1년 전, 인도 벵갈루루로 불러 모았습니다. 프랑스 농부, 아프리카 농부, 일본 농부 모두 모였죠. 거기 한국 농민이 왔어요. 50만명의 세계 소농들이 함께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제게 요청하더군요. 조직을 만들자고. 우리는 세계 소농 조직인 라 비아 캄페시나(La Via Compesina·농민의길, 88개국의 188개 조직 가입, 2억명 회원, 2013년 기준)를 탄생시켰습니다. 1994, WTO가 설립되고, 인도정부는 정보기술산업과 농민들을 맞바꿨습니다.

 

: 한국에서는 자동차 산업 등의 수출과 맞바꿨죠.

시바: 정작 거대자본은 어떤 비용도 내지 않아요.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첫 WTO 회의 덕으로 누리는 완전 면세죠. 두번째 회의는 시애틀에서 열렸어요. 그다음이 도하였고, 칸쿤이었습니다. 이경해씨가 자결한. 그리고 다음해 우리는 홍콩에서 모였어요. 한국 농민들은 그때도 12월 차가운 바닷물에 뛰어들어 헤엄치며 회의를 막는 시위를 했습니다.

 

: 물속에서 저항의 장막을 펼친 거네요.

시바: 용감했어요. 지난달에 UN생물다양성 회의에서 주는 상을 받으러 칸쿤에 갔습니다. 운전하는 이에게 물었죠. 여기에서 운전한지 얼마나 됐냐고요. 오래 했다고 하더군요. 13년 전 WTO회의도 알겠군요 했더니, 안다고 해요. “한국 농부 기억해요?” 했더니 그러더군요. 어떻게 잊겠냐고. , 우리는 다 기억하고 있어요.

 

: 백남기 농민의 마음 또한 다시 헤아리게 됐습니다. 국가폭력의 희생자라는 좁은 의미의 해석이 아니라 토종 종자를 지키고 땅과 국민의 밥상을 살리려 했던 농민운동가의 삶이 있었기에 그 거리에 나섰던 마음 말입니다. 그런데요. 거대자본이 씨앗 해적질에서, 디지털 해적질로 견고해지고, 금융자본으로 진화해온 걸 들으며 무력감이 생깁니다. WTOFTA, TPP로 금융, 정보, 의약, 결국 유전자까지 잠식했는데, 이는 냉정히 보면 개인, 생산자와 소비자의 실패 아닌가요?

시바: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결코 올바른 행동에서 실패한 적이 단 한번도 없으니까요. 올바른 행동을 한다는 것이 곧 성공입니다. 실패는 당신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을 때, 그때 있는 거예요. 올바른 행위, 그것이 평화입니다. 그것이 붓다가 가르친 거죠. 올바른 생활이란 올바른 행동으로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관계들을 이해하며 바른 길로 나아가는 겁니다. 바른 법(정법·The right Dharma)이죠. 아름다운 인도경전 기타에서 크리쉬나가 말합니다. ‘결코 그대의 행동이 맺을 열매를 바라보지 마라. 오직 행동을 보아라.’ 왜냐하면 올바름을 행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이에요. 그 행동으로 무엇이 나오든 그건 미리 판단내릴 영역이 아니죠. 인과는 꼭 연역적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유무역을 막아내려던 일은 다 실패한 거 아냐?’라고 물을 수 없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정직한 생산, 진실한 무역, 농부의 삶을 지키고 바른 먹거리와 건강한 식량을 말하는 그 일을 하는데 실패했는가?’라고 물어야죠. 만약 그리 행동하는데 실패한다면, 그날 우리는 실패한 겁니다. 그것이 진짜 우리의 패배죠.

 

: 그 길이 점점 더 가파르고 고될 듯합니다.

시바: 어렵죠. 그들이 더 어려운 길로 만들고 있고요. 평범했던 일상을 범죄로 만들었으니까요. 농부들이 1만년 동안 보존해오던 씨앗을 어느 날 갑자기 몬산토, WTO가 불법으로 만들었습니다. 2014년 유럽에서 종자보존 규제법을 추진했어요. 유럽연합의회에 가서 농부들을 대변했습니다. 가까스로 철회시켰죠. 멕시코에서 부르더군요. 상원에서 농민의 권리를 말해야 한다고. 미국은 씨앗을 지키는 이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더군요. 또 갔죠. 미국인들과 간디의 비폭력 정신을 수련했습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모든 곳에서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마지막 벌을 죽이고, 마지막 농부, 마지막 아이, 우리의 마지막 자유까지도 파멸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는 당부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이 있어요.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 간디 선생께서 말씀하셨죠. ‘부당하고 잔악한 법은 맞서 싸워야 한다. 그것이 사람의 의무이다.’ 우리는 우리의 사람다움을 지켜내야 합니다. 인간이기에 마땅히 인간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는 누구?

과학자이자 거대기업의 세계화 전략에 맞서 헌신해온 풀뿌리 운동 지도자. 생태 중심의 대안적 삶을 제시하는 지구 민주주의개념과 에코 페미니즘을 태동시킨 사상가. 1952년 인도 북부 데라둔에서 태어났다. 캐나다 궤프(Guelph)대학에서 과학철학 석사, 웨스턴 온타리오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 인도로 돌아와 과학·기술·천연자원정책연구재단을 설립하고, 1991년 토종 종자 보존과 유기농법 확산을 위한 나브다냐를 설립, 인도 16개주 60여 지역에 종자은행을 개설하고, 100만명의 농부들과 함께 유기농사를 일으키고 있다. 2009년 레넌 오노 평화상, 2010년 시드니 평화상, 2012년 후쿠오카 문화대상 등을 받았다. 국내 출간된 저서로는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 <물전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