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이런 기자도 있어 위로 받는다 이성근 2021. 1. 9. 12:44 송요훈 페이스북 1월 6일 오전 7:52 · 낯 뜨겁고 역겹다. 재래시장 순대국 식당에서 운전기사와 같은 테이블에서 밥 좀 먹었다고 서민적 지도자이고 역대급 리더란다. 그래도 명색이 언론인데 원님 납신다고 요란하게 나팔을 불어대는 꼴이 흉하다. 모두 비켜라! 원님 납신다! 1년도 더 지난 영상이고, 조회수가 얼마 되지도 않은 유투브 영상이고, 올린 이는 박근혜 지지자로 보이고, 박근혜 구속이 못마땅하여 순대국 먹는 윤석열 동영상을 유투브에 올린 것으로 보이는 영상을 용케도 찾아내어 '서민적 풍모'로 변주하고 '역대급 리더'로 미화하여 보도하는데, 누가 누가 아부를 잘하나 오디션을 보는 듯하다. 그 아부에 전두환도 울고 가겠다. 재래시장에서 순대국 드셨으니 운전기사 대동하여 어느 후미진 골목식당에서 칼국수도 드시고 꽁보리밥도 드시면, 낮은 곳에 임하시어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시는 선지자 나셨다고 1면 톱으로 기사가 실리겠다. 지도자께서는 운전기사를 대동하시고 재래시장 식당에 친히 방문하시어 꽁보리밥을 맛보시고는 꽁보리밥에는 참기름과 고추장이 중요하다고 지도하시었습니다라는 기사를 볼 수도 있을 것 같고. 나는 이것이 궁금하다. 조회수 얼마 안 되는데, 용케 영상을 찾아내고 역대급 리더로 미화하여 보도하기까지의 과정이 우연일까? 이명박 시절에 국정원 요원들이 오피스텔에서 댓글공작 하듯이 지금도 누군가의 지휘를 받으며 그런 공작을 하는 자들이 암약하고 있는 건 아닌가. 같은 편의 언론에 입맛에 맞는 기사거리도 제공하면서. 그러면 기타 언론이 줄줄이 따라올 것을 기대하면서. 며칠 전 중앙일보에는 '검찰 등에 따르면' '검찰수사관으로 추정된다'는 익명의 어떤 이가 직장인 블라인드 사이트에 올렸다는 글의 전문이 그대로 게재됐었다. '이 형아가 알려줄게'라며 윤석열 총장은 무뚝뚝하지 않고 수다맨이이며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ㅋㅋ ㅠㅠ체' 글을 올린 이는 실존인물일까? 나도 30년을 기자로 밥 먹고 살아왔는데, 내 후각으로는 아니다. 공작의 냄새가 폴폴 난다. 송요훈 페이스북 1월 6일 오후 4:00 · 사실대로 기사를 씁시다. 사실 확인 좀 하고 기사를 씁시다. 사실 조작, 이미지 조작 좀 하지 맙시다. 1. 2019. 9.19. (사진 1) 봉주르tv라는 인터넷 개인방송이 윤석열 서울지검장이 서울 흑석동의 허름한 순대국집에서 식사를 하는 동영상을 유투브에 올렸다. 때마침 같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누군가 스마트폰으로 몰래 촬영한 동영상이고, 제목은 ‘서민 흉내 서울지검장 시절 재래시장 순대국집 방문 한 달 뒤 검찰총장 임명’이다. 제목으로 보면, 윤석열 총장이 몹시 못마땅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동영상 아래에는 '2016년 11월 19일 서울역 하야반대 1차집회에서부터 하루도 안 빠지고 박근혜 구명방송을 하고 있다'고 봉주르tv를 소개하고 있다. 윤석열 총장은 국정농단 혐의 등으로 박근혜를 구속한 박영수 특검의 수사팀장이었다. 2. 2020. 12. 28. (사진 2) 영우방송TV라는 인터넷 개인방송이 1년 3개월 전에 봉주르tv가 올렸던 동영상 원본을 다시 올렸다. 제목은 ‘순대국집에서 만난 윤석열 검찰총장!’이고, 동영상 아래에 다음과 같은 설명을 달았다(원본을 그대로 옮김). "윤석열 총장이 중앙지검장 당시 어느 날 흑석동 시장 허름한 순대국집에서 유투버 몇 명이 순대국을 늦은 점심으로 시켜 막 한술 뜨려는데 말쑥한 사람(7명)들이 옆자리는 앉는다~ 눈에 띠는 사람 한사람! “야 저사람 윤석열이 맞지?” 내앞의 친구 “개x끼 맞아요” 언성을 높여 말한다. 그네들은 못 들은척 별 말도 없이 순대국만 열심히 먹고 있다. (중략) 지금 같았더라면 윤석열 총장님! 힘내시고 나라를 살려주십시요 하며 열열히 응원했을텐데~~ 작금에라도 박근혜 대통령 형집행 정지시키고, 제가 잘못했습니다 라고 용서를 구하고 문정권의 비리를 낱낱히 까발리면 국민적 영웅이 될텐데~~ 앞으로 그리 되기를 기대해보면서 오늘도 윤석열의 서민적인 모습과 함께 윤석열 힘내라!!! 외쳐봅니다." 3. 2021. 1. 5. (사진 3) 영우방송TV가 올린 동영상을 조선일보는 어찌 알았는지 ‘운전기사와 함께 순댓국 먹는 윤석열… 유튜브 영상 화제’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동영상에 달린 장황한 설명 중에서 '윤석열의 서민적인 모습'에 방점을 찍어서. 기관장이 운전기사와 함께 밥을 먹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일이라면서. 조선일보 기사에 나온 것처럼 기관장이 운전기사와 함께 밥을 먹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운전기사들도 불편해서 같이 밥 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기관장이면 식사 자리도 업무와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운전기사가 그 틈에 끼어 밥을 먹는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흑석동 재래시장의 순대국집은 제법 알려진 식당으로 보인다. 허름해도 점심 시간이면 찾는 이들이 많고, 그런 식당은 넓지 않아서 점심 시간에 혼자 가면 낯선 손님과 합석하기도 한다. 윤석열 중앙지검장도 업무가 아니라 순대국이 먹고 싶어 바쁜 점심 시간을 피해 그 식당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그랬는데, 높은 분이라고 독상을 받고 운전기사와 수행비서는 따로 먹으라고 할 수 있었을까. 만일 그랬다면 식당주인이 영업에 방해만 된다며 윤석열 일행을 내쫓았을 것이다. 조선일보 기자는 그런 사정을 몰라서 윤석열의 서민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기사를 썼을까? 재래시장의 그 순댓국집에 전화라도 해서 당시의 상황을 물어보긴 했을까. 사실 확인을 하면, 서민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기사를 쓸 수 없어 아예 취재를 하지 않은 건 아닐까? 조선일보는 ‘운전기사와 순댓국 먹는 윤석열’ 제목의 첫 번째 기사에 이어 세 시간 뒤에는 ‘’역대급 리더’라는 윤석열, 이번엔 비서, 기사와 순대국 먹방’이라는 기사를 게재하는데, 앞서 올린 기사와 토씨까지 똑같다. 제목이 ‘’역대급 리더’ 윤석열…’로 바뀌었을 뿐. 1년 3개월 전에 어느 인터넷 개인 방송이 ‘서민 흉내내더니 검찰총장이 된 윤석열’이라는 비아냥으로 올린 동영상이 조선일보의 손을 거치면서 ‘역대급 리더 윤석열’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이런 걸 일컬어 사실 조작 또는 이미지 조작이라고 한다. 4. 조선일보 보도 이후 진짜 웃기는 건 그 다음부터다. 조선일보가 연거푸 깃발을 들어올리자, 마치 선착순 경쟁이라도 하듯이 동아, 중앙이 조선일보를 베낀 듯한 기사를 썼고, 그러자 기타 언론이 뒤질세라 이미지 조작 경쟁에 가세하였는데, 그럴수록 윤석열을 우러르는 이미지 조작은 눈덩이 불어나듯 하였다. 나도 기자인데, 동영상에 소개된 순댓국집을 찾아가 직접 확인을 해보고 싶다. 기사 쓰기 전에 사실 확인을 위해 전화라도 한 기자가 있었는지. 직접 그 식당에 와본 기자가 있었는지. 기자들에게도 묻고 싶다. 조선일보가 쓴다고 사실 확인도 않고 따라 쓰는 거, 창피하지 않아요? 남의 기사 베끼는 거, 부끄럽지 않아요? 당신이 쓴 기사, 이미지 조작이라는 거 알아요? 전에는 기사 쓰기 전에 제발 사실 확인 좀 하라고, 그게 언론 윤리고 취재 준칙이라고 타박을 했었는데, 윤석열 이미지 조작 기사를 보고 이런 의문이 들었다. 사실을 확인하면, 조작 기사를 쓸 수 없으니 사실 확인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이런다니까요. 법무장관 자리에 누구를 앉히든 수구 기득권 해체의 개혁을 포기하지 않는 한 검증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뭐든 꼬투리를 잡아 이것도 문제 저것도 문제라고 물고 늘어지며 국민을 피곤하게 만들 겁니다. 반면에 검찰총장 윤석열은 개를 억지로 끌고 가도 자애로운 동물보호론자로 미화하고 운전기사와 순대국 먹었다고 역대급 지도자로 치켜세웁니다. 조선일보는 국민에게 총질을 한 전두환을 난세의 영웅으로 떠받들었죠. 사면을 하면 국민 통합에 도움이 된다구요? 천만에요. 물에 빠진 걸 건져주면 보따리 내놓으라 하지요. 계속 시끄럽게 만들어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는 게 그네들의 전략이고, 조선일보는 보도가 아니라 정치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하니 수구 언론이 무어라 하든 개혁을 향해 쭉 직진하세요. 송요훈 페이스북 1월 4일 오후 6:32 ·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오늘 연합뉴스에는 두 가지 버전의 김명수 대법원장의 신년사 기사가 실렸습니다. 오전에 게재한 기사는 “지난 잘못에 통렬한 반성과 성찰 필요”라는 큰 제목에 “재판독립 저해하는 공격에 의연하고 단호하게 대처”라는 작은 제목을 달았습니다. 그런데, 오후에 다시 게재된 기사에는 큰 제목이 “재판독립 공격에 단호히 대처”로 바뀝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도 동일인이고, 기사는 토씨까지 동일한데, 작은 제목이 큰 제목으로 자리만 바꾼 거죠. 김명수 대법원장의 신년사는 어디에 방점이 찍혀 있을까요? 제목만 바뀐 연합뉴스 기사의 첫 세 문장은 이렇습니다. (포털에는 동일한 기사가 다른 제목으로 떠 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은 4일 "현재 문제되고 있는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것뿐 아니라 재판 그 자체에 대한 자기반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발표한 시무사에서 "사법부의 성과나 노력을 알아달라고 호소하기 이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난 잘못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성찰"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재심으로 비로소 무죄판결을 받은 피고인이 그간 겪어야 했던 고통이 어떠했을지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돌이켜 봐야 한다"며 "이러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사법부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신년사(기사에서는 시무사)는 과거의 잘못된 판결에 대한 언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첫 세 문장에 이은 네 번째 문장은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또 “때로는 판결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넘어 법관 개개인에 대한 공격이 가해지기도 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장으로서 재판독립을 침해하는 부당한 외부의 공격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법원장의 신년사는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거래를 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등 과거의 잘못 뿐 아니라 최근에 있었던 몇몇 재판에 왜 불신의 비판이 있는지 통렬한 자기 반성을 전제로 정당하지 않은 비난이나 공격에는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에둘러 과거의 잘못된 판결을 언급했지만, 발언의 맥락은 논란이 된 현재의 몇몇 판결에 닿아 있다고 봅니다. 기자인 제 눈에는 그렇게 읽힙니다. 어느 기자가 이런 말을 했다고 가정해봅니다. 우리가 언론의 자유를 말하기 전에 선동적이고 자극적인 무책임한 보도 또는 어느 정파에 편향된 보도로 언론의 자유를 오남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통렬한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물론, 정론을 위협하는 부당한 압력이나 회유에 대해서는 끝까지 맞서 싸우겠다. 그런 발언을 했을 때, 발언의 취지와 맥락과 본질은 ‘정론을 위협하는 부당한 압력에 끝까지 싸우겠다’인가요? 아니면 ’언론의 자유를 오남용하는 무책임한 보도에 통렬한 반성과 성찰 있어야 한다’인가요? 어느 것이 발언의 본질이고 큰 제목이 되어야 할까요? 발언의 맥락을 무시하지 말 것, 발언의 취지를 왜곡하지 말 것. 언론 윤리에는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포털로 뉴스를 접하는 이들이 많은 시대이고, 제목만 보고 기사 본문은 흘려버리는 뉴스 소비자들도 많습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른데, 선후를 뒤바꾼 본말전도의 자극적인 제목 뽑기도 본질을 왜곡하는 ‘사실 조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동일한 사안에 왜 오전의 기사와 오후의 기사가 본말전도로 제목이 바뀌었는지, 기사는 ‘통찰과 반성’을 앞세우고 있는데 제목은 왜 ‘단호한 대처’로 달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통찰과 반성’이 아니라 ‘단호한 대처’로 제목을 뽑은 언론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신년사를 왜곡하여 국민을 선동하고 있는 겁니다. 기자인 제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추가. 제목 바꾼 이유가 궁금할 뿐 김명수 대법원장 쉴드 치는 거 아닙니다. 그와 별개로, '단호한 대처'를 말하면서 윤석열 검찰의 판사 사찰에 대한 언급이 없는 건 납득이 되질 않습니다. 송요훈 페이스북 1월 4일 오전 10:44 · 부정한 권력에 부역하거나 야합하거나 동업자를 자처하며 특권을 누리며 단물을 빨던 몇몇 수구 언론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을 상대로 선전 선동의 심리전을 벌이고 있다. 그네들은 끊임없이 계층 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세대 간의 갈등을 조장한다. 이념으로 빨갱이 낙인 찍고 지역감정을 자극하여 국민을 분열과 갈등의 늪으로 몰아넣는 선동은 그네들에겐 전가의 보도이고 늘상 써먹는 망국병 선거전략이다. 민주진영의 틈을 파고 들어 분열을 유도하는 이간의 책동도 그러하다. 인터넷혁명으로 여론 독과점의 기득권 구조가 해체되고 시대흐름에 밀려 생존이 어렵게 되자 여론 조작으로 개혁을 좌초시키고 기득권을 사수하기 위해 국민을 상대로 광기의 선동을 한다. 심리전은 적군을 상대로 군대가 하는 일이지 언론이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게 아니다. 흔든다고 흔들리면 안 된다. 흔든다고 흔들리면, 선동에 현혹되는 것이고 이간의 책동에 부화뇌동하는 거다. .송요훈 페이스북 3일 · 한 달 후 대한민국 19대 대통령 선거일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2017년 4월 13일, 중앙일보에는 <한 달 후 대한민국>이라는 칼럼이 실렸다. 중앙일보의 현직 논설위원이 쓴 기명 칼럼이고, '한 달 후'란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흘째가 되는 날이다. 칼럼은 상상이라 전제했지만, 새 대통령 취임 후 나흘째 되는 날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2017년 5월 15일. 아침부터 시장은 형편없이 망가지고 있었다. 주가(KOSPI)는 1000 밑으로 주저앉았고 원화 값은 달러당 2000원을 훌쩍 넘겼다. 사람들은 생수를 사 재고, 라면을 박스째 챙기느라 마트로 몰려들었다. ‘대북 폭격설, 오늘 미국이 북한을 때린다.’ 전쟁의 공포가 이날 한반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칼럼에 등장하는 '새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그러니까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취임 나흘만에 대한민국은 패닉 상태에 빠진다는 것이고, 그 이유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좌파 대통령' 문재인을 불신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이 칼럼은 '투표일에 문재인 찍지 말라'는 명백한 선거 개입이다. 그러나 칼럼을 쓴 기자도, 칼럼을 게재한 중앙일보도 선거법 위반이라고 어떤 법적 처벌을 받지도 않았고, 언론의 윤리를 위반했다고 하여 어떤 책임을 지지도 않았으며, 아직도 그 칼럼은 인터넷에 버젓이 살아있다. 검색창에 '한 달 후'를 치면 '한 달 후 대한민국'이라는 검색어가 자동으로 완성되기까지 한다. 칼럼을 쓴 기자의 이름보다 칼럼의 제목이 더 유명해졌고, 그 기자의 이름 뒤에는 '한 달 후'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굳이 4년 가까이 지난 이 칼럼을 소환한 건, 칼럼을 쓴 기자를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다. 주가(KOSPI)가 3000을 넘어서도 아니다. 기자들에게 타산지석의 교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서다. 지금은 스마트시대다. 내가 쓴 기사는 송고되는 순간, 공개된 진열대 위에 놓이게 되고 자판 몇 번 두드리는 수고만으로도 누구나 검색과 열람이 가능하게 된다. 내 이름을 걸고 쓴 기사는 평생 나를 따라다닌다. 기사를 쓰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한 번 해보라. 한 달 후에도, 1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이 기사를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기자로서의 양심에 부끄러운 기록으로 남지 않을지. '박근혜를 구속시킨 윤석열, 서민 흉내내더니 검찰총장 임명'이라고 비아냥대는 동영상이 의도된 가공 과정을 거치더니 '운전기사와 같이 순대국 먹는 소탈함'으로 이미지가 조작되었다. 사실과 진실이 땅 속 깊이 묻혀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으로 검색 몇 번 하는 것만으로도 사실이 드러나는데, 국민을 개 돼지나 원숭이로 아는지 언론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미지를 조작하여 국민을 속이고 홀린다. 제발 그러지 말자. 한 사람을 속일 수는 있어도 세 사람을 속이지는 못한다. 하루는 속일 수 있어도 이틀은 속이지 못한다. 지금은 스마트시대다. 국민은 호구가 아니다. 하루 이틀이면, 검색 몇 번이면 드러나는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려다 제 발등을 찍는 어리석은 짓 좀 하지 말자. 그런 기사를 쓴다면, 저 유명한 '한 달 후' 칼럼처럼 기자인 당신을 평생 따라다닐 것이다. 송요훈 페이스북 1월 3일 오후 3:18 ·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최대 3000명의 손님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중식당으로 정계 인사들도 많이 찾았고, 정당 워크숍이나 오찬, 간담회 등 행사가 열리기도 했던 서울 부암동의 하림각이 코로나19의 여파로 월 2억원의 임대료를 내지 못해 영업을 중단했다'고 한다. 그런데 하림각 대표 남상해 씨는 지난 2014년에 종로구청장 선거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한 경력이 있고, 그때 신고한 재산이 187억원이며, 부암동 하림각이 들어있는 건물과 일대의 토지는 남상해 대표 일가의 소유이고 20대 손녀 손주들에게 증여도 했다고 한다. 월 임대료 2억원을 내지 못해 눈물의 영업 중단을 한다는데, 그 임대료는 누가 누구에게 내는 걸까? 진짜 눈물을 흘려야 하는 이들은 영업 중단으로 일자리를 잃고 월급이 끊긴 종업원들이 아닐까? 진짜 눈물을 흘리는 이들은 월 몇십 만원의 임대료도 버거운 생계형 자영업자들이 아닐까? 수백억 부동산 부자가 건물주이기도 한 초대형 고급식당이 월 2억원의 임대료가 힘들어 영업을 중단한다면서 '눈물의 폐업'이란다. 과연 선동의 언론답다. 기자들에게 묻는다.언론이 눈물을 흘려야 한다면, 누구를 위해 흘려야 하는가.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31일 오후 8:55 · 무책임한 언론 억지와 과장과 왜곡으로 정부 옭아매기 또는 여론 들쑤시기 보도의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다. 그건 비판이 아니다. 비판을 빙자하여 갈등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보도이고 공익에 반하는 보도다. 내년도 의사 국시는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치르기로 했단다. 정상적으로 시힘을 치르는 의대 4학년생 외에 올해 국시를 거부한 미응시자 졸업생(재수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실기 시험이 있는 의사 국시의 특성상 동시에 많은 인원이 시험을 치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상반기 시험을 1월 말로 잡은 건,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의료현장의 의사들이 지쳐가는 현실도 작용했을 것이다. 내년부터는 백신 투여가 시작된다고 하지만 바이러스 변이도 진행되고 있어 코로나19가 언제쯤 종식될 지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내년도 의사 국시 일정을 발표하는 보건복지부 담당자의 입에서 ‘추가 시헙’이나 ‘재응시 기회 부여’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기사들을 살펴보니 그렇다. 그런데도 언론은 추가시험, 재응시 기회 부여라고 기사를 쓴다. 그뿐인가. 코로나19 상황에서의 의료 현장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규정을 바꿔 시험 공고 기간을 줄였더니 규정을 바꿔가며 특혜를 준 것처럼 기사를 쓰고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면서 갈등을 부채질하고는 누리꾼들이 들끓고 있다고 보도한다. 이게 다 문재인 정부 잘못이다. 이래도 트집, 저래도 트집을 잡는 언론에겐 모든 게 문재인 정부 탓이다. 시험 일정을 발표하는 보건복지부 담당자는 이렇게 브리핑을 했어야 했다. 코로나19 감염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의대생들이 의사 국시를 거부한 탓에 의사 국시에 대해 많은 국민이 예민하게 주시하고 있습니다. 내년도 의사 국시를 두 번에 나눠 상반기, 하반기에 치르는 건 시험 거부한 의대생들을 구제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내년에는 국시 재수생이 있이 응시자들이 평년의 두 배 가량이 되는데 많은 인원이 동시에 시험을 치르는 건 방역에도 문제가 있고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두 번에 나눠 치르는 것입니다. 기자님들, 그러하니 제발 정부가 굴복했다느니 추가시험의 치르기로 했다느니 재응시의 특혜를 주기로 했다느니 하는 기사는 쓰지 말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상반기 시험을 1월 말로 잡은 건 코로나19와 싸우느라 의료진이 점점 지쳐가는 현장의 사정도 고려한 것입니다. 언론이 비판을 한다며 정부를 옮아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면 결국 그 피해는 국민이 입게 됩니다. 그렇게 친절하게 설명을 했어도 다수의 언론은 추가시험이니 재응시 기회 부여니 하는 기사를 쓰고 정부가 굴복했다고 기사를 쓰고 SNS에서는 난리가 났다고 기사를 썼겠지만, 그렇게 설명을 하고 당부까지 했어도 기사를 비틀어 쓴다는 ‘왜곡의 증거’로 남았을 것이고, 언론개혁이 불가피함을 설명하는 논거가 되었을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의사 국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에게 나도 분노했었다. 추가시험의 기회를 주는 건 정부가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이고 더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이유로 강하게 반대했었다. 전교 1등 운운하며 국민을 비하하고 조롱하던 교만하고 시건방진 의대생들을 잊지 못한다. 그럼에도 내년도 의사 국시를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치르기로 한 건, 코로나19와 싸우는 의료현장의 현실과 국민 안전을 고려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원칙을 무너뜨린 정부라고 언론이 일제사격을 퍼부을까 두려워서, 그런 보도로 인해 여론이 나빠질까 두려워서, 응시 인원이 평년보다 두 배쯤 되는 의사 국시를 평년처럼 가을에 몰아서 치르게 했다면 무책임한 정부이고, 그런 꽉 막힌 결정으로 인한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 될 것이고 그러면 언론은 꽉 막힌 결정으로 국민을 사지로 몰아넣은 무책임한 정부라고 비난을 해댈 것임은 지금의 보도 행태로 보면 명약관화하다. 지금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건, 내년도 국시를 두 번에 나눠서 치르겠다는 정부가 아니라 미운 사람이 대통령이라고 정부를 옮아매고 여론을 들쑤시는 무책임한 언론이다. 언론의 임무는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여 건강하고 합리적인 여론이 형성되도록 하는 일이다. 배배 꼬인 비판, 억지로 비트는 비판,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여론몰이를 하는 건 보도가 아니라 국가를 흔드는 선동이다.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31일 오전 11:40 · 고무줄 판결. 이래서야 판결을 판사를 법원을 신뢰할 수 있겠나. 법원 불신은 결국 판사들이 자초한 것이다. 비록 다수 판사들은 그렇지 않다 해도 소수 판사들의 이해불가한 판결이 법원 불신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1심 판결에 불복이 많은 이유이고,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어 2심, 3심으로 재판을 끌고가니 당사자는 물론 국가가 부담하는 비용도 늘어나는 것이고, 판사들의 재판 부담이 늘어 재판은 많은데 판사는 부족하다 하고. 그 불신의 고비용 악순환을 누가 만들었는가. 미국의 순회판사처럼 1심 법정의 판사석에 대학 갓 졸업한 또는 세상 물정 모를 것 같은 젊은 판사가 아닌, 법전만 달달 외운 동굴 속 판사가 아닌, 복잡다양한 세상사의 경륜이 느껴지는 머리가 허연 노판사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덧. 법원, 중요합니다. 검사가 깡패짓을 해도 법원이 바로잡으면 함부로 그렇게 못합니다. 그런 이유로 판사는 법조 먹이사슬에서 검사보다 위에 있고, 그래서 법원을 청정지역으로 지켜야 합니다.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31일 오전 7:13 · 검찰의 수사에도 판사의 판결에도 기자의 기사에도 개인의 주관이나 정치적 성향이나 종교관이 은밀하게 깊숙히 침투되어 있고, 공공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앞세우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갈수록 커간다. 이 나라의 검찰, 법원, 언론이 공정한 수사, 공정한 재판, 공정한 보도를 말할 수 있나. 검찰의 독립성, 법원의 독립성, 언론의 독립성을 주장할 수 있는가. 사회갈등을 줄이는 존재의 이유를 입증하기는커녕 개인의 주관이나 계층적 정치적 성향이나 종교나 집단 또는 조직의 이익을 위해 권한을 오남용하며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고 조장하고 있지 않은가. 겉으로 드러난 증상을 치료하는 개혁이 아니라 그림을 다시 그리는 근본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 투명한 공개와 시민의 감시를 대원칙으로 하는... 주어진 권한을 갖고 장난을 하면 깡패가 되는 건 검사만이 아니다.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30일 오전 11:21 · 대체 어쩌란 말인가 자기 집은 전세 주고 강남에서 전세 사는 국힘당 의원 윤희숙의 ‘저는 임차인입니다’ 연설은 전율을 느끼게 하는 역대급 연설이라고 칭송을 하고, 상가 3채를 소유하고 26억 전세를 사는 국힘당 소속 전 의원 이혜훈은 무주택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었다고 상찬을 하면서 부동산 재산이 없는 공수처장 후보에게는 집 없어 청렴하다더니 강남에 살면서 아파트 전세가 12억이라고 타박을 한다. 이 나라의 다수 언론에게 누구는 팥쥐고 누구는 콩쥐다. 공정함은 없다. 내 편은 허물이 있어도 감싸주고 네 편은 무엇으로든 트집을 잡아 걷어차는 차별이 있을 뿐이다. 국민을 니편 내편으로 갈라 갈등하게 하는 이간과 분열의 책동이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국민의 신뢰도가 세계 꼴찌인 대한민국의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백신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물고 뜯더니 백신을 확보했다니까 부작용 우려가 있다고 트집을 잡고 코로나보다 무서운 건 주사 바늘이라는 엉뚱한 소리를 한다. 은밀한 작전이 아닌 공개 작전으로 백신 확보 경쟁에 뛰어들어 일찌감치 백신을 확보했다면 을의 처지에서 열악한 거래조건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언론은 포퓰리즘의 무리한 확보 경쟁으로 국고를 낭비했다고 공격했을 것이고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백신으로 국민을 상대로 임상실험을 하느냐고 문재인 정부를 몰아부쳤겠지. 집값이 오르지 않아서 건설경기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집값을 올리라고 박근혜 정부를 압박하던 언론이 집값이 오르니 집값이 올라 전세가 올랐는데 전세난으로 못 살겠다는 집 없는 서민들을 걱정하고 집값이 올라서 재산세가 올랐는데도 세금 폭탄이라고 조세저항을 선동한다. 대체 어쩌란 말인가. 신문 보기가 두렵다. 컴퓨터를 켜면 포털에 뜨는 뉴스 보기가 무섭다. 오늘은 또 무엇으로 꼬투리를 잡아 어떤 해괴한 논리와 요설로 국민을 홀리는 선동을 할까 하는 두려움에 자판 건드리기가 겁이 난다. 나는 기자다. 30년 넘게 기자로 밥을 먹고 산 언론종사자로 단언컨대, 대한민국을 망치는 제1의 주범은 언론이다.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30일 오전 7:57 · 선전 선동은 대중 심리전이다. 세뇌도 대중 심리전이다. 수구 카르텔의 선전대 임무를 맡고 있는 조중동과 조중동에 부화뇌동하는 기타 언론은 국민을 상대로 보도가 아닌 심리전을 수행하고 있다. 기자인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룰라 이후 브라질에서 벌어진 민주주의의 위기가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FOX가 없었다면 트럼프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거다. tv조선은 깡통공주에게서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가 나온다고 했었다. 수구 언론은 이명박에게 성공한 샐러리맨의 신화를 상납했고, BBK가 사기극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명박에게 표를 준 유권자들도 많았다. 이명박 당선의 일등공신은 민주진영의 자중지란이었다. 대중 심리전에는 이간질도 있다.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28일 오후 5:23 · 사실보도란... 커피값이 오르고 있다면서 2만원에 육박하는 서울 시내 특급호텔의 커피 가격표를 사진으로 보여주면 사실 보도일까. 오늘 중앙일보는 기름값이 4주 연속 오르고 있다면서 서울 도심에 있는 어느 주유소의 가격표를 사진으로 보도했다. 나도 이틀 전에 휘발유 주유를 했는데, 뭔가 이상하다 싶어 석유공사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서울 도심이나 강남의 주유소 중에는 2천원이 넘는 곳도 있지만 전국 각 시도별 평균은 서울이 1487원이고 대부분 1400원대 초반이다. 대구 경북과 부산 경남은 1390원대다. 중앙일보가 보도한 사진의 주유소는 서울 도심에 위치하고 있는 ‘특수성’이 있고, 4주 전에도 전국 평균보다 월등하게 높은 가격에 휘발유를 팔았을 것이다. 그런 특수한 주유소의 가격표를 보여주면서 기름값이 계속 오르고 있다고 보도하는 것이 ‘사실 보도’일까. 열 가지 사실 중에 입맛에 맞는 또는 의도에 맞는 사실만을 골라내어 마치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사실 보도’가 아니다. 그것은 사실을 과장하는 것이고 왜곡하는 것이며, 의도한 방향으로 여론을 끌고 가려는 사실 조작이나 마찬가지다. 특급호텔 커피숍의 가격이 전국 커피숍의 기준이 될 수 없을 뿐더러 그걸 비판하는 건 시장의 원리를 부정하는 거다. 대표적인 사실(이 경우 전국 평균치)을 무시하고 평균보다 가격이 훨씬 높은 특수한 사례를 보여주면서 그것을 일반화하는 것은 ‘불안 심리’를 조장하는 사실 왜곡이다. 중앙일보가 기름값이 오른다는 사실 보도를 하려 했다면, 4주 전의 전국 평균치와 비교했어야 한다. 석유공사 홈페이지에 가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취재가 어려운 게 아니다.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27일 오전 8:51 · 재벌과 언론의 혼맥도를 보면서 검찰과 법원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면 무서울 게 없겠다는 섬뜩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국가의 경제를 장악한 재벌과 선전 선동으로 여론을 조종하는 언론 권력과 법을 다루는 검찰과 법원이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면 두려울 게 뭐가 있겠는가. 법은 불법이라 하는데 룸싸롱 99만원 접대는 무혐의라는 내맘대로 법 적용과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판결이 나올까 판사 사찰은 일상이 되고, 증거가 없어도 표창창이든 뭐든 그네들이 유죄라 하면 유죄가 되고, 선거로 뽑은 대통령을 우습게 보고 조롱하고... 거기에 군부까지 포섭하면 선거는 하나마나가 되겠지. 2003년 독일 다큐팀이 남미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격동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를 보면서 섬뜩했었는데, 브라질 정치 퇴행을 기록한 <위기의 민주주의>를 보면서 다시 그런 섬뜩함을 느꼈다. 그 나라들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건 언론을 장악한 경제 권력이었다. 대다수 언론은 그들의 충성스런 나팔수가 되어 보도가 아닌 선전 선동을 하고 있었고. 법과 제도를 바꿔 힘의 분산,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도 선진국가가 아닌 남미의 어는 나라들이 가는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 혼인의 자유가 있는 나라인데, 혼맥으로 질기고 끈끈하게 엮이는걸 무슨 수로 막을 수 있겠나. 국가 시스템을 정비하여 민주주의가 작동하도록 하는 수밖에. 미국을 대공황에서 구한 뉴딜정책의 본질이 그런 것이고, 그 덕분에 미국은 세계 최강국이 됐다더라.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25일 오전 8:49 · <위기의 민주주의> 브라질의 제35대 대통령 룰라. 그는 가난으로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닌 게 학력의 전부인 노동운동가였으나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되어 재임 기간 중에 악명 높았던 브라질의 빈부 격차를 줄였고 교육과 복지를 바꾸는 정책으로 브라질을 세계 8위의 경제대국으로 끌어올기기도 하였다. 개혁은 기득권과의 갈등이고 싸움이다. 부자에게 돈을 쓰는 건 투자라고 하면서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쓰는 건 왜 비용이라고 하는가. 그가 남긴 명언이다. 그의 지지율은 퇴임을 앞둔 때에도 80%가 넘는 고공행진을 했었다. 퇴임 후에도 그는 존경받는 지도자였다. 그랬는데, 그가 부패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는 걸 국내 언론의 보도로 알게 되었다. 재임 중에 건설회사로부터 아파트를 뇌물로 받았다는 보도였다. 실망이 컸다. 몹시 컸다. 가면을 쓴 이중인격자처럼 느껴져 욕도 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룰라에 대한 수사는 룰라 이후로도 계속 이어진 진보 정권의 개혁에 대한 수구 카르텔의 정치 쿠데타의 한 부분이었고, 룰라에 대한 기소는 수구 카르텔의 협력자인 브라질 검찰의 정치적인 기소였다. 증거는 없었다. 아파트를 뇌물로 받았다는 증거를 내놓으라는 룰라의 요구에 기소 검사는 이렇게 답한다. 증거는 없다. 당신이 증거를 없앴으니 증거가 없는 거다. 그러니 증거가 없다는 게 바로 증거다. 증거를 없앴기 때문에 증거가 없는 것이 범죄의 증거라는 해괴한 논리, 물론 증거를 인멸했다는 증거도 없었다. 법정에 나온 룰라는 이렇게 말한다. 헌법과 법률을 존중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내가 원하는 건 나를 이 자리에 서게 한 범죄가 무엇인지 알려달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판사는 룰라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기소를 한 검사와 판결을 내린 판사는 한 몸이었다. 룰라 퇴임 이후에 벌어진 브라질의 정치 퇴행을 서술한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탄핵에서 룰라까지>를 보고 알게 된 내용이다. 그 다큐를 보면서 몹시 미안했었다. 검찰과 마찬가지로 수구 카르텔의 협조자인 브라질 언론의 보도를 그대로 옮긴, 룰라에게 비우호적인 국내 언론의 보도에 부화뇌동하여 룰라를 비난하고 욕했던 것이 몹시 미안했고, 정치 후진국이라고 브라질을 조롱했던 것이 또한 했다. 브라질이나 한국이나, 글쎄 얼마나 다를까. <위기의 민주주의> 꼭 보시라, 강추! 덧. 수구 동맹의 정치 쿠데타로 브라질에서 진보정권은 무너지고, 독재시절의 고문 등 민주주의 탄압을 두둔하는 퇴역 군인이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그는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면 악어로 변할까봐 맞기 싫다는, 갖가지 기행과 막말로 브라질을 모범국가가 아닌 ’망신국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룰라를 수사하고 기소한 검사는 법무장관에 발탁되었다.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23일 오전 7:54 · 박덕흠과 전봉민 똑같다. 국민의 짐으로 불리기도 하는 국힘당 소속 국회의원이었고, 건설업 혹은 부동산으로 축재를 했고, 축재 과정에 석연찮은 점이 많고, 크고 작은 금뱃지를 축재에 이용했다는 의혹이 있고, 그걸 MBC <스트레이트>가 고발을 했고, 그러자 꼬리를 자르고 혹을 떼내고 짐이 되지 않겠다며 짐이 둘을 버리는 것 같은 탈당을 했다. 건설업으로 부를 이룬 전봉민 의원의 아버지는 축재 과정의 의혹을 취재하던 MBC 기자에게 3천만원 줄 테니 보도하지 말라는 뻔뻔한 제안을 하기까지 했다. 뉴스 화면을 보니 그런 불법하고 부도덕한 몰양심의 제안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아주 자연스럽더라. 단언컨대, 그네들은 그렇게 부를 축적하고 빽을 활용했을 것이다. 3천만원 줄게, 허가 좀 내줘. 3천만원 줄게, 수사하지 말아줘. 3천만원 줄게, 무혐의로 처리해줘. 3천만원 줄게, 금뱃지 좀 달게 해줘… 금액에 차이가 있을 뿐, 그것이 그네들에겐 처세의 기술이고 축재의 비결로 통했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를 켜니 다음 포털이 뜨는데, 화면의 기사는 온통 백신이 어떻고 부동산이 어떻고 문재인 정부가 어떻고 하는 기사들이다. 그건 기사가 아니다. 나라 망하라는 저주와 악담이다. 오늘만 그런 게 아니다. 박덕흠 기사는 진작에 사라졌고, 전봉민 기사도 보이지 않는다. 그네들에게 대한민국은 참 좋은 나라다. 과거의 정치를 보자. 부정한 정치자금은 대개 건설업에 파이프를 대고 있었다. 전두환에게 갖다 준 천문학적 정치자금은 대부분 건설회사에서 나온 비자금들이었다. 그 돈은 재벌 오너들이 땅 파서 갖다준 돈일까. 아니다. 정치자금 갖다 바친 건설회사들이 지은 아파트 분양가와 갖가지 건설 공사비에 ‘십시일반’으로 포함돼 있는 거다. 내가 사는 아파트 분양가에도 권력자에게 상납한 부정한 정치자금과 국회의원에게 건넨 뇌물성 선거자금과 룸싸롱에서 아가씨 끼고 술 처먹은 접대비까지 모두 포함돼 있는 거다. 그렇게 그네들은 아파트 값을 올렸고, 상납한 정치자금을 회수하고도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었고, 아파트 값이 폭등하니 투기꾼들이 생겨났고, 누구는 부동산으로 얼마를 벌었다더라 하는 부화뇌동의 탐욕이 국민을 감염시켰고, 토건족과 결탁한 언론은 집 없는 서민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하여 투기에 뛰어들게 함으로써 다시 집값을 올렸고, 그러한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부동산 불패의 신화가 만들어졌고 대한민국은 부동산 망국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부동산 문제는 시장논리, 경제논리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재건축 아파트로 수억, 수십억 벌었다는 국회의원들이 있는 한 부동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건설업으로 석연찮은 축재를 한 제2의 박덕흠, 또 다른 전봉민이 있는 한 부동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에 기름만 부을 뿐. 정당하지 않는 재산, 떳떳하지 않은 부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경찰이든 검찰이든 공수처든, 국세청이든 감사원이든, 박덕흠 일가와 전봉민 일가의 축재 과정을 정밀하게 살펴 법이 작동하고 정의가 살아있음을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부정한 행위는 언젠가는 드러나고 패가망신의 징벌이 따른다는 교훈이 있어야 부동산 광풍에서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 하승수 페이스북 2020년 12월 22일 오후 5:32 · 한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공개합니다. MBC기자에게 3천만원을 주겠다면서 의혹을 덮으려 한 이진종합건설 전광수 회장(전봉민 의원의 아버지)이 2011년 부산시로부터 '자랑스러운 부산시민상' 대상을 수상했었습니다. 당시 부산시장은 허남식 전시장(한나라당)이었습니다. 온갖 불법의혹을 저지르고, 자녀들에게 변칙증여를 하고, 이를 취재하는 기자에게 3천만원을 주겠다고 하는 사람... 이렇게 법질서를 무시하고 윤리의식도 마비된 사람이 어떻게 자랑스러운 부산시민상을 받는다는 말입니까? 그것도 대상을 받는다는 말입니까? 저는 방금 부산시에 2011년 '자랑스러운 부산시민상' 심사자료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습니다. . 여기저기서 유착의 냄새가 풍깁니다.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19일 오후 9:53 · 한국과 일본을 대하는 조선일보의 이중적 태도. 일본은 긍정적으로 한국은 부정적으로 보도하는 조선일보는 대체 어느 나라의 언론인가? 일제에 부역한 과거가 DNA가 되어 뼛속까지 박혀 있는가.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16일 오후 8:54 · 통제되지 않는 방자한 부하에게 명분을 축적하여 법과 절차에 따라 징계를 먹이고, 부하를 통제하지 못한 상관인 자기 자신에게도 책임을 물어 사의를 표명한 여걸 추미애 장관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런 장수는 곁에 두고 오래 오래 써야 합니다. 미래세대는 그런 걸 보면서 '루저가 되는 정의'가 아닌 '이기는 정의'를 학습합니다.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16일 오후 5:12 · 검찰총장이 정치인인가 징계에 회부된 검찰총장에게 징계위원회에서 ‘정직 2개월’의 결정을 내린 날, 검찰총장 윤석열은 코로나19로 사정이 어려운 자영업자들을 선처하라는 지시를 내렸 다고 합니다. 기자들은 징계 먹은 검찰총장의 ‘첫 지시’라느니 ‘특별지시’라느니 ‘서민경제를 살피라’고 했다느니 하며 경쟁적으로 기사를 써대구요. 그런 기사를 보면서 기자인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건 ‘특별지시’를 하지 않아도 일선의 검사들이 충분히 하지 않을까? 중대한 불법행위가 아니고 ‘생계형’ 불법으로 적발되거나 고발된 사안들일 텐데, 검사들이 초등학생들도 아니고 그 정도야 충분히 알아서 선처든 배려든 하지 않을까? 그건 검사들을 무시하는 과잉 지시 아닌가? 코로나19로 사정이 특히나 어려운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을 선처하라는 건 정치의 영역이 아닌가합니다. 제안을 하더라도 여든 야든 정치인이 하는 게 맞고, 지시를 하더라도 장관이나 대통령이 하는 게 맞다는 거죠. 검찰총장은 그저 검사들이 법을 공정하고 엄정하게 집행하는지 감독만 잘하면 됩니다. 서민경제를 살피라고 특별지시를 했다는 검찰총장, 검사 지휘가 아니라 정치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징계를 받게 된 사유 중에는 부적절한 정치적 언행도 포함되어 있는데, 징계가 결정된 날에 정치행위로 비춰지는 특별지시를 내리는 검찰총장의 오만방자함이 역겹습니다. 그런데도 언론은 성은이 망극하기도 하다는 듯이 검찰총장의 교지(?)를 기사로 받드는군요. 검찰총장이 법무장관의 부하냐며 민주적 통제를 부정하는 행태를 보이고, 검찰공화국 우두머리 행세를 하며 보란 듯이 정치행위를 하는검찰총장, 갈수록 가관입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쓰레기통에 처박혔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아닌 그네들이 ‘거짓말쟁이’ ‘사기꾼’으로 폄하하던, 중요 사건의 핵심 인물로부터 룸싸롱 접대를 받은 검사들을 신묘한 셈법으로 불기소하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이현령 비현령의 엿장수 맘대로 법 적용으로 법을 우롱하고, 만백성의 원성이 자자함에도 사과 한 마디 없는 검찰총장, 검찰을 개혁하지 않으면 어찌 되는지 리얼하고 버라이어티하게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검찰총장 윤석열씨가 보여주어야 했을 모습은 겸손한 근신이고, 해야 할 말은 국민들께 송구하다는 진중한 사과가 아닐까 합니다. 추가. 검찰총장 윤석열씨, 자영업자들을 선처하라는 지시를 내린 김에 임대료 낮춰주지 않는 건물주들을 엄벌하라는 지시도 내리면 어떻가요? 성군 후보자가 나셨다고 언론이 대서특필하지 않을까요?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16일 오전 9:23 · 헌정 사상 처음이라구? 기자님들, 제발 상투적이고 기계적인 기사 작성에서 벗어납시다. 생각 좀 해보자구요. 해방 후에 수립된 정부에서 검찰의 구성은 독립투사 잡아 고문하던 일제 고등계 형사 노덕술처럼 일제에 부역하던 검사들이 다수였을 겁니다. 그 이후의 검찰은 어떠했는지, 우리 검찰의 과거를 되짚어봅시다. 어제 ‘간절한 사죄’를 한 국힘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통령이 외국으로 쫓겨난 적도 있는데 그 시절의 검찰은 독립적이고 중립적이었나요? 측근의 총에 맞은 대통령도 있었는데, 그 시절의 검찰은 독립적이고 중립적이었나요? 포승줄에 묶여 법정에 선 대통령도 있었는데, 그 시절의 검찰은 독립적이고 중립적이었나요? 그랬나요? 외국으로 쫓겨나고 측근의 총에 맞고 포승줄에 묶여 법정에 섰던 독재자가 군림하던 시절에 검찰은 독립적이고 중립적이었나요? 권력자에게 맞선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나요? 그랬는데도 그 독재자들인 검사들의 우두머리를 징계하지 않았나요? 그래서 윤석열 징계가 헌정 사상 첫 검찰총장 징계인가요? 다시 김종인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의 과오에는 정경유착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고, 특정한 기업과 결탁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거나 경영 승계 과정에 편의를 봐준 혐의가 있고, 비선이 국정에 개입하여 법과 질서를 어지럽히고 권력을 농단한 죄상도 있다고 했는데, 그 시절의 검찰은 독립적이고 중립적이었나요? 그랬는데도, 그런 부정한 일이 벌어졌나요? 우리 헌정사에서 검찰은 단 한 번도 독립적이고 중립적으로 일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한 대통령에겐 대들고 물어 뜯었지요. 애완견에겐 이쁨도 주고 먹이도 주어야 하는데, 독립적으로 생활하라 하니까 물고 뜯은 거라는 말이 회자되었더랬지요. 독재시대의 검찰총장들이 단 한 번도 징계를 받은 적이 없다는 건 거꾸로 부끄러워해야 하는 검찰의 과거입니다. 검찰이 권력의 충견이었다는 반증이니까요. 부정한 시대의 검찰총장이 단 한 번도 권력과 맞선 적이 없다는 건 반성해야 하는 검찰의 과거입니다. 그 부정을 방임하거나 그 부정에 협조했다는 반증이니까요. 검찰총장 임기제는 민주화의 산물입니다. 검찰이 권력이나 금력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독립적이고 중립적으로 법을 집행하라고 벌 대신 선물을 준 겁니다. 검사들의 대표가 국민과 또는 정치권력자와 고스톱을 해서 딴 사유물이 아닙니다. 기자들이 ‘헌정 사상 첫 검찰총장 징계’라고 기사를 쓰는 건 과거를 왜곡하고 여론을 호도하는 겁니다. 어떠한 징계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검찰총장 윤석열, 참 오만방자합니다. 자기가 검찰공화국의 우두머리라 착각하고, 누구도 검찰을 건드릴 수 없다는 오만함에 빠져 있는 듯합니다. 검찰총장 임기제의 의미를 모르는 듯합니다. 검찰의 과거를 모르는 듯합니다. 기자님들, 그것부터 취재해서 기사를 쓰세요. 헌정 사상 첫 운운하는 상투적이고 기계적인 기사는 신물이 납니다.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15일 오전 7:43 · 비교해 보십시요. 누가 정확한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까. 누가 사실을 과장하고 왜곡하고 있습니까. 한 쪽은 객관적 통계로 말하고, 다른 한 쪽은 익명의 '카더라'로 말합니다. 어느 쪽이 언론으로 보입니까. 누가 국민을 선동하며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습니까. 송요훈 2020년 12월 14일 오후 4:58 · 제발... 같이 좀 삽시다. 남이야 코로나에 걸리든 말든, 방역단계가 높아져 장사를 접어야 되든 말든, 그저 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니 기분이 좋습니까. 문재인 정부가 밉다고 배배 꼬인 속내를 배설하고 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사니 속이 후련합니까. 집값이 폭등하여 행복하십니까. 3억이던 집이 10억으로 올랐다고 살고 있는 그 집이 다른 집으로 바뀌었습니까. 집값이 올라서 소고기 사 묵고 차도 새로 바꿨습니까. 10억대 부자가 됐다는 헛바람이 들고 세금 더 내는 거 말고 달라진 게 뭐가 있습니까. 내 자식은 부모가 놓아준 사다리 덕분에 스카이에 올라서 뿌듯합니까. 그 사다리를 걷어차니 자식의 장래가 탄탄해보여 안심이 됩니까. 사다리 걷어차기의 숨 막히는 경쟁, 내 자식도 결국 그 끝없는 경쟁의 피해자가 됩니다. 혼자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전우익 선생이 일찍이 갈파하셨지요. 이기주의가 팽배할수록 결국 나도 내 자식도 이기심의 피해자가 됩니다. 코로나로 자영업자들이 무너지면 갓물주라 불리는 건물주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돈이 없어서, 돈을 모을 수가 없어서, 내 집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집값이 폭등할 때마다 피가 마릅니다. 불안함과 상실감이 분노와 저주로 바뀝니다.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집값 폭등을 부추겨 세입자들에게 고통을 준 이들이 집 없는 서민 걱정을 하고, 자기 집 놔두고 전세 사는 이가 나도 세입자라며 집 없는 세입자 걱정을 하고, 세입자들의 고통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리 있는 부동산 부자가 집주인이 전세금 올려달라 할까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진 자들의 가식과 위선, 속이 배배 꼬인 자들의 못된 심보, 그리고 그걸 두둔하고 찬양하는 언론, 지긋지긋합니다. 역겹습니다. 밥이 넘어가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10년 전에 먹은 밥이 넘어오려 합니다. 집값 올랐다고 흐뭇해하면서 세금 폭탄이라고 열을 내는 이중성에 신물이 납니다. 전우익 선생은 혼자 잘 살면 무슨 재미가 있겠냐고 했습니다만, 서로 얽혀 사는 세상에서는 혼자 잘 사는 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부자와 빈자를 차별하지 않습니다. 집값 폭등으로 하부 구조가 흔들리면 결국 상부 구조도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제발... 같이 좀 삽시다. 뿌리가 튼튼하지 못한 나무 위의 저택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기자들에게 SNS에 올라온 세 토막의 글을 소개합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언론인은 당신들이 아니라 이 글을 올린 분들입니다.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14일 오후 1:34 ·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 말이 말다워야 말로 대응하지. 독재 싫어 탈북했더니 '진짜 독재'를 만났다구요? 그럼 돌아가세요. 딸이 기다리고 있다는데...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12일 오후 5:56 · 검사와 기자. 동업자인가, 하수인인가. 일간신문의 형사사건 보도에서 재판 전 단계를 다룬 기사 비율이 80퍼센트에 이른다는 건 수사기관의 흘리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이 과정에서 진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이 편파적으로 보도되어 피의자는 대중에게 부정적으로 각인된다. 당연히 법관들에게도 예단을 주는데, 그런 의미에서 검사들에게는 그것이 일종의 수사 기법이 된다. 언론에 크게 다뤄진 사건이면 발부에 대해 자신 없어 하며 구속영장을 쳤는데도 영장이 쉽게 나온다는 게 검사들이 경험담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법관이 무죄 판결을 내리고자 할 때도 심리적 압박감을 많이 느낀다. 또한 수사 개시부터 종결까지 보도된 극장형 수사는 검사에게도 압박이 된다. 관심이 고조된 만큼 용두사미를 만들 수는 없기에 결국 무리한 수사로 나아가기 쉽다. (이연주 변호사의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 171쪽) 언젠가 법조 출입 경력이 오래된 기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기자가 대부분의 검사들이 패륜아로 취급하는 조 모 검사를 아주 높이 평가했다. (중략) 그렇다면 조 모 검사는 왜 기자들에게 인기 폭발일까. 일단 기자들에게 입안의 혀처럼 군다고 한다. (중략) 둘째, 신선한 기삿거리를 제공한다고 한다. 종일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기자들과 통화하며, 수사 상황을 실시간 중계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인간관계를 맺는 기술도 남다르다. 기자들과 한 달에 한 번씩 등산을 하는데, 등산에서 단 둘이 있을 기회를 만들어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본인을 정말 친하게 생각해서 이런 사적인 이야기까지 털어놓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안 그래도 친해지고 싶던 기자들이 껌벅 넘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검사들과의 친분 자기장에 걸려 기자들의 시각과 혀는 오염되는 것이다. (위의 책 186쪽 ~ 188쪽) 소설이 아닌 리얼 다큐, 이연주 변호사의 책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는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을 위해 전 국민 필독서가 되어야 한다. 기자들은 언론의 행태를 되돌아보며 성찰하는 마음으로 정독해야 하고. 읽다보면 몹시 창피하고 부끄러워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기자가 아닐 것이고... 송요훈 페이스북 . 2020년 12월 12일 오후 3:02 · 허위에 가식에 피눈물이 난다. 집값 폭등, 누구때문인가. 누가 투기를 부추기고, 누가 불안심리를 조장하고, 누가 수혜자가 되었는가. 집값을 올리지 못한다고, 빚 내서 집 사라는 정책만으로 집값이 오르겠냐고 성화를 해대며 박근혜 정부를 압박하던, 두 얼굴의 조선일보... 송요훈 펜이스북 2020년 12월 11일 오전 11:05 ·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악다구니를 배설하고 억지스럽고 사악하기조차 하여 분노를 유발하지 않는 기사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인데,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이 기사는 최악이다. 국민 이간질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사회악이다.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11일 오전 8:53 · 이 분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사람들이 맞나요? 정치인이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건 혹세무민의 정치를 하는 것이고, 선거 전과 후의 말이 다르면 유권자를 기만하는 사기 정치를 한다는 것인데, 그런 걸 가려내어 국민에게 알리는 게 언론의 역할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언론은 어떻습니까? 이 시대의 한국 언론은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까?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10일 오후 6:13 · 내 사람 건드리면 못 참는다? 조선일보가 찍어내는 주간지 <주간조선>에 검찰총장 윤석열에 대해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내 사람 건드리면 못 참는다. 마치 조폭 집단의 두목의 입에서나 나올 법한 말이다. 내 부하들은 내가 보호한다. 그러니 니들은 내 뒤로 줄을 서라. 그런 얘기로 들린다. 윤석열에 대해 ‘보스 기질이 넘쳐 자기 식구만 챙긴다’는 평가도 있다고 하고 그래서 검찰 내부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검사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룸싸롱 접대를 받고도 불기소 처분을 받은 검사들은 윤석열의 ‘식구’라서 ‘법 위의 특혜’를 받은 것이고 '보스 윤석열의 보호'를 받은 걸까? 기소란 무엇인가. 이 사람은 죄가 있으니 벌을 주라고 재판에 넘기는 공소 제기이고, 공수처 출범 이전에는 오로지 검찰만이 할 수 있는 독점 권한이었다. 기소 편의주의란 무엇인가. 기소를 할지 불기소를 할지 여부를 검사의 재량에 맡기는 거다. 요건만 갖추면 무조건 기소를 하는 경직된 기소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를 최소화하자는 취지일 거다. 기소와 기소 편의주의를 합치면, 검사가 그 둘을 나쁘게 악용하면, 죄가 있어 재판에 넘겨야 하는데도 검사가 자의적으로 기소를 하지 않아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는 거다. 검찰 편의적인 산수로 룸싸롱 접대를 받은 검사들에게 선물한 불기소가 그러하였다. 윤석열 징계도 그렇다. 징계의 대상이 되는지 그 내용으로 적부를 따지면 될 일이고, 잘못이 없다면 당당하게 징계위에 출석하여 소명하면 될 터인데, 절차가 어떻고 징계위원들이 어떻고 하면서 본질이 아닌 걸 트집잡아 시간을 끌고 징계를 피하려 한다. 명색이 검찰총장인데 당당하지 못하여 구차하고 담대하지 못하여 비루하다. 오만한데 졸렬하다. 검찰총장이 아니라 서초동 골목대장이 어울린다. 윤석열씨는 검사가 수사권으로 장난을 하면 검사가 아니라 깡패라고 했다. 검사가 기소권으로 장난을 하면 뭐라고 해야 하나? 깡패보다 한 수 위의 조폭이라고 해야 하나? 독점 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검찰에 국민은 신물이 나는데, 그런 민심에는 아랑곳 않고 보란 듯이 ‘우리 조직을 감히 누가 건드리냐’고 시위를 하듯이 룸싸롱 접대 검사들에게 불기소 처분을 내린 윤석열 검찰. 이런 저런 빌미를 찾아 징계를 피하려는 검찰총장 윤석열. 내 사람 건드리면 못 참는다는 윤석열을 믿고 그 뒤에 줄을 서고 있는 검사들은 하루빨리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게 낫겠다. 줄 잘못 섰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으니.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10일 오전 10:40 · 자기부정의 늪에 빠진 조선일보 인사혁신처도 사찰 자료를 구매한 거 아니냐. 엥? 이게 뭐지? 조선일보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런데 아니다. 왜곡과 조작이 금도를 넘었다. 조선일보의 논리와 주장은 이런 거다. 인사혁신처가 법률신문과 주요 언론사들이 제공하는 법조인 인물정보를 유료로 열람하는데, 그 정보가 대검 수사정보 수집부서에서 수집한 판사들의 ‘사찰’ 정보와 뭐가 다르냐는 것이고 인사혁신처도 돈을 내고 ‘사찰 정보’를 구매할 거 아니냐는 것이고, 그러하니 윤석열은 잘못이 없다는 거다. 이쯤 되면 확증편향이 도를 넘어 중증의 질병이 되었다고 봐야 한다. 언론사들이 제공하는 인물정보에 나이, 성별, 학력, 경력 외에 성향이 어떻다든가 누구와 인척이라든가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이라든가 하는 등등의 기분 나쁜 '사찰' 정보가 포함되어 있는가. 언론사들이 법조인들을 사찰하여 얻은 정보를 공개적으로 팔고 있다는 것인가. 조선일보의 ‘윤석열 일병 구하기’가 눈물겹다. 지푸라기를 잡아 철갑의 구명정으로 왜곡하고 조작하여 독자들을 홀리고 속이려 한다. 아니 지속적으로 세뇌시킨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몸부림이 애처롭다. 궁금하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진짜 그렇게 생각해서 이런 기사를 쓰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데 위에서 시키니까 그렇다고 기사를 쓴 걸까. 아니면 기자가 쓴 기사를 위에서 의도에 맞춰 각색한 걸까. 확증편향의 포로가 되어 자기부정의 늪에 빠진 조선일보, 앞으로 조선일보 기자들은 취재가 아니라 사찰이고, 기사가 아니라 사찰보고서라고 용어를 바꿔 쓰기 바란다.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10일 오전 9:36 · 서초동 골목대장에 대한 어떤 평가. 그를 지근거리에서 관찰한 바 있는 어떤 이로부터 나도 유사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 말에 넘어가 흘려 들었지만. <그는 정의로운 검사로 알려졌지만, 동시에 위험한 인물로도 분류된다. 윤 총장과 인연이 없는 평범한 형사부 검사들뿐 아니라, 윤 총장 같은 ‘특수통’ 검사들조차 그는 위험인물로 인식돼있다. 그의 수사방식을 경험하고 공유했던 일부 인사들은 핏대를 세울 정도다. ‘윤석열’이란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치를 떨면서 말이다. 대기업 수사든, 정치권 수사든, 고위 공무원 수사든, 그는 늘 그랬다는 것이다. 윤석열 스타일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그럴듯한 대의명분을 설정한 뒤 결론을 정해 놓고 수사한다’,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무지막지하게 수사한다’, ‘목표에만 집착해 절차를 무시하고 인권을 등한시한다’, ‘수사의 고수들이 깨닫는 절제의 미덕을 찾아볼 수 없다’, ‘보스 기질이 넘쳐 자기 식구만 챙긴다’, ‘언론 플레이의 대가이자 무죄 제조기다’ 등이다.>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9일 오후 9:15 · 룸싸롱에서 울려 퍼진 경고음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히 민주주의가 정착된 선진국가로 갈수록 상상도 못하는 절대적인 독점 권한을 가진 한국의 검찰. 수사권, 기소권, 영장청구권에 기소를 하여 벌을 줄지 말지를 검사의 재량에 맡기는 기소편의주의까지, 한국의 검찰이 가진 칼은 가히 절대적이다. 산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천사를 악마로 만들 수도 있고 악마에게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죽은 자를 살리는 거 빼놓고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집단이 한국의 검찰이다. 나는 법학을 공부하지 않은 문외한이나 기소편의주의란 검사의 재량권을 인정하여 경직된 법집행으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를 최소화하려는 취지가 아닐까 한다. 그런데 한국의 검찰에선 어떤가. 똑같은 혹은 유사한 잘못을 저질러도 누구에게는 칼을 들이대고 목숨마저 위협하지만 정작 같은 검찰 식구이거나 검찰에 우호적인 개인과 집단에는 한없이 관대하다. 그건 기소편의주의가 아니라 ‘내맘대로 기소' 또는 '엿장수 맘대로 기소’라고 불러야 한다. 그런 검찰에서 법 앞의 평등은 작동하지 않는다. 검사 아닌 공무원들이 룸싸롱에 가서 중대한 사건의 핵심인물로부터 접대를 받았다면 검찰은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언론에 흘려 부정부패 공직자로 여론재판을 하고 이어 투명한 공직사회를 위하여 엄정한 법집행이 필요하다며 기소를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검사들이 룸싸롱에 가서 접대를 받았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속이 뻔히 보이는 꼼수로 불기소를 하고 조삼모사로 국민을 속이면서도 미안한 기색조차 없다. 이현령 비현령,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로 법집행을 하는 검찰을 어느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나. 상황에 따라서 상대에 따라서 조직의 유불리에 따라서 법집행이 오락가락하는 검찰을 어느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나. 남들에게는 잔혹하게 법집행을 하면서 정작 자기 식구들에게는 조폭이 조직원 보호하듯 감싸는 검찰을 어느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나. 그런 검찰을 신뢰할 수 없어 공수처를 설치하는데 공수처 설치에 반대하면서 조직이기주의에 도취되어 집단행동을 하는 검찰공화국의 검찰을 어느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나. 룸싸롱 접대 받은 검사 불기소, 검찰이 갖고 있는 독점 권한을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분산하라는 경고음이다. 검찰을 이대로 방치하면 돈 없고 빽이 없거나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국민은 언제든 누구든 무소불위 권한을 독점한 검찰로 인하여 억울한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바로 그 경고음. 그렇지 아니한가.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9일 · 이봐요, 나경원씨! 공수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줄임말이고, 이름 그대로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수사하는 기관인데 국민의 삶이 왜 무너진다는 거요? 공직사회가 투명하고 맑아지면 국민에게 좋은 거 아니오? 그리고, 공직자로서 바르게 살고 법과 규정에 따라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하면, 공수처든 공룡이든 두려울 게 뭐가 있소? 뭔가 구리고 켕기는 게 있으면 공직에 욕심을 내지 않으면 되는 거요.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8일 · 친검무죄 반검유죄 돈 있으면 무죄, 돈 없으면 유죄라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탈주범’ 지강헌의 명언이지요. 그는 교도소 이송 중에 동료 죄수들과 탈출에 성공하여 경찰의 검거망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다 서대문구의 어느 가정집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인질극을 벌이던 중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의 일입니다. 그 당시에 저는 초년병 기자로 인질극의 현장에서 몇 미터 거리를 두고 지강헌의 얘기를 직접 들었습니다. 당시 34살이던 그는 세상에 불만이 많았지요.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그때 그가 했던 말입니다. 이런 얘기였습니다. 나는 나쁜 놈이다. 가난하고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그런 성장과정에서 나쁜 길로 들어섰다. 남의 걸 훔치고 싸움질을 하고 그러다 교도소에 갔고, 출소한 뒤에는 전과자로 살기 힘들어 동네 건달들과 어울려 무전취식을 하고 푼돈을 뜯고 행패를 부리다 또 교도소에 갔다. 그게 반복되면서 나는 경찰에서도 검찰에서도 법정에서도 교도소에서도 인간 쓰레기 취급을 받았고, 전과가 늘어나면서 형량은 점점 높아졌고, 그리하여 17년을 교도소에서 보냈고, 사회에서 격리해야 하는 흉악범이 되었다. 그런데 교도소에 있을 때 보니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나 같은 개털은 쓰레기 취급을 받는데, 돈도 있고 빽도 있는 범털들은 교도소에서도 칙사 대접을 받더라. 나는 동네 건달이고 나로 인한 피해자들은 동네 식당 주인 등 몇 명이 되지 않지만 수십 억 뇌물을 받아 먹은 자는 수많은 국민이 피해자인데 교도소에서도 호사를 누리는 떵떵거리더라. 나는 교도소에서 17년을 썩었는데 그네들은 몇 년을 선고받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가석방이나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더라. 나는 돈 없는 무전이라 유죄이고, 돈 있고 빽 있는 그네들은 유전이라 무죄더라. 나는 이런 세상이 싫다. 교도소를 탈출하여 부조리한 세상을 고발하고 싶었다. 인질극을 벌이던 가정집의 담장 위에 앉아 지강헌을 얘기를 듣는데 숙연해더군요. 어쩌면 지강헌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기자로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저에게 부조리한 세상을 고발한 첫 제보자인 동시에 리얼한 세상을 가르쳐준 첫 스승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아침에 인터넷으로 뉴스를 뒤적이다가 문득 지강헌이 떠오른 건, ‘국민의 짐’으로 불리기도 하는 국힘당이 공수처 출범에 반대하면서 ‘친문무죄 반문유죄’라고 써 붙인 사진을 봤기 때문입니다. 국힘당 원내대표 주호영씨는 지강헌이 인질극을 벌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젊은 판사였는데, 그가 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며 목소리를 높였는지 그 배경을 잘 모르나 봅니다. 아니면 세상사에 관심이 없거나 세상 물정에 어두운 판사였거나... 친문무죄가 아니라 친검무죄라 해야 옳지 않을까 합니다. 반문유죄가 아니라 반검유죄라 해야 옳지 않을까 합니다.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도 탈탈 털리고 기소를 당하고 청와대의 참모들도 탈탈 털리고 기소를 당하는데, 국힘당의 나경원도 박덕흠도 탈탈 털렸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듣자하니 국힘당의 상당수 의원들은 집값 폭등을 부추긴 법안에 찬성하였고, 그래서인지 운이 좋아서인지 부동산으로 떼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얼굴에 핏발을 세우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던 지강헌은 이렇게 절규했었지요. 나는 나쁜 놈이다. 벌을 받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나보다 훨씬 큰 죄를 지은 자들은, 나는 꿈도 못 꾸는 규모의 검은 돈 부정한 돈을 만지는 자들은,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나는 저지를 수도 없는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나는 몇 명에게 피해를 주었지만 부도덕한 재산 불리기로 불특정의 수많은 국민을 피해자로 만든 자들은, 왜 벌을 받지 않느냐. 나 같은 개털에게 법은 잔혹하면서 돈 있고 빽 있는 범털들에게 왜 법은 관대한 것이냐. 지강헌이 남긴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이젠 어느 고사성어보다도 널리 쓰이는 일상어가 되었고, 누구나 그 말을 쓸 수는 있으나, 원작자의 취지에 어긋나게 의미를 왜곡하여 오남용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지금은 검찰과 친하게 지내는 친검은 무죄요,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반검은 유죄라고 해야 옳습니다. 1988년에 탈주범 지강헌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남긴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2016년 겨울 광화문 광장을 메운 '이게 나라냐'는 함성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추가. 지강헌과 탈주 동료들은 몇몇 가정집에 들어가 숙식을 해결하고 인질극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 누구도 해치지 않았습니다.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7일 · 외눈박이 검찰, 외눈박이 언론 수사권을 가진 검찰은 수사할 일이 있으면 주저함이 없이 수사해야 하고, 수사할 일이 아니면 함부로 칼을 휘두르면 안 된다. 그런데 검찰이 정치적인 이유 또는 검찰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누구를 손 좀 봐주려고 수사권을 휘두른다면 권한을 오남용하는 불법이고 범죄가 된다. 검사들의 밥그릇을 키우고 지키기 위해 또는 검사 자신의 영달이나 돈벌이를 위해 수사권을 휘두른다면 검사가 아닌 저질 깡패가 된다. 기소권도 마찬가지다. 기소할 만한 일이면 주저함이 없이 기소해야 하지만, 그럴 일이 아닌데도 정치적 이유나 검찰 조직 또는 검사의 이해관계에 따라 기소권한을 자의적이고 편의적으로 오남용하면 검사가 아니다. 그 순간 검사는 조폭 집단의 조직원이 되고, 길 막고 통행세 뜯어먹는 양아치가 된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하고 법집행은 공정해야 한다. 피해자가 있다는 건 가해자가 있다는 거다. 검찰이 수사권, 기소권을 오남용하는 건 죄를 지어 벌을 받을 놈에게 특혜를 주는 면죄부 장사를 하는 것이고, 법의 보호를 받아야할 선량한 국민은 억울한 피해자가 된다. 언론이 하는 일도 그렇다. 언론이 공정하지 못하여 독자들에게 일그러진 창으로 세상을 보여주면 여론을 오도하게 되고 결국 절대 다수의 국민이 피해자가 된다. 한 눈을 감고 운전을 하면 그 차는 도로를 위협하는 폭탄이 된다. 지금 우리의 다수 언론은 어떠한가. 어떤 언론사는 10명의 서울대 교수(그 중의 9명은 익명)가 윤석열 징계 회부를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고 대서특필하면서 천주교 사제와 수도사 3,951명의 검찰개혁 촉구 성명은 애써 외면한다. 그게 공정한 태도인가. 언론은 여론조사를 보도함에 신중해야 한다. 공신력을 부여하기 어려운 아무 조사나 보도하면 여론을 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론조사를 보도할 때는 누가, 언제,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방법으로 조사를 했고, 표본수는 얼마나 되고 오차범위는 어떠한지 기사에 반드시 반영하여야 한다. 스누라이프라는 서울대 동문 온라인 게시판에서 ‘자랑스런 서울대 동문’ 조사를 했더니 윤석열씨가 1위를 기록했고, 윤희숙 금태섭 진중권 안철수씨가 차례로 뒤를 이었다고 한다. 거의 모든 매체가 그걸 기사라고 내보냈는데, 그 조사는 신뢰할 만한 조사인가. 그 기사는 언론의 윤리에 부합하는 기사인가. 서울대 동문 게시판의 신뢰가 의심스러운 조사는 대서특필하면서 이 나라의 민주화에 큰 기여를 한 서울대 민주동문회의 검찰개혁 촉구 성명은 보도하지 않는 언론사는 공정한가, 언론이라 칭할 자격이 있는가. 검찰에게도 언론에게도 가장 큰 문제는 ‘직업윤리 실종’이다. 검찰개혁은 검사들에게 ‘직업윤리’를 장착해주는 것이고, 언론개혁은 기자들에게 실종된 ‘직업윤리’를 찾아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남이 애써 찾아주는 것이니 고마운 줄 알아야 하지 않겠나.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6일 · <스트레이트> 보다가 분노 폭발. 사대강 사업과 자원외교에 수십조, 수백조의 국고를 탕진한 이명박 정부. 그 막대한 국민세금은 누군가들의 주머니로 들어갔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말기에 강릉, 삼척, 고성 등에 대규모 석탄발전소를 허가한다.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는 대대적인 탄소 절감 대책을 발표한다. 사실상 유예됐던 석탄발전소 건설 계획은 국정농단으로 혼란스런 틈을 타 실행에 옮겨지더니 문재인 후보가 석탄 발전 축소 공약을 발표하자 공정률이 치솟기 시작한다. 알박기처럼. 부도덕한 정권과 토건 마피아의 유착이 의심된다. 이보시오, 감사원장 최재형씨! 검찰총장 윤석열씨! 감사를 하려면 그런 걸 감사해야 하고, 수사를 하려면 그런 걸 수사해야 하는 거요. 감사원이나 검찰이 하는 행태는 수구 동맹 카르텔의 협조자 역할을 하고 있는 거요. <스트레이트> 못 보신 분들은 '다시보기로' 꼭 보시길!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5일 · 확증편향이 빚은 집단 참극 조선일보가 기사로 쓰고 '국민의 짐'이라 불리기도 하는 어느 야당의 국회의원이 자신의 SNS에 옮기고 한국경제신문이 그걸 인용하여 또 기사를 쓰고… 가짜뉴스가 살포되고 확산되는 과정이 재연되었다. 노태우 정부 시절이던 지난 1991년에 남북이 UN에 동시 가입했다는 걸 모르거나 잊고 있는 기자나 국회의원이 있을 수는 있지만(진짜라면 말도 안 되지만), 오래 전도 아닌 1년 전인 ‘지난 해’에 남북이 UN에 동시 가입했다고 알고 있는 기자나 국회의원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조선일보에 그런 기사나 나고, 국회의원이 옮기고, 한국경제신문이 그걸 인용하여 재확산하는 가짜뉴스 무차별 살포의 망신스런 참극이 벌어진걸까. 무식해서일까? 멍청해서일까? 아니다. 확증편향 때문이다. 확증편향의 포로가 되면 신기하게도 보고 싶은 것만 눈에 보이고 듣고 싶은 말만 귀에 들린다. 수많은 사실 중에 맘에 쏙 드는 작은 사실만 눈에 뜨이고, 장문의 글도 앞뒤 문맥이나 맥락을 무시하고 입맛 당기는 단어만 눈에 들어온다. 글만 그런 게 아니라 말도 그렇다. 친절하게 길게 설명을 해도 귀에 쏙 들어오는 단어는 따로 있다. 조선일보 기자도 그랬을 것이다. ‘지난 해 남과 북은 유엔에 동시 가입’이라는 지문의 시작 부분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이제 우리에게 통일은 소망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뒷 부분만 눈에 띄었을 것이다. 확증편향의 센서는 지문 속의 ‘현실’이라는 단어에 반응했을 것이고, ‘2020년 오늘’이라고 곡해하는 뇌구조를 작동시켰을 것이다. 기사를 쓴 기자만 그랬을까. 그 기사를 통과시킨 데스크나 편집부서의 기자들이나 그 위의 간부 기자들이나 그 언론사의 사주나, 그 기사를 보고 자신의 SNS에 옮긴 국회의원이나, 조선일보 기사를 베끼고 국회의원의 SNS를 기사로 퍼나른 한국경제신문의 기자들이 그랬을 것이다. 한 마디로 집단적 확증편향 감염이라고나 할까. 왜 그랬을까. 속이 배배 꼬여서 그런 거 아닐까. 우월의식와 오만과 독선이 ‘나는 항상 옳다’라는 확증편향 바이러스에 감염되게 하였고, 그것이 반복되면서 확증편향이 강화되고, 그리하여 확증편향의 포로가 되어, 문재인의 ‘문’만 보여도 모두가 나쁘게 보이고 윤석열의 ‘윤’만 보여도 모두가 좋게 보이는 병적인 집착과 망상으로 이어진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확증편향에 감염된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선전 선동을 일삼는 기관지이고 국민의 정신세계를 어지럽히는 사회악이다. 추가. 수능 문제로 정권 홍보를 했다는 확증편향의 오보를 날렸다가 무식함이 들통나는 망신을 당한 조선일보는 수능 문제를 너무 쉽게 냈다고 슬쩍 방향을 틀더니 다시 유턴하여 어쨌든 정권 홍보가 아니냐며 사설로 우겨댄다. 확증편향은 이렇게 강화되고 병이 된다. 조선일보는 말기적 중증이다. 거짓을 인정하지 않고 거짓을 거짓으로 덮다보면 거짓이 거짓이 거짓을 낳고 그 거짓이 또 다른 거짓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참과 거짓이 뒤바뀐 세상에 살게 된다. 정직이 가훈이라던 누구처럼.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3일 · 압수수색의 섬뜩한 기억 이명박 정권 시절의 일이다. 하루는 집으로 은행에서 요상한 통보서가 날아왔다. 봉투를 열어보니 검찰이 내 계좌를 들여다봤다는 통보였다. 뭔 일이지? 월급쟁이인 내가 탈세를 한 것도 아니고 부정한 거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정치자금을 다루지도 않는데? 통보서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검찰이 나와 내 가족의 은행계좌를 모두 들여다봤다는, 즉 압수수색을 했다는 통보가 차례차례 날아들었다. 그 당시에 아이들은 초등학생과 중학생이었고, 아이들의 은행계좌는 세뱃돈 저금한 게 전부였고, 아내는 전업주부였다. 은행에 전화를 걸었다. 검찰이 내 계좌를 들여다봤다는데 그 이유가 뭔가. 저희들은 모릅니다. 압수수색영장에 사유가 적혀 있을 거 아닌가. 저희들은 모릅니다. 내 은행계좌다, 나는 알아야 할 거 아닌가. 저희들은 모릅니다. 정 궁금하시면 검찰에 직접 전화해보십시오. 이유를 추궁하자 은행 직원의 목소리는 거의 울상으로 변해갔다.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른다. 알아도 말해줄 수 없다. 우리한테 자꾸 이러시면 저희도 곤란하다. 그런 투였다. 하는 수 없이 통보서에 있는 번호로 검찰 담당부서에 전화를 걸었다. 심호흡을 몇 번하고,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진정하고... 서울지검 특수부입니다. 무슨 일로 전화하셨습니까? 검찰 담당직원의 목소리는 묵직했다. 검사실의 수사관(계장)일 것이다. 검찰이 나와 내 가족의 은행계좌를 압수수색했다는 은행의 통보를 받았는데 그 이유를 알고 싶어 전화했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아, 그건 말입니다... 잠시 후 전화선을 타고 전해지는 목소리는 낮고 느릿하며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냄새를 물씬 풍겼다. 그거, 별 거 아닙니다. 그러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순간, 속에서 불덩이가 치밀고 올라왔으나 최대한 점잖게 물었다. 걱정해서 전화한 게 아닙니다. 압수수색을 한 이유가 알고 싶어 전화를 한 겁니다. 별 거 아니라니까요.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별 거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변, 걱정해서 전화한 게 아니라 이유를 알고 싶어 전화했다는 반박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두세 차례 이어지다 그의 목소리는 위압적으로 바뀌었다. 아, 글쎄 별 거 아니라니까요. 여기 검사들이 몇 명이나 있는 줄 아십니까? 뭔가 있었으면 우리가 가만히 있었겠어요? 섬뜩했다. 등골이 오싹했다. 사실 그들이 왜 내 은행계좌를 털었는지 짐작은 하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에 눈엣가시가 된 어떤 이를 표적으로 삼은 ‘은밀한 내사’였고, 탈탈 털고 털었지만 나오는 게 없으니 그의 주변을 털었던 것이고 나도 그 중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내가 기자라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봐야 펜도 마이크도 뺏기고 보도국 밖을 유랑하던 처지였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긴 했지만, 권력과 유착된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집단이 맘만 먹으면 무슨 짓을 못할까, 별 거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감지덕지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비루한 생각이 들기까지 하였다. 지금도 그때 받은 통보서를 잘 간직하고 있다. 불쾌한 그 ‘사찰의 증거’를 간직하는 이유는 언젠가는 꼭 묻고 싶어서다. 그때 왜 그랬냐고. 나와 내 가족의 계좌를 몰래 은밀하게 들여다본 이유가 뭐냐고. 그건 정치공작 수사를 위한 게 아니었냐고. 당신들이 국민을 위한 검찰이라면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고 최소한 왜 그랬는지 설명은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검찰집단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명분으로 내걸고 매년 몇 명의 검사들을 무작위로 추출하여 검사 개인과 그 가족의 은행계좌를 몰래 은밀하게 들여다본다면 검사들은 뭐라고 할까? 정의로운 검찰, 투명한 검찰조직을 위해 필요한 일이니 별 거 아니고 걱정할 일도 아니라고 할까? 내가 검찰개혁을 지지하는 건 내게 그런 섬뜩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조직이기주의에 취해 밥그릇 건드리면 대통령도 물어 뜯는 무소불위 집단에 누가 대항할 수 있겠는가. 검찰을 이대로 둔다면, 내게 있었던 일이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걸 지금 우리는 현실세계에서 눈으로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검찰개혁은 검사들의 밥그릇이 아닌 국민을 위한 개혁이다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3일 · 바닷가 아이들은 해가 바다에서 뜬다고 하고, 산골 아이들은 해가 높은 산 위로 뜬다고 하고, 도시의 아이들은 해가 빌딩 사이에서 뜬다고 한다는 말을 아주 아주 오래 전에 들었는데(산과 바다에 대한 예찬이었음), 부동산 공화국의 어른들은 아파트 공사장 사이로 해가 떠오른다 하고 검찰공화국의 아해들은 서초동에서 해가 뜬다고 할까? 송요훈 페이스북 2020년 12월 2일 · 선악의 구분은 나(우리)만이 한다는 오만하고 지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이고 비뚫어진 선민의식으로 가득 찬 '법률 기계'들이 서초동 골목에 즐비하구나. 기계는 입력된 수치대로 작동하기라도 하는데... 억울한 일을 당하여 검찰청, 법원을 쫓아다니다 오만하고 불공정한 외눈박이 검사 판사들로 인해 마음의 병까지 얻었다며 법조개혁의 절박성을 토로하던 어느 노인이 생각난다. 언론이 보도 좀 해달라고 찾아왔던, 한때는 상위 1%에 속했던 노인. 힘 없고 못 배운 사람만 사법피해자가 되는 건 아니다. 판사 검사에 대한 민주적 통제, 제어장치가 없으면 나도 당신도 그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저작자표시 비영리 변경금지 (새창열림)